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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 前대통령 국민장] 고단한 육신 벗고 한줌의 재로… 유족들 永別의 오열

    [노 前대통령 국민장] 고단한 육신 벗고 한줌의 재로… 유족들 永別의 오열

    노무현 전 대통령은 29일 오후 경기 수원시 연화장 하늘 아래서 유언대로 ‘한조각 자연’으로 돌아갔다. 오전 영결식을 통해 하늘로 오른 영혼이 이 모습을 지켜봤으리라.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연화장에 도착해 유골 수습까지 2시간44분 만에 한 줌의 재로 변했다. 유족들은 고열의 화로에서 몇 개의 뼛조각으로 변한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자 몸을 떨며 오열했다. ●예상보다 3시간 늦어져 노 전 대통령의 유해가 수원 연화장에 도착한 것은 이날 오후 6시6분. 운구 행렬은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이동해 수원요금소를 빠져나온 뒤 국도 42번선 용인대로~원천로~용인 흥덕 택지개발지구~신대 저수지를 거쳐 수원 연화장으로 들어섰다. 예상보다 3시간가량 늦어졌다. 영구차가 연화장에 도착한 뒤 삼군 의장대 10명이 노 전 대통령의 유해를 이동대차에 옮기는 운구의식이 진행됐다. 연화장에 모인 8000여명의 추모객들은 ‘노무현’을 연호했고, 일부 추모객들은 흐느꼈다. 권 여사를 비롯한 유족들은 특별히 승화원 건물 밖에 마련된 야외분향소에서 20분 동안 제례를 올렸다. 태극기에 덮인 노 전 대통령의 관이 화장로 9기(예비화로 1기 포함) 중 가장 큰 8번 화장로 앞으로 옮겨지자 유족들도 8번 분향실 앞으로 자리를 옮겨 숙연한 표정으로 대형유리 너머의 화로를 지켜봤다. 권 여사는 고개를 숙인 채 한없이 울기만 했다. 딸 정연씨가 “엄마, 아빠 봐야지.”라고 몇 번이나 설득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오후 6시31분쯤 송기인 신부가 기도를 한 뒤 대형유리의 커튼이 닫혔다. 관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화장로 안으로 들어갔다. 유해는 섭씨 800~1000도의 고온에서 1시간30여분간 화장됐다. ●고별 제례 올려 평소 오후 2시까지 4차례 실시되는 일반 화장은 이날은 오전 8시와 10시 2차례로 단축됐고, 오후에는 노 전 대통령의 화장만 이뤄졌다. 8번을 제외한 1~7번 분향실마다 장의위원들이 노 전 대통령에게 ‘고별 제례’를 올렸다. 화장이 종료되고 화로에서 유골이 꺼내지자 분향대기실은 일순간 ‘통곡의 바다’로 변했다. 이때 보통의 유족들도 고인을 생각하며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곤 하는데, 국가 최고 권력을 쥐었던 대통령의 유족들이 느끼는 허무함은 보통 사람들의 것을 훨씬 초월했을 것이라고 추모객들은 입을 모았다. ●오후 8시50분 봉화마을 장지로 유골은 18분 정도 냉각과정을 거쳐 유족들에게 인계됐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곱게 빻는 분골 과정을 거쳐 향나무 유골함에 담겼다. 운구차는 오후 8시50분쯤 고인의 영원한 안식처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 장지로 향했다. 운구차 이동경로인 연화장에서 경부고속도로 수원 요금소까지 6㎞여 구간에는 시민들이 나와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연화장은 경부고속도로 수원 나들목과 6~7㎞ 거리에 있다. 연화장측은 조례에서 정한 자치단체장 재량권 규정에 따라 화장료를 면제했다. 수원 김병철 남인우 오달란기자 kbchul@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서울광장 노란 물결…‘상록수’ 등 들으며 먼 길 떠나

    [노 前대통령 국민장] 서울광장 노란 물결…‘상록수’ 등 들으며 먼 길 떠나

    추모객들은 영결식을 마친 고인의 운구행렬을 쉽사리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29일 낮 12시23분쯤 영결식을 마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은 오후 1시로 예정된 노제(路祭)를 치르기 위해 경복궁 앞뜰에서 동십자각을 거쳐 세종로와 태평로를 지나 시청앞 서울광장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인도에 있던 추모객들이 도로로 몰려들면서 걸어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광화문에서 서울광장까지 가는데 1시간 이상 걸렸다. 당초 경찰은 장례행렬의 이동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 인도 안쪽으로 폴리스라인을 설정했지만 추모객들이 몰리면서 이들에게 길을 내줘야 했다. 운구 행렬이 서울광장에 도착할 무렵인 오후 1시20분쯤에는 세종로 네거리부터 숭례문 앞까지 도로 전체가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려는 18만여명의 시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시민 몰려 운구행렬 10분거리 1시간 걸려 양쪽으로 운구행렬을 둘러싼 추모객들은 영구차에 노란 풍선과 노란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작별인사를 고했다. 장의위원회가 준비한 만장 2000여개도 모습을 드러냈다. 만장에는 ‘내 아이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가르칠 위인’, ‘약자의 편에 선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님 이 땅에 다시 오시어 다시 한번 대통령이 되소서’, ‘당신과 함께 미래를 오늘로 만들겠습니다, 걱정 버리십시오’ 등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고시 준비생인 오동길(27)씨는 “집안이 보수적이어서 임기 내내 노 대통령을 대변하느라 집안싸움을 많이 했는데 막상 돌아가시니 부모님이 ‘큰 족적을 남기고 가셨다.’며 아쉬워했다.”면서 “정쟁 없는 곳에서 편히 쉬시기를 바랄 뿐”이라고 소망했다. 프레스센터 앞 서울신문 전광판을 통해 영결식을 지켜보던 ‘박쥐’의 박찬욱 감독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칸에서 들었는데 너무 안타까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노제는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40여분간 열렸다. 노제는 총감독을 맡은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행사 시작 선언과 고인의 영혼을 부르는 초혼 의식으로 시작됐다. 이어 국립창극단의 ‘혼맞이 소리’, 국립무용단의 ‘진혼무’, 안도현·김진경 시인의 조시 낭독, 안숙선 명창의 조창, 묵념, 고인의 유언 낭독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노제는 오후 2시쯤 고인이 평소 좋아했던 노래로 알려진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모두 합창하면서 마무리됐다. 이때 건호·정연씨는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이후 고인의 영구차는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 ‘아침이슬’,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이 울려퍼지는 애도의 거리를 따라 천천히 서울역으로 향했다. 노제 본행사에 앞서 서울광장에서는 낮 12시 무렵부터 방송인 김제동씨의 사회로 가수 양희은·안치환·윤도현씨가 목 놓아 고인을 추모하는 노래를 부르며 고인의 운구를 맞았다. 노 전 대통령의 유족과 함께 운구행렬을 뒤따르던 민주당 의원들은 “대통령이 돌아가실 때까지 뭘 했냐.”는 시민들의 원망과 질타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노 전 대통령 지켜낸 광장 광화문 네거리~서울광장 일대는 ‘정치인 노무현’을 전 국민에게 알리고 ‘대통령 노무현’을 만들고 지켜낸 곳으로, 1987년 6월 전두환 군사정권에 맞서 독재 타도, 호헌 철폐로 넘쳐났던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노 전 대통령 역시 당시 시민들과 함께 ‘독재타도’를 외쳤고 이듬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6대 대통령 당선 이후 2004년 탄핵으로 위기에 봉착했을 때 지지자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그를 지켜낸 곳이기도 하다. 이런 추억 때문인지 서울광장 일대에는 오전 7시40분쯤부터 추모객들이 모여들기 시작, 고인의 굴곡 많은 인생을 눈물과 통곡으로 달랬다. 오전 9시쯤 접어들면서 거대한 노란 풍선, 노란 모자 등 온통 노란색으로 광장이 물들었다. 오후 1시쯤엔 추모객이 18만여명(경찰추산, 주최측 50만여명)으로 늘어났다. 추모객들은 노란색 햇빛 가리개 모자를 쓰고, 얼굴에는 노란색 스티커도 붙였다. 노란 귀걸이와 머리띠를 하고 온 대학생 김수진(22·여)씨는 “노제에 참석하라며 교수님이 강의를 휴강했다.”면서 “인터넷에 떠도는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을 보고 젊은이들이 ‘노간지’라며 열광했었는데 이제 그런 소탈한 모습을 볼 수 없게 돼 안타깝다.”며 울었다. 경기도 성남에서 온 김시중(41)씨는 “민주화운동을 함께했던 동지였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은 386세대에 남다른 의미로 남는다.”면서 “노 전 대통령이 남기신 유지를 받들어 지역감정 등 분열을 넘어서 통합의 시대가 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만장 2000여개 펄럭이며… 운구행렬이 노제가 치러진 서울광장을 벗어나는 동안 주변의 추모객들은 민주당 김근태 상임고문, 박영선 의원 등에게 “살아 있을 때는 외면하더니 이제야 따라다니느냐.”며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다. 행렬은 오후 2시45분쯤 남대문을 지나 3시쯤 2000여개의 만장을 펄럭이며 서울역에 도착했다. 서울역 광장을 가득 메운 추모객들은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이 보이자 ‘노무현’을 크게 연호하며 울먹였다. 당초 운구행렬은 오후 2시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남대문 주변 교통흐름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인파가 몰려들어 1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다. 서울역에서 수원 연화장으로 향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추모객들은 서울역을 지나서도 운구행렬을 놓아주지 않고 하염없이 따라 걸었다. 1년4개월 전 임기를 마치고 노 전 대통령이 미소 지으며 걷던 서울역 계단과 광장은 이날 고인을 배웅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서울역 앞에 마련된 정부 분향소에는 이날 오후 3시 현재 누적 조문객 수가 6만 5000여명이나 됐다. 서울 화곡동의 직장에서 지하철을 타고 분향하러 온 김도경(43)씨는 “삶도 죽음도 한 조각이라는 유서 내용이 가슴을 적셔 분향소에 들렀다.”고 말했다. 대학생 원미라(22·여)씨는 “국장과 달리 국민장은 휴일이 아니어서 교수님들과 의논해 오늘 하루 휴강했다.”면서 “시대가 고통을 겪고 있지만 사람은 아프지 않도록 힘을 모으겠다고 방명록에 썼다.”고 말했다. ●경찰 주차시도에 시민들 물병 등 던져 운구행렬을 떠나보낸 추모객들은 다시 서울광장에 삼삼오오 모여 노래를 부르며 고인과의 이별을 슬퍼했다. 오후 3시30분쯤 경찰 버스 4대가 서울 프라자호텔 맞은편 서울광장 가장자리에 주차를 하려 하자 일부 추모객들이 물통 등을 던지며 강력히 반발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버스 1대와 경찰 지휘차량 1대가 일부 파손됐고 세종로에서는 추모객들과 경찰의 신경전이 밤늦도록 계속됐다. 경찰은 밤늦도록 추모객들의 귀가를 촉구하는 안내방송을 내보냈고, 이에 맞서 추모객들은 차량 위에 설치된 마이크로 한 사람씩 번갈아가며 추모사를 쏟아내 고인의 서거를 안타까워했다. 서울 유대근·수원 오달란기자 hunnam@seoul.co.kr
  • [서울광장] 이제 울음을 삼키고 죽음을 넘어서자/김종면 논설위원

