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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차산 곳곳엔 고구려 역사가 숨쉬죠”

    “아차산 곳곳에 고구려 역사가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사진작가 겸 약사인 유승률(58)씨는 지난 20년간 서울 아차산의 고구려 유적을 카메라에 담아 왔다.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을 보면서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숨은 고구려 역사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그동안 모아온 작품을 서울 광진구에 기증했다. 구는 오는 20일까지 청사에서 ‘아차산 고구려 유물·유적 사진전’을 연다. “중국의 뻔뻔한 행태를 보면서 고구려 역사가 담긴 아차산, 나아가 서울의 역사까지도 중국 역사의 일부가 되고 만다는 생각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유씨가 아차산 고구려 유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8년 전.40년 가까이 광진구 중곡동에서 살며 약국을 운영해온 그는 이따금 올라가는 아차산에서 쉽게 눈에 띄는 성곽 흔적과 토기 조각에 궁금증을 갖게 됐다.이곳저곳 묻고 책을 찾아보니 아차산이 고구려 성곽 시설인 보루가 세워졌던 삼국시대의 전략 요충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뒤로는 산에 오를 때마다 카메라를 갖고 다니며 닥치는 대로 고구려 유적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모은 사진을 2004년 ‘아차산’이란 제목의 사진집으로 펴냈고 지난해 5월에는 아차산 유적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유씨는 “중국 사회과학원 산하 변강사지연구중심 사이트에 ‘한강 이북이 중국 땅’이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 공공연히 나오는 것을 보면 우려가 현실로 돼 가는 것을 느낀다.”면서 “정부가 현실 외교의 어려움을 들어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면 혼자라도 유적 사진을 부지런히 찍어 아차산이 자랑스러운 고구려 유적지임을 알리겠다.”고 말했다.연합뉴스
  • [이종현의 나이스샷] 터키 골프마인드 = 골드마인드

    얼마 전 터키관광청 초청으로 골프 팸투어를 다녀왔다.12시간을 날아가 도착한 터키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유구한 역사의 나라답게 찬란한 문화유적을 자랑했다. 그동안 터키문화와 역사를 대상으로 한 팸투어는 있었지만 골프를 주요 테마로 해서 팸투어를 실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터키엔 골프장이 모두 9개 밖에 없다. 이스탄불에 2곳, 안탈리아에 7곳이다. 골프인구도 1000여명에도 못 미친다. 한국의 골프 인구 350만명, 골프장 280개와 견줘볼 때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골프 후진국’임에 틀림없다. 국민총생산(GNP)도 터키는 4000달러, 한국은 1만 8000달러로 4.5배의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터키는 ‘골프 마인드’에 관한 한 우리보다 앞선다. 국내처럼 골프가 ‘가진 자’의 스포츠가 아니고 정치, 사회적으로 이용당하지도 않았다. 단순히 레저의 한 부분이었다. 여기에 골프를 통해 관광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국민의 공감대가 퍼져있어 터키의 골프정책은 그야말로 일사천리다. 정부 역시 앞으로 고수익을 창출할 레저 테마는 골프밖에 없다고 판단, 골프팸투어를 적극 유치하고 있다. 누가 골프만 치면 문제가 되는 한국과는 딴 판이다. 환경을 볼모로 골프장 건설에 무조건 딴죽을 거는 국내 시민단체와도 달랐다. 적어도 이들은 12시간을 날아와 문화유적만 보고 가는 한국 관광객들에게 골프상품을 끼워 소득을 올리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국가별 방문객 수를 보면 독일 400만명, 러시아 200만명을 비롯해 한국도 한 해 10만명 이상이 다녀가고 있다. 관광객 2000만명 중 20%만 골프를 치고 가도 400만명이다. 현재의 관광수익보다 40% 이상 더 늘어날 것이란 게 터키의 계산이다. 이번 팸투어에 경기관광공사도 동행 했다. 그러나 골프장엔 별반 관심이 없었다. 제목은 골프 팸투어였지만 공사 관계자는 쇼핑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듯했다. 과연 이들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배웠을까.2010년엔 국내 골프장이 400개를 넘게 된다. 일본과 같은 골프장 줄 도산을 막고 관광 수익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보다 적극적인 골프 정책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터키의 골프. 비록 작지만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궁무진하다.레저신문 편집국장 huskylee1226@yahoo.co.kr
  • [seoul in] 고구려 유물·유족 사진전

    광진구(구청장 정송학) 아차산에서 발굴한 고구려 유물·유적 사진전을 오는 20일까지 구청 3별관 민원홀에서 개최한다. 전문 사진작가 유승률씨가 아차산 구석구석을 다니며 찍은 유적과 유물 사진 20점을 전시한다. 또 최종택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의 설명도 들을 수 있다.
  •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12) 용인길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12) 용인길

    충북 음성군 생극면을 지난 영남대로는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가량이 살고 있는 경기도로 접어든다. 종착지인 서울이 얼마 남지 않아 행인들의 발걸음을 재촉했음 직하다. 교통의 요지인 용인으로 가는 길목인 옛길은 경기도 안성에 첫발을 내디딘다. 경기도 관문인 죽산에서 시작되지만 17번 국도와 맞물려 옛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다. 도로가 직진화되면서 군데군데 남은 길은 인근 마을의 진입로로 사용되고 있다. ●서울 가는 첫길 죽산 죽산에 들어서면서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당간지주와 미륵입상이다. 그나마 옛길의 흔적을 알려준다. 미륵입상 앞에는 향토유적 제20호인 오층석탑이 자리잡고 있다. 도로 서편으로 나있는 좁고 긴 콘크리트 도로는 지금은 사라진 안성선 철도 노반이 있던 자리다. 경부선 천안역에서 출발해 안성평야를 지나 안성에 이르는 철도였다.1927년 9월15일 이천시 장호원까지 개통되었으나 태평양전쟁으로 1944년 11월1일 안성∼장호원이 철거되고 1989년 1월 도로교통의 발전으로 폐선되었다. 정양화 용인시 전통문화연구소장은 “철로가 전쟁물자로 공급되는 바람에 철거됐다.”고 전했다. 500여m쯤 오르면 오른쪽으로 비석거리 마을이다. 옛 과거길이자 관리가 다니던 관도임을 증명하듯 비석들이 즐비하게 서있다. 조선시대 지방 관리들은 자신들의 치적을 자랑하기 위해 재임기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영남대로에 공덕비를 세웠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의 공덕비도 섞여 있다. 비석거리를 지나면 말을 바꾸어 타던 분행역터다. 지금은 분행마을이다. 청미천을 넘은 옛길은 17번 국도를 따라 10여㎞를 내달아 용인시 백암면에 다다른다. 국도가 옛길을 덮어 자취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나마 자투리 옛길은 좌항초등학교 쪽으로 접아들면서 잠시 국도와 이별한다. 좌찬역이 있던 좌전마을이다.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길은 양옆이 무성한 잡초로 덮여 있다. 동네 한가운데 마을의 입구를 표시하던 비석이 서있었다는 이문(里門)터가 있다. 지금은 매몰돼 초가집 한 채가 덩그러니 자리잡았다. 국도와 다시 연결되는 길목이 좌찬고개다. 이 고개는 박포라는 장수가 정도전의 난 때 이방원을 도와 공을 세웠으나 그 대가가 보잘 것 없다고 비난하다 귀양을 온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박포의 벼슬이 좌찬성이고 귀양지가 좌항리라서 좌찬현이라 불렸다고 한다. 고개는 완만하지만 걸어서 넘기가 쉽지 않다. 좌전마을 뒤편에는 밤나무 5000여그루가 들어선 농원이 있다. ●수탈용 수여선 아스라히 국도 건너 남아있는 옛길에는 의병장 임경재의 비석과 석상이 자리잡았다. 양지 인터체인지를 지난 영남대로는 42번 국도와 만난다. 폐도화되다시피 한 길 옆으로 수인선과 함께 우리나라 첫 협괘열차가 운행되었던 수여선 철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지금은 농로지만 직선으로 곧게 뻗은 것이 철로였음을 짐작케 한다. 일제시대 때 사설철도회사인 ‘조선경동철도’에서 여객열차와 화물열차를 운영하던 것으로 이천쌀과 소금을 강탈하는 데 쓰였다고 한다. 수탈의 현장이다.1930년 개통해 삼박골과 김량천교를 건너 용인으로 들어갔던 이 열차는 1972년 적자운영으로 모습을 감췄다. 인근 양지천에는 일제시대부터 최근에 새로 놓은 다리까지 3개의 교각이 나란이 버티고 있는 일명 3세대 다리가 있어 세월의 흐름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다리의 변천사’를 볼 수 있는 실물 박물관인 셈이다. 여기서부터 옛길은 용인을 포함한 수도권의 대규모 택지개발붐에 밀려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다. 인근에 동백지구와 구갈 2·3지구를 포함한 크고 작은 아파트단지가 빼곡히 들어찼다. 대동여지도와 대동지지에 나타나 있는 영남대로와 지금의 지도를 비교하면서 옛길을 회상하며 대로변을 걷는 모양새다. 그나마 남아있었다던 용인시 처인구청 인근 옛길은 소멸됐고 번잡한 시내 중심가 도로들로 자리메움했다. ●산천개벽의 상징 용인시청 국도를 따라 3㎞가량 지나면 오른쪽으로 기초자치단체의 청사로는 최대규모로 알려진 용인시 행정타운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을 지나 옛길은 잠시 국도 신세를 면한다. 멱조고개부터 어정리를 지나 판교로 이어진다. 그렇지만 최근 입주를 시작한 동백지구 연결로로 사용되는 데다 대규모 어정가구단지가 자리잡아 옛길의 정취는 온데간데없다. 대부분 아스팔트로 포장됐다. 길이야 어찌됐든 멱조고개(일명 메주고개)는 나름대로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옛날 홀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이 부역 때문에 집을 비우게 되었고 시아버지가 대신 나무를 장에 내다 팔았다고 한다.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돌아올 때면 아이를 업고 고갯마루에서 기다렸는데 어느 날 밤이 깊어도 오지 않는 시아버지가 걱정되어 찾아나서다가 길을 잃었다. 한참을 헤매는데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혹시나 하여 달려갔더니 그곳에는 시아버지가 배고픈 호랑이를 만나 목숨을 내놓아야 할 처지에 놓여 있었다. 이를 본 며느리는 호랑이에게 배가 고프다면 내 아이라도 줄 터이니 시아버님을 다치게 하지 말라며 아이를 던져주자 호랑이는 아이를 물고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정신을 차린 시아버지가 자신은 늙었기에 죽어도 한이 없을 텐데 어찌하여 어린 손자를 죽게 했느냐고 꾸짖자, 며느리는 아이는 다시 낳을 수 있으나 부모는 어찌 다시 모실 수 있겠느냐며 모셔왔다고 한다. 멱조고개는 이렇듯 아름답고도 비극적인 사연과 함께 ‘할아버지를 찾아 넘던 고개’라는 데서 연유했다고 한다. 경찰대학 앞을 지나지만 이 길이 영남대로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없다. 그나마 옛 정취를 느끼게 하는 것이 용인 향교이다. 그렇지만 이 향교도 원래는 구성면 마북리에 있었던 것을 이전·복원한 것으로 6·25때 소실된 후 남아있던 부재를 사용해 다시 지은 것이다. 구성동사무소를 지나면 연원마을이다. 이곳도 온통 아파트단지다. 옛날에는 마을 이름었지만 지금은 아파트단지 이름으로 변했다. 바로 옆마을 새터말에는 장승이 있지만 길목에는 월마트가 자리잡아 영 어울리지 않는다. 여기서 옛길은 풍덕천으로 이어진다. 곧바로 수지구청이다.23번 국도를 따라 간다. 풍덕천에서 옛길은 공사가 한창인 판교택지개발지구로 이어져 접근이 불가능하다. 그나마 흔적이 남아있던 낙생초등학교 옆 너더리 마을도 얼마 전까지 부동산중개업소로 가득 찼으나 지금은 개발로 모두 철거돼 사진으로만 남게 됐다. 이어 영남대로는 청계산을 거쳐 종착지인 서울로 치닫는다. 글 사진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판교의 유래 개발이 한창인 판교(板橋)는 옛 명칭이 널다리였다. 마을 이름을 ‘널다리’라고 부르다가 ‘너다리’로, 다시 한자표기인 판교동으로 굳었다.‘널다리’란 이름은 마을 앞을 흐르는 운중천에 넓은 판자로 다리를 놓은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해석이 분분하다. 정양화 용인시 전통문화연구소장은 다리의 경우 들(坪)의 뜻을 가지는 이름으로 교각을 나타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이 말대로라면 ‘널다리’의 경우 넓은 들판을 가리키는 의미로 해석돼 판교의 명칭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실제로 판교가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된 것은 정씨의 해석대로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설 수 있는 천혜의 ‘넓은 들판’이었기 때문이다. 정씨는 최근 자신이 연구한 자료에서 이같은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이 연구자료에 따르면 용인시 원삼면 맹리와 독성리에 각각 위치한 느다리와 쪽다리는 마을이 아닌 들(坪)을 가리키는 이름인데 ‘-다리‘가 들어가기 때문에 흔히 개울에 놓여있는 다리(橋梁)로 생각하기 쉽지만 기흥구의 잔다리와 이웃하고 있는 백암면의 홈다리와 같은 뜻을 가지는 전형적인 땅이름이라는 것이다. 즉 잔다리와 홈다리는 다리(교량)가 아니라 ‘작고 좁은 들(坪)’의 뜻을 가지는 이름이며 느다리와 쪽다리도 같은 발상에서 붙은 이름이라는 것. 잔다리는 현재 마을을 이루고 있고 홈다리도 몇 집이 살고 있지만 느다리와 쪽다리는 그저 들판으로 논이 주를 이루고 있다. 느다리는 구한말 ‘지명지’에 늘다리라고 나오고 있으며 판교평(板橋坪)이라고 옮기고 있다. 또한 쪽다리는 편교평(片橋坪)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늘다리의 경우 ‘널+다리’라고 생각해 널빤지의 뜻을 가진 판(板)자를 쓰고 다리는 교량으로 생각하여 다리의 의미를 지닌 교(橋)자를 사용한 것으로 편교도 조각의 뜻을 가진 편(片)자와 교(橋)를 사용했으니 판교나 편교나 소리나는 발음의 뜻을 임의로 취하여 붙인 표기라는 설명이다. 느다리는 맹골 마을에서 발원하여 미평리의 청미천으로 흘러드는 작은 개울이 있어서 다리(橋)를 놓았을 가능성이 있지만, 쪽다리는 작은 도랑이 전부이기 때문에 굳이 다리를 놓을 필요는 없어 위의 들(坪)로 옮기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다. 이 주장대로라면 판교 시가지 명칭은 판평(板坪)으로 봐야 한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여수·해남 ‘거북선 전쟁’

