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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고대문화재 항공 탐사

    ◎공중촬영 사진 검색… 낙양일대 상대유적지 입증 땅밑에 묻혀있는 고대 문화재를 항공 사진촬영을 통해 발굴,보존하는 문화재보호방법이 중국서 인기를 끌고 있다. 북경의 중국 역사박물관과 낙양시 문물국 연구팀은 최근 중국 7대 고도가운데 하나인 하남성 낙양일대에 대한 항공촬영 검색방법으로 고대 상대유적지를 입증해내는 성과를 거두었다.경비행기와 R­22형 헬리콥터등에서 특수 촬영한 1백여통의 사진을 정밀 판독,오랜세월의 풍상속에 삼림과 흙속에 파묻혀있는 옛 성터와 건물등을 확인해 낸것이다.연구팀은 ▲낙양 이리두지역과 엔수이지역의 상대 성곽유적에서 고건축 기단등의 토대를 발견해 냈으며 ▲한나라와 위나라 고성곽및 궁궐터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또 망산지역에선 들풀속에 묻혀있던 옛 고대 분묘들을 확인,분류해 내기도했다. 중국 국가문물국의 위탁을 받아 이루어진 이번 조사는 중국 고고학상 항공탐사 기법을 이용한 첫 성공사례.하와 상나라의 옛 성터,한나라와 위나라,수·당지역등 5개 지역,3백㎦에 대한 정밀 탐사를 토대로문물보호의 주요한 데이터와 고고학적 발굴이 가능케됐다고 중국 고고학계는 기뻐하고 있다. 중국 국가문물국 등 관계당국은 당나라때 장안으로 불리던 서안일대의 성벽등 유적터가 훼손돼 복원불가능한데 비해 낙양지역의 수·당시대 성곽 유적지는 훼손되지 않고 남아있다면서 이번 항공조사를 토대로 보호대책 마련과 항공탐사를 통한 문물 보호확대를 약속하고 있어 중국에도 문화재 보호를 위한 본격적인 항공탐사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후기 구석기 ‘자라모양 송곳’ 첫 발굴

    ◎건국대 박물관,경기 연천 원당리서/길이 3.2­가로 3­두께 1㎝ 차돌로 만들어/지표조사선 주먹도끼 등 전기 구석기 유물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약 2만년전 후기 구석기시대 유물인 자라모양의 돌송곳이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원당2리 임진강가 유적에서 발굴되었다.또 찍개 발굴과 함께 지표조사에서는 주먹도끼를 찾아내는 등 전기 구석기시대 유물도 상당량 수습했다.이에따라 학계는 원당리 유적을 중요 구석기유적으로 주목하는 가운데 우리나라 구석기 표준유적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내다보았다. 건국대박물관(관장 최무장)팀이 지난 7월20일 발굴에 들어간 이 유적규모는 2백12㎡.문제의 자라모양 송곳은 발굴팀이 판 3개의 구덩이 가운데 후기 구석기지층이 있는 구덩이에서 나왔다..길이 3.2㎝,가로 3㎝,두께 1㎝ 크기의 자라모양 송곳은 차돌로 만든 매우 정교한 소형 돌연모.자라 몸둥이에 해당하는 부분이 손잡이고,자라 머리 부분이 송곳으로 되어있다. 이 자라모양 송곳은 당시 구석기인들이 사냥한 짐승가죽에 구멍을 낼 때 사용한연모로 추정했다.그러니까 짐승가죽을 끈으로 꿰매기 전에 먼저 구멍을 뚫는데 사용한 작은 송곳이라 할 수 있다.송곳 끝은 약간 마모되었는데,이는 실제 사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했다.이 유물은 다루기가 퍽 어려운 차돌을 가지고 만들었다는 점에서 뛰어난 석기로 평가되고 있다. 유럽지역 후기 구석기 유적에서는 더러 출토된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에서 자라모양 송곳이 나왔다는 발굴보고는 아직 없다.아주 작은 돌연모인 자라모양 송곳은 여간 발달한 석기제작기술이 뒤따르지 않고는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이 발굴팀의 견해다.그래서 고고학계는 이번 출토유물에 주목하면서 한반도 구석기 문화가 상당 수준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새롭게 확인했다. 그리고 원당리 유적에서는 물론 지표에서 수집한 유물이기는 하나 20만년전 전기 구석기시대의 주먹도끼가 발견되었다.주먹도끼는 전기 구석기시대 돌연모의 진수로,당시 가장 발달한 다용도의 만능석기. 현재 지표로부터 5m를 파 내려간 전기 구석기지층에서 주먹도끼로 발전하는 과정에 나타난 돌연모 찍개를 찾아냈다.따라서 이 지층에서 주먹도끼도 곧 발굴될 것으로 발굴팀은 기대했다. 이번 원당리 유적발굴을 계기로 한탄강에서 임진강 하류를 잇는 하안단구지대가 구석기 유적의 보고임을 다시 입증하게 되었다.한탄강과 임진강 유역에는 원당리유적 말고도 연천군 연천읍 전곡리와 남계리,연천군 장남면 주월리,파주군 파평면 금파리 등에 구석기 유적이 널려있다. 유적발굴현장을 방문한 서울대 임효재 교수(고고학)는 『구석기시대 전·후기가 뚜렷한 지층에서 시대 하향에 따라 다른 형태로 발전한 유물이 나와 발굴을 더 진척시키면 표준유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이어 임교수는 『후기 구석기시대의 자라모양 송곳은 당시 기술집약형 돌연모로 가치 높은 유물』이라고 덧붙였다.
  • 한민족청소년축전 개막/54개국 7백명 참가

    해외입양아 등 국내외 청소년 7백여명이 함께 모여 우의를 다지는 「96 세계한민족청소년축전」이 국민생활체육협의회(회장 최일홍) 주최로 열린다. 14일 개회식을 시작으로 8일동안 서울과 경주에서 고국문화 강연,민속 한마당,유적지 견학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세계 54개국에 살고 있는 청소년 동포 3백59명이 초청됐으며 참가자 가운데는 한국인 입양아 21명도 들어있다.
  • 주택마련 전략/지금이 내집마련 적기

    ◎3∼5년후 30평아파트 입주 이렇게… ▷고객의 조건◁ 요즘도 집값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어 집을 장만하는 데는 시기가 괜찮은 편이다.회사원 P씨(32)도 전세탈출작전에 나섰다.그는 3∼5년 뒤에는 25∼30평의 아파트를 구입할 계획을 갖고 있다.부인(29),3살 및 1살짜리 아들과 함께 수원의 25평짜리 아파트에 5천만원 전세로 살고 있다. 월급여는 1백60만원,생활비는 1백만원.매월 60만원 저축이 가능하다.앞으로도 이 정도의 저축은 할 수 있다는게 P씨의 생각이다.현재 모아놓은 재산은 주택청약예금 3백만원(2년이 지나 이자를 합하면 3백45만원)과 이달에 만기가 되는 근로자장기저축 2천1백만원이 전부다. ▷구체적인 재테크 방안◁ ▷1안◁ 25평 아파트 청약때(3년뒤 입주) 아파트의 분양가는 1억원이다.분양신청때 2천만원이 필요하다.그뒤 4개월마다 중도금 1천만원씩 6번 내야한다.입주전에는 잔금이 필요하다.P씨는 근로자장기저축 만기금 2천1백만원을 확정금리상품인 1년제 우대정기예금(연 11%)에 가입하면 1년뒤 2천3백6만원(세금을 뺀 실수령액,이하같음)을 만질 수 있다.이중 2천만원은 분양신청금으로 사용한다. 나머지는 주택청약예금과 합쳐 종합금융사의 CP(기업어음·수익률 12%)로 4개월간 굴리면 6백98만원을 만들 수 있다.중도금에 충당한다.모자라는 금액과 그 뒤 3번의 중도금 등 모두 3천3백만원은 은행에서 대출받는다. 월저축가능액중 40만원은 자유적립신탁 2년6개월제에 가입한다.이 예금은 확정금리는 아니지만 현재 연 12.3%로 수익률이 높다.적립금액과 시기가 자유롭다.앞으로 금리하향 추세를 감안해 평균수익률을 11%로 하면 2년6개월 뒤에 1천3백61만원이다.다섯번째 중도금에 충당한다. 나머지 저축가능액 20만원은 신가계우대저축 3년제(확정금리 12%)에 가입해 8백39만원을 받아 자유적립신탁만기액중 남은 금액과 보태 마지막 중도금으로 한다.입주때 전세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르고 은행대출을 갚으면 된다. 이렇게 하면 1년4개월 뒤부터는 대출이자를 월 35만원(이율 13%)씩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급여인상분으로 해결해도 되고 부족하면 생활비까지 절약해야 돼 다소 무리일 수는 있다. ▷2안◁ 5평 아파트 구입때(3년뒤 입주) 아파트가격인 1억3천만원을 3년만에 마련할 수 있다.목돈 2천1백만원은 월복리신탁에 가입해 굴린다.현재 수익률이 13%지만 금리는 떨어질 것으로 보이므로 평균수익률을 연 11.5% 적용한다.3년뒤 2천8백13만원이 된다.월저축액 60만원중 30만원은 확정금리상품인 신가계우대저축 3년제에,30만원은 실적금리상품인 자유적립신탁에 각각 가입한다. 신가계우대저축은 12%의 확정금리로 세금우대로 가입하면 3년뒤에 1천2백58만원이 된다.자유적립신탁은 금리하락 추세를 감안해 평균수익률을 11%로 적용해도 3년이 지나면 1천2백56만원이 된다.3년뒤 P씨의 총금융자산은 주택청약예금을 포함해 5천7백40만원.전세보증금을 합하면 1억7백40만원이다.부족한 2천2백60만원과 취득관련 세금 등 3천만원은 은행대출로 충당해야 한다. ▷3안◁ 30평 아파트 구입때(5년뒤 입주) 시세를 1억6천만원으로 보면 2안과 같이 돈을 모았을때 5천2백60만원이 부족하다.너무 무리해 집을 장만하면 대출이자로 부담이 크므로 저축을2년간 더 한뒤 구입하는 게 바람직하다.5년뒤 월복리신탁은 3천4백18만원,신가계우대저축은 2천2백89만원,자유적립신탁은 2천3백17만원,주택청약예금 4백59만원으로 총금융자산은 8천4백83만원이 된다.전세보증금과 합하면 1억3천4백83만원이다.은행대출금을 3천만원 받으면 해결된다.
  • 8월 남산의 일본인들/안병준 특집기획부장(서울논단)

