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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민련 前유럽간부 소환 방침/황장엽씨 제3장소서 이미 조사

    서울지검 공안1부(부장 吳世憲)는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의 친북 혐의 수사와 관련,전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유럽본부 사무국장 C씨를 9일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8일 알려졌다. C씨는 부산 모 대학 법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해직된 뒤 지난 94년 미국을 거쳐 독일에 정착,유럽 범민련에 가입해 활동해 오다 지난 99년 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C씨가 94년부터 유럽에서 친북활동을 해온 인사들의 자료를 관리해 왔던 인물인 만큼 송 교수의 친북 행위 여부를 확인해줄 수 있는 중요한 참고인으로 보고 있다.특히 검찰은 C씨가 송 교수의 대북 접촉창구로 활동하다 지난 99년 1월 미국으로 망명한 김경필 전 독일주재 북한 이익대표부 서기관의 사업파트너였던 점을 중시하고 있다. 검찰은 C씨를 상대로 송 교수가 94년 7월 김일성 장례위원으로 참석할 당시 노동당 후보위원 김철수라는 사실을 알고 입북했는지 여부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이날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를 서울시내 모처에서 조사했다.송 교수는 10일 오전 10시에 재소환키로 했다. 검찰은 황씨를 상대로 김용순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로부터 송 교수가 노동당 후보위원 김철수라고 말을 들었는지 여부 등을 집중 조사했다.황씨와 송 교수의 대질조사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검찰은 이날 세번째로 소환한 송 교수를 상대로 오씨의 입북을 권유했는지와 송씨가 저술한 ‘경계인의 사색’ 등 서적의 이적성 여부를 조사했다. 한편 자유언론수호 국민포럼 등 시민단체는 이날 “송 교수를 해외민주 인사로 지칭해 국내로 초청하고,송 교수를 고뇌하는 지식인으로 미화해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민주인사들의 명예를 더럽혔다.”면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관계자 등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강충식 구혜영기자 chungsik@
  • “기강 확립이냐, 표적 감찰이냐”

    ‘기강 확립이냐,표적 감찰이냐.’ 경찰청이 경찰종합학교장 이한선 치안감에 대해 강도높은 감찰을 진행하는 것을 놓고 경찰 안팎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찰청이 밝히고 있는 이 치안감의 감찰 사유는 크게 두 가지. 먼저 이 치안감이 지난 3월 말 종합학교장에 부임한 이후 사전보고 없이 교육생들에게 근무복 대신 사복을 입히고,잔디구장에 골프연습장을 만드는 등 학교 운영상 문제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지난해 서울경찰청 수사부장 재직 당시 외부에 수사정보를 유출했다는 의혹도 도마에 올랐다.감사관실은 이 사안과 관련,이 치안감과 함께 근무했던 서울경찰청 수사부 직원들을 불러 조사하고 있다. 두 문제가 한꺼번에 터져나왔다는 점을 놓고 경찰 일부에서는 ‘뭔가 속사정이 있는 것이 아니냐.’며 궁금해하고 있다.이승재 전 경기경찰청장 등 호남 출신 현직 고위간부를 대상으로 잇따라 감찰이 이뤄진 것에 대해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최기문 경찰청장은 29일 “잘못된 일이 있으면 조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고,원칙대로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찰청 관계자는 “외부에서 보기에는 사복 착용 등이 가벼운 문제로 비쳐질 수 있지만 규율을 중시하는 경찰 조직의 특성상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면서 “별개의 혐의가 포착돼 조사에 나선 것일 뿐 특정 인사의 표적감찰이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취임 6개월을 넘어선 최 청장이 내부 기강을 확립하기 위해 감찰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최근 한 중앙일간지 인터넷 게시판에 ‘경찰에서 진급하려면 돈이 들어간다.’는 글을 올린 광주 동부경찰서 경찰관 A씨를 불구속 입건한 뒤 파면하는 등 초강경 조치를 취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해석이다.이와 관련,최 청장이 여러 차례 “정치에 뜻이 없다.”고 밝혔지만,조직 내에서 여전히 내년 4월 총선을 염두에 둔 각종 유언비어가 떠돌고 있는 것에 대해 경찰 수뇌부는 촉각을 곤두세우며 내부 단속을 하는 분위기다. 장택동기자 taecks@
  • [인터넷 스코프] 인터넷 실명제 반드시 필요하다

    정보통신부가 최근 익명성으로 인한 폐해를 줄이기 위해 정부기관 게시판부터 인터넷 실명확인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고 한다.인터넷 게시판 실명제에 대해 아직도 반대의견이 30∼40%에 이르고 있다.그러나 정부기관 게시판은 청소년을 포함한 모든 국민에게 공개돼 좀 더 건전한 운용이 필요하다는 게 정통부의 추진배경 설명이다. 이에 대한 네티즌의 의견은 두 가지로 나타났다.책임지지 못할 비판과 유언비어가 확대되지 않도록 하려면 게시판 실명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 첫째다.진실과 약자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 다른 하나다.한마디로 말해 인터넷 실명제가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게 될 우려가 있다는 시각과 인터넷 익명제가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시각의 대립이다. 인터넷 규제에서 항상 부딪치게 되는 딜레마가 바로 이것이다.인터넷은 누구든지 언제 어디서나 정보와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기본 정신에서 출발했다.인터넷에 대한 규제는 이런 기본 정신에 위배된다.그러나 기본 정신에 충실하기에는 인터넷 게시판의 내용이 도를 넘고 있다.욕설뿐 아니라 명예훼손·사생활 침해까지 읽는 사람의 마음을 불쾌하게 하는 내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인터넷이 새로운 매스미디어로 각광받는 이유는 인터넷이 그동안 다른 미디어가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던 공론의 장 역할을 담당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학자들은 직접 민주주의를 실천하기에 너무나 복잡해진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제시하고 여론을 수렴하는 역할을 매스미디어가 수행하기를 기대했다.그러나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신문과 방송이 그런 역할을 수행하는 데는 여러 가지 한계가 있었다.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상호작용성이란 특성을 가진 인터넷은 신문과 방송보다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사실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그동안 말할 수 없었던 많은 사람들이 말할 수 있게 되었다.보통 사람들이 함께 토론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장이 마련되었다.대통령선거·촛불시위 등 사회 변화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런 긍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규제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이는 인터넷을 잘못 이용하고 있는 네티즌들 때문이다.특히 토론문화를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우리들의 책임이 크다.인터넷 토론방에 들어가 보자.제대로 토론이 이루어지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앞서 제시된 의견을 생각해보고 그 의견에 대해 동의한다거나 반대한다는 의견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이 별로 없다.토론이라기보다는 각각 자기 의견만을 내세우는 장이 되고 있다.게시판에 올려져 있는 대글에서도 먼저 글에 대한 의견이라기보다는 감정적인 비판이 대부분이다. 인터넷 실명제가 나온 이유도 이런 토론문화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개인적으로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인터넷의 기본정신을 충분히 살렸으면 한다.그러나 선뜻 실명제에 반대할 수 없는 이유는 성숙되지 못한 토론문화 때문이다.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실명제로 가야 한다면 게시판을 분리해서 운영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생각이다.익명으로 올리는 게시판과 기명으로 올리는 게시판을 구분해 운영하자는 것이다.사람들의 의견이 익명게시판에 몰릴 우려가 있기는 하지만,일단 한번 운영해보고 다음 방향을 결정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다.실명제 논의가 우리 스스로 게시판 이용태도를 한번쯤 점검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김 경 희 한림대교수
  • 지령 20000호-전문가 제언 / 정진석 한국외대 교수 기고

