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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일 6만명 입장 조직위 “희색”/광주 비엔날레 이모저모

    ◎태풍 비껴가자 조형물 재배치 분주/인터넷 이용 지구촌에 출품작 소개 ○…광주 비엔날레가 개막된 이후 첫 일요일인 24일 각 전시장에는 관람객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낮 12시 현재 1만9천여명이 입장하는 등 이날 하룻동안 6만여명이 몰려들어 평일의 평균입장객 3만명을 크게 웃돌았다. 특히 중외공원 야외공연장에서는 조상현씨의 판소리를 비롯 서울시립 가무단의 「못말리는 남편」(문예회관 소극장)·유진교향악단의 음악회(야외 공연장)·고미술품전시회·개미장터 개설(궁동 예술의 거리) 등 각종 볼거리가 펼쳐져 가족 단위 관람객로 부터 인기를 모았다. ○…광주 비엔날레 조직위는 이 날 제14호 태풍 라이언이 일본으로 빠져 나가자 안도의 한숨.조직위 관계자들은 휴일인 이 날 아침부터 햇볕이 비치고 전형적인 가을 날씨를 보이자 전날 치웠던 조형물을 제자리에 옮기고 2㎜ 안팎의 비로 침수된 중외공원 일부 주차장 시설물을 점검하는 등 관람객 맞이를 위해 분주한 움직임. ○…조직위는 광주를 직접 방문하지 못하는 세계인을 위해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공동으로 컴퓨터 통신망인 인터넷을 통해 한글과 영어 2개 국어로 문자·화상·음성 등으로 비엔날레에 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컴퓨터통신 서비스에는 국제현대미술전과 특별전·기념전·후원전 등 13개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의 사진과 설명은 물론 부대행사·광주권의 교통·관광·풍물·역사 등을 상세히 소개,세계인의 참여와 관심을 유도. 그러나 조직위가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비엔날레 전시관과 역·공항 등 11곳에 설치해 놓은 「광주 비엔날레」 안내정보서비스는 컴퓨터 단말기가 영문으로만 작동되는 등 운영미숙으로 이용실적이 저조한 형편. ○…서울 중구 장충동 박세정씨는 23일 비엔날레 사무처를 찾아 기금으로 써달라며 1백만원을 기탁했다. 박씨는 『예향인 광주에서 세계적인 미술축제가 열린데 대해 자부심을 느껴 성금을 냈다』고 말했다. ○…본전시 작가로 참여중인 한국의 임옥상씨가 작품에 등장하는 6종의 포스터를 제작,전시장 바로 옆 공간에서 판매해 외국인 관람객과 해외 교포들로 부터 큰 인기. 이들포스터는 작가 자신의 누드 그림에 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여섯가지 문제를 삽입해 제작한 것.
  • 정치인의 나이/황병선 정치부장(서울논단)

    민자당에 불혹을 갓 넘긴 사무총장이 탄생하면서 정치판에서뿐 아니라 너나 할것없이 나이에 대한 관심들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 『43세에 총장이라니.더구나 총선을 반년 남짓 앞둔 시점의 집권당 총장이 그게 보통자린가.난 이미 너무 늙어 버린것은 아닌가』하는 탄식을 자주 듣게 된다.50대의 별로 늙지도 않은 사람들로부터. 유권자 가운데 20∼30대가 60%를 차지하게 된것이 어제 오늘의 일인가.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서울신문사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5.9%가 정치권의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었고 또 이들의 61%는 세대교체가 선거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 좋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정작 물갈이의 표적이 되고있는 정치권의 기류는 다른것 같다.하기야 그래서 「여론」은 선거라는 힘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 게다. 70세(김대중)와 69세(김종필)에 2년반 후의 대권경쟁에 대비,새 정당을 만들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두금씨의 모습을 보노라면 그 무궁한 스태미나에 감탄치 않을 수 없게 된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김영삼대통령과 함께 이들은 각기 다른 시대에 다른 방법으로 세대교체 바람을 몰고왔던 「젊은 스타」들이었다. 김종필씨는 35세에 5·16을 주도,중앙정보부장을 맡았고 37세엔 공화당의장,45세에는 국무총리를 지냈으며 87년 61세로 대선에 출마해 고배를 마셨다.같은 시대 박정희소장은 44세때 대통령에 취임해 18년 집권후 62세에 시해당했으니 5·16은 엄청난 힘으로 세대교체를 강요했던 셈이다.당시 윤보선대통령은 63세,장면총리는 61세였다.더 거슬러 올라가면 48년 취임시 이승만대통령은 73세였고 85세때 4·19로 하야,별세했으며 이시영 부통령은 80세에 취임했었다.이같은 고령은 일제에 오랫동안 투쟁을 해온 지도자들이 정부의 요직을 맡은데서 온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47세에 제1야당 총재에 선출된 김영삼대통령과 함께 야당에서 40대 기수론을 펼쳤던 김대중씨는 『젖비린내 난다(구상류취)』는 선배들의 비난을 뚫고 71년 46세로 신민당 대선후보가 됐었다.그후 굴곡의 세월을 보낸뒤 62,67세에 각각 대권에 재도전했었고 72세가 되는 97년의 「대권 4수」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40대 기수론을 전후한 시기 신민당의 유진산 당수는 65세,김홍일당수는 73세에 각각 취임했었으니 김대중후보는 김영삼총재와 함께 대단한 정치권의 물갈이를 달성했던 셈이다. 이 5·16의 30대 젊은 주역,그리고 야당 40대기수론의 선두주자 중 한사람이 고희의 70에 여전히 대권수업을 하며 이번엔 세대교체의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으니 우리 정치사의 아픈 대목이 아닐수 없다. 사회적 정년은 55세에서 65세가 보통이다.몸을 쓰는 직업은 55세,경륜과 두뇌가 요구되는 교수같은 자리는 65세로 돼 있다. 다만 정치에는 정년이 없다.청년의 패기와 장년의 세련미,노년의 완숙한 지혜,이 노·장·청 3박자가 조화를 이뤄 국가를 이끌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지도자들에겐 각기 시대적 역할이 주어져 있게 마련이다.이승만 대통령의 건국,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성장,같은 줄기에서 이를 이어받아 세대교체를 이룬 5·6공,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의 민주화를 각기 그 시대정신이랄 수 있다. 두김씨의 시대적 역할은 60년대와 70년대의 세대교체 촉발과 「투쟁」으로 끝났거나 그렇지 않으면 앞에 제시한 지도자들의 역할을 되풀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역사를 정체시킬 소지가 있다는 얘기다.오직 불혹이다 고희다 하며 나이만을 따지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세계화·전문화 등 다가오는 21세기 한국의 시대정신에 맞는 자질과 사고력을 갖춘 「지도세력」을 찾아내고 키워나가자는 것이 현재 논의되고 있는 세대교체의 핵심일 것이다.
  •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이 세기의 인물탐구:81)

