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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혹행위 자살 일병 유서 분대장이 뺏고 태워 ‘묵살’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해 지난 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육군 모부대 박모(22)일병이 죽기 직전 남긴 유서를 분대장이 불태우고 묵살한 것으로 밝혀졌다. 박 일병은 또 ‘관심사병’으로 분류됐지만, 중대장이 해외파병으로 2개월여 공석이던 상황에서 부대 간부들의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25일 군 당국에 따르면 박 일병이 사고당일 영내에서 사라지기 직전 오전 11시10분쯤 분대장이 ‘유서’라고 쓴 메모지를 발견, 빼앗아 불태운 것으로 확인됐다. 군 당국은 박 일병의 바지 주머니와 사물함에서 선임병들의 가혹행위에 대한 심경을 적은 7장의 메모지와 수첩도 발견했다. 메모지와 수첩에는 부대동료와 부모·친구·누나에게 선임병들의 기혹행위와 집단따돌림에 대한 괴로움을 호소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군 관계자는 “신병훈련소에서 박 일병이 작성한 육군표준인성검사 결과 극단적 행동 가능성이 드러나 관심사병으로 분류돼 왔다.”면서 “수사결과 가혹행위가 드러나는 해당 병사와 박 일병의 내무반 생활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간부들을 군법에 따라 모두 징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지난 2월부터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를 호소하며 가족들에게 죽고싶다는 말을 해온 것으로 알려진 박 일병은 지난 23일 오후 6시쯤 부대 뒤 야산에서 나무에 목을 매 숨졌다. 군 수사당국은 박 일병의 유서를 토대로 조사를 벌여 8차례에 걸친 선임병들의 구타 등 가혹행위를 확인했다.가평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선임병 가혹행위… 육군일병 자살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한 육군 일병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4일 군에 따르면 육군 모 부대 소속 박모(22) 일병이 지난 23일 오후 6시쯤 경기도 가평군 하면 야산에서 입대 6개월만에 나무에 목을 매 숨졌다. 발견 당시 박 일병은 전투복 차림이었며 이날 오전 10시30분쯤 동료 4명과 함께 부대 뒤 야산에서 1시간 가량 통신 선로작업을 한 뒤 부대로 복귀했으나 곧바로 사라져 6시간에 걸친 수색작업 끝에 변사체로 발견됐다. 부검 결과 박 일병의 시신에서 타살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입고 있던 바지와 내무반 사물함에는 메모지 1장과 유서 1장이 있었다. 지난 2월에 작성된 유서에는 선임병에게 무전기로 맞은 일, 점호 때 심하게 혼난 일 등 가혹행위 내용과 함께 자신을 괴롭힌 선임병 8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또 박 일병은 지난 2월부터 가족들에게 죽고 싶다는 말을 하며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를 하소연 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군 헌병대는 23,24일 유서에 열거된 선임병들을 상대로 조사를 벌여 8번의 가혹행위를 확인했으며 이들을 군법에 따라 징계할 방침이다. 군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24일 입대한 박 일병은 성격이 내성적이고 생활에 소극적이어서 관심 사병으로 분류돼 있었다.”며 “박 일병의 내무반에서 벌어진 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군 간부들도 징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가평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16일 TV 하이라이트]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KBS2 밤 12시45분) 아시아 여성 최초, 최연소로 FIFA(국제축구연맹)심판강사가 된 임은주씨.‘국내 1호 여성축구심판’으로 11년 동안 그라운드를 누비다 돌연 심판직을 떠나 축구행정가로 변신한 사연. 세계 최초로 남자 프로리그의 여성 심판이었던 그녀가 얘기하는 그라운드 뒷이야기 등을 들어본다.   ●사이언스+〈디지털 구로〉(YTN 오후 1시40분) 1980년대 서울 구로동 하면 떠오르던 이미지는 오밀조밀 모여 있는 열악한 환경의 공단. 하지만 지금은 벤처단지로 탈바꿈하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이다. 산업화와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구로. 이제는 첨단 디지털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앞서 가는 행정을 실현하는 구로구청을 찾아가 본다.   ●60분-부모(EBS 오전 10시) ‘우리 아이가 혹시 영재는 아닐까?’ 부모라면 누구나 이런 기대감을 가지고 자신의 자녀가 영재라는 생각을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그리고 자녀의 영재성을 깨울 방법도 고민할 법하다. 그런 부모들의 기대심리 속에서 영재교육이 날이 갈수록 관심을 끌고 있다. 조기 영재교육에 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본다.   ●솔로몬의 선택(SBS 오후 8시55분) 전 재산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려는 유서를 작성해 놓은 사업가. 치매 판정을 받은 후, 자식들은 여자가 잠깐 정신이 돌아온 틈을 타 재산 상속의 유서를 다시 작성해 변호사 입회 아래 공증까지 받는다. 여자가 죽은 후, 자선단체와 자식들은 서로 자신들이 받은 유서가 유효하다고 주장하는데….   ●닥터스(MBC 오후 6시50분) 올해 열두 살에 빗자루처럼 바싹 마른 다리, 몸무게는 19kg. 집안에서는 기어다니거나 굴러다니고, 밖에 나갈 때는 누군가에게 업혀야만 한다. 뇌성마비로 인한 소아마비는 보통 7∼8세에 수술을 하는데 나경이는 생활고로 인해 최적의 수술시기를 놓친 상태. 선천성 뇌성 소아마비 나경이의 사연을 소개한다.   ●TV, 책을 말하다(KBS1 밤 12시30분) 우리가 알고 있는, 혹은 믿어 의심치 않은 수많은 사실들. 과연 사실이라는 것은 얼마나 진실일까.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가 추천하는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은 모든 과학적 사실을 진실로 알고 있던 우리에게 과학 속에 숨은 수많은 허구의 사례들을 제시한다. 과학의 성격에 대한 성찰을 제시한다.
  • ‘反FTA’ 분신 허세욱씨 끝내 숨져

    ‘反FTA’ 분신 허세욱씨 끝내 숨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막바지 협상이 진행되던 지난 1일 협상장인 서울 하얏트호텔 앞에서 분신을 시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온 허세욱(54)씨가 15일 오전 11시23분쯤 화상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숨졌다. 허씨의 치료를 맡았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강성심병원 측은 “허씨가 오전부터 갑자기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응급조치를 취했지만 결국 숨졌다.”고 밝혔다. ‘한·미 FTA 무효 민족민주노동열사 허세욱 동지 장례대책위원회’(대책위)는 “장례식을 사회장으로 치르기 위해 유가족들과 협의에 나섰지만 허씨의 가족들은 시신을 경기 안성시 성요셉병원으로 옮겨 놓고 조용히 가족장으로 치르기를 원해 장례 절차 등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한강성심병원 앞과 전국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지부에 허씨의 빈소를 차려 놓고 한·미 FTA 무효화와 노무현 정권 퇴진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대책위가 이날 공개한 허씨의 유서에서 허씨는 자신이 일했던 서울 H운수 동료들이 넉넉지 않게 생활하고 있다는 점을 의식한 듯 ‘모금은 하지 말아 주세요. 전부 비정규직이니까.’라고 당부했다. 그는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해서 전국의 미군기지에 뿌려서 밤새도록 미국놈들 괴롭히게 해 주십시오. 효순ㆍ미순 한(恨) 갚고 (미군 기지에 유해를 뿌려서 내게 될) 벌금은 내 돈으로 부탁합니다.”고 적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민노총 소속 50대 택시기사 FTA반대 분신

    한·미 FTA 체결 막바지 협상이 열린 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하얏트호텔 앞에서 50대 남자가 분신하는 등 반FTA 시위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이날 오후 3시57분쯤 하얏트호텔 정문에서 20여m 떨어진 도로에서 민주노총 산하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 소속 택시기사 허모(54·서울 관악구 봉천동)씨가 분신해 온몸에 3도 화상을 입고 여의도 한강성심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나 중태다. 허씨는 분신 직후 서울 용산 중앙대병원으로 이송됐다가 화상 정도가 심해 화상치료 전문병원인 한강성심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담당의사는 “얼굴과 하반신 등 몸 전체의 50%에 3도 화상을 입었고 기도에도 화상을 입어 생명이 위독한 상태”라고 밝혔다. 허씨는 1.5ℓ들이 생수병에 든 연소성 액체를 몸에 붓고 라이터로 불을 붙인 뒤 “FTA 협상을 중단하라.”고 여러 차례 소리 지르며 쓰러졌다. 경찰이 곧바로 휴대용 소화기로 진화했지만 이미 온몸에 심하게 화상을 입은 뒤였다. 허씨가 집에 남겨둔 B5 크기의 한 장짜리 유서에는 ‘(정부는) 토론을 강조하면서 실제로 평택미군 기지 이전과 한·미 FTA에 대해 토론한 적이 없다. 의제에도 없던 쌀을 넣어 연막전술을 펴서 쇠고기 수입하지 말고 굴욕적이고 졸속적이며 반민주적인 협상을 중단하라.’고 적혀 있었다. 허씨의 회사동료 이모(43)씨는 “평소 FTA 관련 신문 기사를 꾸준히 오려 모을 정도로 한·미 FTA에 관심이 많았고 자신이 모는 택시 승객들에게 범국본 선전물을 나눠 주는 등 한·미 FTA 반대운동에 적극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1일 TV 하이라이트]

