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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스닥펀드 가입 지금이 찬스

    “주가 조정기엔 코스닥 전용펀드를 주목하라.” 코스닥지수가 한달여만에 고점인 94포인트에서 76선까지19.1% 추락했다.지난 3월말 코스닥시장에서 주식을 산 투자자들의 평가손이 20% 가까이 된다는 얘기다.거래소 종합주가지수가 같은 기간동안 937포인트에서 867포인트로 7.4% 떨어진 사이에 코스닥은 약 3배나 더 하락했다. 경기도 일산에 사는 유민영(회사원·36)씨는 지난달말 코스닥시장이 상승할 때 산은캐피탈,KTB네트워크 등을 샀다가 최근까지의 하락으로 40% 가까운 손해를 봤다.유씨는전용펀드에 가입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다. 삼성투신 배재규(裵在圭) 코스닥 팀장은 “코스닥시장이약세를 면치못하는 상황에서 개인투자자들은 간접투자로위험을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개인투자자들이 최근 2∼3개월 사이에 개별종목으로 평균 20∼30% 정도 손해를 볼때,코스닥 전용펀드들은 최고 26.24%의 수익률을 냈기 때문이다. ♣왜 코스닥 전용펀드인가=미래에셋의 이종우(李鍾雨)실장은 “수출회복이 뚜렷해지는 하반기로 갈수록 코스닥 전용펀드가 상대적으로 인덱스펀드(종합주가지수 연동)나 주식형펀드보다 수익률이 높을 것”이라고 전망했다.특히 코스닥지수가 고점에서 20% 가량 하락했기 때문에 현 시점에펀드에 가입할 경우 최소 20%는 이익을 본다는 설명이다.주식시장이 심하게 흔들릴수록 종목별 차별화가 심화돼 분석능력이 떨어지는 개인투자자들은 손해볼 가능성이 높아진다.반면 펀드에 가입하면 시장평균이나 그보다 높은 수준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어떤 상품이 있나=최근 삼성투신운용은 코스닥 신규등록 우량주에 투자하는 ‘프레쉬데뷰펀드’를 내놓았다.최근코스닥시장 약세에도 꾸준히 주가가 오르는 종목이 지난해 10월 이후 등록된 신규 종목들이라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재무구조가 탄탄하고 수익력이 좋은 종목에 투자한다. 한국투신운용이 지난 1일 낸 ‘그랜드슬램 코스닥펀드’는 코스닥시장의 변동성을 이용한 상품이다.재료보유주와모멘텀 위주의 단기투자를 한다.이밖에 동양투신의 ‘장외홈런주식06-03’,하나알리안츠투신의 ‘바이코리아 엄브렐라코스닥1’ 등이 있다.설정일은 1999년과 2000년 사이다.현대투신의 ‘퍼펙트U코스닥주식1’과 마이다스의 ‘코스닥50인덱스펀드’가 각각 2001년 4월과 5월에 설정됐다.전용펀드의 수익률은 최근 3개월간 8∼26%,최근 6개월간 27∼65% 수준이다. ♣펀드 가입 어떤 기준으로=간접투자상품은 높은 수익률만큼이나 운영의 안정성이 중요하다.펀드 선택을 잘못하면최악의 경우 원금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미래에셋의 이실장은 “펀드운용자의 과거 수익률을 확인하고,설정된 펀드의 월별 수익률 편차가 크지 않은 상품을 택하라.”고조언한다.펀드매니저들의 과거 수익률은 각사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문소영기자 symun@
  • ‘세종문화회관 전사’ 발간

    한국의 대표적 공연장인 세종문화회관의 역사를 기술한‘세종문화회관 전사’가 발간됐다. 유민영 단국대 교수 등 9명의 필진이 지난 1년간 각종 자료를 수집,편찬한 이 책은 650쪽 분량으로 1935년 개관한부민관 시절부터 시공관,우남회관,시민회관 등 세종문화회관의 모태가 됐던 공연장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아울러 고려교향악단(현 서울시교향악단),예그린 악단(현 서울시뮤지컬단) 등 세종문화회관 산하 9개 예술단체의활동사도 썼다.김 구 선생의 장례행렬이 부민관 앞을 지나가는 장면 등 사진자료도 담고 있다. 출판기념회는 28일 오후 5시 세종문화회관 2층 미술관 신관에서 열린다.
  • 백남준씨 금관문화훈장 받는다

    정부는 ‘문화의 날’을 맞아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白南準·68)씨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주기로 했다.판소리명창 고 임승근 (林承槿·예명 임방울)씨 등 7명에게는 은관문화훈장,촬영감독 정일성(鄭一成)씨 등 13명에게는 보관문화훈장을 수여키로 했다.또 ‘혼불’의 작가 고 최명희(崔明姬)씨 등 5명에게 옥관문화훈장,‘노란 셔츠의 사나이’를 부른 가수 한명숙(韓明淑)씨 등 8명에게 화관문화훈장을 주기로 하는 등 모두 34명을 문화훈장 서훈자로 결정했다. 이들에 대한 시상은 20일 오후 5시 서울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문화의 날’ 기념식에서 이루어진다.한편 문화부는 최근 백남준씨가 “건강이 장거리여행을 허락치 않아 서울에 갈 수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옴에 따라 뉴욕총영사나 뉴욕문화원장을 통해 전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문화부는 제32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수상자로 ▲문화부문 한국종이접기협회 ▲문학부문 소설가 이동희(李東熙) ▲미술부문 화가 성백주(成百胄) ▲음악부문 국악인 이춘희(李春羲) ▲연극·무용부문 무용인 정재만(鄭在晩)씨를 선정했다. 문화훈장 서훈자는 다음과 같다. ▲금관문화훈장 백남준 ▲은관문화훈장(7명) 고 윤경렬(尹京烈·전신라문화동호인회장)·고 임승근·권순형(權純亨·전서울대 미대학장)·김동진(金東振·작곡가)·김원복(金元福·피아니스트)·문덕수(文德守·전한국펜클럽회장)·안형일(安亨一·성악가) ▲보관문화훈장(13명) 고 현중화(玄中和·화가)·강용준(姜龍俊·소설가)·김길호(金吉浩·연극인)·배동신(裵東信·화가)·성찬경(成贊慶·시인)·유민영(柳敏榮·연극인)·이귀례(李貴禮·차문화협회장)·이승택(李升澤·조각가)·이학(李鶴·자수가)·이한우(李漢雨·화가)·정일성·조수호(趙守鎬·서예가)·베르톨트 바이츠(독일 루어문화재단 이사장·1999년 독일에서 43억원 투자 한국문화재전시회 개최) ▲옥관문화훈장(5명) 고 최명희·김양수(金良洙·세손문학교육진흥원 이사장)·장하린(張河麟·종로서적 대표)·조흥동(趙興東·무용가)·최민식(崔敏植·사진작가) ▲화관문화훈장(8명) 고경재(高慶在)·김수진(金守鎭·군위문화원장)·김희규(金喜奎·영암문화원장)·박영재(朴英載·과천문화원장)·손호연(孫戶姸·한일문화교류 기여)·이형구(李亨求·선문대 역사학과교수)·한명숙·황재기(黃在基·국악인)
  • [문화예술 분단장벽 허무나](2)공연예술

    분단의 상처를 창작의 원천으로 삼아 예술적으로 승화하려는 움직임은 연극,무용,음악 등 공연예술계에서도 꾸준히 이어져왔다. ◆연극/ 분단초기인 1950년대에는 전쟁의 충격으로 반공의식을 담은 작품들이주로 창작됐으나 60년대들어 전쟁과 분단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학계에서는 60년 신춘문예작인 박현숙의 ‘사랑을 찾아서’를 ‘분단희곡’의 출발로 꼽는다.한 여인이 사랑을 찾아 이데올로기에 상관없이 남북을 오가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남자주인공인 공산당원을 인간적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차범석의 ‘산불’은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이데올로기 갈등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보다 객관적으로 묘사했다는 평을 받은 작품.‘관광지대’‘모가지가긴 두사람의 대화’(박조열)‘바꼬지’(이재현)등도 60년대 분단과 통일문제를 다룬 희곡들이다.이재현은 ‘포로들’(72)‘멀고 긴 터널’(77)‘적과 백’(83)등 6·25전쟁포로를 다룬 기록극형식의 삼부작을 내기도 했다. 80년대에 이르러 분단희곡은 새로운 전기를맞는다.동서간의 해빙무드에 힘입어 보다 적극적으로 분단의 모순상황을 지적하고 이데올로기의 무의미성을고발하는 작품들이 대거 쏟아졌다. 노경식의 ‘하늘만큼 먼나라’(85)황석영의 ‘한씨연대기’(84)이강백의 ‘호모세라파투스’(83)‘칠산리’(89)이반의 ‘아버지 바다’(89)등이 대표적이다. 분단과 통일문제를 정치사회적인 시각으로 묵직하게 다룬 80년대에 비해 90년대는 풍자적이고 우화적인 분단희곡들이 눈에 띈다.장소현의 ‘김치국씨환장하다’(98)나 오태영의 ‘통일익스프레스’(99)는 패러디와 유머감각,아이러니를 표현기법으로 도입함으로써 관객들의 변화된 정서에 부합하는 한편날카로운 사회비판도 놓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수작으로 꼽히는 작품들이다. 연극평론가 유민영씨(단국대 교수)는 “분단을 다룬 수작 희곡들이 상당수이나 양적인 면에서나 스케일,그리고 심도에 있어서 소설에 비해 미약한 것이사실”이라고 지적하고 “6·25를 이념이나 상황이 아닌 철학적 성찰로 접근할때 비로소 뛰어난 작품이 나올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무용/ 지난 95년 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산하 민족춤위원회는 해방5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춤제전을 벌였다.‘해방50년,겨레의 몸짓으로’를 주제로한 이 행사는 그간 개별적으로 이뤄져온 무용계의 분단 형상화작업을 전체적으로 묶어내는 역할을 했다.당시 선보인 한상근의 ‘무초Ⅲ’은 현대춤과 전통춤을 조화시켜 통일을 위해 몸바친 이들을 그려냈으며,정혜진 무용단은 ‘새들의 암장’이란 작품에서 북한에 고향을 둔채 이국땅에서 삶을 마감한 박남수시인의 삶을 형상화했다. 개인적으로 분단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보여온 무용가로는 분단이후 한국상황을 무용극 ‘내사랑 한반도’(88)로 풀어낸 조기숙을 비롯해 살풀이 시리즈의 이정희 중앙대교수,강혜숙 청주대 교수등이 대표적이다. 민족춤위원회 김채현위원장은 “분단문제를 현대적인 관점으로 접근해 외국인도 공감할 수 있는 국제적인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무용계의 과제”라고 지적했다. ◆음악/ 작곡가 안익태가 30년대 작곡했던 ‘코리아환타지’를 60년대에 전쟁을 승화시키는 쪽으로개작한 것을 비롯해 변훈의 ‘떠나가는 배’이호섭의‘울음’등 많은 작곡가들이 분단의 비극을 음악으로 형상화하는데 힘을 기울였다.그러나 작품 못지않게 삶자체에 통일의지가 가득했던 작곡가 윤이상이 갖는 상징성은 그 무엇보다 큰 자리를 차지한다. 95년 독일 베를린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윤이상은 조국의 분단을 걱정했다.67년 동베를린간첩단사건에 연루돼 71년 독일에 귀화한 뒤 한번도 고향땅을 밟지 못했던 그는 음악으로 남북 화해의 다리를 놓기위해 수시로 북한을 오갔다.‘오보에와 하프를 위한 이중 협주곡’칸타타‘나의 땅,나의 조국’등 통일을 염원하는 작품창작뿐 아니라 88년에는 남북축전을 제안하고,90년 평양에서 범민족통일음악회를 직접 주도하기도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민경찬 교수는 “남북한이 서로 민족음악을 내세우지만 결국 둘다 반쪽의 민족음악일 수 밖에 없었다”면서 “남북의 음악계가 서로합심해 새로운 통일음악을 모색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이순녀기자 coral@
  • 국립극장 50주년 기념공연 ‘수궁가’

