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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낙농가공품 개방 더 관심”

    농업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성패를 결정지을 ‘딜 브레이커(협상결렬 요인)’로 여겨진다. 한·미 두 나라는 19일 사흘간의 일정으로 정부과천청사에서 2차 고위급 협의를 갖고 쌀을 비롯해 쇠고기, 오렌지 등 230여개 ‘민감품목’의 개방수위와 미국산 쇠고기 검역기준 등에 대해 절충점을 모색한다. 그러나 의견차가 워낙 커 완전한 타결은 오는 26일 이후 장관 등 최고위급 협의에서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민동석 농림부 통상차관보와 리처드 크라우더 미무역대표부(USTR) 농업담당 수석협상관을 대표로 한 두 나라 협상단은 첫날부터 FTA 최대 쟁점인 농축산물 관세 철폐시기를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였다. 그러나 별다른 진전은 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협상단 관계자는 “미국이 여전히 ‘모든 농산물의 예외 없는 관세 철폐’를 고수했다.”고 전했다. 다만 쌀 문제는 이날 거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농림부는 협상에서 이른바 섬유 등 다른 분야와의 ‘빅딜’보다는 농업 분야 내에서 품목간의 유연성을 발휘하는 ‘스몰딜(small deal)’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협상단 관계자는 “빅딜로 인해 예상치 못한 품목에서 원치 않는 피해를 보느니 미리 일부 품목에서 조금 양보하는 것이 보다 큰 손해를 줄이는 방법일 수 있다.”고 말했다.박홍수 농림부 장관도 이날 “농업의 양보를 전제로 한 빅딜은 없다.”고 못박으면서 “다만 농업분야내 품목 중 서로 주고받는 조정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농림부 안팎에서는 우리측이 민감품목에서 어느 수준까지 미국에 양보를 하느냐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이 우리가 쌀은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이를 계속 지렛대로 활용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의 속셈은 따로 있다는 것이 협상단의 지적이다. 협상단 고위관계자는 “미국측은 협상장 밖에서는 쌀과 쇠고기 문제를 파고들지만, 속셈은 현재 160%나 되는 탈지분유 등 낙농가공품 등의 관세 철폐에 관심이 더 많다.”면서 “쇠고기의 경우 40% 관세가 철폐되지 않아도 국내 시장 지배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미국은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협상 이틀째인 20일에는 미국이 요구하는 ‘뼈를 포함한 쇠고기(LA갈비)’의 수입 재개 등이 집중적으로 논의될 예정이다. 미국은 뼈 있는 쇠고기의 전면 수입재개 여부가 FTA 협상과는 별개라고 하면서도 이 문제의 해결 없이는 협상 타결을 담보할 수 없다는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결국 관세 철폐와 연계해 뼈 있는 쇠고기 수입재개를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협상단이 국민 건강과 미국의 압박 사이에서 묘책을 찾아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한·미FTA 고위급 회의 전망

    한·미FTA 고위급 회의 전망

    한·미 양국은 이번 주 서울과 워싱턴에서 고위급 회의를 동시에 열고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최종 타결에 나선다.19∼21일 미국 워싱턴에서 김종훈 우리측 수석대표와 웬디 커틀러 미측 수석대표, 분과장들이 참여하는 ‘2+2’회의를 열고 농업·섬유를 뺀 나머지 핵심 쟁점들을 논의한다. 같은 기간 서울에서는 민동석 농림부 농업통상정책관과 리처드 크라우더 미 무역대표부(USTR) 농업담당 수석협상관이 2차 농업 고위급 회의를 갖는다. 비슷한 시기 워싱턴에서 섬유 고위급 회의가 이재훈 산자부 제2차관과 스캇 퀴젠베리 USTR 수석협상관간에 열린다. 동시 다발로 진행되는 고위급 회의에서 최종 절충안을 도출,26일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통상장관급 회담에서 협상을 매듭지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피해가 예상되는 서비스업과 농업 부문에 대한 정부 지원책이 다음달 발표될 예정이다. 18일 산업자원부와 농림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이달 말 한·미 FTA가 체결된다는 가정하에 부처별로 피해분야 지원대책을 마련해 이르면 다음달 중 국무회의에 상정할 계획이다. 정부는 FTA 여파로 매출이 급감하는 등 곤란을 겪게 될 기업들을 돕기 위해 지난해 마련된 ‘제조업 등의 무역조정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무역조정지원법)’에 규정된 지원대상을 기존 제조업 및 제조업 관련 서비스업에서 서비스업 전반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그러나 FTA 개방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보이는 공공서비스 등 부문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할 계획이다. 다음달 시행될 무역조정지원법은 올해부터 20년 동안 FTA로 피해를 볼 기업과 근로자를 지원한다. 컨설팅 등 지원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업종을 전환할 수 있도록 2조 6400억원을, 피해 업종 근로자의 교육·훈련 등에 2073억원 등 3조원 가까이 지원한다는 구상이다.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농업부문은 이미 마련한 119조원을 농업 인프라 투자 대신, 투·융자 중심으로 전환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특히 지난 칠레와의 FTA 체결 당시 과수 농업의 사례처럼 ‘FTA 이행지원 기금’을 통한 소득 보전이나 폐업 지원에 나선다는 복안이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19~21일 워싱턴 車·의약품등 집중 논의·26일 서울회의 쇠고기 검역·관세 협상 ●고위급 회의서 핵심쟁점 4∼5개로 추린다. 두나라 수석대표는 자동차와 의약품, 서비스, 무역구제, 금융, 지적재산권, 통신, 투자, 원산지 등 핵심쟁점들이 남아 있는 분과 협상에 집중한다. 서비스 분과는 고위급 회의에서 남은 쟁점들을 털어낼 계획이지만 방송·통신융합서비스 등은 쉽지 않아 보인다. 스크린쿼터도 민감사항으로 남아 있다. 양국은 고위급 회의에서도 결정할 수 없는 농산물이나 자동차, 개성공단, 방송·통신서비스 등 핵심쟁점들의 연계타결을 위한 ‘최종 협상안’을 만드는 데 주력하게 된다. ▲쌀·쇠고기 등 민감 농산물의 개방수준 ▲자동차 분야 세제개편과 관세 철폐 ▲개성공단 생산품 한국산 인정 문제 ▲방송·통신 서비스 등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수석대표 등 고위급 회의에서 마련한 최종 빅딜 패키지를 놓고 26일부터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수잔 슈워브 USTR대표나 카란 바티아 부대표가 서울에서 최종 담판을 짓게 된다. ●열쇠는 결국 농산물 서울에서 열리는 농업 2차 고위급 회의가 협상의 성패를 가늠할 ‘리트머스 종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쇠고기의 검역문제와 민감품목에 대한 관세 양허안이 집중 논의된다. 미국측이 지금까지의 ‘모든 농산물의 예외없는 관세철폐’라는 강경 입장에 어느 정도 유연성을 보이느냐가 관건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측이 관세 철폐 예외 종목으로 인정받는 품목이 두 자릿수가 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쇠고기 관세와 검역의 연계 여부도 관심. 원칙적으로는 별개이지만 미국이 연계를 계속 고집할 경우 협상 전망이 밝지 않다. 따라서 고위급 회의에서도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 농업 협상 방향은 장관급 이상의 최고위급 회의에서 결정될 수밖에 없다. 양측은 국회비준까지 고려해야 하는 만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양국, 외부 압력 거세져 사실상 협상시한(30일)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장외 신경전도 팽팽하다. 국내에서는 열린우리당 대선후보들이 잇따라 협상 반대를 주장하며 협상단과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미 의회도 20일 한·미FTA청문회를 열고 협상 내용을 최종 점검한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은 “개성공단 문제와 무역구제, 섬유, 전문직 쿼터 등 4개는 끝까지 여는 협상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도 “파괴력이 큰 무역구제에서 얼마나 우리의 입장을 관철시키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관절의 압박’ 세대별 대처 이렇게

