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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소 수교·경협 동시타결 모색/첫 공식대좌… 양국의 입장과 전망

    ◎외교일정·경제협력 규모 가늠/따로 가는 박철언씨 역할에 관심 2일부터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한소양국의 정부대표단 회담은 그동안 우회적으로 모색해오던 양국수교및 협력방안등을 정식 협상테이블에 올리는 양국 정부간 공식대좌라는 데 의미를 둘 수 있다. 우리측의 김종인 청와대경제수석비서관과 마슬류코프 소연방각료회의 제1부의장(경제담당 제1부총리)을 각각 수석대표로 하는 이번 회담은 지난 6월4일 미 샌프란시스코 한소 정상회담의 후속조치에 대한 논의를 위한 모임의 성격을 띤 것으로 양국 수교문제를 포함,경협문제 등에 대한 양국의 의중을 서로 확인한다는 점에서 향후 양국 관계발전의 속도와 방향등을 가늠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이번 회담을 통해 앞으로 양측의 경제협력의 「수준」과 양국 관계개선의 시기를 진단할 수 있을 것이라는게 관계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마슬류코프 수석대표를 제외한 소련측의 대표단 멤버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회담결과를 속단키는 어렵지만 우리측 대표단의 구성을 보면 이번 회담에 임하는 우리측의 입장과 소련의 기대수준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우리측 대표단 12명중 경제관리와 외무관계자의 비율이 꼭같다는 데서 읽을 수 있듯 우리측은 경제협력과 수교협상의 동시추진이라는 이원적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전망되고 소련측 역시 이에 대응하는 자신들의 복안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이번 회담에서 수교및 경협의 완전타결은 보지 못하더라도 원칙적인 합의의 윤곽은 이끌어 나간다는 방침이다. 교섭단은 2일부터 4일까지의 공식일정중 첫날과 마지막날의 전체회의 중간에 두차례의 개별회담을 가지며 개별회담은 수교협상과 경제협상으로 나눠 진행키로 돼 있다. 우리측은 경협협상은 수교협상과 별도로 해나가되 경협의 실행은 수교가 이뤄진 뒤 실제로 이뤄지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경협과 수교문제를 연계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소련측은 북한과의 관계등을 고려,경협증진 부분에 비중을 둘 것으로 보여 우리측과 어느 정도 시각차를 좁힐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경제협력 협상에서는 역시 대소 차관제공규모등이 최대관심사로 볼 수 있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여러차례의 관계부처회의등을 거쳐 소련측의 예상요구 수준과 과다한 경협에 대한 국내의 비판여론등을 감안,나름대로 차관의 규모를 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금차관규모를 최소화하면서 ▲양국기업간 합작투자 ▲공동프로젝트 추진 ▲시베리아등 공동개발사업 ▲소비재물품지원 ▲시장경제원리에 따른 경제개발 노하우의 지원 등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측은 경협회담에서 무역투자보장·2중과세방지·경제과학기술협력협정 등 4개의 협정체결문제를 의제로 상정,협상을 벌일 계획이다. 또 수교협상과 관련,▲유엔총회등에서의 한소 외무장관회담 ▲수교의정서 조인 ▲노태우·고르바초프대통령의 상호교환방문 등 우리의 바람을 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함께 정부대표단과는 별도로 표도로프 소련공산당 중앙위원의 초청으로 오는 4일 방소하는 박철언 전정무장관이 어느정도 역할을 하느냐의 문제도 이번 회담의 측면지원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흥미를 끌고 있다. 특히 박 전장관과 셰바르드나제 소련외무장관과 회담이 이뤄질 경우 친화보수성향으로 대한 관계개선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소련외무성의 부정적 분위기를 전환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최태환기자〉
  • 한­벨기에 과기 협력 강화/양국 총리회담

    【브뤼셀=이건영특파원】 강영훈국무총리는 23일 상오(한국시간 23일 하오) 유럽순방 두번째 공식방문국인 벨기에의 브뤼셀에 도착,마르텐스 벨기에총리와 회담을 갖고 양국간 최대 관심사인 지적소유권 문제를 비롯,과학기술이전 및 경제교류 확대 등에 대해 논의했다. 강총리는 이날 회담에서 금년 가을 유엔총회에서 한국의 유엔가입 신청시 소련과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도록 벨기에측이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는 한편 양국간 합작투자와 과학기술 이전의 증진을 위해 가까운 시일내에 양국 과학기술장관회의 개최를 위한 실무자회의를 갖자고 제안했다. 이에대해 마르텐스총리는 한국의 유엔가입을 적극 지원할 것을 다짐하는 한편 한ㆍ벨기에 과학기술장관회의를 위한 실무자회의를 즉석에서 수락하고 한ㆍ벨기에는 물론 한ㆍEC(유럽공동체)간 최대 현안문제인 컴퓨터ㆍ물질특허 등의 지적소유권을 한국이 조속히 인정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으며 강총리는 『현재 실무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우리 정부가 관심을 갖고 이 문제를 검토할 것』이라고답변,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했다.
  • 노대통령 특별발표

    친애하는 7천만 동포 여러분, 나는 세계가 냉전체제의 대결을 종식하고 새로운 화해의 질서를 이루는 큰 변혁속에 평화적인 통일을 하루라도 빨리 실현하기 위해 남북 민족의 교류를 위한 우리의 결정을 밝히려 합니다. 나는 1988년 7월7일 특별선언을 통해 남북이 한 민족으로서 대결관계를 지양하고 서로 협력하는 동반자로서의 관계를 발전시켜나갈 것을 밝혔습니다. 나는 그해 10월18일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서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남북을 가르는 분단의 벽을 헐고 모든 부문에 걸쳐 자유로운 교류를 실현할 것을 제의하였습니다. 그로부터 지난 2년사이 세계는 지난 시대의 질서를 그 바탕으로부터 바꾸고 있습니다. 개방과 화해의 조류는 동서세계를 가르는 장막을 걷고 이념과 체제를 초월하여 협력하는 새로운 세계를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베를린과 동서독일의 장벽을 무너뜨려 독일은 통일을 현실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한반도에 분단의 단절과 냉전의 대결을 종식시킬 때입니다. 한반도만이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냉전체제로 인해 분단된 땅으로 남아있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남북 동포가 서로 왕래조차 못하고 있는 현실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문화민족의 자존에 비추어서도 더이상 지속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1990년대안에 평화적 통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21세기를 우리 겨레의 영광된 세기로 맞아야 합니다. 남북의 화해와 민족의 통합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일을 남과 북이 이제는 과감히 실천해야 합니다. 나는 해방 45주년을 맞는 올해 8월15일을 전후한 5일간을 「민족 대교류의 기간」으로 선포합니다. 우리는 8월13일부터 닷새동안 판문점을 통로로 열어놓고 북한동포들을 제한없이 받아들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들이 원하는 남쪽의 어느 지역도 자유로이 방문할 수 있도록 할 것이며,원하는 사람 누구라도 만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우리는 남쪽을 방문하는 모든 동포들에게 가능한 모든 편의를 제공하겠으며,필요하다면 숙식도 지원할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이 기간중 우리 국민 누구라도 제한없이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방문할 수 있도록 조처할 것입니다.우리는 남쪽을 찾아오는 모든 북한동포의 신변안전과 무사귀환을 보장할 것이며,이에 상응한 북한측의 조처를 기대합니다. 나는 북한이 판문점 북측 지역뿐 아니라 북한의 어느 곳이라도 자유로이 가볼 수 있도록 전지역을 개방하고 북한방문을 원하는 남쪽 동포들을 우리와 마찬가지로 제한없이 받아들이기를 바랍니다. 올 광복절의 민족교류를 성공적으로 이루면 우리는 추석·설날·한식 등 민족명절을 전후로 교류를 정례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남북의 겨레가 언제나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을 것입니다. 남북동포들간의 왕래와 교류는 통일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입니다. 북한의 김일성주석도 지난 1월1일 남북한사회의 완전개방과 자유왕래를 제의한 바 있습니다. 나는 이러한 면에서 볼때 올 광복절에 민족교류와 남북한의 전면개방을 실현하는 데 아무런 장애도 없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나는 북한측이 아무 조건을 붙이지 말고 광복절 민족 대교류를 수락할 것을 촉구합니다. 북한측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상호교류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우리는 북한동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전면개방을 일방적으로 실천할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외국인이 판문점을 통하여 남북한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도록 이를 허용할 것입니다. 정부는 오늘 밝힌 내용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준비를 갖출 것입니다. 내와 동포 여러분, 남과 북은 이념적,정치적 차원을 떠나 민족통합에 진실로 노력해야 합니다. 통일된 나라,7천만이 하나가 된 우리 겨레가 펼칠 21세기가 얼마나 눈부시고 위대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민족의 소망을 이루는 데 모두가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동ㆍ서독 통일 이끈 자유왕래/베를린장벽 어떻게 무너졌나

