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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림 오토바이, 전기 이륜차 배터리 표준화 추진

    대림 오토바이가 전기 이륜차 배터리 표준화에 나섰다. 대림 오토바이는 삼성SDI와 공유서비스용 배터리 개발사업 양해각서(MOU)를 맺었다고 23일 밝혔다. 대림 오토바이는 삼성SDI와 사업제휴 동반관계를 맺고 전기 이륜차용 배터리 개발과 표준화, 국내 배터리 공유스테이션 사업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또 모든 전기 이륜차에 호환할 수 있는 시장 표준 배터리를 정부에 제안할 계획이다. 배터리 규격 표준화가 되면 제작 원가를 절감하고 배터리를 쉽게 떼고 붙일 수 있다. 대림 오토바이는 친환경 전기 이륜차 저변 확대를 위해 정부 및 지자체와 공유배터리 스테이션을 구축하기 위한 사업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공유배터리 스테이션이 구축되면 전기 이륜차 운전자들이 필요한 곳에서 완충된 배터리로 교체해 운행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이 사업은 2020년 3분기부터 서울·경기지역에서 시범 운영할 계획이다. 정부에서는 심각한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2022년까지 전기 이륜차 5만대를 보급하고자 구매보조금을 주고 있다. 전기 이륜차는 배기가스와 미세먼지 배출이 없는 친환경적 운송수단으로 유지보수비도 저렴한 장점이 있다. 하지만, 운행시간이 짧고 외부에서 배터리 충전이 어려워 보급확대에 한계가 있었다.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양진건의 유배의 뒤안길] 흔한 것이 귀한 것이니

    [양진건의 유배의 뒤안길] 흔한 것이 귀한 것이니

    “봄은 자유롭다. 자 봐라, 꽃 피고 싶은 놈 꽃 피고, 잎 달고 반짝이고 싶은 놈은 반짝이고, 아지랑이고 싶은 놈은 아지랑이가 되었다”라고 시인 오규원은 말했다. 과연 봄이 무르익었다. 버들이 연둣빛이다. 추사 김정희의 인장 가운데 ‘양류당년’(楊柳當年)이 있다. “버들처럼 무성하던 그때”라는 뜻이다. 김정희가 가장 활발하던 시기를 상징한다. 누구에게나 물오른 버들처럼 푸른 시절이 있다. 그러나 꿈처럼 그 시절은 간다. 귀한 것들이 흔할 때가 봄이다. 충암 김정은 “산나물로는 삼백초와 고사리가 가장 많았다”고 했다. 300가지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그 귀한 삼백초가 제주도에 흔한 것을 보고 놀랐던 것이다. 추사의 편지에도 “산채는 더러 있으나 본디 여기 사람은 먹지 않으니 괴이한 풍속이오”라고 했다. 산나물을 먹지 않는 제주 사람들이 이상했던 모양이다. 흔하기 때문이었다. 흔한 것을 이용한 귀한 행사가 있다. 제주 고사리축제가 그것이다. 제주 5현 가운데 한 사람인 동계 정온은 10년을 귀양살이했다. 이 긴 시간 동안 제주 여인 강씨가 고사리를 꺾으며 도왔던 덕분에 동계는 무사히 유배를 마쳤고, 말년에는 덕유산 자락에 “고사리를 꺾는 집”이라는 뜻의 채미헌(採薇軒)을 짓고 살았다. 이렇게 사랑과 정성은 물론 의리와 절개의 스토리가 제주 고사리와 함께 자란다. 흔한 것이 귀한 거라고 한다. 그러나 흔하기에 그 가치를 모르거나 잊고 지내기 십상이다.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 강진은 “바닷가라서 좋은 채소는 적고, 좋다는 것은 쑥갓뿐”이라고 했다. 그런데 쑥갓처럼 영양소가 풍부한 나물도 드물다. 또한 그가 좋아했던 것 중 하나가 아욱국이다. 맛이 너무 좋아 문을 걸어 잠그고 먹는 것이 ‘가을 아욱국’이고 그래서 막내 사위만 준다 했지만 ‘봄 아욱국’도 만만치 않다. 그 흔한 쑥갓과 아욱이야말로 귀한 나물이었던 것이다. 흔하지만 처리에 따라 귀한 대접을 받기도 한다. 봄에 흔한 꽃이 진달래다. 그러나 정조 때 권상신은 국수에다 진달래를 멋들어지게 얹힌 “진달래국수가 맛이 매우 좋았다”며 입을 다셨다. 어디 그뿐이랴.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삼짇날이면 화전을 안주 삼아 술을 걸치는 전화음(煎花飮)의 풍습이 있었다. 화전 가운데 으뜸이 진달래전이었다. 함열에서 귀양 살던 허균도 봄날 별미로 진달래전을 꼽았다. 봄철 바닷가에는 갯무라는 ‘야생 무’ 꽃 또한 흔하다. 야생 무를 포르투갈에서는 사라마구라고 한다. 1998년 노벨문학상 작가인 조제 사라마구(Jose de Sousa Saramago)의 이름이기도 하다. 71세에 발표했던 소설이 교황청과 갈등을 빚자 정부는 유럽문학상에 선정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데, 이에 반발한 사라마구는 스페인의 란사로테로 자발적 유배를 가 버린다. 여기서 75세에 발표한 작품이 그 유명한 ‘눈먼 자들의 도시´다. 그러니까 갯무는 흔한 꽃이 아니라 가장 귀한 꽃인 셈이다. 몸소 귀하게 여길 때만 흔한 것도 귀해진다. 우암 송시열은 장기에서 귀양살이할 때 “뜰 앞에 작은 채소밭을 만들어 놓고 친히 스스로 모종을 심고 풀을 벴다. 또한 밭 가운데 생강을 심었다”라고 했다. 제주에서도 몸소 농사를 지었다. 아마도 “내가 지어야 할 농사를 내가 지어서 내 삶을 보살피고, 내가 가진 책을 내가 읽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 마음대로 하며 내 인생을 마치려 한다”라고 했던 제주 유배인 유언호와 같은 자세라면 가장 흔한 것도 가장 귀한 것이 될 것이다. 봄이 가기 전에 그래야 한다.
  • 춘향이 발그레하듯… 생기 도는 광한루, 몽심재·구룡폭포… 이몽룡 다녀간 듯

