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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 국제교류센터 신설/총장직속/어학연 확대… 외국어교육 강화

    ◎면학위해 교내 음주규정도 마련 서울대는 국제교류를 활성화하고 외국어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총장직속기구로 국제교류센터를 신설하고 어학연구소를 어학교육원으로 확대개편키로 했다. 서울대는 또 학내 면학분위기 조성을 위해 캠퍼스내 음주·체육활동 등에 관한 허용규정을 마련하고 각 단과대학별로 운영되는 자유열람도서관을 신축키로 했다. 서울대학교 발전위원회(공동위원장 선우중호부총장·황적륜 영어교육과교수)는 16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총장직속기구로 신설되는 국제교류센터는 외국학생과 서울대생을 위한 서비스센터의 기능을 하며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행정직 교원을 채용,현재 여러곳에 분산된 국제관련 업무를 통합추진토록 했다. 또 어학연구소를 어학훈련원으로 확대개편하여 교양필수과목으로 영어와 제2외국어의 회화·작문교육을 강화키로 했다. 이어 교육연구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학내 체육·놀이행사와 확성기사용에 제재를 가하는 「캠퍼스이용규범」을 만들고 이를 위해 캠퍼스경찰제를 도입키로했다.
  •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이세기의 인물탐구:74)

    ◎독주회·협연 한해 15회꼴… 쉬지않는 연주자/9세때 이대실내악단 연주에 매료 입문/“남다른 정열·힘있는 음악” 평… 고정땐 많아/소중한 악기 「과다니니」 제자에게 흔쾌히 빌려주기도 사랑을 하게 되거나 혹은 참혹한 현실에 부딪칠때 사람은 울부짖거나 통곡하거나 희열과 유열에 몸부림치게 된다.니체는 이런 종류의 광기를 「디오니소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예술가가 만약 디오니소스적 광기에 몰입 할 수 없다면 얼마나 불행한가.『디오니소스적 광기에 도취하여 자기라는 이성과 관습과 틀과 형식을 박차고 훨훨 창공을 날아오르는 이가 바로 김남윤』이다.이는 지휘자 김만복씨의 말이다.그는 과연 고뇌와 좌절의 여러 파란을 지나 참으로 조용히 예술의 정점을 응시하려는 예술가다.더 더욱 최근들어 영감에 가득찬 흐르는 듯한 연주는 「모든 음악에는 컬러가 있고 분위기가 있다」는 시게티의 방식을 실천시킨다.특히 그가 들려주는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은 절후의 명작다운 심오한 감정과 고고한 기품,바흐의 풍부한 환상을 유연한 선율로 이끌어낸다.경쾌한 쿠랑트(주)와 장중한 폴리포니(복음락),저음테마와 고음이 교차되는 5악장 샤콘은 마치 「꽃잎이 피어나는 넋의 개화」로 평받고 있다.그는 과연 음악을 캐내기 위해 까마득한 터널을 달려가는 고독한 자의 비애와 고뇌를 절창으로 성취해 낸 것이다. ○악보에 생명력 불어넣어 「그의 레퍼토리는 모든 작곡가를 두루 꿰고 있지만 악보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음악을 살아 숨쉬게 하는 매력이 특징이다.특히 그의 모차르트는 이따금 너무나 격정적이며 비브라토의 처절성이 모차르트에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해도 그의 백열하는 열정 때문에 청중은 온통 열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유신씨는 평한바 있다. 김남윤의 연주회에 가보면 당장 느낄수 있는 것이 그에겐 고정팬이 확보돼 있다는 점이다.그러니까 알만한 사람들이 인사치레로 온다든가 학교 인맥등으로 동원된 관객과는 전혀 그 유가 다르다.그의 미국 매니저인 테어 디스페커는 일반관객이 김남윤의 연주회 입장권을 구매하는 것을 여간 자랑스러워 하지 않는다.예를 들어지난 85년 일본 도쿄의 사보회관과 무사시노 문화시민회관 독주회가 대단한 성공을 거두자 도쿄 인터내셔널 뮤직코퍼레이션은 다음해 앙코르연주를 요청해왔고 이미 정해진 스케줄로 인해 2년후로 계약을 미룬 일 등이 이를 증명한다. 그는 78년 미국서 귀국후 지금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고 독주회를 여는가하면 실내악과 오케스트라 협연등 연평균 15회 이상의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연주가로 유명하다.그래서 국내의 비중있는 평론가인 유신 이상만 서우석 한상우들로부터 「그해의 음악인」으로거듭 선정되는등 음악과 관련된 모든 상을 혼자서 휩쓸다시피 했다. 그는 부친 김희룡씨와 음악을 좋아하는 정경선 여사 사이의 2남2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은행지점장이던 부친의 임지를 따라 전주 대전등지에서 유아기를 보냈고 처음은 피아노를 치다가 9살되던해 이대 실내악단의 순회연주를 보고 섬세한 선율에 이끌려 바이올린으로 악기를 바꿨다.바이올린을 시작한지 3년만에 이화·경향음악 콩쿠르 특상,이화여중 3학년때 동아음악콩쿠르 1등에 입상하면서 스승과 부모의 기대를 받으며 그는 누구보다 행복하고 순탄한 음악의 길을 걸어왔다. 줄리아드 음악원시절에는 김영욱 정경화를 길러낸 저명한 이반 갈라미언교수를 사사,또하나의 스승인 펠릭스 갈리미어교수는 「남윤의 남다른 정열과 힘있는 음악」을 유독 편애하여 그가 스위스 티보바가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하자 줄리아드 오케스트라의 솔리스트로 발탁했었다.이후 정상의 연주가,서울대 교수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그는 방학이면 미국의 지도교수들에게 자신의 음악의 진취를 확인하는데 게으르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한시도 쉬지않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연주회에 가고 친구들을 만난다.실제로 연습이나 강의가 없을땐 그의 손에는 라디게나 랭보나 이문열이 들려있다.원만한 대인관계로 폭넓게 사람들을 사귀지만 그중에서도 한국종합예술학교 음악원장인 이경숙과의 그림자같은 우정은 음악계에서 널리 부러움을 사고 있다.일상생활에서는 학생들과 격의없는 대화를 즐기고 아끼는 제자가 연주를 앞두고 악기 때문에 걱정하면 자신의 소중한 과다니니를 선뜻빌려주기도 한다. ○요즘도 새벽녘에 연습 요즘도 연주 교섭이 들어오면 아무리 스케줄이 빡빡해도 일단 「하겠다」고 승낙해 버린다.이를테면 자선음악회는 자선음악이기 때문에 거절할 수 없으며 지방연주는 지방인들을 위해서 당연히 외면할 수 없다는 식이다.유학시절에는 1시간의 독주회를 위해 1년동안 꼬박 하루 10시간의 연습을 지켰고 요즘은 새벽 1시이후 2∼3시간씩 바이올린을 잡는다. 그로선 빗발치는 박수갈채와 타인들의 시선속에서 어텐션을 받는 입장이다.사람들은 곧잘 그를 향해 「액티브하다」느니 또는 「슈퍼 우먼」으로 부르고 있지만 그것은 아마도 그의 음악성이 「강하고 적극적이며 곡전체를 장악하고 있다」는 뜻에 더 가깝다.간혹 엉뚱한 오해와 매도의 그물에 걸려 깊은 상처를 받는 경우에도 그는 상대방의 언어의 자유와 판단에 맡길뿐 「시간의 해결」을 믿고 동요하지 않는다.강한 정신력과 책임감,음악에 대한 사랑과 집념이 강인한 음악인으로 자신을 완성시켰고 그래서 정상에 우뚝 선 자의 자랑스러움이나 오만이 한낱 부질없음을 터득한바 오래다. 겉으로는 밝고 명랑하고 소녀처럼 들뜬 모습이지만 그와 오래 사귄 사람은 그의 내면 깊숙이 감춰진 실낱같은 섬세함을 알고 있다.실제로 이런 면은 연주에서도 자주 노출되어 악보의 한소절에도 한치 소홀함이 없다.각 소절이 갖는 의미와 정감을 세밀하게 따져본 다음 자신이 느낀 것을 청중이 그대로 느낄수 있도록 농현(농현)의 현란을 멈출줄 모른다. 『세상물정 모르던 어린시절엔 어머니가 시켜서 음악을 공부했고 음악을 하다보니 걷잡을 수 없이 음악에 빠져들었으며 이제는 「운명」처럼 음악없인 한시도 살수 없을 것이다.음악은 나의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나 자신이 음악자체라해도 과언일 수 없다』고 말할수 있게 되었다. ○“세속의 희열 초월” 극찬 그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서 어릴때부터 끝없이 그의 음악을 뒷바라지해왔고 지금도 변함없이 딸의 연주회장에 모습을 나타내는 80노모와 외아들(윤주영·17·미국유학중)과 함께 음악 못지않게 사랑과 정성으로 가족을 지키며 단란하게 살고 있다.여전히 의욕적인 연주활동을 늦추지 않아 올 상반기에 벌써 「이야기와 영상음악」청소년소녀 교향악단등 3차례의 연주,오는 6월4일 예술의 전당 독주회를 비롯,8차례의 연주 스케줄을 잡아놓고 있다. 언젠가 뉴욕타임스가 평했듯이 「그의 음악은 일체의 세속의 희열을 초월하여 자신의 생애를 보석타래로 엮어내듯」 악절마다에서 향기로운 화현마저 흘러나온다.더이상 정열에 넘치거나 솟구치는 법없이 캄캄한 어둠을 뚫고 흐르는 지하수처럼 방울방울 맺힌 영롱한 리듬은 듣는 이의 가슴속에 진한 각성을 던진다. 그가 친애해 마지않는 모차르트는 더 더욱 눈부시고 베토벤 프랑크는 장엄미가 두드러지면서 「시가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언어」이듯이 그의 음악은 「음악자체로서 존재하는 언어」로서 날이 갈수록 성숙한 차원을 성립하고 있다.이제 그는 멀고 긴 아득한 터널을 지나 햇빛 찬란한 푸른 벌판에 나선듯 예술가로서의 최상의 절정기를 지금 맞고 있는 그 순간이다. □연보 ▲1949년 전주 출생 ▲59년 이화·경향콩쿠르 특상,백운창 김용윤 양해엽 사사 ▲64년 동아음악콩쿠르 1등 ▲67년 서울예고 졸업,미 줄리아드 음악원 입학 ▲69년 워싱컨 메리워더 포스트 컴피티션 입상 ▲70년 워싱턴 내쇼널심포니 오케스트라협연 데뷔 ▲71년 줄리아드 차이코프스키 콘체르토 컴피티션 우승,줄리아드 오케스트라 협연 ▲72년 LA 영뮤지션스 파운데이션 컴피티션 캐리어그란트상 ▲73년 허드슨밸리 영아티스트·스위스 티보바가 국제음악콩쿠르 1등 ▲77년 줄리아드음악원 졸업 ▲78년 귀국,제1회 독주회(서울시민회관)이후 해마다 독주회,경희대 음대조교수 ▲80년대 싱가포르 심포너 오케스트라,자그레브방송 교향악단 협연 ▲82년 서울대 음대교수 ▲83년 서울쳄버 오케스트라 창단 ▲85년 일본 독주회 ▲미국 시카고및 뉴욕 독주회,테어디스페커 매니지먼트사 소속계약,전주및 지방 6개도시 순회연주 ▲87년 미국 독주회(카네기홀) ▲90년 제1회 대만 국제콩쿠르및 싱가포르 롤렉스콩쿠르 심사위원 ▲92년 미국 보드윈 서머페스티벌 객원교수,도쿄 국제콩쿠르 심사위원,영국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지휘 라카르도 사이)협연 ▲93년 상트 페테르부르크(구 레닌그라드)심포니 오케스트라(지휘 알렉산더 드미트리예프)협연 ▲94년 상하이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협연(서울·중국) 등 5백여회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한국음악페클럽상 난파음악상 올해의 음악가상 월간음악상 채동선 음악상 한국음악평론가상 예음상
  • 추상화가 유영국(이세기의 인물탐구:72)

