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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유 등 4품목/할당관세율 인상/하순부터

    ◎원당 등 5품목은 시한 연장 올해의 부진한 세수증대를 위해 이달 하순부터 수입되는 원유등 4개 품목에 대한 할당관세율이 높아진다. 재무부는 16일 올 연말까지 할당관세를 적용키로 한 48개 품목 가운데 국제가격이 하락한 ▲원유 ▲경유 및 벙커C유 ▲프로판 및 부탄가스 등 3종에 대한 관세율을 현 1%에서 2%로 올리는 한편 국제가가 오른 원목의 관세율은 1.5%에서 1%로 낮추기로 했다.원유등 3종의 석유품목에는 지난 90년 10월 걸프전으로 국제유가가 폭등하자 기본관세율 5% 대신 1%의 할당관세율을 적용했었다.할당관세의 인상으로 인한 정유사의 추가부담이나 국내 유가인상은 없다. 지난달 할당관세적용시한이 만료된 원당·옥수수·사료원료인 알팔파등 5개 품목에 대해서는 할당관세적용기간을 연말까지 연장,기본세율보다 3∼16%포인트 낮은 관세율을 적용한다.반면 대두유는 국내의 적정수요량인 2만t까지는 기본관세 9%를 적용하고 이를 초과하는 수입량에 대해서는 20%의 할당관세를 매긴다. 조정관세 15%가 부과되는 합판 가운데 국제가 상승으로 수급에 차질을 빚는 두께 3.2㎜미만의 가구용 합판에는 기본관세 9%를 적용한다.이번 조치로 3백96억원의 관세수입증대가 예상된다. 할당관세란 국내의 물자수급과 산업보호를 위해 수입물량에 기본관세율 대신 임시세율을 적용하는 것으로 기본세율에 40%를 가감한 수준에서 매길 수 있다.
  • 유엔군 유해 17구 반환/북한

    6·25당시 전사한 유엔군 유해 17구가 12일 하오 판문점을 통해 유엔군측에 인도됐다. 북한군측은 이날 판문점 북측 지역에서 군사정전위원회 유엔군 비서장 미 오다우드 대령의 20분간에 걸친 확인작업을 거쳐 유해와 군표 신원증명서등 유품 일체를 넘겨주었다. 유엔군 유해 반환은 이번이 4번째(5차례)로 지금까지 모두 63구가 돌아왔다.
  • 7월의 문화인물 지석영선생

    ◎천연두 예방위한 우두접종법 보급/현대의학 발전 토대마련에 큰 공 문화체육부는「7월의 문화인물」로 현대의학의 개척자 지석영선생(1855∼1935)을 선정했다. 지선생은 천연두 예방을 위한 우두종법(오두종법)을 처음 보급하고 의학교육에 앞장서는등 현대의학의 토대를 닦았으며 한글보급에도 큰 공을 세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1876년 일본에서 들여온 의학서적을 보고 종두법에 관심을 가져 그해 겨울 충북 충주에서 최초로 종두를 시행했다. 이어 1880년에는 수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에 건너가 우두종법의 전과정을 익혀 귀국,전주·공주에 우두국을 설치해 천연두 예방에 힘썼다. 1899년 조정에 의학교 설립을 주청해 대한의학교가 세워지자 초대 교장을 맡아 10여년간 의학교육에 헌신하다 한일합방이후 물러났다. 지선생은 또 한글보급에도 힘써 국문개혁안을 조정에 올렸으며 한자사전을 간행하기도 했다. 문화체육부는 그의 위대한 업적을 오늘에 되살리는 각종 사업을 대한의사학회 한국문화예술진흥원등 관련기관·단체와 함께 펼칠 계획이다. 주요사업은 ▲학술심포지엄(7월9일 하오2시 서울의대 강당) ▲유품 특별전시회(7월7∼31일 한독의학박물관 전시실) ▲지석영생애 토론회(7월15일 전북한약협회 회의실) ▲지석영의학상 제정·시상(7월중,후생신보)
  • 유족 보상 곧 착수/정부 유해·유품반환 등 추진

    정부는 15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KAL KE­007기 격추사건 결과보고가 「사실상 최종 결과보고서」라 결론짓고 조만간 관계부처간 협의를 거쳐 유족보상문제에 착수키로 했다. 정부는 우선 인도적 측면에서 러시아정부와 협의,오는 94년 KAL기 격추사고 10주기를 맞아 추모비건립·추모제 행사·유해및 유품 반환문제등을 다각적으로 추진키로 했다. 정부는 특히 피해보상문제와 관련,이번 조사결과 「사고조종사의 잘못과 함께,소련군이 요격직전 식별할 시간적 여유를 두지않고 민간항공기를 격추시킨 것은 실수」라고 지적됨에 따라 유족들이 위로금 형식의 보상을 받을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키로 했다.
  • 대석가(외언내언)

    「법화경」의 비유품에는 화택의 비유가 있다.­어떤 부자가 커다란 저택에서 살고있었다.어느날 그 저택에 불이 난다.부자는 몸을 빼쳐냈으나 문득 뒤돌아보니 아이들은 놀이에 열중하여 저택이 타면서 자기들에게 위험이 다가가는 줄을 모르고 있는게 아닌가.나오라고 소리쳐도 못듣는 것이다.부자는 꾀를 냈다.『얘들아,지금 문밖에는 양의 수레,소(오)의 수레,사슴의 수레가 와서 기다리고 있다.빨리나와』.그러자 아이들은 앞을 다투어 나왔다. 여기서 말하는 화택,즉 불타고 있는 저택이란 바로 인간세계를 가리킨다.거기서는 애욕의 불꽃이 타오르고 탐욕의 불꽃이,명예·권세욕의 불꽃이 타오른다.그렇건만 거기 사는 사람(아이)들은 그 불꽃의 무서움을 모른채 욕망의 충족을 위해 이리뛰고 저리 달린다.이를 두고 부처님은 말한다.『삼계에는 평안함이 없다.화택과 같을 뿐이다』.그래서 여러 방편을 써서 불길로부터 탈출하게 하는 것이라고 「법화경」은 가르치고 있다. 한시도 평안함이 없는 이승의 나날이다.욕망을 추구하는 가운데 갖은 죄업을 쌓아가는 사람들은 그곳이 불길속임을 모르고 날뛴다.욕망의 포로가 된 눈에는 수레들도 안보인다.그 결과 그릇된 사랑놀음으로 몸을 망친다.지나친 물욕·권세욕으로 해서 망해가는 것을 보아왔고 또 지금도 보고있다.돈오(단박에 깨침)는 못하더라도 참수(차츰차츰 깨달아 대각에 이름)는 있어야겠건만 삼독에 절어있는 속세의 무명을 어쩐다 하랴. 오늘이 석탄일이다.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땅에 오신 뜻을 새겨보자는 날이다.석탄일을 앞두고 조계종 종정 성철큰스님은 법어를 발표한바 있다.그는 시비선악의 분별심을 없앰으로써 모든사람이 더불어 잘사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고 했다.그것은 아집과 이기에서 벗어나 용서하고 베풀어 나가자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한다.그렇다.우리 모두는 보다 크고 넓게 볼수 있어야 한다.양의 수레,소의 수레,사슴의 수레를 볼 수 있게 돼야겠다.
  • 4·19묘역 3백 확장/성역화계획 확장/기념관·상징탑 등 신축

