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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의 독립운동가 이승훈선생

    국가보훈처는 27일 남강(南岡) 이승훈(李昇薰) 선생을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1864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선생은 무역업과 운송업으로 국내 굴지의 부호가 되었으나 연이은 사업실패를 겪으며외세와 민족문제에 대한 인식과 반일 민족의식을 갖게 됐다. 1907년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연에 감명받은 것을 계기로 비밀결사 조직인 신민회에 가입하여 평안북도 총감이 됐다.이후 태극서관을 설립,민족자본 육성에 힘쓰는 한편 초등교육기관인 강명의숙과 중등교육기관인 오산학교를 설립해 민족교육 운동을 펼쳤다. 1911년 안중근 의사의 사촌 안명근의 독립자금 모금사건인안악(安岳)사건에 연류돼 제주로 유배되었다.105인 사건의주모자로 지목되어 징역 6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르다 1915년 가출옥했다.미국 윌슨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천명 등으로 세계정세가 변하자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과 함께 서울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식을 가졌다.일제에 체포돼옥고를 치르다 1922년 7월 출옥한 선생은 물산장려운동,민립대학 설립운동에 참여했다.1924년 5월부터 10월까지 동아일보 사장을 지냈다. 1930년 5월 9일 ‘내 뼈를 표본으로 만들어 사랑하는 학생들에게 보여주기를 원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6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노주석기자 joo@
  • 신간 맛보기

    ◆학교지식의 정치학(마이클 W.애플 지음,박부권 등 옮김,우리교육 펴냄)‘보수주의 시대의 민주교육’이란 부제에 걸맞게 정치·경제·사회 등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교육 역시지배계급 권력유지 메커니즘에 봉사하도록 길들여져 있다고주장하며 그 탈피를 모색하는 책.우익 헤게모니의 미국에서교육정책 결정,교과서 제작이나 채택 등이 어떤 식으로 교육을 지배이데올로기에 복무시키거나 길항케 하는지와 자본의교육침투 현황 등도 다루고 있다.지은이는 한때 교원노조 지지 입장으로 한국에서 곤경을 겪기도 했다는 미국 교육사회학자.1만2,000원◆중국유맹사(진보량 지음,이치수 옮김,아카넷 펴냄)선진(先秦)에서 청대(淸代)까지 건달·깡패,곧 유맹(流氓)의 변천사를 흥미롭게 조명하며 중국 사회를 분석.위진남북조시대의무뢰배(無賴輩),송대의 파락호(破落戶)등 시기에 따른 변화상을 상세히 소개.이들이 정치와 사회에 미친 영향은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 두드러졌으나 평온기에도 여전히 위세를 떨쳤다.유맹은 하층계급에서 왕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에 진출했다.한(漢)고조 유방(劉邦)도 “젊어서 집안 일을 게을리한 무뢰였다”고 ‘사기’(史記)에 적혀 있다.명(明)을 건국한 주원장(朱元璋)도 마찬가지.3만원◆1968-희망의 시절,분노의 나날(타리크 알리·수잔 왓킨스지음,안찬수·강정석 옮김,삼인 펴냄)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시도가 분출했던 1968년에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세계적 관점에서 날짜별로 서술.미국내 베트남전참전 반대시위,프랑스의 5월 사태,베트남으로 상징되는 제3세계의 급진주의운동,사회주의체제의 이익이라는 명분 아래 탱크에 짓밟힌 ‘프라하의 봄’으로 상징되는 동구 개혁운동…. 지적·사회적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체제,어떤 비판도달가워하지 않는 정치질서,제3세계를 유린하는 제국주의 등모든 금기에 대한 도전이다.1만3,000원◆남도 2천리 테마여행-그곳에 가면 마음이 열린다(남성숙지음,성하출판 펴냄)이 책은 단순한 남도의 풍광 소개에 머무르지 않는다.저자 말마따나 정치적이든 문화적이든 오해받고 있는 남도를 바르게 이해하자는 데서 출발한다.광주매일논설위원이기도 한 저자는 유배의 땅,의병장,바다 개척자,시가문학의 대가,서편제 현장,한국의 자궁 섬,이순신의 흔적등 여행객이 테마를 묶어 돌아볼 수 있는 남도 풍물을 붓으로 그려내고 있다. 의로움이나 멋을 대물림하면서 남도 사람들이 일궈간 ‘남도의 혼’을 손에 잡힐 듯 건네준다.9,000원
  • 송유관公 불붙은 경영권 다툼

    대한송유관공사의 경영권을 둘러싼 정유사간 분쟁이 행정다툼으로 비화됐다. 11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SK㈜는 송유관공사 민영화에 따른지분인수로 공사지분 34.04%를 확보함에 따라 지난 7일 공정위에 기업결합을 신고,공정위가 심사에 착수했다. 이에 대해 에쓰오일은 “정유사 영업비밀과 직결돼 있는 석유배관망을 관장하는 송유관공사는 업무 특성상 공정성 확보가 관건임에도 SK측이 지배적 권한을 행사하려 하고 있다”면서 “SK의 송유관공사 기업결합은 공정거래를 저해한다”며 이의신고를 했다.한 관계자는 “송유관공사 지분 매입시공공성과 중립적 경영을 약속받았다”며 “SK의 기업결합이받아들여질 경우 정부의 ‘약속불이행’에 대한 법적대응도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SK는 “송유관공사 민영화계획에 따라 다른 정유사와 함께 지분을 인수했고 법령에 따라 기업결합신고를 했을뿐”이라며 “공사의 공영성 보장을 위해 계열에 편입시키지는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공정위 심사결과 SK의 송유관공사 기업결합이 에쓰오일 주장대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의결권 제한이나 지분매각 등의 조치가 취해진다. 정유 5사는 송유관공사 민영화에 따라 정부지분을 인수했으나 에쓰오일이 SK의 경영권행사에 반발,주식인수대금 301억원의 납부를 거부하는 등 마찰을 빚어왔다. 함혜리기자
  • 2·8독립선언 82주년 기념식

    3·1운동의 기폭제가 된 2·8독립선언선포 82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식이 8일 서울과 일본 도쿄에서 동시에 열렸다. 서울,도쿄 동시개최는 1919년 2월 8일 재일 한인유학생 400여명이 일본제국의 심장부인 도쿄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조국독립을 선포한 2·8독립선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올해 처음으로 시도됐다.도쿄기념식은 이날 오전 10시 일본 도쿄 한국YMCA 한국문화관에서 김유배 보훈처장,윤경빈 광복회장,최상용 주일대사,김재숙 재일본 대한민국 민단 중앙본부단장 등 주요인사와 교민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기념식에 이어 신용하 서울대 교수가 ‘2·8독립선언의 역사적 의의’를 주제로 기념강연했다. 오전 11시 서울YMCA에서 열린 서울기념식에는 광복회원 등300여명이 참석했다.지명관 한림대교수가 ‘한국사회에서 바라본 2·8독립선언’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다. 노주석기자 joo@
  • ‘대한독립선언’ 82주년 기념식

    만주와 러시아 거주 민족지도자 39명이 1919년 2월1일 중국 길림성에서 선포한 ‘대한독립선언’ 82주년 기념식이 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광복회 주관으로 열린 행사에는 김유배(金有培) 국가보훈처장,윤경빈(尹慶彬) 광복회장,박유철(朴維徹) 독립기념관장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기념식에 이은 학술회의에서는 서굉일(한신대)·신용하(서울대)·한용원(한국교원대) 교수와 일본의 경제평론가인 구보다 요시마다씨가 선언을 기초한 조소앙 선생의 사상을 재조명하는 주제논문 등을 발표했다. 대한독립선언은 조소앙,신채호 선생을 비롯한 항일 독립운동 지도자39명이 제1차 세계대전 종전에 맞춰 조국독립을 요구한 내용의 선언서로서 2·8독립선언과 3.1독립선언의 기폭제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노주석기자 joo@
  • ‘독립유공자 공훈록’ 14권 발간

    국가보훈처(처장 김유배)는 1996년부터 2000년까지 포상한 독립유공자 885명의 공적내용을 수록한 ‘독립유공자 공훈록’(제14권)을 발간해 독립운동 연구단체,대학도서관 등지에 배포했다.이번에 나온 ‘공훈록’은 총867쪽 분량의 양장본으로 모두 3,000부를 발행했다. 장석흥 국민대 교수(3·1운동,국내 독립운동)박환 수원대 교수(독립군,만주지역 독립운동)김용달 단국대 강사(의병, 미주방면, 학생운동)가 독립운동 계열별로 나누어 집필했다. 이번 ‘공훈록’의 특징은 무엇보다 후손이 없는,즉 무후(無後)선열의 공적을 확인하여 포상과 함께 그 공적 내용을 수록한 점이다.전체885명 가운데 534명이 이에 해당하며 그동안 후손이 없거나 공적확인이 안돼 포상이 보류된 유공자들이다. ‘공훈록’에는 일본 육사 출신으로 노령지방에서 빨치산부대를 이끌고 항일무장투쟁을 벌인 전설적인 독립군 지도자 김경천(金擎天)장군,서간도의 독립군 단체인 서로군정서와 정의부 지도자로 활동한 김규식(金圭植)선생,미주지역에서 대한인국민회 회장을 역임하며 임시정부 재정을 지원한 김호(金乎)선생 등의 공적이 수록돼 있다. 정운현기자 jwh59@
  • 보험사 ‘악덕 상혼’

