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유언 효력
    2026-05-05
    검색기록 지우기
  • 차기 총선
    2026-05-05
    검색기록 지우기
  • 제국 언어
    2026-05-05
    검색기록 지우기
  • 주거 부족
    2026-05-05
    검색기록 지우기
  • 조직 결합
    2026-05-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4
  • [박동섭 가족클리닉 행복만들기] 재산관련 유언 철회했는데…

    Q3남매 중 둘째입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시는 아버지는 장남에게 사업을 맡기려고 합니다. 내게는 토지와 건물 한 채를 주겠다며 유언을 공증했습니다. 아버지는 또 건물을 저의 약혼녀 S에게 주시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공정증서로 5억원의 약속어음을 발행해 주고는,5억원의 지급담보를 위해 내게 물려주기로 한 건물에 저당권을 설정했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 아버지는 이 유언을 철회한다면서 공증사무소에서 유언철회 유언을 했습니다. 이 경우 저의 약혼녀도 저당권을 잃게 되나요 -이영식(26·가명) A저당권이 소멸되지 않습니다. 유언을 남긴 뒤 살아있는 동안 철회하거나 바꿀 수 있지만, 유언을 바꾼다고 해서 물려주기로 한 재산(유증 목적물)에 대해 별도로 맺은 생전계약의 효력이 없어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민법은 유언의 자유뿐 아니라 유언철회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적법·유효한 유언을 한 후에라도 살아있는 동안에는 언제든지 유언의 전부 또는 일부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철회는 다른 사람의 동의를 구할 필요 없이 유언자 자신만 단독으로 할 수 있습니다. 유언을 철회하려면 민법이 정한 방식을 따라야 하지만, 종전에 유언을 할 때 선택했던 방법과 똑같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유언의 일부를 철회하려면 새 유언을 할 수도 있고, 기존 유언을 정정하는 형식으로 할 수 있습니다. 철회에는 임의철회와 법정철회의 방법이 있습니다. 유언자의 명시적·임의적 유언철회가 없어도 몇가지 경우에는 철회의 효과가 인정되는데, 이를 법정철회라고 합니다. 우선 유언을 2개 이상 남겼는데, 그 내용이 객관적으로 모순된다면 이전 유언은 철회된 것으로 간주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건물을 A에게 주겠다고 유언한 뒤, 같은 건물을 B에게 주겠다고 다시 유언했을 때 B가 건물에 대한 상속자로서의 권리를 갖게 됩니다. 유언자가 유언 뒤 그 유언과 저촉되는 생전행위를 하거나 고의로 유언증서 또는 유증 목적물을 훼손시키면 이전 유언은 철회된 것으로 간주됩니다. 유증 목적물을 훼손시킨다는 것은 유언으로 남긴 것을 팔거나 부순 경우 등을 일컫습니다. 매각하는 게 아니라 유증 목적물에 지상권·전세권·저당권 등을 설정해도 그로 인해 이전 유언이 효력을 잃지는 않습니다. 이영식씨의 질문만으로는 유언이 먼저인지 저당설정이 먼저인지 약간 애매하기는 하지만, 아들에게 주겠다고 유언한 건물에 대해 약혼녀에게 저당권을 설정해 준 경우로 판단됩니다. 이럴 때는 저당권이 설정된 부동산을 아들에게 준다는 유언으로 당초 유언내용이 변경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당초 유언이 철회되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영식씨의 아버지는 며칠 뒤 “아들에게 준다.”는 유언을 다시 철회했습니다. 이 경우에도 아들이 아닌 제3자에게 준 약속어음과 저당권 설정이 무효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약속어음 발행과 저당권 설정은 생전처분으로 그 자체가 이미 효력이 발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언철회로 효력을 잃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전의 ‘유언’일 뿐입니다. 만일 유언자가 C에게 어떤 땅을 증여한다고 유언한 뒤 같은 땅을 D에게 10년 뒤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했는데 10년이 되기 전에 유언자가 사망했다면, 유언자의 사망과 동시에 부동산은 C에게 귀속됩니다. 그리고 10년째 되는 해에 유증이 철회되어 D에게 소유권이 이전됩니다. 이영식씨의 경우처럼 약속어음 발행, 저당권 설정이 먼저 이루어지고 나중에 유언이나 유언 철회가 이루어졌다면, 유언의 효력으로 앞의 행위의 효력이 좌우되지는 않습니다. 나중에 한 유언을 우선으로 인정한다는 ‘후유언 우선의 원칙’은 유언에 관한 것입니다. 시간적으로 전후 2번 이상 유언이 있었던 경우의 문제이지, 생전처분과 유언이 번갈아 일어난 경우에 적용되는 법칙은 아닙니다.
