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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만의 새 술탄 하이삼 “주권·국제협력 존중”

    오만의 새 술탄 하이삼 “주권·국제협력 존중”

    첫 공개연설서 ‘분쟁의 조정자’ 역할 강조‘중동 비둘기’로 불리는 오만 술탄(국왕) 카보스 빈 사이드 알사이드가 별세한 이후 사촌 동생인 하이삼 빈 타리크 알사이드(65) 문화유적부 장관이 11일(현지시간) 계승자로 지명됐다. 신임 술탄 하이삼은 이날 즉위 후 첫 공개연설에서 “우리의 외교정책은 다른 국가, 국민과 평화롭게 사는 것”이라며 “우리는 외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고 국가 주권과 국제협력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이런 언급은 오만이 ‘중동의 스위스’라는 애칭처럼 분쟁의 조정자 역할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오만은 미국과 이란이 2015년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에 서명하는 데 중재자 역할을 했으며,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 반군 후티 간 협상도 자국에서 진행해 왔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적대적인 이란과도 관계가 원만하다. 오만 주류는 이슬람 수니파, 시아파와는 다른 이바디파로, 교리가 온건한 것으로 알려졌다. 1954년에 태어난 신임 술탄 하이삼은 1979년 영국 옥스퍼드대를 졸업하고, 1980년 오만 축구협회장을 지낸 스포츠 애호가로 널리 알려졌다. 외교 분야의 직책을 주로 맡았다가 1990년대 중반 문화유적부 장관이 됐다. 2013년 오만 개발위원회 위원장도 겸하고 있다. 한편 지난 10일 79세의 일기로 작고한 카보스 국왕은 1970년 무혈 쿠데타로 집권, 중동 군주 가운데 최장기인 50년간 왕좌를 지켰다. 자녀가 없었던 그는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사망했지만 왕실에 혼란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유언과 같은 ‘비밀 서한’을 남겼다. 이 비밀 서한을 왕가회의에서 공개한 결과 사촌 동생인 하이삼이 후계자로 지정됐다. 장례식은 사망 다음날은 11일 수도 무스카트에서 치러졌고, 왕실 묘역에 안장됐다. 그는 이스라엘을 포함한 대다수 국가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 때문에 오만은 ‘중동의 스위스’, 술탄 카보스는 ‘중동의 비둘기’라는 애칭이 따라다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성명에서 “모두의 친구”, 이스라엘은 “평화와 안정에 기여한 인물”, 이란은 “큰 손실”이라고 애도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오만 새 술탄 지명… 선왕이 남긴 ‘비밀 편지’

    오만 새 술탄 지명… 선왕이 남긴 ‘비밀 편지’

    오만 새 술탄… 국왕 작고 다음날 사촌 동생 지명 ‘중동 비둘기’로 불리는 오만 술탄(국왕) 카부스 빈 사이드 알사이드가 타계한 이후 사촌 동생인 하이삼 빈 타리크 알사이드(65) 문화유적부 장관이 11일(현지시간) 계승자로 지명됐다. 자녀가 없는 카부스 국왕이 남긴 ‘비밀 서한’에 따라 하이삼이 새로운 술탄으로 지명된 것이다. 하이삼 국왕 “국제 분쟁의 조정자 역할 계속” 신임 술탄 하이삼은 이날 국영TV로 방영된 연설에서 오만을 발전시키면서 모든 국가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외교정책을 펴겠다고 밝혔다. 그는 즉위 직후 첫 공개연설에서 “우리는 작고한 술탄의 길을 따르겠다”며 “우리의 외교정책은 다른 국가, 국민과 평화롭게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외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고 국가 주권과 국제협력을 존중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언급은 오만이 ‘중동의 스위스’라는 애칭처럼 분쟁의 조정자 역할을 계속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오만은 미국과 이란이 2015년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에 서명하는 데 중재자 역할을 했으며,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 반군 후티의 협상도 오만에서 이뤄져 왔다. 2017년 6월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이 카타르와 단교했을 때도 오만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다. 사우디와 적대적인 이란과도 관계가 원만하다. 오만 주류는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와는 다른 이바디파로, 교리가 온건한 것으로 알려졌다. 옥스퍼드 졸업한 스포츠광… 오만개발위원장 겸직 1954년에 태어난 술탄 하이삼은 1979년 영국 옥스포드 대학을 졸업하고, 1980년 오만 축구협회장을 지낸 스포츠 애호가로 널리 알려졌다. 외교 분야의 직책을 주로 맡았다가 1990년대 중반 문화유적부 장관이 됐다. 2013년 오만 개발위원회 위원장으로 지명됐다.한편 지난 10일 작고한 카부스 국왕은 1970년 무혈 쿠데타로 집권, 중동 군주 가운데 최장기인 50년간 왕좌를 지켰다. 자녀가 없었지만 후계자를 공개적으로 지명하지 않았던 그는 왕실에 혼란에 발생할 것을 우려해 유언처럼 남긴 ‘비밀 서한’을 남겼다. 왕가 회의에서 비밀서한을 공개한 결과 사촌 동생인 하이삼이 후계자로 지정됐다. 앞서 1997년 인터뷰에서 카부스 국왕은 후계자 이름을 담은 봉투를 봉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아부다비 상업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모니카 말리크는 “후계자를 신속히 지명한 것은 경제적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는 투명성 부족에 대한 긍정적 신호”라고 말했다. 이란 “큰 손실”, 이스라엘 “평화 기여“ 장례식은 사망 다음날은 11일 수도 무스카트에서 국민적 애도 속에 치러졌고, 왕실 묘역에 안장됐다. 그는 이스라엘을 포함한 대다수 국가와의 관계가 원만한 했다. 이 때문에 ‘중동의 스위스’, 술탄 카부스는 ‘중동의 비둘기’라는 별칭을 얻었다. 이런 연유로 그에 대한 애도가 쏟아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성명에서 “모두의 친구”, 유럽연합은 “비전과 실용성을 가진 지도자”, 유엔은 “평화의 메시지 확산한 지도자”, 이스라엘은 “평화와 안정에 기여한 인물”, 터키는 “위대한 인물”, 이란은 “큰 손실”, 시리아는 “진보와 전진”, 이라크는 “중용과 지혜”, 쿠웨이트는 “매우 위대한 인물”, 이집트는 “선구자”, 영국은 “지극히 현명한 인물”, 프랑스는 “전세계에 개방적”, 독일은 “좋은 친구”라고 평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그리고 내생에도 다시 한반도에서 태어나고 싶다”

    “그리고 내생에도 다시 한반도에서 태어나고 싶다”

    생전 연재글 묶은 ‘스스로 행복하라’ 출간“글·말 빚 안 가져가” 유언으로 절판 선언 인생 행복하게 사는 데 도움되는 글 뽑아‘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187쪽, ‘무소유’ 중) ‘그리고 내생에도 다시 한반도에서 태어나고 싶다. 누가 뭐라 한대도 모국어에 대한 애착 때문에 나는 이 나라를 버릴 수 없다. 다시 출가 사문이 되어 금생에 못다 한 일들을 하고 싶다.’(61쪽, ‘미리 쓰는 유서’ 중) 전남 순천의 송광사 뒷산에 자신이 지은 불일암에서, 강원도 산골의 오두막에서 직접 땔감을 구하고 밭을 일구며 살았던 법정 스님의 말과 글은 언제나 큰 울림을 준다. “스님은 10년 전 돌아가실 때 말과 글 빚을 남기고 싶지 않다고 하셨지요. 하지만 지금껏 스님이 남기신 말씀과 글은 저에겐 성경처럼 채찍이 되기도 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의 방향타 역할을 했다고 확신합니다.”법정 스님(1932~2010) 열반 10주기, 스님의 행복론을 담은 수필집 ‘스스로 행복하라’를 출간한 김성구 샘터 발행인은 이렇게 말한다. 법정 스님은 1976년 처음 발간한 산문집 ‘무소유’를 시작으로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버리고 떠나기’, ‘오두막 편지’ 등 맑고 향기로운 글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풀어놓은 말 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며 더이상 출판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에 책 대부분이 절판되어 스님의 글을 좋아하는 이들의 아쉬움을 남겼다. ‘스스로 행복하라’는 스님의 열반 10주기, 샘터 50주년 지령 600호에 맞춰 냈다. 스님이 생전에 1980년부터 1996년까지 연재한 ‘산방한담’(山房閑談)이 수록된 월간 ‘샘터’가 스님의 유지를 받은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와 협의한 결과다. 책은 스님이 남긴 글들 중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을 가려 뽑아 묶었다. 1장 ‘행복’에는 인생의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에 대한 가르침을, 2장 ‘자연’에는 자연과 함께하는 충만한 삶을 설파하는 글들을 담았다. 3장 ‘책’에는 ‘어린 왕자’, ‘모모’, ‘희랍인 조르바’ 같은 책에서 발견한 지혜를 전하며, 4장 ‘나눔’에는 사랑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세월호로 아들 잃은 아버지 숨진 채 발견…“미안하다” 영상 남겨

