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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LL수역 축소 검토

    정부가 해상 북방한계선(NLL) 수역에서의 우리 군 작전예규를 현실에 맞게 고치고,작전 범위도 대폭 축소하는 내용의 개선안을 마련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최근 북한상선의 NLL 침범과 월선이 잇따르면서 동해 218마일(백령도 기점),서해 40마일(저진 기점)에 걸쳐동서로 그어져 있는 NLL을 사수하는데 따른 현실적인 문제점을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15일 “지난 53년 유엔군에 의해 일방 선언된 NLL에서의 군 작전예규와 수호범위 등이 그동안한 차례도 수정되지 않고 원용돼 북한상선 침범 등의 상황발생시 여러가지 문제점이 노출됐다”면서 “해군이 현재의 NLL 수역을 전면 사수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라고 밝혔다. 국회 국방위원회도 종합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토록 군 당국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들은 이 경우 NLL을 ▲절대 사수구역 ▲경비구역 ▲공해권 개념 등으로 세분화해 공포하는 방안 등이 고려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군 등 일각에서는 NLL을 세분화할 경우 NLL 수역이 사실상 축소될 우려가있으며,이는 향후 북한 군함은물론 일본,중국 등 주변국의 군사작전 반경을 넓혀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신중론’을 내놓고 있다. 한편 합참은 이날 일본에서 동해 원산항으로 향하던 북한의 소형 화물선 남포호(392t급)가 지난 14일 밤 11시10분쯤 동해 저진항 동쪽 82마일 해상 NLL을 넘어 북상했다고밝혔다.합참은 그러나 “남포호가 통과한 NLL 지점은 우리해군의 작전구역 외곽지역으로 NLL을 침범한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노주석기자 joo@
  • 금강산 육로관광 합의 의미

    10일 금강산 관광사업 활성화 방안에 대한 현대와 북한의합의는 꽉 막힌 남북관계를 푸는데 결정적 전기로 작용할전망이다.정부는 이르면 이달 하순부터 단계적으로 남북대화가 재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육로관광과 군 당국간 회담 육로관광이 실현되려면 도로복원 및 관광객 신변안전보장이 선결 과제다.이를 위해선비무장지대(DMZ)를 관장하는 군과 유엔사,북한군 등 3자간공사방법 및 지뢰제거,차량운행 등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추가 합의가 필수적이다. 현재 남측 구간에서 진행되고 있는 경의선(서울∼신의주)철도와 문산∼개성간 도로개설 공사 규칙에 준해 공사가 이뤄질 전망이다.군 관계자는 “정부가 이번 합의를 지원키로최종 결정하면 관련부처와 유엔군사령부간 실무 협의가 이뤄지게 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육로관광길인 간성∼통일전망대(29.2km),통일전망대∼온정리(13.7km) 구간에 집중배치된 군사시설물이다.서부전선과 달리 동부전선에는 상호 은폐된 군사시설물이 많아 이를 후방으로 재배치하거나 제거해야 하는 다소 복잡한과정이 뒤따른다. 도로복원 비용과 관련,정부는 통일전망대∼온정리간 국도7호선 13.7km의 복원공사를 우리가 맡는다는 원칙 아래 남북협력기금에서 6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밖에 광광객 신변안전을 위해 남북한 당국간 ‘통행합의서’가 체결돼야 한다. ■당국간 회담과 남북대화 통일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이르면 이달 하순 육로관광을 위한 당국간 협상이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우선 실무 차원의 협상이 열릴 전망이다. 정부는 이를 계기로 장관급 회담 등 본격적인 남북대화가재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장관급 회담,군 실무회담 등굵직한 회담들이 뒤를 이을 것이라는 설명이다.한 당국자는“북측도 북·미 협상을 의식,남북대화 재개에 긍정적인것으로 보인다”며 육로관광 협상을 시작으로 8·15 광복절때까지 남북대화가 이어질 것으로 점쳤다. 남북대화 재개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답방으로직결될지는 미지수다.정부는 조속한 답방을 기대하면서도전망에는 극히 조심스럽다.다른 당국자는 “김 위원장 답방은 북측의 최대 카드인 만큼 북·미대화 전개상황 등 큰 틀에서 검토될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노주석 진경호기자 joo@. *금강산관광 수익성확보 '발판'. 좌초위기에 몰렸던 금강산 관광사업이 일단 정상화의 길로들어섰다.터무니없이 비싼 관광대가를 현실화하고,수익성이담보되는 육로관광의 길을 뚫게 됐다. 북한과의 일괄타결로 이 사업은 ‘무모한 퍼주기 사업’에서 ‘수익성 있는 경제사업’으로 일대 전환을 꾀할 수 있는계기를 마련했다.그동안 들끓었던 금강산 관광사업에 대한부정적인 여론도 잠재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육로관광,효자될까 관광객 유치의 최대 호재(好材)임은 분명하다.육로를 이용할 경우 편리성과 비용면에서 뱃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장점이 많다.특히 금강산 일일관광코스개발과 함께 ‘설악산관광’을 잇는 연계관광도 가능해 수익성을 담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아산측은 설악산 관광객이 연간 1,000만명에 달하는 점을 감안할 때 육로관광이시행되면 첫 해에 적어도 45만명의 관광객 유치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이를 통해 500억원 이상의 이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이를 위해 초·중·고교생의 수학여행,실향민·공무원들의 휴가코스 등을 정부에 건의할 예정이다. ■경제특구 지정도 큰 도움될 듯 외국인의 관광 및 투자가활성화돼 금강산은 관광외에 무역·상업·금융·문화 등 종합적인 경제중심지로 발돋움할 가능성이 크다. ■과제도 많다 당장 미지급금 2,200만달러의 지급 여부다.정부는 이달 중 북에 미지급금을 지급하는 것이 향후 육로관광을 위한 당국간 협상에 주요 관건이라고 보고 이달 중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해법을 모색한다는 계획이다. 일단 금융기관 대출이나 컨소시엄 구성을 통한 해결방안을검토하고 있다.육로관광 실시와 관광특구 지정으로 금강산관광이 충분한 사업성을 확보한 만큼 금융기관들이 현대아산에 미지급금 2,200만달러를 대출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것으로 보고 있다.한국관광공사를 사업에 참여시켜 미지급금을 우선 변제토록 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관광공사 참여는 향후 민간기업의 컨소시엄 참여와 안정적 사업운영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적극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다만 남북협력기금을 통한 지원에는 여전히 부정적이다.현대아산이 30대그룹 계열사여서 지원대상이 아니고 국민 정서에도 맞지 않는데다 선례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컨소시엄 구성도 만만찮다.삼성·현대자동차 등 일부 기업들은 이미 금강산관광사업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하고 있어 걸림돌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주병철 진경호기자 bcjoo@
  • [사설] NLL개념 재정립할 때

