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유적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투입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해커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컴백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유한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9,630
  • 미,캄 원조 일시 동결/내전 지방 확산

    ◎훈센 첫 각의 주재… 권력 굳히기 【워싱턴·프놈펜 AFP AP 연합】 미국은 10일 캄보디아에 대한 원조를 일시동결한다고 발표,무력을 동원해 권력공유 상대방을 강제축출하고 국정전권을 장악한 훈 센 캄보디아 제2총리에 대한 제재조치에 나섰다. 니컬러스 번스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회견에서 “우리는 훈 센에 대해 매우 강경한 노선을 취하고 있으며 훈 센측도 이를 깨달아야 한다”고 경고하면서 올해 책정되어 있던 캄보디아 원조예산 3천5백만달러의 집행을 30일간 동결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캄보디아에 대한 원조예정분중 훈 센체제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을 정밀점검,순수 인도적 차원의 원조분만 재개하고 나머지는 “훈 센이 기존연정체제 회복에 동의,독단적 전권행사를 중지하지 않는 한” 계속 집행을 보류할 것이라고 번스 대변인은 밝혔다. 미국의 이같은 조치는 “훈 센 및 그 관련세력들과는 정상적인 관계를 갖지 않겠다는 다짐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번스 대변인은 강조하고 훈 센측에 대해 파리평화협정을 준수,지난 4년간 지속되어온 노로돔 라나리드 제1총리와의 권력분점체제를 회복시키라고 요구했다. 한편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을 완전 장악한 훈 센 제2총리측은 10일 노로돔 라나리드 제1총리 축출 이후 첫 각의를 열고 권력 굳히기에 들어갔으나 라나리드측 병력은 지방도시를 중심으로 전열을 정비하며 반격을 준비하고 있어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프놈펜 장악후 대세 굳히기에 들어간 훈센 제2총리 진영과 노로돔 라나리드 제1총리 진영간 교전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12세기의 북부 유적지 앙코르와트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캄 내전 악화일로/북부·북서부 전선확대

    【프놈펜 AP AFP 연합】 쿠데타를 일으킨 훈 센 제2총리 쪽에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돼 왔던 캄보디아 내전이 노로돔 라나리드 제1총리측이 세를 규합,반격에 나선 북서쪽에 전선이 형성되면서 지방도시로 확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훈 센측이 장악한 수도 프놈펜은 일단 평화를 되찾았으나 라나리드의 주요 측근이었던 호 속 전 내무담당 장관에 이어 라나리드측 정보업무 책임자였던 차우 삼바스가 사사되는 등 라나리드측 측근인사들에 대한 즉결재판식 처형이 이어지면서 공포 분위기에 젖고 있다. 라나리드측은 80년대 내전 당시 치열한 교전지역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적지인 앙코르 사원 인근의 시엠립을 비롯한 북서부 지방에서 병력을 재집결,반격에 나섰다. 이에 따라 프놈펜에서 시작된 전투가 북부와 북서부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편 노로돔 라나리드 제1총리가 이끌던 푼신펙(캄보디아민족연합전선)당 소속의 테아 참라트 공동 국방장관은 이날 라나리드를 대신해 공동총리직을 맡을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히고 푼신펙 지지세력들에게냉정을 호소했다.
  • 시인 예찬·고반룡의 무석(중국 문학의 고향을 찾아:13)

    ◎수려한 혜산­드넓은 태호 한폭의 산수화/중국의 10대화가 왕발 등 3인도 배출한 예향/고반룡 투신한 연못엔 ‘고자지수’ 안내판만 중국 강남의 들녘을 떠돌다가 산을 만나면 고향인듯 반갑다.넓은 들에 높은 산은 풍요와 운치를 상징하는데 그것들을 두루 지닌 곳이 무석이다.거기에 두개의 산이 있다.하나는 ‘강남제1산’으로 불리는 해발 328.8m의 혜산,하나는 겨우 74.8m의 석산,한때는 주석을 산출했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그들은 형제처럼 동서로 좌정했는데 지금은 혜산의 제1봉으로부터 석혜공원까지 케이블카를 가설,그 품에 많은 고적과 원림을 안고 있다. 혜산과 석산의 동남쪽엔 중국 제3의 호수인 태호가 있다.2천400여㎢의 넓이,그 품에 48개의 섬을 안고,그 겨드랑이에 72개나 되는 묏부리를 거느리고 찰랑찰랑 강강수월래를 추고 있는 형국이다.거기다가 그 언저리에는 오·월과 범여·구천·서시 등의 유적과 전설이 주렁주렁하다. ○시·서·화 3절 겸해 그러니까 무석은 유산유수의 원점이다.언제나 자욱한 안개속에 태호는 사철 그림이다.굵직한 선에 감칠맛 나는 원이다.오밀조밀한 소주와 대조적이다.그래서인지 무석에는 화가가 많다.중국 10대화가로 꼽히는 동진의 고개지(345∼406)를 비롯해 원말의 예찬(1301∼1374),명대의 왕발(1362∼1416) 등 세사람 말고도 ‘말의 천재’라는 현대화가 서비홍(서비홍,1895∼1953)마저 무석 근교 사람이다. 그중에도 예찬은 시·서·화 3절을 겸했다.언제나 갈필에 표일한 구도,물이나 대를 빼놓지 못한 산수 40여폭에 청신하고 아담한 풍격의 시집 ‘청비각집’을 남겼다. 필자는 그를 끔찍이 좋아했다.그의 시화도 시화려니와 사람됨이 그랬다.그는 무석 매리의 지타촌 사람.지금 석산시청의 뒷마을 동정이다.그는 ‘청비각’이라는 장서각을 집안에 차릴 정도로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원말과 명초,군사반란을 일으켜 대주의 나라를 세운 장사성이나 명나라의 개국황제인 주원장의 부름에도 여러 차례 거절한 채 고고하게 살다가 몽골의 오랑캐와 조정의 벼슬아치가 싫어 그 나이 겨우 쉰에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그는 그 많은 재산을 친지와 친척에게 산산이 뿌려주고 일엽편주에 올라 20여년이나 쓸쓸히 태호를 떠돌았다.지독한 가난속에서도 그의 시 한편 그림 한폭을 돈과 바꾸지 않은채 ‘우후공림’이나 ‘수죽거도’·‘오죽수석’같은 작품을 친구에게 맡긴 것이 오늘의 명작으로 남을 줄이야! 그에게는 까다로운 결벽증이 있었다.손님이 다녀가면 얼른 손님이 앉았던 자리를 걸레질했고,뜨락에 가득한 화초마저 물청소를 잊지 않았으니 말이다. ○정치가·사상가로 활동 그의 청고한 인격,속기를 거부하던 인품은 스스로를 학에 비유했으니,그의 대표작 ‘실학’에 잘 드러나 있다. 탁식소송태화봉 직장천지작반롱 불문정동귀화표 응어왕교입태공 행적종횡태석상 한루의구죽림중 청재아역염성부 장탄사승만리풍 (태화봉 소나무에 깃들여 먹이를 쪼며 바로 하늘과 땅을 새장 삼았거늘, 톰방톰방 물시계처럼,죽음으로 가는 소리 듣지말고, 짐짓 신선타고 하늘로 날아야지. 이끼 낀 돌에 오락가락 발자취, 쓸쓸한 다락은 지금도 대숲속에 묻혔거늘, 맑은 집에 사노니,나 또한 비린내 싫어, 만리 바람타고 훨훨 날아보았으면.) 그러나 예찬은 학이 되지 못한채 1374년,강음에 있는 일가집에서 병사,그뒤 고향 무석땅 동북 6㎞ 부용산 남쪽으로 이장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또 하나의 무석사람으로 이 땅에 묻힌 명말의 정치가요 사상가로서 동림학파의 리더였던 시인 고반룡(1562∼1626)이 있다.고반룡 또한 도연명을 방불케 하는 유연자적한 전원시와 북송 성리학을 계승하여 주정사상론을 남겼지만 그의 절개 높은 생애가 우릴 뭉클케 한다. ○높은 비탈에 바람만 씽씽 그는 향리의 동림서원을 부흥,실학을 강론하는 한편 당시 환관으로 내정을 장악,부패와 횡포를 자행하고 있던 위충현의 엄당과 맞서 그를 탄핵하다가 끝내 반격에 몰려 잡히기 직전 후원의 연당에 투신 자살함으로써 끝까지 정의와 진리를 수호했던 사람이다. 필자는 무석에 닿자 서둘러 동정의 예찬 무덤을 찾았다.오래오래 흠모했던 방랑시인은 지금 석산시 청사에서 멀지 않은 용양중학뒤,유항초등학교 옆인 부용산 남쪽 기슭에 ‘원고사예찬묘’란 덩그렇게 큰 묘문안에 안장되었는데 말이산이지 약간 불룩한 언덕이었다. 진관의 무덤은 혜산 제2모봉,무석텔레비전 중계탑 아래,다시 순환도로를 건너 내리막 능선에 숨어 있었다.멀리 태호가 살짝 보이고 건너편 찬산을 굽어보는 곳에.벌써 900년전에 이승을 떠난 그 체백이 남아 있을까? 높이 2m에 너비 66㎝의 청석비에 ‘진용도묘’(용도는 시호) 4글자의 이름표를 달고 있었지만 높은 비탈에 바람만 씽씽거렸다. 그 능선이 멈추고 청산공원이 열리는 곳에 고반룡의 유택,과연 이 고장 동림서원의 스승답게 넓고 아늑한 묘역이 있다.거기선 바람도 멈추고 햇볕도 쌓여 있었다.그러나 그의 자살현장만큼 나그네를 숙연케 하질 못했다.그때 1626년3월 투신했던 고반룡 자택의 연당,비록 그 형상과 주변은 변했을지라도 위치만은 틀림없다는 것이다. 지금 무석시 중산남로에 있는 강남중학의 운동장 북단에서 만난 겨우 열평 넓이의 연못,나무 잎새 모양의 콘크리트 물탱크,그 한복판에 ‘고자지수’라는 안내가 보였다.
  • 밥그릇이나 씻어라/이은윤 지음(화제의 책)