    ◎“인적교류가 분단종식 지름길” 공동인식/63년 성탄절에 첫 개방… 이듬해 자유왕래 노태우대통령의 「7ㆍ20 민족대교류기간 선포」로 인해 남북한 주민간의 자유왕래문제가 최대관심사가 되면서 우리와 같은 분단의 아픔을 겪었던 동ㆍ서독간의 인적교류역사는 우리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오는 12월1일 정치적 통일까지 이룰 예정인 동서독은 『인적교류의 활성화가 통일의 지름길』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체험적으로 가르쳐준 국가이기 때문이다. 동서독은 이미 지난 63년 12월25일 크리스마스를 기해 베를린장벽을 일시 개방,동베를린과 서베를린간 인적교류 즉,주민왕래를 실현시킨 바 있다. 바로 이념과 체제를 뛰어넘은 분단국 최초의 자유왕래인 셈이다. 63년 12월17일 서베를린 시의회와 동독정부대표가 크리스마스때 양쪽 시민들이 서로 통행할 수 있는 통행증발급합의서에 서명했고 이에 따라 63년 12월18일부터 64년 1월5일까지 동서베를린 시민들이 상대방지역을 방문,친지들을 만나는 감격을 누렸었다. 이를 계기로 양측간에 설치된 「철의 장막」을 차근차근 허물어가기 시작한 동서독은 교류협력을 통한 민족공동체 의식을 공고히 해나갔다. 첫 인적교류가 이루어진지 1년도 채 안돼 동서독은 64년 부활절을 계기로 자유왕래를 실시하기에 이른다. 64년 서독은 서독국민이 제한없이 동독내 어느지역도 방문할 수 있다고 선포했고 동독은 60세이상 연금수혜자에게 서독방문을 허용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노대통령의 7ㆍ20선언과 같은 조치를 서독은 26년전에 단행한 것이다. 동독은 또 72년부터 친지의 사망등 긴급가사로 인한 경우에도 서독여행을 허가했다. 정치범인도는 63년부터 허용됐으며 더욱이 동독인들의 서독이주는 61년부터 가능했다. 특히 이때부터 동서독인들은 분단의 상징으로 우리나라의 판문점과 비교되는 찰리검문소 등을 통해 통행증만 제시함으로써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됐다. 더욱이 서베를린에 주재하는 외국인들은 매일 상ㆍ하오에 걸쳐 이 찰리검문소를 통해 동베를린으로 출ㆍ퇴근하기도 했으며 동서베를린간의 전화통화도 언제든지 가능했다. 또한 비록 소수이긴 했으나 동서독인들 가운데서도 정기통행증을 가진 사람은 동서베를린을 오가며 출근하는등 꾸준하게 인적교류의 물꼬를 터왔다. 서독은 브란트수상이 집권하면서 동방정책을 추진,동독과의 관계개선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나갔다. 브란트수상은 69년10월 당시 시정연설을 통해 『서독은 동독과 동등한 자격으로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선언,「1민족 2국가이론」을 정책기조로 삼았다. 이는 그전까지의 할슈타인원칙(동독과 수교를 맺고있는 국가와는 관계개선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서독외교정책의 기조였던 사실에서 보면 가히 파격적이라고 평가할 만한 것이었다. 브란트는 이제 힘입어 70년 3월19일 동독의 슈토프총리와 동서독분단이후 첫 정상회담을 갖고 양독간의 우호협력관계를 가일층 강화시켰다. 브란트는 또 같은해 5월21일 슈토프와 가진 2차정상회담을 통해 양독관계를 규정하는 20개 항목을 제시,양독관계를 쾌속순항하게 만들었다. 이같은 인적교류와 정비례해서 물적교류ㆍ협력도 매년 증가추세에 있던 양독은 드디어 72년 12월 동서독기본조약을 체결,양독관계를 반석위에 올려 놓았다. 이에 앞서 양독은 교통조약과 통행협정을 체결,인적교류에 따른 만반의 준비를 갖추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양독은 73년 유엔총회에서 유엔동시가입을 달성하게 된다. 이때부터 서독을 여행하는 동독인이 매년 5백만명이상에 달하고 동독인의 70%이상이 서독TV를 시청하게 되면서 양독간의 통일기운이 싹트기 시작했다. 70,80년대를 거친 양독간의 꾸준한 교류는 마침내 동독측이 89년 11월 9일 일방적으로 취한 베를린장벽의 개방으로 이어진다. 이 장벽의 개방으로 동독인들이 하루 2천∼3천명씩 서독으로 몰려오는 이주붐이 일자 동독정권은 서독으로의 흡수통합방식을 인정하게 되고 경제적 통합에 이어 오는 12월말까지 정치적 통합을 완료하게 되는 것이다.
  • 「7·20 선언」의 의의와 전망(민족대교류:상)

    ◎「분단의 벽」 개방으로 허문다/경제력 바탕,완전개방 향한 전향적 조치/북측 거부 불구 화해 향한 대장정 나서야 45년간 지속되어온 분단의 종식을 위한 새로운 돌파구가 시계에 들어오고 있다. 7·20 노태우대통령의 「남북간 민족 대교류」 특별발표는 남북의 화해와 민족의 통합을 분단 반세기이전에 기어코 이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실천적인 조치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8·15 광복절을 전후한 5일간 북한동포들의 남한 전지역 방문허용→추석·설날·한식 등 민족명절시 남북 교류정례화→남북한 주민의 완전자유왕래 등은 한시적 시범교류를 거쳐 전면 완전자유왕래를 실현하겠다는 것으로 현실적이고 실현가능한 조치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 「민족 대교류」 특별발표는 북한측이 광복절을 전후한 같은 시기에 판문점 북측지역에서 「범민족대회」를 개최한다는 시기적 일치성과 함께 지난번 제1백50회 임시국회에서 남북교류협력법이 입법되어 교류에 필요한 제도적 장치가 이미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그 실천의 가능성이 다른 때보다는 훨씬 큰 것 같다. 노대통령은 그동안 남북 대결지양,화해와 통일을 위한 일관된 정책추진을 계속해왔고 남북한 개방의 여건이 어느 정도 성숙되었다고 판단,이같은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88년 7·7선언에 이어 유엔총회연설(88.10.18)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89.9.11) 6·29 3주년 특별연설(90.6.29 북한을 통한 항공기 선박 물자의 무제한 허용) 등이 모두 화해와 개방의 일관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남북한 주변및 세계정세의 변화도 이같은 개방조치의 여건을 성숙시켰다고 할 수 있다. 소련·동구 등의 개혁·개방이 가속화되면서 동서 냉전체제가 새로운 데탕트시대로 접어들고 있고 특히 베를린장벽의 철폐와 동서독 통일의 현실화가 눈앞에 다가왔으며 샌프란시스코 한소 정상회담에 이은 양국 관계정상화를 위한 8월초 모스크바 양국 공식회담 개최합의도 이를 촉진시켰다. 또 미­일­중­소 등 한반도 주변관계국과 영­독­불 등 우방이 한반도의 냉전종식을 지지,지원하는 분위기를 적극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주변환경속에서 노대통령은 우리의신장된 경제력과 함께 북방정책의 잇딴 결실로 민족통합의 주도권을 발휘할 시기가 왔다고 판단,민족 대교류의 과감한 개방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번 민족 대교류 제의는 북한의 대남 2중전략,즉 대외적 평화공세와 내부적인 대남 교란전술사이에 나타나고 있는 동요의 공간을 시의적절하게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많은 함축의미가 있다. 북한 김일성은 올 신년사에서 전제조건을 달았지만 남북한 사회의 완전개방,자유왕래를 제안했고 최근에는 판문점 북측 지역을 일방적으로 개방하겠다면서도 우리 정부의 개입을 허용치 않겠다는 바탕위에서 남쪽 특정세력의 「범민족대회」 참석을 종용하고 있다. 또 북한은 남북한 고위급회담의 1,2차 본회담의 서울­평양 개최에 일단 합의하는등 성의를 보이면서도 우리 국내 정치상황을 이유로 국회 예비회담을 일방적으로 연기 통보하는 한편 그들의 매체를 통해 남한 국회해산까지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이같은 2중전략도 세계정세의 변화에 따라 개방정책이냐 아니면 대남 교란전술의 지속이냐는 갈림길에 서서히 다가가고 있고 이 양쪽 정책선택 결정의 딜레머속에서 상당한 동요를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대통령의 이번 제의는 북한으로 하여금 그들의 「평화제의」가 진심이었는지 위장이었는지를 내외에 입증시켜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분석된다. 왜냐하면 민족 대교류 제의는 그동안 북한측이 내놓은 제의를 전폭 수용한 데다 남쪽을 방문하는 북한동포에 대해 남한의 전면개방이라는 보따리를 하나 더 얹어 제시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일 하오 강영훈총리 명의로 오는 30일 이에따른 실무접촉을 갖자고 제의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정부로서는 우리 국민이 북한지역을 방문했을 때의 신변보장과 무사귀환의 약속을 북한당국으로부터 받아내야만 북한 방문자들에게 남북한 왕래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특별발표에서 노대통령은 남쪽을 찾아오는 북한 동포의 신변보장과 무사귀환 보장을 다짐했기 때문에 북한이 남북교류에 진실된 마음이 있다면 상응한 조치를 해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북한의 판문점 범민족대회에 전대협·전민협 등의 일부 세력이 참가를 희망하면 정부는 관계절차에 따라 승인을 한다는 방침이나 무엇보다 이들의 신변안전 무사귀환 보장이라는 북한당국의 약속이 선행되어야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이들 특정 대학생단체뿐만 아니라 이북5도민회,자유수호연맹,재향군인회 등 단체도 이곳에 참가해보겠다고 신청해올 경우 정부가 무조건 거부를 할 수 없으며 기회를 균등하게 부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당국자가 판문점 공동안전지역(JSA)은 휴전체제의 유지로 긴장완화를 위해 협정으로 설치된 지역인 만큼 이곳에서 선전·선동집회를 개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본다고 밝힌 점을 감안해보면 범민족대회 참가만을 목적으로 방북을 신청해올 경우 허용하기가 다소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물론 북한이 평양이나 다른 곳에서 민족통일을 진정으로 염원하는 대회를 연다면 이의 참가는 무제한 허용한다는 게 정부방침이다. 북한은 우리의 민족 대교류 제의에 대해 이례적으로 신속히 이날 하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성명을 통해 「콘크리트장벽 철거」라는 억지주장을 펴며 거부했다. 따라서 앞으로 북한의 태도변화가 없는 한 민족 대교류가 8·15를 전후해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해졌으며 북한주민의 남한방문을 우리가 일방적으로 개방키로 천명했지만 북한당국이 이를 허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우리의 획기적인 개방조치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장래에 실질적인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서독도 63년 크리스마스를 기해 베를린장벽을 한시적으로 열었던 것을 시발로 오늘날 통독의 여건을 마련했음을 상기할 때 이같은 판문점 개방및 남북왕래는 통일로 가는 길에 거쳐야 할 관문이기 때문에 우리는 북한이 이번 제의를 일단 거부했다 해도 꾸준히 개방과 화해를 향해 대장정을 해야 할 것이다.〈이경형기자〉
  • 한ㆍ소 각료급회담 부산한 준비작업