    ●진실(YTN 오후 11시5분) 1970∼80년대 언론의 민주화 운동사를 되짚어 본다. 정부의 거스를 수 없는 명령과 강력한 통제만이 존재했던 유신시대에는 획일화된 보도만 있었다.74년 10월, 동아일보 기자들이 모여 자유언론 실천선언을 채택했다. 이런 움직임이 빠르게 확산돼 80년대까지 이어지는 언론 민주화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이루게 된다. ●사랑의 공부방(EBS 오후 6시) 대전 신안동의 꿈동산 공부방을 찾아가 본다. 공부방 아이들의 기초학력 증진을 위한 대기만성 프로젝트에서는 다양한 기초학력진단을 통해 상황에 맞는 맞춤 학습법을 알려주고, 공부방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 본다. 또한 고진감래 프로젝트에서는 가난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는 희승이의 소원을 들어준다. ●SBS스페셜(SBS 오후 11시5분) 다양하고 미묘한 맛의 차이를 짚어내는 인간의 미각 능력은 건강의 척도가 되지만 현대인들의 미각 능력은 나날이 퇴화되고 있다. 패스트푸드와 가공식품의 섭취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폭발적인 가공식품 섭취로 인한 아연 결핍과 그로 인한 고충을 알아보고, 우리 옛 밥상의 지혜를 알아본다. ●문희(MBC 오후 7시55분) 방숙희는 문희를 내쫓을 생각으로 냉장고·화장대 등 문희의 물건들을 내다 버리고, 문희네 집에 청혼하러 온 유진은 이 광경을 보게 된다. 유진이 인사를 온다는 말을 듣고 문희네 집에서 대기하고 있던 유진의 엄마는 문희에게 양심에 호소하며 과거가 있냐고 묻는다.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문희는 대답을 망설인다. ●최강! 울엄마(KBS2 오전 8시55분) 작문 과제인 유서쓰기에 열중하던 최강은 그동안 공부도 못하는 못난 아들 노릇만 해온 17년이 후회스럽고 죄송스럽다. 이제부터라도 부모님께 든든한 큰아들이 돼보겠다고 굳은 다짐을 한다. 같은 시각, 식당에서 불판을 닦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 최강부는 오늘도 식당주인의 잔소리에 귀가 따갑다. ●역사기행(KBS1 오후 11시) 인구의 약 90%가 힌두교를 믿는 네팔은 2000년이 넘는 역사에도 불구하고 외부세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은둔의 왕국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네팔의 ‘구르카 용병’과 네팔속 힌두와 불교의 역사, 그리고 히말라야를 지나갔던 고승들의 천축국 직행로, 최근 불안을 겪고 있는 네팔의 정치사를 들여다본다.
  • ‘한국 禪불교의 원류’ 中선종사찰을 찾아

    ‘한국 禪불교의 원류’ 中선종사찰을 찾아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현상에 얽매이지 않는 본질에의 철저한 탐구를 독려한 임제(臨濟·?∼867) 선사의 일갈이다.‘본디 내가 없는데 왜 나에 집착하는가.’ 허상인 나와 존재를 바로 봄으로써 해탈을 이루자는 선(禪)불교의 큰 가르침이기도 하다. 조계종 불교인재개발원이 지난 5일부터 11일까지 중국 대륙을 종단하며 이 ‘선 불교’의 원류를 찾아나섰다. 허베이(河北)성 스자좡(石家莊)의 임제사(臨濟寺)부터 광둥성 사오관(韶關)의 남화선사(南華禪寺)까지 선종 사찰 13군데를 돌며 선 불교의 초조 달마(達摩) 대사∼6조 혜능(慧能·638∼713) 대사의 향훈을 느껴보는 대장정이었다. 고우(전 각화사 선원장) 스님을 해설자로 모신 신도 60여명의 순례 길을 동행했다. 인도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27대 제자인 반야다라 존자를 40년간 시봉하다 동토(東土) 중국을 택해 전법에 나선 불교 선종(禪宗)의 종조 달마대사. 중국에 건너간 달마는 당시 ‘불심천자(佛心天子)’라 불릴 만큼 신심이 깊었던 양(梁)의 무제(武帝·464∼549)와 법 거량을 가졌으나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이후 달마는 ‘아직 이 땅에서 법을 전할 때가 아니다.’라며 일체 중생과의 연을 끊고 9년간의 묵언 면벽수행에 들었다. 허난(河南)성 성도인 정저우(鄭州) 서쪽 등펑(登封)시 숭산(嵩山) 자락의 소림사(少林寺)는 초조 달마대사의 고행과 2조 혜가(慧可·487∼593) 대사에 대한 전법이 서려 있는, 선종의 시발점이다. 무술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소림사답게 일주문을 비롯해 사찰 주변에 소림 무술 교육시설이 즐비하다. 현재 50여곳에서 2만여명이 무술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수련자들의 기합소리는 ‘과연 이곳이 선종의 시원지인가.’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 달마 대사가 면벽수행을 했던 달마굴은 소림사 뒤쪽 깎아지른 듯한 산 중턱에 있다. 동굴 입구의 돌문에 ‘묵현처(默玄處)’라 음각되었고 벽에는 ‘달마동(達磨洞)’이라 새겨졌는데 3∼4명이 서기에도 비좁은 동굴 한가운데 가사를 입혀놓은 달마대사상이 인상적이다. 면벽수행 당시엔 벽을 향해 앉았을 터이지만 지금은 동굴 입구를 향해 세상을 내다보고 있다. 달마대사의 면벽수행처였던 이 달마굴은 2조 혜가 스님이 팔을 잘라 제자가 되기를 간청했다는 단비구법(斷臂求法)의 현장이기도 하다. 구도 열정이 강했던 혜가 스님은 눈이 내려 무릎까지 쌓여도 꼼짝하지 않고 동굴 앞에 앉아 법을 구했다고 한다. 그토록 제자로 받아줄 것을 간청하는데도 달마 스님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왼쪽 팔을 잘라 마침내 달마대사의 마음을 얻게 된다. 여기에서부터 선종의 맥이 시작되는 것이다. 동굴 오른쪽 벽면에 혜가 스님이 잘라 바쳤다는 팔뚝을 생생하게 부조해 놓았다. 지금의 소림사는 1928년 소실된 뒤 중건한 것으로, 혜가 대사의 단비구법을 형상화해 놓은 입설정(立雪停)과 9년 면벽한 달마 대사의 모습이 어려 있다는 바위가 있다. ‘천하에 붉은 눈이 내릴 때 제자로 받아들이겠다.’는 달마 대사의 말에 서슴없이 팔뚝을 잘라 피를 뿌려 법을 전수받은 혜가 스님은 소림사 맞은편 발우봉에 터를 잡아 수행에 들었다. 지금의 이조암(二祖庵)이다. 소림사에서 10리길이니 1시간30분은 족히 걸어야 오를 수 있는데 케이블로 연결된 리프트가 힘겨운 발품을 덜어주고 있다. 이조암에 들어서면 원나라 때 세워졌다는 6각 전탑과 당대의 4각 전탑이 눈에 들어온다. 중심전각인 20평 남짓한 법당에는 금칠을 한 좌상에 옷을 입힌 혜가 스님이 앉아 있다. 법당 앞에는 단맛, 쓴맛, 신맛, 매운맛의 네 가지 맛이 나는 물이 났다는 우물 사미정(四味井)이 있는데 수행하면서 물이 없어 고생하던 혜가 스님을 위해 달마 대사가 지팡이(錫杖)로 땅을 쳐 물을 솟아오르게 해 만들었다는 탁석천(卓錫泉)이다. “제 마음이 불안합니다. 스님께서 편안케 해 주십시오.”/“불안한 네 마음을 가져오너라. 그러면 편안케 해주겠다.”/“마음을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나는 벌써 너의 마음을 편안케 하였느니라.” 혜가는 달마 대사와의 이 대화를 통해 크게 깨달았다고 한다. 이 선문답이 마음을 바로 깨달아 들어가는 안심법문(安心法門)으로, 달마 대사가 전한 선(禪)의 실체이자 정수로 여겨진다. 달마 대사의 법을 이은 혜가는 나병을 심하게 앓아 머리카락이 모두 빠져 적두찬(赤頭瓚) 별명을 얻었다는 3조 승찬(僧瓚·?∼606) 스님에게 똑같이 안심법문으로 법을 전한다.“몸에 풍질(風疾:나병)을 앓고 있습니다. 풍질을 앓게 된 저의 죄를 참회케 해 주십시오.”/“죄를 가져오너라. 죄를 참회케 해 주겠노라.”/“죄를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습니다.”/“그렇다면 너의 죄는 모두 참회되었느니라. 그저 불법승에 의지해 안주하라.” 안심법문을 통해 법맥을 이어받은 승찬 스님은 혜가 스님을 시봉하면서 병도 나았다고 한다. 안후이(安徽)성 첸산(潛山)현 천주산(天柱山) 삼조사는 바로 이 승찬 스님의 선기가 서린 곳. 혜가 스님을 찾아 깨달은 승찬 스님은 이곳 천주산에서 수행하며 법을 펴다가 나무 밑에서 설법을 마친 뒤 선채로 입적했다고 한다. 수행처인 삼조굴과 묘탑인 삼조탑, 서서 입적했다는 입화탑(立化塔)이 있다. 승찬 스님 열반 후 수습된 300과의 사리 중 100과를 넣어 세운 것이 삼조탑이다. 삼조굴 바로 앞에는 승찬 스님이 선문답을 통해 법을 전한 4조 도신((道信·580∼651)스님의 속박을 풀어준 ‘해박석(解縛石)’이 누워 있다.“해탈법문으로 나병을 앓는 이 몸의 속박을 풀어달라.”는 도신 스님에게 “본래 속박된 적이 없으니 해탈을 구할 필요조차 없이 자성 그대로가 해탈이요 부처”라 일갈한 안심법문의 또 다른 현장이다. 황메이(黃梅)현 쌍봉산(雙峰山)의 사조사(四祖寺)는 도신(道信·580∼651) 선사가 30년간 주석한 곳. 창건될 때엔 1000명의 수좌들이 수행하던 대찰이었으나 조사전과 몇몇 석조물만 남았다가 근래 들어 30여개의 전각이 제모습을 되찾았다. 오른쪽 산등성이의 사조탑에서 내려다보이는 가람이 다른 조사들의 주석 사찰과는 규모나 양식 면에서 크게 달라 보인다. 사조사로부터 10㎞쯤 떨어진 곳에 5조 홍인(弘忍·594∼674) 선사가 머물며 설법했던 빙무산(憑茂山) 오조사(五祖寺)가 있다. 이른바 ‘동산법문(東山法門)’이 태동한 곳으로 4조 도신 선사가 바로 동산법문의 초조(初祖)인 셈이다. 중국 선종에선 초조부터 3조 승찬 스님대까지 걸식하며 떠도는 두타행 수행이 이어지다가 4조 도신 선사부터 비로소 도량에 정착해 법을 펴게 된다. 이 오조사는 그중에서도 중국 선종의 법문이 본격적으로 행해진 유서깊은 곳이다. 다른 사찰과는 달리 산에 자리잡은 데다 우리의 절집처럼 잿빛 기와를 얹은 가람들이 퍽 친숙하다. 법당 왼쪽에 길쌈을 하며 아들을 훌륭한 조사로 키워낸 홍인 선사 어머니의 공덕을 기리는 성모전(聖母殿)이 있고 법당 뒤로 법우탑과 5조 홍인조사 진신전, 그 오른쪽에 6조전이 있다.6조 혜능(慧能·638∼713) 선사가 사미시절 찧던 방아도 재현되어 있다. 그 옆으로 5조 스님이 좌선했다는 수법동굴을 지나면 홍인 스님 사리탑이 눈에 들어온다. 홍인 스님은 이곳에서 6조 혜능에게 법을 전하는 증표로 달마조사로부터 전해내려온 가사와 발우를 준다. 중국에선 4조 도신 스님 때부터 스님들이 농사일과 참선을 병행해야 한다는 ‘선농일치(禪農一致)’ 운동이 일었는데 5조 홍인 선사 때 이곳에서 자리잡아 훗날 그 유명한 ‘일일불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이라는 청규(淸規)를 낳게 된다. 6조 혜능 스님은 홍인 스님을 찾아가 출가의 뜻을 밝힌 뒤 이 절에서 여덟 달 동안 방아를 찧다가 마침내 홍인 스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금강경’ 강론을 듣고 단번에 깨우친 뒤 법을 전수받아 선종의 육조(六祖)가 되었으며 한국 선 불교는 바로 이 혜능 대사 문하의 선법인 남종선(南宗禪)을 따르고 있다. 광저우·우한·스자좡 글 사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사고 시내버스에 ‘매달린 시민안전’