    애국가 2절의 「남산」은 우리의 기상을 상징한다.그래서 남산은 비단 서울사람들만의 것이 아닌 것이다.봄 여름 가을 겨울 많은 사람들이 남산을 찾는다.외국인들에게도 남산은 주요 관광코스의 하나이다.남산에는 서울시가 지난 94년 복원한 봉화대를 비롯해 많은 유적과 기념관들이 산재해있다. 광복51주년을 맞는 1996년8월의 남산.안중근의사기념관과 서울시과학교육원 사이 주차장에 대형 관광버스들이 거의 시간대별로 일본인 관광객들을 쏟아놓고 있다.그들의 계층은 다양해 보인다.초등학생들도 있다.그들은 각본을 짠듯이 식물원을 배경으로 ○○견학단이라는 플래카드를 앞에 들고 사진을 찍는다.그리고 삼삼오오 흩어져 이것저것을 구경한다.꼼꼼한 국민성답게 대부분 열심히 기록을 한다.식물원은 일제 때 신사가 있던 자리이다. 남산으로 피서를 온 한국인들은 느티나무 아래에서 낮소주를 마시며 담소를 한다.그들의 대화는 광범위하다.제6차 범청학련통일대축전을 둘러싼 경찰과 학생들의 충돌,97년 대권을 향한 정치권의 혼전,8·8개각에서의 국방장관 유임,공권력을 무시한 강력범죄의 잇단 발생,경제난과 무역수지적자,곰발바닥을 찾는 한국인관광객의 추태,사치와 과소비풍조 등등.어떤 사람들은 라면박스를 펴고 낮잠을 잔다.평화롭다.담론과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그들 사이로 조깅을 좋아하는 미국인 세명이 땀을 흘리며 지나친다.무표정한 얼굴로 한국인들을 내려다 보며.미국인들은 아마 휴일을 맞은 미8군 병사들이었으리라. 법무부에 따르면 한국을 찾는 일본인들은 91년 이래 꾸준히 증가,지난 5년간 7백68만명 이상인 것으로 집계했다.열린 세계화(Globalization)시대에 이들 모두가 물론 정탐원은 아니겠으나,우리는 지난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조선은 세종 때 신숙주가 일본을 방문한 이후 무려 134년동안 일본을 가지 않았다.그에 반해 일본은 임진왜란 1년전인 1591년만 해도 이런저런 신분으로 무려 5천명을 보내 조선을 정탐케 했다. 일본은 항상 미래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하는 민족으로 유명하다.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한 일본의 군사력은 올4월 미국과 일본이 신안보선언을 함으로써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확대할 것이 분명하다.한양대 김경민 교수는 최근 일본의 군사력을 분석한 논문에서 『일본은 적의 레이더를 피하는 스텔스폭격기와 실전에서 F­15 및 F­16이 대항하기 어려운 F­2전투기는 물론,세계 정상급의 구축함과 잠수함 생산능력을 확보하고 있다』며 『일본은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언제든 우수한 기술력으로 핵무기는 물론 첨단무기를 대량생산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1월 일본 보수우익의 대표적 인물인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가 자민·사회·신당사키가케의 3당 연립정권을 출범시킨 이래 계속되고 있는 일본각료들의 신사참배와 망언도 우리가 유념해야할 부분들이다.그들은 「치고 빠지는」 전략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안중근의사기념관측에 따르면 지난 7월 일본사회당 간사장 사토 간즈 등 참의원일행 9명을 비롯,한해 9천명 정도의 일본인들이 꼭 안의사기념관을 찾았다.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은 잘 찾지도 않는 이곳을 왜 그들이 열성적으로 오는가.그들의 영웅 이토 히로부미를쏴죽인 안의사 영정 앞에서 그들은 무엇을 생각한 것일까.또 무엇을 기원했을까. 8월의 남산은 우리들에게 「대비」를 요구하고 있다.그런데 우리네는 뭔가 빈수레처럼 시끄럽기만 하다.낮소주로 시끌버끌 결론없는 담론만 나누는 한국인들 너머 서울하늘이 뿌옇다.
  • 헤겔의 예술철학·미학 집대성/독문학자 두행숙씨 3년걸려 첫 완역

    ◎“예술의 사명은 이상의 감각적 표현”/이념·이상­동·서양의 대립 등을 고찰 독일 관념주의 철학을 완성한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1770∼1831)의 예술철학과 미학이론을 집대성한 「미학강의」가 「헤겔철학」(전3권,나남출판)이란 제목으로 국내에서 처음 완역·출간됐다. 독문학자 두행숙씨(42·서강대 강사)가 3년간에 걸쳐 우리말로 옮긴 이 책은 헤겔이 만년에 하이델베르크와 베를린대학에서 「미학 또는 예술철학」이라는 주제로 강의한 내용을 헤겔 사후,그의 제자인 하인리히 구스타프 호토가 정리한 대작.헤겔의 미학이론은 그동안 국내에 부분적으로 소개되기는 했지만 방대한 헤겔미학의 전모가 소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대학에서 미학을 강의하던 1820년대는 헤겔의 지적 활동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로,이 책의 내용은 그 깊이와 넓이에서 『서양 이상주의 미학의 최고봉을 이룩했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헤겔의 미학체계는 「자연의 미」가 아닌 「예술의 미」 혹은 예술철학을 다루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특징.예술미는 「정신의 소산」인만큼 자연미보다 우월하며 따라서 사유적인 철학의 고찰대상이 된다는 것이 그의 논지다.또 헤겔에 의하면 예술은 절대이념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그는 『예술의 사명은 절대적인 것,즉 이상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이같은 입장에서 출발,헤겔은 서양의 미학이론을 역사적 발전과정을 통해 고찰한다. 「헤겔철학」은 「예술미의 이념 또는 이상」「동양예술,서양예술의 대립과 예술의 종말」「개별예술들의 변증법적 발전」등 모두 3부로 이뤄져 있다.1부에서는 우선 미학을 철학적 관점에서 고찰하며 2부에서는 이념과 형상이 서로 일치할 때 예술이 이상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을 지적한다.또 예술 역시 인간역사와 마찬가지로 역사적인 3단계의 변증법적 발전단계를 거친다는 견해를 펼친다.불안정하고 절제성이 결여된 고대 동방의 「상징적 예술형식」과 이념과 형상이 자유롭게 조화를 이루는 고대 그리스의 「고전적 예술형식」을 거쳐 이념이 형태를 압도하는 「낭만적 예술형식」으로 완성된다는 것. 예술형식의 구분에 이어 헤겔은 3부에서 각 단계의 예술형식에 해당하는 주요 장르와 그에 따르는 특성들을 설명한다.상징적 예술형식으로 건축을,고전적 예술형식으로 조각을,낭만적 예술형식으로 회화·음악·시문학을 각각 꼽고 있는 헤겔은 결국 예술이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단계는 시문학이라고 결론짓는다. 서양 미학이론의 중심축을 이루는 헤겔 미학사상은 무엇보다 과거 서구의 예술에서부터 자신의 시대에 이르는 모든 미학이론을 특유의 변증법적 철학체계로 아우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그러나 역자는 책머리에서 헤겔 미학사상의 몇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절대정신의 영역을 예술 종교 철학의 3단계로 나눈 뒤 예술을 최하위 단계에 놓음으로써 예술의 독자성을 부인하고 있으며,독일 고전주의가 추구했던 서양의 고대 그리스문화를 중심으로 한 이상적 예술론을 전개함으로써 서양 우월주의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 그가 지적하는 헤겔미학의 한계.『헤겔이 자신의 미학론을 완성한지 2백년 가까이 된 시점에서야 우리말 완역본이나와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는 역자 두씨는 『이제부터라도 헤겔의 미학사상을 편견없이 이해하고 우리의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키워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파키스탄/모헨조다로:상(세계 문화유산 순례:5)