    춘향이 발그레하듯… 생기 도는 광한루, 몽심재·구룡폭포… 이몽룡 다녀간 듯

    ‘이편에는 함양 저편에 담양/ 꿈에는 가끔가끔 산을 넘어/ 오작교 찾아찾아 가기도했소/ 그래 옳소 내 누님, 오오 누이님/ 해 돋고 달 돋아 남원땅에는/ 성춘향 아가씨가 살았다지요/ (김소월의 시 ‘춘향과 이도령’ 중) 퇴기 월매의 딸 성춘향과 남원 부사의 아들 이몽룡의 신분을 뛰어넘은 로맨스는 전북 남원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사랑 이야기다. 춘향가는 지금까지 전해지는 판소리 다섯 마당 중 음악적으로나 문학적으로 으뜸으로 꼽히고, 이들의 사랑을 노래한 명시만도 여러 편이다. 춘향제가 열리는 매년 5월이 다가올 무렵이면 남원은 이팔청춘 춘향이처럼 생기가 돈다. 싱그러운 봄바람이 살랑이던 날 지리산 자락의 맑은 정취, 천년고찰의 운치, 민족의 문학혼을 함께 돌아볼 수 있는 남원을 다녀왔다.●기왓장과 나무로 지어진 옛 서도역 수도권에서 남원으로 향한다면 남원 시내에 이르기 전 시 북동쪽에 자리한 옛 서도역에 먼저 들르는 것이 동선을 짜는 데 좋다. 임실군과의 경계에 위치한 옛 서도역은 전라선 철도에 놓인 기차역으로 일제강점기인 1931년 영업을 시작했다. 2002년 전라선이 정비되면서 도보로 5분 남짓 떨어진 곳에 새 역사가 생겼고 철거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보존을 주장하는 주민들의 요구에 남원시가 철도청으로부터 역사와 부지를 매입했고, 기왓장과 나무로 지어진 과거 모습으로 복원하면서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로 거듭났다.꽃망울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는 아름드리 벚나무 아래 세월을 거슬러 서 있는 듯한 옛 서도역을 돌러보던 중 짤랑짤랑 방울 소리를 들었다. 할아버지를 따라 산책을 나온 생후 1개월 된 강아지가 짧은 다리로 아장아장 뛰어다니고 있었다. 젊은 시절 군대에 가기 전 서도역에서 급사로 일했었다는 이길무(76) 할아버지는 지금도 서도역 맞은편에 살고 있다. 이 할아버지는 “기차가 다니던 시절엔 줄을 서서 표를 끊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며 “그때는 역 앞에 여관도 있었고 하루 한 마리씩 돼지를 잡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역 앞 벚나무는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에도 컸고 수령 100년은 족히 넘었다고 한다.●소설 속 여러 장면 볼 수 있는 혼불문학관 최근에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촬영지 중 한 곳으로 소개되며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의 배경이 된 곳으로 오랫동안 알려져 있다. ‘혼불’은 1930년대 말 전라도의 유서 깊은 문중에서 무너지는 종가를 지키는 종부 3대를 통해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애환을 담아낸 작품이다. 소설 속 종가집 효원이 마을로 시집을 오는 장면, 주인공 강모가 전주로 전학하는 장면 등에서 서도역은 주요 배경으로 등장한다. 옛 서도역에서 차로 3분가량 떨어진 곳에 혼불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문학관 내부에서는 소꿉놀이, 혼례식, 액막이연 날리기, 명혼식, 장례식 등 소설 속 여러 장면들을 디오라마(입체전시)로 볼 수 있고 각 장면마다 전통 풍속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생전 집필실이 재현돼 있고 자필 원고 등 여러 전시물을 통해 작가의 생애를 돌아볼 수 있다. 문학관 옆 최명희 가문에서 100여년 전 만들었다는 청호저수지는 둘레로 짧은 산책을 하기 좋다.●몽룡이 춘향이 보고 첫눈에 반한 곳,광한루 혼불문학관을 나서 차로 25분쯤 달려 남원 시내의 광한루원으로 향한다. 광한루에 올라앉아 있던 이도령이 단오날 그네를 뛰는 춘향이를 보고 첫눈에 반한 그곳이다. 보물 281호인 광한루는 지금으로부터 600년 전인 1419년 남원으로 유배를 오게 된 황희 정승이 지은 누각으로 처음에는 광통루라고 이름 붙여졌다. 이후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정인지가 이곳의 경치에 취해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광한청허부’로 부른 것을 계기로 광한루라는 이름을 얻었다. 1461년에는 부사 장의국이 광한루를 보수하면서 남원 시내를 흐르는 요천의 물을 끌어다 둘레에 연못을 만들었다. 1582년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정철은 연못 가운데에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의 삼신산을 따 섬을 만들고 정자를 세웠다. 금실 좋은 원앙 한 쌍이 노니는 연못 위로 돌다리 오작교가 가로놓여 있다. 버드나무 가지가 수면에 닿을 듯 드리우고 그 너머 광한루가 고즈넉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풍경은 그대로 한 폭의 수묵화가 된다. 여러 차례에 걸친 확장공사로 2만 여평 부지에 조성된 광한루원에는 수중누각 완월정, 춘향 어머니의 집인 월매집, 이도령과 춘향이 백년가약을 맺은 부용당, 춘향전기념관 등이 있어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다. 한편에서는 춘향이 된 듯 커다란 그네를 타고 투호놀이 등도 즐길 수 있다. 춘향의 일편단심을 기리기 위해 1931년에 세워진 영정각에는 김은호 화백이 그린 단아한 모습의 춘향 영정이 모셔져 있다. 이 사당에서 축원을 빌면 백년가약이 이뤄진다고 하니 광한루원을 찾은 연인이라면 이도령과 춘향의 사랑을 떠올리며 소원을 빌어 봐도 좋겠다.●요천 따라 산책로 양옆으로 벚꽃 활짝 광한루원을 나서면 맞은편 도로변에 활짝 핀 벚꽃이 장관이다. 남원 중심부를 흐르는 요천을 따라 숭사교에서 춘향교 부근까지 산책로 양옆으로 벚나무가 빽빽이 심겼다. 사방으로 풍성하게 뻗은 가지마다 핀 벚꽃이 연분홍 장막을 드리운다. 군밤, 솜사탕 등을 파는 노점이 즐비하고, 엿장수의 구성진 입담에 지나가던 어르신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함박웃음을 짓는다. 벚꽃으로 물든 요천변과 광한루원 일대는 다음달 8일부터 12일까지 춘향제의 무대로 변신한다. 완월정 무대에서는 개막공연과 춘향선발대회, 춘향국악대전 등 공식행사가 펼쳐진다. 평소 출입이 제한되는 광한루각은 1년에 단 한 번 축제 기간 동안 개방된다. 이 밖에 명인·명창·명무들의 국악 향연과 전국에서 온 버스커들의 거리공연도 풍성하게 열린다.●춘향테마파크 지나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요천 벚꽃길 남쪽의 춘향테마파크를 지나 춘향의 흔적에서 벗어나 본다. 춘향테마파크 남쪽 출구 부근에 옅은 회색의 깔끔한 외관이 인상적인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이 서 있다. 지난해 3월 개관한 공립미술관으로 남원 출신 김병종 작가가 남원시에 기증한 컬렉션을 기반으로 문을 열었다. 입구로 들어서는 나지막한 오르막길 주위로 계단식 물의 정원이 조성돼 있다. 작품 감상에 앞서 잡념을 씻어 주는 듯하다. 1층에서는 김병종 작가의 상설전이, 2층에서는 기획전이 열린다. 약 2000권의 미술·문학·인문학 서적이 비치된 1층 북카페는 물의 정원을 바라보며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기에 제격이다.●몽심재, 조선 후기 상류 가정 가옥 형태 그대로 시내를 벗어나 ‘숨은 보석’을 찾아 떠난다. 차를 타고 남쪽으로 15분가량 가다 호곡삼거리를 지나면 몽심재에 다다른다. 내비게이션에서 검색이 되지 않는다면 ‘수지면 내호곡2길 19’로 주소를 입력하면 찾아갈 수 있다. 마을 입구 빨간 하트 모양 표지판이 ‘남원의 숨은 보석 10선 몽심재’라고 길을 안내한다. 몽심재는 조선 후기 전북 지방 상류 가정의 전형적인 가옥 형태를 고스란히 보존한 고택이다. 경사진 지형 위에 뒤로는 대나무숲을 두고 앞으로는 소나무가 병풍처럼 자란 낮은 언덕을 마주한다. 잿들에서 흘러내린 물이 마당 앞으로 흘러 연못을 이루고 배산임수의 명당을 완성시킨다. 솟을대문을 높게 세웠는데, 여인네들이 가마를 타고 마당 안까지 들어올 수 있도록 지은 것이라고 한다. 대문 오른편으로는 하인들이 기거하는 문간채가 있다. 문간채 앞으로는 거북 모양의 큼직한 바위가 놓여 있어서 사랑채가 바로 보이지 않는다. 하인들이 마음 놓고 쉴 수 있도록 배려한 조경이라고 한다. 가옥 중심에 있는 사랑채는 정교하게 쌓인 높은 축대 위에 자리해 고고하고 위엄 있는 인상을 준다. 사랑채 뒤편 안채에는 양편으로 다락이 있다. 다락방의 창을 열면 사랑채 지붕 너머로 집 앞 아미산의 눈썹 같은 능선이 내다보인다. 건물 주위를 둘러싸고 높낮이를 알맞게 조절해 완성한 배수시설에서는 몽심재의 세심한 건축기법을 엿볼 수 있다. 몽심재를 방문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곳에서 묵어갈 수 있다. 사랑채와 안채 등의 일곱 칸을 묵어가는 방문객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지리산 자락 구룡폭포·회덕마을도 가볼 만 이번에는 남원 동남쪽 지리산 자락으로 들어간다. 내비게이션에 ‘구룡폭포 주차장’을 찍고 달리다 보면 어느새 경사가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길이 계속된다. 40분가량 달려 도착한 주차장에서 구룡폭포까지는 400여m. 가까운 거리지만 산길을 타고 가는 게 쉽지만은 않다. 산을 오르다 작고 가파른 계단 400여개를 내려가야 폭포를 만날 수 있다. 4월 초파일에 아홉 마리의 용이 내려와 놀다가 승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구룡폭포는 굽이쳐 흘러내리는 물살을 보면 그 전설에 왠지 수긍이 간다. 작지만 아찔한 출렁다리에서 폭포를 감상한 뒤 비폭동, 지주대, 유선대, 육모정으로 이어지는 절경을 둘러볼 수도 있다.구룡폭포 주자창에서 멀지 않은 곳에 회덕마을이라는 동네가 있다. 지리산 둘레길 상에 놓인 이 마을에는 아는 사람만 아는 오래된 샛집이 있다. 평범해 보이는 시골마을인 회덕마을 경로당 뒤편에 자리잡은 덕치리 초가는 1985년 박창규씨가 지은 것이 시초로, 6·25전쟁 때 불타 없어졌다가 1951년 재건했다. 억새풀로 지붕을 이은 샛집은 조선시대 일반가옥 형식을 따르고 있어 지리산 골짜기 마을의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을 느낄 수 있다.●신라 흥덕왕 때 창건한 천년고찰 실상사 마지막 목적지는 경남 함양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천년고찰 실상사다. 회덕마을에서 40여분 차를 달리면 닿는다. 신라 흥덕왕 때인 828년 증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실상사는 신라 구산선문 중 처음으로 문을 열었을 만큼 유서 깊다. 이곳에는 국보 제10호 백장암 3층석탑과 보물 제33호 수철화상능가보월탑 등 1000년 넘는 세월을 견딘 유물이 가득하다. 막상 절 문턱을 넘으면 글로 쓰인 거창한 역사 대신 고즈넉한 분위기에 사로잡힌다. 지리산 자락 봉우리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는 한가운데 너른 평지에 자리잡아 부처님 품에 감싸인 듯한 안온한 느낌이 든다. 절 오른편에 조성된 크지 않은 대숲에서는 마음을 툭 내려놓고 바람이 움직이는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글 사진 남원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여행수첩 전북투어패스를 이용하면 남원을 포함한 전북 여행을 더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즐길 수 있다. 광한루원, 춘향테마파크, 지리산허브밸리 등 남원의 유료 관광지를 여러 곳 방문할 계획이라면 전북투어패스를 사용하는 것이 저렴하다. 관광형 카드 기준 1일권 8300원, 2일권 1만 3900원, 3일권 1만 9900원 등이 있다. 전북 14개 시·군의 60여개 주요 관광시설에 해당 기간동안 제한 없이 입장할 수 있다. 교통형 카드 이용 시 시내버스, 공영주차장 무료 이용 등 혜택이 추가된다. 관광안내소 등 40개 판매점과 온라인에서 구매할 수 있다.
  • ‘해치’ 정일우, 한승현 충격 죽음에 핏줄 선 오열 “형님”

    ‘해치’ 정일우, 한승현 충격 죽음에 핏줄 선 오열 “형님”

    SBS ‘해치’ 정일우가 ‘경종’ 한승현의 충격적인 죽음에 처절하게 오열했다. 60분 내내 브라운관 압도한 미친 몰입도와 함께 혼란스러운 조정에서 ‘왕세제’ 정일우가 앞으로 펼칠 활약에 관심이 치솟는다. 지난 8일(월)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해치’ 33회, 34회에서는 경종(한승현 분)이 끝내 밀풍군(정문성 분)의 계략에 의해 죽음을 맞아 충격을 안겼다. 특히 이 과정에서 왕세제 이금(정일우 분)이 자신에게 향할 비난과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내의원의 탕제를 물리는 등 경종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이금은 내의원에서 혈흔이 발견됐다는 사실을 확인, 그 배후에 밀풍군이 있을 수 있다는 의혹을 품었다. 이에 이금은 갑작스레 병환이 악화된 경종에게 내의원 탕약을 들이지 말아야 한다고 강력 주장했다. 하지만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은 없는 상황. 이금은 박문수(권율 분)에게 밀풍군과 위병주(한상진 분), 도지광(한지상 분)의 재조사를 지시했고, 내의원을 긴급 수색했다. 하지만 이는 이금에게 엄청난 부담이 되는 사안이었고 그를 향한 신료들의 반발은 거셌다. 탕약에 독이 사용됐을지 모른다는 의혹은 있으나, 이가 밀풍군의 소행이라는 점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경종의 병세 악화를 눈 앞에서 지켜만 봐야 하는 것. 이금은 내의원을 대신해 도성의 명의를 불러냈지만 그 또한 병의 원인조차 찾지 못하는 절체절명 위기가 이어졌다. 특히 조태구(손병호 분)는 “주상전하의 병을 치료할 의지는 있으신 것이옵니까”라며 이금을 능멸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고, 중전(송지인 분) 또한 “세제의 처분을 납득할 수 없다”며 분노했다. 이에 민진헌(이경영 분)은 현실적인 충언을 건넸다. 그는 “장차 군왕이 되고자 한다면, 불구덩이는 피해야 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명백한 진실도 외면할 수 있는 것. 때론 그것이 진짜 책임일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라며 일침했다. 하지만 이금은 “책임을 피해야 한다면. 그런 것이 군왕이라면. 난 차라리 그 길을 가지 않을 것이다”라며 이 또한 자신이 감내해야 할 길임을 되새기는 등 왕세제으로서 소신을 드러냈다. 사방에서 이금을 향해 날을 세울 때 인원왕후(남기애 분)가 힘을 보탰다. 특히 인원왕후는 궁녀 수업을 받고 있던 여지(고아라 분)를 궐 안으로 불러 대비전의 나인으로 삼는 등 향후 이뤄질 이금과 여지의 재회에 관심을 높였다. 그런 가운데 이 모든 것이 밀풍군의 계략이었음이 실제로 드러나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밀풍군은 채윤영(배정화 분)을 앞세워 내의원 수의녀에게 해독제가 없는 극독을 탕재에 넣게 한 것. 더욱이 밀풍군은 이금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경종을 살리기 위해 탕약을 물릴 것이라는 것을 예측했고, 이로 인해 경종이 죽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탕약을 금한 이금의 잘못된 선택이 될 것이라는 악마 같은 계략을 그려냈다. 특히 채윤영이 해당 수의녀를 독살하며 증험을 입증할 결정적인 증인까지 사라지게 됐다. 무엇보다 끝내 경종이 죽음을 맞이해 충격을 안겼다. 경종은 “그만 애쓰거라. 너는 부디 만백성을 위한 좋은 왕이 되어다오. 나는 될 수 없었던 내가 꿈꿨던 그런 왕이”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 이후 경종을 붙잡고 처절하게 오열하는 이금의 모습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특히 스스로 살을 도려내 경종에게 자신의 피를 수혈하는 이금의 모습이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 과정에서 정일우는 얼굴의 핏줄이 곤두설 만큼 고통에 찬 절규로 보는 이들까지 눈물을 쏟게 만들었다. 더욱이 “형님”이라는 짧은 울부짖음 속에서 경종을 향한 아우의 깊은 우애가 드러나 마음을 아리게 했다. 그런 가운데 남인인 이인좌(고주원 분)가 첫 등장해 이목을 끌었다. 특히 이인좌가 유배지에 있는 위병주를 찾아가 또 다시 파란이 일어날 것이 예고돼 긴장감을 높였다. 그런가 하면 조태구와 소론이 대비전에 몰려가 “저하께선 이 나라의 왕이 될 자격이 없으십니다”라며 집단 반발해 위기 속 이금이 앞으로 보여줄 행보에 관심을 높였다. SBS 월화드라마 ‘해치’는 오늘(9일) 밤 10시에 35회, 36회가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1년 이상 임신이 안돼요”…결혼여성 12% 난임 경험

