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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대男, 10대 동네 후배 상습 폭행·금품 갈취…“빌렸다”

    20대男, 10대 동네 후배 상습 폭행·금품 갈취…“빌렸다”

    동네 후배를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은 20대 남성이 경찰에 구속됐다.부산 서부경찰서는 10대인 후배들을 상습 폭행하고 금품을 갈취한 혐의(특수공갈 등)로 A(20)씨를 구속했다고 30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4월 30일 오후 3시쯤 부산 서구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동네 후배인 B(16)군 등 3명을 마구 때리고 위협해 옷과 금반지 등 106만원 상당의 금품을 뜯어낸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달 29일 오후 4시쯤에는 자신의 집에서 ‘돈을 가져오라’며 C(16)군을 흉기로 위협, 17만원을 빼앗고 52시간 동안 감금하기도 했다. 경찰은 A씨가 이런 수법으로 알고 지내는 B·C군 등 10대 동네 후배 4명을 상대로 11차례에 걸쳐 폭행과 감금, 공갈 범행을 저질러 163만원 상당의 금품을 빼앗은 것으로 보고 있다. C군은 A씨의 계속된 괴롭힘에 유서까지 썼던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후배들을 때린 것은 맞지만 돈은 빌린 것이라며 관련 혐의 일부를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재용 뇌물 유죄 판결문’ 朴재판 증거로 쓴다

    특검·檢 요청… 朴측도 찬성 문형표 “윗선의 지시 없었다” 삼성 합병 靑 개입 의혹 부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선고 이후 처음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에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삼성 합병과 관련한 ‘윗선의 지시’는 없었다며 청와대 개입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김세윤) 심리로 29일 열린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60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문 전 장관은 “청와대의 어떤 관계자로부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찬성 지시를 받은 사실이 있느냐”는 변호인의 질문에 “없었다”고 답했다. 또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합병 관련 지시를 개별적으로 받은 사실이 있느냐는 물음에도 “없었다”고 밝혔다. 문 전 장관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던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찬성표를 던지도록 압력을 행사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지금은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2015년 6월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돕기 위해 당시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과 최원영 고용복지수석을 통해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하라고 지시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문 전 장관은 “국무회의에서도 대통령이 삼성물산 합병을 언급한 적이 있느냐”, “박 전 대통령에게 합병 찬성 건을 보고한 사실이 있느냐”는 등의 질문에 일관되게 부인했고, “안 전 수석과 의결권 행사와 관련해 통화한 사실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날 법정에서 공개된 문 전 장관의 항소이유서에는 ‘문 전 장관을 제외한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안 전 수석과 김진수 전 청와대 보건복지비서관이 한 축으로, 최 전 수석과 이태한 전 복지부 인구정책실장이 또 다른 축이 돼 합병 찬성 행위가 있었다’는 주장이 담겼지만 문 전 장관은 “변호인이 상의 없이 작성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재판부는 검찰과 특검팀의 요청과 변호인 측 동의를 받아 이 부회장의 1심 판결문을 증거로 채택했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 측은 판결문을 증거로 활용하는 데는 이견을 보이지 않았지만, 앞으로 재판 과정에서 판결문 내용을 적극적으로 반박하며 혐의를 부인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 등 삼성 측 피고인들에 대한 1심 판결에 대해선 전날 변호인에 이어 특검도 이날 사실오인, 법리오해, 양형부당을 사유로 항소서를 제출했다. 특검은 “이 사건은 국정농단 범행 중 핵심적인 범죄이고 범행 과정에서 피고인들의 역할과 횡령 피해금이 변제되지 않은 점, 피고인들이 범행을 부인하고 반성하지 않은 점 등을 비춰 형이 지나치게 가볍다”고 강조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이철성 경찰청장 “인권침해 진상조사 대상에 성역 없다…경찰도 포함”

    이철성 경찰청장 “인권침해 진상조사 대상에 성역 없다…경찰도 포함”

    ‘고(故)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등 도를 넘은 경찰의 공권력 행사로 초래된 주요 인권침해 사건의 진상을 밝힐 별도의 조사위원회가 지난 25일 출범했다. 그런데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경찰 추천위원 중 박진우 경찰청 차장이 포함돼 논란이 되고 있다. 박 차장은 2015년 11월 민중 총궐기 대회에서 고 백남기 농민이 경찰 물대포를 맞고 사망했을 당시 경찰청 수사기획관이었다.이에 이철성 경찰청장이 “조사 대상에 성역이 없고, 필요한 경우 진상조사위 위원을 포함한 경찰 지휘부도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28일 밝혔다. 이 청장은 이날 “원활한 조사 협조 등을 위해 경찰개혁위원회 논의에 따라 (진상조사위의) 당연직 위원으로 위촉된 것”이라면서 “위원 개인이 사건과 연관되어 공정성을 해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훈령상 제척·기피·회피 규정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청장은 또 “경찰은 진상조사위의 모든 조사에 성실한 자세로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행정 분야에서도 조그마한 어려움이 없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며 관계자 조사, 관련 시설 방문·이용, 자료제출 요구 등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일부 진상조사위원과 조사관에게 2급 비밀취급 인가를 부여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진상조사위에 자료를 제공하지 않으면 징계를 요구할 수 있게 하는 등 실질적 조사가 이뤄질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고 이 청장은 설명했다. 앞서 경찰청은 경찰의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할 별도의 기구를 구성하자는 지난달 경찰개혁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해 지난 25일 민·경 합동으로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를 발족했다. 진상조사위는 업무의 중립성과 독립성, 공정성을 보장하고자 전체 위원 9명 가운데 3분의2인 6명을 민간위원으로 구성했다. 민간위원은 유남영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진상조사위원장),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김전승 흥사단 사무총장, 노성현 서울지방변호사회 노동인권소위원장, 위은진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부위원장, 정문자 한국여성단체연합 이사다. 나머지 3명은 경찰 추천위원으로 박 차장과 박노섭 한림대 국제학부 교수, 민갑룡 경찰청 기획조정관이 맡았다. 진상조사위는 20명 규모로 민간·경찰 합동조사팀을 꾸려 조사를 진행하고, 조사하기로 결정한 사건의 진상과 인권침해 내용, 원인, 재발방지책을 포함한 조사 결과를 공표할 예정이다. 활동 기간은 1년이며, 최장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진상조사위는 ‘고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등 6건의 사건을 조사 대상으로 우선 선정했다. 2013년 경남 밀양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경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물리력을 행사한 사건과 2011년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을 경찰이 강제진압 한 사건도 포함됐다. 또 2009년 평택 쌍용자동차 파업 강제진압 사건,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이 사망한 ‘용산참사 사건’도 조사 대상이다. 이 청장은 “진상조사위 활동을 통해 과거 경찰력 행사로 인한 인권침해 사건의 객관적 진실을 규명하고 구조적 원인과 문제점을 밝혀서 경찰력 행사 과정과 제도, 관행을 인권 친화적으로 개선하는 전환점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앞서 경찰은 지난 2004년에도 ‘과거사 진상규명 위원회’를 설치·운영해 경찰이 연루된 불법 선거개입·민간인 불법 사찰·용공 조작 의혹 사건들의 진상을 규명한 적이 있다. 당시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1991년)을 비롯해 서울대 깃발 사건(1985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사건(1985년), 청주대 ‘자주대오’ 사건(1991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1979년), 보도연맹원 학살 의혹 사건(6·25전쟁 당시), 1946년 대구 10·1사건(1946년), 나주부대 민간인 피해 의혹 사건(1950년)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민·경 합동 ‘진상조사위’ 출범…경찰 인권침해 사건 조사