    서울시는 25일 도봉구 수유동 4·19묘역을 3배로 확장하고 지하1층 지상 2층규모의 기념관을 신축하는 등 「4·19묘역 성역화 계획」을 확정,발표했다. 이원종시장은 이날 『김영삼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4·19묘지를 민주화의 성지로 가꾸기 위해 1백50억원의 예산을 들여 현재 1만3천여평 규모의 묘역을 4만1천여평으로 확장하는 사업등을 내년 4·19기념일까지 마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시장은 『묘역을 성역과 시민이용공간으로 구분,유영봉안소를 50평에서 1백50평으로 확장해 전통한 옥양식으로 새로 짓고 봉안소를 정점으로 좌우대칭으로 균형을 이루도록 조성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시장은 4·19기념탑을 묘역 한가운데로 이전하고 기념탑앞에 분향소를 새로 마련하는 한편 1천3백20평의 묘지를 2천평으로 확장,6백50기까지 안장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또 4·19의거의 정신을 이어받고 기개를 표출할 수 있도록 상징탑을 건립하고 30평 규모의 상징문과 5백평 정도의 기념관을 짓고 기념관에는 4·19희생자들의 유품등이 전시한다. 이와함께이용공간도 1천8백여평에서 6천6백평으로 대폭 확장,4천평 규모의 광장과 차량 3백대를 주차할수 있는 1천8백평의 주차장,8백평의 연못등을 조성한다. 길이 50m 폭 6m의 진입로도 폭 12m로 넓히고 입구에는 조형탑을 만들기로 했다.
  • 매장 KAL기 유품 유족입회 발굴방침/러 정부 밝혀

    【도쿄 연합】 러시아 정부는 1983년 대한항공(KAL)기 격추사건 직후 구 소련이 수색작업을 통해 수집해 사할린주 남부해안에 묻어놓은 유품들을 유족들의 입회하에 발굴할 방침임을 일본측에 전해왔다고 고노 요헤이(하야 양평)일 관방장관이 14일 밝혔다. 고노 장관에 의하면 러시아정부는 지난 12일 모스크바 주재 일본대사관을 통해 오는 6월20일 유품을 발굴할 계획이라고 일본측에 전해왔다.
  • 청려장(외언내언)

    『청려장 힘을 삼고 남무로 내려가니/도화는 날이고 소천어 살□는□/원근에 즐기는 농가는 곳곳이셔 들린다』.조선 영조때의 가인 남파 김천택의 시조이다.풍년이 기약된 해였던 것이리라.기쁨 넘치는 농촌풍경이 손에 잡히는 듯하다. 역시 영조때의 문신 노강 조명리의 전해지는 시조 4수 가운데 하나를 읊어보자.­『청려장 더지며 합강정에 올라가니/동천명월에 물소□□이로다/어듸셔 생학선인은 날 못□자 □□니』.달밤에 술잔이라도 기울이고자 정자에 올랐던 것일까.옛선비들은 이렇게 먼길이건 가까운 길이건 청려장을 짚고 다녔다.그게 곧 명아주지팡이이다. 어느해던가,성호 이익은 퇴계 이황의 향기를 따라 도산서원을 찾았던 듯하다.「성호사설」(제17권)에「도산사」라는 글을 남겨놓고 있다.여러 유품을 돌아본 그는 『청려장 하나가 갑속에 간직되어 있는데 그 마디가 짧아서 마치 학의 무릎과 같았다』고 술회한다.학의 무릎이 어떻게 생긴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옛날의 퇴계선생도 청려장을 짚고 나들이했음을 알게 한다.하기야 음양가들이 말하는 신령스런 별 태을성도 전한의 학자 유향을 천록각으로 찾아오면서는 이 청려장을 짚었다지 않던가(유향의 습유기). 명아주는 명아주과의 1년초로서 1∼2m정도 자라고 잎은 달걀꼴인데 어릴때는 중심부에 붉은빛이 돈다.어린 순은 나물로도 먹으며 생즙은 독충에 물렸을때 쓰인다.그 줄기가 가벼우면서도 단단함으로 해서 지팡이로 만들었다.특히 이시진의 「본초강목」에 『청려장을 짚고 다니면 중풍에 안걸리고 걸린 사람도 낫는다』고 써놓음으로써 더욱더 애용하게 됐다고 할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근자에 들어 청려장은 「효도지팡이」로서 각광을 받게된다.특히 가정의 달을 맞아 김영삼대통령이 1백세 이상 노인 3백55명에게 이 청려장을 사서 선물하면서 더 알려지게 된셈이다.앞으로 농가소득 작물로도 기대되는바가 큰 터이다.
  • “국민소임 다하면 신한국 절로 올것”/김 대통령­신한국인 대화요지

