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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이에게 모든 것’… 정진석 추기경 선종 1주년 추모 미사

    ‘모든 이에게 모든 것’… 정진석 추기경 선종 1주년 추모 미사

    고 정진석 추기경 선종 1주기 추모 미사가 27일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됐다.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봉헌한 이날 미사에는 정 추기경의 유족, 주교단과 사제단, 수도자, 신자, 각계 인사 등 800여 명이 참석해 추기경의 뜻을 기렸다. 정 추기경은 성당 왼쪽에 걸린 현수막에서 환한 미소로 사람들을 반겼다. 현수막에는 추기경이 마지막으로 남긴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세요’라는 문구도 담겼다. 미사를 주례한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정 추기경을 선교의 열정이 탁월한 사목자, 뛰어난 교회법 학자, 그리고 뛰어난 영성가로서 추모했다. 정 대주교는 “청빈한 생활을 실천하고 교구와 보훈처에서 지급되는 생활비를 아끼고 또 모았고, 이렇게 모여진 통장의 잔고 전액을 기부해 ‘정진석 추기경 선교후원회’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또한 정 추기경이 생전에 46권을 저술하고 14권을 번역한 일과, 장기 기증의 약속을 지킨 일화도 전했다.추모 영상에서는 정 추기경의 생전 당부도 전해졌다. 정 추기경은 주교단과 사제들에게 “코로나 때문에 세상이 많이 변화할 것 같다. 그럴 때 교회가 중심을 잡고 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본보기를 보여달라”고 했고, 신자들에게는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봉헌하는 본보기가 되게 하면서 살게 해주신 뜻을 감사하면서 살자”고 했다. 영상 말미에는 “하느님 만세”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는 모습도 나왔다. 미사 후엔 천주교 서울대교구 역사관 2층 전시실에서 정 추기경 선종 1주기 추모 특별전 ‘모든 이에게 모든 것’ 개막식이 열렸다. 특별전 제목은 코린토 1서 9장 22절의 말씀이자 정 추기경의 사목표어에서 따왔다. 특별전에는 정 추기경의 손때가 묻은 유품 160여 점이 10월 30일까지 전시된다. 지난 21일 명동성당 지하에 있는 1898 광장에서 시작한 ‘별빛 같은 사람-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 사진전’은 새달 1일까지 열린다. 한편, 서울대교구는 오는 30일 정 추기경의 묘지가 있는 용인 성직자묘역에서도 손희송 주교의 주례로 추모 미사를 봉헌할 예정이다.
  • 한국, 세계 품새대회 12연패 위업…태권도 종주국 위상 확인

    한국, 세계 품새대회 12연패 위업…태권도 종주국 위상 확인

    한국 태권도 품새 국가대표팀이 경기 고양시에서 열린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대회 12연패 위업을 달성했다. 한국 대표팀은 지난 21일부터 24일까지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2022 고양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에서 공인품새 4개 종목, 자유품새 3개 종목 등 7개 부문에 출전해 금메달 20개, 은메달 6개, 동메달 2를 획득하고 참가국 62개국 중 종합 1위를 했다. 올해로 12회째를 맞은 이번 대회는 2006년 제1회 대회(서울)와 2007년 제2회 대회(인천) 이후 15년 만이자 통산 세 번째로 우리나라에서 열린 대회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 대회에서 종합 우승을 놓친 적이 없다. 대회 1일차 때 김미현(36·한국체대중평태권도장)·최영실(34·경희대 보람태권도장)·장명진(33·지인회태권도장)이 공인품새 30세 이상 여자 단체 8강전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우리나라는 대회 2일차 때부터 메달을 싹쓸이했다. 대회 2일차 때 공인품새 여자 유소년 개인전에서 한송연(14·목암중)이 금메달을 차지했고, 공인품새 40세 이하 여자 개인전에서는 강유진(33·남창체육관)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중장년 선수들도 종합 우승에 힘을 보탰다. 공인품새 50세 이하 여자 개인전에서는 김연부(50·국가대표참태권도장)가 동메달, 공인품새 65세 이상 남자 개인전에서는 강재진(66·MIRACLES백봉태권도장)이 은메달을 획득했다. 특히 오는 9월 중국 항저우아시안게임 태권도 품새 여자 개인전에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하는 곽여원(28·강화군청)은 윤지혜(25·포천시청), 임승진(22·경희대), 정하은(21·한국체육대), 김지원(21·한국체육대), 한재현(18·천안상업고)과 함께 자유품새 17세 이상 단체전에 출전해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들은 공중 연속 발차기, 뒤후려차기 등 난이도가 높은 발차기 동작을 선보이며 최종 점수 7.46점(10점 만점)을 얻어 7.24점의 대만을 제치고 우승했다. 곽여원은 “한국에서 (자유품새) 믹스(혼합) 단체전에 출전한 것은 이번 대회가 처음인데, 첫 출전에 좋은 성적이 있었고 좋은 선수들과 함께 호흡을 맞출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서 영광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곽여원과 함께 항저우아시안게임 품새 남자 개인전에 출전하는 강완진(24·도복소리태권도장)은 공인품새 30세 이하 남자 개인전에서 1위를 차지했다. 강완진과 결승에서 맞붙은 김준호(18·국가대표세계태권도장)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회 3일차에서도 한국 선수들의 선전은 계속 이어졌다. 공인품새 40세 이하 남자 개인전에 참가한 장재욱(34·경희대 보람태권도장)이 금메달을 땄다. 한국 첫 금메달 소식을 전한 최영실과 부부 사이다. 청소년 선수들의 활약도 돋보였다. 장한솔(15·월곶중)은 자유품새 17세 이하 여자 개인전, 이진호(17·문산제일고)는 자유품새 17세 이하 남자 개인전에서 각각 금메달을 차지했다. 공인품새 여자 유소년 단체전에서는 신유빈(14·동탄중), 임소윤(14·저동중), 원혜림(14·울진중)이 동메달을 획득했다. 대회 마지막 날인 이날도 이남훈(20·용인대)이 자유품새 17세 이상 남자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신주현(15·문현중)과 장지원(17·배곧고), 우문현(16·경기상업고), 황연진(15·성재중), 이주영(16·한봄고), 정수진(17·청북고)로 구성된 대표팀도 자유품새 17세 이하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 김미현·최영실·장명진 ‘고양 세계 태권도 품새대회’ 첫 금메달

    김미현·최영실·장명진 ‘고양 세계 태권도 품새대회’ 첫 금메달

    21일 개막한 ‘2022 고양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 첫날부터 한국 대표팀이 금메달을 차지했다. 김미현(36)·최영실(34)·장명진(33)이 그 주인공이다. 김미현과 최영실, 장명진은 이날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 공인품새 30세 이상 여자 단체 8강전에 출전해 우승했다. 공인품새 경기는 금강, 평원을 포함한 지정품새를 2개를 시연해 채점받은 항목별 점수 총합으로 개인 또는 팀이 우열을 가리는 경기다. 기본동작과 각 품새별 세부 동작의 정확도, 자세 균형, 동작 간 연결 등이 중요하다. 세 선수는 이날 8강 첫 경기에서 태극 8장과 고려 품새를 선보여 10점 만점에 총 7.36점을 받아 6.75점을 받은 스페인을 여유 있게 꺾고 4강에 진출했다. 4강에서는 금강, 천권 품새를 선보여 7.27점을 받아 멕시코(6.4점)를 큰 점수 차로 이기고 결승에 갔다.이어진 결승에는 십진, 지태 품새를 시연, 7.52점을 획득해 7.2점을 받은 미국을 0.32점 차로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김미현은 “부상으로 훈련하기 힘든 점이 많았는데 서로 믿고 경기해서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우승 소감을 밝혔다. 한국 대표팀은 이날 공인품새 주니어 여자 단체전, 30세 이하 남자 단체전, 자유품새 17세 이상 단체전 종목에도 출전해 예선을 통과하고 오는 22일 진행되는 결선에 진출했다. 22일에는 오는 9월 중국 항저우아시안게임 태권도 품새 개인전에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하는 곽여원(28)과 강완진(24)이 17세 이상 여자 단체전과 30세이하 남자 개인전에 출전하는 등 총 14개 종목에 참가한다. 이번 대회는 이날부터 24일까지 4일 동안 열린다. 62개국 972명의 선수들이 참가했다.
  • ‘조선 마지막 무동’의 소장자료 국가에 기증된다