    “1년 이상 임신이 안돼요”…결혼여성 12% 난임 경험

    배우자가 있는 여성이 피임을 하지 않은 상태로 정상적인 부부 관계를 맺어도 1년 이상 임신이 되지 않은 경우가 12%를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난임이 40%에 달했다. 31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공개한 ‘2018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 실태조사’에 따르면 15∼49세의 유배우자 여성 1만 324명 가운데 12.1%가 피임을 하지 않았는데 1년 이상 임신이 되지 않는 상태를 겪었다는 난임 경험을 토로했다. 난임은 결혼이 늦어질수록 높아졌다. 초혼연령별 난임 경험비율을 보면 24세 이하 9%, 25∼29세 11.2%, 30∼34세 16.3%, 35세 이상 25.3% 등으로 결혼을 늦게 할수록 난임을 경험하는 비율이 높았다. 난임을 경험한 유배우자 여성이 실제 병원(한방병원 제외)에서 난임 진단을 받은 비율은 52.1%로 나타났다. 난임 진단을 받은 유배우자 여성을 대상으로 난임 원인을 물어보니 여성이 원인이 경우가 45.1%, 여성과 남성 모두 원인불명이 39.7%, 남편이 원인인 경우가 9.1%, 여성과 남성이 모두 원인인 경우가 6.1% 등으로 나왔다. 난임 부부 5쌍 중 2쌍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난임을 겪은 셈이다. 난임 진단을 받은 유배우자 여성의 70.9%가 난임 치료를 받았다. 난임 시술을 받으면서 힘들었던 점으로 ‘정신적 고통과 고립감’(36.1%), ‘신체적 어려움’(25.7%), ‘경제적 부담’(25.6%) 순으로 나왔다. 그러나 난임 진단을 받은 유배우자 여성 중에서 6.2%만이 난임으로 인한 정서적·심리적 문제에 대한 상담이나 진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원에 따르면 2010년 이후 한 해 동안 병원을 찾는 난임 부부는 20만명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난임 부부를 대상으로 2017년 10월부터 난임 시술에 건강보험을 적용해 비용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올해부터 난임 부부의 월 소득이 512만원 이하면 시술비를 지원받을 수 있고 일부 본인부담금도 1회당 최대 50만원까지 보조해준다. 올 하반기에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사실혼 부부도 난임 시술을 받을 때 건강보험 혜택을 받도록 할 예정이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사바하’ 독립운동가 사진→사이비 교주로 합성 “명백한 실수”[공식]

    ‘사바하’ 독립운동가 사진→사이비 교주로 합성 “명백한 실수”[공식]

    영화 ‘사바하’ 측이 독립운동가이자 대종교 교조인 홍암 나철(1863~1916)의 합성 사진을 영화에 쓴 것으로 확인됐다. 사바하 측은 “명백한 실수”라며 사과했다. 29일 ‘사바하’ 제작사는 합성 사진 논란에 대해 “제작사의 명백한 실수다. 인지하지 못했다. 죄송하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상영관과 VOD 서비스 등에서 해당 사진을 다른 사진으로 빠른 시일 내에 교체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사바하’에서는 사이비 교주 김제석(정동환 분)의 사진을 내보내면서 홍암 나철의 사진에 정동환의 얼굴을 합성했다. 홍함 나철은 독립운동을 했으며 1900년에 독립운동의 정신적 토대를 제공한 대종교를 창시했다. 1904년에는 유신회를 결성해 구국운동을 펼쳤으며 1907년에는 이완용 등 을사오적을 살해하려다 발각돼 유배형을 받았다가 고종의 특사로 사면됐다. 한편 지난달 20일 개봉한 ‘사바하’는 신흥 종교 집단을 쫓던 박목사(이정재 분)가 의문의 인물과 사건들을 마주하게 되며 시작되는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1463㎞… 남해 둘레길 ‘남파랑길’ 열린다

    1463㎞… 남해 둘레길 ‘남파랑길’ 열린다

    부산 오륙도~전남 해남 땅끝마을 연결5코스 90구간 조성…내년 하반기 개통부산 오륙도에서 전남 해남 땅끝마을까지 이어지는 ‘남파랑길’ 청사진(지도)이 공개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우리나라 둘레를 잇는 걷기여행길 ‘코리아둘레길’의 남해안 노선인 남파랑길 사업 계획을 25일 발표했다. 남파랑길은 전체 길이 1463㎞로 국내 최장을 자랑한다. 구간별 특징을 고려해 5가지 주제 길을 정했다. 영화와 한류의 도시, 대도시와 자연의 매력을 함께 보유한 ‘한류길’(부산∼경남 창원), 한려해상국립공원 해안 경관을 담은 ‘한려길’(고성, 통영, 거제, 사천, 남해), 섬진강의 꽃 경관을 볼 수 있는 ‘섬진강 꽃길’(하동∼광양), 다도해의 생태환경을 부각시킨 ‘남도 낭만길’(전남 여수, 순천, 보성, 고흥), 남도 유배문화와 다양한 순례 자원을 체험할 수 있는 ‘남도순례길’(장흥, 강진, 완도, 해남) 등이다. 5가지 주제 길은 해안길과 숲길, 마을길, 도심길 등 모두 90개 구간으로 나뉜다. 구간은 대중교통 접근성을 고려, 여행자가 하루 정도 이동하기 적당하게 정했다. 구간별 길이는 10~30㎞다. 문체부는 구간 가운데 인문·지리·문학·역사·종교 등 주제별 걷기여행길을 발굴하고 이를 활용한 관광상품도 추진한다. 또 ‘나만의 인생사진 명소 걷기’, ‘길 위에서 만나는 내 인생의 인물’, ‘남도 식도락 여행’ 등 관광콘텐츠도 발굴한다. 남파랑길 안내 체계를 구축하고 주제별 걷기여행 등을 시범 운영하고 2020년 하반기 이를 정식 개통할 예정이다. 남파랑길은 2016년 개통한 ‘해파랑길’에 이은 두 번째 코리아둘레길 노선이다. 남해의 지역성 ‘남쪽’과 ‘쪽빛 바다’의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황혼이혼 급증 “혼인기간 20년 이상 33% 차지”

    황혼이혼 급증 “혼인기간 20년 이상 33% 차지”

    황혼이혼 급증…인구고령화 등 영향지난해 황혼 이혼이 급증하면서 이혼 건수가 4년 만에 반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혼 부부 절반 이상은 동거기간 20년 이상 부부나 4년 이하 신혼부부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통계청이 20일 발표한 ‘2018년 혼인·이혼 통계’를 보면 작년 이혼은 10만 8700건으로 전년보다 2.5%(2700건) 증가했다. 이혼은 2015∼2017년 3년 연속 감소했다가 지난해 반등했다. 통계청 김진 인구동향과장은 “최근 결혼 자체가 줄면서 이혼이 감소하는 추세지만 작년 동거 기간 20년 이상 이혼이 9.7%, 특히 30년 이상은 17.3% 증가하는 등 황혼 이혼이 크게 늘면서 이혼 건수를 끌어 올렸다”고 설명했다. 김 과장은 “황혼 이혼이 늘어나는 이유는 인구 구조가 고령화됐고 기대 수명이 늘어나는 것이 원인”이라며 “유교주의적 사고에 따라 자녀를 독립시킨 후로 이혼을 미루는 영향도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인구 1000명당 이혼 건수를 뜻하는 조이혼율은 2.1건으로 1997년(2.0건)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꾸준히 증가하던 조이혼율은 2003년 3.4건을 정점으로 감소로 전환, 2015년부터 2.1건을 유지하고 있다. 유배우(결혼한 사람) 인구 1000명당 이혼 건수를 뜻하는 유배우 이혼율은 4.5건으로 전년보다 0.1건 증가했다. 이혼한 부부의 평균 혼인 지속기간은 15.6년으로 전년보다 0.6년, 2008년보다는 2.8년 늘었다. 혼인 지속기간이 길어진 이유는 역시 황혼 이혼이 많기 때문이다. 작년 혼인 지속기간 20년 이상 이혼은 전체 이혼 중 33.4%를 차지해 가장 비중이 높았다. 혼인 지속기간 30년 이상 이혼도 전체 이혼의 12.5%를 차지했다. ‘신혼 이혼’이라 할 수 있는 4년 이하 이혼도 21.4%를 차지했다. 20년 이상과 4년 이하 이혼이 전체 이혼의 54.8%를 차지한 셈이다. 미성년 자녀가 있는 이혼 부부 비중은 45.4%로 지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작년 평균 이혼연령은 남성 48.3세, 여성 44.8세다. 각각 전년보다 0.7세씩 올랐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양진건 유배의 뒤안길] 바람처럼 자유롭게

    [양진건 유배의 뒤안길] 바람처럼 자유롭게

    전설의 유배지 탈출기, 영화 ‘빠삐용’(Papillon)이 다시 만들어져 개봉됐다. 스티브 매퀸과 더스틴 호프먼이 열연하던 영화 장면들이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 있어서 나는 새로 만들어진 영화는 일부러 보지 않았다. 1973년에 제작된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그 유명한 탈출 장면과 ‘바람처럼 자유롭게’(Free as the wind)라는 주제곡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빠삐용´은 앙리 샤르에르라는 실제 인물의 자전적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샤르에르는 1930년 살인 사건에 연루돼 누명을 쓰고 프랑스령 기아나의 ‘악마의 섬’(Devil’s Island)에 유배된다. 13년간 그는 아홉 번에 걸친 치열한 시도 끝에 마침내 그 섬을 탈출한다. ‘악명 높은 세계 10대 유배지’ 가운데 하나인 ‘악마의 섬’은 1854년 나폴레옹 3세가 유배지로 지정한 이래 1940년대까지 8만여명의 죄수가 수감됐고, 사망률이 워낙 높아 사형수들의 목을 자르는 ‘건조한 기요틴’이라 불릴 정도였다. 유배지 탈출의 예는 비단 ‘빠삐용’만이 아니다. 패배한 나폴레옹은 1814년 지중해의 작은 섬 엘바로 유배된다. 그러나 ‘제비꽃이 피면 돌아오겠다’던 약속처럼 10개월 후 그는 탈출해 파리로 돌아온다. 유배지에서도 황제의 복장을 벗지 않고 노심초사하던 그는 승전국들이 영토 배분 문제로 탁상공론을 벌이는 틈을 타서 탈출했던 것이다. 소비에트 연방의 최고 권력자였던 스탈린은 여덟 번 체포돼 일곱 번 시베리아로 유배됐지만 여섯 번이나 탈출을 했던 기이한 경력자다. 미하일 바쿠닌은 시베리아 유배지를 탈출해 육로로 북태평양 연안까지 가서 이곳에서 일본으로 간 뒤 일본에서 미국으로 갔다가 미국에서 서유럽으로 건너가 제네바에서 무정부주의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유배지 탈출 시도는 무궁무진하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물러나게 된다. 인목대비를 폐위시키고 영창대군을 살해한 폐모살제(廢母殺弟)의 부도덕과 명나라를 배반하고 후금과 우호관계를 맺었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이로써 광해군과 폐비 유씨, 폐세자 이지와 폐빈 박씨는 강화도로 유배된다. 이때 폐세자 이지는 땅굴을 파고 탈출을 시도한다. 그런데 땅굴을 파서 밖으로 나가기는 했지만 곧 발각돼 인조의 명에 따라 자진을 하게 된다. 한편 동정을 살피던 폐빈 박씨도 남편이 체포되는 것을 보고 역시 자진을 한다. 아들 부부를 잃은 충격으로 폐비 유씨 또한 세상을 하직하자 광해군은 제주도로 옮겨지고 4년 후 죽는다. 왜 그들은 탈출하려 했을까? 그러나 탈출은 쉽지 않다. 체포가 항시 뒤따르기 때문이다. 소련의 비밀경찰들은 ‘체포학’이라는 이론을 정립할 만큼 치밀했다. 소련의 민낯을 파헤친 솔제니친의 소설 ‘수용소 군도(群島)’의 제1장은 바로 체포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체포! 이것은 당신 전 생애의 파멸을 뜻한다”고 했다. 그렇다. 파멸하고 싶지 않기에 우리는 탈출을 감행한다. 우리는 현재 신자유주의라는 투기적 욕망과 이기적 경쟁 체제 안에 갇혀 살고 있다. 이 아비규환 속에서 과연 탈출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애초 탈출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유배된 채 이것이 삶이라며 자위하고 때로 강변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삶이 과연 정상인가? 정상처럼 보이는 이상한 정상은 아닌가? 그 끝은 혹시 파멸이 아닌가? 그렇다면 탈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악마의 섬을 탈출했던 빠삐용처럼 투기적 욕망과 이기적 경쟁이라는 악마의 체제를 탈출할 수는 없는가? 나는 유배인인가 탈주자인가? 대체 나는 누구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 오로지 국가·민생 위하여… 18년 유배생활서 ‘실사구시’ 꽃피우다

