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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 6·25전사자 유해발굴 시작

    국방부는 6일 경북 포항에서 6·25 전사자 유해발굴 개토식을 갖고, 2012년도 발굴 작업을 본격 실시한다고 밝혔다. 올해 유해발굴사업은 11월말까지 35개 사단급 부대가 참여하며 전국 65개 지역에서 연인원 10만여 명이 동원된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올해 국군 전사자 유해 1300구 이상을 발굴하고 신원확인을 위한 유가족 유전자(DNA)시료 5000개 이상을 채취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감식단은 이를 위해 주요 전투 현장 등을 표시한 유해소재 종합지도를 근거로 양구 수리봉 경북 포항·문경 일대 등 11개 지역을 전면 굴토 지역으로 선정했다. 감식단은 특히 지난해 시범 운영을 거친 ‘전사자 종합정보체계’(KIATIS)를 활용해 많은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디지털 지도가 장착돼 실시간으로 현장좌표를 입력하고 조사내용, 발굴 유해와 유품상태 등 발굴 기록을 데이터베이스로 저장해 관리할 수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2000년부터 작년까지 모두 6965구의 전사자 유해를 발굴했다.”며 “매년 1000~1300구 이상 발굴해 왔는데 올해는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을것”이라고 밝혔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동화로 전하는 故김우수씨 철가방 천사의 ‘사랑 나눔’

    지난해 9월 교통사고로 세상을 등지며 많은 사람들을 속상하게 만든 ‘철가방 천사’ 고(故) 김우수씨의 삶이 책으로 나왔다. 동화 작가 엄광용씨가 그의 행적을 밟고 흩어진 조각을 붙여 쓴 ‘철가방을 든 천사’(임하라 그림·북오션 펴냄)다. 책은 엄마가 집을 나간 뒤 보육원을 전전하다가 12살 때 무작정 뛰쳐 나온 어린 시절, 구걸과 막노동을 하며 세상에 대한 미움을 품고 살아온 청년기, 술독에 빠져 지내다가 홧김에 저지른 방화 사건으로 교도소에 들어간 일 등 삶의 궤적을 하나하나 맞춰 나간다. 그는 교도소에서 자신보다 어렵고 힘들게 산 아이들의 이야기가 실린 잡지를 읽고 그런 처지에 놓인 아이들을 위해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찾았다. 자신은 고시원 방 하나를 얻어 짜장면 배달을 하면서 번 70여만원으로 근근이 한 달을 버티면서도 불우한 아이들을 돕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당한 교통사고로 그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유명을 달리했지만 그의 정신은 이어졌다.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보험증서에는 사망보험금 4000만원을 어린이재단에 지급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장기 기증 등록도 돼 있어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가 실천한 나눔의 행복은 이 책에서도 이어진다. 출판사 측은 “김우수씨가 생전에 실천했던 사랑과 나눔이 아이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면서 책 판매 수익금과 인세 일부를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기부할 예정이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동화지만 그가 남긴 이야기는 아이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1만 1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미군 이라크戰서 아군 총격

    미군 이라크戰서 아군 총격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플래툰’에서 반즈 중사는 전쟁광인 자신에게 반기를 든 같은 소대 일라이어스 중사에게 전투 중 총을 쏜다. 반즈가 헬기에 올랐을 때 죽은 줄 알았던 일라이어스가 숲 속에서 달려 나오다 적의 총격을 받고 쓰러지는 장면이 유명하다. 이 영화를 연상시키는 사건이 실제 이라크전에서 있었던 것으로 27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2008년 1월 16일 이라크의 소도시 발라드.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 미 보병 101사단 소속 6소대 대원 8명이 블랙호크 헬기에 올랐다. 티머시 핸슨 중위가 지휘한 이날 작전에는 데이비드 섀럿(27) 일병도 참여했다. 오전 5시쯤 무장하지 않은 이라크 반군 6명이 평지의 작은 덤불에 들어가는 모습이 상공에서 포착됐다. 5시 15분 헬기에서 내린 대원들이 덤불을 에워쌌다. 그리고 “손들고 항복하라.”고 외쳤다. 그 순간 덤불에서 무차별적으로 총탄이 쏟아져 나왔다. 덤불 앞쪽에서 무방비 상태로 있던 대니 키미 일병 등 2명이 쓰러졌고 순식간에 교전이 벌어졌다. 5시 20분 덤불 왼쪽에 있던 섀럿이 앞쪽으로 이동하면서 덤불에 총격을 가했다. 곧이어 그는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섀럿이 쓰러진 자리 근처에서 누군가 일어나더니 덤불 반대 방향으로 달아났다. 핸슨이었다. 한 군데도 다치지 않은 그는 대기 중이던 헬기에 제일 먼저 올랐다. 총을 맞은 섀럿이 고통스러워하며 땅을 뒹구는 모습이 이륙한 헬기 조명에 얼핏 잡혔지만 헬기는 핸슨과 부상자 2명만을 태운 채 병원으로 향했다. 버지니아주에 사는 섀럿의 아버지 데이브(57)는 군 당국으로부터 섀럿이 지휘관의 의도하지 않은 오발 사고로 숨졌다는 통보를 받는다. 섀럿은 총을 맞은 뒤 75분간이나 숨이 붙어 있었지만 너무 어두워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2009년 2월 섀럿의 1주기 추도식이 있던 날 밤 데이브의 숙소를 아들의 전우들이 방문하면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다. 그들은 사건 당일 무인항공기 등에서 현장을 촬영한 비디오 자료 등을 내놓으며 “당국이 사건을 은폐하고 거짓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화면에서는 바닥에 쓰러진 섀럿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010년에 나온 최종 부검자료는 불과 1.8m 거리에서 섀럿이 핸슨의 총에 맞은 것으로 결론지었다. 핸슨은 또 그날 밤 아군끼리 식별할 수 있는 적외선 장비를 켜라는 지시를 부하들에게 내리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핸슨은 끝내 덤불 쪽으로 총을 쏜 기억밖에 없다고 진술했고 사건 후 오히려 진급까지 했지만 데이브의 탄원으로 결국 군복을 벗었다. 아들의 사인 규명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데이브는 최근 유품을 정리하다 아들이 사망하기 며칠 전 쓴 일기를 발견했다. “우리는 지금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다. 군대를 나가고 싶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귀중한 고미술품 자식에게 상속 말고 박물관에 기증 하세요”

    “귀중한 고미술품 자식에게 상속 말고 박물관에 기증 하세요”