    ◎중국 대선사들의 일화·선문답 풀이 언론인인 저자가 3개월간 중국 11개성의 선종사찰 86곳을 답사,그곳에 주석했던 대선사들이 남긴 선문답을 풀이했다.전4권으로 기획되어 이번에 출간한 제1권은 인도의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건너가 불법을 전한 최초의 선종 사찰인 숭산 소림사를 비롯해 조주 백림선사,진주 임제선사 등 하북 하남성내의 주요 사찰과 유적,그와 관련된 거물 선사들의 일화를 다루고 있다. 달마대사는 서기 520년 소림사에서 9년동안 벽면수행을 하며 선불교를 전하고 죽은뒤 3년만에 부활,다시 인도로 돌아 갔다는 전설때문에 중국과 한국 일본에 신비한 스님으로 알려져 있다.달마대사에게 불법을 구하기 위해 팔을 자르기도한 혜가조사는 70세가 넘어 아예 환속,세속이 곧 극락이라는 대승불교의 교리를 직접 몸으로 실천했다.또 나체의 궁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태연히 목욕함으로써 측천무후를 감탄시킨 숭산 혜안선사,목불을 태워 몸을 녹이고 불상에 올라타는 기행을 하던 단하 천연선사 등의 일화와 그들이 남긴 화두를 재미있게 해설하고 있다.불교 신자뿐 아니라 중국 여행을 계획하거나 중국문화에 관심있는 이들도 흥미롭게 읽을수 있도록 쉽게 썼다.자작나무.8천500원.
  • 페루 쿠스코(세계 문화유산 순례:36)

    ◎잉카제국의 수도… 해발 3,650m에 거대한 요새가…/둘레 1,300m… 중앙엔 대형 해시계/하루 2만명 동원 83년 걸쳐 완성 쿠스코(Cuzco)는 잉카제국의 수도였다.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수목이 드문 안데스 산맥의 줄기 사이에 고고하게 자리한 고대도시.하늘에서 내려다본 쿠스코에는 신비가 가득했다.흡사 한마리의 푸마가 먹이를 막 덮치기라도 하듯 웅크린 형상을 한 쿠스코는 아직도 잉카의 웅혼한 정기를 뿜어내고 있었다.그것은 곧 하늘은 독수리가,땅은 푸마가,땅속은 뱀이 지배한다고 믿었던 잉카인들의 정신세계를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비행기로 수도 리마를 떠나 남동쪽으로 1천㎞쯤 날았을까.만년설의 장관을 구경하는 것도 잠깐,따갑게 쏟아지는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해발 3천248m 고지에 덩그러니 깔린 공항 활주로에 닿았다.트랩을 내려서는 순간부터 숨이 가빠지면서 어지럼증을 느꼈다.여장을 풀기 위해 호텔에 들어서자 지배인이 마테 데 코카라는 차를 한잔 내놓았다.코카인의 원료로도 쓰이는 코카나무 잎사귀로 만든 차다.과거 잉카인들이 만병통치약으로 사용했던 것이라고 했다. ○아마존강 시작되는 곳 쿠스코는 잉카의 본래 말인 케초아어로 ‘배꼽’이라는 뜻이다.우주의 중심을 쿠스코라고 생각했던 잉카인의 의식이 깔린 이름이다.또 이곳이 라틴 아메리카 대륙을 관통하는 아마존강이 시작되는 곳이고 보면,잉카인들은 “모든 길은 쿠스코로 통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공항에서 시내 중심가로 이르는 ‘태양의 길’어귀에는 잉카제국 아홉번째 왕인 파차쿠텍 잉카 유판키의 동상이 우뚝했다.잉카문명의 최번성기를 이룩했던 인물이었다.유판키왕의 동상을 지나면 잉카인의 정신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형상이 나타난다.푸마의 꼬리에 해당하는 곳에 위치한 파차 데 푸마르 추팡이라는 석조물이 그것이다.투유마요와 사피라는 두 강을 끼고 발전했던 잉카문명의 원형을 그대로 보여주는듯 했다.태양을 의미하는 둥근 돌을 중심으로 양쪽에 세워진 돌기둥 사이로 물이 흘렀다. 잉카인들은 뛰어난 도로건설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잉카의 도로는 크게 해안도로와 산악도로로 구분됐다.해안도로는 지금의 에콰도르 북쪽에서 페루해안을 따라 아르헨티나 북쪽까지 이어졌다.산악도로는 에콰도르 북쪽을 출발해 안데스 산맥을 뚫고 쿠스코∼볼리비아∼아르헨티나로 통했다.그런데 도로를 따라 4㎞마다 역참마을을 만들었다.차스키라는 파발꾼도 두어 쿠스코에서 내린 잉카왕의 명령이 3일만에 3천㎞가 넘는 에콰도르 북쪽까지 닿았다고 한다.특히 250m를 뻗어있는 가장 잉카적인 길 카예 로레토(Calle Loreto)를 걷다보면,잉카인들이 얼마나 정교하고 반듯하게 도로를 건설했는지 쉽게 알수 있다. 그러나 잉카의 도로는 잉카제국이 허무하게 무너지는데 큰 몫을 했다.1533년 11월15일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단지 163명의 군사를 이끌고 쿠스코를 공략했을때 잉카 도로는 활짝 열린 대통로 구실을 했던 것이다. ○태양의 신전도 웅장 시내에서 차를 타고 20여분쯤 코리칸차 언덕을 올랐다.무수한 신전 터가 눈에 들어왔다.그중에서도 한가운데 위치한 태양의 신전은 너무 웅장했다.스페인 정복자들이 쿠스코를 점령했을때 높이가 60m에 달했던 이 신전은 외벽이 모두 금판으로 덮여 있었다고 한다.그러나 정복당한 문명 앞에는 가혹한 시련이 기다렸다.정복자들은 기초만 남긴채 신전을 헐어버렸다.그리고 나서 신전의 기초위에 식민시대 건축물과 성당을 세웠다.잉카의 신이 노한 것일까.몇차례의 지진으로 식민시대 건물들은 대부분 무너졌다.반면 잉카인들이 세운 건물의 기초나 벽면은 끄덕없이 남아있다.정교하게 돌을 깎아 벽돌을 쌓듯 만든 벽면은 지금도 면도날이 들어갈 틈새조차 없을 만큼 견고했다. 잉카의 신전은 어딜가나 문이 3개씩 나있었다.잉카인들이 믿었던 세가지 영혼을 위한 것이었다.즉 땅위에 있는 영혼과 사후태양신에게로 간 영혼,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영혼이 이들 3개의 문을 드나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말하자면 잉카의 신전들은 신만을 위한 것이었다기 보다는 신과 인간을 잇는 성소였던 셈이다. ○매년 6월24일 태양제 쿠스코에 남아있는 잉카유적의 압권은 ‘독수리여 날개를 펄럭이라’는 뜻을 가진 3천650m 고지대 유적 삭사이와만(Sacsayhuaman)이다.푸마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삭사이와만은 유판키왕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하루 2만여명씩 인원을 동원한 끝에 83년에 걸쳐 완성한 거대한 요새다.높이 7m에 무게가 126톤이 나가는 엄청나게 큰 돌들로 쌓은 성벽은 1천300m에 이른다.또 정상에는 거대한 해시계를 설치했다.당시 주요 농작물이었던 감자·옥수수의 재배나 수확시기를 가늠하기 위한 시계라는 것이다. 삭사이와만은 잉카제국 멸망후 잉카재건운동을 이끌었던 마지막 왕 망코의 근거지로도 활용됐다.그러나 우세한 화력을 앞세운 스페인군에 패배한 망코는 결국 삭사이와만을 버리고 잉카 최후의 유적지로 알려진 전설속의 도시 빌르카밤바(Vilcabamba)로 숨어들었다고 한다. 삭사이와만 앞에서는 지금도 해마다 6월24일이면 인티 라이미(Inti Raymi)라는 태양제가 열린다.태양제와 관련해서는 전설 하나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잉카의 11대 왕 와이나 카파크가 태양제를 지내던중 갑자기 하늘을 날던 독수리가 떨어졌다.당시 독수리는 왕을 상징했기에 잉카사회가 발칵 뒤집혔다.그때가 1523년인데,그로부터 정확히 10년후 잉카제국은 허망하게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다.독수리의 추락은 잉카의 멸망을 암시한 신의 예언이었을까. 잉카의 흔적은 곳곳에 널려있다.삭사이와만이 쿠스코의 동쪽을 지키는 요새였다면,서쪽 언덕의 켄코(Quenco)유적은 땅속을 지배하는 뱀을 제사한 정신적 요새다.또 언덕 중간에 잉카왕을 알현하러온 각 지역의 족장들이 몸을 씻던 목욕탕 탐보 마차이,숙박시설인 푸카 푸카라 등이 황금제국 잉카의 영화를 증거하고 있다.
  • 고성 군사보호구역내 신석기유적 다량 발굴

