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유엔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신탁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개봉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호소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임시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2,003
  • 박원순 “北에 방역협력 대화제안…방북 용의 있다”

    박원순 “北에 방역협력 대화제안…방북 용의 있다”

    “남북소통, 지방정부가 뚫어낼 수 있다”“북미대화, 좀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길”박원순 서울시장은 6.25전쟁 70주년을 맞은 25일 “북한이 응한다면 언제든지 북한을 방문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이날 주한 북한 평양 주재 공관장을 겸임하는 20개국 대사들의 모임인 ‘한반도클럽’ 대사들을 초청,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물품 대북지원과 관련해 유엔제재 면제 승인을 받은 사실을 알리면서 “이 제재면제 조치를 계기로 북한당국에 신종감염병 문제 등과 관련한 방역협력을 위해 대화를 제안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남북의 대화와 소통이 꽉 막혀있을 때는 지방정부가 이를 뚫어낼 수도 있다고 본다”고도 했다. 또 “서울시는 그동안 방역물품과 방역의 노하우를 서울시의 자매도시뿐만 아니라 전세계 도시들과 함께 나눠 왔다”며 “우리의 형제국가인 북한과 그것을 나누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박 시장은 2032년 서울·평양 하계올림픽 공동 유치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2032년 서울·평양 하계올림픽 공동유치과정에서 서울시의 방역 시스템을 공유한다면 남과 북의 공동방역체계도 자연스럽게 구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북측의 대남적대정책 전환에 큰 빌미를 제공한 것은 일부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행위였다”며 “이런 파괴행위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측의 언행에 대해서도 유감스럽다고 밝힌 뒤 “북측이 2000년 ‘6.15 선언’부터 2018년 ‘9.19 선언’까지 남북 정상간 맺어진 합의 정신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박 시장은 미국에 대해서는 “비핵화협상을 위한 북미대화를 좀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를 희망한다”며 “북측의 비핵화를 추동하는 방법으로 대북제재의 예외부분인 인도적 분야를 보다 넓게 해석해 적용할 수 있게 하는 등 대북제재 틀 완화의 전향적인 검토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문정인 “미국 반대한다고 대북지원 못 하는 것 아니다”

    문정인 “미국 반대한다고 대북지원 못 하는 것 아니다”

    “중국 등 제3국 여행사 통해 北 방문 허용 가능”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이 유엔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대북 지원은 미국이 반대한다고 못 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문 특보는 25일 자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유엔 제재에 저촉되지 않고 북한을 지원하는 방법이 있다”며 “식량 및 의약품 지원 외 한국인 관광객이 중국 등 제3국의 여행사를 통해 북한 비자를 발급받으면 (한국 정부가) 북한 방문을 허용하는 ‘개별 관광’ 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반대한다고 우리가 못하는 것은 아니다”며 “동맹은 쌍방의 국익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특보는 “북한은 이제 미국이 제재를 해제해주지 않고, 한국이 미국을 설득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최근 북한의 대남 행보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크게 세 개의 길이 있다”며 “첫째는 안정적인 상황 관리를 통한 전쟁 방지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생각이 강하다”고 밝혔다. 이어 “두 번째는 강경 대응책이다. 북한이 군사적 대응을 하면 우리도 군사적으로 강하게 맞선다”며 “세 번째는 미국과 대립하더라도 남북관계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고 관계를 대폭 개선하는 시나리오”라고 설명했다. 문 특보는 “(세 가지 길 중에) 문 대통령이 어떤 것을 택할지는 알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송영길 “유엔에 ‘대북제재 일부 완화’ 강력 요청할 것”

    송영길 “유엔에 ‘대북제재 일부 완화’ 강력 요청할 것”

    北 군사행동계획 보류에 “대화 여지 남긴 것”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대북제재 완화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외교통일위원장으로서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들을 만나 인도적 지원 등에 대해 제재의 일부 완화를 강력히 요청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부 제재위원들과 이미 이메일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소통하고 있다면서 “그런 입장을 전달하겠다”고 언급했다. 한미워킹그룹에 대해선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양날의 칼”이라고 했다. 워킹그룹으로 인해 대북정책이 미국의 동의 없이 아무것도 못 하는 형태가 돼선 안 되지만, 남북 교류 사업에서 미국의 제재 면제를 원스톱으로 해결하는 장점도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북한의 대남 군사행동계획 보류에 대해 “앞으로 대화의 여지를 남긴 것”이라며 “우리 스스로도 대북 전단 같은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송 의원은 미래통합당의 대북정책 국정조사 요구에 대해 “국정조사는 둘째 문제이고 상임위부터 들어와야 하지 않겠느냐”며 “상임위는 안 하고 국정 조사를 하자는 것은 초등학교도 안 나왔는데 중학교부터 가겠다는 소리”라고 지적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6.25전쟁 70주년, 한미 국방장관 “피를 나눈 혈맹…평화 지키자”

    6.25전쟁 70주년, 한미 국방장관 “피를 나눈 혈맹…평화 지키자”