    ‘조선 마지막 무동’의 소장자료 국가에 기증된다

    ‘조선의 마지막 무동(舞童)’이라 불린 고 김천흥(1909~2007) 종묘제례악·처용무 국가무형문화재 명예보유자의 물품이 국가에 기증됐다.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은 21일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 소장자료 기증식을 개최했다. 김천흥의 유품과 제주칠머리당영등굿 보유자 김윤수의 소장자료 총 1246건을 기증받았다. 김천흥은 조선왕조 마지막 임금인 순종황제의 50세 탄신 경축 연회에서 춤을 춰 ‘조선의 마지막 무동’으로 불렸다. 이번에 기증한 친필로 쓴 처용무 무보(舞譜)와 공연 때 착용했던 복식과 가면 등은 무형문화재 역사의 산증인이었던 그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국내외 공연사진과 신문 스크랩 등 990여 건의 자료들은 국가기록원 국가지정기록물(민간기록물 중 국가적으로 영구히 보존할 가치가 있는 기록물)로도 관리되고 있어 그 가치를 더한다.김윤수와 선대 심방(제주도에서 무당을 가리키는 무속용어) 양금석의 손때가 묻은 울북, 설쇠 등의 무구(巫具)도 함께 기증됐다. 울북과 설쇠는 제주도 무속 의례에 쓰는 타악기다. 국립무형유산원은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와 보유단체 등으로부터 무형유산 관련 자료를 기증받는다. 기증받은 자료는 수장고에서 별도로 보존?관리하며 기증자료집 발간, 전시 등을 통해 무형유산의 역사와 가치를 대중에게 소개한다.
  • 각 잡아 품새왕, 꽉 잡아 금메달

    각 잡아 품새왕, 꽉 잡아 금메달

    “한번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죠.” 강완진(24·도복소리태권도장)의 ‘끝’은 어디일까. 오는 9월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 태권도 품새 개인전 국가대표 선수로 선발된 강완진은 이미 주요 국제대회를 석권했다. 2018년 베트남 호찌민 아시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 개인·단체전 1위에 올랐다. 같은 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단체전 1위와 대만 타이베이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 단체전 1위도 차지했다. 또 2019년 이탈리아 나폴리 하계 유니버시아드 개인·단체전 1위를 하면서 우승 단골손님이 됐다. 하지만 강완진은 “아직 배고프다”고 했다. 20일 그는 “태극마크를 달고 참가하는 국제대회는 한번 맛보면 계속 맛보고 싶은 무대”라면서 “현역 선수로 있는 동안 최고의 자리까지 가고 싶다”고 밝혔다. 아시안게임 결승전까지 가려면 공인품새와 자유품새를 모두 준비해야 한다. 자유품새는 태권도 기술을 바탕으로 안무와 음악이 함께 어우러지는 종목이다. 각 품새별 세부 동작의 정확도 및 표현력을 평가하는 공인품새와 달리 자유품새는 뛰어 옆차기(뛴 높이), 뛰어 앞차기(발차기 수), 회전 발차기(회전각), 연속 발차기 등의 기술 난이도와 연출력이 생명이다. 곡예에 가까운 화려한 기술을 볼 수 있다. 강완진은 “자유품새는 공인품새와 완전히 다른 종목이다. 둘 다 1등 할 수 있는 실력을 키우는 일은 정말 어렵다”면서 “선수생활을 시작한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공인품새만 하다가 2017년 대학교 1학년 때 자유품새를 처음 접했는데, 당시 꾸준히 훈련했던 게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강완진은 지난해 1월 왼쪽 아킬레스건 완파 부상을 당했다. 재활 기간에 강완진을 괴롭힌 것은 ‘선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었다. 이번 대회가 강완진에게 더욱 간절한 이유다. 강완진은 “선수에겐 치명적인 부상이라 높이 뛰는 동작이 많은 자유품새 경기를 앞으로 할 수 있을지 많이 불안했다. 수술 후 6주간 깁스를 하면서 빠진 다리 근육을 다시 키우는 과정만으로도 정말 힘들었는데, 심리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다. ‘선수생활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강완진은 좌절하지 않고 지난해 11월 품새대회에 복귀했다. 코로나19와 부상으로 생긴 지난 2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강완진은 “크게 다쳤지만 현역 선수로서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다”면서 “난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고 말했다. 강완진은 훈련하면서 힘들 때마다 되새기는 말이 있다. 일본의 전설적인 야구선수 스즈키 이치로가 남긴 ‘노력하지 않고 무언가를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을 천재라고 한다면 나는 절대 천재가 아니다. 하지만 피나는 노력 끝에 뭔가를 이루는 사람을 천재라고 한다면 나는 천재가 맞다’라는 말이다. 그는 “계속 노력해서 최고 경지에 오르고 싶다”며 인터뷰를 끝냈다. 강완진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강완진 아직 살아있다’ 증명하고 싶다”…멈출 수 없는 도전

    “‘강완진 아직 살아있다’ 증명하고 싶다”…멈출 수 없는 도전

    “한 번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죠.” 강완진(24·도복소리태권도장) 선수의 ‘끝’은 어디일까. 오는 9월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 태권도 품새 개인전 국가대표 선수로 선발된 강완진 선수는 이미 주요 국제대회를 석권했다. 2018년 베트남 호치민 아시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 개인·단체전 1위, 같은 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단체전과 대만 타이베이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 단체전 1위, 2019년 이탈리아 나폴리 하계 유니버시아드 개인·단체전 1위로 우승 단골손님이다. 하지만 강완진 선수는 “아직 배고프다”고 했다. 그는 20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참가하는 국제대회는 한 번 맛보면 계속 맛보고 싶은 무대”라면서 “현역 선수로 있는 동안 최고의 자리까지 가고 싶다”고 밝혔다. 아시안게임 결승전까지 가기 위해서는 공인품새와 자유품새를 모두 준비해야 한다. 자유품새는 태권도 기술을 바탕으로 안무와 음악이 함께 어우러진 종목이다. 품새별 세부 동작의 정확도 및 표현력을 평가하는 공인품새와 달리 자유품새는 뛰어 옆차기와 앞차기, 회전 발차기, 연속 발차기 등의 기술 난이도와 연출력이 생명이다. 선수가 얼마나 높이 뛰는지, 높이 뛰어 발차기는 얼마나 하는지, 몇 회까지 회전할 수 있는지를 평가한다. 곡예에 가까운 화려한 기술을 볼 수 있다. 강완진 선수는 “자유품새는 공인품새와 완전히 다른 종목이다. 둘 다 1등할 수 있는 실력을 키우는 일은 정말 어렵다”면서 “선수생활을 시작한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교 때까지 공인품새만 연습하다가 2017년 대학교 1학년 때 자유품새를 처음 접했는데, 당시 꾸준히 훈련했던 게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품새 동작을 잘 하기 위해서는 탄탄한 기초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강완진 선수는 “한 다리로 몸을 지탱하는 학다리서기나 발차기 동작이 아니더라도 손동작을 할 때 허리를 이용하고 어깨를 쓰기 때문에 몸의 균형을 잡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술 동작 과정에서 중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면서 “고교 때 정말 힘들게 운동했는데 그때 기른 기초체력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고가 되고 싶다는 강완진 선수에게 이번 아시안게임 출전이 더욱 간절했던 이유는 따로 있다. 부상이다. 강완진 선수는 지난해 1월 왼쪽 아킬레스건 완파 부상을 당했다. 재활 기간에 강완진 선수를 괴롭힌 것은 ‘선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었다. “선수에겐 치명적인 부상이라 높이 뛰는 동작이 많은 자유품새 경기를 앞으로 할 수 있을지 많이 불안했어요. 수술 후 6주 간 깁스하면서 빠진 다리 근육을 다시 키우는 과정만으로도 정말 힘들었는데, 심적으로도 많이 힘들었거든요. ‘선수 생활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었어요.” 하지만 강완진 선수는 좌절하지 않고 지난해 11월 품새대회에 복귀했다. 코로나19와 부상으로 생긴 지난 2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그는 “비록 크게 다쳤지만 제가 아직 현역 선수로서 지금보다 더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면서 “난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고 말했다.강완진 선수는 훈련하면서 힘들 때마다 되새기는 말이 있다. 일본의 전설적인 타자 스즈키 이치로가 한 말이다. “이치로 선수가 ‘스스로를 천재라고 생각하느냐’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 ‘노력하지 않고 무언가를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천재라고 한다면 전 절대 천재가 아니다. 하지만 피나는 노력 끝에 뭔가를 이루는 사람이 천재라고 한다면 저는 천재가 맞다’고 말했어요. 저도 계속 노력해서 최고 경지에 오르고 싶어요.” 열렬한 야구팬다운 모습이다. 강완진 선수는 21~24일 고양 킨텍스에서 열리는 ‘2022 고양세계품새선수권대회’ 국가대표팀에 발탁돼 우리나라의 종합우승을 노리고 있다. 이 대회에는 62개국 972명의 선수가 참가한다. 그는 “단기적으로는 국가대표 선수를 계속하고 싶다”면서 “태권도 품새 종목을 떠올렸을 때 오랫동안 회자될 수 있는 역사적인 선수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강완진 선수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임진왜란 60전 60승 신화’ 정기룡 장군 진검 등 전시

