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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권도장서 숨진 5살 유족 “관장, 태권도장 급매로 내놨다” 울분

    태권도장서 숨진 5살 유족 “관장, 태권도장 급매로 내놨다” 울분

    경기 양주시의 한 태권도장에서 매트에 거꾸로 갇혀 의식 불명에 빠졌었던 5살 어린이가 안타깝게도 숨진 가운데 해당 아동의 유족이 가해자인 태권도장 관장 A씨가 사건 다음날 합의부터 요구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25일 피해 아동 B군의 삼촌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A씨가) 지금 하는 행동과 말하는 것들은 전부 다 자기 형량 때문에 나오는 발언”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12일 오후 7시 20분쯤 양주시 덕계동의 한 태권도장에서 관장 A씨가 매트를 말아놓고 그 사이에 B군을 거꾸로 넣은 채 20분 이상 방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A씨는 매트 사이에 넣은 B군이 숨을 쉬지 않는 것을 발견하자 같은 건물 아래층에 있는 병원으로 B군을 옮겼다. 하지만 의사의 심폐소생술(CPR)에도 B군은 회복되지 않았고, 병원에서 119에 신고했다. 119 소방대원 출동 당시 B군은 피부와 점막이 푸르스름한 색을 나타내는 청색증을 보이며 호흡과 맥박이 없던 상태였다. 구조대원은 CPR을 하며 B군을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이송했지만 의식 불명 11일 만에 끝내 숨졌다. A씨는 경찰조사에서 “장난으로 그랬다. 고의성이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검찰로 넘겨지기 전 의정부경찰서 앞에서 A씨는 학대 혐의 등에 대한 취재진 질문에 울먹이며 “아닙니다. 너무 예뻐하는 아이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B군의 삼촌은 “나중에 듣고 보니까 (A씨 말에) 경찰 관계자들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며 “진술할 때는 그런 내용이 없었는데 누군가가 촬영을 하고 이게 TV에 나간다고 판단을 한 건지 모르겠다. A씨 변호사가 의뢰한 걸 수도 있겠다. 가장 예뻐했던 아이라는 표현을 그때 처음 했다더라”고 설명했다. B군의 삼촌은 “지금 하는 행동 그리고 말하는 것들, 조사 단계에서 나왔던 얘기들이 저희가 듣는 얘기랑은 다르다. 전부 다 자기 형량 때문에 나오는 발언이라고밖에 파악이 안 된다”고 말했다. 또 B군의 삼촌은 A씨가 사건 다음 날 합의 이야기부터 꺼냈다고 했다. 그는 “사건 발생 다음 날 아이를 큰 병원으로 옮긴 후에 동생(B군의 어머니)이 의정부 북부청으로 간 것 같다”며 “그때 동생이 관장을 한번 보게 해달라고 했다더라. 나중에 동생한테 왜 만났냐고 물어보니까 아이가 지금 병원에서 치료받는 사진을 보여주려고 갔다더라. 그런데 그 자리에서 합의 얘기를 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사과를 받았는지 묻자 B군의 삼촌은 “아이가 119를 타고 의정부 병원으로 갔을 때 그때 무릎을 꿇었다는 얘기가 있다”며 “모든 걸 다 형량을 계산하고 움직이는 게 아닌가 싶다. 그 이후로 그 관장의 가족들이 저희를 찾아오거나 사과를 한 어떤 정황도 없다”고 토로했다. 특히 B군 삼촌은 관장이 사건 이후 태권도장을 보증금을 올려 급매로 내놨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태권도장을 내놨다. 선전 멘트에 ‘관원 250명’이라고 써놨더라. 그러면서 보증금을 2000(만원) 정도를 올려서 급매로 내놨다고 한다”며 “이것만 봐도 (아이들을) 교육의 대상으로 생각을 한 게 아니고 다 돈으로밖에 안 봤다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B군 삼촌은 ‘조카의 어떤 모습이 제일 떠오르냐’는 질문에 “‘삼촌’하고 저한테 안겼으니까 그 모습이 제일 많이 떠오른다. (나를) 보면 웃으면서 뛰어왔었다. 안기려고”라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A씨를 아동학대 중상해 혐의로 구속 수사해 지난 19일 송치했다. B군이 사망함에 따라 A씨에게 적용되는 혐의도 아동학대 치사 등으로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 학전 들러 작별 인사… ‘아침이슬’ 듣고 떠났다

    학전 들러 작별 인사… ‘아침이슬’ 듣고 떠났다

    33년 이끌며 예술 인재 배출한 곳 설경구·황정민·이적 등 지인 모여추모객들 ‘아침이슬’ 부르며 배웅이수만 5000만원 부의… 유족은 사양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저항 정신의 상징이자 문화예술계의 거목이었던 고 김민기가 24일 33년간 이끌어 온 대학로 소극장 학전에 작별 인사를 건네고 자신의 노래 ‘아침이슬’ 가사처럼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유족들은 이날 오전 서울대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발인식을 엄수한 뒤 아르코꿈밭극장으로 이름이 바뀐 옛 학전 건물로 향했다. 학전 출신 배우 설경구·황정민·장현성 등을 비롯해 가수 박학기·한영애·이적,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등 동료·지인과 일반 시민들이 고인의 마지막 여정을 배웅하기 위해 모였다. 유족들은 ‘김광석 노래비’가 설치된 화단에 영정을 놓고 묵념한 뒤 영정을 들고 건물 지하로 들어가 극장 내부를 찬찬히 둘러봤다. 화단에는 고인을 기리며 시민들이 놓고 간 꽃과 막걸리 등이 빼곡했다. 유족들이 밖으로 나오자 누군가 ‘아침이슬’을 부르기 시작했고, 추모객 모두 목 놓아 노래를 따라 불렀다. 운구차가 대학로를 빠져나갈 때 많은 이들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유해는 천안공원묘원에 봉안됐다. 지난해 가을 위암 4기 판정을 받고 투병해 온 고인은 최근 급격히 건강이 악화해 지난 21일 7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아침이슬’, ‘상록수’ 등 시대 정신이 담긴 명곡들과 ‘배움의 밭’인 소극장 학전을 통해 배출한 수많은 문화예술 인재, 그리고 고인이 각별한 애정으로 심은 어린이·청소년극의 씨앗이 귀중한 유산으로 남았다. 장례 기간 빈소에는 각계 인사들과 일반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가수 조영남, 소리꾼 장사익, 정운찬 전 국무총리, 언론인 손석희 등이 조문했다. 1971년 ‘아침이슬’로 데뷔한 양희은은 이날 MBC 라디오 ‘여성시대 양희은, 김일중입니다’에서 “고인은 내 어린 날의 우상이었다”며 명복을 빌었다. 고인과 인연이 깊었던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프로듀서는 조문객 식사비 명목으로 유족에게 5000만원을 전달했지만 유족이 사양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은 고인의 뜻을 반영해 조의금과 조화를 받지 않았다.
  • 무연고 어르신 유산, 도봉 불우 어린이에게 전액 기부

