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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0년만의 황금돼지해] 올 신생아 2만명 웃돌듯… 출산 장려금 한몫

    [600년만의 황금돼지해] 올 신생아 2만명 웃돌듯… 출산 장려금 한몫

    안녕 뚱순아, 나야 뚱님이. 네가 사는 그 별도 겨울이니? 여기는 지금 난리야. 행복한 난리. 글쎄 새해부터 집값이 확 잡혔지 뭐야. 경기가 살아나서 일자리가 넘치고 월급도 올랐어. 벌써 며칠째 범죄건수가 ‘0’이어서 유치장이 텅텅 비었어. 이혼·자살건수도 뚝 떨어지고 헌혈차 앞은 연일 장사진이야. 정치인들도 서로를 칭찬해대는 바람에 닭살이야. 그리고 왜 있잖아. 북한이 드디어 핵을 깨끗이 포기하겠다고 선언했어. 이런 기적이 어떻게 가능해졌냐고? 사랑 때문이지. 왜 갑자기 사랑하게 됐냐고? 인생이 너무 짧아 미워하거나 욕심을 부리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된 거지. 우린 예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걸 말야. 이곳이 무섭다며 그 별로 떠났던 뚱순이 네가 이제 돌아왔으면 해. 보고 싶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아기를 낳자’ 600년만에 한 번 돌아온다는 2007년 정해년(丁亥年) ‘황금돼지띠’의 해를 맞아 새해 벽두부터 임신·출산 붐이 일고 있다. 쌍춘년이었던 지난해 백년해로를 위해 서둘러 결혼했던 신혼부부는 물론 중년 부부들까지 임신과 출산준비를 하느라 바쁘다. 불임부부들도 그 어느 해보다 출산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황금돼지 띠의 아기는 재복이 많고 편안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속설 때문이다. 역술가들에 따르면 정해년 황금돼지해는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에 음양오행(陰陽五行)을 더해 따지기 때문에 600년만에 한번꼴로 나타난다는 주장이다. 특히 새해를 황금돼지해라고 부르는 이유는 오행에서 정(丁)은 불을 뜻하기 때문이라는 것. 하지만 600년이라는 정확한 계산법의 근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혼인신고 밀레니엄 이후 5년만에 증가세 이런 분위기 속에 그동안 저출산으로 불황을 겪던 산부인과와 산후조리원, 유아용품업계 등 출산 관련업계는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올 한해 밀레니엄 베이비 이상의 신생아 출산 붐이 일 것으로 잔뜩 기대하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2006년 10월까지 대법원에 신고된 혼인건수는 25만 6320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 24만 7134건에 비해 9186건(3.7%) 증가했다. 증가폭은 그다지 크지 않지만 2001년 이후 거의 매년 감소 추세였던 점을 감안하면 의미있는 반등이다. 특히 쌍춘년이었던 지난해 11,12월 2개월동안 막바지 결혼이 전례없이 봇물을 이룬 점을 감안하면 증가폭은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결혼에 성공한 부부들은 신혼을 즐길 틈도 없이 아기 갖기에 바쁘다. 지난 12월 결혼한 김성호(28·회사원·경북 구미시)·이미숙(27·교사)씨 부부는 당초 결혼 후 1∼2년이 지나서 아이를 가질 예정이었지만 곧바로 아이를 가지라는 양가 부모님의 성화 때문에 결국 아이를 갖기로 했다. 이씨는 “인생의 계획도 중요하지만, 효도와 아이의 재물복을 위해 올해 출산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한 자녀만을 고집하던 부부들도 둘째, 셋째 출산을 준비하고 있다. 결혼 8년차인 김성해(회사원 37·부산 남구 대연동)씨와 이영희(35·주부)씨 부부 사이에는 올 8월쯤 둘째아이가 태어난다. 첫째아들을 출산한 지 7년만이다. 이들 부부는 “지난해 주위에서 ‘황금돼지해에 아이를 출산하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둘째아이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한 직장에 근무하는 기혼여성들이 나란히 임신해 출산을 기다리고 있는 곳도 눈에 띈다. 부산 남구 남천동 베어링 수입업체인 A상사는 전체 기혼 여직원 7명 중 5명이 나란히 아기를 가져 올해 출산을 앞두고 있다. 여성전문병원도 임신부들로 북적대고 있다. 대구 M여성전문병원측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정기 검진과 임신을 확인하러 오는 여성이 예년에 비해 2∼3배 늘었다.”면서 “이런 현상은 병원 개원 5년 만에 처음”이라고 반겼다. 대구시 북구 D산후조리원도 “출산 4∼5개월 전부터 산후조리실을 예약하고 있다.”며 “이같은 현상은 예전에는 거의 없던 일”이라고 말했다. ●신생아 출산 전폭 지원 심각한 출산율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치단체들은 황금돼지 해를 맞아 출산가정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신생아 수는 지난해(45만여명)에 비해 전년도 혼인건수 증가 등으로 2만여명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00년 밀레니엄 베이비 특수(63만 7000여명)로 인해 전년(61만 6000여명)보다 2만 1000여명 증가한 것과 맞먹는 것이며, 최근 7년간 최대 증가폭이다. 경북 영덕군은 올해 출산 장려금 액수를 지난해 30만원에서 신생아 1인당 100만원으로 대폭 올렸다. 또 셋째아이를 낳으면 50만원을 추가 지급한다. 청송군도 지난해까지 신생아 구분없이 1인당 30만원씩 지급하던 출산장려금을 올해부터 첫째∼셋째 50만∼150만원까지 대폭 확대했다. 안동시 역시 13억원의 예산을 확보, 출산장려금을 2배로 늘렸다. 첫째 36만→72만원, 둘째 60만→120만원, 셋째 120만→240만원이다. 문경·김천시는 올해 출산장려금제를 신설해 둘째아이 100만원과 30만원, 셋째아이 150만원과 100만원을 각각 지급하기로 했다. 의성군은 신생아 1인당 출산장려금 100만원 지급과 함께 출생신고를 한 가정을 읍·면장이 직접 방문,3만원 상당의 미역을 전달하고 식목일을 전후해 의성읍의 구봉산·둔덕산에 신생아 출생 기념식수를 하기로 했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귀하신몸에 잘도 속더라

    귀하신몸에 잘도 속더라

    「세상을 한번 멋지게 살아보려고」 검사시보 행세를 하던 한 청년이 가짜 행각 9개월만에 쇠고랑을 차게 되었다. 중학 2년 중퇴의 학력으로 사법대학원생을 사칭, 「배지」와 학생증을 사들인 이 가짜 검사시보는 서울시내 변호사들과 다방 「마담」경찰관들이 모두 『내 사기극에 잘도 속더라』면서 대견(?)해 했다. 3월 2일 서울 용산경찰서 남영동파출소에는 검은 「싱글」에 굵다란 「로이드」테 안경을 낀 20대 청년 한명이 파출소 하문수(河文洙)소장을 점잖게 찾았다. 이 청년이 河소장에게 내놓은 명함에는 「검사시보 손지열(孫智烈)」로 되어 있었다. 이 검사시보는 자신을 河소장에게 소개하고는 『창피한 일이지만 고향에 내려갈 차비 좀 부탁한다』고 귀띔했다. 河소장이 이를 거절하자 이 가짜 검사시보는 대뜸 『당신 비위사실을 내가 알고 있다』면서 공갈하더라는 것. 이때 관내 파출소순시를 위해 파출소에 나왔던 용산서 형사과 김장생(金長生)경위는 孫의 태도나 언동이 어딘가 서투른데 의심을 품고 일단 불심검문을 해봈다. 김경위는 첫마디에 이 검사시보가 가짜 임을 알아냈다. 孫의 본명은 박선균(朴先均)(24)·(서대문구 현저동 46). 그러나 김경위도 처음엔 朴의 공갈에 움찔했단다. 본명 이외에도 3가지의 이름을 사용해 온 朴은 불심검문하는 김경위에게 오히려 호통을 쳤다. 朴은 용산서로 연행된 뒤에도 형사과장을 데려오라고 책상을 주먹으로 치면서 큰소리 칠 정도로 대담했다. 朴이 사기행각을 하기 시작한것은 지난 해 영화 『소문난 잔치』를 보고나서부터. 그 영화의 주인공이 자기 처지와 비슷한데서 이 세상을 한번 멋지게 살아보려고 한것이 가짜 검사시보였다는 것. 朴은 경찰관이나 변호사들이 검사시보라면 곧 검사가 될 사람이라 해서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을 알고 가짜 검사시보 노릇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 朴의 가짜 검사시보 행각을 위한 준비는 치밀했다. 사법대학원생 「배지」를 사들인 朴은 어느 술집에서 누가 술 값으로 맡겨 놓은 사법대학원생의 학생증을 술값 1천원을 갚고 찾아내어 자신의 것으로 변조. 그 다음엔 헌 책방에 가서 민사소송법 한권, 「고시계」(69년 2월호)한권, 대법원 판례속보등을 샀다. 朴은 틈틈이 이 책들을 읽어 법률상식을 익히는 한편 사기행각의 「액세서리」로 들고 다니기도 했다. 만반의 준비가 끝나는 날 朴은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속일 기회를 찾았다. 朴이 나타난 곳은 D극장 전무실. 처음엔 표를 사가지고 들어갔다. 극장사무실에 들어간 朴은 사기극 연출을 무난히 할수 있었다. 『저는 이번 고시에 합격한 최연소자입니다』「텔레비전」에도 나갔다고 그럴 듯하게 늘어놨다. 집표주임 박종대(朴鐘大)씨(46)는 朴의 수작에 완전히 넘어갔다. 어린 나이에 참 칭찬할만한 일이라고 했다. 이 뒤로 이 장래가 촉망되는(?) 朴에게 D극장은 무상출입처가 됐다. 모다방 마담에게는 68년도 사법고시합격자중 최연소자라고 자칭, 정부가 자기에게 「코로나」 한대를 기증했는데 자기에게는 이 「코로나」가 필요없으니 45만원에 사라고 흥정, 계약금조로 25만원을 긁어냈다. 朴은 또 서울시내 유명한 변호사들까지 등쳐 먹을 정도로 지능적이었다. 朴의 사기술에 걸려든 변호사들도 박에게 용돈이나 하라고 2~3천원씩 대주었다는 것. 『사법대학원생이라면 사람들이 모두들 쩔쩔 매더군요』朴은 멀쩡한 눈을 고시파 학생으로 속이기 위해 싸구려 안경으로 변장했다. 朴은 관공서에 들어가선 사무원을 상대도 안했단다. 주로 과장이나 국장만을 골라 법률책만 끼고 그럴듯한 말만 하면 모두 속아 넘어가더라고 털어놓았다. 지난 2월 모극장 전무는 朴이 금년도에 사법대학원을 졸업, 검사로 발령받게 된다는 말에 졸업식장으로 달려가는 「쇼」도 벌였단다. 朴은 경찰심문에도 『내가 어찌 말단 형사에게 조서를 받겠느냐』면서 서울시내 판검사들은 거의 자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어 곧 나오게 된다고 문초형사를 을러댔다. 朴은 학력을 모대학 법과를 나와 68연도에 고시 예비고사에 합격, 사법고시 1차까지 합격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사기및 관명사칭혐의로 구속된 朴은 식모살이 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겨우 중학 2년밖에 못다닌 불우한 청년임이 밝혀졌다. 경찰조사에서 나타난 朴의 행각은 주로 극장등 유흥가와 관공서, 일선 파출소만을 골라 한두차례 찾아다니며 인사를 나눈 다음 어느 정도 얼굴이 익혀지면 부정을 눈감아 준다는 등 공갈을 하면서 2~3천원씩 뜯었다는 것이다. 朴이 잡히던 날도 이 재미로 또다시 나타났다가 쇠고랑을 차게된 것이다. 경찰이 朴을 유치장에 넣으려 하자 朴은 또 기세 좋게도 판사의 구속영장을 보여 주기전엔 유치장에 들어갈 수 없다고 버티었다. 김계장이 영장을 보여주자 그때서야 누그러진 朴은 유치장으로 끌려 들어가면서-『사기한 나도 잘못이지만 내 엉터리 사기극에 쩔쩔매던 관리들도 형편없는 친구더라』고 내뱉었다. [선데이서울 70년 3월 15일호 제3권 11호 통권 제 76호]
  • 30세에 여자되어 흑인남편 모신지 1년

