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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스공 이사장 류근환씨

    정부는 6일 한국가스공사 이사장에 류근환 전국회의원을 임명,발령했다. 신임 유이사장은 육군 정보사령관을 끝으로 예편한 뒤 제11·12대 민정당 전국구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지난해 3월이후 한일 협력위원회 사무총장을 맡아왔다.
  • 「이질의 남북」접근 가능성 확인/막내린 오사카「조선학토론회」 결산

    ◎서로 다른 견해속 대결보다 설득에 노력/“양측주장 예상밖 공통점”… 외국학자 놀라 오사카(대판) 조선학 국제학술토론회는 기대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한국측 학자들의 대거참가로 북한 대표단은 정치선전공세를 움츠려야 했으며,세계학회는 결성됐다. 북한 학자들은 학문적 중립성을 그 나름대로 외칠 수 있었고,무명의 대학은 돈을 써 이름을 높였다. 그러나 미처 생각지 못했던 점도 많았다. 남북이 대치하면 싸울 것이란 예상은 빗나갔다. 「조선학」에의 열기가 뜨거웠다는 것,한반도에 그처럼 관심이 쏠리리라는 것도 짐작치 못한 일이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했던 대목은 역시 「대화」였다. 이번 학술토론회에서 가장 관심이 모아졌던 부문은 정치법률부회의 공통논제 심포지엄 「냉전구조의 해체와 아시아ㆍ태평양­조선반도 통일론의 수렴을 중심으로」였다. 동서독이 통일되고 남북예멘이 합쳐진 현 시점에서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한반도에 관심이 쏠리고,그 귀추가 주목을 받은 것은 당연했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국제교류센터의 2층작은홀은 언제나 2백여명의 청중으로 넘쳤다. 냉방시설이 작동되지 않아 모두 땀을 흘리면서도 자리를 뜨지 않고 경청했다. 사회는 한국측 이호재(고려대),북한측 박창곤(주체과학원 부원장),일본 불교대학 다카야 데이구니(고옥정국) 등 세 교수가 맡았다. 이 심포지엄에서 한국측 이세기 전통일원장관(한국 북방정책연구소장)은 「남북통일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방안」을 발표했고,북한측에서는 대표단 단장 김철명(조선사회과학자협회 제1부위원장)과 이형철(군축ㆍ평화연구소 실장)이 「90년대 조선통일의 전망과 우리 민족의 과제」를 발표했다. 양측이 주장하는 바는 물론 달랐다.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 방안을 들고 나온 북측과 국가연합­체제연합­통일국가의 3단계 통일론을 내놓은 남측의 입장이 같을 수는 없었다. 강평을 맡은 시즈오카(정강)대학 이즈미 겐(이두견원)교수는 『양측의 견해에 의외로 공통점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토로했다. 사회자 이호재교수도 『감명 깊었다. 특히 북한의 김단장이 오랜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여유있게 설득하려는 태도가 인상에 남았다. 학자들을 모아 놓고 토론을 시키니까 판문점회담 같지 않게 상당한 의견접근이 이뤄졌다. 통일전망이 매우 밝다는 확신을 가졌으며,이것은 한반도가 분단된 채 남아 있기를 원하는 주변세력들에게 교훈이 됐을 것이다. 서울이나 평양에서 만났더라면 더욱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측 사회자 박창곤도 에피소드를 들어가며 소감을 밝혔다. 『내 경우 8번째 방일인데 이번처럼 긴장한 때는 없었다. 몇년전 하와이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한국여성이 내게 「북한의 선생님들도 사람이군요」라고 말을 건네 눈물을 흘리게 한 일이 있었다. 우리 민족의 의식구조가 이처럼 대결상태에 있다. 그러나 오는 이 자리에서는 「많이 변했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더 자주 만나고 교류하고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려고 하면 통일은 이룩될 것이다. 따라서 남북한 서로가 상호 차이점을 극복하고 공통점을 살려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측 김철명단장도 한국측 이세기 전장관의 통일론을 어떻게평가하는가라는 질문에 『평가하고 싸우러 나온 것이 아니다. 대결은 이제 피해야 한다고 개막연설때도 강조했다』고 대답했다. 이보다 앞서 있은 북한측 대표 박문회(조선사회과학자협회 중앙위원)와의 질의응답도 흥미를 끌었다. 『남한에서는 북한의 빨갱이들이 쳐들어올까봐 두려움을 안고 있다. 북한이 쳐들어 오지 않을 것이란 이유를 밝히라』고 월간 「해외동포」 이구홍 발행인으로부터 직접적인 질문을 받았다. 그는 싱긋이 웃어가며 대답했다. 『지금 남북 양쪽은 모두 침범당하지 않을까라는 의식을 갖고 있다. 싸움을 하면 모두 다 파괴된다. 더구나 핵전쟁이 일어나면 누가 먼저 침공하든 망가지는 것은 조선사람의 생명과 재산이다. 북한이 쳐들어 가지 못한다는 이유는 두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전쟁을 일으켜서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이처럼 다른 나라가 아닌 조선사람이 파괴되는데 얻을 게 없지 않은가. 목적이 없는 행동은 할 수 없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이다. 두번째는 북한에 힘이 없다. 공격은 방어보다 3배 이상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병력 10만명정도 많다는 역량으로는 공격을 할 수가 없다. 인구로 보나,전략적 물자ㆍ잠재적 자원으로 보아도 남침은 불가능하다. 남침위협은 없다고 보아도 좋다』 이같은 그의 발언은 청중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공산당원이다. 하지만 그의 말은 훈련된 공산당원의 거짓말이라기 보다 차라리 인간적인 체취가 느껴졌다. 그의 말에 청중들은 속고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속아도 좋으니 자주 만나 깊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이질 남북이 의외로 빨리 접근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그 자리의 모든 참석자들은 확신하는 듯 했다.〈오사카=강수웅특파원〉
  • 쿠웨이트 이라크 어떤 나라인가

    ◎전쟁외채 6백억달러… 1백만의 대군 ▷이라크◁ ▲영토=면적은 43만8천3백㎢로 북부 산악지대와 남부 습지로 구성. 이라크를 둘러싼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남동쪽에서 만나 전장 1백92㎞의 샤트 알 아랍 수로를 형성,걸프만으로 흐르고 있다. 이라크는 터키(북),이란(동),걸프만(동남쪽),사우디아라비아(남),요르단과 시리아(서)에 둘러싸여 있다. ▲군사=지난 79년 사담 후세인대통령 집권후 군사력 증강 추진. 현재 병력수는 1백만명 가량으로 의무병역제. 18세이상 남자 21∼24개월 복무. 육군 95만5천명(민병 48만명 포함),군단 7,기갑사단 7,기계화사단 7,주력전차 5천5백대,해군 5천명,프리깃함 5척,초계정 20척,공군 4만명,미그기 등 5백13대 작전기 보유. ▲인구=1천6백만명중 다수가 시아파 회교도이나 집권세력은 수니파. 그밖에 기독교마을과 북부지방에 3백50만명에 이르는 쿠르드 반군 거주지역이 존재. 공용어는 아랍어로 인구의 81%가 사용. 15%는 쿠르드어 사용. 수도는 바그다드로 4백60만명 거주. ▲경제=석유비축량은 1천억배럴. 80∼88년까지의 대이란전으로 석유수출 격감. 그러나 터키와 사우디 통해 파이프라인을 건설했으며 현재는 하루 3백만배럴 수준으로 회복. 대이란전으로 6백억∼7백억달러의 외채 부담. ▲역사=16세기이래 오스만 터키제국의 지배를 받아오다 1916년 영국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21년 영국의 통제를 받는 왕국이 됨. 58년 7월14일 카셈중장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독립. 63년 바트당의 압둘 살람 아레프가 카셈을 암살하고 대통령에 취임,이어 그의 동생 라만 아레프 참모총장이 대통령직 승계. 68년 바트당 온건파의 쿠데타로 바크르장군이 대통령에 취임. 바크르 정부하에서 69년부터 부통령을 지낸 사담 후세인이 79년 평화적 정권교체로 대통령에 취임. ◎석유,하루 백만배럴 생산… 병력 2만명 ▷쿠웨이트◁ ▲영토=1만7천8백19㎢의 영토를 갖고 있는 쿠웨이트는 북쪽과 서쪽으로는 이라크,남쪽과 서남쪽은 사우디아라비아,그리고 동쪽은 페르시아만과 접경을 이루고 있다. ▲군사력=병역제도는 2년 의무복무제를 유지하고 있으나 대학생에 대해서는 1년 복무를 인정하고 있다. 89년 현재 1만6천명의 군병력과 2백80대의 탱크를 보유하고 있다. 공군의 경우 2천2백명이 복무하고 있으며 미라주 F1­C전투기 25대,스카이호크공격기 30대,연습기 1대,헬기 40대,수송기 6대를 보유하고 있다. 또 호크 지대공미사일도 갖추고 있다. 해군의 경우 2천1백명이 복무하고 있으며 미사일 적재함정및 해안순찰선을 포함,약 1백척의 선박을 갖고 있다. ▲인구=1백70만 쿠웨이트 인구중 4분의1이 수도 쿠웨이트와 그 인근에 살고 있다. 인구의 절반이상을 외국인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아랍인이며 팔레스타인인도 30만명이 있다. 대부분의 쿠웨이트인들은 수니파 회교도이지만 인구의 30%가량은 시아파를 믿고 있다. 이란 시아파의 후손들은 약 15만명 정도이다. 알사바 가문이 1756년 아라비아 오지에서 이곳에 이주,정착한 후 쿠웨이트를 계속 통치하고 있다. 인구의 70%이상이 공식어인 아랍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10%는 쿠르드어,4%는 이란어를 사용하고 있다. 정치체제는 입헌군주제이다. ▲경제=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인 쿠웨이트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석유이다. 국토의 1%만이 개간돼 있는 쿠웨이트의 지난 88년 개인소득은 1만3천6백80달러이며 89년 상반기(1∼6월) 석유생산량은 하루 1백3만7천배럴이었다. ▲역사=영국이 1899년 이 지역의 주도적인 세력이 되기 이전에는 몽고인,아랍 칼리프,그리고 터키 오토만제국이 번갈아가며 황량하고 사람이 거의 살지 않던 이 지역을 지배해 왔다.〈연합〉
  • 주 쿠바 스페인 대사/사태 협의위해 귀국

