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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등학교 영어교사 명 받았습니다”

    ‘군인 아저씨에게 영어 배워요.’군장병들이 인근 지역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화제다. 육군 1군수지원사령부 8군수지원단은 지난 5일부터 강릉시 구정면 구정, 금광, 모산초교 등 3개 학교 특기적성 교육시간에 군장병들을 보내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군인들이 영어를 가르칠 수 있지만 이들은 보통 군인들이 아니다. 대부분 호주에서 대학을 나온 유학생 출신이다. 이들은 ‘방과 후 특기적성 교육시간’을 활용, 주 2회 2시간씩 3∼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회화 위주의 실용영어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처음에는 다소 어색해 했지만 지금은 학생들이 이들의 교육을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인기 강좌(?)다. 이들을 가르치는 군인 선생님은 김원중(29) 일병과 정준희(25) 일병. 김 일병은 고등학교 졸업 후 호주의 대학으로 진학해 7년간 유학하면서 대학원 석사 과정 1년을 마치고 귀국, 군에 입대했고 정 일병 역시 호주에서 4년 동안 공부를 했다. 김 일병은 “사회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초등학교 교단에 서는 경험을 군대에서 하게 돼 항상 설레는 마음으로 수업을 한다.”며 “큰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구정초교 이정미(32) 교사는 “농촌지역 학생들은 교육비 부담이 적지 않은데 학부모들의 부담도 없는 양질의 영어교육을 지원해줘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강릉 조한종기자bell21@seoul.co.kr
  • “뉴올리언스 교민일부 침수지역에 있을수도”

    정부는 9일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지역에 거주하는 교민 중 800여명이 무사히 대피 중인 것으로 확인됐으나 일부 교민이 침수지역에 남아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뉴올리언스 교민 2500여명 중 800명은 소재가 확인됐다.”며 “나머지 1700여명은 신고 없이 타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여 현재 소재 파악이 안 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신속대응팀이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있던 범양상선 직원 5명과 목사 2명, 유학생 14명 등 모두 21명을 안전하게 이송했다고 이 당국자는 설명했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포스코, 청암재단 만든다

    포스코, 청암재단 만든다

    포스코는 기존 ‘포스코장학회’를 확대해 기금 1000억원 규모의 ‘포스코청암재단’을 설립, 사회공헌활동을 강화한다고 8일 밝혔다. 포스코청암재단은 1971년 6000만원의 기금으로 설립된 ‘포스코장학회’를 확대 개편한 것으로, 포스코로부터 올해와 내년에 각 100억원을 추가 출연받아 1000억원 기금으로 확대 운영된다. 올해 42억원 수준인 사업비도 100억원으로 늘린다. 이에 따라 포스코청암재단은 기존 경북 포항과 전남 광양을 중심으로 한 장학사업에서 국내는 물론 아시아 등 해외로 사업영역을 확대할 예정이다. 재단은 포스코 청암상 제정, 제철소 인근 지역 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샛별장학사업, 불우 청소년을 위한 나눔장학사업, 시민단체 해외연수, 스틸아트 공모전, 아시아 지역의 한국 유학생과 우수대학 장학사업, 인문사회 연구 및 포럼지원사업, 문학편찬 지원사업 등을 추진키로 했다. 특히 ‘포스코 아시아 펠로십’을 통해 매년 40여명의 아시아 각국의 인재를 초청,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원해 국내 유수의 국제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이수토록 할 계획이다. 이구택 회장이 재단 이사장을, 최광웅 전 포스코장학회 부이사장이 상임이사를 맡는다. 비상임이사는 곽상경 고려대 명예교수, 송희연 아시아개발연구원 이사장, 윤수경 사회복지모금회 사무총장, 이대환 소설가, 이채욱 GE코리아 회장, 정운찬 서울대 총장, 정태기 한겨레신문 사장, 진념 전 경제부총리, 탤런트 최수종씨다. 감사는 서태식 삼일회계법인 명예회장과 이형모 시민의신문 사장이다. 이구택 이사장은 “글로벌화 및 현지화가 가속화되는 경영 환경속에서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은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사회에서도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포스코청암재단이 수립한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포스코의 이미지를 존경받는 좋은 기업으로 확고히 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우리 아이 좋은 공부습관 이렇게

    우리 아이 좋은 공부습관 이렇게

    요즘 엄마들은 스스로 자녀의 ‘매니저’라 부른다. 입시제도를 꿰뚫고 발빠르게 학원 정보 등을 수집해 자녀에게 최상의 학습 환경을 만들어 준다는 뜻이다. 하지만 막연히 반복적으로 ‘공부하라.’고 강요하거나, 학원을 억지로 보내는 식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부를 습관처럼 하도록 해야 스스로 알아서 공부를 하고 효과도 배가된다는 것이다. 자녀에게 좋은 공부습관을 들여주는 방법을 알아본다. 자녀의 성적이 오르기를 바라는 부모는 아이가 책상 앞에 앉아만 있으면 일단 마음이 놓인다. 그러나 이렇게 성적에 일희일비하고 조급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자녀의 실력을 키워주는 데 도움이 안된다고 한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깨우쳐 주고 공부와 친숙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근본적인 방법이다. 자녀들에게 좋은 공부습관을 들여주기 위해 부모가 알아야 할 점들을 전문가들에게 들어봤다. ●동기부여·목표설정이 가장 중요 가장 중요한 것은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동기 부여다.“좋은 대학을 나와야 출세한다.”는 식의 무조건적 동기 부여가 아니라 “네가 좋아하는 컴퓨터게임을 잘 하기 위해서는 어떤 공부가 필요할까.”“그렇게 좋아하는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가 된다면 얼마나 즐거울까.”하는 식으로 구체적인 동기를 넌지시 알려주는 식이다. 고려대 교육학과 박도순 교수는 “스스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을 갖도록 하는 ‘내적 동기’ 부여가 가장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때때로 상벌과 같은 외부 자극도 필요하다.”면서 “칭찬이 가장 좋은 동기유발 요소”라고 설명했다. 성과만을 놓고 다그치거나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말고 세심하게 관찰해 적절한 칭찬을 해 주면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 또 공부를 하면서 스스로 성취감과 보람을 맛보게 하면 “공부란 즐거운 것”이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 목표를 설정하도록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이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잘 듣고 그 목표를 실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비행기 조립하는 일을 좋아한다면 “이런 장난감 말고 진짜 비행기를 만든다면 멋진 일이겠지. 날다가 떨어지지 않는 안전한 비행기를 만들려면 여러가지 수치 계산을 잘 해야 할거야. 그리고 사람들에게 네가 만든 비행기를 많이 알리려면 똑부러지게 말하는 연습도 필요하겠지?” 하는 식이다. 단 낮은 단계부터 차근차근 하도록 해야지, 너무 거창한 목표를 던져주는 것은 부담을 줄 수 있으니 주의한다. ●책과 친해지도록…분위기 조성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루종일 공부를 강요하라는 것이 아니라, 마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친구와 놀듯 공부도 자연스럽게 하나의 생활로 몸에 배도록 하는 것이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책과 친하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박혜란 공동대표는 “방·식탁·화장실 할 것 없이 온 집안에 책을 널려 놓고, 책이 장난감이자 친구이자 선생님이 되도록 해주는 것이 지속적인 지적 자극을 줘 학습 효과를 극대화시킨다.”고 설명했다. 여성학자이면서 가수 이적씨를 비롯해 세 아들을 모두 서울대에 보내기도 한 박 대표는 “의도적으로 책을 들이민 것이 아니라 부모가 스스로 책읽기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이책 저책을 뒤적이기 시작하게 된 것”이라면서 “책을 공부의 도구로 인식하기 이전에 친구처럼 받아들인 덕에 세 아들 모두 과외나 학습지 한번 안하고 좋은 성적을 냈다.”고 말했다. 바른 생활습관과 시간관리 능력을 키워주는 것도 공부하는 분위기와 연결된다. 목표를 설정했으면 이를 잘게 나누어 월 단위, 주 단위, 일 단위로 계획을 세우고 스스로 시간을 관리하게 하는 것이다. 이화여대 초등교육과 조연순 교수는 “아이가 먼저 계획을 짜도록 하고 ‘실제 해보니까 숙제를 다 하기에 조금 시간이 모자라던데 조금 늘려보면 어떨까.’ 하는 식으로 수정해 나가는 것이 좋다.”면서 “짜여진 시간표를 주고 지키도록 하는 것은 실천도도 떨어지고 스스로 공부에서 주도권을 놓게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선행학습은 흥미 잃게 해 오히려 ‘독’ 학원 등에서 주로 하는 선행학습은 공부 습관이라는 면에서는 전혀 도움이 안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어설프게 알게 된 지식이 학교 수업에 흥미를 잃게 해 오히려 ‘독’이 된다는 지적이다. 박도순 교수는 “예습 수준을 넘어선 선행학습은 당장은 앞서나가는 것 같지만 ‘다 아는 것이니 재미 없다.’는 생각을 불러일으켜 오히려 내적 동기를 해친다.”면서 “교육학적으로 보면 선행학습은 어떤 경우에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단언했다. 박혜란 대표도 “선행학습은 뭘 먹고싶은지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엄마가 숟가락을 들고 무조건 떠먹여주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독서가 가장 근본적인 선행학습이며, 한두학기씩 앞서가며 배우는 것은 잠깐 성적은 오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아이를 망치게 된다.”고 말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이정숙씨의 ‘자녀 교육법’“좋은 공부 습관만 들여주고 나면 그 다음엔 아이 키우기 정말 쉽죠.” ‘잔소리하지 않고 유쾌하게 공부시키는 법(나무생각)’의 저자 이정숙씨는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두 아들을 미국 명문대에 보낸 엄마이기도 한 이씨는 “어렸을 때 바른 생활·공부습관을 잡아준 뒤에는 한번도 ‘공부하라.’고 잔소리 한 기억이 없다.”며 ‘습관’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이씨가 아이들을 키우는 원칙은 스스로 하고 싶어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 책과 가깝게 해 주고 계획을 세워 지키도록 하는 것도 물론이다. 그러나 이씨 역시 조급한 마음에 딱 두번 아이들이 싫다는 것을 억지로 시켜본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둘 다 산수를 너무 못해 억지로 주산 학원에 보냈더니, 숙제도 전혀 하지 않고 수업 중에도 딴짓만 했다. 주산 학원에 다니지 않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 뒤 결국 1주일 만에 그만두게 했다. 이때 ‘설득 없이 억지로 하는 건 역효과만 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둘째아들은 바이올린을 억지로 가르치자 5년 만에 ‘절대 못하겠다.’고 버텨 끝내 그만두더니, 스스로 재능을 찾아낸 피아노는 용돈을 아껴 레슨을 받고 대학에서 전공까지 했다. 본인이 동기를 얻고 하고 싶어야 비로소 효과가 있다는 것. 대화를 통해 합리적으로 의견을 나누면서도 생활 습관은 따끔하게 가르쳤다. 큰아들이 6세 때 시장에서 장난감을 사달라면서 발버둥을 치며 떼를 쓰자 몇번 경고를 한 뒤 ‘혼자 집에 찾아오라.’고 하고는 사라졌다.30분간을 울며 엄마를 찾던 아이는 이후에는 절대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중학교 1·2학년이던 두 아들을 데리고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이씨는 “뉴욕 맨해튼 일부 지역에 우리나라 대치동이나 청담동 같이 엄마들이 아이 공부에 더 열을 올리는 경우도 있긴 하다.”면서 “그러나 어려서부터 함께 책을 읽고 원칙을 지키도록 습관을 만들어준 뒤 학창시절에는 오히려 간섭하지 않는 미국인 부모들의 교육법이 훨씬 인상적었고 또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씨의 큰아들 창연(25)씨는 미시건대 건축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전액 장학생으로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둘째 승연(24)씨는 뉴욕대 경영학과와 줄리어드 음대를 동시에 다니면서 ‘공부기술(중앙M&B)’이라는 책을 써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이씨는 “분위기에 휩쓸려 선행학습이다 뭐다 하는 것에 조급증을 내기 보다는 적극적이고 자기주도적인 습관을 들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이렇게 하면 ‘효과 두배’뭐가 좋은지는 알면서도 잘 안되는 것이 자녀교육이다.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당장 따라해 볼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한다. ●질문할 때마다 백과사전 활용 아이들이 말을 배우고 호기심을 갖기 시작하면 부쩍 질문이 많아진다. 이럴 때 아는 대로 대충 대답해주거나 얼버무리지 말고 함께 백과사전을 찾아본다.“눈은 왜 와요?” 하고 묻는다면 함께 ‘눈’을 찾아보고 스스로 물음에 대한 답을 찾도록 유도한다. 흥미를 자극하고 다양한 배경지식을 쌓는 데 더없이 좋은 방법이다. ●국어사전을 항상 옆에 두기 국어실력은 모든 공부에 기본이다. 바른 언어습관은 생활 태도에도 영향을 준다. 책이나 TV를 보다가 잘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그때그때 국어사전을 찾아보도록 한다. 사전을 통해 어휘력과 문장력이 풍부해져 말과 글쓰기에 자신감을 갖게 된다. 또한 이런 습관이 들면 외국어 공부도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다. ●재래시장 자주 데려가기 책상 앞에서 하는 것만이 공부가 아니다. 때때로 재래시장에 데려가는 것은 아이의 오감을 자극하는 쉽고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시장통에서 생선을 자르는 아주머니,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일하는 청년들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보며 사회성, 생활력, 호기심, 기초적 경제관념을 키울 수 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신연숙칼럼] 자립형 사립고의 추억