    [서울광장] 이제 울음을 삼키고 죽음을 넘어서자/김종면 논설위원

    하루하루 부대끼는 삶을 살아가기도 버거운 판에 죽음을 생각할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이 땅에 살아 있는 모든 이들은 지금 죽음에 관한 참을 수 없이 무거운 사색에 빠져 있다. 그것이 어떤 색깔이든 어떤 무늬이든 우리는 모두 ‘죽음의 철학자’로 하나가 됐다. 진보도 보수도 없다. 가진 자도 없는 자도 없다. 오직 불꽃 같고 바람 같은 한 전직 대통령을 떠나보내며 오열할 뿐이다. 인간의 죽음 앞에선 최소한 그래야 옳다. 목 놓아 울어야 한다. 이제 영결식도 끝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고단한 속세의 짐을 내려놓고 영영 이별의 길을 떠났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며 자연으로 돌아갔다. 고인은 말했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그 말 그대로 우리는 울음을 삼키고 죽음을 넘어서야 한다. 슬픔도 힘이 된다고 하지 않는가. 피폐한 마음을 추스르고 도저한 슬픔의 힘으로 희망의 싹을 키워내야 한다. 고인이 떠난 뒤에도 꽃은 피고 새는 운다. 그런데 속 모를 검은 구름이 혀를 빼물고 있다. 보수와 진보는 또 무리 지어 싸움을 벌일까. 아고라의 정치가 재현되는 건 아닌가. 증오의 그림자가 일렁대지 않을까. 가슴이 떨려 온다. 그렇게 고초를 겪고도 모자라 또 시련의 계절을 맞아야 하나. 살아도 죽은 것 같은 삶이 있는가 하면 죽어도 산 것 같은 죽음이 있다. 지금은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까를 궁리해야 한다. 그의 죽음에서 어떤 비극적 숭고미마저 느끼도록 해야 할 책무가 그를 진정으로 따르는 많은 이들에게 있다. 다시 고인이 남긴 말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의 유언은 이미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됐다. 너도나도 인용해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쓰고 교훈을 이끌어 낸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정치적 의도의 과잉해석은 경계해야겠지만 굳이 그 뜻을 외면하는 것도 잘못이다. 상대가 없는 다툼이란 애초에 불가능한 법. 그러니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다. 다 옳고 다 그르다. 피아(彼我)의 편 가르기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두 내 탓이다. 그게 바로 ‘바보정신’이다. 원망하지 않으려면 결국 크게 용서하고 크게 화합하는 길밖에 없다. 혹자는 거기에 조건을 달기도 한다. 사랑에 조건이 있나. 마찬가지다. 서로 용서하는 데도 조건이란 있을 수 없다. 노무현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그걸 못 견뎌 해서는 안 된다. 살아 있는 자는 살아야 하고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노무현’의 공과를 엄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 과(過)를 청산하는 데만 골몰하지 말고 공(功)은 공대로 살려 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분열과 갈등을 딛고 화합으로 나아가기 위한 조건이라면 조건이다. 우리 사회는 이념에 따라, 지역에 따라, 빈부에 따라 조각조각 갈라져 있다. 진보든 보수든 한 줌도 안 되는 이 땅의 이른바 지식인들이 나라를 위한답시고 툭툭 던지는 말들이 오히려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여전히 진영논리에 갇힌 그 분열의 언어, 참 경박하다. 하고 싶은 말이라고 다 하는 게 아니다. 함석헌 선생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했다. 사랑도 미움도 모두 짊어지고 간 노 전 대통령을 이제 편안히 놓아줘야 한다. 그의 죽음이 그를 사모하는 이들의 가슴에 독기로 이어져 우리 사회에 갈등의 대못을 박게 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노무현의 비극’이다. 그가 떠나고 없는 이 아침, 나는 역사 앞에 거짓된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스스로를 되돌아본다.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묘소 → 생가 → 사저 → 정토원 → 부엉이바위 ‘2시간 코스’

    [노 前대통령 국민장] 묘소 → 생가 → 사저 → 정토원 → 부엉이바위 ‘2시간 코스’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끝난 뒤에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는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추모객과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봉하마을의 부엉이바위 등이 국민에게 ‘역사현장’으로 기억될 뿐만 아니라 재외동포나 외국인에게도 국내 언론을 통해 관심지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봉하마을 방문 코스는 마을회관~노 전 대통령의 묘소~생가~사저~봉화산 등산로~정토원~부엉이바위~마을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코스를 한 바퀴 둘러보는 데에는 2시간 정도 걸릴 것으로 보인다. 방문객들이 봉하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현재 고인의 빈소로 쓰이는 마을회관이 바로 나타난다. 자동차는 마을회관 주차장에 세워두면 된다. 봉화산 안쪽으로 3~5분 걸어 노 전 대통령의 유해를 안장한 묘소(660㎡)에 이르면 분향 등 간단한 추모행사를 가질 수 있다. 묘소 앞에는 고인의 유언에 따라 작은 비석도 세워진다. ●복원 중 생가엔 유품 등 전시 동쪽으로 50여m쯤 이동하면 노 전 대통령의 생가와 귀향 후 1년여간 기거했던 사저가 나온다. 생가는 고인의 서거로 현재 복원공사가 중단(공정률 30%)돼 개관 시기가 당초 목표인 8월을 넘길 가능성이 있다. 생가는 지상1층 2개동(몸채 37.26㎡, 아래채 14.5㎡)과 뒤편에 지상1층, 지하1층의 관광객 쉼터로 조성된다. 생가에는 노 전 대통령의 어린 시절을 엿볼 수 있는 유품이 전시된다. 사저(연면적 1277㎡)는 고인이 지난해 2월 귀향 이후 권양숙 여사와 1년여 동안 생활한 곳이다. 권 여사가 사저에 계속 머물면 내부를 쉽게 볼 수 없겠지만, 권 여사가 터전을 옮기면 기념관 등으로 일반에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사저를 나와 경호초소를 지나면 해발 169m의 봉화산 등산로 입구에 도착한다. 마늘밭을 지나 산에 오르면 곧 부엉이바위가 보이고, 그 오른쪽 아래로 난 계단을 따라 20분가량 오르면 노 전 대통령 자신과 부모의 위패가 모셔진 정토원이 나온다. 방문객들은 노 전 대통령의 생전 마지막 숨결이 서린 이 길을 따라 걷게 된다. ●‘용서·화해의 場’ 부엉이바위 정토원을 나와 올라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면 부엉이바위에 도착한다. 부엉이바위 정상은 노 전 대통령이 ‘용서와 화해’를 기원하며 세상과 마지막 인연을 끊은 곳. 바위 정상에서 발 아래 소나무밭을 내려다 보면 아찔할 정도로 가파르고 위험하기 때문에 경찰 수사가 끝난 이후에는 보호망이 설치될 것으로 보인다. 김해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서울광장~서울역 운구때 만장 2000여개 마지막 배웅