    【마드리드 AP 연합】 쿠바 수도 아바나주재 스페인 대사관에 피신중인 쿠바인 18명중 일부가 쿠바당국에 의해 의도적으로 투입된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23일 안토니오 세라노 데 아로 대사는 본국 정부와의 사태협의를 위해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이날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한 후 기자들과 만나지 않은채 외무부로 직행한 아로대사는 프란시스코 페르난데스 오로도네스 장관과 만나 쿠바사태를 협의할 예정인데 아로 대사는 쿠바정부가 오르도네스 장관의 쿠바 내정개입을 비난한데 이어 18일 스페인 정부의 불만표시로 본국소환 명령을 받았으나 쿠바인들의 대사관 피신이 늘자 두번씩이나 마드리드향발을 연기했었다. 오르도네스 장관은 쿠바시민들의 자유이민이 허용되면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은 붕괴할 것이라고 시사한 바 있으며 아로 대사는 아바나를 떠나기전 지난 21일 아침 대사관으로 「피신해 들어온」 9명의 건장한 쿠바인 청년들은 군사훈련을 받은 특수요원들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쿠바경제 앞날이 안보인다/경제난 소의 지원 언제 끊길지 예측불허

    ◎미국은 크렘린에 대쿠바 경원중단 압력 쿠바 국가평의회의장 피델 카스트로는 지금까지 소련의 대쿠바 경제원조를 양국간의 「영원한 우정」의 표현이라고 평가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모스크바로부터의 경제원조가 카리브해에 연한 이 사회주의 국가에 큰 약점으로 변해가고 있다. 소련도 내부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고 특히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어 그 때문에 쿠바당국은 소련으로부터의 석유 및 기타 주요상품의 공급이 차질을 빚지 않을까 몹시 우려하고 있다. 최근 아바나를 방문한 소련의 대외경제관계장관 콘스탄틴 카투셰프는 쿠바에 대한 소련의 경제원조가 계속될 것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쿠바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선의」의 표시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우정」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음을 느끼고 있다. 얼마전 피델 카스트로는 TV를 통해 『쿠바의 사탕수수가 트럭용 디젤오일과 타이어의 부족으로 모두 말라버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경고했다. 설탕은 쿠바의 가장 중요한 수입원이기 때문에 쿠바의 경제는 지금 파국 직전의 상황에 몰려있는 것이다. 지난 4월 중순에 합의된 한 새 협정은 올해 소련과 쿠바간의 경제협력규모를 총 92억루블(약 1백53억달러)로 전망하고 있다. 이 규모는 지난해보다 8%가 늘어난 것이다. 공식통계에 의하면 쿠바의 대소수입은 수출을 약 10억달러 초과하고 있다. 쿠바가 소련으로부터 들여오는 가장 중요한 수입품은 연간 1천2백t에 달하는 석유이다. 그외에 철강ㆍ기계류등 7백여종의 상품들이 수입되고 있다. 쿠바는 4백만t이상의 설탕과 20만t이상의 감귤류를 수출하고 있는데 아바나주재 소련대사관측은 소련에서 소비되는 설탕의 30%와 열대과일의 50%가 쿠바에서 수입되고 있다고 밝혔다. 쿠바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소련의 경제지원이 이제는 쿠바경제의 「약점」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실토한다. 쿠바공산당 중앙위원인 호르게 고메스 바라타는 아바나에서 가진 한 인터뷰에서 『쿠바인들은 거의가 그날 그날 벌어 먹고 살기에 급급하다. 따라서 비축해 둔 것이라고는 별로 없다』고 밝히고 만일 소련의 지원이 끊기는 날에는 쿠바가 「극적인결과」를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그러나 쿠바의 주요한 문제는 소련원조에 대한 의존도 있지만 그보다는 미국이 쿠바에 대해 취하고 있는 전면적인 경제 및 교역금지조치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불법적인 금지조치」때문에 쿠바는 오렌지를 수출하고 석유를 수입하는데 장장 1만㎞를 여행해야만 하는 실정이라고 미국의 태도를 비난했다. 『미국은 쿠바를 봉쇄하고 있으면서 한편으로 쿠바가 소련에 의존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그것은 쿠바가 그렇게 선택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봉쇄조치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고메스 바라타는 주장했다. 소련은 침체된 국내 경제를 활성화하고 시장경제체제로의 도약을 위해 서방의 경제적 지원을 구하고 있으나 서방국들,특히 미국은 소련이 쿠바에 대한 경제 및 군사원조를 중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외무장관은 지난 9일 크렘린에서 기자들로부터 소련이 쿠바에 대한 원조를 중단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그것은 단순히 양국간의문제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소련정부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
  • 경찰이 주눅들게 하진 말자(사설)

    달아나던 소매치기가 출동한 경찰의 총에 맞아 절명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을 놓고 경찰의 총기사용 범위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검찰에서도 과연 이경장의 총기사용이 정당한 직무집행에 해당되는지 안되는지의 여부를 가려 사법처리할 것으로 알려진다. 일부에서는 이경장의 총기발사는 직무집행의 범위를 넘어서는 과잉대응이라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도 범인이 흉기를 들고 저항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 하는 것이 첫째 이유이다. 둘째로 첫 총탄에 흐트러진 자세로 달아나는 범인에게 다시 쏘아서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점을 든다. 그러나 경찰을 비롯한 다른 일부층은 준현행범이 『서라』는 정지경고를 무시하면서 더구나 이경장의 뺨을 치고 달아났다는 데서 총기사용의 정당성이 성립된다고 주장한다. 과잉대응이었느냐 아니면 정당한 행위였느냐는 조사결과로써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설사 이경장의 총기사용이 과잉대응이었다고 해도 이경장에게 법의 적용은 관대해야겠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범죄의 양상은 날이 갈수록 흉포화하여 간다.그래서 경찰이 범인의 흉기에 찔리는 일이 적잖이 발생하고 있다. 범인이 흉기를 들고 대항한 것도 아닌데 발사한 것은 과잉대응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범인과의 숨가쁜 대결상황을 모르고 앉아서 하는 말이다. 흉포화해가는 범죄이기에 「냉철한 판단」을 거칠 여유가 없는 것이다. 이경장도 그랬다. 그는 86년 한 동료가 소매치기를 검거하려다가 갑자기 나타난 공범이 휘두른 흉기에 찔린 일이 문득 떠올랐다고 말하고 있다. 이경장에게 관대해야겠다고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경찰의 사기」를 꺾지 않아야 겠다는 데에 있다. 단속하는 교통경찰을 차에 매단 채 끌고 가는 일이 비일비재할 만큼 공권력의 첨병은 무시당하고 있는 세태이다. 이래서야 어떻게 사회기강이 설 수 있겠는가. 더구나 불행하게 죽은 소매치기는 오늘의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가 추방에 합의하고 있는 민생치안 사범이다. 그런 범인을 반드시 검거해야겠다는 열의가 지나쳤다 하여 응징으로 되돌아온다면 어느 누가 범인검거에 열과 성을 다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과잉방어를 옳다고 할수는 없더라도 그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은 참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 지적해 둘 일은 과잉대응론이 민생치안사범들의 설 자리를 넓혀 주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되겠다는 점이다. 그들에게는 가혹하고 강력하게 대처한다는 의지가 전달되어야 한다. 이경장에게 관대해야겠다는 데에는 그와 같은 반사회적 민생치안 사범들에 대한 경종의 효과까지 겨냥하자는 뜻도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경찰 자체로서는 성찰하고 개선함에 게으름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설사 범인이 흉기로 달려든다 해도 총기 아닌 무술로 그를 때려 눕힐 수 있는 수련은 쌓아야 한다. 부득이 총기를 쓰는 경우라 해도 보다 숙련된 사격술이 요청된다. 이번 사건도 사격술의 미숙에 연유한다. 실제로 사격훈련을 소홀히 해온 사실이 밝혀지고도 있다. 분기별로 25발씩 1년에 1백발을 연습하는 것으로 족한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그나마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가지고 행인 많은 곳에서 발사했다는 것도 위험한 일이다. 유탄에 부상한 한 주부의 쾌유를 빈다.
  • 변사의경 폭행 고참 상해혐의 구속

    서울 노량진경찰서 방범순찰대소속 윤준탁이경(19)의 변사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 노량진경찰서는 4일 윤이경이 변사체로 발견되기 직전 유이경을 폭행한 같은 중대 손재연수경(21)을 상해혐의로 구속했다.
  • 내각제개헌의 “대차대조표”/한승조 고려대교수ㆍ정치학(세평)