    세월호로 아들 잃은 아버지 숨진 채 발견…“미안하다” 영상 남겨

    당시 단원고 2학년 김모군 아버지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돼경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 의뢰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애도 표해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당시 단원고 학생의 아버지가 극단적 선택을 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그는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의 동영상을 유언으로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29일 경찰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당시 단원고 2학년이던 김모군의 아버지가 지난 27일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유경근 전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지난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함께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십시오. ○○이 아빠가 ○○이에게 갔습니다. 이제는 ○○이와 함께 평안하시기를…”이라고 썼다. 아울러 유 전 집행위원장은 “계속 화나다 짜증나다 욕하다 갑자기 부럽다가 또 안타깝다가 미안하다가 드러운 세상 욕하다…. 부동산 중개를 시작했대서 화성공장 의논하기로 했었는데…”라고 적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6반 ○○이 아버님이 27일 운명을 달리 하셨습니다. 고인을 명복을 빌며, 영면하시길 기원합니다”라고 알렸다. 빈소는 안산 고려대학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31일 오전 6시다. 한편 협의회는 지난 27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세월호 참사 국민고소고발대리인단과 함께 전 기무사 참모장들, 해경, 정치인 등 47명을 추가로 고소·고발했다. 지난달 15일 1차 고소·고발 명단에 포함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은 2차 고소·고발에도 포함됐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씨줄날줄] 한진家 ‘남매의 난’/오일만 논설위원

    [씨줄날줄] 한진家 ‘남매의 난’/오일만 논설위원

    ‘땅콩회항’ 소동에 물컵·물벼락 갑질, 폭언·폭행 사건…. 한진가(家) 재벌 부인과 세 자녀의 ‘추태 명세서’다. 막장 드라마에 나올 법한 이들의 몰염치에 그저 한숨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잊을 만하면 신문 지상에 회자되는 그 재벌가에서 이번엔 아버지 유훈을 둘러싸고 골육지쟁의 기운이 감돈다. 최근 누나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동생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법률대리인을 통해 ‘공동운영의 정신을 지키지 않는다’며 공개 비난에 나선 것이다. 갑작스러운 ‘선전포고’에 놀란 조 회장 측은 ‘아버지 유훈을 받들어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다’며 반격 중이다. 조 전 부사장의 공개 비판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지난달 인사에서 자신의 경영복귀가 무산된 데 따른 앙갚음이란 시각도 있지만 경영권을 둘러싼 ‘남매의 난’으로 번질 가능성에 주목한다. 선대에 치른 ‘형제의 난’이 대물림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2002년 한진가 ‘형제의 난’을 보자. 조중훈 창업주가 작고한 뒤 장남 조양호 회장을 비롯해 남호·수호·정호 등 4형제가 유산 배분을 놓고 갈등을 빚었다. 갈등의 핵심은 유언장 논란이었다. 조중훈 창업주가 죽기 직전 작성된 유언장이 ‘조작됐다’며 낯 뜨거운 고소·고발전이 꼬리를 물었던 기억이 새롭다. 조양호 회장이 70세 나이로 미국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것은 지난 4월 8일. 무덤에 흙도 마르지 않은 시점이다. 대를 이은 골육싸움에 국민은 그저 헛웃음만 나온다. 한진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은 경영난이 심각하다. 6년 만에 희망퇴직을 받을 정도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고 임원을 20%나 감원했다. 그룹의 앞날을 점칠 수 없는 시계 제로 상태다. 재계에선 이번 싸움을 내년 3월에 있을 주총의 전초전이라고 본다. 조원태 회장의 한진칼 사내이사 임기는 내년 3월 23일 종료된다. 현재 한진칼의 1대 주주는 강성부 펀드라 불리는 KCGI로 15.98%의 지분을 가졌다. 주총에서 재선임 안건이 부결되면 그룹의 경영권을 잃게 된다. 한진가 4명의 지분은 대략 6% 안팎으로 고만고만하다. 남매의 분쟁이 장기화하면 창업 70여년 만에 한진그룹의 경영권이 외부로 넘어갈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해 4월 공분을 일으킨 한진가 갑질로 ‘국적기 자격 박탈하라’는 국민청원이 봇물을 이뤘다. 대한항공 대신 ‘한진항공’으로 이름을 바꾸고 국적기 이름에 ‘대한’과 ‘Korea’ 명칭, 태극 문양의 로고를 빼야 한다는 요구도 거셌다. 국민은 한진가의 막장 드라마를 더는 보고 싶지 않다. 이참에 나라 망신 시키는 족벌경영을 끝내고 제대로 된 경영체제가 들어서길 간절히 기대해 본다. oilman@seoul.co.kr
  • [2000자 인터뷰 27]노윤선 “일본 혐한 5단계 중 4단계 위험수위, 방치해선 안 돼”

    [2000자 인터뷰 27]노윤선 “일본 혐한 5단계 중 4단계 위험수위, 방치해선 안 돼”

    혐한, 전 미디어 통해 급격히 확산 중 일부 극우의 일탈행위를 넘어서 주일대사도 혐한의 문제 지적 국내 인식 확산, 국제무대 공론화돼야 일본의 한국 혐오, 즉 혐한(嫌韓)의 역사와 뿌리는 생각보다 깊다. 도쿄의 책방에 가보면 혐한 서적이 널려 있고, 코리아타운이 있는 도쿄, 오사카 등지에서는 툭 하면 헤이트스피치(증오발언)로 가득찬 혐한 시위가 열린다. 뿐만 아니다. 신문과 방송, 인터넷, 주간지 등 미디어를 통해 혐한이 보통 일본인들에게 스며드는 속도도 빨라졌다. 일본의 혐한을 현지에서 체험하고 있는 남관표 주일한국대사가 우려하는 것처럼 혐한은 이제 강 건너편의 불로 인식하고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게 됐다. 이런 와중에 일본 혐한의 뿌리와 전개과정을 잘 엮은 책이 나왔다. 본격적인 혐한 연구로는 제1호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019년 12월 초 ‘혐한의 계보’(글항아리 출판)를 펴낸 저자 노윤선씨는 고려대학교에서 ‘일본 현대문화 속의 혐한 연구’로 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 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책은 박사논문을 기반으로 썼다. 그의 결론은 “일본의 혐한은 5단계 중 위험수위인 4단계에 와 있으며,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저자를 만나 혐한의 현주소를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Q. 일본의 혐한을 정의하면. A. ‘K-Hate’라 새롭게 명명하고 싶다. K-Wave인 한류와 K-Hate인 혐한의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부정적 의미라도 상응하는 용어가 있어야 한다. 혐한에 대한 영문표기가 제각각이어서 더욱 그렇다. Q. 혐한의 뿌리, 확산 경위는. A. 먼저 알아야 할 게 있다. 일본의 출판시장 규모는 우리보다 훨씬 크다. 일본 출판계에서 혐한을 부추기는 문학작품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혐한은 출판뿐만 아니라 방송, 애니메이션, 영화, 온라인 등 일본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그 뒤에서는 일본 정치권이 같이 움직인다. 일본의 민족주의를 강화하려는 일본 국내 정치 상황이 문화계에 한쪽 방향으로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쌍방향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다. 일본의 역사를 보면, 자국의 내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웃인 우리나라를 공격한 사례가 다수 있다. 신라 침공계획, 임진왜란, 정한론,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6000여명 대학살, 버블경제 붕괴 이후의 혐한 등이 그 예이다. 1990년대 일본군 ‘위안부’가 전면에 노출됨으로써 일본과 한국 언론에서 혐한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1991년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였던 김학순 할머니가 피해를 증언한 이후, 1992년 2월 10일에 발매된 일본의 종합 월간지 ‘분게이슌주’(文藝春秋) 1992년 3월호에 실린 특집 대담 기사가 한국 일간지에 실리고, 이것이 다시 일본 일간지에 게재됨으로써 일본 언론에서 현재까지 혐한 담론이 반복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Q. 2019년말 현재, 일본 속 혐한은 어떤 상태인가. A. 혐한 용어는 현대에 등장했다. 그러나 증오의 피라미드인 1, 2단계에 해당되는 선입견과 편견으로 인한 한국인에 대한 증오는 과거와 현재가 다르지 않다. 지진이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바라보았을 때, 관동대지진 당시 1, 2단계인 선입견과 편견을 바탕으로 결국 5단계인 조선인 학살까지 일어났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에도 2단계에 해당되는 유언비어(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식의)와 함께 여전히 한국인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에 바탕을 두고 3, 4단계인 차별과 폭행이 행해지고 있다. 이미 일본의 혐한은 4단계이다. 마지막이 5단계인 제노사이드(의도적·제도적 민족말살)인데 어떤 일을 계기로 나올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5단계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즉 일본 미디어의 ‘혐한 장사’와 거리로 나선 인터넷 우익, 직접적인 공격 행위들을 일부 극우 집단의 일탈로만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는 것이다. Q. 혐한을 고바야시 요시노리의 만화, 요코이야기, 반딧불의 무덤, 그리고 햐쿠타 나오키의 저작과 함께 그것과는 대칭적인 작품 ‘초록과 빨강’을 분석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들의 저작을 분석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A. 가장 대중적인 소재를 분석 대상으로 삼아보고자 했다. 또한 일본 정치권에서 주도적으로 제작한 작품들을 우선적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작가 햐쿠타 나오키는 아베 신조 총리와도 가까울 뿐만 아니라 일본 국영방송인 NHK에서 요직을 맡은 인물이다. 혐한 뒤에 일본 정치권이 있다고 생각해서 분석대상으로 삼았다. 햐쿠타의 작품 ‘영원한 제로’와 ‘해적이라 불린 사나이’는 영화와 드라마, 만화책으로까지 제작됐다. 영화의 경우 야마자키 다카시 감독이 두 작품의 연출을 맡았다. 햐쿠타 작품의 영화 연출을 맡은 야마자키 감독은 2020년 동경 하계올림픽의 개막식과 폐막식의 총감독을 맡게 된 인물이다. 이는 일본의 정치와 현대문학, 영화산업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 주는 사례일 것이다. 혐한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아베 정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햐쿠타의 작품 속에서 활용된 가족애가 애국정신의 수단으로 응용되고 있는데, 가족애라는 주제를 소재로 삼고 있는 ‘반딧불이의 무덤’과 ‘요코 이야기’를 분석대상으로 삼았다. 태평양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 속에서 가족애와 함께 전쟁배경에 관한 언급과정에서 나타난 전쟁 가해 책임의 희석을 중심으로 분석했다. 일본에서는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하는 담론 형성의 장으로서 언론 뿐 아니라 인터넷 등 서브컬처의 비중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서브컬처의 발단을 1990년대 초반에 고바야시 요시노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만화로 그리기 시작한 이후로 분석할 수 있다. 이때 형성된 일본군 ‘위안부’ 담론들이 현재 혐한 논자들의 기반이 되고 있다. 즉 지식인들이 특정한 사안에 대해 일정한 시각에서 이를 규정하고 담론을 생산한 뒤에 유통시킨 지식 담론이 권력을 생산해낸 것이다. 혐한 시위와 관련하여 외교부가 처음으로 2013년 10월 30일에 공개한 주일 공관별 전수조사에 의하면, 2011년의 동일본대지진 이후 혐한 시위 건수가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2009년 30건에 불과하던 혐한 시위 건수는 2010년에 31건, 2011년에는 82건으로 늘어나더니 2012년에는 301건을 기록하였다. 3년 사이에 10배가 급증한 것이다. 이러한 2013년의 혐한 시위를 작품의 배경으로 한 후카자와 우시오의 ‘초록과 빨강’을 증오의 피라미드 구조에 대입하여 분석했다. Q. 일본 사회에서 혐한을 배척하기 위한 자정노력은 있다고 보는가. A. 2013년 일본에 카운터스(Counters)라는 시민단체가 등장했다. 카운터스는 일본의 혐한 시위나 혐오 발언에 반기를 들고 행동으로 나선 사람들을 칭한다. 최근에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제작되어 이들의 활동상이 대중에게 알려졌다. 혐한 시위대를 반박하는 시위도 최근 들어 자주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해 시민단체의 활동이 약하고, 혐한 뒤에는 일본 정부가 있는 이상 근본적으로 해결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Q. 가와사키시에서 헤이트 스피치 처벌 조례를 만든 것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A. 장족의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입법이 아닌 조례에 불과하다는 점으로 보아 여전히 일본 정부에서는 이를 방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혐한은 그 자체가 언어폭력인 동시에 물리적 폭력을 유인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표현을 넘어서는 위험성을 내포하는 만큼 이러한 조례들을 더욱 더 확대하고 궁극적으로는 일본에서 처벌조항을 제정하여 입법으로 이어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Q. 일본에서 혐한시위,헤이트 스피치에 대한 법률에 의한 제재가 확산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A. 혐한은 일본의 정치권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그들에게 한국은 국내 정치의 난관을 돌파시켜주는 중요한 수단이다. 일본 정치는 매우 보수적인 성향을 띠고 있으며,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모순된 점을 많이 지니고 있다. 일본 정치가 천지개벽하지 않는 이상 혐한에 대한 법률 제재가 확산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여진다. Q. 이대로 혐한을 방치하면 관동대지진 한국인 학살 같은 제5단계 제노사이드가 현대 일본에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A. 만약 일본에서 관동대지진급의 재난이 발생했다고 생각해보자. 지금까지 일본 정치권이 걸어온 방향으로 볼 때 가장 손쉬운 한풀이 대상은 누구라고 보는가. 물론 현대 사회에서 제노사이드 같은 극단적인 사태가 일어나기는 쉽지 않지만 일본 국민들에게 혐한이 구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Q. 바람이 있다면. A. 혐한 연구가 연구로만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일본의 혐한 문제에 대해 한국에서 공론화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일본의 정화운동을 유도해야 하며, 나아가서는 국제무대에서 공론화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황성기 평화연구소장 marry04@seoul.co.kr
  • 북두칠성 근처 외계행성계 앞으론 ‘백두’ ‘한라’로 부른다