    [신연숙칼럼] 자립형 사립고의 추억

    자립형 사립고의 시범운영 평가결과가 나와 이의 추가 허용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이에 대한 찬반의견이 팽팽히 맞서 있지만 교육의 본질과 국내외 여러 여건을 살펴볼 때 이를 더 이상 막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고 본다. 우려되는 부작용이나 문제점은 차단하거나 최소화시키면 된다. 개인적으로 기자는 ‘자립형 사립고’식 교육을 체험해 봤다고 생각한다.25년 전 ‘자립형 사립고’라는 이름은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취지가 거의 유사한 학교가 이 땅에 있었다. 한 학급 50명, 한 학년 2개반씩 중·고 합쳐 12학급에 불과했던 소규모의 학교는, 그 당시 어떻게 그런 게 가능했는지 몰라도 학사운영이나 교과목 개설, 특별활동 등이 매우 자유로웠다. 외국 종교재단이 운영해 종교적 이념과 국제적 분위기가 독특한 교풍을 조성했다. 교사들의 열의와 헌신, 학생 하나하나에 대한 인격적 존중, 개성 계발에 집중된 교육 등은 학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영어연극 공연, 음악·무용 콩쿠르, 바자(축제), 봉사활동 등 이 학교만의 프로그램이 많았다. 평준화조치 이후 학교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한때 고교생이 된 딸을 이 학교에 전학시킬 것을 심각하게 고려한 적이 있다. 상황이 안 돼 포기해야 했지만 적어도 이 학교라면 어떤 교육을 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체험으로 추억해 보고 예상해 보는 ‘자립형 사립고’란 이런 곳이다. 교육당국의 간섭에서 벗어나 독특한 건학이념, 다양한 체험활동, 학생의 개성을 존중해주는 교육을 해줄 수 있는 곳이다. 획일적 교육환경에 불만이 늘고 사회 전반에 개방화·다양화가 대세를 이루는 이때 이런 교육기관에 대한 선택권 요구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평준화 보완 대책으로 ‘자립형 사립고’제도가 제안된 지 벌써 10년이 됐다. 교육당국이 정책결정을 미루고 있는 사이 이젠 외부적으로도 더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되지 않았나 한다. 한 해 1만명이 조기유학을 떠나고 내국인을 겨냥한 외국학교까지 들어오게 됐기 때문이다.‘자립형 사립고’가 모든 조기유학생을 붙잡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초·중·고생을 되도록 국내에서 교육하는 것은 경제적인 측면은 물론 국민교육적 측면에서도 훨씬 바람직하다. 또한 외국인이 운영하는 자율적 교육기관은 허용하면서 내국인이 운영하는 자율형 사립고는 안 된다는 정책은 설득력이 없다. 물론 현재와 같은 형태로 ‘자율형 사립고’를 대거 허용할 경우 예상되는 문제점은 많다. 요약하면 높은 등록금으로 귀족학교가 될 것이고, 학교들이 대입시 교육에 치중해 학원화될 것이며, 그 결과 명문대 입학 실적에 따라 학교이름이 브랜드화돼 고교학벌을 다시 형성하게 될 것이란 점이다. 우리 현실에서 이런 상황은 고교입시경쟁을 재현하면서 중학교육을 파탄나게 할 것이 뻔하다. 특히 이런 ‘입시학교’를 부자들만 다닐 수 있게 한다면 형평성 문제도 커진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등록금 규제 등을 완화해 ‘자립형 사립고’를 허용하되 성적으로 뽑는 입학전형을 하지 말 것을 제안한다. 현재도 성적위주 선발은 하지 못하도록 제한돼 있지만 이번 평가결과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아예 사립초등학교의 경우처럼 지원자 전원을 대상으로 한 추첨입학제를 실시했으면 한다. 고른 분포의 학생을 놓고 일반학교와 ‘학교효과’ 경쟁을 한다면 우리 교육 발전에도 기여하리라고 판단된다. 논설실장 yshin@seoul.co.kr
  • [시론] 중국언론은 한국을 어떻게 보는가/이민태 중국 인민대학당·대중국연구중심 연구원

    [시론] 중국언론은 한국을 어떻게 보는가/이민태 중국 인민대학당·대중국연구중심 연구원

    한국과 중국이 다시 수교한 지 올해로 13년째가 된다. 두 나라의 교류는 아직 갈등 해소 차원일지 모르지만 지금까지의 교류를 바탕으로 서로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는 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인식하는 통로는 다양하다. 그 중에서 가장 쉬운 통로는 언론이다. 그러나 중국의 언론과 독자의 관계는 우리나라와 다르다. 중국에서는 언론이 국가기구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다양함 속의 통일보다는 국가의 안정을 핵심으로 하는 통일 속의 다양함을 상대적으로 강조하는 환경에 있는 것이다. 나라와 나라가 교류를 통해서 상대를 인식하는 과정은 사람의 인식 과정과 원칙적으로 같다. 첫 질문은 상대국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그 정체성의 기본이 되는 것은 바로 이름이다. 중국인에게 우리나라의 이름은 한국인가, 남한인가, 남조선인가. 우리가 한반도라고 부르는 것을 왜 중국 언론은 조선반도라고 부르고 북한은 조선이라 하는가. 그리고 왜 중국 언론은 독도를 일본이 명명한 ‘죽도’라고 표현하는가.‘일본해’ 표기도 왜 종종 등장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우리의 정체성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필자의 조사에 따르면 중국 언론은 우리나라를 ‘한국’으로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지만 남조선, 남한이라는 용어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북한은 ‘조선’, 한반도는 ‘조선반도’, 남북한은 ‘남북조선’으로 표기한다. 독도는 ‘죽도’와 병기되고 있으며 ‘일본해’도 여전히 등장한다. 이는 한국이 중국과 성숙한 관계를 맺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중국 언론이 보도하는 한국 관련 뉴스의 양을 보면 한국의 위상은 낮지 않다. 양적인 면에서 미국과 일본, 영국 다음이었다. 이는 한국이 그만큼 중국에 높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언론 또한 그에 걸맞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고 그 역할을 하고 있는가. 필자는 조사를 통해 중국 언론에서 한국 언론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특이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뉴스원으로서 한국은 중국 언론에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한국 언론에 근거해 한국 소식을 보도하는 비율은 낮았다. 그나마도 인용되는 한국 언론은 특정 신문에 국한돼 있다. 미국 소식은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LA타임스 등을 다양하게 인용하는 것과는 대비된다. 일본의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산케이신문 등과 비교해도 그렇다. 우리나라의 특정 언론사 기사가 인용되는 비율은 일본의 3대 신문사의 인용 비율과 비슷하다. 중국 언론이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을 특정 언론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중국에 수동적인 태도로 우리를 알리는 데 만족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필자는 몇 가지 생각을 제안하고 싶다. 정부는 먼저 한국 소식이 분명하고 다양하게 외국에 전달되도록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한국 주재 중국 기자들에게 정기적으로 한국에 관한 브리핑을 할 필요가 있다. 또 중국어 서비스를 확대해야 하며 중국 언론매체 홈페이지에 한국 소식을 제공해야 한다. 중국어로 한국을 알리는 전문 홈페이지도 개설해야 하며 두 나라 대학생 기자들과 성인 기자들이 교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두 나라 언론 전문가들이 이를 논의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어야 한다. 숫자는 적지만 한국인이 중국에서 발간하는 신문과 인터넷 매체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문화원과 같은 정부기구를 통해 중국 사회에서 여론을 주도하는 계층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도 해야 한다. 중국내 한국인 집단 거주지역이나 유학생들이 있는 대학에 한국의 소식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대책도 절실하다. 이민태 중국 인민대학당·대중국연구중심 연구원
  • [학교소식]

    ●민사고 7일까지 입학원서 접수 민족사관고등학교(교장 이돈희)는 오는 7일까지 입학 원서를 접수한다. 지원자는 5일까지 민사고 홈페이지(www.minjok.hs.kr)에서 원서를 받아 작성한 뒤 기타 서류를 갖춰 7일 오후 5시까지 본교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접수하거나 혹은 입학관리실에 우편으로 보내면 된다. 모집정원은 일반계열과 국제계열 각각 60∼90명으로 두 계열을 모두 합해 150명을 넘지 않는다. 전형은 서류전형과 영재판별검사, 심층면접으로 이뤄진다. 주소는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소사리 1334번지 225-823 입학관리실. ●고양외고 10일·새달8일 입학설명회 고양외고(교장 강성화)는 10일과 다음달 8일 오후 3시 학교 강당에서 입학설명회를 갖는다. 이날 학교장이 나와 오전 7시에 등교한 뒤 수업을 마치고 담임선생님과 함께 자율학습을 한 뒤 11시에 하교하는 ‘세븐일레븐’ 교육 등 학교 교육의 특성을 소개한다. 김대진 교무부장이 글로벌리더 전형과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 전공어 우수자 전형, 복수외국어 구사자 전형 등 다양한 입학전형을 설명한다.2002년에 개교한 이 학교는 올해 첫 졸업생을 배출,90여명이 명문대에 진학했다. ●군포 흥진초교 전학년 대상 바둑 수업 정규수업시간에 바둑을 가르치는 학교가 처음 생겼다. 경기도 군포시 흥진초등학교(교장 우근섭)는 6일부터 전 학년 1350명을 대상으로 한 달에 2시간씩 바둑을 가르친다. 이 학교는 지난해 9월 바둑 교과 특성화학교로 지정, 영재반을 운영해 왔는데 올해부터 바둑에 재능있는 학생을 조기 발굴하고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전교생으로 확대한다. 학생 가운데 재능있는 사람은 영재반에서 배우게 된다. 대한 초등학교 바둑연맹에서 나온 전성대 강사 등 4명이 가르친다. ●첫 졸업생 전원 KAIST 등 진학 한국과학영재학교(교장 문정오)는 지난달 29일 첫 졸업생 14명을 배출했다. 입학 2년 6개월 만에 졸업한 14명은 영재교육과정을 5학기 만에 조기수료한 학생들이다. 이들은 졸업학점 170학점을 취득했고 영어능력시험을 통과했으며 국내외 각종 올림피아드, 수학 경시대회 등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들이다. 졸업자 가운데 11명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으로, 나머지는 각각 미국 컬럼비아대와 매사추세츠대(MIT), 포항공대로 진학한다. 해외 유학생의 경우 삼성에서 4년간 한 해 5만 달러의 장학금(MIT)을 받거나 대학측이 주는 장학금과 연구비 기숙사비(컬럼비아대)를 받는다. ●학부모 보람교사제 인기 김포 풍무초등학교(교장 백학춘)에서 지난 4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학부모 보람교사’ 제도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학부모 보람교사’는 다양한 경험과 자격증을 가진 학부모가 매주 매주 2∼3일 학교에 나와 힙합ㆍ풍선 아트ㆍ천연 염색ㆍ수목화 등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학부모 보람교사는 모두 37명이다. 이들은 270만원을 들여 컴퓨터 등을 설치해 만든 학부모상주지도실에서 평소 수업준비와 공부를 한다. 학부모 보람교사 수업시간엔 담임선생님은 보조교사가 돼 도움을 준다. 학생들은 학부모가 선생님이 돼서 가르쳐 주는 게 자랑스럽고 다양한 교육을 받아서 즐겁다는 반응이다. ●어린이보호구역 정비 경기도 용인시는 다음달 용인, 용마, 토월, 정평, 대치 등 5개 초등학교 주변 지역에서 어린이보호구역을 정비한다. 용인시는 이들 초등학교 주변에 교통량이 많고 학생들이 길을 멋대로 건너고 있어 6억여원을 들여 정비키로 했다. 이 구역 안에 도로 컬러 미끄럼 방지시설을 갖추고 안전 가드레일을 설치한다. 또 어린이보호구역 표지판을 만들고 안전지대에 페인트칠을 하기로 했다. 내년에는 30억∼40여억원을 들여 20개교에서 어린이보호구역을 정비할 계획이다.
  • [일본을 다시본다] (20) 특별취재팀 방담