    ○재연되는 개헌 논의 요즘 의원내각제개헌 논의가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금년초 3당이 합당하여 민주자유당이 출현했을 때도 이것이 새 개헌을 위한 세력구축이요 대열정비일 것이라는 말들이 나돌았다. 일간 청와대에서 있을 여당과 야당의 영수회담에서도 이 문제가 집중 거론될 것이라는 소문이다. 아직 총체적 난국의 상황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고 5월의 위기도 어렵게 넘긴 이때 개헌문제를 가지고 여야가 격돌함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조만간 겪게될 찬반대립이라면 애써 회피ㆍ외면만 할 것이 아니라 개헌찬반의 이점과 불리점을 점검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찬성론의 이론적 근거 ①대통령직선제에 문제가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여당측이 처음부터 기피했던 것이나 야당세에 밀려서 1987년의 대통령선거를 치렀다. 예상했던대로 그 제도가 선거과열 국론분열 지역감정의 악화를 가져왔는데 이런 제도를 가지고 1992년의 대통령선거를 치를 수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②미국이외의 나라들,특히 제3세계에서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여 민주정치에 성공한 나라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과 같이 입법부 사법부 자유언론의 백리길은 전통을 갖지 않을 때 대통령제는 이른바 신대통령 또는 대통령전제로 타락한다. 그렇게 안되려고 하다보면 한국과 같이 국정의 책임자가 그 임무를 수행하기 어려운 형태가 되고 만다. ③민주정치가 의회정치요 정당정치라면 이 나라의 민주발전을 보장하는 제도가 의원내각제라는 논리이다. 과거 43년동안 대통령제 헌법아래 정당정치,의회정치가 파행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그렇다면 나라의 정치발전을 위해서는 의원내각제로 접근함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④의원내각제 개헌은 거대여당의 내부갈등을 해결하고 권력승계를 원활하게 한다. 또 노대통령도 임기만료 후에도 정계에 머물러서 한 역할 할 수 있는 이점을 갖는다. 불리점으로서는 ①87년 여야합의개헌을 한지 3년도 못되는 시점에서 개헌하겠다고 나서기가 쑥스럽다. ②우리나라의 여건으로 보아서 순수한 의원내각제를 도입하기가 어려우므로 대통령제적 요소를 가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2원집정부제라는비방을 듣게 된다. ③야당과 재야가 결사반대를 할 것인즉 여야간의 극한대립으로 정치불안이 조성된다. ○반대론의 이ㆍ불리점 ①현재로 보아서 92년의 14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야당이 과반수의석을 차지할 전망이 없다. 그런데 개헌하면 야권은 계속 무력화한다. ②대통령직선제를 유지해야만 바람정치,선동정치 등 야권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③또 직선제를 해야만 야당이 그 여세를 몰아서 과반수의석이라도 차지할 수 있다(4ㆍ26총선). 반면 반대의 불리점은 ①야당이 아무리 반대해 보았자 민자당의 의원내각제개헌을 막지 못한다. ②야당의 집권전망을 어렵게 한다는 이유이외에는 개헌반대의 명분이 사실상 약하다,학술적으로 대통령제가 의원내각제보다 더 민주화에 기여한다는 논리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③야당의 결사반대에도 불구하고 의원내각제든 2원정부형태이든 개헌이 확정되면 야당의 입장이 더 어색하고 어려워 진다. 이러한 개헌찬반의 이점과 불리점을 껴안은채 여야는 각기 그들의 예정된 코스로 가고 있다. 여권내부에서는 개헌의 발의와 추진시기를 빨리할 것이냐,또는 늦출 것이냐,90년 가을에 발의해서 91년초까지 완료할 것이냐,또는 91년 여름쯤 발의해서 92년초까지 완결지을 것인가를 저울질 하느라고 바쁘다는 소식이다. 필자가 여권의 입장에 있었다면 발설은 일찍 시작하되 충분히 연구ㆍ검토하여 국민적 합의가 어느 정도 구축된 다음 발의할 것이다. 민주화의 시대는 공개정치의 시기이다. 무슨 문제이든 과거처럼 모든 일에 보안을 중시하여 국민들 모르게 준비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내놓고 밀어붙이는 권위주의시대의 수법은 통하지 않는다. 빈번한 개헌이 바람직 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필요에 따라 개헌을 구상하고 토의하며 헌법절차에 따라서 추진함은 헌법에 의하여 보장된 국민의 권리이다. 87년의 여야 합의개헌도 잘못된 것이라면 수정하는데 주저할 필요가 없다. 야당과 재야세력이 완강히 반대하겠지만 국민대다수가 냉담할때 계속 반대하고 극한 투쟁을 벌일 수도 없을 것이다. 거대여당이라고 국민을 무시하거나 거만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 개헌이 국리민복을 해치는 것이 아니며 민주화와 정치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소신이 있다면 좀 더 정정당당하게 소신을 피력하며 국민을 설득하여 지지를 얻도록 힘써야 하는 것이 아닌지. 민자당도 과거의 여당처럼 언제나 웃사람 눈치,언론의 콧김,유권자를 의식하여 보신에만 급급할때 국민의 신임도,지지도 받지 못한다. 개헌이 영구집권의 음모라고도 한다. 그런데 수시로 총선을 겪어야 하는 의원내각제를 가지고 그것이 가능할 것인지 의심스럽다. ○잘못된 것은 고쳐야 야권에서는 의원내각제 개헌이 2원집정부제로 귀착할 것이기 때문에 반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원집정부제란 누가 번역해낸 말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혼합,절충형 2원정부를 가리키는 말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런 정부형태는(장면정권을 제외하고는) 건국이래 오늘날까지 이 나라에서 유지되어온 헌법형태였다. 그런 헌법형태를 2원적 집정부제라 하여 겁내고 불신하거나 기피함은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놀라서 날뛰는 정신이상자의 소행과 비슷하다. 또 그 내용은 잘알면서도 개헌을 반대하기 위하여 국민에게 겁주고 오도하는 언행은 공명정대한 정치지도자의 태도라 보기가 어렵다. 다만 우리의 헌법제도가 여지껏 대통령제에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가미한 절충형이었다면 새 헌법제도는 의원내각제에 대통령제적 요소를 가미하는 절충형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필자 역시 순수한 의원내각제는 이 나라의 현실여건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앞으로 전개될 개헌논의에서는 여당과 야당이 더 양식을 가지고 공명정대한 자세를 보여주기를 바랄 뿐이다.
  • 검문 불응,도주 승용차/경찰,공포 쏴 검거

    3일 상오4시26분쯤 서울 서초구 방배동 312의10 방배장여관 앞길에서 서울2너9691호 로얄살롱 승용차를 훔쳐 타고가던 유이호씨(27ㆍ세차장종업원ㆍ경북 안동군 와룡면 이하리 71)가 불심검문에 불응하고 차를 몰고 달아나다 공포를 쏘며 추격한 경찰에 붙잡혔다. 유씨는 사당동을 거쳐 신림네거리 쪽으로 달아나다 경찰이 공포9발을 쏘며 계속 추격해오자 양천구 신정동 트럭터미널 앞에서 차를 버리고 이웃 주택가 골목길로 뛰어가다 경찰과 주민들에게 붙잡혔다.
  • 반성론…명분론…두얼굴의 일본 “대변”/「대한사죄」…일본인의 목소리

