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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죄판결 비웃는 ‘짝퉁 세녹스’] 주택가 방문 판매·전단지 버젓이

    [유죄판결 비웃는 ‘짝퉁 세녹스’] 주택가 방문 판매·전단지 버젓이

    대법원이 ‘세녹스’ 유죄 판결을 내린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유사(짝퉁·가짜)휘발유 판매가 오히려 더 은밀·교묘해지고 있다.‘돈’이 되다보니 ‘목’좋은 곳은 조폭들이 관여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경찰과 정부의 합동단속반과 함께 확인한 유사휘발유 판매 점포는 도심 주택가로 깊숙이 파고들고 있었다. 판매 수법도 점포 직접 주유에서 예약·방문 판매, 전단지 살포 등으로 한층 다양했다. 휘발유보다 폭발성과 가연성이 높은 유사휘발유의 주택가 진입은 대형 화재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더해 주고 있다. 서울신문은 지난 16일 용인경찰서와 산업자원부 산하 한국석유품질관리원 기동검사팀과 함께 용인 일대의 유사휘발유 판매 단속에 동행, 취재했다. 용인 곳곳이 유사휘발유 점포들로 넘쳐났으며, 이런 현상이 비단 용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국적이라는 점에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 2월16일 오전 10시 기동검사팀은 용인 출발에 앞서 기자에게 신고 접수된 유사휘발유 업소 40여곳의 리스트를 보여주며 “오늘 단속할 대상에는 주택가도 상당히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손우현 한국석유품질관리원 기동검사팀장은 “확인된 것으로만 서울과 인천, 경기남부에 무려 750여곳의 유사휘발유 점포가 활개를 치고 있다.”면서 “단속을 하더라도 대부분 벌금형에 그쳐 영업을 계속하는 점포가 대다수”라고 밝혔다. 단속에 동행한 조준현 교통문화운동본부 감시단장은 “요즘 주택가에 뿌려지는 유사휘발유 판매 명함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 2월16일 오후 1시30분 합동단속반은 주택가 유사휘발유 판매처로 알려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의 한 컴퓨터 가게를 급습했다. 점심을 먹던 가게 주인은 당황스러워 허둥지둥댔다. 그 사이 단속반은 중간 저장창고를 찾기 위해 주변 창고와 차량들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가게 30m 전방의 한 봉고트럭에서‘말통(유사휘발유를 담은 용기·18∼20ℓ)’ 110여개가 발견됐다. 가게 안에서도 10여개, 건물 뒤 창고에서도 말통 20여개를 찾아냈다. “잡아들이려면 다 잡아들여야지. 왜 이곳만 잡아. 용인시에 (유사휘발유 점포가)이곳만 있어.100곳도 넘는데, 왜 누구 한 사람만 잡아들여.”라는 거센 고함 소리가 들렸다. 가게 주인인 유모씨는 “(유사휘발유 판매를)시작한 지 사흘밖에 안 됐어요. 한번만 봐주세요.”라고 계속 울먹이며 통사정을 했다. 유경선 지능범죄수사 1팀장은 “이 점포는 몇번 단속을 시도하려다 실패했던 곳”이라며 “다세대 건물과 상가가 밀집한 지역에서 유사휘발유 판매나 저장은 항상 폭발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어 자칫 담배꽁초 하나가 대형 화재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고 가압류를 지시했다. ●휘발유 소비량의 10%가 ‘짝퉁’ 석유품질관리원이 지난해 단속한 비석유사업자(노상 판매)의 유사휘발유 적발 건수는 모두 6515건으로 전년(3837건)보다 69.8%나 늘었다. 반면 석유사업자의 유사휘발유 적발 실적은 127건으로 전년(213건)보다 40%가량 감소했다. 대한석유협회가 추정한 지난해 유사휘발유 국내 유통량은 625만 9000배럴로 이는 전체 휘발유 소비량의 10.5%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휘발유 세금 탈루액도 무려 8700억원에 이른다. 용인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유죄판결 비웃는 ‘짝퉁 세녹스’] 月 1000만원 수익 목 좋은곳 조폭몫

    “좀 봐줘요. 지난번에도 벌금 300만원이나 냈는데, 또 얼마나 (시간이)됐다고….” 유사휘발유 판매로 단속반에 세번째 걸린 지모(37)씨는 “불법이고 해서, 이젠 남은 물건(말통 8개)만 팔고 진짜 손을 떼려고 했다.”며 거듭 선처를 요청했다. 정부의 거듭된 단속에도 불구하고 유사휘발유 판매가 왜 뿌리 뽑히지 않을까. 오히려 기업형으로 확산되는 배경은 무엇일까.●창업비용은 소자본, 수입은 짭짤 우선 ‘돈’이 된다. 정길형 석유품질관리원 전략기획팀장은 “장사가 잘되는 곳은 한달에 1000만원 정도 벌고, 안 되더라도 300만∼500만원의 수입은 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자유로 일대나 일부 주택가엔 이미 조폭들이 둥지를 텄다. 심지어 입지 조건에 따라 ‘프리미엄’을 뜻하는 자릿세도 있다.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한다.하종한 전략기획팀 과장은 “장사가 잘되는 곳은 아침, 낮, 저녁 등 3교대로 움직인다.”면서 “보통 이런 곳은 생계형이라기보다 조폭들이 장악한 기업형 업소”라고 했다. 유사휘발유 말통(18ℓ 기준) 1개의 가격은 1만 7000∼1만 9000원 수준. 판매업자들은 개당 3000∼5000원 정도 이문을 남긴다. 하루 100통을 팔면 30만∼50만원을 버는 셈이다. 시설 비용이나 특별한 기술이 필요치 않아 그야말로 손쉽게 벌 수 있다는 점에서 ‘유사휘발유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다.●철저한 점조직…신분 노출 없어 강력한 처벌 규정(5년 이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이 있음에도 불구, 적발되면 대부분 생계형 범죄로 약식 기소된다. 초범은 200만원 이하, 재범 이상은 300만∼500만원의 벌금형을 보통 받는다. 이 때문에 적발되면 ‘재수없게 걸렸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인식이다.신성철 석유품질관리원 검사처장은 “단순 판매를 하더라도 3회 이상 적발 시에는 징역형 등 무거운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용자 처벌이 사실상 없는 것도 근절을 어렵게 한다. 대기환경보존법에 사용자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있지만 거의 사문화됐다. 또 유사휘발유 판매망의 점조직화 역시 단속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점포 주인 대부분이 도매상만 알고 있으며, 물건도 밤에 약속된 장소로 배달된다. 연락은 모두 ‘대포폰(다른 사람의 명의를 도용한 휴대전화)’을 이용하는 탓에 신분 노출은 거의 없다. 경찰 관계자는 “유사휘발유 제조 공장을 덮치려면 최소 2∼3개월은 미행을 해야 하는데 그런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안익태 미공개 자필악보 발견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1906∼1965) 선생이 작곡한 교향시 ‘마요르카’와 ‘포르멘토르의 로피´ 자필 악보가 발견됐다. 이 두 곡은 그동안 악보없이 제목만 알려졌던 작품으로, 지난해 스페인에 살고 있는 유족들이 안익태기념재단에 기증한 유품을 정리하던 과정에서 나왔다. 두 곡은 선생이 40대 이후 정착한 스페인 마요르카 섬의 아름다운 풍광을 소재로 작곡한 교향시다.‘마요르카’의 악보에는 ‘피날레, 교향시 마요르카, 안익태’라고 적혀 있고,‘포르멘토르의 로피’ 악보에는 작품 제목과 서명, 날짜(1951년 8월22일) 외에 ‘존경과 애정, 기쁨을 다해 이 곡을 썼으며, 레오나르 세르베라(?)에게 바친다.’는 말이 스페인어로 씌어져 있다. 이와 관련, 허영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음악원)는 “그동안 제목만 알려져 있던 안익태 선생 작품의 자필 악보가 이번에 발견됨으로써 안익태 작품세계에 대한 연구는 한층 본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두 편 외에 악보가 남아 있는 안익태 선생의 작품은 ‘애국가’ 합창이 포함된 대표작 ‘한국 환상곡’을 비롯해 교향시 ‘논개’‘강천성악’ 등 12편(편곡작품 제외)이며,‘시의 조선’‘방아타령’‘고종의 승하’‘야악(夜樂)’ 등의 작품은 제목만 알려져 있다. 안익태기념재단은 올해 안익태 선생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이번에 발견된 두 곡을 포함해 그동안 국내에서 연주되지 않았던 작품들로 음악회를 열고, 유품전시회와 학술심포지엄, 악보 출판 등도 추진하고 있다. 10여년 전 유품 일부를 독립기념관에 기증한 안익태 선생의 유족들은 ‘애국가’의 저작권을 우리 정부에 헌납했으며, 지난해 5월에는 나머지 유품 178점을 안익태기념재단에 기증했다. 재단은 이 가운데 일단 악보를 가져왔으며 지휘봉과 책, 사진, 편지, 여권, 연주계약서, 태극기 등 나머지 유품은 3월 말에 들여올 예정이다.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美스미소니언, 백남준 작품 2점 영구전시

