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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서대필’ 강기훈씨 노모 대학생됐다

    지난 1991년 유서대필 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강기훈씨의 어머니 권태평(70)씨가 늦깎이 대학생이 된다. 권씨는 11일 성공회대 2학기 수시모집에 합격했다. 성공회대는 “권씨가 고령인데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와 인권운동사랑방 등에서 적극 활동한 경력을 인정받아 ‘NGO활동우수자’ 전형으로 사회과학부에 합격했다.”면서 “국가가 하지 못한 민주화 운동에 대한 보상을 학교에서 먼저 시작하자는 의미”라고 밝혔다. 권씨는 이번 수시모집 합격자는 물론 재학생을 통틀어 최고령이다. 권씨는 중학교에 다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는 바람에 학교를 그만뒀다. 그는 “대학 때 데모만 하고 다니던 아들 속을 알고 싶어 아들의 책이나 유인물을 읽어봤는데 도대체 이해를 할 수 없어 공부를 하고 싶었다.”면서 “배웠으면 사회에 돌려줘야 할 텐데 시간이 너무 짧다.”고 말했다. 평범한 주부였던 권씨는 아들이 투옥되자 누명을 벗기겠다는 심정으로 아들이 일하던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자원봉사를 시작,NGO와 인연을 맺었다. 권씨는 2년전 마포구 염리동의 일성여고에 입학한 뒤 공부에 열중, 대학까지 응시하게 됐다. 손녀뻘 되는 학생들과 한 교실에서 공부했지만,“하루도 공부를 쉬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게 공부했다.”고 권씨는 밝혔다. 아들이 공부했던 내용을 배우고 싶어 사회과학부를 선택한 권씨는 여성이나 노인 대상 상담가가 되는 게 꿈이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부시재선 절망 美20대 자살

    역대 어느 선거보다 국론을 극단적으로 양분시켰던 것으로 평가되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재선에 절망한 20대 젊은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7일 보도했다. 미 조지아주 애선스에 사는 앤드루 J 빌(25)이라는 청년은 6일 아침(현지시간) 9·11테러로 무너진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건물터 안쪽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빌의 옆에는 자살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산탄총이 놓여 있었다.WTC 옆에 위치한 밀레니엄 힐튼 호텔의 경비원이 유리창을 통해 빌의 시신을 발견,WTC 일대 부지를 소유하고 있는 항만청에 신고했다. 빌의 어머니는 “아들이 대선 결과에 잔뜩 화가 난 채 뉴욕으로 차를 몰고 갔다.”고 경찰에서 밝혔다. 빌의 직장 상사인 매리 앤 모우니는 “그가 항의를 하기 위해 자살한 것으로 믿는다.”면서 “그가 목숨을 끊은 장소가 WTC 부지였다는 점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빌의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빌은 조지아대학의 여론조사센터에서 6년 동안 근무해 왔다. 그의 동료들은 빌이 유능하고 밝은 성격의 젊은이였으며, 평소 정치와 관련된 얘기를 하거나 자살을 암시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곧 결혼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높은 철조망에 둘러싸여 철저한 보안이 이뤄지고 있는 WTC 부지에 빌이 어떻게 들어갈 수 있었는지 조사하고 있으며 부검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공직문화를 바꾸자] ⑦ 좌담