    [노 前대통령 국민장] 서울광장~서울역 운구때 만장 2000여개 마지막 배웅

    ■ 행사장 차량통제 정오~오후 2시 광화문일대 통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이 엄수되는 29일 영결식이 열리는 서울 광화문 일대에 교통이 통제된다. 경찰은 갑호비상근무 체제를 가동하고 광화문 일대에 200개 중대를 배치한다. 경찰청은 “김해 봉하마을부터 경복궁, 서울광장, 서울역, 수원 연화장, 봉하마을로 이어지는 모든 과정에 순찰대와 경찰력을 집중 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영결식과 노제가 이뤄지는 29일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는 구간별로 차량이 통제된다. 낮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동십자각 사이 사거리와 광화문에서 세종로 사거리 구간 등 양방향이 전면 통제된다. 오후 12시30분부터 2시까지는 세종로 사거리와 시청광장 사거리 사이의 차량 통행이 금지된다. 경찰청측은 “종로, 을지로, 퇴계로, 남대문로 등 주변 도로를 경유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교통통제가 이뤄지지 않는다. 장례행렬에는 운구차를 중심으로 차량 10대가량이 동원되며 고속도로에서는 순찰차 13대가, 일반국도에서는 경호 오토바이 18대가 경호를 맡는다. 장례행렬은 봉하마을에서 국도를 타고 남해고속도로로 나와 중부내륙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 등을 오가다 양재 나들목을 통해 서울로 진입, 한남대교를 타고 경복궁 앞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은 “이동과정에서 교통정체나 중대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이동 중에도 경로가 변경될 수 있다.”고 밝혔다. ●만장 깃대 대나무 대신 PVC 사용 한편 장의위원회는 국민장에 사용하는 만장 2000개를 대나무가 아닌 PVC파이프에 걸기로 했다. 장의위원회 김종민 대변인은 “정부가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점을 감안, PVC파이프를 사용하기로 자체 결정했다.”면서 “만장은 서울역까지만 들고 가고 정부에서 수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박건형 강병철기자 kitsch@seoul.co.kr ■ 발인~안치 어떻게 진행되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민에게 마지막 안녕을 고하기 위해 봉하마을을 나서는 시간은 29일 오전 5시. 약 30분간 발인식을 가진 뒤 고속도로 등을 이용해 서울로 향한다. 노 전 대통령 운구 행렬은 시속 80~90㎞로 빠르지 않게 이동하며, 휴게소에서 20분간 한 차례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운구행렬이 서울에 들어서면 경찰 사이드카 28대가 호위에 나선다. 운구 행렬 선두와 후미에 8대가, 운구차 양 옆에 각각 10대가 격식을 갖춘 채 영결식장으로 인도한다. 노 전 대통령의 대형 영정(가로 1.1m, 세로 1.4m)을 앞세운 영정차는 운구차 바로 앞에서 행렬을 이끈다. 영결식은 이날 오전 11시 노 전 대통령의 운구가 식장에 들어서는 순간 군악대의 조악 연주로 시작된다. 송지헌 아나운서의 사회로 국민의례(1분)~고인에 대한 묵념(2분)~고인 약력보고(3분)~조사(12분)~불교와 기독교·천주교·원불교의 종교의식(12분)~노 전 대통령의 대통령 취임식 선서모습 등 생전 영상 방영(4분)~헌화(18분)~추모공연(10분) 순으로 진행되며, 삼군 조총대원들이 조총 21발을 발사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영결식 도중에는 ‘영원한 안식’ ‘새같이 날으리’ ‘미타의 품에 안겨’ ‘오제의 죽음’ ‘장송행진곡’ 등의 추모곡이 연주된다. 추모공연에선 국립합창단이 ‘상록수’를 합창하고, 해금연주가 강은일씨가 노 전 대통령이 좋아했던 ‘아리랑’ 등을 연주한다. 영결식 장면은 공중파 TV 및 식장과 서울광장, 서울역 등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을 통해 생중계된다. 영결식이 끝나면 운구 행렬은 서울광장으로 이동, 오후 1시부터 약 30분간 노제를 지낸다. 경찰청이 제공한 차량 4대가 대형 태극기(가로 5.4m, 세로 3.6m)를 펼친 채 운구차를 선도하며, 유족대표 등을 제외한 나머지 인사는 모두 걸어서 이동한다. 노제는 도종환 시인이 진행한다. 가수 양희은과 안치환, 윤도현의 ‘여는 마당’이 이어지고, 안도현과 김진경 시인이 조시를 낭독한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 안 시인의 시를 특별히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김 시인은 노 전 대통령 밑에서 교육문화비서관을 지냈다. 조시 낭독이 끝나면 장시아 시인이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낭독한다. 노 전 대통령은 소녀가장인 장 시인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봉사활동을 펼친 경험을 담은 시집 ‘그늘이 더 따뜻하다’를 국무위원들에게 선물한 적이 있다. 이어 안숙선 명창의 조창, 진혼무가 펼쳐지고, 합창단과 참석자 모두가 ‘상록수’ ‘아침이슬’ ‘애국가’ 등을 반주 없이 합창하면서 30여분의 노제가 마무리된다. 노제가 끝나면 운구 행렬은 숭례문 앞 태평로를 거쳐 서울역까지 30분간 도보로 이동한다. 도보 행렬에는 인터넷 공모를 통해 선발된 시민 2000여명이 장의위가 준비한 만장(輓章)을 들고 뒤따르면서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한다. 도보 이동 후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서울역을 출발, 오후 3시 수원 연화장에 도착해 유가족과 집행·운영위원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약 2시간 동안 고인의 유언대로 화장된다. 유족들이 수습한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유골함에 담겨 오후 9시쯤 봉하마을에 도착,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 안치된다. 유족들은 향후 길일을 잡아 노 전 대통령 유골을 봉하마을 사저 인근에 안장할 예정이다. 임주형 박성국기자 hermes@seoul.co.kr ■ 화장 절차 분향실 고별제례 분골은 안 하기로 29일 오전 11시 영결식 이후 진행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화장 의식은 일반인과 특별히 다를 바 없는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28일 수원시 시설관리공단 장묘환경사업소에 따르면 노 전대통령의 화장의식은 화장장 전체가 당일 오후 반나절 내내 할애되고 화장료 100만원을 면제받는 것을 제외하고는 일반인과 크게 다를 바 없다. 29일 오후 3시쯤 수원시 연화장에 영구차가 도착하면 관을 이동대차로 옮기는 운구를 시작으로 이동대차에서 화장로 앞 전동대차로 옮겨 화장로에 넣는 화장절차,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분향실에서 제례를 올리는 고별절차가 이어진다.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은 화장로 9기 가운데 가장 큰 8번 화로에서 화장되고 권양숙 여사를 비롯한 유족들은 13㎡ 면적의 8호 분향실에서 제례의식을 진행한다. 평소 오후 2시까지 4차례 실시되는 일반 화장이 이날은 오전 8시, 10시 두 차례로 단축되고, 오후에는 노 전 대통령의 화장만 이뤄진다. 화장은 섭씨 800~1000도의 온도에서 1시간10분 정도 걸리는데, 관 재질이 두꺼울 경우 시간이 더 소요될 수 있다고 연화장 측은 설명했다. 화장이 끝나면 15분 정도의 냉각과정을 거쳐 유골은 분골실로 옮겨진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유해는 유족의 뜻에 따라 통상적인 분골 과정을 거치지 않고 유골 상태에서 정부가 마련한 유골함에 담겨 유족들에게 인계될 것으로 전해졌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사설] 마지막 가는 길 경건하고 엄숙하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오늘 오전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국민장으로 거행된다. 21세기의 초입 5년 동안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한국을 이끌었던 이가 국민들의 슬픔을 뒤로한 채 마지막 길을 떠나게 되었다. 이승의 영욕과 공과를 뒤로하고 편안하게 영면에 드시길 바란다. 삼가 명복을 빌면서 유족들에게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보낸다. 국민장 기간 7일 동안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국민적 열기는 뜨거웠다. 노 전 대통령의 고향 봉하마을 비롯해 전국의 300여개 분향소에 300만명에 육박하는 조문객이 찾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헌정 사상 최대의 조문인파인 것이다. 많은 인파가 모이고, 또 서거 경위가 너무 충격적이어서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했다. 하지만 질서를 잃지 않았고, 자원봉사의 물결 역시 돋보였다. 국민장 마지막날인 오늘 경복궁 앞뜰 영결식에 이어 서울광장 노제, 수원 연화장 화장, 봉하마을 정토원 유골안치 등의 의식이 예정되어 있다. 행사마다 많은 인파가 모여 고인을 추모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질서를 지키면서 평화적인 의식이 되도록 모두가 협조해야 한다. 국민장 장의위원회도 영결 행사가 경건하고 엄숙하게 치러질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길 바란다. 노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해 음모론의 확산은 경계해야 한다. 수행 경호관의 실책과 거짓말, 경찰의 부실 수사로 촉발되긴 했으나 근거없는 이야기가 퍼지는 일은 막아야 한다. 노 전 대통령측의 천호선 전 대변인은 “경찰이 뒤늦게나마 사실관계를 밝힌 것은 다행”이라고 말했다. 다른 측근들도 “음모론 등으로 차분하고 엄숙한 장례식 분위기가 흐트러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런 관점에서 정치권의 자숙이 요구된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소요사태가 일어날까 염려된다.”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평화적인 장의절차가 진행되고 있는데 ‘소요사태’ 운운은 적절치 않았다. 일부 보수논객들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폄하하는 발언을 하고 있는데 그 또한 자제해야 한다. 민주당 역시 노 전 대통령 서거를 정쟁화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책임론’을 거론하면서 대여(對與) 공세에 나설 시점은 아니라고 본다.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은 화합과 화해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은 “미안해하지 마라.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는 유언을 남겼다. 지난달 노 전 대통령을 만났던 불교계 인사들은 “자신이 괴로움을 당했지만 생사여일(生死如一)이라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세상의 화합을 위해 몸을 던진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상대를 미워하는 것은 고인의 유지에 어긋난다. 일부 지지자들의 분노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봉하마을 조문객을 가려 받지 않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 남은 이들은 노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던진 화두인 화합·화해의 실천에 힘써야 한다. 경제가 어렵고, 한반도 안보상황이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안갯속이다. 국론통합이 절실한 시점인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 이후 자칫 국론분열 현상이 심화되지 않도록 정치권을 포함한 모든 국민들이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그리고 전직 대통령들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제도적 보완책을 만드는 데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고인이 평안 속에 잠드시길 다시 한번 기원한다.
  • 발인에서 안치까지… 마지막 여정 스케치