    민·경 합동 ‘진상조사위’ 출범…경찰 인권침해 사건 조사

    ‘고(故)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등 도를 넘은 경찰의 공권력 행사로 빚어진 주요 인권침해 사건의 진실을 밝힐 기구가 출범했다.경찰청은 25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청사에서 민·경 합동으로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를 발족하고 첫 회의를 열어 조사 대상과 향후 일정과 관련한 논의를 진행했다. 진상조사위는 지난달 경찰의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할 별도의 기구를 구성하자는 경찰개혁위원회의 권고를 경찰청이 수용해 꾸려졌다. 경비·수사·정보수집 등 경찰이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했거나 인권침해 논란이 불거진 사안, 인권침해 진정이 접수된 사건,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사건 등이 진상조사 대상이다. 진상조사위는 업무의 중립성과 독립성, 공정성을 보장하고자 전체 위원 9명 가운데 3분의2인 6명을 민간위원으로 구성했다. 민간위원은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김전승 흥사단 사무총장, 노성현 서울지방변호사회 노동인권소위원장, 위은진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부위원장, 유남영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정문자 한국여성단체연합 이사다. 나머지 3명은 경찰 추천위원으로 박노섭 한림대 국제학부 교수, 박진우 경찰청 차장, 민갑룡 경찰청 기획조정관이 맡았다. 진상조사위는 20명 규모로 민간·경찰 합동조사팀을 꾸려 조사를 진행하고, 조사하기로 결정한 사건의 진상과 인권침해 내용, 원인, 재발방지책을 포함한 조사 결과를 공표할 예정이다. 활동 기간은 1년이며, 최장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조사 대상으로는 지난 2004년 이후 경찰의 인권침해 논란이 불거진 사건들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15년 11월 민중 총궐기 집회에서 고 백남기 농민이 경찰 물대포에 맞아 사망한 사건이고, 2009년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 파업농성 진압 사건도 조사 대상에 오를 전망이다. 진상조사위 사무실은 서울 용산구 남영동 경찰청 인권센터(옛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설치된다. 경찰청은 진상조사에 필요한 인력과 장비, 시설 등을 지원하고 진상조사위가 요구하는 자료도 가능한 한 제공할 방침이다. 조사 결과는 향후 인권정책 수립에 반영하기로 했다. 앞서 경찰은 지난 2004년에도 ‘과거사 진상규명 위원회’를 설치·운영해 경찰이 연루된 불법 선거개입·민간인 불법 사찰·용공 조작 의혹 사건들의 진상을 규명한 적이 있다. 당시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1991년)을 비롯해 서울대 깃발 사건(1985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사건(1985년), 청주대 ‘자주대오’ 사건(1991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1979년), 보도연맹원 학살 의혹 사건(6·25전쟁 당시), 1946년 대구 10·1사건(1946년), 나주부대 민간인 피해 의혹 사건(1950년)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만기출소 한명숙…추미애 “여성계의 대모, 한국 정치의 중심”

    만기출소 한명숙…추미애 “여성계의 대모, 한국 정치의 중심”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23일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만기 출소를 언급하며 “사법 적폐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기풍을 새롭게 만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추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전 총리가 오늘 새벽 출소를 했다”며 “인고의 세월을 묵묵히 견디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밝혔다. 추 대표는 “진실과 양심을 믿기에 우리는 매우 안타까웠다”며 “여성계의 대모로서 한국 정치의 중심으로서 한결같은 역할을 해주시리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지명된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를 ‘사법 개혁의 적임자’라고 평했다. 추 대표는 “야당은 근거 없이 코드 인사라 비판하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처럼 문재인 정부에서는 사법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일이 없고 그럴 마음도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특정 학교 출신으로 온실에서 길러진 엘리트 법관들이 채워지고 있고, 이런 엘리트 사법 관료의 관성을 타파하는 노력이 앞으로 보여져야 할 것”이라며 “박근혜 정부에서는 사법부마저도 때로 정권에 순응해 왔다”고 비판했다. 특히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을 거론하며 “사법부 스스로 인권 침해의 공범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정권에 순응해온 사법부가 어떤 사건에서 왜 그 같은 일을 저질렀는지 이번 기회에 사법부가 제대로 그 치부를 드러내고 양심 고백을 하는, 그래서 다시는 사법 적폐가 일어나지 않는 기풍을 새롭게 만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기 외출 나간 의경, 아파트서 떨어져 숨진 채 발견…유서엔

    정기 외출 나간 의경, 아파트서 떨어져 숨진 채 발견…유서엔

    정기외출을 나간 의경 대원이 아파트 21층에서 떨어져 숨진 채 발견됐다.23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8시 10분쯤 의정부시 용현동의 한 아파트 21층에서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기동대 소속 A(24) 상경이 아스팔트 바닥으로 추락해 숨졌다. 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A 상경은 짧은 메모 형식의 유서를 남겼다. 유서에는 ‘학창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등의 내용이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주지역 기동중대에서 복무 중인 A 상경은 이날 오전 9시에 정기외출을 나갔다. 그는 오후 8시에 복귀하기로 돼 있었으나 복귀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의경부대 내 구타나 가혹 행위 가능성을 의심할 만한 내용은 유서에 적혀 있지 않았으며, 유족과 동료 대원 등을 상대로 정확한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주노동자들 “기본권 보장하라”

    이주노동자들 “기본권 보장하라”

    민주노총과 이주공동행동, 서울·경기·인천 이주노조 등 노동단체 소속 조합원들이 20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전국 이주노동자 결의대회에서 노동기본권 보장과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추방 중단 및 고용허가제 폐지 등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6일 충북 충주의 한 자동차부품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케서브 스레스터는 320만원이 든 통장과 유서를 남긴 채 목숨을 끊었고, 경기 화성 한 농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다벅 싱도 지난 7일 “사업장 변경을 허용하지 않는다”며 세상을 등졌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한국에 100만명이 넘는 이주노동자가 있지만 인권·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비판했다. 최해국 선임기자 seaworld@seoul.co.kr
  • 괴산 산막이옛길에서 여중생 숨진 채 발견