    1950년 9월 김재원 초대 국립중앙박물관장(재임 1945~1970년)은 덕수궁 석조전에서 북한군이 총부리를 겨누는 상황에서 문화재 이송에 필요한 짐을 꾸리고 있었다. 9·28 서울 수복을 앞두고 북한군은 서울의 문화재를 싸들고 북으로 가겠다고 했다. 북한 체제가 완료되기 직전 1947년 개성박물관에서 고려청자 등 귀중한 유물을 다 싸들고 내려왔던 김 관장에겐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었다. 들키면 죽을 각오를 하고 낮이면 문화재 포장을 하는 척했다가 밤이면 그 포장을 풀었다. 결국 북한군은 문화재 북송을 포기하고 철수했다. 문화재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다.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아버지가 초대, 자신은 11대 박물관장이라는 사실에 기분 좋아하는 소녀의 감수성을 지녔다. 그 감수성으로 김 관장은 지난해 가을 유품으로 간직하던 운보 김기창의 독락도(獨圖) 등 29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기증품엔 1950년대 한·타이완 학술대회 때 갑골문자 해독의 권위자인 둥쭤빈(董作賓·1895~1963)이 써준 갑골문서예(甲骨文書藝),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 사촌이 써 준 서예 등도 있다. 기증품을 엄격히 골라서 받아들이는 국립중앙박물관 유물부의 안목을 고려할 때 문화재적 가치가 상당하다. 다만 기증품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기는 쉽지 않다. 최근 미술시장에서 한국화가 평가절하되고 있어서다. 김 관장은 26일 “수집한 골동품들이 아니고 대부분 아버지가 선물 받았던 것인데, 가격 환산은 어렵다.”면서 “국제 교류가 적었던 시절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세계 박물관들과 어떤 교류를 했는지 보여 주는 사료적 가치가 있는 것들이 많다.”고 했다. 하지만 대략 미술계의 감정가 등으로 미뤄볼 때 29점의 가치는 수억원대로 평가된다. 1954년에 그려 아버지 이름으로 증정된 운보의 ‘독락도’에는 일화가 있다. 그는 “덕수궁 석조전으로 가기 전에 국립박물관이 남산에 있었는데, 그때 우리는 그 근처에 집을 사서 살았고, 6·25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다시 김기창과 우향 박래연 화백이 살았던 게 인연이 됐다.”고 했다. 그 집터는 현재 서울시가 운영하는 ‘문학인의 집’이 됐는데, 1950년대에는 연합참모본부가 사용했다고 한다. 김 관장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 구매 예산은 연간 29억원에 불과해 1960~1970년에 골동품을 수집했던 애호가들의 기증이 꼭 필요하다.”면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유물 중 20%는 기증에 의한 것으로, 국보급·보물급 등 모두 기증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김 관장은 “1960~1970년대에 골동품을 수집하셨던 분들은 자식들에게 물려주기보다는 기증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비단이나 한지에 그린 그림들은 전문가가 아니면 보관이 어렵다. “완벽하게 보관하고 전시하게 되면 ‘○○○ 기증’이란 꼬리표를 꼭 달겠다.”고 말했다. 외국 주요 박물관 큐레이터의 주요 업무가 좋은 작품을 많이 가진 수집가들에게 기증을 간곡하게 요청하는 일이듯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오래 몸담은 큐레이터들도 이 업무를 ‘한국적 방식’으로 전개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2월 9일 취임해 벌써 취임 1주년을 넘긴 김 관장은 올해 ▲터키문명전(5월) ▲미국 소재 한국 미술전(6월) ▲고대마야문명전(9월) ▲천하제일 비색 청자전(10월) 등을 계획하고 있다. 외국 문명 전시 시리즈를 지속하는 이유에 대해 김 관장은 “세계화 시대에 외국을 잘 알수록 우리를 더 잘 알게 되기 때문”이라며 “온종일, 일주일 내내 놀고 뒹굴 수 있는 박물관을 임기 내에 만들어 보려고 하니 기대해 달라.”고 했다. 글 사진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김영나 관장은 근대미술사를 주로 연구한 미술사학자로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를 하던 중 지난해 2월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됐다. 언니는 불교 조각 연구의 권위자인 김리나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서양미술사학회장, 문화재위원, 서울대 박물관장을 지냈다. 경기여고를 나와 미국 물렌버그대학 미술학과를 거쳐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1년 서울생.
  • 김기창 화백 ‘독락도’ 등 29점 중앙박물관 기증

    김기창 화백 ‘독락도’ 등 29점 중앙박물관 기증

    김영나(61)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운보 김기창(1913~2001) 화백의 ‘독락도’(獨圖·1954년) 등 근현대 미술품과 고서적 등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29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기증은 지난해 10월 30일 이뤄진 것으로, 김 관장은 기증 사실과 기증품 내역을 26일 서울신문에 처음 공개했다. 기증품은 초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아버지 김재원(1909~1990) 박사의 유품으로, 일반에 공개된 적이 한 차례도 없는 문화재다. 김 관장은 “기증한 유품은 아버지가 친하게 지내던 학자나 예술인들에게서 받은 선물들로 골동품 수집을 하지 않았던 유지를 받든 것”이라면서 “큰언니 김리나 문화재청 문화재위원도 비슷한 시기에 14점의 유물을 기증했다.”고 덧붙였다. 김 박사의 맏딸 김리나(70) 위원과 김 관장은 2005년에도 유품 도서 4000권을 기증한 바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전쟁은 잊혀졌지만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았다”

    “전쟁은 잊혀졌지만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았다”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는다’는 모토로 전쟁 중 실종·사망한 장병 유해 발굴에 적극적인 미군의 노력이 또 한번 빛을 발했다. 6·25전쟁 당시 한반도 북녘에서 전사한 미군 유해가 61년 만에 고향 품에 돌아갔다. 또, 북한군과의 전투 과정에서 숨진 미 공군 파일럿의 가족들이 60여년 만에 훈장을 되찾았다. 미국 버지니아주 웨버시티에서는 18일(현지시간) 고(故) 윌리엄 슬러스 상병의 장례식이 엄수됐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그는 집을 떠난 지 꼬박 61년 만에 유해로 귀향했다. 미군 합동전쟁포로·실종자확인사령부(JPAC) 요원들은 1999년부터 2005년까지 북한에서 발굴 작업을 벌이던 중 슬러스의 유골을 발견, 2007년 하와이의 JPAC 본부로 보내 정밀 검증을 벌여왔다. 17세 때 입대해 한반도로 파병됐던 그는 1950년 11월, 최대 격전 중 하나였던 청천강 전투에서 중공군에 붙잡혀 수용소 생활을 하다 아사(餓死)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례식에 참석한 가족과 마을 주민, 퇴역 군인 등 300명은 눈물을 흘리며 슬러스 상병과 영원히 이별했다. 뉴저지의 포트리 부대 소속 의장대는 영결 나팔을 불고 예포 21발을 쏘며 고향으로 돌아온 참전장병에 대해 최고의 예를 갖췄고 작은 농촌 마을인 웨버시티 주민들은 집집마다 조기를 걸어 슬픔을 나눴다. 오빠의 생사를 몰라 60여년간 시름에 잠겼던 팔순의 여동생 부에나 슬러스 제스터는 “오빠가 마땅히 있어야 할 집에 결국 왔다.”며 울먹였다. 한편, 현역 경찰이 백방을 수소문한 끝에 6·25전쟁 전사자의 훈장을 가족에 돌려줘 감동을 줬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사는 래리 무어 경사는 최근 자신의 가족들이 보관하던 ‘퍼플 하트 메달’(전쟁에서 다치거나 숨진 장병에 주는 훈장)을 주인의 누나인 코니 해들리 바크먼(84)에게 전달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무어는 지난해 숨진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중위 토머스 E 해들리 2세’라고 쓰인 전몰자 훈장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는 메달을 돌려줘야 한다는 일념으로 주인을 소수문하기 시작했고 또 다른 퍼플 하트 메달 수상자인 버몬트 주 방위군 소속의 자카리아 파이크 대위의 도움으로 훈장을 해들리 중위의 누나인 코니 해들리 바크먼에게 돌려줬다. 해들리 중위는 22세 때 공군 전투기 조종사로 6·25전쟁에 참전해 북한군 보급 열차를 폭격하던 중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혼돈의 세상, 성철 스님에게 길을 묻는다

