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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일 국립민속박물관 ‘한반도와 바다’ 특별전

    바다를 무대로 한 우리 민족의 해상교류와 바닷가 사람들의 생활상을 조명하는 ‘한반도와 바다’ 특별전이 15일부터 내년 2월14일까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개최된다. 민속박물관과 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가 공동 주최하는 이번 특별전은 5부로 구성되어 있다.1부 ‘바다가 있다’에선 고지도와 회화자료, 해저 출토품, 전남 완도 청해진 유적 출토품을 비롯한 바다 관련 유물 100여 점이 출품된다. 고지도와 회화자료들은 우리 바다가 조상들에게 어떻게 인식됐는지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된다. 조선전기에 세계전도로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1402년, 모사도), 넘실대는 파도의 형상을 굵은 선으로 표현한 조선후기 화가 백은배 의 산수도(山水圖)가 특히 볼 만하다. 백은배의 또 다른 작품인 해상군선도(海上群仙圖)나 이인상의 신선도해도(神仙渡海圖) 등에 표현된 바다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의 대상이자 선인들의 공간으로 상징화된다. 2부 ‘바닷길’에선 바다가 문화교류의 길이었음을 부각하기 위해 신안해저유물을 비롯해 서남해안 각지에서 발견된 바다 관련 유물을 한 코너에 모았다. 장보고와 그가 이룩한 문화의 흔적인 청해진 유적 출토 유물도 등장한다. 비녀, 바늘, 은제요대장식 등 청해진 출토 유물들은 장보고가 청해진을 본거지로 9세기 동아시아 해상무역을 좌지우지했던 흔적을 잘 보여준다. 3부 ‘바닷가 사람들의 삶과 믿음’에선 뻘배 혹은 낙지가래 등 오랜 기간 갯벌에서 사용되어온 채취어구를 통해 바닷가 사람들의 일상을 살펴본다. 소망과 액운을 바다에 실어보내는 위도띠배놀이를 재현하는 간접 체험의 장도 마련했다. 이밖에 4부에선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가는 소리, 몽돌소리, 해녀들의 노래, 멸치잡이 노래, 동·서해안의 풍어제 등 바닷가 사람들의 땀과 노래를 소리로 느끼는 자리가 마련되며,5부에선 사진작가가 카메라로 담아낸 다양한 바다의 자태를 구경할 수 있다.(02)3704-3154.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中, 올7월 ‘고구려우표’ 발행…한국도 ‘맞불’

    中, 올7월 ‘고구려우표’ 발행…한국도 ‘맞불’

    중국이 지난 7월 고구려 문화 유적 기념우표를 발행한 것으로 밝혀져 파장이 예상된다. 정부 관계자는 3일 “세계문화유산 등재 기념으로 고구려 유적 우표를 발행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우표 발행 대상은 지안(集安)현 고구려 왕성 왕릉과 귀족묘이며, 정부도 이 우표를 입수해 의도를 분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당국은 지난 6월 쑤저우(蘇州)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서 북한과 중국 양측의 고구려 유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우표를 발행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우표 발행이 역사 왜곡 시도로 비쳐지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통상 기념우표는 자국의 주요 행사를 국내외에 알리거나 문화재 등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려는 차원에서 발행한다는 점에서, 중국의 이번 우표 발행은 고구려사 자국 편입 의도의 ‘동북공정’과 맥이 닿아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정부도 고구려사는 엄연히 한민족의 역사인 만큼 문화재 보존 차원에서 지안현 고구려 유적 등이 포함된 세계문화유산등재 기념 고구려 우표를 내년 7월1일 발행할 예정이어서 한·중간 ‘우표전쟁’도 예상된다. 정보통신부는 고구려사 유적과 관련, 내년에 3차례에 걸쳐 6종의 우표 발행을 검토 중이다. 한편 중국은 고구려사 왜곡문제가 한·중 양국간 갈등으로 치닫자 지난 8월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아시아담당 부부장을 한국에 보내 초·중·고교 역사교과서 개정 과정에서 고구려사 왜곡 내용을 싣지 않고, 중앙·지방을 불문하고 정부 차원에서 왜곡 시도를 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정인학 교육대기자 실전논술] ②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정인학 교육대기자 실전논술] ②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한편의 논술문을 습작하기로 한 논제는 ‘중국의 고구려 왜곡을 비판하고 우리의 대응방안을 쓰라.’는 것이다. 이미 서울신문 홈페이지 ‘2005 실전논술 지상강의’에 올라 있는 글(가)를 토대로 하고 글(나)와 (다)를 배경 지식으로 활용토록 함으로써 실제 대학입시의 패턴을 원용했다. 논술문을 작성하려면 먼저 제시문으로 주어진 관련 글을 읽고 전체적인 얼개를 짜야 한다. 따라서 제시문을 읽어 가되 서론, 본론, 결론이라는 체계적인 틀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제시문을 읽을 때에는 그 의미를 파악하고, 글의 구조도 함께 분석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흔히 독해라고 한다. 제시문을 독해할 때에는 작은 주제별로 문단을 나누고 각각의 문단에서 그 문단의 주제로 요약될 수 있는 핵심 단어나 구문을 따로 표시해 놓는 게 효율적이다. 핵심 단어나 핵심 어구는 문단별 소주제 파악에 유용하고 논술문 작성에서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재료가 되기도 한다. ■ 제시문 독해 글 (가)는 지난 3월1일 공식 출범한 고구려 연구재단의 초대 이사장인 김정배 교수의 인터뷰 기사다. 지상 강의의 편의성을 도모하기 위해 각 문단별로 일련 번호를 붙여 놓았다. 글(가)를 근간으로 읽어 가면서 문단별 주제와 핵심 단어, 구문을 집어내는 한편 글(나)와 (다)에서 관련된 내용을 발췌해 실제 논술문 작성을 위해 필요한 논거를 확충하려 한다. (1)번 문단에서 핵심 단어는 동북공정으로 중국이 고구려사를 중국의 지방사로 만들려 하는 문제를 제기했다. 중국의 국가기관인 사회과학원이 중심이 되어 한반도와 맞닿아 있는 동북 지역을 역사·문화적으로 중국의 영역으로 편입시키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럴 경우 자칫 이들 지역을 호령하던 고구려의 역사가 중국의 역사로 둔갑할 수 있는 점이다. (2)번 문단은 고구려사 왜곡이 빚는 모순을 지적하고 있다. 중국은 역사를 그 역사를 일궈낸 사람들의 총체적 문화의 기록으로 보지 않고 역사가 이뤄졌던 지역의 기록으로 보려 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주장대로라면 고구려는 초기에는 지금의 중국 땅에서 시작되었고 결국 중국의 역사가 되며 고구려가 평양으로 천도했으니 고구려 영토였던 북녘은 중국 땅이 된다는 궤변을 지적한다. 마치 로마의 유적이 프랑스에 있다고 해서 로마가 프랑스의 역사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이 고구려사는 중국의 역사가 될 수 없다는 논리를 펼 수 있을 것이다. (3)번 문단은 (4)번 그리고 (5)번 문단과 함께 뭉뚱그려 이해하는 게 좋다. 모두 중국이 고구려사를 왜곡하는 억지를 짚고 있기 때문이다. (3)번 문단은 중국의 패권주의를 지적하고 있다. 글(다)의 (4)번 문단을 보태서 다시 새기면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이 공존하고 있는 동북아에서 맹주로 군림하려는 역사적 터를 닦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4)번 문단에선 고구려사를 왜곡해 내부적인 결속을 다지는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중국의 속셈을 분석해 내고 있다. 역시 글(다)의 (2)번 문단 내용을 더해서 생각하면 동북공정이라는 민감한 이슈를 국제 쟁점화해 감성적 애국주의를 부추겨, 개혁 개방 이후 흐트러진 사회주의적 결속을 다잡으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6)번 문단부터는 고구려연구재단의 활동 방향을 소개하면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맞서는 개략적인 대응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우리 역사의 연구활동을 강화하는 한편 대외적으로 한국 역사의 요체를 널리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7)번과 (8)번 문단은 (6)번 문단에 이어 중국의 고구려사 연구에 대응해 우리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고구려사 연구에 진력할 것을 강조한다. 글(다)의 (5)번 문단을 참고하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는 역사 연구의 저력을 배양해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구려가 우리 민족의 국가였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역사학은 물론 언어학, 고고학 등 인문학을 총동원하여 학술적으로 설득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글(가)에서는 간과했지만 글(다) (6)번 문단에서 내세우고 있는 고구려사를 비롯한 국사 교육의 강화를 논점으로 추가할 수 있다. 제도권 교육에서 선택과목으로 밀어낸 국사 교육에 대한 치열한 반성을 해야 한다.‘열린세상’으로 서울신문에 글(다)를 집필한 목원대 도중만 교수는 국사 교과서는 ‘국민의 집단기억’이라며 역사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다시 글(가)로 돌아오면 (9)번 글에서 한국 역사의 대외 홍보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 유네스코를 비롯해 외국의 연구기관 그리고 대학에 한국의 연구결과를 바로 알려 고구려가 엄연한 한국의 고대국가였다는 공인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문제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뿌리를 찾는 작업으로 북한과의 학문적 연대도 중요하다고 (10)번 단락에서 덧붙이고 있다. ■ 논술문 얼개짜기 1. 서론 제시문 분석을 종합해 보면 글(가)의 (1)번과 (2)번 문단은 서론에 해당한다. 중국이 고구려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그 의미를 종합 평가하고 있다. 고구려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시키면 종국에 고구려 영토가 중국의 땅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고구려사 왜곡에 효율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본론에서 본격적인 논의의 발판을 마련해 주고 있다. 2. 본론 서론에서 넘겨받은 논제를 논의하는 본론에서는 논점을 정리해서 제시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여기에서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의 속셈 분석과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이 논점이 될 것이다. 중국의 속셈과 대응책은 이질적인 요소로 보이지만 속셈을 제대로 짚어야 효율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할 수 있는 까닭에 같은 선상에서 다룰 수 있다. 그러나 본론의 비중은 대응책에 주어져야 한다. 이번 실전 논술은 1500자 안팎으로 300자를 하나의 단락으로 배정한다면 5단락으로 체계적 틀을 짜기로 한다. 서론을 한 단락으로 하고, 본론은 세 단락으로 그리고 결론은 한 단락으로 나누기로 한다. 본론의 세 단락은 세개의 논점을 잡아 각각 하나의 단락으로 처리할 것이다. #첫번째 논점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의도를 짚어 볼 필요가 있다. 글(가)를 독해하면서 정리했듯 대내적으로 내부 결속을 다지는 지렛대로 활용하는 한편 대외적으로 패권주의를 지향하면서 고구려사를 십분 활용하려 한다는 점을 논증한다. #두번째 논점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 정치적 목적으로 자행되고 있다면 이에 효율적으로 대응하여 우리의 고구려사를 지키려는 방안들이 논점으로 뒤따라야 한다. 중국이 정략적인 속셈을 숨기고 학술적 접근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 당장은 고구려사 연구에 박차를 가해 학문적 저력을 배양해야 한다는 논리가 가능하다. 이를 위해 고구려사 연구를 행·재정적으로 지원하고 국사 교육을 강화해 역사 의식을 높여야 한다는 식의 논증을 구사할 수 있다. #세번째 논점 차제에 고구려사의 진실을 비롯해 유구한 우리 역사를 대외적으로 널리 알리는 체제를 정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다. 중국의 우월한 국력이나 국제적 위상을 고려하여 학문적 연구 실적을 바탕으로 고구려사에 대한 한국의 입장에 대해 국제적 공인을 얻어내는 것은 중요한 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남북이 공동의 연구를 통해 고구려 지키기에 나선다면 학문적 성과는 물론 민족의 동일성을 확인하는 전기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덧붙인다. 3. 결론 본론의 논의 결과를 토대로 자신의 논지를 펴는 단계다. 결론에서 논지를 펴는 과정도 역시 논리적 틀을 갖춰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첫번째 논점은 고구려사를 왜곡하는 중국의 정치적 의도를 비판하며 정부의 능동적인 외교적 대응을 촉구할 수 있다. 고구려사를 더 이상 왜곡하지 않기로 구두 합의한 양국 정부간의 약속을 지켜 학술적 영역이 정치적 문제로 비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고구려사 연구에 대한 국내 형편을 더듬어 보면서 우리의 역사 연구에 대한 성찰과 함께 역사 의식을 높이는 자세 전환을 촉구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우리 역사가 외국의 교과서 등에서 엉터리로 기록되고 있는 점을 결부시켜 우리의 대외 홍보체제를 정비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단순히 정부의 몫이 아니고 학계를 비롯한 전국민의 몫임을 강조해도 좋을 것이다. 마지막은 결론에서 논의한 내용을 다시 종합해서 끝을 맺는 과정으로 마무리되어야 한다. 이 글에서는 본론에서 논증한 세 가지 논점 가운데 우리 역사의 학문적 토양을 가꾸어 우리 민족의 존립 근거와 문화적 정체성을 다잡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대미를 맺어도 좋을 것이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의 문제는 결국 학문적 연구로 판가름 날 사안인 까닭이다. chung@seoul.co.kr
  • [2일 TV 하이라이트]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SBS 오후 8시55분) 차에 시동이 저절로 켜진다는 사건에 한 운전자가 경악을 했다. 유독 한 장소에서만 일어나는 미스터리. 그곳은 바로 세 아이가 목숨을 잃은 곳이라고 한다. 아이의 영혼이 시동을 작동시키는 것일까?아니면 주변 환경의 영향일까?저절로 켜지는 시동의 진실을 밝혀본다. ●생방송 쟁점토론(YTN 오후 3시10분) 정치권이 새해 예산안 심의를 놓고 좀처럼 절충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새해 예산안 심의가 법정시한을 넘기고 예년처럼 연말까지 가는 것은 아닌지, 또 졸속 심의가 되풀이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새해 예산안 심의, 무엇이 문제이고 대안은 어떤 것인지 토론해본다. ●TV정치교실(정치자금, 민주주의를 위한 비용인가)(EBS 오후 8시10분) 최근 정치자금과 관련, 재판중인 정치권 핵심인사들에 대해 법원과 검찰이 잇달아 중형을 선고하면서 정치권의 파장이 증폭되고 있다. 정치활동의 필수요건이자, 정치비리의 온상이라는 두 얼굴 정치자금. 민주주의를 위한 비용, 정치자금을 이야기한다. ●최종분석(세계의 불가사의)(iTV 오후 10시50분) 지구 곳곳에서 발견되는 스톤헨지와 미스터리 서클. 고대인들은 어떻게 이런 유적을 남겼을까?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면, 신비한 에너지가 만들어낸 현상일까?혹은 외계인이 방문한 흔적인가?한편, 빙판 위에도 나타나는 신비한 원, 아이스 서클의 정체를 밝혀본다. ●왕꽃 선녀님(MBC 오후 8시20분) 고민하던 초원은 자신이 피하면 자식에게까지 신기가 내려간다는 말에 내림굿을 받기로 결심한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초원은 자신의 결심을 밝히고 부용화는 어쩔 줄 몰라한다. 초원은 자신이 내림굿을 받기로 한 것을 숨기고 신기를 없앨 방법을 알아냈다며 무빈을 안심시킨다. ●무한지대 큐!(KBS2 오후 7시20분) 최근 일본 도쿄에는 서서먹는 레스토랑이 대 유행이다. 스탠딩 레스토랑, 이곳이 이렇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서서 먹더라도 싼값에 맛좋은 스시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촌의 명물이 된 외국인 전용 하숙집의 배낭족 외국인들이 신촌 체험에 나섰다. ●금쪽같은 내새끼(KBS1 오후 8시25분) 덕배는 점점 심해지는 갈등을 진국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영실은 시집살이를 억울해하는 희수 때문이라고 투덜댄다. 진국은 난감해하는 희수를 둘만의 비밀 공간으로 데려가고, 희수는 진국의 마음에 감동해 눈물을 흘린다. 정애와의 약속대로 영란은 떠날 준비를 한다.
  • 암사동에 역사·생태공원

