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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죄판결
    2026-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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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관위 첫 재정신청 의미

    선관위가 26일 민주당 김영배(金令培)당선자와 자민련 이상현(李相賢)후보에 대해 서울고법에 재정신청을 냈다.16대 총선에서 선거법을 어긴 혐의로고발한 이들을 검찰이 기소하지 않자 직접 재판을 신청한 것이다. 선관위의 재정신청은 지난 2월 선거법이 개정된 뒤 처음 이뤄지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해 상대 정당이나 후보자만이 재정신청을 할 수 있었다.검찰이 증거 불충분 등을 들어 기소하지 않더라도 선관위는아무런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지난 15대 총선에서 검찰은 선관위가 고발한 80건 가운데 28건만 기소했다.그러나 검찰이 불기소처분한 후보 가운데 신한국당 홍준표(洪準杓)·이신행(李信行)의원이 상대후보의 재정신청으로 법정에 선 끝에 결국 유죄판결을 받아 의원직을 잃었다. 선관위의 이번 재정신청은 불법선거운동에 대한 단호한 척결의지를 내보인것으로 풀이된다.이는 16대 총선에서 선거법 위반혐의로 선관위가 검찰에 고발한 건수가 26일 현재 지난 15대 때의 3배를 넘는 248건에 이르는 데서도잘 나타난다.선거비용 실사 결과에 따라 고발 건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16대 총선 후보들의 선거행태에 대한 비난여론이 들끓고 있는 사회 분위기도 선관위의 등을 떼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선관위가 재정신청이라는 ‘칼’을 쥐게 됨에 따라 16대 총선 선거법 위반사범들은 더욱 마음을 놓을 수 없게 됐다. 진경호기자 jade@
  • [역사를 바꾼 정상회담] (5)브란트 슈토프 회담

    *70년 동·서독 정상회담. “직접 회담을 통해 양쪽의 심각한 견해차를 확인했다.에르푸르트는 시작일뿐이며 2차회담을 갖는 것 이상의 목표는 세우지 않았다” 1970년 3월19일 동독의 접경도시 에르푸르트에서 역사적인 동서독 정상회담을 가진 뒤 빌리 브란트 서독 수상이 서독으로 돌아와 가진 기자회견에서 던진 첫마디다.그는 이 자리에서 통일에 대한 환상없이 침착하게 긴장을 제거하고 협력의 가능성을 모색해 나가겠다며 ‘거짓된 희망’을 경고했다. 1945년 종전이후 25년만에 열린 정상회담은 긴장완화를 위한 대외적 여건변화를 동서독이 적극 활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1969년은 2차대전 종전후지속돼온 동서간 냉전구조에 처음으로 변화가 일어난 해였다.미국과 소련간전략무기감축조약(SALT I) 협상이 시작됐고 나토도 바르샤바조약기구에 상호균형감군협정을 제안했다.3월 동서화해를 추구해왔던 하이네만의 서독 대통령 취임,4월 서독의 ‘동독 국가승인’ 방침이 발표됐다.10월 ‘동방정책’을 제창한 빌리 브란트 총리의 사민당 연립정부가 출범했다.브란트 총리는취임연설에서 “서독 정부에 의한 동독의 국제법상 승인은 고려될 수 없지만독일에는 두개의 국가가 존재하며 둘은 외국이 아니라 특수한 관계에 있을뿐”이라고 밝혔다. ‘두개의 독일 인정 발언’은 동독을 소련의 위성국가로,‘비합법적’국가로 간주 동독을 승인하는 국가와는 외교관계 단절까지 불사하는 ‘할슈타인원칙’에 정면 배치되는 것이었다.야당은 즉각 반(反)통일노선,분단고착화,심지어 ‘매국행위’라며 비난했다.반면 동독은 두달 뒤인 12월 서독에 무력사용·위협 포기,외교관계 수립 등을 요구,정상회담의 계기를 마련했다. 브란트는 동독이 국제법상 승인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어떤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직접 동독총리를 만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 70년 1월 빌리 슈토프 동독총리 앞으로 정상회담을 제의하는 서한을 전달했다.슈토프도 이에 즉각 합의했다.양측은 곧바로 실무접촉에 들어갔고 4차례의 실무접촉과정에서의제가 아닌 회담장소가 최대의 난제로 떠올랐다.서독은 브란트 총리가 서베를린을 거쳐 동베를린으로 가길 원했고 동독은 서독 정상의 베를린 장벽통과라는 상징성 때문에 이를 거부했다.결국 제3의 장소인 동독의 에르푸르트로합의했다. 3월19일 브란트가 탄 기차가 에르푸르트 역에 도착했을 때 수많은 동독 국민들이 열광적으로 그를 환영했다.숙소인 ‘에르푸르트 호프 호텔’까지 몰려와 환호하는 군중앞에 나서 이들을 진정시키던 브란트의 모습을 지켜보는수행원들 눈엔 눈물이 고였다. 회담장 밖의 분위기와는 달리 회담장안은 냉랭했다.동독은 군비감축, 유엔동시가입,국제법상 동등한 관계수립 등 7개항을 요구했다.서독은 동·서독은서로 외국이 아니며 양측의 선린우호관계의 제도화를 위해 노력한다등 6개항을 제시했다.양쪽은 각자의 입장만 확인한 뒤 5월21일 서독의 카셀에서 2차회담을 재개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만 발표하고 헤어졌다.두달뒤 카셀 2차회담도 양쪽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1차때처럼공동성명도 발표하지 못했다. 가시적인 성과는 거두지 못했지만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쪽은 공존의 필요성을 공감했다.실무접촉은 계속 돼 기본조약이 체결된 72년 12월21일까지 70여차례나 열렸다.73년 9월 유엔동시가입,74년 3월 상호대표부개설로 이어졌다. 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90년 10월 통일때까지 양독은 9차례의 정상회담을 가졌다.‘조금씩 가까워짐으로써 변화를 촉발한다’는 브란트의 접근이 결실을 맺었다. 김균미기자 kmkim@. . *브란트 당시 서독총리. 인류평화·공존 철학속에 동방정책을 싹틔운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옛 동서독인을 막론하고 ‘통일의 아버지’로 불리운다. 1913년 12월18일 북부 독일의 소도시 뤼베크의 노동자 가정에서 소비조합여점원의 사생아로 태어났다.사회당원인 외할아버지를 ‘아빠’라 부르며 성장한 그는 17세때 독일사회민주당 당원이 돼 반나치 청년운동에 가담했다. 히틀러 집권후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자 노르웨이로 망명,종전때까지 그곳에서 활동했다. 49년 연방의회 베를린 시의원으로 독일 정계에 입문한 뒤 15년만인 64년 당수로 선출된다.69년 자민당과 제휴,전후 최초의 사민당 정권을 창출하고 총리에 올라 ‘동방정책’을 밀고 나갔다.동서독 정상회담 개최등 공로로 71년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보좌관이 동독 스파이로 밝혀지면서 74년 총리직에서 물러났다.87년 사민당 당수직 사임으로 정계에서 물러난 그는 사회주의인터내셔널(SI) 의장직을 6회 연임하면서 국제정의 실현과 인권신장에 앞장섰다.92년 10월8일 운명했다. *슈토프 당시 동독총리. 빌리 브란트의 상대였던 빌리 슈토프 동독 총리는 1989년 거세게 전개됐던반정부 시위에 밀려 사임할 때까지 에리히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 치하의 마지막 총리로 일했다. 1914년 7월9일 베를린 출생인 그는 벽돌공과 기술자,건축설계사 등으로 일했다.그는 동독의 내무·국방장관 등을 비롯해 공산당과 행정부에서 요직을두루 역임했다.70년 1차 정상회담직후 브란트 서독 총리로부터 ‘확고하고경직된 견해를 가진 정치가로 다루기 매우 어려운 회담 상대’로 불리웠다. 89년 10월18일 호네커 실각으로 함께 사임했다.사임하고 이틀 뒤 여행규제가 풀리면서 동독인들의 대탈출극이 벌어졌다.독일이 통일된지 1년만인 91년 60년대 베를린 장벽과 국경을 넘어 서독으로 탈출하는 동독민들에 대한 사살명령을 내린 것과 관련된 혐의로 구속됐다.92년 이와 관련 재판을 받고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석방됐다. 독일 정부는 99년 4월19일 그의 사망소식을 발표했다.사망 원인은 공표되지 않았다. 김균미기자
  • 신학철화백 “’모내기’ 유죄는 유엔규약 위반”

