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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캔들의 역사/루스 웨스트하이머 등 지음

    스캔들의 역사/루스 웨스트하이머 등 지음

    1970년대 초 미 국무성에 근무하던 키신저는 아름다운 여성들과 잦은 회합을 가졌다. 강한 영국식 억양에 당당한 풍채를 지닌 중년 외교관이었던 그는 질 세인트 존이나 말로 토머스 같은 신인 여배우들과의 부적절한 만남에 대해 해명을 요구받자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권력은 최고의 최음제다.” 물론 이를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남자가 지닌 권력이 최음제 역할을 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여성 권력자는 남성 권력자와는 현저히 다른 경험을 해왔기 때문이다. 선박왕 오나시스의 부(富)의 권력은 그에게 재클린이란 매력적인 여인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반면,‘처녀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정치적 권력은 그녀가 적당한 파트너를 찾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됐다.“남자들은 실질적인 권력을 지닌 여자들을 경멸한다.”고 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 루스벨트의 말은 그런 점에서 정당한 지적인지도 모른다. ‘스캔들의 역사’(루스 웨스트하이머 등 지음, 김대웅 옮김, 이마고 펴냄)는 이처럼 복잡다단하고 역동적인 권력과 섹스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역사적으로 볼 때 권력을 지닌 남성들은 늘 주위에 많은 여성들을 거느림으로써 자신을 과시해왔다. 이런 현상이 제도화된 전형적인 형태가 바로 하렘(harem, 이슬람 사회에서 부인이 거처하는 방)이다. 책은 오직 남편의 성적 만족을 위해 존재하는 처첩들의 집단이라는 하렘의 이미지는 서양인들의 몰이해와 환상에서 비롯된 것임을 분명히 한다. 하렘은 오히려 ‘수녀원’과 닮은 점이 많다는 것이다. 하렘은 남성들의 권력 전시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유능한 여성 정치인 양성소 구실도 했다.20여년이나 오스만제국을 통치한 쾨셈 술탄은 하렘이 배출한 대표적인 여성 통치자다. 이같은 일부다처제는 오랫동안 남성 팬터지의 원천이 돼왔다. 이슬람문화권에서는 어떤 남자도 성적 파트너를 여럿 갖는 데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일처제가 공식화된 오늘날 사정은 다르다. 책은 그 대안의 하나로 자기보다 훨씬 젊고 매력적인 여성과 결혼하는 이른바 ‘전리품 아내(trophy wife)’현상을 다룬다. 전리품 아내란 말은 1989년 ‘포천’지에서 “유력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이 조강지처를 버리고 자신보다 젊고 아름답고 세련된 ‘전리품 아내’를 배우자로 선택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고 소개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만일 여자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 세상의 모든 돈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을 것”이라고 한 오나시스가 재클린과 결혼한 것이야말로 ‘전리품 아내’ 현상의 상징적인 예다. 이 책에서는 더이상 새롭지 않은 이 현상을 지도급 인사들의 ‘자기탐닉 문화’의 한 단면으로 간주한다. ‘섹스를 위한 권력’이 있다면 ‘권력을 위한 섹스’도 있다. 여성이 신분상승의 수단으로 섹스를 이용해온 전통은 유서가 꽤 깊다. 구약성서 ‘룻기’는 가장 오래된 사례 가운데 하나다. 룻은 죽은 남편의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모압에 살던 과부. 그들은 너무 가난해 들에서 수확하고 남은 곡식을 주워먹으며 연명할 정도였다. 결국 룻은 나오미의 강요에 의해 나오미의 돈많은 친척 보아즈의 발 앞에 자신을 던지고 만다. 현대 들어 가장 극적인 사례는 에바 페론이다. 아르헨티나 팜파스 지역의 작은 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그녀는 섹스 파트너들의 도움을 받아 배우로 성공했고, 페론 대령과 만나 마침내 아르헨티나의 퍼스트레이디가 됐다. 당 현종의 애첩 양귀비나 프랑스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퐁파두르 부인도 이와 비슷한 범주에 속한다. 미국 사람들은 대통령의 사생활에 유난히 관심이 많다. 대중매체 또한 이에 영합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이 책은 뿌리 깊은 미국 대통령들의 스캔들 역사를 다룬다.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평등을 외치며 노예를 소유했고, 흑인과 백인의 결혼을 비난하면서도 자신의 흑인노예였던 샐리 헤밍스를 정부로 삼아 말과 행동의 불일치를 보여줬다.19세기 후반 아일랜드 민족자치운동의 기수 찰스 스튜어트 파넬은 유부녀 캐서린 오셰이에 빠져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재촉했고 결국 몰락했다. 사랑과 권력의 제로섬 게임을 벌인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밖에 클레오파트라에 얽힌 팜므 파탈의 신화와 오해, 대영제국을 일군 엘리자베스 1세의 ‘처녀성의 정치’, 금기의 벽 앞에 무릎 꿇은 게이 정치가 등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준다.1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눈에띄네~이얼굴] ‘내머리속의 지우개’ 손예진

    [눈에띄네~이얼굴] ‘내머리속의 지우개’ 손예진

    5일 개봉하는 ‘내 머리 속의 지우개’(제작 싸이더스)는 단아한 이마의 손예진(22)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들로 오랫동안 코끝이 시릴 러브 스토리다.그녀는 데뷔 이후 처음으로 유부녀 연기를 했다. 건설현장의 목수인 남자 철수(정우성)를 사랑해 부모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하는 수진 역이다. 그러나 영화의 ‘본론’은 결혼하기까지의 우여곡절이 아닌 결혼 이후의 이야기. 알츠하이머병으로 속수무책으로 기억을 잃어가는 그녀는, 영화의 중반쯤부터는 울고 울고 또 운다. 수진을 어떻게 도와줄 수 없어 괴로워하는 철수, 그런 남편에게 한가닥 희망도 줄 수 없는 수진은 온전한 기억이 한뼘이라도 남아있을 때 멀리 떠날 채비를 한다.“나한테 잘해 줄 필요없어. 나 다 까먹을 텐데….” 기억을 잃어가는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철수에게 수진이 눈물을 삼키며 이렇게 말하는 대목쯤이면 웬만한 강심장도 눈물을 찍어내게 될 듯하다. 그녀에게 영화는 이번이 5번째. 지난 2002년 ‘취화선’으로 스크린 신고식을 치른 뒤 ‘연애소설’‘클래식’‘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등 공백없이 꾸준히 배우로서의 이력을 다져왔다. 여린 이미지 때문일까. 그러고 보면 유난히 멜로물과 인연이 많았다.“이젠 액션 같은 장르에 도전해봐야지 생각하다가도 막상 촬영이 끝날 즈음이면 다음번엔 (멜로연기를)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아쉬움이 들곤 했다.”는 그녀는 “사랑을 표현하는 연기에 갈수록 매력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녀 스스로 가장 슬펐던 장면은, 기억을 잃어가던 수진이 잠시 기억이 돌아와 철수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던 대목.“촬영이 끝난 뒤 탈진했었다.”는 그녀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이경기의 스크린 1인치]욕망을 때우는 핫도그