    서울 강동구 암사동 선사유적지 건너편에 여의도공원 절반 크기의 역사·생태공원이 들어선다. 강동구는 1일 암사동 선사유적지 인근 3만 3000여평을 역사·생태공원으로 조성, 쌍둥이 문화단지로 육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강동구는 그린벨트를 해제하지 않고, 녹지상태에서 공원을 조성하기로 했다. 내년 상반기부터 공사에 들어가 2010년 매듭지을 예정이다. 공원 조성사업은 여론을 충분히 반영하기 위해 2단계로 나눠 진행된다. 공원의 규모가 커 일시에 추진하면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110억원을 들여 2007년까지 추진하는 1단계 사업이 완료되면 선사유적지, 풍납·몽촌토성과 연계한 대단위 문화관광 벨트가 형성된다. 우선 구암서원을 복원하고 암사동의 옛 이름인 바위절마을의 호상(好喪)놀이를 널리 알리는 전시관, 전통 놀이 등 우리의 옛 풍습을 재발견하는 전통문화체험마을 등이 만들어진다. 구암서원은 17세기 한양에서 유일한 사액서원(임금이 시설 이름을 하사한 서원)이다. 넓이 1186평에 사당과 강당, 재실, 홍살문 등 옛 시설을 되살린다. 복원 뒤에는 다도(茶道) 혼례 제례 등 전통예절 및 예능 교육과 서예 국악 한국학 등 전통문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된다. 전시실 회의실 공연장 등으로도 사용한다. ‘쌍상여’가 특징인 바위절마을 호상놀이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10호로, 주민 135명으로 이뤄진 보존회가 어렵사리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체험마을에 들어설 농업박물관과 주막 대장간 연날리기터 새끼꼬기마당 등을 묶어 교육·관광 명소로 가꾼다. 2단계 사업에서는 494억원을 들여 역사와 문화를 주제로 한 테마파크가 조성된다. 대상 면적은 2만 3000여평이며 오는 2008년부터 공사에 들어간다. 이 곳에는 1000여명이 한꺼번에 관람할 수 있는 ‘야외 선사예술마당’과 5000여명이 동시에 이벤트를 벌이거나 피크닉을 가질 수 있는 잔디광장이 조성된다. 또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역사적 사건과 일화 등을 형상화한 조형벽화, 영상물을 보며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이야기 정원’도 꾸민다. 나무 그루터기 쉼터, 조개껍데기를 깐 길이 있는 ‘기억의 숲’ 등 주제별 생태 숲 6곳도 만든다. 신동우 구청장은 “선사유적지는 학술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주제가 단순해 어린이들의 교육장 외에 관광자원으로서 역할은 크지 않은 게 사실”이라면서 “공원이 조성되면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등 관광자원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 청장은 이어 “공원을 조성하더라도 초기단계부터 시 문화재위원회를 통한 지표조사를 거치는 등 선사 유적지에 걸맞는 공원조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정인학 교육대기자 실전논술] 실전논술 지상강의 2회 예시논술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둔갑시키려는 중국의 시도가 파상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02년 이른바 동북공정이라는 프로젝트를 공식 출범시킨데 이어 이번엔 중국 외교부의 홈페이지에서 한국의 고대국가로 소개했던 고구려 역사를 삭제했다. 중국의 동북 지방에서 명멸한 소수 민족의 역사로 폄하해 중국의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의도일 것이다. 마치 로마의 유적이 프랑스에 있으니 로마사는 프랑스의 역사라고 억지를 부리는 이치다.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만들어 놓고 고구려 영토였던 북녘 땅까지 중국 땅이라고 우기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시도는 중국의 대내·외 정치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경제력의 성장으로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내부적 회의가 팽배하면서 체제 유지와 안정 기조가 위협을 받고 있는 형편이다. 대내적으로는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해 역사·문화적 의식을 추스르는 작업이 필요했을 것이다. 대외적으로 국제적·경제적으로 부상하는 한국을 견제하려는 포석으로 동북공정을 시도했다는 분석이다.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동북아에서 역사적 우위를 선점함으로써 맹주로서 군림하겠다는 패권주의 야심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중국이 정략적 계산을 숨기고 학술적 수단을 동원해 고구려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우리의 고구려사 지키기는 학술적 연구 결과로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고구려가 우리의 고대 국가였고 중국의 동북지역도 지배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역사학은 물론 고고학 관련 인문학을 총동원하여 학문적 설득력을 높여야 한다. 중국이 고구려사 왜곡의 모태가 되고 있는 동북공정에 수백명의 학자를 동원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고구려사 박사가 14명에 불과하다니 안타까울 뿐이다. 국가 차원에서 고구려 연구에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 국사 교육을 강화해 국민적 역사 의식을 높여 우리 민족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차제에 고구려를 비롯한 유구한 우리 역사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작업도 강화해야 한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 고구려 유적을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하는 작업과도 연결되어 있고 보면 국제 사회에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리는 노력이 절실하다. 더구나 국제 사회에서 중국의 우월적인 위상을 고려한다면 고구려는 한국 고대국가였다는 국제적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시도가 시급하다. 나아가 상대적으로 사료가 풍부할 것으로 관측되는 북한과 공동 연구를 강화함으로써 가시적인 학문적 결과를 얻는 한편 민족적 동질성을 재확인하는 계기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고구려사의 진실은 중국의 정략적 속내에도 불구하고 학문적 연구 결과로 밝혀질 것이다. 중국의 역사로 둔갑할지도 모를 고구려사를 지키기 위해서는 고구려 역사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우리 손으로 이뤄져야 한다. 역사는 총체적 문화의 기록이다. 가시적인 유물·유적의 연구 뿐만 아니라 언어학과 고고학 등의 수단을 동원해 고구려사는 백제나 신라와 같은 문화적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야 한다. 중국을 포함해 국제 사회의 학술 단체나 연구 기관, 대학을 설득해야 한다.고구려사 나아가 우리 역사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열정을 모아갈 일이다.
  • 말말말˙˙˙

    예수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사상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상범으로 잡혀 죽은 국가보안법의 희생자다.-김정란(51) 상지대 교수가 인터넷 언론 뉴스앤조이에 기고한 글에서 “예수는 유태의 사제들이 설정해 놓은 율법과 로마의 위정자들의 지정해 놓은 법의 울타리를 파괴한, 비유적으로 말하면 당시의 ‘빨갱이’였다.”며-
  • [儒林 속 한자이야기] (47)

    儒林 220회의 題目(제목)에는 ‘良禽擇木(좋을 량/새 금/가릴 택/나무 목)’이라는 成語(성어)가 나온다. 현명한 새는 좋은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치듯 ‘현명한 사람은 자기 재능을 키워 줄 훌륭한 사람을 가려 섬긴다.’는 뜻이다. 良자의 用例(용례)로는 ‘良能(양능: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良心(양심: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 등이 있다. 禽자는 字形(자형)으로 보아 본래 뜻이 ‘잡다’라는 動詞(동사)였음을 알 수 있다.用例에는 ‘禽困覆車(금곤복거:약자도 사경에 이르면 큰 힘을 낸다는 비유)’ ‘禽獸行(금수행:짐승과 같은 음탕한 행실)’ 등이 있다. 擇자는 의미요소인 ‘손 수(手)’와 발음요소인 ‘ (엿볼 역)’이 합쳐진 글자로 ‘어떤 물건을 두 손으로 잡고 이모저모 따져보며 고른다.’는 뜻임을 알 수 있다.用例에는 ‘擇日(택일:좋은 날짜를 고름)’‘採擇(채택:작품, 의견, 제도 따위를 골라서 다루거나 뽑아 씀)’ 등이 있다. 木자는 ‘나무’를 뜻하고자 나무 뿌리와 줄기 그리고 가지가 다 있는 모양을 본뜬 것이었다. 후에 가지 모양이 한 획의 ‘一’로 간략하게 변하였다.木의 用例로는 ‘木强則折(목강즉절:너무 강한 것은 도리어 부러지기 쉬움)’ ‘木人石心(목인석심:감정이 무딘 사람을 이름)’ ‘木鐸(목탁:세상 사람을 깨우쳐 바르게 인도할 만한 사람이나 기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등이 있다. ‘良’자와 관련이 있는 成語(성어) 가운데 ‘良藥苦口(양약고구)’가 있는데, 그 내용은 孔子家語(공자가어)에 전한다.“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고,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다(良藥苦於口 而利於病,忠言逆於耳 而利於行). 은나라 湯王(탕왕)은 간하는 충신이 있었기에 번창했고, 하나라 桀王(걸왕)과 은나라 紂王(주왕)은 따르는 신하만 있었기에 멸망했다. 임금이 잘못하면 신하가, 아버지가 잘못하면 아들이, 형이 잘못하면 동생이, 자신이 잘못하면 친구가 간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나라가 위태롭거나 망하는 법이 없고, 집안에 悖德(패덕)의 악행이 없고, 친구와의 사귐도 끊임이 없을 것이다.” ‘良禽擇木’은 春秋左專(춘추좌전) 哀公(애공)11년 겨울條(조)의 내용에서 유래한 成語이다. 공자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실현할 舞臺(춤출 무/돈대 대)를 찾아 중국 천하를 轍環(수레바퀴 철/고리 환)하던 중 衛(위)나라에 갔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孔文子(공문자)가 大叔疾(대숙질)의 공격 건을 놓고 공자에게 묻자 “일찍이 祭禮(제례)에 대해서는 배운 적이 있으나 싸움질에 관해서는 들어본 바가 없다.”고 하였다. 대화를 마치고 나온 공자는 제자들에게 서둘러 위나라를 떠나자고 하면서,“새가 나무를 가려서 앉는 것이지, 나무가 어찌 새들을 가려서 앉히랴(鳥則擇木 木豈能擇鳥).”라고 하였다. 이 말을 전해들은 공문자는 황급히 공자를 찾아와 자신의 失言(실언)을 謝過(사과)하면서 더 머물러 달라고 懇請(간청)하였다. 공자는 마음이 진정되어 그대로 위나라에 머물고자 하였으나 마침 魯(노)나라에서 禮物(예물)을 갖추어 還國(환국)을 要請(요청)하였기에 길을 떠났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41) 완도 송징당산제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41) 완도 송징당산제

