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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광복 70주년 ‘제2의 경술국치 없다’ 장담할 수 있나 (下)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광복 70주년 ‘제2의 경술국치 없다’ 장담할 수 있나 (下)

    - 한반도를 겨냥하는 중국 군사력 원자력 발전소 가동 중단과 원전 추가 건설 계획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는 원전반대그룹이 최근 자신들의 SNS 계정에 우리 군 비밀문서 내용을 공개했다. 이 문서에는 북한 정권 붕괴 등 급변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중국과 러시아, 미국, 한국 등 4개국이 북한을 분할 통치하자는 내용이 들어 있었고, 이러한 제안을 한 국가는 중국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측 제안 내용은 한반도 유사시 평양은 4개국이 공동으로 관리하고, 황해도와 평안남도 지역은 한국이, 강원도는 미국, 함경북도는 러시아, 평안북도와 양강도, 자강도, 함경남도는 중국군이 진주해 북한군의 무장을 해제하고 군정(軍政)을 실시해 통제권을 확보한다는 구상이 담겨 있다. 이는 북한 정권이 무너지더라도 한반도 이북 지역에 대한 지속적인 통제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함은 물론 동해로 나가는 항구까지 확보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으로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 분단 상황을 영구 고착화시키겠다는 시커먼 속내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언제든 불바다 만들 준비 끝내 우리나라와 중국은 1992년 수교를 통해 적대관계를 청산한 이래 지속적으로 관계를 발전시켜왔고, 박근혜정부 들어서는 양국관계를 ‘전략적 동반자’로까지 격상시키며 역사상 가장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전략적 동반자’라는 표현이 무색치 않게 중국은 우리나라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며, 국내 일부 정치인들과 학자들은 “중국은 떠오르는 신흥 강자이고, 미국은 지는 해이기 때문에 국가전략적인 차원에서 친미보다는 친중을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어 학습 열풍이 몰아치고, 각 대학에는 중국 관련된 학과가 앞 다투어 개설되며 ‘중국 알기’ 붐이 일고 있다. 중국을 공부하는 사람은 늘어 가는데 중국이 한반도를 겨냥해 숨기고 있는 발톱에 대해서 그 위험성을 경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표면적으로 중국은 우리나라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 이야기하고 있고 매년 2,300억 달러 이상을 거래하는 밀접한 경제활동 파트너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적국이다. 중국은 최근 우리 측 철책 통문에 지뢰를 매설해 2명의 부사관에게 중상을 입히는 등 주기적으로 대한민국에 위해를 가하고 있는 북한과 1961년에 체결한 조ㆍ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이다. 또한 붕괴 직전의 북한정권에 산소호흡기를 달아 독재정권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고 있는 것도 중국이다. 중국은 UN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를 무시하고 북한에 지속적으로 원유를 공급해주고 있는 유일한 나라이며, 원자재뿐만 아니라 전략적으로 민감한 장비들을 북한에 제공해주는 국가이기도 하다. 유사시 대구와 김해, 광주 공군기지를 제외한 대한민국 모든 공군기지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신형 장거리 방사포 KN-09는 중국제 WS-1B를 카피한 것이고, 우리나라와 미국, 세계 각국을 경악시킨 KN-08 대륙간탄도미사일의 트럭은 중국이 북한으로부터 3,000만 달러를 받고 새로 개발해 준 미사일 운반용 트럭이라는 사실이 일본 내각조사실 조사 결과 확인되기도 했다. 북한은 중국의 도움으로 다양한 전략무기들을 만들었고, 이 전략무기들로 대한민국을 위협하면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뒤흔들고 있다. 중국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행위는 북한을 지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중국 자신들의 군사력 가운데 상당한 수준의 전력을 한반도 타격용으로 배치하고 있고, 유사시 실제로 한반도를 타격하기 위한 전략과 전술을 수립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를 겨냥한 중국의 군사력 수준은 어느 정도일 것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대외적으로 공개된 자료와 위성사진, 중국 언론과 현지 군사전문 웹사이트, 개인 블로거와 SNS 등을 통해 수집한 정보를 교차 분석해 종합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중국은 언제든지 한반도에 대대적인 군사적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전투력 배치와 전쟁 전략 정립을 마쳐 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난 5월 발간한 중국의 군사전략(中國的軍事戰略)에서 한반도 문제를 중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중대 변수로 규정하고,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군사력을 사용할 의지가 있음을 천명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정보화조건하국부전쟁(信息化條件下局部戰爭)이라는 군사전략을 정립하고, 이에 대한 방법론으로 기습(奇襲)과 강압(降壓) 전술을 제시했다. 기습은 중국 지도부가 전쟁을 결심하면 교전 상대국에 대량의 미사일 공격을 퍼부어 지휘부와 통신시설을 제압하는 것을 의미하고, 강압은 기습에 이어 전투기와 폭격기를 대규모로 발진시켜 무차별 폭격을 퍼부음으로써 상대 국가의 전쟁 수행 의지와 능력을 단시간 내에 꺾어 버리는 것을 뜻한다. 이를 위해 중국은 어떤 전력을 준비해놓고 있을까? 우선 미사일 전력이다. 중국은 백두산 바로 아래 지린성(吉林省) 퉁화시(通化市) 일대에 중거리 탄도 미사일인 동풍(東風)-21 미사일로 무장한 제816여단(第816旅), 산둥성(山東省) 라이우시(莱芜市)에 신형 중거리 탄도미사일 동풍-21C를 보유한 제822여단, 랴오닝성(遼寧省) 다롄시(大連市)에 중거리 탄도 미사일 동풍-3A를 운용하는 제810여단을 배치해놓고 있다. 제816여단과 제810여단은 유사시 일본과 주일미군에 대한 타격을 맡지만, 산둥성의 제822여단은 철저하게 한반도 타격을 위해 준비된 부대이다. 최근 사거리 1,800km 수준의 동풍-21C 미사일이 배치되고는 있지만, 이 부대가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주력 미사일은 사거리 600km인 동풍-15 미사일이고, 이 미사일이 타격할 수 있는 범위는 영남권을 제외한 우리나라 서부 지역까지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서해안 일대까지만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수백 기 이상 준비해 놓았다는 것은 대한민국 서해안 일대에 대한 공격 의사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백 기의 미사일이 우리를 겨누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러한 미사일 전력으로 한반도를 겨냥하는 동시에 여러 개의 고성능 레이더로 한반도 전역의 우리 군 동태를 면밀히 감시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주하이 에어쇼에서 산둥반도에 장거리 탐지 레이더인 JY-26을 배치해 한반도 일대를 감시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자신들은 고성능 X밴드 레이더로 한반도 전역을 들여다보면서 주한미군의 THAAD용 레이더 반입 문제에 대해서는 자국 영토가 감시당할 수 있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자신들이 변방 소국인 한국을 미사일로 위협하고 레이더로 몰래 들여다보는 것은 정당하지만, 한국이 미국을 등에 업고 중국의 미사일 위협을 감시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하는 것은 불쾌하다는 논리다. 한반도 타격을 위해 준비된 공군력도 막강하다. 한반도 일대를 주요 작전구역으로 삼는 공군기지는 비행연대급 이하 규모가 배치된 작은 비행장을 제외해도 13개 이상이 식별된다. 중국공군의 비행사단과 연대의 편제를 감안했을 때 한반도에 투입될 준비를 하고 있는 전투기와 폭격기 수는 800대가 넘는다. 중국공군과 해군항공대 전체 전술기 숫자의 3분의 1이 넘는 수준이다.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단둥(丹東)과 인근에 있는 안산(鞍山), 다롄(大連) 소재 공군기지에는 러시아의 수호이 Su-27SK 전투기를 개량한 J-11 전투기를 배치해 유사시 한반도 상공에서의 제공권 장악을 위한 준비를 마쳤고, 산둥반도의 라이양(莱阳) 기지에 공대지 미사일 대량 운용이 가능한 H-6G/K 폭격기를, 라이양 기지 인근 라이산(莱山) 기지와 웨이팡(潍坊) 기지에 대형 전폭기 JH-7을 배치하고 주변 기지에 ‘중국판 F-16'으로 불리는 J-10 전투기를 대량으로 배치하고 있다. 중국이 한반도를 겨냥해 배치하고 있는 군사력은 미사일과 공군력뿐만이 아니다. 북한 신의주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단둥에서는 중국군 전투서열 2위의 선양군구(瀋陽軍區) 예하 공병여단이 매년 기계화부대 도하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 급변사태 시 선양군구 핵심 전투부대인 제39집단군의 주요 전투사단이 북한에 신속하게 투입될 수 있도록 제39집단군의 주력부대인 제116기계화보병사단과 4개 기계화보병여단, 1개 전차여단이 배치된 안산, 퉁화, 지안(集安) 등의 도시와 북한을 연결하는 4차선 고속도로 및 복선 철도를 건설하는데 올해까지 100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기도 했다. 중국은 표면적으로는 선린우호관계 강화를 말하고 있지만, 서해와 압록강 건너편에서는 언제든지 한반도를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모든 준비를 완비한 상태이고, 현재는 그 전력을 더욱 가다듬어 나가고 있다. 오죽하면 표면상 동맹관계인 북한의 김정일이 죽기 전 중국을 조심하라는 유언과 함께 중국을 방어하기 위해 양강도에 군단 하나를 더 창설했을까? -강대국에 의한 北 분할점령 못 막아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강대국들은 외교 무대에서는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과 남북관계 개선을 희망한다는 입장을 피력하지만, 모두 동상이몽(同床異夢)을 꾸고 있다. 우리나라는 통일을 원하지만, 동북아시아에 새로운 강국이 등장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일본은 현상 유지를 원하고 있고, 중국은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인 북한 정권이 없어지면 최소한 북한 지역 일부라도 확보해 자신들의 직접 통제 아래 둠으로써 적대 세력인 미국과 대한민국을 견제할 수 있는 완충지대로 남겨두기를 원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은 한반도 전면전 발발 시 북한 지역 수복작전 내용이 포함된 한미연합군 작전계획 5027과 북한 급변사태 발발 시 대응 내용을 담고 있는 작전계획 5029에 예전부터 우려를 표시해 왔었다. 미군이 개입되거나 미군과 동맹 관계인 한국군이 압록강 너머 중국 코앞까지 진출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것이 중국의 기본 입장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한반도 지역 급변사태 발발에 대비한 작전계획, 일명 ‘병아리(小鷄)계획’을 수립했다. 지난 2011년 이중간첩으로 체포된 ‘흑금성’ 박채서씨의 법정 증언으로 그 존재가 드러난 병아리계획은 한반도 유사시 중국의 군사개입과 완충지대 확보를 골자로 하고 있다. 해공군력이 동원되는 것은 물론 지상군이 들어가 대량살상무기 등 위협요소를 제거하고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이 북한 지역을 보호하겠다는 내용이다. 한반도 유사시 중국군이 대규모로 북한 지역에 들어가면 작전계획 5027이나 5029는 시행될 수 없다. 중국과의 군사적 충돌을 우려한 미군이 북진을 포기하고 중국과의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과의 핵전쟁, 제3차 세계대전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한반도 전 지역의 온전한 통일을 위해 싸울 이유가 전혀 없다. 미ㆍ중 양국의 협상이 타결되면 한반도는 70년 전 우리 민족의 의사와 관계없이 분단이 되었던 것처럼 또 다시 분단될 것이고, 반세기 넘게 갈망해 온 통일은 또 다시 요원해질 것이다. 이렇듯 중국은 한반도 통일의 최대 걸림돌이다. 중국의 위협이 가시화되면서 북한은 부족한 예산과 병력을 쥐어짜내 중국이 건설하고 있는 북한 진입 고속도로와 철도의 길목에 있는 양강도 지역에 제43저격여단과 교도대, 새로 편성된 전차부대를 중심으로 10군단을 편성해 중국의 침공에 대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중국의 군사적 위협이 이토록 심각한 수준까지 증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ㆍ중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강조하며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눈치만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주한미군은 점차 감축되고 있고, 전쟁이 발발하면 즉각 투입된다는 미군 전시 증원부대는 대부분 증발해서 사라진지 오래다. 반대로 중국 견제라는 공동 목표를 만들어 미국과 ‘120% 한통속’이 되어가고 있는 일본은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에서의 역할 확대, 주일미군 전력 강화는 물론 센카쿠 분쟁 발발 시 미군 지원이라는 카드까지 제공 받으며 확고한 안보태세를 다지고 있다. 외교가 실패했는데 스스로 지킬 힘을 키우지도 않고 있다. 유사시 중국군의 대규모 전차부대를 막아낼 육군의 기동군단 구상은 반토막 났고, 바다와 하늘을 지켜낼 해군 기동함대 건설 계획은 3분의1 수준으로 삭감됐으며, 오는 2019년 공군은 창군 이래 최악의 전력공백 사태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각 군 모두 심각한 예산 부족 때문에 발만 동동 구르며 손가락만 빨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정치 싸움에 골몰해 스스로를 지킬 힘을 키우는 것을 포기하고, 외부적으로는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도 구분하지 못한 채 눈치만 보며 스스로 고립되고 있는 21세기 대한민국의 모습에서 110년 전 일제에게 유린당하며 국권을 강탈당했던 경술국치의 비극이 오버랩되는 것은 기우(杞憂)일까? 이일우 군사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광복 70주년, 한반도가 다시 위험하다](下)- 한반도를 겨냥하는 중국 군사력

