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유배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피소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CT 검사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667
  • 111만원 덜 받고 과장이면 승진 끝…난 여자, 월급쟁이

    111만원 덜 받고 과장이면 승진 끝…난 여자, 월급쟁이

    월평균임금 男 300만원 〉 女 189만원 기혼·저학력 여성일수록 격차 커져 여성 22% “최종 기대 직급 과장 이하” 매출 상위 50곳 중 40곳 女등기임원 ‘0’지난해 우리나라의 남녀 간 임금격차는 37.1%라는 분석이 나왔다. 남성이 100만원을 받을 때 여성은 62만 9000원을 받는다는 의미다. 남녀 간 성별 임금격차가 해마다 조금씩 줄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은 26일 오후 여의도 한국노총 회의실에서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를 분석한 결과 2018년 한국 남성은 한 달 평균 300만 9000원, 여성은 189만 3000원을 받는 등 성별 임금격차가 37.1%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우리의 성별 임금 격차가 2015년 41.8%, 2016년 40.6%, 2017년 38.7% 등으로 해마다 감소하고 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심각한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별 임금 격차는 기혼 여성과 상대적으로 낮은 교육수준을 가진 여성들에게서 더 크게 나타났다. 비혼의 성별 임금 격차는 13.4%였으나 유배우(기혼 및 동거)의 경우 41.5%에 달했다. 또 대학원 졸업자들의 성별 임금 격차는 27.9%였으나 고졸 이하의 경우 38.3%로 높았다. 기혼 여성과 저학력 여성들이 주로 영세업체나 숙박 및 음식점업, 판매직 등 저임금 일자리에 집중돼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한국노총이 금융노조·공공노련·금속노련 조합원 남녀 2443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한 결과 유리천장에 대한 인식에서도 남녀 차이가 컸다. 개인 성과 평가와 관련해 남성 10명 중 8명(84.6%)은 ‘성평등한 성과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고 답했지만, 여성은 3명(36.5%)만 ‘그렇다’고 답했다. 또 여성이 남성보다 진급에 대한 기대가 부정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일자리에서 최종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직급’에 대해 과장급 이하라고 답변한 남성은 8.1%였지만 여성은 22.8%였다. 반면 부장급 이상을 기대하는 비중은 남성이 68.5%였고, 여성은 42.7%에 그쳤다. 진급 누락과 진급 대상자 제외 경험에서도 여성은 57.9%로 남성(42.5%)보다 높았다. 진급 소요기간은 직급별로 2년 이상 느린 것으로 조사됐다. 매출액 기준 상위 50개 기업의 기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유리천장의 현실은 고스란히 나타났다. 50개의 기업 중 40개 기업에서 여성등기 임원이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고, 나머지 10개 기업은 1명씩 있었다. 여성 고용 비중이 남성보다 높았던 5곳 중 여성 등기임원이 있는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또 전체 미등기임원 수는 평균 74.8명이었으나 이 가운데 여성 미등기임원 수는 3.2명에 그쳤다. 장진희 한국노총 연구위원은 “동일 직급과 동일 근속연수별로 성별 임금이 세부적으로 공시돼야 임금 차이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여성에게 낮은 점수를 주는 남성 중심의 조직 문화가 성별 임금 격차를 더 벌릴 수 있다”고 말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단종의 유배지, 마차리 폐광촌, 복합예술공간, 벽화거리까지…뉴트로 영월로

    단종의 유배지, 마차리 폐광촌, 복합예술공간, 벽화거리까지…뉴트로 영월로

    강원도 영월이 변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고도와 오지 산골마을의 낡은 이미지가 싫어서였을까요. 레트로 감성에 젖을 만한 곳도 있고,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전위적인 풍경의 예술공간도 새로 조성됐습니다. 이런 새 요소들이 기왕에 갖고 있던 장릉, 청령포 등 영월의 옛 풍경과 어우러지며 매우 독특한 시각적 즐거움을 안겨 주고 있습니다. 완전히 새롭거나, 혹은 새롭게 변화한 영월의 아이콘들을 찾아가 봤습니다.●다양한 미술작품·박물관·공방이 어우러진 와이파크 먼저 ‘젊은달 영월 와이파크’부터. 흔히 와이파크라 불린다. ‘젊은달’은 영어의 영(young)과 한자 달 월(月)을 합친 조어다. 지역명 영월을 이렇게 비틀었다. 단어의 조합이 절묘하다. 와이파크는 복합예술공간이다. 다양한 미술 작품과 박물관, 공방 등이 함께 깃들어 있다. 저마다 다른 아름다움을 갖고 있지만 이들이 합쳐지며 하나의 거대한 대지미술공간을 이루고 있다. 와이파크가 조성된 곳은 주천(酒泉)면이다. 한글로 풀어 쓰면 ‘술샘’이다. 지난 2014년 세워진 술샘박물관의 내부를 뜯어내 ‘붉은 파빌리온’, ‘목성’ 등의 미술관, 대지미술공간 등과 연결하면서 와이파크가 됐다. 와이파크는 들어서는 길부터 예술이다. 최옥영 작가의 설치미술 ‘붉은대나무’가 객을 맞고 있다. 붉은 금속파이프를 연결한 작품으로, 관객들에게 붉은 대나무밭에 들어선 느낌을 준다. 안내판은 “주변의 짙은 초록과 대비되는 붉은색을 사용해 젊은달 와이파크의 넘치는 에너지와 우주를 표현했다”고 적고 있다. 접객 공간을 지나면 곧 소나무 장작더미로 만든 통로다. 최 작가의 설치미술 ‘목성’(木星)의 입구다.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소나무 장작이 겹겹이 쌓인 거대한 돔이 나온다. 장작더미 사이사이에선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꼭 수많은 별이 반짝이는 듯하다. 최 작가는 “강원도에 지천으로 널린 소나무를 엮어서 만든 작품”이라며 “어머니가 가진 원초적인 자궁의 힘, 사랑, 우주의 힘을 이 공간에 쏟아냈다”고 밝혔다. 곧이어 눈을 의심할 만큼 농염한 색의 공간이 펼쳐진다. 그레이스 박 작가의 ‘시간의 거울-사임당이 걷던 길’이다. 수많은 조화와 넝쿨, 와이어, 거울 등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작품명은 ‘사임당이 걷던 길’이지만 관객이 갖는 느낌은 회중시계를 든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로 들어온 앨리스가 된 듯하다. 세 개의 방을 지나면 붉고 거대한 철재 구조물이 관람객을 막아선다. 이 역시 최 작가의 공간대지미술 작품인 ‘붉은 파빌리온’이다. 천장에는 거미를 닮은 거대한 그물망이 매달려 있다. ‘스파이더 웹 플레이 스페이스’다. 날씨가 맑으면 그물망 안에서 놀 수도 있다. 그물망 아래엔 탁명열 작가의 ‘푸른 사슴’이 세워져 있다. 파랑과 빨강의 대비가 강렬하다. 이어 ‘실과 소금의 이야기展’, ‘바람의 길’, ‘맥주 뮤지엄’, 술샘박물관 등이 줄줄이 펼쳐진다.●단종의 한이 서린 곳… 유배지 청령포·안식에 든 장릉 영월은 조선의 6대 왕 단종의 한이 서린 곳이다. 읍내 청령포와 장릉은 꼭 들러야 할 명소다. 청령포는 단종의 유배지다. 뒤로는 육육봉 등 험준한 산이, 앞으로는 동강 물줄기가 가로막고 있다. 최근 청령포에 전기가 공급됐다. 종전에는 관음송(천연기념물 제349호) 등 문화재 훼손 우려 때문에 전기가 들어가지 않았다. 영월군은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는 대로 최소한의 야간 조명을 할 계획이다. 장릉은 단종이 영원한 안식에 든 곳이다. 2009년 다른 조선 왕릉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장릉 뒤의 보덕사는 단종의 명복을 비는 원당이다. 조금 더 올라가면 금몽암도 나온다. 단종이 한양에 있을 때 꿈에서 본 곳이라 해서 금몽암이다. 절집이 아닌 조선시대 여염집 같은 분위기가 매우 인상적이다.영월은 사진 관련 박물관이 많고 행사도 잦은 곳이다. 대표적인 행사가 동강국제사진제로, 동강사진상 수상자전, 국제공모전 등의 행사가 동강사진박물관 등에서 29일까지 펼쳐진다. 보도사진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보도사진가전’도 동강사진박물관에서 열린다. ‘꿈의 세상, 하늘과 바다’를 주제로 장남원, 김연수, 김진수, 박수현 등 전·현직 보도사진가 4인의 작품을 전시한다. 하늘과 땅, 강과 바다 등에 서식하는 야생동물을 담은 사진들이다. 단언컨대 이 전시만 봐도 영월 여행경비의 절반은 뽑는다.●대표 아이콘 별마로 천문대박물관·서부시장·탄광마을… 별마로 천문대는 영월을 대표하는 아이콘 중 하나다. 별(star)과 마루(정상), 로(고요할 로)의 합성어로 ‘별을 보는 고요한 정상’이라는 뜻이다. 천문대는 별을 보는 곳이지만, 천문대가 깃든 봉래산(해발 800m)은 풍경을 내려다보는 곳이다. 작은 시골마을 영월과 그 너머를 감싸고 있는 장쾌한 풍경이 한눈에 담긴다. 영월 여정에서 낮밤을 가리지 않고 꼭 방문하기를 권한다. 영월 서부시장 앞으로는 요리골목이 이어진다. 벽화거리로 유명했던 곳인데, 업그레이드가 안 돼 다소 쇠락한 모습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서부시장 종합상가 건물에 새로 그려진 벽화다. 영월이 주무대였던 영화 ‘라디오스타’(2006)의 두 주인공 최곤(박중훈 분)과 박민수(안성기 분)를 두 건물 전면에 그렸다. “언제나 나를 최고라고 불러준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최곤),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없어. 별은 다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거야”(박민수)라는 두 배우의 명대사가 가슴에 잔잔한 울림을 안겨 준다. 영월은 한때 강원도의 대표적인 탄광마을이었다. 마차리도 그중 하나다. 일제강점기에 광산이 개발되면서 ‘검은 진주’를 캐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제법 큰 마을이 형성됐다. 마을 이름은 갈 마(磨)에 갈 차(磋)를 쓴다. 절차탁마(切磋琢磨)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한다. 이름에서처럼 ‘갈고, 쪼개고, 파는’ 탄광이 들어선 것은 어쩌면 필연인지도 모르겠다. 한때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댔던 마을은 석탄산업이 하향길에 접어들면서 쇠락하기 시작했다. 검은 고요만 흐르던 폐광촌에 변화가 찾아온 것은 지난 2013년이다. 영월군이 도시재생사업 ‘마차리 폐광촌 프로젝트’를 통해 낡은 풍경들을 걷어내기 시작했고, 프랑스의 한 유명 패션브랜드에서 ‘절차탁마’의 과정을 거친 이가 귀향해 힘을 보태면서 이제는 작지만 제법 문화의 태가 나는 마을로 변모했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강원도탄광문화촌이 조성돼 있다. 1960년대 탄광 마을의 생활상들을 엿볼 수 있다. 글 사진 영월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33) →가는 길:영월의 면적은 서울의 두배 정도다. 차량 정체는 없지만 명소를 찾아 이동하는 데 시간이 꽤 많이 소요된다. 방문 코스를 잘 짜야 효율적으로 돌아볼 수 있다. 와이파크(644-9411)는 오전 10시~오후 6시 운영된다. 월요일은 휴관이다. 입장료는 1만 5000원이다. 별마로 천문대(372-8445)를 오르는 산길은 외길이다. 곳곳에 차량 교행 장소를 마련해 두긴 했지만 폭이 좁아 조심해서 올라야 한다. 영월 읍내 청록다방은 영화 ‘라디오스타’ 촬영지로 뜬 곳이다. 그저 다방 커피를 파는 곳이지만 쉬어가는 기분은 꽤 색다르다. →맛집:덕포리 성호식당은 다슬기 해장국으로 유명한 곳. 다슬기를 잔뜩 넣고 쓱쓱 비벼먹는 비빔밥도 좋다. 읍내 서부시장엔 올챙이국수, 메밀전병, 닭발과 닭강정 등을 맛볼 수 있는 집들이 많다.
  • 세 옛 절의 향기는 여전… 정릉시대 구가하던 문예촌은 흔적만

