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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北 평화협정은 잘못 유엔이 대신 맺어야”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국은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어서는 안되며 대신 유엔이 북한과 평화협정을 체결토록 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국의 보수적 연구기관인 헤리티지재단의 래리 워첼 아시아연구소장은 17일 인터넷 홈페이지에 실린 ‘왜 북한은 미국이 아닌 유엔과 평화협정을 맺어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미국이 북한과 평화협정 체결을 고려하고있다”면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이같은 일방적 노력을 중지하고 대신 유엔과 북한간에 평화협정을 체결하도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워첼 소장은 “정전협정에 서명한 마크 클라크 미군 장군은 유엔군 사령관 자격으로 서명했기 때문에 정전협정은북한과 유엔간에 체결된 것이지 미국이 체결한 것은 아니다”라며 미국이 단독으로 북한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는것은 3만7,000여명의 유엔군이 희생된 한국전쟁의 역사를무시하는 편의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북한은 협정을 체결할 때 미국에 경제적 지원을요구할 것이고 협정이 맺어진 뒤에는 미군 철수를 주장할가능성이 커 북·미 평화협정은 결국 북한에만 이득을 주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hay@
  • [씨줄날줄] 유엔총회 의장

    1950년 8월1일 유엔(UN·국제연합)안전보장이사회의 새 의장국이 된 소련의 말리크대표는 회의 첫머리에 “그동안 한국사태에 관해 결정한 모든 것이 무효”라고 선언했다.상임이사국인 소련이 불참했기 때문이라는 논리였다.‘결정’이란,그해 6월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 북한을 침략국으로 규정하고 유엔군을 한반도에 파병하기로 한 일련의 결의를 의미한다.말리크의 억지는 물론 수용되지 않았다. 한국전쟁 초기 소련은 전략적인 실패를 자초했다.상임이사국으로서 안보리 회의에 참석해 반대했더라면 이같은 결정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그런데도 소련은 자유중국(현 대만)의 대표성을 시비하며 7월 말까지 불참하다 8월 의장국 순서가 되어서야 나타난 것이다.소련에는 ‘국제사회가 개입할 틈을 주지 않을 만큼 전쟁을 빨리 끝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결국 소련의 실수는 한반도 적화를 막는 데한몫을 단단히 했다. 우리나라에서 유엔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한 1948년의 12월 유엔은 파리에서 열린 제3차 총회때 한국을 승인해 국제사회 진출의 길을 터주었다.한국전쟁에서는 유엔군을 파병해 울타리 노릇을 했다.이같은 인연에힘입어 우리는 1950년에서 75년까지 국제연합일 (유엔데이)을 공휴일로 지정해 국가적으로 기념했다.1951년 조성한 부산 유엔묘지에는 한국전쟁에서 숨진 11개국 2,000여기의 영령이 안치돼 지금껏 내외국인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현재 학계 일각에서는 한국과 유엔의 관계를 ‘냉전시대의산물’이라 깎아내린다.요즘처럼 남북이 화해 협력의 길로나아가는 시기에는 유엔의 의미가 예전같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그렇더라도 최근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과 관련해 남북이 유엔에서 한목소리를 낸 일에서 보듯 유엔은 여전히 국제무대의 중심이고 ‘선(善)기능’으로 작용한다. 우리나라가 유엔에 가입한 지 10년 만인 올해 유엔총회 의장국을 맡기로 내정돼 후보자를 찾고 있다고 한다.권역별로돌아가면서 맡는 의장직이 올해는 아시아에 돌아왔고, 그간사전조율을 통해 우리 몫으로 결정됐다는 것이다. 1950년말리크에게 온갖 수모를 당한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주는 반가운 소식이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
  • 부산 유엔공원 오늘 한국전 50주년 행사

    한국전쟁 참전 50주년을 기념하는 해외 참전용사들의 각종 행사가 부산지역에서 열린다. 특히 이번 행사에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둘째 아들요크공작(앤드류왕자)이 참석해 눈길을 끈다. UN군 사령부는 20일 오전 11시 부산 남구 대연동 UN기념공원에서 미국과 필리핀 등 외국참전용사 600여명등 1,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전 참전 50주년 기념행사’를 갖는다.이어 이날 오후 2시에는 ‘영연방 4개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한국전 참전 50주년 기념 추모행사’가 앤드루 왕자 등 6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이에 앞서 오전 9시 30분쯤 앤드루왕자와 영연방 참전용사들은 1797년 포비던스호가 한국에 최초로 도착한 부산남구 용당동 신선대에서 기념비 제막과 기념식수 행사를가진다. UN기념공원 관계자는 “매년 4월 하순 영연방 참전용사들이 UN기념공원을 방문했으나 올해는 50주년을 맞아 유엔군 사령부에서 대규모 기념행사를 계획하면서 관계자들의 참석편의 등을 위해 영연방 행사와 같은 날로 행사를 조정,예년의 3배 정도인 1,200여명이 참석하게 됐다”고 밝혔다. 부산 이기철기자 chuli@
  • 이스라엘, 팔기지 맹폭

    [가자시티·라말라 AP AFP 연합] 이스라엘군이 무장 헬리콥터를 동원,3일(현지시각) 밤 팔레스타인의 가자시티와 라파,칸 유니스 등 최소 3개 지역에 로켓 및 미사일 공격을퍼부었다. 최소한 7대의 헬기가 동원된 이번 공습은 이날 오전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의 박격포 공격으로 10개월 된 유아와 아이엄마 등 2명이 중태에 빠진데 대한 보복조치로 이뤄졌다. 이스라엘군의 헬기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경찰관을 포함,팔레스타인인 60여명이 부상했다고 의료진은 전했다. 이스라엘군 대변인 올리비어 라포위츠 중령은 “유아에게박격포 공격을 가한 야만적이고 용서할 수 없는 테러조직에대해 응징하고 있다”면서 “이스라엘을 향한 모든 테러활동이 이번 공격의 대상”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군 당국은무장 헬기를 동원한 공습과 병행해 지상에서도 야간공격이이뤄졌다고 확인했으나 지중해 해상에서의 포격도 있었다는보도는 부인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한 관계자는 그러나 이스라엘이 미제 아파치형 헬기와 미사일 뿐 만 아니라 해군 전함까지 공격에 투입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위험에 처한 팔레스타인들을 지키기 위해 아랍국가와 유엔군의 파견이 시급하다고 호소했다.
  • 우리 해경정 진입 北서 ‘허락’