    무연고 어르신 유산, 도봉 불우 어린이에게 전액 기부

    독거 기초생활수급 어르신이 유산을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했다고 24일 서울 도봉구가 밝혔다. 도봉구에 따르면 지난달 말 숨진 무연고자 A씨의 유산이 자녀의 동의 하에 이달 중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됐다. 이번 유산 기부는 도봉구가 추진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약속, 무연고 어르신 유산기부 지원사업’의 첫 번째 사례다. 도봉구가 유산기부 대상자를 발굴하고 현행 유산처리 절차 등을 대해 안내하면 이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유언 공증 변호사 선임, 유언 집행 등을 진행한다. 이렇게 전해진 유산은 지역 내 소외된 아이들과 이웃들을 위해 쓰인다. 도봉구는 그간 스마트플러그 등 스마트 안부확인 서비스를 통해 어르신 A씨를 수시로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시스템상 이상 징후가 감지돼 관할 동주민센터 직원이 A씨의 집을 방문해 숨진 A씨를 방문했다. 도봉구는 장례 절차 등을 지원한 뒤 A씨의 자녀에게 유산기부를 안내하고 동의를 얻어 사후 특별기부를 진행했다. 오언석 도봉구청장은 “무연고 어르신의 생전 뜻을 유족분들께서 따르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지역 나눔 실천을 위해 큰 결정을 해주신 유족분들께 감사드린다. 이번 1호 유산기부 사례로 인해 지역 사회에 선한 영향력이 퍼져나가길 바란다“면서,”앞으로도 구는 더 많은 사회공헌활동을 펼쳐 함께 사는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최민희 과방위원장, 이진숙 귀에 “나와 싸우려 하지 마”

    최민희 과방위원장, 이진숙 귀에 “나와 싸우려 하지 마”

    여야가 24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였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이날 이 후보자가 청문회 증인 선서를 마치고 증서를 최 위원장에게 제출한 뒤 뒤돌아 자리로 돌아가자 “제가 인사하려고 했는데 돌아서 가시니 뻘쭘하지 않나”라고 했다. 그러자 이 후보자는 다시 최 위원장에게 다가가 악수한 뒤 서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최 위원장은 이 후보자 귀에 대고 “저와 싸우려 하시면 안 된다”고 속삭였다. 최 위원장은 “후보자의 인사말을 들어야 할까. 후보자가 보낸 사전 자료 보지 않았나. 2분 내로 간단히 해달라”고 요청했고, 이 후보자의 인사말이 2분을 넘기자 발언을 잠시 멈추게 한 뒤 “30초 더 드릴 테니 마무리해달라”고 재촉했다. 이상희 국민의힘 의원은 최 위원장에게 “인사말을 중간에 자르는 것은 좀 그렇다. 방통위 비전과 정책 목표를 충분히 말할 수 있도록 시간을 보장해주는 게 맞지 않나”라고 했다. 이에 최 위원장은 “전임 김홍일 전 위원장 인사청문회 인사말은 2분밖에 안 됐고, 어제 (이 후보자의) 인사말을 미리 받아봤는데 10여 페이지로 굉장히 길었다. 그걸 굳이 여기서 읽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한준호 민주당 의원은 “(이 후보자는) 방통위의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세월호 오보 및 유족 폄훼·MBC 민영화를 모의한 사람으로 방통위를 맡을 자격이 없다”면서 “당장 이 후보자에 대한 지명을 철회하고 인사청문회를 다시 개최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여당 소속 위원들은 한 의원의 발언에 격한 반응을 보였다. 여당 간사인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이 후보자와 증인 및 참고인 출입을 제재하면서 언론 노조가 집회 시위를 했다”며 “이것은 국회의 인사청문회에 대한 중대한 도전 행위고 국회 권능의 침해다. 청문회 기간 중 상임위 밖에서 모든 국회의 폭력적 발언 행위엔 강력하게 법정 제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같은 당 김장겸 의원도 “국회 상임위 회의장 앞에서 후보자를 겁박한 전례가 있느냐. 민주주의 국가, 선진국으로 가는 상황에서 이게 가능한 일이냐”며 “이건 폭력이다.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 이수만, 故김민기 빈소에 거액 조의금…유족, 고인 뜻따라 돌려줘