    세 옛 절의 향기는 여전… 정릉시대 구가하던 문예촌은 흔적만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1차 정릉천 따라’ 편이 추석 다음날인 지난 14일 성북구 정릉동 일대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석자 40여명은 추석 연휴 주말을 북한산의 맑은 계곡물이 쏟아지는 정릉천에서 보냈다. 참가자들은 이날 오전 10시 우이신설선 북한산보국문역에 집결, 경국사에 들어가 고찰의 향기를 즐겼다. 주말이라 문을 열지 않는 명원민속관(한규설 가옥)을 보지 못한 게 아쉬웠다. 정릉천변은 1950~1970년대 쟁쟁한 문인·예술가들이 ‘정릉시대’를 구가하며 살던 ‘문예촌’이었다. 화가 이중섭·박고석·한묵·박세원·김병기, 소설가 박경리·박화성·박연희·박계주·최정희·계용묵, 시인 고은·조영암·신경림, 조각가 최만린, 작곡가 금수현·김대현, 극작가 차범석, 시사만화가 김성환 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최서향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명절증후군에 시달린 주부 참가자들에게 피로를 씻어 주는 해설을 들려주기 위해 애썼다.정릉 박경리 가옥으로 가는 골목 어귀에는 ‘박경리 가옥’이라고 쓰인 표지판이 있고, 담벼락에 그려진 해바라기 그림과 책 표지가 길손을 안내한다. 그러나 ‘보국문로 29가길 11’이라는 도로명주소판이 붙은 집엔 서글프게도 ‘박경리’ 문패가 아니라 ‘서울 정릉 발도르프학교’라는 낯선 대안학교 간판이 걸려 있다.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지만 서울시가 예산 부족으로 매입하지 못한 까닭이다. 참가자들은 안타까움에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문 앞을 자꾸 서성거렸다. 정비석의 ‘자유부인’ 속 댄스장이자 고급 요정이었고, 한때 신혼여행지였던 옛 청수장을 개조해 사용하는 북한산탐방안내소에 들어가 과거의 영화를 떠올렸다. 북한산 정릉골은 1971년 북악터널이 개통된 뒤 2007년 내부순환도로 국민대입구 램프가 추가 개통되기 전까지도 백악산~보현봉 자락이 장벽처럼 막아서서 개발의 손길을 거부하는 청정의 숲이었다. 청수장으로 대표되는 정릉유원지는 추억과 안식의 공간이었다. 정릉천을 따라 청수장으로 가노라면 경국사가 나타난다. ‘경국사적기’에 따르면 1325년(고려 충숙왕 12년) 자장율사가 창건할 당시 청봉 아래에 있다고 해서 청암사라는 이름을 얻었다. 정릉의 옛 지명이 ‘살을 에듯 추운’ 사을한리이고, 정릉천이 청수라고 불리고, 청수장이 정릉유원지의 랜드마크가 된 배경에는 모두 청봉이라는 자연 지명의 힘이 작용했다. 청암사는 1546년(명종 1년) 문정왕후가 사찰을 중창하면서 ‘부처님의 가호로 국가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경국사라고 개명했다. 1669년(현종 10년)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정릉을 복원하면서 흥천사, 봉국사와 함께 능을 수호하는 원찰로 지정돼 부흥했다. 우연의 일치일까. 정릉이라는 능이 사라졌다가 260년 만에 부활한 것처럼 능을 지키는 3개 원찰의 이름이 모두 바뀌는 변고를 겪었다. 봉국사는 본래 약사여래를 모시는 약사사였지만 현종 때 ‘나라를 받든다’는 봉국사로 개명해 명맥을 이었다. 또 1409년 정릉이 정동을 떠나 정릉동으로 이장됐을 때 신흥암이라는 암자를 신흥사로 개창, 원찰로 삼았는데 1865년 흥선대원군이 흥천사라는 휘호를 내리면서 이름을 바꿨다.조계종 본산 흥천사는 신덕왕후가 처음 묻혔던 지금의 중구 정동 영국대사관 자리에 있던 170여칸 규모의 대가람이었다. 태조가 죽은 지 9년 만에 능이 지금의 정릉동으로 이장되고, 1510년 유생들이 이단을 없애 버린다며 불을 질러 폐사의 비운을 맞았다. 흥천사 종은 덕수궁에 남아 있다. 태종 이방원은 종묘에 신주를 모실 때 친어머니 신의왕후 한씨만 모시고, 계모 신덕왕후는 후궁으로 격하시켰다. 이방원의 앙갚음에 정릉동 정릉은 황폐화했다. 172년이 흐른 1581년(선조 14년) 신덕왕후의 후손인 강순일이 군역을 면제받고자 상소를 올린 것을 계기로 조정에서 정릉의 위치를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겨우 찾았다. 1669년 송시열의 상소에 의해 종묘에 배향되고, 능의 위상을 되찾았다. 정릉을 개수하고 제사를 지내는 날 소낙비가 내려 정릉골을 흠뻑 적셨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 비를 신덕왕후의 원한을 씻어 준 ‘세원우’라고 반가워했다. 조선의 사실상 첫 왕후인 신덕왕후를 모신 정릉 흥천사에는 조선의 마지막 왕비인 순종 비 순정효황후 윤씨가 한국전쟁 때 거주했던 기록이 남아 있다. 흥천사는 조선 첫 왕비와 마지막 왕비가 동시에 깃든 기구한 운명의 장소다. 정릉의 터줏대감은 서양화가 박고석이었다. 1955년 정릉에 자리잡은 박고석을 따라 부산 피난 시절 삼총사를 이뤘던 이중섭, 한묵이 가세했고, 청수장 물줄기를 따라 김병기, 김대현, 최정희, 박경리, 금수현 등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가 집을 지으면서 형성됐다. 이중섭이 죽자 유골은 삼등분됐는데 일부는 일본의 부인(이남덕)에게 보내고, 또 일부는 시인 구상에 의해 망우리 묘지로 갔다. 나머지는 박고석이 보관하다가 정릉에 뿌려졌다. 북한산행의 기점 청수장은 1910년대에 세워져 일본인 별장으로 이용되다가 1945년 해방 뒤 민간인이 인수해 사용했다. 한국전쟁 발발 후엔 특수부대 훈련 숙소로 사용됐다. 그 후 고급 요정 ‘청수장’으로 탈바꿈하면서 정비석 소설 ‘자유부인’의 댄스홀로 등장한다. 1974년 이후 제법 기품 있는 음식점, 여관으로 운영되다가 1983년 4월 2일 북한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여기에 편입됐다. 개축 공사를 거쳐 2001년부터 북한산탐방안내소로 바뀌었다. 유럽풍 카페를 연상케 하던 청수장 본관만 남겨 두고 등산로와 맞닿아 있던 담과 부속 건물은 허물어 아담한 정원으로 꾸몄다.1950년대 후반 돈암동 셋방에 살던 박경리(1926~2008)는 1965년부터 2002년까지 정릉동 골짜기 집에 머물렀다. 이 집에서 1969년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대장정을 담은 장편 대하소설 ‘토지’ 집필을 시작했다. 1980년 사위 김지하의 옥바라지를 위해 강원 원주로 이사할 때까지 삶의 터전이었다. 이웃사촌 박고석이 삽화를 그린 ‘노을진 들녘’은 1961년 10월부터 연재를 시작해 총 250여회를 이어 나갔다. 장편 ‘김약국의 딸들’을 출간한 뒤 대표작 토지 1부 집필에 들어갔다. 정릉은 그의 대표작들이 잉태되고, 외동딸 김영주의 연애와 결혼이 이뤄진 행복한 장소였지만 고통도 담긴 곳이다. 피신해 있던 사위가 체포된 정릉 집은 차라리 유배지였다.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에서 선생은 “박정희 군사정권 시대/사위는 서대문 형무소에 있었고/우리 식구는 기피 인물로/유배지 같은 정릉에서 살았다/천지간에 의지할 곳이 없이 살았다/수수께끼는/우리가 좌익과 우익의 압박을 동시에 받았다는 사실이다/그리고 인간이 얼마만큼 추악해질 수 있는가를/뼈가 으스러지게/눈앞에서 보아야 했던 세월/태평양 전쟁 육이오를 겪었지만/그런 세상은 처음이었다/악은 강렬했고 천하무적이었다/아 참, 그 얘기는/저승에나 가서 풀어놔야지/그 끔찍한 사실들을/측천무후인들 믿을 것인가”라고 절규했다. 정릉시대의 쓰라린 편린이다. 선생의 무덤에는 비석이 없다. ‘이 나라에 이런 사람들이’(기파랑, 2017년 간)에 실린 김형국의 ‘박경리, 포한이 원력이던 소설문학’에 따르면 “이전에 무덤 앞 상석에 당신 필체로 ‘박경리’라고 성명 석 자만 달랑 새겼다던데 나중에 다시 가족이 당신 이름도 빼고 그냥 민짜 상석을 놓아 달라 했단다. 고사로 치면 아무 글자도 새기지 않는 백비(白碑)를 말함이었다. 더 할 말이 없다는 뜻이었다”고 썼다. 실제 통영 박경리기념관 선생의 묘소에는 상석 하나만 달랑 놓여 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제22차 서울의 문학3(윤극영의 반달) ■일시 및 집결장소 : 9월 21일(토) 오전 10시 우이신설선 4·19민주묘지역 2번 출구 구내 ■신청(무료)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남해군 신청사, 현청사 부지에 2022년 착공

    남해군 신청사, 현청사 부지에 2022년 착공

    경남 남해군은 18일 군 신청사를 현재 군청 자리에 건립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군은 청사 신축 타당성 검토와 투자심사 등의 행정절차를 2021년까지 마치고 2022년 공사를 시작해 2024년 신청사를 준공할 예정이다.새 청사는 현재 군청사 부지 외에 인근 개인 토지 9035㎡ 등을 매입해 모두 1만 8257㎡ 부지에 지하 2층, 지상 7층, 연면적 1만 4000㎡ 규모로 지을 계획이다. 신청사가 완공되면 현 청사는 허물고 그 자리에 주민편의 공간인 잔디 공원 등을 조성한다. 현재 남해군 청사를 둘러싸고 있는 읍성은 원형을 살려 보존한다. 군은 새 청사를 건립하기 위해 지난해 하반기 부터 부지 선정작업을 시작했다. 군민의견을 수렴하고 지난 6월 지역 주민과 군의회, 대학교수 등이 참여한 청사신축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추진위는 5차례 회의를 열어 청사건립부지를 검토한 뒤 추진위원 24명이 투표를 해 신청사 건립 부지를 결정했다. 현청사 부지, 공설운동장, 남해유배문학관 일원 등 3곳을 놓고 투표를 한 결과 현청사 부지 23표, 공설운동장 1표로, 현재 군청 자리가 신청사 건립 부지로 결정됐다. 장충남 군수는 “행정복합타운 조성도 구상했으나 원도심을 살리면서 주민 접근성을 높이고 직원들의 업무 환경을 개선하는 방향에서 현재 군청 부지를 확장해 신축하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박종길 군의회 의장은 “의회에서도 외곽 후보지를 검토했으나 도심 공동화 문제가 생길수 있어 현재 군청 자리가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군은 현재 군청사는 1960년 건축돼 건물이 낡아 안전도 검사에서 D등급을 받았으며 부지도 좁아 주차 공간 부족 등으로 민원인 불편이 크다고 밝혔다. 남해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풍경은 말이 없고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풍경은 말이 없고

