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유적
    2026-08-08
    검색기록 지우기
  • 자취
    2026-08-08
    검색기록 지우기
  • 임용
    2026-08-08
    검색기록 지우기
  • 선장
    2026-08-08
    검색기록 지우기
  • 이명박
    2026-08-0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9,631
  • 장보고 숨결·실체 파헤치기 한창(문화현장)

    ◎M­TV 창사특집 「해상왕…」 완도 제작현장을 보고/청자조각 발굴… 「원목렬」 시료1천년만에 채취/새자료 나와 객관적 평가 내려지는 계기 될것 김의 산지로 유명한 전남 완도군 완도읍에서 때아닌 유적발굴 소리가 들려온다.1천년전 1만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중국과 일본,한반도를 잇는 해상무역왕국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장보고(790(?)∼841년)의 숨결을 더듬어가는 작업이 바다와 육지에서 한창이다.전남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 787번지 장도,일명 장군섬 주변과 완도와 해남을 잇는 완도교 앞바다.신라말 완도 청해진을 거점으로 한·중·일 해상무역권을 형성했던 장보고의 실체를 재조명하는 MBC-TV 창사특집 문화다큐멘터리 「해상왕 장보고」(연출 박정근) 제작진은 땅속에서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는 청자와 기와파편등을 신중하게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지난89년부터 삼국사기등 고대 문헌에만 기록돼있던 장보고의 청해진 「터」에 대해 실시된 문화재연구소의 장도·청해진 유적 발굴조사단(단장 조유전)의 작업은 그 역사적 자리매김을 새로 내릴수 있다는 의미에서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여기에 지난 19일부터는 MBC측의 요청에 따라 해군 충무공 해전유물발굴단(단장 황동환대령)이 해저유물 탐사에 지원하고 나서 더욱 활기를 띠고 있었다. 「해상왕 장보고」제작진에 10월 20일은 뜻깊은 날이었다.상오11시30분쯤 완도 앞바다에 정박,수중탐사를 벌이고 있던 해군 탐사선에서 장보고의 해상활동을 역사적으로 입증해줄지도 모를 청자조각들이 잠수부들에 의해 처음으로 건져올려진 것이다.장도 유적지에서 발굴된 것과 유사한 것이어서 탐사선은 잠시 「떨림」으로 술렁거렸다.또 상오9시쯤에는 장도주변을 따라 무역선들의 접안시설겸 방어용으로 축조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원목렬」이 1천년만에 처음으로 펄속에서 파헤쳐졌다.원목에서 채취된 시료는 정밀한 연대측정을 위해 연구소로 보내졌다. 신라 흥덕왕의 허락아래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해적을 진압하고 활발한 무역활동을 하다 조정내 보수파들에 역적으로 몰려 암살당한 장보고.장보고에 대한 우리 학계의 평가다.그러나 새로운 유물및 자료발굴로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다시 내려져야 할 시점을 맞았다.조사위원으로 발굴에 참여하고 있는 서울대 최몽용교수는 『장보고라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객관적·긍정적 평가가 내려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해상왕 장보고」는 12월2일을 전후에 4부작으로 제작,방송될 예정이다.
  • 잠깨는 고향(평화 싹트는 중동:2)

    ◎「팔국 수도 예리코」 건설열기 고조/행정부처 들어설 호텔 개조작업 한창/국제기구·민간경제조사단 속속 입국 지난 8일 하오,팔레스타인 잠정국 수도로 내정된 요르단강 서안(웨스트뱅크)예리코시 외곽에 급조된 축구경기장에서는 하늘이 들썩일 것 같은 함성이 올랐다.그리고 누구도 지휘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1만5천여 관중이 일제히 기립,목청이 터져라고 팔레스타인 국가를 불렀다.합창이 두번,세번 계속돼도 사람들은 경기장을 떠날줄 몰랐다. 팔레스타인 국기가 나부끼는 경기장에서 그 국기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치른 최초의 국제축구경기.이스라엘 전역에서 예리코시 상주인구(1만2천명)보다 더 많이 모인 팔레스타인인 관람객들은 이미 「독립국가」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이날 경기는 세계평화 증진을 위해 분쟁지를 찾아 다니며 연 50회 이상 시합을 갖는 프랑스 평화축구팀이 찾아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정체결을 기념해 가진 친선게임이었다.승리는 급조된 팀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팀을 1­0으로 꺾은 팔레스타인팀에게 돌아갔다.○「독립국」 기쁨 만끽 아라파트의장을 대신해 경기를 관람한 PLO대표부의 사에브 에리카트 정무담당관은 『오늘의 승리는 팔레스타인 전체의 승리이며 팔레스타인인은 기회만 주어진다면 모든 것을 해낼 수 있음을 입증한 쾌거』라고 소감을 밝혔다. 기원전 8천년경부터의 거주 흔적으로 세계 최고도시임을 자랑하며 신구약 성서상의 수많은 역사유적을 간직한 요단강가의 조용한 관광도시.그 예리코시가 지금 나라없는 한에 사무친 팔레스타인인들의 꿈과 희망을 한몸에 안고 있는 활기찬 도시로 변해가고 있다.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의 면적은 다합쳐서 6천㎦.우리나라 충청북도 보다도 작다.그 가운데 올 12월13일부터 자치가 실시될 지역은 가자지구(3백63㎦)와 예리코시 등 4백㎦에도 못미친다.그러나 5년후 웨스트뱅크 전역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국가설립의 기초작업이 이뤄질 곳이라는 점에서 특히 수도 예리코의 비중은 크다. ○땅값 10배나 폭등 시 청사가 자리잡고 있는 중앙 로터리를 중심으로 늘어선 상가마다엔 팔레스타인 깃발이 힘차게 나부끼고있고 시민들은 이제 두세달 후면 아라파트의장을 맞게 된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세계은행 등 원조를 계획하고 있는 국제기구와 개별 차원의 경제조사단,팔레스타인과의 우호관계 탐색을 위한 각국 정부관리 등 수많은 외국인들도 지금 이 도시를 앞다퉈 찾고 있다. 시내의 땅값은 이미 10배 이상 뛰었으며 착공 5년째 뼈대만 세워놓고 공사가 지지부진하던 야리하 거리의 호텔도 내장공사에 급피치를 올리고 있다.약삭빠른 상혼 또한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관광객들을 겨냥한 상품마다에 「평화의 도시 예리코」란 글귀를 새겨넣고 「평화」를 팔기에 바쁘다.예수가 세례를 받고 40일 금식한 후 마귀의 시험을 받은 것으로 유명한 「유혹의 산」 아래에 있는 「유혹 레스토랑」에서는 「세계 최고 도시 예리코로부터의 축복­평화」라고 쓰인 T셔츠가 16달러씩에 날개돋친듯 팔리고 있었다. ○“경제중심지” 야심 자치업무를 맡게 될 팔레스타인민족행정기구(PNA)가 입주할 예정인 이곳 유일의 히샴 팰리스호텔은 2층방 10개를 의장실및 각 행정부서로 개조하는 작업으로 부산했다. 「수도만들기」 준비작업을 총지휘하고 있는 자밀 사브리 칼라프 예리코시장(63)은 『우선 학교·병원·교통·통신 등 사회기반시설 확충이 필요하고 다음 단계로 공항건설과 예리코­가자지구를 연결하는 도로가 건설돼야 한다』면서 『무엇보다 요르단 국경의 출입 간소화와 예루살렘·가자지구 등지로의 통행자유화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어려움은 많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은 상술이 뛰어나고 성인 2%가 대졸인 고급인력을 갖고 있는데다 연3억달러에 달하는 해외송금의 재개,외채가 없는 재정 등 건실한 기반을 갖고 있다』고 설명하고 『일단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가면 수년내 홍콩이나 싱가포르 이상 가는 국제적인 경제 중심지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청사를 나오면서 문득 눈길이 머문 길 건너편의 이스라엘 경찰본부.이스라엘 국기가 펄럭이고는 있었지만 높은 철조망으로 둘러쳐진 요새같은 청사가 왠지 외딴 섬처럼 보였다.
  • 실명제이후/세금우대 은행상품 쏟아져(업계는 지금…)