    이수만, 故김민기 빈소에 거액 조의금…유족, 고인 뜻따라 돌려줘

    이수만(72)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가 서울대 선배이자 가수 겸 ‘학전’ 대표였던 고(故) 김민기의 빈소를 찾아 거액의 식사비를 전달했다. 다만 유가족 측은 고인의 유지에 따라 이를 다시 돌려줬다. 24일 가요계에 따르면 이수만은 지난 23일 고 김민기의 빈소를 찾아 조문객의 식사비로 써달라며 조의금 5000만원을 전달했다. 앞서 유족이 조의금과 조화를 받지 않겠다고 밝힌 만큼, 식사비 명목으로 돈을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족은 이수만이 전달한 식사비 명목 조의금을 모두 돌려줬다. 생전 돈을 우선하지 않았던 고인의 유지를 따른다는 취지다. 지난 22일 고인의 조카인 김성민 학전 총무팀장은 대학로 학림다방에서 연 간담회에서 조의금을 받지 않겠다고 밝히며 “학전이 폐관하면서 저희 선생님 응원하시느라 많은 분들이 알게 모르게 십시일반 도와주셨다”며 “충분히 가시는 노잣돈을 마련하지 않으셨을까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수만 역시 3월 학전 폐관 당시 마무리 작업을 위해 1억원이 넘는 금액을 쾌척했다.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저항의 가수’ 김민기는 반평생을 바쳐 일궈낸 예술인들의 못자리 학전에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유족은 24일 오전 8시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김민기의 발인식을 엄수한 뒤 옛 ‘학전’ 건물이 자리한 서울 종로구 아르코꿈밭극장으로 향했다. 고 김민기의 유해를 모신 운구차가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졌다. 영정을 안고 소극장 안에 들어갔다 나온 유족이 다시 운구차로 향하는 순간 누군가가 고인의 대표곡인 ‘아침이슬’을 부르기 시작했다. “나 이제 가노라…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힘겹게 1절을 마친 추모객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아르코꿈밭극장 앞에는 평소 고인을 ‘은인’이라 일컬은 배우 설경구와 황정민, 장현성 등을 비롯해 배우 최덕문, 배성우, 가수 박학기,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등 동료와 친구 수십 명이 일찌감치 고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인으로부터 학전 건물을 이어받아 아르코꿈밭극장 운영을 맡은 정병국 예술위원회 위원장과 일반 시민들도 자리를 지켰다. 극장에 도착한 유족들은 ‘김광석 노래비’가 설치된 화단에 영정을 놓고 묵념했다. 화단에는 고인을 기리며 시민들이 놓고 간 꽃과 막걸리, 맥주, 소주 등으로 빼곡했다. 유족은 건물 지하로 들어가 고인이 생전 관객과 같이 울고 웃었던 소극장을 훑었다. 유족이 바깥으로 나오자 거짓말처럼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이내 세찬 빗줄기로 바뀌었다. 추모객들은 비를 맞으며 운구차가 대학로를 빠져나가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봤다. 그때 고인의 대표 연출작 ‘지하철 1호선’ 무대에 섰던 색소포니스트 이인권씨가 길 한복판에서 김민기의 곡 ‘아름다운 사람’ 연주를 시작했다. 대학로 일대를 쩌렁쩌렁 울리는 연주 소리에 마음을 잠시 가라앉혔던 추모객들의 울음이 다시 터졌다. 장현성은 힘겹게 말을 이으며 “가족장으로 하시기로 했으니 우리는 여기서 선생님을 보내드리자”고 했다. 그제야 추모객들이 하나둘 발걸음을 옮겼지만,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눈물을 훔쳤다.위암 4기 판정을 받고 투병해온 고인은 최근 급속도로 건강이 악화해 지난 21일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유해는 천안공원묘원에 유해를 봉안된다. 1951년생인 고인은 서울대 미대 재학 시절 동창과 함께 포크 밴드를 결성해 음악 활동을 시작한 후, 1971년 정규 1집 ‘김민기’를 발매하며 정식으로 데뷔했다. 대표곡 ‘아침이슬’의 편곡 버전이 수록되기도 한 이 음반은 고인의 유일한 정규 앨범이다. 고인은 특히 ‘아침이슬’ ‘꽃 피우는 아이’ ‘봉우리’ ‘내나라 내겨레’ 등의 곡을 발표하며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노래하며 1970년대와 1980년대 청년 문화를 이끈 인물로 평가받았다. 더불어 1990년대에는 극단 학전을 창단해 학전블루(2024년 폐관)와 학전그린(2013년 폐관) 소극장을 운영해 왔으며, 이곳들은 ‘김광석 콘서트’,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등 라이브 콘서트 문화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또한 연극, 대중음악, 클래식, 국악, 무용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소극장 문화를 일궈왔다.
  • 이슬처럼 떠난 ‘뒷것’ 김민기…설경구·장현성 ‘눈물’ 배웅

    이슬처럼 떠난 ‘뒷것’ 김민기…설경구·장현성 ‘눈물’ 배웅

    “그저 고맙지. 할 만큼 다 했어. 가족이 걱정이지.” 20세기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노래인 ‘아침이슬’의 작사·작곡자이자 가수이며 서울 대학로 소극장 ‘학전’을 30여 년간 이끈 연출가 김민기는 21일 이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유족은 24일 오전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김민기의 발인식을 엄수한 뒤 아르코꿈밭극장으로 향했다. 아르코꿈밭극장은 고인이 생전 33년간 작품을 올리고 신인 배우들을 발굴한 소극장 학전이 있던 곳이다. 생전 그에게 ‘빚졌다’고 했던 수많은 추모객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눈물로 배웅했다. 배우 장현성과 설경구, 황정민, 배성우, 최덕문, 방은진, 가수 박학기, 박승화, 이적,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등을 비롯한 약 70여 명의 추모객들이 함께 했다. 화단에는 고인을 기리며 시민들이 놓고 간 꽃과 막걸리, 맥주, 소주 등으로 빼곡했다. 유족들은 학전 담벼락에 고인의 영정 사진을 세워두고 묵념을 한 뒤 지하에 있는 학전블루소극장으로 내려가 비공개로 추모의 시간을 가졌고, 유족들이 극장에서 나오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유족들은 취재진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다시 운구차에 탑승했다. 누군가 떠나는 차를 향해 “선생님 사랑합니다!”라고 외쳤다.학전에서 오랫동안 라이브 밴드를 했던 이인권씨가 고인의 노래 ‘아름다운 사람’을 색소폰으로 연주하자 잦아들던 울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고인의 대표 연출작 ‘지하철 1호선’ 무대에 섰던 그는 “선생님(김민기)은 저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라며 “마지막 가시는 길에 당신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걸 말하고 싶어 연주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주가 끝나고도 추모객들은 한참이나 자리를 뜨지 못했다. 장현성은 울먹거리며 “선생님 마지막 가시는 길은 가족장으로 하기로 했으니 여기서 선생님을 보내드리겠다”며 “마지막까지 대단히 감사하다”고 말했다. 설경구 역시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고인은 1951년 3월 31일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회화학과를 졸업한 뒤 1971년 ‘아침이슬’이 담긴 첫 앨범을 통해 공식 데뷔했다. ‘아침이슬’이 민주화운동 현장에서 불리면서 금지곡 판정을 받았고 김민기는 박정희 정권의 감시 대상이 됐다. 이후 노동 현장에 들어가 노래 ‘상록수’, 노래극 ‘공장의 불빛’ 등을 만들었다. 1991년 대학로에 공연장 학전을 연 뒤 라이브 콘서트 문화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일궈냈다. 2004년부터는 어린이·청소년 극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지난해 위암 진단을 받고 투병해 왔다. 학전은 만성적 적자와 고인의 건강 악화로 지난 3월 폐관했다. 고인은 통원 치료를 받던 중 갑작스럽게 상태가 나빠져 세상을 떠났다.양희은 “故김민기, 어린 날 저의 우상” ‘아침 이슬’이 수록된 음반을 내고 가요계에 데뷔했던 가수 양희은은 24일 라디오를 통해 김민기를 추모했다. 양희은은 24일 MBC 라디오 ‘여성시대 양희은, 김일중입니다’에서 김민기의 ‘아침 이슬’을 선곡한 뒤 “가수이자 작사·작곡가, 공연 연출가, 그런 수식어로도 부족한 김민기 선생이 돌아가셨다. 선생의 영원한 평화와 안식을 기도한다”고 말했다. 양희은은 ‘아침 이슬’을 처음 들었을 때 “너무도 감동적이어서 콧날이 시큰거릴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대목을 좋아했다는 그는 “‘아침 이슬’은 당시 정부에서 선정한 건전가요 상도 받았는데 1년 후 금지곡이 됐고 80년대 중반에서야 해금됐다. 선생은 요주의인물이 되어 힘든 일을 많이 당했을 텐데 직접 말씀하신 적이 없어 이 정도밖에 전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민기를 “어린 날의 우상”으로 칭한 양희은은 자신이 부른 김민기의 곡들을 읊어 내려가며 고인을 기렸다. “제가 부른 그분의 작품들이 떠오릅니다. 당시 같이 음악 하던 여러 선배님의 얼굴도 함께 떠릅니다. 많은 청취자분이 김민기 선생의 명복을 빌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 추락 방지 의무 소홀…정신질환자 떨어져 숨지게 한 의사 벌금형