    서울광장 노란 물결… ‘상록수’ 등 들으며 먼 길 떠나 ●눈물 참던 건호·정연씨 끝내 오열 낮 12시23분쯤 영결식을 마친 노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은 오후 1시로 예정된 노제(路祭)를 치르기 위해 경복궁 앞뜰에서 동십자각을 거쳐 세종로와 태평로를 지나 시청앞 서울광장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많은 추모객들이 몰리면서 걸어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광화문에서 서울광장까지는 한시간 가까운 이상이 걸렸다. 당초 경찰은 장례행렬의 이동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 인도 안쪽으로 폴리스라인을 형성했으나 추모객들이 몰리면서 이들에게 길을 내줘야 했다. 양쪽으로 운구행렬을 둘러싼 시민들은 영구차에 노란풍선과 노란비행기를 날리며 작별인사를 고했다. 장의위원회가 준비한 만장 2000개도 모습을 드러냈다. 만장에는 ‘내 아이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가르칠 위인’, ‘약자의 편에 선 대통령’ 등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오동길(27)씨는 “집안이 보수적이어서 임기 내내 노 대통령을 대변하느라 집안싸움을 많이 했는데, 막상 돌아가시니 부모님이 ‘큰 족적을 남기고 가셨다.’면서 아쉬워하셨다.”면서 “정쟁 없는 곳에서 편히 쉬시기를 바랄 뿐”이라고 밝혔다. 프레스센터 앞 서울신문 전광판을 통해 영결식을 지켜보던 ‘박쥐’의 박찬욱 감독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칸에서 들었는데 너무 안타까웠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노제는 운구행렬이 도착한 오후 1시20분부터 40분여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노제는 총감독을 맡은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행사 시작 선언과 고인의 영혼을 부르는 초혼 의식으로 시작됐다. 이어 국립창극단의 ‘혼맞이 소리’, 국립무용단의 ‘진혼무’, 안도현·김진경 시인의 조시 낭독, 안숙선 명창의 조창, 묵념, 고인의 유언 낭독 등 순으로 진행됐다. 노제는 오후 2시쯤 고인이 평소 좋아한 노래로 알려진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모두가 합창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때 노건호, 정연씨는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기도 했다. 이후 고인의 영구차는 추모객들이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 ‘아침이슬’,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을 합창하는 가운데 장례행렬이 재정비되는 서울역으로 향했다. 노제 본 행사에 앞서 서울광장에서는 영결식이 끝나가는 낮 12시 무렵부터 방송인 김제동씨의 사회로 가수 양희은과 안치환, 윤도현이 ‘상록수’ 등 고인을 추모하는 노래를 부르는 ‘여는 마당’이 열렸다. ●‘사랑으로’ 합창 부르며 노제 마무리 이날 추모객들로 가득 찬 광화문 네거리에서 서울광장 일대는 ‘정치인 노무현’을 전 국민에 알리고 ‘대통령 노무현’을 만들고 지켜낸 곳이었다. 1987년 6월 전두환 군사정권에 맞서 독재 타도, 호헌 철폐를 외치는 6월항쟁의 물결이 넘친 곳이다. 노 전 대통령 역시 이때 시민들과 함께 ‘독재타도’를 외쳤고 이듬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6대 대통령 당선 이후 2004년 탄핵으로 위기에 봉착했을 때에는 지지자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그를 지켜낸 곳도 이곳이었다. 이런 추억 때문인지 이날 서울광장 일대는 경찰이 서울광장의 일반인 진입을 막는 차벽을 철수한 오전 7시40분부터 추모객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운구행렬이 서울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고 있는 오전 9시쯤에는 광장을 가득 메웠다. 오후 1시쯤엔 추모객이 18만명(경찰 추산, 50만명 주최측)으로 늘어났다. 추모객들은 노란색 햇빛 가리개 모자를 쓰고, 얼굴에는 노란색 스티커도 붙였다. 하늘로 떠오른 노란색 풍선들도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을 향한 그리움을 담아 멀리 떠나보내는 듯했다. 노랑귀걸이와 머리띠를 하고 온 대학생 김수진(여·22)씨는 “노제에 참석하라며 교수님이 휴강해주셨다.”면서 “인터넷에 떠도는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을 보고 젊은이들이 ‘노간지’라며 열광했었는데 이제 그런 소탈한 모습을 볼 수 없게 돼 안타깝다.”며 울었다. 경기도 성남에서 온 김시중(41)씨는 “민주화운동을 함께했던 동지였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은 386세대에 남다른 의미로 남는다.”면서 “노 전 대통령이 남기신 유지를 받들어 지역감정 등 분열을 넘어서 통합의 시대가 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예정보다 1시간 늦게 서울역 도착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 운구 행렬은 2시45분쯤 남대문을 지나 오후 3시쯤 2000여개 만장들을 펄럭이며 서울역에 도착했다. 서울역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은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이 보이자 ‘노무현’을 크게 연호하며 울먹였다. 운구행렬은 이곳에 오후 2시 도착 예정이었으나 남대문 주변 교통통제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민들이 몰려들어 예정보다 1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다. 서울역에서 수원 연화장으로 향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시민들은 서울역을 지나서도 운구행렬을 놓아주지 않고 하염없이 따라 걸었다. 고작 1년 4개월 전 임기를 마치고 노 전 대통령이 걸어오르며 미소지었던 서울역 계단은 이날 노 전 대통령을 영원히 배웅하는 사람들로 가득찼다. 회사원 장진우(33)씨는 “지난해 배웅할 때는 우리가 계단 밑에 있었는데 이제는 대통령께서 계단 밑에 계신다.”면서 “눈물이 나서 더 이상 말을 못하겠다.”며 자리를 피했다. 한편 서울역 앞에 마련된 정부 분향소에는 이날 오후 3시 현재 누적 조문객 6만 4997명이 분향했다. 서울 화곡동 직장에서 전철을 타고 분향하러 온 김도경(43)씨는 “삶도 죽음도 한조각이라는 유서 내용이 가슴을 적셔 일부러 분향소에 들렀다.”고 말했다. ●오후 6시 지나서야 수원 연화장 도착 노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추모행렬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운구행렬은 오후 6시가 지나서야 수원 연화장에 도착했다. 노 전 대통령의 유지대로 화장이 이뤄진 수원 연화장 역시 온통 노란 물결이었다. 연화장으로 가는 길목에는 노란 풍선과 리본, ‘당신은 우리의 영원한 대통령입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바람에 나부꼈다. 오후 1시부터 노란색 모자를 쓰고 노란 스카프를 두른 1000여명의 시민이 연화장 내부 승화원(화장장)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시민들은 야외에 설치된 대형스크린으로 영결식과 노제를 지켜보며 눈물을 훔쳤다. 주부 박현선(41)씨는 “대통령께서 가시는 마지막 길이 외롭지 않도록 배웅하러 나왔다.”면서 “뜨거운 가마 속에서 계셨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김인규(56)씨는 “지난 7일동안은 슬픔의 힘으로 버텼지만 내일부터 무슨 힘으로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권양숙 여사와 유족들의 앞날도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화장은 2시간여에 걸쳐 마무리됐다. 향나무에 담긴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이날 연화장에서 4시간여 고속도로를 달려 이날 밤 봉하마을로 돌아갔다. 유골함은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로 안치됐다. 향후 사저 옆 장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김해 박정훈 김승훈 이재연·수원 오달란 서울 유대근기자 hunnam@seoul.co.kr 영상 / 멀티미디어기자협회 공동취재단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喪家를 움직이는 5인방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는 비서실 출신을 주축으로 한 ‘5인 회의’가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이병완 청와대 전 비서실장, 천호선 전 수석비서관, 행정관을 지낸 민주당 백원우 의원, ‘좌(左)희정’으로 불린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이 5인 회의의 고정 멤버다. ‘박연차 게이트’로 노 전 대통령 일가가 사실상 폐족(廢族)이 되었을 때 눈치 살피지 않고 주군인 노 전 대통령의 사저로 달려갔던 인사들이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으로 불리며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실세총리’로 막강한 힘을 휘둘렀던 이해찬 전 총리가 회의 멤버에서 빠져 있는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문 전 비서실장(변호사)은 ‘박연차 게이트’가 터져 노 전 대통령이 수사 전면에 등장했을 때 노 전 대통령을 끝까지 지킨 인물이다. 코너에 몰린 노 전 대통령의 ‘입’이었고, 노 전 대통령이 ‘VIP의 무덤’이라는 대검 중수부 12층 조사실에서 조사를 받을 때도 줄곧 주군 곁에 있었다. 이 전 실장은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발탁돼 비서실장과 정무특별보좌관까지 맡았던 ‘노의 그림자’였다. 천 전 수석비서관과 백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 출신으로 영원한 ‘노의 사람’이다. 특히 재선인 백 의원은 국회 내 친노(親)의 최측근 인사다. 안 최고위원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측근 중의 측근이다. 노 전 대통령 사후(死後) 새롭게 등장한 ‘5인방’은 고비마다 대책회의를 열고 결론을 도출, 권양숙 여사에게 승인을 받은 뒤 처리하고 있다. 이들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23일부터 줄곧 상가(喪家)를 지키고 있다. 가족장을 고집하던 권 여사를 설득해 낸 것도 다름 아닌 이들이었다. “권 여사가 가족장을 고집한 것은 남편의 유언도 유언이지만 밑바탕에는 현 정권에 대한 격한 감정이 깔려 있었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권 여사라 해도 남편의 사후 ‘충신’인 이들의 요청을 거부하지 못했다. 김해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기고] 연명치료 대리 결정 ‘생전 유언장’ 입법을/김성수 의사·변호사(법무법인 지평지성)