    ◎BC 2,500년에 세운 완벽한 계획도시/벽돌 8천만장 소요 추산… “인더스문명의 꽃”/대욕탕에 상·하수시설… 도로는 벽돌포장/기능별로 구역 배치… 요새유적이 중추 인더스문명의 꽃 모헨조다로.파키스탄 신드지방 라르카나에 있다.카라치에서 이른 아침 비행기를 타고 신크리를 우회하여 2시간만에 모헨조다로 공항에 도착했을 때,황토지대에는 벌써 불볕이 깔렸다.그래서 메마른 문명의 구릉모헨조다로는 말 그대로 「죽음의 언덕」처럼 보였다. 비행장에서 4∼5㎞쯤은 될까.그리 멀지 않았다.모헨조다로 초입의 요새유적은 약간 경사진 비탈에 흙을 돋우어 만든 인공언덕 기슭을 깔고 앉았다.작열하는 불볕을 이기지 못하고 고운가루로 바스러진 황토흙과 벽돌이 어울린 모헨조다로의 색깔은 붉었다.인더스강이 범람하면서 밀어붙인 황토흙으로 벽돌을 구워 건설한 모헨조다로는 애초부터도 붉은색 도시였다. 그 요새유적 어귀에 모질게 자란 가시나무 한그루가 무척이나 반가웠다.신드말로 간디라는 가시나무는 그런대로 불볕을 가려주었으나,유적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길이 곧 시작되었다.높이 21m에 지나지 않는 인공언덕의 벽돌계단이 극악스러운 더위로 해서 코밑으로 바싹 다가왔다.그리고 정상에 올라 진흙과 벽돌을 섞어 만든 거대한 탑파(수투파)를 만났다. 요새유적 정상의 탑파는 모헨조다로를 얼핏 불교유적으로 착각하기 딱 알맞았다.1922년 이 유적을 처음 조사했던 영국 고고학자 RD배너지도 모헨조다로를 불교유적으로 보고 탑파 주변을 발굴했을 정도였으니까….실제 AD 200년쯤 쿠산왕조시대의 동전이 나오기는 했다.그러나 탑파 주변을 더 깊이 파들어가서 생전 보지못했던 인장한 점을 발굴해냈다.그 인장은 바로 세기적 유물로,모헨조다로가 인더스문명 유적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제공한 단서가 되었던 것이다. 모헨조다로는 BC2500∼1700년까지 8백년동안 번영을 누렸던 도시다.그러니까 요새유적의 탑파는 모헨조다로가 멸망한 이후 1천9백여년이 지나고 나서 파괴된 모헨조다로 유적지 위에다 쌓아올린 불교유적인 것이다.어떻든 모헨조다로 사람들은 다른 세계가 거의 신석기시대를 살 무렵에계획된 도시를 건설했다.모든 정황으로 미루어 도시 면적은 어림잡아 4천8백여㎡를 웃돌았을 것으로 보고있다. 오늘날 모헨조다로 유적은 편의상 네 블록으로 나누어 블록마다 고유부호를 붙였다.블록의 부호는 발굴자들 이름에서 약자를 따다 만든 것인데,요새유적은 SD구역으로 되어있다.인공의 언덕,다시 말하면 토루가 있기때문에 요새로 불리는 이 유적은 도시의 중핵이라 할 수 있다.정상에 올라서면 동남과 동북쪽으로 펼쳐진 주변 도시유적이 한눈에 들어왔다. 요새유적(SD구역)에는 아주 중요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중요한 건물은 큰 욕조가 있는 대욕탕이다.길이 12m,너비 6.9m,깊이 2.4m의 벽돌탱크가 설치되었다.욕조바닥 벽돌의 가장자리를 석고로 모르타르한 대욕탕은 방수처리가 완벽했다.욕조의 물은 세 개의 우물로부터 공급받는 상수도시설과 물을 빼내 흘려보내는 배수 및 하수도 시설도 갖추었다.대욕탕에서 조금 떨어진 북쪽에는 작은 욕조가 딸린 방들이 따로 있다.깨끗한 물을 늘상 공급받아 몸을 청결하게 가꾼 성직자들의 전용공간인 것이다. 대욕조를 돌아보고 나서 눈길을 끄는 건물터 하나가 골목 건너에서 기다렸다.네 개의 통로가 난 건물안에는 벽돌 스무남은장씩을 포개 쌓은 주춧대가 늘어 섰다.그 주춧대는 지붕 버팀기둥 자리였을 법한데,건물안 홀 넓이는 26㎡를 헤아렸다.고고학자나 문명사에 관심을 둔 전문가들은 이 건물을 종교집회를 위한 성소로 보았다.이 성소건물은 모헨조다로의 다른 블록 DK지역에서 발굴한 족장의 저택과 함께 도시사회의 통치기능과 체제를 가늠할 수 있는 유적이기도 했다. 모헨조다로를 와서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위대한 도시라는 사실을 느낄 것이다.그까짓 벽돌을 쌓아 건설한 도시가 별 대수로우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더러 있겠지만,BC 2500년쯤 도시계획에 의한 완벽한 도시라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모헨조다로 사람들 말고 다른 많은 종족들은 기껏해야 움집 정도를 짓고 살던 시대였기 때문이다.요새유적(SD구역)과 그 밑의 도시유적 DK구역,노동자 거주유적 HR구역 등이 기능에 따라 배치되었다. 이들 구역의 모든 건물은 구워 만든 붉은색 벽돌로 지었다.그리고 우물을 파고 원형으로 벽돌을 가지런히 쌓아 올렸다.우물은 7백개나 되었다.방수처리한 상·하수도에도 역시 벽돌을 사용했다.도로는 오늘날 나침반이 가리키는대로 정확히 동서와 남북을 이었다.마차가 다닐 수 있도록 너비가 10m에 이르는 큰 도로에는 바퀴가 제대로 굴러가도록 벽돌을 모로 뉘어 깔았다.도시계획은 물론 도시토목을 맡은 전문 엔지니어가 설계한 도시가 바로 모헨조다로인 것이다. 이 도시를 건설할 때 엄청난 분량의 벽돌이 들어갔다.고고학자들이 계산해낸 숫자는 자그마치 8천만장이다.벽돌을 일정한 규격품으로 세 종류가 생산되었다.가장 큰 세로 28㎝,가로 16㎝,두께 9㎝짜리 벽돌은 나무로 구웠다.나머지 작은 규격품 벽돌을 굽는 데는 곡물의 껍데기 왕겨를 땔감으로 썼다.이들 벽돌은 건축용도에 따라 사용되었다.오늘날 건축자재용 벽돌강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제품을 대량 생산했으나 벽돌공장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모헨조다로와 버금하는 파키스탄의 다른 문명유적이 수난을 당한 적이 있다.모헨조다로보다 더 상류에 위치한 인더스강 지류 라비강 북쪽 연안의 하라파 유적의 수난이 그것이다.영국식민통치시대 파키스탄 초기철도건설 당시 하라파유적의 벽돌이 공사용 자재로 활용되었다는 이야기다.그 이후 문명유적임이 확인되어 지금은 모헨조다로 유적과 더불어 두 개의 큰 인더스문명 유적으로 보호받고 있다. 정오를 넘긴 구릉지대의 더위는 가히 살인적이었다.그러나 내친 걸음이라 모헨조다로박물관에서 내준 랜드로버로 인더스강쪽을 향해 달렸다.2㎞쯤을 실히 가서 강물이 범람할 때 도시 한 블록을 흔적없이 삼켜버린 폐허지대에 다달았다.비록 폐허라 할지라도 모헨조다로를 보다 분명한 문명유적으로 부각시킨 많은 유물들이 1898∼99년 사이 여기서 출토되었다.파키스탄 독립이후 최대의 발굴성과로 꼽히는 여러 돌인장,소가 끄는 달구지 따위의 테라코타 조각품들,무늬도자기와 민무늬도자기 등이 그것이다. 소 달구지에서 모헨조다로 도시유적의 그 넓은 길이 허세가 아니었음을 실감했다.그리고 돌인장에는 설형문자가 나오거니와 큰 선박 그림을 새겼다.이들 모헨조다로의 인장은 파키스탄보다 먼 서역수메르에서도 출토되었다.모헨조다로 사람들은 아주 일찍 고유문자를 쓰는 가운데 큰 배를 부려 장거리 해상무역로를 개척했다는 증거가 아닌가.그래서 모헨조다로에는 영원한 문명의 빛이 어려있는 것이다.
  • 스리랑카/찬란한 불교 유적… 섬 전체가 박물관