    ◎낙농기계화 등 농촌에 더 큰 관심을 김영삼대통령은 6일 낮 지난 대선때 민자당이 선정했던 신한국인 20명을 청와대로 초청,점심을 함께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다음은 대화요지다. ▲김영삼대통령=이 시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통을 함께 하는 것이다.너와 내가 없이 모두 자기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면 신한국은 저절로 온다. ▲최인혁씨(56·채소농사)=농촌의 근본적 문제는 과잉생산되면 농민이 울고,과소 생산되면 도시 소비자가 울게되는 유통구조에 있다.이런 악순환을 끊는 개혁이 필요하다. ▲최병규씨(33·중소기업인)=요즘 경기회복이 빨라지는 것 같다.전자제품을 만드는데 납품업체인 삼성·아남에서 수주를 많이 해온다.수출물량이 늘고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고 종업원들도 일하자는 분위기다. ▲나상덕씨(60·여·한산세모시 기능보유자)=모시타운을 건설해서 많은 부녀자들에게 모시 짜는 법을 가르치고 싶다.최근 중국모시가 싼값으로 마구 들어와 한국모시가 애를 먹고 있다.중국 모시가 들어오지 않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김대통령=(홍성양계4H회원들에게)요즘 양계사업은 어떤가. ▲이환진씨(29·4H회원)=한꾸러미에 2천4∼5백원씩 받는데 사료값도 안된다.기계화 되면 값싸게 대량생산이 가능하다.축산기계화도 지원해달라. ▲김대통령=취임후에 농기계를 반값에 공급하고 있지 않나. ▲이씨=농민들은 대단히 좋아한다.그러나 경쟁이 심해 우리까지 차례가 안온다.하시는 김에 농촌에 더 관심을 기울여 달라.우리는 특히 양계협업화를 하려고 하는데 융자가 잘 안된다. ▲김대통령=(선인장 재배농에게)선인장은 어떤가. ▲이호상씨(38·선인장 재배농)=우리가 키우는 것이 세계제일이다.처음 선인장 재배를 시작할때 가족들이 모두 반대했지만 신념을 갖고 이 일을 했다.한 분야의 최고의 장인이 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충렬씨(34·낙농업)=내년부터 우유품질 검사제가 바뀌는데 손으로 짜는 우유는 모두 불합격될 소지가 있다.검사제도변화에 맞춰 낙농기계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융자지원을 해주었으면 한다. ▲김재의씨(89·싸리공예 1인자)=한 우물을 파면서 열심히 일하니까 마음도 편하고 건강해진다.대통령이 주장하는 땀흘린 만큼 대접받는 사회가 참으로 마음에 든다. ▲김대통령=선거때 여러분을 신한국인이라 이름지었는데 각자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여러분들이야말로 정말 신한국의 모범이다.
  • 체코에 명화 30점 소유권분쟁

    ◎공산정권 당시 수집가가 피카소작 등 기증/“강요의한 것” 딸이 국립미술관상대 반환소 민주화된 체코에서 옛 공산정권때 국가에 헌납된 예술품의 소유권을 놓고 국립미술관과 헌납자의 자손이 첨예하게 대립,법정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체코의 각 미술관과 박물관은 민주정부가 제정한 「복원및 반환법」에 따라 지난 48년 공산정권 수립과 동시에 국유화돼 그들 기관이 보유해온 수많은 개인소장 예술품을 원주인에게 되돌려주는 일을 착착 진행해 왔다.장식예술박물관의 경우 지난 한햇동안 소장품중 7백여 작품을 개인에게 반환했다.또 프라하에 소재한 국립미술관의 루보미르 슬라비세치 관장은 『30∼40년동안 보유해온 예술품을 내놓자니 매우 서운하기는 하지만 국립미술관의 보유품목이 「몰수」에 기반을 둘 수는 없다』며 정부의 반환운동에 적극 동참할 의사를 표명했다. 그동안 국립미술관의 소장품을 대상으로한 일반시민의 반환권 제기는 1백50여건에 달하는데 대부분 원주인으로서 소유권은 인정받되 작품은 장기임대 형식을 통해 국립미술관이보유하는 선에서 원만한 타협을 보았다.그러나 빈센치 크라마르라는 예술사가겸 수집가가 일괄 헌납한 총 30점의 현대회화에 관해서만은 슬라비세치 관장을 위시,국립미술관의 자세도 「반환은 물론 소유권인정 절대불가」의 철벽을 견지,결국 법정까지 비화되기에 이르렀다. 크라마르 헌납품은 한마디로 체코 국립미술관의 보물.16점의 피카소 작품과 2점의 브라크 작품을 포함한 이 일괄헌납품은 화가도 화가지만 무엇보다 1907년에 불이 붙었다가 1912년에 사그라진 「입체파」운동의 본질이 고스란히 보존된 것들이다.입체파의 활동기간은 짧았으나 현대미술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며 입체파에 집중된 컬렉션 가운데 크라마르 헌납품에 비길만한 일괄수집은 찾을 수 없다. 남다른 예술안과 상당한 재력을 갖춘 청년 크라마르는 1910년부터 2년동안 파리를 드나들면서 당시 예술품애호가들의 시선을 끌지 못했던 입체파작품을 「헐값에」 사들였다.예를 들어 1911년5월에 피카소 3점,브라크 1점,앙드레 드렝 1점 등을 단 3천3백50프랑(6백40달러)에 매입했는데 크라마르 헌납품목록에 있는 피카소 작품은 현재 1점당 수백만달러를 호가한다.이 크라마르 수집품에 대한 반환청구는 크라마르의 딸이 제기한 것으로 그녀는 아버지가 죽기 직전인 지난 60년 공산정권의 강요에 못이겨 국립미술관에 자신의 입체파 컬렉션을 인도한다는 각서를 썼을 따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크라마르의 인도및 기증 각서를 손에 쥐고 있는 국립미술관측은 크라마르의 「자의에 의한 헌납」을 뒷받침하는 여러 보충자료와 정황증거를 댈 수 있다며 딸의 반환요구를 일축해버렸다.수천만달러에 이르는 값비싼 그림의 소유권은 법정에서 가려질 수 밖에 없게 됐는데 재판은 이달 중순 시작됐으나 소송 성격상 판결까지는 장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 임정유적과 중국의 장삿속/최두삼 북경특파원(오늘의 눈)