    30세에 여자되어 흑인남편 모신지 1년

    성전환(性轉煥)수술을 받고 남성에서 여성으로 변신한 미국 작가(作家) 「돈·사이먼즈」 여사. 그 변신(變身) 자체가 벌써 엽기취미를 자극하는데, 수술이 끝나자 마자 열살이나 손 아래인, 게다가 무식한 흑인(黑人) 청년과 결혼을 해서 소문을 뿌렸다. 그리고는 임신했다가 유산했다는 유언비어까지 퍼뜨린 그녀가 결혼 1년만에 처음으로 사생활(私生活)을 공개했다. 미국의 작가 「고든·홀」의 성전환, 흑인과의 결혼사건은 1969년 미국의 통속취미를 자극하는 화제였다. 나이 서른이 된 남성이 성전환(性轉煥) 수술을 받고 여인(女人)으로 재생을 했다. 여인이 되자 마자 「돈」이라고 이름까지 여성화(女性化)한 그녀는 열살이나 손 아래인 흑인남자 「사이몬즈」와 결혼을 했다. 갓 서른의 아내와 갓 스물의 남편이었다. 「돈·랑글리·사이몬즈」 여사가 된 전 「고든·홀」 은 지금 자신의 『반생기(半生記)』를 집필하면서 남(南)「캐롤라이나」 주(州) 「찰스턴」에서 조용히 결혼생활을 하고있다. 좀처럼 남의 방문을 받지 않고 칩거생활을 하고있는 「사이몬즈」가(家)에서는 열마리쯤 되는 맹견(猛犬)이 집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성(性)」 이라는 벽에다가 인종(人種)이라는 벽까지 둘러쳐진 환경에서 「사이몬즈」 여사는 맹견의 보호를 받고 살아야할 만큼 주위의 적시(敵視)를 받고있다는 것이다. 작가 「고든·홀」 은 1962년까지 약 10권의 책을 썼다. 대개는 동화, 선교사(宣敎師) 취향 그렇지 않으면 「프린세스」에 관한 것들. 「마가레트」 여왕이 「스노든」경(卿)과 결혼 했을 때 『「마가레트」공주 이야기』를 썼고「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자 『재클린·케네디』를 써서 꽤 명성을 올렸다. 모두 「고십」수준을 넘지 않는 것이었다. 1960년에는 『「링컨」대통령에게 장미를』 이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이것은 「링컨」대통령 부인이 대단한 악처(惡妻)였다는 소설에 반대하는 내용 이었다. 세상에서 손가락질을 받는 사람의 편을 든다는 것이 아마 「사이몬즈」 여사의 보람인 모양인데 자기자신의 과거와 현재가 모두 그런 처지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30년의 남성을 처리해 버리고 여성이 된 「돈·사이몬즈」 는 아무래도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다. 「밍크·코트」를 입고 의자에 앉아서 다리를 꼬는 모습은 상당히 여성답다. 쪽 곧지만 조금 뼈대가 모나게 튀어나와 보인다. 자세히 보면 코밑이며 턱에 수염자국이 있다. 집안의 조명은 어느 방이나 어두컴컴 하다. 남편 「존」은 스물두살의 청년답게 응석스러운 그러나 꽤 날카로운 데도 있는 표정의 흑인. 『난방을 고치게 돈 15「달러」만…』하면 연상(年上)의 아내 「돈」은 「핸드백」 에서 20 「달러」지폐를 꺼내준다. 『나머지는 꼭 가져와야 돼요』 하고 다짐을 한다. 연하(年下) 남편 「존」은 『오케이!』 하면서 나가 버린다. 마치 엄마가 아들을 내보내는 광경이다. 남편 「존」이 「사이몬즈」 여사의 하인이었다는 설(設)이 있긴 하지만 이 흑인청년이 「사이몬즈」 여사와 알게 된 것은 68년, 여성으로 수술한 직후 친구로서였다. 여자가 된 전(前)「고든·홀」은 그때 시골도시인 「찰스턴」의 사교계로 뚫고 들어 가려는 결심을 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사실 그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양성(兩性)의 비밀을 혼자 간직하고 늘 사회의 그늘 속에서만 살고 있었다. 작가가 된 것도 어쩌면 그것이 사람과의 접촉이 없이 할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었을 게다. 그녀는 사교계에 진출함으로써 자기의 사회적 지위를 난생 처음 확립해 보려고 했던 것이다. 이 도시의 역사적 건물을 복원하는등 상당한 애를 쓴덕에, 또 성전환자(性轉煥者)로서의 명성도 있어서 그 뜻은 쉽게 이루어졌다. 이 집 저 집 불려다니느라고 흑인요리사도 고용하는 지위와 형편이 되었다. 「존」과「돈」 이 만나게 된것은 바로 이 흑인요리사 때문이었다. 젊은 여자였으므로 이웃의 흑인 청년들이 놀러 드나 들었다. 그리고 그 중의 한 사람이 「돈·사이먼즈」였다. 하룻밤 우연히 서로 얘기를 나눈 것이 사랑의 시초였다. 곧 동서생활이 시작되었다. 수술을 끝내자마자였으므로 시술자였던 「존·홉킨즈」대학 의사들은 깜짝 놀랐다. 너무 이르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관도 않고 두 사람은 사랑의 생활을 계속 했다. 뿐만 아니라 「찰스턴」 에서는 법석이었다. 일껏 얻어놓은 사교계의 명성도 엉망이었다. 지방신문의 사주(社主)가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겠다고 협박을 하는가 하면 친구들은 『내용으로야 그 녀석하고 살더라도 남부(南部)의 체면 을 봐서라도 늙은 백인(白人)하고 형식적인 결혼을 하라』는 충고까지 하는 형편. 69년 1월 22일 자택에서 흑인 목사를 데려다가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자 이웃의 악의(惡義)에 찬 장난질이 시작되었다. 문앞에 의용(儀用) 백합이 놓이는 한편 신문의 사망난에 『작가, 「니그로」하인과 결혼 』 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남편 「존」은 세번이나 저격을 받았고 한번은 산보하고 있는 두 사람이 경찰의 순찰차에 쫓기다가 유치장 신세를 졌다. 남성인 「고든·홀」 이 처음으로 자기의 성(性)을 의심한 것은 스무살 가까와서였다. 원래 영국태생인 「홀」은 사생아나 다름 없이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 양성(兩性)을 걱정해줄 사람은 어려서나 어른이 되어서나 아무도 없었다. 유방이 부푸는 낌새도 보이고 여성 생리현상의 흔적이 속옷에 묻어있곤 했다. 1964년(26세)부터는 우방의 발달이 급격해지고. 다달이 비치는 것도 규칙적으로 되어 버렸다. 이제는 견디다 못해 이웃의 산부인과를 찾아갔다. 거기서 미국 유일의 성전환(性轉煥) 전문학과가 있는 「존스·홉킨즈」 의대(醫大)를 추천 받았고 성전환(性轉煥)으로의 출발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2년이나 걸린 진찰끝에 양성(兩性)중 남성(男性)을 버리는 편이 「고든·홀」에게는 적성(適性)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정신적으로 여성화하는 훈련을 받고 여성의 일상생활을 배우는 한편 장기(長期)에 걸친 수술을 받았다. 여성이 된지 1년인 지금 「사이몬즈」 여사의 소원은 아기를 갖는 것이다. 그녀는 임신했다가 유산(流産)했다는 발표를 했지만 아무도 그 근거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남편인「존」 까지도 그럴리가 없다는 발언을 하는 형편. 「사이몬즈」 여사의 생활은 아직도 밝고 행복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선데이서울 70년 1월18일호 제3권 3호 통권 제 68호]
  • [길섶에서] 닭장차/송한수 출판부 차장