    ‘장사의 뼈는 진작 초목과 더불어 썩었어도/의연한 그 혼백 노여움 머금어 바람 우뢰 사나우니/귀신이 영웅되어 이 땅에서 받들어지며/신목에 꿩털 꽂고, 나무로 형상을 만들었도다/저 어떤 사람인가?/신당을 괴이하게 비웃으며/부수고 망가뜨려 강가에 던지다니!/백년 풍상에 한 간 당집이 쓸쓸하고/철 따라 복날이고, 섣달이면 마을의 북소리/뉘엿뉘엿 해 질 무렵이면 무당이 굿을 하는데/하늬바람에 갈가마귀 춤을 춘다.’ 당대의 문인 임억령(1496∼1568)이 해마다 송대장군을 받들고 굿을 하게 된 내력을 읊은 장시 ‘송대장군(宋大將軍)’의 한 대목, 시에서 ‘신당’이 있는 곳은 우리에게 청해진 유적지로 잘 알려진 완도 장좌리의 장도(將島). 이곳에는 전설의 인물 송징(宋徵)이 마을신으로 좌정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정월 열나흘 밤이면 풍물굿이 열린다. 모두들 일렁이는 횃불을 들고 물이 빠진 바닷길을 걸어서 섬으로 들어가 장군을 모신 신당 앞에 자리를 잡는다. 굿은 밤새도록 이어진다. 새벽녘 동이 훤하게 터올 무렵에야 신당에서의 굿은 파한다. 여명이 들 무렵이면 들물이 차올라 장도는 다시 물길에 갇히고 만다. 아낙들은 아무런 속이 없이 그냥 흰 밥을 둘둘 만 굵직한 김밥을 하나씩 사람들에게 나눠 준다. 김치를 곁들인 흰 김밥을 새벽 바다에서 먹는 맛이라니! 그 김밥으로 허기를 때운 사람들, 이제 마을로 돌아갈 행장을 꾸린다. 굿패는 신당을 몇바퀴 돌면서 굿거리 장단을 펼친다. 올 때는 걸어왔지만 돌아갈 때는 배를 타야 한다. 배에서도 요란하게 풍장을 치면서 굿판의 여흥을 사른다. 아침 바다에 울려퍼지는 풍물소리의 매혹스러움을 어찌 글로 다 옮길 수 있으랴. ●매년 정월 열나흗날 섬에서 밤새 풍물굿 지금부터 꼭 20년 전인 1984년. 그 때 머나먼 이곳 장도로 답사를 왔었다. 그 때만 해도 차편이 드물었던 시절이라 어쩌다 시골버스가 다닐 뿐 너무도 조용하여 굿장단에 귀가 멍멍할 정도였다. 동네 구멍가게에 자리를 잡고 물이 빠질 때를 기다렸다. 마침 마을 장정 몇이서 됫병 소주를 맥주컵에 그득하게 따라 마시고 있었다. 그들은 나그네에게도 컵 가득 소주를 부어 권하였다. 그러면서 그 사내들은 송징 장군을 모시게 된 내력을 신명나게 풀어냈다. 그렇게 의기투합해 오래 대화를 나눴지만 그들의 말 어디에도 유명한 장보고 이야기는 없었다. 물이 빠지자 그대로 200여m를 걸어서 장도로 들어갔다. 바다에 에워싸인 언덕배기에는 푸른 밭이 펼쳐져 있었고, 섬 정상부는 유난히 푸르른 동백나무숲이 무성했다. 반짝이며 생기가 도는 동백나무 잎에서 생명의 기(氣)가 무한히 뿜어져 나오는 듯 했다. 그곳에 조그마한 당집이 있었다. 금줄이 쳐진 당집 문을 열자 송징 장군이 기다리기라도 한듯 좌정하고 우리를 맞았다. 그로부터 10여년쯤 뒤. 다시 한번 그곳 장좌리를 찾았다. 불과 10년 사이에 그 때의 초가 당집은 기와집으로 바뀌어 한 눈에도 근엄해져 있었고 당집 문을 열자 예전에는 없었던 장보고의 영정이 마중하였다. 어느 노인이 들려주었다.“원래는 송징인데, 문화재에서 장보고래요.” 노인이 말한 ‘문화재’란 문화재를 다루는 관계 공무원이나 학자들을 지칭하는 것이리라. 20년 전 조사할 당시만 해도 분명히 송징으로만 전달되었고, 임억령의 시에도 송징이 주인공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빚어졌을까. 변모 과정을 꼼꼼하게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임억령은 앞의 시를 통해 송징을 모신 굿당을 무시하며 이를 음사(淫祠)로 치부하는 유생들의 고루함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송 장군의 영웅성을 노래했다. 그의 고향이 해남 땅이니 완도에 대해서도 소상히 알고 지냈으렷다. 시에서 송 장군은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위력을 보여주는 영웅, 무리를 이끌고 들어와 천험의 요새에 진을 치고 민중을 도와주었던 출중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송 장군을 둘러싼 다양한 ‘설’만 있을 뿐 아무런 입증자료가 없다. 분명한 것은 하나, 송징이란 뛰어난 인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그가 완도민들을 위하여 무언가 선한 일을 했을 법한데 영웅으로서 피를 흘리며 비장하게 죽고 말았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바다의 영웅, 마을의 수호신이 되어 모셔지게 되었고, 임억령의 시에까지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렇듯 오랜 세월을 모셔지던 바다영웅 송징이 주인 자격을 잃고 느닷없이 장보고로 바뀌었다니…. 송징은 원래 장보고인데, 신라에서 장보고 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하였기에 내놓고 장보고를 모실 수가 없어 송징으로 이름을 바꿔 모시게 된 것이라는 희대의 궤변도 등장했다. 송징은 분명 실존인물이었을 것으로 비정된다. 민중의 입장에서 영웅적인 인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영웅답게 당신(堂神)으로 신격화되었다. 그런데 1990년대 이래 송징의 의미는 격하되고 장보고라는 ‘새로운 신화’가 느닷없이 그 자리를 넘보기 시작하였다. 장보고의 시대적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오랫동안 숭배되어 온 민중영웅은 끝내 쫓겨나고 거짓 신화가 창조된 것이다. ●송징장군 10여년 전부터 장보고로 뒤바뀌어 그동안 제 대접을 받지 못하였던 장보고의 인물사적 조망이나 유적지 발굴 등 현양사업의 필요성은 너무도 당연하다. 문헌이 남아 있지 않으니 누구도 확신할 수는 없어도 문화재청의 발굴 결과 장도는 청해진의 진지로 비정되며, 학계에서도 대략 이를 공인하는 분위기다. 문헌으로만 전해지던 법화원 터도 발굴되었다. 일찍이 미국 하버드대학의 라이샤워(E.O.Reischauer) 교수가 ‘해양 상업제국의 무역왕’으로 표현하고 그의 직책을 총독(Commissioner)으로 지칭했듯 장보고는 백가제해(百家濟海)하던 해상국가 백제의 전통을 이어받았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해양의 원대한 미래를 위해서라도 현양사업은 계속되어야 하고, 그런 점에서 오히려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장도의 주신은 엄연히 송징이다. 역사적으로 장보고가 남해안의 신으로 좌정한 적은 없었다. 왜구를 물리친 최영도 남해안의 신이 되어 있다. 억울하게 죽은 민중의 영웅이라면 대개 민중의 신으로 좌정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상하게도 장보고만은 민중의 신이 되지 못했다. 참으로 이상한 점이기는 하나,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마을 주민들에게서 다양한 증언이 나오고 있다. 송징 장군, 정년 장군, 혜일대사는 예전부터 당제로 모셔졌지만 장보고 장군을 모신 것은 10여년 전부터라고 했다. 정확하게는 1982년 남도문화제 출전 이후부터라고 아예 못을 박는 이들도 있었다. 장보고 장군을 모시자는 마을 유력자들의 건의에 의해 시작된 것이라고도 했다. 영국의 역사학자 홉스바움(E.Hobsbawm)이 이론화시킨 ‘만들어진 전통’의 개념은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설명하는 데 매우 유효할 것이다.‘전통 만들기’로 인하여 반허구적 조작이 이루어지고, 역사적 연속성을 초월하여 과거가 새로이 만들어졌으며, 심지어 역사적인 연속성조차 새로이 만들어진다고 그는 설파하였다. 장보고를 되묻는다.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다. 그러나, 중요한 만큼 조심스럽게 다룰 필요가 있다. 혹시나 박정희 시대의 이순신 장군, 전두환 시대의 세종대왕, 김대중 시대의 장보고 식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방식을 취하면서 ‘정치적’으로 귀착한 것이나 아닌지. 장도가 청해진이라는 발굴 성과가 제시되자 사람들은 한층 ‘전통 만들기’의 욕망에 허덕이는 듯 보인다. 장보고와 송징은 섞여서 해석되고, 장보고의 ‘만들어진 전통’을 위해 ‘거추장스러운’ 송징은 마땅히 죽어야만 한다는 듯. 송징의 옷을 빼앗아서라도 새롭게 갈아입은 장보고가 주인공이 되어야만 우리들 시대가 펼치려는 온갖 장중하고도, 때로는 불필요한 일까지 포함하는 장보고 현양사업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모든 길은 장보고로 통한다.’는 식에 가까운 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온갖 추정과 가설이 정설로 둔갑되고 마침내 확고부동의 진실로 위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어떤 유력 일간지는 아예 ‘천년 넘게 이어져온 장보고 당제’라는 특집도 내보냈으며,TV도 ‘장도와 청해진, 장보고, 마을신앙’의 연결을 공식화하기에 여념이 없다. 역사적 근거가 없으니 안타깝거니와 사실은 ‘아둔한 짓’ 아닐 것인가. ●천년 넘게 이어져온 장보고 당제라니… 송징은 조만간 완벽하게 죽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훗날에는 장보고의 ‘만들어진 전통’,20세기 초기나 말기의 행위들이 당당히 사서(史書)에 기록되고, 새로운 구전(口傳)으로 이어져서 새 전통으로 거듭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인 즉, 민중신앙사의 장기 지속에서 연이어 온 송징만큼은 훗날을 위해서라도 온전히 보존해 두어야할 것 아닌가. 매우 하찮은 일 같지만, 이렇듯 역사적 뿌리마저 뒤범벅해 놓으면서 어찌 후대의 역사적 평가 운운하는 말을 쉽게 할 수 있으랴. 한학자 임형택(성공회대) 교수도 이를 경계하여 ‘민중영웅의 형상이 또 한번 훼철당한 사례’로 비판한 바 있다. 장보고를 핑계삼아 희생양처럼 훼철된 송징이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 늠름하게 좌정해야 하지 않을까.
  • [정인학 교육대기자 실전논술] 실전논술 지상강의 2회 제시문

