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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말라카 해협

    해군이 이지스 구축함을 보유하게 된다고 한다.한국형 구축함(KDX-Ⅲ)에 최첨단 이지스 전투 체계를 장착하기로 했다는 것이다.떠 다니는 요새라는 이지스 함을 갖게 되면 한국 해군은 ‘대양 해군’으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한다.멀리 동남아의 말라카(Malacca) 해협까지도 작전 반경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해군력을 말하라면 기껏 연평도나 떠 올리는 우리네이고 보면 말라카 해협이 얼른 가슴에 와 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말라카해협은 여느 뱃길이 아니다.태평양에서 남중국해를 거쳐 인도양에 이르는 ‘바다 비단길(Silk Road)’의 길목이다.상품이나 석유를 중동이나 유럽으로 실어 가고,사 오는 유일한 교통로이다.세계 13위 무역국이요,세계 4대 석유 수입국인 우리에겐 말라카 해협은 ‘생명선’일 것이다.그럼에도 속수무책이었다.손이 미치지 못했다.그러나 이지스함이 생기면 달라진다.말라카 해협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 말라카 해협은 마(魔)의 뱃길이기도 하다.폭이 좁은 곳은 40㎞밖에 안 된다.골목길 수준이다.유조선같은 대형 선박만 하루에 200척이 오가기에는 턱없이 비좁다.대한해협도 아무리 좁아도 50㎞가 넘는다.뿐만이 아니다.평균 수심이 50m에 불과하고 중앙과 연안 곳곳에는 여울이 도사리고 있다.능숙한 항해사라도 900㎞ 말라카 해협에서 정신을 차리지 않았다가는 참사를 면키 어렵다. 말라카 해협에는 암초만 있는 게 아니다.밤낮없이 해적이 들끓고 있다.오가는 상선이 모두 사냥감이 된다.폭이 좁아지면서 다른 배와 충돌을 피하느라고 속도를 줄이면 자동 소총과 위성위치시스템(GSP)까지 갖춘 초고속 해적선이 접근한다.잔인한 수법은 옛날 해적과 똑같다.선원을 수장시키고 물건과 함께 배를 통째로 빼앗아 달아난다.한해 평균 500건의 해적 사건 60% 가까이가 말라카 해협 일대에서 벌어 진다. 최첨단 이지스 구축함은 컴퓨터 게임에서 볼 수 있는 환상적인 성능을 발휘한다고 한다.얼마 전 서해교전 때처럼 스틱스 미사일의 전파가 감지돼도 피할 필요가 없다.고속정이나 경비정 수를 헤아리며 해군력을 비교하는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된다.서해 교전 같은 불상사는아예 없을 것이다.그리고 말라카 해협의 해적들도 한국 상선은 감히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기다려 진다. 정인학 논설위원
  • 경제 뉴스라인

    ●금호건설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공동 개발한 한국형 고효율 하수처리 신기술인 KIDEA공법의 기술설명회를 16일 서울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었다.KIDEA(Kumho& Intermittently Decented Extended Aeration)공법이란설치비용이 30% 이상 저렴하면서도 질소와 인의 제거율은90%를 웃도는 고효율 하수처리방식이다.특허를 받았으며중소규모 하수처리장에 적합하다. ●삼성중공업은 노르웨이 크누센사로부터 셔틀탱커 2척을,그리스 미네르바사로부터 유조선 4척 등 모두 6척을 2억 7800만달러에 수주했다고 16일 밝혔다.셔틀탱커는 해상 시추설비에서 끌어올린 원유를 정유 플랜트까지 운반하는 적재용량 14만 7500t급 특수선으로 오는 2005년 상반기 인도된다. ●LG텔레콤은 팍스넷과 함께 무선인터넷 이지아이(www.ez-i.co.kr)를 통해 다양한 증권정보를 원스톱으로 제공하는서비스를 17일부터 시작한다. ●우리금융그룹은 16일 한빛은행 강당에서 새롭게 마련한그룹 로고(CI)에 대한 선포식을 가졌다. 새 CI는 원을 바탕으로 빛이 퍼져나가는모습을 형상화했으며 빛은 계열사들을 뜻한다고 우리금융은 설명했다. 윤병철(尹炳哲)회장은 “전 그룹사에 통일된 CI를 적용,일체감을 조성하고 인지도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 [美 테러의 뿌리] (4.끝)극단으로 가는 테러

    민간인이 탄 여객기를 납치해 초대형 마천루에 충돌시켜버린 이번 사건은 극단으로 치닫는 테러의 종착지가 과연어디일까라는 우려를 갖게 한다.종교적 신념으로 뭉친 테러집단들이 날로 대형화·조직화·기업화되면서 이번처럼 허를 찌르는,상상을 뒤엎는 신종기법으로 과격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이번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이나 추종자들은 1970∼80년대 테러조직들처럼 자신들의 존재와 정치적주장을 알리려고 테러를 선택하지는 않았다.오직 알라신의영광을 위한 이들만의 ‘성전’을 치르고 있다.이들의 사전에 ‘타협’이란 없다. 미국의 테러문제 전문가들에 따르면 빈 라덴의 테러지족인알-카에다는 엄청난 자금력으로 세계 30여개국에 국제적인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자살테러 요원들은 중산층 생활을 하며 대학교 이상의 고등교육을 받았다.테러집단들은 국경을 넘어 ‘범이슬람’ 성격을 띠고 있다. 브라이언 젠킨스 미국 랜드연구소 테러문제 전문가는 “21세기 테러의 특징은 타인들로부터 정치적 지지를 받을지 여부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아울러 대규모 인명피해에 따른 도덕적 부담도 전혀 의식치 않는다는 것이다.이런 추세가 대량살상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그는분석했다.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이 즐겨 사용하는 자살 폭탄테러는 이러한 신종테러의 전형이다.이들은 자기 한몸을 조국의독립을 위해 던진다는 대의명분 아래 태연히 폭탄을 몸에감고 이스라엘 민간인들 속으로 돌진한다.이런 자살폭탄 테러 지원자 수십명이 훈련을 받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전문가들은 테러의 기원을 18세기말 프랑스 혁명기에서 찾는다.1798년 프랑스 학술원사전에 처음 등장한 테러라는 용어는 ‘조직적인 폭력의 사용’으로 정의돼있다.암살은 1차대전을 촉발시킨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사건에서부터 존 F케네디 미국 대통령,마틴 루터 킹 목사,81년 안와르 사다트이집트 대통령,95년의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 암살에이르기까지 가장 고전적인 테러수법이다. 현대적 의미의 테러는 1960년대 들면서 비로소 등장한다.2차대전이후 생겨난 약소국들은 생존전략의 하나로 테러리즘을 선택한다.1967년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패한 아랍인들은 군사력으로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테러리즘쪽으로 눈을 돌렸다.68년 7월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은 이스라엘 여객기를 처음 공중납치했다. 70년대에는 팔레스타인에 동조하는 세력들간의 지원이 이뤄지며 테러가 전세계로 확산됐다.팔레스타인,일본 적군,서독의 바더 마인호프 등 각국 테러단체들이 공조,72년 뮌헨올림픽과 74년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장점거 사건을 일으켰다. 80년대에는 국가 차원에서 테러단체를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테러가 대형화·무차별화된다.고성능 무기들의 등장으로대량살상이 자행됐다.스리랑카의 타밀반군과 체첸반군,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이 사용하는 자살폭탄테러도 이때 등장했다. 21세기 첨단기술을 최대로 활용하고 있는 테러집단들이 앞으로 어떤 식의 테러를 자행할지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미국의 국가안보 전문가들은 벌써부터 생화학무기와 핵무기를동원한 테러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또 다른 가능성은 사이버테러.사이버테러는 가상공간을 통해 국가 기간산업과군사·핵발전소·금융·항공기·철도 등의 통제 시스템을순식간에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일부에서는 유람선이나 수십만t의 석유를 실은 유조선을댐 등 주요 시설물에 충돌시키거나 강 밑을 지나는 지하철을 폭파시키는 극단적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 70년대 이후부터 테러대응·방지를 위한 국제적 노력이 계속되고 있지만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가장 절실한것은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에 대한 이해를 키우고,생명에의 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한 지구촌 공동의 노력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김균미기자 kmkim@
  • 워크아웃 졸업 대우조선 르포