    ◎대소 「경협 보따리」 마련에 고심/차관 「10억달러 이상」이 우리측 중론/이중과세방지ㆍ투자협정 등 가서명 유도/방소 대표단 10명내외로… 경제부처 실무진 수행 한소수교및 경제협력을 논의하기 위한 양국 정부차원의 첫 각료급회담이 8월초 모스크바에서 개최키로 확정됨에 따라 청와대 외무부 통일원및 경제관련부처 등은 이번 회담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얻어낸다는 방침아래 치밀한 실무준비작업에 들어갔다. 이번 회담은 특히 양국정상의 두터운 신임하에 열리는 만큼 예상밖의 실적을 올릴 수도 있는 것으로 관계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우리측 대소 교섭단장으로 내정된 김종인 청와대경제수석은 청와대 발표가 있는 18일 하오 삼청동 안가에서 관계부처 고위관계자들과 실무협의를 갖고 방소 대표단의 구성 의제 일정문제등을 폭넓게 논의하는 기민성을 보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정부대표단을 가급적 10명 내외로 하고 8월4일부터 10일까지로 파견일정을 잡은 것을 전해졌는데,현재 대표단으로는 김수석을 비롯,김종휘 청와대외교안보보좌관,이정빈 외무부제1차관보,김인호 경제기획원 대외경제조정실장,이용성 재무부기획관리실장,신국환 상공부제1차관보,이원 동자부자원개발국장 등이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로명주소영사처장도 대표단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며,다수의 관계부처 실무과장등도 수행할 것 같다. ○…이번 교섭에서 양국간 초미의 관심사항은 역시 경제협력분야. 그만큼 소련측이 우리측의 차관제공 및 투자진출을 강력히 희망하고 있고 우리측도 이러한 소련측의 분위기를 감안,반드시 넘고 가야할 과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정부는 우리 경제의 현실에 맞는 수준에서 소련측에 줄 경협보따리를 결정한다는 원칙은 세웠으나 과연 소련측의 요구가 어떤 정도로 나타날 것인지 감을 잡지 못해 상당히 고심하고 있는 눈치. 때문에 정부는 대표단이 모스크바로 떠나기 전까지 경협제공에 대한 나름대로의 복안을 철저히 보안에 붙일 방침이다. 그러나 우리가 대헝가리 수교때 6척5천만달러,대폴란드 수교때 4억5천만달러의 차관을 제공한 선례가 있는 만큼 『대소 차관규모는 10억달러 이상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것이 중론. 어쨌든 이번 교섭에서는 양국의 경제전문가가 단장을 맡기 때문에 경협과 관련한 깊숙한 얘기가 오고갈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측은 특히 원할한 경협을 위해서는 투자보장협정ㆍ이중과세방지협정 등 투자에 따른 안전판 마련을 촉구할 것으로 보이며 소련측도 우리측 제공액수가 자신들의 경협요구수준에 근접했다고 판단할 경우 이에 응할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는 따라서 될 수 있으면 이번 협상에서 이들 협정의 가서명까지 이끌어낸다는 전략하에 관계부처간의 유기적인 협조로 조항마련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또한 한국의 소비재생산 및 천연가스ㆍ우라늄ㆍ석유 등 시베리아 공동개발과 소련의 천연자원 및 첨단과학기술 이전을 연계하는 것이 양국간 실질경제협력 증진의 가장 바람직스러운 형태로 보고 소련측에 이를 적극 제시할 예정. 노태우대통령은 이와관련,최근 소련 노보스티통신과의 회견에서 『양국간 경협이 이러한 방향으로 이뤄질 경우 통상규모는 4,5년안에 연간 1백억달러까지 발전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는데 바로 이 대목은 우리 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한 것으로 보여진다. 한편 차관과 관련,정부는 현금제공방식보다는 연불수출형태(우리 업체가 소련에 수출하면 대금은 국내은행이 일단 융자형식으로 대신 지불하고 나중에 소련이 경화로 결제하는 것)를 적극 유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는 후문. ○…경협과 함께 수교문제는 우리측이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는 만큼 이번 회담에서도 민감한 교섭사항으로 떠오를 전망. 때문에 양국간 실질협력이 증진되기 위해서는 외교관계수립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 소련측이 우리가 제시할 경협 액수에 불만을 가질 경우 수교일정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실정. 그러나 고르바초프대통령이 28차 소련공산당대회(7월2∼7월13일) 개최기간중인 지난 6일 답신친서에 서명하고 그의 핵심측근들이 보수파의 반대를 무릅쓰고 여러차례 대한수교의 정당성을 강조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소련측도 연말까지는 대한 수교달성을 당연시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 이에따라 정부는 이번 교섭기간중 이 외무부1차관보,공 주소영사처장 등 정통외교관들로 하여금 소련 외무부 고위당국자들과 수시로 접촉케 해 양국수교에 관한 대체적인 스케줄을 잡는다는 방침. 이럴경우 오는 9월말쯤 열리는 유엔총회에서 최호중­셰바르드나제간의 한소 외무장관회담이 자연스럽게 개최될 것이고 10월 중순경 양국 외무장관이 다시한번 만나 양국간 수교의정서에 서명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큰 것으로 관측.
  • 개방바람 차단위한「역설적 개방」/북한의「판문점 개방」발표를 듣고

    ◎“통일주도” 인상심어 체제결속 겨냥 북한은 지난 5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성명을 통해 남북접촉과 왕래를 성과있게 보장하기 위해 판문점 공동경비 구역내 북측지역을 오는 8월15일부터 일방적으로 개방하겠다고 밝히고 한국도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이 성명은 남북간의 접촉과 왕래를 적극 추진시켜 나가는데 대한 원칙적 입장을 밝히고,남북간의 접촉과 왕래는 ①통일문제 해결과 직결되어야 하고 ②정당ㆍ단체 각계층 인민들이 동등하게 참여해야 하며 ③법률적 사회적 조건에 의한 제한을 철폐해야 한다는 등 3개항을 제시했다. 이어 북한은 『한국과 해외의 정당ㆍ단체 각계각층 인민들이 북한을 방문하는 것을 언제든지 환영할 것』이며 『북한을 방문하는 한국인과 해외동포들의 신변안전,그리고 모든 편의를 보장해 줄것』이라고 말했다. 이와같이 북한이 판문점개방을 일방적으로 선언한 것은 얼핏 매우,그리고 획기적인 조치로 생각될는지 모르나 따지고 보면 김일성이 올해의 신년사와 지난 5월24일 「평화통일 5개방침」에서밝힌 「자유왕래ㆍ전면개방」과 「콘크리트장벽」제거 주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이 개방하겠다고 선언한 지역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 북한측 지역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북한사회의 일부를 개방하는 것으로잘못 또는 확대해석해서는 안될 것이다. 또 북한을 방문하는 한국주민과 해외 동포들의 신변안전과 편의를 제공한다는 문제도 한국주민들과 해외동포들을 자유왕래 할수 있도록 받아 주겠다는 의미와는 다른 문제임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 무슨 조치를 했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대남자세가 바뀌고 있는가 하는데 있다. 아무리 획기적인 조치를 취했다 하더라도 북한의 대남전략에 실제적인 변화가 없다면 그 조치는 선전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지난 3일 개최된 7차 남북고위급 예비회담에서 우리측은 북한측의 주장인 「정치ㆍ군사」를 먼저 표기하자는 주장을 받아들였고,북한측도 회담외적인 문제로 회담자체를 공전시켜온 종래의 상투적인 태도를 삼가함으로써 8월중 양측 총리를 단장으로 한 고위급회담 본회담의 서울개최를 기대해볼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다음날인 7월4일 북한은 전날 태도와는 달리 정부ㆍ정당ㆍ단체대표 등의 명의로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한반도통일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남북한당국과 정당 단체 대표들이 참석하는 「민족통일협상회의」를 소집할 것을 주장했다. 이 성명에서 북한은 ①3대원칙의 재확인 ②두개한국정책 포기 ③팀스피리트 훈련중지 ④국가보안법 철폐 ⑤「민주인사」들의 석방등을 요구하고 『이러한 초보적인 태도표시 없이 분열노선을 그대로 들고 나선다면 최고위급회담에서도 해결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강변,남북고위급회담이 순조롭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을 갖게 했다. 그러면 이 시점에서 판문점개방을 일방적으로 선언한 북한의 계산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북한주민의 결속강화를 위한 대내 선전용일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최근 극심한 경제난과 사상교육 및 통제강화로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어 있고 외부세계와의 직ㆍ간접적인 접촉의 확대로 체제와 이념에 대한 불신이 두터워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일성은「평화통일 5개방침」에서 제시한 남북간의 전면개방과 대화의 발전을 주도함으로써 주민들의 신뢰를 증대시켜 대내결속을 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또 해방 45주년을 기념하는 8ㆍ15「범민족대회」를 오는 8월13일부터 사흘동안 판문점에서 열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데,이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북쪽 지역뿐만 아니라 남쪽지역까지 판문점 전지역을 완전히 개방시켜 한국의 일부 급진단체들이 참석할수 있도록 사전 정리작업을 하자는 것이다. 둘째 이 시기를 「인민민주주의」혁명의 마지막 기회로 보고 지난 5월24일 김일성이 시정 연설에서 밝힌 「전민족적 통일전선」형성 분위기를 조성시켜보자는 것이다. 북한은 아직도 한국사회가 학생소요ㆍ노사분규ㆍ치안부재ㆍ강력범죄ㆍ부정부패 등으로 매우 불안하고 유동적이며 대다수의 국민이 정부를 일탈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정부ㆍ제정당ㆍ사회단체가 참석하는 「통일협상회의」를 개최하여 급진단체들이 반정부운동을 부추켜보자는 계산일 수도 있다. 셋째 남북관계가 크게 진전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어 한국의단독 유엔가입을 저지시키고 주한미군의 조기 철수를 가속화시키려할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남북한의 유엔가입은 남북한 당사자들이 해결할 문제로 제3국들이 간섭할 것이 아님을 내세워 남북대화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면서 9월 유엔총회기간을 넘겨보자는 생각일 수도 있다. 넷째 남북한관계개선을 앞세워 중소 등 주변국가들로부터 개방의 압력을 완화시키고 한소접근을 늦추는 한편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과의 접근으로 경제활성화를 꾀하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대북한 접근의 전제조건으로 남북한 관계개선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대미접근을 위해서는 다른 선택이 없는 실정이다. 북한은 판문점 공동경비 구역내 북쪽 지역을 상징적으로 개방하면서 한국측지역 개방촉구,콘크리트장벽제거문제를 들고나오면서 8ㆍ15「범민족대회」의 성공적인 성사를 위해 적극 노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북한의 태도는 점차「남조선혁명」과 같은 이념문제보다는 경제문제 해결에 역점을 둘 것이며 체면과 자존심이 손상되지 않는한 한국과의 경제교류도 적극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북한사회의 개방에 앞서 분단현실을 인정하면서 체제유지를 보장받을 수 있는 연방제 통일방안을 계속 주장할 것이며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요구를 통제하기 위하여 북한주민들의 사상교육을 보다 강화시키는 제도적 장치 마련에 부심할 것이다.
  • 「불가침협정」 신뢰 장치가 관건/정부의 협정안 준비 배경과 내용