    ◎간결한 선­강렬한 색채 “산의 화가”/데생을 하지않은 성품… 비례로 화면 골격잡아/자신의 그림 천여점 보좌,12일부터 공개 전시/고교2년때 화가 결심… 도일후 대학3학년때 일 미술전 대상 수상 그의 산은 항상 젊다.거센 불길로 타오르거나 짙푸른 숨결로 우거져 있다.화면 여기저기서 문득문득 솟구치는 빛의 반사는 비바람과 일출,일몰을 함축한다.단순하게 선 하나를 그었을 뿐인데도 원근의 면과 지평선의 무한공간,원과 삼각형이 절묘하게 조화된다.잡다한 수사학을 떨친채 그의 산은 높고 꿋꿋한 기상으로 피안을 우러르고 「강렬하고 명쾌한 색채의 변부」는 급류처럼 화면에 휘몰아친다. 그가 산을 그리게 된 것은 「산이 높아 골이 깊다.(산고곡심)」는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기 때문일 것이다.그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친 속에서 산만을 바라보며 성장했다.울진의 중첩된 산들은 습곡단층을 이루면서 항상 무엇으론가 꽉차 있었고 그때부터 산은 무한한 신비감과 감동으로 그에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산의 작가」이자 「원색의 연마사」로 대변되는 화가 유영국은 『화가의 눈은 항상 먼곳을 바라볼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먼곳으로 눈을 돌릴때 산과 바다와 자신의 세계가 도저(도저)하게 펼쳐진다.일부러 산을 그리지 않아도 자연에 눈을 돌리고 있으며 그곳에서 절로 『산과 바다가 대어나온다』고 도했다. ○“항상 먼곳을 보라” 강조 「근대한국미술논총」을 보면 평론가 김영나는 「1930년대 동경 유학생들」이란 글에서 『유영국의 경우 19 48년부터 계속 산을 주제로한 그림을 그려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제국미술학교출신이며 판화가인 정규는 『1930년대 자유전을 대표한 추상주의 화가는 김환기 유영국 이규상이지만 그중에서도 철저한 우리나라의 추상주의 화가는 유영국』이라고 단정하고 있다.그만큼 보이지 않는 변화속에서 산에 대한 그의 사고와 사상이 지속적으로 심화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하나의 틀속 갇혀 안주하는 형은 아니다.구성과 묘사가 완성되는 타블로와는 달리 초기엔 크고 작은 나무판을 콜라주한 릴리프(부조)적인 방법으로 앵포르멜 경향을보이고 있다가 차츰 기하학적 구성에서 벗어나 넓은 면과 밝은 색채,직선을 선회한 곡선의 이미지로 장식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나갔다. 평론가 오광수는 그의 색채 감정에 대해 『매우 투명한 원색이 주류를 이루면서 화사한 색채의 구성은 경쾌한 사유를 동반한다』고 말한다.모든 것을 극도로 걸러낸 생략과 절제는 이미 그 자체가 아름다움의 극치로서 색채언어를 완결했다는 의미다. 그가 그림을 그리게 된것은 서울 경성제2고보(현 경복고)졸업반때 부터다.일본 유학 안내팸플릴을 보고나서 화가가 될것을 결심했으나 그는 도무지 데생을 해본 경험이 없었다.망설이던 끝에 데생시험이 까다로운 동경(동경)제국미술학교 대신 데생시험이 없는 동경(동경)문화학원을 지망하게 되었고 혼자서 데생을 공부하는 모색과 탐구의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지금도 그는 그림을 그릴때 데생을 하지 않는다.화면에 자리와 크기만 정하고 공간관계 비례관계로 골격을 잡아 나간다.야외에서 스케치를 하는 일도 없고 미대 시절외엔 대상을 놓고 그림을 그린 적도 없다. 당시동경(동경)분위기는 일본 문부성이 주도하는 문전(문전)과 이과전(이과전)이 대립되어 일년 내내 전시회가 열릴 만큼 회화운동이 열기를 띠고 있었다.그는 대학 3학년때인 38년 자유미술가협회 창립전에서 영예의 최고상을 차지 했다. ○한때는 고기잡이 생활 그러나 전쟁말기의 일제의 문화정책 말살로 「선 면 색」의 삼요소로 형태의 절대화를 추구하게 되었고 설화성과 감정이 배제된 단순한 작업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그가 「브로드웨이 부기우기」의 작가 몬드리안을 좋아하는 이유는 「몬드리안의 그림은 말없는 시이고 말하는 회화」이기 때문이며 그림은 그래야 된다고 아직도 생각하고 있다. 화가로서의 활동에 제동이 걸리자 그는 43년에 귀국하여 일단 고향에 잠적했다.한동안 고기잡이 배를 타는 엉뚱한 생활을 하다가 해방과 함께 김환기 장욱진 이규상과 신사실파전을 창립,「절제된 율동미로 신비스런 평면세계를 전개」하기도 했으나 또다시 6·25가 터져 귀향,이번엔 죽변에 정착하여 그림을 멈추고 부인 김기순여사와 함께 양조장 경영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새벽부터 밤늦도록 술을 거르기도 하고 마차로 손수 술배달에 나서기도 했다.그러다가 『이만하면 생계에 급급하지 않고 그림을 그릴수 있다』고 생각되자 다시 가족을 이끌고 서울로 올라왔다.고향에 두고온 양조장은 그가 그림을 팔지 않아도 될만큼 얼마동안은 생활의 근거가 되어 주었다. 처음엔 난로를 피워도 손이 시려운 약수동의 적산가옥에서 몇시간씩 선채로 그림을 그린 것이 화근이 되어 뒷날 골절을 앓게 되었고 79년부터는 화곡동에 거주 7년전부터 건축가인 차남(건)이 지어준 지금의 신방배동으로 이사해 왔다.자녀는 2남2녀.다리가 불편 해서 주로 휠체어를 타고 그림을 그린다. 최근의 그는 산의 형상성을 존중하여 자연으로 귀의하려는 또다른 변모를 보이고 있다. 이는 「동양적인 또는 한국적인 자연관을 지닌 때문」이며 근작들에 이르러「더욱 불타는 색채의 대결」은 보는 이로 하여금 「산은 모든 자연풍경의 시초이자 종말」이라는 러스킨의 말을 절감시킨다.처음은 즐겁고 다음은 깊은 사색을 던지며 상서로운 관유(관유)와 유열의 진동이 화면전체에 창만해 있다. ○휘체어 타고 그림 그려 언제나 시대의 첨단에 서서 선도적 구실을 했다는 자부심을 감추고 갈채를 받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일까.그는 최초의 추상작가니 선구자니 하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자신이 좋아서 했을뿐」선구자가 되겠다는 의도는 없었기 때문이다.회화의 개화를 주도한 이후 혼란과 무분별의 소용돌이속에서도 언제나 의연하게 자신의 세계를 지켜왔고 현재도 그는 시대적인 경향으로 자신만의 회화간을 고수하는 자세다. 큰 키에 희끗한 머리.은근하게 멋이 풍기는 옷차림에 꾸밈없는 경상도 억양이 그럴수 없이 정답다.직업화가로서 고집스럽게 평생을 버텨온 그로서는 실은 커다란 우여곡절을 겪었다곤 할수 없다.그의 절친했던 화우인 장욱진같은 기인기질도 천재적 광기도 신화도 없어 보인다.다만 싫은 것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고 자신의 모슴을 쉽사리 외부에 드러내지 않고자 한다.아침마다 동네를 산책하고 한달에 한번 예술원 회의,병째 마시던 폭주습관은 언제부턴가 사라져버렸다. 그가 지금까지 그려온 그림은 천여점,드물게 거의가 보관되어 있고 그래서 그것은 한 화가의 위대한 투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직장에 나가듯 하루 8시간의 작업을 지켰으나 요즘은 아침 저녁 한시간씩 그린다. 그의 화실에는 근작 소품들의 손질이 끝나가고 있다.12일부터 갤러리 현대 초대로 실로 10여년만에 60년대부터 근작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세계를 한지리에 펼치기 위해서다. 그의 산하는 여전히 푸르르고 보석더미처럼 번쩍이는 화면은 이제 「차가운 추상」을 지난 중첩되는 산주름이 격정적으로 되살아나는 것이 경이롭다. 만일 현대의 고전이란 말이 가능하다면 형태와 색채에 있어 독보적일 뿐만 아니라 미술사를 말할때 그를 빼고는 말할수 없다는 차원에서라도 그의 존재는 눈부신 그의 화면만큼이나 「빛나는 고전」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연보 ▲1916년 경북 울진출생 ▲1935년 경성제2고보(현 경복고)졸업후 동경문화학원 유화과 진학 ▲1937년 일본 독립미술전 출품,제1회 자유미술전 출품(42년까지),N·B·G(NeoBeaux­ArtsGroup)출품(41년까지) ▲1938년 동경문화학원졸업,제2회 자유미술전 회고상 수상 ▲1947년 신사실파 창립회원(유영국 김환기 이규상),서울대 강사 ▲1957년 모던아트 창립전 ▲1958∼61년 현대작가초대전 및 국제자유전 ▲1962년 세계문화자유회의 초대전,신상회 창립전 ▲1963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출품 ▲1964년 제1회 개인전(서울신문회관 화랑),세계문화자유회의 초대전 ▲1966년 제2회 개인전(중앙공보관)한국현대회화 10인전 ▲1967년 동경국제 미술전 ▲1969년 제3회 개인전(신세계화랑) ▲1971년 제4회 개인전(신세계화랑),한국회화 100인전(국립현대미술관) ▲1975년 제5회 개인전(현대화랑) ▲1976년 제6회 개인전(신세계) ▲1977년 제7회 개인전(진화랑),예술원상 수상 ▲1978년 살롱 드메초대전(파리시립현대 미술관) ▲1979년 국립현대 미술관초대 유영국 회고전(1백20점 전시) ▲1982년 제8회 개인전(현대화랑) ▲1985년 서울미술대전출품 ▲1988년 88올림픽 기념 세계현대미술제출품 ▲1995년 갤러리 현대초대전 「1965∼1990」 예술원회원,화집 「유영국」(79년 국립현대미술관 출간)
  • 인간문화재 만정 이소희(이세기의 인물탐구:62)