    10여년의 국가보안법위반 논란 끝에 지난해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모내기’의 화가 신학철씨가 4일 “유죄 판결은 유엔 인권규약에 위반된다”면서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소했다. 신씨는 유엔 인권이사회에 낸 개인 통보서에서 “모내기 그림에 대한 유죄판결은 한국이 비준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니고 있는 유엔인권규약(B규약) 19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상록기자 myzodan@
  • 팬암기 폭파 용의자 11년만에 재판

    1988년12월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폭발,승객과 승무원 259명과 지상에서 11명 등 27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팬암기 폭파사건의 용의자 2명에 대한 재판이 3일 사건 발생 11년5개월만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인근에 있는전 미공군기지 캠프 자이스트에서 막을 올렸다. 스코틀랜드 법에 따라 스코틀랜드 판사가 주재하는 이번 재판에는 모두 1년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그러나 ‘누가 팬암기 폭파를 계획·지시했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최대 의문에 대해서는 대답을 내놓지못할 것으로 보인다.용의자로 지명된 압델 바세트 알리 알-메그라히(48)와라멘 칼리파 피마(44) 두 리비아인이 유·무죄 여부만을 가리기 때문이다. 사건 당시 미국은 그해 7월3일 미 해군함 빈센스호가 이란 민항기를 전투기로 오인,미사일을 발사해 격추시킴으로써 290명의 사망자를 낸 사건에 대한보복으로 이란이 직접 테러를 저질렀거나 팔레스타인 테러조직에 팬암기 폭파를 청부한 것으로 추측했었다.그러나 사건현장에서 발견된 폭탄의 시한장치가 리비아 테러리스트들이 사용하는 것과 같다는 점 때문에 폭탄이 들어있던 가방이 처음 실린 몰타에 근무하던 이들 2명을 범인으로 지목하게 됐다.리비아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86년 미국이 트리폴리와 벵가지를 폭격한데 대한 보복으로 리비아가 팬암기를 폭파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오랜 조사기간에 걸쳐 1만5,000여명을 심문하고 18만여건의 증거를수집,유죄판결을 이끌어낼 자신이 있다는 검찰측 주장에도 불구하고 실제로이들 2명의 용의자가 유죄판결을 받을지는 확실치 않다.변호인측은 검찰측이유죄를 단정한 최대 증거로 꼽고 있는 폭탄의 시한장치가 사고 한참 뒤 현장에서 25㎞나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는 점을 들어 리비아에 죄를 씌우기위해 시한장치를 그곳에 갖다 놓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또 용의자 2명이리비아 정보요원이라는 증언도 미국에 망명한 리바아 전테러리스트가 한 것으로 신빙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게다가 지난 2월에는 주임검사가 재판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크다며 사퇴하기도 했다. 희생자 유가족들은 재판을 통해팬암기 폭파사건의 모든 진상이 밝혀지기를기대하고 있지만 이들의 기대가 충족될지는 분명치 않다.재판 참관을 위해암스테르담에 온 한 유가족은 “나는 진실과 정의가 구현되길 바란다.그러나솔직히 2개중 하나라도 이뤄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밝혔다.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용의자들은 “재판에서 모든 것이 밝혀져 7년간 리비아에 330억달러에 달하는 댓가를 치르게 한 제재 조치가 완전히 해제되기를기대한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 이번 재판은 지난달말 영국 외무부의 존 커 차관이 리비아를 방문,리비아와의 관계개선을 논의하고 미국도 리비아에 대한 여행금지 해제를 고려하는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때에 열린다. 유세진기자 yujin@
  • 공업용 미싱발언 김홍신의원 유죄판결