    ◎미·일·소·중의 연대보장안 강구/남북 고위급 회담서 실질토의 모색 한소 정상회담이후 남북한 관계개선을 위한 우리측의 노력이 다각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남북 불가침협정 체결추진 움직임이 그 어느때보다 가시화되고 있다. 남북 불가침협정문제는 군축문제와 함께 남북대화가 재개되면 대화테이블에서 본격 거론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홍성철통일원장관은 26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 답변을 통해 정부는 국제정세 변화에 따른 남북 관계개선에 대비,남북 불가침협정안을 마련중이라며 불가침협정안에는 ▲현 경계선의 존중과 상대방의 정치·사회질서 인정(상호불간섭) ▲무력불사용및 분쟁의 평화적 해결 ▲불가침의 국제적 보장 등이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남북 불가침협정은 휴전협정에 대체할 대안으로 지난 74년 당시 박정희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①상호불가침 ②내정불간섭 ③휴전협정의 효력유지 등 3개항을 내놓고 그 체결을 제의한 것이 시발이었다. 그 뒤 정부는 16년동안 이같은 원칙적인 정신에 따라 일관성있게 남북 관계개선 방안을 제의했으며 각종 국제기구에서 그 원칙을 천명해 왔으나 남북한간의 입장차이로 실효를 거두지 못했던 것이다. 전두환 전대통령이 지난 82년 1월22일에 제시한 「민족화합 민주통일방안」에도 남북 불가침협정이 포함돼 있으며 노태우대통령의 88년 10월18일 유엔총회연설,89년 9월11일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도 그 내용이 들어 있다. 불가침협정 체결제의는 당초 북한측에서 먼저 거론한 것이었다. 북한은 63년 10월23일 최고인민회의 3기 1차회의에서 「남북한 평화협정 체결」 결의를 했다. 당시 북한의 평화협정의 개념은 남북 상호 불공격을 약정한다는 것이었으며,남북한이 협정의 당사자가 된다는 입장은 73년 4월5일 최고인민회의 5기 2차회의의 「대남 평화협정체결」 결의때까지 계속되다가 74년 당시 박대통령의 남북 상호불가침 협정제의를 계기로 한국을 배제시키고 미국과 직접 협상하겠다는 자세로 전환했다. 지금까지의 남북 불가침협정문제는 어느 의미에서는 남북한이 각각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선전차원의 일방적 제의나 선언으로 이어져 왔다는 것을 부인키 어렵다. 그러나 이번에 우리측이 마련중인 복안은 「발표」나 「선언」의 형식적인 제의가 아니라 남북 고위급회담의 의제에 올려 실질토의로 연결되는 방식을 취할 것으로 알려져 우리 측의 대화 적극성을 시사해주고 있다 하겠다. 우리측이 이번에 마련중인 안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불가침협정의 신뢰성과 안전도를 높이기 위해 다른 때와는 달리 미·소·중·일 등 한반도 주변 4강대국의 상호불가침 국제적 보장 방안이 추가된 것이다. 국제적 보장 방안으로는 ▲미·소·중·일의 남북한교차 승인 ▲남북유엔동시가입 ▲소련의 아세아집단 안보회의 개최및 우리의 동북아 6개국 평화협의회 창설 실현 등으로 구체화될 수 있다고 통일원 관계자는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주변정세 변화를 남북 관계개선의 획기적 전기로 삼으려는 우리측의 이같은 적극적 노력이 결실을 맺을지는 불투명하다. 그렇지만 최근의 국제정세변화가 북한측에 개방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북한측이 어느 정도 내부정비가 끝나면 현실적 필요성으로 인해 과거 경직된 자세에서 벗어나 대화에 적극 응할 여지도 없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통일문제 전문가들은 북한측이 최근 제의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군축제안」이 종래와는 달리 다소 신축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새 군축안 4개항에는 남북 신뢰조성 방안이 첫 항목에 올라 있어 군축과 신뢰구축의 우선순위를 놓고 군축선행을 고집해 온 북한이 스스로 도식을 뒤집는 자세를 취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남북 불가침협정 체결을 위한 남북쌍방의 노력이 한층 강화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이건영기자〉
  • 한반도에 감도는 「독일증후군」/서병철 외교안보연 교수(세평)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토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에 이르는 가장 바람직한 처방은 독일식 접근방법인데 그 가능성이 보이고 있어 이는 우리에게 신선한 희망을 갖게한다. 독일식 방법이라 하는 것은 분단국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력사용을 배제하고 상호간 위협대상이 아니라는 신뢰를 구축한 속에서 접근을 통하여 실직적인 협력을 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서로 방문하고 경제적으로 도와주며 필요하면 정상회담도 개최하고 유엔에서 옆자리에 앉아 국제문제에 의견을 일치시키는 가운데 국경선을 개방한 후 민족자결에 의하여 통일에 이르는 합리적 방법이 독일식이다. ○독일식 접근 바람직 지금까지 동서독에서와는 달리 남북한 관계개선이 전혀 진척되지 않은 것은 북한의 후기 스탈린주의적 경직성 때문이었다. 그런데 북한으로 하여금 고집을 꺾고 타협과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국제적 추세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계기가 지난 6월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간의 회담을 통하여 마련되었다. 소련이 회담에서 경제문제에 치중하는 인상을 주려 했어도 국교수립이 안된 한국과의 정상회담 개최에 나선 것은 이미 양국간 관계에 급변을 예고해 주는 것이다. 한소 정상이 불과 1시간 동안 만났지만 양국간의 수교,서울과 모스크바 상호방문,한반도의 평화정착 공동노력,남북대화를 통한 교류 증진,그리고 경제협력 등 당장 필요한 모든 사항에 합의함으로써 근본적인 교류기틀이 마련되었다. 이로써 한반도의 긴장과 남북한간 대립을 조성한 배후의 근원인 소련이 결자해지의 원칙에 따라 냉전시의 산물을 정리하고 신사고를 한반도에 적용하려는 단호한 의지를 표현하였다. 북한은 고르바초프의 개혁ㆍ개방정책이 체제유지에 장애물이라는 관점에서 외면해 왔으며 현상 유지에 도움이 안되는 외풍을 원천봉쇄하려 함으로써 소련에는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이제 고르바초프는 북한으로 하여금 현실을 깨닫게 하는 충격요법을 활용하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소련은 대세에 동조하지 않는 나라는 과거의 브레즈네프 독트린과는다른 방법으로 벌을 받는다는예를 동유럽에서 보여온 바 있다. 특히 루마니아에서는 「페레스트로이카는 사회주의를 망치는 정책」이라고 비난하며 분수에 넘치는 저항을 하다가 차우셰스쿠가 쓰러졌다. 동독에서도 「자주성」을 내세우는 오만을 보인 호네커가 권좌에서 물러나는 결과가 초래되기도 하였다. ○소,북한에 충격요법 고르바초프는 한걸음 더 나가 분단국을 통일시키는 산파역할까지 하는 실적을 올리고 있다. 통독을 가로막는 빚장을 잠갔던 소련이 민족자결원칙에 따른 통일에 청신호를 보임으로써 가장 큰 장애물이 제거되었고 이에대한 반대급부로 「한지붕 밑의 유럽」 계획을 성사시키는 결심을 얻게 되었다. 고르바초프는 세계질서를 재정립하는 데 마지막 저해요소는 북한이 자신의 선택에 따라 탈바꿈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는 이미 1987년 11월 볼셰비키혁명 70주년 기념연설에서 소련과 동맹국들의 관계가 수직에서 수평으로 조정되었음을 분명히 하였고 다음해 12월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각국이 독자적 사회주의 노선을 채택할 수 있음을 허용한 바 있다. 이는 소련이 자국의 행동 반경과 정책방향의 선택폭을 스스로 확대한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이 지나치게 소련에 기대하지 못하게 쐐기를 박은 것으로 이해된다. 오늘날 소련과 동맹국들간의 관계는 50년대 중반기 상황을 방불케 한다. 당시 탈스탈린 정책이 소련에서 시작되어 다른 공산국에 전파되었고 얼마 가지않아 위성국들이 오히려 소련을 앞질러 스탈린 망령에서 벗어났었다. 이와 비슷하게 오늘날 공산체제 개혁과 해체가 바로 그 진원지에서 시작되었으며 주변국들이 질적인 면에서 소련을 추월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오직 북한만은 45년전과 흡사하게 소련의 권유에 냉담한 반응을 보여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소련이 탈스탈린운동 때와는 달리 「신사고」 실현을 중단할 의지가 없기 때문에 북한도 계속해서 소련의 희망을 묵살할 처지에 있지 못하다. 소련은 북한이 계속해서 고집을 부리고 페레스트로이카 파급을 방해할 경우 전격적으로 한소 정상회담을 개최했던 것과 같이 가까운 시기안에 한국과의 일방적인 국교수립을 단행할 가능성도 있다. 과거에도 소련은 동유럽 동맹국가중에서 가장 중요한 동독의 반발을 외면하고 1955년 10월 서독과 수교한 예가 있다. 이는 동독이 미국과 국교를 수립한 1974년 9월보다 19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소련의 입장에서 서독의 경제적 잠재력이 협력대상으로서 매력적인 것이었는데 이는 마치 오늘날 소련이 시베리아 개발을 위한 한국의 자본과 기술,그리고 생활필수품 제공을 기대하는 것과도 비유된다. ○집안단속 강화할 듯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단기적으로는 체제유지를 목적으로 집안단속을 위한 경직성을 강화할 것이 예상된다. 그러나 북한이 최신군비를 전적으로 소련에 의존하고 있으며 무역 60%,외채 80%를 소련이 점하고 있는 현실에서 볼때 계속해서 소련의 비위를 거스를 입장이 못된다. 소련의 군사원조가 중단되면 잠재적 저항세력인 군부를 자극하게 되고 이는 체제를 위태롭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따라서 결국 북한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소련이 원하는 대로 동독이 택했던 것과 같은 협력정책을 답습하는 일 뿐이다. 따라서 한국은 한반도문제의 독일화를 위하여 서독이 추진했던 예를 참고삼아 「북방정책」으로 주변 분위기를 조성하는 한편 「한반도 정책」으로 북한을 회유하는 신축성 있는 정책을 구사함이 바람직하다.
  • 서울∼모스크바「수교의문」가을엔열릴듯/양국의 외교스케줄을 짚어보면…

