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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토벤의 머리카락/러셀 마틴 지음

    히틀러는 베토벤의 음악을 게르만 민족정신의 가장 고귀한 표현이라고 찬양했다.자신의 생일 축하 연주곡도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이었다.그런가 하면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의 세번 짧고 한번 긴 박자(단단단 다…)는 2차대전 당시 연합군에선 승리의 상징으로 사용했다.모스부호의 ‘V’를 연상시킨다는 이유에서다.베토벤을 숭배한 인물은 한 둘이 아니다.클림트 등 빈 분리파를 비롯해 리스트,괴테,베를리오즈,멘델스존 등은 모두 베토벤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미국의 논픽션 작가 러셀 마틴이 쓴 ‘베토벤의 머리카락’(문명식 옮김,지호 펴냄)은 베토벤이란 이름이 단지 위대한 음악가 이상의 의미를 지님을 하나의 극적인 사건을 통해 보여준다.바로 베토벤 머리카락 경매다. 베토벤이 죽은 다음 날,친구인 후멜은 열 다섯살 된 제자 힐러를 데리고 그를 찾았다.관 속의 베토벤은 유언에 따라 귀의 연골이 적출되고,사람들이 여기저기 잘라가 머리 부분이 움푹 패여 있었다.소년 힐러는 스승에게 눈짓으로 물었다.“가져도 될까요?” 스승의 허락을 받은 힐러는 몰래 한 뭉치의 머리카락을 잘라냈다.이 머리카락은 유리 로켓에 담겨져 세상을 떠돌다 1994년 마침내 런던 소더비 경매에 나오게 된다.200년 전 베토벤의 주검에서 한 소년이 잘라낸 이 머리카락은 결국 두 명의 미국인 베토벤 마니아에게 7300 달러에 팔렸다. 베토벤의 머리카락은 베토벤이 시달린 수많은 질병과 청각장애,죽음의 원인 등을 밝히기 위한 검사에 이용됐다.DNA검사 결과 베토벤의 머리카락에선 건강한 사람의 머리카락에 있는 것보다 100배나 많은 납이 검출됐다.언론은 베토벤의 납중독 사망설을 대서특필했다.그러나 당시 성병치료 연고제로 쓰이던 수은은 별로 발견되지 않아 베토벤이 매독에 시달렸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으로 판명됐다. 책은 베토벤의 머리카락을 통해 베토벤의 마지막 순간들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어준다.베토벤의 죽음에 관해선 그의 사후 진단기록과 해부소견서가 불타 없어지면서 여러가지 억측이 나돌았다.1만3000원. 김종면기자˝
  • 儒林(88)-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조광조가 남긴 수수께끼의 유언은 양팽손에 의해서 그대로 지켜진다.유언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 사약을 들이켰으나 쉽게 숨이 끊어지지 않았으므로 보다 못한 군졸이 밧줄을 들고 조광조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 목 졸라 교살시키려 하자 조광조는 ‘무엇을 하려 드느냐.네놈은 내 몸에 손끝하나 대지 못한다.성상께서 나의 몸을 보존하고자 사사의 명을 내리셨는데 어찌하여 감히 내 몸에 손을 대려 하느냐.’하고 호통을 치고는 남은 사약을 단숨에 들이켠 후 마침내 숨을 거뒀다고 한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조광조의 얼굴에는 이승에서의 한을 차마 끊지 못하겠다는 듯 부릅뜬 눈이 활짝 열려져 있었는데,이 눈을 감겨준 사람이 바로 양팽손. 그러고 나서 양팽손은 우차에 조광조의 시신을 실어 자신의 고향인 쌍봉마을 골짜기에 가매장하였는데,조광조가 남긴 유언대로 갖바치가 준 태사혜를 시신의 발에 신겨주었으며,초라한 시신이었지만 가죽으로 만든 태사혜만은 어울리지 않게 화려하고 호사스러웠다고 한다. 지금도 조광조의 시신이 한겨울 동안 가매장되었던 자리에는 ‘靜庵趙先生書院遺址追慕碑’란 작은 비석이 서 있다.송시열이 쓴 명필인데,조광조의 사후 그의 무덤자리에 세워졌던 서원의 흔적도 사라져 버리고 한겨울 그곳에서 가매장되었던 조광조의 시신은 이듬해 봄 오늘날 경기도 용인시 수지읍 상현리의 심곡리로 이장되는 것이다. 확인된 바는 없지만 한겨울이었으므로 양팽손이 신긴 태사혜도 아직 썩지 아니하고 생생하게 그대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따라서 지난 5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무덤 속 조광조의 시신은 모든 것이 썩어 백골만이 남아 있을 터인데,하면 조광조가 신었던 한 짝은 검고,한 짝은 흰,의미를 알 수 없는 짝짝이의 가죽신 역시 썩어 진토가 되어버렸을까. 그러나 아직 500년의 세월에도 썩지 아니하고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것은 갖바치가 남기고 간 두 줄의 문장 중 마지막 문장인 것이다. “천년 세월에도 검은 신을 희게 하지는 못하는구나.” 그 문장의 수수께끼는 조광조의 생전에도,조광조의 사후에도 풀리지 아니하였다.아니 50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갖바치가 남기고 간 참언의 내용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것이다.갖바치의 참언이 정확하다면 아직 500년의 세월이 더 필요한 것일까.500년의 세월이 더 흘러 마침내 100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독특하고,가장 강력한 정치력을 발휘하였던 조광조의 역사적 평가는 올바르게 내려질 수 있을 것인가. 어쨌든 조광조는 1519년 12월 16일,34세의 젊은 나이로 정쟁에 휘말려 아까운 목숨을 잃는다.알성시에 2등으로 합격하여 사헌부 감찰로 임명됨으로써 정식으로 관직에 진출한 이래 불과 4년 만에 일찍이 전제 왕조체제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강력한 개혁정치를 단행하였던 한국의 마키아벨리,조광조는 이렇게 비참하게 최후를 맞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조광조는 누구인가. 실패한 정치가인가.권력투쟁에 패배함으로써 목숨을 잃은 권력의 희생양인가,아니면 이율곡이 내린 ‘아깝다,공은 어질고 밝은 자질과 나라를 다스리는 재주를 가졌음에도 학문이 이루어지기 전에 정치로 나아가 위로는 임금의 잘못을 시정하지 못하고,아래로는 구세력의 비방을 막지 못하였다.’라는 평가처럼 현실정치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단순히 이상정치를 구현하려 하였던 아마추어 정치가였던가. 조광조가 실패한 정치가이든 아마추어 정치가이든 500년이 지난 오늘날의 현실에도 조광조는 여전히 부활하여 살아 있는 정치적 모델이니,그렇다면 ‘천년의 세월도 검은 신을 희게 하지는 못하는구나.’라는 갖바치의 예언은 도대체 조광조의 무엇을 암시하고 있는 것일까.˝
  • 儒林(88)-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儒林(88)-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조광조가 남긴 수수께끼의 유언은 양팽손에 의해서 그대로 지켜진다.유언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 사약을 들이켰으나 쉽게 숨이 끊어지지 않았으므로 보다 못한 군졸이 밧줄을 들고 조광조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 목 졸라 교살시키려 하자 조광조는 ‘무엇을 하려 드느냐.네놈은 내 몸에 손끝하나 대지 못한다.성상께서 나의 몸을 보존하고자 사사의 명을 내리셨는데 어찌하여 감히 내 몸에 손을 대려 하느냐.’하고 호통을 치고는 남은 사약을 단숨에 들이켠 후 마침내 숨을 거뒀다고 한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조광조의 얼굴에는 이승에서의 한을 차마 끊지 못하겠다는 듯 부릅뜬 눈이 활짝 열려져 있었는데,이 눈을 감겨준 사람이 바로 양팽손. 그러고 나서 양팽손은 우차에 조광조의 시신을 실어 자신의 고향인 쌍봉마을 골짜기에 가매장하였는데,조광조가 남긴 유언대로 갖바치가 준 태사혜를 시신의 발에 신겨주었으며,초라한 시신이었지만 가죽으로 만든 태사혜만은 어울리지 않게 화려하고 호사스러웠다고 한다. 지금도 조광조의 시신이 한겨울 동안 가매장되었던 자리에는 ‘靜庵趙先生書院遺址追慕碑’란 작은 비석이 서 있다.송시열이 쓴 명필인데,조광조의 사후 그의 무덤자리에 세워졌던 서원의 흔적도 사라져 버리고 한겨울 그곳에서 가매장되었던 조광조의 시신은 이듬해 봄 오늘날 경기도 용인시 수지읍 상현리의 심곡리로 이장되는 것이다. 확인된 바는 없지만 한겨울이었으므로 양팽손이 신긴 태사혜도 아직 썩지 아니하고 생생하게 그대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따라서 지난 5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무덤 속 조광조의 시신은 모든 것이 썩어 백골만이 남아 있을 터인데,하면 조광조가 신었던 한 짝은 검고,한 짝은 흰,의미를 알 수 없는 짝짝이의 가죽신 역시 썩어 진토가 되어버렸을까. 그러나 아직 500년의 세월에도 썩지 아니하고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것은 갖바치가 남기고 간 두 줄의 문장 중 마지막 문장인 것이다. “천년 세월에도 검은 신을 희게 하지는 못하는구나.” 그 문장의 수수께끼는 조광조의 생전에도,조광조의 사후에도 풀리지 아니하였다.아니 50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갖바치가 남기고 간 참언의 내용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것이다.갖바치의 참언이 정확하다면 아직 500년의 세월이 더 필요한 것일까.500년의 세월이 더 흘러 마침내 100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독특하고,가장 강력한 정치력을 발휘하였던 조광조의 역사적 평가는 올바르게 내려질 수 있을 것인가. 어쨌든 조광조는 1519년 12월 16일,34세의 젊은 나이로 정쟁에 휘말려 아까운 목숨을 잃는다.알성시에 2등으로 합격하여 사헌부 감찰로 임명됨으로써 정식으로 관직에 진출한 이래 불과 4년 만에 일찍이 전제 왕조체제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강력한 개혁정치를 단행하였던 한국의 마키아벨리,조광조는 이렇게 비참하게 최후를 맞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조광조는 누구인가. 실패한 정치가인가.권력투쟁에 패배함으로써 목숨을 잃은 권력의 희생양인가,아니면 이율곡이 내린 ‘아깝다,공은 어질고 밝은 자질과 나라를 다스리는 재주를 가졌음에도 학문이 이루어지기 전에 정치로 나아가 위로는 임금의 잘못을 시정하지 못하고,아래로는 구세력의 비방을 막지 못하였다.’라는 평가처럼 현실정치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단순히 이상정치를 구현하려 하였던 아마추어 정치가였던가. 조광조가 실패한 정치가이든 아마추어 정치가이든 500년이 지난 오늘날의 현실에도 조광조는 여전히 부활하여 살아 있는 정치적 모델이니,그렇다면 ‘천년의 세월도 검은 신을 희게 하지는 못하는구나.’라는 갖바치의 예언은 도대체 조광조의 무엇을 암시하고 있는 것일까.