    “북, 싱가포르 성명·남북합의 준수해야”“비핵화 외교 노력 계속 지원”“한미 연합연습 등으로 평화 증진할 것” 한미 국방장관이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기념해 정전협정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를 지켜온 장병들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와 번영을 보장하기 위한 연합방위태세 유지 공약을 재확인했다. 정경두 국방장관과 마크 에스퍼(Mark T. Esper) 미국 국방장관은 6·25전쟁 개전 시점인 이날 오전 4시에 공개한 공동발표문에서 “북한이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과 남북 9·19군사합의 등에 따른 약속을 준수하기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양 장관은 “한미 양국을 대표해 자유와 민주, 번영의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장병들의 희생과 용기에 깊이 감사를 드리며, 그분들의 발자취를 기리고자 한다. 또한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를 지켜온 모든 장병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6.25전쟁 발발 70년이 지난 이후에도 한미동맹이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의 안보, 안정, 번영의 핵심축(린치핀) 역할을 변함없이 수행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양 장관은 북한을 향해선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과 9·19 남북군사합의 등에 따른 약속을 준수하기를 요구한다”며 “현재와 미래의 도전들에 대응하면서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진화시켜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에스퍼 장관은 6·25전쟁에서 보여준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방위에 대한 미국의 철통같은 공약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한미 국방부는 정보공유·고위급 정책협의· 연합연습 등을 통해 역내 평화와 안정을 지속 증진해 나가는 한편, 유엔안보리 결의에 따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는 외교적 노력을 계속 지원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또 양 장관은 한미 안보 관계를 강화하고 먼 미래까지 한미 연합군의 전통을 계승해 나갈 수 있도록 양자 협력의 폭과 깊이를 확대해 나가기로 약속했다. 다음은 한미 공동발표문 전문. 오늘 한미는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함께 기념하고자 합니다. 1950년 오늘, 서로 멀리 떨어져 있던 용맹스러운 한미 장병들이 공동의 가치와 목적 아래 함께 뭉침으로써 한미 군사동맹은 피를 나눈 혈맹으로 탄생하였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새로이 출범한 유엔군사령부의 지원 아래, 16개 파트너국 장병들이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부름에 응답함으로써 더욱 강력하게 되었습니다. 70년이 지난 이후에도 한미동맹은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의 안보, 안정, 그리고 번영의 핵심축(linchpin) 역할을 변함없이 수행하고 있습니다. 정경두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부 장관은 한미 양국을 대표하여, 자유와 민주, 번영의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장병들의 희생과 용기에 깊이 감사를 드리며, 그분들의 발자취를 기리고자 합니다. 양 장관은 또한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를 지켜온 모든 장병들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와 번영을 보장하기 위한 연합방위태세 유지 공약을 재확인합니다. 한미 국방부는 힘들게 이룩한 한반도 평화를 지키려는 확고한 의지를 견지하고 있으며, 유엔안보리 결의에 따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는 현행 외교적 노력을 계속 지원해 나가고자 합니다. 양 장관은 북한이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과 남북 9·19 군사합의 등에 따른 약속을 준수하기를 요구합니다. 6·25전쟁에서 보여준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에스퍼 장관은 대한민국 방위에 대한 미국의 철통같은 공약을 확인하였으며, 양 장관은 현재와 미래의 도전들에 대응하면서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진화시켜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또한, 양 장관은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 그리고 항행과 비행의 자유를 포함한 국제 규칙과 규범 준수의 중요성을 확인하였습니다. 양 장관은 복잡한 범세계 및 역내 안보 변화 속에서 공조의 증진 필요성에 동의하고 다양한 분야의 현안에 대한 협조와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양 장관은 또한, 한미일 및 다자 안보협력을 통해 동북아의 평화와 안보를 유지하기 위한 한미 역내 전략의 시너지 창출을 지속 모색해 나갈 것입니다. 한미 국방부는 정보공유, 고위급 정책협의, 연합연습 등을 통해 역내 평화와 안정을 지속 증진시켜 나갈 것입니다. 에스퍼 장관은 한측의 코로나19 대응이 효과성과 투명성에 있어 모범이 되고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한미 국방부는 범세계적인 전염병 대유행에 대처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입니다. 한미동맹은 상호 신뢰와 자유, 민주주의, 인권, 법치주의라는 공동의 가치에 기반합니다. 이러한 정신에 따라, 양 장관은 양측의 안보 관계를 강화하고 먼 미래까지 한미 연합군의 전통을 계승해 나갈 수 있도록 양자 협력의 폭과 깊이를 확대해 나가기로 공약하였습니다. 한미동맹이 구호로 외치는 바와 같이, “같이 갑시다! We go together!”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올바른 역사교육 위해 6·25 역사서 1000만부 나눠준 부영

    올바른 역사교육 위해 6·25 역사서 1000만부 나눠준 부영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부영그룹과 6·25의 ‘남다른 인연’이 재조명받고 있다. 부영은 각국 젊은 세대들이 6·25전쟁 역사의 실상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현재까지 역사서 1000만부 이상을 무료로 나눠 줬다. 또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 설치된 유엔참전국 기념비 마련 때에도 힘을 보탰다. 6·25전쟁 당시 목숨 바쳐 우리를 도와준 참전 용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2015년 부영은 2.7m 높이의 국가별 상징작품에 승리의 상징 월계관과 참전사항, 참전 부대 마크, 참전 규모 및 전투 기록, 참전 용사에게 바치는 글 등을 담아 기념관 측에 기증했다. 전후세대에 올바른 역사교육의 필요성을 일깨우기 위한 마음에서 출간과 기념비 지원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다. 또 이중근 부영 회장의 편저서 ‘6·25전쟁 1129일’은 학교·전쟁기념관·공공기관 등에 현재까지 1000만부 이상 무상보급됐다. 영문판도 제작해 110개국에 약 25만권을 배포했다. 이 책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무방비 상태의 남한에 전면 남침을 개시한 시점부터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까지 1129일의 날씨, 전황, 국내외 정치상황 등을 일지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특히 지도, 통계 도표, 미공개 자료를 포함해 전쟁과 관련한 다양한 사진 200여장을 수록한 데다 날짜별, 일지 형태로 집필한 우정체(宇庭體) 기술 방식으로 필자의 주관적인 의견을 배제한 채 객관적인 사실만을 담았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고 있다. 역사서 발간을 위해 이 회장이 사재를 들여 2013년 우정문고를 설립해 이 책을 발간했다. 이 회장은 우정문고를 통해 ‘광복 1775일’, ‘미명 36년 12,768일’, ‘여명 135년 48,701일’, ‘우정체로 쓴 조선개국 385년’ 등의 책들도 직접 편저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147구 참전용사 北·하와이 거쳐 70년 만에 귀환

    147구 참전용사 北·하와이 거쳐 70년 만에 귀환

    6·25전쟁 70주년 행사가 고국으로 돌아온 147구의 국군전사자 유해와 함께 개최된다. 국가보훈처는 24일 “6·25 참전유공자들의 희생과 헌신을 국민과 함께 기억하고, 유엔참전국의 공헌에 감사하는 70주년 행사를 25일 서울공항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행사는 참전유공자에 대한 경의를 담아 ‘영웅에게, Salute to the Heroes(영웅에 대한 경례)’라는 주제로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다. 70년 만에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국군 유해 147구를 맞이하는 행사가 먼저 열린다. 147구는 2018년 북미 정상회담 합의로 북한에서 발굴돼 미국 하와이로 옮겨졌다가 국군전사자로 판명됐다. 정부는 그동안 미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과 송환을 협의했고, 이날 하와이에서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기(KC330)를 이용해 성남공항으로 봉환했다. 행사는 배우 최수종과 국방홍보원 정동미 대위의 사회로 진행된다. 147구 중 신원이 확인된 하진호 일병 등 7구와 국내에서 발굴돼 미국으로 송환되는 미군 유해 6구가 가수 윤도현이 부르는 ‘늙은 군인의 노래’가 흐르는 가운데 입장한다. 헌화·분향 후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로버트 에이브럼스 유엔군사령관 등이 유해에 참전기장을 수여한다. 이어 147구의 귀환 여정이 담긴 영상을 KC330 동체에 비춰 상영하고 배우 유승호가 장진호 참전용사 이야기를 낭독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등 22개국 유엔참전국 정상들이 처음으로 보내온 메시지도 상영된다. 6·25 당시 공적이 70년 만에 확인된 생존 참전용사 공호영 하사 등 2명과 유족 12명에게 무공훈장이 수여된다. 비무장지대(DMZ) 철조망과 6·25 당시 유엔참전국이 사용했던 수통, 탄피, 철모 등을 녹여 만든 ‘평화의 패’를 참전국 대표로 주한 네덜란드 대사에게 전달한다. 보훈처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12만 2609명의 전사자를 마지막 한 분까지 찾겠다는 국가의 약속을 담은 ‘122609 태극기’ 배지를 참석자 모두가 착용해 경의를 표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빨갱이 가족이란 낙인 두려워…금정굴 쪽은 쳐다도 안 봤어요”

    “빨갱이 가족이란 낙인 두려워…금정굴 쪽은 쳐다도 안 봤어요”