    일제의 침략으로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던 1908년 4월29일자 대한매일신보는 이런 논설을 실었다.“언론을 속박하고 신문잡지의 출판을 검열하야 타국에서 자유로이 발간하는 신문을 보지도 못하고 전하지도 못하게 하면 그 나라를 가히 멸망케 할까.신문기자가 조금 격분한 언론을 게재하면 순검의 포승과 옥중의 형벌로 그 몸을 깨이며 회중(會中)에서 연설하는 자가 조금이라도 정직한 말을 하면 불에 달군 철편으로 그 뼈를 녹이며….” 아마도 신채호가 썼을 이 명 논설은 일본의 한국 침략에 앞장선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오스트리아의 정치가 메테르니히(Metternich)의 탄압정책에 빗대어 비난한 글이었다.이등박문은 대한매일신보의 발행인이었던 영국인 배설(裴說:E T Bethell)을 상하이에 있는 영국 청한고등법원(淸韓高等法院)에 고소하여 재판정에 서도록 만들었다.이 논설을 비롯하여 다른 2건의 논설과 기사가 치안을 문란케 하여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들고일어나 많은 사상자를 낸다는 것이 이유였다.배설은 서울에서 진행된 재판에서 3주일간의 금고형(禁錮刑)을 선고받아 상하이로 가서 복역한 뒤에 돌아왔으나 이듬해 5월1일 36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그는 서울 양화진(楊花津)의 외국인 묘소에 묻혀 있다. 이등박문이 아니더라도 비판에 관용을 보이는 권력은 없다.언론의 역사는 보도와 논평의 자유를 확대하기 위한 긴 투쟁의 연속이었다.권력의 억압에 맞서는 언론의 오랜 투쟁의 과정을 거치면서 언론자유의 이론은 발전되었고,마침내 언론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근간이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확립하기에 이른 것이다.자유언론은 권력에 대항하여 얻은 투쟁의 결과다. 최근에는 ‘언론 권력’이라는 말이 자주 통용된다.언론이 권력인가.언론의 자유가 크게 신장된 상황에서 언론이 지닌 영향력을 넓은 의미의 권력으로 본다면 권력일 수 있다.언론으로부터 피해를 당하고도 구제받기 어려운 약자의 입장에서는 언론도 분명 권력이다.모든 국민이 시청하는 방송의 한마디,신문에 실리는 한 단어가 개인에게는 치명적인 영향력을 미친다는 점에서 언론의 힘은 막강하다.그렇다고해서 언론과 권력을 대립적인 구도에 놓고 보면 결코 대등한 관계일 수 없으며 따라서 ‘언론권력’이라는 말은 언론의 영향력을 과장해서 표현하고 그 영향력을 바르게 행사하라는 상징적인 구호일 뿐이다.언론은 권력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권력과 언론이 맞부딪칠 때 대체로 권력은 일방적인 승자가 되었다.권력이 언론을 어떻게 유린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실제 사례를 우리는 일제시대와 광복후의 우리 현대사에서 수없이 보아왔다. 한말의 그 치열한 민족지 대한매일신보도 나라가 망한 뒤에는 일제 총독부의 기관지가 되고 말았다.그러나 언론과 권력이 언제나 대립적인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언론은 여론을 통해서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에 영향력을 미친다.언론이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은 독자의 지지를 바탕으로 국민의 호응을 받을 때라야 발휘된다.언론은 검증 받지 않은 권력이라지만 언론에 대한 독자의 지지가 바로 검증이다.국민의 지지를 지렛대로 정부의 정책과 사회의 변화 또는 개혁의 속도와 방향을 비판한다면 권력은 겸허한 자세로 경청해야 한다.그와 같은 견제와 긴장관계는 국민에게 판단의 기회를 제공하고 선택의 폭을 넓히면서 사회를 건전한 발전의 방향으로 유도할 것이다.비판기능이 거세되고,권력의 선전도구가 된 언론만이 존재하는 사회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남한과 북한을 비교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권력은 언론의 비판에 귀 기울이되 확고한 신념과 꿋꿋한 자세로 정책을 추진하면 된다.다양한 비판에 대해서는 역사의 심판에 맡긴다는 신념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잘못된 언론은 권력이 견제하지 않더라도 독자와 시청자들이 지켜보고 있으며,권력의 비호를 받는 언론을 독자는 외면한다는 사실을 권력과 언론은 함께 인식해야 할 것이다.독립언론으로 거듭나기 위한 진통을 겪어온 대한매일이 권력에 의연하면서 역사 앞에 떳떳하고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신문이 될 것을 기대한다.
  • 한가족3명 쇠사슬 묶여 불타 숨져/“도움준 분께 미안” 유서 발견 자살위장 타살 가능성도 수사

    50대 부부와 30대 아들 등 일가족 3명이 쇠사슬에 묶여 숨진 채 불에 탄 승용차 안에서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8일 오전 3시30분쯤 충남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 꽃지해수욕장 남문주차장에 있던 경기39노 2649호 스펙트라 승용차에서 불이 난 것을 관광객 등이 발견,119에 신고했다. 차안에서 이모(58·경기도 광명시 광명동)·오모(53·여)씨 부부와 아들 이모(32)씨 등 3명이 모두 뒷좌석에서 서로 쇠사슬로 묶여 불에 타 숨진 채 발견됐다.또 ‘우리에게 도움을 준 여러분께 미안합니다.’라는 등의 유언을 적은 쪽지가 담긴 오씨의 손가방이 발견됐다.경찰은 빚이 1억여원이 넘는다는 점과 유서 등에 따라 이들이 생활고 등을 비관,동반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그러나 쇠사슬에 묶여 있었던 점 등을 미뤄 누군가가 이들을 살해한 뒤 자살을 위장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태안 이천열기자 sky@
  • 경제 플러스 / ‘정석 학술정보관’ 개관

    대한항공은 오는 17일 인하대 내에 국내 최초의 수송 물류 전문 도서관인 ‘정석 학술정보관’을 개관한다고 8일 밝혔다.지상 6층 규모로 총 투자비 473억원이 들어갔다.장서 100만권과 열람실 3200석을 갖췄다.외부에서도 인터넷으로 접속,한 번의 검색으로 원하는 자료를 받아볼 수 있는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다.정석 학술정보관은 고 조중훈 회장의 유언에 따라 수송 물류 및 교육발전을 위해 기증한 사재 중 일부가 도서관 운영 기금으로 사용된다.
  • 지령 20000호 특집 / 노무현 대통령 특별기고