    글 ㈎ ①“중국이 무리수를 두고 있습니다. 세상 살다보면 욕심을 낼 수도 있지만 이번에는 정도가 지나쳐요.”고구려 연구재단이 공식출범하기에 앞서 지난 주말 서울 고려대 법학관 1층 교수실에서 만난 김정배(64·고려대 사학과 교수·임기 4년)재단 초대이사장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중국측이 느닷없이 ‘동북공정(東北工程)’을 들고 나와 고구려사를 자신의 지방사로 만들려는 데 대한 분노가 역력했다. 교수실은 얘기를 나눈 지 채 5분도 되지 않아 노학자가 내뿜는 열기로 뜨겁게 달궈졌다. ②김 교수는 조목조목 중국 주장의 부당성을 꼬집었다.“그들의 주장대로 우리 반만년의 역사에서 고구려 부분을 빼면 2000년 역사 밖에 안 되는 민족이 됩니다. 또 단지 역사적인 측면을 넘어 향후 국경이라는 문제까지 비화될 수 있어요.” 중국 주장대로라면 고구려가 평양천도를 했으므로, 현재의 북한 역시 중국 땅이 된다. 한국은 고작 남한 땅으로 좁혀진다. 노학자의 차분하던 목소리는 이 대목에서 톤이 높아졌다.“세계적으로 이런 무리한 주장을 한 예가 없습니다. 일본도 이보다 심하지 않았어요. 일본의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은 여기 비하면 양반입니다.”(임나일본부설이란 왜가 4세기 가야 지역에 임나일본부를 두고 한반도 남부를 경영했다는 일본측의 주장) ③김 교수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동안 책상위를 뒤져 자료 하나를 보여줬다.“이 사람이 실제 동북공정의 지휘를 맡고 있는 마대정(馬大正)인데, 신강쪽에서 변방문제를 주로 연구하던 사람입니다. 이런 점을 봐도 이들의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중국도 외세의 침략으로 인해 고통을 겪은 나라인데 21세기에 이런 패권주의로 무엇을 얻으려는지 모르겠습니다.” ④동북공정에는 조선족 문제에 대한 중국의 시각도 큰 몫을 하는 것으로 진단했다.“국내의 불법체류 조선족 문제는 중국으로서는 자국의 통치기반을 흔드는 중대사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사실 감정적인 측면을 벗어나 법적으로 본다면 이들은 중국인입니다. 중국으로서는 중요한 문제이지요.” ⑤김 교수는 한마디로 중국의 동북공정이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를 중국에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포석의 성격이 짙다고 진단했다.“한국이 경제력이나 정치적으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나라라는 점에서 우리를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⑥따라서 김 교수는 향후 재단의 활동을 연구와 현실참여 두 가지 모두를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시민단체들을 지원할 방침이다.“시민단체들은 아무래도 행동을 중시해, 이 문제를 널리 알리고 공론화하는데 맞으리라고 봅니다. 외교문제가 걸린다면 상황에 따라 정책적인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도록 할 예정이에요.” 물론 시민단체에만 의존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정·관계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일 계획입니다. 또 북한 학자와 공동보조를 취하기 위해 통일·외교부 등과 연계해 합동조사나 세미나 등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러나 무작정 중국과 맞부딪히려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우리 작업이 중국과의 영토분쟁으로 비쳐져서는 안 됩니다.마치 영토분쟁의 문제로 발전하는 것은 양국에 올바른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⑦그는 역사지키기라는 중차대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 연구여건과 환경을 정비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국내에서 고구려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겨우 14명 정도입니다. 연구자가 그리 많지 않은 편입니다. 고대사 연구를 하는 후학에 대한 지원을 늘릴 겁니다.” 김 교수는 그러나 단숨에 모든 것을 이뤄낼 수 없는 만큼 착실히 일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⑧중국의 왜곡된 주장을 반박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예컨대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만 보더라도 고구려라는 문헌과 말갈족이라는 것이 공존하는데, 중국은 말갈족이라는 문헌만 택합니다. 발해가 말갈족의 지방정권이라고 중국이 주장하는 것은 이런 맥락이지요. 하지만 고대사는 단지 사료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 유물을 보면 고구려의 것이 대거 발견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한 나라가 갑자기 세워질 수 있습니까. 상식으로 말해야지요.” 비록 중국이 자국에 민감한 사료의 경우 사진촬영을 금지한다든지 접근을 불허하는 등의 태도를 취하기는 하지만, 중국의 주장을 반박할 자료는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중국 러시아 몽골 등을 모두 뒤져 고구려 관련 자료를 모아 실증적으로 고구려가 한국사임을 밝히려는 것이다. ⑨김교수는 이번 작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대외홍보라고 강조했다.“역사는 연구도 중요하지만 알리는 부분도 중요합니다. 외국 연구기관 대학 등에 연구결과를 정기적으로 보내, 고구려사에 대한 세계의 공감대를 형성할 것입니다.” ⑩아울러 고구려 역사를 지키는데 특히 북한과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했다.“북한은 고구려를 뿌리로 삼고 있어요. 심지어 삼국통일에서 신라의 역할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고구려에서 고려로 정통성이 이어졌다고 봅니다. 그런데 중국이 고구려를 자신들의 지방사라고 하니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⑪그렇다고 중국과 담을 쌓으려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조만간 중국과 대화하기로 돼 있습니다. 앞으로 학술회의나 대담 토론회 등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중국 뿐 아니라 러시아 등과도 만남을 가질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국민의 시선이 부담스럽지만 우리 역사를 지키는데 물러설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동북공정이란? 동북공정이란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을 약칭해서 부르는 말로 ‘동북 변경지역이 역사 문화적으로 중국의 영역임을 확인’하려는 이 작업은 지난 96년 중국의 국가기관인 사회과학원의 핵심연구과제로 추진되기 시작했다.‘학술은 대중을 이해시켜야 한다.’는 등의 원칙 아래 고구려사 등을 연구중이다. 글 ㈏ ①최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주도하는 중국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중심의 ‘동북공정’ 2004년도 연구과제가 서울신문을 통해 소개되었다. 이는‘동북변강연구총서’로 간행된 2003년 과제와 연결된 것으로 고구려, 발해문제를 중심으로 우리민족 기원문제와 명·청 시기 조·중 관계사 등 중국이 동북3성(헤이룽장성, 지린성, 랴오닝성) 지역에 대한 역사적 장악활동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와 관련된 각 연구자 및 관련기구들의 범위와 성격도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②주목되는 것은 동북공정에 참여한 조직이 35개에 달하며 관련인력은 수백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즉, 동북 3성 지역의 모든 사회과학원과 대학, 전문연구소가 중앙의 변강사지연구중심을 정점으로 연결되어 역할 분담을 통해 관련연구를 조직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 조직이 고구려를 중심으로 고대사에서 근현대사까지 동북 3성지역과 관련된 중요 쟁점사항들을 다양하게 망라하여 연도별로 진행하고 있음이 실제 확인된 것이다. ③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2004년 3월15일에 공포된 ‘동북공정 과제연구지침’내용이다. 이 지침에는 동북공정이 추진하는 6개의 연구항목과 과제목표가 제시되어 이에 근거한 연구계획 수립을 관련 연구자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 내용 중 새롭게 ‘고구려발해국문제연구’가 추가되어 나타난 점이 주목된다. 동북공정에서 고구려, 발해가 핵심 연구분야임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2003년의 세부연구주제였던 ‘발해유적현상조사’가 2004년 내용에는 생략되어 있다. 이는 2005년에 헤이룽장성 닝안(寧安)과 지린성 둔화(敦化)지역의 발해유적을 20억위안(약 2800억원)을 들여 중국고대도시로 복원한다는 최근 보도와 연결된 것임을 보여준다. ④결국,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와 발해가 중국사라고 학술적으로 부각하고 곧바로 그에 대응되는 역사공간인 시안의 고구려유적과 둔화의 발해유적 등을 중국 역사유적으로 복원, 정비하여 명실상부한 중국 역사화 작업을 완수하려는 의도를 이번에 명확히 보여준 것이다. ⑤또한 북방지역의 고대 종족, 고조선, 한국민족 및 고대 국가기원을 연구해 중국과 우리 민족의 관계사, 국경문제, 이민문제 등을 중국적 입장에서 정리하여 결국 이들 역사마저도 중국 역사범주에 있음을 강변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2004년 연구과제인 ‘조선반도민족, 국가의 기원과 발전’이란 제목의 연구과제는 중국의 연구가 고구려, 발해와 함께 우리민족의 성격까지도 중국측 논리로 파악하려는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과제의 연구책임자가 다른 연구논저에서 이미 한국민족은 중국계통의 유이민 세력이며 중국문화가 한국문화의 모태라는 식의 철저한 중국중심주의 입장을 피력한 사실을 감안할 때 심각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⑥이상에서 볼 때 2004년 중국의 동북공정이 추진하는 연구사업은 중국의 역사왜곡과 고구려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등과 연결된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중국은 동북지역을 장악한 현재의 정치적 상황이 수백-수천년 전에도 같은 상황인 것처럼 호도하려는 정치적 목적을 더욱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이는 우리 민족의 존립근거와 역사 문화적 정체성마저 부정하는 폭거이자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공존을 위협하는 역사침략이다. ⑦이제 우리는 후손에게 우리 역사를 당당히 지켜내고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영을 지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지금 무엇을 했고 또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실천할 때이다. 특히, 지난 1일 출범한 고구려연구재단이 중국의 역사왜곡과 한민족 정체성부정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 학자들의 열정과 노력, 체계적인 정부의 지원, 그리고 보다 많은 국민의 관심과 우리 역사 사랑이 요청된다. 글 ㈐ ①최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관한 충격적인 보도가 거의 날마다 언론매체의 헤드라인을 차지하고 있다. 아직도 일본의 역사 왜곡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앞뒤에서 협공을 당하는 꼴이 되었다. 게다가 중국이 저지르고 있는 왜곡의 정도나 수위가 오히려 일본보다 극심하다. 중국은 그동안 일본의 역사왜곡에서 우리와 같은 피해자로 동병상련의 처지에 있었기에 더욱 개탄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 우리는 즉시 중국의 역사왜곡의 저의를 파악하고 근본적 대응책을 모색해야 한다. ②중국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우리와 수교한 직후부터 정부 산하의 학술기구인 중국사회과학원을 주축으로 역사왜곡을 획책하였다. 그들은 2002년 2월부터 ‘동북공정’이라는 대형 프로젝트를 본격화하여 아주 조직적으로 우리의 고대사인 고구려사와 발해사를 송두리째 가로채려 기도하고 있다. 중국의 이러한 역사왜곡에는 대내외적으로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포석이 다양하게 깔려있다는 점을 먼저 간파해야 한다. 우선 대내적으로 볼 때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사회주의에 대한 회의가 내부에 확산되면서 체제 유지와 안정을 위해 국가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이같은 국가주의는 애국주의와 사회주의의 결합을 통해 국가적 정체성과 통일성을 유지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동북공정’도 바로 그러한 정책의 일환인 것이다. ③동시에 대외적으로 ‘동북공정’에는 중국이 동아시아의 질서를 재편하고 나아가 국제무대에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패권주의적인 야심이 담겨 있다. 특히 해양세력인 일본의 확장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동아시아에서 리더십을 확립하겠다는 것이 1차적 목적인 것이다. 통탄스럽게도 현 강국들의 힘 겨루기가 과거 우리의 고구려사를 매개로 벌어지고 있는 격이다. ④이렇게 다양한 목적이 중첩되어 있기 때문에 중국은 역사 왜곡을 쉽사리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앞으로 그것을 더욱 심화하고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가 늦은 감은 있으나 외교채널을 통해 중국 측에 엄중히 항의하는 동시에 북한과도 연대하여 공동대응하기로 결정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이다. 하지만 정부는 더욱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차원에서 대책을 강구해야만 한다. 특히 아래의 몇 가지 사항들은 반드시 참작하여 대책 수립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⑤먼저 고구려사 왜곡이 정치문제로 불거졌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은 학문적인 저력을 배양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역사의 요체는 문화전통이다. 따라서 고구려가 우리 민족의 국가였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역사학의 저변 확대만으로는 부족하다. 언어학, 고고학 등 주변 인문학을 총동원해 학술적인 면에서 설득력을 강화해야만 한다. 이를테면 국어사적인 측면에서 고구려어의 특성을 밝힌다면 그것이 백제어, 신라어와 동질적 관계이고 중국어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분명히 규명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법이 중국이 자행하는 역사왜곡의 허점을 잡아내고 그들의 억지 논리를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는 최선의 길이 될 것이다. ⑥다음으로 고구려사를 포함한 국사교육체제를 전면적으로 강화하여야 한다. 문민정부 이후 제도권 교육에서 국사과목은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심지어 대학에서는 국사가 교양필수에서 그저 흥밋거리나 제공하는 선택과목으로 전락해 버린 지가 오래다. 이러다 보니 ‘국민의 집단기억’을 담고 있어야 할 국사교과서마저도 문제 투성 이라는 사실이 자주 지적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다. 지구상에 자국사가 이렇게 푸대접을 받는 나라는 많지 않을 것이다.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국민적 대응이라는 대전제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겠는가. ⑦끝으로 고구려사를 비롯한 우리 역사를 국제사회에 보급하는 데에도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특히 유네스코 등 국제기구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전이 시급하다. 고구려사가 한국고대사라는 엄연한 사실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인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동북아 역사전쟁에서 우리는 참패를 당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로 자국의 역사마저도 타국에 송두리째 강탈당하는 비극적 운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불을 보듯 뻔하다.
  • [24일 TV 하이라이트]

    ●생방송 TV연예(SBS 오후 8시55분) 600여명의 일본 팬들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던 청룡영화상 핸드프린팅 행사장에서부터 그의 사진전 팬 사인회 현장까지 한·일교류의 핵, 욘사마 배용준 열풍의 모든 것과 밀착 인터뷰를 전격 공개한다. 국내 최초의 검찰청 촬영으로 화제가 된 영화 ‘공공의 적2’촬영 현장도 공개한다. ●사이언스+(YTN 오전 8시30분) 스팸메일이나 여러 경로로 침투하는 컴퓨터 바이러스. 바이러스에 감염된 컴퓨터의 증상을 점검하고, 백신설치방법을 배워본다. 이젠, 한글 인터넷 주소를 사용하자. 인터넷 주소창에 한글로 된 해당 사이트이름을 입력하면 바로 연결된다. 원하는 이름을 한글인터넷주소로 등록하는 방법을 배워본다. ●생방송60분-부모(EBS 오전 10시) 정신적인 웰빙은 사라지고 물질적인 웰빙만을 외치는 세상에 부모들이 휩쓸리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진정한 웰빙이란 어떤 개념인지 ‘웰빙육아’를 통해 함께 고민한다. 웰빙의 방식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어떤 것인지 배워본다. 또한 자연과 가까운 놀이에 대하여 알아본다. ●국토체험 서바이벌(청춘예찬)(iTV 오후 5시) 남자 참가자 12명과 여자 참가자 12명의 불타는 승부. 청춘예찬 제 5관문은 중요 무형문화재인 별산대 놀이마당을 체험하기 위해 전통과 문화의 도시, 양주에서 진행되고, 제 6관문은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해 볼 수 있게 연천에 있는 전곡리 선사 유적지에서 펼쳐진다. ●논스톱5(MBC 오후 6시50분) 일일호프를 열기로 한 논씨네 아이들. 지우는 킹카인 진우, 승기에게는 티켓 30장을 주고, 진구·승혁이·경준이에게는 달랑 10장을 주며 팔아오라고 한다.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진구·승혁·경준은 자신도 30장을 거뜬히 팔아올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 과연 이들은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까. ●인간극장(KBS2 오후 8시55분) 영희는 재필과 딸, 채연이를 데리고 친정 나들이를 다녀오고 친정 부모님께 약속한 대로 시부모님께 더욱 잘하려고 노력을 기울인다. 얼마 남지 않은 재필의 군입대. 양가의 축복 아래 재필과 영희는 성당에서 혼배 성사를 올리고 드디어 가족 여행을 떠나게 된다. ●TV문화지대(KBS1 오후 11시35분) 지난 2000년 7월 31일 K2를 완등함으로써 히말라야 8000미터 이상의 봉우리 14좌를 모두 오른 엄홍길 대장. 그가 러시아 시인의 책과 달라이 라마의 책을 들고 낭독무대에 섰다. 엄홍길 대장이 낭독을 이어갈 때 트럼펫 연주자 이주한씨가 음악으로 함께 한다.
  • 귀 6개달린 백제 ‘금동 광배’ 첫 출토

    ‘귀’ 달린 백제 금동 광배(光背)가 국내 처음으로 출토됐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충남 부여군 부여읍의 백제 왕궁터로 추정되는 ‘관북리백제유적’(사적 제428호) 발굴조사에서 6개의 귀가 달려 있는 광배를 수습했다고 22일 밝혔다. 높이 12.9㎝, 너비 10.3㎝, 두께 0.25㎝의 이 금동광배엔 양쪽으로 3개씩, 모두 6개의 귀가 달려 있다. 김용민 부여문화재연구소장은 “과거 부소산성 등에서 백제 광배가 몇 차례 출토됐지만 귀 달린 것은 처음”이라며 “중국에선 북위시대(386∼534년)에 제작된 것으로 비슷한 광배가 나온 일이 있다.”고 말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내고장 문화재’ 주민들이 지킨다