    [일본을 다시본다] (20) 특별취재팀 방담

    ‘한·일수교 40주년’을 맞아 서울신문이 기획한 ‘일본을 다시 본다.’ 시리즈의 마감을 앞두고 도쿄를 비롯, 교토와 나고야, 오사카 등 일본 현지 곳곳을 누볐던 특별취재팀이 지면에 미처 담지 못했던 얘기들을 방담을 통해 정리했다. ●도쿄의 부동산 열풍 -일본 최대의 번화가 긴자(銀座) 거리를 가보니 엷은 회색 포장으로 바꾸었더군요. 도쿄역 앞을 비롯한 도심의 재개발도 한창이었습니다. 도쿄만을 놓고 본다면 활력이 넘치는 것 같았습니다. 반면 그 때문에 부동산 열풍도 심각하다고 합니다. 도쿄와 도쿄 인근 부동산 값이 너무 치솟아 ‘억션’이라는 말이 유행한다더군요.‘맨션(일본의 저층 고급 아파트)’이 웬만해서는 모두 몇억엔을 호가한다고 해서 일본사람들은 맨션 대신 ‘억션’이라고 부른답니다. 하지만 도쿄 인근을 제외한 그 밖의 지방은 부동산 경기가 죽어 있어 양극화 경향이 심각하다더군요.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밝았지만 일본에서 가장 활기 있는 곳은 역시 나고야인 것 같았습니다. 오사카 만국박람회의 영광을 되살리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유치한 아이치 만국박람회 덕분이지요. 나고야역에서도 심심찮게 외국인을 볼 수 있었고, 나고야 번화가 어느 상점에나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들이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나고야역 근처 한 전자제품매장에서는 영어가 통하지 않자 점원이 급히 인터넷 번역사이트에서 일본어를 영어로 번역, 프린터로 인쇄해 주더군요. 단순 친절을 넘어 외국인을 고려한 철저한 서비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에 취재하면서 일본 사회 전체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것도 여러차례 실감했습니다. 과거에는 일본의 정치인이나 회사, 단체 등에 인터뷰나 면담신청을 하면 통상 1∼2개월 가량 걸렸는데 이번에는 전혀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단체들도 홍보 필요성이 있는 곳은 하루 만에 일정이 잡히곤 했습니다. 이를 두고 일본 대학의 한 한국인 교수는 “치밀한 일본인들이 속도감까지 갖기 시작했다. 일본 기업이나 사회가 스피드마저 갖추게 되면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속도가 빨라져도 그 무서운 준비력은 여전했습니다. 취재원들 모두 뒷받침할 통계나 증빙자료가 없으면 아예 말도 꺼내지 않더군요. -일본 기업인이나 정치인들은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먼저 헤어질 시간을 미리 고지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 같으면 일단 인터뷰를 하다가 시간이 길어지면 “그만 일어나야겠다.”고 할 텐데, 일본은 미리 양해를 구해놓는 차이가 있더군요. 최대한 신중하고 정확하게 말하는 태도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들은 가급적 단정적이고 명확한 대답을 요구하는 기자의 욕심을 좀처럼 충족시켜주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물어봐도 저렇게 물어봐도 신중함의 경계선은 무너지지 않았으니까요. ●감시의 나라, 일본 -일본은 ‘감시의 나라’라는 말도 실감했습니다. 렌고(連合·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를 취재한 뒤 도쿄전력을 찾아갔는데, 노사관계와 관련해 다소 민감한 질문을 던졌더니 “렌고에서 이미 취재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더군요.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감시하는 체제가 강력히 구축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도쿄전력에서 회사측과 노조측 관계자를 교대로 만났는데, 먼저 취재에 응한 회사 관계자가 나중에 면담한 노조 관계자에게 저와 나눈 대화, 질문 내용 등을 알려주는 모습을 보면서 상당히 놀랐습니다. -일본은 지금 패전 60주년이자 러·일전쟁 100주년, 자민당 결성 및 ‘55년 체제’ 50주년을 맞아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의지로 가득 찬 상황입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을 바꾸겠다는 상징으로 의회까지 해산하며 우정개혁을 밀어붙이는 최대 강수를 두고 있습니다. 일본에선 고이즈미 총리의 개혁을 미국식 경제주의와 일본식 경제주의간의 힘겨루기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았습니다. 지식인층과 기득권층은 주로 미국식 경제주의를 도입해야 일본이 살아날수 있다는 논리를 폈고, 렌고 등 노동계와 일부 학계에서는 강한 거부감을 보였거든요. 이들은 고이즈미의 개혁을 ‘약육강식’의 논리로 단정하고, 강행할 경우 결국 피해는 약자에게만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그 때문에 현 정권이 교체돼야 한다는 말까지 스스럼없이 하더군요. ●지도층 “패러다임 바꾸자” -제가 만난 일본인들은 한결같이 “지금의 일본은 안된다.”고 말했는데, 일본인 특유의 엄살을 감안해도 시대의 변환기에서 적어도 리더그룹들은 일본을 형성해온 ‘패러다임을 바꾸고 변화를 늦춰서는 안될 절박한 시점에 와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전보다 다른 나라를 더 의식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일본기자들로부터 ‘취재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일본우정공사를 취재한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도쿄신문 기자가 우정공사 취재 배경 등에 대해 알고 싶다며 인터뷰 요청을 해와 당황했었습니다. 이런 얘기를 현지에 있는 지인들에게 했더니 “일본은 그동안 주변 국가들에 관심이 없었지만, 최근 개혁의 파고속에 주변국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귀띔하더군요. -기업의 육아지원책에 대해 취재하기 위해 NEC를 찾았을 때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간단히 NEC의 출산 및 육아지원제도를 소개하고선 오히려 저에게 한국은 어떤지 묻더군요. 출산휴가는 며칠이나 되고 그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어떤지 꼬치꼬치 묻는 통에 좀 당황했습니다. 양육지원에서 일본이 한국보다 한단계 앞서 있다고 하자 얼굴에 안도감과 자부심이 비치더군요. 다른 나라와 비교해 일본의 수준을 가늠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21세기 초 동북아 정세에 관해 들은 재밌는 얘기였습니다. 지난 3월 말 외무성 북한반장직을 박차고 퇴직한 서른 다섯살의 어느 지식인은 동북아의 위기상황에 대해 “북핵문제는 표면으로 드러난 문제일 뿐 사실 속을 들여다 보면 결국 동북아의 부(富)를 둘러싸고 중국, 한국, 미국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군대를 보내는 전쟁이 아닌 ‘세련된 제국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일본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새삼 실감한 한류 열풍 -현지 취재에 나서기 전 가장 궁금한 것들 중 하나가 한류 열풍이었는데요,‘도쿄의 코리아타운’이라 불리는 신오크보에는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더군요.2001년 한국어학원을 개원한 한국인 원장을 만나봤는데, 그때 2곳에 불과하던 학원이 이듬해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조금씩 늘어나더니 한류열풍을 타고 지금은 20여곳이나 된다고 합니다. 현지에서 만난 한 여성은 팬레터를 쓰고 한국관광을 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있었는데,MP3 플레이어에 들어 있는 300곡이 모두 한국 노래일 정도로 열성적이었지요. 이 여성은 한국어를 배운 덕에 최근 한국계 기업에 취직까지 했다며 ‘일석이조’ 효과를 얻었다고 기뻐했습니다. -일본에서의 한류 열풍이 1년 안에 사그라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현지에 가보니, 그렇진 않았습니다.TV를 보니 배우 장동건이 한국 소주를 선전하는 광고가 나오더군요. 또 아이들 사이에서는 한류 스타의 이름을 끊이지 않고 말하는 일종의 말잇기 놀이가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취재 중에 만난 한 여성은 영문 명함을 건넸더니 제게 명함에 한국어로 이름을 써달라고 하더군요.‘뵨사마(탤런트 이병헌)’가 너무 멋져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한국사람이 직접 쓴 한국어 글씨를 기념으로 갖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 여성은 한국에서 욘사마(배용준)와 뵨사마 중에 누가 더 인기 있는지, 이들 말고 또 ‘뜨는’ 연예인이 누구인지 물었습니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일본 -이번 취재는 우리가 너무 일본을 피상적으로 알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계기도 됐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욘사마 신드롬’,‘독도문제’,‘교과서문제’ 등은 일본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측면이 강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일본 국내의 정치적 갈등에 우리가 끼어들어 곤욕을 치르거나, 일부는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대응해 사태를 악화시킨 측면도 있었다는 점입니다. 일본인은 겉(형식)과 속(내면)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그 본질을 다각도로 파악해야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런 측면에서 “말하기 쑥스럽지만, 일본은 형식적이면서 실용적인 이중성을 갖고 있다.”는 한 일본인 교수의 고백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본에선 지하철이나 전철의 출입구쪽에 주저앉아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는 10대들이 갈수록 늘어나 사회문제가 되고 있답니다. 전혀 주변 사람을 신경쓰지 않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쳐다보지도 않는 어른들을 보고 놀랐습니다. -일본인 특유의 고집이 대단하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기자가 물어보지 않은 내용인데도, 자기가 할 말은 꼭 하려들어 당혹스러울 정도였습니다.NEC의 아라이 도시노리 홍보부장은 일본 제조업의 부활을 묻는 첫 질문에 “대답에 앞서 우선 우리 회사 소개부터 하겠다.”면서 캐털로그를 펼쳐놓고 한바탕 ‘강의’를 했습니다. ●5층 빌딩 짓는데 4년 -‘일본의 경주’로 알려진 문화유적의 도시 교토에서는 일본 문화재정책의 단면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교토대에 입학, 현재 석사 과정에 있는 유학생에게서 들은 얘기입니다. 교토대는 그 학생이 신입생으로 입학한 5년 전 총장실 신축 공사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공사가 한창이던 어느날 현장에서 유물이 발견되면서 무려 2년여 동안 공사가 중단됐고 유물 발굴이 다 끝난 뒤에야 건축 공사를 재개했다고 합니다.1학년 때 시작한 공사가 4학년 때 끝났으니 5층건물 하나 짓는데 4년이 걸린 셈입니다. wisepen@seoul.co.kr ●특별취재팀 한종태 국제부장(팀장), 황성기 사회부장, 이춘규 도쿄특파원, 주병철(경제부)·손원천 이언탁(사진부)차장, 안미현(산업부)·김상연 황장석(정치부)·유지혜(사회부)·정연호(사진부)기자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화(2)-동생 김호연 빙그레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화(2)-동생 김호연 빙그레회장家

    ‘한번 들어서면 뒤를 볼 수도, 뒤로 돌아갈 수도 없다.’는 김호연(50) 회장의 경영 ‘일방 통행론’이 진행된지 횟수로 13년째.1992년 ‘미운오리 새끼’였던 빙그레는 2005년 확실한 ‘백조’가 됐다. 당시 부채 비율 4000%대는 50%대로,230억원대의 시가 총액은 무려 20배 가까이 늘어난 4300억원대로 껑충 뛰었다.10년간 누적적자 100억원은 놀랍게도 2004년에 순이익 350억원으로 바뀌었다. 이같은 변신은 빙그레와 김 회장이 처했던 극한의 조건들이 이뤄낸 절묘한 조화 덕분이다. 그룹 신규 투자에서 항상 ‘찬밥 신세’였던 빙그레는 김 회장이 취임한 이후부터 한화와의 단절을 통해 자력 갱생의 계기를 만들었고, 한때 경영능력에 대한 오해를 뒤집어쓴 김 회장은 처절한 구조조정으로 수익성과 성장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았다. 특히 빙그레의 뛰어난 경영 성적표는 일방적으로 제기됐던 김 회장의 ‘자질 오해’를 깨끗이 불식시켰다. 내성적이며 말수가 적은 ‘충청도 양반’ 스타일인 김 회장에게 10년 이상의 기나긴 구조조정을 성공케 한 원동력은 뭘까. 불명예를 안고 무너지기엔 너무나 억울해서였을까. 아니면 성공해서 반드시 보여줘야만 했던 오기였을까. ●형제 분가 김승연-호연 형제의 분가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이 있었다.92년 빙그레가 한화그룹에서 분리될 당시 시작된 형제간의 재산권 분할과 관련된 소송은 여론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사건의 발단은 당시 한양유통(현 한화유통)의 사장인 김호연 회장을 ‘경영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불명예 퇴진시킨 것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김 회장으로서는 공격적으로 유통업을 확장시키려는 순간에 경영 감사에서 이런 사실을 통보받자 너무나 어이없어했다고 한다. 한양유통은 인수 시절부터 재무구조가 좋지 않은 데다 증자가 없어 한층 악화됐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경영 능력이 부족하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회사에서 저를 밀어낸 것은 사실상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김 회장은 이 사건 이후 6개월 가량 두문불출했다.‘경영능력이 부족하다.’는 낙인 때문에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어서였다. 이 때문에 그는 2004년 4월에 수상한 ‘한국의 경영자상’에 유독 애착이 간다고 했다. 김 회장은 일련의 사태 이후 재산권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부당함에 대한 저항이자, 약자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지루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3년 6개월의 법정 공방을 거치면서 김 회장은 모친인 강태영(78) 여사를 비롯한 가족과 지인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마침 강 여사의 칠순을 맞아 대학 은사인 박홍 전 서강대 총장이 형제간 화해를 권유하자 김 회장은 이를 받아들여 소송을 취하했다. 강 여사는 당시 “칠순 잔치보다 가족들의 화합이 더 중요하며, 형제들의 잔치 비용을 무의탁 노인들을 위해 사용해달라.”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김 회장은 “당시 좀 서먹해진 것도 있지만 과거 형님과의 갈등은 해소됐다.”면서 “집안 행사가 있을 때마다 형제간 모임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의 10년 구조조정 92년 빙그레가 한화그룹에서 분리될 때 빙그레의 부채 비율은 4183%,10년간 누적적자가 100억원이나 되는 자본잠식 상태였다. 당시 기업 평균 부채비율이 420%대였던 점과 비교하면 무려 10배나 높은 수치였다. 한때 한화그룹의 ‘캐시카우’로서 그룹의 투자 자금을 조달했던 옛 위용은 사라지고, 그야말로 껍데기만 남았다.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수익성이다. 시장 점유율 1위는 의미가 없다. 수익성을 개선시킬 여지가 없는 사업은 과감히 잘라야 한다.”는 김 회장의 경영판단 아래 강도높은 사업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김 회장은 우선 가지치기를 시작했다.‘썬메리’ 베이커리 사업을 삼립식품에 매각했으며, 냉동식품과 초코케이크 등 비주력 사업은 시장 철수를 단행했다. 특히 초코케이크 사업 철수로 인해 유휴 상태였던 생산라인을 가동시키기 위해 아이스크림 경쟁사인 롯데제과의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도 받는 ‘적과의 동침’도 서슴지 않았다. 빙그레 구조조정의 핵심은 주력 사업인 라면과 스낵사업 부문이었다.80년대 중반 겨울철 비수기 주력 사업으로 시작한 라면과 스낵사업은 매년 30억∼40억원씩의 적자를 기록하는 빙그레의 ‘두통거리’였다. 김 회장은 2003년 3월 라면사업 철수와 스낵사업의 국내 영업권 위탁이라는 고강도 처방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매수자를 찾을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김 회장의 이같은 구조조정과 현금 흐름의 개선 노력은 92년 부채비율 4183%에서 외환위기 당시인 98년 360%,2004년에는 53.7%로 줄어든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학구파에서 몽골 인연까지 김 회장은 재계의 학구파로 유명하다. 경기고와 서강대 무역학과를 나온 김 회장은 일본 히도쓰바시(一橋)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외교안보 석사 학위도 땄다. 또 지금은 서강대에서 경영학과 박사 학위를 밟고 있다. 그의 독서량은 경영인들 중에서도 다독으로 손꼽힌다. 하루에 한 권 이상을 읽는 편이니 그야말로 ‘독서광’이다. 또 빙그레의 구조조정이 만들어준 김 회장과 몽골의 인연은 각별하다. 서울 압구정동 사옥을 매각하고 남양주시 도농동으로 본사를 옮긴 빙그레는 남양주가 몽골 수도인 울란바토르와 자매결연을 맺은 덕분에 자연스럽게 몽골 정부 관계자와 정치인 등의 잦은 방문이 이어졌다. 이를 계기로 김 회장은 김구재단을 통해 몽골 유학생들을 지원했고, 몽골 정부는 2001년 김 회장을 명예영사로 임명했다. 김 회장은 또 ‘몽골 사랑의 집짓기 운동’을 후원했으며, 특히 최근에는 차남 동만의 아이디어로 몽골 수흐바토르 테뮤렐 종합학교에 어학실습실 설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여기에 김 회장은 바가반디 몽골 전 대통령의 딸인 바야르마씨와 서강대 동문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2005년 3월 한국과 몽골의 우호 협력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몽골 최고 훈장인 ‘북극성 훈장’을 받았다. 북극성 훈장은 몽골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이 큰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러브 레터로 결혼하다.’ 김 회장과 김미(48)씨는 떠들썩한(?) 연애 결혼으로 유명하다.‘끼리 문화’가 지배적인 재벌가에선 이례적이다. 보통 정략 결혼의 냄새를 지우기 위해 더러 연애 결혼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이 커플은 정말 뜨거운 사이였다. 한화 김종희가(家)의 2세 가운데 유일한 연애 결혼 케이스다. 김 회장과 김미씨의 인연은 대학 시절로 거슬러간다. 서강대를 다니던 김 회장과 이화여대를 다니던 김미씨는 명문가의 자제로서 서로 얼굴은 알고 있었던 사이. 호감을 갖고 데이트를 즐기다가 김 회장의 공군장교 입소 훈련으로 한층 각별해진 사이로 발전했다. 김미씨의 ‘러브 레터’로 김 회장은 당시 연애편지를 가장 많이 받는 훈련생으로 부대 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 편지와 함께 김미씨가 곱게 접어 보낸 종이학은 김 회장의 군 생활 내내 함께 했다고 한다. 이들은 5년 넘게 연애를 했다. 김 회장의 군 생활이 길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형인 김승연(53) 회장의 ‘싱글’도 이들 연애를 길게 했다. 김 회장의 얘기다.“훈련소에서 저의 연애 스토리는 꽤 유명했습니다. 아내에게 답장을 쓰는 것도 중요한 하루 일과였죠. 지금도 우리가 주고받은 편지나 종이학들은 아내가 추억으로 잘 보관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엔 형님 결혼이 어서 이뤄지기를 기다린 적이 많았습니다.” 김승연 회장이 백두진 전 국회의장의 부인인 허숙자 여사의 중매로 1982년 10월 서영민(44)씨와 결혼식을 올리자, 김 회장도 그 다음해 2월 김미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김 회장과 김미씨는 장남 동환(22)-장녀 정화(21)-차남 동만(18) 등 2남1녀를 뒀다. 모두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처가는 독립운동가(家) 산실 김 회장의 처가는 국내 독립운동가(家)를 대표할 만한 명문가다. 김미 여사의 조부가 민족 지도자인 백범 김구 선생이며, 큰어머니가 안중근 의사의 조카인 고 안미생 여사다. 김 여사의 부친은 교통부 장관과 타이완 대사, 공군 참모총장, 국회의원 등을 지낸 김신(83)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협회 회장이다. 김신 회장은 임윤연(작고) 여사 사이에 김진­김양-김휘-김미 등 3남1녀를 뒀다. 김진(56)씨는 동서통상과 글로볼씨스텍 대표이사를 거쳐 DJ정권 시절인 98년 대한주택공사 감사를 역임했다. 또 참여정부 들어서는 대한주택공사 사장에 임명되기도 했다. 미국 남가주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으며, 행정학 석사 학위를 땄다. 차남 김양(52)씨는 최근 주중국 상하이 총영사에 임명됐다. 이로써 그의 집안은 4대째 상하이와 인연을 맺게 됐다. 김구 선생은 1919년 독립운동을 위해 상하이로 건너갔으며, 이듬해는 선생의 모친인 고 곽낙원 여사와 부인인 최준례 여사가 상하이로 갔다. 김 총영사의 부친 김신 백범 기념사업협회 회장 역시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김 총영사는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하고, 외국계 회사 근무와 기업체 운영 등으로 경제 경험이 풍부한 데다 상하이가 갖는 독립운동의 상징성을 감안해 발탁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젖소 사료를 제조·판매하는 코스닥 등록기업인 EBT 네트웍스의 대표이사로 활동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했다. 시티뱅크 서울지점 부장과 컴퓨터 코리아 부사장 등을 거쳤다. 3남 김휘(50)씨는 광고인으로 나라기획 이사와 멕켄 에릭슨 상무를 거쳐 지금은 광고대행사 ㈜에이블리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한국관광공사 비상임 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연세대 경영학과와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학원을 나왔다. 김 회장은 김구 선생의 손녀사위라는 인연으로 독립운동가 추모사업에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 회장은 백범기념관 건립위원회 이사로 활동하며 서울 효창동에 위치한 백범기념관 건립에 큰 역할을 했으며, 현재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협회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백범 사상의 학술연구과 관련 출판물 발간도 지원하고 있다. 김 회장은 또 후손 없이 서거한 이봉창 의사의 기념사업회도 후원하고 있다. 그는 이봉창 의사의 업적을 알리고,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10월9일 ‘광복 60주년 기념 이봉창의사 마라톤 대회’를 연다. 이밖에 김 회장은 사재를 출연해 설립한 김구재단을 통해 매년 150여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천재보다 따뜻한 사람으로 커라.”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다 같지 않겠습니까. 좋은 것을 주고 싶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고…. 하지만 저는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줘야 할 가장 큰 자산은 균형 잡힌 가치관이라고 생각합니다. 똑똑한 천재로 키우기보다 평범하지만 주위를 둘러볼 줄 아는 따뜻한 사람으로 키워야 하지 않을까요.”(김호연 회장) 김 회장과 김 여사는 자식들에게 유난히 사회봉사 활동을 강조한다.‘우리’라는 단어의 참 의미를 깨우쳐주기 위해서다. 독립운동가(家)의 후손다운 자녀 교육법이다. 큰 아들 동환군이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을 보낼 때다. 김 여사가 아들 손을 잡고 찾은 곳은 서울 방배동에 위치한 한 맹인교회. 설거지나 청소 등 맹인들이 하기 어려운 일들을 도우며 ‘더불어 사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를 아들에게 가르쳤다. 모자(母子)는 동환군이 중3이 될 때까지 6년간 매년 여름을 맹인교회에서 봉사하며 지냈다. 또 외환위기가 한창인 98년에는 성공회 ‘푸드뱅크’ 주관의 노숙자 돕기 자원봉사에 김 여사와 3남매가 함께 참가해 서울역 광장에서 석달간 식사 배식과 설거지 등을 하기도 했다. 김 회장도 해비탯(사랑의 집짓기) 운동에 자녀들을 참여시켜 함께 집을 짓기도 했다. golders@seoul.co.kr ■ 김구선생 손녀 김미 여사 “평범한 가정주부입니다. 사치 안 하고, 겸손하고, 얘들 교육에 관심 많고요. 또 독립운동가 후손답게 사회봉사 활동에 적극 나서는데, 일은 조용히 하려고 해요.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굉장히 쑥스러워하고 꺼려합니다.” 김호연 회장이 보는 부인 김미 여사의 평이다. 김 여사도 국내 여느 재벌가의 며느리처럼 공식적인 바깥 활동을 거의 안한다. 김 여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봉사 활동도 ‘왼손이 하는 일, 오른 손도 모르게’ 하는 식이다. 그만큼 조심스럽게 대외 활동을 한다.6년간 맹인교회의 도우미로서 활동했고, 여전히 어린이 교육사업에 앞장서고 있지만 남들 눈에 띄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김 여사의 이런 배경에는 국내 대표적인 독립운동가(家)로서 사회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과 조부 백범 김구 선생의 명예에 혹시나 흠집이 생기지 않도록 몸가짐을 조신하게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또 김 회장과 자녀들이 사회봉사 활동에 적극 나서는 것도 김 여사의 영향이 크다. 특히 김 여사의 봉사 활동은 살아있는 자녀 교육이 됐다. 김 여사는 자녀들에게 명문가의 사회적 책임을 가르치며, 균형 잡힌 가치관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 여사를 오랫동안 지켜본 한 지인의 설명이다.“김 여사의 모친인 임윤연 여사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김 여사는 중2 때부터 집안 살림을 챙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상 어린 시절부터 주부 역할을 해오신 거죠. 그래서 그런지 차분하고, 조용할 뿐 아니라 일처리도 깔끔합니다.” 김 여사는 현재 국내·외 아동의 건강과 교육을 비롯해 결손·빈곤 가정 어린이 지원사업 등을 펼치는 국제 어린이 보호재단인 ‘세이브 더 칠드런’(Save The Children)의 이사를 역임하고 있다. 한편 백범 김구 선생은 서울신문 전신인 대한매일신보의 지사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1905년 11월부터 1907년 2월까지 황해도 장연에서 대한매일신보 지사장으로 민족신문 보급에 애썼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은행 ‘유학생마케팅’ 붐