    미국에서 별세한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 백남준의 작품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영구 전시된다고 그의 조카 하쿠다 겐이 31일(현지시간) 밝혔다. 하쿠다 겐은 이날 뉴욕 맨해튼 소호의 ‘백남준 스튜디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4일 백남준의 작품 2개가 설치돼 영구 전시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시될 백남준의 작품은 `US 맵(map)’과 `메가트론 매트릭스(Megatron Matrix)’다. 그는 “백남준의 유품이 ‘중국 축음기’ 등 수십점이나 된다.”면서 “장례절차를 마친 뒤 생전에 그가 남긴 작품들을 모아 유작전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백남준의 유해는 별세 49일째 되는 날에 한국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뉴욕타임스는 이날 ‘문화적 벽을 깨뜨린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숨지다’란 제목의 기사에서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로 인정받는 예술가이자, 일찌감치 텔레비전의 위력을 감지하고 이를 예술에 도입한 작가”라고 평가했다.뉴욕 연합뉴스
  • [아듀 2005 희망을 쏜 사람들](6)동료시신 운구 엄홍길 대장

    [아듀 2005 희망을 쏜 사람들](6)동료시신 운구 엄홍길 대장

    지난 6월, 에베레스트에서 실종된 계명대 산악회원들의 시신을 수습하러 떠난 엄홍길(46·트렉스타 기술이사) 대장의 ‘한국 초모랑마 휴먼원정대’가 박무택 대원의 유품을 안고 귀국했다. 세계 등반사상 유례 없는 ‘죽음의 지대’ 8000m 고도에서의 시신 운구작업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대장정은 성공을 거뒀다.365일간의 준비와 77일간의 사투 끝에 엄 대장은 마침내 형제 이상의 정을 나눈 파트너와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친구여, 이제 편히 잠드소서.”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산악인 엄홍길. 히말라야 8000m 이상 봉우리 14개를 모두 오른 그는 지난해엔 또 하나의 고봉 얄룽캉(8505m)에 올랐다. 내년 2월로 예정된 로체샤르(8400m)마저 완등하면 그는 세계 최초의 ‘14+2’ 등반 계획을 마무리짓게 된다. “로체샤르를 등정한 다음엔 8000m 이하의 미답봉(未踏峰)에 오를 생각입니다. 조난당한 네팔 현지의 셰르파와 한국의 산악인 유족들을 돕는 일도 하고 싶어요. 꿈은 이뤄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자신의 희망대로 그는 주위의 도움을 받아 지난 11월부터 ‘히말라야 휴먼장학금’을 산악인 유자녀들에게 전달해오고 있다. 메말라만 가는 이 시대, 진정한 산사나이의 따뜻한 행보가 진한 여운을 남긴다. 1960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난 엄 대장은 세 살 때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경기도 의정부 도봉산 자락으로 이사했다. 산사람의 운명은 이미 이때부터 예정된 셈이다. “어머님이 산 입구에서 음식 장사를 했어요. 어머니 등에 엎혀 하루에도 몇번씩 등산로를 오르내리곤 했지요. 어떨 땐 내가 전생에 산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엄 대장은 1985년부터 20년 동안 히말라야 8000m 이상 봉우리에 36번 도전해 15번 성공했다고 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그의 희망의 행진은 멈출 줄 모른다. 별명대로 ‘히말라야의 탱크’다. 마흔둘의 나이에 대학(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에 입학한 그는 내년 2월 졸업을 앞두고 있다. “티베트 등을 오가며 정말 필요했던 것이 중국어였다.”는 게 그의 말이다. 이젠 산의 속마음, 그 은밀한 속살까지 꿰뚫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엄 대장. 그는 지금 ‘자연탐험학교’(가칭)를 세우겠다는 소박한 꿈을 가꿔가고 있다.“자기절제력이 부족하고, 뭐든지 쉽게 포기하고, 주변을 배려할 줄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히말라야 같은 대자연의 기상을 심어주고 싶어요. 자연은 최고의 스승이지요.” 글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사진 남상인기자 sanginn@seoul.co.kr
  • [길섶에서] 지팡이/이목희 논설위원

    지난여름에 돌아가신 아버님의 유품을 얼마전 정리했다. 워낙 정돈을 잘하던 분이었고, 임종 직전에 웬만한 것은 스스로 버리셨다. 아버님은 건강할 때 등산을 즐겨 지팡이를 여러개 갖고 계셨다. 편찮으신 후에는 집안에서도 지팡이가 필수품이었다. 마지막에 사용하시던 지팡이는 내게 돌아왔다. 지팡이의 손잡이 부분이 하얗게 벗겨져 있었다.“오래 쓰셔서 그런가 보다.”고 생각했는데 간병을 도와줬던 아주머니가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암으로 인한 고통이 극심한 중에 지팡이를 의지해 이를 악물며 일어서시려던 흔적”이라고 했다. 인품이 중후했던 목사님이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나기 전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신도 중에 간호사가 있어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한밤중에 너무 아파 진통제를 맞으려고 불렀는데 조금 늦게 오기에 나도 모르게 욕을 했어요. 후회가 됩니다.” 어머님이 역시 암으로 돌아가신 한 후배가 비슷한 얘기를 했다.“고통을 못 이긴 어머님이 팔목을 붙잡는데 뼈가 부러지는 줄 알았어요. 앙상한 몸에서 그런 힘이 어떻게 나오는지….” 신발장 안에 지팡이를 갈무리하면서 아버님의 고통을 제대로 몰랐다는 회한이 스쳐갔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대한전선그룹-故설원량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대한전선그룹-故설원량 회장家

