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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근묵(槿墨)/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근묵(槿墨)/서동철 논설위원

    조선 후기 중인들의 과거시험인 한어(漢語), 곧 중국어 역과(譯科)는 흔히 대과로 불리는 문과(文科)만큼이나 어려웠다. 경제력이 있는 역관 집안에서는 분야별로 당대 최고 실력자를 2~3명씩 초빙해 전담 공부방인 가숙(家塾)을 설치했다. 개화사상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오경석 집안도 그랬다. 아들 오세창이 1871년 8세가 되자 가숙을 만들어 과거를 준비시켰고, 16세인 1879년 합격시켰다. 오경석도 이런 과정을 거쳤다. 그의 아버지는 역관의 최고 지위인 정3품 사역원 정(正)을 역임한 오응현이다. 해주 오씨는 오지항부터 오세창까지 8대 역관 집안이 됐다. 이들이 사상과 문화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새로운 문물을 접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일찍부터 높은 수준의 교양을 쌓은 것도 역할을 했을 것이다. 오경석만 해도 우선 이상적에게 한어와 서화를 배웠고, 초정 박제가와 실학을 공부했다. 이상적은 제주에 유배된 추사 김정희에게 중국 서책을 전해 주곤 했던 인물이다. 의리를 저버리지 않은 제자에 대한 추사의 보답이 유명한 ‘세한도’(歲寒圖)다. 변혁의 시대, 위창(葦滄) 오세창(1864~1953)은 역관에 머물지 않았다. 1886년 박문국 주사로 한성순보 기자를 겸했고, 1894년 군국기무처 총재비서관이 됐다. 갑신정변에 연루되면서 1897년엔 도쿄외국어학교에 조선어 교사로 체류하기도 했다. 이후 만세보와 대한민보 사장을 지냈다. 3·1운동 때는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옥고를 치렀다. 이런 개화사상가와 독립운동가ㆍ언론인 경력이 광복 이후 서울신문 초대 사장에 오른 배경이 됐을 것이다. 위창은 서화 연구가로 더욱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오늘날 삼국시대 이후 서화가 기록을 한데 모은 ‘근역서화징’(槿域書畫徵), 소장 자료를 글씨와 그림으로 각각 묶은 ‘근역서휘’(槿域書彙)와 ‘근역화휘’(槿域畫彙), 인장 자료를 집성한 ‘근역인수’(槿域印藪)를 참고하지 않으면 사화 연구는 불가능하다. 이런 위창의 ‘근묵’(槿墨)이 지난주 보물로 지정예고됐다. 정몽주 이후 근대까지 1136명의 필적이 수록된 국내 최대 분량의 서첩이다. 위창이 우리나라를 뜻하는 무궁화 근(槿) 자 돌림으로 자료 이름을 붙인 것에도 깊은 뜻이 느껴진다.
  • ‘바다없는 영산포’가 숙성 홍어 성지됐을까?

    ‘바다없는 영산포’가 숙성 홍어 성지됐을까?

    “600년 전통 이어온 영산포 알싸한 홍어 맛보러 오이소~” 바다와 멀리 떨어진 영산강내륙에 위치한 영산포가 국내 숙성홍어 성지가 된 비결이 밝혀진다. 600년 전통의 코끝 톡 쏘는 삭힌 홍어 숙성에 담긴 비밀이 공개된다. 3일 나주시에 따르면 오는 5~7일 나주시 영산포 홍어의 거리에서 펼쳐지는 ‘영산포 홍어축제’가 열린다. 나주지역 최장수 축제로 19회 째를 맞은 영산포 홍어축제는 ‘홍어 맛보러 오소~’라는 주제로 600년 전통의 영산포 홍어 만이 가진 ‘삭힘의 미학’을 볼거리와 먹거리, 즐길 거리가 풍성하다. 남도 잔칫상에만 올랐던 숙성 홍어는 이제 영산포를 상징하는 대표 특산물로 전국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어린이날 황금 연휴를 맞아 ‘막힌 코가 뻥 뚫리는 알싸한 그 맛’을 현지에서 맛보기 위한 전국 각지의 홍어 매니아들이 숙성 홍어의 본고장 나주 영산포로 향할 채비를 마쳤다. ▒ 숙성 홍어, 왜 영산포인가?영산포 숙성 홍어는 600년의 오랜 전통과 세월을 이어오고 있다. 삭힌 홍어의 역사와 유래는 홍어 맛과 요리만큼이나 독특하고 다양한 설이 전해져온다. 조선 중종 25년 관찬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고려말 남해안 지역에 왜구의 노략질로 흑산도 인근 영산도 사람들이 영산포로 피난을 오게 됐고 그때부터 이 지역에서 삭힌 홍어를 먹게 됐다고 전해온다. 당시 영산도에서 영산포까지 오는 데는 뱃길로 보름 정도 걸렸다. 도착하고 보니 배에 싣고 온 생선들이 부패가 심해 버렸는데 유독 항아리 속에서 폭 삭은 홍어만큼은 먹어도 뒤탈이 없었다. 그런데다 먹을수록 알싸한 풍미가 있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다. 1970년대 영산강 하굿둑 공사로 바다 물길이 막히기 전까지 흑산도, 대청도 근해에서 잡힌 홍어의 내륙 종착점은 영산포구였다. 싱싱한 해산물을 선호하는 연안 지역 혹은 항구에서는 오래되거나 썩은 홍어에 대한 수요가 많지 않았기에 홍어 배들은 영산포를 기착지 삼아 홍어를 대량으로 싣고 들어와 장사를 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그 시절 지금처럼 냉장 시설이 없어 홍어를 항아리에 담아 저온으로 숙성시켜 먹는 조리법이 생겨났다. 그 맛을 본 사람들이 조리법을 연구하고 발전시켜오면서 지금의 영산포 숙성 홍어로 명맥이 이어져 오고 있다. ▒ 영산포 숙성 홍어의 비결과 효능조선시대 정약전(1758∼1816)이 흑산도 유배생활 중 집필한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는 ‘나주 가까운 고을에 사는 사람들은 삭힌 홍어를 즐겨하는데 지방에 따라 기호가 다르다’고 하면서 나주인들과 숙성 홍어의 긴 인연을 소개하고 있다. 수많은 음식이 차려진 남도 잔치상에도 ‘홍어가 없는 잔치는 잔치가 아니다’라는 말이 전해져올 정도로 숙성 홍어는 남도의 대표 음식으로 꼽힌다.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영산포 홍어는 차별화된 숙성방식에서 오는 맛의 깊이와 효능에서 최고로 친다. 숙성 방법은 약간씩 각각의 차이가 있지만 전통적으로 추운 겨울에는 구들장 아랫목에 삭힌다. 봄철에는 항아리에 먼저 짚을 넣고 그 위에 홍어를 올린 다음 다시 짚을 넣어 삭혀서 먹는 것이 보편적이다. 특히 당시는 냉장 시설이 없어 홍어를 항아리에 담아 저온으로 숙성시켜 먹는 조리법이 생겨났다. 그 맛을 본 사람들이 조리법을 연구하고 발전시켜오면서 지금의 ‘명품 영산포 숙성 홍어’가 탄생했다. 숙성 홍어는 많이 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 음식이다. 항암·다이어트·피부미용·산후조리·관절건강 등에도 탁월한 보양식으로도 알려져 있다. 자산어보에선 ‘배에 복통이 있는 사람은 삭힌 홍어로 국(홍어애국)을 끓여 먹으면 더러운 것이 제거된다’, ‘이 국은 술기운을 없애주는 데 매우 효과가 있다’며 삭힌 홍어의 효용을 서술하고 있다. 호불호가 갈리지만 숙성홍어를 애호하는 미식가들은 홍어를 ‘맛의 혁명’, ‘삭힘의 미학’, ‘발효 과학이 탄생시킨 바다의 귀물’이라고 극찬하기도 한다. 윤병태 나주시장은 “어린이날 황금연휴를 맞아 ‘막힌 코가 뻥 뚫리는 알싸한 숙성홍어 맛’을 영산포 현지에서 맛보시길 권유한다”며 “전국 각지의 홍어 마니아 여러분을 영산포로 자신 있게 초대한다”고 말했다.
  • ‘비운의 왕’ 4년만에 다시 만난다