    북두칠성 근처 외계행성계 앞으론 ‘백두’ ‘한라’로 부른다

     태양에서 빛의 속도로 이동해도 약 520년(520광년) 걸리는 곳에 있는 북두칠성과 북극성 인근의 외계 항성(별)과 행성을 앞으로는 ‘백두’와 ‘한라’로 부르게 됐다.  국제천문연맹(IAU)은 창립 100주년을 맞아 올해 전 세계적으로 진행한 외계행성 이름 짓기 캠페인 결과 한국 과학자들이 발견한 별 8UMi와 외계행성 8UMi b에 백두(Baekdu)와 한라(Halla)라는 이름을 붙인다고 17일 밝혔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8UMi, 8UMi b라는 과학적 명칭과 함께 백두, 한라는 전 세계 공용으로 쓰이게 된다.  IAU는 각 국 관측가능성과 연관성을 고려해 이름을 붙일 외계행성을 배정했는데 한국은 천문연구원 보현산천문대 연구진이 발견한 외계행성 8UMi b를 이름짓기 대상으로 확정했다. 8UMi 외행성계는 북극성을 포함한 작은곰자리에 위치해 있으며 태양보다 1.8배 무거운 어미별인 8UMi과 목성보다 1.5배, 지구보다는 477배 무거운 가스형태 행성인 8UMi b로 이뤄져 있다. 특히 겉보기 등급이 6.83으로 육안으로도 관측이 가능한 외계행성계로 알려져 있다. 이번 외계행성 이름짓기에는 전 세계적으로 110개국 약 36만 건의 제안서가 접수됐다. 한국에서는 지난 8월 20일부터 두 달 동안 전국민 온라인 공모를 통해 325건의 이름을 접수해 심사위원 사전 심사와 2주간 대국민투표를 거쳐 IAU에서 최종 이름을 선정했다. 이번에 백두와 한라를 제안한 사람은 서울 혜화경찰서에 근무하는 채중석(51) 경위로 “북쪽 백두산과 남쪽 한라산에 착안해 평화통일과 민족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밝혔다. 채 경위는 이름, 표어공모전에서 300회 이상 입상한 경력이 있는 이름짓기 달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와 관련해 ‘신들린 브랜드 네이밍&슬로건’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한편 올해는 UN 지정 ‘국제 토착언어의 해’였던 만큼 IAU 역시 각국 고유언어를 사용한 이름을 짓도록 독려해 이번에 선정된 이름에는 각국 토착언어로 지은 것들이 많다. 아일랜드는 자국의 신화에 등장하는 개들의 이름을 사용해 사냥개 자리에 위치한 어미별과 외계행성 이름을 투이렌, 브란으로 지었고 요르단은 자국 남쪽 보호구역인 고대 도시이름을 따서 독수리자리에 있는 어미별과 외계행성 이름을 페트라, 와디룸으로 명명했다. 또 아프리카 대륙의 부르키나파소는 에리다누스(강) 자리에 있는 별과 행성 이름을 자국을 통과하는 강 이름을 따서 모우호운, 나캄베로 이름짓기도 했다. IAU 외계행성이름 짓기 캠페인을 총괄한 에두라르도 몬파르디니 펜테도 팀장은 “우주에서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으며 다른 문명에서는 지구가 어떻게 인식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에서 캠페인이 시작됐다”며 “대중들에게 100개 이상의 새로운 외행성계를 소개할 뿐만 아니라 미래에 추가 발견될지도 모르는 행성들의 이름을 같은 주제 내에서 지을 수 있도록 확장성까지 고려했다”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스물여덟인데 14조 재산 휴 그로스베너, 런던 타워 재개발로 입방아에