    충북 괴산 산막이옛길 계곡에서 여중생이 숨진 채 발견 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16일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 24분쯤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 연하구곡에서 중학교 3학년인 A(15)양이 물에 빠져 있는 것을 택배기사(43)가 발견, 119에 신고했다. A양의 옷에는 휴대전화가 있었고,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폐쇄회로(CC)TV 확인 결과 A양은 이날 오전 6시쯤 집을 나와 산막이옛길로 향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이 개학일이지만 평소 등교시간보다 1시간가량 먼저 집을 나와 가방도 챙기지 않은 채 우산만 들고 학교와 정반대 방향인 산막이옛길로 간 것으로 미뤄 경찰은 자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A양은 부모와 연락을 끊고 10여년 전부터 할머니와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격은 내성적이고 학교생활에 큰 문제는 없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A양이 발견된 장소로부터 200m 상류에 있는 연하교 인근에서 물에 빠진 것으로 보고 있다”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괴산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중학생 상습체벌 교사 징역형 선고

    흡연지도 등의 훈육을 빌미로 1년 이상 중학생을 상습 체벌한 교사에게 징역형이 선고됐다. 춘천지법 강릉지원 형사2단독 이현복 부장판사는 16일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중학교 교사 A(52)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판사는 “피해 학생은 징계를 받으러 학교에 다닌 것으로 판단될 만큼 신체적·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피고의 학생 지도는 관련 법, 교육청 지침 등을 벗어나 무리한 부분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가 교사라는 직위를 수행할 수 없는 수준의 형량을 정했다”고 덧붙였다. 중학교 체육 교사 겸 학생부장인 A씨는 2013년 7월부터 2014년 9월까지 1년여간 B군과 C군에게 모두 60여 차례에 걸쳐 나무막대기 등으로 머리와 엉덩이를 때리고 엎드려뻗쳐, 오리걸음, 방과 후 운동장 뛰기 등을 시킨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흡연 여부 확인을 위해 지속해서 소변 검사를 받도록 하는 등 신체적·정서적 학대를 한 혐의도 받고 있다. B군은 2014년 9월 12일 자신의 집에서 ‘학교에 다니기가 힘들다’, ‘선생님이 벌주고 욕해서 힘들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경찰은 현직 교사에게 아동복지법상 가혹 행위를 처음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이 교사의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영장을 기각했다. 춘천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우에하라 타카코 텐, “남편 자살 직후 유흥” 아베 반응은?

    우에하라 타카코 텐, “남편 자살 직후 유흥” 아베 반응은?

    우에하라 타카코와 아베 츠요시 불륜으로 우에하라 타카코의 남편 텐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최근 우에하라 타카코와 아베 츠요시의 불륜 소식이 전해져 화제다. 우에하라 타카코 남편 사망 당시 유서에 자신의 이름이 있다는 걸 안 아베 츠요시는 텐 유족에게 울면서 불륜을 사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베 츠요시와 불륜으로 남편이 자살했음에도 우에하라 타카코는 잠시 자숙했다 다시금 유흥을 즐겼다는 제보도 나왔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번 유서가 밝혀진 뒤 한 30대 여성은 “우에하라 타카코에 대한 동정론이 일었던 당시 50~60대로 보이는 남성들과 즐겁게 웃었고 만취해 있었다”면서 “당시 그의 모습에 ‘완전 여유있잖아’라고 생각했지만 힘이 날 일이 필요했다고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또 우에하라 타카코와 CM에 출연한 한 남성은 사전에 우에하라 타카코 측 직원에게 “가능하면 사이좋게 지내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모두 남성 편력 때문. 한 예능 관계자는 “그녀에게 악의는 없지만 열정에 맡겨 행동하는 것만이 위험하다. 그녀 주위는 ‘절도 있는 행동을 하라’고 거듭 말해왔다”고 밝혔다. 한편 최근 발매된 일본 여성주간지 ‘여성세븐’은 우에하라 타카코의 남편 텐이 자살한 이유 중 하나가 우에하라 타카코와 인기 배우 아베 츠요시가 불륜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도하며 텐의 유서 내용 일부를 공개했다. 공개된 유서에 따르면, 텐은 아이를 갖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렸으며, 우에하라 타카코와 아베 츠요시는 적절치 못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사진 = 아베 츠요시, 우에하라 타카코 SNS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우에하라 타카코 아베 츠요시, “아이 갖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불륜 폭로

    우에하라 타카코 아베 츠요시, “아이 갖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불륜 폭로

    일본 걸그룹 스피드(SPEED) 출신의 우에하라 타카코 남편의 자살 이유가 타카코의 불륜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발매된 일본 여성주간지 ‘여성세븐’은 우에하라 타카코의 남편 텐이 자살한 이유 중 하나가 우에하라 타카코와 인기 배우 아베 츠요시가 불륜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도하며 텐의 유서 내용 일부를 공개했다. 공개된 유서 속 텐은 “타카코 고마워 그리고 안녕”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아이를 만들지 못하는 몸이라 미안해. 정말정말 미안해. 행복한 만큼 미래가 무서워. 아무것도 없으니까. 용서해줘. 내 몫까지 행복해지세요. 아베 츠요시와 함께라면 분명 극복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 다음에는 배신하면 안 돼. 술도 줄여요. 거짓말하면 안 돼요. 분명 날 원망하겠지? 하지만 언젠간 용서해 줘”라고 적었다. 이어 그는 “언젠간 용서해주길. 여러 가지로 부담 되겠지만, 앞날을 생각하면 나로선 이게 최선이야. 멋 대로라고 원망 말고. 언젠가 다 잊힐 거야 톤톤(아베 츠요시의 애칭)과 행복하길. 차 문은 열지 말고 곧장 경찰에 신고해”라고 덧붙였다. 공개된 유서에 따르면, 텐은 아이를 갖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렸으며, 우에하라 타카코와 아베 츠요시는 적절치 못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우에하라 타카코는 남편의 성인 ‘모리와키’를 버리고, 자신의 성을 되찾겠다며 텐의 가족과 연락을 끊었다. 텐의 가족들은 우에하라 타카코의 불륜 사실을 알고도 모리와키 가의 일원이라는 마음으로 우에하라 타카코를 감쌌다. 하지만 우에하라 타카코가 모리와키 가와 인연을 끊어버리고, 새로운 연인인 아베 츠요시와 다정한 한때를 보내는 모습이 최근 언론에 보도되면서 유족들의 인내심이 바닥난 것. 결국 유족 측은 언론에 우에하라 타카코와 불륜 상대인 아베 츠요시의 SNS 메신저 내용, 키스 사진, 텐의 유서 내용을 공개했다. 유족이 공개한 두 사람의 SNS 메신저 대화방에는 “아이를 가지고 싶다(아베 츠요시)”, “우리 두 사람의 아이를 만들자(우에하라 타카코)”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한편 텐의 유서에 적혀있던 아베 츠요시는 중국 출신 배우로 17세에 일본으로 귀화, 영화 ‘꽃보다 남자’로 이름을 알렸다. 사진 = 우에하라 타카코 블로그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아베 츠요시 불륜으로 자살한 우에하라 남편? 열도 발칵

