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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문화유산의 해/’97문화계 결산

    ◎수원 화성·창덕궁 세계문화유산 지정 개가 문화유산의 해는 무엇을 남겼나.올해 정부가 정한 문화유산의 해가 지난 8일 폐막식을 갖고 막을 내렸다.올해는 수원 화성과 창덕궁이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돼 우리 문화유산이 또 한번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았다.이같은 분위기와는 별도로 국내에서도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도 적지않게 바뀐 것으로 평가된다.그러나 정작 우리 문화유산을 보호·보존하기 위한 근본적인 제도마련 측면에선 아쉬움이 남는다는 견해가 적지않은게 사실이다. 지난 1월 선포식을 갖고 시작된 문화유산의 해는 다양한 사업을 발표하면서 출발했다.고병익 위원장을 중심으로 운영된 조직위원회는 ‘민족의 얼 문화유산 알고 찾고 가꾸자’라는 표어를 내걸고 조직위 추진사업과 문화재관리국 추진사업을 포함,모두 72건의 사업계획을 발표하면서 공식 활동에 들어갔다. 이같은 사업계획은 우선 문화유산 애호에 대한 국민의식 제고와 전통문화유산의 현대적 계승,문화유산 보존관리의 질적 향상과 관리체제의 합리적 개선을 근간으로 했다.문화유산의 해가 무리없이 출발한 데는 문화체육부 문화재관리국의 예산확보 노력이 큰 작용을 했다.97년도 예산이 전년도보다 3백34억원이 늘어난 1천2백42억원이 확보됐고 지방자치단체도 문화유산관련예산으로 5백44억원을 배정했다.예산확보에 따라 전남 해남군 금쇄동 유적의 정밀조사를 통해 그 중요성을 확인하고 문화재관리국에 문화재로 지정해줄 것을 의뢰한 것을 비롯해 흥례문 복원공사 착공식,세종대왕 즉위의식,국조보감을 왕과 종묘에 올리는 의식,전통왕릉 제례의식 등 궁중문화를 재현해 볼거리들을 제공하면서 문화유산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유발했다.또 그동안 문체부가 정한 문화의 해가 5번째를 지나도록 헌장제정이 없었던데 비해 문화유산헌장을 제정,선포한 것도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수원 화성과 창덕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면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돼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또다른 계기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은 성과에 비해 거시적인 측면의 문화유산 측면은 다소 미흡하다고 볼 수 있다.문화재 분야의 예산이 대폭 확충된 것은 문화유산의 중요성을 인정한 큰 흐름이라고 볼 수 있지만 제도적 장치마련에서는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우선 문화재관리국을 중심으로 추진해온 문화재보호법 개정이 완결을 보지 못했고 문화유산의 해 조직위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매장문화재 제도개선도 충분한 성과를 가져왔다고는 볼 수 없다.또 역사고도 보존특별법 제정,문화재관리국의 청 승격,문화재 관련 고급인력 양성 등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미결로 남아 문화유산에 대한 정책적인 배려와 진취적인 개선은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아도 무난할 것이다.
  • 브라질 살바도르(세계 문화유산 순례:54)

    ◎800여개 유럽 성당·아 사원 한도시에/17∼18세기 바로크·로코크양식 건축물 산재/‘황금성당’ 산 프란시스코·바실리카 대표적 살바도르(Salvador)는 브라질문명의 특이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다.토착 인디오 문화와 식민지시대 유럽문명,그리고 아프리카 토속신앙의 개념이 뒤섞인 복합문명이라고나 할까.어떻든 살바도르는 이 세가지 이질적인 문화적 특성들을 고루 감싸 안았다.그중에서도 3백50만 주민의 거의 대부분이 흑인일 정도로 아프리카 전통이 강했다.이는 365개의 유럽식 성당 말고도 아프리카 전통종교인 칸동블레 사원이 460여개에 이른다는 사실에서 드러났다. 상파울루를 떠나 살바도르까지는 비행기로 4시간 남짓 걸렸다.번화한 도시를 떠나 갑자기 호젓한 도시를 찾아서인지 다소 나른한 기분마저 들었다.그리고 일부 관광객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흑인인 탓에 묘한 이질적 분위기가 감돌았다.하지만 원색의 아프리카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에게서 강렬한 인상이 우러났다.그것은 신선한 충격이기도 했다. ○18세기 중반까지 수도로 브라질 북동부에 자리한 바이아주의 주도 살바도르는 원래 18세기 중반까지 브라질의 첫 수도였다.진화론자인 찰스 다윈이 ‘자연이 만든 풍요로운 온실’이라고 부를 정도로 도시가 아름다운 열대의 자연으로 뒤덮였다.정복자인 프로투갈인들은 1549년 그들의 신세계를 살바도르에서 열고나서 1763년에는 리우 데 자네이루로 수도를 옮겼다.오늘의 브라질리아로 수도를 옮긴 것은 1960년의 일이다. 살바도르는 산토 안토니오 해군기지를 중심으로 해안을 낀 낮은 지대에 형성됐다.도시는 구도시와 높은 구릉지대에 이루어진 신도시로 나누어져 있다.그런데 두 지역은 높이 100m에 가까운 엘레바도르 라 세르타라고 불리는 대형 엘리베이터로 연결됐다.편리한 교통수단이자 희한한 관광상품 구실을 했다. 살바도르를 중심으로 한 바이아주는 당시 남미지역 최대의 흑인노예시장이었다.자연 노예매매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사람이 많았다.심지어 자신들이 부리는 노예에게도 보석을 주어 노예들이 보석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를 놓고 부를 가늠할 정도였다고 한다.구도시 중심가에 버티고 선 메르카도 모델로는 당시 노예의 실상을 짐작케 했다.용도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이 건물은 16년전 대형화재가 났을때 지하의 대형 노예창고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결국 오늘날의 바이아 주민들은 노예로 끌려온 아프리카 흑인들과 인디오들의 피를 함께 물려받은 후손들인 것이다. 한때 번영을 누렸던 살바도르에는 장엄하고 화려한 17∼18세기의 바로크 및 로코코 양식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우선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펠로링요 광장이 그 시대에 건설됐다.1657년 프랑스인 샤를르 벨레비가 청동 300㎏을 들여 만들었다는 광장 한가운데의 분수가 눈에 띄었다.로코코 양식의 이분수에는 가톨릭 성녀와 아프리카 토속신앙에 등장하는 신성한 여인이 함께 조각돼 있다.크게 네갈래로 뿜어내는 물줄기는 바이아주를 지나는 4개의 강을 뜻한다고 한다. ○신∼구도시 엘리베이터로 광장은 유서깊은 건축물들로 둘러 싸였다.그중 하나가 17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바실리카 성당이다.포르투갈에서 들여온 돌로 90년에 걸쳐완성했다는 이 성당은 800㎏의 황금으로 성전 내부를 도금했다.초기에서 후기에 이르는 바로크 양식의 진수 모두가 이 성당에 간직됐다.흥미로운 것은 내부 양쪽 벽면에 세워진 예수상과 마리아상 등의 성상이다.이들 성상의 머리카락은 모두가 진짜 사람의 머리카락이라는 것이다.가톨릭과 칸동블레의 습합 현상을 보여주는 성상의 두발은 당시 귀족들이 죽을때 바친 머리카락이라고 한다.신앙을 향한 깊은 신심을 넘어 섬뜩했다. 광장 한편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갔다.기도하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산 프란시스코 십자가를 지나 50m쯤을 걸어서 ‘황금성당’으로 이름난 산 프란시스코 성당에 다달았다.로코코와 바로크 양식을 혼합한 18세기 건축물인 이 성당은 브라질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통한다.935㎏의 금을 입혔다는성당 내부는 무척 화려했다.그럼에도 성베드로 동상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화려한 성당 내부와 묘한 대조를 이루거니와 어떤 여운을 안겨주었다.폐결핵에 걸린 노예들의 고통을 대신한 것이라는 설명이 그럴듯 했다. ○금 935㎏으로도금 화려 광장 근처의 도로는 돌을 땅에 박아 만들어서 울퉁불퉁했지만 200∼300년전에 만든 길 치고는 여전히 쓸만 했고 정취도 배어있었다.그 길 중간에 갈멜제3성당이 자리했다.외부는 로코코 양식으로 짓고 내부는 네오클래식 양식으로 치장한 성당안에는 유명한 볼거리가 하나 있다.한개의 통나무를 깎아 만든 예수상이 그 것이다.십자가에 못박혀 흘리는 핏물을 2천개의 루비로 표현해냈다. ◎여행가이드/신∼구도시 나눠져 대중교통 보다 렌터카 이용을 상파울루에서 살바도르까지는 국내선으로 4시간 가량 걸린다.비행기편에 따라 다소 다르나 항공료는 1인당 800달러 정도로 비싼편.그러나 국내에 들어와 있는 브라질 항공사의 패키지 상품을 잘 이용하면 500∼600달러로 4∼5개 도시를 여행할 수 있다. 사람들의 인심도 좋은 편이며,주민 대부분이 흑인인 탓에 브라질내 다른지역과는 다른 문화적 특성을 지녔다.그리 많지는 않으나 시내 곳곳의 패스트푸드점을 이용할 수도 있다.살바도르 특유의 음식을 파는 음식점도 값은 그리 비싸지 않은 편이다.도시 자체가 구도시와 신도시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대중교통 보다는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유적들은 좁은 도로를 따라 곳곳에 흩어져 차를 적당한 곳에 세워두고 걸어다녀야 한다.
  • 아프간 내전에 문화재 수난/세계최대 석불 폭격받아 흉물로 변신

    아프가니스탄의 세계적인 고대 문화유적들이 크게 훼손되는 등 심한 수난을 당하고 있다.지난 92년 무자헤딘의 이슬람 혁명 이후 간단없이 계속되고 있는 내전으로,아프간인들의 귀중한 고대 문화유적에 대한 의식이 희박해지며 문화유산의 훼손 행위가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프가니스탄 중부 배미안 계곡에 있는 사암으로 된 한쌍의 거대 석불.서기 300년쯤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한쌍의 석불은 높이가 각각 55m,38m로 세계에서 가장 큰 석불로 알려지고 있다.특히 이 거대 석불은 옷의 모양과 섬세한 조각기술 등이 그리스·인도·중앙아시아 등의 전통기법을 골고루 융합하고 있는 만큼,동서양의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음을 잘 나타내 줌으로써 문화적인 측면에서 보존가치가 매우 높다고 고고학자들은 설명한다. 한쌍의 거대 석불을 비롯,아프간의 고대 문화유적들을 크게 훼손하고 있는 가장 큰 ‘주범’은 바로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 내전.옛 소련군의 침공으로 시작된 아프간의 내전 사태는 정치적 적대성과 종교적 반목이 서로 뒤엉켜,정부군과 반정부군의 입장이 수시로 바뀌면서 피의 보복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지난 5월 이슬람 근본주의를 표방하는 탈레반과 반탈레반 연합세력들간에 벌어지고 있는 내전은 고대 문화유적을 훼손시키는 정도가 극에 달하고 있는 실정이다.세력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탈레반에 쫓긴 반탈레반 연합세력 대원들이 한쌍의 거대 석불 인근의 배미안 계곡에 땅굴을 파고 숨어들었다.탈레반은 이들을 섬멸하기 위해 전투기까지 동원,베미안 계곡은 물론 인근지역에까지 무차별 폭격을 감행했다. 이 때문에 거대 석불의 상호(얼굴)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오랜 비바람의 세월에 시달려온 탓인지 몸체마저도 흉물스럽게 변해 옛 선인들의 숨결을 느낄수 조차 없는 안타까운 처지가 된 것이다. 이에 안타까움을 느낀 고고학자 및 문화재 애호가들은 세계적인 고대 문화유적인 이 거대한 석불을 복원·보존하기 위해 국제사회에 기술적·경제적 지원을 요청하는 등 석불 보존에 발벗고 나섰다.유네스코 문화유산 보존국의 모하메드 자와 사파씨는 “나는 이 귀중한 문화유적을 잘 보존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기를 원한다”며 “더욱이 이 석불이 단지아프간 고유의 유적이 아니라,세계인들의 유적이라는 사실을 전세계 사람들이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 강화도/양이 침략 몸던져 물리친 호국의 섬(테마 탐방)