    혼돈의 세상, 성철 스님에게 길을 묻는다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하늘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데/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성철 스님 열반송) 평생 “속이지 말고 공부하라.”고 외쳤던 ‘가야산 호랑이’ 성철(1912~1993) 스님. 한국 현대불교를 대표하는 성철 스님의 탄신 100주년을 맞아 그의 수행처를 따라가며 수행의 의미를 되새기는 순례법회가 마련된다. 재단법인 백련불교문화재단과 중앙신도회부설 불교인재교육원이 다음 달 31일부터 2014년 8월까지 매달 진행하는 ‘성철 스님 수행도량 순례법회’다. 성철 스님의 수행도량을 전수 답사하는 순례법회가 열리기는 처음이다. 순례단은 합천 해인사를 비롯해 부산 범어사, 양산 통도사, 영천 은해사, 대구 동화사, 순천 송광사, 예산 수덕사, 문경 봉암사 등 성철 스님이 주석하며 수행했던 24개 사찰을 방문할 예정이다. 수계득도부터 정진, 오도, 열반까지 스님의 구도 여정을 모두 밟는 셈이다. 순례법회의 가장 큰 특징은 성철 스님의 가르침을 배워 일상에서 회향한다는 점. 이동하는 차량에서 성철 스님의 수행 일화를 소개하며 법사 스님이 법문을 진행한다. 늘 “남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던 스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회와 이웃을 향해 기도하는 시간도 갖는다. 불교계는 이 순례법회 말고도 다양한 기념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불교인재개발원이 3월 5일부터 매주 월요일 저녁 인재개발원 내 선운당에서 실시하는 ‘백일법문 강좌’와 백련불교문화재단의 릴레이 학술포럼은 가장 눈길을 끄는 행사다. 이 가운데 ‘백일법문 강좌’는 성철 스님의 삶과 사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법문의 진수와 가르침을 찬찬히 되새기는 자리다.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인 원택 스님과 금강대 김성철 교수, 불광연구원 서재영 박사가 불교의 본질, 중도사상, 중관사상, 화엄 및 선종사상을 강의한다. 백련불교문화재단의 릴레이 포럼은 성철 사상의 본질인 돈오돈수(頓悟頓修·단번에 깨우쳐 더 수행이 없는 경지)와 한국 불교의 수행법을 집중 조명하는 자리다. ‘퇴옹 성철과 돈점논쟁’(3월 29일)을 시작으로 ‘돈오돈수와 퇴옹 성철의 수증론’(5월 24일), ‘퇴옹 성철의 중도론’(9월 27일), ‘간화선(看話禪)과 위파사나’(11월 22일)에 대한 토론이 이어진다. 문화사업도 풍성하게 열린다. 불교중앙박물관에서는 스님의 일대기를 담은 전시회(3월 8일∼6월 3일)가 마련돼 스님의 유품, 유필, 사진을 볼 수 있다. 서예가 겸 전각가인 김양동 화백이 법어집 ‘본지풍광’ 속 말씀을 서화로 꾸민 ‘성철 스님의 법어 서화전’을 준비하고 있으며 가을쯤엔 박대성 화백이 성철 스님의 행적지와 초상을 수묵으로 그린 전시회를 연다. 스님의 생애를 담은 ‘성철 큰스님 행장’, 말씀에 사진을 곁들인 ‘본래 눈을 뜨고 보면’ 같은 서적도 2월 말 잇따라 출간되며 스님의 일화를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동화도 5월쯤 선보인다. 플래시 애니메이션, 비디오 클립, 웹툰 등 성철 스님과 관련해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 인터넷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서비스하는 사업도 추진된다. 이 같은 사업을 준비해 온 백련불교문화재단은 “성철 스님이 사회에 끼친 영향을 모색하면서 스님을 한국을 대표하는 20세기 사상가로 자리매김하는 작업에 초점을 맞췄다.”며 “스님을 문화 아이콘으로서도 새롭게 조명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손기정 월계관’ 문화재 된다

    ‘손기정 월계관’ 문화재 된다

    손기정 탄생 100주년을 맞아 마라토너 손기정(1912~2002)이 일제강점기인 1936년 제11회 독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해 받은 금메달과 우승 상장, 시상대에서 쓴 독일산 참나무로 만든 월계관 등 3점이 ‘문화재’로 등록된다. 문화재청은 손기정기념재단이 소장한 이들 유품이 세계신기록(2시간 29분 19초)으로 우승하며 한국인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손기정 선수의 것으로, 체육사·민족사적 가치가 크다며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고 9일 말했다. 아울러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올림픽 역사상 한국이 처음 출전해 ‘코리아’(KOREA)와 태극기를 알린 제14회 런던올림픽 관련 유물과 1956년 홍콩에서 개최된 제1회 아시안컵 축구대회 우승컵도 문화재로 등록된다. 런던올림픽 관련 유물로 등록될 예정인 ‘제14회 런던올림픽 후원권’(가乙 NO.000001호)은 한국 대표단의 경비를 충당하고자 올림픽후원회가 1947년 12월 1일에 복권 형식으로 발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복권이다. 또 다른 등록 대상인 ‘제14회 런던올림픽 참가 페넌트(가늘고 긴 삼각기)’는 한국 대표 선수단이 가져간 것으로, 길이가 약 150㎝다. 1947년 6월 2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제40차 총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고 런던올림픽 한국 대표팀 고문 자격으로 참가한 이원순(1890~1993)의 ‘여행증명서’와 ‘대표단 단복’ 등 2점도 문화재로 등록된다. 문화재청은 “현재까지 조사된 올림픽 관련 단복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말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독재자 카다피의 피 묻은 셔츠, 경매가 “상상초월”

    지난 해 10월 사망한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가 사망 당시 입었던 유품이 경매에 나와 눈길을 모으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3일자 보도에 따르면, 이번에 경매에 나온 유품은 카다피가 시민군에 잡혔을 때 입고 있었던 피 묻은 티셔츠와 결혼반지 등이다. 반지 안쪽에는 카다피의 두 번째 부인인 사피아와의 결혼날짜인 ‘1970년 9월 10일’이 새겨져 있다. 이 유품은 아흐메드 와파리라는 리비아 국적의 남성이 내놓았으며, 유품의 소유 경로는 밝히지 않았다. 그는 경매가로 200만 달러(한화 약 22억 3600만원)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타인의 재산을 임의로 판매할 수 없다.”, “카다피의 반지는 그의 것이 아니라 리비아 사람들의 돈이니 마음대로 팔아서는 안된다.”고 반박하는 의견들이 쏟아지고 있다. 한편 카다피는 시민군들은 지난 해 1월 고향 시르테에서 시민군들에 의해 처참한 최후를 맞았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巫… 하늘과 땅을 잇다