  • 儒林(87)-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儒林(87)-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과연 양팽손의 말은 사실이었을까.갖바치가 준 한 쪽은 검고,한 쪽은 흰,짝짝이의 태사혜는 김안로의 표현대로 꽃잎이 짙고,옅은 차이에 불과하였던 것일까. 갖바치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문장.‘천 층 물결 속에서 몸이 뒤집혀 나오고 천년세월도 검은 신은 희게 하지는 못하는구나’라는 참언 역시 단순히 매계 조위의 옛 고사를 빌려온 인용문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요동의 점쟁이가 남긴 점술도 매계가 살아 생전에는 그 마지막 문장인 ‘바위 밑에서 사흘 밤 잠들기를 기다린다’라는 글을 해독하지 못하였다. 죽은 후 관이 쪼개어져 부관참시를 당한 후 연산군의 명에 의해서 사흘 동안이나 장례를 치르지 못한 후에야 사람들은 그 점괘의 정확함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그렇다면 ‘천년세월도 검은 신을 희게 하지는 못하는구나’라는 마지막 문장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조광조가 중종의 명에 의해서 사약을 받은 것은 12월16일.기록에 의하면 눈이 강산처럼 내리던 한겨울날이었다고 한다.조광조가 능주에 도착한 것이 11월26일이었으니,도착한지 한 달도 못되는 20여일 만에 금부도사 유엄이 갖고 온 사약을 받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게 되는 것이다. 그때까지도 갖바치가 남기고 간 참언의 수수께끼는 풀리지 아니하였는데,‘정암집’에는 조광조의 최후를 다음과 같이 담담히 기록하고 있다. “조광조는 ‘어찌하여 사사의 명만 있고 사사의 글은 없느냐’고 묻고 남곤이 그 동안 정승이 되고,금부당상에 심정이 되었다는 말을 들은 후 ‘그러면 나의 죽음이 의심이 없다’고 대답한 후 ‘죽는 것이 오늘을 지나치지 아니하면 될 것이 아닌가.편지를 써서 집으로 보내고 또 분부할 일이 있으니 이를 처리하고 죽는 것이 어떠한고’하고 물었다. 유엄이 이를 허락하자 조광조는 곧 집으로 들어와서 아내에게 조용히 편지쓰기를 마치고 마침내 그 유명한 절명시를 쓰기 시작한다.” “임금 사랑하기를 아버지 사랑하듯 하였고 나라 걱정하기를 내 집 걱정하듯 하였노라. 하늘이 이 땅을 굽어보시니 내 일편단심 충정을 밝게 밝게 비추리.(愛君如愛父 憂國如憂家 白日臨下土 昭昭照丹衷)” 절명시를 다 쓰고 나서 제자 장잠을 불러 다음과 같이 유언을 남겼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으니 꼭 이를 실행하여다오.내가 죽거든 관은 얇은 것으로 해다오.무겁고 두꺼운 것은 절대로 써서는 안 된다.행여 무거운 것을 쓰면 먼 길에 돌아가기가 어려울 것이므로 반드시 얇은 것으로 장만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조광조는 문 밖에 있는 양팽손을 방 안으로 불러들였다고 한다. 이후부터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다만 야사로만 전하는데,뒤늦게 들어온 양팽손을 향해 조광조는 사기에 나오는 공자의 마지막 노래를 읊었다고 한다. “양공,어째서 이토록 늦게 오셨소이까. 태산이 무너지는가. 양주(梁柱)는 꺾이는가. 철인(哲人)은 시드는가.” 그러고 나서 조광조는 공자가 남긴 유언을 다음과 같이 읊조린다. “아아,천하에는 도가 없구나.” 이 말을 들은 양팽손이 왈칵 눈물을 쏟기 시작하자 조광조는 양팽손의 손을 잡고 ‘양공,안녕히 계십시오.신이 먼저 갑니다’라고 위로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부탁이 있소이다.양공,나 죽은 후에 반드시 걸망 속에 들어 있는 태사혜를 신겨주시오.내 두 발에 신발을 신긴 채 매장시켜 주시오.”
  • 儒林(87)-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과연 양팽손의 말은 사실이었을까.갖바치가 준 한 쪽은 검고,한 쪽은 흰,짝짝이의 태사혜는 김안로의 표현대로 꽃잎이 짙고,옅은 차이에 불과하였던 것일까. 갖바치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문장.‘천 층 물결 속에서 몸이 뒤집혀 나오고 천년세월도 검은 신은 희게 하지는 못하는구나’라는 참언 역시 단순히 매계 조위의 옛 고사를 빌려온 인용문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요동의 점쟁이가 남긴 점술도 매계가 살아 생전에는 그 마지막 문장인 ‘바위 밑에서 사흘 밤 잠들기를 기다린다’라는 글을 해독하지 못하였다. 죽은 후 관이 쪼개어져 부관참시를 당한 후 연산군의 명에 의해서 사흘 동안이나 장례를 치르지 못한 후에야 사람들은 그 점괘의 정확함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그렇다면 ‘천년세월도 검은 신을 희게 하지는 못하는구나’라는 마지막 문장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조광조가 중종의 명에 의해서 사약을 받은 것은 12월16일.기록에 의하면 눈이 강산처럼 내리던 한겨울날이었다고 한다.조광조가 능주에 도착한 것이 11월26일이었으니,도착한지 한 달도 못되는 20여일 만에 금부도사 유엄이 갖고 온 사약을 받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게 되는 것이다. 그때까지도 갖바치가 남기고 간 참언의 수수께끼는 풀리지 아니하였는데,‘정암집’에는 조광조의 최후를 다음과 같이 담담히 기록하고 있다. “조광조는 ‘어찌하여 사사의 명만 있고 사사의 글은 없느냐’고 묻고 남곤이 그 동안 정승이 되고,금부당상에 심정이 되었다는 말을 들은 후 ‘그러면 나의 죽음이 의심이 없다’고 대답한 후 ‘죽는 것이 오늘을 지나치지 아니하면 될 것이 아닌가.편지를 써서 집으로 보내고 또 분부할 일이 있으니 이를 처리하고 죽는 것이 어떠한고’하고 물었다. 유엄이 이를 허락하자 조광조는 곧 집으로 들어와서 아내에게 조용히 편지쓰기를 마치고 마침내 그 유명한 절명시를 쓰기 시작한다.” “임금 사랑하기를 아버지 사랑하듯 하였고 나라 걱정하기를 내 집 걱정하듯 하였노라. 하늘이 이 땅을 굽어보시니 내 일편단심 충정을 밝게 밝게 비추리.(愛君如愛父 憂國如憂家 白日臨下土 昭昭照丹衷)” 절명시를 다 쓰고 나서 제자 장잠을 불러 다음과 같이 유언을 남겼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으니 꼭 이를 실행하여다오.내가 죽거든 관은 얇은 것으로 해다오.무겁고 두꺼운 것은 절대로 써서는 안 된다.행여 무거운 것을 쓰면 먼 길에 돌아가기가 어려울 것이므로 반드시 얇은 것으로 장만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조광조는 문 밖에 있는 양팽손을 방 안으로 불러들였다고 한다. 이후부터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다만 야사로만 전하는데,뒤늦게 들어온 양팽손을 향해 조광조는 사기에 나오는 공자의 마지막 노래를 읊었다고 한다. “양공,어째서 이토록 늦게 오셨소이까. 태산이 무너지는가. 양주(梁柱)는 꺾이는가. 철인(哲人)은 시드는가.” 그러고 나서 조광조는 공자가 남긴 유언을 다음과 같이 읊조린다. “아아,천하에는 도가 없구나.” 이 말을 들은 양팽손이 왈칵 눈물을 쏟기 시작하자 조광조는 양팽손의 손을 잡고 ‘양공,안녕히 계십시오.신이 먼저 갑니다’라고 위로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부탁이 있소이다.양공,나 죽은 후에 반드시 걸망 속에 들어 있는 태사혜를 신겨주시오.내 두 발에 신발을 신긴 채 매장시켜 주시오.”˝
  • [씨줄날줄] 국군포로 유골 귀국/강석진 논설위원