    합동참모본부는 28일 오후 2시38분쯤 동해 북방한계선(NLL) 2마일 북측해상에서 침몰중이던 캄보디아 선적 상선인선 글로리호(1,800t급) 선원 17명을 해경정이 구조했다고밝혔다. 우리 해경정이 NLL 북측 해상으로 넘어 들어가 조난당한선원을 구조한 것은 처음이다. 선 글로리호는 이날 오후 12시45분 기관고장으로 NLL 북방 3.2마일 해상에서 표류하다 해군 호위함인 충남함(1,900t급)에 긴급 구조를 요청했다. 합참은 오후 1시 57분쯤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를통해 북측에 선박 조난사실 및 구조를 위해 해경정(200t급)을 들여보내겠다고 통보했고,북측은 명확한 의사표시를하지 않은 채 사실상 구조를 허락했다. 이에 따라 합참은 해경정을 NLL 북방 북측해상 2마일 지점까지 접근시켜 선장 김재순씨(46) 등 한국인 3명을 비롯한 선원 17명 전원을 구조했다. 노주석기자 joo@
  • 타계한 경제거목 왕회장 정주영씨/ 청운동 빈소 표정

    서울 종로구 청운동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빈소에는 23일에도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현대측은“이틀 동안 1만5,000여명이 찾았다”고 밝혔다. ◆현대는 북한 조문단이 파견된다는 통보를 받자 한껏 고무된 분위기였다.이들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작업에 착수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였다. 현대 관계자는 “조문단 파견은 정 전 명예회장에 대한최대한의 예우를 갖춘 것으로 해석된다”면서 “이를 계기로 금강산관광사업은 물론 남북관계가 발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다른 관계자는 “조문인 만큼현안인 금강산관광 대가 문제 등은 일체 언급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 회장과의 별도면담이 있지 않겠느냐”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이어 현대아산 김윤규(金潤圭)사장 주재로 이날 오후 실무자급 회의를 소집,최대한의 예우를 갖추기로 방침을 정했다.조문단 마중은 상주가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어 김사장과 김고중(金高中)부사장,윤만준(尹萬俊)전무 등 3명이김포공항으로 나가 청운동의 빈소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수송차량은 현대차의 에쿠스를 이용하기로 했으며,북한측의 요청에 따라 중형차는 별도로 준비했다.이들의 안전을위해 경호는 정부측에 요청해 뒀으며,조문단이 빈소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조문객을 받지 않기로 했다. ◆오전 10시20분쯤 빈소를 찾은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은 분향을 마친 뒤 정몽구(鄭夢九) 현대·기아자동차 회장과 차를 마시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도록 모범을 보이신분”이라고 위로했다. 이어 강영훈(姜英勳) 전 국무총리 등 정·관계 인사와 구자경(具滋暻) LG 명예회장,이기준(李基俊) 서울대 총장 등의 발길이 이어졌다.이건희(李健熙) 삼성 회장은 아들 이재용(李在鎔) 상무보와 함께 찾아 “선견지명과 추진력을가진 분이었는데 5년만 더 사셨다면 우리 경제가 달라졌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유엔군 사령관 겸 주한미군 사령관인 토머스 슈워츠 육군대장도 찾았다.고인과 오랜 교분을 나눴던 구상(具常) 시인은 “57년 고(故) 모윤숙씨집에서 만났는데 촌부 인상이었다”고 회고했다. 예브게니 아파나시예프주한 러시아 대사는 오후 3시25분쯤 방문,푸틴 대통령의 서한을 전달했다.푸틴 대통령은 서한에서 “정 명예회장은 러시아에서도 한·러 관계 발전에다방면으로 기여한 인물로 항상 존경을 받아왔다”고 밝혔다.찰스 험프리 주한 영국 대사와 우다웨이(武大偉) 주한중국 대사도 빈소를 찾았다. ◆빈소에는 조화(弔花) 4,000여개가 들어와 진입로 길가에까지 200여m 정도 늘어섰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훼공판장에서는 한 속(20송이)에 8,000∼9,000원 하던 국화값이 1만1,000원으로 뛰었다.조화에 쓰이는 품종인 ‘을녀’는 22일 548속이 나갔고 23일엔1,608속이 팔렸다. 주병철 박록삼기자 bcjoo@
  • 타계한 경제거목 왕회장 정주영씨/ 일대기