    오는 29일 50주년을 맞는 국립극장(극장장 김명곤)이 기념공연으로 완판창극 ‘수궁가’를 무대에 올린다. 국립극장 전속 창극단의 완판창극 공연은 ‘춘향전’(98년)‘심청전’(99년)에 이어 세번째.‘춘향전’은 객석점유율 80%,‘심청전’은 전회매진의 기록을 세운 바 있어 이번 무대에 거는 기대가 더욱 크다. ‘수궁가’는 지난달 27일 타계한 허규 전국립극장장의 유작을 김명곤 극장장이 연출하는 작품.김극장장은 앞서 ‘춘향전’에서는 대본을,‘심청전’에서는 대본과 연출을 맡아 흥행의 견인차 구실을 해냈다.작창은 안숙선 창극단 예술감독이 맡는다. ‘수궁가’는 토끼의 간을 구하려는 별주부 얘기를 소재로 인간세태를 풍자한 작품으로 총 11장으로 구성된다.김극장장은 “자라의 충성심과 토끼의 지혜라는 교훈 외에 자라의 출세욕,토끼의 허영심 등 양면을 해학적으로 보여주겠다”고 설명했다.풍부한 합창곡과 역동적인 몸동작으로 시종 유쾌한 웃음을 선사할 계획.안숙선 예술감독은 “완판창극의 의미와 소리의 맛을 동시에 살리려고 애썼다”고덧붙였다. 안숙선 유수정 김금미(토끼 역)조통달 왕기석 왕기철(별주부 역)윤충일 김학용(용왕 역)등 쟁쟁한 국악인들이 3일씩 번갈아가며 공연한다.공연시간은 중간휴식 1시간을 포함해 총 4시간30분.창극단외에 무용단 극단 국악관현악단등 국립극장의 4개 전속단체 150여명이 힘을 합해 만든다. 50주년 기념식 직후인 5월6일 오후4시 첫무대를 가진 뒤 14일까지 매일 같은 시간에 공연한다.토끼띠와 용띠 관람객에게는 으뜸석과 버금석을 30%할인해주고,70세이상 고령자들은 무료 관람의 혜택을 준다.(02)2274-3507. 이순녀기자 coral@. *국립극장 한국신극 중심무대로 50년.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국립극장은 문을 연 지 두달만에 전쟁의 포화에 휩싸여 유랑하는 등 쉰해동안 숱한 영욕의 세월을 거쳐온 우리 극장사의산증인이다.1948년 법령 제정에 따라 2년간 준비한 끝에 50년 4월29일 옛 부민관(현 서울시의회)에 둥지를 틀고,극예술연구회·극예술협회·동양극장 계열을 아우른 우리나라 신극의 중심무대로 첫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부민관이 폭격 당하자 전선을 따라 대구로 내려가 피난살이를 했다.57년 서울로 돌아온 국립극장은 옛 명동예술회관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전속인 국립극단을 탄생시켰다.62년에는 국립창극단·국립무용단·국립오페라단을 창단했다.당시 명동이 한국문화의 메카 구실을 한 데는 국립극장의 공이 컸다. 문화예술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립극장이 지금의 장충동 자리로 옮겨온것은 73년.연극평론가 유민영씨는 “이때부터 국립극장에 침체기가 시작됐다”면서 “문공부 출신 극장장이 1∼2년씩 자리만 지키다가 지나감으로써 거대공룡 국립극장은 무대예술의 사각지대가 됐다”고 회고했다.74년에는 광복절 행사를 치르다 육영수여사가 피격되는 불행한 사건도 겪었다. 그러나 60년대부터 창극정립운동을 펼쳐 국악발전을 이끌고,97년이후 발레상설공연을 갖는 등 각 분야 공연예술을 균형있게 발전시킨 공로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특히 올해부터는 책임운영기관으로 탈바꿈해 내부 구조개편과수준높은 공연 등 극장 전반에 걸쳐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기념식은 5월 6일 오후 2시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열린다. 이순녀기자
  • 이세기의 인물탐구-연극 평론가 李泰柱

    연극평론가 李泰柱의 모습은 푸른 산처럼 청청하다. 자신의 소신을 피력할 때도 물과 불을 가리면서 명쾌한 논리를 전개하기 때문에 연극평론가·교육 자로서 탁월하다는 평을 듣는다. 언제나 시대의 선두에 서서 활기차게 달려 가는 그를 보면 ‘새로운 의욕이 용솟음친다’는 무용가 최현씨의 말은 그를 두고 적절하다. 그러나 행동파 이전의 그의 내면은 완벽주의자로서 섬세한 서정성과 낭만이 두드러진다. 그가 가지고 다니는 노트와 수첩에 보면 프랑 스 영화배우 장폴 벨몽도의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인생에서 행복한 날 은 아직도 오지 않는다’와 일본의 사진작가 호시노 미치오가 ‘살아있는 한 꿈으로 향해 걸어간다’는 구절이 그의 겉모습과는 대립되는 일면을 보여준 다. 그는 지금도 꿈을 향해 걸어가고 있으며 자신의 꿈은 완성되지 않았다고 믿는것 같다. 연극평론 분야에서 여석기 오화섭으로 시작되는 제1세대가 주로 전통을 사 수하는 보수주의적 사실극평에 치중했다면 그를 비롯한 유민영 이상일 한상 철 김문환등은 제2세대로서 60년대 초반에 연극계에 개혁의 회오리바람을 불 러일으킨 주역들이다. 모든 예술분야는 평론이 뒷받침하지 않고는 발전할 수 없다는 신념에서 ‘연극은 무엇을 할수 있는가’, ‘내가 생각하는 연극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내걸고 우리 연극의 미비점과 취약점을 그때마다 지 적하고 이를 보완하는 방법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나라의 전성기 에는 연극 중흥이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고 있었으며 연극의 빈약은 사회전 반에 위축을 가져온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논지다. 따라서 리얼리즘 연극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연출·연기·극작·관객의 개혁이 이루어져야한다는 신념 에서 연극전반을 철저하게 진단하고 해부하는 작업에 뛰어들었다. 이 운동은 한때 침체된 연극계에 찬반 양론의 열기를 고조시켰고 이에 반대하는 층과 팽팽하게 맞서지 않으면 안될 고전을 겪기도 했다. 지난 72년에는 연극평을 좀더 활발하게 펼 수 있는 장을 만들기 위해 혼자 힘으로 국내 최초의 연극 평론지인 계간 ‘드라마’를 창간, 폴란드의 연출가 그로토프스키의 ‘가난 한 연극’ 이론을 바탕으로 한 ‘20세기 부조리극은 시대의 위기를 비추는 날카로운 충격’으로 호평한 반면 ‘국립극단의 연극은 행사적 연극’이라고 비판한 것이 화근이 되어 원로 연출가 이진순씨의 분노를 사는 바람에 한국 연극협회에서 제명당한 일도 있다. 그렇다면 그가 주장하는 연극은 어떤 것인가. 시대가 처한 정치적 상황과 실생활에서의 모순, 인간 위선의 갈등을 무대에 거울처럼 비춰 메스를 가해 야 한다는 시각이다. 이와 관련하여 뉴욕타임스지 연극리뷰에 난 피터 셰퍼 의 ‘에쿠스’ 기사를 보고 실험극단 창단 기념 공연작품으로 이 연극을 추 천한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무대에서 말이 펄펄 날뛰는 폭발적인 행동은 당 시 국민들의 울적한 정서와 맞아 떨어졌고 공연열기가 불붙어 오르자 당국이 공연제제를 가하려 한 것은 70년대 연극사의 사건으로 손꼽힌다. 그런 한편 으로는 연극전문교육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일련의 셰익스피어 작 품을 공연해야만 연출·연기·극작술의 완벽을 성취할 수 있다는 논평, 기업 의 문화예술계 참여와과감한 투자권유를 한것도 그의 공적으로 돌릴수 있다 . 그 방법으로 미국의 아더발레의 희곡발전연구소(OADR)를 소개하고 이 연구 소는 연간 1,200여편의 희곡을 읽고 125편의 희곡을 선정해서 록펠러재단이 이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 78년에는 신극 30주년을 맞아 신극사 선구자들의 자료가 전무하다는 사실을 개탄하고 그가 몸담고 있는 단국대에 연극박물관 설립을 건의하면서 직접 카메라를 메고 공연사진을 찍기 시작한것도 그의 결연한 의지가 아니면 누구도 쉽게 흉내낼수 없는 실천력일 것이다. 이러한 경험이 축적되어 지난 해엔 아마추어 사진작가로서 사진 그룹전에 두번이나 출품하고 있다. 그의 식을줄 모르는 정열은 어느 자리에서나 씩씩하게 옳은 말을 하지만 호평 일 변도는 자제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그의 주변에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 여들고 젊은 제자들에게 각별한 존경을 받는 것은 사감이 깃들이지 않은 순 수한 정의감과 학문의 연찬(硏鑽)에서 오는 온오(蘊奧)의 경지때문이다. 평북 청진에서 태어나 해방 후 부모를 따라 부산으로 갔다가 서울에서 경복 고와 서울대 영문과에 다녔다. 가족은 연극을 좋아하는 부인 陳英淑씨와 1남 2녀, 아들(동일씨)이 아버지를 이어 미국 미네소타주립대에서 연극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 이태주의 꿈은 연극박물관을 세우는 일과 셰익스피어 4대 사극공연을 실천하는 일이지만 재정적 여건상 어느 극단에서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현실 이 그를 안타깝게 한다. 그러나 호시노 미치오의 말처럼 그는 끊임없이 꿈을 향해 걸어가고 있으며 완성때문이 아니라 꿈에 대한 확신때문에 처음과 같 은 청년의 기백을 잃지 않는다. 행동파·실천파로서의 그의 만리심(萬里心) 은 결국 가장 찬란한 꽃을 피우기 위해 가장 화려한 봄날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그의 주변에서는 확신하고 있다. 그의 길 1934년 부산출생 1956년 서울대 문리대 영문과졸업 1966-67년 하와이대 조지타운대 대학원 연수 1968-74년 숭전대 교수 1979-87년 단국대영문과교수 1980년 한국 연극학회장 1990년 국제극평론가협(IATC)집행위원겸 동아시아·태평양지역센터 위원장 1995년 현재 예술의 전당 이사 1996년 한국연극학과교수협의회장 1997년 현재 단국대영문과교수,한국연극교육학회장, 국제극예술협(ITI)한국 본부 상임위원 [ sgr@daehanmaeil.com] **끝** (대 한 매 일 구 독 신 청 721-5544)
  • 번역극작가 申定玉(이세기의 인물탐구:184)