    ◎고려말∼구한말 수난·항쟁의 역사로 점철/덕진진·초지진·광성호 등 국방유적 많아/고려건축미 간직하 전등사 등 들러볼만 ‘애국’이라는 말의 의미가 새삼 떠오르는 요즘이다.국제통화기금(IMF)으로 부터 달러를 차입할 정도로 나라사정이 어렵기 때문이다.경제 우등국으로 불려온 우리로선 창피하기 그지 없다. 강화도는 문화유적지와 관광자원이 풍부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특히 강화에는 역사의 생채기가 많다.고려말부터 구한말까지 수난으로 점철된 곳이 바로 이곳이었기 때문이다. 나라가 어수선한때 자녀들의 손을 잡고 영욕의 현장을 둘러보는 것도 새삼스러운 감흥을 던져준다.특히 주말이 되면 정체를 빚던 강화도 가는 길은 최근 한결 넓어졌다.강화대교가 개통된데다 김포 누산리에서 강화대교까지의 48번 국도가 2차선에서 4차선으로 확장됐기 때문이다.이 덕분에 소요시간은 30분 가량 당겨졌다.겨울철로 접어들면서 낚시꾼들의 발길도 많이 끊겨 도로사정도 훨씬 원활해졌다. 강화대교를 건너면 강화역사관이 반긴다.학생들의 역사학습장으로많이 이용되는 이곳은 강화의 상고시대부터 근대까지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준다.인근에는 갑곶돈대가 있다.고려가 강화로 도읍을 옮겨 몽고와 항전을 할 때 강화해협을 지키던 요새였다.구한말에는 프랑스군이 상륙했다 양헌수군대에 밀려 퇴각하기도 했던 곳이다. 이와 같은 국방유적지는 강화 전역에 분포돼 있다.대표적인 것이 초지진,덕진진,광성보.특히 신미양요의 최후 격적지인 광성보에는 천혜의 요새인 용두돈대,미국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어재연 장군 비각과 무명용사비가 남아있다. 이밖에 고려궁지 및 강화산성,일본과 강화도조약을 체결한 연무당터도 빼놓을수 없다. 강화도가 고려말과 구한말에 걸쳐 수난의 현장이 된 것은 수로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즉 한강,임진강,예성강이 강화 앞바다에서 서로 만나는데다 한강을 통하면 바로 서울까지 갈수 있다.또 강화 앞바다는 물살이 빨라 적군과 교전하기에 적격이었다. 사찰로는 전등사와 보문사가 있다. 강화도 남쪽 정족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전등사에는 고려의 건축미를 간직한 대웅전,약사전을 비롯한 범종 등의 지정문화재가 있다.전등사 경내 숲길은 운치가 있어 여기저기 거닐면 산책정도의 운동이 된다.삼산면 낙산 기슭에 있는 보문사는 한국 3대 기도사찰 중의 하나로 카페리호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서해 낙조가 절경이다. 화도면 흥왕리에 있는 마니산 참성단은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제단으로 전해진다.전국체전때 이곳에서 칠선녀에 의해 성화가 채화돼 대회장으로 봉송,점화된다. 이밖에 강화의 구경거리로는 서해를 넘으며 서쪽 하늘과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노을.강화도 전체가 여행길로 좋지만 특히 장곶돈대에서 동막리를 잇는 코스는 ‘강화도 해금강’이라고 불릴 정도로 갯벌이 넓고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 스키타이족의 동진(중앙아시아를 가다:8)

    ◎BC 331년 ‘올비아전투’ 대승… 세력 확장/원래흑해 볼가강유역의 종족/중앙아·시베리아·몽골까지 점령/원정지마다 청동·황금공예 전파/고대 동방문화 일대 변혁 불러 중앙아시아 역사는 대단위 기병들이 장거리 원정을 통하여 정복전쟁을 거듭하던 이야기의 연속이다.그 역사의 첫 머리에 혜성처럼 등장한 기마족이 스키타이다.이 호전적이고 잔인한 기마족을 희랍인들은 스키타이,이란과 페르시아인들은 사케 또는 사카라 했다.그리고 중국인들은 색족이라고 불렀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가 쓴 AD 450년쯤 기록에 의하면 스키타이족은 용감하고 잔인한 전사들로 이름이 높았다. 적의 피를 마시고,해골을 기념으로 차고 다녔다고 한다.또 팔의 가죽을 벗겨서 화살통으로 쓰는 등 참으로 형언하기 어려운 잔인성을 보여주었다.이처럼 잔인한 스키타이 기병들은 가는 곳마다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흑해와 소아시아지방은 물론 광활한 중앙아시아가 그들 말발굽에 밟혔다.그리고 동쪽 멀리 시베리아의 바이칼호수까지 달려 갔다. ○호전적이고 잔인한 기마족 스키타이인들은 원래 흑해 북쪽 볼가강 유역에 살던 종족이다.인종적으로는 이란 또는 아리안이라 불리우는 인도유럽족이었다.언어로 볼때는 고대 페르시아어에 가까웠다.흑해 지역에 있던 스키타이 세력은 기원전인 BC 331년 올비아 전투에서 알렉산더 대제가 이끄는 3만명의 강력한 마케도니아 군을 격퇴시켰다.그들이 얼마나 조직적인 군사력을 가졌는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그 이전의 아시리아 기록에 의하면 BC 680년대에 스키타이와 아시리아 사이의 혼인동맹을 맺었다.이는 스키타이인들이 당시 가장 발달한 메소포타미아의 문화와 직접 교류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그 뿐 아니라 멀리 이집트와도 교역을 했다. 스키타이 기병들은 가는 곳마다 발달한 청동기와 찬란한 황금공예 문화를 소개했다.이 스키타이에 앞서 고대 메소포타미아는 인접 지역에 강력한 영향을 주었다.그래서 주위에 발달한 위성문화를 많이 잉태시켰다.그 중의 하나가 스키타이 문화이다.스키타이는 역사에 등장하면서부터 찬란한 청동 및 황금문화를 과시했다.스키타이는 메소포타미아와 그 영향을 받은 희랍의 고대문화를 자신들의 유목생활 감각에 담아 정리하여 빛나는 예술문화를 창조했다.그리고 그 문화를 그들의 기마에 싣고 BC 7세기쯤에 이미 멀리 동쪽시베리아와 몽골지방까지 달려갔다. 그들의 동진은 마침내 스키토시베리아라는 동물형태의 미술양식을 만들어냈다.그들이 싣고온 청동·황금문화와 기마문화는 동방문화에 일대 변혁을 불러 일으켰다.고고학적 연구를 종합하면 이런 결론이 나올수 있다.스키타이의 도래 이전 그러니까 BC 2000년전쯤에 이미 서양인종이 시베리아와 몽골에 먼저 도달했다.이 대목은 매우 중요하다. ○3만의 마케도니아군 격퇴 우리 민족의 먼 고향으로 이해되는 곳이 알타이지방이다.이 지역에는 초기 청동기 문화를 보여주는 아파나시에보 유적이 있다.이미 발굴한 이 유적의 문화를 아파나시에 보문화라 부른다.그 문화의 담당자들은 유럽족이다.그들은 최소한 BC 2000년 이전에 아파나시에보 언저리로 들어왔을 것이다.이밖에 알타이 북부의 삼림 스페프 지역에는 청동기와는 다른 볼세미문화 유적이있다.그 문화의 담당자는 몽골족이다.이 볼세미 유적은 청동기 이전의 문화를 주로 내포했다.그리고 산지 알타이지역인 카라콜에는 아파나시에보문화와 볼세미문화가 복합한 이른바 카라콜문화가 하나 더 형성되었다.그 카라콜문화는 BC 2000∼1700년쯤에 해당하는 시기의 문화인 것이다. 이들 세 문화유적은 동서양의 문화와 인종이 어떻게 섞였는가를 분명히 설명하고 있다.그러니까 스키타이는 유럽족의 동방이동에 따른 제2차 파장이었다.스키타이는 물론 기마병을 이끌고 왔다.말에 대한 이야기는 BC 15세기 메소포타미아인들 입에서 나왔다.그로 미루어 적어도 BC 2000년 훨씬 이전에 동으로 간 유럽족은 말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므로 BC 15세기무렵에 중앙아시아에 기마술이 등장했고,그 기마술은 결국 스키타이의 동방원정 길을 열어주었다. 제1차 인도유럽인들의 동방이동은 세갈래 길로 이루어졌다.첫째 흑해지방에서 메소포타미아의 이란을 거쳐 인도로 가는 남로와,둘째 카시카르를 거쳐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 고비사막으로 이어지는 사막로가 그것이다.그리고 셋째 중앙아시아에서 알타이 산맥을 우회하는 초원로가 있었다.이들 길은 뒷날 비단길 통로의 기초가 되었다. 스텝과 사막 루트는 주의하여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왜냐하면 이들 두 길을 통해서 시베리아와 신강성,몽골지역에 혼혈민족과 민족연합체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그리고 강력한 기마세력 형성을 재촉했다.이와 더불어 흉노족이 등장하여 공전의 대 제국을 창건했다.중국과 동서로마제국을 위협한 흉노에 뒤를 이어 돌궐이 나타났다.기마족으로서의 흉노와 돌궐은 여러가지 면에서 스키타이의 기마문화와 미술을 자기들 품으로 끌어들였다. ○강력한 기마세력 형성 재촉 고구려와 신라는 먼 북방의 흉노와 돌궐의 제국들과 관계를 맺었다.그리고 북방의 기마민족문화를 받아들였다.그보다 앞서 우리민족이 그들과 교류한 흔적이 언어와 인종적 특성에서 어렴풋이 보인다.우리의 선사문화가 알타이 청동기문화와 직간접적으로 관계가 있었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고구려의 각저총에는 코가 큰 서역인과 씨름을 하는 장면이 그려져있다.스키타이인들이 즐겨 쓰던 각배가 신라무덤에서도 나온다.신라 금관은 기마민족들이 신성시하던 사슴뿔을 기하학적으로 정리한 황금관이다.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마제석검은 그 형식이 스키타이의 청동검이나 희랍의 칼과 너무많이 닮았다.우리는 청동기 초기에 청동검을 모방하여 마제석검을 만들었거니와 귀한 청동검 대신에 마제석검을 부장품으로 썼다.우연이 아니다.
  • 그것은 바로 네 마음이니라/이은윤 지음(화제의 책)