    ◎맑고 구성진 목소리 “당대의 명창”/13세때 이화중선 소리에 매료… 송만갑 문화 입문/19세때 「춘향전 전집」 내고 72년 미 카네기홀 공연/“팔순기념무대 열어 사그라진 목소리 펼쳐 보이고파” 「천지 삼겨 사람이 나고,사람 삼겨 글만글저,뜻정자 이별별자 어이허여 내셨던고.뜻 정자를 내셨거든 이별 별자를 없었거나…’ 이는 「춘향가」중 「옥중장탄」이다. 「천지삼겨」는 정정렬 바디로 박녹주이후 만정 김소희만이 꿋꿋한 옛맛을 이어받고 있다. 널리 알려진대로 만정은 국악의 대가이자 우리가 세계에 자랑해 마지않는 인간문화재다. 만정을 둘러싼 찬사는 책한권을 꾸며도 넘칠 것이다. 이대교수이며 국악작곡가인 황병기는 그의 소리를 「가을밤 기러기소리」에 비유했고 음악평론가 서우석은 「낭랑하고 확실하게 뻗어나가는 절세의 명창」,소설가 박경수는 「민족의 한이 담긴 애원성의 절창」으로 표현하고 있다. 과연 만정은 그 음색이 맑고 차가우면서도 그 안에 이른 봄의 매화향기를 머금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더구나 그의 비절한 계면조는 억지 눈물을 강요하는 청승푸념과는 달리 안으로 한을 참아낸 고고한 유열이 깃들여있다. 이는 곧잘 강주 사마의 청삼을 눈물로 적신 「비파행」의 한구절에 비유되어 「옥반에다 크고 작은 구슬을 떨어뜨리듯」 「홀연 은병이 깨지며 물줄기 쏟아져내리듯」 애절한 사연이 굽이굽이 엮어지고 우조 또한 「철갑두른 기마병이 돌격하여 창칼을 부딪치듯」 웅장청원과 기염만장을 토해낸다. 1936년 일본 빅터레코드가 출반(서울음반 복각)한 「춘향전 전집」을 들어보면 열아홉살의 앳된 목이지만 또박또박한 발음이 청순하고 수줍은 느낌을 살려 그의 가락위에서 듣는 이의 흥취가 잦아들고 휘몰아친다. ○동·서편제 나눔은 무리 애원성의 진양조로 인해 만정은 서편제의 일인자로 손꼽히고 있지만 넉넉하면서도 화평한 평조와 경드름 설렁제를 두루 구사하여 어느 한 창제에 그를 못밖는 것은 무리가 아닐수 없다. 명인의 자질은 무엇보다 타고 난 소리와 홍진을 뛰어넘는 격조라면 이를 고루 갖춘 이가 아마도 만정일 것이다. 만정은 무대에서 관중을 압도하는 자태와 인물과 예인으로서의 조건에서 한치의 허점도 찾아볼 수 없다. 「노래를 하다보니 노래가 모두 시라 가사와 창을 올바로 알고 노래부르기 위해」 그는 등불을 돋워놓고 고전을 탐독하고 묵필을 가다듬어 묵정 그윽한 속에 노래의 진수를 아로새겨왔다. 여기에 가야금 거문고와 양금 살풀이춤이 뛰어나 그에게 가야금 가락을 닦아주던 김윤덕은 「만정은 창의 최고이지만 만약 가야금을 했다면 누구도 미치지 못할 명인이 되었을것」을 아쉬워했고 원로국악인 성경린은 「김소희의 춤은 소리보다 뛰어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의 판소리 더늠은 방정하고 단아하다.그리고 단순한 득음이 아닌 심득의 창성으로 관중을 사로잡아 지금까지 그가 공연한 판소리 무대는 흥청거리지 않은 것이 없었다. 공연이 있는 날은 자주 댕기들인 쪽진 머리에 옥비녀,옥색치마로 화사하게 단장하고 쥘부채 하나만으로 만마를 다스리고 천하를 호령한다. 수많은 공연중에서도 지난 84년 동아일보가 주최한 명인명창초대 공연은 그의 판소리의 위력이 얼마나대단한가를 한눈에 증명한 감동의 무대였다. 그날의 청중은 대학생에서 직장인,멀리 지방에서 올라온 촌로에 이르기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을 구름같이 메웠고 객석은 시종 박수와 추임새로 「국창」에 대한 예우를 지켰다. 만정 역시 칠순을 눈앞에 둔 나이와는 상관없이 정확한 발음에 적절한 극적표현 그리고 구성진 수리성과 질감이 풍부한 방울목으로 목을 굴려 공연이 진행되는 2시간을 정교하게 수놓아갔다. ○전 일본 순회공연 가져 특히 「춘향가」중 「오리정 이별」대목은 자진모리 장단을 엇박으로 바꾸면서 원박으로 되돌아가 중모리로 마무리짓는 상성의 극치를 보였다. 이 대목에 이르면 아무리 「소리는 타고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의 소리목에 깃든 공력앞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런 공연은 그의 전성기인 60∼70년대에 미 카네기홀과 링컨센터에서의 기립박수를 꼽을수 있다. 또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초청한 전일본 순회 공연도 한국 국창의 긍지를 마음껏 과시한 역사적 무대의 하나다. 만정은 평소 겸허하고 따사로우나저속하고 부당한 천격을 용납하지 않는다.후학들이 실수로라도 경박한 언행을 저지르면 그 자리에서 엄히 나무라고 자세를 바로잡아준다.그러나 사소한 일에 연연하거나 사적인 인맥으로 사람을 평가하기보다 상대방이 지닌 기량과 미점을 적소에 둘줄 안다. 예를들어 국악계는 계보에 엄격한 편이지만 그는 자신이 키운 성창순을 정권진에게 보내 강산제를 이어받게 했고 신영희를 박초월에게 소개하는등 그 스승의 좋은 대목을 제대로 배울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2년전 동숭아트홀에서 외동딸인 박윤초가 판소리 독창을 열었을때는 딸에게 『너 비위도 좋다.그 소리를 가지고 어떻게 노래하느냐』고 나무라면서도 막상 공연날은 무대에 나와 『아직 미거하나 후진을 키운다는 뜻에서 격려해달라』고 부탁하기를 잊지 않았다.후계자 자리를 딸에게 물려주게 되느냐는 문제도 『제가 잘하면 물려줄 것이요 잘못하면 어쩔수 없다』고 냉정한 면을 지킨다. 만정은 이제 국악계의 어른으로서 국악이 발전되어지는 과정을 그 한가운데서 지켜보는 위치다.지난해 신병으로 협회이사장 자리를 물러나면서 『원래 이사장 자리라는 것은 국악실력보다는 단체를 잘 이끌고 운영할수 있는 실무자가 바람직하다』는 이유로 이성림을 추천했고 이사장 선출로 야기될 마찰을 미연에 방지하는 결단을 보였다. 만정의 어린시절은 모든 「끼」있는 예인의 삶이 그러하듯 모진 가난과 슬픔의 기록이 점철된다. 판소리의 태두인 동리 신재효를 배출한 고창 흥덕에서 출생,부모의 불화로 부친은 타관으로 떠돌고 모친마저 친정으로 가버리자 친척집에 얹혀서 고아처럼 자라났다. ○「천에 하나」 어려운 천재 광주여고보에 들어간 13살 되던해 당대 명창이던 이화중선의 공연을 보고 장래 「소리하는 사람」이 될것을 결심했고 동편제 소리의 대가인 송만갑문하에 입문한지 1년만에 남원명창대회에서 1등,송만갑은 미려청아한 소리를 지닌 어린 소녀를 향해 「천에 하나 나오기 어려운 천재」임을 인정하여 수업료도 받지않고 그의 모든 것을 전수시켰다. 이어서 정정렬에게 「춘향가」를 비롯,화순의 박동실에게 「수궁가」「적벽가」,김계문에게 향제가곡을 사사하고 이승환에게 거문고,강태홍 김윤덕에게 가야금등 금과옥조와도 같은 스승들을 거치면서 국악의 가시밭 길을 무난하게 헤쳐나갔다. 21살에 결혼하여 10년만에 부군을 잃고 3남매를 혼자서 키우면서 속창 속악의 천시속에서 서너명을 앉혀놓고 공연을 한적도 있고 조선창극단 시절에는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내용때문에 왜경에게 붙잡혀 유치장 신세를 진적도 있다. ○소희이름 이모가 지어 조선성악연구회에 드나들던 소녀시절 본명 김순옥을 버리고 이모인 김남수씨가 지어준 「소희」란 이름을 가졌다.아호 「만정」은 「날이 갈수록 잔잔히 이름을 날리라」는 뜻으로 사주를 보는 이가 지어준 것이다. 만정은 지난 25년간 살았던 종로구 화동 골목안의 한옥을 떠나 84년 삼청동 쪽에 위치한 소격동으로 이사하면서 비로소 연탄불갈기에서 벗어났다. 지금도 결혼하지 않은 아들(준석·46·상업)과 둘이 살면서 손님이 오면 손수 문을 따주고 제자를 가르치고 밥짓고 빨래한다. 그만큼 그의 생활은 궁핍이 펼날이 없이 조금이라도 여유가생기면 가난한 제자들을 데려다 가르쳤다.지금은 국악계의 중진이 된 김소연 안향련이 그들이고 영화 「서편제」로 스타가 된 오정해는 8년간 이집에 머물면서 그가 세운 서울국악예고를 나왔다. 찬연한 오늘은 참담한 어제가 있었기에 얻어진 결과일 것이다. 지난 1,2년 병치레로 쇠잔해졌을 망정 그에게선 여전히 「닦은 자의 비어있는듯 차있는(수자 여하이유실)」예술불멸만이 돋보인다. 그리고 모진 시간속에서도 국창의 기개를 잃지않아 『만약 그때까지 살수 있다면 팔순 기념무대에 서서 사그라지면 사그라진대로 나의 목을 숨김없이 펼쳐보이고 싶다』고도 말한다. 한 시대를 주름잡던 화려한 흔적을 감추고 이제 역사의 뒤안길에 서려는 예인의 모습에는 자신을 끝없이 탁마하며 살아온 정제된 아름다움만이 하나의 구둣점처럼 선명하게 찍혀있다. □연보 ▲1917년 전북 고창 출생,본명 김순옥 ▲1930년 흥덕공립보통학교 졸업 ▲1932년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2년 수료 ▲1929∼34년 송만갑에게 「심청가」「흥보가」사사 ▲1936년 일본 빅터 오케이레코드 전속,「춘향전전집」취입 ▲1948년 여성국악동우회 설립 ▲1954년 민속예술학원(서울국악예고 전신)설립 ▲1959년 국악30년 김소희 판소리첫번째 독창회(서울 원각사) ▲1962년 한국국악협회 이사장,파리국제민속예술제 참가이후 해마다 세계 각국순회 공연,신호열씨에게 서예사사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제5호 판소리 기능보유자),뉴욕 아시아학회 초청 미국공연 ▲1967년부터 국전서예부 연3회입선 ▲1969년 일본 요미우리신문주최 요미우리홀 공연,전일본지역 순회 ▲1972년 미국카네기홀서 김소희 판소리독창회,뮌헨올림픽 참가공연 ▲1973년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심청가전집」(5장)출반 ▲1977년 불우이웃을 위한 회갑공연(서울시민회관)「춘향전」완창 출반 ▲1979년 김소희 국악50년 기념공연(세종문회회관),고향 흥덕에「만정 김소희여사 국창기념비」건립 ▲1982년 제1회 한국국악대상 수상,첫민요 발표회(공간사랑),민요전집 출반(성음사),이대 한양대 출강 ▲1984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동아일보주최 「명창 김소희 판소리의 밤 대공연」(세종문화회관 대강당) ▲1988년 서울 올림픽폐막식 공연,「김소희 구음과 민요」출반(성음사) ▲1993년 국악협회 이사장,94「국악의 해」지정기념 국악제 총지휘 ▲1994년 제1회 방일영국악상 및 11월28일 수상기념공연
  • KBS향·서울시향/「팝스 콘서트」 대결