    최근 북한 상선이 우리의 북방한계선(NLL)을 넘은 것이 ‘침범’이냐,‘통과’냐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합동참모본부는 7일 ‘침범’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지나치다는 입장을 밝혔다.합참은 지난 2일 이후 동·서 NLL을 ‘침범’한 북 선박은 지난 3일 서해 연평도 북서방 5마일 지점을통과한 청진2호 1척뿐이라고 밝혔다. 함참의 인식은 동·서해의 NLL 가운데서도 우리 군의 ‘경비구역’에 해당하는 NLL을 넘어가면 ‘침범’이고,그 외곽의 ‘감시구역’을 지나면 그동안에도 남북 민간선박들이 이 지역을 수시로 넘나든 점에 비추어 단순 ‘통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통상 서해 NLL은 한강 하구에서 백령도를 거쳐,다시 백령도 서쪽 42마일까지,동해 NLL은 동해안 저진에서 동쪽으로 218마일까지로 돼 있으나 실제 군 작전권이 미치는 지점은 이보다 훨씬 줄어든 구역이다.사실 NLL은 1953년 8월30일 유엔군사령부(UNC)가 우방국의 함정 및 항공기초계활동의 북방 한계를 규정한 내부 작전규칙으로 해군부대에 시달한 것이며,정전협정상에도 아무런규정이 없다.상대방인 북한에도 통보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그러나 정전체제가 지속되면서 NLL 남쪽 바다는 우리 군이 실효적 지배를 해온 것도 현실이다. 정부와 군은 차제에 실질적으로 경비구역에 포함되는 동·서해상의 NLL의 개념을 재정립하여 국민들에게 대략적이나마 알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이번 북 상선의 NLL 통과를 두고일부에서는 ‘주권 퍼주기’라고까지 비난하고 있는데 이를차단하기 위해서라도 NLL의 정리된 개념을 알려야 할 것이다.또 남북간에는 현재 정전체제가 유지되고는 있으나 작년 남북 정상회담이후 화해·협력 시대로 크게 전환되고 있다.이러한 현실을 감안하여 남북대화의 큰 틀에서 국방장관회담개최를 통해 NLL에 대한 협의를 해야 할 것이다.북한도 대외물자 교류의 활성화를 위해 항로 단축이 요청된다면 상호주의 원칙 아래 남북장관급회담에서 해결점을 찾는 데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 ‘영해침범’ 정부 입장·대책

    통일·외교·국방부 등 정부 외교안보팀은 5일 새벽 북한대홍단호가 영해에서 벗어나고,제주해협으로 향하던 청천강호가 영해를 우회하자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국방부 5일 오전 북한 상선 대홍단호가 근접 기동중인 해군,해경과 충돌없이 제주해협을 통과한 뒤 영해를 이탈하자안도감 속에 북측의 태도 변화를 예의주시했다. 김동신(金東信) 국방장관,조영길(曺永吉) 합참의장 등 군수뇌부는 집무실에서 밤을 지샌 뒤 이날 새벽 작전 관계관들로부터 대홍단호 영해 통과 상황을 보고받았다. 김 장관을 비롯한 합참 주요 지휘관들은 전날 저녁부터 새벽까지 긴급 작전회의를 열고 군사적 조치 등을 논의했다. 그러나 회의 도중 북측의 태도변화가 감지됐고,대홍단호가우리측 요구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무력사용을 자제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날 긴급 작전회의에서는 한때 대홍단호에 대해함포 경고사격은 물론 헬기를 통한 공중강습까지 고려했던것으로 전해졌다.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군은 극한 상황이아니면 사격을 하지 않는다는 작전지침에 따랐지만 최악의시나리오까지 각오했다”며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유엔군 사령부 교전규칙에 따라 항로변경 종용-밀어내기기동-경고 사격-강제 정선(停船)-특수전 요원 투입 등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고려한 다단계 작전계획을 수립했다는것이다. ■통일부 북한 상선의 잇단 영해 통과가 남북관계에 미칠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측에 전달한 임동원(林東源) 통일부장관 명의의 전화통지문과 국방부의 비서장회의 제의에 대한 북측의 반응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남측의 사전통보 요청을 북측이 수용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특히 북측의 태도 변화 이후 정치권 등에서 임장관과 김용순(金容淳) 북한 아·태평화위원장간 물밑 접촉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돌자 “터무니없는 억측”이라고 일축했다. 다른 관계자는 정부의 초기 대응이 미흡했다는 비난여론에대해 “무력으로 대응하면 남북관계가 회복하기 힘든 국면으로 빠져들 수 있다”면서 “다소 미흡해 보이더라도 북측에 사전통보를촉구하고 회담을 통해 제도적 대책을 마련하는 게 순리”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북한 당국이 자국선박에 더 이상 무단침범을 하지 말라고 지시한 점을 주목한다”면서 “이는 북한도 남북관계 악화를 원치 않으며,대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음을 뜻한다”고 말했다. 노주석 진경호 박찬구기자 joo@
  • NLL은 동·서해상에 그은 군사분계선

    북방한계선(NLL;Northern Limit Line)은 내륙으로부터 동해 앞바다 200마일,서해 앞바다 50마일까지 그어진 해상 군사분계선이다. 유엔군과 북한군은 53년 정전협정을 체결하면서 내륙의 군사분계선은 명확히 정했으나 해상 경계선은 긋지 못했다.유엔군사령관은 같은 해 8월 경비활동 등을 목적으로 백령도와 연평도 등 서해 5도를 남한에 귀속시키는 선에서 NLL을 선포했다. 북한은 이후 20년 동안 NLL에 대해 대체로 이의를 달지 않고 한국군은 NLL 남쪽을 실질적으로 관할해 왔다. 북측은 그러나 70년대 들어 12해리 영해가 국제적으로 일반화되자 73년부터 수시로 NLL을 침범하는 등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특히 99년 6월 꽃게잡이 어선 보호를 내세워 북한 경비정 및 어선의 서해 NLL 침범이 일주일 이상 이어지면서 같은달 15일 전쟁 일보 직전의 서해교전까지 벌어졌다. 북한은 이후 같은 해 9월2일 NLL무효화를 선언한 데 이어지난해 3월23일에는 ‘서해 5도 통항질서’를 발표,백령도등 서해 5도 출입은 지정된 수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일방 선포했다. 노주석기자
  • 서울대 박태균교수 “5·16, 미국의 애매한 태도에 성공”