    좌초위기에 몰렸던 대우조선호(號)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조기졸업했다.뼈를 깎는 고통을 이겨낸 대우조선 노사는 옥포만(灣)에서 불어오는 새 바람을 맞으며 순항을 위한 돛을 달았다. 24일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소.처서가 지났다고는하지만 아직도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작업하는 현장근로자들의 표정에는 희망이 넘쳤다. 노사분규때마다 노조원들의 단골 농성장이던 ‘골리앗크레인’은 700t에 이르는 ‘블록’을 분주히 날랐으며,작업장곳곳에서는 파란 용접불꽃이 쉴 새없이 번쩍이고,대형 철구조물을 운반하는 굉음과 쇳소리가 130만평 조선소에 울려퍼졌다. 제2도크에서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 그리스 헬레스 폰트사의 44만2,000t급 ULCC(극초대형 유조선)는 대우조선의 앞날을 보여주고 있었다. 박종기(朴鍾璂·46) 홍보부장은 “워크아웃 졸업이 예고돼 있었지만 공식발표이후 회사내 분위기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고 설명했다.직원들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는 것이다. 휴식시간에 만난 의장2부 김관회(金寬會·48)씨는 “회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갔을 때는 고향의 친지들 보기조차 민망스러웠다”면서 “지난 아픔을 잊지말고 모든 근로자들이합심해서 멋진 직장으로 가꿔 나가야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대우조선은 99년 8월 대우사태를 겪으면서 워크아웃에 들어간지 2년이 안돼 졸업했다.함께 워크아웃에 들어갔던 12개 계열사중 처음이며,대기업으로서도 처음이다. 이로써 대우조선은 자율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 조선전문회사로 거듭 태어났다. 그동안 땅에 떨어졌던 대외신뢰도가 급속히 회복돼 워크아웃으로 부진했던 해양플랜트부문 영업도 활기를 띨 것으로예상된다. 워크아웃기간중 임직원들은 고통을 분담하며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했다. 노조는 임금동결을 수용하는 등 고통을 감내했고 회사측은 투명경영으로 보답했다.노사간 강한 결집력과 JIT(Just in Time)운동으로 연 20%이상 생산량을 늘렸으며,생산성도 8%이상 향상시켰다.회사측은 인원을 감축하지 않았다. 지난해부터는 세계적으로 선박대체 물량이 늘어나면서 호황기를 맞았다.고부가가치선인 LNG선 시장이 부각되고,선박의대형화 추세 등으로 발주물량이 급증했다.선주들의 신뢰로 재발주율도 53%에 달할 정도였다. 대우조선의 올해 경영목표는 매출 2조9,673억원,경상이익2,216억원이다. 정사장은 “앞으로 주주본위로 경영하고,자율이 강조되는직장분위기를 만들어 대우조선 직원이라는 사실만으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회사로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경영포부를 밝혔다. 거제 이정규기자 jeong@. ■정성립 대우조선사장“건조선박 차별화로 세계 석권”.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과 초대형 선박건조에 주력,세계시장을 선점하겠다.” 워크아웃에 들어간 대우계열사 가운데 가장 먼저 졸업한정성립(鄭聖立·52) 대우조선사장은 “조기에 워크아웃에서졸업할 수 있었던 것은 외국 선주들의 신뢰와 채권단의 헌신적인 지원으로 가능했다”며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강하게 내비쳤다. 그는 또 “사내 권위주의를 완전히 타파해 자율이 강조되는 분위기를 토대로 경쟁력을 강화시켜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워크아웃 졸업 의미는. 독자경영이 가능한 조선전문회사로 다시 태어나게 됐다는것이다. ◆앞으로의 경영계획은. 회사의 가치를 높여 주주와 그동안 고생한 임직원들에게어떻게 보답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겠다.회계의 투명성이확보되고 이사회를 통한 합리적인 의사결정구조가 갖춰졌으므로 전 세계에서 가장 투명하고 모범적인 기업으로 거듭나는 것이 목표다. ◆영업전략은. 건조선박의 주종을 다른 조선소와 완전히 차별화하겠다. 고부가가치선인 LNG선과 30만∼40만t급 초대형선 건조에 주력하겠다. ◆근로자들의 사기 진작책은. 상하간 경직된 분위기속에서는 경쟁력이 강화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임직원들이 소신있게 할 말은 하는 직장 분위기로 만들 계획이다. 거제 이정규기자
  • [한국에 산다] 마이클 브린…‘한국인을 말한다’ 저자

    “손님은 충고하지 않는 법이라지만 식민주의,전쟁,산업발전,민주화,인권 문제 등 20세기의 이슈에 온통 둘러싸여 있는 한국인을 알릴 필요를 느꼈습니다” 현재 국제적인 홍보대행사 메리트 버슨·마스텔러의 부사장을 맡고 있는 마이클 브린(48)은 한국 주재 외신기자의눈으로 15년간 지켜본 한국·한국인의 모습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지난 99년 ‘한국인을 말한다(The Korean·홍익출판사)’를 출간하기도 했다. 1982년 영국 언론사 ‘더 타임스’의 서울 특파원으로 한국과 첫 인연을 맺은 그는 이후 15년간 한국과 북한 문제를담당하는 기자로 활약했다.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영국 일간 가디언,워싱턴 타임스,코리아 타임스의 컬럼니스트로도활동한 그는 몇 안되는 ‘서방의 한국학 전문가’로 꼽힌다.특히 80년대 한국의 민주화 과정 때 3년간 외신기자클럽회장을 지냈던 만큼 한국에 대한 그의 관심과 통찰력은 남다르다. 하지만 이런 그조차도 한국인에 대해 애정과 미움의 감정을 동시에 갖게 됐다고 고백한다.“한국은 마치 폐쇄된 상점 같아서 외국인은 자신이 영원한 손님이고 한국인들과 한가족이 될 수 없다고 느끼게 된다”는 것. 기자생활을 접은 뒤 한국에서 기업컨설턴트로 일했던 그의꿈은 사실 ‘작가’였다고 한다. 영국 에딘버러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이후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해 몇년간 공장과 유조선 등지에서 노동자로 일하기도 했다. “영문학도·노동자·외신기자·컨설턴트 등 여러 길을 거쳤지만 결국에는 꿈을 이룬 셈이지요”라고 말하며 환하게웃는 그에게 책의 출간은 또다른 의미가 있다.99년 봄 교보문고에서 열린 출판사인회 및 기념파티에서 지금의 캐나다인 부인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는 두번째 저서를 준비중이다.제목은 아마 ‘김대중(金大中) 대통령(The President Kim Dae Jung)’이 될 듯.“김대통령을 역사적 인물로 평가한다”는 그는 매일 아침 6시면 일어나 관련자료를 모으며 새로운 책 집필에 한창이다. 이동미기자 eyes@
  • 왕회장 뚝심이 일궈낸 ‘30년 거래’신화

    ‘왕회장에게 맨손 선박 수주의 신화를 안겨준 그리스 기업인은 현대중공업의 30년 고객’ 현대중공업은 그리스 선엔터프라이즈사가 6번째 발주한 7만3,000t급 유조선의 명명식을 4일 울산조선소에서 가졌다.선 엔터프라이즈사는 회장 이름을 딴 리바노스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리바노스 사장은 지난 70년 조선소 부지로 쓰일 백사장사진과 선박 설계도면만 갖고 찾아온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전 명예회장에게 26만t급 초대형 유조선 2척을 발주,세계 조선업계를 놀라게 한 인물.슬하에 1남4녀를 둔 그는 명명식이 있을 때마다 자녀들과 함께 방한했다.또 정 전명예회장이 타계한 직후에는 현대중공업에 추모의 글을 보내 고인에 대한 변함없는 우정을 표시했다.물론 두 회사의 사이가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70년 발주했던 26만t짜리 선박 가운데 한척을 인수해 가지 않아 결국은 현대상선이 인수하기도 했다.이런 갈등속에서도 양사의 관계는 지속돼 지금까지 모두 6척의 배를발주했다. 이번 명명식에는 리바노스 그룹 금융회사인 마로시안 브로커스사의프라포풀로스 사장이 참석,부인 샤론 프라포풀로스씨가 ‘아마존 글래디에이터’호라고 이름지었다. 김성곤기자 sunggone@
  • 50대 영국인 노 저어 태평양횡단