    1870년 보불전쟁 패배의 책임을 지고 나폴레옹 3세가 물러났다. 제3공화정이 수립됐고 프랑스는 비로소 근대적인 민주국가가 됐다. 제3공화정은 그때까지 프랑스에 존재했던 어떤 정권보다 민주적이었다. 민주적인 분위기 속에서 경제가 번성하고, 문화와 예술이 꽃피었다. 사람들은 훗날 이 시기를 그리워하며 ‘벨 에포크’, 즉 아름다운 시대라 이름 붙였다. 다들 좋았겠다고? 아니다. 제3공화정은 권위적이지 않은 대신에 정치적 소요와 사회적 갈등에 취약했다. 정치를 주도한 세 개의 주요 정당은 각자 정통성을 주장하고 과거의 실패를 다른 정파 탓으로 돌리며 뜯고 싸웠다. 종교계, 귀족, 벼락부자는 공화정을 혐오했고 전쟁을 일으켜 보불전쟁 때 독일에 빼앗긴 알자스로렌 지역을 되찾아야 한다고 핏대를 세웠다. 노동자와 사회주의자들은 정부가 충분히 개혁적이지 못한 것이 불만이었다. 부유함은 가난함의 그늘을 더 선명하게 만들었고 이는 사회 갈등을 부추겼다. 드레퓌스 사건은 제3공화정의 정치적, 사회적 불안정을 집약해서 보여 준다. 1894년 군부는 유대인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를 간첩으로 오인해 유죄 판결을 내리고 프랑스령 기아나에 유배시켰다. 영화 ‘파피용’에 나오는 그 무시무시한 유배지. 나중에 진짜 범인이 드러났으나 군부는 실책을 인정하지 않고 사건을 덮어 버렸다. 재심 과정에서 프랑스 사회는 완전히 두 쪽이 났다. 보수 진영은 국익 보호, 군대의 명예를 옹호하며 유대인에 대한 반감을 표출했고, 진보 진영은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고 인권을 외치면서 군부를 규탄했다. 예술가들도 두 패로 나뉘었다. 무정부주의자이고 유대인이었던 피사로는 당연히 드레퓌스 지지파였다. 그는 구명 운동에 돈을 기부했지만, 석방 요구 탄원서에는 서명하지 않았다. 덴마크 국적 때문에 추방당할까 겁이 났던 것이다. 광풍이 지나간 후 피사로는 회고했다. “나의 최대 관심사는 따로 있었지만, 나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창문으로 시내를 내다보며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 1906년 드레퓌스는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의 인생은 만신창이가 된 뒤였다. 이 논쟁은 프랑스 사회에 깊은 골을 남겼다. 미술평론가
  • ‘쌉니다 천리마마트’ 정혜성 “웃다가 진지…모든 감정 경험할 것”

    ‘쌉니다 천리마마트’ 정혜성 “웃다가 진지…모든 감정 경험할 것”

    개성으로 똘똘 뭉친 연기를 선보여온 배우 정혜성이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웃다가 설레다가 또 눈물이 왈칵하는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드라마”라고 말해 첫 방송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상승시켰다. tvN 새 금요드라마 ‘쌉니다 천리마마트’에서 권영구(박호산)의 명령으로 정복동(김병철)을 감시하기 위해 천리마마트로 파견된 DM그룹 초엘리트 첩자 조미란 역을 맡은 정혜성. “원작 캐릭터가 굉장히 재미있었고 또 나의 본모습과 비슷한 면이 있다”며 “재밌게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는 자신이 넘치는 작품 선택의 이유를 밝혔다. 이러한 그녀의 자신감에는 캐릭터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남다른 준비가 바탕이 돼 있었다. 4개국어를 마스터한 만능 대리 조미란을 연기하기 위해, 대본 연습 때부터 유창한 영어로 대사를 준비해 와 모든 이들을 깜짝 놀라게 한 것. 또한, 원작을 꼼꼼히 읽고 캐릭터를 철저하게 비교, 분석했다. “드라마 속 조미란이 더 다채롭다고 생각했다. 불같은 성격이면서도, 새침하고 도도한 느낌, 그리고 여성미와 인간미까지 갖추고 있다”며 “이런 캐릭터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천리마마트의 다른 직원분들과 잘 어우러지는 데 중점을 두고 연기하고 있다”고. 조미란 또한 천리마마트를 통해 새로운 변화를 겪게 되는 인물이다. DM그룹에서 그녀는 사내 정치는 물론 대인관계에도 별 관심 없는 사람이었다. 첫째도, 둘째도 실적과 실력이 제일이라 생각하는 “일 잘하는 커리어 우먼”이었던 것. 그러나 천리마마트에서 근무하며 “인간미 있는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정혜성 역시 캐릭터 관전 포인트로 “천리마마트로 발령받고 난 뒤 조미란이 어떻게 바뀌게 될지 지켜봐 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이와 함께 드라마에 대한 흥미로운 감상도 전했다. “웃다가 설레다가 또 눈물이 왈칵 하는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드라마가 바로 ‘쌉니다 천리마마트’”라고. “순간 훅 빠져들어서 빵빵 웃음이 터지다가도 진지해지고 또 감동하게 되는 기이한 체험을 하시게 될 것이다. 이 즐거운 경험을 꼭 함께 해주시길 바란다”며 9월 20일 첫 방송에 대한 기대에 불을 지폈다.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DM그룹의 공식 유배지이자 재래 상권에도 밀리는 저품격 무사태평 천리마마트를 기사회생시키려는 엘리트 점장과 마트를 말아먹으려는 휴먼 불도저 사장이 만들어내는 사생결단 코믹 뺨타지 드라마다. 원작은 다채로운 캐릭터들이 이끌어가는 재기발랄한 이야기로 네이버웹툰 연재 당시 누적 조회수 11억 뷰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며 남녀노소 모두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김규삼 작가의 동명 웹툰. ‘잉여공주’, ‘배우학교’, ‘SNL코리아’, ‘막돼먹은 영애씨’ 등 예능과 드라마를 넘나들며 개성 넘치는 작품을 만들어온 백승룡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오는 9월 20일 금요일 밤 11시 tvN에서 첫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이안(카를라 레이 풀러 엮음, 윤철희 옮김, 마음산책 펴냄) ‘색계’부터 ‘브로크백 마운틴’까지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자랑하는 영화감독 이안의 인터뷰집. 대만의 명문 고등학교 교장이던 아버지의 권위에 주눅 들었던 성장기, 영화를 배우러 간 미국에서 문화적 아웃사이더로서 끝내 감독으로 데뷔한 일화 등을 들려준다. 304쪽. 1만 5000원.호사카 유지의 일본 뒤집기(호사카 유지 지음, 북스코리아 펴냄) 30년간 한일 관계를 연구해 온 저자가 쓴 한일 갈등의 원인과 해법. 그는 최근 일본의 행태는 단순한 경제보복이 아닌 오랜 ‘과거사’ 문제에서 비롯된 ‘사건’이라고 진단한다. 바람직한 한일 관계는 결국 일본이 독일처럼 과거 청산을 제대로 해야만 성립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272쪽. 1만 5000원.파란 1·2(정민 지음, 천년의상상 펴냄) 다산 정약용이 직접 쓴 글과 로마 교황청 문서, 조선 천주교 관련 연구 기록 등을 토대로 그려낸 다산의 청년 시절. 벗들과의 우정과 배신, 유학과 서학 사이에서의 번민, 정조의 총애와 천주를 향한 믿음, 형님들의 죽음과 유배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뇌했던 ‘인간 다산’을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곡진하게 풀어 냈다. 각 364·384쪽. 각 1만 7500원.세상을 바꾼 12가지 질병(어윈 W 셔먼 지음, 장철훈 옮김, 부산대학교출판부 펴냄) 14세기 흑사병부터 현대의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사회·정치·문화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질병.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명예교수인 저자가 이들 질병이 미친 영향과 결과를 역사적 흐름을 통해 살핌으로써 미래의 재앙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논한다. 375쪽. 1만 8000원.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T 크리스천 밀러·켄 암스트롱 지음, 노지양 옮김, 반비 펴냄) 수사재판기관이 자행하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여성 혐오적 태도를 고발한 저작이다. 꼼꼼한 취재로 널리 알려진 두 저널리스트는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충분히 이해하고, 경찰들이 걸리기 쉬운 ‘피해자다움’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수사를 이어 나간 갤브레이스, 헨더샷 두 여성 형사를 통해 해법을 찾는다. 2016년 퓰리처상 수상작. 392쪽. 1만 8000원.엄마의 뇌에 말을 걸다(이재우 지음, 카시오페아 펴냄) 방송작가 출신인 저자가 치매 어머니와 함께한 2년간의 기록. 저자는 어머니의 상태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치매 노모를 돌보는 자녀들을 직접 취재하고, 대학원에서 인간의 뇌와 치매의 관계에 대해 공부한다. 어머니를 돌보며 기록했던 치매 진행 일지, 뇌를 도식화한 삽화, 10가지 키워드별 카툰, 저자가 쓴 시 등이 뇌과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284쪽. 1만 7000원.
  • 과천시 등 4개 기관, 추사 김정희의 글로벌 콘텐츠 진흥위해 협력

    과천시 등 4개 기관, 추사 김정희의 글로벌 콘텐츠 진흥위해 협력

    추사 김정희 선생의 숨결이 남아있는 3개 지자체가 추사의 글로벌 콘텐츠 진흥을 위해 서로 협력키로 했다. 과천시는 예산군, 제주도. 예술의 전당과 함께 추사사업 추진 4개 기관 업무 협약식을 예술의 전당에서 가졌다고 22일 밝혔다. 지난 21일 협약에 따르면 추사 김정희 선생의 본향 예산군과 유배지였던 제주도, 생의 말년을 보낸 과천시를 비롯한 예술의전당 4개 기관 공동으로 추사의 글로벌 콘텐츠 개발을 위해 연구와 전시, 교육 등 상호협력하며 공동사업을 개발·기획하기로 했다. 4개 기관은 내년 1월부터 3월까지 ‘2020년 추사한국전’을 170여 점의 작품으로 공동으로 기획하며 4곳에서 동시에 주제별 전시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김 시장은 “이번 업무협약을 계기로 추사의 학문과 예술세계를 기리고 콘텐츠 개발로 추사 김정희 선생의 뛰어난 작품을 세계 속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씨줄날줄] 그린란드/이지운 논설위원

    [씨줄날줄] 그린란드/이지운 논설위원

    그린란드는 1933년 4월 상설국제사법재판소(PCIJ)의 판결을 통해 덴마크 땅으로 명실상부 국제적으로 인정됐다. 유럽인에게 발견된 것이 9세기 말이고, 그린란드라는 이름으로 불린 것은 10세기 말이라고 한다. 노르웨이 출신으로 아이슬란드에 거주하던 에리크라는 사람이 3년간 이곳에 유배돼 생활한 뒤 되돌아가 섬에 관한 환상적인 얘기들을 주변에 전하면서 ‘그린란드’라 불렀다 한다. 이 입담으로 그는 사람들을 모아 그린란드에 정착촌도 건설했고, 노르웨이와 무역을 하게 됐으며, 1261년 노르웨이 조공 국가가 되기까지는 정치적 독립도 유지했다. 1380년 노르웨이와 덴마크가 연합 왕국을 구성한 이래 긴 시간이 흐르고 나폴레옹 전쟁 이후 이 땅은 주요한 사건을 맞는다. 전쟁에서 승리한 연합국들은 1814년 덴마크로부터 노르웨이를 떼어내 스웨덴에 병합시켰는데, 이 땅은 덴마크에 남았다. 킬조약 제4조에서 “덴마크왕은 노르웨이 왕국에 대한 모든 권리와 주장을 포기한다”고 했음에도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등이 예외였던 것은 “노르웨이 역사에 해박했던 덴마크 협상대표 덕분이며, 다른 강대국 협상대표들의 무지에 힘입은 것이었다”고 미 플로리다대 오스카 스발리엔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평했다. 1900년경 미국 사람 피어리가 그린란드가 섬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등 땅에 대한 본격적인 탐사가 진행됐고, 19세기 들어 덴마크도 땅에 대한 법적·행정적 조치를 강화했다. 노르웨이 역시 1889년 이후 정기적으로 원정대를 보내고, 무선송신소를 건설하는 등 왕성한 활동력을 보였다. 덴마크가 영유권 소유를 작심한 것은 1차 세계대전 중이다. 미국이 1916년 덴마크령 서인도를 매입할 때 덴마크의 그린란드 영유권을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해 받아 냈다. 이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에 접근해 같은 성과를 거두었고, 이것은 1931년 일어날 일에 큰 대비가 됐다. 그해 7월 노르웨이가 동부 그린란드의 일부를 점유하고 소유권을 주장하자 덴마크는 상설국제사법재판소에 이 문제를 제소했다. 그리하여 그 유명한 ‘그린란드의 소속을 둘러싼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분쟁 판결’이 내려져 ‘실효적 점유’의 중요성을 전 세계에 일깨워 주었다. 중국이 최근 그린란드에서 새 공항 건설 수주를 시도하고, 석유 채굴권을 따내려 분주해지자 “그린란드가 ‘제2의 남중국해’가 될 수 있다”는 외신까지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그린란드 매입 검토설도 그런 배경에서 나온 모양이다. ‘기후변화’란 단어 없이도 ‘그린란드’ 지명을 자주 듣게 될지 모르겠다. 지정학적 가치는 변한다.
  • 해남 물결 따라가니 남도 묵객 붓끝이네…화맥 길러낸 몽유진도