    꽃다운 나이 스물셋에 포로가 됐던 한 국군이 53년 만인 2004년 5월1일 백골이 되어 귀국했다.그의 이름은 대한민국 육군 제5사단 일병 백종규.살아서 이 땅을 다시 밟은 국군 포로는 다수로되 유골로 돌아온 것은 그가 처음이다. 아버지의 유골을 들고 2002년 4월 북한을 떠나 2년여 만에 겨우 귀국하게 된 딸 영숙씨는 “고향인 경북 청도에 내 뼈를 묻어 달라.”고 아버지가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무엇이 그토록 그리웠길래 백골이 되어 넋이라도 고향땅을 밟으려 하였을까.아내를 얻고 딸을 낳은 함경북도 그곳은 제2의 고향이 아니 되던가.아마 ‘나’를 영영 잊어버린 것 같아 더욱,오고 갈 수 없기에 더더욱 고향이 그리웠을 것이다.그래서 이북 용천의 큰 사고로 비탄에 잠긴 북녘 동포를 돕기 위해 대한항공 화물기가 떠난 공항으로 노병은 딸의 가슴에 안겨 돌아온 것이다. 그가 무엇을 알아 총에 탄알을 장전하고,무엇을 이루려고 옷만 다르게 입은 형제를 향해 돌격해 갔을까.그가 모든 것을 이해하면서 철모를 썼을지,단지 명령이라서 캄캄한 밤 앞으로 앞으로 행군해 나아갔을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그러나 포로가 된 이후 남쪽에서 훈풍이 불어오면 고향을 그리고,산기슭에 진달래 붉게 물들면 동네 뒷산에서 같이 놀던 동무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의 귀환은 그런 수많은 국군 포로와 유골이 아직도 북녘땅에 점재함을 짐작케 한다.그의 귀환은 애써 눈을 돌리고 귀를 막았던 나라와 정부와 우리 모두에게 뇌성벽력처럼 존재의 신호를 보낸다.아울러 북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 땅의 산 자와 죽은 자에 대해서도 따스한 배려가 이젠 필요하다고 우리는 깨닫는다. 유전자 감식 등 확인 절차가 남아 있기에 그는 공식 안장까지 잠시 더 기다려야 한다.53년의 기다림에 덤까지 얹혀 있다는 게 께끄름하지만,죽고 다치고 끌려간 모든 이들의 귀환이 1차적으로 셀프 서비스가 아니면 안되는 세상이기에 그 정도 기다림은 오히려 행운에 속한다고 생각하자.유골로 돌아오는 국군 포로에 대한 보상 규정이 없다는 말도 흘려 듣자.조국을 위해 희생한 자의 뜻을 기리는 데 더 이상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규정이 바뀔 것을 믿기 때문이다.진혼곡 나팔 소리와 함께 고향 땅에서 그의 혼백이 편히 쉬기를 기원한다. 강석진 논설위원 sckang@seoul.co.kr˝
  • 아이들에게 배워야 한다/이오덕 지음

    지난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우리 국민이 보여준 뜨거운 응원 열기는 전무후무한 사회현상이었다.많은 사회학자와 심리학자,역사학자들이 어느날 갑자기 용암처럼 분출된 이 집단 신명의 배경과 의미를 분석하는 이론들을 내놓았지만 표면적인 현상 진단을 넘어 그 근원까지 파고드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우리말 지킴이로,어린이 문학가로 한평생을 살다 지난해 8월 세상을 떠난 이오덕씨는 그 역사의 현장에서 터져나온 국민의 함성을 ‘해방’의 소리로 보았다.오랜 기간 억눌려 있던 사람들이 비로소 신명나는 자기 표현의 기회를 갖게 됐다는 것.그리고 어떻게 해야 이같은 기쁨의 소리를 다시 찾고,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이 책은 이씨가 그해 여름 ‘붉은악마’의 함성을 계기로 쓴 1200장 분량의 글 26편을 묶어 펴낸 미발표 유고집이다. 그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억압 구조의 뿌리를 ‘그릇된 교육’에서 찾는다.대학을 안 나오면 사람 구실을 못하는 것으로 여기는 사회구조와 무한경쟁체제를 부채질하는 학벌위주의 입시제도야말로 우리를 옴짝달싹 못하게 억눌러온 틀이라고 지적한다.또 글쓰기나 말하기,듣기 등 모든 교육에서 아이들에게 자신을 표현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대신 주입식 교육을 강조하는 실태에 대해서도 개탄을 금치 못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교육을 바꿔야 할까.그는 학벌위주의 망국풍조를 하루빨리 뜯어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학벌이 깨지면 입시경쟁이 무너지고,학교 폭력이나 왕따 같은 문제도 차츰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한다.그러면서 아이들을 믿지 못하는 어른들에게 일침을 가한다.‘아이들이 게으르다고? 세상에 게으른 아이가 어디 있었던가? 만약 게으른 아이가 있다면 병이 든 아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믿고,아이들에게서 배우려는 자세를 지닐 때 희망의 싹을 틔울 수 있음을 마지막 유언으로 전해주고 있다.1만 2000원. 이순녀기자 coral@˝
  • [儒林 속 한자이야기](16)

    유림 66에 음락(淫樂)이 나오는데,淫은 주로 ‘음탕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水)자가 들어간 한자는 汗(땀 한),沐(머리감을 목),注(물댈 주),油(기름 유)와 같이 뜻은 물과 관련하여 형성되며,음은 水를 제외한 부분이 된다. 樂은 나무에 몇 개의 줄을 매어놓은 악기,또는 악기대(木)에 걸어 놓은 크고 작은 북이라는 설(說)이 있는데,그 뜻과 음은 세가지로 활용된다. 첫째로 음악(音樂),관악기(管樂器)에서처럼 ‘풍류 악’으로 쓰인다.악기 중에는 줄을 이용한 현악기(絃樂器)도 있는데,옛날에는 琴(거문고 금)과 瑟(비파 슬)이 대표적이었다.이 두 악기는 연주할 때 좋은 화음을 이루기에 부부(夫婦)에 비유돼 부부사이가 좋은 경우를 ‘금슬이 좋다,또는 금슬상화(琴瑟相和)’라 하며,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를 금슬부조(琴瑟不調)라 한다. 둘째는 낙관적(樂觀的),낙천적(樂天的),동고동락(同苦同樂)처럼 ‘즐거울 락’으로 쓰인다.장자(莊子)는 지락편(至樂篇)에서 지락무락(至樂無樂),즉 최고의 즐거움은 즐거움을 느끼지 못할 정도의 즐거움이라 했다. 장자는 아내가 죽었을 때도 물동이를 치며 노래까지 불렀는데,친구인 혜자가 책망하자 아내는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갔으니 자연의 이치를 안다면 슬퍼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이와 관련한 일화는 장자(莊子)의 ‘고분이가(鼓盆而歌)’에 나온다.장자가 여름날 산길을 가는데 소복입은 젊은 여인이 무덤에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남편이 죽기 전 자기가 죽으면 무덤에 풀이나 마르거든 개가(改嫁)하라고 유언했는데,그렇게 되려면 올여름도 그냥 보내야 하기에 풀을 빨리 말리기 위한 것이라 했다.이 이야기를 들은 장자의 아내는 분개하며 자신은 절대 개가하지 않겠다고 했다.이에 장자가 처의 지조를 시험하려고 도술을 부려 죽은 척하였다.아내는 장자가 정말 죽은 줄 알고 장자를 입관하여 대청에 안치했다.며칠 후 이웃나라 왕자라는 사람이 조문왔는데,장자의 처는 한눈에 그에게 반했다.저녁이 되자 자고 가라는 장자 처의 요청에 왕자는 못이기는 척 허락했다.저녁에 부인이 술상을 들고 방에 들어서자 왕자가 청혼을 했다.흥분한 장자의 처는 자기 방으로 돌아온 후 곧바로 상복을 벗고 다홍치마에 화장을 하고는 밤이 깊어지자 슬며시 왕자의 방에 들어갔다.그런데 왕자가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며 자기는 난치병을 앓고 있는데,죽은 지 백일 이내의 시체 골수를 먹어야 살 수 있다고 말했다.그러자 장자의 처는 장자 골통을 깨려고 도끼로 관 뚜껑을 뜯었다.죽은 줄 알았던 장자가 벌떡 일어나며 “당신은 내가 살아날 것을 어찌 알았소? 또 무슨 일로 다홍치마에 분을 발랐소?”라며 능청을 떨었다.놀란 장자의 처가 미친 듯 건넌방으로 가보니 왕자는 없었다.이에 장자 처는 부끄러워 물동이를 뒤집어쓰고 마당가 우물에 빠져 죽었다.그래서 장자가 그 물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는데 여기서 상처(喪妻)를 뜻하는 고분지통(叩盆之痛),또는 고분지탄(叩盆之嘆)이 나왔다. 셋째는 논어에 공자(孔子)가 말한 ‘지자요수 인자요산(智者樂水 仁者樂山,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에서와 같이 ‘좋아할 요’로 쓰인다. 樂자가 이상과 같이 쓰이고 있음을 볼 때 淫樂은 ‘음탕함과 즐거움 또는 음탕하게 즐김’이고,淫樂(음악)은 ‘음탕한 음악’으로 해석되는데,한자어는 다소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박교선 ˝
  • 서울탱고-떠나가는 배

