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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졸면 죽는다”…혀깨물며 사신 쫓아/구사일생 광원의 매몰 91시간

    ◎힘빠진 동료5명 차오르는 물속으로/생환일념으로 암흑·갈증·추위와 싸워 무덤속 같은 91시간이었다. 태백 통보광업소 매몰사고의 유일한 생존자 여종업씨(32)는 2천m가 넘는 지하막장 탄더미속에 갇혔던 91시간을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마지막 채탄을 위한 발파작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기위해 마무리를 하던 순간이었다.이때가 13일 낮12시쯤.갑자기 뒤쪽에서 『물이다』는 고함소리에 너나없이 채탄을 준비하는 막장으로 뛰었다.곧이어 「꽝」하는 굉음과 함께 물이 터졌다.막장안 광원들은 모두들 본능적으로 눈과 코를 막았다.발을 적신 물은 빠른 속도로 허리께로 올라왔다.막장은 30도정도의 경사진 2평남짓한 공간. 계속 물은 차올랐다.극도의 두려움을 느낀 동료 가운데 일부는 손도끼로 갱목에 「가족에게 2억원을 달라」는 유언을 새기기 시작했다. 물이 키를 넘어서면서 모두 천장의 갱목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얼굴만 내놓고 간신히 숨을 쉬었다.그렇게 하기를 30분남짓. 힘이 부친 동료들은 갱목에서 손을 놓고 하나둘씩 「죽음」속으로 빠져들었다.몇시간이 지났을까.서서히 물이 빠져 나간 갱도 곳곳에 숨진 서승구씨 등의 5명의 사체가 드러났다. 비통에 잠길 겨를도 없었다.일단 동료들의 시신을 한데 모아놓고 주위를 살폈다.공기파이프가 절단돼 있었다.체력소모를 줄이고 산소를 아끼기 위해 시신옆에 반듯이 누웠다.이전에도 10시간 갱속에 갇힌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구조작업이 간단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암흑은 곧 죽음과도 같았다.엄습해오는 극심한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12시간 쓸 수 있는 헬멧의 안전등을 2∼3분 간격으로 켰다 껐다.공포와 함께 찾아온 배고픔과 타는듯한 갈증이 혀를 태웠다.바닥에 깔린 물은 석탄물이어서 도저히 마실 수 없는 상태였다.살기 위해 헬멧에 오줌을 받아마셔야 했다. 희박한 공기속에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졸음이 오기 시작했다. 「자면 죽는다」는 생각에 온몸을 꼬집었다.그럼에도 정신을 잃고 퍼뜩 눈을 뜨기를 몇차례를 거듭했다. 『나는 살 수 있다.아니 살아야 한다』­지상에서 구조를 기다리며 애태울 아내 지대숙씨(29)와 아들 형규(12)·성규(10)를 떠올리며 졸음을 이기려고 혀도 깨물었다. 멀리서 「쿵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구조대가 다가오고 있었다.살아난다는 확신을 「신념」이 아닌 「사실」로서 확인한 순간이었다.
  • “선대의 한 풀었다” 벅찬 감회/유해봉환 맞는 유족 표정