    ◎박진감 넘치는 심혼의 선율… 청중 사로잡아/5세에 입문… 미 줄리아드서 혹독한 레슨 거쳐/연 100회 이상 공연 스케줄 잡힌 세계10대 연주자/67년 레벤트리트경연서 주커만과의 공동우승은 세계음악사에 기록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영국 선데이 타임스는 83년 「최근 20년간 가장 위대한 기악연주자」로 정경화를 선정한 적이 있다.그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다이내믹과 이모션은 한번 활을 잡기만하면 폭풍같은 절조로 청중을 일시에 혼도시키고야 만다.흡사 「마야의 박사가 조각조각 찢어져 신비에 가득찬 근원자의 무릎앞에 펄럭이 듯이 그의 몸속에선 마혹과 초자연이 흘러나온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더구나 자기비판에 엄격하여 「열광적 도취를 알지 못하는 정관(정관)은 참으로 조용히 바라보는 정관이 되지 못한다」는 차원에서 최근에는 진주빛 화염을 가라앉힌 「진한 포도주의 바다같은 심혼의 선율을 빚어낸다」는 평을 듣는다. 정경화의 일사불란하게 화려한 연주경력을 일일이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그는 데뷔이래 「톱」의 자리에 우뚝 선 채 자신의 위상을 도도하게 지켜왔고 지금도 그렇다.그중에서도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지난 70년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한 런던심포니와의 차이코프스키 협연을 들지 않을 수 없다.이 한번의 연주로 그는 미국의 9대 교향악단을 비롯하여 영국에서 30회를 연주할 수 있는 계약을 맺었고 연 1백회이상의 연주스케줄을 갖는 가장 위대한 연주가의 한사람이 되었다. ○데뷔이래 정상에 우뚝 이보다 앞서 67년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레벤트리트 경연대회에서 핀커스 주커만과 공동우승을 차지한 일은 세계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기도 한다.평론가 위데 콤베는 이날 정경화연주에 대해 「하이페츠나 오이스트라흐나 스턴이 이보다 더 출중한 연주를 했다할지라도 그것은 다 지나간 일이며 그녀만이 갖는 강한 호소력은 최고의 경지에 이른 최상의 연주」라고 호평한바있다. 음악평론가 한상우씨도 『실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잭 스턴을 대부로 하는 막강한 유태계 세력이 주커만을 에워싼 가운데 고독한 싸움에서 이긴 정경화는 지금 주커만 펄만과 어깨를나란히 하면서 명실공히 세계10대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돌아본다.70년대와 80년대 일본에서 여신처럼 떠받들려진 그는 75년 샤를르 뒤트와 시벨리우스를 연주했을 때는 일본의 평론가 우노 호이모로부터 「예리한 칼로 살을 베었을 때 푹 솟아오르는 선혈처럼 신선한 전율을 느끼게 한다」는 등의 극찬 등 황홀한 찬사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일찍이 레코드 재킷에서나 볼 수 있는 로린마젤 게오르그 솔티 리카르토 무티 앙드레 프레빈 루돌프 켐페 등이 지휘하는 세계적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물론 영국의 데카를 통해 20여장의 레코드를 내놨고 언제부턴가 한국의 정경화만이 아닌 세계적 「대가」로 군림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그는 천재이며 타고난 재능으로 자연스럽게 오늘에 이른 것일까.이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단호하게 「노!」다. 「정상에 이르는 길은 마치 전쟁을 방불케 한다」는 그는 「음악에서 기적은 일어날 수 없으며 연주할때마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연주에 임하고 있고 단 한번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고 생각해본적이 없다」고 말한다.지난번 광복 50주년 기념연주차 귀국했을 때도 그가 묵고있는 신라호텔 미팅룸에서 하루종일 바이올린을 어깨에 메고 연습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머리가 숙여지게 했다. 청중을 사로잡는 마력 때문에 만사에 적극적이고 어딘지 여걸스러우리라고 짐작되지만 정경화의 진짜 성격은 낯가림이 심하고 「말도 못하게 내성적」이며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꺼려서 친구도 별반 없는 편이다.다만 첼리스트인 언니 명화씨와 지휘자인 동생 명훈씨와의 트리오는 혈육다운 최상의 절창을 이루고 그리고 그를 생명처럼 키워낸 어머니 이원숙여사에 대한 효성이 지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용모 또한 화사하고 순수하여 무대에서의 관록이나 권위따윈 찾아볼 수 없다. ○타고난 재능보다 노력 널리 알려지다시피 그는 5살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해서 9세때 서울시향과 협연,61년 가족이 미국에 이주하면서 줄리아드음악원에서 일류 바이올리니스트만을 키워낸 이반 갈라미언교수와 조지프 시게티의혹독한 레슨을 거쳐 「자기만의 표현능력과 음악적 언어로써 감정을 총괄하고 통제」하는 연주자로 성장했다.이는 「정말 바이올린이 없으면 죽을 것 같은 열정이 몸속에서 꿈틀거린 때문」이며 「수많은 장애를 극복한 일은 경이롭다고 밖에 표현할길이 없다」는 음악계의 평은 옳다.그런 점에서 「때로는 강력한 힘으로 밀어붙이듯 때로는 귀기가 서린 박진감으로 인해 그의 연주를 듣고난 다음 다른 연주를 들으면 어딘지 채워지지 않는 구석이 남아있는 듯 성에 차지 않는다」는 이순열씨(음악평론가)의 말은 음악애호가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위대한 음악가들은 자연과 함께 살면서 그 속에서 작품을 썼기 때문에 그들의 음악속에는 자연의 모든 색깔들이 칠해져 있다는 걸 나는 일찍이 스승들로부터 배웠어요』 따라서 「지금까지의 연주활동은 앞으로 10년을 위한 준비과정에 불과」하며 「음악이 지닌 색채감과 이디엄에 집중하여 자신감을 성취한 지예에 다다르고 싶다」는게 그의 꿈이다. 바이올린의 화신인듯 그래서 음악과 결혼한 것처럼 보이던 그가지난 84년 케임브리지대 출신의 영국인 사업가 제프리 리게티씨와의 결혼을 발표했을 때 이로인해 그의 들끓는 정열과 현란한 선율이 한치라도 사그라들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었다.그러나 결혼후 피아니스트 필립 몰과 레코딩한 「정경화 콘 아모레」는 『살바도르 달리가 「피는 꿀보다 달다」는 그림을 그렸지만 이젠 「정경화의 바이올린은 꿀보다도 달다」란 그림을 그려야 할때』라는 평을 받을 만큼 신기의 솜씨로 청중을 도취시켰다.영국의 평론가 에드워드 그린필드는 「정경화가 온세계를 향해 바이올린의 활로 쏜 화살은 에로스의 황금화살보다 더 감미로운 사랑의 기쁨을 느끼게 할뿐 아니라 우리들을 음악의 유토피아로 이끌어가고 있다」고 쓸 정도였다.지난 봄 그의 귀국 연주에 대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이강숙교장도 「음악을 끝까지 지킨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지만 그가 활을 긋는 그 순간부터 정경화는 아직도 우리의 희망임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고 일깨운다.부군인 리게티씨(49)는 「성격이 온화한 정경화 음악팬」으로서 그의 음악생활에 대한 모든 것을 협조하고 외조한다고 전한다.두아들은 엄마를 따라 재곤(프레데릭·10)은 첼로와 피아노,유진(7)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우고 방학을 이용해 광복50년기념행사에 다녀갔다. ○두 아들도 음악공부 실제로 결혼후 정경화만큼 눈에 띄는 변모를 보인 예술가는 별로 흔치 않다.한국에서 태어나 무수한 장애를 넘어 정상에 올라야 한다는 끈질긴 집념과 강한 개성 때문에 「때때로 발톱을 세운 고양이처럼 앙칼져 보이기도 했던」 오기는 이젠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패기와 자존심과 싱싱함과 날카롭게 찔러오는 그 전율」은 한층 침후해지고 그의 손과 머리와 마음은 움직일 때마다 아름다움을 캐면서 달빛이 녹아 강물을 이루듯 흘러넘치는 광채로 청중의 온몸을 적신다. 지금 「세계가 기억하는 연주가 정경화」는 「자연의 심장인 명작의 숲」속에 서서 인간의 심장이 아닌 영혼을 깨우고 흔드는 절기의 선율로 하늘을 꿰뚫고 싶을지도 모른다. □연보 ▲1948년 서울에서 출생.정준채씨와 이원숙여사의 4남3녀중 넷째 ▲53년서울시향과 협연 ▲61년 이화여중 재학중 도미­줄리아드음대서 갈라미언및 시게티사사 ▲64년 카네기홀 독주 ▲66년 메리웨더 포스트청소년 국제 콩쿠르 수상 ▲67년 레벤트리트 국제바이올린콩쿠르에서 주커만과 공동1위­줄리아드 음악원 졸업­제네바 국제음악콩쿠르입상 ▲70∼84년 런던심포니(지휘 앙드레 프레빈)뉴욕필(지휘 레너드 번스타인)을 비롯,필라델피아·클리블랜드오케스트라,몬트리올·보스턴심포니,로스앤젤레스·이스라엘·로열필,암스테르담 콘체르트헤보·빈·프랑스 국립교향악단 등과 연 1백회연주,데카 EMI전속 ▲73년 「스트라빈스키 왈튼협주곡」레코드로 에디슨상,독일평론가들이 선정한 「올해의 스타상」수상 ▲80년 퀸 엘리자베스 국제콩쿠르 심사위원 ▲84년 결혼이후 런던필(지휘 리카르도 무티)·프랑스국립교향악단(피아노 필립 몰)·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오케스트라·프랑스국립관현악단·베를린필협연등 연 70회연주,유럽 캐나다 일본 오스트레일리아지역 순회연주 ▲92년 미국의 92 엑설런스 20 00상 수상 ▲94년바르토크 협주곡으로 그라모폰상,차이코프스키 협주곡 「빈티지 레코드」선정 ▲95년 정트리오 시향협연및 부산 청주 마산 독주회,광복50주년 축전음악회 「세계를 빛낸 한국음악인」대향연(잠실주경기장) 피아노 필립 몰·라두루프 등과 데카·EMI에서 레코드 20여장및 CD LD출반
  • 사감감금… 8개방 동시방화/기술학원 불

    ◎하루전 4개조 나눠 역할분담/원생들 쇠창살 잡고 “살려달라”/탈출구 못찾아 대부분 질식사 【용인=특별취재반】 경기여자기술학원 화재사건은 윤락여성과 함께 수용된 문제소녀들이 비인격적인 처우를 견디다 못해 집단으로 탈출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저지른 방화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은 21일 원생 이모양(16) 등 주동자 14명을 상대로 분산조사한 결과,이들이 범행 하루전인 20일 하오 2시 쯤 1층 9호실에 모여 ▲신호조 ▲출입문 유리창 파손조 ▲경비원 차단조 ▲방화조 등으로 역할을 분담하기로 하고 불을 지른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이 학원에는 1백37명이 수용돼 있으나 8명만 윤락여성이고 나머지는 가정에서 위탁된 문제소녀들이었다. ▷발생◁ 21일 상오 2시 8분쯤 기숙사 1층과 2층 원생들이 사용하는 방 8곳에서 동시에 불길이 치솟으며 순식간에 건물전체로 번졌다.원생들은 방 가운데 이불 등을 쌓아놓고 라이터로 종이에 불을 붙여 이불에 불을 지르는 등 신호에 맞춰 불을 질렀다.일부는 기름을 사용했다. 불이 나기30분전인 1시 30분쯤 원생 4∼5명은 2층 사감실로 몰려 가 잠을 자고 있던 사감 박영희씨(56·여)를 이불로 덮어 씌우고 20∼30분 동안 집단 구타했다. ▷진화◁ 불이 나자 수원소방서와 용인소방서 소속 소방차 40대와 소방대원 2백 96명이 동원돼 진화작업을 벌였으나 2층 건물 1천 6백여평을 모두 태우고 1시간 30분만인 3시 30분쯤 완전 진화했다. ▷화재현장◁ 불이 난 기숙사는 연면적 5백44평의 2층 콘크리트 건물로 1·2층 침실 24개외에 예절실·주방·식당·양재실·한복실·세탁실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최초 발화지점인 1층 4·8·9호 침실과 사감실,2층 12·14·19·20호실 등 8곳에는 이불과 담요 등이 불에 그을린채 쌓여 있었다. 또 복도와 침실 유리창 10여장이 깨져 있어 원생들이 탈출을 위해 발버둥쳤던 것으로 보인다.기숙사 건물 외벽이 온통 검게 그을린 가운데 30여명이 질식해 쓰러져 있던 2층화장실에는 원생들이 신고 있던 슬리퍼와 운동화 등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경찰수사◁ 경찰조사결과 이들은 사감폭행조,방화조,청원경찰제지조 등 역할을 분담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경찰은 1층 5호실 방바닥에서 「1,2층 다 도망가는데 갈거야.두시에 2층이랑 폰(인터폰이나 전화연락)친대」라는 메모를 발견했다. 경찰은 이들이 불을 지른 뒤 현관을 통해 달아나려 했으나 현관문이 잠겨 달아나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망자 명단◁ ▲아주대병원(9명)=고해진(14·서울 양천구 신월3동),김영미(16·송파구 송파2동),홍지연(16·전북 부안군 부안읍 동죽리),박미자(17·서울 동작구 상도4동),강선화(17·서울 강동구 암사1동),이영진(나이미상·경기도 부천시 심곡동),이장경(18·서울 강남구 수서동),이정하(16·서울 성동구 성수1가),이연주(14). ▲동수원병원(9명)=이경아(17·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서경화(16·서울 서초구 서초3동),박지예(15·서울 강서구 공항동),최명숙(15·경기도 의정부시 신곡동),우정덕(15·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신미희(14·경기도 평택시 지산동),권미성(16·경북 포항시 해도2동),김미란(16·서울 강남구 수서동),황수정(13·주소미상).▲성빈센트병원(3명)=배정희(17·전북 김제군 황산면 쌍감리),김지은(16·경기 성남시 중원구 금광2동),유진(14·서울 용산구 보광동). ▲수원의료원(9명)=이성아(17·경기도 하남시 덕풍2동),민혜경(16·서울 관악구 봉천8동),권선임(18·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신흥2동),양승심(16·주소불상),김희재(16·서울 관악구 신림5동),윤여경(20·서울 도봉구 수유5동),배지혜(17·서울 관악구 신림7동),이정숙(18·서울 성동구 성수2가),이혜미(13). ▲용인세브란스병원(2명)=김효숙(15),이자옥(16). ▲오산도인병원(5명)=사은혜(16·안양시 동안구 달안동),이경림(34·부산시 동래구 연산3동),정선아(17·서울 은평구 갈현1동),성현숙(16·서울 강북구 우이동),최정은(16·용인군 모현면 초부리).
  • 미 한국전참전비 27일 워싱턴서 제막

