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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00년前 최치원이 지리산 바위에 새긴 ‘완폭대’ 발견

    1200년前 최치원이 지리산 바위에 새긴 ‘완폭대’ 발견

    1200년 전 고운 최치원(857~?)이 바위에 새긴 ‘완폭대’(翫瀑臺) 석각이 경남 하동군 지리산에서 발견됐다.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는 10일 역사문화자원 조사를 하다 지리산 남부 능선의 불일암 아래 바위에서 이 석각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글자는 폭 150㎝, 높이 140㎝ 암석에 음각돼 있었다. 세 글자 가운데 ‘폭’ 자는 심하게 마모돼 있었다. 최석기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는 “설화와 문헌으로만 전해진 완폭대 석각이 발견됨에 따라 역사적 사실을 고증할 수 있게 됐다”며 “이 석각은 최치원이 쓴 것으로 전해지는 ‘쌍계석문’(雙磎石門)과 ‘세이암’(洗耳巖) 등의 석각과 함께 선인들의 정신문화가 담긴 가치 있는 역사유적”이라고 설명했다. 완폭대는 불일폭포를 즐기고 감상하는 바위라는 뜻으로 불일암 앞에 있었다. 최치원이 이 바위 위에서 시를 읊고 푸른 학을 부르며 노닐었다는 청학동 설화가 전해진다. 겸재 정선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불일암폭포 그림에도 절벽에 위태롭게 돌출된 완폭대 바위가 묘사돼 있다. 선비들의 유람록 10여편에도 완폭대 석각이 기록돼 있다. 남주헌이 함양군수를 지내면서 1807년에 쓴 ‘지리 산행기’부터 완폭대 기록이 없다. 이 시기 전후로 불일암이 쇠락하거나 지형이 바뀌어 완폭대 석각도 흙에 묻히거나 수풀에 가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완폭대 바위는 무너져 현재 옛 모습을 볼 수 없다. 신용석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장은 “지리산에 남은 역사 흔적을 발굴해 민족 문화자산으로 보전하겠다”고 말했다. 하동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이 좋은 봄날, 함께 걸을까] 역사의 뒤안길에서

    서울 광진구는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하는 역사문화 체험 프로그램인 ‘가족과 함께하는 토요역사기행’을 마련했다고 10일 밝혔다. 이번 프로그램은 지역 내 초등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오는 10월까지 상·하반기로 나눠 총 8회 진행된다. 회당 40명 참여로, 비용은 1인당 7000원이다. 상반기 1회는 12일 인천 강화 지역에서 이뤄지는 선사역사체험으로, 고인돌유적지·보문사 등을 둘러본다. 2회는 19일 충남 공주에서 공산성·무령왕릉을, 3회는 6월 2일 부여에서 궁남지·정립사지5층석탑·부소산성을, 4회는 6월 16일 경기 여주에서 명성황후 생가·영릉 등을 탐방한다. 김기동 광진구청장은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가족 간 소통을 증진하고 우리 역사와 문화의 우수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설화·문헌에 나오는 최치원 완폭대 석각 바위 지리산에서 발견

    설화·문헌에 나오는 최치원 완폭대 석각 바위 지리산에서 발견

    1200년전 고운 최치원(857~?) 선생이 바위에 새긴 ‘翫瀑臺’(완폭대) 석각이 경남 하동군 지리산에서 발견됐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는 10일 역사문화자원 조사를 하다 경남 하동군 화개면 지리산 남부 능선에 있는 불일암 아래 바위에 한자로 翫瀑臺(완폭대))라고 새겨진 석각(石刻)을 발견했다고 밝혔다.완폭대 석각은 폭 150cm, 높이 140cm 암석에 음각돼 있다. 翫자와 臺자는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 있고 가운데 瀑자는 심하게 마모돼 있는 상태다.최석기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는 “완폭대 석각은 그동안 설화와 문헌으로만 전해져 오다 이번에 실물이 발견됨에 따라 역사적 사실을 고증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완폭대 석각은 최치원이 쓴 것으로 전해지는 ‘雙磎石門’(쌍계석문)과 ‘洗耳巖’(세이암) 등의 석각과 함께 선인들의 정신문화가 담겨 있는 가치 있는 역사유적”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쌍계석문은 쌍계사 입구 바위에, 세이암은 화개면 범왕리 신흥마을 앞 화개천 수중암반에 각각 새겨져 있다. 완폭대는 불일폭포를 즐기고 감상하는 바위라는 뜻으로 불일암 앞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치원이 이 바위 위에서 시를 읊고 푸른 학을 부르며 노닐었다는 청학동 설화가 전해진다. 겸재 정선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불일암폭포 그림에도 절벽에 위태롭게 돌출된 완폭대 바위가 묘사돼 있다. 1611년 유학자 유몽인이 지리산을 유람하고 쓴 ‘유두류산록’을 비롯해 불일암과 불일폭포를 답사한 여러 선비들의 유람록 10여 편에 완폭대 석각이 실존한다고 기록돼 있다. 남주헌이 함양군수를 지내면서 1807년에 쓴 ‘지리 산행기’부터 완폭대에 대한 기록이 없다. 이 시기를 전후로 불일암이 쇠락하거나 지형이 바뀌어 완폭대 석각도 흙에 묻히거나 수풀에 가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200여년만에 완폭대 석각이 발견된 것이다. 불일암 앞에 돌출된 완폭대 바위는 무너져내려 현재는 옛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는 지리산 일대에 묻혀 있는 유적·유물 등 역사문화 자원을 찾는 작업을 올해 부터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측은 앞으로 하동군 등 관련 기관과 협의해 완폭대 석각 보전방안 등을 마련해 추진할 계획이다. 신용석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장은 “완폭대 석각은 불일폭포 일원 청학동 설화가 사실에 가깝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물”이라며 “지리산에 남아있는 역사 흔적을 발굴해 민족 문화자산으로 온전하게 보전하겠다”고 말했다. 하동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눈·코·입 모두가 즐겁다… 서울에서는 365일이 축제!

    눈·코·입 모두가 즐겁다… 서울에서는 365일이 축제!