    상해에서 13일 거행된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 복원 준공식은 우리에겐 조상의 얼이 새겨진 유적지를 되찾은듯한 감격을 안겨주었다.하지만 중국인들에게는 짭짤한 돈벌이 수단으로만 활용되고 있을뿐이어서 뒷맛이 씁쓸했다.꼭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받는다』는 속담이 잘 어울리는 경우였다.공연무대만 제공했을뿐 중국인들은 손가락 하나 건드리지 않고 뭉칫돈을 만지게 됐기 때문이다. 이곳이 유적지가 될수밖에 없었던 것은 우리 선조들이 흘린 많은 피와 땀 덕분이었다.1926년부터 32년까지 7년간 임정청사로 사용되는 동안 이봉창의사의 일왕행렬 폭탄투척과 윤봉길의사의 강구공원내 일왕생일기념행사장 폭탄투척과 같은 각종 의거가 모의되는등 이곳은 해외독립운동의 근거지였다. 중국측은 당초 이곳을 헐고 아파트를 새로 지을 계획이었다.그런걸 삼성그룹이 말린뒤 30만달러를 들여 이곳에 살던 7가구를 이주시키고 건물구조를 옛 모습대로 복원했는가 하면 5천5백만원을 들여 그동안 한국에서 소장해오던 임정관련 유품 1백여점을 전시해주기까지 한것이다. 이 때문에 상해시당국은 앞으로 두고두고 입장료와 성금이란 명목으로 한국인의 주머니를 믿게됐다.그러나 한국관람객들이 무슨 면죄부라도 얻을듯이 듬뿍듬뿍 집어줄게 분명한 그 많은 성금은 단지 중국인들의 배만 부르게 해줄 뿐이다.삼성측은 이곳 당국자들과의 협상과정에서 입장료와 성금수입의 절반은 별도로 적립해뒀다가 다른 한국유적지 보호에 사용할것을 끈질기게 요구했으나 끝내 양보를 얻어내지 못했다고 한다. 보호해야할 다른 유적지가 있거든 한국인 너희들이 돈을 내서 또 복원해라,그러면 우리는 앉아서 돈이나 벌겠다는 식이다. 중국인들은 요즘 한국 유물·유적 장사를 시작한듯한 느낌을 갖게할 때가 많다.상해뿐아니라 40년에 사용했던 중경임정청사도 상해보다 6배나 많은 1백74만달러에 복원키로 한국정부와 최근 합의했다는 소식이 들린다.동북3성 일대에선 해외문화재로 분류해 창고속에 쌓아둔 한국관련 유물들을 보여주면서 사진 한장 찍는데 수백달러씩 요구하기도한다. 한국인은 중국인의 봉인가.조상들이 피땀흘려「재주」도 넘어주고 그 후손들은 복구비에 관람료,성금까지 뿌려 중국인들의 호주머니를 채워주고 있으니 말이다.
  • 안전무시 폭파공사의 뒤끝/이석우 사회부기자(현장)

    ◎지반 연약… 구조작업도 애먹어 『23년간의 사고처리반 생활가운데 이처럼 처참한 사고는 처음입니다.사망자 대부분은 탈선의 충격으로 종이를 구겨놓은듯 찌그러진 열차 철판에 끼여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고 부상자들도 피투성이로 찌그러진 철판틈에서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사고가 난지 21시간만인 29일 하오2시50분무렵,승객79명의 목숨을 앗아간 부산 북구 덕천2가의 사고지점. 7∼8세가량된 남자어린이의 신체일부를 찾아내고 발전차안에 끼인 50대 승무원의 사체를 철판을 뜯어낸뒤 간신히 끌어낸 것을 끝으로 인명구조작업을 마친 한국해양구조대 구본정대장(49)과 129인명구조요원들은 피범벅이 된 희생자들의 유품을 차에 실으면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129응급구조대의 양충효씨(33)도 『웬만한 사고모습엔 이골이 나 눈하나 깜빡않는 사고처리·인명구조대원들도 아이들과 부녀자들이 철판에 짓이겨진채 떼죽음당한 모습에는 제대로 사고처리를 진행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한숨짓는 이들 주위에선 초대형 기중기등 각종 중장비를 동원한 철도청직원들이 뚝 잘려 나간듯 30m나 붕괴돼 버린 철로 양끝에서 지난밤에 이어 또다시 차체가 절반 가량으로 찌그러든 객차와 활로 밑으로 곤두박질쳐 있는 기관차를 해체,이동시키는 작업을 한창 진행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암반이라고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대부분 토사로 이루어져 있는 철로의 불안정한 지반때문에 적지 않게 애를 먹고 있었다. 『갑자기 지반이 꺼지면서 열차가 전복되는 것을 목격했다』는 이 지역주민인 윤정자씨(35·여·부산시 북구 덕천2동 331의1)는 『이 부근은 상습침수지역에다가 1년이면 수차례에 걸쳐 철로보수공사를 벌일 정도로 붕괴등의 위험이 높은 곳인데도 불구하고 적절한 안전대책없이 폭파작업을 계속하며 철로의 지반을 관통하는 공사를 진행할 수 있는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이 억울하고 비참한 죽음에 대한 책임소재를 꼭 가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너진 철로지반밑에 처박힌 기관차와 객차에 대한 제거작업은 이날 하오 늦게까지 진행됐고 부산시 20개병원에 분산돼 있는 사상자들을 둘러싸고 유가족과 가족들의 오열은 더 심해져만 가는것 같았다.
  • 성균관/침체유고 활성화 나섰다/올 석전대제서 처음 대국민 성어발표