    ‘임진왜란 60전 60승 신화’ 정기룡 장군 진검 등 전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등 7년간 60전 60승의 위대한 승리 신화를 남긴 경남 하동 출신 충의공(忠毅公) 정기룡(鄭起龍·1562∼1622) 장군의 진검 등 각종 유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하동군은 정기룡 장군 순국 400주년을 맞아 오는 13일 부터 5월 30일 까지 49일간 문화예술회관 아트갤러리에서 ‘충의공 정기룡 유품전’을 연다고 12일 밝혔다. (사)충의공정기룡장군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유품전은 ‘장군의 행적을 따라’를 전시 주제 삼아 진검(장검), 옥대, 시장, 매헌실기 목판, 교지, 교서 등 유품 30점을 전시한다. 특히 정기룡 장군의 진검은 후손들에게 대대로 전해지다 20여년 전 분실된 뒤 성균관장 직무대행과 하동향교 전교를 지낸 고 정한효 경충사유지관리위원장이 20여년간 추적해 설득한 끝에 회수했다.진검은 지난달 30일 순국 400주년 추모행사 때 공개됐다. 진검은 전체 길이 112cm, 손잡이 길이 21.8cm, 칼날 길이 85.2cm로 임진왜란 당시 환도와 비교해 칼날 길이가 긴 편이다. 또 칼날 보호덧쇠인 호인은 황동재질에 얇은 동판을 덧대 이중으로 장식됐다. 외피는 흑색 옻칠로 마감됐다. 정기룡 장군은 1562년 음력 4월 24일 하동군 금남면 중촌리 상촌마을에서 태어나 1622년 2월 28일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 중 통제영 진중에서 순국했다 장군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는 7년간 전쟁에서 60전 60승의 신화를 이루었다. 정유재란 때에는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 울산 왜성에 주둔하며 한양 진격을 노리던 가토 기요마사의 왜군을 저지해 전란을 끝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 후세 역사가들은 장군의 공적에 대해 ‘기룡이 없었다면 영남이 없었고, 영남이 없었다면 조선이 없었을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하동군 관계자는 “장군의 순국 400주년을 맞아 장군이 실제 전투에서 사용한 장검과 장군의 행적을 확인할 수 있는 교지·교서 등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이번 전시회가 장군의 공적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 보이스피싱 대명사 ‘김미영 팀장’ 반전 정체

    보이스피싱 대명사 ‘김미영 팀장’ 반전 정체

    보이스피싱의 대명사 김미영 팀장의 반전정체가 충격을 안겼다.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10일 tvN ‘알쓸범잡2’에 출연해 “수많은 범죄를 봤는데 악질이 아닌 경우를 못 봤다. 다 악질이다. 사소한 것부터 큰 범죄까지. 피해자에게는 모든 게 다 악질이다. 돈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보이스피싱 범죄 이야기를 드리려고 한다. 이미 홍보가 많이 되고 있다”며 보이스피싱 범죄를 소개했다. 보이스피싱은 2017년에서 2021년까지 5년간 피해액이 2조 7000억원. 2020년 한 해에만 피해액이 7000억일 정도로 조직적인 범죄다.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주로 해외에 거주한다. 총괄하고 지휘하는 총책이 있고 수직적으로 역할들이 있다. 대표적인 게 직접 통화하는 콜센터, 통장 모집책, 돈이 들어오면 인출하는 인출책, 수거한 돈을 환전해 외국에 보내는 환전책. 점조직으로 돼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인출책에는 고액 알바를 하려던 10대, 20대가 77%에 이른다. 서혜진 변호사는 “보이스피싱은 우리나라에서 엄벌하는 범죄 중 하나다. 10대나 20대 초반 친구들이 조금이라도 가담한 흔적이 있으면 초범이라도 무죄 입증이 어렵다. 구속 수사를 한다. 윗선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라고 강조했다. 권일용은 “훈방할 수 없다. 통장 빌려주거나. 인출해 옮겨주는 건 무조건 공범이다”고 경고했다.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보이스피싱의 대명사 김미영 팀장 사건에 대해 말했다. 권일용은 “김미영 팀장, 모르는 사람이 없다. 가명이고 총책 박씨가 9년 만에 검거됐다. 김미영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고 불특정 다수에게 저금리 대출을 해주겠다, 신용불량자도 대출해주겠다. 무작위로 문자를 보내 반응하는 사람에게 상담하며 개인정보를 수집했다”고 설명했다. 이 방법으로 피해자가 수만 명, 알려진 피해액만 80억. 총 금액을 추정해보면 400억 정도 된다고. 박씨의 직원은 100명이 넘어 하나의 기업을 이뤘고, 그들을 움직여야 하기에 회사처럼 성과급도 주고, 여행도 시켜주고, 선물도 주고, 그렇게 운영해나간 것이 밝혀졌다. 박씨는 9년 만에 필리핀에서 검거됐다. 2010년 필리핀에 코리안 데스크를 만들었다. 경찰이 공조할 수 있는 요원들을 상주시키는 시스템. 상주하다보면 실정을 잘 알아서 정보원 활용도가 높다. 그렇게 소도시에 숨어 은거하고 있던 박씨를 체포했는데 그의 반전 정체는 모 경찰서에서 보이스피싱 담당 수사를 하던 경찰 출신이었다.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박씨는 사이버수사대 근무하면서 수사를 잘해서 체포를 많이 해 특별 승진까지 했던 경력이 있다. 2008년에 뇌물을 받고 파면된다. 그 길로 보이스피싱 범죄를 저지르는 계획을 세웠다”고 요약했다. 윤종신은 “피해자들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권일용은 “나이 많은 어르신들은 자식 볼 면목이 없어서 회복이 안 된다. 안타까운 사례가 있다.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용돈 보내라고 해서 돈을 모아 놨다. 쓰진 않고 자녀들 명의 통장에 갖고 있었다. 이걸 보이스피싱으로 날리고 나서 돌아가셔서 자녀들이 오해했다. 저렇게 될 걸 욕심냈나. 유품 정리하다 통장을 보고 알게 돼 가족의 삶이 망가졌다”고 피해자 사연을 소개했다. 김상욱 교수는 “바보 같이 왜 당하냐, 그런 말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고 공감했고, 권일용은 “비난받고 처벌받아야 할 것은 가해자지, 피해자는 누구나 될 수 있다. 범행은 저지른 가해자의 책임이다”고 강조했다.
  • 피란길 입대해 전사… 72년 만에 가족 만난 노재균 하사