    은행 ‘유학생마케팅’ 붐

    ‘유학경비’가 가파르게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2002년 이후에는 우리 국민이 해외에서 유학이나 연수를 위해 쓴 비용이 해마다 30% 넘게 꾸준히 늘고 있을 정도다. 이런 추세에 편승, 시중은행들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유학생시장’을 잡기 위해 유학전담센터를 앞다퉈 늘리고, 유학원과 제휴를 맺는 등 ‘유학생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유학이나 연수로 쓴 돈은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1997년 11억 6000만달러에서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는 8억 3000만달러로 일시적으로 크게 줄었지만 이후 줄곧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02년에는 14억 3000만달러를 기록해 전년대비 33%의 증가율을 보인 뒤 2003년 30%, 지난해 34.1% 등 최근 3년사이 매년 30% 이상의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도 상반기(1∼6월)까지 15억 3000만달러를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10억 9000만달러)보다 무려 40.3%나 유학경비가 늘어났다. 통상 미국은 학기가 9월에 시작되고, 대학생들의 어학연수가 여름방학에 집중된다는 점에서 하반기에는 유학·연수비용이 훨씬 더 늘어날 전망이다. ●실제 유학경비 곧 10조원 넘을 듯 지난해 유학이나 연수로 우리 국민이 쓴 돈은 24억 9000만달러다. 같은 기간 우리가 철강제품을 수출해 벌어들인 돈(21억 4000만달러)보다도 많다. 한국은행이 최근 공식적인 유학경비외에 동반가족의 생활비까지를 포함해 실제로 유학·연수에 쓴 비용을 추정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 유학경비는 무려 71억달러나 된다. 지난해 원·달러 환율로 따져보면 7조원이 훌쩍 넘는 돈이다. 유학생 수와 학비, 생활비 등을 토대로 파악한 것으로, 단기연수생 등은 유학생수에서 빼고 계산한 점을 감안하면 실제 비용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분석된다. 때문에 곧 실제 유학경비가 연 10조원을 돌파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경제규모가 커지면 해외유학비용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면서 “다만, 현 시점에서 올해 실제 유학비용이 얼마나 될지는 예측해보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유학생을 잡아라’ 이런 분위기에 맞춰 시중은행들은 최근 유학생들을 겨냥하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미래의 우량고객이 될 가능성이 있는 유학생들을 미리 확실하게 잡아두자는 목적이 깔려있다.”고 설명했다. 신한은행은 지난 23일 주한 캐나다 교육원이 추천하는 10개 캐나다 전문 유학원과 다자간 전략적 업무제휴를 맺었다. 지난 2000년 처음으로 2개의 유학이주센터를 설립한 이후 현재 29개의 전문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신한은행은 이번 업무제휴를 통해 캐나다 유학을 준비중인 학생들을 집중 공략한다는 방침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앞으로 종로와 강남역 등 유학원이 많이 밀집된 지역에 전문 센터를 더 많이 설치하고, 유학생과 유학원을 연계하는 사이버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등 다양한 서비스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은행은 지난 7월에만 수도권과 부산에 무려 10개의 유학이주센터를 증설했다. 유학센터에서는 해외송금 자동이체 및 송금 수수료 50% 할인, 환전 수수료 면제 혜택 등을 주고 있다. 우리은행은 특히 미국 현지법인인 13개의 우리아메리카은행과 제휴해 출국 전에 현지 계좌를 개설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국민은행도 지난달 서울 관철동에 ‘KB 외환 플라자’ 강북점을 연 데 이어 다음 달에는 강남점도 개설할 계획이다. 외환플라자는 해외 은행과의 제휴를 통해 출국 전 현지 은행 계좌 및 카드 발급, 국내 여유자금 운영, 해외 송금 및 국내 자금 이체 등의 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 외환은행은 전국 11개 지역에 있는 유학전담센터를 올해 안에 20개로 늘릴 계획이고, 조흥은행도 본점에만 있는 유학센터를 28개로 늘릴 작정이다. 하나은행은 유학·이주 전문지점인 ‘월드센터’ 10개 외에 전국 14개 프라이빗 뱅킹(PB)센터에서도 유학생 관련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전략이다. 김성수 이창구기자sskim@seoul.co.kr
  • “한국서 ‘중국통’ 제대로 키워볼 터”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중국 특화 대학은 한중대학교가 처음입니다.” 중국전문가 양성을 목표로 하는 ‘중국 전문 종합대학’이 올해 첫 입학생을 뽑는다. 강원도 동해시에 위치한 한중대학교. 이 대학의 이순영 총장은 23일 수시전형 등을 통해 1000명의 내년도 입학생을 선발, 중국 전문 종합대학으로서 첫 발을 내딛는다고 밝혔다. “중국 현지에 가지 않더라도 중국 명문대학에서 수학하는 효과를 가질 수 있도록 베이징대, 칭화대 등 중국 일류대학 교수들이 한중대학에 와서 원어로 강의하게 됩니다.” 또 중국 명문대 학생들을 초청, 한중대에 머물면서 한중대 학생들과 자연스레 교류케 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장기적으론 우리 학생들과 중국에서 한중대학으로 유학온 중국인 유학생이 같은 수가 될 수 있도록 조정해나갈 계획이지요. 젊어서부터 중국학생들과 친분과 교류를 이어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중국어 능력시험(HSK) 7급 이상, 중국 대학 수학 1년, 국내외 기업인턴 등의 과정을 마쳐야 졸업할 수 있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중국으로 특화된 대학이지만 법·행정학과와 디지털, 자동차, 건축·토목학과 등 이공계 학과도 있습니다. 이공계를 포함한 각 분야의 학과들이 전공을 배우면서 중국어와 중국 관련분야의 상황을 더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문가 풀’도 만들었다. 노용악 전 LG전자 부회장, 법무법인 화우의 나승복 변호사, 이영주 대우경제연구소 고문 등이다. 국제교류원은 서울 을지로5가에 있는 한중대학 서울분원 건물에서 내년 하반기부터 강의를 시작한다. 어학과정, 국내외 전문가들의 특강과 기업실무 과정, 전문가 프로그램 등 각종 과정도 개설된다. “한중대학을 중국 관련 인재 양성은 물론 중국과 동북아를 연구하는 메카로 육성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 총장은 지난 4월 10대1의 경쟁을 통해 영입된 ‘공모’ 총장. 새로운 학교 발전방향을 제시하고 총장으로 선임된 뒤 기존 명칭인 동해대학에서 한중대학으로 이름을 바꾸고 학교 틀을 확 바꿨다. “교수, 학생, 직원 노조 등 대학구성원들의 동의를 거쳐 중국 전문대학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습니다.” 국내에서 충분히 중국을 가르치고 중국의 각종 상황에 대비한다면 그동안 적지 않은 분들이 겪은 ‘묻지마 투자’와 ‘무작정 유학’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교직원, 학생들이 공감하며 큰 힘을 보태주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보스턴대학에서 법·사회정책학을 전공한 ‘미국 박사’. 미국에서 10여년 머무는 동안 세계가 중국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중국 특화대학의 추진 배경인 셈이다. 이 총장은 중국 관련 인재 양성이란 목표와 함께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문화인 배출을 학교의 목표로 제시했다.“인간성 없는 기술은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대학교육이 빠른 지식정보형 사회에 맞도록 변화해야 합니다. 자신뿐아니라 주위를 둘러보고 봉사할 줄 아는 인격을 갖춘 인재로 키워나가자는 것이지요.” 한중대학의 구호 중 하나인 ‘4품제를 통한 전인교육’도 그같은 생각과 맥락을 같이한다. 철학·문화인식·공동체·평화봉사란 4가지 축을 중심으로 학생들을 길러나가겠다는 것이다. 이 총장은 서울시 교육위원회 부의장과 의장대행을 역임한 교육전문가이기도 하다. 국회 소관 연구재단인 한세정책연구원의 원장을 96년부터 맡아오고 있고, 중앙선관위의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위원도 맡고 있다. 이 총장은 오는 9월중에 ‘한중대학교 비전 선포식’을 갖고 후원회 조직 등 중국 전문인재 양성을 위한 대장정에 들어간다.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월급 0원’ 대학 CEO 손병두 서강대총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월급 0원’ 대학 CEO 손병두 서강대총장