    ◎7월 첫 외무회담서 시기 구체논의 /“빠를수록 북한개방 촉진”연내 대사관 교환 추진/소선 경협과 연계… 「대표부설치」카드 내밀지도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역사적인 샌프란시스코 한소정상회담에서 「양국간 조속한 국교정상화」에 합의함으로써 수교에 관한한 이제는 양국 실무자사이의 구체적인 교섭과정만 남게 되었다. 양국정상간의 국교수립합의 못지않게 앞으로 진행될 양국간 수교협상대표단간의 교섭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대사급 외교관계수립의 구체적인 시기 뿐만 아니라 경제협력,문화 예술 체육 등 제반분야의 인적 물적교류를 활성화하는데 있어 양국 실무진간의 교섭이 결정적인 「가늠자」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이같은 사실을 충분히 인식한 정부는 지난 5일(현지시간) 한소정상회담이 끝난 직후 노대통령주재로 임시대책회의를 열고 7월중에 최호중외무부장관을 단장으로한 수교협상대표단을 모스크바에 보내기로 잠정 결정했다. 수교협상대표단은 또 양국간의 포괄적인 현안을 해결한다는차원에서 청와대 외무부 경제기획원 상공부 문화부 과학기술처 등의 고위실무자들로 구성한다는 내부방침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는 이에 따라 노대통령 귀국 즉시 임시국무회의를 소집,한소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따른 정부차원의 후속조치와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수교협상대표단의 방소등에 관해 공식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현재까지의 양국간 분위기로 볼때 수교협상대표단은 방소기간중에 셰바르드나제 소외무장관을 단장으로한 소련정부대표단과 구체적인 수교시기등에 관해 협상을 가질 것으로 관측된다. 결국 7월중 모스크바에서 사상 처음으로 한소 외무장관회담이 열릴 것으로 확실시 된다. 수교대표단 방소시기에 관해서는 제28차 소련공산당대회가 7월 2일부터 열리는 관계로 이 대회가 끝난 직후인 7월중순경이 바람직하다는게 외교관측통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수교대표단은 소련대표단과의 협상에서 수교일정을 비롯,양국간 실질경제협력증진방안,북한을 개방사회로 유도하기 위한 다각적인 대응책 마련,기타 인적ㆍ물적교류 활성화방안 등을 폭넓게 협의할 것으로 짐작된다. 양국대표단은 수교일정을 논의하면서 「유엔총회가 개최되는 9월이전까지 양국간 국교수립을 공식 서명,발표하자」는 우리측 입장과 「양국정상회담에서 이미 국교수립에 대한 합의를 봤으므로 여러가지 사정을 고려,천천히 해결하자」는 소련측 입장간의 절충이 시도될 것으로 예측된다. 우리측은 한소수교를 빠른 시일내에 달성할 경우 이는 북한개방에도 촉진제역할을 할 수 있다는 판단아래 가능하면 이번 한소협상에서 수교의정서에 대한 가서명까지 확보할 심산이다. 우리측은 또 이번에 소측이 여러가지 현실적 이유를 들어 가서명에 난색을 표시한다면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을 단장으로 한 소련대표단을 방한초청,2차협상을 개최한다는 복안도 갖고 있다. 그러나 소련측은 한소수교에 응하는 대신 우리측으로부터 차관제공등 막대한 경제적 실익을 추구하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만큼 「수교」와 「경협」에 대한 양측간의 입장이 어느 선에서 접점을 찾는 가에 따라 수교의 구체적 일정이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소측은 또 노대통령의 방소와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서울방문에 대해서도 경협문제를 연계,나름대로 저울질을 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그렇더라도 양국간 수교는 9월이전에 마침표를 찍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또 양국정상간의 상호교환방문도 어렵지 않게 합의되리라는 분석이다. 양국간 수교문제는 이미 대내외적으로 공식화된데다 소측이 초강대국의 이미지를 손상시키면서까지 엄청난 돈을 빌리려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경협정도에 따라 현재의 영사처에서 곧바로 대사급 외교관계로 격상되지 않고 조속한 시일내에 수교를 맺는다는 전제조건아래 상주대표부설치라는 중간단계를 설정하는 문제도 조심스럽게 예상되고 있다. 전후맥락을 살펴볼때 양국관계는 9월이전 수교의정서 서명→연내 서울과 모스크바에 상주대사관설치 및 노대통령의 모스크바방문→고르바초프 소대통령의 내년 5월경 서울방문→레닌그라드,블라디보스토크,타슈켄트(한인교포가 가장 많은 지역)등지에 총영사관 설치→소련의 부산총영사관설치 등의 수순을 밟아가면서 실질협력을 증진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양국대표단은 아울러 경협문제를 언급하면서 투자보장협정,이중과세방지협정,과실송금협정 등의 체결에 관한 인식일치를 바탕으로 수교와 함께 이들 협정의 발효를 합의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오는 7월 모스크바에서의 한소 첫 외무장관회담은 양국현안에 대한 폭넓은 논의를 거쳐 「국교수립합의」라는 양국정상회담 결과를 상당한 수준에서 구체화할 것으로 예상되며 양국간 실질협력증진을 위해 상공부 및 과학기술처 등 관계장관회담도 연쇄적으로 뒤따를 전망이다.
  • 유엔 아태경제이사회 내년 서울서 총회개최

    【방콕 연합】 「아시아 아태양지역의 유엔총회」또는 「아태의회」로 불려지고 있는 유엔아시아 태평양경제사회이사회(ESCAP)총회의 내년 서울개최가 확실시되고 있다. 방콕의 에스캅사무국의 한 고위관계자는 1일 유엔비회원국인 한국이 가입하고 있는 유일한 유엔직속 산하기구인 에스캅 제47차 총회의 내년(4월경)서울개최가 확정적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내년도 총회장소는 이번 46차 총회에서 결정될 사황이나 ▲한국이 2년전부터 대회유치를 위한 조용한 외교노력을 기울여 왔고 ▲차기총회 개최장소를 둘러싼 경합국이 없으며 ▲회원국 절대댜수가 서울 개최에 찬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키브리아 에스캅 사무총장(방글라데시인)은 4일부터 13일까지 방콕에서 열릴 제46차 에스캅총회를 앞두고 이날 에스캅본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내년 총회를 한국에서 개최하는 문제는 이번 총회에서 48개 회원국들이 공식적으로 최종결정할 사항이지만 현재 한국정부가 총회개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해 47차 총회의 서울개최가 확정적임을 시사했다.
  • 비,북한과 수교 추진/반군지원 중단조건/의원2명 곧 평양방문