    해남 물결 따라가니 남도 묵객 붓끝이네…화맥 길러낸 몽유진도

    남도는 예부터 유배의 땅이었습니다. 수많은 정객들이 유배돼 시인 묵객으로서의 삶을 살았지요. 반도의 끝이라 할 전남 해남, 진도 등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재능은 고스란히 지역의 후예들에게 이어졌습니다. 밭고랑에서 풀 뽑는 아낙조차 즉석에서 절창(絶唱)을 뽑아낸다던가요. 진도에 들면 시, 서, 화는 물론 소리 자랑 말라는 말이 전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해남 역시 녹우당을 중심으로 ‘남도 문화르네상스’를 꿈꾸고 있지요. 그렇게 해남으로, 진도로, 예술이 꽃 피는 해안선을 따라 ‘남도 예술기행’을 다녀왔습니다.외지인들이 해남과 진도를 묶어 돌아볼 경우 해남을 거쳐 진도로 가는 게 순서다. 그래야 좀더 효율적으로 두 지역을 돌아볼 수 있다. 해남에선 ‘예술이 꽃피는 해안선-예술가와 함께하는 남도 수묵 기행’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1박2일(2박3일) 동안 예술가, 큐레이터 등과 동행하며 예술을 체험하고 답사하는 프로그램이다. 대흥사 수묵화 체험, 템플스테이, 해창 막걸리 체험 등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고산의 녹우당… 윤두서 자화상 압권 녹우당으로 먼저 간다. 해남 윤씨의 종택이다. 무엇보다 당호가 독특이다. 푸를 녹(綠) 자에 비 우(雨) 자를 쓴다. 말 그대로 ‘초록비’라는 뜻이다. 바람 불면 집 뒤 비자나무에서 우수수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지금은 녹우당이 고택 전체를 뜻하는 말이 됐지만 원래는 이 집의 사랑채를 가리키는 당호였다. 녹우당은 조선의 17대 왕 효종이 고산 윤선도에게 하사한 집이다. 82세 되던 해 낙향을 결심한 고산이 당시 수원에 있던 집을 뜯은 뒤 배로 싣고 와 해남에 다시 지었다. 차양 역할을 하는 사랑채 앞쪽의 겹처마, 높낮이로 아버지와 아들의 기거 공간을 구분한 공간 배치, 회랑 형태의 나무 기둥 등이 인상적이다. 지금도 고산의 14대 손이 거주하고 있다. 집 뒤 풍경도 웅숭깊다. 300년 묵은 늙은 소나무와 고풍스런 돌담길이 멋지게 어우러져 있다. 녹우당 아래는 고산윤선도유물전시관이다. 해남 윤씨 관련 유물을 전시,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전시관은 단층 건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2층 건물이다. 1층은 로비 등 손님맞이 공간이고, 대부분의 작품은 지하층에 전시돼 있다. 도드러지거나 위압적인 느낌을 주지 않고 주변 풍경과 차분하게 어우러지려는 건축 의도가 읽힌다. 이곳에 국내 최고의 초상화로 꼽히는 ‘윤두서 자화상’(국보 제240호)이 있다. 강렬한 눈빛과 굳게 다문 입술, 극사실주의 작품을 보듯 한올 한올 섬세하게 묘사된 수염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이 작품 하나만 보더라도 ‘본전’은 뽑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깊은 울림을 안긴다. 아울러 윤선도가 실제 사용한 나침반, 교과서에 실릴 만큼 유명한 ‘오우가’ ‘어부사시사’, 고려시대 유일한 노비문서인 ‘지정14년 노비문서’(보물 제483호), 윤두서가 자신의 초상화를 그릴 때 보던 옛 거울과 동국진체의 서예 작품 등 흥미로운 유물들을 진품으로 만날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대흥사서 차 한잔 대흥사는 해남을 대표하는 대가람이다. 지난해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 절집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대흥사에서는 사찰음식 체험, 템플스테이 등의 프로그램이 준비됐다. 수묵화 체험도 재밌다. 쥘부채에 삐뚤빼뚤 자신만의 수묵화를 그려 넣는 프로그램이다. 체험장은 대흥사 무량수전이다. 추사 김정희가 편액 글씨를 남긴 곳. 오래된 건물의 그늘에 들어 저만의 부채를 만들다 보면 더위는 저만큼 물러나고 없다. 대흥사에서는 차와 관련된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다반사(茶飯事)다. 차 시음 행사는 저 유명한 일지암에서 열린다. 대흥사에서 산길을 따라 20분 정도 발품을 팔아야 닿을 수 있다.일지암은 우리나라 차의 중흥조 초의(1786~1866) 선사가 차와 더불어 선(禪)을 수행하던 곳이다. 일지암(一枝庵)이란 이름은 “뱁새는 나무 끝 한 가지(一枝)에 살아도 편안하다”는 중국 당나라 시승 한산의 시구절에서 따왔다. 뱁새는 흔히 황새 쫓다 가랑이 찢어지는 동물로 인식되지만 불가에서는 다소 다른 모양이다. 불가피하게 오지랖을 넓혀야 하는 재능 많은 새가 황새라면 뱁새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평범한 새다. 스스로가 뱁새여서 얼마나 좋은지, 얼마나 행복한지 일지암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다. 풍경도 빼어나다. 두륜산과 멀리 남해 바다가 네모 창틀 안에 다 담긴다. 이 정도면 뱁새의 호사라 할 만하다.●왜구 물리친 울둘목에 서린 이순신 정기 예향을 찾아가는 여정이지만 울돌목에 서면 느낌이 다르다. 일본에 난데없이 한 방 맞은 요즘엔 더욱 그렇다. ‘바다가 울면 물이 돈다’는 울돌목(명량·鳴梁)은 해남과 진도 사이를 흐르는 해협이다. 이순신 장군이 일본 수군을 대파한 명량대첩(1597)의 현장이기도 하다. 당시 이순신 장군은 시속 20∼30㎞의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조류를 이용해 왜선을 수장시킨 것으로 전한다. 진도의 대표적인 민속놀이 중 하나인 ‘강강술래’(국가 무형문화재 8호)도 바로 이곳에서 비롯됐다. 해남 쪽에 우수영관광지, 진도 쪽에 녹진관광지가 각각 조성돼 있다. 실경산수화 같은 울돌목 풍경을 보려면 녹진전망대를 찾는 게 좋다. 진도대교와 주변 바다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울돌목 인근의 우수영문화마을도 둘러볼 만하다. 명량대첩과 해남사람들의 이야기를 벽화 등 조형미술 작품에 담아 조성한 마을이다. 약 2㎞ 안에 갤러리, 카페 등이 밀집해 있다.우수영관광지에서 진도대교를 건너면 진도 땅이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진도아리랑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는 듯하다. 이쯤에서 진도 민초들의 노래 한 자락 들어보자. ‘진도사랑 시 공모전 수상시집’에 실린 시 ‘운림산방으로 오시어요’(서지은 지음)의 한 구절이다. “노오란 울금을 곱게 빻아//(…) 첨찰산 병풍에 첩첩이 발라놓고//(…) 귀하디귀한 새빨간 보석알 닮은, 홍주(紅酒)를/ 그대 오시는 쌍계사 언덕 어귀에//(…) 비단치마 폭처럼 넓게 펼쳐 올리겠나이다//(…) 가만히 가만히/ 그대, 어서 오시어요” 이런 은근한 초대를 받고도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는다면 사람도 아니다. ●시·서·화·창 뛰어난 진도… 첫 민속문화예술특구 진도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속문화예술특구다. 시·서·화·창,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다. 진도에 전해 오는 민속음악들은 대개 섬사람의 삶과 애환을 꿰고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시름을 슬픔으로 끝내지 않고, 한을 눈물로 맺지 않는다. 고된 삶을 노래하면서도 결국엔 내일의 희망을 그린다. 군립민속예술단의 김오현 단장은 “다른 지역 씻김굿과 달리 진도의 씻김굿은 음악적 요소가 강하다”고 했다. 진도의 씻김굿은 경쾌하다. 장단조차 슬픔의 절정에서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슬퍼도 비통에 빠지지 말라는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정서를 여기서 본다. 진도에서는 ‘토요민속여행’ 등 상설 공연 4개를 비롯해 예능보유자와 함께 하는 ‘진도 전통 문화공연’ 7개 등 모두 13개의 민속공연과 만날 수 있다. 그야말로 ‘민속공연 부자’다. 이 가운데 진도씻김굿(국가무형문화재 72호) 진도다시래기(국가무형문화재 81호) 진도만가(도 무형문화재 19호) 등에 대해 ‘진도 상·장례문화’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가 추진되고 있어 관심이 쏠린다. ‘보배섬’ 진도(珍島)의 옛 이름은 ‘옥주’다. ‘비옥할 옥’(沃) 자를 쓴다는 게 정설이지만, 어차피 그마저 불확실한 것이라면 ‘구슬 옥’(玉) 자로 바꿔 쓴다고 해서 그리 틀리지는 않을 터다. 구슬은 곧 보배다. 물론 잘 뀄을 때라야 그렇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야 보배라고 했으니 말이다. 지금 진도가 예향으로 이름을 날리는 건 역사 속 수많은 ‘구슬들’의 예기가 잘 드러나도록 섬사람들이 음으로 양으로 북돋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 첫자리가 운림산방이다.●조선 대가의 화실 ‘운림산방 ’ 서지은 시인이 “겹이어 몇 대를 붓을 들던 그 옛날 조선의 대가의 화실”이라 표현했듯 운림산방은 조선 후기 소치 허련(1808~1893)에 이어 5대에 걸쳐 직계 화맥(畵脈)이 이어지고 있는 남종화의 산실이다. 오각형 모양의 연못 운림지와 소박한 정자 사이로 소치가 손수 심었다는 배롱나무가 절정의 붉은 빛을 토해 내고 있다. 정자 뒤로는 진도의 진산 첨찰산이 운림산방을 감싸고 있다. 진도 사람 몇몇은 이 같은 안온한 풍경을 두고 ‘몽유진도’(夢遊珍島)라 부른다. 안견의 ‘몽유도원도’에 빗댄 표현으로, 진도의 실경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운림산방 옆은 소치기념관이다. 소치 허련의 작품은 물론 미산 허형과 남농 허건, 임전 허문 등 후손들의 수묵화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수묵화의 특징 중 하나는 여백이다. 여백은 단순히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공간이 아니다. 전시 작품들을 꼼꼼하게 살피다 보면 여백이란 것이 그리지 않음으로써 그림이 그려지는 매우 독특한 공간이란 걸 알게 된다. 글 사진 해남·진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지역 번호 061) →진도의 4개 상설 공연 가운데 ‘토요민속여행’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전국 15개 ‘상설문화관광 프로그램’ 중 하나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23년째 이어져 오고 있어 진도의 ‘프랜차이즈 공연’이라 할 만하다. 지난해 ‘한국관광의 별’에도 선정됐다. 진도 아리랑과 강강술래, 씻김굿 등 무형문화재 공연이 한 시간 남짓 펼쳐진다. 공연 뒤에는 관객과 출연진이 어우러지는 흥겨운 춤판이 벌어진다.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진도향토문화회관에서 군립민속예술단 주관으로 열린다. 공연은 무료다. 544-8978. ‘금요국악공감’은 매주 금요일 오후 7시 국립남도국악원에서 열린다. 역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수요일엔 진도군 보유 무형문화재 중심의 ‘진수(水)성찬’(1만원)이 오후 7시 30분 무형문화재전수관에서, 일요일엔 ‘일요상설공연’(5000원)이 오후 2시 해창민속전수관에서 각각 관객을 만난다. 이 밖에 ‘진도아리랑 오거리’ 등 버스킹 공연을 수시로 진행한다. →해남의 ‘예술가와 함께하는 남도 수묵기행’은 오는 11월까지 진행된다. 참가 신청은 행촌문화재단(533-3663)에서 받는다. →해남 읍내 천일식당(536-4001)은 80년을 이어온 떡갈비로, 진일관(532-9932)은 한정식으로 각각 소문난 집이다. 진도 신호등회관(544-4449)은 전복비빔밥을 잘한다. 전복의 암수 내장을 함께 쓰는 게 독특하다. 양념장이 강해 다소 맵게 느껴질 수 있다.
  • 정태관 화가 ‘남도 유배 섬을 가다’ 화첩 기행전