    ◎이자소득세 5%… 융자혜택도/전가족용 통장 등장… 청소년은 증여세 면제 금융실명제가 실시되자 은행들이 세금우대나 증여세 감면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절세형 금융상품을 앞다퉈 선보이고 있다.실명제로 이제는 과거처럼 남의 이름으로 여러 개의 통장을 갖는 것이 불가능해졌다.이에 따라 은행들의 신상품 개발전략도 크게 달라졌다.자기 이름으로 기존의 세금우대 혜택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종전에는 저축과 신탁상품을 묶어 세금우대가 적용되는 개인당 한도를 늘리는 것이 고작이었나 최근에는 가족 모두가 하나의 통장으로 거래하면서 최고 2억원까지 세금우대를 받을 수 있게 설계된 상품들도 등장했다.더욱이 지난 5일부터 세금우대 상품의 1인당 가입한도가 저축은 1천2백만원에서 1천8백만원으로,신탁은 1천5백만원에서 2천만원으로 각각 늘어 세금우대 상품의 인기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신바람 가족통장◁ 소매금융을 강화하기 위해 선보인 절세형 개인종합통장이다.가계부문에 대한 금융지원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1인가입한도 높여 가입후 3개월이 지나면 본인및 가족 명의의 각종 예금과 신탁,자동이체에 의한 공과금 납부 등의 거래실적에 따라 최고 5천만원까지 가계자금을 대출해주고 1년이상 거래하면 결혼(한도 1천만원)·주택구입(한도 5천만원)·개업자금(한도 1억원) 등도 추가로 대출받을 수 있다.보통·저축·자유저축·가계당좌예금중 하나를 모체계좌로 정하고 여기에 각종 세금우대 상품들을 연결해 거래할 수 있다.한일은행이 개발했다 ▷자유적립부금◁ 납입금액·횟수·납입일·계약액을 고객이 결정하고 계약기간의 4분의 1이 지나면 납입평잔의 7배 이내에서 중소기업은 3억원,개인은 2천만원까지 대출해 주는 상품으로 제일은행에서 발매중이다.4인 가족을 기준으로 7천2백만원까지의 이자에 대해 5%(일반에금은 21.5%)로 분리과세되는 세금우대 혜택을 받을 수 있다.가족명의로 예금할 경우 1천5백만원까지 증여세가 면제된다. ▷신세대 우대통장◁ 가입 대상은 24세 이하의 청소년이며 5년간 저축원금이 1천5백만원을 초과하지 않도록 해 증여세가 면제된다.성장 단계별로 학자금이나 결혼·주택자금 등과 기타 긴급자금의 대출이 가능하다.이자소득세가 5%로 분리과세되는 세금우대 혜택이 있다.조흥은행이 출시했다. ○2천만원까지 대출 ▷커플통장◁ 국민은행이 맞벌이 부부를 대상으로 내놓은 가계 설계형 북합금융상품이다. 부부의 인생주기에 따라 주택·효도자금과 학자금,생활안정자금 등을 최고 4천만원까지 대출해준다.부부 모두 급여이체 실적에 따라 최근 6개월간의 월평균 급여이체액의 10배 이내에서 최고 2천만원까지 대출해 준다.맞벌이 부부의 특성을 고려해 자동이체를 통해 정기적인 수입금의 자동입금,각종 납부금의 자동납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신세대 희망통장◁ 자녀의 미래 설계형 상품으로 가입 대상은 25세 이하인 개인이다.은행의 에금과 신탁 상품중 이자율이 가장 높은 상품을 선택해 원금 기준 1천5백만원까지 가입할 수 있다.3년 내지 5년단위로 거래하며 5년마다 증여세 면제한도까지 자녀 명의로 계속 가입하면 자녀의 성장에 따라 필요한 학자금이나 결혼·주태구입자금 등을 손쉽게 대출받을 수 있다.외환은행이 개발했다. ○최장 12년 거래 가능 ▷장래설계통장◁ 3년 만기인 가계우대 정기적금이나 근로자장기저축과 월복리식 공모주청약저축을 연결해 수익성이 높다.최장 12년까지 거래가 가능하고최고 5천만원(6년이상 거래자)까지 주택자금도 대출해준다.신탁은행이 내놓았다. ▷맞벌이 내집통장◁ 맞벌이 부부가 수입을 한 통장에 넣어두고 각자 자유롭게 출금할 수 있도록 통장과 현금카드를 2개씩 발행하는 부부공동 가계통장이다.가입인원을 3천명으로 한정해 가입 3년후 4천5백만원을 대출 보장하는 대출보증서를 발급해 준다.보람은행이 발매중이다.
  • “역사 바로 알자”/역사학 세미나 풍성

    ◎정문연·국사편찬위·백제문화연등 잇따라 개최/정문연/삼국사기 사료가치 다각도 규명/국사위/개항이후 열강의 대한정책 분석/백제연/유물·유적통해 백제초기사 조명 굵직굵직한 주제를 내건 역사학 세미나가 10월 하순에 잇따라 열린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주최하는 「삼국사기의 사료적 검토」,국사편찬위원회의 「19세기 말 열국의 대한정책과 한국의 대응」,백제문화개발연구원의 「백제의 건국과 한성시대」들이 그것이다.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삼국사기에 대한 평가나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백제의 초기사를 규명하는 작업은 학계의 첨예한 쟁점들.또 19세기 말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도 최근의 상황과 비교되는 점이 많아 관심을 끄는 주제이다. 각 세미나의 내용을 알아본다. ▷삼국사기…◁ 21∼22일 이틀동안 성남시 정문연 대강당 세미나실에서 열린다. 삼국사기는 고려 인종 23년(1145년)에 편찬된 삼국시대의 정사로서 삼국의 역사에 대한 최고·최대의 사서이다.그러나 사료로서의 가치는 오랫동안 엇갈리게 평가 돼 왔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정문연의 정구복교수가 「삼국사기의 원전자료및 열전자료의 검토」를 발표하는 것을 비롯,사학자·국문학자·미술사가등 각분야의 전문가 10명이 분야별로 삼국사기를 가치평가한다. 22일 하오2시40분부터는 이기동 동국대교수의 사회로 종합토론이 있을 예정이다. ▷19세기말…◁ 22일 상오10시부터 과천 국사편찬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다.국편이 지난 83년 처음 시작한 한국사학술회의의 19번째 행사이다. 개항이후 제국주의 일본에게 국권을 빼앗길 때 까지 미국·일본·중국(청)·러시아의 대한 외교정책은 어떠했는지,또 이같은 열강의 각축에 대해 당시 한국의 지배층은 어떤 인식을 갖고 대응했는지를 조명해 보는 자리이다. 진덕규 이화여대교수가 발제하는 「19세기 말 한국 지배층의 열강에 대한 인식과 대응」의 내용이 『「개화파」「위정척사파」모두 자신의 신분·지위 유지에 치중했을 뿐 국가와 민족적 차원에서는 별다른 시도를 하지 않았다』고 평가절하하고 있어 큰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박영석 국편위원장은 『19세기 말이후의 격변기 역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제국주의 열국의 대한정책을 종합적으로 고찰하기 위해 이번 학술회의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백제의 건국…◁ 백제문화개발연구원(원장 김보현)이 장기계획으로 마련한 「백제사 정립을 위한 학술세미나」의 첫번째 행사.오는 29일 상오10시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장에서 열린다. 백제 초기의 나라이름 및 왕의 이름,통치체제의 편성등 건국과정과 한강유역에서 발견된 당시의 고분·성곽·불상등 유적·유물을 재평가한다. 백제 초기사를 집중 조명하는 학술회의로서는 처음이어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 「발해 2백년사」 책으로 나왔다