    [광복 70주년, 한반도가 다시 위험하다](下)- 한반도를 겨냥하는 중국 군사력

    <상편에서 계속> 원자력 발전소 가동 중단과 원전 추가 건설 계획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는 원전반대그룹이 최근 자신들의 SNS 계정에 우리 군 비밀문서 내용을 공개했다. 이 문서에는 북한 정권 붕괴 등 급변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중국과 러시아, 미국, 한국 등 4개국이 북한을 분할 통치하자는 내용이 들어 있었고, 이러한 제안을 한 국가는 중국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측 제안 내용은 한반도 유사시 평양은 4개국이 공동으로 관리하고, 황해도와 평안남도 지역은 한국이, 강원도는 미국, 함경북도는 러시아, 평안북도와 양강도, 자강도, 함경남도는 중국군이 진주해 북한군의 무장을 해제하고 군정(軍政)을 실시해 통제권을 확보한다는 구상이 담겨 있다. 이는 북한 정권이 무너지더라도 한반도 이북 지역에 대한 지속적인 통제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함은 물론 동해로 나가는 항구까지 확보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으로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 분단 상황을 영구 고착화시키겠다는 시커먼 속내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언제든 불바다 만들 준비 끝내 우리나라와 중국은 1992년 수교를 통해 적대관계를 청산한 이래 지속적으로 관계를 발전시켜왔고, 박근혜정부 들어서는 양국관계를 ‘전략적 동반자’로까지 격상시키며 역사상 가장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전략적 동반자’라는 표현이 무색치 않게 중국은 우리나라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며, 국내 일부 정치인들과 학자들은 “중국은 떠오르는 신흥 강자이고, 미국은 지는 해이기 때문에 국가전략적인 차원에서 친미보다는 친중을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어 학습 열풍이 몰아치고, 각 대학에는 중국 관련된 학과가 앞 다투어 개설되며 ‘중국 알기’ 붐이 일고 있다. 중국을 공부하는 사람은 늘어 가는데 중국이 한반도를 겨냥해 숨기고 있는 발톱에 대해서 그 위험성을 경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표면적으로 중국은 우리나라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 이야기하고 있고 매년 2,300억 달러 이상을 거래하는 밀접한 경제활동 파트너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적국이다. 중국은 최근 우리 측 철책 통문에 지뢰를 매설해 2명의 부사관에게 중상을 입히는 등 주기적으로 대한민국에 위해를 가하고 있는 북한과 1961년에 체결한 조ㆍ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이다. 또한 붕괴 직전의 북한정권에 산소호흡기를 달아 독재정권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고 있는 것도 중국이다. 중국은 UN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를 무시하고 북한에 지속적으로 원유를 공급해주고 있는 유일한 나라이며, 원자재뿐만 아니라 전략적으로 민감한 장비들을 북한에 제공해주는 국가이기도 하다. 유사시 대구와 김해, 광주 공군기지를 제외한 대한민국 모든 공군기지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신형 장거리 방사포 KN-09는 중국제 WS-1B를 카피한 것이고, 우리나라와 미국, 세계 각국을 경악시킨 KN-08 대륙간탄도미사일의 트럭은 중국이 북한으로부터 3,000만 달러를 받고 새로 개발해 준 미사일 운반용 트럭이라는 사실이 일본 내각조사실 조사 결과 확인되기도 했다. 북한은 중국의 도움으로 다양한 전략무기들을 만들었고, 이 전략무기들로 대한민국을 위협하면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뒤흔들고 있다. 중국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행위는 북한을 지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중국 자신들의 군사력 가운데 상당한 수준의 전력을 한반도 타격용으로 배치하고 있고, 유사시 실제로 한반도를 타격하기 위한 전략과 전술을 수립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를 겨냥한 중국의 군사력 수준은 어느 정도일 것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대외적으로 공개된 자료와 위성사진, 중국 언론과 현지 군사전문 웹사이트, 개인 블로거와 SNS 등을 통해 수집한 정보를 교차 분석해 종합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중국은 언제든지 한반도에 대대적인 군사적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전투력 배치와 전쟁 전략 정립을 마쳐 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난 5월 발간한 중국의 군사전략(中國的軍事戰略)에서 한반도 문제를 중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중대 변수로 규정하고,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군사력을 사용할 의지가 있음을 천명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정보화조건하국부전쟁(信息化條件下局部戰爭)이라는 군사전략을 정립하고, 이에 대한 방법론으로 기습(奇襲)과 강압(降壓) 전술을 제시했다. 기습은 중국 지도부가 전쟁을 결심하면 교전 상대국에 대량의 미사일 공격을 퍼부어 지휘부와 통신시설을 제압하는 것을 의미하고, 강압은 기습에 이어 전투기와 폭격기를 대규모로 발진시켜 무차별 폭격을 퍼부음으로써 상대 국가의 전쟁 수행 의지와 능력을 단시간 내에 꺾어 버리는 것을 뜻한다. 이를 위해 중국은 어떤 전력을 준비해놓고 있을까? 우선 미사일 전력이다. 중국은 백두산 바로 아래 지린성(吉林省) 퉁화시(通化市) 일대에 중거리 탄도 미사일인 동풍(東風)-21 미사일로 무장한 제816여단(第816旅), 산둥성(山東省) 라이우시(莱芜市)에 신형 중거리 탄도미사일 동풍-21C를 보유한 제822여단, 랴오닝성(遼寧省) 다롄시(大連市)에 중거리 탄도 미사일 동풍-3A를 운용하는 제810여단을 배치해놓고 있다. 제816여단과 제810여단은 유사시 일본과 주일미군에 대한 타격을 맡지만, 산둥성의 제822여단은 철저하게 한반도 타격을 위해 준비된 부대이다. 최근 사거리 1,800km 수준의 동풍-21C 미사일이 배치되고는 있지만, 이 부대가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주력 미사일은 사거리 600km인 동풍-15 미사일이고, 이 미사일이 타격할 수 있는 범위는 영남권을 제외한 우리나라 서부 지역까지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서해안 일대까지만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수백 기 이상 준비해 놓았다는 것은 대한민국 서해안 일대에 대한 공격 의사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백 기의 미사일이 우리를 겨누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러한 미사일 전력으로 한반도를 겨냥하는 동시에 여러 개의 고성능 레이더로 한반도 전역의 우리 군 동태를 면밀히 감시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주하이 에어쇼에서 산둥반도에 장거리 탐지 레이더인 JY-26을 배치해 한반도 일대를 감시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자신들은 고성능 X밴드 레이더로 한반도 전역을 들여다보면서 주한미군의 THAAD용 레이더 반입 문제에 대해서는 자국 영토가 감시당할 수 있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자신들이 변방 소국인 한국을 미사일로 위협하고 레이더로 몰래 들여다보는 것은 정당하지만, 한국이 미국을 등에 업고 중국의 미사일 위협을 감시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하는 것은 불쾌하다는 논리다. 한반도 타격을 위해 준비된 공군력도 막강하다. 한반도 일대를 주요 작전구역으로 삼는 공군기지는 비행연대급 이하 규모가 배치된 작은 비행장을 제외해도 13개 이상이 식별된다. 중국공군의 비행사단과 연대의 편제를 감안했을 때 한반도에 투입될 준비를 하고 있는 전투기와 폭격기 수는 800대가 넘는다. 중국공군과 해군항공대 전체 전술기 숫자의 3분의 1이 넘는 수준이다.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단둥(丹東)과 인근에 있는 안산(鞍山), 다롄(大連) 소재 공군기지에는 러시아의 수호이 Su-27SK 전투기를 개량한 J-11 전투기를 배치해 유사시 한반도 상공에서의 제공권 장악을 위한 준비를 마쳤고, 산둥반도의 라이양(莱阳) 기지에 공대지 미사일 대량 운용이 가능한 H-6G/K 폭격기를, 라이양 기지 인근 라이산(莱山) 기지와 웨이팡(潍坊) 기지에 대형 전폭기 JH-7을 배치하고 주변 기지에 ‘중국판 F-16'으로 불리는 J-10 전투기를 대량으로 배치하고 있다. 중국이 한반도를 겨냥해 배치하고 있는 군사력은 미사일과 공군력뿐만이 아니다. 북한 신의주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단둥에서는 중국군 전투서열 2위의 선양군구(瀋陽軍區) 예하 공병여단이 매년 기계화부대 도하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 급변사태 시 선양군구 핵심 전투부대인 제39집단군의 주요 전투사단이 북한에 신속하게 투입될 수 있도록 제39집단군의 주력부대인 제116기계화보병사단과 4개 기계화보병여단, 1개 전차여단이 배치된 안산, 퉁화, 지안(集安) 등의 도시와 북한을 연결하는 4차선 고속도로 및 복선 철도를 건설하는데 올해까지 100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기도 했다. 중국은 표면적으로는 선린우호관계 강화를 말하고 있지만, 서해와 압록강 건너편에서는 언제든지 한반도를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모든 준비를 완비한 상태이고, 현재는 그 전력을 더욱 가다듬어 나가고 있다. 오죽하면 표면상 동맹관계인 북한의 김정일이 죽기 전 중국을 조심하라는 유언과 함께 중국을 방어하기 위해 양강도에 군단 하나를 더 창설했을까? -강대국에 의한 北 분할점령 못 막아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강대국들은 외교 무대에서는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과 남북관계 개선을 희망한다는 입장을 피력하지만, 모두 동상이몽(同床異夢)을 꾸고 있다. 우리나라는 통일을 원하지만, 동북아시아에 새로운 강국이 등장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일본은 현상 유지를 원하고 있고, 중국은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인 북한 정권이 없어지면 최소한 북한 지역 일부라도 확보해 자신들의 직접 통제 아래 둠으로써 적대 세력인 미국과 대한민국을 견제할 수 있는 완충지대로 남겨두기를 원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은 한반도 전면전 발발 시 북한 지역 수복작전 내용이 포함된 한미연합군 작전계획 5027과 북한 급변사태 발발 시 대응 내용을 담고 있는 작전계획 5029에 예전부터 우려를 표시해 왔었다. 미군이 개입되거나 미군과 동맹 관계인 한국군이 압록강 너머 중국 코앞까지 진출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것이 중국의 기본 입장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한반도 지역 급변사태 발발에 대비한 작전계획, 일명 ‘병아리(小鷄)계획’을 수립했다. 지난 2011년 이중간첩으로 체포된 ‘흑금성’ 박채서씨의 법정 증언으로 그 존재가 드러난 병아리계획은 한반도 유사시 중국의 군사개입과 완충지대 확보를 골자로 하고 있다. 해공군력이 동원되는 것은 물론 지상군이 들어가 대량살상무기 등 위협요소를 제거하고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이 북한 지역을 보호하겠다는 내용이다. 한반도 유사시 중국군이 대규모로 북한 지역에 들어가면 작전계획 5027이나 5029는 시행될 수 없다. 중국과의 군사적 충돌을 우려한 미군이 북진을 포기하고 중국과의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과의 핵전쟁, 제3차 세계대전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한반도 전 지역의 온전한 통일을 위해 싸울 이유가 전혀 없다. 미ㆍ중 양국의 협상이 타결되면 한반도는 70년 전 우리 민족의 의사와 관계없이 분단이 되었던 것처럼 또 다시 분단될 것이고, 반세기 넘게 갈망해 온 통일은 또 다시 요원해질 것이다. 이렇듯 중국은 한반도 통일의 최대 걸림돌이다. 중국의 위협이 가시화되면서 북한은 부족한 예산과 병력을 쥐어짜내 중국이 건설하고 있는 북한 진입 고속도로와 철도의 길목에 있는 양강도 지역에 제43저격여단과 교도대, 새로 편성된 전차부대를 중심으로 10군단을 편성해 중국의 침공에 대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중국의 군사적 위협이 이토록 심각한 수준까지 증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ㆍ중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강조하며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눈치만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주한미군은 점차 감축되고 있고, 전쟁이 발발하면 즉각 투입된다는 미군 전시 증원부대는 대부분 증발해서 사라진지 오래다. 반대로 중국 견제라는 공동 목표를 만들어 미국과 ‘120% 한통속’이 되어가고 있는 일본은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에서의 역할 확대, 주일미군 전력 강화는 물론 센카쿠 분쟁 발발 시 미군 지원이라는 카드까지 제공 받으며 확고한 안보태세를 다지고 있다. 외교가 실패했는데 스스로 지킬 힘을 키우지도 않고 있다. 유사시 중국군의 대규모 전차부대를 막아낼 육군의 기동군단 구상은 반토막 났고, 바다와 하늘을 지켜낼 해군 기동함대 건설 계획은 3분의1 수준으로 삭감됐으며, 오는 2019년 공군은 창군 이래 최악의 전력공백 사태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각 군 모두 심각한 예산 부족 때문에 발만 동동 구르며 손가락만 빨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정치 싸움에 골몰해 스스로를 지킬 힘을 키우는 것을 포기하고, 외부적으로는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도 구분하지 못한 채 눈치만 보며 스스로 고립되고 있는 21세기 대한민국의 모습에서 110년 전 일제에게 유린당하며 국권을 강탈당했던 경술국치의 비극이 오버랩되는 것은 기우(杞憂)일까? 이일우 군사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나폴레옹 머리카락, 경매서 1700만원에 낙찰