    “어려서는 내가 금정굴을 하루이틀 걸러 다니면서 무섭지도 않은지 거길(굴 위를) 건너뛰고 그랬지요. 그런데 아버지 죽고 나서 한 20여년 동안 한 번도 가지를 않았어요. 그쪽은 쳐다도 안 보고 얼씬도 안 하고 싶더라고요.”(이병순 금정굴유족회 고문)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일산동 황룡산 자락에 있는 18m 깊이의 수직 폐광 ‘금정굴’. 한때 ‘금구뎅이’라고 불렸던 영광의 기억도, 동네 꼬마들이 폴짝폴짝 뛰놀던 추억도 온데간데없다. 금정굴은 이제 ‘무덤’이다. 1950년 10월 9일부터 25일까지 고양·파주 지역의 민간인 160여명이 ‘빨갱이’로 낙인찍혀 재판 한 번 받지 못하고 학살당한 채 금정굴에 버려졌다. 70년이 지났지만 희생자들은 한 몸 온전히 누일 곳 없이 떠돌이 신세다. 1995년 유족들이 발굴 작업을 벌여 153구 이상의 유해가 세상에 나왔다.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만 76명이다. 유해를 모실 곳이 마땅치 않아 지금까지 납골당만 세 차례 옮겼다.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금정굴 민간인 학살 사건을 “경찰에 의한 불법적인 집단학살”로 결론 내렸지만, 희생자들의 넋은 위로받지 못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권고했던 평화공원 설립도, 영구적인 유해 안치소 설치도 아직 이뤄지지 못했다. 유족들은 애가 끓는다. 부역 혐의자 가족이라는 낙인이 두려워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금정굴 쪽은 애써 외면했다. 억울한 죽음을 애도할 권리마저 박탈당한 채 살아온 세월이 수십 년이다. 서울신문은 24일 채봉화(74) 금정굴유족회장과 이병순(87) 고문을 만났다. 1950년 10월 9일. 당시 열일곱 소년이었던 이 고문의 뇌리에는 70년 전 모습이 스틸사진처럼 남아 있다. 집 앞에서 두 사람씩 삐삐선(군용통신선)에 묶인 채 이동하는 행렬을 목격했다. 맨 뒤에 아버지 이봉린이 있었다.보리밭 갈다 끌려간 아버지… 유해안치소도 없이 ‘떠돌이 신세’ 한국전쟁이 터지고 3일 만에 수도를 빼앗긴 국군이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한 무렵 이봉린은 능곡국민학교에서 열린 유엔군 환영대회에 나갔다가 치안대에 끌려갔다. 인민군이 마을을 점령한 시기 ‘농촌위원장’을 맡아 공출량을 계산하는 부역을 했다는 이유였다. “우리 아버지가 일산리 구장(區長)을 했었거든. 동네에서 추켜세우는 사람이잖아. 주변에서 ‘형님이 일 봐야지’ 하니까 맡게 된 건데….” 어머니와 7남매는 잡혀간 아비의 끼니 걱정에 매일 번갈아 수십 킬로 걸어 밥을 날랐다. 그러던 어느 날 고양경찰서에서 “(부역 혐의자들이) 문산으로 좌익 심사를 받으러 가서 오늘은 밥을 안 받는다”고 했다. 이 고문은 “문산을 가는 줄 알았지 금정굴로 가는 줄 누가 알았겠느냐”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행렬을 몰래 뒤따랐던 다른 희생자 유족을 통해 이 고문 가족은 진실을 알게 됐다. “아이고, 심사가 뭡니까. 그 구뎅이로 가서 다 쏴죽였어요!” 장남이었던 이 고문은 그 길로 작은아버지, 마을 어른들과 함께 사다리와 밧줄을 챙겨 금정굴로 향했다. 시신이라도 수습하자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시신은 찾지 못했고 피투성이가 된 채 금정굴에 떨어져 “살려 달라”고 외치는 한 사람을 구했다. 총알을 빗맞은 덕에 목숨을 건진 동네 주민 이경선이었다. 금정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이씨는 이후 죽을 때까지 고향 땅을 밟지 않았다. 금정굴에서 학살이 처음 벌어진 이날 이봉린을 포함해 46명이 희생됐다.희생자 가족은 공포에 사로잡혀 침묵해야 했다. 그날 밤 이 고문의 집에 들이닥친 경찰은 “시체 가져왔느냐”, “빨갱이 찾으려고 금정굴에 갔다 왔느냐”고 화를 내며 장작 더미며 아궁이 구멍이며 죄다 창으로 쑤셔 댔다. “그날 금정굴에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누가 고발을 했는지 자전거를 탄 태극단 놈들이 서넛 올라오고 있더라고. 길이 엇갈려서 망정이지 거기서 마주쳤다면 우리도 다 죽는 거야. 일곱 사람이 갔었는데…. 그래서 잠자코 살았던 거지.” “이제는 시대가 달라져 말이라도 하지, 예전에는 아버지가 ‘빨갱이’로 돌아가셨다고 어디 가서 말도 못해….” 채 회장은 45년의 세월 동안 아버지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살았다. 아버지 채기동은 보리밭을 갈다가 총을 멘 치안대 3명에게 끌려간 뒤 소식이 끊겼다. 그때 고작 네 살이었던 채 회장은 아버지와의 기억이 없다. 그는 졸지에 과부가 된 어머니와 금쪽같은 외아들을 잃은 할머니의 넋두리로 부친을 기억한다. “우리 엄마가 맨날 그러셨지. 봉화야, 네 아버지 금정구뎅이 가서 죽었다. 남들이 그런다.”채 회장은 금정굴과 가까운 파주에서 평생을 살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고 45년이 지난 1995년에서야 처음으로 금정굴을 찾았다. 뉴스로 유해 발굴 소식을 전해 듣고 동생과 함께 갔다. 채기동은 6년 동안 강제징용을 당했다가 해방 이후 돌아왔다. 채 회장은 “9척 장신에 원체 기운이 장사라 인근에서 아버지를 당해 낼 사람이 없었다더라”고 했다. “총을 멘 치안대가 당신을 찾으니 도망가라”는 말에도 채기동은 “잘못한 것이 없다”며 당당했다. ‘부역자 가족’의 삶은 매 순간 고통으로 점철돼 있었다. 채 회장은 “어머니가 생계를 위해 봇짐 장사를 하려면 도민증이 필요했는데 우리한테는 도민증 허가를 안 내줘서 어머니가 ‘꼼짝없이 죽겠다’며 우셨다”며 “핍박받으면서 세 딸을 키운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난다”고 했다. 채 회장이 끝까지 파주를 떠나지 않은 건 어머니의 유언 때문이다. 채 회장 가족은 시간이 흘러 아버지에게 부역 혐의자라는 누명을 씌운 마을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됐다. 어머니는 “내가 죽어도 넌 반드시 이 동네에 살면서 남의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나 두고 보라”는 말을 남겼다.“신도시 주민들은/발 밑이 저승인 사실은 모른 채/오래전 이 마을을 휩쓸고 간/역병보다도 더 고약한 숙청은 모른 채/두개골 정강뼈 쇄골 잘근잘근 밟으며/황솥밭 샛길을 오갈 뿐이다”(손세실리아, ‘뼈무덤’) 용기를 내 세상에 나온 유족들은 긴 싸움을 했다. 승리도 수차례 맛봤다.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진실 규명을 결정하면서 “최종 책임은 국가에 있고 희생자 상당수는 도피한 부역 혐의자 가족이거나 이와 무관한 지역 주민이었다”고 했다. 2012년에는 국가 배상 소송에서 승소해 “희생자 2억원, 배우자 1억원, 부모·자식 각 5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확정됐다. 수차례 무산됐던 ‘6·25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조례안’도 2018년 고양시의회에서 통과됐다.그럼에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희생자가 제대로 된 위령시설 없이 떠돌고 있고 유족이 겪는 고통도 여전하다. 일부 보훈단체 회원들은 아직도 희생자를 ‘토착 빨갱이’라고 부른다. 보수 정당 시의원은 조례 제정을 반대하며 “(희생자들은) 김일성 앞잡이 노릇을 했다”고 공공연하게 말했다. 금정굴 현장에 조성될 계획인 평화공원은 “납골시설이 들어오면 집값 떨어진다”는 일부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채 회장은 “지금 희생자들을 임시 안치한 세종추모공원은 너무 멀다. 가까운 곳에 희생자들을 모시고 자주 왔다 갔다 하는 게 유족들의 소원”이라고 말했다. 이어 “죄도 없이 잡혀가 죽고, 설령 죄가 있다고 해도 재판 한 번 열지 않고 죽은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고문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게 한 전쟁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빨갱이’ 가족이란 낙인 두려워 금정굴 쪽은 쳐다도 안 봤어요”