    아베 츠요시 불륜으로 자살한 우에하라 남편? 열도 발칵

    일본 여성주간지 여성세븐은 지난 10일 우에하라의 남편인 힙합그룹 이티킹 출신 텐이 지난 2014년 자살한 이유 중 하나가 우에하라의 불륜 때문이라고 보도했다.매체는 불륜을 암시하는 텐의 유서 내용을 일부 공개했다. 유서에 따르면 텐은 불임인 이유가 자신이라고 자책하면서 우에하라와 아베가 행복하길 기원했다. 유서에서 텐은 “타카코 고마워. 그리고 안녕.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어서 미안해. 행복한만큼 미래가 두려워. 용서해줘. 내 몫까지 행복해야 해. 분명 아베 츠요시와 함께라면 극복할 수 있을 거야. 다음엔 배신하면 안돼. 술도 좀 줄여. 거짓말도 하면 안돼. 분명 날 원망하겠지?”라고 적었다. 유서를 공개한 텐의 친동생은 “죽을 때까지 불륜을 말하지 않을 참이었다. 하지만 형의 3주기가 다 되도록 우리 가족만 여전히 아프다”라고 말했다. 아베는 중국 출신으로 일본에서 활동 중인 배우다. 국내 팬들에겐 일본 TBS 드라마 ‘꽃보다 남자’ 시즌1(2005), 시즌2(2007)로 유명하다. 아베가 맡은 역은 F4 일원인 아키라로, 유부녀와 만남을 즐기는 바람둥이 캐릭터였다. 아베는 텐이 자살하기 직전인 2014년 7~9월 우에하라와 연극 무대에 함께 올랐다. 그 역시 유부남으로 2세 연상 중국 배우 사가와 2009년 결혼했다. 텐의 유족은 텐의 요청에 따라 당시엔 이 같은 사실과 유서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5월 우에하라와 연출가인 코우 카즈야의 교제가 보도되고, 이후 우에하라가 남편의 성인 모리와키를 버리고 자신의 성을 되찾겠다고 뜻을 밝히자 텐의 유족은 유서는 물론 과거 불륜 상대였던 아베와의 SNS 메신저 내용, 키스 사진 등을 공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전문›문재인 대통령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

