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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계 어려움 비관 30대 아내·자녀 살해뒤 자살

    【대구=황경근 기자】 12일 상오 9시쯤 대구시 달서구 도원동 가람아파트 109동 1601호 김철성씨(36 이동카센터 운영) 집에서 김씨와 아내 허선혜씨(34),아들 성현군(8),딸 지은양(7) 등 일가족 4명이 숨져 있는 것을 김씨의 동생 용성씨(34)가 발견했다. 숨진 김씨는 “평생 남의 돈으로 살아온 것 같다.아내만 남겨두고 내가 죽으면 너무 커다란 고통을 주는 것 같아 데리고 간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경찰은 김씨가 아내와 자식들에게 극약을 먹여 숨지게 한 뒤 목을 매 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
  • 자금난 중기 여사장 자살

    【광명=김병철 기자】 12일 하오 6시35분쯤 한준전자 대표 김석준씨(41·여·경기도 광명시 하안4동 주공아파트 604동)집에서 김씨가 부엌 도시가스관에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이종사촌 동생 임기준씨(43)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임씨는 “아침에 동생이 운영하는 회사에 연락해 보았으나 출근하지 않았다고 해 집에 찾아가 현관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동생이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숨진 김씨가 최근 자금난으로 고민해 왔다는 회사 관계자들의 진술과 집에서 “미안하다.애들을 잘 키워달라”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된 점으로 미뤄 김씨가 비관자살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동기를 조사하고 있다.
  • 서울대 휴학기간 제한 폐지/내년말까지 특별연장 허용

    ◎학부모 학비부담 덜게 서울대는 12일 IMF 한파로 학비 마련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내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휴학기간을 제한하지 않기로 했다. 서울대 학장회의는 현재 학부 6학기(예과 과정은 3학기 추가),석사 4학기,박사 6학기로 제한된 휴학가능 학기수를 99학년도 2학기까지 ‘경제적 사유’가 있을 경우 적용치 않기로 결정하고 학칙 개정 작업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부모의 실직이나 사업실패 등으로 등록금을 내기 어려운 학생들은 사유서만 내면 휴학할 수 있게 된다. 서울대 김신복 교무처장은 “경제사정의 악화로 등록금 마련이 어려운 학생들이 많아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 우울증 엄마 아들 살해후 자살/어린 것이 무슨 죄가…

    【용인=김병철 기자】 2일 0시30분쯤 경기도 용인시 구성면 상하리 인정프린스 아파트 101동 302호 김두식씨(38·회사원) 집에서 김씨의 부인 이관옥씨(36)와 아들 은평(9·초등2년),은성군(7) 형제가 숨져 있는 것을 김씨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거실 탁자에는 이씨가 남편에게 남긴 ‘먼저 떠나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가 있었다. 경찰은 평소 우울증세를 보여 온 이씨가 두 아들을 목졸라 살해한 뒤 자살한 것으로 보고 조사중이다.
  • 60대,가족 살해뒤 자살/“아들 진학 고민” 유서 남겨

    ◎부인·아들에 엽총 쏜뒤 자신은 목매 27일 하오 6시20분쯤 서울 서초구 방배3동 신동아 아파트 2동 1409호 변재명씨(62·화구점)의 집 거실에서 변씨와 변씨의 부인 김기자씨(57),아들 경석군(18)이 숨져 있는 것을 조카 변상석(41)씨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상석씨는 “저녁무렵 삼촌집에 들러보니 숙모와 사촌이 거실에서 피를 흐린 채 쓰러져 있었고 옆에 엽총이 놓여 있었으며 삼촌은 거실 베란다에 목을 매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변씨의 거실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이웃분들께 소란을 끼쳐 죄송하다.아들 대학문제로 고민하다 먼저간다”는 내용과 함께 가족 3명의 장기기증 등록증 복사본이 붙어 있었다. 경찰은 평소 변씨가 우울증을 앓아왔다는 친지들 말에 따라 엽총으로 부인과 아들을 살해한 뒤 목을 맨 것으로 보고있다.
  • 일 중소기업 사장 3명 경영난 비관 동반 자살