    ◎“자유민주주의 수호”/미 국민정신 되새겨/한·미 정상·참전용사 등 참석 성대한 행사/한반도서 숨져간 3만3천여 병사의 넋 기려/부산 피란당시 텐트촌 재현 등 다양한 행사도 27일 제막식과 함께 일반에 공개되는 워싱턴의 한국전참전비는 단순히 한국전쟁에서 싸우다 숨진 미군병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니고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고 지키려 애쓴 미국민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기 위한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매년 수백만 미국민들이 찾아오는 워싱턴 한복판 몰(Mall)공원에 「자유는 공짜로 얻는게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세워진 한국전참전비는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한반도에서 숨져간 3만3천여 영령들의 귀중한 자유수호 의지를 역사 속에 길이 빛나게 할 전승기념비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더욱이 한국전참전비가 워싱턴 한가운데 자리잡게 됨으로써 한국전쟁이 2차대전 후 냉전체제 아래서 최초의 자유진영과 공산진영간 전쟁으로, 또 진정한 의미의 마지막 보병전쟁으로 미국이 끝까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전쟁이라는 미국역사상,미군전사상 새롭게 자리매김되는 의미 또한 갖는다. 이같은 역사적 의미를 뒷받침하듯 오는 27일 김영삼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대통령,그리고 미국의 전직 대통령들과 참전용사,한국전 참전국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릴 성대한 제막식과 이를 전후해 개최되는 각군 주관 행사 등은 이른바 「미국의 영광」을 재현하는 내용들로 돼있다. 또 전장터를 의미하는 삼각형 부분은 삼각형의 긴 꼭지가 원의 중앙에 도달케 돼 있으며 주진입로가 되는 좌측 변에는 한국을 비롯한 유엔참전국들의 국명을 돌판에 새겼고 우측 변에는 화강암 벽면을 길게 설치해 한국전쟁중 미군활동의 전체과정을 부조했다. 미국 참전비건립위원회와 한국전참전기념사업위원회의 주관으로 미육군 공병대가 시공한 이 참전비는 92년6월에 착공,3년1개월만에 완공되는데 총비용은 1천8백만달러가 들었으며 한·미 양국 기업들의 모금과 기념주화 판매 등 수익사업 등으로 충당됐다. 참전비 제막식 관련행사는 다음과 같다. ◆26일=낮 12시몰공원에서의 텐트촌(Tent City) 개장식으로부터 본행사가 시작된다.부산 피난 당시를 연상케 하는 이 텐트촌에는 각국 참전재향군인회,정부유관기관 등 현재 16개 단체가 입주를 신청했다.하오 7시에는 미해병대가 이와지마 기념비에서 미해병대의 황혼(Sunset) 퍼레이드를,미육군은 백악관앞 엘립스광장에서 군악연주회를 갖는다. ◆27일=상오 10시 알링턴 국립묘지의 무명용사묘에서 진혼제를 시작으로 하오 3시에는 양국 대통령이 참석,제막식을 갖는다.하오 8시부터는 불꽃놀이 등 축제가 열리고 같은 시각 미해병대의 이브닝 퍼레이드가 열린다. ◆28일=상오 11시 워싱턴기념탑 아래 광장에서 3만여명의 참전용사와 현역병이 참가하는 대형 열병식이 거행된다.20세기 들어 처음이며 남북전쟁 이후 최초로 행해진다.하오 1시에는 해군기념비에서 진혼제가 열린다. ◆29일=상오 11시 참전용사 귀환 환영 퍼레이드가 시내 중심가에서 펼쳐지며 하오 4시 텐트촌의 철거로 모든 행사를 끝맺는다. ◎“참전비는 전장서 잃은 내몸의반쪽”/참전기념위 사무국장 웨버 예비역대령/“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무한한 긍지” 『너무 늦지 않았습니다.한국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이 참전비를 세움으로써 한국전쟁의 끝내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한국전참전비 공사장에서 만난 윌리엄 웨버 예비역 육군대령(69)은 베트남참전비가 10여년 전에 세워진데 비해 한국전참전비가 이제 세워진 것은 너무 늦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80년 대령으로 예편한 뒤 한국전참전기념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일해온 그는 『한국전쟁은 2차대전 이후의 냉전체제에서 처음으로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명분있는 전쟁이었다』면서 『피로 지켰던 한국이 오늘날 자유와 민주주의를 잘 지켜나가는 것을 볼 때 참전용사의 한사람으로 무한한 긍지와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국전에서 몸의 반을 잃고 한평생을 살아온 내게 이 참전비는 뒤늦게 되찾은 내몸의 반쪽』이라는 개인적 의미 부여도 서슴지않는 웨버 대령은 켄터키 주둔 미 187 공수여단의 팀장인 대위로 인천상륙작전에 앞서 적후방 교란 임무를 띠고 8월말 평남 순천에 투하되었다.다음해 2월 중국군과의 원주전투에서 한쪽 팔과 다리,눈을 잃고 본토로 후송될 때까지 7개월간 적진 구석구석을 낙하산을 타고 누볐다.타고난 군인이었던 그는 퇴원 후 정부에서 제의해온 많은 좋은 자리들을 거부하고 군에 남기를 희망,2차대전 때부터 37년간 미육군을 지켜왔다. 그는 또 『한국인들이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의 피흘림에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면서 『자유와 민주를 지킨다는 일념에서 아무 조건없이 낯선 땅 한국을 찾았을 뿐인 만큼 그 관계는 「빚」으로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우정」으로 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생존자3명 더있다”헛소문에 한때 술렁/유양 회사·실종자가족 표정

