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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세 굳히기”고삐죄는 한나라, 당 체질개선 본격착수

    한나라당이 지방선거 압승의 기쁨을 뒤로 하고 8월8일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연말 대선을 겨냥한 ‘체질개선’에 착수했다.민주당이 선거패배 후유증에 시달리는 동안 ‘수권(受權)정당’의 면모를 갖춰 하반기 대선정국의 ‘혈전’에 대비하려는 복안이다. 일차적으로 비주류를 끌어안는 당직개편을 통해 그동안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의 발목을 잡아온 당내 분란의 싹을 없애겠다는 방침이다.이달 말 이 후보가 중국을 다녀온 뒤 다음달 초 당직개편을 단행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관심은 이상득(李相得) 사무총장 후임과 비주류 발탁 여부다.대선정국에서 후임 사무총장은 강력한 통솔력과 투쟁력이 필요하다.이재오(李在五) 전 원내총무 등이 거명되는 가운데 이상득 총장 유임설도 나돈다. 김덕룡(金德龍)·이부영(李富榮) 의원 등 비주류를 끌어안는 작업도 시급하다.김의원은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검토되고 있다.파격적으로 대선 선거대책위 본부장으로 중용하는 방안도 일각에서 논의되고 있다.그러나 김 의원은 여전히 당직 참여에 부정적이어서성사 여부는 미지수다. 당의 개혁성을 보완하기 위해 이 의원을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기용하거나,개혁 성향의 소장층을 당직 곳곳에 발탁하는 방안도 거론된다.8·8재·보선에 개혁인사를 내세우는 시나리오도 검토되고 있으나 해당 지구당의 경선 절차를 밟아야 하므로 유동적이다. 진경호기자
  • 제2기 영화진흥위원 9명 위촉

    남궁진 문화관광부 장관은 24일 제2기 영화진흥위원회 위원 9명을 위촉했다. ▲김홍준(46·영화진흥위원·유임)▲김병헌(42·서울국제카툰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조직위 사무국장)▲김창유(47·한국영상기술학회장)▲민병록(52·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변재란(41·서울여성영화제 부위원장)▲유지나(42·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이민용(44·대종상 심사위원)▲이충직(45·중앙대 영상예술학과 교수)▲장미희(45·명지대 연극영상학과 교수)
  • 고대 교수협 “김총장 불신임 투표”

    고려대 교수협의회(회장 白瑩鉉)는 오는 25일 비상총회를열고 이사회가 재선임한 김정배 총장의 불신임 여부를 묻기로 했다. 교수협은 “재단측의 일방적인 김 총장 유임 결정에 교수·학생 등 학내 구성원 대부분이 반발하고 있다.”면서 “교수 180여명의 발의로 해임권고안을 상정키로 했다.”고 밝혔다.교수협은 “교수협 규정상 총장 선출 때 민주적 절차가 무시되면 총장의 해임권고안 상정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해임권고안이 통과되려면 재적교수 과반수가 투표에 참여하고,이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찬성표를 던져야 한다. 고려대는 지난 3일 재단이사회가 15대 총장에 김정배 총장을 재선임하자 이에 반발한 교수협이 자체 투표를 통해 이필상 경영대 교수를 총장 당선자로 선출하면서 진통을 겪고 있다. 이영표기자 tomcat@
  • [帝政러시아 외교문서 새 발굴 대한제국 秘史] (4)새로 밝혀진 사실들