    ‘비운의 왕’ 4년만에 다시 만난다

    강원 영월 단종문화제가 4년 만에 대면 행사로 열린다. 단종문화제는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2020년 취소됐고, 2021년과 2022년엔 비대면으로 치러졌다. 영월군은 오는 28일부터 30일까지 사흘간 영월읍 장릉과 동강 둔치, 문화예술회관 등에서 제56회 단종문화제를 개최한다고 26일 밝혔다. 단종문화제는 조선 6대 임금인 단종의 고혼과 충신들의 넋을 축제로 승화시킨 영월의 대표 역사문화축제다. 단종은 1452년 12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지만 1455년 숙부인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병자옥사를 거치면서 영월 청령포로 유배돼 관풍헌에서 죽임을 당했다. 단종은 1698년(숙종 24년) 왕으로 복위됐고, 묘호는 단종, 능호는 장릉이라고 정했다. 장릉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왕릉 40기 가운데 하나로 영월읍 영흥리에 위치했다. 축제 첫날인 28일에는 단종의 부인인 정순왕후 선발대회와 개막식, 불꽃놀이 등이 진행된다. 정순왕후는 단종과 이별 뒤 평생 단종을 그리며 비단 염색으로 82살까지 자신의 생계를 책임졌던 강인한 여성으로 전해졌다. 개막식에서는 양지은, 설하윤, 유지광, 이도진, 조영구 등이 무대에 오른다. 둘째 날인 29일은 단종제향과 딘종국장 재현, 드론 라이쇼 등으로 꾸며진다. 마지막 날인 30일에는 영월의 대표 민속놀이인 칡줄다리기와 칡줄 행렬이 펼쳐진다. 칡줄다리기는 칡으로 만든 줄을 양쪽에서 마주 잡고 힘을 겨루는 놀이다. 국가표준영정 제100호로 지정된 단종어진을 축제장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는 단종어진 전시, 단종 유배길을 체험하는 ‘단종과 놀러와’ 등의 이벤트도 마련돼 있다. 최명서 영월군수는 “4년 만에 다시 찾아온 영월의 봄을 표현하는 축제가 될 것”이라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역사교육체험축제를 더욱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 [내려다봄] 발길 사로잡는 백사마을 산수유

    [내려다봄] 발길 사로잡는 백사마을 산수유

    [내려다봄] 하늘을 나는 새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서울신문 멀티미디어부의 연재물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백사마을은 해마다 3월 말이면 이면 싹을 틔운 산수유 꽃을 관람하기 위해 수십만의 상춘객이 찾는다. 도립리를 중심으로 인근 마을에 걸쳐 넓게 퍼져있는 산수유 군락지에서 산수유나무가 일제히 꽃망울 떠뜨리며 마을을 노랗게 물들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거대한 군락지와 함께 버무려진 마을이 제공하는 이채로운 풍광은 겨우내 움츠려 있던 나들이객을 발길을 이곳으로 사로잡기에 충분하다.도립리를 비롯해 인근의 경사리, 송말리 등에 퍼져있는 어린 묘목부터 고목까지 산수유나무를 모두 합치면 약 1만 7000여 그루에 이룬다. 산수유의 수령 또한 가장 오래된 것은 약 500년으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데 그 역사를 따라가보면 그 중심에는 도립리 한가운데 자리 잡은 작은 정자 육괴정이 있다.조선 중종 14년 기묘사화로 조광조가 유배길에 오르면서 그를 따르던 많은 사림파가 낙향을 하는데 그중 남당 엄용순을 비롯한 몇몇 선비들이 모여 도립리에 정자를 짓고 나무를 심으면서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바로 그때 만든 정자가 지금 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육괴정이며 그때 심었던 산수유나무가 지금의 군락을 이루게 됐다.이 산수유꽃을 주제로 한 이천 백사마을 산수유꽃축제는 2000년에 처음 축제가 열렸다. 올해로 23년째를 맞이하며 전남 구례의 상동마을, 경기도 영평군의 개군 내리마을과 함께 대표적인 3대 산수유마을로 자리 잡았다. 올해 축제는 길놀이, 관악 공연, 산수유꽃예술단 공연, 댄스 공연, 노래자랑 대회, 사물놀이 공연, 산수유 사진전, 백일장, 사생 대회 등의 다양한 부대행사가 함께 열렸다.
  • ‘비운의 왕’ 기린다…영월 단종문화제, 내달 28일 개막

    ‘비운의 왕’ 기린다…영월 단종문화제, 내달 28일 개막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숙부에게 죽임을 당한 ‘비운의 왕’ 단종을 기리는 강원 영월 단종문화제가 4년 만에 전면 대면 행사로 열린다. 강원도 영월문화관광재단은 단종문화제를 다음 달 28일부터 30일까지 사흘간 영월읍 일원에서 개최한다고 19일 밝혔다. 단종문화제는 조선 6대 임금인 단종의 고혼과 충신들의 넋을 축제로 승화시킨 영월의 대표적인 역사문화축제다. 단종은 1452년 12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지만 1455년 숙부인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병자옥사를 거치면서 영월 청령포로 유배돼 관풍헌에서 죽임을 당했다. 단종은 1698년(숙종 24년) 왕으로 복위됐고, 묘호는 단종, 능호는 장릉이라고 했다. 영월읍 영흥리에 위치한 장릉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왕릉 40기 가운데 하나다. 영월 주민들은 단종이 승하한 뒤부터 장릉 제례와 국장 재현 등의 행사를 가지며 단종을 기리고 있다. ‘다시 찾아온 영월의 봄’을 주제로 한 올해 단종문화제에서는 전시와 공연, 체험 등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정순왕후는 단종과 이별 뒤 평생 단종을 그리며 비단 염색으로 82살까지 자신의 생계를 책임졌던 강인한 여성으로 알려졌다. 축제 첫날인 28일 정순왕후 선발대회와 개막식, 불꽃놀이 등이 진행된다. 개막식에는 양지은, 설하윤, 유지광, 이도진, 조영구 등이 출연한다. 둘째 날인 29일 단종 제향과 국장 재현, 드론 라이트쇼가 벌어지고, 마지막 날인 30일에는 칡줄행렬과 칡줄다리기 등이 예정돼 있다. 이외에도 국가표준영정 제100호로 지정된 단종 어진 전시와 단종 유배길 체험 등도 진행된다. 영월문화관광재단 관계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역사교육체험축제를 더욱 가까이에서 느껴보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혼인 건수, 4년째 역대 최저…초혼연령은 男 34세·女 31세 ‘역대 최고’

    혼인 건수, 4년째 역대 최저…초혼연령은 男 34세·女 31세 ‘역대 최고’

    지난해 혼인건수가 1년 전보다 감소하며 또 역대 최저를 갈아치웠다. 남녀의 초혼 연령은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높았다. 16일 통계청은 전국의 시·구청 등에 신고된 혼인신고서와 이혼신고서를 바탕으로 ‘2022년 혼인·이혼 통계’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건수는 2021년(19만 2500건)보다 0.4%(800건) 줄어든 19만 1700건이었다. 이는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70년 이후 가장 적은 수치다. 혼인 건수는 2012년부터 11년째 감소 중이다. 2019년부터는 4년째 역대 최소치를 경신하고 있다. 1996년(43만 5000건)만 하더라도 40만건대에 달하던 혼인 건수는 1997년(38만 9000건)에 30만건대로 내려왔고 2016년(28만 2000건)에 20만건대, 2021년에 10만건대로 내려앉았다. 1997년과 비교하면 반토막이 난 수준이다.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인 조혼인율은 1년 전보다 0.1건 줄어든 3.7건이었다. 이 또한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이후 역대 최저치다.통계청 임영일 인구동향과장은 “25∼49세 연령 인구가 계속 줄어 인구 구조적인 측면에서 혼인 건수가 감소하는 부분이 있다”며 “혼인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도 감소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혼인 감소가 향후 출생률 감소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시도별로 보면 조혼인율은 세종(4.4건), 제주(4.0건), 경기(4.0건) 등의 순으로 높고 전북(3.0건), 경북(3.1건), 대구(3.2건) 순으로 낮았다. 초혼연령 남자 34세·여자 31세…20대 후반 결혼 비율 줄어 지난해 평균 초혼 연령은 남자가 33.7세, 여자가 31.3세로 1년 전보다 각각 0.4세, 0.2세 상승했다. 남녀의 평균 초혼 연령은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연령별 혼인 건수의 경우 남자는 30대 초반(6만 8000건·35.7%), 20대 후반(3만 8000건·19.6%), 30대 후반(3만 6000건·18.9%) 순으로 많았다. 여자는 30대 초반(6만 4000건·33.5%), 20대 후반(5만 9000건·30.8%), 30대 후반(2만 5000건·12.9%) 순이었다. 1년 전과 비교해 남녀 모두 20대 후반에 결혼하는 비율이 가장 많이 줄었다. 평균 재혼 연령은 남자가 51.0세, 여자가 46.8세로 각각 0.4세, 0.3세 올랐다. 재혼 연령도 역대 가장 높았다. 초혼 부부(14만 8000건) 중 여자 연상 부부는 2만 9000건으로 19.4%를 차지했다. 1년 전보다 0.2%포인트 늘었다. 외국인과의 혼인 건수는 1만 7000건으로 1년 전보다 27.2%(4000건) 늘었다. 지난해 코로나19 완화로 입국자가 늘어난 결과로 풀이된다. 이혼 건수 3년째 감소…40대 초반 남녀 이혼율 가장 높아 지난해 이혼 건수는 9만 3000건으로 1년 전보다 8.3%(8000건) 줄었다. 2020년부터 3년째 감소세다. 혼인 건수의 감소로 이혼 건수도 줄어드는 것으로 통계청은 보고 있다. 미성년 자녀가 있는 부부의 이혼은 3만 9000건으로 전체 이혼의 41.7%를 차지했다.인구 1000명당 이혼 건수인 조이혼율은 1.8건으로 0.2건 줄었다. 조이혼율이 2건을 하회한 것은 1996년(1.7건) 이후 처음이다. 유배우 이혼율(배우자가 있는 인구 1000명당 이혼 건수)은 3.7건으로 0.3건 줄었다. 연령별 이혼율(해당 연령 인구 1000명당 이혼 건수)로 보면 남자는 40대 초반(6.9건), 40대 후반(6.8건), 50대 초반(6.5건) 순으로 높았다. 여자도 40대 초반이 7.6건으로 가장 높고 30대 후반(7.5건), 40대 후반(7.1건) 등이 뒤를 이었다. 평균 이혼 연령은 남자 49.9세, 여자 46.6세로 1년 전보다 각각 0.2세, 0.1세 줄었다. 남녀 모두 이혼 연령이 감소한 것은 1990년 이후 처음이다. 늦은 나이에 이혼하는 이른바 ‘황혼 이혼’이 감소한 결과다. 60세 이상 남자의 이혼 건수는 1만 9000건으로 1년 전보다 10.0%(2000건) 줄었다. 2004년 이후 첫 감소다. 60세 이상 여자의 이혼 건수도 1만 3000건으로 8.2%(1000건) 감소했다. 혼인 지속 기간별로 보면 4년 이하가 1만 7000건(비중 18.6%)으로 가장 많았고 5∼9년(1만 7000건·18.0%), 30년 이상(1만 6000건·16.8%) 등이 뒤를 이었다.
  • MBC 사장 후보에 안형준·허태정