    전남도가 추진 중인 ‘명량대첩 현창사업’을 놓고 전라좌수영인 여수지역 주민들이 반발하면서 동·서지역 주민간 갈등으로 이어질 조짐이다. 29일 도에 따르면 올해부터 모두 750여억원을 들여 거북선 유람선 제작과 전라 좌·우수영 진(鎭) 복원 등 ‘명량대첩 현창사업’을 추진 중이다. 도는 내년까지 1단계로 명량해전 대첩지인 해남 우수영∼진도 벽파진 사이 울돌목 구간에 200명 승선 규모의 거북선 모형 유람선을 취항할 예정이다. 유람선은 실제 거북선의 1.25배(길이 43m, 너비 13m, 높이 8m)로 만든다. 제작비는 40억원을 투입, 최대 속력 20노트 이상으로 설계해 울돌목의 거친 물살을 헤쳐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그러나 여수지역 시민단체가 이에 대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여수지역 ‘전라좌수영 복원위원회’측은 전날 전남도를 항의 방문하고 사업대상지를 거북선이 제작된 여수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이들은 “당시 명량해전에서는 거북선이 사용되지 않았고 오히려 거북선은 여수의 선소, 방각진, 좌수영 본영 등 3군데서 건조됐으므로 ‘거북선의 모태’나 마찬가지인 여수에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도는 이에 대해 “지난 8월 관련 사업용역까지 마쳐 이를 변경할 수 없다.”고 밝혔다. 도 관계자는 “이순신장군 관련 유적 복원에서 여수지역은 진남관을 비롯해 선소, 충민사 등에 국·도비를 지원해 꾸준히 정비 복원했고, 이번 용역에도 전라좌수영 정비복원 사업비 61억원이 포함됐다.”고 덧붙였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남한강 가을정취 느껴보세요

    추석연휴를 앞두고 남한강의 가을 정취를 맛볼 수 있는 ‘여주진상명품전’이 29일부터 10월3일까지 경기도 여주세계생활도자관 주변에서 열린다. 여주군이 주최하고 농촌진흥청이 후원하는 ‘여주 진상명품전’은 임금님 수라상에 오른 ‘여주 쌀’을 비롯, 맛이 뛰어난 ‘여주 밤고구마’, 최고의 품질을 인정받는 ‘도자기’ 등 여주 특산물을 알리는 행사로, 올해로 8회째를 맞는다. 방문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3개의 특별 전시관을 마련했다. 연못속 팔각정에 ‘세계 최고의 수라상’을 차려 놓았으며 여주 쌀과 땅콩, 옥수수, 전통자기 등을 전시하는 ‘숨쉬는 진상명품관’과 점동면 선사유적지와 원예작물, 현대·첨단농업을 소개하는 ‘생명산업 미래관’을 운영한다. 주요행사로는 궁중음식체험, 우리떡 만들기 경연, 전국 고구마요리 경연대회, 지구촌문화 한마당, 청소년 가을음악회, 궁중의상 패션쇼, 남한강 가요제 등 다양한 이벤트가 마련된다. 특히 ‘쌍용 거줄’과 진상행렬 퍼레이드, 진상의식 재현, 영화 ‘왕의 남자’에 출연했던 남사당패의 ‘줄타기공연’ 등은 행사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수원 김병철기자kbchul@seoul.co.kr
  • 차례 지내고 고궁·박물관으로

    추석을 맞아 30일부터 다음달 8일까지 경복궁·현충사 등 고궁과 능원, 유적관리소 등이 전통문화행사 등 다양한 볼거리를 마련했다. 특히 이 기간 중 한복을 입고 고궁 및 왕릉을 찾는 관람객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경복궁에서는 조선시대 과거제와 훈민정음 반포 재현, 궁성문 개폐, 수문장 교대의식 등을 볼 수 있다. 창경궁은 중요무형문화재 제49호 송파산대놀이와 궁중무악인 무고, 향발무, 포구락, 처용무, 수제천, 여민락 등을 선보인다. 덕수궁에서는 평택농악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11-2호), 생활다례 체험, 전통 탈모형 목걸이 만들기 등을 통해 우리 민속의 멋과 흥을 즐길 수 있다. 또 정릉·서오릉·융건릉 등 13개 능원 및 현충사, 세종대왕유적관리소, 칠백의총관리소 등에서는 세시 민속놀이인 널뛰기, 제기차기, 윷놀이, 팽이치기 등을 직접 즐길 수 있다. 이와 함께 서울 중구 필동 ‘한국의집’에서는 부채춤, 남도민요, 농악 공연을 볼 수 있으며, 전통음식 전시·시식도 제공된다. 한편 국립중앙박물관은 다음달 5∼7일 널뛰기·목판 인쇄 등 전통놀이·문화 체험과 함께 판줄·북청사자놀음 등 민속공연 한마당을 선보인다. 특히 극장 ‘용’에서는 고구려 춤극 ‘THE HAN-무천’을 볼 수 있다. 민속박물관은 다음달 1∼8일 택견과 퓨전국악, 황해도굿, 서울풍물굿 등을 공연하며,3∼8일에는 전통탈 만들기 등 다양한 민속문화 체험마당을 진행한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김형효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39) 마음의 혁명