    지난 60년 불과 3,400여명의 군인이 벌인 5·16쿠데타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당시 전체 군의 0.5%에 불과했던 이들이 쿠데타를 일으키게 된 배경에는 미국의 '역할'이 있었다는 분석이 나와 주목된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지역대학원 초빙교수는 계간 ‘역사비평’ 여름호에 기고한 ‘5·16쿠데타와 미국’에서 “쿠데타의 원인과 배경에 대해 많은 글이 발표되었으나 쿠데타의성공요인에 대해 아직 구체적인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쿠데타 성공의 주요변수로 미국의 역할을 지목했다. [3개의 가설] 박교수는 최근 비밀해제된 각종 문서를 토대로 세 개의 가설을 세웠다.제1가설은 미국의 배후조종 여부.당시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수권은 유엔군사령관겸 미8군사령관이 장악하고 있었다.따라서 쿠데타를 위해서는 미국의지원,또는 배후조종이 있어야 했다.이같은 추론은 5·16 이전 미 정보기관의 크레퍼 대령의 ‘장면정부 전복음모’와5·16 나흘전 미국 대통령 직속 ‘한국문제 긴급임무팀’관련 문서에 장면 정부를 대체할 새로운 세력을 고려했다는점 등이 밝혀짐으로써 가능해지고 있다. 특히 미국 정보기관은 유엔군사령관,한국군 육참총장,국무총리 등이 박정희가 주도하는 쿠데타 계획을 사전에 알고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따라서 당연히 화살은 장도영 당시육참총장과 유엔군 또는 미국의 조사기관에게 돌아간다. 제2가설은 ‘유엔군사령관은 쿠데타진압 의사가 있었는가’이다. 매그루더 유엔군사령관과 그린 대리대사는 쿠데타에 부정적이었다.매그루더는 쿠데타 진압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그러나 본국의 지시없이,장면 총리나 윤보선 대통령의지지없이 쿠데타를 진압하는 것이 과연 가능했을지는 의문이다. 당시 제15범죄수사대장 방자명 대령은 미8군사령관 정치고문 캘러헌으로부터 5월18일 워싱턴에서 매그루더에게 ‘관망(wait-and-see) 입장을 취하라’는 훈령이 내려온 사실을들었다. 유엔군사령관을 배제한 채 미국이 쿠데타세력을 지원했을 가능성이 대두된다.제3가설은 워싱턴이 쿠데타진압을 승인했을 가능성이다. 쿠데타가 발생한지 몇시간후 매그루더 유엔군사령관은 쿠데타군의 원대복귀를 명령하고,장면정부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반면 볼즈 국무장관대리는 쿠데타가 발생한지 24시간도 되지않아,즉 유엔군사련관이 쿠데타 진압의지를 갖고 있던 시점에 이미 쿠데타를 성공한 것으로 판단했다. [결론] 박 교수는 “미국이 배후에서 5·16을 지원했거나쿠데타세력과 끈을 갖고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면서도 “미국은 지휘권을 벗어난 군인들에게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고,쿠데타를 진압하려는 자에게 진압기회나 권한을 주지 않음으로써 쿠데타의 성공을 직·간접적으로 도왔다”고 풀이했다.그는 또 “5·16쿠데타의 성공은 미국의 애매한 태도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美·北 평화협정은 잘못 유엔이 대신 맺어야”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국은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어서는 안되며 대신 유엔이 북한과 평화협정을 체결토록 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국의 보수적 연구기관인 헤리티지재단의 래리 워첼 아시아연구소장은 17일 인터넷 홈페이지에 실린 ‘왜 북한은 미국이 아닌 유엔과 평화협정을 맺어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미국이 북한과 평화협정 체결을 고려하고있다”면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이같은 일방적 노력을 중지하고 대신 유엔과 북한간에 평화협정을 체결하도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워첼 소장은 “정전협정에 서명한 마크 클라크 미군 장군은 유엔군 사령관 자격으로 서명했기 때문에 정전협정은북한과 유엔간에 체결된 것이지 미국이 체결한 것은 아니다”라며 미국이 단독으로 북한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는것은 3만7,000여명의 유엔군이 희생된 한국전쟁의 역사를무시하는 편의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북한은 협정을 체결할 때 미국에 경제적 지원을요구할 것이고 협정이 맺어진 뒤에는 미군 철수를 주장할가능성이 커 북·미 평화협정은 결국 북한에만 이득을 주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hay@
  • [씨줄날줄] 유엔총회 의장

    1950년 8월1일 유엔(UN·국제연합)안전보장이사회의 새 의장국이 된 소련의 말리크대표는 회의 첫머리에 “그동안 한국사태에 관해 결정한 모든 것이 무효”라고 선언했다.상임이사국인 소련이 불참했기 때문이라는 논리였다.‘결정’이란,그해 6월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 북한을 침략국으로 규정하고 유엔군을 한반도에 파병하기로 한 일련의 결의를 의미한다.말리크의 억지는 물론 수용되지 않았다. 한국전쟁 초기 소련은 전략적인 실패를 자초했다.상임이사국으로서 안보리 회의에 참석해 반대했더라면 이같은 결정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그런데도 소련은 자유중국(현 대만)의 대표성을 시비하며 7월 말까지 불참하다 8월 의장국 순서가 되어서야 나타난 것이다.소련에는 ‘국제사회가 개입할 틈을 주지 않을 만큼 전쟁을 빨리 끝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결국 소련의 실수는 한반도 적화를 막는 데한몫을 단단히 했다. 우리나라에서 유엔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한 1948년의 12월 유엔은 파리에서 열린 제3차 총회때 한국을 승인해 국제사회 진출의 길을 터주었다.한국전쟁에서는 유엔군을 파병해 울타리 노릇을 했다.이같은 인연에힘입어 우리는 1950년에서 75년까지 국제연합일 (유엔데이)을 공휴일로 지정해 국가적으로 기념했다.1951년 조성한 부산 유엔묘지에는 한국전쟁에서 숨진 11개국 2,000여기의 영령이 안치돼 지금껏 내외국인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현재 학계 일각에서는 한국과 유엔의 관계를 ‘냉전시대의산물’이라 깎아내린다.요즘처럼 남북이 화해 협력의 길로나아가는 시기에는 유엔의 의미가 예전같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그렇더라도 최근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과 관련해 남북이 유엔에서 한목소리를 낸 일에서 보듯 유엔은 여전히 국제무대의 중심이고 ‘선(善)기능’으로 작용한다. 우리나라가 유엔에 가입한 지 10년 만인 올해 유엔총회 의장국을 맡기로 내정돼 후보자를 찾고 있다고 한다.권역별로돌아가면서 맡는 의장직이 올해는 아시아에 돌아왔고, 그간사전조율을 통해 우리 몫으로 결정됐다는 것이다. 1950년말리크에게 온갖 수모를 당한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주는 반가운 소식이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
  • 부산 유엔공원 오늘 한국전 50주년 행사

    한국전쟁 참전 50주년을 기념하는 해외 참전용사들의 각종 행사가 부산지역에서 열린다. 특히 이번 행사에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둘째 아들요크공작(앤드류왕자)이 참석해 눈길을 끈다. UN군 사령부는 20일 오전 11시 부산 남구 대연동 UN기념공원에서 미국과 필리핀 등 외국참전용사 600여명등 1,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전 참전 50주년 기념행사’를 갖는다.이어 이날 오후 2시에는 ‘영연방 4개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한국전 참전 50주년 기념 추모행사’가 앤드루 왕자 등 6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이에 앞서 오전 9시 30분쯤 앤드루왕자와 영연방 참전용사들은 1797년 포비던스호가 한국에 최초로 도착한 부산남구 용당동 신선대에서 기념비 제막과 기념식수 행사를가진다. UN기념공원 관계자는 “매년 4월 하순 영연방 참전용사들이 UN기념공원을 방문했으나 올해는 50주년을 맞아 유엔군 사령부에서 대규모 기념행사를 계획하면서 관계자들의 참석편의 등을 위해 영연방 행사와 같은 날로 행사를 조정,예년의 3배 정도인 1,200여명이 참석하게 됐다”고 밝혔다. 부산 이기철기자 chuli@
  • 이스라엘, 팔기지 맹폭