    ◎분명한 역사적 죄과 책임인정을 찬/정치적 발언은 국사행위 아니다 반 한일관계를 냉각시키고 있는 일왕의 사죄문제는 지금까지 나타났던 그 어느 현안보다 근본적인 문제이다. 그것은 「과거청산」의 시발점이며 진정한 파트너십을 구축하기 위한 「대전제」이다. 한일협정의 체결,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보장과 처우개선,교과서 왜곡사건,사할린간류 한국인 귀환문제와 원폭피해자문제등 전후처리문제,무역불균형 시정과 기술이전문제등 한일간에는 많은 현안이 부침했으며 현재도 걸려있으나 일왕의 사죄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것은 한일간 모든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전제라고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견해는 도쿄(동경)주재 외교관계자들과 재일 한국인들은 물론 일부 정치인과 관료층을 제외한 많은 일본인들도 갖고 있다. 16일자 아사히(조일)신문 3면에 게재된 각계인사들의 코멘트는 이같은 사실을 대변한다. JR윤락죠(유락정)역 근처에서 만난 여행사 직원 난부 사치요(남부상대ㆍ31)씨는 이렇게 말한다. 『역사적으로 볼때 확실히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일차 분명하게 사죄해야 한다. 거기서부터 새로운 신뢰관계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유감」이라는 말은 관료적이며 모호하다. 분명한 사죄를 하더라도 지금의 일본으로서 잃을 것은 없지 않은가』라며 사죄할 것을 강조했다. 그는 자민당수뇌의 『무릎 꿇고 빌라는 말인가』라는 발언에 대해서도 『그런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지금까지 멸시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은 아닌가. 한국측은 「무릎을 꿇라」고 말한 일이 없지 않은가』라고 비판적이었다. 기계 메이커 차장인 가와바타 요시히코(천단의언ㆍ49)씨는 『머리를 얻어 맞은 쪽은,때린 쪽에서는 옛날에 잊어버렸다고 하더라도 아픔을 기억하고 있는 법이다. 그러나 한일 새시대라는 말도 생겨났으며 전후 새로운 우호의 기초도 다져진 마당에 옛일을 다시 문제삼을 것은 없지 않은가. 자민당 일부에서 말하듯 「경제협력을 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는 청산됐다」는 것은 이상하지만 한국측이 언제까지나 「사죄」에 계속 구애되고 있는 것은 대인답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헌법학계의 대세는 보다 더 부정적이다. 학습원대 아시베노부요시(노부신희ㆍ66)교수는 『헌법이념은 일왕을 정치의 세계로부터 격리시키려 하는 것이다. 정치적 의미를 갖는 발언은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치적 발언인가의 여부는 발언할 때의 상황에 따라서도 좌우된다. 이번처럼 발언내용이 외교적인 문제가 되어 있을 경우에는 발언이 정치적으로 되지 않을 수 없다. 한일관계의 역사적 연혁은 이해할 수 있으나 예외를 인정하면 그것이 선례가 된다. 역시 일본전체의 대표로서 총리가 적절히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자들 사이에도 견해의 차이는 많다. 일본ㆍ아시아관계론을 전공하는 우쓰미 아이코(내해애자ㆍ48)조교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재한피폭자 및 일본군에 징용된 사람에 대한 보상등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초래했던 문제가 남아있다. 일본은 지금까지 져야만 할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이같은 문제의 실태를 정확히 조사,보상해야 할 것은 보상하고 사죄해야만 할 것은 사죄한다는제도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전방위대교장이며 평화ㆍ안전보장연구소회장인 이노키 마사미치(저목정도ㆍ75)씨의 견해는 더욱 분명하다. 그는 『(소화일왕의 발언은) 어느쪽이 가해자이며 피해자인지 알 수 없다. 일본은 말로 할 수 없을만큼 나쁜 짓을 한국에 저질렀다. 일본은 과거를 청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화일왕의 발언에 「일본의 책임에 의해」라는 문언을 삽입했더라면 좋았겠다』고 말했다. 이노키회장은 특히 일왕이 말할 내용에 관해 『정치적 발언이 아니라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말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정치성을 띠게 된다』고 지적하고 『일본인은 역사에 대한 반성이 불충분하다. 현대사의 무지로부터 오는 것이다. 자민당수뇌의 발언은 역사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가를 나타내고 있으며 대정당의 간부로서 한심스럽다』고 통박했다. 나아가 이노키회장은 「상징일왕」은 국가원수라는 해석에 입각,『일왕이 외국원수에 사죄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회결의로는 서푼의 가치도 없다』며 도이다카코(토정다하자) 사회당위원장이 제창한 「국회결의」안을 일축했다. 반면 국제대 다카노 유이치(고야웅일ㆍ73),사상사 전공인 다케다시미코(무전청자ㆍ72) 교수 등은 『일왕이 국민을 대표해 사죄하는 것은 적당치 않다. 일왕은 헌법상의 상징이라는 입장을 넘어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은 안된다』고 반론을 편다. 문제는 일왕의 헌법상의 제약과 그의 발언이 과연 정치적이냐의 문제로 귀착된다. 일본헌법상 일왕은 헌법에 규정된 국사행위만을 행한다. 국사행위란 정치적 기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헌법개정ㆍ법률ㆍ명령의 공포,국회의원 총선거의 시행공포,외국사절의 접견등 형식적ㆍ의례적 행위를 말한다. 그러나 일왕의 국사행위 중에는 총리와 최고재판소장관의 임명과 중의원해산과 같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도 포함되고 있다. 따라서 국사행위의 성격해석을 둘러싸고 학설이 대립되어 있는 실정이다. 나아가 일본국왕은 일본국민들의 정신적 구심점으로 여겨지고 있다. 또 일왕이 행하는 국사행위에는 내각의 조언과 승인이 필요하며 일왕의 국사행위에 관하여내각은 책임을 진다. 이렇게 볼때 일본의 경우 행정권만을 관장하는 총리를 국가원수로 보기는 힘들며 「국민의 대표」라는 입장은 역시 일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또 일왕의 발언이 「정치적」이냐의 해석도 일률적으로 규정할 수 없을만큼 미묘하다. 이원경 주일대사가 15일 하오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전대장상과의 면담에서 밝힌 바와 같이 그의 발언의 정치성여부를 떠나 자신의 심경만을 피력하면 족하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소화일왕은 헌법에 근거하여 전쟁을 수행하는가. 시대와 인물은 바뀌었더라도 일왕의 이름아래 수행된 전쟁은 일왕의 이름으로 사죄되어야 한다. 상징일왕이라면 그 상징에 맞는 내용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결자해지의 정신을 강조하는 것이다. 헌법의 제약은 구실이며 역사인식은 초법규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도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 김영삼 민자대표 회견 일문일답

    ◎“「지자제 연내 실시」 당방침 변함없다”/“부동산 투기관련땐 정치인도 과감히 제거/국회ㆍ당직 등 모든 인사 계파별 안배 않을터” 민자당의 김영삼대표최고위원은 11일 취임후 첫 기자회견에서 계파를 초월한 당운영방안,개혁을 통한 난국극복,내각제 개헌문제 등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내각제 논의는 언제부터 시작할 것인가. 『권력구조문제는 40여년 우리 정치사에서 대단히 중요하고 미묘한 문제였던 점을 상기해 달라. 권력구조 변화는 무엇보다 국민의 공감대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민자당이 총체적 난국해결을 위해 당력을 총집중해야 할 시기인 만큼 현 시점에서의 내각제 개헌논의는 옳지 않다』 ­김종필최고위원은 내각제 시사 강령채택은 내각제 논의 가운데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말했고 박태준최고위원도 내각제 개헌을 위해 진이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는데 내각제 개헌과 관련한 당내 논의를 허용치 않겠다는 뜻인가. 『정치는 국민과 더불어 가는 것이며 국민의 공감대가 있어야 모든 것을 할 수있다. 나 자신도 과거에 대통령중심제나 내각책임제등 어느 체제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중요한 것은 여론이며 내각제 논의가 시기적으로 옳지 않다』 ­당내 계파간 갈등해소를 위한 구체적인 복안은. 『그동안은 3최고위원이 마치 어느 당의 대변자처럼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전당대회이후 나 자신부터가 3계파를 초월한 대표최고위원이므로 앞으로 국회직등 모든 인사에서 원칙과 능력ㆍ경력ㆍ서열 등을 고려해 결정할 것이다. 계파안배는 생각할 수 없다. 3개월여의 합당과정에서 국민들에게 걱정을 끼친 점을 이 자리서 사죄하고 용서를 구한다. 앞으로 경륜있는 김종필ㆍ박태준최고위원과 격의없이 당무를 상의하고 노태우대통령과도 그런 차원에서 단합된 모습을 보이겠다 』 ­반민자당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데. 『정당은 신념이 같은 사람들이 모인 단체이며 정당법에도 명시돼 있다. 만약 지금 소수의견처럼 4당체제로 복귀했을 경우 우리나라가 어떻게 되겠는지 상상해보라. 지금 민자당 타도라든가 해체주장은 반지성적인 행동이며 용납할 수 없는 상식밖의 일이다. 정당을 만드는 것은 자유이며 심판은 국민이 하는 것이다. 92년과 93년에 선거를 통해 3당통합이 잘 됐느냐를 당당하게 심판받겠다』 ­92년 총선,93년 대통령선거를 통해 국민심판을 받겠다고 했는데 내각제 반대발언으로 봐도 되는가. 『현행 헌법을 놓고 당연히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며 더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총체적 난국을 총체적 개혁으로 극복한다고 했는데 이말에는 법적ㆍ제도적 개혁도 포함되는가. 『개혁을 통해 안정을 이루고 경제난국 극복을 위해 당의 운명을 걸겠다. 정부도 적극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체제수호도 필요하다. 부동산투기등의 문제에 고급 공무원뿐만 아니라 정치인이 가담돼 있으면 과감히 척결하는 등 정치적 개혁도 뒤따라야 한다』 ­아직도 야당체질을 못벗어났다는 지적이 있는데. 『30여년간 야당생활로 굳어진 체질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어렵다. 그러나 집권당 대표최고위원이 된 만큼 체질을 바꿀 필요가 있으면 바꾸겠다』 ­평민당의 김대중총재와는 어떻게 대화하겠는가.『평민당과 적극적으로 대화하겠으며 당3역들을 통한 대화도 적극 추진하겠다』 ­대권밀약설과 후계구도에 대해서는. 『나자신이 대권에 욕심이 있었다면 3당통합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같은 생각이며 국민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지자제 실시는 언제할 것인가. 『금년내 실시한다는 당방침에는 변함없다. 5월 임시국회에서 지자제 관련법안 통과를 위해 야당과 함께 노력하겠다』
  • “내각제 논의할때 아니다/김영삼대표회견/총체적개혁으로 난국 극복”