    월급 0원, 비신부 출신 첫 총장 등으로 신선한 화제를 모은 손병두(65) 서강대 신임 총장. 최근 취임 한달을 맞아 ‘손병두호’ 새 진용을 짜고 ‘대학 CEO’로서의 본격 출발을 했다. 주변에서는 격려의 행진곡을 불러주는 등 많은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어 또 한번 관심을 모은다. 지난 12일 오전 강원도 설악산 기슭의 한 호텔. 흔치 않은 하계수련회가 열렸다. 다름 아닌 손 신임 총장과 교직원간의 허심탄회한 만남의 자리. 손 총장은 동행한 130여 교직원들을 상대로 지나온 인생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어릴 적 여동생을 조산한 뒤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안타까운 모습, 그래서 의사가 되려고 가톨릭의대 시험에 합격했으나 가난 때문에 등록금을 내지 못했던 일, 이미 숨이 멎었던 아버지가 막내인 자신을 보자 잠시 눈을 떴던 일, 고학으로 눈물의 빵을 먹으며 고교와 대학을 다닌 일 등등… 이날 교직원들은 처음에는 딱딱한 강의를 예상했으나 손 총장의 인간드라마가 계속되자 고개를 끄덕이며 적지 않게 감명을 받는 모습이었다. 손 총장은 강의 직후 보직교수들과 등산도 했고, 여러 차례의 분임토의 등을 거치며 학교의 발전 방향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으는 열정을 과시했다. ●명함엔 귀하를 “서강대후원회원으로…” 잠시 짬을 내 손 총장과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명함을 내민다.‘요한 돈보스코’라는 세례명이 적혀 있고 ‘귀하를 서강대 후원회원으로 모시고 싶다.’는 글귀가 여느 명함 같지 않았다. 순간 손 총장이 “아마, 그런 명함 못봤을 거요.” 하면서 껄껄 웃는다. 40여년 동안 경제계에 몸담았었는데 대학총장으로서의 한 달이 어떠했는지 궁금했다. 먼저 “부총장 둘과 단과대학장 일곱, 그리고 각 처장 등 스태프 인선을 이제야 마무리했다. 첫 단추를 잘 끼우려고 무척 신중을 기했다.”면서 이제는 본격적인 세일즈에 나서는 일만 남았다고 강조했다. ●부총장등 인선 마무리… 시스템 통한 조직문화 개선이 경영핵심 “회사나 대학 조직이나 시스템을 통해 문화를 어떻게 바꾸느냐가 (경영의)핵심”이라면서 “기업은 수직적인 반면 대학은 교수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연결된 수평조직”이라는 비유를 들기도 했다. 그러나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꾸준한 대화를 통해 ‘서강 인더월드(In The World)’로 거듭나기 위한 공감대가 많이 형성돼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 하계수련회도 그런 차원에서 성공적이라고 자평했다. 비신부이자 경제계 출신이 서강대 총장에 임명된 것을 놓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시선도 있지 않느냐고 하자 “미국의 조지타운대학 총장이 평신도 출신으로 성공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면서 자신 역시 그런 총장이고 싶다는 강한 의욕을 보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희생과 봉사정신으로 교직원이나 학생들을 섬기는 자세로 기도해 나간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다. 손 총장 취임 후 서강대 안팎에서는 모처럼 감동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경남 진해에 사는 한 주부는 얼마 전 60만원을 서강대로 보내 왔다. 서강대와 아무 관계가 없다는 주부는 ‘손 총장이 임기 동안 봉사하며 무보수로 일하겠다.’는 인터뷰 기사에 감동받았다는 것이 송금 이유였다. 지난 8일 서강대총동창회(회장 김호연)는 대학발전기금으로 20억원을 선뜻 내놓았다. ●후원 밀물… ‘1000억 세일즈´ 성공적 출발 앞서 손 총장의 취임식이 열린 지난달 18일 김명렬 연일화섬 회장이 10억원을 내놓았다.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은 지난달 13일 서강대 초빙교수로 출강하면서 받은 급여 3600만원과 개인돈 1400만원을 합쳐 인성교육원 건립기금 명목으로 학교측에 전달했다. 동문인 김상수 밸류리서치 대표도 최근 1억원을 기부했다. 서강대 여교수협의회에서 운영하는 재활용품점 ‘서강나눔터’는 이례적으로 수익금 2500만원을 모아 학교 발전기금으로 내놓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서강대 직원노동조합은 최근 총회를 열어 임금·단체 협상을 학교측에 전부 일임하기로 결의했다. 손 총장의 희생과 봉사정신 의지에 보답하고 학교발전에 조건없이 동참하자는 뜻에서 이같은 결단을 내렸다. 특히 최근 수시모집 지원율이 지난해보다 83%나 증가해 교직원들을 고무시키고 있다. 이처럼 지난 한 달은 ‘느낌표의 연속’ 그 자체였다며 미소 지었다. 손 총장은 임기 동안 1000억원 이상의 기금을 모금해 서강대를 경쟁력 있는 대학으로 만들겠다고 공약한 상태. 이와 관련,“현안 중 서강대의 국제화가 우선이다. 외국인 교수와 유학생이 머물 수 있는 기숙사가 당장 필요하며 여기에 200억원의 예산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도 가평군 현리에 5만평 규모의 인성교육원을 짓기 위해 300억원, 서강대 50주년(2010년)기념관과 국제인문관 건립을 위해 각각 300억원과 100억원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美시카고학파와 교류 모색 특히 손 총장은 전통적으로 서강대는 문(文)·사(史)·철(哲)이 강하다면서 ‘서강학파’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미국 ‘시카고학파’와의 교류방법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또 한번 시장경제의 메카로 키우겠다는 것. 원래 ‘서강학파’는 서강대 경제학과 출신 주축으로 지난 60∼70년대 개발 연대의 한국경제를 견인했다. 초기의 남덕우 이승윤 김병국 교수와 70년대의 이승윤 조성환 황일청 교수 등이 주요 멤버였다. 화제를 돌려 논란이 되고 있는 대학입시제도, 즉 ▲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등 정부의 ‘3불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정부의 원칙을 되도록 따라가는 것이 좋지만 대학에 자율권을 많이 줘야 한다.”고 전제한 뒤 기여입학은 다소 이른 감이 있으며, 본고사는 변별력이 보완돼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아울러 사립학교법 개정과 관련해서는 반대의견을 피력했다. ●주지스님 집서 자취… 등록금없어 의사길 포기 손 총장은 경남 진양에서 평범한 농가의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여동생을 조산한 후유증을 견디지 못해 일찍 세상을 떠났다. 이후 아버지는 진주시내에서 포목장사를 했다. 그러나 손 총장이 경복고에 다닐 무렵 사업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북한산 자락의 승가사 주지 스님 집에서 자취를 하며 고학으로 학교를 다녔다. 배가 고파 친구의 도시락으로 하루 끼니를 대신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의사가 되려고 가톨릭의대에 합격했으나 등록금이 없어 포기했다. 결국 담임 교사와 논의 끝에 서울대 상대에 진학했다. 대학 2학년때 세례를 받으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한가.’라는 물음과 함께 독실한 신앙심을 쌓는다. 학군단(ROTC) 2기로 27사단에서 소대장을 마친 뒤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역(공채 2기)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중앙일보 기획실과 광고국을 거쳐 삼성그룹 비서실로 옮겼다가 이른바 ‘왕자의 난’에 휘말려 직장에서 쫓겨나는 곡절을 겪기도 했다. “자식한테 등록금을 대주는 부모가 되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습니다. 아버님은 대학 2학년때 돌아가셨는데 저를 보자 감았던 눈을 잠시 뜨는 불가사의한 일이 생겼습니다. 아마 등록금을 대주지 못했던 한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할머니는 제가 약혼식하는 전날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눈을 감으셨지요.” 슬하에는 연년생 2남2녀를 두었다. 바쁜 생활 때문에 부인이 빵집을 운영하며 자식 넷을 훌륭하게 키웠다는 평을 듣는다. 장남 웅기(36)씨는 재경부 사무관, 장녀 영기(34)씨는 이화여대에서 박사과정을 끝내고 미국 로스쿨 유학 중이며, 현대건설에 다니는 차남 석기(33)씨는 다음달 9일 결혼한다. 막내 사위는 검사로 재직 중이다. 설악산에서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 1941년 경남 진양 출생 ▲ 59년 경복고 졸업 ▲ 64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 66년 학군(ROTC) 2기 중위 전역 ▲ 66년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역 공채 2기 ▲ 70년 중앙일보·동양방송 기획실 및 광고국 차장 ▲ 72∼81년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과장, 차장, 부장, 이사 ▲ 81∼82년 재무부 정책자문위원 ▲ 84년 미국 조지타운대, 조지워싱턴대, 메릴랜드대 수학 ▲ 85∼88년 생산성본부 상무이사 ▲ 86∼90년 한양대 경영학박사 ▲ 87년 동서경제연구소 소장 ▲ 93년 카네기클럽 초대회장 ▲ 97년 금융개혁위원회 위원 ▲ 97∼2003년 전경련 부회장 ▲ 97년 한국광고주협의회 상임고문 ▲ 2000년 ROTC2기 동기회장 ▲ 03∼04년 전경련 상임고문 ▲ 04년 4월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협의회 회장 ▲ 05년 7월 서강대 12대 총장 ■ 상훈 데일카네기 리더십상(98년), 동탑산업훈장(99년), 자랑스러운 가톨릭경제인상(02년) 등 ■ 저서 ‘뉴밀레니엄 생존전략’ ‘경제상식의 허와 실’ ‘중간관리자의 리더십과 노사관계’ 등
  • [儒林 속 한자이야기] (84)舍生取義(사생취의)

    儒林 (391)에는 ‘舍生取義’(버릴 사/살 생/취할 취/옳을 의)가 나오는데,‘목숨을 버리고 義를 취한다’는 뜻이다. 세상에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지만, 비록 목숨을 잃을지언정 옳은 일을 해야 함을 이르는 말이다. ‘舍’자는 ‘口’(입 구)와 관리들의 원거리 출장 때 휴대하던 일종의 信標(신표)를 가리키는 ‘余’(나 여)가 합쳐진 글자로,‘머물다’라는 뜻이나 그 장소를 가리켰다.‘베풀다’‘두다’‘버리다’‘놓다’‘쉬다’와 같은 여러 가지 뜻이 파생되어 쓰인다.用例로는 ‘校舍(교사:학교의 건물),舍監(사감:기숙사에서 기숙생들의 생활을 지도하고 감독하는 사람),精舍(정사:학문을 가르치기 위하여 마련한 집. 정신을 수양하는 곳)’ 등이 있다. ‘生’자는 원래 ‘땅을 뚫고 나온 새싹’의 모양을 나타냈으며 ‘生面不知(생면부지:서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서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生硬(생경:글의 표현이 세련되지 못하고 어설픔. 언행이 거),生疎(생소:친숙하지 못하고 낯이 섦) 등에 쓰인다. ‘取’자는 귀의 상형인 ‘耳’(이)와 오른손의 상형인 ‘又’(우)를 합쳐, 전장에서 적을 죽인 증거로 귀를 잘라 모은 데에서 ‘취하다’라는 뜻이 나왔다.用例에는 ‘攝取(섭취:좋은 요소를 받아들임),取得(취득: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짐),奪取(탈취:빼앗아 가짐)’ 등이 있다. ‘義’자는 ‘현실에 마땅하게 행동함(宜(의)), 현실에 올바르게 행동함(善(선)), 마땅함과 올바름으로 구체화된 모습(儀(의)), 마땅함과 올바름의 원리(道理(도리)), 남과 骨肉(골육)과 같은 관계를 맺음(義兄弟(의형제))’의 의미를 갖고 있다. ‘舍生取義’는 孟子(맹자) 告子(고자)편의 다음 이야기에서 나온 成語(성어)다.“생선도 내가 원하는 것이고 곰 발바닥도 원하는 것이지만 이 모두를 동시에 얻을 수 없다면 생선보다는 곰 발바닥을 취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生도 원하는 것이고 義도 원하는데 둘 다 취할 수 없다면 목숨을 버리고 의를 취해야 할 것이다(舍生而取義者也:사생이취의자야). 이는 정의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구차하게 살기보다는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의로운 길을 가겠다는 意志(의지)를 밝힌 글이다. 의로운 길을 가기 위해서는 죽음도 불사해야 할 경우도 있다.孔子(공자)가 말한 ‘殺身成仁(살신성인)’도 같은 脈絡(맥락)의 말이다. 수년 전 강원도 인제군의 모 부대에서 戰術訓練(전술훈련)을 마치고 통신장비를 철거하던 중 無電機(무전기) 안테나가 高壓線(고압선)에 걸려 感電(감전)된 병사를 구한 뒤 본인은 감전돼 病院(병원)으로 後送(후송) 途中(도중) 사망한 김칠섭 少領(소령),電鐵(전철) 線路(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醉客(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한국인 留學生(유학생) 李秀賢(이수현)씨, 어려운 家庭(가정) 形便(형편)으로 大學(대학) 進學(진학)을 抛棄(포기)하고 국립 철도고등학교를 卒業(졸업)한 뒤 25년 동안 鐵道(철도) 公務員(공무원)으로 服務(복무)하다가, 서울 영등포역에서 열차에 치일 危險(위험)에 놓인 아이를 구하고 대신 발목이 잘리는 事故(사고)를 당한 김행균씨 등이야말로 舍生取義한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김석제 경기도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박동섭 가족클리닉-행복만들기] 서로의 ‘과거’ 털어놓자는 남편

    저는 결혼한 지 2개월 정도 지났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저에게 “우리 이제는 한 몸이 되었으니, 서로 비밀은 없어야 할 것 아니냐. 과거 남자친구 이야기를 좀 하자.”고 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과거를 털어놓고 싶지 않거든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만일 털어놓았다가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이혜연(가명)- 과거는 묻지 말아야 하고, 묻더라도 대답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신혼 초에는 조심해야 합니다. 아무리 부부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부부 사이에는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어야 합니다. 예의상 정조문제에 관한 이야기는 서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상대방이 들어서 별로 유쾌하지 않은 과거사라면 특히 이를 고해성사하듯 털어놓는 것은 지각없는 행동입니다. 혼인 전 제3자와의 부정행위, 게다가 약혼 중에 다른 남자와의 정교관계도 혼인 후에는 이혼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이 판례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논리보다는 기분, 이성보다는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경우가 많아요. 판례가 그렇다고 하여 마음 놓고 과거사를 털어놓는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행동은 없을 것입니다. 시간개념을 정의하면서, 과거는 역사, 미래는 신비, 그리고 현재는 선물이라고도 하고, 이를 금전과 관련지어 과거는 부도수표, 미래는 약속어음, 그리고 현재는 현금이라고도 합니다. 과거나 미래보다는 현재가 중요합니다. 과거에 얽매여 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과거에 억울한 일을 당한 것, 자랄 때 부모에게서 편파적인 대우를 받은 것, 심지어는 우리 어머니는 너무 억울한 삶을 살았다고 지나칠 정도로 골똘하게 생각하는 사람,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은 정말 불행합니다. 불행한 과거를 바로 잊어버릴 수는 없겠지만, 현재가 더욱 중요하므로 과거는 빨리 잊어버려야 합니다. 결혼한 남편이 어머니의 불행했던 인생살이를 한스럽게 생각하면서 신혼의 아내에게 “우리 엄마는 정말 불쌍해….”라고 혼자서 울고 넋두리하다가 그것이 문제가 돼 이혼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한편 과거가 아무리 찬란하고 화려했더라도 그것은 이미 ‘역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신의 화려했던 과거에 사로잡혀서 “내가 왕년에 무엇을 하던 사람인데 나를 몰라 봐.”라며 불평하는 사람도 있는데 정말 불쌍한 사람입니다. 제가 취급한 사례 가운데 신부는 국내의 미술대학을 나와서 체코슬로바키아에 가서 미술을 공부하는 유학생이고, 신랑은 국내에서 대학을 나와서 회사에 다니고 있었어요. 신랑이 미국 출장 중에 서로 소개받아 전화로 연애를 하다 결국 결혼에 성공했습니다. 문제는 신랑이 신부에게 “혼자서 외국유학을 하는 여자, 더구나 유럽에서 그렇게 오래 유학하는 여자가 과연 정조관념이 있을까.”라는 의심을 하면서 “이제는 서로 부부가 되었으니, 숨김없이 과거를 털어놓자. 서로 사이에 비밀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과거 여자교제 이야기를 꺼내서 하고, 신부에게도 자꾸 과거 이야기를 하라고 졸랐습니다. 신부는 어쩌면 순진하게도(?) 대학에 다닐 당시 어떤 남학생과 연애를 했다고 고백하고 말았어요. 신랑은 자신이 신부에게 과거 이야기를 할 때는 상대방의 기분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가, 정작 상대방으로부터 그러한 과거 이야기를 듣는 순간 스스로 무척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장모에게도 전화를 걸어 따지듯 말하고 이를 문제삼았습니다. 그러자 장모는 사위에게 “자네도 대학 다니면서 연애하지 않았느냐. 뭐 그런 걸 문제삼나, 이 사람아.”라고 나무랐습니다. 그러나 그 신랑과 신부는 그 문제로 인해 결혼한 지 6개월도 안 되어 결국 이혼하고 말았습니다. 신혼부부 사이에는 특히 정조문제가 중요하고, 정조와 관련된 이야기는 서로가 하지 않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앞서 말한 사례에서도 약간의 남존여비 사상이 깔려 있다고나 할까요. 남자의 혼전 성관계는 거리낌없이 말하더라도 “여자가 어떻게 결혼 전에 성관계를 갖느냐.”라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남녀가 일단 결혼한 이상 서로 믿고 과거는 묻지 말아야 합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과거는 용서할 수 있어도, 못 생긴 것은 용서할 수 없다.”는 유행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도 어디까지나 농담일 뿐이고, 실제로는 대개의 남자들이 용서를 잘 못합니다. 이 점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두산그룹 (1)-박용곤 명예회장 형제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두산그룹 (1)-박용곤 명예회장 형제