    나폴레옹 머리카락, 경매서 1700만원에 낙찰

    프랑스의 첫 대통령이자 마지막 황제였던 나폴레옹의 머리카락 뭉치가 경매에 나와 수집가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9일자 보도에 따르면, 경매에 나온 나폴레옹의 머리카락은 나폴레옹이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 뒤 유배길에 올랐던 시기의 것이다. 회색빛을 띠는 이 머리카락 뭉치는 금으로 만든 로켓(사진 등을 넣어 목걸이에 다는 작은 갑)에 들어있었으며, 겉면에는 '1816년 나폴레옹의 머리카락‘이라는 메시지가 적혀 있다. 또 직접 손으로 쓴 메모에는 이 머리카락 뭉치가 1800년대 후반까지 전해지게 된 과정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머리카락 뭉치는 나폴레옹이 워털루전투 패배로 남대서양 세인트헬레나 섬에 수감됐을 당시 그의 가드 역할을 한 해군 조지 브라인이 아내에게 주었고, 이 여성은 1867년 사망할 당시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1889년 그 아들이 사망하면서 그의 아내에게 넘어갔다가 1890년 메모를 쓴 사람에게까지 전달됐다. 나폴레옹의 머리카락 뭉치는 이 메모를 작성한 사람이 사망한 뒤 그가 살던 영국 서리주(州)의 주택이 철거될 당시, 이 집을 청소하던 익명의 청소부가 발견하면서 세상에 공개됐다. 다만 이 청소부가 머리카락 뭉치를 발견한 정확한 시기는 밝혀지지 않았다. 나폴레옹의 머리카락 뭉치는 본래 1500파운드의 ‘낮은’ 가격에서 경매가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워털루 전투 200주년인 올해에 나폴레옹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높아지면서 7500파운드 높아진 9000파운드(약 1712만원)에 낙찰됐다. 한편 나폴레옹은 사망하기 전 “나의 몸은 내가 사랑하는 프랑스 국민에게 둘러싸여 센 강에서 쉴 수 있기를 바란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또 지인들에게는 “내가 죽으면 머리카락을 잘라내 친구들과 가족에게 나눠달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실제 많은 사람들이 그의 것으로 추정되는 머리카락을 소유하게 됐으며, 스위스의 한 시계제조업체는 지난 해 나폴레옹이 잘게 자른 나폴레옹의 머리카락 조각을 넣은 손목시계 500개를 한정 생산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재벌가 분쟁 잔혹사] 창업주의 치우친 자식사랑…불화의 단초 되다

    [재벌가 분쟁 잔혹사] 창업주의 치우친 자식사랑…불화의 단초 되다

    ■효성家 ‘형제의 난’ 조현문, 물려받은 지분 정리 후 형 조현준 횡령 혐의로 고발 효성그룹은 고 조홍제 창업주의 손자들이자 조석래 회장의 2세 간 법적 소송으로 얼룩졌다. 효성 부사장 출신인 차남 조현문 변호사는 지난해 형 조현준 사장과 동생 조현상 부사장이 대주주로 있는 그룹 계열사를 검찰에 고발하면서 전쟁을 선포했다. 발단은 3형제 간 치열한 후계 경쟁을 벌이던 조 변호사가 2011년 효성의 불법 비리를 밝히겠다며 아버지 조 회장과 충돌한 뒤 회사를 나가면서부터다. 1999년부터 10여년간 일했던 조 변호사는 2013년 2월 회사를 완전히 떠나면서 부친에게 물려받은 7.1%의 효성 주식을 골드만삭스 등에 팔아 지분 관계를 모두 정리했다. 오너 지분이 제3자로 넘어가자 지배 구조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당시 효성은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이후 조 변호사는 지난해 6월 형과 동생이 대주주로 있는 그룹 계열사 대표를 횡령과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10월에는 형과 계열사 임직원 8명을 같은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노틸러스효성 등 3개 계열사 지분을 가진 형과 해당 계열사 대표들이 수익과 무관한 거래에 투자하거나 고가로 주식을 사들이는 방식 등으로 회사에 최소 수백억원의 손실을 입혔다는 주장이다. 그룹 측은 “왜곡된 주장이며 불순한 의도가 보인다”고 반박했다. 조현준 사장과 조현상 부사장은 지분 매입에 주력하는 분위기다. 지난 4일 기준 두 사람의 지분은 각각 11.38%, 10.95%로 이미 조 회장(10.15%)의 지분율을 넘어섰다. 효성은 2013년 말 추징금을 납부해 신용등급이 A+에서 A로 강등됐다가 2014년 말 회복됐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현대家 ‘형제의 난’ 정주영 회장 후임으로 정몽헌 지명되자 큰형 정몽구 ‘현대차’ 들고 그룹 떠나 재벌가 골육상쟁 잔혹사의 원조는 현대가다. 2000년 발생한 현대그룹 형제 간 경영권 다툼을 당시 언론은 ‘왕자의 난’이라고 불렀다. 형제 간 다툼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실질적인 장남인 둘째 아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5남인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측근 이익치 현대증권 사장을 좌천시키면서 본격화됐다. 고 정 명예회장은 대선 패배 이후 건강이 악화됐고, 두 형제는 1999년 11조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할 만큼 현대그룹의 재무구조가 악화된 상황에서 경영자협의회를 통해 공동 회장으로서 그룹을 함께 이끄는 과정에서 격돌한 것이다. 2003년 3월 병석에 있던 고 정 명예회장은 경영자협의회에 참석해 실질적 장자인 둘째 아들 정몽구 회장 대신 다섯째 아들 정몽헌 회장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른바 현대그룹 1차 ‘왕자의 난’이다. 갈등은 2개월 뒤 다시 증폭됐다. 현대 유동성 문제가 불거지고 계열사 주가가 급락하자 자구안 차원에서 5월 말 3부자 경영 일선 퇴진이 선언됐다. 현대차를 형에게 내주지 않기 위한 고 정몽헌 회장 측 음모라고 본 정몽구 회장 측은 사전협의 없이 나온 발표라며 퇴진을 거부했다. 이른바 2차 왕자의 난이다. 그해 9월 정몽구 회장은 현대차를 떼어 그룹을 떠났고, 고 정몽헌 회장은 같은 해 말 그룹 회장으로 복귀해 건설·상선 등 그룹 대부분을 차지했다. 현대그룹은 왕자의 난 이후에도 2003년 8월 정몽헌 전 회장의 부인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정상영 KCC 명예회장 간에 ‘숙부의 난’이라고 불리는 경영권 분쟁에 휘말렸다. 이어 2006년에는 현대상선 경영권을 놓고 정몽준 현대중공업 최대주주와 신경전을 벌인 ‘시동생의 난’을 겪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한화家 ‘형제의 난’ 김호연 “계열사 양도 약속 지켜라”…형 김승연 상대로 재산권 반환 소송 한화그룹도 소유권 다툼을 피하지 못했다. 김승연 한화 회장은 동생 김호연 전 빙그레 회장과 3년 6개월에 걸쳐 지난한 법정 소송을 벌였다. 분쟁은 1992년 김호연 당시 한양유통(현 한화갤러리아) 사장이 ‘경영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퇴출되면서 촉발됐다. 김 전 회장은 형이 자신에게 한양유통 등의 계열사를 넘겨주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반발했고 김 회장은 약속 자체를 한 적이 없다며 반박했다. 김호연 전 회장은 당시 “군복무 중인 1981년 부친 김종희 회장이 아무런 유언 없이 사망하자 상속재산을 지분별로 나눠 가져야 했었는데 형이 의논 없이 임의 처분했다”며 형을 상대로 재산권 반환 소송(주식인도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유산의 40%를 달라는 게 핵심이었다. 김 회장 측은 “지난 1981년 당사자 간의 합의 등 민법상의 합법절차를 밟아 상속재산이 분배됐고 10년 시효가 끝난 만큼 상속은 문제가 없다”고 맞섰다. 김 회장은 1993년 그룹 41주년 창립 행사에서 “동생이 없는 셈 치겠다. 재산 때문에 싸우는 것처럼 알고 있지만 경영 능력도 없고 딴 생각을 많이 해 경영을 맡기지 않았다”고 격렬히 비판하며 감정의 골을 내비치기도 했다. 두 사람은 1995년 어머니 강태영 여사의 칠순 잔치에서 어머니의 중재로 극적 화해했다. 이후 김 전 회장은 소를 취하했다. 이후 김 전 회장은 “그 일로 서먹해졌지만 형과의 갈등은 모두 해소됐다. 집안 행사가 있을 때마다 형제 간 모임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대성家 ‘형제의 난’ 장남 김영대·삼남 김영훈, 정통성 놓고 대립…결국 2개의 지주법인 탄생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막내딸로 있는 것으로 더 잘 알려진 에너지 전문기업 대성그룹은 고 김수근 창업주의 “형제 간에 절대 다투지 마라”는 유언에도 불구하고 아들 삼 형제가 십 년이 넘도록 치열한 골육상쟁을 벌여 왔다. 대성그룹의 파열음은 김 창업주가 2000년 세 아들에게 기업을 나눠 주고 이듬해 별세하면서 터지기 시작했다. 그는 장남 김영대에게 모기업인 대성산업을, 차남 김영민에게 서울도시가스를, 3남 김영훈에게는 대구도시가스(현 대성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대성그룹을 각각 경영하도록 했지만 유산, 호칭, 상호를 두고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2001년 2세 분리경영 이후 장남은 대성산업이 보유한 서울도시가스와 대구도시가스의 지분 처리방식을 놓고 차남·삼남과 1차 경영권 분쟁을 겪었다. 장남과 삼남은 서로 ‘대성그룹 회장’이라며 정통성을 놓고도 대립했다. ‘대성지주’ 상호를 차지하기 위한 법정 소송도 벌였다. 삼남 김영훈 회장은 2009년 대성그룹의 지주사 분리 당시 대성홀딩스로 상장을 했는데 이듬해 장남 김영대 회장은 대성산업의 지주사 명칭을 대성지주로 증권시장에 상장했다. 동생이 형을 상대로 한 ‘대성지주 상호 금지’ 가처분 신청은 법원에서 동생의 손을 들어줬고 김영대 회장은 대성합동지주로 결국 이름을 바꿨다. 서로 상징성을 포기하지 못해 2개의 대성지주 법인이 생긴 것이다. 모친 여귀옥 여사가 작고한 2006년에는 유산 상속을 놓고 또 갈등을 빚었다. 이런 ‘형제의 난’ 속에 진행된 경쟁적 사업확장은 재무건전성 악화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올해 재계 순위에서 대성은 38위로 7계단 내려앉았으며 자산총액도 7조 3000억원에서 지난해 5조 9000억원으로 대폭 줄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中 IT기업에 뜬 사이버경찰… “범죄 대처” vs “검열 꼼수”