    대한전선과 대한방직, 대한제당은 모두 한뿌리 기업들이다. 인송 설경동(작고) 회장이 설립했던 회사들로 장남인 설원식(83) 전 회장이 1960년 대한방직과 대한산업의 경영권을 승계해 가장 먼저 계열분리했다.3남인 설원량(작고) 회장은 1972년 인송의 실질적인 ‘경영 후계자’로서 당시 대한그룹의 주력사인 대한전선과 대한제당을 물려받았다. 고 설원량 회장은 이를 바탕으로 한때 25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기도 했지만 오일쇼크의 충격과 가전사업 매각 등으로 사세가 크게 줄었다. 또 동생인 설원봉(57) 회장이 88년 대한제당을 갖고 분가하면서 옛 대한그룹은 사실상 대한전선만 남게 됐다. 지금은 고 설원량 회장의 부인인 양귀애(58) 고문이 오너가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으며, 임종욱(57) 사장이 실질적인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고 설 회장의 장남인 윤석(24)씨는 대한전선 경영전략팀 과장으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이처럼 1950년대 재계 서열 다섯손가락 안에 들었던 대한전선그룹은 오늘날보다 과거가 더 화려한 기업이다. 혼맥도도 이와 비슷하다. 창업주인 설경동 회장가(家)는 지금은 흔적만 남은 옛 재벌가(家)와 적지 않은 인연으로 엮여 있다.4남2녀를 뒀던 인송은 1970∼80년대 욱일승천했던 국제그룹 창업주 양태진 회장가(家)와 대농그룹 박용학 회장가(家)와 사돈지간이다. 관계에서는 김용식 전 외무부장관과 임송본 전 대한석탄공사 총재가 사돈들이다. ●50년대 재벌가 인송 인송은 1901년 평안북도 철산군 인송리에서 부친 설흥업옹과 모친 조성녀 여사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 이름은 정동(鄭童)이었지만 서당 스승께서 ‘큰 인물로 대성하라.’는 뜻에서 경동(卿東)으로 지어줬다. 인송의 어린 시절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그는 부친을 세살 때 여의고, 모친을 따라 함경북도 부령으로 이사해 무산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3년간 허드렛일을 하며 집안을 돌보던 인송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어렵게 오쿠라 고등상업학교에 입학했지만 끝을 보지 못하고 중도에 귀국해야 했다. 인송은 이후 부령 군청에서 잠시 일을 하다가 1921년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일본인을 동업자로 끌어들여 삼광운송점과 삼광상회를 설립, 운송업과 곡물·해산물 위탁판매사업을 벌였다.1936년에는 동해수산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해 청진 앞바다에서 정어리를 잡아 이를 가공해 많은 부를 축적했다.1940년대 초에는 어선 70척에 비행기로 고기를 탐지할 정도의 함경도 거부로 성장했다. 그러나 광복과 함께 북측에 공산군이 진주하면서 월남한 인송은 무역회사인 대한산업과 부동산 회사인 원동흥업을 세워 남쪽에서도 곧 거부 대열에 올라섰다.6·25전까지 그가 수원에 세운 성냥공장은 남한시장을 석권하기도 했다. 인송은 53년 재벌의 터전이 된 대한방직을 인수해 근대적인 경영을 시작했다.55년엔 대한전선 인수,56년에는 대동제당(현 대한제당)을 세워 당시 국내에서 손꼽히는 재벌가로 올라섰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할까. 인송은 54년 자유당 재정부장을 맡으며 정계에 잠깐 발을 담갔다. 그러나 이로 인해 그는 60년대 초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인송은 4·19 의거와 5·16 쿠데타로 정권이 바뀌면서 당시 내로라하는 그룹 창업주들과 함께 부정축재자로 몰려 험난한 시기를 보냈다. 특히 인송은 강제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을 뿐 아니라 부동산도 몰수당했다. 부친의 이같은 시련을 지켜봤던 설씨가(家) 4형제는 훗날 정치와 담을 쌓은 것은 물론 부동산 투자도 꺼렸다. 인송은 검소한 생활로 유명했다. 그는 종이 한 장이라도 소홀히 버리지 않았다. 편지가 오면 칼로 봉투의 한 귀퉁이를 잘 도려내고, 그 뒷면을 이용해 한번 더 사용했을 정도였다. 인송이 송인상 효성 고문(당시 부흥부장관)에게 보낸 편지 에피소드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평소하던 대로 송 장관에게 소식지 ‘무역통신’ 뒷면을 이용해 서신을 보냈다. 이를 받은 송 장관은 대기업 사장의 검소함에 탄복해 서신을 양복 안주머니에 넣어두었다가 수년간이나 회의석상이나 강연회에서 이를 소개했다고 한다. ●옛 영화가 가득한 혼맥 인송은 두번 결혼했다. 그는 첫번째 부인 이태하(작고)씨 사이에 원식과 원철(68)씨 등 2남을 뒀다. 두번째 부인 유인순(작고)씨 사이엔 원량과 명옥(59), 원봉, 영자(53)씨 등 2남2녀를 뒀다.4남2녀 가운데 여자 형제는 중매로, 남자 형제는 연애 결혼했지만 당시 재벌가의 통혼이 그러하듯 인송은 관·재계의 명문가를 사돈으로 맞았다. 장남인 설원식 전 대한방직 회장은 일제시대 식산은행(현 산업은행) 총재와 대한석탄공사 5대 총재를 지낸 임송본씨의 딸 희숙(75)씨와 연애결혼했다. 당시 원식씨는 희숙씨와 결혼하기 위해 미국에서 유학할 대학을 바꿀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고 한다. 설 전 회장 부부는 설범(47) 대한방직 회장과 설경화(46)씨 등 1남1녀를 뒀다. 차남 설원철 전 대한방직 고문은 김용식 전 외무부 장관의 딸 보경(66)씨를 미국 유학중에 만나 인연을 맺었다. 보경씨는 코리아헤럴드 출신의 언론인이다. 설한(39), 설훈(35), 설혜선(34) 등 2남1녀를 뒀다. 3남 설원량 회장은 1969년 동생인 명옥씨의 소개로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양귀애 고문과 결혼했다. 명옥씨와 양 고문은 친구 사이다. 양 고문은 국제그룹 양태진 창업주의 막내딸이며,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의 누이 동생이다. 윤석(24), 윤성(21)씨 등 2남을 두고 있다. 4남 설원봉 회장은 박용학 전 대농 명예회장의 장녀인 선영(56)씨와 혼례를 치렀다. 선영씨는 이화여대 생활미술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를 다녔던 설 회장과 선영씨는 학창시절부터 오랜기간 만남을 가졌다. 윤호(30)와 혜정(25)씨 등 1남1녀를 뒀다. 장녀 명옥씨는 정수창 전 두산그룹 회장 가문의 소개로 71년 김우기(63) 서울대 의대 교수와 결혼했다. 동철(33)과 승철(31)씨 등 2남을 뒀으며 장남은 의사, 차남은 대한제당에서 근무하고 있다. 차녀 영자씨는 고 설원량 회장의 친구인 정근모 명지대 총장의 중매로 차동완(58) 한국과학기술원 교수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진영(28)씨와 종현(25)씨 1남1녀를 두고 있다. 3세들도 속속 가정을 꾸리고 있다. 설원식 전 대한방직 회장의 장남인 설범 회장은 한연나씨와 결혼했으며, 장녀 경화씨도 차정하씨와 혼인을 치렀다. 양 고문의 장남 윤석씨는 지난해 6월 연세대 경영학과 동기생인 심현진(24)씨와 연애 결혼했다. 현진씨의 부친은 심광일(52)씨로 중견 건설업체인 석미건설을 경영하고 있다. 양 고문은 “오랫동안 연애를 한 데다 아들의 판단을 믿었다.”면서 “설 회장도 생전에 둘의 결혼을 허락한 만큼 일찍 결혼을 시켰다.”고 말했다. 설영자-차동완 교수 부부의 장녀 진영씨는 조현식(35) 한국타이어 부사장과 인연을 맺었다. 조 부사장은 조홍제 효성 창업주의 손자로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장남이다. 진영씨는 대한전선 3세 가운데 유일하게 재벌가(家)와 통혼했다. ●일찍 시작한 분가 설경동 가문의 기업 분가는 여느 재벌가(家)와 달리 일찍 시작됐다. 창업주 사후에 2세들의 분가가 이뤄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인송은 생전에 대한방직과 대한산업 등을 계열분리시켰다.1960년 정치권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데다 가정불화마저 겹치면서 인송은 어쩔 수 없이 대한산업과 대한방직 등을 장남 원식에게 맡겨 2세 경영을 펼치도록 했다. 인송은 이후 대한전선과 대한제당을 중심으로 경영을 해오다가 72년 건강이 악화되면서 3남인 당시 설원량 전무에게 경영권을 승계토록 했다.74년 인송이 결국 타계하자 설 회장이 대한전선그룹을 이끌게 됐다. 대한전선은 88년에 또 한차례의 변화를 겪었다. 창업주 인송의 유지를 받들어 설원량 회장이 계열사인 대한제당을 분가시킨 것이다. 설 회장은 동생인 설원봉 회장이 대한제당에 입사한 이래 경영수업을 충실히 받아왔다고 보고, 대한제당 관련 주식을 설원봉 회장에게 모두 양도해 대한전선에서 완전 분리시켰다. 대한제당은 현재 식품소재사업과 레저, 외식업 등에 진출해 사업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다. ●인송의 후계자 설원량 회장 고 설원량 회장 유족들은 지난해 9월 1355억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의 상속세를 신고했다. 매출 2조원이 안되는 중견기업이 사상 최대 규모의 상속세를 자진 신고하자 고 설 회장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다. 상속이나 증여세를 덜 내기 위해 갖은 편법을 동원하는 다른 재벌가(家)와 비교하면 시사하는 바가 대단했다. 그는 평소 “기업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손님이 되어야지, 불청객이 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의 삶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 한토막. 대한전선 본사와 각 공장 구내식당에서 제공되는 한 끼 밥값은 80원이다. 공짜로 주는 것이 낫겠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설 회장의 지시에 따라 이같이 정해졌다. 설 회장이 내 돈을 내고 밥을 먹어야 음식이 혹시라도 부실해지면 회사에 당당히 요구할 수 있다고 해서 내린 조치였다. 설 회장 본인도 줄곧 구내식당을 이용했는데, 이 역시 회장이 자주 이용하면 음식에 좀 더 신경을 쓰지 않겠느냐는 판단에서였다. 천문학적인 상속세를 낸 것과 달리 설 회장은 부친인 설경동 회장 못지않은 ‘구두쇠’였다. 그는 양복을 한 벌 사면 소맷단이 해질 정도로 입었다. 식당에서 사용한 휴지는 잘 접어두었다가 화장실에서 다시 사용했다. 쉽게 쓰는 휴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나무가 베어지는가를 생각하면 아무리 사소한 휴지라도 함부로 쓸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이같은 성품 때문일까. 그는 4형제 가운데 부친으로부터 가장 많은 총애를 받았다. 설 회장이 미국 텍사스주립대로 유학갔을 때, 인송의 커다란 기쁨 가운데 하나가 아들의 편지를 받아보는 것이었다. 특히 인송의 건강이 점점 나빠지면서 설 회장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커졌다. 설 회장은 67년 대한전선 총무부장으로 입사했다. 인송은 설 회장을 후계자로 내정하고 호된 경영자수업을 받도록 했다. 설 회장은 68년에 상무,70년엔 전무 등 주요 사업부 수장을 거치면서 다양한 실무경험을 쌓았다. 72년 사실상 경영 대권을 이어받은 설 회장은 견실한 전선사업과 가전제품 판매 호조에 힘입어 70년대 중반 25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재벌로 대한전선을 키웠다. 후계자로서 연착륙했다는 주변의 평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대한전선과 금성사(현 LG전자)가 선점한 가전시장에 삼성전자가 후발업체로 뛰어들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70년대 후반부터 덩치에 밀린 대한전선은 자금난으로 갈수록 어려워졌다. 설 회장은 “사업을 하면서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은 적이 없다.”고 토로할 정도로 힘든 순간이었다고 했다. 그는 부친의 유업을 일순간에 포기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젊은 기업가로서 그간의 도전이 실패로 끝나고 만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고 했다. 대한전선 가전사업에 관심이 컸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당시 “가전사업이 어려우면 언제라도 대우에 협력제의를 해달라.”는 의중을 넌지시 전해왔다. 한동안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며, 혼자서 시간을 보내던 설 회장은 83년 3월 그룹 임직원들에게 가전부문 매각을 발표했다, 매각 금액은 2억달러 규모로 당시엔 그야말로 빅딜이었다. 가전사업과 생산직원 모두 대우로 넘어갔다. 대우그룹으로 바꿔타는 직원이 무려 6000여명. 대한전선에 남는 인원은 3000명 남짓이었다.24개 계열사 중 10개사가 대우에 속하게 됐으며, 남은 계열사는 통폐합 절차를 거쳐 7개사로 줄었다. ●‘풍운아’ 설원식 대한방직 회장 설원식 전 대한방직 명예회장의 이력은 좀 독특하다.50년대 국내 대표적인 재벌가(家)의 장남이었지만 그는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뒤,55년부터 5년간 중앙대 문과대에서 강사(서양학)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러다가 그는 1960년 대한방직과 대한전선 사장직에 갑자기 취임했다. 이후 3년간이나 부친인 인송과 재산 다툼을 벌였지만 그는 결국 법적으로 대한방직과 대한산업을 옛 대한그룹에서 떼어내는데 성공했다. 설 전 회장은 70년대 대한종합개발을 설립해 건설업에 진출했으며, 아세아종합금융을 세워 금융업에 손을 대기도 했다. 그러나 금융업 진출은 그에게 큰 시련을 안겨주었다. 그는 아세아종금 주가가 폭락하면서 퇴출위기에 몰리자 주식시세를 조종해 유죄판결을 받았다. 아세아종금은 이후 진승현씨에게 인수돼 한스종금으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훗날 ‘진승현 게이트’로 불거졌다. 설 전 명예회장은 98년 장남인 설범 회장에게 대한방직 경영권을 물려주며 현장에서 물러났다. 차남인 설원철 전 대한방직 고문의 이력도 형에 못지않다. 그는 일본 게이오대 법대와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했지만, 그는 부친의 기업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자신의 뜻을 펼쳤다. 그는 대한무역진흥공사에 입사해 조사부 부장과 샌프란시스코 무역관 관장을 거쳤다.91년엔 형인 설원식 전 회장에 이어 대한방직과 대한산업 사장에 올랐다.2년 후에 고문직으로 물러났다. ●‘3무 경영’ 설원봉 회장 설원봉 대한제당 회장은 연세대 법대와 미국 브루클린 공대대학원을 거쳐 1976년 대한전선 종합조정실 이사로 경영에 첫 발을 내디뎠다.83년 대한제당 부사장으로 승진했으며,88년엔 형으로부터 대한제당을 물려받았다. 그는 형과 달리 부드럽다는 평이다. 그러나 나서기를 꺼려하는 것은 다른 형들과 똑같다. 재계에서 친한 인사로는 경기고 동기인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을 꼽을 수 있다. 설 회장은 현장과 인재 관리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외환위기 극복에서 잘 드러났다. 당시 국제 원자재값 급등으로 위기에 몰렸을 때 설 회장은 직원들의 신뢰속에 감원과 임금 삭감, 노사분규 없이 힘든 시기를 헤쳐왔다.‘무감원, 무감봉, 무분규’라는 대한제당 특유의 ‘3무(無) 경영’은 이렇게 나오게 됐다. 대한제당은 현재 의약시장 진출에 나서고 있다. ●그룹 나침반 임종욱 사장 대한전선의 대표 최고경영자(CEO)인 임종욱(57) 사장은 서울생으로 선린상고,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95년 회장 비서실장에 임명된 이후 9년간 설원량 회장의 경영 방침과 철학을 받들어 회사경영 전반에 대해 실무관리를 해오고 있다.97년 외환위기 때에는 사업구조조정을 통해 수익성을 3배 이상 끌어올렸다. 무주리조트와 쌍방울 인수, 진로채권 투자에 나서는 등 사업다각화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 임 사장은 설 회장이 타계한 이후 회사 경영의 나침반으로서 차세대 ‘먹을 거리’ 확보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golders@seoul.co.kr ■ 미망인이 본 故설원량 회장 “그는 철저한 원칙주의자예요. 자기 자신에게 너무 엄격했어요. 자제심도 대단했고요. 남편을 사회와 일에 빼앗겼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평생 일만 하다 간 분이에요. 그림이나 음악에도 대단히 조예가 깊었는데….” 양귀애 고문은 남편인 고 설원량 회장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아직도 감정이 남아있는 듯 설 회장을 언급할 때는 대단히 조심스러웠다. 설 회장은 지난해 3월 뇌출혈로 쓰러져 갑작스럽게 타계했다. “아직도 설 회장 사진을 안봐요. 집이나 사무실에 있는 남편 사진들을 다 치웠어요. 감정이 많이 정리가 됐다고 해도 가끔은 가슴이 휑해요. 유품을 정리하는데 옷가지들이 너무 낡았더라고요. 대기업 회장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와이셔츠 소매는 다 헐었고, 구두는 신기 민망한 수준이었어요.” 그는 일만 했던 남편이 썩 재밌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둘만의 데이트는 자주 했다고 했다.“설 회장은 사업이 꼬이거나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면 어김없이 저를 불러요. 옆에 있어달라는 뜻이에요. 그리고 한동안 생각만 해요. 그 때는 옆에서 말 거는 것을 굉장히 싫어해서, 그래서 저를 불렀던 것 같아요. 덕분에 둘이서 남산을 자주 산책했고, 가끔은 골프도 둘이서만 치고 다녔답니다.” 그는 불임으로 꽤 고생했다. 장남인 설윤석 과장을 결혼 12년차에 가질 정도였다.“시댁식구들 눈치 많이 봤죠. 재벌가(家)로 시집와서 12년간 애기가 없었으니 얼마나 말들이 많았겠어요. 그때마다 남편이 바람막이가 돼 줬습니다. 참 고마웠죠.” 양 고문은 시아버지인 인송 설경동 회장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아버님이 저를 특히 예쁘게 보셨어요. 항상 자신 옆에 자리를 마련해주시고, 외출을 하면 꼭 저를 데리고 다니며, 같이 사진도 찍고 그랬어요. 한복입은 모습이 예쁘다고 해서 신혼 초에는 한복만 입은 적도 있었습니다.” 설 회장은 자식을 엄하게 대했다고 한다.“남편은 아들들에게 절대 용돈을 풍족하게 주지 않았습니다. 수입도 없는 애들이 돈 쓰는 버릇부터 들이면 안된다는 것이었죠. 비행기를 탈 때도 애들은 항상 이코노미석이었습니다.” 양 고문은 지금까지 남편 뒷바라지와 자식 교육에 자신의 전부를 쏟았지만 앞으로는 나를 위해 살고 싶다고 했다. 특히 시아버지와 남편이 일군 대한전선을 제대로 키워보겠다고 했다. 한편 그는 큰 오빠인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의 근황과 관련,“건강하시고 친구들을 만나 소일하신다.”면서 “(국제그룹 해체로) 당시엔 심리적인 타격이 컸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잊으신 것 같다.”고 말했다. golders@seoul.co.kr ■ 막오른 3세 경영 인송 설경동(작고) 회장이 창업한 대한전선과 대한제당, 대한방직 등은 모두 3세 경영으로 이어지고 있다.3세가 최고경영자(CEO)로 전면에 나서는 곳이 있는가 하면, 이제 실무부서에 배치돼 첫 걸음마를 시작한 곳도 있다. 가장 빨리 ‘세대교체’가 이뤄진 곳은 대한방직. 설경동가(家)의 장손인 설범(47) 회장이 1998년 대한방직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함으로써 설씨가(家)의 3세 경영을 알렸다. 그는 85년 대한방직 이사로 출발해 91년 상무,95년 부사장,96년 대표이사 사장 등을 맡으며 다양한 실무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설 회장은 2001년 한스종금 불법대출 사건에 연루되면서 ‘그만두라.’는 소액주주들과 주총에서 경영권 다툼을 벌이는 등 한차례 큰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주변에선 설 회장을 소탈하고 온화하다고 평한다. 집안 가풍대로 보수적이며, 사업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스타일이다. 업계에서는 만능 스포츠맨으로 유명하다. 배재고와 연세대 경영학과, 미국 더 뷰크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지난해 설원량 대한전선 회장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학업과 경영수업을 동시에 했던 장남 설윤석(24)씨는 올 들어 경영전략팀 과장으로서 본격적인 후계자 수업을 쌓고 있다. 그는 대한전선의 최대주주인 삼양금속 지분의 절반 가까이를 보유하고 있다. 재계에선 설 과장의 나이가 아직 어린 데다 모친인 양귀애 고문이 후견인으로 나서는 만큼 급하게 경영 대권을 잇게 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임종욱 대한전선 사장이 전문경영인로서 충분히 제 역할을 하고 있어 후계자 교육에 더욱 치중할 것으로 보고 있다. 양 고문은 “설 과장의 진로는 아직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승진이나 유학 등은 상황에 따라 이뤄질 것이에요.”라고 했다. 동생인 윤성(21)씨는 중학교 3년때 미국으로 유학가 현재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을 다니고 있다. 설원봉 대한제당 회장의 장남인 윤호(30)씨는 경영 대권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그는 2000년 6월에 입사해 현재 제당식품사업부를 책임지는 전무로 일하고 있다.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매우 꺼린다. 설 전무는 경기고와 미국 클레어먼트 대학원에서 인문학을 전공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페스트/최수철 지음