    오로지 국가·민생 위하여… 18년 유배생활서 ‘실사구시’ 꽃피우다

    다산은 유배된 후 할 일이 없어 고금을 연구하고 민생 문제와 국가의 대계에 유념하여 토론하고 저술하였다. 그는 근본적인 것을 규명하여 실제 사용할 수 있는 학문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저술은 모두 후세의 법이 되었던 것이다. -황현, ‘매천야록’ 권1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조선조 후기 실학을 집대성하고, 민과 국가가 처한 위기를 타개하고자 개혁 사상을 내세운 실학자다. 그가 남긴 저술과 제시한 개혁안이 당대는 물론 후대에도 새로운 차원에서 기억되고 호출되고 있는 것은 어째서일까. 이는 그가 남긴 학문적 성취가 현재까지 남아 현재로 이월되었기 때문 아니겠는가. 그의 학술적 역량과 개혁적 사유는 ‘여유당전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매천이 다산의 저술을 두고 현실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전범으로 주목한 것은 다산의 실사구시 정신을 주목한 것일 터이다.#시대를 아파하고 민을 노래한 거인 다산은 실학자이기도 하지만, 그가 남긴 시문은 여느 시인과 달리 현실 문제를 소재로 포착하고 있어 진한 울림을 준다. 더욱이 다산의 남시문은 그의 학술적 성취와 안팎을 이룰 정도로 조화를 이룬다.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요, 시대를 슬퍼하고 세속을 개탄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며, 높은 덕을 찬미하고 나쁜 행실을 풍자하여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한 것이 아니면 시가 아니다. -‘다산시문집’ 권21, ‘아들 연아(淵兒)에게 보냄’ 다산은 일찍이 “나는 조선사람. 조선시를 즐겨 지으리라”라고 해 ‘조선시 선언’을 주장하고, 한편으로는 한시 특유의 음풍농월과 달리 민의 삶을 포착하여 민을 위한 비가(悲歌)로 표출한 바 있다. 나라와 시대를 걱정하고 권선과 징악을 풍자하는 시만이 진실한 시라고 주장한 다산의 사유 속에는 항상 민과 나라가 자리잡고 있었다. 다산은 다른 글에서 “백성들에게 혜택을 주려는 마음이 없는 자는 시를 지을 수 없다”고 단언할 정도로 매우 단호한 문학인식을 보여 줬다. 그 문학적 단호함은 ‘애절양’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군적을 만들어 군포(軍布)를 거두는 폐단을 고치지 않는다면 백성들은 모두 죽을 것’이라고 확언하면서 ‘애절양’을 인용한 바 있다. ‘애절양’은 조선조 후기 백성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군포 착취로 농민이 스스로 자신의 남근을 자른다는 비참한 내용을 담은 한시다. 다산은 ‘경세유표’ 앞머리에서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야 말 것”이라고 발언하고 있거니와, 이는 남근을 스스로 자르는 비참한 현실을 개혁하려는 의지를 여실히 보여 주는 것이자 당대 현실의 정확한 진단이다.#좌절을 딛고 고뇌 속에 꽃핀 창조 다산은 유배 생활에서 숱한 좌절을 겪지만, 그 상황에 굴하지 않고 학단을 만들어 제자를 기르는 한편 그들의 학문적 역량을 빌려 저술활동을 하고 개인적 좌절도 이겨 내었다. 그는 유배 기간 내내 학문적 고뇌 속에 창조적 예봉을 마다하지 않았다. ‘경세유표’를 비롯해 ‘목민심서’와 ‘흠흠심서’ 등 500여권의 방대한 저술은 대부분 유배 시기에 구상하거나 저술했다. 학술적 두 축인 경세학과 경학의 성취가 모두 이 시기에 이루어졌음은 물론이다. 다산은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창조적 시간으로 활용해 학술적 역량을 꽃피운 것이다. 유배를 마친 이후에도 다산은 저술을 보완하고 수정을 거듭하며 자신이 구상한 사회개혁과 새로운 국가건설의 대안을 녹여 내었다. 하지만 자신의 학술적 성취가 유명무실해지는 것을 항상 두려워했다. 내 죽은 뒤에 아무리 정결한 희생과 풍성한 안주를 두고 제사를 지낸다 하여도, 내가 진정 흠향하고 기뻐하는 것은 내 책 한 편을 읽고 내 책 한 장을 베껴 주는 일보다는 못할 것이니, 너희는 그 점을 기억해 두어라. -‘다산시문집’ 권21, ‘두 자식에게 보여 주는 훈계’ 유배지에서 학술 교류가 없던 상황이다 보니 자신의 성취를 외면하지 말 것을 자식에게 당부하지만, 언젠가 자신의 저술을 알아줄 사람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이는 민을 위하고 국가를 혁신하는 대안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산의 저술은 민과 국가를 자양분으로 사고한 학술적 꽃이다. 무엇보다 다산 스스로 유배지에서 넉넉한 민의 품성을 재발견하고, 이를 기반으로 국가를 개혁하려 한 역사적 전망을 지녔기 때문이다. 다산이 시문에서 ‘민’을 중심에 놓고 노래한 것이나, 사서삼경과 같은 경전을 재해석한 저술과 ‘경세유표’와 같은 경세서에서 국가를 중심에 놓고 혁신적 안을 마련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다산은 ‘자찬묘지명’에서 ‘낡고 오랜 우리 조선을 새롭게 혁신’(新我之舊邦)할 것을 주장했다. ‘경세유표’ 머리글에서는 “지금 곧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야 말 것이다”라는 발언을 거리낌 없이 했다. #난세에 호출되는 ‘여유당전서’ 다산의 저술은 한국학의 거점이자 19세기 학술의 뛰어난 성과다. 그의 저술은 이후 역사 공간에서 비상한 주목을 받는다. 과거사가 아닌 현재진행의 역사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호출된다. 고종은 부강정책에 예의주시하여 경장을 서둘렀다. 그러나 많은 신하 중에서 누구 하나 의지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을유년과 병술년 사이에 ‘여유당집’을 올리라고 하였다. -‘매천야록’ 권1 고종이 부국강병을 위해 다산의 저술을 기억한 것은 새로운 국가체제의 구상에 필요한 대안을 다산의 경세서에서 찾으려 한 것임은 물론이다. 시대의 호출에 다산의 저술이 부활한 것이다. 다산의 혁신적 사유와 개혁적 여러 안들은 갑오농민전쟁 시기에도 다시 주목을 받는다. 1930년대 실학 연구의 선구자인 최익한은 ‘강진읍지’를 인용하면서 전봉준, 김개남 등의 갑오농민군 지도자들이 ‘경세유표’를 활용하였음을 밝힌 바 있다. 역사적 사실 여부를 떠나 우리는 정약용의 저술이 역사적 변혁기에 재발견되고 호출하고 있는 점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다산의 저술은 일제강점기에 이월돼 조선학 운동을 추동하는 기제로 작동하기도 한다. 1930년대 중반 정인보, 안재홍, 홍명희 등은 ‘신조선사’라는 출판사에서 ‘여유당전서’와 ‘담헌서’ 등을 출간하면서 조선학 운동을 전개했다. 이는 근대적 학술이 식민지 조선에서 본격적으로 전개할 수 있도록 토대를 구축하기 위한 것으로, 식민지학에 대응한 자국학의 정립에 방점이 있다. 자국학의 구체적 학술적 성과에 ‘여유당전서’를 그 중심에 둔 것은 지금의 한국학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처럼 다산의 저술은 시공을 넘어 수시로 기억된다. 진재교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교수 ■ 여유당전서는 다산의 저술 정리한 문집 필사·목판본 등으로 간행 다산의 저술은 일찍이 필사본과 목판본, 연활자본 등으로 유통됐다. 다산의 자제와 제자들은 문집 간행을 위해 원고본을 만들었지만 500권 100책에 이르는 저술은 조선조가 끝날 때까지도 간행하지 못했다. 그의 저술 중에서 실용적인 문헌은 19세기까지 필사본으로 유통됐지만, 공식 출판은 19세기말 목판본인 ‘이담속찬’이 유일하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와 일부 학술단체의 일본인들이 다산의 저술을 필사하고 연활자로 간행한 바 있고 이후 장지연, 최남선, 정인보 등 지식인들은 다산의 저술을 재발견해 일부 저술을 연활자로 간행했다. 다산 서거 100주년을 전후로 1934~38년 신조선사에서 154권 76책 ‘여유당전서’를 간행했다. 이 ‘여유당전서’는 정약용 스스로 구상한 체재와 다르게 7집 체재로 돼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는 일찍이 ‘목민심서’와 ‘경세유표’를 번역했고 1982~94년 ‘여유당전서’ 중에서 시문집 22권 10책을 국역 간행했다.
  • [2030 세대] ‘테헤란의 혁명’은 여전히 진행 중/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4학년

    [2030 세대] ‘테헤란의 혁명’은 여전히 진행 중/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4학년