    ◎중국 선불교 거물선사 발자취 선불교는 최근 정신분석학,스포츠,경영학 등에 폭넓게 응용되면서 21세기를 이끌 대안 사상으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선사들의 파격적인 기행과 수수께끼같은 선문답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기존의 사유체계를 뒤엎은 일대 의식혁명이었다. 이러한 선문답을 가리켜 흔히 화두라고 한다.화두란 옛선사들이 깨닫게 된 기연을 격언식으로 압축해 표현한 것으로,간결하고 명쾌하게 불법의 진리를 전해준다.‘밥그릇이나 씻어라’에 이어 중국 선불교 답사기제2권으로 나온 이 책은 천하 운수납자들을 깨달음의 세계로 이끌었던 거물 선사들이 남긴 화두를 다양한 일화와 함께 풀이한다.지은이는 현역 종교전문기자. 이 책은 중국 선불교의 돈오 남종 선풍을 확립한 6조 혜능조사와 그가 주석했던 조계 남화선사를 비롯해 동산 5조사,운문산 운문사 등 안휘·호북·광동성 내의 주요 선종사찰과 유적,그와 관련된 선사들을 다룬다.조주종심선사의 스승으로 잘 알려져 있는 남전보원선사는 스승 마조도일에게 욕설도 서슴지 않았고 깨달음을 전하기 위해서라면 살계도 과감히 범했다.선종5가7종 가운데 하나인 운문종을 창시한 운문문언선사는 때로는 독설과 악담으로 때로는 외마디 말로 학인들을 깨달음의 세계로 이끌었다.또 중국의유마거사로 불리는 방온거사는 당시 내로라하는 승려들을 찾아다니며 선문답을 나누다가 선리에 어긋난다고 판단되면 가차없이 귀뺨을 올려 붙였던 일급 풍전한이었다.초기 선종의 법맥이 중심축을 이루는 이 책에는 6조 혜능조사 진신상,신라승려이면서 중국에서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추앙받은 김교각의 육신탑 등 처음으로 공개되는 사진자료들도 실려 주목된다.자작나무 8천500원.
  • 충북 단양 현곡리/고려시대 무덤 36기 발굴

    ◎서울시립대박물관장 박희현 교수팀/모두 돌덧널무덤… 지방 세력가문의 가족묘지 추정/인골·고려청자 27점·토기류·청동제품도 다수 출토 충북 단양군 적성면 현곡리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고려시대 무덤떼가 발굴되었다.이들 무덤에서는 청자를 비롯 백자와 토기,청동공예품 등이 인골과 함께 쏟아져 나왔다.그래서 현곡리 무덤떼는 고려시대 문화 및 사회상을 새롭게 밝혀줄 수 있는 중요 유적으로 떠올랐다. 서울시립대박물관장 박희현 고수팀이 지난 10월 발굴에 들어가 5일 공개한 현곡리 고려무덤은 모두 35기.중앙고속도로 12공구 공사구간에 들어있는 무덤들은 거의가 돌덧널무덤으로 이루어졌다.이들 무덤 출토유물 가운데는 고려청자 27점과 토기병을 비롯한 많은 토기류가 포함되었다.이밖에 청동거울을 비롯 청동합과 수저,청동버클,청동세공품,철궤와 철제가위,철편 등이 나왔다.특히 15명 몫의 사람뼈가 거의 원형으로 출토되어 주목을 끌었다. 청자는 11세기에서 12세기에 이르는 시기에 구어낸 것이 대부분.청자퇴화문접시와 청자양각대접,청자운학문접시와 청자유병,청자상감국화문과형주전자 등 기형이 다양했다.해무리굽 청자 말기의 현상을 보여주는 11세기의 청자접시에서부터 청자상감으로 발전한 12세기의 작품까지 들어있다.비색순청자를 구어낸데 이어 맑고 밝은 유약을 통해 청자상감으로 고려도자문화를 한껏 꽃피운 시기가 12세기.그 도자문화를 반영한 그릇이 이번에 발굴한 청자상감국화문과 형주전자다. 이들 청자는 관요형태의 전남 강진가마 같은데서 구어낸 그릇이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발굴현장을 찾은 충북대 강경숙 교수(도자미술사)는 현곡리 무덤에서 나온 청자를 관요제품으로 볼 수는 없으나 지방요 최고품이라는 말로 그릇의 질을 높이 평가했다.그리고 청자와 함께 나온 백자에도 관심을 둔 강교수는 현곡리 무덤에서 멀리 않은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사자빈신사지탑 근처에 가마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1022년에 세운 이 탑 근처의 가마에서는 청자를 굽다가 백자로 바꾸어 굽던 흔적이 남아있다. 이번에 발굴한 현곡리 무덤떼는 가족묘지라는 것이 발굴팀의 견해.출토유물의 수량이나 값어치로 보아 고려시대 지방 세력가문의 묘지일 가능성이 높다.충주의 호족으로 고려 태조의 세번째 부인 신명순성태후를 배출한 유긍달 가문을 우선 꼽을수 있다.신명순성태후가 낳은 두왕자는 뒷날 정종(923∼949년)과 광종(925∼975년)으로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충주 유씨는 오랫동안 지방호족으로 군림했다.그 일족은 단양과 영월까지 세력을 떨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양은 삼국 초기부터 신라와 고구려를 오가는 문화와 외교,군사적 통로에 자리했다.고려시대도 마찬가지다.개경을 떠나 서울에 와서 남한강뱃길이나 육로로 충주와 황강진,단양을 거쳐야 죽령을 넘었다.남한강 뱃길이 끝나는 단양에는 고려 조운창의 하나인 서창이 있었다.이러한 당시 교통사정을 고려하면 현곡리 무덤의 청자는 경기도 시흥 방산동을 비롯 고양 원당리,장흥 부곡리 등지의 민요에서 구어낸 그릇일 가능성도 있다.
  • 3후보 캠프 “기 꺾을 비책섰다”/TV2차토론회 대책

    ◎한나라당­“협공에 여유로” 해법 마련/국민회의­이인제 후보와 공조 유지/국민신당­“튀지않게” 질문수위 조절 한나라당 국민회의 국민신당 3당후보 진영은 7일의 2차 TV합동토론회을 앞두고 상대의 기세를 꺾을 비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한 모습들이다.토론 결과가 곧바로 지지도로 연결된다고 속단키는 어렵지만 중반전의 선거분위기를 좌우하는데 큰 몫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세 후보진영중 가장 바쁘게 움직인다.강용식TV대책본부장 주재로 연일 대책회의를 갖고 묘안찾기에 총력전이다.일단 해법의 돌파구는 마련했다는 분위기다.감정 컨트롤을 통한 ‘여유’가 그것이다.1차 토론회에서 이인제 후보의 기습공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평가다.따라서 이번에는 감정을 자극하는 어떤 질문에도 맏형같은 넉넉한 자세로 대응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또 주제를 벗어난 질문에는 지금의 국가적 위기를 설명하면서‘딴길로 빠지지 말자’고 점잖게 충고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김대중 후보와 이인제 후보의 협공에도 “어느 당이 안정세력이고 누가 강자인지 보여주는것 같다”는등의 코멘트로 비켜가도록 할 계획이다. 특히 모두연설에서 “어려운 시기에 토론을 하는 만큼 상호 인신공격이나 주제와 관계없는 정치공세를 삼가자”고 두 후보에 제안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이와 함께 당차원에선 성명을 통해 토론회방식의 개선을 주문했다.▲주제를 벗어난 음해와 흑색선전 제지 ▲후보의 경륜과 정책 전달을 위해 후보별 총량시간제로 수정 ▲토론을 서서하는 스탠딩 토론회로 방식 변경 등이 핵심이다.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진영은 지난 1일의 경제분야 3자합동토론회를 계기로 지지세 정체국면 탈출의 계기를 잡았다고 본다. 일단 김후보의 경제 책임론 제기가 유권자들에게 먹혀든 것으로 보는 셈이다.뿐만 아니라 이회창-이인제 두 후보간 난타전으로 반사이익까지 얻었다는 셈법이기도 하다. 때문에 국민회의측은 이같은 기조가 7일 정치분야 토론에서도 이어지기를 바란다.그래서 토론 대처 전략도 양면적이다. 우선 정치분야지만 국민들의 경제불안 심리를 감안,경제회생 능력을 부각시키는데 주안점을 둘 방침이다.이를 위해 김원길 정책위의장 등 당내 경제통들과 이론무장에 신경을 쓰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토론무대에서 이인제 후보와의 오월동주격 공조를 유지한다는 복안이다.이후보가 병역시비로 이회창 후보와 근접전을 펴는 동안 경제책임론 제기로 한나라당측에 함포사격을 가하는 전술이다. 참모들은 흥분하면 손해라는 점을 김후보에게 훈수하고 있다.한 핵심당직자는 “상대후보가 DJP 내각제 합의등에 대한 정략성을 공격해와도 ‘유권자들이 다 알고 계시니까 판단에 맡기겠다’는 식으로 대범하게 넘어갈 것을 주문했다”고 귀띔했다. ▷국민신당◁ 1차 토론회의 여세를 몰아 세 뒤집기를 목표로 초비상사태에 돌입했다.한이헌 정책위의장이 총지휘하는 TV토론회대책위원회가 5일 하오 소집된데 이어 6일 한차례 더 대책회의를 열어 최종 점검한뒤 리허설을 가질 계획이다. 한의장 등 대책위원들은 지난 1일 첫 토론회 이후 각 지구당에서 지지율 상승이 감지되는 등 판세변화가 두드러진 점을 강조하며 일단 지난번 토론회형식이다른 후보 공략과 이인제후보의 이미지 만들기에 성공했다고 보고 있다.점퍼차림의 서민 이미지와 집요한 질문 등이 주효했다는 자평이다.이번 토론회에선 이후보가 꼭같은 점퍼차림으로 등장,지난번과는 달리 비교적 은유적인 표현을 구사하면서도 질문수위는 더욱 높인다는 방침이다.주로 경제파탄의 책임을 추궁하면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두 아들 병역기피를 다시 거론할 것으로 보인다.또 ‘YS 신당지원설’을 명쾌하게 매듭짓고 IMF관리체제의 총체적 위기를 한나라당 이후보와 연결해 위기상황이 초래된 과정추궁과 대안마련에 비중을 두고 질문서와 답변 만들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당직자들은 특히 지난번 토론회때 이후보의 질문 방식이 일부 시청자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얻었다는 지적에 따라 다른 후보들에 비해 크게 튀지 않는 모양새 만들기에 고심하고 있는 눈치다.
  • 기업경영 변화(경제 IMF 대변혁시대:3)