    [김형효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39) 마음의 혁명

    지난주에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 비판의 내용을 훑어보면서, 그의 사유의 한계를 금주에 말하겠다고 언급했다. 그의 사유의 한계는 서구의 지성주의가 안고 있는 한계와 그 궤적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지난주에 보았듯이,3대째로 내려오는 서구의 반자본주의의 사상은 다 자본주의의 물신숭배사상(fetishism)에 대한 도덕적 거부감의 표시와 같다. 그런데 경제기술적 자본주의든 사회도덕적 사회주의든 다 서구적 지성철학의 전통이 낳은 쌍생아와 같다. 본디 서구 지성철학의 원조는 아리스토텔레스다. 그의 논리학이 지성적 사유의 원조와 같다. 그의 논리학은 동일성(同一性)과 이타성(異他性)을 확연히 쪼개는 이분법적 사유로서, 간단히 말해서 A와 비(非)A를 완전히 별개로 취급하여 그 둘 사이에 어떤 애매모호한 중간지대도 용납하지 않는 사유를 말한다. 그 논리는 택일적 사유를 기본으로 한다. 택일적 사유는 명사적 사유와 같다. 명사적 사유는 산은 산이고 골짜기는 골짜기로 여기는 사고방식으로서, 산과 골짜기가 불일이불이(不一而不二=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님)로 상호 이중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것을 보지 않는다. 명사적 사유는 개념적 사유로 이어지면서, 인간지성이 개념적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파악하려는 소유의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서구의 기독교 신학도 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적 사유와 만나서 신학을 합리적 논리학과 어긋나지 않게 정립하게 되었다. 이런 정립의 금자탑이 바로 토머스 아퀴나스에게서 시발된 토미즘(Thomism)이라 하겠다. 무(無)에서부터 신(神)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다 이성(지성)의 능력으로 에누리없이 파악하는 철학이 헤겔의 사유다. 그래서 헤겔의 사유는 웃음을 빼고 역사와 자연과 사회의 모든 것을 다 놓치지 않고 파악한 철학이라고 풍자되기도 한다. 이것은 그의 철학이 너무 진지해서 인간이 웃는다는 것을 깜빡 잊었다는 우스갯 소리겠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성적 논리학과 헤겔의 변증법적 논리학이 다르다고 항의할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전자가 반대되는 양자사이의 택일을 주장하는 것이나, 후자가 모순되는 양자의 투쟁사이에서 합일을 주장하는 것이나, 다 종이 한 장 정도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두 논리학은 다 서구의 지적 전통의 뼈대로써 지성이 어떤 경우에도 세상을 혼미한 상태나 모순된 상태로써 방임하지 않는다는 지적 소유의 강인한 소화력을 상징한다. 지성의 철학은 그 출발부터가 소유의식의 자부심이 강렬했다. 지성이 세상을 소유하려는 철학은 서구 지성사에서 둘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경제적 기술적으로 세상을 소유하려는 도구적 실용철학이고, 둘째는 그 실용적 소유철학이 회임하고 있는 이기적 속성을 싫어한 반(反)이기적 사회도덕을 중시하는 인도적 해방철학이다. 소위 인도적 해방철학은 스스로의 이상주의에 심취해서 자신의 지성철학은 소유론이 아니고, 인간을 물질적 소외로부터 해방시키는 인간주의의 정상이라고 착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도덕주의가 곧 형이상학적 존재론이라고 착각했다. 좌우간 서양지성사에서 이런 착각을 처음으로 명쾌하게 세상에 밝힌 이가 독일의 하이데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본주의적 실용주의만이 소유론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도덕주의도 역시 지성철학이 분비한 소유론이라는 것이다. 이 하이데거의 통찰은 사회주의적 이상주의가 짙게 피워온 신비의 안개를 하루아침에 날려보낸 셈이다. 사회주의적 소유론은 물질적 소유론보다 더 지독한 정신적 소유론이라는 것이다. 정신적 소유론이므로 독재를 필연적으로 몰고 온다. 보드리야르가 소비사회의 비판으로써 제기한 환영(simulacrum), 흉내내기(simulation), 초과실재(hyperreality), 내파(implosion)(38회 글 참조) 등과 같은 용어들은 다 실재의 알맹이를 잃고 기호로 변해가는 사회의 환상들을 비판한 것이다. 보드리야르의 사회학은 사회가 도덕적 가치를 잃지 않고 내용이 있는 현실이 구성되기 위하여 교환가치보다 더 튼튼한 사용가치를 기반으로 해서 존재의 알맹이가 있는 사회가 정립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소비사회가 그런 존재론적 알맹이를 다 잃어버렸거나 상실해간다는 것을 통탄하고 있다. 그의 사회학은 반자본주의의 사회학이 자본주의적 소비사회를 길들이지 못한 것을 한탄한 소리와 같다 하겠다. 그러나 그의 사회학은 두 가지의 착각을 범한 셈이다. 첫째로 그는 그의 사회학이 형이상학적 존재론의 요구라고 생각한 점이다. 그러나 그의 요구는 정신적 소유론의 요구이지, 결코 존재론의 요구가 아니다.(모든 정신적 가치론은 경제적 가치론의 은유화에 다름 아니라고 지난 9회 글을 통해 지적한 바 있다) 시장에서 매매가격의 은유적 표현으로 정신적인 사용가치나 교환가치를 인간이 상정한다. 따라서 정신적 가치도 인간이 세상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의 은유적 생각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보드리야르의 사회학은 세상을 사용가치로서 정초시키고 싶어하는 지성의 도덕의지가 바라는 소유학이다. 둘째로 그는 아직도 정신적 도덕적 가치론이 경제적 이기적 소유론을 길들일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도덕적 가치론은 당위적인 명령인데, 그 당위의 명령이 자연적 본능의 이기심을 이은 지능(지성)의 이익추구의 충동을 결코 이길 수 없다. 지성의 이기주의는 자연적이고, 지성의 도덕주의는 당위적인데, 당위가 자연을 못 이긴다는 것을 노자가 이미 풍자했다.‘도덕경’에서 노자는 ‘발돋움하고 있는 자는 오래 서 있지 못하고, 성큼성큼 걷는 자가 오래 가지 못한다.’고 암시했다. 인위적인 노력이 자연적인 것을 능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구의 도덕적 사회주의가 경제적 자본주의를 이기지 못한 까닭은 그것이 힘이 들어간 인위적 당위주의이기 때문이다. 서구의 반자본주의 사상은 자본주의 병리현상의 지적에선 빛났으나, 그 병리를 치유하는 생리적 처방에는 아주 미흡해서 당위적 주장만을 늘 내놓는 추상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경제기술적 자본주의의 장점을 살리면서, 그것이 갖고 있는 찌꺼기와 같은 낭비와 배금주의를 씻어내는 길이 무엇인가를 사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나는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사유를 다시 그 처방으로 생각한다. 반자본주의적 서구의 지성이 범한 사유상의 과오는 십자군적인 도덕주의의 사고에 너무 젖었었다는 것이다. 십자군적 도덕주의의 사고는 선악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여 선악을 각각 분리된 별개의 것인 양 실체론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보드리야르도 그런 십자군적 도덕주의의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개 서구 지성이 이런 과오에 습관적으로 젖어있는 경향을 갖고 있다. 보드리야르의 비판도 그가 반소비적 물건 가치의 실재를 선으로 집착한 정신적 소유주의를 기본으로 깔고 있기에 생긴 이론이다. 선이 악을 온전히 제거하겠다는 사상으로는 악이 사라지지 않는다. 악과 싸우는 선이 이미 내부에서 악을 또한 분비하고 있다. 사회주의가 실패한 까닭이 바로 도덕주의의 허상 때문이다. 하이데거가 그의 ‘존재와 시간’에서 ‘존재론적 욕망의 부름으로써의 양심’을 천명하였다. 나는 이 뜻을 우리가 다시 깊이 새겨야 한다고 여긴다.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사유를 철학자들이 하는 어려운 관념의 유희라고 오해하거나 일축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가장 절실하게 세상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생리의 길이라고 생각된다.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론적 욕망의 부름으로써의 양심의 소리’는 흔히 도덕론자들이 즐겨 쓰는 선의 진군나팔 소리를 울리자는 뜻이 아니다. 그의 생각은 이렇다. 세상사람들이 손익의 계산적 지성이나 또는 선악의 도덕적 지성의 둘 중 하나에 젖어서, 전자는 현실주의자들의 방패로, 후자는 이상주의자들의 창으로 각각 써 온 지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둘 다 소유주의의 철학이다. 소유주의적 문명을 존재론적 문명으로 되돌리려 하는 것이 그의 사유의 본질이다. 모든 것은 다 동시에 양가적이므로 선악을 분별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이분법을 버려야 한다. 모든 것이 양가적이고 이중적인 한에서, 세상을 구하는 길은 세상을 분별적으로 여기는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하이데거가 말하고자 하는 양심의 소리는 분별적인 세상사람들의 마음을 본래의 본성적 마음으로 되돌아가는 마음의 자기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가리킨다. 본성의 소리는 당위적인 도덕의 명령이 아니라, 본능처럼 마음이 스스로 하고자 하는 기호적(嗜好的) 욕망을 말한다. 기호적 욕망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본능적 소유욕을 말하고, 또 다른 하나는 본성의 존재론적 욕망이다.(1·2회 글 참조) 하이데거가 언급한 양심은 마음이 자기의 본성을 되찾은 자성(自性)의 목소리와 다르지 않다. 그 자성을 그리스도성이라 불러도 좋고, 불성이라 말해도 괜찮다. 그러므로 그 양심의 부름은 도덕적 당위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성이나 불성이 하고싶어 하는 욕망을 부르는 것이다. 이런 부름을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현존재(마음)가 자신의 가장 고유한 존재가능성에로의 말건넴’과 같다고 언명했다. 소유론적 욕망은 이기배타적인 욕망이지만, 존재론적 욕망은 그리스도성이나 불성이 욕망하는 것이므로 자리이타적 욕망이다. 인간에게 이런 욕망의 자발성도 있다. 이 자발성을 부르는 것이 양심의 부름이다. 이 욕망은 경제와 과학기술을 위한 지혜도 부정하지 않고, 사회도덕도 파괴하지 않는다. 자리이타의 욕망은 자기본성에 의한 재능의 계발이 곧 사회적 이타행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소유론적 지성(知性)을 넘어선 존재론적 지성(智性)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마명스님은 ‘대승기신론’에서 이 지성(智性)을 중생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수염본각(隨染本覺)의 능력인 지정상(智淨相)과 그 것의 불가사의한 활동력인 부사의업상(不思議業相)이라고 명명했다. 본성의 욕망인 양심이 숨을 쉬면, 이 본성의 능력들이 우리를 경제적으로 도덕적으로 이끌어준다는 것이다. 양심의 부름을 하이데거는 간결하게 말했다.“양심의 부름은 나로부터 나오지만, 나를 넘어서 나온다. 그 부름이 어디로 가는가? 그것은 나에게 온다.” 이것이 마음의 혁명이다. 세상을 혁명하려하지 말고 마음을 혁명해야 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이슬람 문명과 도시] (19) 중세 문화중심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이슬람 문명과 도시] (19) 중세 문화중심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언제부터인가 이 곳을 찾을 때마다 아프라시압 언덕에 오르곤 한다. 아프라시압 언덕에서 시압강을 휘돌아 날아오는 바람을 맞으며 비비하눔 성원(모스크)이 있는 방향을 바라다본다. 저 푸른 빛의 돔은 중세 이슬람 문명의 정수를 보여주기에 손색이 없지 않은가. 해질 무렵의 검붉은 장관은 또 어떤가. 관광을 마치고 돌아서는 발걸음마저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지금 서 있는 바로 이 곳이 중앙아시아 이슬람 문화의 출발선이자 경계선인,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문화도시 사마르칸트다. 이 이름의 역사적 대가는 잔혹했지만 사마르칸트는 그 슬픈 역사를 두터운 황토 아래 묻어둔 채 넉넉한 문화적 향기만 내뿜고 있다. 사마르칸트(Samarkand)는 한때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였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다. 중세 아미르-티무르 제국의 정치행정수도이자 문화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다. 고대에는 ‘마라칸다’로 불렸다. 중국은 ‘강국(康國)’이라 불렀다. 사마르칸트는 원래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라는 뜻이다.‘사마르’는 산스크리트어이며,‘칸트’는 페르시아말로 도시를 뜻한다.9세기쯤 이슬람이 전파되기 전에는 ‘고대 동방의 에덴’이란 멋진 별칭을 갖고 있을 정도로 번영을 누렸다. 사마르칸트는 이슬람을 만나면서 중앙아시아 이슬람의 중심, 문화의 중심이 됐다. 중앙아시아의 문화는 언덕 위에서 이뤄졌다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아프라시압 언덕이 바로 도시문명 사마르칸트의 모든 것을 품고 있는 곳인 셈이다. 이처럼 사마르칸트는 그 옛날 찬란히 빛나는 소그디아나의 수도였기에 도시의 역사만큼이나 깊고 다양한 역사적 유물 유적을 갖고 있다. 아프라시압 언덕과 시압언덕 사이의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눈앞에 두고 있는 고고학연구소로 향했다. 고고학연구소는 아프라시압 언덕 남서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고고학연구소의 압둘하미드 아나르바예프 부소장은 언제나 호기심 많은 소년처럼 나를 이리저리 안내해준다. 연구소가 지니고 있는 사마르칸트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고 싶어하는 마음을 아무 꺼릴 것 없이 보여주는, 그런 고고학자다. 본디 그는 페르가나 출신이다. 젊은 시절 구 소련 레닌그라드 대학에서 고고학을 공부하고, 사마르칸트 남동쪽으로 40여㎞ 떨어진 펜지켄트라는 도시에서 5년간 발굴작업에 참여하면서 사마르칸트와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설명을 듣고 있노라면 펜지켄트와 아프라시압에 있는 벽화들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난다. 압둘 하미드 부소장의 말에 따르면,1950년대 어느 날 한 목동이 이 곳을 우연히 발견하지 못했다면 아직까지도 아프라시압은 땅 속에 묻혀 찬란했던 ‘소그드 문화’가 알려지지 못했을 것이라 말했다.‘아프라시압(AФPACNAE)’이란 말의 어원은 페르시아의 전설적인 왕 ‘투란(Typah)’과 관련이 있다. 1965년이었다. 아프라시압 역사박물관에서, 지금까지도 너무 유명하고 큰 관심을 끌고 있는,7세기쯤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아프라시압 벽화’라 불리는 벽화를 처음 공개했다. 위 아래 길이만도 2m가 넘는 이 벽화는 우아한 이야기를 독창적인 제작 기법으로 담고 있다. 벽화는 소그드 사람들이 맞은 문화적 절정기가 그대로 반영돼 있다. 벽화 중앙부와 서쪽 벽에는 각국 사절들로부터 선물받은 각종 귀금속 등으로 장식한 예복을 갖춰 입은 통치자(혹은 신이라는 해석도 있다.)가 묘사돼 있다. 통치자에게 인사를 하러 온 각국 사절들은 온갖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 중에는 비단옷을 입은 중국인, 긴 머리의 투르크인, 파미르 고원에서 온 유목민들이 눈에 띈다. 여기다 머리를 땋은 한인(韓人)의 모습이 보인다. 머나먼 중앙아시아 땅 한복판에서, 그것도 낯설기만 한 이슬람문명권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이 한인의 모습은 당시 고구려인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의 활발한 대외관계를 알려 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그러나, 지금도 역사학이나 고고학을 전공하는 국내외 학자들에게는 미증유의 논쟁거리이기도 하다. 각국의 사절을 맞이하고 있는 소그드인의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다. 정치적인 해석과 의례적인 해석이 대립하고 벽화에 묘사된 인물이 누구냐에 대해서도 온갖 의견들이 분출한다. 또, 벽화가 그려진 시기가 정말 7세기쯤이냐에서부터 화공이 굳이 벽화를 완성하지 않은 상태로 남겨 둔 것은 무슨 의미냐를 두고 학계는 수십가지의 의견을 제출해둔 상태다. 그래도 분명한 점은 고구려인의 복장을 한 사람이 두 명이나 그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머나먼 옛날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이 중앙아시아에까지 닿았을까. 그 사연은 모르지만, 어쨌거나 우리와 중앙아시아의 인연 혹은 운명적 만남에 대한 충분한 근거자료임에는 분명하다. 아프라시압 언덕에서 내려와 비비하눔 모스크로 걸어갔다. 언제나 시끌벅적하고 번잡한, 오늘도 내일도 번잡한 시압 바자르를 지나서니 당대 세계 최고의 문화적 성취를 보여주는 비비하눔 성원이 위용을 드러낸다. 사마르칸트에서 최고의 가치를 지닌 문화재를 꼽으라면 당연히 비비하눔 성원이다. 원래 이름은 아미르-티무르 성원이었다. 대제국을 건설하느라 바빴던 정복군주 아미르-티무르에게 왕비 비비하눔이 지어서 바쳤다는, 그런데 그 와중 건축사와 놀아난 게 들통나 처참하게 죽음을 당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그 뒤 티무르는 모든 여자들에게 얼굴을 가리도록 했는데 이게 바로 ‘부르카’의 시초다. 웅장한 피쉬탁 양식의 정문을 들어서자 바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중앙 성원의 화려함과 몇 그루의 뽕나무다. 정사각형의 비비하눔 정원에는 푸른 잔디가 깔려 있다. 직사각형의 성원 뜰에는 네 면의 가장자리에 걸쳐 미나레트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높이 쳐든 듯 솟아 있다. 비비하눔 성원은 중앙아시아 이슬람 성원 건축양식의 전형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외벽에 구운 듯 입힌 푸른 타일은 건물 전체를 더욱 에메랄드 빛으로 빛나게 한다. 마치 태양빛 가운데서도 가장 형형하고 아름다운 푸른 빛이 내려앉아, 한 모금의 자주빛을 뿌리고 사뿐히 날아오르는 듯하다. 빛의 향연이다. 이 성스러운 광장 가운데에는 이슬람 문화에서 가장 고귀하다는 ‘오스만의 코란’이 놓여 있었다. 지금이야 주인 없는 돌 받침대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아직도 사람들은 오스만의 코란이 있던 돌자리를 신성불가침의 공간으로 여긴다. 양각과 음각으로 돌을 새기고 타일을 붙여서 구운 비비하눔의 건축양식은 다름 아닌 아프라시압의 정신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결점투성이인 채로 마무리된 복구작업에도 비비하눔의 아름다움과 종교적 심성이 이 곳 사람들에게 남아있을 리 없다. 사마르칸트의 역사는 문명의 역사이자 이 곳에 사는 사람들 마음의 역사다.2007년이면 사마르칸트는 도시 창건 2800주년을 맞는다. 사마르칸트 곳곳에서 기념 행사가 열릴 것이라고 한다. 사마르칸트에서 다시 한번 이슬람 문화의 향기가 뿜어져 나오길 고대한다. 장 준 희 우즈베키스탄 국립동방학대학교수 이슬람문화硏 연구원
  • “배 모양의 수중 박물관 2010년 완공”