    1979년 2월 1일 테헤란, 수염을 늘어뜨린 강렬한 눈빛의 노인이 비행기에서 내렸다. 그는 63세에 이란을 떠나 14년 만의 망명을 끝내고 고국에 돌아왔다. 그는 이후 권력투쟁을 거쳐 신생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최고지도자가 된다. 반면 14년 전에 그를 유배시킨 이란의 전제군주, 모하메드 레자 팔레비는 망명길에 올랐다. 이 일련의 사건들은 ‘이란 이슬람 혁명’으로 불린다. 세계에 끼친 파급효과에 비해 이란 혁명의 의의는 여전히 흐릿하다. 처음 듣는 인명은 차치하고, 혁명의 주요 이념인 시아파 이슬람주의, 이후 등장한 이슬람 신정체제까지 이질적이다. 거기에 여성들이 청바지를 입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혁명 전의 대학가 풍경과 칙칙한 검은 베일을 뒤집어쓴 혁명 후 사진들을 비교하자면 이것은 전근대 세력이 주도한 거대한 퇴보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도한 일반화를 무릅쓰고 다른 문화권 특유의 고유명사들을 잠깐 지우면, 1979년의 이란에서는 더 익숙한 이야기를 역시 관찰할 수 있다. 1973년 석유파동으로 갑작스럽게 큰돈을 만지게 된 팔레비 왕조는 열정적 근대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테헤란을 중심으로 한 도시 경제는 세계와 급속도로 연결됐고, 자연스레 서구화된 문화를 향유하는 중산층도 출현했다. 문제는 그 같은 발전 와중에 전혀 수혜를 받지 못한, 아니 오히려 절망에 빠지게 된 인구집단이 광범위하게 남았다는 것이다. 토지개혁이 실패한 이란에서 농업은 파탄 났고, 빈곤한 농민들은 도시의 슬럼가로 계속 들어왔다. 도시의 중소상공인들도 자신들의 문화적 전통을 잠식하는 서구화에 위협을 느꼈다. 여기에 성직자들이 합세하면서 혁명의 불씨는 타올랐다. 즉 이란 혁명은 불균등 발전하에서 벌어진 문화적 균열로 발생한 분노가 만들어낸 혁명이었다. 40년 전 이란에서 벌어진 일들에 서구 사회는 큰 교훈을 얻지 못했다. 이란 혁명이 제3세계 어딘가에서 일어난 괴상한 사건이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란 혁명이 서구 사회가 30여년 뒤에 겪게 될 미래를 보여 줬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평가할 능력이 없었던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불균등 발전과 문화적 균열로 촉발된 분노, 그리고 그 분노를 정치적 에너지로 동원해내는 카리스마적 지도자로 요약할 수 있는 ‘테헤란의 길’은 40년간 꾸준히 세력을 확대해 왔다. 우리는 그 같은 정치적 운동을 ‘포퓰리즘’이라고 부른다. 2019년 현재, 서구의 정치적 갈등이 어떤 축으로 이루어지는지 살펴보자. 한쪽에는 세계경제에 편입돼 점점 더 부유해지고 문화적으로도 세련된 대도시 중산층이 있다. 반대쪽에는 세계경제에서는 배제되고 문화적으로 멸시당하는 ‘자기 땅의 이방인들’이 있다. 이 두 집단의 갈등이 현재 미국과 서유럽에서 일어나는 격렬한 대립의 요체다. 호메이니가 이란에 도착하고 4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테헤란의 혁명’은 진행 중이지 않을까.
  • ‘해치’ 정일우 고아라 권율 박훈, 조선 어벤져스 등극 ‘기대감 UP’

    ‘해치’ 정일우 고아라 권율 박훈, 조선 어벤져스 등극 ‘기대감 UP’

    ‘해치’ 정일우, 고아라, 권율, 박훈의 ‘최상위 능력치’가 공개돼 시선을 강탈한다. 매회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영상과 파격 전개로 새로운 형태의 정통 사극을 선보이고 있는 SBS 월화드라마 ‘해치’(극본 김이영/ 연출 이용석/ 제작 김종학 프로덕션) 7-8회에서는 정일우(연잉군 이금 역)가 부친 김갑수(숙종 역), 아끼던 이복동생 노영학(연령군 역), 뜻을 함께 했던 사헌부 감찰 이필모(한정석 역)를 동시에 잃어 절망에 빠졌다. 처절하게 절규했던 정일우의 각성이 조선에 어떤 파급력을 가져올지 관심을 증폭시키며 향후 전개에 궁금증이 치솟은 상황. 그런 가운데 정일우가 사헌부 다모 고아라(여지 역), 의기만큼은 조선 상위 1% 고시생 권율(박문수 역), 저잣거리 왈패 박훈(달문 역)과 함께 언더독 반란을 꾀할 것을 예고해 관심이 모아진다. 특히 왕권까지 집어삼키려는 노론과 ‘노론의 실세’ 이경영(민진헌 역)에 대적할 ‘최정예 조선 어벤져스’ 결성이 언제 이뤄질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공개된 스틸에는 앞으로의 공조를 예고하는 정일우-고아라-권율-박훈의 각양각색 모습이 담겼다. 캐릭터의 개성만큼 다채로운 이들의 최상위 능력치를 미리 짚어봤다. ‘조선 어벤져스’의 주축 연잉군 이금(정일우 분)은 천재적인 지략과 희생정신에서 독보적이다. 특히 부친 숙종(김갑수 분)에게 자신의 부정 대술과 밀풍군 이탄(정문성 분)의 악행을 밝히며 스스로 유배를 자청하는 등 편전의 ‘태풍의 핵’으로 떠올랐다. 또한 사헌부 감찰 한정석(이필모 분)에게 탄의 계시록에 얽힌 정보를 흘리며 밀풍군의 살인죄 폭로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그의 뛰어난 리더십이 돋보였다. 특히 연잉군은 초홍(박지연 분)에서 인원왕후(남기애 분)에 이르기까지, 귀천을 가리지 않는 황금 인맥까지 소유하고 있어 그의 향후 활약을 더욱 기대하게 한다. 여지(고아라 분)는 모든 분야에서 남다른 능력치를 자랑한다. 특히 자신을 “각종 위장술과 침투는 기본이고 청국어와 왜어까지 하는 저를 두고 상남자, 인간병기라고 합니다”라고 소개할 만큼 능숙한 외국어 구사력, 성인 남성 여럿을 맨손으로 제압하는 무술 실력까지 갖춰 ‘조선 걸크러시’를 유발한다. 또한 기생, 평민으로 변복하는 거침없는 위장술, 부정 대술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야산을 샅샅이 살피며 홀로 탐문하고 사헌부까지 잠입하는 등 넘사벽 패기와 행동력을 사용한다. ‘조선 최고의 의기’ 박문수(권율 분)가 세 번째 멤버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흔들리지 않는 소신을 지닌 정의로운 오지라퍼로 말보다 발이 앞서는 정의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 특히 입만 열면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명언 제조기로 연잉군-여지의 조력가를 자청해 볼거리를 제공한다. 허당스럽지만 영특한 두뇌, 남다른 소신으로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박문수의 의욕은 그를 돋보이게 하는 매력이자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극하는 깨알 포인트로 손꼽힌다. 마지막으로 민심 몰이로 눈도장을 찍은 거리의 왕이자 저잣거리 왈패 달문(박훈 분)의 스킬이 눈에 띈다. 달문은 전천후 용병술을 바탕으로 한 민심잡기와 ‘노론의 실세’ 민진헌(이경영 분)에게 빅딜을 제안하며 그의 수족으로 잠입, 연잉군의 흉문을 저잣거리에 퍼트려 위기에 몰아넣는 실력을 선보였다. 숙종의 죽음과 함께 연잉군에게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달문의 정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데 그가 과연 제4의 멤버가 될 수 있을지 기대를 한껏 증폭시킨다. SBS 월화드라마 ‘해치’는 왕이 될 수 없는 문제적 왕자 연잉군 이금(정일우 분)이 사헌부 다모 여지(고아라 분), 열혈 고시생 박문수(권율 분)와 손잡고 왕이 되기 위해 노론의 수장 민진헌(이경영 분)에 맞서 대권을 쟁취하는 유쾌한 모험담, 통쾌한 성공 스토리. 오늘(25일) 밤 10시 9-10회가 방송된다. 사진 = SBS ‘해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양진건 유배의 뒤안길] 반쯤 필 때가 가장 좋은 때

    [양진건 유배의 뒤안길] 반쯤 필 때가 가장 좋은 때

    요즘 제주도에서는 조기를 닮은 부세가 많이 잡힌다. 참조기, 수조기, 백조기, 흑조기 등도 잡히지만, 부세가 가장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원래 부세는 조기를 닮아 ‘짝퉁 조기’라고 푸대접을 받았던 물고기다. 그런데 황금색을 띠고 있기 때문에 고가의 선물로 중국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색깔 하나로 어생역전을 한 셈이다. 우리는 살이 부드러운 참조기를 좋아하지만, 황금빛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부세를 높은 가격에 사들이고 있다. 1㎏짜리 부세 한 마리가 70만원 정도인데, 위판장에 내놓기가 무섭게 팔린다. 중국의 설인 춘제까지 판매량이 계속해서 늘어날 거라고 한다. 알다가도 모를 게 물고기 신세다. 연평도 어부들은 조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하여 임경업 장군을 ‘조기의 신’으로 모신다. 그렇지 않아도 신이 많은 제주도에선 ‘부세의 신’을 따로 모셔야 할 판이다. 제주 유배 중에 송시열이 ‘임경업 장군전’을 썼지만 누군가 ‘부세의 신’에 대해 써야 할지도 모른다. 조기의 시대는 가고 부세의 시대가 올 줄 그 누가 알았을까만 세상사란 원래 그런 것이다. 요즘은 명태도 난리다. 우리나라 명태 자원은 놀라울 만큼 풍부했다. 그런데 자원이 고갈되면서 정부는 급기야 명태 포획 금지령을 공표했다. 이제 냉동하지 않은 국내산 명태로 끓인 생태탕을 잘못 먹었다간 범법자가 될 판이다. 함경도 명천에 사는 어부 태(太)서방이 처음 잡았다고 하여 명태라고 이름 붙여졌다지만, 이제 태서방도 잡아서는 안 될 물고기가 됐다. 명천은 철종 때 ‘북천가’(北遷歌)를 남긴 김진형이 유배 살던 곳이다. 그는 이곳에서 기생 매향이, 군산월과 유람을 다녔다. 이때 그녀들이 끓인 생태탕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해배가 되자 기뻐하기보다 ‘즐거운 일이 다하면 슬픈 일이 닥쳐온다’고 ‘흥진비래’(興盡悲來)라 노래했다. 더 이상 기생들과 유람을 다니지 못하게 돼 아쉬움이 컸던 모양이다. 그 아쉬움에 생태탕도 한몫했을지 모른다. 흥진비래란 세상사라는 것이 돌고 돈다는 의미다. 부세가 조기보다 귀한 신세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 흔한 명태가 희귀어가 될 줄도 몰랐다. 그러나 이 또한 영원하지 않을 것이고, 처지가 뒤바뀔 때가 또 올 것이다. 달도 차면 기울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지 않은가. 물극즉반(物極則反)이라고 이 세상의 모든 사물과 현상은 극에 이르면 반대로 반드시 되돌아가기 마련이다. 그러니 ‘극’(極)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다. 최근 ‘스카이 캐슬’이라는 드라마가 지위와 명예, 부를 대물림하기 위해 극만을 추구하는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면서 화제가 됐다. 그들은 족함을 모른 채 그치지 않고 극만을 추구했고, 결국 파멸을 했다. 정치적으로 극좌나 극우도 마찬가지다. 극단주의는 반드시 망하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침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장구할 수 있다”(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고 노자가 말했다. 성삼문은 동백꽃이 “반쯤 필 때가 가장 좋은 때”(半開是好時)라고 했다. 다 피면 지는 일만 남았거늘 만개(滿開)한 때 꽃 보는 것을 삼가고, 반개(半開)한 꽃을 좋아하는 지혜를 가지라는 뜻이다. 바로 족함과 그침을 아는 지혜다. 이런 지혜를 갖지 못하면 “피지 않았을 땐 조바심에 더디 피는 걸 염려하다가(未開躁躁常嫌遅), 한창 피고 나면 시들어 떨어지는 것을 애태우며 다시 걱정한다”(旣盛忡忡更怕衰)고 말한 것처럼 사는 내내 조바심과 염려뿐이고 애타도록 걱정뿐이다. 그렇게 살아야 하겠는가?
  • [열린세상] 청년실업 문제 해결이 곧 출산 대책이다/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

    [열린세상] 청년실업 문제 해결이 곧 출산 대책이다/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