    ◎문묘 매일 개방·성현 박물관설립 계획/각종기구도 대폭개편,「생활유교」 탈바꿈 시도 유교가 전통문화 전승및 보존의 본산으로 거듭태어날 전망이다.이는 「박물관유교」로 불릴만큼 침체된 유교의 위상을 되찾아 「생활유교」로 탈바꿈 하려는 움직임으로 나타났다.이에따라 성균관을 주축으로한 유교는 사회적으로 절실히 요구되는 도덕성회복등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이같은 변화의 한 단면은 27일 열린 금년도(공기25 44년)춘기 석전대제.먼저 김경수성균관장 명의로 석전대제에 즈음한 대국민 성어가 처음으로 발표됐다.이날 김성균관장은 성어에서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재물과 자리를 탐하면 온나라 국민이 수치를 모르게 될것』이라고 말하고 『덕성을 길러 각기 주어진 자리에서 예의와 성심을 다하면 국민들이 스스로 불의를 부끄러워 하여 나라가 바르게 될수있다』고 강조했다.그러면서 『국가기강의 벼리는 윗사람의 겸손과 청빈으로부터 바로 세워지는 것』임을 상기시켰다. 성균관은 또 대성전 개방을 검토,그동안 초하루 보름 두차례만 일반에 공개하던 문묘를 매일 개방키로 했다.일반인들이 언제라도 성현들을 찾아 예를 올릴수 있게 함으로써 생활유교로 정착시킨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것이다.이와함께 과거 중국성현들을 모시던 대성전 좌우측의 동무와 서무 건물을 현재 성균관에 모신 우리민족 성현 18분에 대한 박물관으로 개조키로 하고 그 유물및 유품들을 확보키 위해 후손들과 교섭을 진행중이다. 성균관은 이어 기구도 대폭 개편,젊고 유능한 인재들을 종무에 투입함으로써 생활유교와 함께 「젊은유교」로의 변화도 모색하고 있다.이를 위해 기획실·출판부·유교교육원·사업단등의 기구를 신설 또는 재편해,4월중에 열리는 전국유림총회에서 승인을 구할 예정이다.특히 출판부는 이미 업무를 개시,석전일을 기해 「청소년의 생활예절」「우리의 생활예절」등 두편의 생활예절 서적을 펴냈으며 앞으로 문서를 통한 생활유교의 전파에 힘쓸 계획이다. 이러한 일련의 유교중흥사업 일환으로 성균관은 공자의 75대직손 공건씨(36)를 이번 석전대제에 초청했다.「공자와 경영학」 「공자와 인간학」등 저술을 통해 공자사상의 현대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공건씨의 기념강연회도 열렸다.그는 「현대산업사회와 공자학」을 주제로한 강연을 통해 『공자의 도의사상을 바탕으로한 인본주의 윤리야말로 현대산업사회에서 가장 중요시 되어야할 규범』이라며 『공자사상은 죽은 사상이 아니라 오늘날 인간생활에 반드시 적용되어야할 살아있는 사상』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날 석전대제에는 전국 향교대표및 지방유림 1천여명이 올라오는등 모두 2천5백명이 참석한 사상최대 규모로 치러져 눈길을 끌었다.석전대제는 봄 가을 두차례씩 서울 성균관 대성전과 전국 2백32개 향교에서 동시에 봉안되는 유림 최대의 행사로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유일하게 그 원형이 보존돼 있어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돼 있기도 하다.
  • KAL희생자 시신 구소당국 인양막아/당시 잠수부 증언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지난 83년 사할린상공에서 소련공군기에 격추된 대한항공(KAL)007기 탑승객들의 유해·유품수거작업에 참여했던 소련잠수부들은 사건 당시 소련당국으로부터 시신은 일체 인양해서는 안된다는 지시를 받았다고 11일 증언했다. 이날 모스크바에서 열린 KAL기사건관련 한·미·일·캐나다 유족대표회의에 증인으로 나온 잠수부 3명은 그들이 당시 무인 간첩비행기라는 말만 듣고 인양작업에 들어갔을 때 숨진 승객의 잘라진 손목 등 수많은 시신조각을 목격했으나 블랙박스와 전자장치외에는 어떠한 것도 회수해서는 안된다는 소련당국의 명령에 따라 시신을 그대로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고 증언했다고 회의에 참석한 한국유족대표들이 전했다.
  • KAL기 가해­피해자 첫 대좌/이기동 모스크바특파원(오늘의 눈)

    11일 모스크바에서는 러시아당국의 주선으로 대한항공(KAL)007기 탑승희생자 유가족들과 007기격추사건에 관련된 옛 소련공군기 조종사,수색잠수부들과의 만남이 있었다.민간항공기의 격추라는 전대미문의 비극이 일어난지 꼭10년만에 「가해자」쪽과 「피해자」쪽이 처음으로 직접 만난 셈이다. 해저의 기체잔해 주변에 흩어진 희생자들의 유해와 유품들을 목격한 수색잠수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유가족들은 북받혀오르는 슬픔을 못이겨 눈들이 벌겋게 충혈되며 흐느꼈다. 한 잠수부도 자신이 목격한 악몽이 되살아나는지 한손으로 눈을 가리고 함께 울먹였다. 하지만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탓인지 이들이 만난 외무부 영빈관 회의장 안은 적대감이나 분노와는 거리가 먼,비교적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러시아쪽 인사들은 앞머리에 유가족들에게 사과와 위로의 뜻을 밝혔고 유가족들도 이 모임을 주선해준 러시아당국에 사의를 표했다. 그러면서도 이 자리에 임하는 러시아당국과 유가족들의 입장에는 적지않은 차이가 여실히 드러나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유가족들은 유해 및 유품의 인도와 위령비의 건립등 인도적인 문제를 주로 거론했고 『뼈라도 좋으니 유해를 수습해다가 모국에 묻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말들을 많이 했다.그러나 러시아쪽은 자기들이 보관하고있는 유해는 전혀없다는 입장으로 일관했다.유해와 유품을 소각,매장했다는 최근의 언론의 보도도 모두 부인했다.한 수색잠수부가 증언도중 시신을 목격한 사실과 그 가운데 일부를 유품과 함께 수거,소각·매장한 사실을 얼핏 발설하자 누군가가 옆에서 이를 제지하고 발언내용을 정정하기까지 했다. 러시아쪽으로서는 그것이 앞으로의 배상문제등과 연관돼있어 기밀유지를 필요로하는 부분이 당연히 있을 것이다.그러나 문제해결의 최선의 길은 어디까지나 진실을 밝히는데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한 유가족은 『10년이 지났다. 이제는 재한줌이라도 고국땅에 가져다 묻고 이 일을 잊고싶다.죽은이의 유해에 대해 이렇고저렇고 말만 많은것은 더이상 괴로워 못듣겠다』고 했다. 유해와 유품의 재수색 및 반환에 보다 전향적인 입장을 가져주기를러시아당국에 당부하고 싶다.
  • KAL기 격추 희생자/유해반환·배상 논의/10일 모스크바서