    【도쿄=강석진 특파원】 경제난을 비관한 일본인들의 자살이 크게 늘고 있는 가운데 26일 일본의 중소기업 사장 3명이 도쿄도 구니타치(국입)시의 한 호텔에서 목을 매 동반 자살,충격을 주고 있다. 이들은 모두 자용차용품을 판매하는 회사 사장으로 이날 상오 1시 40분께 각자의 호텔 방에서 목을 매 숨진 채로 발견됐다.이들이 묵었던 호텔의 한방에서는 경영난을 비관하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이들의 회사는 서로 빚보증을 서는 등 밀접한 거래관계를 유지해 왔다. 경찰은 유서내용과 이들이 최근 자금난에 시달려온 점으로 미루어 일단 경영난을 비관,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
  • 한국계 일 아라이 의원 자살

    ◎부당이익 혐의 구속직전… 유서는 공개 안돼 【도쿄=강석진 특파원】 증권거래를 통해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아온 한국계 아라이 쇼케이(신정장경) 일본 자민당 중의원 의원(50)이 19일 자신이 묵고 있던 도쿄시내 퍼시픽 호텔 방에서 부인이 외출한 사이 목 매 자살했다. 그는 부인 앞으로 유서 한장을 남겼으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유서는 부인이 보관중이다.자살동기 또한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일본의 유일한 한국계 의원인 그는 95년 10월 닛코(일흥)증권 지점에 차명구좌를 개설한 뒤 지난해 3월까지 2천9백만엔의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로 검찰의 체포영장이 청구된 상태였다.도쿄지검 특수부는 국회의 체포동의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19일밤 증권거래법위반(추가이익요구) 혐의로 그를 체포할 예정이었다.
  • “암투병 어머니 구해주세요”/중학생 유서 남기고 자살기도

    지난 12일 하오 1시쯤 서울 강북구 번동 야산에서 이모군(13·C중 1년)이 나무에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등산객 김모씨(42·서울 강북구 번동)에게 발견돼 구조됐다. 이군은 ‘난치병으로 사경을 헤매는 어머니를 구해달라’는 내용의 유서를 김영삼 대통령 앞으로 남긴 뒤 자살을 기도했었다. 이군은 “난소암을 앓고 있는 홀어머니의 수술비를 구해보려고 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고 죽으면 도와줄 사람이 나설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한편 이 소식을 접한 서울 강동구 서울 중앙병원측은 무료로 이군 어머니의 난소병을 치료해 주겠다고 13일 밝혔다.
  • 미 칼텍스사/LG반도체 주식 26% 확보

    ◎LG정유서 ‘전자’ 보유 주식 담보물로 제공 미 정유회사인 칼텍스사가 국내 합작사인 LG칼텍스정유에 자금을 빌려주면서 담보로 LG반도체의 지분 26.56%를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칼텍스사는 2일 “지난달 23일 LG반도체의 주식 1천8백50만주(26.56%)를 보유했다”며 “보유 목적은 주식소유자(LG전자)가 수출연불금 및 수입대금에 대한 담보로서 질권계약의 목적물로 제공하는 데에 한정된다”고 증권거래소에 신고해 왔다. LG칼텍스정유는 지난달 칼텍스사로부터 원유 수입대금 등에 사용할 목적으로 5억달러를 빌려 오는 4월말까지 쓰는 조건으로 계열사인 LG전자가 소유하고 있던 LG반도체 주식 26.56%를 담보로 제공했으며,LG전자는 정유로부터 보증료 0.4%를 받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 일본인과 자살/이세기 사빈 논설위원(외언내언)

