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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대지기 근무여건 개선 절실/안영일(소리)

    등대의 하루는 바다에 어둠이 깔리면서 시작된다. 40여년을 하루 같이 등대와 함께하고 있지만 매일같이 새로운 시작의 느낌으로 일을 시작하곤 한다.그러나 그러한 느낌은 그냥 느낌으로 끝날뿐 언제나 일을 마칠때쯤이면 무거운 마음이 어깨를 누르는 기분을 감출 수 없다. 그동안 사회가 발전한 만큼 이제 등대에 입문하는 후진들에게는 보다 개선된 근무여건아래서 해운발전에 일익을 담당한다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과거에는 전가족이 등대에서 함께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고독감에 시달린다거나 식생활에 어려움을 격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은 낙도의 등대에도 변화의 물결을 가져오고 있다.바로 교육문제가 이 변화의 물결을 선도 하고 있다. 자녀들의 교육 때문에 유치원적령기 부터 온가족이 뭍으로 대이동을 하고 남는 것은 독신 직원들 뿐이다.더구나 염려 스러운 것은 오랜동안 절해 고도에서 독신으로 지내온 등대수들이 고립된 생활로 인해 퇴직후 사회에의 적응력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점이다. 35년을 이 직업에 종사했다고 치면 25년은 독신생활로 살아온 셈이다. 직장의 발전이 고급인력 확보에 있다면 항로표지관리소 즉 등대의 발전 또한 마찬가지이다.현재의 상황으로 고급인력 확보는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지금 급한 것은 근무조건의 개선이라고 생각된다.따라서 격주교대 근무제도를 도입함으로써 고급인력 확보와 항로표지발전에 기여함이 시급한 실정이다. 사회는 날이 갈수록 눈부시게 발전해 가는데 문명과 문화와는 단절된 절해고도에 바람과 파도소리만 들릴뿐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과거에는 유배지 같은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이것이 직업이라고 생각하며 체념하고 사는 형편이다.전국의 등대수들은 우리나라 경제활동의 생명줄인 해상로를 지키는 수문장이라는 긍지를 갖고 어려움을 참고 있다.
  • 실내 가족놀이/「공자왈 맹자왈 게임」 어떨까요

    ◎숫자세기 7의 배수 “공자”·5의 배수 “맹자” 외쳐야 일가 친척들이 많이 모이는 설날연휴에는 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몇가지 건전한 놀이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고스톱 등의 화투놀이나 TV에만 매달리는 것은 모처럼의 만남을 의미없게 만들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모여 간단한 놀이를 즐기는 과정에서 격의없는 친밀감이 새롭게 돋아나고 한 동아리라는 훈훈한 일체감이 고양된다.연휴기간중 가족끼리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놀이를 소개한다. ◇거꾸로 대답하기=모임의 긴장을 푸른 간단한 게임으로 진행자가 예들들어 「딩동댕」이라고 말하면 지적받은 사람은 거꾸로 「댕동딩」이라고 대답한다.짧은 단어부터 시작해 「새해는 계유년」등 어려운 단어로 넘어간다. ◇공자왈 맹자왈=원형으로 둘러앉은 다음 진행자가 먼저 일부터 백까지 리듬에 맞추어 부른다.이중 7의 배수가 있거나 7이란 숫자가 들어간 번호에는 「공자」하고 외치게 한다.예를들면 「이십육 공자 이십팔」이 된다.틀리거나 리듬을 깨는 사람이 있으면 맨뒤로 보내거나 탈락시킬 수 있다.이어 5의 배수에 「맹자」를 추가,「삼 사 맹자 육 공자 팔」등으로 진행한다. ◇새해 포부말하기=빙둘러 앉아 어느 한사람부터 「새해에는 일찍 일어나야 겠다」라는 포부를 말하면 그다음 사람은 여기에 자신의 포부를 붙여 「새해에는 일찍 일어나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라고 말해 차례가 거듭될수록 문장이 길어지게 한다.중간 내용을 빼먹거나 더듬은 사람에게 벌칙을 준다. ◇떡은 어디에=가족을 반으로 나눠 대장을 뽑은 뒤 대장끼리 등을 맞대고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한다.이긴 편이 모여 그중 한명만 떡을 입에 넣고 나머지는 다같이 먹는 시늉을 하면 진편이 진짜로 떡을 먹는 사람을 골라내는 게임이다.바로 맞히면 바꿔서 하고 틀리면 진 편의 머리카락을 고무줄로 묶는 등의 벌칙을 가한다. ◇친적 이어가기=친척관계를 이해시키고 그 명칭을 정확히 알 수 있도록 하는 놀이로 큰종이에 친척관계 도표를 만들어 처음에는 도표를 통해 아이들을 공부시킨다.아이들에게「친할머니와 외할머니의 사이는」「엄마의 여동생의 딸은」등으로 질문을 한다음 말잇기게임에 들어간다.「엄마 남편,아빠」「아빠 여동생,고모」「고모 아들,사촌」등이다. ◎개량 윷놀이/「자유걸」·뒷도」 등 다양한 변칙 특징 우리 민족 전래의 윷놀이를 더욱 재미있게 개량한 「민주 윷놀이」가 새로 나왔다. 철도청 공무원인 유근표씨가 개발한 이 민주윷놀이는 재래의 단순한 방식과 달리 놀이의 흥미를 더하기 위해 「자유걸」 「유배지」 「뒷도」등 다양한 변칙규정을 가미한 것이 특징.또 말이 움직이는 말판의 모든 위치에 고유 우리말 명칭을 달아놓은 점도 뜻깊다. 놀이방법은 윷 네가락중 하나에 표시를 한 다음,이 윷가락만 젖혀지고 나머지가 엎어지면 「뒷도」 그 반대면 「자유걸」로 한다.「자유걸」은 3칸씩 움직인다는 점에서 이전의 「걸」과 똑같으나 전후좌우 어디로건 갈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멈춰있는 것이 유리하면 그자리에 서 있어도 된다.「뒷도」가 나오면 무조건 진행했던 방향의 한 칸 뒤로 물러나야 한다. 이밖에 말이 5번이나 8번에 있을때 모나 윷이 나오면 「유배지」로 가야되며 다음 순서에 「도」를 던져야 빠져나올 수 있다.결승점인 29번에 도착한 말 역시 「도」가 아니면 날수 없으며 16번과 25번 두곳에 진출하면 죽는 함정을 만들어 놓아 재미를 돋우었다.
  • 부가세/과세특례자 우편신고 가능/25일 신고 마감…절차를 알아보면

    ◎「중점관리」 사업자는 별도 접수/환급신청땐 수출면장 제출을/면세자도 새달 1일까지 신고해야 부가가치세 확정 신고 마감일이 오는 25일이다.설날 연휴가 겹쳐 자칫하면 마감을 놓치기 쉬우므로 서둘러 신고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부가세를 내지 않는 부가세 면세사업자들도 소득세 납부의 전 단계로 2월1일까지는 지난 한햇동안의 수입금액을 신고해야 한다. ▷신고대상자◁ 연간 매출액이 3천6백만원 미만인 과세특례자와 3천6백만원 이상의 법인·개인 사업자등 부가세가 과세되는 2백5만명의 사업자 전원이다.이들은 오는 25일까지 부가가치세 확정 신고납부를 해야 한다. 부가세 면세사업자 가운데 연간 수입금액이 3천6백만원 이하인 영세사업자 19만8천명은 수입금액을 신고해야 한다.역시 부가세와 관련이 없는 의사·세무사·변호사·학원등의 규모사업자 25만명도 수입금액을 신고해야 한다.그러나 매입 및 매출 자료가 완전히 노출되는 담배·연탄·우유배달원과 보험모집인등(자료과세자)42만8천명은 신고할 필요가 없다. ▷신고방법 및 내용◁부가세 사업자는 마감일까지 관할 세무서에 신고하고 세금은 납부서와 함께 은행 또는 우체국에 내면 된다.과세특례자는 세무서 신고를 우편으로 해도 되지만 세금은 은행이나 우체국에 내야 한다.법인 및 개인 일반사업자와 지난해 1월1일 이후 신규로 사업을 시작한 사업자,과세자료가 완전히 노출되는 화장품 외판원등은 우편신고가 안 되기 때문에 직접 신고해야 한다. 면세사업자 중 영세사업자는 지난 한햇동안의 수입금액과 관련서류를 우편으로 관할세무서에 보내면 되고 규모사업자는 이를 세무서에 직접 내야 한다.면세사업자는 이번에 신고한 뒤 오는 5월 한달간 소득세 신고기간에 세금을 내면 된다. ▷구비서류◁ 부가세 과세사업자는 ▲신고서 2부(서울·부산·인천·부천·안양·광명·수원·성남·의정부·안산은 1부) ▲세금계산서(세무서 제출용) ▲환급 신청자는 수출면장 또는 시설투자 명세서 ▲세액공제에 필요한 일일 정산표 또는 신용카드 매출집계표를 제출해야 한다. 면세사업자는 ▲총 수입금액 신고서 ▲계산서(세무서 제출용) ▲신고내용의 타당성을 검증할수 있는 서류(감독기관등이 발행한 수입금액 확인서나 수입명세서등)를 내야 한다. ▷신고서 작성 및 제출◁ 신고서는 사업장 관할 세무서에 내야한다.납세자가 직접 작성하거나 세무사등 세무대리인을 통한 경우 또는 협회나 조합에서 일괄 제출하는 경우에는 세무서에 별도로 마련된 「자율 접수창구」에 내면 된다.작성 방법을 잘 모르면 세무서의 「대리작성 창구」에서 세무공무원의 도움을 받아 수입금액만 본인이 적어넣으면 된다.세원관리 중점 종목으로 선정돼 세무서로부터 성실신고 안내문을 받은 사업자는 별도 설치된 「신고지도창구」에서 담당 공무원의 상담을 거쳐 신고서를 접수시켜야 한다.
  • 공주 중호마을 반촌 탐방(한국정신의 원류를 찾는다:3)