    스물여덟인데 14조 재산 휴 그로스베너, 런던 타워 재개발로 입방아에

    이 훈훈한 외모의 청년은 스물여덟 살인데 영국에서 세 번째 부자다. 웨스트민스터 7대 공작 휴 그로스베너다. 외모까지 갖춰 일등 신랑감으로 손꼽히는데 2016년 작위를 승계한 뒤 좀처럼 대중 앞에 나타나지 않고 은인자중하고 있다. 그런데 그와 그로스베너 그룹이 런던에서도 가장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사는 런던 타워 부근을 재개발할 계획을 세우고 있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10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당수는 지난 10월 영국의 억만장자들을 싸잡아 공격하며 공작을 “사기꾼 지주”라고 표현했다. 런던 타워 부근의 막대한 토지를 소유한 그로스베너 그룹은 12일 총선 결과에도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보리스 존슨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이 승리하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속도가 붙어 런던의 오래된 재산을 처분하는 일정도 앞당겨진다. 지난 8일 영국 신문들의 설문조사 결과는 보수당이 상당한 폭으로 앞선다는 예상을 내놓았다. 그러나 만약 노동당이 이겨 정부를 구성하게 되면 이 집안의 재산은 실제 위협에 맞닥뜨린다. 코빈은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고 지주들의 재산권을 제한하며 그로스베너 가문과 같은 왕실 피붙이들의 재산을 신탁재단이 공시하게 하는 방안 등을 공약하고 있다. 그로스베너 가문은 노동당 정부의 가장 큰 타깃이 되고 있지만 전쟁과 정치적 격변의 와중에 어떤 역할을 했느냐를 둘러싼 논쟁에도 휩싸여 있다. 1066년 노르망디에서 잉글랜드를 침공한 정복왕 윌리엄의 친척들로 뿌리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 가문의 초기 부는 탄광과 광물로 축적됐지만, 현대의 재산은 17세기 결혼에 터잡은 것이다. 1대 공작 토머스 그로스베너는 12세 신부를 데려오면서 그녀 부모로부터 지참금으로 런던 서부 500에이커(2.02㎢)의 습지와 과수원을 받아낸 것이 든든한 밑천이 됐다. 이곳이 지금 런던에서도 최고의 명품 가게들과 아트갤러리, 헤지펀드 사무실이 늘어선 메이페어와 벨그라비아로 떠오르는 명소로 자리잡았다. 그로브베너 그룹은 전세계 60개 도시로 부동산 투자를 넓혔고, 지난해 말까지 123억 파운드의 자산으로 키웠다. 하지만 여전히 핵심은 런던에 있다. 휴는 아버지 제럴드가 심장마비로 예순넷에 세상을 떠나자 이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다. 유언장에 따르면 6대 공작인 제럴드는 빚 등을 제하고 6억 1600만 파운드를 그에게 물려주고, 세 딸에겐 그로스브너 가족 신탁재산을 통해 추가 수입이 있을 수 있다며 2만 파운드씩만 물려줬다. 제럴드의 총기와 낚시 장비와 차들도 휴에게 물림됐다. 영국 법은 아들에게 절대 유리한 상속 제도를 자랑한다. 블룸버그의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휴의 개인 재산은 놀라지 마시라, 118억 달러(약 14조원)다. 런던에서도 가장 값비싼 동네 가운데 하나인 벨그라비아의 슬로안 스퀘어에서 몇 블록만 가면 되는 곳에 있는 허름한 아파트 건물을 허물고 새로운 점포와 레스토랑 등 주상복합으로 재건축하면 훨씬 수지가 맞다고 그로스브너 그룹은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시의회의 도움으로 임대료를 내고 이곳에 거주하는 이들은 2023년이 되면 임대차 계약이 만료돼 이곳을 떠날 때까지 재개발을 멈춰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노동당 정치인들까지 가세해 반대 운동에 힘이 실리자 20만명 넘는 이들이 온라인 청원에 가세했다. 지난해에도 그로스베너 그룹이 런던 남동부 버몬세이에 1300 세대를 건축하겠다고 제안한 것도 집을 살 여력이 없는 노동자들을 너무 수입이 많아 사회적 주거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이들로 바꾸겠다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 지역의 노동당 지방 조직은 지난 2월 이런 계획을 거부하고 영세 가정들을 집밖으로 내모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 그룹은 런던 시정부에 새로 신청서를 제출해 연말까지 공청회를 열어 여론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계획이 관철되더라도 웨스트민스터 공작과 그의 왕국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납세 정의 네트워크의 존 크리스텐센 의장은 “막대한 부와 권력이 영국에는 집중돼 있으며 실제로 견제받지도 않는다. 소수의 엄청난 부자와 파워 엘리트와 나머지 사람들로 나라가 쪼개져 있다. 그리고 모든 조세체계는 엘리트가 아닌 사람들 것을 가져다가 있는 자들의 탈세를 메우는 데 쓰고 있다. 완전히 뒤틀렸다”고 개탄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재테크 단신]

    [재테크 단신]

    ●BC카드 스키장 11곳서 결제액 최대 60% 할인 BC카드가 전국 11개 스키장에서 최대 60%까지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내년 2월 말까지 비발디파크, 용평리조트, 하이원 등 전국 11개 스키장에서 리프트, 렌털, 강습료 등을 BC카드로 결제하면 전월 실적에 관계없이 최대 60%까지 현장할인을 받을 수 있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에 8개 스키장(양지파인스키밸리, 비발디파크, 용평리조트, 알펜시아, 엘리시안 강촌, 오크밸리, 웰리힐리파크, 휘닉스스노우파크)에서 야간 리프트권을 구매하는 고객에게 동일한 티켓 1장을 추가로 제공하는 ‘1+1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다.●하나은행 신탁·보험 결합 상품 ‘케어신탁’ 내놔 KEB하나은행은 하나금융그룹사 간 협업을 통해 신탁과 보험의 장점을 결합한 ‘KEB하나 케어신탁’ 상품을 출시했다. KEB하나 케어신탁은 치매 등 건강 악화로 자산 관리가 힘들어질 때를 대비해 안전하게 금융자산을 관리할 수 있도록 특화된 대중형 유언대용신탁 상품이다. 가입자가 건강할 때 지급 절차를 미리 지정했다가 치매 등으로 거동이 힘든 상황이 발생하면 절차에 따라 병원비, 간병비 등을 효율적으로 지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하나은행은 이와 관련해 특허 출원도 마쳤다.●NH선물, 해외 선물 거래 우수·신규 고객에 선물 NH선물이 오는 31일까지 해외 선물과 옵션을 거래한 고객을 대상으로 ‘2019 라스트 스퍼트’ 이벤트를 진행한다. 신규 고객이나 한동안 거래를 하지 않았던 휴면 고객이 대상이다. 이벤트 기간에 계약을 1건 이상 하면 모바일 영화상품권을, 20건 이상 계약하면 음료와 케이크, 모바일상품권 등을 준다. 이 기간에 거래 실적 1~3위 고객에게는 가습기와 미니 공기청정기도 증정한다. 자세한 내용은 NH선물 홈페이지나 해외파생팀(02-3774-0333)으로 문의하면 된다. ●카뱅 1000원 미만 자동저축 ‘저금통’에 연리 2% 카카오뱅크는 입출금 계좌에 남아 있는 잔돈을 자동으로 저축할 수 있는 ‘저금통’을 출시했다. 카카오뱅크 입출금 계좌가 있다면 누구나 저금통을 개설할 수 있다. 저금통에서 ‘동전 모으기’를 선택하면 평일 자정을 기준으로 1000원 미만의 잔돈이 저금통으로 자동 이체된다. 실물 저금통의 특징을 반영해 매월 5일에만 저축 금액을 확인할 수 있다. 저금통은 1인당 하나만 만들 수 있으며, 저금통에 쌓이는 최대 금액은 10만원, 연이자율은 2%다. 오는 23일까지 저금통을 개설하면 축하금을 받을 수 있다.
  • “김우중, 존경받을 자격 있는 분”… 세계경영 기억하는 경제인들

    “김우중, 존경받을 자격 있는 분”… 세계경영 기억하는 경제인들

    동료·정재계·아주대 등 조문 행렬 줄이어 대우 로얄즈 데뷔했던 하석주 감독 문상 “해외 청년 사업가 양성 계속 이어갈 것” 대우家와 인연 이병헌도 2시간 머물러“대우그룹은 비록 해체됐지만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국민에게 존경받았으면 좋겠습니다.” ‘탱크주의’로 유명한 배순훈 전 대우전자 회장은 10일 고인의 별세를 애도하며 이렇게 말했다. 배 전 회장은 “김 전 회장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 많은 젊은이들이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것을 안타까워했다”면서 “당시 정부와 잘 타협했다면 대우그룹은 해체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이날 경기 수원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 전 회장의 빈소는 조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장례 첫날 조문객 수는 3000여명으로 집계됐다. 유가족들은 침통해하기보다 담담한 표정으로 조문객을 맞았다. 김 전 회장은 숙환으로 아주대병원에 11개월 입원하다 지난 9일 오후 11시 50분 8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지난 7일부터 김 전 회장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자 가족들은 마지막 준비를 했고, 김 전 회장은 부인과 자녀, 손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영면에 들었다. 고인은 본인의 뜻에 따라 연명치료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별다른 유언도 남기지 않았다. 장례식은 고인이 평소에 밝혔던 대로 가족장으로 소박하게 치러졌다. 유족들은 조위금도 정중히 거절했다. 빈소 왼편 맨 안쪽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자리했다. 그 옆으로 문희상 국회의장, 이낙연 국무총리의 조화가 놓였다. 오른편에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이 보낸 조화가 나란히 서서 김 전 회장을 추모했다. 전두환·이명박 전 대통령이 보낸 조화는 복도에 나란히 놓였다. LA 다저스 류현진 선수가 보낸 조화도 눈길을 끌었다. ‘1호 조문객’은 박형주 아주대 총장이었다. 이어 ‘대우맨’들이 속속 빈소를 찾았다. 김태구 전 대우자동차 회장, 장병주 전 ㈜대우 사장, 장영수·홍길부 전 대우건설 회장, 강병호·김석환 전 대우차 사장, 유기범 전 대우통신 사장, 추호석 전 대우중공업 사장, 신영균 전 대우조선공업 사장 등이었다. 김태구 전 회장은 “고인은 저희와 함께한 가족이자 큰 스승”이라면서 “엄격했지만 동시에 자상했고, 부하 직원들을 아주 끔찍이 사랑하셨다”고 전했다. 이어 “다음 세대가 잘살 수 있도록 우리가 희생하자는 것이 고인의 생각이었다”면서 “그 뜻을 이어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해외에서 활발하게 청년 사업가들을 양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신세계 이명희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 김동관 한화큐셀 부사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등이 직접 빈소를 찾았다. 조원태 회장은 “김 전 회장의 아들과 친구였고, 고인에 대한 예를 갖추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정계에서는 주호영·조훈현 자유한국당 의원, 조원진 우리공화당 의원 등이 가장 먼저 빈소를 다녀갔다. 배우 이병헌은 빈소에 2시간가량 머무르며 유가족에게 위로를 건넸다. 이병헌은 24세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단명한 김 전 회장의 아들과 닮았다는 이유로 대우가(家)와 인연을 맺은 뒤 대우통신 컴퓨터, 대우차 티코 등의 광고 모델로 활약했다. 하석주 아주대 축구팀 감독은 선수단을 이끌고 단체로 조문했다. 하 감독은 대한축구협회장을 지낸 김 전 회장이 창단한 대우 로얄즈 축구단을 통해 프로리그에 데뷔하며 인연을 쌓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이날 논평 등을 통해 김 전 회장을 ‘한국 경제발전의 주역’이라 높게 평가하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 ‘세계경영’ 대우 신화 일군 김우중 전 회장 별세... “한국 청년들, 넓은 세계 누비길”