    세계적인 도시의 봄은 바쁘다. 꽃, 음악, 문화예술 등 다채로운 주제의 축제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서울은 어떨까. 지난달 7일부터 6일 동안 열린 ‘여의도 봄꽃축제’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축제의 계절이 시작됐다. 서울을 비롯해 우리나라 전국 각지에서 축제가 생겨난 것은 1995년 지방자치의 부활과 궤를 같이한다. 수백년 전통을 가진 세계 축제에 비해 짧은 역사를 가진 탓에 ‘관 주도형’ 축제가 주를 이룬다. 콘텐츠가 획일적이고 시민 참여가 저조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서울시는 서울문화재단과 함께 자체적으로 서울을 대표할 만한 축제를 기획하는가 하면, 25개 자치구와 민간 축제를 광범위하게 지원한다. 누구나 1년 365일 다양한 장르의 축제를 골라서 즐길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올해 펼쳐질 서울시와 25개 자치구의 축제를 소개한다. ●드럼 소리 울려 퍼지는 봄… 여름엔 문화 바캉스 올해로 20회째를 맞는 ‘서울드럼페스티벌’(서드페)은 서울시의 봄을 대표하는 축제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현란한 손놀림으로 스트레스를 날리는 타악기 ‘드럼’을 소재로 한 음악 축제다. 오는 25~26일 오후 8시~9시 30분 서울광장에서 열린다. 올해 슬로건은 ‘가슴이 뛰어야 진짜 축제다. 열정을 하나로, 가자 서드페’다. 축제가 열리는 이틀 동안 세계적인 드러머인 베니 그렙, 마이클 샤크, 에런 스피어스가 출연한다는 소식이 전해져 일찍부터 관심을 모았다. 특히 베니 그렙의 현장 마스터클래스가 26일 오후 5시에 진행된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프로 드러머에게 연주 기술을 배워 볼 기회다. 지난해부터는 시민이 주인공이 되는 드럼경연대회 ‘더 드러머’가 열린다. 지난 한 달 동안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일반 아마추어, 드럼 전공자 5개 부문으로 나눠 접수했다. 온라인 예선을 치러 통과한 25개 팀이 축제 일주일 전인 19일 오후 5~8시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리는 결선 무대에 오른다. 부문별 3팀씩 모두 15개 팀을 선발하며 축제 당일 메인 무대를 장식할 예정이다.한여름 밤의 낭만과 휴식을 안겨 줄 제11회 ‘서울문화의밤’은 도심 속 바캉스를 모티브로 한 축제다. 8월 10~11일 이틀간 서울광장, 광화문광장, 청계광장 세 곳에서 눈조각 퍼포먼스 및 전시, 푸드 트럭, 낭만 족욕탕, 야한 무도회 등이 펼쳐진다.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시민들이 야간에 한적해진 도심으로 나와 휴가를 즐긴다는 콘셉트다. 빛과 조명을 활용한 볼거리도 준비된다. 기존에 음악, 전시 등에 한정됐던 축제 콘텐츠 분야를 올해부터 미술, 문학, 댄스, 퍼포먼스, 놀이 등으로 확대해 기대를 모은다. ●불우이웃과 나누는 100t 김장 축제‘서울거리예술축제’는 한국판 ‘샬롱 축제’로 불린다. 샬롱 축제는 150여개 극단이 참여하는 프랑스 최대 거리예술 축제로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한다. 도심의 야외 공간을 활용해 예술 공연을 펼친다. 길을 지나는 시민 누구나 관람하고 즐길 수 있다. 축제는 10월 4~7일 열릴 예정이다. 서울광장, 청계광장, 서울역광장, 세종대로, 청계천로, 덕수궁 돌담길, 서울시립미술관, 시민청, 서울역 등이 무대가 된다. 올해 축제는 스페인 공연단의 이른바 ‘휴먼넷’이라는 대형 공중퍼포먼스로 막을 연다. 수십명의 배우들이 서로 연결된 구조물에 매달려 진행되는 공연이다. 마지막 날엔 세종대로 차로를 통제하고 프랑스 공연단이 사운드 설치형 퍼포먼스인 ‘뮤지컬 사이렌 오케스트라’를 선보인다. 대형 스피커가 장착된 전동 차량이 공명을 일으키는 공간을 찾아 행진하며 연주하는 공연이다. 개·폐막작의 경우 특별히 국내 아마추어, 프로 예술가들이 해외 공연단과 협업한다. 현재 국내 출연진에 대한 공모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서울김장문화제’는 고유의 김장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고 ‘나눔’을 실천하는 겨울철 축제다. 온라인 사전 접수로 선정된 시민, 민간단체, 기업, 외국인 등 5000명이 11월 2일부터 3일 동안 서울광장에서 함께 100t 이상의 김치를 버무린다. 무교로 일대에서는 김치 마켓, 푸드 트럭 등이 열린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김장 강습 및 체험도 운영된다. 올해는 두 가지 프로그램이 추가됐다. 지역별 대표 김치, 북한식 김치 등 100여 가지 종류의 김치를 맛볼 수 있는 ‘100가지 김치전’(가칭)과 김치·김장을 주제로 한 요리교실이다. 해마다 축제 기간 버무려진 김치는 사회복지단체인 서울광역푸드뱅크를 통해 저소득, 홀몸어르신 등 취약계층에 전달된다.●‘오랜 역사’ 연등회… 무더위 식히는 물총축제 꽃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축제 테마 중 하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에서는 매년 새해 ‘로즈 퍼레이드’가 열리며, 세계 최대 꽃축제인 ‘쾨켄호프 꽃축제’가 열리는 네덜란드에는 연간 8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한다. 서울에서는 중랑구와 영등포구가 꽃축제로 시민의 발길을 붙잡는다. 올해로 4회째인 중랑구 ‘서울장미축제’는 오는 18~20일 중랑천 장미터널(5.15㎞) 일대에서 열린다. 해마다 수천만 송이의 장미가 피어나는 시기다. 올해 축제의 콘셉트는 ‘5월의 프러포즈, 윌 유 매리 미’로 정해졌다. 지난달 7~12일 영등포구 여의서로에서 열린 ‘여의도 봄꽃축제’는 2005년 처음 개최된 이래 14년째 왕벚나무, 진달래, 개나리, 철쭉 등 봄꽃으로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야간 시간대 방문하면 낮보다 더 화려한 밤 벚꽃을 만날 수 있다.전통 역사를 키워드로 한 축제도 적지 않다. 오는 11~13일 열리는 ‘연등회’는 통일신라 시대부터 시작된 한국 전통문화축제다. 연등회보존위원회가 주최한다. 사월 초파일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전국 단위로 펼쳐진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연등회를 보고 감동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12일에는 종로 거리에서 연등 행렬이 펼쳐진다. 13일에는 조계사 앞 거리에서 전통문화마당이 열린다. 7월 초엔 신촌 연세로 차 없는 거리에서는 무더위를 식혀 줄 ‘신촌물총축제’가 예정돼 있다. 물총 싸움, DJ쇼, 버블 파티 등 다채로운 즐길 거리가 펼쳐진다. 송파 ‘한성백제문화제’, ‘강동선사문화축제’는 10월 초순에 개최된다. 교육과 오락을 결합했다는 평가를 받는 축제들이다. 한성백제문화제는 올림픽공원, 석촌동 고분군, 경당역사공원 등에서 열린다. 선사문화축제는 암사동 선사유적지에서 진행된다. 각종 체험과 놀이를 통해 전통과 역사를 배우는 장이 마련된다. 비슷한 시기에 월드컵공원 평화의광장에서는 활기 넘치던 옛 마포나루의 모습을 재현한 ‘마포나루 새우젓 축제’가 열린다. 용산구에서는 ‘이태원 지구촌 축제’가 진행된다.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을 맛보고 전통 공연 및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2000년간 아무도 못 본 ‘평양 신사비’…하루 만에 찾은 조선총독부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2000년간 아무도 못 본 ‘평양 신사비’…하루 만에 찾은 조선총독부