  • ‘수백억 유산다툼’ 연세대 졌다

    사회사업가가 남긴 수백억원대의 유산을 두고 유족과 연세대가 다툼을 벌인 ‘날인 없는 유언장’ 사건에서 법원이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8부(부장 최병철)는 황해도 출신 사업가 고 김운초씨의 유족들이 ‘전 재산을 연세대에 기부하겠다.’는 내용으로 고인이 쓴 유언장을 근거로 예금을 내주지 않은 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날인 없는 유언장이 효력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독립당사자 자격으로 소송에 참가한 연세대는 “날인만 없을 뿐 유언장 내용과 날짜, 주민등록번호 등이 자필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효력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기각됐다. 이에 따라 김씨가 남긴 123억여원의 예금과 부산, 통영 등지의 수십억원대 부동산은 유족들에게 돌아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자필유언서는 위·변조 위험이 높아 날인 규정을 두는 등 형식의 엄격성을 요구한 것인데, 날인이 빠진 경우에도 효력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고인이 유언장을 은행 금고에 보관해 두고 사망해 유언장에 대한 의사표시가 발신조차 되지 않았다.”면서 “고인과 연세대측간에 사인증여 계약이 성립됐다고 볼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1958년 서울 화곡동에 그리스도신학대를 설립한 고인은 1997년 재산기탁에 관한 유언장을 작성하고 2003년 11월 사망했다. 평생 독신으로 산 고인의 장례를 치른 형제들은 고인이 맡겨둔 예금을 찾으려 했지만, 은행은 유언장을 보여주며 지급을 거부했다. 유족들은 “날인이 없는 유언장은 효력이 없으며, 전재산을 기탁하는 것이 고인의 뜻도 아닐 것”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고인이 생전에 서울 등촌동 일대의 땅을 판 일이 보도된 적이 있는데, 주변에서 기부 요청이나 협박이 쏟아졌다.”면서 “이에 고인이 아예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작성한 것 같다.”고 추측했다.1심에서 승소한 이들은 “통영에 고인이 세운 식물원이 있는데, 이를 통해 유산을 사회에 환원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박동섭 가족클리닉 행복만들기] 生父 호적에서 빠진 혼인외 출생자

    제 어머니는 음식점 영업을 하다 홍길동이라는 남자와의 사이에 아들 2명을 낳아 기르던 중 재력가인 허풍선이라는 남자를 우연히 알게 돼 그 사이에 아들 1명을 또 낳았습니다. 그 아들이 저인데요. 저는 일단 허풍선의 호적에 ‘허동식’이란 이름으로 출생신고가 됐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제 성이 ‘허(許)’가라서, 먼저 태어난 형들과 성이 달라 고민하던 중 저의 사망신고를 한 뒤 다시 어머니의 호적부에 신고하였습니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몇 년간 공부를 하고 돌아왔더니, 아버지 허풍선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유산은 모두 본처의 아들들이 상속했습니다. 지금은 벌써 아버지 돌아가신 지 7년이나 지났는데 생부의 재산을 조금이라도 찾을 수 없을까요. -허동식(가명)- 상당히 곤란하지만 길은 있습니다. 먼저 당신은 상속인 자격을 얻어야 합니다. 보통 상속인 자격은 호적부를 기준으로 하여 파악되므로, 당신은 허풍선의 호적에 이름이 올라가 있어야 합니다. 일단 허풍선의 호적에 출생신고를 하여 허동식으로 돼 있었는데 당신의 생모가 사망신고를 하여 버렸다는 것이지요. 당신이 허풍선의 상속인임을 인정받는 길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사망신고 그 자체가 허위이므로, 호적정정 허가 신청을 하여 사망신고 그 자체를 말소하는 방법입니다. 사망신고는 보고적 신고에 불과하고 창설적 신고(혼인신고, 인지신고, 협의이혼 신고 등은 신고하여야 효력이 생기므로 이를 창설적 신고라고 함)가 아닙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갑’의 사망신고를 하였다고 하여 실제로 생존하고 있는 사람(갑)에 대하여 사망의 효력이 발생하는 것도 아닙니다. 또 그 사망신고로 생존중인 사람(갑)과 그 생부(生父) 간에 존재하던 친자관계가 소멸하는 것도 아니고, 친자관계부존재가 확정되는 것도 아니며, 생부가 ‘갑’을 인지한 인지의 효력이 무효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판례). 허풍선의 호적에 출생신고를 한 사실은 바로 허풍선이 당신을 자식으로 인정한 인지(認知)의 효력이 있는 것입니다. 호적정정허가 신청을 하여 사망기재를 말소하려면 현재 어머니의 호적부에 올라 있는 당신이 원래의 이름인 허동식과 동일인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은 2중 호적말소를 하고, 허풍선을 상대로 인지청구를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홍○○’으로 출생신고한 것은, 허동식의 출생신고보다는 나중일 것이고, 동일한 사람에 대한 중복신고라고 생각됩니다. 호적말소 부분은 역시 호적정정 신청을 하여 홍○○의 출생신고를 말소한 뒤 돌아가신 허풍선을 상대로 인지(認知)청구를 해야 합니다. 당신이 생부 허풍선의 사망소식을 언제 들었는지, 그 소식을 듣고 아버지의 사망 사실을 안 날로부터 2년 안에 검사를 상대로 인지청구를 하여야 하고 그 소송에서 승소판결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상속인 자격을 얻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 당신은 허풍선의 본처와 자녀들을 상대로 상속재산을 달라는 청구를 할 수 있게 됩니다. 만일 아직도 허풍선의 이름으로 그대로 남아 있는 부동산 등 재산이 있다면 당신은 허풍선의 자녀와 본처 등을 상대로 상속재산분할 심판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허풍선의 이름으로 남아 있지 않고 그 자녀들이나 배우자가 이를 처분하였다든지 분할해 버렸다면, 당신은 공동상속인들을 상대로 상속분에 해당하는 돈을 달라고 청구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허풍선이 남긴 재산이 아파트 1채 시가 5억원, 예금 4억원, 합계 9억원일 경우 허풍선의 본처 등이 모두 차지해 버렸다면, 당신은 당신의 몫인 2억원을 달라고 청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허풍선이 생전에 상속재산을 모두 그 처나 자녀들에게 이미 증여해 등기를 넘겨 주었다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망인의 유언이나 생전처분을 존중해야 하므로, 당신은 본래의 상속분의 2분의1에 해당하는 1억원을 달라고 청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유류분제도입니다. 만일 진정한 상속인이 아니고 허풍선의 여동생이 상속재산을 모두 차지하고 있다면, 당신은 상속순위에서 앞서기 때문에 망인의 여동생을 상대로 상속재산 전부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가족클리닉의 상담 의뢰는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에서 받습니다.