    ◎가는 곳마다 고대도시·궁전터·사원 등 즐비/「천혜의 낙원」… 관광·성지순례 발길 줄이어 인도대륙 남동쪽의 작은 섬나라 스리랑카의 여성지도자 찬드리카 반다란나이케 쿠마라퉁가 대통령이 12일 우리나라를 찾아와 14일까지 머물며 양국의 경제협력과 관광교류증진방안 등을 논의한다.찬란한 불교유적을 자랑하는 스리랑카는 특히 불교신자가 많은 우리나라의 특성을 고려해 불교성지순례여행 등을 집중겨냥하고 있다.따라서 이번 대통령일행 방한에는 관광 관계자들이 함께 와 한국관광업계·불교단체 등과 다각적인 접촉을 하고 있다.미국·유럽·동남아·중국·대양주 등에 치우친 우리나라 관광분야에서 스리랑카는 아직 미개척의 먼 나라로 남아 있어 더욱 이채롭다.이를 계기로 스리랑카의 불교여행코스등을 살펴본다. 스리랑카는 섬 전체가 박물관이다.면적 6만5천6백㎢로 남한면적보다 작으며 인구도 1천8백여만명에 불과한 소국이지만 발길 닿는 데마다 찬란한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으며 지구상에 몇 남지 않은 마지막 낙원으로 꼽힐 정도로 풍광이 아름답다. 또 1인당 연간 국민소득은 미화 7백달러정도로 낮지만 의식주를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자연의 축복을 받은 땅이어서 인심이 좋기로도 유명하다. 이같은 조건에서 불교와 힌두교,그리고 기독교문화가 어우러져 스리랑카는 거대한 섬박물관을 이루고 있다. 가는 곳마다 고대도시와 궁전터·인공호수·공원·사원·수도원·조각 등이 즐비해 여행자의 탄성을 자아낸다. 기원전 3세기에는 당시 수도 아누라다푸라의 명성이 멀리 지중해까지 알려졌으며 기원 반세기 전에는 상할리족 교역대표단이 로마의 시저 황제에게 신임장을 제정했고 기원 300년 무렵에는 중국과 교역할 정도로 일찌감치 번성한 국가를 형성해 그만큼 문화유산이 많다. 기원전 247년에는 스리랑카역사상 가장 기념비적인 일이 발생했다.바로 인도의 독실한 불교도 아쇼카왕이 아들 마힌다왕자를 이 섬에 보내 불교를 전한 것이다.이때부터 상할라왕은 물론 일반에 이르기까지 불교에 귀의해 오늘날까지 줄곧 불교가 번성해왔다. 이 때문에 스리랑카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불교성지가 되어 순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불교전파와 비슷한 시기에 힌두교도인 드라비다족이 침입을 시작한 뒤 1천5백년동안 수없이 거듭해 힌두교문화도 크게 자리잡았다. 여기에 17세기초부터 네덜란드와 영국의 지배를 받아 기독교문화가 어우러졌다. ○기원전 4세기에 번성 ◇경이로운 고대문명도시 아누라다푸라=콜롬보 북쪽 2백㎞에 있는 최초의 수도로 기원전 4세기경부터 번성했다.당시의 계획도시로서 사냥꾼·청소부·외국인·이교도의 거주지역이 구분됐고 신분제도에 따른 묘지도 다르며 관개수로가 완벽하다. 6백년 수도의 영광을 누리면서 만들어진 돌기둥과 돌탑이 조용한 녹음속에서 한때의 영광을 말해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보리수인 「스리 마하」보리수가 있으며 스리랑카에서 가장 오래된 탑 「투파라마 다가바」가 유명하다. ○69개 동굴승원 만들어 ◇최초의 불교전래지 미힌탈레=아누라다푸라 동쪽 13㎞에 있는 바위산유적으로 처음 불교가 전래된 곳이다. 바위산 여기저기에 대탑이나 동굴유적이 많으며 정상까지 1천8백40계단을 올라가면 멀리 아누라다푸라의 대탑이 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다. 마힌다 스님이 사냥중이던 티사왕을 만나 불교에 귀의케 했고 티사왕은 3천명의 승려를 위해 68개의 동굴승원을 만들었다. ○밀림속의 저수지 1천곳 ◇밀림속의 중세고도 폴론나루워=11세기초 남인도 타밀족의 침입을 받자 새로 만든 수도로서 콜롬보 동남쪽 2백여㎞에 있다. 도시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공원과 정원이 많으며 근처에 1천곳 이상의 관개용 저수지가 있다. 남쪽 프라크라마 바후궁전은 1층 중앙홀이 2백평이 넘을 정도로 웅장한데 처음에는 7층이었으나 지금은 2층만 남아 있다. 북쪽의 갈 위하라 석가모니 와불상은 빼놓을 수 없는 명소.부처의 열반상이며 길이가 13m나 된다. ○바위속 궁전에 「미인도」 ◇바위요새궁전 시기리여=천민소생의 맏아들 카샤파가 정실소생의 동생이 왕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반란을 일으켜 부왕을 살해하고 동생을 추방한 뒤 고뇌를 이기기 위해 만든 바위속 궁전으로 섬 중앙에 있다. 부왕이 여기에 궁전을 만들려 했다는 얘기를듣고 스스로 궁전을 완성했다. 벽화 「시기리여 미인도」는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의 문화유산」에 들 정도로 값어치가 평가된다.5백명 이상의 미인도가 있었다 하나 지금은 10개가 남아 있다.
  • 경제수역시대에 대비하자/이서항 외교안보연구원 교수(시론)

    바다의 계절 8월이다.많은 사람들이 여름 휴가장소로 바닷가를 선택하고 국제적으로도 우리에게 바다의 중요성이 한층 더 높아진다는 의미에서 8월은 분명 바다의 계절이다.바다문제를 총괄적으로 관리할 해양수산부가 신설되는 것도 8월이고 유엔해양법협약에 의해 보장되는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둘러싼 한·일간,그리고 한·중간의 협상도 이번 8월에 시작되기 때문에 올 8월은 바다의 계절임이 분명하다.또한 마침 고려대 명예교수 박춘호 박사가 올 10월 발족될 국제해양법 재판소의 초대 재판관의 한 사람으로 선출된 것도 지난 8월1일의 일이어서 이제부터 바다문제는 경제수역시대의 개막이라는 말이 시사하듯이 우리곁에 더욱 가까이 온 셈이라 아니할 수 없다. 물론 바다문제는 우리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우리와 함께 황해·동해·남중국해를 공유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등도 똑같은 중요성을 느끼고 있다.두나라는 이미 지난 몇개월사이에 유엔해양법 협약을 비준한 바 있으며 우리와 비슷하게 경제수역법안의 시행을 서두르고 있다. 이같은 사정은동북아뿐만 아니라 동남아 국가들도 마찬가지이다.경제수역에 대한 순찰강화등 바다문제의 중요성 때문에 이들 국가들은 최근 세계가 주목할 만큼의 해군력을 증강시키고 있다.시야를 좀더 넓혀 동아시아 전체를 보면,이 지역에서의 잠재적 국제적 갈등요인은 해양영토분쟁 등 대부분 바다문제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다.그래서 많은 국제정치학자들은 『앞으로 아시아지역에서 전쟁이나 또는 무력충돌이 일어날 경우 첫 총성은 틀림없이 바다문제를 둘러싼 문제때문에 울릴 것이다』라고 서슴없이 예측하고 있다. 경제수역시대의 개막에 따라 국내적 차원은 물론이고 국제적으로 바다와 관련한 사안들이 앞으로 더욱 중요해지는 만큼 바다연구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야 하고 바다와 관련된 국제법의 명확한 이해가 앞서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특히 바다와 연계된 국제법과 관련해서는 올해초 독도를 둘러싼 한·일간의 논쟁은 사실상 경제수역의 관리와 보호로부터 야기되는 양국의 어업구조 조정문제가 문제의 핵심이었으나 마치 독도에 관한 영유권 분쟁이 문제의 전부인 것으로 여론이 이끌어져 갔던 것은 우리가 깊이 반성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경제수역시대가 개막되는 시점을 맞아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경제수역의 명확한 개념과 법적 성격을 다시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첫째,경제수역은 독특한 법적 성격을 지니는 특수수역이다.이는 경제수역이 영해와 공해사이의 독립된 기능을 갖고 있으며 유엔해양법 협약이 경제수역에 관한 연안국 및 타국의 권리·의무를 동등하게 규정함에 따라 명확한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연안국과 타국의 이익 충돌시에는 양국간 형평의 바탕위에서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경제수역내에서 연안국은 천연자원에 대한 주권적 권리를 가짐으로써 흔히 그 배타성이 강조되고 있으나 사실 이 권리는 철저하게 배타적인 것이 아니다.즉,연안국은 타국에 대해 자원이용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무도 갖고 있으며 해양과학조사에 관한 관할권의 경우에는 절대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다. 셋째,유엔해양법협약은 연안국과 타국의 권리및 의무를 동등하게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연안국 및 타국에 명시적으로 부여되지 않은 역사유적 또는 고고학적 유물발굴등 이른바 잔여권리에 대해서는 앞으로 어느 국가가 이 권리를 행사할 것인지 논란의 여지가 많음을 부인할 수 없다.유엔해양법협약이 명시하지 않은 잔여권리는 이외에도 경제수역내에서의 군사활동과 군사적 시설 및 구조물 설치등 상당수에 달하므로 이 권리의 행사와 관련한 논쟁은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다. 넷째,경제수역의 생물자원이용에 대해서는 연안국의 다양한 권리만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의무도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특히 연안국은 경제수역내에서 생물자원을 적절히 보존하고 적정하게 이용할 의무가 있으며 이는 총허용어획량(TAC)등의 제도도입으로 잘 나타나 있다.그러나 물론 총허용어획량 및 타국에 대한 잉여어획량 할당제도등은 연안국의 재량권 행사로 실제적으로는 유명무실한 것으로 전락하고 있으나 생물자원의 보존과 적정이용은 연안국에 부과된 중요한 의무가 아닐 수 없다. 바다문제가 한층 더중요해지는 경제수역시대의 개막을 맞아 우리는 수많은 국제적 분쟁과 갈등을 직시하게 될 것이다.이러한 때에 경제수역자체에 대한 명확한 개념및 법적 성격 이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물론 유엔해양법협약은 경제수역내 생물자원의 이용과 관련한 국제적 분쟁은 강제관할권 적용으로부터 배제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이를 전가의 보도로만 이용할 것이 아니라 경제수역의 개념과 법적 성격을 명확히 이해하여 앞으로 예상되는 협상과 분쟁에 정정당당히 대처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 “마피아,피사의 탑 폭파 기도”/지난 봄… 검찰 사전 봉쇄

    ◎교황의 범죄비난에 대응 이탈리아의 마피아가 로마의 대표적인 문화유적지인 피사의 사탑을 폭파하려 했다고 마피아 전담검사가 4일 폭로. 피에로 비그나란 검사는 한 환경문제에 관한 포럼에 참석해 『마피아가 피사의 사탑을 폭파,국제 범죄와 관련,계속 마피아를 언급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타격을 가하려 했다』고 밝혔다. 피에로 검사는 마피아가 최근에 있었던 프로랑스 지방의 우피니 박물관 폭파사고와 로마시내에서 계속된 교회건물 폭파사건을 저질렀다고 밝혔는데 지난 봄에 로마 북서쪽에서 25㎞ 떨어진 포멜로에서 발견했던 폭약들이 바로 피사의 사탑 폭파에 사용되려 했던 것이라고 지적.〈그로세토(이탈리아) AP 특약〉
  • 스페인 알람브라궁:하(세계 문화유산 순례:4)