    ◎민족 정체성 확립을 위한 캠페인/“기개가 첫 덕목” 3백년 이어온 선비정신/효종때 거유 이유태선생 후손 모여살아/“학문·덕 갖춘뒤도 때아니면 불출사” 일관/12대 종손 등 일제때도 한학공부… “학교교육보다 도리·예절이 중요” ○노인들은 상투 틀고 계룡산 산자락이 북으로 금강에 치달아 곰나루를 향해 넉넉하면서도 온화하게 팔을 벌린곳에 자리잡은 충남 공주시 상왕동 중호마을의 용문서원.등용의 옛마을로 계룡의 서기를 이어받은 우리의 선비정신이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는 곳이다. 조선 중기 당대의 거유로 명성을 높였던 초려 이유태(1607∼1684년)의 후손들이 오순도순 마을을 이룬지 3백년.반촌의 긍지를 이어온 경주 이씨 집성촌으로 20여가구가 모여 산다.공주시내가 지척이지만 아직도 노인들은 대부분 상투를 틀고 있으며 철저하게 예의범절을 지키면서 선비의 기개를 가정교육 최고의 덕목으로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초려정신의 핵심은 선비로서 불출사의 기개를 강조하는데 있다.선비는 우선 학문과 덕식을 갖추고 그 다음일단 나가면 때를 좌지우지 할수있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고향에 돌아와 은거해야 한다는 정신이다.이를테면 진퇴를 분명히 할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그는 이를 몸소 실천,인효현소종 4대왕에 걸쳐 능참봉부터 사조참판·대사헌까지 모두 39가지의 벼슬이 주어졌지만 실제로 관직생활을 한것은 28세때 5개월과 30세때 6개월이 고작이었다. 그같이 짧은 관직생활에도 불구,그는 학문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당시 정계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경세가로서 당대 호서산림 오현의 한사람으로 추앙받았다.그는 금산 노동 태생으로 18세에 사계 김장생의 문하에 들어가 장년이 된후에는 사계의 아들 집과 교류하며 그들 부자로부터 예학의 법통을 이어받았으며 치국경세에 있어서는 율곡이이를 숭상했다.그에 학문세계를 율사연원으로 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초려는 병자호란후에는 덕유산중에 은거,모든 벼슬을 사양하였다.그후 효종이 북벌의 큰뜻을 품고 산림학자들을 불러모으자 결연히 상경하였다.그러나 조정은 시배들의 반목과 질시속에 온갖 주의주장만분분할뿐이었고 또한 청나라 사신의 위세는 극에 달해 있었다.그같은 분위기에서 친청파의 척결을 알리는 그의 논소는 조정을 소용돌이로 몰아넣었고 마침내 그는 다시 낙향했다. ○대사헌벼슬 물리쳐 그후 효종이 말년에 다시 밀지로 초려를 부르니 그는 북벌을 위한 구체적 국정개혁안으로 2만여언의 장문상소인 「만언봉사를 거의 완성해 가고 있을 때였다.그러나 그해(1960년) 효종은 승하하고 뒤이어 즉위한 현종은 왕명으로 만언공사를 제출케 했다.그 내용은 위민정치를 근간으로한 군사및 내정개혁사상을 삼고있다.그후에도 현종은 초려의 경륜을 사기 위해 벼슬을 높여 불렀으며 숙종때는 대사헌에 제수됐지만 불출사의 뜻은 완강했다.『나의 뜻이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 벼슬길 보다는 땅을 일구며 사는 것이 옳다』는 것이 그의 공직관이었던 것이다. 초려의 강직한 정신은 오늘날 후손들에까지 그대로 전수돼왔다.노인들은 상투등 과거의 관습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가운데 후손들에게는 현대식 학교교육도 애써 가르치고 있다.단지 일제때 일본식교육은시키지 않는다는 고집으로 종손인 12대손 정우씨(52)와 그 또래의 집안 사람들은 학교에 가지 못했다.그는 『우리 형제 다섯중 위로 셋은 학교를 가지 못했고 비슷한 나이의 사촌이나 육촌형제 가운데도 학교를 간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회상했다.대신 그는 15세때 대학을 떼는등 한학을 공부했으며 초려의 책을 비롯,집에 보관중인 3천여권의 서책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있다. 자식들에게는 초려가 남긴 유일한 친필족자글씨인 「징분항선 복례」(분한 생각을 경계하고,나쁜것은 고쳐 착하게 하고,예를 따라 좇으라)를 가훈으로 가르치며 학교공부를 시켰다.학교공부중에도 사서는 반드시 익히도록 했는데 이같은 집안 분위기에서 큰아들 상익씨(30)는 철학교수로,둘째아들 상욱씨(28)는 한문교사로 후학을 가르치는 교단에서게 됐다. 공주향교의 전교를 지낸 정우씨의 당숙 종언씨(70)도 이웃에 산다.그가 해석하는 오늘날 선비정신의 의미는 이러했다. 『선비가 박력이 약하고 경제능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완고하고 고집불통으로 비쳐지는 것은 잘못입니다.현대식 교육을 받기는 받되 인간의 도리를 먼저 알아야 하고 잘살아야 하되 나혼자만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그것은 이웃과 국가가 함께 잘살아야 한다는 인간의 행동철학을 먼저 배우자는 것으로 요약될 수도 있습니다.부모나 국가지도자는 이신교자지종(몸으로 행해 가르치는 사람을 따른다)으로 자식과 백성을 가르쳐야 하고 숭조사상의 강조도 교육의 한 방편입니다.선비는 부자가 돼도 부자티를 안내고 빈궁해도 빈궁한 티를 안내야 하는 것이지요』 용문서원은 이같은 초려의 선비정신을 구현하는 도장으로 오늘날 활용되고 있다.제사가 올려지는 사우인 명덕사를 제외하고는 일반에게 공개돼있다.강당인 중화당(17평)과 재실인 존성재(〃)는 초려학연구를 위해 강의실과 침실로 제공된다.연구활동을 돕기위해 현대식 입식 부엌도 설치돼 있고 이동식 화장실,난방도 완비됐다. ○내사책 등 유품 전시 또 유물전시관인 징원당(16평)에는 초려의 저서와 함께 임금이 내린 내사책,이씨 가문의 재산분금록,9대손 성암철영의 항일옥중일기등과 초려의 상아호패와 제사날을 기록해 놓는 기일첩,과거문제 요약집인 강경첨통등 많은 유품들도 전시,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용문서원 건립및 유지 보수를 맡고 있는 사단법인 이초로 기념사업회의 이종철회장(73·전공주교대회장)은 올해의 역점사업으로 장서각 건립을 꼽고 있다.현재 3천건에 달하는 책들이 그대로 창고에 쌓여있기 때문에 이의 분류,정리가 시급하기 때문이다.이를 위한 1억원의 충남도예산중 4천만원의 삭감으로 나머지 재원마련이 가장 큰 현안이기도 하다.국역작업등 서둘러야할 과제는 많지만 현재 1백66명의 회원들이 연회비 5천원씩 내는것으로 충당하는 기념사업회의 예산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회장은 『많은 학자들이 초려사상에 대해 자발적인 관심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그러면서 『지난 연말 부산대에서 다섯명의 교수·학생들이 와서 나흘동안 목록작업을 하고 갔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어려운 형편에 있으면서도 기념사업회측은 연구를 위해 오는 학생들에게 시설을 무료료 사용케하고 있다.3년째 겨울이면4,5일씩 초려학 연구를 위해 이 서원을 찾고 있는 20여명의 한남대 대학원생들이 이달 중순 올 것이라는 전갈을 받고 중화당과 존성재는 벌써 깨끗이 치워 놓았다.형편이 넉넉하다면 그들이 여유있게 공부할 수 있도록 식사까지 제공했으면 좋겠지만 형편상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장손 정우씨의 마음을 늘 안타깝게 하고 있다. ◎「만언대사」 상소한 당대경세가/후손들이 서원열어 초려정신 대이어/박성수 정신문화연구원 교수 조선시대 최대의 국란,병자호란을 만난 것이 1636년(인조14년) 초려 이유태가 29세 되던 해였다.임진왜적이 물러나 대위국교가 재개된지 겨우 30년,또 다시 북쪽의 외적이 몰려와서 나라 안이 쑥밭이 되고 국왕이 삼전도에 나아가 수모를 당하는 그런 역사를 만나게 되었다.국론은 크게 양분되고 당쟁의 고질병이 온 몸을 덮치는 그러한 시대이기도 하였다.치국경세가 그 어느때보다도 시급한 때에 초려는 평소 품었던 뜻을 만언소라는 글로서 국왕에게 구민·구국책을 건의하였다. 그는 이 상소문에서먼저 농촌경제를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농촌을 떠난 농민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여 황폐화된 토지를 일구게 하여야 오늘의 정치혼란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제의하고 고른 세제의 확립과 면세특권층의 일소를 역석하였다.또 농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게 하기 위해 향약을 실시하여 서로 돕고 사는 사회를 만들고 오가작통으로 범죄없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교육제도의 일대쇄신을 주장하여 양반의 자제들만 교육하는 제도를 고쳐서 모든 양인의 자제를 학문기관에 보내게 하여 그 능력에 따라 직업과 신분을 선택하도록 하자는 획기적인 제언을 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고루한 지도층은 자신의 권익만을 생각하고 그의 개혁안을 묵살하였다.묵살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를 탄핵하여 유배하고 말았다.이 유태는 그 뒤 스스로 초가집(초려)이라는 자신의 호와 같이 모든 관직(이조참판·요즘의 내무차관직)을 마다하고 향리에 웅거하여 나가지 않았다.그 유명한 초려의 불출사 선비정신이 여기 있는 것이다. 그가 남긴 「초려집」 26권은 이유태의 선비정신을 담은 귀중한 문화유산이며 오늘에 되살려야할 국민정신문화이다.다행히 최근 충남 공주 향리에 그 후손들이 용문서원을 세워 자제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니 외래문화에 질식할 것도 같은 오늘의 세대에 이보다 더 참신한 청량제는 없다 할것이다.
  • 이원익/비바람도 막기힘든 초가서 생활(역사속의 청백리)