    ◎중국과 수교전엔 교섭 번번이 좌절 임정요인 5인의 유해봉환을 앞둔 유족들은 모두 『독립운동과 관련된 고인들의 유해를 드디어 고국땅에 모실수 있게 돼 여한이 없다』고 입을 모으며 벅찬 감회에 젖었다. 유족들은 이미 대표를 선정,3일 중국 상해로 건너가 봉환절차에 입회할 예정이며 5일 유해와 함께 귀국할 계획이다. 유족대표로는 박은식선생의 손자 유철씨(55)를 비롯,신규식선생의 외손자 민영수씨(72),노백린선생의 손자 영훈씨(55),김인전목사의 외손자 최순성씨(64),안태국선생의 손녀사위 이의석씨(72)등이 있다. 박유철씨는 『할아버지 유해를 조국에 모셔오기 위해 수십년동안 노력해 왔다』면서 『이제 늦게나마 결실을 보게 돼 감격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특히 박씨는 박시창전광복회장이 선친이기도 하며,지난 86년 작고하면서 『내가 죽더라도 아버지의 유해를 꼭 조국의 흙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는데 이에대해 『선친의 유언도 이뤄져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말했다. 또 신규식선생의 외손자 민영수씨는 『외조부의 유해를 고국산하에 모시게 돼 어머님의 한까지 모두 풀어드리게 됐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대만공사를 지낸바 있는 민씨는 『그동안 유해봉환노력은 중국이 미수교국이었던 문제로 번번이 성사되지 않았었다』면서 『지난 90년 중국측이 비공식으로 허락했으나 애국선열유해봉환을 비밀리에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를 거부했었다』고 그동안의 우여곡절을 털어놓았다. 신선생은 슬하에 아들이 상호씨 한명뿐이었으나 15세때 상해에서 사망,외동딸 창희씨가 민필호씨와 결혼해 2남4녀를 뒀으며 이중 큰딸 민영주씨는 김준엽전고려대총장의 부인이기도 하다. 노영훈씨 역시 『생전에 모습을 뵌 적은 없지만 내평생 자랑스럽게 생각해온 할아버지를 가깝게 모시게 돼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노씨는 지난 84년 조부의 묘소를 수소문,상해 공동묘지에 있음을 확인해 봉환케 됐는데 『단한번 정복차림에 말을 타고 조국 남대문에 입성했으면 한이 없겠다고 하셨던 조부가 이제 정말 오시게 됐다』면서 『이 기쁜 소식을 아버지께 전해도 고혈압으로 누워계셔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세월의 무상함을 원망하기도 했다. 김인전목사의 딸 설영여사(88)는 3살때 청력을 잃은 탓에 아들 최순성씨와의 수화를 통해 『살아 생전에 아버님 유해를 모시게 돼 여한이 없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최씨 역시 『어머님이 항상 독립운동가 후손님을 명심,몸가짐을 바르게 하라고 가르치셨는데 이제 그 어른을 모실수 있게 돼 더없이 기쁘다』고 말했다. 안태국선생의 유일한 손녀인 효실씨 역시 『조부의 유해가 돌아오신것에 지하에 계신 선친도 기뻐하실 것』이라면서 『목숨 바친 조부의 뜻이 후손들에게로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남자현여사/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 선정/항일단체 결속 앞장선 「독립군의 어머니」/서로군정서가입,일제관리 독살 기도/투옥·부상동지들 정성껏 보살피기도/임종땐 평생 모은돈 「독립축하금」으로 희사 「독립군의 어머니」로 통했던 남자현여사는 1873년 12월7일 경북 안동군 일직면 일직동에서 영남의 석학인 부친 남정한씨의 3남매중 막내딸로 태어났다.19세에 경북 영양군 석보면 지경동에 사는 의성김씨 김영주에게 시집을 가 단란한 생활을 꾸렸으나 일제의 만행이 점차 극성을 부리자 남편 김씨는 1896년 여사에게 『나라가 망해 가는데 어찌 집에 홀로 있을 것인가』『지하에서 다시 보자』며 결사보국을 결심하고 의병활동에 나섰으나 곧 총탄에 맞아 전사한다. 남편의 전사소식을 들은 여사는 복수심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3대독자 유복자인 아들과 시모를 봉양하지 않을 수 없어 양잠을 하며 손수 명주를 짜 내다 팔아 가계를 이어 나갔다.여사 나이 46세에 일어난 1919년 3·1운동은 여사에게 남편의 원수 갚기를 결심하도록 만든다.항일 구국하는길만이 원한을 갚는 길임을 깨닫고 아들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중국 요녕성 통화현에 정착하게 된다.여사는 우선 그 곳에서 활동하는 비밀무장단체 서로군정서에 가입,군인들의 뒷바라지를 하기 시작하면서 한편으로는 북만주일대의 농촌을 누비며 12개의 교회를 건립한다.여성계몽에도 힘써 10여개의 여자교육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망명생활 6년을 맞은 1925년에는 조선총독을 독살하기 위해 동료 한 명과 함께 국내에 잠입,거사를 추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망명지로 되돌아 가야 했다.마침 인근 길림주민회장인 이규동과 편강렬·양기탁등이 각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음을 알고 독립운동단체들을 믿아다니며 통합을 독려,상당한 성과를 거둔다. 1927년 봄 상해 임시정부 요인인 안창호선생이 길림 조양문 밖에서 나석주의사 추도회 겸 민족장래에 대한 강연회를 독립운동단체 간부·지방유지 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하자 일제는 중국 헌병사령관을 협박,안선생등 3백명을 무차별 체포했다. 여사는 안선생뿐아니라 투옥중인 애국지사들이 보석으로 석방될 때까지 옥바라지를 정성껏 했다. 일제는 1931년 9월 소위 만주사변을 일으켜 여사의 망명지 요녕성뿐아니라 길림성에까지 침략의 손길을 뻗자 안선생과 함께 보석으로 풀려난 독립운동단체 핵심간부인 김동삼은 할 수 없이 길림성을 떠나 하얼빈의 한 애국지사 집에 묵고 있다가 일경에게 체포된다.아무도 김동삼과 접촉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여사는 그의 친척으로 위장,면회를 허가받고 연락책 역할을 거뜬히 해낸다.여사는 김동삼의 지시내용과 정보사항을 동지에게 전달하는 동시에 그가 국내에 호송될 때 빼돌릴 계획도 세웠으나 시간이 촉박한 바람에 일은 성사되지 못했다.그러나 여사의 슬기롭고 대담무쌍한 기질이 없었다면 감히 생각하지도 못할 계획이었던 것이다.여성다움도 잃지 않았던 여사는 항일운동중 병들고 상처받아 고생하는 애국청년들에게는 항상 고향의 「어머니」와 같은 자애로운 손길로 위로·격려했다. 여사는 1932년 9월 국제연맹조사단이 침략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하얼빈에 파견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일제의 만행을 조사단에게 직접 호소하기 위해 왼쪽 약손가락 두마디를 잘라 흰 천에다 「조선독립원」이라는 혈서를 쓴뒤잘린 손가락마디와 함께 조사단에 전달했다.민족의 강인한 독립정신을 인식시키면서 간악한 일인들에게 속지 말도록 호소하기 위함이었다.여사의 항일정신은 날이 갈수록 더욱 강성해졌고 남편의 복수심은 꺼질 줄 몰랐다. 여사는 1933년 초 동료들과 소위 만주국 건국일인 3월1일에 주만주국 일본전권대사 부도 노부요시(무등신의)를 독살하기로 하고 그해 2월29일 거지로 변장,폭탄·권총 1정과 탄환등을 몸에 숨기고 하얼빈에서 장춘(당시는 신경)으로 가던 중 일영사관 형사에게 발각돼 붙잡히게 된다.일본군에게 전사당한 남편의 원수를 갚겠다는 일편단심으로 14년간 동분서주하던 여사는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영어의 몸이 된다.여사는 잔악한 일경들의 고문을 6개월이나 버텨냈다. 여자의 몸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일경의 혹독한 고문을 이겨냈다. 여사는 그해 8월 마침내 죽기로 결심,옥중에서 15일동안의 단식투쟁을 벌인다.악독한 일경들도 여사의 강인한 저항에 두 손을 들고 여사를 석방했다.그러나 여사는 6개월에 걸친 옥중생활로 이미 죽은 몸이나 다름없었다.여사는 즉시 적십자병원으로 옮겨져 입원치료를 받고 하얼빈에 있는 여관에서 가료를 받았으나 옥중에서의 고문 후유증을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1933년 8월22일 6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여사는 임종을 맞을때까지도 항일의지를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유복자인 아들을 앞에 앉히고는 보따리를 풀어 중국화폐 2백48원을 내놓은 뒤 『우리나라가 독립이 되면 독립축하금으로 희사하라』고 당부했다.여사는 또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먹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에 있다.독립운동은 정신으로 이루어 진다』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유족들은 여사의 뜻대로 1946년 3월1일 조국광복후 서울운동장에서 거행된 3·1절 기념식전에서 독립축하금으로 여사가 남긴 돈을 김구·이승만선생에게 전달한다. 정부는 여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 독자·시청자에 미디어 연수/한국언론연구원 원장 김옥조씨