    ◎호화로운 왕의 욕실… 천장은 수천개 「벌집」 장식/정원 곳곳 아담한 2층탑… 하나하나에 전설이/천장 꼭대기 창문 16개 햇빛받아 신비한 광채/지붕은 검은색 별모양 바다위 대형기뢰 연상/여름궁전 헤네랄리페 길목마다 탑·인공연못 알람브라는 유럽대륙에서 흔히 볼수 있는 거창한 종교 건축물도 아니고 역사적인 대사건과 관계된 유적도 아니다.알람브라는 오직 이슬람술탄(왕)들이 현세의 즐거움과 휴식을 위해 만든 왕의 거처일 뿐이다.그래서 알람브라를 장식하고 있는 아름다움은 지극히 감각적인 것들이다. 알람브라궁 안에서도 이 감각적인 현세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을 꼽는다면 바로 정원과 호화롭게 장식한 왕의 사우나실이다. 지중해 권에서 목욕은 이미 오랜 역사를 갖고 있었다.특히 당시 회교도들은 기도하기 전 몸을 깨끗이 한다는 종교적인 이유로,또한 기분전환을 위해,감각적인 쾌락의 한 방편으로 사우나와 마사지를 즐기는 욕실을 드나들었다고 한다.왕과 권력자들은 호화로운 개인욕장에서 즐기고 일반시민들은 모든 도시와마을에 있는 공중목욕탕으로 갔다.회교도시에서 공중목욕탕은 보통 시장과 모스크(회교사원)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다. 왕의 욕실은 처첩들이 머무르는 하렘이라고 부르는 내궁의 끝부분에 자리잡고 있다.여러개의 크고 작은 욕실,사우나실,휴게실로 이루어진 욕실은 벽과 기둥이 청·녹·황금·붉은색의 타일들로 촘촘하게 장식돼 있다.방 한가운데는 역시 가습기용 작은 분수가 자리잡고 있고 가운데가 좁아지는 둥근 천장은 꼭대기부분 바로 아래쪽에 여러 개의 창을 달아 햇빛이 들어오게 만들었다. 「하맘」이라고 부르는 이 욕실은 여러개의 크고 작은 방들로 꾸며져 있다.가장 앞부분에 있는 호화로운 방은 시녀들이 왕을 맞는 대기실 격이다.안내실을 지나면 옷을 갈아입고 슬리퍼를 싣는 탈의실이 나온다.그 다음 작은 욕탕이 마련된 욕실로 들어간다.마지막으로 「바이트 알 사유니」라고 부르는 사우나실이다.사우사실을 밖에서 보면 지붕이 둥근 별모양을 하고 있는데 검은 색으로 채색돼 있어 마치 바다에 떠있는 대형 기뢰를 연상시킨다.사우나실은 우리같은 온돌식으로 장작이나 석탄을 때서 공기를 덥히는 방식이었다고 한다.사우나실 한쪽에 마련된 작은 방에서 술탄은 느긋하게 쉬면서 마사지를 받는다.전체적인 욕실의 구조와 분위기는 로마나 폼페이의 로마유적들에서 볼수있는 욕실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아 로마의 영향을 크게 받았음을 짐작케 한다. 술탄은 사막의 소왕국에서 온 사신들과 함께 사우나를 즐기기도 하고 수십명이 되는 처첩들을 거느리고 함께 사우나를 하기도 했는데 처첩들 중에 단둘이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여인에게는 목욕이 끝난 뒤 사과를 하나 보냈다고 한다. 내궁을 벗어나면 시야가 탁트이며 멀리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배경으로 건너편 산허리에 자리한 왕의 여름궁전인 헤네랄리페 정원이 보인다.그러나 사람들은 건너편 산허리에 시간을 뺏기고 있을 겨를이 없다.바로 눈앞에 너무도 아름다운 소정원들이 줄지어 나타나기 때문이다.내궁을 나와 헤네랄리페로 연결되는 길목이 모두 돌기둥과 벽돌탑,인공연못으로 장식돼 있는 것이다. 알람브라의 뒤뜰 정원격인 이곳에서 미의 여왕은 단연 「여인의 탑」으로 불리는 파르탈 탑이다.5개의 아치를 이루는 돌기둥 회랑위에 나무천장이 얹혀있고 그위로 2층에 탑이 만들어져 있어 탑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실상은 어엿하게 아름다운 궁전이다.집앞에는 역시 장방형의 인공연못이 꾸며져 석주회랑을 그대로 물위에 비쳐내고 있다. 이 뒷정원은 작은 언덕을 따라 건너편의 헤네랄리페 정원으로 계속되는데 언덕의 높낮이에 따라 높이가 서로 다른 연못과 분수·꽃밭·탑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그래서 연못주위에 만들어져 있는 키 높이의 담벼락을 껑충 뛰어올라보면 그 위에 또다른 연못이 나오고 주위에는 또다른 색깔의 꽃들이 핀 꽃밭이 만들어져 있다.이렇게 뛰어다니기 시작하면 한이 없기 때문에 적당한 곳에서 포기하고 발길을 옮겨야 한다. 뒷정원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탑.이 탑들은 기독교도들이 하늘을 향해 찌를듯이 솟게 만든 웅장한 탑이 아니라 회랑과 돌기둥을 받치고 그위에 2층 높이로 나지막이 만든 아담한 궁전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적절할 것 같다.어찌보면 우리의 원두막을 연상시킨다.이 탑들이 곳곳에 들어서서 정원분위기를 한층 아담하게 감싸주는 역할을 한다. 「여인의 탑」옆으로 난 소로를 따라 올라가면 여러개의 탑들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로스 피코스」와 「엘 카디」라는 군사용 성탑이 나온다.활과 총을 쏘도록 구멍을 촘촘히 뚫어놓았다.그밖에도 유수프 1세왕 때 포로들을 동원해 지었다고 해서 「포로들의 탑」이라는 이름의 탑도 있다.술탄 물라이 하셈이 총애했던 여인 도나 이사벨라 데 솔리스가 이곳에 살았다고 안내인은 설명한다. 「어린이의 탑」이라는 뜻의 「토레 데 라스 앙팡타스」탑도 있다.이 이름은 술탄의 3공주에 얽힌 전설에서 유래됐다고 한다.3공주중 두 공주는 성을 탈출해 사모하던 기독교도 왕자들과 결혼했는데 막내공주는 탈출에 실패해 이곳에서 왕자를 그리다 탈진해 죽었다고 한다.탑과 아치문 하나하나마다 이름 모를 전설들이 간직돼 있을 것만같다. ◎여행 가이드/궁 단체관광 호텔서 예약/맞은편 집시촌도 가볼만/저녁은 플라멩코 리듬 맞춰 스페인 남부여행은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중앙역에서 고속열차 AVE를 타고 내려가 안달루시아 지방의 3총사격인 세빌랴,코르도바,그라나다를 함께 보는 것이 좋다. 2시간 거리인 세빌랴에 내려서 세빌랴성당 등을 보고 다음 동쪽으로 코르도바,그리고 코르도바에서 자동차로 3시간 거리인 그라나다를 보고 그곳에서 항공편으로 마드리드로 돌아오는 게 가장 알차고 경제적인 관광코스이다. 세곳중 어느 한곳에서 1박하면서 저녁에 스페인 남부의 가장 큰 볼거리인 플라멩코 춤을 보도록 하자. 그라나다의 경우 숙박은 알람브라궁 부근에 늘어서 있는 유서 깊은 호텔들을 이용하는 게 좋다. 1백달러 내외면 깨끗한 호텔에 묵을 수 있다. 플라멩코는 우리의 극장식 레스토랑 같은 곳에서 하는데 호텔에서 예약을 하면 순환버스가 공연장까지 왕복을 책임진다. 알람브라관광은 궁전앞 매표소에서 성·궁·정원을 한꺼번에 볼수있는 표를 산 다음 혼자서 돌아보는 수가 있고 영어를 할줄 안다면 영어 가이드가 달린 단체관광객 그룹에 들어가도 좋다. 가이드 예약도 호텔 프런트에서 하면된다. 알람브라궁 맞은편 언덕의 집시촌도 색다른 여행의 맛을 위해 한번 가볼만 한 곳.산허리에 2∼3평 크기의 토굴이 점점이 만들어져 있는데 그 속에서 기거하며 집시들이 관광객들에게 술도 팔고 돈을 받고 시진도 함께 찍어준다. 물론 단신으로 가는 것은 다소 위험하니 단체관광 그룹에 끼여서 가는게 좋다.
  • 집안을 찾아서/노희상 다물민족연구소 이사(굄돌)

    작년 가을 중국 심양에서 기차로 아홉시간을 달려 통화에 도착,4시간 여 버스를 타고 남행하니 소강남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경치좋은 계곡이 이어지고,그 끝자락에 집안벌이 펼쳐져 있었다.압록강 중류의 기름진 땅에 자리잡은 집안은 정말 평화로운 소도시였지만 고구려의 건축·토목·공예·회화 등 찬연한 문화유적이 간직되어 있는 역사의 도시가 날이 갈수록 그 빛을 잃어가고 있어 가슴이 아팠다. 「집안현지」에 의하면 기원전 37년 주몽이 부여로부터 내려와 압록강과 혼강 일대에 고구려를 건국하였고,그후 2대 유리왕때 이곳으로 천도한 뒤 집안은 425년간 고구려의 수도였다.때문에 고구려의 많은 유물 유적들이 천년 세월을 잊은 채 살아 숨쉬고 있다.그 유명한 태왕릉 장군총 무용총 각저총(씨름무덤) 오회분 장천1·2호 고분 등을 비롯한 1만2천여기의 무덤,국내성·환도산성은 물론 높이 6.39m,무게 37t의 세계 최대의 광개토대왕비가 찾는 이들을 엄숙하게 하였다. 사계절이 분명하고 온난한 기후에 적당한 강우량은 풍부한 물산을 제공해주고 있어서 금·은·철 등 광물과 쌀·콩·고량·포도·잣·인삼 등 농산물,그리고 산짐승과 물고기가 풍부한 곳이라 고구려의 수도로서 손색이 없었겠다.산자락에 펼쳐져 있는 삼밭이 꼭 우리나라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삼포를 보는 것 같았다. 집안시내를 감싸돌고 있는 압록강은 강폭이 상류로 갈수록 좁아져 강건너 만포시가 지척에 잡혀 협동농장에서 일하는 북한동포가 가까이 보였다.밤에는 강건너 만포에서 개짓는 소리까지 들린다고 하는 이곳,이제는 남의 땅이 된 집안 압록강변에서 또 하나의 조국 북한땅을 바라보며 비탄에 빠져있는 내 귀에 『너는 그동안 뭘 했느냐!』는 벽력같은 조상의 호령이 들리는 듯하였다. ▷필진이 바뀝니다◁ 8∼9월에는 공유식(아주대 사회학과 교수) 권원태(기상연구소 예보관리실 연구관) 김승경(중소기업은행장) 노희상씨(다물민족연구소 이사)가 맡습니다.6∼7월에 수고해 주신 박병재·이강숙·임영숙·채연석씨께 감사드립니다.
  • 전쟁터 못지않았던 군부대 수해현장

