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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만년전 후기구석기 유물/부산서 대량 발견

    【부산=김정한기자】 부산시 해운대구 우동과 중동일대 신시가지 조성지에서 영남지방에서는 처음으로 2만여년전 것으로 추정되는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이 발견됐다. 부산시립박물관(관장 윤병용)발굴조사단은 16일 해운대 구석기시대 유적 발굴설명회를 갖고 망칫돌 받침돌 긁개 뚜르개 찌르개(석창) 다면석기등 수백점의 구석기 유물과 6세기쯤의 횡구식석실묘 6기,퇴기·철기류 23점등 발굴유물을 공개했다. 부산 시립박물관 송계현학예관은 설명회에서 『이 유적에서 망칫돌 받침돌등 석기제작과 관련된 유물이 출토된 점으로 미뤄 이곳이 구석기시대인들의 일시적인 거주장소로 추정되며 대규모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구석기시대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립박물관의 이번 발굴조사는 해운대 신시가지 조성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유적의 성격을 파악하고 학술적 자료를 확보키 위해 실시됐다.
  • ’93신춘서양화 초대전/새봄화단 화려하게 채색

    ◎서울신문 주최,내일부터 28일까지 서울갤러리서/원로·신진 19명의 미공개작 전시/「형상성」주제,다양한 기법 선보여/범화단적 기획… 한국현대미술의 흐름 한눈에 새봄화단을 화려하게 장식할 서울신문사 주최「93신춘 서양화 초대전」이 16일 서울 프레스센터내 서울갤러리 전관에서 개막된다.오는 28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는 원로에서 신세대작가에 이르기까지 엄선된 인물의 미공개 신작들로 구성돼 한국현대미술중에도 서양화의 다양한 면모를 한눈에 살필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초대작가는 원로급의 이대원 김영재로부터 김서봉 김수익 이건용 박용인 최쌍중 이중희 이석조 박권수 김선회 등 중진과 중견,권여현 김경열 주태석 김일해 박수룡 신종식 임봉규 황주리 등 젊은 작가에까지 그 구성이 매우 다채롭다. 새해들어 범화단적인 분위기로 기획된 첫 서양화초대전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끄는 이 자리는 초대작가들의 면면을 살펴볼때 표현양식과 형식을 초월한 「형상성」이란 문제로 주제를 집약시켜볼수있다.따라서 이 전시는 한국현대미술의 단면과 그 흐름을 짚어본다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회화에서의 「형상성」이란 의미가 매우 광범위하기 때문이다.즉 형상성의 의미안에는 극사실적인 재현작업에서부터 반추상에 이르기까지,그리고 사실주의에서부터 첨단의 테크놀로지아트까지 폭넓은 표현영역을 포함하고있는 것이다.그래서 이들의 작품에서 「형상성」이란 문제를 제외하면 공통성을 발견하기가 쉽지않아 관객은 오늘의 미술이 다원주의시대에 접어들었음을 크게 실감하게된다. 전통적인 사실주의 미학개념에 따르는 김서봉·김경렬은 대상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방식으로 이지적인 해석의 풍경화를 보여준다.인상파적인 조형개념에서 출발하는 김영재·박용인·최쌍중·김일해는 대상의 사실적인 이미지를 개인적인 조형감각으로 재해석해내 독자적인 세계를 이뤄낸 경우에 속한다. 김수익은 한국적인 정취를 강조하는 토속적이고 향토적인 소재및 구성으로 민족적 정서를 노래하고있다.그리고 이석조·박권수·황주리는 형상언어를 심상화하여 평면적 구조속에 서술적인 내용을 부여하고있다.그런가 하면 이건용·이중희·임봉규는 신체적인 힘과 미적 감정을 동시에 분출하여 역동적인 형상언어를 만들어낸다. 또 권여현·신종식은 이미지구성에 의한 상징적인 형상어법을 구사하는데 그 복합적인 이미지들은 암시적이고 은유적인 의미를 함축했다. 박수룡은 토속적인 이미지를 독특한 조형감각으로 변형하거나 또 왜곡하여 개별적인 형상에 도달한 작가로 인간을 새로운 감각으로 표현하면서 조형적 해석을 곁들였다. 이번 서양화초대전은 이렇듯 다양한 시각에서 선별되고있는 작품을 통해 한국 서양화작가들이 「형상성」이란 문제와 대결하여 어떠한 결과를 얻고있는가를 조망할수있는 뜻있는 자리가 될것으로 기대되고있다.
  • 삼국시대 대규모 주거지 발견/대구 욱수동

    ◎도로 등 「도시계획」 따라 조정 【대구=남윤호기자】 대구시 수성구 욱수동 택지개발지구에서 삼국시대(5∼7세기)도시계획에 따라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대규모 주거지가 발견됐다. 지난해 8월부터 이 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해 온 영남대발굴조사단(단장 권이구)은 11일 유구예상지역 1만5천여평 가운데 4천5백여평에서 삼국시대 주거계획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도로·연못·우물·건물지 등 대규모 취락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 유구지역에는 직경1m,깊이 2·4m의 우물 10개가 30여m 간격으로 나란히 축조돼 있으며 지면을 얕게 파서 자갈을 깐 뒤 흙을 덮어 축조한 너비 2·5∼3m 길이 40m가량의 도로도 3곳이나 확인됐다. 또 이 도로 위에는 마차등의 바퀴자국으로 여겨지는 폭 2∼2·3m의 파인 흔적이 남아있다. 이 도로는 지난해 10월 발굴된 시지동 지석묘군 지역의 도로와 동일 형태여서 당시 이 도로가 1·2㎞ 떨어진 두 지역을 서로 연결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와함께 길이 14m 폭 8m 깊이 1·5m의 장방형으로 구덩이를 판 뒤 활석을 이용해 10단 정도의 석축을 쌓은 연못도 발견됐다.특히 이 주위에서는 일본지역에서 많이 발굴된 굴립주형식 주혈형태의 건물지 7개소가 확인돼 주목되고 있다. 유적조사단은 이밖에 방추차·장경호·굽달린항아리·숫돌·어망추·기와조각 등 수천편의 토기와 표주박형 목제품 등 생활도구도 수습했다.
  • 항구도시 부산문화 한눈에/시편찬위,지역변천사 소개 착자발간