    中 IT기업에 뜬 사이버경찰… “범죄 대처” vs “검열 꼼수”

    중국 정부가 사이버상의 각종 범죄 행위를 감시·단속하기 위해 주요 정보기술(IT) 업체에 사이버경찰을 상주시키기로 했다.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공안부는 지난 4일 사이버보안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주요 웹사이트와 IT 기업에 ‘사이버경찰 파출소’를 설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천즈민(陳智敏) 공안부 부부장은 “이번 결정은 인터넷 사이트와 IT 기업 안에 사이버보안 담당 공안 요원을 배치해 해킹과 개인정보 도용, 사이버 테러 등 온라인상의 각종 범죄에 신속하게 대처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인터넷 사기와 유언비어 및 포르노물 유포 등과 관련된 온라인상의 불법 행위에 대해 단속하는 한편 IT 기업들의 보안관리와 방어능력 제고에 일조하겠다”고 덧붙였다. 공안부는 그러나 사이버경찰 파출소가 어떤 IT 기업에 설치되는지, 외국계 기업들도 그 대상에 포함되는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중국 최대의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와 메신저 및 게임서비스 업체 텅쉰, 검색엔진 바이두 등 주요 IT 기업들이 그 대상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중국 정부가 온라인상의 사기와 유언비어 유포 등을 막는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6억 5000만명에 이르는 네티즌에 대한 정부의 검열을 강화하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WSJ는 중국 정부가 이전까지 검열 기준에 따르지 않는 웹사이트의 서버를 직접 폐쇄하는 방식에서 사이버경찰을 파견해 관리·감독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① 바이든 출마 ② 힐러리 광고 ③ 공화 토론회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의 대선 출마 가능성이 대두되자 민주당 유력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3일(현지시간) 처음으로 TV 광고를 공개하며 맞불 작전을 펼쳤다. 공화당 후보 14명은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불참한 가운데 대선 풍향계 지역인 뉴햄프셔주에서 열린 포럼에 처음으로 함께 참석, 각자의 대선 공략을 밝히며 불꽃 경쟁을 벌였다. 선거 전문가들은 “바이든의 출마 여부와 클린턴의 광고 효과, 공화당 후보들의 첫 토론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바이든 부통령의 출마 가능성은 최근 뉴욕타임스 등 미 언론이 본격 제기하면서 수면 위로 떠오른 분위기다. 지난 5월 사망한 아들의 출마 권유 유언과, 최근 여론조사에서 클린턴 전 장관이 공화당 후보들에 밀리는 등 ‘클린턴 대세론’이 흔들리면서 대항마가 필요하다는 민주당 내 여론이 작용했다는 평가다. 백악관도 버락 오바마의 오랜 동반자이자 든든한 후원자인 바이든 부통령의 편을 드는 분위기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MSNBC에 출연, “바이든 부통령이 출마하면 강한 소신을 펼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니스트 대변인은 더 나아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분명히 활발한 대결이 우리 당과 우리나라의 이익을 위해 최고라고 믿고 있다”며 백악관이 바이든의 대권 도전을 지지함을 강력히 시사했다. 이런 가운데 위기감을 느낀 클린턴 전 장관은 처음으로 TV 광고 두 편을 공개하며 본격적인 대선 캠페인에 나섰다. 그러나 공화당을 비판하기보다는 자신의 어머니를 소개하는 광고 ‘도로시’와 가족과 여성, 아이들 등을 위한 정책을 앞세운 ‘가족은 강하다’라는 광고 두 편을 통해 부드러움을 강조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클린턴 전 장관이 어머니의 힘들었던 삶을 통해 배운 교훈을 바탕으로 자신이 변호사 시절부터 퍼스트레이디, 국무장관으로 활동할 때 가족과 여성을 위해 일했음을 강조함으로써 이미지 개선을 꾀하고 있다”며 “2008년 후보 때는 다루지 않았던 부드러운 이미지를 다룬 것은 놀라운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공화당의 경우 내년 초 프라이머리(예비선거)가 열리는 뉴햄프셔주 한 대학 강당에서 이날 열린 ‘유권자 퍼스트 포럼’에 후보 14명이 처음으로 동시에 참석, 차례로 자신들의 공약을 밝혔다. 지지율 1위를 달려 관심을 모아 온 트럼프는 포럼을 주최한 지역 언론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불참했다. 대다수 후보는 오바마 정부의 외교·경제 정책과 클린턴 전 장관을 비판하면서 “내가 대통령으로 최고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이날 포럼은 6일 폭스뉴스가 개최하는 ‘컷 오프’ 성격의 공화당 첫 대선 후보 토론회에 앞서 열려 유권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뉴욕타임스는 “공화당 후보들이 슈퍼팩(PAC·정치활동위원회)을 통해 어느 정도 기부금을 모으고 있지만 2012년 대선에서 공화당 밋 롬니 후보를 위해 뛰었던 선거자금 모금자들과 억만장자 찰스·데이비드 코크 형제 등 ‘큰손’ 기부자 상당수가 아직 특정 후보에 줄을 서지 않고 있다”며 “6일 토론회가 대규모 선거자금이 어디로 흘러갈지를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남침 땅굴, 있다니까요!” 끝나지 않는 전쟁

    [밀리터리 인사이드] “남침 땅굴, 있다니까요!” 끝나지 않는 전쟁

    1974년 11월 15일 경기 연천군 고랑포 북동쪽 8km 지점, 군사분계선 남방 1.2km 지점에서 땅굴이 발견됐습니다. 25사단 수색대 장병들이 우연히 땅 밑에서 올라오는 수증기를 보고 지하터널의 존재를 알게 된 겁니다. 본격적으로 땅을 파다 북한군이 기습적으로 기관총 사격을 가해 우리 장병 3명이 희생됐습니다. 한미공동조사반의 우리 군 장교 1명과 미군 장교 1명이 북한군이 매설한 폭발물 때문에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군사분계선 북쪽 2km 지대는 북방한계선(NLL), 남쪽 2km는 남방한계선(SLL)으로 불립니다. 이곳은 완충지역을 뜻하는 비무장지대(DMZ)라는 표현이 무색하게도 사실상 중무장한 병력이 주둔한 각자의 영토입니다. 그런데 북쪽과 연결된 폭 90cm, 높이 1.2m, 총 길이 3.5km의 땅굴이 발견됐으니 나라가 발칵 뒤집힐 수 밖에 없었죠. 전국이 들끓었습니다. 1972년 평화통일을 최초로 언급한 7·4 남북공동선언 이후에 벌어진 일이어서 국민들의 배신감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마침 1973년 3월 미군과 우리 군의 베트남 철수까지 이뤄져 전국에는 ‘반공 광풍’이 불었습니다. 땅굴은 반공 포스터와 웅변대회에서 단골소재였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제기됐습니다. 땅굴이 과연 하나 밖에 없을까?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DMZ 의심지역에서 시추탐사가 이뤄졌습니다. 제1땅굴 발견 4개월 뒤인 1975년 3월 19일 강원 철원군 동북쪽 13km 지점, 군사분계선 남방 800m에서 제2땅굴이 발견됐습니다. 폭 2.1m, 높이 2m로 야전 장비를 이동시킬 수 있는 규모였습니다. 북한 귀순자 제보에 근거해 시추작업을 계속하다 1978년에는 판문점 남쪽 4km 지점에서 제3땅굴이 발견됐습니다. 서울에서 불과 52km 떨어진 지점에서 3만명의 병력을 이동시킬 수 있는 땅굴이 발견되자 여론이 또 들끓었습니다. 또 1990년 3월 3일 동부전선에서는 최초로 강원 양구군 북동쪽 26km 지점에서 제4땅굴이 발견됐습니다. 이후 더 이상의 땅굴은 발견되지 않았고, 안전을 고려해 출입이 차단된 제1땅굴을 제외한 나머지 땅굴은 모두 안보견학 목적으로 방문하는 사실상의 관광지가 됐습니다. ●끝없는 음모론, 남침 땅굴설로 비화하다 사설이 길었습니다. 마지막 땅굴이 발견된 지 25년이 지난 지금도 또 다른 땅굴이 있다고 믿는 이들이 있습니다. 과거 충격이 너무 컸던 걸까요. ‘남침 땅굴설’은 가지에 가지를 쳐 아예 우리 도시와 직접 연결된, 전국적으로 바둑판과 같은 대규모 지하시설이 존재한다는 주장으로 확장됐습니다. 이곳으로 끊임없이 간첩과 북한의 특수부대가 내려온다고 주장합니다. 정부와 군도 발끈했습니다. “더 이상의 땅굴은 없다”고 수없이 강조했지만 믿지 않았죠. 사실 보수시민단체와 군은 일반적으로는 친밀한 관계를 갖지만 이 부분 만큼은 양측의 마찰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2014 남침설’을 거론한 종교단체까지 가세하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조성됐습니다. 심지어 일부 시민단체들은 지난해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인근에 생긴 땅꺼짐 현상도 남침 땅굴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군은 이들의 주장을 묵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지난해 12월 국방부는 시민단체 남침 땅굴을 찾는 사람들(남굴사)과 땅굴알림연대, 땅굴안보국민연합의 끝없는 민원을 종식시키기 위해 실제로 땅굴이 있는 지 조사해보기로 했습니다. 시민단체는 경기 양주시와 남양주시에 땅굴이 있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남굴사는 양주시에서 화약 물질이 남아있는 발파석과 시추공 작업소리, 북한 억양의 여자 목소리를 녹취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예산 2억원 들여 도시 지하 뚫은 결과는? 땅굴알림연대 등은 남양주시에서 지하 드릴 및 터널굴착기(TBM) 작동 소음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두 단체는 ‘다우징 탐사’로도 땅굴의 존재를 탐지했다고 강조했죠. 다우징 탐사는 L자 모양의 금속 막대로 수맥을 찾는데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이른바 기(氣)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과학적인 근거는 전혀 없었지만 군은 소모적인 논쟁을 끝낼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군은 수직으로 땅 속에 구멍을 뚫어 지질 구조를 그대로 확인할 수 있는 중장비 ‘코아기’를 동원했습니다. 전기 신호를 흘려보내 땅의 구조를 파악하는 전기 비저항 물리탐사, 중력의 변화로 땅굴 위치를 찾아내는 중력탐사 장비도 사용했습니다. 대형 시추장비를 동원하다보니 순수하게 장비를 운용하는 비용만 2억원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유언비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시민단체들은 지하 15~20m 지점에 땅굴이 존재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군은 “더 깊이 조사하자”는 추가 요구를 방지하기 위해 40m 이상 시추공을 내고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코아 시료를 분석해봤지만 지하 어디에도 빈 공간은 없었습니다. 다이너마이트 원료인 니트로셀룰로오즈, 폭약의 산소공급제인 니트로글리세린, 군용 TNT, 화약의 원료인 질산암모늄·트리메틸렌트리니트로아민(RDX) 등 어떤 폭약관련 물질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지하수 조사와 시추공에 안테나를 넣어 지하구조를 파악하는 펄스 전자파 탐지장비(PEMSS), 탄성파탐사장비(JODEX), 레이더측정수집장비(RAMAC), 전자파 지층탐사장비(GEOVIS) 조사에서도 아무런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시민단체는 굴착기 소음과 북한 억양의 목소리를 녹음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 음향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군은 책자를 통해 남침 땅굴설을 강력 주장한 한성주 예비역 공군 소장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및 모욕죄로 고소했고, 앞으로도 근거없는 유언비어를 유포할 경우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한 전 소장을 비롯해 남침 땅굴설을 주장하는 단체들은 여전히 활동하고 있고, 군이 북한에서 판 땅굴을 은폐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종교적 신념까지 더해져 맹신의 정도가 지나치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군이 1980년대부터 지난해까지 접수한 땅굴 관련 민원은 900여건이며 이 가운데 250여건이 ‘반복성 민원’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이 자신이 사는 지역 지하에 북한이 만든 땅굴이 있는 것 같으니 뚫어서 조사해 달라는 주장입니다. 민원이 집중된 지역 23곳에서 604개의 시추공을 뚫어 조사했지만 남침 땅굴 징후는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거기에 예산으로 20억원이 들어갔습니다. “수십 년 동안 겨우 20억원을 들였나”라는 비아냥도 나옵니다. 하지만 23곳을 조사하는데 국민이 낸 세금 20억원을 투입한 것은 군 입장에서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닙니다. 이것은 군이 단독으로 조사한 것을 제외한, 순수하게 민간에서 의문을 제기한 23개 지역만 조사한 것입니다. 공개 조사에서 땅굴이 나오지 않자 이들 단체는 아예 땅을 절개해 단면을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조사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엄청난 예산이 소요되는 황당한 발상을 정부와 군이 들어줄 리 없습니다. ●“땅굴 있는데 은폐했다” 한숨 쉬는 軍 그런데도 남침 땅굴 관련 신고와 민원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로 2012년 19건에서 2013년 67건, 지난해 275건으로 늘어났습니다. 북한이 1대당 80억원이나 하는 굴착장비 TBM을 이미 1970년대부터 300여대나 스웨덴에서 수입했다는 어이없는 주장까지 나왔는데요. 군은 “단순 계산으로도 2조 4000억원이 들어가는데 그 많은 돈을 어떻게 조달했겠나. 실제로 도입했다고 해도 덩치가 큰 구형장비와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양의 토사를 몰래 숨길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땅굴을 파는 행위 자체가 엄청난 인력과 시간, 비용을 필요로 하는데다 고위급 탈북자 상당수는 땅굴 전략이 이미 우리 군에 수차례 노출돼 가치를 상실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군의 설명을 여전히 믿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 비춰 아마 전국에서 수천억원을 쏟아부어 시추공을 뚫어도 결과를 곧이곧대로 믿을 것 같지 않습니다. 군은 지금도 전방 지역에서 땅굴 탐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군의 침투 가능성이 높은 DMZ에서 집중적으로 땅굴 탐사 부대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9300여개 시추공을 통해 소음을 측정하고 지하수 수위 변화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군 뿐만 아니라 많은 기관들이 지진음, 폭발음 등 북한의 특이 동향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군은 남침 땅굴 주장에 대해 “안보 불안을 조성해 결국 북한을 이롭게 하는 행위”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특히 나라를 지켜야 할 군이 이런 땅굴을 은폐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선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국가 안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하죠. 그렇지만 이제 군을 믿고 이 전쟁을 끝내야 할 때입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100세 시대 新노년] 전문가로 사는 노년의 조언