    [공직문화를 바꾸자] ⑦ 좌담

    서울신문은 기획시리즈 ‘공직문화를 바꾸자’ 마지막 순서로 좌담회를 마련했다. 공공정책부 조덕현 기자의 사회로 진행된 좌담에는 최양식 행정자치부 행정개혁본부장, 박광일 건설교통부 직장협의회 회장, 김미경 상명대 행정학과 교수, 서영복 행정개혁시민연합 사무처장이 참석, 바뀌어야 할 공직문화를 심층진단하고 개선책을 제시했다. 사회 ‘공직문화’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뭐가 있을까요. 서영복 처장 ‘공직사회문화’와 ‘공직을 바라보는 시민의 의식’을 포함해서 ‘공직문화’라고 봐야 합니다. 저는 직업적 안정성과 애국하는 사람들, 엘리트 같은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무사안일이나 출세 지향적인 집단이란 생각도 들고요. 김미경 교수 공직 내부 관점에서만 정리하고 싶습니다. 공직문화는 ‘법규’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있지요. 공권력을 담보해서 움직여야 하는데 이는 엄격한 틀로 움직입니다. 여기에 집착하다 보니 너무 기계적이고 복종적입니다. 느슨하고 행정속도가 기대만큼 빨라지지 않는 이유지요. 사회 법규나 규정 등은 공무원에게 중요한 것 아닌가요. 최양식 본부장 맞습니다. 공무를 자의적으로 할 수는 없는 거지요. 김 교수 개혁의 논리는 국민을 향한 규제를 줄이고 탈규제적 정부를 지향한다는 겁니다. 정부 내부의 규제를 풀자는 거지요. 탈규제적인 움직임은 서구에서 많이 쓰이는데, 우리의 탈규제적 개혁논리는 아직 제한적입니다. 최 본부장 공무원도 사회인이고 직업인입니다. 공직에 들어와 생활하다 보니 다른 어느 직종보다 더 책임이 무겁다는 걸 느낍니다. 언제든지 국민이 부여한 책임을 두렵게 생각하고, 자기를 혁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광일 직협회장 내부적인 시각보다는 외부의 시각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택시를 타거나 일반인을 만나면 공무원에 대한 생각과 고칠 점을 가끔 물어봅니다.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지요. 철밥통이라는 생각도 많이 갖고 있더군요. 그런 인식을 지금 바꿔야 하는데 못바꿔 줍니다. 정년안정 등 여러 제도적 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부분을 망라해 사실을 진단해볼 필요가 있는데, 진단이 제대로 안되니까 오해된 부분이 많습니다. 열심히 하는데 인정을 못받는 부분도 있습니다. 단순하게 하나를 가지고 폄하되는 게 안타깝습니다. 사회 공직이 민간에 비해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은데요. 최 본부장 공직의 문화는 기본적으로 민간의 계약문화가 아니라 법령의 문화입니다. 시장의 문화가 아니라 조직의 문화로서의 속성이 있지요. 이런 측면에서 공직문화의 변화는 지체현상이 있습니다. 그래서 공직문화부터 바꾸자는 게 정부혁신입니다. 유연한 조직을 만들려고 현재 많은 움직임이 있고, 점점 개선돼 가는 추세입니다. 권위주의도 많이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김 교수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탄력적이지 못하고 연속적이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임시 조직이나 계약직 형식을 빌려 조직을 유연화하고 있긴 합니다. 외부에서 들어와서 잘 융화돼야 하는데 굉장히 전시적입니다. 법령의 문화는 강제적인 규제조직형태고, 이게 바로 명령 등으로 유연성을 없게 하는 겁니다. 사회 정부의 혁신 움직임에 대한 내부의 반응은 어떤가요. 박 직협회장 혁신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위로부터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아래로부터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혁신은 아래로부터라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아무리 뭐라 그래도 하부조직이 움직이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거지요. 혁신의 비전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을 제대로 제시하고 있는가 하는 점에서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공무원들에겐 사명감과 국가관이 희박한데, 그 이유를 살펴봐야 합니다. 국가가 제대로 서려면 공직자가 바로서야 합니다. 공무원의 재교육 예산이 삼성 한 기업의 교육예산보다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뽑은 다음 관리를 안하고 완전히 방치한 거지요. 혁신은 여기서 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최 본부장 공직에 들어온 우수한 인재들이 능력을 개발하고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풍토가 있어야 합니다. 그동안 이런저런 노력을 해오고 교육시스템을 개발해 왔는데,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앞으로의 교육방향은 자신이 맡은 업무에 대한 직무교육을 떠나 다양하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고, 공유하면서 국민을 위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서 처장 공직의 합리성을 높이려면 할 수 있는 일을 다해야 합니다. 공직의 유연성을 떨어뜨리는 요소로는 우선 내부 커뮤니케이션이 안 된다는 점입니다. 장·차관과 중간간부의 의사소통이 잘 안 됩니다. 또 하나 행정문화는 정치권력과 상호작용 속에 있는데, 왜 바뀌지 않느냐면 대통령 측근 보좌진들의 오버하는 행동, 처신 때문에 공무원들이 무력감, 보신주의에 빠지는 겁니다. 전문성과 경험이 없고, 겸손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정무직이나 별정직으로 종종 들어가는데, 이런 것들이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거지요. 사회 공직문화가 바뀌려면 기관장의 역할도 중요하고, 구성원의 참여도 필수적인데. 박 직협회장 개혁이나 혁신 이런 것은 의식이 바뀌면 자동적으로 시스템이 바뀝니다. 공직사회에서 사고의 틀을 넓혀줄 수 있는 게 필요합니다. 민원회신을 해도 표현법에 따라 받아들이는 사람이 다르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의식수준이 바뀌면 혁신이라는 말 자체가 필요없는 겁니다. 공직사회의 차별도 문제입니다. 우리 사회가 고시위주의 정책으로 이뤄지고, 중앙부처 등 모두가 그렇게 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본부의 과장급 이상은 고시출신이 85%가 넘습니다. 신분·계급간 차별이 있는 이상 개혁은 이뤄질 수 없습니다. 시험만 잘 보면 인성이나 태도 문제가 모두 묻히고 출세가 보장됩니다. 지방의 경우,20∼30년 일해도 사무관 승진을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20대 ‘고시사무관’과 하나가 되겠나요. 그래서 아래로부터의 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사제도의 개선이라고 봅니다. 최 본부장 혁신의 방향성을 두고 많이 이야기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처한 위치에서 다 역할이 있지요. 위든, 아래든 온 조직원이 비전을 공유하고 목표에 대한 공감대를 갖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박 회장이 지적한 것처럼 아래로부터의 혁신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서는 하위직의 불만을 듣고 보살펴 줘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정부라는 것도 국민세금으로 움직이는 직장입니다. 내부 구성원의 권익이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김 교수 우리 사회는 그동안 능력있는 소수 엘리트가 주도했습니다. 이젠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공감대라는 부분이 가장 중요합니다. 인사제도의 개혁이 필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서울신문이 지적한 대로 공직문화의 정립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무원들 사이엔 생각과 행동이 다른 이중성이 있습니다. 노력한것만큼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성과급제도는 안 받아들입니다. 제도가 먹히려면 의식의 변화가 따라야지요. 여기서 필요한 게 바로 교육인데, 초청을 받아 일선기관에 강의를 가보면 ‘교수님 이런 교육 없어도 일 잘해요.’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항상 모순적으로, 배타적으로 존재하는 갈등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문제점에 대해서는 인식을 함께하는데 해결법을 못찾는다는 얘기군요. 최 본부장 문화진단을 해보면 바꿔야 할 것을 발견하는데, 처방이 어렵습니다. 병을 고치려면 환자 나름대로 지켜야 할 고통과 뼈를 깎는 아픔이 있습니다. 나는 안하는데 남들은 ‘이래야 된다.’고 말한다면 진정한 변화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지요. 진단했다면 합의가 필요하고, 자기포기와 자기희생도 따라야 하는 겁니다. 서 처장 조직의 건강성·유연성을 높이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겠다는 가치를 내세우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조직·인사 등에 대한 불만을 모두 말한 후 이에 대해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 사회 정부의 노력이 성과를 제대로 못내지만 그래도 많이 바뀌고, 또 바뀔 것 같은데요. 최 본부장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습니다. 꾸준히 혁신운동을 펴고 있습니다. 법령을 만들고, 조직을 만들고 하는 등 인프라를 구축해 가는 과정입니다. 혁신의 비전과 목표를 공유하는 과정이지요. 이제는 열매를 맺어야 할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혁신의 이념이 ‘공무원 속으로’였다면 이제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이나 시스템을 건드리는 ‘정책 속으로’ 들어갈 단계입니다. 박 직협회장 혁신을 성공시키려면 구호만으로는 안됩니다. 혁신 자체가 공무원만이 아닌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공무원들이 수동적으로 일하는 이유는 감사체계에도 원인이 있습니다. 최 본부장 그와 관련해서는 앞으로는 해준 민원뿐만 아니라 불수리 민원, 거부 민원에 대해서도 중점적으로 감사하겠다는 게 감사원의 새로운 방침입니다. 왜 안 해주었는지에 대해서도 조사를 하고 사유서를 내야 합니다. 김 교수 혁신의 결과는 국민과 정부 모두 좋아야 합니다. 사실 정부가 하는 일은 모두 답이 없습니다.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지요. 문제점에 대해서만 혁신하려 하지 말고 잘 되고 있는 것도 혁신의 대상이 돼야 합니다. 서 처장 참여정부가 여러 가지 혁신운동을 펴는데 전체적으로 불완전한 느낌입니다. 행정문화 개선과 관련해선 공직사회의 외적인 요소로 바람을 타지 않게, 공무원들이 배신감을 느끼지 않게 해야 합니다. 정리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열린세상] 美대선,상호 인정과 관용의 문화/김영호 성신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세계적 관심을 모았던 미국 대선 드라마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으로 막을 내렸다. 미국 독립전쟁의 상징인 보스턴의 유서깊은 패뉼홀에서 케리 후보는 오하이오주 잠정투표의 최종 검표 결과를 기다릴 것이라던 예상을 깨고 선거 결과에 깨끗이 승복했다. 케리는 미국이 분열을 치유하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로써 선거인단 동수의 경우나 플로리다 악몽의 재연과 같은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역대 미국 대선에서 후보가 선거 결과에 불복을 선언하여 미국 사회가 무정부상태에 빠질 뻔한 적은 한번 있었다.1876년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러더퍼드 헤이즈와 민주당 새뮤얼 틸든 후보의 대결은 표차가 매우 근소했다. 의회는 재검표 특별위원회를 구성했고 그 결과 총득표율에서 진 헤이즈 후보가 선거인단 숫자에서 185대 184로 승리했다. 당시 재검표가 이루어진 플로리다주를 포함한 남부 3개주는 공화당 주도의 북군(北軍)에 의해 점령된 상태였기 때문에 재검표의 공정성에 틸든이 반기를 들고 나왔던 것이다. 양 후보는 이들 남부주로부터 북군 철수에 합의했고 신임 대통령 취임 며칠 전에 몇달간 지속된 분쟁은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미국 헌법회의의 대표였던 벤저민 프랭클린에게 한 시민이 선거인단 제도를 둔 연방헌법이 통과되면 미국은 공화국이 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이러한 헌정의 위기를 예견한 프랭클린은 미국인들이 헌법을 따르고 지킬 능력이 있다면 공화국으로 남을 것이라고 답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아무리 훌륭한 제도라도 성숙한 정치문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유지되기 어렵다. 어떤 사회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사회 저변에 형성되어 있는 상호인정과 관용의 문화라는 사실이 미국 대선을 통해 더욱 분명해졌다. 특히 정치엘리트들 사이에 정착된 토론과 합의의 문화가 민주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미국 헌법 기초자들이 대통령 직선제도가 아니라 선거인단 제도를 채택했던 이유는 선동정치의 폐해를 막기 위해서였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현재 국회를 공전시키고 있는 여야 정치권은 미국 대선에서 교훈을 얻고 대오각성해야 할 것이다. 부시대통령은 총득표율뿐 아니라 선거인단 득표에서도 앞섰다. 또 지난 대선에서 문제가 되었던 플로리다주에서도 압승을 거두었기 때문에 ‘재검표 대통령’이란 오명도 씻었다. 투표용지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이번 대선에서 많은 주들이 전자투표방식으로 전환했다. 투표소 앞에 길게 늘어선 유권자들의 행렬은 바로 이 때문이다. 투표에 과거보다 더욱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투표율은 베트남전쟁 이후 가장 높았다. 투표율이 높으면 민주당이 유리할 것이라던 예상은 빗나갔다. 이번 대선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부시가 유리한 입장에서 선거를 치렀다.2000년 인구센스서 결과를 토대로 한 선거구 조정에서 공화당 텃밭인 남서부 주에서 인구증가율이 높아 선거인단 숫자가 늘어났다. 선거인단이 늘어난 텍사스, 플로리다, 조지아, 애리조나, 노스캐롤라이나 등에서 부시가 압승했다. 케리가 이긴 뉴욕주는 선거인단 숫자가 오히려 줄었다. 이번처럼 치열한 접전이 벌어진 선거에서 이 차이는 매우 컸다. 양 후보는 오하이오와 플로리다주에 엄청난 돈과 시간을 쏟아부었고 승패는 여기서 갈렸다. 미국 유권자들은 전쟁기간에는 전시(戰時)대통령을 갈아치우지 않는다는 전통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테러와 안보 문제가 미국 사회 초미의 관심사라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부시대통령은 대테러전쟁을 지속하고 이라크전쟁을 마무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게다가 공화당은 상·하원 모두 다수 의석을 차지함으로써 부시의 대내외 정책에 더욱 힘이 실릴 전망이다. 이제 우리의 관심은 2기 부시행정부의 한반도정책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모아진다. 노무현정부는 1기 부시행정부 출범과 동시에 이루어진 2001년 한·미정상회담의 선례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신중하고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노무현정부는 북핵문제가 또 다른 위기로 발전되지 않고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미국 신행정부 출범에 맞추어 모든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김영호 성신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 [우리동네 이야기]서울 청량리동