    [가자시티·라말라 AP AFP 연합] 이스라엘군이 무장 헬리콥터를 동원,3일(현지시각) 밤 팔레스타인의 가자시티와 라파,칸 유니스 등 최소 3개 지역에 로켓 및 미사일 공격을퍼부었다. 최소한 7대의 헬기가 동원된 이번 공습은 이날 오전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의 박격포 공격으로 10개월 된 유아와 아이엄마 등 2명이 중태에 빠진데 대한 보복조치로 이뤄졌다. 이스라엘군의 헬기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경찰관을 포함,팔레스타인인 60여명이 부상했다고 의료진은 전했다. 이스라엘군 대변인 올리비어 라포위츠 중령은 “유아에게박격포 공격을 가한 야만적이고 용서할 수 없는 테러조직에대해 응징하고 있다”면서 “이스라엘을 향한 모든 테러활동이 이번 공격의 대상”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군 당국은무장 헬기를 동원한 공습과 병행해 지상에서도 야간공격이이뤄졌다고 확인했으나 지중해 해상에서의 포격도 있었다는보도는 부인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한 관계자는 그러나 이스라엘이 미제 아파치형 헬기와 미사일 뿐 만 아니라 해군 전함까지 공격에 투입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위험에 처한 팔레스타인들을 지키기 위해 아랍국가와 유엔군의 파견이 시급하다고 호소했다.
  • 우리 해경정 진입 北서 ‘허락’

    합동참모본부는 28일 오후 2시38분쯤 동해 북방한계선(NLL) 2마일 북측해상에서 침몰중이던 캄보디아 선적 상선인선 글로리호(1,800t급) 선원 17명을 해경정이 구조했다고밝혔다. 우리 해경정이 NLL 북측 해상으로 넘어 들어가 조난당한선원을 구조한 것은 처음이다. 선 글로리호는 이날 오후 12시45분 기관고장으로 NLL 북방 3.2마일 해상에서 표류하다 해군 호위함인 충남함(1,900t급)에 긴급 구조를 요청했다. 합참은 오후 1시 57분쯤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를통해 북측에 선박 조난사실 및 구조를 위해 해경정(200t급)을 들여보내겠다고 통보했고,북측은 명확한 의사표시를하지 않은 채 사실상 구조를 허락했다. 이에 따라 합참은 해경정을 NLL 북방 북측해상 2마일 지점까지 접근시켜 선장 김재순씨(46) 등 한국인 3명을 비롯한 선원 17명 전원을 구조했다. 노주석기자 joo@
  • 타계한 경제거목 왕회장 정주영씨/ 청운동 빈소 표정

    서울 종로구 청운동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빈소에는 23일에도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현대측은“이틀 동안 1만5,000여명이 찾았다”고 밝혔다. ◆현대는 북한 조문단이 파견된다는 통보를 받자 한껏 고무된 분위기였다.이들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작업에 착수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였다. 현대 관계자는 “조문단 파견은 정 전 명예회장에 대한최대한의 예우를 갖춘 것으로 해석된다”면서 “이를 계기로 금강산관광사업은 물론 남북관계가 발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다른 관계자는 “조문인 만큼현안인 금강산관광 대가 문제 등은 일체 언급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 회장과의 별도면담이 있지 않겠느냐”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이어 현대아산 김윤규(金潤圭)사장 주재로 이날 오후 실무자급 회의를 소집,최대한의 예우를 갖추기로 방침을 정했다.조문단 마중은 상주가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어 김사장과 김고중(金高中)부사장,윤만준(尹萬俊)전무 등 3명이김포공항으로 나가 청운동의 빈소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수송차량은 현대차의 에쿠스를 이용하기로 했으며,북한측의 요청에 따라 중형차는 별도로 준비했다.이들의 안전을위해 경호는 정부측에 요청해 뒀으며,조문단이 빈소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조문객을 받지 않기로 했다. ◆오전 10시20분쯤 빈소를 찾은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은 분향을 마친 뒤 정몽구(鄭夢九) 현대·기아자동차 회장과 차를 마시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도록 모범을 보이신분”이라고 위로했다. 이어 강영훈(姜英勳) 전 국무총리 등 정·관계 인사와 구자경(具滋暻) LG 명예회장,이기준(李基俊) 서울대 총장 등의 발길이 이어졌다.이건희(李健熙) 삼성 회장은 아들 이재용(李在鎔) 상무보와 함께 찾아 “선견지명과 추진력을가진 분이었는데 5년만 더 사셨다면 우리 경제가 달라졌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유엔군 사령관 겸 주한미군 사령관인 토머스 슈워츠 육군대장도 찾았다.고인과 오랜 교분을 나눴던 구상(具常) 시인은 “57년 고(故) 모윤숙씨집에서 만났는데 촌부 인상이었다”고 회고했다. 예브게니 아파나시예프주한 러시아 대사는 오후 3시25분쯤 방문,푸틴 대통령의 서한을 전달했다.푸틴 대통령은 서한에서 “정 명예회장은 러시아에서도 한·러 관계 발전에다방면으로 기여한 인물로 항상 존경을 받아왔다”고 밝혔다.찰스 험프리 주한 영국 대사와 우다웨이(武大偉) 주한중국 대사도 빈소를 찾았다. ◆빈소에는 조화(弔花) 4,000여개가 들어와 진입로 길가에까지 200여m 정도 늘어섰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훼공판장에서는 한 속(20송이)에 8,000∼9,000원 하던 국화값이 1만1,000원으로 뛰었다.조화에 쓰이는 품종인 ‘을녀’는 22일 548속이 나갔고 23일엔1,608속이 팔렸다. 주병철 박록삼기자 bcjoo@
  • 타계한 경제거목 왕회장 정주영씨/ 일대기