    ‘뚱뚱하고 무기력해지려면 햄버거를 먹어라!’. 독립 영화계의 최대 행사로 평가 받는 선댄스 영화제에서 2004년 감독상을 수상한 모간 스펄록의 (슈퍼 사이즈 미)는 미국인들의 주식처럼 애용되고 있는 햄버거에 대한 폐해를 고발하기 위한 것이다. 감독이 직접 30일 동안 햄버거만 먹으면서 겪는 신체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이색적인 작품이다. 전세계 남녀 노소를 불문하고 이미 ‘패스트푸드’는 ‘비만’을 비롯해 무기력과 우울증 등 정신과 육체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음식이라는 격렬한 비난을 받고 있다. ‘패스트푸드는 미국을 거대한 환자 집합소로 만들어 가고 있는 주범’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시간에 쪼들리는 현대인들에게는 저렴한 가격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편리하게 먹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흡사 담배·술과 같은 습관성 중독증’을 보이고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햄버거나 핫도그 등 패스트 푸드는 등장 인물들의 소소한 일상 풍경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는 소품 중의 하나로 애용되고 있는 대상. 햄버거의 경우는 (더티 해리) 등의 경찰 영화에서 강력 사건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형사가 피살체를 확인하면서 천연덕스럽게 먹어대는 모습이 단골로 보여지고 있다. 흥미있는 점은 햄버거를 상용하고 있는 경찰들의 경우 별거중이거나 부부 관계가 원만하지 않다는 환경을 갖고 있다. (베벌리 힐스 캅)이나 (48 시간)에서도 긴박한 범죄 현장에 뛰어 들고 있는 흑, 백 형사들이 식사 대용으로 햄버거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핫도그는 제품 모양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강인한 남성이나 경제적 능력, 혹은 독신녀들이 남자를 갈망하는 설정으로 자주 등장하고 있다.(스테이트 오브 그레이스)에서는 막 출소한 주인공이 포장마차에서 핫도그를 구입해서 먹는데 이는 법적 징계를 받았지만 자신의 야심을 다시 추스르겠다는 의지력으로 풀이할 수 있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에서 지하철 역 매표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루시(샌드라 불럭)는 직장 상사와 함께 길에서 팔고 있는 핫도그로 점심을 때우는 장면이 보인다. 가족없이 홀로 자취하고 있는 그녀는 늘상 자신의 외로움을 채워줄 남성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욕구를 드러내는 상징적 제스처로 핫도그를 즐겨 먹는 그녀는 마침내 철로에 쓰러진 남자를 구출해 주면서 그의 반려자가 되는 행운을 얻게 된다. 핫도그는 간편하고 맛도 있지만 서서 먹는다는 것에서 은연중 쓸쓸함을 풍겨주고 있다. 이 때문이지 유부녀보다는 결혼을 갈망하는 처녀들이 이 음식을 단골로 먹는 것으로 설정되고 있다. (영어완전정복)에서도 공주병 환자 영주(이나영)는 핫도그를 먹으면서 다가오는 남자가 자신을 매우 사랑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장면이 전반부에 등장한다. (투 윅스 노티스)에서는 뉴욕 부동산 재벌로 등장하는 조지(휴 그랜트)가 핫도그 하나를 사면서 100달러를 지불하는 등 자신의 경제적 부를 드러낸다. 몇 가지 사례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햄버거와 핫도그는 ‘비만의 원흉’이라는 악평을 듣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남녀가 갖고 있는 심리적인 욕구를 은연중 드러내는 매우 요긴한 역할을 해내고 있는 중이다.
  • 영화 ‘사과’ 주연 문소리

    영화 ‘사과’ 주연 문소리

    가을햇살이 한가롭게 드리운 한 레스토랑의 창가.긴 생머리를 한 여성이 샐러드를 상큼하게 한 입 베어 물고는 샐쭉 웃는다.자신을 짝사랑하는 남자를 앞에 앉혀 놓고는 당돌하게 내뱉는 한마디.“친구 소개시켜 드릴까요.” 배우 문소리(30)가 20대 후반의 발랄한 커리어 우먼이 됐다.장애인(‘오아시스’),바람난 유부녀(‘바람난 가족’),억척스러운 아줌마(‘효자동 이발사’) 등 비교적 무거운 역할만 소화해냈던 그녀가,약간은 얄밉기까지 한 서울 깍쟁이로 변신한 것.영화 ‘사과’의 촬영현장에서 만난 그녀는 새롭고도 낯설었다. “저라고 늘 사회·역사적인 메시지를 가진 영화만 하라는 법 있나요.현재 내가 고민하고 예민하게 느끼는 감정들을 한번 표현해보고 싶었어요.30대 중반을 넘기면 제게 사랑이야기가 별로 중요할 것 같지 않아서요.” 영화 ‘사과’(감독 강이관)는 사랑이라는 인생의 힘겨운 통과의례를 거쳐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무역회사에서 일하는 현정은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밝고 씩씩한 여성이다.어느날 남자친구 민석은 이별을 말한다.그 무렵 상훈(김태우)이 사랑을 고백하고,이를 받아들이는 현정.“평범한 사랑의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면서 미세한 떨림을 만드는 영화”라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이 영화를 택한 건 바로 이 때문.“환상이 아니라,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사랑이야기”가 그녀의 마음을 끌었단다.또 은근히 이번 역할은 덜 부담스러울 거란 기대도 있었다.“쉬울 거라는 생각은 안했지만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그동안 너무 어두운 영화만 했나봐요.” “실제 여자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하는지,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원하는 모습까지 같이 담아야 하는지 감독과 함께 고민하며 촬영하고 있다.”는 영화 ‘사과’는 문소리의 다섯번째 출연작.새달까지 촬영을 마치고 내년 1월 개봉할 예정이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양정아 “데뷔 10년… 이번엔 망가집니다”

    양정아 “데뷔 10년… 이번엔 망가집니다”

    단정하고 세련된 ‘커리어 우먼’ 역만 주로 맡아왔던 탤런트 양정아(34)가 연기생활 10년 만에 첫 푼수 연기에 도전한다. 변신의 무대는 15일 첫 선을 보이는 SBS 금요드라마 ‘아내의 반란’(극본 윤정건 연출 곽영범).SBS의 ‘공격적’ 가을개편에 따라 매주 금요일 오후 9시55분부터 2시간 연속 방송된다.‘아내의 반란’은 30대 부부 세 쌍을 통해 멀쩡해 보이지만 속으로 곪아 있는 부부관계를 그릴 드라마.제작진은 가족시청 시간대가 아닌 만큼 섹스트러블,외도 등 요즘 부부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적나라하면서도 코믹하게 그려 나갈 계획이다. 드라마에서 양정아는 여고 동창생 정강(변정수),진애(홍리나)에 비해 학벌,집안이 다 모자라는 양필순 역을 맡았다.삼겹살 가게를 운영하는 구두쇠 남편과 싸우다 얻어터지기 일쑤인 캐릭터.눈가에 멍이 드는가 하면 이른바 ‘몸빼바지’에 총천연색 상의를 걸친 촌스럽고 억센 아줌마로 안방극장을 누빈다.“솔직히 ‘두 번째 프러포즈(KBS)’의 오연수씨 의상 정도면 되겠지 했는데,감독님이 준비한 의상을 전부 퇴짜놓으셨어요.완전히 망가져서 제가 봐도 못봐줄 정도예요.(웃음)” 가수보다는 배우라는 꼬리표가 더 자연스러운 가수 이상우가 남편 김병구로 등장한다.이상우와는 과거 KBS 단막극 ‘괴상한 신혼여행’에서 부부의 연을 맺은 바 있어서인지 인터뷰 도중 말을 주고받는 모양새가 마치 오래된 부부 같다.호흡이 척척 맞는다. 1993년 데뷔해 ‘우리들의 천국’‘종합병원’ 등에서 깔끔하고 단정한 이미지로 남성들을 설레게 했던 그녀는 얼마 전 종영된 KBS 일일연속극 ‘백만송이 장미’에서 처음으로 유부녀로 나왔다.이번엔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15살이나 된 딸까지 뒀다.미혼인데 이런 역들이 부담스럽지는 않을까.“필순이 같은 역할은 연기생활의 활력소죠.연기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계기도 되고….경험이 없어서 걱정이죠.(웃음)”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씨줄날줄] 특수부 여검사/손성진 논설위원