    MBC 사장 후보에 안형준·허태정

    MBC 차기 사장 후보가 안형준 MBC 기획조정본부 메가MBC추진단 부장과 허태정 MBC 시사교양본부 콘텐츠협력센터 소속 국장으로 압축됐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가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개최한 시민평가단 회의에 안 후보와 허 후보, 박성제 현 MBC 사장이 참석해 MBC 재건 청사진 등을 담은 정책을 발표했다. 이어 숙의 토론과 질의응답을 거쳐 156명으로 구성된 시민평가단 투표를 진행해 최종 후보를 결정했다. 안 후보는 1994년 YTN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뒤 2001년 MBC에 경력 기자로 입사했다. 이날 안 후보는 “정권 교체 때마다 대립과 갈등이 심하고, 징계와 유배가 반복된다”며 “저널리즘 원칙을 보도 책임자가 지켜 내지 못한 결과”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뉴스 공정성 확보를 위해 팩트체크119팀, 공정성 평가위원회 신설 등을 공약했다. 허 후보는 1991년 MBC PD로 입사해 ‘북극의 눈물’(2008)을 연출하고 2010년 시사교양국 CP를 맡았다. 그는 “MBC 뉴스가 민주당 편향적이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의 바이든 날리면’ 보도를 언급하면서 “팩트체크를 세 번 네 번 하고 확실할 때만 보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할 수 있는 분위기와 공정한 평가’를 약속했다. 당초 방송가 안팎에선 박 사장의 연임을 점쳤지만 시민평가단은 다른 판단을 했다. 최종 후보에 들지 못한 박 사장은 19일 페이스북에 “결과에 승복한다”면서 “성과도 꽤 있었지만 저의 꿈을 여기서 접겠다”고 썼다. 이어 그는 “온갖 가짜뉴스로 명예를 훼손한 몇 의원의 작전은 성공한 듯하다”는 의미심장한 말도 남겼다. 앞서 13일 MBC 제3노조와 방문진 김도인·지성우 이사, 문호철 전 MBC 보도국장 등이 대표이사 선임 절차를 중지하라는 가처분신청서를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접수했다. 가처분신청서에는 박 사장이 사장 공모 제출 자료에 경영 상태와 영업이익을 부풀려 기재했다는 주장을 담았다. 방문진 이사회는 21일 최종 면접 평가를 통해 MBC 사장 내정자를 선임할 예정이다. 최종 면접은 iMBC 홈페이지 및 MBC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된다.
  • MBC 사장 후보에 안형준·허태정…재임 도전한 박성제는 고배

    MBC 사장 후보에 안형준·허태정…재임 도전한 박성제는 고배

    MBC 차기 사장 후보가 안형준 MBC 기획조정본부 메가MBC추진단 부장과 허태정 MBC 시사교양본부 콘텐츠협력센터 소속 국장으로 압축됐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가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개최한 시민평가단 회의에서 안 후보와 허 후보, 박성제 현 MBC 사장이 참석해 MBC 재건 청사진 등을 담은 정책을 발표했다. 이어 숙의 토론과 질의응답을 거쳐 156명으로 구성된 시민평가단 투표를 진행해 최종 후보를 결정했다. 안 후보는 1994년 YTN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한 뒤 2001년 MBC에 경력기자로 입사했다. 이날 안 후보는 “정권 교체 때마다 대립과 갈등이 심하고, 징계와 유배가 반복된다”며 “저널리즘 원칙을 보도책임자가 지켜내지 못한 결과”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뉴스 공정성 확보를 위해 팩트체크119팀, 공정성 평가위원회 신설 등을 공약했다. 허 후보는 1991년 MBC PD로 입사해 ‘북극의 눈물’(2009)을 연출하고 2010년 시사교양국 CP를 맡았다. 그는 “MBC뉴스가 민주당 편향적이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윤 대통령의 바이든 날리면’ 보도를 언급하면서 “팩트체크를 세 번 네 번 하고 확실할 때만 보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할 수 있는 분위기와 공정한 평가’를 약속했다. 당초 방송가 안팎에선 박 사장의 연임을 점쳤지만 시민평가단은 다른 판단을 했다. 최종 후보에 들지 못한 박 사장은 19일 페이스북에 “결과에 승복한다. 제도를 탓하지 않겠다”면서 “지상파에 머물지 않은 콘텐츠 그룹을 만들고 싶었다. 성과도 꽤 있었지만 저의 꿈을 여기서 접겠다”고 썼다. 박 사장은 2020년 2월에 취임해 이달 말 임기가 만료된다. 이어 그는 “온갖 가짜뉴스로 명예를 훼손한 몇 의원의 작전은 성공한 듯하다”는 의미심장한 말도 남겼다.앞서 13일 MBC 제3노조와 방문진 김도인·지성우 이사, 문호철 전 MBC 보도국장 등은 MBC 대표이사 선임 절차를 중지하라는 내용의 가처분신청서를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접수했다. 가처분신청서에는 박 사장이 사장 공모 제출 자료에 경영상태와 영업이익을 부풀려 기재했다는 주장을 담았다. 가처분소송인단은 “사장 재임 기간의 명백한 성과를 수치로 제시한다며 대규모 연속 적자였던 경영 상태를 첫해부터 바로 흑자로 전환시키고, 영업이익 2020년 240억원, 2021년 1090억원, 2022년 840억원 등이라고 적었다”면서 “결산 주총을 통해 공시한 2020년 영업이익 40억원, 2021년 영업이익 684억원과 비교해 2020년의 경우 6배, 2021년의 경우 1.6배 부풀린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MBC내 비민주노총 계열인 MBC 제3노조는 최종후보 결과에 대해 박 사장이 탈락한 것을 “불행 중 다행”이라면서도 “안형준, 허태정 후보 또한 언론노조의 홍위병 노릇을 하며 2017년 파업 불참 기자들을 탄압하던 후보들”이라며 불만을 드러냈다. 이어 이들로부터 피해를 입은 조합원이 있는지 전면적인 실태 파악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방문진 이사회는 오는 21일 최종 면접 평가를 통해 MBC 사장 내정자를 선임할 예정이다. 최종 면접은 iMBC 홈페이지 및 MBC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된다.
  • 조선 끝났구나 했던 순간… 자신을 버렸던 조선을 위해 자신을 던졌다 [서동철의 임진왜란 열전]

    조선 끝났구나 했던 순간… 자신을 버렸던 조선을 위해 자신을 던졌다 [서동철의 임진왜란 열전]