    ◎전우잃은 슬픔 딛고 복구 “비지땀”/진입로·막사 뼈대만 앙상/무너진 철책 다시 세우고 막사재건 분주/“차라리 전투를 벌였다면…” 병사들 하소연 【철원·연천=김태균 기자】 『차라리 적과 전투를 벌였다면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피해를 입지는 않았을 겁니다』 땀과 진흙이 뒤범벅이 된 채 전우의 생명을 앗아간 수해의 잔해를 치우는 군인들이 한결같이 내뱉는 말이다. 이들의 말처럼 이번 수해는 우리 국군에게 쉽사리 씻기 어려운 상처를 안겨줬다. 30일 상오 11시쯤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 육군 백골부대 ○○수색중대 철책선.1㎞앞에 북한군 초소가 보인다.「월북 행복」이란 선전구호도 선명하다. 이전에는 제법 평평하게 닦였을 법한 부대진입로는 온통 자갈밭이다.말 그대로 폭격맞은 것 같다.이번 비로 쓰러진 전봇대는 전선을 치렁치렁 걸친채 논두렁 위로 누워 있다. 부대 초입부터 병사들은 계곡처럼 깊이 팬 철책담을 다시 쌓느라 정신이 없다. 빗물로 깊이 30여m,너비 20여m나 팬 계곡은 입을 벌리고 갈길을 막는다.군 관계자는 백골부대 관할 18.2㎞의 철책 가운데 2.4㎞나 쓰러졌다고 전한다. 1시간에 1백㎜의 비가 쏟아진 27일 상오 6시쯤 철책근무를 서다가 갑자기 철책담장이 무너지면서 생매장될 뻔했다는 김양만병장(23)은 『친하게 지내던 동료 1명이 실종돼 아직 시신도 찾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이어 찾아간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고신4리 육군 열쇠부대 군인관사.열쇠부대는 이번 사고로 병사 22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되는 등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장병들은 모두 가슴에 검은색 리본을 달고 있다. 관사주변은 상류 차탄천이 범람하면서 완전 아수라장이 됐다.당시 오명신 중사(29·수송담당관)가 희생됐다.군 막사 30여동 대부분이 부서졌고 문짝이나 유리창들은 흔적도 찾아보기 어렵다.일부 막사는 석기시대 유적지처럼 격자형 집터만 앙상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남은 것이라고는 물살에 휩쓸려 내려가다 건물에 부딪쳐 멈춘 갈대와 작은 관목·자갈 뿐이다.근처 5백여평에 이른다는 밭은 흔적이 없다.높이 30m가 넘을성 싶은 큰 나무들도 뿌리가 뽑힌 채 어지러이누워있다. 점심시간(낮 12시)을 30여분이나 넘겼으나 수마가 할퀴고간 잔해를 치우는 병사들의 손길은 분주하기만 하다.수해를 입은 인근 민가를 가구마다 10여명씩 나눠 폐허더미 속에서 옷가지며 가구를 꺼내 말리고 겹겹이 쌓인 토사를 치우느라 땀은 이번의 호우만큼 굵은 줄기가 되어 쏟아진다.
  • 대선겨냥 반DJ정서 허물기/국민회의 「대화여행」 왜 갖나

    ◎초선 15명 대동… 현장정치 시험도 국민회의가 취약지역에 대한 순회에 나섰다.29일부터 3박4일간의 일정으로 계속되는 강원 충남 영남 등의 「대화여행(버스투어)」이다.행사에는 당 소속 초선의원들로 구성된 총재 특별보좌단 15명이 중심이 돼 참여한다.주제는 「삶의 현장을 찾아서」로 내세웠다.행사는 버스를 타고 탄광지역·역사 유적지·축산농가·재래시장·공단 등 삶의 현장을 직접 방문,서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생활정치에 반영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이날 강원 태백·정선을 시작으로,충북 보은(30일),경북 구미­가야산 해인사 (31일) 경남 하동­화개장터(8월1일) 등을 돌게된다.현지의 탄광·축산농가·구미공단 중소기업체 등을 방문하게 된다. 임시국회 직후임에도 불구,생활정치에 전념하는 모습을 외부에 보여줌으로써 당이 표방하고 있는 「서민을 위한 정당」임을 재확인 시키겠다는 게 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번 행사는 초선의원들의 「현장정치」를 시험해보겠다는 목적외에도 당의 취약지역에서 「반DJ 벽허물기」를시도해 보려는 의도가 짙게 배어있다.내년 대선을 겨냥한 취약지역 「껴안기」 내지는 「민심떠보기」의 성격이 강하다.「비호남 지지기반 확보」를 위한 첫걸음이라는게 정치권의 공통된 분석이다. 이번 순회 지역의 15대 총선 득표율은 각각 6.7(강원),8.9(충북),1.6(경북),4.2%(경남)에 불과했다.이번 행사의 목적을 가늠케하는 수치다. 김대중 총재는 당초 3박4일간 특보단과 함께 하려던 계획을 변경,오는 31일 경북 구미에서 특보단과 합류한다.전두환 전 대통령의 고향인 합천에서 하룻밤을 묵을 예정이다. 김총재는 특히 1일에는 경상도와 전라도 경계인 화개장터를 방문,시장사람들과 간담회도 갖는다. 김총재 일행은 이어 전남 여천공단도 방문,환경오염 실태를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는 것을 끝으로 일정을 마감한다. 이번 여행에는 문희상 특보단장을 비롯,김민석 김상우 김성곤 김한길 김종배 설훈 신기남 이기문 유선호 정세균 정한용 조성준 천정배 추미애 의원과 대학생 참관인 4명이 참가한다.〈오일만 기자〉
  • 한국에 손짓하는 인더스문명 유적

    ◎파키스탄 문화재당국 발굴작업 참여 희망/학계 “우리학문 세계화위해 시도 해볼만” 인더스문명의 신비와 고대문화의 실체를 제대로 벗기지 못한 파키스탄은 한국과의 학술협력을 희망하고 있다.선사시대를 일찍 마감한 가운데 기원전 3000년께 인더스강유역에서 인류문명의 불을 지핀 땅 파키스탄은 고대 문화유적의 보고.파키스탄의 학계와 문화재관계당국은 문화유적 탐사를 위해 파키스탄을 방문한 한국학자들에게 고고학발굴 직접 참여 등을 골자로 한 구체적인 협력방안을 제시했다.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먼저 만난 파키스탄 원로 고고학자 아마드 하산 다니박사는 한국학계가 유적발굴을 원하면 기꺼히 주선하겠다는 자신의 뜻을 밝혔다.파키탄역사고고학회 회장이자 베나지르 부토총리의 고고학 고문이기도 한 그는 문화유적은 아류의 공동자산으로 발굴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파키스탄 국내 유적의 개방을 강조했다.유네스코(UNESCO)실크로드위원장 자격으로 한국학자들과 함께 실크로트 공동탐사에 나선 적도 있다. 한국이 발굴에 참여할만한 유적은 파키스탄 전역에 널리 분포돼 있다.도시 유적을 포함한 인더스강유역의 문명유적,간다라 불교유적,실크로드 유적 등 손을 대지 않은 유적들이 얼마든지 있다.인더스강유역에서 지금까지 확인한 도시유적은 약 4배여군데로,이 가운데 파키스탄 동남부 신드지방의 모헨근다로와 하라파유적 정도가 발굴되었을 뿐이다.그리고 서북부 펀잡지방 탁실과 간다라유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실스크유적은 그냥 방치된 상태다. 일본은 이미 1950년대에 파키스탄에서 독자적으로 유적을 발굴,상당한 학술적 성과를 거두었다.또 유네스코와 파키스탄 문화재관리국이 주관하는 모헨조다로와 간다라유적 발굴복원사업에도 투자하고 있다.모헨조다로 한 단위유적에만도 50만달러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최근에는 독일에서도 이들 유적발굴을 지원하는 등 세계가 차츰 파키스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파키스탄 문화체육부 산하의 문화재관리국은 수도 이슬라마바드를 벗어나 제1의 도시 카라치에 자리잡았다.박물관 관장업무를 비롯 문화유적 발굴 및 보존업무를 맡고있는 문화재관리국은 페샤와르와 라호르 같은 중요유적 분포지에 분소를 두었다.문화재관리국과 이들 지역분소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한 유적을 관리하면서 국제협력관계 업무도 전담하고 있다.유적발굴 및 보존에 따른 전문인력은 77명을 보유했지만,엄청난 유적에 비해 모자란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문화재관리국 고고부 니아즈 랏술부장은 한국이 유적발굴 프로젝트 하나를 담당한다면 독자적 발굴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그것은 파키스탄 문화재관리국의 방향제시나 간섭이 없는 발굴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그리고 동종동류의 유물이 2점 이상 출토되었을때는 1점을 한국에 영구임대하는 방법도 검토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이러한 협력은 지난 95년 5월 체결한 한·파키스탄문화교류협정에 근거를 들어 실현시킬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파키스탄은 한국이 문화유적 보존과학분야에도 관심을 가져주길 호소했다.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모헨조다로 도시유적발굴현장에서 만난 문화재관리국 엔지니어 모하날 오찬씨는 한국의 문화재보존과학팀의 모헨조다로 파견을 제의하고 나섰다.자연발생의 염분침식으로 유적이 훼손되는 현상을 막기위해 이같은 제의를 하게되었다는 그는 모헨조다로가 세계문화유산임을 누누히 이야기했다. 파키스탄이 그 많은 유적을 발굴,보존하기에는 힘에 겨운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문화국수주의에서 벗어나 인더스문명유적과 간다라 불교미술유적을 보편적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식하려는 노력은 분명히 엿보였다.오늘의 파키스탄 현실을 다시 말하면 유적발굴경비 조달에 따른 재정의 한계성과 유적발굴 개방정책이 기묘하게 맞물려있는 것이다.그래서 한국이 진출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로 판단되었다. 이번 파키스탄 문화유적탐사에 참가한 한양대 배기동 교수(고고학)는 『우리 학계도 이제 시야를 세계로 넓힐 시기가 되었다』고 전제하면서 『세계문명의 발상지에서 고고학발굴은 국책차원이나 학술재단 투자형식을 빌려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특히 발굴성과를 집대성한 영문보고서 등을 통해 인류문명사와 고대문화사를 새로운 각도로 복원한다면,그 자체가 우리 학문의 세게화 내지 국제화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파키스탄 문화유적탐사는 이슬라마바드를 기점으로 탁실라(간다라 유적지)→시르캅(고대도시유적)→자울리만(고대불교대학유적)→폐샤와르(실크로드시대의 도시)→닥테바히(고대불교 수도원)→라호르(무글제국의 수도)→모헨조다로→카라치로 이어졌다.배기동 교수 이외에 고려대 권영필 교수(불교미술사),한양대 이희수 교수(인류학),가천박물관 학예연구실 윤열수 실장(불교미술)등의 학자와 서울신문 취재진이 동행했다.〈카라치(파키스탄)=황규호 특파원〉
  • 익산 영등동 택지서 청동기 주거지 발견