    ◎“혹시나” 하던 실종자가족들 또한번 울려/유양 소속회사 축제 분위기에 “업무 마비” ▷추가 생존자 소동◁ 유지환(18)양이 극적으로 살아돌아온 11일,다른 실종자의 가족들은 추가 생존자가 있다는 헛소문에 또 한번 울었다. 이날 하오 유양의 생존 소식이 전해지면서 사고현장과 서울교대에 마련된 실종자신고센터에는 「유양 말고도 같은 자리에 생존자가 3명 더 있다」는 밑도 끝도 없는 소문이 나돌았다. 소문은 유양이 구출되기 직전 구조대원들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생존자 3명의 이름을 직접 말한 것으로까지 확대돼 삽시간에 사방으로 퍼졌다. 그러나 이같은 소동은 구조대원들의 흥분된 분위기와 생존자가 더 있기를 바라는 실종자 가족과 보도진들의 간절한 바람 등이 상승 작용을 한 때문이었다. 여기에 유양의 생존 소식이 알려진 직후부터 방송을 시작한 일부 TV방송사에서 생존자가 1명 또는 3명 더있다고 보도해 소문을 부채질했다. 이 때문에 실종자가족들은 「혹시나」하는 기대 속에 급히 현장으로 달려왔다가 사실이 아닌 것을 확인하고 구조본부에 격렬히 항의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생존자가 3명 더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최종 확인되자 실종자 가족들은 한때 가졌던 희망만큼이나 무거운 절망감에 다시금 빠져들었다. ▷회사표정◁ 유양이 판매사원으로 근무 중인 서초동 삼광유리공업은 유양의 생존소식이 전해진 뒤부터 축제분위기 속에 업무가 마비된 상태. 직원들은 유양의 구조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TV 앞에 몰려들어 손에 땀을 쥐고 구조과정을 지켜봤으며 구조가 끝난 뒤에는 삼삼오오 모여 기적같은 생환에 대해 얘기꽃을 피우는 모습. 위례상고 재학 중인 지난해 10월5일 학교 추천으로 이 회사에 입사,줄곧 삼풍백화점에서 판매사원으로 일해온 유양은 평소 쾌활하고 자신감 있는 성격으로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일에도 열심이어서 상사와 동료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는 것이 회사 관계자들의 공통된 평. 회사측은 사고 직후 직원 2∼3명을 서울교대에 마련된 실종자 대책협의회에 파견,날마다 유양의 소식을 파악하고 대책을 세우는 등 침통한 분위기였으나 이날유양이 구조됨에 따라 직원들도 생기를 되찾으며 환호. 회사의 한 관계자는 『온국민에게 기쁨을 안겨준 유양은 이제 회사의 자랑거리가 됐다』며 『직원으로서의 긍지를 드높인 유양에게 회사 차원의 특별한 배려가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언. ◎유양 첫 발견 구조원 정상원씨/이름 물으니 “유진환…” 또박또박 대답/“내가 이안에 며칠이나 있었죠” 질문도 『지난 9일 최명석(20)군이 극적으로 구조된 뒤 생존자가 더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한순간도 버리지 않았는데 그 기대가 헛되지 않아 너무 기쁩니다』 최군이 「사지」에서 생환한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 또다시 2백85시간여만에 유지환(18)양이 구출됐다.다음은 유양의 생존을 처음으로 발견한 영등포소방서 119 구조대원 정상원(30)씨와의 일문일답. ­발견 당시 상황은. ▲이날 하오 1시47분쯤 매몰된 A동 지하1층에서 포클레인으로 콘크리트 상판을 걷어내는 작업을 하다 최군이 발견된 지점에서 남쪽으로 4m,지하1m 정도 내려간 곳에서 40∼50㎝ 정도의 구멍을 발견했다.작업을 중단하고 가까이 다가가보니 깨끗한 사람의 발가락이 보였다.인기척이 들리지 않아 구멍 안쪽을 향해 발가락을 움직여보라고 하니 발가락이 조금 움직였으며 1시50분쯤 신음소리와 함께 『살려달라』는 소리가 들렸다. ­발견 당시 유양의 상태는. ▲콘크리트 더미나 철근에 눌려있지는 않으나 한사람이 누워있기 빠듯할 정도의 공간에 있다고 말했다.물을 달라고 해 생수를 준 뒤 조금씩 마시라고 했으며 물에 적신 담요와 물수건을 계속 안으로 넣어줬다. ­구조되기까지 나눈 대화는. ▲처음에 이름과 나이,주소 등을 물었더니 『이름은 유지환이고 18살이며 수유리에 산다』고 또박또박 대답했으며 곁에 다른 생존자는 없다고 했다.이름을 잘못 알아들어 다른 대원에게 틀리게 얘기했더니 『왜 남의 이름을 바꾸느냐』고 농담까지 했다.또 희미하게 웃으면서 『내가 이 안에서 며칠이나 있었죠』라고 물어볼 정도로 정신이 맑아 1시간40여분 동안 구조작업을 펼치면서도 비교적 안심했다. ­구조작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콘크리트 상판이꽤 두꺼워 이를 제거하는데 어려움이 컸다.생존자가 호흡할 수있는 통로를 확보하면서 콘크리트 제거 장비가 생존자를 건드리지 않도록 일일이 손으로 작업하느라 구조시간이 많이 걸렸다.
  • 미국 일본 독일이 세계를 지배한다/조르주 발랑스 지음(화제의 책)

    ◎위기 처한 일류문명 이끌 3대 강국 열할 강조 21세기의 초강대국으로 예상되는 미국 일본 독일의 정치·경제적 행태를 분석,비판하고 이 3국이 힘을 합쳐 위기에 처한 인류문명을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은이는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이데올로기 분쟁은 끝났지만 이제는 이념에 가려졌던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따라서 이를 극복하는데는 국제적인 리더십이 필요한데도 현재는 「리더십 부재」상태라는 것.그 까닭은 미국·일본·독일등 강대국들이 자국이기주의에 빠져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은 오랫동안 자유진영의 리더로서 「희생적 태도」를 유지했지만 경제사정이 악화되자 이기적으로 돌변한다.또 일본은 냉전이 끝나자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치·군사력을 보강하는데만 관심을 쏟고 있으며,독일 역시 경제력을 힘삼아 유럽에서 실질적인 헤게모니를 장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결국 탈이념시대에 새로 대두한 환경·금융·소수민족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약육강식과 강대국간 투쟁을 막을 수 있는공동리더십이 필요하며 그 역할은 미국등 3대 강국의 몫이라고 역설한다.지은이는 프랑스 주간지「렉스프레스」편집국장이다.고려원 조홍식 옮김 6천5백원.
  • 건강보조식품 등 과대광고로 폭리/백화점·판매업체 15곳 적발

    서울경찰청 외사과는 23일 미도파·현대·신세계백화점등 유명백화점및 유진인터내쇼날·대아유통·비이마케팅·동아통상·진성엔터프라이즈등 모두 15개 업체가 과대광고로 소비자를 끌여들여 폭리를 취한 사실을 적발,미도파백화점 통신판매부 이모씨(40)등 관련직원 15명을 약사법및 식품위생법 위반혐의로 입건했다. 미도파백화점은 「텔레쇼핑」이란 통신판매책자 7월호에 함몰유두 교정기인 니플렛을 「여자를 진정한 여자로 만들어주는 비밀스러운 혁명」이란 문구로 소개하면서 사용전·후의 사진을 비교하는등 과대광고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통신상품광고지인 「조이풀 숍」에 「사해의 치료요법 및 피부미용효과는 널리 알려지고 있으나 모든 사람이 사해로 갈 수는 없습니다.무좀·비듬등 이런 분들께 권해드립니다」「몰라보게 이가 하얗게」라는 문구로 사해소금 및 치약의 효능을 부풀려 광고했다는 것이다.
  • 대한민국의 출범(새로 쓰는 한국현대사:23)

    ◎첫 행정부 11부·4처로 구성… 총리에 이범석/국호·헌법전문에 상해임정 법통 승계 명확히 1948년 8월15일 상오10시쯤 중앙청(현 국립중앙박물관)앞 광장에 마련된 정부수립 선포식장.7월24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취임한 이승만이 모습을 나타내자 세종로와 태평로를 꽉 메운 독립국가의 백성들은 손에손에 태극기를 흔들며 함성을 질렀다.단상에는 이대통령 부부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신익희 국회의장,김병로 대법원장이,왼쪽엔 맥아더 태평양지구연합군사령관,하지 주한미군사령관,외국사절들이 나란히 자리잡았다. ○「한」·「태한」 등도 거론 이대통령은 『이 정부가 변함없이 민주주의에 기초를 둔 모범적 정부임이 세계에 표명되도록 매진하겠다』는 말로 경축사를 끝맺었다.일제의 강점으로 끊겼던 민족국가의 맥이 되살아나는 한편 이땅에 민주주의 정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새로 출발하는 대한민국의 성격을 제헌국회 의원들이 어떻게 규정하고 있었을까.이는 국호를 제정한 과정에서 잘 나타나 있다.헌법 기초위원회는 6월7일 나라이름을 「대한민국」으로 잠정 결정하고 이를 본회의에 넘겼다.본회의 토론에서 몇몇 의원들이 그 의의와 근거를 물었고 일부는 「한」,또는 「태한」으로 하자거나 국민 총의를 모아 참신한 새이름을 짓자는 의견들을 냈다. 이에 대해 헌법기초위원회 서상일 위원장등은 『「대한」이란 국호는 청일전쟁 당시 이미 사용했으며 일제에 의해 빼앗긴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켰다.이와 함께 「3·1운동」을 계기로 상해에서 수립한 임시정부에서도 그 이름을 썼다는 점을 강조했다.국회는 7월1일 「대한민국」으로 국호를 최종 결정했다.상해임정에서 쓴 「대한민국」을 국호로 인정하고,헌법 전문에도 상해임정을 이어받는다는 뜻을 밝힘으로써 새 국가는 그 법통을 명확히 했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또 행정·입법·사법의 3권분립을 확실히 해 민주주의의 기틀을 세웠다.첫 행정부는 11부,4처,66국으로 짜여졌다.이대통령은 국무총리에 처음 이윤영을 내정하고 국회에 승인을 요청했으나 거부되자 이범석으로 교체해 인준을 받는다.이어 8월 1∼7일에 걸쳐 장관과 처장들을 임명했다.입법부에서는 이승만의 뒤를 이어 신익희가 국회의장이 됐으며,부의장은 김동원과 김약수가 선출됐다.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은 김병로가 맡았다. 11부의 장관과,4처의 처장 명단은 다음과 같다. ▲내무 윤치영 ▲외무 장택상 ▲국방 이범석 ▲재무 김도연 ▲법무 이인 ▲문교 안호상 ▲농림 조봉암 ▲상공 임영신 ▲사회 전진한 ▲교통 민희식 ▲체신 윤석구 ▲총무 김병연 ▲공보 김동성 ▲법제 유진오 ▲기획 이교선 그러나 조각 결과는 제헌국회에서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한 한민당의 반발을 불러일으킨다.조각 과정에서 소외된 한민당은 8월8일 『본당은 시시비비주의로 임할 것이며 정부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야당 세력임을 자처했다.따라서 한국 정치에 여·야 개념이 이때 비로소 발생했으며 한민당 계열은 이후 야당의 뿌리로 자리잡는다. 대한민국 수립에 앞서 미 군정의 정권이양도 순조롭게 진행됐다.먼저 「5·10 선거」실시 열흘만에 군정은 입법기구 노릇을 하던「남조선과도입법의원」을 문닫았다.이어 6월1일에는 군정재판을 폐지함으로써 입법·사법 두 기능을 마감했다. 신생 대한민국 정부에는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었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역시 다른 나라들로부터 정통·합법국가임을 인정받는 것이었다.아직 출범하지 않은 정부에 대해 필리핀이 7월4일 처음으로 대한민국을 「사실상」승인한다.8월13일에는 미국과 자유중국도 정부를 「사실상」승인했고 특히 미국은 무초를 외교대표로 임명했다. ○유엔총회 압도적 지지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유엔의 승인이었다.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 「5·10 선거」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데다 유엔에서 주도권을 쥔 미국이 새 정부를 강력히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엔에서의 승인」이 사실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그럼에도 새 정부는 유엔의 대한민국 승인을 위해 외교적 총력을 기울일 수 밖에 없었다. 그해의 유엔총회는 9월21일 파리에서 막을 올렸다.이 자리에는 한국임시위원단의 보고서가 제출됐다.위원단은 「5·10선거」를 『전체 한국민의 3분의2를점하는 선거민들이 자유롭고 정당하게 의사표시를 했다』고 밝혔다.선거결과 구성된 제헌국회의 입법활동과 정부형성 과정도 자세히 소개했다.보고서는 『미군사령부가 한국정부에 이미 정권을 이양했으며 한국정부는 정상적인 정부 기능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총회의 끝 무렵인 12월7일부터 한국문제가 정식의제로 다뤄졌다.12일 총회는 투표를 통해 대한민국 정부가 「한국에 있어 유일한 그러한 정부」(The only such government in Korea)라는 결의를 통과시켰다.찬성 41,반대 6,기권 1이라는 압도적인 지지였다.이 결의문은 대한민국이 한반도 전역에 걸친 전국적 정부라는 선언을 조심스럽게 피하긴 했으나,대한민국 정부가 실질상 한반도에 있어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함축한 것이었다.더욱이 국제적 뒷받침이 거의 없었던 북한정권에 비해 대한민국 정부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확실하고 충분한 국제정치적 근거가 됐다. 유엔총회의 승인으로 자유우방 국가들과의 외교관계가 잇따라 수립됐다.1949년 1월1일 미국이 대한민국 정부를 정식 승인한 것을 시작으로 4일에는 자유중국이,18일 영국,2월5일 프랑스,3월3일 필리핀이 뒤를 따랐다.1950년 「6·25」가 일어날 때까지 수교국가는 30개국 가까이로 늘어났다.이에 견줘 북한정권을 인정한 나라는 소련권에 한정됐다.더욱이 「6·25」가 발발하자 유엔군 참전의 명문을 제공하는등 「유엔의 대한민국 승인」은 한국의 국제관계에 초석이 되었다. ◎영 소장 「미 한국승인 성명서」/미 “대한민국은 유엔결의로 세운 합법정부”/“카이로선언 연장선상서 탄생” 천명/이 대통령,즉각 “무쵸파견 환영” 답신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대한민국 출범을 3일 앞둔 1948년 8월12일(한국시간 13일)미국 국무부가 새 한국 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이를 승인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영국 런던의 공기록보존소에서 찾아냈다.이 성명서는 비록 장문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에 대한 당시의 미국측 입장이 잘 요약돼 있다. 이 성명서에서 미국은 먼저 한국정부 수립이 1943년 12월 미국·영국·중국등 3국이 합의한 카이로선언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음을 강조했다.또카이로선언의 원칙은 포츠담선언과 모스크바삼상회의에서 재확인됐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소련과의 협상 끝에 한국문제를 유엔에 상정할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따라서 미 정부는 1947년 11월14일 유엔총회 결정에 의해,정당한 과정을 통해 수립된 새 정부를 한국의 합법정부로 간주한다고 선언했다.이와 함께 대한민국 정부 및 유엔한국임시위원단과 협상할 대통령 특사로서 로드 아일랜드 출신인 존 무초(John J Muccio)를 파견하겠다는 내용을 공표한 이 성명은 무초가 초대 주한 미대사를 맡게 될 것임을 일찍 명시해 놓았다. 그리고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이승만 대통령이 이 성명에 대한 답신을 통해 미국이 대통령 특사로 무초를 파견하겠다는 계획에 대해 즉각 찬성한 답신 내용도 런던에서 발굴했다.8월17일 미국에 보낸 답신에서 이승만대통령은 『일제에 의해 훼손된 한·미 양국의 우호적인 관계를 회복하는 조치』라고 치하했다.
  • 「순수문학」 외길 걸은 문단거인/타계한 김동리 선생의 문학과 생애