  • 中 전자서명법 통과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의 상거래에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중국정부는 전자 상거래시 당사자들의 일반 서명과 법률적 효력이 동일한 전자 서명법을 도입하기로 했다고 관영 신화사가 28일 보도했다. 제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 11차회의는 28일 중국의 상무발전을 위해 서면 사인과 동등한 효력을 발생하고 민상사(民商事) 법률로 보호받는 전자 서명법을 통과시켰다고 신화사가 전했다. 전자서명법은 전자 상거래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전자서명 인증서비스 기구를 통해 거래가 이뤄져야 하며 국가가 인증서비스 기구를 주관토록 했다.전인대 법률위원회 왕이밍(王義明) 부주임은 “중국의 실제 상황에서는 전자서명 인증 서비스업에 대해 시장의 자율에 의지하는 동시에 정부 부문이 적당한 관리 감독을 실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 언론들은 전자서명법 통과와 관련,‘인터넷 신분증’을 통한 ‘진정한 의미의 정보화 법률’이 탄생했다고 평했다.관영 신화사는 “전자서명은 전통적인 사인과 도장 문화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고 전자정부 발전을 촉진시킬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전인대는 공공 서비스 사업 등 정부사업과 혼인·출생·유언 등에는 전자 서명법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보조항을 달았다. 중국은 현재 4000여개의 전자 상거래 웹사이트가 있으며 지난해 전자 상거래 거래액은 대략 600억달러로 추산된다. oilman@seoul.co.kr
  • [17일 TV 하이라이트]

    ●!느낌표(오후 9시45분) 인천지방경찰청에서 근무하는 경찰들을 상대로 ‘효짱’을 찾아나선다.여순경들이 털어놓는 자신들만의 고민거리가 공개되고,일선에서 활약하는 형사들이 말하는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진다.‘아시아!아시아!’코너에서는 특집으로 중국 숙주에서 살고있는 일본군 위안부 곽예남 할머니의 ‘60년만의 귀향’을 준비했다. ●씨네24(낮 12시25분) 누구나 한 번씩은 해볼만한 상상을 토대로 한창 제작중인 영화 ‘내 남자의 로맨스’ 촬영 현장을 찾아간다.‘대한민국 최고의 코미디 여왕’으로 등극한 김정은과,진지하고 깊이 있는 연기로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배우 김상경이 함께한다.‘자유,독립,소통’ 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2004년 전주 국제영화제를 소개한다. ●애니토피아(오후 9시10분) 제5회 전주국제영화제(JIFF)가 오는 23일부터 열린다.‘독립정신’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영화제에서는 35개국에서 출품된 250여편이 전북대 문화회관과 영화의 거리 등 전주 시내 일원에서 상영된다.소개되는 작품에는 어떤 애니메이션이 있는지,그 작품들을 미리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다. ●뮤직n조이(오후 6시) 앨범 홍보차 처음으로 한국을 찾는 세계적인 R&B스타 ‘어셔’.99년 첫 앨범을 발표한 이후 감미로운 목소리와 파워댄스를 겸비한 신세대 스타로 팝계를 주름잡아 온 그를 만나본다.우리 나라의 신세대 가수 비,세븐,휘성 등 많은 스타들이 자신들의 음악적 모델로 삼고 있다는 뮤지션 어셔.그동안 그가 보여준 멋진 라이브무대를 만나본다. ●솔로몬의 선택(오후 6시50분) 혼자서 비디오로 작성한 유언,아들에게 대필을 부탁한 유언,유언자 스스로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한 유언,이름대신 별명으로 작성한 유언 중에서 유언으로 효력이 있는 것은 어떤 것인지 살펴본다.이밖에 커플 여행을 가기로 했다가 여행이 취소될 경우 여행 취소와 관련한 위약금을 배상받을 수 있는지 살펴본다. ●속 보이는 밤(오후 10시) 복잡하고도 미묘한 사람의 속마음,극과 극을 오가는 인간의 심리,그 심리의 세계로 가는 지름길을 안내한다.‘사과 따는 사람’그리기를 통해 알아본 스타의 인간관계,사랑,돈.스타들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한 그림들 속에 감춰진 결과를 공개한다.그리고 미술치료 전문가의 재치 넘치는 해석으로 숨겨진 스타의 속마음을 들여다본다. ●무인시대(오후 10시20분) 두두을은 이의민에게 자선의 죽음과 양민학살을 한 죄를 질타하며 이제 이의민과의 인연을 끊어버릴 것이라 한다.박진재는 암살을 도모하는 최충수를 찾아가 음모가 발각되었으니 거사를 포기하라 말한다.최충헌은 최충수와 함께 이지영을 찾아가 명백한 증좌도 없이 우봉가문에 누명을 씌우지 말라며 항의한다. ˝
  • [기고] 부안 주민투표 결과의 겉과 속/송명재 원자력환경기술원장

    원전센터 유치 반대단체인 부안반대대책위원회가 지난 14일 독자적으로 치른 원전센터 찬반 주민투표는,이미 법원에서 판결을 내렸듯이 법적으로 아무런 효력이 없는 사적(私的)인 행사에 불과하다.더욱이 이번 투표는 7개월간의 시위를 통해 형성된 일방적인 반대 분위기 속에서,그것도 대부분의 찬성측 주민과 원전센터가 건립될 위도의 주민들이 빠진 채 치러졌다.따라서 반대대책위가 72%의 투표율과 92%의 반대비율을 무기삼아 원전센터 백지화를 요구하며 정부를 압박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부안에서는 아직도 찬반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조차 할 수 없는 험악한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핵은 죽음이며,원전센터는 기형아와 기형가축을 낳는 죽음의 시설이라는 등의 악의적인 유언비어가 계속되고 있다.찬성 입장을 밝히면 정부나 한수원㈜에 매수된 ‘매향노’로 낙인찍어 인터넷에 이름을 올리는 등 찬성주민에 대한 공개적인 협박과 집단 따돌림도 계속된다. 또 찬성하는 주민의 집에 빨간색 스티커를 붙이는가 하면,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투표에 불참하거나 찬성표를 던지면 철저하게 가려내 보복하겠다는 협박을 해댔다.