    KAL 007기 격추사건 관련문제들을 협의할 제2차 한·미·일·러 4개국 회의가 10·11일 모스크바에서 열린다. 이번 회의에서는 추모비 건립,추모제 거행,유품·유해 반환및 배상문제등 희생자 유족들을 위한 인도적 문제가 주로 토의될 예정이다.
  • 74돌 기념일에 찾아본 박태현옹

    ◎올해도 부르는 “기미년 3월1일 정오…/「3·1절 노래」의 작곡자를 아십니까/이완용암살기도 형의 의거 악상으로/독립정신 표현… 48년 작곡공모에 당선/선열의 항일정신 퇴색이 쓸쓸한 86세 노년 혹독한 민족수난사의 하나로 기록된 일제치하에서 우리 민족의 정기를 유감없이 보여준 3·1운동이 1일로 74주년을 맞았다. 해마다 이날이 되면 우리는 3·1운동 주역들의 넋을 기리는 기념식을 거행하고 3·1절 노래를 부르며 다시금 그들의 민족정기를 되새기는 시간을 갖는다. 그러나 매년 갖는 3·1절기념식에서 불려지는 3·1절노래를 작곡한 사람이 박태현옹(86)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이날이 되면 남다른 감회에 젖는다.박옹은 단지 우리 음악사에서 동요작곡가로 한두어줄로만 소개돼 있을 따름이다. 누가 일부러 그를 홀대하려고 한 것은 아닐지라도 민족의 수난과 굳굳한 정신을 애잔하면서도 강하게 표현한 이 노래를 만든 박옹은 우리 기억속에 흐려진 채 성남의 한 아파트에서 쓸쓸히 다시 맞은 3·1절에 독립운동을 하다 숨진 형태은씨를 생각하며 회한에 잠긴다. 그가 노후에 거처하고 있는 곳은 성남시 하대원동의 13평짜리 주공아파트 7동 202호. 그는 최근 서울아카데미 앙상블의 총감독으로 일하고 있지만 고령으로 자주 나가지는 않으며 주말 교회에 참석하는 것이 고작이다. 부인과는 6·25때 헤어지고 2남5녀의 자식들은 모두 성장해 외국에서 살고 있어 혼자 쓸쓸히 지내는 그를 찾은 기자에게 그는 덥썩 두손을 잡으며 지나간 세월을 떠올린다. 그가 3·1절노래를 작곡하게된 계기는 48년 정부수립직후 이범석초대국무총리가 3·1정신을 기리기위해 당시 국학대학원장이었던 위당 정인보선생이 쓴 노래말에 붙일 곡을 공모하자 이에 응모,당선된 것. 그는 『훌륭한 작곡가들이 많아 응모할 생각은 없이 3·1운동의 의미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대로 작곡해 놓았다가 우연히 내놓은 것이 당선됐다』며 『이 노래가 살아 숨쉬는 독립정신을 표현할지는 자신 없었다』고 술회한다. 평양의 한 미곡상의 2남5녀 중 6째로 태어난 그는 숭실중학교를 거쳐 숭실전문에 진학,영문학을 공부하다 중학교선배이며 절친한 이웃 형인 안익태선생의 첼로연주를 듣고 감명을 받아 음악가의 길로 들어섰다. 1936년 일본 도쿄음악학원에서 4년동안 첼로를 공부하고 귀국한 그는 한때 OK레코드음반회사에서 자신이 작곡한 「누가 누가 잠자나」「산바람 강바람」등 우리 귀에 익은 동요레코드도 출반했다. 이어 38년 이후 서울의 광신상고·경성고보등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지휘자로 일하던 그는 해방과 함께 서울중앙방송국에 입사,음악계장·편성계장으로 6·25때까지 근무하면서 「나팔꽃」을 비롯한 창작동요보급에 앞장섰다. 민족비극의 6·25와중에서는 애국심을 일깨우기 위해 「태극기」등 전시동요도 작곡하며 이은상·윤이상씨등과 군위문공연으로 전선을 누비기도 했다.그는 55년 김동진·이흥렬·나운영 등과 함께 한국작곡가협회를 설립,전후의 메마른 우리사회에 노래로 희망을 불어넣는등 활발한 활동을 폈지만 후세사가들로부터 이렇다할 평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가 일제에 의해 「좋지않은 노래」로 분류됐던 동요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이재명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렀던 형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재명사건은 1909년 12월22일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마치고 나오던 민족반역자 이완용을 암살하려다 붙잡힌 사건으로 그의 형도 이때문에 7년형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했다가 얼마후 후유증으로 병사했다. 그는 『요즘은 선열들이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혹독한 일제에 맞서 싸우던 정신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며 형님의 마지막 유품이라 할 사진 한장을 들고 다시 회한에 잠긴다.
  • 문화재 밀매(외언내언)

    사가가 망하거나 가난에 쪼들리게되면 집안의 값나가는 가보나 귀중품부터 도둑맞거나 팔려가게 되는것을 보게된다.고대이집트나 그리스 인도 중국 남미등의 경우를 들필요도 없을것이다.구한말 가난하던 시절 그리고 망국의 일제시대를 통해 우리스스로 얼마나 뼈저리게 경험한 일인가. 비슷한 조짐의 말기현상이 북한에서 일고 있는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떨칠수가없다.굶주림에 지친 주민들의 문화재도굴이 성행하고 있으며 중국밀매인들이 사들이며 부추기고 있을 뿐아니라 중국으로 밀반출해 비싼값으로 팔아넘기고 있다는 것이다.그정도도 큰일인 것을 단속하고 막아야할 지도자가 방조내지는 앞장서고 있다니 어이가 없다. 사실이 아니기를 비는 마음이지만 보도에 따르면 김정일의 직접지휘로 외화벌이차원서 북한유물들이 중국으로 밀반출되어 외국인 특히 일인수집가들 손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밀반출은 중국왕래 당정간부나 상인들이 맡고 판매는 북경의 북한식당 김강원이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지금도 금강원엔 국보급등 고대자기·서화등 5백여점이 보관돼 있으며 60만달러의 가격으로 일인수집가와 상담이 진행중이라는 것이다. 얼마나 급하면 조상의 얼이 담긴 문화재까지 팔겠다고 나섰을까 동정도 간다.하지만 북한문화재는 북한것인 동시에 우리것이기도 하다.우리도 지켜야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같은 조상의 유품인 것이다.그것을 외국인 그것도 하필이면 일인에게 팔려한다니 어이가 없다. 문화재매출은 있어서 안될 일이지만 북한의 경우 어쩔수 없는 일이라면 적어도 외국인 특히 일인손으로 넘어가게 두어선 안될 것이다.문화재는 보호관리능력이 있는자가 맡아야 한다는 말도 있다.가난하던시절 떠났던 문화재가 지금은 돌아오는 역류현상도 드물지 않다.파산의 북한이 어쩔수 없다면 그문화재의 일본행을 막는일은 우리의 책임아닌가.
  • 「제주 민속문학 변용」 특집마련