    일본의 대표적 작가 미시마 유키오(삼도유기부)의 단편 ‘우국’은 육군장교들의 반란사건과 관련하여 한 중위 부부가 자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할복한 남편이 내뿜은 검붉은 피가 부인의 백색 기모노를 적시고 피바다를 이룬 다다미 바닥을 새하얀 버선발로 밟고 다니는 이단적인 형식미가 눈부시다.이른바 ‘하리키리(복체)’란 헤이안(평안)시대 이후 투철한 무사도 정신을 강조하는 자살방법이다.작가는 그의 소설처럼 자위대의 각성과 궐기를 촉구하면서 지난 70년 자위대원들이 보는 앞에서 할복자살했다.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가와바타 야스나리도 그의 제자인 미시마가 자결한 뒤 가스자살했고 그 이전에 ‘나생문’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다사이 오사무도 자살했다. 일본인의 죽음에 대한 집착은 일본을 소개하는 서적에서 ‘죽음의 문화’가 민족적 특성으로 등장한다.또한 매주 집계되는 금주의 베스트 셀러 중에는 죽음과 관련된 ‘유서’‘임사체험’‘투명한 유서’ 등이 두세권씩 끼어 있고 ‘인간답게 죽는법’이란 책이 서점의 중앙에 장기 진열되기도 한다.그들의 죽음에 대한 관심은 그것이 반드시 치명적인 미학의 결정체이어야 한다는 것이며 책임에 대한 전력투구일 뿐이다.이번 일본 대장성 수뢰 스캔들도 마찬가지다.전현직 간부들의 잇단 체포,장차관의 인책경질에 이어 대장성 은행국 오쓰키 요이치(대월양일) 금융거래관리관이 목을 매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다.76년 록히드 사건이나 89년 리크루트 사건때도 측근인 운전사와 자금담당 비서가 책임을 지고 자결했다.그들의 정신은 자신이 겪은 수치를 ‘깨끗이’ 자살로서 사죄하고 전력을 다해 책임을 지려는 최후의 수단이다.일본도를 사용하진 않았으나 현대적인 ‘셉부쿠(체복)’인 셈이다. 자살이 아름답다거나 장하다는 것은 아니다.문화가 다른만큼 모든 것이 우리와는 다를 수 밖에 없다.그러나 만약 비슷한 사건때문이라면 아마도 우리는 책임을 회피하면서 ‘시간이 약’이라고 세월이 흘러 사람들이 모든 사건을 잊어버리기나 바랐을 것이다.
  • 생활고 비관 30대 가장 자녀 4명과 음독 자살

    【서귀포=김영주 기자】 생활고를 비관한 30대 가장이 자녀 4명과 함께 동반자살했다. 22일 하오 4시20분쯤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읍 하모리 818의1 장경숙씨(44여) 집에 세든 이명철씨(33)와 아들 윤제(12 초등교 5년),윤협군(10 초등교3년),딸 아련(7),아민양(6) 등 일가족 5명이 숨져 있는 것을 장씨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장씨에 따르면 집을 다른 사람에게 세놓기로 했다는 말을 전하려고 이씨가 살고 있는 안방 문을 열어보니 가족들이 모두 이불을 덮고 반듯이 누운 채 숨져 있었다. 경찰은 이씨 집 안방에서 “되는 일도 없고 살기도 힘들다”는 내용의 유서와 소주병,빈 우유팩이 나온 점으로 미뤄 생활고를 비관해 자녀와 함께 독극물을 술과 우유에 타 마시고 동반자살 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시체를 부검키로 했다. 이씨는 3년 전 아내 양모씨(33)가 가출한 뒤 다른 여자와 동거해 오다 동거녀 마저 1개월 전 가출하자 뚜렷한 일자리가 없이 방황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 “힘든 생활 지탱할 수 없어”/10대 소녀 3명 동반자살

    10대 소녀 3명이 세상살이를 비관하는 유서를 남기고 동반 자살했다. 3일 하오 10시50분쯤 서울 도봉구 쌍문3동 H아파트 1동 13층 복도에서 이동네에 사는 김모(15·C중 2년 중퇴)·박모(15·Y중 2년 중퇴)·봉모양(16·K여상 1년) 등 3명이 40여m 아래 땅바닥으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동네 친구 및 선후배 사이인 이들은 “학교 다니기 싫고 집에도 가기 싫다.더 이상 힘든 생활을 지탱할 수 없어 이 세상을 떠난다”는 내용의 유서 6장을 김양의 집에 남겼다.
  • 주점 주인 살해 용의자/결백유서 남기고 자살