    “사고가 났더라도 시동이 걸리면 회사에서 운행하라고 하는데 별 수 있나요. 어떻게든 횟수는 채워야지요.” 지난 9일 밤 10시50분 서울 중화동 태릉사거리. 버스기사 A씨는 정거장에 멈춰 있던 시내버스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버스의 뒷부분은 한눈에 봐도 심하게 찌그러져 있었다. 뒷 범퍼가 밀려 엔진 냉각팬을 파고들어 시동을 걸자 버스에서는 기계 깎는 소리가 시끄럽게 났다. 하지만 A씨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버스를 운행했다. 이 버스는 불과 1시간30분 전 같은 장소에서 사고가 난 버스였다.A씨는 교통사고 피해차량 운전사였고 중랑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뒤 사고 장소에 있던 버스로 돌아와 운행을 시작한 것이다. 사고는 이날 밤 9시20분쯤 혈중알코올농도 0.198%의 만취한 운전자 김모(43)씨가 정거장에 멈춰 있던 이 버스를 들이받으면서 일어났다. 승용차는 앞부분이 완전히 찌그러졌고, 사고로 버스 승객 5명이 다쳐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정도로 큰 사고였다. A씨는 사고 직후에는 운행을 중단하겠다고 밝혔지만 별다른 이상이 없어 보이자 슬그머니 다음 정거장에서 손님을 태우고 종점까지 한 시간 넘게 운행했다. 시내버스는 서울시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지정된 하루 운행횟수를 채워야 한다는 게 A씨의 설명.A씨는 “운행 횟수를 못 맞추면 버스회사 배차원들도 사유서를 내야 하고 운전기사들도 사고가 나면 일단 운행횟수를 맞추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운행을 계속한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정비는 고사하고 간단한 검사조차 받지 않은 사고 차량이 서울시내를 아무 일 없다는 듯 다니는 것을 아는 승객은 아무도 없었다. 한편 11일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가 지난달 23일부터 6일 동안 버스를 이용하는 서울시민 19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해보다 운행이 덜 안전해지고 운전기사들도 불친절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교통법규 준수 등 안전운행 수준에 대해 ‘매우 만족’(43명·2.3%)과 ‘만족하는 편’(659명·34.6%)이 36.9%로 지난해의 48.8%에 비해 11.9%포인트나 감소했다. 운전기사들의 친절도도 ‘매우 친절’(59명·3.1%),‘친절한 편’(708명·37.2%)이 지난해의 48.2%보다 7.9%포인트 감소했다.이달 말로 예정된 요금 인상에 대해 인상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3.8%(72명)에 불과했다.강국진 이재훈기자 betulo@seoul.co.kr
  • 문화재 해외대여 대담해졌다

    문화재 해외대여 대담해졌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해외 박물관에 대한 문화재 대여가 대담해졌다. 대여 규모가 커지고, 유물 수준도 높아졌다. 오는 12월 한국실이 문을 여는 미국 휴스턴미술관에는 금관총 금관과 금제허리띠 등 국보 2점을 포함해 37건 59점의 문화재가 나간다. ‘한국미술 5000년전’처럼 국가적 차원의 해외 순회 전시가 아닌 단일 박물관을 위해 국가지정문화재를 대여하는 것은 유례가 드물다. 중앙박물관은 오는 5월 문을 여는 체코국립박물관에도 80여점을 빌려주기로 했다. 한국문화의 전반적인 양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선사시대 토기에서 조선시대 생활용품까지 망라한다. 2008년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열리는 특별전에는 한국 문화와 한국 미술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유물을 다수 출품한다는 계획이다. 김홍남 중앙박물관장은 “박물관은 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발신지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해외에 한국문화를 알리기 위해서는 문화재의 해외 대여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한다. 중앙박물관이나 산하 지방박물관이 전시하지 않고 있는 유물은 앞으로도 적극 대여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휴스턴미술관은 유물 대여가 이뤄지지 않으면 한국실 개관이 불가능하다. 한국실은 새로 개관하는 아시아관의 일부. 아시아관은 한국실·중국실·인도실·일본실로 구성된다. 중국·인도·일본 것은 소장 유물이 많고 기증도 받아 전시실을 꾸미는 데 문제가 없다. 하지만 휴스턴미술관이 갖고 있는 한국 유물은 가야토기 등 4점에 불과하다. 현재 미국 전역에는 모두 23곳의 박물관에 한국실이나 한국 코너가 설치돼 있다. 상대적으로 한국실 설치가 더딘 남부지역의 중심 도시에서 한국문화만 소외될 수도 있었다. 체코박물관은 동유럽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실을 갖는다. 체코는 한 해 1억명이 찾는 관광대국이다. 여기에 유럽에서 두 번째로 설립됐다는 유서 깊은 체코박물관은 필수 관광코스라는 점에서 적극적인 대여가 필요하다고 중앙박물관은 설명한다. 중앙박물관은 현재도 419점의 유물을 해외에 대여하고 있다. 영국박물관에 20점, 일본 규슈국립박물관에 186점, 뉴질랜드 오클랜드미술관에 206점, 호주 퀸즐랜드미술관에 7점이다. 규슈국립박물관은 ‘동북아시아 교류 박물관’의 성격을 갖고 있어 다양한 관련 유물을 빌려줄 수밖에 없다. 오클랜드미술관의 유물도 뉴질랜드의 컬렉터가 세상을 떠나면서 중앙박물관이 소유권을 갖되 전시는 현지에서 하는 조건인 만큼 일반적 대여와는 다르다. 문화재 해외 대여는 좋은 일이지만, 대여 기간이 무한정 길어질 수 있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김성구 학예실장은 “해외 대여는 지정문화재급이 3개월, 나머지는 2년이 보통”이라면서 “휴스턴박물관도 대여 기간 동안 한국 유물을 적극적 수집해 장기적으로는 자체 소장품으로 한국실을 꾸밀 수 있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해외교류를 담당하고 있는 한수 학예연구사는 “문화재 대여가 단시간에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적극성을 갖고 추진하다 보면 조만간 한국문화를 보는 해외의 시각에 변화가 나타나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여성&남성] 나이 어린 선배 女상사 vs 나이 많은 男후배

