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유품
    2026-04-25
    검색기록 지우기
  • 100g당
    2026-04-25
    검색기록 지우기
  • 인파
    2026-04-25
    검색기록 지우기
  • 천막
    2026-04-25
    검색기록 지우기
  • 미혼율
    2026-04-2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790
  • [김민정의 일러두기] 말이라 하면 정확하여 아름답기를

    [김민정의 일러두기] 말이라 하면 정확하여 아름답기를

    아빠의 유품을 정리하며 앨범을 보다가 1983년 8월이라 찍혀 있는 사진을 보다가 제주 여행지에서의 새파랗게 젊은 삼십 대의 엄마 아빠를 보다가 번갈아 말 위에 앉거나 말 옆에 서는 일로 말과 함께 제주 바람 맞아 산발한 둘을 보다가 모형 말 말고 말, 그 살아 있는 말을 탔을 때의 느낌이 어땠는지를 사십 년이 훌쩍 지나서야 불쑥 묻는 내게 엄마는 단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답을 했지. “말도 마. 엄청나게 무서웠어. 말은 가만히 있는데 말 위에서 떨어질까 내 불안감이 내 몸을 흔드는 거야. 내 호들갑이 내 중심을 못 잡게 하는 거야. 문제는 말이 아니라 결국 나더라고.” 말과 내가 온전히 한 몸이어야 한다는 것. 생각, 행동, 의지가 완전히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혼연일체라는 말에 어렴풋이나마 호기심을 갖게 된 것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으로 처음 보게 된 마장마술 경기를 통해서였지. (그때 우리나라 서정균 선수가 금메달을 땄고, 그는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역대 승마 개인전 최고 순위인 10위를 기록한 바 있지. 이후 네 차례 아시안게임에서 6개의 금메달을 따 한국 승마의 전설로 불리던 그는 애석하게도 지난 3월 12일 6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지. 왜 이렇게 시시콜콜 한 사람을 두고 말을 하냐면 영웅은 이런 사람이 아닐까 해서 말이지. 계엄 이후 대선에 이르기까지 지난 6개월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들어온 이름들이여, 부르다가 저들마저 헷갈려버린 이름들이여, 그의 이름을 불러줌으로 우리에게 와서 꽃이 되어 줄 우리 세상의 숨은 인물을 절대 잊지 마라!) 다시 돌아가 가만, 어떻게 그걸 기억하냐고 묻는다면 그 시절 우리집 식구는 여섯이었고 우리집 텔레비전은 단 한 대뿐이었으며 우리집 텔레비전은 너무 작았기에 우리 모두 직진이었고 우리 모두 정면이었으며 우리 모두 집중이었고 우리 모두 몰아일 수밖에 없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거지. 마장에서의 마술이라는 얘긴가, 어린 마음에 해석한 건 그러했는데 마장에서의 예술이라는 얘기구나, 훗날 사전을 찾았을 때야 비로소 분명히 알았지. 가로 60m 세로 20m의 마장에서 일정하게 정해진 운동과목을 얼마나 정확하고 아름답게 하는가를 심판이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경기라는 데서 나는 두 단어에 형광펜을 긋고 따로 메모해 두었던 거지. 그러니까 ‘정확함’과 ‘아름다움’. 그전까지 왜 난 두 단어 사이의 거리가 끝없이 멀다고만 느꼈을까. 오늘에야 왜 난 두 단어가 조화를 넘어 초월임을 아는 걸까. 사람과 말 사이로 보건대 서로가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고 서로가 서로를 배려할 때 발휘될 수 있는 총기는 우리를 예술적인 ‘살이’로 이끌겠지만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서로가 서로를 무시하려 할 때 뿜어져 나오는 독기는 우리를 참혹한 ‘낙마’로 다치게 하겠지. 어쨌거나 선거는 끝났고 새 시대는 열렸기에 날이 날인 만큼 21대 대통령에게 한마디 안 할 수가 없는데 이 맥락에서라면 뭐 이거지. 혹시 말 타 보신 적 있으실까요? 김민정 시인·난다출판사 대표
  • ‘백석대 총장배’ 전국 태권도대회 개막…6000여명 참가

    ‘백석대 총장배’ 전국 태권도대회 개막…6000여명 참가

    백석대학교(총장 장종현)는 17일부터 22일까지 충남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2025 백석대학교 총장배 전국 태권도대회’를 개최한다고 19일 밝혔다. 이번 대회는 △생활체육(개인전·단체전·페어전·태권체조·연속차기) △품새(개인전·복식전·단체전·자유품새) △격파(체공도약격파·축회전격파·종합격파) 등 세 부문으로 나뉘어 진행된단. 대회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약 6000여명의 선수가 참가한다. 대회 첫날에는 온라인 국제태권도대회도 함께 열려 온오프라인이 연계된 복합 대회로 진행된다. 장종현 백석대 총장은 “백석대는 앞으로도 태권도 세계화를 위해 지속해 힘쓸 것이며, 이번 대회가 모두에게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40년을 빙하 속에…아버지 유품 찾아온 두 딸의 사연

    40년을 빙하 속에…아버지 유품 찾아온 두 딸의 사연

    40년 전 남미에서 해발 6600m 화산에 올랐다가 사고로 목숨을 잃은 아르헨티나 산악인의 배낭이 유족의 품에 안겼다. 위험을 불사하고 배낭을 찾아 내려온 이들은 산악인의 두 딸이었다. 11일(현지시간) 현지 언론은 조난사고로 사망한 산악인 기예르모 비에이로의 유품에 대한 사연을 소개하면서 당시 어렸던 그의 딸들이 성장해 험준한 산속에서 아버지의 물건을 찾아 어머니의 품에 안겼다고 전했다. 비에이로는 마흔네 살이던 1985년 안데스산맥 투푼가토 화산 정상을 정복했다. 아르헨티나와 칠레 국경에 놓인 투푼가토 화산은 남미 최고봉인 아콩카구아(해발 6900m) 남부에선 가장 높은 산으로, 빙하로 덮여 안데스산맥 중 가장 아름답고 산세가 수려한 곳으로 꼽힌다. 비에이로는 산악인 지망생이자 제자였던 20살 청년과 함께 그때까지 누구도 도전하지 않았던 투푼가토 화산의 동쪽 루트를 탔다. 동부 루트는 산세가 험해 지금도 산악인들이 도전을 꺼리는 곳이어서 그들의 성공은 크게 주목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하산하던 중에 사고가 발생해 사망했다. 두 사람의 시신은 구조대에 의해 수습됐지만 물품들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까맣게 잊혔던 그의 유품이 세상의 관심을 끈 건 칠레의 한 산악가이드가 우연히 카메라를 발견하면서였다. 산악가이드는 투푼가토 화산 동부를 타다가 눈에 파묻혀 있는 카메라와 함께 피켈(등반용 곡괭이), 배낭을 발견했다. 그는 발견한 물건을 모두 갖고 내려오려고 했지만 배낭은 빙하에 꽁꽁 얼어붙어 있어 떼어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얼음바닥에 용접을 한 것처럼 얼어붙어 있어 아무리 힘을 써도 꼼짝하지 않았다”고 떠올렸다. 이 산악가이드는 카메라와 피켈이 적힌 이름을 보고 비에이로의 물건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수소문 끝에 아르헨티나에 사는 유족과 연락이 닿았다. 아르헨티나에는 비에이로의 부인과 이제 40대가 된 두 딸이 살고 있었다. 산악가이드는 그는 물건들을 보내주면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배낭이 산 위에 있지만 가져오지 못했다”고 알려줬다. 소식을 접한 두 딸은 직접 아버지의 유품을 찾으러 화산에 오르기로 했다. 변호사로 활동 중인 큰딸 아술(44)은 “아버지가 조난사고로 돌아가신 후 집에서 산과 등반은 금기어가 됐다”면서 “아버지의 유품을 찾으러 가기 위해 가장 힘들었던 것은 어머니를 설득하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오랜 설득 끝에 모친의 동의를 얻은 두 딸은 가이드 5명과 기록을 남길 영상 촬영가 2명을 대동하고 아버지의 배낭을 찾아 투푼가토 화산에 올랐다. 사는 곳에서 왕복 100㎞가 넘는 긴 여정이었다. 꼬박 11일이 걸린 등반 끝에 두 딸은 아버지 비에이로의 배낭을 되찾았다. 배낭에는 비에이로의 재킷과 침낭, 수통, 아스피린, 비타민 C, 절연제, 칼 세트, 카메라필름 2통이 들어있었다. 두 딸은 “세계 최초로 동부 루트를 통해 투푼가토 화산 정상에 오른 아버지의 여정이 필름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면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 같아 산악협회에 유품을 기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안데스 빙하에 얼어붙은 유품, 40년 만에 찾아낸 두 딸 [여기는 남미]

    안데스 빙하에 얼어붙은 유품, 40년 만에 찾아낸 두 딸 [여기는 남미]

    40년 전 남미에서 해발 6600m 화산에 올랐다가 사고로 목숨을 잃은 아르헨티나 산악인의 배낭이 유족의 품에 안겼다. 위험을 불사하고 배낭을 찾아 내려온 이들은 산악인의 두 딸이었다. 11일(현지시간) 현지 언론은 조난사고로 사망한 산악인 기예르모 비에이로의 유품에 대한 사연을 소개하면서 당시 어렸던 그의 딸들이 성장해 험준한 산속에서 아버지의 물건을 찾아 어머니의 품에 안겼다고 전했다. 비에이로는 마흔네 살이던 1985년 안데스산맥 투푼가토 화산 정상을 정복했다. 아르헨티나와 칠레 국경에 놓인 투푼가토 화산은 남미 최고봉인 아콩카구아(해발 6900m) 남부에선 가장 높은 산으로, 빙하로 덮여 안데스산맥 중 가장 아름답고 산세가 수려한 곳으로 꼽힌다. 비에이로는 산악인 지망생이자 제자였던 20살 청년과 함께 그때까지 누구도 도전하지 않았던 투푼가토 화산의 동쪽 루트를 탔다. 동부 루트는 산세가 험해 지금도 산악인들이 도전을 꺼리는 곳이어서 그들의 성공은 크게 주목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하산하던 중에 사고가 발생해 사망했다. 두 사람의 시신은 구조대에 의해 수습됐지만 물품들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까맣게 잊혔던 그의 유품이 세상의 관심을 끈 건 칠레의 한 산악가이드가 우연히 카메라를 발견하면서였다. 산악가이드는 투푼가토 화산 동부를 타다가 눈에 파묻혀 있는 카메라와 함께 피켈(등반용 곡괭이), 배낭을 발견했다. 그는 발견한 물건을 모두 갖고 내려오려고 했지만 배낭은 빙하에 꽁꽁 얼어붙어 있어 떼어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얼음바닥에 용접을 한 것처럼 얼어붙어 있어 아무리 힘을 써도 꼼짝하지 않았다”고 떠올렸다. 이 산악가이드는 카메라와 피켈이 적힌 이름을 보고 비에이로의 물건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수소문 끝에 아르헨티나에 사는 유족과 연락이 닿았다. 아르헨티나에는 비에이로의 부인과 이제 40대가 된 두 딸이 살고 있었다. 산악가이드는 그는 물건들을 보내주면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배낭이 산 위에 있지만 가져오지 못했다”고 알려줬다. 소식을 접한 두 딸은 직접 아버지의 유품을 찾으러 화산에 오르기로 했다. 변호사로 활동 중인 큰딸 아술(44)은 “아버지가 조난사고로 돌아가신 후 집에서 산과 등반은 금기어가 됐다”면서 “아버지의 유품을 찾으러 가기 위해 가장 힘들었던 것은 어머니를 설득하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오랜 설득 끝에 모친의 동의를 얻은 두 딸은 가이드 5명과 기록을 남길 영상 촬영가 2명을 대동하고 아버지의 배낭을 찾아 투푼가토 화산에 올랐다. 사는 곳에서 왕복 100㎞가 넘는 긴 여정이었다. 꼬박 11일이 걸린 등반 끝에 두 딸은 아버지 비에이로의 배낭을 되찾았다. 배낭에는 비에이로의 재킷과 침낭, 수통, 아스피린, 비타민 C, 절연제, 칼 세트, 카메라필름 2통이 들어있었다. 두 딸은 “세계 최초로 동부 루트를 통해 투푼가토 화산 정상에 오른 아버지의 여정이 필름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면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 같아 산악협회에 유품을 기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LA 산불로 올림픽 메달 10개 잃은 전직 수영선수에 복제 메달