    巫… 하늘과 땅을 잇다

    영화 ‘아바타’에서 반투명의 우윳빛 우주목을 둘러싸고 원주민들이 춤추고 기도하는 모습을 본 순간 ‘저거 미신 아닌가?’ 하고 의심쩍어했다면, 당신의 종교에 대한 사고는 130여년 이전에 유행했던 고릿적 사고체계에 머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개신교와 같은 유일신 체계는 고등종교이고, 동물과 나무 등을 섬기고 기도하는 종교는 하등종교라는 등식은 종교학이나 인류학에서는 19세기 말 이후로 잘 인용되지 않는다. 미신이라는 고정관념을 탈피한다는 자세로, 국립민속박물관이 마련한 ‘하늘과 땅을 잇는 사람들-샤먼(Shaman)’ 전시를 둘러보도록 하자. 샤먼은 한글로 고상하게는 제사장, 흔하게는 무당, 박수 정도 되겠다. 샤먼을 뜻하는 무당 무(巫)를 파자하면, 하늘(一)과 땅(_)이 연결(工)되고, 그곳에서 사람들(人)이 춤을 춘다고 풀이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러시아, 덴마크, 일본 등 3개국 4개 박물관에서 소장품을 빌려 와 준비했다. 네팔 히말라야 라이족의 샤먼과 내몽골 샤먼, 시베리아 북부 예벤키 샤먼, 한국의 큰 무당 등의 무복(巫服)과 북, 징 등의 무구, 정령마스크와 정령을 표현한 신상 등 522점을 좁은 전시실에 깨알같이 전시해 놓았다. 황해도 만구대택굿의 큰무당 우옥주의 유품과 제주 큰 굿의 기능보유자 이중춘 심방의 유품은 1995년에 기증된 것으로 특별전에서 선보이게 됐다. 서울 새남굿 기능보유자 김유감 만신의 유품인 바리공주 무복도 전시하고 있다. 로마교황청에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 같은 고도로 숙련된 조각가의 종교 작품에 익숙한 관람객이라면 전시물들이 너무 촌스럽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민속학과 종교학을 전공한 김창호 국립민속박물관 연구원은 “소박하고 생활에 밀착된 종교의 도구들”이라며 “서민들 속에서 그들과 호흡하고 있기 때문에 조촐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샤먼들이 종교적 심성을 유지하려고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하는 모습들을 이번 전시에서 포착할 수 있다.”면서 “서양에서 동양으로 기독교가 전파되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쯤에는 대천사 미카엘의 형상이나 예수, 니콜라이 성화상 등이 시베리아 예벤키 샤먼의 무구에 혼합돼 나타났다.”고 말했다. 서양의 군사력이 동양을 압도하는 사회상을 반영해 내몽골의 샤먼들 사이에서는 권총이 주요 무구로 등장하기도 했다. ‘권총 무구’의 존재를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세관의 총포류 단속에 걸려 곤혹을 치렀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새차를 사면 ‘차 고사’를 지내는 것도 현대에 적응한 샤먼의 모습이다. 오는 2월 27일까지. 무료.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러서 실종 한국어선 부선장 사고 두 달만에 시신 수습

    러시아 극동 추콧카주 인근 베링해에서 조업하다 화재와 함께 조난당했던 한국 어선 부선장의 유해가 사고 후 두 달여 만에 수습됐다고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한국 총영사관이 25일 밝혔다. 지난해 11월 17일 베링해에서 명태잡이 조업을 하던 한국 냉동 트롤어선 ‘오리엔탈 엔젤’호에 화재가 발생해 선장과 선원 등 89명은 쪽배를 타고 탈출했으나 부선장 한상렬(당시 49세)씨는 실종됐다. 러시아와 한국 측 구조선이 여러 차례 접근을 시도했으나 악천후로 번번이 실패했고, 헬기를 이용한 수색 작업도 강풍으로 불가능한 상태였다. 하지만 유가족과 정부 측의 끈질긴 요청을 받아들인 추콧카주 재난당국이 지난 20일부터 다시 수색 작업에 나서 시신을 수습하는 데 성공했다. 수색팀은 무한궤도차를 이용해 얼음이 언 바다 위를 이동해 간신히 사고 선박에 접근해 23일 오후 한씨의 시신과 유품을 발견했다. 유족들은 시신을 한국으로 운송해 장례를 치를 예정이다. 모스크바 연합뉴스
  • 6·25 전사자 9명 유해 ‘가족 품으로’

    6·25 전쟁 때 전사한 국군 9명의 유해가 설 연휴를 앞두고 따뜻한 가족 품에 안겼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최근 강원도 철원과 양구 등지에서 발굴한 고(故) 빈원식 이등상사와 이광수 일병 등 국군전사자 9명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17일 밝혔다. 이 가운데 5명은 8사단 소속이다. 1953년 7월 중공군이 최후 공세를 펼 당시 금성 돌출부 전투에 참가했다가 함께 산화했다. 감식단은 함께 발굴된 인식표를 단서로 신원을 확인했다. 빈원식 이등상사의 동생 창식(79·경북 문경)씨는 “장남인 형이 전사한 뒤 부모님은 평생 가슴에 한을 안고 힘든 삶을 살았다.”면서 “군복 입은 사진 한 장이 유일한 유품이었는데 이번 설에 형을 모실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나머지 4명은 순수 유전자 비교검사만으로 신원을 확인했다. 신원 확인을 통해 아버지의 유해를 찾은 민완식(64·강원도 춘천)씨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라고는 내가 두세 살 때 휴가를 나와서 안아주셨던 게 전부”라면서 “부친의 전사 소식을 전해 듣고 한평생을 망연자실하며 힘겹게 살아오신 어머니가 얼마 전 돌아가셨는데 이제야 부친의 유해를 맞게 된다니 만감이 교차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국방부는 각 지역을 담당하는 군단장과 사단장이 17∼20일 유족의 집을 방문해 장관 명의의 신원확인 통지서와 위로패, 유품 등을 전달하도록 할 예정이다. 전사자 유해는 오는 6월 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살 사람이 없어서…” 45억원 유화 강탈 2년여만에 돌아와

    “살 사람이 없어서…” 45억원 유화 강탈 2년여만에 돌아와

    벨기에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의 45억원 상당 작품이 박물관에서 도난당했다가 매수자를 못 찾아 2년 만에 되돌아왔다. 브뤼셀 르네 마그리트 박물관의 큐레이터 앙드레 가리트는 지난 6일(현지시간) 2009년 9월 박물관에서 강탈당한 마그리트의 1948년 작 누드 유화 ‘올랭피아’를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이 보험회사와 일하는 전문가와 접촉해 조건 없이 돌려주겠다고 해 회수했다고 밝혔다. 이 작품은 도난 당시 최대 300만 유로를 호가하는 것으로 평가받았는데, 전문가들은 이 작품이 워낙 유명해 매수자 찾기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강탈 당시 2명의 강도 중 한 명은 아시아인이었으며 한 사람은 프랑스어를, 다른 사람은 영어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박물관은 이 작품을 다시 전시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AFP 등 외신들은 전했다. 이 박물관은 마그리트가 24년간 살면서 작품 활동을 한 자택에 마련됐으며, 그림 외에도 약 100점의 유품과 문서들이 소장돼 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36) 목졸려 살해된 시신, 라면박스만 없었어도… 범죄가 흔적을 남기기 위해… 35) 그녀와 만난 남자는 모두 죽는다 마약에 눈먼 20대 명품녀의 엽기적 살인행각 34) 하얀 피부와 사후강직이 일러준 토막살인의 진실 전철역 화장실에 유기된 30대女의 시신 33) 억울한 10대 소녀의 죽음…두줄 상처의 비밀 추락에 의한 자살? 몸을 통해 타살 증언하다 32) 살해된 20대女의 수표에 ‘검은 악마’의 정체가 담기다 완전범죄를 꿈꾸던 엽기 살인마 31) 최악의 女연쇄살인범 김선자, 5명 독살과 비참한 최후 청산염으로 가족, 친구 무차별 살해 30) 동거女 잔혹하게 살해한 30대, 시신이 물속에서 떠오르자… 살인후 물속으로 던진 사건 그후 29) 살인자가 남기고 간 화장품 향기, 그것은 ‘트릭’이었다 강릉 40대女 살인사건의 전말 28) 소리없이 사라진 30대 새댁, 알고보니 들짐승이… 부러진 다리뼈가 범인을 지목하다 27) 40대 여인 유일 목격자 경비 최면 걸자 법최면이 일러준 범인의 얼굴 26) 목졸리고 훼손된 60대 시신… 그것은 범인의 속임수였다 ‘파란 옷’ 입었던 살인마 25) 그녀가 남긴 담배꽁초 감식결과 놀라운 사실이 살인 현장에 남은 립스틱의 반전 24) 택시 안에서 숨진 20대 직장女 살인범은 과연… 돈 버리고 납치한 이상한 택시 강도 23) 살인현장에 남은 별무늬 운동화 자국의 비밀 60대 노인의 치밀한 트릭 22) 70% 부패한 시신 유일한 증거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1) 자다가 갑자기 세상을 뜨는 젊은 남자들…누구의 저주인가? 청장년 급사증후군의 비밀 20) 아파트 침대 밑 女 시신 2구…잔인한 ‘진실게임’ 결과는? 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19) 자살이라 보기엔 너무 폭력적인 죽음…왜? 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18) 헤어드라이어로 조강지처 살해한 50대의 계략… 몸에 남은 ‘전류반’은 못 숨겼네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토막살인범 잡고보니 바다에서 건진 시신 신원찾기 16) 이태원 옷집 주인 살인사건…20대 여성이 지목한 범인은? 찢어진 장부의 증언 15) 무참히 살해된 20대女…6년만에 살인범 잡고보니… 274만개의 눈이 잡은 연쇄살인범의 정체 14) 백골로 발견된 미모의 20대女, 성형수술만 안 했어도… 가련한 여성의 한 풀어준 그것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이 범인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증거는 11) 자살한 40대 노래방 여주인, 살인범은 알고 있었다 생활반응이 알려준 사건의 진실 10) 소변 참으며 물 마시던 20대女, 갑자기 몸을 뒤틀며… 생명을 앗아가는 ‘죽음의 물’ 9) “그날 조폭은 왜 하필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8) 변태성욕 30대 살인마의 아주 특별한 핏자국 혈흔속 性염색체의 오묘한 비밀 7) 정자가 수상한 정액…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6) 천안 母女살인범, 현장에서 대변만 보지 않았더라도… ‘미세증거물’ 속에 숨은 사건의 진상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여성의 사연 4) 살해당한 아내의 눈속에 담긴 죽음의 비밀… 흔해서 더 잔인한 위장 살인의 실체는 3) 친구와 함께 차안에서 아내에 몹쓸짓 한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전체 시리즈 목차보기 (클릭)
  • 엘리자베스 테일러 진주목걸이 137억원에 낙찰