    ◎英美 희곡 재창조 ‘번역의 셰익스피어’/40년 외길… 펴낸 작품 200편 넘어/탁월하고 충실한 언어구사력 ‘독보적 존재’/“번역이란 충실할수록 아름답고 아름다울수록 충실해야 한다” 타탄무늬의 주름진 스커트에 어깨엔 숄더백,손에는 또 다른 대형 가방을 든 申定玉은 하루 종일 학교로 도서관으로 바쁘게 뛰어다닌다.10년 전이나 그 이전에도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여전히 변치 않은 모습이다.그의 학구적 자세는 그동안 200여편의 희곡을 번역했고 250여 극단이 1년 내내 돌아가면서 그가 번역한 희곡을 공연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틀림없다. 그래선지 그가 쉬고 있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다. 공부 외에 다른 재주가 있다고도 생각되지 않는다.공연장에 자주 나타나는 것은 그의 번역 희곡이 공연되고 있다는 증거다.문자 그대로 공부만이 취미이고 인생의 전부인 ‘공부벌레’다. 특히 셰익스피어 작품을 번역하면서 ‘드넓은 우주 속에서 한낱 미소한 존재인 인간의 성격을 예리한 면도칼로 베어내듯이 도려낸 작가의 명징성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가 이 땅의 연극발전에 크게 영향을 끼쳤음을 깨닫자 ‘셰익스피어 한국에 오다’를 집필하여 작가의 한국에서의 수용(受用)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이고 있다. 그는 하나의 연구에 파고들기 위해 우선 자료탐색에 심혈을 기울인다.지난 94년에 출판된 ‘한국신극(1930∼60년)과 서양연극’ 집필을 위해서 신문사의 조사자료실을 샅샅이 뒤졌고 잡지와 개인일기,논문과 관련저서를 인용하는등 20여년간의 착실한 준비기간을 거쳤다. 책의 서문에서는 ‘이 작업은 험난한 대장정(大長征)’이었다고 밝히고 ‘한강에서 조리를 들고 금조각을 캐내는 것’같은 뼈저린 고통의 시간이었음을 돌아본다. 그는 셰익스피어 외에도 유진 오닐,테네시 윌리엄스와 현대작가인 피터 셰퍼에 이르기까지 영·미희곡을 망라하는가 하면 지난 90년 체호프 탄생 130주년 기념으로 ‘체호프의 한국 수용에 관한 연구’와 러시아·독일연극의 한국수용과정을 완벽하게 마무리짓고 있다. 지난 85년 ‘한국연극’지가 100호 기념으로 수여하는 ‘최다집필상’ 수상은 그의 방대한 작업량을 단적으로 대변해주는 예이다. 오전 9시면 옥수동집을 나와 서초동에 있는 집필실에서 요즘은 ‘한국연극’의 60년대 이후를 집필중이다. 그가 셰익스피어에 눈뜨게 된 것은 경북대 3학년때 ‘맥베스’ 2막 2장중 환청 장면에서 셰익스피어만의 독창성과 천재성,절륜의 상상력에 매료되면서 부터다. 그러다가 57년 이대 대학원시절에 번역한 ‘한여름 밤의 꿈’이 이화여대 연극회를 통해 무대에 올려진 것을 계기로 30여년을 한결같이 셰익스피어라는 ‘신(神)’을 신봉해왔다. 89년까지 200자 원고지 1만7,000장 분량의 번역을 완성,전 40권의 이 완역본은 셰익스피어 전 생애에 걸쳐 펴낸 장막희곡 37편 외에 장편시,소네트 등으로 지금까지 23권이 전예원에서 출간됐다. 셰익스피어 전집은 지난 64년 휘문출판사와 정음사가 발간한 적이 있으나 번역문이 딱딱한 산문투인데 비해 그의 번역은 셰익스피어 특유의 시적운율을 그대로 살려낸 것이 특징이다. 평론가 유민영씨에 의하면 ‘셰익스피어 대사에서의 감격조와 영탄조,번뜩이는 해학과 풍자의 묘미는 더 이상의각색이나 윤색없이 그대로 무대에 올려도 손색이 없다’는 평이다. 그는 비평가·언어학자·연출가·시인등 4개의 얼굴을 갖추면서 ‘신성(神聖)에 가까운 언어의 천재성’을 파헤쳤고 여기에다 작가 본연의 사상과 언어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한 지속적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잘못 쓰여진 책은 실수이나 좋은 책의 오역은 죄악’이라는 것과,희곡번역은 ‘제2의 창조’라는 신념에서 셰익스피어가 언어의 연금술사이듯이 항상 ‘듣는 연극’‘무대에 맞는 번역’을 고집하며 공연중에도 ‘잘못된 번역’을 찾아내는가 하면,가장 근접한 표현을 위해 수많은 문학작품 섭렵을 마다하지 않는다. 폴 발레리는‘번역이란 원문에 충실하면 충실할수록 덜 아름답고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덜 충실하다’고 했지만 그는 ‘번역이란 원문에 충실할수록 아름답고 아름다울수록 충실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킨다.연극계에서는 그런 그를 가리켜 ‘무상(無償)의 정열을 지닌 교수’로 지칭한다. 큰 공적에 비해 그가 적정한 보상을 바라지 않는 것은 번역작업이 그에게 있어 행복한 학문의 연장이기 때문일 것이다. 함남 정평 태생으로 부친 申雄浩씨와 林南秀씨의 1남4녀중 장녀.수도여의전과 한일병원장을 지낸 부친을 비롯,남동생과 여동생들이 모두 의사지만 그는 문학쪽에 더 관심을 갖고 숙명여고 졸업후 대구 피란지에서 경북대 영문과에 진학했다. 부군 李遠台씨는 주택공사 부사장을 거쳐 미륭건설사장을 역임,그의 공부하는 자세를 아끼고 사랑하면서 공연 때문에 귀가가 늦으면 밖에 나와서 기다려준다. 자녀는 MIT 경영학박사인 장남 순철씨(홍대 교수)와 차남 윤철씨(株 미수원사장). 경결하면서도 무구한 성격탓에 번거로운 교분을 트기보다 극단 여인극장의 대표이자 연출가인 강유정씨를 믿고 만나는 정도다. 약삭빠른 사람은 학문을 경멸하고 단순한 사람은 그것을 숭배하며 현명한 사람은 그것을 이용한다면,그는 단순하면서도 원후(圓厚)하고 겸허하면서도 현명한 사람일 뿐이다. 따라서 공부가 취미이고 인생의 보람이며 만약 공부할 일이 없었다면 ‘신정옥 다운 인생은없었을 것’이라는 강유정씨의 말은 그를 두고 진리다. □그의 길 1932년 함남 정평 출신 1951년 숙명여고 졸업 1955년 경북대 영문과 졸업 1957년 이대 대학원 영문과 졸업 1964∼73년 이대 외국어대 강사 1973∼98년 명지대 영문과 교수 1976년부터 실험극장 ‘에쿠우스’를 필두로 희곡 200여편 번역 1979∼80년 국무총리실 정부시책 평가교수 1981년 국무총리정책자문위원 교수 1987년 한국외국어대 대학원 영문학 박사학위 1989∼현재 오닐학회 이사 1996년 명지대 외국어교육원 원장 현재:명지대 명예교수,한국 셰익스피어학회 회장 저서:‘20세기의 미국연극‘(72년·문예출판사),‘현대영미희곡’ 전 10권(76­84년·예조각),‘셰익스피어 4대비극집’(93년·전예원),‘한국연극과 서양연극’(94년·새문사) 등 50여권 외 셰익스피어전집 전 40권 수상:실험극장 ‘에쿠우스’ 장기공연 공로상(76년),한국백상예술대상 특별상(80년),한국연극협회공로상·‘한국연극’ 100호기념 최다집필상(85년),91’연극영화의 해 사랑의 연극잔치 최우수 번역상,동랑연극상(96년)
  • 러 한국문화실 설립 한마음/모스크바대 김연수씨 기금마련 바자주도

    ◎교수·정치인·유명연예인 동참/28일 예술의전당서 애장품 판매 모스크바 국립대학에 한국문화실을 설립하기 위한 바자회가 오는 28일 하루동안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앞마당에서 열린다. 유명 문화예술인을 포함,인기 연예인들이 대거 참여할 계획으로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이 바자회가 열리게 된 것은 모스크바대학에서 강의를 하다 방학을 맞아 최근 귀국한 김연수씨의 노력에 따른 것이다. 지난 94년 모스크바대학 비교문학 박사과정에 입학한 김씨는 자료실 등이 없어 애태우는 이 대학 한국학 전공 학생들의 실정을 소개하고 관심있는 사람들의 뜻을 모았다.특히 모교인 수도여고 동창회에서 적극 나서 이같은 바자회가 준비됐다. 김씨는 첫목표로 5천달러 정도를 잡고 있으며 한국문화실을 만들어 자료실과 교수연구실 등 연구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김씨에 따르면 모스크바대학은 한국학과는 아직 독립돼있지 못하고 동남아­몽골­한국과에 속해 있으며 한국학을 전공하는 학생은 학부 대학원 합쳐 40여명.그러나 전용 연구실이 없어이들이 빈방을 찾아다니며 공부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반면 같은 과에 속한 말레이시아 전공의 경우 해당국 대사관에서 전용연구실을 설치,학생들의 교육을 돕고 있으며 독립과인 일본과는 대사관이 지원해준 60여대 컴퓨터로 컴퓨터교실을 개설,학생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대사관측에 수차례 문화실 개설과 컴퓨터지원을 요청했으나 진전이 없어 동창회의 도움을 요청한 것이 큰 파급효과를 일으키게 됐다”면서 “삼성문화재단도 이 일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 조만간 한국학 전공학생들이 좀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바자회에는 앙드레 김 등 유명 디자이너,김혜수 채시라 최지우 고소영 이혜영 정혜선 차인표 신애라 손창민 고두심 이상아 등 남녀 탤런트,정선경 문성근 박정자 등 영화 및 연극인,노사연과 김무송부부 조영남 김수철 조용필 등 가수들이 평소 애용하던 물품들을 일반에 내놓게 된다. 또 차범석 문예진흥원장,김도수 단국대 총장,유민영 단국대 교수,작가이문열 등도 책자나 의상을 내놓는다.한글과 컴퓨터사에서는 컴퓨터소프트웨어를 제공하며 권영자 국회의원,김한길·최명길 부부 등도 참여한다.문의 706­0005
  • 명사특강+콘서트/「이색무대」 펼친다