    ◎“죽느냐 사느냐” 벼랑끝 생존게임/수출·한계사업 정리가 유일한 해법/선단·족벌식 재벌체제 대변화 예고 IMF 체제에서 기업의 목표는 ‘생존’이다.경영여건은 70년대오일쇼크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이르고 있다. 피할수 없는 ‘서바이벌 게임’이 기다린다.상황은 급박하다.자금난은 최악의 상태에 놓였고 하루에도몇개나 되는 상장기업이 쓰러지고 있다.살아남기 위해 경영 패러다임의 일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IMF와의 양해각서 서명으로 기업은 안으로는 매출 감소를,밖으로는 자금난심화의 이중고를 겪게된다. 저성장 긴축정책은 경기침체와 소비 둔화를 불러온다.이는 순환고리속에 놓여있다.가계와 정부가 지출을 줄이면 기업의 생산과 매출이 감소한다.가계와 정부의 수입은 줄고 다시 지출에 영향을 미친다.전문가들은 이런 저성장의 악순환이 짧게는 2∼3년,길게는 3∼5년간 되풀이될 것으로 본다.통화긴축과 금융기관의 폐쇄로 자금시장은 수도관이 얼어붙듯 막힌다.금리도 덩달아 치솟아 차입의 어려움은 배로 커진다. 재벌체제에도 대변화가 예고되고 있다.‘한국에만 존재하며 총수 또는 일가에 의해 소유되고 경영되는 기업결합체’.옥스포드 사전에 나와있는 jaebol(재벌)이라는 단어의 뜻풀이다.이제 이 단어가 삭제될 지도 모른다.상호출자와 채무보증으로 단단히 결속된 거대 기업군은 서시히 와해의 과정을 밟게 된다.한국경제의 밑바탕이자 기본틀이 깨지는 일대 혁신이 닥쳐오고 있는 것이다. 변화하지 않고는 기업이 살 수 없다.제도적인 보호막과 부패된 관행속에서 흥청대는 껍질을 벗고 새로 태어나야 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위기시대의 기업 패러다임은 무엇인가.내수부진은 수출로 만회하고 한계사업 정리,신규 투자의 타당성 철저 분석,차입경영 구조 개선,현금흐름 중시,감량경영 등.현대경제사회연구원이 제시하는 경영혁신안이다.이 연구원 정순원 상무는 이를 “매출은 최소한 늘리는 선에서 유지하며 비용과 투자는 최대한 줄이고 자금흐름을 막히지 않게 해야 한다”고 요약해 풀이한다.정상무는 “사업부문별로 경쟁력을 점검하고 종합적 진단을 내려 개별 기업 특성에 맞는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난파위기에 처한 배가 생존에 필요한 것외에 모든 화물을 바다에 던져버려는 ‘해상투하’가 불가피하다”고 기업이 갈 방향을 비유적으로 제시했다.본사건물 매각,종업원 퇴사,본업철수 등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인력을 감축하기 위해서는 ‘생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양해각서 내용에 따라 재벌체제 개편작업에 곧 나설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한 연구소 임원은 “경제전체를 위해서는 재벌의 나쁜 점만 보아서는 안된다”면서 “가장 중요한 산업분야에서 재벌구조는 의사결정의 신속성 등 큰 장점을 갖고 있고 미국이나 일본도 배우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하지만 장기적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재벌체제가 개선돼야 한다는데는 대그룹도 동의하고 있는 것 같다.‘재벌의 빅뱅’도 오고 있다.
  • CD롬 전자족보 출시/사이버공간서 찾아본 우리집안 혈통과 뿌리

    ◎274개 성씨·3천400여개 본관 정리/동영상·사운드 가미 신세대 감각 맞게 집안의 혈통과 뿌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한 족보정보가 사이버공간에서 제공된다. 어렵고 딱딱한 한문투의 족보를 퀴퀴한 냄새가 나는 책자 대신 동영상,애니메이션,사운드를 결합한 멀티미디어 형태로 CD롬이나 인터넷에서 볼 수 있다. 일명 ‘전자족보’제작은 정보통신부가 국책사업으로 선정,현재 한국족보신문사(대표 최실광)가 추진하고 있는 것. 한국족보신문사는 1차사업으로 최근 “성씨와 나의 족보는?”이라는 제목의 CD롬을 개발,출시했다. 이 제품은 우리나라의 현존 3천400여개 본관,274개의 성씨에 관한 정보를 CD롬 8장으로 나눠 수록한 것이다.김,이,박,최 등 4대 성씨는 각각 한장의 CD롬에 담았으며 나머지 성씨들은 4장의 CD롬에 가나다 순으로 정리해 놓았다. 이 CD롬은 ▲시조 및 본관유래 ▲빛나는 우리조상 ▲집성촌 ▲가문의 유적지 등 가문의 역사를 담은 것들과 항렬별 돌림자의 변화를 알 수 있는 항렬표,가문의 계보를 정리한 세계표 등을 성씨별주요 메뉴로 하고 있다. 컬러 이미지,만화,표 등 시각적인 디자인과 내레이터의 음성을 곁들여 족보에 익숙치 않은 젊은 세대들의 감각에 맞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또 뿌리학습코너를 마련,촌수를 계산하는 계촌법,경우에 따라 달라지는 근친간 호칭을 가르쳐 주는 근친간 칭호법,제사의 순서와 지방 쓰는 법 등을 담은 제례법 등 전통예법에 관한 상식을 알려준다. 검색기능도 붙여 검색범위를 설정한 뒤 검색어를 입력하면 바로 관련 정보를 볼 수 있다. 한국족보신문사가 계획하고 있는 이 사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터넷으로 족보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를 위해 이번에 출시한 CD롬을 기초로 내년 1월중 모든 인물의 신상 및 약사까지 담은 완벽한 ‘전자족보’를 CD롬으로 내놓을 예정이다.이어서 내년말까지 서버를 구축,인터넷 상용 서비스를 한다는 복안이다. 이 회사 최사장은 “데이터베이스 및 검색기능 강화에 기술적인 역점을 두고 있다”면서 “특히 흔히 쓰이지 않는 한자들을 이미지폰트로 실어 검색에 불편이 없게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성씨와 나의 족보는?”의 가격은 한장에 4만원.(02)766-7997.
  • 지류 하천변 구석기 유적 첫 발견

    ◎충북 청원군 소로리 금강지류 미호천유역/토양 쐐기구조 찰흙층… 1만5천년전 추정 중부 내륙인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일대 미호천유역에서 대규모 구석기유적이 발굴되고 있다.큰 강가가 아닌 지류의 하천변에서 대규모 구석기유적이 발굴되기는 이번이 처음.지금까지는 한탄강이나 남한강 상류 등 비교적 큰 강가에서 대규모 신석기유적이 발굴되었으나 이번에 발굴하는 소로리일대 유적은 금강지류의 하천변에 자리했다. 소로리 구석기유적은 이웃 남천리와 청원군 오창면 각리와 구룡리에 걸쳐 있다.충북대박물관을 주축으로 서울시립대박물관,단국대박물관,한국자원연구소가 참여한 이번 발굴은 오창과학지방산업단지 건설에 따른 구제발굴.이번 정식발굴에 앞선 지표조사 및 시굴조사에서 이미 많은 구석기유물을 거두어 들였다.특히 시굴조사에는 구석기인들이 살았던 바닥,즉 생활면에 해당하는 문화층도 확인했다. 시굴조사에서 찾아낸 구석기유물은 차돌인 석영을 재료로 만든 외날찍개,긁개,격지,망치 등으로 되어 있다.이들 석기유물은 모두 언땅트기현상을 보여주는 암갈색 찰흙층에서 나왔다.토양쐐기 구조는 지구의 기후가 몹시 추웠던 4차례의 빙하기 가운데 마지막 빙하기인 뷔름빙기때 생긴 지층.이 뷔름빙기는 마지막 구석기인들이 살았던 시대로 보고 있다.그 시대의 인류를 굳이 분류하면 크로마뇽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잘 발달한 미탄층도 이 유족에서 발견되었다.이탄층은 미호천을 배후 습지로 생겨난 지층으로 보고 있는 발굴단은 당시 이 일대의 식생상태를 밝힐 자료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이탄층은 물이나 물가에서 자라는 수생식물이 약간 분해된 상태로 쌓여서 이루어진 지층.특히 벼과의 식물들을 많이 포함한 층위라는 점에서 구석기시대 농경과 관련한 자료가 들어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들 지층 가운데 석기유물이 나온 암갈색 찰흙의 토양 쐐기구조를 한 지층은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구석기유적 등에서도 나타난 현상이다.그래서 소로리일대 유적발굴 결과를 가지고 서로 비교하여 소로리일대의 지층구조는 물론 유적연대,석기의 성격등을 보다 확실히 밝혀줄 길도 열려 있다. 충북대박물관장 이융조 교수는 ‘소로리유적 시굴조사에서 석기가 나온 토양 쐐기구조의 찰흙 지층으로 보아 지금으로부터 1만5천년전을 앞서는 유적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이어 이교수는 유물이 나온 지층 아래층에 마지막 빙하기 초기인 6만∼6만5천년전 언땅트기의 토양쐐기층이 하나 더 존재한다는 사실을 중시했다.왜냐하면 발굴결과에 따라 연대가 더 올라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교수의 견해다.
  • 서울신문사 제정 제13회 향토문화대상/대상에 향토사학자 이훈종씨