    추락 방지 의무 소홀…정신질환자 떨어져 숨지게 한 의사 벌금형

    폐쇄병동에서 환자 추락 방지 의무를 다하지 않은 의사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창원지법 형사7단독 이현주 부장판사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50대 의사 A씨에게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고 24일 밝혔다.경남 김해시 한 병원경남 김해시 한 병원장인 A씨는 지난해 8월 이곳 6층에 입원해 있던 정신질환자 B씨가 흡연실 아크릴 플라스틱으로 된 보호 창살을 뜯어 탈출한 뒤 외벽 우수관을 타고 내려가다 추락해 숨진 사고와 관련해 안전시설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B씨는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정신·행동장애로 폐쇄병동에 입원한 상태였다. 병원 운영을 총괄하는 A씨는 환자들 병원 탈출 가능성에 대비해 보호창살을 촘촘히 설치하고 뜯어내지 못하게 하는 등 업무상 주의 의무가 있었으나,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A씨 업무상 과실로 B씨가 사망하는 중한 결과가 발생했다”며 “다만 잘못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 조치를 이행한 점, 유족과 원만히 합의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 “‘얼차려’ 중대장, 훈련병 유족에게 ‘선착순 안 시켰다’”

    “‘얼차려’ 중대장, 훈련병 유족에게 ‘선착순 안 시켰다’”

    규정을 위반한 군기 훈련(일명 얼차려)을 지시해 훈련병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육군 12사단 신병교육대 중대장(27·대위)이 사고 직후 유가족에게 가혹 행위를 축소해서 설명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군인권센터는 24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모 훈련병이 쓰러진 다음 날인 지난 5월 24일 유가족과 중대장 사이 이뤄진 대화의 녹취록을 공개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중대장은 연병장을 몇바퀴 돌게 했냐는 유가족의 질문에 “제가 지시한 것은 세 바퀴였다”며 “두 바퀴를 돌다가 세 바퀴 돌 때쯤, 그러니까 한 바퀴, 두 바퀴 뛰고 세 바퀴를 한 50m 정도 갔을 때쯤 쓰러졌다”고 답했다. 유가족이 선착순 방식으로 달리기시켰는지를 묻자 중대장은 “아닙니다”라며 “쓰러질 당시에 선착순 이런 걸 시키지 않았고 딱 세 바퀴만 열을 맞춰서, 제대로 맞춰서 같이 뛰어라, 이렇게 얘기했다”고 말했다. 중대장은 “속도 같은 것은 통제하지 않았다”고도 했다.그러나 중대장은 완전 군장 상태로 연병장을 선착순 뜀걸음 1바퀴를 실시했고, 팔굽혀펴기와 뜀걸음 세 바퀴를 잇달아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군인권센터는 “이러한 중대장의 거짓말은 군의관에게도 똑같이 전달되었을 것”이라며 “군의관은 왜곡된 정보를 바탕으로 국군의무사령부 의료종합상황센터에 환자 상황을 보고하여 후송 지침을 하달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대장은 유가족을 기만하면서까지 자기 죄를 숨기려고 했을 뿐 아니라 그 결과로 의료인들의 판단에 혼선을 빚고 초기 환자 후송에 악영향을 주는 등 훈련병의 사망에 여러 영향 요인을 끼친 바 있다”고 강조했다. 중대장과 부중대장(25·중위)은 지난 5월 23일 강원 인제군 1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훈련병 6명을 대상으로 군기 훈련을 실시하면서 훈련 규정을 위반하고, 실신한 박모 훈련병에게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아 숨지게 한 혐의로 지난 15일 구속기소됐다.
  • 둔기폭행·야외취침·시신유기…새우잡이배에서 벌어진 일

    둔기폭행·야외취침·시신유기…새우잡이배에서 벌어진 일

    국내 해상의 새우잡이 배에서 동료 선원을 구타하고 굶긴 채 옷을 벗기고 차가운 바닷물을 쏴 숨지게 한 뒤 바다에 시신을 유기한 선원들이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광주지검 목포지청 형사2부(부장 이경석)는 동료 선원 살인·시체유기 사건과 관련된 40~50대 선원 3명을 살인방조, 상습폭행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고 23일 밝혔다. 검찰은 앞서 살인·시체유기 혐의로 선장 A(45)씨, 살인방조, 시체 유기 등의 혐의로 선원 B(48)씨를 지난달 5일 각각 구속 기소한 바 있다. A씨 등은 지난 4월 30일 전남 신안군 해상의 새우잡이 배에서 동료 선원인 C(50)씨를 무차별 폭행하고 가혹행위로 살해한 뒤 다음날 시신을 바다에 유기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지난 3월부터 피해자 C씨가 ‘일을 제대로 하지 못 한다’는 이유로 각종 둔기로 피해자를 구타하고 야외 취침을 시켰다. 식사도 하지 못한 피해자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이들은 피해자 사망 당일인 30일 피해자의 옷을 벗기고 선박 청소용 호스로 차가운 바닷물을 쐈다.결국 C씨는 급격한 저체온으로 인해 숨졌다. 이후에도 잔혹한 행위는 이어졌다. 이들은 C씨가 숨지자 시신에 어구를 묶는 방식으로 바다에 가라앉게 하고, 휴대전화도 같이 빠뜨려 증거를 인멸하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경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C씨 지인의 실종 신고를 받고 선원 승하선 명부를 확보해 이들을 긴급체포했다. 이날 구속 기소된 선원 3명은 단순 폭행 혐의로 불구속 송치됐지만 검찰은 살인방조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바다에 유기된 피해자의 시신은 아직도 발견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피해자 사망 당일의 CCTV 영상 약 9700개를 복원 후 전부 분석하는 등 보완수사를 진행해 여러 차례에 걸친 가해자들의 구타, 가혹 행위를 확인했다”면서 “피고인들이 죄에 상응하는 형을 선고받도록 공소유지에 최선을 다하고 유족에 대한 지원에도 소홀함 없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중대장, 사건 25일만에 ‘문자 사과’” 훈련병 유족 분통