    ‘세계경영’ 대우 신화 일군 김우중 전 회장 별세... “한국 청년들, 넓은 세계 누비길”

    1980~90년대 고도 성장의 상징이었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타계한 가운데 10일 경기 수원 아주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김 전 회장의 영정사진이 마련됐다. 이날 경기 수원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 전 회장의 빈소에는 재계·정치권을 비롯한 각계 인사들이 찾아와 김 전 회장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유가족들은 침통해하기보다 담담한 표정으로 조문객을 맞았다. 김 전 회장은 숙환으로 아주대병원에 11개월 입원하다 지난 9일 오후 11시 50분 8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지난 7일부터 김 전 회장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자 가족들은 마지막 준비를 했고, 김 전 회장은 부인과 자녀, 손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영면에 들었다. 고인은 본인의 뜻에 따라 연명치료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별다른 유언도 남기지 않았다. 장례식은 고인이 평소에 밝혔던 대로 가족장으로 소박하게 치러졌다. 유족들은 조의금도 정중하게 거절했다.재계에서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신세계 이명희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 김동관 한화큐셀 부사장 등이 직접 빈소를 찾았다. 조원태 회장은 “김 전 회장의 아들과 친구였고, 고인에 대한 예를 갖추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정계에서는 주호영·조훈현 자유한국당 의원, 조원진 우리공화당 의원 등이 가장 먼저 빈소를 찾았다. 강용석 전 의원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밖에 이문열 작가,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원희룡 제주지사 등이 빈소를 다녀갔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영의 효시이자 한국 경제발전 성공의 주역이신 김 전 회장께서 별세하신 데 대해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고인을 기렸고 한국경영자총협회도 “김 전 회장은 우리나라가 자동차·조선·중공업 분야에서 내실을 다지고 세계적인 수출국 대열에 합류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글 영상 박홍규, 문성호 기자 gophk@seoul.co.kr
  • 노태우 전대통령 아들 또 광주찾아 5·18사죄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53)씨가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한 지 석 달 만에 다시 광주를 찾아 5·18민주화운동 피해자에게 직접 사죄했다.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품이 전시돼 있는 김대중컨벤션센터를 찾아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렸다. 6일 오월어머니집 등에 따르면 재헌씨는 5일 오후 2시쯤 광주 남구 오월어머니집을 예고 없이 방문했다. 재헌씨는 당시 오월어머니집에 머물고 있었던 정현애 이사장 등 오월어머니집 관계자 2명과 30분가량 차담을 하고 돌아갔다.정 이사장은 5월 항쟁 당시 시위에 참여했다가 구속 수감됐던 5·18 유공자다. 재헌씨는 이 자리에서 “병석에 계신 아버님을 대신해 찾아왔다”며 “광주의 아픔에 공감하고 치유되길 바란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5·18의 진범은 유언비어’라고 주장해 논란이 된 노 전 대통령의 회고록과 관련해 “개정판을 낼 지 상의해봐야겠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헌씨는 오월어머니집을 방문하기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품이 전시돼 있는 기념전시관을 둘러봤다. 김 전 대통령이 교도소 복역 당시 입었던 수형복 등을 오랜시간 응시했다고 동행자는 설명했다. 재헌씨는 방명록에 “큰 뜻을 이어가겠습니다”며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렸다. 그는 올해 8월에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오월 영령을 참배했다. 당시 재헌씨는 방명록에 ‘삼가 옷깃을 여미며 5·18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분들 영령의 명복을 빕니다. 진심으로 희생자와 유족분들께 사죄드리며 광주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라고 남겼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직계가족 중에서 오월 영령에게 사죄한 사람은 재헌씨가 처음이다. 노 전 대통령은 오랜 투병 생활로 자택에서 요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민족민주 영령의 성지… 산 자에겐 치열한 정치공간

    민족민주 영령의 성지… 산 자에겐 치열한 정치공간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32차 국립서울현충원’ 편이 지난달 30일 동작구 상도동과 동작동 일대에서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석자 4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 지하철 7호선 상도역 4번 출구를 출발했다. 구립 김영삼도서관을 거쳐 김영삼 전 대통령 가옥에 방문했다. 김영삼 기념도서관은 내년 3월쯤 개관할 예정이어서 외관을 살펴보고 경과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현대정치사에 ‘상도동’이라는 뚜렷한 족적을 남긴 김 전 대통령 가옥 응접실에서 차를 대접받으며 김상학 비서관으로부터 목숨을 건 23일간의 단식투쟁과 연금생활 등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듣고 눈에 익은 사진과 기념품, 휘호, 단풍나무를 즐겼다. 가옥에는 손명순(92) 여사가 기거하고 있다.서달산 명물로 떠오른 숲속도서관 가는 길은 11월의 마지막 단풍으로 불타고 있었다. 현충원에서 호국지장사(옛 화장사)~박정희~김대중~임시정부 및 애국지사 묘역 순으로 둘러봤다.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앞에 화환이 즐비했는데 마침 전날이 고 육영수 여사의 94번째 생일이었다고 한다. 상도동에서 이동하는 시간이 길다 보니 현충원에 머무는 시간이 짧아 다들 아쉬워했다. 묘역 곳곳에 깃든 숱한 사연들이 저마다 앞다퉈 얘기를 속삭이는 듯했다. 이날의 서울미래유산은 김 전 대통령 가옥과 국립서울현충원이었다. 해설을 맡은 엄태호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원은 이야기가 있는 현충원의 만추 속으로 참가자들을 안내했다.동작은 서울과 과천을 연결하는 한강 남쪽의 중요 나루였다. 사람과 물자가 드나들던 동작진(銅雀津)이자 병선 6척이 주둔하던 군사기지 동작진(銅雀鎭)이기도 했다. 우리말로는 동재기나루라고 불렀다. 1954년 이곳에 국군묘지가 세워졌다. 풍수지리상 장군대좌형의 명당이므로 군인과 인연이 있는 땅이다. 본래 동작이란 무덤을 장식한 구리봉황을 뜻하므로 땅 이름과 땅 주인이 서로 들어맞았다. 삼국지의 영웅 조조의 성이자 무덤이던 동작대에서 딴 동작이라는 지명이 조선 한양의 한강변 나루터 마을에 붙고 그곳이 현대 서울의 동작구와 동작동이라는 지명으로 이어졌다가 결국 국립묘지가 들어섰기 때문이다.국군묘지에서 1965년 동작동 국립묘지로 승격됐다가 1996년부터 국립현충원이 됐다. 국립묘지라는 명칭은 그대로 사용하되 묘역 관리기관의 명칭만 바꿨다. 2006년 국립대전현충원 등과 구별하기 위해 국립서울현충원이 됐다. 144만㎡의 부지에 무명용사 11만여위를 비롯해 모두 17만 9000여기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잠들어 있다. 신라를 통일한 문무대왕이 “아! 산천은 변천되고 세대는 바뀌기 마련이다. 저 오왕 합려의 북산 무덤에 색칠한 금오리가 남아 있지 않고, 위왕 조조 서릉의 망지는 동작이라는 명칭만 남았을 뿐이다…”라며 “내가 죽으면 동해바다에 장사 지내라”고 유언했다. 이 세상 영웅과 화려한 무덤이 다 사라지고 결국 ‘동작’이라는 이름만 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조의 무덤에 구리로 만든 거대한 새를 세운 동작대에서 이름을 이어받은 동작구와 동작동에 국군묘지와 국립묘지가 세워지고 독립지사와 임정요인, 전직 대통령 등을 모신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장소인문학에서 말하는 땅의 내력이다.조선시대 한강이 오늘의 철도와 고속도로를 합친 물류의 중심지 역할을 할 때 왼쪽 서빙고나루, 오른쪽 노량나루의 중앙에 놓인 동작나루는 남대문을 나서서 용산 청파역을 거쳐 경기도 과천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김정호는 ‘대동여지도’ 중 ‘경조오부도’에 이 길을 과천로라고 이름 붙였다. 청파역에서 노량나루를 건너면 시흥으로 향했다. 동작진을 건너 과천으로 가거나 노량진을 건너 시흥으로 가는 두 길은 수원에서 만나 삼남(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지방으로 이어졌다. 1899년 노량진~제물포 간 경인선과 1900년 노량진~용산 간 제1한강교(한강대교)가 놓이면서 동작진은 노량진에 밀렸다. 조선시대 가리기 힘들었던 두 나루의 우열은 근대기 들어 노량진이 앞섰다. 그 덕분에 비어 있던 동작진에 국립묘지가 깃들 수 있었다.옛 동작나루를 그린 실경산수화 2점이 전한다. 겸재 정선(1676~1759)의 ‘동작진’과 장시흥(1714~1789)의 ‘동작촌’이다. 동작진이 나루터를 포함한 마을 전체를 그렸다면 동작촌은 동작나루의 솟은 암산과 나루에서 사당, 과천으로 이어지는 길가에 즐비한 기와집을 클로즈업했다. 정선이 1744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동작진’은 오늘의 현충원을 중심에 두고 멀리 관악산과 청계산을 배경 삼았다. 동작나루 일대 한강을 동작강이라고 불렀다. 권문세가의 별서(별장)가 자리잡았다. 인조반정의 공신 이귀가 세운 창회정이 정선의 그림에 엿보인다. 광해군 때의 권신 박승종의 별서 퇴우정이 이름을 바꾼 것으로 짐작된다. 인조의 동생 능봉군이나 남용익, 이세필, 윤두수 등 문신의 별서도 상지동에 있었다. 조선시대 현충원 일대를 상지동이라고 했다. 현충원의 터줏대감 호국지장사는 신라 고찰 화장사다. 삼성동 대부분이 봉은사 땅이었듯 현충원 대부분이 화장사 소유였다. 선조의 조모 창빈 안씨 묘도 널찍하게 자리를 잡았다.동작나루에는 시인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다산 정약용은 31세 때 ‘동작나루에서 진주로 가시는 부친을 송별하며’란 제목의 시를 남겼다. “나루터에 저 멀리 떠나가는 배/모래밭에 말 세우고 바라본다네…”로 시작하는 효심 어린 시를 썼다. 그러나 이 시를 쓴 해 부친이 진주에서 숨졌으니 마지막 이별 인사가 된 셈이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도 동작나루 풍경을 그린 ‘동작진’이라는 시가 전한다. 동작나루는 정치의 공간이기도 했다. 숙종 때 남인의 영수 윤휴는 왕의 부름을 받자 “신의 애초의 뜻은 전하가 계시는 궁전의 뜰에 나아가 하직하려는 것이었습니다…”라면서 동작나루의 숙소에 3달을 머물며 출사 거부의 사직상소를 올렸다. ‘정치 쇼’였다. 그러나 1680년 경신환국으로 세상이 바뀌고, 남인이 제거되면서 윤휴는 죄인이 돼 국문을 당한 뒤 사약을 받았다. 동작나루에서 여유작작하며 석 달을 버티다 동작강을 건넌 뒤 한 달 만에 저세상 사람이 된 것이다. 국립서울현충원은 민족민주영령들의 성지이자 국가 정통성의 뿌리다. 죽은 자의 공간이지만 산 사람들을 위한 정치공간이기도 하다. 혁명이나 변환의 시기나 행사 때마다 주요 인사들이 얼굴을 내미는 정치무대이기 때문이다. 246만명의 전사자와 전범자를 합사한 일본 야스쿠니신사가 국립묘지로 성지화되면서 참배 여부를 놓고 나라 안팎에서 논란이 빚어지는 까닭이기도 하다. 조조의 무덤 동작대에서 전래된 동작나루의 전설이 동작동 국립묘지로 이어진 것은 거부할 수 없는 땅의 숙명이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제33회 양천고성 ■집결 장소:12월 7일(토) 오전 10시 양천향교역 2번 출구 ■신청(무료):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75세에 북극, 79세에 남극을 밟은 여성 탐험가 바버라 힐러리 별세