    러시아 문서보관소는 구한말 역사의 보고(寶庫)였다.발굴된 문서중에는 국내에 알려지지 않았거나 잘못 알려졌던흥미진진한 사실들이 수두룩했다.특히 고종의 해외망명기도와 헤이그밀사 파견의 좌절,아관파천의 진실 등은 근세사를 새로 고쳐 써야 하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헤이그밀사사건의 전말 러시아는 대한제국의 주권불가침을 인정하며 국제회의에서 상기 견해를 밝힐 수 있도록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대한제국 대표를 초청하였다.초청장은 페테르부르크주재 대한제국 공사에게 외교문서로 전달되었다.러시아 정부는 이범진 공사를 합법적인 공사로 지금도 인정하고 있다.그곳에있는 고종황제의 밀사에게 이 뜻을 전해도 무방하다.(1905년 11월1일 외무장관이 베이징주재 러시아공사 파그딜로프에게 보낸 지시문) 이 지시문은 고종이 서울의 프랑스어학교교사 마르텔을베이징주재 러시아공사에게 극비리에 파견,헤이그회의에대한제국 대표를 초청토록 요청한 데 따른 러측의 공식 답신이다.이때까지만 해도 러시아의 외교적 입장은 대한제국의 독립국가유지였으며 헤이그회의 참가지원이었음을 알수 있다.헤이그 만국평화회의는 니콜라이2세가 주창해 열렸고 러시아는 이 회의의 의장국이었기 때문이다.그러나을사늑약체결(1905년 11월17일)이후 새로운 국제정세가 전개되면서 러시아의 대한반도 정책은 혼선과 모순을 노출했다. 1907년 6월30일 회의가 막상 개막되자 러시아는 대한제국 대표의 회의장 입장을 거부했다.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제로 빼앗은 일본의 침략상을 세계에 알리고 국제여론의힘을 빌려 국권을 되찾으려 한 고종의 마지막 시도가 무참하게 꺾이는데 러시아가 일조한 것이다. 러시아의 외교정책이 이처럼 방향을 튼 이유는 무엇일까.일본과의 비밀협상이 진행중이었기 때문이다.양국은 1907년 7월30일 체결한 협약에서 대한제국과 만주,몽골 등 3개 지역에 대한 이해득실을 각각 정리했다.두나라는 ▲만주에서 양국간 분계선을 확정하고 ▲러시아는 일본과 대한제국간에 진행되고 있는 정치적 결속에 대해 간섭과 방해를하지 않으며 ▲일본은 외몽골에서 러시아의 특수권익을 승인한다 ▲쌍방은 협약체결을 비밀로 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러·일비밀조약 체결 한달전에 고종이 밀사를 파견하자당황한 러시아 외무부는 평화회의 의장인 넬리도프(전 파리주재 러시아 대사)에게 부랴부랴 전문을 보내 입장을 거부토록 지시했다.넬리도프도 “한국인들이 왔지만 접견을거부했다”는 보고문을 본국에 띄웠다.뿐만 아니라 러시아 외무부와 주일 러시아대사 등은 대한제국의 헤이그밀사파견에 대한 정보를 비밀리에 일본측에 흘렸다.밀사들의 회의장 입장이 좌절된 뒤 이토(伊藤博文)가 고종에게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양위를 요구한 것이 그 방증이다. 고종황제의 측근인 윤택영(순종의 장인)과 권신목(영어통역원)이 총영사관으로 찾아와 헤이그회의에 참석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으나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고 설득해보냈다.또 이종호(이용익의 손자)를 위시한 일당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연해주지사에게 헤이그에 갈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해 왔다는 주지사의 전보를 받고 저지하도록 조치했다.(1907년 7월25일 플란손 총영사가 헤이그밀사사건과관련,외무부에 보낸 보고서) 국제정세에 어두워 러·일비밀협상이 진행중인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고종은 니콜라이2세와 러시아의 ‘변함없는우정’만 믿고 3인의 밀사를 파견했던 것이다.결국 밀사들은 황제접견은커녕 외무장관도 만나보지 못했다.러시아 외무부는 밀서를 서류철속에 보관해 놓았을 뿐이다. 러시아는 대한제국에서 포츠머스조약(1905년 9월5일 러·일전쟁후 양국이 미국 포츠머스에서 체결한 강화조약)을엄격히 준수하려고 한다.이 조약으로 외무부는 대한제국이 러시아의 지원이나 협조를 얻어 일본의 압제를 벗어나려는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때문에 러시아 지방당국은 전고종황제(헤이그밀사사건으로 1907년 7월19일 순종에게 양위)정부의 지시에 의거,러시아 국경안에서 투쟁하는 한인폭도(의병)의 기도를 분쇄하고 있다.…한인들은 러시아가 대한제국의 독립투쟁을 바란다는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헤이그에서 개최된 평화회의에 갑작스러운 대한제국 밀사의 출현은 서울에무질서를 발생시켰으며 일본은 이 기회를 활용해 분명한 본보기(고종의 퇴위)를 보였다.일본에 구실을 주는 한인들의 항일투쟁 고무발언을 삼가야 한다.(1908년 10월6일 외무장관이 새로 취임한 소모프 총영사에게 보낸 훈령) 니콜라이2세는 이 훈령문 상단에 “공감한다.”는 친필의견을 남겼다.지금까지 러시아가 적극 후원한 헤이그밀사파견이 일본의 집요한 방해공작에 의해 무산됐다는 학설과는 달리 헤이그밀사사건은 대한제국과 만주,몽골을 맞바꿔친 러시아의 냉혹한 국제외교의 부산물이었음이 증명된 것이다. ■아관파천의 막전막후 1896년 2월2일 전문으로 보고한 바와 같이 신변의 위협을느낀 고종이 밀지를 보내 수일안에 왕세자와 함께 공사관에 피신하겠다는 희망을 밝혀왔다.전임 대리공사 베베르와 함께 고종의 요청을 거부하지 않고 보호하기로 할 수밖에 없었다.다만 궁중을 떠나는 날짜와 시간을 사전 통보해줄 것을 부탁하고 고종의 밀지를 전해온 이범진에게 궁중에서 러시아공사관까지 오는 도중 예상되는 위험성을 지적해 주었다.이범진은 고종이 궁중에서 더 많은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미 모험을 무릅쓰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다음날(2월3일) 고종은 고맙다는 말을 전하면서 ‘2월9일 저녁 공사관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했으나 이날 결행하지 않고 경비병 증원을 요청해왔다.공사관은 알렉세예프 극동총독에게 긴급요청,2월10일 해군대령 몰라스가 100명의 수병을 인솔하고 서울에 왔다.고종은 2월11일새벽 7시30분에 공사관에 왔다.(1896년 2월11일 스페이예르 대리공사가 로바노프 외무장관에게 보낸 보고문)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의 피신을 결심한 뒤 측근 이범진을 통해 밀지를 보내고 당초 결행키로 한 날짜를 어겨가면서 피신하기까지 10일동안의 급박했던 순간을 보고한 비밀전문 내용이다.당시 서울에는 전임 베베르 대리공사도함께 있었다.멕시코 공사로 발령을 받은 베베르가 업무인수인계를 위해 서울에 남아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일본주재 러시아공사 히토로보가 갑자기 사망하자 러시아는 고종과의 친분을 고려,스페이예르를 도쿄로 보내고 베베르를 유임시켰다. 문서내용에 따르면 아관파천은 대한제국에서의 주도권을노리고 고종과 친러파들의 공사관 피신요청을 모르는 척들어준 러시아의 ‘기획외교’의 결과물처럼 보인다.물론서울에 부임해온 지 한달밖에 안된 스페이예르 대리공사의 입장에서는 주재국 국왕의 공사관 피신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맞아 다소 흥분,실체를 부풀렸을 수도 있다.당시 서울주재 대리공사로 10년가까이 근무한 베테랑 외교관이던베베르는 1903년에 쓴 수기 ‘1898년 전후 대한제국’에서 “뜻밖의 정변이 발생했다.러시아공사관 경비해군은 160명이었으나 서울주둔 일본군 수비대는 1000명이 넘었다.러시아는 이때부터 이전 일본이 누리던 영향력을 대신하게되었으며 한·러관계에 새로운 장이 열리기 시작했다.”라고 외교적으로 해석했다.스페이예르는 러시아공사관에 375일동안 피신해 있던 고종이 환궁한 지 1년도 채 안된 1898년 2월21일 전문에서도 “고종에게 러시아공사관으로의 피신을 권했다.라고 보고하는 등 제2,제3의 아관파천을 꾀했다.이에 대해 베베르는수기에서 “스페이예르가 대한제국 정부와 독립협회,그리고 일본과 자주 충돌하는 경솔한 행동을 해 러시아의 영향력이 상실됐다.”고 질책하고 있다. ■고종의 러시아 망명기도 고종의 러시아공사관 피신은 이후에도 여러차례 거론된다.최근 이범진 공사가 수차례에 걸쳐 고종황제가 친일파의새로운 간계 때문에 위험한 상태에 있다고 말한다.필요할경우 다시 러시아공사관에 피신하려 한다고 하며 친일파들은 의친왕 이강을 제위에 오르도록 일을 꾸미고 있다고 한다.(1902년 5월15일 람즈도르프 외무장관이 파블로프 대리공사에게 보낸 비밀전문)고종황제가 위험에 처했다는 어떠한 증후도 현재 포착하지 못했다.(1902년 5월19일 파블로프가 외무장관에게 보낸 답신) 이처럼 러시아공사관으로의 재피신 가능성이 오가는 가운데 러시아망명에 대한 비밀보고서는 1903년에 처음 등장한다. 오늘 고종황제가 신임하는 환관을 통해 일본이 대한제국을 점령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서울주둔 일본군은 궁정을 포위하고 있고 그들에게 매수된 시위대가 자신을 살해할 것 같으니 어떻게 하면 좋은지에 대해 러시아정부의 조언을 요청했다.아마 고종황제는 자신이 위기에처하면 공사관이 러시아로 망명을 할 수 있도록 은신처를제공하겠다는 약속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1903년 12월30일 파블로프가 외무부에 보낸 비밀전문) 대한제국 황제가 일신상에 위험이 있을 경우 불가피하게러시아공사관에 피신처를 구하거나 아니면 러시아로 탈출하는 문제에 대해 러시아측의 협조가능성을 은밀하게 타진해왔다.고종은 대궐을 빠져나오기 쉽고 피신을 예상할 수없도록 하기위해 대비(1904년 1월2일 서거)의 시신을 이장할때 사당에서 공사관 담장의 샛문을 통해 오겠다는 것이다.(1904년 1월21일 파블로프가 외무부에 띄운 보고서) 하지만 이에 대한 러시아 본국의 답신은 없었다.고종이 헤이그밀사사건으로 퇴위하고 난 뒤인 1908년부터 합병직전인 1910년 사이에 망명설이 집중적으로 꼬리를 물고 나오기 시작했다. 전 고종황제가 배편으로나 육로로 러시아 망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고종이 러시아영토에 출현하면 다시 극동에 심각한 위협이 초래되어 대한제국 문제를 둘러싼 한·러관계는 긴장이 조성될 것이다.그러므로 가장 바람직한조치는 극동정세를 복잡하게 만들 수 있는 고종황제의 망명계획을 거부하는 것이 좋다.(1908년 11월20일 도쿄주재말레비치대사가 외무부에 보낸 비밀전문). 전 고종황제가 러시아나 청국으로 피신할 마음을 갖고 있다.이는 황제자신이나 백성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권고를 했다.(1909년 1월8일 소모프 총영사가 외무부에 보낸 비밀전문) 당시 고종은 일본의 핍박과 잇따르는 시해기도에 몸도 마음도 망신창이 상태였던 것 같다.심지어 “차라리 해외에나가 죽어도 좋다.”는 말을 소모프 총영사에게 했을 정도였다.의병의 도움을 받아 일본 감시요원을 따돌린 뒤 러시아나 청국국경까지 탈출할 기회를 엿보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역사에 ‘만약’이란 가정법은 없다지만한일합병이전에 고종의 러시아 망명이 성공했더라면 역사는 또 어떻게,어디로 흘러갔을지 자못 궁금한 장면이다. 노주석기자 joo@
  • 경기도 고양지역 시민·환경·사회단체가 선정한 시민후보 16명 출마

