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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유기」의 무대 연운항(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9)

    ◎“손오공의 출생지” 화과산 곳곳에 전설이…/삼원궁경내 현장법사의 기념관 우뚝/칠십이동 괴석원에 「저팔계」도 의젓이/지장암·숙성촌에 아직도 신라고승·무역상 체취가… 중국 4대 기서의 하나로 「서유기」의 발상지요,그 주연인 당승 삼장법사와 돌원숭이 손오공의 출생지인가하면 청대의 「홍루몽」과 「유림외사」의 혼성 아류소설로 보여지는 또 하나의 명작 「경화연(경화연)」의 산실은 바로 강소성 북단 항구인 연운항이다. 그곳은 명작의 무대요 산실일 뿐 아니라 우리와의 관계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위도상 부산과 목포에서 줄곧 서쪽으로 황해를 건너면 닿는 곳.일찍이 당나라때는 신라 사람들이 무역하던 해상의 거점이요,신라의 고승들이 도를 닦느라 부락을 이룬 곳이다. 중국문학사상 가장 성공한 신마소설로서 오승은(1504∼1582)의 「서유기」는 시작부터 황당무계했다.화과산 산상에 있던 한덩이 신선 바위.그 바위가 열리면서 알이 나오더니 석란은 바람속에서 돌원숭이로 변하고 돌원숭이는 수렴동 동굴속에서 동천복지를 발견,거기다 뭇 원숭이를 거느리고 깃들이다가 그들로부터 「미후왕」으로 추대되고,그 뒤 천궁과 지부에서 난동을 피우다가 삼장법사를 도와 팔십일난을 극복,끝내 서천인 인도로 가서 불경을 얻어오기까지 위기를 배제하고 요마들을 소탕하는 용감하고 슬기있는 손오공의 영웅신화인 것이다. 그 돌원숭이 영웅인 손오공과 당승 삼장법사의 출생지인 화과산이 바로 오늘날 연운항시 동쪽 15㎞지점의 운대산이라서 거짓말같은 사실에 누구나 얼얼할 수 밖에 없다. 「서유기」그 첫회를 펼치면 12만9천600년을 1원으로 하는 천지의 역수로부터 망망묘묘한 혼돈의 세계를 말하면서 영기를 통한 원숭이가 태어난 화과산을 묘사했다. 「동승신주,해외일국토,명왈오래국.국근대해,해중유일명산,환위화과산.차내십주지조맥,삼도지래용,자개청탁이입,홍판후이성,진개호산!」 (동승신주의 바다 저쪽에 또 하나의 국토가 있나니 이름하여 「오래국」.오래국은 넓은 바다를 끼고 바다 한복판에 산이 솟았나니 이름하여 「화과산」.이 산은 십주의 할아버지요,3도의 기원으로 천지가개벽되어 청탁이 갈라진 뒤의 정말 명산이었다)고. 물론 중국에는 여러곳에 「화과산」이 있다.1982년 10월,연운항시에서 전 중국의 「서유기」전공학자들이 모여 제1회 「서유기」학술세미나를 개최하여 현지 답사와 많은 문물의 고증을 통해 연운항시외에 있는 화과산이야말로 「서유기」의 발상지임을 공인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서유기」의 저자인 오승은의 고향­회안에서 불과 130㎞요,외가가 연운항인데다 오승은이 두번이나 화과산을 올랐다는 방증 외로도 「서유기」에 묘사된 화과산이 사실과 근접했고,「서유기」의 스토리가 연운항 일대에서 수백년 전래했던 전설과도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필자는 서둘러 화과산으로 차를 몰았다.불과 20분에 작은 어촌을 방불케하는 화과산향에 이르렀다.거기서 동쪽으로 운대산의 주봉인 화과산(해발 625m)까지는 갈수록 비탈이었다.그 산구 왼편에는 대촌댐,댐옆으로 그 유명한 아육왕탑.그것은 40.6m의 높이에 9층8각탑,북송 천성1년(1023)무렵에 고대 인도의 아육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뒤 열네차례의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았다는 탑.강소 북부지역에서 가장 오래고 가장 높은 건축물이다. 산구에는 높이 12m,가로 28m의 아치형 산문,거기에는 원숭이를 비롯,사자·호랑이·돼지·곰등 백쌍의 동물이 형형색색의 조각으로 섰으니 과연 손오공의 고향임을 실감케 했다. 산문을 지나 선인교를 넘고 다시 남천문.한참을 오르자 사로탑,그 옆에 해발 580m의 청풍정에 운대산 그 복부를 굽어보는 삼원궁이 있다.삼원궁은 화과산의 가슴이다.당승 3형제를 기린다는 그 절에는 현장법사의 기념관이 있고 「서유기」의 유적이 모두 삼원궁을 중심으로 분포되었다. 거기서 동북으로 오르면 높은 벼랑에 동굴,그 동굴밖에 드리운 물줄기,이름하여 「수렴동」이라 일컫지만 물은 마른채 「고산유수」라는 각자가 선명했고,그 각자가 쓰여진 명·가정23년(1544)은 「서유기」의 저작시기보다 몇십년 빨랐다.수렴동에서 북으로 오르면 옥황각,내려가면 후원,그 아래로 칠십이동에 괴석원,물론 팔계석도 그 곁에 있다.그 괴석의 숲속을 거닐다 보면 「서유기」의 교과서를 읽는 양 흥미진진했다.어떤 것은 「서유기」의 등장인물에 유사했고 어떤 것은 억지 춘향인데,400여년전 여기 어디쯤 「서유기」를 구상하며 거닐었을 오승은의 발자국이 찍혔으리라. 그렇게 오르내리다가 문득 만난 것이 문자 그대로 바다를 바라본다는 정각­조해정에 이르렀을때,멀리 굽어보아도 바다는 보이지 않고 괴석들만 어수선했다.옳지! 이 화과산이 300년전엔 강소 유일의 해도에 솟은 산이었지.1668년의 대지진때 운대산 해안선이 북으로 14㎞나 이륙된데다 토사에 메운채 1700년대부터 벽해가 상전 되었다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다. 그때는 이 산이 출렁이는 황해속에 우뚝 솟았고 사슴과 여우가 뛰놀면서 기화요초와 송백·지란을 품에 안았겠지.뿐만 아니라 이 산의 서쪽 골짜기 지장암과 숙성촌에는 신라의 중들과 신라의 선원들이 도를 닦고 부락을 형성했던 곳이다.하긴 조선 성종때 우리나라 최세진이 엮은 중국어교재인 「박통사언해」속에는 벌써 「서유기」를 소개한 바 있으니 해주(연운항의 옛 이름)는 여러모로 한·중 교류의 거점이었다. 화과산을서둘러 하산한 뒤,필자는 다시 남쪽으로 20㎞지점인 판포까지 단숨에 달렸다.「경화연」의 산실을 찾아서. 당나라 여황이었던 무칙천의 황제 찬탈과 붕괴과정을 겉으로 과거에 낙방한 당오란 사람이 해외 40여개국을 나들이한 견문과 당규신 등 백명의 재녀들이 여권을 신장하는 고사를 안으로 쓴 재자소설로 윤리성·애정성·사회성·무협성·철학성·풍자성을 두루 갖추고 있다. 이 소설의 저자 이여진(1763∼1830)이 스무살무렵 그의 고향인 북경을 떠나 이곳 포구에 와서 그의 불우했던 벼슬살이의 체험을 살려 20년에 걸쳐 완성했는데 1818년에 출판,중국은 물론 세계의 관심을 모았다.그 산실이 여운항시 판포진 동대가에 재현되었는데 지금은 비옥한 농촌이지만 당시는 소금을 만들던 염장.역시 상전벽해를 느끼게 했다. 그런데 「경화연」속의 「군자국」이 예의지국으로 그려졌는데 그 군자국의 모델이 신라라는 설이 있어 우리 입맛을 다시게 했다.
  • 외국문화 알고 떠나면 ‘재미 두배’

