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드림’ 몰락 예견한 2권의 책
경제가 어렵고, 전망이 불투명할수록 사람들은 미래를 알고 싶어 한다. 그래선지 올 초 서점가엔 유독 미래를 전망하는 신간들이 많이 눈에 띈다. 그중 신선한 시각으로 많은 역작을 내온 미국의 사회사상가 제러미 리프킨과 독일 총리를 지낸 헬무트 슈미트의 미래전망은 꽤 의미 있게 읽힌다. 지난 2000년 ‘소유의 종말’에서 ‘소유의 시대’가 가고,‘시간과 체험의 상품화’란 새로운 국면을 진단했던 리프킨은 이번엔 아메리칸 드림이 몰락하고 유럽의 시대가 온다는 도발적 예측으로 관심을 모은다. 또 헬무트 슈미트는 20세기 세계사의 산 증인답게 매우 현실적인 예측을 내놓고 있다.
■ 유러피언 드림/제러미 리프킨 지음
아메리칸 드림이 미국인을 넘어 전 세계인의 꿈으로 보편화한지는 이미 오래됐다. 무한한 기회의 상징으로 대표되는 이 말은 아무리 불신이 팽배한 시기에도 미국인들이 가슴 속에 품고 세계 최고를 향해 진군해가는 동력이었다.
그러나 미래의 비전을 가장 정확하게 읽어낸다는 미국인 사회사상가 제러미 리프킨은 미국인들이 종교만큼이나 애지중지하는 아메리칸드림에 깊은 회의를 나타낸다. 아니 회의를 넘어 몰락을 예견한다. 그가 내세우는 미래의 비전은 이제 아메리칸 드림이 아니라 ‘유러피언 드림’에 있다.
제러미 리프킨은 이 책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종말을 고하면서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그것은 개인의 자유보다 공동체 내의 관계를, 동화보다는 문화적 다양성을, 부의 축적보다는 삶의 질을, 무제한적 발전보다 환경 보존을 염두에 둔 지속가능한 개발을 중시한다.
●미국 물질만능주의·한탕주의 성행
저자에 의하면 미국의 이상이며 세계인들이 선망하는 아메리칸 드림은 더 이상 세계화 시대에 부응하지 못한다. 자수성가 신화가 물질만능주의로, 개척과 모험정신은 한탕주의로 변질됐다. 개발과 정복, 부의 축적과 출세 지상주의로 대변되는 아메리칸 드림은 개척시대의 사고방식에 젖은 케케묵은 꿈으로 오래 전에 폐기돼야 했으며, 실제로 쇠퇴하고 있다. 저자는 저명한 미래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에서 냉전 종식후 시장 지향적 자유민주주의가 최종적 승리를 거두고, 다른 대안이 없다고 주장한 것에 편견이 숨어 있음을 꼬집는다. 민주국가에서 개인이 속박당하지 않고 부를 축적하는 것을 강조하는 아메리칸 드림이 곧 역사의 종말을 대변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러피언 개별국가 아닌 거대한 집합체
유러피안 드림에서 그가 주목하는 대상은 독일, 프랑스 등 개별 국가가 아니라 유럽연합, 즉 EU란 거대한 집합체다.EU 국민들은 이제 자신들을 프랑스인, 독일인이라기보다는 유럽인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그는 지적한다. 저자는 미국의 50개 주를 아메리카합중국의 일부로 생각하는 것처럼, 유럽 각국을 EU의 일부로 생각해야 하며, 독일과 미국이 아니라 독일과 캘리포니아주를 비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볼 때 EU는 아직 유아기지만 GDP, 삶의 질, 환경, 교육 등 모든 면에서 미국을 능가하며 새로운 슈퍼파워로 부상하고 있다.‘포천’이 선정한 140개 대기업 가운데 미국 회사(50개)보다 유럽회사(61개)가 더 많다. 미국이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를 주시하는 동안 유럽에서 전혀 다른 경제혁명이 진행되고 있지만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는 유럽의 변화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가늠하지 못하고, 그에 대응할 준비도 돼 있지 못하다고 경고한다.
●EU 공동체속 개인 자유 신장
미국과 EU가 궁극적으로 엇갈리는 것은 주권 문제다. 미국은 국가권위를 최고로 보고 국가 내에서만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받을 수 있다는 과거 민족국가 시대의 주권개념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유럽인들은 보다 더 큰 공동체에 포함되어 긴밀한 관계를 형성할 때 개인의 자유가 신장된다고 본다. 점점 경계가 모호해지는 글로벌 세계에서 EU는 국가법보다 보편적 인권규약을 상위에 놓고 있으며, 실제로 인권 협약을 위반한 나라에 병력을 파견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지배와 일방주의적 사고가 팽배한 미국과 달리 공존과 조화를 추구하는 유럽에서 지은이는 미래의 비전을 본다. 결국 유러피언 드림은 인종과 종교 분쟁이 항시 잠재해 있는 21세기의 범세계적 갈등을 포용하는 능력을 갖춤으로써 유럽을 넘어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역설한다.2만 2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미래의 권력/헬무트 슈미트 지음
독일 총리를 지낸 헬무트 슈미트(87)는 20세기의 독일뿐 아니라 세계 역사의 산 증인이다. 그래선지 그가 미수를 앞두고 내놓은 세계 정세와 미래를 진단한 ‘미래의 권력’(나누리 옮김, 갑인공방 펴냄)은 결코 가벼이 읽히지 않는다.
그는 미래의 전망을 좌우할 중요한 요소로 인구팽창과 환경오염, 기술과 경제 세계화로 인한 권력 집중현상, 국제 금융시장의 취약성에 따른 위기, 확산일로에 있는 소형무기 등을 지목한다. 이들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따라 세계의 미래상은 예측할 수 없는 극단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제국주의화 경향을 보이는 미국이다. 앞으로도 적지 않은 기간 동안 미국의 영향력이 지배적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 대외정책의 전통으로 자리잡은 고립주의적 역사에 대해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미국이 국제사회에 취해야 할 자세를 제시한다. 이슬람 세계를 존중할 것, 악의 축이니 악당국가니 하는 멸시적인 표현을 중단할 것, 석유 수급 문제가 최대 관심사임을 솔직히 밝힐 것, 이스라엘 안전을 확보하는 데 관심이 높음을 인정할 것 등등이다. 저자는 21세기엔 강대국의 판도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중국, 인도가 강대국 대열에 편입되며, 특히 중국은 민족·종교 분쟁 등 내부적 불안요인만 극복하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으로 내다본다. 또 유럽연합이 공동시장과 유로 덕분에 경제 강대국이 될 것이며,30년 뒤엔 세계 경제가 유럽연합, 미국, 중국의 삼각구도를 이룰 것이라고 예측한다.1만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