    “저 푸른 물결 외치는/거센 바다로 오 떠나가는 배/내 영원히 잊지 못할/임 실은 저 배야 야속해라/날 바닷가에 홀로 남겨두고/기어이 가고야 마느냐.” 가곡 ‘떠나가는 배’는 제주출신 시인 양중해의 글에 6·25 당시 제주에 피란왔던 풍운의 작곡가 변훈이 곡을 붙인 노래다.이 노래는 섬이 안고 있는 숙명을,전쟁의 아픔과 상처를,인간이면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별리의 정서를 담은 곡으로 ‘한국적 리얼리즘 가곡’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노래가 지어질 당시인 50년대만 해도 제주와 육지를 잇는 교통수단은 뱃길뿐이었다.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황영호·유명호·남신호·이리호·제천호·평택호·광성호 등 목선 기선들이 부산이나 목포에서 제주를 오고 갔다.그래서 당시의 제주부두는 오는 이들을 맞는 환희와 해후의 장소였을 뿐 아니라,떠나는 이를 보내는 작별과 통한의 나눔터였다. 1957년 2월 서울~제주간 대한항공공사 소속 KNA기가 운항을 개시하고,이어 1962년 12월 제주~서울간에 DC13기종의 30석짜리 KAL기가 취항했어도 제주부두는 여전히 육지와의 연결고리였다.10시간 가까이 배멀미와의 싸움은 60년대 말까지 계속됐다. 출항을 알리는 남일해의 ‘잘있거라 항구야’는 어찌해서 손수건을 적시게 만드는지,닻을 올리는 순간부터 울리는 굵은 뱃고동 소리는 왜 그리도 가고 보내는 이들의 가슴을 후벼대는지…,선창에 남은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여객선 화통의 검은 연기가 수평선 너머 사라질 즈음에야 붉은 눈으로 돌아서곤 했다. ‘떠나가는 배’ 역시 제주부두가 고향이다.어느 노래든 배경과 사연이 있게 마련이지만 이 노래 역시 기구한 사연을 안고 태어났다. 노랫말을 쓴 양중해(77·전국문화원연합 제주도지회장) 시인은 “시든 소설이든 사람 사는 방식을 유언처럼 남기는 문학작품”이라며 “1953년 시인 박목월이 젊은 여자와 피란 겸 사랑의 도피처로 제주를 택했고,둘의 사랑은 끝내 이별로 마감하게 됐으며,제주부두에서 여자가 탄 배가 수평선 너머 한 점으로 사라질 때까지 묵묵히 서 있던 목월의 심사를 담은 것이 바로 ‘떠나가는 배’”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놨다.(서울신문 4월21일자 9면 보도) 양 시인의 말을 듣고 목월의 제주거주 당시를 추적한 끝에 목월이 1년동안 묵었다던 제주시 관덕정 인근 동화여관집 아들 이창주(64)씨를 만날 수 있었다.그때 중학교 2학년생이었다는 이씨는 “여자는 대학생으로 성은 한씨이며 무척 예뻤고 말수가 적고 다소곳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말을 빌리면 둘의 동거는 6∼7개월 계속됐으며,그녀는 목월이 제주대학으로 출근할 때나 귀가할 때 언제나 웃는 낯으로 보내고 맞았다.그러던 어느날 목사인 여자의 아버지가 서울에서 딸을 데리러 내려왔다.가지 않겠노라는 딸을 이틀 낮밤에 걸쳐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사흘째 되는 날 서울로 가기 위해 부두로 갔다.이씨도 양중해·박목월 선생과 함께 부두까지 배웅나갔다.배에 오른 여자는 어깨만 들썩거릴 뿐,한 번도 뒤 돌아보지 않았고,셋은 배가 수평선 너머 사라질 때까지 마냥 서 있다가 돌아왔단다. “아마도 여자 분은 연인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겠지요.그때 저는 굉장히 울었어요.여관에 있는 동안 무척 정이 들었거든요.처연히 고개를 떨구며 돌아서던 목월선생의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당시 제주제일중학교 국어교사로 있던 양중해는 집으로 돌아온 즉시 ‘부두의 이별’을 시로 옮겨 같은 학교 음악교사인 변훈에게 음을 붙이도록 했고 가곡 ‘떠나가는 배’는 탄생한다. 이제 제주항 여객선 가운데 목선은 없다.위풍 당당한 코지아일랜드·오하마나·레인보우·컨티넨탈·페가서스·온바다훼리·뉴씨월드 등 3000∼9000t급 페리와 초고속선들이 부산·목포·여수·인천·완도·녹동 등을 오가며 연간 100만명이 넘는 손님들을 실어나르고 있다.암스테르담·퍼시픽비너스·클리퍼오디세이·크라운·닛폰마루 등 외국의 초대형 크루즈유람선들도 수시로 찾아온다.대합실 하나 없이 초라하던 여객선 부두에는 면세점 등 갖출 것 다 갖춘 대형 터미널이 들어앉았고,양곡·유류·비료·시멘트·목재·철재·잡화 등 연간 600만t에 이르는 연안화물이 입·출하되고 있다. 목월이 여자를 떠나 보내던 자리는 전체 일곱개 부두 가운데 여객부두인 제2부두가 됐다.그러나 제주항은 부두길이가 2582m로 길어졌음에도 선석이 포화를 이뤄 제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제주지방해양수산청은 지난 2001년 시작한 1374억원 규모의 제주외항 1단계 공사에 이어 1203억원 규모의 2단계공사를 추진,8만t급 크루즈선 부두와 2만t급 부두안벽 축조공사를 벌일 계획이지만 예산문제가 따라주지 않아 전전긍긍하고 있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 춘곤증을 확 깨워줄 색다른 영화 2편

    춘곤증을 확 깨워줄 색다른 드라마 2편을 소개한다.30일 나란히 개봉하는 일본 거장감독 이마무라 쇼헤이의 2001년작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과,스페인에서 날아온 ‘엄마는 여자를 좋아해’.두 작품은 이래저래 공통분모를 갖는다.인간내면에 숨겨진 내밀하고 기발한 욕망을 섹스코드를 빌려 경쾌한 어조로 풀어낸,아주 독특한 연애담들이라는 점.소규모 배급망 탓에 진가를 발휘하지 못한 채 막내릴 여지도 크다는 점.끝으로 하나 더.일단 보기만 하면 틀림없이 산뜻한 기분으로 극장문을 나설 것이란 사실이다. ●동성애 다룬 스페인 영화 ‘엄마는‘ 유럽영화를 지루하고 어려운 관념의 이미지틀에 가둬놓고 있었다면 이 영화를 계기로 그만 해방돼도 될 듯싶다.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화제작 ‘그녀에게’에서 발레리나로 나왔던 레오노르 와틀링이 상큼한 이미지로 코믹드라마의 분위기를 화사하게 띄워 올린다. 제목에는 사실과 오해가 반반씩 들어 있다.엄마가 여자를 좋아하는 동성애자란 암시는 ‘사실’.어감으로는 왠지 페미니즘 영화 냄새를 풍기지만 그렇진 않다.엄마의 동성애 때문에 세 딸이 빚는 해프닝을 그렸으되 성에 대한 편견을 노골적으로 공박하지는 않는다. 아빠와 이혼하고 혼자 사는 엄마 소피아(로사 마리아 사르다)가 생일파티에서 폭탄고백을 한다.스무살이나 어린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짐짓 태연한 척하면서도 속으론 경악한 세 딸들이 엄마의 여자애인을 떼놓기 위해 별의별 아이디어를 다 짜낸다. 영화는 소심한 둘째딸 엘비라(레오노르 와틀링)에게 무게중심을 옮겨,엄마의 동성애가 빚은 가족간의 갈등과 개개인의 혼돈을 여러 각도에서 투영해낸다.물론 전체 분위기는 코미디다.출판사에 다니는 엘비라는 인기작가 미구엘과 사이가 점점 좋아진다.하지만 스스로의 성적 정체성을 확신하지 못해 갈팡질팡한다.사랑의 취향이 유전될 수 있다는 정신과 의사의 말에 자신 속에도 있을지 모를 동성애 기질을 애써 찾고 또 부정하기를 거듭한다.세 자매들 중에서도 유독 소극적인 엘비라를 이야기의 축으로 세운 건 감독의 의도가 아닐까.매사에 주눅들어 살던 엘비라가 뜻밖에 마주친 갈등을 딛는 과정에서 보기에 따라 다양한 메시지를 잡아낼 수 있다.여주인공의 초라한 내면세계를 유쾌한 시선으로 이끌어낸 점에서는 심리드라마 같기도 하다.또 보수이미지를 대변하는 캐릭터인 엄마가 오랜 사회금기인 동성애에 빠진다는 설정은 성(性)을 단순한 코미디 소재로만 끌어들이지 않았음을 암시한다.농담 속에 알쏭달쏭 진담이 섞인,독특한 질감의 유럽산 코믹드라마다. 스페인 출신인 와틀링은 이 영화로 최근 프랑스 로맨틱 코미디에서 깜찍한 외모로 사랑받는 오드리 토투의 국내팬층을 앗아갈 것 같다.이네스 파리스,다니엘라 페허만 등 스페인의 두 여성감독이 공동연출했다. 황수정기자 sjh@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붉은 다리‘ ‘나라야마 부시코’(1983)와 ‘우나기’(1997)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두 차례나 거머쥔 일본의 이마무라 쇼헤이(78) 감독의 2001년 작품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이 30일 개봉된다. 팔순을 눈앞에 두고도 영원한 현역 정신을 자랑하는 거장의 이번 작품은 ‘포르노적인 상상력’에 팬터지라는 옷을 입힌,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실업수당으로 근근이 버티는 40대 가장 요스케(야쿠쇼 고지)는 자신이 묻어둔 금부처를 찾아서 가지라는 ‘거리의 철학자’ 다로(기타무라 가주오)의 유언에 따라 교토의 바닷가 마을로 내려간다.그가 붉은 다리 옆에 있는,보물을 숨겨뒀다는 2층집에 사는 이상한 여인 사에코(시미즈 미사)를 만난 뒤 다양한 일을 겪으면서 영화는 팬터지와 우화의 세계로 접어든다. 이따금 몸에 물이 차오르고 그 때마다 성욕이 발동하는 병에 걸린 그녀는 누구에게도 말을 못하는 이 고통을 절도행각으로 누르고 있다.이를 알게 된 요스케는 임시 선원으로 일하며 그녀가 사인을 보낼 때마다 달리기선수보다 더 빨리 달려가 섹스로 달래준다.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달래주고 서로에게 위안을 받는다. 정사 도중 사에코의 몸에서 분수처럼 뿜어나오는 장면이나,그 물이 계단을 지나 수로를 타고 강으로 흘러들면 물고기떼들이 몰려오는 기상천외의 상상력에서 이마무라 쇼헤이만의 저력이 느껴진다.조금 황당해보이는 기발한 상황 설정 속에는 ‘성장 신화’를 향해 질주하느라 메말라버린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일상을 풍자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가 담겨 있다. “21세기는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별로 없어요.”(사에코)나 “자본주의 사회는 감옥과 같아.말없이 일만하는 바보를 원해.”(요스케) 등의 대사에 현실을 향한 감독의 시선이 녹아 있다.실직 뒤의 구직난,아내의 생활난 불평, 구직 독촉에 시달리는 요스케는 일상에 억압받는 현대인들을 상징한다.감독은 그 탈출 방법으로 ‘욕망의 힘’을 강조한다.“욕망에 충실하는게 진짜 삶이야.”라거나 “요즘 인간은 다 병자야.진정한 욕망을 외면한다.”“쫀쫀하게 굴지 말고 욕망에 충실해.” 등의 대사가 곳곳에 포진하면서 원초적인 에너지를 회복할 것을 강조한다.독특한 캐릭터를 지닌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켜 웃음을 더하는 것도 이마무라 쇼헤이의 연륜이 빛나는 대목이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17일 TV 하이라이트]