    올해 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일대를 덮친 대형 산불에 올림픽 메달 10개를 잃은 전직 수영 선수에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복제 메달을 전달해 화제다. IOC는 5일(현지시간) 스위스 로잔의 올림픽 하우스에서 비공개 행사를 열고 게리 홀 주니어(50·미국)에게 복제 메달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자유형 전문으로, 단거리 강자였던 홀 주니어는 1996년 애틀랜타 대회부터 3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해 자유형 50m와 계영 400m, 혼계영 400m에서 금메달 5개,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를 획득했다. 1999년 1형 당뇨병 진단을 받은 뒤 피나는 노력 끝에 올림픽 챔피언에 오르는 ‘인간 승리’를 연출했던 홀 주니어는 올해 초 산불로 LA 인근 퍼시픽 팰리세이즈의 자택과 함께 메달을 잃었다. 화재 당시 홀 주니어는 불씨가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반려견과 인슐린, 할아버지의 유품만 챙긴 채 간신히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복제 메달 제공을 결정했다. 이날 화재로 녹은 금메달을 공개한 홀 주니어는 “힘든 시기에 올림픽 운동이 보여 준 연대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바흐 위원장은 “단순히 메달 때문이 아니라 전 재산을 잃는 비극을 올림픽 챔피언다운 모습으로 극복한 점에 깊이 감동했다”고 했다.
  • 아르헨 ‘나치 전범’ 기밀문서 공개…‘히틀러 사망’ 역사 바뀔까

    아르헨 ‘나치 전범’ 기밀문서 공개…‘히틀러 사망’ 역사 바뀔까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치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는 패색이 짙어진 1945년 4월 30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게 공식 기록이다. 당시 시신을 수습한 소련군이 현장에서 나온 치아를 대조해 히틀러라는 걸 확인했고, 사망 수단에 대한 의견은 둘로 나뉘었지만 2010년 러시아 정보기관이 권총이 아닌 청산가리 캡슐이 직접적인 사인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2017년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교외에 있는 한 주택에서 히틀러의 흉상 부조를 포함해 나치 유품이 여러 개 발견되면서 정설에 균열을 일으켰다. 히틀러가 죽음을 가장하고 아르헨티나로 도피해 천수를 누렸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이번에는 미국에서도 제기돼 관심을 끈다. 아울러 당시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이었던 후안 도밍고 페론이 히틀러를 도왔다는 의견과 함께 아르헨티나 정부 기밀문서로 나치 전범들이 남미에서 여생을 살았다는 증거도 나왔다. 아르헨티나 언론은 29일(현지시간)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인 밥 베어의 언론 인터뷰를 인용해 “미국 정부가 일부 문서에 대해 기밀을 해제해 문서 내용이 공개되면 히틀러와 아르헨티나 정부 간 (협력) 관계의 실체가 확인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21년간 CIA에 근무한 베어는 히틀러가 남미에 제4제국을 세우려는 꿈을 갖고 아르헨티나로 도피했고 이를 당시 페론 정부가 망명을 적극 지원했다고 주장했다. 페론 정부 관계자들은 나치 자금을 빼돌리기 위해 돈세탁도 도왔다는 취지로 말했다. 페론 정부가 히틀러를 체계적으로 보호하면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르헨티나 언론은 “히틀러가 아무도 모르게 아르헨티나로 건너와 은둔생활을 했다는 주장은 여러 차례 제기됐다”면서 “미국에서도 비슷한 발언이 나온 이상 의혹을 파헤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전했다. 2015년 아르헨티나 미시오네스의 예수회 유적 인근 밀림에선 나치 전범들이 은신처로 사용했던 시설이 발견됐다. 시설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화폐, 고급 찻잔, 나치 장교들이 사용하던 벨트 등이 널려 있었다. 베어는 히틀러가 아르헨티나로 숨어들었다는 설의 근거가 되는 가장 강력한 증거로 미시오네스에서 발견된 시설을 꼽았다. 베어는 “완벽하게 고립된 곳에 엄청난 돈을 투자해 상하수도 시설을 만들고 전기까지 끌어가 설치했다”면서 이 시설을 만든 주체가 히틀러를 돕던 아르헨티나 정부였을 수 있다고 했다. 아르헨티나 역사학자 아벨 바스티는 현지에 남아 있는 히틀러의 흔적을 추적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히틀러가 아르헨티나로 건너온 후 대저택에 숨어 살았다면서 저택에서 일했다는 사람들을 찾아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바스티는 “당시 언론이 발전하지 않아 아르헨티나 지방에선 세계대전이 터졌다는 것도, 독일이 패망했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면서 대저택에 가사도우미나 요리사, 정원관리인 등으로 일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히틀러는 의심을 사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3월에는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미국 상원의원들의 요청에 따라 나치 전범과 관련된 정부 기밀문서를 공개하기로 결단하면서 그간 의혹만 무성했던 히틀러의 도피설이 사실로 확인될지 관심이 모인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 연장선으로 이날 아르헨티나 국가기록보관소는 1850개 문서에 대해 접근 가능 조처를 했다. 이 문서는 1950년대와 1980년대 사이에 정부와 정보기관이 조사한 나치 관련 서류로, 홀로코스트(유대인학살) 설계자 아돌프 아이히만과 인체실험을 주도한 의사 요제프 멩겔레 등 나치 전범들이 전후 남미 국가로 도망친 이후 활동을 담고 있다. 히틀러의 개인비서 격이었던 마르틴 보어만에 대한 언론 보도도 있다. 이중 일부에는 멩겔레가 1949년 그레고르 헬무트라는 가명으로 아르헨티나에 입국했고 7년 후에는 본명으로 출생증명서도 작성한 내용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아르헨 정부, 나치 관련 기밀문서 공개… ‘히틀러 사망’ 진실 드러나나 [여기는 남미]

    아르헨 정부, 나치 관련 기밀문서 공개… ‘히틀러 사망’ 진실 드러나나 [여기는 남미]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치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는 패색이 짙어진 1945년 4월 30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게 공식 기록이다. 당시 시신을 수습한 소련군이 현장에서 나온 치아를 대조해 히틀러라는 걸 확인했고, 사망 수단에 대한 의견은 둘로 나뉘었지만 2010년 러시아 정보기관이 권총이 아닌 청산가리 캡슐이 직접적인 사인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2017년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교외에 있는 한 주택에서 히틀러의 흉상 부조를 포함해 나치 유품이 여러 개 발견되면서 정설에 균열을 일으켰다. 히틀러가 죽음을 가장하고 아르헨티나로 도피해 천수를 누렸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이번에는 미국에서도 제기돼 관심을 끈다. 아울러 당시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이었던 후안 도밍고 페론이 히틀러를 도왔다는 의견과 함께 아르헨티나 정부 기밀문서로 나치 전범들이 남미에서 여생을 살았다는 증거도 나왔다. 아르헨티나 언론은 29일(현지시간)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인 밥 베어의 언론 인터뷰를 인용해 “미국 정부가 일부 문서에 대해 기밀을 해제해 문서 내용이 공개되면 히틀러와 아르헨티나 정부 간 (협력) 관계의 실체가 확인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21년간 CIA에 근무한 베어는 히틀러가 남미에 제4제국을 세우려는 꿈을 갖고 아르헨티나로 도피했고 이를 당시 페론 정부가 망명을 적극 지원했다고 주장했다. 페론 정부 관계자들은 나치 자금을 빼돌리기 위해 돈세탁도 도왔다는 취지로 말했다. 페론 정부가 히틀러를 체계적으로 보호하면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르헨티나 언론은 “히틀러가 아무도 모르게 아르헨티나로 건너와 은둔생활을 했다는 주장은 여러 차례 제기됐다”면서 “미국에서도 비슷한 발언이 나온 이상 의혹을 파헤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전했다. 2015년 아르헨티나 미시오네스의 예수회 유적 인근 밀림에선 나치 전범들이 은신처로 사용했던 시설이 발견됐다. 시설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화폐, 고급 찻잔, 나치 장교들이 사용하던 벨트 등이 널려 있었다. 베어는 히틀러가 아르헨티나로 숨어들었다는 설의 근거가 되는 가장 강력한 증거로 미시오네스에서 발견된 시설을 꼽았다. 베어는 “완벽하게 고립된 곳에 엄청난 돈을 투자해 상하수도 시설을 만들고 전기까지 끌어가 설치했다”면서 이 시설을 만든 주체가 히틀러를 돕던 아르헨티나 정부였을 수 있다고 했다. 아르헨티나 역사학자 아벨 바스티는 현지에 남아 있는 히틀러의 흔적을 추적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히틀러가 아르헨티나로 건너온 후 대저택에 숨어 살았다면서 저택에서 일했다는 사람들을 찾아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바스티는 “당시 언론이 발전하지 않아 아르헨티나 지방에선 세계대전이 터졌다는 것도, 독일이 패망했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면서 대저택에 가사도우미나 요리사, 정원관리인 등으로 일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히틀러는 의심을 사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3월에는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미국 상원의원들의 요청에 따라 나치 전범과 관련된 정부 기밀문서를 공개하기로 결단하면서 그간 의혹만 무성했던 히틀러의 도피설이 사실로 확인될지 관심이 모인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 연장선으로 이날 아르헨티나 국가기록보관소는 1850개 문서에 대해 접근 가능 조처를 했다. 이 문서는 1950년대와 1980년대 사이에 정부와 정보기관이 조사한 나치 관련 서류로, 홀로코스트(유대인학살) 설계자 아돌프 아이히만과 인체실험을 주도한 의사 요제프 멩겔레 등 나치 전범들이 전후 남미 국가로 도망친 이후 활동을 담고 있다. 히틀러의 개인비서 격이었던 마르틴 보어만에 대한 언론 보도도 있다. 이중 일부에는 멩겔레가 1949년 그레고르 헬무트라는 가명으로 아르헨티나에 입국했고 7년 후에는 본명으로 출생증명서도 작성한 내용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이런 박물관도 있었어?”···경기관광공사, 경기도 이색박물관 6곳 추천