    [100세 시대 新노년] 전문가로 사는 노년의 조언

    ‘전문가는 은퇴가 없다’는 말이 있다. 실제 오랜 취미나 새로운 도전을 통해 나비전문가, 기타제작 장인, 영화감독 등 전문가로 노년을 보내는 이들은 주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뒤에는 많은 노력과 인내가 숨어 있다. 어떤 이는 나비 수집을 위해 수십년 발품을 팔다 보니 최고의 전문가가 됐다. 또 하루라도 더 직장에서 버티려는 동료와 달리 명퇴를 단행하고 기타 기술을 배우러 유학을 떠난 이도 있다. 생전 남편과 약속을 지키려 컴퓨터에 도전했다가 영화감독이 된 사람도 있다. 이들은 ‘청년과 중년 때도 그랬지만 준비와 도전이 없는 단순한 바람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들의 비결을 통해 전문가로서 노후를 맞는 방법을 정리해 보았다. ■나비 박물관장 김용식씨 가져라! 다양한 사람과 나눌 수 있는 오래된 취미 “오랜 취미를 갖고 그 취미에 대한 가족의 지지를 받는 게 노후에 전문가가 되기 위해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난 14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자택에서 만난 김용식(71) 에코피아 제주 나비박물관 관장은 지난 40여년간 나비 채집에 몰두했다. 그는 남강고등학교에서 생물교사로 일했고, 정년 퇴임을 하면서 나비박물관 관장을 맡았다. 서울과 제주를 오르내린 지 9년째다. 김 관장은 “30대에 과학교사로서 학생들에게 다른 것을 알려주고 싶어 채집을 시작했는데, 날 맑은 주말에는 매일 나비를 찾아다녔다고 보면 된다”면서 “남방녹색보전나비는 전남 두륜산에만 있는데 광주시에서 해남으로, 또 시내버스로 두륜산까지 가도 허탕을 치기 일쑤였지만 결국은 찾아냈다”고 회고했다. 그는 최고의 나비박사 중 한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40년간 채집한 표본으로 나비가 지역에 따라 어떤 변이를 보이는지를 최초로 밝힌 원색한국나비도감을 펴냈고, 에코피아에 우리나라의 모든 나비종을 기증해 나비박물관을 세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 깊은산녹색부전나비 등 3종의 미기록종을 발표했다. 그는 주말이면 땀범벅으로 돌아오는 남편 취미를 인정한 부인 지지로 채집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김 관장은 “둘 다 자연을 좋아하는 덕분에 대자연에서 나비를 찾고 돌아올 때 먹는 국밥 한 그릇, 막국수 한 젓가락이 행복한 데이트였다”면서 “지난 20여년간 차를 몰며 나를 나비가 있는 곳까지 데려다 줬고, 지금은 함께 나비 사진을 찍는다”고 말했다. 그는 힘든 고비를 넘기려면 같은 취미를 즐기는 집단에 가입하라고 권했다. 김 관장은 “늘 학생과 동료교사만 보다가 나비학회에서 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취미를 나누는 것은 늘 새로운 자극이었다”면서 “희귀한 나비를 채집하면서 경쟁하다 보면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고 말했다. 특히 목표를 나눠 잡아야 원대한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일반 나비를 모으고, 우리나라 희귀 나비를 채집하고, 외국 나비를 채집하는 식이다. 처음부터 모든 나비를 모으겠다고 들면 막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노후에 전문직업을 갖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건강”이라면서 “젊었을 때부터 틈틈이 건강관리를 해야 한다”고 끝맺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다큐 영화감독 윤아병씨 찾아라! 새로운 도전 끝까지 이끌어 줄 좋은 스승 시작은 남편의 유언이었다. 남편은 세상을 떠나기 전 컴퓨터를 같이 배우자고 했었다. 그러나 평생 가정주부로만 살다 보니 뭔가를 새로 배운다는 게 두려웠다. 남편이 떠나자 “싫다”고 자른 게 가슴에 남았다. 윤아병(76) 할머니가 ‘영화감독’으로 거듭난 계기다. 15년 전, 윤 감독은 남편과 사별한 뒤 그의 유언이 생각나 전단지 한 장을 들고 무조건 컴퓨터를 배우러 갔다. 시작은 늦었지만 속도는 빨랐다. 컴퓨터 기초부터 파워포인트, 엑셀, 포토숍까지 일사천리로 배워 나갔다. 윤 감독은 “포토숍을 배우다 보니 사진을 찍어야 해서 카메라를 샀다”면서 “그러다 영상 촬영법도 배워 놀러다니며 찍어 봤는데 너무 재밌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처음부터 감독이 되려는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그저 배운 대로 따라 하다 보니 어느새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고 있었다. 윤 감독은 “시작이 반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면서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대로 즐기면서, 성실하게 따라가니 되더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 노인영화제에서 처음 입선한 뒤 2011년 안산 상록수 영화제에서 ‘최용신을 찾아서’로 최우수상을 받았다. 자신감을 얻어 2013년에는 ‘제1회 NILE 단편 영화제’에도 나갔다. ‘나이야 가라!’라는 작품으로 영예의 대상을 거머쥐었다. 윤 감독은 새로운 직종에 뛰어들어 전문가가 되려면 ‘끈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같이 배우던 사람들 중 중도 포기한 사람들도 많다”면서 “나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될 때까지 집에 가서 복습하고 연습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윤 감독이 꼽는 가장 중요한 비결은 바로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이다. 그는 “아무 계획 없이 살다가 스승을 만나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라면서 “처음에 스승을 잘 택해 지도받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 감독의 스승은 현재 그가 시니어 강사로 몸담고 있기도 한 사회적기업 ‘은빛둥지’의 라영수 원장이다. 라 원장은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도전하는 시니어들을 이끌었다. 윤 감독은 끝으로 노인들에게 “자신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라”고 당부했다. 그는 “다 늙어서 내가 뭘 하겠어”라는 생각부터 버리라고 했다. “세상 밖으로 나와 용기를 갖고 도전하세요. 하면, 진짜 됩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수제기타 장인 최동수씨 얻어라! 하고픈 일 옆에서 응원해 줄 가족의 동의 “바보정신이 있어야 해요. 바보정신. 그래야 뭐라도 하나 이룰 수 있어요.” 지난 23일 경기 고양시 정발산동 자택에서 만난 수제기타 장인 최동수(75)씨는 은퇴 이후 한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는 비법을 묻는 말에 “바보정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뜬금없이 웬 바보정신이냐고 되묻자 그는 “내일 뭐 먹을지에 대한 걱정이 머리에 가득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어렵다”면서 “남들이 다 하는 것 말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바보끼’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1994년 현대건설 임원이던 최 장인은 “기타를 만들겠다”며 20년을 다닌 회사에 사표를 냈다. 취미생활을 하겠다고 회사를 때려치운 것이다. 회사에선 어떻게 된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최 장인의 결심은 굳었다. 사표를 낸 그는 스페인과 미국으로 늦은 유학길에 올랐다. 최 장인은 “국내에선 수제 기타 만드는 것을 체계적으로 가르쳐 주는 곳이 없었다”고 말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가족과의 갈등은 없었을까. 20년 전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면 하고 싶은 걸 해도 된다”고 약속했던 최 장인의 아내는 “밥 세끼는 먹여주겠다”며 그를 응원했다. 최 장인은 “내가 기타를 만들기 시작하자 아내는 수필을 쓰기 시작했다”면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고 하면 가족의 지지와 응원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새 길을 가기 시작한 지 20년. 현재 그의 기타 가격은 1000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1대당 1000만원이 넘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떼돈을 벌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최 장인은 “온도와 습도가 적당한 10월에서 이듬해 4월까지 기타를 만든다”면서 “이 때문에 1년에 2대 정도, 가끔 특별한 부탁을 받았을 때 3대 정도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최 장인은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할 수 있으면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면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선택하고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어떤 사람은 은퇴 이후에 어떻게 편하게 보낼 것인가를 고민하는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면서 “매일 규칙적으로 노동하는 게 행복한 것”이라며 미소 지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3인이 말하는 전문가 되는법 ] >>김용식씨의 조언 -오랜 취미를 가져라 -가족의 지지를 얻어라 -단계별로 목표를 세워라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을 사귀어라 >>윤아병씨의 조언 -좋은 스승을 만나 배워라 -될 때까지 연습하라 -자신에 대한 편견을 버려라 -현재에 충실한 계획을 세워라 >>최동수씨의 조언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라 -하고 싶은 일을 구체적으로 준비해라 -규칙적으로 노동한다고 생각해라 -마음을 비우고 경쟁에서 벗어나라
  • 11년간 절벽 순찰하며 ‘자살 막아온’ 70대 男

    11년간 절벽 순찰하며 ‘자살 막아온’ 70대 男

    무려 11년간 자살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을 찾아내 극단적인 선택을 막고 생명을 구한 70대 남성의 이야기가 공개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28일자 보도에 따르면 시게 유키오(70)라는 남성은 일본에서 ‘자살 다발 구역’으로 알려진 도진보 절벽을 지키며 이곳에서 자살하려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어 왔다. 도진보 절벽은 일본 후쿠이현 시카이시에 있는 유명 관광지이자, 일본에서 손꼽히는 자살 명소다. 전진 경찰관인 그는 자신을 포함해 팀을 이룬 뒤 이곳에서 11년 째 자살방지 활동을 벌이고 있다. ‘순찰’을 돌다가 절벽에서 뛰어내리려 하는 사람을 발견하면 곧장 다가가 말을 건네고 안전한 곳으로 그들을 이끄는 것이 시게의 역할이다. 시게는 매일 도진보 절벽으로 출근하며, 그에게는 자원봉사자 3명으로 이뤄진 팀이 있다. 이들 모두 시게와 마찬가지로 절벽을 매일 순찰하고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돕고 있다. 그와 그의 팀이 지난 11년 간 이곳에서 살린 사람은 무려 500명에 달한다. 시게가 애초 이 일을 시작한 계기는 과거 비극적으로 자살한 친구 때문이었다. 그는 “경찰이 내게 전화해 친구의 자살 소식을 알렸던 그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는 빌린 차에 타고 곧장 바다로 달려 들었다고 했다”면서 “자살을 하려는 사람들을 보면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주길 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1년간 자살방지 활동을 펼치면서 그를 분노케 한 사건도 있었다. 과거 자살하려던 노부부를 설득해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경찰차를 불러 당국에 인계했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그들에게 약간의 돈을 쥐어주며 다른 도시로 떠나라고 말했고, 며칠 뒤 이 노부부는 다른 도시에서 결국 자살을 선택했다. 그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직전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 준 시게에게 유언장과 같은 편지를 남겼다. 시게는 “또 다른 여성은 자살 직전 10분만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했지만 경찰차와 구급차가 몰려들었고, 5시간의 대치 끝에 결국 그녀는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면서 “당시 경찰은 ‘당신의 부모를 생각해봐라’라고 이야기 했는데, 이는 자살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해서는 안될 말 중 하나다. 그들이 가진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광복 70년 기획-설치작가 전수천 철의 실크로드를 가다] (상)블라디보스토크~이르쿠츠크