    “배 모양의 수중 박물관 2010년 완공”

    “발굴 30년만에 마련된 신안선 특별전과 학술대회를 계기로 신안 해저유물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습니다.” 지난 22일 목포에서 개막된 신안선 발굴 30주년 기념특별전 ‘신안선과 동아시아 도자교역’(12월10일까지)을 마련한 문화재청 국립해양유물전시관 김성범(51) 관장. 그는 “신안선은 한·중·일 도자기 등 2만 2000여점의 유물을 쏟아낸 ‘보물선’이지만 체계적인 연구가 부족했다.”면서 “신안선을 통해 14세기 동서양을 잇는 ‘해상 실크로드’가 있었음을 확인하고, 왕성한 도자교역의 의미를 조명하기 위해 특별전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번 특별전이 우리나라 도자기의 우수성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안선에서 고려청자 7점이 나왔는데 일본은 당시 자기 기술이 없어 자기를 본뜬 도기 2점만 나왔습니다. 우리나라가 중국에 이어 두번째로 자기를 만들 정도로 기술이 뛰어났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지요.” 도자기뿐만 아니라 당시 무역상 및 선원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동전과 목패, 저울추, 향신료, 자향목(紫香木) 등도 새롭게 조명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이를 통해 신라시대 장보고 이후 활발한 해양교역의 전통을 계승하고, 세계적인 수준의 해양유산 보존을 통해 관광자원화도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양유물전시관은 신안선 발굴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1976년 신안선 발굴이 시작되면서 1981년부터 보존처리장 역할을 했으며,1994년 전시관으로 개관한 뒤 신안선 보존처리 및 연구에 주력했다. 그러나 공간·인력 등의 부족으로 이제서야 특별전을 열고 도록을 재정비하는 등 한발짝 나아가게 됐다는 것이 김 관장의 설명이다. 그는 “내년 3월 박물관으로 승격되면 신안선뿐 아니라 그동안 발굴, 보존처리한 6척의 선박에 대해서도 체계적인 연구를 하게 된다.”면서 “특히 아시아 최초로 오는 11월 건조되는 발굴전용 선박 ‘씨뮤즈’를 통해 태안반도를 비롯, 군산, 무안, 목포, 진도 등지에서 그동안 신고된 200여건의 해저유적에 대한 발굴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도 군산 야미도에서 유물 780점을 발굴·인양했으며 다음달에도 태안반도에서 발굴이 시작된다. 김 관장은 공간 부족으로 지금까지 발굴한 6척 중 신안선·완도선 등 2척만 전시해 안타깝다며 2010년 완공을 목표로 배 모양의 수중 박물관을 증축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바다 속 박물관에 그동안 발굴한 모든 선박을 전시하고, 현 전시관과 바다 위를 걸을 수 있는 다리로 이어 관광자원화를 꾀하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목포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종교건축 이야기] (13) ‘법이 머무는 곳’ 법주사 팔상전(捌相殿)

    [종교건축 이야기] (13) ‘법이 머무는 곳’ 법주사 팔상전(捌相殿)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 209, 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주지 도공 스님). 신라 진흥왕조인 553년 의신 스님이 창건했고 혜공왕조인 776년 진표 율사가 중창한 ‘호서제일가람’이다. 정유재란때 불타 없어졌지만 사명대사와 벽암대사에 의해 1624년에 복원된 사찰.‘법이 머문다.’란 뜻의 법주(法住)는 불법을 구하기 위해 인도에 유학했던 창건주 의신 스님이 흰 노새에 불경을 싣고 와서 후학을 양성할 절터를 찾기위해 머물렀다는 연기설화로 인해 붙여진 이름이다. 고려시대에 왕실의 보호를 받으며 법상종 종찰의 면모를 유지해 왔으며 지금은 국내 대표적인 미륵도량이자 화엄사찰이기도 하다. 산내암자 11개, 말사 80개를 거느린 주요 본사답게 이런저런 사연이 많지만 아무래도 법주사의 핵심은 국내 유일의 목조탑인 팔상전(국보 제55호)이다. 흔히 사찰의 탑이라면 화강석으로 만든 석탑을 떠올릴 만큼 나무로 세운 목탑은 생소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원시불교 이래 탑전은 목조의 전통을 유지해 왔으며 ‘삼국유사’ 등에도 탑의 시원이 목조였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전한다.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까지도 목탑이 세워진 사실이 만복사지 탑지에서 밝혀졌고 조선시대까지 전해져왔음이 각종 유적들에서 확인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법주사 팔상전으로, 이 팔상전은 현재 목조 탑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1984년까지만 해도 전남 화순 쌍봉사 대웅전이 법주사 팔상전과 함께 목조탑의 쌍벽을 이뤘으나 아쉽게도 소실됐다. 법주사 경내의 중심에 선 팔상전은 사방에 계단이 설치된 석조 기단위에 5층으로 올린 5층 목탑이지만 내부는 가운데 벽을 중심으로 한 통간 건물로 되어 있다. 정사각형 모양의 사찰 전각 기단은 사제(四諦)와 팔정도(八正道)를 상징한다. 특히 동서남북에 배치된 계단은 구도자에게만 허락된 수행의 경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통한다. 기단에 올라서 안으로 들어가면 사방 네 벽에 두 폭씩의 팔상도가 모셔져 있음을 보게 된다. 그 벽면 앞에 불단을 만들어 불상을 봉안했고 불상 앞에 납석원불과 나한상이 모셔져 있다. 전체 5층 가운데 1·2층은 5칸,3·4층은 3칸,5층은 1칸으로 구성한 것도 특이하다. 팔상전이란 석가여래의 일생을 8단계로 나누어 표현한 그림인 팔상도를 모신 전각. 쌍계사. 통도사. 운흥사. 선암사. 범어사 등의 팔상전에서도 이같은 팔상도를 볼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 사찰의 팔상전에 모셔진 팔상도가 불단을 향해 평면적으로 나열되어 한꺼번에 전체를 볼 수 있지만 법주사 팔상전의 경우는 사뭇 다르다. 한가운데 조성된 네 벽을 돌아가면서 각 벽면에 두 폭씩을 배치했기 때문에 한 곳에서 전체를 다 볼 수가 없다. 팔상도의 8폭을 전부 보기 위해선 팔상전 안을 한 바퀴 돌아야 하는데 팔상도를 따라 돌다보면 결국 가운데 벽 심초석(心礎石)에 봉안된 불사리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탑돌이를 하게 되는 셈이다.(지난 1968년 팔상전을 해체수리할 때 심주(心柱) 밑에서 사리장치(舍利裝置)가 발견되어 이곳이 불사리를 봉안한 장소임이 확인되었다. 목탑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된 것은 법주사 팔상전이 처음이다.) 팔상도를 따라 탑돌이를 한 뒤 문을 나서서 지붕을 올려다보면 2층 처마 아래 모서리에 새겨진 난쟁이 모습의 인물과 용 형상이 눈길을 끈다. 이 가운데 연꽃 봉오리 위에 쪼그려 앉아 두 팔과 머리로 추녀를 받친 모습의 난쟁이상이 흥미롭다. 왕방울 눈에 나선형 눈썹과 짙은 수염을 갖고 있는데 부처님을 공양하고 불전을 수호하는 불교 외호신 중 하나라고 한다. 법주사 팔상전의 가장 큰 특징은 뭐니뭐니 해도 불사리를 봉안한 탑에 더해 예배 공간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탑의 내부를 예배공간으로 썼던 기록은 삼국유사 권5 ‘월명사도솔가(月明師兜率歌)’조의 “동입내원탑중이은(童入內院塔中而隱)”이라는 구절에 처음 나타나는데 “동자가 탑 속으로 숨어들었다.”는 내용이다. 학계에서는 사람이 탑 안으로 숨어든다는 것은 탑 내부에 큰 공간이 있었음을 의미하며 법주사 팔상전이 바로 동자가 숨어들었다는 그 탑 형식의 목탑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이 팔상전은 지난 1968년 해체 보수공사 이후 내부 통풍이 안되고 벽면에 습기가 심하게 차오르는 등 훼손될 위기에 처해 있다. 법주사 주지 도공 스님은 “미륵신앙과 화엄사상을 함께 담은 법주사의 중심건물인 팔상전은 불사리 봉안처로서의 탑 성격과 예배장소의 기능을 동시에 갖춘 유일한 탑전인데 예산과 보존 처리의 어려움 때문에 훼손되어 가는 문화재를 그대로 방치할 수밖에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kimus@seoul.co.kr 사진 남상인기자 sanginn@seoul.co.kr ■ 법주사의 명물들 법주사 경내 곳곳에는 크고 작은 명물들이 들어서 있다. 팔상전을 비롯해 석련지, 쌍사자석등이 국보로 지정됐고 보물도 12점으로 국내에서 가장 많은 국보·보물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이 가운데 마애여래의상(磨崖如來倚像)과 사천왕상, 석련지, 대웅보전, 금동미륵대불은 신도와 관람객들의 시선을 가장 많이 받는 문화재들이다. 우선 일주문을 지나 팔상전과 대웅보전을 가기 위해 통과하는 천왕문의 사천왕상은 국내 사찰중 가장 큰 규모. 천왕문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조선 후기 맞배지붕 건물인데 중앙 통로 양쪽 2칸에 높이 5.7m, 둘레 1.8m 크기의 사천왕상을 2구씩 배치해 천왕문을 통과하는 이들의 시선을 제압한다. 사리각 옆 암벽에 조각된 전체 높이 6.18m 크기의 마애여래의상도 독특한 불상. 둥근 얼굴과 감은 듯 뜬 눈에 잘록한 허리 등 비사실적인 추상이 인상적이다. 연꽃 잎이 불상 주위를 둘러싼 연봉이 불상을 둘러싸고 발 아래엔 반쯤만 조각된 연화문상석이 놓여 있다. 석련지는 원래 법주사의 본당이었던 용화보전의 장엄품을 설치했던 것. 신라 성덕왕조때 화강석으로 조성됐는데 8각 지대석 위에 3단의 굄을 만들고 다시 굄돌을 올려 그 위에 구름을 나타낸 동자석을 끼워 무량수의 감로천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신라 진흥왕때 창건된 대웅보전 안의 불상 3구는 국내 사찰 법당에 봉안된 소조불 좌상중 가장 큰 것. 중앙에 비로자나불, 좌측에 노사나불(아미타불), 우측에 석가모니불을 모셨는데 각각 마음, 덕, 육신을 뜻한다고 한다. 최근 개금불사를 마치고 점안식을 가졌다. 팔상전 왼편, 미래 미륵부처님의 현존을 의미하는 금동미륵대불은 국내 최대의 규모.8m 높이의 기단 위에 25m높이로 조성됐는데 소요된 청동만도 160t이나 된다고 한다.
  • [사회공헌 우수기업 특집] 한국토지공사-입주민에 도서관등 무상기부