    흑사병으로도 불리는 ‘페스트(pest)’는 14세기 중기 유럽 일대를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은 전염병이다. 급속도로 번져가는 악성 바이러스에 당시 유럽 인구의 절반이 속수무책으로 목숨을 잃었다. 작가 최수철(47·한신대 문예창작과 교수)이 5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 ‘페스트’(문학과지성사)는 해가 갈수록 급증하는 자살을 21세기 페스트로 규정하고, 이를 둘러싼 부조리한 현실을 집요하게 파헤친다. 원고지 3000장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소설의 무대는 인구 35만명의 소도시 무망. 최근들어 원인 모를 자살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자살예방센터 OSP에 근무하는 강시우와 최동호는 한시간이 멀다하고 벌어지는 자살현장을 쫓아다니며 전염병처럼 번지는 자살충동의 원인을 추적한다. 자살이 유행하면서 자살자의 유품을 수집해 판매하는 컬렉터 집단이 생기고, 제약회사에서는 자살방지약 개발에 열을 올린다. 자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심화되면서 도시는 점점 패닉 상태에 빠져든다. 자살 시도자들을 격리수용하는 시립정신병원은 환자들에 의해 점거되고, 중세 페스트가 창궐했던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신혼여행을 떠난 동호가 갑작스럽게 자살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폐쇄된 지방 소도시에서 원인 모를 전염병에 맞서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알베르 카뮈가 1947년 발표한 동명 소설을 연상시키는 구조다. 작가는 죽음에의 충동이 역병처럼 번지는 잿빛 도시의 광기 속에서 결국 인간의 삶 자체가 죽음으로 다가가는 여정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또 작품 속에 프로이트, 융, 키케로, 세네카, 니체 등의 글을 인용하며 자살에 대한 종교적·철학적 성찰을 모색한다. 전 2권, 각 권 95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08일 TV 하이라이트]