    보험사들이 다음달부터 시장금리 하락을 이유로 신규상품의 보험료를 최고 20%까지 올릴 예정이다.이에 대해 금리하락에 따른 손실을고객에게 부당하게 떠넘기려는 보험사들의 ‘악덕상혼’이라는 비난이 보험 가입자들로부터 쏟아져 나오고 있다. ■다음달부터 보험료 최고 20%까지 올라 2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국내 생보사들은 다음달부터 연금성 상품의 보험료를 15∼20%,저축성상품은 5∼10% 각각 올리기로 했다. 대한생명은 보험료를 올리지 않는 대신 오는 3월부터 일부 상품의보험금을 최고 20% 깎아 지급하기로 했다. 보험사측은 보험료 인상에 대해 “국고채 금리가 연 5%대를 기록하는 등 시중 금리의 하락으로 자산운용 기대수익이 크게 줄어 보험료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보험사들은 가입자들로부터 받은 보험료를 주식 ·채권 ·대출 등에운용해 발생하는 수익으로 고객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는데, 금리가 떨어져 수익 감소가 예상되기 때문에 수지를 맞추기 위해서는 보험료를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고금리 시대에는 보험료 안내려 국내 보험사들은 외환위기 직후인지난 98년 금리가 20%대까지 치솟아 엄청난 자산운용 초과수익을 누릴 때에는 보험료를 내리지 않았다.이에 대해 한 보험사 관계자는 “당시 27개 생보사가 9,104억400만원을 유배당지급금 형태로 고객에게돌려줬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는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았던 97년(9,669억 8,900만원)과비교하면 오히려 줄어든 수치다. ■1가구당 보험 3.6건 가입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2000년 9월 현재우리나라 전체 가구당 생명보험 가입률은 83%로 미국(76%)·일본(93%)과 비슷한 수준이다. 가구당 3.6건의 생명보험을 들고 있으며 연간 평균 293만원을 보험료로 내고 있다. ■가입자는 보험사의 봉 결국 보험사들은 고금리 시기에는 금리상승의 혜택을 고객들에게 돌려주지 않고 회사가 독차지하면서 저금리 시기에는 금리하락에 따른 손실을 고객에게 떠넘기고 있다. 권영준(權泳俊)경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는 지난해 발생한 보험사들의 대규모 주식투자 손실을 지적하면서 “선진국에서는 금리가 올라자산운용 초과수익이 생기면 보험료를 낮춰 고객에게 혜택을 돌려주고 있다”며 “개방화 시대에 외국 보험사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국내 보험사들도 금리변동에 따른 보험료 조정 시스템을 제도화해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주현진기자 jhj@
  • [씨줄날줄] 남북 겸임대사

    나폴레옹이 엘바섬으로 유배된 후 181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유럽열강이 모여 나폴레옹전쟁으로 헝클어진 유럽질서를 바로 잡기 위한협상이 열렸다. 오스트리아 총리 메테르니히가 주도한 빈회의에서 채택한 것은 호혜정신에 입각한 ‘보상주의 원칙’이었다.대사(大使)가상주 외교사절단의 수장(首長)으로 공인받은 것은 이 회의에서였다. 그래서 국가간에 서로 동일한 직급의 사절을 보내고 받는 관례도 이보상주의 원칙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있다. 원래 대사란 말은 로마 정치가 카에사르의 ‘갈리아전기’에서 처음쓰였다다고 한다.대사의 영어 표현인 ‘앰배서더(ambassador)’가 ‘심부름꾼(ambactus)’에서 유래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초기 대사들은그다지 신분이 높지 않았다.15세기 무렵 프랑스 루이 11세는 자신의이발사를 외교사절로 파견한 적도 있었다.그 뒤 1459년 로마교황비오2세는 외교사절의 신임장을 접수하며 처음 그 인물 기준을 제시했다.그는 “취미와 학력을 겸비하고,문학가·예술가·과학자와 사교에어색하지 않으며,매사에 침착한 인물이어야 한다”고 했다. 네덜란드가 사상 최초로 남북한 겸임대사를 임명할 것으로 알려져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지난해 12월 북한-영국 수교 발표때 영국이평양에 공관을 설치하기 전까지 대리대사를 두기로 한 적은 있지만주한대사가 북한대사를 겸임하기로 한 것은 처음이다.그러니까 빈회의에서 대사가 공식 인정을 받은 이후 186년만에 비로소 한반도에서는 첫 겸임대사가 탄생하는 셈이다.서울에 주재하는 외교관이 북한관련 업무를 함께 보면서 수시로 평양을 오가는 일이 현실화된다니금석지감(今昔之感)이 든다. 북한은 지난해 1월 서방 선진7개국(G7) 가운데 이탈리아와 처음 수교한 이래 유럽연합(EU) 회원국과 잇따라 수교협상을 진행중이다.영국과 이미 수교협상을 마무리한 데 이어 스페인·독일과 공식 외교관계를 맺을 것이란 소식이다.남북한 겸임대사에 주목하는 것은 이런 EU국가들의 대북(對北) 접근방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점때문이다.지난해 남북정상회담 이후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에서 겸임대사가 남북관계 진전과 북한-서방의 접근을 가속화하는 촉매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건승 논설위원 ksp@
  • 예술의전당 ‘한국서예전’

    통일신라시대 무구정광대탑다라니경,고려시대 금속활자와 팔만대장경,조선시대의 한글…. 우리나라는 ‘글씨의 나라’라고 할만큼 세계적인 문자유물이 많다. 그러나 문자유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그리깊지 않다. 그것이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이나 모체가 된 ‘서예’ 등에 대해서는 대부분 무관심하다. 특히 현대에 와서는 글씨에 대한 기능적인 측면에만 주목, 글씨가 갖는 예술적 측면이나 종교·신화적인특질은 좀처럼 조명받을 기회가 없었다. 29일부터 내년 2월 11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관에서 열리는 ‘한국 서예 2000년전’은 이러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한다.한국 서예사 2000년의 궤적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대규모 기획전이다.국립중앙박물관 등 50곳에서 빌려온 한국의 대표적인 서예작품 150점이선보인다. 전시는 한반도에 한자가 전래된 기원 전후부터 조선 말기까지 각 시대별로 나뉜다.고구려의 서풍에는 중국 북조의 웅건함이 잘 나타나있으며,백제의 서풍은 남조의 부드럽고 세련된 분위기가 강하다.이에비해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를 통해 중국의 서예를 간접 수용, 졸박한서풍이 주류를 이룬다. 고구려 ‘광개토대왕릉비명’, 백제 ‘무녕왕릉지석’, 신라 ‘영일냉수리신라비’ 탁본은 각각 삼국시대 글씨의색깔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통일신라는 당나라의 서풍이 본격적으로 도입돼 서예문화의 국제화가 이뤄진 시기다.해서체의 전형을 제시한 구양순의 초당(初唐) 서풍과 왕희지의 고전적 행서풍이 널리 유행해 김생,최치원 등 명필을 배출했다.12세기에 들어서는 더욱 다양한 서풍이 들어와 서예사를 살찌웠다.왕희지의 행서를 유려한 서풍으로 바꾼 탄연의 ‘청평산문수원중수기’,왕희지의 글씨를 모은 ‘인각사 보각국사비’ 등이 전시된다. 고려 말∼조선 초기 서예사의 가장 큰 특징은 원나라 조맹부 서체의영향이다. 특히 안평대군 이용(1418∼53)은 그의 서풍을 수용해 널리확산시켰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친필로 간주되는 ‘칠언절구’와‘춘야연도리원서’가 처음으로 공개된다. 조선시대 중기는 조선서예의 전형을 보여준다.석봉 한호의 ‘한경홍진적첩’에서는 단정한 필치의 도학자들의 글씨를 만날 수 있으며,황기로의 ‘경차(敬次)’에서는 명대의 초서풍을 읽을 수 있다.18세기초에는 명대의 문인서론(文人書論)에 입각한 중국 서풍이 유행했고,18세기 말부터는 청대의 서론이 흘러들어오면서 한국 서예 근대화의단초를 열었다.이 시기를 대표하는 인물은 자하 신위와 추사 김정희. 추사는 고대 금석문을 중시하는 비학(碑學)의 서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전시작 중에는 사실상 국내에 처음 공개되는 작품들도 적지않다.정약용이 유배시절에 쓴 시첩 ‘증원필’,조선후기 사자관(寫字官)이었던 정곡 이수장의 ‘필첩’,민영익의 ‘초서 6곡병’,통일신라시대의‘화엄석경’ 등은 가슴을 졸이며 볼 만하다.일반 3,000원, 학생 2,000원.(02)580-1300김종면기자 jmkim@
  • 역사속의 유배인 그 숨은진실 보기

    예전에는 죄를 지으면 유배를 떠났다.그러나 유배인이라고 해서 모두를 후세 사람들이 죄인으로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1915년 경성에 형무소가 설치된 뒤로는 죄인을 굳이 절해고도에 가두는 유배의 형벌이사라졌다.그래서 1914년 일제 조선총독부에 의해 거문도에 유배된 독립운동가 임병찬선생은 한국의 마지막 유배인으로 기록된다. 그래도스스로 피신의 길을 택해야 한 현대판 유배가 있었다. 신규수교수(원광대 국사교육과)가 쓴 ‘유배,유배지,얽힌 바람’(이유 펴냄)은 유배에 얽힌 역사를 재평가해 현대인의 삶의 지표로 삼으려는 유배 현장 답사기이자 조선·현대사다. 숙부인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 청령포로 유배돼 사약까지 받은 단종이 현지인에게 추앙받는다는 등 시대상황에 희생된 선조들의의미를 되새겼다.강진에 유배돼 ‘목민심서’등을 저술한 정약용을비롯해 유배지에서 학문의 꽃을 피운 사례도 담았다.의병장 최익현과풍운아 김옥균이 각각 일본의 스시마와 오가사와라에 남긴 민족의 한도 짚어봤다. 1960년 4·19 한달여만에 하와이로 망명한 이승만,63년 공화당 창당직전 한국을 떠나 8개월여동안 외국을 떠돈 김종필,신군부 집권 후인82년 미국으로 강제 출국당한 김대중,88년 5공청문회 와중에서 백담사로 떠난 전두환 등 현대판 유배의 진실도 파헤쳤다. 저자는 “과거를 잊는 자는 미래를 잃을 수 있다”면서 “역사에는마침표가 없으며,역사의 청산은 법에서 얘기하는 형사 책임의 유무를따지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말한다. 김주혁기자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27)유배지의 한 끼니