    [런던 연합] 50대 영국인이 아무런 도움도 없이 10m길이의 작은 배를 노를 저어서 몰아 태평양을 횡단하는 기록을수립했다. 영국 레밍턴 스파 출신인 짐 쉬크다(54)는 9개월전 남아메리카의 페루를 출발,274일 동안 1만 마일의 긴 여정 끝에 호주 퀸즐랜드 해안 인근에 도착한 뒤 부인과 두딸의환영을 받았다.엔지니어인 쉬크다는 원래 칠레에서 출발할예정이었으나 칠레 당국의 거부로 페루에서 태평양 횡단을 시작했다. 그는 태평양을 횡단하는 동안 상어가 배를 공격하는 바람에 위험에 빠지기도 했고 배 옆을 지나가는 유조선이 만들어낸 물살로 인해 침몰 위기를 겪기도 했다.쉬크다는 횡단과정에서 요리용 가스와 식량이 떨어져 몸무게가 84파운드(약38㎏)정도 빠졌다.
  • 이금룡 옥션사장 기고/ 디지털시대의 ‘정주영 정신’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전 명예회장은 20세기 한국 경제사에 큰 획을 남긴 우리나라 개발경제의 주인공이었다. 그는 뛰어난 아이디어와 타고난 부지런함으로 무(無)에서유(有)를 창조했으며,그가 보여준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기업가 정신은 후대 기업인에게 커다란 교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는 맨주먹 하나로 오늘날 ‘현대’라는 거함을 일으켜세운 가장 위대한 벤처기업인이었으며,탁월한 통찰력과 예지력으로 미래를 바라보고,미래에 대한 신념과 확신으로불가능을 극복한 분이었다. 특히 중공업이나 자동차산업 등 남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길을 먼저 개척함으로써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모험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도전정신 때문이었다. 500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 조선소 건설을 위한 차관을 도입하고,폐유조선으로 물길을 막아 서산간척지를 개간한 그의 창의력과 아이디어는 벤처기업인의 한사람으로 놀랍고도 존경스러울 따름이다.올림픽을 유치해 한국을 세계에널리 알린 업적 또한 세계를 무대로 비즈니스를 하는 신경제인들에게 국제화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 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처럼 정회장은 눈부신 업적과 값진 교훈을 남기고 이세상을 떠났다.아울러 큰 별을 떠나보내는 경제인들에게 더많은 숙제와 책임을 던져줬다. 이제 디지털 중심의 신경제시대에 ‘정주영정신’을 어떻게 수용하고,접목시킬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그가 황무지를 일궈 거대한 공장을 세우고,이를국가경제의 원동력으로 발전시켰듯이 이제는 디지털이라는무한의 공간을 바탕으로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해내야 한다. 신경제는 대기업 중심으로 발전해온 구경제의 기업구조와경영시스템과는 궤를 달리한다.신경제는 자본과 기계, 노동력 중심인 구경제와 달리 스피드와 창의력,네트워크,실험정신 등과 같은 보이지 않는 지적 자본의 가치가 매우높다.신경제는 더이상 느린 의사결정과 낡은 관행,불투명한 회계처리,정경유착 등으로 대변되는 구경제의 병폐를용납하지 않는다. IMF이후 최근 수 년간 국내 대기업들이 여러가지 폐단을드러내면서 유래없이 심한 몸살을 앓았던 것도바로 신경제로 바뀌어가는 패러다임의 전환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말할 수 있다. 이제 국내 경제가 다시 한 번 새로운 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조속히 수용함은 물론,장광한 가상의 공간을 개척해가는 모험적 기업가정신이필요하다. 도전과 창의를 중심으로 한 정주영정신은 이제 디지털이라는 환경으로 대변되는 신경제시대에 우리에게 뚜렷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그의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는 디지털이라는 무한의 공간을 중심으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내고,이를 기반으로 세계경제의 중심에 서야 할 것이다.이것이 그가 떠나면서 남긴 숙명같은 과제이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그의 잠언을 곱씹어 생각해본다.그리고 현재 벤처기업들이 고통스러운 시련기를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던지는 이 한마디의 의미를 새삼 되새겨 본다.가장 성공적인 벤처기업인이었던 정회장의큰 뜻에 경외의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 이금룡 옥션사장
  • 정주영 가족사