    ◎송기호교수,서울신문 연재 글 정리 「발해를 찾아서」 발간/만주­연해주 현지답사… 민족자취 서술/인접국들 역사왜곡 바로잡는 지침서 될듯 우리는 발해를 우리역사의 한부분이라고 배워왔다.그러나 고구려의 옛장수 대조영이 세웠다는 사실등 몇가지를 제외하면 발해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잊혀진 역사였던 셈이다.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발해가 위치해 있던 만주와 연해주가 그동안 우리에게는 갈수없는 땅이었기 때문이다. 서울대 송기호교수(국사학과)가 펴낸 「발해를 찾아서」(솔출판사간)는 중국과 구소련과의 수교 이후 그 잊혀진 역사를 되살리자는 역사학계와 언론계의 노력이 결실을 거두는 최초의 성과이다. 「발해를 찾아서」가 나오게 된 근원은 지난 19 90년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당시 서울신문사는 중국과 구소련의 문이 열리자 발해유적조사단을 구성했다.송교수는 바로 이 조사단의 일원으로 만주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모두 네차례에 걸쳐 만주와 연해주를 찾아 발해의 역사를 추적했던 것.송교수는 그 답사기록을 서울신문에 92년9월부터 지난 7월까지 30회에 걸쳐 「발해2백년사 현장탐구」라는 제목으로 연재했고 그 글들을 정리, 이 책을 냈다. 「발해를…」은 우리에게 잊고있던 발해를 다시 일깨워주는 이상의 의미가 있다.그것은 우리가 발해사 연구에 한계를 가질수 밖에 없던 사이 인접국들의 역사왜곡이 심각하기 때문이다.중국은 발해 유적과 유물에 접근하는데 절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에서 70년대말 본격화된 발해연구를 통해 「발해는 속말말갈주이 세운 당왕조에 예속된 일개 지방정권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또 러시아 역시 발해사를 소련 원동의 소수민족인 말갈족의 역사,나아가서 러시아 역사의 한부분으로 파악하려하고 있다. 이 책의 머리부분 「발해는 우리의 역사인가」에서도 송교수는 이 문제를 낙관하지 않는다.만주에는 발해 역사의 현장이 널려 있지만 교과서에서 배워온 것처럼 우리역사의 전유물로 인정하기에는 난관들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송교수는 어떤 주장을 펼치기보다는 발해의 역사에서 차분하게 한민족의 숨결을 찾으려하고 있다. 송교수는 발해건국자 대조영이 처음으로 도읍했다는 동모산을 한국인으로는 처음 오르고 흑수말갈의 고향을 찾아 그들의 후예인 나나이족을 만나는 등 만주와 연해주의 유적 곳곳에서 우리 민족의 체취를 확인하는 과정을 감격속에도 차분하게 서술하고 있다.이 책은 또 충실한 지도와 다양한 원색사진을 함께 실어 발해사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과 함께 점차 늘어날 이 지역에 대한 답사여행의 지침서로도 손색이 없다. 송교수는 『앞으로의 발해연구는 북한과의 협조가 필연적』이라면서 『가까운 시일내에 북한지역의 발해유적답사가 이루어져 이 책을 증보할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밝혔다.
  • 대마도의 백제산성(일본속의 한국문화:5)

    ◎1,300년전 축조… 전형적인 “한국식”/하도북쪽 만속에 자리… 돌로 쌓은 천혜요새/백제장군이 라당연합군 침공 막으려 급조 오늘은 대마도의 백제산성을 구경하러가는 날이다.우리들 일행이 묵은 곳은 대마도 태초의 백제수도로 알려지고 있는 기치(계지)국민숙사이다.이 기치에는 2백기가 넘는 고대왕묘(전방후원분)가 남아 있어서 한일양국 학계에 주목을 끌고 있다.이들 고분에 묻힌 사람들은 누구인가. 물론 일본인 학자들은 한국측의 백제인설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지만 이 기치를 방위하기 위해 축조된 산성을 백제성이라 부르면서 기치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백제인이 아니라면 말이 안된다.그러나 말이 안되는 것을 말이 되도록 꾸며내는 것이 일본고대사학자들의 주된 임무다.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양심적인 일본학자들은 사석에서나마 자기들의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시인한다. 백제산성을 가노라면 배를 타야 한다.길이 없는 것이다.배는 전세를 내야 하고 하루 온종일 타고 가는 강행군이다.그러나 바다는 고요하고 좀처럼 파도가 일지 않는 아사마만이다. 「아사마」라고 하니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이다.아사마는 본시 아사뫼 즉,단군이 정도하였다고 전하는 아사달에서 유래된 말이다. ○배타고 한참을 가야 아사달의 「달」은 뫼 즉,산을 지칭하는 우리 고유어다.이곳에서 「아사마」를 한자로 천○라고 표기하고 있는데 그 뜻을 몰라서 이곳 향토사학자들 사이에 아사마논쟁까지 벌였다는 말을 듣고 내심 고소를 금할수 없었다. 대마도는 그 중간 허리에 깊숙이 바닷물이 들어와 넓은 만을 이루고 있는데 이 만은 한국 쪽으로 열려 있고 일본 쪽으로는 육지로 닫혀 있다.따라서 이 만연안에 정착한 태초의 이주자들이 한국 쪽에서 온 것이 확실하고 이 일대에 남긴 고분이라든지 그밖의 여러 유적들이 모두 고대한국인 특히 백제인들의 것임이 확실하다.그 가장 뚜렷한 증거가 백제산성이다. 지도에 보면 백제산성은 대마도의 상도와 하도중 남쪽의 하도 맨 북단에 위치하고 아사만을 내려다 보고 있다.러­일전쟁때 일본 해군이 이 산성에 포대를 설치하여 귀중한 산성의 망루와 봉수대를 파괴하여 버렸다고 하니 그 위치가 고금을 통해 군사적 요새지임을 알 수 있다. 배가 백제산성(여기서는 단지 성산이라고 부르고 있다)어귀에 닿자 높이 40m에 이른다는 깎아 지른 듯한 절벽이 보이고 그 아래 좁은 수문을 통과하여 들어가게 되어 있다.이 절벽을 「톱으로 썰어낸 듯한 바위」라 하여 거할암이라 명명하고 대마도 제일의 명소의 하나로 자랑하고 있다.참고로 말해두지만 대마도의 산세나 지질이 모두 우리나라의 연장이다.그래서 낯설지가 않다. ○산성 높이는 6∼7m 이 수문을 통과할때 탐방단 학생들은 일제히 함성을 올렸다.지금으로부터 1천3백여년전 우리 조상이 이런 아름답고 험한 곳에다 산성을 쌓았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수문을 통과하면 약간 넓은 또 하나의 만이 나오고 오른쪽에 산성이 보이는데 선착장이 없다.만일 안내해 준 영류구혜씨의 호의가 아니었다면 배를 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아슬아슬하게 배를 바위 틈에 대고 모두가 상륙해서 산성으로 올라갔다.수풀속을 헤치면서 2백∼3백m 산을 올라갔을까 높이 6∼7m나 되는 백제산성 제3문의 웅자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놀라운 광경이었다. 일본속의 한국문화유적지를 많이 보아왔지만 이토록 가슴을 친 순간은 없었다.도대체 이렇게 험한 산속에다 무슨 힘으로 바위를 깨뜨리고 돌을 깎아 차곡차곡 성벽을 쌓아 올렸을까.사진에서 보는대로 네모나게 툭 튀어나온 부분은 소위 각대라고 하는 것인데 이 각대만은 수직으로 쌓아야 한다고 되어 있다.만일 이 각대를 여느 성벽처럼 경사지게 쌓는다면 성의 방어기능이 반감되고 만다.또 각대와 각대 사이의 거리는 화살의 사정거리에 맞추어 쌓게 되어 있는데 제1,제2,제3의 성문거리가 정확하게 이 군사원칙에 들어맞고 있다.이것만 보더라도 이 성을 쌓았다는 백제장군의 군사지식이 당대 제일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감탄할 일이 아닐수 없다. 필자는 지금 유명한 정다산의 「민보의」에 나오는 축성법을 읽고 대마도의 백제산성을 논평하고 있는 것인데 1천3백년전의 백제장군이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다니 놀랍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지금까지의 정설에 따르면 6백60년 백제가나당련합군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게 되자 이곳 백제군(위군)이 가장늦게 백제구원차 출동하게 되는데 6백63년 백촌강 전투에서 전멸당한다.그래서 이곳 백제인들은 나당련합군의 침공을 두려워해서 이듬해인 6백64년에 이 산성을 급조했던 것이다. ○백제멸망 직후 건립 우리나라는 자고로 산성의 나라로 유명했다.전국에 2천개,지금 남한에만도 1천2백개의 산성이 있는데 그중의 많은 산성이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이고 일본에까지 뻗어서 대마도와 일기도,그리고 북구주에 우리식 산성들이 산재해 있다.대마도의 성산 일명 김전산성 이 그 대표적인 백제산성이다.워낙 산세가 험하고 바다를 앞에 두고 쌓은 천연의 요새가 되어 여간해서는 가보기가 어렵다.그래서 대마도라고 하면 이 산성 하나만 보아도 본전을 뽑았다고 할 정도로 가보기 어려운 곳이다. 우리나라 산성의 특수성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상세히 설명하겠으나 그 속에 우리 민주문화의 모든 비밀이 숨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수수께끼를 담고 있다. 일본속의 한국문화 제1번지가바로 이 대마도의 김전산성이란 사실을 다시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 문화의달/전국 국립박물관 기획전 다채