    ‘내고장 문화재’ 주민들이 지킨다

    “웬 먼지가 이렇게 많아요.”“생각을 해보세요. 수백년간 쌓인 먼지가 오죽하겠어요.” ●청소·관리·답사등 활동 NGO 30여곳 지난 16일 오전 서울 창덕궁 한편에 자리잡은 연경당.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먼지를 털고 걸레질을 하는 이들은 재단법인 아름지기 회원들이다. 털이개를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뽀얗게 일어나는 먼지가 집안 가득 퍼진다. 연경당은 조선 순조때 지어진 사대부집이다. 웅장한 궁에서만 거주하는 임금이 아늑한 사대부집의 분위기를 그리워해 지어놓고 가끔 기거했다고 한다. “정말 해도해도 끝이 없는 게 문화재 청소입니다. 그나마 이렇게 저희들의 손이 미치는 문화재는 운이 좋은 편이죠.” 아름지기 총무이사 정인숙(52)씨는 “한정된 국가 예산으로 모든 게 이루어질 수 없는 만큼 문화재 관리엔 저희 같은 자원봉사자들의 역할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경기도 분당에서 왔다는 회원 황미정(51·주부)씨는 “거의 빠지지 않고 창덕궁을 찾아 청소에 참여한다.”며 “문화재 보존에 참여한다는 보람도 크고 고궁 정취도 즐길 수 있어 올 적마다 즐겁다.”고 활짝 웃는다. ●외국관광객 안내 자처 “넘버원 문화외교관” 아름지기 회원들은 지난해 3월부터 격주로 화요일마다 창덕궁을 찾아 청소를 하고 있다. 또 문화유적에 대한 강좌, 전국의 문화재 답사도 꾸준히 진행해 왔다. 아름지기처럼 문화유산 보전활동을 활발히 펴고 있는 NGO중 비교적 잘 알려진 단체만 30여개가 넘는다. 활동 분야도 문화재 청소와 관리는 물론 교육, 답사, 전승, 연구 등 다양하다. 이중 서울에 사무실을 둔 ‘한국의 재발견’(대표 손용해), 경북 안동의 안동문화재지킴이(대표 임재해), 수원의 화성연구회 등은 특히 활동이 돋보이는 단체다. 한국의 재발견에선 매주 토·일요일 서울의 고궁을 찾는 방문객들을 안내하는 궁궐지킴이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아 ‘문화 외교관’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같은 문화유산 보전활동이 내년 봄부터는 좀 더 체계적이고 광범위하게 진행될 전망이다. ●문화재청, 내년3월 ‘1문화재 1지킴이 운동’ 문화재청은 최근 문화재를 시민의 힘으로 지킨다는 취지로 ‘1문화재 1지킴이 운동’을 내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지난 16일부터 12월 말까지 이 운동에 참여할 신청자를 인터넷(www.ocp.go.kr)을 통해 모집중이다. 개인과 가족은 물론 학교, 회사, 대학학과, 공공기관 등 단체도 참여할 수 있다. 모집이 끝나면 이들이 활동할 문화재가 있는 지자체 또는 개인 소유주와 자매결연을 맺게 해준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8)느림의 財富를 간직한 미완의 섬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8)느림의 財富를 간직한 미완의 섬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 어찌될까.‘시인의 마음’이라면, 두 손도 초록으로 물들 게 분명하다. 그래서 ‘초록빛 바닷물’은 오랫동안 인기 동요로 불려지는 게 아니겠는가. 그러나 ‘현실의 바다’에서 순진무구한 초록빛을 보기란 그리 쉽지 않다. 바다처럼 오묘한 빛깔의 원천이 있을까. 바다는 시시각각 변한다. 칠면조나 카멜레온의 변신 차원이 아니다.‘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광고 카피처럼 ‘바다의 변신도 무죄’라고나 할까. 아침의 짙은 해무, 한낮의 강렬한 태양, 저녁의 노을진 풍광, 게다가 험악한 파도, 심지어는 적조같이 붉게 오염된 해양 조건까지 개입하여 변화무쌍한 신화를 낳는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려왔지만 한결같은 바다는 없다. 색깔이 가장 아름다운 우리 바다를 꼽으라면 어딜 들까? 아름다움의 기준 자체가 애매한지라 결론이 쉽지 않다. 같은 바다라도 앞에 든 이유 때문에 늘상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굳이 ‘꼭 집어서’ 말하라면 필자는 제주도에 딸린 작은 섬 비양도를 먼저 떠올린다. 바다의 색이 투과하는 빛의 파장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은 초보적 과학지식이다. 빛의 파장과 흡수 정도에 의해 바다의 색깔이 결정된다. 수심 10m 이내에서 대부분의 빛은 흡수되며 미생물이나 부유물질이 많은 경우에는 감소된다. 햇빛은 스펙트럼을 통해서 보면 무지개색이다. 빨강이 가장 먼저 흡수되며(보통 수심 5m 이내), 가장 늦게 파랑이 흡수된다. 그래서 바다는 파랗다. ●햇빛이 흰모래빛과 어우러져 오묘한 빛 탄생 그러나 파란색조차도 수심 70여m에 이르면 모두 흡수되고 만다. 수심 1000m가 넘는 독도 근해가 검정에 가까운 검푸른색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비양도는 왜 ‘전국 최고의 초록빛 바다’를 늘상 유지하고 있을까. 협재를 다녀간 이들은 건너편에 보이는 비양도까지 5m 내외의 얕은 바다가 이어짐을 기억하리라. 까만 용암이 많은 여느 제주 바다와 달리 고운 모래밭의 천해(淺海)다. 빛의 파장이 흰모래빛과 어우러져 오묘한 빛깔을 탄생시켰다. 흡사 신이 현현(顯現)하는 듯, 에메랄드빛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하다. 천혜의 바다 빛깔이니, 경관 가치만으로도 엄청난 부를 창출하는 바다이리라. 관해(觀海)의 미학에서 그동안 너무 자주 바다 빛깔의 경관이 무시돼 왔다. 외국에서는 바다빛 고운 해변에 친수공간, 이른바 워터프런트(Water front)를 조성하여 바다를 바라보게 하는 것만으로 떼돈을 벌어들이곤 한다. 이런 점에서 협재에서 비양도에 이르는 물목은 엄청난 경관적 재부(財富)를 지닌 곳이 아닐 수 없다. 가오리 형상의 비양도(飛揚島)는 글자 그대로 ‘날아온 섬’. 비양도 소개 책자에는 ‘천년의 섬 비양도’라고 적혀 있다.‘산이 바다 가운데서 솟았다. 산의 네 구멍이 터지고 붉은 물을 5일 동안이나 내뿜다가 그쳤다.’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고려 목종5년(1002) 기록 때문이리라. 그러나 산견되는 신석기 유적으로 미뤄 불과 천년 전 화산 폭발로 이 섬이 생겼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본디 있던 섬에서 다시 화산이 폭발해 오늘과 같은 화산섬이 조성되었음직하다. 비양도를 가자면 아침 9시 정각에 한림항에서 출발하는 도항선을 타야 한다. 불과 20여분이면 닿는다. 거리는 짧아도 작은 섬인지라 교통 편한 제주도 같지 않다. 피서철에는 자주 배편이 있다지만 늦가을 아침 그 배에는 필자를 포함, 고작 다섯명이 탔을 뿐이다. 겨울철에는 손님 한두 명을 태우고 운항하기도 예사다. 당국의 지원 없이는 운항 자체가 불가능한 항로다. 섬을 한 바퀴 돌았다. 대형 화산탄이 즐비한 해변에는 큰자재여, 구븐들, 밧서비녀, 안서비녀 등의 여, 애기업개돌 같은 용암굴뚝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화산 등성이에 밭은 없고 갈대만 우거져 있어 식량 마련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섬으로 떠나오기 전날 밤,“참으로 아름답지요. 그런데 먹고살기는 척박한 섬이니 제대로 보고 오세요.”라며 이런저런 사람을 소개시켜 주던 오승국(4·3연구소 사무총장) 시인의 말이 생각났다. ●밀물에 수위 줄고 썰물에는 높아지는 염습지 ‘펄낭’ 비양도 경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염습지인 ‘펄낭’이다. 바닥으로 바닷물이 스며 형성된 ‘펄낭’은 조수운동과 반대로 밀물에는 수위가 줄고 썰물에는 높아진다.‘펄낭’의 끝에는 마을 본향당이 있어 비양도 사람들이 ‘펄낭’을 얼마나 신성스럽게 여기는지를 말해 준다. 염습지의 소금기가 배어들 만한 용암에는 신목인 사철나무가 서있어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사철나무의 녹색과 검정 용암의 강렬한 대조는 모진 풍토에서 살아남은 생명의 힘 그 자체이다. 오죽하면 마을민이 공동체의 신목으로 모셔 왔을까. 비양도 신목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근을 지나는 배들이 일부러 찾아들어와 인사를 드리고 가는 순례 코스였다. 본 마을이 형성된 앞개포구까지 걸어 왔는데도 한 시간이 안 걸렸으니 작은 섬이다. 비양봉을 올랐다. 불과 30여분이면 오르는데, 한림항은 물론이고 자잘한 오름들, 그리고 한라산 정봉이 성큼 다가선다. 한라산이야 제주도 어디서나 보이지만, 이처럼 제주도에 딸린 섬에서 바라보는 멋이 색다르다. ●피서철 빼면 찾아들 음식점 없어 끼니 거를 판 비양봉 정상에는 무인등대가 있어 밤새워 신호를 내보낸다. 푹 꺼진 분화구 너머 초록빛 바다가 한눈에 잡힌다. 펄낭의 좁고 긴 물매, 앞개포구의 고즈넉한 풍경, 한림항의 조금은 번잡스러운 풍경이 모두 들어온다. 지금은 잠든 쌍둥이 분화구가 다시 폭발할 것 같은 백일몽에 빠져든다. 등대 옆 풀밭에서 팔베개를 하고 누우니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 없다. 섬의 시간이란 이렇듯 무한대다. 시간은 충분하다. 오후 3시30분이 되어야 배가 나가므로 작은 섬에서 남은 건 시간뿐이다. 번잡스러운 음식점이 많은 곳이라면 대개는 질펀한 술판에 끼어들어 거하게 잔을 나누며 시간을 때우기 십상이지만 이곳에는 피서철 빼면 찾아들 음식점도 없어 끼니를 거를 판이다. 우리들의 여행이란 늘상 과보호, 과식, 가속도 등으로 점철되어 이렇듯 한가한 시간을 갖기가 어렵다.‘섬의 시간’,‘느림의 시간’을 배울 양이면 어느 섬에서건 해산(海山) 정상에 올라 1∼2시간쯤 누워 있다가 내려오길 권한다. 비양도는 물이 없는 섬이다. 오로지 빗물에만 의존해서 살았다. 빗물조차도 금세 밑으로 빠지는 화산토인지라 본섬에서 가져온 질흙을 다져서 빗물을 모았다. 닭똥 같은 오물이 이 물에 섞여 온갖 풍토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물 없는 섬의 삶이란 참으로 절박하다. 조금 전까지의 초록빛 예찬과는 판이한 현실이다. 다행히 1965년, 해역사령부가 나서 협재에서 이곳으로 해저파이프를 연결, 식수 공급이 가능하게 되었다. 오죽 큰 사건이었으면 포구에 송덕비까지 세워 식수가 들어오게 된 역사적 내력을 각인시켰을까. 고종13년(1876)에 서(徐)씨 일가가 처음 이 섬에 입도했다고 전해 온다. 재미있는 점은 ‘펄낭’의 본향당 주신(主神)이 건너편 금릉에서 갈라졌다는 당(堂)의 내력이다. 금릉당은 임씨하르방이고 비양도당은 김씨할망이란다. 금릉당과 비양도당이 ‘도채비불’이 되어 예의 그 ‘초록빛 바다’쯤에서 만나 빛을 발하곤 한단다. 하르방과 할망이 데이트를 하는 셈이다. 이 전설은 금릉에서 최초로 누군가가 비양도로 입도한 역사를 말해 줌이 아닐까. 당의 갈래퍼짐을 통하여 유사무서(有史無書)의 역사를 알 수 있으니, 섬 민중의 역사란 어느 곳에서나 이와 같을 것이다. 그러한즉 어느 섬에 가서나 ‘섬 무지랭이’들에게 기록 없음을 탓하지 말 것이며, 기록만으로 섬의 역사를 함부로 재단할 일도 못된다. ●감태가 무성함은 물고기집이 많다는 증거 포구에서는 주민들이 말린 감태를 묶고 있다. 올해는 태풍으로 감태가 많이 밀려와 제법 풍년이란다. 일제시대는 폭약 재료로 쓰였으며, 지금은 의약품에 쓰이는 감태는 사실 ‘물고기의 숲그늘’이다. 비양도 주변에 감태밭이 무성함은 그만큼 물고기집이 많다는 증거이리라. 작년에는 60㎏에 6만원을 받았는데 올해는 3만 8000원에 불과하다며 볼멘소리들이다. 바다의 삶이란 늘 그렇다. 풍어기에는 가격이 떨어져 속상하고, 흉어기에는 고기가 안 잡히지만 대신 값이 올라 그런대로 버틸 만하다. 횟집에 가격표 대신 ‘시가(時價)’라고 쓰여 있는 것도 다 이런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여름 한철, 한치와 갈치잡이가 주업이다. 잠녀 물질로 거둬들이는 전복, 오분작, 소라 등도 중요한 산물이다. 물론 제대로 된 전복이 잡힐 리 없다. 어장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다. 비양도를 마주보는 제주도 서북해안의 월령 귀덕 협재 웅포 한림 금릉 수원 한수리 용운동 등 아홉 어촌계가 ‘관행’을 내세워 이곳에서 대대적으로 어패류를 채취하기 때문. 무인도 시절부터 비양도를 주어장으로 조업하던 이들 아홉 마을에서 100년 이전의 관행을 내세워 공동어장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관습법이 사회적 관심을 끌고 있는바, 비양도에서도 지난 100여년의 관행이 현실의 법이다. 수백년간 지속되어 온 관행 어법의 역사적 권한이 존재한 뒤에 이 섬마을이 형성된 결과이리라. 그런즉 협재쯤에서 ‘초록빛 바닷물’만 보고서 물장구치다 돌아가는 사람들이 어찌 비양도의 진실을 알 수 있겠는가. 비양도는 가난한 섬이다. 그러나 떠나오는 뱃전에서 다시 필자를 감동시킨 사실을 확인했으니, 그것은 비양도에 차가 한대도 없다는 것이다. 차가 없는 섬! 바로 우리가 꿈꾸던 유토피아 아닌가. 초록빛 바닷물에 차까지 없는 섬 비양도는 확실히 ‘빠름’보다 ‘느림’의 재부를 잘 간직한 ‘미완의 섬’이다.
  • [儒林 속 한자이야기] (45)