    정주영은 격동의 현대경제사의 산증인이자 역사 그 자체다.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근대화의 거목(巨木)이었고,옛소련과 중국의 경제 교류를 이끌어낸 민간 외교관이었다. 서울올림픽을 유치,성공적으로 치른 체육인이면서 사회사업가이기도 했다.누구도 엄두내지 못했던 ‘소떼 방북’으로 금강산 관광을 이끌어낸 이도 그였다.‘소떼 방북’은지난해 6월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밑거름이 됐다.현대건설의 유동성 위기로 자신의 퇴진 여부가 도마에 올랐던 지난해 5월에는 ‘3부자 동반 퇴진’이라는 승부수를 띄웠던정주영.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그의 자서전 제목만큼이나 그의 인생 역정은 위기와 시련,극복의 연속이었다. ■소년 정주영 1915년 강원도 통천군 아산리의 산골짜기에서 빈농의 장남으로 태어났다.그의 호 아산도 고향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어려서부터 남달리 야심이 많았던 그에게“농사일을 하라”는 부친의 말은 성에 차지 않았다.가난은 야심찬 통천 산골의 소년을 잡아두지 못했다. 신천지를 꿈꾸며 세번씩이나 가출을 시도했던 정주영은 19살때 아버지가 소 팔아 모아 둔 70전을 훔쳐 들고 네번째‘탈출’에 성공, 드넓은 세상으로 나온다.그러나 기다리는 것은 냉엄한 현실뿐.막노동판을 전전하다 다다른 곳이서울 신당동 쌀 가게였다.황소처럼 우직하게 일한 그에게운이 따랐다.그의 성실성에 탄복한 주인이 그에게 쌀 가게를 넘겨줘 일약 점원에서 사장으로 올라앉게 된다.‘경일상회’라는 상호로 자신의 간판을 내단 것은 고향을 떠난지 4년 만의 일이다.보통학교(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인 그에게 ‘안되는 일은 없다’는 불굴의 의지가 생긴 것도 이무렵이다. ■사업은 탄탄대로 40년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에 자동차수리공장인 ‘아도써비스’를 창업하면서 본격적인 사업의길로 들어선다. 이후 46년에는 중구 초동에 현대자동차공업사를,47년에는 현대건설 모태인 현대토건을 세우며 사업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손대는 일마다 성공했다.그에게 ‘두려움’이란 존재하지 않았다.머리 속은 ‘도전’ ‘성공’이란 단어들로만 가득찼다.반세기에 걸친 ‘현대 역사’의 시발점이었다.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잠깐 부산으로 피란 길에 올랐던 그는 전쟁이 끝나자마자 복구사업에 뛰어든다.단일 공사로는최대였던 한강 인도교 복구공사를 맡아 일약 대형 건설업체로 부상한 것도 57년이다.62년부터 본격 추진된 경제개발계획때는 한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65년에는 태국의 파타니 나라와소 고속도로공사를 따내면서 국내 최초로 해외에 진출하는 개가를 올렸다.68년엔 박정희(朴正熙)전 대통령의 요청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사업을 성공리에 마친다.세계 최단 시간 완공이라는 기록까지남긴 이 공사는 ‘정주영’을 불세출의 인물로 각인시킨대역사였다. 70년대 후반은 중동 붐을 타고 대규모 건설공사를 수주,현대를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시키는 또 다른 계기가 됐다. 사업 절정기는 80년대.76년 최초의 국산 모델 ‘포니’승용차를 만들어 미국 수출 길을 닦았다.86년에는 포니의 후속 모델인 엑셀이 미국 수입시장 소형차 판매 1위를 차지,‘엑셀신화’를 만들어냈다.엑셀신화는 후속 모델인 엑센트,베르나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결단의 승부사 그의 ‘신화 창조’는 초인적 의지와 도전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그의 삶은 위기와 시련의 연속이었지만 그때마다 특유의 뚝심으로 승부를 걸었다.결과는 늘 적중했다. 고비때마다 결단은 더욱 빛났다.한국전쟁 당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한겨울에 유엔군 묘지에잔디를 깔라는 미군측 요청에 보리밭을 떠다가 푸른 잔디로 바꿔 현대건설이 미군 공사를 독점한 일화는 두고두고회자된다.조선소 도크도 없이 5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내밀어 영국에서 조선소 건설 차관을 따낸 일,일본나고야를 제치고 서울올림픽을 유치한 일은 아마도 그가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1984년 2월 서해안 서산 간척지의 물막이공사는 정주영의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준 사례다.양쪽에서 쌓아온 방조제의 끝 사이를 막아 조류를 차단하는 당시 공사는 유속이너무 빨라 난공사 중 난공사였다.정주영은 때마침 외국에서 들여온 고물 유조선 한 척을 활용하는 ‘기발한 발상’으로 물막이공사를 완벽하게 해낸다.후일 ‘정주영공법’으로 불렸을 정도다. 그런 그에게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다.92년 통일국민당을 창당,대통령에 출마해 떨어진다.대가는 비쌌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쓰라린 실패로 기록된 이 사건으로 그는 현대그룹 일선에서 물러났고,건강도 극도로 악화되는이중고(二重苦)를 겪어야 했다. 회사도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문민정부 5년간 각종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일 욕심은 물론 명예욕도 컸던 그가재벌의 정치 참여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을 계산하지 못해무리수를 둔 결과였다. ■마지막 불꽃,대북사업 금강산에 가졌던 그의 애착은 남달랐다.그에게 통천에서 가까운 금강산은 바로 고향이었다. 98년 6월 ‘소떼 방북’을 추진하면서 “아버님의 소판돈 70전을 갖고 집을 나선 뒤 긴 세월 동안 저는 묵묵히일하는 소를 ‘성실과 부지런함의 상징’으로 삼고 인생을걸어왔습니다. 이제 그 빚을 갚기 위해 한 마리의 소가 1,000마리가 되어 꿈에 그리던 고향산천을 찾아갑니다”라며벅찬 감회를 표현했다. 발이 부르트도록 방북 길에 올랐던 그의 노력은 헛되지않았다.‘3부자 동반 퇴진’과 함께 대북 총수 자리를 아들 정몽헌(鄭夢憲)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에게 물려줬지만대북사업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금강산 관광에 이어 개성공단을 따낸 것도 성과 중의하나다. 지난해 6월28일에는 막걸리를 싣고 방북,김 위원장이 지방 순시 중인 원산까지 날아가 대북경협을 담판짓는 지칠줄 모르는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주병철기자 bcjoo@. * 자식들엔 엄격 손주들엔 자상. 아버지 정주영은 자식들에겐 매우 엄격했다.잘못을 저지른 아들에겐 용서를 허락하지 않았다.아들들은 아버지 앞에서는 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고 고백하곤 했다. 92년 총선 전후까지만 해도 자식들을 한데 모아 아침을같이 먹고 계동사옥으로 출근할 정도로 가부장적인 면을지니고 있었다.자식들과는 달리 손자·손녀들에게는 정이많은 할아버지였다.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손자·손녀들을 자주 찾곤 했다. 이렇듯 위세당당하던 그도 나이는 이기지 못했다.말년에몽구(MK)와 몽헌(MH) 두 아들이 싸우면서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데 몹시 속상해 했다고 한다. 일 벌레로 비쳐진 그에게도 멋진 풍류가 있었다.‘아침이슬’을 곧잘 불러댔고,한번 마이크를 잡으면 ‘가는 세월’ ‘고향의 봄’ ‘고향무정’ 등 3∼4곡을 불러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노래를 좋아했다.시간이 날 때면 작가와화가를 만나 문학과 예술을 논하는 면도 있었다. 외지와의 회견에선 “120살까지 살겠다”고 장담했던 정주영.그러나 그도 불로초를 구할 수는 없었다.매순간 승부로 파란만장한 생을 살았던 대사업가 정주영은 이승에 ‘왕(王)회장’이란 이름 석자를 남기고 끝내 이 세상을 떴다.사업가로 첫 발을 내디딘 지 63년,47년 현대건설 전신인 현대토건을 설립한 지 꼭 54년 만의 일이다. 손성진기자 sonsj@
  • [이사람] 판문점 JSA 근무 홍승표 병장