    엘리자베스 테일러 진주목걸이 137억원에 낙찰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착용했던 진주목걸이가 13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열린 경매에서 예상가의 4~5배를 넘는 1184만 달러(약 137억원)에 팔렸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진주목걸이로는 역대 최고 경매가다. ‘라 페레그리나’라는 애칭을 가진 이 진주목걸이는 테일러의 전 남편이자 배우 리처드 버턴이 1969년 경매에서 3만 7000달러에 구입해 테일러에게 선물한 것이다. 기록상으로는 스페인 국왕 필립 2세가 첫 소유자로 돼 있으며 이후 스페인의 마가레트, 엘리자베스 여왕을 거쳐 나폴레옹의 동생 조제프 보나파르트가 소유하기도 했다. 지난 3월 타계한 테일러의 보석, 의상, 소장품 등을 대상으로 크리스티가 주관한 이 경매에서 보석상 불가리가 제작했던 에메랄드 및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610만 달러, 불가리 브로치는 660만 달러, 귀걸이 세트는 320만 달러에 낙찰됐다. 4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경매는 판매 총액 1억1600만 달러(약 1340억원)로, 1인 소장품 경매 신기록을 세웠다. 크리스티는 액세서리, 의상 등 테일러의 유품 및 소장품 1000여점의 온라인 경매를 부대 행사로 실시하고 있다. 생전 일곱 번 결혼했던 테일러가 첫 번째 결혼식에서 입었던 드레스는 4만~6만 달러에 팔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랜드그룹은 이날 매물 가운데 하나인 ‘엘리자베스 테일러 다이아몬드’ 반지를 881만 8500만 달러(101억원)에 낙찰 받았다고 밝혔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다이아몬드’는 리처드 버턴으로부터 1968년 선물 받은 33.19 캐럿 다이아몬드로 버턴이 당시 경매에서 30만 달러에 낙찰 받은 것이다. 이 반지는 그녀가 생전에 가장 아끼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랜드그룹은 경매 참여 이유에 대해 “관광 레저 사업을 위한 콘텐츠 확보가 목적이었다.”며 “이번에 낙찰 받은 다이아몬드는 대구의 테마파크 이월드(구 우방랜드)에 전시해 일반에게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순녀·박상숙기자 coral@seoul.co.kr
  • “한글 수집품 국내 최다… 청소년 교육의 장으로”

    “한글 수집품 국내 최다… 청소년 교육의 장으로”

    드라마 촬영지로 이름 난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을 꼭 찾아야 할 이유가 하나 늘었다. 한글과 전통 문화를 고집스럽게도 지켜내려 했던 고(故) 한창기 선생이 평생 모은 유물들을 한자리에 모은 뿌리깊은나무박물관이 지난달 21일 읍성 들머리에서 100m 떨어진 곳에 문을 열었다. 순천시에서 21억원을 지원받아 시립 간판이 붙여졌지만 1736㎡의 터에 들어선 전시관과 8채의 한옥을 오롯이 채운 것은 고인의 열정과 집념이었다. 단원 김홍도의 낙관이 찍힌 ‘창해낭구도’, 신사임당의 것으로 보이는 ‘초충도’를 비롯해 진귀한 문화재와 민속품 등 6500여점 가운데 800여점을 우선 선보이고 앞으로 수장고에 보관된 것들과 번갈아 전시된다. 박물관 건립에 헌신해 온 차정금(59) 뿌리깊은나무재단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1997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한창기 선생의 제수로, 형의 유지를 이으려 재단을 설립한 남편 상훈씨마저 이듬해 역시 간암으로 떠나자 재단 일을 도맡아 왔다. →박물관을 세우겠다는 뜻을 14년 동안 꺾지 않은 이유는. -유언집행인 한 분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모두 기증하고 받는 20억원의 보상금으로 다른 기념사업을 하자고 했다. 그런데 시숙의 유물들이 중앙박물관에 가면 국보급 유물들에 가려 햇빛 한 번 보지 못한 채 수장고에 묵히게 된다. 그러면 한창기 선생은 없어지는 것인데 그분의 존재가 없어지는 일을 가족으로서 할 수 없었다. →지난달 개관식 뒤 곧바로 시숙(媤叔)의 묘소를 찾았다는데. -힘들게 완공하고 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시숙님, (생전에 원하시던 일) 다 해놨어요.’라고 말했어요. 이렇게 어려운 일을 맡겨 놓고 가셨는데 해낸 것을 보고 장한 일 했다고 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기뻤다. →영화 ‘서편제’를 촬영한 한옥이 눈에 띈다. -90년 전 구례 산적리에 백경 김무규 선생의 부친이 지은 것이다. 80년대 초에 시숙이 사고 싶어 했는데 형편이 되지 않았다. 2001년에 처음 보러 갔는데 다 허물어져 있어 김홍남 전 국립박물관장 등이 너무 안타까워했다. 구례군수를 찾아가 “보존해야 한다.”고 했더니 ‘사유재산이고 경주 다음으로 문화재가 많아 관리할 수가 없다.’는 답을 들었다. 그래서 터를 잡아 박물관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민숙 가구박물관장이 옮겨 오는 아이디어를 내 그렇게 했다. →생전에 선생의 고집이 대단했다. -잡지 ‘뿌리 깊은 나무’를 창간할 때 영어나 한문을 한 글자도 넣지 않고 편집했다. 브리태니커백과사전을 팔아 돈을 벌 정도로 영어를 잘했는데 그랬다. ‘삼국지’ ‘옥련몽’ 등 한글소설과 조선후기 목판 등 한글 관련 수집품으로선 국내에서 가장 많다. 유물들도 돈되는 것보다 민속품을 주로 모았다. 신발도 짚신, 아녀자들의 꽃신, 궁중에서 신던 것까지 시리즈로 죄다 모았다. 재물의 가치로 보지 않고 우리 문화의 맥을 짚는 물건으로 보았으면 좋겠다. →관람객들의 반응은. -시골 박물관이라고 우습게 여겼다가 규모 면에서나 수집된 물품들의 가치를 보며 많이 감탄한다. →앞으로의 꿈은. -선생의 소중한 뜻과 이룬 것들을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가르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됐으면 좋겠다. 고인보다 더 큰 이상을 좇으며 성장했으면 한다. 또 안경이나 회중시계 등 개인 유품을 순천의 아파트에 보관 중인데 따로 전시할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글 사진 순천 문성호 PD sungho@seoul.co.kr ■9일 밤 7시 30분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 ‘TV 쏙 서울신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한국 천주교 외형 급성장… 北선교 같은 새 모델에 주목해야”