    한나라당 김홍신(金洪信) 의원의 ‘공업용 미싱발언’에 대해 유죄 판결이내려졌다. 서울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金大彙 부장판사)는 9일 지난 98년 6·4지방선거에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임창렬(林昌烈) 당시 경기지사 후보를 비방한 ‘공업용 미싱발언’으로 기소돼 징역 2년6월을 구형받은 한나라당 국회의원 김홍신(金洪信) 피고인에게 형법의 모욕죄와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위반(후보자 비방)죄를 적용,각각 벌금 100만원과 8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현행법상 선거법 위반으로는 벌금 100만원 이상,다른 죄로는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돼야 피선거권이 박탈되기 때문에 김 피고인의 피선거권은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김 피고인의 공업용 미싱발언은 정치적 비판의 한계를 넘어선 수준인데다,김 대통령이 개인자격으로 고소한 점도 인정되는 만큼유죄”라면서 “‘조강지처를 버리고 잘 된 사람이 없다’는 등 당시 임 경기지사 후보를 비방한 것도 공적 이익보다는 상대후보를 탈락시키려는 사적이익이 앞선 것으로 보여 후보자 비방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임 지사의 혼인신고 경위 발언에 대해 김 피고인이 허위라고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여 허위사실 유포죄 대신 후보자 비방죄를적용했다”면서 “임 지사가 피고인의 처벌을 원치 않아 명예훼손 부분에 대한 공소가 취소된 점과 피고인이 그동안 의정활동을 충실히 해온 점 등을 감안할 때 피선거권을 박탈할 정도까지의 양형은 부적절한 것으로 보여 벌금 80만원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김 피고인은 98년 5월 한나라당 정당연설회에 참석,김 대통령과 임 당시 경기지사 후보를 비방하는 ‘공업용 미싱 발언’을 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상록기자 myzodan@
  • [2000 美 대통령선거] 고어·부시 상대에 포문…대결 본격화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 대선후보 경선에서 앞서고 있는 민주당의 앨 고어 부통령과 공화당의 조지 W.부시 텍사스 주지사가 사실상 대선 후보로서대결을 시작했다. 두 후보는 7일 슈퍼 화요일의 예비선거에서 낙승을 전제,대통령선거 본선을 의식한 대결구도로 전략을 전환한 것이다. 두 후보의 전략수정은 예선을 벌이는 캘리포니아,뉴욕,오하이오 등 빅 3주는 물론 여타지역 여론조사결과 승리가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고어·부시 후보는 이에따라 지금까지는 언급을 자제하던 태도와는 달리 6일부터 공개적으로 서로를 향한 포문을 여는 한편 소속정당내 유권자가 아닌 미국 시민 전체의 대표자로서 면모를 과시하기 시작했다. 뉴욕 유세중인 고어 후보는 이날 루터 의료센터 방문에서 “부시 주지사는보편적인 의료보험제도에 대한 계획을 제시하는데 실패했다”면서“텍사스주의 경우 어린이 보험제도 수준이 전국에서 49번째이며 여성을 위한 제도의경우 50위로 꼴찌다”며 공박했다. 고어 후보의 이같은 언급은 여론조사 결과 미국시민의 제1 우선 관심사가보험제도로 나타나있기 때문이며,상호공격의 주제 역시 철저한 각본에 따른것임을 시사한다.고어는 또“지금까지 정치자금 개혁과 관련 3명의 후보자만 찬성했지만 부시는 반대했다”면서“여러분은 이제 누가 소프트 머니(정당기부금)금지에 반대하며 그 돈을 어디에 쓰는지 볼 것”이라고 공박했다. 일반인은 1,000달러로 제한돼있지만 정당기부금은 무제한으로 허용돼 소프트머니라 불리는 정치자금문제는 역시 미국내 정치혐오를 일으키는 제1 요인인 점을 고어가 십분 활용한 것이다. 먼저 공격을 당했지만 때가 왔다고 판단한 부시 진영도 고어진영을 향해 맞받아쳤다.“현재 정치자금 모집담당자가 유죄판결을 받고 불교사원에서 자금모집행사를 한 것은 쇼킹한 사건이다”고 고어의 아픈 곳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마리아 샤라는 아시아계 자금모집책이 지난 96년 대선과 관련,10만달러를헌금한 것이 최근 밝혀졌고,이에 대해 고어는 모른다고 발뺌했지만 최근 사원에서 자금모급행사를 한 것이 사진으로 언론에 공개돼 고어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이처럼 양대 정당 선두후보가 지금까지는 서로의 정당만을 거론하다 실명을 거론하며 공박하기 시작했으며 각주에서 진행되는 후보경선 예선은 이미 대선 본선으로 옮겨졌음을 의미한다. hay@
  • 사격장 ‘위험한 거래’

    사격장의 운영권이 멋대로 팔리는 등 관리에 구멍이 뚫렸다.사격장은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총기류를 다룬다는 점에서 다른 어느 곳보다 안전 관리가 요구된다.그러나 운영권 변경에 따른 부실한 관리로 대형 사고의 가능성도우려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방범지도과는 98년 7월 총포화약안전기술협회 이사장 김동호씨(64) 명의로 사격장 설치 허가를 내주었다. 그러나 김씨는 곧바로 코리아 슛팅클럽(대표 이수태)에 운영권을 넘겨줘 서울 서초동 1423에 사격장을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허가를 받은 사람은 김씨,운영권자는 이씨가 된 것이다.총포화약안전기술협회는 수익금 가운데 일부를 받는 조건으로 운영권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코리아 슛팅클럽의 실 소유주 김모씨(37)는 운영권을 넘겨받을 당시 대한사격연맹 김모국장에게 모처에 불법 로비를 하도록 한 것으로 전해졌다.김국장은 변호사법 위반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코리아 슛팅클럽 역시 송사에 휘말려 사격장을 가압류당할 처지가 되자 99년 3월 서초 사격장(대표 백석기)에 운영권을팔아넘겼다.같은 장소·시설에 간판과 운영권자만 다시 바뀐 것이다.매매 가격은 약 10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총기류를 다루는 사격장의 운영권이 이처럼 멋대로 사고 팔릴 수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코리아 슛팅클럽은 스포츠 인구의 저변확대 및 관광상품 개발,수렵용 총기소지자들에게 사고예방과 안전관리 교육을 한다는 취지 등으로 개장됐었다. 권총·라이플·공기총 사격장과 총기 격납고 및 실탄 저장소를 갖추고 있으며 최대 보관능력은 총기류 50정,실탄 50만발이다. 김경운기자 kkwoon@
  • ‘기억과 망각’ 獨·日 전후청산 차이점 비교