    6·13 지방선거에 경기도 고양지역 시민·환경·사회단체가 선정한 시민 후보 16명이 대거 출마한다. 지역NGO가 이처럼 특정지역을 전략 거점화해 기초 선거구의 절반에 가까운 다수 후보를 출마시키는 것은 처음이어서 선거운동과 당락여부 등이 주목된다. 고양환경운동연합·고양시민회·녹색소비자연대와 러브호텔공동대책위 등 고양 지역 시민단체 연대모임인 ‘2002고양시민행동’은 15일 고양시 마두동 일산 신협빌딩에서전진대회를 갖고 이들 후보의 공식출마를 선언했다. 시민후보는 시장 1명,도의원 1명,시의원 14명으로,시장출마자인 이치범(47)고양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비롯한 시민·환경·사회단체 운동 경력자와 김범수,심규현,김유임 등 현역 시의원 3명이 포함돼 있다. 고양시민행동측은 출마선언에 앞서 배포한 성명서를 통해 “시민후보는 낡고 부패한 정치를 뛰어넘어 새로운 대안세력으로 자리하고,한국 현대사에 시민혁명으로 기록될 선거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 3월부터 고양시민행동을 결성하고 후보자격검증을 위한 40인 선정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해왔다. 고양 한만교기자
  • 한나라 대표 서청원 ‘유력’

    한나라당이 14일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새 대표를 선출한다.이에 따라 금주 중 사무총장 등 주요당직 인선과 함께 새지도체제가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선출직 최고위원 7명이 호선(互選)을 통해 뽑게 될 대표에는 서청원(徐淸源) 의원이 유력하다.그는 지난 10일 최고위원 경선에서 1위를 차지,가장 유리한 위치에 올라 있다.대의원들의 표심(票心)을 거스르면서까지 다른 인물을 택해야 할 이유도 없는 상황이다.2위를 차지한 강창희(姜昌熙) 최고위원도 “1위가 대표를 맡는 것이 순리”라는 뜻을 밝혔다.이회창(李會昌) 대통령 후보 진영도 서 의원이 이 후보와 호흡이 잘 맞는다는 점에서 내심 서청원 대표를 기대하고 있다. 강재섭(姜在涉) 하순봉(河舜鳳) 김정숙(金貞淑) 최고위원등 득표부진에 상심해 지난 11일 상견례에 불참했던 인사들도 그동안 심경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이 후보가 직접전화를 걸어 위로했다는 후문이다. 이 후보가 지명할 최고위원으로는 이부영(李富榮) 전 부총재가 당내 개혁세력 배려 차원에서 유력시된다.반면 새대표 몫의 지명직 최고위원에는 이연숙(李연淑) 전 부총재와임진출(林鎭出) 의원 등 여성이 거명된다. 후속당직인선과 관련,사무총장에는 이상득(李相得) 현 총장의 유임설 속에 2표차로 최고위원 경선에서 떨어진 김일윤(金一潤) 의원 기용설이 나돌고 있다.이 총장은 유임을희망하고 있으나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선회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다. 14일 임기가 끝나는 이재오(李在五) 원내총무의 후임으로는 3선의 이규택(李揆澤) 의원과 재선의 맹형규(孟亨奎) 안택수(安澤秀) 임인배(林仁培) 김문수(金文洙) 의원 등이 출사표를 던졌다.오는 17일 의원총회 경선으로 승자를 가리게 된다. 정책위의장에는 나오연(羅午淵) 이한구(李漢久) 임태희(任太熙) 의원 등이 이강두(李康斗) 의장의 후임으로 거론된다. 대변인에는 대선후보 경선기간 이 후보의 대변인을 맡았던이병석(李秉錫) 의원과 당내 소장파 모임인 미래연대의 오세훈(吳世勳) 원희룡(元喜龍) 의원 등이 거명된다. 진경호기자 jade@
  • 한국공항공사 윤웅섭 사장 유임

    한국공항공사는 최근 실시한 초대 사장 공채에서 윤웅섭(尹雄燮·60) 현 사장이 유임됐다고 13일 밝혔다. 서울 출생인 윤 사장은 67년 경찰간부 후보로 경찰에 입문,남대문경찰서장과 충남지방경찰청장,대통령치안비서관,서울지방경찰청장 등을 지낸 뒤 지난해초 한국공항공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한준규기자 hihi@
  • [러 외교문서로 밝혀진 구한말 비사] (1)초대 대리공사 베베르의 수기