    ◎박인수·이은미·설운도·유열 출연/영화·팝·경음악 등 다채롭게 소개 우리나라 교향악의 양대 산맥인 KBS교향악단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이번에는 「팝스 콘서트」로 대결을 벌인다. KBS교향악단이 19·20일 서울 KBS홀에서 「팝스 콘서트」를 갖는데 이어 서울시향이 25·26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같은 제목의 연주회를 갖는 것.두 콘서트는 우리 귀에 친숙한 영화음악과 경음악 팝음악을 오케스트라의 다채로운 색채로 들려주는 여름 음악계의 인기 프로그램이다. KBS교향악단의 「팝스 콘서트」는 올해로 9번째.이스라엘 필하모닉의 부지휘자를 역임한 미국 출신의 「팝스 콘서트」 전문지휘자 매튜 가버트가 「스타 테너」 박인수,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가수 이은미와 즐거운 무대를 꾸민다.대형 멀티비전을 설치해 영상과 음악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한 것도 눈요기거리다. 1부는 「히트 팝송」.비틀즈 메들리에 이어 마이클 잭슨,글로리아 에스테판,빌리 조엘의 히트곡과 「스카보로의 추억」 등이 선보인다.2부는 「영화 음악」으로 「문 리버」「오페라의 유령」「스타워즈」「ET」와 함께 박인수·이은미가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와 가수 모린 맥거번이 불러 히트한 「영원한 사랑」(A Love until the end of time)을 부른다.781­1572. 서울시향 역시 편곡과 하모니카 연주에도 능한 미국의 팝스 전문지휘자 리처드 헤이먼을 불러들이고 가수 설운도와 유열 임종환 한영애를 협연자로 내세운다. 한영애는 「루실」「누구 없소」로 대중에 잘 알려져 있으며 임종환은 「그냥 걸었어」로 올 가요계의 주목을 끈 신인 가수.대학가요제 출신의 유열은 부드러운 미성의 소유자로 젊은층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서울시향은 특히 드물게 트로트 전문가수 설운도를 등장시켜 눈길을 끈다.설운도는 침체에 빠진 트로트 음악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가요계의 평가를 받고 있는 중견가수이다. 서울시향은 이번 무대에서 「쥬라기공원」「알라딘」「인디애나 존스」 등 영화음악과 새롭게 편곡한 「핑계」「여울목」,그리고 초청가수들의 히트곡들을 들려주게 된다.서울시립합창단 특별출연.3991­551.
  • 구약성서 뮤지컬로 각색