    정주영(鄭周永)전 현대 명예회장의 가계는 유교풍의 전통적인 대가족이다.6남1녀의 형제들 가운데 맏형으로 집안의어른이었고, 직계 자녀만 8남1녀를 두었다.손자와 손녀만도 20명이다.현대호(號)의 선장인 동시에 현대 패밀리의가장이었다. 동생과 두 자식이 앞서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겪었고,아들들의 경영권 분쟁으로 현대호가 크게 흔들리는 쓰라림을목도하기도 했다. 동생들에게는 처음에는 함께 일하다가때가 되면 독립시켜주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그래서 관련기업은 형제들과 아들들이 골고루 나누어 운영하고 있다. ■자녀그룹 장남 몽필씨가 지난 82년 세상을 떠나면서 2남몽구씨가 장남 역할을 하고 있다. 몽구씨는 동생 몽헌씨와갈등을 겪으면서까지 현대그룹의 모태인 건설을 잡고 싶어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대신 기아·현대차 회장으로자동차 관련 소그룹을 맡고 있다. 3남 몽근씨에게는 현대백화점으로 대표되는 금강개발산업을 맡겼다.4남 몽우씨는90년 자살했다. 5남 몽헌씨에게는 현대건설을 떼주었다.대북사업을 총괄하는 현대아산도 몽헌씨의 몫이다.자녀 가운데 유일하게정치에 뛰어든 몽준씨는 현역 국회의원.현대중공업을 이끌다가 지금은 고문으로 한발 물러섰지만 여전히 중공업의최대주주다.7남 몽윤씨와 막내아들 몽일씨는 각각 현대해상 고문과 현대기업금융 회장으로 금융업을 맡고 있다. ■형제 그룹 현대건설을 함께 일구어낸 첫째 동생 인영씨는 지난 62년 분가했다.인영씨는 현대양행을 설립하면서한라중공업을 기반으로 한 한라그룹을 형성했고,지금은 자식들이 이끌고 있다.둘째 동생 순영씨에게는 시멘트와 레저사업이 중심인 성우그룹을 떼주었다.여동생 희영씨는 규모는 작지만 한국프랜지 회장으로 장남 김윤수 부회장과함께 직접 경영을 맡고 있다. 넷째 동생 세영씨는 현대자동차를 키운 장본인.현대산업개발을 경영하는 등 가장 최근까지 정 전 명예회장과 일을한 동생이다. 지금은 현대산업개발의 경영권을 아들 몽규씨에게 넘겨주고 명예회장직만 맡고 있다.다섯째 동생 신영씨는 62년 독일 유학 중 작고했고,미망인인 장정자 여사가 현대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막내동생 상영씨는 80년그룹에서 분가한 KCC(전 금강고려화학)회장으로 금강종합건설 등을 거느리고 있다. 류찬희기자 chani@. *현대 선정 ‘정 회장 10대 업적'. 현대는 22일 기업가로서 탁월했던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10대 업적’을 선정했다. ■1965년 국내 최초로 해외 고속도로공사 수주■68년 경부고속도로 건설■71년 26만t급 유조선 2척 수주■74년 포니 승용차 개발■76년 사우디 주베일 산업항 공사 수주■81년 서울올림픽 유치■84년 유조선공법으로 서해안 개척■86년 포니엑셀 미국시장 진출■98년 소떼몰이 방북■2000년 금강산 관광사업 유치
  • 타계한 경제거목 王회장 정주영씨/ 창업자 세대의 퇴장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 명예회장의 타계로 한국경제를이끌어온 재계 1세대 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이들은 건설 중공업 전자 자동차 무역 유통 식품 화학 에너지 등 국내 대표산업을 일구며 60∼80년대의 고도성장을이끌어왔다.그러나 무리한 사업확장과 황제식 경영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산업구조를 왜곡,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와 같은 위기를 초래했다는 평가도 있다. 창업 1세대로는 고 정 회장을 비롯,고 이병철(李秉喆) 삼성,고 구인회(具仁會) LG,고 최종현(崔鍾賢) SK 회장과 김우중(金宇中) 전 대우,신격호(辛格浩) 롯데,조중훈(趙重勳) 한진 회장 등이 꼽힌다. 87년 타계한 이병철 회장은 섬유 가전 반도체 금융 등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기업들을 키워냈다.48년 무역회사인삼성물산공사를 시작으로 제일제당 제일모직 삼성전자를설립했다.삼성은 지난해 그룹 순익 8조원의 기록을 세우며한국경제를 이끌고 있다. 구인회 회장은 47년 그룹의 모체인 락희화학공업사를 설립,국내 화학공업의 기반을 닦았다.58년 금성사를 세워 라디오 선풍기 세탁기 냉장고 TV 등을 국내 최초로 생산했다.69년 구인회 회장이 타계한 뒤아들 구자경(具滋暻)회장이 이끌다가 95년 이후 손자 구본무(具本茂)회장이 경영을 하고 있다. 최종현 회장은 ‘석유에서 섬유까지’의 석유화학·에너지 전문기업군을 만들었다.80년 대한석유공사 민영화 과정에서 쟁쟁한 재벌을 제치고 인수에 성공한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94년 한국이동통신을 인수,지금의 SK텔레콤으로키웠다.재계 1세대 가운데 유일하게 경영 전면에 남아있는신격호 회장은 42년 일본에 건너가 껌을 생산하면서 그룹의 토대를 닦았다.롯데제과 호텔롯데 롯데쇼핑 롯데월드등을 설립,식품·유통분야에서 최고기업을 만들었다. 조중훈 회장은 조선소 직공에서 시작해 대한항공을 만들어낸 입지전적 인물.68년 고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권유로 대한항공을 인수,세계 10대 항공사로 키워냈지만대형 항공사고와 탈세 등으로 99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김우중 회장은 67년 대우실업으로 출발,과감성과 추진력으로 ‘세계경영 대우그룹’을 만들고 전경련 회장까지 지냈으나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그룹 해체의 쓴맛을 봤다.지금은 회계조작 등의 혐의를 받고 해외에서 떠돌고 있다. 김태균기자 windsea@. *이병철·정주영 비교. 재계에서 고 정주영(鄭周永)현대 명예회장과 고 이병철(李秉喆)삼성 회장은 끊임없는 비교의 대상이다.국내 산업사에서 두 사람의 이름이 차지하는 위치에서도 그렇지만성격이나 외모,경영 스타일 등 모든 면에서 극명하게 대조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카리스마가 워낙 강했기 때문에 이들의 성격차이가 곧바로 ‘현대식’과 ‘삼성식’을 나누는 기준이되기도 한다. 나이는 이 회장이 정 회장보다 다섯살 많다.이 회장이 천석꾼 집안에서 유복하게 어린 시절을 보내고 치밀하게 창업의 기틀을 다진 반면 정 회장은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만큼 어려운 가정에서 불우한 소년기를 보냈다.학력도 정회장은 고향에서 소학교를 졸업한 게 고작이나 이 회장은일본 와세다대에서 수학했다.그래서인지 이 회장은 경영교과서를 경영 실무에 적극 반영한 반면 정 회장은 교과서에 나와 있지 않은 해법을 선호했다.정 회장이 폐 유조선을 동원해 서산 간척지 물막이 공사를 마무리지은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성격도 정반대다.곱상한 이 회장은 술 잘마시는 사람들을질색했고, 타고 난 기골장대형인 정 회장은 술 못먹는 사람을 싫어했다.정 회장은 사원들 모임에 불시에 나타나 애창곡인 ‘해뜰날’ ‘나를 두고 아리랑’ ‘이거야 정말’등을 부르며 밤새워 술을 마시는 스타일이었다. 반면 흐트러지지 않는 옷차림에 표정 변화가 없었던 이 회장은 강한경남 억양의 사투리로 함축적으로 끊어 말하기로 유명했다. 상대방이 자기 말을 못 알아들을 경우에도 결코 다시말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기질이 사업에도 그대로 반영돼 현대는 건설 자동차철강 중공업 등 중후장대(重厚長大)형 그룹으로, 삼성은섬유 가전 식품 금융 같은 경박단소(輕薄短小)형으로 발전했다. 김태균기자
  • 타계한 경제거목 왕회장 정주영씨/ 주요 어록

    ■바닷가에 소나무만 서있는 백사장의 사진을 찍어 가지고다니며 이곳서 배를 만들 테니 사주시오 하고 다녔다(71년 12월 현대중공업 초창기 일화에서)■모든 것은 나에게 맡겨라.겁이 나거든 집에 가서 누워기다려라(74년 6월 현대중공업 26만t급 대형 유조선의 도크 이동을 지휘하며)■기업가는 자신이 일으킨 사업이 자기가 존재하지 않을때에도 영원히 존재하기를 바란다(77년 4월 전경련 회장취임을 앞두고)■돈 벌기는 소비재 장사가 쉽지만 그건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78년 12월 국세청 고액 소득자 랭킹 1위에 오르며)■기업 스스로가 책임경영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도전하는 것이 곧 자유기업주의다(78년 10월 전경련 ‘한국 경제의 과제’강연록에서)■새벽 5시반이면 일어나 30분씩 운동을 한다.운동은 보약이 필요없는 건강 비결이다(80년 ‘주간한국’인터뷰에서)■기업이 정부정책에 협조 안하면 경제가 클 수 없다.기업은 영원한 여당이다(80년 7월 언론 인터뷰에서)■호주머니 지갑에 든 것만 내돈이다.나머지는 모두 사회의 것이요,나라의 것이다. (80년 12월 언론 인터뷰에서)■종교는 기적이 있을지 몰라도 경제에는 기적이 있을 수없다(81년 5월 동국대 강연에서)■현대의 재산은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는다.사회가 바라는 사회사업에 기증하겠다(81년 9월 KBS방송 출연에서)■가난한 사람이 잘사는 방법은 씀씀이를 줄이면서 돈 안쓰는 것이다(81년 9월 KBS방송에서)■이기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반대한다. 스포츠란 정정당당히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84년 바덴바덴IOC총회에서 서울올림픽 유치를 성사시키며)■독점으로 상품의 품질이 국제 수준보다 떨어지고 값이비싸다면 이는 소비자를 수탈하는 것이다(88년 12월 언론특별대담에서)■몽헌 회장이 취임해도 중요한 일은 모두 저와 의논할 것이니 여러분은 아무 걱정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2000년 3월 몽구·몽헌 형제의 ‘왕자의 난’때)■본인은 오늘부터 모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납니다.아들인정몽구 회장과 정몽헌 회장도 함께 모든 경영 일선에서물러나겠습니다(2000년 5월 ‘3부자 동반 퇴진’을 선언하면서). ●정주영 생애. ■1915년 11월 강원도 통천군 아산리에서 출생■1930년(15세) 송전소학교 졸업■1940년(25세) 합자회사 아도서비스공장 설립■1946년(31세) 현대자동차공업 설립■1947년(32세) 현대건설주식회사 설립■1965년(50세) 한국 최초로 해외 건설공사 진출■1967년(52세) 현대자동차주식회사 설립■1969년(54세) 현대그룹회장 취임■1976년(61세) 한국 최초의 자동차 고유 모델 포니 생산■1977년(62세) 전국경제인연합회 제13대 회장 취임(1987년 17대까지 연임) 및 아산사회복지재단 설립■1981년(66세) 88서울올림픽 추진위원장으로 올림픽 유치에 성공■1982년(67세) 대한체육회 회장■1987년(72세) 현대그룹 명예회장 취임■1989년1월(74세) 북한을 첫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만남. 금강산 공동개발 의정서 체결■1990년(75세) 소련 방문,시베리아 개발 착수■1991년(76세) 중국 방문,중국과의 경제 협력 착수■1998년(83세) 북한 세번째 방문.금강산관광 성사,김정일국방위원장과 첫 면담.IOC 올림픽훈장 받음■1999년(84세) 9월28일 7차 방북■1999년 10월1일 김정일국방위원장과 두번째 만남■1999년 11월18일 금강산관광 시작■2000년(85세) 5월25일 건설 상선 중공업 등 계열사 지분정리하고 현대차 지분만 소유■2000년 5월31일 ‘3부자 동반 퇴진’ 선언■2000년 6월28일 8차 방북■2000년 6월2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세번째),금강산종합관광개발과 서해안공단 부지 조성 사실상 마무리. ■2001년 3월21일 사망
  • 타계한 경제거목 왕회장 정주영씨/ 일대기