    “중대장, 사건 25일만에 ‘문자 사과’” 훈련병 유족 분통

    규정을 어긴 군기훈련을 받던 훈련병이 숨진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육군 12사단 중대장(대위)이 훈련병의 유족에게 사건 25일만에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사과하자 유족이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 23일 방송된 MBC ‘PD수첩’에 따르면 중대장 A씨는 지난달 17일 훈련병 B씨의 어머니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병원에서 뵙고 그 이후에 못 찾아봬 늘 죄송스러운 마음이 가득하다”며 “한번 부모님을 만나뵙고 싶은데 괜찮으신지요”라고 물었다. 중대장이 유족에게 사과한 것은 지난 5월 23일 B씨가 숨진 지 25일 만이다. A씨는 이틀 뒤인 지난달 19일 B씨 모친에게 한번 더 문자메시지를 보내 “계속 그날을 되뇌이면서 깊이 반성하고 또 죄송한 마음 가득하다”면서 “유가족분들에게 사죄를 하고 싶은데 기회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중대장이 유족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낸 시점은 중대장과 부중대장(중위)이 구속 기로에 놓인 시기였다. 강원경찰청 수사전담팀은 지난달 13일 첫 피의자 조사 후 닷새 만인 18일 영장을 신청했다. 춘천지검은 19일 이들에 대한 영장을 청구했으며 춘천지법은 이틀 뒤인 21일 영장을 발부했다. B씨 어머니는 중대장의 뒤늦은 사과 문자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B씨 어머니는 “구속영장 한다고 한 날인가 그날도 문자가 왔다”며 “그런 미안한 감이나 진정성이 없다고 믿는다. 25일이 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PD수첩은 B씨와 함께 얼차려를 받은 동기들과 가족들을 통해 중대장의 군기훈련이 가혹했다고 전했다. B씨와 함께 얼차려를 받은 동기의 아버지는 “만약 그 두 바퀴, 세 바퀴를 다 돌았다면 큰일이 벌어졌을 것”이라며 “아내는 그 사건 이후 우울증에 걸려서 아들의 방만 보면 눈물을 흘린다”고 안타까워했다. B씨의 훈련소 동기 C씨의 누나는 “연병장에서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훈련을 시킨 것 자체가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해 한 행동”이라며 “다른 훈련병도 그 모습을 보고 ‘저 사람 말은 무조건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고 전했다.한편 춘천지검은 지난 15일 중대장과 부중대장을 학대치사와 직권남용가혹행위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지난 5월 23일 강원도 인제 육군 1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훈련병 6명을 대상으로 군기훈련을 실시하면서 군기훈련 규정을 위반하고, 이 중 실신한 B씨에게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아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감정서에 따르면 A훈련병은 열사병에 의한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사망에 이른 것으로 확인됐다.
  • 호적에 못 올린 슬픔 훌훌… 사실혼 배우자·양자도 국가보상 길 열렸다

    호적에 못 올린 슬픔 훌훌… 사실혼 배우자·양자도 국가보상 길 열렸다

    #사실상 혼인관계로 자녀 A를 낳고 살았던 갑과 그 배우자 을은 제주4·3사건으로 인해 갑이 1950년에 사망함에 따라 혼인신고를 하지 못했다. 이에 큰아버지의 자녀로 등록되어 있던 자녀 A는 본인의 부자관계를 바로잡고 부모님의 명예회복을 위해 이를 정정하고자 했으나, 부모의 혼인관계에 관하여는 현행법상 불가했다. 그러나 ‘4·3사건법’과 시행령이 개정됨에 따라 자녀 A는 위원회로부터 부모님에 대한 사실상 혼인관계 결정을 받아 법률상 부부관계를 맺어 드리고, 본인도 실제 부모님의 자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 직계비속 남자 없이 집안의 호주로 살아오던 병은 1948년 제주4·3사건으로 인해 희생되었고, 1950년 집안에서는 호주승계를 위해 입양신고 없이 친척의 아들 B를 병의 사후양자로 선정했으나, 현행법상 가족관계를 바로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4·3사건법’과 시행령이 개정됨에 따라 B는 위원회로부터 사실상 양친자관계에 대한 결정을 받아 입양신고를 해 희생자 병과 법률상 부자 관계를 맺게 됐고 희생자 보상금을 수령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호적에 못 올렸던 4·3사건 희생자의 사실혼 배우자와 사실상 양자도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이하 ‘4·3사건법 시행령’) 개정안이 23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됐다고 밝혔다. 올해 1월 4·3사건 희생자의 사실혼 배우자 및 양자가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이하 위원회)’의 결정을 받아 혼인·입양신고가 가능하도록 특례규정을 신설해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개정했다. 주요개정 내용을 보면 가족관계등록부 작성 또는 정정 등 관련 제주4·3위원회(이하 위원회)의 결정범위, 신청 시 첨부서류 등을 명확히 규정했다. 또한 가족관계를 입증하기 곤란한 경우 희생자의 친족 또는 제주4·3사건 피해로 인해 가족관계등록부가 작성돼 있지 않거나 사실과 다르게 기록된 것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람 2명이 작성한 보증서를 활용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입양신고 관련 이해관계인을 위원회의 사실상 양친자관계 결정에 따라 제주4·3보상금, 형사보상금 또는 국가배상금을 지급받을 권리가 변동되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이번 개정으로 4·3사건 희생자와 사실혼관계에 있던 사람이나 사실상 양친자관계에 있던 사람들도 위원회 결정으로 혼인·입양신고가 가능해짐에 따라 희생자와 유족의 실효적인 구제가 이뤄질 전망이다. 도는 행정안전부의 위원회 운영세칙 및 실무지침이 마련되면 제주도, 행정시, 읍·면사무소, 동주민센터에서 9월부터 접수를 시작할 예정이다. 조상범 제주도 특별자치행정국장은 “제주4·3으로 인해 70년이 넘게 희생자와 유가족의 숙원이자 바람이 차질없이 해결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뒤틀렸던 가족관계로 고통받았던 희생자와 유족들의 회복과 적법한 권리 회복을 위해 단 한 분도 소외되지 않도록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기존에 신청 받고 있던 희생자의 사망사실 기록·정정, 제적부 없는 희생자의 가족관계등록부 작성, 희생자와의 친생자관계존재 확인 등에 대해서도 오는 31일부터는 개정된 시행령 별지 제7호서식에 따라 신청해야 한다.
  • 고향 선배 살해후 시신 유기한 50대···징역 16년

    고향 선배 살해후 시신 유기한 50대···징역 16년

    함께 술을 마신 고향 선배를 흉기로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50대 남성이 징역 16년을 선고받았다. 광주지법 순천지원 형사1부(부장 김용규)는 23일 살인, 사체유기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된 50대 A 씨에게 징역 16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사건 범행에 대해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진술하고 있다”며 “피해자를 흉기로 찔러 살해 후 공터 주변에 사체를 유기해 죄질이 나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어 “살인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피해를 회복할 수 없는 중대한 범죄다”며 “유족들로부터 용서받지 못했고, 유족들은 피고인이 공탁한 돈의 수령도 거부하면서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A 씨는 지난 4월 1일 밤 고흥군 봉래면에서 술자리 후 같은 차를 타고 움직인 B 씨(60대)를 흉기로 살해하고 사체를 공중화장실 옆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 “고속도로 17초 정차해 ‘보복 운전’”…과거 ‘7중 추돌’도 유발, 최후는