    ●!느낌표(오후 9시45분) 인천지방경찰청에서 근무하는 경찰들을 상대로 ‘효짱’을 찾아나선다.여순경들이 털어놓는 자신들만의 고민거리가 공개되고,일선에서 활약하는 형사들이 말하는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진다.‘아시아!아시아!’코너에서는 특집으로 중국 숙주에서 살고있는 일본군 위안부 곽예남 할머니의 ‘60년만의 귀향’을 준비했다. ●씨네24(낮 12시25분) 누구나 한 번씩은 해볼만한 상상을 토대로 한창 제작중인 영화 ‘내 남자의 로맨스’ 촬영 현장을 찾아간다.‘대한민국 최고의 코미디 여왕’으로 등극한 김정은과,진지하고 깊이 있는 연기로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배우 김상경이 함께한다.‘자유,독립,소통’ 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2004년 전주 국제영화제를 소개한다. ●애니토피아(오후 9시10분) 제5회 전주국제영화제(JIFF)가 오는 23일부터 열린다.‘독립정신’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영화제에서는 35개국에서 출품된 250여편이 전북대 문화회관과 영화의 거리 등 전주 시내 일원에서 상영된다.소개되는 작품에는 어떤 애니메이션이 있는지,그 작품들을 미리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다. ●뮤직n조이(오후 6시) 앨범 홍보차 처음으로 한국을 찾는 세계적인 R&B스타 ‘어셔’.99년 첫 앨범을 발표한 이후 감미로운 목소리와 파워댄스를 겸비한 신세대 스타로 팝계를 주름잡아 온 그를 만나본다.우리 나라의 신세대 가수 비,세븐,휘성 등 많은 스타들이 자신들의 음악적 모델로 삼고 있다는 뮤지션 어셔.그동안 그가 보여준 멋진 라이브무대를 만나본다. ●솔로몬의 선택(오후 6시50분) 혼자서 비디오로 작성한 유언,아들에게 대필을 부탁한 유언,유언자 스스로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한 유언,이름대신 별명으로 작성한 유언 중에서 유언으로 효력이 있는 것은 어떤 것인지 살펴본다.이밖에 커플 여행을 가기로 했다가 여행이 취소될 경우 여행 취소와 관련한 위약금을 배상받을 수 있는지 살펴본다. ●속 보이는 밤(오후 10시) 복잡하고도 미묘한 사람의 속마음,극과 극을 오가는 인간의 심리,그 심리의 세계로 가는 지름길을 안내한다.‘사과 따는 사람’그리기를 통해 알아본 스타의 인간관계,사랑,돈.스타들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한 그림들 속에 감춰진 결과를 공개한다.그리고 미술치료 전문가의 재치 넘치는 해석으로 숨겨진 스타의 속마음을 들여다본다. ●무인시대(오후 10시20분) 두두을은 이의민에게 자선의 죽음과 양민학살을 한 죄를 질타하며 이제 이의민과의 인연을 끊어버릴 것이라 한다.박진재는 암살을 도모하는 최충수를 찾아가 음모가 발각되었으니 거사를 포기하라 말한다.최충헌은 최충수와 함께 이지영을 찾아가 명백한 증좌도 없이 우봉가문에 누명을 씌우지 말라며 항의한다. ˝
  • [We 동화] 오소리의 유언

    말갛게 익은 홍시빛 노을이 번져가는 저녁,굴 안에 웅크린 오소리는 아직 꽃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어. ‘일어나야 할 텐데….’ 머릿속에서는 그런 생각이 뱅뱅 돌았지만 온몸이 녹작지근해서 발끝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지.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굴 안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오소리를 부르는 게 아니겠어? “여보게 오소리! 자네,거기 있나?” 오소리는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나 앉았지.초대하지도 않은 손님이? “허허,날세 나야! 자네 친구 너구리라고!” 오소리는 어이가 없었어.인연이라고는 언젠가 한 번 스쳐지나간 것밖에 없는데,친구라니.더구나 이런 시간에! “그,그런데 웬일인가,여기까지?” 애써 속마음을 숨기려다 보니 말까지 더듬게 됐어.오소리는 엉거주춤하게 선 채로 너구리를 바라보았지. “웬일이라니! 아,자네가 이렇게 훌륭한 보금자리를 꾸며 놓았는데 얼굴 한 번 안 비친대서야 말이 되겠는가? 축하도 하고 집 구경도 하고 뭐,겸사겸사 이렇게 왔네.자,어서 안내하게.친구를 언제까지 이렇게 문 앞에 세워둘 건가?” 너구리의 너스레는 보통을 넘었어.오소리의 어깨를 툭툭 쳐가며 마치 제 집인 듯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거든. 거절하고 어쩌고 할 틈도 없었지.쭐레쭐레 너구리를 뒤따라 걸으면서 오소리는 기가 막혔어.집 구경이라니! 도대체 누가 자기 굴을 보여준다는 거야? 어느 정신 빠진 오소리가? 웃는 낯에 침 뱉기가 뭐해서 가까스로 울화를 참고 있는 오소리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너구리는 한술 더 떴어.자기도 이 굴에서 함께 살면 안되겠느냐고 아주 공손하게 부탁을 한 거야. ‘물론 안 되지.안 되고 말고.’ 오소리가 막 그 생각을 소리내어 말하려고 하는데 너구리가 덧붙였지. “나는 괜찮은데 새끼들이 딱해서…자네도 혼자몸이 아니니 긴말할 필요도 없겠네만…부모 맘이란 다 같은 게 아니겠나?” 딱 잘라서 거절하려던 오소리는 갑자기 마음이 약해졌지.다른 것도 아니고 새끼 때문이라니….그 틈을 놓칠 리가 없지.너구리는 재빨리 호들갑을 떨었어. “아,고맙네.정말 고마워.자네 덕분에 우리 온가족이 비바람을 피할 수 있게 됐네.고맙네.정말 고마워! 절대로 폐는 끼치지 않겠네.내,약속하지.” 오소리는 ‘당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그러나 어쩌겠어? 이야기는 이미 끝났는데. 그날 이후 너구리와 오소리는 함께 살게 되었지.한동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굴속은 평화로웠고,굴 밖 또한 조용했지.그러나 얼마 뒤,오소리는 집 근처에서 아주 불쾌한 냄새를 맡았어.너구리의 똥더미에서 나는 냄새.오소리는 또 한번 기가 막혔어.더럽다거나 냄새가 난다거나 하는 것은 둘째였어.문제는 누군가가 그 똥더미를 보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굴의 입구를 찾아낼 수도 있다는 것이었지.그리고 그것은 모두의 생명과 관계되는 중요한 일이었고. ‘가만 두나 봐라!’ 오소리는 한달음에 너구리에게 달려가 따졌어.하지만 너구리는 느물느물 웃었지. “뭐 그만한 일로 목소리를 높이나? 알았네 알았어.아,곧 치우겠대도!” 그러고는 도토리 몇 알을 내밀었지. “미안하게 됐네.그렇지만 이제 알아들었으니 그만해 두게.그만하고,이것 맛 좀 보게.자네 주려고 따왔네.아직 철이 좀 이르긴 하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할 걸세.” 결국 오소리는 우물쭈물 너구리의 눈치만 보았지.마음 같아서는 혼자라도 후다닥 치워버리면 속이 편할 것 같았지만 차마 그러지도 못하고.불안하고 개운치 않아서 바짝바짝 속이 탔지.그렇게 며칠을 더 보낸 후,마침내 오소리는 사냥을 나서며 결심을 했지. ‘내가 돌아오는 내일 아침까지,그때까지도 이 똥더미를 안 치워놓는다면 이젠 정말 말해야지.너구리,너와 친구 하지 않겠다고.아니 내 집에서 나가라고 딱부러지게 말해야겠어.’ 그러나 다음날 아침,집으로 돌아오던 오소리가 발견한 것은 굴 앞에 웅크리고 있는 스라소니였어.누구든 굴속에서 나오기만 하면 언제든 덤벼들 준비를 한 채 기다리고 있는 사나운 육식 동물…. 조금만 더 있으면 어미를 기다리다 지친 새끼들이 아무 것도 모른 채 굴 밖으로 나올 텐데.오소리의 온 몸이 와들와들 떨렸어.아,아,그렇게 되면….간이 오그라 붙는 것 같아서 더 이상 숨을 쉴 수가 없었지.오소리는 정신을 차리려고 흡,흡 심호흡을 했어.그러고는 소리쳤지. “얘들아,나오지 마라.나오지 마! 절대로 나오면 안 돼! 굴 밖에 스라소니가 있어! 스라소니가….” 미처 말꼬리를 맺지도 못한 채,오소리는 새끼들이 있는 굴과 반대 방향으로 달아나기 시작했어.그것은 오소리가 지상에서 남긴 마지막 말이 되었지. 파랑새어린이의 ‘우물쭈물 오소리 우화’에서 글 이윤희 그림 배혜영 ●작가의 말 부드럽게,웃으면서,거절하는 요령이 정말 필요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순간적으로 거절할 타이밍을 놓쳐서 큰 곤욕을 당하는 실례들을 보면서 오소리의 절망감과 가슴 치는 후회를 생각합니다.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건 뒤의 너구리입니다.너구리는 정말 뼈아프게 반성할까요? 정말 미안해할까요? ˝