    “이 ××들, 대가리 박앗.” 닭장차에서 사무친 추억 한 조각입니다.386컴퓨터처럼 낡은 것이지요.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다음 이야기 또한 이해하고 넘겨야 할지 모릅니다. 철망을 없앤다는 발표 뒤 ‘닭장차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꼬리표를 뗐을 뿐’이라는 네티즌들의 말을 곱씹을 때였습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 그것도 한복판인 광화문에 꼬리표마저 떼지 않은 원조 닭장차가 심심찮게 출현한다는 생각을 했지 뭡니까. 그 무시무시한 괴물이 시퍼렇게 살아 있다니. 83년 요맘 때 아닐까. 닭장차와 인연(?)이 닿았습니다. 시위하다 덜미를 잡혔고 친구들과 ‘억지춘향’으로 어깨동무를 하고 엮여 들어갔어요. 그리곤 성북서 유치장에 꼼짝없이 처박힙니다. 철창 안 곳곳에서 비명이 터졌죠. “집에 연락은 넣도록 해줘야 할 것 아뇨. 근데, 당신 왜 반말이오?” 지금 ‘386’ 하면 무슨 거창한 정치인 얘기로 들릴 테지만, 닭장차에서 시작된 그 시절 널브러진 삽화입니다. 참, 닭장차가 진짜로 사라지면 무슨 큰 일이라도 일어나는 걸까요? 송한수 출판부 차장 onekor@seoul.co.kr
  • 멜 깁슨 “유대인 때문에 전쟁 일어나” 술주정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영화배우이자 감독인 멜 깁슨이 고질적인 ‘술 버릇’ 때문에 심한 망신을 당했다. 깁슨은 지난 28일 캘리포니아의 말리부에서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됐다. 혈중 알코올 농도가 0.12(허용치 0.08) 상태에서 시속 140㎞(제한속도 74㎞)로 달렸다고 한다.31일 언론에 유출된 사고조사 자료에 따르면 깁슨은 경찰이 단속을 하자 “x같은 유대인들 때문에 세계의 모든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면서 “당신도 유대인이냐?”며 시비를 걸었다고 한다. 깁슨은 경찰서로 끌려간 뒤 구내 공중전화를 부쉈으며 수갑을 찬 채 경찰서 유치장안에 소변을 보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깁슨은 그러나 벌금을 내고 일단 풀려났다. 그는“이번에 다시 음주병이 도져 나쁜 행동을 보인 것을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dawn@seoul.co.kr
  • [로칼뉴스]경찰을 과부인줄 알고

    형제가 한밤중에 더듬다가 덜컥 과부방에 뛰어들어 엉뚱한 짓을 하려던 K(23)씨 형제가 경찰에 붙들렸다. 이들은 어느 날 밤 술에 곤드레가 되어 홀로 잠자는 J여인 방에 숨어들어 욕을 뵈려던 것이 엉뚱하게도 도경 경무과 근무 J경장 방에 잘못 침입, 다리를 만지며 수작을 걸다 잠에서 깨어난 유도 3단의 J경장에게 보기좋게 KO 됐던 것. 억세게 재수없는 이들 형제는 경찰에서 한결 뉘우치는 빛없이 『그 놈의 과부 때문에 신세 망쳤다』고 투덜투덜-. <안산(案山)> 진정인은 정신분열증 대지 1만평을 사기 당했다는 진정인이 정신 분열증 환자로 밝혀져 허위 사실로 드러나자 열심히 수사하던 D서는 맥 빠진 표정-. 대구(大邱) 태평로 李모(62) 노인은 같은 동 자기소유 대지 1만평의 등기 이전을 시내 달성동 張모 행정대서사에게 맡겼다가 사기당했다고 청와대에 진정까지 했는데 이 노인의 장남이 수사하던 D서에 나타나 아버지의 정신 분열증 진단서를 보이고 이해를 구하자 담당 형사는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 <대구(大邱)> 감방서 설탕물만 며칠전 부산 D서에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된 C(28)씨는 유치장속에서 결백을 주장, 계속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는데…. 경찰은 달걀, 소시지등 유치장에선 구경할 수 없는 온갖 진수성찬을 진상하고 있으나 모두 사절, 오직 설탕물만 요구하고 있다고. 설탕물만 마시는 C씨의 설명인즉 『설탕은 죄 없는 어린애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억울한(?) 누명엔 설탕물이 특효약? <안산(案山)> 수라장 이룬 2중 결혼식의 현장 내연의 처가 있는 청년이 묘령의 아가씨와 결혼식을 올리려다 정체가 발각, 식장이 수라장이 되었다. 부산 T회사 경리과장인 金모(29)씨는 동거중인 홍(洪)모(26) 여인에게 『회사에 출근한다』고 속이고 집을 나와 엉뚱하게 예식장으로 출근(?), 결혼식을 올리려다 이같은 사고를 빚은 것. 자기 남편이 결혼식을 올린다는 기별을 듣고 허둥지둥 달려온 임신 9개월의 홍(洪)여인은 「웨딩·마치」를 듣자 그만 넋을 잃었고 새신부 아버지 송(宋)모씨는 3층 계단에서 2층 계단으로 떨어져 실신. 가끔 일어나는 중혼극(重婚劇)이긴 하지만 정말 왜들 이러실까? <안산(案山)> 유방 만졌다, 아니다에 증인은 두 살짜리 전남 광주 지검 황상구(黃相九) 검사는 K서에서 송치되어온 강제 추행 피의자 정(鄭)모 (51) 씨를 조사중에 있는데-. 혐의 내용인즉 젖먹이고 있는 유부녀의 젖꼭지를 鄭씨가 만졌다는 것인데 鄭씨가 이를 극구 부인하고 있는 반면 같은 마을 朴모 여인은 분명히 자기의 유방을 만졌다고. 양쪽의 주장이 이렇게 엇갈리고 있는 반면에 증인이라는 것은 겨우 두 살짜리 젖먹던 어린애뿐이니 사건을 어떻게 처리한다? <광주(光州)> 3년만에 차삯을 낸 청년 군복무 당시 무임 승차를 했던 청년이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고 철도국장 앞으로 차비를 가져왔다. 경북(慶北) 영주(榮州)군 장수(長壽)면 유(劉)모(27)씨는 3년전 군복무 당시 무임 승차했던 서울-주안(朱安), 서울-수색(水色), 영주(榮州)-충기(豊基)간의 차비 6백30원을 영주 철도국장 앞으로 보내온 것.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는 劉씨의 차비계산이 틀려 40원을 되돌려 준 철도당무자들은 이와같은 처음 있는 일에 감사하다 못해 어리둥절한 얼굴. <영주(榮州)> 절에 살며 도둑질 경기(京畿)도 양평(楊平)경찰서는「아베크」절도단 최(崔)모(25)와 김(金)모(17 女)를 상습 절도혐의로 구속. 이들은 4개월 전부터 여주군 금사면 묘현사(寺)에서 동거생활을 시작, 여주군을 무대로 경찰 경비 전화선만을 8회에 걸쳐 끊어 팔아왔다고. 절에 살면서 부처님 힘만 믿고 한 짓 같은데 하필이면 도물(盜物)이 경찰 전화선이냐고 수사관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양평(楊平)> [선데이서울 69년 11/23 제2권 47호 통권 제 61호]
  • 박지만씨 마약공급자도 김홍수에 청탁

    2002년 4월말 히로뽕 투약 혐의로 박정희 전 대통령 아들인 지만씨가 구속됐다. 며칠 뒤에는 지만씨에게 히로뽕을 여러 차례 공급해준 양모(47)씨가 검찰에 붙잡혔다. 이미 양씨는 같은 혐의로 한 차례 처벌받은 뒤 집행유예 기간 중이었기 때문에 구속수사를 피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검찰·법원에 힘쓸 수 있는 브로커를 찾아나서 법조브로커 김홍수(58·수감)씨와 접촉했다. 그런데 김씨가 나선 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실제로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 김씨는 같은 해 5월4일 양씨측에 전화해 “전날 영장담당 판사와 술을 마셨다.”며 500만원을 요구해 받아냈다. 다음날 오후 4시쯤 양씨측은 김씨로부터 “구속영장이 기각됐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 시간에는 담당 변호사도 기각 여부를 알지 못했었다. 경찰서 유치장에서 이 소식을 들은 양씨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여지없이 구속될 것으로 알고 있던 상태에서 석방된다고 하자 양씨 본인도 믿지 못할 정도로 놀랐던 것이다. 당시 영장을 청구한 검사는 “양씨와 박씨의 진술에 차이가 있어 신빙성이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영장이 기각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김씨가 실제로 담당 판사에게 청탁을 했는지는 검찰이 밝혀야 한다. 법원 관계자는 “양씨의 영장을 기각한 판사는 평소 영장실질심사를 하는 판사가 아니라 당직판사였다.”고 밝혔다. 김씨가 로비했다고 밝힌 판사와 관계없는 인물이 영장을 기각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한편 양씨는 당시 검찰이 재청구한 영장이 발부돼 1심에서 징역 1년,2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단체장 당선자 첫 구속

    경북경찰청은 기초단체장 공천을 받은 대가로 측근을 통해 국회의원 보좌관에게 5000만원을 건넨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봉화군수 당선자 김모(50)씨와 금품을 받은 보좌관 정모(46)씨를 구속했다. 5·31 지방선거 기초단체장 당선자가 구속된 것은 처음이다. 당선자 김씨는 지난 4월20일 오전 11시30분 자신의 사촌형 김모(52·구속)씨를 통해 한나라당 지역출신 국회의원 보좌관 정씨에게 “공천되도록 해줘 감사하다.”며 현금 5000만원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앞서 지난 16일 당선자 김씨와 공모해 돈을 건넨 혐의로 사촌형 김씨를 구속했다. 대구지법 안동지원 이원심 판사는 이날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발부, 경찰은 김 당선자를 안동경찰서 유치장에 수감했다. 그러나 김 당선자는 영장실질심사에서 “경찰이 문제삼는 돈은 사촌형이 정씨에게 사업상 빌려준 것”이라며 혐의사실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지난 달 봉화군수 선거와 관련, 면·이 책임자 등에게 4850만원의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김 당선자의 선거총책 박모(46)씨 등 15명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자금출처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김 당선자의 혐의를 밝혀낸 것으로 알려졌다.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신부 뺏기고 감방가고…” 노총각 슬픈 사연

