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환칼럼] ‘돌아온 탕아’ 손학규?
대통합민주신당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손학규의 실험이 통할까. 지난 10일 그가 당 대표로 선출됐을 때다. 당 중앙위원회 행사장에서다. 꽃다발을 든 그는 환한 표정이었다. 오충일 전 대표와 포옹 때도 웃음이 가득했다. 다음날이다. 대부분 신문이 그의 사진을 크게 실었다. 하지만 쓸쓸해 보였다. 웃음 뒤엔 외로움이 묻어났다. 인터넷서 여러 컷의 사진을 찾았다. 비슷한 느낌이 전해졌다. 기쁨의 얼굴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였다. 엘그레코의 그림 ‘베드로의 눈물’을 떠올린다.
‘베드로의 눈물’은 실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하지만 절절하다.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 더 가슴 아프다. 눈을 마주치면 이내 눈물을 쏟을 것만 같다. 그의 표정엔 과거, 현재, 미래가 담겼다. 예수를 부인했던 회한, 그리고 부활의 기적을 목격한 놀라움이 엉켜있다. 앞으로 예수를 증거하며 살겠다는 다짐이 녹아 있다.17세기 초 표현주의를 이끈 화단의 거장다웠다. 엘그레코가 재현한 ‘베드로’는 스페인 톨레도 대성당을 찾는 이의 마음을 무너져 내리게 한다. 나락에 빠졌다 회개하는 나약한 인간은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새로운 삶에 대한 기쁨, 그리고 모든 사람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두고두고 생각하게 한다.
손학규 대표가 외롭다. 통합신당이 빈사위기다. 참담한 대선패배는 당을 존망의 벼랑으로 몰았다. 기력이 소진됐다. 덩치만 멀쩡하다. 겨우 숨만 헐떡이는 공룡과도 같다. 누구도 회생 가능성을 점치기 어렵다. 손 대표더러 당을 일으켜 세우라고 한다. 그는 며칠 전 스스로를, 통합신당을 ‘돌아온 탕아’(蕩兒)에 비유했다. 손 대표는 “감히 국민들에게 총선 승리를 안겨 달라고 이야기 못하겠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신당 모두 낮은 자세로 노력하자고 했다.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과 만난 자리에서였다.
그는 대표취임 때 반성과 변화, 쇄신을 강조했다. 그는 과거, 현재 미래를 포용하고, 극복해야 한다. 그는 실용과 민생을 주창했다. 국민들은 이념이 아니라 빵을 원한다고 했다. 이 시대의 가치이고 대세라고 판단한 듯하다. 현재다. 그럼에도 국민들에게 통합신당은 노무현 정권의 이미지 그대로다. 이해찬, 유시민이 떠났다.386을 얼굴없는 2선으로 돌렸다. 하지만 노의 라벨이 세탁됐다고 믿는 사람은 드물다. 손 대표의 한나라당 전력도 극복 대상이다. 모두 과거 덫이다.‘탕아’의 유산이다.
그는 새로운 진보, 유능 진보, 제3의 길을 내세웠다. 미래 가치다. 하지만 의미나 지향점이 분명하지 않다. 선진평화 개념도 마찬가지다. 유연한 진보는 그의 장점이다. 하지만 수사학에 의존하는 모호한 메시지는 여전히 치명적 약점이다. 당장 4월 총선이 시험대다. 모호하고, 어설픈 차별화는 당의 존재 의미를 흔들 수 있다. 이제 변화와 희망의 분명한 메시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새로운 어젠다를 창출해야 한다. 미래 가치의 확실한 제시가 관건이다. 새바람을 일으킬 인물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당이 살고, 그 역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그는 재기불능의 치명상을 입을지 모른다. 하지만 두려워해서는 내일이 없다. 스스로 원해 독배를 든 그다. 탕아를 자처했던 그가 아닌가. 손 대표가 비유했던 성경속의 ‘돌아온 탕아´는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다. 지금 그에겐 진정한 회개와 거듭나는 용기가 먼저다. 용서는 총선때 국민들의 몫이다.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