부안 주민투표는 이런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주민투표는 어떤 사안에 대해 주민들의 의견을 묻는 의사결정 과정의 한 방법이다.따라서 제대로 된 주민투표가 되기 위해서는 의견을 묻고자 하는 사안에 대한 정확하고 객관적인 정보가 주민들에게 먼저 전달되어야 한다.왜곡되고 부정적인 정보를 준 다음에 투표를 하면 당연히 그 결과 또한 왜곡되고 부정적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좀 나아지기는 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출처불명의 기형아 사진이 끊임없이 나돌고,흉측스러운 해골이 그려진 현수막과 노란 깃발이 부안 전체를 뒤덮었다.학교 담벼락이나 아스팔트 길 등 글씨를 쓸 수 있을 만한 곳은 모두 붉은 페인트와 하얀 페인트로 유치 찬성자에 대한 온갖 욕지거리로 도배가 됐다.일부 종교지도자들과 반핵 운동가들은 하루도 쉬지 않고 주민을 모아놓고 반핵 강의를 했고,삼보일배 등 이벤트로 매스컴을 사로잡았다.‘찬성’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7개월 동안 이어진 이런 상황과 분위기 속에서 투표자의 92%가 원전센터 유치 반대표를 던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그러나 이 수치를 부안주민의 진정한 민의라고 할 수가 있을까?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 서서히 유치 찬성자들이 제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원전센터의 안전성에 대해 좀 더 알아보려고 하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간다.유치 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찬성단체도 생겼다.지난 7개월 동안 반대단체가 각종 왜곡된 정보로 주민들에게 반핵 의식화를 시켜왔다면 찬성 측에 대해서도 원전센터의 안전성과 지역발전상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정부는 지난 4일 원전센터 부지 공모에 관한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전국을 대상으로 부지를 공모하되 주민 청원과 투표로 주민의사를 단계별로 수렴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게 하는 등 주민수용성 부분을 대폭 강화했다.부안군도 11월까지 본신청을 해야 정식 신청이 완료되는 것으로 했으며,그러지 않을 경우 유치신청은 자동 무산된다. 이제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주민 의사를 수렴하는 장치가 마련된 셈이다.앞으로 남은 일은 충분한 대화와 토론,그리고 객관성 있는 자료와 정보를 제공하여 원전센터의 안전성과 지역발전상을 제대로 알게 한 후에 제대로 된 주민투표로 주민의 진정한 의사를 묻는 것이다.어렵더라도 제대로 된 길을 가야 한다. 송명재 원자력환경기술원장˝
  • ‘날인없는 유언장’ 500억 법정공방

    날인 없는 유언장을 놓고 500억원대 법정공방이 벌어지게 됐다. 연세대는 2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해 11월 숨진 김운초 전 사회개발연구원장이 학교에 예금 120억원을 포함,전재산을 증여하겠다는 내용의 유서를 작성했던 사실을 뒤늦게 알게 돼 유족과 법적인 공방을 벌이게 됐다.”고 밝혔다.연세대는 “97년 작성된 유서는 고인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적혀 있고,우리은행 대여금고에 보관됐다가 최근 유족이 예금을 인출하려는 과정에서 공개됐다.”면서 “고인이 학교에 증여할 뜻을 밝힌 만큼 예금에 대한 권리는 학교측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연세대는 김 전 원장의 유족이 낸 예금청구소송과 관련,최근 서울지법에 ‘독립당사자 참가’ 신청을 냈다.‘독립당사자 참가’란 타인끼리의 소송에 제3자가 당사자로 소송에 참가하도록 한 민사소송법 조항이다. 김 전 원장의 유족은 “유언장에는 고인의 서명 날인이 없어 법적인 효력이 없으며,유족에게 1차적인 상속권한이 있다.”며 은행을 상대로 서울지법에 예금반환 소송을 냈다. 연세대가 이날 밝힌 김 원장의 예금은 우리은행 97억여원,외환은행 23억여원 등 120억여원이다.연세대는 김 전 원장이 보유했던 부동산 등을 포함하면 총 자산규모는 500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김 전 원장은 세계기독교봉사회 최수열 선교사와 함께 지난 85년 서울 화곡동에 그리스도신학대를 설립했고,모교인 강남대에 3억원을 쾌척하는 등 사회사업에 큰 관심을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다.연세대 관계자는 “고인이 기여금을 투명하게 관리하고,기독교계 대학인 연세대가 세계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 큰 돈을 선뜻 기부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박지연기자 anne02@
  • “유언장 써두면 가족 슬픔 줄어들죠”/인터넷 사이트 ‘유언장 닷컴’ 운영자 이성희씨

    일명 ‘유언장 은행’으로 불리는 유언장 닷컴(www.yoounjang.com)이 네티즌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다.지난 1월3일 개설된 유언장 사이트에는 3개월도 채 안돼 4만명이 넘게 방문했다. 사이트 개설·운용자는 사무집기 납품업체를 운영하는 이성희(李晟熙·41) 하나로시스템 전무.“외환 위기 때 실업자가 됐습니다.제가 운영하는 하나로시스템이 부도가 났기 때문이었지요.그때 다른 실직자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그래서 그는 자신이 전세로 살고 있는 집을 월세로 돌려 마련한 2400만원으로 실직자 쉼터를 힘겹게 만들었다.집안 형편이 어려워 가까스로 상고를 졸업한 뒤 4명의 동생을 부양하며 서점 점원,호프집 종업원,주방 보조,요정 지배인 등을 전전했던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었다. “쉼터에서 나와 같은 처지의 실직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용기를 얻었습니다.”