    “고속도로 17초 정차해 ‘보복 운전’”…과거 ‘7중 추돌’도 유발, 최후는

    고속도로에서 17초 동안 차를 세우는 수법으로 보복 운전해 사망사고를 낸 40대의 형량이 징역 5년으로 확정됐다. 대법원 제3부는 일반교통방해 치사, 특수협박 등 혐의로 기소된 A(40)씨의 상고를 기각했다고 23일 밝혔다. 그는 1, 2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었다. A씨는 지난해 3월 24일 오후 5시 10분쯤 충남 천안시 서북구 경부고속도로 서울 방면 350.1㎞ 지점에서 화물차를 몰고 가다 4차로에 있던 1t 봉고차가 5차로의 자기 차 앞으로 변경해 달리자 급히 봉고차를 추월한 뒤 앞에서 17초간 멈췄다. 당시 고속도로는 금요일 오후여서 통행량이 매우 많은 상태였다. 이에 봉고차가 급히 세웠고, 뒤따르던 화물차 3대도 잇따라 급정차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미처 정차하지 못한 소형 화물차가 전방의 화물차를 들이받았다. 이 소형 화물차 운전자는 현장에서 숨졌다. 다른 화물차 운전자들도 전치 2주 안팎의 상해를 입었다. A씨는 재판에서 “다른 차량의 운전자·탑승자들이 죽거나 다칠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고속도로에서 차를 급정차하면 충돌사고가 나 사람이 죽거나 다칠 것이라고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사망 등 사고 결과가 무거운데도 책임을 회피하며 반성하지 않고 있다”며 “화물차 운전 경력 10년인 A씨는 과거 전방주시를 게을리해 7중 연쇄 충돌 사고를 유발한 전력도 있다”고 밝혔다. 항소심을 진행한 대전고법 제1형사부(부장 박진환)는 지난 4월 “A씨는 선고 전날 사망자 유족에 2000만원, 다친 피해자에게 100만원을 기습적으로 형사 공탁했다. 이 때문에 감형의 사유로 고려하기 어렵다. 피해자들의 용서도 받지 못했다”며 “범행을 자백했으나 범행 수법과 태도 등을 보면 진정 반성하는지 의문이다. 원심의 판단이 합리적 범위에서 이뤄진 것으로 판단된다”며 1심의 징역 5년을 유지했다.
  • “러시아 돕겠다” 참전…20대 日자위대 장교 사망 발견

    “러시아 돕겠다” 참전…20대 日자위대 장교 사망 발견

    러시아를 돕겠다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20대 일본 남성이 사망했다고 일본 NHK 등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22일 NHK는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러시아 의용군으로 전투에 참여한 전직 자위대 장교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29세인 이 남성은 2023년 11월쯤 일본을 떠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러시아 측 의용병으로 참전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NHK가 보도했다. 이후 지난 6월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에서 폭발로 사망했다. 참전 후 사망할 때까지 어떤 활동을 했는지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러시아 측은 일본 대사관에 사망 정보를 보냈다. 이 남성의 시신은 향후 일본에 있는 유족에게 인도될 예정이다. 일본 누리꾼들은 “어떤 사명감으로 갔느냐. 경솔하고 얄팍한 행동이었다”,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 열정이 있다면 이 나라와 세계 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등의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누리꾼은 “이 사람이 정말 자발적으로 전투에 참여했는지 모르겠다. 일본 정부가 자국민 보호의 관점에서 제대로 조사해줬으면 한다”며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 서해안 백사장에 ‘헤드랜턴’ 착용한 변사체 2구…‘해루질’ 사고 추정

    서해안 백사장에 ‘헤드랜턴’ 착용한 변사체 2구…‘해루질’ 사고 추정

    40대 남성 2명이 충남 보령 바닷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해루질하다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23일 보령해양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10시 55분쯤 보령시 웅천읍 독산해수욕장에서 남성 2명의 시신이 백사장으로 떠내려왔다”는 한 주민의 신고가 접수됐다. 해경 조사 결과 시신은 A(49)씨와 B(49)씨로 이 중 한명은 머리에 헤드랜턴을 착용하고 있었다. 보령해경 관계자는 “둘은 모두 보령에 사는 사람으로 동갑내기 친구 사이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해루질을 하면서 해안에서 먼바다로 점점 깊숙이 들어가다 사고가 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해경은 유족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 배움의 밭 일궈 온 33년 ‘뒷것’의 삶… 이슬처럼 떠나다