    조선중기의 대신인「오리대감」 이원익(1547∼1634)은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부터 동시에 존경과 흠모를 받으며 산 완벽한 청백리로 꼽히고 있다. 그는 광해군과 인조 2대의 임금에 걸쳐 영의정을 지냈으나 그가 기거하는 초가는 비바람도 가리기 힘들 정도여서 이를 안타깝게 여긴 임금이 집을 지어 하사했을 정도였다. 재상으로서 집을 하사받은 것은 세종때의 황희,선조때의 이원익,숙종때의 허목등 세사람밖에 없었던 점으로 미루어 그의 청빈한 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천성이 대쪽같았으나 항상 백성을 위한 선정을 펴는데 관심을 쏟았다.그가 안주목사로 부임했을때 그곳은 군사적인 요충지였음에도 오랜 세월동안 방치돼왔기 때문에 기근이 늘 이어지곤 했다.이에 부임길에 조 만석을 빌려 굶주린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고 대파하는 종자로 사용케 함으로써 기근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도록 했다.또 백성들에게 부업으로 뽕나무 심기를 권장,양잠업을 크게 일으켜 「이상공」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광해군때 왕대비인인목대비를 폐하려는 왕의 불륜을 극력 반대했다가 홍천으로 귀양을 가게 됐을때 그가 오자마자 가뭄에 시달리던 관동지방에 큰비가 내려 사람들은 오리정승이 가져온 「상공우」라고 불렀을 정도로 그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고 한다. 이원익이 유배지에 있을때 김유와 이귀등은 광해군에 대한 반정모사를 일으키기 전 그에게 먼저 거사를 논의했다.그러나 그는 아무말없이 김유와 장기만 두었다.그런데 갑자기 「장군」을 부르며 상대편의 「장」을 치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어 인조반정을 결행했다는 일화를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신망을 받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인조반정이후 인목대비가 폐위된 광해군을 죽이고자 했을때 폐모론에 반대했다가 유배까지 갔던 이원익만이 결단코 반대,죽음직전의 광해군을 살려냈다. 어느 재상은 「누가 오늘날 성인이 없다고 하는가? 완평(이원익)이야말로 참 성인이다」라고 생전에 그의 높은 학문과 인격을 칭송했다.그런가하면 그가 인조 12년 8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인조는 이례적으로 세자로 하여금 조문토록 했을 뿐만 아니라 문충공이라는 시호를 하사했다.
  • 21개 생보사/「무배당보험」 첫선/주요 새 상품 어떤것이 있나

    ◎암·성인병 등 대상 납입료 9∼18% 저렴/최고 2억까지 보장… 개인·가족형 등 다양 보험 계약자에게 배당금을 주지 않는 대신 보험료를 깎아주는 무배당보험 신상품이 최근 21개 생명보험사에서 판매되고 있다. 무배당 상품은 기존의 상품과 달리 이자배당금이나 확정배당금·사차배당금(예정 사망률과 실제 사망률의 차이에서 생기는 이익 배당)·장기유치 배당금등이 없으나 보험료는 9∼18%나 싸다.반면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재해를 당하거나 질병이 생겼을 때는 보장을 받을 수 있다.각 생보사들의 무배당 상품을 알아본다. ▷새생활 암보험◁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 가입금액의 50%를 지급하고 교통사고 및 재해등으로 심하게 다쳤을 때도 고액을 보장해 준다.암으로 인한 고도 장해나 사망시에도 보험금을 지급하며 암으로 입원하면 입원비와 수술비를 보장한다.가족계약으로 가입하면 배우자와 자녀까지 보장해 준다.만기환급형은 계약기간이 끝났을때 납입한 보험료 전액을 돌려받고 그동안 냈던 보험료의 이자만으로 고액을 보장받을 수 있다.기간은 10년과 20년만기,80세만기등 3종류이고 가입한도액은 5백만∼3천만원이다.삼성생명. ▷새가족 안심보험◁ 재해를 당했거나 일반 사망시 본인은 물론 배우자와 자녀까지 고액의 보험금이 지급되는 가족 보장성이다.대부분의 보장성 보험이 일반사망보다 재해사망시 더 많은 보험금을 주지만 이 상품은 재해뿐 아니라 질병·일반사망 때도 최고 3천만원까지 보험금을 지급한다.평소에 건강관리 자금으로 쓰도록 일정기간마다 가족건강 설계자금도 지급한다.보험료의 납입은 월납·3개월납·6개월납·연납이 있고 가입연령은 18∼50세이다.삼성생명. ▷재해부 21세기 암치료보험◁ 암에 걸렸을 때 치료·수술 및 완치를 위한 비용을 최고 1천만원(가입금액 1천만원 기준)까지 보장한다.배우자가 암진단을 받았을 때는 6백만원,자녀는 4백만원까지 보장한다.암으로 인한 사망 또는 1급 장해시에도 주보험자는 1천만원,배우자는 6백만원의 보험금을 타고 사망급여금(1종 2백만원,2종 2백만원+이미 납입한 보험료 전액)도 지급된다.대한교육보험. ▷21세기 평생안심보험◁ 활동기 연령에 재해로 사망했을 때 최고 1억원을 보장받고 일반사망시에도 5천만원까지 보험금이 지급된다.노후에는 2년마다 81만원의 건강관리금이 나온다.성인병으로 1백21일 이상 입원하면 매년 3백65만원씩 간호급여금이 지급된다.보험료 납입 기간중 2∼3급 재해 장해를 당한 이후에는 보험료가 전액 면제된다.30세 남자가 노후보장 혜택을 60세부터 받으려는 경우의 월 보험료는 3만5천1백원.대한교육보험. ▷리빙헬스보험◁ 암과 재해를 중점 보장하고 가입금액에 따라 최고 2억원까지 보험금이 지급된다.10년 만기의 1천만원짜리에 가입했을 때 계약 5년후에 건강관리금으로 2백만원이 나온다.20년 만기는 5년후 1백만원,10년후 1백50만원,15년후 2백만원의 건강관리금이 각각 지급된다.질병으로 입원할 경우 입원일수 31일이상 30일마다 50만원의 생활급여금이 추가로 보장돼 최대 6백만원을 지급한다.제일생명. ▷간치료보장보험◁ 기존의 유배당 보험보다 보험료가 4·1∼19·9%쯤 싸다.각종 간질환및 재해를 보장하고 만기때 보험료 전액을 돌려받는다.간암진단 확정시는 가입금액 전액을 지급받고 간질환으로 인한 입원 또는 치료시 비용이 나온다.37세 남자가 20년 만기의 1천만원짜리에 가입할 경우 월보험료는 1만5천5백원이다.이 가입자가 간암 진단을 받으면 1천만원이 일시금으로 지급된다.수술시는 2백만원을 받고 4일 이상 계속 입원시는 3일 초과 1일당 10만원씩 최고 1백20일까지 보장된다.흥국생명. ▷암보험◁ 순수보장형(1종),생존시 5년마다 건강 진단자금 30만원과 만기 생존시 50만원을 지급하는 중도급부형(2종),만기시 보험료를 돌려주는 환급형(3종)이 있다.가족형 계약이면 주 피보험자나 배우자중 누가 사망하더라도 그 이후의 보험료가 면제된다.사망특약및 입원특약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유배당보다 월보험료가 13∼30%정도 싸다.35세 남자가 10년 만기 가족보장형에 가입할 경우 월보험료는 2만3천1백원.한덕생명. ▷특별보장보험◁ 각종 재해와 암·일반사망등을 종합 보장한다.보장금액을 매년 10%씩 체증시켜 물가상승에 따른 실질보장이 되도록 했다.10년과 20년 만기가 있고개인형과 부부형 중 선택이 가능하다.가입금액은 5백만∼3천만원이고 가입연령은 21∼60세이다.35세 남자가 부부형으로 가입금액 1천만원,간병입원특약 1천만원짜리에 들면 월보험료가 4만8천4백원이다.태평양생명. ▷한가족보장◁ 보험교통사고에 대한 보장을 강화했고 연령에 비례해서 보험금이 지급된다.만기까지 피보험자가 생존하면 주보험료 전액을 돌려준다.주보험은 1천만원까지,특약은 2천만원까지 가입이 가능하다.교통사고로 사망했을때 최고 1억1천만원,장해시는 3천1백만원까지 보장된다.교통사고로 입원하면 3일 초과 1일당 2만원씩의 입원급여금이 나온다.부부형은 배우자도 주피보험자의 60%를 보장해준다.대신생명.
  • 불교중흥 보우대사 사상 재조명/봉은사 학술세미나