    퇴계 제자로 예학에 능통한 선비경상도 도사, 업무 지시 어겼다며평안도 강동으로 유배 같은 형벌선조 일행 평양성서 궁지 몰리자의병 모아 명군과 왜군 맞서 활약남쪽 양산까지 쫓으며 용맹 펼쳐류성룡이 사면 건의… 관직에 등용북한땅 성천 학령서원 등에 모셔져 당대 세계 최강의 육군 전력을 갖췄던 왜군은 부산포 상륙 이후 파죽지세로 북상했다. 한양도성을 손쉽게 점령하고 평양성까지 차지했지만 승리를 장담하던 목소리는 이후 시간이 흐를수록 잦아든다. 통치자가 머무는 성을 점령하면 전쟁이 끝나는 그들에게는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뜻하지 않게 보급선이 길어진 마당에 바닷길은 이순신 수군에 철저히 막혔고, 육로마저 전열을 정비한 조선군에 곳곳이 끊겼다. 무엇보다 일본에는 없는 의병이 조선 전역에서 일어나 저항하고 있었다. 경상도 창원 출신으로, 평안도 강동에 17년 동안 유배와 다름없는 형벌에 처해져 있었던 조호익의 창의는 더욱 뜻밖이었을 것이다.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1545~1609)은 퇴계 이황의 제자로 예학에 조예가 깊었다. 문인으로도 이름을 날려 오늘날 그의 시문과 기행문은 문학적 연구의 대상이 되곤 한다. 지산의 할머니는 진성 이씨로 12세의 퇴계에게 논어를 가르쳐 학문에 눈을 뜨게 했던 스승이자 작은아버지인 이우의 딸이다. 지산은 10세부터 백운동서원 설립자인 주세붕의 아들로 이황의 문인인 주박으로부터 학문의 기초를 다졌다. 지산은 이후 퇴계를 사숙하면서 때로는 도산서원을 찾아 직접 가르침을 구하기도 했다. 조호익의 불행이 시작된 것은 32세 되던 1575년(선조 8)이다. 당시 상황은 조호익의 제자인 김육이 지은 지산 행장에 자세히 전한다. ‘이때 경상도 도사로 부임한 최황이 장정을 군적에 올리는 일로 창원부에 와서 선생에게 단속하고 독려하는 책임을 떠맡겼다. 선생은 어머니 상례가 끝나지 않았고, 또 자신의 병이 심하다는 이유로 일을 맡지 않았다. 그러자 최황은 명령을 어긴 데 노하며 (국역에서 벗어나 있는) 한정(閑丁) 50명을 바치도록 재촉했다. 선생은 집에서 부리는 어린 종까지 (15명을) 내놓았지만 숫자를 채울 수 없었다. 그러자 최황이 더욱 사납게 굴면서 화를 냈고 형장을 가하기까지 했다. 그러고는 향리에서 조정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며 전가사변을 청했다. 마침내 지산을 강동으로 보내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1576년의 일이다. 전가사변(全家徙邊)이란 가족과 함께 변방으로 이주해 살도록 하는 형벌이다. 세종시대 북변 개척이 이루어지며 남쪽 백성을 함경도와 평안도로 이주시키는 정책을 폈지만, 응하는 사람이 없자 강제로 이주시키는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좀도둑이나 소·말을 밀도살한 자, 관리로서 백성을 억압한 자, 윗사람을 능멸한 자 등이 대상이었다. 류성룡은 ‘징비록’에 ‘조호익은 지조가 강하고 덕이 높은 인물이었는데 무고를 당해 온 가족이 강동으로 옮겨 살았다’고 했다. 누가 봐도 공정한 처분은 아니었던 듯싶다.최황이 경상도 도사에 임명된 것은 왜적의 침입에 대비한 특명이 있었기 때문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선조실록 1575년 2월 30일자에는 ‘신장(信長)의 거짓말을 다 믿을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의 방비하는 일에 있어서는 미리 조사하는 것이 무방하니, 무장을 골라 뽑고 외방에 있는 파산무사(罷散武士)들도 채비하고서 기다리게 하소서’라는 비변사의 비밀전교 내용이 전한다. 파산무사란 군적에서 벗어나 있는 병역의무 대상을 뜻하는 듯하다. 신장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를 말한다. 일본의 전국시대를 마무리지은 오다의 움직임에 조선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최황의 임무는 일본과 접한 연해지역의 방비 태세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조호익은 왜적 침입에 대비해 군적을 정비하려는 조정의 특명을 거부한 꼴이 됐다. 식솔을 이끌고 고향을 떠나야 하는 조호익의 심경은 ‘서정부’(西征賦)라는 장편 한시에 잘 남아 있다. ‘마을 문을 나서서 먼 길을 떠남에 / 밝은 해가 갑자기 그 색이 변하네 / 말은 머뭇거리며 나아가지를 않고 / 혼은 빠져 달아나 상실한 듯하네’. 정극후(1577~1658)가 지은 지산 선생의 신도비명에는 ‘관서의 강동현에 유배되었지만 공은 편안히 도(道)가 있는 곳에 나아가는 것과 같이 여겼다’고 돼 있지만 실상은 달랐다. 조호익이 머문 강동은 현재의 북한 행정구역으로 평양시 강동군이다. 평양시에서 대동강 건너 동쪽 지역으로 단군릉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조호익은 강동 고지산에 집을 얻어 수지재(遂志齋)·풍뢰당(風雷堂)이라 이름 짓고는 독서에 몰입했다고 한다. 지산은 이곳에서 지역 학도와 강동에 부임하는 관원들의 자제들을 가르쳤다. 훗날 대동법을 주창하고 인조와 효종 시대 세 차례 정승을 지낸 김육도 이 시기의 제자다. 다시 김육의 행장이다. ‘강동은 오랑캐와 인접하고 서울과 멀리 떨어져 있는 탓에 예로부터 덕망 있는 사람이 없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학문을 몰랐는데, 지산의 소문을 듣고 원근에서 먹거리와 책을 짊어지고 모여들어 문밖에는 항상 신발이 가득했다. 선생은 이들을 재주에 따라 가르치고 인도했다.’ 제자가 많았어도 생활은 곤궁했다. 류성룡은 ‘조호익은 강동에서 살림이 빈곤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살았는데 20년 남짓 입에 풀칠이나 하면서 살았다. 그렇지만 결코 뜻을 굽힌 적은 없었다’고 적었다. 왜란은 조호익에게 반전의 기회가 됐다. 선조수정실록 1592년 7월 1일자에는 ‘유생(儒生) 조호익이 군사를 모집해 적을 토벌하고 강동에 주둔했다’는 내용이 보인다. 선조수정실록은 인조반정으로 북인이 물러나고 서인이 정권을 잡은 이후 이이·성혼·정철 등의 서인과 류성룡을 비롯한 남인을 폄하한 선조실록을 바로잡자는 취지에서 편찬한 것이다. 수정실록의 조호익 기사는 ‘징비록’을 그대로 차용하다시피 했다. 원문이라고 할 수 있는 류성룡의 ‘징비록’을 참고한다. ‘임금이 평양에 당도했을 때 조호익은 사면됐다. 그리고 의금부도사에 임명됐다. 평양이 왜적에 포위되자 그는 강동에서 군사를 모집해 구원하려 했다. 그러나 평양이 함락되자 행재소로 돌아갔다. 그때 그를 양책역에서 만났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명나라 구원병이 곧 올 것이네. 강동으로 돌아가 군사를 모집하게. 명나라 군사가 오면 합세해 평양을 치도록 하게.”’ 이렇게 지산에게는 의병을 모으는 소모관(召募官)이라는 직분이 다시 주어졌다. 평양성이 적의 수중에 떨어지자 조호익은 강동 북쪽의 성천으로 들어가 제자 윤근·박대덕과 500명 남짓한 의병을 규합했다. 이들은 평양 남쪽의 중화와 상원까지 오가며 노략질하는 왜군을 집중 공략해 커다란 전과를 올렸다. 조호익은 군졸들과 함께 생활하며 잠잘 때도 옷을 벗지 않았고 대삿갓을 쓰고 가죽버선을 신었다고 한다. 1593년 조호익 의병은 명나라 군사와 함께 평양성을 공격했다. 대동강 주변에 의병을 매복시켜 밤을 틈타 몰려나오는 왜군에 타격을 가했다. 이후 임진강까지 왜군을 추격해 격파하고 함경도에서 퇴각하는 왜군도 양주에서 공략했다. 지산의 평안도 의병은 부산이 코앞인 양산까지 왜군의 뒤를 쫓았다. 조호익은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들면서 의병을 해산했지만,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다시 강동에서 의병을 일으켰다.선조에게 지산의 사면을 건의한 사람은 바로 서애 류성룡이다. 서애와 지산은 월천 조목, 학봉 김성일, 간재 이덕홍, 한강 정구와 함께 ‘퇴계 문하 6철(哲)’로 꼽힌다. 류성룡은 세 살 아래의 동문인 조호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류성룡은 ‘징비록’에 조호익을 언급한 대목을 감동적으로 마무리지었다. ‘조호익은 글 읽는 선비였으나 나라에 대한 충성과 의리를 앞세워 군사를 격려하고 이끌었다. 동짓날에는 군사를 거느리고 행재소를 향해 네 번 절하고 밤새워 통곡하자 군사들 모두 엎드려 울었다.’지산은 1593년부터 대구부사, 성주목사, 안주목사, 성천부사, 정주목사를 역임했다. 1604년 선산부사를 사임하고 선대의 고향 영천에 자리잡아 만년을 보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인조반정 이후 이조참판에 추증됐다. 영천 지봉서원, 지금은 북한 땅인 성천 학령서원과 강동 청계서원에 모셔졌다. 지봉서원은 1678년(숙종 4) 사액돼 도잠서원이 됐다.
  • [문화마당] 가장 좋은 음식, 가장 멋진 모임/정승민 ‘일당백’ 유튜버