    배움의 밭 일궈 온 33년 ‘뒷것’의 삶… 이슬처럼 떠나다

    ‘아침이슬’·‘친구’ 시대 정신 노래1991년 대학로 소극장 학전 개관김광석·황정민 등 예술인 산실로‘지하철 1호선’ 4000회 공연 흥행아동·청소년극 꾸준히 무대 올려유언은 “고맙다, 할 만큼 다 했다” 尹 “영원한 청년으로 기억할 것”박학기·이적 등 예술계 추모 물결 ‘아침이슬’, ‘친구’, ‘상록수’ 등 시대 정신을 담은 노래와 33년간 대학로를 지킨 소극장 ‘학전’ 대표로 우리나라 대중음악계와 공연계에 큰 발자취를 남긴 김민기가 암 투병 끝에 지난 21일 밤 별세했다. 73세. 고인은 지난해 가을 위암 4기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해 오던 중 지난 주말부터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다고 한다. 학전 관계자는 22일 “갑작스럽게 떠나셨지만 서너 달 전부터 가족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얘기를 많이 했고, 학전 폐관과 관련해선 ‘할 만큼 다 했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했다. 김민기의 어릴 적 꿈은 화가였다. 1969년 서울대 회화과에 입학했으나 곧 흥미를 잃고 통기타와 음악에 빠져들었다. 1970년 ‘아침이슬’을 시작으로 ‘가을편지’, ‘꽃피우는 아이’ 등의 노래를 만들고 불렀다. 타고난 재능으로 음반 발매 등 순탄하게 빛을 보는 듯했던 그의 음악 활동은 1972년 서울대 문리대 신입생 환영회에서 민중가요를 가르쳤다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된 것을 계기로 해 험난한 앞날을 맞게 된다. 1975년 유신 반대 시위에서 군중이 부른 ‘아침이슬’은 금지곡이 됐고 이후 억압에 맞서는 저항 정신을 상징하는 노래가 됐다. 대학 졸업 후 당국의 탄압을 피해 공장과 탄광에서 일하고 민통선 마을에서 농사를 짓기도 한 김민기는 1983년 서울로 올라와 ‘노래를 찾는 사람들’ 음반, ‘겨레의 노래’ 음반 제작 등에 참여했다.1991년 대학로에 소극장을 개관하면서 ‘뒷것’을 자처한 김민기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문화예술계 인재를 촘촘히 길러내는 못자리가 되겠다는 의미로 ‘배움의 밭’을 뜻하는 ‘학전’(學田)을 극장 명으로 지었다. 이름에 걸맞게 학전이 기획·제작한 작품 359편을 통해 설경구, 황정민, 조승우 등 스타 배우들이 배출됐다. 고 김광석을 비롯해 들국화, 안치환, 이소라 등 대중음악 가수들도 학전 무대에서 기량을 갈고닦았다. 김민기는 1970~80년대 소리굿 ‘아구’, 노래굿 ‘공장의 불빛’, 노래극 ‘개똥이’ 등의 무대 경험을 바탕으로 공연 제작자와 연출가로서도 실력을 입증했다. 독일 원작을 번안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4000회 공연, 73만 관객의 장기 흥행 신화를 썼다. ‘의형제’, ‘모스키토’ 등 외국 작품을 토대로 한국적 정서를 반영한 뮤지컬 레퍼토리들은 학전 고유의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무엇보다 아동·청소년극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남달랐다. ‘우리는 친구다’, ‘고추장 떡볶이’, ‘슈퍼맨처럼!’ 등 우리나라 아동과 청소년의 현실을 다룬 작품을 꾸준히 무대에 올렸다. 적자에도 불구하고 많은 어린이들이 극장을 찾을 수 있도록 어린이 공연의 티켓 가격을 올리지 못하게 한 일화도 유명하다.김민기는 지난해 11월 만성적인 재정난과 건강 문제까지 겹치면서 학전 운영 중단을 결정했다. 소식을 접한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안타까워하며 학전 재기를 돕겠다고 나섰지만 그는 끝까지 사양했다. 학전의 마지막 공연은 어린이극 ‘고추장 떡볶이’였다. 지난 3월 문을 닫은 학전은 폐관 4개월 만인 지난 17일 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어린이·청소년 중심 공연장 ‘아르코꿈밭극장’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역사는 선생님을 예술과 세상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지닌 영원한 청년으로 기억할 것”이라면서 애도를 표했다. 윤 대통령은 과거 동숭동 학림다방에서 그를 만난 일을 회고하며 “어린이를 사랑하셨던 선생님의 뜻이 ‘아르코꿈밭극장’에서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면서 “편히 영면하시기를 기원하며 유가족께 위로를 전한다”고 했다. 문화예술계 인사들도 일제히 추모의 뜻을 전했다. 가수 박학기는 “후배 가수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늘 물어봐야 하는 큰형이셨다”며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빨리 가셨다”고 애도했다. 가수 이적은 소셜미디어(SNS)에 “나의 영웅이여 감사했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추모의 글을 남겼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이미영씨와 2남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24일이며 장지는 천안공원묘역이다. 조의금과 조화는 고인의 뜻에 따라 받지 않는다. 유족은 발인일 오전 아르코꿈밭극장에 들른 뒤 장지로 떠날 예정이다.
  • “잊지 않아요 애국의 마음” 양천구 보훈수당 대상 확대

    “잊지 않아요 애국의 마음” 양천구 보훈수당 대상 확대

    서울 양천구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시민들의 복지를 강화한다. 양천구는 국가보훈대상자의 복지 향상을 위해 보훈예우수당 지급대상을 ‘국가유공자법’ 적용을 받는 개인 전체로 확대 시행한다고 22일 밝혔다. 이렇게 되면 이달부터 약 4100여 명의 국가유공자를 지원할 수 있게 된다. 구는 보훈예우수당 지급대상을 더욱 폭넓게 확대하기 위해 지난 6월 ‘서울시 양천구 국가보훈대상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개정했다. 이에 따라 7월부터는 ▲4·19혁명유공자 ▲순직공무원 ▲공상공무원 ▲특별공로순직자 ▲특별공로상이자 ▲특별공로자도 매월 5만 원의 구 보훈예우수당을 받게 된다. 구는 “조례 개정으로 약 100여 명의 추가 대상자가 혜택을 받게 되어 국가보훈대상자 예우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지원 대상자들에게는 수당 신청 안내문이 개별 발송되며, 신청자는 신청한 달부터 보훈예우수당을 지급받게 된다. 서울시 보훈수당 수령자이면 별도의 신청 절차 없이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계좌로 7월부터 매월 25일에 5만원씩 직권 지급될 예정이다. 단, 서울시 보훈수당에 해당하지 않고, 아직까지 보훈예우수당을 신청하지 않은 국가유공자는 유공자증(또는 유족증)과 통장사본을 지참해, 거주지 동 주민센터를 방문·신청하면 된다. 한편 구는 국가보훈대상자들의 명예와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생활안정과 복지향상을 도모하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보훈예우수당 나이제한 및 서울시 참전명예 수당 수급자 중복지급 제한 폐지로 보훈예우 수당 대상자를 약 3배 대폭 늘리며 국가보훈대상자들의 복지를 크게 향상시킨 바 있다. 이기재 구청장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국가보훈대상자들이 있어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국가보훈대상자들의 복지와 예우 향상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고맙다, 할 만큼 다 했다” 가수 김민기, 세상 떠나기 전 한 말