    ◎홍콩인에 시계선물·브라질서 OK 사인은 금기 □해외여행 알짜정보 ·불의의 사고대비 여행보험 가입 ·환전은 공항내 환전소 이용이 유리 ·여권,카드 분실 현지 경찰서에 신고 ·교통사고시 통역구해 책임 명확히 한달뒤면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돼 많은 사람들이 해외나들이를 한다.해외여행을 하려면 여러가지 준비할 것이 많다.해외여행시 주의해야 할 사항을 소개한다. ▷출국전 준비◁ 여행중 발생하기 쉬운 상해나 질병 및 도난 등 불의의 사고에 대비,여행보험에 가입해 두면 안전하다.방문국의 기후,풍토나 생활관습 등에 대한 사전지식을 갖추도록 한다.의복,신발,가방 등 여행용품은 가급적 국내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항공권이나 현지 호텔 등의 예약상태는 여행을 떠나기 전 반드시 확인하고 여권·항공권·여행자수표·신용카드 등의 주요 내용은 따로 수첩에 적어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외국에서는 의사의 처방없이 약을 사기 어렵다.따라서 자신에게 맞는 상비약을 가져가는 것이 좋다.전염병 감염지역으로 여행할때는 반드시 예방접종을 받아야 하며 예방주사는 가급적 2주전에 맞는 것이 좋다.항공권과 여권,신용카드의 영문성명은 반드시 일치되도록 하고 예약할 때도 영문성명을 정확히 표기해야 한다. ▷공항에서◁ 이름,주소,전화번호를 정확히 기재한뒤 수화물표를 부착하고 잠금장치를 확인한다.이전 여행시 사용한 수하물표는 떼어내 착오가 없도록 해야 한다.공항에는 비행시간 2시간전 도착,준비하는 것이 좋다.현지에 도착하면 다음 행선지 항공편 예약상태를 재확인(72시간전),다음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한다.환전은 공항내 환전소에서 하는 것이 환율면에서 유리하고 시간도 절약된다.환전은 필요한 액수만큼만 하고 반드시 환전증명서를 받아두는 것이 좋다. ▷외출시◁ 외출할 때에는 호텔위치나 소재지가 기재된 성냥 또는 팜프렛 등을 갖고 나가 길을 잃었을 때에 대비한다.호텔의 객실문은 대부분 자동으로 잠겨짐으로 잠시라도 문을 나설 때에는 방열쇠를 갖고 나와야 한다.태국,필리핀 등 동남아 일부 지역에서는 택시를 타기 전에 미리 요금을 합의해야요금시비가 없다.빈 택시가 여러대 있을때에는 맨 앞의 택시를 타고 가능하면 운전기사 옆 좌석에 앉는 것을 삼가자. ▷문화·관습의 차이◁ 사람들이 많이 보는 곳에서 어린이를 심하게 야단치거나 때리면 어린이 학대죄로 고발당할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버스 등 대중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에는 밀고 타거나 새치기 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지나치게 자랑하거나 너무 정치적 또는 개인적 이야기를 해 외국인의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도 좋치 않다. 태국,말레이지아,인도네시아는 머리를 신성시한다.남의 머리를 만지지 않도록 하고 어린이가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지 않도록 하자.태국은 불교국으로 불상,승려를 신성시하며 왕가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다.따라서 이들을 대할 때에는 예의를 갖추어야 하며 사찰을 출입할 때 반바지차림은 금물이다.여성관광객이 승려와 악수하거나 물건을 건네주는 것도 금지돼 있다. 회교국가인 중동지역 및 인도네시아,말레이지아에서는 남에게 물건을 건내거나 받을 때에는 오른손을 사용해야하고 돼지고기와 술을 찾는 일을 삼가야 한다.일본에서는 짝으로 된 것이 행운을 가져온다고 믿으므로 선물은 짝으로 된 세트를 주는 것이 좋다.홍콩에서 시계는 죽음을 상징하므로 시계선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중국문화에서 청색과 백색은 장례식 색깔이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중국인들은 또 자기가 사용한 젖가락으로 음식을 집어주는 버릇이 있다. 프랑스에서 손가락으로 OK사인은 「가치없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브라질에서는 몹시 상스럽고 외설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불가리아에서 앞뒤로 고개를 끄덕이면 No의 뜻이고 고개를 옆으로 흔들면 Yes의 뜻이다.멕시코 인디언들은 사진을 찍으면 혼을 빼간다고 믿기 때문에 촬영을 할 때에는 신중히 해야 하며 유적지안에서 삼각대를 이용할 때는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해외여행 안전수칙◁ 여권을 분실했을때에는 먼저 현지 경찰서에 서면으로 신고하고 신고확인증을 받은뒤 이를 토대로 현지 주재 한국공관에 가서 분실사실을 알려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따라서 여행지의 한국 대사관 전화번호를 미리 알아두고 여권사본 및 여분의 사진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여행자수표,신용카드를 잃어버렸을때에도 현지 경찰에 서면으로 신고하고 신고확인서를 첨부,현지 발행회사 지점으로 가서 소정의 절차를 밟아 재발행신청을 해야 한다.분실에 대비,수표와 신용카드번호,발급일자 등은 별도로 메모해 두는 것이 좋다.항공권을 분실했을 때에는 발행 항공사에 분실신고를 한다.항공권 유효기간의 범위에 따라 일정기간동안 사용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구제받을수 있다.교통사고를 당했을때에는 일단 통역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해 사고의 책임여부를 따져야 한다.지나치게 위축된 행동이나 「I am sorry」 등을 연발하는 것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으므로 분명하게 행동해야 한다. 동남아 지역에서는 마약단속 법규가 매우 엄격하다.공항 또는 시내에서 수고비를 준다며 짐을 대신 운반해 달라는 부탁은 마약운반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응하지 않는 것이 좋다. 러시아에서는 입국시 신고한 액수보다 많은 외화를 갖고 출국할 경우 주재국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외화를 압수당하게 된다.따라서 입국시 세관신고서상에 소지한 외화총액을 반드시 기재,신고한뒤 이 신고서를 출국할 때까지 소지해야 한다. ◎유럽의 여행안내소/지도 무료배포… 호텔예약도 가능 유럽에는 관광에 대한 뒷받침이 잘돼 있다. 유럽 어느 도시를 가든 역이나 터미널에 도착하면 안내소를 쉽게 찾을수 있다.유럽지역의 안내소들은 모두 영문자 「i」로 표시해놨기 때문에 찾기가 쉽고 직원이 많은 곳은 5명이 근무하는 등 충실하다. 관광의 시작은 지도를 얻는 것이다.안내소에서는 대부분 지도를 무료로 배포해 주지만 간혹 돈을 받는 곳도 있다.이용자가 많을 경우에는 직원이 나눠준 번호표를 갖고 1∼2시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안내소 직원들은 현지 사정을 소상히 알고 있다.따라서 이들에게 문의하면 값싼 숙소,숙소 주변의 유명관광지 및 공연·축제 등 관광과 관련된 각종 정보를 자세히 들을수 있다.나아가 이들 안내소에서는 호텔은 물론 일부 교통편도 예약할 수 있다.런던이나 파리 안내소에서 스톡홀름과 헬싱키를 오가는 실자라인을 비롯 스위스의 등산열차 등도 예약이 가능할 정도로 정비가 잘돼 있다.주의할 것은 기차역에 있는 안내소에서는 열차편에 대한 안내만 한다는 점이다. ◎해외정부 얻으려면/관광공사 국내외 최신자료 완비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관광을 할 때에는 현지정보에 밝은 것이 여행에 큰 도움이 된다. 국내·해외 관광에 대한 최신 정보를 얻으려면 한국관광공사 관광자료실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공사 관광자료실은 해외 20개국 지사에서 보내온 최신의 관광정보와 날로 규모가 커지고 있는 관광산업 전반에 걸친 각종 자료들을 갖추고 있다.자료는 국내·해외 관광청에서 발간한 정기간행물,단행본,신문 등이 주류를 이룬다.관광관련 업계·학계에서 참고할 수 있는 관광산업개발·마케팅·교육에 관한 자료 등을 합해 1만4천여권 정도가 있다. 각종 자료들은 컴퓨터로도 저장돼 있어 자료검색이 편리하다.「사진자료실」과 「여행자료실」도 이용할 수 있다.자료실에는 도서담당 직원 2명이 상근하면서 자료이용을 돕고 있다. 자료실은 평일에는 상오 9시∼하오 5시30분까지,토요일은 낮 12시까지 개방한다.7299­318. ◎여행불만 피해 구제/안내인 무성의도 배상청구 가능 해외여행이 완전 자유화된지 10년이 가까와지고 있지만 해외여행과 관련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한국소비자보호원에는 지난해 198건의 해외여행 관련 피해구제 요청건이 접수됐다.이는 95년과 비교할 때 45%이상 늘어난 것이다. 여행조건과 일정 등은 현지사정에 따라 쌍방이 합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여행기간중 변경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따라서 여행사에서 일방적으로 변경할 때에는 일종의 계약위반이므로 소비자는 보상을 받을수 있다.또 자격을 갖추지 못한 안내인이 동행했다면 관련법상의 위법행위에 해당하므로 고발조치가 가능하다.자격을 갖춘 안내인이라도 자질이나 성의부족으로 여행중 불편을 겪었다면 신의와 성실을 다하여 여행계약을 이행하지 못한 것이므로 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따라서 만약의 경우에 대비,소비자들은 여행이 끝날 때까지 계약서,항공권,광고 팸플릿 등을 보관하고 여행중 불만족스러운 일이 생기면 즉시 동행한 여행객들과 함께 이의를 제기해 계약대로 이행되도록 요구해야 한다.해결이 안된 경우에는 한국관광공사나 소비자 고발창구 등을 이용한다.
  • 탐나는 하늘 향기로운 바람/왠지 설레는 제주여행

    ◎추사유적지·휴양목장·유람선 관광·골프/최근 상품 다양해지고 값도 싸지는 추세 해외여행이 부담스러운 사람에게는 제주도 여행을 권할만하다.그동안 경비절감 노력으로 비용이 과거에 비해 파격적으로 싸진데다 이국적인 풍취와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맛볼수 있기 때문이다.게다가 1박2일의 천편일률적인 상품에서 기간을 늘린 상품도 나와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우성항공여행사는 2박3일의 신상품을 출시,제주도 관광을 여유있게 즐길수 있게 한다.하오에 서울을 출발,제주도에 도착한뒤 중문관광단지로 이동,제주도의 4계절을 담은 영화를 관람한뒤 숙소에서 묵는다.둘째날에는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시 지냈던 적거지,산방굴사,용머리 해안,여미지 식물원,관광농원,천지연폭포를 구경한뒤 마지막날에는 명도암 휴양목장,성읍민속마을,성산일출봉 등 명소를 둘러본뒤 유람선관광 등을 즐기고 저녁 8시30분 비행기에 오른다.비용은 숙소 등급에 따라 27만4천원(하이얏트)∼21만4천원(하나호텔)까지 4종류가 있다.여미지식물원,서귀포 유람선,휴양목장에서의 승마는 선택관광으로 별도의 돈을 내야 한다. 이 회사는 또 골프투어도 판매하고 있다. 1박2일 골프투어는 토요일 출발하는 주말행은 48만원,화·목요일 출발하는 주중행은 35만원이다.2박3일 골프투어는 주중행(화·목)은 45만원,주말행(금)은 58만원이다.중문골프장에서 골프를 두차례 즐길수 있으며 숙박은 하이얏트 호텔.연락처 732­0808∼9,736­0808. 이와 함께 오는 25일부터 27일까지 3일간 제주 신라호텔 개관 7주년 기념 홀·인원 골프대회도 준비하고 있다.일반 아마추어 남녀골퍼나 부부팀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왕복항공료,숙박료,골프 2회,환영만찬 등을 포함 1박2일은 39만원,2박3일은 48만원이며 오는 16일까지 모집한다.연락처 230­3685.
  • 이집트 피라미드:하(세계 문화유산 순례:31)