    ◎“수용자 의식수준 높아야 언론도 발전” 한국언론연구원(원장 김옥조)이 14,15일 이틀동안 「수용자(독자·사청자)미디어연수」라는 색다른 행사를 갖는다. 「자유언론시대의 수용자주권 신장방안」을 주제로 한 이 연수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YMCA 민주언론운동협의회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보리방송모니터회등 7개 사회단체회원 50여명. 『신문과 방송에서 독자부나 시청자부를 신설하는등 수용자들의 의견을 제작에 반영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추세에 발맞춰 독자및 시청자들이 양질의 정보에 접할수 있고 언론이 제공하는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사를 쓰는 기자가 아닌 수용자들을 위한 연수기회를 준비해봤습니다』 이번 달로 한국언론연구원의 살림을 4개월째 꾸려가고 있는 김원장이 국내에서는 첫시도라 할수 있는 수용자 연수를 실시하게 된 것도 정보가 최고의 가치를 지니는 정보화사회에서는 이들 수용자들의 미디어에 대한 이해와 권리의식수준이 향상돼야 신문과 방송이 발전할 수 있다는 나름대로의 언론관때문일 터이다. 그는 『언론인과 언론사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수용자들에 대한 미디어교육이 절대로 필요하다』며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국민과 국가에도 보탬이 될 것』이라는 소신을 편다. 반응이 좋으면 이처럼 수용자를 위한 연수를 계속 실시할 계획이라고 김원장은 덧붙였다.
  • 고향·여름·휴가(외언내언)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얼룩배기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을은 울음을 우는 곳」누구에게나 차마 잊힐리 없는 두고온 고향이 있을 것이다.그리고 내가 살던 고향은 그 어떤 명승지에도 비교할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푸르른 추억이 간직된 곳이다. 아무리 기름진 진수성찬도 고향 툇마루에 앉아 먹던 된장찌개와 풋고추맛과 같을리야 없다.번쩍거리는 승용차,그림같은 서구식 빌라보다 풀이슬이 발등적시는 오솔길,황금물결 출렁이는 내고향 들판의 풍요에 비교될 수도 없다. 햇빛에 그을은 주름진 얼굴과 그 주름살 속에 넘치는 인정미는 고향이 아니고는 찾아 볼 수 없는 포근한 따사로움이다. 미36대 대통령이었던 린든 B존슨은 그가 죽을 때 「동부텍사스 언덕진 내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유언했었다.「누가 아프면 앓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고 있고 죽으면 섭섭하게 여기며 살아있는 동안에는 서로 사랑해주는 그런 사람들이 있는 고향에 가고 싶다」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미국이나 동양이나 마찬가지다.휘황찬란한 네온사인 아래 흥청망청 사치한 생활이 도사려 있어도 결국 우리가 맨마지막에 돌아가고 싶어하는 곳은 바로 고향일 수밖에 없다. 그런 나의 고향,푸르러야할 산천이 피폐하고 비옥해야할 농토가 황폐화되어 간다.무분별한 농산물 수입과 소비로 농사에 의욕을 잃은 젊은이들이 농촌을 떠나기 때문이다.91년에만 버려진 농토가 2억평.고향을 등진 인구는 60만명.이를 안타깝게 여긴 각 단체들이 「농촌을 살리자」고 나서고 있다.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는 오는 9월까지 「93여름휴가 고향으로 갑시다」캠페인을 전국적으로 벌이고 있다. 이번 휴가에는 고향에 내려가서 가지와 호박을 직접 심고 자녀들에게 자연학습의 기회도 주자는 취지다.메마른 농토와 인정을 살리고 그리고 우리가 맨마지막에 돌아가야할 고향을 살릴수만 있다면 기꺼이 동참할만한 일이라 하겠다.
  • 이혼부인에 1억 증여 상속세 과세대상 되나(경제살롱)

    피상속인이 유언에 의해 생활이 어려운 이혼한 부인에게 생활비로 1억원을 증여했을 경우 이 금액은 상속세 과세대상에서 제외되는가. ○부양자서 제외돼 과세 피상속인이 상속개시일전에 민법상 부양의무자에게 치료비나 생활비·교육비로서 통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금품을 증여하면 이 금품의 가액은 상속세 과세가액에 산입하지 않는다.여기서 민법상 부양의무자란 직계혈족,호주와 가족,배우자,생계를 같이하는 기타 친족으로 상속개시일 현재 자력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없어 피상속인이 실제 부양의무를 이행하고 있던 자를 말한다.그러므로 피상속인의 이혼한 부인은 민법상 상호부양 의무자에 해당되지 않아 증여받은 1억원은 과세가액에 포함돼 상속세가 부과된다.
  • 미스터리 공포… 한여름밤을 오싹하게/납량추리소설 서점가 강타