    아직 최종적으로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2018년 합계출산율이 1.0명을 하회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2005년 노무현 정부가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제정하고, 대통령 소속으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설치해 2006년부터 2018년까지 최소 143조원의 예산이 투입됐건만 한국의 출산율은 반등할 줄 모르고 떨어지고 있다. 일단 이 대목에서 짚어 둘 것은 정부의 저출산 관련 대책이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간한 흥미로운 보고서 ‘저출산 대책의 효과성 평가’에 따르면 유배우 여성, 다시 말해 배우자가 있는 여성의 출산율은 꾸준히 상승하고 한다. 예를 들어 20대 후반의 유배우 여성 1000명당 출생수는 1991년 237명에서 2009년 273명으로 증가했다. 뿐만 아니라 같은 기간 30대 초반 유배우 여성 1000명당 출생수는 74에서 143으로, 30대 후반 유배우 여성 1000명당 출생수는 13에서 35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한다. 이 결과 유배우 여성의 출산율은 2002년 1.5명에서 2014년에는 2.2명까지 상승했다. 한마디로 신혼부부 주거 지원 및 난임 부부 지원 그리고 무상보육 및 교육 확대와 같은 다양한 지원 정책이 기혼 여성의 출산율을 크게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한국의 출산율은 하락했는가. 그 이유는 바로 유배우 여성의 비율 하락, 다른 말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비율이 급격히 증가한 데 기인한다. 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까지만 해도 전체 여성 중 배우자가 있는 사람의 비율은 62%를 넘었지만, 2014년에는 그 비율이 54%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다시 말해 2000년의 유배우 비율(62%)이 계속 유지됐다면 한국의 출산율은 2.0명 전후를 유지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결국 한국의 출산율 하락은 배우자가 있는 여성들의 출산 기피 때문이 아니라 결혼 자체가 줄어든 데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왜 여성의 결혼율이 줄어들었을까. 여성의 연령대별 경제활동 참가율 흐름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독일이나 일본 등 다른 선진국 20대나 40대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비슷했다. 대부분 70~80% 사이를 꾸준히 유지하지만, 한국은 전혀 다르다. 한국 여성들은 20대까지는 다른 선진국 여성과 비슷한 경제활동 참가율을 기록하지만, 30~40대에 급격히 낮아졌다가 이후 다시 70~80% 수준을 회복한다. 즉 한국에서는 30~40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하락하는 이른바 ‘M커브’ 현상이 나타난다. 사회생활의 전성기인 30~40대에 경제활동 참가율이 떨어지는 이유는 한국 여성이 출산·육아 문제로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부가 아무리 출산 장려 정책을 펼쳐도 출산·육아 과정에서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는 상황이 출현하면 생애 소득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직장을 그만둔 이후 재취업할 때에는 이전보다 더 낮은 소득의 일자리를 잡을 잡을 가능성이 커 결국은 결혼·출산으로 한국 여성의 생애 소득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한 만에 하나 이혼하는 경우에는 소득 감소의 위험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공포에 맞서 한국 여성들은 두 가지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첫 번째 대응은 다소 학업 기간이 길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좋은 직장을 찾는 것이다. 즉 출산·양육 이후 다시 직장으로 복귀할 수 있는 직장, 예를 들어 공사나 공무원이 되는 시험에 몰두하는 것이다. 여성들의 두 번째 대응은 아예 결혼을 회피하는 것이다. 최근 이뤄진 보건사회연구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미혼 여성 중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은 단 6.0%에 그쳤다. 결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응답한 비율도 28.8%에 불과했다. 이상과 같은 현실에서 출산율을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물론 유배우 여성의 육아와 출산 관련 지원 정책을 꾸준히 유지해 유배우 여성 출산율의 추가적인 상승을 유도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재정지출 확대 정책을 통해 2030세대의 취업난을 해소하는 한편 직원의 출산·육아를 적극 지원하는 이른바 ‘가족친화적’인 기업들에 세제 감면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효과적인 출산율 제고 대책이 될 수 있음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 청년실업 문제 해결이 곧 출산대책이다!

    청년실업 문제 해결이 곧 출산대책이다!

    아직 최종적으로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2018년 합계출산율이 1.0명을 하회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2005년 노무현 행정부가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제정하고, 대통령 소속으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설치해 2006년부터 2018년까지 최소 143조원의 예산이 투입되었건만 한국의 출산율은 반등할 줄 모르고 떨어지고 있다.일단 이 대목에서 짚어둘 것은 정부의 저출산관련 대책이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간한 흥미로운 보고서 ‘저출산 대책의 효과성 평� ?� 따르면, 유배우 여성. 다시 말해 배우자가 있는 여성의 출산율은 꾸준히 상승하고 한다. 예를 들어, 20대 후반의 유배우 여성 1000명당 출생 수는 1991년 237명에서 2009년 273명으로 증가하였다. 뿐만 아니라, 같은 기간 30대 초반 유배우 여성 1000명당 출생 수는 74에서 143으로 30대 후반 유배우 여성 1000명당 출생 수는 13에서 35로 3배 가까이 증가하였다고 한다. 이 결과 유배우 여성의 출산율은 2002년 1.5명에서 2014년에는 2.2명까지 상승했다. 한 마디로 말해, 신혼부부 주거지원 및 난임부부 지원 그리고 무상보육 및 교육 확대와 같은 다양한 지원정책이 기혼여성의 출산율을 크게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한국의 출산율은 하락했는가? 그 이유는 바로 유배우 여성의 비율 하락, 다른 말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비율이 급격히 증가한 데 기인한다. 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까지만 해도 전체 여성 중 배우자가 있는 사람의 비율은 62%를 넘었지만, 2014년에는 그 비율이 54%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다시 말해 2000년의 유배우 비율(62%)이 계속 유지되었다면, 한국의 출산율은 2.0명 전후를 유지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결국 한국의 출산율 하락은 배우자가 있는 여성들의 출산 기피 때문이 아니라, 결혼 자체가 줄어든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왜 여성의 결혼율이 줄어들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여성의 연령대별 경제활동 참가율 흐름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독일이나 일본 등 다른 선진국의 여성들은 20대나 40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비슷했다. 대부분 70~80% 사이를 꾸준히 유지하지만, 한국은 전혀 다르다. 한국 여성들은 20대까지는 다른 선진국 여성과 비슷한 경제활동참가율을 기록하지만 30~40대에 급격히 낮아졌다 이후 다시 70~80% 수준을 회복한다. 즉 한국은 30~40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하락하는 이른바 ‘M 커브’ 현상이 나타난다.사회생활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30~40대에 경제활동참가율이 떨어지는 이유는 한국 여성들이 출산·육아 문제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라에서 아무리 출산 장려 정책을 펼친다 해도, 출산과 육아 과정에서 정작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는 상황이 출현하면 생애 소득은 크게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직장을 그만 둔 이후 재취업할 때에는 이전보다 더 낮은 소득의 일자리를 잡을 잡을 가능성이 커, 결국은 결혼·출산으로 한국 여성의 생애 소득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한 만에 하나 이혼하는 경우에는 소득 감소의 위험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이런 공포에 맞서 한국 여성들은 크게 두 가지의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첫 번째 대응은 다소 학업 기간이 길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좋은 직장을 찾는 것이다. 즉 출산·양육 이후 다시 직장으로 복귀할 수 있는 직장, 예를 들어 공사나 공무원이 되는 시험에 몰두하는 것이다. 여성들의 두 번째 대응은 아예 결혼을 회피하는 것이다. 최근 이뤄진 보건사회연구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 미혼 여성 중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은 단 6.0%에 그쳤고 결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응답한 비율도 28.8%에 불과했다. 이상과 같은 현실에서 출산율을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물론 유배우 여성의 육아와 출산관련 지원 정책을 꾸준히 유지해, 유배우 여성의 출산율의 추가적인 상승을 유도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재정지출 확대 정책을 통해 2030세대의 취업난을 해소시키는 한편, 직원의 출산·육아를 적극 지원하는 이른바 ‘가족친화적’인 기업들에게 세제 감면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효과적인 출산율 제고 대책이 될 수 있음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글: 홍춘욱(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
  • [임효진 기자의 입덕일지] 로코 장인 김지석, 이쯤 되면 tvN의 아들

    [임효진 기자의 입덕일지] 로코 장인 김지석, 이쯤 되면 tvN의 아들

    ‘톱스타 유백이’가 지난 25일 많은 시청자들의 아쉬움 속에 종영했습니다. 톱스타 유백이와 섬처녀 깡순이와의 귀여운 로맨스는 물론 위트 있는 대사, 서로를 생각하는 섬 사람들의 순수한 마음 등이 드라마의 흥행 요소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김지석은 ‘톱스타 유백이’에서 유백 역을 완벽 소화하며 ‘로코 장인’ 수식어를 얻었습니다. 이에 그동안 그가 출연했던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속 김지석의 모습에 대해 짚어봤습니다. ▶ tvN ‘로맨스가 필요해 2012’ (2012)‘로맨스가 필요해 2012’(극본 정현정, 연출 이정효 장영우)는 33살 동갑내기 세 여자의 사랑과 결혼, 일과 우정 등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였습니다. 김지석은 극 중 주열매(정유미 분)만을 사랑하는 순정남 ‘신지훈’ 역을 맡았습니다. 당시 김지석은 서툴고 순수한 직진남 캐릭터를 완벽 소화하며 많은 여성들의 이상형으로 꼽히기도 했죠. 또한 배우 정유미와 약 20cm 키 차이는 김지석의 듬직한 면모를 돋보이게 하며 만화 같은 투샷을 만들었습니다. ▶ tvN ‘또 오해영’ (2016)‘또 오해영’(극본 박해영, 연출 송현욱)에 출연한 김지석은 배우 예지원과 찰떡 호흡을 선보이며 로맨틱 코미디 커플의 진수를 보여줬습니다. 친구의 누나, 동생의 친구로 알고 지내던 이진상(김지석 분)과 박수경(예지원 분)은 예상치 못하게 임신을 하게 됩니다. 평소 많은 여자들을 만나며 자유로운 연애를 했던 진상의 마지막 연애는 수경이 된 거죠. 당시 김지석은 철없는 이진상 역을 완벽 소화했습니다. 예지원과 불어로 말다툼을 하는 신, 아크로바틱에 가까운 주사신 등에서 돋보였습니다. 특히 김지석, 예지원의 격렬했던(?) 엘리베이터 키스신은 많은 화제를 모았습니다. ▶ tvN ‘톱스타 유백이’ (2018)‘톱스타 유백이’(극본 이소정 이시은, 연출 유학찬)는 대형 사고를 쳐 외딴섬에 유배 간 톱스타 ‘유백’이 슬로 라이프의 섬 여즉도 처녀 ‘깡순’을 만나 벌어지는 문명충돌 로맨스입니다. 김지석은 극 중 자기애 가득한 나르시시즘의 소유자 ‘유백’ 역을 맡았습니다. 그는 까칠했던 모습에서 깡순이(전소민 분)만을 사랑하는 남자로 변하는 모습을 잘 보여줬습니다. 깡순이만 보면 꿀 떨어지는 눈빛, 마돌이(이상엽 분)와 친한 전소민의 모습을 질투하는 모습 등은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김지석은 이 외에도 드라마 ‘개인의 취향’, ‘너에게로 와서 별이 되었다’, ‘엔젤아이즈’, ‘20세기 소년소녀’ 등을 통해 로맨스 장르에 자신의 입지를 차곡차곡 쌓아 왔습니다. 그의 차기작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 인터뷰: ‘톱스타 유백이’ 김지석 “몸매 비결? 탄수화물 완전히 끊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붕당정치에 빠진 집권세력의 권력욕…‘사실’과 ‘사초’를 테러하다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붕당정치에 빠진 집권세력의 권력욕…‘사실’과 ‘사초’를 테러하다