    2차대전후 독일과 일본은 여러가지로 유사한 길을 걸어왔다.패전과 전범처단을 위한 국제군사재판,황폐와 혼란속에서 이룬 경제부흥과 고도성장,그리고 경제대국에서 정치대국으로의 용틀임 등등.그러나 ‘과거사 극복’과 관련해서는 두 나라가 판이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 외신보도에 따르면 일본정부가 극우단체의 ‘난징대학살’ 부인 집회를 허가,중국과 외교분쟁이 우려된다는 것이다.같은 날짜 기사에서 독일정부는 나치 강제노역피해자 배상금으로 100억마르크(6조원) 규모의 기금마련을골자로 하는 법안을 승인한 것과 크게 대비된다.독일이 과거사를 ‘기억’하면서 반성해 왔다면,일본은 ‘망각’과 부인으로 전후 50년을 일관해 왔다. 이처럼 일본과 독일이 과거사 청산에서 양 극단의 행태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최근 나온 ‘기억과 망각’(다나카 히로시 외 지음,이규수 옮김)은이에 대해 명쾌한 대답을 내놓고 있다.이 책은 지난 92년 일본 도지샤(同志社)대학 인문과학연구소가 개최한 공개심포지엄 ‘과거 극복과 두 개의 전후-일본과 독일’의 발제와 토론을 정리,단행본으로 묶은 것으로 필자는 일본내의 양심적 지식인으로 꼽히는 인사들이다. 전후청산에 관한 일본과 독일의 극명한 차이점은 두 나라에서 행해진 전범재판에 뿌리를 두고 있다.나치전범을 재판한 뉴른베르크재판(1946.5∼48.11)은 전범 처단과정에서 ‘인도(人道)에 대한 죄’라는 새로운 국제법상의 개념을 도출,독일을 ‘반성의 길’로 유도했다.반면 도쿄재판(1946.5∼10)은최고 전쟁책임자인 일황을 면책하고 ‘생체실험’을 자행한 731부대를 면죄하면서도 군 위안부와 강제연행 등 비인도적 행위에 대해서는 거론조차 하지않았다. 도쿄재판을 주도한 미국은 일본의 침략전쟁 책임을 일본 육군수뇌부에게 돌리고 아시아권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억압하였다.일본은 미국의 지원하에 일황을 위시해 천황제를 지탱해낸 궁중그룹과 해군·관료·재벌을 살리기 위해모든 전쟁책임은 육군에 있다는 왜곡된 ‘역사상’을 조작, 육군을 희생시키면서 ‘자기보존’의 길을 택하였다. 독일(구서독)은 뉴른베르크재판 뿐만 아니라 자국의재판소를 통해 현재까지 9만여명의 나치 관계자들을 재판에 회부,7,000건 정도의 유죄판결을 내렸다.반면 일본은 도쿄재판 등 타자에 의한 재판 이외에 스스로에 대해 판결을내린 적이 없다. 독일은 52년 유태인 피해자에게 34억여 마르크를 배상한 것을 시작으로 인종·신앙·세계관 등에 구애없이 90년까지 총 864억여 마르크를 지불했다.그러나 일본은 자국민 중심으로 배상원칙을 세워 외국 국적자는 배상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다.일본군의 잔학행위는 주로 해외에서 자행되었기 때문에 일본인들의 대부분은 그 실상을 거의 모르고 있다. 지난 87년 독일의 저널리스트 랄프 졸타노는 ‘제2의 죄-독일인 됨의 부담’이란 책에서 “히틀러시대 독일인이 범한 죄가 ‘제1의 죄’라면,‘제2의죄’는 1945년 이후 ‘제1의 죄’를 심리적으로 억압하고 부정한 것을 말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일본은 ‘제2의 죄’는 커녕 ‘제1의 죄’조차 부인하고 있는 셈이다.삼인 펴냄 값 8,500원. 정운현기자 jwh59@
  • ‘총선 부적격자’ 164명 명단공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10일 현직 국회의원 등 4·13 총선 출마예상자 가운데 후보 부적격자 164명의 명단을 공개,정치권이 거세게 반발하는 등 파문이 일고 있다. 소속별로는 국민회의 50명(현역의원 35명),자민련 32명(현역 27명),한나라당 66명(현역 58명),무소속 16명 등 전·현직 국회의원과 출마 예상 공직자들이다. 경실련의 이같은 발표는 12일 100여개 시민단체가 참여해 발족할 예정인 ‘2000년 총선 시민연대’의 공천반대 및 낙선운동과 맞물려 선거법 위반 논란을 가열시킬 것으로 보인다. 경실련은 ▲80∼90년대 정경유착 관련 부패사건에 연루돼 유죄판결을 받은자 ▲5공 비리와 12·12사태,5·18 군사내란 관련자 ▲15대 국회활동 과정에서 개혁 입법에 반대했던 인사 ▲고스톱,호화외유,욕설·폭언 등 각종 추태를 일으킨 자 ▲지역감정을 조장했거나 근거없는 폭로로 정치불신을 심화시킨 자 ▲당적 이탈 및 부실한 의정활동을 한 의원 등을 부적격 기준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경실련은 “4·13 총선이 실질적인 정치개혁의 장이 되기위해서는 유권자들의 올바른 선택이 필수적”이라면서 “명단 발표는 특정 인사를 지지하거나 반대한다는 차원에서 작성된 것이 아니라 유권자들의 판단을 돕기 위해출마 예상자들의 부정적인 사실을 객관적으로 적시한 것”이라고 밝혔다. 경실련은 앞으로 인터넷과 언론을 통해 공천이나 출마가 부적격한 인사들의명단을 계속 공개해 나가는 한편 선거법 87조 폐지운동, 불법·탈법선거운동에 대한 철저한 감시활동 등을 펴나갈 계획이다.이와 함께 다음주에는 한국시민단체협의회 소속 단체들과 함께 ‘2000년 총선 바른선택을 위한 시민연대’를 구성,각 정당과 후보들의 정책을 평가·비교하는 등 각종 정책토론회를 개최한다는 계획이다. 경실련은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되기 전에 부적격 후보들의 근거 자료를 거리에 전시하고 ‘밀실 공천’으로 공천에 탈락한 사람들을 청구인단으로 모집해 공천과정의 위헌 여부를 묻는 헌법 소원도 내기로 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 [사설] 민주열사와 의문사

    정쟁에만 매달려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아오던 국회가 신통한 일을 해냈다.28일 국회 본회의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법’과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등을 통과시킨 것이다.‘민주열사들’에 관한 이 두 법률안의 국회 통과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가 국회의사당 앞에서 420일 동안 천막농성을 벌여온 사실에서 볼수 있듯 그동안 재야단체들의 끈질긴 투쟁과 평생 민주와 인권을 위해 투쟁해온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강한 입법의지가 만들어낸 산물이다.비록 보수세력의 완강한 저항으로 당초 법안 내용에서 일부 후퇴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폭압의 세기’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입법이 이뤄진 것은 다행한 일이다. 우리는 지난 97년 12월 헌정 50년사상 최초로 평화적인 여·야 정권교체를이룩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민주정부를 갖게 됐다.길고도 긴 세월에 걸친역대 군사정권의 압제에도 굴하지 않고 민족·민주세력은 나라의 민주화와겨레의 하나됨을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우리가 오늘날 이나마 자유와민주를 누릴 수 있게 된 것도 그 밑바탕에는 수많은 인사들이 민주·통일의제단에 피와 땀과 눈물을 바쳤기 때문이다.그 험난한 과정에서 많은 민주인사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그러므로 독재정권에 의해 일방적으로 ‘반국가 사범’ 또는 ‘극렬분자’로 매도당했던 민주인사들의 명예를 회복해주고 의문사의 진상을 규명해서 그희생자들의 넋을 달래주는 작업은 당연히 ‘살아남은 자들’의 의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열사들에 관한 이 두 법률의 제정 노력은 보수·기득권세력의 조직적인 저항과 맞서야만 했다.그러나 역사는 비록 더디긴 하되 앞으로 나아가는 것.마침내 민주열사에 관한 두 법률이 제정되기에 이른 것이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법’은 국무총리 산하에 설치되는 심의위의 결정에 따라 박정희 정권의 3선개헌 발의 시점인 69년 8월7일 이후권위주의적 통치에 저항하다가 사망·부상·행방불명이 됐거나,유죄판결·해직·학사징계를 받은 민주화운동 관련자와 유족들이 명예회복과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보상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들의 높은 뜻을 널리현창(顯彰)하는 국가적 사회적 노력도 있어야겠다.‘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은 대통령 산하의 진상규명위가 의문사 사건을 조사해서 위법사실이 있을경우 검찰에 고발하거나 수사의뢰를 요청하고,공권력의 위법한 행사로 사망했음이 인정되면 ‘민주화운동 관련자법’에 따른 보상심사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의문사 진상규명 노력에는 가해자들의 집요한 저항이 예상되는 만큼 국민들의 날카로운 감시가 요청된다.
  • ‘김대중 내란음모’재심사건 서울고법 형사 4·5부 배당

    지난 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과 관련,유죄판결을 받았던 피해자 25명이 지난 23일 서울고법에 낸 재심청구 사건이 24일 형사4부(재판장 朴國洙 부장판사)와 형사5부(재판장 李鍾贊 부장판사)에 배당됐다. 당시 신군부가 이들에게 적용한 혐의 중 내란음모 혐의부분은 형사5부가,계엄법 위반과 계엄법 위반 교사혐의는 형사4부가 재심을 맡게 된다. 이에 따라 법원은 다음주 초 관련 기록이 보관돼 있는 육군고등검찰부 기록보존계에 자료송부를 요청한 뒤 본격적인 기록검토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상록기자 myzodan@
  • ‘金大中내란음모’ 진실 가려달라