    환태평양시대를 주도해 나갈 국제항구도시 부산을 종합적으로 소개하는 지역안내지 「부산문화」가 부산직할시 시사편찬위원회에 의해 발간됐다.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부산포해전」의 승전 4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된 이 책은 부산의 자연,역사,문화유산,문화가등으로 구성돼 있다.부산의 역사편은 크게 3장으로 나뉘어 선사시대에서 현재까지 부산의 변천사를 시대별로 개관하고 있다.특히 제3장에는 조선시대,임진왜란시기,근대개항기,일제강점기에 걸쳐 다른 어떤 지역보다 외세노출강도가 심했던 부산역사를 심층적으로 기록해 사료가치를 높였다. 또 30여쪽에 달하는 부록편은 부산에 위치한 무대공연장,전시장,화랑가,극단,무용단,음악단,박물관을 비롯해 공공도서관,박물관,문화재,유적지·공원등 부산문화의 현주소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각종 정보를 싣고 있다. 이밖에 임시정부청사등 관련 컬러사진과 광복·남포·중앙동등 시내중심가와 서면·전포·대연동등 문화중심가의 안내지도를 곁들인 점도 눈에 띈다.집필은 강대민경성대교수,오건환시사편찬위원등 6명이 부문별로 맡았다. 박부찬부산시장은 발간사를 통해 『이 책이 4백만 부산시민의 애향심을 높이고,국제도시 부산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를 타지역인에게 제공해줌으로써 부산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큰줄기를 이해시키는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 파주서 고분 48기 발굴/통일신라·여말 추정… 백자 등 출토

    ◎법흥리 월음실 지구 【파주=김명승기자】 경기도 파주군 탄현면 법흥4리 산11 일대 속칭 월음실부락 고분군에서 통일신라시대와 고려말 조선조 초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생활유물이 대량 발굴됐다. 법흥리고분군 발굴조사단(단장 배기동·한양대교수)은 9일 지난해 11월부터 법흥리 유적지에서 지표조사를 정밀실시한 결과 월음실 A지구와 C지구에서 통일신라시대 말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돌덧널무덤(석관묘)8기와 B지구에서 고려말 조선조 초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널무덤(토간묘)40여기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돌덧널무덤에서는 인화문개합·동전·과대금구등 유물 20여점이 발굴됐으나 대부분 훼손돼 있었으며 무덤에는 도굴흔적이 있었다. 돌덧널무덤은 야산 꼭대기에서 아래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에 분산돼 있었고 ㄴ자형의 구덩이를 파고 만든 반지하식 구조에 긴쪽이 2백29㎝,폭 88㎝ 규모이다. 무덤은 할석으로 5∼7단을 쌓아 올렸고 바닥은 돌덧널 내부의 중앙을 따라 3∼7장의 편평한 할석으로 시상대를 꾸몄으며 여백은 점토를 다져 메운뒤 목관을 안치했다. 이 널무덤에서는 백자상감병·이형철기등 60여점이 출토됐다.
  • 청동기시대 성읍국가 존재 확인/BC4세기 창원지석묘 발굴 현장

    ◎5백평규모 1호분은 “왕릉급”/칠기문화흔적도 발견… 변진12국으로 발전 경남 창원군 동면 덕천리.진해만을 북으로 약간 비키면서 낙동강 남쪽 품에 안긴 구룡산 아랫녘 땅이다.청동기시대의 고인돌(지석묘)유적과 초기철기시대의 유적이 주변에 널려있거니와 변진의 실체를 보여준 1세기경의 다호리유적도 지척에 자리잡았다. 그 한반도 남해안의 덕천리가 새롭게 역사적으로 부각되고 있다(서울신문 6일자 1·22면).고인돌을 포함한 1만평규모의 유적지가 초기국가 형태인 성읍국가의 잔영을 처음으로 엿보게 한 것이다.경남대 박물관팀이 이 유적의 고인돌(3기),돌널무덤(12기),돌덮개 흙구덩무덤(5기)등을 발굴한 결과 덕천리 일대에는 이미 4세기경에 수장을 주축으로한 계급사회가 존재했음을 알게 되었다. 국가통치의 기본요건인 계급사회의 존재는 무덤형태(묘제)에서 우선 찾아진다.수장급 통치자가 묻힌 고인돌 묘역은 방형의 석축을 쌓아 구획했고,돌널무덤이나 흙구덩무덤은 그 외곽에 배치한 점이 그것이다.1호 고인돌의 경우 구덩이(8×6m)를 3단으로 파서 4.5m 아래 돌널을 만들고 그 위에 5장의 널돌을 얹었다.그리고 위에다 다시 돌무지를 한 뒤에 12장의 널돌을 2겹으로 덧덮어 실력자의 무덤답게 꾸몄다. 이 역시 처음 밝혀진 독특한 형식의 고인돌 무덤이다. 이 유적에서 쏟아져 나온 2백23점의 유물을 통해서도 초기 국가형태의 성읍국가의 실체는 물론 문화상을 가늠할 수 있다.고조선의 강역인 요령지방의 청동검을 지녔을 뿐 아니라 대롱옥을 치례거리로 갖추어 권력과 부를 함께 누렸다.돌을 가지고 청동기를 그대로 본 떠 간돌칼(마제석검)을 만들었고,흙으로 붉은간토기(단도마연토기)를 구었다.특히 나무에 입혔던 칠(칠)흔적이 여러군데서 발견되어 칠기문화의 존재도 확인되었다. 이 유적에서 분명히 잡히는 것은 한반도 남부지역 청동기사회에도 우월한 계급이 존재했다는 점이다.비슷한 시대에 수장의 무덤으로 여겨지는 유적이 한반도 인접국가에서 발견된 바 있다.중국 요령지방의 강상·누상묘나 일본의 방형주구 등이 그 실예로 꼽힌다. 어떻든 덕천리 유적을 근거로 한 청동기시대의초기의 성읍국가는 뒷날 변진12국으로 발전한 모태가 되었을 것이다.
  • 한반도남부/BC4세기에 국가형성/경남대조사단,창원지석묘발굴결과확인