    ‹전문›문재인 대통령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해외에 계신 동포 여러분, 촛불혁명으로 국민주권의 시대가 열리고첫 번째 맞는 광복절입니다.오늘, 그 의미가 유달리 깊게 다가옵니다. 국민주권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처음 사용한 말이 아닙니다.백 년 전인 1917년 7월, 독립운동가 14인이 상해에서 발표한‘대동단결 선언’은 국민주권을 독립운동의 이념으로 천명했습니다.경술국치는 국권을 상실한 날이 아니라오히려 국민주권이 발생한 날이라고 선언하며,국민주권에 입각한 임시정부 수립을 제창했습니다.마침내 1919년 3월, 이념과 계급과 지역을 초월한전 민족적 항일독립운동을 거쳐,이 선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국민주권은 임시정부 수립을 통한 대한민국 건국의 이념이 되었고,오늘 우리는 그 정신을 계승하고 있습니다.그렇게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세우려는 선대들의 염원은백 년의 시간을 이어왔고,드디어 촛불을 든 국민들의 실천이 되었습니다. 광복은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이름 석 자까지 모든 것을 빼앗기고도자유와 독립의 열망을 지켜낸 삼천만이 되찾은 것입니다.민족의 자주독립에 생을 바친 선열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독립운동을 위해 떠나는 자식의 옷을 기운 어머니도,일제의 눈을 피해 야학에서 모국어를 가르친 선생님도,우리의 전통을 지켜내고 쌈짓돈을 보탠 분들도,모두가 광복을 만든 주인공입니다. 광복은 항일의병에서 광복군까지애국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이 흘린 피의 대가였습니다.직업도, 성별도, 나이의 구분도 없었습니다.의열단원이며 몽골의 전염병을 근절시킨 의사 이태준 선생,간도참변 취재 중 실종된 동아일보 기자 장덕준 선생,무장독립단체 서로군정서에서 활약한 독립군의 어머니 남자현 여사, 과학으로 민족의 힘을 키우고자 했던 과학자 김용관 선생,독립군 결사대 단원이었던 영화감독 나운규 선생,우리에게는 너무도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었습니다. 독립운동의 무대도 한반도만이 아니었습니다.1919년 3월 1일 연해주와 만주, 미주와 아시아 곳곳에서도한 목소리로 대한독립의 함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항일독립운동의 이 모든 빛나는 장면들이지난 겨울 전국 방방곡곡에서,그리고 우리 동포들이 있는 세계 곳곳에서, 촛불로 살아났습니다.우리 국민이 높이든 촛불은 독립운동 정신의 계승입니다. 위대한 독립운동의 정신은민주화와 경제 발전으로 되살아나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그 과정에서 희생하고 땀 흘린 모든 분들,그 한 분 한 분 모두가 오늘 이 나라를 세운 공헌자입니다. 오늘 저는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그리고 저마다의 항일로 암흑의 시대를 이겨낸 모든 분들께,또 촛불로 새 시대를 열어주신 국민들께,다시금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저는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이 날이민족과 나라 앞에 닥친 어려움과 위기에 맞서는용기와 지혜를 되새기는 날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존경하는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경북 안동에 임청각이라는 유서 깊은 집이 있습니다.임청각은 일제강점기 전 가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하여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무장 독립운동의 토대를 만든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입니다.무려 아홉 분의 독립투사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산실이고,대한민국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상징하는 공간입니다.그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는 그 집을 관통하도록 철도를 놓았습니다.아흔 아홉 칸 대저택이었던 임청각은지금도 반 토막이 난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이상룡 선생의 손자, 손녀는해방 후 대한민국에서 고아원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임청각의 모습이 바로 우리가 되돌아봐야 할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일제와 친일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고,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지 못했습니다. 역사를 잃으면 뿌리를 잃는 것입니다.독립운동가들을 더 이상 잊혀진 영웅으로 남겨두지 말아야 합니다.명예뿐인 보훈에 머물지도 말아야 합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사라져야 합니다.친일 부역자와 독립운동가의 처지가해방 후에도 달라지지 않더라는 경험이불의와의 타협을 정당화하는 왜곡된 가치관을 만들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을 모시는 국가의 자세를완전히 새롭게 하겠습니다.최고의 존경과 예의로 보답하겠습니다.독립운동가의 3대까지 예우하고자녀와 손자녀 전원의 생활안정을 지원해서국가에 헌신하면 3대까지 대접받는다는 인식을 심겠습니다. 독립운동의 공적을 후손들이 기억하기 위해임시정부기념관을 건립하겠습니다.임청각처럼 독립운동을 기억할 수 있는 유적지는모두 찾아내겠습니다.잊혀진 독립운동가를 끝까지 발굴하고,해외의 독립운동 유적지를 보전하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정부는대한민국 보훈의 기틀을 완전히 새롭게 세우고자 합니다.대한민국은 나라의 이름을 지키고, 나라를 되찾고,나라의 부름에 기꺼이 응답한 분들의 희생과 헌신 위에 서 있습니다.그 희생과 헌신에 제대로 보답하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젊음을 나라에 바치고 이제 고령이 되신독립유공자와 참전유공자에 대한 예우를 강화하겠습니다.살아계시는 동안 독립유공자와 참전유공자의 치료를국가가 책임지겠습니다. 참전명예수당도 인상하겠습니다. 유공자 어르신 마지막 한 분까지대한민국의 품이 따뜻하고 영광스러웠다고 느끼시게 하겠습니다.순직 군인과 경찰, 소방공무원 유가족에 대한 지원도확대할 것입니다.그것이 우리 모두의 자긍심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보훈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분명히 확립하겠습니다.애국의 출발점이 보훈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지난 역사에서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해국민들이 감수해야 했던 고통과도 마주해야 합니다. 광복 70년이 지나도록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고통이 지속되고 있습니다.그동안 강제동원의 실상이 부분적으로 밝혀졌지만아직 그 피해의 규모가 다 드러나지 않았습니다.밝혀진 사실들은 그것대로 풀어나가고,미흡한 부분은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마저 해결해야 합니다.앞으로 남북관계가 풀리면남북이 공동으로 강제동원 피해 실태조사를 하는 것도 검토할 것입니다. 해방 후에도 돌아오지 못한 동포들이 많습니다.재일동포의 경우 국적을 불문하고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고향 방문을 정상화할 것입니다.지금도 시베리아와 사할린 등 곳곳에강제이주와 동원이 남긴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그 분들과도 동포의 정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해외 동포 여러분, 오늘 광복절을 맞아한반도를 둘러싸고 계속되는 군사적 긴장의 고조가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분단은 냉전의 틈바구니 속에서우리 힘으로 우리 운명을 결정할 수 없었던식민지시대가 남긴 불행한 유산입니다.그러나 이제 우리는 스스로 우리 운명을 결정할 수 있을 만큼국력이 커졌습니다.한반도의 평화도, 분단 극복도,우리가 우리 힘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오늘날 한반도의 시대적 소명은 두말 할 것 없이 평화입니다.한반도 평화 정착을 통한 분단 극복이야말로광복을 진정으로 완성하는 길입니다. 평화는 또한 당면한 우리의 생존 전략입니다.안보도, 경제도, 성장도, 번영도평화 없이는 미래를 담보하지 못합니다.평화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한반도에 평화가 없으면 동북아에 평화가 없고,동북아에 평화가 없으면 세계의 평화가 깨집니다.지금 세계는 두려움 속에서 그 분명한 진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이제 우리가 가야할 길은 명확합니다.전 세계와 함께한반도와 동북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의 대장정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면한 가장 큰 도전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입니다.정부는 현재의 안보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정부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미국과 긴밀히 협력하면서 안보위기를 타개할 것입니다.그러나 우리의 안보를 동맹국에게만 의존할 수는 없습니다.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정부의 원칙은 확고합니다.대한민국의 국익이 최우선이고 정의입니다.한반도에서 또 다시 전쟁은 안 됩니다.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정부는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을 것입니다.어떤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북핵문제는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이 점에서 우리와 미국 정부의 입장이 다르지 않습니다.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평화적 해결 원칙이 흔들리지 않도록외교적 노력을 한층 강화할 것입니다.국방력이 뒷받침되는 굳건한 평화를 위해우리 군을 더 강하게, 더 믿음직스럽게 혁신하여강한 방위력을 구축할 것입니다.한편으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도록군사적 대화의 문도 열어놓을 것입니다. 북한에 대한 제재와 대화는 선후의 문제가 아닙니다.북핵문제의 역사는 제재와 대화가 함께 갈 때문제해결의 단초가 열렸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시험을 유예하거나 핵실험 중단을 천명했던 시기는예외 없이 남북관계가 좋은 시기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그럴 때 북미, 북일 간 대화도 촉진되었고,동북아 다자외교도 활발했습니다.제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한반도 문제의 주인은 우리라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북핵문제 해결은 핵 동결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적어도 북한이 추가적인 핵과 미사일 도발을 중단해야대화의 여건이 갖춰질 수 있습니다.북한에 대한 강도 높은 제재와 압박의 목적도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지군사적 긴장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이 점에서도 우리와 미국 정부의 입장이 다르지 않습니다. 북한 당국에 촉구합니다.국제적인 협력과 상생 없이 경제발전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합니다.이대로 간다면 북한에게는 국제적 고립과 어두운 미래가 있을 뿐입니다.수많은 주민들의 생존과 한반도 전체를 어려움에 빠뜨리게 됩니다.우리 역시 원하지 않더라도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더욱 높여나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즉각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와핵 없이도 북한의 안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합니다.우리가 돕고 만들어 가겠습니다.미국과 주변 국가들도 도울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천명합니다.우리는 북한의 붕괴를 원하지 않습니다.흡수통일을 추진하지도 않을 것이고인위적 통일을 추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통일은 민족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이 합의하는‘평화적, 민주적’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북한이 기존의 남북합의의 상호이행을 약속한다면,우리는 정부가 바뀌어도 대북정책이 달라지지 않도록,국회의 의결을 거쳐 그 합의를 제도화할 것입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밝힌 바 있습니다.남북간의 경제협력과 동북아 경제협력은남북공동의 번영을 가져오고, 군사적 대립을 완화시킬 것입니다.경제협력의 과정에서 북한은핵무기를 갖지 않아도 자신들의 안보가 보장된다는 사실을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쉬운 일부터 시작할 것을 다시 한 번 북한에 제안합니다.이산가족 문제와 같은 인도적 협력을 하루빨리 재개해야 합니다.이 분들의 한을 풀어드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이산가족 상봉과 고향 방문, 성묘에 대한 조속한 호응을 촉구합니다. 다가오는 평창 동계올림픽도남북이 평화의 길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어야 합니다.남북대화의 기회로 삼고, 한반도 평화의 기틀을 마련해야 합니다.동북아 지역에서 연이어 개최되는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2020년의 도쿄 하계올림픽,2022년의 베이징 동계올림픽은한반도와 함께 동북아의 평화와 경제협력을 촉진할 수 있는절호의 기회입니다.저는 동북아의 모든 지도자들에게이 기회를 살려나가기 위해 머리를 맞댈 것을 제안합니다.특히 한국과 중국, 일본은 역내 안보와 경제협력을 제도화하면서공동의 책임을 나누는 노력을 함께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국민 여러분께서도 뜻을 모아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해마다 광복절이 되면 우리는한일관계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한일관계도 이제 양자관계를 넘어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함께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과거사와 역사문제가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지속적으로 발목 잡는 것은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부는 새로운 한일관계의 발전을 위해셔틀외교를 포함한 다양한 교류를 확대해 갈 것입니다.당면한 북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을 위해서도양국 간의 협력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그러나 우리가 한일관계의 미래를 중시한다고 해서역사문제를 덮고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오히려 역사문제를 제대로 매듭지을 때양국 간의 신뢰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그동안 일본의 많은 정치인과 지식인들이양국 간의 과거와 일본의 책임을 직시하려는 노력을 해왔습니다.그 노력들이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에 기여해 왔습니다.이러한 역사인식이 일본의 국내 정치 상황에 따라바뀌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한일관계의 걸림돌은 과거사 그 자체가 아니라역사문제를 대하는 일본정부의 인식의 부침에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한일 간의 역사문제 해결에는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국민적 합의에 기한피해자의 명예회복과 보상, 진실규명과 재발방지 약속이라는국제사회의 원칙이 있습니다.우리 정부는 이 원칙을 반드시 지킬 것입니다.일본 지도자들의 용기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해외 동포 여러분, 2년 후 2019년은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내년 8.15는 정부 수립 70주년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광복은,외세에 의해 분단된 민족이 하나가 되는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우리에게 진정한 보훈은,선열들이 건국의 이념으로 삼은 국민주권을 실현하여국민이 주인인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준비합시다.그 과정에서, 치유와 화해, 통합을 향해지난 한 세기의 역사를 결산하는 일도 가능할 것입니다. 국민주권의 거대한 흐름 앞에서 보수, 진보의 구분이 무의미했듯이우리 근현대사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세력으로 나누는 것도이제 뛰어넘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역사의 유산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모든 역사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며,이 점에서 개인의 삶 속으로 들어온 시대를산업화와 민주화로 나누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의미 없는 일입니다.대한민국 19대 대통령 문재인 역시김대중, 노무현만이 아니라 이승만, 박정희로 이어지는대한민국 모든 대통령의 역사 속에 있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의 치유와 화해, 통합을 바라는 마음으로지난 현충일 추념사에서 애국의 가치를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이제 지난 백년의 역사를 결산하고, 새로운 백년을 위해공동체의 가치를 다시 정립하는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정부의 새로운 정책기조도 여기에 맞춰져 있습니다.보수나 진보 또는 정파의 시각을 넘어서새로운 100년의 준비에 다함께 동참해 주실 것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우리 다함께 선언합시다.우리 앞에 수많은 도전이 밀려오고 있지만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고 헤쳐 나가는 일은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세계에서 최고라고 당당히 외칩시다.담대하게, 자신 있게 새로운 도전을 맞이합시다.언제나 그랬듯이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 이겨 나갑시다.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완성합시다.다시 한 번 우리의 저력을 확인합시다.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독립유공자들께깊은 존경의 마음을 드립니다.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외국인 고용허가제 폐지’ 논쟁 재점화