    *교도서 담밑서 뜯어끓인 '쑥국'냄새 舍棟에 가득. 정치범의 단식은 대개 세 가지 이유로 시작된다.첫째는 그야말로 정치적인 이유로 바깥 사회에서 대의명분에 어긋나는 일이 발생했다든가 해마다 돌아오는 광복절이며 삼일절이며 하는 날에 맞춘 정치적행사로서 하게된다.둘째는 옥내의 정치범 처우에 관한 것으로 이를테면 편지 검열이라든가 금지된 서적이나 면회의 제한 등등 사상 표현의 자유에 관한 사항들에 대해서다.셋째로는 일반수들의 생활에 관한 것들로 가장 빈번한 것이 먹는 문제인 주부식 개선이며 의식주 문제,구타 욕설에 관한 문제,면회 서신 문제,운동 시간의 문제 등등이다. 대개는 일주일이 가기도 전에 서로 타협이 이루어져 개선이 되거나해결이 되고 단식이 끝나지만 어떤 경우는 양측이 팽팽히 맞서서 보름을 넘기기도 한다. 단식은 그야말로 음식물을 대번에 딱 끊는 것이다.처음에 사흘이 가장 어렵고 나흘 닷새째가 되면 안정이 된다.나는 사회에서도 체질 개선이나 대안의학에 관한 책들을 보고 단식도 했던 경험이 있어서 비록 예비단식 기간이 없었지만 정장제인 마그밀을 먹고 고무 호스로관장도 하고나서 물만 마시며 버티었다. 플라스틱 음료수 1.5ℓ짜리 두 병에 담아온 냉수를 하루에 마셔야 했다.일주일 가까이 되어가면 먼데서 된장국을 실은 배식 밀차가 출발하자마자 그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그러면서도 운동 시간에는 나가서 한 시간씩 걸었으니 6㎞쯤은 되었을 것이다.보름이 넘어가자 음식물이 존재하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되고 잠이 적어지며 기분이 착 갈아 앉는다.추위는 뼈에 스미는 것처럼 생생하다.이때에 내가 생각못했던 점이 있었는데 속은 좋아지는지 몰라도 체내에서 칼슘이 급속하게 빠져나가는 관계로 이빨에는 최악의 영향을 준다고 한다.역시 그래서인지 정치범들치고 몇 년 살고 나와서 이가 성한 사람이 드물다.그렇게 건강하던 문익환 목사의 경우에도 한 번씩 살고 나오시면 이빨이 서너 대씩 빠졌다고 한다.내 경우에는 위에 여섯 대 아래에 다섯대해서 모두 열 한 대가 빠졌다.그래서 아래는 치아를 해박았고 위는 틀니를 해넣을 수 밖에 없었다.따져보니 한 철에 한 번씩은 단식을했던 셈인데 모두 열대여섯 번쯤 되는가보다.길게는 이십 일 이상이나 한 적도 있다. 문제는 단식을 끝내고 복식을 시작하는 단계인데 바로 이때야말로 가장 어렵고 위험한 기간이다.그리고 이 기간의 음식 맛은 그야말로 마법처럼 오묘하고 기가 막히다.육식이 얼마나 사람에게 맞지않는 음식인가는 이때의 냄새로 알 수가 있다.거의 누린내 비슷한 썩은 냄새가 나고 생선 비린내는 식사 때가 지나고나서도 온 사동에 하루 온종일 배어있는 것을 느낄 정도다. 내가 잊지 못하고 있는 내 새끼 건오는 내가 단식을 했어도 국 그릇을 살그머니 식구통 안으로 들여 놓고는 하다가 나의 호된 야단을 맞고 그만 두었는데 복식을 하게되자 나를 도와 주려고 애를 썼다.취장에서는 환자용으로 신청하면 죽과 미음을 준비해 주는데 그냥 쌀을대충 갈아서 끓인 멀건 흰죽이었다.건오는 이 흰죽을 받아 두었다가취장 아이들에게 납작 보리를 얻어다 주전자에 넣고 푹 삶아 두었다가 으깨어 흰죽에 넣고 다시 보리죽을 끓여 주었다.나는 본능적으로냄새에 이끌려 관급 된장을 얻어다가 살짝 넣어 끓이도록 했는데 된장에 끓인 보리죽의 그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하여 아침에 속이 더부룩하거나 좀 굴풋한 밤중에 곧잘 끓여 먹는다.쌀과 보리를 얼핏 설 갈아서 멸치 다시 물에 된장을 풀어 끓이는데 이때에 미역을 잘게 썰어서 넣거나 아욱이나 시금치를 잘게 썰어 넣고 끓이면 더욱 맛있다. 그리고 이월 중순이 넘어가면 양지바른 곳에 이른 봄 쑥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는데 건오와 나는 운동시간에 나가면 교도소의 길다란 담 밑에 돋아나기 시작한 여린 쑥을 뜯곤 하였다.한 시간쯤 뜯으면 한두어 줌이 되었고 복도의 난로에 주전자를 얹어 놓고 먼저 다시를 낸다.멸치는 구하면 좋지만 없을 때에는 마른 오징어 다리를 전날 찬물에 담궈 두었다가 부드러워진 것을 팔팔 끓는 물에 넣고 우려내면 제법 구수한 맛국물이 된다.여기에 된장 풀고 여린 봄 쑥을 넣어 쑥국을 끓이는데 향긋한 냄새가 온 사동 안에 진동할 정도다. 명절 때가 되어가면 재소자들은 슬슬 양조를 준비하게 된다.감옥에서 술은 물론 엄금되어 있는데 추운 겨울철이나 명절이 돌아오면 방 검사에 간을 졸여가며 술을 담근다.매점의 구매물품인 요구르트를 사다가 음료수 병에 쏟아 넣고 곰팡이 피운 빵을 뜯어 넣고 원기소를 넣은 뒤에 양지바른 창가에 놓아두면 일주일쯤 지나서 먹을 수 있다.포도 쥬스에 설탕과 곰팡이 띄운 빵을 뜯어 넣으면 포도주 비슷한 과일주가 되기도 한다.옆방이 돌연 술렁술렁하고 누군가 헛소리를 하든가 노래를 부르면 저 방 지금 밀주 개봉했다는 것을 대번에 눈치챌 수있었다. 건오의 몇차례 다음에 내게 오게된 소지 아이로 의영이란 녀석이 있었는데 그는 조폭이었다.그러나 보스급은 아니고 이른바 어느 지역의 독불장군 비슷한 아이였다.아이는 천성이 착하고 조용했지만 일단화가나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과감하고 무지막지 해졌다.그 녀석의 배에는 구렁이가 지나간 것같은 상처가 있었는데 칼을 맞고 수십여 명과 싸운 상처라고 한다.의영이는 시골 읍내가 도시화 개발 바람을 맞으면서 외지의 폭력배와 투자자들에게 저항하면서 자연스럽게그 지역의 깡패로 나서게 된 아이다.나는 의영이와 함께 사동 사이에 있는 좁은 빈터를 빌려서 채소를 가꾸었다.상추 쑥갓 케일 열무는씨를 뿌려서 가꾸고 고추 가지 오이 호박 깻잎 등속은 이른 봄에 비닐 조각을 얻어다가 온상을 만들어 모종을 내어서 옮겨 심었다.그리고 가을철에는 배추를 모종하여 심었다.우리는 텃밭 가꾸는 일에 흠뻑 빠졌고 여름날 여린 열무 청을 썰어 넣고 고추장에 비벼 먹거나라면 국수를 삶아 씻어서 열무를 썰어 넣고 비빔국수를 해먹기도 하였다.간장과 된장에 깻잎을 담거 두었다가 겨우내 먹기도 했는데 특히 가을에 걷은 배추를 갈무리하여 겨우내 쌈도 싸먹고 무쳐 먹기도했다. 배추를 신문지에다 겹겹으로 싸서 매점에서 빌려온 플라스틱 박스에넣어서는 계단 밑 으슥한 비품창고에 보관하면 배추가 잎이 마르지도 않고 겨우내 방금 밭에서 뽑은 것처럼 싱싱했다. 된장과 마가린과 삶은 감자 등속으로 짜장면 비슷하게 만들어 먹기라든가 두유를 삶은 라면발에 부어 콩국수 만들어 먹기,또는 국에서 건진 두부와 콩나물과 김치와 삶은 돼지고기를 다져서 밀가루 반죽을밀어서 만두 해먹기 같은 일들은 대개 징역 삼년이 넘은 고참들이나하는 음식이다. 나는 석방되던 마지막 해의 겨울에 눈 오는 날,카드깡으로 들어온 준식이와 부쳐먹던 김치전을 생각한다.우리는 무기수인 영선반 작업반장에게 부탁해서 양철 프라이팬을 마련했다.그것은 난로의 연통을 길게 펴서 네모반듯하게 사방을 접어올린 것이었는데 굵은 철사로 손잡이까지 만들어 달았다.실내에서는 다른 재소자들 눈이 있으니까 ‘만기방’이라고 석방 이틀 전에 나가서 묵는 독립 사동에 가서 연탄 아궁이 불에다 부침개를 부쳤다.머리 위로는 싸락눈이 풀풀 날리고 우리는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마가린을 프라이팬에 녹여 김치를 섞은 밀가루 반죽을 부어서 부쳤다.역시 김치 부침개는 잘 익으면귀퉁이가 아삭거리고 고소하고 제일 맛이 있다.거길 떼어 먹다가 바라보니 준식이 눈에 눈물 방울이 고였다가 톡 떨어진다.왜그래,뜨거워서 그러냐? 아니요.그럼 뭣땜에 그래? 어머니 생각나서요. 황석영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26)유배지의 한 끼니