    ◎비파형동검 등 유물 223점 출토/“청동기시대에도 막강 지배체제 존재” 【창원=서동철기자】 한반도 남부에 국가형성의 초기단계에 해당하는 지배체계가 현재 알려진 것보다 6세기 이상 앞서 존재했다는 사실이 5일 밝혀졌다.이는 경남대 박물관(관장 유장근)팀이 경남 창원군 동면 덕천리 168 일대 지석묘군에 대한 발굴조사결과 드러난 것이다.국가형성시기 왕의 무덤과 비견할만한 기원전 4세기 청동기시대 수장급의 무덤을 포함한 이들 27기의 유구에서는 비파형동검 1점을 비롯,단도 마연토기 8점,무문토기 5점,돌칼 3점,돌화살촉 35점,관옥 1백79점,목제품 2점등 모두 2백23점의 유물이 수습됐다. 지석묘가운데 1호분은 공동묘역안에 장방형으로 석축을 쌓아 물길을 돌린 5백평이상의 독립된 묘역으로 현재 확인된 석축의 규모는 남북 56m,동서 17.5m에 이르고 있다.주구와 석축으로 구획된 묘역을 가진 지석묘의 존재가 완벽히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이 무덤을 통해 청동기시대 당시 생활공간과 분묘공간이 분리되었다는 사실과 매장과 관련된의례행위등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이번에 확인된 유구는 ▲매장시설과 상석을 갖춘 지석묘(3기) ▲매장시설만 있는 석곽묘(12기) ▲돌뚜껑이 있는 토곽묘(5기)등이 주류를 이루고있다.이 가운데 수장의 무덤으로 보이는 1호분은 8m.6m의 묘곽을 3단으로 파서 4.5m 아래에 석곽을 쌓고 석곽위에 5개의 개석을 얹은뒤 30∼50㎝의 돌 80여개를 올렸다.그 위에 다시 12개의 개석을 2겹으로 덮고 묘광내부에 흙을 채웠는데 목질이 출토되어 나무널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했다.특히 출입로로 추정되는 서북단 모서리에서는 수십개체분의 무문토기조각과 토기에 구멍을 뚫어 폐기한 흔적이 발견되어 매장과 관련된 의식이 행해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조사단은 『이번 발굴을 통해 기원전 4세기경 한반도 남부지방의 청동기사회에도 막강한 세력이 존재했음을 확인했다』고 밝히면서 『지금까지 한반도남부에서 계급적 신분의 세력집단의 존재는 서기 2∼3세기로 추정되는 김해 대성동 고분이 가장 오래된 예였다』고 지적했다.한편 고대사학계 일부에서는 『비파형동검의 존재로 미루어 기원전 4세기 경에는 고조선의 영역이 이미 한반도 남부에까지 확대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를 제시함으로써 이 유적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 한탄강 구석기유적 보호하자/유적발굴 참여 최무장교수 특별기고

    ◎전곡리 일대 벽골공장 난립,유적층 파괴 한반도에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을까.북한의 구석기 시대 고고학자들은 적어도 50만년전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대동강가의 검은 모루 동굴유적이 그 대표적인 곳이다.그러나 필자는 북한고고학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이유는 한반도에 최초의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시기가 기원전 10만년 전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그좋은 예가 연천군에 있는 한탄강가의 퇴적층에서 찾을 수 있다.1979년부터 한탕강가의 전곡리유적이 발굴되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에 따라서 학자들은 적어도 30만∼50만년 전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다고 주장해왔다.그리고 10여년이 지난 금일에 이르러서 전곡리유적의 연대는 적어도 13만∼20만년전이라고 주장되고 있다.필자도 전곡리 발굴에 참가하였고 그 발굴보고서에 약10만년 전후로 보았고 지금도 그 생각에 조금도 변화가 없다. 전곡리유적은 한탄강가의 퇴적층에 있다.이 유적은 야외유적이며,유물의 산포지역이 약20만평이 된다.전곡리유적의 퇴적층은 현무암반 위에 있으며 이 퇴적층의 2∼3개 층내에서는 시기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음이 확인되었다.북한 두만강가의 굴포유적이 야외유적이고 금강가의 석장리유적도 야외유적으로 한반도 후기구석기시대의 대표적 예가 되고 있다. 동굴유적으로 유명한 곳은 상기한 상원 검은모루이지만 그들이 편집한 「조선유적유물도감」상의 타제석기는 석기로 볼 수 없다.물론 이 유적 내에서 다량의 동물화석이 출토되어 당시의 환경을 설명하여 주지만 실지로 인간행위의 산물인 석기는 인정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물론 인류생활의 척도에 있어서 동굴유적과 야외유적 중 어느 유적이 그 문화상의 척도가 될 수 있는가 하는 표준은 아직 설정되지 않았지만 동굴유적의 절대년대 평가의 폭이 너무 큰 반면에 야외유적의 절대연대 폭은 거의 없는(폭이 크지 않는)실정이다.따라서 한반도 구석기유적의 표준이 될 수 있는 한탄강가의 점토퇴적층을 하루 속히 원형대로 보존시켜 한반도 구석기시대 문화의 산교육장으로 연구되어야 된다고 본다. 이유는 전곡리유적에서 서북방향으로 2.5㎞ 지점인 한탄강가의 남계리유적을 필자가 89년과 92년12월에 2차에 걸쳐서 발굴을 실시하였다.작년 발굴에서는 중기구석기시대 대표적 층위(맨 아래 4층),후기구석기시대 초의 층위(3층)와 후기구석기시대 말(2층,맨 위층)등의 문화가 뚜렷하게 확인되었고 그 부근의 토층 단면에서는 마지막 빙하기 초에 사태(사태,solifluxion)에 의한 다각토(다각토,polygonsoil)의 현상이 발견되어 구석기문화에 대한 연구 뿐만 아니라 홍적세지질(제4기 지질)에 대한 산 교육장이 될 수 있는 중요한 현장도 확인할 수 있었다.그러나 이 한탄강가의 점토 퇴적층은 벽돌공장들에 의해서 거의 사라져가고 있는 실정에 와 있다.한반도 인류문화사연구의 표준지역이라고 볼 수 있는 이 강가에 위치한 벽돌공장(금강요업,부광요업,삼경요업 등)에 대한 당국의 철저한 행정적 재제가 시급하다.또한 이 부근의 피혁공장과 염직공장의 폐수로 인해서 한탄강물은 완전히 죽어있다.이 강물과 합류되는 임진강가에도 정화시설이 없는 소·돼지 사육장에 의해서 죽어가고있다.내무부,경기도,연천군 당국은 한탄강가의 점토퇴적층과 한탄강물을 살려서 우리 인류사에 대한 표준지역을 살려야 할 것이며,또한 문화부와 건설부 당국도 이 지역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건설중지를 병행해야 할 것을 촉구한다.부언할 것은 이 지역에 전곡리∼남계리∼금파리(파주)등의 구석기시대유적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 줄 것도 간곡히 부탁한다.
  • 원삼국기 유물 발견/대구/철도끼 등 2백여점 출토

    【대구】 대구시 북구 팔달동 산9의1과 북구 노곡동 107일대의 토광묘유적에서 원삼국기(초기철기시대)철제유물 1백여점과 장경호·고배등의 토기 69점,옥 1백여점,방추차등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경북대박물관(관장 윤용진교수)은 작년12월부터 2개월여동안 이지역의 토광묘 17기등 21기의 유구에 대한 발굴작업끝에 3∼4세기의 원삼국기 유물을 대거 발굴했다고 26일 발표했다. 특히 길이 48.5㎝,폭 2.7㎝의 환두도를 비롯해 철도끼 25점,철화살촉 50점,철검 4점,쇠칼등 철제유물이 다량으로 발견됐다. 윤교수는 『당시 농업기술의 발달과정을 살펴볼 수 있고 진한에 철이 많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유적』이라고 밝혔다.
  • 「한국의 집」 개원 12돌/「전통문화보호가족」 결성