  • [부고]

    ●폐암투병 탤런트 이미경씨 폐암 투병 중이던 탤런트 이미경(44)씨가 11일 끝내 세상을 등졌다.고인은 11일 오후 10시30분쯤 오빠 성진씨와 대학 동창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이씨는 지난해 10월말 SBS대하사극 ‘왕의 여자’ 출연중 성대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다가 폐암 선고를 받아 곧바로 드라마에서 하차했다.서울 원자력병원에 입원했으나 차도가 보이지 않아 지난달부터 집과 병원을 오가며 투병생활을 해오다가 이달 초부터 상태가 극도로 악화됐다. 임종을 지켜 본 한 지인은 “치료를 포기한 상태에서 며칠 전부터 친오빠와 대학동창들이 번갈아가며 간병해 왔다.”며 “이렇다 할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고 전했다. 빈소는 서울 이대 목동병원 영안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3일 오전 5시.가족들은 시신을 화장해 일산의 납골당에 안치키로 했다. ●高性鎬(롯데 기업문화실 부장)씨 백씨상 12일 낮 12시 경기 부천시 가톨릭성가병원,발인 14일 오후 2시 (032)340-7300,018-396-5707 ●李天載(법무부 공보관실 사무관)씨 부친상 11일 오전 9시 서울 경희의료원,발인 13일 오전 11시30분 (02)957-3099 ●李景洙(자영업)亨洙(한국방송광고공사 홍보부 차장)允洙(예성초등학교 교사)씨 부친상 12일 오전 5시 충북 충주의료원,발인 14일 오전 9시 (043)841-0382 ●金滋鉉(전 의협신문 주필)씨 별세 永錫(삼성SDS 과장)永宰(중외제약 주임)씨 부친상 李侖珍(싱가폴항공 대리)씨 시부상 李成一(국방부 군종실 군종목사)씨 빙부상 12일 0시4분 서울대병원,발인 14일 오전 8시 (02)760-2025 ●金東旭(자영업)씨 부친상 奇永德(종근당 상무)씨 빙부상 11일 오전 5시50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13일 오전 8시 (02)392-0499 ●愼興範(전 외환은행 지점장)씨 별세 成皓(알스바 영업담당이사)晟熙(유니버설뮤직 과장)씨 부친상 李鍾奭(제오빌더 영업차장)씨 빙부상 10일 오후 7시10분 서울 강북삼성병원,발인 13일 오전 6시 (02)2001-1096 ●金允培(건설공제조합 총무부장)二培(대림자동차 서울사업소장)昌培(한화증권 온라인사업센터 상무)根培(현대자동차 소장)淸培(삼신문화사 상무)씨 부친상 崔子善(삼신문화사 대표)씨 빙부상 12일 0시10분 삼성서울병원,발인 14일 오전 9시 (02)3410-6906 ●李亨敏(전 산업은행 이사)씨 별세 根鎬(미국 립튼 부사장)根雄(미국 거주)根賢(대우건설 전무)씨 부친상 李弼圭(보험신보 회장)朴昌淳(강신산업 대표)씨 빙부상 11일 오후 11시45분 서울대병원,발인 14일 오전 9시 (02)760-2091 ●朴乙鏞(한동대 석좌교수)씨 별세 惟辰(미국 거주)씨 부친상 12일 0시15분 서울아산병원,발인 14일 오전 7시 (02)3010-2238 ●李俊曉(더보스톤컨설팅그룹 어소시에이트)씨 부친상 炯八(동화기업 사장)炯九(한화마트 사장)宗哲(세화기계 전무)씨 제씨상 11일 오후 8시5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13일 오전 8시30분 (02)3010-2293 ●金明洙(광주생활체육협의회 사무처장)씨 부친상 12일 오전 전남 순천시 성가롤로병원,발인 14일 오전 9시 011-601-5169 ●김정렬(자민련 정책국장)박경태(스카이삭스 대표)씨 빙부상 12일 오후 1시15분 인천 남동구 간석4동 광연병원,발인 14일 오전 9시 (032)429-2213 ●閔景重(전 대한사이클연맹 회장)씨 별세 12일 오후 1시30분 서울 강남성모병원,발인 14일 오전 8시 (02)590-2560
  • [부고]

    ●폐암투병 탤런트 이미경씨 폐암 투병 중이던 탤런트 이미경(44)씨가 11일 끝내 세상을 등졌다.고인은 11일 오후 10시30분쯤 오빠 성진씨와 대학 동창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이씨는 지난해 10월말 SBS대하사극 ‘왕의 여자’ 출연중 성대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다가 폐암 선고를 받아 곧바로 드라마에서 하차했다.서울 원자력병원에 입원했으나 차도가 보이지 않아 지난달부터 집과 병원을 오가며 투병생활을 해오다가 이달 초부터 상태가 극도로 악화됐다. 임종을 지켜 본 한 지인은 “치료를 포기한 상태에서 며칠 전부터 친오빠와 대학동창들이 번갈아가며 간병해 왔다.”며 “이렇다 할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고 전했다. 빈소는 서울 이대 목동병원 영안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3일 오전 5시.가족들은 시신을 화장해 일산의 납골당에 안치키로 했다. ●高性鎬(롯데 기업문화실 부장)씨 백씨상 12일 낮 12시 경기 부천시 가톨릭성가병원,발인 14일 오후 2시 (032)340-7300,018-396-5707 ●李天載(법무부 공보관실 사무관)씨 부친상 11일 오전 9시 서울 경희의료원,발인 13일 오전 11시30분 (02)957-3099 ●李景洙(자영업)亨洙(한국방송광고공사 홍보부 차장)允洙(예성초등학교 교사)씨 부친상 12일 오전 5시 충북 충주의료원,발인 14일 오전 9시 (043)841-0382 ●金滋鉉(전 의협신문 주필)씨 별세 永錫(삼성SDS 과장)永宰(중외제약 주임)씨 부친상 李侖珍(싱가폴항공 대리)씨 시부상 李成一(국방부 군종실 군종목사)씨 빙부상 12일 0시4분 서울대병원,발인 14일 오전 8시 (02)760-2025 ●金東旭(자영업)씨 부친상 奇永德(종근당 상무)씨 빙부상 11일 오전 5시50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13일 오전 8시 (02)392-0499 ●愼興範(전 외환은행 지점장)씨 별세 成皓(알스바 영업담당이사)晟熙(유니버설뮤직 과장)씨 부친상 李鍾奭(제오빌더 영업차장)씨 빙부상 10일 오후 7시10분 서울 강북삼성병원,발인 13일 오전 6시 (02)2001-1096 ●金允培(건설공제조합 총무부장)二培(대림자동차 서울사업소장)昌培(한화증권 온라인사업센터 상무)根培(현대자동차 소장)淸培(삼신문화사 상무)씨 부친상 崔子善(삼신문화사 대표)씨 빙부상 12일 0시10분 삼성서울병원,발인 14일 오전 9시 (02)3410-6906 ●李亨敏(전 산업은행 이사)씨 별세 根鎬(미국 립튼 부사장)根雄(미국 거주)根賢(대우건설 전무)씨 부친상 李弼圭(보험신보 회장)朴昌淳(강신산업 대표)씨 빙부상 11일 오후 11시45분 서울대병원,발인 14일 오전 9시 (02)760-2091 ●朴乙鏞(한동대 석좌교수)씨 별세 惟辰(미국 거주)씨 부친상 12일 0시15분 서울아산병원,발인 14일 오전 7시 (02)3010-2238 ●李俊曉(더보스톤컨설팅그룹 어소시에이트)씨 부친상 炯八(동화기업 사장)炯九(한화마트 사장)宗哲(세화기계 전무)씨 제씨상 11일 오후 8시5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13일 오전 8시30분 (02)3010-2293 ●金明洙(광주생활체육협의회 사무처장)씨 부친상 12일 오전 전남 순천시 성가롤로병원,발인 14일 오전 9시 011-601-5169 ●김정렬(자민련 정책국장)박경태(스카이삭스 대표)씨 빙부상 12일 오후 1시15분 인천 남동구 간석4동 광연병원,발인 14일 오전 9시 (032)429-2213 ●閔景重(전 대한사이클연맹 회장)씨 별세 12일 오후 1시30분 서울 강남성모병원,발인 14일 오전 8시 (02)590-2560 ˝
  • “체호프 희극정신 제대로 전해야죠” ‘갈매기’ 연출 지차트코프스키