    [사회공헌 우수기업 특집] 한국토지공사-입주민에 도서관등 무상기부

    한국토지공사는 1975년 설립된 이후 230여개의 주택단지를 조성했다. 입주민을 위한 공공도서관, 박물관, 문화회관, 문화유적전시관, 도서관, 야외음악당, 미술관, 생태 및 예술공원, 노인정 등을 건립해 무상 기부함으로써 국민들의 문화적 욕구 충족과 쾌적한 생활환경 조성에 앞장서 왔다. 또한 토공은 소년소녀가장 장학금 전달, 사랑의 전동휠체어 보내기, 사랑의 김장 나눔 행사, 국토대청결운동, 헌혈 행사 및 불우시설 자원봉사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오고 있다. 토공은 보다 체계적인 사회공헌활동 추진을 위해 지난해 11월 ‘토공 온누리 봉사단’을 창단했다. 올해의 사회공헌목표는 ‘전략적 사회공헌 활동의 토대 마련’이다. 생태환경 보전, 교육문화 진흥, 소외계층지원, 자원봉사활동 등 4개 분야의 추진방향을 설정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사회공헌 우수기업 특집] KTF-‘고구려 지킴이’ 홍보 활동

    [사회공헌 우수기업 특집] KTF-‘고구려 지킴이’ 홍보 활동

    KTF는 지난 6일 ‘고구려 지킴이’ 사업에 나섰다. 한강 유역의 대표적인 고구려 유적지 아차산성의 정화 활동을 시작했다. 또 10월에는 초·중·고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고구려 역사 교실을 운영한다. KTF는 대부분의 기업이 기부나 복지에 치우친 사회공헌 활동이 아닌 우리나라의 역사와 가치를 알리고, 한국인으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갖도록 하는 ‘나라 사랑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그래서 사회공헌 슬로건도 ‘씽크 코리아’(Think Korea·한국의 역사와 가치를 생각합니다)로 정했다. KTF는 ‘고구려 연구회’를 통해 고구려사 연구 및 동북공정 대응 등 학술 활동과 국민들의 고구려 인식 제고를 위한 홍보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 ‘사이버 외교관‘ 반크와는 아시아 피스 메이커(Asia Peace Maker) 사업을 하고 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우리구 구청장 궁금하시죠] 김우중 동작구청장

    [우리구 구청장 궁금하시죠] 김우중 동작구청장

    김우중(64) 동작 구청장의 비전은 ‘뉴 강남’이다. 김 구청장은 “서초나 강남에 인접해 있지만 동작은 워낙 여건이 열악했다.”면서 “강남과 비슷한 수준으로 끌어올려 뉴 강남으로 도약하겠다.”고 의욕을 불태웠다.3선째인 ‘왕고참’구청장이지만 초선 구청장 못지않은 열정을 보이고 있다. ●뉴타운 사업의 지역특성화 동작구가 추진하는 사업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역점 사업인 뉴타운 사업만 해도 다른 구에서 1곳 정도를 추진하고 있지만 동작구는 2곳이나 된다. 뉴타운 지구로 선정된 지역은 노량진과 흑석동 2곳이다. 김 구청장은 “노량진 1·2동과 대방동 일대 23만 550평을 녹지율 40% 이상의 친환경적 상업 주거단지로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흑석동도 지난해 말 제3차 뉴타운 지구로 선정돼 개발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노량진에 대한 기대가 크다. 노량진이 가진 성장 잠재력 때문이다. 그는 “노량진은 서울의 동서남북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인 데다 고시 학원가가 형성돼 있고, 우리나라 최대 수산시장인 노량진 수산시장이 있어 2012년 뉴타운 사업이 완성되면 자족형 복합도시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뉴타운 사업을 추진하면서 노량진의 지역적 특성을 살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김 구청장은 현재 형성돼 있는 학원가를 살려 제대로 된 학원 분위기를 조성할 계획이다. 그는 “주요 역세권에는 모두 레드존이 형성돼 있지만 노량진은 다르다.”고 말했다. 역 주위 학원가를 고려해 청소년 위험 시설을 일체 배제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역주변에 마사회가 들어오려는 것도 막았고, 모텔도 안 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노력한 만큼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충효·복지 동작 구현 개발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동작의 슬로건은 복지 동작 구현이다. 충효사상도 동작의 정신이다. 김 구청장은 “동작구 내에는 국립현충원과 사육신묘, 장승배기, 용양봉저정 등 유적지가 많다.”면서 “유적지를 연결하는 역사탐방로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전했다. 또 현충원 외곽지역 26만평을 묘지공원에서 근린공원으로 개발하는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풍부한 녹지를 활용해 산책로, 산림욕장 등을 조성, 서울의 명소로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뿐만 아니라 복지에 대한 관심도 남다르다. 보육정책을 주제로 책을 냈을 정도다. 전국 최초로 노인휴양소를 안면도에 마련하고, 동작자원봉사센터를 문 열어 일찌감치 자원봉사 시스템을 뿌리내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김 구청장은 “마지막에는 적당히 넘길 수도 있겠지만 두 번째는 두배로, 세 번째는 세배로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3선 연임 구청장으로서의 각오를 되새겼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걸어온 길 ▲출생 1942 충남 홍성 ▲학력 연세대 문과대, 중앙대 석사 ▲약력 구미무역 주식회사 대표이사, 서울특별시의회 건설위원회 위원장, 사단법인 한국청소년학회 이사장, 중앙대 행정대학원 객원교수, 민선 2·3·4기 동작구청장 ▲가족 이은신씨와 1남2녀 ▲종교 없음 ▲주량 전혀 하지 않음 ▲기호음식 된장찌개 ▲좌우명 선공후사(先公後私) ▲애창곡 우중의 여인
  • 일제때 촬영 고구려유적 미공개사진 공개

    일제때 촬영 고구려유적 미공개사진 공개

    일제시대에 촬영된 고구려 유적 사진들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국내 고구려사 연구에 기초자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성균관대 박물관은 오는 22일부터 12월22일까지 ‘지안(集安) 고구려 유적의 어제와 오늘’ 기획전을 연다. 전시회에서는 일제 때 조선총독부 박물관장이었던 후지타 료사쿠(경성제국대 교수)가 1930년대 옛 고구려 수도인 지안 일대를 답사하며 찍은 120여점이 공개된다. 후지타는 조선의 문화재 발굴·관리를 총괄했던 인물로 고구려를 비롯해 경주, 부여 등 국내 유적 사진 1800여점을 남겼다. 1953년부터 이를 관리해 온 성균관대가 고구려 관련 사진만 추려 기획전을 여는 것이다. 성대는 19일 전시회에 앞서 4점을 공개했다. 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어린이책꽂이]

    ●어떤 느낌일까?(나카야마 지나쓰 글, 와다 마코토 그림, 보림 펴냄) “안 들린다는 건, 참 대단해. 그렇게 많은 것이 보이다니.” 주어진 상황에 따라 남다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요지의 장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던져주는 그림책.5∼8세.8500원. ●지도 없이 떠나는 101일간의 불가사의 역사(박영수 글, 노기동 그림, 영교출판 펴냄) 세계 7대 불가사의 등 역사책에 나오는 신비의 유적들을 상상력으로 둘러본다. 바벨탑을 누가 왜 무너뜨렸는지, 진시황제는 왜 거대한 병마용갱을 만들었는지 흥미진진한 문답으로 꽉 찼다. 초등생.9000원. ●지프, 텔레비전 속에 빠지다(잔니 로다리 글, 페프 그림, 김효정 옮김, 주니어김영사 펴냄) 지은이는 안데르센 상을 받은 세계적 아동문학작가.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보다 그 속으로 빨려들어간 열살 꼬마 이야기를 비롯해 중단편 11편이 묶였다. 초등 고학년.9000원.
  • 첫 전문계간지 ‘한국의 고고학’ 창간