    민족전통문화 보존및 전파의 산실로 운영돼온 「한국의 집」이 개관12주년을 맞아 전통문화확산운동의 거점으로 새롭게 태어난다.「한국의 집」 운영을 맡고 있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사장 김치곤)은 23일 정기이사회를 열어 현재 7천만원이던 재단기금을 5억원으로 늘리기로 하고 국민속에 전통문화를 사랑하는 분위기를 대대적으로 확산시킬 각종 프로그램을 마련키로 했다. 이 재단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있는 사업은 「전통문화보호가족」의 결성.그동안 「한국의 집」에서 실시해온 전통문화학교를 수료한 1천2백여명과 지방및 해외문화유적답사에 참가했던 5백여명등 모두 1천7백여명을 우선적으로 조직하여 전통문화의 전파자로 활용할 계획이다.이들 전통문화보호가족에게는 「한국의 집」에서 벌이는 각종행사 참가및 문화용품 구입에 일정액을 할인해주며 5대궁과 능원의 입장도 무료로 해 전통문화에의 접촉기회를 최대한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3월부터 개강하는 6개월 혹은 1년 단위의 전통문화강좌·연구강좌·전문강좌·신부학교등의 수강인원을 배로 늘리기로 하고 국내문화유적답사와 해외문화유적답사 프로그램도 다양화하기로 했다.또 문화재 복제사업도 폭을 넓혀 그동안 회화복제 위주이던 것을 전통생활기구등으로도 확대,큰비용을 들이지 않고 누구나 우리 전통문화의 향기를 집안에서 접할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한편 삼성동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의 신축 기공을 계기로 경복궁내의 전통공예관,잠실의 서울놀이마당,필동의 「한국의 집」을 기능별로 밀접하게 연계시키는 프로그램도 구상중에 있다.또 「한국의 집」의 식당기능을 한차원 높여 우리고유의 맛을 바탕으로한 식생활문화를 보존하고 현대적 감각으로 되살리는 연구기능도 부여할 예정이다. 지난해 4월 부임이후 문화재보호협회를 재단으로 격상시키는등 전통문화보호에 남다른 열의를 보이고 있는 김치곤이사장은 『전직 공무원,교사등 사회적으로 영향력있는 분들이 공직에서 물러나 한가해진 시간을 전통문화학습에 몰두하는데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하고 『이분들을 중심으로 우선 1만명을 목표로 전통문화보호가족을 결성,전통문화에 대한 확산을 꽤해나간다면 우리사회에 전통문화를 바탕으로한 가치관 확립에 큰 역할을 하게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 광개토대왕비/무분별한 탁본으로 비 마모

    ◎문화재연,길림성 집안박물관장 보고서 입수… 훼손과정 공개/1880년 발견직후 이끼 제거위해 불/훼손된 자에 엉뚱한 글자 새겨넣기도/일제,역사왜곡위해 두차례나 강탈 시도 광개토대왕비 발견이후 지금까지 훼손 과정 및 보호관리 상황을 종합적으로 담은 연구보고서가 국내 학계에 처음으로 공개됐다.최근 발간된 연간 학술지 「문화재」제25호에 실린 「호태왕비의 보호와 현 상태」란 제목의 이 보고서는 현지전문가인 중국 길림성 집안박물관 경철화부관장이 썼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이 보고서는 문화재연구소가 지난해 말 집안현지에서 고구려문화유적의 보존상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입수한 것이다.보고서에 따르면 광개토대왕비는 1880년을 전후,그 존재가 세상에 다시 알려지면서 불질러져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것으로 돼있다.이후 무분별한 탁본과 석회를 사용한 잦은 글자 보수로 원형을 크게 잃었는데 발견 당시 표면에 이끼가 두껍게 끼어 있어 탁본을 뜨기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전한다.그래서 마분을 비석표면에 두텁게 바르고 말린다음 불을 질렀기 때문에 비면 곳곳이 불에 튀고 들뜨는 큰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불에 그을려진 시기는 비석과 이웃해 살던 초천부(1847∼1918)라는 사람이 1883년 쯤 처음 탁본을 시도한 직전으로 추정했다.탁본은 초천부의 뒤를 이은 아들 초균덕 등 여러사람에 의한 맹목적이고 무분별하게 장기간 행해진 것으로 알려졌다.그 결과 성근 각력응회암 석질의 비석이 불에 튀어 갈라진데다 자주 두드리는 바람에 글자의 모서리가 갈라지고 부스러져 심지어는 탈락된 것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비문의 판독이 점차 어렵게 되자 탁본을 하려는 사람들은 1900년께부터 해마다 석회를 발라 보수를 해왔다.그 상황을 경부관장은 『문자가 똑똑하지 않은 곳은 석회로 채우고 그려넣어 비문가운데 일부는 필획이 많아지거나 적어졌고 심지어는 거짓글자(위자)를 적어넣은 것도 있다』고 밝혔다.이어 『1905년 일본인 시라도리 히코요시가 이 비석을 일본으로 실어갈 것을 제안한 일도 있다』고 털어 놓은 그는 『1907년 이후에는 일본침략자들이 한술 더 떠서 군함으로 이 비석을 실어가려 했으나 국민들의 격렬한 반대로 실패했다』고 적고있다. 광개토대왕비는 1961년 중국 국무원으로 부터 「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된뒤 부터 본격적으로 보호되었다.1962년 집안현 문물보호관리소는 위험한 상태에 있던 이 비석에 대한 전면적인 현지조사를 실시,그 점검결과에 따라 중국 문화부 문물국은 1964년 「호태왕비 화학보호처리사업소조」를 구성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1년동안에 걸친 모의실험에서 자신감을 얻은뒤 1965년5월부터 50여일에 걸쳐 보존처리작업을 벌여 성공적인 결과를 얻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1974년에는 비석의 기초를 튼튼히 하기위해 가로 세로 8미터의 시멘트 명대를 설치했다.또 이 보고서를 통해 비석에 대한 화학약물 재처리와 함께 1979년에는 새로 갈라진 틈을 접착제로 고정시키는 등 보존처리를 해온 사실도 드러났다. 현재의 비각은 1982년에 착공,1983년에 마무리됐는데 1928년도에 처음 세웠던 비각은 몇차례 보수를 거듭했지만 계속 기울어져 헐어버린 것으로 기술됐다.그리고 지금도 걸려있는편액「호태왕비정」은 첫번째 비각을 세울 당시인 1928년 현지사 유천성이 썼다는 것이다.
  • 선사시대서 조선까지 생활사 한눈에/국립민속박물관 17일 확장개관

