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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천금 잃어도 할말 없구나”… 도박판 묘사도 거침 없는 한시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천금 잃어도 할말 없구나”… 도박판 묘사도 거침 없는 한시

    18세기 후반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서울의 거리 풍경은 바뀌기 시작한다. 시전 주변에는 소리꾼이나 탈놀이를 하는 유랑예능인과 실감나게 소설의 줄거리를 낭송하는 전기수가 몰려들었다. 서민의 건강한 삶을 묘사한 풍속화는 물론 에로티시즘이 가미된 ‘야한 그림’도 대량 유통됐다. 유흥가가 북적이면서 기생의 수요도 늘어났으며, 도박판도 드물지 않았다. 중암 강이천(1769~1801)의 ‘한경사’(漢京詞)는 전 시대와는 달라진 서울의 모습을 106편의 7언절구에 담아낸 연작 한시다. 서울의 풍속과 문물, 세태와 경관을 스케치하듯 가벼운 필치로 그려 냈다. 보통사람들의 모습을 진솔하게 담아내 문학사적으로도 평가를 받는다. ●강이천, 12세 때 시로 정조에게 칭찬받아 중암의 할아버지는 문인이자 화가인 표암 강세황이다. 7세에 아버지 강완이 세상을 떠나자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는데, 12세에 지은 시가 정조에게 칭찬을 받았을 정도로 일찍부터 천재적 감수성을 드러냈다. ‘한경사’는 23세에 지은 것이다. 눈에 보이는 정경을 사실적으로만 전달하기보다 시정에 펼쳐진 삶의 모습을 나름의 시각으로 해석해 의미를 이끌어 냈다. 한양 저자에 해가 뜨자/온갖 물산 산처럼 쌓이네 귀에 무슨 소리 들리는가/사고파는 떠들썩한 소릴세 파는 사람은 값을 올리고/사는 사람은 값을 깎는구나 ‘시장풍경’쯤으로 이름 붙일 수 있을 이 시에서는 상업화가 본궤도에 오른 도성의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날이 밝자 시장에 사람과 물산이 몰려들고, 여기저기서 장사치와 손님이 시끌벅적하게 물건값을 흥정하는 모습을 어떤 그림보다도 생생하게 묘사했다. ‘한경사’의 첫 번째 시에 나오는 ‘이층 누각엔 한낮에도 발을 드리우는데…’라는 대목은 해석이 엇갈리기도 한다. 낮시간의 한가한 시장 풍경이라는 시각이 있는 반면 자유분방해진 상업사회 유흥가의 은밀한 대낮 풍경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 구절의 정확한 해석이야 어떻든 ‘곱게 화장하고 머리를 매만지고/해가 지면 돈과 권세를 가진 낭군을 맞아들이네’라는 연작시의 한 대목도 환락산업이 번성해 가는 서울의 모습을 묘사한 것은 분명하다. 도박판의 모습도 빠지지 않았다. ‘종이 조각 길게 잘라 꽃무늬 그려 넣었는데/병풍친 장막에서 아침, 저녁으로 빠져드네/여러 번 내기 벌여 고수가 되었으니/천금을 다 잃어도 말 한마디 없구나’라는 시는 동시대 화가 긍재 김득신이 그린 풍속화 ‘몰래하는 도박’(密戱鬪錢·밀희투전)에서 보이는 풍경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투전은 길고 두꺼운 종이에 인물과 새, 짐승, 곤충, 물고기 등의 그림이나 글귀로 끗수를 나타내어 겨루는 도박이라고 한다. 패가망신하는 사람이 많아 당시에는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도박판·저자거리… 도시 서민일상 솔직하게 ‘한경사’의 미덕 가운데 하나는 도시 서민의 일상을 소박하고 가식 없이 묘사했다는 것이다. 신분질서가 분명하던 시대 차별받으면서도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알고 열심히 살아가는 노비 부부가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 가는 모습을 그린 다음의 시는 작은 감동을 준다. 아내는 옷을 기워 재봉하고/ 남편은 벼슬아치를 시종한다네/집안이 화목하고 가구도 족하니/노란 장롱과 붉은 시렁이 발을 친 창을 마주하였네 중암은 17세에 명문가 자제들에게 부여된 특권의 하나였다는 승보시에 합격해 성균관에 들어간다. 그런데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으면서도 정조가 금지한 소품을 애호한다는 이유로 ‘문체교정’ 명령을 받기도 했다. 생활 주변의 일상사나 신변잡기를 중요한 문학적 소재로 삼는 것이 소품 문학의 특징이었고, 강이천을 ‘불량선비’로 낙인찍히게 만든 이유였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았다는 중암에게는 좌시(左視)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그럼에도 중암은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을 누구보다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반면 좌시라는 별명에는 ‘세상을 비뚤게 바라본다’는 뜻도 없지 않았으니 안타까운 일이었다. 결국 사회상을 리얼하게 형상화한 그의 문학관은 32세의 젊은 나이로 옥사(獄死)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서학에 관심이 높았던 중암은 조선에 파견된 청나라 신부 주문모를 ‘정감록’ 같은 예언서에서 말한 ‘진인’(眞人), 즉 메시아로 믿고 싶었던 듯하다. 그는 정조 21년(1797) 천주교와 예언서의 내용이 버무려진 허무맹랑한 소문을 퍼뜨렸다는 이른바 ‘비어옥사’(飛語獄事)로 제주도에 유배됐고, 결국 순조 1년(1801) 신유사옥 당시 고문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 dcsuh@seoul.co.kr
  • 피렌체 다이아몬드, 죽음의 다이아몬드? ‘소유자 모두 사형이나 죽음’

    피렌체 다이아몬드, 죽음의 다이아몬드? ‘소유자 모두 사형이나 죽음’

    피렌체 다이아몬드 이야기가 화제다. 23일 방송된 MBC ‘서프라이즈’에서는 ‘미스터리한 다이아몬드’ 이야기가 전해져 네티즌 눈길을 끌었다. 1736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공주 마리아 테레지아는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프란츠 슈테판으로부터 다이아를 선물 받았다. 포르투갈에 의해 건너와 프랑스 샤를 대공의 소유가 된 이 다이아몬드는 영국의 헨리 8세, 메리여왕, 펠리페 3세 등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자들이 사랑한 다이아몬드다. 이후 이 다이아몬드는 피렌체 다이아몬드로 불렸다. 하지만 이후 피렌체 다이아몬드는 저주의 다이아몬드로 불린 것. 마리아는 딸에게 결혼 선물로 이 다이아몬드를 선물했지만, 그 딸은 단두대에서 처형을 당하게 됐다. 그 딸이 바로 마리 앙투아네트다. 또한 나폴레옹의 아내 마리루이즈가 이 다이아몬드를 갖게 됐지만, 결혼 4년 만에 나폴레옹이 유배되며 파경을 맞게 됐다. 1854년,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왕자가 독일 바이에른 공국의 엘리자베트 공주와 결혼할 당시 그녀에게 이 피렌체다이아몬드를 선물하게 됐지만, 아들의 자살과 거식증에 시달리며 불운한 왕실 생활을 이어갔다. 이후 이탈리아 무정부주의자가 휘두른 칼에 맞아 사망했다고 전해졌다. 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금고에 보관된 피렌체 다이아몬드 때문에 1914년 오스트라이 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페르디난트와 부인 고피, 사라예보가 목숨을 잃는 사건이 벌어진 것. 이 때문에 1차 세계대전이 발발되기도 했다. 이후 사라진 다이아몬드가 1981년 스위스 한 경매장에서 발견됐다. 하지만 이 다이아가 피렌체라는 증거는 찾지 못했다. 그리고 아직까지 피렌체 다이아몬드는 발견되지 않았다. 사진 = MBC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손학규 정계복귀 선언…“소걸음으로 뚜벅뚜벅 나아가겠다”(전문)