    [우리동네 이야기]서울 청량리동

    나무가 우거진 데다 남서쪽이 확 트여 늘 시원한 바람이 그칠 날 없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청량리(淸凉里).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588’이 곁들여지며 거듭나기 위해 안타까운 몸부림을 치는 곳이 돼 버렸다. 1970년대 경기도 구리, 남양주 등 수도권에서 유동인구가 쏠리면서 동북권 최대 부도심을 뽐냈던 청량리는 서울정신병원과 맞닿은 제기로를 축으로 북쪽은 2동, 남쪽은 1동이다. 이곳 사람들은 윤락촌인 ‘588’ 하면 곧 청량리를 떠올리는 데 불만이 적지 않다. 강북구 미아동과 비슷한 처지라고 할 수 있다. 사실은 윤락촌 ‘미아리 텍사스’가 미아동이 아니라 성북구 하월곡동 88번지에 위치했다.‘588’도 청량리가 아니라 전농동에 있다.1900년대 초 철도 청량리역이 들어서면서 자연스레 생겨난 윤락촌이 철도와 시외버스를 타고 오가는 사람들에 의해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이같은 오명(?)을 뒤집어 썼다. 어언 1세기에 이르는 ‘588’처럼 청량리도 유서가 깊다. 신라 말기인 10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곳에 청량사(淸凉寺)라는 절이 있었다는 점은 유래를 잘 말해 준다. 청량리동은 조선 초부터 한성부 동부 인창방(仁昌坊)에 속해 중요한 지역으로 꼽혔다. 영조 때인 1751년 간행된 ‘도성삼군문분계총록’(都城三軍門分界總錄)에 청량리계라는 명칭이 나타난다. 1910년 경술국치로 일제가 국권을 강점한 뒤 이듬해 4월 ‘5부 8면제’ 실시로 경기도 경성부 인창면 청량리로 일컬어지다가 14년 4월 경성부 축소에 따라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청량리가 됐다. 그러나 36년 경성부를 확장하는 총독부령에 따라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으며, 광복 후인 46년 10월엔 일제식 동명인 청량리정(町)도 청량리동으로 바꿨다. 회기로, 홍릉로가 접하는 삼거리 청량리동 206에는 세종대왕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73년 서초구 내곡동 영릉터에 있던 세종대왕신도비(神道碑=무덤 앞이나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죽은 이에 대한 기록을 적은 비석. 서울 유형문화제 42호)를 옮겨놓았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떡을 즐겨 해먹었는지를 살펴보게 하는 ‘떡전거리’도 청량리1동과 전농동을 잇는 도로변에 있었다는 말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면적은 청량리 1동 0.4㎢,2동 0.76㎢를 합쳐 1.16㎢다. 모두 1만 63가구에 인구는 2만 7275명이다.2동은 휘경2동(1.05㎢), 전농3동(0.85㎢)에 이어 관내 26개동 가운데 세번째로 넓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살인의 추억’ 경찰의 죽음

    ‘살인의 추억’ 경찰의 죽음

    “사건 해결에 현장이 가장 중요하다고 귀에 박히도록 가르쳐 주신 게 엊그제 같은데 가시다니요….” 22일 오후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다보정사의 납골당 앞에 선 경기 포천경찰서 창수파출소 강성호(30) 경장과 허재원(27) 순경은 고인을 기리며 눈시울이 젖어갔다. 이들은 지난 16일 세상을 떠난 같은 경찰서 윤석명(47) 강력1반장의 영정을 향해 절을 올린 뒤 울먹이는 윤 반장의 아들 여직(17)군의 어깨를 두드렸다. 윤 반장이 포천 여중생 살인사건의 부담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시체로 발견된 지 일주일째. 그를 추모하려는 동료들의 발길은 이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윤 반장은 지난해 11월5일 엄모(당시 14세)양이 실종된 직후 후배 형사 2명과 사건을 맡았다. 하굣길에 감쪽같이 사라진 엄양의 행적을 종잡을 수 없어 불길한 예감이 들던 96일째, 엄양은 실종현장에서 6㎞ 정도 떨어진 한 배수로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잔뜩 찡그린 표정이 죽음의 순간이 고통스러웠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용서할 수 없는’ 미지의 살인범과 윤 반장의 지루하고도 힘든 싸움이 시작됐다. 실종 현장과 시체 발견 현장에 남겨진 작은 흔적과 물증을 찾기 위해 매일같이 현장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갈무리했다.“현장에서 꼭 무엇인가 나온다.”는 말을 중얼거리며 떨어진 휴지조각 하나 예사롭게 넘기지 않았다. 지난 7월엔 배수구에서 엄양 시신을 가린 TV포장용 종이상자를 버렸다는 물류업체 직원 2명이 용의선상에 올랐다. 윤 반장은 그들의 고등학교 동창들까지 일일이 행적을 파악하기도 했다. 최근엔 범인의 예상 도주로 근처에 살고 있는 20대를 수사하기 위해 집이나 직장으로 하루 평균 3∼4명씩 찾아다녔다. 하지만 단 하나의 특이점도 손에 잡히지 않는 답답한 수사의 반복이었다. 윤 반장의 어깨가 점점 처지기 시작했다. 같은 조원 김웅태(33) 경장은 “힘들게 만난 용의자들에게서 아무 것도 나오는 게 없을 때 길게 한숨 쉬며 하늘을 바라보던 반장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눈물을 훔친다. 술 한잔 하지 않으면 한마디도 하지 않을 정도로 내성적인 성격인 윤 반장은 하루하루 쌓여가는 스트레스와 죽은 엄양에 대한 죄책감이 커지면서 애꿎은 술만 늘어갔다. 수사를 하면서 자주 만나게 된 엄양의 아버지(44)와도 술잔을 기울이며 친해졌다. 엄씨 앞에서 술에 취한 채 “저도 중학교 1학년 딸이 있어 그 심정을 압니다. 빨리 잡아서 한을 풀어드려야 하는데 엉킨 실타래처럼 잘 안 풀리네요. 미안합니다.”라며 절망했다고 엄양의 아버지는 전했다. 엄양이 발견된 지 246일째인 지난 11일 오전 윤 반장은 “병원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닷새만인 16일 오전 그는 포천시 신곡리 한 등산로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부인 안춘옥(47)씨는 “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꼭 잡아야 하는데 너무 힘들다.’고 털어놓을 땐 그렇게 절박한 심정인 줄 몰랐다.”면서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조금이라도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라며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내에게)포천에 와서 휴가 한 번 제대로 갔다오지도 못하고 누구에게 화도 내지 못하고 내 스스로 이를 삭이느라 술을 먹어야했소.”,“(아들에게)세상 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할아버지께서 늘 말씀하셨는데 그게 사실이구나. 한번 꼬인 실타래를 풀어가는 데 그렇게 힘이 드는구나.”(윤 반장의 유서에서) 1년 가까이 한 여중생의 죽음 뒤에 가려진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던 수사반장은 결국 그렇게 저 세상으로 떠났다. 포천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청와대 취직…” 미끼에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8일 청와대 정무수석실 직원을 사칭,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주부들에게 가족을 청와대에 취직시켜 주겠다며 거액을 가로챈 양모(49)씨를 사기혐의로 구속했다. 양씨는 지난해 10월 초 이모(47·여)씨에게 “청와대 정무수석의 보좌관인데 정무수석에게 부탁해 딸과 남편을 청와대 암행감찰반에 취직시켜 주겠다.”고 속여 1100여만원을 가로채는 등 올 7월까지 34차례에 걸쳐 주부 7명에게 1억 1000만원을 뜯어낸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조사 결과 양씨는 청와대 직원처럼 보이려고 정장을 차려입고 고급 승용차를 이용했으며, 평소 신문을 꼼꼼히 읽어 피해자들에게 정치상황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등 교묘한 수법을 썼다. 양씨는 부인에게 보내는 유서 형식의 편지가 적힌 수첩과 농약이 든 음료수 병을 갖고 다니면서 붙잡히면 자살하려 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은 양씨의 휴대전화와 수첩에 피해자의 것으로 보이는 전화번호가 40∼50개 적혀 있는 것으로 미뤄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포천여중생 피살’ 수사경찰 자살

    포천 여중생 피살사건을 수사하던 경찰관이 격무와 사건해결에 대한 중압감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6일 오전 11시쯤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신곡리 깊이울 유원지 인근 야산에서 포천경찰서 강력1반장 윤모(47) 경사가 신문지 위에 누운 채 숨져 있는 것을 등산객이 발견했다. 윤 반장 시신 옆에서 “하고 싶은 말도 하고 화날 때는 풀었어야 했다. 가족들과 제대로 놀러 가지도 못해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와 독극물 병이 발견됐다. 윤 경사는 지난해 10월 포천시 영중면 미군 훈련장 시위대 탱크 점거사건 이후 여중생 피살사건이 이어지면서 1년 3개월여 동안 거의 매일 근무를 하는 등 격무에 시달려 왔다. 경찰은 일단 윤 경사가 여중생 피살사건 수사팀에서 일해온 점 등을 들어 격무와 수사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자살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중이다. 포천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어린남매 살해뒤 자살기도…모진 母情

