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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1)-창업주 김연수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1)-창업주 김연수家

    일반인들에게 ‘삼양설탕’(현 ‘큐원설탕’)으로 익숙한 삼양사는 한국 근대경제사를 주도한 명문 기업이다. 호남 거부의 후예인 김연수(金秊洙) 창업주는 일제하인 1924년 순수 민족자본으로 기업을 설립, 한국기업의 명맥을 이었다. 김 창업주는 형인 인촌(仁村) 김성수씨가 동아일보를 설립하고 꾸려가도록 뒷받침했고, 여러 차례 재산을 털어 고려대와 고려중앙학원의 기틀을 마련하도록 뒤에서 도왔다. 그러나 김 창업주는 일제하에 기업을 경영함으로써 최근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사인명사전을 편찬하면서 친일인사로 선정하는 등 사후에 ‘친일’ 시비에 휘말리고 있기도 하다. 때문에 근대 한국경제의 산증인인 김 창업주의 삶은 굴곡 많은 우리 근대사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병약했던 어린 시절 김 창업주는 1896년 10월1일 전라도 고부군 부안면 인촌리에서 부친 김경중씨와 모친 장흥 고씨 사이에서 2남으로 태어났다. 형의 호인 인촌은 바로 두 형제가 태어난 동네 이름을 따온 것이다. 김 창업주의 부친은 1만 5000석 지기의 호남 최대 거부였고 학문에도 조예가 깊었다. 부친은 일제하에서 나라가 영영 없어지는 것으로 알고 당시 저명한 사학자들을 몰래 불러 ‘조선사’를 17권이나 엮을 정도로 민족애가 투철했다는 게 삼양그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김 창업주는 어린 시절 외롭게 지냈다. 김 창업주의 부모는 그가 태어나기 전 세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을 일찍 잃었다. 여기에다 한 명뿐인 형인 인촌이 큰아버지인 김기중씨가 대를 이을 아들이 없자 양자로 보내졌기 때문이다. 어릴 적 김 창업주는 몸이 허약했다. 폐가 약했으며 위도 튼튼하지 못해 일찍이 폐와 소화기 계통의 질병으로 자식을 잃은 경험이 있는 부모의 애를 끓게 했다. 이런 이유로 개구쟁이처럼 장난이 심하고 활발했던 인촌과는 달리 김 창업주는 조용한 것을 좋아했고, 과묵하고 내성적인 성품을 지녔다. ●27세에 경영인으로 출발 김 창업주는 15세 되던 1910년 12월8일 자신보다 두 살 위인 박하진씨와 혼인을 맺었다. 결혼 이후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한국인 최초로 교토제대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그는 고국으로 돌아온 이듬해인 1922년 형의 권유로 경성직뉴와 경성방직의 전무와 상무에 취임, 경영인의 삶을 시작했다. 김 창업주는 고무신과 ‘태극성표’ 광목을 대히트시킴으로써 일본자본과 맞서는 최대의 민족회사를 일궜다. 집안 내력을 잘 아는 김재억 삼양사 상임감사는 “30년대 경성방직은 우리나라 금융거래 절반을 담당할 정도의 민족 최대 기업이었다.”고 말했다. 김 창업주는 또한 농촌재건을 위해 소작농을 협동농업 형태로 결합한 근대영농을 시작했다. 이를 발판으로 1924년 삼수사(三水社)를 설립해 호남 일대의 소유농토에 대한 근대화 작업에 나섰다. 장성, 줄포, 고창, 명고, 신태인, 법성, 영광농장을 차례로 개설해 기업형 농장으로 탈바꿈시켰다. 간척사업에도 눈을 돌려 손불농장과 해리농장의 2개 지역에 1070정보의 농토를 만들었다. 이 시기에 상호가 삼양사(三養社)로 바뀌었다. 어느 날 한 작명가가 찾아와 ‘물 수’(水)를 ‘만인의 양식’이라는 뜻인 ‘기를 양’(養)으로 바꿀 것을 권했다고 한다. 김 창업주는 만주벌 개척에도 나섰다.5개 협동농장을 개설한 데 이어 봉천에 남만방적을 설립했다. 남만방적은 한국기업 최초의 해외생산법인이다. 그러나 1945년 해방으로 만주의 사업장들을 고스란히 놓고 철수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제당업으로 재기에 나서 해방공간을 겪으면서 반민특위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김 창업주는 한국 전쟁 이후 해체상태에 놓였던 삼양사 재건에 나섰다. 그는 재기의 발판으로 제당업과 한천제조업을 선택했다. 당시 설탕은 수입에 의존해온 대표적인 외화소비 품목이었기 때문이다. 울산 바닷가를 메워 그곳에 제당공장과 한천공장을 건설했다. 그는 1956년 삼양을 제당으로 키우면서 주식회사 삼양사를 출범시켰다. 자신이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했고, 사장에 3남인 상홍(83), 상무에 5남 상하(80)를 앉혔다.3남과 5남이 삼양사를 맡는 전통은 3세에도 그대로 이어져 삼양그룹은 현재 상홍씨의 장남 윤(53)씨와 상하씨의 장남 원(48)씨가 삼양사 회장과 사장을 맡고 있다. 둘째 아들들인 량(51)씨와 정(46)씨도 각각 삼양제넥스 사장과 삼남석유화학 부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당시 삼양사보다 수익률이 높았던 해리염전을 삼양염업사라는 별개의 회사로 독립시키고 맏아들 상준(작고)을 사장에 임명해 경영을 맡겼다.3공화국때 문교부장관과 5공화국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한 차남 상협(작고)에게도 삼양염전의 지분 25%를 떼어주어 형제간 경영권을 일찌감치 교통정리했다. ●재계의 거목으로 김 창업주는 1962년 설립한 삼양수산을 통해 다양한 어종을 가공, 수출하는 등 한때 냉동선만 21척을 보유할 정도로 수산업에도 주력했다. 이처럼 제당과 수산업으로 재기에 성공한 그는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자 한국경제협의회(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에 취임, 한국 재계의 얼굴이 되었다. 경영이 본 궤도에 오르자 김 창업주는 전주방직을 인수, 삼양모방(주)을 설립했다. 이어 1969년 전주에 대단위 폴리에스테르 공장을 건설했다. 이로써 70년대 들어 삼양은 국내 초창기 산업의 중심이었던 제당으로 확고한 제조업체로의 변신을 이룩했다. 이 당시 삼양은 매출액에서나 기업선호도에서 상위를 차지하는 국내 정상급 기업으로 우뚝 섰다. 김 창업주는 사업에 투신한 지 만 53년이 되던 1975년 회장을 상홍에게, 사장에 상하를 임명하는 등 ‘2세경영’을 출범시키고 은퇴했다. 그의 나이 80세일 때였다. 그는 은퇴 후 농촌으로 돌아가 마지막 열정을 쏟다가 1979년 84세의 일기로 생애를 마감했다. ●교육사업도 아낌없는 지원 그는 기업경영에만 몰두하지 않았다. 고려대와 고려중앙학원의 운영기금을 출연한 것을 비롯해 양영회와 수당장학회를 설립, 교육사업에도 힘썼다. 문성환 삼양사 부사장은 “창업주는 두 재단을 통해 대학생 2만여명에게 대학등록금을 비롯해 하숙비, 책값, 소정의 용돈까지 장학금으로 대줬다.”고 회고했다. 이런 김 창업주의 혜택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로는 한덕수 경제부총리, 오세철 연세대 교수 등이 꼽힌다. 경성방직의 회계를 맡아 김 창업주를 도왔던 국어학자 이희승 박사는 “수당(秀堂·김 창업주의 호)은 돈 쓰는 데도 일가견을 가진 사람으로 만금을 쓰면서도 기업경영에는 한 푼을 아꼈다.”고 그의 용전(用錢)철학을 전했다. 김 창업주는 경쟁회사에도 관대했던 묵묵한 성격의 경영인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1966년 삼양의 경쟁회사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운영하던 한국비료가 이른바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곤혹을 치렀다. 임원들이 ‘사카린 없는 삼양설탕’이라는 문구로 대대적인 광고전을 벌이자고 수차례 건의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은 사례는 그의 성품을 읽는 일화로 경영인들에게 지금껏 회자되고 있다. ●방대한 혼맥…사회 각 분야와 사통팔달 김 창업주는 부인 박씨와의 사이에 7남6녀 13명의 자녀들을 두었다. 아들로는 장남 상준(작고), 차남 상협(작고),3남 상홍(83),4남 상돈(81),5남 상하(80),6남 상철(70),7남 상응(작고) 등 7남과 장녀 상경(79), 차녀 상민(78),3녀 정애(75),4녀 정유(73),5녀 영숙(72), 막내 희경(66) 등 6녀를 두었다. 김 창업주 가문의 혼맥은 정계·관계·학계·언론계·재계·교육계 등과 거미줄처럼 얽힌 방대한 혼맥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김 창업주의 성격이 소탈해 자식들에게 정략 결혼을 요구하기보다는 평범하고 무난한 결혼을 시켰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김재억 감사는 “창업주의 생활철학이 권세를 배격하는 것이어서 자식들이나 3세들의 결혼에도 사돈 될 집안의 내력과 상대방의 성실성을 먼저 봤다.”고 회고했다. 김 창업주는 특히 자녀들의 대부분은 중매결혼으로 짝지웠지만 사위와 며느리를 맞는 데서는 당시로는 상당히 진보적인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사위를 고를 때는 가문을 따지지 않고 사람됨됨이와 능력을 위주로 보았고, 며느리는 후덕한 집안 출신으로 신식교육을 받은 신여성이기를 원했다. 특히 사돈가의 위치를 보고 정혼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해 그의 직접 사돈 가운데는 정관재계의 거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김 창업주의 며느리들 가운데 위로 세 명은 이화여전 출신 등으로 당시의 김 창업주가 원했던 신여성들의 표본이 많았다. 반면 창업주의 형인 인촌 성수씨도 9남4녀를 두어 대가를 이뤘는데 장남인 상만(작고) 전 동아일보 명예회장의 직계 자손들은 화려한 혼맥을 자랑하고 있다. 고려대 이사장이자 동아일보 전 회장인 장손 병관씨는 장남 재호(41·동아일보 대표이사 전무)씨를 이한동 전 총리의 차녀인 정원(38)씨와 결혼시켰고,2남 재열(37·제일모직 상무)씨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녀인 서현(32·제일모직 상무보)씨와 결혼했다. 김연수 창업주 자녀들의 혼맥을 살펴보면 장남 상준씨는 당시 집안과 각별하게 지내던 이화여대 총장 김활란 박사의 소개로 이뤄져 1943년 구영숙씨의 맏딸 연성(85)씨를 부인으로 맞았다. 상준씨는 보성전문 상과를 나와 조흥은행에 근무할 때였고 연성씨는 이화여전 음대를 졸업한 직후였다. 상준씨는 3명의 딸을 출가시켜 정·관·재계 인맥을 형성했다. 장녀 정원(62)씨의 부군은 고려대와 국가대표팀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했던 김선휘(68·삼양염업사부회장)씨다. 축구를 좋아하던 상준씨는 모교인 고려대 축구팀을 지원했는데, 이 일로 선휘씨가 상준씨 집에 드나들면서 자연스럽게 혼사가 맺어졌다. 차녀 정희(58)씨는 5공시절 당시 거물 정치인이었던 김진만씨의 맏며느리로 보내 동부그룹 회장인 김준기(64)씨를 사위로 맞았다.3녀 정림(57)씨는 전 문교장관 윤천주씨의 장남 대근(59)씨와 결혼했다. 대근씨는 현재 동부아남반도체 대표이사 부회장과 동부그룹 소재분야 부회장을 맡고 있다. 상준씨의 장남 병휘(60)씨는 한양대 자연과학대 자연과학부 수학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차남 범(52)씨는 독신으로 지내며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차남 상협씨는 해방 직후 고려대 부교수 시절, 의사 김준형씨의 2남3녀 가운데 맏딸 인숙(82)씨와 연애결혼에 성공했다. 인숙씨도 니혼조시 대학을 나온 당시 보기 드문 일본 유학 신여성이었는데 상협씨의 도쿄제대 동창 부인의 소개로 만나 연애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장녀 명신(58)씨를 송진우 전 동아일보사장의 아들인 상현(65) 서울대 법대교수와 혼인시켰다.2녀 영신(56)씨는 정태섭 전 변호사의 아들 성진(58)씨와 결혼했다. 외아들 한(52)씨는 메리츠증권 부회장으로 있다. 3남 상홍(83)씨는 구 치안본부 재직시절 수원갑부 차준담씨의 2남2녀 가운데 맏딸 부영(79)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부영씨는 이화여고와 이화여전을 나온 재원이었다. 상홍씨는 2남2녀 가운데 장남 윤씨를 전 서울신문사 김종규 사장의 딸 유희(46)씨와 혼인시켜 벽산그룹 김인득 회장과 한 다리 건너 사돈이 됐다. 또 차남 량씨는 장지량 전 공군참모총장의 막내딸 영은(46)씨와 백년 가약을 맺었다. 영은씨의 오빠 장대환씨는 매일경제 신문 창업주 정진기씨의 사위로, 현재 매일경제신문 대표이사회장 인쇄인 겸 발행인과 현 매일경제TV 대표이사 회장이다. 장녀인 유주(56)씨를 사업가 윤주탁씨의 2남 영섭(59·고려대 상대교수)씨에게 시집 보내 윤주탁씨와 직접 사돈간인 박태준 전 민자당 최고위원과 연결되고 있다. 영섭씨의 남동생인 영식씨가 박 전 위원의 장녀 진아(48)씨와 결혼했다. 4남 상돈씨는 6·25 직후 김유황 전 광장㈜ 부사장의 딸 용옥(73)씨와 결혼했다. 상돈씨는 맏형인 상준씨의 중매로 장남 병진(52)씨를 축구협회 부회장과 축구대표팀 감독을 지낸 한흥기씨의 딸인 혜승(45)씨와 맺어줬다. 차남 영로(50)씨는 사업을 하던 정형식씨의 딸 은미(46)씨와 혼인했다. 외동딸 희진(45)씨는 전 대한항공 이사 오명석씨의 외아들 광희(49)씨에게 시집갔다. 광희씨는 전 나이스정보통신 전무이사를 역임했다. 5남 상하씨는 삼양사 설탕공장 설립관계로 일본에서 일하고 있던 1953년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귀국, 바로 박상례(75)씨와 혼인을 맺었다. 상례씨는 공무원 출신인 박규원씨의 딸로 김 창업주의 친구가 중매를 섰다. 외동딸인 영난(44)씨를 송하철(45·주식회사 항소 사장)씨와 결혼시켜 송남석 모나미 회장의 막내며느리로 보냈다. 장남 원씨를 배영화 경희어망 회장 딸인 주연(45)씨와 맺어 줬다. 차남 정씨는 안상영 전 부산시장의 딸인 혜원(39)씨와 결혼했다. 6남 상철(70)씨는 사업을 하던 우근호 씨의 딸 정명(63)씨를 부인으로 맞았다. 7남 상응(작고)씨는 공무원 생활을 했던 권오경씨의 5녀중 셋째딸 명자(53)씨와 결혼했다. 장녀 상경(79)씨는 아폴로박사 조경철씨와 결혼 후 이혼해 조서봉(필립), 조서만(조지) 등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차녀 상민(78)씨의 남편은 이두종(작고)씨로 활발하게 삼양사의 경영에 참여했다. 온양 지주의 아들로 자란 두종씨는 1956년 삼양사 과장으로 입사해 이 회사의 대표이사 부사장까지 올랐다.1984년 회사를 떠난 뒤에도 삼양그룹이 운영하는 재단법인 양영회와 수당장학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3녀 정애(75)씨는 교육계에 몸담았던 조종립씨의 아들 석(작고)씨와 결혼했다. 석씨는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결혼 후인 57년 삼양사에 사원으로 입사, 총무부장·경리부장·이사·상무·대표이사 부사장을 거쳐 전 삼양제넥스 상임고문까지 역임했다. 4녀 정유(73)씨의 남편은 전 서울대 부총장인 김영국(작고)씨다. 그는 인천에서 사업을 하던 김덕창씨의 8남매 가운데 3남으로 인천이 낳은 천재로 불리었다. 이들은 김 창업주 친구의 소개로 결혼했다. 영국씨는 서울대 정치학과 총동창회장을 지낸 상하씨의 후배이자 매제인 셈이다. 5녀 영숙(72)씨는 미국인 스테푸친과 결혼, 딸 페기, 아들 프랭크를 두고 미국에서 살고 있다. 막내딸 희경(66)씨도 교육자였던 김종규씨의 아들 성완(68·삼양사 의약사업 고문)씨와 결혼,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성완씨는 미국 유타대학 석좌교수로 인공심장 분야의 권위자다. jrlee@seoul.co.kr ■ 창업주의 친일논란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8월29일 친일인사인명사전 편찬을 앞두고 수록예정자 명단 3090명의 이름을 공개했다. 이 명단에는 삼양사의 창업주 김연수씨도 포함됐다. 김씨는 전쟁협력 분야에서 ▲1939년 만주국 명예 총영사 ▲1940년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 이사 ▲조선방적 이사장 ▲1940∼1945년 중추원 참의(자문위원)를 지냈다는 이유로 선정됐다. 이에 대해 삼양그룹측은 대응을 일절 자제한 채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다만 그룹의 한 관계자는 “창업주가 일제의 압제에 죽음으로 항거하는 등 깜짝 놀랄 만하게 대항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름대로 일제의 폭거에 맞서 민족자본을 형성했다.”며 “후세에 역사가들이 올바른 평가를 내릴 것”이라고 비교적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보다 반일 감정이 팽배했던 1949년 반민특위 재판에서도 창업주는 무죄를 받았다.”고 해명했다. 또 창업주는 창씨 개명도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김 창업주의 일대기인 ‘한국 근대기업의 선구자’에는 일제시대 그의 행적이 상세히 수록돼 있다.6부로 구성된 전기에는 4부 ‘고난의 시절’ 편에 일제에 협조할 수도, 항거할 수도 없었던 고심의 일단들이 실려 있다. 김씨는 중추원 참의 임명과 관련해 1940년 5월 조간신문에 자신이 칙임참의에 임명됐다는 기사를 보고 내무국장 우에다키에게 항의하러 갔지만 결국 그의 완력에 굴복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는 이후 ‘설사 내가 지녔던 일제치하의 모든 공직이나 명예직이 스스로 원했던 것이 아니고 위협과 강제에 의한 것이었다고 할지라도 일단 그런 직함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국과 민족앞에 송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통렬한 자기반성의 글을 실었다. 김 창업주는 반민특위에 검거돼 7개월간 수감됐지만 이런 반성의 자세가 참작됐는지 재판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는 경성방직을 경영함에 강력히 일본자본과 싸웠고, 항상 한민족을 위한 경제적 기반확립에 노력했고, 경성방직의 상표를 태극기에서 모방한 것으로 보아 피고의 행위는 많이 참작할 곳이 있으며, 그 외의 관직 및 명예직은 일제의 압력에 못이겨 피동적으로 맡은 것이라고 증명되며, 또 피고는 한국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많은 학생에게 원조를 해 그의 혜택을 본 자의 수는 현재 수백명에 달하는 것이니 이 점으로 피고가 남긴 공적은 크다고 할 것이며, 기타 증인의 증언을 통해 볼 때 피고를 단순히 친일 및 반민족행위자라고 규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jrlee@seoul.co.kr ■ 형 김성수와 동생 김연수 ‘한 배에서 태어난 형제가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인촌(仁村) 김성수와 수당(秀堂) 김연수를 아는 주위 사람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인촌과 수당은 호남갑부 김경중씨의 두 아들이었지만 성격은 딴판이었다. 수당은 어릴 때부터 말수가 적고 침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반면 형 인촌은 활달하고 외향적이었다. 여기에 형제는 다섯살이나 터울이 져 어린 시절엔 서로 어울리는 일이 적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평생을 친한 형제로 지냈다. 인촌은 수당이 근대적 교육을 받도록 인도했다.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생을 일본으로 가게 해 중·고등학교와 교토제대 경제학부를 졸업하도록 도왔다. 수당은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일찍이 ‘기업인’이 될 것을 결심했다. 오사카의 공장지대에서 받았던 강렬한 인상이 결단의 계기였다. 이처럼 수당의 행적은 형 인촌의 행적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실제로 수당이 기업가로서 길을 걷는 데는 인촌이 설립하고 인수한 기업의 경영을 맡음으로써 시작됐다. 수당이 경영인으로 첫 발을 내디딘 것도 1922년 형이 운영하던 경성직뉴와 경성방직의 경영인을 맡고부터다. 이후 수당은 경영인으로서 성공하자 인촌을 적극 도왔다. 생전에 인촌은 수당이 없었으면 교육사업을 비롯한 자신의 활동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곧잘 술회했다. 수당은 언제나 인촌에게 돈 걱정은 하지 말고 마음껏 뜻을 펼치라고 말했다. 인촌이 설립한 고려중앙학원이나 고려대, 경성방직과 동아일보 등 모두 동생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지 않은 것이 없었다. 특히 수당은 1940년대까지 고려중앙학원과 고려대에 기부한 재산이 연 평균 250만원에 이르렀는데, 이를 현 시가로 어림잡아 환산하면 1000억원(쌀값 기준)을 훨씬 넘는 액수다. 그러면서도 동생은 형이 하는 일을 뒤에서 묵묵히 돕기만 했다. 그는 “모든 것을 형님이 알아서 하시니까 나는 재정적인 지원만 하면 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형을 만날 때마다 “형님은 교육과 문화사업을 하세요. 저는 뒤에서 돈을 대리다.”라며 든든한 후원자를 자임했다. jrlee@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美유학생 위험한 계약결혼