    ◎조선 억불정책속 명종때 꽃피워/주류유교의 지탄으로 「요승」 낙인 억불숭유책으로 불교가 배척됐던 조선시대에 불교중흥을 위해 노력하다 순교한 하응당 보우대사.그의 삶과 사상을 학문적으로 규명하기 위한 학술대회가 7일 서울 삼성동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발제는 ▲교단부흥의 역사성과 그 의의(김영태·동국대) ▲보우대사의 선사상(서종범·승가대) ▲보우대사의 유교관(송석구·동국대) ▲보우대사의 문학세계(황패강·단국대) ▲보우대사의 교관(이봉춘·동국대) ▲보우대사와 봉은사(김상영·승가대)등 6편.이들은 16세기 중반 멸절위기에까지 처했던 불교를 소생시켜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잇게해준 공로가 보우대사에게 있다는데 일치된 견해를 보였다. 김영태교수는 불교가 조선 국초 11종에서 7종으로 축소되고 다시 선·교양종으로 통폐합됐다가 중종때에 이르러 폐지됐음을 상기시키면서 중의 인증제도인 도첩제 마저 중지됨으로써 불교는 그 발흥이 원천적으로 봉쇄됐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보우대사가 어린 명종을 수렴청정하던 문정대비에 의해 봉은사 주지로 임명된 것은 바로 이무렵이며 그후 17년간 많은 불교사적 업적으로 그를 조선불교부흥의 성사라고 평가했다. 이어 황패강교수는 그가 불멸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유교일변도 사류들의 극렬한 지탄으로 「요승」으로 낙인찍힌 역사사실을 들추어냈다.그럼에도 많은 저술과 높은 문학성을 들어 시문승 또는 학승으로서의 자리를 굳혔다는 것이다.또 선종판사로서 그의 흥불업적으로 ▲국가공인 사찰로 지정해 3백여 사찰보호 ▲도첩제부활로 2년간 승려4백명 양성 ▲승과부활로 15년간 유능한 불교인물 배출등을 들었다. 그러나 그의 불사진흥이 전적으로 문정왕후의 후광을 등에 업고 성급하게 이뤄졌다는 점에서 종교개혁가로서의 업적에 흠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석구교수는 보우의 불교중흥을 통해 임진왜란때 승군이 나올수 있는 기초가 닦여졌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그러면서 문정왕후는 12세에 등극한 어린 명종을 위해 불교에 심취될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본 송교수는 이때의 불교중흥은 문정왕후의 의지와 당시 불교계의 대표적 인물이던 보우와의 자연스런 만남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했다.따라서 일본학자 고교정이 「하응당집해제」에서 보우의 불교중흥을 고도의 정치적 계산에 의한 계략이었다고 주장한 것은 잘못이라고 반박했다. 마지막으로 김상영교수는 보우가 봉은사 주지로 부임한 15 48년부터 제주도로 유배돼 제주목사 변협에게 피살당하는 15 65년까지의 17년을 투쟁기(15 48∼51),안정기및 은퇴기(52∼61),몰락기(62∼65)로 나누어 시기별 활동상을 개괄했다.보우의 몰락과 죽음은 장성해진 명종이 대비의 그늘에서 벗어날 것과 맹목적 호불행위를 금하라는 대신들의 끊임없는 요구에서 발단됐다는 김교수는 명종이 나중에는 태도를 바꾸게 됐고 마침내 65년 대비가 죽자 그의 운명도 종말을 맞았다고 말했다. 한편 봉은사는 이날 학술대회를 계기로 보우대사의 호를 딴 허응장학재단을 발족,보우사상의 체계적 연구를 위한 학자들에 대한 지원과 학술세미나등을 지속적으로 열기로 방침을 세웠다.
  • 우유값 수금 2백30만원/의경이 주워 주인에 전달(조약돌)

    ○…2일 상오6시쯤 경찰서 주변 거리 청소에 나섰던 서울중부경찰서 소속 차정환수경(21)이 근처 한일은행 중부지점앞 계단에서 남편과 사별한뒤 우유배달을 하며 어렵게 살아가는 오명숙씨(44·송파구 방이2동 175)의 우유수금액 2백30만원이 든 손가방을 발견,그 안에 있던 의료보험증 주소를 보고 오씨에게 연락해 돈을 찾아줬다. 차수경은 지난 4월에도 서울 중구 을지로5가 미군공병단 앞길에서 시설경비근무를 하던 중 1백99만원이 든 봉투를 주워 주인에게 돌려주기도 했다는 것. 이에 앞서 지난달 29일 하오9시30분쯤에는 서울지방경찰청 제1기동대 소속 김경운수경(26)등 의경3명이 방범지원근무를 나갔다가 청량리역 앞 택시정류장에서 현금 60만원,자기앞수표 1천1백30만원,1억2천8백10만원짜리 어음등 모두 1억5천1백90만원이 든 가방을 주워 주인 김운종씨(39·상업·도봉구 방학동 신동아아파트)를 수소문해 찾아 되돌려줬다.
  • 꽃 한아름의 평화/차정미 시인·가정법률상담소 출판부장(굄돌)

    『예나 제나 한결같이/여기 저기,앉을 때 설때 아는/심지곧고 사리분별 잘 하는 아이 되라고/네게 붙여준 순한글식 너의 이름/예제야…/그 이름의 의미처럼/넉넉하되 분명한 아이/부드럽되 곧은 아이/어려움에 처할수록 용기있는 아이/남의 고통 헤아릴줄 아는 섬세한 아이/불의에 굴하지 않는 당당한 아이되라고/하루에도 열백번이고/고운 네 모습 바라보며/네 이름 가슴 깊이 불러본다 새겨본다』(필자의 졸시 「딸아이의 이름」전문) 며칠전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과테말라의 리고베르타 멘추가 선정되었다는 언론의 보도를 접했다.작년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에 이어 여성 인권운동가가 또한번의 영광을 가슴에 안게 되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즈음 딸아이의 이름과 얽힌 시 한편을 다시 음미해 보면서 난 묘한 감정이 교차하는 것을 느꼈다.아이가 태어날 때 장차 아이에 대한 기대감으로 지어주었던 그 이름을 뇌면서 새삼 그 당시에 가졌던 감동의 파장이 일기 전에 씁쓰레한 생각이 먼저 고개를 내밀었기 때문이다. 4·19때 딸이 다니던 여자대학의 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사실을 알고 『침묵하는 너희들을 보니 슬프구나』라고 어느 학부모는 탄식했다고 하지만 의로운 행동이 곧 수난으로 직결되는 우리시대에 과연 이 아버지와 같은 생각을 가진 부모가 몇이나 될 것인가? 대다수의 부모들처럼 나 역시 예외가 아닐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그렇지만 아이를 바라보기조차 민망해지는 것을 어쩌랴. 아이를 향한 나의 시선이 민망해지는 것을 거두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오랫동안 피땀 흘려 빚어왔던 민주화라는 이름의 도자기를 완성시키는 데 있는 힘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그리고 비록 힘들고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 일은 우리 세대에서 끝내야만 되지 않을까.그 일은 곧 개인의 이해관계보다 공동체사회의 터전을 닦기 위하여 개인의 안락보다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위해 일관된 삶을 살아온 뜻이 높고 깊은 그늘진 곳의 많은 분들에게 오랏줄이 아닌 꽃향내 물씬 풍기는 한아름의 꽃다발을 안겨주는 일이 될 것이다.인권운동을 하여 세계적 영광을 가슴에 안진 못할지언정 자기 땅으로부터 유배당하는 우리의 인권운동가가 생겨나지 않을때 우리사회는 그만큼 밝고 정의롭고 희망찬 사회가 되는 지표가 될 것이다.
  • 외언내언