그는 거래처와의 끈끈한 신용과 직원들의 무보수 봉사에 힘입어 다시 일어섰다. “실직자들과 얘기하다 보니 그들도 나처럼 죽음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그래서 이들에게 백지를 나눠주며 지나간 삶을 한번 기록해보라고 권했죠.이때 유언장을 써놓으면 가족들의 슬픔이 훨씬 줄어든다는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이것이 유언장 닷컴을 만드는 모태가 된 셈이죠.” 당시 유언을 적어보라며 나눠준 백지는 ‘만약 내 삶이 3일밖에 남지 않았다면….’이라는 책으로도 선보였다.“우리 사회는 유언장이라면 ‘기분 나쁘다.’는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그래서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가 발생하면서 유언장 닷컴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이 높아졌다.하루 30여명에 불과하던 방문자수는 지하철 참사 이후 10배가 넘는 300여명으로 늘어났고 연회비 2만2000원을 내는 유료회원도 400명을 넘었다. “앞으로 유료회원이 계속 늘어나 1만명 쯤 되면 서버 관리비 등 제반 비용을 제외한 순 수입이 월 2000만원 가까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이트 유언장에는 ▲작성 일시와 자신의 사진 ▲걸어온 길 ▲재산 목록 정리 ▲남기고 싶은 이야기 등의 내용이 담긴다.하지만 이같은 내용이 유출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이에 대해 이 전무는 “유언을 열람할 수 있는 사람을 유언자의 의사에 따라 철저하게 제한함으로써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서 “운영자인 나도 볼 수 없다.”고 강조한다.당사자나 열람 가능한 형제·자녀 등 가족과 운영자가 동시에 접속, 비밀번호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당연히 유언장을 남겼죠.아내도 남겼습니다.부부 사이인데도 그 내용은 서로 모르고 있습니다.” 사이버 유언장은 그러나 아직까지 보관 기능만 있을 뿐,법적인 보호는 받지 못한다.효력을 인정받으려면 법률사무소 등에서 공증을 받아야 한다. 그는 “외국에 이런 종류의 사이트가 있는 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며 “생명보험이 처음 나왔을 때 모두 ‘재수없다.’고 기피했지만 요즘에는 일반화된 것처럼 유언장 문화도 곧 보편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 김규환기자 khkim@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
  • [대한광장] “인간은 법대로만 살 수 없습니다”

    부모라면 누구든 한결같이 자신들의 아이가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정직해야 한다,바르게 살아라,나쁜 짓 하지 말라 등의 말은 이미 부모가 되고만 우리 역시 지난 시절 자라면서 부모로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것들이었다.그런데 그런 것들은 불행하게도 그저 말로써‘교과서’적인 가르침뿐이었을 뿐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정작 우리가 살면서 몸으로 체득하게 된 삶의 지혜란 그와는 정반대로“그리 살면 망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스스로 목숨을 끊고만 어느 공직자의 유서는 너무나 적나라하고 비극적이다.“인간은 법대로 살 수 없습니다”. 오죽했으면 그는 삶을 마감하는 마지막 순간에 그것도 그 하고많은사연 가운데 하필이면 이런 얘기로 시작하는 유서를 남긴 것일까.“인간은 법대로 살 수 없습니다”라는 하소연이 인간 본연의 존재적부조리를 일컫는 게 아니라면 이 말은 분명“우리 사회에서는 법대로 살 수 없습니다”라는 의미일 터이다. 법이란 그 사회의 최소 규범이자 최하위의 도덕률이다.윤리나 양심과 같은 고상한 덕목에 비추어 보면 턱없이 저급한 수준이기는 하지만 사회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마땅히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준을강제하는 것이 법이다.때문에 법이 무너지면 사회의 근간이 뒤흔들리게 되고,법의 권위가 상실되면 온갖 편법·비법·불법들이 난무하게마련이다.법이 무너지는 사회는 그야말로 마지노선마저 붕괴된 난장의 나락이 되기 십상이다.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사회적 약자들의 몫이 됨은 물론이다.“법대로 살 수 없다”는 유언은 그 한마디말만으로도 오늘의 우리 사회가 대체 어느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를단적으로 보여주고도 남는다.또 이 말은 동시에 우리 스스로를 향해곧장 내리꽂는 날카로운 비수가 되고 만다. 과연 ‘법대로’였다면 빌게이츠의 성공 신화가 아닌 다음에야 불과삼십을 갓 넘긴 나이의 어린 한 사업가가 수백억원이라는 우리로서는 헤아리기조차 힘들 정도의 돈을 마치 주머니 속 쌈짓돈 굴리듯 주물러왔다는 사실이 어디 가능하기나 했겠는가. 사람이 법대로 못 산다면 지키든 말든 상관없이 법은 그저 명문상의 법으로서만 있게 하든가,아니면‘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법을 세상에 맞추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이같은 말이 지나친 비아냥일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대신 학연·지연·인연과 같은 연고주의나 심지어 관언협착,정경유착 따위를 아예 합법화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그리되면 비록 법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최소한법의 효력만은 지켜질 것이 아닌가.