    남성들이 군 복무를 하는 탓에 남성과 여성이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디는 시기는 보통 2∼3년 정도 차이나게 마련이다.‘장유유서’ 관념이 뼛속깊이 박힌 일부 남성들에게 자신보다 나이 어린 여성 상사를 모시는 일은 자못 곤혹스럽다. 나이 많은 남성 후배들을 거느려야 하는 여성 상사들도 골치 아프기는 마찬가지다. 직장 내에서 터놓고 말하기 힘든 이들의 속마음을 살짝 들여다 봤다. 외국계 제약회사에 다니는 최모(30)씨는 나이 어린 여자 선배들과 부딪칠 일이 많은 편이다. “재수를 해서 그런지 어린 선배들을 대하는 것에 익숙하다. 하지만 깍쟁이처럼 ‘난 바쁘니까 부탁 좀 할 게.’라는 식으로 나올 때 좀 얄밉다.”고 말문을 열었다. 최씨는 입사 직후 혹독한 ‘통과의례’를 거쳤다.2005년 최씨는 경기도 A시의 의사들을 상대로 신약 임상결과를 설명하는 강연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 달 동안 초대장을 제작해 돌리고, 병원 70곳을 방문해 확답을 얻는 등 매일 야근을 해가며 힘겹게 일을 마쳤다. 강연회는 전 부서에 준비 과정이 회람될 정도로 성공했지만 정작 공은 여자 선배의 몫이었다. 그 선배는 상사들에게 보고하면서 최씨에 대해 ‘후배가 옆에서 도왔다.’고 한 마디 한 것밖에 없었다. ●부딪치거나 혹은 화해하거나 신모(28·회사원)씨도 “선배 대접을 하는 편이지만 깍듯하게 대해도 자격지심 탓인지 ‘내가 어려도 빨리 들어왔으니 뭐 어떻게 할 건데.’라는 식이다. 이럴 경우 마음이 많이 상한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스트레스가 쌓이겠지만 신씨는 술 한잔 기울이며 풀어내는 나름의 해결책을 찾아냈다. “‘제가 후배니까 선배 대접을 확실히 할 테니 선배도 스트레스를 받고 갈구지(?) 말라.’고 말하면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직장 특성상 여성 상사들을 많이 모시고 있는 노모(28·H은행)씨는 ‘조금만 비굴해지면 인생이 행복해진다.’는 주의다. 괜히 선배들에게 잘못 보여서 찍히는 것보다는 꾹 참는 것이 몸과 마음이 편하다는 것. “나이 어린 선배들이 반말을 막 할 때는 기분이 상하죠. 그래도 괜히 덤비다가는 국물도 없어요. 여자 선배들이 똘똘 뭉치는 조직력에 당할 수가 없거든요.” 준비된 애교(?)로 평소 선배와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어 놓고, 문제가 생겼을 때는 소개팅 공세 등 ‘특단의 대책’을 내놓는 유형도 있다. 고모(31·회사원)씨는 “여자 선배들이 오히려 애교에 약하다. 선배들이 기분이 나쁠 때는 영화를 보러가자고 조르기도 하고, 가끔은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자고 한다.”고 말했다. 고씨는 “전에 어떤 선배가 ‘나잇값도 못 한다.’고 해서 무척 기분이 상했지만 그때도 비슷한 방법으로 해결했다. 당시 선배가 솔로였는데 소개팅을 해 줬더니 나에게 무척 호의적이고 잘 대해 줬다.”고 말했다. ●채찍 우선, 당근은 나중에 나이 많은 남자 후배의 심리 상태를 엿볼 수 있는 바로미터는 호칭 문제다.‘선배!’라고 부르지 않고 말끝을 흐리든지 ‘저기요’‘○○씨’라고 부른다면 백발백중 나이 어린 여자 선배들을 조금은 고깝게 여기는 셈. 입사 4년차인 김모(29·여·회사원)씨는 호칭 문제를 바로잡는 노하우를 터득했다. 대놓고 나이를 말하지는 않지만 ‘제가 대학생일 때 ○○씨는 고등학생이었다.’는 식으로 끊임없이 나이 차를 상기시키면서 은근슬쩍 말을 놓는 후배들이 많다고 한다. 이런 후배들에 대해 김씨는 “오히려 존댓말도 꼬박꼬박 해주고 그 사람에게 편하게 대할 빈 틈을 안 주는 거예요. 그러면 시간이 지나면서 말을 놓는다든지 어리다고 얕보는 경우가 없어지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정모(33·여·A항공사 승무원)씨는 “남자 후배들이 ‘누구 누구씨’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무시하는 것 같아서 기분 나빠요. 심하다 싶을 때는 다른 연차가 있는 선배에게 이야기를 해서 혼을 내죠.”라고 털어놓았다. 그래도 해결이 안 될 경우에는 ‘조직의 힘’을 동원한다. 동료들에게 얘기해 그 사람이 어린 선배를 얕본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 자연스럽게 동맹(?) 같은 것이 형성된다. 정씨는 “비행할 때 말도 안 시키고 밥도 따로 먹어요. 그러면 보통의 경우에는 백기 들고 투항하죠.”라고 설명했다. 사회 경험이 짧은 후배일수록 나이 어린 선배에 대한 적응도 떨어진다. 이럴 경우 선배들에게 대접받기를 바라는 것은 언감생심 기대하기 어렵다. 김성희(30·여·공연기획사)씨는 “일도 못하면서 대접만 받으려는 남자 후배에겐 특효약이 있어요. 업무 실수를 한다든지 일을 제대로 못 하는 경우에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을 낸다.”고 말했다. 물론 채찍만이 능사는 아니다. 김씨는 “기회가 있을 때 ‘나이가 많더라도 내가 이 분야에서는 뭘 알아도 더 알고 하니까 따라 달라.’고 다독인다.”고 노하우를 공개했다. 평소 김씨의 말을 건성으로 듣던 남자 후배가 공연 장소를 잘못 섭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확실하게 길(?)을 들였다고 한다. 자기가 잘못한 일을 뒷처리해 주고 일처리도 확실하다는 것을 인식한 뒤에는 그 후배도 “선배!선배!”하며 잘 따르는 편이란다. C공사에서 일하는 김기윤(29·여)씨는 입사 1년차인 2004년 나이 많은 남자 후배 두 명을 한꺼번에 받았다. 한 명은 세 살, 또 다른 한 명은 일곱 살이 많았다. 내심 나이가 더 많은 남자 후배를 대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반대였다. 겨우(?) 3살 위인 남자 후배는 인사도 먼저 안하고 업무상 필요할 때를 제외하면 먼저 말을 거는 법이 없었다. 선배라는 호칭도 들어본 기억이 거의 없고 필요한 용무가 있으면 십중팔구 “저기요…”라고 운을 뗐다. 반면 7살이나 많은 남자 후배는 미안할 정도로 인사도 허리 굽혀 하고 아주 싹싹했다. 알고 보니 7살 많은 후배는 다른 직장을 2년 정도 다니다 입사했고,3살 연상의 후배는 고시를 준비하다 입사한 사회 초년병이었다. ‘사회 경험이 있었던 후배라 조직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질 수 있는 법을 이미 터득하고 있구나.’란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반면 3살 많은 후배는 한동안 또래 여자 동기들은 물론 남자 선배들에게도 시쳇말로 씹혔다. 그 후배는 주위에서 싫은 소리를 계속 듣더니 결국 본인도 느낀 바가 있는지 몇 달 후엔 태도가 많이 나아졌다. “두 후배의 입사 초기 상반된 인상은 아직까지도 남아 있어요. 직장생활에서 나이가 자기 자리매김을 해주는 게 아니라는 걸 저 역시도 절실히 느낀 셈이죠.”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대학재량만으로 교수 해고할 수 없어”