    판문점 가는 길에는 아직도 잔설이 흩날린다. 3월의 꽃샘추위로 판문점의 아침은 쌀쌀하다. 그러나 콧등을 스치는 한낮의 바람에는 이미 봄의 향기가 배어 있다.양지바른 산자락에는 긴 겨울의 추위를 견뎌낸 봄의 생명력이 꿈틀거린다.분단의 땅에도 봄은 오고 있다. 그러나 판문점의 봄은 슬프다. 판문점을 무겁게 누르고 있는 분단의 아픔과 불안한 긴장감으로 봄의 환희 조차도 슬픈 절망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판문점의 병사는 그래도 봄을 기다린다. 찬란한 환희와 화해의 봄을…. 판문점의 봄을 기다리는 홍승표 병장(24).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 근무하는 홍 병장은 남과 북의 첨예한 대치 현장 한가운데 서 있다. 그러나 그는 남북의 병사도 웃으며 악수할 수 있는 ‘화해의 봄날’을 꿈꾸고 있다.그날이 언제일지는 알 수 없지만…. 판문점은 남북 대결의 최전방.과거에는 너무나 먼 딴 세상처럼 여겨졌었다.그러나 활발한 남북교류로 시나브로 가까운곳으로 다가오고 있다.많은 관광객들도 찾아 온다.판문점의 풍경도 많이 친근해졌다.최근에는영화 ‘공동경비구역(JSA)’이 크게 히트하며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영화에는 한국군이북한 초소로 넘어가 함께 어울려 놀며 동포애를 보여주는 장면도 있다.정말 그럴 수 있을까.그러나 판문점 병사에게 그런 낭만과 휴머니즘은 없다. 홍 병장은 그 영화에 불만이 많다.“판문점의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이야깁니다.북한군 초소로 넘어가 함께 어울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영화에서는 북한군으로 나오는 송강호가 한국병사 이병헌을 포옹하며 “따뜻하구만”이라고 말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차가운 대치와 긴장만 있을 뿐이다. 홍 병장은 오늘도 실탄이 장전된 권총을 차고 경계를 선다. 그의 부릅뜬 눈은 언제나 북쪽을 응시 하고 있다.살풍경한판문점의 긴박한 상황은 사람을 바꾸어 놓는다.“판문점에서는 누구나 애국자가 되죠.긴박한 상황은 조국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나라를 헐뜯고 쓸데없이 비판만 하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납니다.그런 사람들을 붙잡고 판문점 관광을 다녀오라고 말하고 싶어요”라고 홍 병장은말한다. 그는 판문점에 오기 전까지는 조국이라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서울에 있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보통의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자랐다.아주대학 3학년1학기(행정학과)를 마치고 입대할 때까지는 그저 평범한 학생이었다.그러나 2년간의 판문점 생활을 통해 새로운 인간형으로 바뀌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홍 병장은 정신적 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강건해졌다.딱 벌어진 어깨.잘 발달한 근육.그에겐 힘과 젊음이 넘친다.“군에 오기 전에는 184cm 키에 어울리지 않게 몸무게가 60kg을 조금 넘었습니다.그러나 지금은 76kg이죠.고된 훈련과 경계근무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미래의 삶에 대한자신감이 생겼습니다.판문점 생활은 저를 강하게 만들었습니다.”1999년 5월 판문점에 온 그는 5월24일 제대한다. 판문점 병사들은 5일간씩 ▲판문점 경계 ▲올렛 GP 근무 ▲교육 훈련 ▲비상대기 ▲정비 등의 순환근무를 반복한다.판문점의 24시는 빈틈이 없다.병사들은 경계근무,비무장지대수색·정찰,훈련으로 늘 긴장 속에 생활한다.판문점 경비대대 병력은 500여명.한국군 60%와 미군 40%로 구성돼 있다. 한국 병사들은 판문점 근무를 명예롭게 생각한다.“조국의최전방이라는 가장 중요한 곳에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생각합니다”라고 홍 병장은 말한다.판문점에 근무하는 한국군은 전문대나 대학 2학년을 마친 논산 훈련소 훈련병 중에서 선발한다.키 178cm 이상의 신체 건강한 훈련병으로 부모가 모두 있어야 한다.집안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고 사상적으로 문제가 없어야 한다.그들은 엘리트 병사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남북 병사가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경계서는 모습을 우리는 TV에서 흔히 본다.그러나 늘 경계를 서는 것은아니다.판문점에서 회담이 있거나 관광객 등 방문객이 올 때만 경계를 선다.회담이 열리면 남과 북이 모두 경계를 선다. 그러나 회담이 없을 때는 상황에 따라 경계의 형태가 달라진다.우리쪽에서 사람이 오면 우리쪽만 경계를 서고 북한쪽에서 사람이 오면 북한군만 경계를 선다.그런데 흥미로운 현상이 있다.우리쪽과 북한군이 모두 북쪽을 보며경계를 서는것이다.북한군은 판문점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남한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감시하기 위해 북쪽을 보며 경계를 선다. 경계를 서는 홍 병장의 마음 한구석에는 가끔 비애의 감정이 낯익은 손님처럼 찾아온다.분단의 비극을 가장 가까이에서 피부로 느껴야 하는 슬픈 현실 때문이다.북한 사람들에겐 동포애를 느낀다고 그는 말한다.그러나 북한 사람들을 같은 민족으로 생각하는 것과 한국 군인으로서 북한군과 대치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로 생각한다.“북한군은 그저 적일뿐입니다.그들에 대한 동포애는 없습니다.” 판문점은 지난해 김대중 대통령의 북한 방문이후 활발한 남북교류의 길목이 되고 있다.그러나 판문점에 있는 남북병사들에는 여전히 ‘냉전의 고도’로 남아 있다.“남북 화해의움직임이 빨라지고 있지만 판문점에 있는 북한군인들에겐 조금의 변화도 없습니다”라고 홍 병장은 말한다.이데올로기와 체제의 차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같은 민족을 적으로 갈라놓을까.그러나 첨예한 이데올로기 대립 시대는 역사의 어둠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그러한 시대적 흐름은 홍병장에게도 희망이다.그는 말한다.“판문점이 남과 북의 군인들에게도 화해의 길목이 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그때 판문점을 다시 찾아오고 싶습니다.”판문점 이창순편집위원 cslee@. * 판문점의 어제와 오늘. 판문점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역사의 현장.남북 분단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서울 북방 약 60km 평양 남방 약 180km에 있다.개성에서는 10km 정도.판문점은 보통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유엔군과 북한군이 공동관리하는 공동경비구역(Joint Security Area)을 말한다.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동서 800m 남북 400m의 타원형 지역이다. 공동경비구역 군사분계선상에는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과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일직장교 휴게실 등 5동의 건물이 있다.남쪽에는 남북회담을 하는 평화의 집과 연락사무국이있는 자유의 집이 있고 북쪽에는 판문각·통일각 등이 있다. 건물과 초소 등에는 감시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판문점은 외국인과 한국인 관광객 모두에게 개방돼 있다.그러나한국인들은 단체 관광만 허용되며 미리 당국의 허락을받아야 한다.관광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주일에 5일간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가능하다.관광시간은 1시간 정도.보통 하루에 500여명의 관광객들이 찾아온다.지난해 관광객수는 10만여명.외국인과 한국인이 반반정도다.외국인중에는일본인들이 많다.안내는 군인들이 맡는다.이동은 버스 등 차량을 이용한다.공동경비구역 바로 옆에 식당과 관광상품을파는 상점이 있다.
  • [기고] 잊혀진 이상향 ‘힌드 나가르’