    대한매일 지령 2만호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도 반년이 넘었습니다.그동안 주위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 중에 하나가 “언론과 사이좋게 지내라.”는 것입니다.또 “개인적으로 언론에 대한 감정이 있으면 이제 그만 풀라.”고 충고합니다.언론과 맞서 싸우면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으니 그만 양보하고 타협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우선,일부 언론과의 편치 않은 관계가 사사로운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우리 사회에서 언론과 맞서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손해보는 일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그러나 이런 환경과 관계가 옳지 않기 때문에 불편함을 감수하며 국정 운영에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이것은 참다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중요한 일이라고 믿습니다. 왜 언론과의 합리적 관계 개선이 중요한가? 첫 번째 이유는 어떤 권력이든 상호 견제와 균형의 건전한 긴장관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권력’하면 ‘정치권력’을 머릿속에 떠올립니다.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많은 권력집단들이 존재합니다.그 중 대표적인 것이 ‘언론권력’입니다.언론은 국가나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결정하는 데 있어 정치권력 이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 때문에 ‘제4의 권력’이라고도 합니다.시민단체나 노동단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모두,우리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권력’인 것입니다.이러한 권력은 노력에 대한 보상이나 전리품이 아니라 국민이 부여한 ‘소명’입니다. 권력을 마치 전리품인 것처럼 착각하는 순간,권력에 도취하게 되고 그것을 남용하게 됩니다.그 결과 많은 국민들을 불행에 빠뜨리고 권력 스스로도 정당성을 잃고 맙니다.소명을 저버리게 되는 것입니다.나아가 권력은 미래지향적이고 창의적이어야 합니다.국가와 국민의 운명을 보장하고 개척해 가는 것이 권력의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권력은 스스로 절제해야 합니다.힘을 행사하는 자격과 합리성을 갖춘 권력이 되어야 합니다.외부 견제장치가 제도화되어 있지 않은 언론은 더욱 그렇습니다.언론 내부의 자정과 견제,비판이 필요한 것입니다.대통령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국회를 지배하려 하거나,검찰·국가정보원 등을 정권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러나 권력 스스로의 절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상호견제가 있어야 합니다.일방적인 힘의 행사로 자기 의견만 관철하겠다는 자세는 민주주의 질서를 파괴합니다.그런 권력이 허용되어서는 안 됩니다.상호견제를 통해서 반드시 절제되어야 합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삼권분립 제도’도 여기서 출발합니다.국가권력을 나누어 서로 견제하게 함으로써 권력의 남용을 막고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것입니다.그뿐만 아니라 행정부 내에서도 감사원 등을 통해서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권력 스스로의 절제는 불완전하며 믿을 수 없다는 전제에서입니다. 언론과 정부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상호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언론과 정치권력이 결탁했을 때 야기되는 많은 폐해들은 역사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가장 강한 권력인 정치권력과 언론이 ‘누이 좋고매부 좋고’ 식으로 불의의 공생을 도모했습니다. 그 때마다 시대정신은 후퇴하고 국민들이 피해를 입었습니다.특히,저항할 힘이 없거나 정의의 편에 서고자 하는 사람들의 피해가 컸습니다.일제시대가 그랬고 독재정권 시절이 또한 그러했습니다.우리 사회에서 힘을 정의로 믿는 기득권이 형성된 것도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이 야합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정치권력과 언론은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장악하거나 서로 유착할 때 편한 관계가 됩니다.그러나 잘못된 것이 바로잡히지 않습니다.오로지 어느 한 쪽의 굴종이나 서로간의 음험한 거래가 있을 뿐입니다.힘들고 불편하지만 각자의 정도를 가야 합니다.정부기관의 가판구독을 중단한 것도,기자실을 폐지하고 브리핑 제도를 도입한 것도 그러한 생각에서입니다. 언론과의 관계에 대한 참여정부의 입장은 분명합니다.정부와 언론 모두 자기절제의 토대 위에서 각자의 소임에 충실하자는 것입니다.정정당당하게 상대방을 견제해 나가자는 것입니다.그리하여 ‘건전한 긴장관계’를 유지해가자는 것입니다.그랬을 때 정부도 언론도 바로 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언론과의 합리적 관계 개선이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우리 사회에 ‘건강한 공론의 장’을 만드는 일이 시급하기 때문입니다. 민주사회에서는 이익집단이나 사회계층간에 다양한 의견들이 분출하며,많은 경우 이해가 서로 다르고 대립하게 됩니다.이같이 서로 다른 의견들이 공론의 장에서 자유롭게 주장되고 또 경쟁하는 것이 민주사회의 기본원리입니다.그런 가운데 상충하는 의견들이 대화와 토론을 통해 타협점을 찾고 합의에 이릅니다.이는 일찍이 존 밀턴이나 존 스튜어트 밀이 주장한 자유언론사상의 핵심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언론의 역할은 절대적입니다.언론이 설정하는 의제는 곧바로 사회적 의제가 됩니다.언론이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라고 규정하면 국민들 사이에서 그것을 중심으로 열띤 논의가 벌어지고 여론이 형성됩니다.‘데모크라시’를 ‘미디어크라시’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따라서 언론의 의제 설정은 매우 신중하고 공정해야 합니다.편파적이거나 불공정한 의제는 국민들간에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고 합의를 어렵게 합니다.과거지향적이거나 창조적이지 못할 때는 우리 사회를 정체 또는 퇴보하게 합니다.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냉정한 논리의 제공도 필수적입니다.그래야 서로 다른 의견과 주장 사이에서 공정한 토론이 이루어지고 합리적인 결론에 이를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언론이 펼치는 공론의 장에 관여하는 것은 대단히 제한적입니다.우선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사실이 잘못 전달되었거나 왜곡 보도되었을 때 합법적으로 대응해서 바로잡는 것입니다. 이는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고 응당 해야 할 일입니다.언론 또한 공론의 장에서 이런 견제를 받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언론의 자유’가 사실을 왜곡,과장하거나 억측을 사실인 양 호도하는 자유까지 의미하진 않기 때문입니다.“사실은 신성하다.”는 언론의 금언도 있지 않습니까? 균형 있고 건강한 공론을 만들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두 번째 일은,정부가 하고 있는 일을 최대한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입니다.실제로 참여정부는 과거 어느 정부보다 행정정보와 정책을 적극 공개하고 있으며,이를 통해 국민의 알 권리와 국정 참여 기회를 확대해오고 있습니다.이 달 초 개통한 인터넷 ‘국정브리핑’도 그런 취지에서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언론과 정부는 공론의 장에서 국가 발전과 국민의 행복,그리고 보다 나은 사회 건설을 목표로 경쟁하고 협력해야 합니다.서로에 대한 존중이 바탕이 되고,앞서 언급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적용되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끝으로,언론이 시장경제의 공정한 룰을 지키도록 원칙을 지속할 것입니다. 사회환경의 감시가 소명인 언론사의 위법행위와 불공정거래는 일반 기업들보다 엄격하게 다루는 것이 원칙일 것입니다.저는 무엇보다 최소한의 공정한 경쟁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언론을 압박하는 일도 없겠지만,예외적인 특권이 용납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언론개혁’을 요구하며 그 당위성을 강조합니다.언론의 영향력과 중요성에 비춰볼 때 그 어떤 다른 개혁보다 시급하게 단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왜 정부가 나서지 않는가를 질타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그러나 언론개혁은 정부가 주도할 성격의 일이 분명 아닙니다.언론과 언론인 스스로의 몫입니다.또 언론의 수용자인 국민들이 언론개혁의 분위기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정부는 언론이 국민과 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그리고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제한된 범위 내에서 도움을 줄 수 있을 뿐입니다.참여정부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당당하고 차분하게 언론과의 관계를 정립해갈 것입니다.좌고우면하지 않고 처음 세운 원칙 그대로 일관된 길을 갈 것입니다.지름길이나 뒤안길 대신 가장 올바른 길을 찾아 우직하게 걸어갈 것입니다.그래서 앞으로 3∼5년 후에는 정부와 언론 모두,힘들었지만 그 길을 선택하길 잘 했다고 자부하게 되길 바랍니다.또 그렇게 국민들이 평가해주길 기대합니다.공정한 언론과 투명한 정부가 건강한 관계를 이루는 가운데 우리 사회가 보다 밝고 건강하며투명해지기를 소망합니다. 다시한번 대한매일 지령 2만호 발간을 축하합니다.
  • 톨스토이 마지막 일기 국내 첫 번역 공개