    ◎「계단식」은 고왕조 절대왕권 출현 상징/고대 이집트왕의 무덤은 흙벽돌로 쌓아 올린 꼭대기 잘린 사각뿔형태/조세르왕의 산하 암호테프가 직선·각도 등 건축개념 적용 완벽한 피라미드 탄생시켜/고왕조 수도 멤피스엔 파라오의 영화 증언하듯 신전터 주춧돌 기둥만 남아 고대 이집트 파라오(왕)의 무덤들이 처음부터 기자의 피라미드처럼 완벽한 사각뿔의 형태를 갖추었던 것은 아니다.사각뿔 피라미드가 선보이기 이전 고대 이집트의 왕들은 사각뿔에서 윗부분이 잘려나간 것같은 형태의 무덤에 묻혔다.피라미드가 이같은 미완성 형태에서 완성된 형태로 발전해 나가는 중간단계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멤피스 외곽의 모래언덕 사카라에 있는 계단식 피라미드이다.「마스타바」라고 부르는 이 꼭대기 잘린 사각뿔 무덤을 여러개 포개얹듯 만들었다.이 때문에 무덤의 외곽선이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계단 모양을 띠게 된 것이다.계단식 피라미드는 자재면에서도 흙벽돌에서 석조 건축물로 탈바꿈하는 시기를 알려주는 편년표 역할이다.이전 마스타바 무덤들은모두 흙벽돌로 지었다. 계단식 피라미드의 출현은 고대 이집트에서 본격적인 절대 왕권의 출현과 그 시기를 같이한다.왕권이 강화돼 파라오가 무제한의 권력을 휘두르게 되면서 그의 무덤도 더크고 단단하게 짓기 시작한 것이다.계단식 피라미드가 지어진 시기는 기자의대 피라미드가 만들어지기 100여년 전인 기원전 2770년경으로 알려져있다.남북으로 갈라져있던 상·하 이집트가 처음으로 통일된 뒤 세번째 왕조를 일으켰고 이집트왕국의 창시자인 조세르왕이 바로 이 계단식 피라미드에 묻힌 주인공이다.500여년간 지속된 이 고왕국 기간중 왕국의 수도는 현대 카이로 남쪽 25㎞에 위치한 멤피스였다.당시 멤피스는 나일강안의 중요한 항구였고 최고로 번창하던 도시였다.그러나 지금 멤피스의 도성이 있던 자리에는 당시 신전터의 주춧돌 흔적을 어렴풋이 볼수 있는 폐허의 유적일부가 남아있을뿐 그일대 대부분은 대추야자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숲을 이루었다.멤피스가 수도로서 역할을 못하게 된지 수천년이 흘렀고 그 사이 해마다 나일강의 홍수가 뒤덮고 지나가 퇴적토가 쌓였다.그래서 실제 왕궁터는 수십m 지하에 파묻혔을 것이라고 안내인은 설명한다. 계단식 피라미드가 있는 사카라 모래언덕은 이 폐허에서 자동차로 불과 1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어찌보면 멤피스 시절 고대 이집트의 영화를 짐작하게 해주는 유일한 유물인 셈이다.6개의 마스타바를 차례로 얹은 듯한 이 계단식 피라미드는 총높이가 60여m에 달하고 원래는 계단 표면에 타일모양으로 매끈하게 만든 장식용 돌을 붙였다고 한다.그러나 이 장식 돌들은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계단식 피라미드를 만든 이는 뛰어난 예술가이며 역사에 이름을 남긴 최초의 건축가인 임호테프였다.그는 조세르왕의 재상이었고 모든 예술과 과학,특히 의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사후에는 건축가의 신으로 호칭된 사람이다.이 계단식 피라미드가 만들어지면서 직선과 각도,중량에 대한 계산이 시작됐다.계단의 미완성선들이 완벽한 직선으로 발전돼 기자의 피라미드들이 탄생된 것이다. 계단 피라미드로 올라가는 초입에서 여행객을 맞는 것은 과거 파라오가 누렸던영화의 한 편린을 엿보게 하는 거대한 돌기둥들이다.한때 신전의 기둥을 장식했음이 분명하지만 지금을 지붕은 사라지고 수십개의 기둥들만 두 줄로 늘어 서있다.이 모래언덕은 당초 귀족,왕족들의 무덤이 모여사는 「사자들의 도시」였고 주변은 수도 멤피스의 도선과 같은 모양을 한 성벽이 두르고 있었다.이 돌기둥들은 죽은 이들의 도시를 지키는 신전의 일부였던 것이다.예나 지금이나 이지브엣는 나무가 흔치 않다.석재를 쓰기 이전 고대 이집트인들은 파피루스 나무 묶음을 집의 기둥으로 썼다.그래서 석재르 이용한 뒤에도 이 파피루스 묶음 형태를 돌기둥 장식으로 응용한 것이다.흡사 도리안식 기둥의 원형을 보는 듯해 후일 그리스 건축에 고대 이집트가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음을 짐작케한다.신전에는 파피루스 돌기둥 사이로 모두 43개의 작은 방들이 만들어져 있는데 다시 이집트를 구성한 부족의 수를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신전을 둘러싼 돌담의 꼭대기에는 정교한 솜씨로 코브라 뱀의 머리들이 줄이어 조각돼 있다.당시 멤피스가 위치한 북부 이집트는델타 지역으로 늪지대가 많았으며 뱀이 그곳 부족들의 상징이 됐다.반면 남쪽에서는 독수리가 부족들의 상징이었다.토템과 흡사한 이 상징들은 왕들의 왕관 이마 쪽에도 붙였고 건물의 기둥 꼭대기에도 장식됐다. 계단 피라미드 남쪽에는 제5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인 우나스왕의 계단 피라미드가 있다.60㎡정도의 터에 위차한 비교적 소형 무덤이지만 죽적은 상형문자를 새겼다.녹색 글씨가 무덤안 4개방의 벽면에 깨알같이 새겨져 있다.고대 이집트의융성에 크게 기여했던 통일 국가의 탄생과 문자의 발견,그리고 그와 함께 시작된 절대왕권의 출현을 한는에 보여주는 유적인 셈이다.피라미드를 탄생시킨 이집트 고왕조의 멸망을 재톨한 것은 역설적이지만 피라미드의 축조도 그 원인이 됐다.파라오들은 재위기가 시작되면 곧바로 신의 피라마드를 건설하는 일에 몰두했다.대규모 사업에의 과중한 투자는 결국 국가재정을 극도로 악화시켰고 계속된 흉작으로 번영의 기세사 꺽이기 시작했던 것이다.그리고 파라오의 권위에 숨죽이고 있던 지방 귀족들이 야금야금반기를 들었고 이어서 혼란기로 접어들었다. 이후 여러 왕족을 거쳐 기원전 16세기 남쪽의 룩소르 세력이 전국을 재통일하며 고대 이집트는 다시 한 번 최상의 전성기를 구가했다.이후 100여년 이상 룩소르가 수도 역할을 하면서 멤피스는 상징적으로 종교의 중심지 역할을 하기도 했다.그러나 기원전 332년 알렉산드리아에 모든 역할을 빼앗겨 멤피스는 영원히 역사속으로 묻히게 된 것이다.한때 파라오의 대관식이 거행됐던 프타신전의 유적에서 발굴된 중왕조의 람세스 2세 석상 1개가 지금 카이로 철도역 앞 광장에 서있다.이 석상은 멤피스의 영화를 무언으로 전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 상해공항서 중 당료 영접 받아/이 대표 방중 이모저모

    ◎임정유적지·홍구공원 둘러봐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는 25일 상오 10시10분(현지시각) 상해에 도착,중국 공산당,상해시 관계자와 주중 한국대사관 직원들의 영접을 받은데 이어 홍교호텔에서 상해시 관계자들과 오찬을 함께 하는 등 중국방문 일정에 들어갔다. ○…이대표는 오찬직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와 윤봉길 의사의 의거장소인 홍구공원을 둘러본 뒤 곧바로 북경으로 출발.이대표는 북경 시내에서 정종욱 주중대사가 마련한 만찬에 참석한 뒤 영빈관이 있는 조어대에 여장을 풀었다. ○…이대표는 중국방문 이틀째인 26일 하오 3시 북경시내 중남해 주석궁에서 강택민 주석을 만나 김영삼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할 예정.이대표는 강주석에게 『식량난 등으로 내부사정이 악화되고 있는 북한과 어떤 경우라도 전쟁을 원치 않는다』며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강조하고 중국의 역할과 협조를 당부할 계획. ○…이에앞서 이대표의 출국에는 박관용 사무총장을 비롯,주요 당직자들과 백남치 변정일 박성범 김문수 홍문종 의원,사무처 요원 등 100여명이 김포공항에 나와 환송.또 황영하 전 총무처장관 유경현 전 평통사무총장 안동일 변호사 등 이대표 핵심측근들도 이대표를 공항까지 배웅.한편 이대표를 수행할 예정이었던 신경식 정무1장관은 24일 저녁 여야관계 조정을 위해 한국에 있으라는 청와대의 지시를 받고 중국방문단에서 빠졌다고 이대표측근이 전언.
  • 멋과 맛 어우러진 일 「정원도시」/시코쿠섬 가가와현 다카마쓰시

