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유산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공사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증시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6억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총수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4,523
  • [열린세상] 정치적 혼란과 위기에 공감하기/민병원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정치적 혼란과 위기에 공감하기/민병원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격동의 2013년이 끝나 가는 즈음, 지구촌 정치판은 여전히 시끄럽다. ‘아랍의 봄’ 물결이 지구촌을 뒤흔든 것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태국과 우크라이나가 뜨거운 정치적 격랑에 휩싸여 있다. 태국에서는 최초의 여성 총리 잉락 친나왓 정부가 반대 세력의 거센 반정부운동에 직면해 있고, 우크라이나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대외정책에 관한 국민들의 요구를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퇴진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두 나라 모두 거리 시위가 격화되면서 정권의 안위가 위협받고 있다. 내막이야 서로 다르겠지만 두 나라 사정을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발견된다. 먼저 외견상으로는 두 나라 내에서 정부의 정책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커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태국에서는 잉락 정부가 추진해 온 국가화합법안과 헌법개정안에 대한 야당과 반대세력들의 거부 움직임이 이번 시위의 기폭제가 되었다. 우크라이나의 경우 유럽연합과의 자유무역협정이 좌초되면서 현 정부의 친러시아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둘러싼 의견 대립과 갈등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지만, 사회의 혼란을 야기하는 근원은 늘 정책이 아니라 정치에서 유래한다. 태국 정부의 국가화합법안은 2006년 쿠데타에 의해 축출된 후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해외로 도피한 탁신 전 총리의 사면을 위한 전초전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태국 현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헌법개정안도 반대 세력에게 시빗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입헌군주제의 틀을 수정하여 왕실 모독죄에 대한 처벌을 완화하고, 군부의 면책특권을 제거하면서 정당에 대한 정치적 제약을 누그러뜨리려는 개헌 시도는 태국 기득권층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켜 왔다. 우크라이나에서는 2010년 대선 당시 현 대통령의 강력한 경쟁자였던 야당지도자 율리아 티모셴코가 부패혐의로 유죄선고를 받고 감옥에 갇혀 있다. 2005년 이후 두 차례나 총리직을 맡았던 티모셴코는 문호개방을 통해 러시아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바람을 위해 유럽연합 가입을 적극 모색해 왔다. 이런 노력이 현 정부에 들어와 틀어지면서 국민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망명 중인 탁신과 복역 중인 티모셴코의 그림자가 두 나라의 정치적 혼란의 핵심에 어른거리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민주주의 초년병으로서 두 나라가 가야 할 길은 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주변 국가나 외부의 분위기 역시 이들 국가의 정치적 불안정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미국은 탁신정권 당시의 태국과 밀월관계를 유지해 왔고, 이후 탁신 세력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는 잉락의 정치적 승리를 적극 환영했다. 미국으로서는 동남아 지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산을 저지하는 데 있어 태국이라는 중요한 포스트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더욱 노골적으로 주변 국가들 사이에 세력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유럽연합은 일찌감치 동방동반자계획을 통해 구공산권 국가들을 끌어안으려는 구상을 펼쳐 왔다. 이에 대응하여 러시아는 주변 국가들을 포함하는 경제통합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데, 러시아 다음으로 규모가 큰 우크라이나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압박과 회유를 반복해 왔다. 단순한 경제통합의 이슈를 넘어 정치적·전략적 세력권 다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한 나라의 민주화나 경제발전 등 대내적인 문제가 자국 국민들의 뜨거운 열정만으로 해결되기는 어렵다. 과거의 유산이 현재의 발목을 잡고, 주위의 견제와 시비가 장애물로 작용한다. 그만큼 역사의 경로 의존성과 강대국들의 이해 다툼은 작은 나라들이 극복해야 할 힘겨운 과제다. 태국과 우크라이나 두 나라에서 벌어지는 사회갈등 현상을 보면서 남의 일 같지 않은 것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역사가 일천하기 때문만은 아닐 게다. 헌법과 의회라는 정치제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정부의 권위에 도전하는 시민사회운동이 거리로 확산되는 지금, 태국과 우크라이나를 보면서 우리 자신을 걱정한다면 과연 기우일까.
  • 오바마 “넬슨 만델라 없던 내 인생 상상할 수 없어” 애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타계와 관련, “우리는 오늘 지구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용기 있으며 매우 선한 인물 한 명을 잃었다”고 애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넬슨 만델라는 인간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성취를 이뤄냈다”면서 “그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넬슨 만델라라는 사표(師表)가 없었던 내 인생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면서 “내가 살아있는 한 그로부터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우겠다”고 밝혔다. 이어 “넬슨 만델라는 남아공을 자유와 평화의 유산으로 남긴 지도자”라며 “그는 이제 우리 곁을 떠났으나 영원히 우리 기억 속에 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치속 항산화물질 등 고혈압 완화 효과

    김치속 항산화물질 등 고혈압 완화 효과

    김장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됐지만 김치에 대한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나트륨이 많은 고염(高鹽) 음식이어서 고혈압 등의 원인이라는 각인 때문이다. 1인당 하루 김치섭취량은 1998년 121.7g에서 2011년 68.6g으로 줄었다. 김치를 통한 1일 나트륨 섭취량은 440㎎으로 하루 평균 섭취량(4878㎎)의 9% 수준이다. 하지만 김치는 고염음식에서 저염음식으로 변하고 있다. 5일 세계김치연구소에 따르면 김치의 염도를 소금과 단순비교하기는 힘들다. 연구소의 김현주 박사팀은 2.57% 농도의 소금을 섞은 사료를 먹인 쥐와 김치로 같은 양의 소금을 준 쥐를 비교했다. 결과, 김치를 먹은 쥐는 혈압 상승이 다른 쥐보다 12% 완화됐다. 김 박사는 “김치의 항산화물질, 식이섬유, 유산균 등이 고혈압 인자를 완화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강사욱 서울대 교수팀은 김치 유산균에서 항바이러스 물질을 찾아냈다. 이 물질이 몸에 나쁜 소금의 효과를 억제한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염도가 낮은 김치도 많아지고 있다. 통상 상품 김치의 염도는 2.5%로 알려져 있지만 세계김치연구소의 조사 결과 1.5~2.0%였다. 한 김치 생산업자는 “젓갈을 많이 쓰는 남도김치를 주로 생산했지만 최근 들어 수도권 판매를 위해 염도를 2% 아래로 제한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사람들이 외식을 하면서 중국산 김치를 먹고 여전히 김치가 짜다는 선입견을 갖는 것 같다”고 말했다. 농촌경제연구원의 ‘농축산물 소비실태’에 따르면 음식점에서 중국산 김치를 쓰는 경우는 전체의 59.2%다. 특히 김장김치의 경우 소금 1%의 저염 김치 담그기가 유행이다. 배추를 절이는 소금물 농도는 절반으로 줄이고 정제소금보다 나트륨이 적은 천일염을 쓰는 것이 비법이다. 대신 황태·다시마·표고버섯 육수를 넣거나 해산물로 풍미를 더한다. 이 경우, 보관은 0~5도의 낮은 온도에서 해야 한다. 하지만 소금 0%대의 김치는 아직 기대하기 이르다. 소금은 채소의 조직을 연하게 하고, 양념맛을 삼투압 원리로 배추 내에 스며들게 하며, 발효 시 잡균 생성을 억제한다. 소금을 너무 줄이면 김치의 과학도 사라지는 셈이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탄광촌 기억 오롯한 정선 나전역 복원

    탄광촌 기억 오롯한 정선 나전역 복원

    옛 탄광촌의 역사를 간직한 강원 정선 북평면에 있는 나전역 건물이 근현대 산업유산으로 복원되면서 관광명소로 단장된다. 나전역은 1993년부터 역무원이 배치되지 않은 간이역으로 운영되고 있다. 정선군은 4일 총사업비 2억여원을 들여 역사 내 역무원의 복장과 역무실, 난로, 열차 시간표 등을 재현하는 한편 탑승장 일대에 간이의자 등의 편의시설과 경관을 새로 단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나전역은 1994년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모래시계’를 비롯해 서태지의 굴욕 CF, 예능 프로그램 1박2일,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의 촬영 장소였던 점을 감안해 옛 영화 포스터 등 색다른 볼거리도 만들어 관광지로 조성할 예정이다. 나전역은 1969년 10월 보통역으로 개통돼 석탄산업 호황기 시절 전성기를 누렸지만 나전광업소 폐광 이후 간이역 정거장으로 격하된 데 이어 2011년부터 여객 취급이 중지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1970~80년대 활황기 시절 수많은 승객을 맞이했던 역무실과 역사 모습을 그대로 갖추고 있어 추억의 관광명소로 기대되고 있다. 김수복 군 문화관광과장은 “철거까지 고려됐던 나전역을 근현대 산업유산으로 간직하기 위해 복원사업을 구상했다”면서 “북평면의 304가지 토속음식 육성과 2단계 철도관광사업을 연계한 역사교육 현장으로 육성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선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김장문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됐다

    김장문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됐다

    한국의 ‘김장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새롭게 등재됐다. 이로써 한국은 종묘제례·종묘제례악, 판소리, 아리랑 등에 이어 모두 16개의 인류무형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문화재청은 5일 오후(한국시간)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열린 제8회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우리나라가 신청한 ‘김장문화’가 등재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위원회는 김장문화가 한국인들이 이웃과 나눔의 정신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돕고 정체성과 소속감을 제공하는 유산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전했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3월 ‘김장문화’의 인류무형유산 등재 신청서를 제출했으며 지난 10월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 산하 심사보조기구가 만장일치로 등재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는 의미의 ‘등재권고’ 판정을 내렸다.  지난 2일부터 7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회의에서는 ‘김장문화’ 외에 일본의 식문화인 와쇼쿠, 중국의 주산 및 주판셈 지식·활용, 아르제바이잔의 전통 말타기 놀이 등이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됐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고려역·학교·찌개… 일본에 뿌리내린 ‘1300년 고구려’

    고려역·학교·찌개… 일본에 뿌리내린 ‘1300년 고구려’