    ◎예술의 전당·21세기 문화광장 공동/영화감독·시인·소설가 등 문화강연과 음악회/11일∼새달29일 화요일 상오 10시30분부터 쉽게 접하기 힘든 문화계 명사들의 특별강의를 듣고 알차고 아담한 콘서트까지 즐길수 있는 이색무대가 기획돼 눈길을 끈다. 예술의 전당(사장 이종덕)과 예술비평가그룹인 「21세기 문화광장」(대표 탁계석)이 마련한 「명사초청 문화특강콘서트」.영화감독 시인 소설가 등 각 장르 전문가들의 문화강연과 콘서트를 한자리에서 접할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오는 11일부터 4월29일까지 매주 화요일 10시30분∼낮12시10분에 서울 예술의 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린다. 이 문화특강콘서트는 저녁시간대에 몰려있는 문화행사 접근이 어려운 주부,직장인 등을 겨냥한 새로운 문화상품으로 1시간동안 문화특강을 듣고 30분동안 미니콘서트를 즐기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문학특강에 참여할 명사는 시인 조병화,영화감독 박철수,연극평론가 유민영,국립국악원 이성천 원장,서울예고 신경욱 교장,국회의원 홍사덕,작가 김주영,중앙대 정병호명 예교수 등 8인. 명사특강에 이어 펼쳐지는 미니콘서트는 유명연주자와 연주실력이 뛰어나지만 지명도가 낮아 무대에 좀처럼 서지 못했던 연주자들이 함께 꾸민다.프로그램은 첼로,바이올린,성악,국악,무용 등 다양한 장르로 짜여지며 첼리스트 박경숙,실내악단 노모스트리오,바리톤 최현수,국악인이자 피아니스트 임동창,클라리넷주자 오광호 등이 출연한다. 「명사초청 문화특강 콘서트」의 회원권은 14만원.2개월간 8회의 행사에 참여할 수 있으며,회원권을 다른 사람에게 대여할 수도 있다.1회 입장권은 2만원.776­5926.
  • 경쟁력 강화의 길 찾는다/전문가 좌담

    ◎“고비용·저효율구조 근본적 개혁을”/군살·거품 제거 경쟁력 10%이상 높여야/임금 오르면 자동화투자 무용지물/취약 자본재산업 정책적 육성 필요 □참석자 ·안병우 재경원 제1차관보 ·전대주 전경련 전무 ·이필상 고려대 교수 경제가 어렵다고 난리다.체감경기가 어느 때보다 싸늘하고 국제수지 적자도 악화일로다.불황의 기운이 풀릴 기미가 없다.실타래처럼 얽힌 경제 어려움을 새해엔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서울신문은 신년특집으로 안병우 재정경제원 제1차관보와 전대주 전경련전무,이필상 고려대교수의 좌담을 통해 우리경제에 대한 진단과 해법을 모색해봤다. ▲안차관보=우리 경제가 대내외적으로 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내적으론 경기가 둔화되고 물가상승압력이 상존하고 있으며 경상수지 적자가 늘고 있습니다.외적으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으로 개방화와 국제화를 맞고 있습니다. ▲전전무=연초부터 어두운 얘기하기가 좀 그렇습니다만,96년 성장은 그런대로 평년작이라고 봅니다.문제는 국제수지가 새해에도 해소될 전망이 없다는 점입니다. ▲이교수=정부나 재계나 몇년전까지만 해도 경기를 밝게 보았습니다.그러다 위기를 맞았습니다.저는 경제위기에 대한 기본 인식이 잘못된 게 아닌가 봅니다. ○국민 모두 힘 합칠때 ▲안차관보=96년은 경기 하강국면이 완만히 진행돼 비교적 건실한 성장을 보인 해였습니다.물론 경상수지 적자가 예상보다 악화돼 2백20억달러를 넘어섰을 것으로 봅니다.여기에는 반도체의 수출차질이 1백30억달러쯤 포함돼 있습니다.물론 교역조건이 나빠져 채산성이 악화된 탓입니다.96년 소비자물가는 4.6% 정도로 목표를 달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그러나 임금은 기대와 노력에 비해 12% 수준으로 95년 보다 높았습니다. ▲전전무=국제수지를 소홀히 다뤄서는 안됩니다. 물가안정과 국제수지,성장을 다 잡으려다가는 어느 토끼도 못잡게 됩니다.정책목표를 국제수지에 뒀어야 했는데 여러가지를 다하다보니 상호 충돌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교수=정책당국이 경제의 어려움을 경기순환 논리로 봐서는 안됩니다.내면적인 모순과 결함으로 국제경쟁력이 떨어져 구조적위기가 발생한 것입니다.이 위기는 80년말대부터 시작됐습니다.이때부터 안정기조를 구축하고 산업구조를 고도화했어야 했는데 거의 하지않아 자생력이 떨어진 것입니다. ▲안차관보=경기하강,교역조건 악화,높은 요소비용과 체질약화가 우리경제를 어렵게 만든 요인입니다.성장에 자만하다 부지불식간에 방심했고 그 사이 근본적인 것들이 약해졌습니다.우리경제가 지금 어려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과거 두차례 오일쇼크가 있었지만 슬기롭게 극복한 경험이 있습니다.국민저력과 기업들의 다이내미즘으로 충분히 헤쳐나갈수 있다고 봅니다. ▲전전무=좀 희망적인 말씀을 드린다면 반도체는 일본과 힘을 합치면 메모리 가격을 끌어올릴수 있다고 봅니다. ▲이교수=끈질기게 노력하면 희망이 있다고 하셨는데 국민저력으로 볼 때 공감합니다.문제는 실상을 알고 노력해야 합니다.무조건 허리띠를 졸라맬 수는 없습니다.가장 큰 문제는 우리 경제가 근본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안차관보=어쨌든 이 기회에 군살과 거품을 빼야 합니다.새해에는 경제안정,특히 국제수지 방어가 급선무입니다.때문에 물가안정과 국제수지 방어,기업의 활력회복에 정책목표를 두고 9·3대책과 경쟁력 10% 이상 높이기운동을 끈질기게 추진해야 합니다.환율이나 통화정책으로는 허약한 부분을 치유할 수 없습니다.절약·근검하는 쪽으로 몰아가야 합니다. ▲전전무=미·일간 통화가 올해 어떻게 움직일 지 모르나 엔화약세가 지속될 것이냐가 중요합니다.110엔대가 계속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희망을 걸어도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새해에는 설비투자가 마이너스입니다.성장이 감소할 수 있다는 얘기지요.30대 그룹의 수출은 96년보다 늘 것 같습니다.그러나 새해 선거가 있고 선거때마다 경기가 침체를 보여 잘못하면 성장률이 5%까지 떨어질 수 있습니다.경쟁력,경쟁력하지만 코스트로 따지면 금리와 임금이 핵심입니다.금융문제에서는 새해에도 금융개편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민유민영으로 바꿔 경쟁체제로 가야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습니다.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운영돼야 합니다. ▲이교수=환율이 오르면 나아질 거라고 하는 데 우리경제가 환율로 일어설 경제가 아닙니다.원화 환율이 오르면 수출이 살아날 것 같지만 환차손이 오히려 커집니다.벌써 2조원을 넘었습니다.물가부담도 큽니다.비관적인 전망속에 외국자본도 급속히 이탈하고 있습니다.지난해 12월 한달만 해도 3천만달러가 넘었습니다.멕시코 위기때 경상수지 적자가 2백98억달러,총외채는 1천3백65억달러였습니다.우리도 외채가 1천2백억달러나 됩니다.단기외채도 60%에 육박합니다.금융위기가 생길수 있습니다. ○멕시코경제완 달라 ▲안차관보=정부도 환율에 의한 국제수지 개선효과에 대해서는 부정적·소극적으로 봅니다.수출구조가 수입유발적이어서 별 도움이 안됩니다.환차손 때문에 기업들도 좋아하지 않습니다.전전무께서 금융기관의 민유민영을 말씀하셨는데 한국에서는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문제 등이 있어 그렇게 간단치 않습니다.1∼2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이교수께서 멕시코 위기를 말씀하셨는데,우리와 멕시코를 비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당시 멕시코는 페소화를 고평가로 끌고 갔습니다.대통령 후보자암살 등 정치적 격랑이 있었고 단기부채가 80%로 우리와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우리의 단기외채는 멕시코보다 기간도 길고 실물과 연계돼 있습니다.그렇다고 국제수지 개선을 소홀히 해도 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전전무=내년 임금조정에 신경이 안갈 수 없습니다.임금이 오르면 기업으로선 자동화투자가 무용지물입니다.과외비 등으로 임금수준이 낮다고 하지만 이것까지 기업이 책임질 수는 없는 일입니다.금융문제도 그렇습니다.차라리 관치금융이라면 그런대로 계통이 섭니다.산업자본도 금융을 지배하지 못하고…,그러다 보니 엉뚱한 사람이 주인입니다.은행 차장월급이 기업체 임원월급수준이라고 들었습니다.적자투성이 은행이 그렇게 많은 월급을 줘야하는지 의문입니다. ▲안차관보=새해 경제운용 골격을 잠깐 말씀드리면 우선 기업활력을 회복시키고 취약한 자본재산업을 발전시킬 생각입니다.자본재산업의 국제수지 적자가 3백억달러가 넘습니다.물자절약도 필요합니다. 우리나라가 프랑스보다 기름을 많이씁니다.비상한 절약캠페인을 펴야합니다.신문지면도 낭비적입니다.정부로서도 예산을 절감하겠습니다.임금체계를 단순화하고 여성과 고령인력을 적극 활용할 계획입니다. ○산업구조 개혁해야 ▲전전무=최대 과제는 적자축소인데,제가 보기엔 기업들이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남아로 여행가지않고 제주도에 갈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국가별 수출계획도 있어야 하고요. ▲이교수=규제완화와 구조개혁이 중요합니다.정부부터 작고 효율적인 정부가 돼야 합니다.반도체 하나가 안돼서 휘청거린다는 것은 우리 산업구조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얘기입니다.산업구조가 피라미드형태로 돼 재벌의 문어발식 기업확장이 차단돼야 합니다.중앙은행을 독립시키고 금융기관을 국민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기업들도 무조건 임금인상을 억제할 것이 아니라 투명한 경영을 통해 기업실상을 알려야 합니다.재계는 사회환원노력을 해야하며 정부로선 다시 한번 뭉치자는 화합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안차관보=맞습니다.집안에 우환이 있으면 뭉치듯이 새해엔 경제주체 모두 절제해야 합니다.
  • 새해부터 달라지는 것들:Ⅰ