    지난 80년 전두환(全斗煥) 당시 보안사령관이 이끄는 신군부에 의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관련자로 몰려 유죄판결을 받았던 국민회의 이해찬(李海瓚)의원과 고 문익환(文益煥)목사의 부인 박용길(朴容吉)여사 등 25명이 23일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재심청구를 준비하기는 했지만 관련자 대부분이 재심을청구한 것은 처음이다. 이들의 대리인인 최재천(崔載千) 변호사는 “5·18 민주화운동특별법 제정과대법원 판결 등으로 5·18과 12·12사건이 헌정질서 파괴범죄로 규정된 만큼5·18에 맞섰던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관련자들의 행위에 대한 법률적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이유를 밝혔다. 죄목별로는 고 문목사의 부인 박여사와 이문영(李文永),예춘호,김상현(金相賢),송기원,설훈(薛勳),이해찬,이석표씨 등 9명이 내란음모,계엄법 위반,계엄법 위반 교사죄에 대해 재심을 청구했다.그러나 당시 사형을 선고받았던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빠졌다.김 대통령은 측근을 통해 “통치권자로서사법부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고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 서남동 변호사의 아들 서영수,한승헌(韓勝憲),이해동(李海東),한완상(韓完相)씨 등 10명은 계엄법 위반,계엄법 위반 교사죄에 대해,김 대통령의 동생 대현씨와 장남 홍일씨,김옥두씨,한화갑씨 등 6명은 계엄법 위반과 계엄법위반 방조죄에 대해 재심을 청구했다. 주병철기자 bcjoo@
  • 파업유도 관련 검사 ‘혐의 통보’ 안팎

    강원일(姜原一) 특별검사가 15일 조폐공사 파업 사태 당시 대전지검 검사들을 사법처리하는 대신 파업유도에 개입한 혐의를 대검찰청에 통보키로 한 것은 ‘허위 공문서 작성죄’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특검팀 내부의 토의결과에 따른 것이다. 특검팀은 현직 검사들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를 놓고 수차례 토론을 거쳤으나 “대전지검 검사들이 허위에 대한 인식이나 불순한 동기가 없었으므로 허위공문서 작성으로 보기는 힘들다”는 ‘현실론’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변 출신 이정한 변호사를 비롯해 김희수,박영훈 변호사 등은 “대전지검과 대검찰청이 조폐공사 파업유도에 개입한 듯한 인상을 주는 허위보고서를작성한 것이 사실인 만큼 어떤 방식으로든 관련자들을 처리해야 특검팀 수사가 공정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이에 반해 허용진 김진욱 변호사 등은 “보고서 작성 검사들을 허위공문서작성 혐의로 사법처리하는 것은 특검법상 특검팀의 수사범위를 벗어나는 것인데다 기소를 한다 해도 법리상 유죄판결을 받아내기 어렵다”며 ‘사법처리 불가론’으로 맞섰다. 특검팀은 결국 검찰 공안부가 파업사태에 개입하지 않았으면서도 마치 파업사태를 주도적으로 해결한 것처럼 각종 보고서를 작성한 데 대해 강도높은처벌이나 징계를 대검찰청에 요청키로 의견을 모았다. 특검팀의 한 관계자는 “검사들이 작성한 보고서들이 허위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무리한 기소를 피하자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었다”고말했다. 이종락기자 jrlee@
  • 프리 美FBI국장 문답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루이스 J.프리국장(49)은 9일 숨돌릴 틈 없는 바쁜 일정을 보냈다. 2박3일동안 머무는 프리국장의 공식 방한목적은 인터폴 서울총회 참석.그러나 이날 아침 인터폴 총회에서 간단한 연설을 한 뒤 예사롭지 않은 행보를보였다.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를 비롯,천용택(千容宅)국가정보원장,김정길(金正吉)법무부장관,박순용(朴舜用)검찰총장,김광식(金光植)경찰청장 등 한국의 주요 정부인사들과 잇따라 면담을 가졌다. 프리국장은 8일 밤 전용기편으로 들어와 하얏트호텔에서 서울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세계경찰’ 미국의 치안총수답게 경호원 10명,수행원 10명 등 모두 20명의 대규모 수행팀이 뒤따랐다. 다음은 경찰청에서 가진 내외신 합동기자간담회에서의 일문일답. ■한·미 범죄인 인도조약이 발효되면 이석희(李碩熙) 전 국세청 차장과 이석채(李錫采) 전 정보통신부장관 등 미국에 도피중인 범죄인 및 용의자를 인도할 용의가 있나. 한국의 요청이 있으면 미국의 법과 양국 조약에 따라서 체포하고 인도할 용의가 있다.미국 법무부가 심사,결정한 후 법원에 이양하는 등 미국 사법절차에 따라 결정할 것이다. ■국가기밀누설죄로 FBI에 체포,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은 ‘로버트 김’의 석방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한국 내에 일고 있는데. 미국 배심원의 판결에 따라 유죄 평결이 내려졌다.한국 내에서 동정여론이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지만 모든 증언과 증거에 의해 공정하게 판결이 내려졌다고 생각한다.유죄 판결의 근거는 고의적으로 법을 어기고 국가기밀을외부에 유출한 것이다. ■FBI 한국 지부의 설립과 및 시기는. FBI는 세계 37개국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FBI 한국 사무실 설치문제는 이미 미 의회와 법무장관의 승인을 얻은 사항이다. 노주석기자 joo@
  • [베를린 장벽 붕괴10돌] (중) 베를린市 축하행사 이모저모