    [문화마당] 가장 좋은 음식, 가장 멋진 모임/정승민 ‘일당백’ 유튜버

    설날을 지내면서 이별을 생각했다. 오곡백과가 풍성한 한가위도 비애의 축제라고 소설 ‘토지’에서 배웠지만 새해맞이도 ‘서러운 추억의 현’을 건드리는 일이다. 차례상에 절을 하고 지금은 뵐 수 없는 얼굴들을 가만히 떠올리다 보면 가슴 한구석이 저려 온다. 본래 축제가 축하와 제사를 겸하기 때문에 명절날을 오작교로 해서 죽은 자가 산 자의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적막강산으로 빠져드는 기분을 떨치기 위해 코폴라 감독의 ‘대부’를 다시 봤다. 피를 나눈 가족과 돈으로 연결된 패밀리가 나오는 마피아 영화다. 콜레오네 패밀리를 이끄는 아버지는 마약과 같은 범죄는 손대지 않는, 나름 정의로운(!) 보스다. 막내아들 마이클은 가업에 회의적이지만 부친이 받은 총격을 계기로 복수혈전에 뛰어든다. 처남과 매제, 형과 동생의 골육상잔이 끝없다. 이 모든 참극은 패밀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됐다. 하지만 예전 아버지 생신날에 깜짝 파티를 벌였던 형제들은 다 사라지고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랑의 가족과 범죄 가족이 뒤섞였으니 비극은 불가피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아버지의 사업을 그렇게 싫어하던 청년 마이클의 변신이다. 직접 방아쇠를 당겨 사람을 죽이고 경쟁자와 배신자를 냉혹하게 처단한다. 부친과 같은 삶은 살지 않겠다던 아들이 어느새 판박이가 됐다. 희생자가 없는 비즈니스를 골백번 강조하지만 공갈과 협박이 배음으로 깔려 있다. 걸핏하면 상대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인정에 흔들리거나 의리에 끌리지 않기에 식구들을 헌신짝처럼 내쳤다. 뱀의 조심성, 여우의 교활함, 사자의 용맹함을 겸비한 군주형 아버지가 된 것이다. 철학자 우치다 다쓰루에 따르면 보스와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교육 방식이 필요하다. 아이를 약자로 전제하는 어머니의 양육 스타일은 확장지향적이다. 병들거나 다쳐도 보호해 줄 식구를 많이 만들어 놓으면 생존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반면 아버지의 육아 전략은 경쟁지향적이다. 약한 아이가 무리 속에서 살아남아 최후의 강자로 우뚝 서기를 기대한다. 마이클은 철두철미한 경쟁형 인간이다. ‘돈 콜레오네’로 등극하는 과정은 그 많은 혈육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 토너먼트와도 같다. 죽고 죽이고 미워하고 절망하는데 나중엔 부인도 집을 벗어난다. 그렇게 자기 안의 어머니를 죽이고 성장한 대부가 홀로 남아 쓸쓸히 추억하는 것은 가족의 단란한 한때다. 새 식구를 맞아들이는 결혼식으로 시작한 영화가 고독한 마이클로 끝을 맺는 것은 애정과 관용이 빠진 공동체가 지속될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하는 듯하다. 명문가에서 태어나 관직과 유배를 되풀이했던 추사 김정희는 만년에 가장 큰 즐거움을 “대팽두부과강채(大烹豆腐瓜薑菜) 고회부처아녀손(高會夫妻兒女孫)”이라고 했다. 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 채소이고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 딸, 손자와 함께한다는 것이다. 명절이야말로 비교와 평가를 잠시 꺼두고 또 한 해를 무탈하게 버텨 낼 기운을 얻는 시간이다. 괴로움과 즐거움 모두를 가족이니까 함께할 수 있다. 조상을 핑계 삼아 웃고 떠들고 시끌벅적해도 마냥 좋은 날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가시밭길 생의 하루하루를 넘어가는 것이 아닐까.
  • 문재인 정부 정책 포럼 ‘사의재’ 창립에 ‘강진 사의재’ 관심 증폭

    문재인 정부 정책 포럼 ‘사의재’ 창립에 ‘강진 사의재’ 관심 증폭

    문재인 정부 인사들로 구성된 정책포럼 ‘사의재’가 출범하면서 ‘강진 사의재’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포럼 ‘사의재’는 지난 18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창립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 출범했다. 포럼은 지난 국정운영을 되돌아보면서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한 대안을 발굴할 계획으로, 정치·행정, 경제·일자리, 사회, 외교·안보 등 4개 분과로 운영된다. 포럼명인 ‘사의재’는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인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제안으로 결정됐다. 이름이 같은 강진 사의재(四宜齋)는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1801년 강진에 유배됐을 때 머물던 주거지다. 다산은 이곳에서 1805년 겨울까지 4년간 머물렀다. 다산은 ‘네 가지를 올바로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뜻으로 ‘사의재’라고 지었다. ‘생각은 맑게, 용모는 단정하게, 말은 적게, 행동은 무겁게’라는 뜻이다. 몸과 마음을 다잡아 국가 혁신과 애민, 학문 연구에 정진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다산이 조선의 난제들을 해결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수많은 저서를 남긴 곳도 사의재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이 이 곳에서 편찬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강진의 특별한 인연도 강진을 대표하는 꽃 가운데 하나인 ‘작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던 역사적인 순간을 장식했던 꽃이 바로 강진 작약이다. 두 정상 양옆에 놓인 꽃장식과 김정은 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오며 초등학생들로부터 건네받은 꽃다발, 만찬장 테이블을 화려하게 수 놓은 꽃 모두 강진 작약이었다. 당시 남북정상회담을 빛낸 조연으로 작약이 사용된 이유는 북한의 국화(國花)가 ‘함박꽃나무’로 우리나라 작약의 한 종류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또 수줍어 보이지만 화려한 자태를 자랑하는 작약은 ‘꽃들의 왕’으로 불리며 5월이면 호텔 장식이나 신부 부케로 자주 쓰일 만큼 ‘환영’의 상징적인 의미를 품고 있다. 강진군은 사의재 명소화를 위해 한옥 체험관, 저잣거리 등 주변 시설과 연계해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대표 관광 명소로 조성중이다.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세한’의 시간에 만나는 소나무/식물세밀화가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세한’의 시간에 만나는 소나무/식물세밀화가

    ‘세한’. 설 전후의 추위를 뜻한다.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에서의 외로운 유배 생활 중 자신을 잊지 않고 책을 보내 위로해 준 제자 이상적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세한도’를 그렸다. 세한도에는 소나무 두 그루와 정확한 이름을 알 수 없는 또 다른 소나무속 식물이 서 있다.(흔히 이를 측백나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측백나무와는 형태가 아예 다르다.) 작년 봄 국립제주박물관에서 세한도를 본 후로 추위를 마주할 때마다 자연스레 그림 속 소나무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전 도쿄국립박물관에서 또 다른 소나무를 만났다. 박물관에 온 사람들의 발길이 유난히 오래 머물던 작품은 하세가와 도하쿠의 ‘송림도병풍’이었다. 이 그림 속 소나무는 뿌연 안개 속에서 희미하게 존재한다. 박물관을 걸어 나오며 동북아 국가가 소나무를 통해 공유하는 정서에 대해 생각했다. 지조, 끈기, 절개 같은 것들. 이것은 소나무의 삶에서 비롯된 이미지다.지난해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가장 좋아하는 나무를 조사한 결과 30% 이상이 소나무를 꼽았다. 매번 조사 방법을 달리해도 결과는 늘 소나무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정말 소나무를 좋아하는 만큼 평소 소나무를 들여다보는지, 이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적어도 내 주변 식물을 좋아하는 지인들의 휴대폰 사진첩에 외래 선인장 사진을 담아 두는 경우는 봤어도 소나무 사진을 갖고 있는 경우는 없었고, 몬스테라 품종명은 읊어도 소나무 종을 식별할 줄 아는 경우는 없었다. 길을 지나다 마주치는 작은 풀꽃을 들여다볼 정도로 식물에 애착을 가져도 소나무 꽃 앞에 걸음을 멈춰 들여다보는 이는 없다. 논어에서 공자는 “한겨울이 와서 날이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쉬이 시들지 않음을 안다”고 했다. 이 말은 다른 식물이 휴면에 들어가는 겨울에도 푸르른 잎을 내는 소나무의 성격을 뜻하지만, 소나무가 우리 땅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에야 이들을 찾을 우리 미래를 가리키는 듯도 하다. 우리가 소나무를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소나무를 굳이 들여다보지 않는 이유, 소나무를 기록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흔하고 익숙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인간은 늘 새로움에 쉽게 유혹당한다. 소나무가 우리나라에서 살아온 역사는 적어도 1만년이 넘고, 현재 우리나라 산림의 20% 이상을 차지한다. 구과 식물 중 소나무가 도시 조경수로 가장 많이 이용된다. 그러니 소나무를 보고 싶으면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다는 생각이 소나무에 소홀한 결과를 초래한 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소나무는 병충해와 산불, 천이,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점점 살 곳을 잃어 가고 있다. 이대로라면 100년 후 소나무가 우리나라에서 사라질 것이라 예상한 연구도 있다.소나무의 꽃과 구과는 우리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우리가 식물을 들여다보는 것은 주로 꽃, 열매 같은 생식기관이 눈에 띄기 때문인데 소나무는 동물의 도움을 받아 수분하지 않으니 화려한 꽃을 가질 필요가 없다. 대신 이들은 바람에 의해 수분하는 풍매화다. 4월 송화라고도 부르는 소나무 꽃가루가 날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 눈에 띄지 않을 뿐 소나무에 꽃이 피지 않고 구과가 열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소나무는 한 종이 아니다. 물론 소나무라는 종도 있지만 흔히 가족 이름으로 불린다. 소나무가 여러 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우리는 소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식물학자 우에키의 연구에 따르면 국내에 분포하는 소나무는 품종과 변종을 합해 40종에 이른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소나무속 식물은 소나무 외에도 곰솔, 잣나무, 섬잣나무, 눈잣나무 등이 있고 테에다소나무, 리기다소나무, 스트로브잣나무 등이 들어왔다. 이들은 잎의 길이와 개수, 수피의 색, 생육형 등이 다르다. 우리나라 역사는 소나무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소나무로 만든 가구와 기구가 들어 있는 소나무 목재 집에서 살아왔고, 조선시대에는 소나무를 벌목하지 않는 법을 제정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오래된 소나무들이 베어졌다. 과거와 현재 우리 곁에서 늘 함께해 온 소나무이지만 앞으로의 미래를 누구도 알 수 없다. 나 역시 이 연재를 시작한 지 5년이 지나서야 소나무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다. 내 마음속 소나무도 늘 다른 식물들에게 자리를 먼저 내주었던 것 같다. 올해만큼은 세한의 시간이 지나 봄과 여름 다채로운 풀꽃이 피어나는 순간에도 소나무를 잊지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
  • 전남도, 설 연휴 관광객 위해 남도 여행지 추천