    “‘판사 석궁테러’가 아닙니다. 그냥 ‘판사 석궁사건’입니다. 공격행위만 볼 게 아니라 원인도 봐야 억울한 사람이 줄어듭니다.”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의 민사소송 상고심 변론을 맡기로 한 이기욱(52) 변호사는 25일 “다음 주쯤 대법원에 상고 이유서를 내겠다.”고 밝혔다. 김씨의 민·형사 사건을 맡고 있는 이 변호사는 요즘 김씨를 자주 접견한다고 했다. 접견을 통해 판사뿐 아니라 법조인 모두에게 불신을 갖고 ‘나홀로 소송’을 택했던 김씨를 다독이고 있는 중이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부회장 출신인 이 변호사는 앞서 해직 교수들의 복직 소송 몇 건을 수임한 바 있다. 김씨의 복직 소송이 대법원에서 새 국면을 맞을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 변호사가 속한 법무법인 ‘창조’의 이덕우·김학웅·이원구 변호사도 김씨 변호에 동참하기로 했다. “법원은 김씨가 학생들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하는 등 교육자적 자질이 부족했기 때문에 재임용을 받지 못한 게 당연한 처분이라고 판결했습니다. 학교 논리만 받아들인 결과죠.” 이 변호사는 “사장이 직원을 함부로 해고할 수 없듯이 교수지위도 학교의 주관적 판단만으로 박탈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고도의 연구 능력과 학문 지식을 갖춘 교수에 대한 채용과 재임용 문제는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야 하고, 특별한 결격사유도 없는데 학교가 일방적으로 재임용을 하지 않는 것은 위법이라는 뜻이다. 그는 “학문연구나 강의실적 기준을 충족했는데 교육자적 자질이라는 주관적인 요소를 판단해 학교가 교수를 해임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느냐.”고 반문했다. 이 변호사는 학교측과 법원이 김씨에 대해 교육자적 자질이 부족하다고 본 판단의 근거도 의심스럽다고 했다. 그는 “수업 중에 학생에게 폭언을 했다는 등의 내용은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고 전했다.96년 3월 김씨에 대해 재임용 탈락 처분을 하기 전인 95년 성균관대는 “수업 중에 욕설과 다른 교수에 대한 비방을 했다.”며 김씨에게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교육부 교원징계 재심위원회는 김씨에 대한 의혹 대부분을 사실무근으로 판단, 징계수위를 낮추도록 결정한 바 있다. 이 변호사는 김씨의 교육자적 자질이 왜곡된 부분과 관련, 당시 학생들의 증언 협조를 얻어낼 계획이다. 증언을 듣고 사실관계를 재규정하는 것은 법률문제만 따지는 대법원 심리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김씨 사건이 파기, 서울고법으로 환송돼야 가능해진다. 10년이 넘게 억울하다고 느끼며 재임용 처분 취소를 위해 싸워온 김씨는 사법부뿐 아니라 법조계 전체에 불신을 갖고 있다고 이 변호사는 전했다. 요즘 김씨는 많이 안정을 찾고 있다고 한다. “재임용 탈락 처분을 받자마자 법원에 소송을 낸 김씨는 변호사를 선임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교수 임용은 학교재량’이라는 87년 판례가 그대로 적용돼 김씨는 패소할 수밖에 없었고, 그때부터 변호사도 못 믿게 된 것 같습니다.” 2003년 옛 사립학교법의 재임용 관련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내려지고, 이듬해 서울대 김민수 교수가 재임용 소송에서 승소하자 김씨는 자신의 승소 가능성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이전 재판과 같은 논리를 내세우며 자신의 믿음을 배신한 사법부에 대한 불신에 판사를 공격하게 된 듯하다고 이 변호사는 설명했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한몸되어 숨진 처녀총각

    한몸되어 숨진 처녀총각

    물속에 빠져서도 떨어지기 싫어 네다리는 꼭꼭 엉겨서 용왕(龍王)님 앞으로 간 총각·처녀. 시집 못간 몽달 귀신의 원혼을 풀어주기 위해 무당 꼭둑각시 혼례식이 두 집 사돈들의 통곡속에 벌어졌다. 5색(色) 색지로 꾸민「넋혼(婚)」의 기막힌 이야기를 쫓으면-. 싣고온 채소를 팔고 사며 전부터 다정한 처녀 총각 뙤약볕이 뜨겁게 내려 쬐던 6월16일 낮3시. 강원도 춘성군 서면 신매리 고산 호숫가 잔디밭에서는 소꿉장난같은 꼭둑각시 신랑·신부가 백년가약을 맺는 영혼결혼식이 베풀어져 장관을 이뤘다. 『넋이라도 이제 한을 풀었겠구만! 저봐, 저봐. 신랑 신부가 서로 꼭 붙드네』 『아이고 어쩔거나! 기막혀라 아무렴 죽어서도 서로 못 떨어졌으니 이렇게 두 집 사돈네가 둘러선채 시집 장가보내 주는데 얼마나 좋을라고!』 바람이 한들거려 소꿉같은 신랑·신부 꼭둑각시 옷이 파르르 떨릴 때마다 구경꾼들은 제멋대로 떠들어 댔다. 꼭둑각시 신랑·신부 몸에 넋이 올랐다고-. 모여든 4백여 구경꾼들은 어쩐 일인지 축복은 고사하고 웃는 빛조차 찾아볼 수 없어 그저 침통한 표정들-. 용떡대신 백미가, 청실 홍실 대신 종이「테이프」를 차려 놓은 혼례식은 집례를 맡은 고물무당의「신부배례」라는 선언에, 빨간 갑사 치마 저고리로 예쁘게 차려 입은 신부 꼭둑각시가 어색하게 큰 절을 했고, 흰 색 옥양목 바지 저고리에 회색 조끼 차림의 신랑 꼭둑각시도 역시 어색하게 대례를 했다. 그러자 몰려든 구경꾼들 속에서는 오열섞인 통곡이 터져 나왔다. 지난 14일 하오 4시쯤 물놀이를 나간채 돌아오지 않은 총각과 처녀. 두사람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비관했음인지 고요한 호수에 부둥켜 안은채 수중고혼이 된 신랑 신정구(申正求·22·춘천시 사농동2구6)군과 신부 육영자(陸英子·20·춘천시 소양로1가46)양-. 신랑 신군 가정과 신부 육양 집은 옛날부터 친하게 지내던 사이. 안사돈과 바깥사돈이 모두 절친한 사이였다. 신군집은 오이 배추등 채소를 가꿔 서부시장에서 채소전을 벌이고 있던 육양네 가게에 넘겨주는 사이였다. 이같은 내력으로 신군과 육양은 어려서부터 잘 아는 처녀 총각이었다. 그러던중 육양 아버지가 지난달 중순 신병으로 사망하고 오빠인 득호(得鎬)씨가 사업으로 생활을 이끌어가고 채소전은 그만뒀다. 신군이 시골에서 오이랑 배추등을 한「리어카」씩 싣고 오면 육양이 쫓아나가 거들어주고 하는동안 이들의 정은 깊을대로 깊어져 누가 봐도 정답고 알뜰하게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호사다마라 할까? 지병(持病)으로 고민했을 지도 놀러 간다고 집나가더니 이들은 서로가 알아서는 안될「프라이버시」를 간직하고 있었다. 신군은 착실한 일꾼이었으나 어렸을 때부터 술고래. 육양의 경우는 3남2녀중 막내딸. 남녀공학인 모중학교를 졸업했지만 지병인 간질병이 때때로 발작, 입에서 거품을 뿜어대고 성격이「와일드」한데다가 비교적 친구가 많아 한번 나가면 며칠씩 외박을 하기 일쑤였다. 그러던 것이 신군과 사귀면서부터는 사람이 몰라볼만큼 정숙해졌다. 몸에서는 처녀티가 나기시작했고 또 성격도 온순해져 오히려 지나치게「멜런컬리」해 가끔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할 정도. 이들 사랑의 밀도는 젊음만큼이나 활활 타올라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갈망하게끔 됐다. 그러나 육양의 지병인 간질병과 신군의 술주정뱅이 버릇은 근본적인 치유가 어려웠다.둘이 죽던 날도 육양은 아침 일찍 어머니에게 놀러간다고 돈 1천원만 달라고 조르다가 그대로 뛰어나갔고, 그날밤 10시쯤 끔찍한 소식을 가져다 준 것이다. 워낙 친하던 두 집안에서 생전의 원을 풀어 주자고 아버지가 죽은지 불과 한달만에 당하는 참변에 온식구는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이들의 시체를 죽은지 20시간만인 다음날 하오 1시15분쯤 찾았을 때는 두 몸은 완전히 한몸이 되어있었다.「체리·보이」와「체리·걸」은 발까지 뒤엉킨 채 어찌나 단단히 끌어안았는지 잘 떼어낼 수도 없을정도로 엉킨채 건져 올려지자 양가 부모들의 통곡소리는 고요하던 호숫가를 출렁이며 멀리멀리 메아리져 갔다. 이들이 죽은뒤 신군집에서 먼저 육양집으로 통혼을 했다. 육양집에서도 승낙했다. 그렇게 해서 택일을 하고 신랑 집에서는 채단으로 신부가 입을 갑사 치마 저고리 한벌값을 보냈고 신부 집에서는 흰 옥양목 바지 저고리 조끼까지 한벌을 보냈다. 이날 성스러우면서도 비탄에 잠긴 결혼식을 집례한 고물무당이 신랑으로 현신하여 지난 3월28일밤 소양로 호숫가를 거닐면서 속삭인 밀어(蜜語)를 들어보면-. 신군=(취기 어린 목소리로)영자 우리 빨리 결혼해서 장사라도하며 재미있게 살아보자. 육양=(맘껏 애교를 떨며)당신이 술을 너무 마시니 술끊을 때까지 결혼을 않겠어요. 신군=내말 안들으면 너를 죽여 버리고 나도 죽을테야. 『세상에 알려진것 처럼 우리 영자가 그렇게 간질병 환자도 아니고 함께 물에 뛰어들만큼 오늘의 사랑이 절박했던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들이 정사를 하려면 유서 한장이라도 남겼을 것이고, 또 왜 죽을 각오였다면 팔뚝시계를 물가에 풀어 놨겠읍니까? 정사나 간질병이 발작해 죽은 것이 아니고…』 신군이 술에 취해 물속에 들어갔기때문에 심장마비를 일으켰을 것이라고 말하는 육양의 어머니 박씨. 젊은 애들이 불쌍하고 또 총각이 죽으면 몽달귀신이 돼 이 자리에서 자꾸 사고가 나게된다니 처녀 총각 귀신이나 면해 주자는 것이며, 젊은 애들끼리 함께 용왕님께 불려 갔으니 어른들의 도리로 생전 그 애들의 한이 결혼이었다면 한이나 풀어주기 위해 많은 혼례비용을 들여 영혼결혼식을 올렸다는 것. 또한 신랑 어머니가 가끔 사돈을 맺자고 농담을 하더니 그야말로 농가성진(弄假成眞)이 돼버렸다고 안타까와했다. 불청객들고 혼례가 끝나자 저세상에 가서나 다정한 내외가 되기를 기원하기도. [선데이서울 70년 6월 28일호 제3권 26호 통권 제 91호]
  • [17일 TV 하이라이트]