    2009년 강원 춘천에서 수습된 전사자 유해의 신원이 노재균 하사로 확인됐다고 국방부가 6일 밝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2009년 5월 춘천 북산면에서 발굴된 6·25 전사자의 유가족을 찾아 DNA 시료를 채취해 분석한 끝에 신원을 노 하사로 확정했다고 전했다. 1928년 경북 선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가족들과 피란 중 1950년 9월 대구에서 입대했다. 국군 7사단 3연대 소속으로 춘천 부근 전투에 참전한 노 하사는 북한군과 교전 중 1950년 12월 24일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2009년 유해발굴 당시 현장에서는 노 하사의 대퇴골과 경골이 발굴됐고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유품은 나오지 않았다. 국방부는 전사자 기록을 바탕으로 탐문조사 끝에 그의 여동생을 찾아내 2020년 6월 유전자 시료를 채취·분석한 뒤 신원을 최종 확인했다. 노 하사의 여동생은 신원 확인 소식에 눈물을 쏟았다고 국방부는 전했다. 2000년 4월 유해발굴 사업이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노 하사를 포함해 총 189명의 전사자 신원이 확인됐다. 올해 들어서는 여덟 번째다.
  • 근현대사 생생하게… ‘중랑망우공간’ 문 열다 [현장 행정]

    근현대사 생생하게… ‘중랑망우공간’ 문 열다 [현장 행정]

    “40만 중랑구민의 마음을 담아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봄기운이 감돈 지난 1일 서울 중랑구 망우역사문화공원의 거점 시설인 ‘중랑망우공간’ 개관식. 류경기 중랑구청장이 개관식 참석자들을 일일이 소개할 때마다 객석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다. 류 구청장은 공원에 안장된 독립운동가 유족 및 묘역을 관리하는 ‘영원한 기억봉사단’ 등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웅장한 대북 공연이 이어지자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류 구청장은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인 이 공원을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인 보물로 키워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5일 구에 따르면 중랑망우공간은 지상 2층, 연면적 1247㎡ 규모로 전시실, 갤러리 카페, 교육실, 주차장 등을 갖춘 공원의 랜드마크다. 구는 학교 현장체험학습 등과 연계해 중랑망우공간을 역사문화 교육 장소로 활용할 예정이다. 해설사와 함께 중랑망우공간 시설 및 전시 관람, 묘역 탐방까지 함께 진행하는 ‘올인원 투어’도 계획하고 있다. 현재 2층 전시실에는 유관순, 안창호, 한용운, 방정환 등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영면한 독립운동가 중 건국훈장을 받은 8인의 유품과 자료가 전시되고 있다. 구 관계자는 “중랑망우공간 개관으로 방문객들이 더욱 쾌적하고 편안하게 이곳을 즐기고 공원에 잠들어 있는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관심도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망우역사문화공원의 ‘망우’(忘憂)는 태조 이성계가 사후 능을 정하고 “이제야 근심을 잊게 됐다”고 말한 데서 유래됐다. 애국지사 오세창, 문일평 등을 비롯해 지석영, 이중섭, 박인환 등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이끌어 간 80여명이 영면해 있다. 구는 2020년 7월 서울시로부터 망우리공원의 관리권을 넘겨받아 역사문화공원 조성에 박차를 가했다. 지난해 7월에는 전담 부서인 망우리공원과를 신설했다. 구는 ‘유명인사 묘역 기억 공간화 사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를 위해 권진규, 박인환, 방정환, 안창호 묘역에 대한 진입로와 노후시설을 정비 중이다. 묘역 주변에 추모비, 안내판, 연보비, QR코드 설치 작업도 이뤄지고 있다. 망우역사문화공원 브랜드 아이덴티티(BI)도 새롭게 제작됐다. 기존 지명 망우리의 초성과 망우산 내 침엽수를 형상화했다. 류 구청장은 “망우역사문화공원은 울창한 숲과 5.2㎞의 산책로가 갖춰진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소중한 자원”이라며 “앞으로 이곳을 자연과 공존하는 생명의 장소, 삶의 근심을 잊는 힐링의 공간, 과거를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가는 역사 공간으로 조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 남쪽 에메랄드 해안에 띄운 편지… 소리 없는 노스탤지어의 아우성 [작가의 땅]

    남쪽 에메랄드 해안에 띄운 편지… 소리 없는 노스탤지어의 아우성 [작가의 땅]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 애수(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 아아 누구던가 /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 맨 처음 공중에 달 줄 안 그는. - 유치환 시, ‘깃발’ 전문그리운 대상이 있다는 것은 삶에 우물 하나를 두는 일이다. 시원(始原) 혹은 해원(海原)의 장소이자 대상은 어쩌면 오롯이 누군가가 그것을 그리워할 적에 나타나는 신기루 같은 것이기도 하니까. 청마 유치환의 시다. 대부분의 사람이 국어영역(옛 언어영역)의 시험 지문이나 교과서에서 봤던 그 ‘노스탤지어 시’. 시간이 지나 다시 그의 시를 읽으니 예전에는 미처 볼 수 없던 마음의 우물 하나가 눈을 뜬다. 그네가 공중에 짚어 준 그 이정표대로 따라가다 보니 나의 시원과 고향이 한꺼번에 뒤섞인 우물의 문이 열린 것이다. 그런 까닭일까. 그 우물은 땅에 없다. 공중에 떠 있다. 그 무엇도 아닌 ‘노스탤지어’인 까닭이다.유치환은 1908년 7월 경남 거제군에서 태어났다. 두 살 때 충무(지금의 통영)로 이주해 그곳에서 자랐다. 통영공립보통학교(통영초등학교) 4학년을 마치고 일본 도요야마중학교로 유학을 갔다. 1926년 귀국을 한 뒤 동래고등보통학교에 편입했고, 연희전문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정지용의 시에 감동을 받아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31년 ‘문예 월간’에 첫 시 ‘정적’을 발표하며 등단을 했고 스물아홉이 되던 1937년에 통영으로 돌아왔다. 통영협성상업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며 계속해서 시를 썼고 동인지 ‘생리’(生理)를 창간했다. 1939년에는 첫 시집인 ‘청마시초’를 출간했다. 1940년에는 만주로 이주했다가 해방 후에 귀국했다. 충무와 부산, 경주 등에서 국어 교사로 근무했으며 안의중학교의 교장이 됐다. 이후 경주고등학교, 경주여자고등학교, 경남여자고등학교, 대구여자고등학교, 부산남여자상업고등학교장을 지냈다.1946년에는 조선청년문학가협회 회장이 됐으며, 1957년에는 초대 한국시인협회장을 역임했다. 6·25전쟁 중에도 끊임없이 시를 썼고 시집을 출간했다. ‘깃발’과 ‘생명의 서’, ‘행복’ 등이 이때 쓰였다. 대한민국 예술원의 회원이 됐다. 제1회 시인상과 서울시문화상, 예술원공로상과 부산시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서정주와 함께 생명파 시인으로도 불렸다. 1967년 2월 13일 부산 동구 좌천동에서 버스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 부산대학병원으로 이송되던 도중에 사망했으며, 2월 17일 부산 사하구 하단동 승학산에 묻혔지만 경남 양산시 백운공원 묘지로 이장됐다. 현재는 경남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 산록에 잠들어 있다. 거제에서 태어나 통영과 일본에서 공부를 하며 시를 썼고 끊임없이 후학 양성에 힘을 쏟다가 사후에 다시 거제로 돌아온 셈이다. 그는 그토록 그리던 노스탤지어에 도착한 것일까. 사랑하는 것은 /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 오늘도 나는 /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 한 망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 사랑하는 것은 /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유치환, ‘행복’ 전문청마에게는 서른 후반부터 시작된 사랑이 있었다. 물론 그 이전에 혼인을 해 일가를 꾸린 상태였다. 일제강점기 때 통영협성상업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일제의 검속 대상에 올랐던 까닭에 만주에 사는 형의 집으로 피신했다. 해방이 돼 부인과 함께 통영으로 돌아와 부인은 유치원을 운영했고, 청마는 통영여중의 국어 교사로 부임하게 됐다. 그곳에서 가사과 교사를 만나게 되는데, 그가 시인 이영도다. 그때 이영도는 폐결핵으로 남편을 잃고 딸 하나를 키우며 살아가던 처지였다.시조 시인 이호우의 여동생인 이영도 역시 시조로 등단해 주목을 받던 시인이었다. 1947년부터 그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이영도에게 연서를 보내기 시작한다. 시와 산문을 써서 우편으로 부치기 시작한 지 이십여 년. 그동안 주변에서는 이미 그 관계를 알고 있었지만 딱히 서로의 공간이나 사람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편지를 주고받았다. 교통사고로 죽기 전까지도 수천 통이 넘는 편지를 썼던 청마.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사랑의 마음을 편지로 썼던 이십여 년의 시간에도 그들의 위치는 변하지 않았다. 어떤 마음이면 한 사람을 향해 강산이 두 번이 더 바뀌도록 편지만을 써 대는가. 훗날 이영도는 ‘사랑했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는 책으로 청마의 편지 200편을 남겨 뒀다.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된 책의 인세는 사회에 기부했다고 한다. 오늘은 바람이 불고 /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 일찍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 /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 - 유치환, ‘그리움’ 전문청마를 회고하는 데 있어 빠짐없이 끼어드는 논쟁이 있다. 바로 친일 논쟁이다. ‘친일인명사전’에는 오르지 않았지만 일각에서는 “수록되지 않았다고 해서 면죄부가 주어진 것은 아니다”라는 의견을 피력한다. 청마의 시 ‘수’(首)와 ‘전야’(前夜)의 내용들 때문이다. 또 1942년 2월 ‘만선일보’에 발표한 “대동아 전쟁과 문필가의 각오”라는 제목의 글 역시도 친일의 행각으로 보고 있다. 한때 통영에서 유치환이 수천 통의 편지를 써서 부친 통영 중앙우체국을 ‘청마우체국’으로 개명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었고, 그에 따른 논란이 야기되기도 했다. 중앙우체국 앞에 ‘행복’의 시비가 세워졌으나 친일 행적이 밝혀지면서 개명이 유보되기도 했다. 문학적인 업적과 시인의 삶의 거리를 어디에서 어느 만큼까지 떼어서 봐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일화다. 그에 대한 해석의 여지는 앞으로도 분분할 테지만 우리가 익히 알아 온 시인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에 대한 판단은 오롯이 그의 시와 삶을 읽는 후대의 몫이 될 것이다. 공중에 떠 있는 그네를 바라볼 수 있는 방향이 한쪽만이 아니듯이, 그리하여 그것을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그만큼 늘어나듯이 말이다. 그 해석과 영탄, 지탄의 몫마저도 시인의 이름이다.청마문학관은 2000년 2월 통영 망일봉 기슭에 세워졌다. 문학관은 청마의 생애, 청마의 작품 세계, 청마의 발자취 편으로 구성돼 있다. 유품 100여점과 각종 문헌자료 350여점이 전시돼 있다. 문학관에서 바로 올려다볼 수 있는 지척에 생가도 복원돼 있다. 생가는 원래 통영시 태평동에 있었으나 생가 부지의 복원이 어려워진 까닭에 문학관 위쪽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전, 복원됐다. 생가와 아래채로 구성돼 있다. 본채는 4칸으로 이뤄져 있으며 맨 오른쪽이 안방이고, 왼쪽이 부엌, 가운데 방 두 개는 약방으로 돼 있다. 태평동에서 청마의 아버지가 약방을 운영했던 까닭이다. 방문 위에 ‘유약국’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청마의 생애와 후대의 해석은 어쩌면 극명하게, 또 다르게는 이렇게나 여여하게 흐른다. 남쪽의 봄에는 에메랄드빛 해안을 거니는 노스탤지어와 사랑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사람의 자리가 거기에 있어야 하는 까닭이다. 소설가 이은선
  • 세상 떠난 남편이 남긴 내연녀…정체성 다시 찾는 뼈아픈 시간[지금, 이 영화]