    “이런 박물관도 있었어?”···경기관광공사, 경기도 이색박물관 6곳 추천

    경기관광공사가 재미와 흥미를 더하는 이색박물관 6곳을 추천했다. 농업, 양식 조리, 안보, 산업, 지질, 역사 유적 등 여느 박물관에서 볼 수 없는 곳이다. [농업의 가치를 새롭게 ‘수원 국립농업박물관’] 수원 국립농업박물관은 2022년 12월 개관했다. 차근차근 돌아보려면 꼬박 하루가 걸릴 정도다. 처음 만나는 곳은 식물원과 곤충관이다. 농업박물관에 식물원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이곳의 식물원은 남다르다. 수족관에서 어류를 키우고 어류가 배출한 배설물이 녹아 있는 물을 걸러 식물에 주는 ‘아쿠아 포닉스’가 있다. 친환경적 순환 농법이다. 의미도 남다르지만 열대 식물도 풍성해서 여느 식물원 못지않은 수준이다. ‘농생꿀팁’ 테마전시관에서는 농촌의 삶과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박물관의 핵심인 전시관은 농업관1과 농업관2 두 곳으로 나뉘어 있다. 농업관1은 땅과 물, 종자, 재배, 수확이라는 농사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볼 수 있다. 농업관2는 재배한 농산물을 저장하고 가공했던 역사를 보고 변화 중인 미래 농업을 체험할 수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전용 공간도 있다. 농업에 대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어린이 박물관이 내부에 별도로 있어 온라인 사전 예약을 통해 초등학생까지 입장 가능하다. 야외 공간도 볼만하다. 다랑이 논밭에서는 계절에 따라 다양한 농작물의 성장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농가월령 산책로’라고 이름 붙은 길을 따라서 걷다 보면 시골의 논밭 사이를 걷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5월에는 어린이날을 맞아 체험거리가 가득한 “꼬마농부 미오네 집으로 놀러와!” (5.3~5.5)가 진행되며, 중순에는 손 모내기 행사가 마련돼 있다. [한국 서양 요리의 역사 ‘안성 한국조리박물관’] 한국에서 유일한 조리 전문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2층 규모로 1층 입구에 들어서면 우리나라 조리 명인들의 사진과 명패가 가득 붙어 있다. 조리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아도 TV에서 한두 번쯤 보았던 인물이 여럿이다. 한국조리박물관은 벽면을 가득 채운 조리 명인들의 소장품을 기증받아 설립한 박물관이다. 박물관에서는 한국에서의 서양 요리 역사와 발전을 살펴볼 수 있다. 한국의 서양 요리는 고종황제 무렵 시작해 역사는 비교적 짧은 편이지만 원로 조리 명인들의 노력 덕분에 급격히 발전해왔다. 1층 전시실에서 주목받는 전시물들 역시 조리 명인들이 사용하던 조리 기구와 직접 수기로 작성한 레시피 노트들이다. 손때 묻은 조리 기구에서는 명인들의 숨결이 느껴지고 노하우가 가득한 레시피 노트에서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열정이 느껴진다. 차근차근 전시물을 살펴보다 보면 뭉클한 감동이 느껴질 정도다. 2층 전시실의 테마는 와인과 커피다. 전 세계에서 생산하는 와인의 종류와 한국에서 초장기에 사용한 커피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2층 특별전시실에서는 청와대에서 사용하던 대통령들의 식기가 전시되어 있다. 대통령마다 선호하던 식기는 달랐지만 공통으로 적용된 디자인은 봉황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좋아했던 식단과 식습관도 매우 흥미롭다. 한국뿐만 아니라 조리 관련 박물관은 세계적으로도 흔하지 않아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또한 박물관에는 부속요리학교로 ‘에꼴드 모카’가 있어, 사전 예약을 통해 방문객들도 여러 교육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다. [서해를 지킨 국군장병들의 기록 ‘평택 서해수호관 & 천안함기념관’] 서해수호관은 서해에서 발생한 북한 도발에 맞섰던 해군의 기록들이 전시된 곳이다. NLL은 1953년 8월 30일 정전협정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설정된 북방한계선이다. 하지만 북한은 수 차례 NLL 인근에서 군사적 도발을 일으켰다. 제1·2 연평해전부터 2009년 11월 북한 경비정의 NLL을 침범까지,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우리 해군이 당당하게 맞섰고 전시관에는 각 해전의 상황과 당시 사용한 실제 장비들이 전시되어 있다. 각 해전에서 우리 해군 역시 적지 않은 피해를 보았다. 가장 가슴 아픈 일은 장병들의 피해다. 부상은 물론이고 목숨까지 잃은 여러 장병이 있어 지금의 평화가 있는 것이다. 전시관 마지막에는 당시 목숨을 잃은 장병들의 유품과 가족들의 편지가 전시되어 있다. 숙연해지는 공간이다. 천안함기념관은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북한 잠수정 어뢰에 의해 침몰한 천안함에 관한 전시관이다. 당시 천안함에는 104명이 승선하고 있었는데 58명만 구조되고 46명은 전사했다. 온 국민이 ‘살아서 귀환하라’는 ‘마지막 명령’을 내렸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한 병사들이다. 야외 전시장에는 수중에서 인양한 천안함이 전시되어 있다. 반으로 쪼개진 천안함이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서해수호관과 천안함기념관은 군부대 안에 있어 홈페이지 사전 예약을 통해서만 견학할 수 있다. 견학에는 인솔 장병이 동행하며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곳도 제한적이다. [대한민국을 이끈 산업의 역군 ‘안산산업역사박물관’] 안산은 서해의 황금어장으로 1970년대까지만 해도 조용한 농어촌 마을이었다. 하지만 1976년 반월지구가 공업 도시 조성지로 확정되면서 국내 최대 규모의 제조업 메카로 변모했다. 2006년 시화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고 ‘안산스마트허브’로 이름을 바꾼 현재도 첨단산업의 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안산산업역사박물관은 이러한 안산 산업의 역사를 꼼꼼하게 살펴볼 수 있는 박물관이다. 제1전시장에 들어서면 안산 산업 발전의 역사가 가득하다. 산업단지 조성 과정의 사진과 설계도는 물론이고 실제 현장에서 일했던 주요 인물들의 생생한 증언을 기록으로 모아두었다. 제2전시실은 안산에서 생산된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신진자동차에서 생산한 퍼블리카와 기아에서 생산한 콩코드, 3륜 트럭은 관람객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포토스팟이다. 제3전시장은 제지와 염색 등 일상과 조금 더 밀접한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개방형 수장고에서 추억의 카세트 플레이어와 TV 등을 볼 수 있다. 단순한 과거의 유물이 아닌 어릴 적 사용했거나 봤던 물건들도 있어 어른들에게도 재밌는 관람이 될 것이다. 박물관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 중인데 그중에서도 <응답하라! 새한버스 BF101>는 최고 인기 프로그램이다. 1980년대 안산 시민의 발이 되었던 ‘새한버스’ 모형을 직접 만들어 보는 프로그램으로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약해야 한다. 박물관 입구에 실제 새한버스가 전시되어 있기도 하다. 또한 박물관 1층 외부에는 로봇이 음료를 만들어 주는 카페도 있다. 넓은 통창으로 화랑호수와 이어진 야외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 운치 있다. [한탄강의 지질과 생태를 한눈에 ‘포천 한탄강세계지질공원센터’] 한탄강은 국내 유일의 주상절리 협곡이다. 그 탄생은 수십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흐르고 있던 강 상류, 북의 오리산 등에서 여러 차례 화산이 폭발했다. 분출된 용암이 넓은 용암대지를 만들었고 일부는 강을 채우면서 파주와 문산까지 흘러갔다. 그 위로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지금의 한탄강이 만들어졌다. 한탄강은 용암과 물이 만들어 낸 합작품이다. 한탄강 세계지질공원센터의 지질관에서는 이러한 한탄강의 형성 과정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화산암은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암석을 말한다. 그중에서도 화강암은 마그마가 땅속에서 서서히 굳어진 암석이며, 현무암은 땅 위에서 빠르게 식으며 굳은 암석이다. 한탄강 인근을 시추한 결과 화강암과 현무암이 교차로 형성되어 있었다. 화산 폭발이 여러 차례 발생했다는 의미다. 지질문화관은 한탄강 주변에서 살아온 인류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포천 중리와 철원 장흥리 일대에서는 구석기 시대의 석기들이 다수 발견되었다. 구석기 사람들은 당시 주변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었던 응회암과 규암으로 석기를 만들었다. 특히 1978년 미국 병사 그렉 보웬이 한탄강에서 발견한 주먹도끼는 이 곳이 가장 오래된 인류 거주지 중 하나임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연천군 곳곳에서 고인돌이 발견되며 권력 구조가 형성된 집단이 거주했다는 것도 증명되었다. 1층의 영상관에서는 드론으로 촬영한 한탄강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아름다운 한탄강 협곡 곳곳을 누비는 화면에 따라 좌석도 움직여서 현장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조선 전기 최대 왕실 사찰의 흔적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 양주의 회암사는 고려 말부터 조선 전기 사이 최대규모의 왕실 사찰이었다. 총 8개 단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다양한 성격의 건축물이 조성되었다. 고대 기록에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특히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려 때 서역의 사신이 방문해 ‘절이 무릇 262칸인데, 건물과 불상·불화가 굉장하고 아름다워 동방에서 으뜸으로 중국에서도 많이 볼 수 없는 정도’라는 찬사가 담겨 있다. 회암사지는 1967년부터 2012년까지 10차에 거쳐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으며 일반적인 사찰과 달리 궁궐과 유사한 구조의 사찰이라는 게 밝혀졌다. 1층 전시실에서는 이를 뒷받침하는 출토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궁이나 왕실에서 세운 원찰 일부에만 사용된 청기와, 태조 이성계가 제작을 후원했다는 명문이 새겨진 청동 금탁, 왕실에서만 사용했던 최상급 자기 등이다. 2층 전시실에는 석조와 소조 불상 조각과 함께 회암사 주요 전각 구조를 볼 수 있는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360도 다면실감’에서는 회암사의 역사적 의미를 6면 미디어아트로 볼 수 있다. 앉거나 누워서도 감상할 수 있으며 편안한 자세로 어느새 화려한 미디어아트에 빠지게 된다. 박물관 관람을 마친 뒤 돌아보는 회암사지는 더욱 특별하다. 1981년 발굴된 당간지주를 비롯해, 가로 14m로 동시에 16명이 사용할 수 있었던 화장실터, 지름이 1.73m에 이르는 대형 맷돌, 5.89m 높이의 부처님 진신사리 사리탑 등은 잊지 말고 찾아봐야 한다. 회암사지박물관과 사지를 함께 돌아보면, 조선 왕실 사찰의 규모와 위상을 보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또한 회암사지터 주변의 잔디광장은 피크닉을 즐기기에도 좋다.
  • 돌아가신 母 남긴 복권 확인하다 ‘얼음’…“마지막 선물” 눈물 흘린 英 남성