    군사보호구역인 강원도 고성군에서 기원전 5000∼4000년경 신석기시대 유적이 최초로 확인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지난 4월24일부터 강원도 고성군 일대 군사보호구역 문화유적 학술조사를 벌여 죽왕면 문암리와 간성읍 동호리에서 신석기시대 토기와 석기를 다량 채집한 것을 비롯해 청동기시대 유적 15개소,고구려 신라시대 산성,고려시대 고분군 등을 확인했다고 4일 발표했다.
  • 바캉스철/민박 가능하고 한적한 해수욕장을 알아보면

    ◎가자! 가족과 함께 바다로/동해 옥계­바닷물과 민물 교차하고 송림 울창한 청정해역/울진 라곡­절경의 바위섬·끝없는 은빛모래 ‘제2의 해금강’/통영 비진도­남북의 두섬 모래띠로 이어논 천혜의 해수욕장 수협중앙회는 최근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섬따라 파도따라’라는 어촌 민박안내 책자를 발간했다. 수협에 따르면 전국에 민박이 가능한 어가는 173개 해수욕장에 4천331가구로 모두 1만7천93개의 방을 보유,7만3천여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수협은 오는 8월말까지 「어촌민박 특별안내기간’으로 정해 지도부(240­2251,2261,2266,2269)에서 안내문의도 해준다.PC이용자는 인터넷상의 수협 홈페이지 http://www.suhyup.co.kr로 들어가 어촌 안내코너로 접속하면 책자의 내용을 열람할 수 있다.천리안 가입자는 “”GO BEACH”로,하이텔은 “”GO ASEAN”의 메뉴를 선택하면 된다. 수협은 민박은 소중한 인간과의 만남으로 물질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금물이라며 민박이용자에게 예의와 품위를 지켜줄 것을 당부했다.아울러 전화예약이 편리하지만 예약을 변경하거나 취소할 때에는 미리 알려줄 것을 당부했다. 민박이 가능한 해수욕장 가운데 일반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한적하고 조용한 곳을 소개한다. ▷백령도 사곳◁ 57㎞에 이르는 해안선을 따라 백사장이 군데군데 널려 있다.특히 이곳에는 세계에서 두개뿐인 천연 비행장이 있다.기암괴석이 수백미터에 달하는 두문진과 심청이의 연꽃설화를 간직한 연봉바위,인당수의 푸른 물결 등 자연의 위대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인천 연안부두∼백령도를 오가는 여객선은 3시간50분 걸리며 하루 3차례 왕복 운항한다.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032)836­6000(옹진수협 백령지소) ▷동해 옥계◁ 바다물과 민물이 교차하며 송림이 울창하고 백사장이 넓다.동해안에서는 드물게 가족이 함께 조개를 주울수 있다.서울∼동해 고속버스는 4시간10분,청량리∼동해 새마을은 5시간16분이 걸리며 동해에서 시내버스가 연결된다.(0394)32­2019(동해시수협 지도과) ▷당진 난지도◁ 2㎞가 넘는 백사장과 따뜻한 수온,푸르고 맑은 바닷물이 자랑.주위에 낚시터도 많고 우럭·놀래미도 심심치 않게 올라오며 5t이상 낚싯배도 빌릴수 있다.이름 그대로 각종 난을 비롯한 약초가 자라고 있어 색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1천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청소년수련마을이 준공돼 30명이상 단체로 이용할 수 있다.서울 남부터미널∼당진,당진∼삼길포 직행버스가 있으며 삼길포∼난지도 여객선이 있다.4시간 걸리는 인천연안부두∼난지도 여객선이 하루 1회 왕복운항한다.(0457)52­2193(난지도 어촌계),50­3428∼9(청소년 수련마을). ▷서천 춘장대◁ 비교적 경사가 완만하고 수심이 앝은데다 바닷물이 맑고 모래사장이 곱다.동백나무 숲에 묻힌 절벽위의 동백정이 절경이다.썰물때는 걸어 갈수 있는 쌍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있다.울창한 아카시아 숲에서 야영도 가능하다.서울∼서천 열차가 3시간30분,서울∼춘장대 고속버스는 4시간 걸린다.서천∼춘장대 일반버스는 30분이 소요된다.(0459)951­1612(서면법인 어촌계). ▷완도군 예송리◁ 6천700여종의 상록수림(천연기념물 40호)과 해안을 끼고 1㎞가량백사장이 펼쳐져 있으며 물이 맑다.밤이면 철썩이는 파도소리가 인상적이다.인근에 고산 윤선도의 유적지가 있어 보길도의 멋을 더해준다.직행버스는 서울남부터미널∼완도가 6시간30분,광주∼완도는 2시간.완도∼보길도 여객선은 1시간.(0633)53­6378(예송어촌계). ▷완도군 가사리◁ 백사장 주변의 자연경관이 아름답다.동백나무 숲이 우거져 있어 편안하게 쉴수 있으며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은 얼음물보다 차 냉수욕도 일품이다.아직 알려지지 않아 아늑하고 조용하다.광주∼마량 직행버스는 2시간,마량∼약산원동 여객선이 40분 걸리며 여객선은 승용차 도선이 가능하다.(0633)53­8316∼7(약산수협 총무·지도과) ▷고흥군 성천◁ 고흥읍에서 25㎞ 떨어진 외나로도섬에 있는 이 해수욕장은 600m에 이르는 백사장과 1∼2m의 얕은 수심으로 가족단위 휴양지로 안성마춤이다.경사도 완만하고 노송숲이 우거져 있다.최근 나로도까지 다리가 연결돼 자동차 이용이 가능하다.광주∼나로도 직행버스는 3시간,순천∼나로도 직행버스는 1시간40분 걸린다.(0666)33­8101(나로도수협 지도과),33­7229(덕흥어촌계). ▷울진 라곡◁ 해금강을 방불케 하는 아름다운 바위섬과 백사장 가운데로 맑은 물이 흘러내려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주변에 덕구온천,성류굴,불영계곡 등 관광지를 끼고 있다.직행버스는 서울 동서울터미널∼죽변이 8시간,강릉∼죽변이 2시간20분 걸리며 죽변에서 시내버스가 연결된다.(0565)82­0575(라곡 어촌계) ▷기장군 임랑◁ 1.5㎞의 백사장에 수심도 1.5m밖에 안돼 가족단위 휴양지로 손꼽힌다.해수욕장과 연결된 임랑강에서 민물낚시와 바다낚시를 함께 할수 있으며 보트도 30여척이 있어 푸른 바다를 달릴수 있다.부산∼임랑간은 버스로 1시간.(051)727­4580(임랑어촌계). ▷통영 비진도◁ 바닷속이 들여다 보일 정도로 맑은 바닷물이 남북의 두섬을 기다란 모래띠로 이어 놓은 천혜의 해수욕장이다.1만m가 넘는 해안선이 흡사 「8’자를 길게 늘여 놓은 것 같다.특히 모래의 질이 좋고 해수욕장 뒤쪽에 울창한 수목이 뜨거운 태양을 막아 줘 피서에 적격이다.백사장 전역에서 야영도 할수 있고 민박을하면서 순수한 어촌 생활을 맛볼수 있다.마산∼통영 및 부산∼통영 직행버스가 각각 1시간40분 2시간 걸린다.통영∼비진도 여객선은 1시간.(0557)646­1222(통영수협 지도과)
  • 시엔정보통신 「인디케이트」 곧 출시