    봄은 관절이 부담스러운 계절이다. 운동이나 등산, 일상적인 야외활동이 늘면서 관절에 이런 저런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층은 “아직 관절은 걱정없다.”며 무리하기 쉬운데, 이 때문에 병원을 찾는 젊은 층이 의외로 많다. 권용진 힘찬병원 인공관절센터 과장은 “관절염은 어느 한 순간 증상이 악화되는 것이 아니라 나이와 함께 서서히 진행되는 질환인 만큼 젊을 때부터 꾸준한 운동으로 관절을 강화하고,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 20∼30대 # 퇴행성 관절염의 원인 20∼30대에는 퇴행성 관절염보다 외상으로 인한 관절질환이 압도적으로 많다. 특히 축구, 농구 등 달리거나 부딪히는 몸동작이 많은 과격한 운동을 즐기는 환자에게서 많이 발생한다. 이 때 생긴 관절 손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방치하면 나이가 든 후 퇴행성 관절염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운동으로 인한 부상의 대부분은 인대와 연골 손상이다. 인대는 연골이 제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운동 중 다리가 뒤틀리거나, 빨리 달리다가 갑자기 정지 또는 방향을 틀 때 무릎관절을 감싸고 있는 인대가 손상되기 쉽다. 인대 중에서 가장 손상이 많은 내측 인대의 경우 보통 인대 파열의 경우 접합수술이 필요한 것과 달리 이 경우에는 완전히 파열됐더라도 수술없이 치료가 가능하다. 이런 비수술적 치료는 수술로 인한 통증을 줄일 수 있을 뿐더러 수술 때보다 치료 후 무릎의 운동 범위가 더 넓어져 활동성이 좋기 때문에 최근에 선호하는 치료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밖에 ‘라이언킹’ 이동국 등 많은 운동선수들에게 문제가 됐던 십자인대(무릎 앞쪽 인대)파열도 흔한 운동부상이다. 이처럼 인대가 파열되어도 시간이 지나면 손상 직후의 통증이나 부기가 가라앉는데 이를 잘못 해석해 치료를 미루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인대 파열이 관절 불안정을 초래, 더 큰 부상을 당할 수도 있으므로 무릎을 다친 후 운동능력이 예전과 같지 않거나 때때로 통증이 느껴지면 병원을 찾아 진단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인대와 달리 연골은 뼈와 뼈 사이에 위치해 쿠션 역할을 하는 물렁뼈 조직으로, 점프나, 충돌 때 찢어지는 경우가 많다. 파열된 연골은 보통 봉합하거나 절제하는 방법으로 치료하나 손상 정도가 심하면 연골판을 이식해야 관절염 발생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 40∼50대 # 비만을 경계해야 중년 들어 노화가 시작되면서 무릎 관절에도 퇴행성 변화가 일어난다. 관절이 유연성을 잃게 되고, 관절을 지탱하는 인대와 근육이 탄력을 잃으면서 무릎에 통증이 오는 것. 특히 최근에는 중년 비만 인구가 급증하는데 이 비만이야말로 관절 건강의 적이다. 몸무게가 1㎏ 늘어나면 무릎에서 견뎌야 하는 하중은 무려 5㎏이나 늘어나기 때문. 복부나 상체 비만이 많은 이런 중년 비만은 무릎에 더 큰 부담을 준다. 그러므로 40∼50대에는 관절 건강을 위해 적절한 운동과 함께 식단 조절을 통해 체중을 관리해야 한다. 특히 여성은 남성보다 허벅지 근육량이 적어 무릎 관절을 지탱해주는 힘이 약하며, 따라서 무릎 연골이 더 쉽게 마모될 수 있으므로 근육을 단련하는 운동이 더 절실하다. 많은 중년들이 택하는 글루코사민이나 콘드로이친 같은 관절 건강보조제도 병원 진단 후 자신의 문제를 알고 복용하면 보다 경제적이고 효과적이다. 특히 퇴행성 관절염은 점차 증상이 악화되는 진행성 질환이어서 치료가 어려울 정도로 증상이 심해지기 전에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무릎에 통증이나 부기가 있거나, 굽히고 펴는 데 불편함이 있다면 병원을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아 보는 것이 좋다. ■ 60∼70대 # 관절염 치료가 삶의 질 바꿔 60대 이상 고령자의 대다수가 관절염을 갖고 있다. 그러나 몸이 불편하다고 움직이기를 싫어하면 관절이 굳어 통증만 더 심해진다. 평소 산책과 같은 가벼운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 좋다. 단, 등산이나 계단 오르기처럼 관절에 무리를 줄 수 있는 운동은 삼가야 한다. 일부에서는 관절염을 ‘나이 들면 당연히 앓아야 하는 노인성 질환’이라고 여겨 치료를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편하게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증세가 심해 인공관절 수술이 필요한 사람조차도 치료를 미루다가 결국 병증을 더 악화시키는 사례가 허다하다.‘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아야 하는 상황’이 이런 경우이다. 그러나 통증이 심해지기 전, 즉 마모가 많이 진행되기 전이라면 연골을 재생시키는 시술도 얼마든지 받을 수 있다. 자신의 건강한 연골세포를 뽑아내 외부에서 배양한 후 손상 부위에 이식하는 방식이다. 이런 자가연골 배양이식술은 자신의 세포를 배양, 이식하기 때문에 회복도 빠르고 후유증도 적어 최근 선호되는 치료법이다. 그 밖에도 증상과 정도에 따라 연골주사, 관절경 수술이나 인공관절 치환술 등 다양한 무릎관절 재생 치료법이 이용된다. 권용진 과장은 “특히 인공관절 수술은 수술 기술과 재질의 발달로 후유증이나 재수술에 대한 부담이 크게 줄었다.”며 “절개 부위도 최대한 줄일 수 있고, 감염이 적으며, 회복도 빨라 노인들이 부담없이 선택할 수 있는 치료법”이라고 설명했다. ■ 도움말:권용진 힘찬병원 인공관절센터 과장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시론] 미국의 대북정책 왜 변했나/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시론] 미국의 대북정책 왜 변했나/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북·미 수교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이런 변화에 미국의 네오콘과 한국의 보수세력은 충격을 받은 듯하다. 한국의 보수세력이 느끼는 충격은 거의 패닉에 가깝다.‘미국의 배신 때리기’에 적지 않게 당혹하고 있다. 보수 논객들의 글에선 ‘반미감정’마저 느껴진다. 이들의 딴죽 걸기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반전하기 어려울 만큼 급진전되고 있다. 단순히 협상하는 시늉만 내는 전술적 변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변화의 배경에는 북한과 미국 양 지도부의 전략적 결단이 숨어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핵무기를 조기에 포기하는 대신 미국과 수교를 통해 체제안전을 확보한다는 전략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 역시 대북 강경정책을 접고 북한과 양자협상을 통해 북한핵문제를 해결한다는 전략적 결정을 내린 듯하다. 부시는 자신의 임기내에 북한과 수교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앞으로 우리는 놀라운 장면들을 목격할지도 모른다. 부시 대통령이 극적으로 북한을 방문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와 같은 국제회의에 김 위원장을 초청해 남북한과 미국, 중국 등 4개국 정상이 손을 맞잡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변화의 직접적인 추동력은 두말할 나위 없이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변화다. 부시의 입장에서는 이라크와 이란문제가 조기에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핵문제라도 풀어 외교적 성과를 내야 할 형편이다. 네오콘의 퇴조와 북·미 양자협상을 주장해온 민주당의 의회 장악이 한 몫을 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미국의 정책 변화를 이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 부시 행정부가 줄곧 대북 강경정책을 추진해온 배경은 중국견제와 일방주의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북한위협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소멸되고 북한과 수교를 하게 된다면, 이런 북한위협론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다. 우선 ‘북한붕괴론’이 비현실적임을 깨달은 것이다. 또 미사일방어체제(MD)가 상당부분 진척됨에 따라 중요한 명분이던 북한위협론에 매달릴 동기도 약해졌다. 게다가 대북 강경정책이 가져온 부정적 결과도 충분히 목격했다. 북한에 대한 압박은 북한의 중국에 대한 의존성과 중국의 대북 영향력 강화를 가져올 뿐임을 인식했다. 미국으로선 동북아 정세변화에 대비한 장기적 포석도 필요하다. 한국은 점차 미국으로부터 ‘독립적인 국가’가 돼 갈 것이다. 북한과 수교는 오히려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북한을 중국으로부터 떼어놓는 데도 유리하다. 2000년 10월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해서 꼭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북한이 주한미군 주둔을 인정해 줄 수 있는가였다. 북한은 이미 90년대초부터 북한에 적대적인 존재가 아니라면 주한미군을 용인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추진에 따라 이런 조건은 더욱 충족될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는 ‘네오콘식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주의에 바탕을 둔 정책으로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 ‘뼛조각 쇠고기’ 개방시기 마지막 고비

    쇠고기와 자동차는 한·미 FTA 협상의 성패를 가르는 이른바 ‘딜 브레이커’다.8차 협상이 끝난 현재 농산물, 특히 쇠고기 문제가 어떻게 풀리느냐에 따라 자동차·섬유·무역구제·의약품·금융 등 남아 있는 핵심쟁점들의 향방이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농업 분과 협상 당사자들의 부담이 크다. 우리가 쌀을 거론하면 협상을 깨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것처럼, 미국은 쇠고기 개방 없이 FTA는 없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오는 19일부터 21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농업 고위급 회의가 이번 협상의 마지막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양국 협상단은 어떤 식으로든 담판을 지어야 한다는 각오이지만 이는 최고 결정권자의 정치적 결단 없이는 불가능한 얘기다.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이 24일부터 중동 순방에 나서기에 앞서 재가를 받아 22∼23일쯤 워싱턴에서 최종 타결을 볼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이 경우 전제조건은 뼈 있는 쇠고기의 전면 재개방 시기에 대한 결단이다.5월말 국제수역사무국(OIE) 총회에서 결정되기 전 수입 재개 절차를 밟아달라는 미국측의 요구에 대해 절충안을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뼈 있는 쇠고기의 수입 재개 여부는 다른 농산물 협상에도 상당한 유연성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연 이같은 정치적 부담을 누가 질지가 관건이다. 이같은 답답한 심정을 우리측 농업분과장인 배종하 농림부 국제농업국장이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의 ‘여수장 우중문시(與隋將于仲文詩)’라는 한시의 원문과 영역본을 미국측에 전달해 눈길을 끌었다.‘神策究天文(신책구천문·그대의 신기한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했고) 妙算窮地理(묘산궁지리·오묘한 계획은 땅의 이치를 다했노라) 戰勝功旣高(전승공기고·전쟁에 이겨서 그 공 이미 높으니) 知足願云止(지족원운지·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바라노라)’라는 고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한시다. 배 국장이 농업 협상 첫날인 지난 9일 미측 협상단에 전달한 이 시는 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 양제의 명으로 고구려를 침공한 우중문에게 보낸 것으로 마지막 문장은 미국측에 ‘민감성을 인정해주고 공세 수위를 조절해달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연내 1달러=7위안 밑돌듯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저우샤오촨(周小川) 행장이 12일 “위안화 환율의 유연성을 확대하겠다.”고 공식 천명했다. 이에 따라 달러 대 위안화 환율이 달러당 7.74위안대 안팎에서 연내 7위안대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베이징의 한 경제소식통은 이날 “중국 정부가 내부적으로 달러당 위안화 환율을 7.0 이하로 떨어뜨릴 수 있다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저우 행장은 이날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점진적으로 위안화 환율제도를 개혁하는 한편 금융개혁 작업에도 박차를 가할 것”이라면서 “관리변동환율제도를 추가로 개선할 것이고, 위안화 환율 유연성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외환시장 개혁을 위해 장외시장에서 위안화 파생상품을 도입하고 중국외환중개시스템을 통해 위안화 선물상품을 도입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연구하겠다.”고 밝혔다. 저우 행장은 “국유 은행 개혁이 중대 돌파구를 마련했다.”면서 “긴급대출을 받은 3개 국유 은행 외에 다른 금융기관에 대해서도 올해 추가로 긴급대출과 구조개혁을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jj@seoul.co.kr
  • 쇠고기·車등 쟁점 여전히 난항