    미국 유학생 사회에서 병역과 취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계약결혼’이 성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16일 미주중앙일보에 따르면 한국인 유학생이 가장 많은 남가주 대학가에는 시민권을 가진 동포여성과 계약결혼을 하는 남자 유학생이 많으며 이는 공공연한 비밀로 통하고 있다. 더구나 이들은 결혼 대가로 1만∼3만달러의 돈까지 주고받는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한국인 유학생들이 주변의 따가운 눈총에도 계약결혼을 하는 이유는 체류신분 해결을 위한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 실제로 대학원생인 김모(27)씨는 3개월 전 시민권자인 같은 과 한인 여자친구와 3만달러를 주고 계약결혼을 했다. 귀국 후 군 입대를 걱정했던 그가 영주권 취득을 위해 이런 편법을 택한 것이다. 김씨는 “졸업 후 취업비자를 받으려면 과정도 복잡하고 기간도 너무 오래 걸린다.”며 “시민권자와 결혼하면 길어도 1년 내에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어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로스앤젤레스 소재 대학에 재학 중인 박모씨는 “병역·취업 문제 등으로 졸업 후 귀국 여부를 고민하는 친구들이 많다.”며 “심리적 부담감은 크지만 계약결혼을 ‘탈출구’로 선택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고 말했다. 귀국을 꺼리는 여학생들의 계약결혼 사례도 종종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역시 합법적인 체류신분 취득이 목적이다. 대학생 서모양은 “지금 사귀고 있는 미국인 남자친구가 체류신분 문제 해결을 약속했다.”며 “졸업 후 미국 체류가 결정되면 우선 서류상으로 결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민법 변호사 등 전문가들은 이런 행태에 대해 자칫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업 중인 서경석 변호사는 “위장 결혼은 중범죄에 해당한다.”며 “나중에라도 불법적으로 영주권을 취득한 사실이 밝혀지면 당사자는 영주권 박탈 및 추방조치를 당하며 이에 가담한 시민권자는 형사처벌을 받는다.”고 말했다.연합뉴스
  • [마니아] 금천한내 질주하는 그들