    [기고] 연명치료 대리 결정 ‘생전 유언장’ 입법을/김성수 의사·변호사(법무법인 지평지성)

    민법은 사망한 사람의 유언 방식과 효력에 관한 조항을 두고 있다. 재산상속에 관한 것이 많지만 남몰래 숨겨둔 자녀를 인정해 주는 규정도 있다. 법에서 유언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은 법질서에 어긋나지 않는 한 당사자의 생전 의사에 따라 사후의 업무를 처리하는 게 타당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은 자기가 결정한다.’는 현행법의 대원칙을 따른 것이다. 자기결정권에는 질병에 대한 치료 방침에 관한 선택권도 있다. 대법원은 지난 21일에 식물인간 상태에 있던 환자 김모(77·여)씨의 자녀가 병원을 상대로 인공호흡기를 떼어달라고 청구한 소송을 받아들이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회복가능성이 없을 때 무의미한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김씨의 평소 언행이 가족과 친지의 증언으로 확인됐다. 대법원은 이를 토대로 환자의 치료 중단의사를 추정하고, 환자의 뇌기능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손상돼 죽음의 단계에 진입했다고 판단했다. 물론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기대 여명이 최소한 4개월 이상이라는 감정 의견도 있고, 환자의 치료 중단 의사가 서면 등 명시적인 형태로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환자가 직접 의사 표명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족이 대리권을 남용할 것을 우려한 일부 대법관의 반대의견도 있었다. 사실 가족이라고 해도 장기간의 간병에 지친 나머지 환자의 다양한 언행 중에서 연명치료 기피 부분만을 과장해 강조할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법원 판결은 이러한 곤란한 상황을 줄이기 위해 평소에 유언장과 유사한 ‘사전지시서’를 작성해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을 밝혔다. 의사에게 건강상태와 치료에 관해 설명을 들은 후에 의식 잃을 때를 대비해 연명치료는 받지 않겠다는 내용을 서면의 형태로 작성해 두자는 것이다. 옳은 지적이다. 다만 의료에 관한 사전지시서의 형식과 내용 또는 그 효력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판례의 축적과 더불어 법률로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법원 판결 및 미국의 자연사법 등 외국의 입법례를 참고해 필요한 내용을 정리해봤다. 우선 사후 분쟁을 줄이기 위해 진술 내용은 서면의 형태로 작성하되, 의사로부터 충분한 설명을 듣고 나서 의사 및 증인 입회 하에 작성한다. 둘째, 진술자나 입회 증인은 미성년자, 정신질환자 등이 아니어야 하며 증인은 진술자의 사망으로 상속을 받는 등 재산상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 않아야 한다. 셋째, 진술자에 대한 연명치료 중단이 개시되는 상황이나 요건을 가능하면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기술해야 한다. 넷째, 진술자가 치료 중단 여부의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의 의사 표시를 대신할 대리인을 지정할 수 있다. 대리인도 역시 진술자의 사망으로 재산상 이익을 얻을 수 없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법원이나 의료기관 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상속인인 가족이 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사전지시서가 적법하게 작성돼 활용된 경우 연명치료 중단에 대해 의료인 등은 자살방조나 살인방조의 형사 책임 및 기타 민형사상 책임을 면제받아야 한다. 이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 각자가 이같은 내용을 정리해 서면으로 남기는 방안을 고려할 때가 온 듯하다. 김성수 의사·변호사(법무법인 지평지성)
  • [대법원 존엄사 인정] 자연사법 제정… 18개州선 대리인이 결정 허용

    대법원이 21일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환자에 대해 연명치료장치를 제거하라고 판결함에 따라 우리나라보다 앞서 ‘존엄사’에 대한 기준이 확립된 미국의 판례 및 입법례가 주목되고 있다. 미국에서 연명치료 중단 청구를 받아들일지 여부는 환자 본인의 의사에 따라 결정된다. 하지만 생전유언서(living will) 등 명백한 증거가 없는 채로 환자가 장기간 의식불명 등 의사를 표명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된 경우가 문제가 됐다. 1976년1월 뉴저지주 대법원은 환자 카렌 퀸란의 아버지를 후견인으로 임명하고, 후견인의 의뢰를 받은 담당 의사가 병원윤리위원회의 승인을 거쳐 생명유지 장치를 제거하는 것을 허용했다. 헌법이 보장하는 프라이버시권을 매우 포괄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많은 주에서 자연사법(natural death act)을 제정하기 시작했다. 자연사법은 환자가 말기 상황에 있고, 더 이상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을 경우 생명연장 시술을 보류·중단하도록 담당 의사에게 지시하는 생전 유언서의 효력을 인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주는 생전 유언서 외에 의료진에 대한 사전지시서(advanced directives)에 대한 법률도 제정했다. 20개 주에서는 판단 능력이 있는 환자가 생명유지 장치를 거부할 권리를 인정했고, 뉴욕주와 미주리주를 제외한 나머지 18개 주에서는 판단 능력이 없는 환자를 대신해 가족 등 대리인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1990년 죽어가는 환자의 권리를 명시적으로, 엄격하게 인정한 최초의 연방대법원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교통사고로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24세 여성 낸시 크루잔의 부모는 생명유지장치인 급식관의 제거를 요구했지만 병원이 이를 거부하자 법원에 제거 청구를 했다. 크루잔과 함께 살던 친구는 그가 사고 전에 “긴박한 사고가 생겼을 경우 무의미한 생명연장은 바라지 않는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미주리주 대법원은 이 정도는 ‘명백하고 확신할 만한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고 보고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원조 ‘스타트렉’의 배우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원조 ‘스타트렉’의 배우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최근 개봉한 ‘스타트렉 비기닝’은 1966년 9월 8일 시작된 ‘오리지널 스타트렉’의 프리퀄적인 영화다. 오리지널 스타트렉에서 연기한 실제 배우들은 40여년이 지난 현재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으면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스타트렉에서 ‘광속 워프 항법’를 하며 우주여행을 하듯 우리는 그 배우들의 40년동안의 인생을 여행해 보자. 크리스 파인이 연기한 캡틴 커크의 오리지널 배우는 윌리엄 샤트너다. 1969년 오리지널 스타트렉 이후 연기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으며 13년 동안의 결혼도 이혼으로 마감했다. 그는 이혼과 3명의 딸에 대한 양육으로 경제적으로 심한 곤경에 빠지게 되나, 그의 밑바닥 인생을 다시 살린 것이 역시 스타트렉 프렌차이즈 영화들이었다. 현재 나이 78살. 미국드라마 ‘히어로즈’의 ‘사일러’로 잘 알려진 잭코리 퀸토가 연기한 스포크. 원조 배우는 너무나도 유명한 레너드 니모이다. 스타트렉 두편을 감독하였으며 1987년 ‘세남자와 아기 바구니’의 감독이기도 하다. 올해나이 78세. 아직도 사진작가로 음악가로 작가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의 최근 모습은 스타트렉 비기닝에서 볼 수 있다. 조 샐다나가 연기한 통신장교 우하라의 원조는 니첼레 니콜스. 제작자 로덴베린에 의해 만들어진 당시에는 파격적인 주류 방송에서의 최초 흑인 역할이었다. 우하라와 캡틴 커크의 키스장면은 미국 TV 역사상 최초의 흑인과 백인의 키스 장면으로 유명하다. 스타트렉 이후 실제로 NASA의 여성참여 운동을 시작하여 많은 여성 우주항공사를 낳는 모태가 되었고 그녀 자신도 화성과 토성 탐사대에 참가했다. 자서전에서 스타트렉의 제작자 진 로덴베리와의 연애 사실을 공개했다. 올해 나이 76세. 한국계 배우인 존조가 연기한 줄루의 원조 연기자는 조지 타케이. 60년대 당신에는 파격적이었던 동양인 캐릭터였다. 2008년 타케이는 나이 72살로 그의 오래된 동성 파트너와 결혼식을 올렸다. 현재 타케이는 ‘히어로즈’ 등 여러 TV시리즈에서 아직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있다. 안톤 엘친이 연기한 갑판장의 원조는 월터 코이닉. 코이닉은 연기 뿐만아니라 작가 감독으로도 활동 중이나 아쉽게도 스타트렉의 원조 승무원 중 유일하게 할리우드 스타의 거리에 손도장이 없는 배우다. 조지 타게이가 동성 결혼식을 올릴 당시 유일하게 그의 들러리로 참가하기도 했다. 현재 나이 72세. 영국 배우 사이몬 페그가 연기한 기관사의 원조는 제임스 두한. 오리지널 스타트렉 이후에는 비슷한 캐릭터 연기로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였으며 스타트렉 관련 팬모임이나 이벤트에 참가하는 낙으로 살아갔다. 1974년 그의 나이 54세에 스타트렉 광팬이었던 17세 소녀를 만나 3번째 결혼에 골인했다. 막내가 태어날 때 그의 나이는 무려 80세. 두한은 2005년 알츠하이머와 폐렴증세로 사망했다. 그는 그의 화장한 재를 우주로 보내달라는 마지막 유언으로 유명한데, 그로부터 2년 후인 2007년 그의 재 7g이 로켓에 실려 우주로 보내졌다. 칼 어번이 연기한 닥터 맥코이역의 원조는 드포레스트 켈리. 오리지널 스타트렉 이후에는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스타트렉 팬들 중에 닥터 맥코이역에서 영감을 받아 의사가 되려는 팬덤현상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1999년 나이 79세에 위암으로 사망하였으며 그의 재는 태평양에 뿌려졌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김형태 hytekim@gmail.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우리민족의 어두운 밤 밝게 비춘 등불”