    정태관 화가 ‘남도 유배 섬을 가다’ 화첩 기행전

    전남 목포에서 활동중인 정태관 화백이 제1회 섬의 날을 맞아 ‘남도 유배 섬을 가다’ 화첩 기행전을 연다. 오는 3일부터 8일 섬의 날까지 목포 오거리 문화센터에서 전시한다. 정 화백은 “섬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국민의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매년 8월 8일이 섬의 날로 지정됐다”며 “그 첫 해를 맞아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다 본 유배 섬을 소재로 작품을 전시하게 됐다”고 밝혔다. 정 화가는 2012년부터 남도 섬을 중심으로 답사 기행하며 현지에서 화첩에 수묵화 작품을 그려 왔다. 남도 유배지 답사 기행, 땅이름 화첩기행, 해상 포구 화첩 기행, 강상 포구 화첩 기행, 섬 나들이 화첩 기행 등 섬에 대해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다 본 수묵화를 현지에서 직접 그렸다. 10m 길이의 화첩 30권 분량이다.첫 번째 기획 전시회로 남도 유배섬을 중심으로 신안 흑산도(정약전, 최익현 등), 우이도(정약전), 보길도(고산 윤선도), 여수(정만조, 노수진, 이영 등) 등을 9권의 화첩에 제작해 157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정 화가는 기존의 미술관 전시회에서 탈피한 ‘SNS전’을 개최해 미술관을 찾아 가지 않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매스 미디어를 통한 그림전시회도 함께 개최한다. 정 화가는 “전라도 해안지역과 섬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서남해 유배지는 25개 군현 36곳으로 늘고, 560여명이 유배를 왔다”며 “중앙의 관리나 학식 높은 선비들이 가져온 학문과 문화는 섬의 토착 문화와 융합돼 독특하고도 새로운 문화를 형성, 한 차원 높은 섬 문화를 꽃 피웠다”고 설명했다. 정 화가는 “다도해 유배 문화를 재해석해 섬 지방의 풍부한 문화예술 자원을 현대적인 수묵화 기법으로 그렸다”며 “그들이 살아왔던 흔적을 자연과 소통을 통해 새로운 해양문화예술로 재발견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정태관 화가는 목포문화연대 공동대표로 그동안 ‘세월호 304 서화 퍼포먼스’, ‘12지를 테마로 한 SNS 풍자전’ 등의 시사적인 기획전을 펼쳐왔다. 그는 앞으로도 섬에 대한 인문학적인 시각에서 수묵화의 기법을 현지에서 재해석하는 작품을 꾸준히 화첩에 담아 테마별 기획전 등을 계획하고 있다. 목포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남해에서 매월 한차례 시골영화제

    남해에서 매월 한차례 시골영화제

    경남 남해군에서 오는 11월까지 매월 셋째 주마다 주민·관광객 등에게 영화를 무료 상영하는 시골영화제가 열린다. 남해군은 17일 지역 기획자 그룹인 ‘둥지기획단’이 주관하는 지역 영화제인 ‘2019 시골영화제’가 오는 20일 오후 4시 남해유배문학관 다목적홀에서 개막한다고 밝혔다.시골영화제는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이 주관하는 ‘2019 무지개다리사업’에 선정돼 시행하는 사업이다. 남해군이 후원한다. 영화제를 주관하는 둥지기획단은 문화다양성을 주제로 하는 9편의 영화를 선정해 모두 5회에 걸쳐 상영·소개한다. 20일 오후 4시 남해유배문학관에서 개막작으로 상영하는 영화는 재일동포의 역사와 삶이 담긴 일본의 조선학교 이야기를 다룬 작품 ‘우리학교’다. 영화 상영이 끝난 뒤 김명준 감독이 직접 참석해 관객들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며 소통할 예정이다. 8월 24일 오후 4시에는 북한이탈주민 청소년과 남한 청소년의 소통 과정을 다룬 영화 ‘이빨 두 개’(감독 강이관), 어쩌다 잘못 연결된 남북한 여성들의 전화통화를 소재로 만든 영화 ‘여보세요’(감독 부지영),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을 통해 ‘평화’를 전달하기 위한 그림책 작가 권윤덕의 끈질긴 노력을 담은 ‘그리고 싶은 것’(감독 권효) 등 3편이 상영된다. 3회째는 9월 20일 오후 7시 경남도립남해대학 운동장에서 인도의 여성주의 영화이자 흥겨운 스포츠 영화로 인도영화 특유의 매력적인 음악과 유머감각이 재미를 더하는 작품 ‘당갈’이 상영된다. 이어 10월 19일에는 오후 4시 남해유배문학관에서 3편의 작품이 상영된다.여성으로서 살아가며 느끼는 필연적 불안함과 심리를 그린 오정미 감독의 ‘미스터 쿠퍼’, 국내외 영화제에서 수많은 주목을 받은 웰메이드 성장영화 ‘우리들’(감독 윤가은), 이주민 여성 차별 문제를 다문화가정 아이의 시선에서 귀엽고 친근한 애니메이션으로 완성한 권미정 감독의 ‘샤방샤방 샤랄라’가 연속 상영된다. 11월 16일 오후 4시 남해유배문학관에서 폐막작으로 상영되는 영화는 지난 3월 타계한 누벨바그 거장 감독 아녜스 바르다가 유명 아티스트 JR과 공동감독한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이다.둥지기획단은 관람객에게 문화다양성 주제가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문턱 낮은 예술로서의 ‘재미’와 ‘작품성’을 고루 갖춘 작품들을 골랐다고 밝혔다. 영화제 기간에 여러 부대행사도 열린다. 남해유배문학관에서 오는 20일~27일 재일 조선인의 역사와 ‘우리학교’ 관련 자료 전시회가 열린다. 8월 24~31일에는 그림책 작가 권윤덕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과 ‘꽃할머니’ 전시회가 이어진다. 11월 4일부터 12월 4일까지 폐막 전후 한달동안 예술가 3인(노경무, 전홍빈, 양희수)의 콜라보 기획전이 열린다. 남해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말레이 중국 송유관 중단 사업비 회수 석유배관국 자산 압류

    말레이 중국 송유관 중단 사업비 회수 석유배관국 자산 압류

    말레이시아 정부가 중국 주도로 진행하던 대규모의 송유관·가스관 공사를 중단한 데 이어 사업비 회수를 위해 중국 석유배관국(CPP) 자산을 압류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는 15일(현지시간) 송유관·가스관 사업을 맡았던 CPP의 은행 계좌에서 10억 링깃(약 2867억원)을 압류했다고 확인했다. 마하티르 총리는 “사업비의 80%를 CPP에 지급했지만 실제로 진행된 작업은 13%에 불과하다”며 “사업이 취소됐기 때문에 공사 미이행 부분에 대해서는 돈을 돌려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CPP는 국유기업 중국석유천연가스(CNPC) 산하 업체다. CPP는 2016년 11월 말레이 서부 연안에 600㎞의 송유관과 사바주에 662㎞의 가스관을 건설하는 사업비 94억 링깃 규모의 공사를 당시 친중국 성향의 나집 라작 전 총리로부터 따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마하티르 총리가 집권하면서 송유관·가스관 사업과 동부해안철도 사업 등 말레이시아에서 추진되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사업비가 부풀려지고 수익성이 의심된다며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 이어 7월 말레이시아 정부는 송유관·가스관 사업비가 나집 전 총리의 ‘1MDB 스캔들’과 관련해 유용된 것 같다며 공사를 중단시키고 반부패위원회에 조사를 의뢰했다. 1MDB 스캔들‘은 말레이시아뿐 아니라 미국 등 세계 12개국에서 관련 재판이 진행되는 만큼 파장이 큰 사건이다. 나집 전 총리는 취임 첫해인 2009년 국영투자기업 말레이시아개발공사를 세웠다. 이 회사의 약칭이 1MDB다. 말레이시아 석유를 담보로 채권을 발행해 국내외 자본을 유치한 뒤 그 돈으로 경제개발사업을 하겠다는 게 공식 설립 목적이었다. 하지만 채권을 발행해 모은 돈은 세탁돼 총리와 측근들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2015년 말 1MDB가 13조원에 육박하는 부채를 떠안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드러났다. 당시 경찰은 나집 전 총리 일가의 자택에서 보석 1만 2000여점, 명품 핸드백 500여개, 현금 1억 1400만링깃 등을 찾아냈다. 이에 따라 말레이시아 정부와 미국 수사당국은 나집 전 총리와 측근들이 1MDB에서 최소 45억 달러(약 5조 3000억원)를 유용한 것으로 추정했다. 한편 말레이시아 정부는 중국 주도로 추진한 동부해안철도 사업의 경우 사업비를 655억 링깃에서 440억 링깃으로 줄여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양진건 유배의 뒤안길]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양진건 유배의 뒤안길]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종종 제자들의 아기 이름을 지어 주곤 한다. 그 아기들이 잘 크는 것을 보면 기쁨과 안심이 교차한다. 고려 때 애주가 이규보는 아들 이름을 ‘삼백’(三白)이라고 지었는데 자기를 닮아서 술을 잘 마시자 “삼백이라 이름한 것 이제야 뉘우치나니, 매일 삼백 잔씩 마실까 걱정이구나” 하며 푸념하는 시를 남기기도 했다. 이러니 이름 짓기가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이름은 형식이 아니다. ‘이름이 곧 운명’(Nomen est omen)이라는 말도 있듯이 그에 어울리게 사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이름은 주술적 효과가 있다고도 했다. ‘유배로 악명 높은 10개의 섬’ 가운데 남아프리카 로벤섬에서 26년을 복역했던 넬슨 만델라는 흔히 ‘로하바’라 불렸는데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는 이름에 걸맞게 흑백 대립을 해결하고, 민족 화해를 성사시킨 위대한 대통령이 됐다. 이름에는 사연도 가지가지다. 선조 때 19년간 제주도와 함경도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유희춘은 고향인 해남을 그리워하며 4명의 딸 이름을 해성, 해복, 해명, 해귀라 지었다. 돌아가신 동화작가 정채봉 선생은 골수 해태 야구팬이어서 아들을 승태, 딸을 리태, 그리고 애완견을 개태로 지었다고도 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사연 있는 이름들이 무수하다. 이름에 얽힌 재미도 많다. 홈런 한 방으로 2018년 한국시리즈를 원점으로 돌려놓은 두산의 정수빈 선수가 있다. 그는 2015년에도 한 방으로 팀을 우승으로 만들었다. 아무래도 수빈이라는 이름이 한 방에 강한 모양이다. 정조의 후궁 가운데 ‘수빈 박씨’가 있었다. 여러 후궁을 두고도 자식이 매우 귀했던 임금이 정조였다. 이런 정조의 고민을 한 방에 해결해 준 사람이 ‘수빈 박씨’였으며 바로 순조의 생모였다. 그런가 하면 요즘 ‘기생충’으로 유명한 봉준호 감독은 유전자 변형 슈퍼돼지를 ‘옥자’라고 이름 지었다. 조지 오웰의 ‘동물왕국’에는 독재자 돼지 ‘나폴레옹’과 경쟁자 돼지 ‘스노볼’ 등이 나온다. 이름을 가지면 그것들은 더이상 돼지도 고기도 아니다. 시인 김춘수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이름이 중요하다. 옥자는 슈퍼돼지가 아니라 소중한 가족이었다. 후배가 게스트하우스 이름을 지어 달라고 부탁했다. 바닷가 언덕에 위치한 데다 후배가 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해롱당’(海龍堂)이라고 해 줬다. ‘용’(龍)은 ‘언덕 롱’으로 읽기도 하고, 해롱해롱대면서 늘 취한 후배 모습 때문에 그렇게 지었다. 농담으로 말한 거라 잊은 줄 알았는데 후배는 유명인에게 현판 글씨까지 받아 왔다. 글씨도 해롱대는 듯했다. 어쩔 수 없었다. 농담이 현실이 된 것이다. 때로 이름은 주인보다도 이름을 지어 주는 사람에게 더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김정희가 제주 유배지에서 그린 ‘세한도’를 받은 제자가 이상적이다. 그의 부친인 이정직은 몸이 좋지 않았는데 아들의 아명을 ‘약아’(藥兒)라 짓고 수시로 불렀다. 결국은 그 덕분에 “내 병을 고치는 약 같은 아이”라고 했듯이 건강을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이름은 참으로 묘한 힘을 갖고 있다. 요즘 학교 비정규직 차별 철폐 요구가 거세다. 그런데 그들의 요구를 들어보면 정당한 직업에 대한 합당한 대우만큼이나 법적 근거가 있는 호칭으로 통일해서 제대로 불러 달라고 이름의 문제를 매우 중요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대로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 그들의 현실은 다만 차별이고, 해고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당장 피해를 입고 있는 학생들조차도 그들을 응원하고 있는 것이다. 기왕에 그들의 이름을 제대로 지어 주고, 제대로 불러 주도록 하자.
  • 선비의 빈집, 대부의 정원… 마주 앉은 군자의 道