    “‘힌드 나가르’(Hind Nagar)를 찾아라” 인도의 힌두어로 ‘힌두인의 이상향’이라는 뜻을 가진 이것은 불과 47년전한반도의 허리 장단벌 비무장지대에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사라진 도시의 이름이다. 인구 3만명.10여개국 젊은 군인들이 7개월간 형체도 없는‘이데올로기’라는 괴물과 혈투를 벌인 곳이다.2만3,000명의 6·25전쟁 송환거부 포로들과 그들의 관리를 위해 파견된6,000명의 인도군관리부대(CFI),중립국송환위원회(NNRC)위원국인 인도·스웨덴·스위스·체코·폴란드의 대표단,정전당사국으로 옵서버 자격인 미국·한국·중국·북한 대표들이그 시민들이다. 휴전협정때까지 자국 송환을 거부한 포로들은 중공군이 1만4,702명으로 가장 많았다.다음은 북한군 7,890명,한국군 335명,미군 23명,영국군 1명이었다.이들에게 다시 한 번 진정한의사를 물어보고 귀향을 설득해 보자는 유엔군측의 인도적인 처사에서 남북한 전역에 흩어져 있던 포로들을 한자리에모았고,그 관리를 맡은 인도군에 의해 도시 이름이 붙여진것이다. 유엔군(주로 미군)이 막대한비용을 들여 건설한 이 텐트도시는 장단역과 판문점 사이의 통정리·송곡리·팔산리에 걸쳐 전체 면적은 7.9㎢로 포로막사·인도군막사·설득장의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포로막사는 500명을 수용하는 컴파운드(compound)와 8∼10개의 컴파운드가 모여서 된 엔클로저(enclosure)로 구분돼,전체는 7개의 엔클로저로 구성되었다.컴파운드와 컴파운드,엔클로저와 엔클로저 사이에는 철책과 완충지대,그리고 높은 감시망루들이 세워졌다. 한개의 컴파운드는 가로세로 10m×5m 크기로 30명씩 수용하는 텐트 17개와 취사장 텐트,목욕탕 텐트,운동장으로 구성됐다. 각 텐트는 지상 20㎝ 높이에 나무 침상을 깔았고 난방시설에전기와 온수도 공급되었다.미군을 기준으로 한 가히 호텔급이었다.설득장은 16개의 설득텐트와,250명과 25명을 수용할수 있는 대소형 대기텐트로 돼 있었다. 3만명의 시민을 먹여살리기 위한 각종 부대시설도 많았다. 식수공급을 위해 50만 갤런의 주탱크와 3,000 갤런의 보조탱크,임진강물을 끌어오기 위한 31㎞의 수도관도 설치되었다. 전력공급을 위해 12개 발전소에서 24대의 발전기가 가동되었다.식품 피복 등의 공급을 위해 장단역에서 직접 철길이 연결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중앙공급창고가 건설되었다. 마지막까지 귀향을 포기하고 제3국을 택한 포로는 북한군 86명,한국군 2명으로 모두 88명.그들은 6·25전쟁의 마지막포로로 1954년 2월23일 인도군을 철수시키는 유엔군 함정을타고 인천항을 떠났다.6·25전쟁의 실질적인 종결인 셈이다. 그 47주년인 요즘 경의선 복원공사가 한창이다.구 장단역근처의 벌판에는 아직도 이 ‘힌드 나가르’의 잔해가 남아있을는지 모른다. 불과 47년이 흘렀고 그 거대한 규모를 생각할 때 많은 잔해들이 그대로 있지 않을까.경의선 복원과 함께 이 도시의 일부만이라도 복원해야 한다.그래서 우리 민족이 그토록 피흘리며 싸워야 했던 ‘이데올로기’의 실체를 밝히는 교육의장으로 삼아야 한다.이는 남과 북이 함께 해야 할 과제다. ■라 윤 도 건양대교수·국제정치학
  • 이고르 이바노프 러외무 UN 군축회의 연설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망(NMD)계획에 반대해온 러시아의 이고르 이바노프 외무장관은 지난 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UN 군축회의에 참석, 항구적인 평화를 위해 핵비확산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군축 노력을 호소했다.다음은 연설요지. 세계화 시대,지구촌이 당면한 복잡다기한 도전들은 각국이확보하고 있는 과학기술과 경제적,지적 역량을 모아 이성적으로 활용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즉 21세기에는 강력한 경제·군사 대국이 독단적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해서는안된다.이런 시도는 지구촌 미래를 어둡게 할 뿐이다. 이같은 원칙은 군축 분야에서 강력하게 입증되고 있다.다자간 외교 시대에 UN은 활동적이고 의미있는 역할을 해왔다.미국과 러시아가 체결한 전략무기 감축협정도 유엔의 권위하에가능한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유엔군축회의의 역량은 소진된것이 아니다. 유엔군축회의는 통합적이고 다양한 접근방식으로 역량을 확대하고 있다.군축은 군사 강대국이나 핵보유국들의 모임이나 이들이 내세우는 핵우위 논리에 의해 해결될수 없다.러시아 정부는 전세계와 지역의 안보 강화를 위해 행동할준비가 되어있고 구체적인 조치도 밟고 있다.지난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신 국가안보 및 외교정책 개념을 발표했다.군비통제 및 감축에서 기존에 체결된 모든 조약과 협정을 엄격히 준수할 것,그리고 좀 더 포괄적이고 전략적인 안정을 위해 새협정 체결에도 적극적인 노력을 해나가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지난해 2단계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2)을 비준했고미국과 3단계 전략무기감축 협상에 들어갈 준비가 돼있다. 전략핵탄두수를 미·러가 약속한 2000∼2500기 수준보다 더낮은 1,500기 수준으로 감축할 것도 고려하고 있다. 러시아가 강조하는 지구촌 안정 원칙은 지난 72년 미·러가체결한 탄도탄요격미사일(ABM)협정준수다.ABM과 배치되는 NMD와 관련,부시 신행정부와 러시아간 실질적이고 적극적인대화가 최대한 빠른 시일안에 재개돼야할 것이다. NMD와 관련,로마 철학자 세네카의 “어떤 처방약은 질병 그자체보다 위험하다”는 명언을 언급하고자 한다.NMD의 대안으로 러시아는건설적이며 포괄적인 다른 조치들을 제안한다. 미국과 러시아가 공동 설립한 미사일발사정보교환센터,미사일 및 미사일 기술의 확산방지를 위한 국제통제시스템의 창설 등이 그것이다. 동시에 유엔군축기구내 산하기구를 둘 것도 제안한다.핵무기 제조 목적의 핵원료 생산 금지 조약을 추진할 특별위원회의 재설치가 그것이다. 러시아 연방은 유엔군축회의가 국제질서 안정에 기여한 역할을 높이 평가하고 국제기구의 권위와 효율성을 제고하는데 꾸준히 힘을 쏟을 것이다
  • 2001 길섶에서/ 그들이 그은 금