    [베를린 남정호 김규환특파원] 베를린 장벽 28년.전세계를 가로지르고 있던 이데올로기적·정신적 분단의 벽을 육체의 벽으로까지 전이(轉移)시켰던 그 세기의 장벽은 마침내 허물어졌다.그리고 또 10년이 흘렀다.베를린시는 8일 그 제일의 주역중 한 사람인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에게 명예시민증을수여했다. 에버하르트 디프켄 베를린시장은 이날 명예시민증을 전달하는 자리에서 “베를린시가 어렵던 시절 영국과 프랑스 등과 함께 연합국의 일원으로 서베를린시의 자유를 지켜줬으며,전후(戰後) 베를린 세대에게 민주화와 문화를 꽃피우게 했고 안정된 생활을 보장해줬다”며 “부시 전 미 대통령에 대한 베를린 명예시민증 수여는 전체 미국시민들의 영예”라고 밝혔다.그는 “독일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장벽 붕괴에 따른 동서베를린 통합에 공로가 큰 부시 전 미 대통령은 오늘부터 베를린 시민”이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베를린 명예시민증을 받은 사람은 모두 108명.지난 1826년 콘라드 리벡이 첫번째 명예시민이 된 이후,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콘라드아데나워·빌리 브란트·헬무트 콜 전 총리,리처드 폰 바이츠제커·로만 헤어초크 전 대통령 등도 포함됐다.부시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등 미국인으로서는 다섯번째이다. ●지난 89년 11월4일 100만명의 동베를린 시민이 모여 민주화와 서독으로의여행자유화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던 알렉산더 광장에는 장벽 붕괴 10주년을맞아 시민들이 자신의 감회를 적어 붙이는 게시판이 등장,시민 및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 게시판에는 ‘동독 인민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사회·정치적 변화를 일궈냈다.행운이 있기를’‘베를린 장벽 붕괴는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다’‘고르바초프 전 소련대통령과 콜 전 총리에게 감사한다’는 등 각양각색의 문구가나붙어 이채를 띠기도.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독일통일이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옛 동독인들(90%)이 서독인들(83%)보다 통일에 대해 더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독일 은행협회가 최근 베를린 장벽 붕괴 10주년을 맞아 조사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인의 85%가 ‘옳은 결정’이라고 응답.한편 옛동독인들은통일 자체에 대해서 긍정적인 견해와는 달리,그들중 70%가 아직까지 ‘2등국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옛 서독인들에 대한 심리적 열등감을 표출하기도. ●베를린 장벽붕괴 10주년을 맞아 옛동독 정권에 관련돼 유죄판결을 받은 동독 마지막 서기장 출신 에곤 크렌츠,동독의 비밀경찰 조직 슈타지 첩보실장출신의 마르쿠스 볼프 등의 사면을 놓고 베를린 정가에서 설왕설래. 로타르 드 메지에르 기민당 부당수는 이날 “새천년을 맞는 만큼 20세기의잘못은 묻어줘야 한다”며 이들의 사면을 건의.이에 대해 헬무트 콜 전 총리는 과거 잘못은 심판을 받아야 한다며 “사면은 시기상조”라고 일축. ●독일 언론은 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 붕괴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3인 주역들의 회고담을 게재해 눈길.콜 전 총리는 베를린 장벽 붕괴사건을 확인하는 순간 마치 다른 행성에 있는 것처럼 느꼈다고 회고했다. 부시 전 미 대통령은 미국이 잘못 움직이면 소련의 군사개입을 유도할 수있어 자제했다고 회상.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동독 친구들이 국민들에게적대 조치를 취하지 않고 국민들의 의지를 수용한 것은 매우 올바른 결정이라고 격려했다고 반추. khkim@ *당시 駐서독美대사 회고기 1989년 서독주재 마지막 미국대사로 부임해 베를린 장벽 와해와 독일통일을 지켜본 버넌 월터스대사가 8일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에 당시를 회고하는기고를 실었다.그의 기고문 ‘내가 목격한 혁명’을 요약한다. 89년 1월 조지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주독일 대사로 임명받았을 때 나는 이미 72세였다.고령을 이유로 사양했으나 부시대통령은 “독일에서 지금 중대한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당신같은 노련한 외교관이 가야 한다”고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 예감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소련과 동유럽에서는 변화의 조짐이 드러나고 있었다.폴란드에서는 레흐 바웬사가 대통령에 당선됐고,소련은아프가니스탄에서 무조건 철수를 결정했다.그해 4월 22일 독일에 부임했을때 독일통일이 임박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나는 부임 첫 회의때대사관 직원들에게 내가 대사로 있는 동안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공언했다.독일 정부관리들을 만나서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아무도 내 말을 믿으려들지 않았다.헬무트 콜총리만 예외였다.콜총리는 “내가 바라는 것도 바로그것이며 우리도 그걸 위해 노력중”이라고 화답했다. 헤럴드 트리뷴지는 나의 발언을 반박하며 머릿기사로 “지금은 무분별한 독일통일 논란을 벌일 때가 아니다”고 썼다.그러나 동유럽의 변화는 폭풍처럼 밀어닥치기 시작했다.수천명의 동독 난민들이 폴란드,체코,헝가리,오스트리아로 밀려들어갔다.라이프치히 등 동독 도시들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 숫자가 점점 더 불어났다. 그 무렵 어느날 나는 운터덴린덴가에 있는 동독주재 소련대사 관저에서 그대사와 오찬을 했다.그는 “베를린장벽은 앞으로 100년은 끄떡없이 그대로있을 것”이라고 호언했다.나는 그것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반박했다.소련은 당시 3,900억달러에 달하는 국방비 부담에 짓눌려 더이상 미국과 경쟁할 여력이 없었다.동독의 시위대는 점점 더 과격해졌다.서독 국기가 시위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마침내꼭 10년 전인 89년 11월9일 밤.본에 있던 나는 베를린 미국대표부로부터 전화보고를 받았다. 장벽 검문소 한곳이 열려 동독 주민들이 물밀듯이 밀려나온다는 보고였다.다른 검문소들에도 주민들이몰려들고 있다고 했다.나는 곧장 베를린으로 달려가고 싶었다.하지만 소련의 반응이 어떨지 알수 없었다.소련이 무력진압에 나설 경우에 대비해 나는 독일정부가 있는 본에 남아있기로 했다. 24시간 뒤 나는 베를린으로 가 헬기로 도시를 한바퀴 돌아보았다.서베를린으로 통하는 도로마다 자동차와 인파로 가득찼다.동독국가의 한 구절인 “하나인 우리의 조국 독일”이라는 외침이 거리마다 울려퍼졌다.그날밤 베를린상점들은 문을 닫지 않았다.동베를린 주민들은 상점진열장에 쌓인 오렌지,바나나 같은 과일들을 신기한듯 바라보았다.소련으로부터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수천명의 주민들이 망치를 들고 장벽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독일통일을 예상했지만 이렇게 빨리 공산체제가 무너지리라고는 예상못했다.압제와 자유의 오랜 싸움은 이렇게 끝났다.자유가 승리한 것이다. 정리 이기동기자 yeekd@ * 당시 東獨지도자들 근황[베를린 김규환특파원] 베를린 장벽 붕괴 10주년을 맞아 장벽이 무너질 당시 동독 지도자들의 근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베를린 장벽 붕괴 직전인 지난 89년 10월 에리히 호네커 공산당 서기장 체제가 와해되면서 권좌에서 함께 물러난 20명의 옛 동독 공산당인 사회주의 통일당(SED) 정치국원중 11명은 아직 생존해 있다. 이들 생존자 대부분은 은퇴한 뒤 베를린에서 칩거하고 있으나,89년 호네커후임에 선출된 에곤 크렌츠 공산당서기장(62)과 귄터 샤보프스키 전 동베를린 SED 지구당위원장(70)만이 가끔 인구에 회자(膾炙)되고 있다.이 두 사람은 동서독 국경 탈출자들에 대한 사살명령을 내렸다는 혐의로 지난달 27일부터 연방대법원에서의 상고심이 열린데 이어,8일 결심 공판이 열리기 때문이다. 89년 10월10일 실각한 호네커는 90년 1월 구속됐다가 풀려난 뒤 모스크바 도망중 베를린으로 송환돼 동서독 국경 탈출자에 대해 사살명령을 내린혐의로 구속됐다.이후 암투병을 이유로 93년 1월 석방돼 칠레로 망명했으나이듬해 5월 그곳에서 사망했다.옛 동독 총리를 역임한 한스 모드로프(71)는장벽 붕괴 뒤인 90년 실시된 총선에서 메클린부르크-포어포메른주에서 당선돼 연방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다.그러나 거짓 증언 등을 이유로 연방하원 의원직을 박탈당한 뒤 칩거하고 있다. 동독의 비밀경찰조직인 슈타지(국가보위부) 첩보실장 출신인 마르쿠스 볼프(76)는 첩보활동을 한 죄로 재판에 회부됐으나 자신의 과거 행적에 대해 일체 함구하고 있다.비공산당원 출신으로 90년 3월부터 동서독 통일이 이뤄진그해 10월3일까지 동독의 마지막 총리를 지낸 로타르 드 메지에르는 기민당부당수로 아직까지 정계와 연을 맺고 있다.호네커의 후계자로 선출된 크렌츠는 장벽 붕괴 이후 TV 토크쇼에 출연,생계를 이어왔다.특히 91년 ‘장벽이무너진다면’이라는 책을 펴내 2만마르크의 인세를 받은데 이어 신문에 장벽붕괴 당시의 상황을 시리즈로 게재,10만마르크를 벌기도 했다.91년부터 금융중개업에 뛰어들어 매달 5,000마르크를 벌고 있다. 97년 베를린지방법원에서 동서독 국경탈출자에 대한 사살명령 혐의로 6년6개월형을 받아 한때 구속되기도 했다.그는 상고심에서 ‘냉전체제의 희생물’이라고 강변하고 있다.샤보프스키는 97년 크렌츠와 같은 혐의로 기소돼 베를린 지방법원에서 3년형을 선고받았으며 현재 상고심이 열리고 있다.
  • [사설] 고위공직자 병역면제 많다