    ◎4천3백여점 시대순 분류전시/경복궁 중앙박물관자리/입체음향·영상 등 특수기법 선보여 국립민속박물관이 경복궁안 동쪽에 있는 옛 국립중앙박물관 자리에서 17일 개관식을 갖고 문화부 직속기관으로 새롭게 문을 연다. 새 민속박물관은 1만2천8백40평의 부지에 연 건평이 4천4백54평으로 순수 전시면적만도 2천2백44평에 이른다.이 것은 옛 민속박물관 시절 부지 2천9백60평에 연 건평 1천2백63평,전시면적 6백24평이었던 것에 비해 3∼4배 이상 커진 것이다.이에따라 전시품도 2천4백여점에서 4천3백여점으로 크게 늘어나 내실있는 전시가 가능해졌다. 민속박물관의 전시관은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야외전시장을 갖추었다.상설전시실은 다시 「한민족 생활사」를 담은 제1관과 「생활문화와 민속」을 담은 제2관,「한국인의 일생 및 사회제도」를 담은 제3관으로 나누어진다. 「한민족 생활사관」은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한민족의 생활사를 시대순으로 배치해 이해를 돕도록 했다.선사시대의 각종 생활도구와 청동기시대의 생활상,고구려의 생활문화,백제의 제사유적,신라의 왕경도,가야의 야철공방,고려의 인쇄 및 청자문화,조선의 한글창제와 과학기술 등 주로 정신세계와 관련된 자료들이 복원 전시된다. 「생활문물과 생산민속관」은 생업자료 및 농경문화와 세시·수렵·어로·수공예를 비롯해 우리 전통사회의 의·식·주 생활을 엿볼수 있도록 꾸몄다.고대 에서부터 근래까지 쓰였던 각종 농기구와 정월 대보름놀이 등 농경 세시의례를 비롯해 각종 옷과 장신구,부엌 세간 및 세시음식과 일상음식,각종 가옥의 모형 등을 전시하게 된다.이 밖에 양반 사대부의 생활과 내면세계를 살펴볼수있는 안방과 사랑방,칠기와 화각공예품이 전시되며 옹기가마도 복원해 놓았다. 「한국인의 일생과 사회제도관」은 한국인이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거치는 통과의례와 오락,사회제도 및 종교에 관한 것들을 담았다.득남을 비는 풍습과 선바위,서당,향교,관례 및 혼례,회갑연,상청과 제례상,사당,주막,굿청,각종 놀이모습이 전시된다.또 문방구류,악기,화폐와 교통·통신과 관련된 봉수대,조운선 등이 모형으로 재현된다. 이들 전시는 모두 디오라마,모형,입체음향과 영상매체를 이용한 특수 전시기법을 적극 활용해 관객들의 즐거움을 더하고 이해를 높이도록 했다.한편 중앙홀에서는 개관을 기념하는 「한국의 건축문화」특별전이 열린다.여기에는 신라의 안압지와 황룡사 9층탑,백제의 미륵사,고려의 다실,조선의 근정전,동십자각,사랑방 등의 모형이 포함됐다. 야외전시장에는 귀틀집과 원두막,솟대 등 생활문화가 원형의 크기로 들어섰다.이 밖에 영상실 및 2백52석 규모의 강당이 들어서 사회교육 기능을 담당하게 되며 기념품 판매대도 마련했다.
  • 「한가락 시조모임」/두번째 시조집 펴내

    ◎옛 선비들 풍류 즐겼던 유적지 탐방/현장서 읊은 13명회원의 작품 실어 조상들의 숨결이 남아있는 전국의 정자들을 찾아다니며 시조문화활동을 전개해오고 있는 「한가락 시조 모임」이 두번째 시조모음집 「한가락」을 펴냈다.13명이라는 많지 않은 회원들이 매달 한번씩 전국에 흩어져있는 유적지중 옛 선비들이 시조를 지어 불렀던 정자를 골라 답사하고 현장에서 즉석으로 지어 읊은 시조들을 다듬어 현장 사진과 함께 한데 모아놓은 책이다. 우리 조상들의 문화유산인 시조를 원형 그대로 가사와 창,문학과 음악이 조화를 이뤘던 모습으로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한가락 시조 모임」이 발족한 것은 지난 90년 4월.매주 월요일이면 어김없이 모여 시조공부를 하고 또 매달 한번씩 전국의 유적지를 탐방하면서 풍류를 즐겼던 선조들의 멋을 체험하는 것이 이들의 주요활동이다. 지난 91년 첫번째 시조모음집을 낸데 이어 얼마전 나온 두번째 시조집 「한가락」에는 포천 왕방산에 자리한 고려말 선비 이헌 성여완의 묘소를 시작으로 지난 7일 경북 군위군 효령면 삼영정에 이르기까지 모두 34회에 걸친 전국 유명 정자탐방결과가 담겨있다. 시조시인 중관 최권흥씨의 지도아래 진행되는 이들의 「역사탐방」은 정자주변에 둘러앉아 현장에 대한 역사공부와 함께 토론을 벌인뒤 선비들의 정신을 되새기는 시조를 지어 그 자리에서 읊어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근대화과정을 거치면서 물밀듯이 들어온 서구문물과 사상의 와중에서 우리 조상의 문화유산이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는 안타까움에서 모인 「한가락 시조 모임」.20대에서 60대까지 세대차를 넘어서 고르게 분포된 뜻깊은 문화사랑공동체이다.
  • 이집트관광 한인 폭탄테러 셋 부상

    【카이로 AFP 로이터 연합】 이집트의 극렬 무장 회교도들이 4일 피라미드를 구경하려던 외국관광객들에게 화염병을 던져 한국인 3명이 가벼운 부상을 당했다고 이집트 경찰이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회교과격주의자 3명이 카이로에서 피라미드 유적지에 이르는 기자시의 한 호텔변 관광버스에 화염병폭탄을 던져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15명의 관광객중 한국인 3명이 다치고 버스와 경찰차가 파손됐다. 회교 극렬주의자들은 정부가 지난해 12월 자신들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활동에 들어가자 이에 항의,외국관광객에 대한 테러를 자행해 오고 있으며 이번 테러는 지난해 영국인 관광객 1명이 살해된후 3번째이다.
  • 민족문화 창달(신한국 원년:23)