    ●리얼다큐 여자(EBS 오후 9시30분) 아침에 일어나면 가고 싶은 학교, 참된 행복의 의미를 배우고 깨우치는 학교, 그런 이상적인 학교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이제 부모들이 직접 발 벗고 나섰다. 행복한 학교, 행복한 마을 만들기에 열정을 다바치는 ‘호호 선생님’ 정현영씨를 만나 성미산학교 이야기를 들어본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SBS 오후 8시55분) 첫 눈이 내리던 날, 반팔, 반바지 차림에 맨발로 거리를 활보하는 사나이.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겨울을 맨발로 평정해 ‘맨발의 청춘’으로 불리는 63세의 김성열씨를 만난다. 설탕을 보석보다 더 값지게 여기는 83세 난 할아버지. 설탕이 가장 맛있다는 할아버지의 달콤한 인생 속으로 들어가보자.   ●글로벌 코리안(YTN 오전 10시25분) 한국 역사가 해외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가르쳐지는지 해외리포터를 직접 연결해 점검한다. 중국의 교과서는 고구려사를 비롯한 한국의 전근대사 내용이 아예 없는가 하면 발해를 중국 지방정권으로, 고구려를 중국역사로 왜곡한 교과서도 있다. 호주에서는 교사가 개인적으로 수집한 자료로 수업을 한다.   ●맨발의 청춘(MBC 오후 8시20분) 정환이 화숙의 사기행각을 감춰주는 바람에 최 영감은 헛수고만 한다. 화숙은 정환이 자신을 감싸주자 어쩔 줄 몰라하지만, 정환은 차갑게 돌아선다. 충격으로 멍하니 앉아있던 화숙은 정환을 찾아가 잘못했다며 무릎을 꿇지만 정환은 다시는 사람 진심을 배반하는 죄받을 짓 하지 말라며 냉랭하게 돌아선다.   ●클래식 오디세이(KBS1 밤 1시25분) ‘클래식스 오브 투데이’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단독 내한공연을 갖는 피아니스트 막심 므라비차의 공연 소식을 전한다. 정만섭의 ‘포노그래프’에서는 ‘바이올린의 황제’로 불리는 러시아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를 소개한다. 또 ‘뮤직 갤러리’에서는 첼리스트 유대연을 만난다.   ●황금사과(KBS2 오후 9시55분) 구치소 병감에 도착한 경숙, 경구, 경민, 창한에게 천동은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살인 죄인이 아니다. 진실을 꼭 밝혀달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아버지의 유품을 태우고 있는 경숙에게 미자는 서울에 같이 가서 살자고 하지만 경숙은 할머니와 동생들 때문에 선뜻 대답할 수 없다고 한다.
  • ‘휴대전화 유서’ 남기고…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은 가운데 한 중학생이 학교폭력을 견디다 못해 자신을 괴롭힌 친구들의 이름을 휴대폰에 남긴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이 밝혀져 경찰이 진상조사에 나섰다. 1일 경기도 화성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오후 8시10분쯤 화성시 장안면 사랑 1리 김모(42)씨 집에서 김씨의 장남(16·S중 3학년)이 차고지에서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김씨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김씨는 아들의 자살 이유를 알고 싶어 유품을 정리하던중 핸드폰 문자보관함에 남긴 유서를 발견했다. 아들 김군은 유서를 통해 “학교 친구들이 너무 못살게 굴어 죽고 싶다. 아빠·엄마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자신을 괴롭힌 친구 3명의 이름을 밝혔다. 김군의 큰 아버지(46)는 “조카가 수원에서 학교를 다니다 3년전 지금의 학교로 전학을 왔는데 평소 친구들의 텃세와 폭력 때문에 학교다니기 싫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학교 관계자와 김군이 유서에 남긴 친구들을 대상으로 김군의 정확한 자살 경위를 파악하고 있으며 이들이 김군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실이 밝혀질 경우 전원 사법처리하기로 했다.화성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황석영의 ‘손님’ 무대 오른다