    ◎페허가 된 혹성서 홀로 살아남은 재키 기계제국과 복수 혈전 ‘인디케이트(Indicate)’는 어드벤처 요소가 가미된 액션 아케이드 게임.‘시엔 정보통신(02­872­3820)’에서 만들었다.도스 전용.7월 25일쯤 출시된다. 게임의 무대는 기계 제국의 갑작스런 공격으로 폐허가 된 혹성 ‘바바리아’.유일하게 살아남은 주인공 캐릭터 ‘재키’는 복수를 다짐하고 기계제국과 전투를 벌인다. 게임에는 크게 5개의 스테이지가 등장한다.여기에 약 50여개의 부분 스테이지가 결합되어 있다. 첫번째 스테이지는 ‘아슐라인 돔’.초능력을 발휘하는 슈퍼컴퓨터 ‘파워 큐브’의 부분 시스템을 그대로 갖추고 있어 자기 보호 능력이 매우 뛰어난 곳이다.쉽게 접근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 곳곳에 많은 살상장치를 갖추고 있으므로 게이머는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이곳에 접근하려면 두가지 ID 카드를 얻어야 한다.적들의 공격이 많고 특히 벽에 붙은 무기들이 위협적이다. 두번째 스테이지는 ‘아슐라인 슬렘’.이 도시의 표면은 온통 폐허지만 기계제국은 그 지하에 요새를건설했다.도시 상공에는 기계전국의 전함이 철통같은 경비를 하고 있다.첨단방어시스템으로 무장된 지하도시 곳곳에서 사이보그들과 전투를 벌이게 된다. 세번째 스테이지는 파워 큐브의 직접 제어를 받는 도시인 ‘파워 큐브 서브시티’.이전과는 다른,입체적인 방어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네번째 파워 큐브 서브시티 2는 스테이지 3보다 더욱 강력한 방어시스템이 구축돼 있다.이곳을 돌파해야 마지막 스테이지까지 무사히 갈 수 있지만 무사히 지나는 것은 쉽지 않다. 마지막 다섯번째 스테이지는 유적의 계곡인 ‘파워 큐브 메인시티’.이곳은 바바리아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유적지.유적지 곳곳에 방어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바바리아를 지배하는 기계제국의 본부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곳.유적별로 연결통로가 있지만 한 유적의 방어시스템을 정지시켜야만 다음 유적으로 전진할 수 있다. 게이머는 파워 큐브의 메인시스템에 접근하기까지 강력한 공격을 받게 된다. 주인공 캐릭터인 ‘재키’는 스테이지 초반에는 무기없이 단지 주먹과 발차기만으로 적을 상대한다.이후 스테이지 중간중간에서 얻은 아이템이나 일명 ‘무기 밀매꾼’한테서 구입한 무기로 전투한다. 특이한 것은 이전의 아케이드 게임처럼 무한대로 무기를 쏘아대며 파괴시킬수 없다는 것.무기에는 ‘유한자원’개념이 도입돼 있다.일정량을 소모하면 더 사용할 수 없다.제한된 에너지로 적 캐릭터의 약점만을 신중히 조준하는 동시에 적의 공격을 ‘점프’와 ‘앉기’로 요령있게 피하는 등 공간을 최대한 활용,피해를 줄여야 한다. 또 무조건 ‘파괴’만이 능사가 아니다.적의 보스를 제거해도 특정한 아이템을 얻지 못하면 스테이지를 끝낼수 없다.문제의 아이템은 스테이지마다 비밀장소에 숨겨져 있다.그 장소는 스테이지의 모든 곳을 빠짐없이 돌아다니며 찾아야 한다. 스테이지 안에 또다른 비밀스테이지를 여러개 넣어 아케이드 게임의 단조로움을 없앤 것도 특징이다. 전체적으로 시나리오는 단순한 편이지만 깔끔한 그래픽이 돋보이며 특히 동영상은 외국 게임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 변증법적 문예학/플로리안 파센 지음(화제의 책)

    ◎마르크스주의 문학이론 쉽게 소개 마르크스주의 문학이론과 문학사회학을 알기 쉽게 소개.이상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 루카치와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브레히트,마르크스주의의 이교도인 벤야민,그리고 철저하게 후기 부르주아적이며 역사적 유물론을 은유적으로 환원시키는 아도르노의 문학사상을 다룬다.마르크스주의 문예학의 특징은 심미학적인 추체험(작품미학)이나 현실적 해석(수용미학)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는 점.리얼리즘 문학의 주창자들은 문학을 사회의 반영으로 이해한다.나아가 이들은 아도르노를 제외하고 문학을 사회와 연계된 학문,즉 사회적 실천을 전제로 한 학문으로 간주한다. 벤야민도 지적했듯이 학문이 유행을 따르면 진지성을 잃기 쉽다.우리에게는 언젠가부터 20세기를 마감하는 이 시대를 오로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잣대로만 재단하려고 하는 버릇이 생겼다.그러나 이 책은 테리 이글튼처럼 포스트모더니즘 내지 포스트모더니즘문학을 ‘물화현상’ 혹은 ‘긍정이데올로기’라고 매도하기 위해 씌여진 것은 아니다.다만 현실을 한걸음 물러서서 ‘낯선’ 눈으로 다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임호일 옮김,지성의 샘,9천원.
  • 창덕궁·수원화성 세계문화유산 된다

    ◎유네스코 등재권고 결정… 12월 확정 우리나라의 창덕궁과 수원의 화성이 석굴암 및 불국사와 해인사 장경판고,종묘 등에 이어 유네스코 지정 세계의 문화유산에 등재되게 됐다. 유네스코(UNESCO)산하 세계유산위원회(WHC)는 27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본부에서 열린 제21차 의장단회의에서 우리나라의 창덕궁과 수원의 화성을 세계유산중 문화유산에 등재토록 권고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이들 두 유적은 오는 12월1일부터 6일까지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개최되는 제21차 세계문화유산위원회 본회의에 상정되어 최종 등재 결정이 내려질 예정이다. 유네스코 한국대표부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의장단회의에서 통과된 안건은 95% 이상 본회의에서 통과되므로 사실상 등재가 결정된 것이라고 밝혔다. 창덕궁과 화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서 등재될 수 있는 여섯가지 기준중 2,3,4번째 기준인 ▲건축발전에 있어 중요한 가치를 지닌 사적 ▲현존 또는 사라진 전통이나 문명에 대한 유일하거나 예외적인 증거 ▲인류사에 주요한 발전을 보여주는 건축물로서 탁월한예가 된다는 등의 3가지 기준에 적합판정을 받았다.
  • 모범용사 포항제철 견학/서울신문사 초대 5일째

    서울신문사가 마련한 제34회 「국군모범용사 초대행사」 5일째인 27일 모범용사 61명과 배우자 59명 등 120명은 대구시를 방문,박병련 행정부시장으로부터 시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문희갑 시장이 마련한 오찬에 참석했다. 문 시장은 『국토방위에 헌신하고 있는 모범용사와 가족들에게 2백50만 대구시민을 대신해 감사를 드린다』며 『군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와 사랑이 어느때보다 높은 만큼 본연의 임무에 더욱 충실해 줄 것』을 당부했다. 하오에는 대구 팔공산과 포항제철소를 둘러본뒤 이귀택 제철소장이 마련한 만찬에 참석했다.행사 마지막날인 28일에는 경주시를 방문,유적지 관광과 이원식 경주시장이 마련한 오찬에 참석한다.
  • 수호전 저자 시내암의 흥화(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11)

    ◎시씨 집성촌 시가교장에 유채화 만발/뒤집은 팽이모양의 시내암 모역 성지단장 한창/생명걸고 저술한 수호전은 발분저서의 사표로 나처럼 평생 주먹 한번 써보지 못한 샌님에게는 차라리 무송같은 주먹이 부러울 때가 있다.그래선지 「수호전」그 파란만장의 송강취의를 좋아했고,시내암(1296∼1370)이 살고 그의 유택이 된 강소성 흥화현 신타향 시가교장은 관심을 끌던 곳이다.그럼에도 거기 가는 길은 몹시 불편해서 엄두를 내지 못했다.상해에선 어림 잡아 400㎞쯤이지만 꼬불 꼬불 지방 도로를 몇번인가 갈아타면서 거푸 물어야 겨우 찾을수 있었다.북으로 양자강을 건너 남통과 동대를 거쳐 대풍현 백구진에 이르면 시가교장의 문턱에 닿은 셈이다. 「수호전」의 저자와 저자의 고향과 무덤,그리고 저작 연대에 대한 쟁론은 분분했다.그것은 「수호전」이 비록 북송 말년에서 원말명초에 이르기까지 250여년동안,평화나 희곡의 형식으로 민간에 전래됐던 양산박일대의 관핍민반의 설화를 소설화함으로써 결코 온전한 창작은 아니지만 그를 두고 농민폭동설을비롯 송강투항설·시정 서민의 반란설·충간설·영웅설·악한설등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그의 고향을 두고도 소주·항주·흥화·양주·회안·백구 등의 이설이 있지만 그 어느 것도 틀리다고 할 수는 없다.그의 고향이 소주나 항주·흥화라는 설이 구구하지만 소주는 그의 고향이요 출생지라면 항주는 벼슬하던 곳이다.흥화와 백구는 그가 성장하면서 「수호지」를 완성했던 곳이면서 그가 묻힌 곳이다.다만 현재의 행정구역으로 흥화현 신타향 시가교장으로 불린다.흥화는 옛날 양주에 속했던 군현의 하나요,회안은 시내암이 죽은 곳,그러니까 그 어느쪽에도 인연이 있고 족적이 닿았다. 「수호전」의 저자를 두고도 말이 없지 않았다.「삼국지」의 저자인 나관중과의 공저설이나 나관중의 편집설,심지어 나관중의 저작설이 있지만 시내암의 단독 저작설은 신중국 건국이래 1958년과 1978년,시씨들의 집성촌인 시가교장 근교에서 출토되거나 발견된 시내암의 잔비를 비롯 시씨 종가의 지권기록·시씨 종친들의 묘갈명·시씨 족보·시씨 선영에서 출토된 부장품에 대한 다각적인 연구 결과,시가교장의 시씨 선영에 시내암의 무덤이 있고,그 저자 또한 시내암이 틀림없다는 결론을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필자가 근 10시간을 털털이 버스에 시달리다가 백구진 작은 읍내에 내렸을때 몹시 낯 설었다.심지어 으스스한 느낌이었다.글쎄 양산박의 건달로 뵈는 시커먼 청년 서너사람이 일시에 몰려 와서 나를 에워쌌다.내가 그물에 걸린 물고기로 보였던 것이다.그들은 저마다 오토바이를 몰고 와서 호객을 하는 것이다.여기서는 오토바이가 택시나 삼륜차를 대신하는 모양이다.시가교장까지 왕복하기로 차삯을 인민폐 35원으로 흥정했다. 백구진에서 시내암 무덤까지 약 10㎞는 밀밭을 뚫고 가는 흙길이다.마침 유채화가 한창이다.길옆으로 누런 유채꽃,유채꽃 너머 짓푸르게 키가 훌쭉한 전나무,그 전나무가 휘휘 흔들리는 그림자밖으로 끝없이 아득한 밀밭이 너울거리고 있다.그 세가지 원색은 일망무진의 평행선을 긋고,나는 그 시커먼 녀석이 호마처럼 쿨렁거리는 꽁무니에 붙어 요동을 치고 있다.그 녀석 궁둥이에 깔린 비닐 끈을 꾹참고 눈을 질끈 감았는데 이따금 짝눈으로 뵈는 풍경은 취할만 했었다.그렇게 꼬박 반시간을 달렸다.대영이란 마을에서 우회전,한참 달리다보니 시가교장이라 했다.풍요로운 농가 40,50채가 넘었다.물어보니 지금도 죄다 시가 들만 산다고 했다. 연당이 있고 둥그렇게 시내가 맴을 그리면서 훤칠한 형국을 만들었는데 그중앙에는 시내암의 무덤,그 왼편에는 사당,사당앞에 정각,다시 오른편에는 자료실,자료실뒤로는 칙칙하게 나무들을 심었다.시내암 봉분은 엊그제 묻은듯 밋밋한 흙더미,팽이를 거꾸로 세운듯 했다.그 봉분앞에 우뚝 세운 묘표,「대문학가시내암선생지묘」. 이는 일찍이 1942년과 1957년,흥화현 현청에서 문화유적지로 지정되었던 것을 최근의 발굴과 고증을 거쳐 드디어 그 성역화를 결정,묘역의 확대와 미화에 피치를 올리고 있는데 올 7월에 준공 예정이라고 한다. 좌우를 둘러 보아도 물론 청룡백호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오직 기름진 평야일 뿐이다.거기다 사통팔달의 물줄기들,농토의 관개용이다.그런데 여기서시내암은 630여년전,흉중의 분개를 안고 문을 걸어 잠근채 「수호전」을 완성했던 것이다.물론 그 분개는 그의 짧은 관로와 원군의 무도한 압박때문이었다.벼슬은 내동댕이 치고 원군을 피해 여기 궁벽한 흥화까지 피란했던 것이다.더구나 주원장의 간곡한 청마저 물리친채 오직 「수호전」 완성에 성명을 건 것은 「발분저서」의 사표가 아닐수 없다.여기서 영웅의 무기는 붓이요 또 그것이 불후하다는 것을 재확인하게 된다. 필자는 다시 밀밭길을 달려서 백구진으로 건너가는 나루터에서 오토바이를 내렸다.나루터를 건너면 행정구역으로 대풍현 백구진.하지만 백구진은 옛날 흥화현에 예속되었다. 나루터를 건너 다시 다리를 건너면,두둥실 두채의 건물,그 왼쪽 이층은 「백구문화원」,그 오른쪽에 「시내암기념관」.시내암의 하얀 입상이 서있는,시내암 연구를 위한 자료전시실이다.주로 신중국 건국이래 이 지역에서 발굴된 자료와 연구실적을 통해 흥화의 시가교장이 시내암의 유택이요 「수호전」의 산실임을 입증하고 있다. 이러한 전시물을 참관하는 동안왠지 씁쓸한 생각이 스쳤다.역사적인 인물의 이름이나 뼈다귀를 서로 팔아먹고 있다는 생각이다.흥화현청이 시내암의 묘로 관광수입을 올린다면 백구진은 시내암의 기념관으로 한몫을 보고 있다.이런 일은 「개혁개방」중인 중국 어디서고 보이는 일이다.
  • 유럽건축순례/박호재 지음(화제의 책)