    쇠고기·車등 쟁점 여전히 난항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8차 협상은 견해차가 크지 않은 일부 분과들에서 완전 타결을 이뤄내는 등 합의에 도달하고 있다. 하지만 농산물과 자동차·섬유·서비스·금융 등 핵심 쟁점들은 19일 이후 고위급 회의로 공이 넘겨졌다. 결국 쇠고기와 자동차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가 한·미 FTA 타결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진짜 협상’은 지금부터라는 얘기다. ●경쟁·정부조달 이어 통관 타결 협상 나흘째인 11일 한·미 협상단은 전날 정부조달에 이어 통관 분과에서도 모든 쟁점들을 완전 타결지었다. 이로써 19개 분과·작업반 중 완전 타결된 것은 3개이다. 이혜민 한·미 FTA기획단장은 “전체 분과 중 절반 가량은 사실상 타결될 것”으로 내다봤다. 관세철폐 수준은 즉시철폐가 양측 모두 85% 수준이며,3년내 철폐까지 합할 경우 90%를 넘어 다른 FTA에 못지않을 것이라는 게 우리측 설명이다. 분과장들은 수석대표 등 고위급으로 넘기는 쟁점들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쇠고기 vs 자동차 한·미 FTA협상 타결의 열쇠는 쇠고기 등 농산물(한국)과 자동차(미국)에 달려 있다. 두가지가 협상의 성패를 쥔 ‘딜 브레이커’이다. 우리측으로서는 쌀·쇠고기·오렌지·돼지고기 등 농업 부문의 민감품목을 얼마나 개방에서 제외되는 ‘기타 품목’으로 받아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미국의 자동차 관세(승용차 2.5%, 픽업트럭 25%) 철폐를 얻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 협상단으로서는 농산물 민감품목을 개방 예외로 얻어내는 대신 그 ‘대가’를 최소화하는 협상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예외품목 대상을 최소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 막판 힘겨루기가 팽팽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쇠고기. 쇠고기는 미국의 한국에 대한 농산물 수출액의 3분의 1인 27억∼28억달러를 차지할 만큼 절대적이다. 미국은 40%의 관세 철폐보다 광우병으로 중단된 뼈있는 쇠고기, 즉 LA갈비의 수입 전면 재개에 관심이 더 높다. 김종훈 우리측 수석대표도 “(이 문제는 FTA와는 별개의 사안이지만) 뼈있는 쇠고기 문제만 해결되면 다른 부분에서는 유연성이 발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19일부터 서울에서 열릴 농업 고위급 회의가 향후 협상의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지적재산권의 보호기간 연장과 금융 긴급세이프가드 도입 여부, 기간통신사업의 외국인 지분 확대, 무역구제, 섬유 원산지 규정 완화와 우회수출방지 등도 조만간 열린 연쇄 고위급회담에서 풀어야 할 핵심 과제들이다. ●수석대표→통상장관→최고위급 회담순 이번에 타결하지 못한 핵심 쟁점들은 19일 이후 워싱턴과 서울에서 번갈아 가며 열릴 수석대표 및 고위급 회담을 통해 타결 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농업을 제외한 나머지 핵심쟁점들은 수석대표와 분과장들이 참석하는 ‘2+2’회의와 통상장관회담을 통해 일괄타결을 모색하나, 장관급회담에서도 타결이 어려울 경우 최고위급 회담(전화 회담 포함)을 통해 마무리지을 것으로 보인다. 양측은 늦어도 오는 30일(미국시간)까지 최종 협정문을 마련한 뒤 6∼8주내에 공개할 것으로 보인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정재성-이용대조 전영오픈 8강 진출

    셔틀콕의 기대주 정재성-이용대(삼성전기)조가 2007전영오픈 배드민턴선수권에서 8강에 올랐다. 세계 4위 정재성-이용대조는 9일 영국 버밍엄에서 벌어진 대회 사흘째 남자복식 16강전에서 말레이시아의 모드 타자리-운푸이린 조를 2-0으로 물리치고 준준결승에 진출했다. 또 한상훈(삼성전기)-유연성(원광대)조는 인도네시아의 강호 마르키스 키도-헨드라 세티아완 조를 2-0으로 물리치고 8강에 올라 파란을 일으켰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한반도 정세 美·中 전문가 진단

    한반도 정세 美·中 전문가 진단

    북한과 미국의 관계정상화를 위한 뉴욕 실무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등 북·미관계 진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북·미가 50년 동안의 적대관계를 풀고 정상 국가관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 최근 북·미관계 진전이 한반도와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미국과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을 통해 회담 결과 및 향후 진전방향을 진단해 봤다. ■ “북-미 북-일 수교 진전 따라 6者회담 향방·속도 달라질것” 이번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회담은 두 나라간 신뢰감 형성에 상당히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좀더 분명하게 알게 된 계기였다.50년동안 적대 상태를 유지해 온 두나라가 관계 개선의 기초를 놓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기초가 아무리 좋더라도 당장 중요하고, 실질적인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많은 전망과 추측이 나오고 있지만 적어도 공개된 것들을 보면 이번 실무회담이 실질적인 성과를 거뒀다고 하긴 어렵다.‘2·13합의’는 ‘행동 대 행동 원칙’을 전제로 하고 있어 기본적으로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예컨대 미국은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지우기에 앞서 북한의 구체적인 조치를 반드시 기다릴 것이다. 원칙적인 문제에서 아직 근본적인 성과와 변화를 기대하긴 이르다. 북한이 연락사무소 단계를 건너뛰고 바로 대사관 설치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는 단계별로 가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관계 진전의 걸림돌이 됐던 금융 제재는 앞서 북·미간 베를린 회의에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진전 속도와는 별도로 북·미간의 관계 개선모색 움직임은 한반도 남북관계를 더 빠르게 진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고 있다. 한편 현재 빼놓을 수 없는 주요한 변수중 하나는 북·일 관계정상화 문제다. 일본이 납치 문제를 집중 거론해 북한이 먼저 회의를 결렬시켰다. 북·일 관계는 북·미 회담과도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일본의 태도는 앞으로 상당히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선 북·일 회담이 속도를 내지 못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나아가 6자 회담 전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주의깊게 봐야 할 것은 6자 회담의 각 주체들이 서로 각각 상호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련 국가들이 국익의 최대 확보를 위해 움직이고 있고 ‘글로벌 차원´의 틀속에서 북한 핵 문제의 해결 및 한반도문제의 해결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앞으로 진행될 중국과 일본간 관계 개선 모색도 어떤 식으로든 이 문제에 작용하게 될 것이다. 중국과 미국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북한과 미국이 오랜 대치 속에서 해빙(解)을 시도한 일 자체의 의미는 퇴색될 수 없을 것이다.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뿐 아니라 전체적인 국제 정세가 북·미, 북·일 수교와 6자 회담 전체의 향방과 속도를 결정할 것이다. 정리 베이징 이지운특파원 jj@seoul.co.kr ■ “북핵 완전히 포기 않는 한 美·中 모델 따르기 어려워” 미국과 북한의 관계정상화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의 임기 내에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북한이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서두르려 할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북·미 관계의 개선이 미·중이나 미·베트남 관계 복원의 모델을 그대로 따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북·미 관계 정상화에는 반드시 해결돼야 할 몇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뉴욕에서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그룹 회의를 마친 뒤 가진 브리핑에서 “핵을 가진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는 상상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해 북한은 핵무기를 완전히 제거해야 하며, 그 과정은 몇년이 걸릴 것이다. 또 북한은 테러지원국 명단에서도 빠져야 하며, 일본인 납치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이와 함께 북한은 위조 지폐 제작과 유통, 돈세탁, 마약 밀수 등의 불법행위도 완전히 중단해야 하며, 인권에 대한 우려도 해소해야 한다. 북한은 모든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포기할 수 있을까?핵 무기 보유가 북한의 중심적인 안보 목표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평양 당국이 이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또 북한은 과거에도 국제적인 약속을 위반해온 전례가 있다. 만약 북한측이 이런 의혹들을 해소하려면 북 영토를 샅샅이 뒤져볼 수 있는 사찰단의 방문을 허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북한이 신고하지 않은 시설을 사찰단이 통보 즉시 방문해 조사할 수 있어야 한다. 부시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변화가 온 것은 이라크 전에 대한 지지가 떨어지고,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민주당에 패배했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는 외교 분야에서의 성공을 얻기 위해서 협상에 커다란 유연성을 발휘해야만 했다. 또 미 정부는 이란의 핵 개발에 좀더 강력하게 대응하기 위해 북한 핵 문제를 안보 어젠다에서 털어내고 싶었던 측면도 있다. 한국은 6자회담의 재개와 북·미간의 양자협상 착수를 대북 포용정책 재가동의 신호탄으로 삼으려 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대북 인도적 지원을 재개하고, 남북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유엔의 대북 제재를 완화해 보려 할 것이다. 일본은 미국이 납치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한다면, 동맹국으로부터 배신을 당했다고 느낄 것이다. 또 중국은 북·미 양자협상이 시작됨에 따라 핵무기를 놓고 북한과 직접 충돌하지 않는다는 전략이 먹혀 들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정리 워싱턴 이도운특파원 dawn@seoul.co.kr
  • [사설] 北·日, 2·13합의 걸림돌 안돼야