    ◎본상 전통문화 4명·현대문화 2명 선정/5일 시상식/LG텔레콤 협찬 서울신문사가 전통문화 계승과 지역문화의 창달에 힘써온 숨은 일꾼을 찾기위해 제정한 제13회 향토문화대상 수상자가 1일 결정됐다. 전통문화부문과 현대문화부문으로 나누어 전국의 시·군·구 문화공보실과 문화원·예총·대학·향토사학자들이 추천한 단체 및 개인을 대상으로 심사한 결과 영예의 대상에는 향토사학자 이훈종씨(79·경기 하남)가 선정됐다. 본상중 전통문화부문에는 ▲김병학(김제문화원장·68·전북 김제) ▲이현구(향토사학자·60·경기 여주) ▲이현석(향토사학자·60·전남 함평) ▲김도윤(향토사학자·73·경북 고령)씨 등 4명이 뽑혔고 현대문화부문에서는 ▲김성순(송파구청장·56·서울 송파) ▲김재호(향토사학자·56·충북 단양)씨 등 2명이 선정됐다. 대상에는 순금 40돈쭝 상당의 메달과 상패,본상에는 순금 30돈쭝 상당의 메달과 상패가 주어진다. 올해 심사는 구상(시인)·차범석(극작가)·임동권(중앙대 명예교수)·정영호(한국교원대교수)·이중한(서울신문 논설위원)씨 등 4명이 맡았다.서울신문사 주최,LG텔레콤 협찬,문화체육부 후원으로 개최된 이번 향토문화대상 시상식은 5일 하오3시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린다. ◎무형문화재 ‘송파산대놀이’ 복원/대상 수상자 이훈종 송파문화재위 고문/삼전도비 현위치 세우는 작업 주도/‘채록민담집’ ‘국학도감’ 등 저서 상당 “상이라는게 무언가 좋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주어 격려하는 것인데 80이 다 된 사람에게 이렇게 상을 주니 어쩐지 쑥스럽기도 합니다” 서울신문사가 전통·지역문화 창달을 위해 주최하는 제13회 향토문화대상에서 영예의 대상을 차지한 이훈종옹(79·경기도 하남시 덕풍2동)이 어렵사리 털어놓은 수상소감이다. 지난 87년 창립된 우리문화연구원의 명예원장이며,송파문화재위원회에서 고문을 맡고있는 이옹은 이제서야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 의아할 정도로 향토문화에 쏟은 정성이 남달랐다.자신이 출생지기도 한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현재의 송파구)일대의 중요무형문화재 제49호인 ‘송파산대놀이’를 건국대 교수 시절 철저한 고증을 거쳐 복원했는가 하면,63년에는 우리 민족에게 치욕을 역사로 남아있는 ‘삼전도비’를 오늘의 위치에 정확하게 다시 세우는 작업을 주도하기도 했다. “일제치하 한 일본인 선생으로부터 가치없는듯 보이는 것들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이 학문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는 이옹은 전래설화중 웃음을 자아내는 이야기들을 모아 ‘오사리 잡놈들’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또 시중에 나와있는 국어사전의 삽화들이 대부분 자신이 쓴 ‘국학도감’이라는 도해사전에서 뽑은 것일 정도로 그림솜씨도 대단한 수준이다.이밖에 ‘전승문물도감’ ‘중국의 고대신화’ ‘채록민담집’ ‘깨가 쏟아지는 우리 선인들의 이야기’ 등 지금까지 남긴 저서도 상당한 수준이다. 지금도 고대소설과 관련된 논문을 준비하고 있을 정도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이옹은 “평소 각급 학교에서 한자교육을 등한시하는 사실이 매우 안타깝다”면서 “한자는 학문을 위한 도구로써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한자교육 없이는 세계화도 안될 것이니만큼 앞으로한자교육을 확대하는 일에 애를 써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본상 수상 6명 공적 ◎김병학 김제문화원장/안위장군 교지 발굴… 국사편찬위 등록 지난 66년 김제문화원 창설이후 12년동안 원장을 맡은 것을 비롯해 문화시설 확보 및 문예진흥기반 조성에 열악한 한경,사업자금 조달에 쪼들리면서도 지난 29년간 지역문화 창달을 위해 헌신 봉사해왔다.이순신 장군과 함께 전투에 참가한 안위장군의 교질르 발굴,국사편찬위원회 사료실에 등록하고 지역주민이 소장한 통문·소지·단지·수기 등을 찾아내 지표조사보고서에 수록되게 했다.향토문화자료 13집을 내고 향토작가 및 백일장 입선작을 모아 8호를 발간했으며 군지·시지 등도 출간했다. ◎이현구 향토사학자/중·고생 2,000명에 문화재 답사 주선 여주군의 향토사학자로 후진양성과 여주군의 유래찾기에 남다른 관심과 열성을 보였다.7개교 중·고교생 2천여명에게 지역에 있는 굽오 제4호인 고달사지 부도와 그밖에 60여점의 문화재를 유적답사케 했다.지난 89년 여주군지를 편찬한 것을시작으로 95년 ‘여주군 문화재대관’,96년 ‘여주고을 지명유래지’ 등 여러편의 지서를 냈다.특히 지난 6월 여주군 향토사료관 개관때 본인이 소장한 대동여지도 등 100여점의 유물을 대여하는 등 민족문화를 알리고 찾고 가꾸는데 남다른 공을 인정받았다. ◎이현석 향토사학자/고인돌·고분·도요지 기록보존 온힘 향토문화가 올바르게 정립돼야 올바른 국사가 정립된다는 소니을 갖고 지난 82년 함평군 향토문화연구회를 창립해 회장직을 맡았다.지난 84년 전국 처음으로 편년체의 순 한글 기록인 ‘함평군사’를 기획·편찬했다.86∼91년에는 ‘우드록’ 등 함평군애 고문헌 7종을 국역해 발간했다.또 79년부터 개인적으로 문화유적 조사를 계속해 그동안 800여기에 이르는 고인돌,140여기의 고분,30여곳의 도요지를 조사해 기록보존을 추진했다. ◎김도윤 향토사학자/대가야 유물전시관·국악당 건립 기여 향토사연구히를 조직해 이를 토대로 각종 문헌을 발굴한 것을 비롯해 선인들의 전기출간과 국악당 등을 건립하는 등에 기여했다.79년 대가야문화권 종합개발계획서를 작성,문화재관리국으로부터 대가야유물전시관 건립 약속을 받아 전시관을 세웠다.83년 독립애국지사 해영 신철휴 선생 기념비를 건립하고 그의 전기도 출간했다.같은 해악성 우륵을 기념하는 대가야 국악당 건립을 위한 사업서를 문공부에 제출,고령에 유치하는데 성공하는 등 공을 인정받아 91년 경상북도 문화상을 받았다. ◎김성순 송파구청장/백제유물 발굴·보호 앞장… ‘문화구청장’ 21세기는 문화의 시대임을 역설하며 구의 행정지표로 삼아 향토문화계승 발전·문화시설 확충과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문화행정을 진두지휘한 문화 구청장,21세기를 향한 문화발전 5개년계획을 수립 실천했다.풍납토성 복원노력과 함께 아파트 건립 등 토목공사시 유물발굴 보호노력에 앞장서왔다.한성백제유물을 구청 현관에 전시,구민에게 지역문화의 뿌리교육을 실시했으며 송파산대놀이·송파답교놀이 전승지원,구립민속예술단 창단 등 향토문화 계승 발전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김재호 향토사학자/단양 수양개유적 국가사적 지정 주도국제학술회의를 통해 단양수양개유적을 아시아 선사문화 연구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로 공인받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이후 외국의 선사고고학자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 단양 답사계획을 반드시 세울 정도가 됐다.그의 노력으로 수양개유적이 국가지정 사적 398호로 지정받았다.특히 95∼96년 단양수양개유적 발굴과정에서 자원봉사자들을 조직해 좋은 성과를 얻었으며 이같은 조사방법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 “단점 덮고 장점 부각” 이미지 높이기/미디어 활용전략

    ◎이회창­양자대결 겨냥… ‘대쪽’광고 히든카드로/김대중­방송계 출신 포진… 말투·제스처 바꿔/이인제­건강·추진력 강조 ‘마라톤’CF에 기대 ‘브라운관을 잡아라’-대선 후보들이 미디어전에 승부를 걸었다.유례없는 미디어 선거가 될 이번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은 TV합동토론회와 방송연설,광고 등 미디어를 통한 이미지 제고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미디어전을 통해 막판 상승세를 가속화해 승세를 굳힌다는 복안이다.특히 이후보는 캐치프레이즈인 ‘깨끗한 정치 튼튼한 경제’를 주제로 이번 대선을 구시대 3김세력과 정치개혁 세력간의 대결로 부각시킨다는 전략이다.종래 순회식 유세방식 대신 대부분의 지방일정을 ‘당일치기’로 소화하기로 한 것도 무게중심을 ‘브라운관’으로 옮기기 위한 차원이다. 이후보가 현재 준비한 TV광고는 ‘기호 1번 승리의 노래편’ ‘택시편’‘퀴즈편’ ‘잘 나가는 한국편’ 등 4종류다.본격 광고전에 대비해 ‘히든카드’를 준비중이다.특히 이후보의 강인한 대쪽 스타일을 강조하기위해 헬기를 동원,인수봉 상공에서 공중촬영을 하기도 했다.제작은 광고대행사인 ‘한컴’이 맡았다. 후보 한 사람에 11차례로 예정된 TV연설에서는 밋밋한 연설대신 표와 그래프 등을 사용,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시킬 예정이다. TV토론회에서는 국민회의 김대중후 보와의 양자대결 구도를 집중 부각시킨다는 방침이다.강용식 TV대책본부장과 박성범 TV대책위원장 등이 세부전략을 수시로 짜고 있다. ○…국민회의는 미디어전에 대선전의 승부를 걸었다.따라서 김대중 후보의 일정도 상당부분 TV토론 준비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데 맞춰져 있다. 국민회의측은 최근 방송대책반을 방송선거대책단(박상천 총무)로 승격시켰다. 여기에는 언론인 출신과 방송기술전문인력이 참여하고 있다.전직 기자이자 김총재 비서실장 출신의 정동채 의원과 작가 겸 방송 사회자 출신의 김한길 의원 및 CF감독 윤흥열씨 등이 주력부대다.이와 함께 정순일 전 KBS보도본부장,최진성 전 KBS기술본부장 등이 가세하고 있다. 이들 미디어선거전 참모들은 김총재의 경륜과 안정감을부각시키는데 주안점을 둘 작정이다.브라운관을 통해 이른바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메시지를 유권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겠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말투나 제스처 등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고 있다. 이를테면 합동토론등에서 투쟁적인 이미지를 주는 큰 제스처를 자제토록 하고 “첫째…,들째…”하는 식의 어법도 지양토록 권하고 있다.논리보다는 감성에 좌우되기 쉬운 방송토론의 메카니즘을 감안해서다. ○…국민신당은 비용절감 차원에서 ‘젊고 활동적인 지도자상’과 개혁의 이미지를 부각시킨 CF와 법정 홍보인쇄물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TV·라디오 연설방송과 합동토론회에 주력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국민신당은 당초 TV광고와 연설방송 등 방송매체를 통한 미디어 선거전에서 이인제 후보 특유의 이미지를 강조,승부수를 던지려던 계획이었으나 자금난에 막혀 궤도수정을 해야만 했다.TV와 신문광고는 보류키로 하고 찬조연설의 경우도 법정 횟수의 절반 정도만 채운다는게 지금까지의 당론이다. 대신 ‘마라톤’과 ‘세계의 대통령’등 이후보의 참신성과 강한 이미지를 부각시킨 1분짜리 CF 2편을 2억원을 들여 제작,보완작업중이며 법정 인쇄홍보물인 선전벽보와 16쪽짜리 소책자·4쪽짜리 전단을 인쇄단계에 있다.CF ‘마라톤’은 대통령 재임기간동안 지구력과 건강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이후보의 추진력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 남산골 공원/도심속에 재현된 600년전 서울