    【군산=조승진 기자】 가요주점 사장 살해용의자로 지목돼 경찰의 조사를 받은 강태범씨(53·무직·전북 진안군 진안읍)가 2일 하오 전북 군산시 옥서면 남동마을 뒤 야산에서 소나무에 목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강씨의 호주머니에는 “억울하다.누명을 쓰고 있다.내가 박현수를 살해하지 않았다”라는 결백을 주장하는 내용이 담긴 유서가 있었다. 강씨는 지난해 12월22일 새벽 전북 전주시 금암동 궁전가요주점 사장 박현수씨(38)를 살해한 용의자로 지목돼 다음날 전주북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뒤 뚜렷한 혐의점이 없어 귀가조치됐었다.
  • 베를린 자유대/50년 사상 최대 역경

    ◎통독후 맞수 훔볼트대로 교수·학생 대거 이탈/예산까지 삭감 이중고… “제때 개혁 못해 추락” 종전후인 48년,포드재단 후원으로 분단독일의 서베를린에 설립된 자유대학이 예산절감과 교수진 및 학생들의 대거 이탈로 창립 50년만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동베를린 소재의 유서깊은 훔볼트대학이 공산정권에 접수된 후 그 반동으로 설립된 자유대는 90년 동독 공산체제 붕괴 이전까지만 해도 서독 최대의 대학으로 명성을 날렸다. 그러나 독일이 통일되고 훔볼트대가 현대화 단계에 들어선 최근 수년간 수많은 교수진과 학생들을 빼앗긴 자유대는 ‘통일의 희생자’로 불투명한 미래에 직면해 있다. 분단이후 훔볼트대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강요를 피해 서베를린으로 탈출한 교수,학생들의 저항정신에 기초를 두고 설립된 자유대는 미국 정부와 포드재단 등 민간재력가들의 대규모 후원아래 전후 독일 고등 교육의 선두주자로 급속히 부상했다. 미국식 캠퍼스 유형을 도입한 자유대 건물들은 서베를린 주둔 미군사령부와 나란히 자리를 잡았고 냉전 ‘일선’으로서의 베를린 위치 때문에 창립 초기부터 학생운동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 50년대말과 60년대초 이 대학의 반공,반동독 활동은 너무나 거세 오히려 연합군 쪽에서 이를 완화하도록 압력을 가할 정도였다. 60년대말 1만8천명이었던 학생수는 70년대와 80년대에 급증,베를린장벽 붕괴시에는 5만여명에 달했다. 그러나 예산삭감으로 지금 대학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건물들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요한 게를라흐 자유대 총장은 “지난 91년이후 예산이 3분의 1이나 깎였다”면서 재정난 타개책으로 최근 부설연구소들을 위한 후원금 모금운동에 착수했다.그는 대학부설 연구소 예산의 40%를 부담하는 후원자들의 이름을 대학건물에 붙여 주겠다는 약속을 내 걸었다. 1963년 서베를린을 방문한 존 F.케네디 미국대통령이 “나는 베를린 시민”이라는 유명한 연설을 했을때 통역을 맡았던 로베르트 로흐너는 자유대에 대한 베를린시의 ‘이상한 태도’를 비난했다.그는 지난 60년대 이 대학에서 공부해 성공한 수많은 정치인들이 지금은 모교에 등을 돌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베를린 시정부의 과학문화 분야를 책임지고 있는 페테르 라둔스키는 자신들을 구동독과의 경쟁의 희생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그러한 비판은 비합리적이라고 반박했다. 자유대의 역경에 대해서는 동정론과 함께 새로운 환경에 적응,개혁을 하지 못한 대학 자체의 실패를 지적하는 비판론도 많다.
  • 미 필라델피아시 인디펜던스 홀(세계 문화유산 순례:55)