    위당 정인보는 일제강점기인 1935년 1월부터 동아일보에 ‘오천년간 조선의 얼’을 연재했다. 광복 직후인 1946년 서울신문사에서 이를 ‘조선사연구’라는 단행본으로 묶어 출간했는데, 그 서문 격인 ‘부언’(附言)에서 위당은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조선고적도보’와 ‘점제현 신사비’를 보고 “일본학자들의 조선사에 대한 고증이라는 것이 저들의 총독 정책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고 비판했다.●조선총독부의 낙랑군 유적·유물 조작 정인보가 말한 ‘점제현 신사비’는 1914년 조선총독부의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평남 용강군 해운면 운평동 평야지대에서 발견했다는 비석이다. 낙랑군 산하 점제현의 현령이 만든 비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산속도 아닌 평야지대에 2000년 동안 서 있던 신사비를 아무도 못 보았는데 이마니시가 하루 만에 발견했다는 것이다. 후지타 료사쿠(藤田亮策·1892~1960)는 ‘조선고고학연구’(1948년)에서 이마니시는 면장으로부터 ‘고비(古碑)가 하나 있는데 이를 해독(解讀)할 수 있으면 비 아래에 있는 황금을 얻을 수 있다는 설이 내려오고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았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증언을 해 준 면장의 이름도 못 대고 사진도 10살 전후의 동네 아이와 찍었다. 북한은 해방 후 이 화강암의 재질과 조성 연대를 분석한 결과 평안도가 아니라, ‘요하지방의 화강석’과 비슷하다고 발표했다. 또한 “발굴 과정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기초에는 시멘트를 썼다”(‘물성 분석을 통하여 본 점제비와 봉니의 진면모’·1995)고 발표했다. 2000년 전에 시멘트를 사용해 세운 희한한 비석이다. 그러나 남한 학계는 이런 숱한 의문은 모른 체하고 무조건 진품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가는 곳마다 한사군 유적, 유물을 발견했던 ‘신의 손’ 세키노 다다시는 1911년에 황해도 봉산군에서 대방태수 장무이의 묘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세키노는 이왕가(李王家)박물관 소장품 중 봉산군에서 채집됐다는 문자가 새겨진 벽돌 ‘전’(塼)을 ‘우연히’ 발견하고 달려갔다가 기차 안에서 또 ‘우연히’ 철로 연변의 큰 고분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①‘태세무 어양 장무이전’(太歲戊 漁陽 張撫夷塼), ②‘대세신(大歲申) 어양 장무이전’ 등의 전돌들을 발견했는데, ①전돌의 무(戊)자는 60갑자에서 무(戊)년을 뜻하고, ②전돌의 신(申)자는 신(申)년을 뜻한다면서 무신년에 만든 무덤이라고 주장했다. 서진(西晉) 무제(武帝)의 연호인 태강(太康) 9년 무신년(288년)에 만든 대방태수 장무이의 무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문성재 박사가 ‘한국고대사와 한·중·일의 역사왜곡’(2018)에서 중국의 황제나 태수는 대부분 외자 이름을 썼고, 특히 ‘오랑캐를 달랜다’는 뜻의 무이(撫夷)라는 두 글자 이름을 쓴 경우는 전무후무하다고 비판했다. 또한 60갑자 중 ‘갑·을·병·정…‘(甲乙丙丁…) 순서인 천간(天干) 10자 중에서 무(戊)자를 취하고, ‘자·축·인·묘…’(子丑寅卯…) 하는 지지(地支) 12자 중 신(申)자를 조합하는 경우도 전무하다는 것이다. 한 문서에 1자가 있고, 다른 문서에 8자가 있는데 이를 조합하니 18이라면서 2018년에 만든 것이라고 해석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일본학계에서도 이 무덤을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벌어졌지만 정작 남한 학계는 일체의 논쟁 없이 ‘대방군=황해도설’이 ‘정설’이다. 그런데 중국의 ‘후한서’(後漢書)는 주석에 “군국지(郡國志)에는 서안평현과 대방현은 모두 요동군에 속한다”(西安平, 帶方縣, 屬遼東郡)라고 써서 대방군도 고대 요동에 있었다고 말했지 황해도에 있었다고 말하지 않았다.●답사 전에 낙랑군으로 결정된 토성 1913년 세키노 다다시 등은 평남 대동군 대동면 토성리가 낙랑군을 다스리던 낙랑군 치지(治址)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1913년 9월 이마니시 류 등은 대동강을 건너는 배 위에서 마을 사람으로부터 토성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낙랑군 유적임을 직감하고 성공을 예감했다고 말하고 있다. 가 보기도 전에 ‘낙랑군 유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니 가는 곳마다 우연히 낙랑군 유적·유물을 발견한 ‘신의 손’을 넘어서는 ‘신통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낙랑태수장’(樂浪太守長)이 새겨진 봉니 등을 발견했다면서 낙랑군 치지라고 우겼지만 후지타 료사쿠가 ‘조선고고학연구’에서 “이 땅을 낙랑군 치지라고 보는 데는 많은 역사학자가 의문을 가졌다”고 말한 것처럼 일본인 학자들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곳은 도시락 싸 들고 놀러 갈 장소지 도저히 한나라 5만 7000 대군과 1년 이상 맞서 싸운 자리로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키노 다다시도 ‘조선고적도보’의 ‘낙랑군 치지(治址)’에 물음표(?)를 달아 놓았는지도 모른다.●中 요령성서 ‘임둔태수장 봉니’ 발견 일제가 ‘낙랑군=평양설’의 근거로 주장한 것 중에 봉니(封泥)도 있다. 봉니란 공문을 쓴 죽간·목간 등을 끈으로 묶은 후 점토로 봉하고 인장을 찍은 것이다. 일제강점기 갑자기 봉니가 쏟아져 위조설이 팽배했지만 조선총독부 박물관은 150원 등의 거금으로 구입했다. 그런데 북한학자 박진욱은 “해방 전에 봉니가 가장 많이 나왔다는 곳을 300㎡나 발굴하여 보았는데 단 1개의 봉니도 발견되지 않았다”(‘낙랑유적에서 드러난 글자 있는 유물에 대하여’·1995)고 말한 것을 비롯해여러 토성을 다 발굴했지만 단 한 개의 봉니도 찾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1997년 중국 요령성(遼寧省) 금서시(錦西市) 연산구(連山區) 여아가(女兒街) 옛 성터에서 ‘임둔태수장’(臨屯太守章) 봉니가 수습되었다. 조작설이 일지 않은 유일한 봉니다. 그간 남한 학계는 임둔군을 함남·강원도 등지라고 주장했는데, 요령성 서쪽에서 임둔태수장 봉니가 발견되자 일제히 침묵으로 외면하고 있다. ●남한 사학계, 北 연구결과 거꾸로 전달 조선총독부의 고고학이라는 것이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그간 북한과 관계가 단절된 것을 이용해 남한 사학계와 일부 언론이 북한의 연구결과를 180도 거꾸로 뒤집어 발표한 사례가 적지 않다. 조선일보로부터 ‘무서운 아이들’이란 칭찬을 받은 소장 사학자 중 한 명인 안정준은 “일제 시기에 발굴한 낙랑 지역 고분의 수는 70여기에 불과한 반면, 해방 이후 북한에서 발굴한 낙랑 고분의 수는 1900년대 중반까지 무려 3000기에 달한다. 현재 우리가 아는 낙랑군 관련 유적의 대다수는 일제 시기가 아닌 해방 이후에 발굴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한국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역사비평사·2017)라고 말했다. 북한도 마치 ‘낙랑군=평양설’을 주장한다는 식이었다. ‘한겨레 21’의 전 편집장 길윤형은 ‘국뽕 3각연대’라는 칼럼에서 “지금까지 북한 지역에서 진행된 고고학 발굴 결과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에 2600여기의 낙랑고분이 확인됩니다. 옛 사서의 기록과 이 성과를 근거로 한국의 고대 사학자들은 대부분 낙랑군의 위치를 평양 인근으로 비정합니다”라면서 북한에서 2600여기의 낙랑군 고분을 발굴한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북한 학자 리순진은 ‘지난 시기 일제 어용사가들과 봉건 사대주의 사가들의 역사 위조 행위로 만들어진 것이 ‘한나라 낙랑군 재평양설’이라면서 “해방 후 우리 고고학자들은 평양 일대에서 일제가 파본 것의 30배인 근 3000기에 달하는 낙랑 무덤을 발굴 정리했다”고 말했다. 리진순은 “이것들은 한식(漢式) 유적 유물이 아니라 고조선 문화의 전통을 계승한 낙랑국의 유적 유물임을 실증해 준다”(‘평양 일대 낙랑무덤에 대한 연구’)는 것이다. 북한은 한나라 행정관청인 낙랑‘군’(郡)이 아니라 ‘삼국사기’ 고구려 대무신왕 조에 나오는 낙랑‘국’(國)의 유적·유물이라고 발표했는데, ‘나라 국(國)’ 자를 ‘고을 군(郡)’ 자로 바꿔 속인 것이다. 지난 정권 시절 간첩 조작 사건이 연상되는 역사조작 사례들인데, 왜 사료 조작까지 해 가면서 조선총독부가 날조한 ‘낙랑군=평양설’에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많다. ■평양서 발견된 ‘中낙랑목간’…메이지 일본식 한자로 기록? 1993년 평양시 정백동에서 이른바 ‘낙랑목간’을 발견했다는 발표가 나오자 남한 학계는 ‘낙랑=평양설’는 증거라고 환호했다. 그러나 정작 북한 학자들은 이를 낙랑군이 요동에 있었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는데, 목간을 구경도 못한 남한 학자들은 평양에서 나왔다는 사실에만 주목해서 ‘낙랑=평양설’의 물증이라고 거꾸로 해석했다. 낙랑목간의 이름은 ‘낙랑군 초원(初元) 4년 현별(縣別) 호구부’로서 낙랑군 산하 각 현의 인구를 적은 것이다. 문성재 박사는 ‘한사군은 중국에 있었다’에서 중국은 산하 현을 표시할 때 속현(屬縣) 등의 용어를 쓰지 ‘현별’(縣別)이라고 쓰지 않았다고 밝혔다. ‘별(別)자’는 메이지 시대 일본인들이 쓰던 일본식 한자라는 것이다. 일제가 파묻어 놓고 언젠가 써먹으려고 하다가 그전에 쫓겨 간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 ‘시선강탈’ 월드 슈퍼탤런트 후보들

    ‘시선강탈’ 월드 슈퍼탤런트 후보들

    지난 2일 서울 강남의 한 스튜디오에서 ‘슈퍼탤런트 오브 더 월드 2018 시즌 10 월드 파이널’ 후보들의 프로필 촬영이 진행됐다. 러시아의 크리스티나 자미르가 섹시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모스크바 출신인 크리스티나 자미르는 열사의 나라 두바이에서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자미르는 “사막 한가운데 있지만 두바이는 첨단을 걷는 현대도시다. 일하는데 최적의 환경을 갖고 있다”라며 “두바이에서 열리는 패션쇼가 나의 주력무대다. 두바이는 여러 나라의 사업체가 진출한 곳이다. 패션쇼를 통해 두바이를 알리고 나 또한 여러 나라의 기업들과 협력하면서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아프리카의 서북부 대서양에 위치한 섬나라 케이프 베르데 출신인 슈퍼탤런트 참가자 시모네 루이자의 직업은 모델. 모국어인 포르투갈어를 비롯해서 영어와 프랑스어에 능통한 재원으로 파리와 런던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다. 시모네는 또한 “케이프 베르데는 작은 섬나라지만 섬마다 특색이 크다. 정글이 발달된 곳도 있고, 눈부신 백사장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해변을 갖고 있는 섬도 있다”며 “한국 사람들이 많이 찾아 두나라가 가까워졌으면 좋겠다. 친절하고 상냥한 케이프 베르데 국민들의 환영을 받을 것이다”라며 미의 사절로서 자국을 홍보했다. 베네주엘라 출신의 마리아 라우라는 모델과 교사를 겸업하고 있는 매력 넘치는 아가씨로 초등학교에서 춤과 노래를 가르치고 있다. 또한 빼어난 용모를 바탕으로 런웨이는 물론 수많은 잡지의 화보 모델과 광고 모델로 활약하고 있다. 이탈리아 출신의 카르멘 드 파스칼리스는 176cm의 큰 키와 가무잡잡한 피부가 매력적이다. 카르멘의 고향은 이탈리아 남부의 풀리아 주(州)위 주도인 바리시(市)다. 풀리아 주는 동쪽으로 아드리아 해, 동남쪽으로 에게 해, 서쪽으로 타란토 만에 면에 접하고 있는 바다의 주다. 바리 시 또한 해변도시여서 이탈리아 특유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 관광도시다. 카르멘은 “풀리아 주와 비리 시를 한국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 남부의 뛰어난 풍광과 더불어 고대 역사 유적이 많다. 이번 방문을 계기로 한국 국민들에게 많이 소개하고 싶다”며 자신의 고향을 홍보하는데 적극 앞장섰다. 한편 ‘슈퍼탤런트 오브 더 월드 2018 시즌 10 월드 파이널’은 오는 11일 인천에서 결선을 치를 예정이다. 스포츠서울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통도사·부석사·법주사·대흥사, 세계유산 된다

    경남 양산 통도사와 경북 영주 부석사가 충북 보은 법주사, 전남 해남 대흥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확실시된다. 문화재청은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이코모스(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한국이 지난해 1월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7개 사찰 중 통도사, 부석사, 법주사, 대흥사 등 4개 사찰을 등재 권고했다고 4일 밝혔다. 등재 권고 대상에서 제외된 사찰은 경북 안동 봉정사, 충남 공주 마곡사, 전남 순천 선암사다. 마곡사와 선암사는 역사성이 떨어지고, 봉정사는 사찰 규모가 작다는 것이 제외 이유라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이코모스는 각국이 등재 신청한 유산을 심사해 등재 권고, 보류, 반려, 등재 불가의 네 가지 권고안 중 하나를 선택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와 당사국에 전달하며, 등재 권고를 받은 유산은 이변이 없는 한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등재된다. 최종 등재 여부는 새달 24일부터 7월 4일까지 바레인에서 열리는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이번에 등재 권고를 받은 사찰은 7세기 이후 한국 불교의 전통을 현재까지 이어 오는 종합 승원이라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인정받았으며 개별 유산의 진정성과 완전성, 보존관리계획 등도 충분한 요건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았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통도사·부석사·법주사·대흥사, 세계유산 된다