    일본에서 한반도의 역사를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약간의 발품을 팔면 도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한국과 일본의 역사를 살필 수 있는 마을을 만나게 된다. 도쿄역을 기점으로 자동차로는 73㎞, 전철로는 2시간 정도 걸리는 사이타마 현 히다카 시에 있는 고려신사(高麗神社·일본명 고마진자)와 그 일대의 고려마을이다. 신사가 자리 잡은 지역은 ‘고려’가 붙은 것투성이다. 기차 역만 고려역(高麗驛), 고려천역(高麗川驛) 두 곳이다. 지역으로는 고려천(高麗川), 고려향(高麗鄕), 고려치(高麗峙·고개)가 있고 학교는 고려소학교, 남(南)고려소학교, 고려중학교, 남(南)고려중학교가 있다. 심지어 일본식 김치찌개인 고려찌개(高麗鍋·고마나베)도 맛볼 수 있다. 이 지역과 고려가 밀접한 관계를 지녔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신사와 마을이 3년 뒤면 1300년을 맞는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일본서기’나 ‘속일본기’에 따르면 동아시아를 주름잡던 고구려는 668년 나당(羅唐)연합군의 공격으로 멸망한다. 멸망 2년 전 사절단으로 일본에 건너온 고구려 왕족 약광(若光)은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신세가 된다. 일본의 야마토 조정과 약광은 716년 간토(關東) 지역에 흩어져 살던 고구려인, 백제인, 신라인들을 모아 지금의 고려신사 일대 무사시노 벌판에 고려군(郡)을 만들게 된다. 고려군을 지배해 온 약광이 죽자 군민들은 그를 고려명신(명신)으로 받드는 신사를 만드는데 그게 바로 고려신사다. 이들은 한반도의 말타기, 농업기술, 건축과 미술 등의 선진 기술, 문물을 바탕으로 메이지유신 이전까지 고려라는 이름을 유지하면서 일본 속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다. 도쿄에서 자동차를 타고 들어가면 계속 이어지는 평야지대의 한 자락에서 고려천을 만나게 되고 개천을 건너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나지막한 산자락 아래 자리 잡은 게 고려신사다. 신사 입구에는 2005년 한·일 국교 정상화 40주년을 기념해 중앙민단의 김재숙 단장이 기증한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장승 2개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본래 1992년 기증했던 장승이 사고로 못 쓰게 되는 바람에 새롭게 제작한 것이다. 경내로 들어서면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가 기념식수를 한 나무가 있으며 곳곳에서 ‘고구려문화전’, ‘한국전통음악 사물놀이’ 등 1300주년 기념행사를 알리는 깃발들이 손님을 맞는다. 신사 본전 뒤쪽으로는 17세기에 지어진 고려가(高麗家)라고 하는, 고려신사의 주인 격인 구지(宮司)들이 대대로 살아온 고택이 있는데 일본 국가지정중요문화재가 돼 있다. 고려신사는 2016년 고려군 건군(建郡) 1300주년의 중심이 돼 갖가지 행사를 치르고 있고 앞으로도 치를 계획이다. 신사 혼자만의 힘으로는 거대한 행사를 치를 수 없어 히다카 시를 비롯한 신사 주변 9개 지자체의 단체장을 고문으로 한 ‘고려군 건군 1300년 기념사업위원회’도 함께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행사는 세 가지 목표를 내걸고 있다. 먼저 고려군 탄생의 씨앗이 된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국제 교류를 촉진해 평화·우호의 끈을 만들고 둘째, 사이타마 현 서부 지역의 지역 활성화를 꾀하며 셋째, 고려군을 있게 한 선인들의 유산을 재발견하고 계승·발전시키자는 것이다. 신사와 기념사업회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와 있는, 말을 타며 활을 쏘는 ‘마사희(馬射戱) 대회’, ‘고려미무(美舞)체조’, 고려군과 관련 지역의 역사를 재발견하는 ‘역사탐방강좌’ 등 수십 가지에 이르는 행사를 2016년까지 치를 예정이다. 1300년간 고구려 후손임을 당당하게 밝히며 살아온 역사를 알리는 동시에 전통을 이어 갈 고려신사의 노력이 주목된다. 글 사진 히다카(사이타마 현) 황성기 특파원 marry04@seoul.co.kr
  • 국내여행 | 부산 산복도로 르네상스- 이젠 초량동이다!

    국내여행 | 부산 산복도로 르네상스- 이젠 초량동이다!

    시작해 볼까 한다. 거의 40년 전 내가 태어났던 그곳에 대한 이바구를,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오르내렸던 까꼬막에 대한 이야기를.당신이 준비할 것은 기차를 타기 전 2시간뿐이다. *경상도 사투리로 이바구는 이야기, 까꼬막은 비탈길을 뜻한다.고향에 대한 기억은 지극히 개인적이다.‘오빠야~’를 쫓아 경사진 산복도로를 뛰어다니느라무릎이 성할 날이 없었던 가시내의 기억은7살에 멈추었다.이후 내가 태어났던 외갓집과 초량동은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사람들이 떠났고, 집들은 무너져 가고 있었다.그러나 32년 후 다시 찾아온 여행기자에게초량동은 ‘희망’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이바구 공작소가 생겼고, 유치환 선생과장기려 선생을 기리는 공간이 만들어졌고,손님들이 쉬어 갈 수 있는 전망대, 카페,까꼬막 게스트하우스가 생겼다.산복도로 위에서 보는 초량동과 부산항,북항대교의 풍경은 비탈을 극복한 자만이누릴 수 있는 아름다움이었다.근현대사의 축소판, 초량동여행애호가들은 다 아는 이야기. 감천문화마을(감천2동 산복마을)은 부산 산복도로에 말 그대로 ‘르네상스’를 몰고 왔다. 2012년 감천마을을 다녀간 여행자가 10만명이라니, 마을 사람들이 불편을 호소할 정도로 조용하던 산동네는 일약 관심의 중심이 됐다. 그리고 그 르네상스의 맥을 잇는 다음 주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초량동이라고 했다. 초량동이라니! 전쟁 통에 결혼한 외할머니가 8명의 자식을 낳아 키웠고 그 자식의 자식인 내가 태어난 그 동네가 아닌가.초량동은 한국전쟁 당시 판자촌이 얼기설기한 피난민 마을에서 시작됐다. 그나마 물자와 일거리를 구하기 쉬웠던 항구 근처에 난민들은 터를 잡기 시작했고,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판잣집이 세워져 있곤 했다. 칸칸이 작은 방들로 이루어진 엉성한 집들은 서로 어깨를 기대며 구봉산龜蜂山(405m)의 거북이 등을 타고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집과 집 사이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가는 미로 같은 골목이었고 우마차가 흙길을 다졌다. 산복도로의 시초였다.마을의 풍경은 태생적으로 아름답다. 감천마을의 경우 이미 부산의 산토리니라는 수식어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피난민촌의 역사를 알고 나면 이 풍경은 더 이상 이국적이지 않다. 파랑색 물탱크를 옥상에 이고 다닥다닥 어깨를 붙인 파스텔톤의 집들은 보따리를 하나씩 머리에 이고 산비탈을 오르는 어머니들을 닮았다. 치맛자락을 붙들고 따라 나선 계집아이의 얼굴엔 때구정물이 사라지지 않았다. 상수도가 없으니 급수차가 오는 날에는 아이들도 세숫대야라도 들고 나서야 했었다. 만만치 않은 세월이었다.감천마을에서 시작되어 산복도로를 타고 질주해 온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은 초량동이나 수정동 같은 낙후된 마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근현대사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동구의 생활문화사를 유적과 사진으로 볼 수 있는 곳인 이바구공작소를 포함해 새로운 랜드마크들이 올 초부터 줄줄이 문을 열었다. 웅장하거나 화려한 건물들이 아니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유도하듯 평범한 주택들 사이에 전망대, 게스트하우스, 기념관, 카페 등이 자리를 잡았다. 이름이 무엇이든 이 모든 장소들은 최적의 전망대 역할을 한다. 이바구길을 따라가다 보면 한없이 주저앉아 경치를 감상하고 싶어지는 ‘구석’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러나 올라가는 과정이 고된 만큼 까꼬막길은 더 큰 보상을 안겨 준다.손쉬운 선택으로 산복도로에만 올라서도 건설 중인 북항대교는 물론이고 오른쪽으로는 남항대교, 왼쪽으로는 광안대교와 산 너머 해운대의 마천루까지 모두 보인다. 조금 더 욕심을 내서 큰일이 있을 때마다 불을 지펴 다급한 소식들을 한양으로 올려보냈던 구봉산 봉수대에 올라서면 부산 앞 바다의 경치는 더 너르고, 더 깊어진다. 그리고 밤이 되면 그 모든 풍경은 저마다의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참으로 은하수 같은 야경이다.굽이굽이 이바구가 들린다경험상, 도보여행은 가벼워야 한다.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부산 지하철역 사물함에 필요 없는 짐을 맡겨두고 길을 건너니 이바구길종합안내판이 쉽게 눈에 띄었다.길 안쪽으로 들어서자마자 부산 사투리, 중국어, 러시아어가 한꺼번에 들이닥친다. ‘이런 곳이 있었나’ 싶게 생경한 외국인 거리를 정신없이 통과하니 사거리 한쪽에 붉은 벽돌 건물이 우뚝 서 있다. 1922년 부산 최초의 근대식 종합병원이었던 구 백제병원 건물이었다. 한 때 외국의 의사들을 숱하게 초빙할 만큼 큰 병원이었지만 행려환자들의 시신을 인체표본으로 보관한 일이 밝혀지면서 도덕적 질타와 경영 악화로 문을 받았다는 이야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평생 봉사하며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렸던 장기려(1911~1995) 박사가 알았다면 애통해 했을 일이다. 25년 동안 복음병원의 병원장을 지내며 1968년 의료보험의 시초인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만들었던 그는 평생 집 한 채를 소유하지 않고 병원 옥탑에서 생활하며 낡은 의사 가운과 청진기만을 유품으로 남겼다. 