    ◎종합문예관 시·도 1개이상 건립/도서관은 10만명당 1개꼴로/지방시대 향토축제도 활성화 「문화의 힘이 삶의 힘이 되고 예술의 향기가 생활의 향기가 될때 신한국의 풍요로운 삶은 보장된다」 그러기 위해서 문화예술은 언제 어디서나 모두가 부담없이 즐기고 누려야만 한다는 것이 김영삼차기정부의 생각이다. 품위있고 차원높은 문화예술을 국민 모두가 누리고 이를 통해 특히 건전한 청소년문화를 육성·발전시켜 복지사회의 「정신적 기반」을 형성하는 것이 필수적이란 판단인 것이다. 문화시설의 사회교육적 기능을 내실화하고 국민 누구나 쉽게 문화예술을 접촉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 김차기대통령정부는 우선 국·공립 문화기관을 문화예술 연수기관으로 지정·운영하 것을 검토하고 있다. 또 모든 문화기관에 국민참여 기회를 확대하는 각종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지역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향토문화축제의 활성화도 꾀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문화의 대중화는 국가재정 규모의 0·43%에 불과한 현 문화부문 예산으로는 불가능하다. 예술인의 창작여건 개선과 지방문화의 활성화,청소년문화 육성과 선진방송기반의 구축등 삶의 질을 높이는 작업은 의욕 못지않게 재정의 뒷받침을 요구한다. 따라서 김차기대통령 정부는 문화정책과 관련,먼저 예산규모를 국가재정의 1%이상 투자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문화진흥기금의 확대조성 ▲종합문화예술인회관 건립 ▲문화창조자의 대우와 권리강화 ▲주요 문화유산 복원등을 이룩,문화창조자의 창작여건을 개선하고 예술인 복지지원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우수 예능인력을 육성하기 위해선 예능특기자에 대해 종전과 같이 병역특례를 부여하고 원로예술인 복지지원금 확대와 저작권제도 개선등을 통해 문화창조의 여건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김차기대통령 정부는 문화민족의 자긍심 고양을 위해 전통문화의 전승창달로 문화의 정통성을 확립하겠지만 대중예술활동도 보호·육성하는 시책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물론 김차기정부는 「우리것」의 전승으로 품위있는 민족문화를 복원시킨다는 것이 1차적 목표이다. 기·예능보유자와 후계자에 대한 전승지원금확대,전통 기·예능의 체계적 전수교육 및 상설공연을 위한 무형문화재 종합전수회관 건립등 인간문화재의 활동여건개선과 문화재의 원형보존을 꾀하는 것이 그 증거이다. 그러나 문화의 다양성과 특히 지방화시대에 걸맞는 지역문화창달에도 비중을 두고 있다. 지역문화공간을 대폭 확충하기 위해 ▲시·도단위별로 1개이상의 종합문예회관을 건립하고 ▲인구 10만명당 1개 수준으로 공공도서관을 확충하는 한편 ▲새마을문고를 읍·면·동당 1개씩 육성한다는 것은 지방문화를 활성화하여 문화혜택을 골고루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국립박물관의 건립을 확대하여 지역의 주요유물을 체계적으로 보존·전시토록 하고 신라·백제·가야·중원문화권등 고도의 문화유적을 종합정비한다는 것은 「중앙집권적인」문화가 아닌 「지방분권적인」문화의 다양성을 도모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차기정부 문화정책의 가장 큰 특징은 2천년대의 주역이 될 청소년육성에 초점이 맞춰진 미래지향적인 정책이란 점이다. 청소년의 유형·성별·연령 등에 따라 1백50개의 수련 기본프로그램을 개발,인격형성에 도움을 주고 시·군·구단위까지 청소년 상담실을 확대,청소년의 고충을 해소시켜 밝은 내일의 주인공으로 키운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밖에 학교주변의 유해 환경을 정화하고 ▲폭력배로부터의 보호 ▲마약·약물의 남용방지 ▲비행예방대책 등도 강구되고 있다.
  • 대북한 정책(신한국 원년:17)

    ◎실질교류폭 확대… 통일태세 완비/화해·협력·동질성 회복 등 단계적 실천/「임기내 이산가족 상봉」 최우선 과제로 김영삼 차기대통령이 제시한 신한국은 향후 5년간을 통일의 바로 전단계로 규정하고 있다.금세기내에 통일을 실현시킨다는 목표아래 화해·협력의 시대정착,동질성 회복및 통일문화 마련,실질적 통일태세 완비라는 단계적 수순을 정해놓고 이를 착실하게 실천에 옮긴다는 계획이다. 김차기대통령이 임기내 통일 대신 굳이 금세기내 통일을 약속한 것은 집권 5년내 통일을 이루기 위해 무리한 정책을 펴는데서 오는 부작용을 방지하자는 뜻으로 해석된다.또 통일이 우리가 서두른다고 해서 당장 실현가능한 것이 아니라는,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및 국제정세에 관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영삼정부는 임기내 통일이 이루어질 경우에 대해서도 충분한 대책을 수립해놓고 있다. 김영삼정부의 통일정책은 주로 교류·협력의 틀을 다지기 위한 구체적인 개별 사안들로 구성돼 있다.특히 동질성 회복과 통일문화 마련을 위한 획기적 대책 항목에는 문화·체육등 비정치적인 부문의 교류·협력사업이 상세하게 기술돼 있다. 새정부는 우선 남북이 모두 역사적으로 긍지를 느끼고 있는 학술과 언어에 대한 공동조사·연구를 실시함으로써 민족이라는 정신적인 측면을 강조,굳게 잠긴 마음의 빗장을 풀겠다는 생각이다.종합국어대사전 편찬 10개년 사업추진과 만주·발해등의 문화유적 공동탐사등은 이같은 의도에서 비롯된 사업이다. 또 생태계의 보고로 일컬어지는 비무장지대에 대한 조사를 통해 우리의 자연에 대한 애착을 공유함으로써 남북 주민들에게 일체의식을 심겠다는 복안도 갖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문화예술인 상호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하고 3·1절과 8·15등 남북이 공히 민족적인 기념일로 인정하고 있는 날을 기해 문화예술축전을 개최해 경직된 이데올로기 밑에서 왜곡·변질된 북한내의 민족문화를 순화하는 동시에 점차 문화교류의 폭을 넓히겠다는 생각이다. 또 단일팀으로 출전,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던 탁구·축구등 타부문에 비해 교류가 활발한 체육부문의 교류를 확대 추진,올림픽과 아시안게임등 종합국제대회에 단일팀을 구성해 출전하고 체육교류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공동상설기구를 설치하여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의 공동유치를 교류·협력사업의 범주에 포함시켜놓고 있다.그리고 오는 95년에는 광복 50주년기념 체육행사를 대대적으로 개최,민족의 동질감을 대내외에 과시할 계획이다. 김영삼정부는 또한 점차 고령화되어가는 이산가족 1세대들의 한을 풀어주는데 대북정책의 역점을 두고 있다. 새정부는 이를 위해 고향방문단의 교환을 정례화하고 우편물 교환을 조기에 실시하며 판문점이나 기타 양측이 합의하는 장소에 면회소를 설치해 이산가족의 자유왕래및 접촉,재결합을 시도한다는 계획을 추진할 방침이다. 새정부가 이산가족 재회를 대북정책의 최우선과제로 정한 것은 임기내에 최소한 이산가족문제만큼은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따라서 이산가족문제는 김차기대통령의 임기내에 어떤 방식으로든 결말이 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새정부는 이같은 교류·협력을 위한 재원을확보하기 위해 남북한 신뢰구축에 따른 실질적 군축에서 발생하는 국방예산의 여유분을 전용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기존의 남북협력기금을 확충할 예정이다. 김영삼정부는 이같은 비정치적·인도적 차원외에 남북 직교역 실현,나진·선봉등 북한경제특구에의 적극 진출,남북합작사업 확대등 경제교류의 활성화를 통해 민족동질성을 회복하는 한편 북한 주민들의 경제적 삶의 질을 높여 통일후에 들어갈 비용을 줄이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또 통일이 장기적으로 이루어질 경우에 대비,국토개발및 산업구조를 재조정하고 단절된 교통망의 복원,금강산과 설악산을 연결하는 국제관광단지 조성등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주력함으로써 통일 한국의 경제적 기틀을 다진다는 거시적 청사진을 펼쳐보이고 있다. 김영삼정부는 그러나 북한핵과 북한주민의 인권문제에 관해서는 보다 단호한 입장을 보일 전망이다. 김차기대통령은 북한핵문제를 민족생존과 직결된 문제로 규정,국제사찰과 함께 남북동시사찰을 반드시 실현시켜야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또 계기가 있을 때마다 북한주민의 인권보장을 촉구할 계획이다.
  • 도밍고,혼신의 무대 준비/고저음반복 바그너작 오페라 2개 맹연습