    국토의 서남단 해남의 두륜산에는 대흥사가 있다.한창 번성했을 때는 대소 가람 2백여채에 식구가 1천여명이었던 대찰.창건 이래 1천2백여년에 대종사·대선사를 23명이나 배출했다.◆초의 장의순 스님은 그 마지막 대종사였다.그는 계·경·선의 경지가 깊은데다가 시문에 통달했으며 서화에 또한 조예가 깊었다.그뿐 아니라 다도에 있어서는 다신·다성으로까지 추앙을 받았던 사람.강진에 유배되었던 다산 정약용,제주에 유배되었던 원당 김정희와 나눈 정의가 일화로서 전해진다.남화의 큰 봉우리를 이룬 진도의 소치 허유는 초의가 원당에게 소개했던 사람.보는 눈이 비범했다.◆원당과 초의는 1786년생으로 동갑.다산은 그들보다 24년이 연상이니 스승격이었다.동갑끼리여서 그랬던지 원당과 초의의 우정은 각별했다.어느 해던가 원당이 추사에게 띄운 편지의 허두만 보아도 그를 짐작할 수 있다.『초의 보소.그대가 지난해까지는 다를 잘 보내더니 올해는 장마철이 지나고 단오절이 가까워 오는데 무소식이구려.그대 두륜산의 한낱 중인 주제에 뭐가 그리 바빠못보내는고….혹 말꼬리에 매달아 보냈는데 도중하차했나…』◆그 뒤로도 원당의 이죽거리는 말투는 계속된다.원당이 제주에 유배돼 있는 9년동안 초의는 다섯 차례나 찾아갔고 그중 한번은 반년을 함께 지냈을 정도이다.초의가 남긴 「동다용」과 「다신전」은 이미 쇠퇴한 다도를 위해 쓰인 글이라는 데서 뜻이 깊다.「동다송」에서는 우리나라 다를 칭송하고 있고 「다신전」에서는 다만드는 일에서부터 끓이는법,마시는법 등이 적혀 있다.◆초의선사의 사상과 삶을 재조명하는 초의문화제가 28·29일 이틀동안 대흥사의 일지암에서 열린다.일지암은 초의선사가 수행하던 유서깊은 곳.유불선의 경지를 함께 노닌 한 선인의 유장했던 행적을 기려본다.
  • 거북선의 실체를 기대하며(사설)

    길이가 한발쯤 되고 굵기가 오래묵은 대나무 밑동만한 이 포로 성웅은 해전을 독려했을지도 모른다.죽음도 알리지 못하게 하고 장렬히 가신 최후의 순간에도 이 포가 그곁에 있었을지도 모른다.거북선의 포를 건졌다는 소식은 새삼스럽게 충절높던 장군 이순신을 생각나게 한다. 거북선을 발명하여 바다를 제패했던 장군은 우리에게는 커다란 자부심이고 정신적인 지주이기도 하다.그런데도 거북선은 말과 기록으로만 전할 뿐 실제로 어떤 것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실물이 우리에게는 없다.배만 아니라 전함에 장착되게 마련인 갖가지 전구며 무기들도 아무것도 실증가능한 물증이 없었다.그런데 이번에 비로소 명문이 분명한 포가 하나 건져졌다고 한다. 「구함 별황자총통」이라는 이름의 이 총통의 발굴은 그 자체도 커다란 수확이지만,이로써 우리에게 거북선의 실물 인양가능성을 기대케 해주어 더욱 값지다.포신이 가라앉은 주변에 그 주체인 거북선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포신에 새겨진 명문이 특히 그것을 기대하게 한다.몸에 칠언대구를 새겨놓은 것을 보아 이것이 그냥 보통의 병선에 장착된 것은 아니었었을 것임을 짐작하게 하는 것이다. 유장하게도 포신에 시를 새기며 만들었었다는 일도 우리에게는 새로운 느낌을 준다.『총통은 적의 배를 놀라게 하고 한 발만으로도 적의 배를 반드시 수장시킨다』는 내용의 한시다.그런 결의로 싸움에 임했음을 알게한다.이 명문과 함께 총통의 제조연월일이 나온 것을 보면 이 무기가 해전의 우두머리 배에 장착되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인양의 의미가 큰 것은 그것이 보여주는 실증적인 가치와 함께 잇따를 발굴에 대한 기대때문이다.더구나 이 발굴의 개가는 임란 4백년을 맞은 우리가 거북선 발굴의 의지를 가지고 장비며 인원을 보강하여 얻을수 있었던 소득이다. 거북선 발굴에 대한 우리의 의지는 해군과 민간에서 비교적 열정을 가지고 노력해 온 작업이다.이렇게 계획적으로 집념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성과는 거두기가 어려운 것이 문화재의 발굴이라는 것을 함축적으로 나타내주기도 한다. 이번의 발굴 인양은 89년 대통령지시로 진해 해군사관학교에 「충무공해전유물발굴단」이 창설된 이후 탐사요원의 증원은 물론 시추장비를 보강하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매몰가능지역이 추적된 뒤 바로 그지역에서 건져진 것이다.난중일기등 역사적인 사료를 뒤지고,전사를 섭렵하여 충무공이 유배당한 이후 원균장군에 의한 패전의 기록까지 톺아서 그럴만한 수역을 압축한 것이다.이와 같은 과학적인 추적이 없이는 『한강에서 바늘 건지기보다도 어렵다』는 인양작업이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그러나 우리의 발굴노력으로 안될리도 없는 것이 또한 이 일이다.이미 발굴의 기술과 인력및 장비가 축적되었고 국민적인 의지도 성숙되었다.외국의 경우를 보아도 1천여년이 넘은 바이킹선이 바다밑에서 신비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하고 6백년전의 목제 군함을 원형 그대로 건진 예도 있다. 오래잖은 장래에 우리앞에도 거북선의 실체가 그 역사적인 모습을 드러내어 민족의 오랜 숙원을 풀게 될지도 모른다.그때를 우리는 기다린다.
  • “다산의 「실사구시·수기치인」 정신 잇자”

    ◎광주 「다신계」 활발한 부흥운동/교수·공무원등 50여명 지난2월 결성/도덕성 회복·환경보전에 앞장서기로/문화교실·유적지순례… 회보도 발행 전남 광주에서는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사상과 철학을 오늘에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한창이다. 지난 2월18일 다산학연구원장 이을호박사(82·전국립광주박물관장)를 중심으로 이 지역 인사들이 창립한 「다신계」의 도덕성부흥과 환경보전운동이 그것. 각종 서클이나 친목단체가 유행하면서도 전통적 색채의 창조적인 모임이 흔치 않은 실정에서 「다신계」는 지역사회의 정신개혁운동을 솔선수범하는 이례적인 조직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본래 다신설는 정약용이 강진에서의 유배생활을 마치고 떠나기전 제자 18명으로하여금 결성케 한 모임으로 이후 다신설는 다산의 사상을 실천에 옮기는 운동을 펼쳤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남 광주에서 지난 2월 창립한 「다신계」는 이 다신설를 본따 다산의 사상중 실사구시와 수기치인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는데 주안점을 두고 활동중이다. 다산학연구원장으로 오랫동안 다산의 사상·철학을 연구해온 이을호박사를 중심으로 현재 대학교수·공무원·전현직교사·사업가·가정주부·대학원생등 약 50여명의 회원이 「다산정신 되살리기」에 열심이다. 「다신계」의 활동은 이미 약 2년전부터 서서히 벌어져와 이제는 사회운동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는게 「다신계」회원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즉 다산연구학자와 뜻있는 이들이 2년전쯤부터 「다신클럽」형태로 모임을 가져오다가 지난2월 본격적으로 순수민간단체차원의 활동으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는 것. 다신설는 우리사회의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도덕성 상실과 ▲환경오염을 꼽고 그 해결을 위해 우선 자기수양과 대의적인 대중계몽활동을 내세운다. 또 매달 1회씩 다신방 문화교실을 열어 철학·문학·예술에 대한 폭넓은 사상을 전파하고 유적지순례도 병행하고 있다. 이에따라 지난3월 한사상을 주제로 단군신화의 철학적 분석인 「한사상강좌」와,6월 「한글논어강독」등 두 차례의 강좌를 이미 열어 관심있는 이들의 호응을 크게 얻었으며지난 5월엔 다산초당과 백년사(강진)등 현장학습을 주선키도 했다. 다산사상을 폭넓게 전파하기 위한 행사로는 정치·경제·사회·생활정보등 다양한 내용의 「월요시민강좌」를 지속적으로 열뿐만 아니라 각 직장과 소속단체별 강좌를 통해 다산사상과 실천운동을 접맥해나갈 계획이다. 이와함께 다신설가 치중할 환경운동에 대해서는 환경개선에 시민이 적극 동참할 수 있는 쓰레기수거운동과 함께 환경오염의 심각성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을 깨우치기 위한 심포지엄개최와 유해물질 안 버리기운동을 펼쳐나가기로 했다. 현재 설의 운영은 계원들이 내는 월회비로 충당하고 있으며 매월 한번씩 다신설월보를 발간,계원들의 동정을 싣고 있다. 이을호 다신설대표는 『당시 학자들의 정신을 현대에 살리자는 뜻에서 새 이름을 붙이기보다 다신설를 택했다』면서 『아직 초기단계인 만큼 원리연구에 충실하겠지만 점차 대외활동에도 나서 요즘 심각하게 논의되는 환경파괴와 도덕성 및 인간성파괴의 문제를 철저한 자기수양과 실천운동을 해결해나가도록 하겠다』고덧붙였다.
  • 양보와 타협의 정신 계승될길/나는 이렇게 평가한다/김석준