    병역의 의무는 납세·교육 의무와 함께 국가 기틀을 유지하는 국민 3대의무중 하나이나 29일 사상 처음으로 공개된 고위공직자와 직계비속 병역사항은이들이 국민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치 않았음을 말해준다.신성한 국토방위 임무수행에 앞장서 모범을 보여야 할 많은 고위층 인사들이 예측했던 대로 말과 처신이 다른 이중성을 보여 실망감을 느끼게 한다. 병무청 발표에 따르면 병역사항이 공개된 1만2,674명 가운데 병역면제자가1,712명으로 평균 13.5%이나 국회의원(28.2%),장·차관(23.6%),1급 공무원(21.8%) 등 이른바 파워에리트층이 평균치의 2배에 이르고 있어 인위적 면제의개연성이 높음을 알 수 있다. 고위 공직자 10명중 3명꼴로 현역복무를 하지않은 셈이며 이들의 자녀 군면제 비율도 다른 하위공직자 자녀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은 병역비리와 연계돼 있음을 짐작케 한다. 특히 일반인들의 병역면제 사유가 주로 저학력과 유죄판결에 따른 복역,고아,생계곤란 등인데 비해 고위공직자와 자녀의 경우 질병이 53.8%로 나타나이들중 상당수는 병을핑계삼아 고의로 병역을 면제받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고위공직자 가정의 경우 일반인에 비해 학력수준이 높고영양상태도 양호한 데다 병원 이용도가 높은데도 불구하고 이들의 질병으로인한 병역면제가 훨씬 많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우리는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병역실명제가 국민적 요구로 건국 이후 처음으로 시행된 것을 환영한다.그동안 많은 제도개선을 통해 병무비리를 척결하려 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해 이번에 병역사항을 관보에 게재하고공개하기에 이른 것이다.고위공직자들의 병역면제율이 높고 많은 비리의혹이제기된 만큼 이를 바로잡는 후속조치가 필요하다. 면제사유가 불분명한 경우철저한 수사를 통해 병무비리를 끝까지 추적하는 당국의 강한 의지가 뒤따라야 하겠다. 병역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분위기 확산을 위해서는 고위공직자뿐만 아니라다른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동참이 요구된다.이 기회에 사회지도층과 자녀들의 병역상황도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이 강구돼야 하겠다.국민 모두가 국방의의무를 당연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기 위해서는 고위공직자를 비롯한 사회지도층이 앞장서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그래야만 진정한 국민 개병(皆兵)제도가 우리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다.
  • [사설] 얼굴 드러낸‘고문기술자’

    11년 동안 도피생활을 해오던 ‘고문기술자’ 이근안(李根安·61)씨가 28일밤 검찰에 자수했다. 텔레비전에 비친 이씨의 모습은 80년대 치안본부 서울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온갖 고문기술로 악명을 떨치던 때의 핏발선 눈,우람한체격의 그 ‘반달곰’이 아니라 초췌한 몰골의 한 노인이었다. ‘반달곰’ 이씨는 85년 9월 당시 민주화청년연합 의장이던 김근태(金槿泰·현 국민회의부총재)씨를 고문한 혐의로 88년 12월 ‘성명 미상’으로 수배됐다.‘반달곰’ 또는 ‘얼굴없는 고문기술자’의 정체가 경기도경 대공분실장 ‘이근안 경감’으로 밝혀지자 그는 즉각 잠적해 버렸다.이씨의 사진이공개되면서 그에게서 고문을 당했다는 피해자들이 줄을 이었고,87년 간첩혐의로 이씨에게 고문을 당한 납북 어부 김성학(金聲鶴)씨도 그중 한 사람이다.김씨는 자신에게 고문을 가한 이씨와 고문경찰관들을 상대로 재정신청을 냈고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졌다.김씨는 고문경찰관들을 법정에 세워 이들에 대한 유죄판결을 받아 냈다.잠적중이라 법정에 나오지 않은 이씨에 대해서는재판시효가 2013년으로 연장됐다. 그동안 이씨의 행적을 놓고 ‘자살설’‘성형수술설’‘해외밀항설’ 등 온갖 소문이 나돌았다.당연히 국민들은 “당국이 이씨를 못잡는 것이냐,일부러안잡는 것이냐”는 의혹을 제기했다.그래서 재야단체가 이씨 체포를 위해 발벗고 나서기도 했다.이제 이씨가 자수를 하고 나온 마당이다.이씨는 잠적 후한동안은 동료들이 보내준 자금으로 도피생활을 했으나 한계를 느껴 집에 ‘잠입’한 뒤 전셋집으로 이사를 다니며 줄곧 집안에서 ‘은신생활’을 했다고 한다.그럼에도 수사기관은 한 달에 몇 번씩 이씨의 가족을 만나 이씨의소재를 묻는 형식적인 수사를 하는 데 그쳤다고 한다. 결국 이씨를 못잡은게아니라 ‘안잡았던 것’이다. 검찰은 그동안 이씨의 도피행적을 샅샅이 추적해 직무유기를 한 수사기관은 물론 조직적으로 이씨를 도운 세력이 있다면 그들 또한 엄벌해야 한다. 이씨는 ‘김성학씨 고문 사건’과 관련해 동료 경찰관들의 형량이 비교적가벼운 것을 보고 자수를 결심했다고 한다.노년기에 접어든 이씨로서는앞으로 14년이나 더 ‘은신생활’을 계속하는 게 벅찰 수도 있을 것이다.그는 또고문 피해자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진심으로 참회하고 있다”고 했다.그도사람인지라 어찌 참회가 없겠는가. 그럼에도 이씨는 죄값을 치러야 한다. 다시는 ‘고문기술자’가 이 땅에 발을 못 붙이게 하기 위해서다.고문은 ‘공포’와 ‘모멸감’을 통해 인간성을 짓밟는 잔인한 법죄다.이근안씨에 대한엄정한 사법처리가 ‘고문없는 나라’를 만들어 나가는 큰 계기가 됐으면 한다.
  • 金대통령, 탄생100주년 기념미사 참석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27일 서울 혜화동성당에서 열린 운석(雲石) 장면(張勉)박사 탄생 100주년 기념미사에서 고인에게 최고의 훈장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고 뜻을 기렸다.고 장면박사가 역사에 새롭게 자리매김한것이다. 김대통령은 훈장을 추서하면서 “장박사는 군사 쿠데타 세력의 세뇌작업으로 오랫동안 부당한 평가를 받았다”면서 “장박사의 위대함은 역사에 영원히 빛날 것”이라고 추모했다. 김대통령은 추모사에서 “젊었을 때는 영예와 찬사를 받다가 사후에 엄중한 심판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생존 당시에는 비판받던 사람이 사후에 평가를 받는 경우도 있다”면서 “의인은 불멸”이라고 강조했다.이어 “5·16을 한 사람들은 ‘장면정권이 너무 유약하다.약한 정권이다.나라를 지탱할수 없다’는 식으로 쿠데타를 정당화했다”고 지적한 뒤 “내가 옆에서 본 장총리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실례로 민주주주의에 대한 강한 신념과 실천의지,민주적 경선을 통한 총리 당선,지방자치 실시,소급입법 반대,야당인사를 포함한 연립내각 구성 등을 적시했다. 김대통령은 그러면서 “고 박순천(朴順天)여사가 지적했듯이 장면정권 출범 한달도 안돼 쿠데타세력이 충무로에서 정권전복을 모의한 사실이 5·16 혁명사에 들어있다”고 전하고 “한달도 안된 상태에서 어떻게 부패와 무능을알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또 “무능한 정권이라면 어떻게 지방자치와 나라경제 바로잡기 5개년 계획을 추진할 수 있었겠느냐”고 되물었다.“당시신문은 장면정권이 부패했다고 보도했으나 재판결과 출장중 헌 냉장고를 받은 장관만 유죄판결을 받고,모두 무죄로 풀려났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김대통령은 “장면박사는 위대한 인격과 경륜을 가진 정치인으로서 건국의공로자”라며 “역사에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지도자”라고 말했다.“한국의대통령으로서 훌륭한 지도자가 오랫동안 부당한 평가와 누명을 받던 것을 벗기고 건국의 어른으로 훈장을 수여하게 돼 기쁘다”고 추모사를 맺었다. 김수환(金壽煥)추기경은 강론을 통해 “장박사를 복자나 성인으로 올리는운동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고인을 기렸다. 장박사의 아들 장익(張益)주교가 집전한 이날 미사에는 1,000여명의 교인들과 국민회의 김상현(金相賢)·이길재(李吉載),자민련 한영수(韓英洙),한나라당 한승수(韓昇洙)의원 등이 참석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사설] 8·15특사 대화합 계기로