    돌아가신 母 남긴 복권 확인하다 ‘얼음’…“마지막 선물” 눈물 흘린 英 남성

    영국 스코틀랜드의 한 남성이 돌아가신 어머니가 구매한 복권으로 3000만원이 넘는 돈을 얻게 됐다. 이 남성은 “어머니가 남겨두신 선물 같다”며 눈물을 흘렸다. 24일(현지시간) 영국 ‘메트로’ 등에 따르면 스코틀랜드 애버딘에 사는 리암 카터(34)는 지난 16일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 확인하지 않은 복권 한 장을 발견했다. 복권은 주방 서랍 안에 접힌 상태로 있던 봉투 안에 있었다. 봉투 위에는 “토요일에 추첨, 잊지 말 것”이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카터는 “그냥 무시할 뻔 했지만, 무언가가 나를 확인하도록 이끌었다”면서 “추첨일인 19일 복권 어플리케이션으로 조회하니 당첨됐다는 알림이 떴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카터는 어머니가 생전 매주 복권을 구입했으며, 해당 복권에서 숫자 다섯 개를 맞춰 1만 8000파운드(3400만원)를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복권 운영사에 전화해 당첨 사실을 최종 확인한 그는 “전화 통화를 하며 완전히 얼어붙었다”며 흥분했다. 그는 “엄마는 생전 나에게 ‘복권에 당첨되면 당첨금은 네 것’이라고 말했다”면서 “어머니는 당첨 사실을 모르셨지만, 이 복권은 어머니가 나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는 당첨금을 아파트 보증금에 보탤 계획이라면서 “엄마가 늘 바라던 일”이라고 덧붙였다. 복권 운영사 측은 이같은 사연을 전하며 “복권은 단순히 돈을 넘어 의미와 감정을 안겨주기도 한다”고 부연했다.
  • 낯섦이 찾아왔다 새로운 계절처럼… 설렘에 물들었다 비밀의 숲속에서[박상준의 여행 서간(書簡)]

    낯섦이 찾아왔다 새로운 계절처럼… 설렘에 물들었다 비밀의 숲속에서[박상준의 여행 서간(書簡)]

    홍차 향이 봄빛처럼 번지는 경북 안동의 한옥에 있습니다. ‘기록상점 낯선’을 운영하는 두 기록가 도성원, 원희래씨와 마주 앉아 도란도란합니다. 그들의 등 뒤로는 모란이 그려진 민화 병풍이 놓여 있습니다. 제 뒤로는 한갓진 한옥의 마당이 보일 테고요. 고요하고 차분한 봄은 간신히 찾은 평안일 겁니다. 440년 전 안동에서 살던 원이 엄마는 사랑하는 이를 잃고 ‘이렇게 아득한 일이 하늘 아래 또 있을까요’라고 편지를 남겼다지요. 지난 3월의 산불은 이들과 안동과 이웃한 지역의 사람들에게 그런 시간이었을 겁니다. 기록상점 낯선의 입구는 10m 남짓의 막다른 길입니다. 벽과 벽 사이의 좁은 골목에는 하얀 조팝나무꽃이 잔뜩 피어 있습니다. 앙증스러운 꽃 타래는 버드나무에 눈이 내린 모양 같아 ‘눈버들’(雪柳)이라고도 부른다지요. 팔등을 간질여 한들한들 말을 걸어옵니다. ●더디게 온 안동의 봄… 조팝나무꽃·눈버들 등 한들한들 말 걸어와 조팝나무에는 도성원씨의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기록상점 낯선으로 들어서는 길목이 숲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세상과 나 사이의 여정, 길 떠나는 마음들은 꽃길 지나 기록의 숲에 다다르겠습니다. 저는 그의 바람대로 조팝나무와 대문 옆 장미 넝쿨과 마당의 목백일홍(배롱나무) 곁을 지나며 크게 심호흡합니다. 당신 또한 그러했으면 좋겠습니다. 좁쌀처럼 핀 꽃 위의 시간을 천천히 누리므로 낯섦을 새로운 계절처럼 맞이했으면 좋겠습니다. 실은 진즉 안동의 봄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월영교의 봄밤이 얼마나 아름답게 반짝이는지, 낙강물길공원이 왜 비밀의 숲이라 불리는지, 그리하여 봄날의 사랑을 안고 기록상점 낯선에 이르기를 바랐지요. 불행히도 봄보다 먼저 산불이 번지고 말았습니다. 도성원, 원희래씨가 살던 교외의 주거 또한 화마를 피하지 못하고 전소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기록상점 낯선은 한동안 예약제로만 운영했습니다. 다행히 4월의 첫 주 토요일은 온전히 문을 열었습니다. 덤덤하게 꺼내어 놓은 이들의 말 속에는 무던할 수만은 없는 심정이 있었을 테지요. 이 또한 삶의 기록이 될까요? ●기록으로 잇는 전통과 현대… 한옥에 터 잡고 그 안에 젊은 감각의 문구들 안동은 조선의 성리학을 대표하는 고장입니다. 퇴계 이황, 서애 류성룡, 농암 이현보 등의 철학과 문학이 깃들고 도산서원, 병산서원 등 우리나라 대표 서원과 종택, 고택이 많아 문화에 대한 자부심 또한 강합니다. 이는 안동의 자랑이지만 장벽이 되기도 해요. 기록상점 낯선은 호기심을 가지고 몰래 지켜봐 온 공간입니다. 이들은 ‘기록’이라는 행위를 빌려 전통과 현대, 세대와 세대를 잇습니다. ‘아날로그 아카이빙을 지향하는 기록 공간’에는 그런 의미가 녹아 있지요. 민화 그림의 기록노트는 모시종이를 둘러 고전미를 살려내고, 동판의 그림이나 글자를 눌러 제작하는 옛날식 인쇄 방식(letterpress)으로 양감이 두드러진 액막이 명태 부적을 만드는 프로그램은 기록상점 낯선의 정체성일 겁니다. 한옥에 터를 잡고 병풍이나 고가구로 세월을 더한 것도, 그 품 안에 젊은 감각의 문구를 디자인해 조화를 추구한 것도 그 연장입니다. 저는 그 가운데 한옥의 처마 아래에서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쓰는 ‘낯선레터와 찻상’이 좋습니다. 쉬운 말로 건넬 수 없는 진심은 손으로 적는 글이라서, 편지를 빌려 사랑하는 이에게 가닿게 되겠지요. 또 그 마음을 잊지 않으려 답장을 써 내려가는 것일 테고요. 조금 더 특별한 편지를 원할 때는 직접 편지 봉투를 디자인해 만들 수도 있습니다. 쓰임을 다한 종이를 재활용해 종이 죽을 빚고 이를 한지 틀 위에 뜬 후 꽃잎 같은 자연물로 장식합니다. 자투리로 사라질 뻔한 종이는 투박한 질감으로 자연의 생명력을 드러낸 나만의 봉투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실링 왁스에 하회탈 문양을 찍어 ‘안동’을 기록하지요. 저는 고심 끝에 기록상점 낯선의 편지지 한 장을 골라서는 문 앞 창가에 앉습니다. 가향차 한 잔을 청한 후 딥펜(철필)을 들고 원고지의 칸칸을 채워 나갑니다. 4월의 꽃과 햇살과 바람과 자연의 두려움에 대해서도 적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써나가기 시작한 글은 어느새 ‘궁서체’로 바뀝니다. 곧 여름이 될 것이고 스산한 가을에 이를 것이며 머잖아 다시 계절의 끝에 서게 되면, 그때는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당신과 이 고장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적습니다. ●세상일에 헛된 수고·노력은 없어… 성취와 회복의 시간이 존재할 뿐 당신에게 건넬 편지를 쓰고 나서는 여유롭게 기록상점 낯선을 만납니다. 안쪽 선반에 놓인 탈 엽서 시리즈는 하회탈의 머리 위에 화관을 디자인하고 계절의 감성을 담았네요. 양반탈은 봄날의 기쁨을, 백정탈은 여름의 더위와 열정을 표현합니다. 탈의 형태로 주변 사람들을 기록하는 ‘탈생부 노트’나 하회탈의 표정을 빌린 ‘희로애락 노트’ 등은 근엄하고 진지한 안동을 친근하게 전달하네요. 어쩌면 ‘낯선’이란 이름은 이 모든 것을 감각하는 단어일 수 있겠습니다. 짧은 편지와 문구에 여행지의 낯선 시간을 담아 낯익은 일상으로 떠나보내는 거지요. 그리하여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보낸 선물 같은 양분이 도달했을 때, 그 낯섦은 설렘이 되어 있겠지요. 내부를 두루 둘러본 후에는 바깥으로 나와 기단에 걸터앉습니다. 한옥의 봄은 마당에 더 짙고 넓게 퍼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원희래씨가 쓴 귀촌 일기의 몇 장을 펼쳐보고 또 도성원씨와 식물과 꽃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활짝 핀 조팝나무꽃에 관해서도요. 조팝나무의 꽃말은 ‘노력’입니다. 그리고 ‘헛수고’라는 의미도 있다지요. 상반된 의미가 모순 같습니다만 세상일에 헛된 수고와 헛된 노력이란 없다고 믿습니다. 다만 어떤 일에는 시간이 걸릴 뿐이지요. 영광일 때는 성취의 시간이고 상처일 때는 회복의 시간이 될 따름입니다.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정복되지 않는 고래야. 그럴지라도 그대를 향해 나는 돌진한다.’ 오늘은 기록상점 낯선을 떠나기 전에 읽은 마지막 글이 오래 남습니다. ‘모비딕’의 한 문장이 아닐까 합니다. 인간이 자연을 이길 수는 없겠습니다. 전지전능해 보이는 인공지능의 시대에도 우리는 불길을 잡기 위해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지요. 그럴지라도 그 땅 위에 다시 순이 돋고 꽃이 피기를 희망합니다. 꽃과 나무가 상처받은 이 땅의 사람들에게 내일이 되어 주기를 바라고요. 먼 데 사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게 여행이라면 우선은 여행으로서 이 땅의 사람들과 만나는 것 또한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산불의 뜨거움이 아니라 따스한 내면의 온기가 안동과 우리를 이어 주기를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살아생전 전하지 못한 그리움… 월영교는 잊지 못할 사랑의 증표 ‘자내 샹해 날다려 닐오대 둘히 머리 셰도록 사다가 함께 죽쟈 하시더니 엇디하야 나를 두고 자내 몬져 가시노.(당신, 항상 나에게 둘이 머리 하얘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시더니,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시나요?)’ 기록상점 낯선을 나와 월영교에 가기 전, 안동 국립경국대학교박물관(옛 안동대)에 들릅니다. 1998년 안동대 인문과학연구소는 정상동에서 조선시대 시신 한 구를 수습합니다. 서른한 살의 이응태로 밝혀진 미라의 머리맡에선 ‘이 신 신어보지도 못하고’라 적힌 편지, 그리고 미투리(일종의 짚신) 한 켤레가 발견되었지요. 그의 아내 원이 엄마가 세상을 떠난 남편에게 전한 편지와 선물이었습니다. ‘머리카락으로 신을 삼아도 못 갚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와 머리카락을 엮어 만든 미투리는 둘의 사랑이 얼마나 각별한지 알 수 있는 유품이었습니다. 또 한지 위에 빈틈없이 써 내려간 한글 편지의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라는 글귀가 그 깊은 사랑을 짐작하게 합니다. 월영교는 둘의 사랑의 증표라 하겠습니다. 보행 전용 다리로, 안동댐 건설 당시 월영대를 옮겨 오고 인근 월곡면의 지명 등을 따서 이름 붙였지요. 특히 야경이 아름다워 안동에서 하루를 보내는 이들은 꼭 찾는 밤 산책 명소입니다. 다리를 건너서 원이엄마테마길이나 안동시립박물관 너머 영락교까지 발끝의 불빛을 따라 걸어 볼 수 있습니다. 밤의 강물 위를 지나는 문보트 또한 낭만이 어립니다. 마치 ‘물 위에 비친 달’(月影)처럼, 그리운 마음처럼 떠다니지요. 원이 엄마는 뱃속의 아이를 두고 떠난 남편이 얼마나 그립고 야속했을까요? 그래서 나무로 만든 목책교는 미투리를 닮아 낙동강의 동과 서를 잇습니다. ●그윽한 봄날의 오후…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 같은 낙강물길공원 만일 밤이 아닌 낮이라면 저는 당신을 월영교 가까운 ‘비밀의 숲’으로 데려갈 겁니다. 낙강물길공원은 물빛의 반영으로 은밀하고 아직은 찾는 이가 많지 않아 비밀스럽습니다. 누군가는 아담한 규모에 지레 실망할 테지만 당신은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분명 좋아할 거라 장담해요. 기록상점 낯선을 떠나기 전 원희래씨가 꼭 들러 보라 말한 곳도 낙강물길공원이었으니까요. 낙강물길공원은 클로드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을 연상케 합니다. 댐과 수로로 연결된 물길은 공원에 작은 연못을 만들고 키 큰 전나무와 메타세쿼이아는 깊은 공간감을 연출합니다. 저는 정원 북쪽 쉼터에 앉아 철쭉과 꽃창포, 수련 너머의 무지개다리를 바라봅니다. 정말 모네의 그림 같습니다. 얼마간은 또 한국적이고요. 무지개다리는 다시 연못의 징검돌로 이어집니다. 징검돌 위에서 공원의 반영을 배경 삼아 사진 남기는 이들이 많습니다. 메타세쿼이아 아래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윽한 봄날의 쉼입니다. 모네는 ‘내가 잘하는 건 그림 그리는 일과 정원일 뿐이다’라고 했다지요. 욕심만으로 해낼 수 있는 건 우리의 생각보다 많지 않을지 모릅니다. 또 그가 아내의 마지막을 지키며 그린 ‘임종을 맞은 카미유’를 떠올립니다. 끝내 발표하지 않은 채 서명조차 없이 침실에 놓여 있던 그림이지요. 그는 훗날 조르주 클레망소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순간조차 ‘무의식중에 빛과 그림자’를 구별하고 있었노라 고백합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그림은 원이 엄마의 미투리와 같은 의미가 아니었을까요? 그러니 낙강물길공원에서 모네와 지베르니를 떠올리는 건 억지만은 아닐 겁니다. 고려의 태조 왕건은 후백제의 견훤을 물리치고 동쪽이 안정화되었다고 해 안동(安東)이라 이름 붙였다 합니다. 잔잔한 물길 위로 번지는 낙강물길공원의 자연 분수를 바라보며, 저는 이 봄날 당신과 나란히 앉아 우리가 지나온 시간과 또 지나갈 시간을 그려 보고 싶어집니다. 그 사랑이 원이 엄마만은 못할지라도 서로를 ‘자네’(자내) 하고 다정히 부르며 동쪽의 평안한 땅, 안동에 있다는 걸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 기록상점 낯선 토요일 오후 1~ 6시(상시오픈), 일~금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예약제) www.instagram.com/nachseonnote
  • 이타미 준 건축, 빌레, 곶자왈… 소리·향기 ‘파빌리온’을 만나다