    손학규 정계복귀 선언…“소걸음으로 뚜벅뚜벅 나아가겠다”(전문)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20일 정계복귀를 공식 발표했다. 2014년 7·30 수원 보궐선거 패배 다음 날인 7월 31일 정계 은퇴를 선언, 전남 강진에서 칩거 생활을 한 지 2년 2개월여만이다. 그는 정계복귀 발표 직후 더불어민주당에 탈당계를 제출했다. 다음은 그의 정계복귀 선언 전문이다. 국민에게 갑니다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손학규입니다. 2년여 전, 2014년 7월 31일, 정치를 떠난다는 말씀을 드린 바로 그 자리에 다시 섰습니다. 그 동안 저는 전라남도 강진, 만덕산 자락에 있는 조그마한 토담집에 머물면서, 정치라는 짐을 내려놓고 저의 삶을 정리하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마침 강진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면서, 경세유표, 목민심서 등 나라와 백성을 위해 저술작업을 했던 곳입니다. 저도 나라를 위한 책 한 권쯤 쓰는 게 도리라는 생각이 들어,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어느덧, 강진살이가 두 해를 넘겼습니다. 다산의 18년 유배생활에 비하면 제가 머문 시간은 너무나 짧고, 수백 권의 책을 쓴 다산에 비교하는 것조차 부끄럽습니다. 저의 지난날을 되돌아보면서, 다산에게 묻고 다산의 질문에 대답하는, 상상의 대화를 끊임없이 나누었습니다. 다산의 눈으로 그리고 저의 가슴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바라보며, 제 부족한 능력을 다해 겨우 완성한 작은 책, 『나의 목민심서 ? 강진일기』를 송구한 마음으로 세상에 내놓습니다. 200여 년 전 다산 선생이 하신 말씀, “이 나라는 털끝 하나인들 병들지 않은 게 없다.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말 것이다.“ 제 가슴에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향한 경고로 울렸습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87년 헌법체제가 만든 6공화국은 그 명운을 다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조금씩 수렁에 빠지기 시작한 리더십은 이제 완전히 실종되었습니다. 6공화국 체제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더 이상 나라를 끌고 갈 수가 없습니다. 이제, 7공화국을 열어야 합니다. 대한민국 경제는 지금 성장 엔진이 꺼졌습니다. 우리나라의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수출주도형 대기업중심 경제구조가, 혁신없이 50년 동안 지속되면서, 산업화의 그늘을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그 결과, 비정규직 문제, 청년실업 문제, 가계부채 문제들이 악순환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그 경제구조의 버팀목인 수출실적도 19개월 이상 감소 추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고통스럽더라도,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을 근본부터 바꿔야 할 때입니다. 지금, 더 늦기 전에, 대한민국은 정치와 경제를 완전히 새롭게 바꿔야 합니다. 국민 여러분, 저는 정치와 경제의 새판짜기에 저의 모든 것을 바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려놓겠습니다. 국회의원, 장관, 도지사, 당 대표를 하면서 얻은 모든 기득권을 버리겠습니다. 당적도 버리겠습니다. 제가 무엇이 되겠다는, 꼭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도 없습니다. 명운이 다한 6공화국의 대통령이 되는 것이 저한테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질곡의 역사를 겪으면서도 세계사에 유례없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한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자부심만 남기고 모든 것을 내려놓겠습니다. 강진살이 2년 2개월, 매일 아침 일어나 방문을 열고 툇마루에 나가 앉으면 강진만이 보입니다. 그 한가운데 떠있는 섬, 가우도를 항상 바라보았습니다. 소멍에라는 뜻의 이름입니다. 소가 멍에를 메고 물건들을 가득 싣고 가는 형상이라고 합니다. 국민 여러분, 모든 것을 내려놓아 텅 빈 제 등에 짐을 얹어 주십시오. 제7공화국을 열기 위해, 꺼져버린 경제성장의 엔진을 갈아 다시 시동을 걸기 위해, 대한민국의 미래만 보고, 소걸음으로 뚜벅뚜벅 나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양진건 유배의 뒤안길] 유배와 위대한 유산

    [양진건 유배의 뒤안길] 유배와 위대한 유산

    유산이란 죽은 사람이 남겨 놓은 재산이나 앞 세대가 물려준 문화를 말한다. 대부분 유배인들은 후손들에게 물려줄 재산이 없었다. 유배로 풍비박산이 되면서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운 판에 물려줄 재산이란 상상하기 어려웠다. 유배 중에도 적극적인 경제활동을 통해 재산을 증식하던 유배인도 있었다. 명종 때 을사사화로 성주에서 유배 생활하던 이문건(李文楗)은 이전에도 서울 및 경기 등 각지에 전답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유배 중에도 괴산 지역의 전답을 지속적으로 매입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경작지를 확대했다. 또한 주민들에게서 부세를 받아 대신 관에 납부하고 중간에서 차액을 남기는 방납에도 관여해 상당한 수익을 올렸다. 노비도 상당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또한 명종 때 권세를 휘둘렀던 진복창(陳復昌)은 말년에 삼수에 유배를 갔는데 유배인 신분에도 불구하고 유배지 백성들의 논밭을 빼앗고, 토호들에게 뇌물을 요구하는가 하면 직접 형틀을 설치해 백성들을 폭행까지 하면서 재산을 만들려고 광분했었다.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가 쓴 ‘위대한 유산’이 있다. 이 소설의 관심은 ‘위대한 유산’의 정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주인공에게 상속하려 했던 위대한 유산은 위대한 재산이다. 막대한 재산으로 훌륭한 신사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것은 신사의 가치를 재산으로 대신할 수 있다고 믿었던 배금주의에 대한 풍자였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물질적 사치로 그의 삶을 탕진하고 낭비한다. 그 낭비의 정도가 심해짐에 따라 정신적 공황 상태 역시 깊어진다. 그러나 물질적 파산과 신체적 몰락의 순간에 주인공은 각성하며 변화한다. 결국 그가 받은 ‘위대한 유산’은 정신적 성장과 인간에 대한 조건 없는 신뢰였다. 유배인 정약용(丁若鏞)에게는 재산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내가 벼슬하여 너희들에게 물려줄 밭뙈기 정도도 장만하지 못했으니 오직 정신적인 부적 두 자를 마음에 지녀 잘 살고, 가난을 벗어날 수 있도록 이제 너희에게 물려주겠다. 너희들은 너무 야박하다 하지 마라. 한 글자는 근(勤)이고 한 글자는 검(儉)이다. 두 글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도 나은 것이니 일생 동안 써도 다 닳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니까 정약용이 ‘두 아들에게 주는 가르침’(又示二子家誡)은 조선판 ‘위대한 유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시인 황동규 선생은 “홀로움은 환해진 외로움이니”라는 시를 통해 소설가였던 부친 황순원 선생의 유산을 공개했었다. “부동산은 없고 / 아버님 유산으로 내리신 동산 상자 한 달 만에 풀어보니 / 마주앙 백포도주 5병 / 호주산 적포도주 1병 / 안동소주 400㏄ 1병 / 짐빔 반병 / 폼 좁은 가을꽃 무늬 셔츠 하나 / 잿빛 양말 4켤레 / 그리고 웃으시는 사진 한 장” 유산이라곤 이것이 전부였다. 많은 재벌이 경영권과 유산 등을 둘러싸고 서로 편을 갈라 다툼을 했고 이 ‘위대한 재산’ 싸움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노사분규도 재산 싸움의 다른 형태다. 이 때문에 등골이 휘는 것은 나라와 젊은이들이다. 제주 유배인 김정희는 “녹봉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조정으로 돌아가게 하고(留不盡之以還朝廷), 재물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백성에게 돌아가게 하라(留不盡之財以還百姓)”고 했다. 있기에 추해지고, 없기에 위대해짐을 유배인들은 말한다. 문제는 위대한 재산이 아니라 위대한 유산인 것이다. 제주대 교수
  • [월요 정책마당] 나폴레옹과 알기 쉬운 법/제정부 법제처장