    “우리민족의 어두운 밤 밝게 비춘 등불”

    벽안의 이방인으로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를 창간해 일제의 침략상을 폭로하는 등 항일 언론투쟁의 선구자였던 배설(베델·1872~1909) 선생 서거 100주년 추모식이 선생이 묻힌 서울 양화진 성지공원에서 8일 열렸다. 배설 선생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 이날 추모식에는 이수성 전 국무총리, 이동화 서울신문사장, 김양 국가보훈처장, 마틴 유든 주한영국대사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이 사장은 추모사를 통해 “이 땅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방인이었지만 배설 선생은 우리 민족에게 어두운 밤을 밝게 비추는 등불이었다.”며 “선생께서는 생전에 ‘신문의 할 일은 정의의 편에 서서 불의와 싸워 정의를 전파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셨다.”고 소개했다. 배설 선생의 본명은 어네스트 토머스 베델로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나 32세가 되던 1904년 러·일전쟁 취재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이후 일제의 탄압상을 보고 민족지도자 박은식, 양기탁, 신채호 선생과 함께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 데일리 뉴스(Korea Daily News)를 창간했다. 이 신문사를 항일 비밀단체인 신민회의 근거지로 삼아 일본에 맞서다 일제의 탄압으로 1909년 5월1일 37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했다. 배설 선생은 임종 순간 “나는 죽더라도 대한매일신보를 영생케 해 한국 동포를 구해 달라.”고 유언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8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부고] 日 첫 퓰리처상 수상자 나가오

    [부고] 日 첫 퓰리처상 수상자 나가오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인으로서 처음 미국의 퓰리처상을 받은 나가오 야스시 전 마이니치신문 사진기자가 2일 시즈오카현 자택에서 숨졌다. 78세. 나가오는 1960년 10월12일 총선을 앞두고 열린 도쿄 히비야공회당의 정당 연설회에서 극우파 학생(당시 17세)이 사회당 당수였던 아사누마 이네지로를 흉기로 찌르는 순간을 촬영(오른쪽 사진), 1961년 아시아인 최초로 퓰리처 사진부문상을 수상했다. 나가오는 당시 단 한 장밖에 남지 않은 필름으로 극적인 장면을 찍었다. 아사누마는 병원으로 옮기던 중 사망했다. 나가오는 1962년 1월 퇴사, 프리랜서 카메라맨으로 활동했다. 퓰리처상은 신문왕으로 불린 헝가리계 미국인 조지프 퓰리처(1847∼1911)의 유언에 따라 1917년 제정된 상이다. 저널리즘 14개 분야를 포함해 문학과 드라마 음악 등 7개 부문에 걸쳐 해마다 수상자를 선정하고 있다. hkpark@seoul.co.kr
  • 돈에 관한 열가지 기막힌 이야기

    돈에 관한 열가지 기막힌 이야기

    전주국제영화제가 드디어 막을 올렸다. 8일까지 진행되는 축제의 장에는 ‘디지털·대안·독립’이란 새로운 영화 흐름을 보여주는 국내외 작품들이 가득하다. 특히 개막작으로 선정된 디지털 옴니버스 영화 ‘숏! 숏! 숏! 2009:황금시대’는 젊은 감독들의 재기발랄한 실험정신과 결기가 가득해 눈길을 끈다. 개막식 상영분이 예매를 시작한 지 2분 만에 동난 것을 비롯해 4차례 상영분이 예매 첫날 매진될 만큼 일반 관객들의 관심도 대단하다. ‘숏! 숏! 숏!’은 전주국제영화제가 지난 2007년부터 시작한 한국단편영화제작 프로젝트이다. 보통 3편의 단편을 묶어왔지만 올해는 영화제 10주년을 기념해 특별히 10편의 단편으로 구성했다. 참여한 감독들은 권종관, 김성호, 김영남, 김은경, 남다정, 양해훈, 윤성호, 이송희일, 채기, 최익환 등 모두 10명이다. ●가능성 넘치는 감독들의 10가지 상상 감독들에게 주어진 키워드는 ‘돈’이었다.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이야기하기에 적절한 소재. 투입된 제작비는 편당 500만원이었다. 그나마 지난해까지 3000만원이었던 총 제작비가 ‘KT&G 상상마당’ 등의 지원으로 5000만원으로 불어나 확보한 금액이다. 이송희일 감독의 ‘불안’, 채기 감독의 ‘가장 빨리 달리는 남자’, 김은경 감독의 ‘톱’, 남다정 감독의 ‘담뱃값’은 돈 때문에 겪는 씁쓸한 경험, 꼬여가는 인생 등을 그렸다는 점에서 주제의식을 정직하게 전달하는 작품들이다. 현실에 밀착한 이들 영화는 한순간에 직장을 잃거나 주식으로 거액을 날려 가정이 위기에 몰린 우리네 주변 풍경들을 떠올리게 한다. 비정한 사회라는 배경은 공통되지만 유머 코드를 가미해 웃음을 자아내는 작품들도 있다. 최익환 감독의 ‘유언 LIVE’는 전 재산을 사기 당한 두 청년의 자살소동을 코믹하게 그렸다. 김영남의 ‘백 개의 못, 사슴의 뿔’은 월급을 받지 못한 여성노동자가 중년 사장을 찾아가 독촉을 하는 이야기다. 밉지만 어느 쪽도 미워하기 어려운 상황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양해훈 감독의 ‘시트콤’은 코스튬 플레이 인디언 남자들이 나이트클럽에서 벌이는 소란을 우스꽝스럽게 담았다. 윤성호 감독의 ‘신자유청년’은 52주 연속으로 로또 1등에 당첨된 한 남자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조명한 페이크 다큐멘터리다. 날카로운 사회 풍자와 허를 찌르는 블랙 유머, 진중권 문화평론가, 유운성 전주영화제 프로그래머, 허지웅 프리미어 기자 등 카메오 연기를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권종관 감독의 ‘동전 모으는 소년’, 김성호 감독의 ‘페니 러버’는 황금 만능주의의 상징인 돈이 다른 방식으로 인간관계의 수단이 되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이들 작품은 거꾸로 돈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동전 모으는 소년’은 커다란 유리병에 동전을 모으는 외톨이 소년이, ‘페니 러버’는 잠자리를 함께한 소년에게서 받은 십원짜리 동전에 애착을 갖는 어느 30대 여성이 주인공이다. 가수 조원선이 ‘페니 러버’ 주연을 맡았다. ●어려운 영화계 현실에 던지는 희망 지난 30일 열린 개막작 기자회견에서는 ‘숏! 숏! 숏! 2009:황금시대’에 대한 여러 가지 의미 부여가 오갔다. ‘페니 러버’ 김성호 감독은 “적은 예산으로 만드는 일이 힘들기도 했지만,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길렀다는 점에서는 장점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서 “지난 10년간 한국영화의 황금기를 거치면서 감독들이 어떻게 성숙해왔는지 볼 수 있는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민병록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일본에서 매년 제작되는 400여편의 영화 중 메이저 영화는 60편에 불과하며 150~200편가량이 독립영화, 나머지는 성인영화”라면서 “우리는 메이저 영화가 너무 많이 제작됐던 게 사실인데 이제 30~40편으로 줄어들어 ‘워낭소리’ 같은 독립영화가 스크린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현재 세계영화의 30%는 디지털로 제작되고 있는데 우리도 이제 그런 시대에 접어들지 않았나 생각한다.”면서 “선두주자에 선 전주국제영화제는 앞으로 신인감독 발굴뿐 아니라 투자도 활발히 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숏! 숏! 숏! 2009:황금시대’는 오는 9월쯤 일반 극장에서도 상영될 예정이다. 전주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사진 제공 전주국제영화제
  • [신경림 누항 나들이] 딸을 예사로 팔아먹던 옛일이 생각나는 까닭