    “‘빨갱이’ 가족이란 낙인 두려워 금정굴 쪽은 쳐다도 안 봤어요”

    “어려서는 내가 금정굴을 하루이틀 걸러 다니면서 무섭지도 않은지 거길(굴 위를) 건너뛰고 그랬지요. 그런데 아버지 죽고 나서 한 20여년 동안 한 번도 가지를 않았어요. 그쪽은 쳐다도 안 보고 얼씬도 안 하고 싶더라고요.”(이병순 금정굴유족회 고문)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일산동 고봉산 자락에 있는 18m 깊이의 수직 폐광 ‘금정굴’. 한때 ‘금구뎅이’라고 불렸던 영광의 기억도, 동네 꼬마들이 폴짝폴짝 뛰놀던 추억도 온데간데없다. 금정굴은 이제 ‘무덤’이다. 1950년 10월 9일부터 25일까지 고양·파주 지역의 민간인 160여명이 ‘빨갱이’로 낙인찍혀 재판 한 번 받지 못하고 학살당한 채 금정굴에 버려졌다. 70년이 지났지만 희생자들은 한 몸 온전히 누일 곳 없이 떠돌이 신세다. 1995년 유족들이 발굴 작업을 벌여 153구 이상의 유해가 세상에 나왔다.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만 76명이다. 유해를 모실 곳이 마땅치 않아 지금까지 납골당만 세 차례 옮겼다.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금정굴 민간인 학살 사건을 “경찰에 의한 불법적인 집단학살”로 결론 내렸지만, 희생자들의 넋은 위로받지 못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권고했던 평화공원 설립도, 영구적인 유해 안치소 설치도 아직 이뤄지지 못했다. 유족들은 애가 끓는다. 부역 혐의자 가족이라는 낙인이 두려워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금정굴 쪽은 애써 외면했다. 억울한 죽음을 애도할 권리마저 박탈당한 채 살아온 세월이 수십 년이다. 서울신문은 24일 채봉화(74) 금정굴유족회장과 이병순(87) 고문을 만났다. ●“묶여서 끌려가던 행렬 속 아버지, 금정굴 저승 가는 길이었네” 1950년 10월 9일. 당시 열일곱 소년이었던 이 고문의 뇌리에는 70년 전 모습이 스틸사진처럼 남아 있다. 집 앞에서 두 사람씩 삐삐선(군용통신선)에 묶인 채 이동하는 행렬을 목격했다. 맨 뒤에 아버지 이봉린이 있었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3일 만에 수도를 빼앗긴 국군이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한 무렵 이봉린은 능곡국민학교에서 열린 유엔군 환영대회에 나갔다가 치안대에 끌려갔다. 인민군이 마을을 점령한 시기 ‘농촌위원장’을 맡아 공출량을 계산하는 부역을 했다는 이유였다. “우리 아버지가 일산리 구장(區長)을 했었거든. 동네에서 추켜세우는 사람이잖아. 주변에서 ‘형님이 일 봐야지’ 하니까 맡게 된 건데….” 어머니와 7남매는 잡혀간 아비의 끼니 걱정에 매일 번갈아 수십 킬로 걸어 밥을 날랐다. 그러던 어느 날 고양경찰서에서 “(부역 혐의자들이) 문산으로 좌익 심사를 받으러 가서 오늘은 밥을 안 받는다”고 했다. 이 고문은 “문산을 가는 줄 알았지 금정굴로 가는 줄 누가 알았겠느냐”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행렬을 몰래 뒤따랐던 다른 희생자 유족을 통해 이 고문 가족은 진실을 알게 됐다. “아이고, 심사가 뭡니까. 그 구뎅이로 가서 다 쏴죽였어요!” 장남이었던 이 고문은 그 길로 작은아버지, 마을 어른들과 함께 사다리와 밧줄을 챙겨 금정굴로 향했다. 시신이라도 수습하자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시신은 찾지 못했고 피투성이가 된 채 금정굴에 떨어져 “살려 달라”고 외치는 한 사람을 구했다. 총알을 빗맞은 덕에 목숨을 건진 동네 주민 이경선이었다. 금정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이씨는 이후 죽을 때까지 고향 땅을 밟지 않았다. 금정굴에서 학살이 처음 벌어진 이날 이봉린을 포함해 46명이 희생됐다. 희생자 가족은 공포에 사로잡혀 침묵해야 했다. 그날 밤 이 고문의 집에 들이닥친 경찰은 “시체 가져왔느냐”, “빨갱이 찾으려고 금정굴에 갔다 왔느냐”고 화를 내며 장작 더미며 아궁이 구멍이며 죄다 창으로 쑤셔 댔다. “그날 금정굴에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누가 고발을 했는지 자전거를 탄 태극단 놈들이 서넛 올라오고 있더라고. 길이 엇갈려서 망정이지 거기서 마주쳤다면 우리도 다 죽는 거야. 일곱 사람이 갔었는데…. 그래서 잠자코 살았던 거지.”●“유해 발굴’ 뉴스 보고 45년 만에야 금정굴을 찾았어.” “이제는 시대가 달라져 말이라도 하지, 예전에는 아버지가 ‘빨갱이’로 돌아가셨다고 어디 가서 말도 못해….” 채 회장은 45년의 세월 동안 아버지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살았다. 아버지 채기동은 보리밭을 갈다가 총을 멘 치안대 3명에게 끌려간 뒤 소식이 끊겼다. 그때 고작 네 살이었던 채 회장은 아버지와의 기억이 없다. 그는 졸지에 과부가 된 어머니와 금쪽같은 외아들을 잃은 할머니의 넋두리로 부친을 기억한다. “우리 엄마가 맨날 그러셨지. 봉화야, 네 아버지 금정구뎅이 가서 죽었다. 남들이 그런다.” 채 회장은 금정굴과 가까운 파주에서 평생을 살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고 45년이 지난 1995년에서야 처음으로 금정굴을 찾았다. 뉴스로 유해 발굴 소식을 전해 듣고 동생과 함께 갔다. 채기동은 6년 동안 강제징용을 당했다가 해방 이후 돌아왔다. 채 회장은 “9척 장신에 원체 기운이 장사라 인근에서 아버지를 당해 낼 사람이 없었다더라”고 했다. “총을 멘 치안대가 당신을 찾으니 도망가라”는 말에도 채기동은 “잘못한 것이 없다”며 당당했다. ‘부역자 가족’의 삶은 매 순간 고통으로 점철돼 있었다. 채 회장은 “어머니가 생계를 위해 봇짐 장사를 하려면 도민증이 필요했는데 우리한테는 도민증 허가를 안 내줘서 어머니가 ‘꼼짝없이 죽겠다’며 우셨다”며 “핍박받으면서 세 딸을 키운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난다”고 했다. 채 회장이 끝까지 파주를 떠나지 않은 건 어머니의 유언 때문이다. 채 회장 가족은 시간이 흘러 아버지에게 부역 혐의자라는 누명을 씌운 마을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됐다. 어머니는 “내가 죽어도 넌 반드시 이 동네에 살면서 남의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나 두고 보라”는 말을 남겼다.●아직 끝나지 않은 금정굴 사건 “신도시 주민들은/발 밑이 저승인 사실은 모른 채/오래전 이 마을을 휩쓸고 간/역병보다도 더 고약한 숙청은 모른 채/두개골 정강뼈 쇄골 잘근잘근 밟으며/황솥밭 샛길을 오갈 뿐이다”(손세실리아, ‘뼈무덤’) 용기를 내 세상에 나온 유족들은 긴 싸움을 했다. 승리도 수차례 맛봤다.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진실 규명을 결정하면서 “최종 책임은 국가에 있고 희생자 상당수는 도피한 부역 혐의자 가족이거나 이와 무관한 지역 주민이었다”고 했다. 2012년에는 국가 배상 소송에서 승소해 “희생자 2억원, 배우자 1억원, 부모·자식 각 5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확정됐다. 수차례 무산됐던 ‘6·25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조례안’도 2018년 고양시의회에서 통과됐다. 그럼에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희생자가 제대로 된 위령시설 없이 떠돌고 있고 유족이 겪는 고통도 여전하다. 일부 보훈단체 회원들은 아직도 희생자를 ‘토착 빨갱이’라고 부른다. 보수 정당 시의원은 조례 제정을 반대하며 “(희생자들은) 김일성 앞잡이 노릇을 했다”고 공공연하게 말했다. 금정굴 현장에 조성될 계획인 평화공원은 “납골시설이 들어오면 집값 떨어진다”는 일부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채 회장은 “지금 희생자들을 임시 안치한 세종추모공원은 너무 멀다. 가까운 곳에 희생자들을 모시고 자주 왔다 갔다 하는 게 유족들의 소원”이라고 말했다. 이어 “죄도 없이 잡혀가 죽고, 설령 죄가 있다고 해도 재판 한 번 열지 않고 죽은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고문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게 한 전쟁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포토] 웃으면서 악수하는 소년 포로…한국전쟁의 참상