    세상 떠난 남편이 남긴 내연녀…정체성 다시 찾는 뼈아픈 시간[지금, 이 영화]

    수십 년을 함께 산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남편과는 열네 살 때 인연이 닿아 이십대 초에 결혼했다. 청소년기부터 청년기를 지나 장년기까지 대부분의 인생을 남편과 함께 보냈다. 쌓아 온 시간의 양과 비례해 사별한 슬픔이 크다. 그리움을 달랠 방법은 딱히 없다. 휴대폰에 녹음된 남편의 다정한 목소리를 반복해 들을 뿐이다. 그런데 남편 유품에서 이상한 물건이 나왔다. 처음 보는 여자의 신분증이다. 그것을 왜 남편이 갖고 있을까. 머릿속에 불길한 예감이 스친다. 남편의 휴대폰을 살펴본다. 메시지함은 남편과 낯선 여자가 주고받은 밀어들로 가득하다. 십수 년간 남편은 몰래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 남편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남편의 내연녀 또한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보통은 이렇게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남편을 애도하던 와중에 그의 배신을 알아차린 아내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영화 ‘사랑 후의 두 여자’의 메리(조애나 스캔런) 이야기다. 내연녀 쥬느(나탈리 리샤르)를 찾아 나서기는 한다. 영국에서 프랑스로 국경을 넘어야 했던, 쉽지만은 않은 여정이었다. 쥬느를 만나 메리는 대체 뭘 하려고 했나. 거울을 응시하면서 자기가 남편의 아내임을 밝히는 연습은 해 두었다. 한데 입 밖으로 이 말을 꺼내지 못한다. 쥬느가 메리를 새로 온 청소부로 오인해서다. 메리는 엉겁결에 쥬느의 집에 들어가 이사를 돕는다. 대화를 나누면서 메리는 쥬느와 관련된 여러 정보를 알게 된다. 그중에서 제일 큰 충격을 안긴 것은 쥬느와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열여섯 살 된 아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때 메리 심정이 어땠을지 관객으로서 감히 짐작하기는 어렵다. 분노감에 사로잡혀 복수를 계획한다? 그러면 이해가 편하겠지만 이 영화를 볼 이유는 사라지고 만다. ‘사랑 후의 두 여자’는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섬세한 ‘사랑 후(원제: After Love)의 사건’을 탐구한다. 장편 데뷔작을 통해 괄목할 만한 감정의 깊이를 성찰한 알림 칸 감독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중심에는 산산조각 난 정체성과 부서진 마음을 한데 모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여성이 있습니다.”메리는 히잡을 쓰고 다닌다. 파키스탄 무슬림인 남편과 결혼하려고 오래전 이슬람교로 개종했기 때문이다. 메리는 남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맞췄다. 메리의 정체성이 남편에 의해 만들어져 왔다는 말이다. 이것이 산산조각 나 버렸고 메리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재구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떻게 다시 이어 붙일지는 온전히 메리의 몫이다. 쥬느도 마찬가지다. 본인을 포함해 많은 사람을 상처 입히는 불륜임을 알면서도 관계를 시작하고 이어 왔다. 이제 쥬느 역시 스스로의 정체성을 재구성해야 한다. 진실과 정면으로 마주한 상황에서 회피는 더이상 불가능하다. 망자의 무책임을 산 자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다. 허희 문학평론가·영화 칼럼니스트
  • “어느 날 오징어 사주고 떠나시더니…” 백마고지 용사, 70년 만에 딸 품으로

    “어느 날 오징어 사주고 떠나시더니…” 백마고지 용사, 70년 만에 딸 품으로

    2021년 10월 강원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백마고지 일대에서 수습된 6·25전쟁 전사자 유해가 조응성 하사로 확인됐다. 17일 국방부에 따르면 백마고지 전사자 병적기록 등 자료조사를 거쳐 딸 조영자씨를 찾아냈고, 유전자 분석으로 친자 관계를 최종 확인했다. 1928년 경북 의성 태생인 조 하사는 농사를 짓던 중 전쟁이 터지자 1952년 5월 아내와 두 딸을 남긴 채 제주도 제1훈련소로 입대했다. 9사단 30연대 소속이었던 조 하사는 1952년 10월 백마고지에서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를 방어하던 중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백마고지 전투는 6·25전쟁 때 철원 일대 백마고지를 확보하고자 국군 9사단과 중공군이 12차례의 공방을 벌여 7차례나 고지 주인이 바뀐 접전이었다. 지난해 10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발굴 당시 고인의 유해는 개인호 바닥에 엎드린 자세로 발견됐다. 유해는 상반신만 수습됐는데, 탄약류를 비롯해 개인 소장품으로 추정되는 만년필, 반지, 숟가락 등 유품도 발굴됐다. 특히 철모와 머리뼈에서는 한눈에 봐도 전사 원인으로 추정할 수 있는 탄알 관통 흔적도 발견됐다. 딸 조씨는 아버지의 신원 확인 소식에 “어느 날 아버지가 오징어를 사오셔서 맛있게 먹었는데, 우리에게 이별을 고하는 심정으로 그렇게 하신 것 같아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회고했다고 국방부는 전했다. 국방부는 고인을 위한 ‘호국영웅 귀환 행사’를 이날 인천에 있는 유족 자택에서 열었다. 국방부가 2000년 4월 6·25 전사자 유해 발굴을 시작한 이후 총 185명의 국군 전사자 신원이 확인됐다.
  • “청 방해로 업무 어려워”…19세기 주미 외교관이 남긴 기록