    1910년 11월7일 작고한 것으로 알려진 레프 톨스토이(사진)의 생애 마지막 일기가 국내 첫 공개됐다.이항재 단국대 교수(노문학)는 문예계간지 ‘세계의 문학’가을호에 톨스토이의 ‘나 혼자만의 일기’를 번역,기고했다.이 일기는 톨스토이가 타계 직전인 1910년 7월29일∼10월29일 쓴 것으로,이교수가 최근 러시아 체류중 구한 톨스토이 전집 가운데 한권으로 출간된 것이다. 이 일기문에는 톨스토이가 아내와의 심각한 갈등,자식들에 대한 걱정 등으로 겪는 내면의 고통이 잘 드러난다. 특히 비밀 유언장에서 자신의 저작품에 대한 권리를 포기한 사실을 알게된 부인의 히스테리에 가까운 반응 등을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다. 이런 심적 고통을 겪다가 마침내 사망 직전인 10월 28일 일기에는 “10월 27∼28일부터 가출을 실행하도록 강요하는 자극이 있었다.”고 토로하는 대목이 나와 눈길을 끈다.결국 이 가출 뒤 톨스토이는 방랑하다 11월 7일 새벽 아스타포보라는 조그만 시골역에서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수기자 vielee@
  • [화제의 사이트] www.ecemetery.co.kr

    추석에 사이버 상에서 조상님께 성묘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최근 장묘문화 개선을 위한 범국민적 운동이 확산되는 가운데 ‘사이버 추모공원(www.ecemetery.co.kr)’이 등장,눈길을 끌고 있다. ㈜제이에스티가 가천길대학과 공동개발한 이 사이트에서는 바쁜 생활로 성묘할 시간을 찾기 힘들거나 화장 후 공허감에 빠지기 쉬운 유족들을 위해 인터넷 묘지도 무료로 분양해 준다. 이 사이트는 기존의 추모 사이트와는 달리 마우스를 이용,고인의 영정 앞에 향과 꽃으로 분향·헌화를 할 수 있다.바로 그 자리에서 추모록을 작성할 수도 있는데다 ‘성묘하기’와 ‘제사지내기’ 코너를 클릭하면 이미지화된 제사 음식으로 제사상을 마련하고 술도 따를 수 있다. 고인의 생전 모습과 즐겨부르던 노래 등을 보고 들을 수 있는 동영상·앨범 서비스도 인기다.특히 ‘타임캡슐’ 코너는 먼 훗날 가족·친지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나 사진·동영상 등을 저장해 놓은 뒤 나중에 원하는 시간에 열어볼 수 있도록 해 ‘유언장’의 역할도 하고 있다. 이 회사 박준서 사장은 “디지털 시대에 조상에 대한 ‘효’를 중시하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 사이트를 열었다.”면서 “곧 유료화를 실시,수익금을 장묘문화 개선 및 불우이웃돕기 등을 위한 사회사업에 모두 쓰겠다.”고 말했다. 이영표기자 tomcat@
  • 기고/ 기부는 행복한 사회의 밑거름

    얼마전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있었다.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는 자식이 지금까지 학교를 다니며 받은 장학금 전액을 모아 모교에 장학금으로 다시 내놓은 분과,사업을 해 얻은 이익은 반드시 국가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에 환원하라는 부친의 유언을 받들고자 힘들게 일해서 마련한 거액의 발전기금을 들고 찾아와 조용히 기탁하고 떠난 분이 있었다. 서구에서는 일반화한 기부문화가 아직까지는 우리에게 어색한 것이 사실이다.특히 교육기관에 기부한다는 말이 들어가면 기부자 자녀와 관련하여 모종의 거래가 있을지 모른다는 의혹 탓에 선의의 기부까지 그 본뜻이 훼손되는 일이 있다.그러나 아직은 교육적 특혜를 대가로 한 기부금 출연은 국민 정서상 용납할 수 없다는 점에서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진국 기부문화에 비하면 우리는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다.미국의 경우 월마트·듀폰·보잉 같은 대기업들이 출연하는 기부금만도 매년 2000만∼1억달러가 넘는다.또 빌 게이츠,테드 터너,조지 소로스 등의 거부들도 수시로 교육기관을 비롯한 공익재단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기부한다.최근 외국의 기부문화는 돈만 내는 것에서 벗어나 기금 운용에도 참여하여 더욱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혜택을 받게끔 활동하는 단계에 이르렀다.선진국일수록 부의 사회적 환원은 당연한 미덕으로 여긴다. 재단법인 ‘아름다운 재단’의 2000년 통계를 보면 국민 1인당 기부액은 미국 129만원,일본 28만 8000원,영국 18만 7200원인 데 비하여 한국은 9만 6000원으로 아직은 미약한 수준에 있다.또 정기적인 기부자가 80%를 웃도는 미국에 비해,우리나라는 16%선에 머물고 있고,지금까지 한번도 기부해 본 적이 없다는 사람도 43%에 달했다.물론 기부가 경제력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은 사실이나 액수의 많고 적음보다 중요한 것은 저소득층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배려라고 할 수 있다. 부의 재분배를 통한 국민통합은 행복한 사회의 밑거름이다.따라서 건강한 기부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한 법과 제도의 보완이 절실히 요구된다.특히 대부분의 기부를 기업에 의존하는 우리의 현실에 비춰 보면 기업의 활발한 기부활동을 유도하기 위해 세제 혜택의 폭을 넓혀야 할 것이다.외국 기업의 경우 일본은 25%,미국과 대만의 경우 10%까지 기부금을 내더라도 손비로 처리하여 세금 면제 혜택을 주고 있으나 우리나라 기업은 기부금에 대한 세금면제 한도가 총 소득금액의 5%에 불과한 실정이다.현행 ‘기부금품 모집 규제법’이 기부문화 확산에 걸림돌이 된다는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동안 ‘나눔의 실천’에 대하여 인색했던 우리 기부문화에도 변화의 기류가 최근 감지되고 있다.선진국에 비해 기부율이 낮고 그나마 대부분의 기부가 대기업 등 법인 위주로 이뤄졌으나 최근에는 개인도 적극적으로 기부에 참여하고 있다.평생 모은 재산을 쾌척하거나 소득의 일부를 사회복지단체에 정기적으로 기탁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난다는 소식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떡 한쪽도 이웃과 나눌 정도로 ‘나눔의 문화’에 익숙한 전통을 갖고 있다.나눔의 기쁨이 커질수록 사회도 건강해질 것이다.평생김밥 행상으로 힘겹게 모은 재산을 한 대학에 기탁한 후 “재물은 만인이 공유할 때만 빛이 난다.”는 말씀을 남긴 고 이복순 할머니의 숭고한 뜻이 새삼스럽게 가슴에 와닿는 시점이다. 최진규 충남 서산시 서령고 교사
  • 평생 ‘우리글 지키기’ 힘쓰시더니…/아동문학가 이오덕씨 별세