    “휴,신부는 생다지로 빼앗기고 예단비(지참금)도 날려버리고,게다가 감방까지 가야 하다니….어떻게 이렇게 까지 재수가 없습니까?” 중국 대륙에 20대 후반의 한 남성이 나이 어린 여자와 결혼했다가 중매장이가 예단비를 갖고 튀는 바람에 신부를 빼앗긴 데 이어,지불한 예단비마저 날려버리고 미성년자 강간한 혐의로 감방까지 가야 하는 ‘정말 더럽게 재수없는’ 처지에 놓여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17일 중국신문(中國新聞)망에 따르면 이처럼 억세게 재수 없는 사나이의 장본인은 중국 중북부 산시(山西)성 장(絳)현 헝수이(橫水)진 쉬관디(徐灌底)촌에 살고 있는 차오훙웨이(曹紅衛·29)씨이다. 차오씨는 얼굴이 그다지 호남형이지 못한 탓에 선을 보기만 하면 퇴짜를 맞는 바람에 결혼을 할 수가 없었다.지난 10년 가까이 결혼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끝내 허사였다 그러던 지난해 4월초 마치 ‘복음’과 같은 소리를 들었다.같은 현의 취훙싱(屈紅星)이라는 결혼 중매쟁이로부터 결혼 예단비만 조금 마련할 수 있으면 장가가게 해준다는 귀가 번쩍 뜨이는 희소식을 들은 것이다. 흔쾌히 예단비를 주기로 약속하고 차오씨는 선을 봤다.그의 ‘아내’가 될 사람은 구이저우(貴州)성의 아주 편벽한 시골에 사는 겨우 12살의 리(李)모양.하늘 아래 첫동네에 사는 신부 집은 조상 대대로 빚이 대추 나무에 연걸리듯 해 리양은 돈에 팔려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차오씨는 곧바로 중매인 취씨를 통해 1만 4000위안(약 182만원)의 예단비 명목으로 신부댁으로 보냈다.이어 4월16일 리모양과 결혼식을 올린 뒤 단란한 가정을 꾸미며 하루하루가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결혼한지 1년여가 지난 이달 초 장인어른인 리모씨가 갑작스레 헝수이파출소에 사기죄로 차오씨를 고소했다.장인 리씨는 중매쟁이인 취씨가 예단비를 갖고 날라버려 아직까지 예단비를 받지 못했다며 딸 리씨를 데려가야 겠다고 요구했다. 차오씨는 무슨 그런 일이 있느냐며 이미 결혼까지 했는데 당신의 딸을 되돌려보낼 수 없다며 완강히 버텼다.이에 파출소측은 이번 일에 대해 수사를 하는 동안 일단 차오씨를 미성년자 강간 혐의로 붙잡아 유치장에 넣었다.신부 리양은 아버지 리씨를 따라 고향인 구이저우성으로 되돌아가버렸다.차오씨는 장가 한번 가려다가 바보만 된 정말 안타까운 처지가 됐다. 온라인뉴스부
  • [희망-절망의 갈림길 아프리카] (하) 아동 매매 고통받는 ‘가나’

    [희망-절망의 갈림길 아프리카] (하) 아동 매매 고통받는 ‘가나’

    |아크라(가나) 임병선특파원|한번 끌어안고 뺨을 비벼볼 따름이다. 참회의 눈물이나 감격의 울음은 끝내 터지지 않았다. 푼돈에 아이를 내맡긴 부모들이 그 아이들과 다시 만나는 현장에는 그저 쑥스러운 미소만이 흐를 뿐이었다. 서부 아프리카에서 가장 먹고 살 만하다는 가나에서도 아동 인신매매가 만연돼 있다. 특히 지난 1964년 아코솜보댐 건설로 만들어진 세계 최대 인공 담수호인 볼타 호수 주변에서 성행하고 있다. 적도의 태양이 사정없이 열기를 대지에 뿜어대던 지난달 26일, 수도 아크라에서 북동쪽으로 1시간30분쯤 달려 볼타호 주변 아베이메 마을에 이르렀다. 커다란 공터의 아카시 나무 그늘 아래 왼편에 39명의 아이들이 앉아 있었다. 오른편에는 그들을 50∼60달러에 판 부모와 조부모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 집안 3명이 함께 팔려 나가기도 이날 재결합 행사는 국제이주기구(IOM) 아크라 사무소가 두달여에 걸쳐 아이들의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을 치료하고 영어 읽기와 쓰기 등을 익히게 한 뒤 부모 품에 돌려보내면서 이런 일이 다시 없도록 다짐을 받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율동을 선보이기도 한 아이들이 영어로 또박또박 자신의 이름과 장래 희망을 소개하자 부모들 사이에서 탄성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제 앞가림이나 할 수 있을까 싶은 6살부터 키가 제법 껑충한 16살까지 39명의 아이들은 제각기 다른 아름다움으로 빛났다. 말이 인신매매지 푼돈에 아이를 팔았다는 손가락질을 받기 십상인 부모들은 다른 얘기를 한다. 아이가 더 나은 환경에서 교육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아이를 맡겼다는 것이다.IOM의 조지프 리스폴리는 “이 점에서 이곳의 아동 매매는 동남아시아에 만연된 인신매매와 많이 다르다.”고 설명한다. 대부분 대서양 연안 마을에서 태어나 볼타 호수 주변으로 이주해온 부모들은 장례식 때문에 고향에 들렀다가 선주들로부터 아이를 훌륭하게 맡아주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맡겼다. 선주들은 약속과 달리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은 물론, 매년 사례금도 보내지 않고 아이들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물에 뛰어들어 고기를 잡게 했다.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노를 휘두르기도 했다. 이날 아이들은 연극을 통해 자신들이 겪은 일을 소개했고 이를 지켜본 부모들은 미간을 찌푸렸다. 남보듯 바라보기만 하던 아이들과 부모가 손을 맞잡을 시간이 돌아왔다. 조금 전 손자 둘의 손을 잡고 들어간 한 할머니가 다시 불려나와 이번에는 다른 아이 2명의 손을 맞잡았다. 사연인 즉 두 딸이 아버지도 모르는 아이 둘씩을 낳고 사라져 버리자 손자 넷을 한꺼번에 맡을 자신이 도저히 없었다고 했다. 한 어머니는 가장 나이 어린 여섯살 딸과 오빠 둘의 손을 꼭 잡고 어색한 미소만을 흘렸다. ●마을 단위 교육까지 예지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아동 인신매매 근절 운동을 펼치는 IOM에서는 이웃이 아동을 매매할 경우 이를 뜯어말리고 선도할 수 있도록 마을 단위의 교육까지 실시하고 있다. 부족사회 전통을 활용하려는 의도에서다. 또 아이들을 사서 부린 선주들에게는 다른 사업을 해보도록 적극 권유하고 필요하면 기술이나 창업 교육까지 한다고 했다.2002년 8월부터 시작한 이 프로그램에 따라 지금까지 589명의 아이들이 부모품에 돌아갔다. 꾸준한 모니터를 통해 10%의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잘 적응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고 했다. 가나 정부에 어린이 전담 부서가 생긴 것은 1990년대 후반. 어린이 인신매매를 금지하는 법이 만들어진 것도 지난해였다. 한 경찰 관계자가 “또다시 아이를 팔면 감옥에 갈 줄 알아라.”고 언성을 높이자 부모들이 큰 소리로 항변한다. 가난이 죄라는 것이었다. 너무 높은 출산율 탓이다. 한 집에 아이들이 8∼10명씩이나 되다보니 이런 일이 일상이 된다. 유엔아동보호기금(UNICEF)의 리브 앨덴은 “2000년에 17%이던 출생 신고율이 지난해 67%로 뛰어올라 그나마 위안”이라고 밝혔다.5시간에 걸친 행사가 모두 끝나자 아이들은 IOM 등이 나눠준 가방과 학용품 등을 챙겨 부모 손을 잡은 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남긴 채 집으로 향했다. 검은 대륙에는 슬프고도 지독한 일들이 너무 많다. bsnim@seoul.co.kr ■ 난민 캠프 ‘부두부람’ |부두부람 캠프(가나) 임병선특파원|먼 옛날 이곳에 처음 정착한 사냥꾼 ‘부두’는 우물 하나를 파서 지나가는 이들에게 골고루 나눠줬다. 해서 마을이 생겨났다. 이 부족 말로 우물을 뜻하는 ‘부라’를 붙여 이 마을은 부두부람으로 불리게 됐다. 우물 하나가 이제는 멀리 라이베리아에서 내전을 피해 떠나온 난민 4만 2000여명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터전으로 커졌다. 지난달 27일 아크라를 빠져 나와 서쪽으로 50분쯤 달리자 오른편 야트막한 언덕에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큰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1990년 내전을 피해 부르키나파소와 코트디부아르를 거쳐 걸어서 가나 땅으로 들어온 난민 26명을 받아들이면서 시작된 부두부람 캠프. 17만평의 부지에 웬만한 시설은 다 있다. 비록 의사 2명이 4만명을 진료하지만 에이즈 등 기본적인 검사를 할 수 있는 병원도 있다. 학교 45곳, 유치장을 갖춘 파출소, 도서관, 시장도 있다. 주민 대표들로 구성된 복지위원회는 7개 상임위를 두고 이곳의 관리를 맡고 있는 유엔 난민 고등판무관실(UNHCR)에 의견을 전달한다. 주민들은 “2000년부터 가나 정부가 지원을 끊어 1만명만이 식량을 배급받고 있다.”며 “모든 주민에 식량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또 4만여명이 모여 사는데 화장실이 15곳뿐이고 아직도 상수도가 없어 물탱크 공급을 받고 있는 등 16년 동안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UNHCR는 정정 안정이 확인되면 가나 전체의 라이베리아 난민 숫자가 1만명 정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낮에도 캠프 입구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는 귀환 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진 난민들을 상대로 상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진정 이들은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16년째 뿌리를 내린 삶의 터전을 떠나기가 쉽지 않고 여기선 자녀들을 학교라도 안심하고 보낼 수 있기 때문인 듯했다. 캠프를 떠날 때 시장에서 파는 생선들을 쳐다보니, 저걸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구호기관들이 자랑하던 자급자족의 현주소는 이런 것이었다. 우리 역시 난민들이 무더기로 유입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커져가고 있다. 최근 미국 국무부가 북한 난민을 대대적으로 수용하겠다고 밝힌 것이 기폭제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해서 이 캠프의 운영 사례는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bsnim@seoul.co.kr ■ 가나는 어떤나라 국내 제과업체가 처음 만들어낸 초콜릿에 붙인 상표는?바로 이 나라 이름이다. 초콜릿 원료인 카카오 주산지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또 월드컵 본선 1라운드에서 맞붙을 토고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1년 전인 1956년에 가나는 영국령 토고를 합병시켰다.4세기 말 베르베르인들에 의해 건설된 가나제국과 17세기 말 아칸족이 건설한 아산테 제국의 영화가 뿌리깊은 데다 잦은 쿠데타의 아픔을 씻고 1980년대 중반 이후 민주적인 정권 교체가 계속돼 역내(域內)에서 가장 안정적인 정치, 앞선 경제를 자랑한다. 이런 영향으로 내전에 시달리던 라이베리아와 르완다, 특히 지난해 선거 폭력에 내쫓긴 토고 등에서 난민이 계속 유입돼 현재 6만 2000명의 난민과 망명 신청자가 체류하고 있다. ●이 기사는 지난달 24일부터 6일까지 한국언론재단이 주관한 해외 인권 단기 연수에 참가해 작성했다. 가나의 인신매매 아동 구출 프로젝트나 라이베리아 난민 캠프를 돕고 싶은 독자는 국제이주기구(IOM) 서울사무소(02-6245-7647)나 유엔 난민기구 서울사무소(02-773-7013)로 연락하면 된다.
  • “딸가진 윤정희” 외쳤더니…