    전북 익산시 영등동 택지개발지구안에서 청동기 시대의 대형 주거지와 삼국시대의 주구묘가 각각 1기씩 발견됐다.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는 23일 영등동 유적지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국내 최대규모의 집자리와 수장급의 무덤으로 보이는 주구묘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번에 발견된 집자리는 길이 17.8m,폭 7.8m의 장방형으로 면적이 42평이며 안쪽에 2개의 화덕자리가 있다.집자리에서는 무문토기와 석기류가 출토됐다.
  • 발해 도읍지 유적 훼손 심각/중 흑룡강성 「상경 용천부」 터

    ◎성벽 허물고 경작지로/곳곳에 공장·도로 건설 고구려의 유장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거느리고 세운 발해국(서기 698∼926년)의 오경중 한곳인 상경 용천부의 유적이 크게 훼손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광명일보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흑용강성 령안시 발해진에 있는 상경 용천부 유적은 「국제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역사 문화유산」으로서 중국정부가 61년 최초로 지정한 「전국중점문물(문화재)보호단위」이다. 당나라 장안성을 본떠 만들었다는 이 용천부는 또 외성과 내성의 둘레가 각각 16㎞와 4㎞,자금성 둘레가 2.6㎞인 중세기 중국및 동북아지구 최대의 성 가운데 하나이자 현재까지 가장 완전하게 보존돼 있는 당대 도성터로 손꼽히고 있다. 이러한 용천부 유적의 보호상황이 근래 나날이 악화돼 성벽의 토석을 훔쳐가거나 유적 경내에 밭을 일구는가 하면 집을 짓는데 쓸 흙을 파가는 등 문화재 훼손사건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물보호법」을 비롯,중국의 관련법규는 중점문물보호단위나 문물보호구역내에서건축공사를 하려면 먼저 관계당국의 동의를 받아 필요한 문화유물 탐사작업을 실시하도록 명문화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경제의 발전에 따라 문화유물에 대한 의식이 희박해지고 이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제대로 취해지지 않아 오랜 세월을 견뎌온 용천부 유적도 자연적인 파손과 함께 인위적인 훼손까지 계속되고 있다. 현지의 한 기관은 용천부 유적의 보호범위를 외성으로부터 12m 이내로 규정하고 있는 「흑룡강성문물보호조례」에도 아랑곳없이 불과 10m 떨어진 곳에다 지난해 2만㎡ 크기의 공장을 지었다. 이밖에 길이 1백50m,너비 20m의 4줄로 된 초석만 남아있는 오봉루 장낭 유적은 이미 사람과 차가 다니는 통로가 됐고 5개의 전각 유적중 첫번째 전각터 앞에 있는 수만㎡의 공지는 온갖 화초와 수목 대신 돌이 깔린 길로 변했다. 또 적지 않은 사원터와 건물터는 농경지로 침식당했고 상당수의 유물은 창고 안에서 세월의 먼지만 뒤집어 쓰고 있다고 광명일보는 지적했다.〈북경 연합〉
  • 한국관광공 김태연 사장(공기업 최고경영자에 듣는다)

    ◎“「복합 관광상품」 개발 적자해소 최선”/단오·춘향제 등 민속축제 세계적 이벤트 육성/ASEM·월드컵 호기 활용 한국방문 붐 조성/관광진흥기금 2천억 추가 마련… 숙박·놀이시설 지원 경상수지 적자문제는 올해 경제분야의 최대 현안이다.올들어 지난 5월까지 경상수지 적자는 81억1천만달러로 지난해 전체 적자규모 89억5천만달러에 육박했다.특히 순수한 관광(여행)수지 적자는 5억3천만달러로 지난해의 3억1천만달러를 넘어섰다. 소득수준 향상과 함께 「굴뚝없는 산업」으로 불리는 관광산업의 중요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보다 많은 관광객을 자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각국의 경쟁이 치열하다.그러나 우리나라의 관광산업은 취약하다.총 외화수입(94년)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14위를 달린다.그러나 관광수입은 23위,전체 외화수입중 관광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32위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보고서는 우리나라 관광산업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호텔숙박료 인하 추진 이런 상태여서 관광진흥의 최일선에 선 김태연 한국관광공사 사장의 요즘 발걸음은 무척 바쁘다.지난 3∼9일에는 일본인들의 한국관광을 늘리기 위해 관광 및 항공업계대표와 함께 일본을 방문했다.그를 만나 관광산업 육성과 외국인 관광객 유치대책 등에 관해 얘기를 들어봤다. ­일본 방문 성과는 어떻습니까. ▲괜찮았습니다.국내호텔 숙박료를 낮추려는 우리의 노력에 대해 일본 관광업계 대표들도 만족하고 있습니다.한국을 찾는 외국인중 일본인은 45%나 됩니다.올들어 지난 5월까지 외국인 관광객은 1백47만명으로 지난해 같은기간보다 0.4% 줄었습니다.일본 관광객이 6.5% 감소한게 주요인이지요. ­외국인 관광객이 줄고 있는데 요인은 무엇입니까. ▲크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쪽으로 나눠볼 수 있지요.하드웨어 쪽으로는 고물가에다 숙박시설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일본에서 우리나라를 찾는 것보다는 홍콩이나 대만·태국·싱가포르를 찾는게 훨씬 싸지요.교통체증에다 내세울만한 토속물품이 없는 것도 외국인들이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요인입니다. ­소프트웨어 쪽의 약점은 무엇으로 파악되고 있습니까. ▲국민들이친절해야 하고 마음이 열려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싸우고 난 사람처럼 퉁명스럽고 불친절한 것을 좋게 볼 외국인들은 없지요.모든 국민들이 친절해야 하지만 특히 승무원이나 공항에 있는 법무부·세관의 직원,택시 운전사,상점 주인,호텔 직원,관광 안내원 등 외국인들과 직접 부딪히는 국민들의 친절이 더욱 중요하지요. ­객실이 모자란다고 했습니다만.규모가 큰 호텔건축은 빠른 기간내에 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특급호텔 수준의 고급호텔을 신축하려면 시간이 걸리지요.중저급 호텔이나 장급여관을 짓는다든가 보수한다든가 해서 고급호텔이 소화할수 없거나 고급호텔에 갈 형편이 되지 않는 외국인들을 흡수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관광자원 개발에 소홀하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건전한 해외관광 절실 ▲그렇습니다.예를 들면 강릉의 단오제,남원의 춘향제 등 지방의 민속축제를 발전시켜 볼거리를 만들 필요가 있지만 그렇지 못한게 현실 아닙니까.지방의 민속축제를 세계적인 이벤트로 육성해야지요.요즘의 관광패턴(유형)은 단지 유적만보는 단순한 정적 관광이 아니고 관광객이 직접 참여해서 즐기는 동적인 패턴으로 바뀌고 있어요.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의 관광산업은 이러한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골프나 낚시,등산·스키·요트·마라톤 관광 등도 적극 개발할 필요가 있지요.다양한 취미와 스포츠,식도락 등에 맞는 관광상품 개발이 중요합니다. ­우리나라 자체가 전반적으로 볼거리가 부족한 게 외국인 관광객이 몰려들지 않는 이유라는 지적도 있는데요. ▲볼거리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외국인 관광객이 몰려들지 않는 근본요인은 아닙니다.문화유산을 찾는다면 이집트나 중국 등에 관광객이 집중돼야 하고,자연경관을 찾는다면 미국이 유리하겠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닙니다.모든 관광객들이 문화유적이나 자연경관만을 보고 찾는 것은 아니지요.삶의 모습 자체가 관광자원이 될수 있어요.나라마다 모두 관광자원을 갖고 있는 셈이지요. 가령 남대문 시장에서 상인들이 새벽 3∼4시에 영업하는 모습도 관광상품이 될수 있어요.한국인이 사는 생활모습 자체가 관광상품이며 관광자원입니다.문제는 어떻게 개발하고 활용하느냐 입니다. ­볼거리가 없다는 점에 그리 주눅들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만리장성이나 나이아가라 폭포가 없다고 주눅들 필요는 없어요.규모는 크지 않지만 경주와 부여에서 신라와 백제의 유적을 볼수 있고 외국에 비해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제주도와 설악산이 있지 않습니까. ­놀이시설 확충 및 보완도 중요하지요. ▲그렇습니다.미국은 2백년 밖에 되지 않은 나라니 볼만한 유적이 어디 있겠습니까.미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가장 많은 것은 나이아가라 폭포나 그랜드캐니언 등의 자연경관도 한 요인이겠지만 디즈니월드나 디즈니랜드 등 놀이시설이 좋은 것도 한몫하고 있어요.우리도 규모는 작더라도 에버랜드와 같은 것을 많이 만들어야 돼요. ­관광목적의 해외 여행자를 대상으로 내년부터 관광진흥개발기금으로 1인당 2만∼3만원을 부과하려는 것에 대해 「출국세」라며 좋지 않게 보는 쪽도 많은듯 합니다만. ▲(그는 출국세라는 말에 펄쩍 뛰었다)지난해 말 현재 관광진흥개발기금 조성액은 1천6백84억원에 불과합니다.정부에서는 5년에 걸쳐 약 2천억원의 관광진흥개발기금을 추가로 조성해 숙박시설이나 놀이공원을 새로 짓거나 개·보수하는데 지원할 계획입니다. ­여행수지 개선효과가 있을까요. ▲국내에 즐길게 없어서 외국으로 관광을 떠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따라서 국내의 관광시설이나 관광자원을 보다 더 개발한다면 굳이 외국으로 갈 필요를 느끼지 않는 국민도 있지 않겠습니까. ­해외여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은 어떻게 보십니까. ▲지난 89년 여행자유화가 됐기 때문에 외국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앞으로 해외관광객은 더 늘어날 것입니다.그러나 건전한 여행과 소비를 위한 교육은 필요합니다.외국여행은 물건을 쇼핑하는 게 아니라 지식이나 문화를 쇼핑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어요. ○DMZ 적극 개발 해볼만 ­관광산업의 앞날을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괜찮다고 봅니다.물론 문제점 보완이 따라야 하지만,2000년의 ASEM(아시아·유럽정상회의)과 2002년의 월드컵 개최는 한국방문 붐을 조성할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해외홍보도 강화하고 국제회의 개최도 더욱 늘리는 등의 적극적인 대응을 하면 관광선진국으로 갈 수도 있어요.비무장지대를 중심으로 한 관광상품도 생각해볼 수 있지요.지난 50년간 개발하지 않아 자연의 보고인 이 지역을 생태관광지로 개발할 필요가 있어요.〈인터뷰=곽태헌 기자〉
  • 황해권 문화교류 실증 확인