    “고맙다, 할 만큼 다 했다” 가수 김민기, 세상 떠나기 전 한 말

    “그저 고맙다. 할 만큼 다 했다. 남은 가족들이 걱정이다.” 대학로 소극장의 상징 ‘학전’을 30여년간 운영하며 후배 예술인을 배출해 온 가수 김민기는 21일 이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김민기의 조카인 김성민 학전 총무팀장은 22일 서울 대학로 학림다방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댁에서 요양 중이던 선생님(김민기)의 건강이 지난 19일부터 조금 안 좋아졌고 20일 오전 응급실을 찾았다”며 “병원에 갔을 때부터 상태가 좋지 않아 다음 날 오후 8시 26분에 돌아가셨다”고 밝혔다. 김 팀장은 이어 “보고 싶은 가족들이 다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 만나고 가셨다”고 덧붙였다. 김민기는 지난해 발견된 위암이 간으로 전이되면서 건강이 악화했고, 이후 통원 치료를 받으며 경기 일산 자택에서 지내왔다. 김 팀장은 ‘고인이 눈을 감기 직전 유언이 없었느냐’는 질문에 “갑작스럽게 떠나셨지만 3~4개월 전부터 가족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셨다”며 “학전과 관련해서는 ‘지금 끝내는 게 맞다. 나는 할 만큼 다 했다. (남은 가족들이) 걱정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유족은 고인의 뜻에 따라 조의금과 조화는 정중히 사양했다. 김 팀장은 “선생님은 배우 설경구, 장현성씨가 와도 ‘밥은 먹었냐’고 하실 분”이라며 “(평소 성격을 미뤄) 가족들과 상의한 끝에 조의금과 조화를 받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김민기는 1951년 전북 익산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경기중·고등학교를 다닐 당시 미술에 몰두했던 학생이었으나 1969년 서울대학교 회화과에 입학한 뒤 붓을 놓고 가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1971년 ‘아침이슬’이 담긴 첫 앨범을 통해 공식 데뷔했다. ‘아침이슬’이 민주화운동 현장에서 불리면서 금지곡 판정을 받았고, 김민기는 박정희 정권의 감시 대상이 됐다. 이후 노동 현장에 들어가 노래 ‘상록수’, 노래극 ‘공장의 불빛’ 등을 만들었다. 1991년 대학로에 소극장 학전을 개관한 뒤로는 공연을 연출하며 스타들을 배출했다. 그곳에서 1000회 이상 라이브 공연을 열며 팬들과 호흡한 고 김광석은 학전이 배출한 최고 스타였다. 권진원, 나윤선, 윤도현, 정재일 등 음악가들이 학전 출신으로 성장했다. “김민기 없는 ‘지하철 1호선’은 없다” 고인은 2008년 ‘지하철 1호선’의 4000번째 공연을 올렸을 당시를 학전 역사에서 가장 의미 있는 순간으로 꼽은 바 있다. ‘지하철 1호선’을 다시 만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 팀장은 “고인이 연출하지 않은 작품은 할 수 없다”면서 “김민기가 연출하지 않는 ‘지하철 1호선’도 없다”고 말했다. 다만 “많은 이들이 염원한다면 유족들과 이야기해서 학전의 40주년, 50주년, 100주년에 맞춰 한 번쯤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김민기는 만성적인 재정난에 시달리면서도 뮤지컬 ‘의형제’(2000), ‘개똥이’(2006)와 어린이극 ‘우리는 친구다’(2004), ‘고추장 떡볶이’(2008) 등을 연출하며 대학로 공연 문화를 이끌었다. 올해 3월 15일 학전이 개관 33주년 만에 문을 닫으며 마지막으로 연출한 작품은 ‘고추장 떡볶이’가 됐다. 그는 학전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좀 더 열심히, 더 많이 뛸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학전을 기억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고인은 발인일인 24일 오전 옛 학전이 자리한 아르코꿈밭극장에 들렀다가 장지인 천안공원묘원에서 영면에 든다.
  • 대학로 공연문화 산실 ‘학전’ 이끈 가수 김민기 암 투병 중 별세

    대학로 공연문화 산실 ‘학전’ 이끈 가수 김민기 암 투병 중 별세

    대학로 소극장 ‘학전’을 30여년간 이끌며 국내 공연 문화의 꽃을 피운 가수 김민기가 21일 별세했다. 향년 73세. 22일 공연예술계에 따르면 김민기는 지병인 위암으로 투병하던 중 병세가 악화해 세상을 떠났다. 1951년생인 김민기는 서울대 회화과 1학년 1학기를 마친 뒤 포크송 듀오 ‘도비두’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71년 1집 음반을 발표하는 한편 ‘아침 이슬’과 ‘가을 편지’, ‘꽃 피우는 아이’ 등 수많은 민중가요들을 작곡했다. 당시 유신 반대 운동에서 그의 노래가 불려졌다는 이유로 ‘아침 이슬’이 금지곡으로 지정되고 1집 앨범도 판매 금지 조치를 받는 등의 고초를 겪었다. 이에 김민기는 봉제 공장과 탄광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리면서도 익명으로 비밀리에 작곡 활동을 이어갔다. 당시 공장에서 일했던 경험은 1977년 작곡해 발표한 ‘상록수’에 담겼다. 1980년대에는 공연윤리심의위원회 등의 삼엄한 감시를 받으면서도 공연 활동을 활발히 펼치며 사회 운동에 뛰어들었다. 농촌과 탄광촌 등의 현실을 담은 마당극과 노래극 등을 공연하고, 1984년 대학에서 활동하던 노래패들의 노래를 모아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라는 음반을 제작했다. 1989년에는 한살림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 초대 사무국장을 맡았다.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본격적으로 대학로 소극장 공연 문화를 꽃피웠다. 1994년 대학로 소극장 ‘학전’을 상주 공연장으로 하는 극단 ‘학전’을 창단하고, 독일 원작의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번안 및 연출해 초연했다. 1990년대 서울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낸 ‘지하철 1호선’은 2023년까지 8000회 이상 무대에 올라 70만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그가 이끈 학전은 지난 3월 15일 개관 33주년만에 문을 닫았다. 이로서 그의 마지막 연출작은 ‘고추장 떡볶이’가 됐다. 그는 “좀 더 열심히, 더 많이 뛸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학전을 기억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는 소회를 남겼다. 그는 ‘의형제’로 2001년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분 대상과 연출상을 받았고, ‘지하철 1호선’으로 한국과 독일 문화교류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독일 정부로부터 괴테 메달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이미영씨와 슬하 2남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4일.
  • 신호위반 오토바이에 그만…70대, 마지막 길에 100여명 도왔다

    신호위반 오토바이에 그만…70대, 마지막 길에 100여명 도왔다

    운동 중 신호 위반 오토바이에 치여 뇌사 상태가 된 70대 남성이 100여명의 환자들에게 희망을 나누고 세상을 떠났다. 22일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임영수(72)씨가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에서 뇌사 장기기증으로 3명에게 왼쪽 신장과 좌우 안구를 기증했다. 그는 장기 외에도 각막, 뼈, 피부, 인대, 혈관 등을 기증하는 ‘인체조직 기증’을 통해 100여명의 환자를 돕게 됐다. 임씨는 지난달 7일 아침 운동을 하던 중 건널목에서 신호를 위반한 오토바이에 치여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받았지만, 끝내 뇌사 상태에 빠졌다. 대학병원에서 오랜 시간 일했던 임씨는 아픈 사람들의 고통을 안타까워해 지난 2014년 기증 희망자로 등록했다. 유족들은 임씨의 뜻을 이뤄주고자 기증을 결정했다. 충남 연기군에서 5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임씨는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에 늘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는 사람이었다. 교회 장로로 활동하며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과 기부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그는 현재는 사라진 이화여대 동대문병원에서 교직원으로 근무하다 퇴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퇴직 후에는 산책과 등산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임씨의 아들 임재범씨는 “가정적이고 자상한 아버지 덕에 가족 모두 행복했다”며 “아버지의 모습을 본받겠다.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잘 지내시라”라고 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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