이도저도 아닌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어차피 비웃기나 하듯이 법을 피해가며 온갖 탈법과 투기와 협잡과유착이 비일비재하게 또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마당에 그래도 법대로 살아야 한다고 외치는 것은 ‘공자님 염불하는 격’과 다르지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긴 한 나라의 장관이라는 사람이 심야 TV토론에서 방청객을 ‘구로공단 여공’으로 여기고 그들의 치마 속을 들여다보며 잠을 쫓았다는 얘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이 사회에서 과연 무슨 도덕과 윤리와법을 얘기할 수 있을까.이제 나는 자라나고 있는 어린아이에게 어른으로서 어떻게 살라고 가르침을 주어야 할지 암담하다.그나저나 법대로조차 살 수 없다면 정말로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그 뾰족한 수를과연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김 형 완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 北 처자식 호적없으면 양녀 상속

    실향민이 북에 있는 가족에게 재산을 상속하려면 법적 효력이 있는 유언장을 작성하거나 가족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호적(戶籍)이 있어야 한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서울고법 민사9부(재판장 禹義亨부장판사)는 11일 96년 숨진 실향민 金모씨(당시 85세)의 유산관리인 李모씨가 상속권을 주장하는 양녀 유모씨를 상대로 낸 소유권 이전등기 말소등기 청구소송에서 “金씨가 ‘북한에 있는 처자식에게 재산을 양도할 때까지 李씨를 유산관리인으로 정한다’고 작성한 유서를 인정할 수 없다”면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金씨가 남긴 유서에는 작성 연월일과 주소가 없어법적효력이 없는 데다 金씨가 월남한 뒤 자신만 호적에 올렸기 때문에 북한에 처자식을 남겨뒀다는 것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면서 “따라서 월남 후양녀로 입적된 유씨를 유일한 상속인으로 봐야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金씨가 법적 효력이 있는 유서를 남겼거나 월남 이후 북한에 남겨둔 가족이 등재된 호적 또는 월남 전 호적을 갖고 있다면 상속이 가능할수 있다”고 설명했다. 6·25 때 부인과 다섯 딸을 북에 두고 월남한 金씨는 64년 白모씨와 재혼한 뒤 白씨가 전 남편 사이에 낳은 두 딸 중 큰딸 유씨만 82년 양녀로 입양했다.4년 뒤 부인 白씨가 사망하자 金씨는 병원 간호보조사 출신인 李씨의 간병을 받아왔다.
  • “워드로 대신쓴 유언장 본인 서명 있어도 무효”

    서울고법 민사15부(재판장 조용무 부장판사)는 18일 92년 서울 S병원에서 위암 치료를 받던 중 사망한 차모씨의 유산 30억원을 둘러싸고 차씨의 언니 등이 낸 유언무효확인소송 항소심에서 “급박한 상황이 아닌한 워드프로세서로 남이 대신 받아적은 유언은 무효”라며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차씨가 위암으로 입원치료 중이었지만 유언 당일 병원을 걸어서 산책하는 등 상태가 중하지 않았다”면서 “자필로 유언장을 쓰거나 유언을 녹음할 여건이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에게 대필시켜 자신의 서명만 첨가한 유언장은 효력이 없다”고 밝혔다.
  • 미,치매할머니 결혼 법적 효력 논란

    ◎92세 할아버지,할머니가족 몰래 식 올려/가족 무효 주장… 법원 정신감정 의뢰 결정 알츠하이머병환자의 결혼은 법적 효력이 있는가. 레이건 미국 전 대통령이 걸려 세계적인 경각심을 일으킨 알츠하이머병 이최근 이 병에 걸린 84세 할머니의 결혼을 둘러싸고 다시 미국 사회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은 치매환자인 콘스탄스 드리스콜 할머니와 92살의 찰스 반스 할아버지.노령이지만 심신이 건강한 반스씨는 지난해 9월 요양원에 있던 드리스콜 할머니를 가족들 몰래 사우스캘리포니아주의 한적한 시골 교회로 데려가 결혼식을 올렸다.그뒤 반스씨는 드리스콜 할머니를 로스앤젤레스 외곽 자신의 집과 가까운 글렌데일 은퇴자 마을로 이주 시키고 정기적으로 그녀를 만났다. 그런데 얼마후 소방관들이 이 마을에서 몇 블럭 떨어진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드리스콜 할머니를 발견,가족들에게 연락이 닿게 됐다. 할머니의 가족들은 반스씨가 드리스콜 할머니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녀가 갖고있는 재산 80만달러(약 13억6천만원)를 탐내 결혼한 것이라고주장하면서 법적인 조치를 취했다.드리스콜의 법정 후견인 스티븐 모이어 변호사는 할머니를 다시 패서데나의 한 양로원에 이주시킨뒤 가족들과 함께 법적 조치에 착수했다. 캘리포니아 법정은 정신과 의사에게 의뢰,드리스콜이 지난 가을 번스씨와 결혼할 당시 정신적으로 의사결정 능력이 있었는가를 밝히기로 했다. 모이어씨는 지난 가을 결혼이 법적으로 무효라고 주장하면서도 그러나 정신감정을 맡은 다니엘 플로트킨 박사가 드리스콜이 의지대로 결혼했다는 결론을 낸다면 더 이상 문제삼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반스씨는 자신에게는 나머지 인생을 살아갈 충분한 재력이 있다며 그녀와의 결혼을 돈과 연결짓지 말라고 단호히 주장한다.“나는 그녀를 사랑한다.그녀는 요양원을 감옥이라고 생각했으며 나는 그녀를 구출했을 뿐이다.우리는 다른 보통의 미국인처럼 행복한 결혼생활을 즐길 권리가 있다” 8년전 아내와 사별한 반스씨는 드리스콜 할머니부부와 50년 지기였다.30년전 드리스콜 할머니의 남편이 사망하면서 그녀를 돌봐달라고 한 유언을지키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요양원의 다른 환자들과 함께 시끄러운 면회소에서 만남을 갖고 있는 두사람은 이 소송이 빨리 해결돼 자신들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봐주고 결혼생활을 지속하게 해 달라고 하고 있다. 오는 27일 제시되는 정신과 의사의 소견서에 두 사람의 나머지 인생이 달려있다.