그의 뜻을 기리는 기념관 ‘더 나눔’은 올해 초량동의 복음병원 분원자리에 문을 열었다.병원에서 몇 발자국을 옮기자 이야기는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부산 최초의 물류창고였던 남선창고터가 병원 뒤에 남아 있었다. 부산항에 도착한 물건들은 1,000평 규모의 창고를 거쳐서 경부선(1905년 개통)을 통해 전국 각지로 보내졌는데 주요 품목이 함경도산 명태여서 ‘명태고방’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부산토박이치고 남선창고 명태 눈알 안 빼먹은 사람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고. ‘최초’라는 수식어는 종종 ‘임시’라는 수식어와 연결된다. 한강 이남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였던 초량 교회는 부산이 임시 수도였던 시절 이승만 대통령이 예배를 봤던 곳이다. 그 시절 임시 수도의 정부 교통부로 사용했던 건물은 부산지하철 좌천역 근처에 남아있다.그 당시의 마을 풍경 사진을 만날 수 있는 곳이 골목길 갤러리다. 흑백 사진 속의 그곳과 지금의 이곳은 수십년의 시차를 마주하게 한다. 그 시차를 극복한 사람들이라면 168계단이 선사하는 아찔한 고도 차이도 우습게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올려다보기에도, 내려다보기에도 아찔한 추억들은 168계단 옆 우물처럼 파도 파도 깊어진다. 시인 유치환, 개그맨 이경규, 노무현 대통령, 음악감독 박칼린, 가수 나훈아,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 국회의원 안철수, 연출가 이윤택 등 동구 출신들을 마치 가족처럼 자랑하는 주민들의 정서는 2013년에도 유효하다. 그들의 사진과 이력이 벽에 걸려 있는 초량초등학교 동구 인물사담장 앞에 서 있으면 “이~갱규가 이 학교 나왔다 아이가. 나하고 동갑인데… 갸가…”로 시작되는 대화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이 길을 오르내리며 학교를 졸업하고, 아이를 낳고, 손자를 마중 나가는 초량동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제 겨우 시작이다.부산역 앞 초량이바구길 안내도부산역에서 망양로 산복도로를 오르는 짧은 길은 가난하고 아팠지만 따스했던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이다. 부산역에 내려 바로 앞의 횡단보도를 건너기만 하면 이바구길이 시작된다. 종합안내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1~2시간의 산책은 애환 어린 피난시절부터 현재까지 부산의 역사를 꿰어 줄 뿐 아니라 부산 특유의 정서와 서민생활을 깊숙이 느끼게 해준다.Route (옛)백제병원▶남선창고터▶담장갤러리▶동구 인물사담장▶168계단▶김민부 전망대▶이바구공작소▶장기려박사 기념관 ‘더 나눔’▶유치환의 우체통▶까꼬막까지 이어지는 1.5km①부산역 1905년 서울-부산을 연결하는 경부선 계통 이후 부산역은 가장 중요한 부산의 관문 역할을 변함없이 해 왔다. 1953년 대화재로 이전의 부산역이 전소되면서 1968년 지금의 자리에 새로운 역사를 신축했고 2004년 KTX 개통으로 전국이 하루 생활권으로 묶이면서 부산역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②부산항 부산항은 원래 아주 조그만 어촌이었지만 고종 때 개항하면서 최초의 무역항이 됐다. 물자가 넘쳐나고 그만큼 일거리를 얻을 수 있는 곳. 전쟁이 터지자 고향을 떠나 부산으로 몰려든 사람들은 항구 근처에 머물렀다. 산복도로 아래 피난민 마을은 그렇게 형성된 곳이다.③상해문 청관거리(1884년 청나라 영사관이 이곳에 있었다)라고 불렸던 이 지역은 중국인들이 밀집한 차이나타운이지만 현재는 러시아, 필리핀 사람들도 대거 거주하는 외국인 거리가 됐다. 소문난 중화요리점들이 많은 것은 물론이고 독해 불가능한 외국어 간판이 이색적인 풍경을 만들어 내는 곳. 한때 텍사스골목이라는 불명예를 품기도 했었지만 2007년 7월 지역특화발전특구로 지정되어 새롭게 단장하고 있다.④(옛)백제병원 1922년 한국인 최용해가 만든 부산 최초의 근대식 개인종합병원은 5층 규모의 건물로 외국인 의사들을 초빙할 만큼 번성했었지만 10여 년 만에 경영 악화로 폐업하게 되었다. 이후 봉래각이라는 중국 요리집, 일본 아까즈끼부대의 장교 숙소로 사용되다가 해방 이후 치안대 사무소, 중화민국 영사관, 신세계 예식장 등 여러 용도를 거치며 파란만장한 역사를 이어가다가 현재는 임대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1972년 화재로 5층 일부가 소실되어 현재는 4층 건물로 남아있으며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3층에는 부산그린트러스트가 입주해 있다. 주소 초량동 중앙대로 209번길 16⑤남선창고(터) 백제병원 뒤쪽 탑마트 주차장 정면에는 담쟁이가 엉켜 있는 붉은 벽돌담이 있다. 건물은 2009년 철거되고 담장만 남은 남선창고는 저 멀리 함경도에서 부쳐진 명태를 적재하던 창고라 하여 북선창고(1900년 건립)라고도 불리다 1914년 남선창고로 개명되었지만 명태고방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던 곳이다. 경원선이 개통되기 전까지 함경도의 수산물과 강원도의 목재는 부산으로 옮겨서 경부선을 통해 전국으로 보급되었었다. 백제병원 옆(탑마트 주차장). 주소 초량동 393-1⑥김민부 전망대 김민부(1941~1972)라는 이름을 잘 몰라도 ‘기다리는 마음(장일남 작곡, 김민부 작사)’이라는 제목은 잘 몰라도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로 시작되는 노래를 기억하는 이들은 많을 것이다. 부산시 동구 수정동 출신인 그는 부산고 3학년 때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했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이후 부산과 서울 방송국에서 방송작가로 활동했었다. 부산항의 경치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겸 야외카페도 있다.⑦당산 어디 시골마을이나 남아있을 것 같은 당산이 오밀조밀한 주택가 한가운데 남아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다. 매해 음력 3월과 9월의 보름날에 초량마을의 수호신인 당산 신에게 마을의 풍요와 평안을 기원하는 제를 올린다. 어린 시절에는 당산이 무섭기만 했었지만 피난시절부터 지금까지 이런 기복신앙에 기대서 어려울 때마다 위로와 힘을 얻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진다.⑧이바구공작소 해방, 한국전쟁, 월남 파병 등의 굵직굵직한 이야기를 교과서적 역사가 아니라 삶의 이야기로 바꾸는 것은 6·25와 보릿고개를 넘으며 산복도로를 지켰던 어르신들의 생생한 목소리다. 2013년 3월 오픈한 이바구공작소는 산복도로를 관통했던 역사와 문화자원을 발굴하여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했다. 또 다양한 공연과 전시로 관광안내소와 지역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주소 부산광역시 동구 망양로 486번길 14-13 관람료 무료 개관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매주 월요일 휴관) 홈페이지 www.ebagu.or.kr⑨유치환의 우체통 왜 갑자기 우체통? 의아할 수 있다. 청마 유치환(1908~1967) 선생을 기리는 대형 우체통이 동구의 산복도로에 세워진 이유는 그가 이곳 경남여고의 교장을 두 번이나 역임했고 학교 앞에서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부산항을 향한 통유리창 카페에 앉아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쓸 수 있는 특권을 놓치지 말자. 커피 한잔으로 쉬어 가기 좋은 곳이다. 부산역에서 333번 버스를 타고 컴퓨터과학고에서 하차.⑩천지빼까리 카페 마을 정자 옆에 만들어진 카페는 이름이 예술이다. 이른바 ‘천지빼까리 까꼬막 카페’. 동구청장이 아이디어를 냈다는 이 카페는 시원하게 뚫린 유리창을 통해 세상 어느 곳도 부럽지 않은 전망, 특히 근사한 야경을 선사한다. 부산역에서 33번 버스를 타고 초량6동에서 하차.⑪까꼬막 게스트하우스 마을에서 운영하는 체험센터라는 설명보다는 게스트하우스로 이해하면 훨씬 용도가 명확해지는 곳이다. 그것도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2층 방에 올라가 불을 끄고 창밖을 바라보면 산비탈 마을의 야경이 별빛과 함께 쏟아져 들어온다고. 1층은 주방 겸 거실이지만 취사를 금지하는 대신 배달 가능한 동네 맛집 목록을 준비해 두었다.☞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interview 新 르네상스의 건축가 김진우그는 초량동에 아무 연고가 없는 이방인이다. 서울에서 판문점 ‘평화의 집’을 설계했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지금도 성북동 주택을 설계하느라 바쁜 건축가다. 그런 그가 어느날 산복도로를 찾아와 집 한 채를 구입하더니 동네에게 가장 아름다운 집으로 변신시킨 것. 구청 직원들이 ‘꼭 가봐야 한다’며 앞장섰다. 이런 방문에 익숙하다는 듯 건축가 김진우 선생이 문을 활짝 열어 주었다. ‘놀 유遊’자에 ‘벗 붕朋’자, 유붕정이라는 이름이 게스트하우스화된 이 집의 용도를 설명해 준다면 파티에 최적화된 너른 주방과 식탁, 직접 디자인한 난로와 가구들, 거실 한 면을 장식하고 있는 앤디 워홀의 그림과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은 그의 취향을 말해 준다. 비밀스럽게 자리잡은 황토찜질방과 화장실, 기둥 역할을 하는 계단 등등 구석구석이 감탄거리다. 산에서 바다로, 막힘없이 내리꽂히는 이곳의 경치에 반해 버렸다는 그는 산복도로 르네상스를 위해 기꺼이 앞장설 생각이다. 그에게 자극받은 이웃들도 스스로 집 단장에 나서고 있다니, 이미 르네상스는 시작됐다.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부산동구청 051-440-4281
  • 해외여행 | 교토 아라시야마 가을의 품격