    1961년 4월20일 우리나라 최초의 여판사인 황윤석 판사가 약물을 복용하고 사망했다 해서 한동안 떠들썩했다.미모의 32세 여판사의 죽음을 싸고 억측이 난무하자 검찰이 수사에 나섰으나 타살이나 자살의 증거는 찾지 못했다.남편은 감기 때문에 ‘베나드릴’이라는 약물을 복용했다고 말했다.서울법대를 졸업하고 23세에 고시에 합격한 황 판사의 요절을 세인들은 몹시 안타까워했다.1951년 황 판사보다 한해 먼저 고시 사법과 2회에 합격한 여성 법조인 1호는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의 어머니인 고 이태영 여사다.이씨가 32세의 유부녀로서 서울법대에 입학해 늦깎이 법학도가 된 것은 신민당 부총재와 고문을 지낸 고 정일형 박사의 외조 덕이 컸다.이 여사는 이승만 대통령이 야당 정치인의 아내라는 이유로 판사 임명을 거부해 줄곧 변호사로 활동하며 여성 권익 향상과 인권 변론에 헌신했다. 그 뒤 여성 법조인은 한동안 배출되지 못하다가 환경처 장관을 역임한 황산성 변호사와 대통령직속 여성특위위원장을 지낸 강기원 변호사가 사시 12회로 합격했다.1971년에는 이영애 전 춘천지법원장이 사시에 수석합격해 화제를 낳으면서 최초의 여성 부장판사,최초의 여성 법원장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이 변호사의 뒤로는 전효숙 헌법재판소 재판관,국회 동의 절차를 밟고 있는 김영란 대법관 후보자와 전수안 서울고법 부장판사,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이 여성 판사의 맥을 이었다.이영애 전 법원장과 강 전 장관은 가톨릭 세례를 통해 모녀의 인연을 맺은 사이다. 최초의 여검사는 사시 22회인 조배숙 변호사 등 2명이다.얼마후 판사로 전직한 조 변호사는 여성에게는 영장 당직을 맡기지 않고 지방에는 여판사를 배치하지 않던 관행을 깼다.지난 6월 의정부지검 형사4부장으로 발령나 첫 여성 부장검사가 된 조희진 검사는 가장 오래 근무한 여검사로 기록되고 있다. 여성 파워는 법조계에서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전체 법관 가운데 여성은 274명으로 14.6%에 이르렀고 검사는 약 7%인 104명이 여성이다.이지원 검사가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서울지검 특수부에 입성했다.여성 특수부 검사로는 김진숙 검사에 이어 두번째다.거친 특수수사 분야에서의 여검사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손성진 논설위원 sonsj@seoul.co.kr
  • [책꽂이]

    ●대한민국 특산품 오마이뉴스(오연호 지음,휴머니스트 펴냄) 지난 2000년 시민기자제를 도입해 창간한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언론계의 텃세와 세상의 편견과 싸워온 이 신문은 마침내 ‘유력’ 매체로 우뚝 섰다.이 책은 ‘미디어 혁명가’인 저자가 뉴스게릴라(시민기자)와 함께 펼쳐온 ‘세상 바꾸기 프로젝트’를 소개한다.1만원. ●고문의 역사(브라이언 이니스 지음,김윤성 옮김,들녘 코기도 펴냄) 네로 황제는 서기 64년에 일어난 로마의 화재에 자신이 연루됐다는 사실을 부인했다.그리고 고문으로 얻어낸 정보를 토대로 기독교인과 유대인들을 범인으로 지목했다.그들은 늑대 가죽을 뒤집어쓴 채 야생의 개들에게 조각조각 물어 뜯기거나,역청이 발라진 채 불태워져 밤의 횃불이 되는 등 희생을 치렀다.책은 잔혹한 고문의 역사를 다룬다.17세기 러시아로부터 유럽에 소개된 ‘손가락 죄는 틀’등 갖가지 고문도구도 소개한다.9000원. ●국가와 종교(미야타 미쓰오 지음,양현혜 옮김,삼인 펴냄) 국가권력과 로마서 13장의 연관성을 살폈다.로마서 13장은 바울서신뿐만 아니라 신약성서 전체를 통해 국가권력에 대한 태도를 가장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는 장이다.그것은 종종 절대 군주들이 그들의 권력을 뒷받침하는 정치이념 체계로 왕권신수설을 주장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독일 교회투쟁과 칼 바르트 사상을 전공한 저자는 유럽 그리고 근대 일본의 정치사상을 관통하는 기독교의 영향에 대해 로마서 13장을 축으로 분석한다.1만 5000원. ●작은 창 너머 보이는 풍경(김정선 지음,성바오로 펴냄) 제주도의 사계를 노래한 수필집.돌하르방을 맨 처음 만든 사람은 1754년 영조 30년에 김몽규 목사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모자를 쓰고,커다란 눈에 주먹코,일자로 다문 입,배 위에 양손을 모은 돌하르방의 모습은 익살스러우면서도 정겹다.8500원. ●나만 모르는 유럽사(일본역사교육자협의회 지음,양인실 옮김,모멘토 펴냄) 중세에는 독신 여성을 완전한 여성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그런 만큼 기사들의 동경 대상은 유부녀였다.장애가 많으면 많을수록 훌륭한 사랑으로 간주됐다.그러니 주군의 부인과의 사랑을 꿈꾼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금지된 사랑이나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에 나오는 기사 랜슬롯과 왕비 기네비어의 불륜 등 왕비나 왕의 약혼녀와 신하인 기사의 사랑 이야기가 미화된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이 책에는 유럽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흥미로운 ‘교과서 밖 이야기’들이 실렸다.1만 2000원.
  • 30일 개봉 ‘누구나 비밀은 있다’

    장현수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누구나 비밀은 있다’(제작 태원엔터테인먼트·30일 개봉)는 미니어처 향수 세트 같은 영화다.앙증맞은 용기에 갖가지 향을 밀폐시켜 후각의 상상력을 부추기는 향수 세트처럼,영화도 그 비슷한 전략으로 관객을 유혹한다. 한 남자를 둘러싸고 세 여자들이 은밀한 포즈를 취한 포스터를 기억하는 관객들에게 영화의 전략은 명중한다.포스터 속 여자들은 극중 자매.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선명히 나열되는 여주인공의 캐릭터들은 저마다 하나씩 은밀하되 아기자기한 드라마의 씨눈을 품고 궁금증을 부채질한다. 진지한 척하지만 바람기 다분한 남자 수현(이병헌)은 재즈바 가수 미영(김효진)과 첫눈에 ‘필’이 꽂힌다.세 자매의 막내인 미영은 “섹스하고 싶은 남자는 내가 고른다.”고 선언하는 자유연애주의자.수현과 미영의 만남은 드라마의 ‘미끼’가 된다.미영과 사귀면서 수현은 그녀의 두 언니 선영(최지우),진영(추상미)과도 아슬아슬한 관계를 엮어간다. 이렇듯 묘한 러브게임을 시작한 영화는,세 자매의 사랑과 욕망에 관한 서로 다른 해법과 연애관을 대비시키는 데 주력한다.둘째 선영의 캐릭터는 미영과 완전히 딴판인 책벌레 대학원생.남자친구 하나 없지만 “사랑은 벼락처럼,도둑처럼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라는 몽롱한 연애관으로 사랑의 판타지를 믿고 있다.맏언니이자 유부녀인 진영에게 사랑은 두 여동생들과는 또 다르다.“가족끼리의 섹스는 근친상간”이라는 무심한 남편을 둔 그녀에게 사랑은 ‘일상에 지친 낡은 욕망’일 뿐이다. 세 자매의 캐릭터들을 차례차례로 부각시키며 영화는 슬슬 도발에 들어간다.여자들에게 수현은 내재된 욕망을 솔직담백하게 돌아보게 만드는 각성제 역할을 한다.수현의 유혹에 선영은 꾹꾹 억눌렀던 욕망을 발견하고 스스로도 놀라고,진영은 힐끔힐끔 수현을 훔쳐보면서 삶의 탄력을 되찾는 것 같다.수현과의 결혼을 결심하는 동안 미묘한 심리변화를 일으키기는 미영도 마찬가지.“사랑은 쇼핑이며,좋은 물건 찾으려면 자주 골라봐야 한다.”는 평소 주장과 달리 오랫동안 자신을 짝사랑해온 남자친구(탁재훈)에게 전에 없던 감정을 발견한다. 한 남자를 놓고 자매들이 저마다 비밀연애를 즐기는 사이사이에 유쾌함과 익살이 곁들여졌다.선남선녀 주인공이 엮는 아기자기한 로맨틱 드라마를 좋아하는 관객에게는 더없이 맛깔스러운 밑반찬이다.간간이 베드신이 끼어들기는 하지만,그로 인해 극의 분위기가 눅눅해지거나 질척거리는 순간은 없다.오히려 은밀한 몇몇 장면들은 관객의 분방한 상상을 유도하는 경쾌한 장치로 주효했다.아일랜드 영화 ‘어바웃 아담’이 원작.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눈에 띄네~ 이 얼굴] ‘효자동 이발사’ 문소리