    소설가 황석영의 역작 ‘손님’이 연극으로 공연된다.1980년대 ‘장산곶매’‘한씨연대기’ 등 그의 전작들을 즐겨 무대에 올렸던 극단 연우무대가 뼈아픈 분단의 상처를 기록한 문자들을 3차원 공간으로 불러냈다. 2001년에 나온 ‘손님’은 황해도의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요한·요섭 형제의 비극적 삶을 통해 한국전쟁의 야만성을 고발하는 작품. 뉴욕의 류요섭 목사는 고향방문단 일행으로 북한 방문을 가기 전 고향에 있는 형 요한 장로가 갑자기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요섭은 형의 유품에서 박명선이란 여인의 이름을 발견하고 한국전쟁중 황해도 신천에서 벌어진 학살사건의 끔찍한 악몽을 떠올린다. 각색과 연출을 맡은 윤광진 용인대 교수는 “전쟁에서 무참히 희생된 원혼들을 무대에 불러내 관객과 함께 위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공연 첫날(2일)에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등 관계자들이 단체 관람한다. 전성환 한명구 예수정 등 출연.2∼11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02)762-0010.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경주 동리·목월문학관 연말 준공

    한국문단의 거목 김동리(金東里)와 박목월(朴木月) 두 문인을 기리기 위한 문학관이 올 연말 준공된다. 24일 동리·목월기념사업회 등에 따르면 경북 경주시 진현동 50의1일대 부지 4100여평에 총 사업비 40억원을 투입, 건립 중인 동리·목월문학관이 다음달 중에 완공된다.2004년 11월 기공식을 가진 뒤 13개월 만이다. 이 문학관은 연면적 450여평 2층짜리 골기와 양식으로 건립됐으며, 두 문인의 유품 전시실과 세미나실, 회의실 등을 갖추게 된다. 기념사업회 등은 문학관이 완공되면 동리·목월의 문학 관련 자료들을 보관·진열하고 문학성 조사 및 연구, 문학교육 등을 시행할 예정이다. 경주시는 공무원 4명으로 문학관 관리팀을 구성,3년간 직영후 민간에 위탁할 방침이다. 그러나 시가 일반 1500원, 청소년 1000원씩 관리비를 받을 계획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경남 통영의 청마문학관과 경북 칠곡군의 구상문학관 등은 관람료를 받지 않고 있다.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문학관 준공으로 순수문학과 신인간주의를 역설한 동리와 동양적 정신의 경지를 보여준 목월의 문학정신을 전승 보존하고 경주의 문화유산과 연계한 관광명소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경주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퇴계집안 보러오세요

    조선시대 종가는 어떻게 살았을까? 아파트가 밀집된 서울에서 전통 있는 종가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서울역사박물관이 마련한 ‘진성이씨 기증유물특별전-옛 종가를 찾아서’는 600년 전통의 사대부 종가의 생활모습을 고스란히 서울로 옮겨왔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15세기 초 경북 안동에 정착한 뒤 퇴계 이황 등 걸출한 인물을 배출한 진성이씨(眞城李氏) 대종가. 대지 760평에 본채와 사당, 정자, 사랑채, 행랑채 등으로 이뤄진 넓은 종가에 대대로 내려온 고문서와 전적류, 유품 등 2500여점을 대종손 이세준(59)씨가 최근까지 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 그동안 유물을 정리하고 도록을 펴낸 역사박물관은 기증유물 중 전시 가치가 높은 110점을 추려 첫 특별전을 마련한 것. 전시품으로는 퇴계의 증조인 이정(李禎)이 세종에게 하사받은 ‘선산부사임명장’을 비롯, 조선 초기의 교지(告身),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 이정의 종손인 이정회가 1577년부터 1612년까지 30년이 넘게 쓴 일기인 송간일기(松澗日記·4책) 등이 눈에 띈다.1590년경에 작성된 조선조 관직자 명부인 관안(官案)도 볼 수 있으며, 퇴계가 1567년 당시 종손 이정회에게 사당의 건립에 대한 의견을 써서 보낸 간찰도 있다. 특히 1600년에 간행된 이 가문 족보인 ‘진성이씨족보’도 서울 나들이를 했다. 현존하는 족보 중 세번째로 오래된 것으로, 목판본 3책으로 찍어내 그 양식과 내용이 우리에게 익숙한 조선후기 이후 족보와는 확연히 다르다. 이와 함께 사랑방에서 종손이 애용하던 먹감서류함·담뱃갑 등과 안채에서 종부가 사용한 사주단자·족두리·성주단지 등 생활·민속신앙 유물, 제사와 의례에 사용된 신주독·만장 등 유물도 전시된다. 사대부가의 혼인 및 시집살이에 대한 상세한 소개와, 이정에 대한 불천위제사의 절차를 담은 25분짜리 영상물도 흥미롭다. 전시는 내년 2월12일까지.(02)724-0114.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일요영화] 발레리노가 된 탄광촌 소년 빌리