    ◎“폭력통한 체제변혁은 불용” 민자당의 김영삼대표최고위원은 11일 상오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오늘의 총체적 난국은 총체적 개혁으로 극복해야 한다』며 『민주화를 위한 정치적 개혁을 꾸준히 추진하고 과거의 오랜 권위주의시대의 법적ㆍ제도적 잔재들을 청산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대표는 대표최고위원 취임후 처음가진 이날 회견에서 『지자제는 연내에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 변함없는 당론』이라면서 『5월임시국회에서 선거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야협상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김대표는 이어 『나는 과거 대통령중심제와 내각책임제 어느것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고 설명하고 『그러나 지금은 난국타결에 당력을 집중해야 할 때지 내각제개헌을 논의할 시점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김대표는 최근 격렬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반민자당시위에 대해 『민자당 타도는 반지성적 행위로 용납할 수 없는 상식밖의 일』이라고 비난하고 『정당을 만드는 것은 자유이고 그 심판은 국민이하는 것으로 우리는 92년 총선,93년대선에서 당당히 심판받겠다』고 말했다. 김대표는 특히 『급격한 개혁은 안정을 해칠 수 있으므로 개혁의 차원을 뛰어넘어 폭력 등을 통한 체제변혁을 추구하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하고 『우리당은 온건ㆍ보수ㆍ중도세력의 결집체로서 점진적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김대표는 또 『경제난국의 근본원인 가운데 하나인 부동산투기는 당의 운명을 걸고 근절하겠다』며 『고급공무원ㆍ정치인 등도 부동산투기에 가담한 사실이 드러나면 척결하겠다』고 말했다. 김대표는 당내계파갈등 해소방안 등에도 언급,『3계파를 초월해 당무를 운영하겠다』고 말하고 『국회직을 비롯,당직등 모든 부문에서 원칙과 능력및 서열을 중심으로 결정할 것이며 계파별 안배를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대표는 이밖에 김대중평민당총재와의 대화를 위해 당3역을 통해 적극적으로 협상하겠다고 말했다.
  • 「크레인농성」 현중 비대위장 1문1답

    ◎“모두들 탈진… 그래도 투쟁은 계속” 공권력투입에 항의해 골리앗크레인 위에서 노조원 60여명과 함께 4일째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는 현대중공업 이갑용비상대책위원장(31)은 1일 하오6시20분쯤 크레인 중간 60m상공 계단에서 기자들과 만나 자신들의 입장을 밝혔다. 다음은 이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사태가 이같이 악화된 원인은. ▲공권력이 투입된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우리가 궁지에 몰리자 계열사 동지들이 연대파업에 들어가는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으나 크레인 위에서 끝까지 버티고 있는 것은 사태의 악화를 원해서가 아니라 단지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이다. -앞으로의 대책은. ▲경찰이 대형그물을 준비하는 것이 보인다. 헬기를 통한 강제진압에 대비해 끝까지 싸울 각오가 돼있다. 종류는 밝힐 수 없지만 위험물질을 많이 갖고 있다. -강제진압에 맞서 투신조나 분신조가 구성됐다는 소문이 있는데. ▲현재는 없으나 노조원들이 이 문제를 놓고 각오가 대단하다. 대부분의 동지들이 탈진해 이성을 잃어가고 있으며 통제력이 줄어들고 있다. 더이상 이들이 흥분하게 되면 무슨 불상사가 일어날지 모른다. -회사측과의 대화용의는 ▲회사측이 우리측 협상대표와 함께 올라온다면 만날 용의가 있다. -다른 어려움은 ▲2일 상오가 되면 식량이 모두 떨어진다. 가장 시급한 것이 김치등 반찬이다. 식수도 변질돼 복통ㆍ설사환자가 늘고있다. 난방이 안돼 밤이면 추위에 떨고 있으며 전원도 끊겨 칠흙같은 어둠속에서 싸우고 있다.
  • 재일동포 지위협상 어떻게 돼가나

    ◎접점 못찾는 「지문폐지」… 한ㆍ일신경전/「역사인식」에 큰 차이… 팽팽한 줄다리기/일 관계부처,이견 노출… 애드벌룬만 무성/한국 “취업 등 실질보장”정치적 결단 촉구 재일 한국인 후손의 법적지위 보장과 처우개선을 위한 한일간의 교섭은 마치 「종반」에 들어선 것처럼 보인다. 현재 한일간에 최대 현안이 되어있는 이 문제해결을 위해 일본정부는 25일 하오 긴급히 다니노 사쿠타로(곡야작태랑) 외무성 아시아국장을 서울에 파견,비공식 국장급협의를 벌이도록 조치했으며,오는 30일 서울에서 개최되는 한일 외무장관 회담에서도 「상당한 보따리」를 풀어 놓을 듯이 각종 애드벌룬을 띄우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측에서도 지난주 이원경 주일대사를 돌연 일시귀국시켜 정무협의를 가진데 이어 박태준 한일의원연맹 회장겸 민자당 최고위원 대행을 일본에 급파,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총리를 비롯,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 일한의원연맹회장,후쿠다 다케오(복전부대) 전총리 등 요인들을 만나 한국내의 강력한 여론을 전달하고 일본측의 정치적 결단을 위한 노력을 촉구하고 있는 점이 문제해결의 막바지에 접어든 것처럼 보이게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이것은 낙관적인 전망에 불과하다. 지금 단계에서 한국내에 일부 언론조차 이제까지 한국측이 요구해 온 9개항목 가운데 최소한도인 「3세이후」에 대한 영주권 부여와 지문날인 적용 제외는 확보되지 않았는가 라는 안이한 생각을 갖고 있다. 이것은 오산이다. 한국인을 「조센진」(조선인)이라고 보는 일본인의 잠재의식과 일본의 외교가 그처럼 단순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현안 해결을 위한 한일간의 교섭은 「종반」이 아닌 「시발점」에 서있으며 「역사청산」도 지금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일본 정치인들의 언동과 상관없이 현안문제를 담당하는 일본의 외무ㆍ법무ㆍ경찰ㆍ자치ㆍ후생성 등 관계성ㆍ청의 「역사인식」은 우리와는 너무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가이후 총리는 지난 24일 각의가 끝난뒤 국회내에서 나카야마 타로(중산태랑)외상,오쿠타 게이와(오전경화)자치상,하세가와 신(장곡천신)법상,호리고우스케(보리경보)문부상,사카모토(판본삼십차)관방장관 등 5각료를 소집,『재일 한국인 문제에 대해 최선을 다하라』며 정치적 해결을 도모할 것을 지시했다. 그는 박최고위원 대행을 만난 자리에서도 『현안 문제들이 한일 양국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선에서 해결되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이후 총리는 국회답변에서도 『재일한국인이 존재하게된 역사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양국이 납득할 만한 선에서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늘 말해왔다. 25일자 요미우리(독매)신문은 1면 기사에서 일본정부는 재일한국인 3세의 법적지위ㆍ처우문제로 최대의 초점이 되어있는 지문날인 문제와 외국인 등록증 상시 휴대문제에 관해 「3세이후는 적용을 제외한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보도했다. 그 근거로서는 24일 이시하라 노부오(석원신웅) 관방차관을 중심으로 구리야마 쇼이치(율산상일) 외무,오카무라 야스다카(강촌태효) 법무사무차관,스즈키 료이치(영목양일) 경찰청차장등이 협의한 결과라고 들고 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협의된 것은 협정영주권자가 징역 7년 이상의 형을 받았을 경우 대상이 되는 강제퇴거 규정을 대폭 완화 한다는 선에 불과했다. 2시간에 걸쳐 행해진 이 회의는 일본정부가 처음으로 소집한 차관레벨의 협의였다. 같은 내용의 기사에서 아사히(조일)신문은 『3세 이후의 세대에 대해 「장래」 지문날인 의무를 면제한다』는 안을 중심으로 의견조정을 시도했으나 『법률의 명분상으로는 다른 외국인에게도 평등하게 적용하는 것이 도리』라고 주장하는 법무성과 『재일한국인과 조선인을 같이 취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경찰청의 의견이 대립,결론을 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외국인 등록법을 근거로 한 지문날인 문제에 관해 일본 관계 부처에서는 『이것은 기술적 문제이며 정치결단의 대상밖』이라는 것이 기본입장이다. 따라서 지문날인 제도를 폐지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며,정치결단의 대상으로 삼을 수도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오히려 이 제도를 폐지한다면 『인물을 특정할 수 있는 다른 과학적 방법을 찾지 않을 수 없다』는 보도(25일자 마이니치(매일))도 나오고 있는 판이다. 이것은 더욱 해괴한 발상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과학적 방법」이란 쉽게 말해 「물리적ㆍ의학적 방법」을 의미하는 것이며,이것은 머리카락 이라도 잘라 보관하겠다는 뜻을 내포한다. 이처럼 일본의 관계부처 사이에 의견조정이 안되고 애드벌룬만 무성한 상태에서 다니노 아시아국장이 서울로 급파됐다. 그가 비공식 국장급 협의에서 내놓을 「제안」은 2가지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첫째는 3세이후에 대한 영주권 부여,재입국 규제 및 강제퇴거 규정의 완화 등을 중심으로 한국측의 의향을 타진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한국측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영주권 부여는 재일한국인의 정주성에 비추어 당연한 것이며 「선심」도 아무것도 아니다. 재입국 규제 및 강제퇴거 규정의 완화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일본인들이 「조센진」의 상징으로서 낙인을 찍어 놓고 싶은 심정에서 강행하고 있는 지문날인 제도가 폐지되지 않는한 재일동포들의 「역사의 한」은 풀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정신적인 것이며 상징적인 것이다. 실리로 따져 본다면 교원채용이라든가 지방공무원으로의 채용문제가 더 클 수도 있다. 다니노 국장의 「서울행」두번째 경우는 아무 제안 사항도 갖지 않은 채 실무회담에 임하는 경우이다. 다소간 내놓을 「선심」은 오는 30일의 외무장관 회담으로 미루고 자신은 단지 내부사정을 빌미로 한국측의 양보를 요구하는 작전으로 나올 가능성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일본의 입장은 급하다. 가이후 정권의 안정과 장래 일왕의 한국 방문 실현을 위해 더 없이 소중한 한국대통령의 방일은 반드시 성사시켜야만 할 외교적 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아무 것도 현안 해결을 위해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역사인식은 아직도 올바로 잡혀지지 않았다. 여기에서 파생되는 일체의 책임은 일본측에 귀속하는 것이라는 것이 도쿄외교가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 외언내언