    1884년 첫 수교,1990년 재수교….한국과 러시아가 외교관계를 맺은지 118년이 지났지만 한·러 관계사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첫 수교 이후 한일합방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대한(對韓)정책은 일본과 더불어 38선 남·북 분할점령,한반도 전역 무력점령 및 보호국화,독립국가 유지안을 중심으로 변화해왔다.남·북 분할점령안은 해방 및 6·25전쟁 이후 현실화됨으로써 한국민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대한매일은 박종효 전 모스크바대학 교수가 지난 10년 동안 러시아 각지에 흩어져 있는 20여개 한국관련 문서보관소를 샅샅이 뒤져 수집한 3000여건의 외교,정치,군사,경제관계 보고서 중 1884년 수교 이후부터 1910년 한일합방을전후한 시기의 미공개 외교문서 1000여건을 해제해 최초로 공개한다. 100여년만에 햇볕을 본 이 극비문서에는 조선주재 초대러시아 대리공사였던 베베르의 수기를 비롯,1·2차 군사고문단 파견의 실상,고종과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2세가 주고받았던 친서,러시아측의 기획외교로 인한 헤이그밀사 파견 실패 등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는 새로운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주 2회씩 10회에 걸쳐 계속되는 이번 연재물은 그동안 미흡했던 한·러 관계사의 복원은 물론,우리 근세사에서 잘못 알려진 부분들을 바로 잡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러시아문서보관국 서고에 묻혔다가 100년만에 햇볕을 본베베르의 수기 ‘1898년 전후 대한제국’은 러시아의 대한(對韓)정책의 실상과 당시 우리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베베르는 수기 전반부에서 자신이 공사로 재임했던 1898년 이전의 대한제국의 실정과 러시아의 극동정책에 관해기술했다.후반부에서는 1903년 고종재위 40년을 맞아 경축 러시아특사로 다시 찾은 대한제국이 일본의 경제식민지로 전락한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했다.모두 144쪽 분량으로된 이 수기는 자필로 작성됐지만 이를 보고받은 러시아 외무부가 황제에게 보고하기 위해 타이핑했다. 1895년 10월8일 민왕후가 일본인에 의해 잔인하게 시해된 사실이 알려지자 복수를 위해 전국적으로 봉기가 일어났다.민왕후가 시해당한 후 수개월동안 고종왕은 일본군의감시아래 포로처럼 대궐에 갇혀 있었다. 베베르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전말을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그는 사건 발생 당시 현장을 목격한 러시아인 건축기사이자 궁궐경비원이었던 사바틴의 증언서와 자신의목격담을 난수표 암호전문 형식으로 러시아 외무부에 잽싸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니콜라이2세 황제는 이 보고서를 읽고 친필로 “천인공노할 사건이니 좀 더 자세히보고하라.”고 지시했다.이어 극동지역에 주둔하던 아무르군관구 사령관에게 비상경계에 들어가도록 지시했다. 민왕후가 시해당한 후 수개월동안 일본군의 감시하에 포로처럼 대궐에 갇혀있던 고종은 1896년 2월11일 아침 7시30분 여인복장으로 변장하고 왕세자와 함께 부인용 가마 두 대에 앉아 공사관으로 피신해오는 데 성공했다.뜻밖의 정변이 발생한 것이다.고종의 탈출소식을 들은 수천명의 군중이 공사관 담벽 아래로 몰려와 국왕의 탈출을 만세로 환호했다.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해온 이후 모든 국사는 러시아제국의 국기가 게양된 러시아공사관에서 경비해군 160명의 호위 아래 행해졌으며,각부 대신들은 공사관건물 안에 병풍을 친 임시 사무실을 사용했고 본인과 협의하라는 왕명을 받으면 어떤 사건이든 대신과 단둘이서 논의할 기회가 주어졌다. 고종이 러시아공사관 옆에 위치한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할 때까지 1년동안 자신이 대한제국의 국사를 사실상 좌지우지했음을 드러낸 대목이다.이때부터 러시아는 이전에일본이 누리던 영향력을 대신했다.베베르가 분석했듯이 러시아는 1884년 수교 이후 10여년간 대한제국 문제에 무관심했다.당시 러시아의 주된 관심은 청국이었으며 시베리아의 경제 여건을 호전시키는 데 있었다.따라서 러시아공사관의 임무는 청과 일본이 대한제국을 ‘독식’하지 못하도록 소극적으로 방어하는 데 있었다.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 1년은 베베르와 러시아에는 더할 나위 없는 호기였지만 고종에게는 암울한 시기였다.당시 러시아공사관 서기였던 쉬테인은[“그는 두개의 방에 왕세자와 각각 따로 앉아공사관 뜰을 무심히 바라보기도 하고 때로는 서서 방안을 이리저리 거닐었다.가끔씩은 두려움에 떨며 이웃 궁궐(경운궁)에 계신 노대비(명헌태후)에게 문안을 드리려고 몰래 세자와 함께 가곤 하셨다.그리고 남은 시간은 방안에 은둔하고 앉아 계셨다.”]고 외무부에 보고했다.고종의 공사관 생활은 수인(囚人)과다를 바 없었다는 증언이다. 청·일전쟁 후 지방세가 서울로 납입되지 않아 국고는 텅 비어 있었다.일본인 재정관리자와 고문관이 떠나버리자국고에 잔액이 얼마 남았으며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관리들의 월급,특히 군인과 경찰관에게 제때 월급을 지불하기 위해서는 탁지부(재무부)의 재정실정을 밝혀야 했다. 베베르는 영국인 해관총무사 브라운을 재정고문으로 천거해 이 일을 맡겼다고 밝혔다.브라운은 지방에서 올라온 수입을 올바르게 수령,장부에 기입하고 지출을 줄여 관리들에게 월급을 지불할 수 있었으며,이때부터 관리에 대한 통제가 이뤄졌다고 기록했다.1896년말 국고는 1,660만엔의여유가 생겼으며,일본에서 차관으로 들여온 300만엔 중 100만엔을 상환하고 이듬해 가을 또 100만엔을 갚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고종이 환궁한 후 신변안전책으로 단행된 조선군의 개편작업에도 베베르가 깊숙이 개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고종왕의 요청을 받아들여 시베리아에 주둔하고 있던 러시아군에서 2차에 걸쳐 군사교관단을 초청,대궐시위대 2개 대대를 교육시켰으며 러시아식 군운영체계를 도입했다.여타의 대한제국군들은 러시아교관단이 관리하는 대대로 들어오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베베르는 러시아국가회의 체제로 의정부의 개편,13개 도와 342개 군으로의 행정구역 분할,범법자에 대한 처벌 법규 시행,재정고문 알렉세예프 파견 요청,러시아어학교 개교,러청은행 지점 개설 등 자신의 업적을 열거했다.이 기간동안 서북 석탄광개발과 압록강,두만강변의 벌목이권을러시아가 따낸 사실도 털어놨다. 그는 대표적인 친한파인사로 알려졌지만 고종과 황실인사는 물론,한국과 한국인을 혹평하기도 했다. [대한제국을 떠난 지 5년만에 다시 와보니 거리의 남루한복장은 이전보다 두배나 많았다.…고종황제는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 엄비(嚴妃)를 따라 미신을 신봉하고 있었다.…정치적인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있었다.일본인들이 다시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한국인은 러시아,일본 기타 열강의 국제관계 및 그들의 정치적 의도를 제대로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나라가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제대로 몰랐다.…강대국과 종속관계에 놓여 독립심이 박약하고 의타심이 강하다.…고종은 아주 호감을 주는 인품이지만 많이 쇠약해졌으며,공적과 능력에 따라 관직에 임용되지 않고 뇌물의 액수에 의해 결정됐다. 1903년 다시 서울에 와보니 일본인들은 대한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면서도 정치,경제적 예속화를 촉진시키는 데모든 수법을 동원하고 있었다.