    ◎96년 공연계획… “성악가 최후시험대” 도전 스페인이 배출한 세기적인 테너가수 플라시도 도밍고(52)가 성악가로서 자신의 역량에 대한 마지막 도전에 나섰다고 시사주간지 타임 최근호가 보도했다.그동안 역부족으로 여겨왔던 독일작곡가 바그너의 두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지그프리트」를 정복하는 것을 남은 생애 최대의 과제로 설정하고 이를 소화해내기 위해 중년기의 열정을 다바치고 있다는 것이다. 도밍고 스스로 『오페라에 관한한 마지막 대도전』이라고 할 만큼 바그너의 오페라는 성악가들에게 두려운 레퍼토리로 꼽히고 있으며 특히 독일태생이 아닌 도밍고에게는 난공불락의 영역이었다. 물론 도밍고가 바그너의 오페라에 전혀 생소한 것은 아니다.그는 지난 68년의 「로엔그린」을 시작으로 이미 「탄호이저」,「파르시팔」등 5∼6편의 오페라에서 주인공역을 해냈다.이들 작품은 바그너 오페라의 한결같은 특징인 갑자기 고음에서 저음으로 바뀌거나 반대로 저음에서 고음으로 치닫는 부분이 많지만 도밍고는 그런대로 무난하게 소화했다는 평을 받았었다. 그러나 독일 오페라의 쌍두봉으로 지칭되는 「트리스탄과 이졸데」,그리고 「지그프리트」는 도밍고에게 있어 엄두를 내기가 어려운 숙제였다.그는 『바그너의 작품을 소화하고 나면 다른 작품에서는 거의 어려움을 느끼지 않게 된다.나는 이같은 이유로 트리스탄과 지그프리트역에 무한한 매력과 유혹을 느껴왔지만 자신이 없었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도밍고가 이 두 작품에 정면도전을 결심한 것은 최근 오스트리아 빈의 국립오페라극장에서 가진 바그너의 「전쟁의 여신」공연에서 얻은 자신감이 크게 작용했다.이 오페라는 절망한 주인공 지그문트가 부친이 죽으면서 남긴 긴급시 사용할 무기얘기를 상기하고 「아버지의 칼은 어디에 있습니까」하고 절규하는 대목이 절정으로 가수와 관객 모두를 긴장시키는 대목이다.지그문트역을 맡았던 성악가들은 거의 모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이 대목에서 음이 불안정해지고 주춤함으로써 관객의 이마에 땀이 돋게 했었다. 그러나 도밍고의 무대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그는 이 공연에서 풍성한 성량과 완벽한 음조절,그리고 무엇보다도 바그너가 설정한 지그문트의 은유적 성격묘사를 능가하는 표정연기로 극장안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도밍고는 이제 더이상 바그너가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아직 독일어발음에 스페인어 억양이 강하게 스며있지만 중요한 것은 발음이 아니라 탄력있는 목소리와 음악적 재능이라고 강조한다. 도밍고는 현재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과 오스트리아의 빈 국립오페라단으로부터 이들 두 작품을 96년에 공연하자는 제의를 받아놓고 있다.
  • 관·민합심「강진 병영면사」펴내/고대∼조선시대 해상교역·군사 요충지

    ◎산재한 성터·유적 발굴,옛 긍지 되살려/“지방자치단체서 향토문화뿌리찾기 뜻깊은 일”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은 지명에서 알수 있듯이 조선5백년동안 호남지역의 군수권을 통괄하던 병마절도사의 잔지가 위치한 군사요충지였다.우리 주위에는 이처럼 역사속에 뿌리를 내린 향토문화의 현장이 곳곳에 산재돼 있다. 최근 이같은 병영면의 향토사를 담은 「강진군마을사­병영면편」이 강진군과 병영면 그리고 강진문화원의 공동작업끝에 발간됐다.향토문화뿌리찾기가 활발한 요즘 이같은 면단위사를 지방자치단체에서 펴낸 것은 뜻있는 작업으로 평가된다. 강진군 병영면은 마한­백제­통일신라­고려­조선에 이르는 역사적 변천을 거쳐 오늘날 12개 법정리에 22개 자연마을을 이루고 있는 해상교역과 군사요충지로 유명한 지방이다.여말선초에 걸쳐 왜구의 피해가 극심했던 이 지역보호를 위해 1417년(태종17년) 광산현에 있던 병마절도사의 영이 옮겨와 이후 전라도군수권을 통괄하는 사령부로 당시 50여 군·현의 병권을 장악했던 곳이다.병영성터,공적비군,남장대,북장대등 당시의 유적이 지금도 남아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또 이곳은 을묘왜변(1555년),임진왜란(1592년),정유재란(1597년),동학난(1894년)등 국난을 당할 때마다 화를 입은 호남지방의 수난의 고장이기도 했다. 「병영마을사」는 이같은 병영면의 연혁과 지리적 환경,문화적 성격,자료편을 모은 총설편과 12개 마을의 각사 그리고 이 지역 출신인사들의 글을 모은 병영면예찬,병영면에 내려오는 마을문서등 모두 4백35쪽으로 짜여졌다.특히 이 책은 강진군과 병영면등 자치단체가 지원하고 강진군문화원과 민간에서 운영하는 탐진향토문화연구회가 발간의 주축이 되어 만든 관민합동작품이라는데 의미가 있다.자료수집과 탐문작업에 마을주민 모두가 자발적으로 나서서 참여한 점 또한 남다르다. 이번 작업을 통해 군사요충지로서의 병영면이 갖고 있는 모습뿐아니라 효자와 열녀를 장려하는 전래풍속,인품·학식·덕망있는 사람을 동수장으로 모셔 중요 일을 결정한 동수장제도,수십년동안의 마을품앗이역사를 기록한 진세봉상책등 타지역에서는 보기힘든 습속을 찾아내는 성과도 거뒀다. 김갑현병영면장은 발간사에서 『우리 고장의 자랑스런 역사에도 불구하고 유적과 전설이 제대로 보존되어 있지를 않아 안타까웠다』면서 『이번 마을사발간이 언젠가는 반드시 이뤄야 할 숙원인 병영성복원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 사회단체들 「예비대학」 개설/지성인의 자세 미리 체험한다