    ◎중앙박물관,선·원사시대 토기 비교 전시/광주 무등산전… 청주 이인문 산수화전 문화의 달 10월을 맞아 서울의 중앙박물관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국립박물관에서는 다채로운 성격의 특별전시회가 열린다. 전시회 주제는 ▲한국의 선·원사 토기특별전 ▲국립경주박물관 80년전 ▲무등산전 ▲조선시대 고문서특별전 ▲이인문 산수화특별전등으로,대부분 그 지역 주민들에게는 처음 소개되는 것이어서 각별한 관심을 가질 만하다. 박물관별 전시회 내용을 알아본다. ▷중앙박물관◁ 25일부터 한달동안 제1 기획전시실에서 「한국의 선·원사 토기특별전」을 연다.신석기시대와 원삼국시대(삼국시대 초기)의 토기를 비교·전시함으로써 토기의 발전과정과 지역적 특성을 보여준다. 중앙박물관이 토기를 주제로 특별전을 갖기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국내외 학자및 일반인들이 토기를 한자리에서 관람하고 연구할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로 꼽히고 있다. 서울대박물관등 30개 기관에서 출품한 신석기시대의 덧무늬토기·빗살무늬토기·청동기및 초기 철기시대의 민무늬(무문)토기,원삼국시대의 경질 민무늬토기·타살문토기등 2백여점이 선보인다. ▷경주박물관◁ 올해로 개관 80주년을 맞아 박물관의 역사자료,문화유적 사진등을 모아 26일부터 11월21일까지 본관 중앙홀에서 「국립경주박물관 80년전」을 연다. 박물관의 주요 문서와 행사사진·자료·보고서·도록·포스터등을 비롯해 굴불사 사면석불과 불국사의 옛 모습을 담은 사진등을 진열,고도 경주의 역사를 재조명한다. ▷광주박물관◁ 전국체전에 맞춰 12일부터 「무등산전」을 1층 특별전시실에서 시작했다. 11월14일까지 열릴 예정인 이 전시회는 ▲무등산 충효동에서 발굴된 고인돌·분청·백자등의 선사및 도자기 유물 ▲원효사에서 발견된 청동불두등 불교유물 ▲「송강집」등 가사문학과 관련된 문집 ▲허백련·오지호등 근대화가의 무등산그림 ▲무등산의 옛모습을 찍은 사진등 2백60여점을 집중 소개한다. ▷전주박물관◁ 「조선시대 고문서특별전」을 12일에 시작해 11월29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연다. 국보 제1백31호인 「조선태조호적원본」등 1개50여점이 전시돼 활자문화를 일찌감치 발전시켰던 조상들의 지혜를 보여준다. ▷청주박물관◁ 지난 7일부터 한달 예정으로 「이인문 산수화전」을 기획전시실에서 열고 있다. 조선조 후기에 독창적인 화풍을 이룩했던 이인문의 대표작인 「강산무진도」「누각아집도」등 18점이 전시됐다.
  • 훈훈한 감사현장/김경홍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문화에 대한 관심은 국력및 민족 자긍심과 직결된다. 그런면에서 12일 문화체육공보위의 국립부여박물관,부여문화재연구소에 대한 국정감사는 잊혀진 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데 초점이 모아졌다. 문공위의 여야의원들은 모처럼 서울을 벗어나 부여 외곽의 금성산 자락에 위치한 부여박물관에서 민족의 뿌리를 찾았다. 지난 8월 개관한 국립부여박물관은 은은한 백제의 유적이 되살아나는 듯한 모습으로 한국건축문화대상에서 본상을 받은 미려한 건물이다. 여야의원들은 이같이 고요한 백제의 분위기에 젖어 마치 옛날로 돌아간 듯 문화복원에 대한 관심과 격려로 감사에 임했다. 특히 이날의 감사는 눈에 익은 비리추궁이나 여야가 정치쟁점을 내세워 공방을 벌이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 피감기관인 박물관이나 문화재연구소측도 의원들의 질타에 대답이 궁해 쩔쩔매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없었다. 민자당의 박종웅의원은 『박물관이 유물전시만 하는 죽은 전시관이 아니라 우리의 전통문화를 잘 계승하고 널리 전파할수 있도록 살아있는 박물관이 되도록개선해 나가야한다』고 격려했다. 민주당의 박계동의원도 『백제문화권은 일본고대문화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문화권으로 한·일관계를 재조명한다는 차원에서도 서둘러 개발이 이루어 져야한다』면서 『백제권개발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부여박물관임에도 불구하고 전문인력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있다』고 오히려 박물관측의 애로사항을 대변했다. 김용태,김기도,강인섭의원(민자)채영석,국종남의원(민주)도 『적은 인원과 많지않은 예산으로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느라고 노고가 많다』며 관계자들을 위로했다. 여야의원들의 이같은 관심과 격려에 대해 신광섭박물관장은 『인원과 예산이 허용하는 한도내에서 최선을 다해 고대문화유적의 발굴과 보존,문화홍보에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쫓고 쫓기는 그러한 비리감사가 아니라,훈훈한 인정과 관심을 나누는 그러한 감사장의 분위기였다. 의원들은 감사가 끝난뒤 버스로 공주의 백제 무령왕릉을 돌아보았다. 감사를 마치고 떠나는 의원들의 모습은 마치 먼 옛날의 백제인을 만나고 가는 듯했다.비리감사만 감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국감현장이었다.
  • 동학농민전쟁 역사문제연엮음(화제의 책)

    ◎동학농민전쟁 과정·의미 조명 이 책은 제목과 「동학농민전쟁의 발자취를 찾아서」라는 부제처럼 동학농민전쟁의 전개과정과 그 의미를 현장을 통해 살리려는 뜻에서 씌어졌다. 18 94년 일어난 동학농민전쟁은 이미 1백여년의 굴절된 역사로 유적들이 제대로 보존되어 있지않고 또 왕조시대와 식민지시대의 탄압으로 유물도 제대로 보관치 못했다. 이 책은 이런 상황에서 역사문제연구소가 동학농민전쟁 1백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유적과 유물이 사라진 가운데서 나마 최대한 현장감을 살려 내려 애쓴 결과라 할수 있다. 이 책의 집필에는 이이화 신영우 우윤 박준성등 네사람의 역사학자가 참여했다.이들은 연구와 연구소가 주최한 역사기행을 위해 여러번 현장을 방문한 사람들이다.이 책은 또 글의 분량보다 훨신 많은 관련사진과 삽화를 실어 실제 역사기행을 떠난 것에 버금가는 현장감을 주고 독자의 이해도 높였다.역사문제연구소 엮음 여강출판사 1만원.
  • “칭기즈칸 무덤을 찾아라”/몽골·일 공동탐사작업 4년째

    ◎옛수도 아우루그 위치 확인/위성·레이더 동원… “자원 노출” 땅파기 반대 13세기중 아시아와 유럽대륙을 관통하는 대몽골제국을 건설했던 칭기즈칸은 과연 어디에 묻혀 있을까.소련의 개방화와 함께 불기 시작한 몽골의 「칭기즈칸 열풍」에 절정을 이룰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칭기즈칸 무덤찾기작업은 올해도 결실을 보지 못한채 해를 넘길 것 같다. 지난 4년여동안 칭기즈칸의 무덤을 찾아 사막과 초원을 누벼온 몽골·일본 두 나라의 공동탐사단은 최근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올 여름까지의 탐사결과에 대한 평가회를 갖고 사실상 칭기즈칸 무덤찾기작업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이번의 무덤찾기작업이 실패로 돌아간 지금 몽골과 일본 양측간에는 미묘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후속 탐사계획에 적극적이어야 할 몽골측은 심드렁한 표정이고 일본측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은연중 불만의 뜻을 비치고 있는 것이다. 일본측은 이번에 요미우리(독매)신문사가 경비를 부담,위성과 헬리콥터·지상 레이더장비 등 각종 최첨단장비를 동원했지만 지하유적 발굴의 기본이랄 수 있는 땅파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이는 문화사업을 빙자해 지하 광물자원을 속속들이 파악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몽골쪽의 불안감을 해소시키기 위해 일체 굴토작업을 하지 않기로 약속한데 따른 것이다. 조사단은 이같은 제약으로 비록 칭기즈칸무덤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수만㎦의 면적을 훑어오는 동안 약 3천5백기에 달하는 고분의 위치를 확인하고 많은 석기도구들을 찾아내는 등 큰 성과를 거뒀다.특히 몽골내 카라코람 이외의 다른 몽골제국 수도로 믿어지는 아우루그를 울란바토르 동쪽 2백50㎞지점에서 재확인했다.아우루그의 존재는 칭기즈칸이 이 부근에 묻혀있을 가능성을 가장 높게 해주는 실마리로 공동조사단은 드디어 그의 무덤에 가까이 접근했다는 확신을 갖기에 이르렀다. 이같은 상황에서 몽골측이 소극적으로 나오자 일본측은 이제 자기들이 따돌림을 당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칭기즈칸의 무덤에는 역사와 문화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어 이의 발굴작업에 대한 주변국들의 관심은 지대했다.우선 내몽골 영토문제가 걸려있는 중국은 칭기즈칸무덤이 이곳에서 발견될 경우 몽골측이 이를 근거로 영토문제를 제기할 것을 우려,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더구나 칭기즈칸이 몽골인들에게는 영화와 자부심의 역사인데 반해 중국인들에게는 피지배와 굴욕의 상징이어서 그의 무덤 발견이 전혀 반가울리 없는 입장이다. 러시아도 마찬가지.구소련이 70년간에 걸쳐 몽골을 지배하면서 칭기즈칸의 거론조차 금지시켰던데는 민족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한 정치적 목적도 물론 있었지만 이면에는 슬라브족들의 뼈에 사무친 적개심도 작용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이처럼 칭기즈칸의 「부활」에 대해 마뜩치 않은 표정인데 반해 일본이 적극적인데는 또 그나름의 사연이 있다.일본인들 사이에는 칭기즈칸이 12세기 말 권력싸움에서 패배한뒤 대륙으로 탈출한 무사 요시쓰미 미나모토라는 설이 널리 퍼져 있다.본국에서의 패배자가 세계를 지배했다는 이같은 속설은 일본인들의 민족적 우월감을 만족시킬 수 있는 좋은 소재여서 이 사업을 추진한 요미우리신문에는 독자들의 호기심에 영합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부어지고 있다.
  • 비류백제설:중(온 가족이 함께 읽는 우리역사:17)