한국인들은 일본의 속셈을알지 못했고,러시아는 법적으로 그런 정책을 중지시킬 권한을 보유하고 있지 못했다.일본은 은밀하면서도 조직적으로 대한제국의 조정과 국민자산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는 일본의 영향력이 확산될 수밖에 없는 7가지 이유를열거하면서 대한제국이 조만간 일본의 정치적 속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대한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은 2만명을 넘으며,일본인 1인당 한인 5명이 식모,사무실 서기,잡부,납품상인 등으로고용되다시피 했다.…대한제국 연간 무역액의 72%를 일본이 차지할 정도였다.…1898년 9월 경부선철도 부설권 협정서 중 ‘철도에 필요한 역사,창고 등 대한제국측이 제공하는 부지는 철도회사에 귀속되며 역사는 필요한 곳에 건설하되 역 앞에는 일본인 이외 타민족의 거주를 금한다.’는 불평등 조항 때문에 철도부설과 동시에 대한제국의 철도및 역사주변 땅은 일본의 소유물로 전락했다.…일본은 대한제국과 다른 국가들이 통신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서울∼부산∼일본해저 전신선을 통제했다.…개항지마다 일본은행이 개설돼 일본엔화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노주석기자 joo@ ■베베르는 누구 우리나라에 부임했던 역대 외교관 중 초대 러시아 대리공사 겸 총영사였던 베베르만큼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한외교관은 없었다. 베베르는 1885년부터 1897년까지 12년 동안 공사로 재직하면서 고종의 최측근 인사로 통했다.그는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 머문 1년 동안 친러시아내각을 출범시키는 등 대한제국의 국정을 사실상 좌지우지했다. 고종은 베베르가 멕시코 공사로 발령나자 ‘이임이 유감스럽다.장기간 유임시켜달라.’는 친서를 니콜라이2세에게 보냈다.니콜라이2세는 고종 재위 40주년 경축식(1902년)에 당시 야인이던 베베르를 사절단장으로 특파하기도 했다. 이번에 발굴된 문서 중에도 ‘베베르는 고종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텁고 한국인들에게 지금도 좋은 평가를 받고있다.’‘베베르를 경축사절단장으로 결정한 것은 고종황제에게 가장 기쁜 일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 나온다.고종은 서울에 온 베베르를 자문역으로 붙잡기 위해 니콜라이2세에게 서울체류 연장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베베르에 대한 학계의 연구실적은 전무하다시피하다.그의 출생연도와 학력,수기 등도 이번의 문서 공개를 통해 처음 알려지게 됐다. 베베르는 1841년 6월5일에 태어난 독일계 러시아인.부친은 루터교 선교사였다.페테르부르크 제국대학 동양어학부를 졸업하고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5년동안 중국어 공부를 했으며 이후 톈진영사와 일본 총영사를 거쳐 조선주재초대 대리공사로 부임했다. 베베르는 러시아 외무부와 중국,일본 등 주변국 외교가에서 ‘친한파’로 낙인찍힌 데다 수뢰사실(2만엔)이 외무부에 알려지는 바람에 서울을 떠나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노주석기자 ■박종효 前모스크바대 교수 “러 문서국 20곳서 10년간 자료 뒤져” “러시아에 산재한 20여개의 국립문서보관소에는 한국과관련된 방대한 양의 비밀문서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방치돼 있습니다.러시아가 한국 근대사와 현대사에 미친 영향을 감안하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러시아 문서수집 및 번역 부문에서 국내 최고의 권위자로 꼽히는 박종효(朴鐘孝·65) 전 모스크바대학 교수는 지난 90년 한·러 재수교 직후 러시아문서보관소가 외국인에게도 개방되자 가장 먼저 그곳으로 달려갔다.문서보관소는전세계에서 몰려온 학자들로 만원사례를 이뤘지만 한국관계문서를 찾는 학자는 박 전 교수뿐이었다. “문서보관소에 소장된 문서를 조사,열람한 뒤 복사하려면 기록부에 이름을 남기게 되는데 한국 학자들의 이름은본 적이 없어요.” 러시아어와 러시아사,한국사,한·러관계사를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 학자들이 드문 탓도 있었지만 소장된 문서가외교,군사,경제 등 전문 분야의 필사본이어서 웬만한 학자들은 엄두를 내기도 힘들었다.산더미처럼 쌓인 문서보관소의 서고를 뒤져 한국관련 문서를 찾아내기란 숨은 그림찾기나 마찬가지였다.최근에야 러시아어와 역사를 전공하는소장학자 몇명이 한국관련 자료 수집작업에 합류했다. 박 전 교수는 99년부터 2년 동안 국제교류재단으로부터연구비를 지원받아 문서찾기와 번역,해제작업을 해왔으며,조만간 ‘러시아국립문서국 소장 한국관련 문서 요약해제집’이란 책을 펴낼 계획이다. “러시아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된 비밀문서의 목록을 총망라,문서목록해제집을 간행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문일입니다.제정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군사문서보관소,연방문서보관소의 서고에 숨겨져 있던 문서들을 분석해 보면 러시아가 견지해온 한반도정책의 과거는 물론,현재와미래까지 유추할 수 있습니다.” 박 전 교수는 러시아측의 공개 제한조치로 ‘극비문서’들이 소장된 크렘린문서보관소와 KGB문서보관소에 접근할수 없었던 점을 아쉬워했다.그는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어과를 졸업한 뒤 소련 아카데미 러시아역사연구원에서 박사학위와 교수자격(독토르)을 땄고 모스크바대학 객원교수로대학원생들에게 한·러관계사를 강의했다. 노주석기자
  • 김대통령 탈당 관가 표정/ ‘중립내각’ 개각설로 술렁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6일 민주당을 탈당하자 ‘중립내각’ 구성을 위한 개각설 등으로 관가가 술렁이고 있다.청와대에서는 일단 개각 가능성을 부인했지만 모두들 촉각이 곤두서 있다.특히 장관이 민주당적을 갖고 있는 6개 부처가 관심의 대상이다. 총리실은 이한동(李漢東) 총리가 당적이 없어 중립내각의 수반으로 문제가 없다고 ‘유임’쪽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총리실의 한 고위관계자는 “총리 교체를 위해서는국회의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지금 정치권 상황에서 보면 어떤 인물을 새로 총리로 임명한다 하더라도 청문회가 쉽지 않다.”면서 적어도 6월 지방선거 때까지는 이총리가 유임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중립내각의 취지에 맞게 정치인이아닌 중립적인 인사가 총리를 맡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경제부처들은 개각 가능성보다는 정치권과의 협조관계 강화 필요성에 주목하고 있다.바뀐 지 얼마 안되는 전윤철(田允喆) 경제부총리는 “경제와 민생문제를 푸는 데 여야가 없어졌기 때문에 앞으로정당과 협조해 의견을 적극 수렴,정책에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근식(李根植) 행자부장관은 지방선거의 엄정한 관리를위해 국무위원 가운데 처음으로 6일 민주당에 탈당계를 제출했다.김동신(金東信) 국방·김동태(金東泰)농림부장관도 이날 탈당했다. 한명숙(韓明淑) 여성부장관은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아동특별총회에 대통령부인 이희호(李姬鎬) 여사와 함께정부대표단으로 출국,탈당계를 제출하지 않았지만 곧 탈당할 전망이다.방용석(方鏞錫) 노동부장관도 당적을 떠날 것으로 보인다. 이들 국무위원은 “민주당을 탈당하더라도 국정운영에는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앞으로 야당과도 긴밀한 협조를 통해 월드컵 등 국가 대사를 원만히 치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부처종합
  • 스포츠서울21 사장 변우형씨