    이타미 준 건축, 빌레, 곶자왈… 소리·향기 ‘파빌리온’을 만나다

    유동룡미술관이 2025 박물관·미술관 주간 선정 전시인 ‘제주 파빌리온 프로젝트: 이 땅을 여끄다’를 새달 2일 개막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박물관협회가 주관하는 ‘2025 박물관·미술관 주간’은 전국 최대 규모의 뮤지엄 축제다. 박물관 및 미술관을 대상으로 한 ‘뮤지엄 X 즐기다’ 대표 프로그램 공모를 통해 총 118개의 프로그램 중 26개의 프로그램이 최종 선정됐다. 저지문화예술인마을 안에 위치한 유동룡미술관은 건축가 이타미 준의 건축 철학을 기반으로 한 미술관으로 유명하다. 8월 31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프로젝트 전시 관람은 무료다. 실제 빌레·곶자왈 등 야외에 임시 가설 건축물인 ‘파빌리온’을 설치해 선보인다. 흔히 시각적으로 제시되는 ‘파빌리온’을 인간의 감각 및 인지와 연결하여 총 세 개의 테마로 구성한 이번 전시에서는 유무형의 파빌리온을 만날 수 있다. 특히 건축가 이타미 준이 귀 기울였던 제주의 지역성을 테마로 ‘건축 파빌리온’에 관심이 쏠린다. 유동룡미술관은 공공성이라는 ‘2025 박물관·미술관 주간’ 사업의 취지를 바탕으로 파빌리온의 작품 공모를 진행했다. 유동룡미술관 관계자는 “제주도건축사회 및 (사)한국건축가협회가 협력해 함께 진행한 본 파빌리온 공모는 만 45세 이하의 젊은 건축가들을 대상으로 경력과 자격 조건없이 진행해 김영배 건축가가 최종 선정했다”며 “해당 공모에 선정된 작품은 이타미 준의 ‘수풍석 미술관’을 이은 ‘네 번째 자연’으로, 파빌리온 내부에서 제주의 네 번째 자연인 ‘빛’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감각의 경험을 이끌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전시는 사업의 취지상 기획의 과정 속에서도 분야 간, 세대 간 경계 없이 적극적으로 함께 소통하고자 했다”면서 “이 땅을 여끄다 라는 전시 제목과 같이 이 땅의 자연을 중심으로 만난 건축가, 예술가, 지역사회 관계자들, 그리고 관람객분들을 모두 엮어 함께 호흡하고 생각을 나누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또다른 테마는 ‘빌레’다. 유동룡미술관을 둘러싼 자연인 ‘빌레(용암의 흔적이 남은 너른 바위)’를 테마로, ‘향기 파빌리온’을 제안한다. 향기로 작업을 진행하는 한서형 향기작가와 협업한 향기 파빌리온은 작가가 제안하는 명상 가이드를 통해 공간을 더 몰입감 있게 경험할 수 있다. ‘곶자왈’을 테마로 ‘소리 파빌리온’도 제안한다. 제주의 소리를 수집하며 사운드 스케이프 작업을 진행하는 사운드 벙커와 제주의 유무형의 자산을 색으로 담아내는 컬러랩제주와 협업한 테마이다. 소리 파빌리온 또한 눈에는 보이지 않는 ‘소리’를 소재로 우리가 일상 속에서 귀 기울이지 못했던 제주의 ‘곶자왈’ 소리를 담아 파빌리온을 만들었다. 한편 유동룡미술관은 지난 15일 ‘미묘하게 열린 어둠 안에서 : 이타미 준’ 전시도 개막했다. 재일 한국인으로서의 ‘경계’의 삶과 건축 철학을 조명해 주목받고 있다. 건축, 회화, 글, 드로잉 등 작업뿐 아니라 이타미 준의 유품과 서적, 직접 수집한 백자, 민화 등 소장품도 만나볼 수 있다.
  • “깨진 화분도 다시 보자”…할머니 죽은 뒤 드러난 ‘비싼 것’ 정체

    “깨진 화분도 다시 보자”…할머니 죽은 뒤 드러난 ‘비싼 것’ 정체

    쓸모없어 방치된 줄 알았던 ‘깨진 화분’이 알고 보니 거장 도예가의 예술 작품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21일(현지시간) 타임스 오브 인디아에 따르면 최근 영국 경매에서 깨진 화분이 6만 6000달러(약 9403만원)에 낙찰됐다. 런던 경매소 ‘치즈윅 옥션’은 최근 경매에 도예가 한스 코퍼의 화분을 내놓았다. 애초 이 화분은 7900달러(약 1126만원)에서 1만 3000달러(약 1853만원)로 책정됐다. 그러나 여러 업체가 관심을 보이면서 입찰 경쟁으로 번진 끝에 한 미국 입찰자가 6만 6000달러에 낙찰받았다. 이 화분은 처음에는 단순히 ‘깨진 항아리’로 치부됐으나, 감정 끝에 도예가 한스 코퍼의 작품으로 인정받았다. 매체는 “이 작품은 수십년 동안 사라졌었던 희귀하고 값을 매길 수 없는 예술 작품으로 판명됐다”고 전했다. 이 화분은 1964년 여성 고객 의뢰로 코퍼가 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여성 고객은 이 화분을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해오다 깨지자 장식용 화분으로 영국 런던에 있는 자신의 정원에 두었다고 한다. 여성이 세상을 떠난 뒤 손주들이 유품을 정리하던 중 화분을 발견했고, 치즈윅 옥션을 통해 전반적인 가치를 알아봤다. 치즈윅 옥션의 도자기 전문가인 조 로이드가 화분을 검사한 결과, 화분 바닥에 코퍼의 서명 인장이 발견돼 진품으로 판명됐다. 로이드는 “이 화분은 코퍼의 작품 중에서도 큰 편에 속한다”고 밝혔다. 코퍼의 작품은 보통 10㎝에서 40㎝ 사이로 알려졌는데, 해당 화분은 1.2m 높이로 제작됐다. 전문가들은 이 화분을 완전히 복원하려면 약 1만 600달러(약 1510만원)의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 사람 피부로 표지 만든 19세기 책…“끔찍한 유물” 영국서 갑론을박