    [광복 70년 기획-설치작가 전수천 철의 실크로드를 가다] (상)블라디보스토크~이르쿠츠크

    광복 70년, 분단 70년을 맞아 평화와 통일의 염원을 담은 ‘유라시아 친선특급 2015’가 지난 14일 시작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시범사업의 하나로 외교부와 코레일이 공동주최하는 이 행사는 중국 횡단열차(TCR)와 시베리아횡단열차(TSR)를 이용해 러시아, 중국, 몽골, 벨라루스, 폴란드, 독일 등 6개국 1만 4400㎞를 19박 20일간 달리는 대장정이다. 독립유공자 후손, 정치인, 문화예술인 등 각계 인사 300명과 함께 열차에 동승한 설치작가 전수천(68)씨가 ‘철의 실크로드’를 달리는 심경을 글과 그림, 사진에 담아 서울신문으로 보내왔다. 총 3회에 걸쳐 싣는다. 날개를 펼치면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볼 수 있다. 7년 전쯤이었을까. 해군 함정을 타고 독도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100여m나 되는 크기의 함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높게 밀려오는 파도에 가끔은 흔들려가면서 독도에 도착했다. 정상에 올라 팔을 벌린 채 실눈을 뜨고 주위를 바라보았던 감회를 가슴만으로는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저 사방에 보이는 바다가 아름다워서였더라면 오죽이나 좋았겠는가? 우리 국민 대부분이 감성적으로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외치며 마음에 담고 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해양을 터전으로 삼고, 대륙을 앞마당으로 여기며 뛰놀았던 민족의 시원(始原)이 가슴 한편에서 꿈틀거렸고, 마음은 또 다른 경계를 향해 치달았다. 광복 70주년 기념의 일환으로 유라시아를 내달리기 시작한 특급열차는 지난 15일 연해주(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석양빛이 블라디보스토크의 숲과 평야를 물들이기 시작했다. 버스를 타고 달리는 도로 양편으로 펼쳐지는 차창 밖 풍경은 푸르다 못해 검은색에 가깝다. 검푸른 숲이 시야 속으로 끝없이 이어진다. 흔히들 시베리아 연해주를 동토의 땅이라고 말하지만 끝없이 펼쳐지는 풍요롭게만 보이는 여름의 대지가 눈 안으로 파고들었다. ●항일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 생가 등 방문 연해주 하면 우리는 무엇을 연상할까. 독립운동을 하며 말을 타고 달리던 독립운동의 선구자들을 연상하게 되는 게 당연할 것이다. 연해주는 겨울에 영하 30~40도까지 내려가는 추위가 몰려오는, 그야말로 동토의 땅이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이곳은 봄, 여름, 가을에는 숲이 우거지고 목초지가 끝도 없이 펼쳐지는 기름진 땅이다. 나라를 찾겠다고 숨어 살며 싸우던 독립운동가들에게 망명지나 다름없는 타국이 과연 내 나라처럼 편한 가슴으로 품을 수 있는 나라였을 수는 없었을 터다. 우리는 그 시대적 배경을 그저 상상하는 감상의 차원에서 가볍게 한 페이지를 읽고 지나치며 그리는 스케치 같은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연해주에서 버스를 타고 우수리스크에 가서 항일운동의 대부였다는 최재형 선생의 생가를 방문했다. 옛날 한인의 고택으로는 놀랄만한 저택이었다. 그는 어려서 노비의 아들로 태어나 연해주에 이주한 한인의 아들이었다. 12살 나이에 러시아인의 양자로 들어가 공부를 하였고 러시아 정부가 인정하는 사업가로 돈을 벌었으며 그 돈으로 항일 운동을 하는 독립군에게 활동자금을 지원했지만, 우리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더욱이 그는 독립운동가들에게 자금을 지원했다는 죄로 일본군에게 잡혀 처형된 인물이다. 특급열차를 탄 일행은 안중근 의사의 활동 안내 비문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를 보며 위령제를 지냈다. 유허비를 바라보는 뚫려버린 것 같은 가슴 사이로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 앞에는 아무르강(흑룡강) 물이 흐른다. 죽으면 화장해서 흑룡강에 뿌려달라는 그의 유언 때문에 유골의 재를 흑룡강에 뿌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근래에 유허비를 세웠다고 한다. 우수리스크는 안창호 선생, 김규식 선생 등등 많은 분들이 나라를 찾기 위해 희생한 연해주 지역이다. 블라디보스토크 러시아 혁명광장에는 혁명용사들의 동상들이 있고 우수리스크에도 레닌의 웅장한 동상이 높이 서 있다. 동상들은 하나같이 동쪽을 바라보며 동쪽을 향해 손을 들어 가리키고 서 있다. 레닌의 동북 정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조형물들이란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블라디’는 정복이라는 뜻의 단어이고, ‘보스토크’는 동쪽이라는 뜻의 단어다. 동쪽을 정복한다는 의미로 레닌이 붙인 지명이다. 그는 결국 동쪽 끝 블라디보스토크를 정복했다. ●광복 70주년 기념 일환… 정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시동 우리는 다시 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하여 하바롭스크를 지나 이르쿠츠크를 향해 달리고 있다. 몇 시간을 달리다 보면 가끔 조그만 간이역에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외에 거의 사람을 발견할 수가 없을 정도로 그저 허허벌판이다. 눈이 쌓여 있을 숲을 머릿속에 상상할 뿐이지만 며칠 전에 별세한 오마 샤리프가 주연했던 영화 ‘닥터 지바고’가 기억의 풍경으로 내 머릿속에 잠시 자리 잡는다. 한편으로는 푸시킨의 시를 떠올리게 하는 살아 있는 눈 덮인 자작나무 숲의 그림들이 상처처럼 흔적으로 다가온다. 끝없는 자작나무 숲이 철길을 따라 그림을 그린다. 문득 수년 전 그 독도가, 그 감회가 기억의 한 공간에서 슬며시 떠오른다. 막연하게 인지하고 있던 독도가 자작나무 숲 철길 위에서 현실로 다가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넓이는 창의적 상상을 확장시켜주는 공간이다. 땅은 국력의 원천이다. 광복70주년 기념의 일환인 정부의 유라시아 친선특급 프로젝트는 유라시아 인접 국가들과 상호 간 이해증진의 실질적인 관계를 모색하는데 새로운 싹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예상을 갖게 했다. 시작에 불과하지만 횟수를 늘려 간다면 물류-교통 노선을 여는 일이 꿈만은 아닐 것이며 남북이 하나 되는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생각도 했다. 크든 작든 북한을 포함하는 유라시아 정책에 있어서 정부는 정부대로 상호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교류를 확대할 필요가 요구된다. 또한 개인을 포함한 민간적인 문화예술 활성화 사업도 적극적으로 뒷받침 되어야 할 것이다. 서울을 출발하여 5일째 자작나무 숲과 낮은 구릉 사이를 쉴 틈 없이 달려 하룻밤을 새고 나면 이르쿠츠크에 도착한다. 갑자기 한인들의 독립운동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서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말한 ‘만일 내가 나 자신이 아니라면 과연 누가 나를 대신하여 내가 될 것인가?’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우리 스스로가 풀어야 할 국가적 프로그램을 우리가 아니면 누가 대신하여 줄 것인가! 멀리서 바이칼 호수가 희미하게 눈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전수천 작가는 1947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일본 도쿄 와코대 예술학과와 미국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석사를 마쳤고, 일본 도쿄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유화를 전공했다. 1995년 설치작품 ‘방황하는 혹성들 속의 토우-그 한국인의 정신’으로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상을 수상했다. 2005년에는 미국 동부에서 서부까지 기차로 횡단하는 ‘움직이는 드로잉 프로젝트-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2011년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 [사설] 국정원 직원 자살 부른 해킹 의혹 진실 밝혀야

    해킹 프로그램 도입, 운용 업무를 맡았던 국가정보원 직원이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 자살 배경과는 관계없이 소중한 한 생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점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국정원의 민간인 스마트폰 해킹 의혹을 둘러싼 정쟁이 격화되면서 당사자가 느꼈을 압박감이 어느 정도였는지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공개된 유서에도 일부 그런 정황들이 포함돼 있다. 그는 업무에 대한 지나친 욕심이 오늘의 사태를 일으켰다고 자책하면서도 우려할 만한 행위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내국인과 선거 사찰은 전혀 없었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자살한 이유를 추정할 만한 대목도 일부 남겼다. 그는 “외부에 대한 파장보다 국정원의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혹시나 대테러, 대북공작 활동에 오해를 일으킨 지원했던 자료를 삭제했다”며 이는 자신의 부족한 판단이 저지른 실수였다고 했다. 20년 경력의 사이버안보 전문가였던 그는 국회 정보위에 관련 자료가 노출될 것을 우려해 대(對)테러, 대북공작 활동 관련 부분을 삭제했고 이에 대한 안팎의 압박이 조여 오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앞으로 정확한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다행히 국정원도 삭제 자료를 복원해 정보위에 공개하기로 했다. 현재로서는 자살한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야당 주장도 일리는 있다. 정보위 야당 간사인 새정치민주연합 신경민 의원은 “만약 국내 해킹이나 사찰을 안 했다면 소명만 하면 될 것이고, 오히려 국가로부터 훈장 포상을 받을 직원인데 죽음을 택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며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야당의 요구가 아니더라도 국정원 직원의 자살 배경은 한 점 의혹 없이 밝혀야만 한다. 벌써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지 않은가. 안보를 무력화하고, 국익에도 백해무익한 유언비어가 증폭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진상조사가 필요할 것이다. 위키리크스의 이메일 폭로로 촉발된 국정원의 해킹 프로그램 도입 및 민간인 스마트폰 해킹 의혹은 규명되긴커녕 갈수록 정쟁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엄혹한 안보 현실을 고려하면 우리 스스로 좀 더 자중자애할 필요가 있다. 엄정한 조사를 통해 국정원이 해당 프로그램을 민간인 사찰 등에 악용했다면 관련자들을 엄벌하면 될 일이다. ‘선(先) 의혹 검증, 후 현장 조사’를 고집하며 국정원 방문조사를 미루는 야당 측 대응은 그런 점에서 설득력이 약하다. 사용 기록 열람과 현장 조사를 통해서도 규명하기 어려운 부분은 추가로 조사하면 되지 않겠는가.
  • 메모리얼병원 초동대응 실패가 남긴 ‘비극’

    메모리얼병원 초동대응 실패가 남긴 ‘비극’