    경남 양산 통도사와 경북 영주 부석사가 충북 보은 법주사, 전남 해남 대흥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확실시된다. 문화재청은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이코모스(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한국이 지난해 1월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7개 사찰 중 통도사, 부석사, 법주사, 대흥사 등 4개 사찰을 등재 권고했다고 4일 밝혔다. 등재 권고 대상에서 제외된 사찰은 경북 안동 봉정사, 충남 공주 마곡사, 전남 순천 선암사다. 마곡사와 선암사는 역사성이 떨어지고, 봉정사는 사찰 규모가 작다는 것이 제외 이유라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이코모스는 각국이 등재 신청한 유산을 심사해 등재 권고, 보류, 반려, 등재 불가의 네 가지 권고안 중 하나를 선택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와 당사국에 전달하며, 등재 권고를 받은 유산은 이변이 없는 한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등재된다. 최종 등재 여부는 새달 24일부터 7월 4일까지 바레인에서 열리는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이번에 등재 권고를 받은 사찰은 7세기 이후 한국 불교의 전통을 현재까지 이어 오는 종합 승원이라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인정받았으며 개별 유산의 진정성과 완전성, 보존관리계획 등도 충분한 요건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았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코모스가 제외한 3개 사찰까지 포함해 7개 사찰 모두 등재될 수 있도록 보완 자료를 작성하고 위원국 교섭 활동에 나서겠다”고 설명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봄날 충전 끝판왕 ‘뷰벤저스’ 떴다

    봄날 충전 끝판왕 ‘뷰벤저스’ 떴다

    호수처럼 잔잔한 쪽빛 바다에 크고 작은 섬이 올망졸망 떠 있는 남해. 바다, 섬, 하늘이 맞닿아 끝없이 이어지는 다도해 풍경은 사시사철 비경을 자랑한다. 특히 사방이 탁 트인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남해 경치는 아름다운 수채화를 펼쳐놓은 것 같다. 경남 남해안 여러 지자체가 바다 가까이 전망 좋은 산을 활용해 다도해 경관을 조망하는 관광시설을 앞다퉈 설치해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3일 경남도에 따르면 사천시 바다케이블카, 거제 계룡산 관광모노레일, 하동 금오산 집와이어, 통영 미륵산케이블카 등은 지역의 지리 여건을 활용해 인기를 끌고 있다.●바닥 투명한 ‘크리스털 케이블카’ 아찔 “케이블카와 산 정상 전망대에서 보는 주변 경치가 정말 멋집니다.” 지난달 28일 사천 바다케이블카 탑승을 마치고 내린 80대 부부 관광객은 “주변 경치가 너무 좋은 데다 케이블카 흔들림도 거의 없어 안전한 것 같고 탑승시간도 길어 좋다”고 말했다. 사천 바다케이블카는 사천시 동서동과 남해군 창선면을 연결하는 창선~삼천포대교 옆에 설치해 지난달 13일 개통됐다. 한려해상 국립공원 바다를 건너 섬을 돌아 육지 쪽 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내려오는 노선이다. 598억원이 들었다. 국내에서 가장 긴 2.43㎞로 한 바퀴 도는 데 25~30분이 걸린다. 바다~섬~육지 산을 오가는 국내 최초 케이블카라는 장점이 알려지면서 개통하자마자 관광객이 몰린다. 정류장은 3곳이다. 대방 정류장에서 출발해 바다 건너 초양도 섬 정류장을 거쳐 대방 정류장으로 돌아와 각산(해발 408m) 정류장으로 올라간다. 각산 정류장에서 내린 탑승객은 각산 전망대를 구경하고 대방 정류장으로 돌아온다. 편도 운행시간은 대방 정류장에서 초양도 정류장까지 5분, 대방 정류장에서 각산 정류장까지 7분쯤 걸린다. 전체 45대 캐빈 가운데 15대는 바닥이 투명한 크리스털이어서 바닥 아래쪽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크리스털 캐빈을 타면 발밑에 수십m 아래로 출렁거리는 바다가 아찔하게 보인다. 창 밖으로는 해안과 바다, 산 풍경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각산 전망대에 서면 창선~삼천포대교와 삼천포항을 비롯해 멀리 남해·통영·거제 지역, 크고 작은 섬, 금산과 지리산까지 보인다. 요금은 어른 기준 크리스털 캐빈이 2만원, 일반은 1만 5000원이다. 사천시시설관리공단에 따르면 개통 뒤 하루 평균 탑승객이 평일 5000명, 주말 8000명에 이른다.●기울기 50도 넘는 급경사 모노레일 재미 더해 계룡산(566m)은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인 거제도 중앙에 있다. 계룡산 자락에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과 중국군 포로를 수용했던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이 있다. 거제시는 유적공원에서 정상 부근 통신시설 유적 근처까지 산속을 꼬불꼬불 운행하는 관광모노레일을 77억원을 들여 설치, 지난 3월 3일 운행을 시작했다. 한 대에 6명이 타는 모노레일 차량 15대가 왕복 3.54㎞ 구간을 4분여 간격으로 다닌다. 아래 승강장에서 출발한 모노레일 차량은 1분에 70~80m씩 이동해 25~30분 뒤 상부 승강장에 도착해 탑승객을 내려주고 사람들을 태워 아래 승강장으로 내려온다. 해발 500m가 넘는 산 정상 부근까지 대나무와 소나무, 잡목 등이 우거진 숲속을 운행하는 모노레일이다 보니 레일 기울기가 50도가 넘는 급경사 구간 등이 반복돼 모노레일 타는 재미를 더한다. 상부 승강장에서 데크를 따라 걸어서 330m쯤 이동하면 사방으로 거제도 전체와 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도착한다. 남쪽 앞으로 문재인 대통령 생가가 있는 마을과 들판, 잔잔한 바다가 펼쳐진다. 전망대까지는 능선을 따라 경사가 완만해 어르신이나 어린이도 편하게 갈 수 있다. 전망대 반대편 통신탑 쪽으로 200~300m 구간에 우뚝 솟은 기암괴석으로 된 자연전망대로 올라가는 것도 크게 힘들지 않다. 상부 승강장 주변 능선 지역에 한국전쟁 당시 포로수용소를 관리한 통신대 유적이 남아 있다. 경주 지역 한 경로당 단체관광객으로 온 80대 할머니는 “산속에서 이런 차를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다니 기술이 참 놀랍고 희한하다”며 신기해했다. 김길훈 거제해양관광개발공사 팀장은 “매일 탑승 예약이 당일 오전에 매진될 정도로 모노레일 관광객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소개했다.●849m 금오산 정상서 20분 만에 하산 금오산 집와이어는 공중 높이 한 가닥 줄에 매달려 하늘을 나는 아찔함을 느끼며 다도해 경치를 감상한다. 금오산 정상(849m)에서 산 아래 도착 지점까지 3.2㎞를 집와이어를 타고 내려오는 20여분간 탑승자는 하늘을 나는 새가 된다. 정상의 집와이어 출발지에서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출발을 기다리는 몇 초 동안 약간의 두려움과 긴장감이 든다. 안전 관리자가 ‘오~사~삼~이~일~출발’ 하고 카운트다운을 마치는 순간 줄에 매달린 몸이 ‘덜커덩’ 하는 움직임과 함께 시속 120㎞의 빠른 속도로 하강한다. 조마조마하던 두려움은 금방 쾌감으로 바뀌고 하늘과 다도해가 편안하게 품 안에 안긴다. 금오산 정상 출발 지점에서 하강한 뒤 두 번 갈아탄 뒤 목적지에 도착한다. 3개 구간 집와이어 길이는 3186m로 아시아에서 가장 길다. 33억원이 들었다. 732m 길이 첫 번째 구간이 시속 120㎞로 가장 빠르다. 첫 번째 환승지에서 다시 도르래를 줄에 걸고 두 번째 구간 1487m를 내려간다. 같은 방식으로 세 번째 구간 967m를 내려간다. 금오산 입구 매표소에서 간단한 주의사항을 듣고 안전모자와 도르래 등 장비를 받아 25분간 승합차를 타고 금오산 정상 출발 지점으로 이동한다. 최근 추궈훙 주한 중국대사를 비롯해 중국대사관 관계자 10여명이 하동군을 방문해 금오산 집와이어를 체험했다. 추 대사는 “평소 모험 스포츠를 좋아하는데 금오산 집와이어는 주변 경치가 멋져 기회가 되면 또 오고 싶다”고 칭찬했다. 집와이어는 어린이부터 80대까지 남녀노소 즐길 수 있다. 지난달 경기도에서 온 85세 남성이 최고령 탑승자 기록을 세웠다. 대구에 사는 70대 중반 부부는 처음 집와이어를 탈 때, 출발대에 좀처럼 서지 못할 정도로 무서워하다 탑승을 끝낸 뒤에는 금오산 집와이어 매력에 끌려 지금까지 6번을 탔다고 한다. 하동군과 집와이어 운영회사 측은 탑승자가 몰리자 지난 2월 하강 장비와 시설을 확충했다. 하루 200명 넘게 탈 수 있다. 회사 측에 따르면 탑승자가 평일 180여명, 주말에는 250여명에 이른다. 지난달 28일 집와이어 출발지에서 구경하던 40대 남자는 “나와 아내는 겁이 나서 집와이어를 타지 못하는데 75세 장모가 초등학생인 외손자·외손녀와 함께 타겠다고 해서 출발하는 것을 보러 왔다”고 말했다. ●통영 한려수도조망케이블카 여전한 인기 개통 10년을 맞는 통영시 미륵산 한려수도조망케이블카의 인기는 여전하다. 한려수도 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미륵산(461m)을 오르내린다. 하부역(48m)에서 정상 근처 상부역(385m) 사이 1975m 선로를 8인승 곤돌라 48대(1대는 화물용)가 자동으로 순환하며 시간당 800여명을 수송한다. 상부역까지 10분쯤 걸린다. 상부역에서 20분쯤 걸어 정상에 오르면 한려해상공원 다도해 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맑은 날에는 정상에서 직선거리로 90㎞쯤 떨어진 대마도를 비롯해 105㎞ 떨어진 지리산 천왕봉도 볼 수 있다. 2008년 4월 운행을 시작한 뒤 누적 탑승객 1300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사천 바다케이블카와 거제 관광모노레일은 새해 첫날 각산과 계룡산 정상에서 일출을 볼 수 있도록 새벽 시간에 해맞이 케이블카를 운행할 계획이다. 통영 한려수도조망케이블카는 미륵산 정상에서 새해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을 위해 해마다 1월 1일 해맞이 케이블카를 운행한다. 글 사진 통영·사천·거제·하동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집값 상승세 여전한 대구 수성구…학세권 돋보이는 ‘범어 센트레빌’ 주목