    전남도, 설 연휴 관광객 위해 남도 여행지 추천

    설 명절을 맞아 전남을 찾는 관광객과 귀성객들을 위해 전남도가 ‘설 연휴 남도 여행지’로 정원 카페 4개소와 일출 일몰 명소 5곳 등 관광지를 추천했다. 설 연휴 남도 여행지에 꼽힌 첫 번째 정원 카페는 강진 백운차실이다. 국내 최대 야생차 군락지인 강진 월출산 남쪽 차밭 아래 위치한‘이한영 차문화원’은 다산 정약용이 유배를 마치고 돌아갈 때 재배한 차를 매년 제공하겠다는 약속에서 유래했다. 백운차실은 이한영 차 문화원이 운영하는 카페로 월출산의 야생찻잎으로 잎차와 덩어리차를 만들어 강진 차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다산이 마셨다는 떡차도 맛볼 수 있다. 서울만큼 화려해 ‘소경’이라 불렸던 나주의 1939년 근대문화를 2017년에 마중한다는 의미의 ‘39-17 마중’도 남도 최고의 카페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1919년 중건된 난파정과 1939년 지어진 한국, 일본, 서양식이 절충된 근대건축 목서원을 중심으로 넓은 정원의 조화가 눈길을 끈다. 2020년 ‘전라남도 예쁜 정원 콘테스트’ 근린정원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해남 계곡면의 문가든 카페와 전남도 민간정원으로 4개 주제의 정원과 향나무 숲길, 사색의 숲길, 잔디 광장으로 이뤄진 ‘천개의 향나무 숲’도 빼놓을 수 없는 남도의 카페로 선정됐다. 일출 명소로 뽑힌 여수 향일암은 해를 향해 있다는 이름처럼 남해 수평선에서 떠오르는 일출 광경이 장관을 이룬다. 이다 과 함께 국가지정문화재 금오산의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있다. 고흥 8경의 하나인 해돋이 명소 남열해수욕장에서는 일출과 함께 인근 고흥우주발사전망대에서 투호와 제기차기 등 전통 민속놀이를 즐길 수 있다. 무안 망운면의 톱머리해수욕장은 남도 일몰 명소의 하나다. 2km에 이르는 넓은 백사장과 200년 곰솔 숲이 배경으로 한 붉은 빛 낙조가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푸른 바다와 광활한 갯벌, 굽이굽이 이어지는 기암괴석과 불타는 노을이 황홀한 서해안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 백수해안도로와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늦게 지고 기상청에서 한반도 최남단 ‘제일의 낙조 전망지’로 선정한 진도 세방낙조도 설 연휴 남도 여행지로 선정됐다. 조대정 전남도 관광과장은 “전남의 매력적인 관광명소를 둘러보고, 남도의 맛과 따뜻한 고향의 정취를 느끼면서 가족, 친지들과 함께 훈훈한 명절을 보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 [씨줄날줄] 사의재 논란/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사의재 논란/임창용 논설위원

    전남 강진은 조선 후기 실학의 대가였던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 생활을 한 곳이다. 다산 선생은 이곳에서 18년간 머물면서 실학사상을 싹틔웠는데,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썼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연중 방문객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인기가 많아 남도 답사여행의 1번지로 꼽힌다. 천주교 신자였던 다산 선생은 1801년 천주교 박해 당시 겨우 목숨을 건져 강진으로 유배된다. 그때 귀양을 가 처음으로 머문 곳이 현재 강진읍 동성리에 있는 ‘사의재’(四宜齋)다. 당시 숙박을 겸한 주막집이었는데, 주인 할머니가 내준 골방을 선생이 사의재라 이름 붙여 거처로 삼았다고 한다. “제자라도 가르쳐야 하시지 않겠느냐”는 집주인 할머니의 사려 깊은 요청에 다산은 자신이 지은 ‘아학편’을 교재로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현재 강진군이 다산실학 성지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옛터를 복원했다. 주막채·바깥채·초정 등으로 이뤄져 있다. 사의재는 ‘네 가지를 마땅히 해야 할 곳’이란 의미다. 생각은 맑게, 용모는 엄숙하게, 말씨는 과묵하게, 행동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유배 생활의 갖가지 고초 속에서도 선생이 얼마나 절제하며 학문에 매진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는 사의재에서 4년간 후학을 양성하면서 ‘경세유표’ ‘애절양’ 등을 집필하는 등 연구에 매진했고, 그 후 도덕면 만덕리의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긴다. 그가 다산초당에 머물면서 경전과 실학연구에 매달려 ‘목민심서’ 등 방대한 저술을 남긴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다산 선생의 연구혼이 깃든 ‘사의재’가 뜬금없이 논란이다. 문재인 정부 고위직 출신 인사들이 대거 참여해 정책포럼을 출범시켰는데 거기에 ‘사의재’란 이름을 붙였다. 박능후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상임대표를 맡았고, 정세균·김부겸 전 총리 등이 고문에 위촉됐다. 문 정부 성과를 계승하고 발전적 대안을 제시한다는 취지를 내세우지만 당장 ‘친문 세력화가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가 쏟아진다. 문 전 대통령이 양산 사저 근처에 북카페를 내기로 한 것과 맞물려 더 그렇다. 퇴임 후 잊히고 싶다던 문 전 대통령의 소망이나, 삼가고 신중해야 한다는 사의재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 이재명, 기본사회위원장 맡는다…민생 앞세워 ‘사법 리스크’ 돌파

    이재명, 기본사회위원장 맡는다…민생 앞세워 ‘사법 리스크’ 돌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내 기본사회위원회 위원장을 직접 맡는다. 본인의 대표적인 정책 브랜드인 ‘기본’ 시리즈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사법 리스크’를 ‘민생 우선’ 기조로 정면 돌파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민주당 관계자는 15일 위원회 출범과 관련해 “기본사회야말로 우리 사회가 가야 할 방향이고, 이 대표가 직접 설치를 제안한 만큼 본인이 책임지고 챙기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위원회는 이번 주 중 공식 출범할 예정이며 구체적인 인선과 조직 규모는 아직 구상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기본사회 구상은 최소한의 삶이 아닌 일정 수준 이상의 삶을 영위하는 것을 국가가 지원해 줘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지난 12일 이 대표 신년 기자회견에서 구체화된 ‘기본’ 시리즈는 지난 대선 당시 이슈였던 기본소득은 물론 기본주거, 기본금융 등의 개념까지 포함한다. 이는 고물가·고금리 등 민생 경제 위기 속에서 정부·여당의 실정을 부각하고 대안 세력의 역할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설을 일주일 앞둔 만큼 명절 밥상 민심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전략으로도 읽힌다. 특히 자신에게 드리운 검찰의 압박을 상쇄하는 카드로도 볼 수 있다. 이 대표 변호사비 대납 의혹을 받는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조만간 입국할 예정인 만큼 여론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선 적절한 민생 회복 콘텐츠를 발굴하고 소개해야 할 필요성이 한층 커졌다. 이에 대해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최우선으로 본인의 기본부터 정립할 것을 요구한다”고 질타하며 불체포특권 포기를 촉구했다. 한편 문재인 정부 주요 인사들이 주축이 된 정책 포럼 ‘사의재’(四宜齋)가 오는 1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식 출범한다. 사의재는 다산 정약용이 전남 강진으로 유배됐을 때 생활하던 곳의 이름이다. 출범 배경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민주당 정부의 정책 성과를 평가하고 민주당의 역량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 이재명, ‘기본사회위원장’ 맡는다... ‘민생 주도’로 사법 리스크 돌파