    ◎「요셉,… 드림코트」 무대에/극단 현대극장 새달 공연/가수 신효범·유열 등 출연 극단 현대극장(대표 김의경)은 화제의 뮤지컬 「요셉,그리고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김덕남 연출)를 4월1일부터 5일까지 매일 하오4시와 7시30분 두차례씩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무대에 올린다. 뮤지컬의 귀재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음악을 맡은 「요셉…」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요셉과 그의 시기심 많은 11명의 형제 이야기를 현대감각으로 각색한 작품. 발라드,로큰롤,컨트리 앤 웨스턴,칼립소,샹송,랩등 대중음악의 전장르가 백과사전처럼 펼쳐질 이 무대는 모든 대사를 노래로 처리해 뮤지컬보다는 대중오페라의 형식을 띤 것이 특징. 이번 공연에는 뛰어난 가창력을 인정받고 있는 가수 신효범·유열등이 주역으로 출연,주목을 끌고 있는데 이들이 과연 우리 뮤지컬의 고질적 병폐인 「노래가사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단점」을 어느정도 해소할지 관심을 모은다.
  • 단군릉/축조형태 고구려 양식

    ◎본사,북의 단군릉 발굴관련 보고문·논문 긴급입수… 최무장교수 분석/“김일성이 단군 실체인물로 찾아줬다” 주장/고고학자료까지 정치에 이용,주민을 기만 북한 사회과학원은 『단군의 무덤을 발굴했다』고 지난 10월2일 공표한데 이어 이와 관련한 『단군 및 고조선에 관한 학술발표회』를 같은달 12∼13일에 평양인민학습당에서 가졌다.서울신문은 그동안 단편적으로만 소개되었던 북한 사회과학원의 『단군릉 발굴 보고문』과 『단군 및 고조선에 관한 학술논문』을 긴급입수,생생한 사진과 함께 건국대 최무장교수(고고학)의 해제 및 북한의 단군릉 주장에 대한 고고학적 견해를 싣는다. 발굴 보고문에 따르면 이른바 단군릉은 평양시 강동군 강동읍에서 서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대박산의 기슭에 위치한다.릉은 돌로 쌓은 고구려 양식의 돌칸흙무덤(봉토석실묘)으로 반 지하에 축조한 주검칸(묘실)의 크기는 동서 2백73㎝,남북 2백76㎝,바닥에서 천장까지의 높이는 1백60㎝이다.벽체는 돌로 쌓은뒤 뚜껑을 덮었고 입구도 돌로 막았다.출토물은 남녀2인의 사람뼈로 모두 86개이며 이 가운데 단군으로 추정되는 남자의 키는 1백70㎝정도이다.이 뼈는 전자성공명법으로 측정 한 결과 지금부터 5011년 전이라는 수치가 나왔다.사람뼈 이외에는 금동왕관편 2점 및 토기편,관못 6개가 나왔고 무덤앞에는 단군릉이라 새긴 표식비와 화강암제의 상돌,무덤좌우에 돌사자가 각각 하나씩 있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단군의 무덤이 고구려 무덤 양식으로 되어있는 것은 그 시기에 개축했기 때문』이라며 『고구려 사람들은 시조인 동명성왕과 함께 단군도 숭배했다』고 쓰고 있다. 『단군 및 고조선에 관한 학술발표회』에는 모두 15명의 학자가 나섰다.먼저 전영률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위대한 수령님이 단군을 실체한 인물로 믿아주시었다…』는 식.이어 고고학연구소의 박진욱과 장우진 김고경이 차례로 나서 『장지연의 「위암문고」권7에 평안도 강동군의 서쪽에 단군묘가 있다고 분명히 기록되』면서 『이번에 나온 단군의 뼈는 북한에서 나온 신석기시대 이후 인골 가운데 가장 크며 이뼈를 사회과학원의 전자상자성공명연대측정장치로 누적선량을 각각 30번과 24번 측정한 결과 50 11년이 산출됐다』는 주장을 폈다. 다음은 고조선이 뛰어난 문화를 지니고 있었으며 그 중심지는 평양이었다는 주장이 주류를 이룬다.김일성종합대학의 현명오는 『첫 문명국가인 고조선의 도읍지는 바로 평양』이라며 『건국연대는 절대연대로 5011년,즉 기원전 3천년대 초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이번 발표와 연관시키고 있다.또 고고학연구소의 석광준과 언어연구소의 유열은 『평양은 고대문화의 중심지로 단군조선 시기부터 「심지글자」라는 민족글자를 가졌었다』고 주장했다. 이 학술발표회는 역사연구소의 조대일과 손영정이 나서 『평양의 단군사당과 강화도 마니산 첨성단등지의 단군숭배와 관련된 의례는 오랜 풍습이었다』면서 『조선은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이후 반만년동안 하나의 핏줄로 이어왔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종합하면 보고문에 이어 무려 15명에 이르는 학자들의 발표내용은 한결같이 너무 정치적이고 유치하다.위에 인용한 내용은 발표의 핵심적인 내용을 거의 담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독자들의 냉정한 판단을 바란다. 필자는 북한학자들이 주장하는 「단군릉」을 고구려무덤으로 본다. 북한학자 자신들도 무덤자체는 고구려 양식의 돌칸흙무덤으로 개축되었고 벽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그러면서 그 안의 사자는 지금부터 50 11년전 묻혔고,바로 단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무덤의 축조형태는 완전히 고구려 양식이다.출토유물중 금동관편과 관못6개는 무엇을 말하는가.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으로 금속을 사용한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문명이 기원전 3천5백년,인도의 인더스문명이 기원전 2천5백년,중국의 황하유역의 상문명이 기원전 1천5백년이라는 사실은 세계가 주지하는 바이다. 고고학은 역사의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고 없는 부분을 보충하며,더 나아가 인류의 기원을 찾는 학문이다.북한은 그러나 「단군릉」에서 보듯 아직도 고고학적 자료를 정치에 이용하여 북한주민을 기만하고 「위대한 수령」을 찬양하는데 열중하고 있다.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이른바「단군릉」도 그 자체로 고구려의 유적으로는 대단히 큰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믿어진다.필자는 북한학계가 이러한 왜곡이나 과장에서 벗어나 정도를 걷는다면 이제부터라도 민족사의 빛나는 성과를 거둘수 있게 될것으로 확신한다.
  • 보청기 대량 구입 속여/20대가 2천만원 사취

    서울 성동경찰서는 3일 장광재씨(23·무직·종로구 명륜동 2가130)를 사기혐의로 구속했다. 장씨는 지난2월12일 보청기제조업체인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대한무역보청기 영업과장 김광석씨(40)에게 전화를 걸어 『대우·현대등 재벌회사의 후원하에 이선희,유열 등 인기연예인이 출연하는 「소리없는 천국」이라는 장애자돕기 자선공연을 준비중』이라면서 『공연에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보청기 4백여개(시가 1억2천여만원)를 사주겠다』고 속여 김씨로부터 소개비 명목으로 8차례에 걸쳐 모두 1천9백여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 안산세관 전면 수사/돈받고 보드카 불법통관 묵인혐의