    정주영은 격동의 현대경제사의 산증인이자 역사 그 자체다.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근대화의 거목(巨木)이었고,옛소련과 중국의 경제 교류를 이끌어낸 민간 외교관이었다. 서울올림픽을 유치,성공적으로 치른 체육인이면서 사회사업가이기도 했다.누구도 엄두내지 못했던 ‘소떼 방북’으로 금강산 관광을 이끌어낸 이도 그였다.‘소떼 방북’은지난해 6월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밑거름이 됐다.현대건설의 유동성 위기로 자신의 퇴진 여부가 도마에 올랐던 지난해 5월에는 ‘3부자 동반 퇴진’이라는 승부수를 띄웠던정주영.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그의 자서전 제목만큼이나 그의 인생 역정은 위기와 시련,극복의 연속이었다. ■소년 정주영 1915년 강원도 통천군 아산리의 산골짜기에서 빈농의 장남으로 태어났다.그의 호 아산도 고향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어려서부터 남달리 야심이 많았던 그에게“농사일을 하라”는 부친의 말은 성에 차지 않았다.가난은 야심찬 통천 산골의 소년을 잡아두지 못했다. 신천지를 꿈꾸며 세번씩이나 가출을 시도했던 정주영은 19살때 아버지가 소 팔아 모아 둔 70전을 훔쳐 들고 네번째‘탈출’에 성공, 드넓은 세상으로 나온다.그러나 기다리는 것은 냉엄한 현실뿐.막노동판을 전전하다 다다른 곳이서울 신당동 쌀 가게였다.황소처럼 우직하게 일한 그에게운이 따랐다.그의 성실성에 탄복한 주인이 그에게 쌀 가게를 넘겨줘 일약 점원에서 사장으로 올라앉게 된다.‘경일상회’라는 상호로 자신의 간판을 내단 것은 고향을 떠난지 4년 만의 일이다.보통학교(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인 그에게 ‘안되는 일은 없다’는 불굴의 의지가 생긴 것도 이무렵이다. ■사업은 탄탄대로 40년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에 자동차수리공장인 ‘아도써비스’를 창업하면서 본격적인 사업의길로 들어선다. 이후 46년에는 중구 초동에 현대자동차공업사를,47년에는 현대건설 모태인 현대토건을 세우며 사업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손대는 일마다 성공했다.그에게 ‘두려움’이란 존재하지 않았다.머리 속은 ‘도전’ ‘성공’이란 단어들로만 가득찼다.반세기에 걸친 ‘현대 역사’의 시발점이었다.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잠깐 부산으로 피란 길에 올랐던 그는 전쟁이 끝나자마자 복구사업에 뛰어든다.단일 공사로는최대였던 한강 인도교 복구공사를 맡아 일약 대형 건설업체로 부상한 것도 57년이다.62년부터 본격 추진된 경제개발계획때는 한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65년에는 태국의 파타니 나라와소 고속도로공사를 따내면서 국내 최초로 해외에 진출하는 개가를 올렸다.68년엔 박정희(朴正熙)전 대통령의 요청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사업을 성공리에 마친다.세계 최단 시간 완공이라는 기록까지남긴 이 공사는 ‘정주영’을 불세출의 인물로 각인시킨대역사였다. 70년대 후반은 중동 붐을 타고 대규모 건설공사를 수주,현대를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시키는 또 다른 계기가 됐다. 사업 절정기는 80년대.76년 최초의 국산 모델 ‘포니’승용차를 만들어 미국 수출 길을 닦았다.86년에는 포니의 후속 모델인 엑셀이 미국 수입시장 소형차 판매 1위를 차지,‘엑셀신화’를 만들어냈다.엑셀신화는 후속 모델인 엑센트,베르나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결단의 승부사 그의 ‘신화 창조’는 초인적 의지와 도전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그의 삶은 위기와 시련의 연속이었지만 그때마다 특유의 뚝심으로 승부를 걸었다.결과는 늘 적중했다. 고비때마다 결단은 더욱 빛났다.한국전쟁 당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한겨울에 유엔군 묘지에잔디를 깔라는 미군측 요청에 보리밭을 떠다가 푸른 잔디로 바꿔 현대건설이 미군 공사를 독점한 일화는 두고두고회자된다.조선소 도크도 없이 5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내밀어 영국에서 조선소 건설 차관을 따낸 일,일본나고야를 제치고 서울올림픽을 유치한 일은 아마도 그가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1984년 2월 서해안 서산 간척지의 물막이공사는 정주영의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준 사례다.양쪽에서 쌓아온 방조제의 끝 사이를 막아 조류를 차단하는 당시 공사는 유속이너무 빨라 난공사 중 난공사였다.정주영은 때마침 외국에서 들여온 고물 유조선 한 척을 활용하는 ‘기발한 발상’으로 물막이공사를 완벽하게 해낸다.후일 ‘정주영공법’으로 불렸을 정도다. 그런 그에게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다.92년 통일국민당을 창당,대통령에 출마해 떨어진다.대가는 비쌌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쓰라린 실패로 기록된 이 사건으로 그는 현대그룹 일선에서 물러났고,건강도 극도로 악화되는이중고(二重苦)를 겪어야 했다. 회사도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문민정부 5년간 각종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일 욕심은 물론 명예욕도 컸던 그가재벌의 정치 참여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을 계산하지 못해무리수를 둔 결과였다. ■마지막 불꽃,대북사업 금강산에 가졌던 그의 애착은 남달랐다.그에게 통천에서 가까운 금강산은 바로 고향이었다. 98년 6월 ‘소떼 방북’을 추진하면서 “아버님의 소판돈 70전을 갖고 집을 나선 뒤 긴 세월 동안 저는 묵묵히일하는 소를 ‘성실과 부지런함의 상징’으로 삼고 인생을걸어왔습니다. 이제 그 빚을 갚기 위해 한 마리의 소가 1,000마리가 되어 꿈에 그리던 고향산천을 찾아갑니다”라며벅찬 감회를 표현했다. 발이 부르트도록 방북 길에 올랐던 그의 노력은 헛되지않았다.‘3부자 동반 퇴진’과 함께 대북 총수 자리를 아들 정몽헌(鄭夢憲)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에게 물려줬지만대북사업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금강산 관광에 이어 개성공단을 따낸 것도 성과 중의하나다. 지난해 6월28일에는 막걸리를 싣고 방북,김 위원장이 지방 순시 중인 원산까지 날아가 대북경협을 담판짓는 지칠줄 모르는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주병철기자 bcjoo@. * 자식들엔 엄격 손주들엔 자상. 아버지 정주영은 자식들에겐 매우 엄격했다.잘못을 저지른 아들에겐 용서를 허락하지 않았다.아들들은 아버지 앞에서는 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고 고백하곤 했다. 92년 총선 전후까지만 해도 자식들을 한데 모아 아침을같이 먹고 계동사옥으로 출근할 정도로 가부장적인 면을지니고 있었다.자식들과는 달리 손자·손녀들에게는 정이많은 할아버지였다.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손자·손녀들을 자주 찾곤 했다. 이렇듯 위세당당하던 그도 나이는 이기지 못했다.말년에몽구(MK)와 몽헌(MH) 두 아들이 싸우면서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데 몹시 속상해 했다고 한다. 일 벌레로 비쳐진 그에게도 멋진 풍류가 있었다.‘아침이슬’을 곧잘 불러댔고,한번 마이크를 잡으면 ‘가는 세월’ ‘고향의 봄’ ‘고향무정’ 등 3∼4곡을 불러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노래를 좋아했다.시간이 날 때면 작가와화가를 만나 문학과 예술을 논하는 면도 있었다. 외지와의 회견에선 “120살까지 살겠다”고 장담했던 정주영.그러나 그도 불로초를 구할 수는 없었다.매순간 승부로 파란만장한 생을 살았던 대사업가 정주영은 이승에 ‘왕(王)회장’이란 이름 석자를 남기고 끝내 이 세상을 떴다.사업가로 첫 발을 내디딘 지 63년,47년 현대건설 전신인 현대토건을 설립한 지 꼭 54년 만의 일이다. 손성진기자 sonsj@
  • [21세기 산업현장을 가다] ‘조선 빅3’ 호황 무한질주