    [마니아] 금천한내 질주하는 그들

    서울 금천구(구청장 한인수)는 인라인 스케이트와 관계가 깊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 유일하게 인라인 스케이트팀(여자)을 운영하고 있으며, 구청 공무원들이 만든 동아리 가운데 인라인 스케이트 동호회는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동호회 가운데 하나로 소문났다. 지난 2000년 12월 창단된 금천구청 인라인 롤러팀은 각종 대회에 서울시 대표로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지난 8월 대한체육회장기 대회에서는 최은미·이나나 선수가 각각 300m와 1000m 1위에 오랐다. 또 최종신 선수가 1만m에서 2위에 그리고 단체전 5000m 계주에서는 우승을 차지하는 등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보다 앞선 제17회 문화관광부장관기에서는 1000m 1위, 500m 2위,1만 5000m 3위, 단체전 5000m 계주 3위에 입상하는 등 좋은 성적을 이어가고 있다. 금천구 인라인 롤러팀의 선전은 금천구청 공무원들에게도 감동을 준 듯하다. ●인라인 롤러팀의 영향 씽씽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인라인 선수들을 보고 있으면 누구나 부러운 마음이 생기게 된다. 금천구청 공무원들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5년 동안 대회마다 좋은 성적을 내며 금천구의 이름을 드높였던 여자 인라인 롤러팀은 금천구청 직원 인라인동호회를 만들게하는 ‘촉매’로 작용했다. 인라인 스케이트가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고, 다른 구청에도 동호회가 하나둘씩 있을 법하지만, 인라인 롤러팀이 있는 금천구청 동호회가 다른 곳보다 조금은 특별한 이유이기도 하다. ●금천한내 정비 숨은공신 금천구 관내에 금천한내(안양천)가 있다는 사실이 동호회의 존재와 직결돼 있다. 금천구청 인라인 동호회는 2003년 9월 청소과에 근무하는 강대훈(50)씨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강씨가 인라인팀을 주도적으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금천한내 때문이다. 청소과에 근무하면서 금천한내 주변의 쓰레기 문제때문에 고민하던 강씨는 주민들보다 공무원들 먼저 이곳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강씨는 “금천한내 주변 쓰레기 문제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것은 먼저 공무원들이 생각을 바꾸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청소담당 공무원 뿐만아니라 금천 구청의 모든 공무원들을 자연스럽게 금천한내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은 인라인 동호회를 만들어 그 주변에서 활동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고 인라인팀의 창단 ‘비화’를 말했다. 강씨는 “어쩌면 ‘순수하지 못한 의도’를 가지고 창단된 인라인팀일지도 모른다.”면서 웃음을 짓기도 했다. 어쨌든 인라인 동호회가 생긴 이후로 우연처럼 금천한내 정비가 금천구 최대 화두로 떠올랐고, 이후 금천한내 5.8㎞는 남부럽지 않게 ‘확실히’ 정비됐다. ●금천구 대표 체육, 인라인 금천구 인라인 동호회는 공무원들의 바쁜 업무 때문에 자주 모이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회원은 30명 정도이며 주2∼3회 모이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이 동호회는 공무원으로 구성됐기 때문에 단순히 인라인을 즐기기만 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동호회 회장을 맡고 있는 문화공보과 신종일 과장은 “처음 창단될 때부터 주민과 함께 활동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면서 “최근 금천한내가 정비되면서 인라인에 관심을 갖는 주민들과 접촉이 늘었다.”고 말했다. 개인의 건강을 찾는 동시에 주민과의 자연스러운 의사소통까지 하게 되는 ‘1석2조 동호회’인 셈이다. 동호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는 한동희 씨는 “동호회 회원 중에는 보건소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많은데, 스스로의 건강은 물론 주민 건강에 대해서도 항상 걱정하는 업무의 연장인 것 같다.”고 웃으며 말하기도 했다. 동호회 강사 역할을 하고 있는 강대훈씨는 “동호회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면서 “금천구청 직원이든 금천구 주민이든 인라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대환영”이라고 말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동호회 이끄는 2인 신종일(51) 문화공보과 과장은 동호회 창단부터 지금까지 회장으로서 ‘장기집권’을 하고 있다. 인라인팀이 창단되던 2003년 인사팀장을 맡고 있었는데, 얼떨결에 회장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인라인 스케이트를 단 한 번도 신어보지 않은 ‘왕초보’였다. 신 과장은 “민원업무가 많은 공무원들이 금천한내를 내달리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은 업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면서 “더 많은 직원들과 금천구 주민들이 동호회에 가입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왕초보’였던 그는 최근 인라인 스케이트를 바꿨다. 속도를 더 낼 수 있는 5륜 인라인으로 교체한 것.5륜 인라인은 바퀴가 다섯개 달린 것으로 4륜보다 훨씬 더 속도감을 즐길 수 있다. 신 과장은 “인라인의 많은 기술을 다 배우진 못했지만 스피드를 더 내고 싶었다.”면서 “아직 5륜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지만 몇 달만 연습하면 지금보다 훨씬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청소과에서 근무하는 강대훈(50)씨에게 인라인은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강씨는 1982년 군 복무 당시 동료들과 쉬는 시간에 씨름을 하다 다리를 다쳤다. 무릎과 무릎 사이의 연골이 파괴될 정도로 중상이었는데, 이 사고로 인해 나머지 군생활을 병원에서 보낼 정도로 심각했다고 한다. 부산 국군통합병원까지 후송될 정도였다. 강씨를 진단한 의사는 다리를 절단해야 될지도 모르니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는 말까지 전했다고 한다. 다행히 최악의 경우에 이르진 않았지만 강씨의 오른 다리는 이때부터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없었다. 항상 절뚝거릴 수밖에 없었다. 남보다 의지가 강한 강씨는 수영·자전거 등 각종 운동을 하며 다리를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큰 효과를 볼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1997년 처음 접한 것이 인라인 스케이트다. 처음엔 외국에 다녀온 유학생들이 타고 다니는 것을 보고 단순히 ‘재밌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인라인을 신는 순간 ‘느낌’이 오더란다. 그 뒤로 8∼9년을 인라인에 미쳐 살았다. 그의 오른 다리도 기적처럼 예전처럼 돌아왔다. 인라인을 타기 시작하면서 절뚝거리지도 않게 됐다. 인라인에 ‘미친’ 강씨는 대한인라인롤러연맹에서 인증해주는 강사 자격증을 땄다. 이어 금천구청 내에 직원들을 대상으로 동호회를 창립하게 됐다. 강씨는 “청소과에 근무하는 본연의 임무를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관내 주민들에게 인라인을 계속 지도하고 있다.”면서 “인라인은 또 다른 인생을 살게 해준 은인”이라고 말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2억 빚 파산하면 美유학 못가나

    Q대학원에 다니던 딸이 남자에게 사기당해 대출 보증을 서는 바람에 2억원의 빚을 지게 됐습니다. 대신 갚아주자니 유일한 재산인 시가 3억원의 아파트를 팔아야 하는데, 고1짜리 아들 교육도 남았고 정년 이후 생활도 걱정스럽습니다. 딸은 개인파산을 신청하겠다는데, 미국 유학을 꿈꾸고 있는 딸에게 지장이 없을지 걱정입니다. -권혁서(56) A 가난한 외국인의 입국을 환영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심지어 특별히 정치적 난민이라는 명분이 있어도 선뜻 받아들이겠다는 정부나 국가가 없는데, 일반 여행자나 유학생인 경우라면 더 그렇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입국하면 돈을 쓰지 않으니 당장 경상 수지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고, 취업을 해야 하니 내국인의 고용기회가 줄어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유한 나라에서는 같은 선진국 국민이 아닌 외국인의 입국 신청 자격을 미리 심사하는 비자제도를 운영합니다. 우리나라 국민은 단순 여행 목적일 때는 많은 국가에서 비자를 쉽게 받습니다. 단기 체류에는 아예 면제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외국인의 이민을 받아 발전해왔고 우리나라와 정치적·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는 미국은 역설적으로 단기간 여행에서도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미리 비자를 받도록 요구합니다. 단순히 여행을 한다며 입국했다가 불법체류를 선택한 한국인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이민 억제라는 국내 여론을 의식해 취하는 정책으로 보입니다. 비자 신청자가 여행이든 유학이든 입국목적을 마치고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올 것이며, 미국에 눌러 살려고 하지 않을 생각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미국 당국은 재산과 활발한 경제활동을 증명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사람이 합법적이고 지속적인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고 증명하기 위해 가장 유효적절한 수단은 세금과 은행거래 실적입니다. 따라서 거의 모든 신청자가 거쳐야 하는 영사와의 면담에서 보통 납세사실에 관한 증명과 최근 거래하고 있는 은행예금통장의 원본 제출을 요구받습니다. 파산을 선택하지 않은 채무자는 이 요건을 영원히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거액의 채무를 연체하고 있는 사람은 은행 예금통장을 유지하기 힘들 뿐 아니라, 납세를 하는 직장에 취업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법률상 통장을 개설해 돈을 예치할 수 있고 취업도 할 수 있지만, 채권자가 채무자의 은행에 대한 예금반환채권과 사용자에 대한 임금채권을 언제든지 압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법에 따라 미국 비자발급 인터뷰에서 개인파산·면책 여부를 묻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거액의 빚을 진 채무자가 장차 미국 유학이나 아니면 단순한 여행을 생각한다면 빚이 많은 것을 한탄할 것이 아닙니다. 은행거래와 납세에 장애가 되는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입니다. 파산을 신청하고 신용을 쌓으세요. 유학의 꿈을 접지 마시기 바랍니다.
  • 우리아이 예체능교육 시켜볼까

    우리아이 예체능교육 시켜볼까

    청소년오케스트라 단원, 학교 미식축구부 주장, 특기 현대무용…. 미국 아이비리그 명문대에 입학한 조기유학생이나 재미교포가 소개될 때면 꼭 한두가지씩 거론되곤 하는 그들의 프로필이다. 선진국에서는 전인교육의 관점에서 예체능 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예체능은 꼭 전공을 하지 않더라도 지적 능력과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동안 입시의 수단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 창의력 개발 등 측면에서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예체능 교육의 효과와 방법 등을 짚어본다. 예체능을 흔히 악기를 다루거나 그림을 그리는 ‘기술’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예체능은 오감을 사용해 사물과 현상을 받아들이고 사고의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표출하게 한다. 그만큼 다양하고 균형잡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창의력·사고력 등 지적능력 쑥쑥 예체능은 기본적으로 개성을 표출하는 작업이다. 이는 창의력과 사고력 개발에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미술의 경우 사물을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자신만의 느낌으로 재구성해 표현하는 과정이 창의력으로 연결된다. 똑같은 사물을 봐도 저마다 다른 그림을 그리게 되고, 어떤 모양과 색깔을 선택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판단하게 되기 때문이다. 미술 감상도 중요하다.‘왜 옛날 그림에는 여자가 없을까.’‘저 그림에서는 왜 양반과 하인의 옷차림이 다를까.’ 등의 생각를 하면서 사회와 문화를 읽는 눈과 사고력, 비판력을 키워준다. 음악 역시 연주를 하는 ‘행위’보다는 곡을 이해하고 감정을 실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지적 능력을 개발해 줄 수 있다. 건국대 음악교육과 김재미 교수는 “일기를 꾸준히 쓰는 것이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듯이 음악이라는 언어로 자신과 끊임없는 대화를 하는 것 역시 사고력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예체능은 기본적으로 우뇌를 사용하기 때문에 좌우뇌의 균형적인 발달을 도와 두뇌발달과 정서발달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유아기 아이들에게 체조를 시키면서 뇌파 검사를 했더니 뇌 활동이 급격히 활발해졌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자신감·사회성 키우는데 도움 전인적인 인격 형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예체능의 특징은 결코 한번에 목표에 도달할 수 없고, 반드시 한계단 두계단 밟아 나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내심과 지구력은 물론, 작은 목표를 달성했을 때 느끼는 자신감과 성취감도 공부 등 다른 활동을 할 때 매우 중요한 자산이 된다. 또한 같은 목표를 놓고 또래 집단에서 그날그날 확연하게 비교할 수 있기 때문에 건전한 경쟁을 자연스럽게 연습할 수 있다. 특히 체육의 경우 친구들과 함께 작전을 짜고 규칙에 따라 경기를 하는 과정에서 사회성과 순발력도 기를 수 있다. ●거부할 땐 강요 말아야 아이가 예체능에 재능을 보인다면 초등학교 고학년쯤에는 전공으로 계속할지 여부를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아이를 면밀히 관찰하고 필요하면 전문가의 평가를 받아 본다. 아이가 싫증을 내거나 원하지 않을 때는 강요하거나 다그치지 말고 일단 의견을 들어본다.‘내 아이의 성공 예체능으로 잡아라(주니어 김영사)’의 저자 백혜영씨는 “하기 싫은 일이라도 하는 것은 일생 동안 계속된다.”면서 “왜 하기 싫은지, 그렇다면 어떤 것을 대신 하고 싶은지 등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하는 과정 자체도 갈등을 이기고 판단하는 연습이 된다.”고 말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노래하는 사제간의 사랑