    儒林 214에는 處世術(머물 처/세상 세)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사람들과 사귀며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나 수단’을 일컫는 말이다. 處는 ‘살다’‘그치다’‘정하다’‘처치하다’‘처자’‘곳’ 등의 뜻으로 쓰인다.用例(용례)에는 處方箋(처방전:처방의 내용을 적은 종이),處身(처신: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져야 할 몸가짐이나 행동) 등이 있다. ‘世’자 역시 甲骨文에는 보이지 않지만 金文의 字形(자형)은 매우 다양하다. 학자에 따라서는 ‘돗자리를 짜고 새끼를 꼬는 데 쓰이는 도구’‘葉(잎 엽)자의 古文(고문)으로 줄기와 잎을 그린 象形字(상형자)’‘세 개의 十자로 30년을 나타낸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世의 뜻에는 ‘인간’ ‘시세’ ‘세대’ ‘대(代)’ ‘해’ ‘평생’ 등이 있다. 쓰이는 單語(단어)로는 世居(세거:대대로 삶),世態炎(세태염량:세력이 있을 때는 아첨하여 따르고 세력이 없어지면 푸대접하는 세상 인심을 비유적으로 이름),蓋世之才(개세지재:아주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曲學阿世(곡학아세:바른 길에서 벗어난 학문으로 세상 사람에게 아첨함) 등이 있다. 처세의 類型(유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는 무능한 군주 섬기기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하찮은 벼슬도 사양하지 않으며, 일단 벼슬길에 오르면 현명함을 최대한 발휘한 柳下惠(유하혜) 같은 유형이다. 두 번째는 不正(부정)한 것은 보지도 듣지도 않고, 임금과 백성이 바르지 않으면 섬기지도 다스리지도 않은 淸廉(청렴)과 志操(지조)의 상징인 伯夷(백이)이다. 그는 주나라 武王(무왕)의 行爲(행위)가 바르지 못하다는 이유로 벼슬을 버리고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로 延命(연명)하다가 굶어 죽었다. 세 번째는 자신을 일컬어 ‘하늘이 낸 만인 가운데 먼저 깨달은 사람’이라고 하며 혼란한 세상을 조금도 回避(회피)하지 않고 重責(중책)을 自任(자임)한 伊尹(이윤)과 같은 삶이다. 유하혜와 같은 삶은 자칫 無所信(무소신),無原則(무원칙)의 機會主義로 흐를 경향성이 다분하다. 그리고 백이와 같은 유형은 올곧음이 지나쳐 我執에서 헤어나지 못할 우려가 있으며, 이윤과 같은 경우는 자기만이 최고라는 選民意識(선민의식) 내지 獨善(독선)에 빠질 수도 있다. 자기 主張(주장)보다 남의 의견을 謙虛(겸허)하게 收容(수용)할 줄 아는 유하혜의 인품과 결코 不義(불의)와 妥協(타협)할 줄 모르는 백이의 강인함, 그리고 내가 최고의 適任者(적임자)라는 所信(소신)을 고루 갖춘 사람이 있다면 시대를 선도할 큰 선비요,知性人(지성인)으로 推仰(추앙) 받아 마땅할 것이다. 맹자는 孔子(공자)를 바로 이런 사람이라고 보고 공자를 일컬어 ‘때를 알고 때에 가장 맞게 행동한 성인(聖之時者·성지시자)이라고 평가하였다. 일찍이 老子(노자)는 처세의 방법으로 물처럼 살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물은 障碍物(장애물)이 없으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찾아 그냥 흐를 뿐이다. 물은 萬物(만물)에 惠澤(혜택)을 주면서 상대를 拒逆(거역)하지 않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물처럼 거스름이 없는 生活態度(생활태도)를 가져야 失敗(실패)를 면할 수 있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7)울산 장생포 고래잡이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7)울산 장생포 고래잡이

    7000원짜리 ‘고래탕’을 시켰다. 맛은 육개장과 흡사한데 방아잎을 넣어 향내가 비할 데 없이 진하다. 일행 중에 한 사람은 고래고기를 한 점 입에 물더니 더 이상 젓가락질을 못한다. 그런데도 길 안내를 도와준 지역 인사는 “역시 고래고기가 최고야!”를 연발한다. 음식은 어릴 적부터 먹어온 취향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출신지에 따라 선호도가 분명히 갈리기는 고래고기도 마찬가지다. 메뉴판을 들여다보니 고래생회 4만원, 수육 4만원, 육회 3만원, 모듬 7만원 등이다. 종잇장처럼 얇게 저며 깔아 놓은 터수라 상당히 비싼 고기다. 한 평생 고래고기만 팔아온 ‘왕고래집’의 주인장은 “비싼 게 문제가 아니라 없어서 못판다.”고 했다. 우연히 정치망에 혼획되는 밍크고래 따위가 들어올 뿐이다. 포유동물인지라 목살, 배, 대창, 갈비, 혓바닥, 대롱창 식으로 분류해 주문에 따라 따로 낸다. 돼지고기를 부위별로 잘라 파는 것에 견줄까. ●고래고기는 해방 당시까지 민중음식 해방 당시만 해도 장생포에서 고래고기를 지게에 짊어지고 멀리 대구까지 가서 팔았다. 쇠고기가 귀한 시절에 고래만한 대체육이 없었으니 ‘민중의 음식’이었음에 틀림없다. 보릿고개를 넘기자면 고래고기를 먹어야 했다. 겨우내 비실비실하던 개에게 고래 연골을 먹이면 금세 털빛에 윤기가 흘렀다. 그만큼 고단백에 불포화지방산이 많다는 증거. 우리 식생활사에서 고래고기 섭취는 선사시대로 소급된다.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와 장생포 고래잡이는 수천년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양자의 내재적 연속성이 너무도 극명하다. 고래 문화의 장기지속성이 적어도 울산 땅에서만큼은 지금껏 입증된다. 태화강 지류인 대곡천 상류에 깎아지른 절벽이 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암각화가 있어 엊그제까지 살다가 방금 전에 떠난 듯한 선사인의 숨결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곳이다. 반구대에 각인된 고래는 귀신고래, 긴수염고래, 혹등고래 따위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배의 밭고랑 무늬가 돋보이는 참고래, 배 타고 고래를 포획하는 선사인의 어로활동, 아기를 업고 가는 어미고래, 고래고기를 분육(分肉)한 듯한 분배 그림도 엿보인다. 캐나다 밴쿠버의 누트카, 알래스카의 에스키모, 쿠릴열도의 아이누, 태평양 알류트 등의 고래잡이와 비교되는 소중한 해양문화 유산이다. 동해안에 자주 회유해 오는 고래는 긴수염고래과(북극고래, 긴수염고래), 참고래과(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참고래, 보리고래, 돌고래, 흰긴수염고래), 향고래과(향유고래), 참돌고래과(흰옆돌고래, 돌고래, 참돌고래), 곱시기과(곱시기, 흑곱시기), 귀신고래과(귀신고래) 등이니, 대개 이들 고래가 포함된 것으로 여겨진다. 반구대 암각화는 우리 선조들의 주식이 고래였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암놈이 죽으면 수놈이 같이 잡히는 귀신고래 수많은 고래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고래는 역시 귀신고래이다. 우리나라 연안에는 예부터 귀신고래가 많아서 19세기 말 일본 선단에 잡힌 고래의 태반이 귀신고래였다. 세계 고래학명에서 우리 학명이 붙은 고래는 귀신고래를 뜻하는 ‘Korean Grey Whale’뿐이다. 일부일처제로 금실이 좋아 암놈이 죽으면 수놈이 곁을 지키다가 마침내 같이 잡혀 죽음을 맞는다. 새끼가 먼저 작살을 맞으면 암수 어미가 새끼 곁을 빙빙 돌다가 또한 같이 잡힌다. 동물의 정을 역이용한 인간의 야비한 사냥방식이다. 천연기념물 제126호로 지정된 귀신고래의 어쩌면 인간보다도 진한 혈육의 정을 보면서 귀신고래를 멸종시킨 인간의 잔혹함에 미안한 마음을 저버릴 수 없다. 캄차카반도의 차가운 바다에서 귀신고래들이 유영하는 모습이 간혹 관찰되고 있으니, 행여 우리나라로 돌아올 날이 언젠가 올지도 모른다. 경상도에서 보편적으로 먹던 ‘민중의 음식’인 고래고기가 ‘귀족의 음식’으로 둔갑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1985년 ‘느닷없이’ 포경이 금지되면서 ‘고래 항구 장생포’도 몰락의 길을 걷는다.‘느닷없이’라고는 하였지만 국제적 반포경운동이 불러온 예정된 결과였다. 수요는 여전히 존재하는데, 공급원이 사라지자 고래집도 거의 명맥을 잃게 되었고 고래도 ‘금값’이 되었다. 포경금지에 관한 국제협약의 파장이 장생포에도 강력하게 휘몰아쳤다. 포경선은 항구에 묶였고, 포신은 녹슬어 갔다. 이제 장생포에서 포경선은 찾아볼 수 없다. 사실 포경을 반대하는 구미 선진국은 본디 전세계적 규모로 포경을 주도해온 나라들이다. 한반도의 고래씨를 말린 나라들도 바로 이들이다. 어느 동물의 포살보다도 잔혹한 고래 포살을 보면서 동물애호가들이 전선에 나선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어제까지 세계를 주름잡던 포경국들이 반포경에 나선 것은 사실 역사의 아니러니다. 산업적 남획에 나섰던 구미열강, 그리고 후발 주자 일본 등은 고래기름과 부산물로 양초, 윤활유 및 수백가지의 공산품을 생산했다. 오로지 공산품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고래들이 죽임을 당하였다. 석유가 발견되어 더 이상 고래기름의 필요성이 소멸될 즈음에는 이미 고래 자체가 희귀존재가 돼버렸고, 그들에 의해 포경금지가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다. 고래 멸종이 문제가 되자 상업포경은 금지하되, 본디부터 고래를 먹어온 이들의 원주민 포경은 용인한다는 결론이 국제포경위원회(IWC)에서 도출되었다. 일본이나 노르웨이, 혹은 고래잡이를 해온 소수민족들 사이에 원주민 포경이란 이름으로 고래잡이가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이런 국제적 관계의 산물이다. 과연 상업포경과 원주민 포경의 구분이 본질적으로 가능할까. ●1985년 포경금지로 몰락의 길 한반도는 ‘고래의 낙원’이었다. 국립수산과학원이 파악하고 있는 한반도 연해의 서식 고래류는 대형 고래류 9종, 소형 고래류 26종, 도합 35종이다. 전 세계 5대양과 강에 80여종이 분포하는 것에 비하면 한반도 고래분포의 다양성은 꽤 높은 편이다.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는 영일만 일대는 예로부터 고래바다, 즉 경해(鯨海)로 불렸다. 1849년 무렵 한반도 연안에서 조업한 미국 포경선의 포경일지에는 ‘많은 고래들이 보인다. 수많은 혹등고래와 대왕고래, 참고래, 긴수염고래가 사방팔방에서 뛰어 논다. 셀 수조차 없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포경은 근대에 이르기까지도 간혹 해변으로 몰아서 잡거나 기력을 잃고 떠내려온 놈을 생포하는 그야말로 ‘소박한 수준’이었다. 동해를 ‘피바다’로 만들었던 광란의 역사는 무능한 조선 정부를 무시하고 몰려든 일본과 미국, 프랑스, 노르웨이 등의 포경선에서 비롯되었다. 해방 이후에 대형고래는 거의 사라지고 어쩌다 등장하는 참고래, 그리고 예전에는 포경 대상에 끼지도 못했던 소형고래인 밍크고래 따위만이 남게 되었다. 미국, 일본, 러시아, 노르웨이 등의 남획이 불러온 비참한 결과였다. 해방 이전의 포경업은 전적으로 일본인 주관이었다. 고래고기집 주인 박경열(76·여)씨의 증언.“할배가 영덕에서 철공소를 했지요. 고향이 장생포라 해방되면서 고래잡이를 하려고 돌아왔지요.70㎜ 사제 대포를 만들고 뇌관은 일본인이 남긴 것을 썼어요.” 작고한 그의 남편 양원호씨가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포경포 제작자이다. 장생포에서는 해방 직후에 200여명이 공동출자해 50t급 낡은 포경선 2척으로 고래잡이를 시작했다. 장생포 앞은 구로시오난류가 흐르니 연해주 쪽에서 내려오는 한류와 만나는 길목. 그래서 고래가 많았다. 동짓달까지 영일만 일대에서 잡다가 어청도까지 이동해 조업하곤 했다. 동해 고래가 유명하지만 서해와 남해 할 것 없이 흔했다. 고래잡이만큼은 장생포 사람들이 장악했기에 유독 동해 고래가 돋보일 뿐이다. 포경선에는 높다란 망통에서 목시(目視)로 망보는 이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물색만 보아도 고래 종류를 알아맞혔다. 이제 그 때의 노련한 포수들은 거의 사망하고 없다. 남은 이들은 사실 후발주자들로, 전통적인 고래잡이를 증언할 만한 이들은 거의 없다. ●동해 ‘피바다’ 만든 외국인들이 포경금지 앞장 고래보호와 포경을 둘러싼 문제는 대단히 복잡 미묘한 국제적 사안이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장인 김장근 박사는 “고래 연구는 이제 출발입니다. 일본 같은 고래 대국이 해놓은 연구와 정책적 비전을 따라잡자면 장기투자가 뒤따라야 합니다.” 내년 5월30일부터 울산시에서 열리는 국제포경위원회 연례회의를 계기로 ‘솎음포경’을 재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일찍부터 반구대유적과 장생포를 중심으로 전개돼 온 고래문화의 재현과 고래축제 등을 이끌어 온 울산시는 고래박물관과 고래 연구센터도 만들어 명실공히 ‘고래도시’로 발돋움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에 앞서 고래식용 재개의 전제로 역사문화 및 사회·경제적 사유를 국제사회에 입증할 필요성이 있다. 사실 돌고래같이 엄밀하게 따져서 ‘훼일(Whale)’이 아닌 ‘돌핀(Dolphin)’류에 속하는 고래 외에 바다 포유류에 관한 입장조차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니 이른바 ‘과학포경’은 요원한 형편이다. 김 박사는 서식지 교란, 혼획, 선박 충돌, 수중음파 교란으로 사망하는 고래를 지적하면서, 한편으로는 고래로 인한 어장 교란과 어구 피해, 어업자원과의 경쟁 등 고래와 인간의 마찰도 거론했다. 그의 말에서 ‘포경’과 ‘보호’라는 두 개의 과제를 동시에 충족시키기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육지를 마다하고 바다를 택하여 살아온 특이한 포유동물. 허먼 멜빌이 ‘모비 딕’에서 그렸듯 ‘고래등같이 큰’ 포유동물과 인간의 교감은 매우 복잡 미묘하여 고래와 인간의 갈등과 투쟁은 쉽게 종식되지 않을 전망이다.‘귀신고래가 돌아온다면 바다에도 평화가 깃들어 경해(鯨海)라는 옛 명칭이 부끄럽지않은 날이기도 할 것인즉, 행여 돌아올 수 있을는지.’하는 생각으로 장생포의 쓸쓸한 고래고기집 골목을 빠져 나오다가 다시 ‘고래도시 울산’이란 입간판과 마주쳤다.
  • 긴~ 그리움의 나라 칠레(하)