    러시아를 대표하는 모스크바예술극장의 무대막에는 비상하는 갈매기가 새겨져있다.세계적인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걸작 ‘갈매기’를 기리는 상징물이다.1896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될 당시 혹평을 면치 못했던 이 작품은 2년 뒤 이 극장에서 다시 무대에 올려져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체호프 서거 100주년을 맞아 예술의전당이 기획한 연극 ‘갈매기’(4월14일∼5월2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의 초빙 연출가 그리고리 지차트코프스키(45)는 “한국에 오던 날 극장앞을 지나면서 ‘그때 러시아인들이 느꼈던 감동을 어떻게 한국 관객에게 전해줄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지차트코프스키는 2001년 러시아의 권위있는 연극상인 황금마스크상 작품상과 연출상을 수상하는 등 러시아 현역 최고의 연출가로 꼽히고 있다. ‘갈매기’는 체호프를 현대 연극계의 독보적인 위치로 올려놓은 대표작이지만 내용이 지루하고 난해하다는 이유로 근래 들어 러시아 관객들조차 외면하고 있다.국내에서도 ‘벚꽃동산’‘세자매’등 체호프의 다른 작품에 비해 그리 각광받지 못하는 편이다.20년 경력의 지차트코프스키가 ‘갈매기’를 연출하는 것도 이번 한국 공연이 처음이다.그는 “러시아에선 가장 용감한 연출가와 배우들만이 체호프의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면서 “연출을 의뢰받고 고민을 많이 했지만 한국에 오는 비행기안에선 ‘장례식때 샴페인을 마셔달라’는 체호프의 마지막 유언처럼 샴페인을 터뜨리기 위해 방한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정재은(아르카지나)오만석(트레플레프)등 함께 작업하는 한국 배우들이 러시아 배우들과 어떤 차이가 있느냐고 묻자 “배우는 또다른 국적,제3의 성(性)이고,연극 연습은 배우의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며 섣부른 비교를 경계했다. 이번 무대는 초연 당시 왕실검열관에 의해 삭제됐던 15분 분량의 대사를 모두 복원한 세계 최초의 원본 공연이라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끈다.그는 “좋은 고전작품은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작가의 숨은 의도를 찾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상황적인 모순에서 오는 코믹함을 강조한 체호프의 희극 정신이 한국 관객에게 제대로 전해지도록 하겠다.”고 의욕을 나타냈다. 이순녀기자˝
  • ‘안티’ NGO 급증

    특정 단체 혹은 기업의 비리를 고발하거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모여 만든 ‘안티’(Anti) NGO(비정부 기구)들이 활발한 활동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들은 주로 사이버 공간인 인터넷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일반 오프라인 시민·사회단체들 못지않게 활발한 활동으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건전한 안티 운동을 펴는 단체들과는 달리 일부에서는 특정인에 대한 무분별한 반대 운동도 확산되고 있어 우려를 낳기도 한다. ●‘안티 충무로’ 등 수백개 ‘안티’ 활동을 펴는 NGO는 온라인을 포함해 수백개에 이른다.최근들어 오프라인상의 활동도 병행하는 단체들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단체는 불법 다단계 판매업체로부터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모임인 ‘안티 피라미드운동본부’.이 단체에서는 2000여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지난 2000년 1월 만들어진 이 단체는 국내 350여개 피라미드 업체의 악덕 상혼을 고발하고 있다. ‘안티 충무로’는 애견센터 피해자들의 모임이다.이들은 애견센터와 동물병원에서 발생한 소비자 불만사례와 피해사례를 모으고 있다.서울 충무로에 애견센터가 밀집해 있어 이같은 이름이 붙었다. ‘시장 안티사이트’는 동대문과 남대문시장 등 재래시장 쇼핑 중 불편한 점이나 불이익을 고발하는 활동을 펴고 있다.‘안티 미스코리아 페스티발’은 여성을 상품화하는 기존 미인대회에 반대해 만들어졌다.각 대학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건의하는 ‘안티 캠퍼스’도 있다.‘안티 단속’은 경찰이나 구청 등의 불합리한 단속활동을 감시하는 사람들이 뭉쳤다. 이밖에 ‘안티 저작권협회’ ‘안티 와레즈’ 등을 비롯,자동차나 휴대전화,카드업체 등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기업의 이름이나 물건의 이름 앞에 ‘안티’를 붙여 활동하는 경우도 많다. ●특정인·단체겨냥 부정적 측면도 그러나 연예인이나 정치인 등 특정인을 겨냥해 인신 공격을 퍼붓는 안티 단체들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부작용을 낳고 있다.NGO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조직적인 활동을 펴는 곳도 많다. 국회의원 K씨를 반대하는 안티 사이트는 “더운 여름철에 열받은 네티즌들의 화를 풀어줄 생각”이라는 이유로 만들어졌다.인기 연예인 C·B·G씨 등의 안티사이트 게시판은 지지자와 반대자들간의 욕설이 난무하고 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안티 사이트들은 특정 목적을 가진 사람들의 자발적인 모임이어서 결속력이 뛰어나고 파급효과가 크다.”면서 “그러나 일반 시민단체와 달리 얼굴없이 사이버상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특정인이나 단체에 대한 유언비어 등을 유포하는 등 부정적인 면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 [씨줄날줄] 新문명충돌론/이기동 논설위원

    냉전 이후 세계질서 분석틀 중 최대 논란거리를 제공한 이론은 단연 하버드대 새뮤얼 헌팅턴 교수의 ‘문명충돌론’.동서로 양분돼온 세계질서가 서구와 이슬람,중국의 3대 문명축으로 크게 나누어져 갈등과 충돌을 빚는다는 일면 단순명쾌한 논리다.전쟁의 주동인도 이전처럼 이념이나 계급이 아니라 종교에서 비롯된 문명간 갈등이라는 것이다. 중동의 유혈충돌,9·11테러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은 기독교 대 이슬람 문명충돌론을 설파한 헌팅턴교수의 혜안을 가늠케 한다.하지만 정작 헌팅턴교수 자신은 테러와의 전쟁을 문명충돌이 아니라 문명 대(對) 야만의 충돌로 해석한다.테러세력들이 이슬람문명을 대표하는 게 아니라 일부 극단적이고 야만적인 이슬람을 대변할 뿐이라는 이유에서다. 문명충돌론의 최대 약점은 서구문명 우월론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서구우월주의와 반이슬람,신 황화론(黃禍論)이 근저에 자리하고 있다.그가 5월 출간예정인 새 저서 ‘우리는 누구인가,미국의 정체성에 대한 도전들’에서 히스패닉계 이민을 미국의 정체성에 대한 최대 위협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히스패닉계와 앵글로 기독교계가 미국을 두개의 민족,문화,언어로 나눈다는 주장은 차라리 백인우월주의자의 선동구호를 연상시킨다. 영국의 주간 이코노미스트가 그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글을 실어 또 한번 화제다.히스패닉계가 법치주의와 인권중시의 미국문화를 외면하고 고유언어,문화,가치관을 고집함으로써 미국문화에 이질적 요인이 된다는 그의 주장은 지나친 논리비약.이탈리아계,아일랜드계,유대인이 미국의 주류사회에 편입된 현실에서 굳이 3700만명의 히스패닉계만 동화가 안 된 채 위협세력으로 남는다는 논리적 근거를 헌팅턴은 제시하지 못한다. 대서양을 건너온 이민은 괜찮고 멕시코국경의 리오그란데강을 건너온 이민은 그냥 안 된다는 것이다.미국은 어차피 이민자들의 나라.1200만명의 미국내 불법노동자들 중 절반이 히스패닉계다.이들의 값싼 노동력이 없으면 미국경제는 당장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다.노교수의 혜안이 흐려진 것인가.200만명의 재미 한인동포들도 히스패닉계보다 더 나은 대우를 기대하기는 힘든 처지인데.여러 모로 우려되는 신문명충돌론이다. 이기동 논설위원 yeekd@˝