    노래하는 사제간의 사랑

      한 달 만에 만난 사이라도 긴 인사를 오래 하지 않는다. 하나 둘 모이는 대로「피아노」둘레에 모여 선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지만 그냥「멜로디」를 잡고 화음을 맞춘다. 25명의「코러스」가 4평 남짓한 김자경씨 댁 거실을 꽉 메운다. 25명 모두가 이화여대 음악대학 성악과를 졸업한 김자경씨 제자들 -「오뚜기」회를 만들었다. 생김에서 성질까지가 오뚜기를 닮은 김자경씨에게 5, 6년 전부터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오뚜기」다. 스승의 별명을 그대로 모임의 이름으로. 김자경씨가 처음 내보낸 이대의 제자들은 59년부터 시작, 올해로 10년 졸업생을 냈다. 10년간의 성악과 졸업생이 전부 57명. 외국유학으로 멀리 있는 제자, 지방에 떨어져 살아 모이기 힘든 제자를 제하고 나니 25명이 손에 꼽힌다. 이들 만이라도 가까이 두고 자신의 10년간을 돌이켜 보면서 거슬러 올라가 보고 싶었다. 쉰이 넘은 일생의 보람 같은 것을 주워 모아보고 싶기도 했다. 이런 옛 스승의 회한을 달래주고 싶은 따뜻함이 제자들과의 모임이「오뚜기」회이기도 하다. 배움의 길이 뚝 끊기고 난 뒤 어느 날 갑자기 옛 스승이 그립고, 학우가 만나고 싶고,「캠퍼스」가 눈에 선하게 떠오르는 날이 있다.「배움을 연장시키고 싶어서」모이기도 했다. 회장에는 제자를 대표한 이영애씨(이대 음대 전임강사). 한 달에 한 번 첫째 금요일 2시, 김자경씨 댁에서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다. 회식은 호화롭지 않다. 차 한 잔, 아니면 라면 한 그릇이 고작이다. 반주는 김자경씨의 큰 며느리 공소자씨. 음대 기악과 졸업생이라「오뚜기」회 회원 자격 상실이란다. 회비는 한 달에 1천원씩. 절대로 쓰지 않고 모은다. 장학금 기금을 만들기 위해서다. 「오뚜기」회의 소문은 외국에 나가 있는 회원 자격이 있는 유학생들에게까지 퍼졌다. 이들은 참여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자주 전해온다. 장학금 기금에 보태달라고 얼마 안되지만 돈을 보내 오기도 한다. 서독에 있는 이주연씨, 미국에 있는 이규도씨 등. 「레퍼터리」는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찬송가에서 우리 가곡까지. 이 다양한「레퍼터리」는 1년에 한 번 정기공연을 갖고 발표된다. 이 공연기금 역시 개인의 이익으로 삼지 않는다. 그대로 장학기금에 쌓여지는 것. 연습이 별나게 따로 필요하지 않은 애초에 길들여진 제자들에 둘러싸여 병원, 고아원, 양로원… 위문을 해야 하는 곳으로 되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언제든지 위문을 하러 다녀야겠다는 것도 계획 안에 들어 있다. 만 50세의 연륜이 그 언제 한번 휴식을 가진 적이 없던 김자경씨는 아직도 할 일을 다하지 못해 안절부절하는 젊음으로 꽉 차있다. 『모두가 내 딸 같습니다』 아직 어리광을 벗지 못한 작년도 졸업생들이 엄마 치마폭을 감고 들 듯 어깨 언저리를 감싸고 돈다. 엄마가 된 지 몇 년이 지나버린 10년 전 졸업생들은 친정에 들른 맏딸처럼 스승을 보살피는 마음이 살뜰하다. 생활하면서 외면해 버렸던 잊혀간 노래들을 조갈이 풀릴 때까지 오랜만의 인사도 잊고 불러 젖힌다. 옆에 누가 새로 들어와「조인」했는지도 눈치 못 챈 듯 열중한다. 한 편에서는 김자경씨가 인자한 웃음을 얼굴 하나 가득 띠고「내 딸 같은」제자들을 하나 하나 따뜻한 손으로 손을 잡고 반갑게 맞아 들인다. 이제 25명이 다 모였다. 김자경씨가「피아노」앞에 앉았다. 발성 연습부터 시작,『아- 아- 』. 터질듯한 젊음으로 몇「옥타브」인가 더 튕겨 오를 것처럼 팽팽한 화음이 스승과 제자들을 세월을 무시한 채 묶어 버렸다. 늙음을 의식하던 스승은 잠시 10년이나 거슬러 올라간 삶을 즐기고 있는 듯이 착각하면서 흥분했다. [ 선데이서울 69년 3/2 제2권 9호 통권 제23호 ]
  • 16일 아시아음악축제

    한국에서 일하는 아시아 이주노동자들에게 고국의 시와 노래를 선사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사단법인 아시아문화네트워크(공동대표 강태형 김남일 김지숙)는 16일 오후 5시 서울 국립극장 별맞이터에서 ‘주한 아시아인과 함께 하는 음악축제’를 연다. 이번 행사를 위해 베트남의 국가 인민가수 탄 호아와 당증, 인민배우 짜 장을 비롯해 몽골 최고의 인기가수 바이살랑, 네르기가 특별히 초청됐다. 우리 가수로는 장사익과 손병휘가 참여한다. 공연에서는 한국, 베트남, 몽골,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6개국의 시로 만들어진 노래가 불려진다. 도종환 시인의 ‘오늘 하루’, 안도현 시인의 ‘그대를 만나기 전에’를 포함해 베트남의 시노래 ‘관호 강가에 있는 사랑’, 몽골의 ‘초원의 내고향이여’, 필리핀의 ‘사랑이란 무엇일까’, 인도네시아의 ‘작은 아가씨’등이 각 나라의 언어로 소개된다. 이와 함께 국립국악원 민속악단과 창작악단이 펼치는 ‘한국의 소리’공연에서는 ‘천년만세’‘강강술래 변주곡’‘소양강’등 한국 전통가락의 흥과 정취를 전달할 예정이다. 이번 공연은 15일부터 17일까지 열리는 ‘아시아문학축제’의 하나로 마련됐다. 첫날에는 아시아 이주노동자와 유학생, 아시아 작가와 한국 작가가 함께 참여하는 ‘한국문화체험’행사를 갖는다. 부여 일대의 문화유적을 둘러보고, 사물놀이 교육관을 견학할 예정.17일에는 중앙대학교 아트센터에서 심포지엄 ‘아시아문학의 현재를 말한다’를 개최한다. 아시아문화네트워크는 지난 6월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에서 ‘한국문학 아시아 순회특강’을 개최하는 등 아시아적 가치의 공유와 연대를 위한 문화활동에 앞장서고 있다.(02)821-5055.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조선통신사 행렬 241년만에 日서 재현

    조선시대 일본에서 ‘한류 열풍’을 일으켰던 조선통신사 행렬이 240여년만에 일본 도쿄(東京)에서 재현된다.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집행위원장 강남주)는 ‘한·일우정의 해’를 맞아 9일 오전 11시 일본 도쿄 신주쿠(新宿)에서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 행사를 갖는다고 7일 밝혔다. 그동안 조선통신사 행렬은 쓰시마(對馬島)와 오사카(大阪), 우시도마(牛窓), 오미하치만(近江八幡) 등에서 재현됐으나 과거 조선통신사의 최종 목적지였던 도쿄에서 재현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1764년 조선통신사가 도쿄를 마지막으로 방문한지 241년만이다. 조선통신사 행렬은 신주쿠역을 중심으로 동서를 연결하는 신주쿠대로에서 펼쳐지며, 이 행사의 중심인물인 정사(正使)역에는 1711년 정사였던 조태억 성균관 대사성의 후손인 조동호(71)씨가 맡는다. 조선통신사 행렬에는 현지 유학생 100여명도 참가한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전시회 때마다 수익금 교민돕기 기부 재미화가 한정희씨

    전시회 때마다 수익금 교민돕기 기부 재미화가 한정희씨

    “남들은 ‘막 퍼준다.’고 하지만 적자만 안나면 그것으로 충분한 거 아닌가요?” 지난달 28일부터 한국에서 다섯번째 개인전을 열고 있는 재미화가 한정희(52)씨. 그는 나눔의 기쁨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스웨덴에서는 한국에서 온 입양아들을, 미국으로 이사가서는 마약에 빠진 청소년들을 돕고 있는 김씨. “이해 못하는 사람도 많지만 죽을 때 돈 가져가나요?도움은 돌고 돕니다. 저는 남을 돕는 기쁨을 느끼면서 도움 받고 있는 셈이죠.” 한씨는 1978년 한국에서 대학원을 마친 뒤 스웨덴 유학길에 올랐다. 교민들이 70년대 초반에 만든 ‘스웨덴 토요한국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면서 입양아들과 인연을 맺었다. 아이들이 지나가면 늘 불러다 밥, 김치, 불고기를 만들어 먹였다. 생활이 어려운 애들을 위해 혼자서 김치를 무려 200㎏이나 만들어 팔기도 했다. 1983년부터는 입양아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는 “사춘기를 거치면서 정체성 혼란을 크게 겪는다.”면서 “그래서 한글과 한국문화를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 스웨덴 부부와는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한국인 장애아를 입양한 그 부부는 아이가 오줌을 가리지 못하는 등 돌보기가 어려워지면서 사이가 나빠졌고 이혼 직전에 이르렀다. 그래서 한씨는 아이를 대신 봐주면서 부부를 설득했다. 그 부부는 위기를 넘기고 현재 13살인 아이와 잘 살고 있다. 지난 99년에는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오면서 약물중독 교포 청소년을 돕는 목사들을 알게 됐다.24시간 내내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헌신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부를 결심했다. “처음엔 1000달러를 기부하고 내심 뿌듯했죠. 문제를 점점 더 알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나섰어요.” 뉴욕에 거주하던 그는 50점의 그림을 LA로 가져와 전시회를 열었다.10만달러가 들어왔고 몽땅 기부했다. 그는 “아프리카 난민을 돕는 게 낫지 않냐고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마약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심지어 공부하기 위해 각성제 대신 마약을 하는 유학생들도 있다.”고 전했다. 이후 전시회 수익금은 자선이라는 타이틀 없이도 모두 기부하고 있다. 이런 생활은 한씨에게 익숙하다. 대학교 졸업 직후 강원도에서 아이들이 신발없이 다니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결혼자금으로 대학 4년동안 미대입시생을 대상으로 과외해 번돈이 들어있는 통장을 주고 돌아왔다. 혹시나 미련이 남을까봐 액수도 확인하지 않았다. “어머니한테 엄청나게 혼났죠. 지금도 저보고 미쳤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남편이 저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해줘서 고맙죠. 죽을 때까지 남을 도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이현세 만화경] 다른 나라 사람을 이해하려면…