    14일 오후 2시30분쯤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모 아파트 김모(37)씨 집 안방에서 김씨의 딸(4)과 아들(2)이 숨지고 아내 이모(35)씨가 손목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것을 김씨가 발견,119에 신고했다. 이씨는 원광대병원 응급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으나 중태다. 김씨는 경찰에서 “집에 와보니 안방 문이 잠겨 있어 베란다 창문을 통해 안방으로 들어갔는데 아이들이 죽어 있었고, 아내도 바닥에 쓰러져 피를 많이 흘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방 안에는 극약봉지와 주사기 2대가 놓여 있었으며 ‘살기 힘들다. 죽으면 애들하고 같이 화장해 달라.’는 내용의 유서가 화장대 위에서 발견됐다. 경찰은 숨진 아이들의 팔에 주사 자국이 2곳씩 남아 있고, 이씨의 팔에도 주사 자국 3곳이 있는 점 등으로 미뤄 이씨가 아이들과 자신에게 극약을 주사한 뒤 손목 동맥을 절단해 자살을 기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이씨가 근위축증(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시어머니를 간병하고 어린 아이들을 키우면서 많이 힘들어 했다는 가족들의 말에 따라 가사문제를 비관해 자살을 기도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건경위를 조사 중이다. 군포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與 과거사 기본법안 발표…정책적 사안 포함

    與 과거사 기본법안 발표…정책적 사안 포함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는 13일 과거사 진상규명 법률안을 확정,발표했다.정식 명칭은 ‘진실규명과 화해를 위한 기본법안’으로 했다.초안보다 조사범위를 약간 축소하되,조사기구의 권한은 대폭 강화한 게 특징이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의 법안은 한나라당이 별도로 마련한 ‘현대사정리기본법안’과는 조사범위와 조사기구의 권한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국회 논의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역사책을 새로 쓴다” 열린우리당이 마련한 최종안의 조사범위를 보면,가히 우리 현대사를 새로 쓰려는 의지가 읽혀진다.특히 (1)‘식민지 지배권력의 개입 및 권위주의적 통치로 인해 왜곡되거나 밝혀지지 않은 항일 독립운동’과 (2)‘1948년 건국 이후 권위주의 통치 하에서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 또는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발생한 사망·상해·실종사건’ 등 현대사에서 논란의 중심이 돼온 두 축을 조사범위로 광범위하게 규정한 대목은 예사롭지 않다.조사결과에 따라서는 기존에 믿어왔던 역사의 선(善)과 악(惡)이 일거에 뒤바뀌는 극단적 형태의 충격파도 배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1)의 경우,항일 독립운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권위주의 통치 하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왜곡된 사건과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의 복권(復權)에 진상규명의 초점이 맞춰질 것 같다.(2)는 사실상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를 겨냥한 것이라 할 만하다.특히 ‘헌정질서 파괴행위’라는 대목과 관련,열린우리당 관계자는 “5·16 군사쿠데타도 해당될 수 있다.”고 밝혀 3∼4공화국의 정통성을 통째로 부정하는 결과를 부를 수도 있게 됐다.이 부분은 곧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정체성과도 연결되는 문제여서 여야간 논란의 핵으로 부상할 공산이 크다. 구체적 의혹사건으로는 인혁당,통혁당,민청학련 사건,유서대필 사건,정인숙 사건,김형욱 납치사건 등이 조사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 시대 이전의 의혹사건으로는 김구 선생 암살사건 등이 대상이 될 것이 확실시 된다. 이밖에 열린우리당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란 항목을 조사범위로 명기,한·일국교정상화 협상 등 정책적 사안까지도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해방과 한국전쟁 사이에 불법적으로 이뤄진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도 조사범위로 명시했지만,노근리사건 등은 이미 별도의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는 이유로 제외했다.초안에 포함시켰던 일제하 강제동원도 같이 빠졌다. 반면,한나라당은 북한정권 및 좌익세력에 의한 테러와 민주화운동을 가장한 친북 이적행위 등을 조사범위에 포함시키자는 입장이어서 앞으로 치열한 논란이 예상된다. ●조사기구 권한 세다 열린우리당의 최종안에 따르면 조사기구인 ‘진실화해위원회’의 성격은 국가기구로 하되,입법·사법·행정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완전 독립기구로 국가인권위원회와 같은 위상을 갖고 있다.위원은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하지만 조사기간 중 대통령의 지시와 통제를 받지 않으며 최종보고서만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으로 했다. 권한은 기존의 의문사위에 비해 대폭 강화했다.자료제출요구권,압수수색영장청구의뢰권,청문회실시권,통신자료요구권,동행명령권,국가기관 상호간 협조의무 등을 부여했다.다만 금융자료제출 요구권은 금융기관들의 자료보관기간이 5∼10년을 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배제했다. 특히 동행명령을 거부하는 피조사인에게는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도 있도록 했고,자료제출을 거부하는 국가기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청구를 검찰에 의뢰할 수 있게 했다.또 위원장에게는 위원회에 파견되는 공무원의 교체와 승진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자문기구도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반면,한나라당은 조사기구의 성격을 민간기구인 학술원 산하 위원회로 하고,조사권한도 ‘인권침해방지’를 이유로 출석요구,자료제출요구 등 최소한으로 국한하고 있어 한판승부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3평짜리 단칸방에 로또복권 200장만 남기고 고아·장애인부부 자살

    “미안합니다.살기 힘들어서 함께 먼저 가니 남은 컴퓨터와 당첨된 로또를 팔아 우리 시신을 화장해서 동해에 뿌려주세요.” 고아 출신 남편과 1급 지체장애인인 부인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동반자살을 기도,부인이 숨지고 남편이 중태에 빠지는 사건이 발생했다.이들이 발견된 서울 마포구 아현동고개의 3평짜리 단칸 셋방에는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로또복권 200여장이 발견됐다. 부인 김모(20)씨는 14살 때인 1998년 아버지와 함께 승용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했다.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숨지고 김씨는 뇌에 손상을 입어 1년 동안 깨어나지 못하다가 1급 지체장애인이 됐다. 고아원에서 자란 정모(34)씨가 김씨를 만난 것은 2002년.서로 마음의 빈곳을 메워 주던 두 사람은 혼인신고를 거쳐 아현동고개에 초라하지만 아늑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손수레도 들어가지 않는 좁은 골목안 셋방에서 싱크대 없이 가스버너만으로 음식을 해먹었고,2m도 채 안 되는 낮은 천장에는 새는 비를 막기 위해 비닐을 덕지덕지 붙였다. 하지만 믿음과 사랑만으로 극복하기에는 세상이 간단치 않았다.정씨가 공사장을 전전하며 손에 쥔 몇푼으로는 생활비를 충당하기에도 빠듯했다.게다가 건설업계에 밀어닥친 장기 불황의 바람은 다른 수입원이 없는 정씨 부부에게 치명적이었다.일하러 나가는 횟수가 줄어들수록,이들 부부를 짓누르는 체념의 무게는 불어났다. 모아둔 돈이 바닥나기 시작하자 이들은 로또복권으로 절망감을 달래기 시작했다.지난주말에는 ‘마지막으로’ 50여장을 한꺼번에 구입했다.이 가운데 몇장이 4,5등에 당첨됐다.모두 합쳐도 당첨금이 10만원을 조금 넘었다. 결국 12일 오후 이들은 A4용지에 유서를 썼다.남편은 장모인 원모(42·수원 거주)씨에게 “우리 죽어요.”라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원씨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김씨는 이미 숨져 있었고,정씨는 피를 흘린 채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경찰은 “생활고를 겪으며 살길을 찾지 못하던 부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길섶에서] 나이/손성진 논설위원

    소(小)피트로 불리는 영국의 정치가인 윌리엄 피트는 약관 24세의 나이에 총리직에 올라 예산제도 확립과 의회제도 개혁에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젊은 나이에 세계를 호령한 정복자들도 여럿 있다.광개토대왕은 불과 16세에 즉위해 21세에 백제를 정벌했다.나폴레옹이 유럽을 정복하고 대관식을 가졌을 때 나이는 35세였다. 호걸들은 그 엄청난 일들을,우리가 배우는 학생이거나 사회초년병일 즈음에 다 이뤘다.우리 필부(匹夫)들은 어떤가.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루 하루 삶에 쫓기며 사소한 것에 분노한다.대사(大事)를 이루는 것은 고사하고 나이에 걸맞은 품위와 언행을 갖추지 못한 사람도 많다. 그러면서도 우리,한국인들은 장유유서(長幼有序)를 제일 덕목인 양 여기고 유난히 나이를 중요시3한다.사람을 판단하는 최초의 잣대가 나이다.얼마 전에 어떤 친구를 술자리에서 오랜만에 만났는데 대뜸 “네가 나보다 나이가 한살 아래지?”라는 게 아닌가.만나기만 하면 ‘몇살이냐.’고 따지는 소인배들을 20대에 유럽에서 인도에 이르는 대영토를 정복한 알렉산더가 본다면 얼마나 가소로워할까. 손성진 논설위원 sonsj@seoul.co.kr
  • 이름을 바꾸면 아파트가 뜬다