    “한국 천주교 외형 급성장… 北선교 같은 새 모델에 주목해야”

    “파리외방전교회와 한국은 전교회 초기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고 지금도 여전히 각별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한국에 파견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의 순교는 한국 천주교회의 뿌리를 다지는 고귀한 희생이었지요.” 지난달 1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중심가 뤼드박 128번지 전교회 본부에서 만난 조르주 콜롱(58) 총장. 그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의 주관으로 유럽 성지를 순례 중인 기자단을 반갑게 맞아 “한국은 우리에게 외국이지만 외국이 아닌 나라”라며 “국가와 종교, 종파를 떠나 사랑과 평화를 위해 함께 연대해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1658년 로마 교황청 직할단체로 출범한 파리외방전교회는 프랑스 최초의 해외 선교단체. 한국과의 인연은 1811, 1827년 두 차례에 걸쳐 이 땅의 신자들이 미사를 집전할 신부를 파견해줄 것을 교황청에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170여명의 선교사가 조선에 파견됐고 그중 12명이 순교했으며 순교자 중 10명은 천주교 최고의 명예라는 성인품을 받았다. 파리외방전교회 사람들은 조선에서 선교사들의 순교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모여 감사의 노래 ‘테 데움’(Te Deum)을 불렀다고 한다. 지금도 본부 정원 팔각정에는 한국에서 순교해 성인 반열에 오른 10명의 선교사 이름이 새겨져 있다. ‘테 데움’을 불러줄 수 있느냐는 순례단의 요청에 “잘 기억하지는 못한다.”며 대신 찬미가 ‘살베 레지나’를 들려 준 콜롱 총장은 한국 천주교에 대한 조언도 전했다. “이제 한국 천주교는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했고 보편화됐지만 외형에 치우치다 보면 정작 중요한 가치를 외면할 수 있습니다. 북한 선교 같은 새로운 모델과 사업에 주목해 가톨릭 본연의 가치를 확장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이 전교회는 초기의 지향과는 달리 해외 전교보다는 프랑스에 건너 온 신학생들의 교육에 더 치중하고 있는 상황. 아시아에 파견한 선교사가 지난해 5명, 올해 7명에 그쳤고 소속 사제도 한국에서 활동 중인 12명을 포함해 280명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콜롱 총장은 “과거 한국에 파견된 선교사들이 했던 것처럼 북한, 미얀마, 중국 같은 나라에서도 아직 우리 선교사들이 할 일이 많다.”며 전교회의 위상을 강조했다. 40여분간의 인터뷰를 마친 뒤 순례단을 선교사들의 사진과 유품이 전시된 지하 박물관으로 안내한 콜롱 신부. 한국과 베트남 등 아시아의 각지에서 피를 뿌리며 숨져간 선교사들의 흔적을 보여 준 그는 “예수님이 당신을 희생한 첫 순교자였다면 전교회의 선교사들은 그분의 뒤를 따르는 제자들”이라는 말로 순례단을 배웅했다. 파리 글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국보급 ‘훈민정음 해례본’ 훔친 범인 법정서 함구중인데…

    국보급 ‘훈민정음 해례본’ 훔친 범인 법정서 함구중인데…

    2008년 경북 상주에서 발견됐다 이내 사라진 훈민정음 해례본. 한글을 보급하기 위해 제작한 한문 해설서로 세상에 나왔지만 수백년간 사람들이 몰라 보고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뒤늦게 가치를 알아본 이들이 ‘무가지보’(無價之寶)라며 치켜세우더니 소유권 다툼 끝에 소재조차 알 수 없게 됐다.<서울신문 11월 11일 자 12면> 지난달 24일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 1호 법정. 조모(66)씨가 상주에서 운영하는 골동품 가게에서 해례본 상주본을 훔치고 은닉, 훼손한 혐의(문화재보호법 위반)로 구속 기소된 배모(48)씨 재판에 문화재 도굴 일인자로 알려진 서상복(50)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서울신문 11월 26일 자 8면> 서씨를 증인으로 부른 박순영 검사가 “증인이 절취한 고서의 표지, 일명 ‘가오리’를 보고 훈민정음 해례본임을 알 수 있었나.”라고 묻자 서씨는 “그렇다.”고 답했다. 이어 박 검사가 “경북 안동 광흥사에서 훔친 것인가.”라고 묻자 그는 “거기서 나왔다.”고 답했다. 서씨는 광흥사 대웅전의 나한상 등에 들어 있던(복장·腹藏) 수십 권의 고서를 절취했는데 그 중 한 권이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70호와 동일 판본인 상주본이었다. 그는 조씨에게 간기(刊記·출간한 연도 기록)가 직지심체요절보다 50년 앞선 고려 금속활자본 불경을 1억원에 팔았다. 며칠 뒤에는 상주본을 비롯한 고서 한 상자를 500만원에 넘겼다. 광흥사에서 훔칠 당시 상주본 상태에 대해 그는 “표지와 내용을 몇 장 들춰보고 해례본임을 알았으며 뒷장이 떨어져 나가고 너덜너덜했다.”고 증언했다. 문제는 상주본을 빨리 회수해 제대로 보존하는 일. 대법원이 지난 6월 조씨에게 상주본을 돌려주라고 판결했지만 배씨는 입을 다물고 있고 법원의 강제집행, 검찰과 경찰의 압수수색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검찰과 문화재청은 국보급 문화재를 회수하는 데 뜻을 같이하고 있지만 해법은 다르다. 검찰은 복장 유물이자 장물로 보기 때문에 배씨는 물론, 조씨에게서도 압수하겠다는 입장이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가액을 따져 징역 25년까지 구형 가능한 점으로 압박할 수 있다고 보며 서씨를 증인으로 부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반면 문화재청은 신라 때 창건된 광흥사 불상에서 불경이 아닌 상주본이 나오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선조의 유품이라고 주장하는 조씨 소유를 인정한다는 전략. 배씨를 설득해 조씨에게 돌려주도록 한 뒤 보상금을 주고 사들여 국가에서 보존한다는 복안이다. 서씨는 공판 뒤 “몰래라도 국가가 배씨에게 일정액을 보상하고 양형도 조절해주지 않으면 배씨가 절대 내놓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함께 재판을 지켜본 문화재청 사범단속계 강신태 반장은 “범죄자에게 돈을 건네는 것은 현행법상 불가능하다.”고 난색을 표시했다. 강 반장은 “배씨가 (상주시 낙동면의) 자기 집에 숨겨놓았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탐침기구와 중장비를 동원해야 하는 일이라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정밀 수색밖에 해법이 없다는 게 중론. 배씨가 3년 전 감정 받기 위해 낱장으로 분리한 상주본을 이곳저곳에 은닉했을 가능성이 높다. 대구의 고미술상 박진규씨는 “고서는 비닐에 쌌더라도 땅에 묻히는 순간, 급격히 부패하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손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상주 황성기기자 marry04@seoul.co.kr
  • [주말 영화]