    ◎런던·파리 등 유명 건축물의 「조형언어」 유럽 건축문화의 뿌리를 추적한 역사 기행문.런던 파리 비엔나 등 유럽 도시의 유명 건축물들을 중심으로 그들만의 독특한 조형언어를 살핀다.지은이는 유럽인들의 유난스럽기까지 한 역사유적 보존 노력에서 교훈을 찾는다.하나의 예로 바티칸 베드로성당의 경우 별다른 구조변경 없이 맨 꼭대기 천장공간인 클리어스토리(clerestory)까지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놓은 것은 고풍스런 외양을 보존하면서 건물의 사용가치를 살린 모범사례라는 것.유럽인들은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데 있어 「시간의 축」을 계승하려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루브르에서 그랑 아르슈 신시가지까지 연대기적 직선축을 도시개발의 근간으로 삼은 파리 대개조 계획이나 프랑크푸르트 고시가지 보존계획,그리고 영국의 에딘버러 보존계획 등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뤄진 것들이다.유럽인들이 추구하는 공간문화는 「광장의 문화」다.거듭되는 도시 재구축 과정에서도 플라자,피아자,플라츠 등으로 불리는 광장을 보존하려는 노력은 각별하다.이 책은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시간과 공간의 맥을 잃어버린 한국 건축문화의 현주소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문학동네 7천500원.
  • 인도 함피:하(세계 문화유산 순례:35)

    ◎자연과 어우러진 거대한 「조각도시」 함피의 비자야나가르 유적군은 독특한 대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진 한 무더기의 거대한 예술품이었다.눈에 보이는 것은 벌거벗은 바위산 골짜기와 훼손된 사원 뿐이다.그러나 그것이 이뤄내는 조화는 함피를 차라리 섬세하게 계획된 「조각도시」로 여겨도 좋을 만큼 절묘했다. 함피 유적지는 워낙 넓은 지역에 걸쳐 있어 대충 둘러 보는데도 적잖은 품이 든다.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인도산 택시 「앰배서더」를 한대 빌렸다.1950년대 영국의 「모리슨 옥스퍼드」를 모방해 만든 이 차는 비록 구식이었지만 오토 릭샤보다는 한결 널찍하고 빨랐다. 비탈라 사원으로 먼저 차를 돌렸다.16세기 비자야나가르 왕조가 남긴 최고 걸작품으로 꼽히는 유적이다.유장하게 흐르는 퉁가바드라강을 따라 남쪽으로 한참을 달렸다.멀리 희미한 물상이 망막에 잡혔다.대지의 복사열 때문일까.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비탈라 사원의 모습은 마치 사막의 신기루처럼 가물가물했다. ○곳곳에 훼손된 사원/벌거벗은 바위산과 절묘한 조화 마침내 비탈라 사원.장엄한 건축미에 압도된 채 사원안으로 들어섰다.사원 정면의 한 건물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무얼까.사원 관리인에게 물으니 함피의 명소 「뮤직 템플」의 돌기둥에서 나는 소리를 듣기 위해 모여든 것이라고 했다.관리인은 제 나라의 문화를 자랑이라도 하려는듯 안내를 자청했다.『자,여기를 두드려 볼테니 무슨 소리가 나는지 한번 귀 기울여 보세요』 그는 돌기둥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순간 더할나위 없이 청아한 음악소리가 기둥에서 흘러 나왔다.『사,레,가,마,파,다,니,사』(인도의 도,레,미,파,솔,라,시,도)….제국시절 이곳에서 궁중연회가 열리면 악사들은 아무런 악기도 없이 이 기둥을 두드려 음악을 연주하고,무대에서는 무희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고 한다.「뮤직 템플」은 단지 청각만을 자극하지 않는다.그 기둥에 새겨진 조각상의 정교함과 시각적인 아름다움은 비자야나가르 건축예술의 전범을 보여준다. 높이가 3.6m에 이르는 56개의 돌기둥 마다에 새겨진 사람과 동물의 모습은 살아 숨쉬는듯생동감이 넘쳤다.돌기둥에 삐죽 나온 선반격의 받침돌 초엽은 제비처럼 날렵했다.게다가 이 사원 기둥은 하나의 커다란 돌을 깎아 만든 것이어서 신묘함을 더했다. ○비탈라사원 56개 돌기둥은 손가락으로 때려도 청아한 소리 비탈라 사원의 또 다른 주목거리는 앞마당에 있는 돌수레다.이것은 원래 남인도에서 제단에 모셔진 신상이 바깥 나들이를 할때 사용하던 나무수레를 본따 만든 것이다.화강암으로 된 이 돌수레는 비시누신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비시누신은 피부색이 검고 노란색의 옷을 입었다고 한다.그리고 네 손에는 각각 곤봉과 소라고둥·원반·연꽃을 들고,「가루다」라는 커다란 독수리를 타고 다니는 것으로 묘사되는 신이다.비탈라 사원의 돌수레는 그 「가루다」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한때는 실제로 굴러 갔다는 이 돌수레는 지금은 멈춰서서 움직이지 않는다. 함피의 유적을 답사하는 것은 곧 성지를 순례하는 것과 같았다.끝없이 이어지는 힌두사원과 종교적 우상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일었다.신에 멀미가 나서 아뜩한 정신을 추스리며 꽤 먼 길을 갔다.폐허가 된 옛 왕궁터를 끼고 남동쪽으로 돌자 지금까지 보던 것과는 색다른 양식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지도를 펼쳐 보았다.이곳이 바로 「로터스 마할(연꽃 궁전)」이었다.「제나나」라고 불리는 작은 성벽 안에 있는 이 2층 건물은 왕이나 군사령관이 묵었던 숙소다.종교적 색채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아 우선 신선했다. 「로터스 마할」은 함피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유적 가운데 하나다.이 궁전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건축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로터스 마할」은 인도­사라세닉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매우 복합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궁전을 떠받치고 있는 24개의 사각 기둥들은 화려한 잎사귀 모양의 아치로 연결돼 있어 더없이 위풍당당했다.또 인접한 두 아치 사이의 삼각공간인 스팬드럴(spandrel)에는 원형 돋을새김 흔적이 역력해 환상적인 여운이 감돌았다. 「로터스 마할」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 8각형 구조의 천장이다.천장은 둥근 지붕과 평지붕이 엇섞여 이뤄졌다.그 한 가운데에는 고딕 양식의 대사원에서나 볼 수 있는 고창층이 있어 시선을 끌었다.이곳은 치장벽토로 장식한 아치와 띠조각,굵은 동살,까치발,커다란 닫집인 벽감 등이 정교하게 어우러져 있어 비자야나가르 제국의 뛰어난 건축술이 그대로 엿보였다.기둥과 아치는 회교양식을,바닥·천장·배내기·치장벽토 장식 등은 힌두양식을 따랐다.그토록 상극이던 힌두교와 회교가 비록 건축물에서나마 행복한 결합을 하다니….아이러니와 허무로 가득찬 역사를 「로터스 마할」에서 읽었다. 인도­사라센 양식의 진수를 보았다는 뿌듯한 감흥을 안고 「로터스 마할」을 나왔다.먼 발치에서 다시 돌아보았다.건물 동쪽 모퉁이에 결딴난 채 방치돼 있는 돌기둥같은 물체가 눈에 띄었다.여인상 기둥인 카리아티드(caryatid)의 잔해임에 틀림없었다.그곳에는 뒷발로 일어선 「얄리」의 자취도 남아 있었다.「얄리」는 인도의 건축물에 흔히 등장하는 사자 비슷한 가상의 동물이다.비탈라 사원 돌기둥에서도 「얄리」를 만났다. ○왕이 머물던 「로터스 마할」굴은 인도­사라센 건축양식의 진수 함피에 또다시 아쉬운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일모도궁이라 했던가.마음을 함피 유적에 묶어두고 차에 올랐다.차창밖으로 보이는 진귀한 풍경이 이국정서를 자극했다.네루가 생전에 즐겨 썼다는 네루모에 허리를 감싸는 치렁치렁한 천 룽기를 걸쳐 입은 남자,바느질 없는 원색의 옷감 사리를 휘휘감고 짓붉은 이마점 빈디를 찍은 여인의 모습이 이채로웠다.또 십자 장대목위에 사탕수숫단을 싣고 가는 소며 더위에 지쳐 혀를 한뼘이나 빼어 물은 개,거무튀튀한 맨발에 발가락지까지 낀 낙타몰이꾼….함피는 언제 보아도 넉넉하고 평화롭고 정겨운 「생명의 도시」였다.
  • 화순 운주사·순천 낙안읍성·여천향일암/피서길 가족나들이 안성맞춤