    ◎외국작품 주류… 모험물 등 소재 다양화 눈길/「개미1 더위에 」 「…형사」 「악녀」 「슬픈살인」 인기 더위에 지친 독자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식혀줄 미스터리 스릴러,심리 서스펜스,미래공포 미스터리등 각종 추리소설류가 「독서피서법」의 하나로 여름 서점가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나와있는 작품들은 외국유명작가의 번역작품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국내작품으로는 김성종등 전문작가와 현직경찰관인 이형우씨의 것이 나와 있다.특히 올들어 전통추리물보다 사이콜로지컬·테크놀로지컬 스릴러등에서 벗어나 고도의 전문성과 지적게임을 다룬 작품들이 눈에 띈다.그리고 마이클 클라이튼,움베르토 에코,톰 클랜시등 기존 작가들이 사양길에 접어든 이후 세계추리소설계를 주름잡는 클라이브 커슬러,존그리샴,존더닝,로빈쿡등의 작품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올여름 추리출판계의 특징이다. 현재 서점에 나와있는 추리물중 프랑스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1」이 종로서적집계 6월마지막주 소설류종합베스트셀러목록의 10위권에 올라 있는 것을 비롯,김성종의 「슬픈살인」「비밀의 연인」이 상위권에 들어있다.또 「세계미스터리걸작선」「에드가상수상작품집」「히치콕서스펜스걸작선」「세계공포미스터리­토탈호러」등 외국 유명단편을 묶은 모음집이 인기를 끌고 있다.이밖에 「더거리형사」(이형우)「의뢰인」(존그리샴)「고령가살인사건」(오담여)등도 히트하고 있다.이들 작품에 이어 최근에 출시된 작품으로는 「한국서스펜스걸작선」「프랑스미스테리걸작선」과 「보물」「드레건」(클라이브 커슬러)「악녀두번살다」(이상우)「바다에 남긴 유언」(마쓰모토 세이초),그리고 「화가와 모델」「여성 살인범」「죽은자와의 결혼」「아버지와 딸」「보물」「바이탈사인」「큐어」등이 있다. 이가운데 베르베르의 「개미」는 의문의 죽음을 당한 한 곤충학자가 남긴 저서를 찾기위한 인간들의 암투와 개미왕국의 이야기를 빠른 사건으로 전개한 작품.「펠리컨브리프」로 정상에 오른 변호사출신 존그리샴의 「의뢰인」은 부와 명성을 누렸던 변호사의 자살사건을 목격한 11살짜리 소년이 이사건의 비밀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며 존더닝의 「화가와 모델」「여성살인범」「죽은자와의 결혼」「아버지와 딸」등은 심리물,클라이브 커슬러의 「드래건」「보물」등은 본격 해양 어드벤처물이다.특히 로빈쿡의 「바이탈사인」「큐어」는 의학스릴러의 대표작으로 꼽힌다.그리고 외국단편모음집 「토탈호러」는 미래와 외계의 공포를 주제로 인간과 사회의 야만성을 형상화한 작품을 모은 것이다. 국내작품인 김성종의 「슬픈살인」「비밀의 연인」등은 범인과 경찰간의 숨바꼭질을 묘사한 전통범죄추리물이며 이형우의 「더거리형사」는 현역경찰관이 본 범죄심리를 파헤친 작품.또「한국서스펜스걸작선」은 한국추리문학의 대부 김내성에서 신예 권경희까지 한국추리소설의 맥을 잇고 있는 작가 14명의 작품을 정선,묶어낸 책자이다. 서점관계자들은 올여름 추리소설은 전통추리물부터 실험적 추리물에 이르기까지 분야별로 세분화되어 독자들의 선택폭이 넓어졌으며 예년에 비해 길어질 무더위로 인해 「추리소설의 전성기」가 예고된다고 말하고있다.
  • “언제 무슨일 닥칠지…” 불안한 현대인의 삶

    ◎평상시의 유언 필요성 증대/자필증서 등 5종… 일정형식 갖춰야 효력/가정법률 상담소서 법률자문 현대는 언제 어떻게 무슨일이 닥칠치 모르며 살아가는 불확실성의 시대이다.갑자기 사고를 당하더라도 자신의 의지에따라서 모든 것이 처리될 수 있도록 평상시 유언을 해두는 것도 확실성의 한 방법이다. 흔히들 유언은 사람이 운명할때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이라고만 알기 쉽다.그러나 유언은 17세이상이면 법정대리인의 동의없이 누구든지 또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으로 반드시 법이 정한바에따라 일정한 형식을 갖춰야한다. 명지대 법학과 김숙자교수(한국가정법률상담소 부소장)는 최근 유언문제에 관한 법률상담이 늘고 있다고 밝히고 이는 많은 사람들이 유언을 하지않은채 사망,고인이 남긴 재산을 상속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족간의 갈등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김교수는 외국의 경우 평소 유언을 해두는 것이 너무 당연한 것으로 생활화 돼있기 때문에 만일의 사고에도 별 문제가 없다고 설명한다. 이에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든 것을 법보다 정에 이끌려 처리하려는 습성이 강해 만약 부모에게 무슨 사고가 난다해도 맏아들 중심으로 대충 처리하는 것이 관례였다.그러나 가족법 개정이후 재산상속의 방법이 아들과 딸 모두 똑 같아지면서 부모가 유언없이 갑자기 사망했을 경우 고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사후 재산상속을 둘러싼 가족간의 분쟁이 일고,법정소송으로까지 발전하는 예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우리도 이젠 사후에 본인의 뜻에따라 재산이 처리되고 가족간의 괜한 분쟁을 방지할 수 있도록 유언을 생활화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법률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유언의 방식은 크게 본인이 직접 글로 쓰는 자필증서·말로하는 녹음·공증인의 필기·낭독으로 꾸미는 공정증서·유언내용을 생전에 비밀에 부치고 싶을때 많이 쓰는 비밀증서·급박한 상황에서의 구수증서의 5종류가 있다. 이가운데 본인이 편한대로 한가지 방법을 택할 수 있겠으나 중요한 것은 종류별로 무효가 되지않도록 일정한 형식을 갖췄는지를 최종 확인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이는 유언이 있었다해도 요건을 제대로갖추지 않아 무효가 되고 분쟁으로 발전하는 예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여성교육 개척자인 김모박사도 생전 유언을 했었으나 일자와 주소가 없어 유언집행시 문제가 됐던 예는 너무 유명하다.유언에 대한 자세한 법률정보는 가정법률상담소를 비롯한 법률관련 단체들을 통해 알 수 있다.
  • 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윤세주열사)