    이달 이주노동자 2명 자살 계기 민주노총·종교계, 제도 개선 촉구 이달에만 2명의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외국인 고용허가제 폐지 논쟁이 다시 점화됐다. 2004년 8월 도입된 고용허가제는 정부가 국내 취업을 희망하는 15개국 출신 외국인 노동자에게 취업비자(E9)를 발급해 국내 노동자와 동등한 대우를 보장해 주는 제도로, 체류 기간은 최대 3년이다. 민주노총,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이주노동자단체 등은 14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허가제 폐지, 이주노동자 사망사건 해결을 촉구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지난 7일 충북 충주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일하던 네팔 출신 노동자 케서브 스레스터(27)가 공장 기숙사 옥상에서 목매 숨졌다. 스레스터는 “회사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았고, 다른 공장에 가고 싶어도 안 되고, 네팔 가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안 됐다”며 “제 계좌에 있는 320만원은 아내와 여동생에게 주시기 바랍니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지난 8일에는 충남 천안 양돈농장에서 일하던 26세 네팔 출신 노동자가 비슷한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민주노총은 “힘든 업무와 스트레스로 인해 직장 변경을 요청했지만 회사는 그의 요구를 받아 주지 않았다”면서 “예외적인 경우에만 사업장을 바꿀 수 있도록 한 고용허가제가 꽃다운 네팔 청년의 생명을 앗아 갔다”고 주장했다. 고용허가제 취업비자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은 회사 폐업, 근로기준법 위반 등 특별한 사유가 있거나 사업주 허락을 받아야만 사업장을 바꿀 수 있다. 이를 악용해 사업주가 차별, 강제노동, 임금체불 등 노동 착취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고용허가제는 제도가 시행된 13년간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유엔 인종차별 철폐위원회는 2012년 8월 한국 정부에 고용허가제 개정을 권고하기도 했다. 반면 불법체류율이 줄고 이전의 산업연수생제도에 비해 내국인과 동등하게 노동법을 적용받을 수 있는 제도라는 평가도 나온다. 민주노총은 “최근 석 달간 이주노동자 7명이 자살과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며 “이주민 200만명, 이주노동자 100만명 시대에 걸맞게 이주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하고 착취와 죽음을 막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사건(5) 가짜 이강석 사건