    우리 손으로 유적 발굴작업이 처음 이뤄진 것은 1946년 경주 호우총. 이어 1949년 경주 황오동 고분을 발굴하고 6·25전쟁 중인 1952년에도 경북 월성 금척리에서는 발굴작업이 진행됐다. 이렇게 출발한 우리의 고고발굴은 1970년대 개발시대를 거치며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 현재는 연간 1000여건의 발굴 성과를 거둘 만큼 성장했다. 이제 이쯤되면 우리도 제대로 된 고고학 잡지 하나쯤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 때마침 창간된 계간 ‘한국의 고고학’(주류성출판사 펴냄)은 그렇기에 더욱 반갑다. 조유전 한국토지박물관장이 대표 편집위원, 황규호 전 서울신문 문화부장이 상임 편집의원을 맡았으며 심봉근 동아대 부총장, 배기동 한양대 박물관장, 김태식 연합뉴스 문화부 기자 등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잡지를 발행하는 최병식 주류성출판사 대표는 “국내 고고학 발굴 성과는 물론 인접 학문과 연계된 논문, 해외 고고학 정보까지 아우르는 품격있는 고고학 전문지로 가꿔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번 창간호에는 ‘남한지역 발굴자료로 본 고조선계 문화판도’를 주제로 한 특집기사가 실렸다. 중국의 ‘동북공정’ 속에 포함돼 있는 고조선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규명해 볼 수 있는 의미있는 글이다.1만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한민족 문화유전자를 찾아서] (9) 언어·예술상징(상)

    [한민족 문화유전자를 찾아서] (9) 언어·예술상징(상)

    “선진(先進)이 후진(後進)이 되고 후진이 선진이 된다.”고 했던가? 이번에 소개할 우리 민족의 문화 상징들인 고구려 고분 벽화, 고려 청자, 팔만대장경, 직지심체요절 등을 돌아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그렇게 막강했던 고구려가 마침내는 삼국 중 가장 약했던 신라에 망하고, 중세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모든 면에서 앞섰던 우리나라가 근대에는 일본에 나라를 내주지 않았던가? 그러나 한 시대의 위대한 문화는 그 시대적 관점에서 제대로 평가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문화에 대한 기본적 시각이 아니겠는가? 2004년 북한이 신청한 북한 소재 ‘고구려 고분군’과 중국이 신청한 중국 영토 내의 ‘고구려 수도, 귀족과 왕족의 무덤’이 모두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것은 한때 요하(遼河) 이동의 요동은 물론 북만주 지역까지 차지하고, 남으로는 한반도의 절반 이상까지도 내려와 있었던 고구려라는 하나의 강력한 나라의 역사를 인정하는 것인 동시에 이들 고구려 고분들에 있는 상당수 벽화들을 인류 문화적 차원에서 인정한 것을 뜻한다. 현재 고분 벽화가 있는 고구려의 고분은 무려 107기 정도에 이른다. 고분 벽화는 어느 나라에나 있을 수 있지만, 고구려 고분 벽화처럼 일정한 역사 기간(4∼7세기)에 그 규모나 수적 차원에서 이렇게 방대하게 이뤄진 것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영향을 준 중국의 경우도 고분 벽화 고분은 10기 정도에 머물며, 그 수준도 고구려에 비할 것이 못 된다. 고분 벽화에 있어서만은 고구려는 세계적 위치에 있다. 현재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고구려 고분 벽화’(9.2∼10.22)는 북한 소재 고분들 중 6기의 고분들에 있는 벽화들만 사진으로 전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 속에 있는 인물 풍속화, 각종 상징 문양, 청룡, 백호 등의 사신도(四神圖), 널방의 천장에 장식된 하늘 세계의 모양들은 관람자들의 찬탄을 받고 있다. 오늘날 고구려의 영광은 이들 고분 벽화로부터 다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 세계 유례 드문 고구려 고분벽화 우리나라에서는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라고 하면, 미륵 보살이 대좌에 앉아 왼쪽 다리는 내리고 오른쪽 다리는 왼쪽 무릎 위에 올려 놓은 채, 오른팔을 굽혀 손가락을 오른 뺨에 대고 몸을 앞으로 약간 굽힌 상을 뜻한다. 이것은 미래불인 미륵불이 중생 제도를 위해 명상을 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반가사유상은 6세기경 삼국 통일 직전의 신라에서 크게 유행한 미륵 신앙과 관련,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 보관(寶冠)을 쓴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 경주에서 출토된 삼산관(三山冠)을 쓴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이 가장 유명하다. 이 두 반가사유상은 첫눈에 봐도 불교 예술품의 걸작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은 그 동안 해외의 전시들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아왔다. 서산 마애삼존불은 충남 서산군 운산면 용현리에 있다. 서산군 운산면은 중국의 불교 문화가 태안 반도를 거쳐 부여로 가는 행로상에 있었는데, 마애삼존불이 조성된 위치도 당시에는 경개가 절승(絶勝)한 곳이었다 한다. 오늘날에도 경상도 부처님은 무섭고, 전라도 부처님은 온화하다. 서산마애불은 흔히 ‘백제의 미소’라고 하듯 햇빛이 비치면 웃는 모습을 짓는다. 복스러운 얼굴에 눈은 행인형(杏仁形, 살구씨 모양)으로 약간 큰 편이며, 입도 약간 벌리고 있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여래불을 중심으로 왼쪽에 보살상, 오른쪽에 반가사유상이 배치되어 있는데, 현재의 부처인 석가, 과거의 부처인 제화갈라(提和渴羅) 보살, 미래의 부처인 미륵 보살이 형상화된 것이다. 오늘날 남아 있는 백제 시대의 대표적 불상이다. # ‘반가사유상’ 해외서도 주목 팔만대장경은 우리가 받아들인 불교 문화를 또다른 차원에서 완성한 것이다. 대장경은 부처의 말씀을 적은 경(經)을 비롯, 불교와 관계되는 서적들을 모은 것으로, 기독교의 성경, 회교의 코란에 해당한다. 그래서 불교를 받아들인 나라들은 모두 이 대장경을 갖추어 두고자 했다. 그래서 중국, 거란, 고려, 몽고, 티베트, 서하 등 여러 나라들에서 여러 차례 대장경들을 마련하여 오늘날 알려진 것만 해도 20여종에 이른다. 이 중 그 규모나 엄정성, 보관 상태 등을 볼 때, 고려 고종 때16년에 걸쳐 이뤄진, 우리가 흔히 ‘팔만대장경’이라고 하는 고려 대장경이 단연 압권으로 현재 중국과 일본 대장경의 전범이 되고 있다. 팔만대장경은 모두 8만 1258장으로 되어 있고, 이에는 1501종 6708권의 불서들이 들어 있다. 고려 청자, 분청사기, 백자는 각기 고려, 조선 전기, 조선 후기의 도자기들이다. 일상생활 용기들로 쓰인 이런 도자기들이 왜 중요한가? 그것은 이들이 자기(磁器)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용기들로 사용한 토기, 도기(陶器), 자기 등 중 자기가 사용된 시기는 길지 않다. 자기는 점력을 가진 점토로 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 유약을 입혀 1300도 정도의 고화도로 구워낸 것을 말하는데, 이러한 자기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15세기 이전만 하더라도 중국과 우리나라뿐이었다. 자기 중 먼저 이뤄진 것이 청자다. 청자는 중국에서도 당나라 때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하였고, 우리나라도 통일 신라 후기 때부터 이뤄지기 시작했다.14,15세기에 이르자 청자 문화는 백자 문화로 전환되고, 다시 백자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일본, 동아시아, 서아시아, 지중해 연안과 서부 유럽으로 널리 퍼져 갔다. 시작은 중국이, 그리고 한국이 이를 뒤따랐다. 그리고 중국인도 ‘천하제일’이라 한 고려청자만의 비색(翡色)을 완성한 점, 태토(胎土)에 홈을 파고 흑토나 백토를 넣어 메워 굽는 상감(象嵌) 기법을 개발한 것, 산화동(酸化銅) 안료로 붉은 색을 내었던 것 등은, 그대로 우리나라 자기사의 업적인 동시에 인류 자기사의 업적이 되는 것이다. # 일본의 국보된 진주민가 제기 한편 분청사기(粉靑沙器)는 청자 바탕에 백토를 입혀 여러 모양들을 낸 것으로, 우리나라에 15∼16세기 약 200년간 이뤄지다 이후 백자로 발전하였다. 이렇듯 고려 청자, 분청사기, 백자 등은 일종의 생활 용기들이지만 수준 높은 예술품이었기에, 조선 시대에는 국가 차원에서 이러한 요업(窯業)을 관리했고, 궁궐에 소속된 화공들도 이러한 자기 제작들에 동원되어 그림을 그리곤 했다.2004년 11월 현재,307종의 국보들 중 청자가 24점, 분청사기가 5점, 백자가 17점 등 모두 46점의 자기가 국보로 되어 있다. 이러한 청자, 백자 등과 달리 막사발은 말 그대로 적당히 점토를 빚어 유약물에 한 번 담가 구워 만든 것으로, 대중용으로 대량생산을 한 것이다. 이러한 막사발은 밥그릇, 국그릇, 술잔 등으로 민가에서도 흔하게 사용된 것인데, 임진왜란 때 이런 막사발조차도 만들지 못했던 일본인들은 이러한 막사발을 많이 가져다 차그릇인 다완(茶碗)으로 썼다. 그리고 이들 중 몇 점은 현재까지도 일본 국보나 보물, 명품 등으로 소중하게 관리되고 있다. 현재 일본의 1급 국보인 기자에몬이다(喜左衛問 井戶) 다완은 임진왜란 때 경남 진주 근처의 민가에서 제기(祭器)로 사용되던 것을 가져간 것이다. 일본에 있어 국보인 도자기는 이것이 유일하다. 조선과 일본의 자기 문화 격차와 간단한 그릇에도 들어 있었던 조선 도공들의 미의식이 빚어낸 하나의 역사적 결과다. 한지는 중세 문화인 불교·유교 문화를 우리가 받아들여 문화 생활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일찍부터 중국에서부터 받아들여 우리나라에서 발전시킨 것이다. 요즘은 나무로 만든 펄프 종이로 인해 한지는 우리 문화의 한 구석으로 밀려났지만, 우리나라의 오랜 문화생활과 관계되는 이 한지는 문화사적으로 그렇게 가볍게 보아 넘길 일은 아니다. 직지심체요절(1377)도 그렇다. 이 책은 고려말 명승인 경한(景閑,1298∼1374)이 지은 것인데,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것이 우리 문화에서 중요한 것은,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본이기 때문이다. 독일인 구텐베르그의 ‘42행 성경’보다 무려 80년이 앞선 것이다. 이 책은 1887년 주한 프랑스 대리 공사로 서울에 왔던 콜렝드 드 플랑시에 의해 수집되어,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러한 각 시대를 대표하는 우리나라의 문화 유적이나 유물들을 돌아볼 때, 우리 시대는 과연 어떤 문화를 가장 중요시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시인 존 업다이크는 자본주의 사회인 미국이 가장 문화적 힘을 모으는 곳은 15초짜리 스폿(spot) 상업 광고라고 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도 과연 그럴까? 지금까지의 우리 문화사로 볼 때, 적어도 우리나라만은 그렇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손태도 문화재 전문위원
  • [김형효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37) 희망이라는 것