    *구치소 '사식' 반찬 10가지도 넘는 진수성찬. 미셸 푸코는 권력의 전형들을 다루면서 군대와 감옥을 예로 들었다. 군대와 감옥은 인간의 신체를 중심으로 규율을 통하여 반복적으로 ‘길을 들이는’ 곳이다.이러한 체제가 병원과 학교의 통제까지 형성한 셈이다. 규율이라면 소싯적부터 지긋지긋해 오던 터에 군대 석삼년에 감옥 다섯해를 지냈으니 한번 맛좀 보라는 팔자였던 모양이다. 구치소에 있을 적에는 그래도 식사가 좋은 편이었다.그도 그럴 것이아직은 재판 결정이 안났으니 죄인은 아닌 셈인 데다 날마다 가족 친지들이 면회를 오고 걸핏하면 변호사와 접견을 하게 되어 있어서 관에서도 신경을 써주는 편이었다.이른바 검사는 불러 조지고,판사는때려 조지고,가족은 팔아 조지고,피의자는 먹어 조진다는 말처럼 친지들이 차입해준 구매물이 넘쳐나고 영치금도 쌓이기 마련이다.그래서 돈도 빽도 없고 가족들도 돌아보지 않는 ‘개털’ 잡범들의 신세도 구치소 시절에는 영치품과 구매물의 인심이 후해서 살도 통통 찌고 속옷 같은 징역 준비도 구치소에서 마련하던 것이다.사식도 여러종류가 있어서 그야말로 경제사범 같은 ‘범털’들은 관식을 거의 먹지 않아도 입맛대로 골라 먹는다.범털들은 구치소 식사를 ‘법무부한정식’이라고 불렀는데 구매물에 없는 것이 없어서 그야말로 밥과국 그리고 찬 두 가지의 규정식 외에 김,각종 나물,젓갈,장조림,장아찌,통조림,등등 한 열 가지 이상을 주욱 늘어놓고 먹는다.그야말로진수성찬이라 교도관들도 점심에 직원 식당으로 가지않고 ‘소지’라고 하는 봉사원이 차려주는 백반상을 받기 마련이다.반찬 가짓수가얼마나 다양한가 하면 젓갈 한 가지만 놓고 보더라도 오징어젓,꼴뚜기젓,명란젓,어리굴젓,새우젓 등속이 있으니 이건 징역을 사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가족들이 팔아 조져다가 수인을 먹는 일에 전념하도록 만든 꼴이었다.이런 게 정통성 없는 군사정권 때에 정착이 되어 ‘사식’이랍시고 번성하여 왔던 것이다.아니나 다를까 민간정부로 넘어온 뒤 한 해가 지나서 이 제도는 부조리의 온상이 된다고 하여 폐지가 되어 버린다. 형이 확정되어 교도소로 이감을갔는데 낯선 것은 그렇다치고 우선식사가 형편 무인지경이 되어 버린다.사식은 아예 없고 구매물도 생활 필수품 위주로 한정되어 있다.그리고 교도소 당국은 먹을 것으로수인들을 교묘히 통제하기 마련이다.다른 무엇보다도 지방 교도소는시설도 열악하고 수인의 숫자도 많지 않아서 부식 구입에 불리하다. 하루 부식비가 수인 일인당 천원 정도 되는데 거기에 연료비가 포함되어 있으니 매끼 삼백원도 채 못되는 셈이었다.이전 같으면 구매물의 품목이라도 많아서 관급 부식이 신통찮아도 어떻게든 해결이 될텐데 부조리를 없앤다고 대폭 줄여서 일식 삼찬이라는 원칙으로 또박또박 관식을 먹어야만 하는 것이다.수인들은 모두 규율면에서도 그렇고 의식주도 교도소 안에서는 풍성하고 헐렁했던 군사정권 시절이 훨씬 살기 좋았다고 원망 섞어 말했다.그렇지만 형편이 나쁘면 나쁜대로어떻게든 먹고 살아갈 방도가 생기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의 이치다. 나는 주요인물 취급을 받아서 일반수들은 물론 다른 젊은 정치범들과도 분리되어 징역을 살았다.처음 몇 년 빡빡하던 시절에는 일반 잡범들의 사동 맨 끝에 복도를 철창으로 막고 독방을 만들어 수용했다.그것은 일반수들 십여명이 합방하는 3.5평짜리를 세 칸으로 나눈 방이었는데 벽 두께며 창과 문짝 등속으로 방 하나가 그야말로 0.8평 정도의 넓이였다.일반수들은 모두가 취역수들이라 낮에는 소내 공장에나가고 드넓은 사동에 나 혼자 남기 마련이었다.그러니 아래층 미취역수들 방이 있어서 교도관이 지키고는 있지만 수시로 나를 시찰하러 이층으로 올라올 수는 없었다.독방에 혼자 있으니 사람 속을 알 수가 없어 언제 세상을 비관하고 자살이라도 할지,혹은 화가 나서 자해라도 하든지,아니면 기묘한 수를 내어 탈옥을 꾀하게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을 것이다.그래서 관구에서 생각해낸 것이 나에게 봉사원을 붙여 주게된 것이다.교도관도 높은 사람이나 그들을 봉사원이라고 부르지 사실은 수인부터 담당 교도관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일제시대 그대로의 이름인 ‘소지’라고 부른다.한자말로 청소라는 뜻의 소제를 뜻하는 일본 발음의 말이다.제도가 말을 규정한다고도 하고 그 거꾸로라고도 하지만 일제시대 거의 그대로의 행형제도가 아직도 옥내용어를 일본말로 남겨두고 있는 셈이다. 하여튼 그래서 평균 육개월씩 잡아서 나와 함께 생활한 소지가 오년동안 십여명이 되었다.그들은 사동 안팎의 청소를 하고 하루 세 끼니의 배식을 하며 안에서 갇혀있는 수인들과 복도에서 수직하는 교도관들의 잔심부름을 도맡아 한다.그리고 수인들의 방에서 일어나는 일거일동을 담당에게 알려 주는 은밀한 임무도 맡는다.특별 독거수가 된나 하나를 위해서 봉사하고 있는 셈이어서 소지들은 서로 내 담당이되려고 애를 썼다.그들은 대개가 이십대 초반의 젊은이들이라 내게는 거의 아들뻘이나 마찬가지였고 죄명도 갖가지였다.겪다보니 내 소지로 오는 아이들 대부분이 절도가 아닌가.같은 죄수 신세로 그들의 수발을 받는데 별다른 불평이 있을 리가 없지만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한번은 관구계장에게 물었다. 어째서 내게 보내는 아이들은 모두 절도 출신입니까?왜요,머 불편하세요?아니 점잖게 탈영병이라든가 교통사고라든가 있지 않소.모르시는 말씀입니다.오죽 게으르면 군대생활도 제대로 못견디고 탈영을 했겠어요.교통사고 출신도 젊은 애들은 거의가 음주에 뺑소니에 인명사고인데 놀기만 좋아하고 뺀질뺀질 하지요. 그럼 절도는?도둑질 그거 부지런해야 먹구 삽니다.미리 미리 털 집 봐 둬야죠,시간 맞춰 현장 도착해 망 봐야죠,숨어서 기다려야죠,직접 털어야지요,무거운 짐 지고 도망가야죠,장물애비 찾아서 처분해야지… 한 두 가집니까.그애들 여기 오면 참 양순한 애들입니다.부지런하고 순하고아주 소지로 맞춤하지요. 나는 계장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다분히 일리가 있는 소리였기 때문이다.교도소 수인들 사이에서도 절도는 그냥 ‘도둑놈’이라고 하여서열상 맨 아래다.그것은 교도관들이 수인들을 멸시하여 부르는 총칭이 ‘도둑놈들’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맨 위가 깡패들을 부르는‘조폭’이며 우습게 취급 받는 이들은 ‘물총’이라고 하는 강간범인데 처음에 신입으로 입방했을 때만 그렇지 결국은 이들도 절도 취급은 받지 않는다.절도는 결국 서럽고 배고픈 놈들이란 점에서감옥먹이사슬의 맨 하위 계층인 셈이다. 나는 이 단순한 젊은이들과 매일의 끼니를 의논하며 살아가는 동안에 그들을 친 조카나 자식처럼 사랑하게 된 경우도 여럿이었다.언젠가는 ‘소지열전’을 써보고 싶은 생각도 있을 정도다. 건오라고 해두자.건오는 문화재 절도로 들어왔다.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재혼을 해서 계모 밑에서 시달리다가 부산으로 가출을 했다.중국집 배달소년에서 시작하여 음식점을 전전하면서 경양식기술을 익혔다.부지런히 벌어먹고 살만한데 전에 같이 일하던 녀석이 절도로 몇번 소년원이며 교도소를 들락거리더니 유명한 절집에 가서 금불상이며 탱화며 하는 값진 것들을 털어왔다.그래서 그 장물들을건오 자취방에 맡겨 두었다.일부는 자기가 가지고 있었는데 그 무렵에 같이 동거하던 술집에 나가는 여자 친구가 돈이 궁색하여 몰래 금불상 하나를 내다가 골동품 점에 팔려고 했다.주인은 대번에 이것이수배된 장물인 것을 알아보고 신고했다.그래서 건오는 영문도 모르고 일망타진된다.내가 건오를 잊지 못하는 것은 열여덟차례의 단식을했던 중에서 가장 길고 혹독했던 이십이 일 간의 본단식과 한 달 남짓한 복식을 치른 그 긴 긴 겨울을 함께 보냈기 때문이다. 황석영
  • [해외 항일전적지를 찾아서] (18)러시아 하바로프스크·이르쿠츠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침대열차를 타고 밤새 15시간을 달려 새벽녘에하바로프스크에 내렸다.800㎞를 북상한 까닭으로 기온이 뚝 떨어져입김이 허옇게 퍼져나갔다.어디 따뜻한 수프라도 먹을 곳이 있을까하고 몸을 움츠린 채 두리번거리는데 역전 광장에 동상 하나가 아침햇살을 받으며 우뚝 서 있다.17세기 중반 이곳을 탐험한 하바로프였다.그래서 지명도 그렇게 붙여진 모양이다. 하바로프스크는 우수리강과 아무르강의 합류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예스런 건축물들이 훌륭하고 강변을 따라 만들어진 공원의 산책길도아름답기 그지없다.인구가 60만명밖에 안 되지만 러시아의 극동 경영중심지로서 대통령 대리가 상주하고 있다.이 도시 곳곳에 우리의 항일투쟁 자취가 남아 있다. 만주와 러시아를 오가며 투쟁하던 이동휘(李東輝)는 1918년 2월 하바로프스크로 와서 볼셰비키 혁명의 완수를 다짐하는 한인혁명가회의에 참석했다.이 자리에서 볼셰비키 측으로부터,한인들이 러시아 혁명투쟁에 참가한다면 그 대가로 독립운동을 지원하겠다는 제안을 받았다.그리하여 그는 3월28일 유동열(柳東說)·김알렉산드라 스탄케비치등과 더불어 한인사회당을 창당하고 위원장에 취임했다. 한인사회당은 연해주 내 한인 유격대를 통합하고 힘을 집중시켰다.이동휘가 이른바 상해파 공산당의 거두로서 이르쿠츠크파와의 알력을 조정하지못했고 그 결과로 자유시 참변이라는 비극을 가져왔지만 한인사회당이 항일투쟁에 끼친 영향은 지대했다. 김알렉산드라는 러시아 혁명의 완성이 조국 독립의 첩경이라는 확신을 가졌던 열정적인 여성투사였다.1918년 2월 한인혁명가회의를 발기하여 성사시켰고 그것을 발전시켜 한인사회당을 결성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그해 4월 일본이 무장간섭군이라는 명분으로 연해주에출병하자 적위군 편에 서서 무장투쟁에 나섰다. 하바로프스크가 적에게 포위되자 300∼400명의 대원을 이끌고 탈출하다가 러시아 백군에체포당했다.“혁명군의 승리만이 조국 독립을 돕는다는 확신 때문에수많은 조선인이 적위군에 가담해 일본군과 백군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다.내가 이제 13보 걷는 것은 조선의 13도를 의미한다.곧 조국 13도에 자유와 행복이 깃들일 것이다.” 최후 발언을 하고 열세 걸음을걸은 그녀는 절벽 위에서 총살되어 벼랑 아래 아무르강으로 떨어졌다. 취재팀은 이 곳 주재 한국교육원(원장 양형렬)을 찾아가 컵라면과커피로 아침을 때웠다.그런 다음 처음 찾아간 곳이 한인사회당 창당현장이었다.무라브요바 아무르스크 22번지에 있는 그 건물 외벽에 김알렉산드라의 얼굴 부조가 붙어 있었다.원동('遠東)중앙은행이 들어있었다는데 내부 수리중이었다.차를 몰아 그녀가 처형된 ‘우쩌스(절벽)’로 갔다.시립 문화휴식공원의 한 쪽으로 거무튀튀한 바위 절벽이었는데, 처형 현장에는 그녀를 추모하는 듯한 순백색의 전망대가서 있다.김알렉산드라가 유언을 남기고 떨어진 벼랑 아래는 아무르강의 파도가 힘차게 꿈틀거리고 있다.멀리 강 대안에 중국 땅이 보인다.취재팀이 숙소로 잡은 인투리스트 호텔 앞에 있는 역사박물관에 김알렉산드라의 유물을 찾으러 갔다.나나이·야쿠트·에벤키 등 시베리아 소수민족 자료와 동식물 표본,러시아 혁명 투쟁에 관한 사료가 충실히 전시된 이 박물관에 사진 몇 점과 일기,편지 등이 있었다.취재팀은 1937년 강제이주 직전 반발을 막기 위해 한인지도자들을 처형해매장한 묘지 자리(칼 마르크스 거리 입구), 정찰대를 이끌고 일본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김유경(러시아 표기법 때문에 김유천으로도 읽힌다) 거리,조명희(趙明熙) 시인이 살았던 집을 돌아보았다.하바로프스크에는 그밖에 70㎞ 북쪽 야스코에 마을의 ‘붉은군대 제88저격여단’에 배속되었던 김일성과 만주 항일유격대의 유적이 있다. 취재팀은 이튿날 러시아 국내선 항공기를 타고 마지막 목적지 이르쿠츠크로 떠났다.비행시간이 3시간이 넘는 먼 거리였다.이르쿠츠크는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에 이르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중간지점이다.제정 러시아 때 데카브리스트의 폭동 주동자들을 실어 보낸이후로 유배지 구실을 했는데, 우리의 항일 운동가들도 유배되거나이 곳 감옥에 수감된 적이 있다.그 감옥은 지금도 남아 있다.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를 이해하는 사람은 ‘이르쿠츠크 공산당’을떠올리게 마련인데,이동휘가대표하는 상해파 공산당과 주도권을 다툰 일파를 말한다.이 도시에는 그들과 관련된 현장이 있다.그리고 이르쿠츠크파의 편을 들어,상해파에 동조하는 우리 독립군단을 압살하여 이른바 ‘자유시 참변’을 연출하고 동조세력과 투항자들을 이끌고 이 도시로 온 갈란데시베리 장군이 주둔한 5군단 거리도 있다.이르쿠츠크 공항 청사 밖으로 나가자 기온은 빙초산처럼 차가웠다.더구나 공항청사를 촬영하다가 공안요원의 경고를 받아 마음은 더 추웠다.마음씨 좋아 보이는 60대 초반의 택시기사를 골라잡아 취재에 나섰다.처음 찾아간 곳은 고려공산당 1차 대회장소.레닌가(街) 23번지에있는 옛 ‘인민의 집’ 극장은 붉은 벽돌로 된 3층 건물인데 아직도장려한 아름다움을 갖고 서 있었다.이 곳에서 1921년 5월에 오하묵·최고려 등의 주도로 열린 대회는 상해파를 제외하고 이르쿠츠크파가요직을 독점함으로써 한 달 뒤의 자유시 참변을 예비하는 불씨를 만들고 말았다. 늙은 택시 기사는 취재팀을 5∼6㎞쯤 떨어진 도시 외곽 바리깟 거리의 교도소로 데려다 주었다.제정 러시아 시절부터 감옥으로 사용되었던 이 곳에는 1921년 자유시 참변 때 포로가 된 수이푼지역 유격대장최영(崔英)을 포함해 400여명의 항일투사들이 갇혀 신음했다. 기록을보면 한인 수감자들이 너무 많아 감방이 넘쳤다고 한다. 1910년 한·일합방 강제체결 직후 이상설(李相卨)과 이범윤(李範允)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체포되어 이 도시로 유배되었었다는 기록도 있는데 이 감옥에 머물렀는지는 알 수가 없다.건물이 낡고 우중충했지만 망루에경비병이 있고 지상에도 동초(動哨)가 보였다.촬영이 문제였다.감옥정면은 달리는 차 안에서,뒷면은 민가 고샅으로 가서 찍을 수밖에 없었다.시내로 돌아가는 길에 문화휴식공원에 있는 그 원망스러운 갈란데시베리 장군의 기념비를 돌아보고 그의 군대가 주둔했던 5군단 거리로 갔다.1873년에 준공되었다는, 찬란하면서도 우아한 아흐로브고프 극장 사거리 길목이었다.이르쿠츠크파에 동조함으로써 갈란데시베리 장군에게 일찌감치 복속한 우리 독립군 부대원과 투항자들 1,745명이 이 거리로 실려와 한인연대로 재편성되었다. 독립전쟁의 영웅 홍범도(洪範圖)는 이 곳에서 러시아 적위군 연대장군복을 입었다. 자유시에서 이르쿠츠크파 편에 섬으로써 자신과 부하들의 목숨을 구했지만 결과는 무엇인가.북만주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전투에서 혁혁하게 싸운 수많은 투사들, 그들은 도와주겠다는 볼셰비키 측의 약속을 믿고 이동해 왔다가 무수히 죽거나 생포당해 이 도시의 감옥에 갇혔다.복속한 사람들도 러시아 적위군이 되어 버렸다.모두 독립전쟁과는 먼 운명을 안게 되었던 것이다.홍범도의 감정이 어찌했을까 상상하며 쓸쓸히 이 거리를 걷는데 뉘엿뉘엿 해가 지기 시작했다.취재팀은 시베리아의 평원으로 떨어지는 낙조를 바라보며 러시아 지역 답사의 수첩을 덮었다. 이르쿠츠크 이원규(소설가·동국대 겸임교수)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25)유배지의 한 끼니