    [신경림 누항 나들이] 딸을 예사로 팔아먹던 옛일이 생각나는 까닭

    현 덕이라는 작가를 기억하는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1930~40년대에 주옥 같은 동화와 소설을 쓴 작가이면서도 월북하는 바람에 남쪽에선 잊혀졌고 북쪽에서도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해 남북 문학사에서 다같이 빠져 있는 작가다. 소년시절 그의 중편 ‘군맹(群盲)’을 읽고 감동을 받은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동대문 밖 낙산 아래 빈민촌이 무대로 남의 땅에 움막을 짓고 사는 가난하고 못난 사람들 이야기인데, 가장 신나는 대목은 딸을 팔아 한밑천 잡으려던 부모 모르게 딸 점숙이 몸값을 미리 챙겨들고 애인인 만성과 함께 줄행랑을 놓는 장면이다. 그것을 뒤늦게 안 뒤 동네 이웃 사람들은 허탈하면서도 시원해하는 장면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마도 이렇게 딸을 팔아먹는 풍습은 옛날 우리에게는 그다지 낯선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김동인의 단편 ‘감자’의 비극도 주인공 복녀가 무능하고 게으른 늙은이한테 돈 몇 푼에 팔려가면서 비롯된 것이고, 이용악의 시 ‘북쪽’에도 “북쪽은 고향/ 그 북쪽은 여인이 팔려간 나라”라는 표현으로, 가난하던 시절 국경지대의 우리 조상들이 딸들을 남의 나라 사람들에게 팔아먹기도 했음을 암시한다. 불과 70, 80년 전 우리 현실이지만 여성이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꼽히고 사법시험에 여성들이 절반을 차지할뿐더러 사관학교에서 수석졸업을 여학생이 예사로 하는 요즘, 상상인들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한데도 뜬금없이 딸 팔아먹던 옛날 얘기를 꺼내는 것은 여성을 학대해서 돈을 챙기는 못된 행태가 자주 뉴스거리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바로 딸을 팔아먹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고 이 또한 그 비뚤어진 풍습의 변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예컨대 등록금을 댈 수 없는 여학생이 고리로 돈을 얻어 썼다가 갚지 못해 업소에 나가 성매매를 하고, 견디다 못한 딸의 고백으로 사실을 안 아버지가 딸을 죽이고 자살을 하는 비극만 해도 그렇다. 고리대금업자는 그 여학생이 어떤 부당한 조건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돈이 급하지만 결국은 고리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이용, 샤일록식 계약으로 옭아맨 뒤 마침내 성매매까지를 강요해서 그 돈마저 착취한다. 이 현실에서 나는 성을 상품으로 전락시켜 이득을 챙기는 고약한 뚜쟁이들과 함께, 예쁜 딸을 팔아 생존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던 못난 우리들 옛 아버지들이 생각난 것이다. 문제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여성이라는 성을 돈이나 출세와 연계시키는 후진적 인식이 남아 있다는 점이지만 진정으로 딸을 귀하게 생각할 줄 모르는 인식이 그 기저에 깔려 있음은 더 따질 필요도 없다. 정말로 딸을 귀하게 생각한다면 남의 딸 또한 귀하게 생각해야 맞는 것이 아니겠는가. 장자연 자살의 비극도 그렇다. 무언가 이루어 보기 위해서 노력하는 한 젊은 여성을 그 약점을 이용해서 원하지 않는 일을 거부하지 못하게 한 것이 먼저 잘못된 일이지만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약자인 여성을 농락하려는 자들이 범람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또한 문제다. 청와대 고위직이 연관된 성접대 스캔들도 마찬가지로 그런 자들이 대체로 지도적 위치에 있는 힘 있는 자들이어서 아무런 처벌도 제재도 받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소문이라도 날까 봐 모두들 쉬쉬하는 것이 우리의 현주소이다. 이 소문을 축소하느라고 박연차 게이트가 의도적으로 과장되고 있다는 유언비어를 나는 믿지 않지만 말이다. 진심으로 딸들을 귀하게 여기는 정서가 여전히 결여되어 있는 한, 여성이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에 오르고 여학생이 경찰학교에서 수석을 하는데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북쪽은 고향/ 그 북쪽은 여인이 팔려간 나라”의 후진국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군맹’의 점숙이나 ‘감자’의 복녀가 지금 국민소득 2만달러의 우리나라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니 참으로 슬프고도 안타까운 일이다. 시인 신경림
  • 진보진영 주최 촛불1년 토론회서 보수단체 폭행 난동

    보수단체 회원들이 진보진영에서 주최한 ‘촛불 1년’ 기념 토론회에 참석해 야유를 보내거나 욕설을 퍼붓는 등 집단 난동을 부렸다.대한민국어버이연합회 등 보수단체 회원 80여명은 28일 오후 2시 진보단체인 참여연대 참여사회연구소가 다음달 2일 촛불 1년을 앞두고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토론회에 참석했다. 이들은 ‘촛불 1년,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주제를 두고 참석자들이 개별 발표를 하는 동안 경청했다. 하지만 오후 4시가 지나자 “4시부터 공개토론 한다더니 왜 안 하느냐.”며 소란을 피웠다. 이 과정에서 보수단체 회원 2명이 제지하는 한 여대생의 머리채를 낚아채 잡아끌었다. 이어진 토론에서 자유언론수호국민포럼 이정식 대표는 “PD수첩의 광우병 보도는 국민을 기만한 왜곡 보도였다. 이에 대해 왜 언급하지 않느냐.”고 따졌다. 탈북난민인권협회 김용하 대표는 “북한의 미사일과 핵이 광우병보다 더 무섭다. 이를 외면한 촛불은 순수성을 잃었다.”고 힐난했다. 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서울광장] 빈자일등 빈자일적/김성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빈자일등 빈자일적/김성호 논설위원