    [이현세 만화경] 다른 나라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나라의 문화와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 나라의 만화를 읽자.10년 전에 한국과 일본이 뜻이 맞아서 타이완, 홍콩과 함께 ‘동아시아 만화가 대회’라는 것을 만들었다. 해마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만화대회가 열린다. 대회마다 만화의 꽃은 스토리 만화인데도 정작 전시의 주류는 시각적인 효과가 뛰어난 애니메이션과 카툰이다. 스토리 만화는 겨우 원화전시와 출판물의 판매전시 정도이다. 이것이 스토리 만화작가들을 화나게 했고 그래서 스스로 차별화된 대회를 생각했다. 그래서 이 대회도 애니메이션이나 카툰이 없는 오로지 스토리 만화만의 대회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동아시아 작가들의 정보와 교류의 단절이고 그 결과 고립되고 좁은 시장이다. 오대양 육대주 중에서도 유독 아시아는 이념의 실험장으로 오랫동안 갈등과 대립으로 모든 나라들이 고립되어 있었으며 문화 교류가 단절된 땅이었다. 그래서 가장 가까이 있는 아시아 작가들이 유럽의 작가보다 더 아시아의 생활과 풍습을 모른다.‘당신은 미국이나 유럽의 결혼식에 비해 아시아의 결혼풍습을 얼마나 알고 있나.’라는 질문에 모든 아시아 작가들은 고개를 떨구었다. 아시아 작가들끼리 서로간의 이해와 우정을 위해…우리는 이렇게 해서 동아시아 만화가 대회를 갖게 되었다. 제1회 대회는 일본 도쿄에서 열렸고, 첫회인 만큼 대회조직에 대한 토론이 중심이 되었다. 제2회 대회는 한국 서울이었고, 주최측 준비부족으로 작가들이 몸으로 때운 이 대회는 덕분에 ‘친교의 장’으로 유명해졌다. 타이완과 홍콩, 다시 일본을 거쳐 작년에는 중국 베이징에서 제6회 대회가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처음으로 열렸다. 그리고 제7회 대회가 다시 한국 부천에서 9월30일 개막식이 있었다. 아시아 4개국이 처음 시작한 이 대회는 10년만에 27개국 130명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세계적인 대회가 되었다. 세계적인 대회로 격상되었음에도 대회의 목적은 여전히 ‘우정과 평화’이고 올해의 세미나 주제는 ‘진화하는 만화의 미래’다. 힘든 한국의 만화시장에 꼭 필요한 주제이고 그래서 이 대회는 무척이나 의미가 있었다. 참가 작가는 아시아, 유럽뿐 아니라 아프리카, 케냐에서부터 몽골, 미얀마까지 아주 다양하다.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내일의 죠´(한국에선 허리케인이란 제목)로 유명한 지바데쓰야를 비롯해서 홍콩의 황옥랑과 북한 작가 이강석까지 이 대회에 참가했다. 대회 기간동안 각종 포럼과 세미나에 참석했다면 만화에 대한 이해를 넓혔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풍습과 사람을 알고 싶은가? 그것은 만화를 읽으면 된다. 일본에 유학가서 중세 일본의 계급 관계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대부분 유학생들은 시라토 산페이의 (가무이전)을 읽는다. 이 만화는 일본 중세의 계급 투쟁에서 최후의 승리는 농민의 몫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일본 산천의 민물고기와 일본인의 낚시 정서를 알고 싶은 사람은 야구치 다카오의 (낚시광 산페이)를 읽으면 되고 말레이시아의 결혼 풍습을 이해하려면 말레이시아의 국민작가 라트의 (캄풍)을 보면 되듯이 마찬가지로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민중들의 삶을 알려면 이두호 선생의 (임꺽정)이나 고우영 선생의 (일지매)를 보면 된다. 만화가 무엇인가? 영화와 소설의 장점을 묶어 놓은 것이다. 만화는 소설에 없는 구체적인 화면으로 동영상의 마술을 건너 뛰어 영화는 불가능한 무제한의 시간을 독자 몫으로 남겨두고 문학의 아름다움을 도모한다. 지구상의 어떤 나라, 어떤 풍습, 어떤 문화와 인간을 알려면 만화를 읽자. 만화는 그 나라의 거울이다.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중국 대륙 휩쓰는 대장금 열풍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중국 대륙 휩쓰는 대장금 열풍

    중국인들은 지금 ‘다창진(大長今·대장금)’에 푹 빠져 있다. 한국의 인기 드라마인 ‘대장금’이 중국 대륙을 온통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것이다. 지난 1일 밤 10시 중국 후난(湖南)위성 TV가 첫 방송을 내보낸 이후 외국 드라마 사상 14%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대장금 열풍의 주역인 ‘장금(이영애 분)’의 ‘성공’은 문화대혁명기의 도전적이고 전투적인 중국 여성상이 최근 개혁·개방 이후 ‘현모양처’ 형으로 바뀌는 추세와 무관치 않다.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유대인을 뺨친다.’는 중국 상인들은 발빠르게 ‘대장금 비즈니스’에 착수했다. 음식과 패션, 여행은 물론 중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장금 관련 상품이 무려 1300여종에 달할 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대장금 열풍’이 가장 먼저 일어난 곳은 식당가. 베이징 일부 중국 식당들은 약삭빠르게 상호를 발음이 똑같은 ‘대장금(大長金)’으로 바꿔달고 한국 요리를 선보이고 있으며 쓰촨(四川)성의 일부 훠궈(火鍋·사브사브의 일종) 식당에서는 ‘대장금 김치 훠궈’를 내놓기도 했다. 장금이의 개인적 인기에 힘입어 충칭 시내의 결혼 사진관에서는 7000위안(약 90만원)의 ‘장금이 드레스’ 코너를 만들어 톡톡히 재미를 봤다. 후난성에서는 이영애의 얼굴형으로 성형수술을 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을 정도다. 베이징에서 기계설계사로 일하는 뉴융(牛勇·30)은 “하루가 아무리 힘들어도 대장금을 볼 수 있는 밤 10시가 기다려진다.”며 “역경을 극복하는 주인공의 꿋꿋한 의지와 따뜻한 인정미는 중국 TV 드라마에서 볼 수 없는 신선한 충격”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식품회사 직원인 리메이(李梅·여·28)는 “매일 새롭게 등장하는 한국의 궁중요리와 한방 치료법이 재미있고 출연자들의 개성있는 연기도 인기의 비결”이라고 평했다. ●대장금 없이 못사는 중국인들 대장금 드라마로 인한 해프닝도 중국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다. 우한(武漢)에서 관절염으로 고생해 온 한 30대 남성이 장금이가 벌침으로 마비된 미각을 되살리는 것을 보고 모방 치료를 하다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신민만보(新民晩報)가 보도했다. 후베이성 중의병원 침구과 리자캉(李家康) 주임은 “대장금 방영 이후 벌침 치료를 원하는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대장금을 보지 못한 한 여성이 강물에 투신하는 소동도 있었다. 지난 24일 밤 10시 난징(南京)에서 아내 류(劉)는 축구광인 남편 장(張)과 TV채널 쟁탈전을 벌이다 “대장금을 못 보게 하면 강물에 뛰어들어 죽어버리겠다.”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남편이 “갈 테면 가라.”고 무시하자 류는 집 근처 강물에 뛰어들었다가 구조되기도 했다. 홍콩의 미녀스타 천후이린(陳慧琳)도 대장금 열풍에 가세했다. 천후이린은 28일 대장금을 방영중인 창사(長沙)의 후난 위성 TV를 방문, 한복 의상을 입고 대장금 주제곡 ‘오나라’를 불렀다.‘한물 간’ 것으로 알려진 천후이린은 지난 3월 대장금의 홍콩 방영 당시 주제곡을 광둥어로 불러 단번에 과거의 인기를 되찾았다. ●한국 식당가도 특수 대장금 열풍으로 한국 요리가 관심을 끌면서 중국내 한국 음식점들도 덩달아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의 한국 음식점들은 ‘대장금 특선요리’ 등 다양한 메뉴로 특수를 맞고 있다. 베이징의 한국 음식점 서라벌 허경욱 부장은 “대장금 방송 이후 20% 정도 중국 손님이 늘어났고 주로 드라마에서 선 보인 보양식 위주의 한국 요리가 잘 팔린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여행업계에도 장금이 열풍이 불고 있다.‘대장금 여행단’이 다음달 1일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다음달 1일부터 시작되는 궈칭제(國慶節·국경절)에 맞춰 처음으로 ‘중국인 대장금 여행단’ 1진 200여명이 한국을 찾는 것이다. 이들 중국인 관광객은 경기도 남양주의 MBC 대장금 테마파크와 장금이가 유배갔던 제주도 촬영지 등을 돌아볼 예정이다.5000위안(약 85만원)이 넘는 고가의 상품이지만 중국인 1000여명이 신청할 정도로 인기 절정이다. ●중국 안방을 점령한 한국드라마 중국에 처음 상륙한 한국드라마는 92년 ‘질투’였지만 중국인들의 관심을 끈 것은 97년 ‘사랑이 뭐길래’였다. 이후 ‘인어아가씨’,‘보고 또 보고’,‘명성왕후’,‘노란 손수건’,‘상도’,‘목욕탕집 남자들’ 등 중국 대륙을 향한 융탄 폭격이 이어졌다. 대장금 상영 판권을 후난 위성TV에 빼앗긴 CCTV가 시청률 만회를 위해 처음으로 한국에서 상영중인 드라마(굳세어라 금순아)를 수입, 방송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드라마를 수입하는 중국 국제TV 총회사의 청춘리(程春麗·여) 부장은 “한국 드라마는 중국에서 수입하는 외국 드라마의 80%를 차지하고 있다.”며 “한국 문화에 친근해진 중국인들이 늘고 있어 앞으로 이런 추세는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드라마의 강세는 개혁·개방 이후 ‘가정 중시’의 중국 사회변화와 맥이 닿는다. 칭화(淸華)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한류’를 전공하고 있는 신혜선(박사과정·41)씨는 “1976년에 막을 내린 문화대혁명 이후 중국의 가족 해체 현상은 무척 심각했다.”며 “가족간의 애틋한 사랑을 다룬 한국 드라마가 중국인들의 내재된 가정 회귀 본능을 만족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oilman@seoul.co.kr ■ “역경 이겨내는 ‘대장금 정신’ 中 사로잡아” |베이징 오일만특파원|“대장금 열풍의 이유는 중국인들의 가치관과 도덕성, 문화적 동질성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칭화(淸華)대학교 영화전파연구센터(신문방송학원) 인훙(尹鴻) 주임교수는 중국에 몰아닥친 ‘대장금 열풍’은 한·중간 문화적 동질성에서 출발해 역경을 헤쳐나가는 주인공의 진실성과 당찬 의지가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대장금의 주요 소재인 궁중 요리 문화와 한방 치료 등이 ‘음식과 건강’을 중시하는 중국인들의 취향에 맞아 떨어졌고 중국에서 접하기 힘든 창조적이고 탄탄한 시나리오도 성공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에서의 ‘한류 역사’에 대해 인훙 교수는 “1990년대 초에는 한국 유학생들의 역할이 컸고, 중반부터 한국의 TV 드라마가 한류를 선도하면서 한국 가수와 영화배우 등 이른바 한류 스타들이 가세해 현재는 중국 문화 전반으로 확산 중”이라고 설명했다. 사회·경제의 발전 방향이 한국과 유사한 중국에서 당분간 ‘미국류’나 ‘구라파류’보다 ‘한류’가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것이란 전망도 내놓았다. oilman@seoul.co.kr ■ “한·중 합작 제3시장 노려야” |베이징 오일만특파원|“한류의 확대 재생산은 한국과 중국이 다양한 문화사업에 공동 투자해 제3의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입니다.” 중국내 ‘한류 전문가’로 불리는 주중 한국대사관 유재기 문화관은 “중국내 한류 붐을 계기로 1990년대 후반부터 다양한 한·중 문화 합작사업이 논의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특별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양국 문화 생산비의 격차와 기술적 한계, 상이한 접근법 등으로 한·중간 문화교류 사업이 ‘겉돌고 있다.’는 진단이다. 그는 “양국의 문화전문가·사업가들이 사소한 조건과 눈앞의 이익에서 벗어나 다소 모험적이지만 장기적인 윈-윈 전략을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우수한 문화 소프트웨어와 중국의 저렴한 하드웨어를 결합시키는 과감한 투자로 아시아 시장은 물론 미국·유럽 시장으로 진출하는 ‘윈-윈 전략’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2010년 국제박람회, 광저우(廣州) 아시안게임 등 대규모 행사를 앞두고 있어 중국이 한류 등 외국 문화·예술의 수입을 당분간 규제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현지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TV 드라마 ‘대장금’을 예로 들면서 “중국인들은 가장 한국적이면서 예술성이 녹아 있는 신선한 문화적 충격을 선호한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아이템을 발굴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중국에서 한류를 이어갈 수 있는 단초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한·중 문화산업을 공동 육성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 재산권 보호 문제를 지적하면서 “중국내 해적판이 범람하는 상황에서 아무도 거액의 투자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oilman@seoul.co.kr
  • 英유학생 사망의혹 5년만에 규명되나