    [김형효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37) 희망이라는 것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희망을 걸고 살아간다. 어떤 희망도 없는 경우를 우리는 절망이라 부른다. 절망은 삶의 에너지가 소진된 경우와 같다. 절망의 극치가 곧 자살로 이어진다. 희망은 삶을 지탱시켜 주는 에너지와 같다. 고대 그리스의 신화에 ‘판도라의 상자’라는 이야기가 있다. 판도라는 그녀가 가져온 상자를 열어 인간 세상에 모든 재앙들을 다 퍼뜨려 놓고 뚜껑을 닫았기에 마지막 남은 희망이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이 신화는 인간이 고통스러운 세상에 실존하면서 희망만을 아직도 기다리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상징한다 하겠다. 누구나 다 희망을 간직하고 살아가고 싶어한다. 보통 사람들은 인생에서 대개 어떤 것을 갖고 싶은 소유욕을 희망으로 삼는다. 돈을 벌고 싶은 희망, 출세하고픈 희망, 시험에 합격하고픈 희망 등등 다양한 희망을 갖고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살아간다. 이런 희망을 단적으로 소유론적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희망의 철학적 의미를 화두로 삼은 20세기 가톨릭 실존철학자 마르셀은 저 소유론적 희망을 ‘나는 …을 희망한다.’(I hope that…)라는 구절로 간략하게 묘사했다. 이것은 희망의 내용이 객관적으로 서술되는 구조다. 객관적으로 서술되는 (…)의 희망은 내가 소유하고픈 내용과 같다. 그런 희망이 달성되는 경우에 나는 만족을 느낀다. 만족의 현상은 배고픈 사람이 음식을 충분히 먹어서 포만상태에 이른 것과 유사하다. 포만상태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게걸스러운 기분에 젖은 식곤증처럼, 생각하기 싫고 일하기 싫은 판단공백의 상태를 동반한다. 거기에 비하여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만족을 느끼는 사람들에 대하여 시기와 원한의 감정을 표출한다. 그래서 이들은 식곤증에 취해 있는 만족계층과 달리 더욱 또렷하게 의식이 깨어 있어서 복수의 기회를 노리면서 계급전복을 준비한다. 이것이 헤겔이 말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적 투쟁’의 모습이다. 만족의 게걸스러움과 불만의 분노는 다 소유론적 희망의 취득여부와 직결된다. 소유론적 희망은 결국 인생에서 만족을 누리려는 욕심과 직결되어 있다. 이 욕심을 불교에서 오욕(五欲=재욕, 색욕, 식욕, 명예욕, 수면욕)이라 부른다. 세상살이는 예나 이제나 이 오욕을 쟁취하기 위한 모든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그것을 얻지 못하면 화가 나고, 화의 분노가 이기적인 것이 아님을 명분화하기 위하여 그럴싸한 이론을 다 끌어들인다. 인간의 사회적 투쟁은 거의 대개 이 오욕의 쟁취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벌이는 소유론적 불만이나 절망을 분노의 명분으로 표시한다. 아집(我執)에 찬 분노의 명분이 진리의지와 만나면, 그 분노는 진리의 투쟁이란 법집(法執)으로 돌변한다. 그래서 아집과 법집이 뒤엉키면, 소유론적 욕심이 결국 결사항전의 어리석은 고집으로 바뀐다. 그런데 한 사회의 정신문화가 일반적으로 속물적인 소유론적 희망만을 삶의 동력으로 여기면, 그 사회는 그만큼 만족과 불만의 양극단에서 늘 요동친다. 속물적 희망은 오욕의 소유만을 인생에서 성공의 척도로 보는 태도를 말한다. 속물적 사회일수록 그 사회는 소유적 지배층의 거만떨기와 상대적 박탈감으로 원한의 심리를 품고 있는 소외층의 대등 질투심리와의 양극사이에서 출렁거린다. 평소에 속물이 아닌 것처럼 도덕적으로 온갖 좋은 말씀을 내놓던 분이 일단 자기의 출세와 직결되는 순간에 벼슬을 놓칠까봐 명예욕에 추하게 매달리는 탐욕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지배층의 게걸스러움을 싫어하던 소외층의 가열찬 투사가 하루아침에 지배층에 오르자마자 자기가 그토록 미워한 그 오욕의 탐욕에 정신을 못 차린다. 이제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한다. 생각이 깊지 않은 인간은 그가 투사이든 지배층이든 소외층이든 도덕적 설교자이든 다 속물적 소유욕을 인생의 희망으로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사회의 부정부패는 모두가 다 속물적 탐욕의 근성을 희망으로 갖고 있는 한 어떤 방식으로든지 지속된다. 우리는 생각이 깊은 정신문화를 가꾸어야 한다. 악을 박살내려고 흥분하지 말고 속물근성에 빠지지 않는 깊이 있는 사회를 일구자. 그러기 위하여 인생의 동력인 희망을 소유론적인 것에서 존재론적인 것으로 바꾸는 마음의 혁명이 필요하다. 인생의 희망을 소유론적인 만족으로 채우려 하지 말고, 존재론적 기쁨으로 인생을 승화시키려는 마음의 전환에서 마음의 혁명이 가능해진다. 불만의 심리는 늘 복수의 심리를 속으로 감추고 있다. 역전의 상황이 오면, 불만의 심리는 복수한다. 만족의 심리는 남들에게 으쓱대면서 과시하려는 충동을 띠고 있고, 불만의 심리는 속으로 응어리를 품고 있어서 비뚤어진 공격성을 감추고 있다. 과시적이든, 열등의식으로 비뚤어졌든 다 공격적이다. 이런 사회에서 어찌 서로서로 존재하도록 친절을 베푸는 열린 마음의 기쁨이 삶의 희망으로 등록되겠는가? 나는 우리가 서로서로 사랑하는 법을 잘 알지 못한다고 늘 생각해 왔다. 비록 TV 드라마에 사랑 극이 너무 넘쳐나고, 사랑 때문에 울고 웃는 일상의 깊지 않은 희비극이 화면에 벌어져도, 우리는 진실로 서로서로 존재하도록 친절을 베푸는 법을 모른다. 그래서 안이나 바깥에서나 서로 모래알처럼 살면서 “제까짓 것” 한다. 속물적 욕망만이 인생의 희망으로 여겨지는 곳에 절대로 서로 화합하고 서로 융결(融結)하는 사회적 인간관계가 자라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만족한 자나 불만스러운 자나 다 속으로 타자에 대하여 “제까짓 것” 하는 심리를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족과 기쁨, 불만과 괴로움은 다르다. 만족의 포만감은 꽉 차서 더 이상의 여백이 없는 닫힌 마음의 상태를 함축하고 있으나, 기쁨은 5세기 말 신플라톤주의자로서 익명의 철학자인 가짜(Pseudo)-디오니시오스의 말처럼 ‘자기의 확산’(self-diffusion)과 같다. 만족은 자아위주로 닫힌 느낌이지만, 기쁨은 우주로 자기가 확산되는 열림의 느낌을 준다. 불만은 외부로 향하는 공격성을 띠고 있지만, 괴로움은 내적 평안을 찾으려는 긴장완화의 요구를 품고 있다. 소유적 만족보다 존재의 기쁨을 찾으려는 희망은 단순한 낙관적 계산과는 무관하다. 낙관적 계산은 속물적 욕심의 취득이 계산적으로 명백할 때에 생긴다. 그러나 존재의 희망은 오히려 속물적 인생의 무상함과 괴로움의 자각에서부터 움튼다. 내 인생의 의미가 속물적 오욕(五欲)의 소유적 다과로 평가되기를 거부하는 ‘존재론적 요구’가 마음에서 싹틀 때에, 존재론적 희망의 의미가 절실히 다가온다. 속물은 소유나 적어도 허영의 과시에 사로잡힌 수인(囚人)과 같다. 짝퉁으로도 자기를 과시하고자 하는 속물은 인생의 동력인 희망을 가짜 소유로 채우려는 자기체면에 걸린 수인이다. 희망을 소유에서 존재로 돌리는 마음의 혁명은 죽음의 응시에서 가능하다. 죽음은 소유의 수인상태에서 인간을 해방시켜주는 약이다. 속물들은 죽음이 없는 세상에 살아가는 것처럼 산다. 그들은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생물학적 죽음이 있음을 그들도 알지만, 그들의 지금 생활과는 전혀 무관한 것처럼 죽음의 생각을 그들은 유예한다. 속물들은 세상에 가장 친사회적으로 사는 것처럼 분주하게 여기저기 돌아다니지만, 그들은 사실상 가장 고독한 인생을 산다. 소유적 만족만을 추구하는 인생은 열린 기쁨의 마음을 모른다. 속물사회에서는 다 고독하다. 지옥은 사람들이 우글거리나 모두 고독한 곳이다. 존재론적 희망은 괴로운 번뇌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인생의 요구에서 싹튼다. 모든 번뇌는 소유의식에서 생기고, 그 소유의식은 집착을 낳고 나의 마음을 뇌쇄시켜 거기에 중독되게 한다. 앞에서 본 마르셀이 그의 저서 ‘편력하는 인간’에서 희망의 철학을 가르친다. 희망의 가장 바람직한 형태는 ‘나는 우리를 위하여 그대 안에서 희망한다.’(I hope in you for us.)는 것이다. 소유의식을 지우는 것이 번뇌에서 해방되는 첩경이다. 소유의식은 잘난 척하거나 으쓱대는 자만심과 같이 간다. 불만도 역설적인 소유의식에 다름 아니다. 마음의 존재론적 혁명은 마르셀이 언명하였듯이 겸허하며 요란스럽지 않고 수줍은 듯한 마음의 전환에서 시작한다. 마르셀이 말한 ‘그대’의 이인칭은 고요하고 정결한 자기 마음의 본성과 같다 하겠다. 소유로 들뜬 속물들은 수줍고 정결한 자기 마음의 본성이 마치 없는 것처럼 무시하면서 살아 왔다. 오욕을 사냥하는 소유론적 속물근성을 떠나서 자기 마음에 늘, 그리고 이미 있어 온 그 고요한 본성에 인사드리고 그 본성의 요구에 성실하게 살 것을 마음이 약속하는 순간에, 존재론적 희망은 문득 솟아오른다. 내가 그 본성의 요구에 성실하게 살 것을 희망하는 그 순간은 동시에 만족과 불만이라는 소유적 삶의 수인(囚人)상태를 벗어나 나의 존재와 인연이 있는 모든 존재들을 함께 기쁘게 해주려는 열린 마음의 상태로 변하는 마음의 비약이 생기는 순간과 같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의 이웃이 된다. 이것이 마르셀이 말한 ‘우리를 위하여’라는 말이겠다. 존재론적 희망은 나의 본성인 ‘그대’와 나의 일상적 마음이 일치하기를 희망하는 것이요, 그런 일치는 이웃들과 존재론적으로 ‘우리’가 되는 융결의 띠를 형성한다. 이 ‘우리’는 소유론적 폐쇄적 집단으로서의 ‘우리’가 아니라, 네가 존재하도록 도와주는 자타불이(自他不二=자기와 타인이 둘이 아님)의 ‘우리’다. 마르셀의 용어를 빌리면, 우리가 ‘코러스’(chorus)를 들었을 때에 느끼는 마음의 환희가 바로 존재론적 희망에 아주 가깝다고 하겠다. 코러스의 감동이 식지 않는 한, 우리는 아직도 열려 있고 서로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의 기쁨을 맛본다. 우리 사회가 속물근성의 자기 감옥을 부술 때에, 우리는 상호주관적으로 그리고 존재론적으로 서로서로 친절하게 대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그와 동시에 아무 콘텐츠가 없는 공허한 추상적 구호로서의 같은 민족끼리의 감상을 넘어서, 우리는 모르는 사람을 만나도 경계하는 모래알이 아니라, 상호주관적으로 기쁨을 주고 서로서로 친절한 이웃이 될 것이다. 속물적 희망을 존재론적 희망으로 돌리는 마음의 혁명은 곧바로 우리가 전대미문의 도약판을 밟고 비상하는 순간이 될 것이고, 각자의 좁은 감옥을 벗어나는 해방의 날이 될 것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EBS 교육위원들이 말하는 올 수능 예상