    ◎“광개토대왕비에 2개백제 명시”/잔국=비류백제·백잔국=온조백제 해석/“공주 송산리 고분군은 왕족 묻힌곳”주장 서기전 18년부터 396년까지 한반도에 제4의 국가로 존재했다는 「비류백제」.이를 입증하는 자료란 어떤 것들일까. 재야사학자 김성호씨가 「비류백제」를 주장하는 근거는 다양하다.그 가운데 중심이 되는 것들이 ▲비류가 자살하지 않고 강국을 이루었다는 일부 사서의 기록 ▲광개토대왕비문 중에서 2개의 백제를 시사하는 부분 ▲(온조)백제가 한때 도읍했던 웅진(현재의 공주)지역의 유적분포상황등이다. 백제의 건국을 다룬 「삼국사기」백제본기에는 지난 회에 밝힌 「비류의 자살」기사에 이설이 덧붙여 있다.삼국사기 편찬자는 『일설로는 시조 비류왕이 미추홀에 정착했다.또 중국의 사서인「북사」와 「수서」는 주몽의 후손인 구대(구이)가 대방땅에서 처음 나라를 세워 나중에 동이강국이 되었다고 했다.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김씨는 「삼국사기」 편찬자가 비류의 기사에 연결해 구이의 활약상을 소개한 이유는그들을 같은 사람으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보았다.그는 각종 사서에 씌어진 그들의 활동시기·지역·내용등을 비교한 뒤 「비류와 구이는 동일인」이라고 결론지었다.또 『구이의 묘가 웅진에 있다』는 기록에서 비류백제의 도읍지를 웅진으로 잡았다. 백제본기중의 이설이 비류백제의 성립을 가능케 한 것이라면 광개토대왕 비문에 보이는 백제정벌 기사는 한시기에 2개의 백제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라는 게 김씨의 논리다.비문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396년 광개토대왕은 수군을 이끌고 「잔국」의 성 55곳을 함락시켜 토벌했다.귀환하는 도중 백잔왕의 저항을 받자 대왕은 한강을 건너 백잔국의 성 3곳을 빼앗았다.백잔왕은 백성 1천명등을 바치면서 영원히 복종할 것을 맹세했으며 대왕은 백잔왕을 용서했다.「잔왕」의 동생과 신하 10명을 포로로 잡아왔다』 김씨는 비문의 내용상 「잔국」과 백잔국이 엄연히 구분돼 있다고 지적했다.「잔국」은 ▲성 55곳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충남일대에 위치했으며 ▲고구려군에게 멸망(토벌)했고 ▲왕의동생등이 포로로 잡혀갔다.반면 백잔국은 ▲공격받은 성이 한강 북쪽에 있었으며 ▲왕이 공물을 바치고 용서를 받았다. 즉 2개의 나라이름이 등장하는데다 자리잡은 지역,전쟁결과에 따른 처리등에 큰 차이가 나므로 「잔국」과 백잔국은 서로 다른 나라라는 주장이다.김씨는 「잔국」을 비류백제로,백잔국을 온조백제로 보았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비류백제의 도읍이 있었다는 웅진에 그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한다.기록상 (온조)백제가 웅진에 도읍한 기간은 63년(475∼538)이며 이곳에 묻힌 왕은 무령왕등 4명이다.그러나 현재 웅진에는 왕릉규모의 고분 십여기를 비롯,수백기의 대형무덤이 남아 있다. 김씨는 『온조백제가 웅진을 도읍으로 삼은 63년동안 그처럼 많은 대형무덤을 남길 수는 없다』고 지적하고 이들 무덤의 주인은 4백여년 도읍했던 비류백제의 왕과 왕족들이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이 연구에 한·중·일 3국의 관련사서를 두루 동원했고 「통계적 지명고찰」이란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는등의 노력으로 매우 탄탄해 보이는 논리를 짜냈다.그럼에도 기존 학계에서 그의 학설을 「이단」으로 취급했다.그 이유는 다음회에 다룬다.
  • 애 룩소지역 유적발굴 일지 발견

    ◎미 고고학자들,동베를린서 10권 모두 찾아내/유물형태 등 정확히 기록… 테베왕국 규명 도움 지난 1920∼30년대 미국과 독일의 학자들이 함께 발굴했던 이집트 룩소지역의 고고학 발굴일지가 최근 동독에서 발견되어 세계의 고고학계가 주목하고 있다. 30년대 미국과 독일의 학자들은 나일강 서쪽의 고대 테베왕국의 유적지인 룩소를 발굴했으나 발굴일지는 독일 학자들이 기록한뒤 출판되지 못했다. 2차대전이 일어나자 이 일지는 동독으로 옮겨지고 연합국의 폭격으로 모두 없어진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최근 통독 이후 동 베를린을 방문했던 미국의 학자들이 당시 발굴일지를 모두 발견한것. 1천2백페이지 전10권분량의 발굴일지 발견으로 세계각국에 흩어져 있던 룩소 유물의 목록작성이 가능케 됐으며 풀리지 않았던 설형문자와 유물들을 새롭게 해득할 수 있게 됐다. 1927년과 33년등 두차례에 걸쳐 행해졌던 룩소 발굴은 당시 세계최고의 석학이던 시카고대학의 고고학자 제임스 브레스티드박사의 지시에따라 독일학자들과 공동으로 수행됐다. 자금은미국이 맡고 기술은 독일이 제공한 당시의 연구에서 5천여점의 유물이 발굴되어 유물들은 시카고대학의 동양박물관과 카이로박물관,독일의 보데박물관등 몇군데로 흩어지고 발굴일지는 베를린으로 가게됐다. 발굴일지는 손과 잉크로 기록되었으며 채색까지 되어 매우 정교한 것으로 토기와 조상·기구·무기·꽃병·인장·부적 등의 크기·형태·발굴위치·날짜등이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최근 이 발굴일지가 발견되자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브루클린의 이집트 박물관,런던의 대영박물관,파리의 루브르박물관등 이집트유적을 보관하고있는 박물관의 고고학자들은 고대사의 신비한 부분을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믿고있다.
  • 「이」·팔,문화유적 소유권 다툼