    ◎생명·인간성 탐구 중시… 문학의 도구화 반대/한국적 샤머니즘 담은 「무녀도」·「황토기」 남겨 17일 타계한 김동리(본명 김시종)씨는 한국 현대문학사에 길이 남을 소설들을 남긴 우리 문단의 거목이었다. 작가로서의 그는 60여년의 작품활동을 통해 1백여편에 이르는 중·단편소설을 남긴 빼어난 글쟁이였다.이른바 「순수주의」를 지향한 그의 소설들은 해방이후 우리 문학의 큰 줄기로 이어져 내렸다.뿐만 아니라 그는 참여주의 논객들과의 지속적인 논쟁을 통해 이같은 자신의 문학관을 적극 옹호한 이론가이기도 했다. 1913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난 김동리씨가 처음 문단에 나온 것은 3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한 시 「백로」를 통해서였다.그러나 35년 중앙일보에 「화랑의 후예」,36년 동아일보에 「산화」 등 두편의 소설이 잇따라 당선되면서 그의 재능은 산문쪽으로 더욱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그의 문학적 지향은 30년대말 발표된 「무녀도」와 「황토기」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기독교신자인 아들과 갈등을 빚는 무당,가공할 힘을 지닌 장사의 사연을 다룬 이 단편들엔 한국적 샤머니즘과 신화의 세계에 대한 지은이의 본능적인 이끌림이 나타나 있다. 이무렵 그는 자신의 창작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할 평론작업을 병행하기 시작했다.문학의 사회·역사의식 회복을 촉구한 임화·유진오의 글에 맞서 「순수이의」(39년)「신세대의 정신」(40년) 등의 평론을 발표한것.이런 글에서 그는 『문학이란 본질적으로 개성적인 삶의 탐구여야 한다』며 정치나 이념에 종속되지 않는 순수문학이야말로 문학의 본령이라는 주장을 폈다.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이같은 순수문학 옹호는 그후 그의 창작에 일관되게 깔리는 철학적 기조가 된다.해방공간의 좌­우 논쟁,70년대말 순수­참여 논쟁 등을 거치면서 그는 문학의 도구화에 반대하고 생명과 인간성 탐구를 문학 고유의 역할로 여기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혔다.이때문에 리얼리즘 문학이 성했던 80년대엔 삶의 현실이나 인간의 역사를 외면하고 있다는 문단 한켠의 거센 비난에 맞닥뜨리기도 했다.그러나 그와 이념적으로 대척되는 지점에 놓인 시인 고은씨조차도『동리문학은 한국소설의 원점』이라고 평할 정도로 그의 탁월한 문학적 성취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었다. 그는 한국문인협회장·예술원회장·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학장등을 거치면서 이념과 사상을 떠난 특유의 포용력으로 이른바 「김동리 사단」을 거느리는 문화예술계의 대부로 군림하기도 했다.장용학·손창섭·박경리·이범선·최일남·한말숙·정을병·이문구·서영은·문순태씨등이 그의 추천으로 문단에 나왔고 천승세·김원일·송상옥·유현종·오정희씨등이 서라벌예대 제자들이다. 문학과 삶의 동반자였던 부인 손소희씨가 작고한지 얼마 안된 지난 87년 30세 연하의 문단 제자 서영은씨(52)와 결혼해 화제를 불러 일으켰으나 90년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이념의 시대가 지나가고 90년대에 접어들어 동리문학의 짙은 문학성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그의 단편 대표선집이 나오고 연구논문들이 책으로 묶이는 가운데 민음사에서는 「김동리 문학전집」을 7월부터 2∼3차에 걸쳐 펴낼 예정이다.여기에는 장편「사반의 십자가」「을화」를 포함한 그의 모든 소설들과 문학평론,에세이들이 수록된다.한국 토속정서에서 인간의 보편적 구원문제로 확대돼온 그의 문학적 지평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이 책이 유작이 되는 셈이다. □연보 ▲1934년 조선일보 시 「백로」,35년 중앙일보 단편 「화랑의 후예」,36년 동아일보 단편 「산화」 각각 신춘문예당선. ▲36년 「무녀도」,39년 「황토기」,41년 「소년」발표후 8·15까지 침묵. ▲1946년 한국청년문학가협회 결성 초대회장,「윤회설」. ▲1949년 한국문학가협회 소설분과위원장,장편 「해방」. ▲1950년 문교부 예술위원,서울시 문화위원,「인간동의」 ▲1954년 예술원회원,「마리아의 회태」. ▲1955년 「흥남철수」「밀다원시대」「실존무」. ▲1957년 장편 「사반의 십자가」 ▲1961년 문인협회 부이사장 「등신불」. ▲1966년 「까치소리」「송추에서」「백설가」. ▲1967년 3·1문화상 수상,대표작선집 전 5권 간행. ▲1968년 국민훈장 동백장,중편「극락조」. ▲1971년 장편 「아도」. ▲1973년 중앙대 예술대학장 장편「삼국기」 수필집「사색과 인생」 ▲1974년 장편 「이곳에 던져지다」. ▲1978년 장편 「을화」 수필집 「취미와 인생」. ▲1981년 예술원회장. ▲1983년 5·16민족 문화상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예술원 원로 회원.시집 「패랭이꽃」. ▲1987년 장편 「자유의 역사」(59년 신문 연재작). ▲1990년 소설가 협회장.7월 30일 뇌졸증으로 쓰러짐. ◎한국문학의 영원한 큰별이시여…/고 김동리 선생 영전에/한승원 작가 이세상 그 어느 누구도 알 수 없고 선생님 혼자서만 아시는 그 깸없는 무상한 오랜 잠 주무시더니,그 잠 깨시기 바쁘게 선생님 어디로 떠나가시려 합니까.간밤 검은 구름장들 지붕머리 짓누른채 궂은비 흩뿌리고,그 습한 어둠속에서 허리 꼬며 강물 슬프게 앓아대고,북한산 지빠귀 한 마리 제 잠 설치게 하더니,신새벽의 푸른 빛살 속에서 선생님 떠나셨다는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고무줄처럼 잡아당기기도 하고 보석처럼 단단하게 앙금지게 해놓기도 하고,몇 천억겁을 찰나로 오그라들게 하기도 하고 그 찰나를 다시그 몇 만억겁으로 늘어나게 하기도 하는 혼자서만 아는 시간을 주무르고 노시다가 그 시간을 서리서리 호주머니에 넣으시고 가시는 거기가 어디입니까. 영화도 많았고 욕됨도 많았던 이 땅,이곳에서의 머무름은 얼마만한 잠시였습니까.이제 가시는 그곳은 「달」속의 달이와 「무녀도」의 을화가 있는 곳입니까.「황토기」와 「등신불」속의 그들이 살고 있는 그곳입니까. 30년 저쪽의 어느 늦은 가을날,저희들 문예창작과 학생들이 선생님을 모시고 뚝섬으로 소풍을 갔을 적에,저는 폭음을 하고 취한 척하고는 선생님께 건주정을 하였고,호래자식인 저를 유도하는 한 친구가 못됐다면서 모래밭에 내리 꽂았었습니다.이튿날 얼굴에 반창고 붙이고 찾아간 저에게 싱긋 웃으시며 어깨를 두들겨주시던 선생님의 그 인자스러운 동안을 저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속된 저로서는 지루하게만 느껴진 그 깸없는 신비한 잠을 주섬주섬 사려담고 문득 떠나가시는 선생님의 뒷모습이 제 가슴을 쓰라리게 하지만,저는 결코 슬퍼 울지 않습니다.이 밤,저는 북한산 위의 별들을 보고 있습니다.지금 선생님께서 이르게 되는 그곳은 선생님께서 신비롭게 형성해놓은 세계일터입니다.제가 쳐다보는 별처럼 떠있는 비가시적인 커다란 시공. 우리들의 우주안에서는 가는 것은 없고 오는 것만 있습니다.헤어지는 것은 헤어지는 것처럼 보일 뿐,사실은 긴긴 강의 하구에 잇닿은 바다에서 다시 만나 어우러지게 됩니다.그것을 굳게 믿는 저는 별로 오래지 않은 시간안의 즐거운 회후가 예정되어 있음도 믿습니다.선생님 그곳에 먼저 가셔서 큰 예술학과 하나 마련해놓고 계십시오. 저 선생님의 그 학교에 또 입학하겠습니다.선생님,명명한 그곳에서 편히 쉬십시오.
  • 제헌국회(새로 쓰는 한국현대사:22)