    이름을 바꾸면 아파트가 뜬다

    2000년대 이후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강남구 삼성동 ‘아이파크’,양천구 목동 ‘하이페리온’ 등 아파트 이름에 유명 브랜드 바람이 불면서 기존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서도 이름을 바꾸기 위한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특히 임대아파트와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일반 분양아파트 주민들의 개명(改名) 작업이 두드러지고 있다.이유는 단 하나.아파트 이름을 바꿔 재산가치를 높이겠다는 것.그러나 아파트 거주자가 아닌 실제 소유자들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등 절차가 까다롭기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재산가치를 높이기 위한 의도로 아파트 이름에 유명 브랜드를 사용하려는 시도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마포구 용강동 ‘용강래미안아파트’ 주민 430가구는 아파트 이름을 ‘용강삼성래미안아파트’로 변경하기 위한 서명작업을 벌이고 있다.현재 200여세대의 동의를 이끌어 냈으며,2∼3개월 안에 90% 이상의 주민이 서명에 동참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입주자 대표회의 연규형(46) 회장은 “주민들은 아파트 이름에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추가하면 재산가치가 상승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라면서 “지난달에는 마포구청장이 주민들의 민원을 직접 청취하는 ‘금요사랑방’에서 아파트 개명 문제를 정식 건의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브랜드가치를 높여라 구청측은 아파트 소유자 100%의 동의를 얻으면 언제든지 개명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구청 관계자는 “현행 법상 공동주택 명칭 변경에 대한 규정은 없는 상태”라면서 “일반적으로 건물 명칭을 바꿀 경우 소유자가 직접 명칭 변경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관련규정을 적용하면 아파트도 소유자의 100%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실제 아파트 소유자가 전세를 주고 해외에 나가 있는 경우는 물론,파악 자체가 안되는 경우도 있어 규정을 탄력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연씨는 “소유자 100% 동의는 무리한 조건이며,소유자가 아닌 거주자로부터의 동의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지난 5월 강서구 화곡동 ‘대우그랜드월드아파트’ 주민들은 이름을 ‘화곡푸르지오아파트’로 바꿨다.아파트 주민들은 2002년 10월 입주를 시작했지만,시공사인 대우건설이 지난해부터 ‘푸르지오’(PRUGEO)라는 브랜드를 사용하면서 새 아파트임에도 오래된 듯한 이미지를 풍기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임대아파트가 아니예요” 일반아파트지만 인근의 임대아파트와 같은 이름을 사용,차별화를 위해 아파트 개명작업에 나서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강북구 미아6동 ‘미아풍림아이원아파트’ 주민들은 이름을 ‘삼각산아이원아파트’로 바꾸기 위한 서명작업에 착수했다.입주자 대표회의 박기준(57) 회장은 “‘미아’는 미아리 텍사스촌 등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미아리의 원조는 미아동이 아닌 길음동과 하월곡동 일대이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면서 “구청과도 소유자 80% 이상의 동의만 얻으면 협조해 주기로 합의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말부터 입주를 시작한 이곳은 일반아파트 20개동 1300여가구,임대아파트 2개동 800여가구로 구성돼 있다.개명이 확정되면 일반아파트는 ‘삼각산아이원아파트’,임대아파트는 ‘미아풍림아이원아파트’라는 이름을 각각 사용하게 된다.다만 시공사인 풍림건설이 아파트명에서 회사명을 제외하는 부분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노원구 상계1동 ‘수락파크빌아파트’는 지난 2002년 ‘은빛5단지아파트’에서,노원구 월계3동 ‘성원아파트’는 지난 98년 ‘사슴아파트’에서 각각 현재의 이름을 바꿨다. 이밖에 강북구 번3동 ‘쌍방울아파트’ 주민들은 이름이 촌스럽다는 이유를 들어 ‘청솔그린아파트’로 개명을 추진하고 있다. ●중도포기 사례도 속출 이같은 성공 사례에도 불구하고 까다로운 절차 등을 이유로 개명작업을 중도에 포기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금천구 시흥동 ‘벽산3단지아파트’ 주민들의 경우가 대표적이다.1·2·3·5·6단지로 구성된 벽산아파트는 3단지를 제외하면 동 호수 첫 자리는 단지 번호와 일치한다.예를 들어 1단지는 101동부터,6단지는 601동부터 시작되는 식이다. 그러나 3단지는 동 호수가 301동이 아닌 101동부터 시작돼 1단지와 혼선이 빚어진다는 것.3단지 주민들은 “우편물이 뒤바뀌는 등 불편이 잦다.”면서 “하지만 이같은 불편보다 소유자 100% 동의를 얻어야 하는 개명 절차가 더 까다로워 중도에 그만뒀다.”고 입을 모았다. 또 영등포구 영등포동 ‘대우드림타운아파트’ 주민들도 최근 ‘푸르지오아파트’로 개명하는 방안을 논의하다 복잡한 절차(소유자 100% 동의)와 비용 부담(가구당 6만∼7만원) 등의 문제 때문에 추진이 어렵다는 잠정결론을 내린 상태다. 장세훈 이유종 김기용기자 shjang@seoul.co.kr ■ 명문규정 미비… 주민동의 꼭 필요 임의로 사용하면 민사상 불이익 아파트 이름을 바꾸기 위해서는 우선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주택법과 그 시행령 등에 따르면 공동주택의 명칭을 바꿀 경우 입주자 대표회의는 시·군·구청장과 사업주체에게 신고 또는 통지해야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즉 아파트 개명 절차와 방법 등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는 셈이다.때문에 아파트 이름을 바꾸기 위한 주민 동의 비율이 지역에 따라 50∼100%까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자치구에서는 아파트 개명 이후의 후유증 등을 우려해 거주자가 아닌 소유자 기준으로 80% 이상의 동의서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반면 지난 5월 ‘대우그랜드월드아파트’를 ‘화곡푸르지오아파트’로 바꿔준 강서구의 경우 소유자 50% 이상의 동의만 얻도록 했다. 강서구 관계자는 “관계법령을 검토한 뒤 주민들의 필요와 요청에 따라 아파트 이름을 바꿀 경우 엄격한 잣대를 적용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근거로 이뤄진 결정”이라면서 “상표 도용 등의 문제만 없다면 시공사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민들이 아파트 개명 신청서와 사유서,동의서 등 관련서류를 구청 주택과에 제출하면 이같은 내용은 지적과와 동사무소에 통보된다. 지적과에서는 건축물대장에,동사무소에서는 주민등록증 등 관련서류에 표기될 아파트 명칭을 각각 변경하게 된다.또 주민들은 건축물대장에서 아파트 이름이 바뀌면 등기부등본상의 명칭도 직접 바꿔야 한다. 구 관계자들은 “건축물대장과 등기부등본상의 명칭만 바꾸면 아파트 매매 등 재산권 행사과정에서 불이익이 발생할 가능성은 없다.”면서 “다만 주민들이 직접 동사무소를 찾아 주민등록증 등 신분증 기재내용을 바꿔야 하고,주소를 활용하는 각종 기관 등에도 변경 내용을 통보해야 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아파트 이름 변경사실을 알려야 할 관련기관은 은행,전화국,학교,상수도본부 등 수백개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임의로 아파트 이름을 바꿔 사용한다면 민사상의 불이익이 발생했을 경우 법적인 보장을 받을 수 없다. 또 준공 허가가 나지 않은 아파트는 건축물대장에 등재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입주(예정)자들이 당초 시공사가 정한 이름을 바꾸기가 훨씬 수월할 수 있다.이는 이름을 바꾸는 것이 아닌 새롭게 짓는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유영철 법정출석 거부

    ‘연쇄살인범’ 유영철(34) 피고인이 5일 법정에 출석하지 않아 재판이 연기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 황찬현) 심리로 열린 이날 속행 공판에서 유 피고인은 “지난번 재판에서 다 밝혔기에 더이상 나오지 않겠다.”는 사유서를 제출했다. 김모 교도관은 “피고인에게 2차례 재판 출석을 요청했지만,완강히 거부당했다.”면서 “피고인이 지난 재판 때 소란을 피운 데다 강제로 법정에 데려올 교정규정이 없어 사유서만 받아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현재로선 피고인이 출석을 거부할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며 재판을 오는 11일 오후 2시로 연기했다. 앞서 법무부는 이날 유 피고인이 지난 3일 자정 구치소에서 유서 2장을 남기고 목을 매 자살을 기도했으나 미수에 그쳤다고 밝혔다. 한편 서울서부보호관찰소는 재판부가 의뢰한 ‘판결전 조사’ 결과보고서를 통해 “유 피고인이 14차례 교도소를 들락거렸지만,사회적응 기회를 전혀 가지지 못한 것이 연쇄살인의 늪에 빠진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마지막 출소 후 피고인이 보호관찰관의 정기적인 방문과 통제를 받았다면 자신의 집에서 연쇄살인을 저지르진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儒林(192)-제2부 周遊列國 제3장 황금시대