    집값 상승세 여전한 대구 수성구…학세권 돋보이는 ‘범어 센트레빌’ 주목

    전국 아파트 시장이 미분양의 늪에 빠지면서 미분양 아파트 수가 6개월 연속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1일 주택산업연구원과 서울부동산정보광장 등의 자료에 따르면 국토교통부가 최종 집계한 2월 말 기준 미분양 아파트는 전국적으로 6만903가구에 이른다. 이는 10개월 만의 최대치다. 특히 지방은 미분양 물량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8월 지방의 미분양 아파트는 4만3413가구였는데 올 2월 5만933가구로 7500가구 이상 증가했다. 미신고분과 회사보유분 등을 감안하면 실제 미분양 아파트는 이를 훨씬 웃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구 부동산 시장은 불패신화를 이어가고 있어 눈길을 끈다.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규제에도 불구하고 대구는 집값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데, 대구의 강남으로 불리는 수성구의 경우 4월 첫째 주 0.18%에서 4월 셋째 주 0.32%로 지속적인 상승세를 나타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대구 부동산 시장은 수요가 꾸준한데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최근에는 대구 내 실수요자들과 인근 지역의 투자자들까지 몰려 상승기류가 오히려 확대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라고 전했다. 이러한 가운데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 들어서는 ‘범어 센트레빌’이 지난 27일 청약 당첨자를 발표해 눈길을 끈다. ‘범어 센트레빌’은 1순위 청약 평균 경쟁률 77.3대 1로 전 주택형이 1순위 마감됐다. 최고 경쟁률은 전용 84㎡ A형으로 120.2대 1이라는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분양가는 3.3㎡당 평균 1964만9000원으로 대구 일대에서 가장 높게 책정됐다. 3.3㎡당 최저 1793만8000원, 최고 1997만4000원 수준이다. ‘범어 센트레빌’은 지하 2층~지상 18층 규모로 실수요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전용면적 84㎡ 단일평형을 4가지 타입으로 구성했다. 총 88세대 재건축 사업으로 조합원 43세대, 일반분양 45세대가 진행됐다. 해당 아파트는 우수한 주변 환경으로 분양 전부터 투자자와 실수요자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우선 학세권 입지가 돋보인다. 단지 주변은 일명 ‘범어 8학군’으로 불리는 명품 학세권이 조성돼 있는데, 반경 1km 내에 경동초등학교, 경신중고등학교, 동도중학교, 정화중학교, 정화여고 등이 위치해 있다. 수성구 학원가도 가까운 거리에 있다. 2호선 수성구청역과 만촌역의 더블 역세권 입지도 확보했다. KTX 동대구역, 대구-부산고속도로 수성 IC 등 광역 교통망도 갖추고 있어 대구 시내 및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이 편리하다. 여기에 범어로데오타운, 범어시장, 이마트, 신세계백화점 등 생활 인프라 이용이 수월하며 대구고등법원, 검찰청, 수성구청, KBS대구방송총국 등 행정시설도 반경 1~2km 이내에 모여 있다. 범어공원, 유적공원, 대구어린이공원, 범어시민체육공원, 화랑공원 등이 가깝게 위치하는 것도 장점이다. 한편 ‘범어 센트레빌’ 분양 홍보관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 2동에 위치하며, 계약은 오는 5월 8~10일에 진행한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통일비용 비싸다고? 군복무와 매년 39조 분단비용 생각해야”

    “통일비용 비싸다고? 군복무와 매년 39조 분단비용 생각해야”

    스타 인문학 강사 최진기는 “통일비용을 생각할 때는 반드시 분단비용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최진기는 지난 1일 ‘통일 비용, 진실 혹은 거짓’을 주제로 MBC ‘100분 토론’에 패널로 출연해 발언했다. 그는 먼저 작위에 의한 손실과 무작위에 의한 손실의 개념에 대해 설명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발생하는 작위에 의한 손실에 대해 인간은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반면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부작위에 의한 손실에 대해 인간은 둔감하다는 것이다. 최진기는 “일례로 주가가 막 떨어져도 내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손실이기에 끝까지 버티고 있다. 그런데 통일비용은 작위에 의한 손실이기에 그런 보도가 나오면 굉장히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언론에서 통일이 되면 800조가 들어간다, 1000조가 들어간다고 보도하면 계산기로 5500만명 나누기 2를 두드려보고는 ‘나한테 200만원이야, 이런데 통일을 왜 해’ 이렇게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1000조 나누기 5000만명은 2000만원이나 강의 맥락상 비유적 표현으로 보인다.) 최진기는 “남학생들 200만원이 중요한가, 군대 2년이 중요한가. 우리는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아도 발생하는 손실, 분단비용을 생각해야 한다”면서 구체적인 수치를 들었다. 최진기는 “우리는 연간 군사비를 40조를 쓰고 북한은 10조로 추정된다, 합쳐서 50조”라며 “통일이 되고 독일이 군사비를 합쳐서 22.5%로 줄였다. 우리도 그렇게 줄이면 39조 원의 국방비가 남는다. 즉 우리는 39조라는 분단 비용을 매년 치르고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남성들의 병역 의무 등) 비용도 치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북한군 130만, 남한군 60만 합쳐 190만인데 통일이 되면 마찬가지로 100만명이 감축된다. 그 100만명이 1년에 2000만원씩 소득을 올리면 부가가치 20조원이 창출된다”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기회비용까지 우리는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통일비용’을 ‘통일투자 펀드’라는 용어로 부르는 것이 정확하다고 말했다. 최진기는 “통일투자펀드를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통일비용을 생각할 때는 반드시 분단비용을 고려하고, 통일비용은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투자펀드라는 관점에서 세상을 봐야 한다. 그것이 남북 관계를 이해할 때 훨씬 더 우리에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당부했다. 이와 관련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도 지난달 EBS ‘질문 있는 특강쇼’에서 “현재 국내총생산은 1조 5000억 달러인데, 2%면 300억 달러, 2.6%면 390억 달러다. 지난해 국방비보다 적은 돈으로 북한 경제를 활성화 시킨다면 연간 11.25% 경제 성장이 시작된다. 순수 통일 비용을 써서 이렇게 된다면 그 비용을 빼도 최소 9%대 경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그래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충무공 리더십으로 ‘한반도의 봄’ 이어가자”

    “충무공 리더십으로 ‘한반도의 봄’ 이어가자”

    “이순신 장군은 결코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오직 국가와 백성의 안위를 걱정한 진정한 영웅입니다.”이순신 장군 연구가인 김종대(69) 전 헌법재판관은 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근의 4·27 남북 정상회담 등 동북아 정세를 언급하며 이같이 말했다. 2012년 헌재 재판관 퇴임 이후 부산에 머물며 이순신 장군 관련 연구와 교육에 힘쓰고 있는 김 전 재판관은 지난달 27일 창립된 ‘부산대첩기념사업회’의 초대 위원장을 맡게 됐다. 이 기념사업회는 이순신 장군의 부산대첩을 부산 정신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시민 주도의 다양한 사업을 펴나갈 계획이다. 김 전 재판관은 1975년 군에서 법무장교로서 일반 사병을 상대로 정훈교육을 하기 위해 서점에서 책을 찾다가 노산 이은상 선생이 쓴 이순신 전기에 감명을 받은 이후로 40여년간 ‘이순신’에 빠져 살았다고 한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도 “어떤 사안이 있을 때마다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을 생각하며 살아왔다”고 ‘이순신 열성 팬’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한 뒤 “특히 요새 긴박한 남북, 북·미 관계 뉴스를 보면서 ‘이순신 장군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전 재판관은 “노벨상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받으셔야 하고 우리는 평화만 가져오면 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전날 발언을 듣고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정유재란 때의 일화가 떠올랐다고 했다. 당시 조선 및 명나라 연합군이 일본 수군과 벌인 절의도 전투에서 우리 수군은 적의 수급 70여개를 베었지만, 명나라는 그러지 못했다. 이에 명나라 제독인 진린이 부하들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는 사실을 안 이순신 장군이 수급 모두를 건네주며 황제에게 갖다 드리라며 승전의 공을 돌렸다는 것이다. 그때 우리 부하 장수 중 한 명이 항의하자 이순신 장군은 “썩은 고깃덩어리가 무엇이 그리 중요하냐. 백성이 편안하면 됐지 않느냐”라며 타일렀다고 한다. 김 전 재판관은 “대승을 이룬 부산대첩은 일본의 전력을 와해시켜 임진왜란의 전세를 뒤바꿔 놓은 역사적 사건”이라고 정의했다. 부산대첩은 470여척의 왜선과 8000명의 일본군이 포진한 부산포에 이순신 장군이 육·해군을 이끌고 와 치밀한 작전으로 왜선 100여척과 왜군 5000명을 격파한 해전이다. 부산시는 이순신 장군의 부산대첩 승전일인 10월 5일(양력 기준)을 1980년 부산시민의 날로 정한 이후 매년 기념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이순신 장군의 부산대첩 정신은 퇴색한 채 시민을 위한 축제 정도로 인식되고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계승하려는 노력은 제대로 하지 않는 게 안타깝다고 김 전 재판관은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순신 장군의 부산대첩 관련 유적지를 역사문화 공간으로 복원하고 1만명 회원을 모집하는 등의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제물로 바쳐진 어린이만 최소한 160명…사상 최대 규모 유적 발견