    박용만(50) 두산그룹 부회장은 지난 2월 선친인 박두병 초대 회장의 가르침을 예로 들며 “두산에는 파벌이 딱 하나 있는 데 그게 두산파다. 우리 형제도 마찬가지다.”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한 적이 있다.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계기로 가진 만남이었지만 박 부회장의 ‘집안 자랑’은 가풍과 장자를 중심으로 한 단결력, 비즈니스 패밀리 등으로 이어지며 그는 “가족간의 인화가 두산이 109년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재계에서도 두산가(家)를 우애깊은 형제지간으로 꼽는다.‘돈 앞에 추한 꼴’을 적잖이 보인 재계 가문이 많았던 탓인지 ‘공동 소유, 공동 경영’이라는 두산가만의 독특한 가풍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박 부회장이 그렇게 자랑했던 화목한 집안이 요즘은 쪼개져 살벌하다. 차남 박용오 회장의 퇴진과 3남 박용성 회장의 추대로 시작된 ‘형제의 난’은 ‘동생들의 쿠데타’와 ‘두산산업개발의 경영권 탈취 미수 사건’으로 각각 주장되며, 양측의 진실공방 싸움이 한창이다. 수년간 쌓여온 형제간 갈등이 이제야 곪아 터졌다는 것이 두산가 안팎의 지적이다. 피붙이가 등을 돌리면 더 무섭다고 했던가.“비리를 저지른 동생과 조카를 잡아가라.”와 “가문에서 빼버리겠다.”로 상징되는 이번 분쟁은 결국 검찰 수사 결과로 귀결될 전망이다. 이 때문에 109년 전통의 두산그룹은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에 휩싸였다. 자칫 오너가의 집단 사법처리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행보에 큰 차질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승승장구하던 두산으로서는 호사다마가 아닐 수 없다. 박 부회장은 지난달 25일 우연히 그룹내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마주쳤지만, 급히 자리를 떴다.6개월 전 당당했던 그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어제의 두산과 오늘의 두산이 다르다는 점을 새삼 보여줬다. ●‘박승직상점’이 그룹의 모태 국내 최고(最古)의 기업인 두산이 1일 창립 109돌을 맞았다. 보름 전만 해도 ‘잔치’를 벌일 계획이었지만 경영권 분쟁으로 쏙 들어갔다. 두산 창업주 고 박승직씨는 1896년 서울 종로에 자신의 이름을 딴 ‘박승직상점’을 열고, 두산그룹의 기초를 닦았다. 등짐 장사와 면포상, 보부상 등 밑바닥 생활 15년 만에 마련한 가게였다. 이후 박 창업주는 포목상으로 대성공, 동대문과 종로 일대에서 ‘배오개의 거상’이라 불렸다.1906년에는 중추원 의관과 정3품에 승서되는 등 이미 거상으로서 황실의 인정을 받을 정도였다. 박 창업주는 1905년 국내 최초의 주식회사인 광장을,1907년에는 국내 최초의 무역회사인 공익사 설립에 참여했다.33년에는 김연수 삼양사 창업주와 함께 소화기린맥주의 주주로 참여, 두산의 모기업인 동양맥주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소화기린맥주는 일본 기린맥주의 국내 생산공장이다. 박 창업주는 해방 후 새롭게 출발하는 수송사업을 위해 장남인 두병의 이름 첫 자인 말두(斗)자와 묏산(山)자를 붙여 ‘두산’이란 새 상호를 짓는다.‘한 말 한 말 차근차근 쉬지 않고 쌓아올려 재화가 산같이 커져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박가분과 정정숙 여사 여느 재벌가와 마찬가지로 두산가의 3,4세 며느리들도 바깥 활동이 잦지 않다. 내조와 자녀교육이 최우선 순위다. 이는 박두병 두산 초대 회장의 며느리 고르기에서도 잘 드러난다. 장남인 용곤 명예회장의 배필감을 찾던 박 초대 회장의 안테나에 맏딸 용언씨의 친구인 이응숙(작고)씨가 잡혔다. 다소곳하고 참해 마음이 끌렸다. 박 초대 회장은 지프를 타고 한동안 이씨를 추적하며 인물과 행동거지를 자세히 살펴보고 낙점했다고 한다. 가족간 인화에 며느리가 중요하다는 박 초대 회장의 평소 지론 때문이었다. 그러나 박 초대 회장의 모친인 정정숙 여사와 그의 아내 명계춘(92) 여사는 내조뿐 아니라 남편들 못지 않은 사업수완을 발휘, 여장부로 통했다. 국내 화장품의 효시인 ‘박가분(朴家粉)’은 사실상 정 여사의 작품이다. 정 여사는 1915년 부업 삼아 분기술자 3명을 고용, 재래식 화장분을 근대적으로 포장 판매했다. 처음엔 면포상품을 구입한 고객에게 주던 미끼 상품이었다가 여성 반응이 의외로 좋아 박승직상점의 어엿한 거래 품목으로 자리잡았다. 정 여사는 국내 최초로 화장품 신문 광고를 하기도 했다. 박가분 광고 내용은 이렇다 “죽은 깨와 여드름이 없어지며, 얼굴에 잔티가 없이 피부가 윤택하고, 고아지게 하는 박가분” 박두병 두산 초대 회장의 부인인 명계춘 여사도 중고 미제 승용차와 일제 트럭 등을 구입해 한때 운수업을 벌였다.‘남자는 보다 큰 일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남편의 뜻에 따라 대신 떠맡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업은 훗날 두산상회의 토대가 됐다. ●귀하게 얻은 늦둥이 박 창업주는 1910년 딸만 여섯을 두다가 첫 아들을 얻었다. 박두병 초대 두산 회장이다. 박 창업주의 나이 46세로 늦게 얻은 귀한 아들이었다. 후에 우병과 기병, 규병 등이 태어났지만 우병을 빼고는 모두 어린 나이에 죽었다. 그래서 그런지 박 창업주의 자식 교육은 별났다고 한다. 두산가에서 인화를 강조할 때 자주 인용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박 창업주가 장남에게 들려준 ‘지붕에 소 올리기’다. 가장의 터무니없는 지시도 가족이 믿고 따라야 집안이 화목해진다는 내용이다. 또 부지런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근자성공’은 4대째 내려오는 두산가의 좌우명이다. 박 초대 회장은 경성중을 거쳐 1932년 경성고상을 졸업한 뒤,1931년 대지주인 명태순의 딸 계춘씨와 결혼했다. 이어 조선은행에서 4년간 근무하다가 박승직상점에서 본격적인 2세 경영수업을 받았다. 그는 해방 후 동양맥주를 인수해 두산그룹의 토대를 쌓았다.60년대 들어 한양식품(코카콜라·환타 제조)과 윤한공업사(현 두산메카텍), 동산토건(현 두산산업개발) 등을 설립했으며, 한국병유리(현 두산테크팩)를 인수하며 그룹의 외형을 크게 확대했다. ●두산 1번은 용곤 명예회장 두산가의 위계질서는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장유유서 원칙이 철저히 지켜진다.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장자인 박용곤(73) 명예회장은 여전히 ‘두산의 1번’이다. 전화번호도 ‘1∼2번’을 쓴다. 이어 용오(68) 전 회장(3∼4번), 용성(65) 회장(5∼6번), 용만(50) 부회장(7∼8번) 순이다. 그래서 이번 ‘형제의 난’은 다른 그룹의 경영권 분쟁보다 상처가 유난히 깊어 보인다. 직원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우애가 좋던 형제가 어쩌다가….”라며 허탈해 했다. 두산가는 사실 이번 사태가 있기 전까지 재계에서 형제간 최고의 화음을 자랑했다. 이는 박 초대 회장의 철저한 자식 교육에서 비롯됐다. 박 초대 회장은 형제간 말썽이 나면 잘못이 있든 없든 무조건 장자를 혼냈다고 한다. 동생들을 잘못 이끌었기 때문이다. 이는 장자를 중심으로 형제들이 자연스럽게 뭉칠 수 있도록 했다. 인화와 관련된 박 초대 회장의 이야기는 지금도 입에 오른다.“가정이 평화로워야 모든 일이 잘 이뤄진다. 그러자면 형은 우애하고, 아우는 공손하고, 지아비는 화하고, 지어미는 순해야 한다. 이럴 때 한 푼의 재산이 없어도 그 가정은 언제나 평화스럽다.” 박 부회장의 설명이다.“부친은 인화가 깨질 수 있다는 이유로 직원들이 설날 세배하는 것도 못하게 했다고 하더라고요. 미풍양속 차원에서 권장할 일이지만, 개인 간에 친소관계가 만들어지면 조직이 공평해질 수 없다고 본 거죠.” 두산가는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가족 모임을 갖는다. 명계춘 여사를 중심으로 3대(3∼5세)가 함께 모여 식사를 하며 친목과 화합을 다진다. ●“남의 눈치밥 먹어봐야….” 두산가는 기업의 오랜 역사 만큼이나 자녀 교육도 독특한 전통이 있다. 박 초대 회장은 자식들에게 “도둑이 와서 재물을 훔쳐갈 수는 있지만, 머리에 들어 있는 것은 절대 훔쳐갈 수 없다.”며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박 부회장이 들려준 부친의 자식 교육은 이렇다.“우선 남의 눈칫밥을 먹어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특히 은행 근무를 적극 권했습니다. 또 최강대국인 미국을 알아야 한다며 미국 유학을 꼭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용곤 명예회장이 일본을 강조해 일본어 공부가 추가로 들어갔죠.” 이같은 방침에 따라 용곤 회장은 한국은행, 용성 회장은 한국투자금융, 용만 부회장은 외환은행에서 각각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6형제 모두 미국에서 공부했다. 이들은 미국 유학생활 동안 용돈이 넉넉지 않아 자취 생활을 하면서 직접 음식도 해먹고, 짬짬이 아르바이트를 해 생활비를 충당했다고 한다. 두산가는 경영수업도 다른 재벌가와 차이가 있다. 밑바닥부터 출발해 모든 계열사를 거치게 한다. 또 30대 초반에 계열사에 배치해 평균 1∼2년에 한번씩 승진시킨다. 4세도 예외없이 이런 과정을 거쳤다.4세 중 장자인 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43)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은 일본 기린맥주에서, 차남인 박지원(40) 두산중공업 부사장은 미국 매켄에릭슨에서 근무했다. 용오 전 회장의 장남인 박경원(41) ㈜전신전자 대표는 미국 코닥에서, 용성 회장의 장남인 박진원(37) 두산인프라코어 상무는 대한항공에서 사회의 첫발을 내디뎠다. 용현(62) 서울대 의대 교수의 장남인 박태원(36) ㈜네오플럭스 상무는 효성에서 시작했다. ●“정략 결혼은 피하라” 오랜 전통에도 불구하고 두산가의 혼맥은 의외로 담백하다. 정·관계 집안과 직접적인 사돈 관계가 없다. 대부분 평범한 집안과 통혼했으며, 간혹 재계 집안이 눈에 띈다.“자녀 혼사에 정략 관계를 두지 마라.”는 박 창업주의 당부를 후손들이 잘 지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 6월 박 부회장의 장남 서원(26)씨와 구자철 한성 회장의 딸 원희(26)씨 결혼은 두산가에서 눈길을 끌 만한 혼사였다. 구 회장은 범 LG가로 구태회 LS 명예회장의 4남이자, 구자홍 LS그룹 회장의 막내동생이다. 이 때문에 박 부회장은 집안의 첫 경사였지만 ‘재벌가 정략 결혼’이라는 시선 탓에 다소 부담스러워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박 부회장과 구 회장은 경기고 동기생으로 양가가 예전부터 서로 교류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서원씨와 원희씨도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으며, 미국에서 공부하다 관계가 급진전된 것으로 전해졌다. 박두병 초대 회장은 모두 6남1녀를 뒀다. 장녀 용언(72)씨는 당시 실력파 검사였던 김세권(74)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김 변호사는 대검찰청 차장과 서울고검 검사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법무법인 KCL 대표변호사를 맡고 있다. 차남 용오 회장은 1962년 미국에서 만난 최금숙(작고)씨와 결혼했으며,3남 용성 회장은 66년 김선필 전 삼성물산 사장의 딸인 영희(62)씨와 혼례를 올렸다.4남인 박용현 서울의대 교수는 68년 이화여대 음대를 나온 엄명자(작고)씨와 인연을 맺었다. 5남 용만 부회장은 바깥에 잘 알려진 집안으로 장가갔다. 당시 ‘증권업계 대부’로 통했던 강성진 전 증권협회 회장이 그의 장인이다. 박 부회장은 79년 강 전 회장의 장녀인 신애(50)씨와 혼례를 치렀다. 그는 강 전 회장의 차남 흥구씨와 동기생으로 집에 놀러갔다가 신애씨를 만나 결혼하게 됐다.6남 박용욱(45) 이생그룹 회장은 이건 전 대호건설 회장의 딸인 상의(45)씨와 인연을 맺었다. golders@seoul.co.kr ■ 박두병 초대회장등 3명 상의 회장 역임 두산그룹과 대한상의는 특이한 공통점이 있다. 두산이 재계에서 최고(最古)의 기업이라면 상의도 경제5단체 가운데 가장 오래된 단체(1884년 한성상업회의소 설립)다. 두산그룹 회장은 묘하게도 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954년 공식 출범한 이후 배출한 회장은 12명. 이 가운데 두산그룹 회장 출신은 무려 3명이나 된다. 고 박두병 초대 두산그룹 회장이 1967∼73년 상의의 회장을 맡았다. 전문경영인 가운데 재계 최초로 그룹 회장직에 오른 정수창 전 두산 회장도 1980년부터 88년까지 상의 수장을 역임했다. 박용성 현 두산 회장도 2000년 이후 상의 사령탑을 맡고 있다. 상의의 반백년 역사 가운데 총 20년을 두산측에서 집권한 셈이다. 특히 대(代)를 이어 경제단체의 수장을 맡은 곳은 두산 박씨가(家)가 재계에서 유일하다. 그래서 4세에서도 상의 회장이 나올지 주목된다.30년간 상의에서 근무한 전 임원은 박두병-용성 부자에 대해 “성격 급하고, 타성에 젖은 일들을 뒤집어 버리는 게 꼭 붕어빵”이라고 했다. 사실 두산과 상의의 인연은 이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다. 두산그룹의 창업주인 고 박승직씨가 1906년부터 5년간 상의의 전신인 경성상업회의소 상의원으로 활동했다. 무려 3대가 상의와 깊은 인연을 맺은 것이다. 박용성 현 회장은 ‘미스터 쓴소리’로 불리며 역대 회장 가운데 상의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이다. 박 회장이 상의 회장으로 출근한 첫 날 기자들에게 던진 첫 말이 이렇다고 한다.“예산 규모나 회원사 수, 단체의 역사로 보면 상의가 국내 경제5단체 중 맨 앞인데 왜 항상 전경련을 맨 앞에 세우는 것이냐. 앞으로 경제단체를 소개할 때는 상의를 맨 앞에 써라. 가나다 순으로 해도 상의가 전경련보다 앞이 아니냐, 또 우리는 법에 의한 단체고 나머지는 임의 단체로 사단법인으로 해서 승인 받은 데가 아니냐.”고. 그러나 형인 박용오 전 회장이 제기한 비자금 조성 및 분식회계 의혹으로 박 회장의 향후 행보가 그다지 순탄치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golders@seoul.co.kr ■ 3·4세 MBA출신 많아… 며느리는 ‘이화의 딸’ ‘가방 끈’이 긴 두산가문에서 MBA(경영학 석사) 학위는 당연히 따야 할 자격증처럼 보인다. 없는 사람이 이상할 정도다. 오너 집안인 데다 미국 유학이 일종의 통과의례인 만큼 3세 ‘용’자 돌림과 4세 ‘원’자 돌림 대부분은 경영학을 전공했다.3세 가운데 용오-용성-용현-용만 4형제는 ‘KS(경기고-서울대)’ 출신이다. 다만 차남 박용오 전 회장은 경기고-뉴욕대를 나왔다. 3세 가운데 MBA 학위를 딴 사람은 3남인 박용성 두산 회장과 5남 박용만 그룹 부회장이다. 박 회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뉴욕대에서 MBA 학위를 취득했다. 박 부회장은 보스턴대에서 MBA 학위를 땄다. 4세로 넘어가면 MBA는 그야말로 흔하디 흔하다.‘원’자 돌림 15명 가운데 박용곤 회장의 장녀인 박혜원 ㈜두산 잡지BU 상무를 뺀 9명이 MBA 학위를 갖고 있다. 또 박 부회장의 장남 박서원씨 등 학업중인 4세가 5명이나 돼 앞으로 MBA 학위 소지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집안에 MBA 출신이 많다 보니 동문들도 적지 않다.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과 숙부인 박용만 부회장은 보스턴대 MBA 출신이다. 또 박 회장과 박 명예회장의 차남인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사장, 박용오 전 회장의 차남 박중원 전 두산산업개발 상무, 박 회장의 장남 박진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 차남 박석원 두산중공업 차장, 박용현 서울대 의대 교수의 장남 박태원 네오플럭스 상무 등 6명은 모두 뉴욕대 MBA 동문들이다. 이밖에 박 교수의 차남인 박형원 ㈜두산 식품BG 차장은 조지워싱턴대 MBA 출신이며, 박인원 ㈜두산 전자BG 과장은 하버드대 MBA 학위를 땄다. 반면 며느리들은 ‘이화의 딸’들이 많다. 서미경(박경원 전신전자 대표 부인·고대 신문방송학과)씨와 이상의(박용욱 이생 회장 부인·한양대 기악과)씨를 빼면 대부분 이대 동문들이다. 맏며느리인 고 이응숙씨를 비롯해 김영희(셋째 며느리), 고 엄명자(넷째 며느리), 김소영(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 부인), 서지원(박지원 두산중공업 부사장 부인), 정윤주(박중원 전 두산산업개발 상무 부인)씨 등 두산가의 3,4세 며느리들은 이대 선후배 관계로 맺어져 있다. 박지원 부사장과 부인은 공교롭게 이름이 같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책꽂이]