    휴전선은 6·25동란의 결과다.휴전 협상 현장에는 유엔군,인민군,‘중공’의용군 대표들이 앉고 국군의 자리는 없었다.휴전선의 원형은삼팔선이다.제2차세계대전의 부분인 태평양전쟁의 산물이었다.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하여 미국군과 소련군이 진주한다.일본을 내몰고 들어온 또 다른 외세였다. 러일전쟁 때도 조선 분할이 거론됐다.북위 39도선으로 잘라 나눠먹자는 것이었다.그런데,아프리카 남쪽 끝을 돌아 동해까지 오느라고지쳐 빠진 발틱 함대가 일본해군에 박살나는 바람에 일본은 조선을통째로 먹는다. 우리 땅을 놓고 외세가 찧고 까분 일은 훨씬 전에도 있었다.임진왜란 때 전쟁이 길어지자 왜(倭)도 명(明)도 지쳐서 그만 빠지고 싶었다.심유경(沈惟敬)이란 명나라 건달이 강화 교섭을 한답시고 양측을왕래하면서 농간을 부렸는데,왜에 조선 3도(道)를 떼어 주겠다고 사기쳤다가 들통났다. 정신차리지 않으면 외세가 우리 머리를 타고 넘으며 별 짓을 다한다.역사의 가르침이다. 박강문 논설위원
  • 현대 ‘금강산 수지맞추기’ 진땀

    현대가 금강산 관광사업의 수지타산을 맞추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도 북측에 관광대가(1,200만달러)를 지급하느라 곤혹을 치렀는데,사정이 딱하기는 이번달도 마찬가지다. 현대측은 지난 9일 철회했던 금강산 관광사업 내용변경 승인신청을지난 13일 통일부에 다시 냈다.통일부와 협의과정에서 미국 일본 등의 관광전문가들이 “금강산지역에 외국인을 위한 오락시설이 없다”고 지적한 점을 보충 설명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이 이달 말쯤 방북,관광대가 삭감이나 연기를 요청할 계획이다.이 자리에서 북한측이 현대와 약속하고 지키지 않는 금강산관광지역내의 자유통행보장 등 합의서 내용의 즉각 이행도 촉구할 것으로 알려진다. 금강산 관광사업과 관련된 운영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남북경협기금을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연간 3,000억원의 남북경협기금 용도가 중소기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이 기금의 일부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정부측에 요청키로 했다.관계당국은 남북경협기금을 현대에 지원할 경우 계속 지원해야 한다는 점때문에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는 특히 북한측이 이산가족 면회소를 금강산지역으로 정하기를원하고 있는 점을 감안,정부측이 ‘금강산지역을 이산가족상봉장소’로 정해 줄 것을 내심 바라고 있다.북한이 유엔군관할인 판문점을 원치 않고 있어 ‘금강산면회소’가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주병철기자 bcjoo@
  • 30년전 외교비화 햇빛 본다