    이재명, ‘기본사회위원장’ 맡는다... ‘민생 주도’로 사법 리스크 돌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내 기본사회위원회 위원장을 직접 맡는다. 본인의 대표적인 정책 브랜드인 ‘기본’ 시리즈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사법 리스크’를 ‘민생 우선’ 기조로 정면 돌파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민주당 관계자는 15일 위원회 출범과 관련해 “기본사회야말로 우리 사회가 가야 할 방향이고, 이 대표가 직접 설치를 제안한 만큼 본인이 책임지고 챙기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위원회는 이번 주 중 공식 출범할 예정이며 구체적인 인선, 조직 규모는 아직 구상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기본사회’ 구상은 최소한의 삶이 아닌 일정 수준 이상의 삶을 영위하는 것을 국가가 지원해줘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지난 12일 이 대표 신년 기자회견에서 구체화된 ‘기본’ 시리즈는 지난 대선 당시 이슈였던 기본소득은 물론 기본 주거, 기본금융 등의 개념까지 포함한다. 이는 고물가·고금리 등 민생 경제 위기 속에서 정부·여당의 실정을 부각하고, 대안세력의 역할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설을 일주일 앞둔 만큼 명절 밥상 민심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전략으로도 읽힌다. 특히 자신에게 드리운 검찰의 압박을 상쇄하는 카드로도 볼 수 있다. 이 대표 변호사비 대납 의혹을 받는 김성태 전 쌍방울 그룹 회장이 조만간 입국 예정인 만큼 여론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선 적절한 민생 회복 ‘콘텐츠’를 발굴, 소개해야 할 필요성이 한층 커졌다. 이에 대해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최우선으로 본인의 기본부터 정립할 것을 요구한다“고 질타하며 불체포특권 포기를 촉구했다. 한편 문재인 정부 주요 인사들이 주축이 된 정책 포럼 ‘사의재’(四宜齋)가 오는 1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식 출범한다. 사의재는 다산 정약용이 전남 강진으로 유배됐을 때 생활했던 곳의 이름이다. 출범 배경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민주당 정부의 정책성과를 평가하고 민주당의 역량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상임대표는 박능후 전 보건복지부 장관, 공동대표는 정현백 전 여성가족부 장관·조대엽 전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장, 운영위원장은 방정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맡는다.
  • 우리 나이가 어때서… 무대 설렘은 청춘인데

    우리 나이가 어때서… 무대 설렘은 청춘인데

    “올해 우리 나이로 90이 됐는데 이번 늘푸른연극제는 젊음을 새로 가져다준 아주 좋은 기회였습니다. 무척 감사하게 생각해요.”(김우옥 연출) 머리는 희끗희끗했고, 귀는 잘 안 들린다면서도 연극연출가 김우옥의 목소리는 쩌렁쩌렁했고, 표정과 말투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김우옥만이 아니다. 배우 박승태(76)는 “연극을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끝을 장식하고 싶다. 많이 와 달라”고 했고, 연기자이자 운영위원인 박웅(83)도 “나이 들면 외로워지고 기회도 없는데 원로연극제가 좋은 기획이 아니었나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지난 9일 서울 중구 정동극장 세실에서 열린 ‘제7회 늘푸른연극제’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이들 모두 비슷한 떨림을 느끼고 있었다. 이번 늘푸른연극제는 ‘새로움을 말하다’를 부제로 총 4개 작품을 준비했다. 김우옥이 연출한 ‘겹괴기담’이 지난해 10월 가장 먼저 선보였고, ‘겨울 배롱나무꽃 피는 날’(오는 13일), ‘영월행 일기’(28일), ‘꽃을 받아줘’(2월 8일)가 연달아 개막한다. 1978년 미국 뉴욕에서 초연된 ‘겹괴기담’은 현대 구조주의 연극 거장 마이클 커비의 실험극으로 같은 무대에서 교차하는 두 가지 이야기를 담아낸다. 1982년 김우옥이 초연해 국내 연극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 준 작품이다. 2000년 재연 이후 다시 그가 연출을 맡은 ‘겹괴기담’은 지난해 한국연극평론가협회의 ‘올해의 연극 베스트3’에 선정되는 등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무엇보다 영상을 활용해 젊은이들에게 통한 것이 큰 성과였다. 김우옥은 “젊은이들이 열광해서 깜짝 놀랐다”면서 “시대가 바뀌어서 젊은이들이 어려운 작품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보여 줬다”고 평가했다. ‘겨울 배롱나무꽃 피는 날’은 단편소설 ‘문턱’이 원작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배롱나무꽃으로 환생하듯 피어나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았다. 박승태는 “언제 늘푸른연극제에 선정될까 기다렸는데 이번에 얼마나 행복하게 작업했는지 모른다”며 웃었다. 한국 연극사의 기념비를 세워 온 극작가 이강백(76)의 작품 ‘영월행 일기’는 고문서 검증을 위해 모인 고서적 연구회 회원들과 500년 전 영월에 유배 갔던 단종의 이야기로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실험적 기법이 돋보인다. 제19회 서울연극제 희곡상, 제4회 대산문학상 희곡상을 받았다. ‘꽃을 받아줘’는 원로배우 정현(78)이 연출하고 출연하는 그의 대표작으로 요양원에서 펼쳐지는 노년의 사랑을 그렸다. 정현은 “늘푸른연극제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 현직 교황의 전임 교황 장례미사 집전 “1802년에 딱 한번”

    현직 교황의 전임 교황 장례미사 집전 “1802년에 딱 한번”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식이 5일(현지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장례 미사를 집전하면서 거행된다. 교황은 종신직이기 때문에 현직 교황이 전임 교황의 장례 미사를 주례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베네딕토 16세가 2013년 건강 문제로 스스로 교황 직에서 물러나면서 초유의 상황이 됐다고들 생각했다. 교황의 사임은 1415년 그레고리오 12세가 아비뇽 유수(유폐)로 서방 교회가 분열되는 것을 끝내기 위해 퇴위한 이후 598년 만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4일 교황청 관영 매체 ‘바티칸 뉴스’는 현직 교황이 전임 교황의 장례 미사를 주례하는 것이 역대 두 번째라고 보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교회의 2000년 역사에서 현직 교황이 전임 교황에게 마지막 축복을 전한 사례는 지금까지 딱 한 번 있었다. 1802년 2월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비오 6세 교황의 장례 미사가 후임자인 비오 7세 교황의 주례 속에 엄수됐다. 비오 6세 교황(재임 1775∼1799)은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에 납치돼 유배된 프랑스 발랑스에서 선종했다. 발랑스에서 장례식이 열렸고,그 뒤를 이어 1800년 3월 14일 교황 직에 오른 비오 7세는 전임 교황의 유해가 이탈리아 로마로 송환되길 원했다. 1801년 12월 발랑스에서 발굴된 비오 6세 교황의 유해는 마르세유를 거쳐 배를 통해 이탈리아 제노바로 옮겨졌다. 마침내 1802년 2월 17일 추기경들이 로마 폰테 밀비오에서 유해를 기다리는 가운데 “로마로의 위대한 승리의 입성”이 이뤄졌다고 ‘바티칸 뉴스’는 전했다. 그 뒤 비오 6세 교황의 장례 미사가 후임자인 비오 7세의 주례로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거행됐다. 한편 교황청은 일반 조문 사흘간 약 20만명이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시신이 안치된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을 찾아 조의를 표했다고 이날 밝혔다. 교황청은 오후 7시 일반 조문을 마무리하고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시신을 삼나무관으로 옮기는 입관 예절을 올렸다. 입관식은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오랜 개인 비서인 게오르그 겐스바인 대주교와 가사를 도운 수도회 수녀들이 참관한 가운데 비공개로 진행됐다. 관 속에는 고위 성직자의 책임과 권한을 상징하는 팔리움(양털로 짠 고리 모양의 띠)과 베네딕토 16세의 재위 기간 주조된 동전과 메달이 들어간다.  그의 재위 기간 업적을 담은 두루마리 형태의 문서도 철제 원통에 봉인해 관에 넣었다. 한국 천주교 성직자들은 일반 조문 마지막 날인 이날 성 베드로 대성전을 방문해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시신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조문했다. 염수정 추기경,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이용훈 주교와 사무국장인 신우식 신부 등 한국 천주교 대표단은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 장례 미사 참석차 전날 이탈리아 로마에 도착했다. 휴가차 세밑에 귀국해 한국에 머물던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도 한국 대표단과 같은 항공기를 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례하는 장례 미사는 5일 오전 9시 30분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다.  마테오 브루니 교황청 대변인은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 미사가 현직 교황의 장례 미사와 거의 동일한 절차로 진행될 것이라고 전했다. 미사가 끝나면 베네딕토 16세의 관은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 묘지로 운구돼 안장된다. 역대 교황 91명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 금감원 “삼성생명 계약자 배당금, ‘부채’로 표시 가능”

    금감원 “삼성생명 계약자 배당금, ‘부채’로 표시 가능”