    ●달마야 서울가자(OBS 일요일 밤 10시 15분) 청명 스님이 서울의 무심사에 큰스님의 유품을 전해주기 위해 은하사를 떠나자 현각 스님과 묵언수행 중인 대봉 스님이 청명 스님 보호를 핑계로 따라나선다. 스님들이 어렵사리 도착한 서울의 무심사. 주지는 이미 5억원의 빚을 진 뒤 절을 떠났고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노보살 스님과 꽃미남 무진 스님, 그리고 동자승만이 남아 있는 상황이다. 절 곳곳에 붙어 있는 법원의 차압 딱지는 스님들을 기겁하게 만든다. 급기야 절에 들이닥친 범식 일당과 마주친 청명·현각·대봉 스님은 무심사를 구하기 위해 남는다. 그러나 법적으로 이미 대륙개발에 넘어간 무심사. 범식과 그의 수하들은 절터에 주상 복합 건물인 ‘드림시티’를 세울 계획이라며 당장 나가라고 으름장을 놓고 불전함을 빼앗아 간다. 그 와중에 묵언수행 중인 대봉 스님이 구입한 로또복권이 300억원에 당첨된다. 하지만 로또복권 영수증은 범식 일당이 빼앗아 간 불전함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또 한번 망연자실하는데…. ●뮤직박스(EBS 일요일 오후 2시 30분) 마이크는 근 50년 전 미국에 이주한 헝가리 출신 이민자다. 그는 성공한 변호사인 딸 앤과 그를 좋아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평온하고 즐거운 삶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러시아에서 2차세계대전 당시의 기밀문서가 공개되자 마이크는 악랄한 헝가리 전범으로 법정에 서는 신세가 된다. 앤은 모든 게 공산주의자들의 음모라고 주장하며 단호하게 무죄를 주장하는 아버지를 변호하기로 마음먹는다. 부단한 노력 끝에 결국 원고 측 증인들의 증언을 뒤집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모든 문제가 끝났다고 여긴 바로 그 순간 진정한 과거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미국에 돌아가기 직전 아버지의 군 동료를 찾아 나선 앤은 그의 누이에게 건네받은 뮤직 박스 안에서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을 발견하고 만다. ●미호 이야기 外(KBS1 토요일 밤 12시 55분) 구미호가 설쳐 흉흉해진 마을, 무당의 점괘에 따라 양반 댁 아가씨 난명은 다른 친구들과 함께 구미호의 제물로 바쳐진다. 아홉 개로 쪼갠 구슬을 먹고 구미호의 아이들을 낳아야 하는 마을 처녀들. 유독 총명했던 난명은 구미호에게 숨바꼭질을 하자며 내기를 건다. 태어난 아이들의 16세 생일이 지나고 그 후 9일 동안 구미호가 아이들을 찾아내기로 한 것이다. 무사히 숨으면 아이들과 엄마들의 승리, 아이들을 전부 찾아내면 구미호의 승리라는 말에 내기를 좋아하는 구미호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데…. 두 번째 이야기,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소년이 있다. 소년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마술을 배운다. 마침내 소녀 앞에서 마술 시범을 보이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놀림만 받고 만다.
  • “영친왕 부부의 일생 만나보세요” 고궁박물관 22일부터 특별전

    “영친왕 부부의 일생 만나보세요” 고궁박물관 22일부터 특별전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정종수)에서 22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하정웅 기증전-순종 황제의 서북 순행과 영친왕·왕비의 일생’ 특별전이 열린다. 하정웅(72)씨는 일본 오사카 출신의 재일교포 사업가이자 미술품 수집가다. 이번 기획전에서는 하씨가 기증한 영친왕비의 사진, 서신 등 유품 610건을 공개한다. 하씨는 1974년 창덕궁 낙선재에서 미술품 바자를 준비하던 영친왕비를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오랫동안 영친왕비와 친분을 유지해 왔으며, 영친왕비 사후 그가 남긴 유품을 인수하게 되었다. 전시에서는 ‘순종황제의 서북 순행’ 사진첩과 영친왕 휴대용 수첩, 영친왕비 일기 등이 일반인에게 처음 공개된다. 영친왕비 일기 등 일부는 지난해 10월 언론에 먼저 공개했다. ‘순종황제의 서북 순행’ 사진첩은 1909년 1월 27일~2월 3일 순종 황제가 당시 남대문역(지금 서울역)을 출발하여 평양, 신의주 등 한반도 서북지역을 순행한 전체 일정을 사진으로 기록한 것이다. 영친왕 휴대용 수첩은 영친왕이 일본을 비롯한 유럽, 미주지역을 순방하며 개인적인 소견을 기록한 것으로 “일본의 교육은 모방, 수입교육이다. 제도, 방법도 모두 서양교육과 닮아 있다. 국민의 성장에 적합한 것이 아니라 서양 것을 그대로 흉내 낸 것이다….” “…농업을 구하자. 자작농의 유지, 자작농을 늘리는 일에 힘쓰다. …국방필요상 힘들어도 국내에서 농업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영친왕비의 일기는 1919년 한 해 동안 쓴 것으로 결혼을 한 해 앞둔 신부로서의 설렘과 영친왕에 대한 연민이 사실적으로 드러나 있다. 1919년 1월 21일 고종이 갑자기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에 슬픔에 잠기는 내용도 있다. 지인들과 주고받은 서신과 영친왕 부부의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의 사진 100여점도 함께 전시되어 영친왕과 왕비의 일생을 엿볼 수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34) 상수학 대가, 소강절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34) 상수학 대가, 소강절