    [월요 정책마당] 나폴레옹과 알기 쉬운 법/제정부 법제처장

    10월의 역사적 사건들 중에 나폴레옹과 관련된 사건이 문득 생각난다. 프랑스 황제였던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 후 대서양 한가운데 있는 외딴섬, 세인트 헬레나에 유배된 때가 바로 1815년 10월 15일이다. 이 섬에서 그는 회고록을 정리하였는데 여기에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폴레옹을 탁월한 군인이자 정치가로 기억하지만, 막상 본인은 나폴레옹 법전(Code Napoleon)의 편찬을 가장 큰 업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실제로 나폴레옹은 법률 전문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법전 편찬위원회에 직접 참여해 어려운 단어와 문장에 대해 같은 의미를 가지면서 보다 알기 쉬운 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반영하였다고 한다. 법제처는 우리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법령을 만들기 위해 지난 10년 동안 노력해 왔다. ‘계출(屆出)하다’를 ‘신고하다’로, ‘중서’(中敍)를 ‘중복 수여’로, ‘인상채득’(印象採得)은 ‘치아 본뜨기’로, ‘구거’(溝渠)는 ‘도랑’으로 고치는 등 어려운 한자어, 일본식 표현, 어법에 맞지 않는 문장 등이 있는 4000건이 넘는 법령을 보다 쉽게 정비하였다. 최근에는 이러한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의 대상을 지방자치단체의 조례까지로 확대하고 있다. 또한 차별적이거나 권위적인 용어와 의료 분야 등 특정 분야의 전문적인 법령용어도 이해하기 쉽게 고쳐 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올해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나오는 ‘자동제세동기’(自動除細動器)를 ‘자동심장충격기’로 고친 것이다. 작년 1월에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심장마비로 정신을 잃고 쓰러진 승객을 역무원들과 다른 승객들이 도와 살렸다는 훈훈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기사에 따르면, 처음에 역무원들이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음에도 환자는 의식이 없는 상태였는데, 그때 마침 한 여성이 지하철역에 있는 자동제세동기를 가져오라고 소리쳤고 결국 이를 이용한 응급조치 덕분에 생명을 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이 여성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직원으로 자동제세동기의 용도를 잘 알고 있어서 위급한 상황에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사실 지하철역마다 갖춰져 있는 ‘자동제세동기’의 이름은 너무 전문적이어서 일반인들이 응급상황에서 제대로 알고 사용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련한 법령 용어라면 더 쉬운 말을 쓸 필요가 있다. 나폴레옹 법전은 프랑스의 대문호 스탕달이 문장 연습을 위해 매일 읽었다는 일화에서도 잘 알 수 있듯이 쉽고 간결한 문체로 쓰였다. 이 법전은 세계 3대 법전의 하나인 로마법대전(Corpus Juris Civils)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당대 최고의 법학자들에게 명하여 로마법대전을 만들면서,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일반인들이 법률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라틴어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여 라틴어와 그리스어 두 가지 언어로 로마법대전을 편찬하였다는 것이다. 소수 법률전문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일반 국민의 법이 되게 하기 위한 이러한 노력은 법제처가 2006년부터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의 기본정신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국민들이 법을 잘 지키고 혜택을 누리려면 법을 잘 알 수 있어야 한다. 한글날이 있는 10월에 세종대왕께서 백성이 그 뜻을 쉽게 펴도록 하기 위해 한글을 만드신 것처럼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알기 쉬운 법을 만드는 데 법제처가 앞장서 더욱 노력할 것을 다짐해 본다.
  • ‘폭발사고로 2명 사망’ 석유비축기지 지화하 공사 무기한 중지

     폭발사고로 2명 사망, 4명 부상의 사상자를 낸 한국석유공사 비축기지 지하화 공사가 전면 중지됐다.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은 중대재해가 발생한 울산 울주군 온산읍 학남리 석유공사 울산지사의 비축기지 지하화 공사 전체에 대해 15일 작업중지 결정을 내렸다고 16일 밝혔다. 안전한 작업이 다시 이뤄질 수 있다고 판단될 때까지 무기한 작업이 중지된다. 고용부 울산지청 관계자는 “인명피해가 생기는 등 폭발사고가 크고 중대재해인 만큼 모든 공사에 대한 안전 점검을 할 것”이라며 “안전에 이상이 없다고 판단될 때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한다”고 밝혔다.  울산지청은 또 조만간 모든 공사에 대해 안전진단 명령도 내릴 계획이다. 주말·휴일 동안 폭발 사고 현장에 있었던 원·하청 근로자를 상대로 사고 전후 상황을 파악하는 조사를 벌였다. 현장에 안전관리감독자가 있었는지, 원유배관에 남은 원유를 빼내려고 잔류가스 검사를 먼저 했는지 등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하는 절차를 무시했는지 등도 조사한다.  비축기지 지화하 공사는 석유공사 울산지사 98만 2029여㎡에 1030만 배럴의 원유를 지하에 저장할 수 있는 시설(4개 저장 공동)을 추가로 만드는 사업으로 올해 1월 착공해 2020년 12월 말 완공예정이다. 사업비만 총 3135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앞서 지난 14일 오후 2시 35분쯤 한국석유공사 울산지사에서 원유배관을 옮기는 작업 과정에서 폭발이 발생해 협력업체 근로자 김모(45)와 최모(58)씨가 숨지고, 4명이 부상을 입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원유배관 속 유증기가 폭발해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석유공사 사고 후 사망자 잘못 알린 경찰…시신 바뀌어 장례 치를 뻔

    석유공사 사고 후 사망자 잘못 알린 경찰…시신 바뀌어 장례 치를 뻔

    경찰이 한국석유공사 울산지사 폭발사고로 숨진 근로자 신원을 잘못 확인하는 바람에 바뀐 시신을 두고 장례를 치를 뻔 했다. 14일 오후 2시 35분쯤 울산시 울주군 온산읍 한국석유공사 울산지사에서 원유배관 철거공사 중 폭발이 일어나 하도급업체 근로자 최모(58)씨가 현장에서 숨졌고, 김모(45)씨 등 5명이 중경상을 입어 병원으로 옮겨졌다. 심한 화상으로 중태에 빠졌던 김씨는 15일 오전 6시 14분쯤 병원에 숨져 사망자는 2명으로 늘었다. 그런데 울산 울주경찰서는 사고 당일 숨진 근로자를 최씨가 아닌 김씨로 오인하고 이를 유가족에게 통보했다. 이 때문에 김씨 가족이 울주군의 한 병원으로 와 최씨 시신을 두고 오열했다. 반대로 숨진 최씨의 가족은 김씨가 치료를 받던 동구의 병원 중환자실 앞에서 회복을 기대하며 초조한 시간을 보냈다. 두 사람의 신원이 바뀐 것은 15일 김씨가 숨지고 나서야 바로 잡혔다. 최씨와 김씨 시신의 지문을 분석, 전날 신원이 바뀐 사실을 경찰이 확인한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 직후 근로자 신원확인은 회사 측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회사에서 ‘사망자는 김씨’라고 확인해줘서 가족에게 통보했고, 시신을 확인한 가족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시신이 심한 화상을 입은 데다 폭발 때 튄 원유를 뒤집어써 가족도 얼굴을 못 알아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14일 숨진 근로자의 엄지손가락 지문을 몇 차례나 분석했는데, 김씨의 그것과 일치하지 않았다”면서 “15일 열 손가락 지문을 모두 분석했더니 김씨가 아니라 최씨라는 점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최씨와 김씨 유족에게 신원확인에 문제가 있었던 점을 설명하고 사과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석유공사 폭발사고 사망자 2명으로 늘어…경찰 “책임자 처벌”

    석유공사 폭발사고 사망자 2명으로 늘어…경찰 “책임자 처벌”

    지난 14일 한국석유공사 울산지사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로 크게 다친 근로자 1명이 15일 새벽 숨져 사망자가 2명으로 늘었다. 울주경찰서에 따르면 전날 사고로 온몸에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던 최모(58)씨가 이날 오전 6시 14분쯤 숨졌다. 최씨가 추가로 숨지면서 이번 사고의 사망자는 사고 당일 숨진 김모(45)와 최씨 등 2명, 부상자는 4명이 됐다. 경찰은 사고 원인 규명에 나서는 한편 관련자 소환 등 본격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다음 주 중 울산소방본부, 고용노동부, 한국가스안전공사,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과 함께 사고 현장 정밀감식을 벌일 예정이다. 주말과 휴일에는 원청업체인 한국석유공사, 비축기지 지하화 공사를 맡은 SK건설, 숨지거나 다친 근로자들이 소속된 하도급업체 성도ENG 관계자를 소환해 조사한다. 특히 이번에도 사상자 전원이 공기업인 원청업체나 대기업인 시공업체가 아닌 영세 하도급업체 소속이어서 관계 기관, 원청업체, 대기업의 작업장 안전관리 부실을 겨냥한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하도급업체 근로자가 희생하는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고용노동부는 원청업체의 책임을 엄격히 묻겠다고, 원청업체들은 하도급 근로자의 안전관리를 철저히 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사고는 지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폭발사고는 14일 오후 2시 35분쯤 울산시 울주군 온산읍 한국석유공사 울산지사 비축기지 지하화 공사 현장에서 지름 44인치짜리 원유배관 철거를 위해 배관 안에 남은 원유 찌꺼기를 제거하는 작업(피그 클리닝·Pig Cleaning) 중 발생했다. 원유배관에 있던 잔류가스(유증기)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불티와 만나 폭발이 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피그 클리닝 전에 배관 잔류가스 사전 제거, 현장 안전관리와 작업매뉴얼 준수, 현장근로자에 대한 안전교육 시행 여부를 집중해서 살펴보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원·하청 업체 과실이나 책임이 가려지면 업무상과실치사상 등의 혐의를 적용해 처벌할 것”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울산 한국석유공사 폭발사고로 6명 사상…작업 전면 중지