    사람 피부로 표지 만든 19세기 책…“끔찍한 유물” 영국서 갑론을박

    영국에서 사람의 피부로 표지를 만든 책이 발견돼 박물관에 전시될 예정이다. 범죄자 등의 시신에서 무단 채취한 피부로 책 표지를 만드는 ‘인피 제본’은 19세기까지 암암리에 행해졌는데, 이같은 책을 보존 및 전시하는 것의 윤리적 문제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15일(현지시간) 영국 BBC와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영국 동부 서퍽 주 베리 세인트 애드먼즈에 위치한 모이스 홀 박물관은 최근 사무실에서 ‘인피 제본’ 책을 발견해 박물관에 전시할 예정이다. 박물관이 새로 발견한 책은 1827년 서퍽 주의 한 마을에서 발생한 ‘붉은 헛간 살인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당한 윌리엄 코더의 시신에서 채취한 피부로 표지를 제본한 것이다. ‘붉은 헛간 살인사건’은 23세 남성 코더가 연인이었던 여성 마리아 마르텐과 도주를 계획했지만 마르텐이 코더를 만나러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목격된 ‘붉은 헛간’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용의자로 체포돼 기소된 코더는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형이 집행됐다. 이 사건은 범행과 수사, 재판 과정 전반에 걸친 미스터리와 초자연적인 요소, 19세기 영국의 사회상 등이 얽혀 사건 당시는 물론 이후에도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사건과 관련된 장소들이 관광 명소가 되는가 하면 소설과 연극, 민요, 드라마와 영화 등으로 재탄생했다. 범죄자·정신질환자 등 시신서 피부 무단 채취윤리 문제 대두…하버드대는 공식 사과하기도코더의 사형이 집행된 뒤 시신을 해부한 의사는 시신에서 피부를 채취했고, 그의 재판 기록을 묶은 책의 표지에 피부가 사용됐다. 모이스 홀 박물관은 1933년부터 해당 책을 전시한 것을 비롯해 사건과 관련된 여러 물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그러나 박물관 직원들은 최근 또 다른 책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사무실의 책장을 뒤져 책을 찾아냈다. 앞서 전시된 책은 책 표지 전체에 코더의 피부가 사용되고 상태가 온전한 반면, 이번에 발견된 책은 모서리 등 부분적으로만 사용됐으며 곳곳이 해져 있다고 BBC는 전했다. 박물관의 문화재 담당자인 댄 클라크는 책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역사적 가치가 있다”면서 “그간 책을 찾지 못한 건 박물관의 손실”이라고 설명했다. 사람의 피부로 책 표지를 만드는 행위는 19세기까지 공공연히 이뤄졌다. 고인의 유언에 따라 유품의 차원에서 이뤄진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처형된 범죄자나 사망한 정신질환자의 시신에 접근할 수 있었던 의사가 임의로 만들어 개인적으로 소장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대중의 선정적인 호기심과 사후 세계에 대한 관심 등이 이를 정당화했지만, 현재는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한다는 윤리적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영국의 유명 아동 작가인 테리 디어리는 코더의 피부로 제본한 책에 대해 “끔찍한 유물”이라며 “그 책들을 불태우고 싶다”고 비판했다. 디어리는 “코더는 정황 증거만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심각한 고통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실제 코더는 재판 내내 무죄를 주장했지만, 사건을 둘러싼 대중의 광기 어린 호기심과 ‘정의 구현’이라는 여론을 이겨내지 못했다. 사형이 집행된 뒤 코더의 시신 일부와 ‘인피 제본’ 책 등은 ‘끔찍한 전시’라는 콘셉트로 대중에 공개돼왔다. ‘인피 제본’ 책의 윤리성 문제는 미국 하버드대에서도 대두된 바 있다. 하버드대 도서관은 프랑스의 한 의사가 자신이 일하던 병원에서 정신질환을 앓다 숨진 여성의 피부를 동의 없이 채취해 표지를 만든 책 ‘영혼의 운명에 대하여’(1879년 작)라는 책을 소장해왔으나 지난해 3월 이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표지를 벗겨냈다. 프랑스인 아르센 우세가 쓴 책은 하버드대에 기증될 당시 “인간의 영혼에 관한 책은 인간의 피부로 감싸야 마땅하다”는 의사의 메모가 첨부돼 있었으며, 하버드대는 2014년 단백질을 식별하는 펩타이드 질량 지문 추적법을 활용해 이 책의 표지가 인간의 피부로 만들어졌음을 확인했다. 하버드가 소장한 2000만여권의 책 중 가장 ‘뜨거운 감자’였던 이 책에 대해 하버드대는 “책의 출처와 이력을 둘러싼 윤리적 문제 때문에 더이상 하버드대의 소장품이 될 수 없다”면서 처분할 방법을 프랑스 관계당국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 비단강 따라 흐른 희생…독립의 씨앗이 자라다