    ◎200여년전 조성된 사누키우동의 본고장/세계 최장의 철도겸용 세토대교도 유명 동경,교오도,나라,벳부 등 일본의 유명 관광지를 한번 둘러본 사람이라면 중소도시로 눈을 돌려보는 것도 괜찮다.다람쥐 쳇바퀴돌듯 명승지를 둘러봐야 한다는 부담감없이 발길 닿는대로 사람들 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색다른 묘미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시코쿠섬 가가와현의 현청소재지인 다카마쓰시.인구 33만명의 중소도시로 휴양과 관광을 겸한 여정에는 알맞은 곳이다.다듬고 깎는 일본인들의 손길이 도시 전체에 고스란히 담겨있어 깨끗하고 정갈하다.이국적인 체취도 별로 없어 마치 우리나라 시골에 온 것처럼 편안한 느낌을 준다.주변에 볼거리도 많아 적적하지 않다. 시내에 있는 리쓰린(율림)공원은 전형적인 일본 공원이다.밤나무(율)숲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소나무가 대부분이다.100여년간 다듬어져 1745년 완성된 이 공원은 시운산자락의 녹지에 6개의 연못과 13곳의 언덕으로 구성돼 있다.매화,벗꽃,목련,철쭉,창꽃 등 사시사철 피는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곳곳에서 학,거북모양을 한 소나무 분재를 만나게 돼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전혀 다른 풍경을 맛볼수 있다.산책로 중간에 있는 다실 기쿠게쓰데이에서는 차를 들며 섬세한 정원기술과 절묘한 공간배치를 음미할수 있다.산책로는 남쪽코스와 북쪽코스 두개로 나뉘어져 있는데 1시간30분정도 걸린다.북쪽호수 언덕에서는 공원전체를 한눈에 바라볼수 있어 사진촬영장소로 적격이다. 가가와현은 옛부터 사누키우동이라는 먹거리로 유명하다.중력밀가루와 소금의 절묘한 배분으로 빚어지는 사누키우동은 쫄깃쫄깃하고 차진 맛으로 일품이다.우동의 본고장답게 우동집,우동학교가 1천500여개나 된다.특히 우동학교에서는 손수 우동을 만드는 체험관광을 할수 있다.기술자의 지시에 따라 우동을 직접 제조하고 자신이 만든 우동을 끓여 먹을수 있다. 다카마쓰시의 또하나의 명물은 세토대교.다카마쓰시는 일찌기 일본 본토와 시코쿠섬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발전해왔는데 지난 88년 이 다리가 개통됨으로써 두 지역은 해로를 거치지 않고 육로로 연결됐다.상층부에는 4차선의도로가,하층부에는 복선식 철로가 있는 이 다리는 길이가 9.4㎞로 도로와 철도 겸용대교로는 세계에서 가장 길다.사장교,트러스교,적교 등 6개의 다리로 구성돼 있으며 건설비만 1조1천200억엔이 들었다. 다리 중앙에는 세토대교 기념관이 있어 세토대교 건설과 관련된 내력을 알수 있다.세토대교 주변을 순항하는 유람선도 운행되고 있어 선상 관광을 즐길수 있다. 자녀를 동반한 관광객은 레오마파크를 찾는 것도 좋다.서울랜드처럼 어린이나 어른이 함께 즐길수 있는 놀이공원으로 공간배치도 넉넉하게 돼 있어 여유있게 즐길수 있다.69만㎡의 광대한 지역에 유람버스,우주여행을 체험할수 있는 제트 코스터,회전목마 등의 놀이시설과 이슬람사원,태국의 사원,네팔 왕국의 사원 등 아시아 각국의 유적이 실물 크기로 전시돼 있다. 가가와현 야마모토 토시히로 관광진흥과장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큰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공항과 시오노에 온천 등 관광지에 한글로 된 관광안내 책자를 비치해 놓았다』며 『특히 가가와현 사람들은 옛날부터 인정이많기로 널리 알려져 외국인 관광객들을 따뜻하게 맞아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과 다카마쓰까지는 비행기로 90분이 걸린다.아시아나가 주 3회 운항한다.국내에서는 온누리여행사가 패키지 투어를 실시하고 있다.
  • 신석기 유물 대량발굴/광주서/집터·생활도구 등 수천점나와

    광주시 광산구 신창동 일대에서 최근 기원전 1세기쯤으로 추정되는 신석기 유물이 대량 발굴됐다. 10일 국립 광주박물관 학술조사단(단장 이건무 국립광주박물관장)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신창동562 일대 9천여평의 저습지에 대한 유적발굴 조사결과 과거 연못이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신석기인들이 사용하던 각종 생활도구·토기 등 유물 수천여점을 발굴했다는 것이다. 또 집터 흔적과 패총,볍씨와 도토리 등 곡물류도 발견됐으며 출토 유물 대부분이 보전상태가 좋아 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들 유물은 저습지의 일부에서만 출토된 것으로 저습지 전체에 대해 추가 발굴을 할 경우 유물의 양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청동기시대 환호 발굴/창원서/마제석검 등 석기 150점도 수습

    창원대 박물관(관장 이영석)은 지난해 12월부터 경남 창원시 서상동 남산유적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여 기원전 5세기 청동기시대때 축조된 너비 4.5∼10m,깊이 2∼4m,길이 200m크기의 환호(방어를 위해 물을 채우는 시설)를 확인하고 마제석검 10점 등 석기 150점을 수습했다고 9일 발표했다. 이 환호는 해발 100m의 남산 정상에 동서로 파여진채 목책과 망루 흔적이 발견됐고 환호 주변에서는 기원전 5세기경 사용된 길이 5㎝의 작은 돌도끼와 3㎝짜리 돌끌이 출토됐다.
  • 강렬한 색채 석판화속의 ‘우리것 향수’/김정준씨 개인전

    ◎관훈동 인사갤러리/민화적 분위기 표현 어린시절의 향토색짙은 추억을 바탕으로 삭막한 현실 삶에 대한 거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작가 김정준씨가 개인전을 지난 30일부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 인사갤러리(735­2655)에서 갖고 있다. 김씨는 우리 고유의 토속적인 소재를 꾸준히 견지하면서 현대인이 겪고 있는 인간상실과 환경오염을 은유적으로 꼬집는 문제의식으로 일관해오고 있는 작가.어린시절 마을 농악놀이나 동구밖 숲 사이로 환히 빛나는 「고향의 달」,갈대밭 등을 부각시켜 현대인의 갈등과 모순을 민화풍으로 부각시키는 화면이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고 있는 작품들은 민화적인 분위기를 더욱 강조하면서 기본적인 색채의 강렬함을 더해 우리 것에 대한 향수를 더욱 강하게 드러내는 근작들인데 구상의 윤곽에 추상적인 내용이 이채를 끄는 「유년의 삽화」 석판화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6일까지)
  • 청동기시대 밭터 첫 발굴/남강댐 수몰예정지구서

    ◎경작용 석기도 출토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경작지(밭터)가 경남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남강댐 수몰예정지구에서 발굴됐다. 경남대학교 박물관은 지난 1월부터 남강댐 수몰예정지구인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1336의2 일대 대평 어은1지구의 유적 발굴조사 결과 기원전 5세기 청동기시대 경작지인 밭터가 발굴됐다고 27일 밝혔다. 이 밭은 120×50m(2천평) 크기로 밭고랑의 가장 긴 부분은 30m,고랑의 폭은 35㎝,고랑의 깊이는 10㎝ 정도이다.밭고랑 사이에서 반달돌칼과 돌도끼,돌낫 등 경작용 석기와 「조」로 보이는 곡물의 탄화물이 발견됐다. 현재 국내 최고의 경작지는 지난 90년대초 발굴된 미사리 백제유적지 밭터(5세기쯤)로 알려져 있는데 청동기시대 밭터가 원형대로 발굴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 문화유적 훼손 안타깝다/박우서 연세대 교수·도시계획학(서울광장)

    몇해전 덴마크의 코펜하겐시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중요한 회의를 마친 뒤 시간이 남아 인어상을 구경하기로 하였다.어디에 인어상이 있는지를 몰라 물어물어 찾아갔다. 시내 중심부에서 한참 떨어진 바닷가에 위치한 인어상을 보면서 몇가지 지울수 없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역사적으로 실재하는 인물도 아닌데 왜 이처럼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올까? 더구나 흔히 볼 수 있는 역사적 위인의 거대한 동상과는 비교가 안되게 왜소한 인어상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의 해답을 찾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어렸을적 안데르센의 동화를 읽으면서 꿈을 키우던 때를 생각하면 쉽게 답을 찾을수 있다. ○왜소한 인어상 찾는 까닭 안데르센의 동화를 읽은 수많은 전세계의 어린이들이 인어상을 동경했을 것이다.어릴적에 머리속에 깊게 심어진 인어의 그림은 그들이 어른이 된 후에도 그대로 남아 있어 기회가 되면 인어상을 찾아가 보도록 만든다.결국 어릴적의 인상깊은 기억은 어른이 된 후에 현실적인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서울풍납동 재개발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백제초기 역사적 유물들이 발굴되었다.3중 환호라고 하는 것이 그 중의 하나인데,이 시설은 마을 주변에 땅을 파고 물을 부어 방어시설로 활용한 것이라고 한다.이밖에 백제의 전형적인 삼족토기 등 많은 양의 토기와 파편들이 지난 1월4일 발견되어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백제초기의 역사적 공백을 메울수 있는 귀중한 유산들이 빛을 보게 되었다. 이러한 유산들은 그동안의 친화작용에 의하여 지하로 매몰됐을 가능성이 크고,따라서 풍납토성 일대에는 더 많은 백제유적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그러나 토성내부는 서울시와 관계당국의 무관심으로 주택지로 개발되어 1만9천여 세대의 6만여명이 거주하게 될 예정이다.국사시간에 배운 백제의 역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산들이 발굴되고 있음에도 우리의 몰지각한 개발로 훼손될 위험에 처해있는 것이다. 오래전 일이지만 뉴욕시에서는 우리의 서울역에 해당하는 중앙역사(Grand Central Station)를 개발압력에 의해 철거할 계획을 추진했었다.그러나 관심있는 시민들의 빗발치는 보존요구와 시민연대운동으로 그대로 보존하기로 결정했다.역사주변으로 고가도로를 설치하여 개발과 보존을 조화시킨 경우이다. 나는 뉴욕시에서 있었던 또 하나의 인상적인 보존방법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역사적 위인의 생가를 보존하려고 현대식 장비를 동원하여 건물을 그대로 들어내서 대형차량에 싣고 시외곽지역에 옮기는 것을 목격한 일이 있다.이것이 바로 우리 어른들이 우리 자녀에게 보여주어야 할 교육인 것이다. 미래의 주인공이 될 아이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가르치고 꿈을 심어줌으로써 그들이 커서 꿈을 실현시킬수 있도록 해야 한다.실제 존재하지도 않는 인어를 어른들이 일부러 찾으려는 이유는 어릴적 꿈의 상징물을 찾아보려는 의도일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전국에 산재해 있는 역사적 유물과 사적지를 발굴·복원하여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노력을 이 시대의 어른들이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역사적 유산의 보존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된다.그렇다고 보존을 게을리하는 것은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일을 게을리하는 것이다. ○발굴된 사적지 복원해야 장보고의 유적지가 완도주변에서 발굴되고 있으나 아직도 우리 아이들은 책으로만 역사를 배우고 있다.그 시대의 장보고의 역사적 위상을 이해하고 꿈을 키우는 일이 책만으로 가능하겠는가? 경주를 답사하는 아이들에게는 첨성대가 보잘것 없는 돌덩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그러나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통해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일은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다. 개발도 중요하다.하지만 보존 역시 중요하다.더욱이 미래의 주인공에게 꿈을 심어주는 일은 더없이 중요하다.
  • 목단강유역 발해유적(송화강 5천리:25)