    울산 한국석유공사 폭발사고로 6명 사상…작업 전면 중지

    한국석유공사 비축기지 공사 도중 폭발사고로 6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지하화 작업이 전면 중지됐다.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은 중대재해가 발생한 울산시 울주군 온산읍 학남리 석유공사 울산지사의 비축기지 지하화 공사를 15일 전면적으로 중지하기로 했다. 지하화공사는 안전한 작업이 다시 이뤄질 수 있다고 판단될 때까지 무기한 작업이 중지된다. 올해 1월 착공해 2020년 12월 말 완공예정인 비축기지 지하화 공사는 석유공사 울산지사 98만2029여㎡에 1030만 배럴의 원유를 지하에 저장할 수 있는 시설(4개 저장 공동)을 추가로 만드는 사업이다. 총 3135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울산에는 현재 650만 배럴을 저장할 수 있는 2개의 지하 석유비축기지가 있다. 앞서 14일 오후 2시 35분쯤 한국석유공사 울산지사에서 원유배관을 옮기는 작업 과정에서 폭발이 발생해 협력업체 근로자 김모(45)씨 등 2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원유배관 속 유증기(油烝氣)가 폭발해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석유公 울산지사 폭발 사고… 근로자 1명 사망·5명 중상

    14일 오후 2시 35분쯤 울산 울주군 온산읍 한국석유공사 울산지사에서 폭발이 발생해 근로자 김모(45)씨가 숨지고 최모(58)씨 등 5명이 다쳤다. 최씨 등 2명은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며, 사상자 모두 협력업체 근로자들이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김씨 등이 지상 비축기지 탱크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탱크와 연결된 길이 100m 정도의 원유배관 속 유증기가 폭발한 것으로 추정했다. 노후배관을 철거하려면 원유탱크에 남아 있는 원유를 완전히 배출시키는 작업(피깅)을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원유탱크와 연결된 배관의 유증기가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석유공사는 지상의 비축기지 탱크를 매각하고 원유는 지하에 저장하는 공사를 하고 있다. 경찰은 목격자를 상대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현장 감식을 벌이기로 했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석유공사 울산지사 폭발사고 원인은? “원인 알 수 없는 불티 튀어”

    석유공사 울산지사 폭발사고 원인은? “원인 알 수 없는 불티 튀어”

    한국석유공사 울산지사에서 발생한 폭발사고에 대해 경찰과 고용노동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합동조사를 벌이고 있다.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 언급되는 것은 철거 중이던 원유배관에 남아있는 잔류가스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불티가 튀어 폭발했다는 것이다. 14일 오후 2시 35분쯤 울산시 울주군 온산읍 한국석유공사 울산지사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해 근로자 김모(45)씨가 숨지고 최모(58)씨 등 5명이 부상했다. 이들은 한국석유공사의 비축기지 지하화 공사를 맡은 원청업체인 SK건설이 지상의 원유배관을 철거하는 일을 쪼개 맡긴 성도ENG라는 하도급 업체 직원들이다. 석유공사는 이미 지상에 있는 원유탱크 18기를 지난해 모두 철거했는데, 올해들어 원유탱크와 연결된 원유배관을 철거해 지하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날 사고는 직경 44인치에 이르는 원유배관 철거를 위해 필요한 배관 안의 남은 원유를 깨끗하게 빼내는 ‘피깅(Pigging) 작업’ 중 발생했다. 석유공사 측은 피깅 작업 과정에서는 원유배관이 폭발할 이유가 없지만, 원유배관에 잔류가스(유증기)가 있는 상태에서 원인모를 불티가 튀어 폭발 사고가 났다고 추정했다. 울산플랜트노조도 이 사고와 관련해 “비축기지 지하화 공사 원유배관을 옮기는 이설작업 중 배관 안 잔류가스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폭발이 발생했다”고 비슷한 주장을 했다. 무소속 김종훈 국회의원(울산 동구)은 “원유배관이 100m 정도 남아있는데 이 관을 철거하려면 탱크에 남아있는 원유 등을 완전 배출시켜야 하고, 피스톤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 작업을 피깅이라고 한다”며 “피깅 작업을 위해 관을 배관에 삽입하는 전후 과정에서 배관 속에 남아있던 가스 폭발로 추정되는 사고가 났다”고 분석했다. 김 의원 측은 “여러 원인을 파악해 봐야 하지만, 석유공사가 무리하게 인원을 줄여 현장 감독이 철저하지 못한 것도 한 원인일 수 있다는 게 노조 의견”이라고 덧붙였다. 경찰과 고용노동부 울산지청 등은 석유공사 등의 원인 추정을 토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와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이들 기관은 석유공사와 하도급업체가 잔류가스가 있었다면 제대로 점검한 뒤 작업하도록 했는지, 사고현장에 안전을 책임지는 관리감독자가 있었는지 등을 집중 조사하기로 했다. 특히 이번 사고 역시 하도급업체 근로자가 모두 희생돼 원청업체의 안전관리 책임 강화에 나서겠다는 정부 방침이나 제재를 강화한 관련법도 공염불이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한화케미칼 폭발사고를 비롯해 그동안 대기업 사업장 생산 공정이나 각종 설비를 설치·정비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의 산업재해가 잇따랐고 대부분 하도급업체 근로자가 중대재해의 위험에 놓인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석유공사 울산지사 폭발사고…협력업체 근로자 1명 사망·5명 부상

    석유공사 울산지사 폭발사고…협력업체 근로자 1명 사망·5명 부상

    한국석유공사 울산지사에서 폭발이 발생, 6명의 사상자를 냈다. 14일 오후 2시 35분쯤 울산시 울주군 온산읍 한국석유공사 울산지사에서 폭발이 발생해 근로자 김모(45)씨가 숨지고 최모(58)씨 등 5명이 부상했다. 부상자 중 최씨 등 2명은 생명이 위독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상자들은 모두 협력업체 근로자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김씨 등이 지상 비축기지 탱크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탱크와 연결된 길이 100m 정도의 원유배관 속 유증기(油烝氣)가 폭발한 것으로 추정했다. 배관을 철거하려면 원유탱크에 남아 있는 원유를 완전히 배출시키는 작업(피깅·pigging)을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원유탱크와 연결된 배관의 유증기가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석유공사는 지상의 비축기지 탱크를 매각하고, 원유는 지하에 저장하는 공사를 하고 있다. 경찰은 국과수와 함께 현장 감식을 벌이기로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국석유공사 울산지사 폭발사고 1명 사망, 5명 부상

    한국석유공사 울산지사 폭발사고 1명 사망, 5명 부상

    14일 오후 2시 35분쯤 울산 울주군 온산읍 한국석유공사 울산지사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사고로 원유배관 이설공사를 하던 한국석유공사 울산지사 협력업체 근로자 1명이 숨지고, 5명이 중경상이다. 5명의 부상자 가운데 2명은 생명이 위독하고 나머지 3명은 중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져 사망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폭발로 화재는 발생하지 않았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측은 노후 배관을 새 배관으로 교체하는 과정에서 폭발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울산소방 “한국석유공사 울산지사서 폭발…6명 인명피해 발생”(2보)

    울산소방 “한국석유공사 울산지사서 폭발…6명 인명피해 발생”(2보)