    북·일 국교정상화 실무회의가 북한측의 결렬 선언으로 성과없이 끝났다.6자회담 ‘2·13합의’ 이후 북·미 관계와 남북관계는 급진전하고 있다. 그런데 북·일 관계가 이렇듯 경색되는 것은 양측의 유연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동북아 평화와 안정은 연관 국가들의 관계가 톱니바퀴처럼 순조롭게 맞물려 돌아갈 때 이룩된다. 북·일 관계가 ‘2·13합의’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양측의 각성이 필요하다. 일본은 이번 실무회의에서 일본인 납북자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했다. 일본인 납북자 전원 석방, 납북의심자에 대한 정밀 재조사, 납북 책임자 처벌과 인도를 북한측에 요구했다. 기존 주장보다 강경한 내용이었다. 일본인 납북자 문제가 끝났다고 강조하는 북한의 태도를 바꾸려면 달래는 정책이 필요했다. 당근은 없이 채찍만 휘두르려다가 북한의 반발을 불렀다. 납북자 문제 해결이 중요하긴 하지만 일의 선후가 있다. 북핵 해결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우선 풀겠다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북한은 미국과 협의가 잘 되면 일본은 따라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베 행정부가 소모적인 대북 강경책으로 국제고립을 자초하고 있다고 일본 야당이 비판하고 나선 이유를 제대로 깨달아야 한다. 회담을 파행시킨 북한의 태도 또한 옳지 못했다. 양측의 입장차가 크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대화를 계속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송일호 북한측 대표는 납북자 재조사를 과거청산 문제와 연관해 고려해 보겠다는 뜻을 밝혔다. 북·일간에 접점을 찾을 방안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닌데 성의있는 대화를 갖지 못한 상황이 아쉽다. 북·일 수교협상이 진척되면 일본의 경협자금이 북한으로 들어가게 되며, 대북 에너지 지원에 일본의 동참이 필수적이다. 북한은 일본을 곁가지로 치부해선 안될 것이다.
  • [사설] 주택법 표류, 시장동요 우려한다

    주택법 개정안이 임시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한나라당의 사학법 연계 전략과 이를 수용한 열린우리당의 무원칙이 얽혀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무산된 것은 유감이다. 성격이 전혀 다른 주택법과 사학법의 ‘빅딜’을 추진한 발상 자체가 애초에 무리였다. 주요 법안에 이런 식으로 정당마다 정치색을 입히면 누더기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택법안은 건설교통위에서 일부 수정을 거치는 등 정치권의 합의가 이루어져 본회의 표결만 남겨두고 있었다. 민생을 조금이라도 염려했다면 얼마든지 사학법과 별개 처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주택법이 표류하면서 부동산시장이 또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정부가 지난 연말부터 잇따라 내놓은 3차례의 강력한 부동산 대책으로 시장은 겨우 진정된 상태다. 부동산 시장이 지속적으로 안정을 유지하려면 법이 제때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런데 주택법 입법이 이렇게 시간을 끌면 집값은 다시 꿈틀거릴 수 있다. 이달 중순에 임시국회를 열어 주택법을 처리한다지만, 정치권이 접점을 찾지 못하는 사학법과 계속 한 덩어리로 묶어 놓으면 다음 회기에 통과된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따라서 국회는 주택·사학법의 연계를 당장 철회하고 합의한 법안부터 처리하는 유연성을 보여야 한다. 주택법안이 9월부터 시행된다고 해서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다. 시장은 지금 이사철과 맞물려 입법이 늦어지면 대기 수요자들의 매수심리를 부추길 수 있다고 한다. 정부가 시중 유동자금을 줄이고 주택대출을 제한해 집값 급반등을 막고 있지만, 다음 회기에서 입법이 또 좌절되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시장의 안정을 지속하고 신도시·주택공급 계획 등 정부의 후속대책에 차질이 없도록 국회는 법안 처리에 적극 협조하기 바란다.
  • [南·北·美·日 외교전]네그로폰테 “北 HEU프로그램 보유 의심안해”

    존 네그로폰테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6일 “북한이 고농축우라늄(HEU)프로그램을 보유해왔음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방한 중인 네그로폰테 부장관은 이날 서울 남영동 주한미대사관 공보과 자료정보센터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HEU 정보에 대해 미측이 2002년 확보한 정보가 아직도 정확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한 뒤 “‘2·13합의’에 따라 북한이 핵시설 관련 신고를 할 때 그 부분도 포함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북한 테러지원국 해제시기에 대해 그는 “2·13합의에 따라 북한 테러지원국 해제 논의 과정을 시작했고, 초기조치 내용들이 빨리 진행되고 결론에도 빨리 이르길 원한다.”며 구체적인 시기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네그로폰테 부장관은 ‘북한이 핵프로그램·시설을 완전히 신고할 것으로 확신하느냐.’는 질문에 “영변 핵시설 폐쇄 등 60일내 초기조치 이행이 2·13합의 이행 의지를 가늠하는 첫 시험대가 될 것”이라며 “모든 것을 신고해야 할 다음 단계에서 얼마나 솔직할지 모르겠지만 완전히 신고를 하면 관계 정상화 등 혜택이 많아 북한의 이해에 부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미국 비자면제프로그램(VWP) 가입 전망에 대해 네그로폰테 부장관은 “미국은 비자거부율 3% 기준에 대해 입법안 수정을 추진, 어느 정도 유연성을 보이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미동맹에 언급,“동맹은 늘 변화하는 것”이라며 “협력이라는 기조 안에 적극적으로 동맹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조정을 거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네그로폰테 부장관은 외교통상부 조중표 1차관과 오찬협의를 갖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대한 양국의 정치적 의지를 확인했다고 정부 당국자가 밝혔다. 네그로폰테 부장관은 이어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을 만나 2·13합의를 계기로 북핵 문제가 해결 과정에 진입했다는 공동 인식 아래 초기조치 이행 과정은 물론, 이후 북핵 해결 과정에서 있어서도 협조를 더욱 강화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올 위안화 5%이상 뛸듯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올 한 해 위안화 환율 상승폭이 당초 예상보다 커질 것으로 보인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막한 제10기 5차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발표한 정부사업보고를 통해 “인민폐 환율 결정 메커니즘을 한층 더 보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저우샤오촨(周小川) 중국 인민은행 총재는 “중국의 무역흑자가 계속 확대되면 위안화 절상의 속도가 더욱 빨라질 수 있으며, 환율 유연성 개선을 고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올 한 해 위안화 평가 절상률은 당초 전문가들 사이에서 예상됐던 5%를 훌쩍 넘어설 수도 있다는 분석들이 제기되고 있다. 위안화는 5일 현재 달러당 7.74위안 전후로, 환율 개혁이 단행된 2005년 7월의 8.28위안에 비해 6% 이상 상승했다. 한국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사무소 지만수 소장은 “한국 기업으로서는 대(對)중국 직접 수출가가 낮아져 가격 경쟁력에서 이득을 볼 수 있으나, 중국에 진출한 기업으로서는 위안화 상승분만큼의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국은 올해 경제성장 목표치를 8%로 낮춰 잡았으나 9.5% 이상의 성장이 예상된다. jj@seoul.co.kr
  • [작통권 환수] 유사시 ‘군사협조본부’서 공동방위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합의에 따라 60년 넘게 이어져온 한·미 양국의 군사동맹구조도 일대 변혁을 맞게 됐다. 특히 1978년 창설 이후 한반도의 실질적인 군사지휘부 역할을 해온 한미연합군사령부는 이번 합의로 34년 만에 사라진다. 연합사의 해체는 양국의 군사동맹구조가 지금의 ‘연합방위체제’에서 ‘공동방위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합동군사령부와 주한미합동군사령부가 유사시 공동으로 작전을 벌이는 ‘수평적’ 구조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1977년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이 주한 미 2사단을 철수시키겠다고 선언한 뒤 한·미 양국은 작전지휘체계를 효율적으로 통합해 한국의 방위력을 증진하려는 목적에서 연합사 창설을 본격 논의하게 된다. 이후 1978년 11월7일 용산기지 안에 연합사가 창설됐다. 이에 따라 유엔사령부가 맡아온 한국방위 임무를 연합사가 담당하고 유엔사는 정전협정 유지 책임만 맡게 됐다. 연합사 창설로 유엔사령관에게 위임됐던 작전통제권이 연합사령관에게 전환됨에 따라 양국은 ‘국가통수 및 지휘기구’(NCMA)로부터 작전지침 및 전략지시를 받아 한미군사위원회(MC)를 통해 작전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연합사는 육·해·공군을 포함한 60만명 이상의 양국 현역 정규군을 통제하고 있다. 전쟁이 발발할 경우 350만 규모의 한국 예비군 병력과 미군 병력의 증편 계획도 마련해 놓고 있다. 그러나 이번 합의에 따라 연합사는 2012년 4월17일 양국 군 장성이 공동위원장을 맡는 작전협의기구인 ‘한미 군사협조본부’(MCC)에 임무를 넘기게 됐다. 사실상 연합사를 대신해 구성되는 MCC는 앞으로 창설될 한국군 합동군사령부와 주한 미 통합군사령부(USJTF-K)간의 작전 및 업무협조 등의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한·미 양국은 MCC 아래 10여 개의 기능별 상설·비상설 기구를 설치하는 한편 양측 육·해·공군 작전사급 부대 사이에도 작전협조반을 둘 계획이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전·평시 작전통제권 환수 일지 ▲1950.7.14 이승만 대통령, 유엔군사령관에게 작전지휘권 이양 ▲1954.11.17 한·미합의의사록, 국군을 유엔군사령관 작전통제하에 둠 ▲1968.4.17 한·미 정상 공동성명, 대침투작전 한국군 단독 수행 ▲1978.11.7 한미 연합군사령부 창설 ▲1994.12.1 평시작전통제권 환수 ▲2003.7 한·미 미래동맹정책구상(FOTA) 3차회의, 지휘관계 연구 의제화 합의 ▲2005.9.28∼30 한·미 안보정책구상(SPI) 회의서 전작권 환수 협의 공식 제안 ▲2005.10.1 노무현 대통령 “전작권 행사를 통해 명실상부한 자주군대로 거듭날 것”(국군의 날) ▲2006.1.25 노무현 대통령 “올해 안에 전작권 환수 문제를 매듭짓도록 미국과 긴밀히 협의할 것”(연두기자회견) ▲2006.10.20 제38차 한미안보협의회(SCM),“2009년 10월15일 이후,2012년 3월15일 사이 이전”으로 전작권 전환시기 합의 ▲2007.2.7∼8 제11차 SPI회의서 미국 36개월(3년) 뒤, 한국 2012년 3월15일 전작권 전환 시기 제시 ▲2007.2.24 한·미 국방장관, 전작권 2012년 4월17일 이양과 동시에 한미연합사 해체 합의 ■ 中 ‘원칙적 환영’ 입장 전략적 유연성엔 민감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 언론들은 25일 한국과 미국이 국방장관 회담을 통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를 결정했다는 소식을 인터넷 뉴스 등을 통해 보도했다. 하지만 민감한 사안임을 고려해서였는지 논평이나 해석 없이 사실 관계만 소개했다. 중국 당국이나 관계자들도 한·미간 전작권 이양 문제에 대해서는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와 관련, 이날 베이징의 한 군사 소식통은 “전시작전권 환수에는 중국은 원칙적으로 환영한다. 그러나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해선 엄청나게 민감하다.”고 말했다.“만약의 사태를 놓고 상대할 때 중국으로서 미국은 버거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인사는 “중국에는 전선 개념으로 볼 때 미군이 동북아에서 일본쪽으로 한발 물러서는 것으로도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학자들은 “한국과 중국이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기도 한다. 다만 이것이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연계될 때 중국은 이해관계가 대단히 복잡해진다. 이미 닝푸쿠이 주한 중국대사가 이례적으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시한 적도 있다. jj@seoul.co.kr ■ 정치권·대선후보 엇갈린 반응 지난 24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오는 2012년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키로 합의한 것과 관련, 대선주자들과 정치권은 엇갈린 평가를 했다. 박근혜 전 대표 캠프의 대변인인 한선교 의원은 25일 “작통권 이양 시기문제는 다음 정부에서 한·미 동맹 강화를 바탕으로 다시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측도 “북핵으로 인한 한반도 긴장 여하에 따라서 차기 정부는 필요시 이 문제를 미국측과 재협상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측은 “한·미 동맹의 근간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로드맵과 연계해 환수 시기를 정하는 식으로 큰 틀에서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정치권에서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통합신당추진모임이 일제히 환영한 반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북핵문제 해결이 먼저”라며 비판했다. 열린우리당 최재성 대변인은 “전시 작통권 환수는 한·미동맹을 전제로 한 환수여서 더 안정적이고 진일보한 안보시스템이 확립된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노무현 정부는 ‘자주국방’이라는 정치적 슬로건 때문에 역사상 가장 완벽한 동맹체제를 깨게 됐다.”고 비판했다. 나길회 김기용기자 kkirina@seoul.co.kr ■ 시민단체·네티즌 찬반 팽팽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등을 둘러싸고 진보와 보수 진영은 각각 다른 시각에서 의구심과 불만을 내비쳤다. 정용준 한국진보연대 정책실장은 “전작권 이양은 원칙적으로 옳다.”면서도 “다만 기존의 한미연합사를 대신해 새로운 상설 협의기구가 만들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것이 다시 종속적인 군사관계를 만들어 낸다면 문제가 된다.”고 의구심을 드러냈다. 반면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는 “자주를 위해서 작전권을 환수한다는 논리인데 연합사라는 대단히 유리한 체계를 무너뜨려 자동적으로 제공되던 정보와 물적지원을 협상을 통해 얻어야 하는 불리한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북핵반대 및 한미연합사령부 해체반대 1000만명 서명추진본부’의 송진섭 집행위원도 “대선 이후 차기 정권이 전시작전통제권 단독행사를 유보하도록 압박하겠다.”고 밝혔다. 누리꾼들도 각종 포털사이트에서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gospels1004’라는 누리꾼은 “작전권 환수와 연합사 해체는 한반도 주변 정세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조치다. 아직도 과거 체제 유지를 주장하고 안주하려는 자들의 주장은 순억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parks113’라는 누리꾼은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다고 전시작전권을 환수하느냐.”면서 “반드시 정권을 바꾸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비난을 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OECD “한국 대학 자율성 확대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우리나라의 고등교육 발전을 위해 규제 완화, 질 관리 체계 구축, 노동시장과의 연계 강화 등의 방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OECD가 ‘고등교육 주제검토사업’의 일환으로 작성한 ‘한국 고등교육 분석 보고서’를 최근 OECD 웹사이트(www.oecd.org)에 공개했다고 25일 밝혔다.OECD는 보고서에서 한국 고등교육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으로 ▲규제 완화 등 대학 자율성 확대 ▲고등교육과 노동시장의 연계 강화 ▲고등교육 질 관리 체계 구축 ▲고등교육 형평성 제고 등을 제언했다. 규제 완화와 관련해서는 “획일적·강제적 규제 대신 유연성과 대학의 역량을 중시하는 연성적 규제가 필요하며 대학 자율성 확대 측면에서 국립대학 법인화는 바람직하다.”고 평했다고 교육부는 전했다. 또 “고등교육과 노동시장 연계를 위해서는 진로지도 등 노동시장 정보 제공 확대, 산업계 수요를 반영한 프로그램 개발, 자격증·학위제도 개선 및 질 관리 강화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고등교육 형평성 강화를 위해서는 “수도권 정원 규제보다 지역균형발전 전략을 교육정책과 결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조언했다.OECD는 이밖에도 ▲대학은 일차적으로 기초연구와 대학원을 통한 연구, 후속세대 양성에 초점을 두고 ▲대학 수 증대보다 특정연구 영역·인력 양성 프로그램 확대에 주력해야 하며 ▲대학의 평생학습 기회를 늘리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靑·일부 진보 진영 불붙는 ‘이념 논쟁’