    지난 2000년 유학 중이던 영국 런던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이경운(당시 18세)군의 사망 원인이 5년만에 규명될 수 있게 됐다. 영국 켄트대학에 다니던 이군은 그해 9월29일 켄터베리 시내의 한 거리에서 통학 버스에 치여 현장에서 사망했다. 현지 경찰은 1차 부검 뒤 이군의 사인이 단순 교통사고라고 발표했지만 유가족들은 사망 경위와 경찰 조사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며 장례를 거부해왔고 그의 시신은 지금까지 냉동보관돼왔다.주영 대사관에 대한 해외 감사를 벌인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는 26일 오후(현지시간) 이군의 아버지 이영호씨 등 유족들을 국감장에 출석시켜 유족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한편, 대사관의 미온적인 대처 등 문제점을 지적했다. 여야 의원들은 영국 부검의 대신 한국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전문가들이 현지를 방문해 이군의 시신을 부검해줄 것을 주문했고 대사관측이 현지 경찰과 협의한 끝에 부검을 다시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대사관 관계자는 27일 “10월21일부터 27일까지 국과수 전문가들이 영국에서 2차 부검을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우리 전문가들에 의해 부검이 실시되면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생각한다.”며 “이제 외로운 싸움을 끝내고 아들을 하늘나라로 보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런던 연합뉴스
  • 中게임아이템으로 1000억 챙겨

    中게임아이템으로 1000억 챙겨

    중국에서 유명 온라인게임 ‘리니지’의 아이템을 대량으로 모은 뒤 이를 국내에 판매,1000억여원을 챙긴 내국인과 중국인 등 일당 50명이 경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리니지의 아이템이 비싼 값에 현금거래되는 데 착안해 중국에서 대규모로 사람을 고용, 아이템을 수집했다. 이 과정에서 5만여명의 내국인 개인정보가 도용됐다. 이들은 판매대금 중 600억여원을 중국으로 몰래 빼돌렸다. ●게임광 중국인 고용 아이템 모아 되팔아 아이템은 온라인 게임에서 쓰는 칼, 창, 마법지팡이 등 일종의 무기로 게임을 오래할수록 성능 좋은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 아이템이 많으면 게임 속 주인공의 힘이 세져 상대방을 쉽게 이길 수 있기 때문에 청소년들 사이에 비싼 값에 거래돼 그동안 문제가 돼 왔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게임 아이템을 불법취득해 판매한 내국인·중국인 50명을 적발, 내국인 명모(54)씨 등 9명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재산국외도피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중국인 유학생 진모(24·여)씨 등 24명은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중국에 체류 중인 임모(36)씨 등 7명을 수배하고 주범 중국인 10명의 인적사항을 인터폴에 통보했다. 이들은 2003년 국내 사이트 해킹과 여행사 기록 등을 통해 5만 3000여명의 내국인 주민등록번호를 확보한 뒤 이를 이용해 12만개의 리니지 아이디를 만들었다. 이들은 게임만 하는 중국인 종업원을 고용해 대규모로 다양한 아이템을 수집했다. 이들은 모은 아이템을 인터넷을 통해 1005억원에 국내에 판매했으며 이 가운데 605억원을 중국에 밀반출했다. 경찰은 나머지 400억원도 여행자 등을 통해 중국으로 유출된 것으로 보고 있다. ●中IP접속 차단하자 해킹·우회접속 이들은 국내 게임업체가 중국 인터넷주소(IP)의 접속을 차단하자 해킹을 통해 보안이 허술한 사이트를 경유하거나 가상사설망(VPN)을 이용해 우회접속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중국의 임금이 한국보다 훨씬 낮은 점을 이용한 대규모 아이템 수집 사례”라면서 “연간 1조원(2005년 예상치) 규모의 아이템 시장에서 95%가량이 중국산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초등학교 영어교사 명 받았습니다”

    ‘군인 아저씨에게 영어 배워요.’군장병들이 인근 지역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화제다. 육군 1군수지원사령부 8군수지원단은 지난 5일부터 강릉시 구정면 구정, 금광, 모산초교 등 3개 학교 특기적성 교육시간에 군장병들을 보내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군인들이 영어를 가르칠 수 있지만 이들은 보통 군인들이 아니다. 대부분 호주에서 대학을 나온 유학생 출신이다. 이들은 ‘방과 후 특기적성 교육시간’을 활용, 주 2회 2시간씩 3∼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회화 위주의 실용영어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처음에는 다소 어색해 했지만 지금은 학생들이 이들의 교육을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인기 강좌(?)다. 이들을 가르치는 군인 선생님은 김원중(29) 일병과 정준희(25) 일병. 김 일병은 고등학교 졸업 후 호주의 대학으로 진학해 7년간 유학하면서 대학원 석사 과정 1년을 마치고 귀국, 군에 입대했고 정 일병 역시 호주에서 4년 동안 공부를 했다. 김 일병은 “사회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초등학교 교단에 서는 경험을 군대에서 하게 돼 항상 설레는 마음으로 수업을 한다.”며 “큰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구정초교 이정미(32) 교사는 “농촌지역 학생들은 교육비 부담이 적지 않은데 학부모들의 부담도 없는 양질의 영어교육을 지원해줘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강릉 조한종기자bell21@seoul.co.kr
  • “뉴올리언스 교민일부 침수지역에 있을수도”

    정부는 9일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지역에 거주하는 교민 중 800여명이 무사히 대피 중인 것으로 확인됐으나 일부 교민이 침수지역에 남아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뉴올리언스 교민 2500여명 중 800명은 소재가 확인됐다.”며 “나머지 1700여명은 신고 없이 타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여 현재 소재 파악이 안 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신속대응팀이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있던 범양상선 직원 5명과 목사 2명, 유학생 14명 등 모두 21명을 안전하게 이송했다고 이 당국자는 설명했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포스코, 청암재단 만든다

    포스코, 청암재단 만든다

    포스코는 기존 ‘포스코장학회’를 확대해 기금 1000억원 규모의 ‘포스코청암재단’을 설립, 사회공헌활동을 강화한다고 8일 밝혔다. 포스코청암재단은 1971년 6000만원의 기금으로 설립된 ‘포스코장학회’를 확대 개편한 것으로, 포스코로부터 올해와 내년에 각 100억원을 추가 출연받아 1000억원 기금으로 확대 운영된다. 올해 42억원 수준인 사업비도 100억원으로 늘린다. 이에 따라 포스코청암재단은 기존 경북 포항과 전남 광양을 중심으로 한 장학사업에서 국내는 물론 아시아 등 해외로 사업영역을 확대할 예정이다. 재단은 포스코 청암상 제정, 제철소 인근 지역 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샛별장학사업, 불우 청소년을 위한 나눔장학사업, 시민단체 해외연수, 스틸아트 공모전, 아시아 지역의 한국 유학생과 우수대학 장학사업, 인문사회 연구 및 포럼지원사업, 문학편찬 지원사업 등을 추진키로 했다. 특히 ‘포스코 아시아 펠로십’을 통해 매년 40여명의 아시아 각국의 인재를 초청,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원해 국내 유수의 국제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이수토록 할 계획이다. 이구택 회장이 재단 이사장을, 최광웅 전 포스코장학회 부이사장이 상임이사를 맡는다. 비상임이사는 곽상경 고려대 명예교수, 송희연 아시아개발연구원 이사장, 윤수경 사회복지모금회 사무총장, 이대환 소설가, 이채욱 GE코리아 회장, 정운찬 서울대 총장, 정태기 한겨레신문 사장, 진념 전 경제부총리, 탤런트 최수종씨다. 감사는 서태식 삼일회계법인 명예회장과 이형모 시민의신문 사장이다. 이구택 이사장은 “글로벌화 및 현지화가 가속화되는 경영 환경속에서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은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사회에서도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포스코청암재단이 수립한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포스코의 이미지를 존경받는 좋은 기업으로 확고히 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신연숙칼럼] 자립형 사립고의 추억

    [신연숙칼럼] 자립형 사립고의 추억

    자립형 사립고의 시범운영 평가결과가 나와 이의 추가 허용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이에 대한 찬반의견이 팽팽히 맞서 있지만 교육의 본질과 국내외 여러 여건을 살펴볼 때 이를 더 이상 막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고 본다. 우려되는 부작용이나 문제점은 차단하거나 최소화시키면 된다. 개인적으로 기자는 ‘자립형 사립고’식 교육을 체험해 봤다고 생각한다.25년 전 ‘자립형 사립고’라는 이름은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취지가 거의 유사한 학교가 이 땅에 있었다. 한 학급 50명, 한 학년 2개반씩 중·고 합쳐 12학급에 불과했던 소규모의 학교는, 그 당시 어떻게 그런 게 가능했는지 몰라도 학사운영이나 교과목 개설, 특별활동 등이 매우 자유로웠다. 외국 종교재단이 운영해 종교적 이념과 국제적 분위기가 독특한 교풍을 조성했다. 교사들의 열의와 헌신, 학생 하나하나에 대한 인격적 존중, 개성 계발에 집중된 교육 등은 학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영어연극 공연, 음악·무용 콩쿠르, 바자(축제), 봉사활동 등 이 학교만의 프로그램이 많았다. 평준화조치 이후 학교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한때 고교생이 된 딸을 이 학교에 전학시킬 것을 심각하게 고려한 적이 있다. 상황이 안 돼 포기해야 했지만 적어도 이 학교라면 어떤 교육을 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체험으로 추억해 보고 예상해 보는 ‘자립형 사립고’란 이런 곳이다. 교육당국의 간섭에서 벗어나 독특한 건학이념, 다양한 체험활동, 학생의 개성을 존중해주는 교육을 해줄 수 있는 곳이다. 획일적 교육환경에 불만이 늘고 사회 전반에 개방화·다양화가 대세를 이루는 이때 이런 교육기관에 대한 선택권 요구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평준화 보완 대책으로 ‘자립형 사립고’제도가 제안된 지 벌써 10년이 됐다. 교육당국이 정책결정을 미루고 있는 사이 이젠 외부적으로도 더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되지 않았나 한다. 한 해 1만명이 조기유학을 떠나고 내국인을 겨냥한 외국학교까지 들어오게 됐기 때문이다.‘자립형 사립고’가 모든 조기유학생을 붙잡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초·중·고생을 되도록 국내에서 교육하는 것은 경제적인 측면은 물론 국민교육적 측면에서도 훨씬 바람직하다. 또한 외국인이 운영하는 자율적 교육기관은 허용하면서 내국인이 운영하는 자율형 사립고는 안 된다는 정책은 설득력이 없다. 물론 현재와 같은 형태로 ‘자율형 사립고’를 대거 허용할 경우 예상되는 문제점은 많다. 요약하면 높은 등록금으로 귀족학교가 될 것이고, 학교들이 대입시 교육에 치중해 학원화될 것이며, 그 결과 명문대 입학 실적에 따라 학교이름이 브랜드화돼 고교학벌을 다시 형성하게 될 것이란 점이다. 우리 현실에서 이런 상황은 고교입시경쟁을 재현하면서 중학교육을 파탄나게 할 것이 뻔하다. 특히 이런 ‘입시학교’를 부자들만 다닐 수 있게 한다면 형평성 문제도 커진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등록금 규제 등을 완화해 ‘자립형 사립고’를 허용하되 성적으로 뽑는 입학전형을 하지 말 것을 제안한다. 현재도 성적위주 선발은 하지 못하도록 제한돼 있지만 이번 평가결과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아예 사립초등학교의 경우처럼 지원자 전원을 대상으로 한 추첨입학제를 실시했으면 한다. 고른 분포의 학생을 놓고 일반학교와 ‘학교효과’ 경쟁을 한다면 우리 교육 발전에도 기여하리라고 판단된다. 논설실장 yshin@seoul.co.kr
  • 우리 아이 좋은 공부습관 이렇게