    재난, 그 이후셰리 핑크 지음/박중서 옮김/알에이치코리아/720쪽/2만 2000원 2005년 8월 27일 멕시코만 부근에서 5등급 폭풍인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관측됐다. 카트리나는 유례없이 강력한 허리케인이긴 했지만 상륙한 이후에는 세기가 외려 약해져 충분히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1800명 이상의 사망자와 1000억 달러가 넘는 재산 피해를 남기며 미국 역사상 최악의 자연재해로 기록됐다. 홍수방지 시스템 미비, 재난관리 시스템의 붕괴, 정부의 부실한 대처 등 드러난 원인은 여러 가지였다. 의사이자 기자인 셰리 핑크는 허리케인 당시 뉴올리언스 메모리얼메디컬센터를 주목했다. 유독 다른 병원보다 많은 희생자를 낸 병원은 국가재난관리 실패의 축소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메모리얼병원에서의 5일을 재구성한 기사로 2010년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여기에 6년여에 걸쳐 가진 500여건의 인터뷰와 취재 내용을 더해 ‘재난, 그 이후’(원제 Five days at Memorial)를 완성했다. 책은 대형 재해가 결국은 ‘만들어지는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재난의 패턴은 어느 나라든 거의 흡사하다. 사건이 발생하고 초동 대응을 잘못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 그 누구도 컨트롤타워를 자처하지 않고, 결정권자들마저도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유언비어가 난무해 사회 전체가 공황 상태에 빠진다. 2014년 세월호 참사와 2015년의 메르스 사태를 겪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시나리오다. 8월 28일 국립기상청의 뉴올리언스 지사는 ‘유례가 없었던 가장 강력한 위력을 지닌 허리케인이 12~24시간 내에 닥쳐올 것이 확실하다’고 예고했다. 그날 오전 10시 뉴올리언스 시장 레이 네이긴이 시민 대피 명령서에 서명했다. 이미 태풍이 코앞에 닥친 긴박한 상황에서도 시장이 대피 명령을 내릴 권한이 있는지를 논의하느라 몇 시간이 흘러 버렸다. 이 때문에 2만 5000명의 시민들은 미처 도시를 탈출하지 못하고 슈퍼돔으로 대피할 수밖에 없었다. 뉴올리언스에서는 1927년에 발생한 미시시피강의 홍수를 계기로 홍수방지 시스템의 구축 필요성이 제기됐으나 대책 마련은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폭풍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메모리얼병원의 총인원은 환자와 의사, 그리고 가족까지 약 2000명으로 늘어났다. 병원은 방대한 허리케인 대비 계획안은 마련해 둔 상태였지만 홍수는 미처 예견하지 못했다. 결국 제방이 터지며 물이 5m까지 차오를 것이라는 경고 앞에서 비상위원회는 임기응변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 재해는 수습되지 못하고 유언비어만 난무했다. 인질극 상황, 인근 감옥의 탈옥 사태, 경찰을 향한 총격, 심지어 상어 출현 소문까지 돌았다. 둘째날 메모리얼병원의 전력은 끊기고, 셋째날엔 침수돼 비상 발전기가 모두 고장 나게 된다. 숨막힐 듯한 무더위와 물도 없고, 화장실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병원 비상위원회는 탈출 시나리오 시행에 들어간다. 구조 헬리콥터 요청 과정에서도 전혀 손발이 맞지 않았다. 구조 우선순위에서마저 밀려나 병원은 사고무친의 절망 상황에 빠져들었다. 그나마 구조의 손길을 내민 이들은 주정부와 아무런 계약도 맺지 않은 민간 구조대뿐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누구를 먼저 구할 것인가’였다. 대피 우선순위를 정할 때 가장 위중한 환자를 우선적으로 대피시켜야 하지만 병원에서는 생존 가능성이 높은 환자를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환자들 중 누워서 숨쉬기조차 힘든 환자들은 생명유지 장치를 제거한 뒤 모르핀과 진정제를 투약해 안락사시켰다. 환자들이 주사를 맞고 죽어 가는 사이 남은 사람들은 모두 병원을 빠져나왔다. 다섯째날 벌어진 일이었다. 저자는 질환의 정도에 대한 의사의 판단이 잘못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우선순위 설정에 의문을 제기한다. 책의 2부는 메모리얼병원에 있었던 의료진과 관계자, ‘안락사’ 사건 담당 수사진 등을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재난 상황에서의 생명윤리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저자는 메모리얼병원의 선례를 통해 재난 중 부상자 선별이라는 상황이 언제나 일어날 수 있으며 위기 관리 시스템이 허술한 사회에서 재난 직후의 삶과 죽음이 한 개인의 결정에 따라 좌우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책은 2013년 전미비평가협회상을 받았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새 영화] 우먼 인 골드

    [새 영화] 우먼 인 골드

    아무리 미술에 문외한이라도 세계적인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은 한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화려한 황금빛 의상에 신비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여성을 그린 이 작품은 ‘오스트리아의 모나리자’라고 불린다. 세계 최고가인 1500억원에 팔린 초상화로도 유명하다. 9일 개봉한 ‘우먼 인 골드’는 이 그림에 숨겨진 비밀을 흥미롭게 풀어낸 영화다. 사실 이 초상화는 클림트가 자신의 후원자였던 아델레를 모델로 그려 선물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죽고 난 뒤 남편 페르낭드는 1938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오스트리아 정부에 그림을 몰수당하고 그 그림을 조카들에게 남긴다는 유언을 남긴 채 생을 마감한다. 영화는 아델레의 조카인 마리아 알트만이 가족의 추억이 담긴 그림을 되찾고자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무려 8년간 소송을 벌인 실화를 담고 있다. 마리아(헬렌 미렌)는 죽은 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한때는 가족 소유였지만 지금은 오스트리아의 갤러리에 걸려 있는 클림트의 그림 다섯 점을 되찾으려다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리아는 오스트리아 이민자 친구의 아들인 젊은 변호사 랜디 쇤베르크(라이언 레이놀즈)와 함께 반환 소송을 제기한다. 딱딱한 법정 영화로 흐를 수도 있었던 영화는 나치에 의해 단란했던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당하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통을 겪는 개인의 아픔에 초점을 맞추며 휴먼 드라마로 장르가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그녀에게 숙모의 초상화는 단순한 그림이 아닌 자신의 뿌리이자 생명과도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영화는 나치에 의해 몰수된 뒤 초상화의 제목이 바뀐 사연, 전쟁 이후 엉뚱한 이에게 넘어간 클림트 그림들의 행방 등을 쫓으며 관객들을 역사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여 몰입감을 높인다. 마리아가 조국 오스트리아가 아닌 미국 대법원에서 소송을 했던 과정도 흥미롭게 전개된다. 이 영화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은 헬렌 미렌의 연기력이다. ‘더 퀸’에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 역을 맡아 관록의 연기를 펼쳤던 그는 이번엔 완고하고 까칠하지만 속정이 깊은 백발의 할머니 마리아를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특히 그가 법정에서 ‘반환’의 사전적인 의미를 설명하는 장면에서는 무게감과 동시에 통쾌함마저 느껴진다. 처음에는 돈 때문에 반환 청구소송에 참여했지만 그림을 둘러싸고 오스트리아의 국가적 차원의 은폐가 있었음을 깨닫고 점차 열혈 변호사로 변해 가는 랜디 역의 라이언 레이놀즈의 연기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실화 영화의 힘은 잊혔던 과거를 재조명하고 현재의 삶을 비춰 보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일제강점기 때 수많은 문화재를 약탈당한 뒤 아직도 찾아오지 못하는 지금 한국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이 적지 않은 영화다. 12세 이상 관람 가.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5부) 업종별 기업&기업인 녹십자] 전·현 회장 한일시멘트 2세… 형→동생으로 안정적 경영 승계

    [재계 인맥 대해부 (5부) 업종별 기업&기업인 녹십자] 전·현 회장 한일시멘트 2세… 형→동생으로 안정적 경영 승계

    녹십자의 선대 회장인 고(故) 허영섭 회장은 제약업계와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한일시멘트의 창업주 고 허채경 회장의 차남이다. 허영섭 회장은 1967년 부친인 허채경 회장의 지분출자를 받아 녹십자의 전신인 수도미생물약품판매주식회사를 인수해 제약업계에 첫발을 디뎠다. 현재 녹십자 회장을 맡고 있는 허일섭 회장은 허영섭 회장의 동생이자 허채경 회장의 5남이다. 허 회장은 1979년 녹십자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1982년 미국으로 건너간 허 회장은 미국 휴스턴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988년에 귀국해 한일시멘트에서 상무까지 지냈다. 허일섭 회장은 1991년 전무이사로 녹십자에 복귀했다. 한일시멘트 창업주인 허채경 회장은 허영섭·허일섭 회장에게 녹십자를 맡기고, 나머지 형제들에게 한일시멘트의 경영권을 물려준 셈이다. 이들은 한일시멘트와 녹십자의 지분을 조금씩 나눠 보유하고 있긴 하지만 경영은 독자적으로 이뤄져 사실상 별개의 회사와 같다는 게 녹십자 측의 설명이다. 녹십자는 이후 허영섭 회장과 허일섭 회장의 공동경영체제로 운영되다가 2009년 허영섭 회장이 지병으로 세상을 뜨면서 허일섭 회장이 회장을 맡았다. 1954년생인 허일섭 회장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해 1997년 녹십사 사장, 2002년 녹십자 부회장을 거쳐 형인 허영섭 회장 작고 이후 2009년 녹십자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다. 사실상의 창업주인 허영섭 회장의 뒤를 이어 동생인 허일섭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으면서 녹십자의 경영권은 자연스럽게 형→동생 구도로 이어지면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경영권이 승계됐다. 또 현재 녹십자를 이끌고 있는 허일섭 회장이 아직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만 61세)인 탓에 2세로 이어지는 후계구도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현재 허일섭 회장이 전체 녹십자를 이끌고 있는 가운데, 고(故) 허영섭 회장의 차남 허은철(43) 사장은 지난 1998년 녹십자에 입사해 최고기술경영자(CTO), 기획조정실장 등을 거쳐 지난 1월 사장 승진했다. 전문경영인인 조순태 부회장과 함께 녹십자의 공동대표로 경영의 전면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허일섭 회장의 장남인 진성(32)씨는 녹십자홀딩스 부장에, 차녀 진영(30)씨와 차남 진훈(24)씨는 아직 경영에 참여하진 않고 있다. 허영섭 회장의 장남인 허성수 전 녹십자 부사장은 지난 2009년 부친 작고 이후 유산상속을 둘러싸고 법정 다툼을 벌였다. 허 전 부사장은 자신에게 유산을 남기지 않겠다는 내용의 부친 유언장에 대한 효력정지가처분 소송을 제기했으나 대법원 판결에서 패소해 현재는 경영에서 물러나 있는 상태다. 2015년 6월 30일 현재 녹십자의 지주회사인 녹십자홀딩스의 최대주주는 10.9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허일섭 회장이다. 2세들의 지분은 아직 미미하다. 고 허영섭 회장의 장남인 허성수 전 녹십자 부사장은 0.97%, 차남인 허은철 녹십자 사장은 2.36%, 3남인 허용준(41) 녹십자홀딩스 부사장은 2.44%를 보유하고 있다. 허일섭 회장의 자녀들은 아직 어린 나이 탓에 지분 보유량이 많지 않다. 장남인 허진성 녹십자홀딩스 부장은 0.39%, 차녀 허진영씨는 0.26%, 차남 진훈씨는 0.34%의 지분을 갖고 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5부)업종별 기업&기업인 유한양행] 국내 최초 서구적 제약사… 작년 업계 첫 연매출 1조원 돌파