    |실용 경제| ●글로벌 CEO누르하치(전경일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펴냄)중국 청나라를 건국한 주인공 누르하치의 생애, 놀라운 전략, 전술, 비전에 관한 책. 변방의 일개 부족장이던 누르하치는 단 13명의 기병으로 창업, 글로벌정신으로 중국 대륙을 M&A한 인물. 급변하는 국제 경영환경에서 절실히 요청되는 누르하치의 오랑캐식 경영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5000원 ●리더를 위한 동화(마거릿 파킨 지음, 윤달련 옮김, 이파로스 펴냄)리더가 조직·인재관리에 어려움을 느낄 때 문제를 해결할 해법을 제시한 책. 저자는 경영환경에서 겪는 어려움을 ‘미래에 대한 구상과 목표설정’‘긍정적인 사고와 창의력’‘권한 위임’등 5가지로 분류, 각 10개의 이야기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1만 2000원 ●공부 잘하고 싶으면 혼자서 공부해라(김송은 지음, 한스미디어 펴냄)학습 매니지먼트에 대한 실용서. 상담과 적용사례를 통해 얻은 실전 노하우를 바탕으로 학습준비 단계부터 피드백까지 수준별, 과목별 학습법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제시한다.9800원 ●파란만장한 유학생 서바이벌 쿠킹북 (김은경 글·박홍순 사진, 웅진지식하우스 펴냄)해외에서 유학과 직장생활을 하면서 겪은 저자의 유학·외국생활 노하우. 특히 하루 5달러만으로 세끼를 모두 챙길 수 있고, 영양가 있는 식단으로 구성하는 노하우가 담겼다.8500원 |유아·아동| ● 까만 네리노(헬가 갈러 글·그림, 유혜자 옮김) 몸이 까맣다는 이유로 형들의 따돌림을 당하던 네리노. 그러나 까만 몸 덕분에 새장에 갇힌 형들을 구해내면서 스스로의 소중함을 발견하게 되는데….6세 이상.8000원. ● 나에게도 친구가 생겼어요(바르브로 린드그렌 글, 울리세스 빈젤 그림, 조영수 옮김) 왜소하고 볼품 없는 외모 때문에 주변사람들에게 놀림을 당하던 외로운 아저씨는 어떻게 친구를 얻을 수 있을까? 보이는 것만으로 사물을 평가하는 어리석음을 우회적으로 꼬집는 그림동화.6세 이상.8500원. |초등·청소년| ● 내 친구 네이선(메리 바 글, 캐런 A. 제롬 그림, 신상호 옮김) 단짝친구를 잃은 주인공이 슬픔을 딛고 일어서기까지. 이젠 어디에도 없는 그리운 얼굴, 죽은 친구의 흔적을 더듬으며 외로움을 극복하는 주인공 이야기가 감동적이다. 초등 저학년.7000원. ● 첨벙첨벙 물 실험실(베르거 글, 케르슈텐 그림, 김영진 옮김) 방학을 맞은 아이들에게 권해주면 좋을 과학교양서. 물을 소재로 교과서에 나오는 실험들을 묶었다. 소재별로 ‘번쩍번쩍 빛 실험실’‘우르릉쾅 날씨 실험실’‘딩동댕동 소리 실험실’‘아슬아슬 힘 실험실’ 등이 함께 나왔다. 초등생. 각권 7500원.
  • “영국 테러수습 침착함에 놀라”

    “테러 이후 영국 국민과 정부가 보여준 침착함과 인내심은 정말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사고가 난 지 10일이 넘도록 현장이 통제됐지만 누구 하나 불만을 토로하는 것을 못 봤으니까요.”폭탄 테러로 얼룩진 영국 런던에서 사후 대응상황을 면밀히 지켜보고 돌아온 서울지방경찰청 외사 3계장 임병호(39) 경정은 “런던에서와 같은 테러가 국내에서 일어날 가능성은 적지만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생긴다면 혼란의 여파는 우리쪽이 훨씬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임 경정은 테러 발생 3일후인 지난 14일 현지에 급파됐다. 테러범 수사, 피해현장 복구, 추가테러 방지활동 등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런던 테러가 선진 8개국(G8) 정상회담에 맞춰 터진 만큼 오는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가 열리는 우리나라도 ‘강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임 경정는 2001년 영국에서 발생한 한국인 어학연수생 토막살인사건 당시 유학생으로 피해자의 신원을 밝혀내는 등 수사에 큰 도움을 줬던 인물.임 경정은 “우리나라는 뿌리 깊은 반(反)사회세력이 형성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종교적 갈등도 거의 없고 외국인의 행동이 쉽게 노출되는 특성을 갖고 있어 대규모 테러의 가능성은 적다.”고 분석했다.그러나 “아직 테러를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공공장소에서 테러가 일어날 경우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 혼란은 극에 달할 것”이라고 우려했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몇천원이면 안심하고 休~

    몇천원이면 안심하고 休~

    복(伏)더위가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피서철을 맞았다. 휴가지로 출발하기 직전 여행보험에 가입해 두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 단돈 몇천원만 내면 여행지에서 불의의 사고를 겪어도 마음을 편안하게 먹을 수 있다. 휴가철을 위한 보험상품과 서비스를 알아본다. ●몇천원으로 1억원 보상 여행기간에 발생할 수 있는 신체상해와 질병치료, 휴대품 손실, 배상책임 등을 책임지는 일회성 보험이 여행보험이다. 여행보험은 보험료와 보상한도 등에 따라 국내용과 해외용으로 나뉜다. 보험가입에 성별·연령별 등의 제한은 없다. 여행지에서 발생한 사고나 질병 때문에 집에 돌아온 뒤에도 후유장애가 남았거나 30일 안에 사망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가입자가 실수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을 때에도 보상된다. 다만 남의 자동차에 피해를 입힌 것은 자동차보험에서 처리된다. 사고에 따른 사망·후유장애는 최고 1억원까지 보장된다. 치료비·질병사망·배상책임은 국내여행이 최고 1000만원, 해외여행이 최고 2000만원이다. 해외여행 중 피보험자가 항공기 납치를 당했거나 행방불명됐을 때에는 수색구조비 등도 지급된다. 휴대품 손실은 1개 품목에 대해 20만원 한도에서 보상되는데 현금, 항공권, 의치, 콘택트렌즈 등은 보상되지 않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술 마시고 폭력을 휘두르다 난 사고에 대해서도 보험사는 책임지지 않는다. 보험금은 최고 1억원이지만 보험료는 국내 3일용은 3760원,7일용은 7080원이다. 해외용은 조금 더 비싸다. 여행기간에 따라 보험료를 국내용보다 조금씩 더 내면 된다. ●증빙서류 챙기는 게 중요 보험에 가입하려면 국내여행 때에는 출발하기 하루 전까지 가까운 보험사 영업점을 방문, 청약서에 자필서명을 하고 보험료를 낸 뒤 보험증권을 받으면 된다. 보험증권을 여행지에 갖고 가면 아무래도 일처리가 빠르다. 해외여행 때에는 출발당일 공항의 보험사 창구에서 가입하면 된다. 특히 가입자가 전자금융결제가 가능한 은행 거래인이라면 보험사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클릭 한번으로도 가입을 마칠 수 있다. 보험 청약서에는 질병 여부와 암벽등반 등 여행목적을 자세히 적어야 나중에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참고로 유학생이라면 해외여행의 유학생플랜에 가입하면 혜택이 더 많다. 여행지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면 당황하지 말고 병원 치료를 받는 동시에 보험사에 연락하면 된다. 특히 언어소통이 어려운 외국에서 질병사고가 발생했다면 무작정 병원으로 가기 전에 각 보험사가 운영하는 ‘24시간 우리말 서비스’의 안내를 받는 것이 좋다. 이 수신자부담 서비스는 해당국의 손해사정 회사를 통해 병원 예약과 치료, 행정처리 등을 모두 처리해 준다. 이 서비스는 여행지 안내도 해 준다. 여행지에서 우선 치료를 받고 나중에 돌아와서 보험금을 청구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증빙서류를 챙기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상해나 질병에 따른 보험금을 청구하기 위해선 사망진단서, 호적등본, 치료비 영수증 등이 필요하다. 배상책임 보험금에는 손상물에 대한 수리견적서 등 증명서가 필요하다. 휴대품 손실에는 망가진 모습을 찍은 사진, 수리견적서, 구입관련 서류 등이 있어야 한다. 필요한 서류는 현지에서 보험사에 문의해 미리미리 챙기는 게 좋다. 휴가철뿐 아니라 평소 주말 등에도 여행을 즐긴다면 아예 레저보험이나 주말보험에 가입해 두면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는 매월 일정액의 보험료를 내는 상품이다. ●이동서비스 연락처는 필수 보험사들은 휴가철 교통사고에 대비해 다음달 28일까지 전국 주요 휴양지에서 이동 보상서비스를 한다. 경포대, 대천, 제주 등 휴양지의 주변도로에 이동 서비스센터를 안내하는 현수막 등을 내걸었다. 이곳에는 보상직원과 자동차 정비요원이 상주하면서 ▲자동차사고 접수 ▲사고현장 긴급출동 ▲차량수리비 현장지급 ▲보험가입 사실증명원 발급 등을 서비스한다. 자동차정비 서비스를 통해 긴급견인, 비상급유, 배터리 충전, 타이어 교체 및 공기압 점검, 잠금장치 해제, 부품교환, 냉각수 보충 등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다만 긴급출동 서비스를 받으려면 자동차보험 가입자로서 1만원 안팎의 특약비를 추가로 낸 경우에 해당된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골프장 대동여지도’ 쓴 코스박사 조학재