    ◎미 합중국 독립선언 산실/1776년 7월4일 토머스 제퍼슨 “인간은 평등과 권리…” 선언/당시의 테이블·의자 등 보존/“모든 인류는 나면서부터 평등하고 조물주는 인간에게 몇가지 남에게 넘겨줄 수 없는 권리를 주었다” 【필라델피아(미국)〓나윤도 특파원】 “모든 인류는 나면서부터 평등하고 조물주는 인간에게 몇가지 남에게 넘겨줄 수 없는 권리를 주었다.그 권리 가운데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권리가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리인 것입니다.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인류는 정부를 조직하였으며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통치를 받는 국민의 동의로부터 유래하는 것입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시 인디펜던스 홀(Independence Hall)에는 토머스 제퍼슨의 그런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배어있는 지도 모른다. 지금으로부터 220여년전인 1776년 7월4일 제퍼슨은 이 홀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그 독립선언서는 지구상에서 처음 인간의 평등과 권리를 바탕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정부의 도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지금도 이 기념관에는 당시의 테이블과 의자와 펜,심지어는 녹색 테이블보까지 보존돼 있다. ○녹색 테이블보도 그대로 미국판 독립기념관인 인디펜던스 홀은 미 합중국 탄생의 요람인 필라델피아의 중심에 위치했다.자유의 종(Liberty Bell)과 같은 기념유물들과 주변건물을 함께 묶어 미 국립역사공원으로 지정받은 이 지역은 미국의 독립정신과 넋을 일깨우는 성지이기도 하다. 인디펜던스 홀은 원래 잉글랜드 퀘이커교도들이 세운 펜실베니아 식민지의 정부청사다. 이 건물은 1800년 포토맥강 언덕에 새 수도를 건설할 때까지 연방정부 청사로 사용했다.그 이웃 어셈블리 룸에서는 제2차 대륙회의의 집회장소로 사용되었다.독립선언의 채택과 함께 1787년 연방 헌법도 여기서 통과되는 등 미 합중국 탄생지로서의 역할을 다했던 건물이다. 홀 투어코스의 첫방인 인디펜던스 홀 왼편 부속건물에는 화가 에드워드 새비지가 그린 독립선언 채택 당시의 회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벽에 걸려 있다.이 그림에는 제퍼슨과 존 애덤스, 로저 셔만, 로버트 리빙스톤, 벤자민 프랭클린등이 등장한다.5명의 독립선언서 기초위원을 대표한 제퍼슨이 존 행콕 의장에게 초안을 제출하는 동안 각 주 대표들이 상기된 표정을 짓고 있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이 건물은 1732년 당시 변호사이던 앤드류 해밀턴의 설계로 지었다.18세기 조지안 건축양식의 대표적 건물로 꼽힌다. 붉은 벽돌건물 가운데 하얀 시계탑이 우뚝 솟아 매우 정갈한 인상을 안겨준다.중앙건물을 중심으로 좌우에회랑을 통하여 연결되는 부속건물 하나씩을 세웠다.1956년까지 24년 동안 공을 들여 지었다. 이들 부속건물과 약간 떨어진 좌측에는 시청,우측에는 법원 건물이 들어섰다.그러다 식민시대 청산과 함께 필라델피아가 신생 미국의 수도가 되자 대법원과 연방의회로 사용되었다.본래부터 입법 사법 행정 3권의 중심지로 설계된 셈이다.