    ◎한·중·일 학자 새달 20일 동국대서 학술회의/고대항로 탐사 뗏목 오늘 중국 영파서 출발/벼농사­고인돌 전파과정·조선문화 등 추적 중국과 한반도를 잇는 황해 뱃길에 대한 1천20㎞ 대장도의 뗏목탐사와 황해권에 대한 현지 학술조사를 바탕으로 고대 한·중 문화교류를 실증적으로 확인하는 이색적인 국제학술회의가 다음달 한국에서 열린다. 동국대와 한국탐험협회,중국 항주대가 오는 8월20일 동국대 문화관 예술극장에서 한·중·일 3개국 학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하는 「황해문화의 어제와 오늘」이란 주제의 국제학술회의. 이 회의에 앞서 한국의 황해문화 대탐사팀(대장 윤명철)이 지난 6월5일 중국 절강성 영파에서 뗏목 진수식을 가진데 이어 22일 중국 영파를 출발,8월5일까지 상해앞 해상인 승사열도∼흑산도∼고군산도∼인천항에 이르는 1천20㎞ 고대항로를 추적하는 뗏목 대장도에 들어간다.윤명철 대장과 한국탐험협회의 안동주 사무국장·홍선표 탐험부장,김성식씨(해동화재근무)등 4명으로 구성된 탐사팀은 이날 길이7m·무게4백50㎏ 규모의 대나무 뗏목에 승선,고대 한반도와 일본으로 향하던 배들의 출항지인 영파를 출발해 인천까지의 항해 흔적을 1시간 단위로 추적,한·중간 고대항로를 실증 확인하게 된다.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황해 해역의 뗏목탐사와 국내학자들의 중국 현지답사를 토대로 ▲양자강 유역과 한국문화의 관련성 ▲황해 해양력이 양국 문화에 끼친 영향 ▲21세기에 대비한 황해권의 새로운 경제블록 가능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한다.참여 학자는 한양대 김병모 교수(고고학과),중국 항주대의 김건인(한국연구소 부소장)·모소석 교수(절강성 고고학회 회장),동국대 조영록 교수(사학과),안승모 국립전주박물관 연구실장,일본 나가사키대학 시바타 게이시 명예교수,윤명철 한국탐험협회 사무총장(동국대 사학과 강사)등. 여기에서는 특히 중국내 가장 활발한 한국학 연구활동을 벌이는 항주대 한국연구소의 김건인 부소장의 사회로 모소석 교수가 「벼농사 및 고인돌문화의 전파과정과 황해」,시바타 게이시 교수가 「황해에서의 조선문화」를 발표할 예정이어서 황해권 한·중교류에 대한 중국·일본 학자들의 연구결과에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를 위해 동국대 조영록·정태섭 교수(역사교육과)와 주성지씨(동국대 사학과 박사과정)로 구성된 국내 학술조사팀은 중국 절강성지역 벼농사문화를 비롯해 이 지역의 고인돌 유적지,의천 대각국사가 창건한 항주 고려사,서긍의 고려도경에 기술된 항로에 대해 집중 조사할 예정이다. 동국대 조영록 교수는 『과거 문화가 국제성을 띠고 해양적이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할 필요성에서 이번 황해관련 학술행사가 큰 의미를 갖고있다』면서 『황해의 전략·교역·문화적 가치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을 통해 향후 전개될 문화교류의 방향과 정치·외교적 모델 설정에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김성호 기자〉
  • 미 「선 밸리」/헤밍웨이 추모 열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 집필한 미 최고 휴양지/20일 국제대회 개막 앞두고 손님맞이 분주 유난히도 햇빛이 따가워 「선 벨리」로 이름지어진 미국 서북부 아이다호주의 한 작은 마을이 올여름 온통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열기로 가득차 있다. 캐나다에서 내리뻗은 험준한 로키산맥의 3천m급 소투스산지로 둘러싸인 미국내 최고의 스키휴양지로 여름에는 낚시·승마·골프 등 4철휴양지로 유명한 선 벨리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 헤밍웨이의 많은 작품이 이곳에서 쓰여졌으며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곳으로 거리마다 골짜기마다 아직도 헤밍웨이의 체취가 살아 숨쉬고 있어 더욱 유명하다. 이 때문에 오는 20일부터 닷새동안 열리는 ’96헤밍웨이국제대회를 앞둔 이 계곡마을은 마치 살아돌아오는 헤밍웨이를 맞는듯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차 있다.국제헤밍웨이학회가 주관하여 2년마다 개최하는 이 대회는 전세계의 헤밍웨이 학자들과 추모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동안 그에 대한 연구업적들을 발표하고 그의 작품세계와 생애를 회고하는 모임으로 올해는 26개국에서 6백여명이 모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이번 대회의 주제는 「헤밍웨이와 자연세계」로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다룬 그의 많은 작품이 발표대상으로 돼 있어 환경및 생태계 전문가들도 상당수 참가 예정으로 있어 역대 어느 대회보다도 성대한 모임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편 이 마을이 속한 블레인 카운티당국은 국제대회를 전후한 18일부터 24일까지를 헤밍웨이주간으로 정하고 ▲97회 출생기념파티(21일) ▲헤밍웨이영화 및 연극제 ▲헤밍웨이 전시회 ▲헤밍웨이 유적답사 ▲헤밍웨이서적 사인회 등 각종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헤밍웨이가 선 벨리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36년 가을,휴양 겸 집필을 위해 이곳 최대의 호텔인 선 벨리 롯지 206호실에 투숙하면서부터다.「무기여 잘 있거라」「해는 또다시 떠오른다」 등의 작품으로 이미 유명작가가 된 그는 이 호텔에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탈고했다.36년에 문을 연 이 호텔은 아직도 그대로 영업을 하고 있으며 헤밍웨이가 묵었던 206호실도 여전히 일반투숙객이 이용하고 있다. 그는 그후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이 마을을 찾아와 사냥과 낚시를 즐기며 작품을 썼고 나중에는 아예 집을 장만해 살기까지 했다.그러나 아프리카에서의 두차례 비행기사고로 인한 부상과 정신분열증으로 고생하던 그는 61년 7월2일,선 벨리 자신의 집에서 엽총자살로 62세의 생을 마감했다. 현재 선 벨리에는 그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탑인 헤밍웨이 메모리얼,그가 살던 집인 헤밍웨이하우스,그의 이름을 딴 헤밍웨이초등학교,그가 마지막 부인 메리와 함께 묻힌 케첨공동묘지 등 많은 자취들이 남아 있다.〈선 벨리(미 아이다호)=나윤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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