    75세에 북극, 79세에 남극을 밟은 여성 탐험가 바버라 힐러리 별세

    75세 때 북극을 등정하고, 79세 때는 남극을 밟은 여성. 남북극을 동시에 정복한 첫 흑인 여성인 바버라 힐러리가 지난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 퀸스 파크웨이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고 뉴욕타임스가 26일 보도했다. 88세. 고인은 20대에 유방암을, 60대에는 폐암을 극복했다. 고인의 사망 사실은 그녀의 웹사이트를 통해 알려졌다. 그녀의 트위터에는 최근 수개월 사이 건강이 악화되었다고 전한 바 있다. 1931년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난 고인은 55년 경력의 간호사 생활을 끝낸 뒤 캐나다 퀘벡에서 개썰매를 타고 탐험을 시작했으며, 매니토바에서 북극곰을 사진 찍는 등 모험 생활을 즐겼다. 그러다가 아프리카계 여성 어느 누구도 북극에 간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도전에 나섰다. 그녀를 위한 모금도 조직도 없었고, 폐암 수술로 호흡능력은 25%가 떨어진 상태였다. 북극 탐험에 나서려면 스키를 탈 수 있어야 하지만 고인은 이전에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었다. 고인은 2007년 시애틀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자란 곳인 “할렘에서는 스키가 인기 스포츠가 아니었다”고 말했다.탐험을 준비하면서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배우고자 개인 트레이너를 채용하기도 했다. 70대에 스키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장비 마련과 운송을 위해 기부행사를 통해 2만 5000달러를 모으며 착착 준비해갔다. 고인은 노르웨이 북극 지역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도전에 나섰다. 2007년 4월23일 북극 등정을 했을 때 75세였다. “그녀가 북극에 도착한 기쁨에 추위를 잊고 장갑을 벗는 바람에 손가락에 동상이 걸렸다”고 시애틀 타임스가 전했다. 고인은 생전에 “그렇게 순수한 기쁨과 흥분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나는 한참 동안 소리지르고 점프하면서 날뛰었다”고 기쁨의 순간을 뉴요커에 말했다. 4년 뒤인 2011년 79세의 나이로 1월 6일 다시 남극점을 밟았다. 이후 탐험가 생활뿐만 아니라 남북극에서 깨달은 기후변화의 심각성과 관련 연사로서 강연활동도 이어나갔다. 올해 87세가 된 그는 신년에 외몽골에 있는 유목민 마을을 방문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했다. 고인이 생전에 남긴 유언처럼 말이다. “인생의 단계마다 선택지를 보라. 제발, 지루한 것을 선택하지 마라.”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뭉찬’ 박태환, 모두가 놀란 대포알 슈팅 “카메라 부술 뻔”

    ‘뭉찬’ 박태환, 모두가 놀란 대포알 슈팅 “카메라 부술 뻔”

    ‘뭉찬’에 새로운 용병으로 등장한 박태환이 감독 안정환의 최애 자리를 노린다. 오늘(24일) 방송되는 JTBC ‘뭉쳐야 찬다(뭉찬)’ 열두 번째 공식전에는 박태환이 ‘어쩌다FC’ 사상 최초 현역 용병으로 합류해 새 판을 짠다. 필드 위에 선 박태환은 물살뿐만 아니라 잔디까지 스피디하게 가르는 순발력을 보인다. 대포알처럼 날아가는 그의 첫 슈팅을 보고 놀란 전설들은 “대박”, “얘 뭐야”, “에이스인데?” 등 감탄하며 말을 더듬었다고. 뿐만 아니라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한 박태환은 파워 슈팅으로 지미집 카메라까지 부술(?) 뻔 한다. 제작진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동안 감독 안정환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만연했다는 후문이다. 전설들은 ‘안느’의 마음을 사로잡은 새 에이스의 등장에 위기감을 느끼고 견제에 돌입한다. 허재가 박태환의 신발에 숨은 비밀을 파헤치는가 하면 정형돈은 “오죽하면 태환이가 화를 내겠어”라며 유언비어를 퍼뜨려 그의 혼을 쏙 빼놓는 것. 과연 만만치 않은 전설들과 팀워크를 이뤄 승리까지 얻어낼 수 있을지 박태환의 특급 활약이 기다려지고 있다. 한편, 이날 경기에 앞서 시청자들의 꿀잼 직관을 보장하는 박태환과 전설들의 폐활량 대결이 펼쳐진다. 침 튀기는 치열한 경기는 물론 허재의 눈물까지 예고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궁금증을 자극한다. 대한민국 스포츠 전설들과 용병 박태환이 축구 첫 1승에 도전하는 JTBC ‘뭉쳐야 찬다’는 오늘(24일) 밤 9시에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미래유산 톡톡] 효창원~효창공원의 역사 효창운동장과 안 어울려

    [미래유산 톡톡] 효창원~효창공원의 역사 효창운동장과 안 어울려

    효창운동장은 1960년에 건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 규격 축구경기장이다. 효창공원은 정조 10년에 조성된 효창묘가 있던 자리다. 정조는 문효세자가 죽자 이곳에 묫자리를 만들었다. 문효세자의 생모 의빈성씨와 순조의 후궁 숙의박씨, 그의 소생인 영온옹주도 잠들어서 모두 4기의 묘가 있었다. 1906년 일본군의 군영이 용산 일대에 설치되면서 효창원을 휴양지로 삼으려고 했다. 1924년엔 효창원의 일부를 공원으로 정비해 일반에 공개했다. 급기야 패망 직전인 1945년 3월 효창원의 묘소를 현재 고양시에 있는 서삼릉으로 강제 이장함으로써 효창원은 그 의미와 역할을 잃었다. 해방 이듬해 김구 선생은 일본에 있던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봉환해 안중근 의사의 가묘와 함께 효창공원에 삼의사 묘역을 만들었다. 1948년 임시정부 의장을 3차례 지낸 이동녕 선생과 독립신문 기자로 활약한 차리석 선생의 유해를 중국에서 봉환, 이곳에 안장해 임정요인 묘역을 만들고 보름 뒤 한국광복군 활동에 기여한 조성환 선생이 숨지자 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같은 곳에 안장했다. 1949년 김구 선생 본인도 유언에 따라 효창공원에 잠들었다. 차리석 선생의 부인 강리성 여사와 김구 선생의 부인 최준례 여사도 남편과 함께 합장돼 1949년 이후 효창공원은 9기의 애국선열과 그 가족의 묘가 있는 묘역이 됐다. 애국선열 묘소를 이장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있었다. 1956년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이 제1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우승, 다음 대회 개최를 위해 국제 규격의 잔디구장 건설 필요성이 제기됐다. 1959년 구장 건설에 착수하면서 묘역 이장이 가시화되자 심산 김창숙 등이 중심이 된 효창공원선열묘소보존회가 반대해 묘소 이전은 보류됐다. 결국 축소된 운동장이 1960년 10월에 개장했다. 체육시설로서 효창운동장은 미래유산 자격이 충분하다. 그러나 효창원에서 이어지는 효창공원의 역사로 볼 때 효창운동장은 어울리지 않는다. 박정아 서울도시문화지도사
  • [문화마당]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송정림 드라마 작가