    평생을 우리글 바로쓰기 운동에 힘써온 아동문학가 이오덕(李五德·사진)씨가 25일 오전 6시40분 충주시 신니면 광월리 자택에서 타계했다.78세. 1925년 경북 청송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4년 초등학교 교원시험에 합격한 이후 교장을 역임하며 43년 동안 경북 일대의 교단을 지켰다. 그는 1955년 ‘소년세계’에 동시 ‘진달래’를 발표하면서 아동문학에 발을 들였다.이후 어린이 교육 및 아동문학 바로세우기 운동 등 실천적인 글쓰기에 주력했다.시중의 동시문학을 말장난에 불과하다며 신랄히 비판한 비평활동은 오늘날 아동문학이 전성기를 이루는 데 소중한 밑거름이 됐다. 1965년 ‘글짓기 교육의 이론과 실제’를 펴낸 이후 ‘이오덕 글쓰기 교실’‘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우리글 바로 쓰기’ 등 모두 53권의 저서를 남겼다.우리글 바로쓰기와 관련한 그의 저서들은 사회에 만연한 번역체와 일본말투 등을 바로잡는 지침이 됐다.70년대 후반엔 아이들의 생활글을 모은 책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를 내놓는 등 생활현장에 맞닿아 있는 아동문학을 주창하기도 했다. 고인은 4년전부터 신장염으로 요양을 해왔다.그러나 미음조차 삼키기 힘든 병상에서도 집필의욕을 꺾지 않아 지난해 10월에는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는 삶을 비판한 에세이집 ‘나무처럼 산처럼’을 펴내기도 했다. 고인은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소탈한 생활철학을 실천해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유기농으로 고인을 보살펴온 큰아들 정우(57)씨는 “선친이 ‘가족 이외의 외부인들에게는 일절 부음을 알리지 말고,장례가 다 끝난 뒤 즐겁게 떠났다고 전해달라.’는 유언을 남기셨다.”며 말을 삼갔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아들 정우·현우씨,딸 연우씨가 있다.장례는 27일 오전 가족장으로 치러진다.(043)857-4777. 황수정기자 sjh@
  • 함승희의원 의총서 검찰 공격

    민주당과 검찰의 갈등이 커지는 가운데 민주당 함승희 의원이 연일 검찰 공격의 선봉장으로 나서고 있다. 검사 출신인 함 의원은 12일 의총에서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자살을 둘러싼 검찰수사 의혹점을 다시한번 열거했다.‘검찰의 가혹수사로 인한 정몽헌 회장의 자살설’ 파문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조짐이다. 함승희 의원은 “정 회장의 돌연한 죽음은 남북경협에서 큰 역할을 한 인물의 변사사건”이라며 “수사과정의 가혹행위,인격모독 여부,정 회장이 집무실에 올라간 뒤 2시간 동안 전화통화 여부,좁은 창문으로 애써 기어나가 추락한 이유,세 통의 편지 등을 냉철하게 조사하고 짚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함 의원은 “(검찰에서) 음해라고 하는데 서글프고 분노를 느끼며 수사팀 교체를 얘기했는데 권 전 고문을 연행했다.”면서 “검사 출신으로서 친정을 욕되게 할 생각은 없지만 검찰이 왜 이럴까 한심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함 의원은 이날,자백한 피의자들이 목을 매거나 혀를 깨무는 등 자해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다며 검사시절 경험담을소개하기도 했다.1988년 ‘5공 비리’ 수사 때 전두환 전 대통령 동생인 경환씨 구속에 도움을 준 피의자가 자백한 이후 혀를 깨무는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새마을운동중앙회 사무국장으로 있던 이 피의자는 다른 수사검사 방에서 새마을신문사 탈세사건으로 조사받던 중 혀를 깨물었다고 한다.정 회장도 비슷한 심리상태에 빠졌을 수 있다는 비유다. 함 의원은 “일반적으로 피의자로부터 자백을 받고 나면 수사팀은 수사를 끝낸 듯 피의자 관리에 소홀하나 자백한 피의자는 자신의 자백으로 인해 인간관계가 무너질 것을 우려하는 등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한 만큼 구치소로 이송할 때까지 더 조심해서 관찰하라고 수사관들에게 얘기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정 회장이 유분을 금강산에 뿌려달라고 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인이 사체부검에 동의한 것은 그만큼 의문점이 많다는 뜻이 아니겠느냐.”면서 “검찰은 국민적 의혹이 된 정 회장 사건에 대한 궁금증을 명쾌하게 해명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동교동계인 김옥두 의원은 “함 의원이 정 회장 강압수사를 폭로,1면 톱기사가 나온 지 7시간만에 권 전 고문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고 함 의원의 주장에 동조했다.이어 “내 정보에 의하면 검찰이 동교동계 의원들에 대해 철저히 조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검찰을 주시하고 있다.”고 흥분했다. 박현갑기자 eagleduo@
  • 오늘 금강산서 정회장 추모식/ 김윤규사장 “대북사업 컨소시엄 구성”

    고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추모행사가 11일 금강산에서 열린다. 10일 현대아산에 따르면 행사에는 육로로 방북하는 유가족,친지,현대 임직원 등 380여명을 포함해 금강산 현지의 현대아산 직원,북측 인사등 모두 700여명이 참석한다. 남측 인사들은 동해선 육로를 통해 금강산으로 들어간다.북측에서는 50∼100명이 참석할 예정이지만 구체적인 명단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고인의 유언에 따라 마련된 추모행사는 추도식,유품 안치식,추모비 건립식,유분 뿌리기 순으로 진행된다. 온정각 맞은 편 80m정도 떨어진 곳에 세워질 추모비는 높이 2.2m,폭 3m의 화강암 재질이다.상단 비문석에는 도올 김용옥씨가 헌사한 비문이 새겨져 있다. 정 회장의 머리카락,손톱,발톱 등을 담은 함도 추모비 왼쪽 뒤편에 안치된다.유족들은 또 정 회장이 금강산을 오를 때 입었던 옷가지 등 유품을 소각해 재를 목란관,신계사터,온천장,고성항 등에 뿌릴 예정이다. 한편 김윤규 사장은 이날 “지금까지는 현대아산이 대북사업을 이끌어 왔으나 이제는 사업별로 필요하다면 국내외 다른 기업들과 컨소시엄을 구성,사업을 진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성곤기자 sunggone@
  • 정몽헌회장 자살 / 장례절차 어떻게