    비단강 따라 흐른 희생…독립의 씨앗이 자라다

    美 전킨·드루 선교사 군산에 도착구암동 일대 ‘궁멀’ 호남 선교 기지영명학교는 ‘3·5 만세운동’ 진원지한국 침례교회 역사 강경서 시작 ‘정사각형 기와집’ 강경성결교회병촌성결교회 ‘전우치 나무’ 유명 공주 영명학교의 사애리시 선교사유관순 열사 등 여성 지도자 길러내 시인 이상화 등 제일감리교회 인연 우리에게 근대는 어떻게 왔을까. 제힘으로 열어젖히지 못했다는 콤플렉스를 가진 우리로선 불편한 주제다. 우리의 개화에 일제의 공이 컸다고 신봉하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더 민감하다. 기독교에선 달리 본다. 이 땅의 근대 성립에 선교사의 역할이 컸다는 것이다. 그 근거를 찾기 위해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과 함께 전북 군산, 충남 강경, 공주 등의 기독교 유적지를 차례로 돌아봤다. 지난해 전남 일대 순례에 이은 두 번째 발걸음이다. 여행의 기쁨 중 하나가 발견일 텐데, 기독교 유산 순례는 많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이끈다는 점에서 꽤 큰 기쁨을 안겨 준다. 왜 군산이고, 강경이고, 공주였을까. 당대의 시선으로 보자. 요즘처럼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는 상상도 못 하던 때다. 당시 고속도로 역할을 했던 것이 내륙에선 강이다. 충남과 전북의 경계를 두루 적시며 흐르는 ‘비단강’ 금강도 그중 하나다. 선교사들 역시 사역의 여정을 위해 당연히 금강을 눈여겨봤다. 꼬박 130년 전인 1895년 3월, 미국인 목사 윌리엄 전킨(한국명 전위렴·1865~1908)과 의사 알렉산드로 D 드루(유대모·1859~1926)가 군산의 금강 변에 뱃머리를 대는 것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들은 인천 제물포에서 배를 타고 열흘이 넘는 항해 끝에 막 도착한 참이다. 1892년에 미국 버지니아항을 출발해 샌프란시스코, 하와이, 일본 요코하마, 부산 등을 거쳐 온 여정까지 포함하면 뱃길만 꼬박 3년이다. 군산 하면 대개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를 떠올린다. 히로쓰 가옥 등 군산 여정에서 들르는 대부분의 명소 역시 이와 연관된 것들이다. 한데 시선을 달리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기독교의 역사와 마주하게 된다. 전킨과 드루 선교사가 맨 처음 발을 디딘 곳은 일제강점기 군산세관 앞이다. 고색창연한 옛 모습 그대로여서 많은 이들이 이 건물 앞에서 인증샷을 찍는다. 바로 그 자리, 그러니까 사진을 찍는 이가 발 딛고 선 자리가 선교사들이 하선한 자리다. 자그마한 표지판 하나가 전부지만, 바야흐로 군산의 근대가 여기서 문을 열기 시작했다. 선교사들은 인근 수덕산 아래 두 채의 초가를 50달러에 사들여 교회와 진료소로 사용했다. 서종표 군산중동교회 목사에 따르면 “당시 50달러는 엽전으로 한 가마니” 정도 되는 돈이었다. 일제는 선교사들이 수덕산 아래서 군산 민중의 아픈 곳을 긁어주는 게 영 못마땅했다. 그래서 조계지 조성 운운하며 쫓아냈고, 이들이 새로 정착한 곳이 ‘궁멀’, 현재의 구암동 일대다. 여기에 당대의 유산들이 꽤 있다. 군산시에서 3·1운동 사적지로 신경 써 관리하는 곳이다. ‘궁멀’은 호남 최초의 선교 기지다. 선교사들은 교회와 병원 외에 학교를 더했다. 이른바 ‘선교의 삼각 구도’가 비로소 틀을 잡기 시작한 것이다. 수덕산에 꾸린 의료 시설이 진료소 수준이었다면 1899년 세운 야소(예수의 일본말)병원은 규모가 더 컸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이 본격화되면서 ‘야소’란 표현을 쓰지 못하게 됐고, 결국 구암병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1903년엔 전킨 선교사 부부가 학교를 세우고 영명(永明)이라 이름 지었다. 영명은 ‘영원한 생명의 빛’이란 뜻이다. 영명학교(현 군산제일중·고교)는 한강 이남 최초의 만세운동인 1919년 ‘3·5 만세운동’의 진원지다. 교사와 학생에 이어 주민이 가세하면서 군산의 만세운동은 호남 전체로 번졌다. 우리 독립운동사의 상징과 같은 3·1 만세운동은 하루 열리고 만 집회가 아니다. 경성에서 시작된 민중들의 봉기는 시차를 두고 각 지역으로 퍼졌다. 군산의 경우는 3월 5일이었다. 날짜는 달랐어도, 밑바탕에 깔린 정신은 당연히 3·1운동이다. 군산을 포함한 전국의 만세 운동 진원지를 모두 ‘3·1운동 유적지’라 통칭하는 이유다. 허은철 총신대 역사학과 교수는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와 학교가 독립운동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줬다”고 의미를 평가했다. 그러니까 선교사들의 사역 여정이 독립운동의 밑거름이 됐다는 것이다. 군산 야구계의 시각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 처음 야구가 도입된 곳도 영명학교다. 공식적인 한국 야구의 역사는 1905년 시작됐다. 미국의 필립 질레트(1872~1938) 선교사가 서울의 황성기독교청년회(YMCA) 회원들에게 야구를 가르친 것이 시초다. 군산 야구계에선 만능 스포츠맨이었던 윌리엄 포드 불(1876~1941) 선교사가 1899년 군산 땅을 밟은 이후 야구가 시작됐을 것이라 본다. 영명학교에 야구부가 조직됐고 톱타자였던 양기준은 호남 최초의 야구인으로 기록됐다. 영명학교가 1903년 개교한 걸 고려하면 질레트 선교사에 앞서 불 선교사가 이 학교 학생들에게 야구를 전해줬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 공식 야구 역사로는 인정받지 못한다 해도 최소한 군산이 2009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V10을 일궈 낸 호남 야구의 발판이었던 건 분명해 보인다. 구암동산 가장 높은 곳, 그러니까 3·1운동 100주년 기념관 뒤에 선교사 묘역이 있다. 전킨 선교사는 군산에서 부인과 어린 세 아들을 잃었다. 그도 장티푸스에 걸려 43세에 목숨을 잃었다. 온 가족이 낯선 타국에서 생을 다한 것이다. 전킨 선교사는 생전 “나는 궁멀 전씨다. 내가 죽으면 궁멀에 묻어 달라”고 당부했다. 전주에서 사망한 그가 군산에 와 묻힌 이유다. 아쉽게도 현재 ‘궁멀’의 묘역은 가묘다. 6·25전쟁 등 혼란의 와중에 묘지가 멸실됐고, 대신 네 쌍의 선교사 부부 고향에서 흙을 가져와 묘소로 추정되는 곳에 안장했다. 유일하게 미국에 묻힌 드루 선교사의 유골은 현지 가족의 동의를 얻어 조만간 이곳으로 이장할 예정이다. 영명학교 후신인 군산제일고 출신으로, 이 일대 기독교 유적지 조성에 발 벗고 나선 소강석 새에덴교회 담임목사는 “전킨 선교사의 유해를 돌보지 못한 건 한국교회 모두의 책임”이라며 “100년 전 이 땅을 찾은 선교사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더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경은 군산과 지척이다. 군산이 작은 어촌이었을 당시 강경은 대구, 평양 등과 함께 조선의 3대 시장으로 꼽힐 만큼 큰 도시였다. 강경에서 눈여겨볼 곳은 옥녀봉 바로 아래 강경침례교회다. 우리나라 침례교회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당시 미국 보스턴의 부유한 가문의 딸이었던 엘라 싱이 어린 나이에 죽음을 앞두고 가장 선교가 덜 된 나라에 자신의 유산을 써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 유지를 받들어 조성한 곳이 강경침례교회다. 초기 교회가 대부분 그렇듯 강경침례교회 역시 남녀 출입구와 앉는 자리를 구분한 기역자 형태다. 한강 이남에서 가장 먼저 생긴 기역자 형태의 집이라고 한다. 옥녀봉 일대에 봉수대, 소설가 박범신의 문학관과 그의 소설 ‘소금’의 무대가 된 ‘소금집’ 등 볼거리가 있다. 옥녀봉 들머리의 강경성결교회는 국내 유일의 정사각형 기와집 교회다. 내부는 당시 유교적 생활 습관에 따라 기역자로 조성됐다. 현재 국가유산청이 해체, 수리 중이어서 관람할 수는 없다. 1933년 세워진 병촌성결교회는 6·25전쟁 당시 교인 66명이 북한군과 그 추종자들에게 목숨을 잃은 곳이다. 충남 지역에선 가장 많은 개신교 순교자이고, 전국적으로는 전남 영광의 염산교회에 이어 두 번째다. 이들을 기리는 기념관이 아름답다. 교회 앞의 은행나무도 볼거리다. 흔히 ‘전우치 나무’라 불린다. 조선시대 기인이자 실존 인물이었던 전우치가 꽂은 지팡이가 자라 은행나무 노거수가 됐다는 이야기가 담겼다. 공주로 넘어간다. 백제의 고도로만 알았던 공주에 뜻밖에 개신교 유적지들이 많다. 대표적인 곳은 영명학교다. 군산의 영명학교와 이름이 같다. 기독교에서 빛은 예수를 상징한다. 그러니 ‘영원한 빛’이란 학교 이름은 결국 예수를 지칭하는 표현이라 봐도 무방하겠다. 바로 이 학교에서 사애리시(史愛理施·1871~1972) 선교사와 만난다. 수많은 여성 우국지사와 지도자를 길러내는 등 이 땅의 근대 여성 교육에 헌신한 미국 여성 선교사다. 특히 독립운동의 상징적 인물 중 한 명인 유관순 열사와의 애틋한 관계로 요즘 주목받고 있다. 사애리시는 앨리스 샤프란 이름을 한국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성인 사는 샤프, 이름인 애리시는 앨리스를 음차했다. 애리시란 한문을 풀면 ‘사랑의 이치를 널리 편다’는 뜻이니, 그의 평생 행적이 이름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는 캐나다에서 태어나 미국 뉴욕의 감리교 선교훈련원에서 선교사 교육을 받았다. 조선에 온 건 1900년이다. 이화학당 등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그는 1903년 같은 캐나다 출신의 선교사 로버트 샤프(1872~1906)와 결혼한다. 그가 샤프라는 성을 갖게 된 건 이때부터다. 한국선교유적연구회 회장인 서만철 전 공주대 총장에 따르면 둘은 뉴욕에서 수련받을 때부터 연인 사이였다고 한다. 그러다 사애리시 선교사가 먼저 조선으로 왔고, 로버트 샤프 선교사도 뒤따라 조선행을 택했다는 것이다. 당시 충남 공주는 개신교의 선교지 협정에 따라 감리교단이 선교 대상지로 삼았던 곳이다. 샤프 선교사가 공주 지역 책임자로 임명되자, 사애리시 부부는 1905년에 아담한 양옥집을 짓고 공주로 이주했다. 이 집이 영명동산에 있는 문화유산 ‘공주 중학동 (구)선교사가옥’이다. 샤프 선교사는 당시 집 양편에 살구나무를 두 그루 심었다. 살구나무(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만나, 석판과 함께 기독교 언약궤 안에 있었다는 세 가지 보물 중 하나다. 성경 요한복음에 나오는 “나는 길(아론의 싹 난 지팡이)이요, 진리(십계명 석판)요, 생명(만나)이니”는 바로 이 세 가지 보물을 일컫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랑의 매로 살구나무 가지를 쓰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샤프 선교사는 공주 제일감리교회에 부임한 지 채 6개월도 못 돼 소천하고 만다. 남편을 잃은 충격에 미국으로 돌아가 2년가량 안식년을 보낸 사애리시는 1908년 남편이 묻힌 공주로 돌아와 선교활동을 이어 갔다. 이 과정에서 만난 이가 유관순 열사다. 유 열사의 빛나는 자질을 알아본 사애리시는 그를 수양딸로 삼아 공주로 데려왔고, 영명학교에서 2년가량 가르친 뒤 이화학당에 편입시킨다. 유 열사의 인성 형성에 사애리시가 무척 큰 역할을 했을 거라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사애리시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후임자로 파송된 우리암(禹利岩·프랭크 윌리엄스·1883~1962) 선교사도 빼놓을 수 없다. 1906년 공주영명학교를 설립하고 30여년간 교장으로 근무했다. 우리암 선교사 부부는 조선에서 다섯 자녀를 낳았다. 그중 장남 조지 윌리엄스(1907~1994)와 딸 올리브(1909~1917)가 영명동산에 잠들어 있다. 이 사연도 애틋하다. 조지 윌리엄스의 한국 이름은 우광복(禹光福)이다. 조선의 광복을 기원하며 지은 것이다. 서만철 회장은 “이름에 ‘회복할 복’(復) 자 대신 ‘복 복’(福) 자를 쓴 건 일제에 노출되는 것을 막으려는 방편”이라고 설명했다. 우광복은 광복 후 미군정에 군의관으로 파견됐다가 당시 군정사령관이던 존 하지의 통역으로 활동했다. 서 회장은 “미군정과 한국인 엘리트 그룹을 연결하는 가교 구실을 했으며 이념 대립이 치열하던 정국에서 우익 주도 흐름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여동생 곁으로 보내 달라는 유언에 따라 그의 유해 일부가 영명동산에 모셔졌다. 이들이 얽혀 만들어 낸 역사는 공주제일감리교회(현 공주기독교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미 감리회 선교사들의 유품과 사진 등 자료가 전시돼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와 서온순, ‘나그네’를 지은 박목월과 유익순이 이 교회에서 혼례를 올렸고 우리나라 스테인드글라스 공예의 선구자인 이남규가 개신교회 내 첫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이 교회 벽면에 조성했다. 유관순 열사의 영명학교 시절 모습이 담긴 사진, 사애리시와 함께 생활하며 사용했을 식기 등도 전시됐다.
  • 세계문화유산 ‘도산서원’도 산불 위협…관계당국 초긴장

    세계문화유산 ‘도산서원’도 산불 위협…관계당국 초긴장

    닷새째 이어지고 있는 경북 의성 산불이 안동으로 번지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도산서원도 위협받고 있다. 이에 따라 관계 당국은 방어선을 구축하고 산불 확산 저지에 나섰다. 26일 산림당국에 따르면 산불은 이날 오후 늦게 영양군 청기면과 안동시 남선면 일대로 확산하면서 인근의 예안면과 도산면, 녹전면 주민에게도 대피명령이 내려졌다. 청기면은 도산서원과 15㎞, 남선면은 20여 ㎞ 떨어져 있다. 이에 도산서원 인근도 연기가 자욱한 상태다. 낙동강 변에는 호계서원과 월천서당, 분강서원 등도 자리 잡고 있다. 관계 당국은 산불이 확산하기 전 선제적으로 도산서원 내 퇴계 이황 유품과 서책 등을 인근의 한국국학진흥원으로 옮겼다. 이와 함께 산불 방어선 구축을 위해 도산서원을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와 단풍나무를 벌목했다. 도산서원 관리사무소 전 직원은 비상시 전부 투입될 예정이다. 또한 오는 27일부터는 민간인 방문객을 받지 않고 산불 방어에 집중하기로 했다. 소방당국도 비상시 도산서원에 소방차 2대와 소방관, 의용소방대 등을 투입할 예정이다. 도산서원 관계자는 “화선이 멀더라도 화재로 잿더미가 된 고운사 사례가 있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따”면서 “안동에서 넘어오는 불은 안동댐과 낙동강으로 인해 걱정이 덜하지만, 영양에서 넘어올 산불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조선 선조 7년(1574년) 건립됐다. 2019년에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9개 서원 중 하나에 포함돼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도산서원과 함께 있는 도산서당과 퇴계 선생의 제자들이 머물렀던 기숙사 농운정사는 2020년 보물로 지정됐다.
  • 용산구, 촘촘한 안전망으로 고독사 예방·관리

    용산구, 촘촘한 안전망으로 고독사 예방·관리

    서울 용산구가 독거노인, 중장년 1인 가구 등 사회적 연대가 취약한 계층과 복지위기 가구의 고독사 추정 사례가 계속 발생함에 따라 ‘2025 고독사 예방 및 관리 사업’을 추진한다고 26일 밝혔다. 1인 가구가 증가하고 고령화 현상이 심화하는 등 다양한 사회환경 변화로 취약계층의 사회적 고립이 심화하고 있어 해당 사업으로 고독사 위험자를 조기에 발견하고 고독사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구에서 시행하는 고독사 예방 및 관리사업은 안부확인, 생활 개선 지원, 사회적 관계망 형성 프로그램, 사후관리 등 4가지 유형으로 꾸렸다. 우선 사회적 고립 1인 가구 고독사 위험군을 대상으로 우리동네돌봄단, AI안부확인, 스마트플러그 등 안부확인 체계를 활용하는 ‘안부 돌보미 사업’을 펼친다. 우리동네돌봄단이 주 3일 방문 또는 전화로 안부를 확인한다. AI안부확인은 주 1차례 자동전화를 걸어 수신여부, 불편사항, 미수신 사유 등을 파악해 후속 조치를 진행한다. 스마트플러그는 사물인터넷 기술을 대상 가정에 설치해 전력량과 조도 변화 감지로 대상자의 이상 유무를 사전에 감지한다. 생활개선 지원 사업으로 청장년 1인 가구 건강음료 배달 사업인 ‘두드림 사업’을 실시한다. 두드림 사업은 기존 어르신에 집중된 안부확인 서비스를 청장년 1인 가구로 확대했다. 요구르트 배달원이 사회적 연대가 취약한 청장년 1인 가구를 매주 3차례 방문하며 안부확인용 건강 음료를 전달하는 사업이다. 음료가 쌓이거나 배달 시 이상징후를 감지하면 구청이나 동 주민센터로 즉시 신고해 촘촘한 복지 안전망을 구축한다. 사회적 관계망 형성 프로그램은 사회적 고립 가구가 타인과 교류하는 방법을 연습하고 외출을 유도하기 위해 ‘방탈출 서포터즈’를 운영한다. 우리동네돌봄단,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등이 동 복지플래너(복지 담당 공무원)와 함께 방탈출 서포터즈로 활동한다. 동별 특성을 반영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사회적 고립 가구의 외로움과 고립감 해소를 돕는다. 16개 동별로 반려식물 화분 만들기, 텃밭 가꾸기, 1인 가구 혼밥 반찬 만들기, 사랑의 현장 미용실, 복지 반상회, 영화 관람, 둘레길 걷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사후관리는 고인의 삶이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고독사 발생가구에 유품정리나 특수청소에 드는 비용을 최대 100만원까지 지원한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다양한 사회환경 변화로 독거 어르신, 청장년 1인 가구 등 사회적 연대가 취약한 고독사 위험가구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용산구는 사회적 고립가구와 소외된 이웃들을 외면하지 않고 복지 사각지대 발굴 등을 통해 ‘함께 가는 용산’을 만들어 가겠다”고 전했다.
  • 故김수미 유품서 복권 수백장·통장 뭉치 발견