    ◎2만4천평 규모의 시민공원 조성/타임캡슐광장­생활문물 600점 매장… 2394년 공개/전통정원 조성­향토수중 식재… 옛남산 정취가 물씬/한옥마을 복원­민속적 가치 높은 한옥 5채 재건립 서울은 도읍지가 된지 600년이 넘었지만 ‘역사속으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경복궁,비원 등 일부 고궁과 남대문,동대문 등의 유적이있지만 전체적으로 유구한 역사에 비해서는 빈약한 감이 없지 않다.보존보다는 허물고 새로 짓는데 길들여진 탓이다. 내년 봄이 되면 서울 남산에 서울의 과거,현재,미래를 볼수 있는 곳이 들어선다. 중구 필동 옛 수도방위사령부 터 2만4천여평에 조성되고 있는 남산골 공원이 바로 그 곳. 타임캡슐광장,전통정원,한옥마을 등 세부분으로 나뉘어진 이 공원은 타임캡슐광장,전통정원은 이미 조성이 끝났고 한옥마을은 거의 마무리단계에 와있다. 남산골 공원의 상층부에 위치한 타임캡슐광장은 서울의 미래를 잉태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서울 시민들의 생활상을 엿볼수 있는 문물 600점이 지하 15m에 매장돼 있다.서울 정도 600주년인 지난 94년 11월29일의 일로 벌써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타임캡슐은 정도 천년이 되는 2천394년에 공개될 예정이다.그래서 분화구모양으로 된 광장의 회랑을 거닐면 600년전과 400년뒤가 함께 느껴져 상념에젖게 한다. 타임캡슐광장에서 내려오면 전통정원과 마주친다. 남산의 산세를 살리기 위해 구릉지와 계곡을 완만하게 조성한 이 정원에는 소나무 등 향토수종이 주로 배치돼 있으며 느티나무,수양버들 등이 뒤를 바치고 있다.옛 남산의 정취를 살리기 위해 골짜기도 인공적으로 조성해 놓았다.하류의 연못에서 물을 끌어올려 계곡으로 방류하는데 내년 봄부터 가동될 예정이다.골짜기 중턱에는 수필집을 통해 청렴,결백으로 상징되는 남산골선비의 모습을 일깨워준 일석 이희승 선생의 추모비가 서 있다. 또 구불구불한 산책로를 따라 내려오면 꿩과 까치가 양지바른 곳 잔디밭에서는 한가롭게 뛰노는 모습을 볼수 있으며 곳곳에 정자가 있어 발걸음을 쉬게 한다.전체적으로 번잡하지 않고 고즈넉한 분위기여서 도심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곳이 전통한옥 복원지역.2천400여평에 형태가 독특하고 원형을 잃지 않아 민속자료로서 가치가 높은 정규엽가옥 등 5채가 복원되고 있는데 11월1일 현재 92%의 진척도를 보이고 있다.올 연말까지면 벽지,천정,장판,창호지 마감작업 및 마을 공동광장 마사토 포장이 모두 끝나게 된다. 이와 함께 내년 3월까지 가옥 내부에 장롱,문갑,뒤주 등 전문가의 고증을거쳐 제작한 가재도구를 배치할 예정인데 현재 75%정도의 공정을 보이고 있다. 한옥촌이 문을 열면 침선,공예,민화교실과 서당 등 다양한 취미강좌가 개설돼 시민들과 호흡을 함께 하게 된다. 한편 한옥촌 초입에 있는 공예전시관은 이미 공사가 끝났다. 이곳에서는 나전칠기 전통매듭 등을 만드는 방법이재현되고 각종 공예품도 판매된다. 공예전시관 앞 빈터는 소극장으로 활용될 예정이다.소극장은 누각과 연못을 마주보고 있어 널뛰기 그네뛰기,윷놀이 등 민속놀이와 전통혼례식을 개최하기에 적격이다. ◎남산골 공원지역 유래/조선시대 벌칭 청학동… 시인 묵객 많이 살아/1730년경 군대첫 주둔… 이후 군사용 활용 남산골 공원이 조성되는 곳은 옛부터 시인 묵객이 많이 살아 조선시대에는 청학동이라고 불려져 왔던 곳이다. 도교에서 청학은 영생하는 학을 말하는데 경치가 절경인 곳에서 산다.이곳이 청학동이라고 불린 것은 청학이살만큼 산수가 좋았기 때문이다. 빼어난 산수는 글재주가 있는 사람을 끌어 모운다. 조선조 초기 좌의정을 지낸 용재 이행은 이곳에 천우각이라는 정자를 지어 놓고 여름철 더위를 피했다.그는 중국 사신이 우리나라에 오면 찾았을 정도로 시에 능했다.또 그의 증손자인 이안눌도 시문에 뛰어났다. 남산은 수도 서울의 중앙에 있는 산이다.시민들의 쉼터도 될수 있지만 군사목적으로 이용될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조선초 태조가 인왕산,남산을 연결하는 도성을 축조한 것이라거나 봉수대로 활용된 것이 이를 말해준다. 그러나 남산골 공원이 군사용으로 활용된 것은 한참뒤의 일이다.영조때인 1천730년대 조정은 이곳에 139칸의 집을 짓고 수도 서울을 지키는 남별영이라는 군대를 주둔시켰다.얼마전까지 수도방위사령부가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묘한 인연이다. 일제시대에는 헌병대사령부가,해방후에는 수경사가 들어서 지난 94년까지 주둔했다. 남산골 공원에 가는 방법은 지하철 4호선 충무로 역에서 내려 ‘한국의 집’쪽으로 가면 된다.공원내에 주차장이 없기 때문이다.전통 한옥촌은 공사가 한창이지만 이미 완공된 타임캡슐광장과 전통정원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여유있게 구경할 수 있다. ◎복원예정 한옥 5채의 특징/정규업 가옥­순종때 지은 왕제사 행차용 집/이진승 가옥­철종때 부마 박영효의 개인집/서용택 가옥­정문 계단 난간석은 미의 극치/김홍기 가옥­안채∼사랑채 연결한 사대부집/조흥은 가옥­유리문 등 개량한옥 양식 도입 서울시내에 산재해 있다 남산골로 이전 복원되는 5채의 한옥은 모두 나름대로 특징이 있다. 동대문구 제기동 정규업 가옥은 조선 순종의 처삼촌인 윤덕영이 왕의 제사행차때 편의를 돕기 위해 지은 제사가옥이다.위에서 내려봤을때 사당을 정점으로 가옥구조가 으뜸 원꼴을 하고 있으며 목재는 경운궁을 헐면서 나온 홍송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경인미술관에 있던 이진승가옥은 조선말 철종때 영혜공주의 사위 박영효의 집으로 서울 8대가 중의 하나다.부엌과 안방이 일자로 남향하고 있으며 서울에서 보기 힘든 개성지방의 주택양식이다. 종로구 옥인동 서용택 가옥은 조선말 순종 윤비의 저택이었다고 전해진다.이 가옥은 정문 계단 양쪽의 난간석이 매우 아름다운 구한말 최상류층의 가옥이다. 종로구 삼청동 김홍기 가옥은 안채와 사랑채가 전체적으로 연결돼 있다.사대부의 가옥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조선말기 서민주택의 양식을 볼수 있다. 중구 삼각동 조흥은행 관리가옥은 전통적인 안채와 별당채를 갖추면서도 유리문 등 개량한옥의 양식을 취하고 있다.지붕의 한쪽이 길고 한쪽은 짧은 특이한 양식을 띠고 있다. 서울시는 당초 이들 한옥을 뜯어 남산으로 옮겨 복원하려 했으나 70% 정도는 새 것으로 교체했다.대부분 지은지 100∼200년이 지나 목재의 상당부분이 썩거나 안전상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그러나 외국산 소나무를 전혀쓰지 않고 강원도 강릉과 설악산에서 소나무를 벌채,6개월간 건조시켜 사용했다.
  • 자녀에 내집 마련 꿈 심어주자/주택은 ‘차세대 종합통장’ 관심

    ◎만24세이하 증빙서류 제출 가입/20세 넘으면 민영청약권도 부여/유학·결혼·학자금 등 대출 가능 어린이에서부터 만 24세 이하의 자녀를 둔 사람이라면 재테크로 주택은행에서 판매하는 ‘차세대 주택종합통장’을 노크해 볼만하다.이상품은 특히 만 20세가 되면 민영주택 청약권이 부여되는 예금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린 자녀들에게 미래에 내 집 마련의 꿈을 키워주는 라이프 사이클(Life Cycle)형 상품. 이 통장은 만 24세 이하의 자녀 이름으로만 가입할 수 있다.생후 몇개월밖에 안됐더라도 주민등록등본이나 의료보험증 등의 증빙서류를 제시하면 가입할 수 있다.계약기간은 3년 단위로 최고 30년까지 거래할 수 있다.금리는 3년까지는 연 9%,그 이상이면 2% 포인트의 우대금리가 가산돼 연 11%로 높아진다. 월 불입액은 24세까지는 25만원,가입 이후 25세 이상이 되면 30만원까지늘려 1만원 단위로 가입자가 자유스럽게 납입할 수 있다.부모가 자녀의 이름으로 가입하고 불입하는 상품이나 증여세는 부과되지 않는다.세법에 미성년자는 최초 5년간 1천5백만원까지,20세 이상 성인이 되면 최초 5년간 3천만원까지는 증여세를 면제토록 돼 있기 때문에 25세 이상 여부에 따라 월 불입액을 25만원 또는 30만원으로 제한했다.자동적으로 증여세 부과대상에서 제외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통장은 가령 10세인 자녀 이름으로 가입했다가 자녀가 만 20세 이상이 되면 민영주택 청약권이 부여되는 청약부금 또는 청약예금으로 전환할 수 있다.만 20세가 되면 은행에서 거래 통장에 20세가 됐다는 사실을 자동으로 표시해준다.추후 주택청약시 불필요한 잡음이 없게 하기 위해서다. 주택촉진법에는 만 20세 이상으로 소득이 있는 사람으로 세대주여야 청약자격이 주어지게 돼 있다. 청약부금이나 청약예금으로 전환하면 청약 순위 기산일은 전환한 날부터 계산된다.1순위는 전환후 2년,2순위는 1년이 지나면 주어진다. 이 이외에도 이 통장에 가입하면 각종 주택자금이나 가계자금도 대출받을수 있다.주택자금으로는 주택의 신축,구입,임차,개량,대지구입자금이 해당된다.대출신청일 현재 1년 이상 거래하면 통장평균 잔액의 20배 범위에서 주택자금대출 종류별 최고한도 범위까지 대출받을수 있다.통장 평균잔액은 은행에서 자동적으로 계산된다. 또 학자금이나 결혼자금 질병의료비 해왜유학자금 가계긴급자금 등의 가계자금 대출도 가능하다.대출 신청일 현재 3년 이상 거래하면 된다.학자금은 통장 평균잔액의 5배 범위에서 5백만원까지,결혼자금은 1천만원까지,질병의료비는 3백만원까지,해외유학자금은 1천만원까지,가계긴급자금은 3백만원까지다. 주택자금이나 가계자금은 1년짜리 일반대출로 현재 금리는 연 12.5%.1년이 지난뒤 원금의 10%를 갚는 방식으로 두차례까지 연장할 수 있다.이 통장에 가입했다가 1년 이내에 중도해지하면 금리는 연 2%,3년 이내에 중도 해지하면 연 5%가 적용된다. 올해 처음으로 초·중·고교생 800명의 고객을 추첨,‘파워 캠프’를 실시했으나 내년에는 1천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중이다.파워 캠프는 전국을 5개 권역으로 나눠 명승지나 유적지 등을 탐방한 뒤 마지막 날에는 속리산에 집결해 해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1주일 코스로 무료다. 주택은행은 특히 내년에는 가입 6년차인 고객들을 대상으로 특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을 강구중이다.금리를 더 얹혀주는 방식이 아니라 가령 송금 수수료나 수표발행 수수료를 면제해주는 등의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경영혁신을 위한 경비절감 등 허리띠를 졸라매는 가운데서도 내년에도 우수 거래학교에 연 2회 장학금을 주는 수혜 대상자를 올 수준(720명)을 유지할 계획이다.
  • 러시모어 ‘큰바위 얼굴’(미국의 대통령 문화:1)