    [포토] 웃으면서 악수하는 소년 포로…한국전쟁의 참상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이해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보유하고 있던 당시 사진이 공개됐다. 이 사진들은 전쟁 발발과 함께 한반도에 파견됐던 국제적십자위원회 관계자들이 기록했던 것으로 전쟁 포로와 참상을 기록하고 있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한국전쟁 시작과 동시에 한반도에 파견돼 유엔군과 공산군 간 제네바 협약 준수 감시 활동과 난민 구호 활동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차별금지법, 이제는 제정돼야 한다

    차별에 대한 국민들의 민감성이 높아진 데다 법률 제정의 필요성도 과거보다 더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어제 발표한 ‘2020년 차별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00명 중 91.1%가 ‘코로나19를 계기로 나도 언제든 차별의 대상이나 소수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한 법률 제정 등이 필요하다는 답변은 88.5%로, 지난해의 72.9%보다 높았다. 응답자의 69.3%는 ‘코로나19로 혐오나 차별의 대상이 된 사회집단이 있었다’면서 ‘우리 사회의 차별이 심각하다’고 82.0%가 응답했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여성, 이주민·난민, 성소수자 등은 물론 세월호 참사 등 사회적 참사 피해자까지도 혐오와 조롱의 대상이 되는 병폐가 더욱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확산해도 처벌받지 않는 탓에 사회적 분위기는 악화해 가고 있다. 정부나 국회의원들의 노력이 그동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6년 차별금지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2008년 17대 국회가 끝나면서 폐기됐다. 18, 19대 국회에서도 개별 의원들이 차별금지법을 발의했으나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특히 일부 개신교계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 등에 대해 강력히 반대한 탓이 크다. 결국 20대 국회에서는 발의조차 안 됐다. 유엔인권이사회가 한국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꾸준히 권고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차별금지법 제정은 더는 미룰 수 없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차별금지법은 평등권과 인권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법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성별, 인종, 피부색, 출신지, 정치적 또는 그 밖의 의견, 혼인 등을 이유로 한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평등권을 실질화한다는 점에서도 꼭 필요하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1대 국회의 입법과제로 차별금지법을 손꼽는 점, 정의당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5대 입법과제 중 하나로 정한 점 등도 고려하고 불교와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등 4대 종단 이주인권협의회가 지난 17일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차별과 혐오를 더는 묵과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코로나19 덕분에 확대된 만큼 21대 국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힘을 쏟길 기대한다.
  • 한 손엔 투자 당근 든 EU, 中에 홍콩보안법 철회 요구