연방의회로 사용한 콩그레스 홀은 워싱턴 대통령의 2차 임기와 2대 대통령 애덤스의 취임선서를 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이후 영국군과의 전쟁에서 내부의 가구 및 장식들은 대부분 소실되었다.그러나 독립선언서와 연방헌법에 서명하기 위하여 대표들이 사용했던 일부집기는 아직 남아있다.의장석의 은제 잉크스탠드와 제헌회의에서 의장 조지워싱턴이 앉았던 태양의 상반부만 조각된 ‘라이징 선’의자 등이 그것이다.미국 역사에서 가장 보배로운 유물이 아닌가 한다. 인디펜던스 홀 앞쪽 몰광장 한가운데는 리버티 벨이 유리전시관에 보존돼 있다.미국의 자유를 상징하는 이 종은 1752년 펜실베이니아 식민지 창립 50주년을 기념하여 런던에서 주조된 것이다.“온 나라의 국민에게 자유를 선언하노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이 종은 원래 인디펜던스 홀의 중앙 첨탑에 달려 있었으나 건물의 안전을 고려,독립선언 200주년이 되는 1976년 1월1일 현재의 위치로 내려놓고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1,800년까지 연정청사로 자유의 종 말고도 많은 건축물에도 미국 독립의 역사가 어려 있다.영국왕 조지3세의 부당한 탄압에 대처하기 위해 1774년 첫 대륙회의를 열었던 카펜터스 홀,제퍼슨이 머물며 독립선언서 초안을 작성했던 그래프 하우스가 있다. 심지어는 당시 정치인들이 주로 모이던 선술집인 시티태번에서부터 최초의 도서관인 라이브러리 홀,첫 은행인 퍼스트뱅크와 세컨드뱅크, 화폐주조국,교역중심지의 역할을 담당했던 필라델피아 익스체인지까지 모두 유서깊은 건물이다.신생 독립국의 초석이 된 이들 건물은 인디펜던스 홀을 중심으로 잘 보존되고 있다. 조용한 퀘이커들의 도시 필라델피아가 미 합중국 탄생의 요람이자 미 정치사의 중심축으로 성장한 데에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공이 뒷받침되었다.보스턴 출신이나 일찍 필라델피아로 와서 인쇄공으로 출발한 그는 과학자이자 철학자,언론인으로 또 정치가 외교가로 명성을 떨쳤다.‘필라델피아 가제트’라는 신문사를 운영하면서 최초의 소방서,보험회사,종합병원을 설립했다.그리고 피뢰침을 발명하고 미 철학회도 그의 손에 의해 창립되었다. 그는 미 합중국 독립 당시 워싱턴,애덤스,제퍼슨 등 지도자들보다 한 세대 앞선 원로였다. 2차 대륙회의에 참가,독립선언서 기초위원을 지냈으며 프랑스로 건너가 프랑스와의 동맹설립에 일익을 담당하기도 했다.이같은 그의 활동상은 인디펜던스 홀에서 한블록 떨어진 마켓 스트리트에 위치한 프랭클린코트에 잘 보존돼 있다. 인디펜던스 홀 주위에는 ‘상식’이라는 소책자로 식민지의 독립기운을 부추겼던 인사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토마스 페인을 비롯해 페트릭 헨리,알렉산더 해밀튼 등 그 면면이 모두 당시 미국의 지성들이다.그들의 열띤 토론은 오늘날 지구상에 자유 민주주의의 가치를 정착시키는 초석이 됐던 것이다. ◎여행 가이드/펜실베니아주 동쪽 끝에 위치 ‘형제애의 도시’라는 의미를 가진 필라델피아는 미 대륙 동부 펜실베이니아주의 동쪽 끝에 위치했다.뉴욕과 워싱턴을 연결하는 95번 고속도로의 중간지점쯤 해당한다.인디펜던스 홀은 필라델피아 시가지의 델라웨어강쪽 마켓스트리트와 월넛 스트리트 사이에 있다. 뉴욕이나 워싱턴에서 자동차로 올경우는 95번 고속도로에서 바로 들어오고 앰트랙 기차를 이용할 경우는 필라델피아 중심역인 30번가 역에서 내린다. 그리고 대중교통 편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 브라질 살바도르(세계 문화유산 순례:54)