    우리 아이 좋은 공부습관 이렇게

    요즘 엄마들은 스스로 자녀의 ‘매니저’라 부른다. 입시제도를 꿰뚫고 발빠르게 학원 정보 등을 수집해 자녀에게 최상의 학습 환경을 만들어 준다는 뜻이다. 하지만 막연히 반복적으로 ‘공부하라.’고 강요하거나, 학원을 억지로 보내는 식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부를 습관처럼 하도록 해야 스스로 알아서 공부를 하고 효과도 배가된다는 것이다. 자녀에게 좋은 공부습관을 들여주는 방법을 알아본다. 자녀의 성적이 오르기를 바라는 부모는 아이가 책상 앞에 앉아만 있으면 일단 마음이 놓인다. 그러나 이렇게 성적에 일희일비하고 조급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자녀의 실력을 키워주는 데 도움이 안된다고 한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깨우쳐 주고 공부와 친숙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근본적인 방법이다. 자녀들에게 좋은 공부습관을 들여주기 위해 부모가 알아야 할 점들을 전문가들에게 들어봤다. ●동기부여·목표설정이 가장 중요 가장 중요한 것은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동기 부여다.“좋은 대학을 나와야 출세한다.”는 식의 무조건적 동기 부여가 아니라 “네가 좋아하는 컴퓨터게임을 잘 하기 위해서는 어떤 공부가 필요할까.”“그렇게 좋아하는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가 된다면 얼마나 즐거울까.”하는 식으로 구체적인 동기를 넌지시 알려주는 식이다. 고려대 교육학과 박도순 교수는 “스스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을 갖도록 하는 ‘내적 동기’ 부여가 가장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때때로 상벌과 같은 외부 자극도 필요하다.”면서 “칭찬이 가장 좋은 동기유발 요소”라고 설명했다. 성과만을 놓고 다그치거나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말고 세심하게 관찰해 적절한 칭찬을 해 주면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 또 공부를 하면서 스스로 성취감과 보람을 맛보게 하면 “공부란 즐거운 것”이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 목표를 설정하도록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이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잘 듣고 그 목표를 실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비행기 조립하는 일을 좋아한다면 “이런 장난감 말고 진짜 비행기를 만든다면 멋진 일이겠지. 날다가 떨어지지 않는 안전한 비행기를 만들려면 여러가지 수치 계산을 잘 해야 할거야. 그리고 사람들에게 네가 만든 비행기를 많이 알리려면 똑부러지게 말하는 연습도 필요하겠지?” 하는 식이다. 단 낮은 단계부터 차근차근 하도록 해야지, 너무 거창한 목표를 던져주는 것은 부담을 줄 수 있으니 주의한다. ●책과 친해지도록…분위기 조성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루종일 공부를 강요하라는 것이 아니라, 마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친구와 놀듯 공부도 자연스럽게 하나의 생활로 몸에 배도록 하는 것이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책과 친하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박혜란 공동대표는 “방·식탁·화장실 할 것 없이 온 집안에 책을 널려 놓고, 책이 장난감이자 친구이자 선생님이 되도록 해주는 것이 지속적인 지적 자극을 줘 학습 효과를 극대화시킨다.”고 설명했다. 여성학자이면서 가수 이적씨를 비롯해 세 아들을 모두 서울대에 보내기도 한 박 대표는 “의도적으로 책을 들이민 것이 아니라 부모가 스스로 책읽기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이책 저책을 뒤적이기 시작하게 된 것”이라면서 “책을 공부의 도구로 인식하기 이전에 친구처럼 받아들인 덕에 세 아들 모두 과외나 학습지 한번 안하고 좋은 성적을 냈다.”고 말했다. 바른 생활습관과 시간관리 능력을 키워주는 것도 공부하는 분위기와 연결된다. 목표를 설정했으면 이를 잘게 나누어 월 단위, 주 단위, 일 단위로 계획을 세우고 스스로 시간을 관리하게 하는 것이다. 이화여대 초등교육과 조연순 교수는 “아이가 먼저 계획을 짜도록 하고 ‘실제 해보니까 숙제를 다 하기에 조금 시간이 모자라던데 조금 늘려보면 어떨까.’ 하는 식으로 수정해 나가는 것이 좋다.”면서 “짜여진 시간표를 주고 지키도록 하는 것은 실천도도 떨어지고 스스로 공부에서 주도권을 놓게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선행학습은 흥미 잃게 해 오히려 ‘독’ 학원 등에서 주로 하는 선행학습은 공부 습관이라는 면에서는 전혀 도움이 안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어설프게 알게 된 지식이 학교 수업에 흥미를 잃게 해 오히려 ‘독’이 된다는 지적이다. 박도순 교수는 “예습 수준을 넘어선 선행학습은 당장은 앞서나가는 것 같지만 ‘다 아는 것이니 재미 없다.’는 생각을 불러일으켜 오히려 내적 동기를 해친다.”면서 “교육학적으로 보면 선행학습은 어떤 경우에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단언했다. 박혜란 대표도 “선행학습은 뭘 먹고싶은지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엄마가 숟가락을 들고 무조건 떠먹여주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독서가 가장 근본적인 선행학습이며, 한두학기씩 앞서가며 배우는 것은 잠깐 성적은 오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아이를 망치게 된다.”고 말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이정숙씨의 ‘자녀 교육법’“좋은 공부 습관만 들여주고 나면 그 다음엔 아이 키우기 정말 쉽죠.” ‘잔소리하지 않고 유쾌하게 공부시키는 법(나무생각)’의 저자 이정숙씨는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두 아들을 미국 명문대에 보낸 엄마이기도 한 이씨는 “어렸을 때 바른 생활·공부습관을 잡아준 뒤에는 한번도 ‘공부하라.’고 잔소리 한 기억이 없다.”며 ‘습관’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이씨가 아이들을 키우는 원칙은 스스로 하고 싶어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 책과 가깝게 해 주고 계획을 세워 지키도록 하는 것도 물론이다. 그러나 이씨 역시 조급한 마음에 딱 두번 아이들이 싫다는 것을 억지로 시켜본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둘 다 산수를 너무 못해 억지로 주산 학원에 보냈더니, 숙제도 전혀 하지 않고 수업 중에도 딴짓만 했다. 주산 학원에 다니지 않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 뒤 결국 1주일 만에 그만두게 했다. 이때 ‘설득 없이 억지로 하는 건 역효과만 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둘째아들은 바이올린을 억지로 가르치자 5년 만에 ‘절대 못하겠다.’고 버텨 끝내 그만두더니, 스스로 재능을 찾아낸 피아노는 용돈을 아껴 레슨을 받고 대학에서 전공까지 했다. 본인이 동기를 얻고 하고 싶어야 비로소 효과가 있다는 것. 대화를 통해 합리적으로 의견을 나누면서도 생활 습관은 따끔하게 가르쳤다. 큰아들이 6세 때 시장에서 장난감을 사달라면서 발버둥을 치며 떼를 쓰자 몇번 경고를 한 뒤 ‘혼자 집에 찾아오라.’고 하고는 사라졌다.30분간을 울며 엄마를 찾던 아이는 이후에는 절대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중학교 1·2학년이던 두 아들을 데리고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이씨는 “뉴욕 맨해튼 일부 지역에 우리나라 대치동이나 청담동 같이 엄마들이 아이 공부에 더 열을 올리는 경우도 있긴 하다.”면서 “그러나 어려서부터 함께 책을 읽고 원칙을 지키도록 습관을 만들어준 뒤 학창시절에는 오히려 간섭하지 않는 미국인 부모들의 교육법이 훨씬 인상적었고 또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씨의 큰아들 창연(25)씨는 미시건대 건축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전액 장학생으로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둘째 승연(24)씨는 뉴욕대 경영학과와 줄리어드 음대를 동시에 다니면서 ‘공부기술(중앙M&B)’이라는 책을 써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이씨는 “분위기에 휩쓸려 선행학습이다 뭐다 하는 것에 조급증을 내기 보다는 적극적이고 자기주도적인 습관을 들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이렇게 하면 ‘효과 두배’뭐가 좋은지는 알면서도 잘 안되는 것이 자녀교육이다.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당장 따라해 볼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한다. ●질문할 때마다 백과사전 활용 아이들이 말을 배우고 호기심을 갖기 시작하면 부쩍 질문이 많아진다. 이럴 때 아는 대로 대충 대답해주거나 얼버무리지 말고 함께 백과사전을 찾아본다.“눈은 왜 와요?” 하고 묻는다면 함께 ‘눈’을 찾아보고 스스로 물음에 대한 답을 찾도록 유도한다. 흥미를 자극하고 다양한 배경지식을 쌓는 데 더없이 좋은 방법이다. ●국어사전을 항상 옆에 두기 국어실력은 모든 공부에 기본이다. 바른 언어습관은 생활 태도에도 영향을 준다. 책이나 TV를 보다가 잘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그때그때 국어사전을 찾아보도록 한다. 사전을 통해 어휘력과 문장력이 풍부해져 말과 글쓰기에 자신감을 갖게 된다. 또한 이런 습관이 들면 외국어 공부도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다. ●재래시장 자주 데려가기 책상 앞에서 하는 것만이 공부가 아니다. 때때로 재래시장에 데려가는 것은 아이의 오감을 자극하는 쉽고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시장통에서 생선을 자르는 아주머니,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일하는 청년들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보며 사회성, 생활력, 호기심, 기초적 경제관념을 키울 수 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시론] 중국언론은 한국을 어떻게 보는가/이민태 중국 인민대학당·대중국연구중심 연구원

    [시론] 중국언론은 한국을 어떻게 보는가/이민태 중국 인민대학당·대중국연구중심 연구원

    한국과 중국이 다시 수교한 지 올해로 13년째가 된다. 두 나라의 교류는 아직 갈등 해소 차원일지 모르지만 지금까지의 교류를 바탕으로 서로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는 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인식하는 통로는 다양하다. 그 중에서 가장 쉬운 통로는 언론이다. 그러나 중국의 언론과 독자의 관계는 우리나라와 다르다. 중국에서는 언론이 국가기구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다양함 속의 통일보다는 국가의 안정을 핵심으로 하는 통일 속의 다양함을 상대적으로 강조하는 환경에 있는 것이다. 나라와 나라가 교류를 통해서 상대를 인식하는 과정은 사람의 인식 과정과 원칙적으로 같다. 첫 질문은 상대국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그 정체성의 기본이 되는 것은 바로 이름이다. 중국인에게 우리나라의 이름은 한국인가, 남한인가, 남조선인가. 우리가 한반도라고 부르는 것을 왜 중국 언론은 조선반도라고 부르고 북한은 조선이라 하는가. 그리고 왜 중국 언론은 독도를 일본이 명명한 ‘죽도’라고 표현하는가.‘일본해’ 표기도 왜 종종 등장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우리의 정체성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필자의 조사에 따르면 중국 언론은 우리나라를 ‘한국’으로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지만 남조선, 남한이라는 용어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북한은 ‘조선’, 한반도는 ‘조선반도’, 남북한은 ‘남북조선’으로 표기한다. 독도는 ‘죽도’와 병기되고 있으며 ‘일본해’도 여전히 등장한다. 이는 한국이 중국과 성숙한 관계를 맺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중국 언론이 보도하는 한국 관련 뉴스의 양을 보면 한국의 위상은 낮지 않다. 양적인 면에서 미국과 일본, 영국 다음이었다. 이는 한국이 그만큼 중국에 높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언론 또한 그에 걸맞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고 그 역할을 하고 있는가. 필자는 조사를 통해 중국 언론에서 한국 언론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특이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뉴스원으로서 한국은 중국 언론에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한국 언론에 근거해 한국 소식을 보도하는 비율은 낮았다. 그나마도 인용되는 한국 언론은 특정 신문에 국한돼 있다. 미국 소식은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LA타임스 등을 다양하게 인용하는 것과는 대비된다. 일본의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산케이신문 등과 비교해도 그렇다. 우리나라의 특정 언론사 기사가 인용되는 비율은 일본의 3대 신문사의 인용 비율과 비슷하다. 중국 언론이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을 특정 언론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중국에 수동적인 태도로 우리를 알리는 데 만족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필자는 몇 가지 생각을 제안하고 싶다. 정부는 먼저 한국 소식이 분명하고 다양하게 외국에 전달되도록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한국 주재 중국 기자들에게 정기적으로 한국에 관한 브리핑을 할 필요가 있다. 또 중국어 서비스를 확대해야 하며 중국 언론매체 홈페이지에 한국 소식을 제공해야 한다. 중국어로 한국을 알리는 전문 홈페이지도 개설해야 하며 두 나라 대학생 기자들과 성인 기자들이 교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두 나라 언론 전문가들이 이를 논의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어야 한다. 숫자는 적지만 한국인이 중국에서 발간하는 신문과 인터넷 매체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문화원과 같은 정부기구를 통해 중국 사회에서 여론을 주도하는 계층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도 해야 한다. 중국내 한국인 집단 거주지역이나 유학생들이 있는 대학에 한국의 소식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대책도 절실하다. 이민태 중국 인민대학당·대중국연구중심 연구원
  • [일본을 다시본다] (20) 특별취재팀 방담