    해외여행 | 교토 아라시야마 가을의 품격

    일본 헤이안 시대 귀족들은 가을이면 빼놓지 않고이곳 아라시야마를 찾았다.배는 느릿느릿, 강물은 푸르렀고,단풍으로 물든 산색은 화려했다.헤이안 귀족처럼 단풍 즐기기교토에서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곳은 시내에서 기차로 20분 떨어진 아라시야마다. 헤이안 시대(794~1192년) 귀족들은 이곳에 별장을 짓고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즐겼다. 일면 사치스러우면서도 우아한 그들의 문화는 일본의 전통을 이루는 원류가 됐다.아라시야마에서는 지금도 귀족풍의 단풍놀이를 즐길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사공이 직접 노를 젓는 호즈강 뱃놀이. 옛날 귀족들은 선상에서 연회를 열고, 시와 연주를 즐겼는데 이를 모방해 메이지 시대 초기부터 관광용 뱃놀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5월에는 20여 대의 배를 띄워 헤이안 시대를 재현하는 행사가 있어 절정에 이르고, 가을에는 단풍을 보러 온 사람들로 가득찬 배의 행렬을 볼 수 있다. 승선장에서 배를 타면 강을 따라 2시간 동안 16km를 유람하게 된다. 갈대밭을 지나 점점 짙어지는 단풍 군락지가 나오고, 운이 좋으면 물가에 나온 사슴이나 원숭이도 볼 수 있다. 하류로 갈수록 기암괴석이 많아 바위마다 붙은 별명을 듣는 것도 재미있다. 사자바위, 개구리바위 등은 자세히 봐야만 비슷한 점을 알 수 있다.배마다 3명의 사공이 배를 젓는데 그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배는 카누처럼 길쭉한 모양의 나룻배다. 한 명이 뒤에서 방향을 조정하면, 앞에서는 한 사람이 노를 젓고, 다른 한 사람이 장대로 강바닥과 바위를 밀어내며 속력을 낸다. 우리 배의 선임 사공은 70세가 넘은 할아버지였다. 무려 50년 동안 노를 저어 온 그는 “앞에서 5년, 뒤에서 10년은 해야 비로소 사공”이라고 말한다. 사공들은 바위마다 정확하게 짚어야 할 지점을 알고 있다. 어떤 바위들은 너무 오랫동안 장대로 짚이다 보니 깊이 패인 자국이 선명했다. 이들은 물길보다도 돌길을 지도로 삼는 것 같다. 때로는 바위 사이 좁은 협곡에서 급류를 만나 배도 흔들리고 솟구치는 강물에 옷이 흠뻑 젖기도 한다. 그래도 사공들은 여유만만, 배는 교묘하게 중심을 지키며 앞으로 나아간다. 물살이 잔잔해지는 하류에 오면 수상 편의점과 접선해 어묵 같은 간단한 간식과 음료를 살 수 있다.급류에 몸을 사리고, 단풍에 취하다 보면 2시간도 금방이다. 뱃놀이는 도게츠교 앞에서 끝난다. 150m가 넘는 도게츠교渡月橋는 ‘달이 건너는 다리’라는 뜻인데, 가마쿠라 시대 가메야마 천황이 밤에 이 다리를 보고 마치 달이 건너가는 듯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다리를 기준으로 상류는 호즈강, 하류는 가츠라강이라고 부른다. 도게츠교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아라시야마역쪽으로 들어가면 거리를 따라 기념품 가게와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다. travie info토록코 열차 호즈강까지 이동시 특별한 경험을 원한다면 먼저 토록코 열차를 탈 것을 추천한다. JR사가아라시야마역에서 내려 토록코 사가역으로 걸어가면 열차를 탈 수 있다. 토록코 열차는 흔히 볼 수 없는 증기기관차다. 무리진 단풍나무숲을 지나 20여 분 만에 토록코 카메오카역에 도착하는데, 객차마다 창문을 열 수 있어 상쾌하고, 사진 찍기에도 좋다. 운행시간┃3월1일~12월29일, 수요일 휴일 도록코 사가역 오전 9시7분부터 오후 5시7분까지 매시 7분 출발 토록코 카메오카역 오전 9시35분부터 오후 5시35분까지 매시 35분 출발 요금 어른 기준 600엔호즈강 뱃놀이 토록코 카메오카역 또는 JR우마호리역에서 하차해 39번 버스(300엔) 또는 도보로 승선장까지 이동한다. 운영시간 3월10일~11월30일 오전 9시~오후 2시 매시 정각, 오후 3시30분 출발/ 12월1일~ 3월9일 매일 오전 10시, 11시30분, 오후 1시, 2시30분에 출발 요금 어른 기준 3,900엔대숲의 바람, 사찰의 단풍아라시야마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덴류지天龍寺’를 비롯해 많은 사찰이 있다. 하지만 사찰보다 그 주위를 둘러싼 사가의 대나무숲과 소박한 매력의 노노미야신사가 더 인기가 좋은 듯하다. 이 대나무숲은 일본의 가장 아름다운 3대 대나무숲 중 하나다. 이준기, 미야자키 아오이 주연의 영화 <첫눈>에도 등장했고, <게이샤의 추억>에도 스치듯 나왔다. 담양의 죽녹원과 비슷한 분위기인데 대숲이 더 촘촘하고 울창하며 규모도 크다. 가을 대숲은 숲 밖의 단풍과 대조돼 청량감이 한층 두드러진다. 가만히 서서 댓잎에 이는 바람소리를 듣노라면 마음마저 가벼워지는 기분이다.노노미야신사는 대숲 중간 즈음에 있다. 일반적인 신사에 붉은 도리이가 있는 것과 달리 노노미야 신사의 도리이는 검다. 이점이 매우 특이했는지 유명한 소설 <겐지 이야기>의 작가도 ‘현목편’에서 노노미야의 검은 도리이와 섶나무로 엮은 울타리에 대해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노노미야신사는 사랑을 이뤄 주는 신사라고 해서 여성들이 많이 찾는다. 하지만 남녀 간의 인연뿐만 아니라 직장, 학교 등에서의 좋은 인연도 빌 수 있다. 신사 안쪽에 참배를 드리는 곳이 있는데, 소원을 비는 방법이 따로 있다. 원칙은 두 번 경배 후 두 번 박수를 치고, 다시 한 번 경배하며 소원을 비는 것이다. 그 다음 보시함에 동전을 넣고, 종 밑에 드리운 줄을 두 번 흔들어 소리를 낸다. 경배를 할 때는 두 손을 합장한 후 고개를 살짝 숙여야 한다.대숲을 빠져나와 작은 연못을 지나면 산속에 파묻힌 사찰 ‘조잣코지常寂光寺’가 있다. 산 중턱에 위치해 있어 인근에서 단풍을 보기 가장 좋은 절이다. 이 절은 1596년 일본의 유명한 시인이자 스님인 후지하라 테이카가 은둔하며 세웠다고 한다. 경내 건물과 탑이 계단을 따라 층층이 이뤄져 있어 유유자적한 느낌이 든다.<겐지 이야기>의 팬이라면 세이료지淸凉寺도 함께 둘러보도록 하자. 조잣코지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다. 현재는 절로 개조됐지만 <겐지 이야기>의 주인공 히카리 겐지의 실제 모델이었던 미나모토 노 토루의 별장이 있던 곳이다.travie info아라시야마 찾아가기 고베, 신오사카, 교토 등지에서 한큐 전철과 JR기차를 이용하면 편하다. 한큐 전철을 이용할 경우 교토본선 가츠라역에서 아라시야마선으로 환승하면 7분 만에 한큐 아라시야마역에 도착할 수 있다. JR기차를 이용할 경우 교토역에서 JR사가노선으로 환승한 후 JR사가노아라시야마역에서 하차. 교토역에서 20분 정도 소요.☞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교토의 추천 단풍명소 Best 4절과 정원이 많은 역사도시 교토에는 단풍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많다. 특히 밤에 보는 단풍은 화려한 조명과 어우러져 더욱 극적이다. 주말에는 기모노를 차려 입은 교토 멋쟁이들이 늦은 밤까지 단풍 삼매경에 빠져 있는 걸 볼 수 있다.기요미즈데라淸水寺매년 11월 중순부터 12월 초 단풍철이 되면 교토의 랜드마크 기요미즈데라가 늦은 밤 조명을 밝힌다. 못을 사용하지 않고 조립된 15m의 본당 무대는 특히 유명하다.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레이저와 멀리 교토타워의 불빛, 기요미즈데라의 늠름한 모습이 단풍 위로 펼쳐진다.고다이지高台寺거울처럼 명징한 호수에 비친 단풍으로 유명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부인 ‘네네(기타노만 도코로)’가 남편의 명복을 위해 지었는데 화려함과 소박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 매력적이다. 경내에는 가을 정취에 어울리는 일본식 다도와 좌선을 체험할 수 있는 곳도 있다. www.kodaiji.com난젠인南禪院교토 시내 동쪽 히가시산에 위치했다. 경내가 매우 넓고 아름다운데, 가메야마 천황이 불교에 심취해 거처를 이곳으로 옮긴 덕이라고 한다. 난젠인은 절 안에 있는 가메야마 천황의 정원이다. 작지만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갖추고 있다.철학자의 길난젠인에서 은각사로 향하다 보면 좁은 수로를 따라 난 평범한 길을 만날 수 있다. 이 길이 바로 철학자 니시다 키타로가 걸어 유명해진 ‘철학자’의 길이다. 마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나왔을 법한 도도한 고양이들과 그림 그리는 화가들, 조용히 걷는 잠재적 철학자들을 만날 수 있어 흥미롭다.글·사진 Travie writer 도선미 취재협조 린카이 02-319-5876
  • [지상파 하이라이트]

    ■다큐공감(KBS1 밤 10시 50분) 구들장 논은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수로 구조를 갖춰 농업유산적 가치가 높다. 구들장 논은 구들장을 놓듯 돌을 탄탄하게 쌓고, 그 위에 흙을 50㎝가량 깔아 논을 만든 것이다. 이 같은 구들장 논으로 섬사람들은 벼농사는 물론 보리나 마늘의 이모작도 가능해졌다. 프로그램은 옛 선조들의 놀라운 지혜를 만나 본다. ■근무중 이상무(KBS2 밤 8시 55분) 경찰은 국민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국민을 위해 임무를 수행한다. 하루에 한 지구대에서 받는 신고 건수는 적게는 수십 건에서 많게는 수백 건에 이른다. 프로그램은 배우 이훈, 기태영, 가수 데프콘, 오종혁, 제국의 아이들 광희까지 총 5명의 연예인이 경찰 교육부터 실제 현장에 투입돼 경찰로서 활약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독일, 미래를 이끌다(MBC 밤 11시 15분) 한국을 대표하는 축구선수인 구자철 선수. 3년 넘게 분데스리가 생활을 해 오면서 독일의 다양한 사회보장과 여유롭고 창의적인 환경을 경험했다. 이렇듯 독일에는 사람을 사람답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특별한 법이 있는데 바로 사회법전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사회보장제도를 법률로 제정한 나라 독일의 특별한 법을 알아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SBS 오후 5시 35분) 현유가 태어났을 때 잘 울지도 않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부모님은 단지 발달이 더딘 아이인 줄 알았다. 하지만 태어나고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난청과 함께 희귀병인 미토콘드리아 근병증을 진단받았다. 그 때문에 현재 5세인 현유는 숨조차 쉴 수 없어 목과 옆구리에 호스를 꽂은 채 가만히 누워서만 지내야 하는데…. ■세계의 눈(EBS 밤 11시 15분) ‘고대 그리스’ 하면 아테네와 세계 최초의 민주정을 떠올린다. 고대 그리스와 아테네의 전성기를 열고, 시민의 발언권을 키워 민주정을 정착시킨 계기는 페르시아 전쟁이었다. 페르시아 전쟁의 향방을 결정지은 전투는 두 번 있었다. 기원전 490년의 마라톤 전투와 기원전 480년의 살라미스 해전이다. 과연 두 전투의 주역들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가족(OBS 밤 11시 5분) 꽃 같은 나이에 만나 더불어 살아온 지도 어느덧 60년. 그 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떨어진 적 없는 노부부 김만복 할아버지와 황정순 할머니를 소개한다. 작고 사소한 일도 늘 둘이서 함께하는 이 부부가 언제나 함께인 데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할아버지는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 1급에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 부산 해양 융·복합소재 메카 꿈꾼다

    해양 융·복합소재 산업화사업이 부산에서 닻을 올린다. 2일 부산시에 따르면 부산·전남·제주 3개 시·도가 공동 추진하는 ‘해양 융·복합소재 산업화사업’이 기획재정부의 올해 하반기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사업에 선정됐다. 이 사업은 극한 해양환경의 특수성에 견디는 고성능 경량화 실현 신섬유와 융·복합소재를 개발해 국내 대표적 주력산업인 조선·해양플랜트, 해양레저 관련 산업의 글로벌 우위를 선점하려고 추진하고 있다. 선박 구조재 및 추진체, 심해구조물, 해양레저기구, 로프, 어망, 어구 등에 주로 사용된다. 부산시는 그동안 수입에 의존한 해양 소재의 국산화 및 고부가가치화를 추진하고 침체된 지역 섬유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2011년 처음 제안했다. 또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국가차원의 섬유소재 산업 발전을 위해 관련 산업이 특화된 전남과 제주가 공동으로 연계·협력해 주목받고 있다. 이 사업이 시작되면 2015년부터 2020년까지 6년 동안 국비, 지방비 등 3000여억원이 투입돼 해양 융·복합소재 기술개발과 산업화 지원 기반구축 등이 이뤄지게 된다. 연구개발사업은 ▲해양자원 활용형 소재 ▲생태환경 선진형 소재 ▲그린십 구현 융·복합소재 ▲하이테크 해양레저기구 융·복합소재 ▲차세대 해양구조물용 융·복합소재 등 5대 전략사업이다. 부산 강서구 미음산업단지에 해양 융·복합소재 연구·개발(R&D) 총괄센터를 설립하고, 전남 고흥과 제주에도 각각 관련 R&D 지원시설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이 사업은 ‘해양’이란 부산의 지리적 환경과 지역의 전략산업인 ‘섬유산업’을 연계한 미래 먹거리 창출 사업으로, 내년 상반기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면 많은 지역기업의 참여로 부산이 해양물류뿐 아니라 부품소재 분야에서도 실질적인 해양수도 지위를 견고히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해외여행 | 이시카와·도야마·니가타 일주-북쪽의 땅에서 만난 일본의 속살