    한 손엔 투자 당근 든 EU, 中에 홍콩보안법 철회 요구

    EU “中, 경제대국 걸맞은 책임 지녀야” 리커창 “원대한 수준의 투자협정 기대” 유럽연합(EU)이 중국과의 화상 정상회의에서 ‘채찍과 당근’을 함께 제시했다.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시행 철회를 요구하면서도 중국에 숨통을 틔워 줄 전면적 투자협정을 반드시 체결하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했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22일(현지시간)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와 화상 회의를 가진 데 이어 시진핑 국가주석과도 면담했다. 지난해 12월 EU 지도부가 출범한 뒤 처음 이뤄진 공식 정상회담이다. 최근 EU가 “중국이 코로나19와 관련해 ‘세계가 감염병에 대응할 시간을 벌어 주려고 희생했다’는 가짜뉴스를 퍼뜨렸다”고 비판해 양측 간 갈등이 불거진 상황에서 진행됐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날 회담에서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중국이 홍콩보안법을 강행하면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감수해야 할 것”이라며 재고를 촉구했다. 지난 19일 유럽의회는 홍콩보안법이 실제 시행되면 EU가 중국을 유엔 최고법정인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해 제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EU 고위 관리는 “우리는 중국과 협력할 준비가 됐다. 하지만 우리는 중국이 세계 2위 경제대국에 걸맞은 책임을 짊어지길 원한다”면서 “감염병 사태로 일부 EU 국가들의 불만이 커졌다”고 AP통신에 전했다. 그럼에도 양측은 연내 포괄적인 투자협정을 체결하기로 한 기존 합의를 재확인했다. 그간 EU는 중국에서 사업하는 유럽 기업들이 EU에서 활동하는 중국 기업과 같은 수준의 대우를 받지 못한다며 대책 마련을 주장해 왔다. 중국도 머지않아 자국 내 미국 기업이 대거 빠져나갈 수 있다고 보고 새 자본 찾기에 나선 상태다. 투자협정 마련에 대한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진다. 리커창 총리는 “양측 지도부는 원대한 수준의 협정을 체결하기를 기대한다. 가능한 한 빨리 공정한 경쟁에 합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유엔, 北 인권결의안 채택… 납북자 즉각 송환 첫 요구

    유엔, 北 인권결의안 채택… 납북자 즉각 송환 첫 요구

    ‘일본인·한국인 피랍자’ 명시·행동 촉구 유엔 인권이사회가 22일(현지시간) 북한의 인권 침해를 규탄하는 결의안을 18년 연속 채택했다. 올해 북한 인권결의안에는 처음으로 북한이 한국인과 일본인 납북자를 즉각 송환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결의는 “피랍자와 가족이 겪고 있는 오랜 시간의 고통과 북한이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것에 엄중한 우려를 표한다”고 했다. 이어 “북한이 강제 실종과 관련된 모든 의혹을 풀고, 피랍자의 생사와 소재에 대해 가족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고, 되도록 이른 시일에 전 피랍자와 관련된 모든 사안을 해결하며, 특히 모든 일본인과 한국인 피랍자를 즉각 송환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결의도 납북 문제를 다뤘지만, 북한에 납북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 행동을 촉구하고 ‘일본인과 한국인 피랍자’를 명시해 즉각 송환을 요구한 것은 처음이다. 인권단체 전환기정의워킹그룹 이영환 대표는 “한국 정부도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라고 촉구한 것”이라고 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해에 이어 유럽연합(EU)이 제출한 이번 결의안 초안의 공동제안국 명단에서 빠졌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한반도 정세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참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70년 만에 먼 길 돌아온 국군전사자 유해…공중급유기로 귀국

    70년 만에 먼 길 돌아온 국군전사자 유해…공중급유기로 귀국

    美 하와이서 147구 국군전사자 유해 70년 만에 귀환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합의로 신원 확인예우 차원에서 최초로 다목적 공중급유기로 이송참전조종사 손자가 F15K 엄호 비행6·25전쟁 국군전사자 147구의 유해가 70년 만에 먼 길을 돌아 고국으로 돌아온다. 박재민 국방차관을 단장으로 구성된 정부 봉환유해인수단 48명은 지난 21일 공군의 최신 공중급유기 시그너스(KC330)편으로 출국해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DPAA)로부터 국군전사자 유해를 인계받아 귀환 중이다. 이번에 봉환되는 147구의 국군전사자 유해는 북한에서 발굴돼 미국 하와이 DPAA로 이송해 한미 간 공동감식 결과 국군전사자로 판정됐다. 앞서 북미는 2018년 싱가포르 정상회담 합의로 북한에 묻힌 유해 송환에 합의했다. 봉환 유해는 북한의 개천시 및 운산군, 장진호 일대에서 1990년부터 1994년까지 발굴된 유해 208개 상자와 미국으로 송환됐던 유해 55개 상자 중 2차례의 한미 공동감식 결과 국군전사자로 판정됐다. 이에 따라 147구의 국군전사자는 70년만에 먼 길을 돌아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 인수식 행사는 한측에서는 박 차관과 허욱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 6·25전쟁 70주년 사업단장과 하와이 총영사가 참석했다. 미측에서는 필립 데이비슨 인도태평양사령관과 DPAA 부국장, 현지 참전용사와 UN사 참모장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국방부는 “코로나19 방역대책이 철저히 준수되는 가운데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행사는 인도태평양사령관과 국방차관의 추념사를 시작으로 인계·인수 서명식에 이어 유해인계의 순으로 진행됐다. 유해인계는 성조기로 관포되어 있던 유해 1구에 대해 유엔사령부 참모장이 유엔기로 교체하고, 마지막으로 국방차관이 태극기로 관포해 유해발굴감식단장에게 전달함으로써 마무리됐다. 봉환되는 유해는 다목적 공중급유기 KC330을 타고 24일 오후 4시쯤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해 공군 전투기 6대의 엄호 비행을 받으며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앞서 정부는 전사자 예우 차원에서 최초로 공중급유기로 유해를 송환하는 방안을 결정했다. 국방부는 “6대의 엄호기는 6·25전쟁 당시 참전했던 부대의 후예들인 101·102·103 3개 전투비행대대 소속 전투기 F5 2대, F15K 2대, FA50 2대를 혼합 편성했다”고 설명했다. F15K 조종사 중 강병준 대위는 6·25전쟁 참전 조종사 고 강호륜 예비역 준장의 손자로, 대를 이어 영공 방위 임무를 수행 중이다. 박 차관은 “6·25전쟁 발발 70년이 된 시점에서 이루어진 이번 유해송환은 한미 동맹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숭고한 소명을 다하기 위한 한미간 공동 노력의 결실”이라고 밝혔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 국민 의견 반영해 수립

    정부가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 수립에 국민·전문가 의견을 반영하기로 했다. 환경부 등 기후변화 대응 14개 부처는 23일 우리나라가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해 저탄소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 설문조사와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 수립을 위한 여론조사는 23일부터 7월 31일까지 누리집(www.gihoo.or.kr/2050LEDS)을 통해 온라인으로 실시된다. 또 7월에는 5회(2·9·14·21·23일)에 걸쳐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전문가 토론회가 열린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파리협정 당사국들은 올해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을 유엔에 제출해야 한다. 파리협정은 2100년까지 지구 평균 기온의 산업화 이전 대비 상승 폭을 1.5도 이하로 제한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 국의 온실가스 배출량 제한 목표를 강화하도록 한 기후변화협약이다. 목표 달성을 위해 당사국들은 2050년까지 저탄소 사회 구현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전문가 토론회에서는 저탄소 전환을 위한 주요 도전과제별 장애 요인 및 국복 방안 등을 집중 논의한다. 친환경차 보급·미래기술 발전·저탄소 산업혁신·재생에너지 보급·사회혁신 등이 주제로 선정됐다. 환경부는 전문가 토론회 및 대국민 설문조사와 별도로 여론조사 전문기관을 통해 산업계 종사자들의 의견도 수렴할 계획이다.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홍천에 추락 대북전단에 통일부 “주민 생명 위협, 강력 대응”