    ◎800여개 유럽 성당·아 사원 한도시에/17∼18세기 바로크·로코크양식 건축물 산재/‘황금성당’ 산 프란시스코·바실리카 대표적 살바도르(Salvador)는 브라질문명의 특이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다.토착 인디오 문화와 식민지시대 유럽문명,그리고 아프리카 토속신앙의 개념이 뒤섞인 복합문명이라고나 할까.어떻든 살바도르는 이 세가지 이질적인 문화적 특성들을 고루 감싸 안았다.그중에서도 3백50만 주민의 거의 대부분이 흑인일 정도로 아프리카 전통이 강했다.이는 365개의 유럽식 성당 말고도 아프리카 전통종교인 칸동블레 사원이 460여개에 이른다는 사실에서 드러났다. 상파울루를 떠나 살바도르까지는 비행기로 4시간 남짓 걸렸다.번화한 도시를 떠나 갑자기 호젓한 도시를 찾아서인지 다소 나른한 기분마저 들었다.그리고 일부 관광객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흑인인 탓에 묘한 이질적 분위기가 감돌았다.하지만 원색의 아프리카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에게서 강렬한 인상이 우러났다.그것은 신선한 충격이기도 했다. ○18세기 중반까지 수도로 브라질 북동부에 자리한 바이아주의 주도 살바도르는 원래 18세기 중반까지 브라질의 첫 수도였다.진화론자인 찰스 다윈이 ‘자연이 만든 풍요로운 온실’이라고 부를 정도로 도시가 아름다운 열대의 자연으로 뒤덮였다.정복자인 프로투갈인들은 1549년 그들의 신세계를 살바도르에서 열고나서 1763년에는 리우 데 자네이루로 수도를 옮겼다.오늘의 브라질리아로 수도를 옮긴 것은 1960년의 일이다. 살바도르는 산토 안토니오 해군기지를 중심으로 해안을 낀 낮은 지대에 형성됐다.도시는 구도시와 높은 구릉지대에 이루어진 신도시로 나누어져 있다.그런데 두 지역은 높이 100m에 가까운 엘레바도르 라 세르타라고 불리는 대형 엘리베이터로 연결됐다.편리한 교통수단이자 희한한 관광상품 구실을 했다. 살바도르를 중심으로 한 바이아주는 당시 남미지역 최대의 흑인노예시장이었다.자연 노예매매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사람이 많았다.심지어 자신들이 부리는 노예에게도 보석을 주어 노예들이 보석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를 놓고 부를 가늠할 정도였다고 한다.구도시 중심가에 버티고 선 메르카도 모델로는 당시 노예의 실상을 짐작케 했다.용도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이 건물은 16년전 대형화재가 났을때 지하의 대형 노예창고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결국 오늘날의 바이아 주민들은 노예로 끌려온 아프리카 흑인들과 인디오들의 피를 함께 물려받은 후손들인 것이다. 한때 번영을 누렸던 살바도르에는 장엄하고 화려한 17∼18세기의 바로크 및 로코코 양식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우선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펠로링요 광장이 그 시대에 건설됐다.1657년 프랑스인 샤를르 벨레비가 청동 300㎏을 들여 만들었다는 광장 한가운데의 분수가 눈에 띄었다.로코코 양식의 이분수에는 가톨릭 성녀와 아프리카 토속신앙에 등장하는 신성한 여인이 함께 조각돼 있다.크게 네갈래로 뿜어내는 물줄기는 바이아주를 지나는 4개의 강을 뜻한다고 한다. ○신∼구도시 엘리베이터로 광장은 유서깊은 건축물들로 둘러 싸였다.그중 하나가 17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바실리카 성당이다.포르투갈에서 들여온 돌로 90년에 걸쳐완성했다는 이 성당은 800㎏의 황금으로 성전 내부를 도금했다.초기에서 후기에 이르는 바로크 양식의 진수 모두가 이 성당에 간직됐다.흥미로운 것은 내부 양쪽 벽면에 세워진 예수상과 마리아상 등의 성상이다.이들 성상의 머리카락은 모두가 진짜 사람의 머리카락이라는 것이다.가톨릭과 칸동블레의 습합 현상을 보여주는 성상의 두발은 당시 귀족들이 죽을때 바친 머리카락이라고 한다.신앙을 향한 깊은 신심을 넘어 섬뜩했다. 광장 한편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갔다.기도하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산 프란시스코 십자가를 지나 50m쯤을 걸어서 ‘황금성당’으로 이름난 산 프란시스코 성당에 다달았다.로코코와 바로크 양식을 혼합한 18세기 건축물인 이 성당은 브라질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통한다.935㎏의 금을 입혔다는성당 내부는 무척 화려했다.그럼에도 성베드로 동상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화려한 성당 내부와 묘한 대조를 이루거니와 어떤 여운을 안겨주었다.폐결핵에 걸린 노예들의 고통을 대신한 것이라는 설명이 그럴듯 했다. ○금 935㎏으로도금 화려 광장 근처의 도로는 돌을 땅에 박아 만들어서 울퉁불퉁했지만 200∼300년전에 만든 길 치고는 여전히 쓸만 했고 정취도 배어있었다.그 길 중간에 갈멜제3성당이 자리했다.외부는 로코코 양식으로 짓고 내부는 네오클래식 양식으로 치장한 성당안에는 유명한 볼거리가 하나 있다.한개의 통나무를 깎아 만든 예수상이 그 것이다.십자가에 못박혀 흘리는 핏물을 2천개의 루비로 표현해냈다. ◎여행가이드/신∼구도시 나눠져 대중교통 보다 렌터카 이용을 상파울루에서 살바도르까지는 국내선으로 4시간 가량 걸린다.비행기편에 따라 다소 다르나 항공료는 1인당 800달러 정도로 비싼편.그러나 국내에 들어와 있는 브라질 항공사의 패키지 상품을 잘 이용하면 500∼600달러로 4∼5개 도시를 여행할 수 있다. 사람들의 인심도 좋은 편이며,주민 대부분이 흑인인 탓에 브라질내 다른지역과는 다른 문화적 특성을 지녔다.그리 많지는 않으나 시내 곳곳의 패스트푸드점을 이용할 수도 있다.살바도르 특유의 음식을 파는 음식점도 값은 그리 비싸지 않은 편이다.도시 자체가 구도시와 신도시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대중교통 보다는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유적들은 좁은 도로를 따라 곳곳에 흩어져 차를 적당한 곳에 세워두고 걸어다녀야 한다.
  • 자금난 중기대표 자살/“가족·채권자에 미안” 유서