    해외여행 | 이시카와·도야마·니가타 일주-북쪽의 땅에서 만난 일본의 속살

    규슈도, 홋카이도도 아니고 니가타에 간다고 하니 주변 반응은 한결같이 시큰둥하다. “일본에 가겠다고?” 걱정이 앞선 이 정도 반응은 양반이다. “방사능 먹으러?” 가만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 말은 재밌자고 하는 농담일까? 잠시 망설였지만 가기로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호기심이 앞서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여행은 살짝 비장하게 시작됐지만 결국 일주일간의 여행은 싱거우리만치 즐거웠다. 이시카와에서 시작해 도야마를 거쳐 니가타까지 북상하면서 걱정은 완전히 잊었다. 태풍을 교묘히 피해 날씨는 화창했고, 사람들은 늘 그렇듯 친절했다. 평화스러운 풍광 이면에 어떤 불안이 잠재해 있는 걸까? 그것까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보고 마주한 일본은 평온하기만 했다. 내가 보지 못한 일본에 대해선 모른다. 어차피 논리로는 설명이 불가하다. 단, 이번 여정이 일본을 꿈꿀 때 기대한 모든 게 충족된 여행이라곤 말할 수 있다. 대자연을 엿보고, 건강하고 화려한 음식을 즐기며, 가장 일본다운 문화를 느꼈다. ●이시카와현에도시대의 유흥, 히가시 찻집 거리여행은 이시카와현에서 시작됐다. 이시카와현은 일본 금박의 99%를 생산한다. 금을 1만분의 1밀리까지 얇게 펴 금박을 만들 만큼 수공기술이 뛰어나다. ‘유노쿠니노모리’라는 전통공예마을에선 금박공예 체험을 할 수 있다. 염색한 천을 냇물에 길게 담가놓은 모습이 이채롭다. 이시카와의 고찰, 나타데라는 717년에 지어진 절이다. 바위산 중턱에 자리 잡았다. 그 주변을 사계절 내내 초목이 감싸 안는다. 나타데라를 거쳐 카쿠센 계곡으로 여정은 이어졌다. 그곳엔 1,300년 된 야마시로 온천이 있다.이시카와는 일본의 북알프스와 바다 사이에 위치한 지형적 조건으로 인해 외부와 단절된 채 가장 일본적인 문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통만이 이시카와의 전부는 아니다.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에는 현대미술관으로 명성이 높은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도 있다. 내가 몇년 전 가나자와에 온 이유도 바로 이 미술관 때문이었다. 가나자와에선 전통과 포스트모던이 조화롭다.가나자와에는 히가시 찻집 거리가 있다. 에도시대의 거리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가나자와성 기준으로 동산(동쪽에 있는 산)의 찻집 거리라 해서 히가시(동쪽)라 부른다. 1820년경 만들어진 거리에서 200년 가까이 된 건물을 볼 수 있다. 일본어로 찻집(오차야)이라곤 하지만 단순히 차를 마시는 곳은 아니다. 에도시대, 이곳에선 부유한 상인들이 게이샤를 불러 사케를 마시며 연회를 열었다. 히가시 찻집은 상류층의 사교장이다.시마찻집은 189년 전에 지어진 건물이다. 1층에선 게이샤들이 살았고, 2층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손님을 접대했다. 찻집을 밝히는 데 전기를 쓴다는 것과 화장실을 현대식으로 개조한 것을 빼면 189년 전 모습 그대로다. 시마는 히가시 거리에서 일본 정부가 유일하게 중요 문화재로 지정한 찻집이다. 에도 시대, 시마찻집이 지어질 당시에는 엄격한 규제로 인해 2층 건물을 짓는 게 쉽지 않았다. 당시 시마찻집은 히가시 찻집 거리에서 몇 안 되는 2층 건물 중 하나였다. 시마찻집 2층으로 올라가면 ‘손님방’과 ‘대기실’이 있다. 손님은 손님방에 앉아 있다가 대기실에서 게이샤의 공연을 봤다. 에도시대의 유흥이다.히가시 찻집 거리는 가장 가나자와다운 거리를 대표한다. 교토 기온에 버금가는 격식을 갖추었으니 가장 일본적인 거리다. 찻집의 가는 격자문은 히가시 찻집 거리의 트레이드마크다. 밤이 되면 게이샤가 연주하는 샤미센이나 북소리가 격자문 사이로 흘러나온다. 지금도 이곳에선 게이샤들의 공연을 볼 수 있다. 게이샤들의 공연을 볼 수 없다면 대신 찻집 2층에서 히가시 거리를 내다보며 양갱을 곁들인 말차를 마시는 것도 좋다.일본인의 마음, 겐로쿠엔겐로쿠엔은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에 있는 정원이다. 일본 정원의 전형으로 불린다. 일본의 3대 정원 중 하나로 꼽히니 가히 국보급 정원이다. 이시카와현립 역사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겐로쿠엔 그림을 보면 600년 전 겐로쿠엔과 현재 모습이 거의 다르지 않다. 그만큼 오랜 세월을 지나온 정원이다. 겐로쿠엔이란 이름은 중국 명원名園의 여섯 가지 조건에서 왔다. 중국에서 명원을 꼽을 때 정원의 광대함, 고요함, 고색창연, 인력, 수로, 조망성 등 6가지 조건을 살피는데, 겐로쿠엔은 이 모든 조건을 갖췄다는 얘기다.본래 겐로쿠엔은 가나자와 영주의 정원이다. 가나자와의 5대 영주인 쓰나노리가 성 맞은편 경사지에 작은 정원을 만든 게 시초이고, 12대 영주인 나리나가와 13대 영주 나리야스가 대규모 정원으로 개조했다. 겐로쿠엔은 한가운데 연못을 파고 주위에 정원을 조성했지만 겐로쿠엔에는 연못만 있는 게 아니다. 산이 있고, 폭포가 있고, 섬이 있다. 매화나무 숲도 있고, 기러기가 날아가는 모양의 다리도 있다. 다리를 잇는 납작한 돌은 거북이 등 모양이다. 숲과 산, 물과 섬, 동물 등은 자연을 모방하고 축소한 결과다. 일본사람들은 겐로쿠엔을 ‘자연풍경식 정원’이라고 설명한다. 처음엔 그 말이 의아했다. 자연을 모방하고 축소했으니 내 눈에는 겐로쿠엔 자체가 인공적이다. 단적으로 겐로쿠엔의 이끼를 관리하는 사람만 스물다섯명이다. 자연적으로 보이기 위해 인공적으로 가꾼다는 역설이다.대대손손 가나자와의 영주들은 180년에 걸쳐 겐로쿠엔을 가꾸었다. 영주들은 겐로쿠엔을 통해 장수와 영겁의 번영을 염원했다. 나이든 분들이 연못을 배경으로 스탠드에 줄지어 서 단체사진을 찍는다. 시대는 완전히 달라졌지만 이곳을 찾는 일본인들의 마음엔 아마 비슷한 염원이 담겨 있을 것이다. 이상향 같은 정원에서 장수와 번영을 소망하는 마음이다. 스탠드의 저 분들 모두 건강하시기를.●도야마현북알프스의 산악협곡을 달리다지난 밤 숙소인 도야마현의 우나즈키 뉴 오타니 호텔은 깊게 파인 쿠로베 협곡에 면해 있다. 협곡 사이로 쿠로베강이 흐르고, 협곡 저편으로 우나즈키역이 보인다. 우나즈키역에서 출발하는 협곡열차를 타기 위해 이 깊은 산 속까지 왔다. 협곡열차는 ‘토롯코 열차’라는 귀여운 이름을 가졌다. 토롯코라는 이름은 광산이나 토목공사에 쓰이는 작고 지붕 없는 화물차를 말한다. 토롯코 열차는 북알프스에 둘러싸인 협곡을 달리는 산악관광열차다. 해발 224m의 우나즈키역에서 해발 599m의 게야키다이라역까지 20.1km를 1시간 10분 동안 달린다.토롯코 열차가 지나는 협곡은 일본 제일의 V자형 협곡으로 불릴 만큼 가파르다. 까마득한 두 개의 낭떠러지 사이에 놓인 붉은색 아토비키바시 철교를 따라 건너는 순간은 협곡열차의 하이라이트다. 이른 아침에 탄 열차가 산 위로 올라갈수록 공기는 점점 차가워진다. 가벼운 점퍼 하나를 걸쳤으니 한기를 피할 순 없다. 사진을 찍겠다고 완전히 오픈된 객차에 탄 것도 오산이다. 게야키다이라역까지 한 시간을 오르는 내내 차가운 공기에 몸을 떨면서도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상쾌했다.기차를 타고 375m를 올라가는 동안 하차가 가능한 역은 쿠로나기역, 카네츠리역, 게야키다이라역 등 세 곳뿐이다. 카네츠리역 부근에는 만년설 전망대가 있고, 종착역인 게야키다이라역 부근에는 족욕장이 있다. 게야키다이라역에서 족욕탕까지 가다 보면 거대한 암석 밑을 지나는데 길을 만들기 위해 암석을 잘라냈다. 사람이 그 밑을 지나면 마치 당장이라도 사람을 삼킬 것 같은 모양이다. 아쉽게도 게야키다이라역에선 만년설을 볼 수 없었다. 마침 옆 자리에 앉은 도야마현청 관광국의 다가타씨가 스마트폰의 사진을 보여준다.“얼마 전 다테야마(다테산)에 다녀왔어요.”다테야마라면 백두산보다 더 높은 산이다. 해발 3,000m가 넘는다. 다테야마의 만년설을 보며 다가타씨처럼 언젠가 꼭 여기에 오를 거라고 다짐했다. 3,000m급 산에 올랐다 하니 다가타씨가 프로페셔널한 산악인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그녀는 4년 전 대학을 졸업한, 언제나 소녀일 것 같은 앳된 아가씨다.1732년의 산간마을, 고카야마 합장촌집의 외형이 합장한 손을 닮았다 해서 합장촌이라 불린다. 메밀밭에 둘러싸인 도아먀현의 고카야마 합장촌에 들어서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천공의 성 라퓨타>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할 법한 마을이지만 민속촌이 아닌 실제 주민들이 사는 마을이다. 그중에서도 이와세케는 300년 전 집으로 가로 26.4m 세로 12.7m 높이 14m에 달한다. 메이지 시대까지 35명이나 되는 대가족이 이 집에서 살았다.합장촌의 집들은 못이나 쇠장식을 일체 사용하지 않고 나무와 밧줄을 엮어 지었다. 지붕을 엮는 데 사용한 억새는 10년마다 마을사람들이 전부 모여 함께 바꿔 준다. 합장촌은 세계문화유산이지만 민박도 할 수 있다. 온천을 즐기고, 합장촌에 묵으며 전통 화로인 ‘이로리’에 둘러앉으면 시간은 어느새 1732년으로 돌아간다. 합장촌 사람들은 30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비슷한 모습으로 살고 있다.▶travie info 토롯코 열차의 객차는 보통, 특별, 릴렉스, 파노라마 객차 등 4가지로 나뉜다. 보통 객차는 완전히 오픈되어 창문이 없고, 특별 객차는 좌석이 마주 앉은 채 고정되어 있다. 릴렉스 객차는 좌석의 방향을 앞뒤로 전환할 수 있다. 파노라마 객차의 천장은 유리다. 보통 객차 외에는 별도의 승차권을 사야 한다. 우나즈키에서 게야키다이라역까지 운임은 어른 1,660엔.●니가타현대원시림, 사사가미네 고원도야마를 떠나 니가타를 여행하다 보니 ‘설실雪室’과 만난다. 