    홍천에 추락 대북전단에 통일부 “주민 생명 위협, 강력 대응”

    북한의 대남전단 살포 준비가 한창인 가운데 통일부가 탈북민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대북전단 살포 시도 행위에 대해 “강력 대응” 방침을 밝히며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통일부는 23일 탈북민 출신의 박상학 대표가 이끄는 자유북한운동연합이 22일 밤 전단 살포를 시도한 것과 관련 “정부가 대북전단 및 물품 살포 금지 방침을 밝히고 수사를 진행하는 상황에서 전단·물품을 북한에 살포하려고 시도한 데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어 “경찰 등 유관기관이 협력해 박 대표와 관련자들의 이런 행위에 대해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는 또 “정부는 대북 전단 및 물품 등을 살포하는 것은 남북 간 긴장을 고조시키고 지역주민들의 생명·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라면서 “이에 강력하게 대응해 나가겠다”고 거듭 강조했다.이날 박 대표는 전날 밤 11∼12시 사이 경기 파주시 월롱면 덕은리에서 단체 회원 6명이 대북 전단과 물품을 대형풍선에 매달아 살포했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대북전단 살포로 접경지 주민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정치권과 정부의 주장에 대해 “우리가 무슨 피해를 준 적이 있느냐”고 반박했었다. 박 대표가 살포했다고 주장하는 물품은 대북전단 50만장과 소책자 500권, 1달러 지폐 2000장, SD카드 1000개를 20개 등이다. 실제 이날 오전 파주에서 동남쪽으로 70㎞ 떨어진 강원 홍천에서 이들이 살포한 것으로 추정되는 풍선이 발견돼 군과 경찰 등이 조사에 나섰다.대놓고 대남전단 날릴 바람 잰다 밝힌 北“살포 지역 풍향 관측, 시간·장소 확인 중” “靑까지 갑니까” 北 주민 질문 봇물 주장도 반면 한국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엄정 대응 방침을 거듭 천명한 가운데 북한은 대남전단을 뿌리기에 가장 적절한 시간과 장소를 찾기 위해 바람 방향까지 재고 있다고 공개했다. 북한은 대남전단이 서울 한복판인 청와대까지 갈 수 있느냐는 등 주민 질문이 쏟아진다고 주장했다. 이날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에 따르면 송철만 기상수문국 부국장은 대남전단 살포에 적합한 장소와 시간을 정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최근 접경지대 지형을 확인하고 풍향을 세분화해 실시간 감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송 부국장은 대남전단 살포에 나설 경우 기상예보를 정확히 통보해주기 위한 체계도 완비했다며 “분노의 민심이 어린 삐라 소나기를 쏟아부을 그 시각이 오면 우리도 자기의 할 바를 다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남북 통신연락선 차단과 연락사무소 폭파에 이어 세 번째 보복 조치로 대남전단 살포를 예고했었다. 지난 20일에는 문재인 대통령 얼굴에 담뱃재·담배꽁초와 함께 비방하는 문구를 담은 대남전단 실물을 공개했고, 22일에는 전단 1200만장 인쇄를 마치고 풍선 3000개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유엔인권사무소 “대북전단 살포, 표현의 자유” 한편 시나 폴슨 서울 유엔인권사무소 소장은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가 북한 주민에게 정보를 전하기 위한 활동이자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폴슨 소장은 지난 22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주민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기란 매우 어렵다”면서 “인터넷과 인적 교류 등 다양하고 효과적인 정보 교환 방법이 있지만, 불행히도 북한이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폴슨 소장은 “중요한 것은 남북한 모두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을 비준했다는 점”이라면서 “이 규약은 정보를 다양한 수단을 통해 국경을 넘어 배포하고 받을 권리를 보장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과 미국에 안보 문제가 항상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지만, 안보와 인권 대응을 분리할 수 없다”면서 “한국 정부가 북한과 평화나 남북 협력을 논할 때 인권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풍선이 아니라 풍선에 대한 대응이 안보 위협을 일으키는 것”이라면서 “시민사회와 탈북민, 정부는 북한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효과적인 수단이 무엇인지 진솔한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유니세프, 북한 주민 4만명에 위생용품 지원

    유니세프, 북한 주민 4만명에 위생용품 지원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UNICEF)이 이달 들어 북한 주민 4만여명에게 위생용품을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니세프는 23일 홈페이지에 공개한 ‘동아시아-태평양 지역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보고서 9호’에서 이달 6일부터 19일까지 북한 주민 4만1573명과 보건 시설 121곳에 지원을 했다고 밝혔다. 유니세프가 지난 19일 기준으로 확보한 대북지원 자금은 47만4900달러로 전체 필요한 금액(465만8362달러)의 10.2%에 그쳤다. 보고서는 “북한 주민들에게 예방접종 등 보건과 영양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지원하고 있다”면서 “이달 말까지 필수 보건·영양 구호품들을 운송할 수 있도록 북한 보건성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볼턴 책 400곳 수정 요구… 트럼프 “그는 또라이”

    볼턴 책 400곳 수정 요구… 트럼프 “그는 또라이”