    “청 방해로 업무 어려워”…19세기 주미 외교관이 남긴 기록

    구한말 독립운동가이자 외교관인 월남 이상재(1850~1927)가 1880년대 주미 조선공사관에서 근무하던 무렵 활동 내용과 생활상을 기록한 문서 2건이 국가등록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있는 ‘미국공사왕복수록’과 ‘미국서간’을 묶은 ‘주미 조선공사관 관련 이상재 기록’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한다고 11일 밝혔다. 이상재는 구한말 외교관으로 1887년 박정양이 초대 주미공사에 임명되자 그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1등 서기관으로 근무했다. 청의 압력으로 1년도 채 안되어 귀국했지만, 조선으로 돌아와 서재필 등과 독립협회를 조직하고 부회장이 되어 만민공동회를 개최했다. 이 기록들은 이상재 종손 이상구씨가 2019년 고궁박물관에 기증한 유품 중 일부로 당시 학계에 처음 소개됐다.미국공사왕복수록은 공관원 업무편람이라고 볼 수 있는 자료다. 미국 정부와 주고받은 문서의 한문 번역본과 외교 활동 참고 사항이 담겼다. 미 뉴욕 법관 ‘딸능돈’ 등이 철로·양수기·가스등 설치를 제안하면서 작성한 규약과 약정서 초안, 조선이 주미공사관을 통해 추진한 사업 관련 문서, 독일·일본공사관 관련 문서 등이 수록됐다. 미국서간은 이상재가 1887년 8월부터 1889년 1월까지 가족에게 보낸 편지들이다. 대부분 집안일 관련 사항이지만 미국 민주주의와 현지 물가, 공관 임대료, 청으로 인한 업무 수행 어려움 등에 관한 글이 실렸다. 두 문서는 조선이 서양 국가 중 최초로 외국에 개설한 공사관의 실상과 자주적 외교 활동, 경인철도 부설 초기 상황을 알려주는 사료로 평가된다.문화재청은 또 3륜 트럭인 ‘기아마스타 T600’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삼발이’라고도 불린 기아마스터 T600은 기아자동차 전신인 기아산업이 1972년 생산한 삼륜 화물차다. 좁은 골목길을 운행하기에 좋아 물품 운송에 많이 활용됐다. 문화재로 등록되는 차량은 약 50년간 롯데제과 대리점이 사용한 것이다. 1976년 화물칸이 설치됐는데 제조 당시 모습이 잘 남아 있다. 지금도 차량 등록이 돼 있고, 짧은 거리는 주행 가능할 정도로 보존 상태가 좋다. 한편 지난 1월 문화재로 등록 예고된 ‘대전 구 충청남도 경찰청 상무관’은 문화재 등록이 확정됐다. 대전 중구 선화동에 있는 이 건물은 1963년 ‘충청남도 경찰학교’로 설립됐다. 한국전쟁 이후 시대적 상황을 알려주는 건축 자료로 지역사회에서 체육시설로 오랫동안 이용됐다는 점에서 보존 가치가 인정됐다.
  • 경북, 대형산불 특단 대책… 공무원 ‘지역책임제’ 운영

    경북, 대형산불 특단 대책… 공무원 ‘지역책임제’ 운영

    경북도가 산불 예방을 위해 간부 공무원을 현장에 감시 책임자로 투입한다. 최근 영덕군과 의성군 등 도내 곳곳에서 대형 산불이 잇따른 데 대한 특별 대책이다. 도는 본청 소속 사무관 229명을 울릉군을 제외한 22개 시군 235개 읍면별 ‘산불계도 지역책임관’으로 지정해 운영하기로 했다고 2일 밝혔다. 운영 기간은 이달부터 봄철 산불조심기간(5월 15일) 종료 때까지로 정했다. 이들은 주말·공휴일 등 산불 발생 위험이 큰 기간에 현장 출장 근무를 하게 된다. 산림 연접지 논·밭두렁과 쓰레기 소각행위, 묘지 주변 유품 소각행위, 입산통제 구역 및 폐쇄 등산로 무단 입산, 산림 내 취사 및 모닥불 피우기, 인화물질 소지, 담배꽁초를 버리는 행위 등을 집중 감시한다. 또 읍면 공무원과 산불 감시원, 공익근무요원 등 현장 요원들과 그물망 감시체계를 구축해 산불 발생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계획이다. 도는 출장 때 시군이나 읍면 청사, 관련 기관이나 단체 방문은 최대한 자제하도록 했다. 도는 오는 9일 대통령 선거 이후 시군으로 공무원 지역책임제를 확대 실시해 산불 예방 및 감시 활동을 강화할 방침이다. 최영숙 경북도 환경산림자원국장은 “극심한 겨울 가뭄이 3개월 동안 지속되면서 크고 작은 산불이 잦다”면서 “시군 읍면장급 직위인 본청 간부 사무관을 총동원해 현장 중심의 계도 활동을 펼칠 경우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편 산림청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 25일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은 모두 200여건에 이른다. 예년 82.2건보다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 우리가 철저히 외면한, 살아남은 이들의 고통

    우리가 철저히 외면한, 살아남은 이들의 고통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김승섭 지음/난다/268쪽/1만 5000원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 22분 서해에서 폭침으로 배가 가라앉고 46명의 군인이 사망한 사건. 흔히 천안함 사건을 떠올리면 여기서 멈춘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그날 배가 왜 가라앉았는지에 관심을 집중했고 진영을 나눠 다퉜다. 배에서 살아남은 58명이 있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리거나 관심을 두지 않았다. “천안함 사건이 폭침 당일에 한정된 용어가 아니라 그 이후 천안함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를 모두 포괄하는 단어가 돼야 마땅하다.” 성소수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세월호 피해자, 결혼이주여성, 소방관 등 개인과 사회의 관계 속에서 약자들의 건강을 들여다본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 교수가 천안함 사건 생존 장병들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가 ‘피해자’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풀어냈다.천안함 사건으로 숨진 장병들은 화랑무공훈장을 받으며 숭고하게 산화한 것으로 기억되지만 58명의 생존 장병들은 갖은 낙인과 편견, 극심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2018년 생존 장병 24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서 91.3%가 한 번이라도 PTSD를 경험했다고 답했고, 58.3%가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했고 이 가운데 29.1%는 시도도 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나 이라크 전쟁에 참여했던 미군 가운데 2001~2005년 PTSD 진단을 받거나 치료받은 사람이 13%였던 것에 비해 매우 높다. 이들을 특히 괴롭힌 건 ‘패잔병’이라는 낙인이었다. 배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던 동료들을 잃은 이들에게 사망자의 시신 확인, 유품 수습 지시가 내려오기도 했고, 국군수도병원에서 밤마다 헌병 조사를 받으며 배가 가라앉은 이유를 추궁받고 복무 태만이 있었던 건 아닌지 거듭 자책해야 했다. 김 교수는 사건이 일어난 지 열흘 만에 최원일 당시 천안함 함장과 함께 기자회견을 해야만 했던 상황이 이들에게 패잔병 멍에를 지우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꼬집는다. 환자복을 입은 장병들은 동료를 지키지 못한 나약한 몸들로, 전투복을 입은 최 전 함장은 개인이 모든 책임을 지는 모습으로 비쳤다는 것이다.가까스로 군 생활을 이어 가면서도 “너네 둘이(생존 장병들) 붙어 있지 마, 천안함이라 께름칙해”, “너 때문에 배에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라고 모욕을 당하거나 정신질환 치료를 받는 ‘불완전한 몸’이라는 편견, 트라우마로 승함 경력 점수를 채우지 못해 진급을 못 하는 등 주변의 차별도 끊이지 않았다.뒤늦게 알게 된 이들의 시간이지만 어딘가 기시감이 크다. 김 교수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들의 기억도 꺼냈다. 단원고 학생 325명 가운데 살아남은 75명은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던 친구들을 잃고도 ‘운이 좋았다’는 반응에 가려졌다. 김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너는 어느 편이냐’를 따지는 진영의 리트머스지 같은 두 사건의 피해자들이 가진 상처에 공통점을 발견했다. “트라우마 생존자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폭력적인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이라는 것과 “진영 논리의 폭력성과 편향적 사고가 만연했던 사건”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천안함을 옹호하기 위해 세월호를 비하하고, 세월호를 옹호하기 위해 천안함을 외면한 시간들이 꽤 오래 이어지며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가려졌다.김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피해자가 된다는 일은 간단치 않다”며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피해자 이미지에서 어긋나는 이들에게 마음을 내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이 아픔을 말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기다려 주는 일, 그것이 너무 어려운 공간이라는 걸 두 사건이 미래의 피해자들에게 여전히 조심스레 외치고 있다.
  • 역사문화공원 속 ‘망우공간’서 생생한 근현대사 만난다