    제물로 바쳐진 어린이만 최소한 160명…사상 최대 규모 유적 발견

    남미 페루에서 제물로 바쳐진 어린이들의 유골이 대량으로 발굴됐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지금까지 확인된 유골 수를 보면 사상 최대 규모로 추정된다.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따르면 어린이 유골이 다수 발견된 곳은 페루 북부 리베르타드의 절벽을 낀 해안가로 ‘우안차키토-라스라마스’라고 불리는 곳이다. 발견된 어린이 유골은 최소한 140구. 모두 5살에서 14살 사이의 어린이로 추정된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아즈테카문명과 마야문명, 잉카시대에도 사람을 제물로 바친 종교의식이 성행했지만 이번에 확인된 제물 유적은 아메리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전례를 찾기 힘든 역사상 최대의 규모”라고 밝혔다.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따르면 아이들이 제물로 바쳐진 건 지금으로부터 550년 전 차무제국이 번성했을 때로 추정된다. 제물이 된 아이들을 죽인 후 심장을 꺼낸 듯 가슴을 연 흔적이 남아 있는 유골이 많았다. 유적지에선 라마 200마리의 유골도 함께 발굴됐다. 제물로 바쳐진 라마들 역시 나이는 18개월 전후로 대개 어린 동물들이었다. 라마도 아이들과 함께 신에게 바쳐진 제물이었다는 게 발굴에 참여한 고고학자들의 설명이다. 우안차키토-라스라마스에서 처음으로 제물로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어린이 유골이 발견된 건 2011년이다. 신전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시설물 유적에서 어린이 유골 42구, 라마 유골 76개가 발견됐다. 이후 2016년까지 발굴작업이 계속되면서 제물로 희생된 어린이와 라마의 수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제물로 희생된 어린이들은 신전 인근의 무덤에 안장됐다. 바다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묻힌 게 특징이다. 반면 라마들은 안데스산맥을 바라보며 땅에 묻혔다. 발굴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제물을 바치는 의식이 마지막까지) 매우 체계적으로 진행된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캄비오16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평양 낙랑군 유물을 가는 곳마다 발견한 ‘신의 손’ 일제 학자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평양 낙랑군 유물을 가는 곳마다 발견한 ‘신의 손’ 일제 학자

    제국주의 고고학이란 말이 있다. 영국의 대영박물관에는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5세(서기전 205~180)에 대해서 기록한 로제타스톤이 전시되어 있다. 이집트에 있어야 할 스핑크스와 수많은 미라들도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에 있다. 제국주의 시대 강탈해 간 유물들로 제국주의 고고학의 산물들이다.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일본이 제국주의 고고학을 수행했는데, 앞의 나라들과도 사뭇 다르다. 영국, 프랑스 등은 유물은 강탈했지만 그 나라들의 역사를 바꾸지는 않았다. 반면 일본은 고고학을 한국사 조작의 용도로 악용했다. 더 큰 문제는 일본의 고고학자 니시카와 히로시가 ‘일본 제국주의 아래에서 조선고고학의 형성’(1970년)이란 논문을 쓴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일본인들이 한국 고고학을 시작했는데, 아직도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조선총독부에서 시작한 한국의 고고학 교토대 교수인 고고학자 요시이 히데오는 ‘식민지 지배에 있어서 일본인의 고고학적 조사’(2005)라는 강의를 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가짜로 만들기 위해서 만든 용어인 ‘원삼국’(原三國)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가 강의에서 ‘식민지 시기 조선의 고적 조사사업’을 세 시기로 나눈 것은 음미할 만하다. 첫 시기는 ‘일본인에 의해 본격적인 조사 사업이 시작된 시기’(1900~1908)인데, 두 명의 고고학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 명은 조선왕실의 유물을 보관하던 이왕직박물관에도 근무했던 도쿄제국대학 인류학연구실 소속 야기 소우사부로(1866~1942)이고 다른 한 명은 지금도 한국고고학계에서 크게 높이는 세키노 다다시(1868~1935)다. 세키노는 원래 도쿄공대에서 조가학(造家·건축학)을 전공한 건축학도였다. 그러나 고대 야마토왜(大和倭)의 수도였던 나라(奈良)의 고건축들을 연구하고, 평성경(平城宮) 유적을 발굴하면서 고고학자를 겸하게 되었다. 그는 백제인들이 망국 후 서기 665년 후쿠오카 북부에 쌓은 조선식 산성인 기이성(基肄城·기이조)도 발굴했으므로 고대 야마토왜가 백제인들의 담로(擔魯·제후국)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세키노는 1902년부터 한국에 여러 차례 와서 유적들을 발굴하는데, 이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한나라 및 낙랑 유물을 ‘우연히’ 발견하는 ‘신의 손’이 되었다.●‘조선고적도보’를 마구 나눠 준 군인총독 요시이가 분류한 ‘식민지 시기 조선의 고적 조사사업’의 두 번째 시기가 ‘조선총독부 주도의 조사체계 확립’의 시기로 세키노가 조선총독부의 자금으로 한국 각지의 고적을 조사하고 다녔다. 조선총독부는 1915년에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개관하고 이듬해 ‘고적조사위원회’를 설치했다. 표면적으로는 한국 내의 유적, 유물들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보존하는 사업처럼 보이지만 요시이가 “한반도의 고고학적 조사는 조선총독부와 관련 있는 일부 일본인들로 제한했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일본인들의, 일본인들에 의한, 일본인들을 위한’ 고고학이었다. 세키노는 가는 곳마다 낙랑 유물을 발견하는 ‘신의 손’이 되고, 일본이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함으로써 세계적인 주목까지 받게 된다. 세키노는 1915년부터 1935년까지 조선총독부 간행으로 초호화판 ‘조선고적도보’(1915~1935)를 발간했다. 여학교 교원들에게도 칼을 차고 교실에 들어가게 했던 초대 조선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총독실에 ‘조선고적도보’를 쌓아 놓고 국내외의 내외빈들에게 마구 뿌렸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군인이었다는 육군대장 데라우치가 고고학을 얼마나 중요한 식민통치의 일환으로 삼았는지를 말해 주는 일화이다.●검증받지 않은 정설, 세키노 다다시 세키노의 발굴 결과에 대해서 남한 학계는 아직 단 한 번도 본격적인 검증 작업을 하지 않고 이른바 ‘정설’로 떠받들고 있다. 낙랑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오영찬 이화여대 교수는 이렇게 썼다. “낙랑군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와 함께 구체적인 역사상이 정립된 것은 일제강점기 이후의 일인데, 여기에는 고고학 발굴 조사 자료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낙랑고분 발굴 조사는 1909년 도쿄제국대학 건축학과 세키노에 의해 개시되었다.”(오영찬, ‘낙랑군 연구’, 사계절, 2006년, 16쪽) 2016년쯤에는 이른바 젊은 역사학자들이 ‘역사비평’에 조선총독부를 계승한 강단의 기존 학설을 열렬히 옹호하고 나서서 조선일보로부터 ‘국사학계의 무서운 아이들’이란 칭찬을 받았다. 이들은 그 내용을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역사비평사·2017)이란 책으로 묶어냈는데, 위가야는 “이후 1920년대 중후반에 이르기까지의 (세키노의) 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적과 유물들은 낙랑군의 중심지가 평양이었음을 확인시켜 주는 핵심적인 증거로 인정받았다”(124쪽)고 서술하고 있다. ‘낙랑군=평양설’의 뿌리가 세키노의 고고학이란 논리다. ●세키노 다다시의 양심고백? 그런데 세키노가 한국에서 이런 높은 평가를 받는 것에 흡족해할지는 미지수다. 세키노는 조선총독부에서 심혈을 기울인 ‘조선고적도보’의 편집책임자였으면서도 이 책의 내용에 의문도 제기했기 때문이다. ‘조선고적도보’는 평안남도 대동군 대동강면 토성동을 낙랑군을 다스리던 조선현의 군치(郡治)가 있던 ‘낙랑군지치’(樂浪君治址)라고 표기했는데, 세키노는 그 뒤에 물음표를 달아서 의문을 표시했다. 황해군에 있었다는 대방군지치에도 마찬가지 물음표를 달아 놓았다. ‘조선고적도보’의 두 핵심 내용은 ‘낙랑군=평양설’과 ‘대방군=황해도설’인데, 왜 굳이 ‘과연 그럴까?’ 하는 물음표를 붙여 놓았을까. 세키노는 또한 ‘낙랑=평양설’의 결정적 증거라는 ‘효문묘 동종’(孝文廟銅鐘)을 비롯해 자신이 발견한 낙랑군의 주요 유물들마다 ‘우연히 발견했다’고 꼬박꼬박 덧붙여 놓았다. 게다가 우연이 거듭되면 필연이라는 속설을 입증하는 내용을 ‘세키노 일기’(關野貞日記)에 남겼다. 문성재 박사는 ‘한사군은 중국에 있었다’(2016)에서 세키노의 일기를 몇 대목 공개했는데 1918년 북경에서 쓴 일기에 이런 구절들이 나온다. ①대정(大正) 7년(1918) 3월 20일 맑은 베이징, “(베이징) 유리창가의 골동품점을 둘러보고,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위하여(朝鮮總督府博物館ノ爲メ) 한대(漢代)의 발굴품을 300여엔에 구입함” ②대정 7년 3월 22일 맑음, “오전에 죽촌(竹村)씨와 유리창에 가서 골동품을 삼. 유리창의 골동품점에는 비교적 한대(漢代)의 발굴물이 많고, 낙랑 출토품은 대체로 모두 잘 갖춰져 있기에(樂浪出土類品ハ大抵皆在リ) 내가 적극적으로 그것들을 수집함” 세키노는 베이징의 골동품 거리인 유리창가에서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위하여’ 한나라 유물들과 낙랑 출토품을 적극적으로 사들였다. 세키노는 왜 평양에 있었다는 낙랑군의 유물을 베이징에서 사서 조선총독부 박물관에 보냈을까. 낙랑군 유물은 왜 평양이 아니라 베이징에서 거래되었을까. 낙랑군은 평양이 아니라 중국 사료들이 말하는 것처럼 베이징에서 그리 멀지 않은 현재의 하북성 노룡현(盧龍縣) 지역에 있었기에 베이징 골동품가에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낙랑군 유물을 평양이 아닌 머나먼 베이징에서 사서 조선총독부로 보냈다는 세키노의 고백이야말로 ‘만들어진’ 제국주의 고고학의 실체를 증언해 준다.
  • [현장 행정] 용‘산’비어천가