    “딸가진 윤정희” 외쳤더니…

    『윤정희(尹靜姬)에게 일곱살짜리 딸이 있다-』고 외쳤다가 유치장 신세를 지고 있는 점잖은(?) 40대 신사가 있다. 한잔 얼근한 김에 발표본능이 발동한 소이였다면 유치장은 좀 과분한 처분일 것 같다. 그러나 상대가 만만찮은 한국의 「톱·스타」 윤정희고 보면 단순한 구설수로 그치지 않는다. 그 신사는 명예훼손, 업무방해 그리고 폭력행의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검찰에 입건 구속됐다. 통닭집 여러손님 앞에서 “윤정희는 처녀가 아니다” 사건은 7월27일, 일요일 저녁10시에 발생했다. 설화의 주인공은 이름을 대면 영화계서는 대개 알만한 D극장지배인 이상균(李相均·가명·46)씨. 연령으로나 직함으로나 체통을 알만한 위치다. 목격자의 얘기에 의하면 李씨는 이날저녁 10시께 3명의 남자와 2명의 여성을 동반하고 D극장앞 통닭집에 나타났다. 그 통닭집이 바로 윤정희가 경영하는 「姬의 집」. 마침 尹양의 어머니인 朴씨가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통닭 2마리와 맥주 2병을 청해놓은 이씨는 동반한 여성들에게 『윤정희는 처녀가 아니다. 7살짜리 딸이 있다더라』는 얘기를 했고 여성들은 재미있다는듯 이에 응수했다. 목격자의 한사람은 이씨가 그 이전에 종업원의 태도가 불친절하다고 불평을 했다는 것이고 「딸이 있다」는 발언은 다분히 주위사람들의 주목을 끌만큼 큰 소리로 외쳤다는 것. 「카운터」의 윤양 어머니가 이 소리를 못들었을 까닭이 없다. 윤양의 어머니 박씨는 『창피해서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이씨가 먼저 시비를 걸어왔다』『당신이 이 집 주인이냐』고. 「홀」 안에서 통닭을 뜯던 10여명의 손님들은 일제히 이 흥미만점의 「해프닝」에 고개를 들었고 이씨가 맥주「컵」으로 천장의 「샹델리아」를 깨뜨렸을땐 모두 문밖으로 도망을 쳤다. 『그 자리엔 일본(日本)사람도 있었어요. 얼마나 창피한 일예요. 적어도 윤정희는 한국의 「톱·스타」아녜요?』 박여사의 얘기. 박씨는 그자리에서 『지금 한 얘기 책임지겠느냐』고 따졌고 이씨는 『애까지 낳은 여자가 처녀행세로 인기를 끄느냐』고 덤벼들었다. 30분 가량의 소동끝에 경찰관이 달려왔고 그 날 저녁에 이씨는 중부서(中部署)에 연행, 28일자로 법원의 구속영장이 떨어졌다. 파출소서도 “딸있다” 외쳐 尹양 어머니가 고소(告訴) 제기 웃을수 만도 없는 것은 연행된 이씨가 파출소 창밖을 향해 『윤정희는 7살짜리 딸이 있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친 것(박여사의 말)이다. 한쪽은 극장의 연기자이지만 어떤 공적울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적으로는 서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 사원(私怨)이 있는 것도 아니란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야!』를 외친 저 동화속의 노인처럼 발표본능이 작용한 것일까? 어쨌든 이씨는 8월4일 서울지검(地檢)에 송치 됐고 8월12일 현재까지 보름동안 구치소에 갇혀있다. 명예훼손, 업무방해 이외 「폭력행위 등-」의 혐의를 입고 있으니 어떤 처벌을 받을는지 아직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 관심을 끄는건 이씨의 발언대로 윤정희에겐 7살짜리 딸이 있느냐는 점이다. 사실 윤정희에 관한 이런 류의 소문이 일찍부터 영화계 일부에 떠돌았다. 그리고 구속된 이씨가 윤양과 타협하기 위한 자료로 사람을 시켜 윤양의 뒷조사를 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억울한 소문 밝히겠다고 호적사본을 증거로 제시 윤정희가 처녀가 아니고 과거가 있는 여인이란 소문은 사실 여부간에 그녀의 가장 아픈 상처가 되고 있다. 「데뷔」한지 2년이 못되면서부터 「톱·스타」의 자리를 어렵지 않게 정복한 그녀지만 그녀의 신선, 순결한 매력은 연기력 이상으로 「스타」의 좌(座) 구축에 힘이 되었다. 만일 윤정희에게 「과거있는 여인」이란 낙인이 찍혔다면 오늘의 위치는 상상할 수도 있을 수도 없다는 견해다. 그러나 윤정희의 이 「과거」문제는 이제까지 한번도 확인되거나 표면화하지 못한채 소문만으로 나돌았다. 『모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느니 『결혼한지 얼마 안되어 헤어졌다』느니 분분했던 소문도 모두 근거가 없는 이상 사실무근으로 귀착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소문에 화제가 미칠때면 윤양은 항상 『너무 억울하다』고 펄쩍 뛰었다. 그런 문제를 언급하는 것조차 무섭다는 표정. 윤양 뒤에서 그의 뒷바라지를 해온 박여사 역시 『그런건 우리를 못살게 사려는 악의찬 모략』이라고 일축해왔고. 한갓 오해일뿐이라고 역시 일소에 붙여질 이번 사건이 법적문제로 비약한건 오랫동안 참아왔던 「모략적인 소문」에 대한 강력한 반발로 보인다. 자신의 이름으로 고소를 제기한 윤양의 어머니 박소순(朴小順·43)씨는 딸의 순결을 보증하기위해 호적사본을 떼어 검찰에 제출했다. 그동안 떠돌던 기분나쁜 소문을 아예 이번 기회에 밝혀내겠다는 태도. 호적의 6살짜리 미현(美賢)은 尹양 많이닮은 막내동생 사실 호적이 한 여성의 과거를 증명하는데 반드시 정확한 증거가 될 수만은 없다. 결혼을 했더라도 법적수속을 밟지않았다면 그만이다. 그러나 윤정희의 과거를 입증할 다른 증거가 없는 한 호적사본 이상의 증거도 있을 수 없다. 본명이 손미자(孫美子)인 윤정희의 본적은 서울 종로(鍾路)구 삼청(三淸)동 62의15. 호적사본을 보면 윤양은 아버지 손창기(孫昌基·56)씨와 어머니 박소순(朴小順·42)씨의 6남매중 맏이. 광주(光州)시 임(林)동에서 출생하였고 66년8월에 아버지의 분가(分家)신고에 따라 일가족의 호적이 서울로 옮겨졌다. 「7세난 딸」이란 근거가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윤정희에게는 6살짜리 막내 여동생(미현(美賢))이 있다. 아닌게 아니라 윤양을 많이 닮았고 또 윤양의 끔찍한 사랑을 받고 있다. 윤양이 일본으로 「로케」 갔다가 돌아 왔을땐 제일 먼저 미현양을 안고 눈물을 흘렸다는게 목격자의 얘기. 그러나 윤양의 엄연한 동생인 미현양을 그녀의 딸이라고 주장한다면 망발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말 많은 영화계 사람들이 제멋대로 상상하는 망측스런 오해라고 할 수 있다. 말 한번 잘 못했다가 유치장으로 간 신사는 이를 테면 「타이밍」이 잘 맞지 않았던것 같다. [ 선데이서울 69년 8/17 제2권 33호 통권 제47호 ]
  • 경찰서 유치장 일자형으로

    경찰청은 21일 피의자를 잘 감시할 수 있도록 부채꼴 모양으로 설계한 현행 경찰서 유치장 구조를 새로짓는 경찰서에는 일자형으로 해 피의자 인권을 보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경찰청은 또 1m 높이의 벽으로 된 개방형 화장실을 밀폐형으로 바꾸는 한편 장애인이나 여성 등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장애인 유치실과 여성 신체검사실을 별도 설치하기로 했다. 유치장 1실의 크기를 최소 13.2㎡(약 4평)로 정하고 최대 수용인원을 5명으로 한정하기로 했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마이너리티 리포트-소수자들의 외침] 남편·두아들 옥바라지 “눈물 마를날이…”

    [마이너리티 리포트-소수자들의 외침] 남편·두아들 옥바라지 “눈물 마를날이…”