    정주영은 격동의 현대경제사의 산증인이자 역사 그 자체다.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근대화의 거목(巨木)이었고,옛소련과 중국의 경제 교류를 이끌어낸 민간 외교관이었다. 서울올림픽을 유치,성공적으로 치른 체육인이면서 사회사업가이기도 했다.누구도 엄두내지 못했던 ‘소떼 방북’으로 금강산 관광을 이끌어낸 이도 그였다.‘소떼 방북’은지난해 6월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밑거름이 됐다.현대건설의 유동성 위기로 자신의 퇴진 여부가 도마에 올랐던 지난해 5월에는 ‘3부자 동반 퇴진’이라는 승부수를 띄웠던정주영.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그의 자서전 제목만큼이나 그의 인생 역정은 위기와 시련,극복의 연속이었다. ■소년 정주영 1915년 강원도 통천군 아산리의 산골짜기에서 빈농의 장남으로 태어났다.그의 호 아산도 고향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어려서부터 남달리 야심이 많았던 그에게“농사일을 하라”는 부친의 말은 성에 차지 않았다.가난은 야심찬 통천 산골의 소년을 잡아두지 못했다. 신천지를 꿈꾸며 세번씩이나 가출을 시도했던 정주영은 19살때 아버지가 소 팔아 모아 둔 70전을 훔쳐 들고 네번째‘탈출’에 성공, 드넓은 세상으로 나온다.그러나 기다리는 것은 냉엄한 현실뿐.막노동판을 전전하다 다다른 곳이서울 신당동 쌀 가게였다.황소처럼 우직하게 일한 그에게운이 따랐다.그의 성실성에 탄복한 주인이 그에게 쌀 가게를 넘겨줘 일약 점원에서 사장으로 올라앉게 된다.‘경일상회’라는 상호로 자신의 간판을 내단 것은 고향을 떠난지 4년 만의 일이다.보통학교(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인 그에게 ‘안되는 일은 없다’는 불굴의 의지가 생긴 것도 이무렵이다. ■사업은 탄탄대로 40년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에 자동차수리공장인 ‘아도써비스’를 창업하면서 본격적인 사업의길로 들어선다. 이후 46년에는 중구 초동에 현대자동차공업사를,47년에는 현대건설 모태인 현대토건을 세우며 사업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손대는 일마다 성공했다.그에게 ‘두려움’이란 존재하지 않았다.머리 속은 ‘도전’ ‘성공’이란 단어들로만 가득찼다.반세기에 걸친 ‘현대 역사’의 시발점이었다.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잠깐 부산으로 피란 길에 올랐던 그는 전쟁이 끝나자마자 복구사업에 뛰어든다.단일 공사로는최대였던 한강 인도교 복구공사를 맡아 일약 대형 건설업체로 부상한 것도 57년이다.62년부터 본격 추진된 경제개발계획때는 한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65년에는 태국의 파타니 나라와소 고속도로공사를 따내면서 국내 최초로 해외에 진출하는 개가를 올렸다.68년엔 박정희(朴正熙)전 대통령의 요청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사업을 성공리에 마친다.세계 최단 시간 완공이라는 기록까지남긴 이 공사는 ‘정주영’을 불세출의 인물로 각인시킨대역사였다. 70년대 후반은 중동 붐을 타고 대규모 건설공사를 수주,현대를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시키는 또 다른 계기가 됐다. 사업 절정기는 80년대.76년 최초의 국산 모델 ‘포니’승용차를 만들어 미국 수출 길을 닦았다.86년에는 포니의 후속 모델인 엑셀이 미국 수입시장 소형차 판매 1위를 차지,‘엑셀신화’를 만들어냈다.엑셀신화는 후속 모델인 엑센트,베르나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결단의 승부사 그의 ‘신화 창조’는 초인적 의지와 도전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그의 삶은 위기와 시련의 연속이었지만 그때마다 특유의 뚝심으로 승부를 걸었다.결과는 늘 적중했다. 고비때마다 결단은 더욱 빛났다.한국전쟁 당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한겨울에 유엔군 묘지에잔디를 깔라는 미군측 요청에 보리밭을 떠다가 푸른 잔디로 바꿔 현대건설이 미군 공사를 독점한 일화는 두고두고회자된다.조선소 도크도 없이 5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내밀어 영국에서 조선소 건설 차관을 따낸 일,일본나고야를 제치고 서울올림픽을 유치한 일은 아마도 그가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1984년 2월 서해안 서산 간척지의 물막이공사는 정주영의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준 사례다.양쪽에서 쌓아온 방조제의 끝 사이를 막아 조류를 차단하는 당시 공사는 유속이너무 빨라 난공사 중 난공사였다.정주영은 때마침 외국에서 들여온 고물 유조선 한 척을 활용하는 ‘기발한 발상’으로 물막이공사를 완벽하게 해낸다.후일 ‘정주영공법’으로 불렸을 정도다. 그런 그에게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다.92년 통일국민당을 창당,대통령에 출마해 떨어진다.대가는 비쌌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쓰라린 실패로 기록된 이 사건으로 그는 현대그룹 일선에서 물러났고,건강도 극도로 악화되는이중고(二重苦)를 겪어야 했다. 회사도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문민정부 5년간 각종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일 욕심은 물론 명예욕도 컸던 그가재벌의 정치 참여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을 계산하지 못해무리수를 둔 결과였다. ■마지막 불꽃,대북사업 금강산에 가졌던 그의 애착은 남달랐다.그에게 통천에서 가까운 금강산은 바로 고향이었다. 98년 6월 ‘소떼 방북’을 추진하면서 “아버님의 소판돈 70전을 갖고 집을 나선 뒤 긴 세월 동안 저는 묵묵히일하는 소를 ‘성실과 부지런함의 상징’으로 삼고 인생을걸어왔습니다. 이제 그 빚을 갚기 위해 한 마리의 소가 1,000마리가 되어 꿈에 그리던 고향산천을 찾아갑니다”라며벅찬 감회를 표현했다. 발이 부르트도록 방북 길에 올랐던 그의 노력은 헛되지않았다.‘3부자 동반 퇴진’과 함께 대북 총수 자리를 아들 정몽헌(鄭夢憲)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에게 물려줬지만대북사업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금강산 관광에 이어 개성공단을 따낸 것도 성과 중의하나다. 지난해 6월28일에는 막걸리를 싣고 방북,김 위원장이 지방 순시 중인 원산까지 날아가 대북경협을 담판짓는 지칠줄 모르는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주병철기자 bcjoo@. * 자식들엔 엄격 손주들엔 자상. 아버지 정주영은 자식들에겐 매우 엄격했다.잘못을 저지른 아들에겐 용서를 허락하지 않았다.아들들은 아버지 앞에서는 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고 고백하곤 했다. 92년 총선 전후까지만 해도 자식들을 한데 모아 아침을같이 먹고 계동사옥으로 출근할 정도로 가부장적인 면을지니고 있었다.자식들과는 달리 손자·손녀들에게는 정이많은 할아버지였다.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손자·손녀들을 자주 찾곤 했다. 이렇듯 위세당당하던 그도 나이는 이기지 못했다.말년에몽구(MK)와 몽헌(MH) 두 아들이 싸우면서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데 몹시 속상해 했다고 한다. 일 벌레로 비쳐진 그에게도 멋진 풍류가 있었다.‘아침이슬’을 곧잘 불러댔고,한번 마이크를 잡으면 ‘가는 세월’ ‘고향의 봄’ ‘고향무정’ 등 3∼4곡을 불러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노래를 좋아했다.시간이 날 때면 작가와화가를 만나 문학과 예술을 논하는 면도 있었다. 외지와의 회견에선 “120살까지 살겠다”고 장담했던 정주영.그러나 그도 불로초를 구할 수는 없었다.매순간 승부로 파란만장한 생을 살았던 대사업가 정주영은 이승에 ‘왕(王)회장’이란 이름 석자를 남기고 끝내 이 세상을 떴다.사업가로 첫 발을 내디딘 지 63년,47년 현대건설 전신인 현대토건을 설립한 지 꼭 54년 만의 일이다. 손성진기자 sonsj@
  • [이사람] 판문점 JSA 근무 홍승표 병장