    ◎의용군 지휘… 중국 화북서 일군과 전투/중학때 연무단 조직,개천절시위 주도/일경수배 피해 망명… 조선의열단 결성/독립단체 규합… 40만명과 교전중 장렬한 최후 윤세주선생은 1901년 6월24일 경남 밀양군 부북면 강천리에서 부친 윤희규선생과 모친 김경이여사 사이에서 태어났다.성품은 겸손했으나 일본 식민지통치에 대해서는 온 생애를 통해서 저항할만큼 애국심이 깊었다. 윤선생은 국민학교때 일왕 출생 기념일에 받은 일장기를 변소에 버릴만큼 일본을 증오했다. ○독립선언서 낭독 그는 밀양의 사립 동화중학에 입학하면서 항일 인사였던 김홍표교장의 영향을 받아 항일 정신을 키워갔다. 윤선생은 김교장의 애국사상에 감화,학교내의 비밀결사인 연무단을 조직했다.연무단은 당시 금지됐던 개천절 기념행사를 갖고 시위를 벌였다.이 사건으로 동화중학은 폐쇄됐다.그러나 윤선생의 가슴에 반일·배일사상은 영원히 남게됐다. 1919년 3월1일 서울에서 만세운동에 참가한 그는 만세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해 고향에 내려가 동지들을 규합했다.13일 하오1시쯤 수천명이 모인 고향장터에서 그는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동지들은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쳤다.그를 그냥 둘리 없는 일제의 당장 잡아들이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일본경찰의 수배를 피해 그는 중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다. 일본은 그해 4월14일 부산지법 밀양지청에서 궐석재판으로 윤선생에게 징역1년6월을 선고했다. 만주로 망명한 그는 요령성 유하현에있는 신흥무관학교에 들어갔다. 신흥무관학교는 당시 국내의 독립운동 비밀단체인 신민회의 결의에따라 이회영형제가 세운 독립군양성 무관학교로 그는 이곳에서 정식으로 군사훈련을 받았다.그는 11월9일 죽마고우 김원봉등 13명의 학생들과 함께 조선의열단을 결성했다. 구체적인 항일방법을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조선의열단은 조선총독부등 일제 침략기관의 파괴와 원흉들을 살해 하기위한 계획을 세우고 폭탄투척자를 물색하게됐다. 19세의 그는 신철휴 윤치형등과 함께 국내에 잠입했다. 그러나 윤선생일행은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면서 국내동지 50여명과 함께 체포됐다. 5년4개월의 감옥생활을하고 27년 출옥한 그는 중외일보 기자·경남주식회사사장으로 위장,독립운동에서 손을 뗀 양 조용히 지내다가 32년 여름 다시 중국 남경으로 망명했다. ○폭탄투척자 물색 그의 독립운동에 대한 방법도 세련되어갔다.그는 『과거에는 열정과 용기만을 갖고 싸웠으나 앞으로는 혁명적 인생관과 과학적 혁명이론으로 재무장, 정확한 혁명운동을 하겠다』고 다짐했다.그는 32년 10월20일 중국군사위원회 간부훈련단 제6대(약칭 조선민족혁명간부학교)에 입교,33년 4월21일 1기로 졸업했다.독립운동전선의 행동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때였다. 독립운동단체들은 연합준비위원회를 구성한뒤 해외독립운동단체들을 참가시켜 그해 11월10일 한국대일전선통일연맹을 결성했다. 그는 이 단체에서 안병조·김두봉·김규식·윤기섭·최동오 등과 함께 중앙집행위원회 상무위원으로 선출됐다. 이 단체는 33년 7월5일 독립운동가들이 소망하던 민족혁명단을 탄생시키는 모체가 됐으며 그는 이 단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그는 또 민족혁명당이 일군에 무력으로 대항하기위해 만든 중국과 제휴해 만든 조선의용대에서도 핵심부서인 편찬위원회 주간이 돼 선전공작 활동을 벌였다.그러나 독립운동의 효과는 호전되지 않고 일군에 유리하게 전개되어갔다.독립운동을 적극 협력해주던 중국 국민당 정부도 38년 10월25일 무한이 일본군에 함락되면서부터는 중공군과의 내전에만 심혈을 쏟았다. 그는 직접 조선의용대 지대를 이끌고 중일전투에 참가했다.41년 4월에 그는 수많은 고난을 극복하고 황하를 건너 화북을 향해 북상해갔다.그는 마침내 태행산 항일 근거지에 도착, 조선의용대를 조선의용군으로 개칭하고 중공 8로군과 함께 항일 무장활동에 열중했다.그는 모든 대원들로부터 가장 신뢰받는 지휘자로 존경을 받았다.42년2월 일본군은 4만명의 군대를 동원,태행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5월에는 20개사단 40만명의 병력으로 대대적인 공격을 해왔다.조선의용군은 불과 3천∼4천명에 불과했다. ○“끝까지 투쟁” 유언 일본군은 전투기와 전차까지 동원,본격적인 군사작전을 폈다.5월29일 항일 연합군 사령부에서는 조선의용대에 탈출로를 확보하고 탈출할 것을 명령했다.일군이 점령하고 있는 양쪽 산봉우리 사이의 탈출로를 확보하기위해 두 산봉우리를 조선의용군이 공격,전군이 탈출할 때까지 사수하기로 했다.작전개시 5시간만에 탈출로를 확보했다. 그는 이 전투에서 적탄을 맞고 쓰러졌다.3일 뒤 동지들이 중상을 입고 쓰러진 그를 발견했으나 이미 중태였다.6월3일 그는 석굴에서 숨을 거두었다.『단결해서 적을 사살하기 바란다』는게 동지들에게 남긴 그의 유언이었다.선생의 나이 41세였다. 선생이 전사한 뒤 1주년이된 43년 6월 중경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조선민족혁명당 조선의용군은 합동으로 윤선생의 추도회를 가졌다.대한민국정부는 80년 윤세주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한화그룹회장 모친·누이 형제소송 증인으로 구인