    故김수미 유품서 복권 수백장·통장 뭉치 발견

    ‘국민 엄마’로 통한 고(故) 배우 김수미가 남긴 재산과 일기장 원본이 처음 공개된다. 오는 25일 오후 10시 방송하는 TV조선 예능물 ‘아빠하고 나하고’ 시즌2에서 김수미가 떠난 뒤 남겨진 가족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시즌1에 출연했던 김수미의 며느리인 배우 서효림, 고인의 아들인 사업가 정명호씨가 텅 빈 고인의 집을 찾는다. 두 개의 가방에 담긴 김수미의 마지막 유품엔 수백 장의 복권과 통장 뭉치가 발견됐다. 서효림과 정명호는 김수미가 남긴 재산과 기록들을 살펴보며 엄마의 빈 자리와 마주하게 된다. 특히 16세 처음 서울에 상경했을 때부터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써왔던 김수미의 일기장 원본이 첫 공개된다. 세월의 흔적을 가득 품은 그녀의 일기장에 대해 서효림은 “거기에만 본인의 속 이야기들을 담으셨던 것”이라고 눈시울을 붉힌다. 일기를 통해 몰랐던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된 정명호는 결국 참고 참았던 눈물을 흘린다. 그는 “1초도 잊어본 적이 없다. 나 좀 안아달라고 하고 싶다”며 엄마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을 털어놓는다. 김수미는 지난해 10월 7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특히 20대에 MBC 드라마 ‘전원일기’의 일용어머니를 연기하며 ‘시골 할머니’의 상징이 됐다. 어머니의 다양한 얼굴도 보여줬다. 영화 ‘가문의 영광’의 조폭 보스, ‘맨발의 기봉이’의 지적장애 아들을 둔 순진한 촌부 등을 연기했다. 차진 입담으로 예능계 블루칩이기도 했다. 요리 솜씨가 뛰어나 특히 tvN ‘수미네 반찬’, SBS 플러스 ‘밥은 먹고 다니냐?’ 등 음식 예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 서울 아파트 공사 현장서 6·25 전사자 추정 유해 2구 발굴

    서울 아파트 공사 현장서 6·25 전사자 추정 유해 2구 발굴

    서울의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6·25전쟁 국군 전사자로 추정되는 유해가 발굴됐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지난 13일부터 이틀간 서울 동작구 옛 수도방위사령부 부지에서 유해 2구를 수습했다고 21일 밝혔다. 지난 12일 굴삭기 작업 중 뼈와 군화가 발견돼 현장에 있던 건설업체 직원이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보여 6·25 전사자 유해가 아닌가 싶다”며 군에 제보했다. 국유단은 유해가 발견된 지점에 대한 공사 정지를 요청하고 조사·발굴팀을 현장에 파견해 유해 2구와 유품 7점을 수습했다. 국유단은 유해와 유품의 구성 등을 고려할 때 국군 전사자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향후 유해 정밀 감식과 유가족 유전자 시료 비교 분석 등 신원확인 절차가 진행된다. 유해가 발견된 장소는 1950년 6~7월 한강 방어선 전투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당시 국군 혼성 제7사단 병력은 도하작전을 펼치는 북한군 4사단을 저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2000년 4월 유해발굴사업이 시작된 뒤 서울 도심에서 유해를 발굴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2007년 동작구 이수교차로 인근 야산에서, 2010년에는 이번 유해가 발견된 공사장이 있는 동작구 사육신역사공원에서 유해가 발굴됐다. 모두 시민의 제보로 비롯됐다고 국유단은 전했다. 이근원 국유단장은 “우리가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장소에도 불과 75년 전에는 참혹한 전투가 있었고, 호국영웅이 잠들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라며 “하루빨리 그분들을 가족의 품으로 모실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의 관심과 협조를 당부드린다”고 밝혔다.
  • “‘살려달라’는 김새론에 ‘눈물의 여왕’ 손해 보면 배상해야 한다고” 故 김새론 유족, 법적 대응 예고

    “‘살려달라’는 김새론에 ‘눈물의 여왕’ 손해 보면 배상해야 한다고” 故 김새론 유족, 법적 대응 예고

    지난달 향년 25세로 숨진 배우 고 김새론의 유족이 김새론의 생전 그를 비방하는 유튜브 영상을 다수 게재한 유튜버 이진호를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또 김새론이 미성년자 시절부터 교제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배우 김수현과 김수현의 소속사에 대해서도 “거짓된 입장문으로 유족을 상처받게 했다”면서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유족의 법률대리인인 부지석 법무법인 부유 변호사는 17일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에 유튜버 이진호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하며 권영찬 한국연예인자살예방협회 소장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부 변호사는 “(이진호에 대해)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기 위해선 김수현과 김새론의 교제 사실을 우선 인정받아야 했다”면서 “김수현 측은 진심 어린 사과를 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내용증명 두 번 받고 극심한 심적 고통”부 변호사는 “김수현의 소속사 골드메달리스트가 지난해 5월 김새론에게 ‘7억원을 변제하지 않으면 법적 대응할 것’이라는 내용의 1차 내용증명을 보낸 뒤 김새론은 김수현에게 ‘살려달라’는 문자를 보냈다”면서 “김수현 측은 이에 2차 내용증명을 보냈으며, 유족이 김새론의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골드메달리스트는 김수현이 설립한 연예기획사로 김새론의 생전 소속사였다. 부 변호사는 “내용증명을 보내지 않으면 배임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내용이었지만 사실상 기한을 줄 테니 반드시 변제하라는 내용이었다”면서 “김수현 등 소속사 배우들과 직접 소통하지 말라는 내용도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또 “향후 소셜미디어(SNS)에 (김수현과 관련된) 사진을 올리는 등으로 (당시 방영 중이던 김수현 주연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 손해를 끼치면 배상 처리하겠다는 내용도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실제로 김새론이 2차 내용증명을 받은 뒤 김수현으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았고 소속 배우들과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면서 “고인이 얼마나 큰 심적 고통을 받았을지 감히 짐작도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수현 측에 대해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진호, ‘셀프 연애’라며 이상한 여자로 몰아”부 변호사는 또 유튜버 이진호에 대해 “김새론은 내용증명을 받은 뒤 극심한 고통을 받았고, 김수현 측에 ‘살려달라’는 문자를 보냈는데도 답변이 오지 않자 SNS에 김수현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다”면서 “그런데 그 사진을 두고 ‘자작극’, ‘셀프 연애’라며 김새론을 이상한 여자로 몰고 갔다”고 비판했다. 이어 김새론이 숨진 뒤 이진호가 김새론 관련 영상을 삭제한 것에 대해서는 “명백한 증거 인멸 시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향후 다른 영상들과 관련해 추가 고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족 측은 김새론이 생전 자신을 비방하는 영상을 게시한 이진호로 인해 고통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또 김새론이 SNS에 올린 사진이 ‘셀프 연애’라는 이진호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김새론이 만 15세 때부터 6년간 김수현과 교제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새론이 드라마 ‘사냥개들’ 제작사에 물어야 할 위약금 7억원을 소속사가 변제한 뒤 김새론이 이를 갚아나가기로 했으나, 소속사가 돌연 “변제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요지의 내용증명을 보내 변제를 독촉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교제설은 명백한 허위사실”이라던 김수현 측은 입장을 바꿔 “김새론이 성인이 된 이후 1년여간 교제했다”고 밝혔다. 또 김새론의 위약금은 사측이 변제한 뒤 손실 처리했다고 반박했다. 김새론의 모친은 입장문을 내고 김수현과 소속사의 공개 사과를 요구했지만, 김수현 측은 김새론의 유족을 향해 “사무실에 연락 주시면 만나서 설명드리겠다”며 맞서고 있다.
  • 광진, 안부 살피고 외출 돕고… ‘고독사 제로’ 쭉 간다

    광진, 안부 살피고 외출 돕고… ‘고독사 제로’ 쭉 간다

    서울 광진구가 ‘2025년 고독사 예방 시행 계획’을 실행한다고 11일 밝혔다. 이를 통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고독사 제로’를 이어 간다는 게 광진구의 목표다. 먼저 안부확인 서비스를 강화한다. 안부확인 서비스는 휴대전화 기록을 확인해 통화 기록이 없거나 전원이 꺼져 있을 경우 자동응답전화를 발송하는 서비스다. 응답이 없는 경우 담당 직원에게 즉시 알림이 간다. 고립 일상 개선사업도 새로 선보인다. 고독사 위험군 40명의 외출을 유도한다. 한 달에 한 번씩 동주민센터와 지역 내 복지기관 등에 들러 혈압 체크, 건강 복지 상담을 받고 인증하면 연 20만원 상당의 생필품을 지원한다. 또 사회관계망 형성과 사후 관리에 힘쓴다. 자조모임, 체육활동, 문화활동 등 정기적인 집단 프로그램 운영으로 사회적 고립가구의 불안감과 외로움을 없앤다. 물리적 거리가 가까운 동 단위 지역에서 시범 운영, 교류 활성화를 이끈다. 고독사가 의심되는 저소득 무연고 사망자에 대해서도 유품 정리, 특수청소 비용 등 최대 100만원을 지원한다. 광진구는 고독사 예방 시행 계획에 63억원을 투입한다. ▲고독사 위험군 발굴 및 위험 정도 판단 ▲사회적 고립 해소를 위한 연결 강화 ▲생애주기별 서비스 연계 지원 ▲고독사 예방관리 기반 구축의 4개 중점 과제를 정해 29개 사업을 펼친다. 김경호 광진구청장은 “고독사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숙제”라며 “앞으로도 지역사회와 손을 잡고 고독사 예방과 촘촘한 사회안전망 구축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