    ◎서울Y 등 이달말부터 한달간 강좌 잇따라/교수직강·특별활동 등 유익한 내용 구성 예비대학생들에게 대학생활에 대한 적응력을 높여주고 나아가 의미있는 대학생활을 해나가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예비대학」프로그램이 잇따라 개설된다. 지난 84년 예비대학 프로그램을 개설,올해로 10회째인 서울YMCA는 92년부터 이 프로그램을 안양·인천·수원·천안Y까지 확대해 이 지역에 거주하는 학생들에게 폭넓은 선택의 기회를 주고 있다. 교육내용은 크게 강의와 특별활동으로 나뉘어지는데 강의는 오늘의 대학·대학인,학문의 본질과 지식인의 역할,대학인의 지적활동 등을 주제로 대학교수들이 직접 참가해 강연을 맡는다. 특별활동으로는 풍물·민요·영화상영·등산 등의 문화활동과 예비대학캠프·축제,신문발간 등의 행사가 있으며 이밖에 대학의 구심체인 학생회를 미리 경험해 보게 함으로써 대학인으로서의 자세와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을 키워준다는 취지로 예비대학 학생회 선거도 갖는다. 개설기간과 장소를 보면 서울Y는 오는 28일부터 2월8일까지서울Y 강당에서,안양·수원·인천·천안Y는 오는27일부터 2월7일까지 각 회관 강당에서 열린다. 프로그램의 내용은 5개지역이 거의 비슷하고 2월5일과 6일 1박2일 일정으로 속리산 유스타운에서 열리는 「대학캠프」에는 5개지역 학생들이 공동으로 참가한다. 서울 YWCA도 제8기 예비대학을 오는 25일부터 2월2일까지 서울 YWCA강당에서 연다. 교육내용은 「대학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를 주제로 대학의 이념과 본질에 대한 강연,인간관계 훈련 등의 프로그램과 함께 ▲탈춤강의와 실습 ▲유적지 탐방여행 ▲독서와 토론 ▲모의 총학생회장 선거와 학회지 제작 ▲젊음의 축제 등으로 구성된다. 이밖에 지난해 예비대학 캠프를 마련했던 「또 하나의 문화」도 예비대학생과 대학생들이 함께 참가하는 형태로 1월말이나 2월초 「대학생 캠프」를 마련할 예정이다.
  • 구석기문화 밝힐 돌마치 3종 발굴

    ◎건대 최무장교수팀,경기 연천군 남계리서/3개층위서 발견… 8만∼2만년전 유물 추정/불 구석기와 같은 형태… 아시아선 처음 출토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남계리에서 한반도 구석기문화의 표준을 설정할 수 있는 유적이 발굴됐다.최고 8만년전까지 올라가는 시기부터 형성된 이 구석기유적에서는 돌마치와 주먹도끼등 많은 석기유물이 나와 학계가 주목하는 유적으로 떠 올랐다. 건국대 최무장교수(고고학)팀이 지난11월26일∼12월 29일까지 발굴한 이 유적규모는 1천2백평.모두 1∼6번까지 6개의 피트(구덩이)를 설정,발굴한 결과 층위를 달리한 문화층에서 3종류의 돌마치를 발견함으로써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왜냐하면 층위를 달리한 문화층에서 여러 종류의 돌마치가 한꺼번에 출토된 것은 동북아시아에서는 처음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 구석기문화의 표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돌마치가운데 가장 오래 된 것은 제4번피트 맨아래 문화층인 4층에서 주먹도기와 함께 출토됐다.황홍색 지층에서 나온 이 돌마치는 둥근형태의 석영제로 지름 9㎝정도의크기.무스테리안기에 해당하는 중기 구석기시대의 전형적인 돌마치로 밝혀졌다.돌마치는 석기를 만드는데 사용되어 많은 표피부분이 바스러졌으나 그 원형은 비교적 잘 남아있었다. 이 돌마치의 중요성은 8만∼3만5천년전의 프랑스중기구석기유적에서만 출토된다는 점에서 찾아진다.따라서 이번 남계리유적 제4피트 아래층(4층)에서 나온 돌마치가 사용된 시기는 프랑스와 비슷한 중기 구석기시대로 추정되었다.프랑스에서만 출토된 중기 구석기시대의 돌마치가 아시아지역에서 발굴에 의해 출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돌마치는 제4피트 4층이외에 제5피트 3층과 제4피트 2층에서도 나왔다.홍갈색 점토층인 3층에서 출토된 둥근 돌마치역시 석영제로 지름 7cm크기.톱니석기와 긁개,첩두기와 함께 출토되었다.이 돌마치는 4층 출토물보다 좀더 발전한 형태를 보이는데다 공만한 유물성격으로 미루어 후기 구석기시대초기인 3만5천년∼3만년전 시대에 형성된 유적으로 추정하고 있다. 제4번 피트 2층 출토 돌마치는 형태가 크게 변화했을 뿐아니라같은 층위에서 석기제작소까지 발견됐다.길이 11㎝,지름 7㎝로 좀 기다란 형태를 한 이 돌마치는 오래 사용했기 때문에 표피가 거의 다 떨어져 나갔다.주위에는 많은 석핵과 돌부스러기가 널려 있어 석기제작소의 존재를 입증했는데 대개 2만년전의 문화로 편년되었다. 건국대는 지난88년 현재 발굴위치 이웃에서 후기구석기시대초기의 석기유물인 부리형밀개를 우리나라 발굴사상 처음 발견한바있다.그래서 남계리유적은 전곡리유적,파주군 금파리유적과 더불어 한탄강유역을 잇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방대한 구석기문화대의 중요 유적으로 평가되었다. 남계리유적 발굴책임자인 최무장교수는 『가장 이른 시기에 형성된 제4층부터 시작하여 연대가 차츰 내려오는 제2층까지의 각 문화층에서 고고학발굴을 통해 돌마치가 출토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이는 한반도구석기문화의 표준유적의 요건을 갖춘것』이라고 설명한 최교수는 『특히 제4층의 돌마치는 프랑스중기 구석기문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아시아최초의 출토유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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