    판문점 가는 길에는 아직도 잔설이 흩날린다. 3월의 꽃샘추위로 판문점의 아침은 쌀쌀하다. 그러나 콧등을 스치는 한낮의 바람에는 이미 봄의 향기가 배어 있다.양지바른 산자락에는 긴 겨울의 추위를 견뎌낸 봄의 생명력이 꿈틀거린다.분단의 땅에도 봄은 오고 있다. 그러나 판문점의 봄은 슬프다. 판문점을 무겁게 누르고 있는 분단의 아픔과 불안한 긴장감으로 봄의 환희 조차도 슬픈 절망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판문점의 병사는 그래도 봄을 기다린다. 찬란한 환희와 화해의 봄을…. 판문점의 봄을 기다리는 홍승표 병장(24).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 근무하는 홍 병장은 남과 북의 첨예한 대치 현장 한가운데 서 있다. 그러나 그는 남북의 병사도 웃으며 악수할 수 있는 ‘화해의 봄날’을 꿈꾸고 있다.그날이 언제일지는 알 수 없지만…. 판문점은 남북 대결의 최전방.과거에는 너무나 먼 딴 세상처럼 여겨졌었다.그러나 활발한 남북교류로 시나브로 가까운곳으로 다가오고 있다.많은 관광객들도 찾아 온다.판문점의 풍경도 많이 친근해졌다.최근에는영화 ‘공동경비구역(JSA)’이 크게 히트하며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영화에는 한국군이북한 초소로 넘어가 함께 어울려 놀며 동포애를 보여주는 장면도 있다.정말 그럴 수 있을까.그러나 판문점 병사에게 그런 낭만과 휴머니즘은 없다. 홍 병장은 그 영화에 불만이 많다.“판문점의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이야깁니다.북한군 초소로 넘어가 함께 어울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영화에서는 북한군으로 나오는 송강호가 한국병사 이병헌을 포옹하며 “따뜻하구만”이라고 말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차가운 대치와 긴장만 있을 뿐이다. 홍 병장은 오늘도 실탄이 장전된 권총을 차고 경계를 선다. 그의 부릅뜬 눈은 언제나 북쪽을 응시 하고 있다.살풍경한판문점의 긴박한 상황은 사람을 바꾸어 놓는다.“판문점에서는 누구나 애국자가 되죠.긴박한 상황은 조국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나라를 헐뜯고 쓸데없이 비판만 하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납니다.그런 사람들을 붙잡고 판문점 관광을 다녀오라고 말하고 싶어요”라고 홍 병장은말한다. 그는 판문점에 오기 전까지는 조국이라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서울에 있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보통의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자랐다.아주대학 3학년1학기(행정학과)를 마치고 입대할 때까지는 그저 평범한 학생이었다.그러나 2년간의 판문점 생활을 통해 새로운 인간형으로 바뀌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홍 병장은 정신적 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강건해졌다.딱 벌어진 어깨.잘 발달한 근육.그에겐 힘과 젊음이 넘친다.“군에 오기 전에는 184cm 키에 어울리지 않게 몸무게가 60kg을 조금 넘었습니다.그러나 지금은 76kg이죠.고된 훈련과 경계근무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미래의 삶에 대한자신감이 생겼습니다.판문점 생활은 저를 강하게 만들었습니다.”1999년 5월 판문점에 온 그는 5월24일 제대한다. 판문점 병사들은 5일간씩 ▲판문점 경계 ▲올렛 GP 근무 ▲교육 훈련 ▲비상대기 ▲정비 등의 순환근무를 반복한다.판문점의 24시는 빈틈이 없다.병사들은 경계근무,비무장지대수색·정찰,훈련으로 늘 긴장 속에 생활한다.판문점 경비대대 병력은 500여명.한국군 60%와 미군 40%로 구성돼 있다. 한국 병사들은 판문점 근무를 명예롭게 생각한다.“조국의최전방이라는 가장 중요한 곳에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생각합니다”라고 홍 병장은 말한다.판문점에 근무하는 한국군은 전문대나 대학 2학년을 마친 논산 훈련소 훈련병 중에서 선발한다.키 178cm 이상의 신체 건강한 훈련병으로 부모가 모두 있어야 한다.집안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고 사상적으로 문제가 없어야 한다.그들은 엘리트 병사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남북 병사가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경계서는 모습을 우리는 TV에서 흔히 본다.그러나 늘 경계를 서는 것은아니다.판문점에서 회담이 있거나 관광객 등 방문객이 올 때만 경계를 선다.회담이 열리면 남과 북이 모두 경계를 선다. 그러나 회담이 없을 때는 상황에 따라 경계의 형태가 달라진다.우리쪽에서 사람이 오면 우리쪽만 경계를 서고 북한쪽에서 사람이 오면 북한군만 경계를 선다.그런데 흥미로운 현상이 있다.우리쪽과 북한군이 모두 북쪽을 보며경계를 서는것이다.북한군은 판문점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남한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감시하기 위해 북쪽을 보며 경계를 선다. 경계를 서는 홍 병장의 마음 한구석에는 가끔 비애의 감정이 낯익은 손님처럼 찾아온다.분단의 비극을 가장 가까이에서 피부로 느껴야 하는 슬픈 현실 때문이다.북한 사람들에겐 동포애를 느낀다고 그는 말한다.그러나 북한 사람들을 같은 민족으로 생각하는 것과 한국 군인으로서 북한군과 대치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로 생각한다.“북한군은 그저 적일뿐입니다.그들에 대한 동포애는 없습니다.” 판문점은 지난해 김대중 대통령의 북한 방문이후 활발한 남북교류의 길목이 되고 있다.그러나 판문점에 있는 남북병사들에는 여전히 ‘냉전의 고도’로 남아 있다.“남북 화해의움직임이 빨라지고 있지만 판문점에 있는 북한군인들에겐 조금의 변화도 없습니다”라고 홍 병장은 말한다.이데올로기와 체제의 차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같은 민족을 적으로 갈라놓을까.그러나 첨예한 이데올로기 대립 시대는 역사의 어둠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그러한 시대적 흐름은 홍병장에게도 희망이다.그는 말한다.“판문점이 남과 북의 군인들에게도 화해의 길목이 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그때 판문점을 다시 찾아오고 싶습니다.”판문점 이창순편집위원 cslee@. * 판문점의 어제와 오늘. 판문점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역사의 현장.남북 분단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서울 북방 약 60km 평양 남방 약 180km에 있다.개성에서는 10km 정도.판문점은 보통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유엔군과 북한군이 공동관리하는 공동경비구역(Joint Security Area)을 말한다.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동서 800m 남북 400m의 타원형 지역이다. 공동경비구역 군사분계선상에는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과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일직장교 휴게실 등 5동의 건물이 있다.남쪽에는 남북회담을 하는 평화의 집과 연락사무국이있는 자유의 집이 있고 북쪽에는 판문각·통일각 등이 있다. 건물과 초소 등에는 감시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판문점은 외국인과 한국인 관광객 모두에게 개방돼 있다.그러나한국인들은 단체 관광만 허용되며 미리 당국의 허락을받아야 한다.관광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주일에 5일간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가능하다.관광시간은 1시간 정도.보통 하루에 500여명의 관광객들이 찾아온다.지난해 관광객수는 10만여명.외국인과 한국인이 반반정도다.외국인중에는일본인들이 많다.안내는 군인들이 맡는다.이동은 버스 등 차량을 이용한다.공동경비구역 바로 옆에 식당과 관광상품을파는 상점이 있다.
  • [기고] 잊혀진 이상향 ‘힌드 나가르’