    14일 오후 2시 35분쯤 울산시 울주군 온산읍 한국석유공사 울산지사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소방당국은 “6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원유배관 이설 공사 중 폭발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울산소방 “한국석유공사 울산지사 폭발사고…1명 사망 추정”(속보)

    울산소방 “한국석유공사 울산지사 폭발사고…1명 사망 추정”(속보)

    원유배관 이설 공사 중 폭발 사고 발생 추정.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新국토기행] 대나무숲 걷노라면 竹我一體

    [新국토기행] 대나무숲 걷노라면 竹我一體

    전남 담양군은 ‘한국의 죽향(竹鄕), 대나무 고을’이라고 불린다. 그만큼 담양은 예로부터 대나무가 유명하다. 마을 있는 곳에 어김없이 대밭이 펼쳐져 있고 댓잎 바람 소리 들리는 곳에 마을이 있다. 대나무와 관련한 오랜 역사와 문화를 지녀 군 전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정원이라고 평가받는다. 조선 중기 국문학사를 찬란하게 꽃피도록 한 송순을 비롯해 송강 정철, 석천 임억령 선생 등 수많은 문인들이 터를 잡고 주옥같은 가사문학 작품을 남겼다. 한국가사문학관을 만들어 관련 유물과 유적도 체계적으로 보존, 관리한다. 군은 죽세공예품으로만 인식하던 대나무를 환경·인문학·산업 가치 등으로 부각시켜 관광자원화하며 담양의 브랜드를 높이고 있다. 지구적 과제인 기후변화대응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개체로도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우리나라에서 하나뿐인 한국대나무박물관을 만들었고 지난해 지구촌 최초의 대나무 소재 박람회이자 군 단위 첫 국제박람회인 ‘2015 담양세계대나무박람회’를 개최해 관람객 104만명이 찾았다. 전통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대숲맑은 생태도시’로 거듭나며 연간 7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다녀간다. >>볼거리 ●탁 트인 호수 품은 ‘추월산 용마루길’ 담양호 지붕 위로 난 수평마루 같은 둘레길이다. 탁 트인 호수가 품 안에 쏙 들어오고, 나무데크와 흙길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여름에는 절벽폭포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뻥 뚫린다. 용마루길은 담양호의 수려한 전경과 추월산, 금성산성 등의 경관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수변산책 코스다. 추월산은 호남 5대 명산 중 하나다. 추월산 주차장 맞은편이 용마루길 입구다. 길이는 3.9㎞다. 이 가운데 나무데크가 2.2㎞, 흙 산책로가 1.7㎞다. 왕복 2시간가량 걸린다. 행정자치부와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에 선정돼 국고 39억원을 들여 조성된 길로 2012년 착공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담양의 관광명소로 자리잡았다. 최근에는 용마루길과 연계한 등산로 ‘수행자의 길’ 3.48㎞를 개설해 관광객들이 산행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구간마다 특색 있는 편의시설 및 안전시설 등을 설치했다. ●담양의 작은 유럽 메타프로방스 마을 담양읍 학동리 일대 13만 5000여㎡에 오는 12월 전체 개장을 목표로 추진되는 마을이다. 상가와 펜션, 음식점, 가족호텔 등이 들어선다. ‘메타’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선정된 바 있는 메타세쿼이아에서 땄고, ‘프로방스’는 프랑스 남동부 지역 이름이다. 주황색 지붕과 하얀색 건축물, 알록달록한 벽과 창틀 등 건물마다 유럽풍 건축 디자인과 색감, 그에 더해진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꾸몄다. 각기 다른 테마를 가진 건물들이 메타세쿼이아 풍광과 연결돼 ‘담양 속의 작은 유럽마을’로 각광받는다. 메타프로방스는 농촌의 정서를 체험하며 유럽의 낭만을 느낄 수 있는 이색적인 문화체험 공간이며 자연과 어우러진 휴양시설이다. 드라마 ‘가면’의 촬영지로 방송과 신문, 잡지 등 각종 매체에서 소개되면서 일부 개장했는데도 2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다녀갔다.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인기다. ●3대 자연유산 삼인산·추월산·담양호 최근에는 체험위주의 관광에서 스토리를 찾아가는 여행이 트렌드다. 담양군도 이에 맞게 관광자원 가운데 전해 내려오는 설화나 민담 등과 같은 내용이 담긴 ‘삼인산’, ‘추월산’, ‘담양호’ 등 지역의 대표적인 3대 자연유산에 스토리를 입히고 있다. 삼인산은 수북 들녘에서 바라다보면 뾰족한 산의 형상이 피라미드를 닮았다 해서 ‘담양의 피라미드’로 통한다. 추월산(731m)은 능선이 누워 있는 부처를 닮았다 해서 와불산으로도 불린다. 추월산은 가을에 올라야 참맛을 볼 수 있다는 이름 그대로 한국관광공사가 ‘10월에 가볼만한 곳’으로 선정한 곳이다. 산 전체가 기암괴석으로 뒤덮였고 정상 언저리 절벽에는 제비집처럼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보리암이 있다. 고려 때 보조국사가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가 나무로 만든 매 세 마리를 날려 보내 앉은 자리에 사찰을 지었다고 하는데 그 세 곳이 바로 장성군의 백양사와 순천시의 송광사, 담양의 보리암이다. 전남도 기념물 4호다. 추월산과 용추봉을 흘러내린 물이 만든 담양호는 1976년에 완공한 거대한 인공호수다. 제방길이 316m, 높이 46m로 담양평야와 장성군 진원면, 남면의 농토를 적셔주는 농업용수원으로 영산강의 시원이다. 담양호는 달그림자가 드리울 만큼 깨끗하고, 형상은 용을 닮았다. 추월산 관광단지와 금성산성, 가마골 등 울창한 숲과 수려한 아름다운 경관을 함께 볼 수 있어 여행객의 발길이 잦다. ●이국적인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담양은 이국적이며 환상적인 풍경을 만드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로도 유명하다. 멀리서 보면 옹기종기 줄을 서서 모여 앉은 요정들 같기도 하고 장난감 나라의 꼬마열차 같기도 하다. 길 가운데에서 쳐다보면 영락없는 영국 근위병들이 사열하는 모습이다. 질서정연하게 사열하면서 외지인들에게 손을 흔들어준다. 메타세쿼이아는 중국이 원산지이나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개량됐고 담양군에서는 1970년대 초반 전국적인 가로수 조성사업 당시 내무부의 시범 가로수로 지정되면서 3~4년짜리 묘목을 심은 게 지금은 하늘을 덮는 울창한 가로수로 자라났다. 2002년 산림청과 생명의 숲 가꾸기 국민운동본부가 ‘가장 아름다운 거리 숲’으로 선정한 곳이다. 초록빛 동굴을 통과하다 보면 이곳을 왜 ‘꿈의 드라이브코스’라 부르는지 실감한다. 무려 8.5 ㎞에 이르는 국도변 양쪽에 자리잡은 10~20m에 이르는 아름드리나무들이 저마다 짙푸른 가지를 뻗치고 있어 지나는 이들의 눈길을 묶어둔다. 메타세쿼이아에서 뿜어져 나오는 특유의 향기에 매료돼 꼭 삼림욕장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택시기사 김상경이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사이로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에 행복해하는 모습이 촬영됐다. ●댓잎 사각사각… 힐링 원하면 ‘죽녹원’ 관방제림과 영산강 시원인 담양천을 끼는 향교를 지나면 바로 왼편에 보이는 대숲이 죽녹원이다. 죽림욕장으로 인기가 많다. 입구에서 돌계단을 하나씩 밟고 오르며 굳었던 몸을 풀면 대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대바람이 일상에 지친 심신에 청량감을 불어 넣어준다. 댓잎의 사각거리는 소리를 듣노라면 어느 순간 빽빽이 들어선 대나무 한가운데에 서 있는 자신이 보이고 푸른 댓잎을 통과해 쏟아지는 햇살의 기운을 몸으로 받아내는 기분 또한 신선하다. 죽녹원 안에는 대나무 잎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먹고 자란다는 죽로차가 자생한다. 죽로차 한 잔으로 목을 적시고 대나무와 댓잎이 풍기는 향기를 느끼는 즐거움이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 교류의 장 ‘소쇄원’ 우리나라 대표 원림인 소쇄원은 조선 중종 때 선비 양산보가 은사인 정암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능주로 유배돼 세상을 떠나게 되자 출세의 뜻을 버리고 자연 속에 숨어 살기 위해 꾸민 별서정원이다. 1981년 국가 사적 304호로 지정됐으며 민간 정원의 원형을 간직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경외와 순응, 도가적 삶을 산 조선시대 선비들의 만남과 교류의 장으로서 경관의 아름다움이 가장 탁월하게 드러난 문화유산의 보배다. 주요한 조경수목은 대나무와 매화, 동백, 오동, 배롱, 산사나무, 측백, 치자, 살구, 산수유, 화매화 등이 있다. 초본류는 석창포와 창포, 맥문동, 꽃무릇, 국화 등이 있다. 조경물로는 너럭바위, 우물, 탑암과 두 개의 연못이 있으며, 계곡을 이용한 석축과 담장이 조화롭다. 정유재란 때 건물이 불에 탔지만 복원 중수하고 15대에 걸쳐 후손들이 잘 가꾸는 조선 최고의 민간 정원이다. 담양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먹거리 ●댓잎으로 키운 담양 한우 떡갈비 댓잎과 대 숯으로 키워 독특한 향이 매력적인 담양 한우로 만든다. 갈비에 붙은 살을 떼어낸 후 채 치듯 다져 동그랗게 만들어 다시 뼈에 얹어 굽는다. 인절미 떡을 연상하는 모양의 떡갈비를 입 안에 넣으면 살살 녹을 것처럼 부드러운 맛과 씹히는 맛이 조화를 이룬다. 인절미 치듯이 칼로 쳐서 만들어 연하고 부드럽다. 당근, 수삼, 밤, 양념장 등에 구운 떡갈비를 넣고 윤기나게 조려 찜으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대나무 향이 솔솔나는 대나무통밥 대통에 멥쌀과 찹쌀, 흑미, 검은콩에 대추, 은행, 밤을 넣고 소금으로 간한 물을 부은 뒤 압력솥에서 20~30분간 쪄 낸다. 향기가 은은하면서 쫄깃쫄깃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죽통밥이라고도 불린다. 3년 이상 자란 왕대를 잘라 쓴다. 대나무의 죽력과 죽향이 밴 밥은 몸의 열을 식혀 기력을 보강하고 정신과 피를 맑게 해주며 스트레스와 숙취 해소에 도움을 준다. ●식이섬유·비타민C 풍부한 죽순요리 식이섬유, 비타민C가 풍부하고 아삭아삭한 질감과 담백한 맛이 새콤달콤한 초고추장과 잘 어울린다. 여기에 쫄깃쫄깃한 우렁이살을 넣는 게 죽순회의 포인트이며 담양 토속음식의 대표적인 별미다. 죽순회는 임금 수라상에 오르던 음식이다. 죽순은 대나무의 어린줄기로 봄철 비가 온 직후에 40~50㎝ 정도 자랐을 때 채취한다. 죽순, 우렁, 미나리에 고추장, 설탕, 식초, 깨소금 등 양념을 넣고 버무려 먹는다. ●전남 10대 고품질 쌀 ‘대숲맑은 쌀’ 영산강 시원지로서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 담양에서 생산되는 대숲맑은 쌀은 윤기가 좋으며 단단하다. 전남 10대 고품질 브랜드 쌀이다. 구수한 맛과 찰기가 뛰어나 현재 생산되는 모든 쌀이 전량 판매될 정도로 소비자들의 호응이 높다. 특히 농협과 생산 농가뿐만 아니라 담양군의 기술지도와 엄격한 품질 검사는 고객들에게 신뢰를 준다. ●담백한 국수·한약재 넣고 삶은 ‘약계란’ 옛날 대나무 제품을 사고팔던 죽물시장이 문을 닫고 하나둘 생긴 국수집들이 유명해지면서 국수거리가 생겼다. 국수거리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령 200~400년 된 나무 200여 그루가 2㎞에 걸쳐 서 있다. 담백한 맛의 비빔국수, 멸치와 야채로 우려낸 진한 국물의 물국수, 대나무 잎과 각종 약재를 넣고 삶은 달걀은 별미로 각광받는다. 약계란은 약수로 만든 멸치육수에 오가피와 두릅나무 등 10여 가지 한약재를 함께 넣어 삶아낸 계란이다. 멸치육수 간이 배어 짭조름하면서도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담양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이해욱 전 KT사장, 전 세계 240개국을 여행한 ‘최초의 한국인’