    ●라이프n조이(YTN 오전 11시35분) 강원도 동해안 최남단의 항구도시, 삼척. 관동 제일경이라 불릴 정도로 예로부터 경치를 알아준 곳, 죽서루를 찾아 오십천의 맑은 물이 감싸 휘도는 경치와 절벽 풍경을 느껴본다.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남긴 유서 깊은 현판 글씨도 감상한다. 새천년 해안도로를 달리며 환상적인 드라이브를 즐긴다.   ●新이민시대(EBS 오후 8시40분) 최근 5년 사이 국제결혼은 4배 가까이 증가, 전체 결혼 중 13.6%를 차지하고 있다. 국제결혼의 증가에 따라 혼혈아의 비율도 증가해 올해 3만 5000명으로 추산된다.2020년에는 170만명의 혼혈아가 대한민국에 존재할 것이라는 가상집계가 나온 지금, 우리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닥터 레옹의 매직쇼 기적2(SBS 오후 6시30분) 손으로 수조를 뚫는가 하면, 명함을 뚫는 동전 마술 등으로 지난 추석 국민을 경악케 했던 레옹이 업그레이드된 마술을 선보인다. 게다가 벽에 붙어있는 그림에서 진짜 와인이 나오고, 거울 속에서 실제 귤이 나오는 마술 등 매직을 넘어, 시공간을 초월하는 기적의 현장을 체험하게 된다.   ●빅뱅! 스포츠 스타(MBC 오전 9시55분) 한 자리에 모이기 힘든 스포츠 스타들이 설 연휴를 맞아 입담 대결을 벌인다. 코트의 황제 김세진, 작은 거인 심권호,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 당구요정 차유람, 볼링계의 미소천사 남보라, 코트의 미녀 정은순, 돌아온 여검객 남현희, 사이클 가문의 영광 장선재, 살아있는 태권V 이용열이 총출동한다.   ●행복한 여자(KBS2 오후 7시55분) 지연은 준호에게 이혼서류를 내민다. 준호는 지연을 설득하려 애쓰지만, 지연은 단호하다. 절박해진 준호는 지연을 끌고 옥상으로 간다. 최회장은 준호를 불러 지연을 달랠 방법을 생각해냈다고 말한다. 종민 부부는 태섭이 세종을 데리고 미라와 함께 외식하는 것을 목격하고 둘의 관계를 궁금해 한다.   ●순옥이(KBS1 오전 8시5분) 5년의 세월이 흐른 후, 인호와 결혼한 미조는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막심은 기섭이 준 돈으로 다방을 차려, 행자와 생계를 꾸려간다. 순옥이 결혼한 지 5년이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자 복례의 타박이 이어지고 기섭도 갈수록 밖으로만 돈다. 그러던 어느 날 복례는 순옥 몰래 낯선 여자의 전화를 받는데….
  • [문화마당] 동네북 신세 된 ‘민족’/한명희 한국민족음악가연합 이사장

    엊그제만 해도 진보니 보수니 하는 낱말들이 풍미하더니, 요즘은 난데없이 ‘민족’이라는 단어가 문화계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나를 낳아준 탯줄도 민족이고, 세계 속에 나라의 이름을 달게 해준 것도 민족이라는 이름의 응집력이요 동질감이었다며 칭송하는 눈치들이 아니다. 국제화시대에 무슨 시대착오적인 구태며 아집이냐는 뉘앙스의 언설들이다. 졸지에 민족이라는 이름이 폄하되고 용도 폐기되는 느낌이다. 필자처럼 고루하게(?) ‘민족’이라는 단어를 법인명으로 달고있는 단체장의 입장에서는 덩달아 못난 짓이라도 한 양 주눅이 들고 눈치꾸러기가 돼가는 기분이다. 왜 그렇게 시류에 민감히 부화(附和)하는지 모르겠다. 왜 그리도 미시적이고 호흡이 짧은지 모르겠다. 지난 세기 60년대의 일이다. 필자가 어느 언론사에 햇병아리로 입사했을 때, 신입사원들에게 일제히 규격화된 철제 책상과 집기들이 분배되었다. 바로 목재용구들이 철제용구들로 환치되던 시절이었다. 경향(京鄕) 어느 곳을 가더라도 전래의 목재가구나 민화 등은 헌신짝처럼 버려졌었다. 엿 몇가락에 진귀한 서책이 팔려가고, 플라스틱 용기 몇개로 값비싼 병풍이며 농장들을 예사로 바꿔갈 수 있었다. 서구화와 동의어였던 현대화의 세찬 물결 속에서, 손때 묻은 옛것들은 모두 창피스러운 천덕꾸러기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과 반세기쯤의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는 그때 그 시절의 경망함과 용렬맞음을 얼마나 후회하고 있는 중인가. 또한 시류에 뇌동하던 미망(迷妄) 때문에 기실 얼마나 많은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망실되고 말았는가? 금세기 화두인 세계화의 조류 속에서, 옛것에 관한 지난날의 우몽(愚蒙)처럼, 민족이라는 글자마저 쪽배에 실어 망망대해로 수장시키는 게 아닌가 적이 씁쓸한 여운을 지울 수가 없다. 필자도 세계화의 추세를 애써 강조하는 처지이지만, 민족이라는 낱말이 왜 못마땅한지 알 길이 없다. 세계화와 민족은 상충되는 개념으로 인식하는 것 같은데, 필자의 견해는 정반대이다. 세계화와 민족은 오히려 상호 필요조건이자 충분조건이다. 무지개가 아름다운 건 일곱가지 색깔들이 각자 제 고유의 개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화음과 합창이 단음과 유니손보다 아름다운 것은 복수의 음과 복수의 선율이 각자 자기 고유의 음색을 잃지 않고 조화를 이뤄가기 때문이다. 세계화와 민족의 방정식도 이와 같다고 하겠으며, 또한 이같은 얼개로 조율돼야 마땅하다고 본다. 이 땅에서 민족이란 곧 나라나 국가와 동의어이다. 수십·수백여 민족이 섞여 살며 국가를 이룬 나라들과는 사정이 다르다. 민족간의 갈등을 겪는 나라들처럼, 민족이라는 낱말을 기피할 필요도,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굳이 민족이라는 접두어를 떼자는 주장은, 아마도 세계화라는 대세를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민족이라는 어휘가 시대감각에 뒤진 듯한 느낌이었거나, 혹은 세계화의 복잡한 실체나 본질을 표피적으로 속단한 데서 오는 개인적 주견들이 아닐 수 없다. 세계화·국제화의 시대일수록 민족(우리는 국가의 정체성과 이명동의)은 강조되어 마땅하다. 도, 미, 솔의 코드가 아름답고 빨강, 파랑, 노랑의 중간색들이 아름다운 것은 그들 각자의 고유한 개성과 색깔을 견지하며 ‘전체는 부분의 총화 그 이상’의 경지를 창출해내기 때문이다. 세계화와 민족의 함수관계도 이와 같다. 세계화의 선두에 있는 중국은 지금도 컴퓨터를 전뇌(電腦)로, 빌딩을 대하(大廈)로 고집하고, 베이징에는 여보란듯이 민족음악학원이라는 유서 깊은 음악대학이 상존하고 있지 않은가? 뜸들지 않은 현란한 논리에 앞서 창해수처럼 깊은 예지와 곤륜산처럼 육중한 지성의 깊이가 아쉬운 계절이다. 한명희 한국민족음악가연합 이사장
  • 소속사 死因 이의제기… 부검키로