    *'별사탕'과 함께 나온 건빵 최고의 간식거리로. 훈련병 시절에는 말할 것도 없고 기간사병이 된 이후에도 교육을 받을 기회가 생기는데 보통 때에는 군대의 세 끼니를 지겨워하던 녀석들도 꼭 피교육자 신세가 되면 두 가지 병이 돋힌다.하나는 앉으면저절로 눈이 감기는 조름병이요 둘은 주는 대로 먹기는 했지만 식사를 하자마자 시작되는 허기증과 배고픈 병이다.이 허기증은 먹어도먹어도 끝이 없어 교육 기간이 끝날 때까지 뭘 배워야할 내용은 들어오지 않고 온통 먹을 것 생각만 하다가 끝난다.전쟁을 다룬 소설이나영화에서도 먹는 타령은 세계 공통이다. 대개 훈련병 시절이나 재교육 기간이나 기다려지는 게 주말의 면회시간인데,모두들 잔뜩 벼르다가 식구나 친지를 만나는 자리라 우선반가운 인사는 대충 치워 버리고 그들이 들고 온 보퉁이에만 정신을판다.갈비며 불고기는 초창기의 일이고 몇 차례 거듭되다 보면 가족들도 눈치가 있어서 허드레일지언정 부피 많고 양 많은 것으로 싸오기 마련이다.시루떡 인절미 같은 떡에서 전붙이와 호빵 만두 김밥 심지어는 찐고구마 등속인데 이런 것들을 잔뜩 먹고나서 허리춤에 싸들고 들어온다.숨겨 들여오는 음식을 전우들에게 나누어 주는 경우도있겠지만 대부분은 침상 밑에 감추어 두고 혼자서 배고플 때 야금야금 먹어 치우려는 속셈에서다. 교육 기관의 하사관들도 모두 이런 사실을 알고 있어서 몇 가지 기합으로 통과의례를 준비해 둔다.우선 내무반에 들어서자마자 신고도 받지 않고 ‘쪼그려 뛰기’부터 실시한다.몇번 뛰지 않아서 허리춤에차고 온 먹거리들이 툭툭 떨어지고 즉각 압수 처리된다.전우애를 발휘시켜 주기 위하여 다른 소대원들에게 분배되는 건 물론이다.그리고면회자는 거의 절반 정도가 이튿날 배탈이 나거나 설사로 훈련에 지장을 주기가 십상이고 그대로 취침 시켰다가는 위경련이나 급체로 위생실에 실려가는 사고도 발생하기 마련이라 특별한 기합이 준비되어있다.즉 ‘침상 배치 붙어’라는 동작이 실시된다.이층 침대의 끝에다리를 대고 물구나무 서기를 시키는 것이다.아까 면회실에서 열을맞추어 귀대할 때부터 벌써 허리띠를 제대로 채운 놈이 하나도 없고모두들 목구멍에까지 음식물이 차오른 느낌으로 헐떡거리며 바지는배꼽 아래 간신히 걸려있는 판인데 아! 거꾸로 서라니,용코로 걸린셈이다.참지못한 어느 병사가 먼저 꾸역꾸역 토해내면 그 냄새와 전염으로 참고있던 녀석들도 줄줄이 내놓아 버린다.물론 일어선 다음에 귀잡고 뺑뺑이로 마지막까지 반납하고 나서야 통과의례는 끝난다.즉각 내무실을 청소하고 일주일 동안 화장실 청소까지 전담해야만 했던 것이다. 군에서는 가끔 발생하는 일이지만 내가 훈련 받을 때에도 과식 사고가 있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일주일에 한번씩 비상식량으로 건빵이 나왔는데 별사탕이 섞여있고 아삭아삭하게 구운 것이 밥 보다더 맛이 있었다.이것을 기간사병들에게 돈 주고 사거나 지급 받은 물품과 바꿔 먹기도 하였다.어느 훈련병이 무려 다섯 봉지를 구해다가낮에는 다른 녀석들 시선 때문에 먹지를 못하고 취침 시간에 개인 침낭 안에다 몽땅 털어 넣고 오물오물 먹기 시작했다. 그런 짓은 나도 가끔 해보았고 나중에 사회에 나와서도광주에서 10. 26 직후에 계엄법 위반으로 상무대 감방에 갇혀 있을 때에 겪은 적이있었다.내 독자라는 헌병이 가끔씩 요기 하라고 건빵 한봉지 씩을 주었는데 주위에 몇 알씩 나눠 주고나서 담요를 둘러쓰고 건빵을 한알씩 넣고 천천히 씹어 먹었다.아무리 조용하게 먹으려 해도 와삭거리는 소리가 어찌나 요란한지 마치 천둥 소리 같았다. 그 병사도 남들이 모두 깊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먹기 시작했음에틀림없을 것이다.하여튼 와사삭 와사삭 씹어서 그 건빵 다섯 봉지를새벽녘에 모두 해치웠건만 취침 시간에 화장실을 가도 신고를 해야되는 터에 물을 마실 재간은 없었나 보다.건빵이 비상 식량인 것은뱃속에 들어가면 몇배로 불어나기 때문이기도 하다.위장은커녕 식도가 꽉 막힐 수 밖에.그래서 한 젊은 병사는 행복하게 숨을 거두었다. 나의 유년 시절은 전쟁 기간이었다.아니 태어나서 얼마 후에 해방이되어 미군이 들어왔으니 미제 먹을 것에 대한 선망과 추억이 어린 나를 온통 사로잡고 있었다.환상적인 갖가지 색깔의 드로프스가 그렇고묘한 향내나는 젤리에 형용할 수 없이 혀끝을 사로잡던 초코렛이며츄잉껌이 그랬다.그리고 무엇 보다도 이 모든 것들이 골고루 들어있던 시레이션은 천국의 선물이었다. 전쟁 직후에 농촌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보리 개떡에 밀기울이 고작이었건만 그래도 도회지에는 미군부대가 있어서 아무리 양식이 떨어져도 학교에 가면 우유죽도 나오고 옥수수죽도 배급했다.시장 모퉁이에서는 ‘꿀꿀이 죽’이 언제나 끓고 있었다.미군 부대에 청소원으로 나가는 이들이 음식 쓰레기를 내다가 파는데 성한 고깃덩이나 빵이나 통조림 음식은 좀 더 값을 쳐서 팔고 이것 저것 합쳐서 내버린 음식 찌꺼기들을 한데 몰아서 무조건 끓이는 것이었다.이게 단돈 십원이었다.시장 장사치에서부터 지게꾼이며 아주머니며 아이들까지 균일하게 십원 한 장이면 한 그릇씩 퍼 주었다. 형편없는 콩나물 소금국만 마시다가 월남 파병에 끼어 배를 타자마자미군의 급식을 받게 되면서 저 황홀함이 되살아나던 것이다. 스테이크에서 포오크며 닭과 칠면조에 이르기까지 온갖 고깃덩이와 케이크후식으로 주던 캘리포니아 도장 박힌 오렌지의 맛은 전쟁터로 간다는두려움을 대번에 날려 보낼 정도였다.야전에 나가서는 시레이션이 나왔는데 우리가 먹던 것은 이차대전 때의 보급 전형이고 당시는 개량형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 두 번이지 나중에는 모두가 질려서 김치 생각만 하게 되었고 이 틈을 탄 군납업자들이 케이 레이션이란 국산 야전식을보급하게 되었다.고추장,멸치볶음,김조림,꽁치와 고등어,김치 등속의깡통이었는데 이것들과 미제 레이션 깡통의 프랑크푸르트 소시지 햄등속을 넣어 찌개를 끓여서 탄약 통에 밥을 해먹었다.나중에 베트남전쟁이 끝난 지 얼마 뒤부터 경기도의 기지촌 부근에서부터 처음에는 미국 대통령 이름을 딴 ‘존슨탕’이네 ‘카터탕’이네 하면서 미제 깡통 고기와 김치며 면을 넣은 찌개가 나와 돌더니 아예 ‘부대찌개’라는 어엿한 이름을 달고 일종의 퓨전요리로 정착하게 되었다. 이 찌개는 일찍이 내 목숨을 살린 적이 있어서 요새도 소주 반주하며 즐겨 먹는다.바탄간반도 작전이라는 데를 끌려 갔는데 우리는 운좋게 해안방어 소대라상륙부대의 후미에서 베이스캠프만 지키고 있었다.가끔씩 밤에는 적의 박격포나 로켓포가 날아들었지만 낮에는 평온한 해수욕장 같은 곳이라 단독무장도 풀고 아주 기합이 빠져서 벙커에서 그야말로 ‘해골만 굴리고’ 있었다.취사당번이 내 차례였는데밥과 찌개를 실탄 통에 담아서 불을 지펴 놓고 뒤가 무둑해서 야전삽을 들고 볼일을 보러 모래언덕 위로 갔다.그곳은 우리네 벙커 보다지대가 높아서 나쁜 냄새가 해풍에 불려 날아가는 지점이라 소대원들이 정해 놓은 장소였다.자리를 잡고 먼 바다를 내다보며 느긋하게 볼일을 보는데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돌아보니 찌개가 넘치고있는 중이었다.실탄 통은 처음에만 뚜껑을 닫고 일단 끓기 시작하면얼른 열어 주어야 하고,만약 그대로 두었다가는 고무 바킹이 열리면서 찌개가 사방으로 터져 나가던 것이다.아뿔싸,저걸 열어야겠구나. 나는 얼른 바지를 올리고 바삐 모래언덕에서 뛰어 내려오는데 어디선가 귓가에 쌔액!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나는 야전에서의 본능대로 얼른 아래로 미끄러져 슬라이딩을 하면서 엎드렸다.꽝,하는 폭음과 함께 화약 연기와 모래가 나를 덮어 씌웠다.한참이나 엎드려 있다가 말짱하게 일어나서 돌아보니 모래 언덕은 없어지고 거기 엄청난 구덩이가 패었다.해상에 떠 있던 함정에서 밀림으로의 지원사격이랍시고 함포를 오폭해버린 것이다.물론 구원 받지 못한 찌개도 뒤이어 터져 버렸다. 황석영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24)유배지의 한 끼니