    고 정몽헌 회장의 장례식은 5일장,현대아산 회사장으로 치러진다.발인은 8일 오전 7시,영결식은 1시간 뒤인 오전 8시 각각 서울 아산병원 30호 영결식장에서 열린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은 4일 빈소가 마련된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가족회의에서 장지는 경기도 하남시 선영으로 결정됐으나,고인의 유언에 따라 유품 등을 금강산으로 모실 예정”이라면서 “유품을 금강산에 안치하기 위해서는 북측과의 협의가 필요해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아산병원과 현대그룹 사옥에서 영결식을 가진 뒤 장지로 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관계자는 “가족회의 결과 정 회장의 시신은 경기도 하남 선영에 안치하되 고인의 유언에 따라 손톱·머리카락 등은 금강산에 옮겨 묻기로 했다.”고 밝혔다.금강산에는 정 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비석을 세우기로 했으며,비문은 도올 김용옥 교수가 지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남 선영에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명예회장의 부친 정동식 옹,모친 한성실씨,동생인 정신영 전 동아일보 기자 등이 안장돼 있다. 주현진기자 jhj@
  • 정몽헌회장 자살 / 鄭씨형제 파워게임

    “나의 유분을 금강산에 뿌려달라.”4일 새벽 현대 계동사옥에서 투신 자살한 정몽헌(MH)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뼈에 사무친 말이다.그의 유언이 말해 주듯 대북사업은 MH 일생일대의 승부수였다.부친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숙원사업이자 현대그룹의 법통을 계승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했다. 1989년 1월 정 명예회장이 북한을 방문해 금강산 남북공동개발 의정서를 체결한 이후 현대그룹의 사활은 대북사업에 초점이 맞춰졌고,대북사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는 인물이 그룹의 후계자가 될 것임을 예고했다.2000년 3월 ‘왕자의 난’의 핵심도 대북사업의 주도권을 쟁취하는 일이었다.이는 또한 정몽구(MK)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MH가 운명적으로 등을 돌린 계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따지고 보면 대북사업의 선두는 MK였다.1996년 무렵 MK는 현대모비스(옛 현대정공)의 화차 제조를 위해 평양 인근에 공장을 차려 화차를 공급받았다.MK는 남북 공동 옥수수 연구개발을 위해 북한을 드나들었던 옥수수 박사 김모씨를 통해 대북창구를 터놓았다.MK의대북 접근은 비밀스럽고 조심스럽게 진행됐지만,MH의 대북사업 참여로 중단해야만 했다. 대북사업에 관한 한 MK에 뒤처져 있던 MH가 왕 회장의 신임을 얻은 데는 한때 오른팔로 더없는 충신(忠臣)이었던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 있었다.98년 초 이 전 회장이 요로를 통해 북한의 핵심 요인들과 친분을 다져왔던 재일동포 사업가 요시다 다케시와 접촉하면서 대북사업의 중심이 MH로 넘어가는 계기가 마련됐다. MH-이익치-요시다-김윤규(현대아산 사장)로 이어지는 대북 커넥션은 왕 회장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었고,그해 6월 정 명예회장의 첫 소떼 방북을 성공시키는 수완을 발휘했다. 2000년 3월 장남인 MK를 제치고 공식적으로 현대그룹의 후계자로 낙점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정 명예회장이 그해 5월 현대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면서 돌파구로 ‘3부자 퇴진’ 카드를 내놓으면서도 MH에게는 대북사업을 계속하도록 했다. 하지만 일방적인 편애는 또 다른 저항을 부르기 마련.MK는 거세게 반발했고,결국 현대차의 계열분리로 형제는 서로 등을 돌려야 했다.이후 MH가 MK를 찾아가 사죄했지만,형제간의 깊은 골을 메우기는 쉽지 않았다. 이후 MH는 자금난으로 여러번 대북사업에 좌초위기를 맞았고,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 등이 대북사업의 중단을 건의했지만 끝내 부친의 염원을 저버리지 못한 채 강행해 왔다.결국 부친의 소원도,형제간의 우애도 회복하지 못한 채 자신의 유분을 금강산에 묻는 것으로 종말을 고했다. 주병철기자 bcjoo@
  • 위도주민 “정부에 속았다” 현금보상설 유포조사 촉구

    원전수거물관리시설 부지로 확정된 전북 부안군 지역에 이상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부안군과 위도면 주민들은 ‘핵폐기장 결사 반대’를 주장하는 유치반대 주민들의 격렬한 시위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찬성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러나 정부가 지난 29일 위도주민들에 대한 현금보상 백지화를 결정한 이후 찬성입장에 섰던 주민들마저 정부의 일관성없는 정책에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30일 오후 2시 40분쯤엔 부안군 위도면 진리 원전수거물관리시설 유치추진 위도대책위 사무실에 마을 주민 17명이 몰려가 정문을 가로막고 ‘핵폐기장 유치 철회’를 주장하며 30여분간 항의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부안 주민들은 찬·반 양측 모두 “현금 보상의 적법성과 타당성 여부를 떠나 일관성없는 정부의 정책과 약속을 어떻게 믿겠느냐.”며 불신감을 드러내고 있다.위도 주민들은 한마디로 ‘정부에 속았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이들은 산업자원부나 한국수력원자력㈜ 측이 원전센터 유치 신청에만 눈독을 들여 위도 주민들 사이에 퍼진 유언비어를 알면서도 일부러 방치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산자부와 한수원은 ‘3억∼5억원의 현금 보상설’ 등 위도 주민의 여론 흐름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현금 보상설 유포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위도 원전수거물관리시설 유치위원들은 80% 정도의 주민들이 유치찬성 입장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지만 현금보상이 안될 경우 사업추진을 반대하겠다는 게 바닥 민심이다. 이렇게 되자 시설 유치 반대와 백지화를 요구하는 측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게 됐다.위도 주민들은 30일 가지려던 현금보상 불가 방침과 관련된 기자회견을 1주일 뒤로 미뤘다.이 기간에 원전센터 반대 집회와 시위가 절정을 이룰 전망이어서 정부의 대처 방향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중앙과 지방정부의 ‘부안 민심달래기’는 앞으로 1주일이 고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핵폐기장백지화·핵발전소추방 범부안대책위원회’는 30일 군민 3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부안수협 앞에서 핵폐기장 철회와 부안의 평화를기원하는 촛불기도회를 열었다. 또 대책위 회원 70여명이 상경해 청와대 앞에서 핵폐기장 건설 철회 및 폭력진압 규탄 기자회견에 이어 부안군민 여성대표단 9명은 삭발식을 가졌다.이어 이들은 청와대 국무총리실 관계를 만나 폭력진압 장면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전달하고 정부청사와 경찰청을 항의방문했다. 부안 임송학·장택동기자 shlim@
  • “군수가 70억받고 팔아넘겼다 죽음의 땅 되고 결혼도 못한다”/ ‘카더라’난무 부안주민 ‘술렁’