    ㈜스포츠서울21은 29일 임시주주총회 및 이사회를 열고새 대표이사 사장에 변우형(邊雨亨·59)씨를 선임했다. 변 신임 사장은 서울 출생으로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하고서울신문에서 사회부장,도쿄특파원,논설위원,스포츠서울편집국장을 지낸 뒤 대한매일 출판본부장,동아TV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다. 이와 함께 이종남(李鍾南)씨와 박개성(朴介成)씨가 각각신임 이사와 감사로 선임됐으며 이건영(李建永) 이사는 유임됐다.
  • IPI 한국위원회 새 이사·감사 선출

    (국제언론인협회)IPI 한국위원회는 23일 이사회를 열고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을 한국위원회 위원장으로 유임시켰다.이사회는 또 유승삼 대한매일 사장 등 모두 23명의 이사와 감사2명을 선출했다. 이사 및 감사 명단은 다음과 같다. △이사=김경철(KH내외경제 사장),김 근(연합뉴스 사장),김대성(제주일보 사장),김명수(경인일보 사장),김상훈(부산일보 사장),김서웅(서울경제신문 사장),김성열(동아일보 전 고문),김정국(문화일보 사장),김종태(광주일보 회장),김중배(MBC사장),김학준(동아일보 사장),박권상(KBS사장),서창훈(전북일보 사장),설용수(세계일보 사장),유승삼(대한매일 사장),윤세영(SBS회장),장재구(한국일보 회장),장준봉(경향신문사장),정재완(매일신문 사장),최승익(강원일보 사장),최학래(한겨레신문 사장),현소환(IPI종신회원),홍석현(중앙일보 회장) △감사=장대환(매일경제신문 사장),최준명(한국경제신문 사장)
  • [오늘의 눈] 진부총리 사퇴와 외신반응

    진념 전 경제부총리가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끝내물러났다. 정치권의 ‘강권’에 못이겨 어쩔 수 없이 경기지사 선거를 택한 모양새다.따라서 최종 결정까지 진 전 부총리가고뇌를 거듭했을 법하다.특히나 그는 관료생활 40년 중 최고의 절정기를 보내고 있던 터였다. 경기가 본격 상승세를 타는 가운데 국가신용등급(무디스발표)이 A로 오르면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한테도 극찬을 받았다.김 대통령은 “연초 개각 때 고심 끝에 유임시켰는데,정말 잘한 결정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진 전 부총리가 정치를 택함으로써 개인은 물론이고 우리 경제에까지 ‘불확실성’이 더해지지 않을까 염려된다.경기회복과 동시에 과열양상을 보이는 우리경제의 현 상황은 차치하더라도 외국에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우려의 시각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진 전 부총리의 출마설이 나온 이후 외신은 줄곧 한국경제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왔다.외국인들이 가장 주목하는대목은 한국경제의 예측 가능성과 투명성.그들은 조금이라도 불안한 낌새가 보이면 발을 빼는 속성이 있다.97년 외환위기도 그렇게 시작됐다. 진 전 부총리는 이를 의식해 “경제개혁이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 등 정치일정에 영향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자주 강조해 왔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진 전 부총리 자신이 정치바람에 휩쓸린 꼴이 돼버렸다.외국인들에게 이런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게 재정경제부 직원들의 푸념이다. 한 외신은 이번 진 전 부총리 건을 99년 7월 미국 클린턴행정부 시절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의 사퇴에 비유했다.진전 부총리가 루빈 장관만큼이나 우리경제에서 큰 무게를차지하기 때문이다.그러나 두 사례는 내용면에서 비교가안될 정도로 다르다.루빈 장관은 경제가 호황일 때 ‘개인적인 이유’(가족과 함께 하기 위해)로 물러났다. 그러나 진 전 부총리는 경제의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정치적인 이유’로 나갔다.그가 차라리 개인욕심 때문에 자리에서 물러나는 상황이 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이유다. 김태균 경제팀 기자 windsea@
  • 軍장성급 24명 승진·전보