    [문화마당]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송정림 드라마 작가

    또 한 해가 뒷모습을 보인다. 내딛는 발걸음에 툭, 낙엽이 차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한여름 맹렬한 푸름을 과시하며 의기양양했던 나뭇잎이 가을이 되면 낙엽이 돼 처절하게 추락한다. 시간이 가져가 버린 것들이 슬프다. 한때 찬란했던 젊음도, 눈부셨던 아름다움도, 황홀했던 사랑도 시간이 거둬 간다. 뜨겁던 꿈도, 치열했던 의지도 시간이 데려간다. 흘러가 버린 시간은 형체가 없어서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다. 그래서 남은 게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정말 시간은 사라지고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시간 속에 스민 기억은 뭘까. 기억된다는 것은 뭐고 잊힌다는 것은 뭘까. 잊힌다는 것의 의미를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망각의 공포가 뭔지 알 것 같다. 어머니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셨을 때, 사랑이 가득 담긴 눈으로 나를 보던 어머니 눈빛이 텅 비어 버렸음을 보았을 때, 어머니 마음에 내 존재가 지워져 버렸음을 알았을 때 나는 극도의 두려움을 느꼈다. 내 삶의 중요한 역사가 사라져 버린 것 같아 어머니를 붙잡고 울었다. 물망초 꽃말처럼 ‘나를 잊지 말아 달라’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애절한 부탁을 하면서…. 프랑스 화가이면서 시인인 마리 로랑생은 시를 썼다. 세상에서 가장 가엾은 사람은 잊힌 여인이라고. 그 어떤 불행과 슬픔보다, 죽음보다도 잊히는 것을 더 두려워했던 마리는 피카소의 소개로 시인인 기욤 아폴리네르를 만났다. 두 사람은 사생아라는 공통점 때문인지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아폴리네르를 사랑하던 시기에 마리는 가장 뛰어난 그림을 그렸다. 아폴리네르 역시 그 시기에 최고의 시를 쏟아냈다. 그러나 예술의 절정에 있을 때,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던 두 사람은 결별해야 했다. 사랑을 잃어버린 후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다리를 건너던 아폴리네르는 다리에 멈춰 서서 ‘미라보 다리’를 썼다. ‘나날은 흘러가고 달도 흐르고/지나간 세월도 흘러만 간다//우리의 사랑은 가서는 오지 않고/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만 흐른다’ 이별 후에도 더욱 사랑했지만 그들은 다시 만날 수 없었고, 마리는 죽기 직전 유언을 남겼다. “하얀 드레스를 입혀 주세요. 그리고 빨간 장미와 아폴리네르의 편지를 가슴에 올려 주세요.” 잊히는 것을 두려워했던 그녀는 스스로 잊지 않음을 선택해 죽는 순간까지 사랑을 간직했다. 기억할수록 더 외로웠겠지만, 기억이 아파서 심장 쪽을 부여잡고 우는 날이 많았겠지만 그래도 끝까지 잊지 않았다. 애틋했던 사랑도 치열했던 인생도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시간은 기억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러니 기억하고 아파할까, 잊고 편해질까?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나 역시 아파도 기억하겠다. 그러지 않으면 사랑한 시간도, 살아 낸 시간도 허망하니까. 다른 이의 마음은 내가 어쩔 수 없고 내 인생 역시 나만이 알 수 있으니 내가 기억하고 기념하면 되지 않을까. 내 사랑이, 내 인생이 잊힐 거라고 두려워하기보다 내가 간직하면 되지 않을까. 내가 잊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이별한 게 아니다. 시간이 그렇게 허망한 것도 아니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간직되는 것일 테니까…. 시간 속에 기억이 새겨지는 한 이별도 사랑의 끝이 아니고 죽음도 인생의 끝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두렵다. 마리 로랑생은 잊히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나는 잊을까 봐 두렵다. 시간이 흐른다. 시간 속에 우리는 어떤 순간을 기억 속에 새겨 갈까. 또 어떤 순간을 잊어 갈까.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살아가기를. 그 사랑, 그 삶을, 최선을 다해 잊지 말기를.
  • 고령화로 상속재산 갈등 증폭… ‘배우자 노후생활’ 위협

    고령화로 상속재산 갈등 증폭… ‘배우자 노후생활’ 위협

    지방에 사는 A씨는 3억 5000만원의 집 한 채를 남기고 사망했다. A씨의 아내 B씨는 이 집에서 계속 살아야 하는데, 두 자녀가 상속재산 분할을 요구했다. 법정상속비율이 배우자 1.5, 자녀당 1이어서 B씨는 집을 팔아 1억 5000만원만 갖고 자녀들에게 1억원씩 줬다. B씨는 1억 5000만원으로 새 집을 구하고 노후 생활비까지 해결해야 한다. 최근 급속한 고령화로 부부 중 한 명이 사망할 경우 상속재산을 놓고 가족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생존한 배우자가 재산을 적게 물려받아 생활이 어려운 사례도 적지 않다. 정부가 상속세 제도를 재점검하고, 고령화 사회에 먼저 진입한 선진국의 제도 개선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는 6일 이런 내용의 ‘고령사회와 상속시장의 현황 및 과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연간 상속액은 35조 7000억원으로 2003년(12조원) 대비 3배가량 증가했다. 상속세에서 각종 공제를 뺀 실효세율은 평균 17.2%였다. 특히 재산을 물려준 피상속인 중 80세 이상이 51.4%나 됐고, 상속재산은 부동산이 59.8%로 가장 많았다. 연구소는 ▲배우자 상속 ▲주택 상속과 주택연금 ▲노노(老老) 상속 ▲유류분 제도 등 4개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우자 상속 문제는 B씨 사례처럼 자녀와의 상속 갈등으로 배우자의 생활이 위협을 받는 것이다. 고령가구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높은데, 상속재산이 집 한 채일 경우 배우자는 살 집이 없어져서다. 연구소는 일본 정부가 지난해 민법을 바꿔 만든 ‘배우자 거주권’을 해결책으로 꼽았다. 생존한 배우자에게 현재 사는 집에서 일정 기간 또는 사망할 때까지 살 권리를 주는 제도다. 주택연금도 문제다. 집을 담보로 매달 주택연금을 받는 고령층이 늘고 있는데, 자녀들이 집을 상속받으려고 주택연금 이어받는 것을 반대해서다. 금융 당국은 배우자 사망 때 다른 배우자에게 연금이 자동 승계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노노(老老) 상속은 부모뿐 아니라 자녀도 노인이 돼 자산이 고령층 안에서 맴도는 현상이다. 과거 일본도 이로 인해 소비와 투자가 줄어 경제에 악영향을 미쳤다. 일본 정부는 2013년 내수 활성화를 위해 조부모가 손자에게 교육자금을 증여하면 한시적으로 증여세를 매기지 않는 대책을 내놨다. 이후 주택 취득 자금과 육아, 결혼, 출산 비용도 비과세했다. 연구소는 부모 등 피상속인이 유언을 통해 자녀를 비롯해 법정 상속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재산을 모두 상속시키려고 해도 재산의 일정 비율을 상속인에게 주는 ‘유류분 제도’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경제력이 없는 배우자나 미성년 자녀를 위한 제도인데, 경제력을 갖춘 고연령층 자녀가 많아져서다. 정나라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정부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와 부양의식 변화에 대응해 현행 상속세 제도를 재점검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삼베 수의와 상주의 완장, 리본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삼베 수의와 상주의 완장, 리본

    10여년 전 집사람에게 이렇게 유언했다. “내가 죽으면 수천 권의 책은 모교에 주고, 부의금은 받지 마라, 매장이고 납골이고 다 부질없는 일이니 화장해 부모님 산소에 뿌려 달라”고 했다. 그럼 자기는 어떻게 하냐고 해 “화장해 함께 부모님 산소에 함께 뿌리면 되지 않겠냐”고 했더니, “왜 죽어서까지 시부모님하고 같이 있어야 돼” 하길래 한바탕 웃었다. 혹시나 유언을 잊을까 봐 아예 필자의 저서 서문에 실었다. 최근엔 하나 더해 “염할 때 삼베 수의 대신 내가 즐겨 입었던 옷을 입혀 달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입관까지 사흘에 걸쳐 습과 소렴, 대렴 등 3단계를 거친다. 이를 염습, 혹은 염한다고 했다. 이때 입히고 싸는 것을 보통 수의라 한다. 하지만 예전에는 수의 대신 습의와 염의를 구분해 의미와 역할을 분명히 했다. 시신을 씻기고 새 옷으로 갈아 입히는 것이 습의라면, 염의는 시신을 옷과 이불로 싸는 것이다. 시신에 옷을 입히고 다시 시신을 여러 벌의 옷으로 감쌌기 때문에 습의와 염의가 필요했다. 수의란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광해군 즉위년(1608년)이다. 그 이전에는 습의라는 말을 널리 썼다. 습의에는 본인이 평상시 입었던 옷을 주로 썼으며, 염의는 생전에 입었던 옷과 함께 가족이나 친구, 임금이 하사한 옷 등을 사용했다. 관료들은 생전의 예복인 관복을 입히기도 했고. 유학자들은 선비의 옷을, 여자들은 혼례 때 입은 가장 화려한 원삼이나 활옷 등을 그대로 입혔다. 2003년 청주에서 출토된 한성부 판윤(옛 서울시장)을 지낸 김원택의 맏며느리 한산 이씨(1712∼1772) 수의는 모두 46점으로, 생전 입었던 옷과 수의용으로 구분된다. 수의로 만든 옷은 치수만 넉넉하게 만들었을 뿐 옷의 형태나 색깔은 모두 평상복과 똑같이 만들었다. 오늘날에는 습의 염의 구분 없이 삼베로 만든 수의를 사용하고 있다. 생전에 입었던 옷을 수의로 쓴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삼베 수의는 우리 전통의 수의가 아니다. 전통 수의로는 고급 비단이나 명주 등을 사용했다. 삼베는 염할 때 시신을 묶는 끈으로 사용됐다. 그렇다면 삼베 수의는 언제부터 사용했을까. 삼베로 수의를 쓰기 시작한 것은 1934년 일제강점기다. 1933년 8월 1일 조선 총독의 자문기관인 중추원 회의 때 조선총독부 학무국에서 조선의 혼례와 상·제례가 너무 복잡하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의례준칙 제정을 제안했다. 이를 바탕으로 1934년 11월 조선총독부 학무국 사회과에서 간략화된 소위 가정의례규정집이라 할 수 있는 ‘의례준칙’을 만들어 공포하고 중앙과 도별로 책자를 만들어 전국에 배포해 준용토록 했다. 일제는 ‘의례준칙’에서 “수의는 삼베나 광목 등을 쓰고, 고가의 비단은 사용하지 말 것, 상주는 양복 왼쪽 가슴에 리본을 달고, 왼쪽 팔에 완장을 차도록 했다.” 비단과 명주로 된 우리의 전통 수의는 일제에 의해 사치스럽고 고가품이라는 이유로 삼베나 광목으로 바뀌었다. 조선시대 성종 때 완성한 전례서 ‘국조오례의’에도 수의는 모두 비단을 사용한다고 했다.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삼베 수의가 마치 우리의 전통 수의로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으니 적폐도 이만저만 적폐가 아니다. 원래 삼베는 상주가 입는 상복이다. 부모를 여읜 자식은 ‘죄인’이란 의미로 삼베로 만든 상복을 입었다. 율곡 이이의 평생지기인 성리학자 성혼(1535∼1598)은 임진왜란 때 피난 중인 선조를 문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죄인이라 여겨 유서에 “내가 죽거든 염습은 입고 있는 옷에 삼베옷을 입히고, 종이 이불로 염습하라”고 했다. 상주가 검정 양복에, 왼팔에 완장을 차고, 왼쪽 가슴에 리본을 다는 것도 일제의 강요로 만들어진 일본식이다. 우리는 한술 더 떠 상주는 석 줄의 완장을, 사위나 손자는 한 줄의 완장을 찬다. 국적도 근거도 없는 문화다.
  • “한국전 전후 무차별적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8부 능선 넘어”