    트럼프 행정부가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의 400곳 이상의 수정과 삭제를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볼턴은 재임 기간 겪은 각종 외교·안보 현안에 관한 일을 책으로 썼고, 백악관은 국가기밀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해 소송까지 제기했지만 기각된 상황이다. 법원은 볼턴의 손을 들어주면서도 그가 기밀을 공개함으로써 국가안보를 위험에 처하게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소송 과정에서 법원에 제출한 17쪽짜리 서류를 보면 백악관은 570쪽에 달하는 볼턴의 책 내용 중 415곳가량의 수정과 삭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이 책에는 한국과 북한은 물론 중국,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다룬 주요 외교 현안에 대한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 백악관은 북미정상회담 등 한반도 사안을 다룬 두 개의 장에서만 110개가 넘는 수정, 삭제 의견을 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정부 간 상호 신뢰에 기초해 협의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외교의 기본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백악관도 문장 자체의 삭제를 요구하는가 하면 ‘내 의견으로는’, ‘알게 됐다’라는 식의 표현을 추가하라고 주문했다. 일례로 ‘북한 비핵화라는 용어에 대한 한국의 이해는 미국의 근본적 국가이익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라고 적은 부분에는 ‘내 추측에는’이라는 말을 추가하라고 요구했고,책에는 ‘내 관점에서는’이라는 표현이 더해졌다. “한국의 어젠다가 우리(미국)의 어젠다는 아니다”라는 부분은 ‘항상’이라는 단어를 추가하라는 백악관 요구를 수용해 “한국의 어젠다가 항상 우리의 어젠다는 아니다”라고 수정됐다. 또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와 다른 어젠다를 갖고 있다”는 문장 뒤에는 “어느 정부도 자기 국익을 우선시하는 것처럼”이라는 문구를 추가하도록 했다. 북한을 의식한 듯한 주문도 있다. 볼턴이 애초 “북한이 정보를 숨기고 있다”고 표현한 부분은 백악관 요구를 받아들여 “북한이 핵심 정보를 숨기고 있다”로 바뀌었다. 트럼프, 볼턴 회고록 출간 전날 또 비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트위터 계정에 글을 올려 “나는 존 볼턴에게 기회를 줬다”며 볼턴을 겨냥, “그는 또라이(wacko)로 여겨졌고 호감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상원의 인준을 받을 수 없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항상 다른 관점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대단히 무능하고 거짓말쟁이로 판명됐다. 판사의 의견을 보라. 기밀 정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에도 트윗에서 볼턴에 대해 ‘괴짜, 바보, 전쟁광, 무능력’ 등의 표현을 써가며 책은 거짓말로 꾸며졌다고 비난했었다. 또 그는 지난 1월엔 볼턴을 ‘유엔 대사 인준을 받을 수 없었던 사람’이라며 상원 인준이 필요 없는 자리를 볼턴이 구걸했고 많은 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자리를 줬다고 공격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보훈대상] 평화의 싹 틔우는 당신… 그 헌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보훈대상] 평화의 싹 틔우는 당신… 그 헌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올해는 6·25 전쟁 발발 7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전쟁 후 7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우리는 현실 속에 안주하며 그들의 상처와 아픔을 잊고 살았고, 전쟁의 기억을 가진 세대들도 점차 사라져가고 있어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국가보훈처와 서울신문사가 추진하는 ‘서울보훈대상’은 나라를 위해 희생·헌신한 국가유공자를 기억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행사라 할 수 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국가를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고, 가족을 잃는 등 커다란 아픔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국가와 지역사회에 헌신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앞장서 봉사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평화는 구호로만 얻어지는 것은 아니며, 스스로 지킬 의지가 없는 민족이나 국가에게 평화가 거저 주어지지도 않습니다. 평화를 지켜내려는 의지와 평화의 감수성을 키우고 향유하려는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서울보훈대상 수상자들은 가슴속 깊은 아픔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헌신하고 국가와 지역사회에 공헌하여 이 땅에 전쟁이 없는 평화의 씨앗을 틔우기 위해 열정을 다하신 분들입니다. 참전 유공자로서 국가 안보와 지역 사회의 발전에 공헌하고 참전자 가족의 자긍심 고취 및 명예 선양, 지역주민을 위해 실천적 봉사에 헌신하신 분이 있는가 하면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수많은 공을 세웠고, 이후 무공수훈자와 국가유공자의 명예 고양을 위해 수십 년간 헌신하신 분도 있습니다. 또 지역사회의 불우이웃과 전우들의 복지를 위해 수천 벌의 의류 기부활동을 통해 국위를 선양하고 지역 활성화에 크게 기여한 분도 있습니다. 순직 군경 유족으로 유공자의 위상 제고와 나라 사랑 국토 탐방, 전적지 순례 등 애국심 함양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수행한 분과 전몰군경 유족으로 6·25참전 유엔군 전사자 유족 돕기 선양사업 등에 적극 참여해 애국정신과 나라사랑 문화 확산에 기여한 분도 있습니다. 또 잘 드러나지도 않는 특수임무를 수행하다 부상당했지만 보훈 안보 활동으로 국민 호국정신을 함양하고, 환경 정화, 긴급 재난 구조 활동, 대민 봉사 등을 실천해 귀감이 되는 분도 계십니다. 자신의 안위보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이들이 진정 예우받아야 하는 우리 사회의 영웅이 아닐까 싶습니다.우리 주변에는 많은 참전자와 보훈 가족들이 있습니다. 전쟁이 잊힐 만큼 세월이 흘렀건만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고 또렷하다고 합니다. 주변의 보훈 가족들에게 감사와 위로의 말을 전하고 그들을 따뜻이 보살펴 아픔을 딛고 살아갈 수 있도록 살피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조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나라를 위해 청춘을 바친 세대, 그들은 자신들의 젊음을 아프게 보냈다는 상처보다 오히려 후손들을 걱정합니다. 6·25 전쟁 70주년을 맞아 마음이 숙연해지는 이유입니다. 이 땅에 평화를 지키고 정착을 위해 헌신하신 수많은 애국선열과 국가유공자분들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박제광 학예실장 건국대박물관
  • [보훈대상] 전몰군경 유족 신덕례

    [보훈대상] 전몰군경 유족 신덕례

    신덕례(71)씨는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서울특별시지부 구로구지회장이다. 구로보훈회관 건립과 보훈예우수당 지원 등 보훈가족 복지증진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회원 및 불우이웃 돕기, 기초질서 지키기 캠페인, 서해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등 재해복구 참여로 지역 사회발전에도 기여했다. 휴전선 155마일 종주행사, 6·25 참전 유엔군 전사자 유족 돕기 선양사업 등에 적극 참여했으며 국민들의 애국심 고취와 국립현충원 지킴이 봉사활동, 무연고 묘지 한송이 헌화운동, 수도권회원 현충원 참배 행사 활동으로 나라 사랑 문화 확산에 이바지했다.
  • “한국전쟁 때 日 민간인 전투 참여” 日언론, 美비밀문서 통해 첫 확인

    “한국전쟁 때 日 민간인 전투 참여” 日언론, 美비밀문서 통해 첫 확인

    한국전쟁 때 일본 민간인 남성 60명이 미군과 함께 한반도로 건너갔고, 이 가운데 18명이 실제 전투에도 참가했던 사실이 새롭게 확인됐다고 마이니치신문이 22일 보도했다. 마이니치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보관된 ‘한국에서의 일본인 무허가 수송과 사용’이라는 제목의 843쪽짜리 미군 비밀문서를 바탕으로 작성한 기획기사에서 “한국전쟁 개전 직후인 1950년 7월쯤 일본 민간인 60명이 한반도에 도항했다가 1951년 1~2월 귀국했다”며 “이들 중 27명이 총, 칼 등 무기를 지급받았고 18명은 전투에서 이를 실제로 사용했다”고 전했다. 마이니치는 “한국전쟁 때 수중 기뢰 제거 및 후방 업무지원 등 과정에서 일본인 57명이 사망한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지만, 민간인이 실제 전투에 참가한 사실은 이번 비밀문서를 통해 새로 밝혀진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60명 중 48명은 당시 주일 미군기지 직원들이었으며 46명이 10~20대였다. 1명은 사망, 1명은 실종된 것으로 기록됐다. 마이니치는 이들의 도항 경위에 대해 “미군이 공식적으로 데리고 간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관계를 이용해 정식 허가를 받지 않고 대동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이 문서에 대해 방위성은 “사실관계를 알지 못하고 있어 답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마이니치에 밝혔다. 오누마 히사오 교아이가쿠엔마에바시국제대 교수는 “한국전쟁 당시 옛 소련과 북한이 ‘일본인들이 유엔군으로서 참전하고 있다’고 비난했지만, 직접 전투에 참가했다는 공식 자료는 발견된 적이 없었다”며 “자세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