    ◎“작년 가을 첫 접촉” 비 외무 【마닐라 AFP 연합】 필리핀은 북한과의 외교관계수립 가능성을 은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라울 망글라푸스 필리핀 외무장관이 31일 밝혔다. 망글라푸스 외무장관은 이날 한 기자회견 석상에서 이같이 밝히고 그러나 필리핀­북한간의 관계가 정상화되려면 북한이 필리핀의 공산반군들에 대한 지지를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필리핀 군관계자들은 북한이 필리핀의 신인민군(NPA)에 무기를 공급하고 있다고 비난해 왔으며 공산반군측은 북한의 대NPA무기공급사실을 부인하면서도 북한과는 당대당 차원에서 유대를 맺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망글라푸스 외무장관은 또 필리핀 여당소속 국회의원 2명이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이에 대해 더이상 언급하기를 거부했다. 그는 지난해 가을 유엔총회 참가차 뉴욕에 갔을 때 북한 외교관들의 방문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그것이 우리가 현재 진행중인 은밀한 접촉의 시작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이 대반군 지지포기 선언을 할 경우 북한을 승인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물론이다. 그러한 것은 필리핀의 대북한 정책방향선택과 유관한 정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노대통령 방일결산」3개일지 사설

    ◎실질성과 기다리는 한ㆍ일 신시대 요미우리/“마음의 벽”을 넘기 위해서는… 마이니치/의의 깊었던 노대통령의 방일 산케이 일본신문들은 노태우대통령의 첫 방일을 전례없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같은 일본언론의 보도자세는 놀랄만한 변화라 할 수 있는데 기사의 양도 양이지만 그 내용도 무척 호의적이어서 주목되고 있다. 다음은 일본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요미우리ㆍ산케이ㆍ마이니치 등 3개 신문의 지난 27일자 사설을 요약한 것이다. ▷요미우리◁ 과거의 응어리에 매듭을 짓고 21세기를 앞둔 한일 협력관계 구축의 발판이 만들어졌다는 의미에서 3일간의 한국대통령의 방일은 성과를 올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은 주일 한국특파원들과의 환담에서 『역사인식의 갭을 메우는데 역점을 두고 방일했다』고 언급함으로써 그 핵심문제는 해결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최소한 정부레벨에서는 이 문제가 일단락 지어졌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금후 이 문제가 양국관계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바이다. 금후의 과제는 미래지향의 한일신시대를 어떻게 내실있는 것으로 만들어 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한일 양국이 협조ㆍ협력하여 어떻게 세계의 평화나 번영에 기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인 것이다. 나카야마 외상은 한국의 최호중외무장관과의 회담에서 아시아에서의 긴장완화를 위해 9월의 유엔총회에서 아시아 각국 외무장관회의 개최를 제안했으며 최외무장관은 동의했다. 한국은 87년에 대외경제협력 기금을 설립하는등 개발도상국에 대한 협력을 추진하고 있는데 개발도상국 원조에 있어서도 한일간에 협력할 수 있는 분야가 있을 것이다. 아시아ㆍ태평양협력,환경문제,자유무역체결의 강화등에 있어서도 협조하는 것이 양국의 국익에 합치되며 밀접한 정책대화가 바람직하다. 물론 양국이 국제무대에서의 협조를 확고히 해나가기 위해서는 중요한 양국간의 관계를 더욱 증진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마이니치◁ 노태우대통령의 3일간의 공식방문이 끝났다. 이번의 대통령 방문은 한일 양국에 있어서 결실이 많았었다고 총괄할 수 있을 것이다. 노대통령의 최대의 목적이었던 「역사인식의 갭을 메우는 것」이 정말로 달성되었는가의 여부는 금후의 행동에 의한 결실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핵심문제는 해결되었다. 만족할 만한 결과』라고 말함으로써 일본에 의한 식민지배의 청산문제가 종결되었다는 인식을 시사했다. 일왕의 방한을 요청했던 것과 함께,금후 양국이 친근한 우방으로서 실무관계를 충실히 해갈 수 있는 기초가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구미 각국에서는 수뇌부의 빈번한 상호방문과 가벼운 전화통화로 의사를 확인하는 일이 흔하다. 한일 양국의 수뇌도 노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형식적인 의례를 생략한 상호방문과 전화를 걸 수 있는 관계로 발전되기를 바란다. ▷산케이◁ 노태우대통령은 일본 방문을 통해 「과거청산」에 성과를 올렸을 뿐 아니라 외교ㆍ경제ㆍ문화의 각 분야에서 일본의 적극적인 협력 약속을 받아내는등 많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이들 약속이 제대로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는 양국 당사자간의 앞으로의 자세가 중요하다. 노대통령은 온화하면서도 의연한 태도로 지금까지 그를 잘 모르던 일본인들에게 많은 「팬」을 만들었으며 특히 국회연설을 통해 가해자 앞에서 『우리는 국가를 지키지 못했던 자신을 반성할 뿐 누구를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고 밝혔을 때는 그 어른스런 태도 앞에 그져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러나 혹시 일본이 이번으로 끝났어야 할 「사과외교」를 앞으로도 무원칙하게 계속하면 국내로부터 국수주의적인 맹렬한 반발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반면 반대로 한국이 「일본은 만만하다」는 여론에 말려 대일요구를 점증시키면 양국 관계는 또다시 험악해질지도 모른다. 다행히 노대통령은 국회연설에서 『민주주의가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는 제도라고 속단할 수는 없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사회에 동화시켜 창의와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민주주의밖에 없다』고 역설하는 등 군인 출신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만큼 민주주의의 어려움과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다. 일본도 민주주의의 내실화를 게을리해서는 안되지만 한국도 민주주의가 전국에 뿌리내려 군사정권의 등장을 두번 다시 필요로 하지 않도록정치가 성숙해지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 “한ㆍ일,아태시대 동반자로 새 출발”/노대통령 일 국회연설

    ◎무역불균형 시정 촉구/70만 재일한국인 차별철폐를/기술이전ㆍ기초과학협력 촉진도 강조 【도쿄=강수웅ㆍ이경형특파원】 노태우대통령은 25일 『지난날의 일이 한일 두나라 관계의 현재와 미래를 속박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면 우리는 신념과 용기로 그것을 단절해야 한다』고 말하고 『이 세계에 넘치는 새로운 화해와 협력의 물결위에 우리 두나라는 이제 가깝고도 가까운 이웃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노대통령은 방일 이틀째인 이날 저녁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일본총리가 주최한 만찬석상에서 답사를 통해 이같이 말하고 『한일 두나라는 동북아에 평화를 가져오고 21세기 아시아ㆍ태평양시대를 열기 위해 가장 긴밀한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한일 두나라는 과거에도,현재에도,영원한 미래에도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살도록 신이 섭리했다면서 『오늘 이 자리가 새로운 차원에서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여는 뜻깊은 시발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가이후 총리는 만찬사를 통해 『과거의 한 시기에 한반도의 국민들이일본의 행위로 인하여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슬픔을 겪으신 데 대하여 겸허히 반성하며 솔직하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24일 노대통령과의 1차 정상회담에서 언급한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다시 공개적으로 표명한 뒤 『일한 양국의 유구한 선린우호관계도 먼저 일본의 이러한 반성노력이 한국국민에게 납득되고서야 비로소 확고부동한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앞서 노대통령은 이날 상오 일본 국회의사당을 방문,중ㆍ참의원 7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변화하는 세계속의 새 한ㆍ일관계」라는 주제의 국회연설을 통해 『이제 두나라 관계는 정치ㆍ경제적 협력의 차원을 넘어 각 분야에서 모든 국민이 교류하며 협력하는 포괄적인 선린우호의 시대로 이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또 자신이 지난 88년 유엔총회에서 남북한,미ㆍ소ㆍ중ㆍ일 6개국으로 「동북아 평화협의회의」 설립을 제의한 사실을 상기시킨 뒤 『이 협의체의 실현에는 북한의 태도변화등 정치적 여건의 성숙에 시일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가능한 나라,가능한 분야부터 공동이익을 실현할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30분간 계속된 연설에서 한일간의 과거사 청산을 거듭 강조하면서 『70만 재일한국인은 일본국민과 함께 전쟁의 고통을 겪었으며 일본의 재건과 발전에 참여해왔다』고 말하고 『이들이 이곳에서 불편없이 살게 될 때 양국 국민은 한일우호를 가슴으로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새로운 한일협력관계 발전과 관련,▲일본의 대한무역불균형 시정을 위한 실질조치 ▲기술이전과 기초과학협력의 촉진을 촉구하고 『한국의 발전은 일본의 국가이익에도 합치될 것이며 동아시아 경제권의 지위를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이어 이날 낮 일본경제5단체가 공동주최한 오찬에 참석,연설을 통해 양국 경제관계 발전을 촉진시키기 위해 정부와 민간부문이 함께 참여하는 산업기술협력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제의한 뒤 일본의 대형프로젝트에 한국기업이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하오 한일 친선단체간부들을 숙소인 영빈관에서 접견하고 이원경주일대사가 주최하는 교민리셉션에 참석했다. 한편 노대통령은 26일 상오 가이후 일 총리와 2차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및 동북아 정세평가와 이에따른 공동협력방안,무역불균형 시정,첨단기술이전 등 양국간 실질협력문제를 광범위하게 논의할 예정이다. 노대통령은 이어 영빈관에서 아키히토 일왕과 작별인사를 나눈 후 일본 기자클럽에서 오찬회견을 가질 예정이며 귀로에 오사카에서 교민리셉션에 참석,교포들을 격려하는 일정을 끝으로 2박3일간에 걸친 방일일정을 모두 마치고 이날 하오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할 예정이다.
  • 노대통령 일 국회 연설 요지