    “한국전 전후 무차별적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8부 능선 넘어”

    1948년 한반도 남쪽에 이승만 정권이 들어선 뒤 한국전쟁 발발 전후로 정치적 반대 세력, 소위 ‘빨갱이’를 소탕한다며 무차별 민간인 학살이 자행됐다. 우익 청년단체 등 지방 토착세력도 군경의 협조 또는 묵인 아래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했다. 이유도 모른 채 끌려가 잔혹하게 총살당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민간인 학살 피해자가 100만명이 넘는다는 자료도 있다. 하지만 분단 체제에서 피해자 유족들은 빨갱이 가족으로 매도당하며, 연좌제의 사슬에 묶인 채 침묵을 강요당했다.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진상 규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비극적인 현대사를 바로잡고 피해자와 유족들의 명예회복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과거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진상규명위원회의 중립성 유지 등에 의구심을 갖고 있는 자유한국당의 반대에 가로막혀 아직도 계류 중이다.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라면 얼마 전 특별법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극적으로 통과했다는 것이다. 20대 국회 회기가 반년도 남지 않은 게 변수지만 지난달 30일 서울신문과 만난 김하종(86) 한국전쟁유족회 특별법추진위원장(경주유족회장)은 “8부 능선은 넘었다”며 가장 어려운 관문을 통과했다고 말했다. -상임위 통과에도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야당 의원들의 반대가 극심했는데. “국회 행안위 회의가 열리는 날이면 아침 일찍 열차를 타고 서울로 와 회의실 앞을 지켰다. 한국당 의원을 만나면 ‘지난번에 협조해 준다고 해 놓고 자꾸 반대하면 어떡하느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우는 아이 젖 준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지난 5월 행안위 회의장에도 들어갔는데. “당시 회의장이 난장판이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발언권을 준다고 하더라. 80세를 전후한 우리 유족들이 또 얼마나 세월을 기다려야 할지, 그때까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고 했다. 유족들의 통한의 눈물을 닦아 줄 과거사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호소했다.” 과거사법 개정안은 노무현 정부 때 설립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다시 가동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한국전쟁 전후 시기에 불법적으로 이뤄진 민간인 집단 사망·상해·실종 사건도 다루게 된다. 20대 국회 들어 관련 법안만 7개나 발의됐지만 여야 대치 속에 논의가 진척되지 못하자 김 위원장은 지난 5월 유족회 회원들과 함께 학살 피해자 유해 40여구를 들고 국회 앞에서 농성을 벌였다. 6월 들어 속도가 나는 듯했지만 한국당이 상임위 의결 직전 이 법안을 안건조정위에 회부하겠다고 하면서 넉 달이 더 지체됐다. 그래도 김 위원장은 지난달 22일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법안이 통과되자 “얼마나 기쁜지 눈물이 다 났다”고 말했다. -그 오랜 세월 체력이 부치지는 않았는지. “1960년 10월 전국유족회가 결성될 당시 총회가 열렸는데 그때 참석한 33명 중 유일한 생존자다. 끝을 내겠다는 심정이다.” 김 위원장은 경북 경주시 내남면 출신으로 경주유족회장도 맡고 있다. 한국전쟁 전후 시기에 내남면에서만 140명이 넘게 희생됐다고 한다. 그의 일가친척 22명도 빨갱이에 협조하는 ‘용공분자’(공산주의에 동조하는 사람)로 몰려 1949년 8월 1일 우익 청년단체인 민보단 단원들과 순경 등에 의해 총살됐다. 김 위원장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내남면 민보단장은 이후 3선 의원을 지낸 이모씨였다. 김 위원장 부친도 몰살당한 친척들을 매장하기 위해 현장에 갔다가 민보단원에게 두들겨 맞고 9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 시절을 어떻게 견뎠나. “당시 국민학교 담임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신사적 복수’를 하라고. 이씨보다 더 높은 지위에 오르라는 얘기였다. 등록금을 낼 형편도 안 됐지만 모친을 설득해 뒤늦게 공부를 했다. 경주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닌 뒤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졸업 후에는 시험을 쳐서 법무부 형정국(현 교정본부)에 들어갔다.”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형정국을 그만둔 까닭은.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졌다. 부친과 집안 사람이 억울하게 돌아가셨는데 명예를 회복시켜 드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중에 복직시켜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사표를 냈다. 경주로 내려와 이씨를 살인, 방화, 약탈 혐의로 고발했다. 이씨가 구속되자 상황이 달라지더라. 학살 피해자 유족 860여명이 모여들었다. 그렇게 경주유족회가 만들어졌고 젊은 나이에 회장직을 맡게 됐다. 그해 11월 4000여명(경찰 추산 2500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주 지역 양민피학살자 합동위령제를 지냈다.” -그런데 1년 만에 상황이 바뀌었다. “1961년 5·16쿠데타로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뒤 유족회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혁명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았다. 당시 검사는 소급 입법인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을 적용해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이나 청춘이 아까워 무기징역을 구형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7년을 선고했고, 중간에 사면을 받아 실제 복역한 기간은 2년이 좀 넘는다. 유족회 총무를 했던 쌍둥이 동생도 6개월을 복역했다. 반면 사형선고를 받았던 이씨는 증거불충분으로 나중에 무죄로 풀려났다.” -사면이 됐어도 요주의 인물로 분류돼 제약이 많았을 것 같다. “전담 경찰이 매일 집으로 왔다. 앞으로 취직은 못 하니까 장사를 하든지, 농사를 짓든지 양자택일하라고 하더라. ‘개천에서 용이 났다고 했는데 네가 어찌 이렇게 됐느냐’며 모친이 대성통곡했다.” -나라가 원망스러웠을 것 같다. “걱정하는 모친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위로했다. 당시 개간 붐이 일었는데 약 6600㎡(약 2000평)를 직접 개간했다. 젊은 사람이 개간을 했다는 소문이 퍼졌는지 경주시장이 찾아왔다. 시장한테 유족회 회장이라고 소개하고 “직장 생활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얼마 안 돼 취업을 해도 좋다는 통보를 받았고, 지인이 운영하던 동방고등공민학교를 인수했다. 이후 불국사실업중학교, 경주여상 교장 등을 지냈다. 하지만 1989년 사회안전법이 폐지될 때까지 정보경찰도 교장실을 안방 드나들듯 찾아와 감시했다.” 경찰의 감시 속에 유족회와 멀어지는 듯했지만 김 위원장은 유족들의 부탁을 뿌리칠 수 없었다. 2010년 재심을 청구해 무죄를 확정받고 국가를 상대로 민사소송까지 끝낸 뒤 2015년 다시 경주유족회장을 맡았다. 55년 만이다.-어려운 길을 또 택했다. “해마다 위령제를 지내는데 장소가 여의치 않아 경주역, 예식장, 식당 등을 전전했다. 유족회장을 맡고 나서는 위령탑 건립을 추진했다. 경주시가 조례를 제정하고 1억 5000만원을 지원해 줬다. 2016년 경주 황성공원에 위령탑을 세우고 740여명의 희생자 이름을 새겼다. 당시 두려워서 신청을 못 한 희생자 가족들도 연락이 오고 있다. 추가로 이름을 새겨 나갈 예정이다.” -가족들은 걱정이 클 것 같다. “자녀들을 위해 다시는 유족회 활동을 하지 말라는 게 어머니와 아내의 유언이었다. 딸만 다섯인데 걱정하는 건 마찬가지다. 지난 추석 때도 가족들이 모였을 때 많이 설득을 했다. 아직 명예회복을 못 한 피해자 유족을 위해서라도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 글 사진 대구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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