    ◎내각­대통령책임제 공방… 대통령제로 결말/여·순 발란 등 소용돌이속 국가보안법 통과 우리 현대사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호칭이 등장한 것은 19 48년 7월 12일이다.국가의 기본골격인 헌법이 이날자로 제정되면서 대한민국 명칭이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그 헌법은 5·10 선거에 의해 개원한 국회가 제정했는데 초대 국회를 제헌국회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여기있다. ○과도입법의원 맹활약 제헌국회는 1948년 5월 31일 개원되었다.제헌국회는 물론 민주주의 방식의 첫 대의기구다.미군정 아래서 개원되었던 절반의 대의기구 남조선 과도입법의원을 염두에 두면 사정은 약간 달라질 수 있다.그러나 제헌국회는 과도입법의원의원선거를 통해 민주주의 예행을 거친 국민들이 확실하게 뽑은 1백98명의 선량들이 참여한 국민의 대의기구였다. 남조선 과도입법의원 15명이 국회에 진출,제헌국회개원에 깊숙이 간여했다.그들의 경험이 그만큼 존중되었던 것이다.특히 경기도 광주에서 경선 상대가 없이 무투표 당선된 신익희의 역할이 컸다.그는 미군정과 빈번한 접촉을 하면서 「국회소집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결성하는데 전면에 나섰다.국회법이 제정될 때까지 국회운영에 관한 규칙법안이 이 위원회에 위임되었다. 이 운영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제헌국회는 5월 31일 역사적 개원을 맞았다.제1차 본회의는 당시 최고령자였던 임시의장 이승만의 사회로 열렸다.국회의장단 선거에서 1백88표라는 압도적 표수로 이승만을 의장으로 선출했다.부의장에는 신익희(76표)와 김동원(77표)이 선출되었다.이날 서울 시내에는 경축 꽃전차가 거리를 누비는 가운데 하오2시 제헌국회 개원식이 베풀어졌다. 국회에는 헌법 및 정부조직법 기초위원회가 설치되었다.이 위원회는 먼저 헌법학자 유진오등 10명을 전문위원으로 선임했다.유진오 전문위원은 내각책임제 및 양원제,3권분립을 중심으로 한 안을 내놓았다.그리고 법전편찬위원회(위원장 김병노)가 작성한 헌법초안을 비롯,임시정부헌장,과도입법의원 제정의 약헌,구미 각국의 헌법을 참고로 기초에 착수했다. 내각책임제안은 곧 바로 이승만의 노여움을 불러일으켰다.그럼에도 불구하고 6월12일 양원제를 단원제로 하는 등 약간의 수정을 가한 내각책임제 헌법안을 이의없이 채택했다.이승만은 마침내 분노하고 말았다.6월15일 기초위원회에 출석한 그는 내각책임제가 비민주적이라는 이유로 대통령책임제로 번안해줄 것을 요구했다.그러면서 측근을 시켜 국회가 내각책임제를 계속 밀고나가면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은근히 위협해왔다. 그래서 이승만의 주장을 받아들였다.그를 제외시킨 정치문제논의는 무의미할 정도로 당시 정치상황에서 이승만이 차지하는 비중은 막강했던 것이다.유일한 정당이었던 한민당이 먼저 굽히고 들어갔다.이로써 6월22일 제17차 기초위원회에서 내각책임제 헌법안은 대통령책임제헌법안으로 번안하기에 이른다.이어 6월 23일 제17차 국회본회의에 대통령책임제 헌법안이 상정되어 20일간에 걸쳐 17차례의 토론을 벌였다. ○헌법안 20일간 격론 대통령책임제헌법은 1948년 7월 12일 제정한 것으로 되어있다.대한민국 국회의장 이승만 명의의 헌법 전문은 단기 4281년 7월 12일이라고 분명히 적었다.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12일 자정을 약간 넘긴 0시28분에 제3독회를 마쳤다.그렇게 해서 대한민국헌법이 제정되었다.기초과정부터 풍파를 일으킨 제헌국회의 헌법제정은 파란만장한 헌정사의 장래를 예고한 것이기도 했다. 정부조직법은 7월 16일 제31차 본회의에서 제정되었다.17일 공포된 헌법절차에 따라 7월 20일 제37차 본회의에서는 이승만을 대통령으로,이시영을 부통령으로 선출했다.8월 3일 제37차 본회의는 이범석에 대한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은 가결시켰다.그리고 이승만의 대통령선출에 따라 신익희가 의장으로 선출되는 동시에 김약수가 부의장이 되었다.이어 8월 5일 제40차 본회의에서 김병로 대법원장 임명 요청을 동의함으로써 정부수립을 위한 기본조치를 매듭지었다. 제헌국회에서 원내 세력판도의 윤곽이 드러난 시기는 의장단 선거를 전후해서다.이승만의 의장피선은 초당적이라는 점에서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없었지만 2명의 국회부의장 선출에서는 그 색깔이 드러났다.신익희와 김동원의 부의장 피선은 원내세력을 국민회와 한민당이 주도했다는사실을 보여주고 있다.이 때부터 각 정파 및 무소속의원들은 지연·인연을 따라 독자적 원내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급진적 이론파였던 성인회를 비롯,동인회,청구회가 연합하여 이른바 소장파 그룹을 만들었다.이 그룹은 한민당·이정회와 정립하면서 많은 물의를 일으켰다.이는 10월 13일 긴급동의로 제출한 미군철수 결의안과 한미간의 여러 협정에 극력 반대하는 것등으로 나타났다.특히 미군철수 결의안은 북한 최고 인민위원회가 미·소 정부에 두 나라 군대 철퇴를 요구하는 서신을 보낸 직후에 나왔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전후하여 남한 도처에서 폭동이 일어났다.1948년 10월부터는 국군에 침투했던 남로당 세포조직에 의한 무장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10월 2일 제주도군 경비1대대의 반란,10월 20일 제40연대의 여수·순천 반란,11월 20일 대구 제60연대 무장반란이 그것이다.엄청난 사상자를 낸 가운데 곧 진압되었지만,그 잔여세력들은 산으로 들어가 유격전을 벌였다.유격전은 북한의 강동정치학원 정치·군사훈련을 받은 요원들에 의해 강화되었다. ○농개법 등 획기적 조치 그래서 국회는 11월 21일 공산주의 활동을 불법화하는 준엄한 국가보안법을 통과시켰다.당시 상황에서 국가 보안법 제정은 불가피한 것이었다.이에 앞서 9월 7일에는 반민족행위처벌법을,1949년 2월 3일에는 농지개혁법을 통과시키는 등 획기적인 조치를 취했다.이들 법률의 내용과 집행을 둘러싸고 상당한 혼란과 대립도 뒤따랐다. 그 가운데서도 정치적으로 가장 큰 충격을 안겨준 것은 이른바 「국회 남로당 프락치 사건」이다.국회안에서 소장파 그룹을 형성했던 노일환,김약수,김옥주등 13명의 의원들이 1949년 5월 20일부터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되었다.실로 중대한 사태가 아닐 수 없는 제헌국회의 얼룩이었다. ◎하버드대 소장 「사찰요람」/「국회 남노당 프락치사건」 북노당도 개입/당시 부의장 김약수 「배후 조종자」 분류/전 북노당 고위간부 “남북 합작” 증언 1949년 5월 20일 제헌국회의원 노일환 등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함에 따라 세상에 알려진 이른바 「국회 남로당 프락치 사건」을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접근한 경우도 없지않다.그러나 서울신문 특별취재팀이 입수한 새로운 자료들과 증언을 통해 이 사건 배후에는 남조선 노동당(남로당)뿐 아니라 북조선 노동당(북로당)까지 개입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미국 하버드대 옌친연구소에서 입수한 사찰요람에 따르면 당시 국회 부의장으로 프락치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된 김약수는 「이 사건의 배후 조정자」로 분류했다.이 문서는 그가 1947년 조선공화당을 조직,서기와 선전부장이라는 당직을 맡았던 사실도 들추어냈다.그리고 미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NARA)에서 발굴한 주한미군 정보처(G­2)의 주간정보보고서는 제헌국회 개원초기 이들이 들어가 있던 무소속구락부를 반우파적 집단으로 평가했다. 이어 주간정보보고서는 무소속구락부가 앞으로 좌익성향 구성원들의 집합처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미 군정의 예측은 어느 정도 적중되어 국회활동을 통해 미군철수 결의안을 긴급동의로 제출하는 등 북한의 주장을 동조하고 나섰다.국회 프락치 사건에연루한 이들은 주로 남로당의 지령을 받은 것으로 조사되어 모두 3차례에 걸쳐 13명이 붙잡혀 들어갔다. 그러나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만난 전 북로당 고위간부의 증언에서 북로당도 깊이 개입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확인했다.이 증언에 따르면 북로당원 성시백(김삼룡·이주하와 함께 6·25가 일어난 1950년 6월 27일 서울에서 처형되었음)이 관련되었다는 것이다.그러니까 남로당과 북로당의 공작이 횡적으로 들어갔는데 그에게 포섭된 인물은 황윤호(진양출신),김옥주(함양출신),강욱중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한국전쟁 당시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에 의해 감옥에서 풀려나왔다.
  • 중 반체제인사 집중감시… 긴장속 평온