    역사문화공원 속 ‘망우공간’서 생생한 근현대사 만난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살아 있는 박물관인 서울 중랑구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전시실, 휴식공간 등을 갖춘 중랑망우공간이 오는 4월 들어선다. 류경기 서울 중랑구청장은 지난 9일 “망우공간은 건축 공모를 통해 세련되고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건축되고 있다”며 “이곳에서 전시, 홍보,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공원의 랜드마크로 자리잡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에 따르면 망우역사문화공원은 1933년부터 1973년까지 40년간 망우리 공동묘지로 운영됐다. 구는 2020년 서울시로부터 공원의 총괄 관리권을 넘겨받아 이곳을 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했다. 공원은 만해 한용운, 소파 방정환, 유관순 열사 등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영면해 있어 근현대사의 보고로 불린다. 25만평의 울창한 숲과 5.2㎞의 산책로를 갖춰 힐링 명소로도 떠오르고 있다. 류 구청장은 “공원은 공동묘지라는 부정적 인식 때문에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며 “서울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역사문화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구는 지난해 7월 ‘망우리공원과’를 신설했다. 또 상설 및 기획 전시실, 갤러리 카페, 다양한 휴식 공간 등을 갖춘 망우공간을 만드는 데 역점을 뒀다. 망우공간의 첫 기획 전시는 ‘뜻을 세우다, 나라를 세우다’(가제)를 주제로 열릴 예정이다. 일제 강점기에 나라를 되찾으려고 힘썼던 독립운동가들의 유품과 자료가 전시된다.
  • ‘한국의 고갱’ 이인성 기념관 대구에 건립

    ‘한국의 고갱’ 이인성 기념관 대구에 건립

    천재 화가 이인성 기념관이 대구 약령시에 들어선다. 약령시 에코한방웰빙체험관 건물을 구조 변경해 전시·체험 공간 등을 갖춘다. 기념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이며 연면적은 756.44㎡이다. 대구 중구는 오는 4월 에코한방웰빙체험관의 위탁 운영 기간이 만료되면 곧바로 새 단장 해 내년 상반기에 이인성 기념관 문을 열 계획이라고 8일 밝혔다.  기념관에는 유가족이 이인성 화백 작고 후 73년간 보관해 온 유품과 자료 780점이 전시된다. 이 중에는 그동안 공개된 적 없는 팔레트, 붓, 벼루 등이 포함돼 있다. 또 이 화백이 1937년 중구 중앙로에서 운영한 대구 최초의 다방 ‘순다방 아루스’도 기념관에 재현된다. 인공지능(AI)과 미디어아트를 활용해 전시·체험 공간을 조성한다. 이 화백은 우리나라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다. 독특한 색감과 구도로 ‘한국의 고갱‘으로 불린다. 1912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 화백은 대구와 서울, 일본 도쿄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했다. 1928년 세계아동예술전람회에 출품해 특선한 ‘촌락의 풍경’ 이후 열여섯 차례 크고 작은 상을 받았다. 1935년에는 대구에 내려와 중구 반월당에 미술학원 격인 ‘이인성양화연구소‘를 설립해 후학을 양성했다.
  • 천재화가 이인성 기념관 대구 약령시에 들어선다

    천재화가 이인성 기념관 대구 약령시에 들어선다

    천재화가 이인성 기념관이 대구 약령시에 들어선다. 약령시 에코한방웰빙체험관 건물을 리모델링해 전시·체험 광간 등을 갖춘다. 기념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이며 연면적은 756.44㎡이다. 대구 중구는 오는 4월 에코한방웰빙체험관의 위탁운영기간이 만료되면 곧 바로 리모델링을 해 내년 상반기 중 문을 열 계획이다고 8일 밝혔다. 기념관에는 유가족들이 이인성 화백 작고 후 73년간 보관해 온 유품과 자료 780점이 전시된다. 이 중에는 그동안 공개된 적이 없는 팔레트, 붓, 벼루 등이 포함돼 있다. 또 이 화백이 1937년 대구 중구 중앙로에서 운영한 대구 최초의 다방 ‘순다방 아루스’도 기념관에 재현된다. 인공지능과 미디어아트를 활용해 전시·체험공간을 조성한다. 이 화백은 우리나라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다. 독특한 색감과 구도로 “한국의 고갱‘이라 불린다. 1912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 화백은 일본 도쿄와 서울, 대구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했다. 1928년 세계아동예술전람회에 출품해 특선을 한 ‘촌락의 풍경’ 이후 16차례 크고 작은 상을 받았다. 1935년에는 대구에 내려와 중구 반월당에 미술학원 격인 ‘이인성양화연구소‘를 설립해 후학을 양성했다.
  • “빨리 나오세요!”…그는 왜 숨진 공군 하사 숙소 거실을 서성였을까