    ◎제주문학 22집 출간… 김지원의 시 등 담아 남도 제주도 문인들의 정성이 담긴 「제주문학」제22집이 나왔다.「제주민속문학의 현대문학적 변용」이라는 특집을 마련해 제주설화·무가·민요·동요등이 현대문학에 어떤 형태로 변용되었는가를 다뤘다. 소설가 오성찬씨의 「제주시인 1호 김지원」은 19 20년대 중반 「조선문단」을 통해 중앙문단에 데뷔한 김지원의 생애와 작품들에 관한 글들을 발굴,게재했다.그밖에 오경훈 정순희씨의 단편소설과 강용준의 희곡이 실렸다.지난 연말 「그 짝글레기의 유품」으로 제9회 요산문학상을 수상한 오성찬씨의 수상소감과 제2회 제주신인문학상 입상자들의 입상소감등 기성·신인 문인들의 작품이 골고루 실려 다양한 읽을거리를 제공한다.「제주문학」은 지난해부터 매년 2차례씩 발간되고 있다.
  • 공주 중호마을 반촌 탐방(한국정신의 원류를 찾는다:3)

    ◎민족 정체성 확립을 위한 캠페인/“기개가 첫 덕목” 3백년 이어온 선비정신/효종때 거유 이유태선생 후손 모여살아/“학문·덕 갖춘뒤도 때아니면 불출사” 일관/12대 종손 등 일제때도 한학공부… “학교교육보다 도리·예절이 중요” ○노인들은 상투 틀고 계룡산 산자락이 북으로 금강에 치달아 곰나루를 향해 넉넉하면서도 온화하게 팔을 벌린곳에 자리잡은 충남 공주시 상왕동 중호마을의 용문서원.등용의 옛마을로 계룡의 서기를 이어받은 우리의 선비정신이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는 곳이다. 조선 중기 당대의 거유로 명성을 높였던 초려 이유태(1607∼1684년)의 후손들이 오순도순 마을을 이룬지 3백년.반촌의 긍지를 이어온 경주 이씨 집성촌으로 20여가구가 모여 산다.공주시내가 지척이지만 아직도 노인들은 대부분 상투를 틀고 있으며 철저하게 예의범절을 지키면서 선비의 기개를 가정교육 최고의 덕목으로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초려정신의 핵심은 선비로서 불출사의 기개를 강조하는데 있다.선비는 우선 학문과 덕식을 갖추고 그 다음일단 나가면 때를 좌지우지 할수있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고향에 돌아와 은거해야 한다는 정신이다.이를테면 진퇴를 분명히 할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그는 이를 몸소 실천,인효현소종 4대왕에 걸쳐 능참봉부터 사조참판·대사헌까지 모두 39가지의 벼슬이 주어졌지만 실제로 관직생활을 한것은 28세때 5개월과 30세때 6개월이 고작이었다. 그같이 짧은 관직생활에도 불구,그는 학문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당시 정계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경세가로서 당대 호서산림 오현의 한사람으로 추앙받았다.그는 금산 노동 태생으로 18세에 사계 김장생의 문하에 들어가 장년이 된후에는 사계의 아들 집과 교류하며 그들 부자로부터 예학의 법통을 이어받았으며 치국경세에 있어서는 율곡이이를 숭상했다.그에 학문세계를 율사연원으로 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초려는 병자호란후에는 덕유산중에 은거,모든 벼슬을 사양하였다.그후 효종이 북벌의 큰뜻을 품고 산림학자들을 불러모으자 결연히 상경하였다.그러나 조정은 시배들의 반목과 질시속에 온갖 주의주장만분분할뿐이었고 또한 청나라 사신의 위세는 극에 달해 있었다.그같은 분위기에서 친청파의 척결을 알리는 그의 논소는 조정을 소용돌이로 몰아넣었고 마침내 그는 다시 낙향했다. ○대사헌벼슬 물리쳐 그후 효종이 말년에 다시 밀지로 초려를 부르니 그는 북벌을 위한 구체적 국정개혁안으로 2만여언의 장문상소인 「만언봉사를 거의 완성해 가고 있을 때였다.그러나 그해(1960년) 효종은 승하하고 뒤이어 즉위한 현종은 왕명으로 만언공사를 제출케 했다.그 내용은 위민정치를 근간으로한 군사및 내정개혁사상을 삼고있다.그후에도 현종은 초려의 경륜을 사기 위해 벼슬을 높여 불렀으며 숙종때는 대사헌에 제수됐지만 불출사의 뜻은 완강했다.『나의 뜻이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 벼슬길 보다는 땅을 일구며 사는 것이 옳다』는 것이 그의 공직관이었던 것이다. 초려의 강직한 정신은 오늘날 후손들에까지 그대로 전수돼왔다.노인들은 상투등 과거의 관습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가운데 후손들에게는 현대식 학교교육도 애써 가르치고 있다.단지 일제때 일본식교육은시키지 않는다는 고집으로 종손인 12대손 정우씨(52)와 그 또래의 집안 사람들은 학교에 가지 못했다.그는 『우리 형제 다섯중 위로 셋은 학교를 가지 못했고 비슷한 나이의 사촌이나 육촌형제 가운데도 학교를 간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회상했다.대신 그는 15세때 대학을 떼는등 한학을 공부했으며 초려의 책을 비롯,집에 보관중인 3천여권의 서책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있다. 자식들에게는 초려가 남긴 유일한 친필족자글씨인 「징분항선 복례」(분한 생각을 경계하고,나쁜것은 고쳐 착하게 하고,예를 따라 좇으라)를 가훈으로 가르치며 학교공부를 시켰다.학교공부중에도 사서는 반드시 익히도록 했는데 이같은 집안 분위기에서 큰아들 상익씨(30)는 철학교수로,둘째아들 상욱씨(28)는 한문교사로 후학을 가르치는 교단에서게 됐다. 공주향교의 전교를 지낸 정우씨의 당숙 종언씨(70)도 이웃에 산다.그가 해석하는 오늘날 선비정신의 의미는 이러했다. 