    제 이름은 박정순입니다. 올해로 예순 한 살이지요. 저는 남편과 사이에 아들 셋을 두었습니다. 큰 아들은 특허법무대학원을 나와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고, 둘째 아들은 치과대학원 2학년생입니다. 막내아들은 지난해 8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습니다. 남들은 어쩜 그렇게 자식농사를 잘 지었느냐고 부러워합니다. 하지만 그동안 시꺼멓게 타버린 제 속을 모르고 하는 얘기지요. 저희 집안은 모두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입니다. 대충 짐작들 하시겠죠. 바로 병역거부 문제이지요. 양심적 병역거부로 남편과 두 아들 그리고 남동생을 교도소로 보내야 했지요. 이제 막내아들까지 병역거부로 교도소 신세를 지게 될지 모르는 저는 요즘 밤잠을 못 이루고 있습니다. ●남동생도 감옥에… 막내아들 거부 예정 첫번째 시련은 남편의 구속이었습니다. 큰 아들이 태어난 지 8개월 되던 1975년 3월, 종교행사를 갖고 있는데 갑자기 경찰과 병무청 직원들이 들이닥쳐 남편을 포함해 남자 200∼300명을 끌고 갔습니다. 제 남편은 이미 1969년 병역거부로 1년간 유치장 생활을 한 상태였습니다. 충남 조치원 헌병대로 끌려간 남편은 항명죄로 2년형을 선고받고 육군교도소에서 수형생활을 해야 했지요. 그 때의 구타와 비인간적인 대우는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11일 동안 하루 한끼의 식사를 세 번으로 나눠 주면서 양쪽 종아리에 모래주머니를 채우고 매일 6시간씩 구보를 시켰습니다. 칫솔을 90명이 함께 쓰도록 했고 철창에 매달려 있기, 거꾸로 벽타고 서 있기, 잠 안재우기 등 듣기만해도 끔찍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고문으로 엉망이 된 남편 얼굴을 교도소에서 보여주질 않아 면회하러 갔다가 눈물을 뿌리며 발길을 돌려야 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형기 2년이 끝나갈 즈음 저는 남편이 1년형을 추가로 언도받았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2년형을 받고 복역하고 있는 재소자들에게 군사 훈련을 해 이를 거부하도록 유도,1년을 더 선고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울화병과 지병이 악화된 시아버지는 “징역살고 나오면 뭐해, 또 들어갈 텐데.”라고 원통해 하시다가 아들이 출소하기 한달 전 돌아가셨습니다. 그 와중에 제 남동생도 병역거부로 3년간 옥살이를 했고 저는 남편과 동생의 옥바라지로 속앓이를 하며 매일밤을 눈물로 지새워야 했습니다. ●수형생활 마치고도 국가시험 한동안 응시못해 남편은 출소 후에도 구타의 후유증으로 팔을 제대로 쓰지 못했고, 전과자라는 이유로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기도 어려워 정수기 세일즈맨 생활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다행히 세 아들 모두 자기 앞가림은 톡톡히 해내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대학까지 졸업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병역거부를 지켜보면서 아들들의 장래를 심각하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서 병역거부를 하게 됐을 때 겪을 과절과 사회의 차가운 시선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생각만해도 끔찍했습니다.99년 11월 큰 아들이 스물 여섯 되던 해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했고 2개월 후 둘째도 형의 뒤를 이어 병역을 거부했습니다.26년 전 고통이 반복된다는 생각에 아무리 단단히 마음을 먹으려 해도 눈에선 눈물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두 아들이 교도소에 있었던 3년간 우리 부부는 1주일에 한번씩 하루는 큰 아들이 복역하고 있는 의정부로, 하루는 둘째가 있는 안양으로 교도소 문이 닳도록 면회를 다녔습니다. 수형생활을 마친 아들들은 지금 사회에 복귀했지만 안타까운 것은 두 아들 모두 자기 전공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과자이기 때문에 큰 아들은 국가고시인 변리사 시험에 3년간 응시할 수 없고, 작은 아들도 원하던 공부를 포기하고 내키지도 않은 일을 억지로 하고 있습니다. ●“신념은 목숨보다 소중한 것” 막내도 곧 병역거부를 할 것입니다. 막내 역시 출소 후 5년간은 원하는 공인회계사 시험을 치를 수 없겠지요. 저의 바람은 제발 막내만은 남편과 두 아들처럼 시련과 좌절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실력이 있으면서도 자기 꿈을 펼치지 못하는 아들들을 보는 것은 어미로서 가슴에 천근만근 무거운 돌을 얹어놓은 것 같이 힘겹습니다. 요즘엔 막내가 교도소에 들어갈 걱정에 신경이 쓰여 신경통도 악화되고 귀도 잘 들리지 않습니다. 보통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런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종교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를 궁금해합니다. 신념은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며 상황에 따라 바꿀 수 없는 것이 바로 신념입니다. 조선시대에 단발령이 내려졌을 때 그때까지 지켜온 유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도 내놓았던 선조들처럼 인류를 향해 살인무기를 들이댈 수 없다는 신념을 굳건히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저와 같은 병역거부자들의 옥바라지를 해온 수많은 어머니와 아내의 눈물이 있었습니다. 부디 앞으로 저와 같이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해 눈물 흘리는 가족이 더 이상 생기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시사 키워드] 백기(白旗)

    지난달 초 서울 영등포 경찰서에 백기가 내걸려 오가던 시민들이 발길을 잠시 멈추었다. 이후 국방부 헌병대도 백기를 내걸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백기는 범죄를 저지른 시민이나 장병이 한 명도 없어 유치장이나 영창이 텅 비어 있음을 알리기 위해 게양됐다. ■ 포인트 백기게양은 치안상태가 양호하고 군 기강이 완벽하다는 의미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흰 깃발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61년만에 내걸린 백기 서울 영등포 경찰서는 지난달 2일 오전 11시30분쯤 백기를 내걸었다.1945년 10월 경찰서가 문을 연 이래 처음이다. 하루 평균 20명 넘는 피의자들이 수용되던 이곳 유치장이 텅 빈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영등포 경찰서는 국회, 금융회사, 방송사 등이 밀집된 여의도와 영등포역 주변 유흥가 밀집지역 등을 끼고 있어 치안수요가 어느 경찰서보다 많은 곳이다. 영등포 경찰서측은 “백기 게양은 연말연시 특별 방범활동과 인권을 우선하는 불구속 수사원칙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백기는 28시간 만에 내려졌다. 백기 게양 다음날인 3일 오후 3시쯤 홍모(32)씨가 절도 혐의로 입건돼 백기를 내렸다는 것. 경찰은 2000년 1월 이후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된 유치인이 없을 경우 백기를 게양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 그동안 구로서(2000년 4월)와 강동서(2005년 2월)에서 백기를 내건 바 있다. 당시 백기 게양시간은 두 곳 모두 10시간 이내였다. ●헌병대도 처음으로 백기게양 국방부 헌병대도 지난달 12일 법규를 위반해 영창(미결 수용실)에 수용된 장병이 단 한 명도 없음을 알리는 ‘백기’를 내걸었다.1989년 창설 이래 17년만에 처음이었다. 백기는 20일 병사 한 명이 징계를 받아 영창에 수용되면서 9일만에 내려졌다. 국방부 헌병대 영창은 일선 군 부대와 달리 일반사병에서부터 장성에 이르기까지 계급과 상관없이 징계 등을 받은 장병을 수용한다. ●백기는 항복보단 평화의 상징? 경찰이 내건 백기는 헌병대 백기와 달리 100% 백기는 아니다. 중앙에 포돌이가 그려지고 그 밑에 “유치장에 유치인 없는 날”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백기’는 항복의 표시로서 쓰는 흰 기로 국어사전에 정의돼 있다.“백기 투항했다.”,“사학단체, 사실상 백기들다.”는 등의 표현에서 나타나듯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대항 세력에게 굴복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전쟁에서 적에게 항복의사를 보일 때도 백기를 내걸었다. 이런 점 때문에 경찰 내부에서도 백기 게양에 불만이 없는 게 아니라고 한다.“범죄꾼들에게 항복했다.”는 엉뚱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최근 들어 백기는 경찰이나 군에서 ‘평화’이미지로 새롭게 재탄생하고 있다. 범죄가 없는 깨끗한 세상을 뜻하거나 추구한다는 것이다. 경찰 백기게양은 특별 방범활동과 국민의 인권을 우선하는 불구속 수사 원칙이 가시화된 조치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치안상태가 완벽한지 여부에 대해서는 달리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경찰이 민생치안 사범 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아 유치장이 비게 된 것은 아닌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폭설 때문에 백기를 올린 농어촌 지역 경찰서들이 마냥 즐거워만 할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치안수요가 많을 수밖에 없는 서울의 대표적인 부도심권에 위치한 영등포서에 백기가 내걸렸다는 것은 경찰이 범죄단속을 게을리했다는 반증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검찰은 지난해 범죄단속 건수가 2004년에 비해 크게 준 원인을 두고 ‘범죄발생 감소’ 때문이라는 경찰 주장과 달리 ‘경찰의 단속 소홀’ 때문이라고 달리 해석했다. 검찰 관계자는 “경찰이 검ㆍ경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여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음주운전 등 민생범죄 단속을 소홀히 한 채 수사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획ㆍ인지수사에 치중한 것이 범죄단속 감소 배경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헌병대에 백기라고요. 요즘 군인들이 법규를 잘 지킨다는 뜻인지 아니면 법규가 전보다 많이 물러진 것인지…암튼 축하할 일이군요.” 국방부 홈페이지에 내걸린 한 네티즌의 반응도 이런 의문이 담겨 있다. ●생각을 정리하며 백기는 항복과 평화라는 두가지 이중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전국 방방곡곡을 붉게 물들인 붉은 악마 응원전을 떠올려보자. 분단 현실 때문에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붉은색은 국민들이 사용하기를 꺼린 색상이었다. 하지만 세상을 삼킬듯한 젊은이들의 열정은 붉은색을 분단과 반목의 어두운 이미지에서 화합과 단결의 상징으로 승화시켰다. 마찬가지로 전국 경찰서마다 ‘평화’의 백기가 게양되는 그 날이 오기를 기대해보자.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가정폭력 ‘신고없이 격리’ 추진