    ◎낙안읍성­선조들의 살던 모습 생생한 민속마을/운주사­사랑의 열병 치유… 천불천탑유래 간직/향일암­아열대 식물 울창… 정상의 일출도 장관 전라남도는 맛과 역사의 숨결이 살아숨쉬는 고장이지만 그동안 발길이 쉬 닿지 않았다.국토의 서남단에 있는데다 지역감정 등 심리적 거리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약은 오히려 풍부한 문화 및 관광자원을 고스란히 남겨 놓아 나들이객들에게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전남도는 최근 지역의 관광자원을 소개하고 가볼만한 관광지를 추천하는 등 「관광활성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이에 발맞춰 일선 자치단체도 내고장 관광자원에 대한 안내책자와 기념품을 배포하는 등 「관광전남홍보」에 열성이다.전남의 볼만한 관광자원을 소개한다. ▷화순 운주◁ 사군 관광 안내책자는 마음이 외롭거나 실연 등 사랑의 열병에 빠져 있을때 이곳을 찾으면 방황의 끝을 보여준다고 소개하고 있다.여기저기 꾸밈없이 흩어져 있는 소박한 석불들이 찾는 이의 마음을 포근히 감싸주기 때문인듯 하다. 운주사는 신라시대 도선국사가 1천개의 불상과 1천개의 탑을 세웠다고 전해지는 곳이다.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에 소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현재 91구의 불상과 21개의 석탑이 운주사 계곡 주변에 흩어져 있다.이중 길이 21m,폭 10m의 와불을 일으켜 세우면 서울이 이곳으로 온다는 전설이 전해진다.산 중턱에 오르면 하늘에 있는 북두칠성의 거리,밝기 등에 비례해 만들었다는 칠성바위도 있다. ▷낙안읍성◁ 마름으로 덮인 한옥과 마당,한켠의 남새밭,대나무로 엮은 사립짝,고샅길을 따라 이어지는 낮은 돌담….순천시 낙안면에 있는 낙안읍성은 우리 선조들이 살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민속마을이다.40대이상의 기성세대들에게는 마치 고향에 온듯한 안온함을 신세대들에게는 조상들의 체취를 엿볼수 있게 한다.지금도 성안에 108세대가 초가집에 살고 있다. 해마다 음력 정월 보름이면 달집태우기,성곽돌기 등의 민속행사가 열리고 10월1일부터 닷새동안 남도음식대축제와 전국대학생 풍물놀이대회가 개최되는 만큼 때를 잘맞추면 기쁨이배가된다.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전통혼례식도 구경할 수 있다.평상이 펼쳐진 민속잔치집,민속향토음식점에서 보리밥,빈대떡,녹두전,더덕주,동동주,식혜 등의 전통음식을 맛볼수 있다. ▷향일암◁ 향일암은 말 그대로 해를 향한 암자로 동해 낙산사와 함께 일출광경의 절경으로 꼽히는 곳이다.해돋이를 한번 구경하고 나면 암자이름을 왜 향일암이라고 지었는지 저절로 느낄 정도로 장관이다.여수에서 돌산대교를 거쳐 남동쪽으로 25㎞쯤 달리면 여천군 돌산읍 율림리 임포마을에 닿는다.기암절벽과 동백나무를 비롯한 아열대 식물의 울창한 수림이 장관을 이룬 마을 뒷편 금오산은 멀리서 바라보면 거북의 모습을 쏙 빼 닮았는데 향일암은 이 산의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가파른 산길과 거대한 바위사이로 난 석문 등 가뿐 숨을 30여분 몰아쉬면 향일암이 나타난다.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향일암 앞마당에 다다르면 평화로운 바다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더구나 바닷가에 있으면서도 염분이 없어 끈적거리지 않아 상쾌한 기분을 느낄게 한다. 허경만 전남지사는 『전남은 탁트인 해상경관을 끼고 있는데다 역사문화 유적지가 풍부하고 먹거리도 맛깔나 전국 최고의 관광지로 손색이 없다』며 『한번 찾아오면 결코 후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2차5개년 문화권 유적 정비계획 확정

    ◎국난극복·유교문화 유적 집중정비/다도해·강화·안동권 포함 7개지역 세분화/1,811억 투입… 1차 미완료 사업도 마무리 문화체육부는 지난 88년부터 추진해온 제1차 문화권유적정비 사업이 올해 완료됨에 따라 내년부터 2002년까지 실시할 제2차 5개년 문화권유적 정비계획을 수립,발표했다. 2차 5개년 문화권유적 정비계획에 따르면 1차 사업이 대상 권역을 백제 신라 가야 중원 및 영산강 유역으로 나눈 것에서 세분화해 백제 신라 가야 중원 다도해 안동,영주 강화 문화권 등 7개로 늘였으며 백제 신라 가야 중원 문화권은 2차 5개년 문화권 정비사업으로 연계 추진하면서 전남 해양과 경기도 강화등 국난극복 현장과 주요 유교 문화유적 분포지역을 집중 정비하기로 했다.이에따라 총 1천8백11억원(국비 1천1백40억,지방비 6백3억,자부담 68억)을 투입해 공주 송산리 고분군 등 48개 유적을 보수 정비하는 것.▲1차 사업기간중 정비가 완료되지 않은 유적가운데 백제 신라 가야 중원지역의 황룡사지,왕궁평 유적,함안 도항리,말산리 고분군 등 29건의 문화유적과 ▲강화지역의 강화산성,다도해역의 전라병영성지,남도석성 등 14건의 해양호국관련 유적 ▲안동·영주 지역의 소수서원과 도산서원 등 5건의 문화유적을 복원 정비하는 내용으로 짜여져 있다. 각 문화권 유적정비 계획은 다음과 같다. ▷백제문화권◁ 1차 정비사업에서 주로 공주·부여 중심의 유적 정비에 그쳐 논산·익산지역 유적정비가 시급한 과제로 남아 1차 정비사업중 미완료된 중요 유적과 논산·익산지역 문화지역을 지속적으로 보존 정비해 백제사와 그 전후의 역사를 재조명하는데 역점을 둔다.모두 4백63억원을 들여 공주 공산성,부여 부소산성,부여 라성,모질메산성,공주 석장리 구석기유적,정림사지,관촉사,미륵사지석탑,궁남지,공주 송산리 고분군,계백장군 유적 등을 정비한다. ▷신라문화권◁ 1차 정비사업에 이어 대표적인 불교·왕조 문화유적을 집중적으로 정비한다.3백17억원을 들여 황룡사지에 신라·통일신라 불교문화의 참모습을 선양하도록 유물전시관을 건립하고 포석정의 모형을 제작 설치하며 경주 남산 일원과 숭혜전을 정비한다. ▷가야문화권◁ 가야유적은 주로 고분으로 이루어져 1차 정비에 이어 김해 금관가야와 고령 대가야,함안 아라가야 유적을 중심으로 추진한다.2백84억원을 들여 김해 대성동·양동리,의창 다호리,고령 지산동,합천 옥천,선산 낙산,함안 도항리,말산리,고성송학동 고분군을 정비한다. ▷중원문화권◁ 산성과 불적을 중점 정비하면서 삼한·삼국시대의 정치·문화·사회상 연구에 빼놓을수 없는 고분군과 초기 백제의 토기생산 과정을 보여주는 유적을 추가로 정비한다.1백48억원을 들여 보은 삼년산성과 법천사지,거돈사지,진천 삼용리 백제요지,청주 신봉동 백제고분군을 정비한다. ▷다도해문화권◁ 국난극복의 해양 호국유적을 체계적으로 정비하며 지역개발 사업을 정비계획과 연계 추진하면서 해양 호국유적의 교육도장 및 문화관광자원 활용가치를 높이도록 한다.2백70억원을 들여 여수 충민사,용장산성,남도산성,장도 청해진유적,검단산성지,연천선소 유적,전라병영성지,전라우수영성지를 정비한다. ▷안동·영주문화권◁ 경북 안동의 문화유적을 집중 정비해 국민교육도장으로 조성한다.1백75억원을 들여 도산서원,소수서원,순흥향교,금성단,안동하회마을을 정비한다. ▷강화문화권◁ 1백52억원을 들여 외규장각을 복원하고 강화산성,고려왕릉,강화선원사지,진·보·돈대,삼랑성을 복원 정비한다.
  • 뿌리잃은 10대(외언내언)