    선비의 빈집, 대부의 정원… 마주 앉은 군자의 道

    ●안동 권씨를 명문가로 발전시킨 권벌의 닭실마을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4대 길지라는 마을들을 꼽았는데, 경주 양동, 안동 하회와 내앞, 그리고 봉화의 닭실이다. 특히 닭실(유곡)마을은 ‘금계포란형’이라 하여, 마을을 감싸는 앞뒤 산이 닭 모양을 하고, 닭알을 품고 있는 형상의 명당이다. 예나 지금이나 집의 가치를 평가하는 최우선 조건은 그 집이 서 있는 위치, 즉 입지이다. 똑같은 크기와 구조의 아파트가 입지에 따라 수십 배 가격 차이가 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학군, 상권, 교통 등 인위적인 조건을 최우선으로 꼽지만, 과거에는 산과 강, 들판과 숲으로 이루어지는 자연 조건이 중요했다. 명당은 경제적 풍요를 가져오고 위대한 인물을 배출한다고 믿었다. 달걀을 품어 금병아리를 부화한다는 믿음대로, 닭실은 이곳에 사는 안동 권씨 가문을 최고의 명문가로 발전시켰다. 이 마을은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사대부 권벌(1478~1548)에서 시작한다. 그가 지은 종가가 실질적인 권씨 가문의 시작이었으며, 대를 이어 후손들의 주거지가 이 마을을 이루었다. 터만 좋다고 명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조상을 받들어 효를 실천하고(봉제사), 손님들을 환대해(접빈객) 사회적 관계망을 이뤄야 한다. 무엇보다 구성원 개개인이 학문을 익히고 인격을 닦아 뛰어난 인물이 돼야 한다.권벌은 종가 옆에 충재라는 서재를 지어 수양공간으로 삼았고, 청암정을 지어 벗들과 교류하는 정원으로 삼았다. 그의 아들인 권동보는 마을 어귀에 큰 규모의 석천정사를 지어 학문 연마와 교육의 장소로 만들었다. 더 나아가 인근에 부친을 모신 삼계서원을 건립해 가문의 학문과 효를 향촌 공동체의 정규 시설로 승화시켰다. 또한 마을의 뒷산, 재궁골에 충재와 그 선대조상을 모신 선산을 마련하고, 묘 아래에재라는 재실을 지었다. 종가와 별당, 선산과 재실, 정사와 서원까지, 명문가와 명문마을이 갖춰야 할 모든 요소를 구비한 것이다. 닭실은 권벌이 터를 세우고 권동보가 완성한, 부자가 대를 이어 발전시킨 마을이다. 닭실마을의 원래 입구는 석천정사가 있는 석천계곡이다. 절경을 이루는 경치와 아늑한 분위기를 가진 환상적인 장소다. 계곡 입구 너럭바위에 한자 초서로 ‘청하동천’이라는 네 글자가 붉은색으로 새겨져 있다. 권벌의 5대손 권두응의 글씨다. ‘청하’란 해지기 직전 반짝 나타나는 맑고 찬란한 푸른 노을을 뜻한다. ‘동천’이란 신선들이 영생을 사는 도교의 이상향이다. “순간의 찬란함을 영원히 지속하는 곳.” 청하동천의 깊은 뜻이기도 하고, 닭실마을의 꿈같은 바람이기도 하다.●사대부의 인격 드러내는 양용삼칸 ‘충재’·팔작지붕 ‘청암정’ 사대부의 ‘사’는 선비이고 ‘대부’는 벼슬아치다. 사로서 고향에 은거하면서 학문을 닦고, 대부로서 세상에 나아가 경륜을 펼쳐 나라를 이롭게 한다. 성리학을 통해 깨달은 진리를 목숨을 걸고 실천하는 지행합일의 인간이 진정한 사대부다. 충재 권벌은 영의정에 추증될 정도의 최고위 관료였고, 진정한 선비로서도 추앙을 받은 인물이다. 연산군의 폭정기간에 무오, 갑자사화로 이미 많은 선비들이 처참하게 피해를 입었다. 사화란 ‘사림지화’, 즉 선비 무리에 대한 박해를 의미한다. 권벌이 30세로 관직에 오른 때는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반정의 이듬해였다. 조광조 등 급진사림파와 반정의 주인공인 훈구파의 대립이 극심하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온건사림인 권벌은 두 세력의 중재를 꾀했으나, 42세 때 기묘사화로 결국 파직을 당한다. 낙향해 터를 잡은 곳이 바로 닭실마을이다. 충재와 청암정을 지은 것도 이때, 14년의 은거생활 중이었다. 1533년 56세에 복직했다가 68세에는 을사사화 때 직언으로 다시 파직당한다. 수난은 끝나지 않았다. 2년 후 이른바 양재역벽서사건에 연루돼 평안도 삭주로 귀양 갔다가 유배지에서 71세 나이로 운명했다. 이 사건은 을사사화의 승자인 집권 소윤세력이 나머지 잠재적 정적들까지 말살하려 조작한 역모사건이었다. 권벌뿐 아니라 이언적, 노수신, 유희춘 등 20여명의 큰 선비들이 화를 입었고, 이들은 후대에 국가적 추앙을 받게 된다. 서재로 지은 충재는 권벌의 인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건물이다. 2칸 온돌과 1칸 마루의 총 3칸, 지붕도 가장 간단한 맞배지붕이다. 선비들은 자신의 거처가 이른바 ‘양용삼칸’, 즉 부엌-방-마루의 3칸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 이상은 과욕이요, 낭비다. ‘비어 있는 집’이라는 이름답게 장식도 일절 없고, 오로지 극히 필요한 것만 갖추었다. 권벌의 호는 충재요, 자는 중허다. 모두 ‘비어 있다’는 뜻이다. 세속적인 욕망을 비워 내야 성리학의 도를 깨우칠 수 있고, 국가적 공익을 담을 수 있다. 권벌은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비어 있는 충재를 지었다. 아무 기교도 없는 것 같지만 문짝 하나의 모양, 부재 하나의 위치도 의미 없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최소의 물질로 만든, 그러나 선비정신으로 가득한 집이다. 반면 바로 뒤의 청암정은 크기나 형태가 대조적이다. 큰 거북모양의 바위 위에 10칸의 丁자형 건물을 얹은 모습이다. 추녀선을 활짝 펼친 팔작지붕에 단청까지 칠한 화려한 정자다. 거북바위 주위로 둥그렇게 인공 수로를 만들었다. 마치 연못 안의 섬에 정자를 세운 모습이 된다. 물 가운데 있는 정자는 ‘사’()라 하여 매우 귀한 정원 건축으로 친다. 보통의 정자는 멋진 바위를 즐기도록 건너편에 짓는데, 이처럼 바위 위에 올라탄 건물은 극히 드물다. 충재는 그토록 소박하게 만들었는데, 청암정은 왜 이런 호사를 부렸을까? 아마도 충재가 선비(사)의 청빈정신을 드러내는 집이라면, 청암정은 관료(대부)의 호연지기를 발하는 집일 것이다. 사와 대부가 사대부의 양면이듯이, 충재와 청암정은 권벌이 가진 두 방향의 정신세계를 표상하는 집이다.●선비의 피서법… “고요하니 시원하고 비워 두니 서늘하다” 공자는 군자의 조건과 즐거움을 논어 첫머리에서 밝혔다.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을 알고, 먼 곳의 친구를 만나는 것을 기뻐하며, 그리고 남이 나를 무시해도 화내지 않는 이가 군자라고 했다. 맹자는 더 나아가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을 더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서재를 마련하고, 친구들과 교우하기 위해 정자를 짓고 정원를 가꾸며, 후학을 기르기 위해 정사와 서원을 세우는 수고는 모두 군자가 되기 위한 투자다. 선비의 궁극적인 롤 모델은 바로 군자이며, 산과 계곡을 거닐며 심신을 수련해 군자가 되려고 평생 노력한다. 이는 곧 선비들의 이상적인 은거생활이었다. 닭실의 충재와 청암정, 석천정사와 삼계서원은 은거생활을 위한 필요충분 시설이었다. 또한 선비는 지역 사회의 지도자로서 용모를 단정하게 하고, 타의 모범이 되도록 조신하게 행동해야 했다. 한여름에도 몇 겹의 옷을 껴입고, 머리에는 갓을 써야 했다. 아무리 정신적인 존재라지만 푹푹 찌는 더위를 어떻게 견뎠을까? 정약용은 ‘소서팔사’에서 8가지 대표적인 선비들의 피서법을 소개했다. ‘대자리 깔고 바둑 두기/소나무 아래서 활쏘기/빈 누각에서 투호놀이/느티나무 그늘에서 그네 타기/연못에서 연꽃 구경하기/숲속에서 매미 소리 듣기/비 오는 날 한시 짓기/달 밝은 밤에 탁족하기.’ 다산이 제시한 피서법은 무언가에 몰입해 더위를 잊는 방법이다. 몰입을 위해서는 우선 좋은 환경이 필요하다. 대자리와 누각 같은 인공 환경, 숲과 계곡 같은 자연환경이 조건이다. 연못의 정원, 누각과 정자와 같은 건물은 더위를 피하기 위한 필수 시설이었다. 권벌은 더운 여름날, 청암정에 올라 시를 짓고, 주변 연못의 연꽃을 바라보며 더위를 잊었을 것이다. 그의 후손들은 석천정사에서 공부하다가, 그 앞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더위를 식혔을 것이다. 맹자가 말했다.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흐리면 발을 씻는다.” 이른바 탁영과 탁족은 선비들의 비교적 적극적인 피서법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너무 소극적이다. 갓과 옷을 벗고 냇물에 온몸을 담그지 않는다. 탁족은 오히려 물이라는 자연을 적극적으로 느끼며 자연에 몰입함으로써 더위를 잊는 방법일 것이다. 몰입은 고요한 가운데 정신을 집중하는 지극히 정적인 활동이다. 중국 시인 백거이는 더위를 쫓는 또 다른 방법을 시로 지었다. “마음이 고요하니 열기 흩어지고, 방안이 텅 비어 서늘함이 감도네.” 고요함은 시원함을 일으키고, 비움은 서늘함을 가져온다. 왜 충재는 비어 있고 청암정은 고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권벌이 잊고 싶었던 것은 더위만은 아니었다. 모략과 배신 따위의 온갖 세속적인 찌꺼기들을 비우고 잊기 위해, 자연 속에서 자기 수양에 몰입했을 것이다. 선비에게 피서법은 곧 은거법이었다.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선비의 빈집, 대부의 정원… 마주 앉은 군자의 道