    靑·일부 진보 진영 불붙는 ‘이념 논쟁’

    노무현 대통령의 ‘진보세력 비판’에 참여정부의 전·현직 참모들까지 가세함에 따라 청와대와 진보세력 일각간 일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은 20일 브리핑을 통해,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인터넷매체의 기고를 통해 진보학자들의 참여정부에 대한 비판 논거를 각각 거칠게 반박하고 나섰다. 윤승용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날 오후 “지식·진보사회에서 진지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라면서 “건전한 사회적 담론으로 다뤄졌으면 하는 게 청와대의 바람”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논쟁의 핵심 당사자인 최장집 고려대 교수를 비롯,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등 진보 진영 학자들은 청와대의 비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윤승용 홍보수석 “건전한 사회적 담론 기대” 김 처장은 이날 국무회의 브리핑이 끝난 뒤 “대통령의 말씀은 담론유형에 대한 비판이지 특정학자에 대한 비판으로 보면 말의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며 노 대통령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진보세력은 일부 관념적 좌파, 살롱좌파와 결별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진보의 핵심은 유연성인데 유연성을 상실한 진보는 자기가치를 실현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 처장은 진보세력의 비판에 대해 “관념적 좌파가 범하고 있는 의도적인 범주의 오류”라고 규정한 뒤 “참여정부를 신자유주의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신자유주의에 더 가까운 사회세력에 대해서는 더 너그럽거나 옹호하고 있다.”고 비난했다.“사실과 주관적 감정을 혼돈하고 있다.”고도 비꼬았다. ●조 전 수석,“이회창씨가 집권했다면 나아졌을까.” 조 전 수석은 오마이뉴스에 ‘참여정부 실패, 정당한 평가입니까.’라는 기고를 통해 최장집 교수에게 공개 질의를 했다. 조 전 수석은 “이회창 후보가 집권했다면 나아졌을까.”라고 물은 뒤 “상대적 평가로, 이회창 후보가 집권했으면 이보다 더 잘했으리라는 근거가 있다면 참여정부가 실패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절대적 평가는 선거공약을 얼마나 잘 수행했는지를 보는 것”이라고 전제,“이 두가지 기준으로 볼때 참여정부는 매우 성공했다.”면서 “적어도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회창 후보가 집권했다면 분명한 것은 차떼기는 절대로 밝혀지지 않고 정경유착도 그대로일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측은 노 대통령의 글에 대한 파장과 관련,“일과성에 그치면 안된다.”면서 “담론이 될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논쟁이 계속돼야 한다는 얘기다. 청와대는 진보세력의 참여정부 비판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판단 아래 다소 부담이 되더라도 분명하게 짚고 나가 참여정부의 성과를 드러낸다는 심산이다. 물론 지지층에 대한 확실한 메시지를 던지는 효과도 노리고 있음직하다. 그러나 진보세력들의 맞대응이 없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담론까지 이끌어가기 위해 ‘어떤 카드’를 쓸지도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박홍기 윤설영기자 hkpark@seoul.co.kr
  • FTA 앞두고 ‘진보’와 일전?