    문소리(30)는 스크린이라는 사막에 자신을 인정사정없이 내던지는,‘무지막지한’ 배우다.어떻게 하면 예쁘게 보일까,어떤 캐릭터를 맡아야 이미지 관리에 득이 될까,이래저래 몸을 사리는 여배우들과는 거리가 멀다. 보기 딱할 만큼 안면근육을 비트는 뇌성마비 장애인(오아시스),이웃집 고교생과 바람을 피우는 유부녀(바람난 가족)에서,이번엔 뽀글뽀글 파마와 몸빼바지에 툭하면 악다구니를 쓰는 우악스러운 아줌마(효자동 이발사)가 됐다. ‘효자동 이발사’에서의 역할은 엉겁결에 대통령의 이발사가 되는 남자주인공 성한모(송강호)의 아내 민자.이발소 보조로 일하다 성한모의 수작에 덜컥 임신을 하더니 하필이면 4·19 의거일에 아들을 낳는다.데모가 한창인 광장 한복판에서 남편이 끄는 손수레에 누워 산통을 겪는 모습은 그대로 코미디의 한 장면. 1960∼70년대가 배경인데다 소시민 아낙네 역할이니 메이크업 한번 제대로 했을 리 없다.무공해 매력을 또 한번 ‘날것’으로 과시한 셈이다. 성한모에 무게중심이 기운 영화여서 그녀의 역할 비중은 크지 않다.그러나 어린 아들이 중앙정보부에 끌려간 뒤 몸져누워 속앓이하는 모성애 연기는 휴먼드라마의 깊이를 책임진다.빠른 속도로 구사하는 경상도 사투리도 완벽한 수준.“경상도 출신인 부모님 덕분에 흥분하면 사투리가 튀어나온다.”더니 “촬영내내 아줌마용 덧버선만 신고다녀 이젠 집에서도 덧버선을 찾게 된다.”며 소박하게 웃는다.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2000년)으로 스크린 데뷔했다.‘오아시스’로 제59회 베니스영화제 신인배우상을 받으면서 국제적 스타로 발돋움했다.새로 준비중인 작품은 멜로영화 ‘사과’(감독 강이관,제작 청어람).솔직하고 당찬 20대 후반의 커리어우먼이 된다. 황수정기자 sjh@˝
  • [29일 TV 하이라이트]

    ●결혼하고 싶은 여자(오후 9시55분) 순애는 시봉이 주식투자에서 쪽박을 찬 사실을 알고 절망한다.영훈은 노골적으로 신영에게 관심을 보이며 접근을 시도하던 중,준호에게 부탁해 신영과의 저녁식사 자리를 만든다.준호도 내심으론 영훈이 신경쓰이지만 호기심 반,재미 반으로 영훈과 함께 신영을 만나러 나간다. ●생방송 쟁점토론(오후 3시10분) 정당개혁과 국회개혁의 큰 과제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그 바람직한 방안을 짚어본다.17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각 당은 ‘일하는 국회,깨끗한 국회’를 실현하기 위한 개혁 방안을 내놓고 있다.김재홍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당선자,공성진 한나라당 국회의원 당선자가 패널로 참석해 집중 토론한다. ●문화센터(오전 11시) 정자태극권의 37가지 동작을 계속해서 배워본다.이미 배웠던 동작 중 포호귀산,람작미 리,람작미 제,람작미 안 동작과 사단편 동작을 간단히 배워 반복한다.이어서 새로운 동작으로 주저간추,우도련후,좌도련후,사비세 동작,좌운수,우운수,단편 등의 새로운 품세를 거듭해 익힌다. ●1050정면승부(오후 10시50분) ‘버스안에서’의 코너에서는 핸드볼 선수인 여고생들이 부모님 생각에 눈물 흘린 사연과 많은 나이에도 자격증을 따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아버지 등 많은 시민들을 싣고 버스는 구리로 향한다.‘대결 한판승부’에서는 알찬 여행지가 숨어있는 경기도 부천에서의 즐거운 여행이 시작된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오후 7시5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44세 노총각 원형식씨와 노모.가난하지만 행복한 두 모자의 사랑속으로 들어가본다.야생 다람쥐와 한가족이 된 신기한 사연,다람쥐 가족을 만나본다.5살 산골 소년과 닭의 못 말리는 사랑 이야기, 5살 강서가 쓰레기 줍기에 집착하는 이유를 살펴본다. ●4월의 키스(오후 9시50분) 정우는 채원을 찾아가 편지가 전해지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고 말하며 의혹을 갖는다.재섭에게 번번이 거절당하던 진아는 정우에게 채원을 좋아하는 것 아니냐고 떠보다가 채원과 정우와의 관계를 눈치챈다.재동은 순영에게 점점 관심을 쏟고 있던 차에 순영이 유부녀라는 말을 듣고 황당해한다. ●피플 세상속으로(오후 7시 30분) ‘역도자매’라 불리는 수진이와 수민이는 강원소년체전에 출전하기 위해 연습중이다.어려운 가정환경에도 역도선수의 꿈을 키워가며 밝게 살아가는 자매에게 삶의 고비는 미래의 꿈에 대한 각오를 더욱 다지게 만들었다.함께 꿈을 키워가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역도자매를 만나본다. ˝
  • [눈에 띄네~이 얼굴] ‘바람의 전설’ 김수로

    김수로(31)는 보증수표다.어떤 장르의 영화든,극중 캐릭터가 뭐든 자기방식대로 소화해서 화면에 생기를 불어넣는 ‘분위기 메이커’. ‘바람의 전설’(제작 필름매니아)에서도 본연의 임무를 완수했다.그의 역할은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며 아줌마들을 공략하는 ‘제비’이자,주인공 풍식(이성재)의 고교동창생 송만수.지루한 일상에 지친 풍식 앞에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더니 ‘춤=비타민’이란 공식을 일깨워 그를 사교계로 이끈다. 춤이 예술이라 믿는 풍식과는 대조적으로,그는 끝까지 ‘날라리’ 이미지를 고수한다.통넓은 흰바지에 삼류냄새를 풍기는 싸구려 목걸이를 걸치고 나와서는 온갖 폼을 다 잡으며 풍식에게 기본스텝을 가르친다.자신은 ‘춤꾼’이지 ‘제비’가 아니라고 우기는 풍식에게 끝내 폭소가 내장된 대사를 날린다.“그럼,자기가 제비 아니면 까마귀야? 정체성이 없어∼” 춤바람난 유부녀를 결정적으로 유혹해내는 아이디어 무기도 그가 개발했다.양쪽 바지 호주머니에 호두알을 넣고 몸을 바짝 붙였다가 상대방이 깜짝 놀라기라도 하면 기다렸다는 듯 은근하게 속삭인다.“신경쓰지 말아요,간식이니까.” 서울예술대에서 연극을 전공한 뒤 연극무대에 서던 그가 영화계에 발을 들인 건 1999년 ‘주유소 습격사건’의 철가방 역을 맡으면서.이어 ‘반칙왕’에서 주인공 송강호를 괴롭히는 프로레슬러 유비호 역으로 범상찮은 연기력을 자랑했다.이후 ‘화산고’‘달마야 놀자’‘재밌는 영화’ 등에 쉴새없이 출연해왔다. 팬층이 두껍기로 충무로에서도 소문난 ‘알짜 조연’이다.시사회장의 무대인사때 주인공보다 더 큰 박수를 이끌어내 번번이 “알바(아르바이트) 고용했냐?”는 우스갯소리를 듣곤 한다. 황수정기자 sjh@˝
  • ‘도청 덫에 걸린 여고동창’ 통화로 본 性세태