    문화유산의 해를 계기로 최근 한국YMCA연맹이 조사한 「문화유산에 대한 청소년 의식조사」 결과는 그러려니 하고 지냈던 사실의 확인이지만 자못 씁쓸하다.조사 샘플은 강릉·광주·경주·부산등 전국 10개 도시 중고생 1천456명.이들은 라디오에서 국악·민요 등이 나오면 63.3%가 다른 채널로 돌린다고 답했다.자신이 사는 지역의 문화재 이름을 몇개나 알고 있느냐는 문항에는 단 한개도 모른다가 무려 37.3%.평균은 읍면지역 학생이 2.42개,대도시 학생이 1.1개다.결국 1∼2개 정도라면 안다는 학생도 별로 아는 것이 없는 셈이다. 좀 더 보자.아직 유적지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학생이 48.8%,민속공연을 한번도 관람하지 못한 학생이 68.9%다.낭비적 행사가 아닌가 하는 시비를 받으면서도 상당한 향토축제와 민속공연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이 많은 비율의 학생이 전혀 전통문화와 무관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은,이 해가 굳이 문화유산의 해가 아니더라도 논의를 할만한 문제이다. 변화하는 오늘의 세계속에 문화유산은 지금 그저 자신의 과거를 아끼고 사랑하자는 소박한 차원에 있지 않다.세계가 하나로 된다는 것은 어떤 똑같은 세계문화를 공유한다는 것이 아니다.각자가 가진 전통문화의 특수성을 세계속의 가장 세련된 문화로 다듬어 세계인 모두의 것으로 상승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그리고 이 특수한 자기것이 없으면 무명의 시민이 될뿐이다. 이 경향은 이미 모든 생산품 영역에서 확인되고 있다.어느 한 국가의 전통적 문화이미지가 없으면 그나라 제품경쟁력은 약화된다.프랑스의 저명한 사회비평가 기 소르망이 한국 경제의 장래를 우려했던 것도 이때문이다.한국상품에는 문화이미지가 없다는 것이다.오늘의 한국 청소년들이 자신의 문화유산을 듣지도 보지도 않고 자란다는 것은 앞으로 더욱더 발전 기반이 약화된다는 것을 뜻할수 있다.「문화유산이 없는 청소년」에게 세계인으로서의 경쟁력은 없는 것이다.
  • 국내최고 밭터 발굴/대평리서/청동기 주거지·혈유구도 출토

    경상대학교 박물관(관장 조영제)는 지난 3월부터 대평리 옥방선사유적 2지구 발굴조사를 벌여 국내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밭터와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19채,혈유기 62기·매장유구 22기 등을 발굴했다고 18일 밝혔다. 박물관측은 『이번에 발견된 밭터에서 밭을 파헤치고 축조된 청동기시대의 석관묘가 발굴돼 이곳 밭터가 청동기시대 초기나 그 이전에 형성된 것으로 보여 그동안 발견된 이 지역의 다른 밭터보다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박물관은 또 깊이 4∼8㎝의 도량(폭 30㎝)과 이랑(폭 40㎝)으로 형성된 1천600평의 밭너 도랑 곳곳에서 조로 추정되는 탄화곡물이 발굴됐고 토양분석과정에서 벼의 꽃가루가 검출돼 당시의 농경활동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 인도 함피:상(세계 문화유산 순례:34)

    ◎찬란한 힌두문명의 잔해가 숨쉰다/50만 인구 북적이던 제국의 영화 간곳없고 황량한 폐허… 부서진 사원…/성소 비루팍샤 사원 줄잇는 참배객은 맨발로 해탈의 고행/사자머리에 인간의 몸체 흉몰스런 나라심하상에 머리7개 뱀신 「나가」가… 인도 남부의 거대한 유적도시 함피.14세기 중반 힌두문화가 절정을 이루었던 비자야나가르제국의 수도가 함피다.그 도시의 옛 영화를 찾아가는 길은 힌두교의 방랑승려 사두의 고행만큼이나 험난했다. ○비자야나가르제국의 수도 남인도 카르나타카주 호스펫에서 북동쪽으로 13㎞ 거리다.소형 3륜차 뒷부분에 2인용 좌석을 단 오토 릭샤를 타고 어둑 새벽길을 40분 남짓 달렸다.탈탈거리는 오토 릭샤의 운전사 어깨 너머로 황토빛 바위마을이 시야에 들어왔다.1336년 텔루구 부족의 두 왕자 하리하라와 북카가 세운 힌두왕국 비자야나가르가 남긴 「환상의 도시」 함피다.한때 르네상스기의 로마 인구에 버금가는 50만명의 사람들이 살았던 함피는 중세 델리의 전성기에 필적할만큼 번성했다는 것이다.그러나 역사상 유례없는 평화와 번영을 누리던 비자야나가르제국은 1565년 이슬람세력의 침공으로 멸망하고,함피의 영광은 역사의 어둠속에 묻히고 말았다. ○16세기 이슬람침공에 멸망 함피는 지금은 고작 80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한적한 시골마을로 변했다.그 전경을 보기 위해 함피에서 제일 높은 마탕가 언덕에 올랐다.비자야나가르제국의 젖줄인 퉁가바드라강이 한가운데로 흘렀다.강 유역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40여개의 부서진 사원과 바위무더기들이 한데 어우러져 더없이 황량한 느낌을 주었다.무려 26㎢에 걸쳐 있는 이 유적군은 지난 8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기 전까지만 해도 일반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함피의 폐허」를 더듬는 기자의 발걸음은 역사의 무게 만큼이나 경건했다. 먼저 함피에서 가장 중요하고 성스러운 사원으로 꼽히는 비루팍샤 사원으로 향했다.제국시절 화려하게 장식한 마차들이 달렸던 함피의 옛시장 바자르 길을 따라 한동안 걷자 높이가 52m나 되는 거대한 9층 고푸람(gopuram)이 나그네를 반겼다.고푸람은 도시나 궁궐 또는 사원의 입구에 세우는 층이 있는 힌두교식 탑이다.온갖 형상의 조각들로 뒤덮힌 고푸람을 뒤로 하고 비루팍샤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사원 안에서는 모두 맨발로 다녀야 했다.발을 내디딜 때마다 인두로 지지듯 뜨거운 땅기운이 온몸에 스며들었다. 팜파파티 사원으로도 불리는 비루팍샤 사원은 비자야나가르 왕조 이전 호이살라 시대 말기에 처음 세워졌다.그리고 나서 1510년 툴루바 왕조의 크리슈나 데바 라야에 의해 지금의 모습으로 개조됐다.비루팍샤 사원은 전형적인 비자야나가르 건축양식에 따라 널찍한 안뜰을 뒀다.장방형의 경내에는 현란한 만다파(mandapa,홀)와 묘당들이 즐비했다.그중에서 창조의 신인 브라마의 딸 팜파의 결혼을 선포하는 만다파가 가장 눈길을 끌었다.퉁가바드라강의 가느다란 물줄기가 사원의 노천 베란다를 타고 흘러 들어 부엌을 통해 안마당으로 새나가도록 한 설계솜씨는 신기에 가까웠다. ○비루팍샤 경내엔 묘당 즐비 「비루팍샤」는 파괴의 신인 시바신의 또 다른 이름이다.시바는 브라만교의 경전 「리그 베다」에서는폭풍의 신 루드라의 존칭으로,길상을 뜻하는 형용사였다.그러나 시바는 훗날 토착적 요소와 결합해 대중적 신앙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지금도 예배장소로 사용되고 있는 비루팍샤 사원 안의 지성소에는 시바 링가(Shiva linga)라는 시바신의 남근상을 신주처럼 모셨다.그 주위는 신상에 예배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댔다.그들은 저마다 준비해온 야자를 그 자리에서 내리쳐 쪼갠뒤 야자 물을 머리에 바르거나 입술에 슬쩍 댔다가 신상앞에 흘렸다.그리고 무언가 간절히 빌고 있었다.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일까.그들을 보니 문득 『해탈의 길은 맨발로 면도날 위를 걷는 것과 같다』는 우파니샤드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수직으로 솟은 시바 링가와 신의 불꽃을 담은 신성한 불판,버터기름 타는듯한 누릿한 냄새….남인도 어느 힌두사원에서나 볼 수 있는 물신숭배 의식이다.하지만 마지막 힌두왕조의 옛 터전에서 베풀고 있는 그 의식은 보는 이들을 한껏 주술적인 신비감의 늪으로 빠뜨렸다. 길가에 나뒹구는 돌멩이 하나에서도 신의 현현을느낄수 있는 영혼의 나라 인도.인도는 정녕 신들의 고향이다.인도의 모든 마을에는 사원이 적어도 하나씩은 있다.10억 인도 인구의 80% 이상이 힌두교를 믿는다.아니 믿는다기 보다는 힌두신에 취해 산다고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3억이 넘는다는 힌두신들의 어지러운 형상을 머리속에 그리며 햇볕 쏟아지는 광야를 끝없이 걸었다. 광야를 지나 물살 빠르기로 소문난 투루투 수로를 만났다.수로를 지나서 바나나밭을 끼고 돌자 사자 머리에 인간 몸통을 한 흉물스런 나라심하상이 유령처럼 나타났다.나라심하는 보존의 신인 비시누의 네번째 화신이다.1528년 크리슈나 데바 라야의 통치 후반기에 세워진 나라심하상은 높이가 6.7m로 함피에서 가장 큰 조각상이라 했다.마치 연화좌에 올라 요가를 수행하는 요기(yogi)처럼 앉아있는 나라심하의 꼭대기에는 머리가 7개 달린 뱀신 나가(naga)가 버티고 있다.기괴하기 짝이 없었다.나라심하의 왼쪽 무릎위에는 원래 비시누신의 배우자이자 행운과 미의 여신인 락슈미상이 있었다.그러나 무슬림의 약탈로 지금은 여신의 오른쪽 팔 흔적만 남아 있다. □여행 가이드 함피 유적지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교통의 요충지」 호스펫을 기점으로 삼는 것이 제일 편하다.호스펫에서 함피의 중심지인 함피 바자르까지 가는 버스가 상오 6시30분부터 하오 8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된다.요금은 2.50루피(1루피는 우리 돈으로 30원 정도). 오토 릭샤를 이용하려면 50루피의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자전거를 빌리는 것도 경제적이다.호스펫,카말라푸람 등에 있는 자전거 대여점에서 10루피를 주면 하루동안 사용할 수 있다. 함피의 숙소 사정은 여의찮다.세면시설 정도를 갖춘 게스트하우스가 고작이다.그러나 호스펫에는 냉방장치가 된 초보적 단계의 호텔들이 몇군데 있다.호스펫의 숙소들은 모두 24시간제다.
  • 영국 선사유적 스톤헨지(세계 문화유산 순례:33)