    FTA 앞두고 ‘진보’와 일전?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7일 청와대 브리핑에서 “우리나라가 진보진영만 사는 나라냐.”면서 진보세력 일각의 참여정부 책임론을 정면 비판해 파장을 예고했다.‘대한민국 진보, 달라져야 합니다’라는 글을 통해서다. 특히 “도와 주지는 못할망정 어려운 처지의 저와 참여정부를 흔들고 깎아내리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쓴소리’마저 서슴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지난 11일 스페인과 이탈리아 순방을 떠나기 전 글을 마무리했지만 순방중 정치적 시비를 고려, 귀국 당일 공개했다. 진보세력과의 피할 수 없는 ‘한판’도 계산했다는 얘기다.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이와 관련, 인터넷매체인 ‘레디앙’에 기고,“대통령은 자신이 더 ‘진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대통령은 산업주의적 신념 같은 것을 지닌 포디즘 세대”라고 반박했다. ●노 대통령과 진보세력 대립, 한·미 FTA가 결정적 노 대통령의 진보세력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하지만 노 대통령과 진보세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부문에서 줄곧 부딪쳤다. 노 대통령은 “개방은 대세”라며 진보세력의 변화를 주문해 왔다. 노 대통령은 이번 글에서도 “이제 우리 진보가 달라지기를 희망한다.”고 당부했다. 그리고 “진보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필요하면 그것이 신자유주의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든, 누구의 입에서 나온 것이든 채택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노선을 ‘교조적 진보’의 대응 개념으로 ‘유연한 진보’라고 방어했다. 진보세력에 유연한 대응을 요구한 것이다. 나아가 한·미 FTA 등 국정과제를 진보세력의 반대에도 흔들림없이 추진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이에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 비서관은 “노 대통령은 한·미 FTA로 논란이 된 개방문제를 너무 피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진보가 진보다우려면”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 때문에 진보진영이 망하게 생겼다고 원망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얘기”라고 단언했다.“진보진영 스스로도 전체를 돌아봐야 할 일은 없느냐.”고 되물었다. 다만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가 아무 한 일도 없이 국정실패만 했다고 한다면 구체적 근거와 자료를 갖고 따져 보자.”고 했다. 노 대통령은 용산미군기지 이전과 관련,“진보진영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다.”고 전제,“그런데 일부가 평택기지 건설을 반대해 정부를 곤경에 몰아놓고 이를 지원했다. 주한미군 나가라는 말일 것이다. 과연 타당한 일이냐. 우리나라가 진보진영만 사는 나라냐.”며 따졌다.“진보가 진보다우려면 미래문제를 보다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도 주문했다. ●“다음 정권 책임지겠다고 한 적 없다”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가 진보진영의 비주류라서 실패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며 “참으로 놀라운 발견”이라고 신랄하게 비꼬았다. 노 대통령은 “오래전 어느 모임에서 진보진영의 학자 한 분에게 ‘나는 비주류 중의 비주류라 대통령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말을 했던 일이 있는데, 지금은 참여정부를 매도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그 분은 그때 ‘그럴 것’이라고 상당히 힘주어 말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이 학자에게 “저와 참여정부를 흔들고 깎아내리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청와대 측은 19일 ‘이 학자’가 최장집 고려대 교수인지에 대해 “아마”라며 사실상 시인했다. 최 교수는 이날 기자들의 취재를 피해 한때 집을 떠나 있었다. 노 대통령은 “저 때문에 진보진영이 다음 정권을 놓치게 됐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밝힌 뒤 “저는 다음 정권까지 책임지겠다고 약속한 일도 없다.”며 선을 그었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부시 이라크 증파안 ‘일진일퇴’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의회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추가파병안을 둘러싸고 일진일퇴의 치열한 공방전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주말 상원과 하원에서 벌어진 이라크 파병 반대 결의안 투표에서는 승패가 엇갈렸다. 그러나 민주당 주도의 의회는 부시의 이라크 추가파병을 막기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미 하원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추가파병안을 거부하는 결의안을 찬성 246, 반대 182로 통과시켰다. 민주당은 공화당 의원들도 17명이나 가세한 이 결의안이 부시 대통령에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을 안겨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백악관은 “하원의 결의안은 구속력이 없는 것”이라고 일축하면서 “부시 대통령은 의회가 미국을 보호하기 위한 군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전면 지원하고 유연성을 발휘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원에서는 17일 민주당이 같은 내용의 결의안을 표결하려 했으나 결국 투표는 이뤄지지 못했다. 상원은 이날 공화당이 표결에 계속 반대하자 먼저 결의안 표결 처리 여부를 투표에 부쳤다. 결과는 찬성 56대 반대 34. 그러나 표결 처리를 위해서는 60표가 필요했기 때문에 부결된 것이다. 민주당은 비록 상원에서는 결의안이 통과되지 않았지만 공화당 의원들도 일부 동참했기 때문에 명분을 얻었다고 보고 이라크 추가 파병을 막기 위한 입법활동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우선 부시 대통령에게 전쟁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이라크 침공의 길을 열어준 2002년 미 의회 결의안을 개정하자는 아이디어가 민주당에서 나오고 있다. 당시 의회가 부시 대통령에게 부여한 ‘무제한의 권한’에 제한을 가해 내전상황에 끼어드는 것을 미군의 임무에서 제외하자는 것이 골자다. 민주당 소속인 칼 레빈 상원 군사위원장은 18일 폭스뉴스 회견에서 “미군의 임무를 전투가 아닌 지원 임무로 한정시키기 위해 (대통령의 전쟁) 권한을 손질하는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2008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민주당 중진 조 바이든 상원의원도 CBS 인터뷰에서 2002년 부여된 권한을 폐기, 대통령 권한을 재조정하고 이라크 주둔 미군의 임무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라고 가세했다. 그러나 공화당의 리처드 루거 상원의원은 이같은 아이디어가 실현 불가능한 것이라면서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고, 그것이 그대로 추인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 의회 내의 반 이라크전 분위기를 앞장서 이끌었던 민주당의 존 머서 하원의원은 일단 파병됐다가 귀국한 장병들이 1년 안에 다시 파병되지 못하도록 제안하는 내용의 입법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최근 병력 부족으로 귀환 뒤 곧바로 재파병되는 병사들의 숫자가 많은 데 착안한 것이다. 머서 의원은 “이라크 및 아프간전에 소요되는 예산 930억달러를 승인하는 예산안에 관련 조항을 넣겠다.”고 밝혔다.dawn@seoul.co.kr
  • [열린세상] 딱딱해진 떡을 썰며/김정란 상지대 교수·시인

    명절 때쯤이면 방앗간에 가서 가래떡을 빼온다. 방앗간 아저씨에게 떡을 뺀 뒤 썰어서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었는데, 아저씨는 일감이 너무 밀려 정신이 없다고, 말린 뒤에 다시 방앗간으로 가져오면 그때 썰어주겠다고 하셨다. 떡을 말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일 아침쯤 가져가려고 생각했는데, 이런, 떡이 이미 너무 굳어 버린 것이다. 이 상태로 그냥 두었다가는 방앗간에서도 썰 수 없게 될 것 같았다. 안되겠다, 더 굳기 전에 내가 썰어야겠다. 떡은 잘 썰리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 지나니, 요령이 생겼다. 무엇보다 칼을 잘 써야 한다. 떡을 썰어야 하는 위치에 오른손에 든 칼의 가운데쯤 되는 부분을 대고, 왼손에 잘 안배된 힘을 넣어서 아래로 눌러 준다. 중요한 것은, 이미 상당히 딱딱해진 껍질 때문에 칼질의 연속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번의 썰기로 일단 딱딱해진 껍질을 하나 마무리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원포인트 해결 방식. 하나씩 정리하고 넘어가기. 매우 비효율적인 방식. 그러나 달리 방법이 없다면? 낑낑대면서 딱딱해진 떡을 썰면서 머릿속으로 많은 상념들이 지나간다. 이 딱딱하게 껍질이 굳어버린 떡은 꼭 우리 사회의 모습과 같지 않은가. 원래는 부드러웠던 떡. 그러나 그 부드러움은 거의 비형태에 가깝다. 그 상태로는 떡 자체로 먹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다른 방식으로 조리할 수 없는 것이다. 상수로 작동하는 형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썰어서 저장해 둔 떡은 떡볶이가 될 수도 있고, 떡국이 될 수도 있고, 떡라면이 되어 떡으로서 다른 존재 방식에 하나의 지분을 가진 형태로 참여할 수 있지만, 물렁물렁한 떡은 즉물적 가치 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적당히 굳었을 때, 즉, 시간의 공격에 적응하여 어느 정도 현실적 가치가 덧붙여졌을 때, 비로소 다른 가치를 생성시키는 체계에 합류하는 형태가 된다. 그런데 너무 굳은 다음에는? 떡은 그것을 일정한 기호적 형태로 분절시켜 그 효율성을 높여 주려는 나의 시도에 거세게 저항했다. 난 이대로 있을래. 나에게 다른 것이 되라고 요구하지 마. 어떤 개혁도 싫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 저항한 것은 지나치게 굳어버린 껍질일 뿐이다. 썰어놓은 떡살은 충분히 유연했다. 그것은 본래의 유연성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껍질만이 죽어라 자신의 딱딱함을 고집했을 뿐이다. 기득권은 모든 개혁에 저항한다. 그 딱딱함을 극복하려면, 원포인트 해결 방식이 효과적일 수 있다. 현실적인 힘을 아직도 막강하게 소유하고 있고, 한 사회의 모든 상징 분배 회로를 장악하고 있는 세력의 딱딱함에 모든 변화의 시도가 걸려 넘어진다면, 주어진 맥락 안에서 확실하게 할 수 있는 일부터 정리하고 넘어가는 것이 현실적인 해결책일 수 있다. 이를테면 개헌 문제는 어떨까? 원칙적으로는 지금 현재 우리 헌법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모순되는 요소들을 일거에 극복하는 방식으로 고치는 것이 맞다. 영토의 개념 문제, 국토 사용에 관한 철학, 지역감정 악용을 방지하기 위한 선거구제 개편 등. 그런 점에서 원칙적으로는 민노당과 시민단체의 주장이 맞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그런 근본적 수준의, 사상적/철학적 논의까지 가야 하는 사안들에 대해 당장 또는 가까운 시일 내에 합의를 이루어낼 능력이 있을까? 그렇다면 합의를 이루어낼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사안부터 원포인트로 해결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내 손 밑에서 버티다가 원포인트로 예상 가능한 기호 체계에 합류한 딱딱한 껍질의 떡처럼 말이다. 장갑을 끼고 떡을 썰었지만, 그래도 물집이 잡혔다. 그러나 별 문제는 아니다. 그 정도야 설날 떡국을 맛있게 먹을 비전에 비하면 얼마든지 감당할 만한 고통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모든 고통도 그런 성격의 것이라고 믿는다. 김정란 상지대 교수·시인
  • 몸은 멀어도 자나깨나 자식 걱정