    ◎발해 도읍지 오동성터에 푯말만 외로이…/일제,성터 뭉개고 대규모 공장 건립/400m 성곽 간곳없고 남은흔적 고작 80m/23개 강동괴석에 역마울음 들리고 옛 암자터에 세운 정각사만 한때 영화 말하듯 송화강은 여러 갈래의 물줄기가 모여 강을 이루었다.그 가운데 가장 큰 지류가 목단강이다.길림성 돈화시 목단령에서 발원한 목단강은 흑룡강성으로 접어들어 경박호에 이른다.그리고 나서 의란현 서쪽에서 흑룡강 본류와 만나는데,길이는 670㎞를 헤아렸다.당나라때는 홀한수라 불렀던 이 강은 왕조가 바뀌면 이름도 따라 바뀌었다. 청나라때 목단울라라 한 것이 목단강으로 강 이름을 굳힌 계기가 되었다.그 목단강유역은 옛 발해의 강토다.강의 상류 오동성에서 발흥한 발해는 오늘날의 영안시 동경성에서 멸망하기까지 220년 동안 찬란한 역사를 꽃피웠다.「신당서」 발해전을 보면 「발해는 본래 고구려에 복속한 속말말갈이며,성은 대씨다.고구려가 망한 다음 그는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동모산을 지켰다」는 기록이 나온다. ○왕조따라 강이름도 바뀌어그러면 동모산은 어디인가.오늘날 길림성 돈화시 현유향 성산자촌의 산이라고 한다.해발 600m밖에 안되는 산이었지만,돈화분지 넓은 평야 한 복판에 우뚝 솟아 있는 터라 제법 웅장했다.동모산 동쪽으로 10리 안쪽에 목단강이 남으로부터 북으로 흘렀다.그리고 대석하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들어와 목단강과 합류했다.이들 물줄기야말로 동모산을 지켜주는 천연의 호성하 그것이었다. 그 동모산에는 성산자산성이 있다.천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직 그 흔적이 보였다.성은 본래 반월형으로 길이가 2천m였으나 지금은 얼마 남지않았다.동문으로 들어서자 50여기의 반움집터와 군사 조련장이었을 것이라는 넓은 마당이 나왔다.조선족 고고학자 엄장록 선생은 「연변지구 발해시기의 옛 성터 고찰」에서 이렇게 썼다.「역사기록과 지리적 위치에 근거하면 성산자산성은 대조영이 698년 진국을 세운 동모산으로 추정된다」 오동성은 오늘의 돈화시 고성거리에 있다.동모산 성산자산성을 근거로 국력을 키운 대조영이 새로 성을 쌓고 도읍을 옮긴 곳이 오동성이다.돈화임업국의 사택이 꽉 들어차서 성터를 찾는데 힘이 들었다.한참만에 사택 나무울타리에 가린 오동성유적지 팻말을 가까스로 찾아냈다.그러나 팻말 뒤쪽은 장작더미가 쌓여있는 바람에 새겨놓은 글귀는 읽어 볼 처지가 못되었다.아쉬울 뿐이었다. 오동성은 길림성의 성급보호문물로 되었다.팻말이 서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한 일인지 모르나,서글픈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방치한 것이나 다름없었다.오동성만 그런 것이 아니라 발해유적들이 종종 수난을 당했다.지난 1995년 4월에는 화룡시 서성건 북고성촌 서고성이 큰 피해를 입었다.곽보위(34·화룡시 두도건 명성촌)라는 사람이 발해의 중경 현덕부자리인 서고성 동쪽 토성벽 5㎡를 허물어 못자리판 객토로 썼다는 것이다.사실이 탄로나 5천원의 벌금을 물기는 했다. 오동성 역시 흙을 다져 쌓아올린 이른바 판축의 토성이다.외성과 내성으로 이루어졌던 오동성은 본래 동서 400m,남북 200m에 이르는 토성이었다고 한다.지금은 겨우 80m 정도가 남아있다.그것도 성터였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들여다보아야 간신히 눈에 들어왔다.오동성이 본격적으로 파괴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때다.일제는 성터를 뭉개버리고 대규모 목재공장을 지었다. 오동성과 동모산 성산자산성의 거리는 15㎞다.그러니까 도성과 산성이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고구려 도읍지인 집안에 평지성인 국내성과 그 외곽에 산성인 환도성이 자리한 이치와 똑같다.도성과 산성을 가까이 배치한 이유는 전쟁 때문이었다.발해가 오동성을 수축할 당시 당나라와의 관계는 전쟁상태였던 것이다. 연변조선족 사학계에서는 더러 오동성이 발해의 첫 도읍지가 아니라는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그러나 1949년 육정산에서 발해의 무덤떼가 발견되고,그 무덤의 일부는 왕실묘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정은 달라졌다.오동성이 발해의 수도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킨 것이다.그리고 청나라 연호로 광서 11년인 1885년에 조정걸이 쓴 「동삼성여지도설」에서도 여러가지 지리적 여건을 감안,오동성을 수도로 보았다. 발해의 무덤떼가 나온 육정산은 돈화시에서 남쪽으로 5㎞ 떨어진 강동향 승리촌에 자리했다.동서로 6개의 봉우리가 낙타등처럼 이어졌다.해발 603m의 두번째 봉우리가 주봉이다.그 주봉 동남쪽 산길 동서 양쪽의 평지에 무덤떼가 있다.동쪽 무덤떼는 신분이 낮은 계층의 무덤이고 서쪽 무덤떼는 발해 전기에 묻힌 왕이나 왕족의 무덤으로 밝혀졌다.이 육정산 무덤떼에서 가장 유명한 무덤은 제3대 문왕인 대흠무의 둘째딸 정혜공주묘다. ○성급 보호문물로 지정,유지 정혜공주묘는 북으로 육정산 주봉을 등지고 남으로는 활짝 트인 광활한 목단강 충적평야를 바라보고 있다.그리고 강 서쪽 연안은 사원유적을 품에 끼었다.무덤에서 동모산까지는 시오리가 채 안되었다.그러고 보면 정혜공주묘는 배산임수의 좋은 땅을 차지한 것이다.1950년대 이 무덤 발굴 당시 참여했던 전 연변대 사학부 교수 방학봉선생은 정혜공주묘를 이렇게 묘사했다.「무덤은 뒤로 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넓은 들을 향했다.무덤의 주인이 마치 북쪽 산에 기대고 누워 남쪽 벌판을 멀리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공주의 묘는 무덤방,무덤 안길과 바깥길로 이루어졌다.무덤방인 묘실은 네모꼴이다.무덤방 네 면의 벽은 크기가 서로 다른 용암석과 현무암을 다듬어 8∼9층 정도를 쌓아 만들었다.무덤에서는 비석·돌사자·구슬·청동못 따위의 유물이 나왔다.돌사자는 암수 한쌍이었다.머리를 쳐들고 입을 벌린채 앞을 바라보고 앉은 돌사자는 날쌔게 보이면서도 의젓했다.발해무덤에서 돌사자가 나온 것은 당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오늘날 밖에서 볼 수 있는 발해의 유물이 있다면 24괴돌유적이다.흑룡강성에 2군데,길림성 연변지역에 6군데 남아있다.돈화시에만 3군데가 있는데,그중 하나가 강동괴석이다.돌 하나는 없어지고 지금은 23개가 남았다.목단강을 사이에 두고 오동성과 마주한 강동괴석은 강에서 동쪽으로 300m 거리에 위치했다.한 줄에 8개씩 3줄에 모두 24개의 돌을 나란히 세운 이들 돌유적은 발해시대의 역참으로 추정하고 있다. 돈화시에는 새로 지은 정각사라는 절이 있다.아시아에서 가장 크다는 이 절은 발해시대부터 광복 이전까지 명맥을 유지한 한 암자터에 다시 세운 것이다.해방 이전까지는 이씨 성을 가진 한 보살(여자신도)이 암자를지켰다고 한다.그러다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보살은 싱가포르로 가서 세상을 떠났다.그런데 보살은 암자에 큰 절을 세워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그 유언은 손자대에 이루어져 중국돈으로 2천5백만원을 들여 정각사를 세웠다는 것이다.
  • 양자강 하류지역(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5)