    ◎내일 「천안문」 6돌… 북경표정/관료층 부패수사로 시민관심 분산유도/지원지 북경대는 외부인 출입통제 강화 천안문광장은 평화로웠다.상오에 비가 내린 2일에도 붐비는 관광객들과 연날리는 어린이들의 모습은 천안문광장을 평화롭게 보이게 했다.천안문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천안문과 인민대회당,역사박물관 건물꼭대기에도 오성홍기만이 한가로이 휘날리고 있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아무도 6년전 이곳에서 있었던 자유에의 함성과 탱크,그리고 젊은이들의 죽음을 기억하고 있지 않은듯 했다. 6·4천안문사건의 진원지 가운데 하나였던 북경대학도 교문에서 외부인 통제가 좀더 까다로워졌을 뿐이다.저녁무렵 교정은 학교부설 무도장과 가라오케를 오가는 학생들로 북적거렸고 캠퍼스 곳곳은 아베크족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천안문사건 6주년을 맞는 지금,당시 강경노선에 앞장섰던 고위 책임자들은 대부분 제2선으로 밀려났다.예외라면 북경일대에 계엄령을 선포했던 이붕 총리 정도.이붕 총리의 결정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인민해방군의 북경진입을 발표했던 당시 양상곤 국가주석은 이미 은퇴했고 강경진압의 중심축이었던 그의 동생 양백빙도 군부내 수족들이 잘리고 입지가 약화되는 타격을 입었다.시위대 진압에 직접 관여했던 북경군구사령관 주의빙과 정치위원 유진화도 「보상」대신 군복을 벗고 인민대표대회 대의원으로 밀려났다.현재 중국 군부는 당시 군의 북경진입과 시위진압을 반대했던 장성들이 장악하고 있다.총참모부장 장만년,국방부장 지호전등 현 군부의 실세들은 당시 군의 무력진압을 반대했던 장애평,서향전등 소위 「8 상장」들의 직계들이다. 강택민 정권은 올초부터 반부패 사정활동과 법제화작업을 가속화시키고 있다.온 국민의 공분과 불안요소가 되고 있는 관리들의 부패에 철퇴를 가하고 국민적인 지지를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중국정부는 지난달부터 반체제인사들에 대한 경계와 감시활동을 강화해왔다.등소평 사망이 임박해지고 있는 시점이어서 평안한 겉모습과는 달리 중국정부로서는 어느 때보다 바짝 긴장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그래서일부학자들의 정치범등에 대한 관용호소에도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고 있을 정도다.어쨌든 올 「6·4」6주년도 당국의 철통 같은 감시와 경계 때문에 큰 일없이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 광역의원·기초장후보/자민련 21명 추가발표

    자민련은 1일 기초단체장후보 8명과 광역의원후보 13명을 추가로 발표했다. ▷기초단체장후보◁ ◇서울 ▲송파구 윤소년(53·경실련불교시민연합대외협력위원장) ◇대구 ▲중구 원유영(52·한국인권옹호협회 대구시부지부장) ◇인천 ▲서구 문기현(62·구의회의장) ◇강원 ▲춘천시 김진협(61·강원택시조합부이사장) ◇충북 ▲충주시 정달영(51·전 제네바GATT회의 농민대표) ▲옥천군 박효근(52·옥천문화원장) ◇전북 ▲군산시 신동안(56·전 신민당위원장) ◇충남 ▲태안군 윤형상(65·충남도정자문위원) ▷광역의원후보◁ ◇서울 ▲광진구 제4 임동순(41·지구당부위원장) ▲노원구 제1 김인태(46·노원신문사발행인) ▲마포구 제2 박문자(54·전 민자당지구당 여성부장) 제4 채운석(55·구의원) ▲양천구 제6 유영렬(50·전 신정4·5동동장) ◇대구 ▲중구 제1 박흥식(57·한성가구백화점대표이사) ◇인천 ▲서구 제2 임원순(55·유진건설 이사) ◇충북 ▲청주시 제3 김춘식(38·대청개발 대표이사) ▲충주시 제1 김희복(60·지구당부위원장) 제3 윤병태(44·시의원) 제6 최선환(50·시의원) ▲음성군 제2 이재백(56·사단법인 전국농업기술자협회지회장) ▲제천시 제2 김두일(40·전 제천신문사사장)
  • 내각제 논의 주장/김대중씨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은 31일 내각제 개헌문제와 관련,『내년 총선에서는 권력구조문제가 제기될 것』이라며 『과거 내각제를 반대했던 사람중에도 내각제를 지지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아졌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는 만큼 민심을 한번쯤 다시 알아볼 만한 시기가 됐다』고 주장했다. 김 이사장은 이날 한 시사주간지와의 회견에서 『80년 서울의 봄 당시에도 이 문제가 제기됐으나 당시 헌법학자인 유진오 박사가 내각제와 대통령제는 둘다 민주주의 제도이므로 국민의 의사가 중요하다고 한 말씀을 매우 큰 교훈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선거가 끝나고 나면 이 문제가 국민들간에 초점으로 부각될 것』이라며 『그때 가서 모두가 생각해 보는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손 굳게잡은 노사/시화공단 「한마음대회」

    ◎1백50개업체 천5백명/임금협상 자율타결 다짐 『노·사는 더이상 둘이 아닙니다』 최대의 중소기업 단지인 경기도 반월·시화공단 입주업체들의 「서부공단 노사한마음 다짐결의 대회」가 27일 하오 경기도 안산지 서부지역 공업단지 관리공단 본부앞 광장에서 열렸다. 회사 단위의 노사화합 결의대회와는 달리 공업단지 입주 전체 업체가 참가한 노사결의 대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반월·시화공단의 1백50개 입주 업체 노사 1천5백여명이 참가한 이날 대회에서 근로자들은 『노사는 올해 임금교섭을 자율적으로 타결해 나가도록 노력하고 나아가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한다』고 결의했다. 사용자 대표는 『노사는 대등한 위치에서 대화를 더욱 활성화하고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해 노력한다』고 다짐했다. 또 한국노총 안산지부 유진헌 의장은 대회사를 통해 『노사가 과거의 적대관계에서 동반자적 관계로 변해가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며 『선진국입성이냐 낙오자가 되느냐를 가름하는 중대한 기로에서 상호신뢰만이 앞길을 밝힐 수 있다』고 성숙된 노사관계 정립을 역설했다. 진념 노동부장관은 취임후 처음으로 공개행사에 참석,『전국에서는 노사화합을 외치는 「노사불이」바람이 불고 있다』며 『근로자의 정당한 권리행사는 적극 보호하겠지만 법을 위반하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하여 국민생활에 위해를 가하는 행위는 엄중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대회의 마지막 순서로 마련된 「산업평화를 위한 노사화합 바구니」 터뜨리기 대회를 마친 이월영(36·동일제지 근로자)씨는 『한국통신 등 일부 국가 중추기업이 쟁의를 겪고 있는 가운데 열린 이날 노사대회는 근로자들의 건전한 노사관을 일깨워 주기에 충분했다』고 말했다.
  • 현대전자/미에 반도체공장 건설