    진실은 언제 어디서나 불편하다. 불편하기에 언제 어디서나 수난을 당한다. 조선은 세계사에서 유례없을 정도로 방대한 왕조 실록을 남겼다. 실록 편찬의 기준도 엄정했다. 그 기준을 지키려다 조선 초 김종직은 부관참시를 당했고, 사관 김일손 등은 처형됐다.그렇다고 실록이 사실만을 기록하고 평가가 불편부당했던 것은 아니었다. 양대 왜란과 호란 이후 붕당정치로 빠져들면서 집권 세력의 입맛에 맞게 사실은 편집되고 평가는 왜곡됐다. 선조, 인조, 숙종, 경종의 실록이 잇따라 수정, 개수, 보정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원본을 남겨 ‘지우개를 쓰지 않은 역사’로 칭송하는 이도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얼마나 테러를 당했는지 웅변할 따름이다. 국가의 정사인 실록이 그러했으니 민간의 기록에 대한 폭력이 어떠했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경기 광주시 낙생면 백헌 이경석의 묘로 들어가는 좁은 계곡 초입에는 두 개의 신도비가 있다. 하나는 멀쩡하지만 다른 하나는 비문을 한 글자도 볼 수 없다(‘백비’). 백비는 조선 영조 30년에 세워졌다가 누군가에 의해 비문이 인멸된 채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을 200여년 만에 발굴해 다시 세운 것이고, 앞엣것은 1979년에 새로 세운 신도비다. 백헌의 손자 이하성은 1703년(숙종 29년) 결국 서계 박세당에게 할아버지의 신도비에 새길 글을 청했다. 당대의 문장가였지만 같은 당파(소론)여서 ‘손이 안으로 굽었다’는 지적을 우려해 서계만은 피하려 했다. 하지만 당시 노론의 세상에서 그의 청을 들어줄 사람이 달리 없었다.서계는 비문을 짓고 이 글을 자신의 문집인 ‘사변록’에 실었다. 삽시간에 소문이 돌았다. 홍계적 등 노론 유생 180여명이 벌떼처럼 일어나 연명으로 숙종에게 상소문을 올렸다. “문자를 거두어 물과 불속에 던져 버리고, 성인을 헐뜯고 현인을 업신여긴 죄로 다스리어 선비의 취향을 바르게 하소서.” 사문난적으로 단죄하라는 것이다. 숙종은 외면할 수 없었다. “박세당이 작성한 이경석 신도문은 물론 박세당의 문집 ‘사변록’까지 모두 없애라.” 신도비 조성 작업은 진행될 수 없었다. ‘맹자’를 인용한 신도문은 과연 서두부터 심상치 않았다. “노성인을 업신여기지 마라.” “상서롭지 못한 보복은 어진 사람을 가리는 법이다.” 마무리는 이러했다. “올빼미는 봉황과 성질이 달라 성내고 꾸짖는다. 불선자가 미워해도 군자가 무엇을 상관하랴.” ‘송자’라 하여 공자·주자를 잇는 성인으로 떠받들던 송시열이었다. 그런 송시열을 ‘올빼미’에 빗댔으니 노론 유생들이 좌시할 리 없었다. ‘올빼미’ 비유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경석은 송시열보다 12살 연장으로 김상헌 문하에서 수학했으니 골수 서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같은 서인이지만 인조반정 공신들의 전횡을 막기 위해 ‘산림’(청서파)을 적극적으로 중앙 정계에 천거했다. 송시열은 1633년 최명길의 천거에 의해 경릉 참봉이 됐고, 1649년 효종 즉위 직후 이경석의 추천으로 장령이 됐다. 송시열은 그런 이경석을 존경해 ‘베옷에 짚신을 신고’ 그의 문하를 왕래했다. 그러나 이경석에게 통혼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뒤부터 앙심을 품기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현종 2년(1661년) 이경석이 남인인 고산 윤선도의 해배를 주장하면서 등을 돌리고 극언을 일삼았다. 이경석이 일흔네 살 때 현종이 궤장을 하사하면서 잔치를 베풀었다. 뜻깊은 자리였던지라 여러 사람이 전례에 따라 축하의 글을 남겼다. 병을 핑계로 참례하지 않았던 송시열도 마지못해 이런 글을 보냈다. “하늘의 도움을 받아 오래 살고 건강하니(壽而康), …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수이강’(壽而康)에는 지독한 경멸이 숨겨져 있었다. 중국 송나라 흠종이 금나라에 붙잡혔을 때 항복 문서를 써 준 손적을 두고 주자가 ‘절의를 버린 대가로 건강하게 오래 살았다(壽而康)’고 비꼰 것을 이경석에게 적용한 것이다. 송시열은 현종에게 올린 상소문에서 그 뜻을 시시콜콜 알렸다. “옛날 손적이 오래 살고 강녕하기는 했지만, 그가 의리를 알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 도리어 손적 같은 사람에게 비난을 받았다면, 여러 사람이 얼마나 낮춰 보고 비웃었겠습니까. 지금 신이 당한 경우가 불행하게도 그와 같습니다.” 세론은 송시열에 비판적이었다. ‘양송’이라 하여 당시 서인의 논의를 이끌고, 그와 동문수학을 했던 동춘당 송준길마저 한탄했다. 송시열은 분노했다. “동춘까지도 ‘놀랍고 한탄스럽다’고 말하니 다른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 사람(이경석)은 대체로 백성을 등치는 토호(향원)의 마음가짐으로 청의 세력을 끼는 것을 일생을 행세하는 방법으로 삼았다. … 개도 그 똥을 먹지 않을 것이다.”(‘판서 송규렴에게 보낸 편지’에서) 서인이 다시 쓴 ‘현종개수실록’마저 그런 송시열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인조의 명에 따라 삼전도 비문을 지은 것을 두고 그렇게 송시열이 언급했는데, 말이 너무 박절했으므로 논자들이 병통으로 여겼다.”병자호란이 끝나자 청은 대청황제공덕비(삼전도비)를 세우고, 비문도 조선에서 쓰도록 했다. 예조판서, 대제학 등 조정의 책임 있는 자들은 모두 발을 뺐다. 이경전은 병을 핑계로 칩거했고, 조희일은 거칠게 작성해 퇴짜를 맞았으며, 장유는 일부러 고사를 잘못 인용해 제외됐다. 남은 건 이경석이었다. 왕위가 위태로운 인조는 애가 탔다. “사직의 존망이 여기에 달려 있으니 부디 문자에 구애받지 말라.” 부제학으로 나이로나 직위로나 이경석이 맡을 일은 아니었다. 남한산성 도피 시절 외교 문서 책임자인 예조판서 김상헌이 강화 문서 작성을 거부해 대신 작성해야 했던 최명길의 신세나 마찬가지였다. 이경석은 그날의 일을 ‘수치를 등에 지고 백길 어천강에 뛰어들고 싶다’며 글을 배운 것을 후회했다. 비문 작성 후 거듭 사직을 요청했지만, 믿을 사람이 없는 인조는 그를 놓아 주지 않았다. 이후 용렬한 자들이 뒤에서 삼전도비문 운운하며 비웃고 손가락질을 했지만, 자신이 감당할 몫이라고 여겨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봉황과 올빼미 비유에는 이런 사정이 있었다. 신도문 사달이 나고 62년이 흐른 뒤(영조 30년, 1765년)에야 비석에 글이 새겨졌다. 글씨는 당시 완도의 신지도에 유배돼 있었던 원교 이광사가 썼다. 이광사는 이경석의 형 이경직의 고손으로, 동국진체의 완성자였다. 신도비는 그러나 세워지자마자 수난을 당했다. 이번에도 노론 유생들이 비석을 쓰러트리고, 비면을 모조리 깎아 한 글자도 남기지 않았고, 분이 안 풀렸는지 비석을 아예 땅속에 파묻어 버렸다. 그로부터 200여년 뒤 빛을 본 비석은 전신이 상처다. 글자 하나하나 연마석으로 갈고, 정으로 쪼았으니 성할 리 없었다. 마오쩌뚱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러나 총구에서 나온 권력은 짧다. 다른 총구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조선의 권력자들은 알고 있었다. 권력은 총구가 아니라 정당성에서 나오고, 그것은 사실(史實)에서 나온다는 것을. 조선 후기 노론이 필사적으로 사실을 장악하려 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들은 조선 후기 150여년, 나아가 일제 병탄기와 해방 후에도 권세를 계속 누렸다. 민주공화정에서 사초 기록자는 언론이다. 독재 치하에서 필경사 구실이나 하던 족벌 언론은 민주화 이후 스스로 권력이 되기 위해 집요하게 사실에 폭력을 가했다. 요즘엔 사기꾼, 절도범, 부패 공직자, 노름꾼, 앵벌이, 정신질환 의심자까지 동원했다. 최근 1년 사이 UAE 특사 의혹, 드루킹 사건, 이재명 지사 ‘불륜’ 의혹,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과 블랙리스트 의혹, 손혜원 투기와 ‘김혜교’ 의혹 등이 그런 방식으로 제작됐다. 택당 이식은 선조수정실록을 편찬하면서 권력자들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나라가 있어도 역사가 없으면 나라가 아니요, 역사가 있어도 공정치 못하면 역사가 아니다.” 권력에 도취한 자들에게 들릴 리 만무다. 사이비 기자까지 동원해 사실과 인격을 테러한 ‘홍가혜 사건’의 진실이 드러났어도 해당 매체의 더러운 폭력은 끊이지 않았다. 논설고문 kbc@seoul.co.kr
  • ‘톱스타 유백이’ 김지석♥전소민, 꽉 막힌 해피엔딩 “설렘 솟구친 케미”

    ‘톱스타 유백이’ 김지석♥전소민, 꽉 막힌 해피엔딩 “설렘 솟구친 케미”