    정부는 1일 임기가 만료된 김종옥(金鍾玉·육사24기)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에 남재준(南在俊·육사25기·중장)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을 대장으로 승진·내정한 것을 비롯,승진자 17명을 포함해 육·해·공군 장성급 24명에 대한 인사를단행했다. 남 내정자는 2일 오전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정식 임명된다. 국방부는 또 육사 27기 출신의 박승춘(朴勝椿) 합참 군사정보부장과 김윤석(金潤錫) 육본 감찰감,이상태(李商泰) 육본정보작전부장,학군사관후보생(ROTC) 8기 출신의 방판칠(方判七) 국방부 동원국장 등 소장 4명을 이날자로 승진,공석인수방사령관과 특전사령관,군단장 등에 각각 임명할 예정이다. 차영구(車榮九·육사26기) 국방부 정책보좌관은 중장으로진급했으나 보직의 중요성을 감안,유임될 것으로 알려졌으며 천기광(千基光·공사18기) 공군 전투발전단장은 중장 진급과 동시에 공군 참모차장에 임명됐다. 또 육군 참모차장에 신일순(申日淳·이하 육사 26기) 교육사령관,합참 작전본부장에 이상희(李相熹·육사 26기) 합참전략기획본부장,합참 인사군수본부장에 양우천(梁宇千) 8군단장,교육사령관에 류해근(柳海槿) 특전사령관을 각각 전보·임명했다.합참 전략기획본부장에 송근호(宋根浩·해사22기) 합참 인사군수본부장,합참 차장에 주창성(朱昌成·공사16기) 공군사관학교장,공군사관학교 교장에 박성국(朴成國·공사16기) 합참 차장을 보직 임명했다.이밖에 김근태(金近泰·육사 30기) 합참 작전차장을 포함한 준장 9명이 소장 진급과 함께 사단장으로 배치될 예정이다.권영달(權榮達·육사28기) 준장은 소장으로 진급했으나 합참 군사정보부장으로 보직유임됐다. 김경운기자 kkwoon@ ◆남재준 연합사 부사령관 프로필. 남재준 신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내정자는 원리원칙에 충실한 전형적인 장교형 군인.최근 한·미 연합작전의 중요성을감안,작전통인 그가 발탁됐다는 후문.한시(漢詩)에 밝고 술과 골프를 즐기지 않는다.부인 김은숙(53)씨와 2녀. ▲서울(57)▲육사 25기 ▲수도방위사령부 참모장 ▲6사단장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수방사령관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 사이버시대의 혁명가 어록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마르코스 지음 해냄출판사 펴냄]검은색 스키마스크를 쓰고 멕시코 사파티스타 반란군을 지휘하는 전사이자 시인이자 철학자.인터넷 시대,정의의 언어로사이버 공간을 파고들어 전 세계의 행동적 진보 진영에 희망의 빛이 되고 있는 살아있는 혁명가. 2001년 3월11일,전세계의 주목 속에 벌어진 사파티스타 반란군의 멕시코시티 평화행진은 반란군 부사령관 마르코스(40대·본명 라파엘 세바스티안 기옌 비센테)를 신비의 인물로 또한번 부각시켰다.20만 군중의 지지를 받으며 멕시코시티에들어선 그의 곁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주제 사라마구,영화감독 올리버 스톤,미테랑 프랑스 전 대통령 부인인 다니엘 미테랑 등 유명인사들이 함께해 세계적인 연대를 과시했다. 무엇이 마르코스를 이 시대의 혁명전사로 만들었으며 그에게서 용기와 인간 존엄의 희망을 얻게 하는가.마르코스 선집‘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후아나 폰세 데 레온 엮음,윤길순 옮김)는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유학한 부유한백인 인텔리 출신인 그가 마야족의 후예인 치아파스 원주민촌에 들어가 총을 잡을 수밖에 없게 된 이유 등 정치적 신념과 문학적 소산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이다.엮은이는 삼엄한 경비를 뚫고 치아파스타 정글을 두 차례 방문,그의 허락을 받고 인터넷 등에 산재된 그의 성명서와 편지,문학적인 글들을 모아 이 책을 냈다(2001년).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이뤄진다.1부에는 멕시코의 사회정치적 상황에 관한 논평 등 정치적인 글,2부에는 마르코스의 경험담과 편지 등 철학적인 글들이 실려 있으며 3부에는 멕시코 원주민의 정체성을담은 동화를 통해 마르코스의 순수한 영혼을 보여 준다. 글을 통해 마르코스는 “우리는 권력을 잡으려고 무기를 든것이 아니라 말을 하기 위해 나섰다.”며 정치적 견해가 해소되는 민주적 공간 창출이 행동의 이유임을 천명한다.마르코스는 “말로써 침묵을 죽이고,빛을 찾아 역사에 틈새를 내자.”며 인터넷을 통해 메시지들을 유포하며 세계의 지지를끌어들인다. 마르코스는 또한 “남과 다른 타자(他者)로 남기 위해 싸운다.”고 저항의 이유를 설명한다.그는 “우리 주위 저항의투사 가운데는 이웃도 있고 노동자도 있고 여성,동성애자,학생,젊은이들도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다르다’는것”이라면서 자신의 요구는 치아파스타 원주민들이 신자유주의의 폭압에 휩쓸리지 않고 독자적인 생존을 할 수 있도록 보장받는 것뿐이라고 말한다.미국의 언론인 애너 캐리건은이같은 마르코스의 혁명관을 두고 과거 라틴 게릴라들과의단절을 보여주는,최초의 포스트 모던 혁명이라고 규정한 바있다. 그러나 그의 글들 중에서 무엇보다 재미있게 읽히는 부분은3부이다.1장 ‘잠못 이루는 고독을 달래 주는 이야기’에서는 그의 인간적인 욕망과 불안,외로움 등 세속적인 단면들을 볼 수 있으며 2장 ‘많은 타자들의 이야기’에는 유머와 익살 속에 원주민 공동체의 신념을 읽을 수 있다.1만 8000원. 신연숙기자yshin@
  • 국민은행 사업본부별 부행장 18명 임명

    국민은행은 17일 통합은행 출범이후 첫 임원인사를 단행,사업본부별 담당부행장 14명을 임명했다. 기존 부행장 18명 중 11명은 유임되고 7명이 물러났다.3명은 내부에서 승진발탁됐다.재무기획 담당부행장(CFO)은 외부인사 영입을 추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 민영 대한매일, 초대사장 유승삼씨

    대한매일신보사는 13일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열어 민영화된 대한매일의 초대 대표이사 사장에 유승삼(劉承三·59)중앙일보 논설고문 겸 시민사회연구소장을 선임했다. 김행수(金幸洙·60) 상무이사는 전무이사로 승진했으며,황병선(黃炳宣·57) 이사는 유임되고 양해영(梁海永·59)전 대한매일 논설위원이 새 이사로 선임됐다. 신임 유 사장은 서울 출신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철학과를나와 지난 65년 언론계에 입문한 이래 서울신문과 중앙일보 등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특히 지난 97년부터 4년여간중앙M&B 사장을 지내며 적자를 흑자기조로 전환시키는 등탁월한 경영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우리사주조합측은 “유 사장은 기자 출신으로 언론산업의특성을 잘 아는 데다 경영 마인드를 겸비해 정부 등 다른주주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아 선임됐다.”고 밝혔다. 대한매일은 지난 1월16일 우리사주조합이 대주주(38.95%)가 되면서 민영화됐다.사주조합측은 이어 지난달 4일 사장공모에 나서 모두 38명의 후보 가운데 조합원의 압도적 지지를 얻은 유 사장을 추천했다.주총에는 대주주인 대한매일우리사주조합과 재정경제부·포항제철·한국방송(KBS)·산업은행 등의 주주가 참석했다.
  • 새달초 ‘별들 대이동’