    ◎자치협정 서명 계기 고고학자들 논쟁 가열/팔 “마땅히 돌려줘야”「이」“반환은 시기상조” 이스라엘의 점령지 가자지구와 예리코시에 대한 팔레스타인 자치가 가시화되면서 이들 지역의 고대 문화유적에 관한 권리문제가 양측간의 새로운 분쟁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자치안 합의와 때맞춰 팔레스타인쪽에서는 자치지역 두곳과 그외 나머지 점령지의 유적·유물들에 대한 권리주장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이에 대해 이스라엘측에서는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 거부의 뜻을 밝히고 있다. 점령지내 비르 자이트대학의 팔인 고고학교수 마무드 하와리는 지난주 『우리땅밑에서 발견된 보물들은 우리민족의 유산이므로 이스라엘은 마땅히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역시 같은 대학의 나즈미 알 주비교수도 하와리교수의 주장에 동조하면서 이 문제를 중동평화회담에서 거론해줄 것을 팔레스타인측 협상단에 요구했다. 이에 대해 점령지내 이스라엘 군사행정기구의 고고학담당 이츠하크 마겐은 『팔레스타인인중에는 제대로 자격을 갖춘 고고학자가 별로 없다.따라서 유물의 반환은 시기상조』라고 말해 유물반환의사가 없음을 비쳤다. 삶의 근거인 영토를 둘러싸고 피의 보복을 거듭해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과거사에 비추어 땅속 어디에 묻혀있는지도 모르는 유적·유물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수도 있다.그러나 이들 두 민족에게는 유물이 그 땅에서 살 수 있는 권리의 징표노릇을 하기 때문에 영토 못지않게 중요하다.특히 이스라엘은 영토에 대한 권리주장의 근거를 성서의 「과거사」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유물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할 수 밖에 없다. 하와리교수는 『이스라엘인들은 최근까지 우리 지역인 점령지내에서 불도저를 동원,땅을 팠다.그들의 목적은 그 속에서 유태인들의 생활의 흔적,즉 영토에 대한 연고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아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비교수는 팔레스타인 고고학자들이 그동안 점령지에서 발굴된 유물에 관해 토의를 하자고 이스라엘 고고학자들에게 여러차례 제의했으나 그들은 그에 대한 정보의 제공마저 거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유물·유적에 대한 권리문제는 지난 13일 워싱턴에서 조인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간의 자치협정에 명시돼 있지 않다.협정에는 교육·문화·보건·사회문제·세금·관광 등 5개분야의 권한 이양만이 명시돼 있다. 그러나 주비교수는 이 5개분야 어디에든 유물문제가 반드시 의제로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그 역시 『고고학의 관념적 이해관계가 권한의 이양을 매우 까다로운 문제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문제해결이 쉽지 않음을 시인하고 있다. 영토싸움에 밀려 그동안 잠복해있던 고대유물 소유권을 둘러싼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의 다툼이 언제쯤 본격화될지 주목된다.
  • 드라마/다큐물/쇼·영화/방송3사 한가위특집 차별화

    ◎K­드라마,M­다큐물중점… 「계획시청」 필요/KBS 「해가뜨면」/한의사·약사의 한약조제권 갈등 풍자/MBC 「역사기행」/이서 코레아 성가진 185명 뿌리 추적/SBS「왔습니다」/부모와 효·고향의미 현대인에 되새겨 30일은 민족최대의 명절 추석.KBS·MBC·SBS등 방송3사는 황금의 연휴를 맞아 각기 개성이 담긴 특집 프로그램을 마련,안방 시청자들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드라마·다큐멘터리·쇼등으로 대별되는 이번 한가위특집은 방송사간에 장르별로 큰 편차를 보이고 있는 것이 특징.그런만큼 시청자들의 「계획시청」이 한층 요구된다. 드라마 부문에서 앞서가는 쪽은 KBS.교과서적 내용의 천편일률적인 「뿌리찾기극」정도가 고작이었던 통례에 비추어 KBS­1TV가 이번에 선보일 특집극「해가뜨면 달도뜨고」(30일 하오9시30분)와 「마천마을 사람들」(10월1일 하오7시30분)은 우선 그 소재의 참신함에서 눈길을 끈다.「해가 뜨면…」은 현재 물의를 빚고있는 한약조제권을 둘러싼 한의사와 약사의 갈등을 풍자,코믹하게 엮은 이색드라마.한약국을 경영하는 감초선생(김상순)과 같은동네에 이사온 양의사 강현우(노주현)가 환자를 놓고 대립하지만 결국 서로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는 다분히 시사적인 내용의 작품이다.또 「마천마을…」은 지난7월 발생한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고 당시 헌신적인 구조활동을 펼친 전남 해남군 마천마을 주민들을 주인공으로,인간존중의 정신과 훈훈한 사랑을 그린 휴먼드라마로 공영방송사로서의 발빠른 대응이 돋보인다. 현지 주민들이 드라마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으며 비행기 추락장면을 미니어쳐로 제작하는등 사실감을 높였다.그밖에 신·구세대간의 갈등과 극복과정을 다룬 「달빛고향」(1TV 29일 하오9시30분)도 온가족이 시청할만한 코믹드라마로 준비돼있다.이에 맞서 MBC와 SBS는 「사랑의파도」(10월1일 하오8시)와 「왔습니다」(30일 하오8시50분)를 각각 방영한다.60분물 2부작으로 선보일 「사랑의…」은 신세대 젊은이들의 일과 사랑·야망과 좌절을 통해 진취적 젊은이상을 제시한다는 다소 「평이한」내용의 드라마이다. 또 원로극작가 유호씨가 집필한 「왔습니다」는 오늘의 현대인에게 부모와 효,그리고 고향의 의미를 묻는 전형적인 추석 특집극으로 중견 연기자 오현경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주목을 끄는 것은 MBC­TV의 「역사대기행! 안토니오 코레아」(30일 상오7시20분).독립제작사인 「다큐서울」이 1년여에 걸쳐 제작한 이 작품은 정유재란 당시 일본에 끌려갔다가 유럽인 노예상에게 팔려 이탈리아에 간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인 안토니오 코레아의 발자취를 추적한 필름.코레아란 성을 가진 사람들이 1백85명이나 모여 사는 이탈리아의 알비마을을 찾아 그들의 한국적인 생활문화를 조명,그 뿌리를 추적한다. KBS­1TV가 준비한 「최초공개 고구려 탐사」(27일 하오9시45분)또한 역사다큐멘터리로서 의미있는 작품.만주 즙안현 주변의 산성을 중심으로 산재해 있는 고구려 고분유적의 벽화를 최초로 공개한다.한편 SBS의 경우는 다큐멘터리 프로가 한편도 마련되지 않아 특집계기물의 무게를 전체적으로 가볍게 한 아쉬움이 있다. 쇼프로는 KBS­1TV「추석한마당 큰잔치」(30일 상오10시),MBC­TV「나훈아 더하기 한가위」(10월1일 하오6시30분),SBS­TV「고향길 노래길」(28일 하오10시55분)등이 볼거리.이밖에 영화로는 KBS가 아카데미작품상 수상작 「늑대와 춤을」(1­TV 10월1일 하오9시30분)등 9편,MBC가 프랑스영화「퐁네프의 연인들」(29일 하오9시50분)등 11편,SBS는 「돈가방을 든 수녀」(30일 하오9시50분)등 9편을 방영한다.이번에 집중 소개될 영화는 그 양적 풍성함과 함께 비교적 최근에 개봉된 수준높은 작품들이어서 기대를 모은다.
  • 김해 목관묘 57기서 삼한시대유물 출토/경성대팀 발굴

    【부산=이기철기자】 삼한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목관묘 등 유적 57기가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경성대 박물관 학술조사단(단장 조만제교수)은 16일 김해 대성동 구지로확장공사 도중 2세기전반∼4세기전반까지의 것으로 보이는 구지로(구지로)분묘 57기를 발굴했다고 밝혔다. 이 분묘군은 사적 제341호인 대성동 고분군에서 북쪽으로 1백m쯤 떨어진 낮은 구릉지대에 형성돼 있어 구사국(구사국)등 가야시대 이전의 변한사회의 실체를 엿볼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것은 신장 1백75㎝정도로 추정되는 성인의 뼈와 2세기 전반부의 목관묘 12호분(길이 2백73㎝,너비1백㎝,깊이49㎝) 유리 및 대롱구슬 청동제팔찌 목걸이 철제머리장식 등 부장유물 등이다. 특히 12호분 피장자의 철제 머리장식은 국내 무덤에서는 처음 확인된 것으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대마도 아리랑제(일본속의 한국문화:2)