    ◎7천년의 역사·문화가 살아 숨쉰다/송·원·명·청대 거치며 걸출한 문인·묵객 대거 배출/당도·양주·항주·소주·소흥 등서 중국문학 꽃피워 지난달 12일부터 서울신문에 연재하는 「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가 5회째를 맞는다. 그동안 중국의 국민시인 이태백이 만년을 보낸 양자강 하류의 당도시와 꽃과 술과 물의 마을 양주,한말의 망명시인 김택영이 묻힌 남통,송나라 시인 진관이 공부한 고우시 등을 찾았다.이처럼 중국문학 대가들의 숨결이 살아있는 양자강은 세계에서 세번째로 긴 6천300㎞의 강이다. 양자강의 지리조건과 역사는 황하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장강으로 불리는 양자강,그 길다란 용틀임은 황하의 스무줄기에 상당한 수량을 유출하면서 그 겨드랑이에 중국의 쌀 수요량 10분의4를 산출하는 세칭 어미지향을 거느리고 있다. 그럼에도 인문사회의 역사는 황하보다 천년이 넘게 뒤져 있다.장강유역에 주대의 유물이 간혹 보이지만 역사의 기록은 기원전 6,7세기의 춘추시대 오 월에서 비롯된다.그마저 정치의 중심이나 번영의 시장으로 각광을 받기는 송원 양대부터임을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마저 생생하게 기록했다.항주는 세상에서 제일 화려하다고. 물론 남송의 문화가 하루아침에 건너온 것은 아니었다.벌써 춘추전국때 오월문화를 비롯해서 육조때의 남조문화가 바탕을 닦은 것이다.그 빛과 힘은 양자강의 하류에 응집되었다.여기서 말하는 양자강 하류란 강서성 호구로 부터 안휘성 동남단과 양자강삼각주,곧 양자강 남북연안에 위치한 절강성과 강소성 상해 등 3개 시·성을 통칭하고 있다. 양자강 하류지역은 남송·원·명·청을 거쳐 민국과 신중국에 이르기까지 줄곧 상승의 기세다.비단과 도자기를 비롯 쌀·차 등 농산품의 생산과 수출로 경제의 번영을 누리면서 희곡과 미술 등의 예술로 강남문화를 일구었는가 하면 성리학과 실학의 연구로 근대화·민주화의 앞장에 섰다.거기다 근대문학의 가장 뜨거운 산지가 됨으로써 문인을 배출하는 못자리가 되었다. 필자가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했던 「중국고대문학사」와 「중국근대문학사」에 등장하는 문인들을 그 출생지와 활동지별로분류한 나머지 그 전체의 4할쯤이 이곳서 태어나고 이곳에 작품을 썼다는 일차적인 통계를 얻을 수 있다. 그들은 물론 송대 이후 특히 명·청 양대에 집중되어 있다.따라서 시와 산문·평론등 귀족문학은 물론 시민문학으로서 그 광장을 넓혀 소설과 희곡등 다양한 꽃을 피웠다. 그러니까 황하는 열악한 지리환경을 극복한 채 정치문화의 번영을 누렸고 양자강은 풍요로운 지리환경임에도 중화문화의 종속적인 지위를 벗어나지 못하다가 남송때에야 그 지기와 인걸을 발휘했던 것이다. 1949년,새로운 중국이 건설되고 한중관계가 단절된 뒤 중국의 고고학계에는 지각변동에 상당하는 새로운 발굴과 함께 새로운 발견,새로운 학설이 잇따라 발표되었다.그것은 1953년 섬서의 서안교외인 반파에서 기원전 5000년에서 3300년까지 존재했을 신석기 문화유적을 발견하여 북방의 문화사를 2000년이나 소급한 일이 있었다.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제까지 적막한 옥토로만 여겼던 장강 하류지역에서 연거푸 놀라운 문화가 햇빛을 보기 시작하 것이다. 1958년 상해 근교 청포현 숭택에서 기원전 3400년에서 4000년의 정제 석기를,1959년 절강 가흥근교인 마가빈에서 기원전 5000년에서 4000년의 신석기와 홍도를,다시 1973년과 1977년 두차례에 걸쳐 절강 여요현 나강향 하무도에서 기원전 5000년의 쌀과 목조건축·방직·축목등의 유적을 각각 발굴 연구하면서 7000년이나 숨겼던 비밀이 어렴풋 풀리게 된 것이다. 문학은 자연지리적 환경보다는 인문사회적 환경의 산물이요,중국은 황하와 장강을 중심한 남북문화지만 선후적 관계보다는 개성적 차이로 발전되었다는 1차적 결론을 얻을수 있었다.그것은 장강삼각주의 지형이 말해 준다.그 서북에 낮은 산악과 구릉이 남북으로 누워있을뿐,절대의 면적이 수로가 사통팔달하는 대평원이어서 배산임수해야 인물을 낸다는 통속적인 풍수설을 뒤엎고 있다.또한 장강 삼각주에서 출토된 신석기 유물들은 북방의 동시대 유적인 반파의 그것보다 오히려 정교한 데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과 목적으로 필자는 안휘성의 동남단인 당도에서 출발,장강삼각주의 문학 유적을 전전하면서 그 현장을 확인키로 했다. 「홍루몽」의 저자 조설근을 길러준 남경을 거쳐 「서유기」의 저자 오승은의 고향 회남과 「경화연」의 저자 이여진의 고향 연운항,송나라 문호 소동파가 최후를 마친 상주,「삼국지」를 재현시킨 북고산의 진강,원말의 영웅소설 「수호전」의 배경이요 그 저자 시내암과 청나라의 이름난 시인이자 화가인 정판교의 고향인 흥화.명말의 시인 전겸익의 고향인 상숙,역시 명말 시인 진자룡의 고향인 송강,명나라 후칠자의 수령인 왕세정의 고향 태창,역시 명말의 시인 고염무의 고향으로 지방극 곤극의 고장인 곤산,명말의 문인이자 여행가인 서하객의 고향 강음,당나라때 대시인 백거이 위응물 유우석 등이 벼슬살이했던 소주.청말의 문학평론가 왕국유의 고향인 가흥,만당의 시인 두목이 벼슬했던 호주,송나라의 거물 사객인 주방언과 청나라때 문학이론가 원매 등의 고향이요,당 송의 대시인이었던 백낙천과 소동파가 치적을 남겼던 항주.명나라때 시인이요 대사상가였던 왕양명과 역시 시인이었던 황종희의 고향 여요,한나라때의사상가였던 왕충의 고향 상우,송나라 대시인 이었던 육유와 현대문학의 비조인 노신의 고향 소흥,청나라때 희곡가 이어와 중국 현대시단의 거성인 애청의 고향인 금화 등이 앞으로 연재의 대상이 된다. 그 많은 곳을 되돌아보면 청록색의 망망대야,그 풍요로운 평원과 수향에서 중국문학사의 절반이 이룩된 것을 볼수 있었다.
  • 서울신문 기획연재 「한국인의 얼굴」 100회돌파 특별기고/임효재

    ◎“훌륭한 국민교육용 문화재독본”/문화유산 가치 살찌운 수준높은 기획물/역사·민족·종교 등의 학술과 접목 돋보여/문체·표현력 탁월…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채택 서울신문을 기다리는 독자의 한 사람이다.그 이유는 흥미롭게 읽는 시리즈가 있기 때문인데,서울신문의 주간 연재물 「한국인의 얼굴」이다.처음 「한국인의 얼굴」을 만난 것은 지난 1994년 가을이 아닌가 한다.내가 발굴한 강원도 양양군 오산면 손양리 신석기유적 출토품 테라코타를 소개한 내용을 본 것이 인연이 되었다. 내 손으로 발굴한 유물이었지만,저널리스트 안목의 해석이 우선 놀라웠다.그 유물은 진흙을 둥글넓적하게 반죽을 한 다음 눈과 코,입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만든 원시미술품이었다.이를 한반도 최초의 소조안면상으로 본 이 시리즈는 안면상 하나만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9천여년전 신석기시대로 뒷걸음질친 여행을 떠났던 것이다. 그래서 이 시리즈 「한국인의 얼굴」에 매료되었다.어떤 유물에 나타난 학술적 현상이나 가치를 떠나 유물에 나오는 얼굴을 통해늘상 상상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점이 이 시리즈의 매력이다.이를 굳이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면 「저널리즘 고고학」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지금까지의 학술적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윤택하게 살지운 보기드문 기획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렇다고 선사시대 고고유물에만 나오는 인물을 다루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불상이나 불화를 보면서 불교의 세계로 다가갔는가 하면,민속미술품에 나타난 얼굴을 통해서는 그 옛날 민중들의 심성을 들여다 보았다.그리고 흙인형 토우에서 역사시대 각 계층의 삶을 들추어냈다.도자공예와 회화예술에 등장한 인물에서도 예술적 가치와 더불어 그 시대상을 꿰뚫어 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처럼 얼굴을 주제로 한국문화의 본질을 규명하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시리즈라 할 수 있다.그 대상은 국내에 소장된 유물의 얼굴 뿐이 아니라 해외에 흩어진 우리문화재에서까지 찾아냈다.그리고 고고학은 물론 문화인류학,미술사와 역사,민속학,사상과 종교 등의 학술을 이 시리즈와 접목시킨 흔적도 발견했다.그러니까 「한국인의 얼굴」은 얼굴의 생김새나 특징을 가리는데 그치지 않은 수준높은 시리즈인 것이다. 이 시리즈의 묘미는 문체가 간결하고 부드럽다는데도 있다.그리고 글을 무척 쉽게 썼다.이미 서울신문에 활자화한 「한국인의 얼굴」중에서 다섯 꼭지가 97학년도 초등학교 5학년 국어교과서에 채택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쉬운 문장과 표현력이 뒷받침되었을 것이다.더구나 올해가 「문화유산의 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서울신문 기획물 「한국인의 얼굴」은 「국민교육용 문화재독본」쯤으로 여기고 싶다.
  • 국내 반입 임정청사 당시 건물 아니다/정세윤(공직자의 소리)