    요즘도 우리의 국민학교에서 공통적인 문제로 자주 거론되고 있는 것이 몇가지 있다. 그것은 책가방이 여전히 무겁다는 것이고 학교에서 따뜻한 점심식사가 제공되었으면 하는 학교급식에 대한 바람이다. 학생들은 학교 안에 각자 소유의 조그만 것이라도 서가가 있으면 책가방의 무게를 덜 수 있고 또 급식이 실시되면 각종 숙제물과 함께 손에 들고 다니는 도시락이 없어져 편리하겠다는 얘기들을 많이 하고 있다. 그러나 결식아동이 많은 지방소도시 학교의 경우 급식문제는 불편여부를 넘어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선진국의 경우 학교급식이 철저하게 시행되고 있다.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내용이 좋아 완벽에 가깝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영국은 지난 44년,미국은 46년에 각각 급식법을 만들어 전학생에게 식사를 공급하고 있다. 일본은 54년부터 초ㆍ중학교를 대상으로 해 국민학생은 전체의 99.5%,중학생은 82.3%가 급식혜택을 받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는 너무나 미미하다. 우리는 6ㆍ25동란후 모두가 굶주리고 있을 때인 53년 유니세프가 주동이 돼 학교급식을 시작했다. 빵과 우유가 이때 제공됐다. 그러다가 66년부터 우리 정부주관으로 벌여왔으나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 언제나처럼 예산부족이 그 이유이다. 현재 급식대상 학생은 전체학생의 6%,학교수는 10%수준에 불과하다. ◆거의 전체학생을 대상으로,그것도 다양한 메뉴로 과학적인 칼로리계산과 위생처리로 세계 제1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일본에서조차 매년 학교급식문제가 학부모들 사이에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현재의 메뉴로는 너무 일률적이어서 다양한 개성을 지니도록 해야 할 어린이들에게 학교급식부터가 잘못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또 편식이 고쳐지고 있지 않다는 등의 학교급식을 통한 식생활교육의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부러운 얘기이다. ◆우리도 내년부터 학교급식제도를 확대하겠다는 소식이다. 우선 두메ㆍ섬에 실시하고 점차적으로 늘려 나가겠다는 것이나 이것으로는 너무 미흡하다. 일의 경중완급을 가릴때 학교급식은 가장 앞서야 될 일이다.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섰느니 쌀 생산과잉,과소비가 논의되는 요즘에 결식아동문제는 보다 빨리 해결해야 될 일이기 때문이다.
  • 90년대 동북아의 정치기류 예진/일 전문가 특별기고

    ◎한반도정세 「한ㆍ소관계」를 축으로 진전/소 경제실리 앞세워 대한접근 가속화/중 동구변혁 여파,대북유대 강화주력/한­중,당분간 간접교류… 북한­소는 불협화음속에 지난 3월12일부터 30일까지 중국 장춘의 길림성 사회과학원과 상해 평화발전연구소의 초청으로 처음으로 중국방문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중국에는 2주일동안 체재하며 북경ㆍ장춘ㆍ연길ㆍ상해의 대학 및 연구소를 둘러 보았다. 최근의 소련ㆍ동구제국의 변화에 따라 세계에서는 동아시아의 군축문제 및 경제교류의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보다 큰 파문속에 국제관계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하는 견해를 가져왔다. 도쿄와 서울만을 왕복한데서야 어딘가 1990년대의 동아시아 국제흐름의 구도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작년 1월부터 중국방문을 계획,이번에 실현을 본 것이다. 중국에서는 최근의 유럽정세의 변화가 아시아에 어떻게 파급되고 있다고 보고 있는가. 한국과 소련의 관계를 중국은 어떻게 받아 들이고 있는가.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어디까지 진전될것인가 등에 관해 중국의 학자들과 개인적으로 의견을 교환해 보겠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중,한­소 접근에 느긋 중국학자와 의견교환을 했을때 느꼈던 점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첫째로 중국은 대 한반도정책을 장기적 관점에서 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1백년을 주기로 외교정책을 입안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학자도 있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우리들이 중국의 외부에서 부터 「한반도 정세의 변화」라고 보는 것을 중국은 변화라고 보지 않는 경우도 생겨나는 이유이다. 두번째는 한국과 소련의 관계개선에 대해서이다. 소련이 한반도에의 영향을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중국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리고 소련의 동향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도 틀림없으나 소련의 한반도에의 적극자세가 그다지 중국에 있어 위협이 된다고는 보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문화적 측면에서 한반도에 더욱 영향력을 갖고 있었던 것은 중국이며 한반도와의 교류의 역사는 중국이 가장 길다라는 중국의 자신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한ㆍ소관계개선에 관해서는 중국은 크로스관계의 진전이 한반도에 있어서 안정의 기초가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ㆍ소관계와 병행해서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해 나간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셋째로 한ㆍ중관계에 대해 중국의 학자들은 북한ㆍ중국관계를 고려할 때 한계가 있다는 견해가 많았다. 중국의 가장 중요한 국가는 북한이며 그것은 변할 수 없다. 소련ㆍ동구의 변혁 이후 북한은 여전히 고립의 방향을 취하고 있고 북한에 대해 중국의 책임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중국은 보고 있는 것 같다. 또 중국은 한국과도 1백년이 걸리더라도 좋은 관계를 구축하고 싶으나 한국은 1주간 또는 2주간의 폭으로 한중관계를 개선해 정치적관계를 맺고 싶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보임으로써 의견의 불일치가 생긴다고 지적하는 학자도 있었다. 따라서 한ㆍ중 관계가 때로는 정체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으나 실제로는 중국은 「북한과의 우호제일,한국과의 간접교류 추진」이라는 원칙을 계속 견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었다. 내가 보는 바로는 한ㆍ중교류에는 중국은 4개의 원칙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즉 정치적 관계를 맺지 않고 경제적 교류는 크게 늘린다. 스포츠교류도 계속하지만 문화면에서는 간접교류에 멈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ㆍ중간의 중요한 연구소의 자매관계 결연은 하지 않는다는 기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4원칙은 이전부터 있어왔으며 당분간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넷째로 북한체제의 혼란 및 불안정설에는 중국학자는 부정적이었다. 한국내의 김일성체제의 보도는 홍콩의 등소평보도와 마찬가지로 흥미본위라고 지적하는 학자도 있었다. 이상으로 중국의 인상과 중국의 한반도에의 견해를 소개했으나 이제부터 내자신의 견해를 말하고자 한다. 첫째로 한ㆍ소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최근 주목을 끄는 것은 한ㆍ소양국의 급속한 접근이다. 국교수립은 시간문제로 되어 있으며 그 속도는 예상이상이었다. 최근 소련의 한반도에 대한 자세는 4개의 단계로 변화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지난 84년5월의 김일성주석의 소련방문으로부터 86년10월의 방소까지의 시기,소련은 군사협력을 중심으로 북한에 적극적으로 접근했다. 86년10월부터 88년9월의 서울 올림픽때까지는 소련은 북한의 입장을 지지하면서도 동시에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했던 시기이다. 88년9월부터 89년9월 서울올림픽 1주년까지 소련은 북한을 지지하며 한국과의 관계를 진척시켰다. 그러나 때로는 북한을 자극하는 정책(서울올림픽 참가등)을 취해 양쪽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을 취했다. 북한에 대한 「한국카드」를 소련이 사용했던 시기이다. 89년9월 이후 고르바초프 정권의 유력한 브레인들이 잇달아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진전시켜,때로는 북한을 자극함으로써 소ㆍ북한관계가 악화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대담한 한반도정책을 편 것이다. 바꾸어 말한다면 지난 9월 이후 북한ㆍ소련관계에의 배려보다 한ㆍ소관계에의 배려를 우선시켰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배경에는 국내정세의 변화에 의해 개혁을 서두를 필요가 생긴 소련이 한국의 협력으로 시베리아 개발을 진척시키고 무역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을 들 수 있다. 또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일본방문을 앞두고 대일관계 타결을 위해서도 긴밀한 한ㆍ소관계는 소련에 있어서 유리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한­중관계 개선 한계 둘째,한ㆍ중관계는 어떻게 볼 것인가.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보다 강화하고 있다. 이붕총리는 88년3월 이후 3차례에 걸친 정치활동보고를 했다. 88년3월에는 『북한은 중국의 친밀한 인국이며,중국은 북한의 자주적 평화통일의 합리적 주장과 한반도의 긴장완화의 노력을 지지하고 있다』고 부추겼다. 그러나 89년3월에는 『중국과 한국 사이에는 정부관계는 존재하지 않지만 민간의 경제무역은 하고 있다』며 한국과의 경제관계에 처음으로 언급했다. 이와 함께 남북대화의 진전을 기대했다. 이것은 중국이 한국과의 간접교류에 의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3월의 보고에서는 이붕총리가 한국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최근 1년 중국과 많은 국가 특히 주변의 인국과의 관계는 한층 더 개선,강화됐다. 중국과 북한의우의는 더 돈독해졌다』고 말했다. 그 표현은 지난해 보다도 강한 것이었다. 중국의 전기침 외교부장이 3월말 기자회견에서 말한 『대만과 한반도의 통일은 동일 방식으로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중국이 한반도는 2개의 정부라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대만 문제와 한반도 문제에는 차라리 다른 점이 많다. 같이 분단된 지역이라 하더라도 중국으로 본다면 대만은 국내이며 한반도는 외국이다. 한반도에는 한국이라는 존재가 있으며 한중간접교섭의 필요는 중국도 인정하고 있는 터이다. 또 한반도에는 소련의 영향이 있으며,주한미군이 있어 한반도의 긴장완화책과 주한미군의 유지를 둘러싸고는 주변 제국사이의 의견이 엇갈려 있는 지역이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는 대만과는 다른 복잡한 국제적 이해가 교차한다. 중국 동북부에 접하는 한반도가 갖는 지정학적 중요성은 대만의 그것과는 다르다. 따라서 중국에 있어서 대북한관계가 갖는 가치는 중국ㆍ대만관계가 갖는 가치와는 이질적인 것이며,중국에 있어서 북한ㆍ중국관계의유지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그 때문에 중국은 북한의 연방제 제안을 전면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 통일방식은 대만문제해결과는 기본적으로 다르다. 이 「다른 방식」이라는 것은 차라리 지금까지의 정책의 확인이다. 북한에 있어서의 중국은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힘이며 중국자신도 북한에 대한 역할을 통감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관계는 더욱 긴밀해 질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80년대초의 중ㆍ북한관계로 돌아가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소,북한에 쇼크요법 셋째로 소련ㆍ북한관계이다. 소련은 북한에 대해 쇼크요법을 시험중이며,그 때문에 북한이 소련으로부터 다소 멀어지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북한과 소련 사이에 불협화음이 나와서는 곤란하다는 시기는 지났다는 것이다. 당장 앞으로 소련의 대북한 무기공급 템포는 둔화될 것이다. 북한은 한국에 접근하고 있는 소련에 대해 동구제국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배신행위」라고 비난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소ㆍ북한관계는 표면상으로는 조용하다. 그러나 수면하에서는 북한의 불만이 팽배하고 있으며 마침내는 불협화음이 나올 것이다. 네번째로 북한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의 문제이다. 올 들어서 부터 북한에서는 김정일비서의 신격화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김정일의 문헌을 주석의 것과 동격으로 학습하게 된 것. 김정일이 태어났다는 백두산 밀영지의 혁명사적화 사업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또 소련ㆍ동구에 파견된 유학생의 귀환명령 및 동구제국에의 비판을 보면 북한은 더 한층 폐쇄적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것이 북한에 있어서는 체제를 온존하는 길이라고 지도부는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그렇게 함에 따라 한국에 대해 우위를 견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낙관주의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마침내 북한이 한국에 대해 양보함으로써 정책전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낙관주의자이기 때문에 남북대화는 「통일과 긴장완화」라는 총론에서는 일치하지만 각론에 이르면 대화가 중단돼 버리고 만다. 1990년대는 한반도에서는 한ㆍ소관계의 진전을 축으로 일부에서는 냉전구조를 남겨두면서 복잡한 정치적 양상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다케사다 히데시
  • 여선 “일과성” 간주… 야선 “쟁점화” 기도