    1957년 9월 대구 출신의 강성병(당시 22세)이란 청년이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 이강석 행세를 하며 사흘 동안 경북도 내를 휘젓고 다닌 사건이 있었다. 아들이 없던 이승만은 민의원 의장으로 있던 이기붕의 장남 이강석을 그해 3월 양자로 들였다. 대통령을 양아버지로, 국회의장을 친아버지로 둔 이강석은 사실상의 ‘3인자’였다. 이강석은 대낮 파출소에서 헌병의 뺨을 갈기는 등 위세가 등등했다. 또 양자가 되자마자 서울대 법대에 부정 편입을 시도했다가 법대생들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대학 입시에 낙방한, 평범한 가정 출신의 청년으로 이강석과 닮았다는 말을 들었던 강씨는 이런 사실을 신문에서 보고 가짜 행세를 하기로 마음먹었다.강씨는 먼저 경주로 가 경찰서장을 만났다. 강씨가 “아버지의 비밀 분부로 풍수해 상황을 시찰하러 왔다”고 하자 서장은 깜짝 놀라며 “영감님, 귀하신 몸이 어찌 혼자 오셨습니까”라며 황송해했다. 경상도 말을 썼던 강씨는 말씨도 서울말 비슷하게 바꿨다. 이튿날 서장은 가짜 이강석을 모시고 가 불국사 관광도 시켜 주고 사진 촬영도 함께 했다. 그러면서 치안국 통신과장으로 영전을 부탁하기도 했다. 이강석이라고 하니 서장들이 쩔쩔매는 모습을 본 강씨는 이어서 경찰 지프를 얻어 타고 영천, 안동, 봉화로 옮겨 다니며 이강석 행세를 했다. 서장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극진한 대접을 했다. 안동에서는 강씨가 자고 나니 군수와 읍장이 연락을 받고 숙소로 찾아와 머리를 조아리기도 했다. 수재의연금과 여비 명목으로 강씨는 두둑한 돈도 챙겼다. 요구하기도 했지만 관리들이 알아서 준 돈도 있었다.강씨는 봉화를 떠나 경북도지사 관사로 갔다 결국 덜미가 잡혔다. 도지사는 실제 이강석의 얼굴을 알고 있었고 도지사의 아들은 이강석과 고교 동기였다. 어쨌든 ‘3일 천하’였다. 강씨의 재판에는 방청권을 나눠 줘야 할 정도로 방청객이 몰려들었다. 강씨는 법정에서 “경찰서장들이 극진한 대접을 함에 대한민국 관리들의 부패성을 테스트할 수 있었다”고 진술했다. 또 “할리우드 같았으면 60만 달러 정도의 연기료를 받을 수 있었을 터인데 나는 연기료 대신 벌을 받게 되었다”고 태연히 농담을 던졌다. 강씨가 받은 형은 징역 10개월이었다. ‘귀하신 몸’은 당시 유행어가 됐다.이승만의 하야 후 진짜 이강석은 아버지 이기붕과 어머니 박마리아, 남동생을 권총으로 살해하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963년 8월 가짜 이강석 강씨도 대구 시내 ‘유림옥’이라는 술집에서 극약을 먹고 자살했다.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 진짜와 가짜의 기이한 인연이었다. 강씨도 그저 세상을 비관한 잡범에 불과했을까. 사진은 강씨의 죽음에 관한 당시 기사.
  • 사건(5) 가짜 이강석 사건

    1957년 9월 대구 출신의 강성병(당시 22세)이란 청년이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 이강석 행세를 하며 사흘 동안 경북도 내를 휘젓고 다닌 사건이 있었다. 아들이 없던 이승만은 민의원 의장으로 있던 이기붕의 장남 이강석을 그해 3월 양자로 들였다. 대통령을 양아버지로, 국회의장을 친아버지로 둔 이강석은 사실상의 ‘3인자’였다. 이강석은 대낮 파출소에서 헌병의 뺨을 갈기는 등 위세가 등등했다. 또 양자가 되자마자 서울대 법대에 부정 편입을 시도했다가 법대생들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대학 입시에 낙방한, 평범한 가정 출신의 청년으로 이강석과 닮았다는 말을 들었던 강씨는 이런 사실을 신문에서 보고 가짜 행세를 하기로 마음먹었다.강씨는 먼저 경주로 가 경찰서장을 만났다. 강씨가 “아버지의 비밀 분부로 풍수해 상황을 시찰하러 왔다”고 하자 서장은 깜짝 놀라며 “영감님, 귀하신 몸이 어찌 혼자 오셨습니까”라며 황송해했다. 경상도 말을 썼던 강씨는 말씨도 서울말 비슷하게 바꿨다. 이튿날 서장은 가짜 이강석을 모시고 가 불국사 관광도 시켜 주고 사진 촬영도 함께 했다. 그러면서 치안국 통신과장으로 영전을 부탁하기도 했다. 이강석이라고 하니 서장들이 쩔쩔매는 모습을 본 강씨는 이어서 경찰 지프를 얻어 타고 영천, 안동, 봉화로 옮겨 다니며 이강석 행세를 했다. 서장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극진한 대접을 했다. 안동에서는 강씨가 자고 나니 군수와 읍장이 연락을 받고 숙소로 찾아와 머리를 조아리기도 했다. 수재의연금과 여비 명목으로 강씨는 두둑한 돈도 챙겼다. 요구하기도 했지만 관리들이 알아서 준 돈도 있었다.강씨는 봉화를 떠나 경북도지사 관사로 갔다 결국 덜미가 잡혔다. 도지사는 실제 이강석의 얼굴을 알고 있었고 도지사의 아들은 이강석과 고교 동기였다. 어쨌든 ‘3일 천하’였다. 강씨의 재판에는 방청권을 나눠 줘야 할 정도로 방청객이 몰려들었다. 강씨는 법정에서 “경찰서장들이 극진한 대접을 함에 대한민국 관리들의 부패성을 테스트할 수 있었다”고 진술했다. 또 “할리우드 같았으면 60만 달러 정도의 연기료를 받을 수 있었을 터인데 나는 연기료 대신 벌을 받게 되었다”고 태연히 농담을 던졌다. 강씨가 받은 형은 징역 10개월이었다. ‘귀하신 몸’은 당시 유행어가 됐다.이승만의 하야 후 진짜 이강석은 아버지 이기붕과 어머니 박마리아, 남동생을 권총으로 살해하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963년 8월 가짜 이강석 강씨도 대구 시내 ‘유림옥’이라는 술집에서 극약을 먹고 자살했다.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 진짜와 가짜의 기이한 인연이었다. 강씨도 그저 세상을 비관한 잡범에 불과했을까. 사진은 강씨의 죽음에 관한 당시 기사.
  • [그때의 사회면] 사건(5) 가짜 이강석 사건/손성진 논설주간