    ◎고교신입생 중학내신성적으로 전형/「114」 안내전화 요금 한통화에 80원 부과/영장 실질심사·전담판사·체포영장제 도입 ○교육부/초등교 영어교육 실시 ▲고교 신입생 전형방법 개선=현행 고입선발고사를 거쳐 고교에 배정하는 제도를 바꿔 중학교 내신성적으로 전형,학교를 배정한다. ▲초등 영어교육 실시=3학년 학생부터 영어교육을 1주에 2시간씩 정규 과목으로 채택,실시한다. ▲초등학교 육성회비 완전 폐지=특별시 광역시 등 6대 도시에서만 받아온 초등학교 육성회비를 완전폐지하고 도서 벽지 중학생에게는 교과서를 무상 지급한다. ▲사설학원 개방=외국인은 내국인과 같이 기술계 전문학원이나 어학원 등 일반학원을 설립·운영할 수 있다. ○정보통신/초고속 국가통신망 개통 ▲통신요금체계 조정=114안내전화가 유료화돼 한 통화를 쓸 때마다 80원을 내야 한다.이동전화 전파사용료가 분기당 1만2천원에서 9천원으로 내린다.전파사용료 납부면제 하한액이 기존의 1천원에서 2천500원으로 상향 조정된다. ▲통신사업 규제완화=2월부터 기간통신사업자 허가시 사전공고제를 폐지하고 자격심사기준만 고시한다.통신서비스 이용약관이나 통신설비 설치 변경은 기존의 승인제에서 신고제로 전환한다.1월부터 무선국허가제도를 개선,전기통신사업자에게 가입한 때에 무선국을 허가받은 것으로 보고 정기검사를 면제한다.3월부터 무선기기 검정제도를 등록제로 한다. ▲초고속국가정보통신망 개통=12월 전국 80개 도시를 연결하는 광전송망을 구축,초고속국가망 1단계 사업을 완료한다. ▲새로운 우편서비스 개발·보급=7월 전자우편서비스를 시범 실시하고 9월에는 무인우편창구서비스의 시험 운영에 들어간다. ○법무/영장 전담판사 입명 ▲영장실질심사제=구속영장이 청구된 피의자의 구속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판사가 직접 피의자를 신문하는 제도이다.구속자 수를 가능한 한 줄이겠다는 취지에서 도입했다. ▲영장전담판사=영장실질심사를 전담하는 판사를 말한다.임관 10년 안팎의 베테랑 판사로 임명하며 임기는 6개월이다. ▲불구속재판의 확대=구속영장을 심사할 때 사건의 경중으로 판단하지 않고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를 기준으로 판단,이에 해당하지 않을 경우에는 구속영장을 기각한다.불구속 재판의 원칙을 지키기 위한 조치다. ▲체포영장제 도입=수사기관이 피의자를 조사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법원에서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뒤 이를 제시하고 연행해야 한다.현행범과 법정형량이 징역 3년 이상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사전에 체포영장을 발부 받지 않더라도 검사의 승인만으로 긴급체포를 할 수 있다. ▲사회봉사명령 확대=소년범에만 적용되던 보호관찰·사회봉사명령·수강명령제도가 성인범에도 적용된다.집행유예나 선고유예를 받은 성인범을 대상으로 한다.사회봉사명령 시간은 500시간,수강명령은 200시간까지다.준수사항을 위반했을 때에는 유예한 형을 선고하거나 집행유예를 취소할 수 있다. ▲보석제도 활성화=기소 이전에도 보석사유가 있으면 보석을 허가한다.보석금은 현금으로 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가정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현재의 보증보험제도를 유지한다. ▲소년원 명칭변경=소년원의 명칭을 중·고등학교 및 전문학교로개칭한다. ▲전출입신고=외국인 체류자들의 주소변경시 전출신고를 폐지하고 전입신고만 하도록 한다(97년 7월1일부터). ○해양·수산/영어자금 확대 공급 ▲부두운영회사제 도입=국유국영이었던 부두운영제도가 국유민영 부두로 전환,부두운영회사가 하역 등을 일괄 운영하고 부두이용료를 징수하게 된다. ▲신항만건설촉진법 시행=항만건설사업의 범위가 확대돼 화물유통시설,배후연결도로 등도 항만건설사업에 포함되며 25개 법률의 행정 인·허가를 간소화한다. ▲도선사법 개정안 시행=현재의 도선사 단일 면허제가 1종 및 2종으로 구분되며 면허유효기간이 5년으로 연장된다. ▲선박폐유 수용시설 설치운영=선박폐유를 방제·청소업자가 수거하던 것을 한국해양오염방제조합이 수거한다. ▲지정화물 대상품목 축소=국적선 이용을 우선해야 했던 지정화물 대상품목중 원유·비료원료·곡물류·석유화학 공업원료는 자유화된다. ▲해상교통관제시스템 확대=항만 구역내 해상교통을 관제할 수 있는 시스템인 「VTS시스템」이 9월 인천·대산항에,11월 부산·마산항에 설치된다. ▲영어자금 확대공급=영어자금의 공급규모가 9천5백억원으로 늘어나고 영어자금을 1년씩 2회 연장할 수 있게 된다. ○서울시/양화대교 상판 철거 ▲당산철교 철거=1월1일부터 철거작업이 시작돼 지하철 2호선 순환운행이 중단된다.당산역∼합정역∼홍대입구역까지 무료 셔틀버스가 운행된다.99년 말 완공예정이다. ▲양화대교 구교(강남방향) 상판철거=4월1일부터 4개 차선 가운데 하류쪽 1개 차선을 통제한 가운데 철거작업을 벌인다. ▲성수대교 개통=상반기중 개통을 목표로 공정이 진행되고 있다. ▲도시고속도로 개통=용비교∼반포대교(4월중),성산대교 IC(6월중),정릉천변 도시고속도로(10월중),수서IC∼올림픽대로(12월) 구간이 순차적으로 개통된다. ▲여의도공원 녹지조성=4월중 여의도광장의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분수대 등이 설치된 잔디공원으로 조성한다. ▲노인 목욕,이·미용비 지급=1월부터 65세이상 생활보호대상 노인에게 분기별로 3만원씩의 목욕 및 이·미용비를 통장에 입금해 지급한다. ▲노인 교통수당 확대지급=지금까지 분기별로 지급했던 토큰 36장분(1만4천400원)을 60장(2만4천원)으로 확대한다. ○환경/대기오염 신고제 도입 ▲대기오염 기본 신고제 도입=먼지·황산화물에 대해 대기 1∼2종 및 특별대책지역안의 3종 사업장에 반기별로 사업자 스스로 배출량을 신고토록 한다. ▲연료사용 규제=저황중유사용지역을 64개 시·군으로 확대하고 0.1%이하의 저황경유 사용지역을 전국으로 확대한다. ▲자동차배출가스 정기검사 강화=휘발유·가스사용 자동차에 대한 공기과잉률측정을 추가하고 주행상태에서 오염물질 과다배출 차량의 선별률을 26%로 올린다. ▲오존예보제 실시=서울·인천 등 광역시 이상을 대상으로 방송을 통해 하루 전날예보한다. ▲오존경보제 확대실시=7월부터 광역시 이상 주요도시에서 오존경보제를 실시한다. ▲수질오염 기본부과금제 도입=현행 배출허용기준 초과부과금 이외에 허용기준이하일 경우에도 폐수배출량에 비례하여 기본부과금을 부과한다. ▲임진강유역 배출시설 설치허가 제한=임진강 중·상류지역인 신천·포천천·영평천 유역에 대해 납 등 특정수질유해물질 배출시설의 신규허가를 금지한다. ▲음식쓰레기 감량화 의무사업장 확대=7월부터 급식인원 1백인이상 집단급식소,객석면적 1백㎡이상 식품접객업소에 대해 음식쓰레기 감량을 의무화하고 시장·백화점·호텔도 감량화를 의무사업장에 추가한다. ○과학기술/기술담보 대출제 신설 ▲원자력 안전행정 강화=과기처 장관을 위원장으로 한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신설돼 원자력 발전소 건설·운영 허가등 원자력 안전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함으로써 안전규제의 독립성이 높아진다.원자력 발전소 관리 구역에 출입하면서 방사능 오염 제거 작업등을 하는 업자는 「원자력 관련 역무제공업자」로 등록해야 한다.원자력 발전서등의 건설 허가를 받을때 제출하는 방사선환경영향 평가서에 주민의견 수렴제도가 신설돼 공람 또는 공청회등 절차를 거치게 된다. ▲기술담보 대출제도 신설=과학기술 기금에서 기술 개발 자금을 대출받을 때 물적 담보가 없더라도 기술력이 뛰어나면 평가를 통해 기술 담보 대출을 받을수 있다.조건은 금리연 10% 이내,기간은 1년 이내 거치 기간을 포함 3년 이내 상환이다. ▲민간 기상예보사업=지금까지 기상청 이외에는 기상예보를 할수 없었으나 97년 하반기부터는 기상청이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개별적이고 특수한 기상에 관한 예보를 민간예보 사업자가 수혜자 부담으로 할수 있게 된다. ▲엔지니어링 기술도입 자유화=엔지니어링 기술을 외국으로 부터 도입 또는 수출하고자 할때는 사전에 과기처장관에 신고해야 했으나 기업활동 규제 완화 조치에 따른 특별 조치법에 따라 신고제가 폐지된다. ○농림/고령농민 직접지불제 ▲농림법령 전산화자료 인터넷서비스 실시=농업관련 법률,대통령령·부령·훈령·예규·고시·대법원판례,법령해설서 등 2천여건의 농림법령을 전산화해 3월부터 인터넷으로 서비스한다. ▲은퇴 고령농민에 대한 직접지불제 시행=65세이상 농업인이 자기 논을 전업농에게 팔거나 5년이상 임대하면 ㏊당 2백58만원을 일시불로 지급한다.대상면적은 1만2천㏊,지원예산액은 3백10억원이다. ▲한국농업전문학교 개교=순수 정예 영농인력양성을 위한 선진국형 전문대학인 농업전문학교가 6개학과 2백40명 정원으로 3월 경기도 화성군 봉담면 동화리 신축교사에서 개교한다. ▲농림업 세제지원=배합사료 부가가치세 영세율이 7월부터 전면 적용되며 농업진흥지역 농지의 양도소득세및 증여세 면제시한이 98년까지 연장된다. ▲쌀수매가격 예시제 및 약정수매제시행=영농기 이전인 매년 2월중에 약정수매계획을 예시하고 농가배정량중 희망물량에 대해 출하약정을 체결한다.약정체결시 약정금액의 40%를 선지급한다. ▲소포장 양곡판매 자유화=신고없이 자유판매 가능한 소포장 양곡규모를 5㎏이하에서 20㎏이하로 확대한다.
  • “부두운영회사제 도입”/김 대통령,해양수산업계 대표와 간담

    김영삼 대통령은 31일 『부족한 항만시설을 대폭 확충하고 항만운영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신항만건설촉진법 제정과 부두운영회사제 도입을 적극 추진하라』고 신상우 해양수산부장관에게 지시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낮 박재익 한국선주협회장 등 해양수산계지도자 35명을 청와대로 초청,오찬을 함께 하면서 배석한 신장관에게 이같이 지시하고 『우리나라가 대만,홍콩,싱가포르,일본 등에 뒤지지 않는 동아시아 물류중심지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두운영회사제는 「국유국영체제」인 일반부두를 「국유민영체제」로 전환,민간회사가 부두관리를 맡음으로써 항만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취지에서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김대통령은 이에 앞서 신장관으로부터 바다를 중심으로 새롭게 제작된 세계해양지도를 전달받고 『이 지도를 국민들의 바다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교육자료로 널리 활용하라』고 말했다.
  • 극작가 차범석(이세기의 인물탐구:83)