    ◎기득권·자기주장 고집 말아야 1987년 6월 민주항쟁에 뒤이어 6·29선언이 있은지도 이제 5년이 지났다.당시 5공 권위주의 강권통치에 대항하여 일어난 전국적인 국민항쟁의 절정에서 정부와 국민간의 타협의 산물이 6·29선언이었다.대통령 직선개헌,공정한 대선경쟁보장,김대중씨등 사면복권,국민기본권 신장,언론자유 창달,지방자치제및 교육자율화 실시,정당활동 보장및 밝고 맑은 사회건설 등이 이 선언의 핵심내용들이다. 지금에 와서 이러한 내용들을 살펴보니 참신하기 보다는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라는 생각이 든다.그러나 당시로서는 강경한 정권이 국민들에게 「항복」한 것이고 이의 채택을 둘러싸고 강경세력과 온건세력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또한 이 선언이 36·6%의 유효투표에 기반을 둔 6공화국 정당성의 요체로 원용되고 있다. 6·29이후 한국의 정치민주화는 빠른 속도로 전개되었다.다소의 시행착오와 시련은 있지만 이 선언의 내용들이 대부분 현실로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선언의 주체가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지난 5년간 여야합의에 의한 헌법개정,17년만에 실시된 대통령직선과 후보자간의 치열한 경쟁,4·26총선에 의한 「여소야대」의 13대국회 등장,「5공 특위」와 「광주특위」등에 의한 청문회 개최,「5공비리」의 부분적인 척결과 전직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백담사 유배·지방자치제의 부분적인 시행 등은 정치민주화의 주요 실적들이다.또한 이를 가능케 한 것이 언론의 활성화,정당활동 보장,사면복권 등이므로 6·29선언이 직·간접의 방법으로 정치민주화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6·29」가 비판되어 왔음도 유념해야 할 필요가 있다.선언주체를 둘러싼 논쟁,「야권분열 기도」,인위적인 정계개편에 의한 「여대야소」국회로의 복귀,대선공약인 중간평가의 포기 등이 주된 비판의 내용들이다. 무엇보다도 6·29의 내용중 가장 큰 문제로 부각되는 것이 최근의 지방자치 단체장 선거와 교육자율화실시 문제이다.이 두 문제는 6·29선언의 실천을 공약해온 6공 정부 임기후반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지방자치단체장 선거는 정부·여당에는 큰 정치적 짐으로 남아 있다. 6·29선언은 기본적으로 국민과 정부간의 타협의 산물이다.타협의 정신은 상대방을 동등한 대화의 상대로 존중,인정함을 근본으로 한다.6·29가 한국의 참민주주의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기득권 세력이나 정부·여당이 자신의 이익이나 논리만 고집하지 않고 야당이나 재야세력의 주장을 포용·양보·타협하면서 정당성의 기반을 넓히는데 있다.정부·여당이 진정한 6·29정신인 타협정신을 회복하여 정치적·경제적 민주대개혁을 더욱 과감히 추진하길 기대한다.
  • 「무공해 자동차」 개발경쟁 치열

    ◎“환경보호 시대” 국내외 「차세대엔진」 연구현황/미서 연내 시판… 기아서도 2종/메탄올/연료가공 난점… 초보단계에 머물러/수소/일·유럽 실용화… 현대서 시제품/전기/미,1회 연료주입 300㎞달리기 실험… 대우도 “시동”/천연가스 기름을 사용하는 자동차가 대기오염의 주범으로 꼽힘에 따라 대체에너지를 사용하는 자동차의 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전기자동차·메탄올자동차·수소자동차·CNG자동차들이 그것 들이다.이 자동차들은 특히 최근들어 활발히 추진되고 있는 환경보호운동으로 차세대 자동차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유럽·일본·북미 등 선진국들이 이처럼 차세대 자동차의 개발을 서두르는 것은 각국들이 자동차의 배기가스 규제를 점차 강화하고 있는데다가 앞으로는 무공해차량만 사용하도록하는 시대가 필연적으로 올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국이 추진중인 차세대 자동차의 개발현황을 소개한다. ▷메탄올자동차◁ 메탄올은 상온에서 액체상태이므로 가솔리처럼 급유가 간편하며 출력도 우수하다. 그러나 석유의 대체에너지로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장점을 갖고 있지만 엔진의 내구성 및 내부식성,저온상태에서의 시동성 향상등의 문제와 메탄올의 안정적인 공급문제등이 해결과제로 남아 있다. 현재 미국·일본등에서 실용화를 위한 각종 테스트가 진행중이다. 국내에서는 기아자동차가 지난해 6월 가솔린 대신 공업용 메탄올을 연료로 사용하는 「콩코드 M100」과「베스타 M85」등 2종의 자동차를 개발했다. 송재익 기아기술센터 엔진연구실장은 메탄올자동차의 장점에 대해 『메탄올의 원료인 천연가스와 석탄은 세계 각지에 널리 분포돼 있어 원활한 공급이 가능하며 연소상태를 나타내주는 기준치인 옥탄가가 1백6으로 가솔린의 90에 비해 훨씬 높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제너럴 모터스(GM),포드,클라이슬러등 이른바 「빅3」들이 올해안에 메탄올자동차를 시판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자동차◁ 주행중 배기가스가 전혀 배출되지 않는다는 점이 최대의 장점이다. 기술개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어 차세대 자동차의 주역으로 꼽힌다. 일본에서만 2만여대의 전기자동차가 사용되고 있으며 미국,유럽등지에서도 우유배달차,TV중계차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다만 연료충전용 배터리가 너무 무겁고 충전에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며 특히 항속거리가 가솔린차의 6분의1에서 10분의1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등이 실용화를 더디게 만들고 있다. 지난 80년대부터 정부와 자동차업체들이 공동으로 전기자동차 개발을 추진해 온 일본은 91년을 「전기자동차원년」으로 설정하고 실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2천년에는 20만대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대자동차가 시간당 최고속도 60㎞,1회 충전에 70㎞를 주행할 수 있는 4인승 전기자동차의 시제품을 개발,국내3사중 가장 앞서가고 있다. 미국은 「대기정화법」에 의해 오는 98년까지 수입차량의 2%는 반드시 전기자동차를 포함시키도록 규정함에 따라 대우,기아등도 전기자동차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CNG자동차◁ 가솔린 대신 CNG(천연가스)를 연료로 사용한다. 발열량과 연비에 있어서는 가솔린자동차에 필적하나 CNG를 연료로 사용하기위한 경우 고압펌프를 개발하는 문제가 어려움으로 남아있다. CNG자동차의 개발역사는 자그마치 60년이나 된다. 이탈리아가 지난 30년대 가솔린 및 CNG겸용 자동차를 최초로 실용화한 이후 90년 현재 60여만대의 겸용차량이 세계 20여개국에서 굴러다니고 있다. CNG전용차량은 엔진출력이 가솔린엔진과 거의 같을뿐 아니라 가솔린차에 비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48%,탄화수소 32%,질소산화물 10%가 각각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 대우가 개발한 CNG차량은 기존의 가솔린 차량에 연료계통장치들인 고압CNG용기,압력조절기,고압가스분사장치 등을 장착해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의한 전자제어가 가능토록 했다. 미국의 포드사는 고압력으로 충전한 실린더 3개를 사용,단 한차례의 연료주입으로 2백∼3백㎞를 주행할 수 있는 CNG전용차량 「AFV」를 개발,주행실험 중이다. ▷수소자동차◁ CNG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연료공급에 어려운 점이 있다. 수소는 자연속에 무진장 존재하고 있어 대체연료로 크게 부각되고 있지만 자연에서 수소를 연료로 가공하는기술수준이 아직 뒤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독일과 일본등에서 이 자동차의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나 아직은 기초적인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 칠레:1/10년째 무역흑자… 연5%지속성장(중남미를 다시본다:8)