    [일요영화] 발레리노가 된 탄광촌 소년 빌리

    ●빌리 엘리어트(KBS1 밤 12시) 몇 번을 다시 봐도 감동적이고 상쾌한 작품이다. 탄광촌에서 자라난 소년이 어려움을 딛고 발레리나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았다. 특히 80년대 영국 광산 노동자들의 파업 모습과 아픔을 고스란히 담아내 평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2000대1의 경쟁을 뚫고 주인공으로 발탁된 제이미 벨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이 영화로 데뷔했던 스티븐 달드리 감독은 이후 버지니아 울프의 삶을 옮긴 ‘디 아워스’(2001)로 명성을 이어갔다. 웃음과 감동으로 가슴 뭉클하지 않은 장면이 없을 정도. 무대에 선 아들이 힘차게 도약하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글썽이는 아버지의 얼굴을 비춘 마지막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영국 북부지역의 한 탄광촌.11살 난 소년 빌리(제이미 벨)는 치매를 앓는 할머니, 아버지(게리 루이스), 형(제이미 드레이븐)과 함께 살고 있다. 광부인 아버지와 형이 노동자 파업에 동참하는 바람에 어머니의 유품인 피아노마저 땔감으로 써야 할 정도로 생활이 힘들다. 마을의 또래 소년들처럼 복싱을 배우고 있던 빌리는 어느날 체육관 구석에서 소녀들을 대상으로 한 발레 수업에 우연히 참가했다가 매력을 느끼게 된다.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권투 대신 발레를 배우기 시작한 빌리. 실력도 일취월장이다. 윌킨슨 부인(줄리 월터스)의 도움으로 런던 로열발레학교 입학 시험을 치르기로 한다. 하지만 아버지와 형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는데….110분.2000년작.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구효서 여덟번째 소설집 ‘시계가’

    구효서 여덟번째 소설집 ‘시계가’

    ‘시계가 걸렸던 자리’(창비)는 중견 작가 구효서(48)의 여덟번째 소설집이다. 올해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한 ‘소금 가마니’와 지난해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에 선정된 표제작 등 9편의 단편을 묶었다. 리얼리즘에서 모더니즘, 신비주의와 낭만주의 등 끊임없이 다양성과 새로움을 추구해온 ‘유목형 작가’인 그는 근래 들어 인간의 삶과 죽음, 운명에 관한 탐구에 집중해 왔는데 이번 소설집은 그 때문인지 탄생과 소멸의 이미지가 두드러진다. 표제작 ‘시계가 걸렸던 자리’가 대표적이다. 의사에게 시한부 판정을 받은 마흔 일곱살의 ‘나’는 출생일시에 맞춰 고향집을 찾아간다. 인생의 마지막 지점은 점점 다가오는데 정작 그 출발점은 희미하다는 자각에서다.‘널 낳고 나니깐 아침햇살이 막 뒤꼍 창호지문 문턱에 떨어지고 있더라.’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기억을 좇아 고향집에 내려간 ‘나’는 곳곳에서 과거의 자신과 해후한다. 햇살의 기울기를 보고 출생시각을 유추해 내려는 ‘나’의 행동은 허무한 집착처럼 보이지만 작가는 그 대목에서 새로운 차원으로의 도약을 시도한다. 자신이 태어나 자라고, 죽음을 맞고, 또 다른 생명이 태어나는 환영을 목격한 ‘나’는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라 우주의 영겁에 속하는 일임을 깨닫고 편안한 마음으로 죽음을 예감한다. ‘소금 가마니’는 어머니의 유품인 일어판 키에르 케고르의 ‘공포와 전율’을 우연히 발견한 주인공이 어머니가 밑줄 친 대목을 따라 읽으면서 불행한 가족사를 따라가는 이야기다. 이밖에 러시아 아무르 지방의 여인 아나스타샤의 이야기인 ‘자유 시베리아’,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그로 인한 무고한 희생의 의미를 묻는 ‘앗살람 알라이 쿰’등이 실려 있다.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그가 20여년 동안 쓴 소설은 대략 100여편. 장편 14권과 소설집 8권 분량이다.‘그 소설들을 펼쳐 한줄로 죽 늘어놓으면 바람소리가 들릴 것 같다.’는 작가는 ‘바람은 쉼없이 나부낀다고 말하면서 (밥)딜런은 쉼없이 노래했다. 나는 그동안 쉼없이, 다만 소설을 썼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책 말미에 적었다.95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슬쩍’ 인생 億전

    미국 오리건주(州)의 한 여성이 당첨금 100만달러(10억원) 상당의 복권에 당첨되는 행운을 안았으나 훔친 신용카드로 복권을 구입한 사실이 들통나 당첨금 몰수 위기에 처했다고 현지 경찰이 최근 밝혔다. 오리건주 남부 화이트 시티에 사는 크리스티나 구드나우(38)라는 여성은 1년 전 시어머니가 사망하자 유품 가운데 신용카드를 ‘슬쩍’한 뒤 최근 이 신용카드로 복권을 구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여성은 다수의 절도 혐의 외에도 문서 위조, 필로폰 소지 혐의도 받고 있다. 경찰측은 만약 이들 혐의 가운데 하나라도 유죄 판결을 받으면 당첨금이 몰수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리건주 복권사업국 척 바우먼 복권사업국 대변인은 “복권국에서 12년째 일하고 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연합뉴스
  • ‘목포의 눈물’ 이난영 40년만에 고향품으로

    ‘목포의 눈물’을 부른 가수 고 이난영(1916∼1965)의 유해가 40여년만에 고향의 품으로 돌아온다. 25일 이난영기념사업회와 목포시에 따르면 경기도 파주의 한 공동묘지에 방치된 이난영의 유해가 내년 3월쯤 목포로 옮겨진다. 기념사업회는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이난영의 유가족으로부터 이장 동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목포시도 이난영의 이장과 기념사업 관련 예산지원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등 ‘묘지 이장사업’이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기념사업회는 현재 옛 모습으로 복원 중인 삼학도에 이난영의 유골을 안치하고, 기념탑 건립과 추모공원 조성도 추진키로 했다. 추모사업 기금마련을 위해 오는 11월30부터 이틀 동안 극단 ‘갯돌’을 초청, 이난영의 삶과 예술세계를 그린 뮤지컬을 공연할 계획이다. 내년 3월 중에는 유품전시회, 음악회, 학술대회 등을 마련, 지역사회의 관심을 유도할 방침이다. 정태관(46)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은 “일제 때 민초들의 애환을 노래해 ‘국민가수’로 떠올랐던 이난영의 유해가 타향에서 ‘무연고 묘지’로 방치돼, 이장을 추진키로 결정했다.”며 “목포시와 협의, 구체적 추모 및 기념사업 일정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난영은 1916년 목포시 양동에서 태어난 뒤 어릴적부터 극단생활을 전전하다가 1934년 ‘불사조’를 불러 가요계에 데뷔했다. 이듬해 손목인이 작곡한 ‘목포의 눈물’을 불러 대히트했다. 그후 ‘해조곡’‘울어라 문풍지’‘목포는 항구다’ 등 많은 히트곡을 내놓았다. 그러나 1940년대에 불렀던 ‘이천오백만 감격’‘이몸이 죽고 죽어’ 등은 친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광복 후 작곡가인 남편 김해송과 함께 악극단을 결성, 활약하였으나 6·25전쟁 때 김해송은 납북되었다. 이난영은 지난 1965년 49세의 나이로 사망,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산107 공동묘지에 묻혀있다.광주 최치봉기자cbchoi@seoul.co.kr
  • 대정부 첫 질문부터 정체성