    “‘힌드 나가르’(Hind Nagar)를 찾아라” 인도의 힌두어로 ‘힌두인의 이상향’이라는 뜻을 가진 이것은 불과 47년전한반도의 허리 장단벌 비무장지대에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사라진 도시의 이름이다. 인구 3만명.10여개국 젊은 군인들이 7개월간 형체도 없는‘이데올로기’라는 괴물과 혈투를 벌인 곳이다.2만3,000명의 6·25전쟁 송환거부 포로들과 그들의 관리를 위해 파견된6,000명의 인도군관리부대(CFI),중립국송환위원회(NNRC)위원국인 인도·스웨덴·스위스·체코·폴란드의 대표단,정전당사국으로 옵서버 자격인 미국·한국·중국·북한 대표들이그 시민들이다. 휴전협정때까지 자국 송환을 거부한 포로들은 중공군이 1만4,702명으로 가장 많았다.다음은 북한군 7,890명,한국군 335명,미군 23명,영국군 1명이었다.이들에게 다시 한 번 진정한의사를 물어보고 귀향을 설득해 보자는 유엔군측의 인도적인 처사에서 남북한 전역에 흩어져 있던 포로들을 한자리에모았고,그 관리를 맡은 인도군에 의해 도시 이름이 붙여진것이다. 유엔군(주로 미군)이 막대한비용을 들여 건설한 이 텐트도시는 장단역과 판문점 사이의 통정리·송곡리·팔산리에 걸쳐 전체 면적은 7.9㎢로 포로막사·인도군막사·설득장의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포로막사는 500명을 수용하는 컴파운드(compound)와 8∼10개의 컴파운드가 모여서 된 엔클로저(enclosure)로 구분돼,전체는 7개의 엔클로저로 구성되었다.컴파운드와 컴파운드,엔클로저와 엔클로저 사이에는 철책과 완충지대,그리고 높은 감시망루들이 세워졌다. 한개의 컴파운드는 가로세로 10m×5m 크기로 30명씩 수용하는 텐트 17개와 취사장 텐트,목욕탕 텐트,운동장으로 구성됐다. 각 텐트는 지상 20㎝ 높이에 나무 침상을 깔았고 난방시설에전기와 온수도 공급되었다.미군을 기준으로 한 가히 호텔급이었다.설득장은 16개의 설득텐트와,250명과 25명을 수용할수 있는 대소형 대기텐트로 돼 있었다. 3만명의 시민을 먹여살리기 위한 각종 부대시설도 많았다. 식수공급을 위해 50만 갤런의 주탱크와 3,000 갤런의 보조탱크,임진강물을 끌어오기 위한 31㎞의 수도관도 설치되었다. 전력공급을 위해 12개 발전소에서 24대의 발전기가 가동되었다.식품 피복 등의 공급을 위해 장단역에서 직접 철길이 연결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중앙공급창고가 건설되었다. 마지막까지 귀향을 포기하고 제3국을 택한 포로는 북한군 86명,한국군 2명으로 모두 88명.그들은 6·25전쟁의 마지막포로로 1954년 2월23일 인도군을 철수시키는 유엔군 함정을타고 인천항을 떠났다.6·25전쟁의 실질적인 종결인 셈이다. 그 47주년인 요즘 경의선 복원공사가 한창이다.구 장단역근처의 벌판에는 아직도 이 ‘힌드 나가르’의 잔해가 남아있을는지 모른다. 불과 47년이 흘렀고 그 거대한 규모를 생각할 때 많은 잔해들이 그대로 있지 않을까.경의선 복원과 함께 이 도시의 일부만이라도 복원해야 한다.그래서 우리 민족이 그토록 피흘리며 싸워야 했던 ‘이데올로기’의 실체를 밝히는 교육의장으로 삼아야 한다.이는 남과 북이 함께 해야 할 과제다. ■라 윤 도 건양대교수·국제정치학
  • 이고르 이바노프 러외무 UN 군축회의 연설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망(NMD)계획에 반대해온 러시아의 이고르 이바노프 외무장관은 지난 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UN 군축회의에 참석, 항구적인 평화를 위해 핵비확산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군축 노력을 호소했다.다음은 연설요지. 세계화 시대,지구촌이 당면한 복잡다기한 도전들은 각국이확보하고 있는 과학기술과 경제적,지적 역량을 모아 이성적으로 활용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즉 21세기에는 강력한 경제·군사 대국이 독단적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해서는안된다.이런 시도는 지구촌 미래를 어둡게 할 뿐이다. 이같은 원칙은 군축 분야에서 강력하게 입증되고 있다.다자간 외교 시대에 UN은 활동적이고 의미있는 역할을 해왔다.미국과 러시아가 체결한 전략무기 감축협정도 유엔의 권위하에가능한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유엔군축회의의 역량은 소진된것이 아니다. 유엔군축회의는 통합적이고 다양한 접근방식으로 역량을 확대하고 있다.군축은 군사 강대국이나 핵보유국들의 모임이나 이들이 내세우는 핵우위 논리에 의해 해결될수 없다.러시아 정부는 전세계와 지역의 안보 강화를 위해 행동할준비가 되어있고 구체적인 조치도 밟고 있다.지난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신 국가안보 및 외교정책 개념을 발표했다.군비통제 및 감축에서 기존에 체결된 모든 조약과 협정을 엄격히 준수할 것,그리고 좀 더 포괄적이고 전략적인 안정을 위해 새협정 체결에도 적극적인 노력을 해나가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지난해 2단계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2)을 비준했고미국과 3단계 전략무기감축 협상에 들어갈 준비가 돼있다. 전략핵탄두수를 미·러가 약속한 2000∼2500기 수준보다 더낮은 1,500기 수준으로 감축할 것도 고려하고 있다. 러시아가 강조하는 지구촌 안정 원칙은 지난 72년 미·러가체결한 탄도탄요격미사일(ABM)협정준수다.ABM과 배치되는 NMD와 관련,부시 신행정부와 러시아간 실질적이고 적극적인대화가 최대한 빠른 시일안에 재개돼야할 것이다. NMD와 관련,로마 철학자 세네카의 “어떤 처방약은 질병 그자체보다 위험하다”는 명언을 언급하고자 한다.NMD의 대안으로 러시아는건설적이며 포괄적인 다른 조치들을 제안한다. 미국과 러시아가 공동 설립한 미사일발사정보교환센터,미사일 및 미사일 기술의 확산방지를 위한 국제통제시스템의 창설 등이 그것이다. 동시에 유엔군축기구내 산하기구를 둘 것도 제안한다.핵무기 제조 목적의 핵원료 생산 금지 조약을 추진할 특별위원회의 재설치가 그것이다. 러시아 연방은 유엔군축회의가 국제질서 안정에 기여한 역할을 높이 평가하고 국제기구의 권위와 효율성을 제고하는데 꾸준히 힘을 쏟을 것이다
  • 2001 길섶에서/ 그들이 그은 금

    휴전선은 6·25동란의 결과다.휴전 협상 현장에는 유엔군,인민군,‘중공’의용군 대표들이 앉고 국군의 자리는 없었다.휴전선의 원형은삼팔선이다.제2차세계대전의 부분인 태평양전쟁의 산물이었다.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하여 미국군과 소련군이 진주한다.일본을 내몰고 들어온 또 다른 외세였다. 러일전쟁 때도 조선 분할이 거론됐다.북위 39도선으로 잘라 나눠먹자는 것이었다.그런데,아프리카 남쪽 끝을 돌아 동해까지 오느라고지쳐 빠진 발틱 함대가 일본해군에 박살나는 바람에 일본은 조선을통째로 먹는다. 우리 땅을 놓고 외세가 찧고 까분 일은 훨씬 전에도 있었다.임진왜란 때 전쟁이 길어지자 왜(倭)도 명(明)도 지쳐서 그만 빠지고 싶었다.심유경(沈惟敬)이란 명나라 건달이 강화 교섭을 한답시고 양측을왕래하면서 농간을 부렸는데,왜에 조선 3도(道)를 떼어 주겠다고 사기쳤다가 들통났다. 정신차리지 않으면 외세가 우리 머리를 타고 넘으며 별 짓을 다한다.역사의 가르침이다. 박강문 논설위원
  • 현대 ‘금강산 수지맞추기’ 진땀