    ○…서울민사지법 합의17부(재판장 이진영부장판사)는 31일 한화그룹 김승연회장(41)의 동생 호연씨(38·전한양유통사장)가 승연씨를 상대로 낸 상속무효 및 상속재산 반환 청구소송 7차공판에서 『호연씨가 증인으로 신청한 어머니 강태영씨(66)와 누이 김영혜씨(45)가 3차례에 걸쳐 증언을 거부,재판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며 이들을 상대로 구인장을 발부,강제구인키로 결정. 재판부는 『이들의 부친이 고 김종희회장의 유언에 따른 재산분배과정을 입증할 수있는 유일한 증인이 두 모녀밖에 없는만큼 증언을 위한 구인이 불가피하다』고 설명.
  • 해직언론인 명예회복 정부,전향적으로 검토/오 공보처장관 밝혀

    오인환공보처장관은 21일 75년 동아·조선사태 해직언론인과 80년 해직언론인 복직문제와 관련,『새 정부는 전향적으로 문제해결할 의지가 있다』고 밝히고 『더 늦기 전에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도울 수 있는 일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오장관은 이날 하오 장관실에서 해직사태후 처음으로 권영길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위원장,김태진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장등 해직언론인 관련 언론계 대표 8명을 만나 이같이 말하고 『해직언론인들의 민주화 투쟁이 문민정부를 탄생시킨 역사적 밑거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인색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장관은 이어 『동아·조선등 관련언론사가 해직언론인 문제에 대해 전향적 분위기로 나아가고 있어 해직언론인 문제를 해결할 여건은 좋아지고 있다』고 전하고 그러나 『해직언론인 문제는 작지만 상당히 복잡한 문제인 만큼 광주민주화운동 해결방안처럼 원인규명보다는 명예회복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 “재단설립 문제로 득본것 없다”/황산성장관,기자실 방문 해명

    장학기금으로 써달라는 독지가의 유산으로 선교재단을 설립해 물의를 빚었던 황산성환경처장관이 12일 하오 갑작스레 기자실을 방문,자신과 관련한 최근의 언론보도내용들에 대한 해명과 함께 유감의 뜻을 표시했다. 황장관은 『내자신 성격상 결벽증을 가지고 있어 장관이라는 공인으로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점은 인정한다』면서 하정선교재단 문제는 『가족들이 제발 손을 떼라고 했으나 의협심이 발동해 유언집행자가 됐는데 그동안 무수한 협박편지를 받는 등 이 문제로 득을 본게 없다』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여러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기자들에게 오해를 살만한 요인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 황 장관의 요령부득 해명/김병헌 사회부기자(오늘의 눈)

    황산성 환경처장관이 최근 보도가 되어 물의를 빚은 「하정선교재단」과 자신과의 관계를 해명하는 자료를 10일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황장관은 당초 이날 재단측이 참석한 가운데 해명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재단측이 「개인적인 문제」를 놓고 환경처 청사안에서 해명을 한다는 것이 어색하다는 이유로 불참을 통보해왔다면서 김형철차관을 통해 해명자료만을 냈다.그러나 불과 이틀전 스스로 해명의 기회를 갖기를 원했던 황장관이 갑자기 기자회견을 취소하면서 내놓은 설명으로서는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재단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내용의 해명자료 자체도 논리적인 설명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주었다.다시말하면 법을 잘 아는 뛰어난 율사인 그가 제시한 「해명」은 복잡하고 민감한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는 9개의 참고자료를 첨부한 해명자료를 내면서 이 문제를 보도한 언론사에 정정보도를 요청했다. 황장관에 대한 대중적인기는 그의 소신에서 비롯됐으며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보여진다.그래서 지난번 「낙누사건」때도 장관으로서는 보이지 말았어야 할 행동이었음에도 그다지 비판은 받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민법에 규정된 유언집행자의 권리의무조항과 공동유언집행조항을 보면 황장관의 해명이 법이에 크게 벗어나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따라서 그의 정정보도요청도 설득력을 상실하고 있다. 법조문을 보면「유언집행자는 유증의 목적인 재산의 관리 기타 유언집행에 관한 행위를 할 권리의무가 있다」고 명시되어 있고「유언집행자가 수인일 경우에는 그 과반수의 찬성으로 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볼때 안춘생씨와 함께 공동유언집행자로 선임됐던 황장관이 정말 「아무런 관계가 없고 몰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법적으로 안씨 혼자서 처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말처럼 그냥 도장을 찍어줬다는 대목도 공인으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평소의 처신대로 잘못된 부분은 솔직히 인정하고 그에 따른 뒤처리를 말끔히 하는게 「멋진 황장관」에거는 국민들의 기대일 것이다.
  • 선교재단 물의 관련/황 환경처,내일 해명

    황산성 환경처장관은 변호사시절 유언집행자로 선임돼 장학재단을 설립해달라는 유언취지와는 달리 선교재단을 만들어 물의를 빚은 것과 관련,10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에 대한 해명과 함께 심경을 밝힐 예정이다.
  • “장학사업 써달라” 유언한 재산/선교재단 설립 물의/황산성장관