    지난 7일 하오 1시30분쯤 포항시 북구 흥해읍 유강리 삼영주유소 뒤 빈터에서 포항 효자식품 대표 백인기씨(47·포항시 북구 죽도1동)가 자신의 소유인 1t트럭 안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백씨가 숨진 운전석 주변에는 마시다가 남은 소주와 약병이 놓여 있었으며 ‘가족과 채권자들에게 미안하며 가족들을 너무 욱박지르지 말아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경찰은 숨진 백씨가 지난 2일 돌아온 2천5백만원의 약속어음을 맞지 못해 부도가 나자 이를 비관,자살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중이다.
  • 이장희 교수 영장 재청구

    서울지검 공안1부(김재기 부장검사)는 3일 한국외국어대 이장희 교수(47·법학과)와 (주)천재교육사 직원 김지화씨(26·여)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이적표현물 제작·배포)혐의로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검찰은 재청구 사유서에서 “이교수 등이 펴낸 책 ‘나는야 통일 1세대’에 대해 통일원과 대학 교수들에게 감정을 의뢰한 결과 이적성이 인정된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밝혔다.
  • 가출아내·두자녀 살해/자살기도 30대 긴급체포

    수원 남부경찰서는 22일 가출한 후 7일만에 집에 돌아온아내와 두 자녀를 목졸라 숨지게 한 송문배씨(32 수원시 권선구 고등동 고등빌라)를 살인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송씨는 21일 하오 11시쯤 집을 나갔다 돌아 온 아내 오세동씨(29)와 거실에서 다투다 오씨가 “다른 남자가 있다”고 고백하자 목졸라 살해했다.송씨는 이어 안방에서 자고 있던 딸 이나양(6)과 아들 호진군(4)을 넥타이로 목졸라 숨지게 한 뒤 자살을 기도했다. 경찰조사 결과 송씨는 5개월전부터 다른 남자를 만나는 등 외도를 하고 있던 오씨가 가출한 뒤 이날 밤 늦게 집에 들어오자 이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송씨는 범행후 가족들 앞으로 유서 5통을 만든뒤 집에 머물다 22일 집으로 찾아온 형(40)의 설득으로 경찰에 자수했다.
  • 미 웨스팅하우스 CBS로 사명 변경

    【뉴욕 연합】 미국 굴지의 기업인 ‘웨스팅하우스 일렉트릭사’가 앞으로 CBS를 주축으로 한 방송업에 주력하기 위해 오는 12월 1일부터 회사 이름을 CBS로 바꾼다. 17일 월 스트리트 저널 보도에 따르면 피츠버그에 소재한 웨스팅하우스는 주업종인 발전분야 등을 매각처분하고 그 대신 지난 95년 인수한 유서깊은 CBS 네트워크와 라디오,케이블방송 등 방송업에만 전념할 예정이다. 웨스팅하우스가 오는 12월 1일부터 상호와 주식 심벌도 모두 CBS로 바꾸기로 함에 따라 지난 한세기동안 미국내서 가장 널리 알려진 상호중의 하나였던 이 회사의 이름이 사라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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