    내년 보험업계 새 회계기준(IFRS17) 도입되더라도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보유에 따른 계약자 배당금 추정액을 종전과 같이 회계상 ‘부채’로 분류할 수 있을 전망이다. 금융감독원은 28일 유배당 보험계약 배당재원(계약자지분조정)을 새 회계제도에서 어떻게 처리할지에 관한 삼성생명 질의에 전문가 협의체 논의를 거쳐 회신을 마쳤다고 밝혔다. 이날 금감원이 삼성생명에 보낸 회신문에는 “새 회계규정(IFRS17) 적용에 따른 계약자지분조정의 회계 표시가 재무제표 목적과 상충돼 이용자의 오해를 유발하는 것으로 회사 경영진이 판단했다면 재무제표 표시에 관한 기준서(K-IFRS1001호)를 적용해 부채 표시를 고려할 수 있다”라고 설명돼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기존에 해온 대로 회계 처리해도 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 8.51%(시가 30조원 상당)를 들고 있는데, 이 주식 중 일부를 유배당 보험상품을 팔아 번 돈으로 취득했다. 삼성생명을 비롯한 보험사들은 유배당 보험계약자에게 지급할 배당금의 재원이 될 수 있는 금액을 감독규정 등에 따라 산출해 보험부채로 인식하고 재무제표에 계약자지분조정이란 항목으로 표시해 왔다. 보유자산 미실현손익은 통상 자본으로 인식되지만 계약자에게 돌려줘야 할 포괄적 채무로 회계 처리하는 게 유용하다고 판단해서다. 과거 유배당 보험상품 계약자가 낸 보험료를 재원으로 취득한 자산은 유배당 계약자도 운용 이익을 배당받을 권리가 있다는 점을 고려한 조처기도 했다. 내년 새 기준 도입을 앞두고 삼성생명은 지난 11월 계약자지분조정을 어떻게 회계처리해야 하는지 금감원에 질의했고, 일단 금감원은 유배당 계약자 몫을 보험부채로 반영하는 방침은 내년 새 회계제도가 시행되더라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금감원은 “보험업 새 회계기준(IFRS17)에 따르면 보험계약에 따른 현금흐름을 추정하고 가정과 위험을 반영한 할인율을 사용해 보험부채를 측정한다”며 “유배당 보험계약에서 발생할 배당금 역시 보험부채 평가에 반영해 새 기준에 따라 회계 처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공시한 정보가 이용자가 이해하기에 충분치 않다면 추가 공시를 할 수 있다는 게 금감원의 설명이다. 한편 삼성생명 측은 새 회계기준에 따라 측정한 유배당 계약자 몫(계약자지분조정)이 이전 회계관행으로 평가했을 때와 대비해 과소 표시되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 주식의 장기보유 계획으로 할인율이 높게 반영된다면 유배당 보험 계약자들에게 돌아갈 몫이 크게 줄어드는 것으로 회계상 표시될 수 있다. 이 경우 ‘삼성전자 지분을 팔지 않기로 결정한 것 아니냐’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금감원은 이런 삼성생명의 우려에 일리가 있다고 봤다. 금감원은 “보험업 새 회계기준을 적용해 회계 처리한 결과 그간의 회계처리 관행으로 표시해 온 부채 금액이 과소표시됨으로써 ‘재무 보고를 위한 개념체계’에서 정하고 있는 재무제표 목적과 상충돼 이용자의 오해를 유발하는 것으로 회사 경영진이 판단했다면,재무제표 표시에 관한 기준서의 예외 적용 문단에 따라 기업회계기준서(K-IFRS) 요구사항과 달리 회계 처리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일반회계에서 IFRS 기준에 대한 예외 적용은 엄격한 전제조건이 충족되는 경우에만 인정되는데,삼성생명 사안의 경우 예외 조건을 충족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금감원은 프랑스,영국,독일 등 해외에서도 회계기준서 예외 적용을 한 사례들이 다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회신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매각 계획 여부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유 지분증권 매각 여부는 회사가 의사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며 “이번 회신 내용과는 별개의 이슈”라고 말했다.
  • ‘그’를 따르니… 스스로 내려놓고, 온전한 나를 만나고

    ‘그’를 따르니… 스스로 내려놓고, 온전한 나를 만나고

    유배지 합천의 자연·풍물 글 남겨 직폭·와폭 황계폭포 ‘은하수 맛집’ 300년된 삼가시장… 합천 한우 본산 외토리 글자 없는 백비와 효자비 남명 조식 생가도… 곳곳에 발자취경남 합천행을 결심한 또 하나의 이유는 우연히 알게 된 이옥(1760~1815)이란 인물의 행장이 궁금해서였다. 그는 카타르월드컵이 남긴 유행어인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를 벌써 수백년 전에 실천한 선비였다. 그의 뒤를 따라 합천을 돌아보니 황계폭포 등의 명소와 남명 조식 등 합천이 낳은 인물들이 한가득 튀어나왔다. 문무자(文無子) 이옥은 조선 정조 때 문인이다. ‘붓끝에 혀가 달렸다’는 상찬을 받을 만큼 탁월한 문사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당대의 그는 사실상 ‘없는’ 인물이었다. 글자 없는 비석, 백비(白碑)처럼 말이다. 그의 생애와 문학이 온전히 되살아난 것도 최근의 일이다. 이옥은 조선 태종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의 후예로 전해진다. 한데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성균관 유생이던 시절 이후의 일들만 비교적 자세하게 전하는 편이다. 이옥은 왕에게도 대거리할 만큼 결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특히 정조와의 불화는 후대 학자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입에 오르는 일화다. 사연은 이렇다. 조선 후기에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글을 쓰는 소품체가 유행했다. 하지만 문장에도 도가 있다고 믿는 유학자 정조에게 소품체는 역린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정조는 소품체의 글을 패관잡기라며 지식인들에게 공자 왈 맹자 왈 식의 전통적인 문장만 쓰라고 종용했다. 당시 박지원, 김조순 등 소품체에 빠졌던 대부분의 선비들은 반성문을 쓰고 용서를 받았다. 하지만 유일하게 끝까지 덤빈 이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이옥이다. 심지어 그는 과거장에서조차 일부러 소품체로 답을 써냈다. 이를 단박에 알아본 정조는 그에게 합천 봉성(현 삼가)에 내려가 충군(充軍)하라는 명을 내린다. 충군은 군역에 복무하는 형벌을 말한다. 쉽게 말해 군 면제자인 양반의 후예에게 지역 사단으로 내려가 박박 기다 오라고 명령한 것이다. 합천으로 유배 온 이옥은 그 와중에 다시 과거에 응시해 장원으로 뽑히지만, 정조가 예의 문체를 지적하며 꼴찌로 강등시켰다. 이후로도 관직과는 끝내 인연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어쩌면 그 스스로 바랐던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당시 삼가에 내려온 그는 합천의 자연과 풍물을 보며 여러 글을 남겼다. 이를 그의 지음이었던 김려(1766~1822)가 모아 ‘봉성문여’란 문집으로 펴냈다. 현재 남은 그의 작품 대부분은 이런 경위를 통해 전해진 것이다. 이옥이 ‘봉성문여’에 남긴 곳 중에서 황계폭포, 삼가시장, 외토리 쌍비 등을 보러 갔다. 당시 명소였던 황계폭포는 현재도 합천 8경 가운데 하나다. 요즘엔 ‘은하수 맛집’으로 더 유명하다. 한여름이면 황계폭포 위로 은하수가 뜨는데, 이 장면을 담으려는 사진가들이 전국에서 몰린다. 이옥은 황계폭포를 이렇게 읊었다. “큰 바위가 우뚝 솟아 병풍처럼 둘렀는데, 높이가 십여 길 정도나 되고 폭포가 바위 위에서 날아 내린다. 옛날에는 폭포가 거쳐 오는 길에 돌부리가 있어 마치 기름장수가 기름을 쏟아붓는 것 같았다. 폭포물이 멀리 날아가 더욱 기이했는데 주민들이 감사와 고을 원이 놀러 오는 것을 괴롭게 여겨 그것을 쪼아 무너뜨렸다고 한다. 슬프다. 벼슬아치가 명승지에 누를 끼치는 것이 많다.” 그의 글을 보면 폭포의 원래 모습은 당시와 달랐던 듯하다. 폭포 상단의 돌부리가 폭포수를 더욱 아름답게 날리는 구실을 했는데, 이를 보고 벼슬아치들이 몰려들자 주민들이 아예 부숴 버렸다는 것이다. 폭포를 찾아온 지방 관리들의 떠세가 얼마나 자심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나저나 폭포수가 기름을 붓듯 쏟아지다 무지개처럼 부서지는 장면이란 대체 어떤 모습이었을까. 황계폭포는 2단 구조다. 아래는 바위 절벽을 비스듬히 타고 흐르는 와폭, 위는 수직으로 떨어지는 직폭이다. 겨울이 돼 바위 절벽을 가렸던 나무들이 잎을 모두 떨구니 폭포의 웅장한 자태가 한결 도드라진다.삼가시장은 역사가 300년을 훌쩍 넘는 전통시장이다. 이옥은 당시 정경을 ‘시기’(시장 풍경), ‘시투’(시장 좀도둑) 등에 담았는데, 대단히 세밀하고 문체가 아름다워 그의 작품 중에서도 백미로 꼽는 이들이 많다. 삼가시장은 1980년대까지도 경남 일대의 큰 시장이었지만 현재는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다. 다만 시장 규모에 견줘 소고기 전문점의 숫자는 여전히 압도적으로 많다. ‘합천 한우’의 본산이란 걸 실감하게 하는 장면이다.외토리 쌍비는 삼가면 외토리에 나란히 선 두 개의 비석을 이른다. 하나는 ‘효자비’란 이름이 새겨졌지만 다른 하나는 아무것도 없다. 글자가 없는 비석을 백비라고 하는데, 이옥이 남긴 동명의 작품은 이에 대한 소회를 적은 글이다. 세상과 불화하면서도 젠체하지 않고 자신의 글을 온전히 지킨 그의 복잡한 심사가 고스란히 묻어난다.외토리는 영남 유학의 태산북두로 추앙받는 남명 조식이 태어난 곳이다. 그가 제자들을 양성했던 뇌룡정, 생가지, 그의 위패를 모신 용암서원 등의 문화재가 남아 있다. 합천 8경의 하나인 읍내 함벽루나 해인사 홍류동 계곡, 황계폭포 등에도 남명의 발자취가 많이 남아 있다. 꼭꼭 되짚어가며 찾아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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