    ‘외도’(外道)가 일상의 용어가 된 지 오래다.비윤리·부도덕 등의 가치규정과는 무관한 듯하다.인터넷 공간에선 말할 것도 없다.주로 ‘주부 바람’‘바람’‘유부남’‘간통’‘만남’이란 검색어로 접근된다.불륜을 감정해 준다는 심부름센터 사이트도 버젓이 올라있다.불륜을 통해 일탈을 꿈꾸는 내용의 노래를 담은 음반이나 일기가 사이버 공간을 통해 수집되기도 한다.불륜이 일상의 소재가 된 텔레비전 드라마는 외도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가치 기준마저 혼란스럽게 한다.전화통화로 자신들의 불륜 경험담을 주고받다 이를 도청한 협박범에게 곤욕을 치른 ‘도청 덫에 걸린 유부녀 여고 동창생’사건(서울신문 19일 11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우리 사회의 ‘외도 세태’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협박범은 구속됐고 경찰은 이들 동창생의 비밀을 보호해야만 했다.아직까지 남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고,인터넷에 뜨는 참담한 결과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문제의 주부들은 배우자들로부터 고소를 당해 형사처벌을 받거나 가정파탄이라는 불행은 막을 수 있었다.그러나 경찰 관계자들은 이들과 같은 일탈이 손쉽게 발견될 수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강조한다. 각종 성적 일탈과 외도,불륜이 일상화된 사회.특히 평범한 가정을 꾸려가던 중년 주부의 일탈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범행에 이용됐던 주부들의 전화통화 내용을 통해 이들의 일탈 심리의 기저를 들여다 보고,심리 및 상담 전문가 등의 분석과 진단을 들어본다. ●외도경험 없었던 평범한 주부들 39세 동갑내기 여고 동창생 3명은 평범한 가정생활을 해왔고 나름대로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를 위해 노력해온 주부들이었다.이들이 외간 남자를 처음 만난 건 2∼3개월 전이었다.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당사자를 직접 신문하고 녹음 테이프를 분석한 경기도 고양경찰서의 S형사는 이들이 이전에는 외도 경험이 없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동창생 중 1명인 A씨.남편과 함께 하던 자영업이 실패한 후 조그만 사무실에 다니는 그녀는 지난해 12월 중순 ‘아는 언니’로부터 한 남자를 소개받았다. 처음엔 호기심에 만났다.이 언니는 자신의 불륜 경험을 고백하면서 A씨에게 “괜찮은 사람이니 만나 보라.”고 권했다. 협박범이 녹음하고 경찰이 증거물로 확인한 통화 내용을 보면 그녀는 만난 지 한달여 만에 그 남자와 불륜에 익숙해 있었다. “남편과는 3∼4년전부터 이미 식었어.그 남자와는 새로운 느낌이야.남편보다 새로운 기분이 들고 더 좋아.잘 해주고.만나면 우선 저녁을 먹고 노래방에 가.백세주 한잔하면 기분이 야릇해져.그러면 모텔에 함께 들어가지.그게 코스야.” 지방에 사는 전업주부인 A씨의 친구 B씨.“나는 낮에도 여관에 들어 갔었다.좀 불안했어.관계를 마치고 화장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까 그 남자가 옷을 벗은 채 서 있는 거야.내가 민망해 하니까 ‘남자 벗은 것 처음보냐.’고 당당히 말하던데.과격한 듯 하지만 싫지는 않아.” 역시 지방에 사는 또 다른 여고 동창생 C씨도 전업주부다.그녀도 두 동창생들처럼 뚜렷한 외도 경험이 없었고 역시 돈 때문에 남자를 만난 것도 아니었다.그러나 통화 내용은 예사롭지 않다. “난 그 남자 처음 만난 그날 모텔에 갔었어.그 남자차를 타고 모텔로 들어갔어.남편보다는 새로운 맛이 나고,더 잘 해주던데.” 담당 형사는 “이들 동창생이 서로 전화를 통해 불륜 행각을 낯뜨거울 만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서로 자랑삼아 말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범인은 이들이 전화로 털어놓은 불륜행각을 8개의 테이프에 녹음한 뒤 20여 차례에 걸쳐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다.금품을 요구하는 범인의 협박에 시달리다 못해 그중 한 명이 “더 이상 범인에 끌려나닐 수 없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담당 형사는 이들이 ‘도청의 덫’에서는 빠져 나왔지만 ‘불륜의 덫’에서도 빠져나올 수 있을지에 대해선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경찰에서 피해자 진술을 하면서 남편과 자식에 대해 별다른 죄의식을 토로하지 않았고,출신학교 등 구체적 개인 정보는 진술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한사코 부탁해 담당 형사는 ‘○○도에 소재한 여고’로만 진술을 받았다. A씨 등은 평균 1주일에 한 차례 정도 불륜남을 만났다.이목을 피해 이웃 도시에서 원정 만남을 갖기도 했다. 상대남 3명은 모두 비교적 시간이 많은 개인사업자들이었다.3명 모두 전과가 전혀 없는 평범한 생활인이었다.담당 형사는 “신고를 받은 뒤 범인을 잡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힘든 잠복근무 끝에 범인을 검거한 다음에 테이프의 내용을 다시 들어보았다.그러자 이들 세 동창생을 보호해야 하는지 솔직히 회의가 생겼다.”고 토로했다. 협박범이 도청 장치를 설치한 지역은 오피스텔과 사무실,유흥업소 등이 밀집한 곳이었다.하지만 반경 500m 이내를 도청했는데도 세 동창생말고도 불륜을 확인할 만한 통화가 여러건 더 있었다고 진술했다.범인은 나머지 불륜 사례는 통화 내용만으로는 신분이나 연락처를 확인할 수 없어 속칭 ‘작업’(범행) 대상으로 삼지 못했다. ●일탈행동의 심리기제 평범한 주부이던 이들이 짧은 시일안에 외간 남자에게 빠지고,그 결과로 저지른 외도 행각을 비록 흉허물 없는 사이라도 ‘자랑삼듯이’ 노골적으로 털어놓은 심리기제(心理機制)는 무엇이었을까. 많은 사람들은 자기 남편 혹은 아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인 듯’ 마주보며 의지해 살아간다.하지만 새로운 세상에 대한 ‘상상’과 ‘동경’을 갖기도 한다. 불륜이 일상화된 TV 드라마는 이런 상상력을 현실화하고픈 욕구를 더욱 증폭시킬 수 있다. MBC의 ‘성녀와 마녀’는 한 남자의 아내와 다른 여자간의 줄다리기를 보여준다.SBS의 ‘이브의 화원’은 남편이 결혼전 사귀던 여자가 남편의 아이를 데리고 등장해 결국 이혼하는 스토리다. 종영을 앞둔 KBS 2TV ‘나는 이혼하지 않는다’도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다. 가난이 싫어 옛 애인을 버리고 돈 많은 여성과 결혼한 남자의 옆집에 평범한 남자와 결혼한 옛 애인이 이사오면서 벌어지는 갈등을 중심축으로 다양한 남녀이야기가 등장한다. 정신과 전문의 김정일 박사는 “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자꾸 보다보면 현실감이 떨어져 불륜을 정당화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한다.“영상 이미지(心象)가 현실과 차이가 없는데 대개의 드라마가 불륜을 미화하는 것처럼 시청하는 주부들도 불륜을 미화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여고동창생의 경우 외간 남자와의 만남에 필연적 인과관계는 없었다.일탈을 감행한 심리적 배경엔 ‘상상력의 덫’이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김용숙 대표는 흔히 ‘놀이방 도우미’ 여성들이 하는 ‘남편들도 밖에서 딴 여자들과 신나게 놀텐데,우리라고 집에만 처박혀있을 필요가 있나요?’라는 말로,최근 문제가 되고있는 여성들의 불륜심리를 꼬집었다. 그는 “남편이 외도하는 기미가 보이면 여자들은 ‘맞바람 피울테니 알아서 해!’라고 협박한다.아내의 맞바람이 무서워 외도를 그만 뒀다는 남편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보여주듯 맞바람은 아무 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괜한 복수심으로 나 자신까지 내팽겨치는 결과로 이어진다.”며 “누구에게나 낯선 설렘이 찾아올 수는 있으나,두려움과 죄책감 수치심으로 성욕에 항복하지 않는다.수치심을 잃어버린 사람이야말로 가장 추한 사람이다.”고 말했다. ‘원초적 본능’이든 ‘중년의 우울(憂鬱)’이든 아니면 ‘홧김에 서방질’이든 우리사회에서 ‘불륜’이 이처럼 이젠 결코 드문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불륜도 내가 한다면 누구에게나 로맨스’라는 말이 있지만 말이다. 고양 한만교기자 mghann@˝
  • ‘도청 덫’에 걸린 여고동창생