    결혼 첫날밤, 소강절은 부인을 재워놓고 밤새 점을 치고 있었다. 그가 궁금했던 건 이 첫날밤 행사로 자식이 생겼을까 하는 것. 점을 쳐보니 과연 아들이 들어섰다는 점괘가 나왔다. 내친김에 손자와 그 다음 후손들의 앞날까지 점을 쳤다. 그러던 중, 9대손에 이르러 불길한 점괘가 나왔다. 9대손이 역적 누명을 쓰고 죽을 운명이었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소강절은 임종을 앞두고 유품 하나를 남겼다. “이것을 9대손에게 물려주고 집안에 큰일이 생기면 풀어보게 하라.”는 유언과 함께. ●9대손의 목숨을 구한 점괘 300년 후, 소강절의 9대손은 정말 역적 누명을 쓰고 멸문지화를 당할 처지에 놓였다. 그는 9대조 할아버지의 유품을 열어 볼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고, 드디어 보자기를 풀었다. 그 안에는 “지체하지 말고 이 함을 형조상서에게 전하라.”는 메시지가 있었다. 그는 그 길로 형조상서를 찾아 갔다. 형조상서는 300년 전 대학자인 소강절의 유품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황급히 나와 예를 다해 유품을 받았다. 그런데 그가 유품을 받기 위해 마당에 내려서자마자, 서까래가 내려앉으며 집이 무너지고 말았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가져온 함 속에 있었던 소강절의 편지 내용이었다. 거기엔 “당신이 대들보에 깔려 죽었을 목숨을 내가 구해주었으니, 당신은 나의 9대손을 구해 주시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상서는 그 길로 재수사를 명했고, 9대손의 무죄를 입증해 주었다. 9대손의 운명까지 예측할 정도로 그의 점복술은 그야말로 최고 경지였다. 소강절의 생애에 관해선 기록이 별로 남아 있지 않고, 대신 이 같은 신비한 얘기들이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런 기막힌 예지력 때문에 그는 신비한 점쟁이의 대명사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그러나 소강절은 수리(數理)를 성리학적으로 완성한 상수학(象數學)의 대가이다. 그의 예지력은 영감이나 직감이 아닌 바로 ‘수(數)의 이치’에서 나오는 것이다. ●숫자로 천지(天地)의 이치를 헤아리다 소강절(邵康節·1011~1077)은 북송 시대의 유학자이자 시인으로, 북송5자(주렴계, 소강절, 장재, 정호, 정이)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입신양명의 꿈을 키웠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과거를 준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옛 사람들은 시간을 뛰어넘어 더 옛날의 사람과도 소통하였는데, 나는 지금 내 주위 사방(四方)에도 못 미치는구나.”하며, 집을 떠나 천하를 떠돌아 다녔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도(道)가 여기에 있다.”고 말한 후, 다시 나가지 않았고 더 이상 과거공부도 하지 않았다. 진정한 소통은 입신양명 같은 외적 확대가 아니라 우주와 직접 연결되는 내면의 확장이라고 깨달은 것일까. 이 무렵 이지재가 소강절이 학문을 즐긴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방문했다. 이지재는 주렴계의 스승인 목수의 제자로 고문에 정통한 학자이자 관리였다. 이지재는 소강절에게 물리(物理)와 성명(性命) 공부를 권했다. 뜻이 깊으면 그 방면에 반드시 스승이 나타난다고 했던가. 그런데 소강절의 경우는 한 술 더 떠서 스승이 제 발로 찾아와 스승 되기를 청했다. 이때부터 소강절은 춘추를 배우고 역학(易學)을 전수받았다. 이지재는 그의 잠재력과 학문적 그릇을 꿰뚫어 보았다. 훗날 소강절의 사상이 주자학(신유학)의 사상적 기틀이 된 것을 보면 이지재의 안목도 대단하다고 하겠다. 소강절은 이지재로부터 도교의 연단술에 운용되던 선천도(先天圖)를 전해 받았고, 그것을 재해석하여 ‘선천역학’이라는 역학의 새로운 해석체계를 세웠다. 이 이론의 핵심은 ‘가일배법’(加一倍法)이라는 단순한 원리에서 시작된다. 가일배법은 하나가 둘로 나뉘는 법칙으로 2 0, 2 1, 2 2, 2 3… 2 n식의 배수로 진행된다. 이렇게 두 배로 분화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만물생성의 이치라는 것이다. 이 중에서 소강절은 숫자 ‘4’에 주목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역사는 ‘4’라는 수의 변천과 순환일 따름이다. ‘춘·하·추·동’과 ‘역·서·시·춘추’로부터 시작된 하늘과 인간의 네 국면은 그 순서대로 생(生; 낳고), 장(長; 자라고), 수(收; 수렴하고), 장(藏; 저장한다)하는 사이클을 가지고 2배수씩 분할된다. 그렇게 분할되어 낳은 것 중에는 ‘인·의·예·지’ 같은 윤리적인 이치도 있고, ‘문왕·무왕·주공·소공’ 같은 역사적 인물도 포함된다. 이런 식으로 확장해 가면 우주만물과 그 시공간을 모두 헤아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생장수장의 운명적 리듬을 통해 만물의 운명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소강절의 대표 이론인 원회운세론의 ‘원(元)·회(會)·운(運)·세(世)’는 우주의 시간단위로서 이것은 ‘연·월·일·시’의 주기성과 통한다. 즉, 원(元=12회)은 우주의 1년이고 지구의 시간으로는 12만 9600년에 해당하고, 회(會=30운)는 우주의 한 달이며 지구시간으로는 1만 800년에 해당한다. 그리고 운(運=12세)은 우주의 하루로서 지구시간으로 360년이고, 세(世)는 우주의 한 시간, 지구시간으로는 30년이다. 이로써 인류를 포함한 만물의 역사는 ‘원회운세’ 안에서 피할 수 없는 준칙을 갖게 되었고, 천지(天地)와 인간은 같은 패턴의 시간성 안에서 물리와 생리를 연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원회운세와 더불어 관물내편과 관물외편 그리고 성음율려를 더해 대작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가 완성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예지력은 ‘초월적 능력’이라기보다, ‘숫자’와 숫자에 연결된 이치를 통해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사물을 관찰한 결과인 것이다. 그런데 사물의 관찰, 즉 관물(觀物)이 객관적이기 위해서는 편견의 주체인 ‘나’의 판단을 소거해야 한다. 그래서 소강절은 ‘나로써 사물을 보(以我觀物)’지 않고, ‘사물로써 사물을 보기(以物觀物)’를 강조한다. 결국, 소강절에게 관물은 주체를 만물 속에 깃들게 하는 동시에 만물이 스스로의 이치를 말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는 우주만물이 되고, 내 마음의 움직임은 곧 천지자연의 변화와 다르지 않다. 이를 일컬어 ‘심법’(心法)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수의 이치를 꿰고 마음의 변화를 읽으면 만사를 알 수 있다. 이것이 그의 예지력의 원천인 셈이다. “몸은 천지 뒤에 태어났지만 마음은 천지가 생기기 전부터 있었네. 천지도 나로부터 나오는데 다른 것은 말해 무엇하리!” ●천명(天命)을 깨달은 자의 자유 그러나 그는 이 앎의 위험성을 경계했다. 만일 “수를 써서 지름길로 가려는 것은 하늘의 이치를 왜곡”하는 것이고 그렇게 “억지로 취해서 반드시 얻어내려 하면 화와 근심이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욕에 머물러 “요행을 바라는 것은 천명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문을 하고 마음을 수양하는 일을 올바르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올바름이 바로 도가가 유가의 수양과 만나는 길을 열었으며, 신유학의 기틀로 작용하였다. 이것이 성리학의 토대인 북송5자 중에 소강절이 들어가게 된 연유다. 그는 인생의 후반기를 뤄양(陽)에서 살면서 당대를 주름잡던 사상가인 사마광, 장재, 정명도, 정이천과 가깝게 지냈다. 그러나 그들과 달리 그는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평생 가난하게 살았지만 그의 몸과 사유는 그만큼 자유로웠다. 스스로 ‘유가’임을 선언했지만 다른 북송의 현인들과 달리 불교나 도교에 적대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도교의 이론을 잘 활용했고, 또한 그의 시 중에는 ‘불가의 가르침을 배우며’라는 시가 있을 정도로 유·불·도 사이를 자유롭게 노닐었다. 무엇보다 “학문이 즐거움에 이르지 않으면 학문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그의 말이나, 정명도가 쓴 그의 묘비명, 즉 ‘그는 편안했을뿐더러 이루기도 했다.’는 구절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천명을 안다는 것은 인생역전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앎 그 자체가 삶이자 자유였다. 때문에 그의 길은 늘 사방으로 열려 있었다. “눈앞의 길은 모름지기 널따랗게 만들어야 하느니, 길이 좁으면 자연 몸을 둘 곳이 없네. 하물며 사람들을 다니게 하는데 있어서는 어떻겠는가!” 안도균 감이당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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