    ◎세관장도 곧 소환 【수원=김학준기자】 수원지검 특수부는 7일 안산세관 일부 간부들이 미국산 일반증류주인 보드카를 세금이 낮은 희석식 소주로 통관시켜 주는 조건으로 거액의 뇌무을 받은 혐의를 잡고 전면 수사에 나섰다. 검찰에 따르면 안산세관 윤군호 수입과장과 유열 수입계장은 지난해 11월 (주)삼학대표 박용웅씨(41·구속·안산시 사동 234의1)가 주세80%가 부과되는 보드카의 일종인 3백75㎖들이 증류주 1만3천병을 통관시키며 주세가 50%인 증류식 소주라고 거짓신고 했는데도 이를 눈감아 주는 조건으로 각각 4백만∼6백만원씩의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다.또 검찰은 안산세관 직원들이 수출입화물의 통관을 둘러싸고 신영철 관세사(57)등 관내 관세사들로부터 한달에 10만∼20만원씩의 뇌물을 정기적으로 받아왔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현 김선욱 세관장과 윤영표 전세관장을 금명 소환해 관련여부를 조사키로 했다.
  • 가수 유열 교통사고/40대 남자 치어 중태

    9일 하오 3시55분쯤 서울 서초구 반포동 94의2 진아빌딩 앞길 육교 밑에서 서울3두3793 콩코드승용차를 몰고 가던 가수 유종렬씨(30·예명 유열)가 자전거를 타고 무단횡단하던 40대 남자를 치어 중태에 빠뜨렸다. 유씨는 이날 반포동 팰리스호텔 쪽에서 동작동 국립묘지 방향으로 편도 4차선 도로의 3차선을 따라 시속 60㎞의 속도로 차를 몰고 가다 반포동 주공아파트 쪽에서 서래마을 쪽으로 가던 피해자를 치었다. 피해자는 강남성모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치료를 받았으나 뇌사상태이며 신분증 등을 소지하고 있지 않아 신원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 유씨는 이날 강남성모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버지(71)를 병문안한 뒤 하오 6시부터 시작되는 MBC방송음악 프로그램 「FM은 내친구」 생방송 진행을 위해 여의도 방송국으로 가던 길이었다.
  • 가이후총리 방한 이모저모

    ◎“반일”구호속 파고다공원 3ㆍ1비에 헌화 ○…노태우대통령과 가이후 도시키 일본총리는 10일상오 청와대에서 약 90분간에 걸친 2차 한일정상회담을 갖고 재일교포법적 지위문제,무역역조시정문제,기술협력문제,유엔가입문제,아시아ㆍ태평양협력문제 등 양국간 쌍무적인 문제들에 관해 심도있는 의견을 교환. 회담이 끝난 뒤 이수정청와대 대변인은 『양국정상은 한일양국관계에 대해 광범위하고 구체적인 회담을 가졌으며 노대통령과 가이후총리는 회담내용에 만족을 표시했다』고 발표. 양국정상은 예정된 의제외에 폐르시아만사태도 거론,미ㆍ이라크 외무장관회담이 결렬된데 유감을 표시하고 전쟁 등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는 일이 없이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희망했는데 가이후총리는 노대통령에게 『회담 결렬소식을 듣고 유엔대사에게 사무총장을 만나 중재노력을 적극화하도록 훈령했다』고 설명. 노대통령은 희담을 마치면서 『현재 한일관계를 맡고 있는 사람들이 불행했던 과거를 매듭짓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정립한 것으로 역사에 기록되게 성의를 갖고 노력하자』고 말했으며 가이후총리는 『지난해 5월과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룩한 결과에 보람을 느낀다』며 『성의와 신념을 갖고 합의사항을 실천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 가이후총리는 또 『지금 나는 파고다공원을 방문,느낀 바를 일본국민들에게 솔직히 전달하여 흐림이 없고 맑은 한일관계를 여는 인식을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으며 노대통령은 가이후총리가 훌륭한 한국인의 친구로 오래 남기를 바라며 아시아순방이 성공을 거두기를 바란다』고 인사. ○…이날 상오 가이후총리의 파고다공원방문은 공원밖에서 수백명의 시민들이 반일구호를 외치는 등 다소 착잡한 분위기속에 3ㆍ1독립선언비에 헌화하고 경내를 잠시 둘러보는 순서로 10여분만에 종료. 가이후총리는 부인 사치요(행세)여사 및 나카야마(중산)외무장관 등 수행원 10여명과 함께 이날 상오11시50분쯤 공원정문에 도착,기다리고 있던 배문환종로구청장의 안내를 받으며 경내에 진입. 검은색 오버코트차림의 가이후총리는 손병희선생동상옆을 지나 곧바로 3ㆍ1독립선언비에헌화하고 잠시 고개를 숙여 묵념. 가이후총리는 이어 독립선언비주위의 3ㆍ1운동찬양부조물을 둘러봤는데 당시 유관순열사가 만세를 부르는 장면,해주기생이 일경의 기마에 짓밟히는 모습과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는 조각 등 세군데에서 걸음을 멈추고 안내자의 설명을 경청. 가이후총리는 시종 무거운 표정으로 단 한마디의 말도 없었으며 유열사상 앞에서 『당시 17세의 여고생으로 천안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안내자의 설명을 듣고는 고개만 끄덕이기도. ○…김영삼 민자당대표,김대중 평민당총재,김재광 국회부의장 등 여야정치지도자들은 10일 하오 국회를 방문한 가이후 일본총리를 맞아 과거의 불행했던 한일관계를 조목조목 들어가며 일본측의 반성을 강력히 촉구. 이날 해외순방중인 박준규국회의장을 대신해 가이후총리를 영접했던 김부의장은 『일제의 식민지정책 속에 7백50만이란 천문학적 숫자의 우리 동포가 희생당했다』고 전제,『가이후총리의 방한을 맞아 우리 국민 일부가 반대데모를 했다는 사실이 불행했던 과거청산이 미진했음을 증명한 것』이라며 물질적 배상보다 허심탄회한 입장에서 일본측의 성의있는 반성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
  • 「책도둑」극성…대학도서관“수난”/전자감응장치 설치불구,해마다 늘어

    ◎폐가식보다 개가식서 더 잦아/2년반새 3천3백권 잃기도/“책도둑은 도둑아니다” 잘못인식/「창던지기」 대비,망설치한 곳도 대학도서관들이 책도난으로 골치를 앓고 있다. 대학마다 도서관 출입을 까다롭게 하고 일부 대학에서는 열람실입구에 전자감응장치까지 설치하고 있으나 책도둑이 갈수록 늘고있기 때문이다. 책도난은 학생들의 신청을 받아 책을 대출해주는 폐가식에서보다 자유롭게 원하는 책을 직접 찾아볼수 있도록 하고 있는 개가식에서 더욱 잦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학들이 한번 점검을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력과 비용이 요구되는데다 항상 개방해야 하는 대학도서관의 특성상 정기적인 점검을 하지 못하고 있어 분실도서의 실태마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흔하다. 도서관을 완전개가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숭실대의 경우 지난 여름방학기간을 이용해 2년6개월만에 장서점검을 한 결과 20여만권의 소장도서 가운데 1.6%가 넘는 3천3백권을 도난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동국대도 여름방학동안 자유열람을 허용하고 있는 불교자료실을 처음으로 점검한 결과 5만여권의 장서 가운데 1.8%가량인 9백여권을 분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초에 점검을 한 한양대에서도 서울과 지방캠퍼스를 합해 1천6백여권이 없어진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따라 대학마다 도난사고를 막기위해 안간힘을 쏟고있다. 전자감응장치를 설치하고 있는 서울대는 학생들이 전자감응장치에 적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책갈피속에 붙어있는 마그네틱테이프를 뜯어내는 사례가 빈발하자 마그네틱테이프를 3,4군데나 붙여 책반출을 막고있다. 이화여대는 지난 86년부터 전자감응장치를 갖췄는데도 해마다 6백여권의 책들이 분실되자 올초 도서관의 창마다 도난방지용 망을 설치했다. 학생들 가운데에는 주변에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 도서관 창밖으로 책을 던지는 수법을 쓰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숭실대 유제춘 도서관부관장(56)은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 그릇된 사고방식이 의식속에 잠재해 있는 일부 학생들이 죄책감도 느끼지않고 책을 가져가는 것 같다』면서 『타율적인 규제나 감시에 앞서 학생들 스스로가도서관의 책은 공유재산임을 명시해 모든 사람이 함께 이용해야 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 유관순열사 초혼묘/어제 천원서 준공식/강총리 참석

    강영훈국무총리는 1일 상오 충남천원군병천면 소재 유관순열사 사당역내에 마련된 유열사 초혼묘및 기념비 준공식에 참석,추념사를 통해 『71년전 아오내장터에서 독립만세대열의 선두에 섰던 유열사의 애국정신은 오늘 민족의 장래를 밝혀주는 영원불멸의 등대가 되고 있다』고 추모했다. 이날 준공식에는 강총리를 비롯,이상연보훈처장,유근창 유열사기념사업회장등 각계인사8백여명이 참석했다.
  • 이념서적 출판 혐의/두리사 대표에 영장