    儒林(192)-제2부 周遊列國 제3장 황금시대

    제2부 周遊列國 제3장 황금시대 이제 남은 성은 단하나. 맹손씨의 성읍인 성(成)이었다.오늘날 산둥성 제령도의 영양현(寧陽縣)인 이곳을 파괴한다면 공자의 오랜 숙원대로 삼환씨의 근거지인 세 읍이 모두 파괴되어, 그들의 권력을 약화시키려는 공자의 정치개혁은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마지막 본거지인 맹손씨의 성읍을 파괴하려 하자 읍장인 공렴처보(公斂處父)가 맹손씨에게 반대하여 말하였다. “성 땅을 파괴하면 제나라 사람들은 반드시 노나라의 북문을 급습할 것입니다.또 성 땅은 대대로 맹손씨의 요새입니다.성 땅이 없어진다는 것은 맹손씨는 결사적으로 싸우다 전멸한다는 뜻과 같은 것입니다.부디 이곳을 허물지 말아주십시오.심각한 후유증이 피차에 남을 것입니다.” 공렴처보의 말이 삼환씨의 마음을 움직였다.그들은 반란군을 이끄는 공산불뉴를 쳐부수기 위해 공자의 말에 일단 동의하였지만 공산불뉴를 제나라로 쫓아버린 이상 자신들의 요새를 더 이상 파괴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요새를 끝까지 파괴하려는 공자의 속셈이 어디에 있는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자는 초기의 결심대로 군사를 이끌고 성 땅을 포위 공격하였으나 삼환씨의 도움을 받지 못하였으므로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다.비록 세 고을의 성을 허무는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지만 후와 비의 두 성읍을 허물었고,양호와 한 패거리였던 역신 공산불뉴를 국외로 추방하였으므로 모처럼 노나라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이 평화는 모두 공자의 정치적 역량에 힘입은 것이었다.정치가로서의 공자는 이처럼 외교적 활동은 물론 문과 무에 있어 눈부신 활동을 펼쳐 정계에 입문한 뒤 불과 4년 만에 어지러운 난세를 태평성대로 바꿔놓은 것이었다. 그리하여 공자는 이듬해인 기원전 497년,55세의 나이에 이르러 대사구(大司寇)라는 벼슬에 등용된다. 대사구란 직책은 나라의 재상을 겸하는 최고의 벼슬인데,사기에 의하면 대사구란 지위에 오르자 공자는 기뻐하는 빛을 보였다고 한다.이에 자로가 다음과 같이 물어 말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제가 듣건대 군자는 화가 닥쳐도 두려워하지 않고,복이 닥쳐도 기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그런데 지금 선생님께서는 벼슬을 얻고는 크게 기뻐하고 계시니 어째서입니까.” 이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대의 말이 맞긴 하다.그러나 존귀한 몸으로 실력을 발휘하면서 아랫사람을 돌본다는 것도 즐거운 일 중의 하나인 것 같다.” 그러나 51세에 중도재가 된 이래 55세에 대사구로서 재상의 일을 겸직하는 5년 동안의 황금시대는 전혀 뜻밖의 일로 끝나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공자가 정치를 맡은 이래 노나라의 국력이 막강해지는 모습을 예의 주시하고 있던 제나라의 경공은 차츰 이를 두려워하게 되었던 것이다.이에 대해 사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대사구가 된 공자는 노나라의 대부이면서도 정치를 어지럽힌 소정묘를 처형하고,정공을 적극적으로 정사에 참여토록 하였다.3개월이 지나자 새끼 양과 돼지를 팔고 사는 장사치들은 폭리를 취하지 않게 되었고,보행하는 남녀가 길을 따로따로 걸었으며,물건이 땅에 떨어져도 줍는 사람들이 없었다. 또한 노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이 일일이 관리들에게 방문사유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필수품을 사서 돌아갈 수 있도록 했다.노나라의 이러한 융성함을 들은 경공은 갑자기 불안감에 사로잡혀 말하였다. ‘공자가 정치를 맡게 되면 노나라는 반드시 패자가 될 것이다.패자가 되면 노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우리 제나라는 가장 먼저 노나라에 합병될 것이다.차라리 그렇게 되기 전에 먼저 땅을 떼어 주는 게 어떨까.’”
  • 토지사기단, 법무사에 딱 걸려

    주민등록증과 등기권리증을 정교하게 위조해 땅주인 행세를 한 토지사기단이 검찰 수사관 출신 법무사의 눈을 속이지 못하고 덜미를 잡혔다. 10여년간 검찰 수사관으로 근무하다 1996년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에 사무실을 개업한 법무사 김학민(49)씨에게 지난 21일 경기도 수원 영통지구에 1400여평의 땅을 소유하고 있다는 임모(51)씨 일행이 찾아왔다.임씨 등은 “시가 70억원대의 땅을 담보로 5억원을 대출받고 싶은데 근저당을 설정해 달라.”면서 주민등록증과 등기권리증을 내밀었다. 임씨 일행의 서류를 천천히 살펴보던 김씨는 등기권리증이 정교하게 위조됐다는 사실을 눈치챘다.등기권리증에 찍인 수원등기소 도장의 날짜가 엉터리로 적혀 있었던 것.수원등기소가 설립된 것은 2001년이지만 서류에는 1994년에 도장을 찍어준 것으로 돼 있었다. 김씨는 이들이 전문 토지 사기단이라는 사실을 직감했지만 “내일 사무실을 다시 찾아오라.”며 일단 돌려보냈다.김씨는 즉각 검찰 동기인 서울중앙지검 수사3과 수사관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사실을 제보했다.제보를 받은 검찰은 22일 오후 김씨의 사무실에서 대기하다가 사무실을 다시 찾은 임씨와 공범 김모(42)씨를 검거했다. 검찰은 사기단의 두목격인 서모(40)씨가 전북 익산에 은신해 있다는 진술을 확보,검거에 나섰지만 공범들이 체포됐다는 소식을 들은 서씨는 23일 새벽 유서를 쓰고 자신의 원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고건호)는 30일 서류를 위조한 공범 3∼4명의 신원을 확인,이들을 수배하는 등 검거에 나섰으며 경기도 성남·양평 일대의 다른 토지사기 사건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김 법무사는 “서류를 조금만 들여다봐도 위조 여부를 금방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피해자가 생겨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제보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4)영광 법성포굴비에 관한 명상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4)영광 법성포굴비에 관한 명상