    * 거대한 선박전시장 현대중공업 탐방. 조선업계는 요즘 호황이다.국내 조선업체들은 지난해 세계시장의 51%인 19억5,000만GT의 수주실적을 올렸다.올해도 45%의 시장점유율이 예상된다.‘잘 나가다 보니’ EU(유럽연합)와 통상마찰까지 불거졌다. 저가수주 극복이라는 과제도 안고 있다.그럼에도 조선업은 다른 산업현장과 달리 호황 속을계속 질주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세계 1위의 조선왕국으로 우뚝 선 중심에는 현대중공업이 자리잡고 있다. 울산광역시 동쪽끝 방어진 앞바다를 끼고 있는 현대중공업에 들어서자 입구부터 단체관광객들과 외국 선박업체 관계자들로 북적댔다. “왜 이렇게 방문객이 많으냐”고 묻자 “현대중공업의 위상을 말해주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지금까지 집계된 방문객만도 1,200만명에 이른다. 현장은 현대중공업의 실체를 느끼기에 충분했다.육중한 몸통을 움직이며 선박용 강판을 쉴새없이 옮기고 있는 골리앗클레인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골리앗클레인의 꼭대기에 올라 내려다 보는 250만평의 작업장은 그야말로 거대한 선박전시장이다. 왼쪽의 전하만,오른쪽의 미포만에는 출항을 앞둔 선박들이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스웨덴의 콘코디아사로부터 수주받은 32만t급 ULCC(극초대형 원유운반선)와 네덜란드의 P&O 네들로이드사가 주문한 6,8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1개)급 컨테이너선 2척도 시야에 들어온다. 한 직원은 “출항에 앞서 시운전하고 있는 선박만도 19척이나 된다”면서 “우리는 구조조정이 뭔지 모르고 일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말했다.다른 직원은 “95년 일본 조선사가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LNG(액화천연가스)선을 현대중에 발주한 사실은 현대중의 기술력을 입증한 대표적인 사례”라면서 “94년부터 모두 7척의 LNG선을 건조했고 3척을 건조중”이라고 자랑했다. 현대중은 지난해 조선 엔진기계 해양 등의 사업분야에서 77억달러의 물량을 수주했다.이 중 조선분야는 컨테이너선과유조선을 비롯해 53억달러(82척)를 수주해 착공기준으로 향후 2∼3년치의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 현대중은 지난해 현대계열사의 지분을 정리하는 과정에서손실을 봐 당기순이익이 151억원밖에 안됐지만 영업이익은 7,569억원이나 됐다. 올해 경영전략은 내실경영으로 잡았다.잘 나갈 때 문단속을더 잘 하자는 뜻에서다.수주를 전년 대비 11.8% 감소한 67억7,000만달러로 잡은 것도 이 때문이다. 재무구조 안정성과 현금흐름의 중요성을 감안,시설투자는 전년보다 12.2% 줄어든 3,237억원으로 잡았으나 연구개발투자는 31.9% 증가한 1,154억원으로 정했다. “조선분야에서는 따라올 업체가 없도록 못을 박을 겁니다” 2010년까지 300억달러(36조)의 매출목표를 세운 현대중의‘2010비전(장기발전전략)’은 해외영업 강화·기술우위 확보·고객만족 경영이라는 3대 경영전략을 통해 빈틈없이 실천에 옮겨지고 있었다. 울산 주병철기자 bcjoo@. * 삼성重·대우조선은….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은 지난해 계열사인 삼성자동차의 부채처리와 부실자산 정리 등으로 적자를 보았지만 조선업황자체로는 호황을 누렸다. [삼성중공업] 경남 거제시 신현읍 장평리 거제조선소는 100만평 규모에 3개의 도크를 갖고 있다.1도크는 고부가가치선(여객선·LNG선),2도크는 석유시추선을 중심으로 한 드릴십,3도크는 대형 컨테이너선 등의 일반선으로 전문화돼 있다.초정밀도를 필요로 하는 심해유전개발용 원유시추선(FPSO)을세계 최초로 건조하는 등 특수선 건조에 노하우를 갖고 있다.지난해에는 세계 최대의 7,400TEU급 컨테이너선을 수주하는저력을 보였다. 올해 수주는 지난해(34억달러)보다 20% 가량 줄어든 27억달러로 잡고 있다.건조척수도 58척에서 29척으로 줄였다.그러나 영업이익 목표는 5,500억원.지난해에도 삼성자동차 부채정리때문에 적자(2,200억원)를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3,250억원을 기록했다.제어시스템 소프트웨어 등 성장가능성이 높은 신규 사업분야에서 수익성을 극대화한다는 전략이다. [대우조선] 삼성중공업에서 10분거리에 있는 옥포조선소도활기가 넘치기는 마찬가지다.지난해 10월23일 대우에서 분리독립된 후 옛날의 영광을 되찾자는 분위기가 넘친다. 올해 수주는 지난해 37억달러보다 다소 낮은 34억달러.건조대수도 53척에서 40척으로 줄였다. 그러나올해는 지난해의 적자경영(2,500억원 내외)에서 흑자로 반전시킨다는 계획이다.2,100억원의 영업이익(지난해 2,5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우조선의 특화분야는 LNG선 건조.지난해 해외에서 LNG선6척을 수주해 전 세계에서 발주된 14척 가운데 43%를 점유해이 분야 1위를 기록했다.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100만t급의 도크는 한꺼번에 30만t급 유조선 4척을 건조할 수 있는능력을 갖고 있다. 주병철기자. **3社 올해 경영전략. * 한대윤 현대중공업 전무. “건조기술을 짧은 시간안에 고도화하는 게 목표입니다” 한대윤(韓大胤·52) 현대중공업 조선사업본부 전무는 “지속되는 호황을 활용하지 못하면 조선업계의 앞날을 장담할수 없다”면서 조선업계의 기술고도화를 강조했다. 그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조선건조분야의 기술개발 외에엔진·기계 등 핵심업종 전략화에도 나서고 있다”면서 “올해만 하더라도 엔진·기계,플랜트 등 비조선 분야의 매출액이 3조7,000억원으로 조선분야 3조6,000억원보다 많을 정도로 핵심업종 전략화가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매출액만 1조원이 넘는 엔진기계사업부문,해양사업분야 등이 향후 집중투자할 사업분야라고 말한다. “요즘 흔히 쓰고 있는 ‘고부가가치선’이란 용어도 결국이익창출을 위한 것인 만큼 ‘고급선’ 건조에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이기호 삼성중공업 전무. “국내 조선업계는 중국의 추격에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이기호(李起浩·52) 삼성중공업 특수선사업부 전무는 국내조선업계가 호황이라는 말에 고개를 내젖는다.그는 “오히려끊임없는 기술축적과 특화가 국내 조선업계의 당면과제”라면서 “삼성중공업은 LNG선 등 고부가가치선은 물론 자동차수송과 레저를 겸하는 호화 페리선,크루즈선 등의 건조에 본격 뛰어들 것”이라고 말했다.선박 건조기술을 업그레이드시키겠다는 것. 국내 조선업계의 ‘내부출혈’을 막는 것도 과제다. “그동안 수주물량 확보에만 치우쳐 값싸게 수주해 왔지만앞으로는 제 값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는 가격경쟁력을높이기 위해 e비즈니스를 통한 부품공동구매 등도 적극 고려해 볼만하다고 제안했다. *송민호 대우조선 전무. ‘가치경영,고객감동 경영,종업원 활력 경영’ 대우조선이 올해 1월1일부터 새출발하면서 내건 모토다. 송민호(宋旼昊·53) 상선생산본부 전무는 “2010년까지 10조원의 매출에 2조원의 이익을 내는 기업으로 재탄생할 것”이라면서 “올해는 적극적인 외자유치를 통해 건실한 경영토대를 마련하는 해가 될 것”이라며 강한 의욕을 보였다. 그는 “기존의 보유기술로 볼 때 대우조선이 갖는 경쟁력은남못지 않다”며 올해 내실경영으로 2,000억원대의 흑자경영을 자신했다. 수주물량 증대에 따른 인력충원은 자제하고 아웃소싱 형태로 운영해 나간다는 복안이다.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잠수함 건조경험을 토대로 해양사업에 적극 투자할 계획도 갖고 있다고 밝혔다.
  • 해양수산부 “”자원수준에 맞게 연근해어선 감축””