    치안본부는 13일 도서출판 「두리」대표 유창선씨(30)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유씨는 지난해 5월부터 「유청」「유열」 등의 필명으로 『김일성주체사상에 따라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을 쟁취하자』는 내용이 담긴 「대중활동가론」 「종파주의연구」 등 이념서적 8천여권을 발간해 팔아온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이에앞서 지난12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신동아아파트 2동 212호 유씨의 집과 출판사 사무실을 압수 수색했다.
  • 유관순 열사 한자명 「관순」아닌 “관순”

    ◎천원 고향주민 호적부서 발견/“독립정신 퇴색 노려 일제 조작” 충남 천원군 병천면ㆍ동면일대 주민들은 『「유관순」열사의 이름가운데 「관」자가 「관자의 잘못』이라면서 유열사의 바른 이름찾기운동에 나섰다. 3.1운동 당시 유열사가 살았던 천원군 동면사무소 이돈종호적계장(57)은 최근 낡아 퇴색된 유열사가 일가의 호적부를 확인한 결과 유열사는 광무6년(명치35년) 11월17일 아버지 유중권,어머니 이소제씨 사이에서 둘째딸로 태어났으며 이름도 관순이가 아닌 관순이로 기록되어 있음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호적부에는 유열사의 6살 위인 언니 계출,3살위인 오빠 우석,아래로 3살밑인 남동생 인석과 6살아래인 관석 등의 형제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에따라 이 일대주민들은 『한국민의 뿌리말살정책에 혈안이 됐던 당시 왜정관리들이 의도적으로 유열사의 이름중 관자를 관자로 바꿔치기 했다』면서 유열사의 얼을 빚내기 위해 바른이름 찾기운동을 벌이게 됐다고 말했다. 유열사의 호적등본이 이처럼 뒤늦게 발견된것은 지난 73년1월 행정구역개편 당시 충남 천원군 병천면 용두리 338로 바뀐 유열사의 출생지는 본래 동면 용두리 338이었기 때문에 구호적부도 옛 주소지인 동면사무소에 그대로 보관되고 있어 역사학자는 물론 누구도 쉽게 유열사의 호적이름 한자에 관심을 두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이계장은 지난 85년부터 동면ㆍ병천면 등 아우내일대 주민들 사이에 『유열사 이름이 호적기록과 틀리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는데다 최근 유열사의 사촌동생 정석씨(74ㆍ병천면 용두리 418)가 유열사의 정확한 한자이름을 찾아줄 것을 요구해와 옛날 호적을 일일이 뒤져 이같은 사실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 피켓도 함성도 없이 그러나 희망을 안고/민주자유당 창당대회를 보고

    나는 여의도를 「정치도」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그리고 「안개도」「연기도」라고 꼬집어 온 사람이다. 그곳 국회의사당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나로서는 툭하면 자욱한 안개가 끼는 그곳의 풍경처럼 잘 헤아려지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정치감각이 둔하다는 얘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국회의사당만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여의도라는 곳이 자꾸만 정이 떨어지고 따라서 그곳을 가는 일이 거의 없다. 약속장소가 그곳이 되면 으레 비틀어 버린다. 병이라면 그것도 큰 병이다. 그러한 내가 2월9일 아침 그 안개지대엘 갔다. 그날 아침도 여의도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내가 그 내키지않는 곳엘 간 것은 그날 10시부터 중소기업회관에서 열리는 민주자유당 「합당수임기구 합동의회」라는 역사의 현장을 스케치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서울신문에서 내게 이 일을 맡기려할 때 나는 참으로 당황했었다. 정치감각이 둔한,아니 아예 그쪽을 감지할 수 있는 더듬이가 나에게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결국 이 일을 떠맡게 되었다. 정치에 무식한 사람의눈으로 본 역사현장의 스케치도 어떤 면에서는 독자들에게 재미를 줄지도 모른다는 좀 뻔뻔스런 생각을 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현장을 찾게 되었다. 개회 20분전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과 귀를 「행사」쪽에 모았다. 과연 이곳에서 정치폭탄이 터질 것인가 싶도록 덤덤한 분위기였다. 회의에 참석하는 국회의원들도 서로 수인사를 나누는 정도였고 보도진들도 덤덤한 표정들이었다. 몇몇 기자들이 「내일부터 출입처가 어디냐?」는 농담을 주고 받을 뿐이었다. 10시 정각,대회장에 들어서니 사진기자들이 단상앞에 사다리를 늘어놓고 올라서서 플래시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이룬 높은 벽 때문에 단상은 차단되었고 모습을 볼 수 없는 사회자가 성원보고를 했다. 1백11명중 1백6명이 참석했다며 개회를 선언했다. 이어 의장단이 선출되고 경과보고,합당결의,강령 및 기본정책의 채택,대국민 메시지 채택 등의 순으로 회의는 거침없이 진행되었고 최고위원들의 인사가 있은 뒤 만세 3창으로 회의는 끝났다.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회의가 끝났다기보다 「국민의 여망,시대의 요청에 의한 새로운 정당,민주자유당」이 출범한 것이다. 그제서야 사진기자들이 이루었던 담이 무너졌다. 회의는 그렇게 물흘러가듯 했으며 다른 정치집회에서처럼 그 흔한 피켓도 볼 수가 없었다. 야단스럽지 않은 분위기였으나 엄숙하기는 했다. 그 80여분 남짓한 동안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온 무수한 말들이 내게 묵자의 겸애편을 떠올려 주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국민을 안심시키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며 나라를 밝은 내일로 이끈다」든지 「분열과 정치대결의 정치사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합당한 거대여당을 발족하게 됐다」는 등의 창당선언이나 경과보고때 나온 말들이 그것을 생각케 했다. 묵자는 일찍이 「천하의 이익을 일으키고 천하의 해를 제거하는 것이 인인의 임무」라고 말했다. 대국이 소국을 침공하고 큰 집이 작은 집을 어지럽히며 강자가 약자를 위협하고 다수가 소수에게 횡포하며 간사한 자가 어리석을 자를 속이고 귀한 자가 천민에게 오만한 것 따위가 천하의 해독인데 그런 여러가지 해독이 생기는 원인은남을 사랑하지 않고 남을 이롭게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대회장의 마이크를 통해 내게 전달된 무수한 말들은 결국 그 밑 바탕에 이러한 묵자의 말들이 깔려 있었다고 느껴진 것이다. 분열과 대립의 정치사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노태우대통령과 김영삼 민주ㆍ김종필 공화당총재가 구상한 4당 구조의 과감한 타파도 결국은 『남을 그르다 하면서 별다른 대안이 없는 것은 불을 가지고 불을 끄자고 덤비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묵자의 얘기와 통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어쨌든 대회가 끝났을 때의 여의도는 안개가 걷힌 상태였다. 마치 불투명한 정국을 해소하기 위한 합당을 상징하기라도 하는 듯이. 그러나 그 합당대회를 장식한 말들만으로는 내 머리속에 낀 「안개는 아직도」 였다. 그것은 여태까지 많은 정치인들의 입에서 나온 숱한 「좋은 말」들이 말의 성찬이었을 뿐 실행되어 온 사례를 별로 보지 못했기 때문일 터였다. 그러한 불신의 안개는 내게서만 걷히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상당수 국민들의 머리 속에서 안개는 아직도 걷히지 않았을 것으로 믿어졌다. 사실이 그렇다면 그 안개는 정치인들의 언행일치를 바라는 국민들의 소박하고도 간절한 소망에 다름 아닐 것이다. 창당대회가 끝난 뒤 나는 여러사람들과 「합당」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들 역시 나와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이날 저녁 6시,나는 삼성동 한국종합무역전시관 올림피아홀에서 열린 민주자유당 창당 축하연에 참석하게 되었다. 축하연에 초청받은 형식이었지만 실은 순전한 구경꾼이었다. 2천5백여명이 초청되었다는 그 자리에서도 나는 또 노태우대통령과 김영삼ㆍ김종필 두 최고위원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창당대회장에서 들은 얘기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내용들이었지만 그 말들은 훨씬 부드럽고 훨씬 더 마음에 와 닿았다. 김지애 유열 최진희 등의 가수들이 들려준 감미로운 노래나 텔레비전 화면 혹은 신문ㆍ잡지 등으로 눈에 익은 얼굴들,군데군데서 만나게된 지기들 때문에 풀어진 마음 탓만은 아닌 것 같았다. 탤런트 이순재,성악가 박인수씨 등의 축시 「목련꽃」 낭독과 축가 「뱃노래」를 들은 뒤에 행해진 연설에서 거대여당 지도자들은 「10∼20년 뒤에 나라와 겨레를 살린 위대한 정치혁명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도록 굳게 단결하겠다」(김영삼)든지 「우리 당이 너무 커졌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결코 교만하지 않을 것」(김종필)이라든지,「흑백논리가 통하던 시대가 끝났으므로 이제 불안은 떨쳐버리자」(노태우)는 등의 얘기를 설득력있게 강조했다. 또 그것은 새로운 정치질서를 열기 위한 대연합의 주역다운 얘기들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 머리속의 안개는 아직도 말끔히 가셔지지 않았다. 나는 그 원인을 일단 내 협소한 시각 탓으로 돌리기로 했다. 편협한 시각,편협한 사고를 스스로 꾸짖으며 오래전 중공 당총서기 호요방이 일본의 야마자키 도요코와의 간담회에서 했다는 말을 생각했다. 『나라를 생각한다고 해도 그중에는 애국주의도 있으며 그 반대로 매국주의도 있고 또 오국주의도 있다. 40여년전 전쟁을 일으킨 일본인들은 비록 그것이 나라를 위해 한 일일지라도 그들을 애국자라고 할 수는없다. 그렇다고 매국주의자라고 할 수도 없지만 오국주의자임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사물을 협소하게 본 결과 저지를 수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애국 아니면 매국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국도 있으며 이 말은 지금 우리의 정치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소야대의 4당 체제로는 더 이상 과감한 개혁조치와 국운을 상승시켜 세계의 중심국가로 부상시킬 수 없어 정치적 안정을 도모키 위해 3당 통합으로 중심세력을 구축했다」는 것이 합당의 명분이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그 말을 믿고 싶어 한다.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의 통합이 삼발이와 같은 안정감을 우리들에게 안겨줄 것을 많은 국민들이 일단은 믿기로 할 것이다. 또 그 삼발이의 세 다리가 길고 짧음이 없이 튼튼하게 버텨 그 위에 얹은 「민주ㆍ번영ㆍ통일」을 굴러 떨어지지 않게 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것이 말대로만 된다면 3당의 합당은 오늘의 우리 현실에 참으로 합당한 「정치혁명」이 아닐 수 없다. 두시간 남짓한 합당축하연이 끝나 귀가길에 오르며 나는 빌고 또 빌었다. 『여당이여,오국주의자가 되지 말라. 여당이여,오국주의자가 되지 말라. 그리고 우리 겨레여,오국주의자가 되지 말자! 하늘이시여,여당ㆍ야당 그리고 우리 한 겨레가 튼튼한 다리로 세계에서 가장 좋은 삼발이를 만들게 하소서!』
  • 노대통령,양 김에 “동지” 호칭/창당 결의대회­축하연 주변