    앞으로 가정폭력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를 못해 경찰의 응급조치가 없었더라도 가해자에게 격리·접근금지 등의 조치를 할 수 있게 된다. 현행 가정폭력범죄처벌특례법에는 가정폭력범죄가 재연될 우려가 있으면 검사는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가해자에게 ▲퇴거 등 격리 ▲100m 이내 접근금지 ▲요양소 위탁 ▲유치장·구치소 유치 등의 임시조치를 취할 수 있다. 하지만 임시조치는 ‘경찰의 응급조치에도 불구하고 가정폭력범죄가 재발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하는 때’에 검사가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일선 검찰에서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던 가정폭력 고소 사건 등에 대해 임시조치를 청구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이에 따라 대검찰청 형사부는 31일 가정폭력에 대한 경찰의 응급조치가 있었을 때에 한해 가해자에게 임시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현행 가정폭력범죄처벌특례법 개정을 건의했다고 밝혔다. 또 법률 개정 전에도 경찰의 응급조치가 없는 사건도 법원에 임시조치를 적극 청구할 것을 일선청에 지시했다. 또 서울가정법원 산하 가사소년제도개혁위원회도 지난해 5월 가정폭력이 있는 경우 법원의 결정 없이도 출동한 경찰이 폭행을 가한 배우자에게 48시간 이내의 범위에서 퇴거·접근금지 명령을 신속하게 내릴 수 있도록 가정폭력범죄처벌특례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홍미영 열린우리당 의원과 같은 당 우윤근 의원도 가사위의 내용과 비슷한 ‘긴급보호조치권’ 등을 경찰에 부여하는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현재 경찰은 폭력을 제지하거나 피해자가 원할 경우 병원이나 보호시설로 인도할 수 있으나 퇴거·격리 등의 조치는 취할 수 없다. 한편 경찰청이 분석한 가정폭력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만 1595건,1만 2775명이 가정폭력으로 입건됐다. 하지만 피해자 중 상해가 발생한 경우가 5174명으로 40%를 넘었고 이중 1008명은 치료기간이 2주가 넘는 심각한 상해를 입었다.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원조 ‘발바리’ 잡혔다

    10여년간 대전지역 등 전국의 원룸을 돌면서 100여차례 성폭행을 일삼아온 ‘원조 발바리’ 유력 용의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대전 동부경찰서는 19일 서울 강동구 천호동 PC방에 은신하던 이모(45·대전 대덕구 송촌동)씨를 붙잡아 대전으로 압송, 밤샘조사를 벌였다. 이씨는 지난 1998년 2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대전, 청주, 대구 등 전국의 원룸을 돌며 늦게 귀가하는 여자를 상대로 100여차례 성폭행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경찰은 10여년간 일어난 성폭행 피해 여성 74명으로부터 검출된 DNA와 최근 이씨의 집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담배꽁초 등에서 나온 DNA가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PC방에서 게임을 하던 이씨의 IP를 추적, 동부서 소속 형사 20여명을 현장으로 보내 검거했다. 이씨는 흰색 모자와 운동화에 밤색 가죽점퍼와 트레이닝복 차림이었으며 검거 당시 저항하다가 이내 포기한 후 “마음이 후련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밤 대전으로 이송돼 유치장에 수감되기에 앞서 “피해자들에게 할말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잘못했습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한때 택시운전자로 일했던 이씨는 ‘작고 잽싸게 돌아다니며 범행을 저지른다.’고 해 ‘발바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대용감방’ 돈없어 못 없앤다

    ‘대용감방’ 돈없어 못 없앤다

    인권 사각지대로 지적돼 온 ‘대용(代用)감방’(대용 구치시설)을 2008년까지 없애겠다던 정부 계획이 은근슬쩍 10년이나 미뤄졌다. 정부는 예산확보 등 현실적인 어려움을 내세우고 있지만 수감자들의 인권상황 개선은 그만큼 늦어지게 됐다. 18일 법무부에 따르면 정부는 전국 11개 경찰서에 남아 있는 대용감방을 2018년까지 폐쇄하기로 했다. 앞서 법무부는 대용감방을 2008년까지는 모두 없애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대용감방 자체가 인권침해” 현재 대용감방은 ▲강원 속초·영월 ▲전북 남원·정읍 ▲전남 해남 ▲충북 영동 ▲경남 거창·밀양 ▲경북 영덕·의성·상주 등 전국 11곳에 설치돼 있다. 대용감방은 구치소·교도소 등 법무부 관할 교정시설을 대신해 미결수를 수용하는 경찰서내 유치장을 말한다. 규모가 작아 관내에 구치소·교도소가 없는 소규모 일선지청(검찰)에 설치된다. 법대로라면 통상 미결수들은 재판을 통해 형이 확정될 때까지는 장기 수용에 알맞게 지어진 구치소·교도소에 구금돼야 하지만 이런 시설이 없는 곳에서는 1심 재판이 종결될 때까지 대용감방에 수용된다. 그러나 법적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시설이 열악해 그 자체로 인권침해라는 지적이 일어 왔다. 국가인권위에서도 2004년 8월 전원위원회 결정으로 대용감방의 조속한 폐지와 즉각적인 실태개선을 법무부에 권고했다. 대한변호사협회도 이보다 앞선 2003년 9월 ‘인권보고서’를 통해 대용감방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법무부는 남아 있는 11곳 중 우선 의성경찰서 대용감방의 업무를 이르면 올 3월 안동교도소로 이전할 계획이다. 또 영월·밀양·해남경찰서 대용감방 업무도 2009년 완공 예정인 영월·밀양구치소와 해남교도소로 각각 이관할 방침이다. 그러나 나머지 7개 대용감방은 구치소·교도소 건립이 늦어져 언제 없어질지 불투명하다. 법무부 관계자는 “인권위나 변협의 권고를 존중해 당초 2008년까지 대용감방 업무를 모두 옮겨오려 했지만 예산이 부족한 데다 지역주민들이 구치소 등 건립을 혐오시설이라며 반대해 차질이 빚어졌다.”고 말했다. ●운동·목욕시설 없이 6개월 수용 대용감방의 가장 큰 문제는 시설 자체가 장기 수용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경찰서 유치장은 형사 피의자들을 검찰 송치 전 길어야 10일 정도 수용할 목적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운동·목욕·의료시설 등이 없다. 공간이 비좁아 운동장은 물론 독서실 등은 꿈도 못 꾼다. 여건이 이렇게 나쁜데도 대용감방 수감자들은 1심 재판이 끝날 때까지 통상 6개월을 이곳에서 지내야 한다. 재판이 지연되면 더 길어진다. 대용감방은 피의자뿐 아니라 실질적 관리업무를 맡고 있는 경찰 입장에서도 ‘눈엣가시’다. 법무부 일을 대신하고 있으면서도 인권시비 등 돌팔매는 경찰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대용감방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경찰청 예산에서 쓰고 있는 것도 불만이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해 대용감방 예산으로 4억원 정도 사용됐으며 올해에는 약 5억원이 책정돼 있다. 이는 전체 유치장 운영 예산의 15%를 차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대용감방에 수용된 사람들은 행형법상 미결수 처우를 받아야 하지만, 이에 대한 전문교육을 받은 경찰관이 거의 없는 것도 문제다. 대용감방에 대한 사회적인 비판이 계속되고 운영과 관리에 필요한 예산과 인력확보가 어려워지자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는 대용감방의 이관을 서두르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법무부·행자부 등 관련기관을 방문해 대용감방의 폐해를 설명하고 조속한 이관을 촉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차라리 유치장 보내줘”

    “차라리 유치장 보내줘”

    모스크바 노숙자들에게 경찰서 유치장은 ‘시베리아 유형소’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끔찍스러운 곳이다. 고문에 가까운 ‘얼차려’가 기다리고 있어서다. 그런데도 단지 얼어 죽지 않으려고 유치장 행을 노려 범죄를 저지르는 노숙자들이 늘고 있다. 다음주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불어닥칠 영하 40도 안팎의 강추위 때문이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18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시내를 운행하는 버스에 극지방에서나 보던 특수 디젤유가 공급됐고, 교통 경찰들에겐 전통적인 가죽 부츠가 지급됐다고 보도했다. 모스크바 동물원에선 27년 만에 수만마리의 동물을 대형 천막 안으로 옮기는 비상조치가 취해졌다. 이날 새벽 영하 30도 밑으로 떨어진 모스크바에선 3명이 얼어죽고 14명이 저체온증으로 입원했다. 중부 볼고그라드에선 10명이 동사했다. 모스크바는 19∼20일 영하 37도까지 떨어진다고 예보돼 1979년 이후 가장 추울 전망이다. 러시아에선 지난해 10월부터 계속된 한파로 모스크바 시민 107명을 포함해 모두 189명이 숨졌다. 당국은 당분간 관공서나 철도역 등에서 노숙자를 내쫓지 말라고 긴급 지시를 내렸다. 모스크바주는 18일 오후 비상체제에 돌입, 전력을 많이 쓰는 공사와 상업활동은 중단시켰다. 전력 공급이 1만 5300㎿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발표 직후였다. 대부분의 학교들도 사실상 휴교에 들어갔다. 중동부까지 도달한 한파는 러시아의 낡은 에너지 공급 시스템의 허점을 드러냈다. 모스크바의 보트킨스카야 병원은 16일 전기 공급이 2시간 끊긴 데 이어 17일엔 사무 빌딩에 대한 전력 공급량이 90% 줄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선 발전기 고장으로 45개 구역에 전기·온수 공급이 끊겼다. 남서부 사마라에서는 온수관 파열로 1만가구에 난방과 온수 공급이 중단됐다. 유럽의 겨울을 책임진다는 ‘에너지 공장’ 러시아에서 한파 사고가 속출한 것은 낙후된 시스템 탓이다. 옛소련 시절 마련된 중앙집중식 에너지 공급 체계는 시설이 낡은 데다 용량도 한계치에 달했다는 평가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여섯개의 얼굴을 가진 31歲 女社長