    ◎리얼리즘 바탕 「정통극 파수꾼」 40년/대표작 「산불」 전쟁의 인간파괴 신랄하게 묘파/부당한 것 거부하는 「연극계 면도칼」로 한평생/최승희 무용보고 「무대 인생」 예감… 이해랑·유치진 문하서 엄격한 수련 희곡작가 차범석은 연극계의 로맨티시스트다.동숭동 마롱카페에 나가보면 젊은 연극인들에게 둘러싸여 그는 맥주를 마시며 연극과 인생을 논하고 있다.「주역만 있고 조연 없는 연극은 있을 수 없다.우리의 삶은 큰 배역만 탐내는 한편의 연극 같이 보이지만 작은 배역 없이 큰연극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파우스트보다 메피스토 텔레스가 진짜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역이듯이 무대 구석구석에 세워둔 단역조역들의 몫에서 극중 희열과 비감,완미가 성취된다.무릇 물이 얕으면 큰배를 띄울 수 없는 것과 같이 깊고 다양한 여러 경험이 크고 광활한 연기력을 키운다」고 후배들을 가르친다. 한배우가 무대에 등장했다가 맡은바 임무를 다하고 퇴장하기까지 그것은 하나의 삶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일이다.그런만큼 배우는 등장도 중요하지만 퇴장도 중요하다.막을 내리기가 무섭게 분장을 지우고 무대를 떠나는 사람을 보면 「자기포기와 무책임」이 느껴지지만 연기의 온기를 오래도록 가슴에 담는 배우의 모습에선 「비장미가 넘친다」고 찬양해 마지않는다. 그가 63년부터 20년이나 이끌던 극단산하를 해체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연극을 지상목표로 삼으려는 의지는 눈비비고도 찾아볼 수 없이 연기를 가르쳐 무대에 설만하면 그들은 철새처럼 돈을 따라 텔레비전으로 가버린다」고 했다.「연극은 집단예술인만큼 인간적인 결합 없이는 아무런 작업도 가능하지 않다.그럼에도 정신적인 반항이 없는 정지된 예술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껍질을 깨는 아픔을 모르는 젊은이들이 환멸스럽다」고 그는 한 글에서 개탄하고 있다.이어서 「기대할 수 없는 것에 얽매어 질척대는 것은 자기비하이자 존재를 흩트리는 추일 수 밖에 없으며」「부나비처럼 떠도는 인간불신풍조속에서 나만이 홀로 절개와 의리를 지키는 것은 명분 없다」고 절규했다. 적자를 면치못하는 극단의 영세한 상황속에서도 「산불」「밀주」「대리인」「손탁호텔」등 알찬 창작극으로 꾸준히 「좋은 무대」를 이끌던 산하는 「연기자의 연극정신부재」「저질공연우려」등을 내세워 83년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미련과 아쉬움을 남긴채 이렇게 무대에서 사라져갔다. 칠순의 나이와는 상관 없이 언제나 만년청년 같은 그는 옛 예술가의 낭만과 니힐과 반항과 순수를 지금도 면면히 지니고 있다.그가 「한달이면 29일」을 술을 마시는 이유는 사람들과의 따사로운 온정에 굶주려 「정을 마시기 위해 술잔을 든다」는 것이며 인생의 어둡고 뒤틀린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은 「긍정에의 동경이 너무 강한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40년간 「연극계의 면도칼」로 불리면서 그는 과연 부당한 것을 굳이 옳다고 양비론을 펼치거나 불가능한 것을 가능할 수 있다고 과장한 적이 없다.연극상을 심사하는 과정에서도 무의미한 공연기록과 긴 연륜을 앞세우기보다 작품의 질과 연기력을 따져 날카롭게 자격여부를 가려낸다.또한 스스로의 조로를 경멸하여 연극의 모든 일에 은근히 참여하고 옳바른 소리를 주저 없이 하면서도 「번뜩이는 재기나 교변」 사물에 대한 심정의 움직임에서 세말적인 기미대신 싱그러운 미소로 만사를 감싸기 때문에,각층의 폭넓은 호감을 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극단산하를 잃은후 그는 한국연극협회 이사장,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사,대한민국예술원회원과 청주대 예술대학장등 여러 역할을 전전했다.86년에는 88올림픽을 앞둔 88서울예술단 초대단장에 임명되었으나 이번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창단기념 시연회에서 공연을 관람하던 관련장관이 코를 골고 잔 것에 자존심을 심하게 상한 나머지 사표를 내던진 씁쓸한 에피소드를 남기고 있다. 시간과 함께 그의 까다로운 일면은 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졌고 반항과 증오와 충동에서 시작한 초기의 경험을 버리고 「삶이란 양파를 벗겨내듯 아무리 벗겨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는 서서히 깨닫게 되었나보다.그 때부터 톡쏘는 옳은 소리를 줄이고 자신을 스스로 경계하는 계신공구의 자세로 전환했다. 그의 지나온 인생은 평온한 중에 끝 없는 파고가 잔물결처럼 파동치는 것이 남과 다르다. 목포의 개화되고 풍족한 집안에서 일본 메이지대(명치대) 법학과를 나온 차남진씨의 3남3녀중 차남. 남부러울 것 없는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내면서 집안의 서고에 파묻혀 아리시마 다케오(유도무낭) 무샤노코지 사네아쓰(무자소로 실독)의 소설에 탐닉하고 일본 히메지(희로)고교에 시험을 보러갔다가 낙방하고 돌아오는 길에도 후지자와 다케오(등택)의 「신설」을 가슴에 품을 만큼 열렬한 문학지망생의 시기를 보냈다.어릴 때의 아명은 평균.광주고보시절 목포 평화극장에서 열린 최승희무용공연을 보고 「정중동의 미세한 움직임과 끊어질듯 이어지고 멈춘듯 움직이는 유현미와 고담미」에 반해 그는 훗날 「무대」와 관련을 갖게 되리라는 예감을 굳혔다. 그는 철저한 리얼리스트이기도 하다. 뒤늦게 23세에 대학에 진학해서 문자그대로 「경마장의 말처럼 정해진 코스를 필사적으로 달리면서」 엄격한 스승인 이해랑 유치진문하에서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정통극」을 추구하기 시작했고 연극계는 언제부턴가 「리얼리즘의 희곡작가」 또는 「리얼리즘의 파수꾼」으로 그를 부르게 되었다. 「나름대로 나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치열하게 몸부림쳐왔다.나라는 인간은 일관성도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아온 모순덩어리라는 생각 때문이다.그 증거로 나의 인생행로에는 투쟁이나 저항의 흔적이 없다.적극적인 동참이나 협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그렇다면 나는 뭐란 말인가」.그러나 평론가 유민영은 「그의 작품은 투철한 역사의식으로 구시대의 붕괴와 전후의 사회변화,변천하는 사회속에 갈등하는 개인의 삶을 끈질기게 묘파」하고 있고 특히 대표작 「산불」은 「전쟁이 얼마나 철저하게 인간을 파멸시키는 가를 미사여구나 기교 없이 신랄하게 파고든 리얼리즘 희곡의 최고봉」으로 손꼽고 있다. 지난해 출판한 고희기념문집 「목포행 완행열차의 추억」에서 그는 「지금까지 나는 대과 없이 살았고 욕심부리지 않았고 하고싶은 일과 가고싶은 길을 지칠줄 모르고 살았으니 행복하다」고 고백하고 있다.영원한 동반자인 박옥순여사와의 사이엔 3남2녀.자녀는 모두 출가하고 송파구 가락극동아파트에서 부부가 노후를 함께 하고 있다. 언제나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소시민」을 자처하고 있지만 실은 서릿발 같은 차가운 이성을 정으로 융해시킨 처절한 삶의 애가와 뜨거운 인간애의 정수를 이룩했다는 점에서 그의 존재는 참으로 「큰배우」의 역할이 아닐 수 없다.이제 그의 퇴장은 「한편의 좋은 작품」을 남기는 일이며 연극계가 그를 두고 「이시대 마지막 휴머니스트」라고 한 말대로 그는 지금도 동숭동 마롱카페에 앉아 「배우가 되기전 먼저 인간이 될 것」을 젊은 연극인들에게 당부하며 그의 「정」을 높이 치켜들고 있다. □연보 ▲1924년 전남 목포 출생 ▲1942년 광주고보 졸업후 도일 ▲1946년 연희전문 문과 입학 ▲1949년 제1회 전국대학연극경연대회 희랍극 「오이디푸스왕」연 출 수상 ▲1951년 처녀작 「별은 밤마다」 공연(목포문화협회 주최)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밀주」당선,제작극회 창단 ▲1961∼71년 문화방송 제작부장·편성부국장 역임 ▲1962년 「산불」 초연(국립극단) ▲1963∼83년 극단 「산하」대표 ▲1965년 이대·연대 출강 ▲1966년 연세대 영문과졸업,국제PEN대회 뉴욕회의 참가 ▲1968∼74년 한국연극협회이사장 ▲1969년 신연극 60주년기념 「그래도 막은 오른다」 공연 ▲1972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사 ▲1973년 예총부회장 ▲1975년 ITI베를린회의 참가 ▲1978년 ITI한국본부 부위원장,대한민국연극제 심사위원 ▲1981년 대한민국예술원 정회원 ▲1983년 서울극작가그룹 발족,회장 ▲1984∼86년 청주예술대학장 ▲1986년 서울88예술단장 ▲1988년 청주대 교수협의회회장 ▲1991년 「연극의 해」집행위원장 대한민국 예술원회원·한국연극협회이사·공연윤리위 심의이원 희곡집 「껍질이 째지는 아픔없이는」「대리인」「산불」「학이여 사랑일레라」「식민지의 아침」,수필집 「거부하는 몸짓으로 사랑했노라」,고희기념문집 「목포행 완행열차의 추억」,차범석문학전집(12권·융성출판)등 대한민국 문화예술상(70)·대한민국 예술원상(82)·동랑연극상(83)·대한민국 문학상(91)·이해랑연극상(93)
  • “현대문학 반세기… 분단의 아픔 관통”