    이해욱 전 KT사장, 전 세계 240개국을 여행한 ‘최초의 한국인’

    이해욱(78) 전 KT 사장이 전 세계 240개국을 여행한 최초의 한국인이 됐다. 이 전 사장은 1993년부터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 23년만에 240개국을 돌아봤다. 4일 KT에 따르면 이해욱 전 사장은 240번째 방문국인 영연방 자치령 세인트헬레나 섬 여행을 마치고, 지난 2일 두바이를 거쳐 인천공항으로 입국했다. 이날 정보통신부 퇴직임직원 단체 정우회와 KT 출신 동우회 관계자들이 인천공항에서 환영식을 열고 이 전 사장을 맞았다. 이 전 사장은 “자세히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끝까지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나라별로 역사, 문화, 지형이 다 다른데 그런 다양함을 경험할 수 있어 즐거웠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해욱 전 사장이 방문한 240개국은 유엔기구 국제표준화기구(ISO)가 국가로 분류한 곳이다. ISO는 1974년부터 세계 각국과 부속 영토에 고유번호를 부여해 지금까지 240개국을 국가로 분류했다. 1993년부터 본격적으로 세계 여행을 시작한 이해욱 전 KT 사장은 2010년 한국기록원에 의해 전 세계 192개 독립국을 여행한 최초의 한국인으로 인정받았다. 이후 6년 만에 ISO가 정한 240개국을 여행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해욱 전 사장의 마지막 여행지는 세인트헬레나였다. 이 곳은 아프리카 대륙 서안에서 1900㎞ 떨어진 남대서양에 있는 섬으로, 나폴레옹이 숨을 거둔 유배지로 유명하다. 이번 여정에도 여느 때처럼 아내가 함께했다. 이 전 사장은 “더는 갈 나라도 없어 당분간 여행은 접어두고 휴식을 취할 계획”이라며 “여행담을 묶어서 책으로 내는 것도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이해욱 전 사장은 1964년 행정고시 합격 후 체신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해 체신부 차관을 거쳐 1988∼1993년 KT의 전신인 한국전기통신공사 사장을 역임했다. 은퇴 후 여행가로 활동하며 ‘세계는 한 권의 책(2011)’, ‘이해욱 할아버지의 지구별 이야기(2013)’ 등 2권의 여행기를 출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우주를 아우르는 老시인의 퍼런 기백… 그 거침없는 진혼곡