    “빨리 나오세요!”…그는 왜 숨진 공군 하사 숙소 거실을 서성였을까

    찢겨 나간 종이와 노트북. 공군 제8전투비행단 소속 A하사가 지난해 5월 11일 오전 영외 숙소(아파트)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 이후 8개월이 넘게 지난 30일 현재까지도 그 행방이 확인되지 않은 유품들이다. 고인이 사망 상태로 발견된 날 고인의 숙소 옷방에서 노란색 표지의 공책 한 권이 발견됐다. 표지를 포함해 총 54면인 이 공책에는 항공기 정비 업무 관련 내용과 시험문제 풀이 내용 등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28번째 면에 한쪽 끝이 부채꼴 모양으로 찢어진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 하지만 감정 결과 찢어진 종이에서 압흔(손가락으로 눌린 흔적)이나 필흔(기록한 흔적)은 현출되지 않았고, 찢겨 나간 종이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노트북도 마찬가지다. 고인의 아버지는 지난 2018년 7월 중고 노트북을 구입해 사용하다가 나중에 딸에게 전달했다. A하사가 영외 아파트로 이사하기 전까지 고인과 영내 숙소에서 함께 거주한 군인은 군 경찰 조사에서 2020년 말까지 고인이 흰색 노트북을 사용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군 경찰은 이 노트북을 찾기 위해 고인의 주거지 주변 3곳에 현수막을 게시하고 부대 안팎 26곳에 전단지를 부착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또 고인 숙소에 있던 통신사 공유기를 통해 노트북 접속 로그기록을 확인하려고 했으나 해당 통신사는 ‘공공 와이파이 존(Wi-fi zone)에 접속한 로그기록만 보관한다’는 답변을 군 경찰에 보냈다. 해당 노트북 제조사 서비스센터 수리 접수 내역도 확인했지만 고인과 관련한 내역은 아무 것도 없었다.방범창 뜯고 피해자 숙소 침입한 군인들 군 경찰이 지난해 5월 11일 오전 9시 16분쯤 사건 현장인 피해자 숙소에 도착하기 전에 같은 날 오전 8시 48분쯤 고인을 발견하고 군에 신고한 사람은 고인(이하 피해자)과 같은 전대 소속인 이모 준위와 박모 원사다. 이 준위와 박 원사는 그로부터 약 2개월 후인 지난해 7월 27일 폭력행위처벌법 위반(공동재물손괴, 공동주거침입)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피고인들은 지난해 5월 11일 오전 8시 46분부터 오전 8시 48분까지 피해자 숙소를 찾아갔으나 출입문이 닫혀 있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되자 피해자 숙소 복도 창문을 떼어내고 방범창을 당겨 뜯은 뒤 공동으로 피해자 숙소를 침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준위는 사건 발생 당일 오전 7시 33분부터 오전 8시 44분까지 피해자에게 총 23회 전화를 했다. 그날 오전 8시 9분에 피해자 숙소에 도착한 이 준위는 숙소 복도 쪽 창문을 열고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피해자의 전화벨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는 피해자 차도 아파트 지상 주차장에 주차돼 있었기 때문에 피해자가 숙소 안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서도 박 원사가 피해자 숙소에 도착한 오전 8시 45분까지 112 또는 119에 신고를 하지 않았다. 이 준위는 지난해 5월 17일 참고인(목격자) 신분으로 군 경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 피해자 숙소에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피해자가 사건 발생 당일) 휴가라고 착각했거나 아니면 (그 전날)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잠에서) 못 일어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당시 이 준위에게 방범창을 뜯자고 제안한 박 원사는 지난해 7월 9일 피의자 신분으로 군 검찰 조사를 받을 때 피해자가 출근을 제때 하지 않은 일로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해 그런 행동을 했다는 취지로 말했다.숙소 옷방에서 거실 안으로 들어가 수색 박 원사는 그날 이 준위와 함께 방범창을 뜯은 다음 이 준위 발을 받쳐주어 이 준위가 혼자 피해자 숙소 안으로 들어가도록 했다. 이 준위가 발을 딛은 곳은 피해자가 숨진 채로 발견된 옷방이었다. 이후 이 준위는 옷방에서 집 안 거실 내부까지 들어가 컴퓨터 모니터가 놓인 책상 위 A4용지와 하늘색 공책을 집어 들어만지고 살펴보는 등 피해자의 주거를 수색한 혐의도 받고 있다. 박 원사는 지난해 5월 14일 참고인(목격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을 때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이 준위가 피해자 숙소 복도 창문을) 바로 넘어갔을 때는 피해자를 보지 못했는지 잠시지만 조용했는데, 갑자기 ‘야’하고 큰소리를 쳤다. 저는 피해자 모습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감독관님(이 준위를 가리킴)이 피해자를 (잠에서) 깨우려고 낸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감독관님이 놀라는 모습을 보고 창문을 통해 자세히 쳐다보니 (옷방에서) 피해자의 모습이 보여서 감독관님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했다. 저는 감독관님에게 나오라고 하면서 현관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감독관님이 (숙소) 현관문을 열어주고 다시 거실에서 혼란스럽다는 듯이 멍하니 있었던 것 같고 (중략) 감독관님에게 ‘빨리 나오세요. 현장보존 해야 될 것 같다’고 말하며 감독관님을 밖으로 나오게 했다.” 박 원사는 이후 피의자 신분으로 지난해 7월 9일 군 검찰 조사를 받을 때 이 준위가 피해자 숙소 현관문을 열어주고 나서 다시 거실로 들어갔고, 거실에서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5초 정도 서성이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준위가) ‘왜 저기서 저러고 있지?’라는 생각은 했던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박 원사는 지난해 6월 11일 실시된 현장검증 때 이 준위가 피해자 숙소에서 종이 같은 것을 들고 나왔는지를 묻는 질문에 “못 봤다. (이 준위가) 물건을 만지거나 그런 것은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 준위는 지난해 5월 18일 참고인(목격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을 당시 ‘(피해자 숙소) 방 안에 있는 물품을 가지고 나오거나 그 위치를 이동시킨 일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없다”고 답했다. 이후 지난해 5월 21일 두 번째 참고인 조사를 받을 때 ‘피해자에게 노트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를 묻는 군 경찰 수사관의 물음에 “본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법원 “피고인, 거실에서 상당 시간 머물러” 이 준위는 또 지난해 6월 11일 실시된 현장검증 때 “(피해자 숙소) 문을 열자 박 원사가 현관으로 들어왔고, 그때 나는 (거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 생각 없이 누가 들어오려고 하니까 안으로 들어갔다”면서, 안에 들어가서 무엇을 만졌는지를 묻는 군 검찰의 물음에 “만진 적 없다”고 답했다. 그런데 이 준위는 지난해 7월 14일 피의자 신분으로 군 검찰 조사를 받을 때 ‘처음에 조사를 받을 때 사건 발생 당일 피해자 숙소에 들어가 A4용지를 만진 일이 기억이 안 나서 얘기를 못 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이후 이 준위는 피해자 숙소에 들어가 A4용지와 노트를 집어 들어 만지고 다시 놓은 사실은 인정하지만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고, 물건을 발견하기 위해 주거를 조사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법정에서 주장했다. 그러나 이 준위와 박 원사가 기소된 사건을 심리한 공군작전사령부 보통군사법원 재판2부는 이 준위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실황조사서의 현장 사진 및 약도에 따르면, 피고인이 집어 들어 만진 A4용지 및 노트는 거실 오른쪽 안쪽에 있어 피고인이 A4용지 및 노트를 만지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침대 매트 위를 밟고 지나가야 하므로 무의식적으로 A4용지와 노트를 만진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고인은 작은 방(옷방)에서 사망한 피해자를 발견한 이후 거실로 걸어가 거실 가장 안쪽에 있던 A4용지와 노트를 발견했는데, 실황조사서의 현장 사진에 따르면 방과 거실 사이에는 선풍기, 세탁물 건조대, 서랍장, 플라스틱 박스 등이 있어 무의식적으로 방에서 거실 안쪽까지 걸어가 A4용지와 노트를 발견할 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박 원사는 법정에서 이 준위가 피해자를 발견하고 현관문을 열었으나 현관문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거실 안쪽으로 들어가서 순간 의아했고, 이 준위가 밖으로 나오지 않고 거실에서 왔다 갔다 하자 ‘현장 보존해야 하니까 빨리 나오세요’라고 소리를 치자 현관문 밖으로 나왔다고 진술하고 있다. 따라서 이 준위는 거실에서 상당한 시간을 머무른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이어지는 법정 공방 속 풀리지 않는 의문들 재판부는 이 준위의 폭력행위처벌법 위반 혐의와 주거수색 혐의뿐만 아니라 피해자를 강제추행한 혐의(군인 등 강제추행) 역시 유죄로 인정했다. 이 준위는 지난해 3월 말~4월 초 피해자의 볼을 한 손으로 잡은 후 다른 한 손의 손날로 1회 치는 방법으로, 지난해 4월 21일에는 피해자의 볼을 한 손으로 잡는 방법으로 각각 피해자를 강제추행한 혐의로 지난해 10월 14일 추가 기소됐다. 이 준위는 지난 18일 열린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박 원사는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군 검찰은 피고인들에게 선고된 형량이 낮다는 이유로 지난 20일 항소장을 제출했다. 피고인들도 원심 판결에 대해 법리 오해와 양형 부당을 이유로 지난 24일 항소했다. 피해자 유족은 1심 판결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군 수사기관 수사가 초동수사 때부터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유족은 “딸이 생활한 영외 숙소 현관문 외시경에 꽂혀 있던 휴지는 무엇인지, 왜 외시경에 휴지가 꽂혀 있었는지가 규명되지 않았고, 딸이 사용한 노트에서 찢겨 나간 종이와 노트북의 행방은 여전히 확인되지 않았다”면서 답답해했다. 피해자 숙소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군 수사기관은 사건 발생 초기에 이 준위와 박 원사에 대해 소지품 검사와 차량 점검을 실시하지 않았다. 유족은 “부모 입장에서는 의심스러운 점이 한 두 개가 아니어서 공소장에 적혀있지 않은 다른 중한 범죄사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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