    ◎정몽헌 회장/13억달러 투입… 세계최대 규모/64D램 97년 양산계획/국내엔 1기가D램 공장 추진 현대전자가 13억달러를 들여 미국에 세계 최대 규모의 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건설한다. 현대전자 정몽헌 회장은 23일 기자회견을 갖고 『현지법인인 HEA를 통해 오리건주 유진시의 25만평 부지에 8인치 웨이퍼 기준 매월 3만장 가공 용량의 64메가D램 반도체 공장을 지을 계획』이라고 밝혔다.국내 반도체 업체가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기는 현대전자가 처음이다. 정회장은 『HEA가 1백% 출자하며 오는 8월 공사에 들어가 97년 초까지 공장을 완공,그 해 3월부터 본격 양산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97년에 1억4천만달러,98년에 8억달러의 매출이 예상되며 본궤도에 이르는 99년부터는 연간 16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투자규모가 1조원에 달하는데 현대그룹에 대한 정부의 제재조치 해제와 관련이 있나.정부와 사전협의는. ▲기업의 판단에 따른 것일 뿐 정부와의 협의는 없었다.정부도 민간자율을 존중하고 있는만큼 투자 승인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일본의 경우를 보면 핵심기술은 국내에 두고 범용기술로 해외에 진출하는 것이 상례인데. ▲최신 공장인 것은 사실이나 국내에 2백56메가D램이나 1기가D램 메모리 생산공장 건설을 추진할 것이다.모든 생산기술과 디자인기술을 한 국가나 회사가 다할 수는 없다.장점을 결합해 최대한 활용한다는 측면이다. ­맥스터사를 비롯,AT&T사의 비메모리 사업부문,TV­COM사 인수 등 미국에 집중 투자하고 있는데. ▲이 분야의 기술을 선도하는 곳이고 시장도 가장 크다.현지 시장환경에 적합한 제품을 적시에 생산,공급하기 위해 미국을 택했다.주력사업으로 육성할 멀티미디어 사업에도 기술이 앞선 미국이 유리한 것으로 본다. ­자금조달은 문제가 없나. ▲오리건 주정부가 알선하는 인더스트리얼 리뷰 본드 발행을 통해 조달할 계획이다.국내외 금융기관이 컨소시엄을 구성하게 될 것이다.국내 은행도 참여해 주기를 희망한다. ◎세계최대시장에서 승부 포석/무역마찰 해소·재원조달 유리(해설) 현대전자의 미국 반도체공장 건설 발표를 정몽헌회장이 직접 나와 기자들에게 설명을 했다.이례적이다.현대전자가 이번 사업을 그만큼 중요시 한다는 반증이다. 최대시장인 북미시장을 현장생산으로 승부를 건다는 점에서 진출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관련 업계에서도 이에 긍정적인 반응이다.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시장상황이기 때문이다.삼성전자·LG반도체도 미국행을 준비하다 현대에 선수를 빼앗겼다. 반도체시장은 4메가 D램이 주류지만 97년에는 전체 시장의 10∼20%가 64메가 D램시장이 될 전망이다.현대전자의 미국공장건설은 일본을 제치고 우리업체가 반도체시장을 선점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8월말까지 후보지를 확정,부지매입 등 구체적인 건설작업에 들어가 97년 하반기에 본격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다.LG반도체도 해외사업팀에서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수립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반도체업체들이 미국 현지공장을 선호하는 것은 최대시장에서 무역마찰 없이 영업을 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현재 북미시장규모는 세계 반도체시장의 30∼40%선이다.또 대규모 투자에 따른 재원조달,국내고급인력 부족과 수도권에 공장용지가 없다는 점도 미국 공장건설을 서두르게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 러 원유 10만t 유출… 대규모 불/코미공 유진스크

    ◎70㏊ 오염… 강유입 차단 비상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러시아북부 코미자치공화국내 원유가 유출된 지역에서 화재가 발생,원유로 오염된 광범위한 지역이 불타고 있다고 미·호주의 원유제거작업반이 19일 밝혔다. 이 팀은 이번 화재가 원유제거작업을 위해 고의적으로 불을 지른 것은 아니라고 발표했으며 또 이타르 타스통신도 『코미자치공화국의 비상기획부측이 인근 강으로의 원유유입을 차단키 위해 잔여기름을 태우고 있다고 발표했으나 이러한 의도와는 반대로 화재가 오염지역밖으로 번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역은 지난해 송유관의 부식으로 원유유출사고가 발생한 후 기름을 저장하기 위한 댐과 둑이 건설된 유진스크마을 인근지역이다. 유출된 원유의 양은 1만4천t에서 30만t까지로 추정되고 있으며 러시아환경부는 9만∼12만t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는 지난 89년 알래스카에서 발생한 엑손 발데즈사 사고때의 3배에 달하는 양이다. 제거작업반인 「AES/하텍」측은 원유가 유출된 지역은 70㏊에 달하고 이중 10㏊가 불타고 있다고 목격자들의 말을 인용해 밝혔다.
  • 「일 트로바토레」·「안중근」·「무당」/오페라 3편 5월무대 장식

    ◎일 트로바토레/김동규씨 등 유명 성악가 출연/안중근/안의사 일생 그린 한·중 합작극/무당/이 출신 작곡가 메노티의 작품 싱그러운 5월 이채로운 오페라 3편이 음악팬들의 관심을 고조시키고 있다. 한국오페라단의 그랜드오페라「일 트로바토레」와 MBC 창작오페라「안중근」,국립오페라단의 「무당」이 그 작품들.앞의 두 작품은 남다른 의욕의 대작으로,국립오페라단의 「무당」은 이색적인 「소극장오페라 운동」으로 눈길을 끈다. 창단7년이란 길지않은 기간동안 화려한 대작들을 내놓아 오페라계의 눈길을 받아온 한국오페라단이 오는 27일부터 6월3일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이는 「일 트로바토레」는 베르디가 전성기에 작곡한 것.그의 작품중 가장 원숙한 경지에 이른 오페라로 평가된다. 이번 무대는 특히 2인1역의 더블캐스트가 주종을 이루는 국내여건에서 한 주역에 국내외 정상급 성악인 각 한명씩으로 구성,매 공연에서 이들의 진수를 맛보게 한다는 욕심을 내세우고 있다.주인공 루나백작역에 바리톤 김동규씨(라 스칼라 주역가수),만리코역에 테너 브루노 세바스치안(〃),레오노라역에 소프라노 카타리나 구드리아프첸코(볼쇼이 오페라극장의 프리마돈나),아주체나역에 메조소프라노 정영자씨가 출연한다.특히 루나백작역의 김씨는 지난91년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제31회 베르디콩쿠르에서 1등을 한 이래 라 스칼라 오페라 주역으로 활약하며 현지에서 베르디아노(베르디의 아리아를 가장 잘 부르는 성악가)로 불리고 있다. MBC가 광복50주년 기념으로 17일부터 21일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이는 창작오페라「안중근」은 안의사의 일생을 담은 한중합작오페라이다.고려오페라단(단장 김수길)이 6억원의 경비로 제작한 이 작품은 지난92년 중국 하얼빈에서 제작 공연된 중국작품을 극본가(하얼빈시 문화국장인 중국인 왕홍빈)와 작곡가(호남성의 가극원인 한국인 유진구)가 우리 정서에 맞게 개작하여 국내무대에 올리게 된 것으로 고려오페라단 김단장이 지난해 중국 하얼빈 여름음악제에서 접한뒤 국내에 들여왔다.안중근의사의 일생이 그랬듯 아름답고 슬프고 뜨거운 애국심을 전하는 아리아들이 무대를 애절히 장식한다.국립극장 오페라연출가 장수동씨 연출에 테너 박성원 박치원 류재광씨가 안중근역으로 트리플캐스팅됐다. 한편 「관객을 위한 오페라」란 이름아래 20∼25일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되는 오페라「무당」은 이탈리아 출신으로 미국 메트로폴리탄에서 성공을 거둔 현대작곡가 메노티의 1947년작이다.
  • IPI총회 15일 서울서/45개국서 5백여명 참석

    전세계 언론인의 최대회합체인 국제언론인협회(IPI) 제44차 연례총회가 15∼17일 서울에서 열린다. 1951년 설립돼 현재 89개 국가의 신문·방송·통신·잡지발행인 및 편집·보도간부 등 2천여명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IPI는 매년 전세계의 주요도시에서 총회를 개최해왔으며 우리나라에는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총회에는 데이비드 라벤돌 IPI회장(미국 타임스 미러그룹 총괄편집인)을 비롯,캐서린 그레이엄 워싱턴포스트 회장,유진 로버츠 뉴욕타임스 편집국장,피터 프레스톤 영국 가디언및 옵서버지 주필,월터 리히트버그 독일 DPA통신사사장 등과 제임스 베이커 전미국국무장관,하타 전일본총리,안드리스 반 아흐트 전네덜란드총리 등 모두 45개국에서 5백여명의 중진언론인과 정치인·학자 등이 참석한다.
  • 「영화 소재」 부각시킨 이색미술전

    ◎영화 「금홍아… 」 「카프카」 사진 이미지 변조/인물·배경 조작… 비디오아트로 재창조 영화적 소재와 이미지를 이용한 이색전시회가 열린다.태흥영화사와 녹색 갤러리가 오는 5월 30일부터 6월 19일까지 서울 서교동 녹색갤러리(323­4941)에서 「시네마 인 갤러리」행사를 갖는다. 영화탄생 1백주년과 미술의 해가 겹친 95년을 맞아 기획된 전시회로 미술이라는 시각적 매체를 통해 영화의 또다른 해석을 꾀해 보려는 것이 전시취지.국내 처음 영화와 미술을 조우시켜 꾸미는 이 전시회에는 김해민 배준성 한수정 이동기 허구영씨 등 미술가 5인이 시인 이상을 다룬 김유진 감독의 「금홍아 금홍아」와 체코의 소설가 카프카를 다룬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카프카」에서 얻은 영감을 그림과 비디오 아트로 꾸민 작품들을 전시하게 된다. 참여작가들은 영화나 TV를 통해 재구성된 이미지를 보여주는 「카프카」와 「금홍」의 초상화를 비롯해 「금홍아 금홍아」의 스틸장면에 「카프카」의 등장인물과 컬러 또는 배경 등을 끼워 넣거나 반대로 「카프카」의 스틸을 「금홍아 금홍아」의 이미지로 변조시킨 작품 등을 보여줄 계획이다. 또 영화가 주는 시각적인 감동이나 충격을 그림으로 나타내는 작품과 영화음악이나 영화속의 대사와 움직임을 상징하는 장치의 작품,그리고 「카프카」와 「금홍」의 이면에 존재하는 문학적 삶을 형상화한 「비디오 아트」,스크린 등 영화와 극장의 상징적 요소들을 집약한 작품도 소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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