    ◎바위산에 숨쉬는 ‘민주주의 유산’/워싱턴 등 국가초석 다진 지도자 4명 각인/매년 순례객 300만명… 민주주의 전당으로/조각가 보글럼부자의 대이은 대역사… 17년만에 완성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탱하고 있는 정치문화는 ‘대통령문화’로 요약할 수 있다.독립선언 이후 연방헌법제정까지 10여년간의 과도기를 거쳐 1789년 역사상 최초의 대통령제로 출범한 미합중국은 200여년 동안 41명의 대통령을 배출하며 줄곧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왔다. 대통령은 ‘국민의 나라’로,국민은‘대통령의 나라’로 간주하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이 미국의 민주주의는 20세기말,인간이 선택한 최선의 정치제도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채 21세기를 준비하고 있다. 오는 12월 치러질 15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본지는 미국의 대통령문화 대탐방을 시작한다.역대 대통령의 출생지와 박물관을,대통령도서관을,또 역사의 현장들을 찾아간다.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헌신하고,국민들의 마음속에는 대통령이 살아 숨쉬는,미국땅 구석구석에 보석처럼 빛나는 참 민주주의의 전통은 50년 민주주의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나가야 하는 ‘한국대통령문화’에 좋은 방향을 제시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아메리카의 역사가 끝없는 능선을 따라 영구히 펼쳐질 바로 이곳에 워싱턴,제퍼슨,링컨,루즈벨트와 같은 위대한 지도자들을 높이 새깁시다.위대함이 넘쳐나는 그들의 말과,그들의 얼굴을.그 기록들은 바람과 비만이 닳아 없앨뿐 영원히 보존될 것입니다.” 1927년 8월10일,미중부 대평원 사우스 다코타주 서남부에 우뚝솟은 블랙힐즈산맥의 러시모어 산기슭 마을 키스톤에서는 4명의 위대한 역대 대통령상을 바위에 새기는 20세기 미최대 역사의 착공식이 진행되고 있었다.당시 최고의 조각가로 명성을 날리던 거츤 보글럼의 음성은 6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힘찼으며 새 꿈에 가슴벅차 했다. 이 꿈은 경제대공황을 거치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마침내 이뤄졌다.70이 넘은 나이에도 가파른 바위를 나르듯 오르내리던 보글럼은 비록 완공 7개월을 남겨놓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대를 이어받은 아들 링컨 보글럼이 마무리 지었다.41년 10월31일,그가 러시모어산 꼭대기에서 마지막 드릴을 갖고 하산함으로써 완공됐다. 1천7백m 바위산에 매달려 강풍과 추위 등 온갖 악조건속에서도 오직 후세대에게 자유와 민주주의의 유산을 전해주겠다는 보글럼의 신념으로 완성시킨이 위대한 조각은 이곳을 ‘민주주의의 전당’(Shrine of Democracy)이라고 불리게 하는 불후의 기념비가 됐다.이곳은 미 대통령문화의 진원으로 매년 3백만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보글럼은 당초 인디언 전사 등 이 지역 전설적 인물들의 암각을 의뢰받았으나 전국적 인물,특히 미국가건설과 민주주의의 초석이 됐던 대통령들을 새길 것을 권고했다.따라서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던 조지 원싱턴과 독립선언서 기초및 대양국가 개념 확립의 토마스 제퍼슨(3대),연방 구출및 노예해방의 에이브러함 링컨(16대),미국민에 가장 호감을 준 대통령으로 미국의 국제세력으로의 발돋움에 기여한 시어도어 루즈벨트(26대)가 선정됐다. 코 길이만 6m로 얼굴 전체의 높이가 18m인 이 암각은 얼굴 하나하나가 이집트의 스핑크스보다도 더큰 규모로 돼 있다.이들은 모두 동쪽을 향하고 있어 해돋이 무렵의 얼굴 모습은 마치 갓 세수를 하고 면도를 끝낸듯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산중턱에 마련된 주차장에는 확장공사가 한창이며 바위밑의 반원형 야외극장까지 연결되는 진입로공사 역시 내년초 완공 목표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야외극장 뒤편으로 연결되는 2Km의 트레일은 조각으로 무너져내린 돌위로 나무통로를 해놓은 부분도 있어 바로 밑에서 올려다보는 대통령들의 얼굴 모습은 그 규모는 물론 조각의 정교함에도 압도되지 않을 수가 없다.특히 트레일 옆으로 있는 작은 동굴의 어둠속에서 머리위 돌 틈으로 보이는 워싱턴과링컨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입을 열어 말을 할듯한 착각에 사로 잡히게 한다.이곳의 파크레인저(공원경찰)로 10년째 일하고 있는 밥 크리스맨(42)은 “이곳에 근무하다 보면 대통령들의 얼굴이 매일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것을 느낄수 있다.”면서 “봄이 되면 조각에 올라가 해빙된 후 벌어진 크랙(틈)을 메꾸는 작업을 하는데 콧잔등에 올라서서 작업을 할 때는 숨소리가들리는 것같다”고 설명했다.그는 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보글럼의 두상을 그냥 지나치지만 대통령들의 조각에 감탄하고난 다음 나올 때는 찬찬히 뜯어보게 된다”며 진입로 입구에 세워진 아들에 의해 조각된 보글럼의 두상을 가리켰다.그 맞은편에는 조각에 참여했던 360여명의 인부들 명단이 벽에 새겨져 있었다.대부분이 인근 금광의 광부였던 이들은 보글럼으로부터 바위조각을 배웠으며 공사가 끝났을때는 모두 훌륭한 조각가들로 변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조각에 얽힌 보글럼의 신화같은 이야기들은 산기슭 마을인 키스톤에 있는 ‘러시모어-보글럼 스토리’박물관에 잘 보존돼 있다.수의사인 듀에인 팬크라츠 박사가 전재산을 털어 79년에 세운 이 박물관 역시 대통령문화를 가꾸고 지키는 사람들의 좋은 예가 되고 있다.미국의 대통령문화를 말할때 선구자로 빼놓을수 없는 사람은 워싱턴 대통령의 사저인 마운트버논을 지켜낸 앤 파멜라 커닝햄(1816-75) 이다.남북전쟁의 와중에서 폐허가 돼가고 있는 마운트버논을 지키기 위하여 마운트버논부인협회를 결성한 그녀는 평생을 처녀로 살며 여성들의 힘을 모았다.그녀의 선구자적인 노력은 미국민들에게 유적보존의 가치를 일깨워주었으며 전국적인 여성조직으로 확산돼 각주에서도 비슷한 운동이 전개됐던 것이다. 현재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역대 대통령의 직접적인 사적지는 모두 88곳.게티즈버그 등 전적지까지 포함시키면 100곳이 넘는다.이들 사적지는 생가와 묘소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주성장지 혹은 주활동지에 개인박물관이 있다.31대 후버대통령 이후에는 국립문서보관소(National Archives)의 관할 아래 직전대통령인 부시 대통령까지 모두 11개의 대통령도서관이 주로 생가에 건립돼 있다. ◎보글럼스토리 박물관장 듀에인 팬크라츠/“보글럼 삶에 매료돼 개인박물관 설립”/사비로 유물수집·운영비 충당 마운트 러시모어를 가기전에 반드시 들러야 하는 필수코스인 보글럼스토리박물관.수의학박사로 400여Km 떨어진 프리맨에서 가축예방약 생산공장을 경영하며 주말이면 이곳 박물관으로 날라오는 설립자 듀에인 팬크라츠 박사(55)를 마침 만났다. ­보글럼 박물관을 세운 동기는. ▲여섯살때 처음 이곳에 왔을때 대통령들 모습이 무척 감동적이었다.특히 조각가가 그 어려운 작업을 왜 했는지를 알고 싶었는데 아무도 설명해주지 못했다.성장한 후에도 그 의문이 계속돼 관심을 갖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는가. ▲보글럼은 훌륭한 조각가,화가 이면서 미래를 내다볼줄 아는 탁월한 안목의 소유자였다.무형의 대통령문화를 유형으로 남겨 설득력을 배가시켰다.미국의 역사를 수백권으로 설명하는 것보다 이들 위대한 대통령의 얼굴에서 더잘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 보글럼에게 깊이 빠져든 이유는 무엇인가. ▲보통 사람은 생을 정리할 때인 60세에 그는 엄청난 새 일을 시작했다.그는 “할 수 없다”는 말을 가장 싫어했다.모든 역경을 헤치고 결국 해냈고 그것도 최고의 작품으로.이같은 그의 정신을 젊은이 늙은 할 것 없이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박물관을 설립,운영하는 경비 조달은 어떻게 했는가. ▲예방접종약 공장에서의 수입을 이곳에갖다 쓰고 있다.입장료 6달러로는 기본 운영도 어렵다.박물관을 운영하자면 큐레이터 등 직원 봉급 외에 유물수집 등에 비용이 많이 든다. ­주정부에서도 기념관을 짓고 있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정부차원에서 진작에 했어야 할 일인데 이제라도 다행이다.그곳과는 서로 보완하는 협력관계를 유지할 것이고 장차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보글럼의 조각 40여점을 더 구입해 박물관옆 개울가에 조각공원을 세울 계획이다.
  • 오만 민영화사업 한국투자 기대/알 와하이비 주한 오만대사(기고)

    지난 18일 국경일을 맞아 야흐야 쌀림 알 와하이비 주한오만대는 오만에 대한 한국민의 관심을 기대하는 기고를 보냈다.다음은 기고문 요지. 먼저 서울신문에 기고할 수 있게돼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만은 아라비아반도 끝에 위치,일찍부터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이웃해 인도,중국,페르시아 등의 문명을 전파시키는 역할을 해왔습니다.지금도 세계 원유의 60%가 오만 옆의 호르무즈해협으로 지나고 있는 등 오만은 지정학적으로 아프리카,인도,극동 등과 연결되는 주요길목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오만은 70년7월23일 H.M.술탄 콰부 빈 사이드의 즉위 이후 국가경제를 효과적으로 부흥시키기 위해 사회경제체제를 기반으로 지속적 발전을 추구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있습니다.오만정부의 정책은 경쟁체제속에서 독점을 방지하는 민간경제의 틀을 갖는 국가경제를 창출하는데 있습니다.이같은 정책은 국가의 기본적·물리적 인프라를 갖춘데 이어 이제는 사회·경제체제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단계에 와 있다고 봅니다. 오만은 오랫동안 석유를 국가경제의근간으로 해왔으나 석유는 유한한 것입니다.현재 석유는 하루 88만3천배럴을 생산하고 있으나 20년내에 고갈될 것으로 보입니다.따라서 오만정부는 앞으로 풍부한 천연가스자원의 개발에 주력하고 있으며 액화천연가스 생산라인의 구축에 힘쓰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오만정부는 민간부문의 경제를 비에너지 쪽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96년부터 경제정책의 촛점이 여기에 맞춰져 있습니다.이 원칙은 ▲재정손실을 줄이면서 거시경제가 안정을 유지토록 하며 ▲민간경제부문에서 정부의 간섭을 줄이며 ▲교육수준을 높이고 ▲비석유부문의 투자를 늘리며 ▲민영화를 추진하고 ▲외국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것 등입니다. 이 원칙들은 오는 2000년까지 계속되는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담겨 있습니다.이에 따른 한국기업의 많은 투자를 기대하는 바입니다. 오만정부는 또 관광산업의 육성을 위해서도 힘쓰고 있습니다.관광산업은 주요한 수입원이 아닐수 없기 때문입니다.관광당국은 93년 총리 아래 책임을 갖는 감독부서로 상향조정됐으며 관광진흥을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습니다.이에 따라 곳곳의 관광지에 호텔,음식점,공원 등 필요한 것들이 들어서고 있습니다.오만에는 500곳이 넘는 역사적 유적지와 관광지가 있습니다. 오만의 절경은 10월에서 4월까지 이어집니다.스르,소하르,니즈와 부라이만 등 많은 해안절경 도시와 오락시설도 갖추고 있습니다.이 부문에서의 한국민들의 관심을 기대하며 서울신문 독자분들의 건승을 빕니다.
  • 전곡리 구석기유적/테마여행­문화재 탐방