    우주를 아우르는 老시인의 퍼런 기백… 그 거침없는 진혼곡

    팔순을 넘긴 노시인이 우주를 아우르는 상상력으로 백지 위를 내닫는다. 과거, 현재, 미래의 시공간도 거칠 것 없는 그의 담대함은 “미래여 옛날이여 여기 오라” 호령하기에 이른다. “내 시의 리듬은 우주의 율동에서 생긴다”던 시인다운 기세다. 이에 “저 망구(望九·아흔을 바라본다는 뜻)의 퍼런 기백을 보라. 운명이 떠밀지 않고 가능한 노릇이겠는가”(김사인 시인)라는 찬사가 터진다. 보편성과 특수성의 경계를 허물며 세계 시단에 서 온 고은(83) 시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올해 시력(詩曆) 58년을 맞는 그가 3년 만에 새 시집 ‘초혼’(창비)을 펴냈다. 평소 그는 “시란 지금 없는 자를 쓰는 것”이라며 “때문에 내가 내 문학에 명령하는 것이 애도이며 숱한 죽음을 현재화시키는 게 내 과제”라고 말해 왔다. 이처럼 현대사의 수많은 죽음이 자신에게 지워져 있음을 되뇌는 시인은 2부 장편 굿시 ‘초혼’(원고지 130장 분량)으로 죽은 넋들을 애도하는 사제를 자청한다. 백제, 고구려 등 상고시대 망령부터 한국전쟁, 제주 4·3 사건,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세월호 참사로 스러진 혼들까지 불러내는 그의 절창은 도저한 에너지와 역사에 대한 분노로 들끓는다. ‘나 소월의 초혼 신 내려/이 고려강토/이 고려산천 도처마다 떠돌며/신방울 울려/신북 치며/신피리 불며/내 비록 맺힌 소리나마/이 소리로 소리제사 소리공양 내내 울리며/이 땅의 반만년 원혼 혼령 위무하며/살아가고저’(초혼) ‘나 대신/누가 책을 던지는가/쨍그랑/누가 술잔을 던지는가/나 대신/누가 누대의 권력을 빈 잔으로 내던지는가//늦었다/벼랑으로 솟구쳐/저놈의 비바람 속에 서야겠다/저놈의 눈보라 속 두 다리 부들부들 떨리는 썩은 분노로/기어이 기어이 달려가야겠다’(만년) 시집의 1부에는 지나온 삶과 시에 대한 성찰이 주류를 이룬다. 또래의 반이 죽어나갔던 한국전쟁 당시 ‘재수 없는 그믐달 한 조각같이’ 살아남아 ‘음독도 마다하지 않았’던 허무의 시절을 통과한 사연, 선배 시인들의 눈에 들어 ‘현대문학’ 11월호 3회 추첨을 단회 추첨으로 때려잡고 나왔던 등단 뒷얘기 등을 새삼 되짚는다. 돌아보면 시인으로 산 지난 60여년은 ‘시의 무기수라는 천벌 감수하며/내 조국을/내 조국 밖을 유배의 세월로 삼아왔’(시 옆에서)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시인은 ‘아직도 노래할 것을/노래하지 않았다’(2016년 이른 봄)며 갱신을 꿈꾼다. ‘말의 과잉과/욕망의 과잉을 때려부수’(알타이에 가리)겠다는 다짐과 함께.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경제 블로그] 뜬금없이 국감 소환 왜? 셈법 복잡한 삼성생명

    [경제 블로그] 뜬금없이 국감 소환 왜? 셈법 복잡한 삼성생명

    요즘 삼성생명은 좌불안석입니다. 29일 국회 정무위원회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불려나가서죠. 보험회사 중에선 유일하게 증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그 배경을 두고 여러 추측이 난무합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김남수 삼성생명 부사장을 증인으로 채택하며 밝힌 표면적 이유는 ‘보험법 관계 법령 위반’입니다. 하지만 김 부사장이 자산운용담당 임원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석연찮습니다. 일각에선 박 의원이 삼성생명 지배구조 재편 문제를 짚고 넘어갈 것이란 얘기가 나옵니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이 올해 2월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 3000억원어치를 사들인 과정을 따져 물을 것이라는 관측이지요. 박 의원은 국감을 앞두고 “삼성생명공익재단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 악용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른바 ‘삼성생명법’과 관련한 질의가 나올 가능성도 큽니다. 이는 보험사의 자산평가 때 취득원가가 아닌 시가로 계산해야 한다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말합니다. 20대 국회에서 이종걸 더민주 의원이 대표 발의했습니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7.4%) 보유지분 중 상당수를 처분해야 합니다.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고리 및 지배구조 문제와 맞물려 있는 민감한 사안이죠. 본사사옥 매각대금 처리 문제도 있습니다. 삼성생명은 올해 초 부영그룹에 서울 중구 태평로 사옥을 5750억원에 팔았습니다. 이 차익을 유배당보험 가입자에게 배당하라는 것이 정치권의 주장입니다. 대다수 생명보험사들은 2000년대 이후 유배당보험 판매를 거의 중단했습니다. 하지만 30년 이상 장기계약자가 많은 보험상품의 특성상 유배당보험 계약자 숫자가 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배당은 찔끔씩 이뤄져 왔지요. 삼성생명은 230조원이 넘는 보험 총자산 중 절반가량이 유배당보험 계약자입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사옥 매각 자금을 자본금 확충에 이용할 것으로 봅니다. 보험업계의 가장 ‘뜨거운 감자’인 2020년 국제회계기준(IFRS4) 2단계 적용에 맞추려면 삼성생명이 20조원가량의 책임준비금을 쌓아야 한다는 게 업계 추산입니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청계천변 녹회색 육중한 존재감… 1·2층 상가만 남고 사라진 터전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청계천변 녹회색 육중한 존재감… 1·2층 상가만 남고 사라진 터전