    임기가 만료되는 한미연합사 부사령관(대장)과 군단장(중장)·사단장(소장) 등 육·해·공군 장성 인사가 내달초 단행된다. 13일 국방부와 육군에 따르면 이번 인사대상은 대장 1석과수방사령관·특전사령관·8군단장·9군단장 등 중장 4석,사단장 9석 등 소장 10∼11석 등이다.한미연합사 부사령관에는 선영재 육군 참모차장과 남재준 합참 작전본부장 등 육사 25기 2명이 후보로 거론되는 가운데 신일순 교육사령관과 이상희 합참전략본부장 등 육사 26기의 발탁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중장급 인사의 경우 수방사령관은 군단장을 지낸 인사 중에서 임명될 예정이며 특전사령관과 8군단장,9군단장에는 육사 27기인 박정주 2군참모장과 박승춘 합참 군사정보부장,송영근 3사교장,김윤석 육본 감찰감,이상태 육본 정보작전부장과 일반 출신인 조연식 육본 인사운영감,최인수 국방부군수관리관 등이 거론된다. 차영구 국방부 정책보좌관(소장)은 중장으로 진급,유임될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이번 인사에서는 또 육사 30기들이 처음으로 사단장에 진출하게된다. 한편 공석인 공군 참모차장(중장)에는 공사 18기인 천기광공군전투발전단장과 이진학 공군항공사업단장이 경합중이며,이른 시일안에 먼저 임명하는 방안이 적극 검토되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월드컵을 앞두고 지역안보 대비태세를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사단장 등 군 장성 인사를 예정보다 앞당겨 4월초에 단행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
  • 따가운 눈총 받는 김운용 재추대

    김운용 회장 재추대를 위한 대한체육회 ‘왕당파’의 ‘친위 쿠데타’가 갈수록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 회장의 사의 표명,일부 대의원과 측근들의 재추대 건의,대의원총회의 재추대 결의,대의원들을 상대로 한 서명운동 등으로 이어진 일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외부 여론은 오히려 악화일로를 달리는데 따른 것이다.심지어 체육회 내부에서조차 김 회장의 유임이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이 조심스럽게 대두되는 실정이다. 재추대 수락 여부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김 회장은 대의원총회 이후 회장실 출근만 하지 않을 뿐 측근들에게 각종지시를 내리며 사실상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상태다. 동시에 7명으로 구성된 부회장단은 외부와의 대화 창구를 김정행 부회장으로 단일화한 뒤 대의원들을 상대로 김 회장 재추대를 위한 서명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그러나 재추대 움직임에 대한 외부의 반응은 싸늘하기만하다.특히 회장 승인권을 가진 정부 당국은 ‘아니올시다’라는 단호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위 당국자는 모종의 알력설에 대해 “김 회장이 정부에대해 나쁜 감정은없을 것으로 본다.”고 일축하면서도 “복귀는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했다.그는 또 “김 회장이 이젠 국내 문제에서 손을 떼야 그간의 업적도 자연스럽게 PR되고 보기좋게마무리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현재 정부의 입장은 이같은 사태가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 직접 개입을 삼간 채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재야 체육단체의 반응은 정부보다 훨씬 강경하다.‘체육시민연대’의 김 회장 사퇴 촉구 성명에 이어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는 성명을 통해 ‘김 회장의 사퇴와 체육회 개혁을 촉구한다.’면서 김 회장 스스로 퇴임의사를분명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한편 부회장과 대의원들은 7일 연석 간담회를 갖고 이번사태를 논의하기로 해 귀추가 주목된다.대의원들의 의사결집과 김 회장의 출석 또는 거취에 대한 입장표명 여부가 가장 큰 관심사다. 박해옥기자
  • 직원들도 놀란 신한銀 인사

    신한은행이 영업력과 전문성을 강화한 대폭적인 임원진 교체를 시도해 금융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은행은 28일 열린 정기 주총에서 영업통인 장명기(張明基) 인천국제공항지점장과 윤광림(尹廣林) 중소기업본부 부본부장,그리고 김상대(金相大) 신용관리부장을 신임 부행장으로 각각 선임했다.또 씨티은행 출신인 이대운(李大運) 현대증권 리스크관리 담당이사를 부행장보로 영입했다.국제금융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신임 임원 4명 모두 40∼50대 초반으로 젊다. 가장 의외로 받아들여진 대목은 한동우(韓東禹) 부행장의퇴진.유임을 확신했던 직원들은 적잖이 충격받은 분위기다. ‘젊은 피에 밀렸다.’는 관측과 ‘5월 신한지주회사 자회사 재편때 중용되기 위한 사전정지작업’이라는 관측이 엇갈린다. 감사에는 문홍순(文弘淳) 전 금융감독원 국장이 선임됐다. 주총에서는 카드 관련 부서를 신한카드(가칭)로 분할하는내용도 통과됐다. 안미현기자
  • 김운용 체육회장 사퇴 발표

    김운용 대한체육회장 겸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이사의를 표명했다 10여분만에 재추대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그러나 김 회장은 재추대 수락 여부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보여 이를 둘러싼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김 회장은 28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02년도 정기대의원총회에서 대한체육회장과 KOC위원장직을 사퇴한다고전격 발표했다.김 회장은 회의 마지막 순서인 기타토의에 앞서 “애초부터 체육회장을 맡고 싶어 맡은 것이 아니다.”고 운을 뗀 뒤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발언 파문과 관계 없이 체육회장직과 KOC위원장직을 사퇴하고 국제무대에서한국체육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김 회장은 사의 표명 이후 기자회견도 거부한 채 회의장을 떠났다. 그러나 김 회장은 대의원들이 박수로 재추대를 결의하자 다시 회의장에 들어와 “여러분들의 만장일치 뜻을 잘 알아들었다.”며 산회를 선포했다. 김 회장은 이날 “애초부터 사임을 생각했으나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이 남아 유보했다.”는 말로 사의를 표명하기까지 심사숙고했음을 내비쳤다.하지만 회의장을 떠나면서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거부한 채 “흥미로 기사를 쓰지 말라.기자들이 나를 사퇴하도록 만들었다.”고 강한 불만을 터뜨려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발언 파문과 언론보도 내용 등이 사의표명의 큰 원인이 됐음을 시사했다. 한편 체육회 가맹 46개 경기단체장으로 구성된 대의원 46명 가운데 36명이 참석한 이날 총회에서는 김 회장이 자리를뜬 뒤 김봉섭 체육회 사무총장이 재추대 결의를 제안해 박수로 이를 통과시켰다. 체육회 관계자들은 “김 회장이 아들의 비리관련 수사와 솔트레이크시티에서의 발언 파문 등으로 상당히 마음이 상한것 같다.”며 “김회장은 분명히 사퇴를 표명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의원들이 계속 유임을 권고중”이라고 밝혀 김회장이 사태 추이를 지켜본 뒤 입장을 최종 정리할 것으로전망된다. 지난 93년 2월 체육회장에 첫 선출된 김회장은 지난해 2월3선에 성공,2005년 2월까지 임기가 남아 있다. 박해옥기자 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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