    내년 1월이면 70년 미국 의회에서 논란이 됐던 주한미군 감축문제와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에서 협의한 내용 등 30년전 외교비화가 상세히 공개된다. 외교통상부는 다음달 15일 ‘외교문서 공개심의회’를 열고 70년 작성된 외교문서 공개 여부를 결정,내년 1월 말쯤 공개할 계획이다. 공개 대상에 오른 문서는 무려 10만여쪽.문서 가운데는 제25차 유엔총회에서 공산국가들이 제출한 주한 유엔군 철수결의안을 부결시킨 사건,주한미군 감축문제로 최규하(崔圭夏) 당시 외무부장관과 로저스미 국무장관이 가진 회담 등이 포함돼 있다.외교통상부는 매년 초 공개 대상 문서를 수집,정리하고 이를 예비 심사와 해당 부서의 검토를거친 뒤 ‘외교문서 공개 심의회’를 열어 공개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홍원상기자
  • [대한시론] 평화보장체제는 신중하게

    지난달 워싱턴을 방문한 북한 조명록 특사와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무장관의 회담에서 북·미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조치로서 지금의 정전협정을 평화보장 체제로 전환해 6·25전쟁을 종식하는 데합의하고,그러기 위해서는 4자회담과 같은 여러가지 방도가 있다는데 견해를 같이했다.이러한 북·미간 합의는 그간 쌍방이 반세기 이상 지속해온 군사적 적대관계 청산과 함께 한반도 냉전구조의 해체를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같은 북·미관계의 긍정적 변화로 우리에게는 평화보장 체제의 구축이 현실 과제로 떠오르게 됐으며,통일관련 연구단체들은 이와 관련한 ‘포럼’‘토론회’ 등을 활발히 전개하는 실정이다. 그간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방도로 북한은 1984년 1월 ‘3자회담’ 즉 북·미 간에는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남북간에는 불가침을 선언한다는 방식을 제안한 바 있다.그후 96년 4월 한·미 제주도정상회담에서는 남·북·미·중이 참여하는 4자회담을 공동 제안했는데 이를 북한이 수용함으로써 지난해 8월까지 6차에 걸치는 본회담이진행됐다.그러나 결실을 보지 못한 채 중단되고 말았다. 4자회담에서 쟁점으로 부각된 것은 평화협정 체결의 당사자 문제로알려져 있다.남북이 협정 당사자가 되고 미·중이 이를 보장한다는한국과 미국측의 주장과 북·미간에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북측의 상반된 입장이 대립해 끝내 합의를 보지 못했다.북측 주장은 미국은 정전협정의 법적 당사자이며 평화보장의 실질적 당사자라는 것이다.그리고 남한의 작전통제권을 미군이 장악했기 때문에 평화협정체결의 당사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최근 김대중 대통령은 4자회담 개최에 관해 몇차례 의견제시를 한 바 있으며 북한 당국도 이에관한 검토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11월초 평양을 방문한 중국 양원창 외교부부장은 백남순 외무상 등과 회동한 자리에서 이같은 북한 입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또 지난 15일 브루나이를 방문한 중국 탕자쉬안 외교부장은 일본‘교도통신’과의 회견에서 한반도 정세에 관해 “작년 8월 중단된 4자회담을 조속히 개최하고 그틀 안에서 김대통령의 제안을 검토하는것이 바람직하다…김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여 4자회담을 재개하는것은 하나의 방책”이라고 했으며,올브라이트 장관과의 회담에서도 4자회담에 관해 협의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지난 10월의 북·미간 공동성명과 남한·중국의 4자회담에관한 적극적인 입장표명 등을 감안할 때 앞으로 4자회담 개최 전망이밝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런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는 몇가지신중한 연구와 검토가 있어야 하겠다. 먼저 지적할 것은 접근방식의문제다.이에는 ‘분리’와‘동시해결’이라는 두 가지 방식을 예상할수 있다. 그것은 남·북 또는 북·미간에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이를관련국들이 보장하는 방식,남과 북 그리고 관련국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해 협정과 보장을 동시에 해결하는 방식 등일 것이다. 최근 거론되는 4자회담은 후자 방식의 하나다.이 방식들에서 우리는자주적 통일과 자주권 확보라는 민족사적 요구 차원에서 보다 냉철하고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그리고 이러한 선택도 중요하지만 당사자들의 평화에 대한 강한 의지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다음으로는 종전방식의 하나로 평화협정체결 대신 국교수립·공동선언 등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방식이 원용될 수 있다는 점을고려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한반도의 경우 6·25전쟁이 국가간 전쟁이아니며 또한 정전협정의 당사자 일방이 유엔군으로 돼 있기 때문에더욱 그러하다. 끝으로 남과 북은 국가간 관계가 아니며 6·25공동선언에 따라 화해와 협력·통일의 길에 들어섰고,한반도 평화보장의 주체가 우리 민족과 우리의 방위력이라는 점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보장 체제에서 외세를 되도록 배제하는 방도를모색해야 한다. 우리 근현대사의 쓰라린 역사적 경험이 이 점을 더욱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김남식 경실련 통일협회 고문
  • 국방부 “DMZ지뢰 내년초 제거 제의”

    국방부는 “오는 22∼23일쯤 열릴 예정인 제1차 남북한 군사실무회담에서 비무장지대(DMZ) 지뢰제거 및 철도와 도로연결공사의 구체적인 일정과 계획을 상호 확인하게 되며 지뢰제거 작업은 내년초 남북한이 동시에 시작하도록 북측과 합의를 유도하겠다”고 19일 밝혔다. 남북한 군 사이의 첫번째 실천적 사업인 이번 실무회담에서는 유엔군사령부로부터 이양받은 남북 공동관리구역의 범위를 설정하는 문제는 물론 DMZ내 공사를 추진하기 위한 양측 공사 인원,장비,기재들의안전보장 문제를 포함한 제반 군사적 보장 대책도 논의될 예정이다. 국방부는 그러나 정부 관계부처와의 의견 조율 등을 고려,21일 연락장교간 접촉을 먼저 갖고 정식회담은 오는 22일 또는 23일 여는 방안을 20일 북측에 수정 제의키로 했다. 노주석기자 joo@
  • 남북장성급회담 합의서 서명