    인기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에서 당찬 신세대 여자 주인공으로 나와 인기를 끌었던 정다빈(27·본명 정혜선)씨가 지난 10일 숨진 채 발견됐다. 정씨가 유서를 남기지는 않았지만 경찰은 자살로 추정하고 있다. 연예인 자살은 올들어 유니(26)에 이어 두번째,1990년 가수 장덕에 이어 7번째다.●발인 연기,12∼13일쯤 부검키로 지난 10일 오전 7시50분쯤 서울 강남구 삼성동 L빌라 2층 이모(22·연기 지망생)씨의 원룸 화장실에서 탤런트 정씨가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남자 친구인 이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정씨는 9일 자정쯤 강남구 청담동의 한 주점에서 친구 2명과 함께 술을 마시다가 이씨에게 전화를 걸어 “술에 취해 못 일어나겠다. 데리러 와 달라.”고 부탁했다. 정씨는 자신을 데리러 온 이씨 등과 함께 소주 6병과 맥주 6병을 나눠 마신 뒤 술에 취한 상태에서 10일 오전 3시10분쯤 이씨 집에 도착했다. 정씨는 오전 7시50분쯤 화장실에서 문을 잠근 채 숨진 상태로 이씨에 의해 발견됐다. 경찰은 시신 상태로 미뤄 정씨가 이씨의 집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숨진 것으로 보이며 외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족들의 요청에 따라 정씨 시신의 부검을 위한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해 정확한 사인을 분석하기로 했다. 경찰은 영장이 발부되면 12일 또는 13일 부검을 실시할 방침이어서 12일로 예정된 발인은 연기될 전망이다.●유서 남기지 않아 ‘사인’ 논란 정씨는 9일 오전 5시4분쯤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올린 ‘마침’이란 글에서 “복잡해서 죽을 것 같았다. 이유없이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났다.”며 복잡한 심경을 밝혔다. 정씨와 6개월가량 사귄 이씨는 “지난해 10월에도 자살을 시도했던 적이 있으며, 최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왔다.”고 말했다. 경찰은 “정씨가 최근 1년 6개월 동안 드라마에 출연하지 못했고 소속사를 자주 옮기면서 계약 관련 소송이 많아 고민해 왔다. 부모가 이혼한 뒤 어머니와 남동생을 홀로 부양하면서 부담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왼쪽 손목에 자살을 시도했을 때 생겼던 주저흔도 확인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살 동기가 명확하지 않아 일부에서는 사인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다. 소속사인 세도나미디어 관계자는 “오는 4월부터 드라마 2편과 영화 1편을 찍을 예정이었고 전 소속사에 배상해야 하는 9000만원도 우리가 책임지기로 한 만큼 스스로 목숨을 끊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정씨의 한 지인도 “정씨가 10일 새벽 술을 마시다 아주 밝은 목소리로 전화해 ‘다음주 월요일 피부과에 같이 가자.’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연예인의 잇단 자살이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비율로 따지면 유명 연예인의 자살률이 일반인보다 높지 않다.”면서 “자살 이유는 여러 가지 복합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한 가지로 몰아가면 자살이 문제 해결 방법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는 만큼 교육을 통해 자살이 합리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일요영화]

    [일요영화]

    ●크림슨 리버2-요한계시록의 천사들(KBS1 밤 12시20분) 성서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그린 영화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다빈치코드’가 세상에 알려지기 전 뤽 베송은 원작자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와 함께 ‘크림슨 리버2’를 이미 기획하고 있었고 마침내 고대 성서 속의 비밀을 둘러싼 미스터리 액션 ‘크림슨 리버2-요한계시록의 천사들’을 탄생시켰다. 성서의 기호학적인 비밀, 현세에 환생한 예수와 그의 12제자, 그 12제자를 살해해나가는 7명의 수도승,2000년 동안 감춰져 온 요한계시록의 원본을 둘러싼 수수께끼 같은 사건들은 ‘다빈치코드’의 성배와 견줄 만한 엄청난 비밀을 품고 있다. 서로 다른 목적을 향해 한치의 물러섬이 없는 선악의 대결은 어느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흥분을 선사한다. 전작이 눈덮인 알프스를 배경으로 스릴과 긴장감을 최고조로 치닫게 했다면 속편 ‘크림슨 리버2’는 58개의 요새와 410개의 토치카(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방어진지),152개의 작은 탑,100㎞길이의 지하복도로 이루어진 프랑스의 역사 유적지 ‘마지노 요새’ 등지에서 촬영해 미스터리 요소를 더 강화했다.‘자줏빛 강, 핏빛 빙하’라는 타이틀이 암시하듯 작은 물줄기들이 만나 거대한 강을 이루는 구조로, 각각 다른 사건을 하나로 묶어 극적 반전을 느끼도록 했다. 유서 깊은 수도원, 벽에 걸린 그리스도상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괴기한 사건이 일어난다. 사건을 맡아 파리에서 파견된 니먼 형사(장 르노)는 벽 뒤에 묻혀 있는 시체와 의문의 암호를 발견한다. 마약반 신참형사 레다 형사(브누아 마지멜)는 상처입은 한 남자를 병원으로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하던 중 검은 옷을 입은 수도승의 공격을 받는다.2005년작,98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사하라(XTM 오후9시) 인류 최후의 보고, 서 아프리카 라고스에서 전설 속 숨겨진 ‘시크릿 코인’을 찾아가는 액션 어드벤처 영화. 전설 속의 숨겨진 보물을 찾는 것에 모든 것을 건 모험가 더크 핏(매튜 매커너히). 더크는 서 아프리카 라고스에서 진행되는 유물발굴작업 중 남북전쟁 때 사라진 전함 속에 숨겨진 ‘시크릿 코인’을 발견한다. 금화로 만든 ‘시크릿 코인’을 가득 싣고 사라진 ‘죽음의 함선’을 찾기 위해 더크는 죽마고우 알(스티브 잔)과 함께 말리로 떠난다.
  • 선교사 홀 일대기 연극 10일 마포문화센터 공연

    우리나라에 기독교와 의학을 전한 캐나다 선교사 가족의 이야기가 무대에 오른다. 마포구(구청장 신영섭)는 ‘양화진 성지화 사업’의 일환으로 10∼11일 이틀 동안 제임스·로제타 홀 부부와 아들 셔우드 홀의 일생을 다룬 연극 ‘양화진 사랑’을 마포문화센터에서 공연한다고 9일 밝혔다.(2006년 11월2일자 9면 보도) ‘양화진 사랑’은 이역만리 조선으로 건너온 제임스 홀·로제타 홀 부부와 아들 셔우드 홀의 이야기다.1890년대 조선을 찾은 푸른 눈의 의사들이 겪어야 했던 고단한 삶과 그 안에서 얻는 보람 등을 생생하게 녹였다. 셔우드 홀이 조선에서 태어나 크리스마스 실을 만들고, 최초의 결핵요양원을 세운 이야기도 들려준다. 마포구는 2005년부터 희곡 시놉시스와 공연업체를 연달아 공모해 2006년 오태석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이끄는 극단 ‘목화’를 공연업체로 선정, 이 연극을 준비해 왔다.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묘원은 홀 가족뿐만 아니라,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를 창설한 베델 선생 등 17개국 575명 선교사의 묘가 있다. 마포구는 유서 깊은 이곳을 사적으로 조성하기 위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문의 3274-8500.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책꽂이]