  • 儒林(42)-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儒林(42)-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낚시질을 하고 있던 강상(姜尙),즉 강태공을 보자마자 바로 그가 점쟁이가 말하였던 ‘반드시 도움이 될 인재’임을 꿰뚫어본 문왕은 그를 도성으로 데려와 국사(國師)에 임명한다. 강상이 태공망(太公望)으로 불리게 된 데는 문왕이 그토록 학수고대하던 인물임을 가리키는 대명사였기 때문이었다. 강태공의 노력으로 주족(周族)은 발전을 거듭하여 막강한 군사력을 갖추게 되는 한편 천하의 3분의2를 장악하여 상을 멸망시킬 기초를 마련했던 것이다.마지막으로 상을 멸망시킬 계획만을 남겨둔 문왕은 큰 병에 걸리게 되는데,그는 자신이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아들 희발(姬發)을 불러 세 가지를 부탁한다. 유가에서 가장 이상적인 성천자(聖天子)로 추앙받는 희창 문왕이 남긴 그 유명한 세 가지의 유언은 다음과 같다. “첫째,좋은 일을 보면 게을리 하지 말고 즉시 가서 행해야 한다.둘째,기회가 오면 머뭇거리지 말고 재빨리 잡아야 한다.셋째,나쁜 일을 보면 급히 피해야 한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즉시 여기서 나부터’ 시작하라는 문왕의 행동철학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큰 교훈이 되고 있다. 문왕이 죽자 강태공은 그의 아들 무왕을 도와 마침내 상나라를 무너뜨리고 주나라를 건국하는 것이다. 술에 만취하여 읊었던 조광조의 시조는 자신을 강태공에 비유하고 중종을 문왕에 비유하고 있었던 것이다.자신은 강태공처럼 임금인 중종을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는데,중종은 보이지 않고 마침내 빈 배만 남아 있구나.빈 배(虛舟). 함께 힘을 합쳐 중종을 유가에서 이상적인 군왕으로 추앙하고 있는 성천자로 만들고 자신은 문왕을 도왔던 강태공처럼 정치와 군사를 통괄하는 개혁가가 되고 싶었던 조광조.그러나 그러한 야망은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리고 마침내 빈 배만 남아 있구나.그뿐인가.어느덧 하루해가 저무는 석양빛에 물차는 제비들,즉 자신의 이익을 좇아 이리저리 날뛰고 있는 정상배(政商輩)만 오락가락 하고 있을 뿐이로구나. 만취하여 읊는 조광조의 시조를 묵묵히 듣고 있던 일행은 갑자기 숙연해졌다.정치를 개혁해보려던 젊은 그들은 하룻밤 사이에 반역죄로 갇힌 죄수가 되어 텅 빈 배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처연한 목소리로 시조를 읊고 나서 조광조는 다시 땅을 치며 울기 시작하였다. “아아 우리 상감이 보고싶다.아아 우리 상감이 어찌 이를 알리오.” 그때였다. 갑자기 술을 마시던 김식이 술병을 쥐어들었다.그리고 술병을 거꾸로 세워 술을 쏟기 시작하였다.술병 속에서 술이 쏟아져 땅에 엎질러졌다. “무슨 일인가.” 보고 있던 김구가 크게 놀라 이를 만류하여 물었다.간신히 술을 얻어 마시긴 하지만 밤을 새워 마시기엔 턱없이 부족하여 아까운 술을 일부러 쏟아버리는 김식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김식이 울고 있는 조광조를 향해 날카롭게 말하였다. “쏟아버린 술을 다시 술병에 담을 수 없고 엎질러진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가 없는 법이오.조대감.” 조광조를 힐문하는 김식의 말은 준엄하였다. “대감,우리는 이미 쏟아버린 술이오.엎질러진 물이오.” 김식은 쏟아버린 술로 흥건히 젖어 있는 흙을 두 손으로 떠올려 조광조의 얼굴에 바짝 들이대며 말하였다. “보시오,대감.이미 한 방울의 술도 남아 있지 않소이다.”
  • 儒林(42)-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낚시질을 하고 있던 강상(姜尙),즉 강태공을 보자마자 바로 그가 점쟁이가 말하였던 ‘반드시 도움이 될 인재’임을 꿰뚫어본 문왕은 그를 도성으로 데려와 국사(國師)에 임명한다. 강상이 태공망(太公望)으로 불리게 된 데는 문왕이 그토록 학수고대하던 인물임을 가리키는 대명사였기 때문이었다. 강태공의 노력으로 주족(周族)은 발전을 거듭하여 막강한 군사력을 갖추게 되는 한편 천하의 3분의2를 장악하여 상을 멸망시킬 기초를 마련했던 것이다.마지막으로 상을 멸망시킬 계획만을 남겨둔 문왕은 큰 병에 걸리게 되는데,그는 자신이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아들 희발(姬發)을 불러 세 가지를 부탁한다. 유가에서 가장 이상적인 성천자(聖天子)로 추앙받는 희창 문왕이 남긴 그 유명한 세 가지의 유언은 다음과 같다. “첫째,좋은 일을 보면 게을리 하지 말고 즉시 가서 행해야 한다.둘째,기회가 오면 머뭇거리지 말고 재빨리 잡아야 한다.셋째,나쁜 일을 보면 급히 피해야 한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즉시 여기서 나부터’ 시작하라는 문왕의 행동철학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큰 교훈이 되고 있다. 문왕이 죽자 강태공은 그의 아들 무왕을 도와 마침내 상나라를 무너뜨리고 주나라를 건국하는 것이다. 술에 만취하여 읊었던 조광조의 시조는 자신을 강태공에 비유하고 중종을 문왕에 비유하고 있었던 것이다.자신은 강태공처럼 임금인 중종을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는데,중종은 보이지 않고 마침내 빈 배만 남아 있구나.빈 배(虛舟). 함께 힘을 합쳐 중종을 유가에서 이상적인 군왕으로 추앙하고 있는 성천자로 만들고 자신은 문왕을 도왔던 강태공처럼 정치와 군사를 통괄하는 개혁가가 되고 싶었던 조광조.그러나 그러한 야망은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리고 마침내 빈 배만 남아 있구나.그뿐인가.어느덧 하루해가 저무는 석양빛에 물차는 제비들,즉 자신의 이익을 좇아 이리저리 날뛰고 있는 정상배(政商輩)만 오락가락 하고 있을 뿐이로구나. 만취하여 읊는 조광조의 시조를 묵묵히 듣고 있던 일행은 갑자기 숙연해졌다.정치를 개혁해보려던 젊은 그들은 하룻밤 사이에 반역죄로 갇힌 죄수가 되어 텅 빈 배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처연한 목소리로 시조를 읊고 나서 조광조는 다시 땅을 치며 울기 시작하였다. “아아 우리 상감이 보고싶다.아아 우리 상감이 어찌 이를 알리오.” 그때였다. 갑자기 술을 마시던 김식이 술병을 쥐어들었다.그리고 술병을 거꾸로 세워 술을 쏟기 시작하였다.술병 속에서 술이 쏟아져 땅에 엎질러졌다. “무슨 일인가.” 보고 있던 김구가 크게 놀라 이를 만류하여 물었다.간신히 술을 얻어 마시긴 하지만 밤을 새워 마시기엔 턱없이 부족하여 아까운 술을 일부러 쏟아버리는 김식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김식이 울고 있는 조광조를 향해 날카롭게 말하였다. “쏟아버린 술을 다시 술병에 담을 수 없고 엎질러진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가 없는 법이오.조대감.” 조광조를 힐문하는 김식의 말은 준엄하였다. “대감,우리는 이미 쏟아버린 술이오.엎질러진 물이오.” 김식은 쏟아버린 술로 흥건히 젖어 있는 흙을 두 손으로 떠올려 조광조의 얼굴에 바짝 들이대며 말하였다. “보시오,대감.이미 한 방울의 술도 남아 있지 않소이다.”˝
  • [사설] 돈선거 통할거라는 인식 버려야

    경기 용인이 지역구인 열린우리당 남궁석 의원이 자신의 부인이 지역구내 보훈단체에 돈봉투를 돌린 혐의로 적발되자 총선후보를 사퇴했다.또 춘천지검은 전 청와대비서관 정모씨 인척에게서 돈을 받아 선거 운영비로 사용한 정씨의 측근 2명을 구속하고 여죄를 추궁중이라고 한다.불법대선자금 수사로 ‘돈선거 추방’이 지상의 과제가 되어버린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전히 후보들이 돈선거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한 것으로 보여 안타깝다. 특히 선거법 개정으로 후보자의 당선무효 규정이 강화되고 유권자들도 향응의 50배에 해당하는 과태료를 물어야 해 은밀한 수법으로 검은 돈이 건네지는 것은 아닐지 걱정된다.일계급 특진 포상으로 전 경찰관이 단속에 참여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더라도,불법 적발건수는 가히 위험수위이다.2월15일 현재 선거사범 단속건수는 960건,1219명으로 16대 같은 기간의 273건,351명에 비해 무려 247%나 증가했다.여기에 지역문화 발전이라는 미명아래 돈 대신 오페라나 연극 표를 돌리고,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지능화되고 있어 깨끗한 선거는 말잔치로 끝날 공산도 없지 않다. 이렇게 되면 총선 이후 무더기 재·보선이 실시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엄청난 국력낭비이며 국고손실 아닌가.이제 후보자는 물론 유권자도 달라져야 한다.그런 점에서 남궁석 의원의 사퇴 결정은 잘한 일이다.모든 후보가 ‘검은 돈 청산’이라는 시대정신을 깨우치고,‘새정치 출발’이라는 4월 총선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아지는 법이다.후보와 유권자는 선거법으로 옭죄어놓고,중앙당에서는 지역감정을 조장하고,근거없는 폭로전으로 일관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합동 연설회와 정당·후보연설회가 폐지돼 자칫 선거기간 내내 중앙당에서 유언비어와 중상모략을 양산해내는 정치공세를 펼 공산이 높은 상황이다.정치권은 구태에서 벗어나야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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