    유부녀인 여고 동창생 3명이 서로 통화하면서 외도행각을 털어놓다 무선전화 도청 전문가에 걸려들어 협박을 당하는 곤욕을 치렀다. 경기도 고양경찰서는 18일 O모(39·여)씨 등 3명에게 불륜사실을 폭로하겠다며 돈을 요구한 권모(43·전과 7범)씨를 공갈혐의로 구속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고 고양 화정동 모 빌딩내 사무실에 근무하는 O씨는 지난 1월초 대전에 사는 동창생(39·주부)과 사무실 무선전화로 통화하면서 외간남자와의 불륜을 털어놓았다.대전 친구 역시 자신의 불륜행각을 O씨에게 토로했다. 그러나 O씨는 자신의 사무실과 300여m 떨어진 모 오피스텔에서 무선전화 도청전문가인 권씨가 용산전자상가에서 구입한 고성능 수신기와 안테나·녹음기를 동원,통화내용을 도청하고 있는 사실을 알리 없었다. 며칠후 O씨는 안성에 사는 또 다른 동창생(39·주부)과 통화했고 이 동창생 역시 외간남자와 불륜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이들 3명은 한달가까이 통화를 계속했고 서로의 불륜사실 등이 담긴 통화내용은 범인 권씨에 의해 테이프 8개에 모두 녹음됐다. 권씨는 지난달 28일 O씨에게 “꽃가게인데 꽃을 배달하겠다.”며 사무실 위치를 물었고 O씨는 불륜남으로부터의 선물로 생각하고 사무실을 알려줬다.O씨는 배달된 꽃다발안에 든 녹음테이프 1개와 협박편지를 보고 경악했다.테이프엔 “남편보다 새로운 맛도 있고 더좋다.”는 등 친구와의 대화내용이 들어 있었고,협박편지엔 “한 사람이 1000만원씩 3000만원을 주지 않으면 불륜사실을 남편들에게 알리고 인터넷에도 띄우겠다.”고 적혀 있었다. ●바람난 사회 범인 권씨는 이후 20여 차례나 전화와 편지로 협박을 계속했고 O씨를 위협해 대전 친구의 전화번호도 알아냈다.다급해진 동창생 3명은 범인의 요구대로 돈을 모아 화정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지난 17일 만나 “범인에게 끌려다닐 수 없다.”면서 경찰에 신고,권씨를 검거했다.경찰은 “녹음된 통화내용 중엔 낯뜨거울 만큼 구체적인 내용도 들어 있었다.”며 혀를 찼다. 권씨는 경찰에서 “사무실과 오피스텔이 밀집한 곳이긴 하나 반경 500m내에서 불륜과 관련된 또다른 전화가 여러건 더 있어 나도 크게 놀랐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권씨가 은행 무선전화를 도청,고객의 카드나 통장 계좌와 비밀번호 등을 알아내 텔레뱅킹으로 돈을 인출했다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으로 처벌된 경력이 있다고 밝혔다. 고양 한만교기자 mghann@˝
  • 다국적 청춘들 재기발랄 해프닝/새달1일 개봉 ‘스페니쉬 아파트먼트’

    ‘온도가 높으면 선도(鮮度)가 떨어진다?’ 새해 1월1일 개봉하는 ‘스페니쉬 아파트먼트’(L'Auberge Espagnole)는 통념을 뒤집고 이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은,신통한 프랑스산 코믹드라마다.시간이 갈수록 감성의 온도가 올라가는데도 화면을 처음 대할 때의 신선함이 끝까지 유지된다. 영화의 주요공간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기숙사 아파트.주위의 권유로 오랜 꿈인 작가를 포기하고 공무원 취직공부를 하기 위해 25세의 프랑스 청년 자비에(로맹 뒤리스)가 뒤늦게 합류한 공간이다.세계 곳곳에서 온 젊은 남녀학생들이 함께 사는 아파트는 갖가지 재료들이 뒤섞여 부글부글 끓고 있는 스튜냄비 같다.서로 다른 사고방식,문화적 차이 등으로 재기발랄한 해프닝들이 꼬리를 물고 터진다. 영화는 자비에를 구심체로 가지를 뻗어나간다.홀어머니와 여자친구 마틴느(오드리 토투)의 만류를 뿌리치고 유학을 왔으니 마음이 편할 리 없다.낯선 이국생활에 적잖이 방황하는 그에게 가장 큰 위안처는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프랑스인 신혼부부.그러나 유부녀 안네소피(주디스 고드레쉬)와 자주 만나면서 성적 환상에 사로잡히고 결국 넘지 못할 선을 넘고만다. 벨기에,영국,스페인,독일,이탈리아,덴마크 등 다국적 청춘들이 부대끼며 엮어내는 영화의 최고 매력 포인트는 하나하나 제 몫을 다하며 살아 있는 캐릭터들.영국에 두고온 남자친구 몰래 바람을 피우다 기숙사를 발칵 뒤집어 놓는 웬디,매사에 깔끔하고 정확해야 직성이 풀리는 독일인 ‘범생이’ 토비아스,늘 지저분해서 잔소리를 바가지로 먹는 이탈리아인 알렉산드로….모두 웬만한 영화 주인공으로도 손색이 없을 만큼 성격이 뚜렷하다.특히 영국에서 놀러온 웬디의 말썽쟁이 남동생 윌리엄(케빈 비숍)은 영화를 배꼽잡는 코미디로 띄워올리는 ‘히든 카드’. 이국땅에서 다국적 젊은이들이 빚는 사랑과 우정,갈등 등을 소재로 삼은 영화는 내내 경쾌한 톤을 유지한다.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몇가지 메시지는 야무지게 전달한다.언어장벽으로 극명히 드러나는 문화적 간극,조금씩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해가는 젊은이들의 우정 등은 영화가 생각없는 코미디가 아님을 입증한다.질펀한 성적 농담으로 말초신경만을 자극한 채 고민하지 않는 국산 코미디 영화들을 반성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프랑스로 돌아와 마틴느와 헤어진 자비에가 마지막 진로를 선택할 즈음에는 청춘의 비애가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를 두고두고 기억하게 할 또 하나의 주요장치.영국 록그룹 라디오헤드의 애상짙은 선율 ‘No Surprises’가 반복되면서 청춘영화의 미묘한 떨림은 한껏 증폭된다. 황수정기자 sjh@
  • 책 / 문학 속의 에로스