    [재계 인맥 대해부 (5부)업종별 기업&기업인 유한양행] 국내 최초 서구적 제약사… 작년 업계 첫 연매출 1조원 돌파

    유한양행은 지난해 연 매출 1조 174억원을 기록하며 국내 제약업계 최초 연 매출 1조원 시대를 열었다. 1926년 12월 창업주인 고(故) 유일한 박사가 종로2가에 자신의 성인 ‘유’(柳)자와 이름의 끝 자인 동시에 한국의 백성이라는 뜻으로 ‘한’(韓)자를 써서 ‘유한양행’을 설립한 지 89년 만이다. 유한양행은 1945년 해방 전까지 결핵치료제와 항생제 등 필수 의약품을 출시하면서 ‘최초의 서구적 제약기업’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후 유 박사는 유한양행을 현재의 ‘주인 없는 회사’로 탈바꿈하는 작업에 진력했다. “기업을 키워준 사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기업”이라며 “기업 이윤은 될 수 있는 한 사회의 많은 사람에게 돌아가도록 발전시키는 것이 기업의 임무이며 책임”이라는 유 박사의 지론에 따른 것이다. 유 박사는 1936년 유한양행을 주식회사로 전환하면서 공로주 형태로 회사 주식을 직원들에게 배분했다. 이어 1962년 기업공개를 실시하면서 제약업계 최초로 주식을 상장했다. 이어 1998년과 2002년 2차례에 걸쳐 국내 상장기업 및 제약업계에서 최초로 임원뿐만이 아닌 전 직원에게도 스톡옵션을 나눠줬다. 1971년 타계한 유 박사는 유언장을 통해 자신이 보유한 유한양행 모든 주식을 생전에 설립한 공익법인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 신탁기금’에 기부했다. 이 재단은 1976년 재단법인 유한재단과 학교법인 유한학원으로 분리됐다. 유한재단은 현재 유한양행의 15.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유한학원은 7.57%를 가지고 있다. 유한양행의 2대 주주는 10.23%의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이고, 의결권이 제한된 자사주가 9.7%다. 현재 유한양행의 경영권에 유 박사의 유족들은 일절 포함돼 있지 않다. 1969년 유 박사가 생전에 주주총회에서 당시 조권순 전무에게 공식적으로 경영권을 승계한 이후 유한양행의 전문경영인 체제는 꾸준히 유지돼 왔다. 지금도 유한양행 직원 가운데 유 박사의 친인척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게 유한양행의 설명이다. 아울러 유한양행의 최대주주인 유한재단 역시 회사의 경영에 일절 간섭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한양행은 선진적 경영기법을 적극 도입했다. 1935년 대다수 업체가 기존의 약들을 사들이는 매약(賣藥)에 몰두할 때 경기 부천시 소사에 근대적 제약공장을 설립했다. 이후 1985년 국내 최초의 KGMP(우수의약품 제조·품질 관리기준) 적격업체 지정을 받고, 1988년 업계 최초로 중앙연구소 KGLP(비임상실험 관리기준) 적격 시험기관 지정을 받으며 연구 생산 기지에 대한 투자 성과를 인정받았다. 유한양행의 주력 분야는 API(원료 의약품) 수출 분야다. 유한양행은 미국, 유럽 등 선진 제도권 시장을 주축으로 하는 CMO(의약품 생산대행 전문기업) 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을 이어오고 있다. 기존 거래 관계에 있는 다국적 기업들과의 품목 확대 등 유대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면서 신규 거래선 개척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이를 위해 유한양행은 미국 FDA, 유럽 CEP, 호주 TGA, 일본 PMDA 등의 엄격한 승인조건을 갖춘 원료합성공장을 중심으로 다국적기업과의 CMO 사업에서 사업 파트너와 영역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이 같은 노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제약사들과 파트너십을 통해 기술개발에 역량을 높이고 있다. 특히 항바이러스제 분야에서 글로벌 제약사에 C형 간염치료제 등의 원료 의약품과 핵심중간체를 공급하고 있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유한양행이 단기적 성과에만 집중하고 있어 중장기적 비전이나 경쟁력을 키우는 데 소홀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오너가 없는 전문경영인 체제인 만큼 다른 오너 제약사에 비해 장기적 안목으로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유한양행의 매출 대비 연구·개발(R&D) 투자비중은 6.0%로 제약업계 상위 10개사 평균 7.9%에도 못 미쳤다. 그러나 지난 3월 신임 이정희 대표 취임 이후 R&D 분야에서 적극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외형성장을 통해 이룬 기초체력을 기반으로 미래 성장을 위한 R&D 투자에 나서는 한편 연구소에 대한 우수 인력 확보와 조직 확대를 과감하게 추진하고 있다. 현금성 자산을 활용한 바이오벤처 지분투자와 기업인수합병의 기회를 모색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위한 중장기 전략도 수립 중이다. 중단기적 시장 창출을 위한 복합제 및 개량 신약의 개발과 해외 수출을 위한 글로벌 제약사의 원료의약품 공정연구 및 생산, 글로벌 혁신 신약 연구 등이 그것이다. 유한양행 R&D의 주력분야로 대사질환, 면역 염증 질환, 면역 항암제 분야 등을 선정해 신약 개발에 진력하고 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5부)업종별 기업&기업인 유한양행] “정성껏 좋은 상품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 봉사하라”

    “정성껏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 봉사하고 정직·성실하고 양심적인 인재를 양성·배출한다. 첫째 기업을 키워 일자리를 만들고, 둘째 정직하게 납세하며, 셋째 남은 것은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한다.” 유일한 박사는 1926년 유한양행을 창업하며 창립이념을 이같이 내세웠다. 일제강점기 당시 기업보다 국가가 앞서야 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유 박사는 1971년 타계하면서 유언을 통해 자신이 보유한 회사의 모든 주식을 자손이 아닌 사회에 넘기면서 창립이념을 실천했다. 유 박사가 여타 기업과 같은 창업주나 회장이 아닌 ‘박사’로 더 많이 인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 박사는 1895년 평양 시내에서 농산물 도매상과 재봉틀 대리점을 경영하던 부친 밑에서 태어났다. 사업수완이 좋았던 부친 덕에 미국 유학길에 올라 헤스팅스고등학교를 거쳐 미시간 주립대학 상과를 졸업했다. 이후 미시간 중앙철도회사와 제너럴 일렉트릭 등에서 일했던 유 박사는 귀국 후 1926년 유한양행을 설립해 현재 유한양행의 초석을 만들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부고]

    ●김영호(신한카드 상무)씨 모친상 29일 경북대병원, 발인 2일 오전 9시 (053)200-6149 ●석대현(세연치과 원장)광현(서울대 법과대학 교수)씨 모친상 30일 서울대병원, 발인 2일 오전 8시 (02)2072-2018 ●이연호(예비역 육군 준장)씨 별세 환모(연세대 의과대학 교수)혁모(카이스트 교수)씨 부친상 최문식(전 서울은행 지점장)씨 장인상 29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2일 오전 7시 30분 (02)2227-7580 ●양철훈(kbc광주방송 사장)철호(한화폴리드리머 계장)철영(국민은행 인덕원지점 부지점장)씨 모친상 30일 천안 하늘공원장례식장, 발인 2일 오전 7시 30분 (041)621-8011 ●김수문(경북도의원)씨 모친상 30일 의성 중부농협장례식장, 발인 3일 오전 8시 30분 (054)832-2704 ●송관률(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씨 모친상 29일 경기 광주 SRC재활병원, 발인 2일 오전 9시 30분 (031)799-8191
  • 서프라이즈 아인슈타인 “화장해달라” 유언남겼지만 뇌 조각난 채 전시..충격 사건

    서프라이즈 아인슈타인 “화장해달라” 유언남겼지만 뇌 조각난 채 전시..충격 사건

    서프라이즈 아인슈타인 “화장해달라” 유언남겼지만 뇌 조각난 채 전시..충격 사건 ‘서프라이즈 아인슈타인’ ‘서프라이즈’에서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뇌에 대한 비화를 공개했다. 28일 방송된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는 아인슈타인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전팍를 탔다. 현대 과학계 중요한 획을 그은 천재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은 대동맥로 파열 76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아인슈타인은 죽기 전 자신의 몸을 화장해 아무도 모르는 곳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23년 후인 1978년 아인슈타인의 뇌를 찍은 사진이 공개됐다. 알고 보니 아인슈타인이 화장되기 전 토마스 하비 박사는 아인슈타인의 뇌를 훔쳐 달아났고 그의 뇌를 연구용으로 사용한 것. 토마스 박사는 아인슈타인의 뇌를 촬영했고 240조각으로 잘라냈다. 그 중 일부는 현미경 관찰을 위해 슬라이드로 만들기까지 했다. 토마스 하비 박사는 20여 년간 아인슈타인 뇌를 연구하는데 몰두했지만 아인슈타인의 뇌가 1,230g으로 일반인의 뇌보다 가볍다는 것 외에는 구조 및 기능에 있어서도 특별한 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에 따라 토마스 하비 박사는 잘 아는 또 다른 학자들에게 공동 연구를 제의하며 아인슈타인의 뇌 조각을 보냈고 이 과정에서 1978년 모든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아인슈타인의 뇌는 결국 10여 명의 뇌 전문가들에게 보내졌으며, 사방으로 흩어져 연구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아인슈타인 뇌 도둑과 연구에 대해 비난을 쏟아냈지만 토마스 하비 박사는 아인슈타인의 뇌 연구는 인류를 위해 진행한 것이고, 아들에게 연구 허락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유족은 이미 사망한 후라 이를 증명할 방법은 없었다. 현재까지 아인슈타인 뇌가 일반인 뇌보다 뛰어난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인슈타인의 유언은 지켜지지 않은 채 그가 천재라는 이유로 그의 뇌는 조각난 상태로 전시되고 있다. 서프라이즈 아인슈타인 편을 접한 네티즌들은 “서프라이즈 아인슈타인, 충격이다”, “서프라이즈 아인슈타인 뇌 분해.. 고인에 대한 존엄성은 없는가”, “서프라이즈 아인슈타인, 뇌 자체가 특별한 건 아닌 것 같은데”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MBC ‘서프라이즈’ 캡처(서프라이즈 아인슈타인)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서프라이즈 아인슈타인 “화장해달라” 유언 불구 뇌 남아있는 이유는..’소름’

    서프라이즈 아인슈타인 “화장해달라” 유언 불구 뇌 남아있는 이유는..’소름’

    서프라이즈 아인슈타인 “뇌 화장해달라” 유언남겼지만 조각난 채 전시..왜? ‘서프라이즈 아인슈타인’ ‘서프라이즈’에서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숨겨진 이야기를 다뤄 화제가 되고 있다. 28일 방송된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는 아인슈타인의 뇌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방송했다. 현대 과학계 중요한 획을 그은 천재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은 대동맥로 파열 76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아인슈타인은 죽기 전 자신의 몸을 화장해 아무도 모르는 곳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23년 후인 1978년 아인슈타인의 뇌를 찍은 사진이 공개됐다. 사진을 공개한 사람은 뉴저지 먼슬리의 기자였다. 알고 보니 아인슈타인이 화장되기 전 토마스 하비 박사는 아인슈타인의 뇌를 훔쳐 달아났고 그의 뇌를 연구용으로 사용했다. 토마스 박사는 아인슈타인의 뇌를 촬영했고 240조각으로 잘라냈다. 그 중 일부는 현미경 관찰을 위해 슬라이드로 만들기까지 했다. 토마스 하비 박사는 20여 년간 아인슈타인 뇌를 연구하는데 몰두했지만 아인슈타인의 뇌가 1,230g으로 일반인의 뇌보다 가볍다는 것 외에는 구조 및 기능에 있어서도 특별한 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에 따라 토마스 하비 박사는 잘 아는 또 다른 학자들에게 공동 연구를 제의하며 아인슈타인의 뇌 조각을 보냈고 이 과정에서 1978년 모든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아인슈타인의 뇌는 결국 10여 명의 뇌 전문가들에게 보내졌으며, 사방으로 흩어져 연구되기 시작했다. 학자들은 아인슈타인 뇌에 대한 여러 논문을 발표했지만 연구 과정상 오류로 증명되지는 못했다. 사람들은 아인슈타인 뇌 도둑과 연구에 대해 비난을 쏟아냈지만 토마스 하비 박사는 아인슈타인의 뇌 연구는 인류를 위해 진행한 것이고, 아들에게 연구 허락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유족은 이미 사망한 후라 이를 증명할 방법은 없었다. 현재까지 아인슈타인 뇌가 일반인 뇌보다 뛰어난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인슈타인의 유언은 지켜지지 않은 채 그가 천재라는 이유로 그의 뇌는 조각난 상태로 전시되고 있다. 네티즌들은 “서프라이즈 아인슈타인, 소름 돋네”, “서프라이즈 아인슈타인 뇌 분해.. 안타깝다”, “서프라이즈 아인슈타인, 뇌를 도둑질하다니”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MBC ‘서프라이즈’ 캡처(서프라이즈 아인슈타인)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서프라이즈 아인슈타인 “화장해달라” 유언했지만 뇌 훔쳐 연구 ‘경악’

    서프라이즈 아인슈타인 “화장해달라” 유언했지만 뇌 훔쳐 연구 ‘경악’

    28일 방송된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는 아인슈타인의 뇌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방송했다. 현대 과학계 중요한 획을 그은 천재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은 대동맥로 파열 76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아인슈타인은 죽기 전 자신의 몸을 화장해 아무도 모르는 곳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23년 후인 1978년 아인슈타인의 뇌를 찍은 사진이 공개됐다. 알고 보니 아인슈타인이 화장되기 전 토마스 하비 박사는 아인슈타인의 뇌를 훔쳐 달아났고 그의 뇌를 연구용으로 사용한 것. 토마스 박사는 아인슈타인의 뇌를 촬영했고 240조각으로 잘라냈다. 토마스 하비 박사는 20여 년간 아인슈타인 뇌를 연구하는데 몰두했지만 아인슈타인의 뇌가 1,230g으로 일반인의 뇌보다 가볍다는 것 외에는 구조 및 기능에 있어서도 특별한 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에 따라 토마스 하비 박사는 잘 아는 또 다른 학자들에게 공동 연구를 제의하며 아인슈타인의 뇌 조각을 보냈고 이 과정에서 1978년 모든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아인슈타인의 뇌는 결국 10여 명의 뇌 전문가들에게 보내졌으며, 사방으로 흩어져 연구되기 시작했다. 학자들은 아인슈타인 뇌에 대한 여러 논문을 발표했지만 연구 과정상 오류로 증명되지는 못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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