    지난 13일.제78주년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기념일을 전후하여 한 민간단체에서 3여년전 상해임정청사 건물이라 하여 국내에 반입한 물건의 실체에 대한 진위 여부가 일부 방송매체에서 다시 보도된 바 있다. 인천세관 창고에 보관된 이 물건은 이달말 이내에 인수 내지는 폐기되어야 할 상황인데 임정청사와 관련한 그간의 정부조사실태를 밝히고자 한다. 정부는 이미 89년부터 90년 사이 독립기념관 주관으로 4차례에 걸쳐 각계 대표들로 구성한 현지조사단을 파견하여 상해임정청사의 최초 의정원회의 장소와 임정청사,임정요인 거주,관련단체등을 비롯하여 항주,중경지역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종합적인 현지조사를 통해 「임시정부청사와 기타유적에 관한 종합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고 이를 통해 많은 역사적 사실을 확인했다. 그 결과 93년 4월에는 상해 임정유적중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대표적 인상해시 마당로 306롱 4호의 임정청사를 현지에 복원. 개관한 바 있고, 95년 8월에는 조국이 광복될 때까지 마지막으로 사용했던 중경시 연화지 38호의 임정청사를 현지에 복원하여 독립운동의 역사적현장으로 관광지화한바 있다. 이와 더불어 국내에 반입되었다는 상해임정청사 물건의 그 진위여부 문제도 이미 결론을 내린바 있다. 동 물건이 지난 94년 5월 국내에 반입됨과 동시에 학계,문화계 등 각계 전문가와 현지인의 증언을 통해,그리고 1920년에 제작된 중국의 「(법계신지도」를 통해 그 진위여부를 다각도로 검토 조사한 결과 당시의 김신부로 22호의 위치는 현재 서금 2로 50호로 지번이 바뀌어 당사자들이 최초 임정청사로 알고 반입한 서금2로 22호가 아님이 확인되었다. 특히 그해 6월에는 국가보훈처 주관하에 사학교수,문화재전문위원,원로 생존애국지사, 임정청사 반입인사 등 8명으로 구성된 현지 조사단을 파견하여 「최초 임정청사 현지조사 보고」라는 조사보고서를 통해 반입된 임정청사건물은 최초의 임정수립당시의 건물로 인정할 수 없다고 공식 발표했다.
  • 신혼 P씨의 내집마련 전략/월급여 260만원중 200만원 저축

    ◎비과세장기저축·주택청약부금 등 분산/3년뒤 전세자금 포함 1억2천156만원 회사원 P씨(28)는 지난달 같은직장 후배와 결혼했다.직장이 있는 수원의 아파트에서 전세(전세금 3천만원)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요즘은 집값이 다소 주춤해졌지만 빨리 내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현재조건◁ P씨 부부의 월평균 급여는 2백60만원.생활비로 60만원을 쓰고 2백만원은 저축하기로 했다.회사에서 1천만원을 빌려 이자로 나가는게 월 4만원이다.직장생활을 하는동안 모았던 돈은 결혼비용과 전세자금으로 사용해 현재 목돈은 한푼도 없다. 주택청약부금에 매월 10만원씩 1년간 붓고 있으며 새마을금고의 적금(3년제)에 월 30만원씩 1년간 내고 있다.P씨 부인은 내집을 마련하기 위해 3년간 직장을 다니기로 했다. ▷구체적인 재테크 방안◁ 월 저축가능액 2백만원중 1백만원은 지난해 10월에 나온 비과세 장기저축에 가입한다.모든 금융기관에서 취급하지만 은행의 비과세저축은 확정금리인 저축상품과 변동금리인 신탁상품에 동시에 가입할 수 있다.현재는 신탁상품의 수익률이 높다.신탁수익률이 떨어지면 저축상품쪽에 많이 내는게 유리하다.저축상품의 확정이율은 연 11%이고 신탁상품의 평균수익률은 12%라면 각각 2대 8로 투자했을때 3년 뒤에는 4천3백8만원이 된다. 매월 20만원은 장기주택마련 저축에 가입한다.비과세이면서 소득공제(연간 1백80만원 한도)까지 된다.주택을 구입할 때 낸 원리금의 3배까지 장기대출도 받을수 있다.확정금리로 11%라면 3년뒤에는 8백42만원이다.40만원은 납입금액과 시기가 자유로운 자유적립신탁에 세금우대로 가입한다.예상수익률을 12%로 하면 3년뒤에는 1천6백99만원이다. 결혼하기 전부터 붓던 새마을금고의 적금과 주택청약부금은 지속한다.2년뒤 새마을금고의 적금이 만기가 되면 만기금 1천2백60만원은 새마을금고나 상호신용금고의 정기예금으로 굴린다.당시 이자율을 11%로 보면 1년뒤에는 1천3백76만원이 된다. 2년 뒤부터는 매월 붓던 월부금 30만원은 이미 가입한 자유적립신탁에 추가로 낸다.전부터 낸 것과 합하면 1년뒤에는 2천80만원이 된다. ▷운용결과◁P씨는 이렇게 돈을 굴리면 3년 뒤에는 9천1백56만원을 모을수 있다.전세자금 3천만원을 포함하면 1억2천1백56만원이다.아파트를 구입할 때 자금이 부족하면 주택구입자금대출을 이용한 뒤 전세금을 받아 갚으면 된다.2년뒤 아파트에 당첨되면 그 때 찾을수 있는 자유적립신탁과 새마을금고 적금,주택청약부금을 활용해 초기자금과 중도금으로 충당하면 된다.그 다음 중도금은 주택구입자금 대출로 충당하고 대출금은 입주할 때 전세금으로 갚으면 된다. □도움말=제일은행 으뜸고객실 이재춘 차장.(02)539­1472
  • “마한·진한·변한 문화재 한자리에”/「삼한박물관」 전남에 세운다

    ◎건립추진위,내년 착공… 2천년 개관/몽촌토성∼익산∼목표 유적지 확인 답사/새달 연구논문집 발간함께 모금운동 계획 오는 2000년 전남도내에 마한 진한 변한 등 삼한시대 관련 문화재를 모은 삼한박물관이 건립될 것으로 보인다. 삼한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회장 이현재 학술원회장)에 따르면 현재 전남도 지역에 삼한박물관 부지매입을 추진중이며 내년부터 공사에 들어가 빠르면 오는 2000년 삼한박물관이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이 삼한박물관은 고구려 신라 백제 등 고대국가 이전 3천년간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시대가 엄연히 존재했는데도 그 역사 자체가 무시되거나 발굴되지 않는 현실에서 학계,재계,관계와 전남도 관계자들이 삼한역사 재조명 차원에서 건립을 추진해왔던 것.박물관 건립과 관련해 지금까지 총 15차례에 걸친 학술토론회가 열린 것을 비롯해 4차례의 일본내 삼한시대 관련 역사문화 탐방이 이루어졌다.박물관 건립추진위와 마한역사문화연구회 주최로 지난 9일부터 3일간 마련된 삼한역사문화탐방은 내년 박물관 시공을 앞두고 삼한 특히마한 관계지역을 사전답사한 행사.서울 몽촌토성에서부터 전북 익산,전남 광주,영산강유역의 고분군과 목포를 잇는 일정으로 짜여져 학계·재계·언론계·전남도 관계자 100여명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백제 하남 위례성 자리로 거론되고 있는 서울 강동구 몽촌토성을 시작으로 익산 백제 무왕의 출생지와 무덤이 있는 익산 금마,광주를 거쳐 나주시 고분,강진 다산 초당,목포 해양박물관,광주박물관,나주시 다시면 발굴현장 등을 찾아가 마한 관련 유적지와 고분군이 어떤 상황으로 남겨져 있는지를 확인하는 탐방이었다.이현재 학술원회장과 김삼용 전 원광대총장,최봉열 마한역사문화연구회장,황명숙(한양대)신형식(이화여대) 김병모(한양대) 임효재(서울대) 김광언(인하대)권영필(고려대) 임영진(전남대) 교수 등 학계 인사와 변호사 이재후씨,오재희 전 주일대사,유양수 전 건설부장관,이종현 조흥증권회장,김여심 한국종교연합회 이사장,정재호 금정그룹부회장,김형문 한국유권자운동연합회 공동대표,오와가치 일본대사관 정치담당 참사관,황용남대한교육보험 고문,김종규 삼성박물관회장,권오성 한국국악회장 등 각계 인사가 고루 참석해 이번 탐방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건립추진위는 이번 답사와 지금까지의 학술토론회에서 발표된 연구논문 40여편을 묶은 논문집 「삼한의 역사와 문화」를 5월말 발간하고 이와 동시에 본격적인 모금운동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이번 탐방에 참가한 김병모 교수(한양대)는 『박물관 숫자가 미국 1만개,일본·영국이 각 3천개인데 비해 우리의 경우 80여개 밖에 안되는 미개국 수준』이라며 『민족문화상 처음으로 나라를 세운 선조들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할 자료를 수집 전시할 박물관 필요성에서 특히 마한 54국,진한 12국,변한 12국 등 모두 78개의 나라이름이 역사서에 나타나고 있는만큼 삼한 전문박물관 건립은 때늦은 감이 없지않다』고 역설했다.
  • 백제시대 대규모 취락지 첫 발견/서울 풍납토성서