    * 제4장 유배지의 한 끼니①** 배고팠던 졸병시절 서리한 닭 통째 삶아 포식. 술자리나 동창모임 같은 자리에서 남자들끼리 모이면 가장 오랫동안끊이지 않고 길게 지속되는 얘기꺼리가 바로 군대 이야기다.군대 얘기는 대개 몇 가지로 그 특성을 집약할 수 있다.남들은 다 뭣 빠지게 고생했지만 자기는 요령과 능력을 발휘해서 ‘재미있고 편하게 군대생활을 했다’는 것이며,자기가 얼마나 운좋게 특과로 빠지게 되었는지,그래서 주로 상관과 고참을 골탕을 먹이면서 위세를 부렸다는 얘기,등등이다.얘기 끝에 꼭 덧붙이기를 요새 군대는 아저씨 고참들 말투대로 ‘빳다가 폐지되고 기합이 빠져서 할랑한’민주화가 된 데다나라가 살만하여 ‘반찬 투정’이나 할 정도로 식사도 좋아졌다고 가볍게 넘어가 버린다. 그렇지만 개개인의 속사정을 알고 보면 신성한 의무라는 ‘군대’는젊은이들에게는 젊은 꿈을 유보시키고 일정기간 국가권력의 군율로족쇄를 채우는 악몽임에는 틀림없다.지나고 보면 늘 사람 사는 곳의그럴듯한 ‘인정’으로 달리 채색되어 있지 않던가. 처음에 훈련소에 가입대를 하면 비위가 약하거나 도회지에서 반찬 가려먹기를 하던 젊은이들은 한 이틀은 밥을 먹지 못한다.훈련을 받으면서 사나흘 지나자마자 꿀맛으로 변하기는 하지만.내가 군에 갔던육십년대에는 나라의 경제가 신통치 않은 때여서 부식이 정말로 형편없었다.일년 삼백육십오 일을 콩나물국만 먹었으니 오죽하면 콩나물늘어놓는 길이로 고참순을 따졌겠는가.멀건 된장에 배추오래기나 콩나물이 떠있고 두부가 가끔 나타났으며 ‘왕거니’라야 통째로 넣은꽁치가 고작이었다.그것도 취사장에서부터 유리한 부서 순서로 다시막사에 오기 전에 고참 순으로 건져져서 나중에는 꼬리나 대가리나가시만 바닥에 갈아앉아 있기 마련이었다.양념이나 간이란 것은 된장 고추장 그리고 소금이 전부였다.특히 생선이 ‘헤엄만 치고 지나간’콩나물국은 거의 소금국이었다. 훈련병 시절에는 뭐든지 뱃속으로 들어가지만 기간사병이 되어 부대에 배치 받고 반년쯤만 지나도 세 끼니의 밥을 넘기기가 곤욕스런 일이 된다. 신병이 부대에 배치 되어서 가자마자하는 일이 고참들의 식사당번인데 제일 먼저 주보에 가서 화학 조미료를 사다가 군복 윗호주머니에지참해 두어야 한다.국을 받아 오면 제일 먼저 국을 맛있게 드시라고 조미료를 적당량 털어 넣는다.자기 것은 포기하더라도 아랫것들 국속에서 건더기를 건져서 따로 반찬거리를 만든다.콩나물은 건져내어알토란 같이 아껴 쓰는 박카스 병에 담긴 참기름을 치고 관급 고추장에 비벼서 그야말로 반찬 콩나물을 만들고,두부는 건져서 간장과 참기름을 쳐서 두부 무침을 만들고 무 국은 무를 따로 건져서 고춧가루 조금 치고 간장 쳐서 무나물로 만든다.그래도 고참들은 뭔가 특식을 요구하기 마련인데 지난번 신병 아무개는 밖에서 무엇이든 조달해오던 천재였다면서 신병의 창의성 없음과 무능함을 꾸짖는다.그래서남들 다 자는 밤에는 신병들 몇몇이 짝을 지어 철조망을 넘어 부대인근의 민가로 보급투쟁을 나간다.풋고추에 감자에 오이며 호박은 기본이고 남의 장독에 가서 된장 고추장은 물론이고 겨울에는 김장 김치도 퍼 온다.재수가 좋을 때에는 멀리 있는 양계장까지 진출을 해서 닭서리도 해온다. 대개 단위 부대의 작은 막사 창고에는 사제 석유곤로나 아니면 하다못해 등산 버너라도 준비해 놓고 있어서 고참들을 위한 취사가 따로준비된다.겨울에는 높은 사람들 눈을 피해서 막사 안의 난로에서 직접 이루어지기도 한다.어떤 녀석은 자신도 먹지 못하는 특식을 끼니마다 장만하는 일에 역증이 나서 찌개를 끓여서 바치기 직전에 침을혀 끝에 동그랗게 몰아서 퇴 뱉고는 휘휘 저어서 갖다 주었다고도 한다.그래서인지 고참들은 맛있게 먹으면서 요리 솜씨가 훌륭하다고 칭찬이 자자했고. 그래도 원래의 부대에 주둔해 있을 적에는 근처의 주민들도 그러려니 하여 민원이 그리 심하지는 않은 편이지만,무슨 훈련이나 작전으로부대 이동이 생겨나서 다른 고장으로 가면 젊은 병사들도 뭔가 새로운 일이 없을까 하여 눈을 반짝이고 민간인들은 줄지어 항의하고 민원을 내기 마련이다.그렇게 단속을 하건만 한창 식욕이 왕성한 나이에 입을 봉하고 앉았을 리가 없다. 훈련을 나갔다가 어느 동기생 녀석과 함께 닭서리를 나간 적이있었다.보전협동이라고 탱크와 보병의 합동작전을 연습하던 중이라 분대단위로 이인용 텐트를 치고 야영 중이었는데 한밤중에 아랫마을로 내려갔던 것이다.우리는 낮에 그 집 앞을 지나치면서 대개의 지형지물을 관측해 두었던 터였다.어쨌든 개가 짖는 통에 여러 마리를 잡아올 틈은 없었고 내가 닭장 앞에서 망을 보는 사이에 녀석이 안으로 들어가 두 마리를 잡아 옆구리에 끼고 나왔다.닭이 꼬꼬댁 거리고 개가 요란하게 짖으니 주인이 누구요,하면서 방문을 열었고 우리는 논두렁 밭두렁에 고꾸라지고 엎어지면서도 간신히 주둔지까지 땀 투성이가 되어 기어 왔다.녀석이 잡아올 제 어찌나 세게 비틀었던지 한 마리는 목이 꺾여서 덜렁거렸고 또 하나는 아직 설 죽어서 날개를 퍼덕거렸다.나보고 처치하라는 것을 그저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 군화발로 지긋히 누르고 기다렸을 뿐이었다.이제 튀겨먹을 일만 남았는데 오늘 밤 안으로 처치를 하지 못하면 분명히 내일 아침에는 이동을 하거나 상관들 눈에 띨 위험이 있었다.하는 수 없이 철모를 벗어서 얼룩무늬 위장 천을 벗기고 속의 화이버도 빼내어 알철모를 만들어 물을채워서 끓이는 수 밖에 없었다.내가 준비하는 동안에 공범 녀석은 어둠 속으로 기어 다니며 소나무 마른 가지를 꺾어 왔다.먼저 불을 때서 뜨거운 물에 닭을 담가 털을 뜯고 다시 물을 끓여서 내장도 빼지않은 닭을 통째로 넣어 삶았다.물이 끓기 시작하자 아니나다를까 곁에 있던 텐트에서 구수한 냄새에 잠이 깬 분대원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닭이 대충 삶아지자 우리는 그래도 보급 당사자인지라 닭다리를 맡았고 몸통이며 다른 부위들은 깨끗이 다른 녀석들에게 넘겨 주었다.소금이 없는 대신에 라면 스푸 가루에 찍어 먹는 닭다리 맛이그만이었다. 뜯어 놓았던 닭털은 증거 인멸을 위해서 텐트 안에 습기 방지로 깔아둔 판쵸 우의를 젖히고 맨땅을 파고 묻고나서 원상복구 시켜 두었다. 지금은 작고한 시인 조태일이도 군대 시절에 소대원들이 저지른 돼지 서리를 얘기한 적이 있었다.방법이 기묘해서 기억하고 있는데 릴 낚시를 사용한다는 것이다.낚시와 줄은 바다낚시용의 제일 큰 놈을 쓰는데끝에다 고구마를 끼운다고 했다.돼지우리 속으로 낚시를 던지면 당연히 제일 힘 좋고 큰 놈이 덥석 물고 우적우적 씹는다.그때 줄을 감으면 낚시가 돼지의 혀에 탁 걸린다.돼지우리 문을 열어주고 살살 당기면 돼지는 버티지도 못하고 골골골 하는 낮은 소리를 내면서 잘도 따라온다고.그날 밤 벽지의 초소에서는 난데없는 잔치가 벌어졌다는데 이튿날 일대 색출 작전이 벌어졌다고 한다.땅에 파묻었던 돼지의 네 굽이 나오는 바람에 들통이나서 전 소대원이 봉급 몰수되고 갹출까지 해서 돼지값을 물어주고도 주동자는 사단 영창살이를 했다는데. 어느 통신부대 출신의 친구는 전봇대 애자 속을 깨면 안에 노란 유황이 들었는데 닭서리에 그만이라고 한다.유황 덩어리에 불을 붙여 닭장 안으로 던져 놓으면 노오란 연기가 피어 오르고 횃대에 올라앉았던 닭들이 비실거리며 아래로 툭툭 떨어진다고 한다.푸대 자루를 들고 들어가 슬슬 주워 담아서 유유히 사라진다는 것이다. 황석영
  • 반상 신예돌풍 거세다