눈을 이용한 보관창고다. 쌀은 물론이고 무와 당근 같은 야채뿐만 아니라 와인도 설실에 보관한다. 니가타식 자연냉장 보관소인 셈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쓴 <설국>의 배경이 바로 니가타다.니가타는 일본 열도의 한가운데 위치하며 우리나라 동해와 접해 있다. 바닷가를 따라 도야마에서 니가타로 이동하면서 동해 넘어 속초 같은 우리나라 도시를 그려 보았다. 에치고 나나우라 해안도로를 달리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바다 저 너머에 우리나라가 있다. 문득 여정이 끝나가는 게 아쉽다. 결국 니가타에서 예정보다 이틀 더 머물기로 한다. 니가타는 점점 ‘나의 도시’가 되어 간다.이번 여행의 마지막 숙소는 니가타의 이와무로 온천에 있는 유모토야 료칸이다. 료칸의 오카미상이 너무 젊어 깜짝 놀랐다. 결혼을 하고 도시를 떠나 이곳에 와 오카미상이 되었다. 이와무로는 에도시대 중기부터 번성했던 온천이다. 기러기가 뜨거운 물에 상처를 치유하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온천을 발견했고, 이로 인해 이와무로 온천은 ‘기러기 온천’이라 불린다. 유모토야 료칸에 도착한 날 이와무로 온천 개장 300주년 기념 페스티벌이 열렸다. 벼룩시장에서 배낭과 책을 샀다. 배낭은 1,000엔, 책은 100엔이다. 배낭은 서울에서 10만원을 훨씬 더 주어도 찾아볼 수 없는 깔끔한 디자인이고, 책의 정가는 각각 3,500엔, 2,400엔이다. 아름다운 일러스트와 사진이 있는 책들이다.대자연에 둘러싸인 니가타는 일본의 100대 명산 중 11개의 산을 가졌다. 해발 1,270m의 사사가미네 고원은 묘코 고원 서남쪽에 있다. 약초 꽃이 아름답게 피어나고, 수령 300년이 넘는 가문비나무가 빽빽하게 늘어섰다. 여름철에는 산 아래보다 10도 정도 기온이 낮다.사사가미네 고원에선 여기저기서 ‘곰 주의’라고 쓴 팻말을 볼 수 있다. 아직 한국인 관광객이나 등산객은 물론이고, 외국인 방문객 자체가 없고, 인적조차 드물다. 어쩌다 마주치는 등산객은 달랑거리는 종을 배낭에 달았다. “곰이 종소리를 싫어해요.” 고원 사무소 안내인의 말이다.사사가미네 고원을 돌아볼 시간은 한 시간이 채 못 됐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사사가미네 숲에 푹 빠져 버렸다. 그곳에선 나무며 풀이며 바위, 숲 속의 모든 존재가 스멀스멀 살아 움직이고, 나무와 풀이 소리칠지도 모른다. 사사가미네 숲은 그런 곳이다.사진을 찍다 보니 일행들은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나만 남았다. 어디선가 심하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진다. 딸랑딸랑 종소리와 함께 ‘곰 주의’ 팻말이 떠오른다. 어느 순간 숲 가장자리에서 뭔가가 튀어나오더니 내 앞을 후다닥 지나간다. 뭐지! 그 순간엔 정말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다. 휴…. 원숭이다. 잠시였으나 곰과 마주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은 난생 처음이다.향긋한 차 같은 사케 이마요츠카사 양조장외지인들에게 니가타는 눈, 쌀, 사케로 유명하다. 눈으로 인해 수질이 독특하고, 쌀이 좋고, 쌀맛이 좋으니 사케 맛도 좋아진다. 사케 양조만 놓고 보면 천혜의 자연환경이다. 이를 증명하듯 니가타에만 94개의 사케 양조장이 있다. 일본 최고의 사케는 니가타의 쌀, 기후, 물, 양조술에서 온다. 고시노간바이, 구보타, 핫카이산 같은 니가타 사케는 언제는 일본 사케 탑 쓰리에 들어갈 정도로 인기가 많다.이마요츠카사 양조장은 가업으로 이어 왔다. 매년 그해 생산한 쌀을 가지고 10월 초부터 이듬해 3월까지 사케를 만든다. 매년 12월 초순이면 그해 만든 첫 번째 사케를 맛볼 수 있다. 올해에는 1.8리터짜리 3만병 정도를 만들 예정인데 내년 6월이면 모두 팔릴 거라고 한다. 100년도 더 된 이마요츠카사 양조장 건물은 드라마세트장으로 사용될 정도로 분위기가 독특하다. 이마요츠카사 양조장에선 사케가 만들어지는 과정, 저장고에 관한 이야기를 무료로 들을 수 있다. 양조장 오너인 야마모토씨의 설명을 들으며 양조장을 한 바퀴 돌고 난 후 사케를 시음했다. 여기서 맛본 사케 중 한 가지는 매우 부드럽게 넘어간다. 향긋한 차 같은 사케다. 사케의 새로운 발견이다.도쿄도 오사카도 아닌 니가타한국에서 기자들이 왔다고 가나자와 TV와 니가타 신문사에서 우리를 취재하러 왔다. TV 리포터가 묻는다. “가나자와에는 어떤 매력이 있나요?” “가나자와 같은 소도시는 복잡하지 않아 좋아요. 지방의 작은 도시이지만 도쿄나 오사카에도 없는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이란 훌륭한 현대미술관도 있고요.” 어설픈 영어로 대답을 하면서 생각했다. 여기는 정말 뉴스거리가 없구나. 그만큼 평온한 도시다. 다음날 TV 속 나를 알아봐 줄 사람을 위해 가나자와에 하루 더 있어야 했는데 일정이 허락지 않았다. 대도시가 아닌 작은 도시와 자연 속으로 여행을 하다 보니 마주치는 사람들 성정이 남다르다. 료칸 종업원들만 봐도 이를테면 교토의 료칸 종업원들이 친절하지만 엄격하다는 점에서 아주 프로페셔널하다면 도야마나 니가타의 종업원들은 아무래도 엉성하다. 그게 정겹다. 심지어 현청 공무원들 느낌도 소박한 게 남다르다. 때가 묻지 않은 공무원들이라 할까.다시 이시카와나 도야마, 니가타에 오고 싶다. 무엇보다 이번 겨울엔 스키를 타러 올 수 있으면 좋겠다. 니가타현에만 50개가 넘는 스키장이 있다. 내년 봄이나 가을엔 이시카와의 다테야마(해발 3,015m)에 오르고 싶다. 한라산이 1,950m, 백두산이 2,750m이니 다테야마는 아주 큰 산이다. 하지만 해발 2,450m까지 버스가 다닌다니 565m만 올라간다면 3,000m급 산에 오를 수 있다. 사사가미네 고원의 깊은 숲도 제대로 한번 걸어 보고 싶다. 단, 곰과는 마주치지 않기를 바란다. 도쿄나 오사카가 아닌 이시카와나 니가타에 다시 오고 싶은 이유다.☞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글·사진 Travie writer 박준취재협조 니가타현청 www.enjoyniigata.com/korean 이시카와현청 www.hot-ishikawa.jp/korean 도야마현청 www.info-toyama.com/korean
  • [기고] 덕수궁길 차량중심 가로정비 유감/김성균 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기고] 덕수궁길 차량중심 가로정비 유감/김성균 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얼마 전 서울시와 중구에서 국민들이 뽑은 가장 걷고 싶은 길인 덕수궁길을 보행자 우선의 가로에서 차량 위주로 차도를 정비했다. 이에 대해 이를 설계한 사람으로서 깊은 유감을 표하고자 한다. 덕수궁길은 생활 가로에서 차를 인위적으로 천천히 달리게 해 가로 전체를 보행자가 우선적으로 이용하도록 하는 보차공존 도로다. 이를 위해 덕수궁길에는 차도와 보도 사이의 턱을 없애 가로를 광장처럼 느끼게 하고 S형 가로구조, 볼라드, 사괴석, 험프, 바닥패턴, 식재 등 물리적·심리적으로 차량이 속도를 늦추게 하는 여러 기법들이 도입됐다. 이번 덕수궁길 정비의 가장 큰 문제는 차량 감속을 위한 원래의 설계 의도를 무시하고 차도를 바꾼 것이다. 사괴석, 험프, 바닥패턴 등 여러 차량 감속 장치를 제거하고 차량이 최대한 빨리 편하게 달릴 수 있도록 변경했다. 원래 있었던 덕수궁길 입구의 사괴석(정육면체 돌담·보도 조성에 사용되는 돌) 교차로와 차도 양쪽의 사괴석은 심리적·물리적으로 운전자가 속도를 줄이도록 설계된 것인데 이들을 완전히 제거하고 아스팔트를 입혔다. 이 사괴석을 제거하면 경관만 해칠 뿐 아니라, 운전자는 속도를 내게 돼 감속장치 없는 S자형 가로는 교통사고 위험이 높아진다. 서울시에서 얘기하는 차도 및 보도의 폭 자체는 논란의 핵심이 아니다. 덕수궁길은 인도와 차도 모두에서 사람들이 천천히 달리는 차와 함께 안전하게 길을 광장처럼 사용하도록 설계된 보차공존 도로다. 문제는 이번 공사로 인해 보행자 위주의 보차공존 도로가 차량 위주의 보차분리 도로로 바뀌게 된 것이다. 서울시 공무원은 떨어진 사괴석이 날아가 인명사고가 날까봐 사괴석을 없앴다고 하는데 원래 설계대로 차량속도가 낮은 상태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다. 사괴석이 떨어지면 떨어지지 않도록 튼튼하게 시공을 해야지 귀찮다고 무조건 제거하는 것은 그야말로 행정편의적 발상이다. 덕수궁길은 2006년 건설교통부(지금 국토교통부)가 주최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인터넷 공모에서 국민들이 최우수상으로 뽑은 대한민국의 문화유산이다. 그런데 이번 공사로 이 보행자 천국의 덕수궁길이 차량 중심의 평범한 길로 돌아가 버렸다. 서울시 공무원 몇몇 때문에 우리의 문화유산을 망쳐서는 안 된다. 덕수궁길은 이곳을 찾고 걷는 많은 국민들의 길이다. 길을 변경한 이유라고 하는, ‘정동극장으로 가는 관광버스가 편하게 달리도록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덕수궁길은 대형차량을 위한 길이 아니다. 대형차량은 이곳이 아니라 경향신문 쪽으로 진입할 수 있다. 관광객들은 관광버스로 빨리 지나가는 덕수궁길이 아니라 보행자를 위한 차 없는 덕수궁길을 보러 온다. 우리나라에서 20억원 정도의 예산으로 국민들이 이렇게 좋아하는 곳을 만든 예가 많지 않다. 덕수궁길은 서울시 도시행정의 쾌거이다. 그런데 몇 천만원의 예산을 아끼려고 덕수궁길을 이렇게 바꾸었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행정이다. 더욱이 이것이 서울시가 올해 초 발표한 ‘보행친화도시 서울비전’의 실천인지 의문스럽다. 우리 후손을 위해서라도 근대 한국역사의 상징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덕수궁길을 원래 형태대로 돌려놓아야 한다.
  • [최동호 새벽을 열며] 반가사유상의 미소와 원자력발전소 사건