    허다한 생선을 두고 하필 굴비를 담은 상자가 ‘범죄형 뇌물상자’로 회자되는 요즈음이다.그 굴비가 추석 무렵이면 더욱 인기다.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답은 간단하다.굴비 값이 ‘금값’이기 때문이다.얼마나 비싸기에 그럴까.한 두름(10마리)에 200만원대까지 나왔으니 마리당 20만원을 호가한다.젓가락질 한 번에 몇 만원이 날아가는 셈이다.서민 음식이던 굴비가 어쩌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생선이 되었을까 싶다.그저 세끼 밥만 먹어도 고마운 사람들로서는 “살 떨려서 저걸 어떻게 먹나?”하는 푸념이 절로 나올 수밖에. 굴비 하면 전남 영광의 법성포다.추석 대목,출하에 여념이 없는 법성포구로 내달았다.이 무렵이면 어김없이 붉게 산하를 물들이는 불갑산의 상사화 꽃나들이도 겸하였다.100여년 전으로 시계바늘을 돌려본다. 일찍이 지도군수 오횡묵(1833∼?)이 쓴 정무일기 지도군총쇄록(智島郡叢刷錄)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법성포 서쪽 칠산바다에는 배를 댈 곳이 없고….고기를 사고 팔며 오가는 거래액이 가히 수십만 냥에 이른다.가장 많이 잡히는 물고기는 조기로 팔도에서 모두 먹을 수 있다.’ 칠산바다는 법성 근역의 칠뫼뿐 아니라 북쪽의 위도까지 아우르는 해역.곡우가 오면 그날 한 시부터 열세 시 사이에 정확하게 조기떼가 울었다.머나먼 남쪽 바다에서 올라온 조기가 이리도 정확하게 칠산바다에 다다라 첫 울음을 뱉는 자연의 오묘한 섭리라니! ●구수산 철쭉이 바다 물들이면 조기떼 울어 어부들은 대나무통을 바닷물 속에 넣은 뒤 한쪽 귀를 막고 조기떼의 울음소리를 들었다.조기떼가 올라오는 시각을 예견하는 놀라운 ‘민속지식’을 칠산어민들은 두루 체득하고 있었다.법성포 구수산의 철쭉꽃이 뚝뚝 떨어져 바다를 물들이면 어민들은 조기떼가 왔다는 신호로 알아듣고 이내 고기잡이에 나섰다.그때 잡아들인 조기를 말려서 ‘오가잽이(오사리에 잡는다는 뜻)굴비’를 만들었으니,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던 바로 그 족보다.그 전통이 오늘에 이어져 법성굴비가 되었다. 가공업자만 300여 가구.“연간 매출액이 공식적으로는 1500억원 정도지만,줄잡아 2000억원 이상 되지 않겠어요? 추석 대목에 1년 적자의 대부분을 메웁니다.” 법성포 토박이인 참굴비수산 박정우 대표의 말이다.엄청난 브랜드 효과이기도 한데,가히 굴비의 본고장답다.엄밀히 가리자면,‘영광굴비’가 아니라 ‘영광법성포굴비’가 정답이리라. 법성포 굴비가 맛좋은 이유는 참조기와 1년 이상된 양질의 소금을 사용하여 건조하며,해풍과 습도,일조량 등이 알맞은 기후조건에서 만들기 때문.‘하늘이 내린 굴비의 고장’이라 하거니와,굴비 제조에 필수적인 소금,바람,갯벌이 딱 들어맞는 곳이다. 그러나 칠산바다에서 잡히던 참조기들은 거의 사라지고 없다.‘중국 조기를 들여다 참굴비를 만들어 팔다가 잡혔다.’는 식의 천편일률적인 신문기사는 정말이지 ‘무지’에 가깝다.칠산조기가 거의 사라진 마당에 어차피 동중국해로 진출해 굴비용 조기를 잡아들인다.중국배가 잡으면 중국 조기,우리배가 잡으면 한국 조기일 뿐,씨가 다른 것은 아니다.막상 중국 조기들이 없다면,추석상에 오를 그 엄청난 물량을 감당할 수가 없다.값이 눅은 부세와 백조기,수조기 등을 참조기로 속여 파는 사기 행각이 문제라면 문제일 뿐이다.굴비 장사들은 “어차피 100만원이 넘는 굴비를 제 돈 주고 사먹을 사람은 별로 없다.”고 말한다.굴비상자가 뇌물상자가 된 내력이 여기에 있다. 공급은 태부족인데 수요는 여전하므로 값이 오를 것은 뻔한 이치.예나 지금이나 ‘절 받는 물고기’이기는 마찬가지다.무수한 물고기들이 존재하지만 절 받는 반열에 오르기는 쉽지 않다.북어포도 절 받는 위치에 있지만 조기처럼 엄숙한 차례상에서 ‘품격있게’ 좌정하는 예는 극히 드물다.마치 경북지역 사람들이 추석차례상에 지극정성으로 돔배기(돔발상어)를 올리는 것과 같다.그래서 그 비싼 조기를 제상에 올린다.제의전통의 장기지속성이 어물의 가격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매우 재미있는 사례이다. ●대개의 조기는 알이 꽉 찬 상태로 잡혀 굴비 제조법에서도 유명세의 정당한 근거가 확인된다.대개의 조기는 알을 낳기 전에 사로잡힌다.알이 꽉 차고 기름진 조기들이 줄지어 건조장으로 들어서면 일단 소금을 뿌리고 구부러지지 않게 차곡차곡 쌓아서 무거운 돌로 눌러놓는다.소나무 장대 수십 개로 밑이 넓고 위가 좁은 원형 건조장을 만들어 춘삼월의 따스한 훈풍에 쏘인다.한 줄에 통상 20마리를 꿰는데,칠산조기는 워낙 큰놈들이어서 양쪽으로 5마리씩 10마리를 엮는다.건조장 천장을 올려다 보면 구멍이 뚫려 하늘이 훤히 내다보이며,사방이 짚발로 둘러싸여 아늑하기 그지없다.해풍이 환기구멍으로 솔솔 들어와 비늘에 닿는다.조기들이 숨쉴 틈도 없이 가득 내걸린다.밑바닥 중앙에는 둥근 구덩이를 파고 숯불을 피우기 시작한다. 조기들은 바짝바짝 말라간다.발 밑에서는 빨간 숯불이 연신 불기운을 내뿜고,푸른 별빛이 흘러내리는 황홀한 밤이 계속된다.누군가 소곤거린다.“오가잽이굴비가 만들어지고 있어요.” 드디어 조기들은 굴비라는,전혀 새로운 이름으로 ‘성전환’에 가까운 변신을 하게 된다. ●바짝바짝 말라 ‘오가잽이굴비’ 로 변신 굴비 구경에 여념이 없는데,굴비집 일꾼이 물어왔다.“여기 걸린 조기들이 모두 얼마치나 될 것 같습니까? 2억원이 넘습니다.” 일꾼이 돈 이야기를 던지는 바람에 필자의 명상은 이내 깨지고 말았다.‘당신은 이런 굴비를 먹을 수준이 못된다.’는 엄중한 경고로 다가오는 말이다.그러나 그 일꾼의 말은 사실이다.제대로 말린 참굴비 한 두름은 10만∼20만원을 훌쩍 넘는다.백화점 광고전단지에 ‘미끼상품’으로 끼는 1만원짜리부터 시작해 3만원,5만원,10만원,15만원,30만원,100만원,150만원 등등 굴비들은 층층이 ‘계급화’되어 있다.비닐끈을 사용해 마구잡이로 엮어 비닐봉지에 넣은 굴비부터 볏짚으로 고풍스럽게 엮고 돗자리까지 깐 등나무상자에 들여앉힌 굴비까지 가격은 철저히 계급적이다.자본주의 상품으로서만이 아니라 굴비의 자존심을 살리면서도 우리들의 잃어버린 자존심을 같이 되살리는 길은 없을까? 굴비 골목을 빠져나오는 필자의 손에는 한 두름에 5만원하는 스티로폼 굴비박스가 하나 들려있었다.“한 마리에 2500원,우리 가족이 한 마리씩 4마리를 구워먹으면 1만원….” 정말 소심하게 그런 계산을 하면서 필자는 골목길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조기에 관한 명상’이란 책을 쓴 인연도 있고 하여 법성포로 내려갔지만,사실 법성포를 굴비로만 바라볼 일도 아니다.법성포 ‘천년의 역사’는 온통 ‘물의 역사’ 그 자체다.우리 나라에 불교를 전한 동진(東晋)의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머나먼 항해 끝에 법성포 근역에 처음 상륙하였으며,그 흔적은 지금도 불갑사에 남아 있어 ‘백제불교초전전래지’로서의 명성을 전한다.택리지에는,‘해수와 조수가 포구의 앞을 돌고,호수와 산이 아름답고,동네가 열을 지어서 사람들이 소서호(小西湖)라고 부른다.바다에 가까운 여러 읍은 모두 이곳에 창고를 두어 조정에 바치는 쌀을 만드는 곳으로 삼았다.’고 하였다. 조운선이 집결하여 미곡을 실어나르는 창고가 밀집해 있었다.영산강에 영산창이 있다면 이곳에서는 영광의 법성창이 중요했다.왜구가 늘 노리는 창고였던 탓에 수군 만호들이 주둔하던 해군기지이기도 했다.고려시대에도 조운창고가 있었던 데다가 인근에서 매향비(埋香碑)까지 발견되었으니 확인할 수 있는 시대적 상한선이 훌쩍 1000년을 뛰어넘는다. ●동학농민군의 첫 기포지 구수마을 법성에서 무장으로 가는 길목인 구수마을은 갑오년 동학농민군의 첫 기포지이기도 했다.무장현 손화중 접주가 주동하여 동학농민항쟁의 도화선이 된 첫기포지가 법성포였음은 얼마나 의미심장한 일인가.영산원불교대학의 박맹수 선생은 “그만큼 혁명군을 뒷바라지할 재원이 풍부했다는 증거”라고 말한다.당대의 거대 ‘포구도시’답게 혁명운동에 수반되는 물적 기반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하나 더 짚고 가자.원불교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의 생거가 있는 곳이 법성포 바로 옆 길룡리란 곳이다.영산성지로 부르는 이곳은 와탄천의 갯벌을 막아서 정관평을 조성,노동과 신앙의 일체화를 꾀함으로써 초기 ‘비밀교단’의 기반을 닦았다는 점에서 이 20세기형 민족종교의 뿌리는 포구사와도 직결된다.1918∼1919년간에 가래와 삽만으로 3만여평의 바다를 막아 주경야독으로 민족종교를 태동시킨 유서깊은 곳.간척사를 생생하게 기록한 정관평 글씨 바위가 이를 잘 증명한다.하루바삐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민족사의 현장으로 남겨둘 일이다. 법성포에서 그토록 가까운 곳에 영산성지가 있음은 오만가지 인물이 오고가는 대도회를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을 당대 초기 교도들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던 소태산이 송곳 꽂을 땅도 없던 무토농민들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대지를 장만하게 했으니,그의 행적은 ‘바다의 프런티어’로 손색이 없다.그러나,그 유서 깊은 법성굴비와 영산성지가 모두 영광 핵발전소의 암울한 그림자에 치여 있으니!
  • 사자와 권력/올라프 라더 지음