    ◎통신사기념 매년8월 첫주 열려/일행 5백여명 탄 선단 이즈하라외항 도착/정사 선두로 중심가 행진… 구경꾼 연도 메워 통신사일행을 태운 배는 늘 새벽에 부산항을 떠난다.순풍에 돛을 달면 편안하게 그날 오후 4시경에 대마도에 도착하지만 역풍과 격랑을 맞나게 되면 밤늦게 악포 앞바다에 이르러 헤매게 된다.그리고 모두 배멀미에 시달려 일어나지 못하고 뻗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악포에서 몇날을 묵은 뒤 대마도의 행정수도 이즈하라(엄원)로 떠난다.배는 대마도의 서해안(즉 일본측 해안)을 따라가게 되는데 이 항로 또한 만만치 않아서 2∼3일만에야 겨우 목적지에 닿게 된다.이즈하라는 당시 대마도주 슈우케(종가)가 사는 성하정(읍)이어서 부중이라 불렀었고 1천호이상의 민가가 몰려 있는 번화가였다.지금도 대마도의 총인구 4만5천명 가운데 1만5천여명이 살고 있는 섬 제일의 고을이다. 특히 이즈하라에는 우리나라 통신사와 인연이 깊은 유물·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통신사일행이 묵은 숙소 서산사라든지 도주의 저택 김석성,그리고 옛 부두,어선강(오후네가와)등이 눈길을 끈다.어선강이라는 옛 부두는 지금의 이즈하라항구로 흘러들어오는 작은 냇물의 하구를 인공으로 넓혀서 만든 도주전용의 선착장인데 네개의 석축선착장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필자가 갔을 때 마침 밀물이라 항구에는 바닷물이 가득 차 있었으나 물이 빠지면 바닥이 드러난다는 것이며 이 경우 배들이 들어오지 못했다고 한다.당시 통신사일행이 5백명에 이르렀으므로 정사와 부사를 태운 세척의 배만 이 좁은 항구에 들어왔을 뿐 나머지 배들은 외항에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튼 수십척의 통신사 선단이 이곳에 도착하면 잠자듯 조용했던 이 섬은 흥분하기 시작한다.도착을 알리는 나팔소리를 듣고 나온 인파가 연도를 가득 메운 가운데 통신사의 행렬이 약 3㎞에 달하는 부중중심가를 뚫고 가게 되니 절해의 고도 대마도로서는 일대 소란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최근 대마도에서는 그날의 열기를 기념하는 아리랑제를 매월 8월 첫주에 거행하고 있는데 단순한 한국관광객유치작전으로만 볼 수 없다. 통신사의 부중도착실황을 자세히 묘사한 기록으로 종사관 이경직의 「임상록」(1617년,광해군9년)이 있다.종사관은 정사와 부사 다음의 벼슬이다. 『7월9일(부산을 떠난 지 5일만)신시(저녁 네시경) 부중포에 당도하였다.정사(오윤겸)이하 4백28명이 모두 관대를 갖추어 위의를 성대하게 벌여 국서를 받들고 행진하였다.대오를 갖춘 위인들이 앞을 인도하는 가운데 부중에 들어서니 구경꾼들이 연도에 담치듯 하였고 남녀가 뒤섞여 시끌법석하였다. 섬안은 지세가 비좁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였고 민가가 많아 대강 1천여호가 되는듯 보였다.앞바다에는 큰 배 10여척,작은배 60여척이 대어 있었다.선착장에서 신사의 숙소까지 7·8이(약3㎞)가량 떨어져 있는데 좌우의 여염에는 누각이 많았고 소위 양반집 정원에는 송죽이 심어져 있었다.이는 대개 정결에 힘쓰는 이 나라 풍속 때문이라 할 것이다』 지금도 이즈하라거리에서 특히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돌담을 높이 쌓은 소위 양반집이다.대마도에서는 무가의 저택이라 하는데 아래는 굵은 돌을 쌓고 위로 올라갈수록 작은돌을 쌓은 것이 우리나라의 옛날 시골집 돌담과 흡사하다.이곳 사람들은 돌담을 높이 쌓은 이유를 혹은 방화벽이라느니 혹은 통신사가 지나가면서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했다느니 설명하고 있으나 통신사기록을 종합해보면 이곳 주택들이 모두 목조건물이라 동네마다 돌담으로 칸을 막아 불길을 막고 출입구를 만들어 이문으로 삼았던 것 같다. 이경직이 대마도를 방문한 1617년만 하더라도 임진왜란이 끝난 지 20년이 채 못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풍신수길의 침략군 앞잡이를 한 대마도주에 대한 감정이 대단하였고 아무리 후한 대접을 한다 하더라도 마음속에는 늘 원수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그래서 이경직은 이런 말을 하고 있다. 『그들의 추한 모습을 볼 때마다 또 올빼미 같은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치 뱀이 앞에 나타난 것같이 섬뜻하여 고통스럽기만 하다』 임진왜란 때 그들에게 죽은 사람은 부지기수였고 일본땅으로 끌려간 사람이 30만으로 추산되었다.바로 이 대마도에도 수많은 동포들이 끌려와서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안할 리없었고 밥먹는 것이 모래를 씹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일본으로 보내는 사절단을 통신사라 이름하지 않고 회답·쇄환사라 했다.7월10일 정사 오윤겸은 대마도로 종의성에게 『이번 행차는 오로지 우리나라 사람을 쇄환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강조한다.그러나 종의성은 음흉하게도 이렇게 변명하고 있다.첫째 임란때 끌려온 조선인들은 이미 장가들고 시집을 가거나 자손을 본 사람까지 있으니 그들을 강제로 귀국시킬 수 없고,둘째로 관백(일본의 실력자 덕천)으로 하여금 전국에 쇄환령을 내리게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임진왜란 때 왜놈들이 끌고 간 조선인의 대다수는 젊은 처녀와 10세전후의 어린 소년들이었다.그러니 근 20년이 지난 오늘 그 대다수가 결혼하고 자식을 두었다는 것이다.거기다 이들을 쇄환해가는 데 돈까지 요구하니 기막힌 이야기였다.침략행위에 대한 피해보상을 하지는 못할망정 강제연행한 조선인의 송환까지도 거부한 일본의 교활하고 파렴치한 행동은 이미 3백년 전에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한국과 일본이 가깝고도먼 나라가 된 원인은 바로 이러한 일본지도자들의 무책임한 정책 때문이란 사실을 스스로 반성하여야 할 것이다.
  • 「쾌적한 국토 가꾸기」 범국민운동/자연보호·환경정화 일환/내무부

    □역점사업 깨끗한 주거환경 조성 아름다운 강산 가꾸기 생활질서·품격 높이기 깨끗한 주거환경을 가꾸고 쾌적한 휴식공간을 조성하기 위한 「건강한 국토사업」운동이 범국민적으로 전개된다.이번 캠페인은 공무원은 물론 직장인·각급단체·지역주민들을 참여토록할 방침이어서 새마을운동이후 최대 규모의 범국민적운동이 될것으로 보인다. 내무부는 4일 올해의 하반기 지방행정 최우선 역점사업으로 ▲쾌적한 주거환경조성 ▲아름다운 강산가꾸기 ▲국민생활 질서와 품격 높이기를 골자로 하는 「건강한 국토사업」을 선정했다. 내무부는 이에따라 다음주중으로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세부시행방안을 확정,전국 6백93개 시·군·구청과 경찰서 소방서등 일선 지방행정기관에 시달키로 했다. 생활주변을 깨끗히 유지하자는 내용의 쾌적한 주거환경 조성사업은 이른 아침 골목길 청소운동등 국민생활 기초질서 지키기운동의 일환으로 시행되고 있는 쓰레기 안버리기 운동과 함께 정례적으로 실시된다. 아름다운 강산가꾸기 운동은 시·군·구별로 그 지역의유명산·하천·유적지·관광지·명승지 주변에 대해 공무원·지역주민·자연보호협의회등 각 단체등이 대거 참여,종전의 자연보호활동 성격의 환경정화활동을 벌인다는 것이다. 또 주민생활 인근의 약수터 샘터등을 중심으로 체육시설이나 휴식시설이 대폭으로 확충하고 노후시설은 대대적으로 정비하는 한편 이용 주민들 중심으로 친목단체성격의 모임을 구성,휴식처에 대한 환경정화및 관리를 전담토록 할 방침이다. 이해구내무부장관은 이날 서울 경창청 대강당에서 전국 6백93명의 시장 군수 구청장 경찰서장 소방서장등이 참가한 「전국 일선기관장대회」를 소집,이같이 밝히고 이번 「건강한 국토사업」에 전 공무원은 물론 직장인·각급 단체·주민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토록 적극 유도하라고 지시했다.
  • 인류 최초의 아카드제국/“화산폭발·가뭄으로 소멸”