    ◎나윤도특파원 현지 리포트/민선정부 수립후 사회형평 공감대 형성/주택·의보·연금등 복지정책 폭넓은 지지 「중남미의 호랑이」­이는 70년대 중반 중남미에서 가장 먼저 시장경제체제를 채택,82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째 무역흑자를 유지시켜오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안정기조속에 연5%의 지속적 경제성장을 이뤄오고 있는 칠레를 가리키는 말이다. 서울에서 싱가포르까지의 거리에 해당하는 남북 4천3백㎞의 좁고 긴 국토를 갖고 있는 칠레는 면적은 75만6천㎦로 한반도의 3.5배에 불과하지만 안데스산맥과 태평양으로 외부와 고립돼 있으면서 사막·화산·극지등 지구상의 모든 지형은 물론 사계 또한 상존하고 있는 다양성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시장경제체제 도입 칠레가 중남미의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일찍 경제적 안정을 이룩할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아벨리우크 마나세비치 생산진흥부장관(61)은 『지난 73년 쿠데타로 집권,89년까지 16년간 통치해온 아우구스트 피노체트 군사정권의 과감한 개방정책추진과 정치적 안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말하고 『더욱이 90년 파트리시오 에일윈 민선대통령정부 수립이후 분배및 사회평등에 대한 노력이 국민의 컨센서스를 조성,안정기조를 확립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칠레는 50,60년대 비교적 정치적 안정을 이뤄왔으나 지난 19 70년 세계최초의 선거에 의한 사회주의정권인 살바도르 아옌데정권이 등장,주요산업의 국유화등 급격한 사회주의정책을 펼쳤고 이는 결국 경제파탄으로 이어졌다. 이에 반발,73년 육·해·공군과 경찰의 연합쿠데타를 주도,정권을 장악한 피노체트장군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폐쇄및 정치활동을 금지시킨후 군정비판에 대해서는 체포·국외추방·국내유배등 강압정책을 펼쳤다. ○외국투자 적극 유치 그러나 피노체트정권은 경제적 측면에서는 대대적인 개방정책으로 시장경제체제를 확립시켰으며 경제안정기조를 구축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가지 아이러니칼한 사실은 군사독재의 주역이었던 피노체트장군이 민선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군참모총장직을 계속 맡아오고 있다는 사실이다.이에대해 많은 칠레사람들이 『그가 비록 독재정치는 펼쳤어도 부정부패가 전혀 없는 깨끗한 정치를 했기 때문에 건재하는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민선정부의 안정을 바탕으로 국민적 합의하에 정책을 추구하고 있는 칠레정부가 세운 금년도 경제목표는 경제성장률 5%,인플레율15%,실업률 5%로 돼있다. 이를위해 적극적인 경제외교 추진으로 대외경협및 외국인투자유치를 적극 확대,미국·일본·EC등 14개국으로부터 5억2천5백만달러 규모의 유·무상국제협력자금을 공여받을 계획이다. 이같은 경제목표의 달성을 위해 카를로스 오미나미 경제부장관(42)을 중심으로한 젊은 경제팀은 지난해 관세를 15%에서 11%로 인하하고 멕시코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NAFTA(북미자유무역지대) 참여에의 길을 연것을 비롯,금년2월에는 약8%의 대미환율절상을 시도하는등 강력한 정책을 펴왔다. 특히 정부의 엄격한 조세제도 운영으로 기업의 세금포탈은 불가능한 실정이며 국민들도 적극 협조,일상생활에서 영수증을 주고받는 것이 생활화돼있다.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도 영수증을 주며 택시를 타도 영수증을 발급해주는 철저한 영수증사회를 이루고 있다. 또한 공무원들의 청렴도 역시 매우 높은 편으로 경찰공무원까지 국민의 존경을 받을 정도로 정부와 국민간 신뢰를 바탕으로한 강력한 사회기강을 확립하고 있다. ○한국과의 경협 모색 현재 칠레정부의 정책중 국민들로부터 가장 폭넓은 공감대를 얻고 있는 정책은 근로자들에 대한 복지정책.고용주로 하여금 피고용인에 대해 기본급의 13·5%에 해당하는 연금기금조성비와 기본급의 7%에 해당하는 의료보험료등 사회보장기금을 부담토록 의무화하고 있는데 이를 개인집의 가정부에게까지도 적용시키는등 철저하게 시행하고 있다.또한 무주택자의 경우 주택구입시 일정액의 무상지원도 해주고 있다. 파리대학 경제학박사인 오미나미장관은 『지속적 경제안정은 거시경제에 입각한 정부의 건전하고 엄격한 경제정책 운용과 국민적 공감대 형성으로 가능했다』고 밝히고 현재 칠레경제의 성장에 있어 장애요인으로 ▲1차산품의존의 경제구조 ▲고부가가치상품의 수출부진 ▲숙련된 노동력의 부족 ▲비효율적인 자원배분등을 지적했다. 오미나미장관은 또 특히 한국과의 경협방안에 대해서 『칠레는 한국의 경이적인 경제발전에 많은 관심을 갖고 배우려 노력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정부간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개발의 경험을 배우고 과학기술분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하며 상호간의 인적교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김옥균 대국기보 일서 발견/1886년 슈에이본인방과 6점 접바둑

    ◎흑쥐고 불계승… 한인 최초의 현대식 대국보 구한말의 풍운아 고균 김옥균선생(1851∼1894)이 당대 일본바둑계의 최고봉이던 슈에이(수영)본인방과 둔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바둑기보가 10일 공개됐다. 고서연구가인 안영이씨(59·전 현현각대표)가 공개한 이 기보는 1910년 9월5일자 동경기계신보사가 발간한 「기계신보」와 1952년 9월12일자 국광서방발행 「위기세계」에 실린 총보및 각보·해설로 되어 있다.이 자료는 갑신정변에 실패한 고균이 일본에 망명하면서 슈에이본인방과 오랜 교분관계를 나눴다는 바둑계의 구전야사를 증명하기위해 안씨가 지난27년동안 발굴작업을 벌인끝에 최근 일본기원자료실과 일본 의회도서관에서 찾아낸 것이다. 이 기보는 1886년 2월20일 일본 도쿄의 본인방가에서 대국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따라서 지금까지 최초의 현대식바둑기보로 알려져 있던 1918년6월9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당시 국수 백남규와 일본의 사이토4단의 경성위기대회 기보 보다 68년을 앞선 것이다.대국자를 고균의 일본이름인 이와다슈사쿠(암전주작)로 표기하고 있는 이 기보에는 슈에이 본인방과 6점접바둑끝에 2백30수만에 흑을 쥔 고균이 불계승을 거뒀다고 적고 있다. 자료를 검토한 김인9단은 『고균의 바둑은 실리위주이면서 치밀한 수읽기를 바탕으로 하는 공격적 변화를 구사하고 있다』고 우선 평가했다.그러면서 『일본바둑계에서 「명인중의 명인」으로 칭송받던 당대의 최고기사 슈에이를 상대로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당당함도 엿보인다』고 말했다. 김9단은 이 기보로 미루어 고균의 실력을 요즘 아마추어 초단∼2단정도일 것으로 추측했다.다른 바둑전문가들도 당시로서는 본인방과 6점접바둑을 두는 것은 파격적인 일이며 당시국내에서 유행하던 순장바둑(바둑알을 미리 16점을깔아 놓고 두는 우리나라 고래의 바둑)을 배웠던 고균이 이 정도의 기력을 보인 것만도 대단한 일이라고 놀라워했다. 바둑을 두던 당시 고균은 36세,본인방은 35세였다.갑신정변에 실패한 뒤 일본에 도피하고 있던 망명객과 일본최고의 바둑명문가의 주인이던 제17·19대 본인방 슈에이가 나눈 10년에 걸친 바둑을 통한 수담은 지금까지 한·일 바둑계에 전설처럼 전해 내려 왔다.고균이 일본명치정부에 의해 요시찰인물로 낙인이 찍혀 요코하마에서 1천㎞나 떨어진 절해고도 오가사하라(소립원)에 유배중일때도 슈에이는 고균을 직접 찾아가 3개월동안 함께 기거하며 1만여개의 포석을 만들어 낼 정도로 두사람은 절친한 사이였다.
  • 이광수·김동인의 역사소설/“일제침략 합리화” 이색주장