    ◎가까운 이웃으로,믿음 나누는 친구로 평화와 번영,자유와 행복이 넘치는 세계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 나는 한일 양국이 상호존중과 이해에 기초하여 이제 가깝고도 가까운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일본을 방문했습니다. 45년전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한국국민의 기쁨은 하루아침 국토분단의 슬픔으로 표변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결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한 세대에 걸친 피땀어린 노력으로 한국은 이제 신흥산업국가로 발돋움 했습니다. 우리 국민은 서울올림픽을 12년만에 동서세계가 함께 모인 훌륭한 평화의 축제로 치렀습니다. 우리 국민이 이룬 또하나의 보람은 민주주의의 시대를 연 것입니다. 근40년간 안팎의 숱한 파란속에서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우리 국민의 뜨거운 염원과 투쟁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3년전 「6ㆍ29민주화선언」을 시발로 한국의 새로운 시대는 언론과 정치적 자유를 제한없이 열어 놓았습니다. 한국의 민주화는 헌법과 제도는 물론,사회의 가치체계와 국민의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의 민주화는 큰 대가를 치르고 있으나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이 오게하는 것은 우리 국민의 지상과업일 뿐만 아니라 세계와 이 지역에 우리가 기여할 으뜸가는 과제일 것입니다. 지난 한 세기동안 한국처럼 침략과 전쟁ㆍ대결체제로 고통받아온 나라는 이 지상에서 드물 것입니다. 평화는 한국민의 절실한 소망입니다. 우리는 평화를 이룸으로써 이 세계가 우리에게 준 시련에 답하려 합니다.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이 세기안에 반드시 이루려합니다. 냉전체제의 타율에 의한 민족의 분단상황은 다음 세기로까지 이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모두가 어렵다고 여겨온 동서 독일의 통일이 이제 현실이 되고 있듯이 전쟁의 위험이 도사린 분단된 땅에서 인류화합의 올림픽이 열렸듯이,한반도에 통일의 날은 올 것입니다. 이제부터 한일 양국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본격적으로 펼쳐가야 할 것입니다. 나는 1988년 유엔총회에서 「동북아 평화협의회의」를 제안한 바 있습니다. 이 협의체의 실현에는 북한의 태도변화등 정치적 여건의 성숙에 시일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가능한 나라,가능한 분야부터 공동 이익을 실현할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 동북아시아 국가들간의 협력은 아시아ㆍ태평양시대의 밝은 미래를 여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일본과 한국의 21세기도 아시아ㆍ태평양의 평화와 번영과 직결되어 있을 것입니다. 한일 두 나라는 동반자로서 태평양시대를 앞장서 열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를위해 우리는 이 지역의 개방성과 다양성을 바탕으로 모든 나라에 도움을 주는 효율적인 협력의 틀을 이루어야 합니다. 한일 양국은 이제 서로 미국 다음가는 두번째의 교역국이 되었습니다. 세계10대 교역국에 들어선 한국은 일본 기업에 연간 1백70억달러의 시장이 되었습니다. 25년전 일본의 대한 수출이 불과 2억달러였던 것을 생각하면 한국의 발전은 일본의 번영에도 도움을 주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번영하는 나라가 가까이 있는 것은 일본의 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것입니다. 한일간에는 만성적인 무역불균형의 문제가 있습니다. 일본은 미국과 유럽에 대해 시장개방과 무역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습니다. 한국에 대해서도 이처럼 정책적 의지를 갖고 불균형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조처를 취해주기 바랍니다. 일본이 경쟁을 꺼려하여 기술이전에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한국의 수출증대가 해외시장에서 일본기업에 다소의 경쟁을 불러오는 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견일 뿐 그것은 일본으로부터 더 많은 우리의 수입을 유발해 왔습니다. 한국의 경제발전이 일본의 국가이익에 합치한다는 인식하에서 일본의 기술이전과 기초과학 협력을 촉진하여 주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변화하고 많은 것이 발전하였음에도 우리 두 나라 국민간에 진정한 우정을 가로막는 마음의 벽이 남아 있습니다. 전후 45년이 지난 이제 세계대전을 치렀던 유럽 각국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이 시점까지,우리 두 나라 국민간에는 잘못된 과거에 대한 인식과 감정이 정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대의 잔재가 두 나라 관계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국민학교에 갓 들어간 한국 어린이가 일본식 이름 아닌 자기 이름을 썼다하여 어머니로부터 익힌 자기 나라말을 했다하여 선생님의 회초리를 맞아야 했던 아픔을 여러분이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지난날 어두웠던 시대,우리 민족이 겪은 더 큰 고통과 시련,그 엄청난 비극을 지금 이 자리에서 이야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의 우리는 나라를 지키지 못한 스스로를 자성할 뿐,지난 일을 되새겨 그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려 하지 않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진실에 바탕한 두 나라 국민의 참된 이해이며 그것을 바탕으로 밝은 미래를 열자는 것입니다. 프랑스인 독일인 영국인이 이제 하나의 유럽인이 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진실의 힘으로 잘못된 과거를 분명히 씻음으로써 새로운 역사의 창조에 함께 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일은 신도 바꿀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오늘의 우리가 지난 일을 어떻게 보고어떻게 이해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하기에 따라 지난날의 속박을 끊고 과거의 잔재는 치울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용기와 노력이 필요할 뿐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내가 특히 이 자리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지난날의 역사로 인해 일본에 살게 된 70만 재일 한국인의 문제입니다. 이들은 일본국민과 함께 전쟁의 고통을 겪었으며 전후 일본의 재건과 발전에 참여하였습니다. 이들이 사이좋게 이웃으로 이곳에서 불편없이 살게 될 때 우리 두 나라 국민은 한일 우호를 가슴으로 느낄 것입니다. 일본은 지난날의 일본이 아니라 이제 새로운 일본이 되었습니다. 역사와 세계에 대해 열린 일본은 아시아와 세계의 인식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공통의 이상을 나누고 있는 우리 두 나라는 이러한 관계위에 세계로,미래로 손잡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가깝고도 가까운 이웃으로,믿음을 나누는 친구로 더욱 평화롭고 번영하며 자유와 행복이 넘치는 세계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
  • 미,유럽 안보협회의 제의/베이커/재래무기 감축협상 매듭 노력

    【브뤼셀 AP 연합 특약】 나토외무장관회담에 참석중인 제임스 베이커 미국외무장관은 3일 유럽배치 재래무기감축협상을 마무리 짓기 위해 금년말까지 유럽안보협력회의 (CSCE) 35개국 정상회담을 개최할 것을 제의했다. 베이커 장관은 이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유엔총회가 열리는 오는 9월말 뉴욕에서 35개국 외무장관회담을 가질 것도 아울러 제의했다. 35개국 정상회담의 개최지로는 현재 재래무기감축협상이 진행중인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이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베이커장관의 이번 제안은 금년 말까지 재래무기 감축협상을 마무리 짓기 위한 조지 부시미대통령의 뜻에 따른 것으로 풀이되고 있는 데 베이커장관의 제의에 대한 다른 나토외무장관들의 반응은 즉각 알려지지 않고 있다. 재래무기감축협정이 체결되면 동유럽배치 소련군병력은 19만5천명,서유럽배치 미군은 22만5천명 이하로 각각 감축되게 된다.
  • 나미비아 유엔가입

    【뉴욕 AFP 연합】 나미비아가 23일 열린 유엔총회에서 회원국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1백60번째 회원국으로 유엔에 가입했다.
  • 북한 유엔대표단 향미

    【도쿄 AFP 연합】 북한의 제1외무차관강숙주가 이끄는 유엔대표단이 19일 유엔총회특별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을 향해 평양을 떠났다고 북한의 중앙통신이 보도했다.
  • 「신사고」 앞세워 동서데탕트시대“견인”/고르바초프 집권5년의 평가