    ◎미·불 고고학자/티그리스강 주변 발굴 유적지 조사 결론/눈부신 도시문명 이룩… BC 2천년 멸망 인류문명의 발상지인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유역에서 번성했던 인류 최초의 제국은 화산폭발과 가뭄으로 인한 천재지변으로 소멸됐다고 타임스지가 보도했다. 타임스지는 현재 이라크와 시리아 이란 사이의 비옥했던 메소포타미아지방의 수메르·니네베·아카드·우루크·우르등 인류최초의 대도시의 발굴된 유적지를 미국과 프랑스의 고고학자들이 정밀 조사한 결과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로 인류가 살 수 없게되어 고대 문명이 계승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중동지역에서 가장 큰 두개의 강이 흐르는 비옥한 삼각주에 왕국을 건설한 아카드제국(현재 바빌론)은 밀과 보리를 경작하고 아마로 옷을 짜입으며 은으로 교역을 할만큼 번성한 인류 최초의 문명국이었다. 중국의 한나라나 알렉산더대왕이 출현하기전부터 번성했던 이 제국은 1백여년동안이나 고도의 문명 생활을 해왔으나 어느날 갑자기 소멸되어 역사의 미스터리가 되어왔다. 미국 예일 대학의 고고학자 하베이 바이스박사와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지리학자 마리 아그네스 코티박사는 지난 88년에 발굴된 유적지의 흙과 유물을 정밀 조사한 끝에 터키부근에서 일어난 화산의 재가 이 지역을 덮친뒤 기원전 2200년부터 3백년간 계속된 가뭄과 극심한 먼지폭풍으로 더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불모의 땅이 된 것으로 밝혀냈다. 미국과 프랑스의 과학자들은 지하 20∼50㎝의 지층을 분석한 결과 이 지층에는 지렁이를 비롯한 벌레의 화석을 발견할 수 없었고 화산재와 흙먼지등으만 덮여있어 이같은 결론을 내렸다. 3백년뒤 다시 비가 내리기시작하자 이곳에 이주한 후손들은 유적지가 4∼5m의 땅에 묻혀있는 위에 바빌론 제국을 세웠으나 또 다시 망하고 이 지역은 현재 밀밭이 되었다. 지난 88년부터 범세계적으로 발굴되고있는 이 지역에는 지금부터 4천년전에 인구 1만명이상의 대도시가 12개가 넘어 앞으로 고대사연구가 활기를 띨 전망이다.
  • 한은의 피터팬 증후군/염주영 경제부기자(오늘의 눈)

    얼마전 한국은행이 외국의 한 금융기관에 영문 편지를 보낸 일이 있다.그다지 길지 않은 편지 한통을 작성해 발송할 때까지 만 3일이 걸렸다.행원(5급)이 초안을 쓰고 조사역(4급)이 전면 개작한 것을 다시 과장(3급),부장(1급)의 순으로 데스크를 보고 임원의 결재를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편지 한통 보내는 일만 봐도 한은이 업무를 얼마만큼 신중을 기해 처리하는지 짐작이 간다.신중해서 나쁠 건 없다.그러나 그 신중함을 뒤집어 보면 한은조직의 비효율성과 활력불재로 비쳐지기도 한다.너무 많은 인재들이 그 역할에 비해 낭비된다는 느낌까지 든다. 한 임원은 한은에서 임원이 되기 위한 제1의 자격요건으로 무병장수를 꼽았다.오랜 외풍에 시달리며 몸조심하느라 기골이 문드러져 가는 금융인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말이다.한은 사람들 치고 하찮은 일로 필화를 입거나 책임추궁,승진기회 박탈 등의 불이익을 겪지 않은 경우는 드물다.한은체질이 몸에 밴 사람들에게 「몸성히 오래 사는 것」이 최상의 처세술로 여겨질 법한 일이다. 김명호총재는 지난주금융연수원에서 「금융개혁과 금융인의 자세」에 대해 강연했다.강연 말미에 『자율과 책임이 요구되는 금융자유화 시대에 여전히 정부의 규제와 보호 아래 안주하려는 성향이 남아 있다』고 질타했다.이를 극복돼야 할 금융인의 「피터팬 증후군」이라고 매도했다.「피터팬 증후군」이란 몸은 성인이 됐지만 여전히 어린이로서의 대우와 보호를 받고자 하는 심리를 일컫는 말이란 설명도 덧붙였다.그 자리에 모인 시중은행 사람들은 대부분 강연내용이 매우 유익했다고 말했다.한은 사람들이 들었으면 더욱 유익했을 것이란 반응도 있었다. 한은독립 문제에 대해 한은의 모과장은 은유적인 화법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새장 속에 오래 갇혔던 새는 새장 문이 열려도 금방 날지 못한다.날개근육이 퇴화됐기 때문이다.다시 날려면 끊임없는 뜀박질과 곤두박질,날갯짓이 필요하다』
  • 교개위 개혁인사로 구성하자/김신일(정경문화포럼)

    ◎소신갖춘 인물만이 교육난제 해결/정책수립때 현장소리 최대한 반영 금융실명제의 충격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회분위기이다. 그만큼 엄청난 경제개혁의 단행이었다.그러나 경제개혁만으로 한국사회가 새롭게 탄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동시에 모든 국민들이 갈망하고 있는 것이 교육의 개혁이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현정부의 교육개혁추진을 담당할 「교육개혁위원회」가 드디어 9월중 발족될 것 같다.청와대는 지난7월29일 국무회의가 위원회의 설립규정을 확정한후 발족준비를 서둘러온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문화비서실은 25인이내로 되어있는 위원선정을 위하여 교육부를 비롯한 각부처및 여러 사회단체로부터 후보자 추천을 받아놓았으며 참신하면서도 각계각층을 대표할만한 인물을 선정하는 작업에 골몰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 가운데에도 위원장을 어떤 인물로 선정하느냐하는 것은 교개위의 성패를 좌우할 문제이므로,천거된 몇몇 인사를 놓고 저울질이 한창인 모양이다.한편 전문적 연구 조사역할을 수행할 10인이내의 전문위원 인선도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이나,위원과 위원장 인선을 마친뒤로 미루는 것 같다. 교개위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가 엄청날 뿐아니라 현정부가 지난2월에 출범한 이래 지난 여섯달동안 교육에 관한 핵심적인 문제는 모조리 「앞으로 구성될」 교개위로 미뤄놨기 때문에,교개위 위원들의 임무와 책임은 더욱 무거워졌다.인선의 중요성이 그만큼 더 커진 것이다. 위원장은 자신이 교육에 관한 전문적 식견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거나 간에,위원들의 자유롭고 다양한 의사개진을 촉진시키고 일단 결정된 개혁방안은 적극적으로 실현시킬수 있는 강한 의지를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대통령의 눈치나 살피고,이 위원장 자리를 발판으로 다른 직책이나 따보려는 인사는 배제되어야 한다.대통령과 맞서서 위원회의 결정을 관철시킬만한 소신을 소유하고 있는 인사여야 한다.적어도 현 감사원장 만큼의 소신과 배짱을 갖춘 인물을 뽑아야할 것이다. 위원들은 각 분야를 대표할만한 인물을 고르되,각계 각층간의 균형을 우선으로 삼기보다는 어떻게 해서든지 국민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제도를 확립하겠다는 의지가 뚜렷한 인사들로 구성해야할 것이다.그리고 기존 교육제도와 정책 그리고 교육의 기득권층을 비호할 인물은 배제하고,강하면서도 다소간 진보적 개혁의지를 갖춘 인사를 선정해야 교육위원회 설치의 본 뜻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개혁의 방향을 설정함에 있어서 반드시 경계하여야할 두개의 위험한 주장이 있다.그 하나는 교육정책을 경제정책에 예속시켜,경제적 잣대를 가지고 교육정책을 가늠하려는 발상이다.물론 교육이라고 해서 경제와 무관할 수는 없으며,동일한 교육적 목적을 달설하는데 있어서 더 경제적 방법이 있다면 그 방법을 택하는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물가에 주는 영향을 고려하여 교과서 값을 형편없이 낮게 책정한다거나,학급당 학생수의 기준을 설정함에 있어서 교사의 주의가 학급내의 학생들에게 미칠수 있어야한다는 교육적 기준을 무시하고 30명이면 어떻고 40명이면 어떠냐는 식의 무지한 기준설정 같은 것은 발상부터 바꿔야 한다. 경계하여야할 또하나의발상은 자유주의로 그럴듯하게 포장한 사(사)교육주의적 사고이다.우리 교육의 근본적 문제의 하나가 교육의 사유적(사유적)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의 근본적 개혁은 도외시하고 사학을 확대발전시킴으로써 교육문제를 해결하려한다거나,학교의 교육여건을 개선하는 일은 뒷전으로 밀어두고 중산층이상이나 가능한 학원수강을 자유화시킴으로써 교육재원이 입시산업에로 유출되도록 촉진시키는 식의 정책은 당연히 방향전환을 하여야 한다. 모름지기 교육개혁위원회는 개혁의 철학이 분명한 인사들로 구성해야 한다.어정쩡한 구색맞추기 위원구성은 모처럼의 교육개혁기회를 아깝게 놓치도록 만들 것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