    [그때의 사회면] 사건(5) 가짜 이강석 사건/손성진 논설주간

    1957년 9월 대구 출신의 강성병(당시 22세)이란 청년이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 이강석 행세를 하며 사흘 동안 경북도 내를 휘젓고 다닌 사건이 있었다. 아들이 없던 이승만은 민의원 의장으로 있던 이기붕의 장남 이강석을 그해 3월 양자로 들였다. 대통령을 양아버지로, 국회의장을 친아버지로 둔 이강석은 사실상의 ‘3인자’였다. 이강석은 대낮 파출소에서 헌병의 뺨을 갈기는 등 위세가 등등했다. 또 양자가 되자마자 서울대 법대에 부정 편입을 시도했다가 법대생들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대학 입시에 낙방한, 평범한 가정 출신의 청년으로 이강석과 닮았다는 말을 들었던 강씨는 이런 사실을 신문에서 보고 가짜 행세를 하기로 마음먹었다.강씨는 먼저 경주로 가 경찰서장을 만났다. 강씨가 “아버지의 비밀 분부로 풍수해 상황을 시찰하러 왔다”고 하자 서장은 깜짝 놀라며 “영감님, 귀하신 몸이 어찌 혼자 오셨습니까”라며 황송해했다. 경상도 말을 썼던 강씨는 말씨도 서울말 비슷하게 바꿨다. 이튿날 서장은 가짜 이강석을 모시고 가 불국사 관광도 시켜 주고 사진 촬영도 함께 했다. 그러면서 치안국 통신과장으로 영전을 부탁하기도 했다. 이강석이라고 하니 서장들이 쩔쩔매는 모습을 본 강씨는 이어서 경찰 지프를 얻어 타고 영천, 안동, 봉화로 옮겨 다니며 이강석 행세를 했다. 서장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극진한 대접을 했다. 안동에서는 강씨가 자고 나니 군수와 읍장이 연락을 받고 숙소로 찾아와 머리를 조아리기도 했다. 수재의연금과 여비 명목으로 강씨는 두둑한 돈도 챙겼다. 요구하기도 했지만 관리들이 알아서 준 돈도 있었다. 강씨는 봉화를 떠나 경북도지사 관사로 갔다 결국 덜미가 잡혔다. 도지사는 실제 이강석의 얼굴을 알고 있었고 도지사의 아들은 이강석과 고교 동기였다. 어쨌든 ‘3일 천하’였다. 강씨의 재판에는 방청권을 나눠 줘야 할 정도로 방청객이 몰려들었다. 강씨는 법정에서 “경찰서장들이 극진한 대접을 함에 대한민국 관리들의 부패성을 테스트할 수 있었다”고 진술했다. 또 “할리우드 같았으면 60만 달러 정도의 연기료를 받을 수 있었을 터인데 나는 연기료 대신 벌을 받게 되었다”고 태연히 농담을 던졌다. 강씨가 받은 형은 징역 10개월이었다. ‘귀하신 몸’은 당시 유행어가 됐다. 이승만의 하야 후 진짜 이강석은 아버지 이기붕과 어머니 박마리아, 남동생을 권총으로 살해하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963년 8월 가짜 이강석 강씨도 대구 시내 ‘유림옥’이라는 술집에서 극약을 먹고 자살했다.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 진짜와 가짜의 기이한 인연이었다. 강씨도 그저 세상을 비관한 잡범에 불과했을까. 사진은 강씨의 죽음에 관한 당시 기사.
  • 대구 빌라서 20대 4명 숨진 채 발견…경찰 “동반자살 추정”

    대구 빌라서 20대 4명 숨진 채 발견…경찰 “동반자살 추정”

    대구 한 빌라에서 20대 남녀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대구 달서경찰서는 13일 오후 3시 10분쯤 대구 달서구 진천동 한 빌라에서 A(26·여)씨와 B(26)씨 등 여자 3명과 남자 1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현장에서는 타다 남은 번개탄과 화덕, 빈 술병 5~6개, 유서 1장이 발견됐다. 경찰 관계자는 “유서에는 가족에게 미안함을 전하는 내용의 짧은 글만 적혀 있었고 사망 경위를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은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 7일 A씨의 실종 신고를 받고 A씨의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하다가 이 빌라를 찾게 됐다. 이 빌라는 B씨가 살던 곳이다. 경찰은 이들은 약 일주일쯤 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숨진 남녀 4명의 주소지가 모두 다르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온라인을 통해 만나 함께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이 있다”며 “현장 상황으로 봐서는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것은 수사를 더 해봐야 안다”고 말했다. 경찰은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을 밝히는 한편 유족 등 지인을 통해 구체적인 사망 경위와 자살 동기 등을 파악할 계획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디딤돌 대출로 집 사고 1년 안 살면 회수… ‘갭투자’ 차단

    디딤돌 대출로 집 사고 1년 안 살면 회수… ‘갭투자’ 차단

    앞으로 디딤돌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 놓고 실제 거주하지 않으면 대출금을 토해 내야 한다. 무주택 실수요자를 위한 주택 구입자금 지원제도인 디딤돌 대출이 ‘갭투자’에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국토교통부는 오는 28일부터 주택도시기금의 디딤돌 대출이 실거주자에게 지원될 수 있도록 ‘실거주 의무제도’를 도입한다고 11일 밝혔다. 디딤돌 대출은 연소득 6000만원 이하 무주택 실수요자를 위한 저리(이달 기준 연이율 2.25~3.15%)의 금융상품이지만, 대출을 받아 주택을 사서 전세로 돌린 뒤 집값이 오르면 시세차익을 챙기고 파는 ‘갭투자’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앞으로 디딤돌 대출 이용자는 대출 실행 1개월 안에 구입 주택에 들어가 1년 이상 거주해야 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1개월 안에 전입하지 않으면 향후 1개월 내에 전입하라는 경고를 받는다. 추가로 준 한 달이 지나도 전입을 하지 않으면 지연배상금이 부과된다. 대출 뒤 1년이 되도록 전입을 하지 않으면 대출이 회수된다. 이를 위해 대출자는 전입신고 한 달 내에 전입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전입세대열람표를 은행에 제출해야 한다. 국토부는 전입 뒤 1년 거주 의무를 확인하기 위해 의심 가구의 표본을 뽑아 방문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다만 대출 뒤 기존 임차인의 퇴거가 지연되는 등의 이유로 전입이 어려운 경우 사유서를 제출하면 전입이 2개월 연장된다. 또 주택 매매 계약 이후 질병 치료나 직장 이전, 대출자 사망 등 불가피한 사유가 발생하면 예외를 인정해 준다. 세종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대한항공 직원 투신

    대한항공 소속 20대 여직원이 사원아파트에서 투신해 숨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11일 인천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9일 오전 2시 30분쯤 인천 서구의 한 아파트단지 내에서 A(29·여)씨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것을 주민이 발견, 119에 신고했지만 숨졌다. 경찰 조사 결과, 2014년부터 대한항공 지상직 직원으로 근무한 A씨는 자신이 거주하는 동 옥상에서 떨어져 숨졌다. 경찰은 ‘부모님께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고, 타살 가능성이 없는 점 등으로 미뤄 A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 중이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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