    선비의 빈집, 대부의 정원… 마주 앉은 군자의 道

    ●안동 권씨를 명문가로 발전시킨 사대부 권벌의 닭실마을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4대 길지라는 마을들을 꼽았는데, 경주 양동, 안동 하회와 내앞, 그리고 봉화의 닭실이다. 특히 닭실(유곡)마을은 ‘금계포란형’이라 하여, 마을을 감싸는 앞뒤 산이 닭 모양을 하고, 닭알을 품고 있는 형상의 명당이다. 예나 지금이나 집의 가치를 평가하는 최우선 조건은 그 집이 서 있는 위치, 즉 입지이다. 똑같은 크기와 구조의 아파트가 입지에 따라 수십 배 가격 차이가 나는 이유이기도 하다.지금이야 학군, 상권, 교통 등 인위적인 조건을 최우선으로 꼽지만, 과거에는 산과 강, 들판과 숲으로 이루어지는 자연 조건이 중요했다. 명당은 경제적 풍요를 가져오고 위대한 인물을 배출한다고 믿었다. 달걀을 품어 금병아리를 부화한다는 믿음대로, 닭실은 이곳에 사는 안동 권씨 가문을 최고의 명문가로 발전시켰다. 이 마을은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사대부 권벌(1478~1548)에서 시작한다. 그가 지은 종가가 실질적인 권씨 가문의 시작이었으며, 대를 이어 후손들의 주거지가 이 마을을 이루었다. 터만 좋다고 명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조상을 받들어 효를 실천하고(봉제사), 손님들을 환대해(접빈객) 사회적 관계망을 이뤄야 한다. 무엇보다 구성원 개개인이 학문을 익히고 인격을 닦아 뛰어난 인물이 돼야 한다. 권벌은 종가 옆에 충재라는 서재를 지어 수양공간으로 삼았고, 청암정을 지어 벗들과 교류하는 정원으로 삼았다. 그의 아들인 권동보는 마을 어귀에 큰 규모의 석천정사를 지어 학문 연마와 교육의 장소로 만들었다. 더 나아가 인근에 부친을 모신 삼계서원을 건립해 가문의 학문과 효를 향촌 공동체의 정규 시설로 승화시켰다. 또한 마을의 뒷산, 재궁골에 충재와 그 선대조상을 모신 선산을 마련하고, 묘 아래에 추원재라는 재실을 지었다. 종가와 별당, 선산과 재실, 정사와 서원까지, 명문가와 명문마을이 갖춰야 할 모든 요소를 구비한 것이다. 닭실은 권벌이 터를 세우고 권동보가 완성한, 부자가 대를 이어 발전시킨 마을이다. 닭실마을의 원래 입구는 석천정사가 있는 석천계곡이다. 절경을 이루는 경치와 아늑한 분위기를 가진 환상적인 장소다. 계곡 입구 너럭바위에 한자 초서로 ‘청하동천’이라는 네 글자가 붉은색으로 새겨져 있다. 권벌의 5대손 권두응의 글씨다. ‘청하’란 해지기 직전 반짝 나타나는 맑고 찬란한 푸른 노을을 뜻한다. ‘동천’이란 신선들이 영생을 사는 도교의 이상향이다. “순간의 찬란함을 영원히 지속하는 곳.” 청하동천의 깊은 뜻이기도 하고, 닭실마을의 꿈같은 바람이기도 하다. ●권벌의 인격을 드러내는 양용삼칸 ‘충재’·팔작지붕 ‘청암정’ 사대부의 ‘사’는 선비이고 ‘대부’는 벼슬아치다. 사로서 고향에 은거하면서 학문을 닦고, 대부로서 세상에 나아가 경륜을 펼쳐 나라를 이롭게 한다. 성리학을 통해 깨달은 진리를 목숨을 걸고 실천하는 지행합일의 인간이 진정한 사대부다. 충재 권벌은 영의정에 추증될 정도의 최고위 관료였고, 진정한 선비로서도 추앙을 받은 인물이다. 연산군의 폭정기간에 무오, 갑자사화로 이미 많은 선비들이 처참하게 피해를 입었다. 사화란 ‘사림지화’, 즉 선비 무리에 대한 박해를 의미한다. 권벌이 30세로 관직에 오른 때는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반정의 이듬해였다. 조광조 등 급진사림파와 반정의 주인공인 훈구파의 대립이 극심하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온건사림인 권벌은 두 세력의 중재를 꾀했으나, 42세 때 기묘사화로 결국 파직을 당한다. 낙향해 터를 잡은 곳이 바로 닭실마을이다. 충재와 청암정을 지은 것도 이때, 14년의 은거생활 중이었다. 1533년 56세에 복직했다가 68세에는 을사사화 때 직언으로 다시 파직당한다. 수난은 끝나지 않았다. 2년 후 이른바 양재역벽서사건에 연루돼 평안도 삭주로 귀양 갔다가 유배지에서 71세 나이로 운명했다. 이 사건은 을사사화의 승자인 집권 소윤세력이 나머지 잠재적 정적들까지 말살하려 조작한 역모사건이었다. 권벌뿐 아니라 이언적, 노수신, 유희춘 등 20여명의 큰 선비들이 화를 입었고, 이들은 후대에 국가적 추앙을 받게 된다. 서재로 지은 충재는 권벌의 인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건물이다. 2칸 온돌과 1칸 마루의 총 3칸, 지붕도 가장 간단한 맞배지붕이다. 선비들은 자신의 거처가 이른바 ‘양용삼칸’, 즉 부엌-방-마루의 3칸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 이상은 과욕이요, 낭비다. ‘비어 있는 집’이라는 이름답게 장식도 일절 없고, 오로지 극히 필요한 것만 갖추었다. 권벌의 호는 충재요, 자는 중허다. 모두 ‘비어 있다’는 뜻이다. 세속적인 욕망을 비워 내야 성리학의 도를 깨우칠 수 있고, 국가적 공익을 담을 수 있다. 권벌은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비어 있는 충재를 지었다. 아무 기교도 없는 것 같지만 문짝 하나의 모양, 부재 하나의 위치도 의미 없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최소의 물질로 만든, 그러나 선비정신으로 가득한 집이다. 반면 바로 뒤의 청암정은 크기나 형태가 대조적이다. 큰 거북모양의 바위 위에 10칸의 丁자형 건물을 얹은 모습이다. 추녀선을 활짝 펼친 팔작지붕에 단청까지 칠한 화려한 정자다. 거북바위 주위로 둥그렇게 인공 수로를 만들었다. 마치 연못 안의 섬에 정자를 세운 모습이 된다. 물 가운데 있는 정자는 ‘사’()라 하여 매우 귀한 정원 건축으로 친다. 보통의 정자는 멋진 바위를 즐기도록 건너편에 짓는데, 이처럼 바위 위에 올라탄 건물은 극히 드물다. 충재는 그토록 소박하게 만들었는데, 청암정은 왜 이런 호사를 부렸을까? 아마도 충재가 선비(사)의 청빈정신을 드러내는 집이라면, 청암정은 관료(대부)의 호연지기를 발하는 집일 것이다. 사와 대부가 사대부의 양면이듯이, 충재와 청암정은 권벌이 가진 두 방향의 정신세계를 표상하는 집이다.●선비의 피서법… “고요하니 시원하고 비워 두니 서늘하다” 공자는 군자의 조건과 즐거움을 논어 첫머리에서 밝혔다.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을 알고, 먼 곳의 친구를 만나는 것을 기뻐하며, 그리고 남이 나를 무시해도 화내지 않는 이가 군자라고 했다. 맹자는 더 나아가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을 더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서재를 마련하고, 친구들과 교우하기 위해 정자를 짓고 정원를 가꾸며, 후학을 기르기 위해 정사와 서원을 세우는 수고는 모두 군자가 되기 위한 투자다. 선비의 궁극적인 롤 모델은 바로 군자이며, 산과 계곡을 거닐며 심신을 수련해 군자가 되려고 평생 노력한다. 이는 곧 선비들의 이상적인 은거생활이었다. 닭실의 충재와 청암정, 석천정사와 삼계서원은 은거생활을 위한 필요충분 시설이었다. 또한 선비는 지역 사회의 지도자로서 용모를 단정하게 하고, 타의 모범이 되도록 조신하게 행동해야 했다. 한여름에도 몇 겹의 옷을 껴입고, 머리에는 갓을 써야 했다. 아무리 정신적인 존재라지만 푹푹 찌는 더위를 어떻게 견뎠을까? 정약용은 ‘소서팔사’에서 8가지 대표적인 선비들의 피서법을 소개했다. ‘대자리 깔고 바둑 두기/소나무 아래서 활쏘기/빈 누각에서 투호놀이/느티나무 그늘에서 그네 타기/연못에서 연꽃 구경하기/숲속에서 매미 소리 듣기/비 오는 날 한시 짓기/달 밝은 밤에 탁족하기.’ 다산이 제시한 피서법은 무언가에 몰입해 더위를 잊는 방법이다. 몰입을 위해서는 우선 좋은 환경이 필요하다. 대자리와 누각 같은 인공 환경, 숲과 계곡 같은 자연환경이 조건이다. 연못의 정원, 누각과 정자와 같은 건물은 더위를 피하기 위한 필수 시설이었다. 권벌은 더운 여름날, 청암정에 올라 시를 짓고, 주변 연못의 연꽃을 바라보며 더위를 잊었을 것이다. 그의 후손들은 석천정사에서 공부하다가, 그 앞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더위를 식혔을 것이다. 맹자가 말했다.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흐리면 발을 씻는다.” 이른바 탁영과 탁족은 선비들의 비교적 적극적인 피서법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너무 소극적이다. 갓과 옷을 벗고 냇물에 온몸을 담그지 않는다. 탁족은 오히려 물이라는 자연을 적극적으로 느끼며 자연에 몰입함으로써 더위를 잊는 방법일 것이다. 몰입은 고요한 가운데 정신을 집중하는 지극히 정적인 활동이다. 중국 시인 백거이는 더위를 쫓는 또 다른 방법을 시로 지었다. “마음이 고요하니 열기 흩어지고, 방안이 텅 비어 서늘함이 감도네.” 고요함은 시원함을 일으키고, 비움은 서늘함을 가져온다. 왜 충재는 비어 있고 청암정은 고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권벌이 잊고 싶었던 것은 더위만은 아니었다. 모략과 배신 따위의 온갖 세속적인 찌꺼기들을 비우고 잊기 위해, 자연 속에서 자기 수양에 몰입했을 것이다. 선비에게 피서법은 곧 은거법이었다.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금요칼럼] 사라진 진리공동체/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금요칼럼] 사라진 진리공동체/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조선 시대의 스승과 제자는 생사를 함께하였다. 성종 이후 조정에 진출한 김종직과 그의 제자들만 해도 영락없이 그랬다. 연산군 때 무오사화와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그들은 중형을 받았다. 이미 사망한 스승 김종직은 무덤을 파헤쳐 작두로 관이 잘리는 부관참시의 형벌을 받았다. 그의 여러 제자는 사약을 마시고 세상을 떠났다. 요행히 살아남았다 해도, 먼 변방으로 기약 없는 유배를 떠났다. 이후 수세기 동안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 시절의 스승과 제자란 기껏해야 전문지식이나 주고받는 싱거운 사이가 아니었다. 그들은 죽기까지 학문적 이상을 공유했다. 사제 간의 굳은 결속 때문에 조선 후기에는 당쟁이 더욱 격화된 점도 없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냉소적으로만 볼 일이 아니다. 진리공동체에 속한 선비들은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법이 없었다. 말이 너무 비장해진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선비가 사는 방식에는 각별한 점이 있었다. 그 시절 누군가의 스승 또는 제자가 된다는 것은 가벼운 결정이 아니었다. 생사를 초월한 결단이 있어야 했다. 한날한시에 뼈를 묻기로 결심하였을 때에만 남의 스승도 되고 제자도 되었으니 말이다. 조선의 사제관계는 세계사적 시각에도 대단히 독특하였다. 그것은 서양 중세의 기사단이나 일본의 사무라이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사무라이와 기사들은 단순히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하였을 뿐이다. 그들은 진리를 공유하는 집단이 아니었다. 18세기 이후 근대 시민사회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영국과 프랑스의 계몽 사상가들도 조선의 선비들처럼 끈끈한 내적 결속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럼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어떠한가. 최근에는 저명한 대학교수가 거액의 연구비를 사적으로 횡령하는 사건이 적발되었다. 일일이 언급하기에는 너무도 낯 뜨거운 교육 적폐가 도처에 쌓여 있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교육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개인의 출세와 치부를 보장하기 위한 합법적 수단일 뿐이다. 많은 시민이 그렇게 비판한다. 사람들은 입만 열면 공교육의 폐해를 지적하고, 사교육 시장의 과도한 열기를 비난한다. 대학 교육도 별로이다. 애써 일류대학에 진학하면 훌륭한 인재가 되어 졸업하는가? 아니라면, 풍부한 교양을 갖춘 미래 시민으로 자라나기라도 하는가? 한국의 대학은 유난히 무능하고 비효율적이라고들 한다. 애초 학문 후속 세대를 양성하겠다며 시작된 ‘강사법’ 하나만 보아도 그러하다. 여러 차례 왜곡과 개악을 거쳐 마지막에는 입법 취지가 무색한 악법이 되고 말았다. 이 법의 수혜자여야 할 강사들도, 대학도 하나같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교육은 국가의 100년 대계(大計)라는 제법 그럴 듯한 명제가 있었다. 이미 진부해진 쓸모없는 말이다. 과거 수십년 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계는 시류에 떠밀리듯 서둘러 ‘개혁’을 되풀이했다. 당국은 줄곧 개선을 주장했으나 시민들로서는 개악으로 끝나지 않은 적이 없다. 기본에 충실한 학교, 공동체의 미래를 함께 숙고하는 교육을 실시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그러나 교육의 사명이 거기에 있다면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이다. 옛날의 선비들은 교육에 꿈과 희망을 걸었다. 운이 나빠 정치적 풍파에 휩쓸리기라도 하면 스승과 제자들이 한꺼번에 극형을 당하였다. 그래도 그들은 진리를 향한 힘찬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내 한 몸의 편안함과 부귀영화보다는 몇 갑절 귀한 가치가 존재한다는 강한 신념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현재적 관점에서 보면, 그들의 지식은 여러모로 많이 부족하였다. 그럼에도 그들의 진리공동체가 사라지고만 지금, 세상이 더욱 삭막해진 것은 ?까.
  • 양평 세미원 ‘경기도 제1호 정원‘ 등록