    [일본을 다시본다] (20) 특별취재팀 방담

    ‘한·일수교 40주년’을 맞아 서울신문이 기획한 ‘일본을 다시 본다.’ 시리즈의 마감을 앞두고 도쿄를 비롯, 교토와 나고야, 오사카 등 일본 현지 곳곳을 누볐던 특별취재팀이 지면에 미처 담지 못했던 얘기들을 방담을 통해 정리했다. ●도쿄의 부동산 열풍 -일본 최대의 번화가 긴자(銀座) 거리를 가보니 엷은 회색 포장으로 바꾸었더군요. 도쿄역 앞을 비롯한 도심의 재개발도 한창이었습니다. 도쿄만을 놓고 본다면 활력이 넘치는 것 같았습니다. 반면 그 때문에 부동산 열풍도 심각하다고 합니다. 도쿄와 도쿄 인근 부동산 값이 너무 치솟아 ‘억션’이라는 말이 유행한다더군요.‘맨션(일본의 저층 고급 아파트)’이 웬만해서는 모두 몇억엔을 호가한다고 해서 일본사람들은 맨션 대신 ‘억션’이라고 부른답니다. 하지만 도쿄 인근을 제외한 그 밖의 지방은 부동산 경기가 죽어 있어 양극화 경향이 심각하다더군요.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밝았지만 일본에서 가장 활기 있는 곳은 역시 나고야인 것 같았습니다. 오사카 만국박람회의 영광을 되살리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유치한 아이치 만국박람회 덕분이지요. 나고야역에서도 심심찮게 외국인을 볼 수 있었고, 나고야 번화가 어느 상점에나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들이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나고야역 근처 한 전자제품매장에서는 영어가 통하지 않자 점원이 급히 인터넷 번역사이트에서 일본어를 영어로 번역, 프린터로 인쇄해 주더군요. 단순 친절을 넘어 외국인을 고려한 철저한 서비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에 취재하면서 일본 사회 전체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것도 여러차례 실감했습니다. 과거에는 일본의 정치인이나 회사, 단체 등에 인터뷰나 면담신청을 하면 통상 1∼2개월 가량 걸렸는데 이번에는 전혀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단체들도 홍보 필요성이 있는 곳은 하루 만에 일정이 잡히곤 했습니다. 이를 두고 일본 대학의 한 한국인 교수는 “치밀한 일본인들이 속도감까지 갖기 시작했다. 일본 기업이나 사회가 스피드마저 갖추게 되면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속도가 빨라져도 그 무서운 준비력은 여전했습니다. 취재원들 모두 뒷받침할 통계나 증빙자료가 없으면 아예 말도 꺼내지 않더군요. -일본 기업인이나 정치인들은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먼저 헤어질 시간을 미리 고지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 같으면 일단 인터뷰를 하다가 시간이 길어지면 “그만 일어나야겠다.”고 할 텐데, 일본은 미리 양해를 구해놓는 차이가 있더군요. 최대한 신중하고 정확하게 말하는 태도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들은 가급적 단정적이고 명확한 대답을 요구하는 기자의 욕심을 좀처럼 충족시켜주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물어봐도 저렇게 물어봐도 신중함의 경계선은 무너지지 않았으니까요. ●감시의 나라, 일본 -일본은 ‘감시의 나라’라는 말도 실감했습니다. 렌고(連合·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를 취재한 뒤 도쿄전력을 찾아갔는데, 노사관계와 관련해 다소 민감한 질문을 던졌더니 “렌고에서 이미 취재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더군요.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감시하는 체제가 강력히 구축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도쿄전력에서 회사측과 노조측 관계자를 교대로 만났는데, 먼저 취재에 응한 회사 관계자가 나중에 면담한 노조 관계자에게 저와 나눈 대화, 질문 내용 등을 알려주는 모습을 보면서 상당히 놀랐습니다. -일본은 지금 패전 60주년이자 러·일전쟁 100주년, 자민당 결성 및 ‘55년 체제’ 50주년을 맞아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의지로 가득 찬 상황입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을 바꾸겠다는 상징으로 의회까지 해산하며 우정개혁을 밀어붙이는 최대 강수를 두고 있습니다. 일본에선 고이즈미 총리의 개혁을 미국식 경제주의와 일본식 경제주의간의 힘겨루기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았습니다. 지식인층과 기득권층은 주로 미국식 경제주의를 도입해야 일본이 살아날수 있다는 논리를 폈고, 렌고 등 노동계와 일부 학계에서는 강한 거부감을 보였거든요. 이들은 고이즈미의 개혁을 ‘약육강식’의 논리로 단정하고, 강행할 경우 결국 피해는 약자에게만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그 때문에 현 정권이 교체돼야 한다는 말까지 스스럼없이 하더군요. ●지도층 “패러다임 바꾸자” -제가 만난 일본인들은 한결같이 “지금의 일본은 안된다.”고 말했는데, 일본인 특유의 엄살을 감안해도 시대의 변환기에서 적어도 리더그룹들은 일본을 형성해온 ‘패러다임을 바꾸고 변화를 늦춰서는 안될 절박한 시점에 와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전보다 다른 나라를 더 의식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일본기자들로부터 ‘취재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일본우정공사를 취재한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도쿄신문 기자가 우정공사 취재 배경 등에 대해 알고 싶다며 인터뷰 요청을 해와 당황했었습니다. 이런 얘기를 현지에 있는 지인들에게 했더니 “일본은 그동안 주변 국가들에 관심이 없었지만, 최근 개혁의 파고속에 주변국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귀띔하더군요. -기업의 육아지원책에 대해 취재하기 위해 NEC를 찾았을 때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간단히 NEC의 출산 및 육아지원제도를 소개하고선 오히려 저에게 한국은 어떤지 묻더군요. 출산휴가는 며칠이나 되고 그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어떤지 꼬치꼬치 묻는 통에 좀 당황했습니다. 양육지원에서 일본이 한국보다 한단계 앞서 있다고 하자 얼굴에 안도감과 자부심이 비치더군요. 다른 나라와 비교해 일본의 수준을 가늠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21세기 초 동북아 정세에 관해 들은 재밌는 얘기였습니다. 지난 3월 말 외무성 북한반장직을 박차고 퇴직한 서른 다섯살의 어느 지식인은 동북아의 위기상황에 대해 “북핵문제는 표면으로 드러난 문제일 뿐 사실 속을 들여다 보면 결국 동북아의 부(富)를 둘러싸고 중국, 한국, 미국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군대를 보내는 전쟁이 아닌 ‘세련된 제국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일본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새삼 실감한 한류 열풍 -현지 취재에 나서기 전 가장 궁금한 것들 중 하나가 한류 열풍이었는데요,‘도쿄의 코리아타운’이라 불리는 신오크보에는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더군요.2001년 한국어학원을 개원한 한국인 원장을 만나봤는데, 그때 2곳에 불과하던 학원이 이듬해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조금씩 늘어나더니 한류열풍을 타고 지금은 20여곳이나 된다고 합니다. 현지에서 만난 한 여성은 팬레터를 쓰고 한국관광을 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있었는데,MP3 플레이어에 들어 있는 300곡이 모두 한국 노래일 정도로 열성적이었지요. 이 여성은 한국어를 배운 덕에 최근 한국계 기업에 취직까지 했다며 ‘일석이조’ 효과를 얻었다고 기뻐했습니다. -일본에서의 한류 열풍이 1년 안에 사그라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현지에 가보니, 그렇진 않았습니다.TV를 보니 배우 장동건이 한국 소주를 선전하는 광고가 나오더군요. 또 아이들 사이에서는 한류 스타의 이름을 끊이지 않고 말하는 일종의 말잇기 놀이가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취재 중에 만난 한 여성은 영문 명함을 건넸더니 제게 명함에 한국어로 이름을 써달라고 하더군요.‘뵨사마(탤런트 이병헌)’가 너무 멋져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한국사람이 직접 쓴 한국어 글씨를 기념으로 갖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 여성은 한국에서 욘사마(배용준)와 뵨사마 중에 누가 더 인기 있는지, 이들 말고 또 ‘뜨는’ 연예인이 누구인지 물었습니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일본 -이번 취재는 우리가 너무 일본을 피상적으로 알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계기도 됐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욘사마 신드롬’,‘독도문제’,‘교과서문제’ 등은 일본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측면이 강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일본 국내의 정치적 갈등에 우리가 끼어들어 곤욕을 치르거나, 일부는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대응해 사태를 악화시킨 측면도 있었다는 점입니다. 일본인은 겉(형식)과 속(내면)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그 본질을 다각도로 파악해야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런 측면에서 “말하기 쑥스럽지만, 일본은 형식적이면서 실용적인 이중성을 갖고 있다.”는 한 일본인 교수의 고백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본에선 지하철이나 전철의 출입구쪽에 주저앉아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는 10대들이 갈수록 늘어나 사회문제가 되고 있답니다. 전혀 주변 사람을 신경쓰지 않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쳐다보지도 않는 어른들을 보고 놀랐습니다. -일본인 특유의 고집이 대단하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기자가 물어보지 않은 내용인데도, 자기가 할 말은 꼭 하려들어 당혹스러울 정도였습니다.NEC의 아라이 도시노리 홍보부장은 일본 제조업의 부활을 묻는 첫 질문에 “대답에 앞서 우선 우리 회사 소개부터 하겠다.”면서 캐털로그를 펼쳐놓고 한바탕 ‘강의’를 했습니다. ●5층 빌딩 짓는데 4년 -‘일본의 경주’로 알려진 문화유적의 도시 교토에서는 일본 문화재정책의 단면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교토대에 입학, 현재 석사 과정에 있는 유학생에게서 들은 얘기입니다. 교토대는 그 학생이 신입생으로 입학한 5년 전 총장실 신축 공사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공사가 한창이던 어느날 현장에서 유물이 발견되면서 무려 2년여 동안 공사가 중단됐고 유물 발굴이 다 끝난 뒤에야 건축 공사를 재개했다고 합니다.1학년 때 시작한 공사가 4학년 때 끝났으니 5층건물 하나 짓는데 4년이 걸린 셈입니다. wisepen@seoul.co.kr ●특별취재팀 한종태 국제부장(팀장), 황성기 사회부장, 이춘규 도쿄특파원, 주병철(경제부)·손원천 이언탁(사진부)차장, 안미현(산업부)·김상연 황장석(정치부)·유지혜(사회부)·정연호(사진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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