    [최동호 새벽을 열며] 반가사유상의 미소와 원자력발전소 사건

    아침에 눈을 뜨자 재가동 50일 만에 원자력 발전소 신고리 1호기가 원인 모를 이유로 가동을 중지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이로 인해 한국에서 가동하는 원자력 발전소의 절반에 가까운 발전소가 가동 중단 상태에 처했다. 부품 문제로 가동 중단된 발전소의 손실액은 그 비용의 677배에 해당한다고 한다. 우울한 하루였다. 더 큰 문제가 없어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더불어 어떤 분노가 한편에서 솟구침을 느낀 것은 다만 개인적 소감일까. 금년 여름 내내 원자력 발전소들의 가동 중단으로 기간산업 전력 공급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무더위를 견뎌야 했다. 이제 겨울이 코앞에 닥쳐왔는데 다시 가동 중단이라니 정말 그동안 대책을 어떻게 세웠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한편 뉴욕에서는 ‘황금의 나라, 신라’가 세계 4대 박물관인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개최돼 뉴요커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고 보도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앉은 자세지만 정적이지 않고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고 하면서 ‘세상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신라의 은촛대를 논하면서 ‘신라는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가교의 역할뿐 아니라 중앙아시아와 아랍을 넘어 지중해까지 활발한 국제교역을 펼쳤다’고 했다. 이미 1500년 전에 국제적 교역국이었던 신라가 지닌 세계사적 존재가 뉴요커들에게 전해지면서 최근 격동하는 동북아시아의 정세 속에서 한국이 나아갈 세계사적 좌표에 대한 인식도 새로이 설정될 것이다. 반가사유상의 미소는 서양인들이 표출하지 못한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서양에서 불후의 작품으로 평가되는 모나리자의 미소가 갖는 신비로운 매혹에 대해 동서 모두 상찬해 온 바이지만 한국의 반가사유상의 평화로운 미소는 그리 널리 알려진 것 같지는 않다. 모나리자의 미소가 지닌 세속적 매혹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비극을 넘어서려는 영원한 미소를 반가사유상은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는 삼국통일 이후의 신라인들의 고뇌가 응축돼 있으며 생사의 번뇌를 극복하고 순간과 영원의 변증법을 넘어선 종교적 초월성이 내포돼 있다. 물론 사람들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연상하기도 할 게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지옥문 앞에서 신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고뇌를 표현한 것으로 인간 존재의 불안과 공포가 깃들어 있다. 뉴요커들이 반가사유상에 이목을 집중시키기 얼마 전 국보 1호 숭례문의 복원 공사가 부실로 밝혀져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남대문 기둥의 거대한 균열을 보면서 과연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국보를 지키고 보존할 능력을 가진 민족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남대문만이 아니다. 그 직전에 복원된 광화문 현판의 균열로 여러 논란이 제기되었는데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한 남대문 복원 사업의 실패는 무엇을 어떻게 변명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대한민국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는 문화재 복원 사업도 이와 무관한 게 아니다. 최근 문화재사업허가증을 무허가 업자에게 대여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할 때 그동안 자행된 부실문화재 복원사업은 필연적 결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문화재 복원은 어떤 경우에도 제대로 원칙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고 원자력 발전소 문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안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다. 가동 중단 정도가 아니라 핵발전소에서 더 큰 사고가 유발된다면 누구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단 말인가. 또한 문화유산을 망쳐 놓고 어떻게 조상들 앞에서 얼굴을 들 것인가. 이는 어느 한 사람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이를 용인하고 동조한 국민 모두의 잘못이다. 정쟁에 골몰하면서 행정관리를 무책임하고 어설프게 처벌하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만약 이런 상황이 또다시 발생한다면 반가사유상도 더 이상 자신의 후손들에게 미소 짓는 여유를 갖지 못할 것이다.
  • [北 김정은 집권 2년] 당·정·군 권력 지형도

    [北 김정은 집권 2년] 당·정·군 권력 지형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돌연 사망하면서 그의 37년 철권통치 시대가 막을 내리고 ‘김정은 시대’가 시작된 지 17일로 만 2년이 된다. 김 위원장 사망 당시 28살의 ‘불안한 후계자’에 불과했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북한 군부의 실세였던 리영호 총참모장의 전격 해임을 통해 권력 의지를 과시했고 이후 당·정·군을 빠르게 장악해 가며 명실상부한 최고 권력자에 올랐다. 아직 김일성 주석이나 김 위원장이 행사했던 절대 권력에는 못 미치지만 자신만의 독자적인 위상을 구축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안정적인 권력기반과 김 위원장이 남긴 ‘핵 유산’을 토대로 경제 개혁·개방과 대외정책에 적극 나서고 있다. 김 제1위원장이 김정일의 그림자를 벗어나기까지 지난 2년간의 과정과 향후 김정은 시대가 어떻게 전개될지 짚어봤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고모 김경희와 고모부 장성택의 보필을 받으며 권력 장악을 꿈꿨던 어린 김정은은 집권 2년 만에 친·인척의 도움 없이 안정적 권력 기반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핵심후견세력인 ‘로열패밀리’(김경희·장성택)가 여전히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바람막이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집권 초기 두드러졌던 ‘가족통치’ 형태는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로열패밀리의 집사 격이었던 최룡해 총정치국장은 김 제1위원장의 최측근으로 확실히 자리잡았고, 박봉주 내각 총리, 리영길 군총참모장을 비롯한 신진 엘리트들이 대거 등장해 권력의 중심부에 올라섰다. 선군정치 덕에 북한 권력의 핵심을 장악했던 군은 의도적인 ‘군부 힘빼기’ 과정에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총참모장, 인민무력부장, 작전국장 등 4대 핵심직위 전원이 교체돼 김정일 시대 때 누렸던 영향력을 상당부분 상실했다. 현재 북한 권력 지형은 김정일의 권력 절대독점 시대에서 김정은 집권 1년 로열패밀리에 의한 과도기적인 가족통치 시대를 지나 친인척 세력과 신진세력, 노회한 정치군인들이 김 제1위원장을 떠받들며 그의 권력을 절대화하는 과정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정은 체제를 지탱하는 세력 간 줄다리기는 있을 수 있어도 김 제1위원장의 권력을 넘볼 만한 세력은 북한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의 강력한 권력 의지와 리더십, 김경희와 장성택 등 친인척 세력과 최룡해로 대표되는 항일빨치산 2세대의 지원, 최고지도자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과 복종을 요구하는 스탈린식 정치 문화와 공안기관에 의한 철저한 엘리트·주민 통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봉건적 권력세습이 단기간 내에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제1위원장은 자신의 핵심 측근 세력들을 당과 군, 내각에 배치하고 군 핵심인물들을 당의 핵심보직인 상무위원에서 전원 제외함으로써 군에 대한 당의 통제력을 높여가고 있다. 다만 김정일 시대의 선군 정치로 군 자체가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졌던 터라 군 보수 세력의 힘은 아직도 무시할 수 없는 상태라는 점에서 세력 간 갈등이 김 제1위원장의 권력 공고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개혁파 권력의 원심력인 고모 김경희(현재 와병중)가 사망할 경우 장성택의 입지가 약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김 제1위원장을 보좌하는 세력 간 균형이 깨지고 군 보수파에 일시적으로 힘이 쏠릴 공산이 크다. 그동안 김 제1위원장은 군사적으로는 호전적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요소까지 도입해 개혁·개방을 추진하며 아버지와 차별화된 리더십을 보여왔다. 북한 주민들의 식생활도 다소 개선돼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지난해 이후 북한을 탈출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면접조사를 실시한 결과 김 제1위원장에 대한 북한 주민의 지지율이 50% 이상이라고 답한 사람은 61.7%에 달했다. 이는 군부 강경파의 힘을 빼는 동시에 이들의 불만을 억누르며 경제개혁을 추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개혁파와 보수파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핵·경제발전 병진노선’을 추진해 왔던 김 제1위원장의 정책이 한계에 부딪히는 시점이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한국의 서원’ 9곳 세계유산 등재 추진

    ‘한국의 서원’ 9곳 세계유산 등재 추진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위원회는 2015년 세계유산 등재 신청 대상으로 병산·소수·옥산 서원 등 ‘한국의 서원’ 9곳을 선정했다고 29일 밝혔다. 위원회는 최근 열린 4차 회의에서 이같이 의결하고, 문화재청을 통해 2015년 1월까지 세계유산센터에 등재신청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이번에 등재 대상으로 추천되는 서원은 도동(대구 달성)·돈암(충남 논산)·무성(전북 정읍)·필암(전남 장성)·옥산(경북 경주)·병산(경북 안동)·소수(경북 영주)·도산(경북 안동)·남계(경남 함양) 서원 등이다. 문화재청은 이들이 현존하는 국내 600여개 서원 가운데 한국 서원의 특징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서원은 사림(士林)이 조선의 성리학을 성숙, 실현한 공간이며 건축 구조와 형식이 자연과 일체가 되는 경관을 지닌 점에서 세계유산의 등재 기준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같은 회의에서는 2014년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대상으로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이 선정됐고,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 신청 대상으로는 ‘고령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과 ‘한국의 전통 산사’가 낙점됐다. 또 전통 산사에는 선암사(전남 순천), 법주사(충북 보은), 마곡사(충남 공주) 등 자연경관에 한국 전통건축의 미를 합친 7곳이 선정됐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유산 2000억원 ‘기부꽃’ 피우고 하늘로…

    유산 2000억원 ‘기부꽃’ 피우고 하늘로…

    억만장자임을 숨기고 평생을 검소하게 살아온 미국의 현대판 ‘스크루지 영감’이 약 2000억원의 유산을 자선 기부하고 98세 일기로 생을 마감해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26일(현지시간) 시애틀타임스에 따르면 잭 맥도널드가 미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평생 동안 모아온 1억 8760만달러(약 1988억 5600만원)의 공익신탁금이 그의 유언에 따라 시애틀아동연구기관, 워싱턴대 법대, 구세군 등 3개 자선단체에 각각 기부될 예정이다. 아동연구기관은 그의 공익신탁금이 올해 워싱턴주에서 기부된 금액 가운데 가장 많으며, 미국에서도 6번째로 많은 금액이라고 전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에서 태어난 그는 평소 구멍이 난 스웨터를 입고 열심히 할인쿠폰을 모을 정도로 검소하게 생활해 ‘스크루지 영감’으로 불렸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과 개인적으로 모은 재산으로 공익신탁기관을 세워 지속적인 투자와 관리를 하며 재산을 불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워싱턴대 법대를 졸업한 뒤 30년간 재향군인관리국의 변호사로 일할 때도 수백개의 자선단체에 익명으로 기부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대덕특구·KAIST… 박정희가 만든 산업화 상징공간

    박근혜 대통령이 부친인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토대를 닦은 산업화의 상징적 공간을 잇따라 찾고 있어 눈길을 끈다. 박 대통령의 핵심 국정과제인 ‘창조경제’를 구현하기 위한 기반이라는 점에서도 눈여겨볼 행보다. 박 대통령이 29일 방문한 대덕연구개발특구는 1973년 11월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조성된 곳이다. ‘과학입국’ 기치 아래 지난 40년 동안 과학기술의 중심이자 경제발전의 동력 역할을 해왔다. 박 대통령은 “야산과 구릉지, 배밭이 전부였던 대덕은 세계적인 과학기술도시가 되었고 오늘날 대한민국은 과학경쟁력 세계 7위의 반열에 올랐다”고 평가했다. 박 대통령이 대덕특구에 이어 방문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도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만들어졌다. 우수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위해 1971년 설립된 한국과학원(KAIS)이 모태가 됐다. 이공계 출신(서강대 전자공학과)인 박 대통령은 2008년 KAIST에서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전날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주재한 장소인 서울 홍릉 한국개발연구원(KDI)도 박 전 대통령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KDI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할 당시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전문경제연구소가 필요하다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1971년 3월 설립됐으며, 지금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싱크탱크’로 자리매김했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 8월 취임 후 첫 여름휴가를 박 전 대통령과의 추억이 서린 경남 거제시 저도에서 보내고, 박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새마을운동을 저개발 국가들에 적극 보급하는 등 ‘오버랩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김규환 선임기자의 차이나 로드] ‘엘리트 산실’ 산시방…그들의 정치적 고향 산시성 가다