    ◎정호용씨 사퇴… 여야의 입장/「불법」 규명 어려워 야측 공세엔 한계/“여권 지도부 도덕성에 흠집” 관측도 정호용씨가 대구서갑 보궐선거에서 후보를 사퇴함으로써 정국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됐다. 평민당은 정씨의 사퇴가 강압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불법이라고 주장,후보사퇴 문제를 다루기 위한 임시국회를 즉각 소집토록 요구했고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까지 거론하고 있다. 민주당(가칭)도 정씨 사퇴과정에서 노태우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의 행위가 불법적이었다고 주장하며 보궐선거에서 후보를 낸 당사자로서 관계당국에 이를 고발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야권의 이러한 움직임에도 불구,정씨사퇴에 따른 여진이 정국의 흐름자체를 뒤바꿀 정도로 오래 지속되지는 않으리하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임시국회 소집요구의 경우 의석이 개의정족수(재적 4분의 1)에 미달하고 있는 평민당은 민주당에 함께 임시국회를 소집토록 요청했으나 민주당은 보궐선거에 전념해야 한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대통령 탄핵소추는 평민ㆍ민주당 의석을 모두 합해도 발의(재적 3분의 1이상)조차 할 수 없어 단순 「엄포」에 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씨사퇴를 둘러싸고 여권 수뇌부의 불법행위가 있었느냐에 대해서는 앞으로 선관위의 유권해석,또 고발이 됐을때 법원의 결정을 기다려보아야겠지만 이 또한 정치공방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측은 정씨 사퇴과정에서 여권이 국회의원선거법 1백54조(후보매수및 이해유도죄)및 1백59조(선거자유방해죄)를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회의원선거법 1백54조는 「후보자가 되지 아니하게 하거나 후보자가 된 것을 사퇴하게할 목적으로 금전ㆍ물품ㆍ거마ㆍ향응 기타 재산상의 이익이나 공사의 직을 제공하거나 그 제공의 의사를 표시 또는 제공을 약속한 자는 5년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만원이상 2백50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백59조는 후보자ㆍ당선인 등 선거관계자를 폭행ㆍ협박ㆍ유인하거나 불법나포 또는 감금하면 1백54조와 같은 처벌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씨를 사퇴시키기 위해서 여권이 노대통령이하 모든 가용채널을 동원,설득에 나섰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또 정씨 사퇴이후 다른 방법으로의 명예회복을 위해 공직기용 약속 등이 있었으리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하지만 정씨에 대한 설득이 「협박」에 가까웠는지를 입증할 구체적 증거를 확보키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정씨가 스스로 입을 열지 않는한 금품이나 공사의 직을 제공키로 약속하는등의 「매수」 행위가 있었다고 단정키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동해재선거 후보매수사건으로 구속된 구민주당 서석재사무총장의 경우 당시 매수당한 이홍섭후보가 매수사실을 시인했고 매수금전까지 명확히 확보되었던 케이스로 이번 정씨 파동과는 전혀 성격을 달리 한다 하겠다. 해방이후 우리 정치사를 볼때도 여권이 야당이나 재야인사를 불법 탄압할 때는 법적ㆍ정치적 시비거리가 되었지만 같은 여권인사에 대한 행위는 유야무야되는 경우가 많았다. 앞으로 선관위 유권해석이나 법원의 최종결정을 지켜봐야 되겠으나 법적 하자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더라도 정씨 사퇴과정과 관련해 여권지도부가 어느정도도덕적 타격을 받은 것은 사실인 듯 싶다. 6공출범이후 특히 금년초 3당통합이후 민주나 개혁을 향한 「신사고」를 주창해온 여권으로서는 정씨 사퇴를 끌어내기 위해 기관의 개입이나 강압적 설득이 있었다는 인상을 일반에게 준 것이라든지 40여명의 소속의원을 선거운동원으로 등록시키면서까지 대구보궐선거를 과열시킨 것 등에 대한 비난을 면키 어렵다. 이 때문에 3당통합이후 침체에 빠졌던 야권에 정계개편의 당위성 시비와 함께 또 하나의 정치공세거리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평민당은 다음달 1일 부천대중집회를 통해 정씨 문제와 관련한 현 정권의 부도덕성을 규탄할 계획이며 민주당은 이번 사태를 대구보궐선거에서 자당 공천자인 백승홍후보의 득표전략에 최대한 이용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야권은 자신들이 광주사태의 「가해자」라고 낙인찍은 정씨를 정권으로부터 핍박받는 「민주투사」로 부각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정씨 사퇴를 둘러싼 정국의 파문은 4월3일 보궐선거 실시로 일단락되리라는 전망이다. ◎정호용씨 일문일답/「권유」 받았을뿐 압력에 의한 사퇴 아니다/선거과열ㆍ대구사회 심한 분열도 큰 작용 ­앞으로의 거취는. 『조용히 살겠다』 ­대구에서 살 것인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후보를 사퇴하면서 14대 공천이나 다른 보장은 받았는가. 『전혀 받지 않았다. 다만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신분상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한다는 보장만 받았다』 ­사퇴의 최종결심은 언제했는가. 『며칠전에 선거가 너무 과열되고 이러다간 대구 사회전체가 분열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들었고 또 친구지간에 반목이 심화되는 게 아니냐는 걱정과 지적이 있어 사퇴를 결심하게 됐다. 대통령과의 면담이전에 이미 마음을 굳히고 서울로 올라갔다』 ­후보사퇴를 정계 은퇴선언으로 봐도 되는가. 『현재 심정으로서는 정치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다만 내가 이번에 사퇴하게 된 것은 평소에 존경하는 군선배나 친구들의 권유를 받아들여 사퇴한 것이다』 ­여권의 사퇴압력은 없었는가. 『그것은 권유이지 압력은 아니다. 다만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뿐이다』
  • 대통령 고르비의 과제 특별기고/이기택(연대교수ㆍ국제정치학)