『선비가 박력이 약하고 경제능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완고하고 고집불통으로 비쳐지는 것은 잘못입니다.현대식 교육을 받기는 받되 인간의 도리를 먼저 알아야 하고 잘살아야 하되 나혼자만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그것은 이웃과 국가가 함께 잘살아야 한다는 인간의 행동철학을 먼저 배우자는 것으로 요약될 수도 있습니다.부모나 국가지도자는 이신교자지종(몸으로 행해 가르치는 사람을 따른다)으로 자식과 백성을 가르쳐야 하고 숭조사상의 강조도 교육의 한 방편입니다.선비는 부자가 돼도 부자티를 안내고 빈궁해도 빈궁한 티를 안내야 하는 것이지요』 용문서원은 이같은 초려의 선비정신을 구현하는 도장으로 오늘날 활용되고 있다.제사가 올려지는 사우인 명덕사를 제외하고는 일반에게 공개돼있다.강당인 중화당(17평)과 재실인 존성재(〃)는 초려학연구를 위해 강의실과 침실로 제공된다.연구활동을 돕기위해 현대식 입식 부엌도 설치돼 있고 이동식 화장실,난방도 완비됐다. ○내사책 등 유품 전시 또 유물전시관인 징원당(16평)에는 초려의 저서와 함께 임금이 내린 내사책,이씨 가문의 재산분금록,9대손 성암철영의 항일옥중일기등과 초려의 상아호패와 제사날을 기록해 놓는 기일첩,과거문제 요약집인 강경첨통등 많은 유품들도 전시,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용문서원 건립및 유지 보수를 맡고 있는 사단법인 이초로 기념사업회의 이종철회장(73·전공주교대회장)은 올해의 역점사업으로 장서각 건립을 꼽고 있다.현재 3천건에 달하는 책들이 그대로 창고에 쌓여있기 때문에 이의 분류,정리가 시급하기 때문이다.이를 위한 1억원의 충남도예산중 4천만원의 삭감으로 나머지 재원마련이 가장 큰 현안이기도 하다.국역작업등 서둘러야할 과제는 많지만 현재 1백66명의 회원들이 연회비 5천원씩 내는것으로 충당하는 기념사업회의 예산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회장은 『많은 학자들이 초려사상에 대해 자발적인 관심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그러면서 『지난 연말 부산대에서 다섯명의 교수·학생들이 와서 나흘동안 목록작업을 하고 갔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어려운 형편에 있으면서도 기념사업회측은 연구를 위해 오는 학생들에게 시설을 무료료 사용케하고 있다.3년째 겨울이면4,5일씩 초려학 연구를 위해 이 서원을 찾고 있는 20여명의 한남대 대학원생들이 이달 중순 올 것이라는 전갈을 받고 중화당과 존성재는 벌써 깨끗이 치워 놓았다.형편이 넉넉하다면 그들이 여유있게 공부할 수 있도록 식사까지 제공했으면 좋겠지만 형편상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장손 정우씨의 마음을 늘 안타깝게 하고 있다. ◎「만언대사」 상소한 당대경세가/후손들이 서원열어 초려정신 대이어/박성수 정신문화연구원 교수 조선시대 최대의 국란,병자호란을 만난 것이 1636년(인조14년) 초려 이유태가 29세 되던 해였다.임진왜적이 물러나 대위국교가 재개된지 겨우 30년,또 다시 북쪽의 외적이 몰려와서 나라 안이 쑥밭이 되고 국왕이 삼전도에 나아가 수모를 당하는 그런 역사를 만나게 되었다.국론은 크게 양분되고 당쟁의 고질병이 온 몸을 덮치는 그러한 시대이기도 하였다.치국경세가 그 어느때보다도 시급한 때에 초려는 평소 품었던 뜻을 만언소라는 글로서 국왕에게 구민·구국책을 건의하였다. 그는 이 상소문에서먼저 농촌경제를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농촌을 떠난 농민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여 황폐화된 토지를 일구게 하여야 오늘의 정치혼란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제의하고 고른 세제의 확립과 면세특권층의 일소를 역석하였다.또 농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게 하기 위해 향약을 실시하여 서로 돕고 사는 사회를 만들고 오가작통으로 범죄없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교육제도의 일대쇄신을 주장하여 양반의 자제들만 교육하는 제도를 고쳐서 모든 양인의 자제를 학문기관에 보내게 하여 그 능력에 따라 직업과 신분을 선택하도록 하자는 획기적인 제언을 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고루한 지도층은 자신의 권익만을 생각하고 그의 개혁안을 묵살하였다.묵살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를 탄핵하여 유배하고 말았다.이 유태는 그 뒤 스스로 초가집(초려)이라는 자신의 호와 같이 모든 관직(이조참판·요즘의 내무차관직)을 마다하고 향리에 웅거하여 나가지 않았다.그 유명한 초려의 불출사 선비정신이 여기 있는 것이다. 그가 남긴 「초려집」 26권은 이유태의 선비정신을 담은 귀중한 문화유산이며 오늘에 되살려야할 국민정신문화이다.다행히 최근 충남 공주 향리에 그 후손들이 용문서원을 세워 자제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니 외래문화에 질식할 것도 같은 오늘의 세대에 이보다 더 참신한 청량제는 없다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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