    EBS 교육위원들이 말하는 올 수능 예상

    올해 수능시험이 6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6월과 9월 두 차례의 수능 모의평가도 끝나고 이젠 그동안 공부한 것을 차분히 마무리할 때다. 교육방송 전문위원과 강사에게 올해 수능 영역별 출제 예상 포인트를 들었다. 꼭 한번쯤 다시 짚어볼 부분들이다. ● 언 어 어휘에서는 홑문장과 겹문장 등 문장의 갈래와 단일어, 합성어, 파생어를 구별하는 단어의 구조, 시제, 높임법 등이 다시 봐야 할 대목이다. 어법은 교과서 학습활동에 나와있는 부분을 정리하고, 부록의 맞춤법·표기법을 정리해야 한다. 비문학에서는 실용적인 제재가 많이 나오지만 한·미FTA 등 논란이 일고 있는 민감한 소재보다는 학생인권이나 컴퓨터 자판기술 등 일상 생활에서 쉽게 접하는 가벼운 내용이 출제될 것이다. 고전문학 가운데 기출작품은 다시 나올 가능성이 높다. 시가에서는 가사작품, 사설·연시조, 고려속요 등 세 장르가 중요하다. 향가에서는 찬기파랑가, 안민가, 제망매가 등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 시집살이 노래나 잡노래 등 민요나 정약용의 한시 등도 주목해야 한다. 문학에서도 체제 비판 성향의 작품보다는 서정적인 작품이 출제된다. 교과서 외 지문은 교육방송 교재에 나온 지문 가운데 교과서에 나오지 않은 것을 중심으로 정리해 두는 것이 좋다. ● 수 리 ‘나’형의 경우 과학 지식과 관련된 지수나 로그를 포함한 수식에 관한 문제 등 지수로그 계산형 문제가 전통적으로 출제되고 있다. 행렬에서는 행렬과 역행렬의 성질 추론 문제가, 수열에서는 여러가지 수열에 관련해 답을 모두 고르라고 요구하는 합답형 문제가 출제 가능성이 높다. 덧셈정리와 곱셈정리에 관한 확률 문제나 이산확률 분포의 기본 개념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묻는 통계 문제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도형과 관련된 무한등비급수의 활용 문제나 지수로그함수의 그래프 추론과 부등식에 관한 내용, 실생활과 관련된 경우의 수를 구하는 문제도 꼭 확인해야 한다.‘가’형에서는 미적분이 다른 과목과 난이도를 맞추기 위해 지난해에 비해 조금 쉽게 출제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간단한 계산문제와 실생활과 관련된 문제, 특히 함수의 그래프와 관련된 추론형 유형은 어렵게 출제되는 편이다.2차곡선은 타원과 쌍곡선의 개념을 이해하고 있는 묻는 문제가 까다롭게 출제될 전망이다. 공간도형과 벡터 관련 문제는 공간도형 관련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적용해야만 풀 수 있는 어려운 문제가 출제될 것이다. ● 외 국 어 새로운 유형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모의평가를 보면 기존 유형을 조금 변형한 수준에서 출제될 것으로 전망된다. 듣기에서는 도표나 그래프, 좌표를 주고 묻는 공감각을 요구하는 문제가 출제될 가능성이 있다. 대화내용과 일치하지 않은 내용을 고르는 독해 문제 유형도 최근의 듣기 출제 경향이므로 대비해야 한다. 어법과 어휘에서는 동사의 시제와 태, 수의 일치가 항상 출제된다. 준동사에서 부정사, 동명사, 분사 가운데 고르는 법, 대명사나 관계사의 구별법을 정리해둬야 한다. 작문에서는 4개의 지문 순서를 바로잡는 문제가 출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때는 내용보다는 접속사와 관사, 대명사 등 연결고리를 이용해 순서를 잡는 연습을 해야 한다. 대명사가 지칭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문제나, 대립되는 의견을 주고 찬반과 쟁점의 요지를 파악하는 문제, 글을 읽고 빈칸을 채우는 추론능력 문제도 반드시 다시 짚어봐야 한다. ● 사 탐 법과 사회에서는 친일파 재산환수와 관련된 법 정의와 안정성의 충돌과 관련된 내용이나 미성년자 아르바이트를 둘러싼 근로기준법, 청소년보호법 관련 내용, 양심적 병역거부 논란과 종교의 자유와 병역의 의무간 갈등을 소재로 한 기본권이나 대립되는 가치를 묻는 문제가 출제 가능성이 높다. 정치에서는 최근 헌법재판소장 임명 논란과 관련해 헌재의 권한과 5가지 재판청구 요건, 의결 정족수를 묻는 문제, 소선거구제와 중대선거구제 비교, 비례대표제와 소수대표제 등의 개념 이해 등이 출제 가능성이 높다. 국사는 교과서의 유적·유물 사진 문제, 조선 후기 경제발달과 신분제 등을 사회변동과 연관짓는 문제, 동북공정과 관련해 고조선과 발해가 우리나라 역사임을 입증할 수 있는 유적과 문화 등 근거를 묻는 문제가 점검 포인트다. 한국근현대사에서는 조선의용대와 의열단, 조선민족혁명당과의 연계성, 조선의용대가 조선의용군과 한국광복군으로 분리, 통합되는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세계사에서는 한·당·명·청 왕조의 정치적 특징을 통합적으로 묻는 중국사 문제를 점검해야 한다. 한국지리에서는 축척이나 기호를 묻거나 거리나 면적을 계산하는 문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문제가 반드시 출제될 것이다. 백지도에 점을 찍어 지역의 특징에 맞는 지역 이름을 찾는 문제도 출제 가능성이 높다. 경제지리에서는 입지 이론을 구체적으로 묻는 문제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의 특징 분석 문제, 각종 자원의 분포와 특성을 묻는 문제가 단골 소재다. 세계지리에서는 중국이 최근 완공한 싼샤댐, 칭짱 철도와 그 영향을 묻는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 윤리에서는 의무론적 윤리설과 목적론적 윤리설을 현대의 생명윤리와 연관짓거나 자본주의의 변천에 따른 정부 역할의 변화를 묻는 문제도 시사 문제로 출제될 가능성이 많다. 사회문화에서는 사회·문화현상의 연구방법, 기능론과 갈등론적 관점을 구분하는 문제의 출제가 확실시된다. 경제에서는 수요와 공급 문제가 매년 출제된다. 최근 우리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는 환율하락과 영향, 환율변동 요인 등 외환시장 부분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 과 탐 물리에서는 빛의 굴절 정도를 주고 임계각을 비교하거나 전반사 현상이 일어나는지 여부를 묻거나, 광전효과의 실험 결과를 해석하고 옳은 결론을 도출하는 문제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속도-시간 그래프의 해석을 통해 물체의 운동을 파악하는 문제도 단골 대상이다. 저항의 연결에 따른 전력 소비를 비교하거나, 전구의 밝기를 비교하는 문제, 도선의 굵기 또는 길이 변화에 따른 전력의 대소 관계를 묻는 문제나, 전류의 자기작용과 전자기 유도를 결합한 단원통합형 문제도 출제 가능성이 높다. 화학Ⅰ에서는 매년 빠지지 않고 출제되는 금속과 금속염 수용액의 반응성 문제가 실험 문제로 출제될 가능성이 높다. 알데히드의 환원성 문제는 올 모의평가에서 계속 출제됐지만 아직 수능에 출제된 적이 없어 나올 가능성이 높다. 화학Ⅱ에서는 분자구조와 인력 문제, 용액의 성질에서 농도 계산과 관련해 희석용액 만드는 법 등을 정리해야 한다. 생물Ⅰ에서는 영양소와 소화 단원에서 실험내용을 주고 탐구설계와 수행을 묻는 문제의 출제가 유력하다. 자극과 반응 단원의 ‘항상성 유지’는 신경과 호르몬이 작용해 혈당량이나 삼투압을 조절하는 과정에 대한 자료를 주고, 관련 개념을 묻는 형식으로 출제될 가능성이 높다. 유전 단원에서는 단일 유전현상과 다인자 유전현상에 대한 조사 자료를 제시, 분석하는 문제나 두 유전현상의 특징을 제시하고 이를 비교하는 형식으로 출제될 가능성이 많다. 생물Ⅱ에서는 광합성 암반응에 대한 반응식, 유기호흡과 무기호흡 과정을 비교하는 문제 등에 대비해야 한다. 지구과학에서는 온실효과와 지구온난화에 대한 내용이 기후변화와 연계해 출제될 가능성이 높다. 흑점과 관련된 태양활동이나 지구의 자전축 경사변화, 지구공전 궤도의 이심률 변화 등 기본적인 기후변화 요인은 그동안 나오지 않아 다시 출제될 가능성이 있다. 일기도 해석 문제는 매년 출제된다. 올해에는 장마와 폭우, 태풍 등 시사 관련 일기도 해석 문제가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아 기호의 분석법과 전선·기압의 배치, 일기 속담, 예보 내용까지 철저히 알고 있어야 한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방송교재로 마무리 학습 이렇게 수험생들의 고민 가운데 하나가 교육방송 교재다. 방송교재에서 일정 부분이 출제된다고 하는데 종류도 많을 뿐 아니라 다시 복습하기에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교육방송 입시분석 전문위원들은 이에 대해 “오답노트 중심으로 보되, 최종 정리 교재는 꼭 보라.”고 조언한다. 정리 교재는 수능특강과 파이널,10주완성 등 3가지가 대표적이다. 본 수능에 대비해 만든 것으로 비슷한 지문이나 문제 유형이 출제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입시분석 전문위원인 차순규 중동고 교사는 “방송을 들었다면 강사가 강조했던 부분을, 문제지만 봤다면 틀린 문제 위주로 복습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면서 “파이널 강의로 실전문제 풀이 연습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잠실여고 김인봉 교사도 “언어 영역에서 문학은 많이 읽을수록 좋지만 비문학은 독해 원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단락별로 핵심어를 찾아서 소주제, 전체 주제를 찾는 연습을 하면 충분하다.”면서 “300제나 파이널,10주완성 등 최근의 방송교재로 정리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김우택 화성고 교사도 “모든 교재를 다 볼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교재에 나와있는 어휘 정도는 책 끝부분에 있는 어휘를 정리해 두는 식으로 보는 것이 좋다.”면서 “문제 풀 시간이 없다면 해설서를 같이 놓고 내용만이라도 파악해 두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도움말 주신 분 언어영역 김인봉(교육방송 입시분석 전문위원·잠실여고 교사) 수리영역 차순규(〃·중동고 교사) 외국어영역 김우택(교육방송 수능강사·경기 화성고 교사) 법과사회, 정치 권한상(교육방송 입시분석 전문위원·명덕외고 교사) 국사 조연(〃·중앙여고 교사) 한국 근·현대사 김범석(〃·중산고 교사) 한국지리, 경제지리 최유진(〃·강남 청솔학원 강사) 윤리 배세희(〃·정명고 교사) 세계지리 이희용(〃·경기고 교사) 사회문화 이찬규(〃·문산고 교사) 경제 김동일(〃·노량진 대성학원 강사) 세계사 김동린(〃·보성고 교사) 물리 박완규(〃·서울과학고 교사) 화학 최한욱(〃·과학전문사이언스 락 대표) 생물 송점석(〃·부평세일고 교사) 지구과학 정원종(〃·덕소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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