    해양수산부가 8일 청와대에 보고한 올해 주요 업무계획을간추린다. [남북 협력사업 강화] 나진을 비롯한 북한의 항만시설 개발에 참여하는 방안을 마련한다.이를 위해 ‘통일 대비 한반도 항만개발 구상’을 연구 용역 중이며 오는 12월 결과가 나온다. 올해 동해 북부어장에서 시범적인 어업협력사업과 양식·어로 기술 및 자원관리 협력 방안을 추진한다.시베리아 철도와경의선이 연결돼 활성화됐을 때에 대비, 새로운 물류노선의개발을 모색한다. [수산업 구조 개편] 어장이 축소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원 수준에 맞도록 연근해 어선에 대한 전면 구조조정을 추진한다. 2004년까지 근해 어선의 25%인 1,300여척을 줄인다.자원 남획이 심각한 안강망 등 연안 어선을 315척 감척한다. 다음달까지는 부실화된 수협에 공적자금을 투입,구조조정을완료한다. [물류기지 구축] 중국의 상하이(上海)항 개발 계획에 맞서국가항만개발 계획을 전면 재수립한다.현재 26조원의 투자계획 규모를 40% 이상 늘려 2011년까지 현재 589척의 선박이정박할 수 있는 항만 규모를 922선석(席)으로 늘린다. 부산·인천항에 항만공사(PA)를 설립,기업경영원리에 입각한항만 관리체제를 구축한다. [해운산업의 안정적 성장] ‘선박투자 전용펀드제도’를 도입,해운업체를 지원한다.국내 해운업체가 해외 자회사를 통해 국내에서 선박을 건조할 경우 한국수출입은행의 수출금융을 이용하는 방안을 마련한다.유조선·LNG선 등 장기 운송계약 선박은 현행 200%인 부채비율 산정 기준을 대폭 완화하는방안을 추진한다. [신 해양산업 육성] 2010년까지 연 2조원 규모의 해양바이오산업 시장을 열기 위해 매년 20∼30개의 해양수산 벤처기업을 발굴해 지원한다. 조력과 조류를 이용한 해양에너지를 실용화하고 내년에는 이어도에 해양과학기지를 운영한다. 김성수기자 sskim@
  • [씨줄날줄] 갈라파고스 諸島

    요즘 우리 TV광고를 보면 검게 그슬린 강원도 산불현장을 배경으로그곳에서 살다 불에 타 죽었을 토끼 고라니 다람쥐 등 동물들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제 이들을 다시 만나려면 50년을 기다려야 합니다”란 멘트를 들려준다.공익광고협의회가 인간의 부주의로 인한 자연생태계의 파괴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일깨워주는 광고다.하나뿐인 우리 지구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생태계 파괴행위는 인간의탐욕과 부주의가 빚은 것이다.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1809∼1882년)이 “생물은 환경에 적응하는 종만이 살아 남아 발전한다”는 적자생존의 원리를 바탕으로 진화론을 주장한 저서 ‘종(種)의 기원’의 산실인 남태평양의 갈라파고스 제도(諸島)가 위험에 직면해 있다. 지난 16일 산 크리스토발섬 인근에서 좌초한 유조선에서 유출된 600여t의 기름 때문이었다.사고원인은 선원들의 근무태만이었다고 한다. 기름띠가 갈라파고스 해역 1,200㎢까지 확산돼 그곳에 살던 각종 동물들이 기름띠를 피해 육지로 올라오는 등 생태계의 보고(寶庫)인 갈라파고스제도의 희귀 동식물이 멸종할지도 모를 만큼 심각한 타격을입을 것이라는 보도였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남미 에콰도르 해안에서 서쪽으로 960㎞ 떨어진13개의 큰 섬과 6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화산도다.1535년 스페인출신의 프레이 토마스 데 베를랑가 주교가 발견했을 때 큰 거북이많이 살고있어 ‘갈라파고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갈라파고’는 스페인어로 ‘거북’.그러니까 ‘거북들의 섬’이란 뜻이다. 총면적 7,850㎢으로 가장 큰 섬인 이사벨라섬은 5,800㎢로 제주도보다 3배 이상 크다.활발했던 화산활동으로 절벽이 많고 밀림이 울창해사람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많은 이 섬은 기후도 온화해 각종동식물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대표적인 동물로 수명이 150년인 바다거북,열대 펭귄,다윈방울새,그리고 전세계에서 유일한 바다 이과나등 80여종의 희귀동물이 살고 있으며 고유식물만도 700여종이 발견되고 있다.인간의 탐욕과 부주의가 계속되는 한 생태계는 계속 파괴될것이다.그런 가운데 이뤄지는 환경보호운동은 ‘밑빠진 독에 물 붓기’와 다름없을 것이다. 박찬 논설위원
  • 유조선 폭발·침몰… 9명 사망·실종

    15일 오전 9시55분쯤 경남 거제시 남녀도 북동쪽 5마일 해상에서 파나마 선적 유조선 P-하모니호(5,544t급·선장 이창무·44·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서 연료탱크 청소중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유(油)증기폭발사고가 일어나 2항사 심경철씨(25·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등 선원 3명이 사망하고 선장 이씨 등 선원 6명이 실종됐다. 사고선박은오전 10시30분쯤 침몰했다. 해경과 해군 등은 구명정에 타고 있던 여자 실습생 김영은씨(22·경남 함안군 가야읍 현곡리) 등 선원 16명 가운데 7명을 구조하고 심씨등 사체 3구를 인양했다. 또 실종 선원 6명에 대한 수색사업을 벌이는 한편 정확한 폭발원인을 조사중이다. SK해운이 세낸 사고 선박은 이날 오전 4시55분쯤 울산 장생포부두에서 출항,전남 여수항으로 항해중이었다. ■사망자 ▲심경철▲1기사 신기범(54·서울 마포구 아현1동)▲갑판원감의식(37·부산 서구 서대신동)■실종자 ▲이창무▲1항사 이종식(32·부산 해운대구 좌동)▲2기사이승호(24·전남 목포시 상동)▲갑판장 박종식(44·인천 남구 주안동)▲갑판원 장일병(56·부산 수영구 망미2동)▲기관원 최상봉(61·인천 남동구 간석1동)부산 이기철기자 chuli@
  • “세기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테크노피아’ 기대감에 박수치며 호들갑스레 맞았던 새천년.그때의즈문둥이들이 훌쩍 자라 어느새 돌바기가 되었다.흥분이 가라앉고 보니,아뿔싸,우리는 얼마나 경솔했던가.지구촌 이쪽저쪽에서 요란스레울려댄 세기말 경보음들을 들뜬 마음에 파묻어버린 탓에 지난 한해유례없는 자연재해와 빈곤,질병의 천형 등을 댓가로 치러야 했다. ‘보거를 찾아 떠난 7일간의 특별한 여행’(질베르 시누에 지음,홍세화 옮김,예담 펴냄)은 일단 용감하다.다들 시들해질 만할 때(원서는지난해 5월 프랑스에서 출간) 세기말 문명 병폐를 정면으로 꺼내들었다.하물며 요령있기까지 하다.한 아버지가 빼빼마른 중국인에게서 산 마법의 양탄자에 아들을 함께 태워 문명이 피폐화시킨 지구촌 곳곳을 일주일간 가상여행한다는 얼개.토픽만보고 발길을 돌릴 독자들도한번쯤 멈춰세울만한 포장이다.공부잘하라,성공하라,독려하기보다 아이가 살아갈 지구공동체의 환부를 함께 아파하고 짊어지려는 아버지의 사랑은 한차원 윗길임이 틀림없다. 부자가 가는 곳마다 지구촌은 신음중.중앙아시아 아랄해는 개발의 삽질로 물고갈·생태계 파괴가 기승이며,프랑스 방데해변에선 유조선침몰로 온통 기름 뒤집어쓴 가마우지를 차마 눈뜨고 봐줄수 없다.산업국들의 이기주의가 지구 온난화를 촉진하는 한켠에선 해마다 3,000만명이 굶어죽고,아프리카 소년 보거가 절대빈곤 속에 에이즈에 허덕일 때,미국 콜롬바인 고등학교에선 인생이 무료한 백인소년들이 총기를 난사,급우들을 잡아죽인다. 아버지의 독특한 ‘화술’이라면 신문에서 어제 본 따끈한 사건들을인류학적,때로는 신화적 상상력과 어긋매낀다는 점이다.인류의 공통조상 ‘루시’가 이디오피아에서 발굴된 것은 아직도 기승을 부리는인종차별,인종청소 광풍을 무색케 할 노릇.15억년된 우주에 크로마뇽인이 출현한지 고작 3만4,000년.그러나 유전자조작식품들은 이 오랜진화의 산물인 유전자를 순식간에 휙휙 바꿔치며 생태계 질서를 헝클어놨다. 충격적인 수치와 통계를 인용해 환경파괴,아프리카 빈곤,독점자본의만행 등을 고발하는 책의 약점은,제시하고 고발할뿐 해결의 가닥잡기는 등한시하는 듯하다는 것.그래서 때론 유엔 보고서 같다.번역도팍팍한 편이라 주독자층으로 상정된 청소년들이 읽기엔 부담스러울지 모르겠다.차라리 부모들이 먼저 새김질해 아이들에게 들려주자.마법양탄자는 프랑스에만 있는건 아닐터.지은이는 프랑스 현대작가이며,옮긴이는 ‘파리의 택시운전사’ 그 홍세화다. 손정숙기자 jssohn@
  • [외언내언] 서산농장 매각 이후