    ◎대산재단 21∼22일 「해방 50주년 기념 한국문학 50년」 심포지엄/시·소설·희곡·비평 부문별로 진단/북한문학·해외 한국문학도 점검/국내외의 문인·학자 등 35명 참석 「해방 50주년 기념­한국 현대문학 50년」 심포지엄이 21.2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다.대산재단 주최의 이 심포지엄은 지난 반세기동안 우리 문학의 성과를 한국의 ▲시 ▲소설 ▲희곡(21일) ▲비평(22일) ▲북한의 문학(시·소설과 문예비평·22일) ▲세계문학과 한국문학(한국문학의 해외소개·해외의 한국문학·21일) ▲통일시대 한국문학의 전망(제1,2발제·22일)등 7개 주제로 나누어 종합진단하는 것으로 국내외 문인,학자 35명이 주제발표자와 토론자로 참석한다. 미리 발표된 주제논문들에 나타난 한국 문학 50년의 가장 큰 원체험은 분단이다.현대문학의 시원에 깊게 팬 이 민족사적 상처는 우리 문학을 시대의 갈등과 모순을 총체적으로 드러내는데 유리한 리얼리즘으로 자연 기울게 했다는 것이다. 최동호교수(고려대 국문과)는 「한국의 시」 발제에서 해방이후 한국시사를 ▲분단체제 성립기(19 45∼59) ▲심화기(19 60∼79) ▲전환기(19 80∼95)라는 틀을 사용해 시대구분한다.이같은 시대구분을 바탕으로 그는 60∼70년대에는 「시의 효용은 무엇인가」가 쟁점이었으나 80년대 이후는 우리시의 다양한 경향과 가능성을 보인 시기라고 정리한다.최교수는 우리 시의 80년대를 이성복에서 기형도에 이르는 모더니즘 흐름과 김정환,백무산의 리얼리즘 지향이 맞서온 역사로 파악하기도 한다. 「한국의 소설」 발제자인 조남현교수(서울대 국문과)역시 지난 50년간 우리 작가들을 사로 잡은 최대 소재를 한국전쟁으로 본다. 조교수는 우리 소설이 그간 도덕주의,세태소설,종교소설,중간소설 등 다양한 갈래를 낳았지만 혼란과 갈등상황에서는 항상 리얼리즘을 전면에 내세워 왔다고 진단한다. 그는 90년대 소설계의 특징을 ▲거대서사의 퇴조 ▲대하소설의 증가 ▲베스트셀러의 급증과 규모확대 ▲평론의무력증 ▲전업작가의 증가등으로 정리하기도 한다. 「한국의 희곡」 주제발표자 유민영교수(단국대 국문과)는 우리 희곡사를 견고한 리얼리즘의 원심력에 부조리극,초현실주의극,서사극 등이 일탈을 꾀해온 역사로 정리한다.그에 의하면 한국희곡 50년중 전기 25년은 리얼리즘 일변도였고 후기 25년은 리얼리즘 극복이 최대과제였다. 「한국의 비평」 주제발표에서 유종호 교수(이대 영문과)는 해방이후 한국의 비평이 마주친 문제들을 중심으로 살피면서 60년대 후반 이후 주요 비평가들의 비평입장을 검토하고 우리 비평의 앞날을 전망하여 눈길을 끈다.유교수에 의하면 민족문학론을 주도해 온 백낙청은 이론비평이나 실제비평(기술비평)을 벗어나 시인 작가에게 글쓰기의 주제와 방법을 교시하는 입법비평의 입장에 서 있다.『김윤식과 함께 비평 생산 최다수확왕의 영예를 지녔고 김문집 이어령 이후 통념화된 험담과 독설로서의 비평을 덕담으로 변모시키는데 기여한』 김현의 경우는 기술비평의 입장이고 김우창은 자기충족적 비평(고전적 에세이),김윤식과 김용직은 국문학 지향의 비평,정명환 이상옥 곽광수 도정일등은 외국문학의 소양을 바탕으로 한 타자참조비평의 범주에 각각 속한다.유교수는 또 『앞으로 문화비속화 현상의 일환으로 비평의 중간화 잡담화 가십화가 가속화 되고 비평이 논문쪽으로 기울면서 비평의 주변화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진단한다. 이 심포지엄의 주제발표논문과 토론요지는 오는 10월말 민음사를 통해 책으로 묶일 예정이다.
  • 예술전당이사장 유민영씨

    문화체육부는 1일 공석중인 예술의 전당 이사장에 유민영씨(58·단국대교수)를 임명했다. 경기도 용인 출신인 유씨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단국대 예술대학장과 공연예술평론가협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공연윤리위원회 윤리위원,국립 국악원 운영자문위원,국립극장 운영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 연극연출가 임영웅(이세기의 인물탐구:71)

    ◎56년 「환절기」로 입신… 「완벽 무대」추구/작자의도 밀도있게 접근… 깊이있는 연기 도출/「고도를 기다리며」 초연땐 하루 19시간 맹연습/집팔아 지은 산울림소극장 개관 10돌 맞아 기념공연 막 올려 마른나무 한그루가 텅빈 공간에 물음표처럼 서있는 무대,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이 공허한 대지위에서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다.그들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우리는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그들이 기다리는 고도란 무엇인가.신인가 죽음인가 행복인가.고도는 그 무엇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것일 수도 있다.시간과 공간이 단절된 상황속에서 이 연극은 언제나 시작되고 끝나면서 또 어디서나 생길수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69년 12월,한국일보 소극장에서 「고도를 기다리며」가 초연됐을 때 그것이 베케트의 난해한 부조리극이라는 이유만으로 관객은 이미 긴장되어 있었다.그러나 우려는 기우였다.연출가 임영웅은 관념과 현학이 넘치는 난삽의 「고도」를 시감의 템포로 도해시켰고 객석은 시종 웃음을 터뜨리며 서구 연극의 새로운사조에 자연스럽게 흘러들수 있었다.이후 「고도」는 「손색없는 명작」으로 정착되어 89년 프랑스 아비뇽과 다음해 고도의 본고장인 더블린 연극페스티벌에서 「한국의 고도는 과연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호평을 받았다.이보다 앞서 88올림픽 문화예술축전에 왔던 세계적인 극평가 마틴 애슬린(미스탠퍼드대 교수)은 「베케트의 희극성과 비극성이 섬광처럼 교차된 마지막 장면은 특히 작가의 의도에 밀도있게 접근하고 있음」을 지적하여 진작부터 세계무대의 진출과 입신을 예고해 주었다. ○속물근성 찾을 수 없어 널리 알려지다시피 임영웅의 연출에선 잡다한 상업성이나 분칠한듯한 속물근성은 찾아볼수 없다.관객을 의식한 연희성과 상투적인 작위성은 배제된다.부조리극이든 블랙 코미디든 혹은 뮤지컬이나 관념적인 추상언어라 할지라도 인간 심리의 바닥없는 심연에 끈질기게 파고들어 캄캄한 내부에 도사린 모순과 갈등을 명징하게 그려낸다.예를들어 77년 화사한 비애가 전신에 스며드는 베르코르의 「바다의 침묵」이나 87년 「영국 애인」등은지금도 잊을수없는 정미한 무대로 기억된다. 그에게선 예술가 특유의 동심과 기벽과 기행은 찾아볼 수 없다.번뜩이는 재치나 직감력을 기대할 필요도 없다.만약 그런 의외성과 파격을 지녔다 하더라도 「보수적인 체질속에 숨겨진 진보적 감각」은 그의 탄탄한 자존심의 틀에 갇혀 쉽사리 노출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연출가 임영웅을 떠올릴 때마다 프랑스 연극계의 거장이며 「황소의 뿔」로 불리는 장 루이바로를 연상케 되는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닐것 같다.바로가 그의 부인이자 연극 동반자인 마들렌 르노와 그들의 소극장을 세워 레퍼토리 극단으로 활동한 것처럼 그도 그의 부인인 오징자 교수(서울여대 불문과)와 함께 소극장운동의 전범으로 존재하면서 오교수는 극단 산울림의 희곡번역과 기획등에 참여하고 있다.그리고 연극을 「인간에 의한 공간예술」로 승화시킨 점과 비록 작은 일도 그대로 지나치지 않는 섬세한 감지,한번 결심한 것은 집요하게 밀어붙이는 황소고집등은 바로와 비슷한 노선을 그려나가고 있다.연극의 문제는 무엇보다 「얼음덩어리와도 같은 객석의 침묵」을 깨뜨리는 일이며 결국 얼음을 녹여 강물처럼 도도히 흐르는 그의 연극을 보면 관객은 원로 여석기씨의 말이 아니더라도 「단순한 인사가 아닌 진심의 경의」와 진정한 감동으로 박수갈채를 보내게 된다. 그의 연극행로는 물흐르는듯 순조롭진 않았다. ○음악가부친 재능 이어 휘문고시절 동랑 유치진의 「사육신」연출을 계기로 연극연출을 지망하게 되었고 56년 극단 신협의 「꽃잎을 먹고 사는 기관차」(임희재작)로 연출데뷔,박진 이해랑에 이은 국립극단 연출을 거쳐 「정서적인 플롯과 사실적인 언어가 거부된」 오태석의 「환절기」를 「오서독스하면서도 감각적인 논리성」으로 형상화하여 연출가로서의 극명한 위치를 다졌다. 그의 예술적 재능은 음악가였던 부친 임태식씨와 음악계의 원로 지휘자인 숙부 임원식씨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할수 있다.13살에 부친을 잃은 창백한 기억을 가지고 있으나 조모와 숙부의 따뜻한 보호아래 그는 음악 문학 연극에 접할수 있었고 동랑 유치진 이해랑과의 만남이 실질적인 연극의 촉진제가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무리 비극적인 작품이라도 그는 작품속에 숨어있는 아름다운 별빛 희망과 인간미의 향기를 절차탁마로 가꾸어낸다.그런만큼 탐구정신과 선별의 명철로 작품분석에 침몰하여 자신이 완전히 이를 소화해야만 비로소 배역을 정하고 스태프를 구성한다. 연습때는 연기자의 동선 하나 조명의 밝기,음향의 정확성에 주도면밀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자로잰듯 확실하고 투명해야만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완벽주의는 결벽과 맞먹게 마련이어서 그의 연출노트는 개칠한 흔적없이 추가사항들을 빈틈없이 정리해 놓고 있다.「고도」초연때의 하루 19시간의 연습 강행군으로 「사자」란 별명이 따르기도 했으나 그의 속마음은 만년소년에다 청담을 잃지 않는 순수성이 두드러진다.혹독한 연습과 훈련에 의해 수많은 배우들이 그의 연극을 거쳤고 관객이 그의 연극에 안심하는 것처럼 그들도 극단 산울림 출연을 자랑삼고 있다. 그러나 영광의 이면은 언제나 어두운 곡절과 고뇌가 감춰진다.연극이 생계를 해결하는 직업이 될수 없다는 실망과회의에 빠져 그는 한때 연극을 포기하고 방송 프로듀서로 돌아간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어쩌면 「마지막 작품」이 됐을지도 모를 「쥬라기의 사람들」(이강백작)로 82년 대한민국 연극제에 참가,연출상 수상기념으로 2개월간의 해외연수길에서 그는 연극은 세계 어디서나 힘들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귀국길에 오르자 남들의 조소에도 불구하고 소극장을 짓는다는 참으로 엉뚱한 결단을 내려 주위를 놀라게했다.집을 팔고 빚을 얻어 누구라도 감히 꿈꿀수 없는 소극장 신축을 서둘렀고 85년 3월 숱한 수난끝에 탄생된 것이 지금의 홍대앞 산울림소극장이다.1년여 이상 극장을 짓느라고 가뜩이나 과로로 균형을 잃은 몸이 더욱이나 기울어진 자세가 되자 그와 절친한 평론가 유민영은 「걸어다니는 피사의 사탑」으로 부르고 있지만 그런 그의 모습은 실제로 움직이는 연극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여 묘한 「시니컬 포퍼먼스」가 느껴진다. ○연극상 수상만 43차례 이제 극단 창단 25주년과 소극장 개관 10주년을 맞은 그의 감회는 남다르다.피와 땀과 노력의 결정인그의 아지트에서 10년을 하루같이 앙코르 공연을 제외한 26편의 신작공연과 43차례의 연극상 수상,40만 관객을 동원하고 있으나 남보기완 달리 극장운영에 따른 고충속에서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그때도 그를 격려하듯 동랑연극상이 주어졌고 상을 받는 자리에서 그는 다시는 마음이 약해지는 것이 두려운듯 「죽을때까지 연극을 하겠다」고 재삼재사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었다. 개관 10주년기념공연으로 지난 16일부터 윤석화의 일인극 「딸에게 보내는 편지」(아놀드 웨스커작)를 필두로 극단 산울림의 신작 창작시리즈를 차례로 선보이고 맨 마지막에 명편 「고도」를 무대에 올리게 된다. 비튜겐슈타인의 말처럼 그는 수많은 남의 인생을 연출하고 있지만 자기자신의 인생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으며 그 자신의 인생은 결국 연극일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다.그렇다면 그에게 있어 「고도」란 무엇인가.그가 살고있는 현재이며 또는 불확실성의 미래이고 영원한 의문부호일 수도 있다.그러나 지난 25년간 고도와의 외로운 투쟁끝에 「임영웅식 연극」을 성취한그로서는 아마도 고도가 무엇인지 그가 누구인지를 가장 잘 알고 있는,그래서 앞으로도 끊임없이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연보 ▲1934년 서울출생 ▲1948년 휘문고를 거쳐 서라벌예대 연극영화과 졸업 ▲1956년 극단 신협 ‘세일즈맨의 죽음’(아더밀러)조연출겸 무대감독, ‘꽃잎을 먹고사는 기관차’(임희재작)데뷔연출 ▲1958년부터 세계일보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1963년 동아방송 드라마프로듀서 ▲1966년 예그린악단 뮤지컬연출 ‘살짜기 옵서예’등 ▲1968년 국립극단연출 ‘환절기’등 ▲1969년 ‘고도를 기다리며’(사무엘 베케트)초연 연출 ▲1970년 극단 산울림 창단 ▲1973년 한국방송공사 입사 ▲1985년 산울림 소극장 신축개관 ▲1989년 프랑스 아비뇽페스티벌 ‘고도를 기다리며’초청참가 ▲1990년 더블린 연극페스티벌 참가 ▲1991년 한국연극연출가협회 회장 ▲1992년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백상예술대상 연출상및 특별상(69·72·86·95년),서울신문 문화대상및 연출상(70년),서울연극제 최우수연출상(82·85년),한국 연극영화 예술상 특별상(85년),대한민국연극제 대상(82·85년),김수근문화상(86년),동아연극상 연출상(86년),서울시 문화상(87년),대한민국문화예술대상(87년),이해랑연극상(92년),동랑연극상(94년)등 ‘전쟁이 끝났을 때’‘환상살인’‘인종자의 손’‘덤웨이터’‘위기의 여자’‘홍당무’‘코뿔소’‘꽃피는 체리‘‘블랙 코미디‘‘마리테레츠는 말이 없다’‘밤으로의 긴여로’‘여우와 포도’‘하늘만큼 먼나라’ 뮤지컬 ‘배비장전’‘꽃님이’‘대춘향전’등
  • 「전라연극」 법의 심판대에 오를듯