    불교경전 현우경에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이라는 애틋한 사연이 전한다. 난타라는, 먹을 것도 없을 만큼 가난한 여인에 얽힌 이야기이다. 부처님께 바칠 등(燈)을 위해 잠도 안 자고 가가호호 정성스레 구걸 끝에 결국 등을 마련, 부처님 앞에 올릴 수 있었다. 밤이 되어 모든 이들이 바친 등이 꺼졌지만 난타의 등만이 남아 세상을 환하게 밝혔다고 한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의 꿋꿋한 정성과 올곧은 뜻이 세상의 으뜸 빛이 된다는 교훈으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회자된다. ‘빈자일등’의 교훈에 얹어 지금 세상의 도마에 오른 두 전·현직 대통령을 떠올림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험한 시절 인권변호사로 학생, 노동자 등 가난한 약자의 편에 섰다가 독재정권의 핵심에 정면칼날을 들이대 청문회 스타로 부각, 낡은 부패정치 청산을 외치며 대통령 자리에 올랐던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천주교 사제로 가난한 빈민들과 부대끼며 헌신적인 사목활동을 펴 ‘빈자의 아버지’로 불리다가 지난해 “갱과 나치 전범의 천국을 민주국가로 만들겠다.”고 선언, 대통령이 된 파라과이의 루고이다. 양심과 인권의 대변자로 우뚝 섰다가 ‘몹쓸 인간’으로 급전직하한 두 대통령을 보면 정말 세상사는 ‘모를 일’이다. 한 사람은 측근·친인척과 연결된 뇌물수수며 공금 횡령 혐의를 받고 있고 한 사람은 주교시절과 대통령 취임 후의 여성 편력으로 낳은 ‘대통령의 아들’이 뒤늦게 줄줄이 나서는 바람에 현대판 ‘주홍글씨’로 입방아에 올랐으니. ‘빈자의 등’에서 가난한 이들의 적, ‘빈자일적(貧者一敵)’으로의 추락이 안타까울 뿐이다. 두사람 중 노 전 대통령의 몰락이 우리에게 더 큰 아픔이다. 청렴과 도덕성의 상징으로까지 통하며 ‘빈자일등’의 우상이었다가 쓰나미 같은 실망과 충격을 휘몰아다 준 옛 영웅. 드라마에서도 드물 만큼의 급반전 결말을 본 관객, 국민은 충격을 어떻게 추슬러야 할까. 퇴임 후에도 옛 영웅을 보기 위해 봉하마을을 찾아든 100만명의 인총이 위안을 찾아야 할 곳은 어디일까.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낸 전도자에 앞서, 가난하고 아픈 자들의 편에 섰던 실천적 혁명가로서의 예수는 더 빛이 난다. ‘나를 따르려거든 제 십자가를 메고 따르라.’며 제자들에게 호통쳤던 예수의 가르침은 다름아닌 자기희생과 모범의 다짐이다. “노무현 한 개인의 몰락이 노무현 가치와 이상 전부의 몰락이 아니길 바란다.”는, 그냥 평범한 이들의 마지막 애정은 그래서 당당함의 요구로 향한다. 세상의 눈총을 받는 비리와 잘못에 대한 모면식 뻣대기가 아닌 진실에의 솔직하고 당당한 처신을 바라는 것이다. 30일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명은 지금과는 훨씬 다른 길 위에 놓이게 된다. ‘불구속 기소’와 ‘구속’을 저울질하는 세간의 앞선 설왕설래가 무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법의 칼날은 피할 수 없는 형편이다. 평생 낮은 데로 임해 살면서 가난한 자의 어머니로 통했던 성녀 테레사 수녀는 “이 세상에 가난한 이들을 위해 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 우리가 어떻게 촌음을 헛되이할 수 있느냐.”는 의미있는 말을 남겼다. 약자와 가난한 자들에 대한 쉼 없는 배려와 희생을 요구한 마지막 유언이다. 헌신적 사랑과 배려의 미담이 공허할 뿐인 지금 꺼져 가는 마지막 등불의 실낱같은 희망은 진실앞의 당당함, 그것뿐일 것이다. ‘貧者一燈 貧者一敵’. 통재라.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배설선생 “나 죽을지라도 한국 동포를…”

    배설선생 “나 죽을지라도 한국 동포를…”

    구한말 양기탁, 박은식, 신채호 선생과 함께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항일 언론투쟁을 한 배설(어니스트 토머스 베델) 선생이 서거한 지 올해로 100주년이 된다. 서울신문사와 사단법인 배설 선생기념사업회는 24일 오후 2시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배설 서거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연다. 천상기 경기대 초빙교수의 사회로 진행되는 이날 대회에선 정진석 외국어대 명예교수가 배설선생의 생애와 업적에 대해 주제발표를 하고, 이어 이병국 한서대교수, 황우권 대진대 학장, 안종묵 청주대 교수, 이용원 서울신문 기획위원이 토론을 한다. 개회식에선 김양 국가보훈처장, 마틴 유든 주한 영국대사, 이동화 서울신문 사장이 축사를 할 예정이다. 영국 브리스틀에서 태어난 배설은 소년 시절 아버지를 따라 일본 고베에 와서 머물다 1904년 3월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런던 데일리 크로니클지 특별 통신원 자격으로 한국에 왔다. 그러나 곧 회사를 떠나 같은 해 7월 대한매일신보와 영문판 ‘Korea Daily News’를 창간, 을사보호조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등 항일 의식을 고취하는 기사를 잇따라 내보내 고종황제와 우국지사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일제의 계속되는 언론 탄압과 외교 마찰을 우려한 영국 정부의 압력, 신문사 간부진의 구속과 경영난 등으로 1908년 5월 사장직에서 물러난 뒤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돼 1909년 5월1일 37세의 나이로 숨졌다. 배설은 숨을 거두기 전 양기탁의 손을 잡고 “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 동포를 구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1968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정 교수는 미리 배포한 발표문에서 “(배설은)국운이 다하여 나라가 위급하던 때에 신문을 통해서 민족진영의 항일운동을 지원했던 항일 언론인이었다.”고 업적을 기렸다. 배설은 신문을 항일투쟁의 발판으로 삼아 일본의 침략을 통렬히 비판했고, 신문사를 국채 보상운동의 본거지로 활용했다. 1907년 9월 무렵에는 국한문, 한글, 영문 세가지 신문의 발행부수를 합쳐 1만부가 넘었는데 이는 당시 한국에서 발행되는 여타 신문 전체의 부수를 합친 것보다 배가 넘는 것이었다. 학술대회에 이어 5월8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묘지에서 배설 서거 100주년 추모기념대회가 열린다. 주한영국대사관과 배설선생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국가보훈처와 서울신문사 등이 후원한다. 마틴 유든 주한 영국대사, 김형오 국회의장, 김양 보훈처장, 김영일 광복회장 등이 참석한다. 이 자리에선 배설 선생의 자유언론사상을 기리고자 제정된 ‘배설 언론상’시상식이 함께 열린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깔깔깔]

    ●스모선수의 유언 스코틀랜드인, 잉글랜드인, 일본 스모선수가 빌딩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려고 했다. 스코틀랜드인은 “신이시여. 스코틀랜드를 구해주소서.” 라며 뛰어내렸다. 잉글랜드인도 “신이시여. 잉글랜드를 구해주소서.” 라며 뛰어내렸다. 그러자 스모 선수가 뛰어내리며 하는 말. “신이시여. 내가 깔아뭉갤 사람을 구해주소서.” ●한마디 상의 없이 남편이 미장원에 다녀오는 아내를 보고 갑자기 화를 벌컥 냈다. “이봐 나하고 한마디 의논도 없이 단발머리를 하면 어쩌자는 거야?” 그러자 아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러는 당신은 왜 한마디 상의도 없이 대머리가 된 거야?”
  • 부동산 재벌 헴슬리 “개처럼 벌어 개들에게”

    부동산 재벌 헴슬리 “개처럼 벌어 개들에게”

    지난 2007년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미국의 부동산 재벌 리오나 헴슬리가 개들에게 1000만달러를 물려주는 것을 비롯,53개 자선단체에 1억 3600만달러를 기부했다고 AP통신이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녀가 남긴 유산은 50억~80억달러(약 6조 7500억~10조 8000억원)로 추산됐는데 지난해 그녀의 유언장에 모든 유산을 개와 관련된 자선단체에 기부하도록 적시했던 것으로 보도되면서 동물보호단체들을 흥분시켰다.자신의 애완견 ‘트러블’에게도 1200만달러를 떼줬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지난 2월 법원은 헴슬리 자선기금이 그녀 소유의 부동산을 처분해 기부처를 결정할 온전한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다시 말해 개와 관련된 자선단체에만 유산을 건네지 말고 다른 자선단체에도 나눠줄 수 있는 권한을 자선기금에 부여한 것이다. 이에 따라 자선기금은 그녀의 유산 대부분을 병원과 의학연구에 건네기로 결정한 것. 단일 기부 항목으로 가장 큰 4000만달러는 뉴욕의 프레스비테리언-웨일 코널 병원의 소화기질병센터에 할당됐고 3500만달러는 마운트시나이 병원에 헴슬리의 이름을 딴 두 개의 연구기관을 세우는 데 건네진다. 자선기금은 또 그녀의 유지를 받들어 미국동물학대예방재단과 시각장애인 인도견을 훈련시키는 여러 단체에 100만달러씩을 배정했다. 이날 발표한 성명을 통해 자선기금은 “전 생애에 걸쳐 헴슬리 부부는 목숨이 경각에 달한 이들에게 필요한 의료연구의 혁신을 통해 남들을 돕고자 했고,조금씩 달라지도록 지원책을 제공하려 했던 그들의 착한 일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데 우리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밝혔다. 자선기금은 홈리스나 극빈층에 대한 식사 제공 등을 하는 자선단체에 20만달러의 기부금을 책정했다. 이날 월스트리트 저널은 코네티컷주 그리니치에 있는 그녀의 저택 가격을 무려 5000만달러(약 675억원)를 내린 7500만달러(약 1012억원)으로 하향 조정해 미국의 단독주택 거래 가격으로는 가장 큰 폭의 하향 조정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이 저택은 16만㎡ 대지에 침실이 13개이고,두 개의 실내외 수영장과 은으로 된 붙박이 옷장 등이 딸려 있으며, 정원은 웬만한 공원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다. 신문은 극심한 경기침체에도 변동이 별로 없었던 호화 저택 가격이 이처럼 하향 조정된 것은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어느 정도인지를 반증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호화 저택 매매가가 가장 크게 내려갔던 것은 지난해 7월 러시아의 한 억만장자가 미국의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의 팜비치 저택을 당초 1억 2500만달러에서 3000만달러 깎아 9500만달러에 매입한 것이었다. 헴슬리는 이 저택 리노베이션에 들어간 수백만달러를 회사 공금으로 유용해 탈세 혐의로 수감되기도 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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