    여야는 24일 대정부 질문으로 무대를 바꿔서 ‘정체성 공방’을 가파르게 이어갔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현 정권의 정체성’을 추궁하며 강정구 교수의 사법처리를 둘러싸고 불거진 정체성 공방을 재점화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이를 ‘군사정권의 유품’으로 일축하면서 검찰 지휘권을 발동한 천정배 법무장관을 옹호했다. ●“朴대표 黨장악력 높이려는 전략” ‘질문 1호’로 나선 열린우리당 유선호 의원은 “박근혜 대표가 국가 정체성 논란을 제기한 것은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추월당하자 이념 대결로 보수층을 결집하고 당 장악력을 높이려는 정략”이라고 기선 제압에 나섰다. ●“적화는 됐고 통일만 남았다” 이에 한나라당 안택수 의원은 “적화는 됐고, 통일만 남았다.”는 우파 지식인의 탄식을 인용한 뒤 “수구꼴통좌파 인사를 정권 차원에서 비호하고 두둔하고 나섬으로써 국민들은 뒤통수를 해머로 한대 두들겨 맞은 것과 같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개탄했다. 안 의원은 천 장관의 해임 촉구와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같은 당 권철현 의원도 “21세기 맹아(盲兒)인 강정구 교수의 주장은 신(新)색깔론이며 명백한 이념폭력”이라고 규정하고 “불구속 수사를 지휘한 배경은 실정(失政) 은폐·호도를 위한 국면 전환용이고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대북 ‘러브콜’, 지지층 결집과 검찰 장악”이라고 가세했다. 그러자 열린우리당 우원식 의원은 “이번 논란이 10·26 재선거에 이익이 될지 모르지만 유신 시대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며 ‘박근혜 때리기’에 나섰다. 같은 당 윤호중 의원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겨냥,“자유와 인권을 우선시 하는 정부에 대해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체제를 파괴하고 있다는 독설을 퍼붓고 있다.”고 역공을 가했다. ●강재섭 “상임위 결석땐 교체” 이날 한나라당의 강공은 강재섭 원내대표의 ‘집안 단속’으로 재개됐다. 그는 이날 상임운영위에서 “오늘은 잔소리를 해야겠다.”면서 “노무현 정권이 반자유민주주의, 반시장경제, 반통합으로 가고 있는데 강력한 반대, 척결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박 대표의 ‘나홀로 투쟁’에 적극 동참할 것을 주문했다. 강 대표는 이어 “정보위 등 민감한 위원회에 있으면서 참석률이 낮든지, 강력 투쟁에 정신력이 부족한 분은 상임위를 교체할 것”이라며 강력한 경고로 의원들의 안이함을 질타했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미술품 위작시비 줄이을 듯

    논란이 됐던 이중섭·박수근 화백의 유작 진위여부와 관련, 검찰이 ‘가짜’로 결론짓자 미술계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두 대가의 작품 말고도 다른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둘러싸고 가짜 시비가 잇달아 제기될 조짐을 보이면서 가뜩이나 위축됐던 미술 시장은 거래마저 꽁꽁 얼어붙을 분위기다.●서울옥션 대표 즉각 사임이중섭 화백의 작품 4점을 경매에서 팔면서 미술계 최대의 위작 논란을 일으켰던 서울옥션 이호재 대표는 7일 대표직에서 사임했다. 이 대표는 “본의 아니게 미술계에 혼란을 준 점에서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대표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수사 결과를 존중한다.”면서도 “개인적으로 할 말은 많지만 말을 아끼겠다.”며 검찰 수사결과에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관련 당사자인 이 화백의 차남 태성씨와 이 화백의 작품을 대거 소장하고 있는 김용수씨는 수사결과에 반발하고 있다. 태성씨는 “유족이 갖고 있는 유품을 검찰에서 가짜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향후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이중섭예술문화진흥회 측은 전했다. 김씨의 대리인인 신봉철 변호사는 “감정위원들의 감정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외국의 감정 기관에 다시 감정을 의뢰해야 한다.”며 검찰 결정에 즉각 항고 의사를 밝혔다.●“화랑의 아버지 작품 거의 가짜” 강남의 A화랑 대표는 “최근 고객으로부터 그림을 사고 싶지만 의구심이 생겨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고민을 들었다.”면서 “미술시장에 대한 불신감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10∼20년 된 고객 1000여명에게 전시회 안내장을 보내면 10명도 안 온다.”고 위축된 미술 시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경기 위축에 따른 미술품 구매 감소 현상도 있지만 이화백과 박화백의 유작 파문 이후 화랑가에 고객들의 발길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이번 수사결과는 의외로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미술 유통시장에 나와 있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진위 공방이 잇따르는 것은 시간 문제이기 때문이다.한 원로작가의 아들 B씨는 최근 인사동 화랑가를 둘러본 뒤 “인사동에 걸려 있는 자신의 아버지 작품 대부분이 가짜”라면서 “한두 점이 아니어서 일일이 법적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힘들 지경”이라고 개탄했다.●`투명한 미술시장´ 계기로 이중섭 화백의 유작에 가짜 의혹을 제기, 이 화백의 차남 이씨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됐던 미술품감정협회의 최명윤 감정위원은 “위작으로 밝혀져 기쁘다.”면서도 “미술계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해 검찰수사까지 간 것에 대해 비애를 느낀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파문이 미술시장을 정화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미술평론가 최병식 경희대 교수는 “미술 시장의 ‘안전불감증’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할 수 있는 기회인 만큼 앞으로 미술 유통시장이 새롭게 거듭 나도록 노력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최 교수는 특히 “감정 전문인력 양성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과 공신력 있는 감정기구의 설립 등 가짜 그림을 몰아내는 방안을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비전향 장기수 유해 첫 北 인도

    비전향 장기수 유해 첫 北 인도

    지난 달 30일 사망한 남파간첩 출신 비전향 장기수 정순택씨의 유해가 2일 북측 가족의 품으로 넘겨졌다. 남북간에 상대측 유가족에게 유해를 전달하기는 처음이다. 유해 전달은 이날 오전 북측의 요청이 있은 지 9시간여 만에 이뤄졌다. 정부는 서울의 한 병원에서 84세로 숨진 비전향 장기수 정순택씨의 유해와 유품을 2일 오후 6시37분쯤 판문점을 통해 북측에 넘겼다. 유해와 유품은 평양에서 온 북녘 가족이 인수했다. 정씨의 장남인 정태두(김책공업종합대 교수)씨는 유해를 인도받는 자리에서 “(아버지가) 돌아오시기를 어머니도 바랐고 우리 자식들도 바랐으나 이렇게 시체로 오시다니 정말 유감스럽다.”고 말했다고 우리 정부 관계자가 전했다. 양창석 통일부 홍보관리관은 “북측이 오전 9시30분 장재언 북한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장 명의의 대남 전통문을 통해 정순택씨의 시신 송환을 요구해 왔다.”며 “정부는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유해를 북측에 인계키로 결정하고 오전 11시30분 북측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통일부 당국자는 “남북 간에 상대측 지역의 유가족에게 유해를 전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남북 관계의 화해와 인도적 문제 해결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숨진 정씨는 북에 아들 4형제를 두고 있으며, 이들은 모두 고위직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인은 1990년대 중반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충북 진천이 고향인 정씨는 1948년 상공부 공무원으로 재직 중 월북해 북쪽에서 기술자격 심사위원회 책임심사원으로 일했으며 1958년 남파됐다가 체포된 뒤 1989년까지 31년 5개월간 복역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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