    사자와 권력/올라프 라더 지음

    로마의 장군 안토니우스는 친구인 카이사르의 시신을 차지한 뒤,비참하게 난도질당한 모습을 시민들에게 보여주고 함께 슬퍼하면서 카이사르의 후계자가 자신임을 공식화했다.또 스탈린은 레닌이 사망하자 시체를 영원히 썩지 않도록 방부 처리함으로써 ‘레닌숭배’의 초석을 세우고 자신은 그 후광을 물려받았다.그런가 하면 볼리비아 군대는 체 게바라를 총살한 뒤 손을 절단하고 공항 활주로 밑에 묻음으로써 혁명의 싹을 잘라버렸다.권력은 죽은 자로부터 나오는 것인가.사자(死者) 숭배는 권력의 영원한 유혹인가.한 시대를 주름잡은 영웅이 죽은 뒤,그 시신과 무덤을 둘러싸고 산 자들이 벌인 치열한 투쟁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안토니우스, 카이사르 시신 차지후 후계자 선언 ‘사자와 권력’(올라프 라더 지음, 김희상 옮김, 작가정신 펴냄)은 이러한 사자 숭배가 권력의 정통성 확보와 어떤 연관이 있는가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추적한다.저자는 독일 베를린의 훔볼트 대학에서 문화사를 가르치고 있는 중세사의 권위자.책은 친구를 죽인 헥토르의 시체를 마차에 묶어 끌고 다니며 모욕했던 아킬레우스에서 아우구스투스의 뒤를 이어 로마의 황제가 되기를 꿈꾼 무솔리니,600년 전에 묻힌 세르비아 왕의 시신을 다시 찾아온 밀로셰비치에 이르기까지 죽은 자와 권력의 얽히고 설킨 관계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1세기 전반 로마의 황제들은 시신을 무덤에서 빼내거나 돌덮개를 옮긴 범법자들을 사형에 처하도록 명했다.이른바 ‘황제의 칙령’이다.저자는 이 칙령은 예수부활의 역사와 결코 무관치 않다고 말한다.‘마태복음’에 따르면 유대 대제사장들은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의 무덤에 보초를 세워줄 것을 요청한다.예수의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내 부활을 꾸며내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는 명분에서다.저자는 예수의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냈다고 대제사장들이 소문을 퍼뜨리고 총독이 로마에 진상보고서까지 써 보냈던 것을 보면 황제의 칙령은 부활의 역사와 관련이 있음이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日 정치인 야스쿠니 참배… 우리 ‘과거사’ 논쟁 정적인 아우구스투스를 제치고 후계 자리를 차지한 안토니우스,레닌이 죽기 전 정치적 유서라 할 비밀편지에서 스탈린에 대한 불신을 밝혔음에도 결국 레닌의 뒤를 이은 스탈린,2000년 전의 위대한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무덤을 재건하며 옛 영광이 다시 찾아올 것을 열렬히 희망한 무솔리니.이들에게 사자 숭배는 정치권력의 정통성을 부여받고 사회의 질서를 기져다준 상징적 지주였다.이들은 사자를 숭배하고 무덤에 참배하는 것이야말로 과거를 연출해 보임으로써 미래를 장악할 수 있는 지름길임을 굳게 믿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무덤은 저절로 기억을 한데 묶어주는 추모의 장소가 아니라는 점이다.무덤은 어쩌면 그것을 필요로 하는 집단이 창조해내는 산물인지 모른다.결속을 다질 공동의 기억이 필요할 때 사회는 무덤을 찾는다.거룩한 무덤과 성스러운 유골은 결국 만들어지는 셈이다. ●死者숭배는 정치권력 정통성의 상징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떠올리면 그런 정황은 어렵잖게 이해된다.일본의 많은 지도자들은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우려와 반대를 무릅쓰고 2차대전 전범들의 위패가 안치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고집한다.권력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한 벌거벗은 욕망이 그들을 ‘또 다른 범죄’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과거를 담보로 미래의 권력을 장악하려 했던 ‘추악한’ 역사를 되돌아보는 이 책은 과거사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2만 2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부녀 ‘10억 만들기’ 대박꿈의 종말… 딸 자살

    “소문난 수재였던 딸이 마음먹은 것이라 ‘10억의 꿈’이 금방 이뤄질 것만 같았습니다.” ‘10억 만들기 신드롬’을 좇던 부녀가 재산을 주식과 로또 복권으로 탕진하고 동반 자살을 기도한 끝에 딸이 숨지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부산에서 14년 동안 9급 세무공무원으로 일하던 염모(57)씨는 지난 1993년 보증을 잘못선 탓에 회사를 그만두고 이혼한 뒤 딸(30)과 함께 상경했다. 부녀는 영등포구 양평동 3층 옥탑방에 자리잡고 재기를 꿈꿨다.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던 딸은 가세가 기울자 지방 명문국립대 영문과를 중퇴하고 고졸 학력으로 한 공기업 IT본부에 취업했다. 최연소로 수석 합격해 능력을 인정받았지만,학력이 달려 IT팀장으로 승진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8년 동안 열심히 일했지만 지난해 5월 승진심사에서 떨어지자 자존심 강한 딸은 미련없이 사표를 던졌다.이어 손에 쥔 퇴직금 5000만원으로 ‘돈불리기’에 나섰다. 아버지는 딸이 “이 돈으로 1년 안에 10억을 못 벌면 나랑 같이 죽어요.”라고 말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딸이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해내고 마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무작정 믿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딸은 로또 복권에,아버지는 주식에 2500만원씩 투자했다.딸은 복권당첨 확률을 컴퓨터로 분석,400만원과 300만원에 각각 당첨됐다.하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두사람은 1년 만에 빈털터리가 됐다. 마침내 부녀는 지난달 19일 “저 세상으로 갈 때가 되어 살기 싫어 갑니다.”라는 유서를 썼다. 이어 같은 달 21일 마지막 남은 6만원으로 구입한 로또복권마저 휴지조각이 되자 다음날 오후 딸은 옥탑방에서 아버지를 앞에 두고 목을 맸다.딸의 시신을 수습한 뒤 목을 매려던 아버지는 극심한 고통과 공포를 느껴 포기하고 3층 옥상에서 소주 3병을 마시다 잠이 들었다. 밀린 월세를 받으려 부녀를 찾던 집주인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힌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뛰어내리려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5일 염씨를 자살방조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은 “자존심 강한 딸과 이를 믿던 아버지가 일확천금을 꿈꾸다 실패하자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고 말았다.”며 안타까워 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총리실이 망하는 시나리오를?

    총리실이 망하는 시나리오를?

    “국무총리실이 망하는 시나리오를 만들어라.” “유서를 쓴 뒤 관 속에 들어가 보자.” 총리실이 황당하고 소름끼치는 주제를 선정해 간부급 직원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총리비서실과 국무조정실 과장급 이상 간부 100여명은 오는 6∼11일 2개조로 나뉘어 각각 2박3일간 경기도 용인시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위탁교육을 받는다.이해찬 총리를 비롯해 한덕수 국무조정실장,이기우 총리비서실장 등 장·차관급도 빠짐없이 참석한다. 총리실 직원들이 민간 연수기관에서 합숙교육을 받는 것은 이례적인 일인 데다 교육내용도 과거와 달리 파격적이다.직원들에게는 ‘총리실이 망하는 시나리오’를 만들어 보라는 숙제가 떨어진다.그동안 스스로의 행동이 조직의 활동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나를 반성해 보자는 취지다.유서를 쓴 뒤 관 속에 들어가는 교육도 있다.가상 죽음을 통해 과거를 반성하고 여생을 좀 더 보람있게 보내자는 뜻에서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 ‘고객에게 듣는다’ ‘변화를 주도하는 리더십’ 등을 주제로 한 삼성인력개발원의 전임강사와 민간 전문가들의 강연도 준비돼 있다. 박철곤 총괄심의관은 “공직자들이 변화하는 세계를 이해하고 업무를 효율적으로 추진하려면 민간기업의 전문가들로부터 교육을 받는 게 좋겠다는 이 총리의 지시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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