    ‘골프장 대동여지도’ 쓴 코스박사 조학재

    “아마추어 골퍼들의 자신있는 라운딩을 위해 국내 모든 골프장 모든 코스의 공략법을 담았습니다.” 골프와 함께 20여년을 살아온 조학재(49·리얼골프 기술고문)씨. 그는 국내 135개 골프장 2880홀을 샅샅이 훑고 종이에 옮긴 골프장 코스 가이드 ‘프로 캐디’로 유명한 골퍼이자 저술가다. 고산자(古山子) 김정호가 평생 동안 우리나라를 돌며 ‘대동여지도’를 완성했다면 그는 ‘골프판 대동여지도’를 만든 셈이다. 그가 ‘대업’을 완성한 것은 5년 전 일이다. 하지만 그의 책은 아직도 잔잔하게 그만의 향기를 발산하고 있다. 아무리 온라인이 발달하고 컴퓨터 속 코스들에 대한 클릭수가 증가하고 있지만 국내 전체 골프장을 한곳에 모아둔 곳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호주 유학 시절 우연히 쥐어본 7번 ‘쇠막대기’에 이끌려 골프에 미쳐버린 그는 전공인 부동산학을 골프에까지 접목시켰다. 현재 직함은 골프장 컨설팅사인 ‘리얼 골프’ 기술 고문. 새로 태어나는 골프 코스마다 그의 눈길에서 벗어나는 곳은 없다. 유학생에서 프로골퍼로, 또 연습장 주인과 티칭프로로 골프와의 인연을 놓지 않던 그는 집까지 팔아 만든 노잣돈으로 골프장을 ‘방랑’하며 책을 만든 저자로 변신을 거듭한 뒤 이제 시니어골퍼들을 위한 전혀 새로운 개념의 골프 연습장 개발에 자신의 골프 인생 마지막 라운드를 걸고 있다. ●1번홀-골프인생의 ‘서비스홀’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같은 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그는 지난 1977년 혈혈단신으로 호주땅을 밟기 전까지는 골프가 어떤 운동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우연히 잡은 골프채가 ‘화근’이었다. 넓다란 옆집 잔디 마당에서 아침마다 클럽을 휘두르던 노인의 스윙을 지켜보다 그만 자신도 모르게 빗자루를 집어 들었고, 그 노인으로부터 7번 아이언을 건네받아 무작정 연습을 따라했다. 그의 첫 골프 스승은 호주의 70대 할아버지였던 셈이다. 6개월 만에 비기너에서 싱글 수준으로 올라선 조학재는 ‘스승’으로부터 프로 전향을 권유받았다. 그러나 본격적인 프로 생활을 시작한 건 8년 뒤. 병역 문제도 해결해야 했고, 세인트조지대학에서 시작한 부동산학 공부도 마쳐야 했다. 국내에 돌아와 군대를 마친 조씨는 85년 대학을 졸업하고 호주에서 프로로 데뷔했다. 프로 골퍼 생활은 순탄했다.“미국프로골프(PGA)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규모가 초라해 벌어들인 상금으로 겨우 생활을 꾸리는 정도”였다고는 하지만 당시 평균 한 해 수입은 5만달러를 웃돌았다. 돈도 벌고, 치고 싶은 골프도 마음껏 친 그는 또 WGTF(World Golf Teachers Federation) 자격증도 따 향후 다가올 인생 후반에도 대비했다. 그의 호주 생활은 그의 골프 인생 가운데 ‘거리도 짧고 핸디캡도 낮은 서비스홀’이었던 셈이다. ●10번홀-‘대장정’ 롱홀에 도전 5년간의 호주 프로 생활을 접은 조씨는 국내로 돌아와 경기도 일산에 골프연습장을 열었다. 티칭 프로 겸 주인으로 한창 불기 시작한 골프바람을 타고 돈도 짭짤하게 모았다. 자신의 대학 전공인 부동산학을 바탕으로 골프장과 연습장에 대한 개장 컨설팅도 해주는 등 ‘전문가’로 변신해 갔다. 동진, 한탄강, 뉴스프링골프장 등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쳐 탄생됐다. 하지만 그는 목이 말랐다. 국내 골프장 모두를 알고 싶었다. 결국 그는 연습장을 남의 손에 맡긴 뒤 골프장 순례에 나섰다.“골프장을 운영하다 보니 연습에 나서는 아마추어 골퍼들의 인상이 운동이 아니라 노동을 하는 듯했다.”는 게 초보 골퍼들에 대한 그의 기억들. 그는 또 “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해당 코스에 대한 철저한 분석인데 초보자들은 연습장에서 골프채를 휘두르는 것에만 치중하고 있었다.”고 짚어냈다. 무작정 ‘대장정’에 나섰다. 신설 골프장들은 카트까지 내주는 등 협조적이었지만 콧대가 센 일부 골프장에 들어가기 위해 다른 팀에 끼어든 뒤 코스에서 ‘딴 짓’을 해야 했다. 시작한 뒤 2년 만에 가진 돈이 바닥나 여의도에 사놓은 7억원짜리 아파트도 처분했다.5년의 ‘골프장 순례’에 든 돈은 모두 5억여원.1년에 1억원씩 길과 골프 코스에 뿌린 것이다. ●18번홀-‘세상 물정 해저드’에서 풍덩, 다시 19번홀에 5년의 산고 끝에 태어난 골프코스 안내서인 ‘프로 캐디’는 사실상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인터넷에 뜨기 시작한 ‘코스 가이드’에 밀리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마케팅 전략에서 처지고, 저작권을 둘러싼 조씨와 해당 업체와의 알력 때문이었다.‘출간 뒤 출판권 5억원을 받는 대신 저자의 이름을 뺀다.’는 조건을 도저히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 조씨는 “당시 조금만 고집을 꺾고 책을 팔았더라면 지금은 좀 더 살림이 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골프에 대한 조씨의 철학은 남다르다.“가장 비싼 골프채와 가장 싼 그것과의 타수는 2타차에 불과하다.”고 장비에 얽매이는 골퍼들을 질책하기 일쑤다. 무엇보다 “골프는 자연과의 싸움”이라면서 “코스에 대한 전략은 물론 코스를 둘러싼 자연과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골퍼의 가장 중요한 자세”라고 역설한다. 그는 이제 그의 골프 인생 18개홀을 넘고 건너 19번홀 티박스에 섰다. 시니어골퍼들을 위한 연습장 솔루션 개발에 나선 것.“스크린을 설치한 한 홀당 100여평에 불과한 좁은 장소에서 모든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연습장”이라고 말할 뿐 “더 이상은 말하기 힘든 비밀”이라고 입을 다문다.150여개에 달하는 골프장 가운데 첫 홀 티박스에만 올라서면 그것이 ‘아널드 파머류’의 호쾌한 코스인지 ‘잭 니클로스류’의 아기자기한 코스인지 훤히 꿰뚫고 있는 ‘코스 박사’ 조학재씨.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건 “골프클럽보다 코스를 더 사랑하라.”는 한마디였다. 글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열심히 빛난 나도 떠날래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철. 특히나 올 여름은 장마가 빨리 물러가면서 땡볕 더위가 여느해보다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인다. 국내는 물론 해외 안방극장과 스크린, 공연장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는 우리네 스타들은 여름을 어떻게 날까. 다행히도 촬영 스케줄이 비교적 ‘널널한’ 스타들은 모처럼 맞는 환상적인 여름 휴가에 쾌재를 부르며 바캉스 계획을 짜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올 여름도 예외 없이 ‘빡빡한’ 촬영 스케줄에 묶여야 하는 많은 스타들은 카메라 앞과 무대위, 때로는 이동하는 차량 안에서 매일 무더위와의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한다. 과연 스타들은 더위 탈출을 위한 나름대로의 어떤 지혜를 짜내고 있을까. 그들의 더위사냥 묘수를 살짝 들여다봤다. ●보아 “방안에서 콕”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 보아예요. 요즘 날씨 너무 덥죠?참, 휴가계획은 잡으셨어요?전 올해도 피서는 ‘방콕’이에요. 태국가서 좋겠다고요?호호, 그게 아니라 올 여름에도 ‘방’안에 ‘콕’박혀 지내야 할 것 같아요. 얼마전 5집 앨범 ‘Girls on top’을 냈잖아요. 여러분들의 뜨거운 사랑에 힘입어 가요순위 프로그램 1위에 오르는 등 한동안 방송출연에, 인터뷰에 ‘발에 땀이나도록’ 뛰어야 해요. 저만의 피서법요? 두 가지예요. 먼저 집에서 수박 파티를 여는 거예요.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더위는 싹 잊겠죠?또 한가지는 ‘공포영화 보기’. 요즘 공포영화 많이 나왔잖아요.DVD도 좋지만, 올 여름에는 틈나는 대로 친구들과 극장에 가서 ‘심야 공포영화’를 보려고요.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무더위는 한방에 날아가겠죠?서울신문 독자 여러분도 무더위 잘 이겨내시고 건강 조심하세요∼. ●하지원 “제대로 쉬고파” 정말이지 스타는 괴롭네요. 데뷔 이후 휴식다운 휴식을 한번 가져본 적이 없어 올 여름은 어떻게든 쉬어보리라 작정하고 지난 2일 뉴질랜드행 비행기에 올랐었거든요. 정말 힘들게 찍었던 이명세 감독의 신작 ‘형사:Duelist’를 마쳤으니 당초 제 바캉스는 뉴질랜드 어학연수로 대신할 생각이었죠. 그런데 웬걸요? 오클랜드대 부설 어학원에 등교한 첫날부터 현지의 한국 유학생들 등쌀에 조용한 어학연수는 포기해야 하지 싶어요. 하지만 이번엔 다만 몇달이라도 꼭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고 말겠어요. 모두들 뉴질랜드로 바캉스를 떠날 수는 없는 일일 테고…. 평상시의 내 피서에서 빠질 수 없는 아이템이 영화관람인데요. 국산영화, 특히 로맨틱 코미디는 나오는 족족 극장 가서 다 챙겨보는 게 저의 여가활용법입니다. 정말 단순하죠? 또 있어요. 베스트셀러 목록에 들어있는 책 한두권쯤 휴가철이면 반드시 읽고 넘어가는 게 ‘하지원의 여름나기’의 핵심 권장사항이랍니다. ●신하균 “하루종일 뒹굴뒹굴” 촬영이 없는 날은 하루종일 잠만 자기도 하는 ‘별 취미’가 있어요. 직업상 짬날 때마다 DVD를 챙겨보는 건 빼놓을 수 없는 휴가 아이템이죠.‘빌리 엘리어트’란 화제작을 최근에야 봤는데 너무 재미있더군요. 아직도 못 보신 분들에게 ‘강추’합니다. 아, 참.‘대부’시리즈 합본 DVD도 얼마전 구입해 찬찬히 다시 뜯어봤더니 정말 다시 없는 명작이더군요. 제가 술을 쬐끔 많이 좋아하는 편이라 영화감상할 때 빠트리지 않고 챙기는 게 바로 속이 얼얼해지는 맥주 캔 몇개! 아무생각 하지 말고 그 순간만큼은 시청각, 미각만 열어놓아보세요. 만사는 생각하기 나름. 신선이 따로 없다니까요.” ●김선아 “삼순이 몸매 Bye Bye” 올해 너무 사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삼순이·삼식이 커플 김선아와 현빈입니다∼.  최근 저희 커플이 대학생을 상대로 한 ‘올 여름 함께 휴가를 떠나고픈 연예인’ 설문조사에서 나란히 남·녀 1위를 차지했다고 하네요. 아∼, 으쓱 으쓱. 저 삼순이는요, 촬영하다가 탈진해서 쓰러진 적도 있어요. 약도 먹고 링거 꽂고 다시 촬영에 들어갈 정도로 온 힘을 쏟았답니다. 그래도 워낙∼에 제가 튼튼한 몸이라서…. 시청자 여러분이 사랑해주시니까, 마구 마구 힘이 솟더라고요. 으흐흐. 그래서 올 여름 목표는 무조건 잘먹고 잘 쉬는 걸로 정했어요. 연이어 작품에 들어가기에는 여력이 없네요. 음∼, 여행을 간다든가 특별히 계획 세운 것은 없고요. 극중 삼순이처럼 늘어지게 자고 먹고, 평범한 일상을 지닌 여름이 될 것 같은 예감이네요. 그동안 즐기지 못했던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아! 진짜 해야 될 일이 하나 있다. 키득키득. 김삼순 캐릭터를 위해 6∼7㎏ 늘렸던 체중을 다시 줄이는 게 목표예요. 헬스 클럽도 열심히 다니며 땀을 흘려야 하지 않을까요? 몰라보게 달라져서 돌아올 김선아를 기대해주세요∼. 호호. ●현빈 “삼식이, 영화로 간다” 우리 삼식이는 어떻게 지낼거니? 저도요 일주일에 잠을 2∼3시간밖에 자지 못할 정도로, 누나 못지않게 강행군이었어요. 역시 시청자 여러분의 사랑 덕분에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드라마가 끝나는 마당에 잠시 쉬면서 재충전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CF, 방송 출연, 행사 참가 등 스케줄이 빡빡하게 밀렸네요. 올 여름 휴가는 엄두도 못내겠어요. 어휴, 휴식을 선언한 삼순이 누나가 마냥 부러울 수밖에 없네요. 지난해 ‘돌려차기’ 이후 첫 영화 출연을 심각하게 고려하며 시나리오를 물색하고 있거든요. 물론 이번엔 주연이 될 것 같아요. 스크린에서 만나 볼 삼식이를 기대해 주세요. 파이팅∼! ●클론 “올 여름엔 쿵따리 샤바라” 안녕하세요. 강원래입니다.5년만에 새 앨범 내고 팬 여러분께 인사드리니 감회가 새롭네요. 제가 요즘 준엽이랑 ‘휠체어 댄스’를 선보이고 있잖아요?이게 더위를 잊는데 톡톡하게 효과를 발휘하고 있어요. 무슨 소리냐고요?하하. 이른바 ‘이열치열 전법’이죠. 푹푹찌는 연습실에서 휠체어 타고 한참동안 신나게 춤 연습을 하는 거예요. 온몸에 땀이 쫙 흐르면 대형 선풍기 앞으로 가서 땀을 식히는 거죠. 그때의 시원함은 아마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거예요. 게다가 제 아내(김송)가 손수 만든 시원한 콩국수까지 먹으면…가슴속까지 뻥뚫리는 시원함을 느낀답니다. 구준엽 인사드립니다. 여러분들도 나름대로 피서법을 가지고 계시겠죠?무더위를 피해 산과 바다로 가는 것도 좋지만, 더위를 먹지 않도록 평소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저는 원래와 함께 올 여름 내내 무대위에서 ‘휠체어 댄스’ 등 격렬한 춤을 선보여야 하기 때문에 올여름은 건강을 지키는데 주력하려고요. 전 무척 건강한 체질인데도 여름만 되면 보양식을 챙겨먹어요. 뭐니뭐니 해도 보양식엔 ‘민물 장어’가 최고지요. 특히 무대위에서 격렬한 춤을 추고 난 뒤에는 스태미나 보충 차원에서 일부러 민물 장어를 먹는답니다. 장어를 먹고나면 밤새도록 춤 연습을 해도 전혀 지치지 않더라고요. 하하. ●김수로 “이열치일(?) 촬영중” 제 바캉스는 언제나 그랬듯 올해도 ‘일상의 연속’이 될 것 같군요. 제 지론이 ‘일상 속에서 발견한 삶의 에너지가 가장 약발(?)이 오래 간다’, 뭐 그런 것이거든요. 지금은 9월 개봉예정인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의 막바지 촬영에 한창 매달려 있고요. 며칠내로 촬영이 완전히 끝나면 한동안 못했던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며 심신을 다잡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열치열 아닙니까? 김수로한테 속는 셈치고, 올 여름엔 다들 스쿼시 한번 도전해 보세요. 정말 끝내주게 화끈한 운동이거든요. 보신탕 같은 특별 보양식은 별로 먹어본 적 없는 저의 ‘웰빙 여름나기’ 비결을 공개하자면, 글쎄요….“밥 세끼 꼭꼭 잘 씹어먹는 것” 그 이상이 있겠어요? 하, 하, 하!” ●최수종 “부인~파이팅이요” 지난해 말부터 거의 반년이 넘게 ‘해신’의 주인공 장보고역을 맡아 숨가쁘게 달려왔네요. 저의 여름나기 코드는 아들 민서(6)와 딸 윤서(5) 돌보기랍니다. 제 아내인 하희라씨가 지난주부터 SBS 금요드라마 ‘사랑한다 웬수야’에 출연하며 연기 활동을 재개했거든요.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 촬영을 준비하는 아내를 보면 안쓰럽기도 하지만, 열심히 응원해줄 수밖에 없네요. 그래도 집은 내가 지키니까 안심해∼! 아이들이야 뭐 장모님이 많이 봐주시기 때문에 거창하게 집안 일에 몰두한다 하기가 쑥쓰럽네요. 어쨌든 아내와 바통 터치를 한 셈이 되버렸어요.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 어느 때보다 행복한 여름이 될 것 같아요. 휴가는 ‘해신’이 끝난 뒤 5월 말에 미리 앞당겨서 필리핀 수비크로 다녀왔거든요. 오랜만에 무척 즐거운 시간이 됐습니다. 제가 ‘자칭’ 만능 스포츠맨이잖아요. 그래서 여름을 나는 방법은 ‘이열치열’ 운동인 것 같아요. 촬영 스케줄로 좀처럼 시간을 내지 못해 얼마나 좀이 쑤시던지…. 이제는 축구랑 하고 싶은 운동을 마음껏 즐길 계획이예요. 건강은 당연히 일석이조로 챙겨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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