    ◎아궁이식 화덕 등 출토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동현)는 지난 1월중순부터 서울 송파구 풍납동 231의3 풍납토성내 현대 연합주택조합 신축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여 3∼4세기경 백제시대 수혈주거지 6기를 비롯해 원형 또는 방형의 구덩이 유구 20여기와 백제토기를 굽던 가마터 1기를 확인하고 100여점의 백제토기 등 생활용기를 수습했다고 11일 발표했다. 연구소가 이날 공개한 유구중 길이 11m,폭 7m,25평 크기의 평면 육각형 집자리에서는 길이 2m,폭 40∼50㎝ 크기의 긴 아궁이식 화덕이 완전한 상태로 발견됐고 기둥과 지붕에 썼던 나무 자재들이 불에 탄 상태로 남아있었다.지금까지 암사동 미사리 등 선사유적지에서 이같은 형태의 집자리가 발견된 적은 있지만 이처럼 대규모 취락지가 발견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유구에서는 기원전후부터 AD5세기경에 걸친 전형적인 백제토기와 작은 항아리,대접 등 다양한 실생활 토기가 당시 사용하던 모습 그대로 수습됐고 어망추 등이 다량 발굴돼 당시 한성백제 시대의 토기와 실생활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 국제·첨단기능 육성에 초점/제2차 수도권 정비계획에 담긴 뜻

    ◎다핵구조 전환… 수도권 집중 억제/국가경쟁력 강화 여건·토대 구축 제2차 수도권정비계획은 오는 2011년까지 15년간 시행할 정비방향과 추진과제를 담고 있다.수도권의 흡인력이 아직은 강하기 때문에 지방의 성장기반이 조성될 때까지 수도권 집중억제 기조를 유지하고 국내외 여건변화에 대응하는 국제·첨단기능의 육성과 지방분산을 통한 국가경쟁력 확보에 중점을 둔 것이 특징이다. 우선 수도권 집중억제 및 국제·첨단기능의 확충을 위해 과밀억제권역(서울·인천 등),성장관리권역(서울외곽),자연보전권역(한강수계) 등 수도권의 3개 권역을 특성에 맞게 정비키로 했다.특히 수도권에 대기업의 공장 신·증설을 원칙적으로 제한하되 미래·첨단산업의 입지규제를 개선한 것은 국가경쟁력을 높이려는 취지로 보인다. 서울 중심의 단핵구조를 다핵분산형 공간구조로 바꾸고 수도권 외곽지역의 기존도시를 중심으로 자족적 거점지역 개발,광역 연계교통망의 구축을 추진함으로써 서울 이외의 수도권지역의 획기적인 개발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정비계획 주요내용/안산∼아산만 물류 유통거점지역 조성/외곽지역 연결 고속국도 520.5㎞ 건설/인천신공항 동북아 교류 중심지 육성 건설교통부가 11일 발표한 제2차 수도권정비계획안은 수도권의 인구유입과 산업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수도권 정비계획법에 따라 시행하도록 돼 있는 장기 법정계획이다.주요내용을 부문별로 정리한다. ▷공간구조 개편◁ ▲서울∼인천축=국제교류 및 국제업무 중심축으로 개발한다.동북아 중심지로서의 국제금융,첨단정보 및 통신 등의 국제기능을 강화한다.대형 컨벤션센터,전시장 등 국제업무시설을 확충한다.인천국제공항 주변을 국제금융·교류·유통·관광 등의 복합기능을 수용하는 「국제업무도시」로 조성한다.인천공항·항만을 중심으로 국제교역 및 물류수송기반을 강화하고 서울 주변 도시와의 연계기능을 강화한다. ▲안산∼아산만축=아산만권 광역개발사업을 본격 추진,수도권 필수산업의 입지를 유도한다.아산신항과 인천항간 물류연계망을 통해 수도권과 지방간 연계물류유통거점 지역으로 조성한다.기존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배후농촌과 조화를 이루는 정주공간을 구축,자족적이고 쾌적한 지역생활권을 형성한다. ▲파주∼포천축=남북교류 및 경제협력 거점으로 관리한다.남북간 인적·물적 교류에 대비,경제협력단지 조성을 추진한다.접경지역의 자연생태공간과 유적지 등을 연계하는 광역관광권을 조성한다.중소공간,출판문화,관광 등의 전문단지를 조성,자족기반을 확충하고 지역간 연결을 위한 광역교통망 및 남북교류교통망을 정비한다. ▲이천∼가평축=자족적 전원도시 및 관광지대로 관리한다.자연환경과 조화되는 전원주거도시로 개발하고 실버촌·휴양촌·주말농원 등을 확대한다.무공해,첨단 소규모 공업단지 등을 조성,자족기반을 확충한다.한강변과 댐을 이용,종합 휴양관광지를 조성하고 농업특화단지,도예산업 등을 육성한다. ▷권역별 정비◁ ▲과밀억제권역=과밀화 규제 도시문제 해소에 역점을 둔다.공장·대학·공공청사·연수시설 등 인구집중 유발시설을 규제하고 복지·체육·문화·역사시설 등 여가 및 문화공간을 확충한다.공업지역의 재정비계획을 통해 이용효율을 높이고 미래 첨단업종단지를 조성한다. ▲성장관리권역=이전기능을 수용하고 자족기반 확충에 역점을 둔다.수도권 입지의 필수시설을 배치하고 지역중심지의 자족기능을 확충,다핵분산형 공간구조를 형성한다.2001년까지 총 25.5㎢의 공업단지 및 공업지역을 지정한다.이전공장을 우선 수용하고 미래 첨단산업단지도 제한적으로 들어선다. ▲자연보전권역=한강수계 보전과 주민생활 불편해소에 역점을 둔다.상수원 보호를 위해 수계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과 일반 지역을 차등 규제하고 수도권 주민의 여가활동을 위해 관광지를 개발한다.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자족적 중소도시를 육성,인구정착을 유도하고 지역경제 기반구축을 위해 도시형 산업단지,연구단지를 조성한다.배후 농촌지역은 주변도시와 연계,도농복합형으로 개발한다.대규모 택지 및 산업용지의 개발은 금지되고 공해유발공장의 신증축도 규제한다. ▷교통시설 확충◁ ▲철도망=2001년까지는 이미 확정된 노선 및 서울 중심의 방사형 철도망을 구축한다.2001년 이후에는 서울 우회선 위주의 철도망을 확충한다.도로의존형 교통체계를 저비용·고효율의 철도수송체계로 개선한다.도시철도를 지속적으로 확충,철도수송분담률을 28%(94년 기준)에서 2001년에는 50%로 높인다.이를 위해 7개 노선(인천국제공항선·분당선연장·여주선·동남부외곽순환선 등 4개선 신설,경원·경인·경의선 2복선화) 228.8㎞를 확충한다.수도권 외곽지점을 연결하는 광역순환선과 지역간 연결 전철망(13개 노선 569㎞)을 확충한다. ▲도로망=교통밀집지역의 교통난을 완화하고 수도권의 다핵분산형 공간구조를 촉진할 수 있도록 외곽지역간 연결 고속국도망 8개 노선 520.5㎞를 건설한다.고속국도의 연계·대체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간선도로망 12개 노선 478.5㎞를 확충한다.지역간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격자형 간선노선망을 구축하고 장래 개발잠재력이 높은 지역 및 교통수요가 집중될 지역은 지방도·군도를 중심으로 한 보조노선을 구상한다.국가·지방재정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고 시급한 교통애로를 해소하기 위해 민자유치를 통한 도로건설사업을 확대한다.▲공항=인천국제공항을 동북아의 인적·물적교류 및 정보·기술의 중심지로 육성한다.김포공항은 관제시설 개량 등으로 항공처리능력을 확충하고 인천국제공항 개항후 적정 역할을 분담토록 한다. ▲항만=아산신항을 아산공단 지원 및 인천항의 기능을 분담하는 수도권의 거점항만으로 개발한다.인천항을 정비,연안화물,수출입화물 및 컨테이너를 종합적으로 처리하는 복합항만기능을 강화한다.인천북항을 민자로 개발한다.
  • 국립공원관리공단 홈페이지 개설

    ◎인터넷 가상공간서 국립공원 정취 만끽/20개 공원정보 한·영문 제공/경관·야생동식물 사진도 서비스 국립공원의 정취를 인터넷 가상공간에서 느낄수 있는 웹사이트가 개설,상춘객들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우리나라 20개 국립공원의 각종 정보 및 경치사진 등을 담은 인터넷 홈페이지 「한국의 국립공원」(인터넷 주소 http://www.npa.or.kr)을 최근 개설했다. 이 사이트는 한글과 영문으로 제공되며 20개 국립공원의 개요 및 역사를 소개하는 코너를 비롯해 국립공원의 경관사진,문화유적,탐방코스 교통편,숙박시설 등을 담고 있는 국립공원 탐방안내가 서비스된다. 또 자료실에선 국립공원의 자연 및 이용현황과 공원관련 문헌목록이 제공되며 학술정보 및 계간지내용도 소개된다. 갤러리코너에는 국립공원의 경치를 담은 유명 사진작가들의 사진전 입상작들이 계절별로 실려 있으며 공원의 독특한 야생동식물 사진도 별도로 제공돼 네티즌들이 안방에서 공원지역의 비경을 만끽할 수 있도록 했다.공단측은 이 사이트의 사진정보들이정기적으로 새로운 사진들로 갱신된다고 밝혔다. 이밖에 공원을 찾아가려는 사람들에게 방문하려는 지역의 환경에 대해 설명하고 자연훼손 방지요령을 설명한 환경해설 코너도 눈여겨 볼 만하다.또 인위적 개발,쓰레기 투기,야영지 구축등의 자연생태계 파괴의 원인과 심각성을 알리는 국립공원살리기 코너도 있다. 이 사이트는 또 외국국립공원의 웹사이트와도 연계돼 있어 국립공원과 관련된 방대한 해외 정보들을 얻을수 있다.앞으로 청소년 페이지도 마련될 계획이다. 공단측은 『지난해 PC통신 하이텔을 통해 국립공원 영상안내 시스템을 개발,서비스해온데 이어 최근 인터넷인구의 크게 늘어나면서 국립공원의 중요성를 널리 알리자는 취지에서 사이트를 개설했다』고 밝히고 『단순한 홍보수단이 아닌 환경운동의 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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