    황산성 환경처장관이 변호사시절 현시가 1천억원대의 재산을 장학사업에 써달라는 한 독지가의 유언집행자로 선임됐으나 고인의 유지와 달리 그 재산으로 특정종교 선교재단을 설립하는데 주도적으로 참여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물의를 빚고 있다. 이 재단의 이사장이던 황 장관은 재산공개직후인 3월22일 이사장직을 그만두고 이사직만 맡고 있다가 최근에 이사직을 사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지가 김원길씨(당시 62세)는 지난 78년 작고하기전에 부동산 등 자신의 재산을 장학사업 등에 써달라고 유언함에 따라 89년 9월 재단법인 하정 김원길장학회가 설립됐다.그러나 김씨의 유족들이 재산권다툼을 벌이는 가정에서 황 장관은 90년 2월 김씨의 아들 김진수씨(25) 등이 관할 부산지법에 청구한 공동유언집행자의 한사람으로 선임됐으며 같은해 8월 기존 장학회와는 별도로 사회복지법인 한국하정종합복지재단을 설립,이사장으로 선출됐다. 황 장관은 그후 자신명의로 문화부에 재단설립신청을 내는 형식으로 91년 12월 재단명칭을 하정선교재단으로,사업목적을 국내전도와 해외선교 등으로 바꿨다. 이에대해 황 장관은 『이 재단의 내부사정이 너무 복잡해 몇차례 그만두려했으나 대학선배인 고인의 친지가 도와달라고 해 이름만 빌려줬다』며 『그러나 장관이 된 후 공직생활에 전념키 위해 손을 뗐다』고 해명했다.
  • 불 관객 배꼽 빼는 코미디영화 「손님」

    ◎석달새 4백만 몰려… 10년내 대히트/중세인,현대 출현 실수연발에 “폭소” 「손님」이라는 프랑스영화가 이 나라에서 4백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이것은 과거 10년동안 어느 프랑스 코미디영화도 못따르는 기록이다.그야말로 프랑스인이 곧잘 영어로 표현하는 「빅 뱅」(대폭발)이다. ○제작비 6천만프랑 재미있다는 말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개봉한지 석달이 지난 현재도 영화관들은 여전히 손님들로 만원이다.43세의 제작자 알랭 테르지앙이 『프랑스영화의 어쩔수 없는 퇴조란 천만의 말씀이란 증거』라고 뻐길 만하다.이 작품은 막강한 할리우드영화들에 눌려 빈사지경에 빠져있는 프랑스영화의 자존심을 되찾게 했다. 특히 희극영화가 이런 히트를 친 것은 놀라움으로 받아들여진다.코미디라면 TV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기 때문이다. 「손님」은 제작비를 적게 들이고도 재미를 보았다.테르지앙은 『관객을 끌려면 적어도 1억프랑(약 1백60억원)은 들여야 한다고 하지만 이 작품제작엔 6천만프랑도 채 들지 않았다』고 밝혔다.그는 54번째의 작품인 이 영화에서 마침내 노다지를 캐낸 것이다. ○자동차와 칼싸움 중세의 기사 고드프루아와 그의 하인자크누이유는 마법사가 지어준 약을 먹고 아스팔트길과 자동차,송전탑과 전등불 따위의 괴물이 그득한 20세기의 세계에 갑자기 떨어진다.칼을 빼들어 자동차와 싸우고 화장실 변기에 손을 씻는 등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연발한다.기사는 우연히 자신의 직계후손과 상봉하며 또한 마법사의 후손과도 만난다.선대의 유언을 지켜 약의 비방을 대대로 물려받아온 마법사의 후손은 기사를 다시 중세로 돌아가게 해준다. 타임머신같은 착상의 이 영화는 미국영화 「백 투 더 퓨처」처럼 재미있다.얼핏 보기엔 「백 투 더 퓨처」와 크게 다를 것도 없다. 그런데 왜 이토록 대성공을 거두고 있는가.영화잡지 「영화노트」에 따르면 「프랑스식 코미디」이기 때문이다.프랑스 감독과 배우가 프랑스의 역사를 배경으로 프랑스인의 감정에 잘 맞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장 마리 푸아레감독은 이 영화에 역사와 가족의 가치,문명발달과 환경파괴,인권문제 따위를 양념처럼 얹음으로써 단순히 웃고마는 코미디에 그치지 않게 했다.천년의 세월을 사이에 둔 조상과 후손의 해후는 프랑스인들에게 역사와 가족의 뿌리를 생각하게 한다. 등장인물의 성격에 맞게 배역을 잘 캐스팅한 것도 성공의 한 원인으로 꼽힌다.기사역을 맡은 르노는 희극배우같지 않고 웃지도 않지만 그의 진지한 표정때문에 사람들은 웃는다.클리비에는 원래 유명한 코미디언이고 기사의 후손 베아트리스역을 맡은 여배우 발레리 르메르시에는 유달리 이 영화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대사흉내내기 유행 베아트리스는 『오케』(OK)라는 말을 자주 쓰며 기사가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 때마다 『미치겠군』하고 내뱉는다.요즘 고등학생들 사이에서는 이 두 마디 말의 흉내가 대유행인데 누군가가 이를 흉내내면 모두 허리를 잡는다.이런 유행어도 관객동원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 사이비척결,이런 기자 저런 언론들(사설)