    [현장 행정] 용‘산’비어천가

    “이봉창 의사는 용산 사람이에요. 일본 천왕을 죽이려다가 폭탄이 터지지 않아 실패하고 일본군에게 잡혀 죽임을 당했어요.”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에서 진행하는 문화탐방프로그램 ‘용의 산을 찾아서’ 일일교사로 나서 이봉창 의사의 생애와 업적을 소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문화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한 신용산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효창공원 이봉창 의사 동상 앞에서 호기심 어린 눈길로 성 구청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성 구청장은 “이봉창 의사는 효창동에서 나고 자라 지금은 효창공원에 묻혀 있다”면서 “여러분도 나라를 위해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구는 지난달부터 문화탐방 프로그램인 ‘용의 산을 찾아서’를 운영하고 있다. 오는 11월까지 50회에 걸쳐 지역 문화유적지 답사를 할 예정이다. 주민과 학생들에게 지역사를 제대로 알린다는 취지다. 연중 수시로 참가자를 모집하며 학생과 성인반으로 나눠 답사 일정을 맞춘다. 학급·모임별 단체 신청도 받는다. 탐방 코스는 이태원 부군당 역사공원, 유관순 열사 추모비, 경찰청 인권보호센터, 효창공원 의열사, 백범 김구 기념관, 이슬람 중앙사원, 남산성곽길 등이다. 코스는 참가 대상에 맞게 늘리거나 줄인다. 전문 해설사 설명을 들으며 장소의 역사적 의미와 맥락을 깨칠 수 있다. 올해 참가인원은 약 1000명으로 예상된다. 성 구청장은 “용산을 빼고서는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이야기할 수 없다”면서 “용산 곳곳이 유적지고, 문화유산들이 있는데 이를 잘 발굴하고 갈무리해서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고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성 구청장은 민선 5기 시절인 2010년부터 ‘역사 바로 세우기’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2013년에는 이태원 부군당 역사공원을 조성하고, 2015년에는 이곳에 유관순 열사 추모비를 건립했다. 2016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김구 등 애국선열들의 영정을 모신 효창공원 의열사를 26년 만에 상시 개방했다. 구는 내년 이봉창 의사의 옛집이 있던 효창동 118 부근에 이봉창 의사 기념관을 건립할 예정이다. 또 내후년에는 용산역 인근에 향토사 박물관 건립을 계획하고 있다. 성 구청장은 “용산에는 박물관만 11개이다. 앞으로 더 많은 박물관이 용산에 들어올 것”이라면서 “국립중앙박물관·한글박물관과 연계해 용산을 ‘박물관 특구’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더불어민주당 우정욱 시흥시장 예비후보, “갈 곳 많고 볼 것 많은 시흥 만들겠다”

    더불어민주당 우정욱 시흥시장 예비후보, “갈 곳 많고 볼 것 많은 시흥 만들겠다”

    우정욱 더불어민주당 경기 시흥시장 예비후보가 “‘문화비전2030’ 정책을 반드시 이뤄내 갈 곳 많고 볼 것 많은 시흥을 만들겠다”고 공약을 발표했다. 문화비전2030은 시흥시에서 처음으로 세운 문화 종합계획이다. 문화바라지 프로젝트로 1년간 시민들이 참여해 완성됐다. 우 예비후보는 시흥역사를 연구해 ‘물왕저수지에서 오이도’에 이르는 ‘바라지’벨트를 개발했다. 시흥이라는 도시브랜드 가치를 드높였다. ‘바라지와 산업단지의 도시, 시흥’은 2017 국가브랜드 대상에서 도시브랜드 부문 대상을 받은 바 있다. 문화예산과 관련해 우 예비후보는 “지난해 195억원에서 올해 394억원으로 늘어났다”면서 “앞으로 시민들이 생활속에서 몸소 느낄 때까지 문화발전 의지를 갖고 예산을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우 예비후보는 아이와 함께 갈 곳 많고 볼 것 많은 시흥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우선 미디어센터가 포함된 특별한 공연장을 건립하고 ‘엄마·아빠·아이가 함께하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상설화하겠다고 밝혔다. 아동 청소년 전용극장이 있는 중앙도서관도 세우고 청소년 문화의집을 동마다 1곳씩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친자연 물왕호수공원 개발 방안으로 저수지 자연 풍광을 느낄 수 있는 짚라인 체험레포츠를 통해 관광활성화시킨다는 복안이다. 짚라인(Zipline)은 양 편의 나무나 지주대 사이로 와이어를 설치한 뒤 탑승자와 연결된 트롤리(일종의 도르래)를 와이어에 걸어 빠른 속도로 반대편으로 이동하는 레포츠의 통칭이다. 이 밖에 호조벌 보존과 역사 뮤지컬 등 콘텐츠 개발을 비롯해 월곶 이미지 워싱 작업-스토리 발굴과 오이도 시화방조제, 해상케이블카 민간투자사업 유치, 선사유적공원 박물관 활성화, 오이도 선사유적공원 박물관 활성화, 다시 선보이는 산업단지-브랜드화, 물왕저수지~오이도 물길바라지 벨트 조성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씨줄날줄] 만월대 공동 발굴 재개/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만월대 공동 발굴 재개/서동철 논설위원

    개성 만월대에서 남북 공동 발굴조사가 시작된 2007년 5월의 일이다. 남쪽에서는 발굴조사에 들어가기에 앞서 개토제(開土祭)를 지내곤 한다. 본격적으로 땅을 파기에 앞서 지신(地神)의 양해를 구하는 절차다. 발굴 단원 사이에 ‘팀워크’를 다지는 의미도 물론 작지 않다.남쪽은 이때도 당연히 개토제를 제안했다. 그런데 북쪽은 “그런 미신 행위에 동조할 수 없다”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남쪽도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북쪽 발굴 관계자들은 개토제를 멀리서 지켜보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그런데 제상에 놓을 돼지머리를 구하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개토제는 유홍준 당시 문화재청장이 그린 돼지머리 스케치를 놓고 지낼 수 있었다. 이후 만월대 공동 발굴조사는 2015년 11월까지 7차례 이루어졌고 성과도 적지 않았다. 고려는 오늘날의 개성인 수도 개경의 여러 곳에 궁궐을 지어 왕의 거처이자 집무 공간으로 삼았다. 조선이 한양에 경복궁을 비롯한 5대 궁궐을 지은 것을 떠올리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개경의 진산인 송악산 기슭의 만월대(滿月臺)는 태조 왕건이 나라를 세운 이듬해인 919년 세운 고려의 가장 큰 궁궐이었다. 하지만 고려시대에는 만월대가 곧 정궁(正宮)을 지칭하지는 않았다. 당시는 그저 ‘중심이 되는 궁궐’이라는 뜻으로 본궐(本闕)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만월대라는 이름은 조선 중종 25년(1530) 펴낸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처음 등장한다. 당초에는 높은 축대를 쌓고 지은 정전(正殿)인 회경전(會慶殿)의 앞뜰을 가리켰는데, 훗날 궁궐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만월대는 외곽의 황성과 내부의 궁성으로 이루어졌다. 황성의 주출입구는 동쪽의 광화문(廣化門)이었다. 경복궁의 광화문(光化門)과 의미는 다르지만,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사실 개경은 조선왕조의 창건 수도이기도 하다. 만월대는 공민왕 10년(1361) 홍건적 침입으로 훼손된 뒤 복구되지 못했다. 발굴조사는 역사 복원을 위한 기초 작업이다. 궁성의 넓이만 39만㎡에 이른다는 만월대 발굴에 남북 학계 모두 기대를 거는 이유이다. ‘판문점 선언’ 후속 사업으로 청와대가 만월대 발굴조사의 재개를 추진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아가 우리도 북쪽 고고학자들을 초청해 강화도의 왕릉을 비롯한 고려 유적의 공동 발굴조사를 벌이면 어떨까 싶다. 경기 고양과 강원 삼척에 각각 존재하는 고려의 마지막 임금 공양왕 무덤의 실체를 규명하는 작업도 흥미로울 것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한필원의 골목길 통신] 다시 보는 비무장지대