    ◎역사학자 정두희교수,「역사비평」에 기고/「단종애사」「대수양」 세조즉위 정당화/1940년대 작가자신들의 현실관 반영 세조대를 배경으로 하는 춘원 이광수와 김동인의 역사소설이 당시의 시대상에 빗대 일제의 한국침략및 대륙침략을 합리화,이에 순응하는 친일역사관에 입각해 쓰여진 것이라는 비판이 한 역사학자에 의해 제기됐다.. 월간 대중역사지「역사비평」 봄호에 「단종과 세조에 대한 역사소설의 검토」라는 기고문을 발표한 정두희 서강대교수(한국사)는 이 논문에서 『당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식인이요 작가였던 이들이 세조대에 대한 평가기준을 매우 잘못 선정하고 있었다는 것은 자신들의 현실문제를 그릇 판단하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소설을 통해 자신들의 현실관을 정당화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단종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를 배경으로 삼고있는 「단종애사」(1928∼29년 동아일보연재)에서 작가 이광수는 자신의 현실과 단종­세조대의 역사적 현실을 대비,단종을 망국의 설움에 젖은 조국으로,수양을 야심만만한 일제로 보며 세조의 행위를 불의로는 인식하면서도 이를 철저하게 비판하지는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이광수가 소설 「세조대왕」(1941)에 이르면 세조의 왕위찬탈을 불의가 아닌 「살신성인의 성불」로 간주,세조의 행위를 극적으로 합리화하고 나서 「단종애사」에서 미약하나마 드러났던 도덕적 판단마저 자취를 감췄다고 주장했다.그는 또 작가가 이작품을 통해 세조가 불교에 귀의해 자신의 다스림이 곧 중생을 구원하는 행위로 만든것에 대해 『불교적인 교리를 교묘하게 위장한 작가의 역사관은 그냥 묵과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이광수에게는 도덕과 조국보다는 현재와 미래에 펼쳐질 위대한 세상에 대한 희망과 염원만이 남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현세의 권력을 장악한 존재를 모두 정당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김동인은 이광수와는 좀 다른 입장에서 「대수양」(19 40)을 썼다.그는 우선 「춘원연구」라는 글에서 『이광수의 「단종애사」가 남효온의 「추강집」「육신전」등 잘못된사실을 근거로 수양을 악의 대변자로 설정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하고 대신 수양을 악의 화신이 아니라 처음부터 나라의 운명을 크게 열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행동한 뛰어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정교수는 또 작가가 양녕대군의 입을 빌어 『국가의 안목으로 보자면 스라소니(세자)와 스라소니의 새끼(세손)는 제거해 버리는 편이 좋겠다』는 극단적인 표현을 한 것은 당시 역사적인 상황에 대한 작가의 무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또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세종사후의 상황을 위기적인 상황으로 몰아가고 정무를 번거로워하는 단종이 왕위를 선양하겠다고 하도 간곡하게 졸라 세조가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 왕위에 오르게 된 것으로 소설을 끌고가 결국 사육신의 죽음과 금성대군의 죽음은 물론 단종의 유배와 죽음에 대해 일체의 언급을 할 필요도 없이 소설을 끝내버린 작가의 몰가치적인 태도에 놀라움을 금할수 없다고 비판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정교수는 이어 『역사적인 자각이 더욱 요청되던 식민지시대에 살았던 작가의 입장을생각해본다면 「대수양」에서 나타난 그의 태도는 반역사적이며 그가 결국 적극적인 친일파로 전락하고 일본의 역사를 소재로 역사소설을 쓰는 지경에까지 가게된 것은 차라리 당연한 일처럼 느껴진다』고 주장했다.
  • “황금곰상 어떤작품에…” 뜨거운 경쟁/

    ◎42회 베를린영화제 오늘 개막… 예심 거친 25편 각축/이·러시아합작 「원안에서」 가장 유력/한국,비경쟁부문에 「경마장…」 출퓸 제42회 베를린영화제가 13일부터 오는 25일까지 열린다.이번 영화제에서는 예선을 통과한 25편이 출품돼 최고상인 김곰트로피를 놓고 경선을 벌이는 한편 비출품작인 극영화·다큐멘터리·청소년영화 등 3백10편과 중단편영화 1백50편이 각 영화관에서 소개된다. 이번 영화제에는 시대성과 역사성,심리적 분야를 소재로한 작품이 많이 나왔다는 것이 새로운 경향이다. 가장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출품작은 이태리·러시아합작인 「원안에서」(원제 The Inner Circle)로 콘차로프스키감독이 올해에 만든 1백34분짜리 컬러물이다.다큐멘터리로는 독일통일을 풍자적인 시각에서 욕심많은 서독인의 성격을 부각시킨 「파편」(원제 DerBrocken·바딤 그로브나스감독)이 가장 주목을 끄는 작품이다. 「원안에서」가 벌써부터 금상후보로 손꼽히고 있는 것은 이 영화가 스탈린 개인영사기사의 실화를 소재로 했으며 독제체제에서 인간의좌절과 자아회복을 사실적으로 영상화하고 감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다 시대적인 분위기와 특성이 화면 가득히 담겨있어 관객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이반 산친은 소련비밀경찰(KGB)학교의 영사기사로 39년 여름 어느날 후보생들을 대상으로 가스마스크 사용법을 알려주는 교육영화를 상영하던 중 스탈린이 비춰지는 장면에서 필름이 엉겨 화면에 절대권력자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타들어 가는 모습이 비춰진다.비밀경찰이 상영을 중단시키는 등 소동이 야기되지만 이반은 뜻밖에도 아무일 없이 귀가하게 된다.이반이 가족·이웃들과 무사함을 축하하고 있을 때 KGB가 들이닥쳐 부인과 이웃들을 끌고 가며 이반의 딸은 고아원으로 보내진다.이반 자신도 연행됐으나 루부얀카의 KGB형무소가 아닌 화려한 크렘린궁전이다. 그는 이날 병이난 스탈린 개인영사기사를 대신하게 되며 이때부터 영화를 좋아하는 스탈린이 측근들을 불러들여 영화감상을 하는 자리에서 스탈린이 좋아하는 극영화·오페라영화를 상영하게 된다. 딸은 독재자에 의해 살해된 부모들을 적으로 교육시키는 보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한다.이반은 비밀경찰에 쫓기는 악몽에 시달리며 형무소에서 지내다 열차에서 공산당원에게 철갑상어알과 보드카를 서비스하는 등 특권층의 노리개로 전락한다.부인은 결국 베리야의 아기를 임신해 남편 옆으로 돌아와 자살하며 이반은 스탈린이 죽는날 애도군중들 사이에서 잃었던 딸을 알아보게 된다. 이 영화는 독재자에 대한 충성심으로 모든것을 잃게 되는 냉혹한 체제를 그리고 있으며 스탈린이 죽는 마지막 장면은 페레스트로이카의 시작을 의미하지만 평론가들은 콘차로 보스키감독 자신의 경험을 영상화 했다는 평이다. 이밖에 화제작은 마렌 후치프감독의 러시아작품 「인핀타스」로 한 지식인이 잃어버린 시대와 역사의 의미를 규명하는 내용이며 이스트반 차보 감독의 「스위트 에마,디어 뵈베」는 부다페스트의 한 러시아 여교사가 정치격변기에 직변한 삶의 위기를 다루고 있다. 리카드로 라레인감독은 스페인·칠레 합작인 「국경」에서 칠레 피노세트정권때 한 마을에 유배된 교사의 운명을 소재로 했으며 로렌스 카스단감독의 미국영화 「그랜드캐년」은 폭력영화 시나리오작가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어느날 실제로 폭력배와 부딪치는 내용을 소재로 했다. 이밖에 워렌머티와 벤킹스리등이 출연하는 「벅시」는 30년대 미국 폭력조직에 관한 이야기이며 파울슬레더감독의 「라이트 스리퍼」는 마약조직에 관한 내용이다. 한편 한국영화는 비경쟁 영포럼부문에 장선우감독이 연출한 「경마장가는길」이 출품돼 있다.
  • 봉천동 행인 살해범/우유배달 20대 검거

    서울관악경찰서는 14일 구완회씨(28·우유배달원·서울 관악구 봉천2동41)를 살인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구씨는 지난해 12월19일 상오4시쯤 서울 관악구 봉천2동 42의1 한진주차장옆 골목길에 배달용오토바이를 세워두고 주택가에 우유배달을 마치고 돌아와 오토바이옆에 유병호씨(41·서울 관악구 봉천5동 49의 4)가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지금 우유를 훔치고있는 것이 아니냐』고 시비를 벌이다 흉기로 배를 찔러 숨지게한 혐의를 받고있다.
  • 외언내언

    『슬라브 3공화국의 독립국가 공동체 결성에 관해 그는 연방대통령인 나에게 전화조차 해주지 않았다.미국대통령 부시에게는 서둘러 전화를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모른다.용인할수 없는 일이다』미시사주간지 타임과의 회견에서 고르바초프가 옐친에 대해 터뜨린 분노다.◆이제와서 화를 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8월 쿠데타소동 직후 옐친의 삿대질 닥달을 당하면서부터 고르바초프는 수세에 몰려왔다.스탈린이었으면 그를 총살했을 것이요 브레즈네프 였으면 시베리아로 유배했겠지만 고르바초프이기 때문에 옆에 두었다는 평가도 있었다.옐친은 고르바초프가 있었기 때문에 비로소 존재할수 있었는지 모른다.◆그러나 이상은 이상이요 현실은 현실이다.고르바초프는 현실의 옐친에 의해 철저히 거부되고있다.소련을 방문중인 베이커 미국무장관은 고르바초프를 제치고 옐친을 먼저 만났다.연방국방장관도 배석했으니 그가 연방대통령인 셈이다.핵은 러시아만 보유하겠다고 다짐했다.소련의 유엔안보리상임이사국자리도 러시아가 인수하겠다고 했다.러시아의회는 소련의 상징인 크렘린궁의 접수도 결의했다.소련방은 러시아공화국에 안방까지 완전히 내어준셈이다.◆우크라이나 벨로루시 러시아등 3대슬라브공화국의 독립국 공동체라고는 하지만 역시 주도권은 영토의 4분의3과 자원의 80%,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러시아의 옐친이 쥐고있다.소련의 붕괴라기보다는 러시아화가 더 어울리는 표현일것 같다.◆그러나 문제는 옐친도 성공을 거둔다는 보장이 없다는데 있다.일은 끝이 아니라 이제 겨우 시작이며 더 어렵고 복잡해지고 있다.독립국 공동체나 소련의 러시아화에도 불구하고 식량문제를 비롯한 「총체적 위기」는 가속되고있다.누가 무엇이 이것을 멈추게 할것인가.고르비가 못한것을 옐친이 할수있을까.옐친이 실패하면 그다음은 더 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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