    ●프리메이슨(폴 제퍼스 지음, 이상원 옮김, 황소자리 펴냄) 프리메이슨은 국내에선 주로 반그리스도와 사탄주의를 지향하는 단체로 알려져 있다. 역사상 가장 유서 깊은 비밀결사체인 프리메이슨을 모르고서는 서양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프리메이슨은 서양에선 신화적 상상력의 보고이자 역사이해의 키워드로 여겨져 왔다. 그 조직과 비밀의식에 뿌리를 둔 중세의 신화적 판타지는 게임, 영화, 소설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활용되고 있다. 프리메이슨의 기원과 역사, 여러 의혹 등을 설명한 책.1만 4900원.●알자스(신이현 지음,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프랑스와 독일 국경의 조용한 산골 마을 알자스에 관한 이야기. 알자스 지방은 프랑스에서 바다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지방이다. 하지만 해산물과 가장 잘 어울리는 포도주는 아이로니컬 하게도 알자스산이다. 알자스 백포도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흰 꽃향기는 신기할 정도로 바다 생선이나 조개와 잘 어울린다. 붓을 팽개치고 피렌체의 한 식당에서 평생 주방지기로 보내고자 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가 꿈꾸던 이상적인 부엌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것 같은 알자스 마을의 부엌 풍경이 인상적이다.1만 2000원.●저우언라이 평전(바르바라 바르누앙ㆍ위창건 지음, 유상철 옮김, 베리타스북스 펴냄) 중국 역대 지도자 중 가장 인자한 인물로 꼽히는 저우언라이 전 총리의 숨겨진 모습을 조명. 저우언라이의 지하활동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배신자 가족을 무자비하게 처벌한 일화를 소개한다. 책은 저우언라이가 공산주의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정치적 생애를 시작했지만 결국 폭군에 종사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했다고 비판한다.1만 8000원.●개도 고양이도 춤추는 정열의 나라 쿠바(최미선 지음, 안그라픽스 펴냄) 거리에 음악이 흐르면 청소하던 할아버지도, 순찰을 돌던 경찰도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드는 쿠바.‘카리브해의 진주’ 쿠바는 헤밍웨이에겐 제2의 고향이다.1928년부터 1960년 미국으로 추방되기 전까지 헤밍웨이는 이곳에서 자신의 문학을 숙성시켰다. 아바나 시내에서 약 12㎞ 떨어진 ‘헤밍웨이 박물관’은 그가 살았던 집이자 ‘노인과 바다’를 집필한 곳. 여행작가인 저자는 쿠바를 한마디로 ‘로망’을 안겨 주는 곳이라고 말한다.1만 5000원.●신념과 비전의 정치가 글래드스턴(김기춘 지음, 한울아카데미 펴냄) 19세기 후반 영국 자유당의 리더로 총리를 네차례나 역임한 윌리엄 글래드스턴의 사상과 현실정치를 고찰.23세에 국회의원이 돼 85세에 정계를 은퇴한 글래드스턴은 영국의 번영기인 빅토리아시대 전 기간에 걸쳐 줄곧 영국 정치무대에서 주역으로 활동했다. 글래드스턴의 아일랜드 자치정책에 대해서도 소상히 다룬다.2만 7000원.●우리말 부사사전(백문식 지음, 박이정 펴냄) ‘엄청시리’는 ‘엄청’의 경남지역 방언이고 ‘과루룩’은 많은 양의 액체가 세차게 쏟아질 때 나는 소리인 ‘꽈르르’의 제주 방언.2만여개의 부사를 가나다 순으로 정리하고 뜻을 풀이했다. 부사는 문장의 필수성분이 아닌 부속성분이지만 말과 글을 한층 풍요롭고 맛깔스럽게 해준다.4만원.
  • 폭력교사 교단서 퇴출

    학생은 물론 학부모까지 폭행해 물의를 빚은 경기도 한 중학교 교사가 결국 교단에서 퇴출됐다. 경기도 교육청 징계위원회는 22일 회의를 열고 학생과 학부모를 폭행한 여주 모 중학교 A교사를 해임하기로 결정했다. 도 교육청 관계자는 “2년 전에도 학생을 폭행해 정직 3개월을 당한 상태에서 다시 학생과 학부모를 폭행한 점을 볼 때 더 이상 교육자로 남을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다.”면서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해임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징계위원회가 제시한 징계사유서에 따르면 A교사는 지난달 15일 오전 과학수업 중 B(15)군이 잠을 잔다며 물총으로 깨운 뒤, 이에 항의하는 B군을 10여차례 때렸다.B군이 교무실로 달아났지만 A교사는 계속 쫓아와 다른 교사들 앞에서 다시 B군을 마구 때렸다.A교사는 찾아와 항의하는 B군의 어머니에게도 욕설을 하고 발길질을 했다.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주말화제] 성적 정정기간 대학가 풍속도

    [주말화제] 성적 정정기간 대학가 풍속도

    # 질문:“성적을 정정해야 하는데 교수님이 사라지셨어요. 흑흑∼” # 답글:해외 학술회의를 떠나셨답니다. 포기하세요.ㅋㅋ… (서울 모 대학 홈페이지 게시판) ‘학점 이의신청 기간’에 돌입한 대학가가 성적 정정 문제로 들썩이고 있다. 대학가에서는 성적 정정을 놓고 학생들과 교수들간에 ‘기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학생들은 ‘읍소형’,‘스토커형’,‘논리적 항의형’ 등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며 성적 정정에 나서고 있다. 매년 학생들의 성적 정정 요구에 시달려온 베테랑급 교수들은 아예 성적 정정기간 동안 해외 학술회의에 참석하는 등 나름대로의 대응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래도 ‘읍소형’이 최고 “취업이 임박했는데…”“집안이 어려워서 장학금을 꼭 타야 하는데…” 등 고전적인 수법이지만 ‘읍소형’의 효과가 가장 크다고 한다. 한양대 백모(42) 교수는 “성적 때문에 찾아와 눈물을 흘리는 학생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면서 “마치 그 학생의 인생을 망칠 것 같은 두려움도 든다.”고 말했다. 교수들이 기피하는 ‘스토커형’은 성적을 정정해 줄 때까지 끊임없이 연구실을 찾아오거나 전화를 건다. 심지어 집으로 찾아와 1시간이 넘도록 구구절절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설명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논리적 항의형’도 교수를 당황스럽게 한다. 이화여대 3학년생인 이모(23)씨는 결석도 잦고 시험 성적도 좋지 않아 보이는 4학년 선배가 자신보다 좋은 점수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해당 교수는 “취업을 앞두고 있고, 재수강이어서 점수를 더 잘 줬다.”라고 해명했지만 이씨는 공개된 중간고사 성적과 매주 제출했던 페이퍼 점수를 꼼꼼하게 챙겨 이를 근거로 성적 정정을 요구했다. 일부는 ‘B학점’을 ‘F학점’으로 내려달라는 요구도 한다.‘A학점’으로 못 올릴 바에는 재수강을 한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과거와 달리 취업을 앞둔 4학년생뿐만 아니라 1학년 새내기들의 정정요구도 무시할 수 없다. 학부제 때문에 더 좋은 전공을 선택하기 위해서다. 성적 정정을 신청한 고려대 새내기 박모(20·여)씨는 “국제어문학부에서 영문과를 지원하고 싶은데 성적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성적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A학점 맞은 교양과목을 A+로 올리기 위해 성적 정정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학생 등쌀 피해 해외로 교수들은 성적 정정 기간이 되면 학생들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대여섯배 정도 증가하는 것 같다고 하소연한다. 일부 교수들은 학생들의 성적 정정 등쌀에 못이겨 해외 학술세미나 참석 등을 통해 ‘잠적’(?)하는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각 대학 홈페이지마다 교수들의 행방을 묻는 글들이 자주 눈에 띄기도 한다. 학기 초부터 미리 “성적 정정은 절대 없다.”고 엄포를 놓는 교수도 많다. 한양대 이병관 교수는 “학기 시작할 때 학생들에게 성적 정정은 없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이메일로 정정을 요구하는 학생이 많다.”고 말했다. 사실상 교수 입장에서도 성적을 정정해 주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성적을 정정하려면 해당 학생의 시험지와 과제물 복사본, 시험 모범답안지, 교수 소견서(일종의 사유서나 시말서) 등이 첨부돼야 한다. 이화여대 학과조교 장모(26)씨는 “시간 강사가 재임용될 때 평가 기준에 성적 정정을 몇 번 해줬느냐가 포함되고, 전임강사나 교수도 한번 성적 정정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서류가 들어가야 하고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면서 “절차가 복잡하고 교수 자신에게도 부정적인 평가가 많이 돌아오기 때문에 처음부터 채점을 꼼꼼히 하고 수정은 거의 안 한다.”고 말했다. 광운대 양한순 교수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지독한 경쟁력을 요구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모습”이라면서 “극심한 취업난 속에 점수에 의한 석차 문화가 갈수록 대학사회를 점령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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