  • “언제 무슨일 닥칠지…” 불안한 현대인의 삶

    ◎평상시의 유언 필요성 증대/자필증서 등 5종… 일정형식 갖춰야 효력/가정법률 상담소서 법률자문 현대는 언제 어떻게 무슨일이 닥칠치 모르며 살아가는 불확실성의 시대이다.갑자기 사고를 당하더라도 자신의 의지에따라서 모든 것이 처리될 수 있도록 평상시 유언을 해두는 것도 확실성의 한 방법이다. 흔히들 유언은 사람이 운명할때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이라고만 알기 쉽다.그러나 유언은 17세이상이면 법정대리인의 동의없이 누구든지 또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으로 반드시 법이 정한바에따라 일정한 형식을 갖춰야한다. 명지대 법학과 김숙자교수(한국가정법률상담소 부소장)는 최근 유언문제에 관한 법률상담이 늘고 있다고 밝히고 이는 많은 사람들이 유언을 하지않은채 사망,고인이 남긴 재산을 상속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족간의 갈등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김교수는 외국의 경우 평소 유언을 해두는 것이 너무 당연한 것으로 생활화 돼있기 때문에 만일의 사고에도 별 문제가 없다고 설명한다. 이에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든 것을 법보다 정에 이끌려 처리하려는 습성이 강해 만약 부모에게 무슨 사고가 난다해도 맏아들 중심으로 대충 처리하는 것이 관례였다.그러나 가족법 개정이후 재산상속의 방법이 아들과 딸 모두 똑 같아지면서 부모가 유언없이 갑자기 사망했을 경우 고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사후 재산상속을 둘러싼 가족간의 분쟁이 일고,법정소송으로까지 발전하는 예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우리도 이젠 사후에 본인의 뜻에따라 재산이 처리되고 가족간의 괜한 분쟁을 방지할 수 있도록 유언을 생활화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법률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유언의 방식은 크게 본인이 직접 글로 쓰는 자필증서·말로하는 녹음·공증인의 필기·낭독으로 꾸미는 공정증서·유언내용을 생전에 비밀에 부치고 싶을때 많이 쓰는 비밀증서·급박한 상황에서의 구수증서의 5종류가 있다. 이가운데 본인이 편한대로 한가지 방법을 택할 수 있겠으나 중요한 것은 종류별로 무효가 되지않도록 일정한 형식을 갖췄는지를 최종 확인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이는 유언이 있었다해도 요건을 제대로갖추지 않아 무효가 되고 분쟁으로 발전하는 예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여성교육 개척자인 김모박사도 생전 유언을 했었으나 일자와 주소가 없어 유언집행시 문제가 됐던 예는 너무 유명하다.유언에 대한 자세한 법률정보는 가정법률상담소를 비롯한 법률관련 단체들을 통해 알 수 있다.
  •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겨레의 맥박으로 89년:10)

    ◎36세의 죽음/배설,“신문 살려 한민족 구하라” 유언/대일마찰 꺼린 영측 통감부에 매도/양기탁 “손 뗀다” 광고 게재후 떠나가/한·일합방 이틀후 「매일신보」개제… 일제기관지로 배설은 1908년 5월27일 대한매일신보의 발행및 편집인의 명의를 코리아 데일리 뉴스의 편집일을 보던 만함(Alfred Weekley Marnham)으로 바꿨다.이 무렵은 일본측의 집요한 외교적 탄압으로 영국측이 배설을 재판에 회부하기로 결정,상해고법의 판·검사가 한국에 막 도착한 때였다. ○한때 암살까지 거론 그러나 만함은 형식상의 발행인일뿐 신보는 여전히 배설의 영향아래에서 제작됐다.신보의 논조 또한 변함없이 이어져 반일로 일관된 것은 물론이다.당시 워싱턴포스트지는 『신보의 통감부에 대한 공격을 중지시킬 수 있는 방법이란 배설을 암살하는 길밖에 없을 것』이라고 쓸 정도였다. 한국민족의 편에 서서 기자정신을 불태우던 배설이었지만 옥고를 치른뒤로부터 건강이 크게 악화됐다.이로인해 1909년 3월초 자리에 눕게 되었고 두달뒤인 5월1일 36세의 젊은 나이에그만 세상을 떠났다.의학적인 사인은 심정확장이었다.일제와 맞서 신보를 지키고 이끄는 투쟁과정에서 끊임없이 핍박받은 정신적 육체적 충격이 결국은 죽음을 몰고왔을 것이다. 1904년 3월 이 땅을 밟은이후 줄곧 일제와의 투쟁으로 삶을 이어온 그는 이렇게 파란의 인생을 마감했다. 평소에 늘 『한국을 위해 위험을 피하지 않는 것이 나의 직책인 만큼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신명을 돌아보지 않겠다』고 다짐한 배설이었다.그리고 이를 실행했던 진정한 한국인들의 벗이기도 했다. 운명하기 하루전날 남긴 유언에서도 『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는 영생케 해 한민족을 구하라』는 간곡한 한마디였다고 한다. 한국을 자신의 조국 이상 사랑했던 그의 죽음은 많은 한국인들을 애도케 했다.박은식은 5월5일자 신보1면에 이런 글을 남겼다. 「천견공래우탈공(하늘이 공을 보내고는 또다시 데려갔네)구주의혈쇄명동(구주의 의혈남아가 조선의 어둠을 씻어내고자)편편일지 삼천리(삼천리 방방곡곡에 신문지를 뿌렸네)유득방명조불궁(꽃다운 이름이 남아서 다함없이 비추리). ○합정동 외국인묘에 양기탁 또한 그의 타계를 애통해 하는 글을 썼다.