    최명훈 7단이 8일 제5기 LG정유배 프로기전 결승5번기 제3국에서 루이나이웨이(芮乃偉)9단에게 211수만에 흑 불계승을 거둬 2승1패를 기록하며 타이틀 획득에 바짝 다가섰다.4국은 12월2일. 이 대회는 정상 4인방이 아닌 기사들간에 이뤄진 첫 타이틀전이다.그만큼 이창호·조훈현·서봉수·유창혁 9단의 벽이 두터웠다는 얘기다.아울러 그 철옹성이 붕괴되기 시작됐다는 신호탄이기도 하다.그만큼올해 각종 기전에서 신예들의 활약은 두드러졌다. 마무리단계에 접어든 9가지 국내 일반기전의 판도를 살펴보면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선봉장은 32연승 기록을 세우며 다승부문 선두를 달리는 이세돌 3단. 이3단은 또다른 비4인방간 결승 대결 기전인 천원전에서 유재형 4단에 선승을 거둬 앞서가고 있다.배달왕전에서는 유9단에 도전해 1승1패로 호각지세를 이루었다.기성전에서도 목진석 5단을 꺾고 도전자결정전에 진출,잘하면 3관왕을 노릴 만하다. 이3단 뿐만이 아니다.루이9단에 도전할 국수전의 승자 결승에서는 백대현 4단이,목5단은 바둑왕전 최종 결승에서 각각이창호9단과 맞붙는다. 반면 4인방 가운데 서봉수 9단은 지난해 우승한 LG배에서 초반 탈락,무관으로 전락했다.유창혁 9단은 유일한 타이틀인 배달왕을 방어하느라 이세돌 3단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올들어 이3단과 5차례 겨뤄 1판만 이겼을 뿐 4판은 진 상태여서 무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그나마 기성전에서 양재호 9단과 도전자 결정전 진출을 다투는 것이 위안거리다. 조훈현 9단도 지난해 우승한 바둑왕전에서 초반 탈락했다.유일하게남은 타이틀인 패왕전에서는 본선 14연승으로 무섭게 질주하는 이창호 9단의 위세를 지켜보며 대결을 기다린다.이9단에게 올해 1승3패로뒤져 역시 무관 위기에 처해 있다. 이창호 9단은 여전히 잘 나간다.왕위전·명인전 타이틀을 나란히 방어한 데 이어 패왕·바둑왕·국수전 우승과 기성전 방어 등 6관왕을노린다. 멋진 꽃망울을 피워낸 신예들의 반란이 과연 열매로까지 이어질까.바둑팬의 관심은 높아만 간다. 김주혁기자 jhkm@
  • 안중근의사 의거 91주기 기념식

    안중근(安重根)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의거 91주기 기념식이 26일 서울 남산 안의사 기념관에서 열렸다. 기념식은 김유배(金有培) 국가보훈처장,윤경빈(尹慶彬) 광복회장,안의사 숭모회 노신영(盧信永)이사장과 회원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의거이유 봉독,기념사,숭모회 합창단의 ’대한국인 안중근’ 추념가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노주석기자 joo@
  • 자치단체 개혁박람회/ 의의와 향후 과제