    ◎새로운 「자결원칙」 제시,동구 대변혁 “촉발”/강력한 대통령제 신설,개혁 가속화의 기틀 다져/“발등의 불”경제난ㆍ민족분규등 현안 “첩첩”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겸 최고회의의장이 11일로 집권 5주년을 맞았다. 고르바초프는 그동안 사고의 대전환을 통한 대담한 개혁정책 추진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역사적 업적을 남겼으면서도 소연방내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민족주의 물결과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경제난 때문에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고르바초프는 12ㆍ13일 열리는 인민대표대회에서 비상대권 등 막강한 권한을 지닌 소련 최초의 서방식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취임 5주년 기념일인 11일에는 리투아니아공화국 최고회의가 독립국가를 선포하기 위한 표결을 준비하는 등 그에대한 도전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이같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고르바초프는 개혁정책과 신사고외교를 성공리에 추진,소련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었을 뿐아니라 끝없는 군비경쟁으로만 치닫던 냉전체제에 종지부를찍으며 국제적인 데탕트 기류를 몰고 온 장본인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대담하게 개혁 추진 지난 85년 체르넨코 서기장 사후 그의 뒤를 이어 권좌에 오른 고르바초프는 지난 88년말 유엔총회연설에서 일방적인 국방비삭감과 50만명의 소련군 감축을 선언,세계의 군비경쟁에 결정적 브레이크를 걸었다. 또 소련의 동구개입을 뜻하는 브레즈네프독트린을 폐기하고 이른바 시내트러독트린(프랭크 시내트러의 히트곡「My Way」처럼 각국이 제갈길을 찾아가라는 의미)이라 불리는 새로운 자결원칙을 제시,지난해 동구의 민주화변혁을 가능케 했다. 고르바초프의 신사고가 없었다면 베를린장벽의 제거와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몰락도 이뤄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와함께 아프가니스탄 주둔 병력을 철수시키는등 지역분쟁 해결을 위해서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ㆍ재편)와 글라스노스트(개방ㆍ정보공개)를 세계적인 유행어로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세계평화의 위협자에서 수호자로,동구제국의 지배자에서 해방자로,혁명수출국에서 분쟁중재국으로 소련의 역할전환을 이룩해낸 것이다. 시사주간 타임지는 고르바초프를 지난 87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플라톤의 정치의 도를 터득한 사람』이라고 극찬하면서 「80년대의 인물」로 선정했다. 지난달 미CNN방송이 고르바초프의 서기장직 사임설을 보도하자 뉴욕ㆍ도쿄등 자본주의 사회의 주요 증권시장에서 주가폭락을 초래했을 정도로 그는 이미 전세계의 기대와 희망을 한몸에 받고 있다. ○군비경쟁에 쐐기 국내에서도 국제무대에서 만큼 가시적인 효과를 얻어내지는 못했으나 나름대로 소련의 정치체제를 뒤흔드는 일련의 개혁정책을 성공리에 추진하고 있다. 볼셰비키혁명이후 70년이 넘도록 유지돼온 공산당 권력독점을 포기,고질적인 관료제를 타파하고 정치적 다원주의의 물꼬를 텄다. 강력한 대통령직을 신설,개혁을 가속화시킬 수 있는 기틀도 마련했다. 인민대표대회의 권한을 강화,자유로운 토론의 장으로 변모시켰는가 하면 각급 선거를 복수후보경쟁에 의한 비밀투표로 실시토록 했다. 정치범 석방,언론ㆍ종교ㆍ출입국 자유화 등의 민주화 조치도 취했다. 경제적으로도 관료적인 중앙집중식 계획경제의 비능률성을 개선하기 위해 기업의 독립채산제를 채택하고 협동조합기업(코페라티브)설립과 합작을 통한 외국자본의 유입을 허용하는등 시장경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했다. 그러나 침체의 늪에 빠져든 소련 경제를 소생시키지는 못했다. 생산수단 사유화및 임금노동과 토지의 개인영구임대 및 상속을 허용하는등 보다 실질적인 조치들이 곧 입법화될 예정이지만 실효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물자부족등 피부에 와닿는 경제혼란으로 인해 주민들의 불만과 급진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팽배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함께 정보의 공개와 언론자유에 힘입어 소수민족공화국들의 민족적 자각과 그에 따른 분리독립요구가 높아져 연방해체 위기로까지 치닫고 있다. 이같은 페레스트로이카와 신사고에 대해 고르바초프는 관료체제를 타파하고 「인간의 얼굴을 가진 민주적 사회주의」로의 발전을 위한 제2의 혁명이며 「보편적 인간 가치」를 위한 자본주의 국가와의 협력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지역 분쟁해결 앞장 일부 서방전분가들이 지적하는 「공산주의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마르크스­레닌주의의 포기」「자본주의로의 전환」이 아니라 인간이 중심이 되는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의 재생이라는 주장이다. 개정된 공산당 강령은 레닌주의를 전적으로 받아들여도 안되지만 완전히 무시해서도 안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생산수단의 국유 또는 사회소유에 반하는 사적소유와 인간노동의 착취행위로 금지돼왔던 임금노동을 허용하는 문제들을 놓고 한바탕 논쟁이 벌어졌던 것처럼 아직도 사회주의적 「사회정의」와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상반된 개념중 어느 것을 취할 것인지 완전한 의견의 일치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소련과 동구의 변혁이 일방적이 아닌 상호영향을 주고받는 것처럼 소련내의 개혁도 집권층과 국민들간의 상관관계속에서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지 에측불허인 것이다. 그러나 소련의 개혁작업이 어떤 동기에 의해 추진됐건간에 전임자들도 똑같이 느꼈던 문제를 고르바초프만이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일단 그의 대담한 실천력은 높이 평가할만 하다고 볼 수 있다. 고르바초프는 이제 대통령으로서 집권2기를 맞으며 앞으로 4년의 임기동안 실각의 우려를 덮어둔채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게 된다. ○부분적 시장경제로 개혁을 가속화시켜 국민들로부터 계속 지지를 받게될지 아니면 일부의 우려처럼 독재자로 변신할지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적어도 오는 94년의 2대 대통령은 국민들의 직접비밀투표에 의해 선출된다는 점에서 스탈린식 강권통치로의 회귀는 불가능하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자유의 맛을 느낀 소련국민들도 두번다시 과거행 타임머신에 동승하기를 거부할 것이다. 강제이주 이전 거주지인 크림반도로 돌아가겠다는 타타르족등의 단순한 요구로부터 발트해연안 3국의 즉각 분리독립요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민족문제들이 고르바초프의 발목을 붙들고 있다. 또 루블화의 태환성 부여,가격ㆍ금융제도의 개선,완전자유시장의 도입등 근본부터 흔들어 놓아야 할 경제 문제들도 산적해 있다. 세기의 영웅 고르바초프가 70년동안 타율성과 의욕상실증에 찌들대로 찌든 국민들을 다독거려 이같은 난제들을 얼마나 슬기롭게 극복해나갈 것인지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취임5돌 고르바초프 공과 ■외교 정책 ▲동구 각국에 대한 불간섭정책을 선언함으로써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등 동유럽에 엄청난 변혁이 일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 ▲핵전쟁 발발 가능성의 공포와 유럽 및 중국에 대한 소련의 선제공격 우려를 현저히 불식. ▲국방비를 삭감하고 병력 50만명과 탱크 1만대 감축을 일방적으로 선언 ▲중부유럽 주둔 병력의 철수를 미국과 잠정적으로 합의 ▲미국과 중거리핵미사일 폐기를 합의한데 이어 오는 90년까지 장거리 핵미사일도 절반으로 삭감한다는 목표를 협상중. ▲아프가니스탄에서 병력 11만5천명을 철수. ▲앙골라ㆍ나미비아ㆍ캄보디아ㆍ니카라과 등 분쟁국에 대해 협상을 종용 ■민주화 ▲지난 89년 경선제를 도입하고 공산당의 권력독점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지도부를 설득,동의얻어냄. ▲강력한 대통령제 도입을 제안. ▲언론ㆍ집회ㆍ종교의 자유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법으로 보장하겠다고 약속. ▲정치범 수백명을 석방하고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에 대한 탄압을 종식 ■경제정책 ▲일반시민들의 일상생활과 생화수준 개선을 위한 노력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음. ▲당지도부가 공장의 개인소유제도를 받아들이게 하는데 성공 ▲개인이 토지를 임대차하는 것은 물론 이 권리를 상속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으나 개인의 토지소유는 거부. ▲합작을 통한 외국자본의 유입을 대폭 완화. ▲90년도 적자가 1천5백억달러에 이른다고 발표함으로써 재정적자를 처음으로 공개. ■국내정책 ▲발트해연안 3개 공화국의 독립요구 운동을 묵인.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등 일부 공화국에서 민족분규가 발생해 진압군 수십만명을 파견. ▲관료들의 부정 근절 실패,폭력범죄도 계속 증가. ▲환경보호주의자들의 주장을 인정하면서도 환경개선에는 아직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 못했음. ▲주택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다짐했으나 성과는 별로 나타나지 않았음.
  • “한국 단독가입 유엔분위기 성숙” 유엔대표부대사 박쌍룡씨(인터뷰)

    ◎표 대결 방식 벗어나 회원국 화해ㆍ협력 지향 『유엔의 88년 노벨평화상 수상을 계기로 유엔의 권위가 매우 향상됐으며 세계적으로도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이같은 분위기는 우리의 유엔 단독가입 추진등 유엔외교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90년도 재외공관장회의 참석차 일시 귀국한 박쌍룡유엔대표부대사는 7일 이같이 밝히고 『유엔총회에 상정된 많은 안건들이 종전의 표대결방식에서 벗어나 컨센서스(만장일치)로 처리되고 있다』면서 화해와 협력이 조성되고 있는 유엔의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유엔에 우리가 연내 단독가입할 가능성이 있는가. 『유엔의 새로운 화해ㆍ헙력의 분위기와 우방들의 적극적인 지지표명,특히 유엔가입의 최대 걸림돌인 중소와의 관계개선이 점차 확대되고 있어 우리에게는 고무적인 분위기다. 유엔가입 신청시기는 여러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결정하겠지만 조기가입을 실현시키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확고하다』 ­유엔가입과 관련,현지에서는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나. 『유엔안보리의 미ㆍ영ㆍ중ㆍ소ㆍ불 등 5개 상임이사국과 10개 비상임이사국 대표들과 직간접적인 접촉을 계속해오고 있다』 ­북한은 우리의 유엔가입이 분단을 고착화시킨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북한이 유엔에 가입한다면 국제사회에서 「테러리스트국가」라는 오명을 씻을 수 있으며 우리 우방들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정치ㆍ경제ㆍ과학ㆍ기술 등 제반분야에서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한마디로 북한은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속담이 알맞을 정도록 대단한 이점이 있을 것이다』 ­북한측의 태도변화는 나타나고 있는지. 『박길연 북한대사와는 회의장등에서 가끔씩 만나 인사교환 정도만 할 정도다. 북한외교관의 대한 태도변화는 별로 보이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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