    여섯개의 얼굴을 가진 31歲 女社長

    퍽 능동적이고 결단력 있는 또는 억센 여자라는 인상. 집에 들어앉아 남편에게 바가지나 긁고 앉아 있지 못하는, 흔히 말해지는 ‘똑똑한 여자’ 라는 인상. 게다가 청산유수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능변이다. 충북 충주산. 창덕여중고때부터 梨大政外科를 졸업(60년)할 때까지 2년만 빼놓고 매 학기 상을 탔으니까 재원이란 말을 들었음직하다. 정치외교학과에 들어간 이유는, 『외교관이 되려고 했어요. 외교관이 되려는 막연한 꿈에 들떠 1학년때 외국인 상대로 영어를 배웠어요. 2학년때는 일년동안 행정과 3부 고시공부를 했는데, 준비를 너무 안해서 고배를 마셨어요. 한참 「서클」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었으니까요. 4·19직후 고대 모의국회(제10회)에서 국무총리상 (「스피치」상)을 받았죠. 이걸 계기로 서울대 행정대학원 토론회, 육사토론회에도「두개의 중국」이라는 제목으로 참석했어요』 4학년 1학기때는 중부서 유치장에 4일간 구류, 『인생을 많이 살고』나온 일도 있다. 『제가 각 대학 대표들로 구성된 「汎民靑」의 최고 간부였어요. 그때 「민족일보」라는 신문이 있었죠. 거기 정치에 관한 글을 하나 투고했는데 무슨 문구가 하나 석연치 않다고 경찰에서 나를 수배했어요. 형사가 학교와 집으로 잡으러 왔는데, 이 원섭 교수님과 박 관숙 교수님이 피신해 있었어요. 후배 4명이 잡혔는데, 申아무개가 자수하면 모두 석방시킨다. 자수해라 이런 방송을 했대요. 5·16혁명후 5일만에 남대문경찰서로 자진 출두했어요』 『「汎民靑」은 순수한 연구단체였는데 무엇 때문에 내가 잡혀왔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반말조로 묻는 거예요. 기분이 나빠서 서장 좀 만나자고 반항했죠. 그랬더니 「다이아 팔찌」좀 차라는 거예요. 그땐 무슨 말인지 몰랐죠. 할 수 없다고 잘라서 말했더니 「은숙이는 역시 배짱이 두둑하다」고 해요. 「말은 많은지 몰라도 배짱은 없다」고 말했어요』 차에 실려 간 곳이 중부경찰서 유치장. 『맨 위칸엔 민주당 거물들이 갇혀있고 가운데 칸에서 우리 동료들이 나를 보자 「브라보!」「빅토리!」하며 반기더군요. 가슴이 답답해지며 눈물이 나오더군요. 밤 열한시에 주먹밥이 나오는데 동료들은 머리 숙이며 피했어요. 나는 먹어봐야겠다 마음먹고 쪼갰더니 「다꾸왕」이 들어 있었어요. 입에다 탁 넣었더니 구역질이 콱 올라와요. 각종 범죄를 저지른 여자들과 아편장이들도 한방에 있었는데, 밤이 되니까 춤추는 여자에, 노래하는 여자…거기서 인생 많이 산 셈이지요』 외교관이 되려던 생각을 버리고 「서클」활동도 끊었다. 정치외교과 아닌 진짜 정치가 해보자는 배짱이 생겼다. 당한데 대한 분노가 지배적인 감정이었다. 5·16후 申씨의 가정은 기울기 시작. 4학년때 유학 가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빨리 졸업해서 취직을 해야만 집을 꾸려갈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딸 둘. 申銀淑씨는 둘째 딸. 4학년 2학기부터 취직준비로 「타이프라이터」를 배웠다. 졸업후 공보부 산하단체인 내외문제연구소 총무로 취직. 당시 공보차관 李元雨씨는 이대정외과에서 외교사를 가르친 은사였고, 李씨의 힘으로 내외문제연구소에 쉽게 취직. 62년2월1일부터 63년8월까지는 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 63년9월1일부터는 민주공화당 경기도지부 부녀간사가 되고 총선거때는 경기도 지구 유세위원으로 지명되어 李百日 후보를 위해 돌아다니며 연설도 했다. 63년 연말에 약혼했고 64년2월 지부를 그만두면서 결혼. 신랑은 당시 陸寅修의원의 비서관이었던 金鍾達(37·현재 培洋산업 상무이사). 그러니까 陸의원과 이백일의원이 중매를 선 셈. 『아빠는 李孝祥의장을 모시고 올라온 경상도 사나이였는데, 독특한 경상도 사투리에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웠어요. 저렇게 무뚝뚝하고 건방지고 돼먹지 않은 남자가 있나 생각했죠. 전화로도 건방지고 돼먹지 않았다고 막 싸웠어요. 총각으로 보이지도 않구요. 어머니가 大邱(신랑의 고향)까지 내려가서 신랑의 신상을 파악하느라고 답사했어요. 이효상의장이 보증을 섰고 주례를 서 주셨어요』 결혼하자 청량리에 5만원짜리 전세를 얻었다. 『결혼하니까 내 월급은 만원이 넘는데 아빠 월급은 7천7백원, 세금 빼고 뭐 빼고 나서 6천원 갖다주었어요. 어떻게 살아가나 하는 생각에 숨 막히고 앞이 캄캄하더군요. 내 자신이 3년 동안 직장생활을 해본 결과 바가지 긁는 게 소용 없다는 걸 알고 있었죠. 비서관 봉급이라는 게 뻔한 거고, 도대체 월급장이한테 바가지를 긁는다는 건 도둑질해오라는 거나 다름 없는 거예요. 때때로 친정 보조도 받았어요』어떻게 곤란을 타개하느냐 하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 『비서관들한테 전화를 놔주었는데, 그걸 놔서 팔았어요. 아빠는 비서관 생활 3년만에 싫증을 느끼고 다른 데로 갈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아빠 직장 그만두기 전에 내가 뭘 해야겠다. 공백 메우기 위해 뒷받침하자고 생각했어요. 청량리의 새「빌딩」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가 계약했어요. 양장점, 미장원, 이것 저것 생각하다가 망해봤자 본전인 장사 하자 그래서 식품점을 차렸어요. 안되면 먹어서 없어지는 거니까요』 겟돈 40만원과 친구 돈 30만원을 빌어서 70만원. 67년 선거때 아빠는 옥천에 내려가고 가계는 크게 잘되지 않았으나 1할 장사는 되었다. 이자 꺼가면서 한 달 수입 4만여원. 셋째 아기를 배고 있었으므로, 6개월만에 가게를 90만원에 팔았다. 아빠는 대한통운으로 옮겨서 대구 지점으로 내려갔다. 『90만원을 어떻게 안까먹고 싹을 길러서 사느냐 생각하다가 이자를 놓았어요. 아빠는 수습사원으로 월급 7천원을 받았는데, 대구 하숙비가 9천원이었거든요. 내가 하숙비를 보태야 할 입장이었죠. 마음은 초조하고 이런 식으로 있다가는 2, 3개월안에 다 까먹겠다 싶더군요. 아기낳고 회복도 되기 전에 퉁퉁 부운 몸으로 친구를 찾아다녔어요』 무슨 장사를 할까? 「아케드」양품점, 충무로 양장점 등으로 친구를 찾아 알아보았다. 딸 둘 낳고 아들도 낳았으니 인제는 돈버는 문제만 남았다는 생각. 숙대를 나온 가까운 친구가 하는 다방을 찾아갔다. 신설동 「로터리」의 「명」다방. 처녀가 다방을 어떻게 하느냐? 친구에게 물었다. 내가 직접 한다기보다 「마담」과 「레지」가 한다. 네가 주인인지 사람들이 모르느냐? 아무도 모른다. 완전히 기업화되어 있고 학부출신들이 많이 한다. 물론 돈도 상당히 벌린다 등등의 정보를 입수. 자주 찾아가면서 결심을 얻었고 마침내 태평로에 다방 「영진」을 차렸다. 『아빠는 없고 아이 낳은지도 얼마 되지 않아서 몸이 퉁퉁 부워 있는 상태였어요. 이야기만 들어서는 납득이 안갔어요. 망설일 것 없이 부닥쳐 보자 결심하고 뭐 한다는 얘기 안하고 친구와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돈을 마련했죠』 아빠한테서는 수시로 장거리전화가 왔다. 다방을 하니까 주로 다방에 나와있는 시간이 많았고 밤에도 집을 비우는 형편. 아빠가 밤에 대구에서 집으로 장거리전화를 해보면 주로 없었다. 수상하다! 『전화로 좋은 사람 있으면 가라는 거예요. 밤마다 집에 없으니까 완전히 오해한 거지요. 올 날짜도 아닌데 뛰어 올라 왔더군요』 밤에 부부가 마주앉았다. 날카로운 긴장과 냉기. 아내 申씨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도장을 내 놓는 거예요. 이혼하자는 거죠. 나는 잘 살기 위해서 한거다, 하지만 당신이 그만 두라면 그만 두겠다고 말했어요. 어쨌든 잘못했다고 했죠. 남편 허락 없이 내 마음대로 한 거니까요. 밤새도록 냉전을 했습니다』 이튿날 申씨는 남편을 이끌고 전부터 아는 사이인 「초원」다방 주인을 찾아 갔다. 남편에게 다방을 재인식시키기 위해서. 마침내 남편 金씨는 꽃다발을 사들고 친구들과 함께 「영진」에 입장, 아내에게 꽃다발을 증정했다. 다방 1년. 자기 나름대로 비교적 마음에 드는 일을 해보자고 경양식집 「그라찌에」를 시작했다. 종업원 20명. 「호스테스」와 종업원들을 될 수 있는대로 학부 출신으로 확보할 예정. 『특히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남자라고 해서 여자보다 돈 버는 재주가 더 뛰어나다거나 남편을 돈버는 기계로 생각한다면 곤란합니다. 집에서 바가지만 긁을 게 아니라 자기 손으로 무얼 했으면 좋겠어요』 1남2녀. 5살 꼬마는『엄마는 왜 매일 나가?』라면서 불평. 그래서 엄마를 잊으라고 「피아노」를 사주었다. 한편 5시~7시까지 낮잠을 재우는 대신 밤에는 1시까지 놀아줌으로써 엄마와 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없애주려고 한다. [ 선데이서울 69년 5/25 제2권 21호 통권 제35호 ]
  • 영등포署 60년만에 흐뭇한 ‘백기’

    서울 영등포경찰서가 지난 1945년 문을 연지 만 60년만에 처음으로 유치인 없는 날을 기록했다. 2일 오전 9시 전투경찰대설치법위반 혐의로 유치장에 수감됐던 박모(21)씨가 국회경비대로 인계됨에 따라 유치장에 단 한 사람도 남지 않게 됐다. 이에 따라 영등포서는 이날 오전 11시30분쯤 유치장이 비었음을 의미하는 백기를 게양했다. 경찰 관계자는 “백기 게양은 인권을 우선시하는 불구속 수사원칙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동안 경찰은 사건접수가 단 한 건도 없는 날을 가리켜 ‘백기 들었다.’라는 은어를 사용해왔다. 지난 2000년 1월에는 실제로 백기를 게양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다. 그동안 서울에서는 지난 2000년 4월 구로서와 지난해 2월 강동서가 백기를 올린 바 있다.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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