    경의선 철도와 문산∼개성간 도로가 개설되는 비무장지대(DMZ) 안‘남북관리구역’에서 우발적인 군사충돌이 일어나더라도 유엔군사령부의 관여 없이 남북 군 당국이 직접 협의,처리하게 된다. 북한과 유엔군사령부는 17일 오후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에서 지난해 9월 이후 중단됐던 장성급 회담을 14개월 만에 재개,이같은 내용을 담은 합의서에 서명했다. 유엔사가 남측 DMZ을 관할·관리하는 정전협정 틀은 유지하되 관리구역 안에서의 지뢰제거,역사(驛舍) 설치를 위한 경비병력·자재투입등 남북간의 직접적인 인적·물적교류가 가능해졌음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경의선 철도연결과 도로개설에 따른 군사적 문제를 협의키 위한 남북 군사 실무접촉이 이달중 열릴 것으로 보인다. 합의서에는 북한군 판문점 대표부 박림수 대리대표(대좌)와 유엔군사령부 마이클 던 부참모장(미 공군소장)이 서명했다. 노주석기자 joo@
  • 경의선 철도·문산~개성간 도로 DMZ관할권 南에 이양

    경의선 철도와 문산∼개성간 도로가 통과하는 비무장지대(DMZ) 안남북관할구역 관리권이 유엔사·북측에서 남측으로 넘어온다.이에 따라 경의선 공사와 도로개설 협의를 위한 남북 군사 실무접촉 등이 이르면 이달부터 진행될 전망이다. 북한군 판문점 대표부 책임연락관 곽철희 상좌와 유엔군사령부 마틴 글래서 미 육군대령은 16일 오전 10시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에서 비서장급 접촉을 갖고 DMZ 남북관할구역 관리권(Administration)을 남측에 넘긴다는 데 합의했다.북측은 지난 15일 전화 통지문을 통해 지난 6일 ‘관할권(Jurisdiction) 이양 대신 행정적인 관리권을 남측에 넘겨줄 수 있다’는 유엔사측 제의에 동의한다며 이날 이문제를 협의하자는 뜻을 전해왔다. 노주석기자 joo@
  • DMZ권한 위임문제 논의

    유엔군사령부는 6일 오전 10시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에서북한군 판문점 대표부와 비서장급 접촉을 갖고 경의선 철도 및 도로가 통과하는 비무장지대(DMZ)내 권한을 한국측에 위임하는 문제 등에대해 논의했다. 유엔사측은 이날 경의선 철도와 도로가 관통하는 DMZ에 관한 협상권을 한국 국방부에 위임한 만큼 북측이 이에 대한 세부 방안을 논의할남북한 군사 실무접촉에 조속히 응해주도록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경의선 철도 및 도로 개설에 따른 유엔사측의 DMZ 협상권한 위임에 대한 확실한 담보를 받자는 북측의 요구에 따라 접촉이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노주석기자 joo@
  • 金대통령 “남한배제 평화협정 있을수 없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31일 “평화협정은 전쟁 당사자가 동의하고남북한이 주체가 돼야 하므로 어떤 형태로든 우리가 배제되는 평화협정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코리아타임스 창간 50주년 회견에서 북·미간 평화협정 체결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남북이 주체가 되고 미·중이 지원하는 형태의 4자회담에서 평화협정이 체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특히 김대통령은 “1953년 정전협정 당시 미국의 클라크 장군이 서명했으나 유엔군 대표로 했던 것이며 당시 한국은 유엔군의 일원이었으므로 당연히 전쟁 당사자”라면서 “더욱이 영토의 100%를 차지하고 있는 남북한중 하나가 빠진 평화협정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강조했다. 또 김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 이후 평양 재방문 가능성에 대해 “김위원장의 답방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다음을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면서도 “남북관계의 특성상 최고 당국자간대화는 큰 의미를 갖는다”고 말해 재방문 가능성을 시사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베이징은 지금] 中‘한국전 참전50周’자화자찬

    중국 대륙은 지금 한국전쟁 참전 50주년 기념 열기로 뜨겁다.중국의한국전 참전 관련서적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좌담회도 성황을 이뤘으며,중국 언론들도 연일 특집을 내보내고 있다. 중국군은 1950년 10월19일 압록강을 건넌데 이어,25일 한국군 제6사단 2연대와 첫 교전을 벌여 승리를 거두는 등 한국군과 유엔군의 북진을 막아 북한을 구했다는 게 중국의 기본입장이다. 베이징 중심가 시단(西單)거리의 중국 최대 서점 투슈다샤(圖書大厦).1층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위안둥(遠東) 조선전쟁’ 등 한국전관련서적 20여종이 진열돼 있는데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비고있다.18일에는 중국 국제전략학회가 개최한 ‘캉메이위안차오(抗美援朝) 50주년’ 좌담회가 성황리에 열렸다.한국전에 참전한 차이청원(柴成文) 장군은 “‘한국전의 승리’로 제국주의의 바람을 잠재우고중국의 국제적 지위를 향상시켰다”고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중국 언론들도 대서특필하고 있다.인민일보(人民日報)는 한국전 참전을 “중국 인민이 침략에 대항해 국가을 보위하며세계평화를 지키기 위해 벌인 정의의 전쟁”이라고 보도했다.중앙TV방송국(CCTV)에서는 25일부터 한국전 참전 병사들을 만나 당시의 상황을 회고하는 등의 대형 기획특집물 ‘캉메이위안차오’를 방영할 계획이다. 중국에 한국전 참전기념 열기가 뜨거운 것은 19세기 서구 열강에 굴욕을 당한 중국이 사회주의 중국 건국 1년만에 참전,열악한 조건 속에서 미국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을 뿐 아니라,군사력을 한단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보는데 따른 것.그러나 중국군의 참전으로 큰피해를 입은 우리로서는 씁스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한국이 중국과 수교한지 8년이 지났지만 중국은 아직 이에 대한 어떤 입장도 표명한 바 없기 때문이다. 김규환 특파원 kh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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