    ◎광활한 평원에 거대한 환장열석/영웅무덤·제사유적 추측속 외계인 작품설도/돌한개 최고 50t… 고대인간 능력에 경외심이 던에서 남서쪽 윌트셔지방의 스톤헨지(Stonehenge)로 가는 길은 푸른 목초위에 무리지은 양떼와의 끊임없는 만남이다.한가로운 느낌마저 들게 하는 전형적인 영국 농촌 풍경에서 영국의 모직산업이 얼핏 연상됐다.3시간여동안 눈에 녹색막이 낄 정도로 푸르른 목초지를 지켜보다 솔즈버리 언덕을 넘었을때 거석문화의 잔영 스톤헨지가 눈앞에 펼쳐졌다.갑자기 현대에서 선사사회로 돌아가 버린 듯한 당혹감마저 들게 했다. 첫 눈에는 선사 유적지의 신비스러움에 가슴이 설레이지만 다가 서면 실망감도 없지 않다.들판에 바람을 맞으면서 서 있는 차석주군의 주변을 둘러보면 초목지대 뿐이다.황량하다는 느낌마저 든다.그러나 스톤헨지는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라는 두 시대에 맞물린 선사인류의 기념비적 문화유적이다.고고학자들의 과학적 연대측정에 따르면 기원전(BC) 3850∼200년까지 장장 3천600여년에 걸쳐 만들어 놓은 유적이라는 것이다.돌기둥들을 고리모양으로 둥글게 나란히 세워놓은 이른바 환상열석 유적이 스톤헨지다. 스톤헨지는 바깥 도랑과 둑,네모꼴 광장과 방향표시석인 힐스톤,돌기둥을 세워놓은 입석군,중앙 석조물 등으로 이루어졌다. 스톤헨지의 용도에 대해서는 갖가지 추측과 억측만이 남아 있을뿐 정설이 없다.석기시대의 제사유적이라든지,영웅의 무덤이라는 설이 있다.당시 원시인들의 지적 수준으로는 거대한 돌덩이를 옮겨 정교하게 쌓을수 없다는 이유로 외계인들이 내려와 만들었다는 설은 사뭇 흥미를 끈다. 중국의 만리장성과 이탈리아의 피사사탑 등과 함께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스톤헨지.BC 2세기 시돈의 안티파르테가 선정한 세계적인 수수께끼인 기자의 피라밋 등 고대 불가사의와는 달리 중세 선정된 불가사의의 하나이다.스톤헨지에서 맨먼저 축조된 구조물은 지름 86.6m의 둥근 둑이다.둑의 내부에는 화장한 뼈가루를 넣었던 구멍이 질서정연한 형태로 남아 있다.평상시 육안으로는 둑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없지만 눈내리는 겨울날이면 그 형체를확연히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톤헨지는 고대 인간의 능력에 대한 무한한 경외심을 안겨 주었다.컴퓨터를 만들고 달에 발을 디뎠는가 하면 양을 복제해낸 현대의 과학도 스톤헨지앞에서는 어쩌면 무력한 존재인지 모른다.어떻든 스톤헨지를 계획한 솔즈버리의 선사인들은 원형의 둑을 쌓은 뒤에 뼈가루를 넣는 구멍을 만들었을 것이고,그다음에는 큰 기둥과 난간돌(순석) 따위의 거석을 세웠을 것으로 고고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이즈음에 이르러서 스톤헨지의 신비 하나가 새롭게 벗겨졌다.유적 중앙에 말발굽 모양으로 가지런히 둘러 세워놓은 큰 돌의 원산지가 밝혀진 것이다.블루스톤이라는 이 돌은 스톤헨지로부터 자그마치 385㎞나 떨어진 웨일즈 남서부의 프레슬리산에서 가져왔다.아마도 썰매나 뗏목을 이용해 육로와 해상을 번갈아가며 운반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스톤헨지에서 빼놓을수 없는 방향표시석 힐스톤은 오늘의 국도변에 자리했다.스톤헨지가 태양신앙과 결부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거석 유물이기도 하다.힐스톤은 동쪽을 가르키는데,그것도 하지에 해가 떠는 방향을 정확히 나타내고 있다.우연이었을까,하지날 힐스톤이 가르키는 방향에서 해가 떠올라 중앙제단을 비췄던 시기는 천문학적으로 BC 1840년이라는 계싼이 나온다는 것이다.그리고 힐스톤을 세운 시기를 과학적으로 측정한 연대와도 맞아 떨어져 기묘한 생각이 들수 밖에 없다. 그리고 환상열석 중심축에서 30m를 벗어난 자리에는 「사르센 원」이라고 불리는 둥근 띠가 있다.사르센 원을 따라 가면 두개의 커다란 돌을 세워 놓고 그위에 또 다른 돌을 눕혀 놓은 삼석탑을 만난다.돌 한개의 무게는 25t에서 최고 50t까지 나간다.기중기가 같은 기구가 없던 당시에 50t 무게의 돌을 어떻게 운반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여전히 남는다.학자들은 지레 받침대와 밧줄을 이용해 돌을 움직였을 것이라고 과학적인 추측을 할 뿐이다. 황량하기만한 스톤헨지는 대규모 관광공원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영국의 문화재 관리 기관인 브리티시 헤리티지는 약 6500만파운드(약780억원)를 들여 오는 2000년까지 첨단 레저시설을 갖춘 공원으로 만든다는 것이다.선사인류의 지혜가 가득한 문화유산이 훼손되지 않기를 기대하면서 스톤헨지를 돌아섰다. □여행가이드 영국을 찾는 관광객들 가운데 스톤헨지는 런던시내와 주변의 윈저성 등에 이어 마지막으로 찾는 관광코스이다. 과학과 역사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에게는 교육용으로 더없는 관광거리이다.어린이들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으며 2주일 전에 예약을 해두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성인은 3.5파운드(약4천500원)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하지만 입장권을 사고나면 출입구에 확인하는 사람조차 발견할 수 없어 역시 신사의 나라임을 실감한다. 런던시내 워털루역에서 솔즈베리까지 기차가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되고 있다.솔즈베리에서 타는 관광버스는 편안하게 스톤헨지까지 안내해 준다.아니면 아예 런던시내에서 관광버스를 타면 되고 부근의 「바스」도 함께 관광코스로 끼워 넣으면 좋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