    [김규환 선임기자의 차이나 로드] ‘엘리트 산실’ 산시방…그들의 정치적 고향 산시성 가다

    지난 22일 오후 중국 중부 산시(陝西)성 성도(省都) 시안(西安)의 비림(碑林)에는 100여일간의 가뭄 끝에 단비가 촉촉히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쓰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입장한 관람객들의 얼굴엔 굵은 빗줄기에도 아랑곳 없이 세계적인 귀중한 문화유산을 감상한다는 즐거움으로 가득 차 올랐다. ‘비림’은 중국의 명필·명사들이 남긴 1095개 비석 등이 나무의 숲을 이루고 있는 곳.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 ‘어린’ 백성들을 계도하기 위해 왕희지(王羲之)·구양수(歐陽修)·왕유(王維)·소식(蘇軾·東坡) 등 일세를 풍미한 대가들의 비문(碑文)·묘지(墓志)·서법비(書法碑)·석각(石刻) 1만 1000여점을 한데 모아 선보이는 ‘비석 박물관’이다. 특히 비림은 1969년 하방(下放)됐던 왕치산(王岐山) 당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가 ‘다오유’(導游·문화유산 해설사)로 근무하던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방’은 도시 청년들을 정신 재무장 차원에서 일정 기간 농촌·공장에 보내 근무하게 하는 제도다. 이곳 다오유인 바이쉐쑹(白雪松·27)은 “왕 서기가 40여년 전 이곳에서 나와 같은 다오유를 했다는 얘기를 선배들로부터 들었다”며 가끔 한 번씩 그가 일하는 모습을 떠올려 본다고 전한다. 시진핑(習近平) 체제 출범 1년을 맞으면서 산시성이 ‘권력 엘리트의 산실’로 떠올랐다. 당·정·군 요직에 포진하고 있는 이들 가운데 산시성과 끈끈한 인연을 맺고 있는 인물들이 크게 늘어난 덕분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왕치산 서기와 같은 해에 산시성 옌촨(延川)현 량자허(梁家河)촌에 하방돼 야오둥(窯洞·토굴)에서 7년간 생활했다. 그의 부친 시중쉰(習仲勛) 전 부총리는 시안 북쪽 푸핑(富平)현에서 태어나 1930년대 공산당 산베이(陜北) 근거지의 지도자로 활약, ‘중국 지도자의 피’가 흐르는 곳이다. ‘산시방’(陝西幇)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한 ‘상하이방’(上海?), ‘석유방’(石油幇·석유업계 고위관료 출신의 정치 세력)과 같이 정치적 파벌을 형성하고 있다는 게 베이징 외교가의 공통된 분석이다. 산시방은 크게 네 부류로 나뉜다. 첫째, 시 주석과 자오러지(趙際) 당중앙조직부장, 팡펑후이(房峰輝) 인민해방군 총참모장, 장유샤(張又俠) 인민해방군 총장비부장, 장바오원(張寶文)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부위원장 등과 같이 지관(籍貫·본적)이 산시성인 인사들이다. 공산당 조직·인사를 총괄하는 자오 부장은 리젠궈(李建國) 전인대 부위원장의 후임으로 5년간 산시성 당서기를 지냈다. 자오 부장과 팡 총참모장, 장 총장비부장의 지관은 각각 시안과 웨이난(渭南), 셴양(咸陽) 빈(彬)이다. 팡 총참모장은 본적이 셴양 빈현일 뿐 아니라 산시 바오지(寶鷄)시의 제21집단군 등에서 35년간 복무했다. 둘째는 왕 서기와 왕천(王晨) 전인대 부위원장처럼 외지인이면서 이곳에 하방돼 인연을 맺은 경우다. 시 주석의 ‘반부패 전쟁’을 총지휘하는 왕 서기는 문화혁명의 광풍이 몰아치던 69년 옌안(延安)에 하방됐다. 그는 비림 등 산시성 박물관에서 7년간 근무했고, 1973~76년 시베이(西北)대 역사학과를 졸업했다. 베이징 출신인 왕 부위원장도 같은 해 하방돼 1974년까지 옌안지구 이쥔(宜君)현에서 고초를 겪었다. 금융 부문을 총괄하는 마카이(馬凱) 부총리는 본적이 상하이지만, 혁명 간부 자녀 교육을 위한 시안 바오위(保育) 소학교를 2년간 다녀 산시방에 이름을 올렸다. 셋째는 산시방의 최연장자인 위정성(兪正聲)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전국위원회 주석과 ‘차기 권력 핵심’ 진입이 유력한 루하오(陸昊) 헤이룽장(黑龍江)성장 등 산시성에서 태어난 인사들이다. 위 주석은 옌안, 루 성장은 시안에서 태어났다. 루 성장은 문혁 후 시안시 첫 고교생 당원(18세), 첫 베이징대 직선 학생회장(20세), 베이징 최연소 국영기업 총수(28세), 최연소 베이징 부시장(35세), 최연소 장관급 간부(공산주의청년단 중앙서기처 서기·41세) 등의 신기록을 쏟아냈다. 넷째는 리잔수(栗戰書) 당중앙판공청 주임과 창완취안(常萬全) 국방부장 등은 외지인이면서 산시성 근무 경력을 가진 인사들이다. ‘시진핑 비서실장’으로 불리는 리 주임 역시 시안시 당서기 등을 맡아 5년간 이곳에서 일했다. 창 부장은 시안시 린퉁(臨潼)현에 주둔한 47집단군 등에서 28년간 군 생활을 했다. 산둥(山東) 출신인 리젠궈 전인대 부위원장은 1997년부터 10년 동안 산시성 당서기를 지냈다. 자오정융(趙正永) 산시성 당서기는 안후이(安徽)성 출신이지만 2001년 이후 지금까지 산시성에서 일하고 있는 만큼 이곳에 뼈를 묻겠다는 각오다. 산시방은 인정과 의리를 중시한다. 박준영 전남지사는 2005년 당시 저장(浙江)성 당서기를 맡고 있던 시 주석을 한국으로 초청해 그와 인연을 맺었다. 지난해 4월 베이징을 방문한 박 지사가 국가부주석이던 그에게 면담을 신청하자 그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흔쾌히 박 지사와 만났다. 그에게 과거의 인연을 중시하는 산시 사람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얘기다. 산시성은 비록 척박한 황토 고원에 자리 잡고 있지만, 혁명 요람인 옌안과 천년 고도인 시안을 품에 안고 있는 만큼 자존심이 세고 결속력 또한 강하다. 양녠톈(楊念田) 시안 고신(高新·하이테크)산업개발구 관리위원회 부서기는 “산시성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문화적 자부심이 대단하고 고향에 회귀하려는 마음이 강해 유대감이 끈끈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khkim@seoul.co.kr
  • [시론] 광화문과 남대문/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시론] 광화문과 남대문/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경복궁은 조선의 정궁이다. 서울의 동서남북에는 높고 크고 우람하지 아니하나 잘생긴 북악, 인왕, 낙산, 남산이 있고 북악산 북쪽에 북한산이 있고 남산 남쪽에 한강이 있고 그 남쪽에 관악산이 있다. 그 얼굴 부위의 가장 아름다운 곳에 경복궁이 있다. 주위 산천과 흔연히 어우러져 하나가 된 모습이다. 주위 산하와 꼭 맞는 비례로 크지도 작지도 않으면서 원래 그 자리에 자연 그대로 있었던 것 같다. 참으로 자연의 아름다움 그대로를 보는 듯한 모습이 경복궁이다. 위대한 예술가이기도 한 대원군이 1864년 재건한 당시에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아름다운 궁궐이었을 것이다. 이 아름다운 궁궐을 일제가 1910년 우리나라를 강점 후 바로 허물기 시작해 근정전, 경회루 등 몇몇 전각만 남겨 놓고 다 허물어 버렸다. 세계의 어느 침략자도 그 나라의 소중한 문화유산이요, 나라의 정궁을 무참히 짓밟은 예는 없다. 그것도 모자라 1915년에는 일제가 바로 거기서 축산박람회를 열어 짐승들의 분뇨로 경복궁을 욕보이고 또 바로 근정전 앞을 가로막고는 크고 높고 우람한 총독부건물을 지어 서울 장안을 위압적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1993년부터 1995년 사이에 일제만행으로 지어진 총독부건물철거 때 우리나라는 벌집을 쑤신 듯 찬반여론이 신문방송을 휩쓸었다. 천신만고 끝에 총독부 건물을 그래도 허물고 경복궁이 제 모습을 차츰 찾아가서 엉뚱한 곳에 콘크리트로 세워졌던 광화문도 허물고 새로운 광화문이 근 100년 만에 제자리에 다시 들어섰다. 그래도 워낙 일제의 만행이 극악하여 완전한 복원은 요원한 숙제로 남는다. 그렇지만 광화문과 그 북쪽으로 흥례문과 회랑이 들어서고 그 북쪽에 근정전이 보이고 북악산, 북한산 등 아름다운 경관을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조선 정궁인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복원 공사가 한창인 2008년 2월 서울 도성의 정문인 숭례문에 일제가 아닌 우리나라 괴한이 불을 질러 참으로 무참하게 타서 무너져 버렸고 그 광경을 전 국민이 분노하고 비통하면서 바라보았다. 숭례문의 복원공사가 한창일 때인 2010년 8월 광화문 복원공사가 끝났다. 모두가 축하하고 경하해마지 아니하였다. 그런데 그다음 해인가 ‘광화문’ 현판에 금이 가고 갈라졌다고 언론기관이 연일 대서특필했다. 나무라는 것은 베어내어 목재가 되고 집이 돼서도 계속 살아 움직여 썩을 때까지 몇 백년이고 줄고 늘어서 금이 가고 터지고 휘고 튀어나오고 오그라든다. 이를 막기 위해 나무를 켜서 훈증해 쪄 말리고 바닷물에 오래 담가 다시 말리고 온갖 기술을 동원하여 그늘에 몇십 년이고 잘 말려도 온·습도에 역시 민감하다. 터지고 휘는 것 등은 마찬가지다. 박물관 창고에 잘 보관 중인 100년 넘은 목기들도 역시 온·습도에 민감하다. 하물며 광화문과 그 현판은 눈, 비, 바람과 햇볕에 그대로 노출돼 있지 아니한가. 2013년 숭례문이 복원됐다. 참담하고 비통한 마음을 달래며 모두가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단청에 문제가 생겼고 기와가 잘못되었다는 둥 신문 방송이 연일 떠들어 댔다. 언론이 문화재에 관심을 갖는 것은 좋으나 애정을 가지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꼼꼼히 따져보고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고 신중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사회부의 사건기사처럼 특종을 생각해선 올바른 기사가 될 수가 없을 것이다. 복원을 시작하기 전부터 대책이 잘 세워졌는지, 나무는 잘 마른 것을 쓰는지, 구재와 신재는 잘 조합이 되는지, 단청재는 나무에 칠해 보는 등 오랜 실험을 해보았는지 살펴보고 너무 복원을 서두르는 건 아닌지 등을 꾸준히 살폈어야 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보다는 중구난방으로 눈에 보이는 흠집만 잡아내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모두 근본대책을 생각해보는 긴 안목으로 문화재를 바라봐야 할 것 아닌가. 문화재 복원에 관한 모든 것은 빨리빨리 서둘러서 시행하면 언제든지 하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교훈도 꼭 가슴에 담아야 할 것이다.
  • 루이비통이 알려주는 ‘서울의 명소’

    루이비통이 알려주는 ‘서울의 명소’

    올해 출간 15주년을 맞은 ‘루이비통 시티 가이드’가 서울편이 처음 포함돼 15권 단행본으로 나왔다. 1998년부터 매년 발간되고 있는 루이비통 시티 가이드는 세계 주요 도시의 호텔과 레스토랑, 갤러리, 박물관, 맛집 등을 감각적인 글과 사진으로 소개해 전세계 여행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서울은 베이징, 케이프타운과 함께 이번에 처음 추가됐다. 홍콩, 런던, 로스앤젤레스, 멕시코, 마이애미, 모스크바, 뉴욕, 파리, 도쿄, 베니스 등 기존 도시는 새로운 내용과 형식으로 풀었다. 서울편은 총 320장 분량으로 도시 고유의 특색을 보여주는 총 600곳의 명소를 담았다. 명동, 동대문 등 패션 거리를 비롯해 광화문, 삼청동 등 역사문화유산 지구, 이태원, 가로수길 등 ‘메갈로폴리스 서울’의 다양한 모습이 나와 있다.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로 출간되며 전 세계 루이비통 매장에서 판매한다. 개별 가이드 4만 2500원, 단행본 세트는 63만 5000원이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