    현대건설이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분할 매각하고 있는 서산농장은 농사를 위한 담수호를 포함,서울 여의도의 48배에 이른다는 광활한땅이다.한바퀴 둘러보는데만,시속 40㎞로 달리는 자동차를 타고,3시간30분이 걸린다.유조선에 물을 담아 가라앉혀 마지막 물막이 공사를 마무리 지었던,이른바 ‘정주영공법’으로 유명한 A지구 방조제에는,이 농장이 단일 경영 농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기도 하다. ‘세계 최대 규모’에 걸맞게 이곳에서는 기계화 영농이 이루어지고 있다.볍씨를 모내기 없이 비행기로 직접 뿌리고 농약살포와 수확 등 벼농사 전과정이 기계화돼 있다.쌀을 뜻하는 한자 미(米)에는 88번의 손이 가야 한다는 쌀농사의 어려움이 담겨 있다.그 많은 과정들이 생략된 이곳에서는 단 100명의 농민이 최신 영농기술로 3,330만평의 농사를 짓는다. 따라서 쌀 생산단가도 일반 농가 보다 훨씬 저렴하다.즉 쌀 1가마를 생산하는데 일반 농가에서는 8만∼9만원이 든다면 서산농장에서는 5만원∼6만원 밖에 안든다.물론 미국의 생산단가 2만5,000원∼3만원에 비하면 높은편이다.그러나 간척지의 염기가 완전히 빠지는 3년후엔35,000원까지 생산단가를 줄일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뿐만아니라 서산농장은 3차례에 걸쳐 북한에 보낸 ‘통일소’를 길러 낸 곳이기도 하다.B지구 목장에서 자라는 소들은 이곳에서 생산된 볏집과 쌀겨를 먹고 그들의 배설물은 다시 농장의 비료로 사용된다. 서산농장이 분할매각된 다음엔 어떻게 될까.환경단체들은 우선 국내 최대의 철새도래지가 사라질 것을 걱정한다.수천명의 일반인들이 농장을 나누어 소유하면 농약을 마구 쓰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철새 보호가 힘들게 되리라는 것이다.‘싹쓸이 추수’로 철새들의먹이감도 줄어들 것으로 본다. 해마다 이곳에는 천연기념물인 황새를 비롯 총 220여종 50여만마리의 철새가 날아 든다.철새 보호를 위한서산농장 매입운동,즉 또하나의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이 그래서 시작됐다. 그러나 철새의 운명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 농업경쟁력의후퇴다.한국 농업이 살 길은 농가부채 경감 등의 미봉책이 아니라 농업 생산성 향상을 통한 국제경쟁력 증진에서 찾아야 한다.그런데 서산농장이 분할 매각되고 소유자들이 각각 농사를 짓는다면 이곳의 쌀 생산단가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농림부가 “생산량은 더 늘어 날 것”이라고 아무 대책도 세우지 않은채 수수방관해서는 안될 일이다.서산농장의 소유자가 많아지더라도 지금처럼 쌀 농사만 짓는 절대농지로 유지하면서 단일영농법인이 과학적인 농사를 짓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임영숙 논설위원실장 ysi@
  • 미얀마 정박 싱가포르 유조선서 한국인 둔기에 맞아 피살

    미얀마 양곤항에 정박해 있던 유조선에서 한국 선원 1명이 피살돼해경이 진상파악에 나섰다. 7일 부산해경에 따르면 지난 5일 밤 11시쯤 미얀마 양곤항에서 원유하역작업을 하던 싱가포르 국적의 5,000t급 유조선 오션이글호(선장이창호·59·부산 사하구) 기관실에서 2등기관사 문종문씨(41 ·경남창원시 봉곡동)가 둔기에 맞아 숨져 있는 것을 동료선원이 발견했다. 미얀마 현지경찰은 사건 직후 선원송출회사인 부산 대륭해운에 “중국인 선원 린구오칭씨(26)가 ‘선장도 죽이려했는데 문이 잠겨 못죽인다’는 내용의 메모를 남기고 도주해 추격하고 있다”고 알려왔다. 부산 이기철기자 chuli@
  • 올 노벨경제학상 2인의 업적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맥패든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교수(63)는 계량경제학의 대가로 꼽힌다.서른한살의 나이에 정교수로승진,일찌감치 주목을 받았으며 이후 명쾌한 이론과 명강의로 이름을날려왔다. 개인의 직장·거주장소 선택에 관한 경제이론의 근거를 마련했으며이 이론은 샌프란시스코의 고속통근철도(BART) 설계와 전화 서비스및 노인용 주택에 대한 투자에 응용됐다.특히 ‘쌍대성’(duality)을이용한 생산이론은 국내 주요 대학원 계량경제학 교과서에 실려있다.맥패든 교수는 또 환경경제학 분야에서도 연구작업을 벌여 지난 90년대 알래스카에서 발생한 엑슨 발데스 유조선의 기름 유출 피해에따른 복지 손실을 분석하기도 했다. MIT 대학에서 버클리대로 옮겨올 때 ‘계량경제 연구소’ 신설을 조건으로 내걸었을 만큼 학문적 애착이 대단하다.버클리대 출신인 숙명여대 유진수(兪鎭守) 교수는 “물리학 심리학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등 학문적 관심범위가 매우 폭넓다”고 전했다. 맥패든 교수에게서 수업을 들은 재정경제부 국제기구과김선병(金琁炳) 서기관은 “백발에 콧수염을 기른데다 말씨가 나긋나긋해 ‘노신사’로 불렸다”고 말했다. 1937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수도인 랄리에서 태어났으며 미네소타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이때 터득한 수학적 소양과 통계학적 통찰력이 뒷날 계량경제학의 토대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공동수상자로 선정된 제임스 헤크먼 시카고대 교수(56)는 노동시장의 데이타는 일반시장과는 다른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똑같은 통계분석기법을 적용해서는 안된다는 전제에서 출발,노동시장 고유의통계분석기법을 개발해냈다. ‘개개인의 인지능력의 차이가 노동임금의 차이를 결정짓는다’는게 그의 이론의 핵심.한림원 회원인 칼 구스타프 외레스코그는 “헤크먼 교수가 개발한 모델에 힘입어 1년간의 교육이 임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를 분석할 수 있게 됐고 특정한 교육정도와 나이라는 조건이 주어졌을 경우 남자와 여자의 임금 차이에 대해 연구할 수 있게됐다”고 설명했다. 헤크먼 교수에게 배운 명지대 윤창현(尹暢賢) 교수는 “강의가 어렵기로 정평나 학생들 사이에서 ‘지킬박사와 하이드’로 불렸다”고전했다.그러나 일각에서는 헤크먼 교수가 그리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에서 의외라는 반응도 있다.KDI의 모 박사는 “업적에 관계없이 최근 노벨경제학상을 시카고학파가 독식해오고 있다”고 평했다. 안미현기자 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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