    ◎「미란다」공연 극단 「포스트」 대표 곧 사법처리/검찰, “「불가피한 예술 표현」 한계 넘어”/전문가도 “흥행 노린 저질연극” 평가 「예술」과 「외설」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벗는 영화 및 연극 등 음란성 공연물이 범람하고 있는 가운데 검찰이 금명간 여배우의 알몸연기로 물의를 빚은 연극 「미란다」의 연출가겸 극단 포스트 대표 최명효(38·예명 문신구)씨와 한국판 성인용 월간지 「펜트하우스」를 제작·배포한 텔리퓨처 대표 오규정(42)씨 등을 사법처리할 방침이어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내에서의 음란물에 대한 규정은 유럽이나 미국·일본 등에 비해 비교적 보수적인 경향이 짙다. 따라서 음란물에 대한 학설과 판례도 같은 경향을 띠고 있다. 지금까지 음란성을 인정한 중요한 판례로는 월간 화보집 「걸」「포토스타」사건(91년),월간지 「부부라이프」게재사진사건(91),영화 「사방지」선전포스터사건(90),수기 「동경의 밤 25시」사건(70),성냥갑 표면에 인쇄된 나부명화사건(70) 등을 꼽을 수 있다. 대법원은 이들 사건에서『비록 남녀간 정사를 하거나 전라의 여인이 치부를 노출하는 등 노골적으로 음란한 내용은 아니더라도 전라 또는 반라상태의 여인의 자태로서 보통사람으로 하여금 성욕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수치심을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민감한 부위(유방·둔부등)가 부각되어 있으면 음란한 도화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미란다 사건 역시 관객의 성적수치심을 자극한 것으로 판단돼 「법의 심판대」에 오를 전망이다. 이 연극의 문제가 된 부분은 마지막 부분(클라이맥스부분).팬티만 입은 남자 주인공이 약 8분에 걸쳐 전라상태의 여주인공을 침대위에 묶거나 여주인공을 폭행·실신시켜 옷을 완전히 벗기고 서로 껴안는 모습이 나온다.객석의 코너부분에서는 주연 여배우의 음모까지 볼 수 있었다는 것. 이 연극을 본 대다수 관객들은 『예술성보다는 혐오감을 느끼고 실망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검찰도 예술을 탄압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고 객관적 입장에서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다. 연극평론가 심정순·정진수·유민영씨와 연극협회부이사장 윤대성씨 등 전문가들은 『미란다의 경우 예술성은 찾아 보기 어렵고 이른바 벗는 행위의 당위성이나 타당성이 없으며 상업적 흥행을 노리고 기획된 저질연극』이라고 평가했다. 검찰이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대목은 이 연극의 음란성여부를 판단하는 것이었다.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어 자칫 예술탄압으로도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검찰은 다만 『예술작품도 세계화와 개방화,창작활동의 보장차원에서 일부 성적 표현이 노골적이라도 전체적으로 예술성을 가지고 그 표현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표현의 자유가 우선적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연극 미란다는 「음란성」이 인정된다는 게 검찰측의 설명이다. 검찰관계자는 『이 연극의 경우 공연장소가 지하1층 소극장(1백80석규모)으로 좁은 공간에서 관객과 직접 호흡하며 서로 얼굴을 맞대는 소극장 연극의 특성상 관객의 수치심이 더욱 강요되는 것으로 보이며 작품의 주제나 극의 흐름상 굳이 여성의 전라를 드러내야 할 만큼 예술적 당위성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이달 문화인물/극작가 박승희선생

    ◎토월회 조직,신극 운동 편 연극선구자/추념공연·강연회 등 다양한 행사 문화체육부는 9월의 문화인물로 연극운동가이자 극작가인 춘강 박승희선생을 선정했다. 박승희선생(1901∼1964)은 3.1운동 직후 극단 토월회를 만들어 이 땅에 근대극이 자리 잡을 수 있는 터전을 다진 연극운동가이다. 조선말기 초대 주미공사를 지내고 총리대신까지 역임한 박정양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중앙고보를 졸업한 다음 일본 명치학원 고등학부 영문과에 재학중이던 1922년 토월회라는 문예서클을 창립,김기진·김복진·이서구·김을한씨등과 함께 신극운동을 펼쳤다. 그는 1923년 서울 조선극장에서 제1회 연극공연을 가진 이래 46년까지 23년동안 「사랑과 죽음」등 2백여편의 창작 및 번안,번역 희곡을 남겼다. 문화체육부는 관련 단체와 함께 9월의 문화인물 박승희선생을 기리는 추념 공연등 다채로운 행사를 마련한다. 기념행사는 다음과 같다.(괄호 안은 주관처)◇공연 및 강연회 ▲강연회= 9일 하오 2시 흥사단 강당에서 「박승희의 연극세계」를 차범석씨(극작가)등 관련 전문가 4명이 발표(한국연극협회) ▲추념 공연=16일 하오 7시,17일 하오 4시 국립중앙극장 소극장에서 유민영교수(단국대)가 선생의 작품세계를 강연한 다음 그의 작품 「이대감 망할 대감...」을 공연(국립중앙극장,한국연극협회) ▲기념 공연=29일부터 30일까지 군산 시민문화회관에서 연극 「탁류」 3회 공연(군산문화원)◇전시회 및 자료집 발간 ▲관련 자료 전시회=1일부터 30일까지 국립중앙도서관 로비에서 현존하는 희곡작품등 전시(국립중앙도서관) ▲전집 발간=현존 희곡작품과 기고문등을 엮은 「박승희 작품세계」 9월중 발간(문체부 문화정책국)
  • 신무용개척자 배구자 새롭게 조명/미래춤학회「우리춤 선구자」학술회의

    ◎본격활동 최승희보다 2년 빨라/“한국 근대무용의 효시로 봐야” 월북무용가 최승희와 함께 근대무용의 개척자 정도로만 알려진 무용가 배구자에 대한 본격적인 조명이 처음 이루어진다. 한국미래춤학회는 26일 하오2시 문예진흥원강당에서 「우리춤의 선구자를 말한다」주제의 학술모임을 갖고 배구자의 역할과 의의에 대한 발표와 토론을 갖는데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우리 근대춤의 효시가 과연 누구인가를 놓고 열띤 논쟁을 벌일 예정이다. 이날 발제자로 나서는 단국대 유민영교수는 미리 발표된 「신무용 개척자 배구자 누구인가」에서 배구자는 1905년 출생,11세에 일본의 대표적 곡예단인 덴가츠예술단과 함께 도일해 이 곡예단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배구자는 곡예단에 회의를 느껴 탈출했으며 미국유학차 1928년 4월 장곡천정공회당에서 고별음악무도회를 가졌고 이무대에서 한국전통무용을 현대적으로 개량한 「아리랑」과 함께 안나 파블로바작 「빈사의 백조」「집시댄스」등을 선보였다는것. 배구자는 이후 결혼으로 미국행을포기,1929년 배구자무용연구소를 세워 30대 후반까지 국내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고 말했다. 유민영교수는 최승희가 창작무용연구소를 개설한 것은 배구자보다 2년뒤인 1930년이었고 발표회등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낸 것도 배구자보다 2년쯤 뒤졌음에도 불구하고 배구자가 신무용의 선구대열에서 제외됨은 무용만을 고집하지 않은채 활동무대가 넓었고 활동도 지속적이지 못했던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무용평론가 박용구씨는 배씨의 1928년 고별공연은 한국무용무대에선 처음으로 서양무용을 소개했을 뿐만 아니라 민족무용을 소재로한 창작무용을 선보여 한국근대무용의 효시로 봐야한다』고 밝혔다. 박씨는 이와함께 『최승희가 무용의 예술적 순수성에 치중했다면 배구자는 대중속에 파고드는 직업성을 중시했다』면서 배구자의 업적과 예술관이 새롭게 조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방송위간사 안문태씨/방송언어특위장 이정석씨

    방송위원회(위원장 김창열)는 24일 감사에 안문태위원(서울고법수석부장판사)을 선임하고 방송언어특별위원회장에 이정석위원,이달의 좋은 프로그램 심사위원장에 유민영위원,시청자행태조사연구위원장에 원우현위원,방송 편성·정책연구위원장에 유재천위원을 각각 지명했다. 또한 한국방송광고공사 산하 공익자금관리위원회 위원 3명에 김경식 전KBS 보도국장,이대섭 전MBC 제작이사,김원용 성균관대 신방과 교수를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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