    양평 세미원 ‘경기도 제1호 정원‘ 등록

    경기 양평 세미원(洗美苑)이 ‘경기도 제1호 지방정원’으로 등록됐다. 양평군은 27일 ‘지방정원 1호’라는 상징성과 함께 향후 경기도의 재정지원이 가능해져 브랜드 가치 상승과 관광객 증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 조성된 세미원은 양평군 출연기관으로, 양평부군수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2004년 두물머리 20만 7587㎡ 부지에 문을 연 세미원은 ‘물과 꽃의 정원’을 뜻한다.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觀水洗心),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觀花美心)’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미원에는 각종 연꽃을 비롯해 수생·초본·목본식물 270여종이 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유배생활 중에 제자 이상적 선생에게 그려준 세한도를 정원으로 꾸민 세한정, 배를 여러 척 이은 배다리 열수주교(烈水舟橋)도 볼만하다. 정동균 군수는 “환경교육센터로서의 역할은 물론 정원박람회와 같은 다양한 규모있는 행사 개최가 가능해졌으며 향후 국가정원 등록을 위한 자격 요건도 확보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남해군 신청사 2021년 착공해 2022년 준공 계획

    남해군 신청사 2021년 착공해 2022년 준공 계획

    경남 남해군은 18일 군청을 새로 짓기 위해 청사 신축추진위원회 구성해 첫 회의를 열고 본격적으로 청사 건립 후보지 선정 업무에 들어갔다고 밝혔다.군은 이날 오전 군청 회의실에서 장충남 군수와 청사신축 추진위원 25명이 참석한 가운데 청사신축 추진위원회를 열었다. 청사신축추진위원회는 위원장인 노영식 부군수를 비롯해 당연직 위원 8명, 군의원 3명, 주민대표 10명, 언론인 3명, 대학교수 1명 등으로 구성됐다. 위원들은 이날 회의에서 군으로 부터 남해군 공공기관 이전 및 장기발전 구상안, 대상지 검토결과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토론을 진행했다. 군과 청사추진위는 앞으로 전문가 토론과 좌담회 등 다양한 방식의 토론을 거쳐 올해 안에 청사 후보지를 선정할 계획이다. 청사신축추진위에서 검토·토론을 통해 의견을 모아 청사건립 후보지를 단수 또는 복수로 군수에게 추천하면 군수는 올해안에 후보지 1곳을 군의회 동의를 받아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현재 신청사 건립 후보지로 검토되고 있는 곳은 남해읍내 모두 8곳이다. 현재 군청 자리를 비롯해 남해유배문학관 부지, 공설운동장 부지, 건물이 낡고 오래돼 안전진단에서 안전위험 등급 판정이 내려진 남해초등학교 자리, 한국전력 남해지사 근처, 남해군 보건소, 봉영산 자락, 남해중학교 동편 등이다. 군은 청사 후보지가 결정되면 타당성 검토와 투자심사 등 추가적인 행정절차를 2020년까지 완료하고 2021년 착공해 2022년 준공한 뒤 2023년부터 새 청사에서 군정 업무를 시작할 계획이다. 군에 따르면 지금 군청은 1959년 개청해 건물이 오래돼 낡은 데다 부지가 좁아 주차 공간도 부족해 민원인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장 군수는 “군청사를 제대로 짓기 위해서는 장소뿐 아니라 공간 구성과 활용도 등 모든 측면에서 심도 있는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며 “각계각층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추진위원들께서 군민 의견을 잘 수렴해 공익적 관점에서 좋은 의견을 제시해 달라”고 말했다. 남해군은 지난 3월 ‘남해군 청사신축 추진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입법예고를 시작으로 5월 조례규칙심의회, 6월 군의회 심의·의결을 통해 추진위원회 구성·운영을 위한 법적 근거와 절차적 정당성을 마련됐다. 군은 청사신축에 대한 주민 의견 수렴을 위해 5개 분과별 군민소통위원회, 10개 읍·면을 순회한 군민과의 대화, 경제살리기 위원회 등 다양한 소통 채널을 통해 그동안 군민 의견을 수렴했다고 밝혔다. 군은 다른 지자체 신축 청사와 부속시설 등도 둘러보고, 그동안 거론됐던 후보 대상지에 대한 사업비 산출, 지질조사 등 다각도로 부지 검토 작업을 했다고 덧붙였다. 남해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양진건 유배의 뒤안길] 생강으로 정치를 생각하다

    [양진건 유배의 뒤안길] 생강으로 정치를 생각하다

    실낱같은 목숨을 “차, 생강, 막걸리 따위로 겨우 부지해 간다”(茶薑紅麯與相依)고 제주 유배인 김정희는 말했다. 그는 이 가운데 특히 생강을 적극적으로 먹었던 것 같다. 가장 좋은 반찬으로 “두부, 오이, 생강, 나물”(大烹豆腐瓜薑菜)을 꼽았던 것만 보아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김정희는 비교적 장수를 했다. 송시열도 제주도에 유배를 와서 생강 농사를 지었다. 1772년에 세워진 유허비에 보면 “하루는 지팡이를 들고 뜰을 둘러보고 빈 땅에 손수 생강을 심었다”고 했다. 이제 곧 사약을 먹고 죽게 될 사람이 왜 생강을 심었는지 모르겠다. 포항에서 유배살이할 때도 “뜰 앞에 작은 채소밭을 만들어 놓고 밭 가운데 생강을 심었다”고 했다. 이처럼 생강을 중시했다. 물론 그 덕분인지 그도 장수를 했다. 생강이 몸에 좋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효능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귀중하고 소중한 식재료이자 약재임이 분명하다. 필자도 생강차는 물론 꿀에 잰 생강절편을 좋아한다. 특히 막걸리를 사 가면 안주로 어머니가 만들어 내놓으시는 생강김치야말로 최고의 별미다. 생강 맛의 기묘한 탄산음료도 있다지만 아직 마셔 보진 못했다. 해로움보다 이로움이 많은 것이 생강이다. 그런데 김정희나 송시열이 생강을 좋아한 것이 비단 건강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화합할 줄 알며, 자기 색을 잃지 않는 생강이 되라”고 했던 이율곡의 충고처럼 자기 향과 맛을 강하게 갖고 있으면서도, 다른 음식들을 만나면 과감히 화합해서 새로운 맛과 향을 만들어 내는 그런 ‘생강 같은 삶’을 살고자 했기 때문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자기의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남들과 과감히 화합할 줄 아는 삶. 바로 그것이 ‘생강 같은 삶’이다. 결코 쉽지 않은 삶이다. 이런 점에서 김정희는 성공했다. 그의 유배생활을 필자는 한마디로 “추사는 불행했지만 제주는 행복했다”고 정리한다. 그는 불행한 유배인이었지만 유배지 주민들과 잘 어울리고, 그들을 제자로 삼아 격려하고 가르쳐 준 덕분에 제주는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삶을 살면서 자기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문제는 자기도 행복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지 못한 경우다. 최근의 우리 정치권이 그렇다. 여야가 정면충돌하면서 국회 파행이 장기화되고 있다. 자기 당에 대한 고집과 막말로 화합이 전혀 안 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도 전혀 행복하지 못한 상황이다. “화합할 줄 알며, 자기 색을 잃지 않는 생강이 되라”던 충고가 새삼스럽다. 우스개일지 모르지만 정치권 양반들은 생강을 먹어 본 적이 없는 게 확실하다. 그렇다면 국회 식당의 요리사가 문제다. 생강의 인문학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국회 파행을 지켜보면서 절묘한 생강 요리로 국회의원들을 부끄럽게 만들었어야 했다. 어쩌면 그런 노력을 했지만 실패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우리 국회는 생강 요리 하나로 회복되기에는 이미 살벌한 투쟁장으로 변한 지 오래기 때문이다. 생강의 힘은 조화의 힘이다. 단순히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고 친하게 지내는 것만이 조화가 아니다. 대종교의 논리를 빌리자면 조화하지 못한다는 것은 창조의 원리를 어기는 것이고, 파탄의 길을 가는 것이다. 조화야말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장수하게 하는 묘수다. 과감히 조화하지 못하면 제주 유배인 최익현의 지적처럼 “이욕(利欲)이 넘쳐 나고, 의리가 어두워져 밤낮으로 괴이한 데로만 치달리고, 예의와 염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돼 결국 모두가 파국을 맞게 된다. 모쪼록 생강을 통해 정치를 생각해 보자.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