    오늘의 우리 언론풍토는 「언론권력」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언론자유가 신장·확보되어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이같은 자유언론의 창달속에서 나타난 사이비언론의 비리와 부조리는 커다란 사회문제로 대두됐고 많은 국민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이번에 국정개혁의 일환으로 사이비언론의 척결에 나선 것은 새 정부 출범이후 사회전반적인 변화와 개혁의 물결속에서 언론도 예외일 수 없다는 점에서 당연한 정책의지라 아니할 수 없다.특히 사이비언론이 건전언론의 발전을 저해하고 일반 국민들의 생업에 조차 극심한 피해를 주고 있는 현실에서 이번 대책은 국민들로 부터 공감과 지지를 받을 것으로 본다. 물론 우리가 지금까지 누차에 걸쳐서 보아 왔듯이 사이비언론 근절대책이 언론자유에 위축을 가져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일부 오해의 소지도 없지는 않다.그러나 우리는 그와 반대로 이번 대책을 높이 평가하고 큰 기대를 걸고자 한다.오린환공보처장관이 밝혔듯이 이번 대책은 문민정부가사이비언론을 한국병차원에서 척결하기 위해 마련했다는 점에서 과거 권위주의 체제하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고 보는 것이다. 사이비언론의 폐해가 극심하다는 국민적 여론은 이미 오래전부터 확인되어 왔다. 지난해 한국언론연구원이 실시한 사이비기자 관련 여론조사에서 「사이비기자의 병폐가 심각하다」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의 50%에 달한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이처럼 사이비언론이 기승을 부리게 된 데는 당국의 실태조사에서 나타나듯이 그동안 언론자유화 물결을 타고 각종 정기간행물이 급증한데다 자격미달의 발행인과 기자들이 양산됐던 탓도 있을 것이다. 언론자유는 가장 소중하고 으뜸가는 국민의 기본적 권리이다.언론이 누릴 수 있는 자유와 막강한 힘은 다른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바로 국민들로부터 나온다고 할 수 있다.언론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신장시키는 힘을 위임받았다고 보면 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국민을 괴롭히고 피해를 입힌다면 그것은 마땅히 제거돼야 한다.그에 따른 책임이 반드시 수반돼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번 신문의 날에 새로운 시대상황에서의 언론매체의 책임성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갖고 언론 스스로 자정노력에 힘쓸 것을 천명한 바 있다.언론이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힘을 올바로 쓰기 위해서였다.정부가 사이비언론을 법에 따라 강력히 지속적으로 대처하는 가운데서 언론 스스로도 자정노력을 구체화해 나가야할줄로 안다.
  • 경제 위축시키는 사정 배제/황 총리/건전기업활동 지원차원서 추진

    정부는 10일 황인성국무총리 주재로 기업활동 활성화를 위한 관계장관 간담회를 갖고 기업의 경제활동이 위축되지 않는 범위내에서 사정활동을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황총리는 이날 간담회에서 『최근 정부의 사정과 관련,근거없는 유언비어가 나돌아 기업의 경제활동을 크게 위축시키고 있다』고 지적하고 『사정작업은 기업활동의 제약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건전한 기업활동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총리는 『정부의 사정작업은 강력하게 밀고 나가되 가능한한 짧은 시일안에 마칠 방침』이라고 말하고 『사정의 방향이 미래지향적으로 나가야지 과거의 잘못만 들추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이같은 방침을 천명한 것은 지난 9일 청와대에서 열린 중소기업구조조정보고대회에서 기업인들이 『정부의 사정활동으로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있다』고 지적한데 따른 것이다. 이에따라 정부는 사회기강확립과 부정부패척결을 위한 사정작업은 계속 강력히 추진해나가되 경제활동에 지장을 줄 수 있는 개혁작업은 경제의 형편에 맞춰 순차적으로 시행해 나갈 방침이다. 이날 회의에는 황총리와 이내무·김법무장관,추국세청장외에 이경식 경제기획원·홍재형재무·김철수 상공자원장관과 최인기내무차관,한이헌 공정거래위원장,이효계 총리비서실장등이 참석했다.
  • 자보 노조간부 전원 복직/사측,15명 징계철회

    한국자동차보험(사장 김택기)은 30일 인사위원회등 소정의 절차를 거쳐 김철호 노조위원장등 노조간부 15명에 대한 징계조치를 철회하고 이들을 모두 복직시키기로 했다. 이들 노조간부들은 지난 19일 『모든 여직원을 촉탁화시키려고 한다』『회장이 노조를 깨라』는등 유언비어를 유포했다는 이유로 김위원장등 4명은 해고되고 나머지 11명은 정직 6개월의 징계를 각각 받았었다. 이에 앞서 손건래 전사장은 지난 24일 이들에 대한 징계재심을 약속했었다.
  • 악성루머 자취 감췄다/문민시대 공개행정 등 영향

    ◎경제 관련사항 중요성 부각/출처 불분명한 「정치보복」 설땅 잃어 최근 유언비어성 정보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과거 국정의 현안이 돌출돼 있거나 정부의 굵직한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시중에 나돌던 출처없는 루머가 거의 자취를 감춰버렸으며 특히 일정한 목적을 갖는 애드벌룬성 역정보는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이같은 현상은 그동안 각종 유언비어의 진원지였던 증권시장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문민정부의 출범과 함께 공개행정 및 정보공유화를 위한 조치가 잇따라 취해지면서 각종 정보와 정부의 정책,정·재계 유력인사들의 동향이 신문·방송 등에 여과없이 보도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A증권의 한 관계자는 『새정부가 들어선 이후 각종 정부정책에 관한 정보가 언론 등을 통해 신속하게 공개되면서 증권가 참새들의 입방아도 거의 자취를 감췄다』면서 『경제외적인 정보가 정부의 공개행정에 따라 별도로 수집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어진 만큼 앞으로는 본래 업무인 경제관련 정보수집과 분석에 치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B증권의 관계자도 『과거에는 증시와 관련이 없는 이른바 「주변정보」의 중요성이 강조돼 사소한 「뒷얘기」까지도 상사에게 보고하는 일이 많았으나 요즘은 거의 없어진 상태』라며 『「주변정보」의 양도 절대적으로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증권업계에서는 『사회가 안정화되면서 비경제적 요인에 의해 증시가 좌지우지되는 현상도 크게 줄었다』면서 『이에 따라 앞으로는 경제관련정보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것은 물론 증권회사 정보팀들의 기구축소도 적극 검토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와 함께 일반 대기업체에서도 그동안 심심치 않게 나돌던 각종 루머나 주변정보가 눈에 띄게 줄거나 아예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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