    긴~ 그리움의 나라 칠레(하)

    산티아고에서 칼라마로 가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풍광은 온통 황토빛 세상이다. 메마른 사막. 개미보다 작게 보이는 차가 뽀얗게 꼬리를 드리우고 달린다. 그래도 고고학자들에겐 바싹 마른 이곳이 세계 어느 곳보다 귀중한 ‘풍요의 땅’이다. 또 수많은 화산의 흔적들, 지금도 수백개의 구멍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물과 수증기, 조각 같은 암석과 거대한 소금들판, 황홀한 플라밍고의 자태…. 관광에 관한 한 칠레 북부 사막지대는 가히 보석 같은 존재다. 이같은 보석을 줍기 위해 사람들은 트레킹과 바이킹, 등산, 혹은 좀더 편안한 사륜구동 자동차 드라이빙에 나선다. 현재 트레킹에 이용되는 수많은 길은 예전에 사막에 드문드문 자리한 마을을 잇는 물물교환 루트였다. 산 페드로 아타카마는 칠레 북부를 여행하는 사람들의 아지트와 같은 곳. 이 독특한 마을을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여행과 탐험이 이루어진다. 이곳에 점포를 둔 수많은 여행자 오피스와 에이전시가 여행자들을 돕는다. ‘Catus Tour’(55-851-534),‘Southen Cross Adventure’(55-851-416) 등 여행 에이전시에 문의하면 관련 투어 및 가이드를 소개받을 수 있다. 숙박료 100달러 정도의 호텔도 몇 개 있지만 유스호스텔인 ‘Hostelling International’(55-851426) 등을 찾으면 30∼40달러에 싸게 묵을 수 있다. ●산 페드로 공항이 있는 칼라마에서 동쪽으로 차로 1시간30분 정도 걸리는 산 페드로 아타카마는 흙의 도시다.2만여명이 거주하는 도시지만 2층 건물 하나 찾아보기 힘들다. 도회지라기보다는 시골의 큰 마을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인 듯싶다. 시내에 가득 들어찬 집과 점포, 담장 등 대부분은 흙벽돌로 지어진 것들이다. 대로든 골목길이든 포장이 안돼 역시 황토빛 일색이다. 처음엔 ‘예산이 없어 포장도 못하고 있구나.’하는 동정심이 일었으나, 이 모두가 의도된 것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됐다. 가능한 한 옛모습을 잃지 않기 위해 불편을 감수하면서 예전의 건축재료만 고집하고, 도로 포장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뽀얗게 날리는 먼지를 그대로 들이마시면서도 그 자체를 상품으로 생각하는 관광마인드가 참 놀랍다. 그래서 시내는 그냥 거닐기만 해도 즐겁다. 처음 보는 이국적인 골목과 집들의 모습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시내엔 다양한 레스토랑과 환전소, 인터넷방, 토산품가게 등이 가득 들어서 있다. 그중 중앙 광장 맞은 편의 토산품 시장은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코스. 대부분 각 가정에서 직접 만든 수천 종류의 공예품이 가득 쌓여 있어 눈을 휘둥그렇게 만든다. 산 페드로 아타카마에서 꼭 들러보아야 할 곳이 있다. 파드레 르 파이제 고고학박물관. 입구에 발견자 구스타포 파이제의 동상이 있다. 이 벨기에인 수도사는 1955년 이 마을 교구 책임자가 됐다. 이어 그는 귀중한 물건들의 수집 및 안데스의 고고학 연구에 착수했고, 이는 이 박물관의 토대가 됐다. 그는 1980년 사망했다. 아타카마인들, 즉 사막지대에 오랫동안 살았던 옛 거주자들은 이웃 문화, 특히 중앙 안데스의 큰 제국들인 잉카와 티와나쿠 제국의 영향을 받았다. 이같은 사실은 산 페드로의 오아시스에서 발견되는 고고학적 유물·유적들, 이를테면 BC 800년까지 연대가 올라가는 원형집들과 같은 것에서 발견된다. 박물관은 총 3만 8000여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모두 1만 1000년 역사를 가진 아타카마인들의 문화를 증언해 주는 것들이다. 그중 일부가 8각형의 중앙홀과 여덟개의 긴 전시 통로에 전시돼 있다. 그중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것들도 있는데, 특히 도자기류가 눈길을 끈다. 그들의 발전적 단계에 따라 3개의 컬렉션에 포함된 미라들과 의복, 생활도구 및 장신구, 금 유물들도 볼만하다. 첫번째 미라는 파드레 르 파이제에 의해 발견됐다. 두번째는 라라체서 발견됐다. 가장 최근의 것으로는 티와나쿠시대의 산페드로에 있는 교회구역의 중앙부에 있는 묘지에서 발견됐다. 수천, 수백년 전의 미라들과 유물들이 온전하게 발견되는 것은 순전히 사막 특유의 메마른 환경 덕분이다. ●툴러마을 툴러는 산 페드로 아타카마 인근에서 가장 오래된 주거의 흔적이다. 이곳은 BC 800년부터 A.C 500년까지 연대가 올라간다. 산 페드로에서 9㎞ 떨어져 있는 툴러는 마을을 덮은 모래에 묻혀 기적적으로 보전됐다. 모래 밖으로 간신히 노출된 곳에서 꼼꼼하게 묘사된 원형 그림을 볼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집을 지탱했던 벽으로, 둥그렇다. 현재 이 마을의 10%는 1982년 있었던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모습을 드러낸 상태다. 이곳에선 걸으면서 둘러보거나 오두막집 입장과 관람을 함께 할 수 있다. ●문밸리 산 페드로 아타카마에서 27㎞ 떨어져 있다. 이곳은 직경 500m 정도의 자연보호구역으로, 소금기가 섞여 있고 날카롭게 각이 진 인상적인 언덕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이곳은 또한 5467㏊에 달하는 거대한 국립 플라밍고 보존구역 내에 위치해 있다. 문밸리 구성물들은 지각변동 현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수위가 낮은 호수 바닥이 융기해 접히면서 일어난 이 현상은 코딜레라 라 살로 알려진 산맥을 낳았다. 문밸리는 마치 조각처럼 아름다운 모양의 암석과 땅을 갖고 있다. 또 소금이 암석처럼 굳은 층이 포함돼 있으며, 여러 개의 굴도 볼 수 있다. 침식현상에 의해 생긴 ‘죽음의 협곡’도 볼 만하다. 붉고 흰색의 대비가 특히 아름답고 신비하다. 문밸리는 관광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트레킹 코스다. 비죽비죽 솟아 있는 암석이 이어지는가 하면 고운 모래언덕이 끝없이 펼쳐지며 발바닥을 간질인다. 제법 높아 보이는 언덕을 힘겹게 올랐는가 싶으면, 깎아지른 벼랑이 오금을 저리게 한다. 벼랑 아래는 조각처럼 깎이고 닳은 붉은색 사막이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사막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거센 바람에 행여라도 벼랑 아래로 떨어질라, 벼랑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주저앉은 사람들은 한동안 멍하게 바라보기만 할 뿐 말이 없다. ●솔트플랫 산페드로 아타카마에서 30분 거리에 있다. 칠레의 가장 큰 소금지대로,2305m의 고도에 30만㏊의 거대한 규모다. 이곳은 수백만년 전에 일어난 지각변동 과정에서 바다가 호수가 되고,1만 1000여년 전 호수의 물이 증발하면서 생겼다. 이곳은 산페드로강으로부터 물을 공급받아 아직 군데군데 얕은 호수를 이루고 있다. 이 강물은 안데스의 산 위에 쌓인 만년설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산 밑에 형성된 수많은 수맥을 통해 솔트플랫까지 온다. 이곳에선 여러 성분이 섞인 소금을 생산하다가 1975년 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이후 소금 생산도 중단됐다. 두께가 4m에 달하는 이곳 소금 침전물은 세계 리튬 매장량의 40%를 차지한다. 또 칼륨, 붕사, 기타 소금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솔트플랫 주변의 공기는 거의 절대적으로 건조하다. 그래서 거대한 솔트플랫 한쪽 끝에 서면 다른쪽 끝이 보일 정도로 시야가 맑다. 동틀 무렵 도착한 솔트플랫은 플라밍고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연한 핑크빛을 띤 플라밍고들. 사진으로만 보았던 것을 실제로 보니 아름다운 핑크 빛깔이 훨씬 고와 보인다. 총 5종류의 플라밍고가 있다는데, 이곳에 있는 놈들은 대부분 인디언 플라밍고라고 가이드가 설명해준다. 솔트플랫에만 3000여마리가 서식한다고. 핑크빛 몸체에 크기는 너비가 1.2m, 키는 90㎝ 정도다. 큰 몸집에 비해 무게는 2.5㎏으로 가벼워, 걷는 모습이 하늘하늘 춤추는 것 같다. ●게이저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즉 해발 4321m에 위치한 온천지대다. 이 온천들은 산 페드로 아타카마로부터 94㎞ 떨어져 있다. 그러나 험한 비포장길이다 보니 차로 2시간은 족히 걸린다.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는 이곳은 엘 타티오 화산에 근접해 있다. 새벽 5시 숙소를 출발해 동트기 직전인 7시쯤 게이저스에 닿았다. 수많은 땅속 구멍으로부터 뜨거운 물이 뽀얀 김과 함께 뿜어져 나오는 풍경은 황홀경 그 자체. 구멍 주변의 흙엔 물에 섞인 소금과 구리 등 다양한 금속 성분과 미네랄이 침전돼 있다. 뿜어져 나온 물은 매우 뜨거워 가까이 다가가면 위험하다. 각종 성분이 섞인 주변의 흙은 부드러우면서 아름다운 색조를 띠고 있다. 특히 높이 뿜어져 나오는 물과 김이 어둠을 헤치고 나온 첫 햇살에 반사되면서 그려내는 영롱한 빛깔은 형용하기 어려울 만큼 아름답다. 온천지대 인근에는 사람들이 목욕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곳도 있는데, 대표적인 곳은 퓨리마타 핫 스프링이다. 특급호텔인 엑스플로라 내에 설치된 이 온천탕은 산페드로 아타카마로부터 28㎞ 떨어져 있다. 요금은 1만 페소 정도로 비싼 편이지만 시설이 매우 고급스럽다. 산페드로 아타카마에서 게이저스로 가는 길은 메마른 사막이지만 풍광이 아름답다. 사막을 덮고 있는 식물의 주인공은 단연 ‘코이로아’란 풀. 메마른 환경을 뚫고 자라선지 그 억세기가 마치 철수세미 같다. 하지만 메마른 사막에 아름다움을 주는 고마운 존재다. 멀리서 보면 코이로아가 덮고 있는 사막은 영락없이 황금빛을 띠며 환상적인 풍광을 뽐낸다. 코이로아 말고도 초록 카펫을 돌에 덮어놓은 듯한 차레타, 노란 꽃을 피운 빙고빙고, 스위티한 냄새와 맛을 내는 리카리카 등을 볼 수 있다. 척박한 환경을 이겨낸 강한 생명력을 품고 있어선지 이 식물들은 대부분 피를 맑게 하거나 위장병 등에 효과가 높은 약재로 쓰인다. ●마스칸티호수 산 페드로 아타카마에서 1시간 정도 동쪽으로 이동하면 해발 4300m 높이의 고원지대에 호수 두 개가 있다. 면적이 15㎢에 달하는 광활한 라구나 미스칸티, 그리고 미스칸티의 10분의1 정도의 크기인 미니케 호수. 주변엔 높이 해발 5600m의 미스칸티 볼케이노와 미니케 볼케이노 등을 포함한 5개의 화산이 호수를 에워싸고 있다. 거울처럼 맑은 호수에 만년설이 덮인 볼케이노 봉우리가 그대로 담겨 있다. 고도가 4300m에 달해 고산증세가 나타날까 우려했는데, 별로 낌새가 없다. 경험상 3000m 이상 올라가면 증세가 나타났었는데, 어지럼증도 거의 없고 숨도 별로 가쁘지 않다. 현지 가이드 ‘알루’의 설명. 이곳엔 코이로아 등 억센 생명력을 가진 식물들이 사막을 덮은 채 산소를 내뿜고 있어 다른 지역의 고산지대보다 산소량이 훨씬 많다고 했다. 역시 이유가 있었다. ●산티아고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는 칠레의 중부에 위치해 있다. 지중해성 기후로 연중 온난하고 주변이 옥토로 둘러싸여 칠레 인구의 절반 가까운 600만명 이상이 모여 산다. 하지만 안개가 많이 끼어 연중 절반 이상은 오후에도 안데스의 눈 덮인 경관을 보기 어렵다. 시 중심부엔 근대 고층빌딩과 국립박물관, 시립극장, 대통령 관저 등이 정연하게 서 있다. 특히 산타루치아 언덕은 시 중심에 솟은 곳으로 16세기 초 스페인의 데드로 발디비아가 칠레 점령때 요새를 구축한 곳이다. 가장 훌륭한 시내 조망권을 제공한다. 시내관광은 구시가지의 중심인 아르마스 광장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 광장 주변으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16세기 세워진 대성당 ‘더 캐더럴’을 비롯해 중앙우체국과 시청사,1808년 건축된 궁전을 이용한 국립역사박물관, 산티아고 박물관인 ‘카사 콜로라다’ 등이 볼 만하다. 특히 성당 ‘더 캐더럴’은 규모의 장대함과 독특한 외양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장식과 조각, 그림으로 가득한 내부에도 볼거리가 가득하다. 국립박물관엔 7만여점의 칠레 역사를 담은 유물이 전시돼 있다. 이밖에도 광대한 자연공원인 산크로스타발 언덕, 군사학교박물관, 중앙시장, 모네다궁전, 시립공원 등이 가볼 만한 시내 명소로 꼽힌다. 매주 일요일 아르마스광장을 기점으로 시내를 둘러보는 프로그램을 시에서 주관한다. 여행 에이전시 및 여행자사무소로는 ‘Sernatur’(02-236-1420),‘Chillean Travel Serve’(02-251-0400) 등이 있다.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본 재미 있는 풍경 두가지. 개와 한국 자동차가 참 많다는 것이다. 거리나 골목, 특히 공원에 가면 웬놈의 개가 그렇게 득실거리는지. 작고 귀여운 것도 아니고, 한국이라면 ‘식용’으로나 적합할 것 같은 개들이 시내를 누빈다. 칠레의 도시는 꼭 한국차 박물관 같다. 한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포니부터 스텔라, 르망, 엘란트라, 엑셀 등이 용감하게 거리를 누빈다. 특히 칠레의 택시 중엔 르망이 유독 많다. ■ 안데스산맥 바라보며 칠레포도밭도 둘러볼까 ●칠레의 와인 칠레에서 와인이 빠질 수 없다. 칠레의 식도락 전통은 해물요리와 바비큐의 일종인 ‘패릴라다스’로 특징지어진다. 이같은 특별요리들은 대개 좋은 칠레와인을 곁들여 먹기 마련이다. 와인은 칠레의 국가적 상징 중 하나요, 칠레 전통의 한 부분이다. 또 국제적 명성을 얻은 뒤로는 국민적 자부심의 원천이기도 하다. 메를로트, 카베르네트 사우비그논, 사우비그논 블랑크, 샤로도나이 등 다양한 와인들이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와인 페어에서 상을 받았다. 칠레 포도밭의 역사는 19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칠레의 가장 오래되고 전통이 있는 포도밭들이 생겼다. 당시 그들은 유럽인들로부터 기술적 가르침을 받았으며, 좋은 품종의 포도나무를 수입해 자체적으로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칠레 와인이 실제적으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룬 것은 20세기 후반부이다. 그것은 칠레 산업에 있어서의 급격한 이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와인산업은 이때 새로운 기술을 바탕으로 국제시장으로의 성공적인 진입을 이루어냈다. 통계를 보면 칠레 와인의 폭발적 성장세를 알 수 있다.80년대 연간 1500만달러어치의 와인이 수출되던 것이 90년대 후반엔 5억달러를 넘었다. 산티아고 외곽지대는 와인의 주 생산지다. 이곳엔 과일이 널려 있고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져 있다. 동쪽으로는 안데스산맥, 서쪽으로는 해안과 경계를 이루며 펼쳐진 광활한 계곡. 이 지대는 포도 재배에 지리적, 기후적으로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중 콜차구아 계곡의 와인 순환로는 가장 유명하며, 이 길을 따라 하루코스의 투어도 마련되어 있다. 그곳에 가면 포도밭의 다양한 모습을 즐기고, 와인을 맛볼 수 있다. 또 콜차구아 또는 휴이큐박물관을 방문하고 지역 예술인의 작품들과 점심식사도 즐길 수 있다. 이 투어는 산티아고 아르마스광장에서 출발하며, 남쪽으로 170㎞쯤 가야 한다. 산페드로(칠레) 글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서양화가 차우희 작품전