    tvN ‘톱스타 유백이’가 종영했다. 지난 25일 방송된 11회에서는 김지석(유백 역)-전소민(오강순 역)이 결혼과 함께 꽉 막힌 해피엔딩을 그렸다. 각자의 자리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톱스타 김지석과 대학생 전소민의 모습이 짜릿한 웃음을 선사했다. 또한 여즉도 신사의 진면모를 보여준 이상엽(최마돌 역)은 중학교 후배 남보라(노희원 역)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고 김정민(강민 역)-이아현(아서라 역)은 여즉도 세레나데 커플로 공개 연애에 돌입했다. 허진(장흥댁 역)-성병숙(군산댁 역)은 본처-후처 관계를 넘어 피보다 더 진한 자매애를 발산하는 등 행복한 모습을 안방극장에 전하며 막을 내렸다. ‘톱스타 유백이’는 김지석-전소민-이상엽-허정민-조희봉-예수정-이한위-김현-정은표-정이랑-허진-성병숙-김정민-이아현-유주원-김민석 등 배우들의 빛나는 열연과 개성 넘치는 캐릭터, 단짠을 오가는 캐릭터 서사, 유학찬 감독의 위트 가득한 연출력의 환상적인 조화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으며 종영까지 화제성을 이어갔다. 이에 ‘톱스타 유백이’가 남긴 것을 정리해봤다. #1. 김지석의 진화+新로코퀸 전소민! 연기력+케미스트리! 김지석♥전소민의 열연과 케미가 ‘톱스타 유백이’의 화제성을 이끌었다. 1회부터 강렬한 임팩트로 시청자 마음에 자동 저장된 두 사람은 회를 거듭할수록 폭발하는 순백케미로 시청자들의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또 오해영’, ‘로맨스가필요해2012’ 등 로코 장르에서 유독 빛난 김지석의 진가는 ‘톱스타 유백이’를 만나 폭발, 다시 한 번 로코왕자의 위엄을 뽐냈다. 극 초반 눈빛만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왕싸가지였던 그는 전소민과 사랑에 빠진 후 눈빛, 제스처, 목소리 등 순간순간 변하는 카멜레온 매력으로 안방 여심을 함락시켰다. 전소민은 新로코퀸의 탄생을 알렸다. 필요할 땐 박치기로 멧돼지도 잡을 만큼 망가짐을 불사한 연기로 마성의 깡순이 매력을 배가시킨 데 이어 시청자들을 무장해제시켰다. 극 초반 유백은 물론 돌문어도 맨손으로 잡는 오강순의 모습을 보여주던 전소민은 이후 유백에게 시도 때도 없이 뽀뽀하고 싶다 폭탄 발언하고, 자신의 평생 꿈인 대학 입시를 위해 결혼까지 미루는 등 매사에 능동적인 현대 여성으로 등극했다. 특히 김지석♥전소민은 붙기만 해도 설렘지수가 솟구치는 순백케미로 안방극장을 설렘으로 물들였다. 이에 ‘프레임 고백’, ‘접수키스’, ‘다락방 21단키스’, ‘멱살키스’ 같은 명장면이 쏟아져 나오는 등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2. 이상엽-허정민 등 살아 숨쉬는 조연 캐릭터 플레이 빛났다! 김지석-전소민와 함께 ‘톱스타 유백이’ 화제성에 불을 지핀 것은 이상엽-허정민-조희봉-예수정-이한위-김현-정은표-정이랑-허진-성병숙-김정민-이아현-유주원-김민석 등 자신의 캐릭터를 200% 이상 소화하며 극을 더욱 풍성하고 유쾌하게 만든 배우들의 활약 덕분이었다. 이상엽은 사랑하는 전소민을 ‘사랑의 라이벌’ 김지석에게 보내주는 일편단심으로 여즉도를 대표하는 신사마돌의 매력을 폭발시켰다. 특히 멋짐과 웃김의 완벽한 합으로 안방 여심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김지석과 극강 브로맨스를 보여준 허정민은 순백커플을 이어준 사랑의 오작교이자 이들의 앞날을 꽃길로 인도해준 1등 공신으로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강순 할머니 예수정은 여즉도에서 제일 가는 맛깔스러운 손맛과 하나뿐인 손녀 전소민을 향한 애틋한 사랑으로 시청자들을 먹먹하게 만들었고, 이한위-김현은 티격태격 친구 같은 부부애를 보여주면서 아들 이상엽을 향한 각별한 사랑을 보여주며 안방극장에 유쾌한 웃음을 선사했다. 허진-성병숙은 돈독한 본처-후처 관계라는 지금껏 본 적 없는 시너지를 발산했다. 항상 티격태격하는 듯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친자매 케미를 폭발시키며 시청자들의 배꼽을 잡았다. 정은표-정이랑은 다시는 못 볼 세기의 잉꼬부부 면모를 보여줬고 ‘로미오와 줄리엣’ 김정민-이아현은 귀엽고 코믹한 활약으로 극에 유쾌함을 더했다. 여기에 조희봉-유주원-김민석까지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이 모여 하모니를 이뤄냈다. #3. 7080 음악-맛깔 음식-힐링 여즉도 삼위일체 완벽 합! ‘톱스타 유백이’는 7080 음악과 맛깔스러운 음식, 아름다운 여즉도 풍경을 안방극장에 소환하는 완벽한 삼위일체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과거 명곡들을 드라마 적재적소에 배치하며 캐릭터들의 감정 변화를 고스란히 드러내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특히 2회 ‘최희섭의 세월이 가면’, 4회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 5회 ‘김창완의 너의 의미’ 등 배경음악이 순백커플의 로맨스사를 더욱 풍부하게 하는데 일조하며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쥐락펴락했다. 또한 ‘문명단절 외딴섬’ 여즉도가 배경인만큼 싱싱한 해산물을 재료로 한 음식 퍼레이드가 시청자들의 배꼽 알람을 울리게 했고 ‘위꼴드라마’, ‘금요미식회’라 불리며 오감만족 드라마의 위엄을 과시했다. 뿐만 아니라 실제 전라남도 완도 근처에 위치한 대모도-청산도에서 촬영, 극 중 그림처럼 아름답고 평화로운 섬 여즉도 풍경을 안방극장에 소환했다. #4. “주 2회 원츄” 주1회 편성에도 높은 화제성! 불금시리즈 성과! ‘톱스타 유백이’가 보여준 새로운 도전과 과감한 시도가 돋보였다. 주1회 편성에도 불구, 순백커플의 MSG 없는 힐링 로맨스와 촘촘한 관계, 힐링을 절로 불러 일으키는 여즉도 사람들의 일상, 아름다운 자연풍경 등을 완벽히 담아 시청자들의 호기심과 공감을 유발하는 등 화제성을 이끌어내는 ‘불금 킬링콘텐츠’로 드라마 시장의 저변을 넓혔다. 또한 ‘톱스타 유백이’는 어떤 요일보다 시청률 경쟁이 치열한 불금 11시, tvN이 야심차게 기획한 불금시리즈에 가장 최적화된 드라마로 새로운 장르의 콘텐츠를 탄생시켰다. 이처럼 배우들의 열연-제작진의 열정이 만나 가슴 떨리는 설렘과 의미 있는 순간을 선사한 tvN ‘톱스타 유백이’는 대형 사고를 쳐 외딴섬에 유배 간 톱스타 ‘유백’이 슬로 라이프의 섬 여즉도 처녀 ‘깡순’을 만나 벌어지는 문명충돌 로맨스로 지난 25일 방송된 11회를 끝으로 종영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양진건의 유배의 뒤안길] 지극한 관심

    [양진건의 유배의 뒤안길] 지극한 관심

    새해 첫날과 설날을 대표하는 음식이 떡국이다. 그런데 이 떡국 한 그릇조차 먹기 힘든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위해 떡국 나눔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경종 때 추자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이진유는 새해를 맞아 ‘바닷물에 절인 배추와 채소를 넣어 끓인 떡국’밖에 못 먹는 자신의 신세를 통탄했다. 재미있는 것은 세상은 변해 바닷물에 절인 배추야말로 미네랄이 풍부한 최고의 김치감이 됐고, 채소로 끓인 떡국은 건강식으로 변모했다는 사실이다. 떡국 한 그릇을 먹기 힘든 사람들도 이처럼 세상이 바뀌어 어느 새해인가부터는 웃으며 다른 힘든 사람들에게 떡국을 나누어 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스 신화에 이카로스 이야기가 있다. 크레타섬에 갇혀 있던 다이달로스는 탈출을 위해 아들 이카로스에게 깃털에 밀랍을 발라 날개를 만들어 준다. 그는 “너무 높이 날면 태양열에 밀랍이 녹고, 너무 낮게 날면 바다 물기에 날개가 무거워지니 항상 중간으로만 날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이카로스는 하늘로 더 높게 날고자 하다가 태양열에 밀랍이 녹아 바다에 추락해 결국 죽고 만다. 흔히 이카로스 신화를 ‘자유를 향한 비상(飛上)’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카로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을 그린 네덜란드의 화가 P 브뤼겔과 그 그림을 보고 시를 쓴 영국 시인 W H 오든은 “브뤼겔의 이카로스를 보라. 모든 것이 고통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지 않은가”라고 하면서 오히려 이웃의 비극과 고통을 철저히 외면하는 세태를 고발한다. 누가 추락해 고통을 받든 세상 사람은 아무 관심이 없음을 지적한 것이다. 이 그림과 비슷한 꿈을 꾼 여자가 있다. 제주도와 함경도 종성에서 20여년 동안 유배 생활을 했던 유희춘은 부인 송덕봉에게 ‘몸이 공중으로 날아오르다가 너무 높이 오르면 끝내는 추락할 것이기에 날기를 그만두었다’는 꿈 이야기를 듣는다. 송덕봉은 권력의 정점에서 남편의 몰락을 걱정했던 것이다. 나아가 누가 쓰러지든, 누가 20년의 유배 생활로 고통을 받든 세상은 아무 관심이 없음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웃의 비극과 고통을 철저히 외면하는 세태는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 최근에 청년 하청노동자 김용균이 비참하게 죽었다. “지극히 원통한 일을 당하여 하늘에 호소해도 응답이 없고, 땅에 호소해도 응답이 없다”(至?大痛 呼天不應 呼地不應)고 했던 정약용의 말을 증거하는 사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찌 이런 비참함과 원통함이 ‘사람 중심의 국가’를 내세우는 문재인 정부에서 생기는 것인지 모르겠다. 위험을 모두 이웃에게 미루고, 그들의 비극과 고통은 철저히 외면하는 것이 다름 아닌 ‘위험의 외주화’다. 이 때문에 발생하는 죽음들이 김용균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를 방지하려면 무엇보다 위험 앞에 선 사람들에 대한 생산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시위에 나선 사람들이 “내가 김용균이다”를 외치고 있다. 사람이 사람에 대한 관심은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죽하면 이 당연한 관심을 제발 기울여 달라고 호소할 정도이겠는가. “그대가 날마다 무량수경(無量壽經)을 읽으며 빌어 주는 성의에 힘입어 편안하게 살고 있으니 기쁘고 감사하오”라고 김정희는 제주에서 친구 초의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대의 관심 덕분에 위험한 유배지에서 잘 견디고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누군가를 살리는 관심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관심 덕분에 나 역시 살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힘든 사람들의 처지가 바뀌고, 원통함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들에 대해 세밀하고 지극한 관심이 필요하다.
  • ‘톱스타 유백이’ 김지석-전소민, ‘엇갈림 END’ 재회 포착 “애끊는 눈빛”

    ‘톱스타 유백이’ 김지석-전소민, ‘엇갈림 END’ 재회 포착 “애끊는 눈빛”

    tvN ‘톱스타 유백이’ 김지석-전소민이 보고만 있어도 애틋한 ‘눈빛 교환’을 선보인다. 김지석-전소민-이상엽의 방심할 수 없는 예측불허 삼각 러브라인으로 흥미를 고조시키고 있는 tvN ‘톱스타 유백이’(극본 이소정·이시은, 연출 유학찬, 제작 tvN) 측이 오늘(11일) 9회 방송에 앞서 김지석(유백 역)-전소민(오강순 역)의 마주보기 투샷을 공개해 눈길을 끈다. 김지석-전소민은 극 초반 김지석의 여즉도 유배와 함께 티격태격하면서도 달달한 커플의 모습을 보였던 바. 하지만 8회 방송에서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됐지만 대한민국 톱스타와 문명단절 외딴섬에 사는 섬처녀라는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이별을 택한 두 사람의 모습이 담겨 시청자들의 코 끝을 찡하게 만들었다. 그런 가운데 애틋한 눈빛으로 재회한 김지석-전소민의 모습이 포착돼 시선을 사로잡는다. 공개된 스틸 속 두 사람은 서로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김지석은 눈물을 글썽인 채 자신 앞에 서있는 전소민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고 전소민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듯 김지석을 바라보고 있어 애절함을 더한다. 과연 우여곡절 속에 헤어져야 했던 ‘순백커플’ 김지석-전소민이 드디어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무엇보다 김지석-전소민은 본 장면을 위해 리허설부터 감정 몰입에 애쓰는 모습으로 현장을 숨죽이게 했다. 이에 ‘액션’ 소리와 함께 그토록 찾아 헤매던 서로를 만나게 된 벅찬 감정을 완벽하게 표현해 극찬을 이끌었다는 후문이다. tvN ‘톱스타 유백이’는 대형 사고를 쳐 외딴섬에 유배 간 톱스타 ‘유백’이 슬로 라이프의 섬 여즉도 처녀 ‘깡순’을 만나 벌어지는 문명충돌 로맨스. 오늘(11일) 밤 11시 9회가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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