    “군수가 거액을 받고 부안을 팔아넘겼다.”“핵폐기장이 들어오면 부안은 죽음의 땅이 되고,여자는 방사능 때문에 시집도 못간다.” 원전수거물 관리시설을 유치키로 한 전북 부안군에 악성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있다.지난 11일 김종규 군수가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유치를 선언한 이후 부안지역에서는 누가 퍼뜨렸는지 모를 유언비어가 나돌고 있다.특히 이같은 유언비어는 지역주민들의 민심을 동요시켜 원전시설 유치반대 운동에 불을 붙이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현재 주민들에게 유포되고 있는 유언비어는 군수를 음해하고,핵의 위험성과 공포감을 확산시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군수가 70억원을 받고 위도를 팔아 넘겼다.”“군수 가족들은 이미 미국으로 도피시켰다.”“군수가 누군가로부터 조종을 받고 설득당했다.”는 등 김 군수를 집중 공격하고 있다.또 “양성자가속기는 핵보다 훨씬 위험하다.”“핵폐기장은 사람이 살지 않는 강원도 산골짜기에 설치해야 하는데 북한이 문제가 되어 위도로 왔다.”“핵폐기장이 들어오면 부안 땅값은 ×값이 된다.”는 등 터무니없는 말이 떠돌아 지역주민들이 술렁이고 있다. 이같은 ‘…한다더라.’식 유언비어가 주민들 사이에 급속 확산되고 있지만 산업자원부나 한국수력원자력㈜,전북도와 부안군 등은 적극적인 해명이나 주민설득에 소극적이다.산자부가 이날로 예정된 원전수거물관리시설 부지선정위원회의 개최를 현지의 시설유치 반대 분위기를 감안해 무기연기해 유언비어가 수그러지지 않을 것이란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부안 임송학기자 shlim@
  • 원로문인 11인 ‘가상 유언장’ 실어/문예지 ‘한국문인’ 특집

    “몇번을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 땅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서 태어나리라고,새로 짓는 내집 앞에 석류나무 두 그루만 심어주시오.석류꽃이 필 때 고향을 생각하기 위하여,석류가 익어갈 때 고향을 생각하기 위함이요,또 어머님을 그릴 생각입니다.” 시인 황금찬씨가 세상을 떠날 때에 대비해 남긴 글이다.격월간 문예전문지 ‘한국문인’ 8·9월호는 원로 문인들의 ‘가상 유언장’ 특집을 마련했다. 이 특집은 올해 유난히 많이 타계한 문인들의 대부분이 유언장이나 시비·묘비명에 새길 말을 남기지 않아 그들의 문학적 작업을 기리는 작업이 쉽지 않았던 점에 착안해 이철호 발행인이 마련한 것.서원순 사무국장은 “문학 후배로서 선배들의 문학 자취의 진수를 담기 위한 자료를 모은다는 뜻에서 시작했다.”고 밝혔다. ‘한국문인’은 원로문인들을 대상으로 200자 원고지 8매분량의 ‘가상 유언장’을 계속 특집으로 실을 계획이다.또 황금찬 시인처럼 시비에 새길 시를 보내오는 이도 있다.“네가 떠난/빈자리/하이얀 태양이/말이 없고/구름 길/겨울 파도소리”(시 ‘빈 자리’전문) 이밖에 문학평론가 김우종,추리소설가 정건섭,시인 조병무 강준형,수필가 안태현 육상구 정목일 이수화 김길웅 조명철 등의 유언장도 실었다. 이종수기자 vielee@
  • 100년전의 한국 / “호랑이 가죽 팝니다” 신문 광고도

    대한매일신보가 창간된 1904년은 서양 문물이 물밀듯 밀려오던 개화기의 끝자락이었다.이듬해 을사조약 체결이 보여주듯 일본의 야심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던 시절,우리네 삶은 근대 문물과 전통이 혼재한 가운데 소용돌이처럼 급변하고 있었다.종로 거리를 전차가 차지하고,전화가 등장했다.양복이 한복을 대신했고,여인네들은 장옷을 벗어던졌다.대한매일신보가 첫 선을 보였던 시절,당시 우리의 삶이 어떠했는지 100년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외국인들에게 ‘코리아’의 상징물로 잘 알려진 남대문.성벽도 없는 흉물(?)로 변해버린 것은 일본에 의해서였다. 1908년 당시 조선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일 황태자를 초청하면서 남대문을 헐자고 했던 것.“황태자가 한국을 방문하는데 냄새나는 조선 대문을 걸어들어가게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맹렬한 반대에 부딪혀 전체를 허무는 것은 무산됐지만 결국 서쪽 성벽을 헐고 큰 길을 내 황태자가 탄 마차를 통과시켰다.다음해에는 동쪽 성벽마저 허물어 남대문은 ‘두 팔’을 잃었다. ●전차 아무데서나 세워 1904년 당시 서울에서 가장 인기있는 볼거리는 전차였다.전차가 처음 개통된 것은 1899년 5월 17일.서대문-종로-동대문-청량리를 연결하는 8㎞ 구간으로 1896년 일본 교토에 이어 동양 두번째였다.전차요금은 상등 3전5푼,하등은 1전5푼이었다.당시 대한매일신보 한 부의 가격이 2전5푼임을 감안하면 그리 비싸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정거장은 따로 없었다.승객의 요구에 따라 아무곳에서나 섰다.당시 전철이 개통되자 이를 신기해하며 하루 종일 전차를 타고 동대문에서 서대문까지 왔다갔다 하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전차가 항상 인기만 누리던 것은 아니었다.당시 큰 가뭄이 들었는데 전차가 원흉으로 지목됐다.전차가 공기 중의 수분을 흡수해서 가물다는 황당한 유언비어였다.결국 사고가 터졌다.개통 10일만인 5월 26일 종로 2가에서 전철길을 건너던 5세 어린이가 전차에 치여 즉사했다.아버지는 도끼를 들고 전차에 덤벼들었고 성난 군중이 전차 2대를 불질렀다.이후 4달동안 운행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후 인기 교통수단으로 자리잡아 1930년대에는 하루 평균 232대의 전차가 2000여명의 승객을 실어날랐다. 인력거는 택시역할을 했다.1911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육상교통수단은 자동차와 인력거,말수레,승용마차가 담당했다.하루종일 달리다보니 인력거꾼의 체력이 좋은 것은 당연한 일.운동회가 열리면 달리기대회 1등은 항상 인력거꾼이었다고 한다. 대한매일신보가 창간되기 2년 전인 1902년,처음으로 공중용 시외전화가 개통됐다.당시 전화가입자는 24명.이중 조선인은 2명에 불과했다.시외전화가 먼저 개통된 것은 시내의 경우 하인을 보내 연락한 탓에 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1920년대 이후에야 상공인들을 중심으로 정착,1924년 서울의 전화가입자는 5969명까지 늘었다. 점점 서구의 영향을 받으면서 패션도 서구화됐다.1900년 문관들의 복장이 양복으로 바뀌었고 앞서 1896년에는 육군복장규칙이 제정되면서 구미식 군복이 등장했다.그러나 당시 양복은 개화에 영향을 받았거나 돈이 있는 사람들의 몫이었을 뿐 서민들의 옷차림은 무명옷이었다.갑오경장 이후 여성들의 외출이 훨씬 자유로워지면서 외출시 덮어썼던 장옷이나 쓰개치마가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대신 등장한 것이 검정 우산.얼굴을 내놓고 다니기 쑥스러운 여성들이 얼굴을 가리기 위한 방편으로 선호되면서 검정우산은 외출 여성들의 필수품목 1호가 됐다.당시 서울 자하문 밖으로 소풍을 갔던 한 여학생은 소풍감상문에 “양산에 가려 경치라고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하루 종일 내 발등만 보고 다녔다.소풍이란 발등만 보는 운동회다.”라고 할 정도였다. ●성냥·비누 가장 잘 팔려 여성 옷차림의 변화는 1907년 김활란씨가 도쿄에서 귀국하면서 챙머리 헤어스타일에 발목 위까지 올라가는 검정 통치마를 입은 것이 발단이 됐다.이 패션은 여성들 사이에 ‘양장미인,단발미인,모단걸(毛斷傑·modern girl)로 불리며 신여성의 대명사가 됐다. 미(美)를 추구하는 여성들의 욕구는 10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화장품이라고 해봐야 머리빗는데 쓰는 동백기름,분꽃의 씨를 빻아만든 분가루 등 천연재료가 전부였다.팥이나 녹두가루는 비누를 대신했다. 비누는 1882년조선과 청나라가 무역협정을 체결하면서 본격적으로 수입됐는데 잡화상이 밀집한 진고개(지금의 충무로) 일대에서는 성냥과 함께 최대 히트상품이었다.1904년 당시 비누 1장의 가격은 1원.당시 근로자의 하루 품삯이 80전이었던데 비하면 엄청나게 비쌌다.비누향은 ‘멋쟁이 냄새’로 통했는데 일부러 세수할 때 비누기를 남겨 향이 오래가게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대중에 연분 화장품 인기 당시 가장 대중적인 화장품은 연분(鉛粉)이었다.고급 화장품에 비해 값이 싼데다 화장이 잘 퍼졌기 때문.특히 화류계 여성들에게 인기만점이었는데 연분 때문에 신세를 망친 여성들이 한둘이 아니었다고 한다.연분은 납조각에 식초를 바르고 숯불에 달궈서 생기는 하얀 가루를 원료로 하는 일종의 가짜 화장품.바를수록 납에 중독돼 얼굴이 시퍼렇게 망가지는 납중독 증상에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일자리가 없던 시절,가장 보편적인 직업은 식모나 급사 등 집안 일을 돌보는 ‘가사사용인’이었다.지게꾼과 인력거꾼 등 일용노동자가 그 다음으로 많았는데 이들의 일당은 최고 40전으로 설렁탕 한 그릇(15전)도 마음놓고 먹기 어려웠다.현진건의 소설 ‘운수좋은 날’에서 주인공 박첨지가 운수가 억세게 좋아야만 설렁탕을 먹을 수 있다고 한 것이 당시의 노동 현실이었다. 서민들의 삶터는 역시 초가집이었다.1899년 7월 서울의 주택은 4만2870호에 인구 20만992명이었다.이 가운데 초가집은 2만9831호로 전체의 69.6%를 차지했다. 양옥도 등장했는데 ‘쉬익-’소리를 내는 스팀 난방시설 때문에 웃지못할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1918년 호텔을 개조해 만든 이화학원 기숙사의 스팀 난방을 본 학부모들은 뜨거운 김이 음기(陰氣)를 죽여 불임증을 유발한다며 기숙사 사용을 거부했다. TV가 없었던 시절,광고는 신문광고가 거의 전부였다.최초의 광고는 1886년 2월 22일 한성주보 제4호에 등장한 독일상사 세창양행의 광고였다.판매물품은 호랑이와 수달 가죽에서 사람 머리카락,담배,돼지발톱,성냥 등 그야말로 없는 것 빼고 다 취급했다.처음에는 잡화광고와 책광고가 대부분이었지만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생필품 광고는물론 다이어트 광고까지 등장했다. ●기사는 이경재씨의 ‘한양이야기’와 한국역사연구회에서 펴낸 ‘우리는 지난 100년 동안 어떻게 살았을까.’에서 일부 발췌해 재구성했다. 김재천 기자 patrick@
  • [대한포럼] 왜 신문개혁인가