    서양화가 차우희(59)는 20년 이상 ‘오디세이의 배’라는 주제에 매달려 왔다.1981년부터 베를린에 머물며 독일과 서울을 왕래해온 작가는 자신의 삶이 고대 오디세이의 항해를 닮았다는 데 착안, 돛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만들어 왔다. 이를 통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고향에의 회귀,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은 곧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서울 통의동 진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차우희전’(12일까지)은 작가의 이런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출품작은 대형 돛을 형상화한 유화, 종이 오브제 등 30여점. 그의 작품은 캔버스를 중심으로 하지만 한지와 오브제, 또는 그것들을 혼합한 설치작업의 형태를 띠는 게 특징이다. 이에 대해 작가는 “나의 전시공간은 개별적인 작품들의 진열이면서 동시에 전체가 하나의 작품”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때로는 은유적이지만 때로는 직설적인 방법을 동원한다. 배의 특정한 부위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배와의 상관성이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것들도 있다. 작가는 독일에 체류하며 독일인들로부터 분단상황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는 통독 과정을 지켜 보며 우리 분단의 현실을 되돌아 보는 ‘폴래리티(polarity)’ 연작을 내놓고 코소보 내란이 발생했을 때는 이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들기도 하는 등 작가로서 비판적인 안목도 갖고 있다.(02)738-7570.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儒林 속 한자이야기] (43)

    破竹之勢(파죽지세) 儒林 205에는 破竹之勢(깨뜨릴 파/대나무 죽/어조사 지/형세 세)가 나오는데, 이 말은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라는 뜻으로 ‘맹렬한 기세’ ‘세력이 강대하여 적대하는 자가 없음’ ‘무인지경을 가듯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진군함’을 가리킨다. 破자는 ‘皮’(가죽 피)와 ‘石’(돌 석)이 결합되어 ‘돌을 깨다.’라는 뜻을 나타내었다.‘石’은 ‘암벽 언덕 아래에 돌덩이가 걸쳐 있는 형상’을 본뜬 象形(상형) 글자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한 덩이의 돌’을 형상한 글자라고 한다.‘皮’는 말린 짐승 가죽을 씌워 만든 방패를 손에 들고 있는 모양이다. 竹자는 두 줄기의 대나무 가지를 그린 것이다. 탄생 이후 변함없이 ‘대나무’라는 본뜻으로 쓰이고 있다. 관악기는 대개 대나무로 만들었기에 ‘관악기’를 뜻하기도 한다. 之자는 ‘止’(지)와 ‘一’(일)을 합친 글자이다.止는 본래 발을 뜻하였으나 점차 ‘그치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이렇게 발을 나타내는 止 아래에 출발선 또는 지면을 가리키는 一을 넣어 ‘어디론가 가다.’라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勢자에 관련해 ‘說文解字(설문해자)’에서는 ‘권세’ ‘권력’을 뜻하였지만 후대로 오면서 ‘상황’ ‘기세’ ‘기회’ ‘고환’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破竹之勢’는 晉書(진서) 杜預專(두예전)에서 유래한 故事(고사)다. 魏(위)나라의 權臣(권신) 司馬炎(사마염)은 元帝(원제)를 폐하고 왕이 되자 杜預한(두예)에게 吳(오)나라 침공을 명했다. 전략적 요충지인 武昌(무창)을 점령한 두예는 일격에 오나라의 都邑(도읍)까지 진격(進擊)하고자 하였으나, 여러 장수들이 氣候(기후)와 風土(풍토)를 들어 挽留(만류)하였다. 두예는 이같은 의견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말했다.“지금 우리 군사들의 士氣(사기)는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破竹之勢)’와 같소. 대나무란 처음 두세 마디만 쪼개면 그 다음부터는 칼날이 닿기만 해도 저절로 쪼개지는 법. 어찌 이런 절호의 기회를 버린단 말이오.” 두예는 곧바로 휘하의 전군을 휘몰아 오나라의 도읍으로 殺到(쇄도), 단숨에 공략하여 오왕의 항복을 얻어냈다. 破자와 관련이 있는 故事成語(고사성어)로는 ‘破竹之勢’ 외에도 ‘破鏡’(파경:사이가 나빠서 부부가 헤어지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破廉恥’(파렴치: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뻔뻔함),破天荒(파천황) 등이 있다. ‘破天荒’(깨뜨릴 파/하늘 천/거칠 황)은 천지가 아직 열리지 않은 混沌(혼돈)의 상태인 天荒(천황)을 깨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뜻으로,‘인재가 나지 아니한 땅에 처음으로 인재가 나거나, 지금까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놀랄 만한 일을 해냄’을 비유해서 쓰는 말이다. ‘北蒙碎言(북몽쇄언)’에 전하는 고사의 要旨(요지)는 다음과 같다. 唐(당)나라 때 荊州(형주)라는 지방은 文人(문인)이 많은 지방이었다.500년 동안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합격자가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형주를 ‘天荒’의 땅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劉稅(유세)라는 사람이 그 금기의 벽을 넘어 마침내 科擧(과거)에 合格(합격)하였다. 사람들은 유세를 가리켜 천황을 허물었다고 하여 ‘破天荒’이라 일컬었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고대이집트’ ‘마야문명’ 등 출간

    세계 각국의 문화와 역사, 자연, 예술에 관한 전문서적을 펴내는 출판사로 유명한 이탈리아 화이트스타 출판사의 ‘고대문명 시리즈’ 네 권이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 도서출판 생각의 나무는 지난해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 ‘앙코르’ ‘고대 인도’ ‘고대 중국’을 낸 데 이어 이번에 ‘고대 이집트’ ‘고대 이스라엘’ ‘잉카 문명’ ‘마야 문명’ 등 네 권을 새로 출간했다. 화려한 일러스트레이션과 사진을 풍성하게 담고 있는 것이 이 시리즈의 특징. 응접실 탁자나 거실 소파에 놓고 짬짬이 들여다보는 이른바 ‘커피 테이블 북’ 개념의 책이다. ‘고대 이집트’(알베르토 실리오티 지음, 박승규 옮김)는 파라오의 시대부터 이집트 아랍 공화국에 이르는 5000년 이집트의 역사를 다룬다. 나일 계곡에 언제 인간들이 발을 디뎌놓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대략 기원전 4000년경 40여개의 도시국가가 세워졌고, 기원전 3500년경에는 상·하 두 왕국으로 통합됐으며, 기원전 3000년경에 비로소 통일왕국이 성립된 것으로 본다. 통일왕조가 세워진 뒤에는 30왕조가 흥망했다. 이 책은 고대 이집트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을 시작으로 천년왕국의 신성한 땅 이집트의 종교와 삶 그리고 신들의 세계를 살핀다.‘고대 이스라엘’(사라 코차프 지음, 이영찬 옮김)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세계 3대 종교가 만나는 문명의 교차점인 이스라엘 땅으로 떠난다. 요르단강을 따라 갈릴리 언덕을 넘어 지중해 연안으로부터 네게브 사막에 이르는 이스라엘의 영토와 민족, 사적지, 예술품들을 보여준다. 책은 헤롯 시대의 예루살렘과 십자군 시대의 항구도시였던 악고, 로마시대와 비잔틴시대 벧산의 옛 영광을 재현했으며,‘성묘교회’ ‘바위의 돔’ 등 건축물들을 투시도를 통해 설명한다. ‘잉카 문명’(마리아 롱게나 등 지음, 고형지 옮김)은 기원전 3000년부터 잉카 제국이 몰락한 1533년까지 고원지대와 안데스의 설봉 사이에서 흥망성쇠를 거듭한 문명들의 역사를 다룬다. 벽돌 피라미드에서 기상천외한 석조도시, 월터 알바가 람바예케에서 발굴한 모체(Moche)의 무덤까지 흥미진진한 고고학 유적지들을 만날 수 있다.‘마야 문명’(마리아 롱게나 지음, 강대은 옮김)은 멕시코 문화의 영화와 몰락,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파괴된 자취를 펼쳐보인다. 멕시코 남부, 벨리즈, 온두라스 그리고 엘살바도르 일부를 포함하는 광대한 지역의 다양한 문화들은 오늘날 ‘메소아메리카 문명’이라 불린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고대 멕시코 문명이다. 책은 피에 굶주린 낯선 신들로 가득한 마야문명의 영광과 몰락의 흔적을 더듬는다. 각권 9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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