    디터 벨러스호프 지음 / 안인희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사회적으로 보잘 것 없는 여자하고만 육체적 관계가 가능했다는 독일의 문호 괴테.그는 다른 사람과 약혼한 여자를 사랑했다가 포기했던 자신의 쓰라린 체험,그리고 상관의 부인에게 접근했다가 거절당한 뒤 마음의 상처를 받고 자살한 친구의 경험담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녹여냈다.괴테가 현실의 샤를로테를 사모하면서 겪은 내면의 갈등은 그의 소설에서 베르테르가 약혼자 있는 로테라는 여인을 사랑하면서 느끼는 고뇌와 일치한다.작품의 배경인 18세기에는 자유연애가 만발했지만,시민문화는 아직 인간의 성을 도덕과 사랑이라는 관념으로 포장하도록 했음을 소설은 여실히 보여준다. ●작품에 드러난 작가들의 성적 성향 분석 ‘문학 속의 에로스’(디터 벨러스호프 지음,안인희 옮김,을유문화사 펴냄)는 인류 역사의 흐름 속에서 때로는 금기시되고 때로는 그 존재를 인정받기도 했던 에로티시즘 혹은 에로스가 문학 속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변천돼 왔는가를 살핀 지적 에세이다. 책은 괴테의‘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부터 우엘벡의 ‘소립자’,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엘리스의 ‘아메리칸 사이코’ 등 최근작까지 근대 계몽주의 이후 200여년에 걸쳐 서양소설에 등장하는 에로티시즘의 변천사를 다룬다.독일의 권위 있는 하인리히 뵐 문학상을 수상한 저자(78)는 개인의 욕망이 당대의 시대 배경과 사회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좌절됐는가를 구체적인 작가와 작품을 통해 밝힌다.작가의 개인사와 시대적 배경과의 관련 또한 꼼꼼하게 들여다본다.귀족 집안 유부녀들의 도움을 받아 사회적 출세를 꿈꾼 발자크나 스탕달,기묘한 변덕 때문에 죽을 때까지 아내와 불화를 겪었던 톨스토이,성(性)이 돈처럼 시장의 법칙을 따르게 된 세상에서 일부 남자들이 모든 여자를 차지해 버렸다며 집안으로 숨어버린 우엘벡,프루스트와 토마스 만의 작품에 나타나는 동성애적 성향 등 작가의 개인사에 얽힌 성적인 문제들이 낱낱이 들춰진다. ●에로문학의 압권은 데이비드 로렌스·헨리 밀러 저자는 주인공의 심리를 꿰뚫어 보며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관능의 코드를 조율한다.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지금 나는 그녀가 일주일 안에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영원히 안녕’”이라는 장면이 나온다.이에 대해 저자는 “자신의 동기를 감추고 거리두기로 일관하는 사랑 싸움에 대한 묘사는 섀도-마조히즘의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형태를 적절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분석한다.‘그림자놀이’라고 부르는 이러한 행위를 일종의 섬세한 ‘권력놀이’의 하나로 보는 것이다. 에로문학의 압권은 단연 데이비드 로렌스와 헨리 밀러의 소설이다.이들의 작품에서 비로소 성행위에 대한 직접 묘사가 이뤄지며 19세기 에로톨로지의 금기가 깨졌다.나보코프의 ‘롤리타’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 이르면 직접적인 묘사를 뛰어넘어 성적 교류에 스며있는 슬픔과 절망까지 맛보게 된다.또한 스와핑 등 미국 중상류층의 일상을 전하는 업다이크의 소설 ‘커플스’의 장면장면은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극단적이고 병적인 성의 풍경과 그대로 겹친다. ●초자극적 사랑, 종종 죽음으로 치닫기도 작품 속에서나 현실에서나 ‘초자극적’인 사랑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철학자 칸트는 에로스를 “이성의 힘으로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당위의 문제”라고 일축했다.하지만 에로스는 유혹적인 만큼 치명적이다.그것은 종종 타나토스(죽음)와 손을 잡는다.그래서 ‘저주의 작가’ 조르주 바타유는 에로티시즘을 가리켜 악마적 충동이라 했는지도 모른다.이 책은 인간의 성이 싸구려 상품만도, 고귀한 정신만도 아님을 예술의 제1형식인 ‘문학’을 통해 생생히 보여준다.1만 8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가재는 역시 게 편’ 소청심사위/비리 공무원 징계수위 낮춰 취지 퇴색… ‘구제처’ 로 변질

    인사상 불이익을 받은 공무원들을 구제하기 위해 운영되고 있는 소청심사제도가 비리공무원의 징계수위를 낮춰주는 구제처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경기도의회 김영복(한나라당)의원은 26일 도에 대한 행정사무감사에서 “올해 경기도 소청심사위의 심의를 받은 43개 안건 중 26건이 당초 징계처분보다 수위가 낮은 인용조치를 받았다.”며 “이중에는 뇌물수수 등 비리공무원도 상당수 포함돼 있어 공무원의 권익보호라는 제도의 당초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당 이효선의원도 “최근 K의회의장이 음주운전혐의로 실형을 받아 의원직을 상실한 사례가 있다.”며 “반면 비리공무원의 상당수는 소청심사위를 통해 구제돼 문제가 있다.”며 개선책 마련을 촉구했다. 실제로 지난 4월 공금횡령 및 유용혐의로 해임처분을 받은 K시 공무원 한모씨는 도 소청심사위에 처분취소 청구를 제기,정직 3개월로 징계수위가 낮아졌다. 또 승진에 따른 뇌물공여혐의로 해임처분조치를 받은 S시 공무원 조모씨도 소청심사위에 처분취소청구를 내 정직 3개월로 경감됐다. 유부녀간통 및 성추행 등 혐의로 해임처분을 받은 나모씨도 소청심사를 제기,정직 3개월로 징계수위가 낮아지는 등 상당수 비리공무원이 소청심사를 통해 구제조치를 받았다. 이같은 감경조치는 7명의 소청심사위원중 공무원이 3명으로 가장 많은데다 변호사,교수 각 2명으로 구성된 나머지 민간위원도 경기도에서 추천,독립성과 중립성이 떨어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소청심사제도는 공무원이 징계처분 또는 그 의사에 반하는 인사상 불이익 처분을 받아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 소청심사위원회가 이를 심사해 불이익을 당한 공무원의 권익을 보호해 주는 제도이다. 공무원은 파면과 해임,정직,감봉,견책 등의 징계처분과 휴직,직위해제,면직 등 불이익을 주는 처분 등을 받을 경우 소청을 청구할 수 있다.소청제기는 불리한 처분이 있음을 안 날부터 30일 이내이며,소청심사위는 심사청구서를 접수한 날부터 이르면 60일,늦어도 90일 이내에는 각하·인용·기각 등을 결정한 후 당사자에게 통지하게 된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
  • 베를린영화제 금곰상 ‘정사’/ 몸의 의사소통… 섹스신 35분