    서울 구도심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로 전체적으로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다. 도성 안의 물 또한 지형을 따라 대체로 서쪽에서 동쪽을 따라 흐른다. 그 중심을 이루는 것이 바로 지금의 청계천이다. 상하수도가 없던 시절에는 물의 흐름이 곧 사회적 위계였다. 수원지에 가까운 인왕산, 북악산 기슭에는 궁궐과 세도가들의 주거지가 들어섰다. 하류로 갈수록, 즉 물의 오염도가 높아지는 것에 비례해서 거주민들의 삶은 팍팍해졌다. 청계천의 원래 이름은 ‘개천’(開川)이다. 문자 그대로는 ‘열린 하천’이지만 그 의미는 자연 하천이 아닌 ‘내를 파낸’ 하천이다. 경인 아라뱃길과 합류하는 굴포천의 또 다른 이름이 ‘판개울’인 것과 비슷하다. 도성의 젖줄이나 다름없어서 조선 시대부터 이 하천을 관리하는 것은 정부의 큰 관심사였다. 태종은 ‘개천도감’(開渠都監)이라는 전담 부서까지 마련할 정도였고, 조선 후기의 영조는 대대적인 준설 사업을 벌이고 호안 석축을 쌓아 구불구불하던 물길을 바로잡았다. 청계천(淸溪川)이라는, 상황의 묘사라기보다는 희망 사항에 불과한 이름이 붙은 것은 일제강점기다. 총독부의 사업으로 이 하천의 여러 지류가 복개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청계천 본류에 대한 다양한 복개 및 도로, 철도 계획까지 등장했다. 다만 실제로 실행에 옮겨진 것은 미미했다. 준설로도 청계천의 환경이 악화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1930년대 청계천 변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 바로 박태원의 ‘천변풍경’이다. 박태원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저자이며, 영화감독 봉준호의 외조부이기도 하다. 특히 ‘카메라 아이’(camera eye)로 일컬어지는 그의 소설 작법은 훗날의 명감독 외손자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는 것 같아 흥미롭다. 1절 ‘청계천 빨래터’에서 시작해 50절 ‘천변풍경’으로 끝나는 이 소설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필원이네, 칠성 어멈 등을 위시한 동네 아낙들은 청계천 변에서 빨래를 하며 온갖 잡담을 나누는가 하면 ‘신전집 주인의 장구 대가리 처남’은 물지게를 지고 천변에 나온다. 그러나 그 물은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마시기는커녕 빨래하기에도 적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빨래터가 사실은 개천가의 샘물이 솟는 곳에 있었으며, 심지어 유료였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 나머지 청계천의 물이 어떠했는지는 다음의 구절이 잘 말해 준다. ‘…그 불운한 중산모는 하필 고르디 골라, 새벽에 살얼음이 얼었다가 막 풀린 개천물 속에 빠졌다. 상판대기에 불에다 덴 자국이 있는 깍정이 놈이 다리 밑에서 뛰어나와 얼른 건졌으나, 시꺼먼 똥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코에다 갖다 대보지 않더라도 우선 냄새가 대단할 듯싶다….’ # 물길은 덮이고 찻길은 뚫리고 일제강점기인 1937년, 그리고 1955년에 무교동 인근 구간이 일부 복개된 것을 제외하면 저 ‘청계천 똥물’이 시민들의 시야에서 본격적으로 사라진 것은 개발시대에 들어서였다. 1958년부터 1977년의 기간 동안 광통교에서 시작해 중랑천 조금 못 미친 지점까지 물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복개가 순차적으로 진행됐다. 이와 거의 동시에 청계 고가도로가 놓이면서 청계천은 서울을 동서로 잇는 중요한 간선도로가 됐다. 그 물리적인 서쪽의 끝이 태평로였다면 동쪽 끝은 용두동 인근이었다. 하지만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의 저자인 손정목의 증언에 따르면 그 훨씬 너머 아차산 인근에 있던 ‘미군 위락 시설’ 워커힐 호텔이 청계천 고가도로의 궁극적인 목적지였다. 외화벌이 등을 목적으로 이미 1961년부터 추진돼 오던 국가적 사업이었다. 청계천이 복개되고 그 위에 고가도로가 놓이게 되면서 판잣집들이 즐비하던 천변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69년 세워진 삼일 아파트다. 7층 높이에 무려 24개동, 어마어마한 대규모 건물군이었다. 창신동과 숭인동, 그리고 청계천 맞은편의 황학동 일대를 가득 채운 빽빽한 빌딩의 숲이었다. 그 사이를 누비며 달리는 청계 고가도로, 그리고 마침 비슷한 시기인 1968~1971년 사이에 세워진 김중업의 삼일 빌딩과 함께 청계천 일대는 바야흐로 개발 시대 서울의 새로운 상징으로 떠올랐다. 아직 도시 구조상 한강이 사람들의 인식에 깊게 들어오기 전이었다. 청계천은 수도의 대동맥 같은 지위를 부여받았다. 복개된 상판 아래 저 어둠 속에는 도시의 온갖 오물을 담은 탁한 물이 여전히 흘러가고 있었지만, 그 위의 세상은 딴판이었다. 삼일 아파트는 흔히 청계천을 꽉 채우고 있었던 것처럼 이야기되지만 실상은 좀 달랐다. 총 24개 동 중 절반인 12개 동은 청계천 남쪽 황학동에 있었다. 그리고 북쪽의 나머지 12개 동도 6개동씩 두 그룹으로 나뉘어 각각 창신동과 숭인동에 자리 잡았다. 이 두 그룹 사이는 민간 투자 부지로 그 길이가 무려 250m였다. 간단히 말해서 삼일 아파트는 청계천변 양쪽에 서로 멀리 떨어진 세 그룹으로 분산돼 지어졌던 것이다. 삼일 아파트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던 민간 투자 부지에 개발의 바람이 불면서 대형 건물 3개가 들어섰다. 그중 가장 동쪽에 있으면서 가장 큰 건물이 바로 현대건설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숭인 상가아파트다. 건축물 관리대장에 따르면 1979년 10월 22일 사용 승인을 받은 것으로 나오니 이 연재에서 다뤄 온 다른 건물들에 비해 건립 연대가 한참 늦다. 그 2년 전인 1977년 11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분양 사건이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제 본격적으로 강남, 강북의 시대가 열리던 시점이었다. 이 건물이 지어지던 당시는 이미 청계천 복개 공사 및 청계천 고가도로 공사도 다 끝난 다음이었다. 삼일 아파트가 완공된 지는 무려 10년이 다 된 시점이었다. 다만 ‘숭인 상가아파트’로 검색되는 1970년대 초반 신문 기사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건립 연대에 대해서는 좀더 신중한 검증이 필요하다. # 숭인 상가아파트 두께 삼일 아파트 두 배 넘어 숭인 상가아파트는 중후장대한 건물이다. 길이가 81m에 달하며 지하 1층 지상 8층이다. 게다가 중복도형이라 건물의 두께가 이웃인 삼일 아파트에 비해 두 배가 넘는다. 그러다 보니 연면적은 무려 19920.99㎡에 달하고 246가구가 거주한다. 지금도 청계천 건너편에서 이 건물을 바라보면 그 존재감이 상당하다. 어지간한 광각 렌즈가 아니면 한 번에 잡히지도 않을 정도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한국 최초의 아파트로 평가되는 충정 아파트를 연상케 하는 녹회색 타일(내지는 타일 위 도색)로 전면과 후면이 마감돼 있어 더욱 육중한 느낌이 든다. 3층까지는 점포와 사무실, 그 이상은 아파트로 돼 있어 주거와 상업의 복합 비율도 상당히 높다. 이 지역이 서울뿐 아니라 전국을 상대로 하는 거대한 동대문시장 권역인 탓이겠지만, 상가의 업종은 보일러, 금속, 배관, 피혁 등 주민들의 일상생활과는 무관하다. 그 점은 건물 인근의 신설동종합시장이나 동묘시장 등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워낙 다양한 시장이 주변에 많기 때문에 생필품 구입 등에 불편이 있을 상황은 아니다. 게다가 지금은 황학동 삼일 아파트가 있던 곳에 세워진 거대 주상복합 단지 안에 대형 할인 매장도 들어가 있다. 디자인적인 측면에서 숭인 상가아파트는 전체적으로나 부분적으로 아주 명확한 좌우 대칭의 구도를 갖고 있다. 좋게 말하면 질서정연하고 나쁘게 말하면 단조롭고 지루하다. 다만 발코니를 통해 저층부의 상가와 그 위의 공동주거 부분에 살짝 변화를 주려고 했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중복도 건물이라 당연히 주거 가구의 절반이 북향인데 이 역시 전면과 같은 디자인의 외관이다. 특이한 것은 주차장이다. 처음부터 제대로 계획된 듯한 넓은 주차장이 지하층에 있다. 자동차가 보급되고 있었던 당시의 시대상과도 관련이 있겠지만, 이 정도 투자는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 법과 제도의 강제력이 필요하다. 우연이었을까. 건축물 관리대장상 사용 승인을 받은 1979년은 주차장법이 제정된 해이기도 했다. 옥상에 올라보면 이 일대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부분에서 청계천이 완만하게 꺾이기 때문에 시야가 더욱 넓게 느껴진다. 옥상에는 녹색 방수액이 칠해져 있고 빨래가 조금 널려 있으며 각종 장비가 놓여 있을 뿐 별다른 사용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다만 우뚝우뚝 솟은 환기탑들이 마치 설치 예술 같은 느낌을 줄 뿐이다. # 새로운 ‘천변풍경’ 숭인 상가아파트 옥상에서 내려다본 청계천은 박태원이 ‘천변풍경’에서 묘사한, 그 똥물 흐르는 도시의 시궁창도 아니고, 고가도로 위로 자동차가 씽씽 달리던 개발시대의 그 모습도 아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청계천은 2003년 7월 1일부터 2005년 10월 1일까지 복개된 상판과 고가도로를 걷어 내면서 다시 햇빛을 보게 됐다. 전기 모터로 물을 순환하므로 더이상 자연하천이 아니고, 녹조 문제도 종종 일어나며, 무엇보다 졸속으로 무리하게 진행된 일이라 ‘복원’이라는 말을 붙일 수조차 없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수 관로가 별도로 설치돼 천연의 하수도 역할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났다. 그러나 소위 합류식 구조의 한계로 큰비가 오면 오수가 유입돼 겨우 만들어진 생태계는 해마다 문제를 일으킨다. 다만 평소에는 산책하는 사람들도 제법 많고 각종 물고기, 심지어 새들도 많이 보인다. 이 주변은 현재 서울 시내에서 새로운 상가아파트가 가장 많이 지어지고 있는 곳의 하나이기도 하다. 청계천 일대는 주거와 상업의 복합지수가 높은 지역으로 계속 변신 중이다. 그 원조 격인 삼일 아파트는 어떻게 되었을까?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아직 남아 있다. 청계천 맞은편의 황학동 쪽은 완전히 없어졌으나 창신동과 숭인동 쪽은 그렇지 않다. 다만 구조안전진단, 그리고 주민과 상인들 간의 갈등으로 인해 1, 2층의 상가만 남기고 그 위의 아파트는 완전히 철거돼 없어졌다. 박태원이 천변풍경을 1937년에 쓴 것을 감안하면 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 재봉이와 창수, 그리고 이쁜이와 금순이는 중년의 나이가 됐을 때 삼일 아파트에 살면서 청계천이 복개되고 그 위에 고가도로가 놓이는 것을 바라보았을 수도 있다. 한때 삶의 터전이었던 청계천이 마치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어둠 속으로 유배되는 모습을 보는 기분은 어떠했을까. 그러나 인간이 만드는 도시에 영원이란 없다. 그 청계천은 불과 30년 남짓한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때와는 또 다른 ‘천변풍경’을 만들어 가고 있다. 세상에 대한 인간의 온갖 욕망 또한 여전히 그 위에 떠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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