    몸은 멀어도 자나깨나 자식 걱정

    고향 가는 길은 항상 멉니다. 그리운 곳이라 더딘 걸음이 더 더딘 것 같지만, 반가운 사람들 생각에 귀향의 피로, 세상의 깊은 시름도 별것 아니라고 여겨질 것입니다. 부모님은 어떠십니까. 다들 건강하신가요. 자식들 생각으로야 부모님 건강이 항상 마음 쓰이지만 몸이 멀어 조석으로 살피거나 챙겨 드리지도 못합니다. 가끔 전화를 걸어도 언제나 ‘나는 괜찮다.’고만 하십니다. 그러나 험한 세파 속에서 자식들 오롯하게 키워낸 부모님들이 괜찮다고 하신 말씀은 십중팔구 마음에 없는 말일 것입니다. 나이 들면 이런 저런 병과 벗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섭리입니다. 젊어서는 자식 뒷바라지에 바빴고, 늙어서야 ‘자식들 앞세우고 사니 좀 편하겠지.’ 했지만 남은 것은 병뿐이지요.‘늙어서 자식들에게 짐은 되지 말아야 하는데….’라며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치매의 엄습은 누구도 피해 가지 못합니다. 자식들 키우느라 가슴 졸인 탓에 심장은 비닐봉지처럼 약해져 있고, 내 것으로 품고 산 것이 없어 내다 버린 것도 없는데 빈 자루처럼 바람 빠진 육신에 살거죽 주름은 깊어만 갑니다. 관절염이 깊은 뼈마디는 걸을 때마다 삐걱이고, 그런 일에 가슴 졸인 탓인지 똥오줌 누는 일까지도 예전 같지가 않습니다. 이래도 ‘나는 괜찮다.’는 부모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싶어 하시겠습니까. 살다가 문득 ‘이 하찮은 자식의 어이없는 위선과 질정없는 변모에 그 늙어 쪼그라진 가슴은 또 얼마나 아프고 저렸을까.’ 생각하면 걷던 걸음 멈추고 우두망찰 먼바라기라도 하게 됩니다. 돌이켜보면 자식이 내놓고 부모 위할 기회가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특히나 부모의 건강을 챙기는 일, 자식 아니면 아무도 해 줄 수 없습니다. 이번 설에는 ‘부모님 건강 챙기기’를 컨셉트로 삼아보면 어떨까요. 혹여 자식들에게 짐 될까봐 말 못하는 부모님 심정 한번쯤 미루어 짐작해 어디가 어떻게 편찮으신지 조근조근 묻고,“그러면 설 지나 한가할 때 병원 한번 모시겠습니다.”라고 허투루라도 약속 한번 하면 자식 때문에 오그라든 흉금의 응어리가 눈 녹듯 사그라지지 않을까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세상에 대단한 효도가 따로 있지 않으니까요. 고향과 그 고향의 부모님이 부쩍 가까이 있다는 생각 들지 않으십니까. 올 설에는 지나가는 말로 “건강은 좋으시지요?” 이런 상투적인 인사는 하지 마십시오. 대신 부모님 마주하고 성긴 치아라도 건드려보며 ‘늙음과 그 후의 고통’을 체험하는 기회로 삼는다면 나중에 부모를 먼 길 떠나보내는 마음이 조금은 편해질지도 모릅니다. 그럼 먼 고향 잘 다녀 오시기 바랍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사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부모님께 아름다운 실버를 “명절날, 부모님 뵐 때마다 건강 걱정을 하면서도 돌아서면 잊어버리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번 설은 ‘개념’있는 명절로 만들어 보는 게 어떨까요. 주제는 ‘부모님 건강 챙기기’ 정도가 좋을 것 같습니다.” 건강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예방입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건강증진’은 질병이 발생하기 전에 여러가지 건강 위험요인을 교정함으로써 질병을 예방해 개개인이 ‘최선의 건강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요. 특히 고령자는 건강에 위협이 되는 여러 위험인자에 노출된 기간이 길어 각종 질병을 가질 가능성이 높지만, 중요한 사실은 고령자도 얼마든지 질환을 미리 예방하거나 조기에 찾아내 건강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생활습관 교정으로 취약한 건강 챙기기 금연과 절주, 적절한 신체적 활동 및 운동, 충분한 영양 섭취 등 생활습관 교정은 젊은 사람보다 노인에게 더욱 중요하다. 그 만큼 건강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체중 관리 노인 비만은 관절염, 거동 장애, 폐기능 감퇴와 같은 육체적인 문제를 초래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가진 경우에는 무엇보다 점진적인 체중 감량이 필요하다. 체중 감량 상황도 잘 살펴야 한다. 특히 노쇠한 경우 비만보다 체중 감소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특별한 이유없이 6개월 내에 체중의 10% 이상이 감소한 경우에는 다른 질환이 진행 중이라는 신호일 가능성이 크므로 반드시 의사와 상담할 것을 권한다. ●운동 자신의 몸 상태에 적합한 운동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면 건강에 대한 확신이 일상생활에서의 자신감으로 표출되는 것은 물론 수명도 연장된다. 특히 노년층의 경우 유산소운동 뿐 아니라 적절한 근력운동과 유연성운동, 균형운동 등을 적절히 하면 근력 감퇴나 노쇠로 인한 무기력증, 낙상에 따른 골절 등 여러 가지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 단, 심혈관계 또는 근골격계 질환이 있는 노약자가 자신의 몸에 적합하지 않은 운동을 무리하게 할 경우 자칫 심각한 부작용을 겪을 수 있으므로 미리 전문의와 상의해야 하며, 일상적인 운동이라면 자신의 최대 운동능력의 75% 정도로 강도와 시간을 조절해야 한다. ●흡연 고령의 노인이라도 금연에 의해 얻을 수 있는 건강상의 효과는 적지 않다. 노인 금연의 경우 금연 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신체 보호효과가 증가하며, 특히 협심증, 심근경색 등 관상동맥질환과 뇌졸중(중풍)으로 인한 사망률을 급격하게 감소시킨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평생 피운 담배인데….”라며 체념하기 보다는 이런 사실을 설명하고 금연하도록 하는 것이 노후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매우 중요하다. ●음주 미국의 경우 노인의 15% 정도가 일상적인 과음을 하고 있으며, 이는 노인에게 흔한 우울증과 고독감, 그리고 사회적인 지지 부족 등이 원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은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노인의 경우 체내 수분량의 감소, 인지기능의 저하, 체온 및 혈당 조절능력 장애(노인은 저혈당이 쉽게 발생함) 등의 문제 때문에 과다한 알코올 섭취가 뜻밖의 문제로 이어지기 쉽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것보다는 소량씩 마시는 사람이 더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런 점을 감안, 무조건 술을 마시지 말게 하기보다는 적절한 음주량을 지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인의 적정 음주량은 성인의 절반 정도(알코올 25g·소주 3잔)이다. # 조기 선별진단으로 질병 예방 선별검사란 외견상 건강해 보이는 사람을 대상으로 검사, 진찰 등의 방법을 이용해 숨은 질환이나 이상을 찾아내는 것을 말한다. 노인의 경우 연령이 증가함에 따라 여러가지 질환의 발생 위험도 함께 증가하지만 증상이 뚜렷하지 않을 뿐 아니라 비특이적인 증상, 이를 테면 체중감소, 무기력증, 식욕감퇴 등 일반적인 노화로 오해할 수 있는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 만큼 노인들에게 흔한 질환에 대해서는 정기적인 검사를 받도록 하는 것이 현명하다. ●심혈관계 질환 연령의 증가는 그 자체가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인자가 된다. 즉, 연령이 증가함에 따라 고혈압, 특히 수축기 혈압이 주로 상승하는가 하면 심부전, 관상동맥질환은 물론 뇌경색, 뇌출혈 등 뇌혈관질환이 많이 발생하므로 이들 질환의 위험인자를 동반하고 있는 경우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특히 고혈압과 고지혈증은 반드시 치료해야 하나 특별한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으므로 주기적으로 혈압을 측정하고,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검사해야 한다. ●악성질환 고령일수록 악성 질환의 발생이 늘며, 특히 최근에는 특정 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심혈관계 질환에 의한 사망률을 넘어서 우리나라의 가장 흔한 사망원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질환은 예방도 중요하지만 조기 발견이 완치의 핵심이 된다. 따라서 정기적인 검진이 필수적이며, 일단 병이 확인된 경우라면 동요하지 말고 의료진과 상의해 가장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거론되는 악성 질환은 폐암 전립선암(남성) 유방암(여성) 대장암 등 각종 암을 들 수 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도움말:김광일 교수(분당서울대병원 노인의료센터) ■ 이런질환 꼭 살펴라 노인들에게 많은 백내장이나 요실금, 관절염 등은 유병률도 높을 뿐 아니라 ‘삶의 질’ 측면에서 일상적으로 미치는 영향도 큰 만큼 평소 유심히 살펴봐야 할 질환 들이다. ●백내장과 노안 평소 안경도 안 쓰던 부모님의 눈이 침침해 마당에 들어선 손주들의 얼굴도 못 알아 본다면 백내장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노안까지 있으면 바깥 세상이 온통 ‘흐릿하게’ 보인다. 백내장은 원래 투명한 수정체가 노화로 딱딱하게 경화되고 혼탁해진 상태를 말한다. 원래 까맣던 눈동자가 뿌연 수정체 때문에 허옇게 보여 붙은 이름이 백내장이다. 카메라의 렌즈 역할을 하는 수정체가 혼탁해 사물이 흐리게 보인다. 보통 노인성 백내장은 가까운 곳이 잘 보이지 않는 노안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가까운 곳을 볼 때는 수정체가 두꺼워져야 하는데, 나이가 들면 수정체의 두께를 조절하는 근육이 약해져 필요한 굴절각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백내장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뿌연 수정체를 제거하고 인공 수정체를 넣어줘야 한다. 지금까지는 먼 거리 시야 확보에만 초점을 맞춘 인공수정체를 사용해 노안이 있는 경우에는 수술 후에도 돋보기를 써야 했다. 그러나 최근 개발된 ‘레스토(ReSTORE) 렌즈삽입술’은 근·원거리를 동시에 볼 수 있는 특수 렌즈를 삽입, 백내장과 노안을 동시에 해결해 준다. 박영순 아이러브안과 원장은 “레스토 렌즈삽입술은 비교적 안전하고, 수술시간도 5∼10분으로 짧아 백내장과 노안을 동시에 해결하는 치료법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요실금 노모가 외출을 꺼리거나 화장실을 유난히 자주 들락거린다면 한번쯤 요실금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여성의 40%가 경험할 정도로 흔하며, 주로 중년 이후의 여성에게 많다. 여성은 남성과 달리 분만, 폐경, 노화 등으로 골반 지지조직이나 방광이 약해져 요실금이 잘 나타난다.