    [한필원의 골목길 통신] 다시 보는 비무장지대

    “남북 정상의 만찬 식탁에 비무장지대 산나물로 만든 비빔밥이 오른다”는 뉴스를 듣고 필자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그 지역을 떠올렸다. 어느 추운 겨울 철책 근무를 하며 밤마다 그쪽을 바라본 경험이 있음에도 북한 병사의 귀순 소식이 있을 때만 옛날이야기처럼 어슴푸레 잠시 떠올려졌던 곳이다. 그야말로 역사적인 이번 남북 정상회담으로 다시 떠올렸을 뿐 아니라 그것이 가진 가치를 깊게 생각해 보는 여유를 갖게 됐다. 65년 전 남북이 휴전을 하고 군사분계선 양쪽으로 2㎞씩 물러나면서 형성된 비무장지대. 천백년 전쯤 그곳에는 태봉의 도성이 있었다. 901년 고구려의 부흥을 내세우며 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는 911년 국호를 태봉으로 바꾼다. 고려시대부터 천여년 동안 변화 많은 지형에 적응해 곳곳에 마을이 조성된 그 지역은 개경과 남경, 곧 개성과 서울을 연결하는 문화의 허리 역할을 했다. 그러던 문화와 평화의 지역이 1950년 6월부터 3년 1개월 동안 치열한 전쟁터가 돼 장구한 세월 동안 인간과 자연이 함께 만든 경관은 무참히 파괴됐다. 그리고 1953년 7월부터는 일체의 인간 거주가 금지됐다. 그렇게 반전을 거듭해 온 그곳이 다시 한번 극적인 전환을 맞을 가능성이 커졌다. 머지않아 비무장지대가 맞이할 대전환은 과연 무엇일까. 필자는 비무장지대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충분한 잠재력에 주목하고 있다. 세계유산의 종류에는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복합유산이 있다. 문화유산은 기념물·건물군·유적지를 대상으로 한다. 기념물에는 건축물, 기념비적 조각과 회화, 고고학적 성격의 유물과 구조물, 금석문, 혈거지 등이 해당하고, 건물군은 독립되거나 연결된 건물들의 군집을 뜻한다. 유적지는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나 자연과 사람의 합작품을 말하는데, 고고학적 유적 지역도 여기에 해당한다. 한편 자연유산은 물리적·생물학적 생성물 또는 이러한 생성물의 집합체로 구성된 자연의 특징물, 지질학적·지형학적 생성물,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 종의 서식지 등을 대상으로 한다. 복합유산은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범주에 중복해서 해당하는 유산이 대상이다. 그 어느 것이든 유산이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다고 인정받아야 세계유산이 될 수 있다. 그럼 비무장지대는 세계유산의 어느 부류에 해당할까. 먼저 태봉도성이 있던 그곳은 거대한 미발굴 유적지다. 남북한이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합쳐 발굴조사와 연구를 온전히 이루어 내면 태봉도성은 한반도에서 전모가 밝혀진 가장 오래된 도시가 될 것이다. 또한 65년 동안 지역의 문화가 동결됨으로써 비무장지대는 한반도 중부지방의 문화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곳은 문화유산으로서 세계유산에 등재될 잠재력이 있다. 전쟁이 멈추자 거주할 수 없는 곳이 된 비무장지대는 자연의 힘, 특히 스스로 치유하는 힘을 확인할 수 있는 둘도 없는 지역이다. 그 땅은 재자연화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떤 속도로 어떤 양상으로 일어나는지 알려 줄 수 있는 매우 드문 곳이다. 인간의 간섭과 개입이 상당 기간 중단됐기 때문에 동식물의 서식지가 풍부해지고 생태계가 복원됐을 가능성이 크다. 환경부가 2003년과 2016년에 발간한 비무장지대 일원의 생물다양성 관련 보고서를 비교해 보면 식물이 1597종에서 1854종으로, 조류가 201종에서 266종으로 증가하는 등 생물다양성이 계속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지역에 사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만도 16종인데, 두루미, 사향노루 등은 우리나라에서 비무장지대 일원에서만 살고 있다. 따라서 자연유산으로서 그곳이 지닌 가치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에 모두 해당할 때 그 유산을 복합유산으로 등재할 수 있다. 그러니 비무장지대는 어느 종류의 세계유산도 될 가능성이 있는 귀중한 자산이다. 비무장지대는 이 땅에 사는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전쟁과 분단이 안겨 준 슬픈 유산이다. 그러나 그곳을 온 인류가 전쟁과 평화, 자연과 문화, 거주와 생태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유산으로 다시 보니 슬픔은 봄날 같은 희망에 슬그머니 길을 내준다.
  • 북한 김정은, 교통사고로 숨진 중국인 관광객들 기차역까지 배웅

    북한 김정은, 교통사고로 숨진 중국인 관광객들 기차역까지 배웅

    조선중앙방송은 26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한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중국인 관광객 32명의 시신과 부상자를 후송하기 위한 전용열차를 편성하도록 하고, 평양역에 직접 나가 전송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평양역에서 “자신과 우리 당과 정부가 이번 사고를 놓고 책임을 통절히 느끼고 있다”며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해 중국 동지들을 조금이라도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밝히고, 위문 전문과 위문금을 전달했다. 김 위원장은 시신 운반준비상태를 돌아보고 열차에 올라 부상자들을 병원에 이어 또다시 만나 위로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에게 보내는 위문 전문은 “전체 조선인은 뜻하지 않은 사고에 대하여 친혈육이 당한 피해로 여기고 깊은 슬픔에 잠겨있다”는 내용이다. 지난 22일 저녁 황해북도 봉산군에서 중국인 단체 관광객 등이 탄 버스가 전복돼 중국인 32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상을 입었는데 이들은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마오쩌둥(毛澤東)의 아들 마오안잉(毛岸英) 묘소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북중혈맹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평안남도 회창군의 마오인잉 묘소를 방문한 이들은 마오쩌둥을 추종하는 중국의 좌파 사이트 우유즈샹(烏有之鄕·유토피아) 산하의 싱훠(星火)여행이 모집한 홍색관광단이라고 홍콩 성도일보는 26일 보도했다. 이들 중국 관광객은 ‘항미원조(6·25전쟁의 중국식 명칭) 승리 65주년 기념’이란 이름으로 조직된 여행상품에 참여 중이었으며 사망자 중에는 우유즈샹 편집인이자 싱훠여행 대표도 포함돼 있었다. 2003년 베이징에서 설립된 우유즈샹은 2010년부터 해외 홍색관광을 조직하다가 2015년 싱훠여행을 차려 이를 수익 사업화했다. 좌파학자인 쿵칭둥(孔慶東) 베이징대 교수는 이번 여행이 싱훠여행사의 주선으로 이뤄졌다고 확인했다. 싱훠여행이 지난달 모집한 이번 북한 관광상품은 정원 30명에 판매가 5990위안(102만원)으로 18일 랴오닝성 단둥에서 출발해 7일간 북한 내 중국 관련 유적지를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자유아시아방송은 우유즈샹이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통해 미국에 대항하는 것을 중국이 지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단체라고 소개했다. 북미회담을 앞두고 북한은 중국 관광객 교통사고 수습에 최고 지도자가 직접 나서는 이례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2년 기준 연간 북한을 찾는 중국인 숫자는 23만 7000명이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안양예술공원 입구에 공공예술공원 상징 조형물 설치

    경기 안양시는 ‘공공디자인으로 행복한 공간 만들기’ 공모사업에 재미있게 찾아가는‘안양예술공원 공감사인’프로젝트가 선정됐다고 26일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한 공모사업은 전국 50여 개의 지자체가 신청해 1·2차 서류심사와 3차 현장실사를 거쳐 진행됐다. 시는 이번 사업 선정으로 4억원의 국비를 지원받게 됐다. 테마공원인 안양예술공원 방문객이 쉽고 편리하게 찾아올 수 있도록 입구에 공공예술공원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설치한다. 공원 내에 눈에 띄고 보기 편한 이정표와 안내판도 설치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테마에 맞은 디자인을 개발할 예정이다. 시민 의견 반영을 위해 공감디자인스쿨을 운영한다. 2005년에 안양유원지에서 명칭을 변경한 안양예술공원은 제1회 APAP(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를 통해 새롭게 태어났다. 안양 8경 중 하나로 2005년부터는 제1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를 통해 국내외 예술가들이 제작한 52점의 예술품들이 설치됐다. 예술공원 들머리에는 2014년 유유산업 공장 부지를 시가 사들여 안양박물관과 김중업건축박물관으로 리모델링해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고려시대 유적인 ‘안양사’의 명문 와편이 발굴되기도 했다. 공원을 품고 있는 삼성산 등산로를 이용해 둘레길도 조성했다. 이필운 시장은 “안양예술공원을 새롭게 단장하고 다양한 문화관광 콘텐츠 개발을 통해 안양시가 수도권 최고의 관광도시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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