    ◎한탄강변 낙엽밭서 만나는 구석기인/23만평 규모 사적지옆의 바위벼랑/겸재의 실경산수가 바로 여기인가 가을도 아니고 겨울도 아닌 계절 11월.이 계절이 깊어가면 도시를 훌쩍 벗어나 낙엽이라도 밟고 싶은 사람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한 해를 훌훌 털어버리고 대지로 돌아온 낙엽에는 어떤 메시지가 담겼다.그것은 사색의 밀어다.그래서 옷깃을 더 여미게 하는 추위가 닥치기 전에 낙엽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다.몇 날을 별러 번거롭게 멀리 떠나기 보다는 역사가 숨쉬는 서울 근교에서 낙엽에 흠뻑 취해보는 방법도 있다. 지금 경기도 연천 한탄강변 수풀에는 낙엽이 수북 쌓였다.지난 주말에 비가 제법 내렸던 탓에 웬만한 활엽수 이파리는 이미 질대로 다 져버렸다.그 중에서도 구석기유적을 품에 안은 연천군 전곡읍 전곡리 언덕이 볼만한 낙엽밭을 이루었다.국가가 지정한 사적 제268호인 이 한탄강가 구릉지대는 자그마치 23만평에 이른다.그 넓은 구릉지대 활엽수 사이를 낙엽을 밟고 걸어보면 가히 환상적이다. 그 숱한 낙엽들이 나딩구는 전곡리 언덕은 태초에 형성되었다.활화산이 뿜어낸 용암지대에 물길이 지나면서 골짜기가 파이고 오늘의 한탄강이 생겨났다.그리고 골짜기 가장자리로 황토와 모래가 쌓여 언덕을 이루었다.수십만년의 세월을 두고 흘러내려간 물줄기는 용암지대의 골짜기를 더욱 깊게 파놓아 지금의 바위벼랑 단애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한탄강이 아름답다 하는 것은 단애가 강물과 함께 어울려서일 것이다. 그 단애의 언덕에 자리 잡았던 인류가 바로 전곡리의 구석기인들이다.고고학자들은 구석기인들이 전곡리로 들어온 시기를 지금으로부터 20만∼30만년전으로 보고있다.서울대박물관과 한양대 문화인류학과는 지난 1979∼96년 사이에 모두 11차례에 걸쳐 전곡리 일대를 발굴했다.그 결과 구석기인들이 사용했던 주먹도끼와 가로날도끼,양면날찍개와 외면날찍개,긁개 따위의 돌연모 1만여점을 찾아냈다. 이들 유물을 보여주는 작은 전시관도 유적지안에 자리를 잡았다.당시 구석기인들의 생활상을 복원한 여러 그림과 함께 출토유물을 전시해 놓았다.전곡읍내에서 KBS송신소 앞을 거쳐파주쪽으로 새로 난 강변길을 따라가다 왼쪽 길가 언덕에 전시관이 있다.그 언저리에 보이는 나무숲이 모두 사적지인 전곡리유적이다.이 땅의 선주민 구석기인을 만나는 마음으로 시공을 뒷걸음질 쳐보는 타임머신의 환상여행 코스가 거기 있다. 한탄강이 펼쳐진 강변의 비경은 옛날부터 시인의 노래가 되었다.또 묵객들 화폭의 실경산수로도 등장했다.도끼로 찍어놓은듯 깎아지른 절벽그림의 산수화 필법을 부벽준이라 하지 않던가.한탄강 맑은 물에 어린 태조의 산세는 부벽준 그것인데,겸재 정선(1563∼1594년)이 그린 한탄강 강변풍경 몇 점이 전해오고 있다.한탄강물은 얼마쯤 흘러가다 임진강물과 서로 합수하는 지라 겸재는 그림을 그리고 ‘임진적벽’이라는 화제를 붙였다. 겸재의 ‘우하등강’과 ‘웅연계람’ 역시 한탄강 주변을 그린 그림이다.이들 두 그림을 그린 연유를 기록한 ‘연강임술첩’을 보면 ‘임진적벽’의 스케치 현장은 한탄강가 어디의 절경일 것이다.그런 미술사와도 인연이 깊은 한탄강가는 지금도 아름답다.낙엽이 쌓인 전곡리유적에서 강건너로 바라본 단애의 바위산도 겸재 그림 못지않은 비경이다. 전곡리유적을 포함한 연천군은 한국전쟁 이전까지는 거의가 북한지역에 속했다.그래서 한탄강교 바로 못 미처 국도변에는 38선 표지가 서 있다.척 휘어진 안테나를 단 군용차들이 오가는 전곡리는 전선도 그만큼 가깝다. ◎여행 포인트/1992년 동아시아 첫 주먹도끼 출토/전기구석기시대 유적발굴의 효시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전곡리 한탄강 언덕은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최고의 전기 구석기시대 유적이다.1978년 동두천시에 주둔중이었던 미군 그렉 보원이 구석기시대 석기 몇점을 이 유적 지표에서 채집하여 서울대에 가져온 것이 인연이 되어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그 다음해 서울대박물관을 중심으로 발굴에 들어가 지난 92년까지 2만여점의 구석기 유물을 땅속에서 찾아냈다.이 가운데는 양면핵석기에 해당하는 주먹도끼(hand-ex)가 포함되어 고고학계의 주목을 끌었다.주먹에 쥐고 쓰도록 만든 주먹도끼는 몸돌의 양쪽 겉면을 깨뜨려 날카로운 날을 세운 돌연모.당시 구석기인들에게는다목적 만능공구이자 무기이기도 했다. 이는 당시 구석기인들 입장에서 보면 가공할만한 위력을 지닌 연모라 할 수 있다.세계의 고고학자들은 주먹도끼를 전기구석기시대에 가장 발달한 석기류로 분류하고 아슐리안문화의 특징을 지닌 정형의 석기로 보았다.그래서 영국의 고고학자 모비우스는 아프리카와 유럽에서처럼 선진 구석기문화가 존재했던 지역 이외는 주먹도끼가 없다는 극언까지 서슴치 않을 정도였다. 그런 종래의 학설을 뒤엎고 전곡리유적에서 주먹도끼를 포함한 양면핵석기가 나왔다는 사실은 당시 학계에 충격을 안겨주었다.동아시아에는 찍개문화가 있을 뿐이라는 모비우스의 성급한 결론을 깬 전곡리유적은 오늘날 세계 전기구석기유적 지도에도 올라갔다.이를 계기로 한탄강과 임진강유역 여러 군데에서 전기구석기유적이 계속 발굴되었다.전곡리유적은 전기구석기유적 발굴의 효시를 이룬 셈이다. 전곡리 구석기유적관에서는 바로 이러한 점을 유의하고 유물 하나하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이와 더불어 전시관에 내놓은 북경원인 복원 조각품과 동아시아 다른 지역의 구석기유적 및 유물을 참고로 하면 전곡리 구석기문화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찾아가는 길 전곡리유적 여행은 철도편을 이용하면 낭만적이다.서울지하철 2호선을 타고 의정부에 내리면 상오 6시20분부터 하오 10시20분까지 매시간마다 소량 편성의 열차가 다닌다.차체에다 문신마냥 온통 고운 색깔의 꽃그림을 그려넣은 귀여운 열차다. 신탄리로 가는 이 열차를 타고 전곡역에 하차한다.전곡리유적은 역에서 가깝다.유적관을 보려면 자원봉사관리인 현지주민 임종태씨에게 전화(0355-32-2396)를 미리 걸어두어야 한다.재정 형편상 유급 상근관리인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적관 언덕아래 한탄강가에는 휴식공간도 있다.한탄강 상류에서 잡은 물고기로 조리한 매운탕과 연천산 한우고기를 주메뉴로 내놓는 한탄강가든(0355-32-4448)은 음식값도 비싸지 않다.
  • 국제사회 “야만적 행위” 강력 비난/관광객테러 각국 반응

    【위치토(미 캔자스주)·룩소르·카이로 외신 종합 연합】 미국·유럽 등 세계 지도자들은 17일 이집트 남부 고대 유적지 룩소르에서 회교 원리주의 세력의 테러로 관광객 등 66명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일제히 이를 야만적 행위로 규탄하는 한편 애도와 원조의 뜻을 표명했다.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이번 테러사건에 대해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애도의 뜻을 전했다고 조 로카트 백악관 대변인이 밝혔다.리 매클레니 국무부 대변인은 “이같은 잔인한고 공포스러운 공격을 강력히 비난한다”는 성명을 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충격과 함께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이집트 정부와 유족들에게 가장 깊은 연민과 조의를 표한다”고 말했다.테러 희생자가 있는 것으로 밝혀진 독일의 클라우스 킨켈 외무장관을 비롯,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로빈 쿡 영국 외무장관도 각각 성명을 내고 테러사건을 비난하면서 애도의 뜻을 표했다.
  • 애 관광객 총기 피격/일본인 등 74명 사망

    ◎룩소르서… 한인피해 없는듯 【룩소르 AFP AP 연합】 회교 원리주의자로 추정되는 무장 괴한들이 17일 상오 이집트 남부의 고대 유적지 룩소르에서 관광객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해 관광객 60명 등 모두 69명이 사망했다고 현지 경찰이 밝혔다. 경찰은 6명의 무장괴한들이 이날 상오 10시쯤(현지시간) 룩소르 웨스트 뱅크(서안)의 ‘왕비의 계곡’에 위치한 해트세프수트 사원 입구에 서있던 관광객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면서 사망자 중 대부분은 일본과 스위스 관광객들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사망자 중에는 무장괴한 6명과 경찰 3명도 포함돼 있으며 부상자도 관광객 17명과 이집트인 8명 등 25명이 발생했다면서 부상자들 대부분이 중상이어서 사망자 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무장괴한의 습격을 받은 관광객들은 일본과 스위스,독일,스페인과 중동국가에서 온 사람들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한국 여행사 관계자들이 밝혔다. 룩소르에 있는 이시스 여행사의 한 대변인은 무장괴한들이 사원입구에서 관광객들에게 무차별 사격을 가한뒤 운전사만이 타고 있던 관광버스를 탈취해 도주를 시도하다 경찰의 제지를 받자 도보로 사막쪽으로 달아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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