「대영남자대한충(대영남자가 대한에 와서)일지광명흑야중(한신문으로 어두운 밤중을 밝게 비추었네)내불우연하거탈(온것도 우연이 아니건만 어찌도 급히 빼앗아 갔나)욕장차의문창궁(하늘에 그뜻을 묻고자 하노라)』. 배설은 이처럼 한국인들이 슬퍼하는 가운데 서울 합정동 양화진에 있는 외국인 묘지에 뼈를 묻혔다.그가 세상을 떠난뒤 신보에서 차지하는 양기탁의 역할과 비중은 더욱 커질수밖에 없었다.신보의 소유자는 만함이었으나 그는 한국어에 대한 이해가 없어 신문제작 일체를 양기탁에게 의존하는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을 달갑지 않게 여긴 주한영국총영사 헨리 보나르(HenryBonar)는 만함에게 신보의 제작을 한국인들에게 맡기는데 따른 위험성을 경고하기 시작했다.보나르의 경고는 신보로 인해 문제가 발생할 경우 영국이 만함에 대한 보호를 철회할 것이라는 뜻을 내포한 것이었다.특히 새로 개정된 추밀원령이 곧 효력을 발생하게 되어 만함도 배설처럼 영국법정에 서게 될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추방사태를 빚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덧붙였다. 보나르는 신보가 한국인들로 하여금 일본에 대항토록 선동하는 것은 『바보 같고 배은망덕한 짓』이라고 생각한 것이다.신보로 인해 야기되는 영·일간의 외교적 마찰을 피하자는 것이 그 저의였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보나르는 급기야 만함에게 『한국을 위해 순교자가 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신문을 처분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까지 충동질 했다. ○보나르 영대사 주도 결국 만함의 동의를 얻어낸 보나르는 통감부와도 신보처리문제를 협의,통감부의 신보매수를 제의하고 나섰다.통감부의 신보매수는 영속적인 공안방해이자 귀찮은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실용적인 방법임을 내세워 신보를 매수토록 종용한 것이다.이와함께 보나르는 주일영국대사 맥도널드에게 자신의 소견을 보고하고 이를 지지해 줄것도 건의했다. 보나르가 이러한 내용의 전문을 보낸것은 1910년 3월25일로 돼 있다. 한편 보나르가 일본당국에 제안한 신보처분의 조건은 신보를 일본측이 인수하는 대신 만함은 앞으로 한국에서 신문사업에 손을 대지 않겠다는 것이 요지였다.또한 통감부가 신보를 매수하고 난 뒤에는 한국에 영국인 소유의 신문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사실도 강조했다.이는 영국인이 한국에서 신문을 새로 발행하는 경우 한국의 신문지법을 영국인 소유의 신문에 적용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내용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신보를 일본당국이 매수하면 한국에서 영국인이 발행하는 신문은 치외법권의 보호를 받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보나르는 이러한 내용을 상세히 작성,각서형식으로 일본측에 전달했다. 이같은 신보처리방안에 대해 맥도널드는 찬동하는 편이 아니었다.일본당국의 신보매수는 일본당국과 만함이 직접 교섭할 사항일뿐 영국총영사관이 공식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더구나 영국 외무성을 이 문제에 관여케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다.그러나 보나르는 자신이 제안한대로 신보처분을 통감부와 절충해 나갔다. 마침내 통감부는 만함에게 7백 파운드를 지불하고 신보를인수했다.신보의 인수절차는 주한영국총영사관에서 일본당국과 만함이 약정서를 교환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통감부가 신보를 매수하기는 한·일합병을 약3개월 앞둔 시기였다. ○사원들 구사운동도 통감부는 합병조약이 성사될때까지 신보의 매수를 비밀에 부쳐둔채 1910년 6월14일 발행인 및 편집인의 명의만 한국인 이장훈으로 바꿔놓았다.신보가 통감부에 팔렸다는 소문은 이보다 앞서 나돌기 시작했다.그러나 신보는 6월14일자 사설을 통해 이는 근거없는 낭설이라고 일축,통감부 매수설을 부인했다. 『발행인 만함이 무슨 사단이 있었는지 신문을 폐철하고 본국으로 돌아가려 하므로 사원들이 거대한 자금을 불석하고 활자와 기계 등 제반 십물을 매수했다』는 것이 이날자의 사설 내용으로 돼 있다.또 발행인은 외국인이 한국인으로 바뀌었을 뿐 편집인이나 기자가 모두 그대로 있으니 논조도 달라질리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신보가 일본의 손에 들어간것은 더이상 숨길수 없는 사실이었다.신보의 제작을 처음부터 도맡았던 총무 양기탁은 신보의 발행인 명의가 이장훈으로 바뀐 그날부터 자신은 이 신문에서 손을 떼었다는 광고를 게재하고 신보를 떠나고 말았다.그뒤 대한매일신보는 「대한」의 두자를 뗀 매일신보로 개제,조선총독부 기관지로 전락해 버렸다.이날은 한일합병이 된지 이틀만인 1910년 8월30일이었다. 항일언론의 최선봉에서 뜨겁도록 구국의 혼을 불사르던 민족지 대한매일신보가 비극적인 종언을 고하고 만것이다. *참고문헌 「대한매일신보와 배설」 「한국언론사」(이상 정진석저)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