    지자제 실시 5주년을 맞아 행정자치부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함께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개최하고 있는 ‘제1회 지방자치단체 개혁박람회’는 지금까지의 여느 지자체관련 행사보다 광범위하고 다양하다.24일 개막된 박람회는 27일까지 자치행정 개혁·벤치마킹사례 발표,지방자치회고 간담회,국제토론회와 NGO토론회,지방자치 자료 전시 등의 행사를 갖고 있다.개막식 날엔 무려 2만여명의 인파가 몰려 행사에 대한 관심을 반영했다.이번 행사의 의의를 짚어보고 이색 개혁사례 등을 소개한다. ◆행사 의의=민선단체장체제 출범이후 일선 자치단체는 피부로 느낄만큼 분위기가 달라졌다.민원서비스의 질이 좋아진 것은 물론 지역정책도 주민들의 목소리 수렴등을 통해 입안되고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찮게 나타났다.지역이기주의가 심화됐는가 하면 중앙정부의 정책이 제대로 파급되지 않는 난맥상을 보이기도 했다. 이번 개혁박람회도 지자제 시행과정의 문제점은 보완하고,장점은 살려보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정부는 우선 이번 박람회를 통해 지자체들의 발전경험을 공유해보자는데 초첨을 맞췄다. 특히 토론의 장에선 성공한 사례와 함께 실패한 경험도 발표,관객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이 자리를 찾은 지자체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자치단체의 경험 교환을 통해 시행착오와 예산낭비 현상이 발생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그만큼 유익했다는 결론이다. ◆향후 과제=개혁박람회를 통해 정부는 귀중한 경험을 했다.자치단체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증진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고 아울러 지방행정에 대한 주민의 비판을 여과없이 들을 수 있었다. 국제토론회나 NGO토론회에서는 자치행정에서 개혁의지가 퇴색된데대한 지적이 많았다.자치단체장마다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있지만 개혁이 일반 시민들에겐 공염불처럼 비쳐졌다는 인식이다. 자치단체끼리의 과열경쟁은 박람회의 의미를 반감시키는 요인이 됐다는 지적도 있다.개혁사례 응모엔 전국 248개 지자체에서 450개 사례를 내놓았다.주무부처인 행자부는 이중에서 1차로 143개 사례만을선정,발표토록 했다.이 과정에 일부 지자체는 왜 우리는 포함시키지않느냐는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32개만 설치된 부스도마찬가지였다.각종 자료등을 전시할 부스를 차지하지 못한 일부 지자체는 부스경위를 따지기도 했다. 행자부는 이같은 문제점들을 취합,내달 중순 성과보고회를 열 계획이다. 최인기(崔仁基)행자부 장관도 “이번 박람회는 첫 출발일 뿐이며 나타난 문제점을 분석,향후 자치행정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홍성추기자 sch8@. [이색 성공사례 4제] *충북 진천군. ‘컴퓨터를 이용한 친환경 농업을 일궈낸다’ 충북 진천군은 토양을 종합관리하는 지리정보시스템(GIS)을 이용해적절하게 화학비료를 사용,토양의 산성화를 막고 있다.특히 필지별로 토양을 정밀분석해 전산입력한 뒤 시비(施肥)처방을 하는 방법을 통해 친환경농업을 실현함은 물론 안정적인 생산기반을 구축해 냈다. 진천군은 지난 98년 9월 논토양 정밀검정을 위한 세부계획을 수립한 뒤 시료채취와 정밀검정,시비처방 등의 절차를 거쳐 올부터 과학영농을실시했다. 군은 이를 위해 관내 7개면 논 4,567㏊에서 4,874점의 토양을 채취해 건조 및 조제과정을 거쳐 지난해 10월까지 정밀분석결과를 전산입력했다. 1㏊당 1점을 기준으로 표본채취된 시료를 바탕으로 수소이온농도(PH)와 유기물함량(OM),규산함량,인산,치환성 양이온 등을 항목별로 정밀검정했다. 이어 지난 겨울철 영농교육 기간동안 농가별,필지별로 출력된 시비처방서를 농민들에게 발부하고 이를 기초자료로 적정량의 비료를 주도록 농가교육을 실시했다. 이같은 방법으로 농사를 지어 토양검정을 한 결과 항목별로 적정수치를 웃돌던 논에서 칼륨이온이 적정수치를 약간 웃돈 것을 빼고는모두 적정범위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농가별 비료사용량에서도 일반 농가에서 관행적으로 주는 질소비료량보다 44%나 줄기도 했다. 진천군은 이같은 과학영농을 통해 비료량을 줄이고 지력을 높이는일석이조의 효과를 보고 있다. 청주 김동진기자 kdj@. *강원 영월군. 강원도 영월군하면 천혜의 절경이라는 동강(東江),단종의 유배지가떠오른다.이외에도 일년의 반 이상 쾌청한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국내에서 별이 가장 잘 보이는 지역 등 많은 장점이 있는 곳이 영월이다. 영월군은 이같은 자연의 특혜를 적절하게 이용해 지난 98년부터 별을 이용한 ‘밤하늘의 별 마케팅’을 시작했다.밤하늘의 별을 관측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고 별을 개인에게 분양하기도 하는,일종의 우주산업이다. 대동강의 물을 판 봉이 김선달의 아이디어만큼 황당하다.하지만 영월에는 관광객을 늘리고,시민천문대 건립을 위한 기금도마련해주는 ‘효자산업’이 됐다. 지난 98년 ‘단종제’가 한창일 때 국내 최초로 ‘단종별’ 헌정식을 가졌다.참가인원은 무려 7,000여명에 달했다.또 7월부터 한달간하동면에서 열린 ‘천문학교’에서는 1만여명이 수료하기도 했다. 밤하늘의 별을 개인에게 파는 ‘별 분양’도 만만치 않은 인기를 모으고 있다.우주환경연구소 등 전문기관의 자문을 얻어 만든 별자리지도를 만들어 별을 분양하는 것이다. 분양가는 별의 밝기에 따라 5만원에서부터 수십만원까지.신혼부부용 별을 판매하는 허니문세일도있다.별을 산 사람에게는 별에 대한 정보를 수시로 제공하고,천문대시설을 이용하는 데 많은 혜택을 주기도 한다. 이 기발한 기획을 통해 영월군은 연 3억원의 판매수익을 올리고 있다. ‘탄광촌 영월’이 명실상부한 ‘한국의 천문도시’,‘별자리의고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최여경기자. *대구 수성구. 이해관계가 실타래 엉키듯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집단민원을 어떻게해결할 수 있을까.해답은 대구 수성구의 ‘민원배심원제’에 있다. 수성구는 지난 3월 집단민원에 대해 관계전문가,시민 등으로 구성된 배심원들이 주민대표와 사업주 양자의 의견을 듣고 건축허가를 취소하거나 타협안을 찾아주는 민원배심원제를 도입했다.적법한 행정조치에도 주민들의 반발이 심해지고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이다. 배심원 풀(pool)은 건축·환경·교통 분야 전문가,시민,직능단체,변호사 등 30여명으로 구성돼 있다.이중에서 사안에 따라 10명을 선정,배심원단을 구성한다.배심원 과반수 이상의 찬성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고,결정된 사항은 곧바로 시행하도록 했다. 제도의 효과는 한마디로 ‘탁월’했다.최근 몇년동안 수성구에 불어닥친 개발바람으로 술집,음식점,러브호텔 등 유흥시설에 대한 주민들의 민원도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이 제도가 도입된 이후 구에 제기되는 민원은 눈에 띄게 줄었다. 4차례 열린 배심원 회의에서 심의를 받은 민원은 원룸주택이 7건,러브호텔과 LPG판매소가 1건씩 모두 9건.LPG판매소는 허가불가 결정이내려졌고,나머지는 ‘조건부 허가’였다.주민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한다는 조건을 붙여 주민 만족도를 극대화시켰다. 물론 배심원 결정에 법적 구속력은 없다.하지만 지역에서 발생한 민원에 대해 공개적으로 해결방안을 모색하면서 행정신뢰도를 높이고주민화합,지역발전을 꾀하고 있다. 최여경기자 kid@. *전남 구례군. 우리나라 고유의 ‘토종(土種)’이 뜨는 세상이다.지역마다 토종을앞세운 상품 개발이 붐을 이룬다. 전남 구례군은 이같은 추세를 간파하고 토종향을 이용한 가장 한국적인 문화상품을 만들어냈다.‘지리산의 정기가 담긴 야생화의 향’이 그것이다. 구례군은 지난 97년 2월부터 야생화 향수개발에 들어갔다.지리산에서 서식하는 야생화 1,323종 가운데 특히 은은한 향을 풍기는 옥잠화와 원추리꽃에서 향을 추출해냈다.우리나라 최초의 토종 야생화 향수의 탄생이다. 이름은 지리산의 3대 주봉중 하나로 여성을 상징하는 ‘노고단’.토종 향수 노고단은 체취 제거를 목적으로 만들어 향이 강한 일반 향수와 달리 순하고 은은하면서도 달콤한 냄새가 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구례는 노고단 향수 이외에도 샤워코롱,보디로션 등 토종향을 이용한 미용제품 3종을 선보였고,시판 첫해 1억원의 매출을 올린 지역 특산품으로 급부상했다. 노고단은 농가소득 향상에도 한몫하고 있다.향수가 알려지면서 야생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2만9,160개의 묘를 분양하는 등 지난해 농가 6가구 소득이 10억원에 이르렀다. 구례군은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지난 1월 또다른 전통향을 개발해냈다.녹차와 감국으로 만들어낸 ‘구례소리’.구례소리는 토종 야생화와 전통차를 원료로 한 것으로 악취를 제거하고정신을 맑게 하는 데 효과가 있다.오는 2001년 상품판매에 나설 계획이다. 최여경기자.
  • 조만식선생 순국 50주기 추모식

    고당(古堂) 조만식(曺晩植) 선생 순국 50주기 추모식이 18일 오후 2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에서 김유배(金有培) 국가보훈처장,윤경빈(尹慶彬) 광복회장,김재순(金在淳) 전 국회의장 등 각계 인사와 광복회원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추모식에 이어 유족을 비롯한 참가자들은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국가유공자 제2묘역에 있는 선생의 묘소를 참배,선생의 애국정신을 기렸다. 노주석기자 joo@
  • 14일 개봉‘러브 오브 시베리아’

    올 봄 칸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일찍부터 입소문을 타온 니키타 미할코프 감독의 ‘러브 오브 시베리아’(The Barber of Siberia)가 오는 14일 개봉된다.유럽 4개국이 580억원을 밀어넣어 합작한 영화는 소문대로 스케일이 크다.이국정취가 물씬 풍기는 대서사 로맨스를 찾고 있는 관객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같다.잔꾀와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가득한 ‘할리우드 상품’들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를 전해준다. 영화의 시점은 1905년.등을 돌려앉은 초로의 여인이 사관생도인 아들에게 길고긴 편지를 써내려간다.20년전으로 시계바늘을 돌려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사랑이야기를 속절없이 끄집어낼라치면,어느새 화면은 술렁이는 열차속에서 예기치 않게 얽혀드는 젊은 남녀의 인연을 포착한다. 거액을 들인 대작인 만큼 다소 위압적으로 가라앉았을 것이란 선입견은 시작부터 깨진다.러시아 황실사관학교의 생도인 안드레이 톨스토이(올렉 멘쉬코프)와 미국에서 온 여인 제인 칼라한(줄리아 오몬드)이 샴페인을 나눠마시며 호감을 나누는 과정은 경쾌하고발랄해서 영화가 시대물이라는 사실을 깜빡깜빡 잊게 만든다. 제인은 발명가 맥클라한의 딸 행세를 하지만 실은 발명가의 고용인일 뿐이다.황제의 최측근이자 사관학교장인 레들로프 장군을 유혹해,새로 발명된 벌목기계 ‘시베리아의 이발사’를 러시아 정부에 납품하게 만드는 것이 그녀의 임무다.자칫 칙칙하게 가라앉아버릴 수 있는 서사극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영화는 중반지점쯤까지 여기저기 꾸준히 코믹요소를 흩어놨다.제인이 장군을 유혹해내는 건 일사천리로 진행될 일.풍채좋은 레들로프 장군이 외국인 여자의 사랑을 얻으려 애면글면 발버둥치는 익살맞은 장면 등은 2시간40분짜리 영화의 체감길이를 줄여주는 주효장치로 쓰였다. 의도적으로 장군에게 접근해가는 제인에게 순수한 열망 하나로 안드레이가 열렬히 구애해온다.자신을 사랑하면서도 ‘현실’을 포기하지 못하는 제인을 지켜보다못한 안드레이는 연적이 돼버린 장군에 맞서고,결국 시베리아 수용소로 돌아올 기약없는 유배를 떠난다. 다 자란 아들에게 보내는 회상편지를 통해 복원된사랑이야기는 시네마스코프 화면을 화려하고 풍성하게 채운다.침엽수림으로 끝없이 뒤덮인 시베리아 평원만으로도 모처럼 탁 트인 풍경화 한폭을 감상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감독은 이왕이면 압축의 묘미를 좀더 살렸더라면 좋았겠다.잔재미를 위해 자잘하게 쪼개진 코믹한 에피소드들이 비극적 사랑을 그린 주제의 본류까지 망가뜨렸다는 아쉬움이 남는다.러시아 감독 최초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거장 미할코프는 실제 크렘린궁을 촬영장소로끌어들이는 저력을 과시했다. 황수정기자 s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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