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약물, 전기자극, 골반근육 운동 등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다. 노화로 인한 요실금에는 테이프를 이용한 간단한 수술법이 널리 사용된다. 입원 기간도 1∼2일 정도로 짧고, 치료 후 곧바로 일상 생활을 할 수 있으며, 재발률도 낮다. 예방을 위해서는 꾸준한 운동과 함께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는 게 좋다. 다리를 벌리고 항문을 5초간 조였다 푸는 운동을 계속하면 골반 근육이 단련돼 요실금 예방에 도움이 된다. 세브란스병원 비뇨기과 김장환 교수는 “요실금을 방치할 경우 외출을 꺼리는 것은 물론 대인관계를 회피, 나중에는 노인성 우울증 같은 정서적인 문제까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노인성 치질 나이가 들면 항문의 기능도 약해져 노인과 치질은 떼려야 뗄 수 없게 된다. 항문 기능이 약해지면 배변이 고통스럽고, 배변 후에도 늘 뒤가 찜찜하며, 재채기만 해도 항문이 쉽게 빠져 나온다. 혹시 부모님이 어기적거리며 걷거나 자리에 앉을 때도 자세가 엉거주춤하며, 방석을 깔아야 앉을 수 있다면 치질일 가능성이 높다. 치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노인들은 내색도 못하고 무조건 참는 경우가 많다. 치질이 있으면 심리적으로도 위축되고, 자연스럽게 하체에 힘이 들어가는 활동을 피하게 된다. 그러나 노화로 인한 치질은 부끄러운 질환도 아니고, 치료도 쉽다. 경증은 약물치료도 가능하며, 수술도 부분 마취로 가능해 부담도 적은 편이다. 한솔병원 이동근 원장은 “부분 마취 후 늘어난 치핵을 세밀하게 자르고 봉합하는 수술은 시간도 20분 정도로 짧고, 입원 기간도 1∼2일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수술 후에는 매일 3∼4회 온수 좌욕을 해주면 회복에 도움이 된다. 수술 일주일 후면 배변 시 통증이 완화되고, 배에 힘을 주는 운동 등 활발한 야외활동도 거뜬히 할 수 있다. ●퇴행성 관절염 참기 어려울 정도로 무릎이 아프고 쑤시는 퇴행성 관절염이지만 대다수 노인들은 늙으면 으레 생기는 질환으로 여긴다. 그러나 무릎이 아프면 활동범위가 좁아지고, 자세 불균형으로 다른 근골격계 질환을 불러올 수 있으므로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통증으로 걷기 어려울 정도면 치료 기간이 오래 걸릴 뿐 아니라, 심하면 망가진 관절 대신 인공관절을 넣는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 따라서 노령자가 관절염 증상을 보이면 빨리 병원을 찾는 게 좋다. 특히 최근에는 여성 노인질환으로 알려진 관절염이 남성에게서도 빈발하므로 부모를 모두 잘 살펴봐야 한다. 목동 힘찬병원 관절경센터 정광암 소장은 “관절염은 나이가 들면 당연히 오는 병이 아니라 치료해야 하고, 치료 되는 병”이라고 말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도움말:박영순 아이러브안과 원장 김장환 세브란스병원 비뇨기과 교수 이동근 한솔병원장·정광암 목동 힘찬병원 관절경센터 소장 ■ 노인질환 체크포인트 10 다음의 증상이 있는 경우 반드시 의사와 상담해야 한다. -특별한 이유없이 체중이 10% 이상 감소했다. -운동시 호흡곤란, 흉통, 두근거림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운동 후 근육과 관절에 30분 이상 지속되는 통증이 있다. -흡연자에서 기침, 객담, 객혈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하루 음주량이 3잔 이상이며, 습관적으로 술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2회 이상 측정한 혈압의 평균치가 140/90㎜Hg 이상이다. -총콜레스테롤 수치가 200㎎/㎗ 이상이다. -남성의 경우 소변 횟수가 증가하고, 잔뇨감이 있으며, 혈뇨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변비, 설사가 잦고, 대변의 색깔에 변화가 있다. -인플루엔자, 폐렴구군,B형 간염 예방접종을 실시하지 않았다. ■ 어르신 겨울나기 홈 스트레칭 노인들 겨울나기는 살얼음을 밟는 것처럼 조심해야 한다. 근력 감소가 심할 뿐더러 찬 바람이 혈관을 수축시켜 혈류량이 줄면 관절 부위의 근육과 인대가 뻣뻣하게 굳어 근골격의 퇴행을 가속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평소보다 활동량이 줄어 근력이 약해지는가 하면 풍(風)요통·한(寒)요통 등 계절성 척추질환도 흔하게 나타난다. 이런 노인들이 겨울을 건강하게 나기 위해서는 매일 규칙적인 운동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실내에서 하루 세번, 각 3분씩 3세트로 짜여진 홈 스트레칭은 힘들이지 않고 관절질환 예방 효과를 볼 수 있어 노인들에게 권할 만하다. ●노인의 몸 65세 이상 노인들의 질환은 70% 이상이 근력과 관계된 관절염과 요통, 좌골통 등이다. 이 중 퇴행성 관절질환의 경우 40∼50대에 발병해 65세 이상은 80%,75세 이상은 95% 이상이 고통을 받는다. 특히 75세를 넘긴 고령자의 경우 30대에 비해 근육의 30∼40%가 감소하므로 운동을 통해 근력을 유지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허리 근력이 약해져 만성 허리통증을 호소하게 된다. 여기에다 노인들은 대부분 골밀도가 낮아 골절상이 뜻밖의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노인 홈 스트레칭 노인들의 근력을 키우고 퇴행성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적당한 강도의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하면 근육의 탄성을 유지, 향상시키고, 관절과 근육의 유연성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운동시설을 이용하기가 어렵고, 겨울철이라 외출도 쉽지 않다. 이런 노인들에게 집안에서 손쉽게 할 수 있는 홈스트레칭은 큰 도움이 된다. 스트레칭이 특히 노인에게 좋은 것은 약한 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효과적으로 근육운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꾸준한 스트레칭 만으로도 기초대사량을 올리는 것은 물론 적지 않은 칼로리를 소모할 수도 있다. 스트레칭은 매회 3분 이상, 한 동작을 3번씩 반복하되, 하루에 3번 이상 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도움말:김기옥 자생한방병원 실버척추클리닉 원장 ■ 이것만 주의 하세요 1. 관절에 지나치게 체중이 실리거나 충격이 가해지면 안 된다. 자칫 인대나 근육 손상을 입을 수 있다. 2. 스트레칭은 수 차례로 나눠서 하는 것이 좋다. 젊은 층의 운동량이 100이라면 60∼70%가 적당하다. 3. 무리한 동작을 피해 몸을 편안히 놀릴 수 있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4. 자칫 몸에 무리를 줄 수 있는 기구를 이용하기보다 맨손운동이 좋다. 집안의 소품이나 가구 등을 의지해서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5. 피로감을 느끼거나 어지럼증 같은 증상이 느껴지면 운동을 중단했다가 증상이 사라지면 다시 시작한다. ■ 가족에게 “누구냐?” 묻거든 치매보다 일단 ‘섬망’ 의심을 최근 뇌혈관질환으로 수술을 받은 김모(73)씨는 밤중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붙잡고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러다 스위치를 건드려 방에 불이라도 켜지면 불이 났다고 소동을 피우는가 하면 가족들에게 “누구냐?”고 묻기도 한다. 언뜻 보기에 치매라고 여기기 쉽지만 김씨가 진단받은 병명은 ‘섬망(Delirium)’이다. ●치매와 비슷 섬망은 일시적으로,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정신의 혼란 상태를 말한다. 치매증상을 유발하거나 치매와 비슷한 소견을 보이지만 치매와는 달라 완치도 가능하다. 섬망은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는 70세 이상 노인환자의 30%가 가질 정도로 흔하다. 김씨처럼 고령에 큰 수술을 하면 수술 후 신체리듬이 깨지고, 환경이 갑자기 변하기 때문에 앞의 사례와 같은 일시적 의식장애나 혼동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의료진은 설명한다. 고령에 큰 수술을 받은 환자가 퇴원 후 평소와 달리 산만하거나,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고 느끼며, 시간과 장소를 인지하지 못하고 멍한 상태로 하늘을 쳐다보거나 소리를 치는 등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인다면 섬망을 의심해 봐야 한다. 전문의들은 “섬망 증세가 나타나면 집중력과 지각력에 장애가 와서 기억장애, 착각, 환각, 해석 착오, 불면증은 물론 악몽이나 가위눌림 현상 등을 보이기도 한다.”고 말한다. ●다양한 원인 섬망은 전신 감염 때, 뇌에 산소공급이 잘 안 될 때, 혈액에 당분이 부족할 때, 간장·신장질환이 있을 때, 뇌세포의 각종 대사과정에 필요한 필수 비타민인 티아민이 부족할 때 등 다양한 원인이 작용한다. 알코올이나 약물에 중독됐거나, 금단현상이 나타날 때 순간적인 정신착란이 일어나는 것도 일종의 섬망이다. 증상은 치매와 비슷하나 치매와 달리 급성으로 발병하는 점이 다르다. 전문의들은 “치매는 후천적인 뇌세포 이상으로, 점차 진행하는 2종류 이상의 인지기능 장애가 의식 저하 없이 일어나며, 증상이 서서히 나타난다는 점에서 섬망과 구별된다.”고 설명한다. ●유발요인 치료가 중요 섬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의 리듬을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 섬망으로 진단되면 일단 유발요인을 없애기 위해 적극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고, 일상생활과 수면 주기, 주변 환경을 적절히 조절해 줘야 한다. 병실에서는 주변 환경을 잘 정리정돈하고, 집에서 쓰던 낯익은 물건 한두 가지를 환자 주변에 갖다 둬서 정서적인 안정을 꾀하도록 해줘야 한다. 더러는 친근한 신체 접촉이나 환경 변화만으로도 증상이 호전된다. 평소 가까운 가족들이 자주 찾도록 하고, 이들이 환자와 대화는 물론 신체 접촉까지 하도록 하는 것도 필요한 방법이다. 또 낮에는 방이나 병실을 밝게 해주고, 밤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물품을 치우는 등 편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좋다. 서울시립 북부노인병원 정신과 신영민 원장은 “섬망은 치매와 다르지만 방치하면 치매를 유발할 수 있다.”며 “유발 요인을 조기에 치료하면 1∼2주내에 완치되지만 치료시기를 놓쳐 치매가 동반된 경우나 뇌의 기질적 이상을 동반한 경우에는 오랜 기간 섬망 증상이 지속되거나 회복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도움말:신영민 서울시립 북부노인병원 정신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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