    현대가 금강산 관광사업의 수지타산을 맞추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도 북측에 관광대가(1,200만달러)를 지급하느라 곤혹을 치렀는데,사정이 딱하기는 이번달도 마찬가지다. 현대측은 지난 9일 철회했던 금강산 관광사업 내용변경 승인신청을지난 13일 통일부에 다시 냈다.통일부와 협의과정에서 미국 일본 등의 관광전문가들이 “금강산지역에 외국인을 위한 오락시설이 없다”고 지적한 점을 보충 설명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이 이달 말쯤 방북,관광대가 삭감이나 연기를 요청할 계획이다.이 자리에서 북한측이 현대와 약속하고 지키지 않는 금강산관광지역내의 자유통행보장 등 합의서 내용의 즉각 이행도 촉구할 것으로 알려진다. 금강산 관광사업과 관련된 운영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남북경협기금을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연간 3,000억원의 남북경협기금 용도가 중소기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이 기금의 일부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정부측에 요청키로 했다.관계당국은 남북경협기금을 현대에 지원할 경우 계속 지원해야 한다는 점때문에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는 특히 북한측이 이산가족 면회소를 금강산지역으로 정하기를원하고 있는 점을 감안,정부측이 ‘금강산지역을 이산가족상봉장소’로 정해 줄 것을 내심 바라고 있다.북한이 유엔군관할인 판문점을 원치 않고 있어 ‘금강산면회소’가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주병철기자 bcjoo@
  • 30년전 외교비화 햇빛 본다

    내년 1월이면 70년 미국 의회에서 논란이 됐던 주한미군 감축문제와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에서 협의한 내용 등 30년전 외교비화가 상세히 공개된다. 외교통상부는 다음달 15일 ‘외교문서 공개심의회’를 열고 70년 작성된 외교문서 공개 여부를 결정,내년 1월 말쯤 공개할 계획이다. 공개 대상에 오른 문서는 무려 10만여쪽.문서 가운데는 제25차 유엔총회에서 공산국가들이 제출한 주한 유엔군 철수결의안을 부결시킨 사건,주한미군 감축문제로 최규하(崔圭夏) 당시 외무부장관과 로저스미 국무장관이 가진 회담 등이 포함돼 있다.외교통상부는 매년 초 공개 대상 문서를 수집,정리하고 이를 예비 심사와 해당 부서의 검토를거친 뒤 ‘외교문서 공개 심의회’를 열어 공개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홍원상기자
  • [대한시론] 평화보장체제는 신중하게

    지난달 워싱턴을 방문한 북한 조명록 특사와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무장관의 회담에서 북·미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조치로서 지금의 정전협정을 평화보장 체제로 전환해 6·25전쟁을 종식하는 데합의하고,그러기 위해서는 4자회담과 같은 여러가지 방도가 있다는데 견해를 같이했다.이러한 북·미간 합의는 그간 쌍방이 반세기 이상 지속해온 군사적 적대관계 청산과 함께 한반도 냉전구조의 해체를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같은 북·미관계의 긍정적 변화로 우리에게는 평화보장 체제의 구축이 현실 과제로 떠오르게 됐으며,통일관련 연구단체들은 이와 관련한 ‘포럼’‘토론회’ 등을 활발히 전개하는 실정이다. 그간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방도로 북한은 1984년 1월 ‘3자회담’ 즉 북·미 간에는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남북간에는 불가침을 선언한다는 방식을 제안한 바 있다.그후 96년 4월 한·미 제주도정상회담에서는 남·북·미·중이 참여하는 4자회담을 공동 제안했는데 이를 북한이 수용함으로써 지난해 8월까지 6차에 걸치는 본회담이진행됐다.그러나 결실을 보지 못한 채 중단되고 말았다. 4자회담에서 쟁점으로 부각된 것은 평화협정 체결의 당사자 문제로알려져 있다.남북이 협정 당사자가 되고 미·중이 이를 보장한다는한국과 미국측의 주장과 북·미간에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북측의 상반된 입장이 대립해 끝내 합의를 보지 못했다.북측 주장은 미국은 정전협정의 법적 당사자이며 평화보장의 실질적 당사자라는 것이다.그리고 남한의 작전통제권을 미군이 장악했기 때문에 평화협정체결의 당사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최근 김대중 대통령은 4자회담 개최에 관해 몇차례 의견제시를 한 바 있으며 북한 당국도 이에관한 검토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11월초 평양을 방문한 중국 양원창 외교부부장은 백남순 외무상 등과 회동한 자리에서 이같은 북한 입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또 지난 15일 브루나이를 방문한 중국 탕자쉬안 외교부장은 일본‘교도통신’과의 회견에서 한반도 정세에 관해 “작년 8월 중단된 4자회담을 조속히 개최하고 그틀 안에서 김대통령의 제안을 검토하는것이 바람직하다…김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여 4자회담을 재개하는것은 하나의 방책”이라고 했으며,올브라이트 장관과의 회담에서도 4자회담에 관해 협의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지난 10월의 북·미간 공동성명과 남한·중국의 4자회담에관한 적극적인 입장표명 등을 감안할 때 앞으로 4자회담 개최 전망이밝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런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는 몇가지신중한 연구와 검토가 있어야 하겠다. 먼저 지적할 것은 접근방식의문제다.이에는 ‘분리’와‘동시해결’이라는 두 가지 방식을 예상할수 있다. 그것은 남·북 또는 북·미간에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이를관련국들이 보장하는 방식,남과 북 그리고 관련국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해 협정과 보장을 동시에 해결하는 방식 등일 것이다. 최근 거론되는 4자회담은 후자 방식의 하나다.이 방식들에서 우리는자주적 통일과 자주권 확보라는 민족사적 요구 차원에서 보다 냉철하고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그리고 이러한 선택도 중요하지만 당사자들의 평화에 대한 강한 의지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다음으로는 종전방식의 하나로 평화협정체결 대신 국교수립·공동선언 등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방식이 원용될 수 있다는 점을고려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한반도의 경우 6·25전쟁이 국가간 전쟁이아니며 또한 정전협정의 당사자 일방이 유엔군으로 돼 있기 때문에더욱 그러하다. 끝으로 남과 북은 국가간 관계가 아니며 6·25공동선언에 따라 화해와 협력·통일의 길에 들어섰고,한반도 평화보장의 주체가 우리 민족과 우리의 방위력이라는 점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보장 체제에서 외세를 되도록 배제하는 방도를모색해야 한다. 우리 근현대사의 쓰라린 역사적 경험이 이 점을 더욱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김남식 경실련 통일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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