    ◎만장일치 박수로 안건 처리… 화합 과시/초청 받은 평민선 한 사람도 참석 안해 민주자유당은 9일 상ㆍ하오에 걸쳐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합당 수임기구 합동회의를 열어 창당을 결의한 뒤 축하연을 베풀고 거대여당의 공식 출범을 경축. ○…민자당은 이날 하오 6시부터 1시간여 동안 삼성동 종합무역전시관(KOEX)에서 노태우대통령을 비롯,김영삼ㆍ김종필최고위원 3명과 3부요인ㆍ국무위원ㆍ국회의원ㆍ대법관및 사회단체장ㆍ정계원로ㆍ일반인 등 3천여명이 참석한 매머드 축하연을 개최. 이날 행사장에는 25인조 대형브라스밴드가 경쾌한 배경음악을 연주했으며 공식행사에 앞서 30여분간 여흥프로를 마련,분위기를 돋웠다. 아나운서 황인용씨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여흥순서에서는 가수 김지애ㆍ유열ㆍ최진희씨 등이 우리 민요와 가요를 불렀으며 참석자들도 박수로써 이에 호응하는등 즐거운 분위기. 하오 6시30분 서울올림픽 주제가 「손에 손잡고」가 배경음악으로 울려퍼지고 참석자들의 환호ㆍ박수가 터지는 가운데 노대통령등 3인 최고위원이 입장함으로써 공식행사가 시작. ○3천명 참석… 대성황 노최고위원이 이날 KOEX현관에 도착하자 전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의 3역이 영접,2층 로비로 함께 올라왔고 이곳에서는 두 김최고위원과 박태준최고위원대행 그리고 전민정의 남재희 채문식 윤길중 박준규 김정례 유학성 임방현씨,전민주의 김명윤 김재광 황명수 정상구씨,전공화의 백두진 전예용 이병희 구자춘 이종근씨 등이 도열해 있다가 노최고위원과 차례로 악수. 1노2김 최고위원은 나란히 손을 흔들며 행사장에 입장,헤드테이블에 자리했는데 이곳에는 이일규대법원장 강영훈총리와 정일권 신현확 이현재 전총리 등이 합석했으며 윤보선 최규하 두 전임대통령도 초청됐으나 와병,개인사정 등 이유로 불참. 이어 3인 최고위원이 차례로 축하인사말을 했으며 노최고위원은 축하인사를 통해 『우리의 현실과 먼 장래를 생각하고 구국의 큰 결단을 내려준 김영삼 김종필 두 동지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처음으로 「동지」 표현을 구사. 노최고위원은 『흑아니면 백이라는 우리의 정치풍토에서 이같은 용단(합당)이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우리는 알고 있다』며 『「작은 나」를 버리고 「대의의 길」을 택한 민정ㆍ민주ㆍ공화당에 몸담아온 모든 동지들의 희생적 헌신에 대해 나는 뜨거운 동지애를 보낸다』고 사의. 김종필최고위원은 즉석인사말에서 『노대통령은 외유내강하신 분으로 90년대 초석을 놓을 것이 확실하니 우리는 그분을 열심히 보좌하면 될 것』이라고 노대통령을 칭송. 인사말이 끝나자 박태준민정대표위원의 제의에 따라 참석자 전원이 건배를 통해 신당의 앞날을 축복했으며 이어 3인의 최고위원들은 각 테이블을 순방하면서 참석자들과 인사. 3인 최고위원들은 「희망의 나라로」가 연주되는 가운데 대회장을 떠나 이날 행사는 1시간20여분만에 종료. 이날 행사장에는 시루떡ㆍ순대 등 8도의 전통음식이 차려져 있었고 술도 막걸리로 준비,앞서 상오의 합동회의 분위기가 다소 딱딱했던 것과 달리 화기가 넘치기도. ○시루떡ㆍ막걸리 준비 이날 축하연에는 김대중총재등 평민당의원 전원도 초청받았으나 한명도 참석지 않았고 행사주최측은 참석자들에게 3인 최고위원의 캐리커처가 그려진 실크스카프를 선물. ○…이에 앞서 이날 상오 10시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 2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합당 수임기구 합동회의는 민정 35ㆍ민주 46ㆍ공화 30명 등 1백11명의 성원위원중 1백6명의 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예정된 식순에 따라 1시간25분동안 일사천리로 진행. 대회장에는 뒷면에 「민주 번영 통일의 시대로」라는 대형 플래카드 1개만 걸려 있었을 뿐 정치집회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형화환이나 꽃다발은 물론 정치구호 등이 적힌 피켓이 눈에 띄지 않아 이채. 사실상 민주자유당의 창당대회인 이날 회의는 아직 3당간의 이질감이 극복되지 않은 탓인지 다소 서먹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으며 의장단 선출에서 대표자선출ㆍ위임사항 의결 등 8건의 안건이 상정됐으나 이의제기 없이 박수로 제안내용을 추인. ○다소 서먹한 분위기 이날 회의에서 사회자(김덕룡의원)를 비롯,합당결과보고(박준병의원) 합당결의(김동규의원) 강령ㆍ기본정책 채택(김용환의원) 당헌의결(이승윤의원) 대표자선출(김용채의원) 창당선언문채택(김동영의원) 대국민 메시지채택(정동성의원) 위임사항의결(최각규의원)등 주요안건의 보고나 제안자는 모두 15인 통합추진위 소속 위원중에서 선발됐는데 이들은 보고나 제안설명에 앞서 합당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며 『만장일치로 통과시켜달라』고 요구하는등 합당결정과정 참가자로서 대회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 ○박 정무의 노고 위로 ○…대회참석자들은 이날 대회장입구에 마련된 방명록에 서명을 하고 대형모조지 1장에 차례로 사인을 한 뒤 입장. 대회장은 합당의 성격을 반영하기 위해 정당구분이나 명패없이 자리를 배치했으며 외유중인 정순덕의원과 오유방의원(이상 민정),최형우ㆍ문준식의원(이상 민주),반형식 민주당 경북도지부장(원외)등 5명이 불참. 이날 채택된 창당선언문과 대국민 메시지는 최재욱민정의원과 김학준대통령사회보좌역이 각각 초안을 작성했다고. ○…만세삼창과 함께 대회가 끝난 뒤 김영삼ㆍ김종필총재와 박태준대표는 단상에서 윤길중ㆍ채문식민정당고문과 김동영민주당부총재ㆍ이병희공화당부총재 등 3당 중진들로부터 축하인사를 받았으며 김영삼총재는 회의장을 나서면서 3당통합의 핵심인사인 박철언정무1장관에게 『수고 많이 했다』며 악수를 청해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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