    ‘몸의 익숙함이 마음을 연다.’ 2년 전 진한 정사 장면으로 입소문을 탔던 영화 ‘정사(Intimacy)’가 31일 개봉된다.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 등 3개부문을 석권한 이 영화는 2시간의 상영시간 중 정사장면이 35분에 이를 정도로 섹스신의 비중이 높지만 결코 포르노그래피가 아니다.정작 파트리스 셰로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주요한 메시지는 ‘의사소통’,구체적으로는 ‘몸의 의사소통’으로 보인다. 영화는 주인공 제이(마크 라일런스)가 매주 수요일에 섹스만 나누던 유부녀 클레어(케리 폭스)에게 차츰 마음이 열리는 심리 변화과정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제이의 대사는 영화의 주제를 그대로 담고 있다. “그냥 섹스만 하는 사이야.서로 구속하지 않고 섹스만 하고 헤어지지.한 번으로 끝내려 한 게 습관이 됐어.가벼운 관계였는데 지금은 심각해졌지.자꾸…빠져들게 돼.전엔 안 그랬는데.” 제이는 자유를 찾아 집을 나온 이혼남.음악에서 실패한 상처도 갖고 있는 그는 뻥 뚫린 마음을 채우려고 섹스에 탐닉한다.그의 파트너 클레어는 헌신적인 남편과아들을 둔 아마추어 연극인.겉으로 보기엔 아무 문제도 없어 보이는 그녀지만 일상의 정형화된 틀이 싫어서 원하는 남자의 품을 찾는다.둘 사이엔 아무런 대화나 사랑도 없다.그저 살만 섞을 뿐이다.‘수요일 정사’가 되풀이되면서 제이의 마음 속에는 클레어를 향한 연정이 새록새록 피어난다.이후 그녀를 미행하여 그녀의 상황을 알게 될수록 사랑의 감정은 커져간다. 셰로 감독은 결국 ‘감정이 실리지 않는 섹스는 불가능함’을 역으로 풀어낸다.‘정사’는 자아 정체성의 저장고인 몸을 인간행위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그린다.그래서 제이가 클레어에게 느낀 몸의 익숙함은 사랑의 감정으로 변하고 이는 일상생활의 흐름을 바꾸게 한다. 또 몸의 의사소통을 이야기하면서 제이와 클레어를 비롯한 주변인들의 쓸쓸함을 곁가지로 비추어 현대인들의 단절된 의사소통과 고립 등을 스크린 전반에 뿌리고 있다. 이종수기자
  • 주민증 분실했다 유부녀 둔갑

    잃어버린 주민등록증 등이 위조되는 바람에 기혼녀가 됐던 두 여성이 혼인무효 청구소송으로 미혼녀로 돌아왔다. 2000년 5월 A(47·여)씨는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기 위해 호적등본을 발급받다가 깜짝 놀랐다.자신이 알지도 못한 남자와 혼인한 기혼녀로 기재됐기 때문이다.호적등본에는 90년 3월 일본으로 출국해 그해 6월 일본인 B씨와 결혼했고,이후 국내에서도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한 것으로 나타나 있었다. A씨는 문득 89년 4월쯤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렸던 것을 기억해냈다.사건을 추적한 결과 누군가 A씨 주민등록증을 주워 사진을 바꿔치기한 뒤 위조여권을 발급받아 일본으로 출국한 사실이 드러났다.하지만 범인을 찾아낼 방도는 없었다.결국 A씨는 일본인 B씨를 상대로 혼인무효 청구소송을 내 승소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혼인무효 소송을 낸 또다른 여성 C(36)씨는 여권 브로커에게 속은 경우.지난 90년 취업을 위해 일본에 머물던 C씨는 체류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브로커를 찾아가 호적등본 등 관련 서류를 넘겼다.브로커는 C씨 동의없이 일본인D씨와 결혼한 것으로 서류를 위조,비자를 연장했다.이 사실을 알게 된 C씨는 일본과 우리법원에서 승소했다. 정은주기자 ejung@
  • 클로즈업/KBS2 ‘추적 60분’

    KBS2 ‘추적60분’(오후 9시50분)은 ‘신의 이름을 더럽히다-교회내 성폭력’를 방송한다. 교회안에서 은밀하게 벌어지는 성폭력의 실상을 다루었다. 지난 6월27일 열린 교회내 성폭행관련 공청회에서는 최근 5년 동안 접수된 사례 가운데 목회자가 신도를 상대로 저지른 사건이 93%에 이른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공개됐다. 제작진은 목사에게 무참히 짓밟힌 한 여성의 육성을 통해 성직자 성폭력을 고발한다.호주 한인 교회의 신도였던 그녀는 목사에게 육체적인 학대를 당했을 뿐 아니라 주변으로부터 목회자를 유혹한 ‘사탄’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써야 했다.부산의 한 성당 부설유치원에 다니는 5살짜리 여자아이는 ‘괴물신부’로 표현하며 극도의 불안한 정서를 드러냈다. ‘신의 이름으로…’는 유부녀,여고생,아동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피해자들의 증언을 통해 성직자 성폭행의 실상을 들어보고,현실적으로 처벌이 어려운 법의 허점을 고발한다. 이순녀기자 coral@
  • 신세대 사랑풍속 맛깔스레 요리/ 신작 ‘사랑이라니, 선영아’ 펴낸 소설가 김연수

    2001년 ‘굳빠이 이상’이라는 실험적 소설로 동서문학상을 받았던 소설가 김연수(33)가 신작 ‘사랑이라니,선영아’(작가정신)를 내놓았다. 작품은 김연수가 신세대 사랑 풍속도를 필터로,여러 가지 단상을 풀어낸 것이다.‘공부하는 작가’라는 별명에 걸맞게 특유의 해박함과 개성있는 해석으로 사랑이라는,자칫 진부하게 느껴질지 모를 소재를 맛깔스럽게 요리한다. 그의 이야기 보따리에 든 주요 인물은 광수와 선영이 부부,그리고 둘의 친구이자 선영의 옛 애인 진우다.소설은 결혼 뒤 광수와 선영의 주위를 맴도는 진우와 그에게 질투를 느끼는 광수의 심리 변화를 14개의 에피소드로 나눠서 풀어간다.간간이 세사람의 대학동창들을 양념으로 등장시키며 30대초반이 갖는 애정관과,사회에 적응해가는 과정을 다룬다. ●‘공부하는 작가' 이야기 솜씨 현란 소설의 묘미는 아무래도 김연수란 지적인 작가의 현란한 이야기 솜씨에 있다.마치 소설을 쓰기 위해 공부하는 작가처럼 그는 다양한 지식을 동원해 작품을 끌어간다.결혼에 대한 광수의 생각을 인류학자레비스트로스의 ‘증여론’에 기대서 해석하는가 하면,결혼에 대해 갖는 불길한 강박관념을 프로이트의 책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이런 시도가 어렵게 다가오지 않는다.그것은 김연수가 이런 이론들을 날것으로 사용하지 않고 철저히 자기 것으로 만든 뒤 ‘소설적 언어’로 녹이기 때문이다. 이런 광경을 가리켜 문학평론가 김형중은 “김연수는 아무리 어려운 얘기를 해도 ‘소설적’으로 한다.”면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재미있고 지적인 ‘사랑론’ 하나를 소설로 만들어 놓았다.”고 작품을 풀이한다. 소설을 놓기 어렵게 만든 다른 힘은,김연수가 어떤 현상이나 개념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에 있다.결혼하면서 늘게 되는 남자의 책임감을 “미혼남에서 유부남으로 바뀌는 과정은 달에서 지구로 귀환하는 일과 비슷하다.”고 비유하면서 “유부남이 되면 갑자기 자신을 둘러싼 중력이 여섯 배나 강해진다는 사실에 멍멍해진다.”(17쪽)고 묘사하는 대목에서 그만의 독특한 재치가 느껴진다. ●유부녀 되는건 호두깨물기 비슷 반대로 미혼녀에서 유부녀로바뀌는 과정은 “호도를 깨무는 일과 비슷”하다고 풀면서 그 이유를 “애당초 허기진 배를 채우겠다고 깨문게 아니다.”라며 “왜 먹지 않고 놔두느냐는 주위의 채근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해석할 때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광수가 진우에 대해 갖는 질투를 설명하는 부분도 재치있다.“(질투는)주전선수가 아니라 후보선수라,사랑이 갈 때까지 가서 숨을 헐떡거리면 질투가 교체선수로 투입된다.…그래서 13세기 사람 앙드레 르 샤플랭은 ‘질투하지 않는 자는 사랑할 수 없다.’는 주장까지 했다.”(103쪽) 소설이 끝날 무렵 김연수가 “2009년에 출간할 예정”이라는 “두명의 남자와 한명의 여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특별판 소설”이 기다려지는 것은 조급함만은 아닐 것이다.그 속엔 그가 보여줄 새로운 형식과 내용이 담겼기 때문이다. 이종수기자 vi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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