    올 장맛비가 시작되던 지난달 23일 낮,한국 언론의 ‘메카’인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앞 광장에서는 우의를 입은 500여명의 언론 노동자들의 집회가 있었다.그들은 “신문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외치고 있었다.신문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왜곡된 신문시장을 정상화하고 편집권의 독립을 확실히 보장할 수 있도록 정기간행물법을 개정하며, 여론독과점을 막기 위한 시장점유율 규제법과 지역 언론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졌다.한마디로 전면적인 개혁이다. ‘신문개혁’.“어제오늘 들어 온 얘기도 아닌데 지금 왜 또 신문개혁인가.” 그런 의문을 제기하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게 느껴진다.그만큼 특정신문들의 ‘여론몰이’에 우리들 각자도 알게모르게 중독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그러나 조금만 신경을 써 들여다보면 사태는 심각하다.광고주협회가 2001년 신문 수용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 가지 이상의 신문을 보는 가구수를 100으로 볼 때 족벌신문이라는 조선·중앙·동아일보 3개 신문의 구독 점유율이 72.12%에 이른다고 한다.이들 세 신문의 매출액에 관한 통계는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한다.지난해 중앙 10개 일간지의 총 매출액 1조 9636억원 가운데 1조 2742억원으로 65%에 이른다.전년도의 62%보다 과점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신문 잘 만들어 구독률과 매출액을 올리는 것이 뭐 나쁘냐.”는 의문이 당장 제기될 수 있다.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공정한 룰을 지키면서 늘린 구독률과 매출액이라면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는가.‘자전거일보’,‘비데일보’로 알려졌듯이 막강한 자본을 바탕으로 구독료의 10배도 넘는 경품을 마구 살포하면서 다른 신문 독자들을 빼앗아 가니 문제다.이 불공정 경쟁을 선도하는 신문 역시 3개 족벌신문이라는 사실은 신문협회도 지적하고 있다.2002년도 신문협회가 경품살포 등 불공정 행위로 부과한 위약금의 89%를 소위 조·중·동 3개지가 차지했다.신문협회는 그러나 공정하지 못한 신문들에 대한 제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개정 공정거래법에 따라공정하지 못한 불법적인 방법으로 신문부수를 늘리는 신문들에 대해 직접 단속하기로 한 것은 때 늦은 감이 있지만 잘한 일이다.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한 단속은 언론자유 침해와 무관하다. 이런 행위는 왜 나쁜가.신문 시장의 독과점은 바로 여론 독과점으로 이어져 왜곡된 여론을 양산하고,결국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회복 불능의 폐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언론사 사주와 회사의 이해와 관련되는 문제의 보도에서 이들 신문은 어김없이 자사 이익을 앞세운다.공기로서의 책무는 언제나 그 다음이기 마련이다.최근의 보도만 보자.KBS 수신료 폐지,KBS-2TV와 MBC 민영화,방송과 신문의 겸영 허용을 골자로 한 한나라당의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 이들 신문은 무조건 찬성이다.공영방송의 기능과 역할,그리고 방송·신문의 겸영으로 파생될 문제점에 대해서는 끝내 외면하면서 철저히 자사이기주의에 입각해 보도하고 있다.일부 신문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과 북방한계선(NLL)에 대해서도 때에 따라 입장을 바꾸면서 보도해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그외 불공정 보도의 사례는 무수히 많지만 줄인다.신문 시장의 독과점을 막는 일이 신문개혁의 핵심과제인 것만은 분명해진다.자유언론이 발달한 독일이나 프랑스,이탈리아,영국과 미국,그리고 이웃 일본만 해도 소유제한과 시장점유율 제한을 법으로 강제하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우리의 신문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국민과 정부가 함께 나서야 될 때다. 그것이 이시대의 과제요 소명이다. 최 홍 운 수석논설위원 hwc77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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