    정부는 8·15 광복절을 맞아 시국·공안·노동 관련 사범과 모범 수형자 등 2,864명에 대해 특별사면·복권 및 가석방을 15일자로 단행한다.이번 조치로 1,742명은 형이 확정되는 대로 석방되고 7명은 감형되며,시국·공안 및노동사건 관련 유죄판결로 공민권이 제한됐던 1,112명은 복권된다. 이번 8·15 특사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20세기와 21세기를 잇는 가교시대의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새로운 천년을 앞두고 용서와 화해를 통해 새로운 출발을 기약하고,온 국민이 대화합의 토대 위에서 국가발전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정치철학이 그 바탕을 이루는 것으로 보인다.우리의 이러한 판단은 이번 특사의 몇가지 특징에 근거를 두고 있다. 우선 들 수 있는 게 공안·노동 관련 사범들에 대한 대폭적인 관용 조처다. 이번 특사에는 그동안 국내외 인권단체들이 지속적으로 석방을 탄원해왔던장기수들이 대거 포함됐다.단병호(段炳浩)전 금속연맹위원장,‘구국전위’사건의 안재구(安在求)씨와 유낙진씨,‘중부지역당사건’의 최호경씨,문상기전 인천제철위원장 등 공안·노동사범 56명이 풀려나고 고정간첩 심정웅씨등 2명이 감형된다.특히 이번 특사에서는 그동안의 세 차례 특사와는 달리준법서약서를 쓰지 않은 공안사범 중 형기의 50% 이상을 복역한 49명도 형집행정지로 석방된다.다음으로 이미 처벌을 받은 공안사범들에 대한 대대적인사면·복권을 들 수 있다.민주개혁국민연합 상임의장 이창복씨 등 현 정권출범 이전에 처벌받은 공안사범 731명이 복권되고,현 정부 출범 이후의 공안사범 230명은 사면·복권된다. 정부의 이같은 관용 조처는 지난 시대의 이념적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적 대화합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결단이자,이제는 대한민국의 체제가 공고화됐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도 읽혀진다.따라서 국민은 이번 특별사면·복권의은전(恩典)을 입은 이들이 김 대통령의 깊은 뜻에 부응해서 국가발전에 나름대로 기여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번 특사와 관련해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사안이 바로 김현철(金賢哲)씨 문제다.김 대통령은 국민의 90%가 김씨에 대한 어떤 사면도 ‘절대불가’라고 반대하고 있음에도 김씨의 잔형을 면제해주었다.그 결과 재야 법조계와 시민단체들이 크게 반발,헌법소원과 ‘사면권 제한 입법운동’까지거론하고 나서는 상황이다. 김씨는 이같은 국민정서를 명심하고 벌금과 추징금을 납부하는 것은 물론 반성하고 근신하는 자세를 보임으로써 김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어야한다.모처럼 마련된 국민 대화합의 계기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 그렇다.
  • 8·15 사면-복권 2,864명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8·15 광복절 특사때 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의차남 현철(賢哲)씨를 포함,2,864명에 대해 사면·복권을 단행하기로 했다고박준영(朴晙瑩) 청와대 대변인이 12일 발표했다. 현철씨의 사면은 남은 1년6개월의 형 집행만 면제하는 ‘부분 사면’으로벌금 10억5,000만원과 추징금 5억2,400만원을 내야 하며,복권대상에서도 제외돼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사면 대상자 가운데 1,742명은 형 확정후 복역중 석방되며,7명은 감형됐다. 또 공안 및 노동관련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아 공민권이 제한된 1,112명은복권된다.한보비리 사건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김우석(金佑錫)·황병태(黃秉泰) 전의원도 사면대상에 포함됐으며,지방선거 관련 금품수수 혐의로 공민권이 제한된 김병오(金炳午) 전의원은 복권됐다. 청구 등 권력형 비리로 구속된 홍인길(洪仁吉) 전의원은 재판에 계류중이어서 제외됐다. 김대통령은 이날 오전 김중권(金重權) 비서실장으로부터 법무부 건의안을포함한 각계 의견을 보고받고 이같이 사면·복권안을 최종 결정했다.정부는13일 오전 김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이같은 내용의 사면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이번 사면·복권조치로 국민의 정부 출범 이전 유죄판결을 받은 공안사범가운데 개전의 정이 현저하거나 형기의 50% 이상을 복역한 56명이 석방되고2명이 감형되며,공민권이 제한된 731명은 복권된다. 양승현기자 yangb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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