    ◎“「경제개혁」 속도가 소앞날 좌우”/대서방협력위한 합법적 기반 일단확보/러시아 농노체제 탈피,근대화추진해야/“연방 공중분해”위험도사린 민족문제에도 능동대응 필요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새로운 개정헌법 제127조에 따라 「소련국가」의 「소연방대통령」에 올랐다. 고르바초프가 권력구조를 바꾸고 재편성하는 과정을 보면 과연 능숙한 정치곡예 또는 예술을 보는 듯하다. 그리고 그 속도을 보는 듯하다. 그는 우선 일당독재의 핵심인 공산당과 고르바초프개혁에 저항하고 보수파가 웅거하고 있는 정치국을 격파하였다. 소련헌법6조가 보장하던 공산당의 권력핵인 「지도적 역할」,즉 일당독재권력을 대통령에게 이동시켰다. 고르바초프의 권력은 이미 미국의 대통령의 권한과 미국의회의 권한,그리고 프랑스의 비상 대권을 합친것에 버금간다. 그는 소련의 권력적 상징과 실질상의 권력자가 되었다. 이번 권력구조개편은 서방측의 소련접근에 가장 큰 장애였던 고르바초프의 실각의 불안을 일단씻고 고르바초프가 서방과의 협력을 할수 있는 권력적인「적법성」의 기반을 확고히 과시하게됐다는 점이 그 핵심이다. 고르바초프의 최대의 적은 서방이 아니었다. 그의 적은 소련내의 공산당통치의 타성에 젖은 특권계급이라는 보수파였으며 스탈린36년과 브레즈네프20년의 통치에서 인간성을 잃고 공산통치의 최면에 걸려있는 소련인민대중이었다. 또하나의 적은 소련의 돌이킬수 없게 보이는 경제적 낙후인 것이다. 이제 고르바초프대통령은 페레스트로이카의 핵심인 정치개혁과 경제개혁을 본격적으로 다룰 수 있는 대내외의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고르바초프권력은 이제 소련연방을 공중분해시킬 위험성이 있는 민족문제와 고르바초프이래 도리어 후퇴한 소련인민의 생활 수준을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가 하는 경제개혁의 문제에 직면해있다. 이미 소련의 중앙아시아의 소련회교도 민족문제나 코카서스 민족문제,나아가서 발트3국문제등은 소연방분해의 위기를 느끼게 하고 있었다. 이유는 소연방의 민족문제가 이미 국내문제가 아니라 국제문제로 확산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할때에 중앙아시아회교도에 속하는 소련군부대를 일차 투입하였으나 이들은 싸움할 생각은 않고 코란성경책을 사가지고 고향갈 생각만 하였기에 2주만에 그지역의 종족이 아닌 타타르족으로 신속히 교체하였던 것이 그 예였다. 국경을 트고 종족적으로 통합하려는 소연방문제는 지금은 국제적인 영역으로 확산돼 가는 소연방의 위기인 것이다. 소련이 민족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이미 리투아니아에 서 보듯이 공산당과 정치국의 붕괴로 권력적인 연방이탈을 막을 권력적인 수단은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비상대권을 갖고 연방이탈을 막을 합법적인 수단을 갖게된 것이다. 대통령이 된 고르바초프는 이제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는 권한(헌법127조2항)을 갖고 있는 이상 연방이탈을 대내차원에서 억지할 수 있는 정치적 방법이 생긴 것이다. 물론 국내적으로 페레스트로이카에 완강한 저항세력이었던 특권계급을 억압하고 인민을 통제할 수 있는 정치력이 생겼음은 말할필요도 없다. 보수파의 집결체이었던 공산당에 거부권을 행사할수 있게 되었기때문이다. 인민이 말을 안들을 때에는 특히 민족문제등에서 의견의 차이가 심각할때에는 최고회의의 개선(헌법127조2항16)을 제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련최고회의를 해산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르바초프의 권력재편성도 민족문제와 함께 본격적인 주문제는 페레스트로이카의 핵심인 소련의 경제재편성에 있는 것이다. 이미 고르바초프는 이를 위한 소유권법과 토지기본법을 지난 6일 통과시켰다. 소유권법은 거의 자본주의체제의 사유재산제도에 가까운 내용을 담고 있다. 소련내의 외국인의 소유도 인정(소유권법 제4조1항)하고 있기까지 하다. 토지기본법에서는 종신점유물로 상속(토지기본법 제5조)도 허용하고 있다. 1917년볼셰비키혁명이래 가장혁명적인 고르바초프의 권력재편성을 고르바초프의 역사적 사명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러시아라는 전통적 국가회복에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현재 직면하는 러시아적 문제의 핵심은 차르때나 볼셰비키소비에트시대나 지금이나 러시아의 농노체제로부터 어떻게 근대화를 하는가에 있는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권력의 기반은 소련의 군부에 의해서 전복될수 없다. 그 까닭은 단순히 고르바초프의 동생이 군의 핵심간부로서 KGB와 군인사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 뿐만이 아니다. 이제 소련의 군부가 미국의 우주방위계획(SDI)을 따라잡기 위해 군사적이며 경제적 경쟁을 다시 한번 할 경우 소련의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점과 그렇게 될 경우 소련의 군사력은 기술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완전히 3등 군사국가로 전락할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고르바초프의 권력과 체제를 지지할 수 밖에 없다는데 고르바초프의 권력장악이 이번과 같이 문제없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경제적인 근대화라는 측면에서는 이번과 같은 권력 기반의 강화와 준비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거의 희망이 없다. 오늘의 소련경제 어디를 보아도 희망적인 돌파구는 없다. 소련탄광노동자에게 몸을 씻을 비누가 없으며 시장에서 돌연 그 많은 부탄가스가 사라지는 것이 소련의 경제이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가 서방 즉 미국 서유럽 일본등에 기대를 절대적으로 걸고 있는이유이며 이번 소련의 근본적인 권력 재편성도 실제에 있어서 서방에 대한 권력적인 대응이라는 점에서 최종적인 의미를 찾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고르바초프의 권력이 권력적인 합법성을 그 기반으로 한다는 서방에 대한 과시이기도 하다는 의미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고르바초프와 소련의 문제는 이제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 외언내언

    「너무 심하지 않은가」­이것은 우리 가정에서 겪고 있는 심각한 전화폭력문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인간의 내면에는 그런 면도 있는 것인지 스스로 부끄러워지는 요즘의 세태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당하는 입장에서 보면 끔찍한 일이다. ◆한창 부동산가격이 뛸때 많은 가정주부들은 복덕방으로부터 하루에 7∼8차례씩이나 되는 전화를 받은 기억을 갖고 있다. 「그럴듯한 매물이 나왔는데…」 하는 주변 복덕방의 잇단 전화가 너무나 심해 그것을 복덕방공해로 불렀다. 그만큼 부동산 동향이 관심거리가 되던 때였다. 그 이전에는 초인종공해가 주부들을 괴롭혔다. 초인종을 누르고는 「무엇을 사라」 「좋은 물건이 있다」는 등의 물품구매를 권유하는 것이었다. 월부책에서부터 옷ㆍ전자제품ㆍ학용품ㆍ강장제에 이르기까지,아파트단지 내에서는 음식점 안내팸플릿 등 다양했다. 주부들은 이를 몹시 귀찮아했다. ◆그러나 이것들은 지금과 비교하면 아주 점잖은 것들. 밤새도록 전화를 받아야 되는 도시의 많은 젊은 주부들이 전화폭력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밤낮 없이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도 지긋지긋한데 음담패설에 시달려야 하니 죽을 지경이다. 병원을 찾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런 전화피해를 당하는 가정이 전국적으로 한달 평균 1만여 곳이나 된다는 전기통신공사의 추산이고 보면,보통문제가 아니다. 전화번호를 바꾸면 다시 알아내 전화를 계속하는 악질도 있다는 데에는 더이상 할 말을 잃는다. ◆이웃 일본에서는 이와 비슷한 것을 장사로 하는 업이 성업중이다. 음담패설을 늘어놓거나 사랑얘기를 전문직업여성과 나누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쌓인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는 이유이다. 무엇이든지 돈을 벌수 있다면 마다 않는 나라여서 이런 장사까지 있다. 이것으로 인한 폐해가 적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세상이 어수선하다 보면 사회의 온갖 병리현상이 노정되게 마련. 상대방에게는 고문이 되고 본인은 정신질환으로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오늘의 병든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는 듯해 씁쓸한 느낌이다. 새봄을 맞아 이같은 사회의 오물을 말끔히 쓸어버렸으면 하는마음이다.
  • 관광업소 심야영업 시간 단축/상오 4시서 2시로 앞당겨

    ◎대중음식점 영업시작은 새벽 4시부터/서울시,새달부터 서울시내 관광업소의 심야영업시간이 상오2시까지로 2시간 단축되며 대중음식점의 영업시작 시간은 현재 상오5시에서 상오4시부터로 1시간 늘어난다. 서울시는 8일 시내 87개 관광호텔내 나이트클럽 식당 등 부대시설의 영업시간을 현재 상오4시까지에서 2시까지로 단축,이달말까지의 계도기간을 거쳐 오는 4월1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시의 이같은 조치는 시가 지난 2월19일부터 24일까지 시내 87개 관광호텔내 부대시설의 외국인 이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전체적으로는 지난해의 25ㆍ4%에서 올들어 28%로 약간 늘었으나 시간대별로는 상오2시 이후의 외국인 출입이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나 사실상 「외국인의 편의를 돕기 위한 영업시간 연장」의 명분이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또 일반 및 무도유흥업소의 영업제한시간인 밤12시와의 균형을 맞춰 이들 업주로부터의 강한 민원을 줄이기위한 것도 이번 관광업소 영업시간 단축의 한 이유이다. 대중음식점의 영업시간 연장은 여름철 일출시간이 빨라짐에따라 취해졌다. 그러나 이들 업소를 제외한 일반ㆍ무도유흥업소를 비롯,다방 인삼찻집 목욕장 이ㆍ미용업소 전자유기장 등의 영업시간은 현재와 같다. 한편 이번 서울시의 관광업소 영업시간 단축조치로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각 시ㆍ도 관광호텔 부대시설의 영업시간이 지난 1월8일이후 상오4시까지에서 밤12시∼상오1시까지로 다시 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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